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불의 잔 1
제1장 리들 하우스
리들 가족이 그 저택에서 살았던 것은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리틀 행글턴 마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 저택을 '리들 하우스'라고 불렀다. 기들 하우스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는데,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아서 유리창이 여기저기 깨져 있었으며 지붕도 군데군데 기와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깨진 창문들을 가리기 위해 덕지덕지 붙여 놓은 나무 판자는 마치 흉터처럼 보였다. 제멋대로 뻗은 담쟁이 덩굴은 리들 하우스를 온통 무성하게 뒤덮고 있었다. 한때는 훌륭한 정원이 딸린, 인근 몇 킬로미터 내에서 가장 웅장하고 장엄한 건물이라는 명성을 자랑했던 리들 하우스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하고 버려진 저택이 되었다.
리틀 행글턴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서 그 낡은 저택이 어쩐지 '으스스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50년 전에 리들 하우스에서 벌어진 어떤 이상하고 끔찍한 사건 때문이었다. 마을 노인들은 아직까지도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으레 그 당시에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우려낸 그 이야기는 여기저기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져서 이제는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이야기하든 처음 시작 부분은 똑같았다. 50년 전의 어느 여름날 새벽, 하녀가 거실로 들어갔다가 리들 가족 세 사람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리들 하우스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던 시절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깜짝 놀란 하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미친 듯이 마을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자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깨웠다.
"주인님 식구들이 모두 죽었어요! 두 눈을 부릅뜬 채,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어요! 저녁 식사 때 모습 그대로 말이에요!"
경찰은 그 신고를 받자마자 즉시 출동했다. 리틀 행글턴 마을 전체가 온통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리들 가족의 참사를 보고 흥분과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빈말이나마 리들 가족을 애도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리들 가족은 그 마을에서 원성이 자자했기 때문이었다. 리들 부부는 돈이 많은 부자였지만 거만하고 무례한 속물이었으며, 아들인 톰은 부모보다 한술 더 뜨는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오직 살인자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다. 멀쩡히 살아 있던 건강한 가족 세 명이 하룻밤 사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떼죽음을 당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에 '사형수'라는 이름의 선술집은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온 마을이 살인자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리들 하우스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사람이 나타나자, 일순 분위기가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요리사는 선술집에 모여있던 사람들에게, 조금 전데 프랭크 브라이스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따뜻한 집을 놔두고 선술집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충분히 그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프랭크가!" 그 소식을 듣고 몇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어!"
프랭크 브라이스는 리들 하우스를 관리하는 정원사였다. 프랭크는 리들 하우스 정원에 있는 아주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딱딱하게 마비된 다리를 끌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프랭크는 지금까지 줄곧 리들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성미가 유별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시끄러운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사람들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요리사에게 술을 사 주면서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항상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백포도주를 네잔이나 마신 후에 요리사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성격이 좀 무뚝뚝했어요. 아마도 백번은 더 대접했을 거예요. 하지만 프랭크는 절대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건……." 바에 있던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프랭크는 아주 끔찍한 전쟁을 겪었어요. 그래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었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만한 이유는……."
"그 사람 말고는 또 누가 뒷문 열쇠를 갖고 있죠?" 요리사가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정원사는 오두막집에 항상 비상 열쇠를 보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난 밤에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흔적은 전혀 없어요! 깨진 창문도 없다구요! 프랭크는 우리가 잠자고 있는 틈을 타서 그 커다란 저택으로 몰래 들어갔던 거예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의혹에 찬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는 항상 그 사람이 험상궂게 보인다고 생각했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야."
바에 있던 한 남자가 툴툴거렸다.
"프랭크의 성격이 괴팍하게 변한 건 다 전쟁 탓이라오."
선술집 주인이 한마디 거들었다.
"전에도 제가 한번 말한 적이 있죠. 나라면 절대로 프랭크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안 그래요, 도트?"
구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약간 흥분한 듯이 말했다.
"그래, 성질이 더럽긴 하지." 도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직도 생각나. 프랭크가 어렸을 때……."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리틀 행글턴 마을에서는 프랭크 브라이스가 리들 가족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웃 마을 그레이트 행글턴의 어둠침침한 경찰서에서는 프랭크가 완강하게 자신의 결백을 거듭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리들 가족이 죽던 날 밤에 그 저택 근처에서 본 사람이라고는 새까만 머리카락에 얼굴이 창백한, 그 마을에서 처음 본 십 대 소년뿐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하지만 리틀 행글턴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 그런 소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경찰은 프랭크가 꾸며 낸 이야기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사태는 프랭크에게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리들 가족의 검시 결과는 단번에 모든 상황을 바꿔 놓고 말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경찰도 이렇게 이상한 보고서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시체를 부검한 검시관 팀은, 리들 가족 중에서 어느 누구도 독살되거나 날카로운 무기에 찔리거나 총에 맞거나 목이 졸렸거나 혹은 그들이 파악할 수 있는 그 어떤 종류의 상해도 입은 흔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시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리들 가족은 죽었다는 점 이외에는 모두들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검시관들도 그 시체를 보고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보고서 끝 부분에는(그래도 그 시체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굳게 결심한 듯이) 리들 가족은 모두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그 보고서를 보고 몹시 실망하면서 투덜거린 것처럼, 도대체 하루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사람들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겁에 질려서 죽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세 사람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다니……
리들 가족이 살해되었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경찰은 프랭크를 석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리들 가족은 리틀 행글턴 마을의 교회 묘지에 매장되었다. 리들 가족의 묘는 한참 동안이나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아직 의혹의 검은 구름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프랭크 브라이스가 리들 하우스의 정원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돌아갔다.
"난 프랭크가 리들 가족을 죽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경찰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믿을 수 없어." '사형수'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도트가 말을 이었다. "만약 프랭크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이 마을을 떠나겠지. 프랭크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걸 우리가 뻔히 다 알고 있는데……별 수 있겠어?"
하지만 도트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프랭크는 리틀 행글턴을 떠나지 않았다. 프랭크는 여전히 리들 하우스에 머물면서 새로 입주한 다른 가족을 위해 정원을 가꾸어 주었다. 그리고 또 그 다음에 이사온 가족을 위해서……. 왜냐하면 리들 하우스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가족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리들 하우스에 입주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저택이 어쩐지 불쾌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 원인이 가운데 하나가 프랭크였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게 되자 그 저택은 곧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리들 하우스를 구입했다. 그런데 새로운 주인은 그 마을에서 살지도 않았으며 그 저택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세금상의 이유' 로 저택을 보유만 하고 있는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그 내막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부유한 소유주는 정원 일을 하는 프랭크에게 계속해서 임금을 주었다. 일흔일곱 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프랭크는 거동이 몹시 불편한 상태였다. 귀도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부상당한 다리도 점점 더 뻣뻣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좋을 때에는 여전히 꽃밭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곤 했다. 그래도 잡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성하게 자라서 거의 프랭크를 뒤덮을 정도였다.
잡초를 뽑는 일이 몹시 힘들긴 했지만, 마들 소년들의 적대적인 태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을 소년들은 습관적으로 리들 하우스의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 마을 소년들은 또 프랭크가 열심히 일해서 말끔하게 가꾸어 놓은 잔디밭으로 자전거를 몰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한두 번은 그냥 낡은 저택 안으로 침입한 적도 있었다.
마을 소년들은 프랭크 노인이 헌신적으로 저택과 정원을 가꾸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정원으로 나온 프랭크가 지팡이를 마구 휘둘러 가며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대는 모습을 보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 마을 소년들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프랭크는 그 이유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 애들은 프랭크가 리들 가족을 죽인 살인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애들을 키우는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그래서 8월의 어느 날 밤, 문득 잠에서 깨어난 프랭크가 낡은 저택에서 뭔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보았을 때에도, 처음에는 그저 마을 소년들이 또다시 짓궂은 장난을 하는 줄만 알았다.
프랭크가 잠에서 깨어난 건 다리의 통증 때문이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다리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프랭크는 뻐근한 무릎의 통증을 달래기 위해 물병에 더운 물이나 다시 채울 요량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갔다. 부엌으로 들어간 프랭크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주전자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든 프랭크의 눈에, 리들 하우스의 이층 창문에서 희미하게 깜박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프랭크는 단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마을 소년들이 또다시 저택으로 침입한 것이다. 불빛이 깜박거리는 걸 보면, 이제 막 불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았다.
리들 가족 살해 사건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가서 심문을 당했던 프랭크는 그 이후로 줄곧 경찰을 불신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시당초 경찰서에 연락할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게다가 프랭크의 오두막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프랭크는 즉시 주전자를 내려놓은 후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잠시 후에 다시 부엌으로 들어간 프랭크는 고리에 걸려 있던 녹슬고 낡은 열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벽에 기대 놓았던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갔다.
리들 하우스의 현관은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간 흔적이 전혀 없었다. 창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절뚝거리면서 저택 뒤로 걸어간 프랭크는 담쟁이 덩굴로 거의 가려진 뒷문을 향해 살며시 다가갔다. 그리고 낡은 열쇠를 꺼내서 자물쇠에 집어 넣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열었다.
프랭크는 동굴처럼 어두운 부엌으로 들어갔다. 무엇인가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록 여러 해 동안 저택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지만, 프랭크는 짙은 어둠 속에서도 현관으로 통하는 문의 위치를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프랭크는 손으로 앞을 더듬으면서 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혹시라도 누군가의 발소리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운 채, 프랭크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현관문 양쪽에 있는 창살이 달린 창문 덕분에 그 주위는 약간 밝았다. 프랭크는 바닥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기면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두껍게 쌓인 먼지 덕분에 프랭크가 올라가는 발소리나 지팡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층계참에서 오른쪽으로 막 돌아섰을 때, 프랭크는 단번에 침입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챘다. 복도 끝에 있는 문이 조금 열려있었던 것이다. 그 틈새로 흘러나온 불빛이 어두운 복도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프랭크는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조용히 그 문을 향해 다가갔다. 프랭크는 조심스럽게 방을 살짝 엿보았다. 벽난로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관절 누가 벽난로에 불을 피운 것일까?
갑자기 방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프랭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아직 병에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 주인님."
"그건 나중에 먹도록 하지." 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번에도 역시 어떤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아주 날카롭고 찬 바람이 쌩 지나갈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자, 프랭크는 뒤통수에 드문드문 나 있는 머리카락이 바싹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웜테일, 나를 옮겨라. 벽난로와 좀더 가까운 곳으로……."
프랭크는 좀더 잘 들으려고 오른쪽 귀를 문에 바싹 갖다대었다. 달그락하고 무엇인가 딱딱한 것 위에 병을 내려놓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무거운 의자가 움직이면서 마룻바닥을 긁는 것 같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작달막한 체구의 남자가 문쪽으로 등을 돌린 채, 의자를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는 그 사람의 뒤통수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대머리였다. 잠시 후에 그 사람의 모습이 프랭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기니는 어디 있나?"
차가운 목소리가 물었다.
"저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님. 아마도 주위를 감시하기 위해 나간 것 같습니다……."
웜테일이 초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기니의 독을 뽑아라, 웜테일." 두 번째 목소리가 명령했다. "아무래도 나는 밤에 다시 그걸 먹어야 할 것 같다. 여행을 해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군."
프랭크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귀를 바싹 갖다대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 웜테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얼마 동안 이곳에 머무를 예정입니까?"
"일주일." 차가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쩌면 좀더 오랫동안 있게 될지도 모르지. 이곳은 그런대로 편안하군. 그 계획은 아직 시작할 수 없어. 퀴디치 월드컵이 끝나기 전에 행동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그 순간 프랭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마디가 굵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퀴디치'라는 이상한 말을 듣긴 들었지만, 아마도 귓속을 메우고 있는 귀지 때문에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퀴…… 퀴디치 월드컵이라뇨, 주인님?" 웜테일이 의아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프랭크는 손가락으로 훨씬 더 세게 귓구멍을 후볐다). "용서하세요, 주인님. 하지만……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아요……. 어째서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정말 멍청하군, 웜테일. 지금은 세계의 모든 마법사들이 영국으로 몰려들고 있단 말이다. 그리고 골치 아픈 마법부 놈들이 전부 나서서 눈에 불을 켜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신원을 확인할 거야. 머글들이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을 테니까…….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게 좋아."
프랭크는 더 이상 귀를 후비지 않았다. '마법부'와 '마법사' 그리고 '머글'이라는 이상한 단어들을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표현들은 어떤 비밀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이런 암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딱 두 종류밖에 없었다. 스파이와 범죄자. 프랭크는 지팡이를 더욱 단단히 잡으면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주인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까?"
웜테일이 신중하게 물었다.
"물론이다, 웜테일."
차가운 목소리가 마치 위협이라도 하듯이 날카롭게 대답했다. 잠시 동안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웜테일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재빨리 말했다. 마치 용기를 잃어버리기 전에 꼭 말해야겠다는 듯이…….
"해리 포터가 없더라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주인님?"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더 길었다.
"해리 포터 없이 그 일을 하자는 말이냐?" 두 번째 목소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알겠다……."
"주인님, 제가 그 아이를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웜테일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0아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만약에 우리가 다른 마녀나 마법사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이 훨씬 더 빨리 끝날 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떤 마법사를 이용하더라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틀 안에 적당한 사람을 데리고 돌아올 자신이 있습니다! 만약 잠시 동안 주인님 곁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제가 변장에 아주 능숙하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다른 마법사를 이용할 수도 있지. 그건 사실이야……."
두 번째 목소리가 신중하게 말했다.
"주인님, 그렇다면 아주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해리 포터에게 손을 뻗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 애는 워낙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어서……."
웜테일은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는 자진해서 다른 마법사를 데리고 오겠다는 건가? 나를 돌보는 일이…… 귀찮고 따분해서 그런 게 아닌가? 웜테일, 혹시 나를 버리고 달아나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주인님! 전…… 전 주인님을 떠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전혀!"
"거짓말하지 마!" 두 번째 목소리가 마치 위협을 하듯이 말했다. "웜테일, 난 모든 걸 알 수 있어! 너는 나에게 돌아온 걸 후회하고 있지. 그래, 내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비위가 상하는 거야, 나를 볼 때마다 네가 움찔움찔 한다는 걸 다 알고 있어. 나를 만질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것도 다 느낄 수 있지……."
"아니에요! 저는 헌신적으로 주인님께……."
"나에게 헌시하는 건 단지 네가 비겁하기 때문이야. 달리 갈 곳이 있었다면 굳이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자네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몇 시간마다 그걸 먹어야 하는데? 도대체 누가 내기니의 독을 뽑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인님은 기력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힘도 아주 강해졌고……."
"거짓말!" 두 번째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조금도 강해지지 않았어. 단지 며칠만이라도 혼자 남게 되면……. 너의 서투른 간호로 그나마 회복한 힘마저도 죄다 잃어버리고 말 거야. 입 닥쳐!"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던 웜테일이 즉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동안 프랭크는 딱딱거리면서 타 들어가는 장작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또다시 두 번째 남자가 저의 쉬쉬거리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아이를 이용하는 건 내가 이미 너에게 설명한 것처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에 다른 마법사를 이용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끈기 있게 기다렸어. 몇 달 정도 더 기다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내 계획대로 하기만 하면, 그 아이를 감싸고 있는 보호 따위는 무용지물이 될 거야. 오직 네가 약간만 더 용기를 내면 된다, 웜테일. 볼드모트 경의 엄청난 분노를 보고 싶지 않다면 어서 용기를 되찾으란 말이다!"
"주인님,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저는 머릿속에서 그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 보았습니다. 주인님, 버사 조킨스의 실종은 금방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겁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 이 일을 진행한다면, 만약 제가 저주를 내린다면……."
웜테일은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지껄였다.
"만약이라구?" 두 번째 목소리가 속삭였다. "만약? 만약 웜테일, 네가 충실하게 나의 계획을 따르기만 한다면, 마법부는 그런 일에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해치우도록. 공연히 법석 떨지 말고……. 내가 직접 그 일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의 내 상태로는……. 자, 웜테일. 이제 장애물 하나만 더 없애면 해리 포터를 손에 넣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너 혼자 그 일을 하라는 게 아니다. 때가 되면, 나의 충실한 부하가 다시 우리와 합류할 것이다!"
"저도 충실한 부하입니다!"
웜테일은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웜테일, 난 똑똑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필요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갖고 있는 사람도……. 그런데 자네는 불행하게도 그 어느 쪽으로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해."
"하지만 주인님을 찾아낸 건 접니다." 웜테일은 언짢은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말했다. "주인님을 찾아낸 건 바로 저라구요, 게다가 버사 조킨스를 데리고 온 사람도……."
"그건 사실이지." 두 번째 남자가 재미있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웜테일, 네가 어떻게 해서 그런 똑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자네는 그 여자가 얼마나 유용한지 전혀 모르고 있지 않았나? 안 그런가? 자네가 버사를 잡아 왔을 때만 해도……."
"저는…… 저는 버사가 유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님!"
"거짓말!" 두 번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이전보다도 더욱 재미있다는 투였다. "하지만……버사의 정보가 매우 요긴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지 않겠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계획을 세우지 못했을 테니까……. 그 점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게 될 것이다, 윔테일. 나는 자네가 날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도록 할 생각이다. 나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지경인 그런 일을 말이다.……."
"저…… 정말이세요, 주인님? 혹시 무슨 일인지?"
웜테일은 다시 겁에 질린 것 같았다.
"아, 웜테일. 지금 그 일을 알려 주면 뜻밖의 선물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자네의 역할은 제일 마지막에 있을 거야……. 하지만 약속하지, 자네는 버사 조킨스만큼이나 유용했었다는 영예를 안게 될 거야."
"혹시……. 혹시……." 입이 바짝 말랐는지 웜테일의 목소리가 갑자기 탁하게 변했다. "저도…… 죽이려는…… 건가요?"
"웜테일, 웜테일." 차가운 목소리가 달래듯이 말했다. "내가 왜 자네를 죽이겠나? 내가 버사를 죽인 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어. 심문이 끝난 추에 버사는 더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었지. 한마디로 무용지물이었어. 마법부로 돌아간 버사가 휴가를 즐기던 도중에 자네를 만났다고 상부에 보고하면 어떻게 되겠나? 마법부는 당장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히겠지. 마법부는 당장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히겠지. 마법부의 마녀가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마법사들을 길가 여관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하면 좋을 게 뭐가 있겠나?"
웜테일은 프랭크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두 번째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웃음 소리는 말투만큼이나 차갑고 불쾌한 인상을 주었다.
"차라리 버사의 기억을 바꾸는 게 좋았을 거라구? 그녀를 죽이지 않고 말이지? 아니야, 웜테일, 그건 너무 위험해. 기억력 마법은 강력한 마법사의 힘으로 깨어질 수도 있거든. 내가 버사를 심문할 때 이미 입증되었던 것처럼……. 버사로부터 빼낸 정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기억력에 대한 모욕이 될 거야, 웜테일."
복도에 서 있던 프랭크는 손에서 지팡이가 미끄러지는 것을 느꼈다. 손바닥에서 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무서운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차가운 목소리의 남자가 어떤 여자를 살해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양심의 가책도 없이 태연하게 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즐거운 듯이……. 그 남자는 몹시 위험한 인물이다. 미치광이다. 그리고 더욱 많은 살인을 계획하고 있다. 해리 포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 아이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프랭크는 지금부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악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즉시 경찰에 알려야만 한다. 몰래 이 저택에서 빠져나간 후에 곧장 마을로 내려가서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야만 한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프랭크는 엉거주춤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한 번만 더 저주를 내리면……호그와트에 있는 나의 충실한 부하가……. 해리 포터는 이미 내 손아귀에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다, 웜테일. 그건 분명해. 더 이상의 논쟁은 하지 않겠다. 쉿! 조용히……. 내기니의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갑자기 두 번째 남자의 목소리가 야릇하게 변했다. 그 남자는 프랭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프랭크는 아마도 그 남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쉿쉿 거리면서 섬뜩한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프랭크의 등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복도를 향해 고개를 돌린 프랭크는 깜짝 놀라서 그만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어떤 물체가 주르르 미끄러지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물체가 벽난로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다가오자, 프랭크는 그것이 길이가 무려 4미터나 되는 거대한 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뱀은 두꺼운 먼지가 쌓인 마룻바닥에 구불구불한 자국을 남기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프랭크는 너무나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뱀을 피하는 방법은 오직 살인자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만약 프랭크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꾸물거린다면 거대한 뱀이 달려들어서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나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그 뱀은 벌써 프랭크의 발 밑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뱀이 프랭크를 스치면서 지나갔던 것이다.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뱀은 문간 너머에 있는 차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는 쉿쉿거리는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뱀꼬리가 문틈 사이로 사라졌다.
프랭크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이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나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차가운 목소리의 남자는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쉿쉿거렸다. 문득 프랭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남자는 지금 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프랭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뜨거운 물병을 가지고 편안한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리가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리가 저절로 후들후들 떨렸다.
"조금 전에 내기니가 흥미로운 말을 했다네, 웜테일."
차가운 목소리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저……정말인가요, 주인님?"
웜테일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이야, 그래." 차가운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지금 방문 앞에서 머글 늙은이가 서 있다는 거야. 우리의 말을 엿들으면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거칠게 방문이 열렸다. 프랭크는 미처 몸을 숨길 틈이 없었다. 땅딸막한 체구의 대머리 남자가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프랭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머리 남자의 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으며 코는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로 뾰족했다. 나이가 별로 많은 것 같진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온통 하얗게 세어 있었다.
"어서 그 사람을 안으로 모시게, 웜테일. 손님이 오셨는데 예의를 차려야지?"
차가운 목소리는 벽난로 앞에 놓여 있는 낡은 안락의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거대한 뱀은 마치 끔찍하게 만든 애완견의 모조품처럼 낡을 대로 낡은 벽난로 깔개 위에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웜테일은 프랭크를 쳐다보면서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프랭크는 지팡이를 더욱 굳게 잡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문턱을 넘어갔다. 하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방을 비추는 빛이라곤 벽난로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전부였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빛은 벽에 가늘고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놓았다. 프랭크는 안락의자의 등받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그 남자의 키가 아주 작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들었나, 머글?"
그 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날 뭐라고 불렀소?"
프랭크는 용기를 내면서 반문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프랭크는 오히려 더욱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 항상 그랬던 것처럼…….
"머글이라고 불렀다." 차가운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그 말은 당신이 마법사가 아니라는 뜻이지."
"마법사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난 모르겠소." 프랭크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건 그저 오늘 밤에 경찰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뿐이오. 당신은 이미 살인을 저질렀고 앞으로 더욱 많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소! 하지만 당신은 나를 해칠 수 없을 거요." 프랭크는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이렇게 덧붙었다. "아내는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만약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당신은 아내가 없어." 차가운 목소리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당신은 이곳에 온다는 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어. 볼드모트 경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 머글. 나는 다 알고 있어……. 언제나 다 알고 있단 말이야……."
"그래?" 프랭크가 거칠게 말했다. "자네가 귀족이란 말이지? 그런데 당신은 아주 무례하군. 도통 예의가 없어. 뒤로 돌아서서 남자답게 얼굴이라도 좀 보고 말하는 게 어때?"
"하지만 난 보통남자가 아니야, 머글." 차가운 목소리는 간신히 들릴 정도로 나지막이 말했다. 불꽃이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인간보다 훨씬, 훨씬 더 위대한 존재니까. 하지만…… 왜 안 되겠나? 좋아. 당신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도록 하지……. 웜테일, 의자를 좀 돌려라."
