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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2

사마의 다시 중원에 오다

당시 서강이라 일컫던 곳은 오늘날의 청해성 지방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른바 유럽과 동양 두 대륙의 경계를 이루는 고원 지대인 티베트 인종과 몽과 민족과의 혼합체인 한 왕국을 가리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서강 왕국과 위는 조조 때부터 교역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로부터 조공도 받고 있었다. 위에서는 조정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벼슬을 내렸으므로, 서강은 그것을 큰 은혜로 여기고 있었다. 서강의 국왕 철리길은 조조 때부터 해마다 조공을 바쳐온 자였다. 그 수하에는 문무에 뛰어난 이가 한 사람씩 있었는데 문관으로는 승상 아단이요, 무관으로는 원수 월길이 그들이었다. 조진이 보낸 사자는 서강의 무장 월길 원수와 재상인 아단에게 금은보화를 수레에 가득 싣고 가서 글과 함께 바치며 구원군을 청했다. 많은 예물을 받은 월길과 아단은 사자를 철리길 국왕에게 안내하여 뵙게 했다. 사자는 글과 함께 가지고 온 예물을 바치며 구원군을 요청하자 국왕 철리길이 신하들과 그 일을 의논했다. 그러자 아단이 먼저 나서 말했다.

"일찍부터 우리와 위나라는 왕래가 있었을 뿐더러 이제 조 도독이 구원을 청해 오고 화친을 허락하니 마다할 수 없을 듯합니다."

아단이 그렇게 말하는 데다 월길도 아단을 거들고 나서자 국왕 철리길은 즉시 서강군의 출진을 허락하였다. 아단 재상. 월길 원수는 곧 15만의 군사를 일으켰다. 이윽고 아단과 월길은 모든 채비를 갖추어 국왕에게 작병 인사를 올린 후군사를 내었다. 서강의 고원을 내려서면 황하와 양자강의 상류를 이루는 맑은 물이 산과 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황하의 물이나 양자강의 물은 대륙으로 흘러들면 싯누렇게 탁해지지만 이 일대의 계곡에서는 맑고 깨끗한 채로 흘렀다. 오랜 평화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고원 지대의 사나운 오랑캐 군사들은 공명이란 이름을 들어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지 못했으며 그들의 무기 또한 유별났다. 모든 무기가 예리하고 정교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은 이러한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 벌써부터 촉군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기개로 행군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럽, 터키. 이집트 등 서양과의 교류가 빈번하여 그 문화적 영향을 중국 대륙보다도 일찍 받고 있던 이 서강군은 이미 쇠로 무장한 전차(수레)며 화포를 갖고 있었고, 또한 아라비아산의 좋은 말을 타고 다녔다. 그들은 활과 쇠의 창이며 칼 질려(마름쇠 모양의 무기)와 비퇴(쇳덩이를 휘두를 수 있는 무기) 등을 쓰는 데 능했다. 또 그들이 쓰는 수레는 철엽과정이라 하여 쇠판대기를 이어 못을 거꾸로 이어 박은 것이어서 다른 나라의 전차와는 달랐다. 그 수레를 낙타나 노새가 끌었는데 평소에는 군량이나 병기 등을 싣고 다녔으나 싸움터에서는 깨뜨릴 수 없는 무기로 변해 사람들은 모두 철거병이라며 무서워했다. 군량미를 비롯한 각종 보급품의 운반은 낙타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또한 낙타를 타고 장창을 치켜든 채 행군하는 낙타대도 있었다. 낙타의 목과 안장에는 무수한 방울이 매달려 있어서, 그 방울 소리와 수레바퀴 소리는 강병들의 사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이 대군이 촉의 국경 지대인 서평관으로 닥쳐 관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평관을 지키던 장수 한정은 오랑캐의 대군이 밀려오자 깜짝 놀라 급히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공명에게 알렸다. 공명은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누가 가서 강병들을 물리칠 것인가?"

관흥과 장포가 함께 입을 열었다.

"바라건대 저희들을 보내주십시오."

사세가 급한 데다 거리는 멀고, 더구나 얼른 결판을 내지 않으면 장차 전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싸움을 빨리 끝내려면 젊고 용맹스런 관흥과 장포가 적당한 장수이지만 그들 두 사람이 나서자 공명은 문득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대들이 가는 건 좋으나 둘 다 그곳 지리에 어두우니 그것이 걱정이로다."

그렇게 말하던 공명은 생각이라도 난 듯 마대를 불러 말했다.

"그대는 원래 그곳에 오래 살아 강인들의 풍속이나 길을 잘 알 터인즉 길잡이가 되어주도록 하라."

공명은 서량 출신인 마대를 두 사람과 함께 가게 하고, 5만의 군사를 주어 그날로 서평관으로 나아가게 했다. 소나기를 머금은 먹구름이 빨게 하늘을 달리듯 서쪽을 향하여 나아간 촉병은 며칠 안 되어 서강군과 마주쳤다. 관흥이 강병과 싸우기 전에 먼저 1백여 기를 이끌고 언덕 위에 올라가서 살펴보았다. 서강군들은 쇠수레를 끌어다 머리와 꼬리가 맞물리게 늘어세워 여러 곳에 영채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쇠수레 위에는 창칼을 세워 함부로 덤벼들 수 없는 든든한 성과 같았다. 관흥은 쇠수레를 내려다보며 쳐부술 방책을 생각해 보았으나 선뜻 대책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영채로 돌아온 관흥은 장포. 마대에게 강병을 깨뜨릴 일을 의논했다. 얼른 계책이 정해지지 않자 마대가 의견을 내었다.

"싸워 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내일 그들의 진으로 밀고 들어가 허실을 살핀 다음에 계책을 세웁시다."

다음 날 아침, 군사를 세 가래로 나누어 관흥은 중앙을, 장포는 왼쪽을, 마대는 오른쪽을 맡아서 일제히 나아갔다. 서강군의 진중에서 한 장수가 말을 몰고 달려나왔다. 손에는 철퇴를 휘어잡고, 허리에는 보석으로 아로새긴 활을 차고 있었는데 바로 월길 원수였다. 관흥은 신호를 보내 전군을 휘몰았다. 그러자 서강군의 진열이 문득 쫙 갈라서는가 싶더니 그 가운데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강철 수레 철거병들이 몰려나오면서 일제히 화살을 내쏘았다. 촉병은 그 빗발치듯 한 화살에 제대로 맞서 싸울 수가 없었다. 연이은 쇠수레의 공격에 몰려서 이리 달아나고 저리 도망치고 하다가 마침내 촉병은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장포와 마대의 군사는 먼저 물러났으나 관흥과 그 휘하의 군사들은 서강군에게 포위되어 서북쪽으로 밀려 들어가고 말았다. 관흥은 적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좌충우돌하였으나 쇠수레들로 빽빽이 둘러싸여 마치 성벽과 같으니 벗어날 수가 없었고, 군사들도 서로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싸운 끝에 관흥은 가까스로 혈로를 열어 산골짜기 속을 향하여 달아났다. 어느덧 날은 저물었다. 관흥이 촉군의 영채를 찾아가기 위해 산길을 헤매고 있는데 한 떼의 검은 깃발이 앞쪽에서 몰려오면서, 한 오랑캐 장수가 손에 철퇴를 들고 외쳤다.

"어린놈아 달아나지 말라. 나는 월길 원수니라!"

월길 한 사람뿐이라면 겁을 낼 관흥이 아니었다. 그러나 월길과 더불어 그의 좌우에는 수백 명의 궁수들이 옆으로 줄지어 서서 일제히 활을 쏘아대니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관흥은 힘을 다해 말을 채찍질하며 달아나는데 갑자기 앞쪽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낭떠러지 아래로는 넓은 여울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려 월길과 싸워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미 말과 사람이 함께 지쳐 있는 데다 담이 떨어진 관흥이라 두려움이 일었다. 관흥은 여울을 끼고 벼랑 사이로 달아났다.

"어디로 달아나느냐!"

그때 월길이 덮치듯 달려오더니 관흥을 철퇴로 내리쳤다. 관흥이 간신히 몸을 피했으나 철퇴는 그만 말을 볼기를 후려쳤다. 말이 놀라 크게 울부짖더니 그대로 골짜기의 벼랑 밑으로 떨어지니 관흥도 말과 함께 계곡의 물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물속에서 솟아오른 관흥이 정신을 가다듬고 헤엄을 치는데 소란스런 소리에 얼굴을 들어보니 월길도 말과 함께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흥이 깜짝 놀라 벼랑 위를 보니 거기서 한 장수가 강병을 치며 쫓고 있었다. 관흥이 힘을 얻어 때마침 물속에서 솟아오른 월길을 향해 칼을 치켜든 채 다가갔다. 그러나 월길도 크게 놀랐던지 싸울 생각을 버린 채 헤엄쳐 달아났다. 관흥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월길을 말을 잡아 끌어올려 안장을 다시 고쳐 매고 말 위에 올랐다. 그때까지 언덕 위의 장수는 강병을 베고 후리며 쫓고 있었다.

'저 사람이 나를 구했으니 마땅히 뵙고 감사를 드려야 하리라!'

관흥이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박차 장수를 쫓아갔다. 그 장수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구름인 듯 안개인 듯한 기운니 감도는 가운데 한 장수의 모습이 은은히 떠올랐다. 얼굴은 잘 익은 대춧빛에다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이요, 녹색 전포에 금빛 투구를 쓰고 있었다. 또한 적토마를 타고 한 손에는 청룡도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아름다운 수염을 쓰다듬는데, 모습이 틀림없이 돌아가신 부친 관 공이 아닌가! 관흥이 깜짝 놀라 할 말을 잃고 있는데 관 공이 손을 들어 동남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 아들아, 얼른 이 길로 달아나거라. 네가 영채로 돌아갈 때까지 내가 지켜주리라."

그 말을 끝나자 문득 부친의 모습이 사라졌다. 관흥은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어 부친이 가리켜 준 동남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이미 밤이 깊어 가는데 문득 한 떼의 군마가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관흥이 놀라며 앞장 선 장수를 보니 바로 장포였다. 관흥이 지옥에서 부처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장포가 불쑥 물었다.

"홍은 둘째 큰아버님을 뵙지 못했소?"

그 물음에 관흥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은 어찌하여 그걸 알고 계시오?"

장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적의 쇠수레에 쫓기고 있는데 문득 둘째 큰아버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더니 강병들을 물리치시며 이르시기를 '너는 이 길로 가서 내 아들을 도와주라'하시며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셨소. 그래서 나는 군사를 이끌어 급히 이곳으로 달려오는 길이오."

이에 관흥도 부친을 만난 일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그 신비스런 일에 감탄하며 영채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영채로 돌아오자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던 마대가 맞아들였다. 오늘은 이렇게 목숨을 건졌지만 문제는 내일 닥칠 싸움이었다. 그러나 강병을 깨뜨릴 방책도 자신도 없던지라 마대가 관흥과 장포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 강병을 쳐부술 계책이 떠오르지 않소. 나는 패군을 수습하여 안전한 지대까지 물러나서 적군을 막아보겠으니 두 분은 속히 기산으로 가서 제갈 승상을 뵈옵고 어떻게 하여야 좋은지 가르침을 받아오시오. 그때까지 나는 영채와 목책을 지키며 버텨 보겠소."

당장에는 뾰족한 대책이 서지 않으니 관흥과 장포도 그 길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에 두 사람은 밤낮을 달려서 기산으로 갔다. 관흥과 장포가 달려와 싸움에 졌다는 보고를 하자 공명의 표정은 결코 밝지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자 공명은 몸소 서평관으로 떠날 채비를 갖추게 하는 한편 위연과 조운에게 각기 한 떼의 군사를 주어 어디엔가 매복하게 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새로 수습한 군사 3만여 기에다 강유. 장익 두 장수를 거느리고 관흥과 장포를 앞세워서 서평관을 향하여 길을 재촉했다. 서평관에 이르른 공명은 마중 나온 마대를 데리고 먼저 언덕 위에 올라가 강병들의 영채를 살펴보았다. 쇠수레들이 연이어져 있고 그 안에서 인마가 마음대로 이리저리 내닫고 있었다. 공명이 한동안 살피다가 말했다.

"저까짓 영채라면 깨뜨리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더니 곧 마대아 장익을 불러 계책을 내렸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물러나자 공명이 강유를 불러 넌지시 물었다.

"백약은 저 진을 깨뜨리는 방책을 알겠는가?"

"강병들은 용맹과 힘만을 믿는 무리일 뿐 지모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찌 우리의 묘한 계책을 알겠습니까?"

강유가 계책 밝히기를 사양하듯 그렇게 말했다. 공명이 강유의 뜻을 알겠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백약이 내 마음을 알고 있구나. 지금 보니 하늘에는 붉은빛이 도는 구름이 잔뜩 뒤덮여 있고, 북풍이 몰아쳐 곧 눈이 내릴 듯하니 한 번 계책을 써 볼 만한 날씨다."

공명은 그렇게 말을 하고 곧 관흥과 장포를 불러 어디엔가 매복케 했다. 이어 강유에게 일렀다.

"그대는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싸우되 철거병이 이르거든 싸우는 척하다 달아나라. 또한 영채 어귀에는 깃발들만 꽂아 두고 영채 안은 비워두라."

강유가 공명의 영을 받고 물러났다. 그때가 섣달 그믐 무렵이어서 과연 공명의 말대로 얼마 있지 않아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는 걸 보자 강유는 군사를 이끌고 나아갔다. 촉병이 나타나자 월길이 그 철거병을 성난 황소와 같이 내몰아 강유의 군사를 짓밟으려 했다. 강유는 공명이 이른 대로 적국이 가까이 몰려오면 달아났다. 적국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지면 다시 되돌아가서 싸움을 걸었다. 이렇게 싸우고 달아나고, 달아났다가는 싸우곤 하면서 점차 영채 쪽으로 물러났다. 기세가 오른 강병들은 단숨에 촉병을 깨뜨릴 기세로 마침내 공명의 본채에까지 밀고 들어왔다. 싸움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부터 주먹만 한 함박눈이 분분히 내리기 시작하고 찬 북풍이 거세게 불어닥치더니 이 지방 특유의 눈보라로 변했다. 강유가 거느린 촉병은 강병이 영채 안까지 밀고 들어오자 겁을 먹은 듯 앞을 다투어서 달아날 뿐 맞서 싸우려는 군사가 없었다. 철거병은 성난 황소처럼 순식간에 책문을 지나 열 대, 스무 대, 서른 대. . . . . . , 차례로 열을 지어 밀어닥쳤다. 이에 기마 군사 2, 보병 3, 4천도 함성을 지르며 산사태가 나듯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촉채의 이곳저곳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과 을씨년스러운 군사들의 장막만 바라보일 뿐 영내에는 군사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눈바람 소리인가, 나뭇가지에 우는 북풍 소리인가, 어디선지 아름다운 풍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촉병의 영채로 밀고 들어갔던 강병의 선봉이 후진의 월길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월길도 그 말을 듣자 섬뜩한 생각이 들어 말을 세웠다. 그리고 말 등 위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더니 중얼거렸다.

'이건 거문고 소리가 아닌가?'

월길은 불현듯 의심이 일어 함부로 밀고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월길을 뒤따라오던 승상 아단이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공명은 속임수에 능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속임수를 쓰려고 없는 군사를 있는 것처럼 꾸민 계교일 뿐인데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모든 군사는 앞으로 나아가라."

아단이 그렇게 말하자 월길도 다시 촉의 영채를 향해 군사를 물밀 듯 몰아갔다. 강병들이 눈을 부라리며 영채 안을 살피며 밀고 들어가는데 군사들은 보이지 않고, 뜻밖에도 공명이 서너 명의 말 탄 군사와 함께 거문고를 안고 수레를 몰아 영문 뒤로 달아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저것이 바로 공명이 탄 수레다. 사로잡아라!"

서강의 장수들이 그 수레를 보자 말을 짓쳐 달려가려 했다.

"거기 서라! 계략이 있는 것 같다."

월길이 그들을 말렸으나 아단이 소리쳤다.

"촉병의 매복이 있다 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그 수레에 탄 공명을 뒤쫓아라!"

아단이 그렇게 외치며 선두에 나서서 뒤쫓았다. 공명의 수레는 남쪽 책문을 나가 진영의 뒤쪽으로 이어져 있는 숲속으로 눈을 맞으며 유유히 들어가고 있었다.

"저것들을 잡아라!"

강병들은 기마대. 철거병. 보졸을 가릴 것 없이 눈발을 헤치며 공명을 뒤쫓았다. 그러자 강유가 거느리는 한 무리의 촉병이 눈 속을 헤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들이 공명을 뒤쫓는 것을 가로막는가 했더니 강병이 가까이 다가가자 다시 달아났다.

"저것들부터 먼저 해치워라. 설사 복병이 좀 있다 한들 저따위의 군사들이 무엇이 두려운가? 그대로 짓쳐 나가라."

아단이 그렇게 외치자 월길이 강유 쪽으로 말을 달려 뒤쫓았다. 강유는 힘껏 맞아 싸웠지만 원래 대적이 안 되는 병력이었다. 거의가 사나운 물결 앞의 검불처럼 박살이 나고 말았다. 더욱 기세가 오른 강병 수만 기는 숲속으로 숲길에 이어진 새하얀 눈에 덮인 들판이 나타났다. 그때까지도 눈은 세차게 쏟아져 산과 들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이니 높고 낮은 곳을 가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쪽의 숲길과 들판 사이에 띠가 가로놓이듯 좁은 늪과 연못이 눈에 덮여 있었다. 기마대와 보졸의 일부는 순식간에 언덕을 달려 내려가서 다시 저편의 언덕으로 올라갔으나 행동이 굼뜬 철거대는 약간 뒤에 처진 채 한 덩어리를 이루어 그 늪지를 건너려 했다. 철거대가 움푹하게 패어 들어간 늪지를 건널 때였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눈보라가 일더니 철거대가 송두리째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 함정이다!"

뒤따르던 철거대는 급히 철거를 세우려 했으나 눈에 덮인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수레바퀴가 갑자기 멎을 리 없었다. 강병들의 아우성 소리와 함께 꼬리를 물 듯 다른 철거들이 내리덮여서 한 구덩이에 수십 대의 철거가 순식간에 땅위에서 무너져내리듯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강병들은 구덩이에 빠지자 저희끼리 밟고 짓밟혔다. 이 완만한 경사지 끝의 늪과 연못으로 보였던 지대는 옛날의 대지진 때에 균열이 난 듯 웅덩이가 길다란 단층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이 깊은 단층 위에 몇 리에 걸쳐서 나무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다시 그 위를 나뭇가지며 풀 따위로 위장한 것이었는데 새벽부터 내린 많은 눈이 쌓여서 누가 보아도 커다란 구덩이로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기마대나 보졸이 달려서 건너가는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으므로 강병들이 그만 깜박 속고 만 것이었다. 그리하여 강병들이 하늘처럼 믿었던 철거들의 태반 이상을 한꺼번에 구덩이 속에 처박은 꼴이 되었다. 그렇게 되니 강병들이 자랑하던 철거에 깔려 죽은 군사도 수없이 많았다. 계략이 멋지게 맞아떨어지자 촉군은 징을 치고 북을 올리고 함성을 지르며 들판에서, 숲속에서, 진영의 동쪽과 서쪽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왼쪽에서는 관흥이, 오른쪽에서는 장포가, 가운뎃길로는 강유. 마대. 장익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 일제히 활과 쇠뇌를 쏘니 강병들은 화살에 맞아 죽는 자가 헤아릴 수 없었다. 강병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서로 부딪치며 짓밟은 가운데 촉병은 강병들을 에워싸고 말았다. 월길은 그 북새통에 황망이 뒷산 골짜기를 향해 도망치다가 기다리고 있던 관흥과 맞닥뜨렸다. 월길이 철퇴를 후리며 관흥과 맞섰으나, 단 두 합을 부딪지 못하고 관흥이 후려치는 청룡도에 맞아 그만 몸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아단도 황망히 달아나다 마대에 사로잡혀 본영으로 끌려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오랑캐 군사들은 얼이 빠진 채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공명이 다시 본영으로 돌아가 장막 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마대가 아단을 잡아끌고 왔다. 공명은 좌우에 명하여 결박을 풀어주게 한 다음에 술과 고기를 내려 놀란 가슴을 진정하게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렀다.

"나의 주인은 대한의 황제이시다. 이번에는 칙병을 받들어 역적을 치러 왔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역적을 돕는단 말인가? 오늘은 그대를 놓아줄 터이니 돌아가서 그대의 임금에게도 사리를 따져 잘 말씀드리도록 하라. 이웃 나라인 우리 서촉과 길이 우호를 맺고 다시는 역적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전하여라."

이렇게 타이른 공명은 사로잡았던 서강군의 군사들이며 검, 병기들을 모두 아단에게 돌려주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죽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강병은 공명의 너그러움에 감격하여 절하며 감사한 뒤 돌아갔다. 강병을 크게 무찌른 공명은 삼군을 이끌고 급히 기산의 본진으로 돌아갔다. 관흥과 장포를 앞서서 가게 한 다음 사자를 성도에 보내어 강병과 싸워 이긴 사실을 표문을 올려 알렸다. 그 무렵, 조진은 서강으로 사자를 보내 놓고 날마다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홀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촉군이 갑자기 군사를 수습하여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서쪽의 강병들이 군사를 이끌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촉병이 그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해 군사를 물리는 것이다."

조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조준과 주찬을 불러 물러나는 촉병을 뒤쫓도록 했다. 이에 선봉이 된 조준이 급히 군사를 휘몰아가는데 홀연 북소리가 크게 일며 한 떼의 군사가 내달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앞선 장수는 촉의 장수 위연이었다.

"역적은 달아나지 말고 게 섰거라."

위연의 호통에 조준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를 물린다는 말만 듣고 안심하고 뒤쫓기에만 바빴던 군사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조준이 영문을 몰라 잠시 주춤하는 사이 위연이 말을 박차며 덮쳐들었다. 조준이 위연을 맞아 싸웠으나 창칼을 맞대기 겨우 서너 번, 위연의 한칼에 맞아 말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걸 본 부선봉 주찬이 급히 군사를 내몰아 위연을 치려는데 또 한 떼의 군마가 고함을 치며 내달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맨 앞장 선 촉의 장수는 바로 조운이었다. 조운이 나는 듯이 말을 몰며 덮쳐들자 주찬을 간담이 서늘했다. 손발이 떨려 제대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조운의 한 창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선봉으로 보냈던 두 갈래의 군마가 무너지자 조진과 곽회는 또 한 번 공명의 계교에 떨어졌음을 알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그러나 본진으로 돌아가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는데 홀연 등 뒤에서 요랑스런 함성이 일었다. 공명이 강병들을 쳐부수자 먼저 선봉으로 돌려보낸 관흥과 장포가 거느린 촉병이었다. 조진과 곽회는 다시 촉병에게 크게 꺾인 채 나머지 군사를 이끌어 달아나기에 바빴다. 관흥과 장포는 그 길로 곧장 밀고 들어가 위수에 있는 위의 영채를 거두어들였다. 촉병에게 쫓겨 달아난 조진은 조준. 주찬 두 장수를 잃은 채 영채를 내린 후 표문을 써서 낙양으로 구원병을 청했다. 조진이 올린 표문이 낙양에 이르자 조회를 하고 있는 위주 조예에게 표문을 본 근신이 아뢰었다.

"지금 대도독 조진이 촉병에게 크게 패해 두 선봉 장수와 많은 군사를 잃었다 합니다. 거기다 구원하러 갔던 강병들도 공명에게 수많은 군사를 잃고 물러나서쪽의 형제가 자못 위급하다고 합니다. 조진이 표를 올려 구원을 청해 왔으니 폐하께서는 처결하여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조예는 몹시 놀랐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조예가 놀란 얼굴로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화흠이 나서 무거운 얼굴로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이번에 몸소 납시어 널리 제후를 모으시고 모든 사람들이 명을 받들어서 적을 물리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장안을 잃게 될 지도 모르며 관중 지방까지 위태로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아니올시다!"

태부 종요가 반대하고 나섰다.

"무릇 장수된 사람은 보통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 재지를 지녀야만 비로소 남을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손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고 했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조진이 비록 싸움 경험이 많기는 하나 제갈량의 적수는 도지 못하옵니다. 신이 전 가족을 걸고 촉병을 물리칠 만한 장수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그러나 폐하의 뜻이 어떠하신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종요는 위나라의 공이 많은 원로 신하였다. 종요의 말에 조예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경의 조정의 원로대신이오. 그런 훌륭한 인물이 있다면 급히 불러 짐의 근심을 덜도록 하시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요?"

