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개심(A Retrieved Reformation)
“자 발런타인.”하고 형무소장이 말했다.
“내일 아침에 석방해 주겠네. 용기를 갖고 착한 사람이 돼야 해 자네는 근본이 나쁜 인간이 아니야, 금고는 그만 털고, 착실하게 살아야 해.”
“제가요?” 하고 지미는 놀라는 소리를 했다.
“아니 전 여태껏 한 번도 금고를 턴 적이 없는걸요.”
“암, 그렇고말고,” 하고 형무소장은 웃었다.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어째서 넌 그 스프링필드 사건으로 이곳에 오게 됐나? 상류사회의 어떤 귀한 분한테 혐의가 갈까 봐 네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너한테 원한을 품은 어떤 배심원의 비열한 행동 때문이란 말이냐? 너희들처럼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덮어쓰는 인간은 대개 그런 정도로 걸려들게 마련이거든.”
“제가요?” 여전히 멍청하게 착해 보이는 얼굴로 지미는 말했다.
“아니, 소장님. 전 지금까지 한 번도 스프링필드에는 가 본 적이 없는걸요.”
“이 사람을 데리고 가, 크로닌! 그리고 나갈 때 입을 옷을 챙겨줘, 내일 아침 7시가 되거든 대기실로 내보내. 내 말을 잘 생각해봐야 해. 발런타인!”
출감자들이 석방될 때 주 당국에서 지급하는, 몸에 맞지도 않는 기성복에다 삐걱거리는 뻑뻑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법률이 주는 기차표와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직원이 지미에게 주었다. 형무소장은 그에게 엽궐련을 한 대 주면서 악수를 청했다.
제9762호 죄수 발런타인은 죄수명부에 ‘지사에 의한 사면’이라고 기록되고, 그러고 나서 제임스 발런타인 씨는 햇빛 속으로 걸어 나갔다.
지미는 곧장 식당으로 가서 통닭에 백포도주 한 병을 마시고 형무소장이 준 것보다 더 고급 엽궐련을 한 대 물고는 자유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정거장 입구에서 장님의 모자에다가 25센트짜리를 던져주고 기차에 올랐다. 3시간 뒤 주 경계 근처의 조그만 읍에 내려서 마이크 돌런이 경영하는 카페로 가서 그를 만났다.
“좀 더 빨리 꺼내주지 못해서 미안해, 지미.”하고 마이크는 말했다.
“스프링필드에서 심하게 반대를 해서 말이야, 하마터면 지사도 생각을 바꿀 뻔했다고. 그래.”
“내 열쇠는?”
열쇠를 받아들자 지미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안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모든 것이 그가 떠날 때 그대로였다. 방바닥에는 지미와 몸싸움할 때 명탐정 벤 프라이스의 와이셔츠 깃에서 떨어진 흰 단추가 그대로 있었다.
알코브(Alcove) 벽으로 집어넣은 간이 침대를 꺼낸, 벽의 널빤지 한 장을 밀어젖히고 먼지 묻은 슈트케이스를 꺼냈다. 그것을 열고 동부에서 제일가는 절도용의 연장 세트를 사랑스러운 듯이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특별히 단금질된 강철로 만든 완벽한 만능 연장 세트였으며, 최신형 장비로 지미 자신이 고안한 연장도 두어 개 있었다. 이 연장은 절도 전문가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만들고 있는 곳에서 900달러나 주고 만든 것이다.
반 시간쯤 있다가 카페를 빠져나갔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손에는 깨끗이 먼지를 턴 그 슈트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제9762호 죄수 발런타인이 풀려난 지 일주일 뒤, 인디애나주 리치먼드에서 금고털이 사건이 일어났으나, 범인이 누구인지 전혀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도난당한 금액은 불과 800달러였다. 그리고 2주일 뒤, 이번에는 로건스포트에서 도난 방지 특허를 받은 개량형 금고가 치즈처럼 간단히 열려 현금 1,500달러를 털렸다.
그러나 증권류나 은화는 그대로 있었다. 이것이 형사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제퍼슨 시(市)의 은행에 구식 금고가 열려 5000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지폐가 사라져버렸다. 이번에는 피해가 커서 명탐정 벤 프라이스 급의 활동을 촉구시키는 데까지 사태가 발전했다. 피해 상황을 조사해보니 금고를 터는 방법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벤 프라이스는 도난 현장을 조사하고 나서 의견을 말했다.
어느 날 오후, 아칸소주의 엘모어라는 읍에. 그 슈트케이스를 든 지미 발런타인이 우편 배달용 합승 마차에서 내렸다. 지미는 고향에 갓 돌아온 대학 4년생의 젊은 운동선수 같은 모습으로 널빤지를 깐 길을 따라 호텔 쪽으로 걸어갔다.
한 젊은 여자가 길모퉁이에서 그를 앞질러 ‘엘모어 은행’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지미 발런타인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본 순간, 그만 자기가 뭘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살짝 볼을 붉혔다. 지미 같은 복장이나 용모를 가진 사람은 보기 드물었던 것이다.
지미는 은행 돌층계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소년 하나를 붙잡고, 틈틈이 10센트짜리 한 닢씩 쥐어주면서 이 고장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는데 그 여자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지나갔다.