부하가 투덜거리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금 뭘 하고 있나, 웜테일?"
작달막한 체구의 남자는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웜테일은 볼드모트가 앉아 있는 안락의자를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벽난로 깔개 위에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웜테일은 서서히 안락의자를 돌리기 시작했다. 안락의자의 다리가 벽난로 깔개에 걸리자, 뱀이 삼각형 모양의 징그러운 머리를 꼿꼿하게 치켜들었다.
잠시 후에 벽난로를 향해 놓여 있던 안락의자가 방향을 바꾸었다. 프랭크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프랭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팡이를 마룻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공포에 마구 질려서 마구 비명을 질렀다. 완전히 넋이 빠져버린 프랭크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그것이 요술 지팡이를 들어올리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프랭크는 초록색 불빛이 번쩍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뭔가 허공을 가르면서 휙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프랭크 브라이스는 썩은 통나무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몸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죽었다.
리들 하우스에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 해리 포터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제2장 흉터
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해리는 마치 달리기 경주를 한 사람처럼 가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갑자기 이마에 나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가 타 들어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뜨겁게 달궈진 철사를 이마에 갖다 대고 짓누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해리는 여전히 한 손을 흉터에 갖다댄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뻗어서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던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쓰자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오렌지색으로 물든 침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창밖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침실을 어슴푸레하게 밝혀 주었다.
해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흉터를 어루만졌다. 여전히 흉터가 쿡쿡 쑤시면서 아팠다. 해리는 램프를 켠 후에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거울을 쳐다보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깡마른 체격의 열네 살짜리 소년이 연한 초록색 눈으로 해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 소년의 눈길은 어쩐지 무척 불안한 것 같았으며 머리카락도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해리는 거울 속에 비친 번개 모양의 흉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그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무슨 꿈을 꾸었는데……. 해리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해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 두 명…….모르는 사람이 한 명……. 해리는 기억을 더듬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어두운 방의 희미한 영상이 떠올랐다…….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벽난로 깔개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웜테일이라 불리던 땅딸막한 체구의 피터…….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볼드모트! 문득 볼드모트의 형상이 떠오르자, 해리는 마치 커다란 얼음 조각이 위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졌다…….
해리는 두 눈을 꼭 감고 볼드모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았다……. 해리가 아는 거라곤 볼드모트의 안락의자가 빙 돌려지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조금 전에 해리는 너무나 무서운 공포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갑자기 흉터가 아파왔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던 걸까?
그런데 그 노인은 대관절 누구였을까? 분명히 꿈 속에서 어떤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그 노인이 고목처럼 마룻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머리 속이 어질어질 하고 혼란스러웠다. 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방의 영상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희미하게 그 방을 비추던 벽난로의 불빛……. 하지만 그것은 오므린 두 손에 물을 계속 담고 있기 위해 애를 쓰는 것과 같았다. 꿈 속의 기억은 해리가 붙들고 있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빠른 속도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볼드모트와 웜테일은 누군가를 죽였다……. 그들이 살해한 사람의 이름도 얼핏 들었던 것 같았지만, 해리는 그 이름을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해리!
해리는 얼굴에서 두 손을 내린 후에 살며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뭔가 이상한 것을 보게 되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그 방에는 이상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침대 발치에는 커다란 나무 트렁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속에는 커다란 냄비와 빗자루, 까만 망토, 여러 가지 마법책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해리의 책상 한켠에는 양피지 두루마리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다른 한켠에는 커다란 새장이 놓여 있었다. 보통 때라면 눈처럼 하얀 부엉이 헤드위그가 해장의 횃대에 앉아서 끄덕끄덕 졸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어젯밤에 해리는 그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책 속의 그림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밝은 오렌지색 망토를 입은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서로에게 빨간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해리는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법사 가운데 한 명이 15미터 높이의 골대에 매달린 고리 속으로 멋지게 공을 집어넣어 점수를 따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해리는 그 책을 탁 덮었다. 해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퀴디치조차도 그 순간만은 그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해리는 <캐논 팀과의 비행>이라는 책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가서 커튼을 걷었다.
프리벳 가는 흐릿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토요일 새벽에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었다. 특별히 눈길을 끌거나 하는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서성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집들은 창문에 매달린 커튼을 죄다 내린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그런데…… 해리는 어쩐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흉터를 어루만졌다. 지금 자꾸만 해리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해리는 이미 고통이나 부상을 당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한때 오른쪽 팔의 뼈가 몽땅 사라졌다가, 하룻밤 사이에 그 뼈가 다시 자라났던 적도 있었다. 물론 뼈가 완전히 자랄 때까지 해리는 줄곧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 일을 당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또다시 그 팔이 30센티미터 길이의 날카로운 독니에 찔리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다가 15미터 상공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이상야릇한 사고와 부상은 해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호그와트의 마법 학교에 다니면서 말썽거리만 골라 찾아 다니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이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지금 해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전에 이마의 상처가 아팠을 째, 볼드모트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가 프리벳 가에 숨어 있다니…….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해리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혹시라도 계단이 삐걱거리거나 망토 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갑자기 옆방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해리의 사촌 두들 리가 코를 고는 소리였다.
해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보처럼 깜짝 놀라다니……. 지금 이 집에는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두들리 밖에 없다. 그들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으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거나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해리는 지금 이 시간, 더즐리 사족이 잠을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그들이 깨어 있을 때에는 해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는 해리의 유일한 친척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형태든 마법이라면 몹시 혐오하고 경멸하는 머글이었다. 그것은 해리가 이 집에서 쓰레기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해리가 지난 3년 동안 성 브루터스의 구제 불능 소년 선도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동안 집에 없었던 거라며 해명하고 다녔다. 물론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아직 미성년 마법사였기 때문에 호그와트 밖에서 마법을 쓰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더즐리 가족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든지 잘못되기만 하면 무조건 해리의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해리는 그들에게 마법세계에서 보냈던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의논하거나 비밀을 털어놓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마의 흉터에서 느끼는 통증이나 볼드모트에 대한 걱정 따위를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해리가 애초에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것은 바로 볼드모트 때문이었다. 만약 볼드모트가 없었다면, 해리의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도 없었을 것이고 부모님도 여전히 살아 계셨을 것이다…….
100년 동안 가장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였으며, 13년 동안 꾸준히 힘을 회복하고 있는 볼드모트!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해리의 나이는 고작 한 살이었다. 볼드모트가 그의 집을 습격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포터 부부를 해친 후에, 볼드모트는 요술 지팡이를 들고 해리를 겨냥했던. 그리고 마법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성인 마녀와 마법사들을 해치울 때 사용했던 저주의 주문을 내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볼드모트의 마법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저주는 무방비 상태의 어린 꼬마를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주문을 내린 볼드모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그 충격으로 인해 해리의 이마에는 번개 모양의 흉터가 생겼으며, 볼드모트는 가까스로 목숨만 연명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시에 모든 힘을 잃어버린 볼드모트는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달아났다.
볼드모트가 종적을 감추자 오랫동안 공포에 질린 채 살고 있던 마법계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볼드모트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해리 포터는 단번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정작 해리 자신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열한 살이 되던 생일날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마치 단단한 물체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법계의 모든 사람들이 '해리'라는 이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유명 인사라는 사실을 안 해리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호그와트에 도착한 후에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항상 해리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번 여름 방학이 끝나면 해리는 호그와트의 4학년이 될 예정이다. 해리는 다시 성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2주일이나 더 기다려야만 했다.
해리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한번 방을 둘러보았다. 해리는 눈길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생일 카드에 가서 멈추었다. 그것은 두 명의 단짝 친구가 해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7월 31일에 보내 준 카드였다. 번개 모양의 흉터가 몹시 아팠다고 말하면, 그애들은 뭐라고 할까? 근심에 가득 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들릴 것만 같았다.
"흉터가 아프다구? 해리, 그건 정말로 심각한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께 당장 편지를 써! 나는 <일반적인 마법사 질병과 통증>이라는 책을 찾아보도록 하겠어……. 어쩌면 저주 흉터를 치료하는 방법이 그 책에 실려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 헤르미온느는 분명히 이런 식으로 충고할 것이다. 당장 호그와트의 거장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그 사이에 책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해리는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서 잉크빛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과연 책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볼드모트처럼 뛰어나 마법사의 저주를 받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해리 한 명뿐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법사 질병과 통증>이라는 책의 목록에서 해리의 증상에 대해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했다.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에게 알리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해리는 여름 방학 동안 덤블도어 교수님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은빛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덤블도어 교수가 팔다리를 쭉 뻗고 드러누워서 구부러진 매부리코에 선탠 로션을 바르고 있는 모습이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뾰족한 모자를 쓰고 바닥까지 질질 끌리는 마법사 망토를 걸친 채, 휴가를 즐기고 있는 덤블도어의 모습이 떠오르자, 해리는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덤블도어 교수가 어디에 있든지, 해리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헤드위그는 반드시 덤블도어 교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의 부엉이는 지금까지 주소가 전혀 없는 우편물을 수없이 날랐지만, 편지 배달에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뭐라고 써야 할까?
덤블도어 교수님께.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 이마에 나 있는 흉터가 아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해리 포터 올림.
해리가 생각해도 그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 순 없어. 그런데 단짝 친구 론 위즐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빨간 머리 론이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심각하게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네 흉터가 아파? 하지만……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네 근처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은…… 넌 알 거야, 그렇지? 그 사람이 또다시 너를 해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야. 안 그래?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해리. 어쩌면 저주 흉터는 언제나 조금씩 쑤시고 아픈 건지도 몰라……. 아빠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좋겠어……."
위즐리 씨는 마법부의 머글 문화유물 오용 관리과에서 근무하는 완전한 자격을 갖춘 마법사였다. 하지만 위즐리 씨도 저주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어쨌거나 해리는 이마의 흉터에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위즐리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위즐리 부인은 헤르미온느보다 훨씬 더 야단법석을 떨 게 너무나 분명했다. 론의 쌍둥이 형 프레드와 조지는 해리가 겁을 내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위즐리 가족은 해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족이었다. 해리는 머잖아 위즐리 가족이 자기를 집에 초대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론이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해리는 위즐리 가족을 방문했을 때, 이마의 흉터를 걱정하는 온갖 질문들은 결코 받고 싶지 않았다.
해리는 다시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해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스스로 그런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약간 창피하긴 하지만) 마치 부모처럼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 줄 수 있는 보호자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제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어른 마법사, 진심으로 해리를 염려해 주는 사람,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
잠시 후에 해리의 머리 속에 한 가지 해답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너무나 명백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바로 시리우스였다.
해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후에 얼른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양피지 조각을 끌어당기고는 독수리 깃펜에 잉크를 잔뜩 묻힌 후에 '친애하는 시리우스에게'라고 적었다.
해리는 편지를 쓰기 전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의논하는 게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금방 시리우스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약간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리우스가 자신의 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작해야 두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해리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시리우스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리우스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즈카반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즈카반은 영혼을 빨아먹는 눈먼 악마인 디멘터라는 생물이 지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법사 감옥이었다. 시리우스가 아즈카반에서 탈출하자, 디멘터들이 달아난 죄수를 찾기 위해 호그와트를 감시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시리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그 살인은 볼드모트의 추종자인 웜테일이 저지른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웜테일이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작년에 웜테일과 직접 대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덤블도어 교수만이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 주었을 뿐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해리는 마침내 더즐리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일단 시리우스가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기만 하면, 해리는 대부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단 웜테일을 잡아서 마법부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뜻밖의 사고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생쥐로 변신한 웜테일이 재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시리우스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벅빅이라는 히포그리프의 등에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이후로 시리우스는 계속 도망치는 중이었다. 만약 웜테일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해리는 새로운 가정을 가지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여름 내내 해리의 머리 속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더즐리 가족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버리고, 다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는 해리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비록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대부가 있다는 사실은 해리의 마음에 한결 위안이 되었다. 호그와트에서 사용하던 잡다한 물건들을 침실에 놓아 둘 수 있게 된 것도 전적으로 시리우스 덕분이었다.
더즐리 가족은 이전까지는 결코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더즐리 가족은 해리의 학교 트렁크를 층계참 벽장 속에 쑤셔 넣고 자물쇠로 굳게 잠가 버렸던 것이다. 이런 소동은 여름 방학 때마다 계속 되풀이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리를 구박하던 더즐리 가족은 내심 마법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해리가 아무런 마법도 쓰지 못하도록 모든 물건들을 빼앗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에게 대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더즐리 가족의 태도가 순식간에 180도로 바뀌었다. 그 대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해친 위험한 살인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해리는 시리우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더즐리 가족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프리벳 가로 돌아온 후에 해리는 시리우스로부터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들을 배달한 것은 부엉이가 아니라(마법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화려한 빛깔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열대 지방의 새들이었다.
헤드위그는 이 화려한 불청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새들은 다시 날아가기 전에 헤드위그의 물통에 담긴 물을 마셨다. 헤드위그는 그 점이 몹시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해리는 그 새들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을 볼 때마다 야자나무와 하얀 모래사장이 생각났던 것이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어디에 있든지(시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이 편지를 가로챌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밝히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원했다. 문득 해리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시리우스는 왜 남쪽으로 간 것일까? 그래, 어쩌면 디멘터들이 밝은 햇살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디멘터들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면 살아 남기 힘들 거야.
히리우스가 보낸 편지들은 아주 유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해리는 그 편지들을 침대 밑 마루판자 속에 감춰 두었다. 그 느슨한 마루판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던 시리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시리우스의 도움이 정말로 필요한 시기였다. 정말로…….
서서히 동이 트면서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아침 햇살이 비치자, 침실 벽들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도 이제 막 일어난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꼬깃꼬깃한 양피지 조각들을 대충 치우고 조금 전에 완성한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시리우스 아저씨께
지난번에 보내 주신 편지는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그 새의 덩치가 너무나 커서 하마터면 제 방 창문으로 들어오지 못할 뻔했답니다.
이곳은 언제나 똑같답니다. 두들리의 다이어트는 잘되지 않고 있어요. 이모는 두들리가 어제 자기 방으로 도넛을 몰래 갖고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이모와 이모부는 두들리가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용돈을 줄이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러자 굉장히 화가 난 두들리는 창밖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집어던지고 말았어요.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장치입니다. 그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죠. 이제 두들리에겐 관심을 쏟을 만한 메가-멀티레이션 3탄이 없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건 더즐리 가족이 아저씨에게 잔뜩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부탁만 하면 갑자기 아저씨가 나타나서 자기네들을 박쥐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제 흉터가 또다시 아팠어요. 지난번에 통증을 느꼈던 것은 볼드모트가 호그와트로 몰래 숨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볼드모트가 제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안 그런가요? 혹시 저주를 받아서 생긴 흉터가 몇 년 후에도 가끔씩 아프기도 하나요?
히 편지는 헤드위그가 돌아오면 곧바로 부치도록 하겠어요. 헤드위그가 잠깐 먹이 사냥을 나갔거든요. 벅빅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해리
좋아. 잘 썼어. 해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악몽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돌아오면 곧바로 보낼 수 있도록 양피지를 접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해리는 활짝 기지개를 켰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옷장 문을 열었지만, 이번에는 거울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해리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제3장 초대
해리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두들리는 이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해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버논 이모부의 불그스름하고 커다란 얼굴은 조간 신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말처럼 툭 튀어나온 이빨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잔뜩 오므린 채 자몽을 네 조각으로 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잔뜩 화가 난 두들리는 사각형 식탁의 한 면 전체를 턱 차지하고 앉아서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의 접시에 자몽 4분의 1조각을 담아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여기 있다, 두들리."
두들리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년말 통지서가 집에 도착한 다음부터 두들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두들리의 형편없는 성적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학교 선생님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가 바로 두들리라고 주장했으며, 버논 이모부는 '내 아들이 공부벌레처럼 기를 쓰고 공부만 하는 계집애 같은 녀석이 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들은 또한 통지서에 적힌 두들리의 생활 기록부도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거기에는 두들리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지적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 애가 좀 거칠기는 해요. 하지만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그런 착한 아이라구요!"
페투니아 이모는 눈물을 흐리면서 변명했다. 그러나 통지서의 맨 밑에는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학교의 양호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몇 마디 쓴 소견이 적혀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마구 침을 튀기면서 두들리가 비만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많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성장기의 소년이라고 우겼다. 두들리는 원래 뼈가 굵은 체격을 타고 났으며 사춘기의 일시적인 비만 증상으로 인해 다소 뚱뚱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가 아무리 울먹이면서 소리를 질러도, 그 학교의 교복 용품점에는 더 이상 두들리의 몸에 맞을 정도로 큰 니커 바지(무릎 아래에서 졸라매는 느슨한 반바지: 역주)가 없다는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양호 선생님의 눈에 비친 두들리의 모습은 거의 새끼 범고래의 크기와 몸무게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들리에게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는 말은 완전히 어불성설이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깨끗한 벽에 묻어 있는 손자국을 발견하거나 이웃 사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일에는 매우 뛰어난 눈썰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이 뚱뚱하다는 사실은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따라서-수많은 분노와, 해리의 침실 바닥까지 뒤흔들었던 시끄러운 고함 소리와, 페투니아 이모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른 후에-새로운 방법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스멜팅 학교의 양호 선생님이 발송한 다이어트 식단이 냉장고에 붙여진 것이다. 그 식단에는 두들 리가 가장 좋아하는 탄산음료와 케이크, 초콜릿과 햄버거 같은 것들은 몽땅 빠져 있었고, 그 대신에 과일과 야채를 비롯해서 버논 이모부가 '토끼밥'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다른 가족들 역시 그 식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해리의 접시 위에 자몽 4분의 1조각을 담아 주었다. 해리는 자신의 자몽 조각이 두들리의 접시에 놓인 것보다 훨씬 더 작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해리보다는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는 이층의 느슨한 마루판자 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해리가 그 다이어트 식단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여름 내내 당근이나 먹으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해리는 친구들에게 헤드위그를 보내서 간곡히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즉시 해리가 그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르미온느는 달지 않은 과자들(헤르미온느의 부모님은 두 분다 치과 의사였다)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상자를 헤드위그 편으로 보내 주었다. 호그와트의 사냥터지기인 해그리드는 록케이크(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단단한 과자 또는 건빵: 역주)가 잔뜩 담긴 봉지를 보내 주었다(하지만 해리는 록 케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그리드가 만든 음식을 먹고 골탕먹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위즐리 부인은 부엉이 에롤을 시켜서 과일 케이크와 각종 파이들을 보내 주었다. 가엾은 에롤. 나이가 많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에롤은 그 음식들을 해리에게 전달하고 돌아간 뒤, 그대로 앓아눕고 말았다. 그리고 꼬박 닷새가 지난 후에야 겨우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얼마 후에 해리는 자신의 생일(더즐리 가족은 해리의 생일을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갔지만)에 훌륭한 생일 케이크는 무려 네 개나 받았다. 론과 헤르미온느와 해그리드와 시리우스가 각각 하나씩 보냈던 것이다. 해리는 아직도 생일 케이크 두 개를 마루판자 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이층으로 올라간 후에 즐기게 될 멋진 아침 만찬을 고대하면서, 아무런 불평 없이 자몽을 먹기 시작했다.
버논 이모부는 신문을 접은 후에 못마땅한 눈길로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 접시에도 역시 4분의 1조각의 자몽이 담겨 있었다.
"이게 아침 식사란 말이야?"
버논 이모부가 페투니아 이모를 쳐다보면서 불만스러운 듯이 투덜거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매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버논 이모부를 흘겨보고는 고갯짓으로 두들리를 가리켰다.
두들리는 벌써 자신의 접시에 담긴 자몽을 다 먹어 치우고는 게걸스러운 눈빛으로 해리의 자몽을 심술궂게 노려보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체념한 듯이 수저를 집어 들면서 텁수룩한 콧수염이 너풀거릴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버논 이모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현관으로 나갔다. 페투니아 이모가 잠시 주전자에 눈길을 팔고 있는 사이에, 두들리는 번개같이 버논 이모부의 접시에 담겨 있던 자몽을 슬쩍 가로챘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현관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마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으며, 버논 이모부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더니 현관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찻주전자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무슨 소동이람?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기까지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1분가량 흐른 후에 버논 이모부가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은 완전히 납빛으로 질려 있었다.
"너." 버논 이모부가 해리를 노려보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실로 와라, 당장!"
도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일 때문에 난리법석을 더는 걸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던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버논 이모부는 거칠게 문을 쾅 닫았다.
"그러니까……." 버논 이모부는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마치 금방이라도 체포 영장을 내밀기라도 할 것처럼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요?' 해리는 당장이라도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문득 이른 아침부터 버논 이모부의 성질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턱없이 부족한 음식 때문에 버논 이모부는 이미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공연히 버논 이모부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게 막 도착했다." 버논 이모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해리를 노려보았다. "편지다. 너에 대한……." 버논 이모부가 보랏빛으로 쓰여진 편지지를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해리는 몹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버논 이모부에게 편지를 보낸 걸까? 그것도 나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집배원을 통해 편지를 배달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버논 이모부는 무서운 눈길로 해리를 노려본 후에 큰 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더즐리 부부에게
비록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해리를 통해서 우리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저의 아들 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으셨겠지요.
해리가 이미 말씀을 드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월요일 밤에 퀴디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저의 남편 아서가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분을 통해 일등석 티켓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해리를 데리고 그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랍니다.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이나 퀴디치 월드컵을 주최한 적이 없어서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답니다. 물론 우리는 나머지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해리가 우리 집에서 머물다가 기차를 타고 다시 학교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해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두 분의 답변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머글 집배원은 지금까지 우리 집으로 편지를 배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우리 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해리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몰리 위즐리
추신: 편지에 붙인 우표가 혹시라도 부족하지 않았기를…….
버논 이모부는 편지를 모두 읽은 후에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슨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걸 좀 봐라."
그건 위즐리 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던 봉투였다. 그 순간 해리는 억지로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 편지 봉투에는 온통 우표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더즐리네 집 주소를 써 놓은 앞부분 조금을 제외하고는…….
"위즐리 아줌마는 우표를 충분히 붙인 셈이네요."
해리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즐리 부인의 실수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듯이……. 누구라도 그런 실수는 저지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버논 이모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의 눈동자가 분노로 인해 차갑게 번뜩였다.
"그 집배원이 눈치를 챘단 말이다."버논 이모부가 이를 악 물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이 편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무척 알고 싶어했단 말이야. 집배원이 초인종을 눌렀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어!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편지는 고작 다른 편지들보다 우표가 조금 더 많이 붙어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논 이모부가 그런 일을 갖고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해리는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즐리 가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위즐리씨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아주 약간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알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버논 이모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별다른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담담하게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해리는 그토록 고대하던, 일생일대의 큰 기쁨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즐리 가족과 함께 꿈에 그리던 퀴디치 월드컵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만약 해리가 버논 이모부를 자극하는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혹시라도 버논 이모부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버논 이모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계속해서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해리는 침묵을 깨기로 결심했다.
"론의 집으로 가도 될까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랏빛이 감돌고 있던 버논 이모부의 큼지막한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더니 콧수염이 꿈틀거렸다. 해리는 그 콧수염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본능이 서로 충돌하면서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위즐리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해리를 보낸다면, 당연히 해리는 무척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3년 동안 해리가 행복해하는 꼴을 절대로 보지 못했던 버논 이모부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반면에, 나머지 여름 방학 동안 해리를 위즐리 부부의 집으로 보내 것은, 버논 이모부에게는 무척 고마운 제안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해리가 집에 있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버논 이모부의 입장에서는 이 주일이나 빨리 해리를 떠나보내는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할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부인이 보낸 편지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냐?"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면서 위즐리 부인이 남긴 서명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마 이모부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해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즐리 아줌마는 제 친구 론의 어머니예요. 지난 학기말에 호그…… 아니, 학교로 가는 기차를 타는 론을 배웅하기 위해 역으로 나오셨잖아요."
