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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불의 잔 2

Bollnow 2025. 4. 22. 10:37

9장 어둠의 표식

 

"비밀이야. 퀴디치 월드컵에 돈을 걸었다는 말은 절대로 엄마에게 하면 안 된다."

보라색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서 위즐리 씨가 프레드와 조지에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아빠." 프레드가 잔뜩 신이 나서 대답했다. "우리는 벌써 이 돈을 어떻게 쓸 건지 계획을 다 세워 놓았어요. 우리도 이 돈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구요."

'어떤 계획이니?' 위즐리 씨는 당장이라도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더니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경기장에서 나온 그들은 캠프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깔깔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레프러칸 요정들이 등불을 흔들면서 그들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들은 텐트에 도착했다.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캠프장이 너무나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청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코코아나 한잔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자."

위즐리 씨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들은 곧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즐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위즐리 씨는 불가리아 파수꾼의 반칙을 놓고 찰리와 한창 논쟁을 벌였다.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한 지니가 끄덕끄덕 졸다가 그만 뜨거운 코코아를 마룻바닥에 엎지르자, 위즐리 씨는 모두들 잠자리로 돌려보냈다. 헤르미온느와 지니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텐트로 건너가고, 해리와 위즐리 형제들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이층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여전히 흥겨운 노랫소리와 더불어 가끔씩 축포를 터뜨리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당직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야." 위즐리 씨가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온통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무슨 수로 말리겠어? 밤새도록 즐기라고 할 밖에……."

해리는 론과 같은 침대를 쓰게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침대에 드러누운 해리는 텐트의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레프러칸 요정들이 등불을 들고 날아다니는지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빅터 크룸……. 정말 멋졌어. 해리의 머리 속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던 빅터 크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해리는 당장이라도 파이어볼트를 타고 직접 렁스키 페인트 작전을 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다……. 올리버 우드가 만든 실물 작전 모델조차도 그런 멋진 기술을 펼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러분! 해리 포터를 소개합니다!"

루도 베그만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해리가 입고 있던 붉은색 망토의 등에는 '해리 포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수놓여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이 해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잠이 든 걸까? 아마도 빅터 크룸처럼 멋지게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다가 슬며시 꿈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 같았다. 해리는 비몽사몽간에 문득 위즐리 씨가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일어나거라! , 해리! , 어서 일어나거라! 긴급 상황이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텐트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무슨 일이죠?"

해리는 단번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캠프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흥겨운 노랫소리는 멈추고 처절한 비명 소리와 몹시 당황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서 옷을 갈아입으려 하자, 잠옷 위에 그대로 청바지를 겹쳐 있고 있던 위즐리 씨가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이 없다, 해리! 그냥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어서!"

해리는 위즐리 씨의 말을 듣고 재빨리 텐트 밖으로 달려 나왔고, 론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모닥불들이 캠프장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문득 해리는 숲을 향해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상한 광채와 총성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판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무엇인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야유와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 그리고 술 취한 고함 소리도 들렸다.

갑자기 초록색 불빛이 폭발하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요술 지팡이를 똑바로 치켜들고 무리를 지어서 캠프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금방 그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던 마법사들의 머리 위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네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들은 마구 버둥거리면서 기괴하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마치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그들을 보이지 않는 실로 묶어서 요술 지팡이 끝에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사들은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듯이 마음대로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네 사람 중에 두 명은 어린아이였다.

점점 더 많은 마법사들아 가면을 쓴 마법사 무리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면서 소리를 내어 웃고 있었다. 캠프장에 세워져 있던 텐트들이 마구 짓밟혀서 쓰러졌다. 해리는 행진하던 마법사 중 한 명이 길을 방해하는 텐트를 요술 지팡이로 폭파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몇 채의 텐트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텐트에 붙은 불길로 주위가 환해지자, 해리는 허공에 묶여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사람은 바로 캠프장 관리인인 로버트 씨였다. 다른 세 사람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인 것 같았다. 가면을 쓰고 행진하던 마법사 가운데 한 명이 요술 지팡이를 휘두르자, 로버트 부인이 거꾸로 뒤집혔다. 로버트 부인의 잠옷이 흘러내리면서 헐렁한 속옷이 다 드러났다. 마법사들은 조롱을 하면서 야유를 보냈고, 로버트 부인은 몸을 가리기 위해 버둥거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론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버트 씨의 막내 아이는 지상 2미터 높이에서 마치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축 늘어진 어린아이의 머리가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떻게 저런 짓을……"

그때 잠옷 위에 대충 옷을 걸친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허둥지둥 다가왔다. 곧이어 위즐리 씨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동시에, 옷을 완전히 갈아입은 빌과 찰리와 퍼시가 남자들의 텐트에서 뛰어나왔다. 소매를 걷어붙인 그들은 벌써 요술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법부를 도울 생각이란다." 위즐리 씨가 소매를 걷어올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어서 숲속으로 들어가거라. 서로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상황이 좀 진정되면 내가 데리러 가마!"

벌써 빌과 찰리와 퍼시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마법사 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위즐리 씨도 황급히 그들을 따라갔다. 마법부 직원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행진하던 마법사 무리들은 이제 해리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프레드가 지니의 손을 잡고 숲으로 달려가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와 조지도 재빨리 뒤를 따라갔다. 마침내 숲에 도착해서 캠프장 쪽을 돌아다보니, 행진에 참가한 마법사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나 있었다. 로버트 가족은 여전히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마법부 직원들이 행진하는 무리를 헤치고 중앙에 서 있는 가면을 쓴 마법사들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마법을 부려서 로버트 씨의 가족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하는 것 같았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던 형형색색의 등불들은 이미 다 꺼졌다. 거무스름한 형체들이 휘청거리면서 숲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겁에 지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리는 사람들에 치요 이리저리 떠밀렸다. 하지만 주위가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악!"

갑자기 론이 소리를 질렀다.

"우슨 일이니?" 헤르미온느가 놀라서 물으며 너무나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해리는 거의 헤르미온느와 부딪힐 뻔했다. ", 어디에 있니? 아침, 요술 지팡이가 있었지! 루모스!"

요술 지팡이 끝에 불이 밝혀지자,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주위를 비추었다. 론이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나무 뿌리에 걸려서 넘어졌어."

론이 몸을 일으키면서 투덜거렸다.

"당연하지. 넘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야."

등 뒤에서 누군가 론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얼른 돌아다봤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팔짱을 낀 채 느긋한 얼굴로,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는 나무 사이로 캠프장의 광경을 줄곧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갑자기 론이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자기 엄마 앞이라면 입도 뻥끗 못 했을 욕설을 퍼부었다.

"말조심하는 게 좋아.위즐리." 말포이가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발리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머글 계집애가 저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바라진 않겠지? 안 그래?"

말포이가 힐끗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바로 그때 캠프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초록빛 섬광이 순간적으로 그들의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게 무슨 뜻이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로운 눈길로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그레인저, 저들은 지금 머글을 뒤쫓고 있어. 너도 허공에 둥둥 뜬 채, 속옷을 자랑하고 싶지? 만약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 봐……. 지금 그들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굉장히 재미있겠는걸."

말포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머글이 아니야! 마녀란 말이야!"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제 생각이지, 포터. 저들이 잡종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좋아. 그럼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말포이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둥이 닥쳐!"

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머글 부모를 가진 마법사에겐 '잡종'이라는 말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저런 녀석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 ."

론이 말포이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론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갑자기 숲 반대편에서 요란한 폭발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겁쟁이들이군. 이런 일에 깜짝 놀라다니……."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너희 아빠가 너희에게 숨으라고 말했니? 네 아빠는 뭐하러 갔는데? 머글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나 보지?"

"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니?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지? 그렇지?"

해리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글세…….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포터?"

말포이는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어서 가자!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는 불쾌한 얼굴로 말포이를 노려보았다.

"그레인저, 넌 좀 빠져. 머리는 온통 산발을 한 주제에……."

말포이가 코웃음으 치면서 말했다.

"어서!"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의 팔을 붙잡아 길가로 잡아끌었다.

"가면을 쓴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말포이의 아버지일 거야!"

론이 잔뜩 흥분하면서 말했다.

"마법부가 반드시 그 사람을 체포할 거야." 헤르미온느도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어머나! 믿을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눈길로 소동이 일어났던 곳을 쳐다보며 다시 캠프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조지와 프레드와 지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잠옷을 입은 여러 명의 십대들이 길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숱이 많은 곱슬머리 여자아이 가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서더니 입을 열었다.

"우 에 마담 맥심? 누 라봉 페르 뒤……."

여자아이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뭐라구?"

론이 못 알아듣고 반문했다.

"……."

전혀 말이 통하지 않자, 그 여자아이는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뒤로 돌아섰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다시 길을 걸어가는데 어깨 너머로 그 여자아이가 '오그와트'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바통이야."

헤르미온느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해리가 물었다.

"아마도 저 애는 보바통에 다니고 있을 거야. 알잖아……. 보바통 마법 아카데미……. <유럽 마법 교육의 평가>라는 책에서 그 학교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 그래……. 그렇구나."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프레드와 조지 형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을 텐데……" 론은 헤르미온느처럼 지팡이로 불을 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리도 요술 지팡이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요술 지팡이가 없었다. 해리의 주머니 속엔 옴니큘러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믿을 수 없어……. 요술 지팡이를 잃어버렸어!"

"정말이야?"

론과 헤르미온느는 주위를 더욱 넓게 비추기 위해 요술 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해리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요술 지팡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텐트에 두고 나왔을지도 몰라."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혹시 달릴 때 주머니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쩌면……."

해리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의 세계에서는 항상 요술 지팡이를 몸에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요술 지팡이가 없으니까 해리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둘렸다. 꼬마 집 요정 윙키가 덤불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윙키의 행동이 아주 이상했다. 윙키는 잔뜩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안간힘을 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윙키의 등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이 근처에 나쁜 마법사들이 있어요!" 꼬마 집 요정은 억지로 걸음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어요! 윙키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비키고 있는 거예요!"

꼬마 집 요정은 자신을 방해하는 힘과 싸우느라 숨을 헐떡거리며 길 맞은편에 있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저 요정이 왜 저러지? 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거야?"

론이 윙키가 사라진 곳을 수상쩍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지 못한 거야. 몸을 숨겨도 좋다는."

해리가 말했다. 해리는 도비를 생각했다. 도비는 말포이 가족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자기 몸을 마구 학대했었다. 꼬마 집 요정은 주인의 명령을 절대로 거역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꼬마 집 요정들은 정말로 푸대접을 받고 있어! 노예와 다를 게 뭐가 있어? 크라우치 씨는 그 꼬마 집 요정에게 경기장 꼭대기에 올라가라고 명령했어. 하지만 그 꼬마 집 요정은 고소 공포증이 있단 말이야! 나쁜 마법사들이 텐트를 짓밟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숲속으로 달아났어. 그런데 왜 꼬마 집 요정은 달아날 수 없다는 거야? 왜 그 일에 대해서 항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분개했다.

"글세……. 그래도 그 꼬마 집 요정들은 행복할 거야. 안 그래? 아까 경기장에 있을 때, 너도 윙키가 하는 말 들었잖아? '꼬마 집 요정들은 재미있게 지내면 안 돼요.' 꼬마 집 요정은 그런 생활을 좋아하고 있을 거야. 노예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걸 말야……."

론이 말했다.

"집 요정도 다들 너 같은 사람이야, . 부패하고 부조리한 체제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게으른……."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숲 가장자리에서 또다시 폭발 소리가 들렸다.

"그냥 계속 가자, ?"

론이 헤르미온느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쩌면 말포이의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헤르미온느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다시 숲을 향해 출발했다. 해리는 요술 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를 찾으면서 어두운 길을 따라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그들은 도깨비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도깨비들은 퀴디치 월드컵에서 내기로 딴 게 분명한 금화 자루를 놓고 낄낄거리고 있을 뿐, 캠프장에서 벌어진 소동에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계속 걸으니, 이번에는 은백색 불빛이 감도는 숲이 나왔다. 그 불빛은 아름다운 벨라 세 명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벨라들은 아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젊은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1년에 100자루 가량의 갈레온을 벌어. 게다가 위험한 동물 처리 위원회 소속이지. 나는 용을 죽이는 업무를 맡고 있어."

그들 가운데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 자네가 무슨……. 자네는 리키 콜드런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고 있잖아……. 나야말로 흡혈귀 사냥꾼이야. 지금까지 아흔 명이나 죽였어!"

다른 마법사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역사상 최연소 마법부 장관이 될 거야……."

벨라의 희미한 은백색 빛으로도 여드름이 다 보이는 세 번째 젊은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해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 여드름 투성이의 마법사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텐 션파이크라는 구조버스의 차장이었다.

해리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면서 이 사실을 말해 주려고 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론은 멍하니 넋이 빠져 있었다. "나는 목성까지 날아갈 수 있는 빗자루를 발명했어!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았던가?"

다음 순간, 론은 벨라가 충분히 듣고도 남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

헤르미온느는 한심스러운 눈길로 론을 흘겨보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양쪽에서 론의 팔을 힘껏 잡고 벨라를 보지 못하도록 빙글 돌려 놓았다. 그제서야 론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벨라와 마법사들이 떠드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걸어가다 보니, 이제 그들은 숲속 깊은 곳에 와 있었다.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도록 하자. 만약 누군가가 온다고 하더라도, 금방 그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해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앞에 있는 나무 뒤에서 루도 베그만이 불쑥 나타났다. 두 개의 요술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루도 베그만의 모습을 비추었다.

해리는 루도 베그만의 행동이 무척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도 베그만은 더 이상 활기찬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몹시 초조해하고 있었다.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 같았던 경쾌한 발걸음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거기 누구요?" 베그만이 눈을 깜박이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들은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소동이 벌어지고 있어요."

론이 말했다.

"뭐라구?"

베그만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캠프장은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가면을 쓴 사람들이 머글 가족을 붙잡아서……."

"나쁜 놈들!"

베그만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더니 순식간에 뿅 하고 사라졌다.

"베그만 씨를 퀴디치 월드컵의 책임자로 임명한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던 것 같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훌륭한 몰이꾼이었어." 론은 길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공터의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베그만 씨가 활약하고 있을 때에는 윔본 와스프 팀의 성적이 정말 대단했어. 퀴디치 리그전에서 연달아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지."

론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빅터 크룸의 인형이 서성거리면서 돌아 다니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 인형은 진짜 빅터 크룸처럼 안짱다리였으며 등도 약간 굽어 있어서 빗자루를 타고 있을 때처럼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캠프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리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잠시 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아주 조용했다. 마침내 소동이 끝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까? 제발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

헤르미온느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조지 형과 프레드 형과 지니는 다들 무사할 거야."

론이 말했다.

"혹시 너희 아버지가 루시우스 말포이 씨를 체포하지 않을까? 너희 아버지는 항상 말포이 씨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

해리가 빅터 크룸 인형이 떨어지는 낙엽을 피하기 위해 어깨를 약간 구부리는 걸 보며 말했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그럼 드레이코 녀석의 얼굴에서 저 능글맞은 웃음이 싹 사라질 거야……."

론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저 가엾은 머글들은 어떻게 됐을까? 만약 마법부 사람들이 머글들을 구출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헤르미온느가 초조해하자, 론이 헤르미온느를 안심시켰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마법부 직원들은 반드시 그들을 구출할 거야."

"하지만 그건 정말 미친 짓이야! 마법부 직원들 전체가 이곳에 있는데, 함부로 그런 짓을 하다니!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혹시 술에 잔뜩 취해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더니 어두운 숲속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해리와 론도 얼른 그곳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그들이 있는 공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불규칙한 발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당장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둑어둑한 나무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발소리가 뚝 멈췄다.

"누구세요?"

해리가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심스럽게 나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분명히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 누구세요?"

해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주 낯선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겁에 질린 비명이 아니라, 주문을 외우는 소리였다.

"모스모드레!"

짙은 어둠을 뚫고 커다란 초록빛 물체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아니? 저건 도대체……."

깜짝 놀란 론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물체가 나타났던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해리는 레프러칸 요정들이 또 다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형상은 아주 끔찍한 것이었다. 거대한 해골……. 섬뜩한 해골이 뱀처럼 가느다란 혓바닥을 쑥 내밀고 초록빛 광채를 뿌리면서 어두운 밤하늘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쳐다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끔찍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네온사인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해골은 이제 숲 전체를 비출 정도로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다. 그 해골은 마치 새로운 별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대체 마법을 써서 그 해골을 쏘아 올린 사람은 누구일까? 해리는 조심스럽게 어둠속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해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나무 근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해리, 어서 가자!"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둠의 표식이야, 해리! 그 사람의 징조!"

헤르미온느가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설마? 볼드모트?"

"해리, 서둘러!"

헤르미온느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론도 허둥지둥 빅터 크룸 인형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막 걸음을 옮기는 순간, 연달아 뿅뿅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해리는 홱 돌아보았다. 스무 명가량의 마법사들이 요술 지팡이를 들고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겨냥하고 있었다.

"피해!"

해리는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론과 헤르미온느를 끌어안고 땅바닥으로 급히 몸을 숙였다.

"스투페파이!"

스무 명의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하더니 거센 바람이 불면서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해리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의 요술 지팡이에서 나온 빨간 불꽃이 해리 쪽으로 날아오다가 서로 엇갈려서 나무에 부딪히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만두시오!" 갑자기 해리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시오! 쟤는 내 아들이오!"

거센 바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해리는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그들 앞에 있던 마법사들이 서서히 요술 지팡이를 내리고 있었다. 위즐리 씨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 해리!" 위즐리 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괜찮니?"

"비키게, 아서."

갑자기 차갑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부 직원들을 대동한 크라우치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해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크라우치의 얼굴이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떤 놈이냐?" 크라우치가 사나운 눈길로 그들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도대체 어떤 놈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어?"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해리가 손가락으로 해골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맞아요,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우리를 공격했죠?"

론이 화가 나서 툴툴거리면서 팔꿈치를 문지르고 있었다.

"거짓말 마라! 너희들은 현장에서 발각되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할 생각이냐?"

크라우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크라우치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요술 지팡이로 론을 겨냥하고 있었다.

"바티……. 쟤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이에요.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어요."

잠옷 위에 기다란 모직가운을 걸친 마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의 표식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봤니?"

위즐리 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예요……." 헤르미온느가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을 가리켰다. "저 나무 뒤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주문을 외웠어요……."

", 저기 서 있었단 말이냐, 그들이?" 크라우치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헤르미온느를 노려보았다. 헤르미온느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주문을 외웠다는 거냐? 그들이? 그런데 너는…… 어둠의 표식을 어떻게 불러내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마법부 직원들중에서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 해골을 불러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헤르미온느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요술 지팡이를 들어올리고 어두운 숲을 힐끗힐끗 곁눈질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요. 그들은 순산이동으로 달아났을 거예요."

모직 가운 차림의 마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수색꾼들이 방금 숲속으로 들어갔으니까, 아직 그들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갈색 턱수염이 나 있는 마법사가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에이머스 디고리였다. 에이머스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요술 지팡이를 치켜든 채 공터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에이머스, 부디 조심하게!"

다른 마법사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헤르미온느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케드릭의 아버지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그들은 에이머스가 소리치는 걸 들었다.

"잡았어요! 여기에 누군가가 있어요! 의식이 없어요! 그게…… 그런데…… 제기랄!"

"자네가 잡았단 말인가?" 크라우치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누구야? 그게 누구요?"

나뭇가지가 딱 부러지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에이머스가 나타났다. 에이머스는 꼬마 집 요정을 안고 있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꼬마 집 요정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요정은 바로 윙키였다!

에이머스가 꼬마 집 요정을 땅바닥에 내려 놓자, 크라우치는 마치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크라우치를 향하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크라우치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크라우치는 재빨리 에이머스를 지나서 윙키를 발견한 장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용없어요, 크라우치 씨." 에이머스가 크라우치를 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크라우치는 에이머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크라우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덤불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좀 곤란하게 됐군. 하필이면 바티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 요정이라니……."

에이머스는 못마땅한 듯이 윙키를 내려다 보았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게, 에이머스. 설마 정말로 이 요정이 그런 짓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겠지? 저 어둠의 표식은 어떤 마법사의 상징이라네. 그건 반드시 요술 지팡이가 있어야만해."

위즐리 씨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 요정은 요술 지팡이를 갖고 있어."

에이머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뭐라구?"

위즐리 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게." 에이머스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요술 지팡이를 위즐리 씨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꼬마 집 요정은 이걸 들고 있었어.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 요정은 '요술 지팡이 사용 규범' 세 번째 조항도 어겼어. '인간이 아닌 생물은 요술 지팡이를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 말이야."

바로 그 순간 뿅 하는 소리가 나더니 루도 베그만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루도 베그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초록색 해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의 표식이야!" 루도 베그만이 윙키를 거의 밟다시피 하면서 다른 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누가 그랬지? 놈을 잡았나? 바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크라우치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돌아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유령처럼 창백했고 손은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요, 바티? 경기장에는 왜 오지 않았어요? 꼬마 집 요정이 자리를 맡아 두고 있는 걸 봤는데……. 이런! 이게 뭐야?" 베그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윙키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꼬마 집 요정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좀 바빴네, 루도." 크라우치의 얼굴은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요정은 기절한 것이라네."

"기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누가 꼬마 집 요정을 공격했단 말인가요?"

갑자기 베그만의 둥근 얼굴에 무엇인가를 이해한 듯한 기미가 엿보였다. 베그만은 고개를 들고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해골을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에 잠시 윙키를 바라보다가 다시 크라우치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세상에!" 베그만의 얼굴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윙키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단 말인가? 꼬마 집 요정이? 요술 지팡이도 없는데?"

"아니. 꼬마 집 요정은 요술 지팡이를 갖고 있었다네, 루도." 에이머스가 베그만을 쳐다보았다. "꼬마 집 요정은 분명히 요술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내가 직접 발견했다네. 크라우치 씨, 죄송하지만 꼬마 집 요정이 뭐라고 말하는지 한 번 들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크라우치는 에이머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에이머스는 크라우치의 침묵을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에이머스는 자신의 요술 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윙키를 겨냥했다.

"에네르바테!"

에이머스가 주문을 외우자 윙키의 몸이 조금 움찔했다. 커다란 갈색 눈이 몇 번 깜박거렸다. 마법사들은 조용히 윙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꼬마 집 요정은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에이머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들더니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꼬마 집 요정의 흐리멍텅한 갈색 눈동자에 거대한 해골의 영상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꼬마 집 요정이 울음을 터뜨렸다.

"꼬마 집 요정! 내가 누군지 알겠나? 나는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의 직원이야!"

에이머스가 사납게 말했다. 윙키는 갑자기 숨쉬기가 곤란한지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해리는 도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때, 도비 역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조금 전에 누군가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다! 네가 본 것처럼……. 그런데 네가 바로 그 밑에서 발견됐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에이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 하지 않았어요! 저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윙키가 숨을 헐떡이면서 변명했다.

"너는 이 요술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에이머스가 윙키가 들고 있던 요술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면서 호통쳤다. 해골에서 흘러나온 초록색 불빛이 은은하게 사방을 비추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요술 지팡이를 알아보았다.

"? 그건 제 요술 지팡이예요!"

해리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공터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뭐라구?"

에이머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제 요술 지팡이예요! 제가 그걸 떨어뜨렸어요!"

"네가 이걸 떨어뜨렸다구?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후에 이 요술 지팡이를 던져 버렸지? 지금 네가 한 일을 고백하는 거야?"

에이머스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에이머스, 제발 이성을 되찾도록 하게! 해리 포터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위즐리 씨가 버럭 화를 내었다.

"……. 그야 물론 아니지. 미안하네……. 내가 잠깐 정신이 어떻게……."

에이머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걸 저기에 떨어뜨리진 않았어요." 해리는 손가락으로 해골이 솟아오른 숲속을 가리켰다. "숲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잃어버렸어요."

"그렇다면……." 에이머스는 무서운 눈길로 윙키를 노려보았다. 잔뜩 겁에 질린 윙키는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꼬맹이! 네가 이걸 발견했지? 이 요술 지팡이를 가지고 장난칠 생각이었지, 그렇지?"