조예의 물음에 종요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지난날 제갈량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 국경을 범하려 했을 때 이 사람이 있어 바로 밀고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다만 거짓 소문을 퍼뜨려 폐하께서 이 사람을 내치시게 한 뒤에야 군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이 사람을 쓰신다면 제갈량은 절로 물러갈 것입니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위주 조예가 재촉하며 물었다. 종요가 그 물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힘주어 대답했다.

"표기대장군 사마의입니다.

그 말을 듣자 위주 조예의 얼굴에 지난날을 후회하는 빛이 역력히 떠올랐다. 평소에도 사마의를 물리친 일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온 터인데 종요가 사마의에 관한 말을 하자 위주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짐의 큰 실수였소, 지금 중달은 어디에 있소?"

"듣자니 완성 땅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다 합니다."

조예는 곧 조서를 내리고 사자에게 절을 주어 보냈다. 뿐만 아니라 사마의의 관직을 회복시키며 평서 도독을 겸하게 하고, 곧 남양 각처의 군마를 일으켜 장안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그리고 위주 스스로도 몸소 어가를 장안으로 이끌 것임을 알리게 했다. 사자가 조서를 받들어 밤새도록 완성으로 달려갔다. 그 무렵, 기산에 있던 공명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다음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제 기운은 이미 무르익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장안을 친 다음 낙양으로 들어가리라."

공명이 그렇게 말하며 위나라를 치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영안궁을 지키고 있는 이엄이 그의 아들 이풍을 보내 왔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동오가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명은 이엄이 급히 그의 아들을 보내오자 얼른 그렇게 생각했으나 막상 만나 보니 그건 공연한 걱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부친을 대신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어떤 소식인가?"

이풍의 말에 공명이 의아스런 얼굴로 물었다. 공명의 물음에 이풍이 대답했다.

"지난날 맹달이 위에 투항한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관 공의 죽음에 대한 죄를 면할 길이 없는 데다 유봉은 또한 제가 빠져 나갈 것만 생각하니 부득이 위로 간 것입니다. 맹달이 위로 가자 조비는 맹달의 재주를 아껴 좋은 말과 금은보석을 상으로 내리며 가마를 타고 드나들 만큼 높다 대했습니다. 벼슬을 산기상시에 영 신성태수를 내려 상용과 금성 등의 땅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이풍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맹달은 위에 투항한 이후 한때는 조비의 신뢰와 은총을 받았으나 조비가 죽고 새 황제 조예가 등극하고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조정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는 바람에 밤낮 불안 속에 지내며, 늘 휘하의 여러 장수들을 보고 '내가 본디 서촉의 장수였으나 형세가 부득이하여 이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의 졸개들도 지금은 고국인 서촉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기산과 위수의 전황을 들을 때마다 '왜촉을 떠났을까' 하며 몹시 후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맹달은 이러한 심경을 글 속에 담아 이엄에게 보냈다. 그 글에는 '부디 나의 이러한 처지를 제갈 승상에게 전해 주시오' 하며 다시 승상께 되돌아올 뜻을 말씀드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풍은 맹달의 그간의 경위를 대강 전한 다음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맹달은 지난날 승상께서 다섯 길로 인마를 이끄시어 서천을 쳤을 때도 촉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했습니다. 이제 승상께서 위를 친다는 말씀을 들었으니 앞으로 금성. 신성. 상용 세 곳의 군사를 일으켜 자신도 낙양으로 밀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승상께서 장안을 치신다면 양경(냑양과 장안)을 차지하게 되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맹달의 사자와 함께 왔으며 그가 보낸 글도 가지고 왔습니다."

"근래에 없는 기쁜 소식이다. 좋은 말을 전해 주었다."

공명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 군사가 바깥에서 쳐들어갈 때 맹달이 안에서 내응한다면 천하를 도모하는 일은 이미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공명은 이풍과 함께 온 맹달의 사자에게 상까지 내렸다. 이때 세작이 와서 소식을 전했다.

"위주 조예가 장안으로 가는 한편, 조서를 내려 사마의의 관직을 복직시키고 평서도독을 더하여 제수한 다음, 그로 하여금 남양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달려오게 하였다고 합니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조예가 사마의와 함께 촉병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이끈 것이 틀림없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어두운 얼굴이 되자 곁에 있던 참군 마속이 물었다.

"승상께서는 무엇을 그다지 두려워하십니까? 조예 따위가 장안으로 오면 사로잡기가 더 쉬워질 뿐입니다. "

그러자 공명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조예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내가 꺼려하는 사람은 오직 사마의 한 사람뿐이다. 내가 보는 바로는 위나라에서 인물다운 인물은 사마의 한 사람뿐이라고 해도 좋다. 지금 맹달이 내응을 하겠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만약 맹달이 군사를 일으켰다가 사마의와 맞붙게 되면 이 일은 어그러지고 말 것이다. 맹달은 도저히 사마의의 적수가 될 수 없으니 만약 맹달이 사마의에게 잡혀 죽는다면 중원을 얻을 수 없게 되는데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마속이 서슴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맹달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려 주면 그도 미리 대책을 세울 게 아닙니까?"

"물론 지금으로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지채없이 사자를 보낼 채비를 하라."

공명은 그의 말을 좇아 즉시 글을 써서 맹달의 사자에게 주며 밤낮을 가리지 말고 돌아가서 맹달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사자는 그날 밤 안으로 길을 떠나 맹달이 있는 신성으로 달려갔다. 그 무렵, 맹달은 자신이 촉으로 보낸 사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문득 공명으로부터 서신이 왔다는 말을 들은 맹달은 급히 그 글을 뜯어 보니 공명의 친필이었다.

이번에 공이 보낸 글을 받아보고 공의 충의로운 마음을 알게 되었으며, 옛벗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오겠다니 매우 기쁘오. 만약 큰 일을 이루게 되면 공은 곧 한조를 다시 일으키는데 으뜸 가는 공을 세운 것이 될 것이오. 그러나 모든 일을 은밀히 하고 삼가며 가벼이 남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시오. 요사이 조예가 다시 사마의를 불러 들여 완성. 낙양의 군사를 일으킨다 하니, 공이 일을 꾀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먼저 그리로 달려갈 것이오. 부디 모든 일에 방비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시고 사마의를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시오.

공명이 맹달에게 그렇게 간곡히 당부했으나 맹달의 생각은 달랬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제갈량의 의심이 지나치게 많다더니 이 글을 보니 과연 그렇구나."

맹달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공명의 걱정이 부질없는 기우라고 여긴 맹달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글을 써서 심복을 시켜 공명에게 전하게 했다. 공명이 그 사자를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서 맹달의 답서를 받고 그 자리에서 펼쳐 보았다. 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보내주신 가르침의 글 잘 받아보았습니다. 승상의 가르침을 받고 어찌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마의로 말하면 굳이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완성은 낙양에서 8백 리나 떨어져 있으며, 이곳 신성에서는 12백 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만약 사마의가 저의 거사 소식을 들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위주에게 표문을 올려야 할 것이니 오고 가는 데 한 달은 걸릴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에 성의 방비를 더욱 튼튼히 하고 여러 장수와 군사들도 깊고 험한 곳을 의지하게 하여 대비할 것입니다. 그가 온다 하여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승상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이겼다는 소식만을 기다리십시오.

공명은 그 글을 다 읽자 글을 땅에 내던지고 발을 굴렀다.

"아아. 맹달은 반드시 사마의의 손에 죽고 말겠구나!"

"승상께서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마속이 놀란 얼굴로 옆에서 물었다. 공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병법에 이르기를 '그 방비 없는 곳을 치고, 그 뜻하지 않은 점을 노려야 한다' 하였다. 사마의가 어찌 한 달이나 기간을 주리라고 여기고 있는가? 만약 그가 맹달이 모반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는 낙양으로 가는 일은 뒤로 미루고 곧장 완성을 떠나 맹달을 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쪽에서 다시 맹달에게 글을 보내는 것보다 빠르다. 아아, 어찌 신성이 버텨 낼 수 있겠는가? 때는 이미 늦었다."

공명의 말을 듣자 그제야 마속도 얼굴색이 달라졌다. 공명은 맹달에게서 온 사람에게 다시 한 통의 글을 써 주었다.

만약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거든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마시오. 같이 일할 사람이라도 결코 이 일을 알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공 이외에 누구든 이 일을 알게 되면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될 것이오.

공명은 그렇게 글을 써서 맹달의 사자로 하여금 급히 신성으로 돌아가 전하게 했다. 한편, 고향인 완성의 시골에서 한가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사마의는 싸울 때마다 위군이 촉병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 마지않았다.

"싸울 때마다 지기만 하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 촉병을 막을 장수가 이다지도 없다는 말인가?"

그런 사마의에게는 사마사. 사마소 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사마사의 자는 자원이요, 사마소의 자는 자상이었다. 사마사. 사마소 형제는 그 아버지를 닮아 모두가 담대하고 지혜로우며 병서에 통달해 있었다. 그날, 두 아들이 사마의 곁에 시립해 있다가 아버지가 길게 탄식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탄식하십니까?"

"너희들이 어찌 천하의 큰 일을 알겠느냐?"

사마의 중달은 마디가 굵은 앙상한 손가락으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큰아들 사마사가 사마의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면서 말했다.

"혹시 위주께서 써 주지 않는 것을 한탄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자 둘째 아들 사마소가 웃으며 아버지를 위로하듯 말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머지않아 반드시 천자의 부르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홀연 사람이 달려와 천자의 절을 지닌 사신이 이르렀음을 알렸다. 사마의는 황급히 달려나가 천자의 조서를 받들었다. 사신은 위주 조예의 조서를 전하는 한편 그 영도 전했다. 이에 사마의는 곧 완성과 그 인근에 살고 있는 일족을 불러모으는 한편 널리 군마를 모으기 위해 완성의 각처에 격문을 띄웠다. 평소에 그의 이름과 그 인품을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아 사마의가 사는 고을에는 순식간에 모여든 군마로 가득 찼다. 이 무렵, 신성태수 신의의 휘하 사람이 은밀히 만나기를 청해 왔다. 사마의가 군사를 내려던 참이라 바쁜 가운데도 그를 불러들이고 물었다.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느냐?"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맹달이 모반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소상히 밝히며, 맹달의 심복인 이보, 맹달의 생질 등현이 맹달의 죄를 알리는 글도 내놓았다. 사마의가 그걸 보자 무릎을 치며 말했다.

"이야말로 우리 천자의 큰 복이시다. 제갈량이 군사를 거느리고 기산에 둔치고 있어 안팎의 모든 사람이 다 간담이 서늘해진 터이고, 천자께서도 부득이 장안으로 납시지 않을 수 없게 된 이 판국에 만약 나를 쓰지 않으셨다면 맹달이 한달음에 두 서울(낙양과 장안)을 빼앗았을 것이다. 맹달, 그는 틀림없이 제갈량과 내통하고 있을 것이니 내가 먼저 역적을 치면 제갈량이 간담이 서늘해져 제풀에 군사를 물릴 것이다."

"그렇다면 급히 표문을 쓰셔서 천자께 올리도록 하시지요."

곁에 있던 큰아들 사마사가 말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만약에 천자의 칙지를 기다리다가는 오고 가는 데 한 달이 걸린다. 그동안에 일은 결판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말한 사마의는 곧 군마를 나아가게 하며 엄하게 영을 내렸다.

"군사들은 나아가되, 길을 재촉하여 이틀에 갈 길을 하루에 가도록 하라. 만약 뒤처지는 자가 있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목을 베리라."

사마의는 대군을 휘몰라 신성으로 달려갔다. 사마의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어 나아가기에 앞서서 참군 양기로 하여금 격문을 들고 신성으로 달려가서 맹달에게 출전할 채비를 하라고 이르게 했다. 맹달이 자기에게 의심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어 나아간 지 이틀 만에 어느 산골짜기에 산 무리의 군마가 나타났다. 우장군 서황과 그의 군사였다. 서황은 말에서 내려 사마의를 보고 물었다.

"천자께서 장안으로 납시어 몸소 촉군을 막으려 하시는 이때에 도독께서는 장안으로 가시지 않고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지금 맹달이 모반을 일으키려 하니 그를 사로잡으러 가는 길이오."

사마의는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서황이 깜짝 놀라더니 다음 순간 분연히 말했다.

"맹달이 모반을 일으켰따니. . . . . . 그렇다면 저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서황이 나서자 사마의는 크게 기뻐하며 그를 선봉으로 삼고, 자기는 중군을 이끌고 두 아들은 후군을 거느리게 했다. 다시 이틀을 나아갔을 때였다. 앞서서 가던 전군의 초마가 수상한 사람 하나를 붙들었다. 몸을 뒤져 보니 뜻밖에도 공명이 맹달에게 보내는 답서가 나왔다. 그 사람은 바로 맹달의 심복이었는데 공명이 써 준 글을 가지고 가다 붙잡힌 것이었다. 사마의는 끌려온 맹달의 심복을 향해서 말했다.

"내가 너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도록 하라."

맹달의 심복은 공명은 맹달 사이에 글로써 오고 간 말들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사마의는 공명의 답서를 읽고 크게 놀랐다.

"아아, 큰일 날 뻔했다. 만약 맹달이 공명이 이르는 대로 순순히 따랐더라면 우리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뛰어난 이들의 생각이란 다 같구나. 내가 곧장 맹달을 칠 것이라는 것을 공명이 먼저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 . . . . 아무튼 길을 서둘러야겠다."

그 말과 함께 사마의는 두 아들을 불러 더욱 서둘러 길을 재촉하도록 일렀다. 한편 신성에 있는 맹달은 음성태수 신의와 상용태수 신탐에게 날을 잡아서 군사를 일으키자고 단단히 일러놓았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신의. 신탐 두 사람은 거닛으로 응낙을 해놓고는 매일 군마를 조련하며, 위군이 이르기만 하면 이에 내응하여 도리어 맹달을 사로잡을 속셈이었다. 맹달에게는 아직 병기와 군량이 갖추어지지 않아 군사를 일으킬 날짜를 정하기 어렵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맹달은 촉에서 달아날 때부터 행동을 같이해 온 사람들이라 그들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 무렵, 참군 양기가 달려왔다. 맹달이 그를 맞아들이자 양기는 사마의의 군령을 전했다.

"사마 도독께서는 이번에 천자의 조칙을 받들어 각처의 군사를 일으켜 촉군을 치기로 하였습니다. 속히 태주께서도 군마를 모아놓고 영을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도독께서는 언제 출전하시오?"

"아마 지금쯤은 완성을 떠나 장안으로 나아가고 계실 것입니다."

"내가 이제 큰일을 이룰 수 있게 되었구나!"

맹달은 사마의가 양기를 보내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으나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잔치를 베풀어 양기를 대접했다. 양기가 돌아가자 맹달은 곧 신탐과 신의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 일으킬 일을 전하게 했다.

'내일 군사를 일으켜 모두 깃발을 대한으로 바꾸어 낙양으로 쳐들어가도록 합시다.'

맹달이 신탐과 신의에게 그렇게 전하게 한 다음 군사를 일으킬 채비를 하는데 군사 하나가 달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알렸다.

"성 밖에 티끌이 자욱이 일며 어느 쪽 군사인지 알 수 없으나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말은 듣자 맹달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맹달이 부랴부랴 성루에 올라가 달려오는 군사들을 바라보니 '우장군 서황'이란 기치를 앞세운 한 무리의 군마가 성 아래로 달려오고 있었다. 맹달은 크게 놀라며 급히 적교를 끌어올리게 하고 자신은 계속 성루 위에 서서 서황이 어떻게 나오나를 지켜 보고 있었다. 서황은 달려오던 여세로 곧장 해자 가까이에 이르러 소리 높여 외쳤다.

"역적 맹달은 냉큼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서황이 그렇게 외치니 맹달은 어찌 된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일이 그른 것을 알았다. 다급해진 맹달은 급히 활을 들어 서황을 겨누어 쏘면서 전군에게 영을 내렸다.

"활과 쇠뇌를 쏘아라!"

맹달이 쏜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서황의 이마에 깊이 꽂혔다.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맹달과 마주치는 바람에 화살과 맞아 죽었으니 용맹을 천하에 떨치던 위의 맹장 서황으로서는 정말 허망한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 그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대장을 잃은 서황 군사들의 기세는 잔뜩 움츠러든 채 성벽 위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성루에서 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맹달이 급히 성 밖으로 군사를 내몰았다. 성문을 모두 열고 쏟아져 나온 맹달의 군사는 기세가 꺾인 위군을 덮치려 했다. 그때였다. 사방이 정기들로 뒤덮이고 북소리가 땅과 하늘을 뒤흔들며 사마의의 대군이 밀려들었다. 맹달이 자세히 살펴보니 천군만마 위에서 펄럭이는 커다란 깃발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마의'라는 세 글자가 뚜렷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아차, 서황의 군사만 온 것이 아니었구나."

그제야 맹달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과연 공명의 헤아림 그대로이구나!"

당황한 맹달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성안으로 달려 들어가 성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사마의는 관을 갖추어 서황의 시신을 거둔 후 낙양으로 보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다음 날이 되자 맹달이 성 위에 올라가 위병의 형세를 살폈다. 위병은 성을 사방으로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다. 맹달은 철통같은 위병의 포위를 뚫을 길이 없어 앉으나 서나 불안할 뿐이었다. 맹달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데 홀연 위병의 뒤쪽에서 두 갈래 군마가 티끌을 자욱이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는데 보니 큰 깃발에는 '신탐과 신의'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탐과 신의가 나를 구하러 왔구나!' 신탐과 신의가 자기 사람이라고 믿고 있던 맹달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맹달은 그들이 위병의 뒤를 칠 때 자신이 앞쪽을 치리라고 작정하고 거느린 군사를 휘몰아 성문을 열고 내달아갔다. 그런데 마주 달려오던 신탐과 신의가 맹달을 보고 소리쳤다.

"역적아, 어서 이 칼을 받아라."

그가 하늘같이 믿었던 신의와 신탐이 그렇게 꾸짖자 맹달과 그 두 사람이 거짓으로 자기와 일을 꾸몄음을 깨달았다. 급히 말머리를 돌려 성안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성 위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졌다. 맹달이 놀라 성 위를 올려다보니 이보와 등현이 버티고 서서 외쳤다.

"우리는 이미 성을 바쳤다."

맹달은 눈앞이 캄캄했다. 하는 수 없이 목숨만은 건져 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싸워 혈로는 뚫고 도망쳤다. 신탐이 그 뒤를 바짝 쫓아갔다. 맹달은 싸울래야 싸울 기력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탐이 맹달을 덮쳤다. 사람과 말이 모두 물먹은 솜처럼 지쳐서 제대로 손을 놀려 보지도 못하고 맬달은 신탐의 한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신탐이 그의 머리를 베니, 남은 군사들은 모조리 병장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이보와 등현은 성문을 활짝 열고 사마의를 성안으로 맞아들였다. 사마의는 항복한 군사들을 거두고 휘하의 군사들을 정돈한 다음 북소리를 울리며 당당히 신성에 들었다. 사마의는 삼군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 노고를 위로하는 한편 백성들의 놀란 마음을 달래 주었다. 사마의의 이보와 등현으로 하여금 신성을 지키게 하고, 신의. 신탐의 군사들을 아울러서 다시 장안을 향하여 길을 서둘렀다. 맹달의 목은 즉시 낙양으로 보내졌다. 맹달의 목이 장안에 이르자 위주 조예는 크게 기뻐하며 맹달의 목을 낙양의 저잣거리에 내걸게 하여 그 좌상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 본보기로 삼게 했다. 이미 장안에 이르러 있던 위주 조예는 장안에서 사마의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모습을 행군에서 보자 반기며 말했다.

"짐이 지난날 발게 헤아리지 못하고 반간계에 속아 경을 내친 일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소. 이번 맹달의 모반도 경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장안과 낙성의 두 서울은 모두 빼앗겼을 것이오."

조예가 차하하자 사마의는 고개를 숙이며 표문을 올리지 못한 까닭을 밝혔다.

"신은 신성으로부터 모반의 음모가 있다는 밀고가 있었을 때 폐하께 아뢰어 윤허를 받으려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가고 오는 사이에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성지도 받자옵지 않고 밤을 새워 달려갔사옵니다. 만약 폐하의 윤허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제갈량의 계략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옵니다."

말을 마친 사마의는 공명이 맹달에게 보낸 답장을 바쳤다. 조예는 그 답장을 읽고 나서 감탄했다.

"경의 높은 학식은 손자. 오자보다 뛰어나오."

조예는 금으로 만든 도끼를 내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위급한 일이 있거든 내게 알릴 것 없이 경이 알아서 처결토록 하시오."

조예는 사마의에게 그렇게 이른 뒤 관을 나가 촉을 치게 했다. 사마의는 군사를 이끌어 떠나기 전에 조예에게 청했다.

"신이 한 대장을 천거하여 선봉으로 삼을까 합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예가 얼른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우장군 장합이 이 일을 맡을 만합니다.

조예가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그를 쓰려던 참이었소."

조예는 곧 장합에게 명하여 전부선봉을 맡게 했다.

 

거문고로 15만 대군을 물리치다

장합을 선봉으로 삼은 조예는 구원을 청한 조진을 돕기 위해 신비와 손례에게 영을 내려 군사 5만을 이끌고 나아가게 했다. 신비의 자는 좌치로 영주 양적 태생이며 일찍부터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위주 조예의 군사로 항상 옥좌 곁에서 위주를 섬기고 있었으며, 손례의 자는 덕달이며 호군대장이었다. 장수들의 배치가 끝나자 사마의는 총병력 20만을 장안의 관문 밖으로 이끌고 나가서 부채꼴로 진지를 펼친 다음, 선봉장 장합을 자신의 막사로 불러 말했다.

"제갈량은 원래 근신하고 조심하는 사람이라 결코 가볍게 서두르는 법이 없소. 만약 내가 그의 자리에서 군사를 부린다면 먼저 자오곡으로 해서 지름길로 가정을 쳤을 것이오. 이러는 편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오. 공명 그가 이 방법을 몰랐을 리 없소. 그러나 공명이 곧바로 자오곡으로 나아가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쪽의 허를 급습해 장안을 치자는 위연의 계책이 시간적으로나 싸움의 형세로 보아 크게 이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만약에 매복이라도 있어 낭패에 빠질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오. 그는 장차 사곡으로 나와서 미성을 빼앗아 거기에서 군사를 나누어 한 갈래는 기곡으로 향할 것이오. 그러므로 내가 이미 격문을 보내 자단(조진)으로 하여금 미성을 굳게 지키되, 만약 촉군이 나타나면 나가서 싸우지 말라고 일러두었소. 그리고 손례와 신비에게는 기곡의 길목을 끊고 있다가 적군이 나타나면 불시에 기습하여 적을 치게 했소."

그러자 장합이 궁금하다는 듯 불쑥 물었다.

"그러시다면 장군께서는 어디로 나아가려 하십니까?"

그 물음에 사마의는 한결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진령의 서쪽에 길이 하나 있고 그 길에 가정이라는 곳이 있으며, 그 곳에 성이 하나 있는데 열류성이라 하오. 이 두 곳은 그야말로 한중에 이르는 목구멍과 같은 곳이오. 제갈량은 자단에게 아무 대비도 없으리라 여기고 필시 그곳으로 군사를 낼 것이오. 가정은 양평관과 멀리 않은 곳에 있소. 제갈량이 내가 가장 요긴한 길인 가정을 끊으면 군량을 실어 올 길이 없으니 농서 일대도 마음대로 지킬 수가 없을 것이오. 그렇게 되면 밤을 틈타 한중으로 도망갈 터인즉 그때 좁은 길목을 막고 덮치면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만약 그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내가 돌아갈 만한 여러 곳의 샛길을 모두 통나무나 바위로 막아 놓고 군사를 보내 기키게 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한 달도 안 돼 군량이 바닥날 테니 촉병은 모두 굶어 죽고 제갈량도 하는 수 없이 내 손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오."

사마의의 빈틈없는 계책을 듣자 정합은 크게 깨달은 듯 땅에 엎드려 넙죽 절을 올리며 말했다.

"도독의 계책은 실로 귀신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굳은 얼굴로 장합에게 일렀다.

"계략만 듣고 미리 기뻐하지 마시오. 상대는 제갈공명이오. 맹달 따위와는 근본부터 사람됨이 다르오.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되오. 10리를 나아가면 백 리 앞으로 척후를 보내고 백 리를 나아가면 적의 매복이 있나 없나를 소상히 살피며 진병하여야 할 것이오. 만약 조금이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반드시 제갈량의 계책에 떨어지고 말 것이오."