해리는 '호그와트 급행 열차'라고 말할 뻔하다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호그와트라는 말을 했다간 버논 이모부의 성질을 돋울 게 너무나 뻔했다. 해리가 다니는 학교의 이른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 집에서 거의 금기 사항이었다. 버논 이모부는 마치 무엇인가 대단히 불쾌한 것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큼지막한 얼굴을 찡그렸다.
"땅딸막한 여자 말이냐?" 마침내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빨간 머리 아이들을 잔뜩 데리고 있던?"
해리는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버논 이모부가 누군가를 '땅딸막하다'고 부르는 게 어쩐지 몹시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논 이모부의 아들 두들리는 세 살 이후로 계속 피둥피둥 살이 Wu서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더니, 마침내 키보다 몸통 둘레가 더욱 커져 버렸던 것이다.
버논 이모부는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정독하고 있었다.
"퀴디치라니?" 버논 이모부가 의아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퀴디치? 이 쓰레기 같은 건 또 뭐냐?"
해리는 또다시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스포츠에요. 빗자루를 타고 하는……."
해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겠다. 알겠어!"
버논 이모부는 어쩔 줄 모르면서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해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버논 이모부가 몹시 당황해하는 걸 보자,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버논 이모부는 자신의 집에서 '빗자루'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그는 편지를 다시 한번 정독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입술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두분의 답변을 보낼 수 있도록" 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버논 이모부가 내뱉듯이 물었다.
"그건 우리에게 아주 정상적인 방법이라는 의미예요." 해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가 말을 가로막기 전에,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이모부도 아시잖아요, 부엉이 집배원. 마법사들은 부엉이를 이용해서 우편물을 배달해요. 그게 정상적인 방법이에요."
버논 이모부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마치 진절머리가 나는 욕설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버논 이모부는 분노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빨리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버논 이모부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이웃 사람들이 창문에 귀를 대고 엿듣지나 않을까?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겠니? 이 집에서 그런 이상야릇한 말은 절대로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 "대관절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누가 사다 준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페투니아 이모와 내가 선물한 옷이야! 그런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건 모두 다 두들 리가 입던 낡은 옷이에요." 해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로 해리는 마음대로 손을 움직이려면 소매를 다섯 번이나 접어야 할 정도로 큰 스웨트 셔츠(운동선수가 보온을 위해 경기 전후에 입는 헐렁한 스웨터: 역주)를 입고 있었다. 스웨트 셔츠의 옷자락은 헐렁한 청바지의 무릎 언저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더 이상 꺼낼 생각도 하지 마라!"
버논 이모부가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더즐리 가족의 멍청한 규칙 하나 하나를 억지로 따랐던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이미 해리는 두들리의 다이어트 식단도 따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퀴디치 월드컵을 관람하지 못하도록 버논 이모부가 방해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작정이었다.
해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 수에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좋아요. 정 그렇다면 퀴디치 월드컵에 가지 않겠어요. 이제는 제 방으로 올라가도 되겠죠? 시리우스 아저씨에게 보낼 편지를 마저 써야만 하니까요. 이모부도 아시죠? 저의 대부 말이에요."
마침내 두들리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마법의 말을! 해리는 보랏빛이던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마치 아무렇게나 뒤섞인 까만 건포도 아이스크림처럼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네가…… 네가 그 살인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단 말이냐?"
버논 이모부는 짐짓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버논 이모부의 눈동자는 갑작스러운 공포로 인해 가늘게 수축되고 있었다.
"네, 그래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벌써 한참 동안이나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모부도 아시겠지만, 제 편지를 받지 못하면 시리우스 아저씨는 분명히 뭔가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해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그 말이 주는 효과를 즐기고 있었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버논 이모부가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단번에 버논 이모부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만약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면, 그 끔찍한 살인자는 버논 이모부가 해리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버논 이모부가 해리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버논 이모부가 해리에게 '너는 퀴디치 월드컵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면, 해리는 아마도 시리우스에게 그런 내용을 죄다 알릴 것이다. 그렇다면 시리우스는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 그런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었다.
버논 이모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콧수염을 기른 얼굴이 마치 우리처럼 투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결론을 빤히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해리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해리는 일부러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버논 이모부를 쳐다보았다.
잠시 수에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좋다. 빌어먹을! 그 멍청한…… 월드컵인지 뭔지 하는 곳에 가도 좋다. 위…… 위즐리……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라. 그 사람들이 널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물론 내가 널 데려다 줬으면 좋겠지만……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단다. 그리고 나머지 여름 방학은 그곳에서 보내도 좋다. 그리고 너…… 너의 대부…… 그 사람에게…… 네가 간다고 말하거라."
"알겠어요."
해리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허공으로 펄쩍 뛰어오르면서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해리는 조용히 뒤로 돌아서서 거실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 갈 수 있어! 위즐리네 집으로! 그리고 퀴디치 월드컵도 볼 수 있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던 해리는 하마터면 두들리와 부딪힐 뻔했다. 두들리는 문 뒤에 숨어서 해리가 혼나는 것을 가만히 엿듣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해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오자, 두들리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아침 식사는 정말 좋았어! 그렇지?"해리는 은근히 두들리를 약올렸다. "나는 정말로 배가 부른 것 같아. 넌 어때?"
해리는 성큼성큼 한 번에 세 칸씩 계단을 밟으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해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전에 돌아온 것 같은 헤드위그의 모습이었다. 새장 속에 앉아 있는 헤드위그는 커다란 호박색 눈으로 해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무엇인가 불쾌한 게 있는지 부리로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째서 헤드위그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아야!"
해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회색 깃털이 나 있는 작은 물체가 막 해리의 머리를 때렸던 것이다. 해리는 테니스공처럼 보이는 그 이상한 물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작은 부엉이 한 마리가 마치 사방으로 흩어지는 폭죽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손으로도 넉넉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부엉이였다. 그 부엉이는 무엇 때문인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비로소 해리는 그 부엉이가 발치에 편지 한 통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재빨리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 봉투에 적힌 글씨는 론의 필체가 분명했다. 해리는 봉투를 찢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냈다.
해리! 아빠가 월요일 밤에 열리는 퀴디치 월드컵의 티켓을 구하셨어. 아일랜드 대 불가리아의 경기야, 엄마는 지금 너네 머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계셔. 네가 우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글이야, 어쩌면 너네 이모부가 벌써 그 편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머글 우편이 얼마나 빠른지 잘 몰라. 어쨌거나 나는 이 편지를 피그 편에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해리는 잠시 '피그'(우리말로 '돼지'라는 뜻: 역주)라는 단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돼지라니? 해리는 다시 작은 부엉이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 부엉이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갓 주위를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보아도 돼지 같은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론의 글씨를 잘못 읽은 걸까? 급히 휘갈겨 쓴 듯한 론의 글씨는 너무나 구불구불했다. 해리는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드시 네가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너네 머글 가족이 좋아하든 말든 그건 아무런 상관없어. 네가 퀴디치 월드컵을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돼. 안 그래? 엄마와 아빠는 우리쪽에서 먼저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만약 너네 이모부가 좋다고 하면, 신속히 피그에게 답장을 보내도록 해. 우린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너를 데리러 갈 예정이야……. 만약 안 된다고 반대를 하더라도 피그에게 답장을 보내. 그래도 우리는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너를 데리러 가겠어.
헤르미온느는 오늘 오후에 도착할 거야. 퍼시 형은 국제 마법 협력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어. 팬티에 구멍이 나고 싶지 않으면, 우리 집에 있는 동안에는 외국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마.
나중에 보자. 론
"진정해!"
해리가 부엉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 작은 부엉이는 편지를 제대로 배달한 것이 무척 기뻤는지, 해리의 머리 위로 낮게 날아다니면서 미친 듯이 울어대고 있었다.
"이리 와. 답장을 써 보내야 하니까!"
잠시 후에 그 부엉이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헤드위그의 새장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았다. 헤드위그는 마치 가까이 오지도 말라는 듯이 그 부엉이를 냉담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새로운 양피지 조각을 꺼내서 독수리 깃펜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론, 모든 게 잘 해결됐어. 머글 이모부가 가도 좋다고 허락했어. 내일 오후 다섯 시에 보자.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
해리
해리는 편지를 아주 작게 접어서 부엉이의 다리에 묶었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몹시 흥분한 부엉이가 이리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간신히 편지를 매달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지가 제대로 매달린 것을 확인한 후에 해리는 부엉이를 풀어 주었다.
작은 부엉이는 다시 창 밖으로 날아가 이내 해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해리는 헤드위그를 향해 돌아섰다.
"긴 여행을 할 수 있겠니?"
해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헤드위그에게 물었다. 헤드위그는 부엉부엉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시리우스에게 배달할 수 있겠니?" 해리가 편지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잠깐만……. 마무리를 하는 게 좋겠어."
해리는 양피지를 펼친 후에 급히 추신을 덧붙였다.
만약 저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제 친구 론 위즐리의 집으로 하세요. 저는 남은 여름 방학 동안 그곳에 있을 거예요. 론의 아버지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을 구하셨대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헤드위그의 다리에 양피지를 묶었다. 해리가 편지를 묶는 동안 헤드위그는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게 굴었다. 마치 진정한 집배원 부엉이라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처럼…….
"네가 돌아올 무렵이면, 나는 벌써 론의 집에 가 있을 거야. 알았지?"
해리가 헤드위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헤드위그는 부리로 다정하게 해리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더니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통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해리는 헤드위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침내 헤드위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되자, 해리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헐거운 마루판자를 비틀자 커다란 생일 케이크가 나타났다. 해리는 마룻바닥에 앉아서 생일 케이크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난 정말 행복해! 나에겐 달콤한 케이크가 있지만, 두들리에겐 고작 자몽뿐이다.
아주 화창한 날씨였다. 어서 내일이 되었으면……. 마침내 프리벳 가를 떠날 수 있다. 이마의 흉터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퀴디치 월드컵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걱정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볼드모트조차도.
제4장 다시 버로우로
마침내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해리는 부지런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정오 무렵이 되자, 해리의 트렁크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물건들로 가득 찼다. 물론 해리는 세 가지 보물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투명 망토와 시리우스가 선물한 빗자루, 작년에 프레드와 조지가 준 호그와트의 비밀 지도였다. 해리는 헐거운 마루 판자 밑 비밀장소에 넣어두었던 음식을 모두 꺼내고, 혹시라도 잊어버린 마법 책이나 깃펜이 없는지 다시 한번 침실 구석구석과 틈새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해리는 벽에 걸려 있는 달력도 내렸다. 해리는 달력의 날짜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 나가면서 어서 빨리 9월 1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9월 1일은 해리가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 호그와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프리벳 가 4번지에 위치한 더즐리네 집을 휘감고 있었다. 더즐리 가족은 몹시 불안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상야릇한 마법사들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거라는 생각이 더즐리 가족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론의 편지를 받은 후에, 해리는 즉시 버논 이모부에게 가서 위즐리 가족이 내일 오후 다섯 시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얼굴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부디 그 사람들이 옷이라도 좀 제대로 차려입고 왔으면 좋겠구나." 버논 이모부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같은 족속들이 걸치고 다니는 옷 나부랭이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체면을 지키려면 제발 좀 정상적인 옷을 입는 게 좋을 거야.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해리는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위즐리 부부는 더즐리 가족이 '정상적'이라고 부를 만한 옷을 입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위즐리 형제들은 방학에 가끔씩 머글 옷을 입기도 하지만, 위즐리 부부는 항상 기다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도저히 그런 옷차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즐리 가족은 마법사에 대해서 아주 나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만약 그런 편견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위즐리 가족이 이상한 옷차림으로 나타난다면, 더즐리 가족은 몹시 무례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해리는 은근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버논 이모부는 가장 좋은 신사복을 입고 있었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버논 이모부가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 정장을 차려입은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속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가족을 압도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두들리의 몸이 약간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다이어트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해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겁에 질린 두들리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번에 두들리는 어른 마법사를 만나서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두들리의 엉덩이에서 꼬부라진 돼지꼬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 런던의 한 개인 병원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두들 리가 계속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면서 엉거주춤 걸어다니고 있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두들리는 적에게 똑같은 표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두들리는 음식(지방을 제거한 우유로 만든 커티지 치즈와 잘게 썬 샐러리)이 맛이 없다는 타박조차 하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페투니아 이모는 입술을 오므린 채 혀를 깨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해리에게 마구 비난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은 자동차를 몰고 오겠지?"
버논 이모부가 식탁 너머에서 소리쳤다.
"저어……."
해리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미처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벳 가 4번지와 버로우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위즐리 가족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찾아올 것인가?
위즐리 가족은 더 이상 자동차를 가자고 있지 않았다. 오래전에 보유하고 있던 낡은 포드 앵글리아는 아직까지도 호그와트의 금지된 숲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작년에 마법부의 자동차를 빌린 적이 있었다. 오늘도 마법부에서 자동차를 빌렸을까?
"아마도 그럴 거예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버논 이모부는 콧수염을 실룩거리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만약 다른 때라면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씨가 어떤 자동차를 몰고 오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버논 이모부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값비싼 자동차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만약 위즐리 씨가 값비싼 페라리를 몰고 온다고 하더라도 버논 이모부가 과연 호감을 보일지 의심스러웠다.
오후 내내 해리는 자기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치 사나운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는 경고라도 있었던 것처럼, 페투니아 이모가 몇 초마다 한 번씩 망사 커튼 사이로 거리를 내다보는 것을 차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4시 45분. 해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거실로 들어갔다. 페투니아 이모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계속해서 쿠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신문을 읽고 있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의 작은 눈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잔뜩 긴장한 버논 이모부가 사실은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두들리는 마치 돼지처럼 뚱뚱한 손으로 엉덩이 부분을 연신 가리고 있었다. 해리는 시계를 힐끗 쳐다본 후에 다시 현관 계단으로 나가서 앉았다. 거실에서 감돌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의 심장은 흥분과 긴장으로 마구 뛰고 있었다.
마침내 5시가 지났다. 정상 차림을 하고 있어서 땀을 흘리고 있던 버논 이모부는 현관문을 약간 열고 거리를 살짝 내다보았다. 그리곤 재빨리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심지어 늦게 오다니!"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네." 해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어…… 차가 많이 막혀서 늦는 게 아닐까요……."
10분……. 다시 15분이 지났다……. 해리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5시 30분이 되자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가 거실에서 퉁명스럽게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차라리 다른 약속을 할 걸 그랬어."
"늦게 도착하면 저녁 식사라도 대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어림도 없는 소리." 버논 이모부가 거칠게 소리쳤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왔다갔다 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 아일 데리고 곧장 돌아가야지, 어슬렁거리긴 어딜 어슬렁거려? 그런데 정말 오긴 오는 거야? 어쩌면 날을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 족속은 아마도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고장이 날 것 같은 고물 자동차를 몰고 오드드드드드든지!"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실문 안쪽에서 더즐리 가족 세 명이 정신없이 허둥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두들리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현관으로 도망쳐 나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해리가 두들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두들리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두들리는 여전히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린 채 뒤뚱거리면서 재빨리 식당으로 달아났다.
해리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서둘러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전원을 연결하면 전구에 들어오면서 마치 정말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꾸며 놓은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벽난로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판자로 막아 놓은 벽난로 뒤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던 것이다. 뭔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판자를 긁어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죠?" 벽으로 바짝 물러나 있던 페투니아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겁에 질린 얼굴로 벽난로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버논?"
그러나 채 일 초도 지나지 않아서 의혹이 풀렸다. 판자로 막힌 벽난로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아야! 프레드, 안 돼! 돌아가거라. 어서 돌아가라니까…….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구나. 조지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하거라. 아야! 조지, 안 돼! 공간이 없다니까……. 빨리 돌아가서 론에게 말하거라!"
"어쩌면 해리가 우리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빠. 이걸 치우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벽난로 뒤에서 누군가가 주먹으로 판자를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해리? 해리, 우리말이 들리니?"
더즐리 부부는 마치 한 쌍의 성난 족제비처럼 해리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게 무슨 소동이냐?" 버논 이모부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으르렁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위즐리 가족은…… 위즐리 가족은 플루 가루를 이용해서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거예요." 해리는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마법사들은 벽난로를 통해서 어디든지 여행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모부가 벽난로를 막아 놓아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잠깐만요."
해리는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소리를 질렀다.
"위즐리 아저씨? 제 말이 들리세요?"
갑자기 판자를 쾅쾅 두드리던 소리가 뚝 멈췄다. 벽난로 너머에서 위즐리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좀 해라!"
"위즐리 아저씨, 해리예요……. 여기 벽난로는 막혀 있어요. 벽난로를 통해서 들어오실 수는 없어요."
"제기랄! 도대체 왜 벽난로를 막아 놓은 거니?"
위즐리 씨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이 벽난로에는 전기 히터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해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래?" 위즐리 씨는 약간 흥분한 듯이 반문했다. "전기라고 했니? 플러그가 있는? 이런! 그걸 봐야 하는데……. 어디 생각을 좀 해보자……. 아야, 론!"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해리는 이제 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있니, 론." 프레드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맞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란다. 우리는 제대로 도착했어."
"그래, 우리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조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마치 벽에 짓눌려 있기라도 한 듯이 조지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얘들아, 얘들아……." 위즐리 씨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생각 좀 하게 조용히 있거라…一. 그래……. 그 길밖에 없는 것 같구나……. 해리, 뒤로 물러서거라."
해리는 재빨리 소파가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그러나 버논 이모부는 오히려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잠깐!" 버논 이모부가 벽난로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쾅!
판자로 막혀 있던 벽난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터졌다. 그 충격으로 인해 전기 히터가 거실을 가로질러 저 멀리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위즐리 씨와 프레드와 조지와 론이 자욱한 먼지와 파편을 헤치고 나타났다. 페투나아 이모는 비명을 지르면서 커피용 작은 탁자 쪽으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버논 이모부는 얼른 달려가서 페투니아 이모를 부축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린 채, 주근깨 하나까지도 똑같은 쌍둥이 형제 프레드와 조지를 비롯해서 모두들 머리카락이 빨간 위즐리 가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좀 낫군." 위즐리 씨는 기다란 초록색 망토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아, 해리의 이모와 이모부시군요!" 위즐리 씨가 안경을 똑바로 고쳐 쓰면서 말했다.
버논 이모부는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대머리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위즐리 씨는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버논 이모부는 재빨리 페투니아 이모의 손을 잡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버논 이모부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입술이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버논 이모부는 적어도 30년 정도는 더 늙어 보였다. 머리와 콧수염은 온통 하얀 먼지투성이였으며 가장 좋은 양복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위즐리 씨는 어색한 듯이 그냥 손을 내렸다. "벽난로가 저렇게 된 건 모두 다 저의 불찰입니다. 이 집의 벽난로가 막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댁의 벽난로를 플루 네트워크에 연결해 두었는데……. 그러니까 단지 하루 저녁만 가능하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해리를 데려가려고 했어요. 원칙적으로 머글들의 벽난로는 플루 네트워크에 연결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제가 플루 가루 단속반에게 미리 부탁해서 손은 좀 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건 제가 금방 원래대로 고쳐 놓을 수 있으니까요. 플루 가루로 저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낸 후에 선생님 댁 벽난로를 원래대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기 전에 말입니다."
위즐리 씨가 엉망이 된 벽난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더즐리 부부는 위즐리 씨의 말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더즐리 부부는 여전히 입을 닥 벌린 채 위즐리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페투니아 이모는 허둥지둥 버논 이모부의 등 뒤로 숨었다.
"안녕, 해리! 가방은 다 챙겨 두었니?"
위즐리 씨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층에 있어요."
해리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가방은 우리가 갖고 올게."
프레드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는 해리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더니 재빨리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해리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2년 전에 해리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몰고 찾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해리는 그 자동차를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해리는 어쩐지 프레드와 조지가 두들리를 슬쩍 만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두들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해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위즐리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 좋은 집이군요."
평소라면 티 하나 없이 깨끗했을 거실이 온통 뿌연 먼지와 지저분한 벽돌 조각으로 뒤덮여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조금이라도 먹혀들 리가 없었다. 더즐리 부부는 치를 떨면서 위즐리 씨를 노려보았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페투니아 이모도 다시 혀를 깨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뜩 겁에 질린 두 사람은 대꾸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위즐리 씨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글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면 위즐리 씨는 무엇이든지 아 좋아했던 것이다. 위즐리 씨의 눈길이 거실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향했다. 위즐리 씨는 지금 머글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살펴보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전기가 흐르고 있죠?" 위즐리 씨가 관심을 보이면서 말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저기 플러그가 있군요. 저는 플러그를 수집하죠." 위즐리 씨가 버논 이모부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배터리도 모으고 있어요. 배터리는 엄청 많이 모아 두었답니다. 아내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버논 이모부도 분명히 위즐리 씨가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는 페투니아 이모의 몸을 완전히 가리기 위해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였다. 갑자기 위즐리 씨가 달려들어서 자기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들 리가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두들리의 얼굴에는 몹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조금 전에 해리의 트렁크가 계단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 소리에 더럭 겁이 난 두들 리가 식당에서 뛰쳐나온 것이 분명했다.
두들리는 잔뜩 겁에 질린 눈초리로 위즐리 씨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벽을 따라 서서히 발을 옮겼다. 엄마와 아빠의 등뒤로 몸을 숨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버논 이모부의 체격은 깡마른 페투니아 이모의 몸 정도는 충분히 가릴 수 있었지만 두들리를 감싸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 이 아이가 네 사촌이구나. 그렇지, 해리?"
위즐리 씨는 다시 한번 용감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가 바로 두들리예요."
해리와 론은 재빨리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후에 얼른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두들리는 여전히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위즐리 씨는 두들리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호기심을 느꼈다.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방학 잘 보내고 있니. 두들리?"
뒤즐리 씨가 친절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 억양으로 보면, 위즐리 씨는 두들리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더즐리 부부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위즐리 씨가 두들리에게 두려움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두들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훌쩍훌쩍 울먹이기만 했다. 해리는 두들리가 두 손으로 큼지막한 엉덩이를 더욱 세게 움켜잡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가 해리의 트렁크를 들고 다시 거실로 들어오다가 두들리를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 작은 악마와 같은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 좋아."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서두르는게 좋겠구나."
위즐리 씨는 망토 자락을 들어올리더니 요술 지팡이를 꺼냈다. 두들리 가족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인센디오!"
위즐리 씨가 요술 지팡이를 들고 엉망이 된 벽난로 구멍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그러자 벽난로에서 금방 불길이 솟아올랐다. 마치 몇 시간 동안이나 줄곧 타오르고 있었던 것처럼, 불길은 경쾌하게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위즐리 씨는 주머니에서 졸라매는 끈이 달린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가루를 조금 꺼내서 불길 속으로 던졌다. 그러자 불길이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면서 더욱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서 가거라, 프레드."
위즐리 씨가 프레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 프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잠깐만요……."
프레드의 주머니에서 과자 봉지가 떨어졌다. 여러 가지 색깔의 포장지로 싼 태피(설탕, 버터, 땅콩을 섞어서 만든 캔디: 역주)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프레드 바닥에 떨어진 태피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은 다음, 다시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프레드는 더즐리 가족을 향해 명랑하게 손을 한 번 흔들어 봉이더니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버로우!"