"저는 절대로 마법을 부리지 않았어요!" 윙키가 울먹이며 말했다. 뜨거운 눈물이 꼬마 집 요정의 두 뺨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 …… …… 조금 전에 그 요술 지팡이를 집어 들었어요. 그 요술 지팡이는 숲속에 떨어져 있었어요. 저는…… 어둠의 표식을 만들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마법을 몰라요!"

"꼬마 집 요정이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나섰다. 마법부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헤르미온느에게 향하는 바람에 그녀는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지만, 언제나처럼 아주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윙키의 목소리는 아주 높고 가늘어요. 조금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주문을 외우는 소리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는 훨씬 더 굵고 낮았어요!" 헤르미온느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해리와 론을 바라보았다. "윙키의 목소리는 분명히 아니었지? 안 그래?"

"맞아요. 윙키의 목소리는 절대로 아니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글세……. 그건 곧 알게 되겠지." 에이머스는 그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제일 마지막으로 요술 지팡이를 사용해서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알아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지. 꼬맹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해?"

꼬마 집 요정은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기다란 윙키의 귀가 깃발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에이머스는 자신의 요술 지팡이와 해리의 요술 지팡이를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리더니 끝과 끝을 맞추었다.

"프라이어 인칸타토!"

에이머스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자, 두 개의 요술 지팡이가 맞닿은 지점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갑자기 뱀 같은 혓바닥을 가진 해골이 나타났다. 헤르미온느는 겁에 질려 숨이 탁 막혔다. 하지만 그것은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초록빛 해골의 허깨비에 불과했다.

"델레트리우스!"

에이머스가 다시 주문을 외우자, 해골이 점차 흐릿하게 변하더니 한줌 연기로 사라졌다.

"봤어?"

에이머스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여전히 발작적으로 떨고 있는 윙키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저는 하지 않았어요!" 꼬마 집 요정이 눈알을 굴리면서 황급히 말했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에요! 저는 몰라요! 저는 좋은 요정이에요! 저는 요술 지팡이를 쓰지 않았어요! 저는 몰라요!"

"꼬맹이! 너는 현행범으로 붙잡혔어!" 에이머스가 고함을 질렀다. "이 요술 지팡이는 네가 들고 있었어!"

"제발 에이머스……. 그게 아니야……. 그 주문은 극소수의 마법사들만 알고 있다네……. 꼬마 집 요정이 어떻게 그런 마법을 알 수 있겠나?"

위즐리 씨가 말했다.

"혹시……." 크라우치가 에이머스를 노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에이머스, 자네는 내가 정기적으로 꼬마 집 요정들에게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마법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크라우치 씨는…… 전혀 그럴 분이 아니죠……."

에이머스 디고리가 말꼬리를 흐렸다.

"자네는 지금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네! 처음엔 해리 포터! 다음엔 나를……. 자네도 이미 저 애들의 증언을 듣지 않았나, 에이머스?"

크라우치가 고함을 질렀다.

"물론이죠."

에이머스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게다가 자네는 내 경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어둠의 마법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까지도 경멸하고 혐오한다네."

크라우치가 또다시 눈을 부릅뜨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크라우치 씨, …… 전 당신이 이 일과 관계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에이머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집 요정을 의심하는 건, 나를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디고리! 그 꼬마 집 요정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마법을 나 아니면 어디에서 배울 수 있었겠나?"

크라우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꼬마 집 요정이…… 그 요술 지팡이를 주웠을 수도 있죠."

"그래, 에이머스. 꼬마 집 요정은 그 요술 지팡이를 주운 거야……. 윙키?" 위즐리 씨가 윙키를 향해 돌아서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꼬마 집 요정은 마치 위즐리 씨가 버럭 소리라도 지른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해리의 요술 지팡이를 어디에서 발견했지?"

윙키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수건을 마구 비틀고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비틀었던지 토가처럼 생긴 수건의 가장자리가 거의 해질 지경이었다.

"저는…… 그 요술 지팡이를…… 숲속에서 발견했어요……. 저기에서……."

"들었나, 에이머스?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자는 일을 마친 후에 순간이동으로 재빨리 달아났어. 해리의 요술 지팡이만 남기고……. 그건 아주 영리한 행동이었지. 자기 요술 지팡이를 사용하면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지. 그 후에 공교롭게도 윙키가 우연히 그 요술 지팡이를 발견한 거야."

위즐리 씨가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저 꼬마 집 요정은 범인 가까이에 있었을 거야!" 에이머스가 조바심을 내면서 소리쳤다. "꼬맹이, 누굴 본 거야?"

잔뜩 겁에 질린 윙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꼬마 집 요정은 불안한 듯이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에이머스와 베그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꼬마 집 요정의 눈길이 다시 크라우치에게 향했다.

"저는 아무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도……."

꼬마 집 요정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에이머스!" 크라우치 씨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당연히 자네 부서로 윙키를 데려가서 심문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 꼬마 집 요정을 다루는 건 내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네."

에이머스는 이런 제안이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마법부의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에이머스는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윙키는 분명히 무거운 벌을 받게 될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게."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덧붙였다.

"…… …… 주인님……." 윙키는 말을 더듬으면서 애처로운 눈길로 크라우치를 올려다 보았다. "…… …… 주인님, …… …… 제발……." 윙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윙키! 오늘 밤에 넌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어." 크라우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분명히 너에게 텐트에 있으라고 명령했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텐트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넌 내 명형에 복종하지 않았어. 나는 제게 옷을 줄 수밖에 없다!"

크라우치는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꼬마 집 요정을 노려보았다. 연민의 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눈빛이었다.

"안 돼요!" 윙키가 크라우치의 발 밑에 납작 엎드리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요! 주인님! 옷은 안 돼요! 옷만은 제발 안 돼요!"

해리는 꼬마 집 요정에게 옷을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윙키를 해고한다는 뜻이다. 윙키가 수건을 꼭 움켜쥐고 크라우치의 발밑에서 흐느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꼬마 집 요정은 겁에 질려 있었어요!"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아저씨의 집 요정은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걸 아주 무서워해요. 그런데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마구 허공으로 들어 올렸어요. 그들을 피해 달아나려고 한 꼬마 집 요정을 탓할 수는 없어요!"

크라우치는 꼬마 집 요정을 피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크라우치는 마치 윙키가 반짝거리는 구두를 더럽히는 무슨 불결한 것이라도 되는 양 냉정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말에 복종하지 않는 꼬마 집 요정 따윈 필요 없다." 크라우치는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과 주인의 명예에 해를 입히는 꼬마 집 요정 따위는 조금도 필요 없단 말이다."

윙키는 여전히 구슬프게 흐느끼고 있었다. 얼마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이만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잠시 후에 위즐리 씨가 말했다. "에이머스, 우리는 이미 그 요술 지팡이 철저히 조사했네. 이제 그만 해리에게 돌려주는 게……."

에이머스는 즉시 해리에게 요술 지팡이를 내밀었다. 해리는 그 요술 지팡이를 받아서 재빨리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 얘들아!"

위즐리 씨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는 꼼짝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의 시선은 여전히 꼬마 집 요정에게 가 있었다. 가엾은 꼬마 집 요정은 어깨를 들썩이며 아직도 울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위즐리 씨가 재촉하자, 헤르미온느는 마지못해 돌아서더니 해리와 론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윙키는 어떻게 될까요?"

공터에서 나오자마자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위즐리 씨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꼬마 집 요정을 함부로 취급하다니……."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디고리 씨는 말끝마다 '꼬맹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크라우치 씨도 꼬마 집 요정의 짓이 아니라는 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해고하려 하잖아요! 크라우치 씨는 그 꼬마 집 요정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 얼마나 당황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어요. 꼬마 집 요정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다구요!"

"꼬마 집 요정은 인간이 아니잖아."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 꼬마 집 요정은 감정을 갖고 있어, .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건 말도 안 돼!"

헤르미온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론을 비난했다.

"헤르미온느,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꼬마 집 요정의 권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야. 우리는 빨리 텐트로 돌아가야 한단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니?"

위즐리 씨가 물었다.

"우린 어둠 속에서 그만 헤어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아빠, 왜 사람들이 모두 저 해골을 그토록 불안해하는 거죠?"

론이 묻자, 위즐리 씨의 얼굴에는 착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단 텐트로 돌아간 후에 설명해 주마."

그러나 숲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모여 있다가, 그들을 보자 앞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누가 그걸 불러냈소?"

"아서, 혹시…… 그 사람은 아니겠죠?"

"물론 그 사람은 아닙니다." 위즐리 씨가 조바심을 내면서 말했다. "우리도 누가 범인인지 몰라요. 그자는 순간이동으로 달아났어요. , 실례합니다. 제발……. 우리는 잠을 좀 자고 싶어요."

위즐리 씨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다시 캠프장으로 걸어갔다. 캠프장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가면을 쓴 마법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불에 잔뜩 그을린 텐트 몇 채에서 여전히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는 조금 전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찰리와 텐트 밖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함께 왔단다."

위즐리 씨가 허리를 굽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재빨리 뒤를 따라 들어갔다.

빌은 작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팔에는 침대 시트를 감고 있었는데,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찰리의 셔츠는 엉망으로 찢겨 나갔으며, 퍼시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퍼시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퍼시는 자랑스러운 듯이 코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린 사람들을 잡았어요, 아빠?" 빌이 급히 물었다.

"아니야. 바티 크라우치 씨의 집 요정이 해리의 요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발견하긴 했지만, 누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는지는 전혀 모른단다."

"그게 무슨 말이죠?"

빌과 찰리와 퍼시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해리의 요술 지팡이?"

프레드가 놀라서 물었다.

"이 사건에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 요정이 관련되어 있나요?"

퍼시도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위즐리 씨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둠의 표식이 나타난 사건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크라우치 씨가 그런 요정을 해고하는 건 당연해! 그 꼬마 집 요정은 크라우치 씨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달아났잖아……. 크라우치 씨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했을까? 마법부 직원들도 다 지켜보고 있는데……. 만약 그 고마 집 요정이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로 끌려갔다면……."

퍼시는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요정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저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던 것뿐이라구!" 헤르미온느가 퍼시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소리치자, 퍼시는 깜짝 놀랐다. 헤르미온느와 퍼시느 그래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헤르미온느, 크라우치 씨 정도의 지위에 있는 마법사는 요술 지팡이를 가지고 미친 듯이 날뛰는 꼬마 집 요정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단 말이야."

퍼시가 즉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요정은 미친 듯이 날뛰지 않았어! 그저 우연히 요술 지팡이를 발견했을 뿐이란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해골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야? 그게 아무도 다치게 하지는 않았잖아…….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지?"

론이 물었다.

"이미 말했잖아! 그건 그 사람의 상징이라구, ! <어둠의 마법의 번영과 몰락>이라는 책에 나와 있어."

다른 사람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헤르미온느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리고 그건 지난 13년 동안 우리의 눈에 띈 적이 없었단다. 사람들이 몹시 걱정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그것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을 의미하니까……."

위즐리 씨가 신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저 하늘에 떠있는 형상일 뿐이잖아요……."

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 그 사람과 그의 추종자들은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하늘에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렸단다." 위즐리 씨가 말했다. "그건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지……. 너는 모른다, . 그런 걸 이해하기에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한번 상상해 보렴.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허공에 어둠의 표식이 떠돌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란……." 위즐리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단다……. 가장 끔찍한 것이었지……."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쨌거나 그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어요. 누가 그걸 불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걸 본 순간, 깜짝 놀라서 모두들 뿔뿔이 달아나고 말았어요. 우리는 겨우 그들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순간이동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어요. 우리는 로버트 가족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죠. 마법부 직원들은 지금 그들에게 기억력 수정 마법을 걸고 있어요."

빌이 팔을 감싼 시트를 살짝 걷어 상처를 살피면서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니? 그게 뭐예요?"

해리가 물었다.

"그건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야." 빌이 상처를 다독거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오늘 밤에 그들 가운데 일부를 본 것 같아요, 아빠. 용케 마법부의 추적을 피해서 아즈카반에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가 없단다, .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위즐리 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저도 장담할 수 있어요! 아빠, 우리는 숲속에서 드레이코 말포이를 만났어요. 그 애의 아버지도 가면을 쓰고 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말포이가 분명히 자기 입으로 그랬어요. 더구나 말포이 가족이 그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이……." 해리가 말을 꺼내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어깨를 움찔했다. 왜냐하면 마법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위즐리 가족 역시 볼드모트의 이름을 직접 말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해리가 얼른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왜 머글들을 묶어 놓은 거죠? 도대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목적?" 위즐리 씨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 그들은 그저 재미로 그런 짓을 한 거란다. 그 사람의 힘이 아주 강력했을 때, 그들은 그저 재미로 수많은 머글들을 살해했단다. 목숨을 빼앗긴 머글의 절반가량은 그런 식으로 억울하게 죽었지. 오늘 밤에 술이 좀 들어가자,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것 같구나. 그들은 아주 멋진 재회를 즐긴 거야."

위즐리 씨가 분노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었다면, 왜 어둠의 표식을 보자마자 순간이동으로 부리나케 사라진 거죠? 오히려 그들은 어둠의 표식을 보는 순간, 아주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 가요? 안 그래요?"

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좀 써라, . 그들이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들이었다면, 당연히 달아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 사람이 권력을 잃었을 때, 그들은 아즈카반으로 끄려가지 않기 위해 줄줄이 거짓말을 늘어 놓았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한 것은 모두 다 그 사람의 강압 때문에 억지로 한 거라고 하면서 말야……. 그러니 그들은 그 사람이 돌아온 걸 보고 우리보다도 더 잔뜩 겁에 질렸을 거야. 어쨌거나 그 사람이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자, 그들은 그 사람 편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인하면서 태연하게 일상생활로 돌아갔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너무나 뻔한 사리이야. 안 그래?"

빌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사람은…… 죽음을 먹는 자들을 멀리 쫓아 버리려고 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건가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바로 그거란다, 헤르미온느."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먼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오직 죽음을 먹는 자들뿐이란다. 그러니까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린 사람이 지금은 비록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에는 그 무리 속에 있었던 게 분명하단다……. ,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네 엄마가 알면 무척 걱정할 거야. 다들 잠자리에 들거라. 내일 아침 일찍 포트키를 사용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해리는 서둘러 이층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만약 평소라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졸리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흘 전에(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해리는 무서운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났었다. 이마의 흉터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그리고 오늘 밤에 다시 어둠의 표식이 나타났다. 무려 13년 만에 볼드모트의 상징이 부활한 것이다. 이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 프리벳 가를 떠나기 전에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지……. 시리우스는 그 편지를 받았을까? 과연 답장을 보낼까? 해리는 텐트의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머리 속이 너무나 복잡했다. 찰리가 드르렁거리면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야 해리는 겨우 잠이 들었다.

 

 

 

10장 마법부의 대혼란

 

조금 전에 잠이 든 것 같은데, 벌써 위즐리 씨가 해리를 흔들면서 깨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자, 위즐리 씨는 마법을 부려서 텐트를 걷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캠프장을 떠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두막 현관에 서 있던 로버트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로버트의 눈은 마치 초점이 없는 것처럼 멍하니 풀려 있었다.

"로버트 씨는 괜찮을 거야." 위즐리 씨가 말했다. "기억력이 수정되면 사람들은 한참 동안 얼이 빠지기 마련이란다……. 게다가 저 사람이 당한 일은 너무 엄청난 사건이었잖니……."

포트키가 있는 지점에 다가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급하게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녀와 마법사들이 포트키를 관리하는 베이질에게 빨리 캠프장을 떠나게 해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위즐리 씨는 베이질과 급히 몇 마디 의논을 한 후에, 기다랗게 줄 서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스토우츠헤드 산으로 돌아가는 낡은 고무 타이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을 지나서 버로우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너무나 지쳐서 서로 말을 주고받을 만한 힘조차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따끈한 아침 식사 생각밖에 없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자, 버로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안개를 뚫고 반가운 외침 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위즐리 부인은 밤새도록 정원에서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황급히 달려오는 위즐리 부인의 손에는 잔뜩 구겨진 <예언자 일보>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위즐리 부인이 위즐리 씨의 목을 덥석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위즐리 부인의 손에서 <예언자 일보>가 툭 떨어졌다. 해리는 그 신문에 대문짝하게 인쇄되어 있는 톱 기사 제목을 보았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예언자 일보>에는 허공에서 번쩍거리는 어둠의 표식을 찍은 흑백 사진도 실려 있었다.

"모두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위즐리 부인은 위즐리 씨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더니 아이들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위즐리 부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모두들 살아 있었어……. , 얘들아……."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프레드와 조지를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위즐리 부인이 너무나 세게 안아서 프레드와 조지는 그만 머리를 쾅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엄마…… 숨 막혀요!"

"너희들이 떠나기 전에 내가 소리를 질렀지?" 위즐리 부인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흐느꼈다. "나는 지난 밤을 뜬 눈으로 새우면서 그 생각만 했단다! 만약 너희들이 그 사람에게 잡혔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 고작 O. W. L. 점수를 잘 받지 못했다고 야단친 거라면……. , 프레드……. 조지……."

"여보, 이제 그만 해요. 우리 모두 무사하지 않소?" 위즐리 씨가 쌍둥이 형제를 부인의 품에서 억지로 떼어 놓으면서 부인을 위로했다. 그리고는 빌에게 속삭였다. "……. 저 신문을 좀 집어다오. 기사가 어떻게 실렸는지 궁금하구나……."

잠시 후에 그들은 모두 식당으로 들어갔다.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에게 진한 홍차 한 잔을 끓여 주었다.

"홍차에 위스키를 조금 타는게 좋겠구나."

위즐리 씨가 헤르미온느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빌이 건네준 <예언자 일보>의 제1면을 훑어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위즐리 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마법부의 큰 실수…… 달아난 범인…… 느슨한 보안……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어둠의 마법사들…… 국가적인 망신……. 도대체 이 기사를 누가 쓴 거야? , 물론…… 리타 스키터!"

"그 여자는 마법부와 무슨 원수가 진 모양이에요!" 어깨 너머로 열심히 신문을 쳐다보고 있었던 퍼시가 버럭 화를 냈다. "지난 주에는 흡혈귀를 소탕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마법부가 고작 냄비 두께 따위를 가지고 헛소리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어요! <마법사가 아닌 반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의 열두 번째 단락에 특별히 흡혈귀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도 말이죠!"

"부탁 하나 들어줄래, 퍼시?" 빌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나에 대한 기사도 있군."

<예언자 일보>의 기사를 읽고 있던 위즐리 씨가 안경 너머로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했다.

"어디 있어요?" 위스키를 넣은 홍차를 마시던 위즐리 부인이 갑자기 사레가 들린 것처럼 캑캑거렸다. "그 기사를 보았다면 진작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을 거 아녜요!"

"이름이 실린 게 아니오." 위즐리 씨가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이 기사를 좀 보시오. '숲 근처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부의 확실한 발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둠의 표식이 나타나자, 마법부의 작원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후에 나타난 마법부의 한 관료는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정보도 주지 못했다. 불과 한시간 후에 숲속에서 여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는 무성한 소문을 이 한 마디 진술로 진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이런!" 잔뜩 화가 난 위즐리 씨는 <예언자 일보>를 퍼시에게 내밀었다. "다친 사람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속이 시원했을까? 숲속에서 여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니……. 이제 신문에 실렸으니까 확실히 그런 소문이 나겠군. 여보, 아무래도 사물실에 좀 나가 봐야겠소. 일을 수습해야 할 것 같구려."

위즐리 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아빠." 퍼시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크라우치 씨는 지금 일손이 달릴 거예요. 냄비에 대한 보고서도 제가 직접 제출하는 게 좋겠어요."

퍼시는 갑작스럽게 수선을 떨더니 이내 식당에서 나가 버렸다.

"아서, 당신은 지금 휴가 중이잖아요! 이건 당신 부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당신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위즐리 부인은 몹시 불안한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마법부로 가는 게 좋겠어, 여보. 아무래도 내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 같아. 옷을 갈아입은 후에 곧바로 떠나겠소……."

"아주머니, 혹시 헤드위그가 제 편지를 갖고 오지 않았나요?"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불쑥 질문을 던졌다.

"헤드위그? 아니……. 아니, 우편물은 전혀 없었단다."

위즐리 부인이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수상스러운 눈길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그만 네 방에 가서 짐을 풀어도 되겠지, ?"

해리가 두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 나도 방으로 올라가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 너는?"

론의 눈길이 헤르미온느를 향하고 있었다.

"좋아."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세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지그재그 모양의 계단을 따라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왜 그래, 해리?"

론이 다락방 문을 닫자마자 물었다.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지난 일요일 아침에 다시 이마의 흉터가 아팠어. 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깼지……."

그 말을 듣고 론과 헤르미온느가 보인 반응을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리더니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도움이 될 만한 수많은 책들을 늘어놓은 후에 알버스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호그와트의 간호 담당인 폼프리 부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언급했다. 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거기에 없었어, 안 그래? 너도 알잖아? 그 사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 지난 번에 네 흉터가 계속 아팠을 때에는 그 사람이 호그와트에 있었잖아."

"물론 그가 프리벳 가에 없었던 건 확실해." 해리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꾸고 있었어……. 그와 피터의 꿈을……. 너희들도 알지? 생쥐로 변해서 달아난 윔테일……. 그 꿈의 내용을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누군가를……."

해리는 문득 ''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잔뜩 겁에 질린 헤르미온느를 더 이상 공포에 떨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꿈이야. 악몽에 불과할 뿐이라구."

론이 훌훌 털어 버리려는 듯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상하지 않니? 이마의 흉터가 몹시 아프더니, 사흘 수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행진하고…… 볼드모트의 상징이 다시 허공에 떠오르고……. 이런 모든 일들이 그저 우연일까?"

해리는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이름 좀 말하지 마!"

론이 이를 악 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작년 말 수업 시간에 트릴로니 교수가 했던 말 기억나니?"

그러나 해리는 론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호그와트의 점술 교수였다.

", 해리! 그런 사기꾼의 말에 아직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다니……."

헤르미온느가 겁에 질렸던 표정을 싹 거두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너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해리가 말했다.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그 예언을 할 때, 트릴로니 교수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어. 정말로…… 트릴로니 교수는 어둠의 마왕이 부활할 거라고 예언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렬하고 끔찍해질 것이다……. 어둠의 마왕은 부하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일어선다……. 그날 밤에 웜테일이 탈출했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론은 처들리 캐논 침대 시트에 난 구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리, 왜 헤드위그가 편지를 갖고 오지 않았는지 물었던 거야? 기다리는 편지라도 있어?"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이미 시리우스에게 흉터가 계속 아팠다고 편지를 썼거든. 그래서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해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야! 시리우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1"

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빨리 시리우스를 만났으면 좋겠어."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시리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 시리우스는 지금 아프리카에 있을 수도 있어. 안 그래? 헤드위그가 돌아오려면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거야."

"그래, 알아."

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헤드위그가 없는 하늘을 내다보는 그의 마음을 착잡하기만 했다.

"목장에 가서 퀴디치 게임이나 하자, 어서. 세 명씩 팀을 나누는 거야. 빌과 찰리와 프레드와 조지 형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렁스키 페인트를 해볼 수도 있잖아, 해리?"

론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 해리는 별로 퀴디치 게임을 할 생각이 없어……. 고민거리도 많고……. 게다가 몹시 지쳤어. 아무래도 우리 모두 잠을 좀 자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가 넌 어쩜 그렇게 남의 기분을 모르냐는 투로 말했다.

"아니야. 나도 퀴디치 게임을 하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 . 파이어볼트를 갖고 올게."

갑자기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잔뜩 볼멘 소리로 "남자애들은 정말 어쩔 수 없어!" 하며 투덜거리더니 방에서 나갔다.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위즐리 씨와 퍼시는 거의 집에 붙어 있을 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집에서 나갔으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난리가 났어." 그들이 호그와트로 떠나기 전날 일요일 저녁에 퍼시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계속 호울러를 보내서 우리는 일주일 내내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어. 호울러는 금방 열어 보지 않으면 폭발하잖아. 내 책상은 군데군데 불에 그을리고 가장 좋은 깃펜도 새까맣게 타 버렸지."

"사람들이 왜 호울러를 보내는데?"