사마의의 당부에 장합도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에 장합을 선봉으로 보낸 사마의는 손수 격문을 써서 조진의 본진으로 보내어 계책을 알리는 한편, 공명의 꾐에 빠져서 가볍게 군사를 내지 말고 단단히 경계하도록 했다. 그렇게 되니 위나라와 촉나라는 기산 일대의 산악과 광야의 경계선으로 하는 그 첫 번째 큰 싸움을 앞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처럼 천혜의 지형과 이 넓디넓은 천지는, 공명이 선택하여 정한 싸움터였다. 역사를 가름할 이 싸움을 벌이기 전에 촉군이 먼저 지리적 우위를 자치할 셈이었다. 그 무렵 공명은 기산에 머무르고 있었다. 맹달로부터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끝내 소식이 없자 세작을 풀어 신성으로 보냈다. 며칠이 지나자 세작이 돌아와 놀라운 소식을 알렸다.

"맹달이 사마의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마의가 하루에 이틀 길을 달려 여드레 만에 신성에 이르러 맹달이 제대로 손 쓸 사이도 없게 된 데다 신팀. 신의. 이보 등이 오히려 사마의와 내응했습니다. 맹달이 쫓겨가다 난군 중에 죽었다고 합니다. 사마의는 다시 장안으로 들어가 위주를 본후 장합과 함께 군사를 이끌어 관을 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공명은 그 말에 크게 놀랐다. 걱정스런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맹달은 큰일을 하는데 치밀하지 못하여 죽은 것이다. 그러나 사마의가 이토록 신속하게 대군을 갖추어서 몰려온다면 가정 방면이 걱정된다. 그는 서슴지않고 가정을 과녁으로 삼을 것이다. 가정은 우리의 목줄과도 같으니 하루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중에 가정을 지킬 사람은 없는가?"

공명이 그렇게 물으며 여러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공명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참군 마속이 나섰다.

"제가 가정으로 나아가 적을 깨뜨리겠습니다."

공명은 마속의 얼굴을 잠시 지켜보았다. 마속을 믿고 아끼는 터였으나 적임자로서는 미덥지 않다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공명은 입을 열었다.

"가정은 작지만 매우 중요한 곳이다. 만약 이곳을 잃으면 우리는 숨통이 끊기는 것과 같다. 그대가 병법에 능하다고는 하나 그곳에는 성도 없고 의지할 만한 험한 곳도 없으니 지키기 어렵다."

공명이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하자 마속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병서와 가까이하여 병법은 제법 짐작하고 있는 터인데 어찌 가정을 지키지 못한다 하십니까?"

"사마의는 만만하게 볼 인물이 아니다. 더구나 그 선봉은 위에서는 명장으로 이름이 높은 장합이다. 그대에게는 벅찬 상대이다."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공명의 말에 마속은 한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사마의와 장합은 커녕 조예가 나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만약 실수가 있을 때에는 저의 일족에게 벌을 내리도록 하십시오."

마속은 공명은 아버지처럼 따르고 스승처럼 존경하고 있었다. 공명도 또한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이 그의 성장을 다년간 비켜 보았던 터였다. 본디 마속은 오랑캐와의 싸움 때 죽은 마량의 아우였다. 마량과는 둘도 없는 친구로서 사귀어 오던 공명은 그 유족을 다 거두어서 정성껏 돌봐 주었는데 유독 마 속의 재주와 그 그릇을 공명은 몹시 아끼고 있었다. 일찍이 선제 유비는 공명에게 '이 아이는 재주가 지나치다 중요한 일에 쓰지 말라'고 말한 바 있는데 공명의 사랑은 어느덧 유비의 그 말도 잊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속의 재능은 성장함에 따라 두드러지게 정진하더니 군계, 병략에 있어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공명도 마속이 뒷날 크게 될 것을 알고 남모르게 지켜 보고 있었다. 지금 그 마속이 떼를 쓰듯 출진을 간청해 온 것이었다. 공명은 승상이요, 군의 총수로서 그에게는 이번 일이 벅차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싸움에 내보내는 것은 뒷날을 위해 좋은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내 공명은 다짐하듯 말했다.

"군중에서 실없는 말은 하지 않는 법이다"

"군령장을 써 두고 가겠습니다."

마속이 그 말과 함께 군령장을 써서 공명에게 바쳤다. 그러자 공명은 마속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공명이 마속에게 출진할 것을 허락하며 말했다.

"그대에게 정병 25천과 상장 한 사람을 딸려 보내겠다."

공명은 곧 왕평을 불러서 영을 내렸다.

"그대가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임을 아는 까닭에 이 중임을 맡기고자 한다. 그대는 항상 삼가고 조심하도록 하라. 진을 칠 때에는 반드시 요긴한 길목을 택하여 적군이 쉽사리 지나가지 못하게 하라. 영채가 다 세워지면 반드시 그곳의 세밀한 지도를 그려서 나에게 보이도록 하라. 모든 일을 충분히 상의한 다음에 행할 것이며 가볍게 나서지 말라. 만약 그곳을 잘 지켜 낸다면 장안을 빼앗는데 첫째가는 공을 세운 것이 될 것인즉, 부디 내 말을 가슴에 새겨 두도록 하라."

공명은 마속에게 혹시라도 변고가 있을까 염려하여 왕평에게도 그렇게 일러두었다. 마속과 부장 왕평은 공명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가정을 향하여 진병하였다. 그들이 떠난 다음 날 공명은 고상을 불러 1만기의 병력을 주고 명을 내렸다.

"가정의 동북쪽 기슭에 열류성이라는 곳이 있다. 산모퉁이의 좁은 길이라 군사를 안전하게 숨길 만하다. 그대는 그곳으로 나아가 있다가 가정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면 즉시 마속을 도우라."

고상이 떠난 뒤에도 공명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지 않았다. 고상은 장합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맹이 뛰어난 한 장수를 가정의 오른쪽에 머무르게 하여 적을 막도록 해야만 되리라.'

공명이 그렇게 생각하고 위연을 불러 가정 뒤편에 매복해 있다가 마속을 돕게 했다. 그러자 위연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는 마땅히 선봉이 되어 앞장 서서 적을 깨뜨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적이 오는 뒤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으라 하십니까?"

공명이 그런 위연을 좋은 말로 깨우쳐 주었다.

"선봉이 되어 적을 치는 일은 편장이나 비장도 할 수 있는 일이오. 이제 장군이 가서 도와야 할 가정은 양평관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 될 뿐만 아니라 한중으로 가는 목구멍을 모두 지키는 실로 무거운 책임이 아닐 수 없소. 그곳은 결코 싸움의 형세나 실피는 곳이 아니오. 그대는 이 일을 등한히 하여 나라의 큰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시오. 부디 삼가고 조심해 맡은 바 일을 다해 주시오."

위연은 그제야 적이 기뻐하며 군사를 이끌어 떠났다. 위연이 떠나갔으나 공명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했다. 다시 조운과 등지를 불러 분부했다.

"이번에는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었으니 지난날의 싸움과는 다를 것이오. 두 분은 각기 한 떼의 군마를 거느리고 기곡으로 나가 의병(거짓으로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꾸밈)이 되어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달아나기도 하며 적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시오."

조운과 등지도 영을 받고 군사를 이끌어 떠났다. 모든 배치를 끝낸 공명은 강유를 선봉장으로 삼아서 중군을 이끌어 사곡을 거쳐 미성으로 향했다. 먼저 미성을 빼앗은 다음에 그곳을 거점으로 하여 장안으로 밀고 들어갈 작정이었다. 그 무렵 먼저 떠났던 마속은 가정에 이르렀다. 마속은 우선 그곳의 지형과 지세를 살피더니 껄걸 웃었다.

"승상은 왜 그리도 걱정이 많으신지 모르겠소! 산도 그리 험하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데다 길이래야 나무꾼이나 다닐 정도의 좁은 길이 몇 개 있을 뿐인데 어째 위가 대군을 휘몰아올 수가 있겠소?"

그러자 왕평이 마속의 말을 받았다.

"비록 지세는 그러하나 그래도 대비는 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곳의 다섯 갈래로 갈라진 길에다 진을 치고 나무를 베어 책을 세워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오래 지킬 수 있는 계책을 세웁시다."

", 답답한 말씀. 길에 어떻게 영채를 세운단 말이오. 저 옆의 산은 둘레로 이어지는 산도 없고 나무도 무성하오. 이야말로 천혜의 요해요. 저 산 위에 진을 치고 군사를 머무르게 하는 것이 좋겠소."

마속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왕평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나 왕평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은 잘못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이 길에다 진을 치고 나무를 베어 높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으면 비록 10만의 적군이 온다 해도 단 한 사람도 뚫고 지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요해지를 버리고 산 위에 진을 세웠다가 위군이 불시에 나타나 사방을 에워싸면 도저히 버티어 내지 못합니다."

왕평이 이곳 지세를 살펴 이치를 헤아려 가며 말했다. 그러나 마속은 한 번 작정한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껄껄 웃으며 나무라듯 말했다.

"공의 소견이 마치 여자와 같구려. 병법에도 '높은 데에 의지하여 아래를 보면 형세가 대를 쪼개는 것같이 쉽다' 하였소. 위군이 온다면 나는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소!"

그러나 성품이 신중한 왕평도 그 정도로는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여러 차례 승상을 따라다니며 영채 세우시는 걸 보아왔소. 이르는 곳마다 승상께서는 영채 세우는 까닭을 가르쳐 주셨소이다. 지금 이 산을 보니 바로 절지(도망갈 곳이 없는 땅) 입니다. 만약 위군이 와서 우리가 물을 길러 다니는 길만 끊어 놓는다 해도 우리 군사들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어지러워질 것입니다."

왕평이 끝내 물러서지 않고 승상까지 들먹이며 대꾸하자 마속은 문득 심사가 뒤틀렸다. 그의 말이 겁 많은 간섭처럼 들려 목소리를 높여 꾸짖듯 말했다.

"그대는 여러 소리 하지 마시오. 손자도 말하기를 '죽을 곳, 즉 사지(절대절명의 곳)에 든 후에야 산다' 하였소. 만약 위군이 우리의 물길을 끊는다면 우리의 군사들은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 아니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해 낼 것이 아니겠소. 나는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고 있어서 승상까지도 일이 있을 때마다 내게 물으시곤 하시었음을 그대도 알지를 않소? 그런데 공은 어찌하여 내가 하는 걸 막으려 하시오."

왕평은 더는 말다툼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자칫 입씨름을 계속하다가는 다툼이 일어난 염려가 있다고 여겼다.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참군께서는 산 위에 영채를 세우십시오. 나는 5천 군사로 산기슭에 진을 쳐서 서로 의지하는 의각지세를 취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속은 마땅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른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문득 그곳 산속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내달아와서 알렸다.

"위병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왕평이 그 말을 듣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마속도 그제야 마지못한 듯 왕평에게 허락했다.

"공이 굳이 내 영을 듣지 않겠다니 5천 군사를 떼어 주겠소. 가서 원하는 곳에다 영채를 세우시오. 그러나 위병을 물리친 뒤에 승상 앞에 가서는 결코 공을 나누어 갖지는 않을 것이오."

이에 왕평은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산 아래 10리 되는 곳에다 영채를 세웠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세운 영채와 마속이 세운 영채를 그림으로 그려 공명에게 보내면서 마속이 막무가내로 산 위에 진을 친 사실을 소상히 보고하게 했다. 이 무렵, 사마의는 중군 본영의 막사 안에서 둘째 아들 사마소에게 앞길을 살펴보게 했다.

"지형과 지세를 세밀하게 살피되, 가정에 적군이 진을 치고 있으면 더 나아가지 말고 돌아오라."

명을 받고 떠난 사마소는 그다음 날 돌아와서 부친에게 보고했다.

"가정에는 적군이 와 있었습니다."

"그곳에 벌써 촉병이 와 있다는 말이냐? 제갈량은 과연 신묘한 지략을 지닌 사람이구나."

사마의가 감탄하자 사모소는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어찌하여 의기를 움츠리려 하십니까? 제가 보기에 가정을 빼앗기는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느냐?"

사마의가 아들의 말에 나무라듯 물었다. 그러자 사마소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자세히 살편본 즉 길에는 영채나 책이 보이지 않고 군사들은 모두 산 위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뭐라고, 산 위에다 진을 쳤다고?"

그 말에 사마의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룰 수 있게 하시는 것이리라!"

사마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몸소 1백여 기를 거느리고 촉의 영채를 살피러 나섰다. 이날 밤, 하늘은 맑고 달은 밝았다. 사마의는 산기슭까지 말을 몰고 가서 사방을 둘러본 다음 본진으로 돌아왔다. 산 위에 있는 마속은 달빛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마의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숨이 아까운 줄 알면 여기를 에워싸지는 않으리라."

이어 마속은 휘하 장수들에게 영을 내렸다.

"백에 하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적군이 몰려오거든 산꼭대기에서 붉은 기를 흔들 것이나 지체없이 사방으로 내려가 적을 들이치도록 하라."

한편 본진으로 돌아온 사마의는 장수들에게 가정을 지키는 장수는 누구냐고 물었다.

"마량이 아우 마속입니다."

그 말에 사마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공명도 사람을 잘못 쓰는 일이 있군. 마속은 헛된 이름만 있을 뿐 용렬한 인물이다. 북소리 한 번에 그를 깨뜨릴 수 있겠다."

사마의는 몹시 기쁜 듯 그렇게 말하더니 좌우를 보며 다시 물었다.

"가정 근처에 다른 군사들도 있던가?"

"산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왕평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마의는 장합을 보고 말했다.

"장군은 산기슭에 진을 치고 있는 왕평이 올 길을 끊으시오."

이어 사마의는 다시 신의와 신탐을 불러 영을 내렸다.

"그대들은 저 산을 에워싸도록 하라. 그리하여 적이 물을 길어 먹는 길부터 끊어 그들이 혼란을 일으키거든 그때 짓쳐들도록 하라."

장합과 산탐. 신의는 사마의의 영을 받자 그날 밤으로 군사를 이끌어 갔다. 군중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물이었다. 촉군은 그 물을 산 아래까지 내려가서 길어오고 있었다. 사마의의 명을 받은 장합은 다음 날, 날이 밝자 군사를 이끌어 산 뒤로 돌아갔다. 산 위 마속군과의 연락을 끊음과 동시에 촉군이 산 아래로 물을 길러 내려오는 길을 끊기 위함이었다. 그럴 동안 사마의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어 가정의 산기슭을 두 겹 세 겹 물도 새지 않게 에워싸고 있었다. 마속이 산 위에서 보니, 사방에 위병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그 기치와 대오가 흐트러짐 없이 정연했다. 촉군이 그걸 보자 두려워져 함부로 산 아래로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속은 위병이 산 아래에 몰려든 것 보고 붉은 기를 휘두르게 했다. 그러나 장졸들이 한결같이 담이 떨려 감히 산 아래로 내려가려 하지 않자 마속은 몹시 성이 났다. 칼을 빼 들고 장수 두 사람의 목을 쳐 본보기를 보이며 군사들을 내몰았다. 그제야 장졸들이 산 아래로 내려가 위병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위병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촉병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촉병들은 그런 위병이 두려워 힘을 다해 싸우기보다 몇 번 창칼을 맞대다 다시 산 위로 달아났다. 마속이 그제야 일이 뜻같이 않음을 보고 영을 내려 군사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물러날 때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했으므로 산 위에 오른 군사들은 모두 지쳐서 제풀에 쓰러졌다. 위병들은 달아나는 촉병을 보고도 뒤쫓지 않고 제자리만을 지킬 뿐이었다. 그때 촉장 왕평은 위병이 들이닥친 것을 보고 군사를 이끌고 나가다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장합을 만났다. 왕평이 장합을 맞아 싸웠으나 아무래도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거느린 군사까지 장합의 군사에 비해 너무도 적은 숫자였다. 수십 합을 싸우다가 힘에 부친 왕평은 마침내 자기의 영채로 돌아가고 말았다. 위병은 마속이 내려와 싸우려 하지 않자 진시부터 술시까지 에워싸고 있었다. 마속은 왕평으로부터 구원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자 점점 외로운 형세가 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밥을 지을 물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었다. 당연히 군사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먹지 못해 주린 데다가 목이 말라 군사들의 소동은 점점 커지더니 끝내 한밤중이 되자 산 남쪽에 있던 군사들이 진문을 열고 산 아래로 내려가 위군에 투항하고 말았다. 마속이 칼을 빼어들고 달아나는 군사들을 소리치며 막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걸 본 사마의는 때가 왔음을 알았다.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산기슭에 불을 놓게 했다. 사방에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자 촉병들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마속도 마침내 더 견뎌낼 자신이 없자 군사들을 휘몰라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내려가 서쪽으로 달아났다. 사마의는 길을 끊고 있었으나 달아나는 촉병에게 짐짓 길을 열어주었다. 죽기 살기로 맞서는 촉병과 싸우다 자칫 자기 쪽 군사가 상할까 염려해서였다. 다만 그 뒤를 장합으로 하여금 뒤쫓게 했다. 장합이 일어나는 마속을 30여 리쯤을 뒤쫓았을 때이다. 홀연 앞쪽에 북소리, 징 소리가 나며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달아나는 마속에게 길을 비켜 주며 장합을 가로막는 것을 보아 촉군임에 틀림없었다. 장합을 보니 앞선 촉장은 위연이었다. 뜻밖에 우연이 가로막고 나서자 장합은 크게 놀라며 말머리를 돌렸다. 기세가 오른 위연이 습한 기세로 달아나는 장합을 50여 리나 뒤쫓았다. 그때였다. 홀연 고함 소리가 크게 일며 양쪽에서 각기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왼쪽은 사마의요, 오른쪽은 사마소가 이끄는 위군이었다. 형세가 그렇게 뒤바뀌자 그때까지 달아나던 장합이 군사를 되돌려 마주 달려오니 위연은 세 갈래 군마에 휩싸인 꼴이 되고 말았다. 위연은 죽기로 작정하고 힘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위연이 좌충우돌하며 싸우는 동안 군사들은 태반이 꺾이고 말았으며 얼마 안 가 촉병은 그야말로 위병의 창칼에 모두 결단이 날 위급한 형세였다. 그때 홀연 한 떼의 군사가 위군의 등 뒤에서 나타나 위병을 쳤다. 앞장 선 장수는 바로 촉장 왕평이었다. 위연이 지옥에서 부처님이라도 만난 듯 크게 기뻐했다.

"내가 이제 살았구나!"

장졸들도 왕평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자 힘이 솟았다. 힘을 합해 다시 위병을 몰아치며 한 갈래 길을 여니 위병도 마침내 물러났다. 그 틈을 타 위연과 왕평은 군사를 거느려 급히 영채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기들의 영채에 위의 기치가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마의와 장합이 위연. 왕평과 싸우고 있는 사이 신탐. 신의가 그 영채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두 장수는 신탐과 신의가 군사를 몰아오자 더 싸울 마음이 나지 않아 열류성으로 달렸다. 그곳의 고상에게 의지하기 위해서였다. 위연과 왕평이 한동안 말을 달려가는데 문득 앞쪽에 한 떼의 군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앞선 장수는 바로 고상이 아닌가.

"장군들께서는 어찌 된 일이시오?"

고상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고상은 가정이 위군에게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급히 성안의 군사를 이끌어 구원하기 위해 달려오던 중이었다. 위연과 왕평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주자 결연히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위병의 영채를 쳐 가정을 되찾도록 합시다."

위연과 왕평이 마다할 리 없었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각기 한 갈래씩 군사를 이끌어 위군의 영채를 덮치기로 했다. 먼저 위연이 군사를 이끌어 가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위병들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위연이 또 적의 계략에 빠진 것이 아닌가 의심이 일어 앞으로 내닫지 못하고 그곳에 군사를 매복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상이 군사를 이끌어 왔다.

"위병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이오?"

"내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부터 보이지 아니했소. 자칫 적의 계략에 말려들까 의심이 들어 매복해 있는 중이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기로 했던 왕평의 군사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논을 하며 왕평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포향이 울리며 위병이 새카맣게 쏟아져 나오더니 위연과 고상을 에워쌌다. 꼼짝없이 위병들의 한가운데에 갇혀 버린 두 장수가 깜짝 놀라 좌우 닥치는 대로 적을 베고 찌르며 길을 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산 뒤편에서 요란스럽게 북소리가 울리며 한 떼의 군마가 달려 나왔다. 왕평이 그제야 군마를 이끌어 온 것이었다. 왕평이 두 장수를 구해 함께 열류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들이 열류성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성의 주변에는 한 무리의 군사가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높이 솟아 있는 깃발에는 '위도독 곽회'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곽회는 대도독 조진과 함께 기산 앞에 포진을 하고 공명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가정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마의만이 모든 공을 세우게 할 수는 없다' 곽회와 조진은 그렇게 뜻을 정하고 갑자기 열류성을 빼앗으러 왔다가 촉의 세 장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위연. 왕평. 고상은 뜻밖의 이 새로운 군사와 부딪치게 되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거느린 군사만을 잃은 채 급히 양평관으로 달려왔다. 위연 등이 양평관 방면으로 달아나자 곽회는 열류성을 빼앗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비록 가정을 취하는 공은 남에게 빼앗겼으나 열류성을 얻게 되었으니 이 공 또한 가볍지 않으리라."

그렇게 말하며 곽회가 성 아래에 이르러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호포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무수한 기치들이 일제히 세워졌다.

", 아직도 촉군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놀라워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그 기치들은 모두 위군의 기치였다. 그런데 그중 두드러지게 크게 붉은 깃발에는 금빛 글씨도 선명하게 '평서도독 표기장군 사마의'라는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곽회가 어리둥절해 성 위를 보는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곽백제(곽회의 자)는 어찌하여 이렇게 늦게 왔소?"

성 위의 큰 깃발 언저리에서 목소리가 들려 와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사마의가 성루의 난간에 기댄 채 껄껄대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곽회는 크게 놀랐다.

'사마중달의 귀신같은 재주는 당할 수가 없구나!'

성안에 들어간 곽회는 더없이 정중하게 경배를 올렸다. 서로 인사를 마치자 사마의가 곽회에게 말했다.

"이제 가정을 잃었으니 공명도 달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공은 자단(조진의 자)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급히 공명을 뒤좇도록 하시오."

사마의가 공을 세울 기회를 주자 곽회는 두말 않고 다시 성을 나갔다. 사마의는 장합을 불러서 말했다.

"곽회와 자단은 내가 혼자 공을 세울까 시기하여 이 성을 빼앗으러 온 것이오. 내가 본디 혼자 공을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닌데 운이 좋아 그리된 것이오. 그런데 위연. 왕평 무리는 패군을 이끌고 가서 양평관을 지킬 테지만, 우리가 승세를 타서 경솔하게 추격을 가하면 공명은 반드시 등 뒤로 돌아와서 우리를 칠 것이오. 병법에도 '돌아가는 군사를 덮치지 말고,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하였소. 그러므로 우리는 샛길로 해서 촉군의 뒤로 돌아갑시다. 그대는 산길로 해서 기곡으로 진병하되, 촉군이 패하여 달아나더라도 이를 쓸어 없애려고 밀어붙이지 마시오. 병장기, 군량미, 말 등을 거두어서 야곡을 빼앗은 다음에 서성까지 우려빼고 나서 다음 계책을 세웁시다. 서성은 산간에 있는 작은 성이지만 촉군이 군량을 비축해 놓고 있을 것이오. 멀리 원정하고 있는 촉군의 양초를 우리가 빼앗아 버리면 그들이 무슨 재간으로 싸움을 계속하겠소. 우리의 군사를 많이 잃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오."

사마의로부터 명을 받은 장합은 대군을 이끌고 기곡을 향해 떠났다. 사마의도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야곡으로 나아갔다.

"야곡을 빼앗고 다시 서성으로 나아갈 것이다. 서성은 비록 산골의 작은 성이나 촉군이 곡식을 쌓아 둔 곳일 뿐만 아니라 남안, 천수, 안정 세 군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서성만 얻는다면 세 군을 얻기란 어렵지 않다."

사마의는 그렇게 말하며 신의. 신탐 두 사람에게는 열류성을 지키게 했다. 이 무렵, 공명은 마속을 가정으로 보내 지키게 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홀연 왕평이 보낸 사자가 가정에서 도본을 가지고 왔다는 전갈이 왔다. 공명은 즉시 그를 불러들이고 도본을 받아 마속이 세운 영채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살피던 공명이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마속이 어리석어 우리 군사를 모두 구렁텅이로 쳐넣었구나!"