프레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불 속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란 페투니아 이모가 진저리를 치는 사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음은 네 차례다, 조지." 위즐리 씨가 조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트렁크를 들고 가거라."
해리는 조지가 트렁크를 들고 불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벽난로 앞에 도착하자, 해리는 조지가 잘 잡을 수 있도록 트렁크의 방향을 돌려주었다.
"버로우!"
이번에도 휙 소리가 나더니 조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론, 다음엔 너다."
위즐리 씨가 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론이 주문을 외우자, 그의 모습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해리와 위즐리 씨뿐이었다.
"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해리가 더즐리 가족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더즐리 가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벽난로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위즐리 씨가 손을 내밀어 해리를 가로막았다. 위즐리 씨의 시선은 더즐리 가족을 향해 있었다. 더즐리 가족은 여전히 몹시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가 인사를 하잖습니까?" 위즐리 씨가 더즐리 가족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듣지 못했나요?"
"아무려면 어때요." 해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 상관없어요."
하지만 위즐리 씨는 해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버논 이모부에게 말했다. "내년 여름까지는 조카를 만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작별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자기 집 거실벽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람에게 충고를 듣는다는 생각 때문에 무척 괴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위즐리 씨의 손에는 여전히 요술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작은 눈으로 요술 지팡이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주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거라."
"안녕히 계세요."
해리는 초록빛 불길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초록색 불길은 따뜻한 입깁처럼 부드럽게 해리를 감싸 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해리의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흉악한 괴물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페투니아 이모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해리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두들리는 더 이상 부모의 등 뒤에 숨어있지 않았다. 두들리는 커피용 탁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욱욱거리고 있었다. 두들리의 입에서 보랏빛의 미끈미끈한 것이 길게 흘러나와 있었다. 그 이상한 물체의 길이는 30센티미터가 넘는 것 같았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후에 해리는 이상하게 생긴 길쭉한 물체가 바로 두들리의 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들리의 주위에는 태피를 싸고 있던 여러 가지 색깔의 포장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얼른 두들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잔뜩 부풀어 오른 혀 끝을 움켜잡더니 입 밖으로 빼내려고 애를 썼다. 페투니아 이모가 마구 혀를 비틀자, 당연히 두들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푸푸거렸다. 두들리는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버논 이모부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두들리!"
버논 이모부를 고함을 지르면서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위즐리 씨는 자신의 말이 들리도록 하기 위해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정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위즐리 씨는 두들리의 혓바닥을 고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페투니아 이모가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두들리를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위즐리 씨가 요술 지팡이로 두들리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는 거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아니에요, 정말!" 위즐리 씨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이건 아주 간단해요. 마법의 태피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 아들 프레드가…… 장난을 친 거라구요. 하지만 그건 탐식 마법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제가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더즐리 가족은 안심하기는커녕, 한층 더 겁에 질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신경질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두들리의 혀를 뽑기라도 할 것처럼 힘껏 잡아당겼다. 페투니아 이모가 혀를 잡아당기자, 두들리는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버논 이모부는 장식장 선반에 놓여 있던 도자기 인형을 집어 들더니 위즐리 씨를 향해 힘껏 던졌다. 하지만 위즐리 씨가 얼른 고개를 숙이면서 피하는 바람에 도자기 인형은 벽난로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정말입니다!" 화가 난 위즐리 씨가 요술 지팡이를 휘둘르면서 말했다. "저는 그저 돕고 싶을 뿐이에요! 두들리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버논 이모부는 마치 상처를 입은 하마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또 다른 장식품을 집어 들었다.
"해리, 가라! 그냥 가!" 위즐리 씨가 요술 지팡이로 버논 이모부를 겨냥하면서 소리쳤다. "여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마!"
해리는 그 재미있는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버논 이모부가 던진 두 번째 장식품이 해리의 왼쪽 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자 결국 그 상황은 위즐리 씨에게 맡겨 누는 게 가장 놓겠다고 생각했다.
"버로우!"
해리는 주문을 외우면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사라지기 직전에 힐끗 고개를 돌려서 어깨 너머로 거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본 거실의 풍경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위즐리 씨는 요술 지팡이로 버논 이모부가 들고 있던 세 번째 장식품을 폭파시키고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를 감싸 안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두들리의 혀는 마치 거대한 비단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해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빛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더즐리 가족의 거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제5장 위줄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
해리는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채 점점 더 빨리 빙글빙글 돌았다. 흐릿한 벽난로들이 해리의 눈앞을 휙휙 스치면서 지나갔다. 자꾸만 속이 울렁거려서 해리는 두 눈을 꼭 감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에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무사히 론의 집에 도착한 해리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서 재빨리 손을 뻗었다.
"두들리가 그걸 먹었니?"
프레드가 다가오더니 벽난로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잔뜩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해리가 똑바로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응. 그게 뭐였어?"
"혓바닥 늘이기 태피. 그건 조지와 내가 발명한 거야. 우리는 여름 내내 그걸 시험해 볼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 프레드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삽시간에 식당은 떠들썩한 웃음바다가 되었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론과 조지가 나무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 두 명이 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카락도 위즐리 가족처럼 빨간색이었다. 해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위즐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큰형 둘째 형인 빌과 찰리였다.
"안녕, 해리?"
해리와 좀더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빨간 머리 남자가 씩 웃으면서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해리는 그 남자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 남자의 손가락은 온통 물집투성이였으며, 여기저기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용을 연구하고 있는 찰리가 분명했다. 찰리는 쌍둥이들처럼 몸이 건장했으며, 호리호리하고 키가 껑충한 퍼시나 론보다는 키가 약간 작은 편이었다. 작달막한 신체에 비해 약간 큰 듯한 인상을 주는 찰리의 얼굴은 전반적으로 선량한 느낌을 주었는데, 주근깨가 어찌나 많았던지 꼭 햇빛에 그을린 것처럼 보였다. 억센 두 팔은 완전히 근육질이었다. 그런데 한쪽 팔에는 불에 덴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빌도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나더니 다정하게 해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해리는 빌의 모습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해리는 마법사 은행 그린고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빌이 호그와트 시절에는 전교 학생회장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항상 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기를 좋아하고 어쩌다가 한 번 규칙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퍼시와 같은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빌은 한 마디로 '멋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키가 아주 훤칠했고, 긴 머리를 가지런히 묶었으며, 귀에는 어금니처럼 생긴 귀고리를 하고 있었다. 빌의 부츠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가죽이 아니라 용가죽으로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록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요란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미처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에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허공에서 위즐리 씨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위즐리 씨는 몹시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지금까지 위즐리 씨가 그토록 화를 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장난이라고 치는 거냐, 프레드! 네가 저 머글 아이에게 준 게 도대체 뭐냐?"
위즐리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가 준 게 아니에요. 전 그저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죄밖에 없어요……. 함부로 그걸 집어먹은 애의 잘못이죠. 저는 걔더러 먹으라고 한 적이 없어요."
프레드는 또다시 작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네가 일부러 떨어뜨렸잖아! 너는 그 애가 그걸 집어먹을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어. 네 속셈은 바로 그게 아니었니? 너는 그 애가 다이어트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이다!"
위즐리 씨가 프레드를 쳐다보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 애의 혓바닥이 얼마나 커졌어요?"
조지가 몹시 궁금해하며 물었다.
"내가 다시 그 혓바닥을 원래대로 고쳐 놓기 전에는 1미터도 넘었다! 그 애의 부모를 설득해서 겨우 치료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내가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니?"
해리와 위즐리 형제들은 일제히 떠들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을 일이 아니야!" 위즐리 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런 행동이 마법사와 머글의 관계를 아주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여태까지 나는 마법사가 함부로 머글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애써 왔는데……. 도대체 내 자식들은……."
"우리는 그 애가 머글이기 때문에 그걸 준 게 아니에요!"
프레드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그 애는 약자를 괴롭히는 아주 못된 녀석이기 때문에 그걸 준 거라구요. 안 그러니, 해리?"
"그래요. 그 말이 맞아요, 위즐리 아저씨."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걸 먹이다니! 이번 일은 엄마에게 죄다 말할 테니까 다들 각오하는 게……."
위즐리 씨가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나한테 뭘 말한다는 거죠?"
그들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상냥한 얼굴에 키가 자그마하고 통통한 체격의 위즐리 부인이 막 식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의심스러운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머, 해리로구나." 해리를 발견한 위즐리 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서?" 위즐리 부인은 다시 싸늘한 눈빛으로 남편을 노려보았다.
위즐리 씨는 몹시 당황해하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프레드와 조지의 행동에 몹시 화가 나긴 했지만, 위즐리 씨는 정말로 그 일을 부인에게 일러바칠 생각을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위즐리 씨는 초조한 표정으로 힐끔힐끔 아내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위즐리 씨의 등 뒤에서 여자아이 두 명이 나타났다. 숱이 많은 갈색 머리카락에 앞니가 약간 큰 여자아이는 해리와 론의 친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였으며, 키가 좀 작달막하고 머리카락이 빨간 여자아이는 론의 여동생 지니였다.
식당 문간에 서 있던 두 사람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해리도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지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해리가 버로우에 처음 도착했던 날부터 줄곧 지니는 해리에게 푹 빠져 있었다.
"나한테 할 말이 뭐죠, 아서?"
위즐리 부인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남편을 흘겨보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삽시간에 식당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무것도 아니오, 여보. 그저 프레드와 조지가……. 하지만 내가 벌써 따끔하게 야단을 쳤소."
위즐리 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저 애들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저질렀어요? 혹시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과 무슨 관련이라도……."
위즐리 부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론, 해리가 묵게 될 방을 보여주는 게 어때?"
헤르미온느가 불쑥 입을 열었다.
"해리는 자기가 잘 방을 이미 알고 있어. 바로 내 방이거든. 지난번에도 내 방에서 잤단……."
론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우리 모두 그 방으로 가는 게 어때?"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론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아하." 비로소 론은 헤르미온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좋아."
"그래, 우리도 갈게."
조지가 얼른 거들었다.
"넌 그냥 제자리에 있어!"
위즐리 부인이 으르렁거리면서 소리쳤다. 해리와 론은 위즐리 부인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식당에서 나갔다. 거기서 꾸불대다가는 불똥이 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와 지니는 재빨리 식당을 벗어나서 좁은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지그재그 모양의 계단을 다라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런데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이라는 게 도대체 뭐니?"
해리가 물었다. 그 말을 듣자 론과 지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오히려 정색을 하면서 조금도 웃지 않았다.
"엄마가 프레드와 조지 형의 방을 청소하다가 한 다발이나 되는 상품 주문 용지를 발견했어. 그건 형들이 발명한 물건을 적어 놓을 굉장히 기다란 목록이야. 형들은 그 발명품들의 정가도 매겨 놓았지. 너도 알잖아. 장난을 치는 도구 말이야. 정말 기막힌 것들이야. 나는 형들이 그런 걸 발명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론은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오빠들 방에서 뭔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그런 물건을 만들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 우리는 그저 오빠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걸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지 뭐야."
지니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말했다. 그러자 론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계속했다.
"하지만 형들이 발명한 물건 대부분은-아니, 사실은 전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약간씩 흠이 있어. 그건…… 그물건들이 조금 위험하다는 거야. 그런데 형들은 그걸 호그와트 학생들에게 팔아서 돈을 벌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당연히 엄마는 노발대발하셨지. 다시는 그런 물건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단단히 엄포를 놓은 후에 상품 주문 용지를 몽땅 불태우고 말았어……. 그렇지 않아도 엄마는 형들에게 굉장히 화가 나 있던 참이었어. 그러던 차에 이런 일이 터지고 만 거야. 형들은 엄마가 예상했던 것보다 O.W.L. 많이 받지 못했거든."
O.W.L.(Ordinary Wizarding Levels, 표준 마법사 수준)은 마법사의 수준을 나타내는 표준적인 지표로, 호그와트의 학생들이 열다섯 살 때 치르는 시험이었다.
"그 후에 얼마나 큰 소동이 벌어졌는지 몰라." 지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엄마는 내심 오빠들이 아버지처럼 마법부에 들어가서 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어. 하지만 오빠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지. 오빠들은 그저 장난감 가게나 차리고 싶을 뿐이라고 대답했어."
바로 그때 두 번째 층계참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뿔테 안경을 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몹시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 퍼시."
해리가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 안녕. 해리!" 퍼시가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나는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야. 서둘러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있어서……. 사람들이 계속 쿵쾅거리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니까 도무지 일에 몰두할 수가 없잖니. 나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은 딱 질색이야."
론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우리는 쿵쾅거리지 않았어. 그저 걸어갔을 뿐이란 말이야. 어쨌거나 마법부의 일급비밀 작업에 방해가 되었다니 미안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뭔데?"
해리가 묻자, 퍼시는 자랑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국제 마법 협력부에 제출할 보고서야. 우리는 큰 냄비의 두께를 표준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어. 외국에서 수입하는 냄비 중의 일부가 너무 얇단 말이야. 심지어 냄비가 새는 경우도 발생했어. 불량 냄비는 연간 3퍼센트 정도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어."
그러자 론이 비꼬면 말했다.
"그래, 정말 대단한 보고서네.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겠는 걸? 얼마 안 있어 <예언자 일보>의 1면을 장식하겠지. '불량 냄비' 뭐 이런 제목으로……."
"론, 너는 비웃을지도 모르지." 퍼시는 얼굴을 붉히면서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국제법을 마련해서 하루 빨리 규격을 통일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바닥이 아주 얇은 불량 냄비들이 시중에 흘러 넘치게 될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아주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그래, 그래, 알았어."
론은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퍼시는 짜증을 내면서 거칠게 방문을 닫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지니는 론의 뒤를 따라서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갔다. 위즐리 부인이 식당에서 지르는 성난 고함 소리가 그들이 있는 곳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위즐리 씨가 태피 사건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그들은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에 도착했다. 론이 잠을 자는 그 다락방은 지난번에 해리가 머물렀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처들리 캐논 팀의 포스터가 벽과 기울어진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처들리 캐논은 론이 가장 좋아하는 퀴다치 팀이었다. 해리는 예전에 개구리알이 들어 있던 창가의 수족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족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더 이상 개구리알이 아니었다. 굉장히 큰 개구리 한 마리가 떡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론이 기르던 애완용 생쥐 스캐버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작은 회색 부엉이가 새장 속에 들어 있었다. 그 부엉이는 펄쩍펄쩍 뛰면서 미친 듯이 지저귀고 있었다. 해리도 이미 그 부엉이를 잘 알고 있었다. 프리벳 가 4번지까지 날아와서 론의 편지를 배달해 주었던 바로 그 부엉이였다.
"시끄러워, 피그." 론이 비좁은 다락방에 억지로 쑤셔 넣은 듯한 네 개의 침대 사이로 지나가면서 말했다. "프레드 형과 조지 형이 우리와 함께 이방을 쓰게 될 거야, 해리. 빌 형과 찰리 형이 쌍둥이 형들의 방을 쓰고 있기 때문이야."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퍼시 형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독방을 쓰기로 했어."
"어째서…… 저 부엉이를 '피그'라고 부르는 거니?"
해리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 부엉이가 너무나 멍청하기 때문이야. 원래 이름은 피그위존이지만……."
지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대답했다.
"맞아. 하지만 피그위존이라는 이름은 전혀 멍청한 느낌이 들지 않잖아?" 론이 새장 속에 들어 있는 부엉이를 흘낏 쳐다보면서 빈정거리는 말투로 설명했다. "지니가 저 부엉이를 피그라고 불렀거든. 지니는 저 부엉이가 귀엽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부엉이의 이름을 다른 걸로 바꾸려고 했지. 하지만 이미 너무 늦고 말았어. 저 부엉이는 다른 이름을 부르면 도통 대답을 하지 않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냥 피그라고 불러. 부엉이는 일부러 새장 속에 가둬 놓았어. 왜냐하면 저 부엉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에롤과 헤르메스를 귀찮게 하기 때문이야. 사실은 나도 저 부엉이가 몹시 귀찮아."
피그위존은 부엉부엉 소리를 내면서 행복한 듯이 새장 안을 빙 돌았다. 하지만 해리는 론의 말을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리는 론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론은 예전에 갖고 있던 애완용 생쥐 스캐버스에 대해서도 불평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러나 막상 스캐버스가 사라지자, 론은 몹시 낙담하면서 헤르미온느와 싸우기까지 했었다. 헤르미온느의 고양이 크룩생크가 그 생쥐를 잡아먹은 줄 알았던 것이다.
"크룩생크는 지금 어디 있어?"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마 마당에 있을 거야. 크룩생크는 땅 신령들을 쫓아다니는 게 아주 좋은 모양이야. 지금까지 그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헤르미온느가 마당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대답했다.
"퍼시 형은 어떻게 지내? 마법부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던데……."
해리는 물어보면서 침대에 걸터앉아 천장에 붙어있는 처들리 캐논 팀의 포스터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포스터 속의 선수들이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야!" 론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완전히 푹 빠졌어. 아빠가 억지로 부르지 않았으면 아직까지도 마법부에 틀어박혀 있었을 거야. 집에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퍼시 형은 입만 벌리면 상관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고 있어. 크라우치 씨에 따르면……, 크라우치 씨는 내 말을 듣고……, 크라우치 씨의 생각은……, 크라우치 씨가 말하길……, 크라우치 씨와 퍼시 형은 너무나 사이가 좋아. 두 사람은 곧 약혼이라도 발표할 거야."
"여름 방학은 잘 보냈니, 해리? 우리가 보낸 음식물 소포는 받았어?"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응, 정말 고마웠어. 맛있는 케이크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
해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런데 소식은 들었니?"
론은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헤르미온느의 싸늘한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문득 해리는 론이 시리우스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만큼이나 시리우스의 안부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리가 시리우스를 구출할 때, 론과 헤르미온느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시리우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니 앞에서 시리우스에 대해 말하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들이 시리우스를 구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덤블도어 교수뿐이었다.
"이제 겨우 소동이 끝난 것 같은데?" 헤르미온느가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재빨리 얼버무렸다. 왜냐하면 지니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론과 해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몰리 아줌마는 지금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실거야. 우리가 좀 도와드리는 게 어떨까?"
"그래, 좋아."
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나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위즐리 부인은 혼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마당에서 하기로 했다. 열한 명이 식사를 하기에는 이곳이 비좁지 않겠니? 접시를 좀 마당으로 날라 주겠니, 얘들아? 빌과 찰리가 상을 차리고 있단다. 론과 해리는 포크와 나이프를 좀 맡아 다오." 위즐리 부인은 싱크대에 잔뜩 쌓여 있는 감자들을 향해 거칠게 요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위즐리 부인이 의도했던 것보다 조금 세게 마법이 걸린 것 같았다. 감자들은 정신없이 껍질이 벗겨지면서 벽과 천장으로 마구 튀어 올랐다.
"오, 이럴 수가!" 위즐리 부인은 요술 지팡이로 쓰레받기를 겨냥하면서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쓰레받기가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날아가더니, 감자들을 쓸어 담아서 싱크대 속에 집어넣었다. "저 말썽꾸러기 녀석들을 그냥!"
찬장에서 중국식 냄비와 팬을 꺼내던 위즐리 부인이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위즐리 부인은 프레드와 조지의 행동에 대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저 녀석들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 걸까? 정말로 모르겠어. 야심도 없는 것 같고……. 그냥 말썽만 피우지 않아도……."
위즐리 부인은 커다란 구리 냄비를 꺼내서 식탁 위에 털썩 내려놓고는 요술 지팡이를 집어놓고 휘젓기 시작했다. 요술 지팡이 끝에서 크림색의 소스가 흘러나왔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닌데……." 위즐리 부인이 냄비를 스토브로 가져가 요술 지팡이를 또 한 번 쿡 찔러 불을 켜면서 계속해서 화를 냈다. "저 녀석들은 머리를 엉뚱한 데다 쓰고 있어. 어떻게 해야 정신을 차릴까? 이런 식으로 계속 말썽만 부리다가는 나중에 진짜 곤란하게 될 거야.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은데 어째서 쟤들만 저 모양인지 모르겠어. 호그와트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저 녀석들 문제로 부엉이가 날아들고. 이러다간 마법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죄로 마법부에 불려가게 되고 말 거야."
위즐리 부인이 요술 지팡이로 나이프와 포크와 스푼을 비롯한 식기들이 잔뜩 들어 있는 서랍을 꾹 찌르자 서랍이 확 열렸다. 해리와 론은 몇 자루의 칼이 허공으로 붕 날아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냉큼 물로났다. 칼은 싱크대 속에 내던져졌던 감자들을 잘게 썰기 시작했다.
"쟤들이 왜 저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위즐리 부인은 요술 지팡이로 내려놓고 다른 냄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항상 저런 식이었어. 좀 잠잠하다 싶으면 또 터지고……. 도대체 말을 들어 먹어야 말이지……. 이런……. 이번에도 또!"
위즐리 부인이 식탁 위에 있던 요술 지팡이를 다시 집어든 순간, 요술 지팡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더니 어느새 거대한 고무 생쥐로 변하고 만 것이다.
"가짜 요술 지팡이야!" 위즐리 부인이 짜증을 내며 소리질렀다. "이런 물건을 아무 데나 굴러다니게 하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위즐리 부인은 진짜 요술 지팡이를 집어 들고 빙 돌아섰다. 스토브에 올려놓은 냄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소스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 와, 해리." 론은 활짝 열린 서랍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한 줌 집어 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빌 형과 찰리 형이나 돕자."
그들은 슬금슬금 위즐리 부인의 눈치를 보면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서 헤르미온느의 안짱다리 황갈색 고양이 크룩생크가 꼭 더러운 감자처럼 보이는 것을 뒤쫓아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크룩생크는 쇠뜨기풀처럼 생긴 꼬리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해리는 크룩생크가 뒤쫓고 있는 것이 땅 신령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 땅 신령의 키는 25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작은 발로 종종걸음을 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작달막한 땅 신령은 문가에 흩어져있는 기다란 장화 속으로 앞발을 집어넣었지만, 미처 닿지 않았다. 그러자 땅 신령이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낄낄거리면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뒷마당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와 론은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서둘러 마당으로 나갔다. 빌과 찰리가 요술 지팡이를 꺼내들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로소 해리와 론은 소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빌과 찰리가 낡아 빠진 식탁 두 개에 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마법에 걸린 식탁들은 하늘 높이 날아다니면서 서로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환호성을 질렀으며, 지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헤르미온느도 울타리 근처에서 흥미롭게 그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는 약간 근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만약 위즐리 부인이 이 소동을 본다면 또다시 화를 낼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빌의 식탁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찰리의 식탁은 그만 다리가 우지끈 부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누군가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서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는 퍼시의 모습이 보였다.
"좀 조용히 해줄래?"
퍼시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미안해, 퍼시. 냄비 바닥에 대한 보고서는 잘 되고 있니?"
빌이 씩 웃으면서 물었다.
"아냐. 그 일은 아주 복잡하단 말이야."
퍼시는 기분이 언짢은 것처럼 투덜거리면서 창문을 쾅 닫았다. 빌과 찰리는 킬킬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더니 식탁이 다시 안전하게 잔디밭으로 내려오도록 만들었다. 빌은 부러진 식탁 다리를 요술 지팡이로 살짝 건드려서 금방 원래대로 고쳐 놓았다. 빌이 소환 마법을 쓰자 식탁보들이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오기 시작했다.
오후 7시가 되자 아홉 명의 위즐리 가족과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야외에서 성대한 만찬을 즐겼다. 위즐리 부인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놓았다.