지니가 거실 벽난로 앞에 깔린 양탄자에 앉아서 마법의 테이프로 <1000가지 마법의 약초와 곰팡이>라는 책을 붙이며 말했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거야." 퍼시는 어깨를 약간 으쓱거렸다. "그들은 피해를 입은 재산을 보상해 달래. 문둥구스 플레처는 방이 무려 열두 개나 되는 텐트를 배상해 달라고 청구했어. 그 텐트에는 부글부글 거품이 나오는 목욕탕도 달려 있었다고 우기면서……. 나는 대뜸 플레처의 속셈을 꿰뚫어 봤지. 사실 플레처는 허름한 망토를 막대기로 받쳐 놓고 그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야."

위즐리 부인은 초조한 눈으로 구석에 놓여 있는 괘종시계를 힐끗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 괘종시계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그 괘종시계에는 아홉 개의 황금색 바늘이 있었는데, 각각의 시계 바늘에는 위즐리 가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괘종시계의 숫자판에는 숫자 대신에 '' '학교' '직장' '행방불명' '병원' '감옥'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12라는 숫자가 있어야 할 위치에는 '사망'이라는 글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덟 개의 시계 바늘은 ''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가장 기다란 위즐리 씨의 바늘은 여전히 '직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사라진 이후에는 네 아빠가 주말에 출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네 아빠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을까? 저녁 식사가 다 식을 텐테……."

"아빠는 퀴디치 월드컵 경기 때 아빠가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부서의 책임자와 미리 의논하지 않고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분명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어요."

퍼시가 말했다.

"스키터라는 저 비열한 여자가 쓴 기사 따위를 읽고, 감히 네 아빠를 탓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위즐리 부인이 발끈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만약 아빠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면, 교활한 리타 스키터는 마법부에서 한 마디의 논평도 내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졌을 거예요. 리타 시키터는 어느 누구도 좋게 보지 않는 여자예요. 언젠가 그 여자가 그린고트 은행 금고를 관리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엄마도 아마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그때 스키터는 날 보고 '머리만 길고 형편없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론과 체스를 두고 있던 빌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머리가 좀 길기는 하구나, 얘야. 내게 잠시 맡겨 두면……."

위즐리 부인이 빌의 머리카락에 눈독을 들이면서 말했다.

"싫어요, 엄마."

빗방울이 거실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헤르미온느는 <표준 마법서, 4학년>에 푹 빠져 있었다. 그것은 위즐리 부인이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위해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 온 책이었다. 찰리는 불에 잘 견디는 발라클라바(어깨까지 덮을 수 있는 큰 털모자: 역주)를 꿰매고 있었다. 해리는 빗자루 수리 장비 세트를 열어놓고 열심히 파이어볼트를 닦고 있었고, 프레드와 조지는 깃펜을 양피지에 대고 끄적이면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위즐리 부인이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쌍둥이 형제를 눈여겨보며 말했다.

"숙제하고 있어요."

프레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 아직 개학도 하지 않았는데, 숙제는 무슨 숙제?"

위즐리 부인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쌍둥이 형제를 노려보았다.

"아니에요. 조금 남은 게 있어요."

조지가 재빨리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혹시 새로운 상품 주문 용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을 다시 시작하기만 해봐라."

위즐리 부인의 눈빛은 마치 쌍둥이 형제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프레드는 괴로워 죽겠다는 듯이 위즐리 부인을 보며 말했다. "만약 내일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충돌해서 조지와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엄마가 우리에게 한 마지막 말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트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삽시간에 거실은 떠들썩한 웃음 바다가 되었다. 심지어 위즐리 부인까지도 웃음을 터뜨렸다…….

", 네 아빠가 오시는구나!"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괘종시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직장'이라는 칸에 있었던 위즐리 씨의 시계 바늘이 '이동 중' 이라는 칸에 가 있었다. 잠시 후에 시계 바늘이 바르르 떨리더니 다른 바늘들이 모여 있는 ''에서 멈추었다.

"얘들아!"

위즐리 씨가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외쳤다.

"어서 오세요, 여보!"

위즐리 부인이 서둘러 달려 나갔다. 잠시 후에 위즐리 씨는 저녁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따뜻한 거실로 들어왔다. 위즐리 씨는 완전히 탈진한 것처럼 보였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소." 위즐리 씨는 벽난로 근처에 놓여 있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식어 빠진 양배추 요리를 툭툭 건드렸다. 위즐리 씨는 식욕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리타 스키터가 글쎄, 지금까지 마법부가 저지른 실책을 알아낸답시고 일주일 내내 들쑤시고 다녔다오. 결국 그 여자는 가엾은 버사가 실종된 사실까지도 알아내고 말았소. 아마도 그 기자가 내일자 <예언자 일보>에 제1면 톱 기사로 실릴 거요. 루도 베그만에게 버사를 좀 찾아보라고 그렇게도 충고했건만……."

"크라우치 씨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죠."

퍼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크라우치 씨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야. 윙키에 대해서는 리타 스키터도 미처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만약 크라우치의 꼬마 집 요정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요술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 여자는 일주일동안 <예언자 일보>의 톱 기사로 써먹을 거야."

"그 꼬마 집 요정이 무책임했던 건 사실이지만, 어둠의 표식은 불러내지는 않았다는 걸 다들 인정한 줄 알았는데요?"

퍼시가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크라우치 씨는 꼬마 집 요정들을 학대하고 있어. <예언자 일보>의 기자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정말 천만다행이지."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잘 들어, 헤르미온느! 크라우치 씨 같은 마법부의 고위 간부는 하인들의 철저한 복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퍼시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인이 아니라 노예겠지!" 헤르미온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퍼시를 쏘아보았다. "왜냐하면 크라우치 씨는 윙키에게 봉급을 주지 않으니까……. 안 그래?"

"너희들 모두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제대로 챙겼는지 살펴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위즐리 부인이 말다툼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다. "어서! , 얘들아……."

해리는 빗자루 수리 장비 세트를 챙긴 후에 파이어볼트를 둘러메고 론과 함께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론의 방에서는 윙윙거리면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때문에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다락방에서 산다는 굴귀신이 가끔씩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들이 들어가자, 피그위존이 새장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반쯤 싼 트렁크를 보고는 몹시 흥분한 모양이었다.

"녀석에게 부엉이 사탕 좀 던져 줘. 입 좀 다물게……."

론이 사탕 봉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피그위존은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그 옆 헤드위그의 새장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 , 혹시라도 시리우스가 잡힌 건 아니겠지?"

해리가 텅 빈 헤드위그의 새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벌써 <예언자 일보>에 실렸을 거야. 마법부는 한 건 올린 걸 자랑하고 싶을 테니까……. 안 그래?"

"맞아. 난 그저 혹시라도……."

"이걸 봐! 엄마가 너를 위해 다이애건 앨리에서 구입한 물건들이야. 엄마는 네 금고에서 금을 조금 꺼내 오셨어……. 그리고 네 양말들도 모두 깨끗하게 빨아 놓았어."

론은 해리의 침대 위에 잡다한 물건 꾸러미와 돈주머니 그리고 양말들을 올려놓았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이 사 온 물걸들을 풀기 시작했다. 미란다 고시오크의 <표준 마법서, 4학년> 이외에도, 깃펜 한 세트와 수십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 그리고 마법의 약 조제용 재료들- 때마다 사자 물고기의 등뼈와 벨라도나(가지과의 유독 식물: 역주) 에센스가 거의 다 떨어져 가던 참이었다-이 있었다. 해리는 부지런히 냄비 속에 속옷들을 채워 넣었다. 그런데 론이 치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뭐니?"

해리가 물었다. 론은 밤색 벨벳 드레스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다. 그 옷의 칼라와 소매 끝동에는 구식 레이스 주름 장식이 치렁치렁 달려 있었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나더니, 위즐리 부인이 금방 다림질을 한 호그와트 제복 망토들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 망토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 싸도록 하거라."

위즐리 부인은 망토를 해리와 론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엄마, 지니의 드레스를 나한테 잘못 주셨어요. 이 옷은 새로 산 건가요?"

론이 밤색 벨벳 드레스를 보이며 말했다.

"아니야. 그건 네 옷이란다. 네 예복이야."

위즐리 부인이 말했다.

"?"

"예복말이다. 학교에서 보낸 준비물 목록에 올해에는 꼭 예복을 갖고 와야 한다고 적혀 있더구나……. 호그와트에서 공식 행사가 열릴 때 입을 거란다."

"설마……. 난 이거 입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론은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모두가 입는 거야, ! 예복은 원래 다 그렇단다! 네 아빠도 파티용 예복이 몇 벌 있지 않니!"

위즐리 부인이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이 옷은 죽어도 입지 않겠어요. 차라리 발가벗고 다니겠어요."

론은 완강했다.

"바보같이 굴지 말거라. 어쨌거나 준비물 목록에 적혀 있으니까 안 갖고 가면 안 된다. ! 해리, 네 예복도 구입했단다……. 네 예복을 론에게 보여 주렴……."

해리는 떨면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마지막 꾸러미를 풀었다. 그러나 해리의 옷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의 옷에는 레이스 장식이 달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검은색이 아니라 암록색이라는 것만 빼면 학교 망토와 거의 똑같았다.

"그 옷이 너의 눈 색깔과 잘 어울리는 것 같더구나, 얘야."

위즐리 부인은 다정하게 말했다.

"저건 괜찮네! 어째서 내 옷은 저런 걸로 사지 않았어요?"

론이 해리의 옷을 쳐다보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왜냐하면…… 네 옷은 중고품을 구입했으니까…… 종류가 별로 없더구나."

위즐리 부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해리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기꺼이 그린고트 금고에 있는 모든 돈을 꺼내서 위즐리 가족과 나누어 쓰고 싶었다. 그러나 위즐리 가족은 해리의 돈을 절대로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난 이런 옷 절대로 안 입을 거예요."

론이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 그렇다면 발가벗고 가거라. 그리고 해리, 저 녀석의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렴. 실컷 웃어나 보자꾸나."

위즐리 부인은 문을 쾅 닫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갑자기 등뒤에서 푸푸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피그위존의 목에 그만 부엉이 사탕이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째서 내가 가진 건 하나같이 쓰레기들이지?"

론이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피그위존의 목에 걸린 사탕을 끄집어내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11장 호그와트 급행열차

 

아침이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방학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해리는 재빨리 잠옷을 벗고 청바지와 스웨터로 갈아입었다. 폭우는 여전히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학교 망토는 호그와트 급행 열차에서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해리와 론과 프레드와 조지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층계참에 막 다다랐을 때,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초조한 얼굴로 불쑥 나타났다.

"여보! 마법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급한 전갈이에요!"

위즐리 씨는 망토를 거꾸로 입은 채, 쏜살같이 식당으로 달려갔다. 해리는 위즐리 씨가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벽에 딱 달라붙었다.

"여기 어딘가에 분명히 깃펜을 넣어 두었는데……."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갔을 때, 위즐리 부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찬장 서랍을 뒤적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위즐리 씨는 벽난로를 향해 허리를 숙인 채,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깜박거리면서 벽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수염이 달린 커다란 달걀처럼 생긴 에이머스 디고리의 머리가 타오르는 불길 속에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이웃에 살고 있던 머글들이 그 소란을 똑똑히 목격했다는 거야. 그래서 머글들은…… 그걸 뭐라고 부르지? 소방관? 경찰? 좌우지간 그들에게 신고를 했다네. 아서, 자네가 좀 가야겠네."

불똥이 탁탁 튀어오르고 귓가에서 불꽃이 넘실거렸지만 에이머스 디고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줄곧 떠들어대고 있었다.

"여기 있어요!"

위즐리 부인이 양피지와 잉크병 그리고 끝이 찌그러진 깃펜을 위즐리 씨에게 재빨리 건네주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네." 에이머스 디고리의 머리가 말했다. "그날따라 부엉이 두 마리를 보낼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갔다네. 그러다가 마법 오, 남용 관리과 직원들이…… 모두 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아서, 만약 리타 스키터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매드아이는 뭐라고 하던가?"

위즐리 씨는 잉크병 뚜껑을 열더니 깃펜에 잉크를 잔뜩 묻혀서 받아 적을 준비를 하며 물었다.

"매드아잉는 어떤 침입자가 자기네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그 침입자들은 매드아이네집 쓰레기통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는 거야."

에이머스의 머리가 디룩디룩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쓰레기통이라니?"

위즐리 씨가 미친 듯이 글씨를 쓰면서 물었다.

"요란한 소음이 들리더니 쓰레기통이 폭발하면서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하더군. 분명히 머글 경찰이 나타났을 때에도…… 쓰레기통 가운데 하나가 여전히 날아다니고 있었을 거야."

"침입자는 어떻게 됐나?"

위즐리 씨가 끙끙거리면서 물었다.

"아서, 자네도 매드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밤중에 누군가가 매드아이의 집 마당으로 몰래 침입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감자 껍질을 뒤집어쓴 채 어슬렁거리면서 주위를 돌아다니는 미친 고양이라면 또 모를까? 어쨌거나 마법 오, 남용 관리과 직원들이 매드아이를 잡는다면, 그는 끝장이야. 이미 매드아이는 전과가 많지 않은가? 자네 부서에서 매드아이 건을 처리하게. 가벼운 벌금을 매기는 정도에서 끝나도록 말이야. 쓰레기통을 폭발시키는 범칙 행위를 저지르면, 벌금이 얼마나 나오겠나?"

에이머스의 머리가 또다시 눈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신중히 행동하는 게 좋겠어. 그런데 매드아이가 요술 지팡이를 사용하지는 않았나? 실제로 공격을 당한 사람은 없었나?"

위즐리 씨가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양피지 위에 여전히 뭔가를 부지런히 받아 적으면서 물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미친 듯이 침대에서 내려온 후에 창 밖으로 온갖 주문을 닥치는 대로 퍼부었을 거야. 하지만 마법 오, 남용 관리과 친구들도 그 사실을 증명하려면 애를 좀 먹을 거야. 일단 사상자가 하나도 없으니까……."

"좋아, 곧 출발하겠네."

위즐리 씨는 메모한 양피지를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더니 서둘러 식당에서 나갔다.

"미안합니다, 몰리." 에이머스 디고리의 머리가 위즐리 부인을 바라보았다. "아침 일찍부터 성가시게 해서……. 하지만 매드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서밖에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매드아이는 오늘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거든요. 하필이면 어젯밤에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에이머스는 조금 흥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에이머스. 가시기 전에 토스트 좀 드시겠어요?"

", 정말 고맙죠."

에이머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식탁 위에는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재빨리 토스트 한 조각을 집게로 집어 에이머스의 입 속에 넣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에이머스 디고리는 입을 우물거리면서 인사를 한 수에 펑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해리는 위즐리 씨가 빌과 찰리, 퍼시 그리고 여자 아이들에게 황급히 작별 인사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5분 후에 위즐리 씨가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망토를 제대로 갖추어 입고,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다.

"나는 바쁜 일이 있단다. 학기를 잘 보내거라, 얘들아."

위즐리 씨가 해리와 론과 쌍둥이 형제를 쳐다보면서 인사했다. 위즐리 씨는 망토를 어깨 위로 끌어올리더니 순간이동으로 막 떠날 준비를 했다.

"여보, 당신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킹스 크로스까지 갈 수 있겠소?"

"물론이죠. 당신은 매드아이나 잘 해결하세요. 우리 염려는 조금도 하지 마시고요."

위즐리 씨가 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빌과 찰 리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지금 매드아이라고 했나요? 매드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요?"

빌이 물었다.

"매드아이 말로는, 어젯밤에 누군가가 자기 집으로 침입했다는 거야. 그래서 마법을 써서 공격했다는구나."

위즐리 부인이 말해 주었다.

"매드아이 무디? 그 정도까지 심한 미치광이는 아닌 줄 알았는데……."

주지가 토스트에 마멀레이드 잼을 바르면서 말했다.

"네 아빠는 매드아이 무디를 아주 존경하고 있단다."

위즐리 부인이 엄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지. 아빠는 플러그를 수집하시잖아, 안 그래? 끼리끼리 모이는 거지, ……."

위즐리 부인이 식당에서 나가자, 프레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창 때에는 무디도 아주 훌륭한 마법사였어."

빌이 말하자, 찰리도 이에 동의했다.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의 친구이기도 하지."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도 사실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어. 안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은…… 덤블도어가 아주 뛰어난 천재였고,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프레드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매드아이가 누구예요?"

해리가 물었다.

"한때 마법부에서 일하다가 은퇴한 사람이야." 찰리가 대답했다. "아빠가 나를 데리고 사무실에 갔을 때, 그 사람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어. 그 사람은 오러였어. 그것도 가장 훌륭한 오러였지……. 어둠의 마법사들을 잡는 사람 말이야." 어리둥절한 해리의 표정을 보자, 찰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즈카반 감옥 절반이 거의 매드아이 덕분에 채워지다시피 했지. 하지만 그 대신에 매드아이는 수많은 적들을 갖게 됐어……. 주로 매드아이가 체포한 죄수의 가족들이……. 나이가 들면서 매드아이는 점점 더 편집광적인 증세를 보인다고 하더군. 더 이상 아무도 믿지 않는 거야……. 도처에서 어둠의 마법사들이 보인다고 하면서 말야."

빌과 찰리는 킹스 크로스 역까지 그들을 배웅하기로 했다. 하지만 퍼시는 호들갑스럽게 사과를 하면서 반드시 직장에 자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근무 시간을 어길 수는 없어. 변명의 여지가 없단 말이야. 크라우치 씨는 요즘 들어서 나를 정말로 신뢰하기 시작하셨어."

퍼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이거 알아, 퍼시 형?" 조지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에도 크라우치 씨가 형의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위즐리 부인은 용감무쌍하게도 마을 우체국 전화를 이용해서 머글 택시 석 대를 불렀다.

"애들 아빠가 마법부 차를 빌려 주려고 하셨단다."

위즐리 부인은 해리를 쳐다보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들은 폭우로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깨끗하게 씻겨 나간 마당으로 나가서 택시 운전사들이 묵직한 트렁크 여섯 개를 자동차에 싣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는 차가 한 대도 없다지 뭐니……. 어머, 얘야! 저 사람들은 별로 즐거운 것 같지 않구나. 무슨 일 때문일까?"

해리는 위즐리 부인에게, 극도로 흥분한 부엉이를 자동차에 태우는 것은 머글 운전사들에게 있어서 극히 드문 일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피그위존은 귀청이 찢어질 듯이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프레드의 트렁크가 열리면서 필리버스터 박사의 놀라운 불꽃놀이 폭죽이 마구 터졌다. 그 순간 트렁크를 운반하던 택시 운전사는 두려움과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폭죽 소리에 깜짝 놀란 크룩생크가 택시 운전사의 다리를 발톱으로 할퀴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아주 불편했다. 커다란 트렁크들 사이에 끼인 채, 택시 뒷좌석에 간신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폭죽 소리를 듣고 놀란 크룩생크가 겨우 진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런던에 도착할 무렵이 되었을 때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몸은 온통 크룩생크가 할퀸 자국투성이였다.

마침내 택시가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하자 그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폭우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혼잡한 도로를 건너서 역까지 트렁크를 나르는 동안, 모두들 물에 빠진 새앙쥐 꼴이 되고 말았다.

해리는 이제 94분의 3번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일에 아주 익숙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9번 승강장과 1번 승강장 사이의 단단한 벽을 향해 곧장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딱 한 가지 까다로운 점이 있다면, 머글들의 주목을 끌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여러 명이 짝을 지어서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피그위존과 크룩생크를 데리고 있어서 눈에 잘 띄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제일 먼저 승강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태연하게 벽에 등을 기대고 잡담을 나누다가 슬쩍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그러자 곧 해리의 눈앞에 94분의 3번 승강장이 나타났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는 이미 승강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자줏빛 증기 기관차가 수증기를 뿜어냈다. 마구 소용돌이치는 증기구름 때문에 승강장에 서 있는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이 마치 거무스름한 유령처럼 보였다. 뿌연 안개 속에서 부엉부엉 울어대는 수많은 부엉이들에게 일일이 응답하느라 피그위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시끄럽게 굴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기차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에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위즐리 부인과 빌과 찰리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얼마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라. 어쩌면……."

찰리가 지니를 끌어안고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빙그레 웃었다.

"?"

프레드가 몹시 궁금해하며 물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퍼시에게 말하면 안 돼. 그건 '마법부가 공개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시기까지는 기밀 사항'이니까 말이야."

"그래, 나도 올해에는 다시 한번 호그와트를 방문해 보고 싶어."

빌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거의 동경하는 듯한 눈길로 기차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데?"

조지가 조바심을 내면서 물었다.

"올해는 아주 재미있는 한 해가 될 거야. 어쩌면 잠깐 틈을 내어서 한번 구경하러 갈 수 있을지도 몰라……."

빌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뭘 구경한다는 거야, ?"

론이 캐물었지만, 바로 그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위즐리 부인은 그들을 데리고 급행열차의 출입구로 걸어갔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주머니."

기차에 올라탄 헤르미온느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맞아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해리도 꾸벅 인사를 했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뭘 그러니, 얘들아. 크리스마스에도 너희 둘을 초대하고 싶단다. 하지만…… 너희들은 아마…… 호그와트에 머무르고 싶어하지 않을까? …….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아주 바쁠 테니까……."

위즐리 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엄마!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거죠?"

론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마도 오늘 저녁이면 너희도 알게 될 거란다. 그 일은 굉장히 재미있을 거야. 엄마는 규칙이 바뀌어서 정말 기쁘단다."

위즐리 부인이 미소지었다.

"무슨 규칙 말이죠?"

해리와 프레드와 조지가 동시에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직접 설명하실 거야……. , 얌전하게 굴어라. 알았니? 알았니, 프레드? 그리고 너, 조지도?"

증기 기관차가 슛슛거리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호그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좀 알려 주세요!" 프레드가 창문 밖으로 목을 내밀면서 고함을 질렀다. 위즐리 부인과 빌과 찰리의 모습이 아주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무슨 규칙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위즐리 부인은 단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손을 흔들 뿐이었다. 기차가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위즐리 부인과 빌과 찰리의 모습이 뿅 하고 사라졌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고 있어서 창밖을 내려다보기가 힘들었다. 론은 트렁크를 열어서 레이스가 달린 갈색 예복을 꺼내더니 그것으로 피그위존의 새장을 덮어 버렸다. 시끄럽게 울어대던 부엉이는 곧 잠잠해졌다.

"베그만 씨는 우리에게 호그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 말을 해주려고 했었어." 잔뜩 심술이 난 프레드가 해리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퀴디치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말이야. 기억나? 그런데 우리 엄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 대관절 그게 뭘까?"

"!"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하더니, 손가락으로 옆 객실을 가리켰다. 해리와 론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열린 문을 통해서 느릿느릿 점잔 빼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아주 낯익었다.

"사실 우리 아빠는 나를 호그와트가 아니라 덤스트랭으로 보내려고 하셨어. 덤스트랭의 교장 선생님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 우리 아빠가 덤블도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덤블도어는 정말 잡종 애호가라고 할 수밖에 없어. 덤스트랭은 절대로 잡종 같은 쓰레기들을 받지 않아. 하지만 엄마는 날 그렇게 멀리 떨어진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으셨어. 아빠 말씀을 들어보면, 덤스트랭은 호그와트와는 달리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선까지는 용납하고 있다는 거야. 덤스트랭 학생들은 실제로 어둠의 마법을 배우기도 한 대. 우리가 배우는 그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방어술 따위가 아니라……."

헤르미온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객실 문을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객실 문을 닫자, 말포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포이 아빠는 덤스트랭이 그 녀석에게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그때 차라리 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저 밥맛 떨어지는 녀석을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었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데 덤스트랭이 뭐야? 또 다른 마법학교야?"

해리가 물었다.

". 아주 악명 높은 곳이야. <유럽의 마법 교육 평가서>에 따르면, 덤스트랭은 어둠의 마법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어."

헤르미온느가 픽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론이 막연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게 어디에 있지? 어느 나라에 있는 거야?"

"그건 아무도 몰라."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치켜떴다.

"?"

해리가 물었다.

"전통적으로 모든 마법학교 사이에는 서로 치열한 경쟁이 있어. 덤스트랭과 보바통은 학교가 있는 곳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어. 아무도 자기네 비밀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말이야."