여간한 일에는 한탄도 후회도 하지 않는 공명이었건만 이때만은 홀로 탄식하며 피가 배어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장사 양의는 일찍이 보지 못한 공명의 처절한 탄식에 조심스레 물었다.

"승상께서는 무엇에 그리 놀라십니까?"

"이것을 보라."

공명은 왕평의 글과 영채의 포진도를 던져 주며 말했다.

"내가 이 포진도를 보니 요긴한 길은 비켜 놓고 산에 올라가 진을 쳤다. 위군이 몰려와서 사방을 에워싸고 물을 길러 가는 길을 막아 버리면 군사들은 이틀이 못 가서 아우성을 칠 것이 뻔하다. 만일 가정을 빼앗기면 우리들은 어디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공명의 말에 좌우의 여러 장수들은 숙연한 얼굴로 말을 잃었다. 장사 양의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곧 가서 마유상(마속)을 대신해서 지켜볼까 합니다."

"이미 늦은 감은 있으나 그래도 그대가 가보도록 하오."

공명은 양의에게 영채 세우는 법을 자세하게 일러 준 뒤 떠나게 했다. 양의가 군사를 점고하여 막 떠나려 할 때 병사 한 명이 달려와 알렸다.

"가정과 열류성을 모두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공명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홀로 중얼거렸다.

"아아. 일은 다 틀어졌도다. 모두가 내 잘못이다!"

그렇게 탄식하던 공명은 곧 관흥과 장포를 불러 영을 내렸다. 젊은 두 장수는 긴장한 얼굴로 공명의 영을 받들었다.

"그대들은 각기 정병 3천 기를 거느리고 샛길을 통해 무공산으로 가서 진을 쳐라. 만일 위군이 나타나더라도 싸우지 말고 다만 북을 치고 고함을 질러 대군이 거기 숨이 있는 체하기만 하라. 적군이 놀라 달아나더라도 결코 뒤쫓지 말라. 적군이 모두 물러나기를 기다려 곧바로 양평관으로 가라."

공명은 이어 장익을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는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고 검각으로 가서 우리가 돌아갈 때를 대비하여 길을 정비해 놓으라. 나는 그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공명은 이어 전군에게 영을 전하게 했다.

"모든 군사는 가만히 짐을 꾸려 떠날 채비를 갖추도록 하라."

공명은 또 마대와 강유에게 후군을 맡게 하면서 일렀다.

"그대들은 산간에 숨어 있다가 적군이 오면 막도록 하라. 우리 군사들이 모두 안전하게 물러난 다음 때를 보아서 군사를 거두도록 하라."

이어 공명은 믿을만한 장수를 부러 영을 내렸다.

"조진의 진지를 측면에서 찌르고 들어가라. 그러면 조진은 그 기세에 겁을 먹고 쉽사리 반격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사람을 보내 천수. 남안. 안정의 군관민 모두를 한중으로 옮겨 가게 할 것이다."

공명은 한편으로는 기성으로 사람을 보내 강유의 어머니를 한중으로 모셔가도록 했다. 물러날 준비를 마친 공명은 다시 5천 기를 거느리고 서성현으로 가서 그곳에 비축해 두었던 군량미를 한중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군량미를 나르는 길이 끊어질 것에 대한 대비였다. 그때 사방으로 내보냈던 척후 중의 한 사람이 달려와서 급히 알렸다.

"큰일 났습니다! 사마의가 몸소 15만 대군을 거느리고 곧장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척후병이 연이어 열 차례나 급보를 알렸다.

"급합니다. 대군이 물밀 듯이 밀고 들어옵니다."

공명으로서도 암담할 수밖에 없었다. 좌우를 둘러볼 때 믿을 수 있는 장수들은 거의가 각처로 나가 있는 데다 수하의 5천 군사도 이미 절반은 먼저 군량미를 싣고 한중으로 갔고, 성안에는 25백 군사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공명이 성루에 올라가 바라다보니 과연 흙먼지가 하늘을 메우는 가운데 위병이 몰려오고 있는데 그들은 두 길로 나뉘어서 이곳 서성을 밟아 뭉갤 듯한 기세로 밀려오고 있었다. 성은 작고 군사는 고작 25백 명, 공명이 아무리 귀신 같은 묘책을 부린다 하더라도 저 대군을 막아 내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렇다고 그때서야 성을 빠져 달아난다는 것은 곧 스스로 사로잡히기 위해 나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이윽고 공명은 위의 대군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모든 깃발은 거두어서 감추라. 모든 군사들은 각자의 위치에 가서 지키되, 만일 함부로 드나들거나 큰 목소리로 떠드는 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

이어 그는 성의 네 문을 활짝 열게 하고, 성문마다 군사 20명씩을 백성의 옷차림으로 갈아입게 한 후, 길에 나가 물을 뿌리고 쓸어서 마치 귀인을 맞이할 때처럼 깨끗이 하도록 일렀다.

"위병이 닥치더라고 움직이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내게 한 계책이 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영을 내린 공명은 학장의를 입고 윤건을 쓰고 두 명의 어린아이에게 거문고를 들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향을 사르며 거문고 앞에 단정하게 앉았다. 밀물이 밀려오듯 성벽 아래로 몰려온 위군의 선봉은 뜻밖에 공명의 의연한 모습을 보자 문득 의심이 일어 감히 밀고 들어가지 못하고 즉시 중군의 사마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무어라고, 공명이 성 위에서 거문고를 뜯는다고?"

사마의는 얼른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잠시 군사를 멈추게 한 다음 몸소 말을 달려 가만히 성 위를 바라다보았다. 과연 높다란 성 위에 향을 사르고 거문고를 뜯으며 웃고 있는 듯한 공명의 모습이 보였다. 맑고 우아한 거문고의 가락은 바람에 실려 난간을 휘감고, 이슬이 내리듯 땅 위로 흘러내렸다. 공명의 왼쪽으로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보검을 받쳐 들고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한 동자가 먼지떨이를 들고 서 있었다. 사마의는 그걸 보자 까닭 없이 덜컥 의심부터 들었다. 거기다가 금세 사람이 나와서 마중이라도 할 듯 눈앞의 성문은 양쪽으로 활짝 열려 있지 않은가. 그뿐이 아니었다. 성문 안팎으로는 물을 뿌리고 깨끗하게 길을 쓸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적을 맞고 있는 사람들의 짓거리가 아니었다. 이윽고 지켜 보던 사마의는 몸을 떨며 사방을 휘둘러보더니 갑자기 중군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후군은 전군이 되고, 전군은 후군이 되어 북산 쪽으로 물러나라!"

그 소리에 둘째 아들 사마소가 놀라며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 공명이 거느린 군사가 없어 저렇게 속임수를 쓰는 건지도 모르는데 왜 물러나라 하십니까?"

"아니다!"

사마의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갈량은 천성이 신중해서 평생 위태로운 짓을 한 일이 없을 만큼 조심하는 사람이다. 지금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으니 필시 매복이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공격하여 들어가기만 하면 그의 계책에 떨어지고 만다. 너희들이 그런 것까지 알겠느냐? 어서 빨리 물러나야 한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자 사마소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침내 위의 대군은 두 갈래 군사를 모두 거두어 물러나고 말았다. 공명은 위군이 물러나는 걸 보고 손뼉을 치며 소리내어 웃었다. 모든 관원들이 믿어지지 않는 이 광경을 지켜 보며 그저 멍하니 있다가 위군이 모두 물러나자 모두 공명에게 달려가 물었다.

"사마의는 위의 명장이라고 들어 왔습니다. 지금 15만의 정병을 거느리고 여기까지 와서 승상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달아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내가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절대로 헛되어 위험한 짓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거문고를 타고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간 것이다. 나 또한 이렇게 위태로운 짓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어 이런 속임수를 쓰게 되었을 뿐이다. 이제 그는 반드시 산의 북쪽 샛길로 갔을 것이다. 그것에는 이미 관흥과 장포 두 사람으로 하여금 기다리게 했다."

공명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놀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승상의 깊고도 기이한 꾀는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들 같으면 성을 버리고 달아났을 것입니다."

그 말에 공명이 고개를 저으며 깨우쳐 주었다.

"내가 지금 거느린 군사는 25백에 지니지 않는다. 만약 성을 버리고 달아난다 해도 어찌 사마의가 힘을 다해 뒤쫓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반드시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공명이 그렇게 말하더니 손바닥을 쓸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마의였다면 결코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로 위급한 때에 공명은 15만 대군을 거문고 하나로 물리친 셈이었다. 통신수단이나 정보수집이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었던 시대였으며 특히 상대가 공명이었기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생겨난 사마의의 오산이었다. 뒷날 사람들이 공명을 찬탄한 시를 지었다.

석 자 거문고 하나로 위군을 이겼으니

공명이 서성에서 적군을 물리칠 때였네.

15만 대군이 말머리 돌린 그곳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그곳 가리키며 의아해하네.

공명은 즉시 서성을 나가서 한중으로 옮겨갔다. 사마의가 물러가긴 했으나 반드시 다시 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천수. 안정. 남안의 관리와 백성들은 속속 그 뒤를 따랐다. 한편 공명이 짐작한 대로, 사마의의 군사는 무공산의 북쪽 샛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자 홀연 산 뒤쪽에서 함성과 북소리가 땅을 뒤흔들 듯이 일어났다. 사마의가 당황한 가운데도 아들을 뒤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내가 달아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제갈량의 계략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였다. 큰길 위로 한 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오는데 깃발에는 '우호위사 호익장군 장포'라고 씌어 있었다. 서성에서 제대로 한번 싸우지도 않고 물러나자 두려움에 질려 있던 위병들이었다. 갑자기 촉군이 밀려나오자 기겁을 하며 갑옷을 벗고 창칼을 내던지며 달아났다. 위병들이 한동안 달아나고 있을 때였다. 다시 산골짜기 안에서 함성과 함께 북소리. 피리 소리가 땅을 뒤흔들 듯 일어나더니 한 떼의 촉군이 뛰쳐나왔다. 앞선 장수의 깃발에는 '좌호위사 용양장군 관흥'이라고 씌어 있었다. 관흥이 거느린 군사와 장포가 거느린 군사가 함성과 북소리를 울리니 그 소리는 산과 들이 떠나갈 듯해 위군은 도대체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대군으로만 여겼다. 감히 맞서 싸워 볼 엄두도 못 낸 채 이번에는 이끌고 가던 치주도 버리고 달아났다. 그러자 사마의는 큰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관흥과 장포는 그런 위병을 뒤쫓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버리고 간 치중과 병장기와 양초만을 거두어들였다. 그때 기산에 있던 조진의 중군은 공명이 달아났다는 급보를 받자 황급히 뒤쫓았다. 그러자 산 뒤에서 마대와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나와 덮쳤다. 조진은 급히 군사를 뒤로 물렸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위군의 장수 진조가 마대의 칼에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조진이 군사를 물리자 촉병도 모두 군사를 거두어 한중으로 돌아갔다. 한중에 돌아간 공명은 즉시 기곡의 길가에 매복해 있는 조운과 등지에게 전령을 보내 군사를 물리게 했다. 그러자 조운이 등지에게 말했다.

"우리 군사가 물러난 것을 알면 위병들이 반드시 뒤쫓을 것이오. 나는 먼저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고 뒤편에 매복한 것이나 공은 내 깃발을 앞세워 군사들을 거느려 나아가시오. 나도 천천히 뒤따르며 공의 뒤를 돌볼 것이오."

기곡은 촉과 위의 국경 지대 중에서 지세가 가장 험한 곳이었다. 공명의 영을 받자 산속에 외롭게 남은 이는 조운과 등지였으며, 조운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군사를 물린 채비를 했다. 먼저 등지의 군사를 앞서서 떠나게 하고 그는 군사들과 더불어 골짜기 안에 매복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 위의 부도독 곽회는 다시 기곡으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조운이 군사를 물리는 것을 알게 되자 선봉장 소옹을 불러 명했다.

"촉의 조운은 용맹하기 짝이 없으니 조심해서 공격하도록 하시오. 적이 물러나는 것도 계략일 것이나 함부로 부딪지 않아야 할 것이오."

"도독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제가 조운을 사로잡겠습니다."

소옹은 선봉이 되자 욕심이라도 났던지 서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소옹은 곧 정병 3천 기를 거느리고 산속의 험한 길을 서둘러 촉군을 뒤쫓았다. 소옹이 한동안 촉군을 뒤쫓는데 홀연 산언덕 위에서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조운'이라 씌어진 깃발이 보였다. 소옹은 그걸 보자 지금까지 큰소리쳤던 것과는 달리 황급히 군사를 되돌려 뒤로 달아났다. 아무래도 조운과의 싸움만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몇 리를 가지도 않아서였다. 홀연 함성이 크게 울리더니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나 짓쳐들어왔다. 그러자 맨 앞에 있는 대장이 장창을 치켜들고 말을 달려 다가오며 크게 호통쳤다.

"너 이놈, 상산의 조자룡을 아느냐, 모르느냐?"

소옹은 깜짝 놀랐다. 조금 전에 조운의 깃발을 보고 도망쳐 오지 않았는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찌 여기 또 조자룡이 있다는 말이냐?"

그렇게 생각하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소옹이 미처 손을 놀려 볼 사이도 없이 조운이 나는 듯이 달려와 한 창에 그를 찔러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소옹이 한창에 찔려 죽자 군사들은 머리를 싸안고 달아났다. 위병이 물러나자 조운은 군사들을 거두어 다시 천천히 군사를 물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곽회의 휘하 장수 만정이 전보다 더 많은 군사들이 이끌고 조운을 뒤쫓았다. 그들이 어느 커다란 숲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홀연 그들의 등 뒤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상산의 조자룡이 여기 있다!"

그 호통 소리에 놀라 말에서 떨어진 군사가 1백 명이 넘었고, 나머지 군사들은 서로 앞에 다투어서 고개를 넘어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만정은 그래도 군사를 이끈 자이라 용기를 내어 맞서 싸우려고 나섰는데 조운이 쏜 화살에 투구 끈이 맞아 투구가 훌렁 벗겨지자 기겁을 해 그만 골짜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조운은 창을 들어 그의 코 앞에 들이대고 말했다.

"네 목숨은 살려 줄 터이나 돌아가서 곽회더러 더 빨리 쫓아오라고 일러라."

만정은 혼백이 반쯤 나간 상태가 되어 돌아갔다. 만정이 돌아가 조운의 말을 전하자 곽회도 더는 조운을 뒤쫓을 맘이 들지 않았다. 물러나는 조운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렇게 되니 조우는 무엇 하나 잃지 않고 수레와 인마를 이끌어 무인지경을 가듯 한중으로 갔고, 조진. 곽회는 그나마 천수 등 세 군을 거둔 것을 자기네 공으로 삼았다. 그때 사마의는 다시 군사를 여러 길로 나누어 촉군을 치러 나왔다. 그러나 촉군은 이미 한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는 서성으로 군사를 움직여 그곳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불러모아 물어보았다. 공명은 성안에 단지 25백 군사만 거느리고 있었는데 장수급 인물은 한 사람도 없었고 문관만 있었을 뿐 복병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는 대답이었다. 또한 무공산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말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관흥과 장포가 각기 3천 기를 거느리고 있었을 뿐인데 그들이 산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함성을 지르고 부을 치고 했을 뿐입니다. 많은 군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그들은 위군이 달아날 때도 공격할 생각도 않고 뒤쫓지도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의는 공명에게 속은 걸 알았다. 싸움에 이겼으면서도 이리저리 공명에게 쫓겨 다녔음을 알고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아아, 나는 아무래도 공명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구나."

사마의가 공명의 위세와 계략에 말려들어 촉병을 깨뜨리지 못했으나 싸움은 촉군이 물러남으로써 위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사마의는 각처의 험한 길목을 엄중히 지키게 하고 다시 찾은 그 땅의 백성들과 관원을 위무한 다음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장안을 향하여 개선의 길에 올랐다.

 

읍참마속 공명은 스스로 벼슬을 깎다

장안으로 개선한 사마의는 위주 조예를 찾아뵙자 조예가 사마의를 반겨 맞으며 치하했다.

"이제 농서의 여러 고을을 얻은 것은 모두가 경의 공이오."

그러자 사마의가 결연히 말했다.

"농서의 여러 고을에 있던 촉군은 모두 물러갔으나 촉의 군마를 모두 쳐 없앤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신에게 다시 대군을 내려 주신다면 서천을 떨어뜨려 폐하의 큰 은혜에 보답할까 합니다"

조예는 사마의의 말에 더 한층 기뻐하며 말했다.

"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어찌 마다하리오."

그러자 상서 손자가 나서서 간했다.

"제게 촉을 평정하고 오를 항복시킬 만한 계책이 있습니다. "

"그게 어떤 계책인가?"

조예가 얼른 묻자 손자가 선뜻 대답했다.

"옛날 태조 무황제(조조)께서 장로를 평정하실 때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가 나중에 일을 성취하였습니다. 후에 늘 신하들에게 '남정의 땅은 하늘이 만든 감옥과 같고 야곡은 5백 리의 험한 돌과 바윗길이므로 군사를 쓸 만한 땅이 못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제 만약 천하의 군사를 일으켜 그 험난함을 밟고 촉으로 들어가면 필시 오나라가 우리의 허를 찔러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처의 경계를 굳게 하고 안으로 더욱 힘을 기르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럴 동안 서촉과 동오는 저희끼리 서로 싸워 해칠 것이니 그때를 노려 도모하시면 이기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조예도 그 말을 듣자 어긋남이 없는 말 같았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고 사마의에게 물었다.

"경의 어떻게 생각하시오."

"손 상서의 말 또한 매우 지당하다 생각합니다."

사마의는 손자의 말을 듣자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굳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 않았다. 조예도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자 곧 손자의 말에 따랐다. 이에 장안의 수비에는 곽회와 장합을 남기고 그 외에 여러 험한 길목마다 방비를 엄중히 하게 한 다음 위주는 낙양으로 돌아갔다. 한편 한중에 들어와 있던 공명은 패전의 뒷수습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기고 짐은 싸움에서 매양 있는 일이라 하지만 공명으로서는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패배의 쓴잔을 마셨으므로 그의 심중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거기다 이미 각 군마는 속속 한중으로 들어왔으나 조운과 등지의 두 군마가 돌아오지 않아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공명은 관흥과 장포에게 각각 일군을 거느리고 조운이 돌아오는 길로 나가 돕게 했다. 관흥. 장포 두 장수가 군사를 정돈하여 막 떠나려 할 때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조운. 등지 두 장군께서 돌아오십니다. 군사 하나 상하지 않았고 치중이나 병장기 하나 잃은 것이 없다 하옵니다."

기다리던 두 장수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말에 공명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다. 공명은 곧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마중 나갔으며, 성문 앞에 이르른 조운도 그런 공명을 보자 말에서 뛰어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말했다.

"싸움에 지고 온 장수를 승상께서 어찌 이같이 나와 맞으십니까?"

공명은 얼른 그를 부축해 일으킨 다음 손을 잡고 말했다.

"이번 일은 오로지 내가 밝음과 어리석음을 분간하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요. 그런데 다른 장수들은 다 적지 않은 군사를 잃었는데 장군은 군사 한 사람, 말 한 마리도 잃지 않았으니 대체 어찌 된 일이오?"

등지가 옆에서 조운 대신 대답했다.

"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앞서가고 조 장군은 홀로 처져서 뒤를 지키셨습니다. 그러다 뒤쫓은 적장들을 베어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니, 감히 우리들을 뒤쫓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군사 하나, 말 한 필, 병기 하나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참다운 장군이란 바로 그대를 가리켜 하는 말이오."

공명이 감탄하며 황금 50근을 가져오게 하여 조운에게 상으로 내리고 비단 만 필을 그 수하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려 했다. 그러나 조운은 이를 굳이 물리치며 말했다.

"삼군이 아직 이렇다 할 공을 세움이 없고 또한 싸움에 졌으니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 저희들이 상을 받는다면 오히려 이는 승상의 상벌이 분명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을 원인이 됩니다. 바라건대 그 상은 잠시 곳간에 넣어 두었다가 겨울철이 되어 여러 가지로 물자가 부족해졌을 때 군사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신다면 군사들도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공명은 더욱 감탄해 마지않았다. 일찍이 옛 주인 유비가, 이 사람을 무겁게 쓰며 깊이 믿었던 일이 새삼 가슴 속에 되살아났다. 비록 싸움에 졌으나 공명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더욱 조운을 우러르니 공명과 조운은 이전보다 더욱 굳은 마음으로 맺어졌다. 그러나 조운과는 달리 공명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마속이었다. 마속. 왕평. 위연. 고상은 조운과 등지가 이른 뒤에야 당도했다. 그들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공명이 입을 열었다.

"왕평을 불러라."

공명은 침중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이윽고 왕평이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공명은 가정의 패인을 왕평의 허물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부장으로서 마속에게 딸려 줄 때 당부까지 해 두었던 사람인 만큼 그부터 먼저 꾸짖었다.

"내가 너에게 마속과 함께 가정을 기키도록 하며 당부의 말까지 했다. 그런데 어찌해서 마속을 말리지 않고 일을 그르쳤느냐?"

공명의 물음에 왕평은 숨김없이 모든 걸 밝혔다.

"가정이 이르러 영채를 세울 때 떠나기 전 승상께서 일러 주신 바가 있어 저로서는 어긋남이 없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하오나 저는 부장의 위치에 있고 참군은 주장이므로 저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왕평은 이렇게 서두를 꺼낸 뒤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처음 가정에 이르자 참군이 갑자기 산 위에도 영채를 세우겠다 하여 제가 두 번 세 번 만류하였으나 참군은 몹시 성내며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따로 5천 군사를 이끌고 산 아래 1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위군이 벌떼처럼 이르러 산을 에워싸 저는 여러 번 적진을 뚫으려 했으나 5천의 작은 군사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 위에 본군도 물길이 끊겨 군사들이 소동을 일으키다 마침내 군영을 벗어나 위군에 투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참군의 군사가 뭉그러지자 저는 하는 수 없이 위 문장(위연)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가던 도중 위병을 만나 산골짜기 속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길을 열어 포위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영채로 돌아가 보니 이미 위병이 차지하고 있어 다시 열류성으로 향하다 고상을 만났습니다. 저는 위 문장과 고상과 길을 나누어 영채를 빼앗고 가정도 빼앗기로 의논을 정했습니다. 따로 헤어져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무지 위병이 보이지 않아 문득 의심이 들어 높은 곳에 올라가 살피니 위연과 고상의 군사가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힘을 다해 적의 포위를 뚫고 들어가 두 장수를 구해 냈습니다. 마침내 참군과 모두 한곳에 모이게 되었으나 문득 양평관이 걱정되어 그것에 가서 지키고 있다가 이곳으로 오는 길입니다. 승상께서 의심이 드시면 다시 장수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승상의 말씀에 따르려고 했으므로 맹새코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공명은 왕평의 말을 듣자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물러가라."

공명은 다시 위연과 고상을 불러 이야기를 들은 다음 마속을 불러오게 했다. 마속은 제 손으로 제 몸을 묶은 채 공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공명이 어두운 얼굴빛에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어 전법을 알고 있는 자가 아니냐? 또한 이번에는 내가 여러 차례 분명이 경계하되, 가정은 곧 우리에겐 목구멍과 같은 곳이라 일렀으며 너는 가속의 목숨을 걸고 그 무거운 일을 맡지 않았던가. 네가 만약 왕평의 말이라도 들었던들 어찌 이런 화를 입었겠느냐? 이번에 여러 장수들이 죽고 땅과 성을 잃은 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 내가 군율을 밝히지 않는다면 여러 사람을 다스려 나가기 어렵다. 네가 군율을 어겼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은 후에도 처자에게 봉록을 전처럼 내릴 것이니 그건 염려하지 말아라."

말을 마친 공명은 좌우에 명하여 그를 끌어내어 목을 베게 했다. 마속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승상께서 저를 친자식처럼 돌보셨고 저도 승상을 아버지처럼 따라 왔습니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옛 순임금이 곤(순임금의 아버지)을 죽이고도 그의 아들 우를 쓰신 뜻을 생각해 주신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부디 제 자식들에게는 아비의 허물을 씌우지 마시고 의로 대해 주십시오."

마속도 이미 죽음을 마땅한 것으로 여겨 가솔들의 뒷일에 대해 공명에게 청하여 소리내어 크게 울었다. 공명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와 너의 사이는 형제와 같았다. 따라서 너의 아들은 나의 아들이기도 하다. 괘념치 말라."

공명은 형제의 의를 말하면서도 결코 마속을 용서해 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형리들은 마속을 끌어내어 진문 밖으로 목을 베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기다려라!"