해리는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름 내내 해리는 조금씩 썩어 가는 케이크만 먹고 살았던 것이다. 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치킨과 햄 파이, 갊은 감자, 샐러드를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식탁 맨 끝자리에 앉아 있던 퍼시가 아버지를 쳐다보면서 냄비 바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저는 크라우치 씨에게 화요일까지 그 보고서를 모두 다 작성해 놓겠다고 약속했어요." 퍼시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물론 그건 크라우치 씨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빠르긴 해요. 하지만 전 마법부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보고서를 완성하면 크라우치 씨도 제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요즘 우리 부서가 굉장히 바쁘다는 뜻이에요. 월드컵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정작 필요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요. 마법게임 및 스포츠부의 책임자인 루도 베그만 씨가……."
"나는 루도가 마음에 든단다."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 월드컵 티켓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그분 아니냐. 게다가 그 티켓은 일등석이거든. 물론 내가 그 사람을 위해 힘을 좀 써주긴 했지. 루도의 동생 오토가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잔디 깎는 기계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는데 내가 나서서 잘 처리해 주었단다."
"맞아요. 루도 베그만 씨는 호감이 가는 분이긴 하죠." 퍼시가 약간 건방진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는 루도 베그만 씨가 어떻게 해서 그 부서의 책임자가 된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특히 크라우치 씨와 비교해 봤을 때 말이에요! 얼마 전에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에서 일하던 직원 한 명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루도 베그만 씨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크라우치 씨라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 행동하진 않을 거예요. 아버지도 버사 조킨스가 벌써 한 달째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버사 조킨스는 알바니아로 휴가를 떠났다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위즐리 씨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해, 나도 루도를 만난 자리에서 그 일에 대해 물어봤단다. 그런데 루도의 말에 따르면, 버사는 이전에도 몇 차례나 실종된 적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더구나. 그렇지만 만약 우리 부서의 직원이 실종됐다면, 나는 몹시 걱정하고 있었을 텐데 말야……."
퍼시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요. 버사는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저도 버사가 이 부서 저 부서 자주 자리를 옮겼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꾸만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죠……. 그래도 루도 베그만 씨는 버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요? 루도 베그만 씨는 그 부서의 책임자가 아닌가요? 크라우치 씨는 이 일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갖고 계세요. 버사는 국제 마법 협력부에서 잠깐 일했던 적이 있었죠. 제 생각에는 크라우치 씨가 버사를 꽤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루도 베그만 씨는 그저 계속 웃기만 할 뿐이에요. 아마도 지도를 잘못 본 버사가 실수로 알바니아가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로 갔을 거라고 말하면서……." 퍼시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과실주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하지만 우리 국제 마법 협력부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잔뜩 쌓여 있어요. 다른 부서의 직원을 찾는 일에 신경을 쓸 만한 겨를이 없다구요.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부서는 월드컵 직후에 열릴 또 다른 행사를 준비하고 있잖아요."
퍼시는 목청을 가다듬으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앉아있는 곳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제가 뭘 말하고 있는지 아실 거예요." 퍼시는 일부러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그건 일급 비밀 사항이죠."
"퍼시 형은 마법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줄곧 일급 비밀 사항이라는 그 행사를 입에 달고 다녔어. 그래도 우리가 물어보지 않으니까 안달이 난 거야. 하지만 보나마나 바닥이 두꺼운 냄비 전시회 같은 것이겠지."
론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위즐리 부인과 빌은 한창 언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빌의 귀고리가 위즐리 부인을 자극했던 것이다.
"빌, 그런 소름끼치는 어금니를 귀에 달고 다니면, 은행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
"엄마, 저는 국내로 반입되는 보물들을 아주 많이 유치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예요. 은행 사람들은 아무도 저의 차림새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아요."
빌이 느긋하게 말했다.
"머리는 또 이게 무슨 꼴이니, 빌?" 위즐리 부인이 요술 지팡이를 어루만지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좀 다듬어 줬으면 좋겠구나……."
그때 지니가 불쑥 기어들었다. "하지만 난 마음에 드는데? 엄마는 너무 구식이야. 물론 덤블도어 교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프레드와 조지와 칠리는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승은 아일래드가 차지할 거야." 찰리가 입 속에 잔뜩 감자를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아일랜드는 준결승전에서 아주 간단하게 페루를 쓰러뜨렸어."
"하지만 불가리아에는 빅터 크룸이 버티고 있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팀이 아니야.."
프레드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가리아에는 훌륭한 선수가 크롬 한 명뿐이지만, 아일랜드에는 일곱 명의 선수가 모두 다 훌륭해." 찰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잉글랜드가 진출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이게 무슨 창피야."
"무슨 일이 있었는데?"
해리가 물었다. 여름 방학 동안 줄곧 프리벳 가에 갇혀 있었던 해리는 마법 세계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더즐리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동안에는 마법 세계와 완전히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이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퀴디치는 해리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다. 해리는 1학년 때부터 줄곧 그리핀도르 기숙하의 퀴티치 팀에서 수색꾼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계 최고의 경주용 빗자루인 파이어볼트도 갖고 있었다.
찰 리가 침울하게 말했다.
"잉글랜드와 트란실바니아의 경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지. 잉글랜드가 390대 10으로 지고 말았어. 웨일스는 우간다에게 무릎을 꿇었고, 스코틀랜드도 룩셈부르크에게 완패당하고 말았어."
집에서 만든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위즐리 씨가 마법으로 촛불을 밝혔다. 식사를 끝마칠 무렵에는 나방들이 식탁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싱그러운 풀내음과 인동덩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너무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땅 신령 몇몇이 장미나무 사이로 뛰어다니면서 미친 듯이 웃어대고 있었다. 크룩생크는 여전히 땅 신령들을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런데 해리……. 시리우스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어?"
론은 다른 가족들이 모두들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론의 시선이 해리는 향하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응."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두 번.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어제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어.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 혹시 답장을 할지도 몰라."
갑자기 해리의 머리 속에서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가 떠올랐다. 해리는 순간적으로 이마의 흉터가 다시 아팠던 것에 대해 말할 뻔했다……. 그리고 무서운 악몽도……. 하지만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위즐리 부인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이제는 모두들 잠자리에 드는 게 좋겠구나.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에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까……. 해리, 학교에 가져가야 할 물건의 목록을 적어 놓도록 해라. 내가 내일 다이애건 앨리에 가서 네 물건을 사다주도록 하마. 어차피 다른 아이들의 물건도 구입해야 하니까……. 월드컵 이후에는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지난번에는 경기가 무려 닷새 동안이나 열렸단 말이야."
"이번에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해리가 열광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난 싫어. 만약 닷새 동안이나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사무실의 미결 서류함은 엉망이 되고 말 거야.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야."
퍼시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맞아, 누군가가 그 안에 또다시 용의 똥을 살짝 넣어 둘지도 모르지. 안 그래, 형?"
프레드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건 노르웨이에서 온 비료 샘플이었어!" 퍼시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전혀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다구!"
"아니긴 뭐가 아냐." 그들이 식탁에서 일어날 때, 프레드가 작은 목소리로 해리에게 속삭였다. "그걸 보낸 사람은 바로 우리였는데."
제6장 포트키
방금 전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사이에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해리."
위즐리 부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위즐리 부인은 다시 론을 깨우기 위해 다른 침대로 걸어갔다. 해리는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 안경을 찾아 쓴 후에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지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론이 볼멘 소리로 들렸다. 해리와 발을 마주하고 놓여 있는 침대 위에 둘둘 말린 담요 안에서 머리가 부스스한 커다란 형체 두 개가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프레드가 졸린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네 사람은 너무나 졸린 나머지 말을 주고받을 만한 기운도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옷을 갈아입으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식당으로 내려갔다.
위즐리 부인은 화덕에 올려놓은 커다란 냄비를 휘휘 젓고 있었으며, 위즐리 씨는 식탁에 앉아서 커다란 양피지 티켓 다발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서자, 위즐리 씨는 두 팔을 벌리면서 자신이 입고 있는 옷차림을 보여주었다. 위즐리 씨는 골프용 스웨터처럼 보이는 윗옷에 아주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가 약간 헐렁했기 때문에 두꺼운 가죽 벨트를 두르고 있었다.
"내 모습이 어떠냐?" 위즐리 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신분을 감추고 가야 한단다. 내가 머글처럼 보이니, 해리?"
"네." 해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멋지세요."
"빌 형과 찰리 형과 퍼……퍼……퍼시 형은 어디에 있어요?"
조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네 형들은 순간이동으로 경기장에 갈 거란다." 위즐리 부인은 커다란 냄비를 들어 올리더니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국자로 오트밀 죽을 떠서 작은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러니까 조금 늦게 일어나도 된단다."
해리는 순간이동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뽕하고 사라졌다가 금방 다른 장소에 다시 나타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형들은 아직까지 잠을 자고 있단 말인가요? 어째서 우리는 순간이동으로 갈 수 없는 거죠?"
프레드가 그릇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투덜거렸다.
"너희들은 아직 나이도 되지 않을뿐더러 시험도 치르지 않았잖니?" 위즐리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여자애들은 어디로 간 거니?"
위즐리 부인은 서둘러 식당에서 나갔다. 잠시 후에 위즐리 부인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이동을 하려면 시험을 통과해야 하나요?"
해리가 물었다.
"물론이지." 위즐리 씨가 청바지 뒷주머니에 티켓을 밀어 넣으면서 대답했다. "며칠 전에 마법 교통부가 면허증도 없이 순간이동을 한 두 사람에게 벌금을 물리는 일이 있었지. 그 마법은 결코 쉬운 게 아니란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일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야. 조금 전에 내가 말했던 두 사람은 몸이 서로 분리되었단다."
해리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식탁에 앉아있던 다른 아이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다.
"저…… 몸이 분리된다는 게 뭐죠?"
해리가 위즐리 씨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했다.
"몸의 일부만 이동했다는 뜻이란다." 위즐리 씨는 숟가락으로 당밀을 듬뿍 뜨더니 오트밀 죽 위에 얹었다. "물론 그들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마법 사고 복구반이 와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그 때문에 마법부는 아주 바빴지. 그 사건에 대한 서류도 작성해야 하고 우연히 그들이 남긴 몸의 일부를 본 머글들도 처리해야 하고……."
갑자기 해리는 프리벳 가의 보도에 다리 한 쌍과 눈동자 한 개가 버려져 있는 광경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들은 괜찮았나요?"
해리는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물론이지." 위즐리 씨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만 했단다. 아마 그들은 두 번 다시 성급하게 순간이동을 하려고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공연히 순간이동으로 장난 치면 안 된다. 일부러 그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어른 마법사들도 많으니까……. 차라리 빗자루를 타고 가는 게 낫지. 조금 느리긴 해도 안전하잖니."
"하지만 빌 형과 찰리 형과 퍼시 형은 모두 슨간이동을 할 수 있잖아요?"
"찰리 형은 그 시험을 두 번이나 치러야 했어." 프레드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첫 번째 시험에서 그만 미역국을 먹고 말았어. 순간이동을 했는데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서 남쪽으로 8킬로미터나 벗어난 지점에 떨어진 거야. 찰리 형은 쇼핑을 가던 어떤 가엾은 노인의 머리 위에 떨어지고 말았지. 기억나지 않으세요?"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하지만 두 번째는 무사히 통과했잖니."
위즐리 부인이 다시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대답했다.
"퍼시 형이 통과한 건 불과 이 주일밖에 안 됐잖아요." 조지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부터 매일 아침아다 순간이동으로 아래층에 내려온다구요. 자기가 그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자랑하려고……."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여전히 졸린 얼굴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해요?"
지니는 식탁에 앉는 동안 줄곧 눈을 비볐다.
"걸어가야 하니까 그렇지."
위즐리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걸어가요? 아니, 월드컵이 열리는 곳까지 걸어서 간단 말이에요?"
해리가 깜짝 놀라니까,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어떻게 걸어간단 말이니? 우리는 그저 조금만 걸으면 된단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머글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한 장소에 모인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간을 잘 골라서 여행해야만 한단다. 아주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퀴디치 월드컵 같은 큰 행사가 열릴 때에는……."
"조지!"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왜요?"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조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반문했다.
"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게 뭐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날 속일 생각일랑 하지 마라!"
위즐리 부인은 요술 지팡이를 집어 들고 조지의 주머니를 가리키면서 주문을 외웠다.
"아씨오!"
다양한 색깔의 물건들이 조지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오더니 허공을 가로지르면서 붕 날아갔다. 조지는 황급히 손을 뻗어서 그것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모두 놓치고 말았다. 그것들은 곧장 위즐리 부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물건들은 죄다 없애라고 했지!" 위즐리 부인이 혓바닥 늘리기 태피처럼 보이는 것들을 들어 올리면서 소리쳤다. 위즐리 부인은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그것들을 몽땅 없애라고 말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몽땅 없애라고 말했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몽땅 꺼내도록 해! 어서! 너희 둘 다!"
그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쌍둥이 형제는 가능한 많은 태피들을 몰래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위즐리 부인은 소환 마법을 써서 프래드와 조지가 숨겨 놓은 것들을 모두 찾아냈다.
"아씨오! 아씨오! 아씨오!"
위즐리 부인이 주문을 외우자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태피들이 휙휙 튀어나왔다. 조지의 재킷 안감과 프레드의 청바지 밑단을 포함한 온갖 장소에 수많은 태피가 들어 있었다.
"우린 그걸 개발하는 데 무려 여섯 달이나 걸렸어요!"
위즐리 부인이 태피를 몽땅 내버리는 것을 보면서, 프레드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위즐리 부인이 버럭 화를 냈다.
"그래, 여섯 달 동안이나 허송세월을 하다니……. 너희들이 O. W. L. 을 그것밖에 받지 못한 것도 당연하지!"
결국 그들이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험악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위즐리 부인은 남편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도 찡그린 얼굴을 펴지 않았다. 하지만 쌍둥이 형제는 더욱 심통이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배낭을 메 주고는 엄마에게 단 한 마디 인사도 없이 그대로 나가 버렸다.
"재미있게 구경하거라. 얌전하게 굴고……." 위즐리 부인이 쌍둥이 형제의 등에다 대고 소리쳤지만, 잔뜩 심술이 난 그들은 뒤를 돌아보거나 대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빌과 찰리와 퍼시는 정오 무렵에 보내겠어요." 위즐리 부인이 남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위즐리 씨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어두운 마당으로 걸어나갔다. 해리는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는 아직도 달이 떠 있었다. 지평선을 따라 흐릿한 초록빛이 감도는 것을 보면서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모든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경기장에 모인 수 있죠? 머글들이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에요."
해리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 명의 마법사들이 퀴디치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서둘러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마법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커다란 문제였단다." 위즐리 씨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몰려오는데, 그들을 모두 수용할 만한 마법의 장소가 없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거야. 물론 머글들이 지나갈 수 없는 장소들이 있긴 하단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다이애건 앨리나 9와 4분의 3번 승강장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렴. 너무나 복잡하지 않겠니?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적당한 황무지에 마법사 캠프장을 만들었단다. 물론 머글들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도록 수많은 예방 조치를 취했지. 지난 몇 달 동안이나 마법부 전체가 그 일에 매달렸지.
우리는 먼저 도착 시간에 시차를 두도록 했단다. 비교적 값이 싼 삼등석 티켓을 구입한 마법사들은 이 주일 전에 도착하도록 했지. 어떤 마법사들은 머글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머글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교통 체증이 생겨서 머글들의 버스나 기차가 막히게 되는 경우가 생긴단다.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할 수는 없잖니. 생각해 봐라. 마법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오고 있단다. 물론 일부는 순간이동으로 오기도 하지. 그렇지만 먼저 머글의 눈에 안 띄는 멀리 떨어진 곳에 마법사들이 나타날 수 있는 안전한 지점을 마련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단다. 물론 그 장소에는 순간이동의 종착지로 사용하고 있는 휴대용 나무판이 설치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순간이동을 쓰고 싶지 않거나 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포트기'라는 걸 사용한단다. 포트키는 미리 정한 시간에 마법사들을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시키는 데에 사용하는 물체란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을 이동시킬 수도 있지. 영국에는 전략상 중요한 지점에 약 200여 개의 포트키가 설치되어 있단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포트키는 스토우츠헤드 산꼭대기에 있단다. 우리는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이다."
위즐리 씨가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산등성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산은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 너머에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포트키라는 건 뭘로 만들어진 거죠?"
해리가 신기한 듯이 물었다.
"글세……. 어떤 물건이든지 점부 다 포트키가 될 수 있단다." 위즐리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머글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으로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능하단다……. 만약 머글이 포트키를 본다면 아마도 쓰레기라고 생각할 거야……."
그들은 어두운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방은 아주 고요했다. 오직 그들의 발자국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로 들어서자, 잉크빛처럼 까맣기만 하던 하늘이 서서히 군청색으로 엷어지면서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로 해리의 손발은 얼어 있었다. 위즐리 씨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서둘러 스토우헤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토끼 구멍에 발부리가 걸리거나 울창한 잔디 둔덕에서 미끄러지는 일을 몇 차례 당하고 나자, 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근육이 경련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다리가 몹시 뻐근했다. 숨을 쉴 때마다 마치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마침내 그들은 평평한 땅에 도착했다.
"휴." 위즐리 씨가 안경을 벗더니 스웨터가 문질렀다. "알맞게 도착했구나. 이제 10분만 있으면……."
막대기를 짚고 올라오던 헤르미온느가 마지막으로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이제 포트키만 있으면 되겠구나." 위즐리 씨는 다시 안경을 끼더니 땅바닥을 둘러보았다. "별로 크지는 않을 거야……. 어디 보자……"
그들은 따로따로 흩어져서 포트키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채 2분도 지나지 않아서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는 함성 소리가 들렸다.
"아서! 여기 있다네. 얘야, 우리가 벌써 찾았어!"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잠시 후에 훤칠하게 키가 큰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이머스!"
위즐리 씨는 조금 전에 함성을 지른 사람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해리를 비롯한 나머지 아이들도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즐리 씨는 한 손에 꼬질꼬질한 부츠 한 짝을 들고 있는 마법사와 악수를 나누었다. 갈색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그 사람의 체격은 아주 건장했다.
"이분은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에서 근무하는 에이머스 디고리란다, 얘들아." 위즐리 씨가 에이머스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케드릭은 이미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
위즐리 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열일곱 살 가량 되어 보이는 굉장히 잘 생긴 아이가 서 있었다. 케드릭 디고리는 호그와트의 후플푸프 기숙사 퀴디치 팀의 주장이자 수색꾼이었다.
"안녕."
케드릭이 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안녕, 케드릭."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와 지니는 입을 모아서 인사를 했지만, 프레드와 조지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아직까지도 작년에 열렸던 첫 번째 퀴디치 시합에서 케드릭이 그리핀도르를 물리쳤던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겠군, 아서?"
케드릭의 아버지가 물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네. 우리는 저기 저 마을 너머에 살고 있는 걸……. 그런데 자네는?"
"우리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야만 했다네. 안 그러니, 케드릭? 이 애가 순간이동 시험을 통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지만…… 불평할 일은 아니지. 퀴디치 월드컵은 갈레온 한 부대를 준다고 해도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일이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이라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 이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머스 디고리는 온후한 표정으로 위즐리네 세 형제를 비롯해서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지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애들 모두가 자네 아이들인가, 아서?"
"아니야. 머리카락이 빨간 아이들만 우리 아이들이네." 위즐리 씨는 쌍둥이 형제와 론 그리고 지니를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이 아이는 론의 친구 헤르미온느라네. 그리고 이 아이는 해리……."
"뭐라구?" 에이머스 디고리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했다. "해리라구? 해리 포터 말인가?"
"저…… 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해리를 만날 때마다 신기한 눈초리를 훑어보다가 금방 이마에 나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를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해리는 이미 그런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한 상태였지만, 그럴 때마다 불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케드릭은 물론 너에 대해 말했단다." 에이머스 디고리가 해리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작년에 그리핀도르 팀과 경기한 이야기를 모두 다 했단다……. 난 케드릭에게 말했지. '케드릭, 그건 네가 나중에 자손대대로 자랑해도 좋을 만한 일이구나. 그래,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네가 해리 포터를 이기다니!'라고 말이다."
해리는 그냥 입을 다물고 조용히 서 있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프레드와 좆지는 둘 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는 빗자루에서 떨어졌어요, 아빠. 제가 말했잖아요……. 그건 사고였다구요……."
케드릭이 약간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그래, 하지만 넌 떨어지지 않았잖니?" 에이머스 디고리는 아들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 넌 항상 겸손하지. 케드릭은 정말 신사라니까……. 그렇지만 언제나 가장 뛰어난 사람이 경기에서 이기는 건 아주 당연한 거란다. 해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안 그러니, 얘야? 한 명은 빗자루에서 떨어지고 다른 한 명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난 사람인가는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거야." 위즐리 씨가 다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아직 더 올 사람이 있는 건가, 에이머스?"
"아니야. 러브굿 가족은 벌써 일주일 전에 떠났어. 포셋 가족은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아마도 이 지역에는 퀴디치 월드컵을 보러 갈 사람이 더 이상 없을 거야."
에이머스 디고리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네."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1분 전이야……. 준비하는 게 좋겠군……."
위즐리 씨는 부드러운 눈길로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그냥 포트키를 만지기만 하면 돼. 그것뿐이야. 손가락 하나만 갖다대고 있으면 되는 거야."
무거운 배낭 때문에 조금 힘들긴 했지만, 아홉 명의 마법사들은 에이머스 디고리가 불쑥 내민 낡은 부츠 한 짝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낡은 부츠 주위롤 둥글게 모여 섰을 때,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휙 스쳐 지나갔다.
정적.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어떤 머글이 산꼭대기로 올라오다가 이 광경을 본다면? 두 명의 어른과 일곱 명의 아이들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낡은 부츠 한 짝을 붙잡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라니……. 해리는 몹시 이상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셋……"
위즐리 씨가 여전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둘……. 하나……."
마침내 포트키가 작동했다. 갑자기 해리는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확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해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해리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도 자신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해리의 어깨가 자꾸만 론과 헤르미온느와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낡은 부츠와 해리의 집게손가락이 딱 달라붙었다. 그리고……
해리의 발이 땅에 닿았다. 론이 비틀거리면서 해리를 밀쳤다. 해리는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포트키가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즐리 씨와 에이머스와 케드릭은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땅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스토우츠헤드 산에서 출발. 5시 7분 도착."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7장 베그만과 크라우치
해리는 론을 밀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짙은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성미가 까다로워 보이는 마법사 두 명이 그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한 명은 커다란 황금시계를 들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두꺼운 양피지 두루마리와 깃펜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몹시 지쳐보였다. 그들은 머글들처럼 옷을 입긴 했지만 차림새가 영 엉망이었다. 황금시계를 들고 있는 사람은 털이 숭숭한 트위드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맑은 날인데도 불구하고 넓적다리까지 올라오는 오버슈즈(비올 때 방수용으로 구두 위에 신는 덧신: 역주)를 신고 있었다. 또한 그의 동료는 엉뚱하게도 킬트(스코틀랜드 고지의 남자나 군인이 입는 치마로, 체크 무늬에 세로 주름이 잡혀 있음: 역주)를 두르고 판초(남미 원주민이 입는 일종의 외투: 역주)를 걸치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베이질."