헤르미온느는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설명조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덤스트랭도 호그와트만큼이나 규모가 엄청날 텐데, 그렇게 거대한 성을 어떻게 숨긴다는 거니?"

론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호그와트도 은밀하게 숨겨져 있잖아.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호그와트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다는 우리 중에는 너밖에 없네. 어서 말해 봐. 호그와트처럼 거대한 성을 어떻게 숨길 수 있다는 거야?"

론이 말했다.

"마법을 거는 거야. 머글들의 눈에는 입구마다 '위험!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은 다 쓰러져가는 폐허처럼 보이도록 말이야."

"그러니까 덤스트랭도 외부인의 눈에는 꼭 폐허처럼 보일 거란 말이지?"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 않으면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처럼 머글 퇴치 마법을 걸어 두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좌표 측정 불가능 마법을 걸어두었을 수도 있지."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라구?"

이번에는 해리가 물었다.

"그러니까 어떤 건물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는 것이 불가능 하도록 마법을 걸어 놓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글세…….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해리가 끄덕였다.

"덤스트랭은 분명히 저 북쪽 어딘가에 있을 거야. 어딘지 모르지만 아주 추운 지방에……. 왜냐하면 걔네들의 교복에는 모피로 된 망토가 달려 있거든."

헤르미온느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 한번 생각해 봐." 론은 꿈을 꾸듯이 황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아주 간단하게 말포이 자식을 해치울 수 있을 거야. 빙하에서 밀어 떨어뜨린 후에 사고처럼 가장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야……. 걔네 엄마한테는 몹시 미안한 일이지만……."

기차는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빗줄기가 더욱더 굵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캄캄하고 창문에는 온통 김이 서려 있었기 때문에 한낮인데도 등불을 켜야만 했다. 도시락을 파는 수레가 달가닥거리면서 복도를 지나가자, 해리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냄비 모양의 케이크를 잔뜩 샀다.

오후가 되나, 시무스 피니간과 딘 토마스 그리고 네빌 롱바텀을 포함한 몇 명의 친구들이 그들 객실로 왔다. 얼굴이 통통하고 건망증이 무척 심한 네빌 롱바텀은 아주 엄격하고 무서운 마녀 할머니 손에 성장했다. 시무스는 여전히 가슴에 아일랜드의 초록색 장미를 달고 있었다. 장미는 여전히 '트로이! 멀릿! 모런!'을 외치고 있었지만 마법의 기운이 좀 떨어졌는지, 맥이 빠지고 지친 듯한 목소리였다. 30분 정도 지나자,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는 퀴디치 월드컵 이야기에 그만 진절머리가 난 헤르미온느는 다시 <표준 마법서, 4학년> 책을 펼쳐들고 소환 마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신나게 퀴디치 월드컵 경기 이야기를 떠들어대자, 제빌 롱바텀은 몹시 부러운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는 가고 싶어하지 않으셨어. 티켓을 구입할 생각조차 없으셨지. 하지만 너희들 말을 들으니까 정말 굉장했을 것 같구나."

네빌이 잔뜩 풀이 죽어서 말했다.

"정말로 그랬어. 이것 봐, 네빌……."

론은 선반에 놓여 있던 트렁크를 뒤적거리더니 빅터 크룸 인형을 꺼냈다.

"!"

론이 빅터 크룸 인형을 포동포동한 네빌의 손 위에 올려 놓자, 네빌은 탄성을 질렀다.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빅터 크룸을 봤어. 일등석에서 관람했거든."

론은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쭉 펴면서 말했다.

"네가 퀴디치 월드컵을 보는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위즐리."

어느 사이에 드레이코 말포이가 객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말포이의 등 뒤에는 여름 방학 동안 적어도 30센티미터는 더 자란 것처럼 보이는 크레이브와 고일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은 딘과 시무스가 들어오면서 조금 열어놓은 객실 문으로 대화를 전부 엿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말포이, 너희들에게 들어오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해리가 차갑게 말했다.

"위즐리……, 그런데 저게 뭐냐?"

말포이가 피그위존의 새장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새장 밑으로 축 늘어진 론의 예복 소맷자락이 기차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달린 구식 소맷단이 너풀거렸다.

론은 황급히 그 예복을 감추려고 했지만, 말포이의 동작이 더 빨랐다. 말포이는 예복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것 봐! 위즐리, 너 설마 이걸 입을 생각은 아니겠지? 1890년대에나 유행했을 것 같은 이런 옷을……."

말포이는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론의 예복을 보여주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저걸 그냥!"

론은 말포이의 손에서 옷을 빼앗았다. 말포이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그 옆에서 크레이브와 고일은 바보처럼 실실거렸다.

"그런데…… 너도 참가할 생각이냐, 위즐리? 가문에 영광을 위해서? 게다가 돈도 걸려 있으니까……. 만약 네가 이긴다면 근사한 예복도 살 수 있겠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론이 소리쳤다.

"너도 참가할 생각이니? 그래, 너는 분명히 참가할 거야. 그렇지, 포터? 너는 잘난 척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잖아. 안 그래?"

말포이가 정면으로 해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하든지 아니면 당장 나가! 말포이……."

<표준 마법서, 4학년>을 읽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포이의 창백한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너 정말 모르고 있는 거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말포이는 신이 나서 말했다. "마법부에 다니는 아빠와 형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단 말이야? 저런! 우리 아빠는 벌써 오래 전에 내게 말해 주셨는데…….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에게 직접 들으셨대. 우리 아빠는 항상 마법부의 고위 간부들을 잘 알고 계시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 아빠는 너무 하위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위즐리. 맞아, 네 아빠 앞에서는 중요한 일은 말하지 않는 모양이야."

말포이는 또다시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더니, 크레이브와 고일에게 나가자고 손짓했다. 세 사람은 금방 객실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객실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어찌나 세게 닫았던지 그만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

"!"

헤르미온느가 론을 나무라듯이 바라보면서 요술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레파로!"

그러자 유리 파편들이 객실 문으로 날아가더니 다시 유리창이 되었다.

"그런데 꼴을 보아하니 녀석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아직까지 우리만 모르고 있어……. 우리 아빠도 마법부의 고위직 간부들을 잘 알고 있어……. ! 우리 아빠는 언제라도 승진을 할 수 있어……. 다만 지금 계시는 부서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몸담고 계시는 것 뿐이야……."

"물론이지. 말포이 같은 녀석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어. 공연히 말포이의 수작에 넘어가지 마, !"

헤르미온느가 침착하게 타일렀다.

"그 따위 녀석이 감히 나에게 수작을 건단 말이야? 어디 그렇게만 해봐!"

론이 냄비 모양의 케이크를 짓뭉개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론의 기분은 내내 풀리지 않았다. 학교 망토로 갈아입을 때에도 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으며, 호그와트 급행열차가 속도를 늦추고 칠흑같이 어두운 호그스미드역에 멈추었을 때에도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기차 문이 열리는 순간, 해리 머리 위에서 우르르 천둥이 쳤다. 헤르미온느는 망토로 크룩생크를 둘둘 감싼 후에 꼭 끌어안았다. 론은 예복으로 피그위존의 새장을 덮은 채, 기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머리를 잔뜩 숙이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쏟아지는 폭우 속을 걸어갔다. 비가 어찌나 억수같이 쏟아지는지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머리 위로 계속 퍼붓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해그리드!"

해리가 승강장 끝에 서 있는 거대한 형체를 향해 소리쳤다. "잘 지냈니, 해리? 나중에 연회장에서 보자! 이 비를 맞고 익사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해그리드가 손을 흔들면서 크게 외쳤다. 전통적으로 1학년생들은 해그리드와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에 있는 호그와트 성으로 건너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와! 나라면 이런 날씨에 호수를 건너가는 건 상상도 못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후들후들 떨면서 말했다. 그들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어두운 승강장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역 밖에는 말없이 달리는 100대의 마차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네빌은 얼른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의 문이 쾅 닫히더니 순간 뒤로 한 번 기우뚱했다. 그리고 기다란 마차들의 행렬이 호그와트 성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덜커덩거리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12장 트리위저드 시합

 

마침내 호그와트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개 달린 멧돼지 상이 교문 양쪽에 턱 버티고 있었다. 교문을 통과한 마차들은 넓은 도로를 따라 굴러가고 있었다. 돌풍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마차는 위태롭게 흔들렸다. 해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점점 더 가까워지는 호그와트 성을 바라보았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수많은 창문들이 줄기차게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마차가 커다란 오크 문 앞 돌계단 아래 우뚝 멈춰 섰다.

그 순간 어두운 하늘에 번개가 번쩍거렸다. 그들보다 앞서 도착한 마차에 탄 사람들은 벌써 황급히 돌계단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린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네빌은 계단 위로 쏜살같이 달려가, 동굴같은 현관 복도 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횃불이 타오르고 있는 복도에는 대리석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제기랄!" 론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물을 털어냈다. "저렇게 계속 비가 내리면 호수가 넘치고 말겠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군. 아야!"

론이 비명을 지르면서 비틀거렸다. 물이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빨간 풍선이 천장에서 곧장 론의 머리에 정통으로 떨어진 것이다. 물풍선이 터지자 물을 흠뻑 뒤집어 쓴 론은 해리 쪽으로 비켜섰다.

바로 그 순간 두 번째 물풍선이 떨어졌다.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헤르미온느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해리의 발치에서 물풍선이 터지는 바람에 신발과 양말이 온통 물에 젖고 말았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물풍선을 피하기 위해 서로 밀치기 시작했다.

해리가 재빨리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요정 피브스가 6미터 높이의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작은 종이 잔뜩 매달린 모자에 오렌지 색깔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소리의 요정은 심술궂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또다시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피브스!" 성난 목소리가 쩌렁쩌렁 복도에 울려 퍼졌다. "피브스, 당장 이리로 내려오지 못해!"

교감 선생님이자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사감인 맥고나걸 교수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젖은 마룻바닥을 달려오던 맥고나걸 교수가 중심을 잃고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다행히도 헤르미온느의 목을 붙잡아서, 벌렁 나자빠지는 사태는 겨우 모면할 수 있었다.

"이런! 미안해요, 그레인저 양."

"괜찮아요,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얼얼한 목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피브스, 당장 이리로 내려와!"

맥고나걸 교수가 뾰족한 모자를 똑바로 고쳐 쓰면서 호통을 쳤다. 그리고 네모난 안경 너머로 피부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냥 장난이에요!" 피브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연회장 안으로 도망치는 5학년 여학생들을 향해 물풍선을 던지면서 깔깔 거렸다. "이미 다 젖었잖아요. 안 그래요? 조금 더 적시는 것뿐이에요! 휘이이이익!"

피브스는 방금 도착한 2학년생들에게 또다시 물풍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을 불러야겠군!" 맥고나걸 교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경고하는데, 피브스."

그러자 피브스가 혓바닥을 쑥 내밀더니 마지막 물풍선을 공중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면서 붕하고 대리석 계단 위로 날아갔다.

"어서 들어가거라!" 맥고나걸 교수가 흠뻑 젖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연회장으로, 어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미끄러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서 오른쪽에 있는 이중문으로 들어갔다. 론은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젖은 머리카락을 연신 뒤로 넘기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연회장은 언제나처럼 멋지고 훌륭했다. 지금은 개학식 연회를 위해서 특별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황금빛 접시와 잔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수백 개의 촛불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네 개의 기다란 기숙사 테이블은 재잘거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회장 제일 위쪽에 마련된 상석에는 호그와트의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마주보면서 일렬로 앉아 있었다.

연회장 내부는 무척 따뜻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슬리데린과 래번클로와 후플푸프를 지나서 연회장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핀도르의 유령인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약간 반투명한 진줏빛이 감도는 닉은 오늘 밤에도 평상시처럼,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 주는 높은 주름 깃에다가 허리가 잘록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잘 있었니, 얘들아?"

닉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전 별로 그렇지가 못해요." 해리는 신발을 벗어 들고 물을 털어냈다. "기숙사 배정이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배가 고파 죽겠어요."

신입생의 기숙사 배정식은 매년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열렸다. 하지만 해리는 공교롭게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자신이 처음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기숙사 배정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리는 내심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굉장히 들뜬 목소리가 해리를 불렀다.

"안녕, 해리."

그는 바로 해리를 영웅처럼 숭배하는 3학년생 콜린 크리비였다.

"안녕, 콜린."

해리는 약간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해리,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 한 번 알아맞춰 봐, 해리! 내동생이 호그와트에 입학했어! 내 동생 데니스가 말이야!"

콜린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 그것 참 좋은 일이네."

해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내 동생은 잔뜩 흥분했어! 그 녀석이 제발 그리핀도르에 들어오기만을 바랄 뿐이야! 행운을 빌어 줘! 알았지, 해리?"

콜린은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알았어."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다시 헤르미온느와 론과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같은 형제는 대부분 같은 기숙사에 들어가지? 그렇지?"

해리는 속으로 위즐리 형제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물었다. 위즐리 형제는 일곱 명 모두 그리핀도르 기숙사 소속이었던 것이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패르바티 패틸의 쌍둥이 동생은 래번클로에 있어. 더구나 걔네들은 일란성 쌍둥이야. 네 생각대로라면 그 애들은 한 기숙사에 있어야 하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는 문득 고래를 들어서 교직원 테이불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자리가 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해그리드는 아직까지도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는 비에 젖은 현관 복도를 닦는 걸 감독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빈 의자가 하나 남아 있었다. 누가 빠진 것일까? 하지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로 부임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은 어디 있지?"

역시 교직원 테이블을 올려다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는 세 학기 이상 머물렀던 적이 없었다. 해리가 가장 좋아하던 교수는 작년에 그만둔 루핀 교수였다. 해리는 천천히 교직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지만, 확실히 새로운 얼굴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쩌면 새 교수를 구하지 못한 게 아닐까?"

헤르미온느가 걱정하면서 말했다. 해리는 다시 한번 교직원 테이블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마법을 가르치는 자그마한 플리트윅 교수는 높게 쌓인 방석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약초학 담당 스프라우트 교수가 옆으로 뻗친 머리 위에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앉아 있었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천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시니스트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니스트라 교수의 반대편에는 누르스름한 얼굴에 매부리코의 스네이프 교수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른 마법의 약 담당 교수인 스네이프는 호그와트에서 해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해리가 스네이프 교수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스네이프 교수 또한 해리를 싫어했다. 더구나 스네이프 교수는, 작년에 해리가 스네이프의 코앞에서 시리우스의 탈출을 도와준 이후부터 더욱 해리를 증오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와 시리우스는 학창 시절 이후로 줄곧 숙적이었던 것이다.

스네이프 교수 옆에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해리는 아마도 맥고나걸 교수의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교직원 테이블의 중앙에는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 교수가 앉아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의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과 수염이 촛불에 비쳐 반짝거렸다. 짙은 초록색의 기다란 망토에는 수많은 별과 달이 수놓여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듯,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마주 잡고 그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천장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들고 천장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마법이 걸려 있는 연회장의 천장에는 바깥 하늘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리는 이렇게 심한 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천장에는 먹구름들이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바깥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자, 천장에도 번개가 번쩍 빛났다.

"어서 빨리 끝났으면……. 난 히포그리프라도 먹을 수 있겠어."

론이 신음 소리를 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맥고나걸 교수가 길게 늘어선 1학년 학생들을 연회장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갑자기 온 사방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비에 젖기는 했지만, 1학년생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꼭 호수를 헤엄쳐서 온 것처럼 보였다.

신입생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추위와 긴장으로 덜덜 떨면서 교직원 테이블을 따라 일렬로 걸어갔다. 그리고 전교 학생들을 마주 바라보고 똑바로 섰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신입생들 가운데 가장 키가 작고 머리가 회색인 그 아이는 해그리드의 것이 분명한 검은색 두더지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코트가 어찌나 헐렁하던지 꼭 커다란 모피 천막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더지 코트 위로 툭 튀어나와 있는 그 아이의 작은 얼굴은 긴장은커녕 너무나 신나서 잔뜩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 줄로 늘어선 그 아이는 콜린 크리비와 눈이 마주치자,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면서 소리 없이 입만 벙긋거렸다.

"나 호수에 빠졌어!"

작은 아이는 그 사실이 무척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에 맥고나걸 교수가 1학년생들 앞에 세 발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굉장히 낡고 더럽고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있는 마법사 모자를 올려놓았다. 1학년생들은 그 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연회장에 있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일제히 마법사 모자로 향했다.

얼마 동안 정적이 흘렀다. 마법사 모자 테두리 부근의 헤어진 부분이 마치 입처럼 넓게 벌어지더니 갑자기 그 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년도 더 전에

내가 새로 만들어졌을 때

유명한 마법사 네 명이 살았어요.

그들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어요.

황야에서 온 대머리 그리핀도르

골짜기에서 온 금발의 래번클로

넓은 계곡에서 온 상냥한 후플푸프

늪에서 온 심술궂은 슬리데린

그들은 소망과 희망과 꿈을 다 함께 공유했어요.

그들은 대담한 계획을 세웠어요.

젊은 마법사들을 교육시키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호그와트 학교가 세워진 거예요.

네 명의 창립자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기숙사를 만들었어요.

서로 다른 덕목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도 달랐어요.

그리핀도르는

가장 용감한 사람을 추천했고

래번클로는

가장 영리한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후플푸프는

근면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가장 알맞았고

권력에 굶주린 슬리데린은

원대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했어요.

네 명의 마법사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들이 직접 학생들을 분류했어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들을

선발했던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에는

무슨 수로 학생들을 뽑을까요?

그 방법을 고안한 사람이 바로 그리핀도르였어요.

그리핀도르는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나를 벗었어요.

네 명의 창립자들은 내 안에 두뇌를 조금씩 넣었어요.

그리하여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선택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제 나를 들어서 당신의 귀를 가릴 정도로 편안히 쓰세요.

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어디에 속할지 말해 줄 거예요!

 

마법의 모자가 노래를 다 마치자, 연회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가 터졌다.

"저건 우리 기숙사 배정식 때 불렀던 노래와 다르네."

해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모자는 해마다 다른 노래를 불러."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재미없는 삶일 거야. 안 그러니? 마법의 모자가 되는 것 말이야. 아마도 저 모자는 일년 내내 다음 노래만 만들면서 보낼 거야."

맥고나걸 교수는 커다란 양피지 두루마리를 풀고 있었다.

"내가 큰 소리로 여러분의 이름을 호명하면, 이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으세요. 모자가 여러분의 기숙사를 알려 줄 거예요. 그러면 그 기숙사의 테이블로 가서 앉으면 되는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1학년생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애컬리, 스튜어트!"

어떤 남자아이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후들후들 떨면서 앞으로 나오더니 마법의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았다.

"래번클로!"

마법의 모자가 큰 소리를 말했다. 스튜어트 애컬리는 모자를 벗고 허둥지둥 래번클로 테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일제히 스튜어트 애컬리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환영했다. 해리는 스튜어트 애컬리를 격려하고 있는 래번클로의 수색꾼 초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자신도 래번클로 테이블에 끼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솟구쳤다.

"배독, 말콤!"

"슬리데린!"

연회장의 다른 쪽 테이블에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말포이도 슬리데린 기숙사에 합류하게 된 배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해리는 과연 배독이, 다른 기숙사보다 슬리데린에서 어둠의 마법사가 제일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말콤 배독은 슬리데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프레드와 조지는 말콤 배독을 쳐다보면서 쉿 소리를 냈다.

"브랜스턴, 엘리너!"

"후플푸프!"

"콜드웰, 오웬!"

"후플푸프!"

"크리비, 데니스!"

땅딸막한 데니스 크리비는 마법의 모자를 향해 걸어가다가 해그리드의 두더지 가죽 코트 자락에 걸려 잠시 비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해그리드가 교직원 테이블 뒤에 있는 작은 문으로 연회장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사람의 두 배가 넘는 키와 적어도 세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통 그리고 제멋대로 헝클어진 기다란 머리카락과 텁수룩한 수염은 약간 무시무시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그리드의 본성은 인상과 달리 아주 순하고 인정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교직원 테이블의 제일 끝자리에 앉으면서 그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데니스 크리비가 마법의 모자를 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자 테두리의 뜯어진 부분이 넓게 벌어졌다.

"그리핀도르!"

마법의 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해그리드는 그리핀도르의 학생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데니스 크리비는 활짝 웃으면서 모자를 벗더니 다시 의자 위에 올려놓고 재빨리 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콜린 형, 아까 호수를 건너오다가 그만 물에 빠졌어! 정말 기가 막혔지! 그런데 물속에 있는 뭔가가 나를 잡더니 다시 배 위로 밀어올려 주었어!"

데니스가 빈 자리에 앉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멋지구나! 그건 아마도 대왕 오징어였을 거야, 데니스!"

콜린도 잔뜩 흥분한 것 같았다.

"!"

데니스가 탄성을 질렀다. 마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폭풍이 몰아치는 깊은 호수에 빠졌다가 거대한 바다 괴물에 의해 구출되는 것보다 멋진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라는 듯한 태도였다.

"데니스! 데니스! 저 쪽에 있는 저 형 좀 봐! 까만 머리에 안경을 낀 형 말이야, 보이니? 저 사람이 누군지 아니, 데니스?"

해리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엠마 돕스를 배정하고 있는 마법의 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숙사 배정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남녀 학생들이 저마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차례차례 세 발 의자에 가서 앉았다. 마침내 맥고나걸 교수가 'L'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부를 순서가 되자, 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제발, 어서 끝내요."

론이 배를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 기숙사 배정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야."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매들리, 로라!"

"후플푸프!"

마법의 모자가 외치자,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일제히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물론 그렇겠죠. 당신처럼 죽었다면……."

론이 딱 잘라 말했다.

"난 올해 입학한 그리핀도르 신입생들도 잘 하길 바랄 뿐이야." 나탈리 맥도널드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합류하자,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말했다. "우리의 연전 연승 기록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리핀도르는 지난 3년 동안 연달아 교내 기숙사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프리차드, 그레이엄!"

"글리데린!"

"쿼크, 올라!"

"래번클로!"

마침내 "위트비, 케빈!"("후플푸프!")을 마지막으로 기숙사 배정식이 모두 끝나자, 맥고나걸 교수는 마법의 모자와 의자를 치웠다.

"드디어 때가 됐군."

론이 재빨리 나이프와 포크를 움켜쥐고 기대에 찬 얼굴로 황금빛 접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덤블도어 교수는 환영의 표시로 두 팔을 넓게 벌리더니 학생들을 향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에게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마음껏 먹도록 해요."

"찬성! 찬성!"

해리와 론은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접시들이 순식간에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제각기 개인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고 있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애처로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아,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론이 입 안 가득히 으깬 감자를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오늘 밤에 연회가 무사히 열린 건 정말 다행인 줄 알아. 아까 주방에서 말썽이 있었거든."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해리가 커다란 스테이크 덩어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물었다.

"물론 피브스 때문이지." 닉이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자, 달랑달랑한 목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닉은 달랑거리는 목을 감추기 위해 높은 주름 깃을 약간 더 끌어올렸다. "늘 하는 말씨름이야. 피브스는 연회에 참석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그건 고려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요구였지. 피브스가 어떤 녀석인지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문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지. 음식 그릇을 보기만 하면 그냥 집어 던지고 싶어서 안달이니까……. 우리는 유령 회의를 열었어. 뚱보 프라이어는 피브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피투성이 바론이 반대했어. 그건 아주 현명한 처사였지."

피투성이 바론은 온통 은빛 핏자국으로 뒤덮여 있는 슬리데린의 유령으로, 빼빼 말랐으며 별로 말도 없었다. 호그와트에서 피브스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유령뿐이었다.

"그래요. 우리도 피브스가 무슨 장난을 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피브스가 주방에서 무슨 짓을 했어요?"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 맨날 하는 짓이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화풀이를 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마구 때려부수고 냄비와 프라이팬을 집어 던지고 수프 속에 풍덩 빠지고……. 꼬마 집 요정들은 겁에 질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쨍그랑! 그 순간 헤르미온느가 황금빛 술잔을 떨어뜨렸다. 호박 주스가 하얀 식탁보 위로 번지면서 노란 얼룩이 생겼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기에도 꼬마 집 요정들이 있단 말이에요? 여기 호그와트에도?"