큰소리로 외치며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성도에서 사자로 방금 도착한 참군 장완이었다. 그는 형리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들어가 공명을 찾아보고 말했다.

"옛적에 초나라에서 모처럼 얻은 신하를 죽이니 상대방인 문공이 기뻐했다 합니다. 아직 천하를 평정하지 못한 이때 지모가 뛰어난 인재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 애석한 일이 아닙니까?"

공명은 또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장완답지 않은 말이외다. 옛적에 손무(손자)가 능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법을 공정하게 밝혔기 때문이었소. 이제 천하가 갈라져 서로 다투고 나 또한 군사를 움직이고 있는 이때 법도를 밝히지 않는다면 어찌 역적을 칠 수가 있으며 군사를 부릴 수 있겠소?"

공명의 말에 장완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윽고 형리들이 마속의 목을 쟁반 위에 얹어서 받쳐 들고 왔다. 공명은 그 목을 보고 더욱 서럽게 울어 마지않았다. 장완은 그렇게 슬퍼하면서도 굳이 마속의 목을 벤 공명을 보고 물었다.

"유상(마속)은 자신의 죄로 하여 죽고 승상께서는 군율을 밝히셨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그토록 슬퍼하십니까?"

"나는 마속을 위해서 우는 것이 아니오. 선제께서 백제성에서 돌아가실 때 '마속은 실제보다 말이 지나치니 큰 임무를 맡겨서는 아니 된다'고 하시었소. 이제 보니 과연 그 말씀이 맞았소. 그래서 새삼 선제의 말씀을 생각하고 나의 밝지 못함이 부끄럽고 한스러워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진 것이오."

공명의 말을 듣고 모든 장졸들은 선제를 생각하는 공명의 두터운 믿음에 옷깃을 여기며 눈물을 흘렸다. 때는 촉의 건흥 65, 그때 마속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뒷사람이 그 일을 시로 지어 탄식했다.

가정을 잃은 죄 가볍지 않으니 슬프구나,

마속이 함부로 병법을 말했네.

진문에서 목을 베어 군법을 발히고

눈물 씻어 선제의 밝음을 돌이키네.

공명은 마속의 목을 각 진영에 돌려가면서 보게 했다. 그런 다음 공명은 그 목을 실로 꿰매어 시신을 바로 갖추게 한 뒤, 관에 넣고 몸소 제문을 지어 장사를 지내 주었다. 또한 그 가솔들을 가엾게 여겨 마속이 받던 봉록을 변함없이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공명의 마음은 결코 위안을 받지 못했다. '죄는 나에게 있었다.' 공명은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이에 공명은 성도로 돌아가는 장완 편에 후주께 표문을 올렸다. 그 표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에게 벌을 청하는 글이었다. 올린 표문이 성도에 이르자 후주는 얼른 표문을 읽어 보았다.

신은 본디 보잘것없는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분수에 넘친 자리에 앉아 감히 모월을 잡고 삼군을 이끌었습니다. 군사를 가르침과 군법을 밝힘에도 어두웠으며 아울러 일에 임하여 마침내 가정에서 영을 어기고 기곡 땅의 경계를 게을리하여 빼앗겼으니 이 모두가 신의 어두움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밝음이 없었으며 일을 가림에 있어 너무 어두웠던 허물이 모두 신에게 있었습니다. 이는 엄정한 춘추(공자가 쓴 노나라의 책, 혹은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신이 어찌 그 죄를 면할 길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신의 벼슬 삼등을 깎아내리시어 신의 허물을 꾸짖어 주십시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엎드려 폐하의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

표문을 읽은 후주가 군신들에게 말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 자주 있는 일인데 승상이 어찌 한 번 졌다고 이런 말을 하는가?"

그러자 시중 비위가 아뢰었다.

"신이 듣기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는 반드시 법을 받드는 것을 무겁게 여긴다 합니다. 만약 법이 제대로 지키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승상께서 스스로 죄를 따져 벼슬을 내리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후주도 그 말을 듣자 하는 수 없이 공명의 청을 받아들였다. 승상의 벼슬을 깎아 우장군으로 하되 승상의 일을 그대로 맡아 하도록 하고 이러한 내용의 조서를 비위로 하여금 전하게 했다. 비록 국토가 넓고 병력이 강한 나라라도 크게 한 번 싸움에 지면 사기는 떨어지고 민심은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촉의 백성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두고 보아라. 이다음에는 기필코 설욕하고 말 테다!"

승상 공명이 후주를 하늘처럼 받들고 스스로 법을 지키에 추호도 사심이 없으니 군사들도 더욱더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공명이 울며 마속을 베었기 때문에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군령과 기율이 더욱 엄정해졌다.

"승상의 허물은 우리들 군사들의 허물이다. 승상 한 분에게만 죄를 씌워서는 아니 된다."

군사들이 마음을 새롭게 다지던 어느 날 후주의 조서를 받은 비위가, 싸움에 지고 마속을 목벤 일로 마음이 무거운 데다 벼슬까지 깎인 공명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우리 촉의 백성들은 승상께서 나아가시자마자 네 고을을 빼앗은 일만으로도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공명은 얼굴색을 금세 달리하며 나무라듯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한 번 얻었다가 다시 잃었으니 이는 처음부터 얻지 않은 것나 같소. 공이 그런 일을 가지고 내게 위로하려 하니 실로 낯뜨거운 일이오."

비위는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으나 다시 좋은 말로 공명을 위로했다.

"요사이 승상께서 강유를 얻으셨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폐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 말에도 공명은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대답하였다.

"싸움에 져서 물러나니 한 치의 땅도 빼앗지 못한 것은 나의 큰 죄요. 강유 같은 인재 한 사람을 얻어 위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고 할 수 있겠소?"

"승상께서는 지금 수십만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계십니다. 다시 위를 도모할 수 있지 않습니까?"

비위가 물러나지 않고 이번에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공명은 여전히 엄한 얼굴로 대꾸할 뿐이었다.

"전에 대군이 기산과 기곡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우리의 군사가 위군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을 물리치기는커녕 오히려 적에게 졌소이다. 그 까닭은 군사가 많고 적은데 있지 않고 장수에게 있었소. 나는 이제부터 군사의 많고 적음보다 허물을 밝혀 벌을 분명히 내리며 앞날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했소. 그러니 앞으로는 누구든지 나라를 위해 진정으로 충성을 바치려는 사람은 거리낌없이 나의 모자람을 찔러 주시고 부족함을 꾸짖어 주시오. 그래야만 역적은 쳐 없애 뜻한 바를 이루며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에 비위와 여러 사람은 모두 감복해 마지않았다. 비위가 성도로 돌아간 뒤 공명은 한중에 머무르면서 군사들을 아끼고 백성들을 사랑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한편으로는 군사들의 조련에도 힘을 쏟아 무예를 가르치고, 성을 공격하는 기구와 강을 건너는 기구도 만들었다. 병력과 병장기, 군사의 조련도 위군에 비해 뛰어났으나 이번 싸움에 지게 된 것은 가정의 요해처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삼군을 적재적소에 잘 부리지 못했던 것이 패인이었다고 헤아린 공명은 대군을 움직이기보다는 적은 군사이나마 잘 조련된 날랜 군사를 기르는 데 힘썼다. 뿐만 아니라 양초를 비축하여 싸움에 쓸 멧목을 마련해 두어 언제 출진하여도 좋도록 뒷일을 준비하였다. 한편 공명이 다시 싸울 채비를 갖추고 있자 세작은 곧 그 일을 탐지해 낙양에 알렸다. 위주 조예가 그 말을 듣고 사마의를 불러 의논했다.

"제갈량이 다시 싸울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먼저 그들을 치는 것이 어떻겠소?"

조예가 그렇게 묻다 사마의가 대답했다.

"아니 됩니다. 지금은 몹시 무더운 때라 촉에서 군사를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만일 촉을 치려 한다면 우리가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군사를 내어 그 땅으로 가도 촉이 험한 길목을 지키면 깨뜨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자 조예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다가 만약에 촉병이 급하게 다시 침범해 오면 어찌하겠소?"

"신이 짐작하기로 이번에 제갈량은 한신이 잔도(험한 산길 낭떠러지 사이에 놓은 다리)를 고치는 척하며 적의 눈을 속여 진창을 건너온 계책을 본떠 그곳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겠으니 그를 그곳으로 보내 지키게 하십시오. 그를 진창에 보내 길목에 성을 쌓고 지키게 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실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마의의 말에 조예가 얼른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태원 사람으로 이름은 학소라고 합니다."

학소는 자를 백도라 하며 키는 9천이요, 활을 잘 쏘며 지모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조예는 곧 사마의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그에게 진서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진창의 어귀를 지키게 했다. 서촉에 대한 방비 계책이 그렇게 정해졌을 때 양주의 사마대도독 조휴로부터 표문이 올라왔다.

동오의 파양 태수 주방은 일찍부터 위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바라 왔습니다. 근자에 신에게 밀사를 보내어 동오를 깨뜨릴 일곱 가지 이로움과 해로움을 들어서 급히 군사 내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살펴 처결하시옵소서.

위주 조예는 그 글을 옥좌 앞에 펼쳐놓고 사마의와 함께 보았다. 사마의가 표문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주방은 동오에서도 지모가 있는 훌륭한 장수이므로 거짓 내통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기도 아깝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되 세 길로 나아가면 그가 비록 거짓 내통하였더라고 결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예가 사마의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르려 하는데 한 사람이 반대하고 나섰다.

"오나라 사람들은 원래 반복이 심하니 믿을 게 못 됩니다. 주방은 지모가 있는 자이므로 아마 거짓으로 항복하여 우리들을 꾀어내어 해치려는 속셈일런지도 모릅니다. 함부로 군사를 내어서는 아니 됩니다."

모두가 그를 보니, 그는 건위장군 가규였다.

"그 말도 일리 있는 말이나 이 기회를 놓치기가 아깝습니다."

사마의가 가규의 말을 물리치려 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자기의 뜻을 고집했다. 조예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그럼 가규는 중달과 함께 가도록 하시오. 가서 두 사람이 그때그때의 일을 보아 가며 의논해서 조휴를 도와주도록 하시오."

조예의 말에 사마의와 가규는 함께 오로 떠나가기로 했다. 위군은 사마의의 말대로 세 갈래 길로 나누어 오로 나아갔다. 조휴는 대군을 이끌어 환성으로 가고, 가규로 하여금 전장군 만총과 동환 태수 호질을 이끌고 양성을 빼앗은 다음 동관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사마의는 군사를 거느려 강릉을 치러 갔다. 위의 이러한 움직임은 즉시 동오에도 알려졌다. 이에 무창 동관에 머무르고 있던 손권은 급히 문무백관을 모아 대책을 의논했다.

"파양태수 주방이 은밀히 글을 보내 왔는데, 위의 양주도독 조휴는 기회만 있으면 우리 오를 침범하려 한다 하였소. 그래서 주방이 계교를 썼다는 것이오. 즉 주방은 동오에는 일곱 군데 허술한 틈이 있다고 조휴에게 귀띔한 뒤 위군을 꾀어 파양으로 깊숙이 끌어들일 테니 복병을 두어 이들을 치라는 것이었소. 이제 위병이 주방의 꾐에 빠져들어 세 갈래로 나누어 오고 있다 하니, 경들의 의견을 말해 보시오. "

그러자 고옹이 선뜻 나서 말했다.

"육손이 아니면 아무도 이 큰일을 감당해 낼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손권도 고옹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곧 육손을 보국대장군 평북도원수에 봉하고 어림군을 거느리게 하는 한편 병권을 그에게 맡겼다. 이어 손권은 백모와 황월을 내려 문무백관이 모두 그의 말에 따르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손권은 몸소 육손과 말을 나란히 타고 나가는 의식을 행해 그의 위엄을 높여 주었다. 육손은 군사를 이끌고 떠나기 전에 그가 이끌 군사의 진용을 갖추었다. 분위장군 주환을 좌도독에, 수남장군 전종을 우도독으로 삼았다. 육손 자신은 중군이 되어 강남 여든한 대의 고을과 형주의 군마 70여 만을 이끌고 세 길로 쳐들어오는 위군에 맞서기 위해 북으로 나아갔다. 떠나기에 앞서 좌도독이 된 주환이 육손을 찾아와 말했다.

"조휴는 위나라의 왕족이기 때문에 이일에 대임을 맡았을 뿐이지 지모와 용맹을 아울러 지닌 장수는 아닙니다. 주방의 말에 속아서 군사를 이끌어 왔을 뿐 원수께서 치신다면 그는 바드시 패해 달아날 것입니다. 싸움에 져 도망치려면 같은 길은 두 갈래뿐입니다. 왼쪽은 협석, 오른쪽은 괘거의 두 길입니다. 이 두 길은 다 산골짜기의 좁고 험한 길이므로 제가 전자황(전종)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가 산속에 매복해 있겠습니다. 미리 돌과 통나무를 굴려 길을 막고 치면 필시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조휴를 사로잡으면 곧장 군사를 휘몰아 밀고 나가 힘들이지 않고 수춘을 손에 넣을 수 있으며, 허도와 낙양을 넘볼 수 있는 형세도 갖출 수 있습니다. 실로 만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손은 주환의 말을 듣자 마자 잘라 말했다.

"그건 좋은 계책이라 할 수 없소이다. 내게 따로 계교가 있소이다."

육손이 자기의 계책에 귀도 기울이지 않자 주환은 못마땅했다. 마음속에 불평을 품은 채 물러갔다. 육손은 제갈근을 강릉으로 보내 각처에 사마의를 막게 하는 영을 내려 대비하도록 했다. 한편 조휴의 군사가 환성에 이르자 주방이 나와 조휴를 맞아들였다. 장막 안에 함께 자리를 정해 앉자 조휴는 아무래도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슬며시 주방을 떠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지난번 공의 글을 받아보니 이해득실에 관한 일곱 가지 조목이 자못 이치에 닿는 것이었소. 때문에 내가 천자께 아뢰어 대군을 일으켜 세 길로 군사를 내었소. 만약 이번에 강동 땅을 얻게 되면 공의 공이 실로 크다 할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공이 꾀 많은 사람이라 그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소. 그러나 나는 공이 결코 나를 속이지 않으리라 여기고 있소."

이 말을 들은 주방은 목을 놓아 울더니 신하가 차고 있는 칼을 빼들어 자기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조휴가 깜짝 놀라며 주방을 말렸다. 그러자 주방은 칼을 짚고 서서 말했다.

"내가 말한 일곱 가지 일은 감히 입 밖에 내놓지 못할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내 마음속을 드러내 보이고도 도리어 의심을 사니 이는 필시 동오 사람들의 이간책에라도 빠진 듯합니다."

그 말과 함께 주방은 다시 칼을 목에 갖다 대었다. 조휴가 황망히 주방을 끌어안고 달랬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오. 그런데 족하는 어쩌자고 한사코 죽기만을 고집하는 거요?"

그러자 주방은 칼로 제 머리칼을 싹둑 잘라 땅에 내던지며 말했다.

"나는 충성된 마음으로 장군을 대했는데 장군은 나를 우스갯감으로 여기셨구려. 이제 부모가 주신 머리칼을 잘라 내 진심을 보이겠소."

조휴는 주방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여기고 잔치를 베풀어 주방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달랬다. 잔치가 끝나자 조휴는 자기의 진지로 돌아갔다. 조휴가 막사에 홀로 있으려니 사람이 들어와 건위장군 가규가 왔다고 알렸다. 조휴는 그를 불러들이고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가규가 가만히 말했다.

"저의 생각으로는, 동오 군사들은 모두 환성에 모여 있다고 봅니다. 도독께서는 가볍게 나가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양쪽에서 협공하셔야만 적을 칠 수 있을 것입니다."

조휴는 가규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럭 화부터 내며 소리쳤다.

"그대가 나의 공을 가로채려 드는구나!"

그러나 가규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제가 듣기로는 주방이 머리를 잘라 맹세했다 하나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옛날 요리는 제 팔을 잘라 경기를 찔러 죽인 일도 있습니다. 결코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요리는 춘추시대 오나라 사람이었다. 공자 광으로부터 경기를 죽이라는 영을 받자 자기의 팔을 잘라 공자의 짓이라고 속이고 경기를 안심시킨 뒤 마침내 그를 찔러 죽였다.

"지금 내가 적을 치려는 마당에 너는 우리의 군심을 흐트러 놓을 작정이냐?"

조휴는 더욱 화를 내려 좌우에게 명해서 가규를 끌어내 목을 치라고 소리쳤다. 여러 장수들이 조휴에게 가규를 대신해 빌었다.

"싸움을 앞두고 장수의 목을 벤다는 것은 이롭지 못합니다. 잠시 노여움을 푸십시오."

조휴은 여러 장수들의 간곡한 만류에 마음을 돌리기는 했으나 가규에게 뒤에 남아서 진지를 지키게 하는 견책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동관으로 향했다. 한편 주방은 가규가 출진하게 못 하게 되었음을 알자, 크게 기뻐했다.

"조휴가 가규의 말을 받아들였더라면 동오는 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는 하늘이 나를 도우심이다."

주방은 즉시 환성에 밀사를 보내어 육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육손은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 영을 내렸다.

"앞쪽 석정이 비록 산길이나 군사를 매복할 만하다. 급히 석정의 넓고 편편한 곳에 진을 세운 다음 위병을 기다려라."

육손의 명을 받들어 서성이 선봉이 되어 군사를 거느려 나갔다. 한편 조휴는 주방의 안내로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갔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가는 도중 조휴가 주방에게 물었다.

"저쪽에 보이는 험한 산의 이름은 무엇이요?"

"석정이라 합니다."

"동관은 어디에 있소?"

"저 산을 넘으면 멀리 아득하게 보입니다. 저 석정에 군사를 머무르게 하면 좋을 듯합니다."

주방이 그렇게 대답하자 조휴는 그의 의견에 좇아서 마침내 대군과 수레 등을 모두 이끌고 석정으로 가서 머무르게 했다. 이튿날, 척후가 돌아와 말했다.

"서남방 산기슭에 동오의 군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조휴는 저으기 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방의 말에 의하면 이 부근에는 동오의 군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때 더욱 놀라운 전갈이 전해졌다.

"간밤에 주방과 거느렸던 군사들 수십 명이 간 데가 없습니다."

"무엇이, 주방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휴는 크게 뉘우치며 소리쳤다.

"아뿔사, 내가 속았구나. 주방 그놈이 상투까지 자르면서 나를 속였구나. 하지만 속여 봤자 무슨 수가 있겠는가? 장보, 그대는 가서 산기슭에 있다는 동오의 군사들을 물리치고 오라!"

이미 위기에 빠졌음을 알았으면서도 그는 아직도 사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보는 명을 받자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기슭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적장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장보가 적진 앞에 이르러 소리쳤다. 그러나 척후가 보고 온 동호군의 군세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더구나 모두 날래기로 이름이 높은 서성의 군사였다. 장보가 서성을 맞아 싸운 지 몇 합을 넘기지 못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와서 조휴에게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서성이 워낙 용맹스러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조휴의 낯빛이 달라졌으나 그는 그때까지도 자기가 대군을 이끌고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기병을 써서 꺾어야겠다."

조휴는 그렇게 말하며 위병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였다. 장보에게 명을 내려 군사2만을 거느리고 남쪽에 가서 매복하게 하고, 또 설교에게 역시 2만 기를 거느리고 석정 북쪽에 가서 매복하게 하면서 일렀다.

"내일 내가 직접 1천 기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우다가 짐짓 패한 체하고 달아나 적을 북산 앞까지 꾀어 들이겠다. 그때 불화살을 신호로 세 방면에서 협공하면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알았습니다."

두 장수는 각기 2만기를 이끌고 그날 밤 안으로 조휴가 정해 준 곳으로 달려갔다. 한편 동오의 군중에서도 육손이 주환과 전종을 불러 영을 내렸다.

"그대들은 각기 3만기를 거느리고 석정의 산속에 조휴의 진여 뒤로 들어가 신호의 불길을 올려라. 그 불을 군호로 내가 앞쪽에서 대군으로 밀어붙이면 조휴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날 해질녘, 주환과 전종은 계책을 받은 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밤 이경 무렵에 위군의 진지 후방으로 들어간 주환은 느닷없이 장보의 복병과 마주쳤다. 그러나 장보는 상대방이 동오의 군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까이 다가가서 어느 장수 휘하의 군사인지 알아보려는데 주환이 나는 듯이 덮쳐들어 단칼에 장보를 베어 죽였다. 대장이 적장의 칼에 목이 떨어지자 위군은 놀라서 일제히 도망을 쳤고, 주환은 이때다 싶어 군사에게 불로 신호를 올리게 했다. 한편, 전종 역시 위군의 진지 뒤로 돌아가다 보니 위의 자수 설교의 진지 한복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갑자기 물밀 듯이 적이 밀어닥치자 설교는 미처 싸울 태세도 갖추지 못한채 뿔뿔이 달아났다. 가까스로 목숨을 보전한 설교와 휘하 군사들도 본진을 향해 달아날 뿐이었다. 달아나는 위군의 뒤를 주환과 전종의 군사들이 함께 성난 파도처럼 뒤쫓았다. 그렇게 되니 조휴의 본진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졌다. 저희들끼리 짓밟고 박차는 가운데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조휴는 싸움에 크게 패했음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자기도 죽을 것만 같아 말을 타고 협석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성이 대군을 이끌고 맞은편에서 달려와 위군을 덮쳤다. 한바탕 오군이 휩쓰니 위군의 시체는 헤아릴 수조차 없었고, 죽음을 면한 군사들은 갑옷과 투구까지 모두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도망치는 지경이었다. 조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채찍으로 말 궁둥이를 후리고 또 후리면서 협석을 향해 죽기 살기로 달리는데 돌연 옆의 사잇길에서 또한 무리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앞선 장수를 보니 가규였다. 조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끄러워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공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런 꼴을 다했구려."

그런 조휴에게 가규가 재촉했다.

"도독께서는 이 길로 속히 빠져나가십시오. 만약 오군이 나무며 돌로 길을 막아 버린다면 우리는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 말에 조휴는 말을 박찼다. 가규는 그 길을 맡아 뒤쫓는 적을 막으며 뒤따랐다. 가규는 달아나면서도 나무가 우거진 숲과 험하고 좁은 골목에는 깃발을 무수히 꽂아 많은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조휴는 뒤쫓던 서성이 한 동안 달리다 보니 산기슭마다 위군의 깃발이 보여 복병이 아닌가 의심하여 군사를 멈추었다. 가규의 계교 덕에 조휴는 무사히 달아날 수가 있었다. 사마의는 조휴가 싸움에 크게 졌다는 전갈을 받았다. 조휴가 무너진 이상 이미 계책이 틀어졌으므로 군사를 거두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육손은 싸움에 크게 이기고 많은 노획품과 수만 명의 항병을 이끌고 건업으로 개선했다. 손권은 몸소 무창성 밖으로 나가서 육손을 어개에 타게 하여 맞아들였다. 또한 여러 장수들의 관작을 높여주며 후한 상을 내렸다. 손권은 특히 주방을 치하해 마지않았다.

"경이 머리털을 잘라 이번에 큰일을 이루게 했으니 그 공과 이름을 마땅히 죽백에 올려 후세에 전하게 할 것이오."

손권을 주방을 관내후로 봉하고 크게 잔치를 열어 군사들을 위로했다. 잔치 자리에서 육손이 손권에게 아뢰었다.

"이번 싸움에서 조휴는 크게 져 간담이 서늘해져 있을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이때를 틈타 촉으로 글을 보내시어 제갈량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어 나오도록 하십시오. 우리 오와 촉이 함께 위로 밀고 들면 위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육손의 말을 들으니 언제나 먼저 군사를 내지 않던 손권도 마음이 달라졌다. 곧 국서를 써서 서촉으로 보냈다. 때는 촉한 건흥 6, 가을인 9월이었다. 위의 도독 조휴는 동오의 육손에게 석정에서 크게 패하고 수많은 인마와 군수 물자를 잃고 쫓겨오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속을 끓이며 울화병에 시달리다 낙양에 돌아온 후 마침내 등창을 앓다 죽고 말았다. 위주 조예는 일족일 뿐만 아니라 원로였던 조휴를 측은히 여겨 후하게 장사지내 주었다. 사마의도 그때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다. 그러자 한 장수가 물었다.

"내가 살피건대, 제갈량은 우리가 크게 패한 걸 알면 반드시 그 틈을 노려 장안으로 들어올 것이오. 만약 농서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누가 구하겠소? 그래서 이렇게 급히 돌아온 것이오."