위즐리 씨가 반갑게 인사하면서 킬트를 입고 있는 마법사에게 낡은 부츠를 내밀었다. 그 마법사는 부츠를 받아들더니 커다란 상자 속으로 집어던졌다. 이미 사용한 포트키들을 넣어두는 상자 속에는 낡은 신문이나 음료수 깡통, 바람이 빠진 축구공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안녕하시오, 아서." 베이질이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직이 아닌가 보구려? 어떤 사람은 좋겠수……. 우린 밤새도록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다오……. 그런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얼른 비켜서는 게 좋을 거요. 블랙 포리스트에서 출발한 대부대가 5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잠깐만 기다리시오. 당신의 캠프장을 찾아 주리다……. 위즐리……. 위즐리……." 베이질이 양피지 목록을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으로 400미터 가량 걸어가면 제 1캠프장이 있을 거요. 캠프장 관리인은 로버트라는 사람이오. 디고리……. 제 2캠프장……. 페인 씨를 만나서 물어보시오."
"고맙소, 베이질."
위즐리 씨는 다정한 눈길로 아이들을 쳐다보더니 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자욱한 안개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는 황무지를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20분 가량 걸어가자, 캠프장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리는 돌로 만든 작은 오두막을 볼 수 있었다. 어둑어둑한 숲 너머로 고개를 돌리자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드넓은 캠프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캠프장에는 벌써 수백 개의 텐트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에이머스와 케드릭에게 손을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가 오두막 문간에 기대 서서 캠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남자가 머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위즐리 씨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시오."
캠프장을 관리하는 머글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혹시 로버트 씨인가요?"
"그렇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로버트가 사무적인 태도로 반문했다.
"위즐리라고 합니다. 이틀 전에 텐트 두 개를 예약했는데요……."
"확인해 보겠소." 로버트가 문간에 붙어 있는 예약자 명단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저기 보이는 나무를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자리가 있을 거요. 오늘 하루만 예약한 거죠?"
"그렇습니다."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지금 내겠소?"
로버트가 위즐리 씨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 물론이죠." 위즐리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즐리 씨는 오두막에서 조금 물러나더니 해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를 좀 도와 다오, 해리." 위즐리 씨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머글들이 사용하는 돈을 꺼냈다. 머글들의 지폐가 돌돌 말려 있었다. 위즐리 씨는 지폐를 한 장씩 떼어 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건…… 어…… 어…… 10이니? 아, 그래! 이제 그 위에 적혀 있는 숫자들이 뭔지 알겠구나……. 그러니까 이건 5?"
"20이에요."
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바로잡아 주었다. 캠프장 관리인 로버트는 그들이 나누는 말을 엿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 그래. 그렇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작은 종이들이……."
"외국인이오?"
위즐리 씨가 지불하기 위해 돈을 챙겨서 돌아오자 로버트가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외국인이라뇨!"
위즐리 씨는 약간 당황해하면서 반문했다.
"당신만 제대로 돈을 세지 못했던 게 아니라오." 로버트가 의아스러운 눈길로 위즐리 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글세 10분 전에는 두 사람이 찾아와서 황금 동전을 내려고 하지 않겠소? 그 동전은 자동차 핸들만큼이나 커다란 것이었다오."
"그래요?"
위즐리 씨는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캠프장이 북새통을 이룬 적도 없었소.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다니……." 잔돈을 넣어 두는 깡통을 뒤적거리던 로버트가 다시 캠프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캠프장에는 여전히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예약이 무려 수백 건이나 된다오.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맞습니까?"
위즐리 시는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로버트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다.
"아." 로버트는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왔다오. 외국인들도 많고……. 그런데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좀 이상한 사람들이었소. 킬트와 판초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소."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위즐리 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꼭 무슨……. 나도 잘 모르겠소……. 대규모 집회라도 열리는 것 같소." 로버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서로를 잘 알고 잇는 것 같았소……. 무슨 축제라도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로 그때 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마법사가 뿅 하고 나타났다.
"오블리미아테!"
오두막 현관 앞에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가 요술 지팡이로 로버트를 겨냥하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로버트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풀렸다. 로버트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마치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기억력이 수정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이건 캠프장 지도요." 로버트가 위즐리 씨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건 거스름돈이오."
"정말 고맙소."
위즐리 씨는 다시 손을 내밀어서 거스름돈을 받았다. 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마법사는 그들과 함께 캠프장 입구까지 동행했다.
그 마법사는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수염을 짧게 깎은 그의 턱은 파르스름한 빛이 감돌았으며 눈 밑에는 진한 보랏빛 그늘이 져 있었다. 로버트의 오두막에서 멀어지자, 그 마법사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저 사람 때문에 정말 골치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오. 저 사람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하루에도 열 번씩이나 기억력 마법을 써야만 하니까……. 그런데 루도 베그만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루도 베그만은 그저 블러저와 퀘이플에 대해 목청껏 떠들어대고만 있어요. 머글들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아요. 제기랄! 어서 빨리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소. 월드컵이 끝나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요. 나중에 봅시다, 아서."
그 마법사는 다시 뿅 하고 사라졌다.
"베그만 씨는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의 책임자잖아요?" 지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머글들이 있는 곳에서 블러저에 대해 말하는 게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물론 그렇겠지." 위즐리 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캠프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루도는 항상……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보안에 대해 엄격하지 못하단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열성적인 스포츠부 책임자도 드물 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루도는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퀴디치 팀의 선수였잖니? 더구나 루도는 윔본 와스프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몰이꾼이었단다."
그들은 짙은 안개를 헤치면서 길게 늘어서 있는 텐트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얼핏 보기에는 대부분의 텐트가 아주 평범해 보였다. 텐트를 세운 마법사들은 확실히 머글들의 텐트처럼 보이기 위해 무척 애를 쓴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는 어색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떤 텐트에는 엉뚱하게도 굴뚝이 세워져 있었으며 초인종을 울리는 줄이 매달려 잇는 텐트도 있었다. 심지어 풍향계가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마법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텐트들이 수두룩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가 의심을 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캠프장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줄무늬 비단천으로 만든 작은 궁전 모양의 아주 호화롭고 정교한 텐트가 보였다. 그 텐트의 입구에는 몇 마리의 공작새까지 매어져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상야릇한 텐트들이 계속 나타났다. 어떤 텐트는 무려 3층이나 되었는데, 꼭대기에는 작은 첨탑까지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정원이 딸려 있는 텐트도 있었는데, 수반과 해시계와 분수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나 똑같군."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들 뽐내기 바쁘다니까……. 아, 다 왔구나. 봐라, 이게 바로 우리의 캠프장이란다."
마침내 그들은 캠프장 꼭대기에 있는 숲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텅 빈 공터에 '위즐리'라고 적힌 작은 푯말이 땅에 박혀 있었다. 위즐리 씨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여긴 정말 좋은 장소구나! 경기장은 바로 저 숲 맞은편에 있단다. 우리는 경기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셈이야." 위즐리 씨는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 한데 분명히 말하지만 마법을 쓸 수는 없다. 우리가 한꺼번에 머글 땅으로 나와 있을 때에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 손으로 직접 텐트를 설치해야 한단다! 하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거야……. 머글들은 늘 그렇게 하니까 말이야……. 자, 해리. 그런데 텐트를 설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해리는 지금까지 캠프에 참가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즐리 가족은 휴가를 갈 때마다 절대로 해리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이웃집 피그 할머니에게 해리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러나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그럭저럭 폴대와 말뚝을 제자리에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나무 망치를 사용해서 팩을 박아야 할 순간이 되자, 극도로 흥분해서 일을 마쳐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초라한 이인용 텐트 두 개만 간신히 설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자신들이 손수 만든 작품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해리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엉성한 텐트를 보고 우리가 마법사라고 의심할 머글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텐트는 너무 작았다. 잠시 후에 빌과 찰리와 퍼시가 도착하면 인원은 모두 열 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텐트는 고작해야 네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도 이런 문제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씨가 첫 번째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힐끗 해리를 쳐다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좀 비좁겠구나." 위즐리 씨가 외쳤다. "하지만 겨우 잘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와서 한 번 구경하렴."
고개를 숙이고 텐트 안으로 들어간 해리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안에는 초라한 텐트가 아니라 욕실과 주방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진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아닌가. 게다가 방이 세게나 되었다.
해리는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피그 할머니의 가구와 정확히 똑같은 종류의 가구가 놓여 있었다. 텐트의 분위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의자들 위에는 크로셰 뜨개질로 뜬 커버가 덮여 있었고, 고양이 냄새도 희미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쓸 건 아니니까……." 위즐리 씨는 벗겨진 머리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면서 침실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이층 침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 가구들은 퍼킨스가 빌려준 거란다. 퍼킨스는 이제 더 이상 야영을 할 수가 없어. 가엾은 친구 같으니라구……. 허리가 많이 아프거든." 위즐리 씨는 먼지투성이의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물이 필요하겠구나……."
"머글이 준 지도에 수돗가가 표시되어 있어요." 해리를 따라 텐트 속으로 들어온 론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텐트 내부의 이상한 풍경을 보고도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건 캠프장 맞은편에 있어요."
"네가 해리와 헤르미오는를 데리고 가서 물을 좀 받아 오겠니?" 위즐리 씨가 주전자와 냄비 두 개를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우린 불을 피울 나무를 좀 주워 올 테니."
"하지만 오븐이 있잖아요." 론이 아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냥 마법을 쓰면……."
"론, 말조심해라! 머글 안전 수칙을 지켜야지!" 위즐리 씨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머글은 캠프를 할 때, 야외에 모닥불을 피워서 밥을 한단다. 머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물을 떠오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잠시 여자들이 사용하게 될 텐트를 둘러보았다. 그것은 남자들이 사용하기도 한 텐트보다 약간 작긴 하지만 그 대신에 고양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수돗가로 출발했다.
마침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자 그들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는 텐트촌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줄지어 늘어서 있는 텐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갔다.
해리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해리는 다른 나라 마법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캠프장에서 야영을 하던 마법사들이 서서히 잠에서 개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었다. 해리는 피라미드처럼 생긴 텐트에서 야영을 하고 있던 그 가족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해리가 아기 마법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듯한 작은 남자아이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요술 지팡이를 들고 잔디밭에 잇는 민달팽이 한 마리를 찌르고 있었다. 마법에 걸린 민달팽이는 살라미 소시지만큼이나 굵게 부풀어 올랐다.
"몇 번이나 말했니, 캐빈? 아빠의 요술 지팡이는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으이구!"
꼬마의 엄마가 허둥지둥 텐트 밖으로 나오면서 소리쳤다. 그러다가 그만 커다란 민달팽이를 발로 밟아서 툭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가 민달팽이를 밟아서 터뜨렸어! 엄마가 민달팽이를 밟았단 말이야!"
찢어질 듯한 꼬마의 울음 소리와 엄마의 잔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뒤흔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캐빈과 비슷한 또래의 꼬마 마녀 두 명이 빗자루를 타고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슬 맺힌 잔디를 살짝 스칠 정도로만 올라가는 장난감 빗자루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저게 뭐람! 도대체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진 않고 늦잠만 자고 있는 거야, 뭐야?"
마법부에서 일하는 마법사가 투덜거리면서 지나갔다.
여기 저기 텐트에서 어른 마법사들이 나와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마법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요술 지팡이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머글이 사용하는 성냥을 긋고 있는 마법사도 있었다. 정말로 불이 붙긴 붙을까?
아프리카에서 온 세 명의 마법사들은 모두들 하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면서 밝은 보랏빛 불에 토끼처럼 보이는 것을 굽고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텐트들 사이로 걸어가다가 금박과 은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살렘 마녀 연구소>라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온 중년 마녀들이 현수막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즐겁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퀴디치 월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 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해리는 사람들이 모두 굉장히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거야? 아니면 세상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한 거야?"
론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하지만 론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 지역에 있는 텐트들은 온통 클로버(아일랜드의 국화; 역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이상한 모양의 산들이 땅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것 같았다. 텐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면서 씩 웃고 있었다.
"해리! 론! 헤르미온느!"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4학년생인 시무스 피니간이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는 클로버로 뒤덮인 자기 텐트 앞에서 엄마임이 틀림없는 엷은 갈색 머리와 여자와, 역시 그리핀도르의 학생인 단짝 친구 딘 토마스와 함께 앉아 있었다.
"장식이 마음에 들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가서 인사를 하자, 시무스 피니간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마법부는 이런 장식을 싫어하는 것 같아."
"난 마법부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단다. 왜 우리의 색깔을 나타내면 안 된다는 거야?" 엷은 갈색 머리를 말아 올린 피니간 부인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말했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텐트 여기저기에 뭘 매달고 있는지 알고 있니? 너희들도 물론 아일랜드를 응원하겠지?"
"물론이죠."
그들은 진정으로 아일랜드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피니간 부인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열광적으로 아일랜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는데 달리 무슨 말을 살 수 있겠니?"
론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불가리아 사람들이 텐트에 매달았다는 게 뭘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가 보자."
해리가 불가리아 국기- 빨간색과 초록색과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지역을 가리켰다. 거기 텐트들은 하나같이, 짙고 까만 눈썹을 가진 아주 무뚝뚝한 얼굴이 있는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그 사진도 물론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그저 눈을 깜박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게 다였다.
"크룸이야."
론이 말했다.
"뭐라구?"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크룸 말이야! 빅터 크룸, 불가리아의 수색꾼1"
"정말 심술궂게 생겼다."
자기에게 눈을 깜박이거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수많은 크룸을 보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심술궂게 생겼다구?" 론이 눈을 치켜 떴다.
"어떻게 생겼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크룸은 정말 굉장한 선수야. 나이도 아주 젊은 편이지. 열여덟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거야. 좌우지간 크룸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어. 오늘 밤에 열리는 퀴디치 월드컵을 보면, 너도 저절로 알게 될 거야."
마침내 그들은 수돗가에 도착했다.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줄을 서고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 두 명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주 늙은 마법사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마법부 직원인 것 같았다. 해리는 노인 마법사의 옷차림을 보고 도저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인은 꽃무늬가 수놓인 잠옷을 입고 있었으며, 마법부 직원은 줄무늬 바지를 들고 있었다.
"제발 그 꽃무늬 잠옷을 벗고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아치. 그런 옷차림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어요. 캠프장을 관리하는 머글이 의심하고 있단 말입니다."
마법부 직원은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고 있었다.
"난 이걸 머글 가게에서 구입했네. 이것도 머글들이 입는 옷이란 말이야."
늙은 마법사는 완강한 태도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건 여자 머글들이 입는 옷이에요, 아치. 남자 옷이 아니란 말입니다. 빨리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마법부 직원이 줄무늬 바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난 이 옷이 마음에 들어.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게 아주 시원하거든……."
늙은 아치가 짜증을 내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잠시 줄에서 나와야만 했다. 헤르미온느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치는 이미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그들은 물이 가득 든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다시 캠프장을 가로질러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캠프장을 지나가는 동안, 해리는 친근한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호그와트의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야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퀴디치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 올리버 우드가 해리를 불렀다. 그는 해리를 데리고 가서 부모에게 인사를 시켰다.
"나는 푸들미어 유나이티드 팀에 입단했어. 비록 후보이긴 하지만……. 나중엔 반드시 주전으로 뛰게 될 거야."
올릴버 우드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다음에는 후플푸프 기숙사의 4학년생인 어니 맥밀란이 그들을 불렀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래번클로 기숙사 퀴디치 팀의 수색꾼으로 활동하고 있는 초 챙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초 챙은 반가운 듯이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초 챙르 향해 손을 흔들다가 그만 실수로 물을 왕창 쏟고 말았다. 이러! 혹시 론이 비웃지 않을까? 해리는 얼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십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 애들은 누구야? 호그와트에 다니는 학생들은 아닌 것 같은데……."
해리가 딴전을 피우면서 말했다.
"아마도 다른 나라 학생들일 거야." 론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햇다. "다른 나라 마법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만난 적을 아직까지 한 번도 없지만,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빌 형은 브라질에 있는 마법학교 학생과 펜팔을 한 적이 있었어……. 물론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빌 형은 교환 학생이 돼서 브라질로 가려고 했었어. 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엄마와 아빠는 빌 형을 외국에 보낼 수가 없었지. 형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편지를 보내자, 그 친구는 굉장히 화가 나서 저주가 담긴 모자를 보내 왔어. 그 모자를 쓰자 빌 형의 귀가 순식간에 오그라들고 말았지."
해리는 다른 나라에도 마법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내심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미소만 지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캠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호그와트가 유일한 마법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리는 곁눈질로 헤르미온느를 슬쩍 쳐다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조금도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호그와트 이외에도 다른 마법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게 분명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마침내 위즐리네 텐트에 도착하자 조지가 물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아는 사람들을 만났어. 그런데 아직까지도 불을 피우지 않은 거야?"
론이 물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아빠가 성냥을 가지고 장난하고 계셔."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위즐리 씨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성냥을 그어대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부러진 성냥들이 잔뜩 흩어져있었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평생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구!"
가까스로 성냥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위즐리 씨는 깜짝 놀라면서 성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위즐리 아저씨. 이렇게 해보세요."
헤르미온느가 제대로 성냥불을 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겨우 모닥불을 피우긴 했지만, 무언가 따뜻한 음식을 먹기까지는 또다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그들의 텐트가 경기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부 직원들이 계속해서 급히 왔다갔다 하면서 위즐리 씨에게 인사를 했던 것이다.
"저 사람은 도깨비 연락소의 소장 커스버트 모크리지 씨란다……. 저기 실용 마법 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길버트 윔플씨가 오고 있구나. 안녕하시오, 아졸드……. 아놀드 피즈굿 씨는 우리의 해결사란다. 마법 사고 복구반의 일원이지……. 그리고 저기 저 사람들은 보드 씨와 크로우커 씨란다……. 그들은 비밀단원이야……."
위즐리 씨가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 계속 해설을 늘어놓았다. 위즐리네 아이들은 마법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이젠 아무 흥미도 없었으므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인가요?"
"미스터리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주로 일급 비밀을 취급하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마침내 그들이 달걀과 소시지를 요리하기 시작했을 때, 빌과 찰리와 퍼시가 숲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역시 순간이동이 좋군요. 이제 막 도착했어요, 아빠." 퍼시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군!"
그들이 빙 둘러앉아서 소시지와 달걀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위즐리 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하!" 위즐리 씨가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어서 오게, 루도! 마침내 나타났군."
루도 베그만은 지금까지 해리가 보았던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꽃무늬 잠옷을 입고 있던 아치 노인보다도 더욱 이상했다. 루도 베그만은 노란색과 검은색의 굵은 줄무늬가 있는 기다란 퀴디치 선수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윔본 와스프 팀의 상징인 거대한 말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한물간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불쑥 튀어나온 배는 터질 듯이 팽팽했는데, 잉글랜드 퀴디치 대표선수 시절에는 분명히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루도 베그만의 코는 납작하게 뭉개져 있었다. (혹시 블러저에 맞아서 코가 깨진 게 아닐까? 해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루도 베그만을 쳐다보았다.) 동그랗고 파란 눈과 짧은 금발 머리 그리고 발그레한 얼굴 때문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마치 덩치만 큰 남학생처럼 보였다.
"어이!"
루도 베그만이 유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루도 베그만은 마치 발바닥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잘 있었나, 아서?" 루도 베그만이 모닥불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정말 멋진 날이야. 그렇지?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어디 있겠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지…….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지……. 난 별로 할 일도 없다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한 무리의 마법부 직원들이 루도 베그만의 등 뒤로 황급히 지나가면서, 6미터 상공까지 보랏빛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마법의 불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퍼시는 손을 내밀어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루도 베그만의 부서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 애는 내 아들 퍼시라네. 이제 막 마법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신참이지. 그리고 이 애는 프레드, 아니 조지라네. 미안하네. 저 애가 프레드야. 빌과 찰리, 론이라네. 이애는 내 딸 지니……. 그리고 론의 친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해리 포터……."
루도 베그만은 해리의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더니 그의 이마에 난 흉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즐리 씨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인사해라. 이분이 바로 루도 베그만 씨란다. 우리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을 구한 건 모두 이분 덕분이란다."
루도 베그만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일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이번 시합의 결과에 대해 내기를 걸지 않겠나, 아서?" 루도 베그만은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 옷 호주머니 속에 두둑이 들어 있는 금화를 짤랑짤랑 흔들면서 말했다. "로디 폰트너는 불가리아가 먼저 선제골을 넣는 쪽에 돈을 걸었네. 하지만 로디가 돈을 딸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아. 올해의 아일래드 공격수 세 명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보았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그 점을 고려해서 나는 로디에게 후한 배당을 주었다네. 그리고 땅딸보 애거사 팀스는 이 경기가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될 거라는 쪽에 그녀의 양식장에서 기르는 뱀장어 절반을 걸었다네."
"좋아. 나도 걸겠네."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디 보자……. 아일랜드가 이기는 쪽에 1갈레온……." "1갈레온?" 루도 베그만은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좋아, 좋아……. 얘들아, 너희들도 내기를 하겠니?"
"저 애들은 내기를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네." 위즐리 씨가 말했다. "애들 엄마가 알면 야단날 거야."
"우리도 돈을 걸겠어요. 모두 37갈레온, 15시클, 3넛이에요." 프레드가 조지와 함께 돈을 빡빡 긁어모으며 말했다. "물론 아일랜드가 이기는 쪽에 걸겠어요. 하지만 스니치는 빅터 크룸이 잡을 거예요. 아 참, 이 가짜 요술 지팡이는 덤으로 드릴게요."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을 뭐하러 드리겠다는 거야?"
퍼시가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루도 베그만의 생각을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루도 베그만은 얼른 받아들었다. 소년 같은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갑자기 가짜 요술 지팡이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고무 병아리로 변하자, 루도 베그만은 껄걸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구나!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다니……. 좋아. 이 지팡이 값으로 5갈레온을 주마!"
퍼시는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얘들아, 난 너희들이 내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걸면 어떻게 하니? 만약 엄마가 알면……."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흥을 깨뜨리지 말게, 아서!" 루도 베그만이 다시 한번 금화를 짤랑거렸다. "쟤들은 자기들이 뭘 원하는 지 다 알 만한 나이 아닌가! 우승은 아일랜드가 차지하지만, 스니치는 빅터 크룸이 잡는 쪽에 건다 이거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단다, 얘들아.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너무나 희박해……. 좋아, 그 대신에 아주 후한 배당을 주도록 하겠다……. 여기다 이 이상한 요술 지팡이 값으로 5갈레온을 보태면……."
루도 베그만은 노트와 깃펜을 꺼내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적었다. 위즐리 씨는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루도 베그만이 양피지 영수증을 내밀자, 조지가 재빨리 받아서 망토 속에 쑤셔 넣었다.
"차 한 잔 주지 않겠나? 나는 줄곧 바티 크라우치를 찾고 있었다네. 나와 함께 이 경기를 주관하고 있는 불가리아 책임자가 계속 뭐라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바티 크라우치는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150가지 정도의 언어는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루도 베그만이 위즐리 씨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크라우치 씨가요?" 줄곧 뚱한 표정으로 서 있던 퍼시가 갑자기 흥분하면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크라우치씨는 무려 200가지가 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요. 인어 말과 도깨비 말, 심지어 트롤 말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트롤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프레드가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그저 손가락질을 하면서 툴툴거리기만 하면 되는데……."
퍼시는 잠시 화가 난 눈빛으로 프레드를 노려보더니 주전자를 들어서 모닥불 위에 올려놓았다.
"버사 조킨스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나, 루도?"