헤르미온느는 몹시 놀라면서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국에서 꼬마 집 요정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바로 호그와트일 거야. 무려 백 명도 넘으니까……."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헤르미온느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꼬마 집 요정들은 낮에는 주방을 거의 떠나지 않으니까 그렇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들은 밤에 나와서 청소도 하고…… 벽난로의 불꽃도 살피고…… 그런 일들을 하지. 내 말은 너희들이 꼬마 집 요정을 보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거야. 꼬마 집 요정이 여기 있는 줄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들이 좋은 꼬마 집 요정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니?"

헤르미온느는 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봉급은 받겠죠? 휴가는 있겠죠? 그리고 병가나 연금 같은 것도 있겠죠?"

헤르미온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깔깔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주름 깃이 벌어지면서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지더니, 겨우 몇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근육과 살갗이 간신히 목에 붙은 채 달랑거렸다.

"병가나 연금이라구?" 닉은 머리를 어깨 위로 밀어 올리고 주름 깃을 세워 다시 목을 고정시켰다. "꼬마 집 요정은 병가나 연금을 바라지 않아!"

헤르미온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포크와 나이프를 탁 내려놓고 접시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 론이 약간 당황해서 말했다. 그 순간 론의 입 안 가득히 들어 있던 요크셔 푸딩이 해리에게 조금 튀었다. "……. 미안, 해리." 론은 얼른 푸딩을 꿀꺽 삼켰다. "네가 굶는다고 해서 꼬마 집 요정들이 병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노예 노동이야." 헤르미온느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이 만찬을 만들었어. 노예 노동!" 헤르미온느는 끝까지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어두운 창문을 세게 때리고 있었다. 또다시 천둥이 치면서 창문을 흔들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천장에도 번개가 번쩍 치더니 황금 접시들이 환하게 빛났다. 그 순간 접시에 남아 있던 음식들이 싹 사라지고 후식이 나타났다.

"당밀 타트야, 헤르미온느!" 론은 일부러 헤르미온느의 코앞에 음식을 들이댔다. "! 이것 좀 봐! 초콜릿 케이크야!"

하지만 꼭 맥고나걸 교수를 연상시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를 보자, 론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아주 깨끗하게 후식을 먹어 치웠다. 잠시 후에 마지막 남은 음식 부스러기들이 싹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정적을 뚫고 들리고 있었다.

", 여러분!" 덤블도어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배불리 먹고 마셨으니까('!' 그 순간 헤르미온느가 콧방귀를 뀌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줘야겠군요."

"학교 관리인인 필치 씨가 교내 사용금지 목록 중에 올해 새로 추가된 품목이 있다는 것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요요''송곳니가 돋은 원반' 그리고 '공격하는 부메랑'이 그것입니다. 이제 교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품목은 모두 437개에 달합니다. 혹시 이 내용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학생은 필치 씨의 사무실에 가면 목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덤블도어 교수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덤블도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운동장에 있는 숲은 학생들의 출입 금지 지역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호그스미드 마을 역시 3학년 이하 학생들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덤블도어는 잡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가슴 아픈 사실을 한 가지 알려야겠군요. 올해에는 기숙사 간의 퀴디치 시합이 열리지 않을 겁니다."

"뭐라구?"

해리는 숨이 탁 막혔다. 해리는 재빨리 퀴디치 팀의 동료 선수인 프레드와 조지를 돌아보았다. 그들 또한 입만 딱 벌린 채, 덤블도어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것은 교수님들의 많은 노고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떤 행사가 10월에 시작돼서 1년 내내 계속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분명히 그 행사를 무척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건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금년에 호그와트에서는……."

바로 그 순간 우르릉 쾅쾅 하면서 고막을 찢는 듯한 요란한 천둥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회장의 문이 탕탕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연회장의 문 앞에는 검은색 여행용 망토로 몸을 감싼 남자가 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 낯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천장을 가로질러서 번개가 번쩍 치더니 낯선 사람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사람은 두건을 벗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교직원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연회장에는 둔탁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이블 끝에 도착한 낯선 남자는 오른쪽으로 돌더니 심하게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덤블도어 교수를 향해 걸어갔다. 천장에서 또다시 번개가 번쩍거렸다. 헤르미온느는 헉 하더니 입을 딱 벌렸다.

번개가 번쩍 치자, 그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해리는 그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얼굴은 꼭, 오랫동안 풍파에 시달린 나무토막을, 사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조각칼을 다루는 솜씨도 전혀 없는 어떤 사람이 대충 깎아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피부는 온통 흉터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고 입은 꼭 비스듬하게 갈라진 깊은 틈새처럼 보였으며 코는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눈이었다.

그 사람의 한쪽 눈은 작고 까맣고 말똥말똥 빛났다. 하지만 다른 쪽 눈은 동전처럼 크고 둥글었으며 밝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청색이었다. 그 푸른 눈동자는 깜박거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보통 눈과는 전혀 다르게 상하좌우로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가 그 남자의 뒤통수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자, 오직 섬뜩한 흰자위만 보였다.

낯선 사람은 덤블도어 교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 못지않게 심한 흉터가 나 있는 한쪽 손을 내밀자, 덤블도어 교수가 반가운 듯이 무슨 말을 하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낯선 사람이 미소조차 짓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뭐라고 말하니까, 덤블도어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남자에게 자기 오른쪽에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낯선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앉더니, 얼굴 위로 흘러내린 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소시지가 접시를 앞으로 끌어당겨, 거의 다 뭉개지고 없는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더니 소시지를 쑥쑥 잘라 먹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정상적인 눈은 소시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푸른색 눈동자는 여전히 안구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연회장과 학생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오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무거운 침묵을 깨면서 말했다. "무디 교수입니다!"

새로 부임한 교직원은 박수로 환영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덤블도어 교수와 해그리드를 제외하고는 박수를 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교직원과 학생들은 그저 두려운 눈길로 무디 교수를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무디 교수의 기이한 모습에 넋이 나가 꼼짝도 하지 목하는 것 같았다. 덤블도어 교수와 해그리드도 박수 소리가 무거운 침묵 속으로 공허하게 울려 퍼지자, 곧 손을 내려놓았다.

"무디? 매드아이 무디? 오늘 아침에 위즐리 아저씨가 도와주러 갔던 그 사람이야?"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럴 거야."

론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사람의 얼굴은 왜 저렇게 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작게 속삭였다.

"몰라."

론의 시선은 마치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무디 교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무디 교수는 그러나 별로 따뜻하지 않은 환영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호박 주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여행용 망토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휴대용 물병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가 물을 마시느라고 팔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기다란 망토가 땅에서 조금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테이블 밑으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의족과 갈고리 발톱이 달린 발이 보였다.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덤블도어 교수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매드아이 무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 학교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대단히 흥미로운 행사를 주관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1세기 동안 열린 적이 없었던 아주 뜻깊은 행사입니다. 여러분에게 금년에 호그와트에서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릴 서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어서 대단히 기쁩니다."

"농담이시죠!"

프레드 위즐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무디 교수가 도착한 이후로 연회장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감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덤블도어 교수도 분위기가 바뀌어서 다행이라는 듯이 껄껄 웃었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네, 위즐리 군. 자네가 농담이란 말을 하니까 말인데, 나는 이번 여름에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한 가지 들었다네. 트롤과 늙은 마녀와 레프러칸 요정이 다 함께 술집으로 들어갔는데……."

맥고나걸 교수가 듣기 거북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군……. 아니야……. 그런데 어디까지 말했더라? , 그래.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 여러분 중에는 이 시합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먼저 잠깐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양해를 바라며, 딴 짓을 해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잠시 학생들을 둘러본 후에 천천히 말을 이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이란 유럽 최대의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와 보바통, 덤스트랭 사이의 친선 경기로, 700년 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챔피언을 선정하고, 이 세 명의 챔피언이 세 가지 마법 시험을 치르면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각 학교는 5년마다 한번씩 번갈아 가면서 시합을 주관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적이 서로 다른 젊은 마법사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자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서 트리위저드 시합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망자라니?"

헤르미온느가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하지만 연회장에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헤르미온느처럼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잔뜩 흥분하면서 서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해리도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사망자들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훨씬 더 관심이 쏠렸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서 트리위저드 시합을 다시 복원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제 마법 협력부와 마법의 게임 및 스포츠부는 다시 한번 시도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어떤 챔피언도 죽음의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름 내내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10월이 되면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교장이 각 학교의 후보 선수와 함께 이곳에 도착할 거이며, 할로윈 데이에 각 학교를 대표하는 세 명의 챔피언을 선정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이 트리위저드 우승컵과 소속 학교의 명예와 1000갈레온의 상금을 걸고 시합을 벌이기에 가장 적당한지는 공평한 심판관이 결정할 것입니다."

"내가 차지할 거야!"

프레드 위즐 리가 당당하게 외쳤다. 명예와 부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오른 프레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호그와트의 챔피언이 되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사람은 비단 프레드만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기숙사 테이블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덤블도어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열심히 속삭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 교수가 입을 열자, 연회장이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여러분 모두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호그와트로 가져오고 싶어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학교 교장과 마법보 장관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금년에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연령을 제한하기로 미리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일곱 살 이상이 된 학생들만이 이름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몇 명의 학생이 몹시 격분한 듯이 소란을 피웠다. 위즐리 형제도 발끈 성이 났다. 그래서 덤블도어 교수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트리위저드 시합의 과제는 여전히 어렵고 몹시 위험합니다. 6,7학년이 안 된 학생들은 그 시험 과제들을 감당한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직 열일곱 살이 되지 않은 학생이 공정한 심판관을 속여서 호그와트 챔피언으로 선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잔뜩 찌푸린 프레드와 조지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는 덤블도어 교수의 파란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거렸다.

"그러므로 만약 열일곱 살 미만의 학생이라면 본인의 이름을 제출해서 공연히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대표단은 10월에 도착해서 수개월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겁니다. 나는 그 동안 여러분이 우리의 외국인 손님들에게 모든 친절을 베풀 것이며, 누가 선발되든 간에 호그와트의 챔피언에게 전심전력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 수업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순요. 취침 시간! 해산, 해산!"

덤블도어 교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매드아이 무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당탕탕 요란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은 벌떼같이 문으로 몰려 나갔다.

"그럴 수는 없어! 내년 4월이면 우리도 열일곱 살이 된단말야. 그런데 우리는 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거야?"

조지 위즐리는 문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덤블도어 교수를 노려보았다.

"어느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챔피언이 되면 평소에는 철저히 금지되어있는 온갖 일들을 죄다 할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상금이 1,000갈레온이나 된다니!"

프레드도 험상궂은 얼굴로 교직원 테이블을 노려보면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래……. 1,000갈레온……."

론이 꿈에 부푼 얼굴로 말했다.

"어서 나가자. 빨리 나가지 않으면 우리만 남게 될 거야."

헤르미온느의 독촉에 못 이겨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프레드, 조지는 천천히 현관 복도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프레드와 조지는 줄곧, 덤블도어 교수가 과연 열일곱 살이 안 된 학생들이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그 방법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챔피언을 뽑는 공정한 심판관이란 도대체 누구지?"

해리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우리가 바로 그 심판관을 속여야만 해. 아마 노화 마법의 약을 몇 방울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조지……."

프레드가 말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형이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론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래, 하지만 누가 챔피언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은 덤블도어 교수가 아니잖아? 내가 듣기로는 일단 트리위저드 시합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명단이 확보되면, 그 심판관이 직접 각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을 뽑는 것 같아. 나이가 몇 살인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덤블도어 교수는 우리가 이름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뿐이야."

프레드가 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죽었다잖아!"

헤르미온느는 몹시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벽걸이 양탄자 뒤에 감춰진 비밀 문을 통해서 또 다른 좁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래. 하지만 그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야. 안 그래? 게다가 아무런 위험도 없다면 뭐가 재미있겠니? ! , 우리가 덤블도어 교수의 눈을 속이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어떻게 할래? 너도 물론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고 싶지?"

프레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간다면 정말 멋질 거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어……. 우리가 그 시합에 나갈 만큼 충분히 마법을 배웠는지도 잘 모르겠고……."

론이 해리에게 말했다.

"난 정말 아직 배울 게 많아." 프레드와 조지의 등 뒤에서 네빌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아마도 내가 지원하기를 바랄 거야. 할머니는 항상 내게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나는 당연히 해야 할 거야……. 아이쿠!"

계단을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 네빌의 발이 계단 밑으로 푹 빠졌다. 호그와트에는 이런 함정 계단들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의 고학년 학생들은 이제 이런 함정 계단쯤이야 자연스럽게 펄쩍 뛰어넘곤 했지만, 기억력이 나쁘기로 유명한 네빌만은 예외였다. 해리와 론이 네빌의 겨드랑이를 잡고 끌어내는 동안, 계단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갑옷이 절거덕절거덕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시끄러워!"

론이 갑옷의 얼굴 가리개를 쾅 닫아 버리면서 소리쳤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탑 입구까지 곧장 올라갔다.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들어가는 문은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뚱보 여인의 커다란 초상화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암호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뚱보 여인이 물었다.

"허튼소리." 조지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래층에서 반장이 말해 줬지."

그러자 초상화가 앞으로 확 열리더니 입구가 나타났다. 그들은 서둘러 구멍으로 들어갔다.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는 벽난로 덕택에, 찌부러진 안락의자와 탁자로 가득 찬 원형의 학생 휴게실은 따뜻했다. 헤르미온느는 우울한 표정으로 즐겁게 춤추고 있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여자 기숙사로 통하는 문으로 사라지기 전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노예 노동……."

마지막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해리와 론, 네빌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남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방에는 진홍색 덮개를 단 침대 다섯 개가 벽면에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침대 발치에는 침대 주인의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딘과 시무스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 시무스는 침대 머리맡에 아일래드 장미 장식을 핀으로 꽂아 놓았으며, 딘은 침대 옆 탁자 위에 빅터 크룸의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예전에는 그 자리에 웨스트 햄 축구팀 포스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 칸 옆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멍청이들!"

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축구 선수들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와 론과 네빌은 재빨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자(물론 꼬마 집 요정이겠지만) 침대 속에 따뜻한 보온통을 넣어 놓았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나도 참가할 거야. 만약 프레드와 조지 형이 그 방법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트리위저드 시합 말이야……. ?"

론이 어둠 속에서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안 할 것 같아……."

해리는 잠시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하지만 해리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영상들이 연달아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눈부신 영상이……. 공정한 심판관을 속여서 해리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호그와트의 챔피언으로 선발되었다……. 전교생들이 해리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함성을 질렀다.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운동장에 서 있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희미한 군중 속에서 특별히 초의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초의 얼굴은 감탄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리는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씩 웃었다. 론이 이런 생각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13장 매드아이 무디 교수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오면서 비바람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회장의 천장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한 자리에 모여서 새로운 시간표를 확인했다.

음산한 잿빛 구름이 연회장의 천장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약간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는 프레드와 조지와 리 조던은 빨리 나이를 먹을 수 있는 마법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트리워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별로 나쁘지 않아....... 오전 내내 야외 수업이야. 약초학 수업은 후플푸프와 함께 듣고..... 신비한 동물 돌보기는...제리랄! 여전히 슬리데린과 함께 들어....."

론은 손가락으로 월요일 수업 시간표를 하나씩 짚으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오늘 오후에는 점술 수업이 있어"

해리가 희미한 신음 소리를 냈다. 점술은 마법의 약과 더불어 해리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자꾸만 해리의 죽음을 예언하면서 아주 성가시게 하기 때문이었다.

"너도 나처럼 그 과목을 포기해야 했어. 안 그래?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산술 점 같이 이치에 맞는 과목을 들을 수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토스트에 버터를 잔뜩 바르면서 말했다.

"너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구나!"

론이 해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르미온느는 버터를 바른 빵에 잼을 듬뿍 발랐다.

"꼬마 집 요정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해르미온느가 빵을 덥석 베어 물면서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배도 고팠겠지."

론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갑자기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부엉이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 부엉이들은 제각기 우편물을 들고 있었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갈색과 회색 부엉이들만 날아다니고 있을 뿐 하얀 부엉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엉이들은 편지나 소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연회장을 빙빙 돌았다.

커다란 황갈색 부엉이는 네빌 롱바텀의 무릎 위에 소포 꾸러미를(네빌은 짐을 꾸릴 때마다 항상 뭔가를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털썩 내려놓았다. 드레이코 말포이의 수리부엉이도 사탕과 케이크가 들어 있는 꾸러미를 갖고 온 것 같았다. 수리부엉이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아서 깃털을 다듬고 있었다.

해리는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하지만 애써 실망한 표정을 감추면서 다시 죽을 먹었다. 아직까지도 시리우스가 편지를 받지 못한 걸까? 혹시 헤드위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흠뻑 젖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해리는 잠시도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3 온실에 도착했을 때, 해리는 어떤 이상한 식물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스프라우트 교수가 학생들에게 괴상한 식물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해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괴상하게 생긴 식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식물이 아니라 굵고 거무죽죽한 민달팽이처럼 보였다.

그 식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렸으며, 줄기에는 온통 액체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종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부보투버란다, 가끔씩 저 종기를 짜서 고름을 빼 주어야만 한단다. 너희들은 그 고름을 모아서....."

스프라우트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시무스 피니간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름 말이다. 피니간....고름!" 스프라우트 교수가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굉장히 귀중한 거니까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용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병에 고름을 담도록 해라. 희석시키지 않은 부보투버 고름이 몸에 닿으면 살갗이 부풀어 오를 수도 있으니까....."

부보투버의 종기를 짜는 것은 비록 구역질이 나긴 했지만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 부보투버의 종기를 터뜨릴 때마다 휘발우 냄새가 나는 많은 양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아주 걸쭉하고 연한 초록색의 고름이었다.

그들은 스프라우트 교수의 지시에 따라 초록색 고름을 병에 담았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 되자 몇 리터의 고름이 모아졌다.

"폼프리 부인이 무척 좋아하겠구나. 부보투버의 고름은?? 없지."

스프라우트 교수는 코르크 마개로 병 입구를 막았다.

"가엾은 엘로이즈 미전처럼 말이죠! 개는 마법을 써서 여드름을 없애려고 했어요."

후플푸프 기숙사의 한나 아보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면서 말했다.

"그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지. 하지만, 폼프리 부인이 결국 그 아이의 코를 원래대로 고쳐 놓았단다."

스프라우트 교수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삼삼오오 책을 지어서 뿔뿔이 흩어졌다. 운동장은 여전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후풀푸프 학생들은 변신술 수업을 받기 위해 돌계단을 올라갔고,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받기 위해 해그리드의 작은 통나무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은 금지된 숲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한 손으로 맷돼지 사냥개 팽의 목줄을 잡고 서 있었다. 해그리드의 발치에는 나무 상자 몇 개가 놓여 있었는데, 팽은 자꾸만 그 상자 쪽으로 가려고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낑낑거렸다. 팽도 나무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 같았다.

그들은 해그리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갑자기 나무 상자가 덜거덕거리더니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해그리드가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구나. 그 애들도 이걸 놓치고 싶진 않을 테니까.....폭탄 꼬리 스크루트!"

"뭐라구요? 다시 한번만요"

론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해그리드는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이크!"

라벤더 브라운이 질겁을 하면서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해리는 '이크'라는 그 말 한마디가 폭탄 꼬리 스크루트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꼭 껍데기 없이 형체가 일그러진 가재처럼 보였다. 다리는 아주 이상한 곳에 삐죽삐죽 나와 있으며 머리는 어디에 붙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창백하고 끈적끈적한 살갗은 쳐다보기만 해도 오싹 소름 끼칠 정도였다.

나무 상자 속에는 길이가 20센티미터가량 되는 수백 마리의 스크루트들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스크루트들은 썩은 생선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 가끔씩 스크루트의 꼬리에서 불똥이 튀어나오더니 몇 센티미터 앞으로 날아갔다.

"이제 막 부화했단다. 너희들이 직접 키울 수 있는 거야! 이번 학기의 연구 과제로 쓰면 아주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

해그리드는 폭탄 꼬리 스크루트를 쳐다보면서 흡족해했다.

"왜 우리가 저런 이상한 동물을 키워야 하죠?"

말포이가 불만에 가득 찬 소리로 물었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낄낄대면서 노골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말문이 막힌 해그리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것들로 뭘 하느냐고요. 저 동물의 특징은 뭔가요?"

말포이가 비꼬는 투로 물었다. 해그리드는 입을 약간 벌린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건 다음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말포이. 오늘은 그저 먹이만 주면 돼." 해그리드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부터 스크루트에게 몇 가지 먹이를 주도록 해라. 나도 스크루트를 길러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고 있단다. 우선 개미알과 개구리 간과 독 없는 뱀을 좀 먹이도록 해라. 어떤 것을 잘 먹는지......"

"조금 전에는 고름을 만지게 하더니 이제는......"

시무스는 투덜거리면서 잔뜩 불평을 늘어놓았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찌부러진 개구리 간을 집어들고는 조심스럽게 폭탄 꼬리 스크루트에게 내밀었다. 만약 해그리드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해리조차도 이런 일이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스크루트들은 입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야! 저게 날 공격했어요!"

10분가량 흐른 후에 갑자기 딘 토마스가 소리를 질렀다. 해그리드는 불안한 얼굴로 허둥지둥 토마스에게 다가갔다.

"저 동물의 꼬리가 폭발했어요!"

딘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딘의 손에는 불에 데인 듯한 상처가 나 있었다.

", 그래! 스크루트의 꼬리가 폭발하면 그럴 수도 있어."

해그리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크!" 라벤더 브라운이 깜짝 놀라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크! 해그리드, 저 동물의 몸에 나 있는 뾰족한 게 뭐죠?"

"어떤 것들은 침을 가지고 있단다." 해그리드가 열심히 설명을 했다(라벤더는 얼른 상자에서 손을 떼었다). "아마도 그건 수컷인 것 같구나..... 암컷은 배에 빨판 같은 게 달려 있단다..... 스크루트들은 그 빨판으로 피를 빨아먹는 것 같아."

"어째서 우리가 저런 동물을 키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 분명히 알겠군요. 태우고 찌르고 물어뜯는 걸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애완동물을 누가 갖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말포이가 역설적으로 비꼬면서 말했다.

"귀엽게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용의 피는 놀랄 만큼이나 신비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용을 애완동물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해리와 론은 텁수룩한 수염 뒤로 슬쩍 미소 짓는 해그리드에게 씩 웃어 보였다. 해그리드라면 애완용 용을 굉장히 좋아했을 거라는 걸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1학년이었을 때, 해그리드는 정말로 사나운 노르웨이 리지백 용을 기른 적이 있었다. 해그리드는 그 용에게 노버트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해그리드는 괴물 같은 동물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 치명적인 동물일수록 더욱더.....

"다행이야. 그래도 스크루트는 작잖아."

한 시간 후에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성으로 올라가면서 론이 말했다.

"물론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그건 시간 문제야. 일단 어떤 걸 먹는지 해그리드가 알아내기만 하면, 스크루트는 아마도 2미터까지는 자랄 거야."

헤르미온느가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스크루트도 분명히 유용한 점이 있을 거야. 만약 스크루트가 배멀미나 뭐 그런 걸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더 이상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야. 안 그래?"

론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저 말포이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헤르미온느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는 그 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들이 우리 모두를 공격하기 전에 당장 짓밟아 버리는 거야."

그들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서 양고기와 감자를 먹었다. 헤르미온느는 닥치는 대로 음식을 입 속에 쑤셔 넣었다. 해리와 론은 어안이 벙벙해서 헤르미온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그런데 이게 꼬마 집 요정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더욱 좋은 방법이니? 실컷 먹고 토하는 게?"

론이 물었다.

"아니야. 나는 그저 빨리 도서관으로 가고 싶을 뿐이야."

양배추를 잔뜩 물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입을 불룩하게 내밀면서 말했다.

"뭐라구? 헤르미온느..... 오늘이 바로 개학이야! 아직까지 숙제도 없잖아!"