사마의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를 그 말이 엉뚱하게 둘러대는 것 같아 마음속으로는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으며 돌아갔다.

 

다시 올리는 출사표

그 무렵, 이전에 맺었던 촉과 동오의 화친은 이후 한동안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공명이 남안에 원정하기 이전, 위나라의 종비가 전함을 크게 건조하여 오나라의 침범을 계획하기 이전에 등지를 사자로 보내어 오나라에 화친을 청했던 것이었다. 동오에서도 화친을 받아들이는 사자로 장운을 보내어 맺게 된 양국 간의 우의는 그대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위가 가정에서 크게 이겨 촉을 물리친 후 즉시 창끝을 돌려 오가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는 조휴의 청과 주방의 교묘한 계략에 의한 것보다 촉과 동오의 화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위가 동오를 침범하면 촉은 즉각 위의 배후를 칠 것이며 또한 위와 촉이 싸우게 될 경우에는 오가 앞쪽에서 위를 친다'는 오와 촉의 약조 때문이었다. 촉과 동오가 맺은 이 조약에 따라 기산과 가정의 싸움이 벌어지자 동오는 어떠한 형태로든 위에게 군사행동을 일으켜 보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위도 또한 충분한 경계를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이러한 정황 아래에서 때마침 주방의 모략이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위와 동오의 싸움이 벌어졌다고 보는 것이 이 싸움의 한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휴가 패하여 군사를 물리자 동시에 오군의 물러남도 빨랐다. 촉에 대한 조약의 이행은 그것으로 지켜졌기 때문이다. 한편 동오에서 보낸 사자가 성도에 이르러 후주 유선에게 조휴를 크게 이긴 사실과 이 틈을 타 함께 위를 치자는 손권의 글을 바치자 유선을 크게 기뻐했다. 비록 동오가 위군을 이긴 위세를 은근히 드러내는 글이었으나 서로 화목하게 지내자는 말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주는 곧 공명에게 이 일을 알리게 했다. 이때 한중에 있는 공명은 군세를 기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군사들은 날래게 조련되고, 말은 튼튼해졌으며 군량 또한 넉넉했다. 그리고 싸움에 소용되는 물자도 다 갖추어져 있어 군사를 낼 일만 남게 되었다. 그럴 즈음 동오가 이에 크게 이겼다는 소식과 함께 위를 치자는 동오의 국서를 받게 되었다. 공명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잔치를 베풀어 장수와 군사들을 격려하고 군사 낼 일을 의논했다. 잔치가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홀연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일더니 뜰 앞에 있던 소나무 가지가 뚝 부러졌다. 모든 사람은 불길한 조짐이라며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공명도 기분이 너무 언짢아 점쾌를 뽑아 보더니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바람은 곧 한 사람의 장수가 해를 입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아무도 공명의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 다시 술잔을 드는데 문득 진남장군 조운의 맏아들 조통과 작은아들 조광이 승상을 뵈러 왔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그 말에 공명의 얼굴빛이 달라지더니 술잔을 땅에 내던지며 외쳤다.

"아아, 자룡이 갔구나!"

공명의 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여러 장수들이 그때까지도 어리둥절해 있는데 과연 잠시 후에 그곳에 이르른 조운의 두 아들이 절을 하고 울며 고했다.

"아버님께서 지난 밤 삼경에 병이 위중하여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공명은 그 말을 듣자 쓰러질 듯 몸을 가누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룡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나라의 대들보 하나가 떨어진 것과 같으며 나로서는 한 팔이 없어진 것과 같다."

그제야 모든 장수들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이 슬픈 소식은 즉각 성도에도 알려졌다.

"짐이 어렸을 적에 자룡이 아니었던들 난군 속에서 죽고 말았을 것을 나를 품에 안아 구해 냈다.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으랴!"

후주 유선도 소리 내어 슬피 울었다. 특히 당양 장판벌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 속을 무인지경으로 내달아 자기를 구한 그가 아니었던가. 조서를 내려서 대장군으로 추증하고 순평후라 시호하며 성도 교외의 금병산 동편에 장사지내게 했다. 또한 사당을 세워 철마다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의 아들 조통을 호분중랑에, 작은아들 조광을 아문장에 임명하여 아버지의 무덤을 지키게 했다. 두 아들은 후주의 은혜에 절하며 감사한 뒤 물러났다. 이로써 관우. 장비에 이어 선주 유비를 받들던 조운마저 죽고 말았다. 어떤 이는 삼국지 전편을 통해 조운이 가장 훌륭한 장수라고 말할 만큼 그는 결점이 없는 장수였다. 전 생애를 통해 패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주인을 받드는 충의가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도 다른 장수에 비해 추호도 부족함이 없이 충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뒷날 사람들이 시를 지어 그런 조운을 기렸다.

상산 땅에 범 같은 장수 있어 슬기와 용맹이 관우. 장비와 견줄 만했네.

한수에 그 공한 남아 있고 당양에서 그 이름 떨쳤다.

두 번이나 어린 주인 구해 내고 한마음으로 선주께 보답했네.

그 충렬 청사에 올라 꽃다운 그 이름 백세에 길이 전하리라.

조운의 장례가 모두 치러질 무렵이 되기를 기다려 공명은 한중으로 사람을 보내 아뢰었다.

"제갈 승상께서는 이미 출진 채비를 끝내시고 영을 내리시기만 하면 위를 치기 위해 군사를 낼 것이라고 합니다."

후주 유선은 조정의 여러 신하들에게 다시 군사를 내는 일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은 한결같이 아직 가볍게 움직일 때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후주가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갈 승상의 양의를 보내 왔다고 아뢰었다. 이에 후주는 양의를 불러들였다. 양의는 후주 앞에 꿇어 엎드려서 공명의 표문을 올렸다. 이 표문은 공명이 다시 비장한 북벌의 결의를 밝힌 이른바 '후출사표'이다. 후주는 어안 위에 펴놓고 읽어 나갔다.

선제께서는 한나라와 역적 위의 조조. 조비 부자와는 함께 설 수 없다고 여기셨습니다. 또한 천하 통일과 한실 부흥의 왕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촉과 같은 한 모퉁이만 차지해서는 왕업이 안정될 수 없으니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신 공명에게 위를 토벌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선제께서는 밝으심으로 신의 재능을 헤아리시기를, 신이 적을 토벌하는 데 재주는 부족하고, 적은 강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위를 토벌하지 않고는 왕업은 망할 것입니다. 그러니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힘을 모아 나아가 적을 토벌하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습니까?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선제께서는 신에게 적을 토벌하라 부탁하시었고, 또 신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적을 토벌하라는 선제의 유칙을 받은 날부터 자리에 누워도 편안치가 않았고, 음식을 들어도 맛을 몰랐습니다. 오직 북쪽의 위를 정벌하는 일만을 생각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쪽의 오랑캐를 평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에 신은 5월에 노수를 건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거친 땅 깊숙이 들어가 2~3일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며 싸웠습니다. 신인들 어찌 제 몸을 아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천하 평정과 한실 부흥의 왕업을 생각하고, 촉나라가 서쪽 한 모통이에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에 위험하고 어려운 일임을 알면서도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정의 여러 신하들은 의논하기를, 위를 토벌하는 일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며 취할 계책이 못 된다 하였습니다. 신 공명이 기산을 공격하자. 의의 세 고을 남안,천수. 안정이 촉한에 항복하여, 적은 지금 서쪽에서 몹시 고단합니다. 게다가 조휴가 오나라의 육손과 석정에서 싸우다 크게 패하여, 동쪽도 몹시 허덕이고 있습니다. 병법에 '적군이 지켜 있는 때를 놓치지 말고 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군사가 진격해야 할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삼가 그 일에 다음 몇 가지를 아뢰올까 합니다.

옛적 한나라를 세우신 고조께서는 밝으심이 해와 달에 견줄 만한 데다가, 깊은 못처럼 지혜를 지닌 신하들을 거느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영양에서는 적에게 갇혀 깊은 상처를 입었으며, 광무의 전투에서는 항우의 활에 맞아 가까스로 목숨을 전지시는 고생을 하셨습니다. 천하의 고조 황제께서도 그와 같은 숱한 고생을 겪으시고서야 천하를 평정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폐하께서는 고종 황제의 밝으심에 미치지 못하시고, 폐하를 모시는 저희들의 재주는 고조 황제를 모셨던 장량과 진평의 지혜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첫 번째 일입니다.

지금 유요와 왕랑은 각기 고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두 고을은 하루빨리 정벌해야 할 곳인데, 여러 신하들은 싸우지 않고 달래려고만 들고 걸핏하면 성인의 옛말을 인용하여 싸우지 않고 다스려야 한다고들 합니다. 신으로서는, 왜 그런 의견들이 나오는지 의아스러움이 가득하고, 왕업을 성취하는 일이 지체되는 어려움에 가슴이 떨릴 뿐입니다. 올해도 싸우지 않고 내년에도 나아가 치지 않는다면, 손권으로 하여금 가만히 앉아서 세력을 키우게 하여 마침내는 두 고을 은 물론 강동을 삼키게 하고 말 것입니다. 이 또한 신의로서는 도저히 풀 길 없는 일이라 생각되고 두 번째 일입니다.

간웅 조조의 지혜와 계책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납니다. 특히 그의 용병은 손무와 오기를 방불케 하는 자입니다. 그런 조조도 싸움에서는 위급한 경우를 여러 번 당했습니다. 조조은 남양에서 장수와 싸우다 빗나가는 화살에 오른쪽 어깨를 맞고 패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또 오소 땅에서 원소의 대군장 순우경과 싸울 때 군량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흉노를 토벌하려고 기련산에 들어갔다가 위태로움을 겪기도 했고, 촉의 유표를 공격하다가 원소의 아들 원담이 등 뒤로 군사를 이끌어 와 궁지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또 한중을 치러 갔다 북산 밑에서 촉한의 명장 조운에게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한 채 장안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마초와 한수가 이끄는 10만 반군을 토벌하러 동관으로 갔다가, 마초와 싸우다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 지략이 뛰어나기로 이름 높던 조조도, 그처럼 숱한 어려움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한때나마 천하를 평정하고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재주를 가지고, 그것도 싸우지 않고서 천하를 평정하려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또한 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째 일입니다.

건안 3년 창패가 조조를 거역하며 선제께로 돌아왔을 때, 조조는 다섯 번이나 창패를 공격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오의 손권이 합비를 포위했을 때, 조조는 네 번이나 소호를 건너 치려 했으나 그를 꺾지 못해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복이란 자를 기용했다가 오히려 동승과 함께 그를 해치려는 모반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자신이 한중을 평정하고 한중을 하후연에게 맡겼다가 선제의 대장 황충에 의해 하후연의 목이 잘림으로써, 부하 장수와 한중을 잃은 적도 있습니다. 선제께서는 매양 조조의 재주가 뛰어났음을 칭찬하였는데, 그 조조도 이처럼 많은 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신이 재주 없고 미련하니 힘껏 싸운다 해도 어찌 이기기만 하겠습니까? 이 점이 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네 번째 일입니다.

이제 신 공명이 한중으로 온 지 경우 일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었습니까. 조조의 대군 속에서 필마단기로 적을 헤쳐 폐하를 구했던 조자룡을 비롯하여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등. 등과 곡장(중대장)과 둔장(소대장) 70여 명에, 선봉에서 용감무쌍하게 적진을 돌파하던 빈수와 청장(오랑캐족), 그리고 산기와 무기의 기마병 1천여 명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수십 년 동안 천하 각지에서 모은 우수하고 강안 군사들로, 하루아침에 한 고을에서 얻을 수 있는 군사들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수년이 지나게 되면, 또다시 남은 병사의 삼분의 이는 잃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으로 적의 토벌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다섯 번째 일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궁핍에 찌들어 있고, 병사들은 지쳐 있으나 그렇다고 위를 도모하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위를 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면, 가만히 앉아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나 나아가 적과 싸우는 것이나 그 비용은 똑같은 것입니다. 이치가 그러한데도 빨리 적을 칠 생각은 않고, 한 고을밖에 되지 않는 곳을 지키며 언제나 적이 치기만을 기다릴 뿐 움직일 생각을 아니합니다. 이것이, 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

무릇 일 가운데 가장 이루기 어려운 것이 천하를 평정하는 일입니다. 건안 12, 선제께서 초(형주) 땅에서 조조에게 쫓겨 겨우 수십 기병만을 거느리고 패주하셨습니다. 조조는, 이제 천하는 평정되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뒤 선제께서는 손권과 동맹을 맺고, 파촉의 땅을 점령하셨으며, 곧 군사를 일으켜 북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한중을 지키던 하후연을 목베고 한중을 차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한실이 부흥할 수 있는 큰일을 이루게 하는 기반을 세우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의 손권이 우리 촉한과의 동맹을 저버려 관우가 싸움에 져 죽고 형주를 점령하였습니다. 그런 데다 자귀현에서 선제께서 패하지 자귀현은 유장의 손으로 넘어갔고, 조조는 죽었으나 그의 아들 조비가 왕위에 올라 황제를 참칭하고 있습니다.

무릇 일이란 이와 같이 미리 앞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나라를 위하여 힘껏 싸우다 죽을 따름입니다. 그것이 선제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고 폐하께 충성하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싸움에 이기고 짐이나, 또 어느 쪽에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을 것이냐는 신으로서는 도저히 미리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어구로 이어진 문장이었다. 앞서 위는 오나라와 국경에 대군을 진병시겼다가 패전하였다. 그 후 조휴도 죽고 관중에서의 위의 세력은 어딘지 한풀 꺾인 듯한 감이 있어서 서역의 방비도 자연 허술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것을 헤아린 공명이 다시 군사를 내기 위해 출사표를 올린 것임을 그 행간에 넘쳐 있었다. 후주 유선은 공명의 출사표를 읽고 크게 기뻐했다. 공명에게 조서를 내려 군사를 낼 것을 허락하니 양의는 급히 한중으로 돌아갔다. 명을 받은 공명은 지체없이 30만 대군을 일으키면서 위연을 선봉대장으로 삼고 사마의가 예측한 대로 곧장 진창길로 밀고 나갔다. 이때 공명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때는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한겨울. 천하의 소문난 진창의 험한 길과 병풍처럼 사방에 치솟아있는 산들은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눈썹도, 숨결도 얼어붙고 말고삐도 얼음 막대기로 변하는 추위였다. 촉이 군사를 낸 일은 세작에 의해 탐지되었다.

"공명이 다시 진병하였습니다. 촉의 대군은 무려 수십만을 헤아립니다. 급히 방어할 태세를 갖추십시오."

세작에 의해 이런 전갈이 곧 낙양으로 전해졌다. 그 무렵 낙양의 공기는 결코 밝은 것이 아니었다. 촉에 군사를 내자니 동오가 그 험한 틈을 엿볼 것이며, 동오에게 창끝을 들이대자니 촉의 움직임이 걱정스러웠다. 거기에다 앞서 조휴의 패전은 드높던 의기를 적잖게 꺾어 놓았다.

"과연 공명은 또 침범해 왔다. 장안의 경계를 굳게 지켜 나라를 편안히 하려면 누구를 대장으로 삼아야 좋은가?"

위주 조예는 급보를 전해 듣고 여러 신하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자리에는 대장군 조진도 있었다.

"신이 지난번에 농서를 지킬 때 공은 세우지 못하고 죄만 지었습니다. 늘 황공스러웠을 뿐 만아니라 아직도 충성을 다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바라건대 이번에 신이 대군을 거느리고 가서 사로잡으려 하오니 보내 주십시오. 반드시 사로잡고야 말겠습니다."

그러나 위주 조예가 선뜻 허락하지 않고 물었다.

"제갈량을 사로잡을 계책이라도 있는가?"

조예가 그렇게 묻자 조진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신이 얼마 전 믿음직스러운 한 장수를 얻었습니다. 그는 능히 60근이 넘은 큰 칼을 쓰며 천 리를 달리는 정완마를 타고도 두 사람이 간신히 당기는 강궁을 당기며, 몸에는 두 개의 유성추를 숨기고 쓰되 쏠 때마다 빗나가는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혼자서 1만 명의 적을 당해 낼 만한 용사입니다. 이 사람을 선봉으로 삼으려 하니 윤허하시기 바랍니다."

지략이 뛰어난 자, 용맹한 인물이 지금만큼 아쉬운 때가 없었다. 조예는 조진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자 조칙을 내려 그 사람을 부르게 했다. 오래지 않아 한 사람이 나타났다. 키는 9척이요, 눈알은 노랗고 얼굴은 칠흑같이 검으며 허리는 곰의 허리에 등은 호랑이를 닮았는데 첫눈에도 범상한 장수 같지 않았다. 조예는 매우 기뻐하면서 조진에게 물었다.

"그의 고향은 어디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농서 적도 태생으로 이름은 왕쌍, 자는 자전이라합니다."

조예는 왕쌍을 보고서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에 조진의 출병을 허락하며 말했다.

"이미 명장을 얻었으니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

조예는 비단 전포와 황금 갑옷을 내리고 그를 호위장군 전부대선봉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진에게도 격려의 말을 덧붙엿다.

"지난번의 일을 부끄러워하여 마음에 새겨 두지 말라. 다시 대도독으로 싸움터에 나가 공명을 무찔러라."

조예는 조진에게 대도독의 징표인 인수를 내렸다. 조진은 위주의 은혜에 감사하고 물러나 곧 15만 정병을 거느리고 장안에 가서 곽회. 장합의 군세와 합쳐, 각처의 좁은 길목을 지키게 했다. 그때 이미 한중을 떠난 촉군은 진창이 진병하고 있는데 선봉이 돌아와서 공명에게 아뢰었다.

"진창 어귀에 이미 성 하나를 쌓아 놓고 학소라는 장수가 지키고 있는데, 도랑을 깊이 파고 녹채를 둘러쳐 엄중히 방비하고 있습니다. 이 성을 버려두고 태백령을 넘어 기산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그러나 공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정이 진창의 정북방에 있다. 그 성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

공명은 위연을 불러 성을 에워싸고 사면에서 공격하게 했다. 위연이 단숨에 성을 우려뺄 기세로 거센 공격을 퍼부었으나 뜻밖의 성의 방미가 엄중했다. 여러 날에 걸친 공격에도 성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성을 떨어뜨리기가 어렵습니다."

위연이 하는 수 없이 공명에게 알렸다. 그러자 공명은 왈칵 성부터 냈다.

"그대는 대도독으로서 이 성 하나를 깨뜨리지 못한다는 말이냐?"

공명이 위연을 끌어내 목을 베라고 소리쳤다. 위연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어 여러 장수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공명의 진중에 근상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적장 학소와 같은 고향 친구였다. 문득 앞으로 나서서 공명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재주가 없으나 여러 해 승상의 수하에 있으면서도 아직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진창성으로 보내 주시면 학소를 달래 화살 하나 쏘지 않고 항복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말에 공명이 근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말로 그를 달래겠느냐?"

"학소는 저와 동향인 농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사귄 친구입니다. 제가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져서 간곡히 달래면 그는 반드시 항복할 것입니다."

공명은 기꺼이 그의 청을 받아 들였다. 위연에게 쏟았던 화를 풀며 그를 진창성으로 가게 했다. 근상은 말을 타고 성문 앞까지 가서 소리쳤다.

"여보게 학백도! 엣 친구 근상이 자네가 보고싶어서 여기 왔네. 어서 성문을 열게!"

성 위에 있던 군사가 학소에게 알리자 학소는 성문을 열고 그를 성안으로 맞아들이게 했다. 두 사람이 막사 안에 마주 앉자 학소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네. 한데 무슨 일로 갑자기 왔는가?"

학소가 궁금한 얼굴로 묻자 근상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나는 서촉의 공명 승상의 장하에서 군기를 맡아 보고 있는데 상빈의 예우를 받고 있다네. 이번에 특별히 자네에게 할말이 있어서 왔네."

그 말을 듣자 학소는 금세 얼굴에 노기를 띠고 언성을 높였다.

"제갈량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원수이다. 나는 위나라를 섬기고 자네는 촉나라를 섬기니 비록 옛날에는 한 형제처럼 지냈다 해도 지금은 원수이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으니 성에서 어서 썩 나가게!"

제대로 말을 붙이기 전에 학소가 자르듯 말했다.

"아니 여보게. . . . ."

다급해진 근상이 다시 그에게 말을 붙이려 했으나 학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위나라 군사들이 그를 말 등에 밀어 올리다시피 해서 태우고 성문 밖으로 쫓아냈다. 근상이 멀지감치 서서 성루를 올려다보니, 학소가 성루 난간에 기대어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근상은 채찍을 들어 학소를 가리키며 푸념하듯 말했다.

"백도 이사람아. 어찌 나를 이리 박대하는가?"

학소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위나라의 법도는 자네도 잘 알 것이네. 나도 나라의 은혜를 입은 몸, 오직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할 뿐이네. 자네는 부질없이 나를 달랠 생각일랑 버리고 제갈량에게 가서 빨리 공격해 오라고 전하게. 그를 두려워할 내가 아니네."

학소가 그렇게 나오니 근상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하는수 없이 되돌아가 공명에게 말했다.

"학소는 제가 입을 열기 전에 거절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공명은 다시 권했다.

"한 번 더 가서 이해를 따져서 달래 보게."

공명의 분부를 받은 근상은 다시 성 아래로 가서 학소에게 만나주기를 청했다. 학소가 성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를 향해 소리쳤다.

"백도 이 사람아. 자네는 어찌하여 대한을 거스려 간사한 위나라를 섬기려 하는가? 이는 곧 천명마저 거스르고, 맑고 흐림을 가리지 못함이 아닌가. 부디 깊이 생각해 보게."

그 말을 들은 학소가 크게 화를 냈다. 근상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학소는 활에 살을 메기고 근상을 겨냥하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근상아. 내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냉큼 물러가지 않으면 활을 쏘겠다."

근상은 하는 수 없이 돌아가서 공명에게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공명도 학소가 끝내 항복하지 않자 크게 노하며 소리쳤다.

"천한 놈이 너무나 버릇이 없구나! 그렇다면 내가 몸소 나아가 성을 둘러엎고 말겠다!"

공명은 이어 좌우를 돌아보며 그곳 토박이를 불러 오게하여 물었다.

"진창성안에는 얼마의 인마가 있는가?"

"대략 3천쯤 될 것입니다."

"저들의 구원병이 오기 전에 급히 성을 치도록 하라."

공명은 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진창에서 발목 잡힌 공명 적의 계책을 역이용하다

한중에 머물러 있는 일 년 동안에 공명은 군사들 진용을 새로이 편성하는 한편 병장기를 혼질해 놓고 있었다. 예를 들면, 적에게 기습을 가할 군사들은 날랜 군사들로 가려 뽑았고, 병장기만을 다루는 군사들을 새로이 만들어 진용을 갖추게 하였으며, 말을 잘 타는 군사들을 이에 배치시켰다. 또한 노궁수로서 그 활용도가 낮았던 군사들에게는 공명이 새로 발명한 위력 있는 새 무기를 더하여 독립된 부대를 만들고 이 부대의 장수를 연노사라고 불렀다. 연노는 공명이 개발한 신예 무기였다. 한 번 활을 쏘면 여덟 치 길이의 쇠화살이 한꺼번에 열 개씩 날아가는 것이었다. 또한 대연노는 비창현이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철갑을 뚫는 종래의 화살보다 큰 창살과 같은 화살을 다섯 사람이 시위를 당겨서 쏘는 쇠뇌였다. 이 외에 석노라 하여 큰 돌멩이를 활처럼 쏘아 날리게 하는 무기도 있었다. 그 밖에 양초나 병장기를 실어 나르기 위해 목우유마라고 불리는 특수한 수레가 이미 고안된 바 있고, 군사의 투구에서 갑옷에 이르기까지 개량되었다. 이런 것들 말고도 공명이 발명하여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무기는 많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공명에 의해 비롯된 병법의 진보이다. 필진법을 비롯하여 전부터 내려온 손자. 오자의 병법과 육도삼략에까지 새로운 내용을 더하고 고칠 것은 고쳤다. 공명의 이 병법이 그대로 전해져 그 이후의 싸움에 많은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한편, 학소가 지키는 진창의 작은 성은 군사의 수효가 고작 3, 4천명에 불과했다. 이런 군세에 신병기까지 갖춘 촉의 대군이 성을 에워싸고 들이치니 학소에게는 힘든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학소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꿋꿋하게 잘도 버티었다. 이는 학소의 질서 정연한 지휘와 성병 3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힘을 다해 싸웠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머뭇거리다 위의 원군이 오면 큰일이다."