위즐리 씨가 묻자, 베그만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혀. 하지만 곧 돌아오겠지, 뭐. 한심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마치 줄줄 새는 솥단지 같은 기억력에 방향 감각까지도 없으니까……. 아마도 버사는 길을 잃은 게 분명해. 10울이 되면 버사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거야. 아직도 7월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루도 베그만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을 시켜서 버사를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위즐리 씨가 약간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루도 베그만은 퍼시가 내민 찻잔을 받아들었다.
"바티 크라우치도 계속 그런 말을 하고 있다네." 루도 베그만이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단 말이야. 이런!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바티!"
그 순간 마법사 한 명이 뿅 하고 모닥불 가에 나타났다. 그 마법사의 모습은 낡은 윔본 와스프 팀 선수복을 입고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루도 베그만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주름 하나없는 빳빳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있는 바티 크라우치는 아주 깐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짧게 깎은 흰머리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곧은 가르마를 따라서 빗어 넘겨져 있으며, 칫솔처럼 생긴 콧수염은 꼭 자로 잰 것 같았다. 신발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해리는 퍼시가 왜 크라우치를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퍼시는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크라우치는 머글 옷차림에 대한 규칙을 어찌나 철저히 따랐던지 은행장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버논 이모부라고 하더라도 크라우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바티, 이리 와서 좀 앉으세요."
루도 베그만이 손으로 잔디밭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아닐세, 루도." 크라우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크라우치의 목소리에는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자네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네. 불가리안들이 일등석에 열두 개의 좌석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네."
"그래서 그들이 날 쫓아 다니는 건가요? 난 또 그 사람들이 족집게라도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았어요. 이상야릇한 사투리를 쓰면서 말이에요."
"크라우치 씨!" 그때 퍼시가 마치 곱추처럼 허리를 90도로 깍듯이 숙이면서 황급히 말했다.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오……." 크라우치는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퍼시를 쳐다보았다. "고맙네, 웨더비."
프레드와 조지는 차를 마시다가 그만 사례가 들고 말았다. 퍼시는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얼굴을 붉히면서 주전자를 들고 재빨리 움직였다.
"참, 아서……. 자네에게 전할 말이 있다네." 크라우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즐리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리 배셔가 잔뜩 성이 났더군. 자네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압수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 모양이야."
"저는 지난 주에도 그 일 때문에 알리에게 부엉이를 보냈어요.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에요. 아마 백 번도 넘게 말했을 겁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마법 물품 등기소가 머글 문화재로 정해 놓은 물건이라고 말이뇨. 하지만 알 리가 그 말을 듣기나 하겠습니까?"
위즐리 씨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물론 들은 척도 하니 않겠지. 알리는 양탄자를 영국으로 수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크라우치는 퍼시가 내민 찻잔을 받아들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절대로 빗자루 대신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일을 없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루도 베그만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알리의 생각을 다르다네. 한 가족이 타기에는 양탄자가 빗자루보다 훨씬 더 시장성이 높다고 여기니까 말일세." 크라우치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한번에 열두 명이나 태울 수 있는 액스민스터를 가지고 계셨다네. 하지만 그건 물론 양탄자가 법으로 금지되기 전의 일이었지."
크차우치는 자신의 조상들이 철저하게 법을 지켰다는 사실을 강조라도 하듯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런데 무척 바쁘셨나 보죠, 바티?"
루도 베그만이 쾌활하게 물었다.
"아주 바빴다네. 다섯 개의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포트키를 설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네, 루도."
"이 일이 끝나면 두 분 모두 무척 기쁘시겠어요."
위즐리 시가 말하자, 루도 베그만은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이 말했다.
"기쁘다니! 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는데……. 하지만 아직 기대할 만한 일이 한 가지 남아 있긴 해요. 안 그래요, 바티? 준비할 게 많죠?"
"상세한 사항들이 모두 결정되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했잖나?"
크라우치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 상세한 사항들!" 루도 베그만은 마치 성가신 벌레를 쫓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서명을 했어요. 그들도 동의를 했잖아요. 안 그래요? 어쨌거나 이 애들도 곧 알게 될 건데요, 뭘……. 내 말은 그게 호그와트에서 벌어질 일이라는……."
"루도! 우리는 불가리아인들을 만나러 당장 가야 하네." 크라우치가 루도 베그만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차 잘 마셨네, 웨더비."
크라우치는 손도 대지 않은 찻잔을 다시 퍼시에게 돌려주고는 루도 베그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루도 베그만은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마신 후에야, 호주머니 속의 금화를 짤랑짤랑 흔들면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모두들 나중에 보자!" 루도 베그만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일등석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이 경기의 해설을 맡았단다!"
루도 베그만은 손을 흔들었지만, 바티 크라우치는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의 모습이 뿅 하고 사라졌다.
"호그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아빠? 아까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 거죠?"
베그만과 크라우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프레드가 물었다.
"곧 알게 될 거다."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비밀 정보야. 마법부가 발표할 때까지는 크라우치 씨의 말처럼 절대로 알려 줄 수 없어."
퍼시가 거만하게 말했다.
"시끄러워, 웨더비."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핀잔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뜨거운 열기가 캠프장을 온통 뒤덮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 질 무렵이 되자, 고요한 여름 공기조차도 부푼 기대로 인해 바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지자, 그 순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수천 명의 마법사들은 더 이상 머글인 척 위장하려 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이제는 마법부도 체념한 듯이 그들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장사꾼들이 뿅뿅 나타났다. 장사꾼들은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거나 수레를 밀면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어떤 장사꾼은 자기팀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빛을 발하는 마법의 장미를 팔고 있었는데, 아일랜드 팀의 장미는 초록색이었고 불가리아 팀의 장미는 붉은색이었다. 춤추는 클로버로 장식한 초록색 모자와,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 그려진 불가리아 팀의 스카프와, 손에 들고 흔들면 그 나라의 국가를 연주하는 깃발도 있었다. 그 외에도 정말로 날아다니는 작은 파이어볼트 모형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의기양양하게 걸어 다니는 유명한 선수들의 인형도 있었다.
"난 이걸 사기 위해 여름 방학 내내 용돈을 모았어."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장사꾼들 사이로 걸어들어간 그들은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샀다. 론은 춤추는 클로버 모자와 초록색 장미를 샀다. 그리고 불가리아 팀의 수색꾼 빅터 크룸의 인형도 하나 샀다. 론의 손바닥 위로 올라간 크룸의 인형은 못마땅한 얼굴오 초록색 장미를 힐긋 쳐다보면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와, 이것들 좀 봐!"
해리가 황동 쌍안경처럼 생긴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레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 물건에는 갖가지 모양의 손잡이와 다이얼이 잔뜩 달려 있었다.
"옴니큘러입니다." 장사꾼 마법사는 열심히 소리쳤다. "지나간 장면을 다시 재연할 수 있습니다. 경기 장면을 느린 속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경기 장면을 부분적으로 편집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싸다, 싸! 하나에 10갈레온……."
"이걸 사지 말걸."
론은 춤추는 클로버 모자를 가리키면서 후회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동경 어린 눈빛으로 옴니큘러를 쳐다보았다.
"세 개 주세요."
해리는 장사꾼 마법사에게 30갈레온을 내밀었다.
"아니, 괜찮아."
론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부모에게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해리가 자신보다 훨씬 더 돈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 론은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대신에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예 선물받을 생각조차 하지 마."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옴미큘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물론이지."
론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고마워, 해리." 헤르미온느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 프로그램은 내가 살게."
한결 주머니가 가벼워진 그들은 서둘러 텐트로 돌아갔다. 빌과 찰리와 지니는 초록색 장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으며, 위즐리 씨는 아일랜드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반면에 프레드와 조지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루도 베그만에게 줘 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숲 너머에서 은은한 징소리가 들리더니 숲속에 매달려 있던 초록색 등불과 붉은색 등불이 일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등불들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경기 시간이 되었구나!" 잔뜩 흥분한 위즐리 씨가 소리를 질렀다. "어서 가자!"
제8장 퀴디치 월드컵
그들은 위즐리 씨를 선두로, 각자 산 물건들을 손에 들고 초롱 불빛을 따라 숲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수천명의 마법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거나 한바탕 노래까지 불러대면서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열광적인 흥분의 분위기가 전염되었는지, 해리도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큰 소리로 떠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20분쯤 걸어가자, 그들은 어느새 거대한 경기장 그늘 속에 들어와 있었다. 비록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황금빛 벽의 일부밖에 볼 수 없었지만, 해리는 한눈에 대성당이 열 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좌석이 무려 십만 개나 된단다." 웅장한 경기장의 규모에 압도당한 해리가 숨을 죽이자, 위즐리 씨가 말했다. "500명이나 되는 마법부의 가동부대가 일년 내내 이 일에 매달렸단다. 그들은 경기장 구석구석에 머글들을 물리치는 마법을 걸었지. 지난 일년 동안 머글들은 우연히 이 근처로 올 때마다,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떠올라서 황급히 돌아서곤 했단다……. 정말 고생이 많았을 거야."
위즐리 씨가 자상하게 설명하면서 가장 가까운 경기장 입구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 벌써부터 입구는 환호성을 지르는 마녀와 마법사들도 발디딜 틈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일등석!" 경기장 입구에서 안내를 하던 마법부의 마녀가 그들의 티켓을 쳐다보면서 외쳤다. "곧장 이층으로 올라가세요, 아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일등석이 보일 거예요."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에는 진한 보라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마법사들과 함께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등석으로 올라가는 동안, 다른 마법사들은 서서히 왼쪽과 오른쪽에 나 있는 문을 통해 하나 둘씩 관람석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위즐리 씨 일행은 계속해서 위쪽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계단 꼭대기에 도착하자, 경기장의 제인 높은 곳에 위치한 관람석이 나타났다. 일등석은 경기장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장 양쪽에 세워져 있는 황금 골대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관람석에는 보라색과 황금색을 입힌 스무개의 의자가 두 줄로 놓여 있었다. 해리는 위즐리 가족과 함께 관람석 제일 앞줄에 앉아서 고개를 내밀고 운동장을 내려다 보았다. 해리의 눈앞에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십만 명의 마녀와 마법사들이 타원형 경기장 주위를 따라 층층이 설치된 좌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기장은 온통 그 자체에서 발산되는 것 같은 신비한 황금빛에 잠겨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경기장은 마치 벨벳을 깔아 놓은 듯이 매끄러워 보였다. 경기장 양쪽 끝에는 15비터 높이의 골대가 세 개씩 서 있었으며, 일등석 맞은편에는 거의 해리의 눈과 같은 높이에 대형 전광판이 걸려 있었다. 그 전광판에는 황금색 글씨가 끊임없이 휙휙 지나가고 있어서,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의 손이 휘갈겨 썼다 지웠다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전광판을 지켜보던 해리는 황금색 글씨가 광고문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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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등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뒷줄 제일 끝에서 두 번째 자리에 자그마한 생물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조용하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생물의 다리는 미처 바닥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짧았다. 관람석 위로 다리를 달랑 들어올리고 있던 그 생물은 토가(고대 로마인들이 입던 겉옷: 역주)처럼 생긴 수건을 몸에 두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박쥐처럼 기다란 귀가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도비?"
해리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그 작은 생물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을 살짝 벌렸다. 손가락 사이로 커다란 갈색 눈과 큼지막한 토마토처럼 생긴 코가 나타났다.
그것은 도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생물도 해리의 친구 도비처럼 꼬마 집 요정이 분명했다. 해리는 도비가 말포이 가족의 수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적이 있었다.
"저를 도비라고 부르셨나요?"
꼬마 집 요정은 신기한 듯이 손가락들 사이로 빼꼼히 바라보며 말했다. 도비보다 훨씬 더 고음인 그 요정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래서 해리는 혹시 이 요정이(꼬마 집 요정의 경우에는 남자 요정과 여자 요정을 구별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도 고개를 돌려서 꼬마 집 요정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해리로부터 도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실제로 꼬마 집 요정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위즐리 씨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윙키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해리가 그 요정에게 말했다. "난 그저…… 내가 아는 요정인 줄 알았어."
"저도 도비를 알아요!" 그 꼬마 집 요정이 말했다. 일등석에는 별로 불이 밝게 켜져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꼬마 집 요정은 마치 불빛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저는 윙키라고 해요. 그런데……." 꼬마 집 요정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해리의 이마에 나 있는 흉터에 머물자, 순식산에 눈이 접시만큼이나 커졌다.
"혹시 해리 포터?"
"그래, 맞아."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도비는 항상 해리 포터에 대해 말했어요!"
꼬마 집 요정은 두 손을 살짝 내리더니 약간 주눅이 든 표정을 지었다.
"도비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자유를 얻어서 좋아하고 있니?"
해리가 물었다.
"아, 네……." 윙키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더 이상 멸시를 받거나 하진 않아요. 하지만 해리 포터가 도비에게 해주신 일이 꼭 좋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도비를 풀어주신 일 말이에요."
"왜? 도비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
해리가 깜짝 놀라 물었다.
"자유를 얻게 되자, 도비는 그만 자만에 빠졌어요." 윙키가 슬프게 말했다. "도비는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다른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어요."
"왜?"
"일을 한 대가로 봉급을 받고 싶어하니까요."
윙키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속삭였다.
"봉급? 그런데 어째서 봉급을 받으면 안 되는 거야?"
해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윙키는 해리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다시 손으로 얼굴을 절반가량 가렸다.
"꼬마 집 요정들은 봉급을 받지 않아요!" 윙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니, 아니, 저는 도비에게 말했어요. 어서 빨리 좋은 가족을 찾아서 정착하라고……. 하지만 도비는 온갖 이상한 생각을 해요. 지금 도비는 전혀 꼬마 집 요정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어요. 저는 도비에게 충고했어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천한 도깨비처럼,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로 끌려가는 신세가 될 거라고……."
"이제 도비도 좀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게 되었잖아?"
해리가 윙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꼬마 집 요정들은 재미있게 지내면 안 돼요, 해리 포터." 윙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단호하게 말했다. "꼬마 집 요정들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요. 저는 높은 곳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해리 포터!" 윙키는 관람석 언저리를 흘끗 쳐다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주인님이 저를 일등석으로 보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리로 온 거예요."
"네가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너를 이곳으로 보냈지?"
해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주인님은…… 주인님은 제가 자리를 맡아두길 바라니까요, 해리 포터. 주인님은 굉장히 바쁘거든요." 윙키가 빈 옆자리로 고개를 기울이면서 말했다. "윙키는 주인님의 텐트로 돌아가고 싶어요, 해리 포터. 하지만 윙키는 시키는 대로 해요. 윙키는 좋은 꼬마 집 요정이에요."
꼬마 집 요정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한번 관람석 가장자리를 힐끗 바라보곤 두 손으로 눈을 완전히 가리고 말았다. 해리는 다시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까 저게 꼬마 집 요정이니?" 론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정말 이상하구나, 안 그래?"
"도비는 더 이상해."
해리가 대답했다. 론은 옴니큘러를 꺼내들고 맞은편 관람석에 앉아있는 관중들을 쳐다보았다.
"굉장한데!" 론이 재생 버튼을 만지작거리면서 소리쳤다. "이 버튼을 누르면 저 아래에 있는 노인이 계속 반복해서 콧구멍을 후비도록 할 수 있어……. 다시…… 또다시……."
헤르미온느는 융단으로 감싼 표지에 술이 달린 프로그램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경기를 시작하기 앞서 양팀 마스코트들의 응원전이 열린다."
헤르미온느가 큰 소리로 읽자 위즐리 씨가 말했다.
"오, 그건 정말 볼 만한 응원전이지. 국가 대표팀들은 개막전 행사를 하기 위해 자기 나라의 생물들을 가져온단다. 이제 곧 마스코트들의 축하 공연이 열릴 거야. 알겠니?"
30분가량 흐르자, 일등석도 거의 다 채워졌다. 위즐리 씨는 계속해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느라 바빴다. 일등석으로 올라온 마법사들은 꽤 중요한 직책에 있는 게 분명했다. 퍼시는 마치 고슴도치라도 깔고 앉은 것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가 도착하자, 퍼시는 잽싸게 일어나더니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인사했다. 그러다가 그만 안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퍼시는 몹시 당황해하면서 얼른 요술 지팡이로 박살이 난 안경을 고쳐 끼고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서, 해리와 코넬리우스 퍼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해리는 이미 코넬리우스 퍼지와 안면이 있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마치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해리의 손을 잡고는 "반갑다, 해리. 잘 지내고 있었니?" 하며 자기 양쪽에 앉아 있는 마법사들에게 해리를 소개했다.
"해리 포터……. 아마 당신도 알고 있을 겁니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불가리아의 장관을 쳐다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가장자리에 황금 장식이 달린 멋진 검은색 벨벳 망토를 입고 있는 불가리아의 장관은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 포터……. 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요. 그 사람의 저주를 받고도 무사히 살아 남은 아이 말이요. 잘 알고 있지요?"
갑자기 불가리아 장관이 해리의 흉터를 발견하고는 흥분해서 손가락질을 하면 큰 소리로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가 의사소통이 된 것 같구나."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지친 듯이 말했다. "난 외국어를 잘 모른단다. 그래서 이런 일에는 바티 크라우치가 꼭 필요하지. 아, 꼬마 집 요정이 크라우치의 자리를 맡아두었던 것 같던데……. 역시 잘했지. 이 지독한 불가리아 놈들이 좋은 자리란 자리는 몽땅 달라고 조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 저기 루시우스가 오고 있군!"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얼른 몸을 돌렸다. 꼬마 집 요정 도비의 주인이었던 루시우스 말포이와 그의 아들 드레이코 그리고 드레이코의 엄마처럼 보이는 마녀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위즐리 씨의 뒷줄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가 아직까지 비어 있었던 것이다.
호그와트로 가는 급행 열차를 처음 탔을 때부터, 해리와 드레이코는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숙적이었다. 갸름하고 창백한 얼굴에 은색에 가까운 금발인 드레이코는 아버지를 쏙 빼닯은 것 같았다. 드레이코의 엄마도 역시 금발이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그녀는 바로 코 밑에서 불쾌한 냄새라도 난다는 듯이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만약 얼굴을 찌푸리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상당한 미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안녕하게요, 퍼지 장관님?" 루시우스 말포이가 마법부 장관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말했다. "제 아내 나시사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죠? 그리고 제 아들 드레이코도……."
"잘 있었나, 루시우스? 안녕하세요, 부인?"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이 미소를 지으면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오블랑스크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오블랑스크 씨는 불가리아의 마법부 장관입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제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답니다. 그러니까 별로 신경을 쓸 건 없어요. 그리고 또 누가 있더라……. 아서 위즐리 씨는 잘 알고 있겠죠?"
긴장된 순간이었다. 위즐리 씨와 루시우스 말포이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문득 해리는, 두 사람이 플러리쉬와 블러트 서점에서 마주쳤을 때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루시우스는 차가운 회색 눈으로 위즐리 씨를 한번 슬쩍 훑어보았다.
"이런! 아서……." 루시우스가 은근히 속삭였다. "도대체 뭘 팔아서 이런 일등석 자리를 구했나? 자네 집은 팔아 봤자 턱도 없을 테고?"
못 들은 척하고 있던 퍼지 장관이 말했다.
"루시우스는 성 뭉고 마법사 병원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했다네, 아서. 그래서 내가 특별히 초대했지."
"그…… 그랬군요."
위즐리 씨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루시우스의 싸늘한 눈길이 헤르미온느를 향하고 있었다. 약간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루시우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해리는 루시우스가 헤르미온느를 노려보면서 입술을 씰룩거리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말포이 가족은 자신들이 순수 마법사 혈통이라는 사실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헤르미온느 같은 머글 혈통은 아주 멸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시우스는 마법부 장관 앞이어서 그런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위즐리 씨를 향해 약간 고개만 까딱거렸다. 루시우스가 자리에 안자, 드레이코도 거만한 표정으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슬쩍 거들떠보고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았다.
"벌레 같은 자식……."
론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다시 경기장으로 얼굴을 돌렸다. 바로 그때 루도 베그만이 숨을 헐떡이면서 일등석으로 올라왔다.
"이제 곧 시작하겠습니다." 루도 베그만의 둥근 얼굴은 에담치즈(겉을 빨갛게 물들인 네덜란드산 치즈: 역주)처럼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장관님, 준비가 끝났습니까?"
"어서 시작하게, 루도."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햇다.
"소노루스!"
루도 베그만은 요술 지팡이를 꺼내더니 자신의 목에 갖다대었다. 경기장은 입추의 여지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마법사와 마녀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루도 베그만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함성 소리보다 더욱 크게 울려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사백스물두 번째 퀴디치 월드컵 결승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쳤다. 아일랜드 국가와 불가리아의 국가가 연주되자, 수천 개의 깃발이 한꺼번에 휘날렸다.
대형 전광판에 떠올랐던 광고가(버터 보트의 온갖 맛 나는 강낭콩 모양의 젤리- 드실 때 조심하세요!) 싹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스코어 보드가 나타났다.
불가리아 0: 0 아일랜드
"이제부터 양팀의 마스코트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불가리아 팀의 마스코트!"
온통 붉은색 물결로 뒤덮인 오른쪽 관람석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불가리아 팀은 어떤 걸 준비했을까?" 위즐리 씨가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말했다. "아!" 갑자기 위즐리 씨가 안경을 벗었다. "벨라야!" 위즐리 씨는 재빨리 옷자락으로 안경을 닦았다.
"벨라가 뭔데요?"
해리가 물었지만, 그는 위즐리 씨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백 명의 벨라가 미끄러지듯이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베라는 여자들이었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들……. 물론 벨라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저히 사람일 수가 없었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잠시 동안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정확히 벨라가 무엇인지, 벨라의 살결이 달빛처럼 빛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데 어떻게 해서 벨르의 은발이 휘날릴 수 있는지 추측하기 위해 노력했다…….
잠시 후에 음악이 연주되었다. 해리는 벨라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더 이상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벨라가 나풀거리면서 춤을 추지 시작했다. 해리는 정신을 온통 빼앗긴 채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벨라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만약 벨라가 춤을 추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벨라가 점점 더 빨리 춤추자, 해리의 머리 속으로 뭔가 이상한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해리는 벨라의 눈길을 끌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 충동을 도저히 뿌리치지 못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일등석에서 경기장으로 펄쩍 뛰어내리는 건 어떨까? 그래, 그게 좋겠어…….
"해리, 너 뭐하고 있는 거니?"
헤르미온느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해리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음악이 멈췄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눈을 깜박거렸다. 어느 사이에 해리는 한쪽 다리를 관람석 칸막이 위에 올려 놓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론은 마치 다이빙이라도 할 것 같은 자세로 꼼짝않고 서 있었다.
갑자기 관람석이 성난 함성으로 뒤덮였다. 관중들은 벨라가 경기장에서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물론 해리도 그들과 똑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가슴에 초록색 클로버를 달고 있지? 내가 응원해야 할 팀은 당연히 불가리아인데……. 이런 의문들이 해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론은 완전히 얼이 빠져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자에 달아놓은 클로버들을 뚝뚝 잡아 뜯고 있었다. 위즐리 씨는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론을 향해 몸을 숙이더니 모자를 빼앗았다.
"네 행동을 후회하게 될 거야, 론. 잠시 후에 아일랜드 팀의 응원이 시작되면……."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뭐라구요?"
론은 입을 헤 벌린 채 여전히 벨라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벨라는 불가리아 응원단을 향해 걸어가더니 줄지어 길게 늘어섰다.
"정말 꼴불견이야!"
헤르미온느는 한심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혀를 끌끌 차더니 해리의 등을 끌어당겨서 다시 자리에 앉혔다.