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르미온느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음식을 마구 집어 먹었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 때 보자!"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종소리가 울려서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해리와 론은 서둘러 북쪽 탑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계단을 밟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은빛 사다리가 나타났다. 은빛 사다리는 천장에 있는 뚜껑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트릴로니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친근한 향기가 콧구멍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창문에는 여전히 커튼이 쳐져 있었으며, 짙은 붉은색 덮개가 덮인 등불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불그스름한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기는 숨 막힐 듯이 후텁지근했다. 트릴로니 교수의 방에는 스무 개 정도의 작은 원형 탁자들이 있었으며, 주위에는 무명천을 씌운 의자와 두터운 쿠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해리와 론은 작은 원형 탁자를 행해 걸어갔다.

"안녕."

갑자기 해리의 등 뒤에서 트릴로니 교수의 몽롱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깜짝 놀랐다. 얼굴에 비해서 너무 큰 안경을 걸친 삐쩍 마른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를 만날 때마다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트릴로니 교수가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목걸이와 귀고리와 팔찌가 벽난로의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네 마음속에는 커다란 걱정이 있구나, 얘야." 트릴로니 교수는 음울한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 영적인 눈은 모든 걸 볼 수 있단다. 너의 용감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괴로운 영혼까지도.... 그런데 유감스러운 일이로구나. 수많은 시련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니...... 아아, 가엾어라..... 가장 힘든 고난이...... 네가 걱정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두렵구나..... 어쩌면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빨리...."

트릴로니 교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말했다. 론은 불안한 눈으로 해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트릴로니 교수는 벽난로로 걸어가더니 안락의자에 앉아서 학생들을 마주 보았다. 트릴로니 교수를 열렬히 숭배하고 있는 라벤더 브라운과 패르바티 패틸은 가장 앞자리에 있는 쿠션에 앉아 있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별들의 운행을 연구하도록 하겠어요." 트릴로니 교수가 말했다. "점성술은 행성의 운행을 보면서 신비한 전조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행성의 운행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미리 판독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의 이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점성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리의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해리는 몹시 졸립고 나른했다. 벽난로의 불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해리의 머리를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점성술에 대한 트릴로니 교수의 말은 해리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 전에 트릴로니 교수가 한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걱정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까 두렵구나......'

그러나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정말로 노련한 사기꾼이었다. 해리는 지금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글쎄...... 혹시 시리우스가 체포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만 제외하고는...... 트릴로니 교수가 뭘 알 수 있겠는가? 해리는 벌써 오래전부터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은 그저 운에만 맡기는 어림잡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난 학기말에 볼드모트가 다시 일어날 거라고 했던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을 제외한다면...... 그때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해리가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자, 덤블도어 교수는 트릴로니 교수가 정말로 몽환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해리!"

론이 작게 해리를 불렀다.

"?"

문득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있었다. 어느새 해리는 깜빡 졸고 있었던 것이다.

"얘야, 난 네가 토성의 불길한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있었단다."

트릴로니 교수가 해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해리가 딴전을 피운 것에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조금 전에 무슨 말씀을 하셨죠? 어떻게 태어났다구요?"

해리는 멀뚱멀뚱 트릴로니 교수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토성 말이다, 해리! 토성!"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가 자기 말을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자, 몹시 약이 오른 것이 분명했다. "네가 태어나던 순간에 하늘에서는 토성이 확실히 그 힘이 강해지는 위치에 있었단 말이다...... 너의 까만 머리카락과 빈약한 몸과...... 어린 시절에 겪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면...... 내가 장담하건대, 너는 분명히 한 겨울에 태어났을 거야. 그렇지?"

"아니에요. 저는 7월에 태어났어요."

해리가 말하자, 론은 푸 하고 웃음을 터뜨리다가 황급히 헛기침을 했다.

30분 후에 그들은 복잡한 원형 차트를 보면서 자신들이 막 태어나던 순간에 행성들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없이 많은 시간표를 참조하고 각도 계산을 해야 하는 아주 지루한 작업이었다.

"난 여기에 해왕성이 두 개 있어. 하지만 이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한참 후에 해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양피지 조각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아아아." 론이 영감에 잔뜩 도취된 트릴로니 교수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대답했다. "하늘에 두 개의 해왕성이 나타났다면, 그건 안경을 낀 꼬마가 태어날 거라는 확실한 징조란다, 해리......"

근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시무스와 딘이 큰 소리로 낄낄거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흥분에 가득찬 라벤더 브라운의 외침 소리 때문에 트릴로니 교수는 론의 말을 듣지 못했다.

", 교수님! 이걸 보세요! 제 성도에 이상한 행성이 하나 있어요! 어머나! 이게 뭐죠, 교수님?"

"그건 천왕성이란다, 얘야."

트릴로니 교수가 차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나도 천왕성을 한 번 볼 수 있을까, 라벤더?"

론이 또다시 트릴로니 교수를 흉내 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트릴로니 교수가 론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수업이 끝났을 때, 트릴로니 교수가 학생들에게 숙제를 왕창 내준 건 바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다음 달의 행성 움직임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세히 분석해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오늘 여러분이 그린 차트를 참고로 해서 말이죠." 트릴로니 교수는 평소처럼 점잔을 빼는 우아한 모습이 아니라, 맥고나걸 교수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월요일까지 반드시 제출하도록. 변명은 사양하겠어요!"

"늙은 박쥐 같으니라구!"

계단을 내려가는 학생들 틈에 끼어 저녁 식사를 하러 연회장으로 가면서 론이 신랄하게 말했다.

"그 숙제를 하려면 일주일 내내 걸릴 거야. 그건......"

"숙제가 많니? 벡터 교수님은 숙제를 하나도 안 내줬어!"

어느 틈에 그들 곁으로 다가온 헤르미온느가 명랑하게 말했다.

"그래, 벡터 교수는 정말 멋지다."

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현관 복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줄의 제일 끝으로 가서 섰을때,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위즐리! , 위즐리!"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한꺼번에 고개를 돌렸다.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있다는 듯한 얼굴로 서 있었다.

"?"

론이 쌀쌀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신문에 났어, 위즐리!" 말포이가 <예언자 일보>를 흔들며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들릴 정도로 커다랗게 외쳤다. "이 기사 좀 들어 봐!"

 

실수 연발의 마법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마법부의 재난

-리타 스키터 특파원

 

최근에 퀴디치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서투른 군중 관리로 비난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마녀의 실종에 대해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마법부가, 이번엔 머글 문화유물 오용 관리과의 아놀드 위즐리 씨의 괴상망측한 행동 때문에 어제 또다시 새로운 곤경에 처했다.

말포이가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네 아빠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하고 있어, 위즐리. 네 아빠가 얼마나 변변찮은 사람이면 이름조차 엉뚱하게 알고 있는거야, 안 그래?"

말포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복도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말포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포이는 과장된 몸짓으로 신문을 똑바로 들어 올리더니 계속 읽어 나갔다.

2년 전에 날아다니던 자동차를 소유한 사건으로 고발을 당했던 아놀드 위즐리 씨가 어제는 대단히 공격적인 쓰레기통 문제 때문에 머글들의 법률 파수꾼(경찰관) 몇 명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위즐리 씨는 마법부에서 은퇴한 오러 '매드아이' 무디 씨를 도와주기 위해 급히 달려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디는 악수와 살인 미수 사이의 차이도 더 이상 분별하지 못하는 노인이다.

당연히 위즐리 씨는 경계가 삼엄한 무디 씨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디 씨가 또다시 착각을 해서 공연히 소동을 피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즐리 씨는 머글 경찰관의 기억을 수정한 후에야 비로소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품위 없고 어쩌면 창피스럽기까지 한 일에 마법부가 휘말리도록 만들었느냐는 <예언자 일보>의 질문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답변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사진도 있어. 위즐리!" 말포이가 신문을 위로 들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집 앞에서 찍은 네 부모 사진이야. 이걸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야! 네 엄마는 살을 좀 빼야 하겠다. 그렇지?"

론은 분을 참지 못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입 닥쳐, 말포이! 진정해, ......"

해리는 재빨리 론을 말렸다.

"맞아! 이번 여름 방학에 너는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지냈지? 안 그래, 포터? 어서 말을 해 봐. 쟤 엄마가 정말로 이렇게 뚱뚱하니? 아니면 사진만 이런 거니?"

말포이는 계속 빈정거리면서 론을 자극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씩씩거리면서 말포이에게 당장이라도 대들 듯이 버둥거리는 론의 망토를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런 네 엄마는 어때서, 말포이? 그 인상 좀 보라지! 네 엄마는 꼭 코밑에 똥을 달고 다니는 것 같더라 언제나 그런 거니? 아니면 너랑 같이 있을 때만 그런 거니?"

해리가 통쾌하게 복수했다. 론은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우리 엄마를 모욕하지 마, 포터!"

말포이의 창백한 얼굴이 약간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그 돼지 같은 주둥이나 좀 닥쳐!"

해리는 잠시 말포이를 노려보다가 뒤로 돌아섰다.

!

몇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뭔가 하얗고 뜨거운 것이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요술 지팡이를 잡기 위해 재빨리 망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미처 요술 지팡이가 손에 닿기도 전에 다시 한번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우렁찬 고함소리가 현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만두지 못해! 이 녀석아!"

해리는 홱 돌아보았다. 무디 교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무디의 요술 지팡이는 정확히 말포이가 서 있던 자리에서 벌벌 떨고 있는 흰족제비를 겨냥하고 있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무디 교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무디 교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해리를 바라 보았다. 아니, 적어도 무디 교수의 정상적인 눈 하나만은 해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눈은 뒤통수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저 녀석이 너를 공격했니?"

무디 교수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무디 교수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어쩐지 귀에 거슬렸다.

". 하지만 빗나갔어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만 내버려 두지 못해!"

무디 교수가 버럭 호통을 쳤다.

"? 뭘요?"

해리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너 말고...... 저 녀석 말이다!"

무디 교수는 느릿느릿 뒤로 돌아서더니 흰족제비를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꼼짝도 않고 가만히 서 있는 크레이브를 가리켰다. 무디 교수의 굴러다니는 눈은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크레이브와 고일과 흰족제비를 향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흰족제비가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지하 교실 쪽으로 달아났다.

"그럴 순 없지!"

무디 교수는 다시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흰족제비를 겨냥했다. 그러자 흰족제비가 허공으로 3미터 정도 날아올랐다가 찰싹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다시 한번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난 상대방의 등 뒤에서 공격하는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아."

무디 교수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흰족제비는 고통스럽게 끽끽대면서 점점 더 높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아주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러운 놈들이나 하는 짓이야......"

흰족제비는 다리와 꼬리를 무기력하게 흔들면서 다시 허공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앞으로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

흰족제비가 돌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튀어 오를 때마다 무디 교수는 한 마디씩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무디 교수님!"

갑자기 충격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렸다. 맥고나걸 교수가 두 팔에 책들을 한아름 안고 대리석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맥고나걸 교수"

무디 교수는 흰족제비를 더욱 높이 튀어 오르게 하면서 태연히 말했다.

"...... 지금, ......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흰족제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치고 있소"

무디 교수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가르치다뇨? 무디 교수님, 저게...... 학생인가요?"

맥고나걸 교수는 거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팔에 들고 있던 책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소"

"안 돼요!"

맥고나걸 교수는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오더니 자신의 요술 지팡이를 빼 들었다.

잠시 후에 딱 소리와 함께 복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매끄러운 금발이 빨갛게 달아오른 말포이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무디 교수님, 우리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데 변신술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덤불도어 교수님이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맥고나걸 교수가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아마도 했을 거요. 하지만 이녀석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약간의 충격이 필요할 거 같아서......"

무디 교수는 태연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거렸다.

"무디 교수님! 우리는 방과 후에 혼자?? 얘야...... 네 아버지에게 무디 교수가 아들을 열심히 감사하고 있다고 하거라...... 지금 내가 한 말을 네 아버지에게 똑똑히 전해야 한다...... , 너의 기숙사 담당 교수는 스네이프 교수겠지? 그렇지?"

"."

말포이가 잔뜩 심통이 나서 대답했다.

"역시 내 오랜 친구지." 무디 교수가 거칠게 말했다. "나도 스네이프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지...... , 어서 가자....."무디 교수는 말포이의 팔을 잡더니 지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맥고나걸 교수는 잠시동안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술 지팡이를 휘둘러서 바닥에 떨어진 책들을 다시 팔 안으로 불러들였다.

"내게 말 시키지 마."

얼마 후에 그들이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았을 때,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 조용히 말했다. 방금 일어났던 일로 모두들 수군거리느라 연회장은 온통 시끌벅적했다.

"왜 그러니?"

헤르미온느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장면을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 두고 싶단 말이야."

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론의 얼굴에는 기세등등한 표정이 가득했다. "드레이코 말포이,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흰족제비......"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는 커다란 그릇에 잔뜩 담긴 쇠고기 캐서롤(고기와 야채를 섞어서 볶은 요리:역주)을 개인 접시에 조금씩 덜어서 해리와 론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말포이가 다칠 수도 있었어. 맥고나걸 교수가 막은 게 천만다행었지......"

"헤르미온느! 너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망치고 있어!"

론이 다시 눈을 번쩍 뜨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약간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전속력으로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설마 오늘 저녁에도 도서관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해리가 물었다.

"가야 해. 할 일이 많아."

헤르미온느가 입 안에 음식을 잔뜩 쑤셔 넣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벡터 교수는 숙제를 내지......"

"학교 공부를 하려는 게 아니야."

5분도 되지 않아서 접시를 다 비운 헤르미온느는 황급히 연회장을 떠났다. 헤르미온느가 자리를 뜨자마자, 프레드가 다가오더니 빈자리에 앉았다.

"무디 교수 말이야! 굉장히 멋진 분이지?"

프레드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 이상이야."

조지가 프레드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최고야." 쌍둥이 형제의 단짝 친구인 리 조던이 조지의 옆자리 앉으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는 오늘 오후에 무디 교수의 수업을 들었어." 리가 해리와 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땠어?"

해리가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프레드와 조지와 리는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런 수업은 난생처음이었어."

프레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람은 알고 있었어."

리는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

론이 앞으로 몸을 잔뜩 숙이면서 물었다.

"저 밖에서 그걸 하는게 어떤 건지 안단 말이야."

조지가 감명을 받은 듯이 말했다.

"뭘 하는데?"

해리가 재빨리 반문했다.

"어둠의 마법과 싸우는 거 말이야."

"그는 모든 걸 다 봤어."

프레드와 조지가 한마디씩 했다.

"굉장해."

리가 맞장구를 쳤다. 론은 재빨리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시간표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목요일이나 되어야 그 수업이 있어!"

론은 몹시 실망한 것 같았다.

 

 

 

14장 용서받지 못할 저주

 

그다음 이틀 동안은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네빌이 마법의 약 수업 시간에 냄비를 녹여 버린 사소한 사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냄비까지 합치면, 네빌은 벌써 여섯 개나 되는 냄비를 망가뜨린 셈이었다. 여름 내내 새로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스네이프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빌을 방과 후에 남겨 놓고 벌주었다. 결국 네빌은 한 통 가득 담긴 뿔 달린 두꺼비들의 내장을 모조리 꺼낸 후에야, 거의 신경 쇠약 상태가 되어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돌아왔다.

"스네이프의 기분이 왜 저렇게 더러운지 알지?"

론이 시큰둥하게 해리에게 물었다. 그들은 헤리미온느와 네빌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네빌에게 손톱 밑에 박힌 두꺼비의 내장 찌꺼기를 없앨 수 있는 세척 마법을 열심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디 교수 때문이지, "

해리가 대답했다.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자리를 몹시 바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스네이프는 지난 4년 동안 애를 썼지만 그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네이프는 지금까지 근무했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들을 하나같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매드아이 무디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스네이프는 매드아이 무디 앞에서는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삼가고 있었다.

사실 해리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식사 시간이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라도) 볼 때마다 스네이프 교수가 무디 교수의 눈길을(마법의 눈과 정상적인 눈, 둘 다) 애써 피하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스네이프 교수는 무디 교수를 약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

해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디가 스네이프에게 마법을 걸어서 뿔이 달린 두꺼비로 변신시키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봐. 그리고 두꺼비가 지하 교실 안에서 이리지러 튀어 오르는 광경을......"

론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그리핀도르의 4학년생들은 무디 교수의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목요일이 되자,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 앞에 길게 줄 서 있었다. 아직 수업 시작종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핀도르 4학년생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교실 앞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빠진 사람은 헤르미온느뿐이었지만,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헤르미온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물론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겠지. , 어서 서둘러! 그렇지 않으면 앞자리에 앉지 못할 거야."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말을 받아 넘겼다. 그들은 교탁 바로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어둠의 힘: 자기방어를 위한 지침서>라는 책을 꺼내놓고 평소와는 달리 조용하게 기다렸다.

곧이어 복도를 걸어오는 무디 교수의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디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이하고 무서운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쇠 갈고랑이 달린 무디 교수의 목발이 기다란 옷자락 밑으로 불쑥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모두 치우도록 해라." 무디 교수는 교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책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필요 없어."

무디 교수가 의자에 앉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학생들은 재빨리 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론은 굉장히 흥분한 것 같았다.

무디 교수는 출석부를 꺼낸 후에 머리를 약간 흔들어서 일그러진 흉터투성이의 얼굴 위로 흘러내린 잿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디 교수의 정상적인 눈은 출석부의 이름을 차례차례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법의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대답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한 명씩 확인했다.

"좋다." 마지막 학생의 출석까지 확인하고 나자 무디 교수가 말했다. "나는 루핀 교수에게서 이 학급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 너희들은 어둠의 생물과 어떻게 맞싸워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주 철저한 기초 지식을 갖게 된 것 같더구나. 보가트와레드 캡과 힝키펑크와 그라인딜로우와 카피와 늑대인간을 다루었지? 내 말이 맞나?"

교실 여기저기에서 그렇다는 뜻으로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주에 관해서는 진도가 많이 뒤쳐진 것 같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마법사들이 서로에게 어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알려 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나는 딱 1년 동안만 너희들에게 어둠의 마법을 다루는......"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계속 계시지 않을 거란 말씀인가요?"

론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불쑥 물었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론은 잔뜩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미소 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온통 흉터투성이인 무디 교수의 얼굴이 더 흉측하게 뒤틀리며 일그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소를 짓는 우호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커다란 안도감을 주었다. 론도 마음을 놓는 기색이었다.

"네가 아서 위즐리의 아들이구나, ?" 무디 교수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해 주었지...... 그래, 나는 딱 1년 동안만 여기 있을 거란다. 덤블도어 교수의 특별 부탁으로...... 1년 동안만...... 그런 다음에는 다시 조용한 은퇴 생활로 돌아갈 거란다."

무디는 시끄럽게 껄껄 웃더니 울퉁불퉁한 손으로 탁 박수를 쳤다.

"좋다. 이제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다. 저주, 그것은 강도와 형태에 있어서 아주 다양하다. 현재 마법부 규칙에 따르면, 나는 너희들에게 저주를 막는 방법에 대해서만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너희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는 금지된 어둠의 저주가 어떤 건지 가르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런 저주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너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셨다. 그리고 너희들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차피 맞서야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알수록 좋다고 판단하셨다.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느냐? 어둠의 마법사가 너희들에게 먼저 어떤 저주를 사용할 건지 알려줄 것 같으냐? 너희들의 면전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저주를 내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항상 경계하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 좀 치워라. 브라운 양. 내가 말하고 있을 때에는......"

라벤더 브라운은 깜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라벤더는 책상 밑으로 몰래, 완성된 별점 지도를 패르바티 패틸에게 살며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등 뒤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단단한 나무도 꿰뚫어볼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좋다...... 어둠의 저주를 사용한 마법사는 마땅히 마법사 법에 의해 벌을 받게 된다. 그중 가장 심한 중벌을 받게 되는 저주는 어떤 것일까? 혹시 알고 있는 사람?"

론과 헤르미온느를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무디 교수가 론을 지적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여전히 라벤더를 주목하고 있었다.

"......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임페리우스 저주나 뭐 그런 게 아닐까요?"

론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 그래." 무디 교수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도 그 저주를 알고 계실 거야. 오래전에 마법부가 그 임페리우스 저주 때문에 엄청난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으니까......"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힘겹게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리고 교탁 서랍을 열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속에는 커다란 거미 세 마리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론이 몸을 움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론은 거미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무디 교수는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은색 거미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그 거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거미에게 요술 지팡이를 살짝 갖다 대면서 중얼거렸다.

"임페리오!"

갑자기 거미가 무디 교수의 손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거미는 가느다란 거미줄을 타고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 빙 돌아 넘더니 줄을 끊고 다시 교탁 위에 내렸다. 그다음에는 옆으로 재주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디 교수가 요술 지팡이로 툭 치자, 이번에는 그 거미가 뒷다리로 서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무디 교수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재미있는가?" 무디 교수가 버럭 호통을 쳤다. "만약 내가 너희들에게 임페리오 저주를 건다면, 그래도 좋겠느냐?"

갑자기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완전한 지배! 완전한 조종!"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거미는 이제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더니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거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도 있고 물에 빠져서 죽게 할 수도 있고 너희들의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가도록 할 수도 있다."

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러 해 전에는 임페리우스 저주로 조종되는 마녀와 마법사들이 많이 있었다." 무디 교수가 느릿느릿 설명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무디 교수는 볼드모트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때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조종받고 있으며, 누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마법부의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임페리우스 저주는 저항할 수 있다.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임페리우스 저주를 받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디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재주넘기를 하는 거미를 집어 다시 유리병 속에 넣었다.

"또 아는 사람? 또 다른 금지된 저주는 어떤 게 있나?"

헤르미온느의 손이 다시 번쩍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빌도 손을 들었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네빌이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약초학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네빌도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약간 놀란 것 같았다.

"그래?"

마법의 눈이 빙글 돌더니 네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나 있어요. 크루시아투스 저주요."

네빌이 작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무디 교수의 정상적인 눈도 네빌을 향하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두 눈이 모두 뚫어질 정도로 네빌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름이 롱바텀이냐?"

무디 교수가 마법의 눈으로 출석부를 확인하면서 물었다. 네빌은 불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디 교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디 교수는 다시 전체 학급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디 교수는 재빨리 다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거미는 잔뜩 겁에 질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는......" 무디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잘 이해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이 거미가 좀 더 커야겠군." 무디 교수는 요술 지팡이를 거미에게 살짝 갖다 댔다.

"잉고르지오!"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우자마자, 거미가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 거미는 타란툴라 거미보다도 더욱 커졌다. 론이 체면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허둥지둥 의자를 뛰로 빼더니 무디 교수의 탁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무디 교수는 요술 지팡이를 다시 들어 올리더니 거미를 겨냥했다.

"크루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미의 다리들이 이상한 각도로 구부러졌다. 거미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무섭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거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해리는 만약 거미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을 거라고 확신했다. 무디 교수는 계속 거미에게 요술 지팡이를 갖다 대고 있었다. 그 거미는 한층 더 격렬하게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만 하세요!"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외쳤다.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거미가 아니라 네빌을 보고 있었다. 해리도 얼른 네빌을 쳐다보았다. 네빌은 공포에 질린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책상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비록 거미의 구부러진 다리가 풀리긴 했지만, 경련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리듀시오!"

무디 교수가 중얼거리자, 거미는 다시 원래의 크기대로 오그라들었다. 무디 교수는 그 거미를 다시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아주 고통스럽단다." 무디 교수가 건조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할 수 있으면, 굳이 손가락을 조이는 틀이나 칼 따위를 써서 고문할 필요가 없단다. 물론 한 때는 이 저주도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지. 좋아...... 또 다른 거 아는 사람?"

해리는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교실을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들 마지막 거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길지 몹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손을 들었다. 불쑥 올라간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저주인가?"

무디 교수가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바다 케다브라요."

헤르미온느가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작게 대답했다. 론을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 무디 교수가 축 처진 입술을 비틀면서 또다시 웃었다. "그래! 최후의 저주이자, 최악의 저주이기도 하지. 아바다 케다브라...... 살인 저주!"

무디 교수가 손을 유리병 속으로 집어넣자, 세 번째 거미는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라도 하듯 그의 손가락을 피해 미친 듯이 달아났다. 무디 교수는 단번에 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무디 교수가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해리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웠다. 초록빛 섬광이 눈부시게 번쩍 빛나더니 쉭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뭔가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미는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거미의 몸은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했다. 하지만 그 거미의 몸은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했다. 죽었다! 거미가......