공명은 마침내 몸소 진두에 나서서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 싸움에 공명은 운제라는 신병기까지 내세워 사용했다. 운제는 성벽 위에까지 닿는 높은 사다리였다. 한 사다리에 10여 명씩 올라설 수 있으며 주위를 널빤지로 막아 적의 화살에 대비했다. 아래쪽에는 수레바퀴가 달려있어서 나아가고 물러남이 자유로웠다. 이 운제 1백 대를 세우게 하여 성벽 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군사들은 또 각기 작은 사다리와 밧줄과 고리를 들고는 진중에서 북소리가 울리자 일제히 성벽으로 다가갔다. 운제를 성벽에 붙일 때 성안으로 뛰어들기 위함이었다. 한편 학소는 성벽 위에서 촉군이 운제를 세우고 사면에서 쳐들어오는 것을 보자, 3천 군사에 명하여 각기 불화살을 쏘게 했다. 촉군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운제를 성벽 가까이 밀고 가자 뜻밖에도 성 위에서 불화살이 날아오지 않는가. 비 오듯 쏟아지는 불화살에 운제는 모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사다리 위의 군사들은 불에 타서 죽거나 뛰어내리다 크게 상했다. 뿐만 아니라 성벽 위로부터 또 화살과 돌이 비 오듯 날아오니 촉군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네가 나의 운제를 불태웠으니 내가 이번에는 충차(성을 돌파하는 기구)를 쓰겠다."

화가 난 공명은 그날 밤 안에서 충차를 만들었다. 충차는 철판으로 수레를 덮어씌운 일종의 철갑차로 적진을 돌파하는 데 쓰이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촉군의 충차를 앞세워 사면에서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성으로 밀고 들었다. 학소는 급히 성벽 위에 모아 두었던 큰 돌덩이에 구멍을 뚫고, 칡으로 꼰 밧줄을 그 구멍에 꿰어 들고는 충차가 오는 대로 내리치게 했다. 충차는 휘두르는 돌에 맞아 우지끈거리며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운제도 파하고 충차도 별 효과가 없자 공명은 군사들에게 흙을 날라다가 구덩이를 메우게 하는 한편, 요화에게 군사 3천을 주어 밤중에 땅속으로 굴을 파게 했다. 그러나 학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명이 땅굴을 파는 걸 알고 성안에 또 구덩이를 파서 땅속으로 뚫린 굴을 막아 버렸다. 이렇게 밤낮으로 싸우기를 20여 일이나 계속했으나 성은 여전히 끄덕도 하지 않았다. 공명으로서는 일찍이 이렇게 애를 먹은 싸움은 없었다. 갈 길이 바쁜 공명은 진창에서 학소에게 발목이 잡혀 첫 번째 싸움에서 헛되이 시일을 흘려보낸 셈이 되고 말았다. 공명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괴롭고 우울했다. 잠도 못 이루고 진중에서 계책을 짜내고 있는데 홀연 급보가 전해졌다.

"동쪽에서 적의 원군이 나타났습니다. 선두에 나부끼는 기폭에는 '위선봉 대장 왕쌍'이라 씌어 있습니다."

"염려하던 원군이 마침내 오는구나."

공명은 그 말을 듣자 걱정스런 얼굴로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나가서 막겠느냐?"

위연이 선뜻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대는 선봉장이니 경솔히 나가서는 안 된다."

공명은 다시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나가 막겠는가?"

"제가 가겠습니다."

모두가 그를 보니 비장 사웅이었다. 공명은 공기를 부장으로 삼게 하고 각각 군사 3천 기를 주어 내보내는 한편, 정병이 나올 것을 염려하여 진을 20리 밖으로 물렸다. 군사를 뒤로 물리고 진용을 가다듬은 공명은 사웅으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그런 걱정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보고는 하나같이 불리한 보고였다. 맨 먼저 나간 촉군이 뿔뿔이 흩어진 채 본진으로 도망쳐 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대장이신 사웅 장군은 적장 왕쌍과 싸웠으나 3합도 견디지 못하고 칼에 맞아 죽었고, 뒤이어 나온 부장 공기 장군 또한 적장 왕쌍의 한 칼레 맞아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적장 왕쌍은 어찌나 용맹스러운지 당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크게 노란 공명은 황망히 요화. 왕평, 장의 세 장수로 하여금 왕쌍을 맞아 싸우게 했다. 촉의 세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 위의 원군과 서로 둥글게 진을 치고 맞섰다. 촉장 장의가 진 앞으로 나서고 왕평과 요화는 그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싸움은 왕쌍이 먼저 걸어왔다. 그는 큰 청룡도를 휘두르며 장의에게 덮쳐 왔다.

 

황제 위에 오른 손권 공명은 세 번째 기산을 향하다

한편, 오주 손권은 촉에게 군사를 내도록 하여 촉과 위가 끝없는 싸움을 벌이며 서로 힘을 축내고 있는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싸움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손권이 어느 날 조회를 열고 있는데 세작이 들어와 아뢰었다.

"촉의 제갈 승상이 두 번씩이나 출병을 하여 위군을 크게 깨뜨렸습니다. 위의 대도독 조진은 크게 패한 채 많은 군사와 장수를 잃었다 합니다."

여러 관원들이 그 말을 듣고 손권에게 권했다.

"이 틈에 군사를 내어 위를 치고 중원을 도모하시도록 하옵소서."

그러나 손권은 함부로 군사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위가 싸움에 졌다고 하나 그 군세가 모두 허물어진 건 아니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장소가 들어와 말했다.

"요사이 듣자니 무창 동산에 봉황이 내려와 춤을 추고 대강에 황룡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합니다. 이는 곧 주공의 덕이 요, 순과 짝하실 만한 데다 아울러 주문왕과 무왕에 견줄 만하시니 당연히 황제에 오르셔야 할 것입니다. 제위에 나가신 후에 군사를 일으키도록 하십시오."

많은 관원들도 장소의 말을 좇아 손권에게 권했다. 손권도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마지못한 듯 제위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다. 그해 4월 병인일로 날짜를 정하고 무창 남쪽 교외에 크고 화려한 단을 쌓았다. 그날이 되자 신하들은 손권을 단상으로 모셔서 황제의 위에 오르게 하고, 황무 8년을 황룡 원년이라 고쳤다. 이에 손권은 선왕 손견에게는 무열황제, 어머니 오씨에게는 무열왕후, 형 손책에게는 장사환왕 이라는 시호를 바쳐 올렸다. 맏아들 손등은 말할 필요도 없이 동시에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제갈근의 큰아들 제갈각을 태자 좌보, 장소의 둘째 아들 장휴를 태자 우필로 삼았다. 제갈각은 혈통으로 따지면 공명의 조카가 된다. 자는 원손이라 하며, 키가 7자나 되는 장부이다. 원래 총명한 데다 말을 잘해 사람의 말을 거침없이 받아넘기는 재주가 뛰어났다. 손권은 그런 제갈각을 일찍부터 몹시 사랑했다. 그가 여섯 살 때, 손권이 베푼 잔치에 아버지 제갈근을 따라 참석한 일이 있었다. 손권이 제갈근의 얼굴이 유난히 긴 것을 보고 놀려주느라고 신하를 시켜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게 하여, 그 얼굴에다 '제갈자유'라는 네 글자를 썼다. 자유는 제갈근의 자였다. 제갈근의 긴 얼굴이 말의 얼굴처럼 길어 우스개 삼아 비유한 것이었다. 그러나 군왕의 장난이므로 당사자인 제갈근은 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을 뿐이었다. 물론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그러나 부친의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제갈각이 갑자기 붓을 들고 마당으로 달려가더니 나귀 앞에 서자 발돋움을 하며 그 네 글자 밑에 두 자를 써넣었다. 사람들이 보니 '제갈자유지로' , '이 나귀는 제갈자유의 나귀다'라는 뜻이 되었다. 우스갯감이 된 아버지를 기지를 발휘하여 벗어나게 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혀를 내두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손권은 그의 총명함을 매우 기특하게 여겨 그 나귀를 제갈근에게 하사했다.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손권이 문무관원을 모아 놓고 크게 잔치를 베풀 때였다. 손권이 제갈각에게 여러 사람에게 잔을 돌리라고 명했다. 그가 장소 앞에 이르렀을 때 장소는 잔을 받으려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이는 노인을 대접하는 예의가 아니다."

손권이 그 말을 듣고, 제갈각에게 말했다.

"억지로라도 술을 권해 자포(장소)가 드시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자 제갈각이 다시 장소에게 나아가 말했다.

"옛날 강상부(강태공을 이름)는 나이 아흔에 삼군의 장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에 나가면서도 늙음을 말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동오가 싸우러 나가는 날에는 선생을 뒤에 모셔 두고 술 드시는 날에는 앞에 모십니다. 그런데 어찌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장소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잔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로 손권은 더욱 제갈각을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태자의 보좌를 명한 것이었다. 장소는 오왕을 보좌하여 그 지위가 삼공의 위에 있었다. 이에 손권은 그 아들 장휴를 태자의 우필로 삼았다. 또한 고옹을 승상으로, 육손을 상장군으로 삼아 태자를 보좌하여 무창을 지키게 하고 손권 자신은 건업으로 돌아갔다. 그런 어느 날 신하들이 손권에게 말했다.

"이제 보위에 오르신 데다, 우리의 힘도 강대해졌으니 위를 도모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소만은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 됩니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은 오직 글을 닦고 힘을 기르시며 나라를 다스리실 때입니다. 배움터를 더욱 늘려 세우시고 민심을 안정시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신을 서촉으로 보내셔서 동맹을 맺고 천하를 둘로 나눌 약조를 하신 후에 천천히 도모하여야 합니다."

손권도 장소의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서촉에 사신을 보내 후주에게 자신이 제위에 올랐음을 전하게 했다. 손권이 보낸 사자가 성도에 이르러 후주를 뵙고 그 일을 전했다. 사자로부터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자 후주가 여러 신하들에게 그 일을 의논했다.

"손권이 참람되이 천자를 자칭하니 그와의 맹호를 끊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하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장완이 후주에게 권했다.

"이 일은 승상께 사람을 보내 물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후주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 사람을 한중으로 보내 그 일을 물었다. 동오의 왕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는 전갈을 받은 공명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그의 이상은 한조의 통일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태양이 두 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주장할 수 없는 때였다. 동오는 촉과 사이가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위와 손을 잡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원히 촉의 흥륭은 없어진다. 촉이 망하면 공명의 이상도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만다. 후주 유선이 사자를 한중에 보내서 공명의 의중을 묻자 공명은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낸다.

오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축하하는 예물을 전하고, 육손에게는 군사를 일으켜 위를 치라고 종용하십시오. 만약 오나라에서 군사를 일으키면 위는 반드시 사마의에게 이를 막도록 할 것이며, 사마의가 동오의 군사를 막기 위해 군사를 남으로 내면 신이 다시 기간으로 나아가 그곳을 빼앗고 장안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후주는 공명의 진언을 받아들였다. 태위 진진에게 명마와 옥대. 금은보화 등의 예물을 갖추어 동오에 가서 하례하게 했다. 태위 진진은 동오에 들어가 손권에게 예물과 국서를 바치니 손권은 매우 기뻐하며 주연을 베풀어 진진을 위로한 다음 촉으로 돌아가게 했다. 진진이 돌아가자 손권은 육손을 불러들여서 물었다.

"군사를 일으켜 위를 치겠다고 서촉과 약속을 하였는데 백언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육손은 공명의 속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동오와 위가 싸우도록 부추기는 공명에게 처음에는 심히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으나 금세 낯빛을 바꾸고 말했다.

"이는 사마의를 두려워하는 공명이 낸 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그들과 동맹을 맺었으니 싫든 좋든 좇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짐짓 군사를 일으키는 체하며 멀리 서촉과 흐응하고, 공명이 위를 공격하기를 기다렸다가 위가 위태로워지면 그 틈을 낙양을 빼앗으면 중원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좋은 계책이오."

손권은 육손의 말을 받아들였다. 육손은 즉시 영을 내려 형주. 양양 각처에서 인마를 조련하게 하는 한편, 날을 잡아 군사를 일으킬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때 한중으로 돌아간 진전은 촉의 뜻을 받아들여 동오가 군사를 일으키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자 공명도 세 번째로 기산으로 군사를 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학소가 지키고 있는 진창으로 함부로 나갈 수 없어 마음에 걸렸다. 공명이 세작이 풀어 그곳의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그런데 그 세작으로부터 뜻밖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창성의 학소가 병에 걸려 누워 있습니다."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손뼉이라도 칠 듯이 기뻐했다.

"이제 내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구나!"

그렇게 말한 공명은 위연과 강유를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들은 5천 기를 거느리고 급히 진창으로 달려가되, 성안에서 불길이 오르기를 기다려 성을 들이치도록 하라."

두 사람은 느닷없이 멀리 있는 진창성에 불이 일어난다는 말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어느 날 떠나야 합니까?"

"사흘 안에 모든 채비를 끝내되, 채비가 갖추어지면 나를 보고 갈 것도 없이 바로 떠나도록 하라."

두 사람이 떠난 뒤, 공명은 관흥과 장포를 불러들여 가만히 계책을 일러 주었다. 그러자 관흥과 장포도 곧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 무렵, 곽회는 학소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장합을 만나 위논했다.

"학소의 병이 중하다 하니 장군께서 가시어 학소를 대신해 진창을 비켜 주어야겠소. 나는 천자께 표문을 올려 이 일을 알린 후 뒤따르겠소."

이에 장합은 그날로 군사 3천을 이끌어 학소를 대신해 진창을 지키기 위해 달려갔다. 한편 병상에 누워 있는 학소는 날로 병이 깊어갔다. 그날 밤도 병상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데, 홀연 촉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군사들의 소란스런 외침이 들려 왔다. 놀란 학소가 방비를 엄중히 하라고 영을 내렸으나, 이미 네 성문에 불길이 오르고 온 성안은 발칵 뒤집혀 수습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학소가 그 말을 듣자 울화가 치밀어 가느다랗게 이어 오던 목숨이 그만 끊어지고 말았다. 학소가 숨을 거두자 촉군은 봇물이 터진 듯 성안으로 들어왔다. 한편, 위연과 강유가 군사를 거느리고 진창성 아래 이르러보니, 그토록 방비가 엄중하던 성벽 위에는 깃발 하나 꽂혀 있지 않고 군사 하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속임수가 있는 것 같아 감히 성안으로 밀고 들어가지 못한 채 살피고 있는데 홀연 성루에서 호포 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사방에서 깃발들이 일제히 세워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윤건을 쓰고 손에 깃털 부채를 들고 몸에는 학창의를 입은 한 사람이 성루 위에 나타났다.

"그대들은 무엇을 하다 이리도 더디게 왔느냐?"

그 사람은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눈을 씻고 보니 바로 공명이었다. 두 사람은 황망히 말에서 내려 꿇어 엎드리며 말했다.

"승상의 귀신 같은 계책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공명은 두 사람을 성안으로 들게 한 후, 진창성을 거두어들인 일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학소의 병이 깊다는 것을 알고 그대들에게 사흘 안으로 군사를 거느려 성을 공격하라 명했다. 그것은 곧 군사들의 마음을 진정키시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편, 관흥과 장포를 시켜 군사를 순시한다는 핑계를 대고 몰래 한중을 떠나게 했다. 나도 그 군중에 몰래 섞여 밤낮으로 달리고 달려서 이곳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적에게 방비할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이미 성안에 들여보내 놓은 세작을 시켜 불을 놓고 함성을 지르게 하여 위의 군사들로 하여금 놀라 혼란에 빠지게 했다. 대장이 없으면 군사들은 자연 어지러워지는 법, 그 허한 틈을 타 성을 우려 빼기는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병법에 '뜻하지 아니한 때에 나가고 방비가 없는 곳을 친다'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며 이번에 나는 이 계책을 쓴 것이다."

위연과 강유는 거듭 감복할 뿐이었다. 공명은 학소가 적장이지만 학소의 드높은 충절을 가상히 여겨 그 처자로 하여금 영구를 모시고 위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공명은 또 위연과 강유에게 일렀다.

"진창성은 거두어들였으나 그대들은 아직 갑옷을 벗지 말고 즉시 산관으로 달려가라. 만약 때를 놓이면 위군들이 들어와 지켜서 제2의 진창이 될 것이다."

이에 위연과 강유는 잠시 쉴 겨를도 없이 산관으로 달려갔다. 관에 이르러 보니 촉병이 몰려오는 걸 본 위군들이 모두 달아난 뒤였다. 두 사람은 힘들이지 않고 산관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촉군의 깃발을 올리고 한나절도 되지 않아서 관 밖 멀리서 티끌이 자욱하게 일어나며 위의 군사들이 급히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승상의 귀신 같은 지모는 가히 우리들이 헤아릴 바가 못 되는구려."

그들은 여기서 또 한 번 공명의 귀신같은 지모에 혀를 내둘렀다. 급히 망루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위군 속에 '좌장군 장합'이라 씌여진 깃발이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었다. 장합은 산관까지 오기는 왔으나 이미 촉군이 성을 차지하고 있음을보고 크게 실망했는지 금세 군마를 돌려세워 물러가기 시작했다.

"저들을 뒤쫓아 쳐라!"

촉군은 관 밖으로 나가 위군을 뒤쫓았다. 때문에 장합의 군세는 적잖게 꺾인 채 장안으로 쫓겨 달아났다. 위연과 강유로부터 산관성을 빼앗았다는 전갈을 받은 공명은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보았다. 즉시 전군을 이끌고 진창에서 약공으로 나아가 건위를 쳐서 빼앗은 다음 기산으로 말을 몰았다. 공명이 다시 기산으로 밀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주는 대장 진식을 보내 공명을 돕게 했다. 기산은 공명이 이미 두 번이나 밟아 본 싸움터이다. 그 두 번의 싸움에서 촉군은 군사를 물리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공명에게는 깊은 통한이 서린 땅이 아닐 수 없었다. 공명은 장막에 장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나는 두 차례 기산에 나왔으나 이렇다 할 공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또 내가 이곳에 왔으니 위군은 두 번에 걸친 승리에 맛들여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내가 옹성과 미성 두 곳을 빼앗으려 들 것이라 생각하고 필시 그곳에 군사를 둔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허를 찔러 창끝을 돌려서 음평과 무도의 두 고을을 칠 것이다. 누가 한 번 나가 그곳을 빼앗아 보겠는가?"

"제가 가겠습니다."

강유가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그러자 왕평도 함께 나섰다. 공명의 작전은 음평. 무도를 취함으로써 적의 세력을 그 방면으로 흩어 놓으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적의 병력을 갈라놓기 위해서는 이쪽도 또한 병력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명은 강유와 왕평에게 각각 1만 군사를 주어 떠나게 했다. 한편 장안으로 돌아간 장합으로부터 공명이 기산으로 군사를 내었다는 보고를 받은 곽회는 크게 놀랐다. 진창이 적의 손에 넘어간 데다 산관마저 빼앗기고 이제 기산으로 밀고 들어오는 공명의 기세가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필시 옹성과 미성을 빼앗으려 들 것이오. 장합 그대는 이 장안을 지키시오. 나는 미성을 지키고 옹성에는 손례를 보내어 방비케 하겠소."

곽회는 즉시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미성으로 떠남과 동시에 낙양에도 표문을 올려 이 사실을 알렸다. 낙양의 위 조정은 당황과 곤혹 속에 빠졌다. 제갈량이 다시 기산으로 밀고 들어온 데다 오왕 손권이 제위에 등극하였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촉의 청에 따라 무창의 육손이 대병력을 조련하여 당장이라도 위로 쳐들어올 채비를 차리고 있다는 전갈이 연이어 전해졌다. 촉나라도 강적이요, 동오도 위험한 적이었다. 위주 조예는 그 같은 소식에 크게 놀라고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조진은 그때까지 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다.

'중달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위주 조예가 이럴 때 의지할 사람은 사마의밖에 없었다. 곧 사마의를 불러들이고 촉과 오의 움직임을 들은 대로 밝힌 뒤 사마의에게 물었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위주가 그렇게 묻자 사마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신이 생각하건대 동오는 결코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조예가 뜻밖이라는 얼굴로 물었다.

"공명은 항상 효정(유비가 크게 패한 일)의 원한을 씻고자 동오를 노리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오와 싸우면 그 빈틈을 타 우리 위가 쳐들어올까 봐 그걸 염려하여 짐시 오와 동맹을 맺은 것입니다. 육손도 공명의 그러한 속셈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군사를 일으키는 체하며 공명이 우리 위와 싸우는 걸 지켜볼 생각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구태여 오를 막을 일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촉만을 막으시면 됩니다."

"실로 높은 식견이 아닐 수 없소."

조예는 먹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듯 마음이 밝아졌다. 조예는 곧 사마의를 대도독으로 봉하여 농서의 군마를 맡도록 했다. 조예는 좌우에게 명해 병상에 누워 있는 조진에게 가서 총병장인(총대장인)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자 사마의가 나서며 말했다.

"제가 직접 가서 받아오겠습니다."

조예는 사마의가 조진이 가지고 있는 총병장인을 직접 가지러 가겠다고 하자 그 까닭은 알 수 없었으나 선선히 허락했다. 그길로 곧바로 조진의 거처를 방문한 사마의는 자리에 누워 있는 조진과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넌지시 물었다.

"동오의 육손, 서촉의 공명이 손을 잡고 군사를 일으켰소이다. 공명은 이미 또 다시 기산에 나와 영채를 세웠습니다. 공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조진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며 말했다.

"집안사람들이 내 병이 위중하니 일부러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은 것 같소.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떤 조처를 취하셨습니까? 이런 위급한 때에는 그대를 도독으로 삼아 촉군을 물리쳐야만 하지 않겠소?"

"과분한 말씀입니다. 재주도 없는 변변찮은 이 사람이 어찌 그와 같은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마의는 짐짓 그렇게 말해 조진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조진이 곧 좌우에게 본부를 내렸다.

"어서 장군인을 가져와 중달에게 드려라."

"그건 아니 됩니다. 이 사람은 다만 온 힘을 다하여 도독의 한팔이 되어 돕겠소이다. 대장인만은 받을 수 없습니다."

사마의가 다시 한번 사양했다. 그러자 조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사마중달이 이 일을 맡지 않는다면 우리 위는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오. 내가 비록 병중이나 폐하를 뵙고 그대를 천거하고 오리다."

"고정하십시오. 천자께서는 이미 은명을 내리셨으나 이 사람이 감히 받들지 못했습니다."

조진은 사마의가 거듭 사양하는 걸 보고 마음이 흡족했다.

"아니 되오. , 어서 이것을 받으시오. 중달이 그 일을 맡아 주면 족히 촉병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조진은 대장인을 사마의 앞에 내밀었다. 사마의는 조진의 속마음을 알게 된 데다 조진이 거듭 권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마지못한 듯 장인을 받아 들고 조진의 부중을 나왔다. 조진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대장인을 거둔 사마의는 조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린 뒤 곧 장안으로 군사를 이끌었다. 촉의 제갈공명과 위의 사마의가 맞선 것은 건흥 74, 기산에서였다.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사마의는 주로 진두에 직접 나서지 않고 낙양에 머무르고 있었다. 공명과 부딪친 가정에서는 자신이 양평관까지 나아갔으나 공명이 망루 위에서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로 하여금 의심을 품고 물러나게 만들었다. 사마의가 떠나가자 공명도 바람과 같이 한중으로 물러나니 승패를 가리는 싸움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공명도 사마의의 비범함을 알고 있으며 사마의도 공명이 결코 쉽게 꺾을 수 없는 적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마의는 장안에 이르자 장합을 선봉으로 삼고, 대릉을 부장으로 삼아 기산에 이르러 위수 남쪽에 진을 쳤다. 그는 기산에 이르른 그날 곽회와 손례를 불러서 물었다.

"멀리 바라보니 공명이 기산의 세 곳에 진을 치고 있는데 그 형세가 자못 엄중하다. 그대들은 그사이 촉군과 싸운 적이 있는가?"

"아직 없습니다."

"공명은 먼길을 달려왔기 때문에 빨리 싸워야 이로울 터인데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무언가 숨은 계략이 있을 것이다. 그동안 농서의 여러 고을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는가?"

그 물음에 곽회가 그동안의 움직임을 말했다.

"각 군이 밤낮으로 힘써 방비를 하고 있어서 아직 별일이 없다는 세작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다만 무도. 음평 두 곳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곽회가 그렇게 말하자 사마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바로 그곳이다. 공명은 바로 그 두 군을 공겨갈 생각임이 분명하다. 나는 사람을 보내 공명과 싸우자고 할 것이니 그대들은 샛길로 즉시 나가 그곳을 구원하러 떠나라. 지름길로 달려가 촉군의 뒤를 친다면 적은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다."