"여러분……." 루도 베그만이 관중을 향해 커다랗게 소리쳤다. "요술 지팡이들을 위로 들어 올려 주십시오! 아일랜드 팀의 마스코트입니다!"
루도 베그만의 말이 무섭게, 초록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물체가 경기장 안으로 혜성처럼 붕 하고 날아들었다. 그 물체는 경기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두 개의 불덩이로 갈라지더니 제각기 아일랜드 골대와 불가리아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갑자기 둥근 무지개가 뜨더니 두 개의 불덩이를 서로 연결해 주었다. 불꽃놀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관중들은 목청이 터질 정도로 우렁차게 함성을 질렀다. 무지개가 조금씩 희미하게 변하더니 다시 두 개의 불덩이가 하나로 결합했다.
잠시 후에 그 불덩이가 커다란 클로버 모양으로 변했다. 클로버는 서서히 관중석을 향해 날아오르며 황금 빗방울 같은 것을 후두둑 떨어뜨리고 있었다.
"굉장하다!"
반짝거리는 금화들이 하늘에서 우박처럼 쏟아지자, 론이 요란하게 환호성을 질렀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찬란하게 빛나는 클로버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빨간 조끼를 입고 있는 수천 명의 꼬마 요정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클로버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얼굴에 약간 수염이 나 있는 꼬마 요정들은 작은 손으로 황금빛과 초록빛이 흘러나오는 등불을 들고 있었다. 관중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레프러칸(장난꾸러기 요정. 레프러칸 요정을 붙잡으면 보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역주)! 장난을 좋아하는 꼬마 요정이란다."
위즐리 씨가 말했다. 관중들은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줍기 위해 의자 밑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자, 이걸 받아." 론이 한 줌의 금화를 불쑥 내밀면서 유쾌하게 외쳤다. "옴니큘러 값이야, 해리! 이젠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줄 수 있겠지?"
클로버 모양을 이루고 있던 레프러칸 요정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져 아일래드 관중석을 향해 두둥실 날아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열렬히 환영해 주십시오! 불가리아 퀴디치 국가 대표팀이 입장합니다! 디미트로프를 소개합니다!"
보랏빛 망토를 걸친 사람이 빗자루를 타고 힘차게 경기장으로 들어오자, 불가리아 응원단이 떠들석하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이바노바!"
역시 보랏빛 망토를 두른 또 다른 선수가 붕 하고 날아올랐다.
"조그라프! 레브스키! 불차노프! 볼코프! 그리고- 크룸1"
"바로 저 사람이야, 바로 저 사람이 크룸이야!"
방금 론은 옴니큘러에 눈을 갖다대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른 사람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해리도 얼른 옴니큘러를 들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까무잡잡한 피부, 커다란 매부리코에 짙고 까만 눈썹을 지닌 빅터 크룸의 모습은 마치 사나운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빅터 크룸의 나이가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일랜드 퀴디치 국가 대표팀이 입장합니다! 여러분! 열렬히 환영해 주십시오!" 루도 베그만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개합니다! 코놀리! 라이언! 트로이! 멀릿! 모런! 퀴글리! 그리고-린치!"
일곱 개의 초록색 형체가 경기장 위로 휙휙 날아갔다. 해리는 옴니쿨러에 달려 있는 작은 다이얼을 돌려서 선수들이 타고 날아 다니는 빗자루에 초점을 맞추었다. 옴니큘러를 조작해서 속도를 늦추자, 빗자루에 새겨진 '파이어볼트'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선수들의 등판에 은실로 수놓인 이름도 볼 수 있었다.
"여러분! 퀴디치 월드컵의 심판을 소개합니다! 이집트에서 오신 국제 퀴디치 협회 회장 핫산 모스타파입니다. 뜨겁게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체구에 깡마른 마법사 한 명이 경기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 마법사의 머리는 완전히 대머리였으며, 버논 이모부와 대적할 만한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경기장과 잘 어울리는 황금빛 망토를 걸친 모스타파는 한쪽 겨드랑이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를, 다른 쪽 겨드랑이에는 빗자루를 끼고 있었다.
해리는 옴니쿨러의 속도 다이얼을 다시 정상으로 돌린 후, 모스타파가 빗자루에 올라타고는 나무 상자를 발로 툭 차서 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무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네 개의 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빨간색 퀘이플 한 개와 검은색 블러저 두 개 그리고 날개가 달린 아주 작은 골든 스니치(골든 스니치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개였다.
모스타파는 호루라기를 한 번 삑 불더니 그 공들을 따라 공중으로 내달았다.
"마침내 선수들이 이륙했습니다!" 루도 베그만이 다급산 목소리로 외쳤다. "먼저 아일랜드의 멀릿이 퀘이프을 잡았습니다! 트로이! 모런! 디미트로프! 다시 멀릿! 트로이! 레브스키! 모런!"
선수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추격꾼들은 루도 베그만이 선수들의 이름을 말하기도 바쁠 정도로 퀘이플을 서로에게 휙휙 던지고 있었다. 해리는 지금처럼 숨가쁘게 진행되는 퀴디치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해리는 경기장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옴니큘러를 눈에 바싹 갖다대었다. 안경이 콧등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해리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더욱 경기에 열중했다.
해리가 옴니큘러의 오른쪽에 있는 술로우 다이얼을 살짝 돌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경기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옴니큘러의 화면 위에 보랏빛 글자들이 휙휙 지나갔다. 관중들의 함성이 해리의 귓전을 때렸다.
"매 머리 공격편대"
해리가 옴니큘러 화면에 나타난 보라색 글씨를 읽으면서 중얼거렸다. 아일랜드의 추격꾼 세 명이 불가리아 진영을 휘저으면서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트로이가 선두를 맡고 있었으며, 멀릿과 모런이 그 뒤를 바싹 따르고 있었다.
옴니큘러 화면에서 '포르스코프 작전'이라는 글자가 번쩍거렸다. 트로이가 날쌔게 움직이면서 불가리아의 추격꾼 이바노바를 제치더니 모런데게 퀘이플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가리아의 몰이꾼 볼코프가 힘껏 배트를 휘둘러서 블러저를 쳤다. 블러저는 모런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모런은 블러저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몸을 비틀다가 잠시 중심을 잃더니 그만 퀘이플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레브스키가 얼른 날아오더니 퀘이플을 잡았다.
"트로이 득점!" 루도 베그만이 소리치자, 경기장은 온통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10대 0으로 아일랜드가 리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신없이 옴니큘러에 눈을 갖다 대며 해리가 외쳤다. "분명히 레브스키가 퀘이플을 잡고 있었어!"
"해리, 정상 속도로 하지 않으면 경기를 제대로 볼 수가 없어!"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선제골을 올린 트로이가 자랑스럽게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사이, 헤르미온느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두 팔을 마구 흔들면서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옴니큘러 너머로 경기장을 내다보았다.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구경하고 있던 레프러칸 요정들이 일제히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커다란 클로버 모양을 만들었다. 벨라들은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일랜드 팀이 득점하는 장면을 놓치고 만 해리는 너무나 화가 났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자, 해리는 얼른 옴니큘러의 속도 다이얼을 정상으로 돌렸다.
퀴디치 경기 규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해리는 아일랜드의 추격꾼들이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아일랜드 팀은, 마치 서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발이 척척 들어맞았다.
"트로이- 멀릿- 모런!"
해리의 가슴팍에 매달려 있던 초록색 장미가 아일랜드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다시 10분도 채 흐르지 않아 아일랜드는 두 번이나 더 득점을 해서 30대 0으로 앞서 나갔다. 아일랜드 응원석은 온통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로 뒤덮였다.
경기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으며, 선수들의 행동도 더욱 난폭해졌다. 불가리아의 몰이꾼 볼코프와 불차노프는 아일랜드의 추격꾼들을 방해하기 위해 두 개의 블러저를 연속적으로 쏘아 보냈다. 대열을 정비하고 있던 아일랜드의 추격꾼들은 두 번이나 어쩔 수 없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이바노바가 흩어진 아일랜드 진영에 용케 들어가서 파수꾼 라이언을 피해 불가리아의 첫 번째 득점을 올렸다.
"귀를 막거라."
벨라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자 위즐리 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얼른 두 눈을 꼭 감았다. 오직 경기에만 몰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초 후에 해리는 실눈을 뜨고 경기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느 사이에 벨라들의 춤이 그치고, 퀘이플을 잡고 있던 불가리아 팀이 아일랜드 진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디미트로프! 레브스키! 디미트로프! 이바노바……. 오, 저런!"
루도 베그만이 깜짝 놀라면서 고함을 질렀다. 불가리아 수색꾼 크룸과 아일랜드 수색꾼 린치가 추격꾼들 사이로 뛰어들면서 급속히 하강하고 있었다. 마치 낙하산도 없이 비행기에서 훌쩍 뛰어내린 것처럼…….
관중석에 있던 마법사들은 깜짝 놀라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해리는 서둘러 옴니큘러의 초점을 맞추고, 크룸과 린치가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모습을 계속 따라가면서 스니치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힐끗 곁눈질을 했다.
"충돌하겠어!"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크룸과 린치는 당장이라도 땅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빅터 크룸은 급강하를 멈추고 빙글빙글 돌면서 아슬아슬하게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린치! 그러나 린치는 쿵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경기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일랜드 관중석에서 일제히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멍청이 같은 녀석!" 위즐리 씨가 투덜거렸다. "빅터 크룸은 페인트 모션을 취하고 있었던 거야!"
"타임 아웃!" 루도 베그만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의사 마법사들이 애이든 린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괜찮을 거야. 땅에 살짝 부딪힌 것뿐이야!" 찰 리가 새파랗게 질린 지니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물론 빅터 크룸의 뜻대로 되었지만……."
해리는 재빨리 옴니큘러를 눈에 갖다대고 슬로우 다이얼을 돌렸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크룸과 린치가 다시 슬로우 모션으로 급강하하는 모습이 보였다. 옴니큘러 화면에 '렁스키 페인트- 수색꾼이 펼치는 위험한 양동작전(일부러 다른 행동을 취해 적의 주의를 딴 데로 쏠리게 하는 작전: 역주)'이라는 보라색 글자가 번쩍거렸다. 빅터 크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아슬아슬하게 급강하를 멈추었지만, 미처 빗자루의 방향을 돌리지 못했던 린치는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 순간 해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해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크룸은 결코 스니치를 발견한 게 아니었다. 그저 린치가 자신의 뒤를 무작정 따라오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해리는 크룸처럼 빗자루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는 마치 몸무게가 전혀 나가지 않는 사람처럼 아주 유연하게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녔다.
해리는 옴니큘러의 속도를 다시 정상으로 맞추었다. 의사 마법사가 린치에게 물약을 몇 잔 내밀었다. 린치는 그 약을 먹고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옴니큘러의 초점을 빅터 크룸에게 맞추었다. 수백 미터 상공에 떠 있던 크룸은 두리번거리면서 스니치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린치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크룸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경기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질 수 있었다.
마침내 린치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관중들은 린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린치는 다시 파이어볼트에 올라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린치의 회복은 아일랜드 팀에게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모스타파가 다시 호루라기를 불자, 아일랜드의 추격꾼들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뛰어난 기술로 불가리아 팀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경기는 더욱 빠르고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다시 15분 가량 흐르는 동안, 아일랜드는 무려 열 골이나 집어넣었다. 해리는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불가리아 10: 130 아일랜드
아일랜드가 점수를 더욱 벌리면서 더 많은 부정 행위가 저질러지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추격꾼 멀릿이 겨드랑이에 퀘이플을 끼고 다시 불가리아 골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파수꾼 조그라프가 다급하게 그녀를 가로막았다.
갑자기 모스타파가 길고 날카롭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아일랜드 관중석에 있던 마법사들이 마구 분노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조그라프가 반칙을 저질렀던 것이다. 몹시 화가 난 레프러칸 요정들은 호박벌떼들처럼 붕붕거리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모스타파가 불가리아의 반칙을 선언했습니다. 불가리아의 파수꾼이 팔꿈치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반칙을 저지른 것입니다." 루도 베그만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심판이 아일랜드에게 자유투를 주는군요."
레프러칸 요정들은 그것 참 고소하다는 듯이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하하하'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불가리아 진영에 있던 벨라들은 조금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위즐리 형제들과 해리는 재빨리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얼른 해리의 귀에서 손가락들을 떼어 내었다.
"심판 좀 봐!"
헤르미온느가 킥킥거리면서 말했다. 해리는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핫산 모스타파가 정말로 이상야릇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벨라들에게 자신의 근육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군요!" 루도 베그만이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재미있어 죽을 지경인 것 같았다. "누가 가서 심판의 뺨을 좀 찰싹 때려 주세요!"
의사 마법사 한 명이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경기장을 가로질러 걸어가 모스타파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그제서야 모스타파는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해리는 그 광경을 좀더 자세히 지켜보기 위해 옴니큘러에 눈을 갖다대었다. 모스타파는 무척 당황하여 벨라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벨라들은 춤을 멈추고 반항적인 눈길로 심판을 노려보았다.
"모스타파 심판이 불가리아의 팀 마스코트를 경기장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루도 베그만이 심각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불가리아의 몰이꾼들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군요……."
불가리아의 몰이꾼 볼코프와 불차노프가 모스타파를 가로막았다. 그들은 몹시 화를 내면서 손가락으로 아일랜드 응원석을 가리켰다. 레프러칸 요정들이 마구 웃음을 터뜨리면서 '히히히'라는 글자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스타파는 불가리아 선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스타파는 볼코프와 불차노프를 노려보면서 다시 공중으로 날아가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불가리아의 몰이꾼들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자, 그는 짤막하게 호루라기를 두 번 불었다.
"심판이 아일랜드에게 자유투 두 개를 주는군요!" 구도 베그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불가리아 관중들이 화가 나서 악을 써댔다. "아무래도 볼코프와 불차노프는 다시 빗자루에 올라타는 게 좋겠군요……. 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추격꾼 트로이가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경기장 분위기가 더욱 격렬하게 달아올랐다. 아일랜드와 불가리아의 몰이꾼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상대방에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볼코프와 불차노프는 빗자루를 타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위협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들의 배트에 블러저가 맞든 사람이 맞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일랜드의 추격꾼 모런이 퀘이플을 잡았다. 디미트로프가 무서운 기세로 모런을 향해 날아갔다. 모런은 디미트로프를 피하려고 하다가 하마터면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했다.
"반칙!"
아일랜드의 관중석에 있던 마법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삽시간에 초록색 물결이 관중석을 뒤덮었다.
"반칙!" 루도 베그만이 근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디미트로프가 모런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고의적으로 충돌한 모양입니다. 아일랜드가 다시 한번 자유투를 얻게 될 것 같네요. 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신이 난 레프러칸 요정들은 다시 공중으로 올라가서 거대한 손모양을 만들더니 벨라들을 향해 아주 모욕적인 손짓을 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벨라들은 그만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벨라들은 사이드라인 근처까지 다가오더니 레프러칸 요정들에게 불덩이처럼 보이는 것을 던지기 시작했다.
해리는 옴니큘러로 벨라들을 바라보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벨라들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여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벨라들의 얼굴이 날카로운 부리가 달린 새의 머리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늘로 뒤덮인 기다란 날개가 벨라의 어깨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갑자기 벨라들의 모습이 변하자, 관중석에 앉아 있던 마법사들이 더욱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란다, 이 녀석들아!" 위즐리 씨가 말했다.
레프러칸 요정과 벨라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마법부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한편, 레프러칸 요정과 벨라의 싸움보다도 더욱 치열한 싸움이 경기장에서 펼져지고 있었다.
해리는 옴니큘러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면서 양대 격전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퀘이플은 아일랜드 선수들과 불가리아 선수들의 손을 거치면서 총알같이 쌩쌩 날아다니고 있었다.
"레브스키- 디미트로프- 모런- 트로이- 멀릿- 이바노바- 다시 퀘이플을 잡은 모런- 모런- 모런 득점!"
아일랜드 응원단은 일제히 요란한 함성을 질렀지만 벨라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마법부 직원들이 요술 지팡이를 휘둘르면서 내는 경적 소리와 불가리아 응원단의 성난 고함 소리에 묻혀서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즉시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레브스키가 퀘이플을 잡았다. 디미트로프가 퀘이플을 받아서 아일랜드 진영으로 파고 들었다.
아일랜드의 몰이꾼 퀴글리가 배트를 힘껏 휘둘러서 블러저를 쳤다. 블러저는 곧장 빅터 크룸을 향해 날아가 미처 피할 시간이 없었던 빅터 크룸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이 비명을 질렀다. 블러저에 맞아서 코가 깨졌는지, 크룸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핫산 모스타파는 경기를 중단시키기 위해 호루라기를 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관중들은 일제히 심판에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핫산 모스타파가 한눈을 팔고 있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벨라들 가운데 한 명이 불덩어리를 던져서 핫산 모스타파의 빗자루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빅터 크룸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어서 심판이 알게 되었으면……. 해리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비록 아일랜드를 응원하고 있긴 했지만, 해리는 빅터 크룸이야말로 가장 멋진 선수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론도 역시 해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임 아웃! 잠시 경기를 멈추세요, 어서……. 크룸이 부상을 당했어요! 저 상태로는 도저히 경기를 할 수 없어요!"
"린치를 봐!"
해리가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갑자기 아일랜드 수색꾼이 급강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렁스키 페인트일까? 하지만 해리는 결코 페인트 모션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이건 실제였다…….
"린치가 스니치를 발견했어! 린치가 발견했어! 저기를 봐!"
해리가 손가락으로 린치를 가리키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린치! 린치! 린치……."
관중의 절반은 벌써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은 것 같았다. 아일랜드 응원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린치의 이름을 다 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관중석은 순식간에 초록색 물결로 뒤덮였다.
빅터 크룸이 린치를 바싹 뒤쫓고 있었다. 그런데…… 크룸은 과연 앞이나 제대로 볼 수 있는 걸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질주하는 건 아닐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질주하는 건 아닐까? 빅터 크룸의 등 뒤로 핏방울이 휘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몹시 걱정스러웠다.
빅터 크룸이 거의 린치를 따라잡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수색꾼과 불가리아의 수색꾼은 또다시 땅바닥을 향해 돌진했다…….
"추락하겠어!"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 않아!"
론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고함쳤다.
"린치는 그럴 수도 있어!"
해리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던 린치는 또 한 번 엄청난 힘으로 또다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이드라인 근처에 떨어진 그는 즉시 성난 벨라들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스니치! 스니치는 어디있지?"
찰 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빅터 크룸이 스니치를 잡았어! 크룸이 잡았다구! 모든 게 끝났어!"
해리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빅터 크룸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올린 채 공중으로 부드럽게 올라가고 있었다. 빅터 크룸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보라색 망토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가리아 160: 170 아일랜드
마침내 경기가 끝났다. 전광판이 경기 결과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관중들은 아직도 조금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아주 천천히…… 마치 대형 점보 제트기가 서서히 엔진의 출력을 높이듯…… 불만으로 웅성거리던 아일랜드 관중들의 소리가 서서히 커지더니 갑자기 환희의 비명으로 폭발했다.
"아일랜드 승리!" 루도 베그만이 경기의 갑작스러운 결말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빅터 크룸이 스니치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승리는 아일랜드에게 돌아갔습니다. 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그럼 크룸은 도대체 왜 스니치를 잡은 거야?" 론이 급히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파도타기 박수갈채를 보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아일랜드가 160점 앞서 있을 때 경기를 끝내면 어떻게 해, 얼간이 같으니라구!"
"빅터 크룸은 불가리아가 아일랜드를 절대로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아일랜드 추격꾼들이 너무나 잘했잖아……. 시간이 갈수록 양팀의 점수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졌을 거야……. 빅터 크룸은 적당한 선에서 경기를 끝내고 싶었던 겨야……."
해리가 선수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빅터 크룸은 정말 용감했어. 안 그래?" 헤르미온느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빅터 크룸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의사 마법사들이 빅터 크룸을 치료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레프러칸 요정들과 벨라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크룸의 모습이 엉망이야……."
해리는 다시 옴니큘러를 눈에 갖다 대었다. 레프러칸 요정들이 신이 나서 운동장 여기저기를 붕붕 날아 다니는 바람에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기가 힘들었지만, 해리는 의사 마법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빅터 크룸만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빅터 크룸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사 마법사들의 손길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잔뜩 풀이 죽은 불가리아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몹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선수들의 분위기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레프러칸 요정들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아낌없이 금화를 뿌렸다. 마치 함박눈이라도 내리는 것처럼 번쩍거리는 금화를 맞으며, 아일랜드 선수들은 즐겁게 춤을 추었다. 사방에서 아일랜드 국가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초록색 깃발들이 운동장 곳곳에서 펄럭거렸다. 벨라들의 얼굴은 다시 아름다운 여인으로 돌아왔지만, 맥이 풀려서 축처져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용감하게 싸웠습니타."
갑자기 해리의 등 뒤에서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불가리아의 마법부 장관이었다.
"영어를 할 줄 아시는군요!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데 제가 하루 종일 손짓발짓을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단 말입니까?"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은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불가리아 장관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아일랜드 선수들이 마스코트들과 함께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선수들입니다. 퀴디치 월드컵의 우승컵이 일등 관람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루도 베그만이 관중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갑자기 강렬한 빛이 일등석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아마도 그 눈부신 빛은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등석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두 명의 마법사가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우승컵을 들고 일등석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에게 우승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에게 우승컵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은 하루종일 쓸데없이 손짓발짓을 했다는 생각으로 여전히 잔뜩 기분이 상해 있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한 불가리아 선수들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부탁합니다!"
루도 베그만이 외쳤다. 일곱 명의 불가리아 선수들이 계단을 밟으면서 일등석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냈다. 수천 개의 옴니큘러들이 시상식이 열리는 일등석을 향하고 있었다.
마침내 불가리아 선수들이 열을 지어서 입장했다. 루도 베그만이 순서에 따라 한 명씩 이름을 부르자, 선수들은 불가리아의 장관과 먼저 악수를 나눈 후에 다시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과 악수를 나누었다. 빅터 크룸은 가장 뒤에 서 있었는데, 모습이 정말로 말이 아니었다. 비록 얼굴은 피투성이였지만, 까만 두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여전히 한 손에 스니치를 들고 있었다.
해리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빗자루를 타고 경기장을 날아다니던 빅터 크룸은 너무나 당당했지만, 가까이에서 실제로 보니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다리는 안짱다리였으며 등은 눈에 뜨일 정도로 구부정했다.
루도 베그만이 빅터 크룸의 이름을 부르자, 관중들은 일제히 귀청이 떨어질 듯한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에 아일랜드 선수들이 입장했다. 애이든 린차는 모런과 코놀리의 부축을 받으면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두 번이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던 애이든 린치의 눈은 어쩐지 초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트로이와 퀴글리가 퀴디치 우승컵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자 린치도 만족스럽게 씩 웃었다. 시상식이 진행되는 동안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해리도 손바닥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일랜드 선수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더니(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던 애이든 린치는 코놀리의 빗자루 뒤에 올라타서 코놀리의 허리를 꼭 잡은 채 몽롱한 눈빛으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경기장을 빙 돌렸다.
"콰이어투스!"
루도 베그만은 요술 지팡이를 자신의 목에 갖다 대고 주문을 외웠다.
"이 경기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될 겁니다." 루도 베그만이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어요. ……. 좀더 오랫동안 경기가 진행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아, 그래……. 그래, 너희들이 이겼구나……. 얼마였지?"
어느 틈에 의자를 넘어간 프레드와 조지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면서 루도 베그만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