잔뜩 겁에 질린 여학생 몇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거미가 주르륵 미끄러지자, 론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다가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무디 교수는 교탁 위에 놓여 있는 죽은 거미를 손으로 휙 쓸어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좋지 않아." 무디 교수가 냉정하게 말했다. "전혀 유쾌하지 않지. 이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주문은 없다. 이 주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이미 알려진 딱 한 사람만이 그 저주를 당하고도 살아남았고, 그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해리는 무디 교수의 눈들이(두 눈 모두)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텅 빈 칠판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사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바로 저렇게 죽은 것이다...... 바로 저 거미처럼...... 그들도 흠집 하나, 상처하나 나지 않았을까? 그들의 몸에서 생명의 빛이 꺼지기 전에, 그들은 그저 번쩍하는 초록빛 섬광을 보고 죽음을 예감했을까?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죽음을 느끼면서?

해리는 부모님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날 밤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3년 전에 처음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부모님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상상하곤 했다.

부모님의 소재를 알게 된 웜테일은 그 사실을 볼드모트에게 밀고했고 볼드모트는 부모님의 집으로 찾아갔다. 볼드모트는 먼저 아버지를 죽였다. 제임스 포터는 아내에게 해리를 데리고 달아나라고 소리치면서 볼드모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에게 다가가서 해리를 죽일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서라고 했다......

릴리 포터는 아들을 온몸으로 가린 채, 차라리 자기를 대신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려 해리를 겨냥했다......

해리는 이러한 모든 장면을 상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지난 해 디멘터들과 싸울 때, 부모님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디멘터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희생자로 하여금 평생 동안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무기력한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

무디 교수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해리의 귀에는 마치 꿈 속에 들리는 소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애써 다시 현실로 돌아온 해리는 무디 교수가 하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바다 케다브라는 아주 강력한 마법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저주다. 너희들 모두 지금 당장 요술 지팡이를 꺼내서 나를 향해 그 저주의 주문을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코피나 흘릴지 모르겠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너희들에게 그 저주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건 아니니까...... , 만약 대응할 마법이 없다면, 내가 왜 너희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는지 궁금하겠지?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최악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그런 저주를 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자, 학생들은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 세 가지 저주들 - 아바다 케다브라, 임페리우스 그리고 크루시아투스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주들 가운데 하나라도 인간에게 사용했다간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보내기에 딱 알맞지. 이게 바로 너희들이 맞서야만 할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너희들에게 싸우도록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지. 너희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끊임없이...... 절대로 멈추지 말고 철저히 경계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깃펜을 꺼내서...... 받아 적도록 해라......"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용서받지 못할 저주들에 대한 설명을 하나 하나 받아 적었다. 종이 울릴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내보내자, 교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봇물이라도 터진 것처럼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 저주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너 그게 경련 일으키는 거 봤니?"

"무디가 그걸 죽였을 때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죽일 수 있지?"

아이들은 그 수업이 마치 굉장한 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재미있는 수업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은 헤르미온느 역시 마찬가지 였다.

"빨리 와."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재촉했다.

"설마 저 지긋지긋한 도서관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론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손을 들어 복도 한쪽을 가리키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빌 때문이야."

복도 중간에 혼자 가만히 서 있던 네빌은, 무디 교수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보여주었을 때처럼 공포에 질린 눈을 부릅뜨고 맞은편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네빌?"

헤르미온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자 네빌이 고개를 돌렸다.

", 안녕. 참 재미있는 수업이었어, 그렇지? 저녁 식사가 뭘까 궁금해. ......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야. 넌 안 그러니?"

네빌이 평소보다 훨씬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빌, 너 괜찮니?"

헤르미온느가 걱정이 돼서 물었다.

", 물론이지. 난 괜찮아." 네빌이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들뜬 목소리로 지껄였다. "아주 재미있는 저녁...... 아니, 그러니까...... 수업이었어. 저녁 식사에는 뭐가 나올까?"

론은 놀란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네빌, 도대체...... 무슨 말을?"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쿵쿵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무디 교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말을 뚝 멈추고 두려운 표정으로 무디 교수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낮고 부드러웠다.

"괜찮다, 얘야." 무디가 네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 사무실로 올라갈래? ...... 차나 한 잔 하자꾸나......"

네빌은 아까보다 훨씬 더 겁에 질린 것 같았다. 무디 교수와 단둘이서 차를 마시다니...... 네빌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넌 괜찮니, 포터?"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해리에게 향했다.

"."

해리는 공포를 이기려는 듯 거의 도전적으로 말했다. 무디 교수는 파란 눈동자가 마치 해리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처럼 약간 흔들렸다.

"너도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가혹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야만 해. 모르는 척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무디 교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 어서, 롱바텀.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내게 몇 권 있단다." 무디 교수는 네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네빌은 마치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네빌은 무디 교수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론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네빌과 무디 교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어쨌거나 정말 굉장한 수업이었어, 그렇지?" 연회장으로 가는 동안, 론이 해리에게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 형의 말이 맞았어. 무디 교수님은 정말로 그 방면의 전문가야. 안 그래, 해리? 무디 교수님이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를 내렸을 때...... 거미가 그냥 죽어 버렸잖아. 한 방에 말이야......"

하지만 해리의 표정을 보자, 론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연회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트릴로니 교수의 점술 숙제를 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테니까 오늘 밤부터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해리와 론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곧 헤르미온느는 후딱 식사를 끝마치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해리와 론은 천천히 그리핀도르 탑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해리가 먼저 용서받지 못할 저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실 저녁 식사 내내, 해리의 머리 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 저주들을 봤다는 사실을 알면, 무디 교수와 덤블도어 교수가 마법부와 말썽이 나지 않을까?"

뚱보 여인을 향해 다가가면서 해리가 물었다.

"하긴, 그렇겠지."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항상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분이고, 무디 교수님으로 말하자면 이미 오래전부터 골칫거리였어. 항상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분이니까...... 쓰레기통 사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잖아. 허튼소리."

뚱보 여인의 초상화가 앞으로 확 열리면서 입구가 드러났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학생 휴게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학생 휴게실이 매우 북적거렸다.

"점술 숙제를 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올까?"

해리가 말했다.

"그래야겠지."

론이 희미하게 끙끙거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책과 차트를 챙기기 위해 서둘러 기숙사로 올라갔다. 네빌은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수업이 끝났을 때보다는 훨씬 더 침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도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은 듯했다. 네빌의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니, 네빌?"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야. 난 괜찮아. 고마워, 해리. 무디 교수님이 빌려주신 책을 읽고 있어......" 네빌은 <지중해의 신비한 수초들과 그 특성>이라는 책을 들어 올렸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무디 교수님에게 내가 약초학을 잘한다고 말했나 봐."

네빌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 해리는 지금까지 네빌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무디 교수님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걸 보면 말이야."

무디 교수가 스프라우트 교수의 말을 네빌에게 한 것은, 네빌의 기운을 돋우기 위한 아주 적절한 방법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네빌은 지금까지 뭔가를 잘한다는 칭찬을 거의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핀 교수라도 그런 식으로 했을 것이다.

해리와 론은 <미래의 운세> 책을 들고 다시 학생 휴게실로 내려 갔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다음달에 발생할 사건을 예언하는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잡다한 계산과 상징들이 적히 양피지 조각만이 잔뜩 널려 있을 뿐이었다. 해리의 머리는 마치 트릴로니 교수의 벽난로에서 흘러나온 향기를 듬뿍 들이마신 것처럼 몽롱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길고 복잡한 계산 공식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해싿.

"있잖아, 해리. 아무래도 옛날식 점술 방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론이 입을 열었다. 짜증이 날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기 때문에 론의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뭐야? 거짓말로 꾸며내자는 말이니?"

"그래."

론은 테이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종이들을 몽땅 치워 버렸다. 그리고 펜을 잉크에 푹 담갔다가 꺼내더니 중얼거리며 뭐라고 적기 시작했다.

"다음 월요일에는...... 화성과 목성의 불긴한 위치 때문에 감기에 걸릴 것이다."

론은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해리를 쳐다보았다.

"너도 그 교수님을 잘 알잖아. 그저 불길한 이야기만 작뜩 늘어놓으면...... 트릴로니 교수님은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해리는 지금까지 썼던 숙제를 아무렇게나 구겨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1학년생들의 머리 위로 휙 던졌다. 양피지는 벽난로 속으로 들어 가 버렸다. "좋았어! 월요일에...... 나는...... ...... 화상을 입는 위험에 처할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우리는 월요일에 스크루트를 다시 만나게 될 거잖아. 좋아. 화요일에는...... ......"

론이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재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해리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래의 운세> 책장을 휙휙 넘겼다.

"아주 좋은데?" 론은 그 말을 그대로 베껴 썼다. "...... 너는...... 수성 때문에.......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한다고 하면 어떨까?"

"그래! 멋진 말이야......" 해리도 신이 나서 그대로 휘갈겨 썼다. "왜냐하면...... 금성이 황도 십이궁 가운데 열두 번째 별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아마...... 싸움을 하다가 크게 얻어터질 거야."

"이런! 나도 싸움을 한다고 쓸 생각이었는데...... 좋아. 그렇다면 나는 내기에서 진다고 해야겠다."

"그래, 너는 당연히 내가 싸움에서 이기는 쪽에 걸 테니까 말야......."

해리와 론은 한 시간 동안이나 예언을 짜 맞추는(그 예언은 점점 더 비극적이 되었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침실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휴게실은 점점 한산해졌다.

크록생크가 그들에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빈 의자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헤르미온느가 지었을 꼭 그런 표정이었다.

해리는 아직까지 쓰지 않은 불운이 뭐 없나 고민하면서 학생 휴게실을 빙 둘러보았다. 문득 맞은편 벽에 기대앉아 깃펜을 빼 들고 머리를 맞댄 채, 양피지 조각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드와 조지가 한쪽 구석에 숨어서 뭔가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아주 드문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한 장난을 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아주 떠들썩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프레드오 좆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쌍둥이 형제가 버로우에 있을 때에도 뭔가를 함께 쓰면서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을 위한 또 다른 주문 용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일이었다면, 프레드와 조지는 분명히 그 장난에 단짝 친구 리 조던도 끼워 주었을 것이다. 해리는 혹시 트리위저드 시합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물끄러미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조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깃펜으로 뭔가를 좍좍 지웠다. 그런 다음 아주 나지막하게 프레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학생 휴게실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해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 돼! 그렇게 쓰면...... 마치 우리가 그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조지의 눈이 해리와 딱 마주쳤다. 해리는 씩 미소를 지은 후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숙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엿듣고 있다는 오해를 살까 봐서였다. 잠시 후에 쌍둥이 형제는 양피지를 둘둘 말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리와 론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한 후에 곧장 기숙사로 올라갔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초상화 구멍이 살며시 열리더니 헤르미온느가 학생 휴게실로 들어왔다. 헤르미온느는 한 손에는 양피지 다발을,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상자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가닥달가닥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룩생크가 갸르릉거리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안녕. 이제 막 끝마쳤어!"

헤르미온느가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도!"

론이 깃펜을 던지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안락의자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면서 론의 점술 숙제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별로 좋은 달이 아니구나. 그렇지?"

헤르미온느기 비꼬며 말했다. 크룩생크가 헤르미온느의 무릎 위로 뛰어오르더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미리 알게 되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론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너는 두 번이나 익사할 모양이구나?"

헤르미온느가 론의 예언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런...... 둘 중에 하나를 미친 듯이 날뛰는 히포그리프에게 짓밟히는 걸로 바꿔야겠어."

론은 당황하면서 점술 숙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게 너무 뻔히 보이는 것 같지 않니?"

"무슨 말씀!" 론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꼬마 집 요정들처럼 죽도록 공부하고 있었는데!"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론을 흘겨보았다.

"그저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론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해리는 참수형을 당해서 죽게 될 운명이라는 예언으로 끝을 맺은 후에 깃펜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점술 숙제를 모두 끝낸 것이다.

"그 상자 속에 있는 게 뭐야?"

해리가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때마침 잘 물었어."

헤르미온느가 험악한 얼굴로 론을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자 속에는 50개 정도의 배지가 들어 있었는데, 색깔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같이 'S.P.E.W.'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도대체 뭘 먹고 토한다는('spew'라는 단어는 '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역주) 거니? 이게 도대체 뭐야?"

해리가 배지를 하나 집으며 물었다.

"토하는 게 아니야. 그건 S-P-E-W. '꼬마 집 요정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Elfish Welfare)'이라는 뜻이지."

헤르미온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런 모임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론이 물었다.

"당연히 들어 본 적이 없겠지. 내가 이제 막 시작한 모임이니까......"

헤르미온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데?"

론이 약간 놀라며 물었다.

"글쎄...... 만약 너희 둘이 가입한다면...... 세 명."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는 우리가 '토하다'라고 적힌 배지를 달고 돌아다닐 것 같니, ?"

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S.P.E.W.라니까!" 헤르미온느가 잔뜩 골이 나서 소리쳤다.

"나는 처음에 S.O.A.O.F.M.C.C.C.T.S.S.(Stop the Outrageous Abuse of Our Fellow Magical Creatures and Campaing for a Change in Their Legal Stantus)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어. '우리의 친구인 신비한 생물에 대한 부당한 학대 방지와 그들의 법적 신분 변화를 위한 캠페인'이라는 뜻으로 말이야. 하지만 공간이 좁아서 다 쓸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S.P.E.W.가 우리 모임의 이름이야."

헤르미온느는 양피지 다발을 그들의 코앞에 대고 흔들었다. "나는 그동안 도서관에서 철저히 조사했어. 꼬마 집 요정의 노예화는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 지금까지 아무도 정식으로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뿐이야."

"헤르미온느! 내 말을 똑똑히 들어. 집 요정은...... 그것을...... 좋아한단 말이야! 그들은 노예로 지내는 걸 좋아한다구!"

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단기 계획은......" 헤르미온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론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꼬마 집 요정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의 장기 계획은 '요술 지팡이 사용 불가'에 대한 법률을 바꾸고, 꼬마 집 요정 가운데 한 명을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에 들어가도록 하는 거야. 왜냐하면 꼬마 집 요정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해리가 물었다.

"회원을 모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돼." 헤르미온느는 기뻐하며 말했다.

"회원 가입비를 2시클로 정했어. 배지를 구입하는 값이야. 그 수익금으로 전단 캠페인 기금을 마련하는 거지. , 회계는 네가 맡도록 해. 이따가 너에게 모금통을 줄게. 그 모금통은 지금 위층에 있거든 그리고 해리, 너는 우리 모임의 간사야. 그러니까 너는 첫 모임에 대한 기록으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적어 두고 싶을지도 모르겠구나."

헤르미온느는 잠시 입을 다물고 해리와 론을 바라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 때문에 분통이 터지면서도 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너무나 우스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론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정적을 깨뜨렸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텅 빈 학생 휴게실을 두리번거리던 해리는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창틀에 눈처럼 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헤드위그!"

해리가 외쳤다.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헤드위그는 탁자에 놓은 해리의 점술 숙제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돌아왔구나."

해리는 서둘러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답장을 갖고 왔어!"

론이 헤드위그의 다리에 묶여있는 더러운 양피지 조각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헤드위그의 다리에 매달린 편지를 풀었다. 해리가 열심히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 헤드위그는 해리의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앉더니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부엉부엉 부드럽게 울어댔다.

"뭐라고 써 있니?"

헤르미온느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시리우스의 답장은 매우 짧았고 아주 급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해리

지금 나는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단다. 너의 흉터에 관한 소식은 내가 이곳에서 들은 이상한 소문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들은 거란다. 만약 흉터가 다시 아프면, 곧장 덤블도어 교수를 찾아가거라. 덤블도어가 은퇴한 매드아이를 학교로 불렀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덤블도어는 그 징조들을 읽었다는 뜻이란다.

곧 연락하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도 안부 전해 주거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경계하도록 해라, 해리.

시리우스

 

해리는 고개를 들고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구? 그렇다면 돌아오고 있는 걸까?"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무슨 징조를 읽었다는 거야? 해리...... 왜그래?"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해리가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내리쳤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헤드위그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그만 해리의 무릎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시리우스에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해리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무슨 말이야?"

론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내가 경솔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거야!" 해리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헤드위그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론의 의자 등받이 위에 내려앉았다.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건 내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정작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난 네게 줄 게 아무것도 없어." 해리는 먹이를 기대하면서 부리를 딸깍거리고 있는 헤드위그를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뭘 먹고 싶으면 당장 부엉이 장으로 올라가!"

헤드위그는 몹시 성이 나서 인상을 팍 쓰더니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해리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런 다음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 버렸다.

"해리......"

"난 이만 올라가서 잘래." 해리가 짤막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보자."

이층 기숙사로 올라간 해리는 서둘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만약 시리우스가 덜컥 잡히기라도 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해리의 잘못이었다. 왜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않았을까? 이마의 흉터는 아주 잠깐 아팠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주책없이 지껄이다니...... 그냥 나 혼자 알고 있어야 했는데......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잠시 후에 론이 기숙사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리는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해리는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방은 아주 조용했다. 만약 해리가 다른 생각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잠들지 못한 사람이 비단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들리던 네빌의 코고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5장 보바통과 덤스트랭

 

아침에 일찍 일어난 해리의 머릿속에는 마치 잠을 자는 동안에도 밤새도록 뇌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미 모든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해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다음, 론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기숙사를 나갔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학생 휴게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어싿. 해리는 어제저녁에 하다가 그대로 놓아둔 점술 숙제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양피지 조각을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리우스 아저씨께

며칠 전에 제 흉터가 아팠다고 한 건 그냥 상상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아저씨께 편지를 쓸 때에는 잠이 덜 깬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일부러 돌아올 필요는 없어요. 이곳은 아무 문제 없으니까요......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세요. 제 머리는 정말로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해리

 

해리는 초상화 구멍을 빠져나와, 서쪽 탑 맨 꼭대기에 있는 부엉이 장으로 올라갔다(4층 복도에서 갑자기 나타난 피브스가 해리에게 커다란 꽃병을 뒤집어엎으려고 해서 잠깐 방해를 받긴 했지만).

부엉이 장은 돌로 지어진 동그란 모양의 방이었다. 그러나 창문에는 유리가 한 장도 끼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이 그대로 불어오고 있었다. 부엉이 장 바닥에는 온통 짚과 부엉이 똥과 생쥐나 들쥐의 뼈다귀들로 뒤덮여 있었다. 길게 늘어서 있는 횃대 위에는 수백 마리나 되는 온갖 종류의 부엉이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부엉이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동그란 호박색 눈동자가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해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외양간 부엉이와 황갈색 부엉이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헤드위그를 발견했다. 해리는 서둘러 헤드위그에게 걸어가다가 그만 똥으로 뒤덮인 바닥에 찍 미끄러지고 말았다.

헤드위그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헤드위그를 흔들어 깨웠다. 헤드위그는 잔뜩 심통이 난 듯 해리를 외면하면서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그래서 헤드위그가 해리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헤드위그는 전날 밤 해리의 태도에 여전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해리가 넌지시 "네가 너무 피곤할지도 모르니까 론에게 피그위존을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겠어. 피그위존의 다리에 편지를 매달아서 보내야겠다."고 말한 후에야 간신히 헤드위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헤드위그는 부엉부엉 울면서 해리의 팔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시리우스만 찾으면 돼, 알았지?" 해리는 헤드위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면서 창문에 걸어갔다. "디멘터가 먼저 그를 잡기 전에 말이야."

헤드위그는 해리의 손가락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물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부엉부엉 울었다. 헤드위그는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해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는 헤드위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자꾸만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의 답장을 받으면 그래도 걱정이 좀 덜어질 거라고 굳게 믿었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그건 거짓말이야, 해리. 너는 그냥 흉터가 아프다고 상상한 게 아니었잖아."

해리가 아침 식사 시간에 헤르미온느와 론을 만나서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말하자,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나 하나 때문에 시리우스가 아즈카반에 갇히도록 놔두란 거야?"

해리는 완강하게 말했다.

"그만둬."

헤르미온느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자, 론이 제지했다. 이번에는 헤르미온느도 론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해리는 그다음 2주일 동안 시리우스에 대해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침에 우편물이 도착할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며, 밤이 되어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런던의 어두운 거리에서 디멘터들이 시리우스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끔찍한 영상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그때마다 해리는 시리우스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해리는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차라리 퀴디치 경기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는 것은 불안감을 떨쳐 버리는 데에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어려웠다. 그중에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특히 어려웠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내리겠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오거라. 과연 그 저주를 막아낼 수 있는 학생이 있을까?"

그들은 무디 교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교수님은 그게 불법이라고 하셨잖아요." 무디 교수가 요술 지팡이를 휘둘러서 책상을 다 치우고 교실 한가운데에 빈 공간을 만들자,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교수님은...... 이 저주를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덤블도어 교수는 임페리우스 저주를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너희들이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 무디 교수는 마법의 눈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헤르미온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누가 너한테 이 저주를 내려서 너를 완전히 조종해도 상관없다면...... 나는 괜찮다. 이걸 배우지 않아도 좋다. 이 교실에서 나가거라."

"저는...... 교실에서 나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붉히면서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해리와 론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씩 웃었다. 그들은 헤르미온느가 이런 중요한 수업을 놓치느니 차라리 부보투버라도 먹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디 교수는 한 명씩 앞으로 나오게 하더니, 학생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해리는 그 저주를 받은 친구들이 아주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딘 토마스는 국가를 부르면서 교실을 세 바퀴나 돌았다. 라벤더 브라운은 다람쥐 흉내를 냈다. 네빌은 평상시에는 전혀 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어려운 체조를 연속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그 저주를 막지 못했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임페리우스 저주를 거둬들이자, 그제서야 학생들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포터." 무디 교수가 무뚝뚝하게 해리를 불렀다. "네 차례다."

해리는 교실 한가운데의 빈 공간으로 걸어갔다. 무디 교수가 요술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해리를 겨냥했다.

"임페리오!"

갑자기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해리의 머릿속에 가득하던 수많은 생각과 걱정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행복감이 해리를 휘감았다. 해리는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해리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무디 교수의 목소리가 텅 빈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책상위로 뛰어올라라......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해리는 책상 위로 뛰어올라라......

왜요?

갑자기 해리의 머릿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그게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책상 위로 뛰어 올라라......

싫어요! 난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 난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아요......

뛰어! 당장!

그 순간 해리는 큰 고통을 느꼈다. 해리는 뛰어오르는 것과 뛰어오르지 않는 행동을 동시에 했다. 그 결과 책상 모서리에 힘껏 부딪힌 해리는 그만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무릎 양쪽을 다 삔 듯 무릎이 몹시 아팠다.

", 정말 잘했다."

무디 교수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머리 속이 멍하게 울리는 것 같던 기분이 순식간에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리는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의 통증도 두 배로 커졌다.

"이걸 보거라, 얘들아...... 포터가 싸웠다! 포터는 그 저주와 치열하게 싸워서 거의 이길 뻔했다! 다시 한번 해보자, 포터.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똑똑히 주목하거라. 특히 포터의 두 눈을 관찰해야 한다. 너희들이 봐야 할 곳이 바로 눈이니까...... 잘했다, 해리! 정말 잘했어! 아무래도 그들이 널 조종하는 건 조금 힘들 거다!"

"무디 교수의 말투 말이야." 한 시간 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던 해리가 말했다(무디 교수는 해리의 역량을 시험하겠다는 미명하에, 해리가 그 저주를 완전히 물리칠 수 있을 때까지 연달아 네 번이나 공격하겠다고 우겼다). "마치 우리 모두가 언제 어느 때라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래, 맞아." 론이 맞장구를 쳤다. 론은 한 발로 번갈아 가면서 깡충깡충 뛰고 있었다. 론은 임페리우스 저주로 인해 해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무디 교수는 점심 시간 무렵이 되면 그런 영향들이 모두 없어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바로 그런 게 편집광적인 증세라는 거야......" 론은 무디 교수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조하게 어깨 너머로 힐긋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무디 교수가 은퇴하자, 마법부 사람들이 몹시 기뻐한 것도 아주 당연해. 그런데 해리, 혹시 무디 교수가 시무스에게 말하는 거 들었니? 언젠가 만우절 날 무디 교수의 등 뒤에서 그냥 장난으로 우우 하고 소리친 마녀에게 그가 어떻게 했는지? 어쨌거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은데 도대체 언제 임페리우스 저주를 물리치는 방법을 복습하라는 거야?"