이에 곽회와 손례는 그날 밤 안으로 수천의 군사를 이끌고 농서의 지름길을 통해 무도와 음평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행군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중달과 공명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오?"

곽회가 평소의 의문을 손례에게 물은 것이었다. 손례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공명이 앞서겠지요."

사마의보다 먼저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있는 공명인지라 손례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곽회의 생각은 달랐다.

"공명이 비록 중달보다 낫다 해도 이번 계책은 중달이 뛰어난 지모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 줄 것이오. 만일 촉군이 저 두 고을을 치고 있다면 우리가 그 등 뒤를 후려치면 촉군도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 아니겠소?"

이런 말들을 주고받고 있는데 살피러 갔던 군사가 달려와서 알렸다.

"음평은 이미 촉의 왕평에게 떨어졌고 무도도 강유에게 빼앗겼으며, 촉병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손례가 곽회에게 가만히 말했다.

"이미 성을 빼앗아 놓고 어찌하여 밖에다 군사를 풀어놓았겠소. 이건 필시 계략을 쓰기 위함일 것이오. 물러나는 것이 좋겠소."

손례의 말에 곽회가 고개를 끄덕이며 군사들을 물리려고 할 때였다. 홀연 포성이 한 차례 울리더니 산의 솔밭 속에서 징 소리, 북소리도 요란하게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그의 왼쪽에는 관흥이, 오른쪽에는 장포가 호위하며 수레와 나란히 다가오고 있었다. 손례. 곽회 두 사람은 이 뜻밖의 광경에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얼굴색이 달라졌다. 공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곽회. 손례는 달아나지 말라. 사마의 따위에게 나 공명이 속을 줄 알았느냐. 그가 매일 군사들로 하여금 우리의 영채를 치게 하는 동안 너희들을 시켜 우리의 등 뒤를 찌르려는 계책을 쓴 모양이다만, 무도와 음평은 이미 내가 차지했다. 어떠냐, 항복하겠느냐? 아니면 싸우겠느냐?"

그 말을 듣고 곽회. 손례가 얼이 빠진 듯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돌연 그들의 등 뒤에서 땅을 뒤흔들 듯한 함성이 일어나면서 왕평, 강유가 이끄는 군사들이 밀어닥쳤다. 앞에서는 관흥. 장포가 단숨이 그들을 벨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앞과 뒤에서 네 장수가 이끄는 적을 맞자 위병과 촉병은 한데 어우러져 싸웠으나 이미 기운 싸움이라 위병은 크게 패한 채 달아났다. 곽회. 손례 두 사람은 황망한 가운데 말을 버리고 산으로 기어올라 달아났다. 그때 장포가 달아나는 두 사람을 보고 말을 몰라 뒤쫓았으나 뜻하지 않게 험한 산비탈에서 말이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뒤를 따르던 촉의 군사들은 크게 놀랐다.

", 장 장군께서 계곡에 떨어지셨다.

뒤쫓던 촉병은 장포를 구하기 위해 모두 벼랑 아래로 달려갔다. 장포는 바위 모서리에 부딪쳐 머리가 깨진 채 벼랑 바닥에 혼절해 있었다. 공명은 그런 장포를 성도로 돌려보내 상처를 돌보게 했다. 한편, 장포가 다치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진 곽회와 손례가 패잔병의 모습으로 도망쳐 온 것을 본 중달은 오히려 두 사람을 위로했다.

"이번 싸움에 진 것은 그대들의 허물이 아니다. 공명의 지모가 나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옹성과 미성을 각각 굳게 지키되 결코 나가서 싸우지는 말라. 내게 촉군을 깨뜨릴 계책이 있다."

두 사람은 사마의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절을 올려 고마움을 표한 뒤 명을 받고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난 뒤 사마의는 종일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장합과 대릉을 불렀다.

"무도와 음평을 빼앗은 공명은 필시 본진을 비워 놓고 백성들을 어루만지러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기산의 본진에는 여전히 공명이 있는 것처럼 깃발들을 세워 놓고 있을 테지만 그것은 우리를 속이려는 계책일 뿐이다. 그대들은 각기 1만 정병을 거느리고 오늘 밤 안으로 진병하여 촉의 본진 뒤로 돌아가 들이치도록 하라. 나는 적군의 앞쪽에 포진하고 있다가 적군 쪽이 소란스러워지면 짓쳐 들겠다. 앞과 뒤에서 힘을 모아 들이치면 틀림없이 적진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기산만 빼앗는다면 이미 이번 싸움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명을 받자 두 사람은 지체없이 떠나갔다. 대릉은 왼쪽, 장합은 오른쪽의 지름길로 해서 촉진의 뒤편으로 깊숙이 나아갔다. 삼경 무렵, 큰길에 이르자 대릉과 장합이 만나 군사를 합쳤다. 그리하여 함께 촉병을 칠 작정이었다. 그들은 기척을 죽이고 가만히 촉진의 등 뒤로 나아갔다. 30리쯤을 갔을 때였다. 전군이 나아가지를 않고 꾸물대고 있었다. 장합과 대릉이 말을 다려가서 보니 마초를 가득 실은 수레 수백 대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필시 적군에게 준비가 있다는 뜻이오. 황급히 군사를 돌려세웁시다."

그렇게 말한 장합이 황급히 군사를 물리라는 영을 내리고 있는데 사방에서 횃불이 나타나더니 길을 환하게 밝혔다. 그와 함께 피리 소리, 북소리도 요란하게 울리며 사방에서 매복한 군사들이 쏟아져 나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거기 장합과 대릉은 듣거라!"

난데없이 기산 꼭대기에서 공명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마의는 내가 무도. 음평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지러 가서 본진이 빈 줄로 생각하고 너희들로 하여금 야습을 감행케 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게 바로 나의 계책에 떨어진 것이다. 너희들은 이름도 없는 장수들이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공명이 너무나 자기들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고 있는 데다 그런 공명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듯하여 장합은 벌컥 화가 솟구쳤다. 앞뒤를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멀리 공명을 바라보고 삿대질을 하며 대꾸했다.

"너야말로 한낱 산골에 살던 촌부가 아니냐. 분수도 모르고 감히 우리 국경을 범하면서 어찌 그런 허튼 소리를 하느냐. 게 있거라. 사로잡아 두 토막을 내 죽이겠다."

말을 마친 장합은 창을 옆구리에 끼고 말을 제우쳐 단숨에 산 위로 치달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산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장합은 하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리고 기다란 창을 후리면서 겹겹이 에워싼 촉군 속을 빠져나갔다. 장합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무서운 기세를 촉병들은 당해 내지 못했다. 그때 대릉은 촉병에 둘러싸여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멀리까지 달아난 장합은 대릉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도망쳐 온 길을 되돌아갔다. 가까스로 촉병을 헤치고 들어간 장합은 길을 열어 대릉을 구해 달아났다. 공명이 높은 곳에서 그런 장합의 용맹을 감탄하듯 지켜 보고는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날 장익덕(장비)이 장합과 크게 싸울 때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더니, 오늘 보니 참으로 그 용맹을 알겠구나. 그를 살려 두었다가는 뒷날 촉에 큰 해를 끼칠 것이다. 내가 반드시 그를 죽여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리라."

공명이 다짐하듯 말하고 군사를 거두어 본진으로 돌아갔다. 한편, 위의 본진에 있던 사마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와 진세를 펼치고 촉병이 어지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합과 대릉이 싸움에 크게 지고 오자 얼굴빛이 변한 채 중얼거렸다.

"공명은 참으로 귀신과 같은 사람이구나."

사마의는 그 자리에서 영을 내려 대군으로 하여금 모조리 본진으로 돌아가게 한 다음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나가서 싸우지는 않았다.

한편 두 번 싸워 두 번 다 크게 이긴 촉병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거기다 위군의 풍부한 장비와 마필무구 등 무수한 전리품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그 후 사마의가 굳게 지키기만 하고 나와 싸우지 않자 촉군도 하는 일 없이 보름 가까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되니 싸움은 공명이 꺼리는 장기전의 양상을 띠고 말았다. 사마의가 멀리 원정 온 촉병의 약점을 헤아려 나와 싸우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공명으로서는 촉의 전군을 이끌어 나온 터라 무턱대고 밀고 들어갈 수만은 없었다. 공명이 무너지면 곧 촉이 무너지는 걸 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느 날 성도에서 시중 비위가 조칙을 받들고 왔다. 공명은 비위를 맞아들인 후에 향을 사르고 천자의 조서를 받들었다.

가정 싸움의 허물은 마속에게 있었는데도 경은 스스로를 나무라며 승상의 자리를 물러났다. 짐은 굳이 경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뜻에서 그대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경은 지난해에 군사를 일으켜 왕쌍을 베었고, 올해는 또 곽회를 몰아내었다. 또한 저강의 무리를 귀순케 하였고 두 군을 되찾았으니 위엄이 사방에 미치고 그 공을 천하에 떨쳤다. 천하가 소란하고 역적들의 목을 아직 다 베지 못한 이때, 경이 나라의 대임을 맡아 일하면서 오랫동안 스스로 낮추어 생각함은 한을 일으키려는 뜻을 펴는 데 이롭지 못한 일이라 여겨진다. 이에 경에게 승상의 직위를 다시 내리니, 이를 물리치지 말도록 하라.

조서를 받은 공명이 비위에게말했다.

"아직 나라의 큰일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내 어찌 승상의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단 말인가?"

공명은 굳이 사양하였으나 비위가 간곡히 말했다.

"승상께서 그 자리를 받지 않으시면 천자의 성지를 받들지 않는 것이 되며, 또한 장졸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습니다. 승상께서는 받으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비위의 말에 공명은 더는 사양할 수가 없어 절을 올리고 조서를 받들었다. 비위는 공명이 다시 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성도로 돌아갔다. 공명은 아무리 싸움을 돋우어도 사마의가 나와서 싸우지 않자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해 냈다.

"이제 영채를 거두어 돌아갈 채비를 하라."

공명은 느닷없이 한중으로 물러간다는 영을 내렸다. 군사들은 공명의 명에 물러갈 준비를 서둘렀다. 촉병의 그러한 움직임은 세작에 의해 사마의에게 전해졌다.

"제갈량이 군사를 거두어 물러간다 합니다."

그러자 공명에게 싸움에 져 쫓겨왔던 장합이 말했다.

"공명은 계책이 있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군량이 떨어져서 돌아가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뒤쫓아 쳐야 합니다."

"내 생각을 들어 보시오. 한중은 작년도 풍년이 들었고 올해도 보리가 잘 여물고 있소. 군량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운반이 어려울 뿐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반년은 버틸 만한 식량이 있을 것이오. 그런데도 물러나는 것은 까닭이 무엇이겠소? 공명은 스스로 군사를 물려 우리가 싸움을 걸어 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오. 잠시 적의 움직임을 살피도록 하시오."

사마의가 그렇게 깨우치자 장합도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사마의는 곧 세작을 풀어 촉군의 움직임을 살피게 했다. 이윽고 세작이 돌아와 알렸다.

"공명은 본진은 30리를 가서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전갈이 있고 한 열흘 동안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했다. 그런 어느 날 다시 세작이 와서 알렸다.

"모든 촉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의는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떤가? 내 말이 맞지 않는가. 30리마다 군사를 머물게 하여 우리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지 않은가. 제갈량은 우리가 뒤쫓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결코 가벼이 나아가서는 아니된다."

다음 날에도 또 30리를 물러났다는 보고 있더니 이틀쯤 사이를 두고 촉군은 또 30리를 물러나 머물러 있다는 세작의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자 장합이 또 참지 못하고 나섰다.

"공명이 물러가는 것을 보니 이는 완보퇴군책입니다. 즉 한편으로는 물러나고 한편으로는 싸우는 진형을 취하여 물러나면서도 해로움을 없애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빤히 바라보기만 하고 치지 않는다면 뒷날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제가 한 번 가서 결판을 내 보겠습니다."

"공명은 속임수가 많은 사람이오. 함부로 뒤쫓다가 잘못되면 우리 군사들의 드높은 기세가 꺾일 뿐이오. 가볍게 나아가서는 아니 되오."

사마의가 장합을 말렸으나 장합은 그래도 물러나지 않았다.

"만일 제가 가서 일이 잘못되면 군령을 달게 받겠습니다."

장합이 그렇게까지 나오니 사마의도 더는 물리치지 못했다. 마침내 고개를 끄더이며 장합에게 말했다.

"장군이 그렇게 뒤쫓기를 원한다면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가도록 합시다."

사마의가 장합에게 다짐을 주듯 다시 말을 이었다.

"한 갈래는 장군이 거느리고 앞서 나가되 죽을 각오로 힘껏 싸우시오. 나는 그 뒤를 따라가 매복에 대비할 것이오. 장군은 내일 먼저 출병하되 중도에 군사를 세워 충분히 쉬게 하여 다음 날 싸우는 데 지치지 않도록 하시오."

마침내 사마의의 영이 떨어지자 위군의 영채는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장합과 대릉은 부장 수십 명과 정병 3만을 거느리고 기세 좋게 출진하여, 사마의가 이른 대로 길 중도까지 가서 진을 쳤다. 사마의는 진중에 많은 장졸들을 남겨둔 뒤 자신은 5천의 정병을 거느리고 장합의 뒤를 따라갔다. 위군의 이러한 움직임은 세작에 의해 낱낱이 공명에게 전해졌다. 공명은 위군이 뒤쫓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자 빙긋 웃더니 그날 밤 여러 장수를 자신의 장막으로 불러 모으고 말했다.

"마침내 위군이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뒤쫓기 시작한 이상 힘을 다해 공격해 올 것이다. 장수들은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맞아 싸운다는 각오로 임하도록 하라. 나는 복병을 거느려 적의 뒤를 끊으려 하는데 이 일은 지모와 용맹을 겸한 장수가 아니고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말을 마친 공명은 슬쩍 위연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위연은 웬일인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제가 가서 씨우겠습니다."

그러자 왕평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만일 실수하면 어찌할 것인가?"

공명이 못 미더운 듯이 묻자, 왕평은 비장한 얼굴로 분연히 말했다.

"군령을 따르겠습니다."

왕평이 그렇게까지 나서자 공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왕평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화살과 창검 속으로 뛰어들려 하니 참으로 충신이다. 그러나 위병은 두 갈래로 나누어 우리의 복병을 오히려 에워싸려 할 것이다. 비록 왕평이 지모와 용기를 가졌다 해도 적군의 한쪽만 맡을 수 있을 뿐 몸을 둘로 나누어서 싸울 수는 없다. 한 사람이 더 나가야겠는데 군중에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공명이 한탄하듯 말하자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공명이 그를 보니 장익이었다. 공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뜻은 장하지만 적의 부장 장합은 혼자서 1만 명을 당해 낼 만한 용장이다. 그대가 감당해 낼 상대가 아니다."

이 말은 들은 장익은 얼굴에 노기마저 띠며 말했다.

"승상께서는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 또한 죽기로 싸운다면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만일 일을 그르칠 때는 저의 목을 베십시오."

장익의 말에 공명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는 왕평과 함께 정병 1만씩을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으라. 그리고 위군이 우리 뒤를 쫓거든 다 지나가게 한 다음에 사마의의 제 2군이 뒤따르기 전에 그 사이를 불쑥 찌르고 나가라. 왕평은 장합군의 등뒤를 덮치고 장익은 사마의의 선봉을 맞아 두들기도록 하라. 두 장군은 힘을 다해 싸우도록 하라. 내가 뒤를 따르며 돕도록 하겠다."

두 사람은 계책을 받자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떠났다. 그러자 공명은 다시 강유와 요화를 불러서 명을 내렸다.

"그대들에게는 이 비단 주머니를 주겠다. 정병 3천을 거느리고 적군 모르게 은밀히 나아가 앞산 꼭대기에 숨어 있도록 하라. 왕평과 장익군이 적에게 에워싸여 위태로워져도 구원하러 가지 말고 이 비단 주머니를 끌러 보도록 하라. 그 안에 왕평의 위급을 구할 계책이 들어있다."

두 사람이 영을 받아 출진한 다음 공명은 오반. 오의. 마충. 장의 네 장수를 불러 목소리를 낮추어 일렀다.

"내일 위군이 이르면 처음에는 그 기세가 날카로울 것이니 맞서지 말고 싸우는 척하다 등을 돌려 달아나라. 그다음에 관흥이 나타나 위병을 치면 곧 군사를 되돌려서 들이치도록 하라. 그러면 내가 뒤에서 그대들을 돕겠다."

네 장수가 공명의 영을 받아 물러나자 공명은 관흥을 불렀다.

"너는 굳센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산 위에서 붉은 기를 흔들면 지체없이 나가서 싸우라."

관흥도 계책을 받자 군사를 이끌어 나아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공명은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새벽이 되자 산 위로 올라갔다. 이날은 구름이 나직하게 드리워져 있어 솟아오른 해가 구름과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한편 장합. 대릉은 시위가 떠난 화살처럼, 몰아쳐 오는 바람처럼, 거세고 급한 기세로 촉군을 뒤쫓았다. 마충. 장의. 오의. 오반의 네 장수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장합군을 맞아 싸웠다. 장합은 촉병과 마주치자 네 장수를 한 칼에 벨 듯이 덤벼들었다. 촉병은 장합의 기세에 눌린 듯 물러나다 싸우고, 싸우다 물러나기를 거듭했다. 그러하니 위군은 거의 20리를 싸우고, 뒤쫓기를 거듭했다. 때마침 6월 여름철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흐르는 더위인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니 오죽이나 더웠겠는가. 사람도 말도 더위에 지친 가운데 땀을 비 오듯 쏟았다. 위군이 촉군을 50리쯤 뒤쫓았을 때에는 말과 사람이 지쳐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산 위에 있던 공명이 붉은 깃발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산 위만 지켜 보고 있던 관흥은 그걸 보자 위군을 향해 군사를 휘몰았다. 마충 등 네 장수도 이와 때를 맞추어 말머리를 세우더니 장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전에 패한 앙갚음을 하려는 듯 장합과 대릉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또 홀연 함성이 일어나며 한 떼의 군사가 어디선지 나타나서 이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촉장 왕평과 장익 등이 거느리는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위군의 등 뒤를 에워싸 돌아갈 길을 끊었다.

"너희들이 이곳에서 한 번 죽기로 작정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어느 때를 기다려 다시 싸울 수 있겠는가?"

장합은 목이 터져라 외치며 군사들의 의기를 돋우었다. 위병은 장합의 독려를 받으며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사면에는 촉군 뿐이어서 좀처럼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때, 홀연 촉군의 등 뒤에서 북소리, 징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다시 새로운 군사가 나타났다. 사마의가 몸소 정병을 거느리고 밀려든 것이었다. 위군을 에워싼 촉군을 다시 그 등 뒤에서 사마의가 엄습한 형세가 된 것이었다. 땀과 피로 얼룩져서 싸우던 장익은 군사들에게 외쳤다.

"승상은 참으로 신령 같은 분이시다. 계책을 미리 세워 놓으셨을 테니 마음 놓고 힘껏 싸우자."

그렇게 외친 장익은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싸워다. 왕평은 장합. 대릉이 돌아갈 길을 끊고, 장익은 뒤돌아서서 직접 사마의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몰아 촉군의 뒤를 덮치니 왕평과 장익은 어느새 위병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싸움은 말 그대로 난전의 도가니였다. 함성으로 산과 들이 들썩이는 듯했고 화살이 날고 창검이 번쩍이는 곳에 피가 튀고 시체가 나뒹굴었다. 강유와 요화는 산 위에서 이 처절한 싸움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위병의 수효가 점점 늘어나는 데 비해 촉군은 힘을 다하여 차츰 위태로워지는 듯했다.

"때가 온 것 같소. 비단 주머니를 끌러 봅시다."

강유가 그 싸움을 지켜 보다 요화에게 가만히 말했다. 두 사람은 공명이 준 비단 주머니를 꺼내어 끌러 보았다. 그 속에 쪽지가 들어 있었고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만일 사마의가 왕평, 장익을 에워싸 위태로워지면 그대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 사마의의 본진을 덮쳐라. 사마의는 황급히 되돌아올 것이므로 당황해하는 적을 치도록 하라. 설령 본진을 빼앗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렇구나."

두 사람은 그 쪽지를 보자 무릎을 쳤다. 곧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사마의의 본진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런데 사마의의 이미 공명의 계책에 빠질까 염려하여 도중에 전령을 배치해 놓고 본채와 연락이 닿게 해 두었다. 사마의가 한창 싸움을 북돋우고 있는데 유성마가 나는 듯이 달려와 알렸다. 사마의의 지나친 대비가 오히려 공명의 계책을 도운 셈이었다.

"촉병이 두 갈래로 나누어 대채로 짓쳐 들고 있습니다."

사마의는 그 말을 듣자 대번에 얼굴색이 달라졌다.

"나는 공명이 꾀가 많으니 함부로 나오지 말라 하였다. 그러나 그대들이 듣지 않고 우겨대어 너무 깊이 뒤쫓아 일을 그르치고 말았구나."

여러 장수들에게 꾸짖듯 말한 사마의는 얼른 군사를 되돌려 돌아갔다. 한창 싸우다 말고 대채로 달아나는 꼴이 되었으니 영문을 알지 못하는 위의 군사들은 어지러워졌다. 지레 겁을 먹고 제각기 달아나기 시작하니 장익 등 촉군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마구 들이쳐 위군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합. 대릉 등도 또한 적진 속에 에워싸인 꼴이 된 것 깨닫고 산속의 샛길을 택해 말을 달렸다. 촉군은 승세를 타사 달아나는 위병을 마음껏 베고 찔렀다. 관흥도 또한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와서 닥치는 대로 위병을 쳤다. 산과 들은 위병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사마의가 패군을 거느리고 영채로 돌아왔을 때는 촉병이 이미 한바탕 영채로 휩쓸고 더난 뒤였다. 참담한 패배였다. 사마의는 패군을 수습한 다음에 장수들을 불러 놓고 눈물이 쏙 빠지게 꾸짖었다.

"그대들은 병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그저 혈기만 믿고 억지로 나가 싸우려다 끝내는 이 꼴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는 결코 함부로 움직이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 명을 어기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리라."

싸우자고 떼를 쓰던 장수들이 말문을 열지 못하고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가득 띤 채 물러났다. 이번 싸움에서 받은 위군의 타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꺾인 군사를 비롯하여 버렸거나 빼앗긴 말이며 병장기가 헤아릴 수 없었다. 한편 공명은 위군을 크게 꺾은 채 군사를 수습하여 본진으로 돌아가 이긴 여세를 몰아 다시 싸울 채비를 서두르는데 문득 성도에서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장포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공명은 그 말을 듣자 목을 놓아 통곡하더니, 통곡이 지나쳐 끝내 입으로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 혼절하고 말았다. 모두가 황망히 달려들어 구호한 끝에 다시 깨어났다. 그러나 공명의 몸은 이미 깊은 병이 들어있었다. 그런 데다 장포의 죽음에 마음까지 상하니 병이 덧난 것이었다. 공명이 다시 깨어나기는 했으나 그 뒤로는 자리에 누워 일어나 앉지도 못하게 되었다. 뒷날 사람들이 장포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를 읊었다.

용맹스러운 장포 공을 세우려다 어찌하랴,

하늘은 영웅을 돕지 않았네.

무후가 서풍 앞에 눈물 흘림은

믿고 부릴 사람 잃음을 슬퍼함이네.

열흘쯤 후에 다소 병이 차도를 보이자 공명은 동궐. 번건 등을 장중으로 불러들여 명을 내렸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어지러워서 일을 볼 수가 없다. 아무래도 한중으로 돌아가서 병을 돌본 다음에 대책을 세워야겠다. 그러나 이 소식이 사마의의 귀에 들어가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니 결코 새나가지 않도록 하라."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이른 뒤 공명은 그날 밤 가만히 본진을 거두어 한중으로 돌아갔다. 사마의는 그 닷새 후에 이 사실을 듣고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신출귀몰이라는 말은 참으로 공명을 가리켜 한 말이로구나. 나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구나."

공명이 한중으로 돌아가자 사마의는 여러 장수를 진중에 남겨 험한 길목과 영채를 지키게 하고 자신도 군사를 거두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한편, 공명은 대군을 한중에 머물게 하고 병을 다스리기 위해 성도로 돌아갔다. 모든 문무백관이 공명을 맞아들여 승상의 부중에 들게 했다. 후주도 몸소 공명을 문병하며, 어의를 보내 몸을 돌보게 했다. 여러 사람이 정성을 다해 공명을 돌보니 병세는 점차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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