4학년생들은 모두 이번 학기에 해야 할 공부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변신술 수업 시간에 맥고나걸 교수가 숙제를 잔뜩 내자, 학생들은 큰 소리로 불평을 터뜨렸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지금 마법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사각형 모양의 안경 너머로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여러분은 반드시 치러야 할 '표준 마법사 수준' 테스트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건 5학년 때 치르잖아요! 아직 1년이나 남았다구요!"

딘 토마스가 입술을 불쑥 내밀고 툴툴거렸다.

"아닐 수도 있단다, 토마스. 그러니까 시험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해! 내가 만족할 만큼 고슴도치를 바늘방석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이 학급에서 그레인저뿐이야. 너의 바늘방석은 여전히 핀을 가지고 다가가면 깜짝 놀라면서 잔뜩 몸을 웅크린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렴, 토마스!"

헤르미온느는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점술 수업에 참석한 해리와 론은 트릴로니 교수의 칭찬을 받자, 헤벌쭉 입을 벌리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트릴로니 교수가 그들이 제출한 숙제에 최고점을 준 것이다. 트릴로니 교수는 그들의 예언 중에서 많은 부분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그들이 가까운 장래에 다가올 공포들을 아주 결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트릴로니 교수가 만족스러운 눈길로 해리와 론을 쳐다보면서 그 다음 달에 대해서도 똑같이 숙제를 해 오라고 하자, 그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재앙에 대한 아이디어를 거의 다 써먹었기 때문이다.

마법의 역사를 가르치는 빈스 교수는 18세기의 도깨비 발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했으며, 스네이프 교수는 해독제 연구를 강요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는 학급 아이들이 만든 해독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한 명을 골라서 독약을 먹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잔뜪 겁먹은 학생들은 그 말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또한 플리트윅 교수는 소환 마법 수업을 위해 책을 세 권 더 읽으라고 말했다.

심지어 해그리드까지도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양을 더욱 늘리는 데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가 어떤 음식을 먹는지 파악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무척 기뻐하면서 학생들에게 연구 과제를 주었다. 그것은 학생들이 이틀에 한 번씩 저녁 시간에 해그리드의 오두막으로 가서, 폭탄 꼬리 스크루트를 관찰하고 특이한 행동을 적어 내라는 것이었다.

"저는 사양하겠어요." 해그리드가 마치 산타클로스가 자루 속에서 커다란 장난감을 하나 더 꺼내 주는 듯한 태도로 제안하자, 드레이코 말포이가 딱 잘라 거절했다. "저는 수업 시간에 이 더러운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 순간 해그리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시키는 대로 해, 말포이." 해그리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으면 나두 무디 교수가 한 것처럼 할 테니까...... 나도 네가 착한 흰족제비로 변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단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말포이의 얼굴이 수치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무디 교수가 내린 벌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이 끝나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성을 향해 걸어겄다. 해그리드가 단번에 말포이를 잠잠하게 만드는 것을 보자, 그들은 아주 통쾌했다. 작년에 말포이는 해그리드를 호그와트에서 해고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현관 안의 넓은 홀에 도착한 그들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커다란 표지판이 세워진 대리석 계단 밑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론이 발끝을 한껏 치켜들더니 그 표지판에 적혀 있는 내용을 다른 두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트리위저드 시합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대표단이 1030일 금요일 오후 6시에 도착합니다.

수업은 30분 일찍 끝날 예정입니다.

 

"정말 잘 됐네!" 해리가 활짝 웃으면서 외쳤다. "금요일의 마지막 수업은 마법의 약 시간이야! 스네이프는 우리에게 절대로 독약을 먹이지 못할 거야!"

 

호그와트 학생들은 가방과 책을 각자 기숙사에 갖다 두고 성 앞으로 모이도록 하십시오. 환영 만찬을 열기 전에 손님을 정중하게 맞이할 예정입니다.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 후플푸프의 어니 맥밀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케드릭이 알고 있을까? 어서 가서 알려 줘야지......"

"케드릭이라니?"

어니가 다급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론이 물었다.

"디고리 말이야. 케드릭도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생각인가 봐."

해리가 대답했다.

"그 멍청이가 호그와트 챔피언이 된다구?"

그들은 떠들썩한 인파를 헤치면서 계단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론은 몹시 불만스러운 듯이 소리쳤다.

"케드릭은 멍청이가 아니야! 너는 케드릭이 퀴디치 경기에서 기리핀도를 이겼기 때문에 무조건 싫어하는 거잖아."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말했다. "나는 케드릭이 정말로 훌륭한 학생이라고 들었어. 그리고 케드릭은 반장이야."

헤르미온느는 마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너는 그저 케드릭이 잘생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뿐이잖아."

론이 가차 없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잘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좋아하진 않아!"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론은 일부러 헛기침을 했는데, 이상하게 꼭 '록허트!'처럼 들렸다. 현관 안의 넓은 홀에 붙은 표지판은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에 뜨일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다음 일주일 동안에는 어디를 가든지 온통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누가 호그와트의 챔피언으로 선발될 것인가? 트리위저드 시합 종목은 무엇인가? 보바통 학생들와 덤스트랭 학생들은 어떻게 다른가? 무성한 소문들은 마치 전염성이 강한 병균처럼 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옮겨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성은 점점 더 깨끗해졌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어 있던 초상화 몇 점도 깨끗하게 닦아졌다. 하지만 정작 초상화 속의 당사자들은 별로 좋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불쾌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은 남몰래 투덜거리면서 액자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분홍빛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자, 그만 질겁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갑옷은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름을 잔뜩 치자, 더 이상 끽끽거리는 소음을 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 관리인 아구스 필치는 신발을 닦지 않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면 아주 사납게 화를 냈다. 필치에게 야단을 맞은 1학년 여학생 두 명은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

다른 교직원들도 모두들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롱바텀, 부디 덤스트랭 학생들 앞에서는 네가 간단한 전환 마법 하나 제대로 못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말거라!"

맥고나걸 교수가 특히 어려운 수업 끝에 마구 호통을 쳤다. 그 수업 시간에 네빌은 실수로 자신의 귀를 선인장에 이식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1030일 아침이 밝았다. 해리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연회장은 아주 멋지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는 제각기 호그와트의 기숙사를 상징하는 커다란 비단 깃발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핀도르의 깃발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색 사자가, 래번클로 깃발은 파란색 바탕에 청동색 독수리가, 후플푸프의 깃발은 노란색 바탕에 검은 오소리가, 슬리데린의 깃발은 초록색 바탕에 은색 뱀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큰 깃발은 교수석 뒷벽에 걸려 있었다. 사자와 독수리와 오소리와 뱀이 커다란 알파벳 'H'를 둘러싸고 있는 호그와트의 방패꼴 문장이 그려져 있는 깃발이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을 봤다. 이번에도 역시 두 사람은 평소와 달리 다른 사람들과 뚝 떨어진 곳에 앉아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곤 걸고 있었다. 론은 쌍둥이 형들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정말 불쾌해. 하지만 만약 그가 우리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걸 그의 손에 마구 밀어 넣거나...... 그가 우리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순 없어."

조지가 음산한 목소리로 프레드에게 말하고 있었다.

"누가 형들을 피하는데?"

론이 두 사람 사이에 앉으며 물었다.

"제발 네가 그랬으면 좋겠다."

갑자기 방해를 받게 되자, 프레드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뭐가 불쾌하다는 거야?"

론이 조지에게 물었다.

"너처럼 함부로 참견하는 녀석이 내 동생인 거......"

조지가 투덜거렸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라고 있어?"

해리가 물었다.

"맥고나걸 교수에게 챔피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선정되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어. 그저 너구리를 변신시키는 거나 잘하라는 충고를 들었을 뿐이야."

조지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시험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걸까? 우리는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야, 해리. 지금까지도 우린 위험한 일을 잘해 나갔잖아......"

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심판관 앞에서는 해본 적 없잖아. 맥고나걸 교수는 그 임무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매겨진다고 했어."

프레드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심판관이 누구지?"

해리가 물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학교의 교장들은 모두 심판관 명부에 올라 있어." 헤르미온느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하자, 모두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1792년에 열린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한 갖 불상사가 생겼기 때문이야. 챔피언들이 잡기로 되어 있던 카커트리스(한 번 노려보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다는 전설상의 뱀. 바실리스크와 유사하다:역주)가 마구 날뛰면서 돌아다니는 바람에 세 명 모두 부상 당했거든."

헤르미온느는 다들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언제나처럼 자신이 읽은 책을 아무도 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나참, 그건 <호그와트의 역사>에 나와 있는 거야. 물론 그 책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만한 건 아니지만 말야. 차라리 '수정된 호그와트의 역사'라고 하는 게 더욱 정확한 제목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학교의 추잡한 면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말로 얼버무린, 굉장히 편파적으로 가려낸 호그와트의 역사'라고 하거나......"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니?"

론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하지만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입에서 무슨 말이 쏟아질지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꼬마 집요정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해리의 짐작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호그와트의 역사>는 무려 천 쪽에 걸친 그 방대한 내용 어디에도 백 명에 달하는 노예들의 억압에 대해 우리 모두가 결탁하고 있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어!"

해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은 후에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기 시작했다. 해리와 론이 아무리 관심을 두지 않아도, 꼬마 집 요정들의 권리를 추구하기 위한 헤르미온느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 모두 S.P.E.W. 배지값으로 2시클을 내긴 했지만, 순순히 돈을 준 것은 오직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공연한 돈만 낭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헤르미온느를 자극해서 더욱 시끄럽게 떠들도록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다. 왜냐하면 헤르미온느는 처음에는 배지를 달고 다니라고 성화를 부리더니, 그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배지를 사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둥 계속 해리와 론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또한 헤르미온느는 매일 저녁마다 그리핀도르 학생 휴게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을 구석에 몰아세우고 덜거덕거리는 모금함을 코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소리치곤 했다.

"너희들의 시트를 갈고 너희들의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너희들의 교실을 청소하고 너희들의 음식을 만드는 이런 모든 일들을, 봉급 한 푼 받지 못하고 노예처럼 지내는 신비한 생물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니?"

네빌과 같은 아이들은 그저 헤르미온느의 무서운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 억지로 돈을 냈다. 극소수의 아이들은 헤르미온느가 하는 말에 약간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캠페인을 벌인다든가 하는 좀더 활동적인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일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여겼다.

론은 공연히 가을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비치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딴전을 피웠다. 프레드는 갑자기 베이컨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쌍둥이 형제는 둘 다 S.P.E.W, 배지 구입을 거절했다). 하지만 조지는 헤르미온느에게 몸을 숙여 말했다.

"헤르미온느, 너 주방에 한 번이라도 내려가 본 적 있니?"

"아니, 없어. 학생들은 주방에 들어갈 수 없......"

헤르미온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우리는 가 봤어." 조지가 프레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것도 아주 여러번이나...... 물론 음식을 훔치기 위해서 들어갔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만난 적도 있어. 그들은 아주 행복해 보였어. 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일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꼬마 집요정들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세뇌를 당했기 때문이야!"

헤르미온느는 몹시 흥분해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말은 부엉이 집배원들이 마구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오는 소리 때문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들고 이제 막 도착한 부엉이들을 쳐다보았다. 해리를 향해 곧장 날아오는 헤드위그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헤드위그가 날개를 퍼덕이면서 해리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모습을 지켜보았다. 헤드위그는 날개를 집은 후에 힘없이 한쪽 다리를 쭉 내밀었다.

해리는 재빨리 헤드위그의 발에 매달린 시리우스의 답장을 떼어냈다. 해리가 베이컨을 조금 주자, 헤드위그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더니 와구와구 먹었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가 다시 트리위저드 시합 얘기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는 걸 본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작은 목소리로 시리우스의 편지를 읽어 주었다.

 

잘했다, 해리

나는 다시 이 나라로 돌아와서 잘 숨어 있단다. 나는 네가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다 자세히 알려 주었으면 좋겠구나. 나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더이상 헤드위그를 이용하지 말거라. 부엉이를 계속 바꾸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항상 몸조심하도록 해라. 내가 네 흉터에 대해 한 말을 잊어버리지 말거라.

시리우스

 

"어째서 부엉이를 계속 바꿔야 하는 거지?"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그건 헤드위그가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기 때문일 거야. 헤드위그는 눈에 금방 띄잖아. 시리우스의 은신처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눈처럼 새하얀 부엉이가 계속 그곳을 들락거린다면...... 그러니까 내 말은...... 헤드위그가 주로 그 지방에서 서식하는 새가 아니라는 뜻이야. 안그래?"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헤드위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시리우스의 편지를 돌돌 말아서 망토 속에 밀어 넣었다. 혹시 시리우스가 오히려 더 많이 걱정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해리는 시리우스가 마법부의 손에 잡히지 않고 은신처로 무사히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리우스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해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적어도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가슴을 졸이면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헤드위그!"

해리는 헤드위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헤드위그는 졸린 듯이 부엉부엉 울더니 부리를 해리의 오렌지 주스 잔에 살짝 담갔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휙 날아갔다. 어서 빨리 부엉이장으로 돌아가서 푹 자고 싶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어쩐지 아침 일찍부터 유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수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날 저녁에 도착할 예정인 보바통과 덤스트랭 사람들에게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법의 약 수업조차 30분이나 짧아졌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견딜 만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허둥지둥 그리핀도르 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리 지시받은 대로 가방과 책들을 가지런히 내려놓고 재빨리 학교 망토로 갈아입은 후에 다시 현관 복도로 내려갔다.

기숙사 담당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줄을 서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위즐리. 모자 좀 똑바로 써라." 맥고나걸 교수가 론을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패틸 양, 머리에 맨 그 우스꽝스러운 장식 좀 떼어내도록 해라."

패르바티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길게 땋아내린 머리에서 커다란 나비 장식을 떼어냈다.

"나를 따라오도록." 맥고나걸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거기 앞줄에 서 있는 1학년생들은 제발 좀 밀지 말고......"

그들은 줄을 맞춰 정문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다들 호그와트 성 앞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아주 맑았다. 해가 저물면서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금지된 숲 너머에서 희미한 달이 떠올랐다. 앞에서 네 번째 줄에 론과 헤르미온느 사이에 서 있던 해리는 1학년 생들 중에서 유난히 들뜬 모습으로 까불고 있는 데니스 크리비를 발견했다.

"벌써 6시가 거의 다 됐네. 그런데 해리, 다른 학교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도착할 것 같니? 기차로?"

론은 잠시 손목시계를 확인한 후에 성 입구로 통하는 차도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럴 것 같진 않아."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할까? 빗자루를 타고 올까?"

해리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 거야......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오는데......"

"포트키? 그렇지 않으면 순간이동을 써서 뿅 하고 나타날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다른 학교에서는 열일곱 살 미만도 그렇게 허용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론은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호그과트 교내에서는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업어!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니?"

헤르미온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핀잔을 주었다. 사방이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를 쓰고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움직이는 물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그저 여느 때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몸이 오싹할 정도로 한기를 느꼈다. 빨리 도착했으면...... 어쩌면 외국 학생들은 보다 극적으로 등장할지도 몰라...... 퀴디치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위즈릴 씨가 캠프장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언제나 똑같군.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들 뽐내기 바쁘다니까......'

잠시 후에 다른 교수들과 함께 뒤에 서 있던 덤블도어 교수가 소리쳤다.

"아하! 보바통 대표단이 도착하는군!"

"어디요?"

수많은 학생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기 있다!"

6학년생 가운데 한 명이 금지된 숲 저 위쪽의 하늘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뭔가 아주 거대한, 빗자루보다 훨씬 큰 것이...... 마치 수백 개의 빗자루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것이...... 점점 더 커지면서 군청색 하늘을 가로질러 성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용이다!"

1학년생 가운데 한 명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런 멍청이...... 저건 날아다니는 집이야!"

데니스 크리비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데니스의 추측이 훨씬 더 진실과 가까웠다...... 그 거대한 형상은 금지된 숲의 나무 꼭대기를 살짝 스치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성의 창문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 형상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그들은 코끼리만 한 덩치의 팔로미노(갈기와 꼬리는 하얗고 몸통은 담황색은 말의 일종:역주) 수십 마리가 끌고 있는 거대한 담청색 마차를 볼 수 있었다. 거의 집채만 한 마차는 호그와트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마차가 점차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보바통의 마차가 엄청난 속도로 착륙하자 앞쪽 세 줄에 서 있는 학생들이 깜짝 놀라면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

귀청이 찢어질 듯이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와 함께(네빌은 깜짝 놀라서 뒤로 펄쩍 뛰다가 그만 슬리데린 5학년생의 발을 밟고 말았다). 대형 접시보다도 더 큰 말발굽들이 지면에 닿았다. 마차가 거대한 바퀴를 굴리며 착륙하는 동안, 황금빛 말들은 커다란 머리를 치켜들고 불길처럼 새빨간 눈알을 디룩디룩 굴렸다.

해리는 마차의 문이 열리기 전에, 문에 그려져 있는 방패꼴 모양의 문장(세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는 황금빛 요술 지팡이 두 개가 서로 교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을 힐끗 보았다.

연한 파란색 망토를 입은 남학생이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몸을 앞으로 숙여 마차 바닥에 있는 뭔가를 잠시 만지작거리자, 황금빛 계단이 활짝 펼쳐졌다. 보바통의 남학생은 아주 점잖게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에 해리는 그 마차 안에서 반짝거리는 검은색 하이힐 구두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해리가 여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은 거대한 몸집의 여자가 나타나싿 비로소 왜 그렇게 거대한 마차와 말들이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은 너무나 놀라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해리는 이 여자만큼 거대한 체구를 가진 사람은 지금까지 딱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바로 해그리드였다. 해리는 저 여자와 해그리드의 키가 거의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 아마도 해리의 눈에 해그리드가 훨씬 더 익숙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 거대한 마차의 계단 발치에 서서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 저 여자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훨씬 더 커다랗게 보였다. 그 여자가 현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걸어가자, 잘 생긴 올리브 빛 얼굴과 투명하게 보이는 크고 까만 눈, 부리처러 휘어진 코가 드러났다.

그 여자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목 밑에서 반짝거리는 둥근 장식으로 묶여있었다. 검은색 새틴 옷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목과 굵은 손가락에는 커다란 오팔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학생들도 보바통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박수를 쳤다. 많은 학생들은 그녀를 더 잘 보기 위해 까치발을 하기도 했다.

그 여자는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덤블도어 교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주렁주렁 보석이 달린 손을 내밀었다. 덤블도어 교수도 제법 키가 큰 편이지만, 그 여자의 손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 허리를 굽힐 필요조차 없었다. 그 여자의 키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맥심 부인, 호그와트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덤블도어가 정중하게 말했다.

"덤블리-도어어르, 안뇽하셨나용?"

맥심 부인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반갑게 대답했다.

"우리 학생들이에용."

맥심 부인이 뒤를 돌아보면서 거대한 손을 흔들었다. 온통 맥심 부인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던 해리는 그제서야 마차에서 내린 수십명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들 십대 후반인 것 같았다) 맥심 부인의 등 뒤에 조용히 서 있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얇은 비단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을 뿐, 망토를 걸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몇 명의 학생들은 스카프나 숄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해리는 어렴풋이 학생들의 모습을(그들은 맥심 부인의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호그와트 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카르카로프는 도착했나요?"

맥심 부인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금방 도착할 겁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덤스트랭을 맞이하겠습니까?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좀 녹이겠습니까?"

덤블도어 교수의 눈길이 맥심 부인을 향하고 있었다.

"몸을 녹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용. 그런데 말드른...."

맥심 부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차를 끌고 온 말들을 쳐다보았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호그와트의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님이 기꺼이 맡아주실 겁니다. ...... 잠시 후엔 다른...... 좀 사소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면 말입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스크루트야."

론이 씩 웃으면서 해리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 말드를 다루려명...... 저어...... 강한 힘과 뛰어난 솜씨가 필요해요. 힘이 굉장히 세거든요......"

맥심 부인은 마치 호그와트의 신비한 동물 돌보기 교수님이 과연 자신의 말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해그리드는 말을 잘 다룰 겁니다. 제가 보증하죠."

덤블도어 교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좋아요. 애그리드를 만나면, 저 말드레게 위스키 딱 항 잔망 주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맥심 부인이 살짝 허리를 굽히면서 부탁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도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가자!"

맥심 부인이 보바통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거만하게 말했다. 호그와트 학생들은 양쪽으로 갈라져 맥심 부인 일행이 돌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덤스트랭의 말은 얼마나 클 것 같니?"

라벤더와 패르바티 너머에 서 있던 시무스 피니간이 고개를 쑥 내밀면서 해리와 론에게 물었다.

"글쎄...... 만약 저 말보다 더 크다면, 심지어 해그리드조차도 다룰 수 없을 거야. 물론 그것도 해그리드가 스크루트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말이지만...... 그런데 스크루트는 어떻게 된 걸까?"

해리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달아났을지도 몰라."

론이 잔뜩 기대에 차서 말했다.

"! 제발 그런 말은 하지마. 스크루트 떼가 운동장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걸 한번 상상해 봐......"

헤르미온느가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이제 그들은 약간 후들후들 떨면서 덤스트랭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맥심 부인이 거대한 말들이 콧김을 내뿜으면서 발을 구르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무슨 소리 들었니?"

갑자기 론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물었다. 해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 뭔가 소름끼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강바닥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우르릉거리면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였다......

그들은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잔디 언덕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검은 호수의 매끄러운 표면이 한눈에 보였다. 그런데 호수의 표면이 마구 출렁거리더니 깊은 호수 가운데에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호수의 표면에 커다란 거품이 일어나면서 질퍽한 둑 위로 파도가 철썩거렸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에서 마치 호수 바닥에 있던 거대한 물구멍 마개가 뽑혀져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마구 소용돌이가 일었다.......

잠시 후에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장대처럼 보이는 길고 까만 것이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해리의 눈에 돛대가 보였다......

"돛대야!"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거대한 배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서서히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덤스트랭의 배가 은은한 달빛을 받으면서 번쩍거렸다. 그것은 마치 물에서 건져 올린 난파선처럼 이상하게 뼈대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희미하고 몽롱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둥근 유리창은 마치 유령의 눈처럼 보였다.

마침내 물을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거대한 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동안이나 요동치는 물 위에서 출렁이던 배는 호수의 둑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퍽!

닻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번에는 둑 위로 널빤지를 내리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배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통해 그들의 검은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해리는 덤스트랭 학생들이 왠지 크레이브와 고일처럼 덩치가 아주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덤스트랭 학생들이 현관 복도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다가오자, 체격이 그렇게 커다랗게 보였던 이유는 그들이 북실북실한 모피를 입고 있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성으로 인솔하는 한 남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은빛이 감도는 다른 종류의 모피를 입고 있었다.

"덤블도어! 안녕하십니까?"

언덕을 따라 올라오던 남자가 힘차게 외쳤다.

"아주 잘 지냈소. 고맙소, 카르카로프 교수."

덤블도어 교수가 손을 흔들면서 대답했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목소리는 아주 낭랑하고 매끄러웠다. 현관 빌빛에 비친 카르카로프의 모습은 덤블도어 교수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느낌을 주었다. 하얀 머리카락은 짧게 잘랐으며 다소 날카로운 인상의 턱에는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염소 수염이 나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덤블도어에게 걸어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덤블도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운 호그와트."

카르카로프라 성을 올려다보면서 미소 짓자, 약간 누런 이빨이 드러났다. 비록 입술은 상냥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차갑고 날카롭게 빛났다.

"이곳에 오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군요. 얼마나 좋은지...... 빅터! , 서둘러라. 따뜻한 곳으로 가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덤블도어? 빅터는 지금 가벼운 코감기에 걸려서......"

카르카로프 교수가 덤스트랭 학생들 가운데 한 명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 학생이 옆을 지나가는 순간, 해리는 그 두드러진 매부리코와 짙은 눈썹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단번에 그 학생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론이 해리으 팔을 툭 치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해리, 크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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