“저 아가씨는 폴리 심프슨 양이지?” 하고 지미는 그럴듯하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아뇨.” 하고 소년은 말했다. “저 여자는 아나벨 아담스예요. 저 여자 아버지가 이 은행의 주인인걸요. 아저씬 무슨 일로 엘모어에 오셨어요? 이젠 10센트 없나요?”
지미는 프래터스 호텔에 가서, 랠프 D.스펜서라고 숙박부에 기입하고는 방을 예약했다. 그리고 프런트에 기대어 사무원에게 물었다. 장사를 시작할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구둣방을 해볼까 하는 생각인데 장래성이 있을까? 하고 물었다.
“구둣가게라면 충분히 가망성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구두 전문점이 없으니까요. 포목가게와 잡화가게에서 구두를 팔고 있지요. 엘모어에 자리 잡도록 하세요, 여긴 살기도 좋고 사람들도 여간 상냥하지 않습니다.”
지미 발런타인은 죽고 사랑의 불꽃에 타다 남은 죽음의 잿더미 속에서 일어선 불사조 랠프 D. 스펜서 씨는 엘모어에 머물러서 성공했다. 구둣방을 차려 장사가 번창한 것이다.
사교적으로도 성공하여 많은 친구가 생겼다. 아나벨 아담스 양을 만나 점점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랠프 D. 스펜서 씨는 읍내의 존경을 차지했고, 구둣가게는 번창했으며. 아나벨 양과는 약혼하여 2주일 뒤에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노력가인 시골 은행가 아담스 씨는 스펜서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그는 그녀의 가족과도 허물없이 잘 지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방에 앉아 한 통의 편지를 써서 센트루이스에 있는 옛 친구의 안전한 주소로 부쳤다.
그리운 친구여.
다음 주 수요일 밤 9시, 리틀로크의 설리반네 집에 와 주게.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러네. 아울러 내 연장을 너에게 주고 싶네. 아마 기꺼이 받아줄 줄 아네. 나는 예전에 그 직업을 버렸네. 대신 좋은 가게를 갔고 있지. 그리고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어. 2주일 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처녀와 결혼하네. 지금은 1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남의 돈은 1달러도 손대고 싶지 않네. 결혼하면 서부로 갈 생각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 그릇된 짓은 안 할 거야, 꼭 설리반네 집으로 와 주게, 꼭 만나야 해. 그때 연장을 갖고 나가지.
- 옛 친구 지미 -
지미가 이 편지를 쓴 다음 월요일 밤, 벤 프라이스가 전세 마차로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엘모어에 들어왔다.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스펜서의 구둣가게 맞은편에 있는 약국에서 스펜서를 찬찬히 관찰했다.
‘은행가의 딸과 결혼한다지. 지미?’ 하고 벤은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두고 봐야지!’
이튿날 아침, 지미는 아담스 씨네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날은 예복도 맞출 겸 아나벨에게 줄 근사한 선물을 사기 위해서 리트로크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엘모어의 온 뒤 이곳을 떠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본래의 ‘일’을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으므로, 이제는 나가서 돌아다녀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아침을 먹고 번화가로 나갔다. 아담스 씨, 아나벨, 지미, 5살과 9살짜리인 두 딸을 데리고 나온 아나벨의 결혼한 언니, 그들은 지미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 이르렀다. 지미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서 문제의 그 슈트케이스를 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모두 은행으로 갔다. 거기에는 지미의 말과 마차, 그리고 그를 철도역까지 태워줄 돌프깁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스의 사위는 어디서나 환영을 받았다. 은행 사람들은 아나벨 양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이 상냥한 미남에게 인사를 받고 기뻐했다. 행복감과 발랄한 젊음으로 가슴이 뿌듯한 아나벨은 지미의 모자를 쓰고 슈트케이스를 들어 올렸다.
“나 근사한 외무사원으로 보이지 않아요?” 하고 아나벨은 수다스럽게 말했다.
“어마, 랠프, 이 슈트케이스는 왜 이렇게 무겁죠! 마치 황금 벽돌이라도 잔뜩 들어 있는 것 같네요!”
“니켈 구둣주걱이 가득 들어 있어서 그렇소.”
지미는 참착하게 말했다.
“지금 반품하러 가는 길이오. 들고 가면 급행 운송료가 절약될 것 같아서요. 이제, 나는 굉장히 절약가가 되었습니다.”
마침 엘모어 은행에서는 새 금고실을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손잡이 하나로 동시에 조작할 수 있는 튼튼한 세 개의 강철 빗장으로 닫게 되어 있고, 시한장치의 자물쇠가 붙어 있었다. 아담스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고 그 조작법을 스펜서에게 설명해 주었다.
가족들이 이런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에 벤 프라이스가 어슬렁거리고 들어와서 칸막이 사이로 슬쩍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은행직원에게는 아는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부인들 사이에서 한두 번의 비명소리가 나더니 이어 큰 소동이 벌어졌다. 9살짜리 언니 메이가 장난삼아 동생 애거더를 금고실 안에 가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담스 씨가 하던 대로 빗장을 내리고 콤비네이션 자물쇠의 다이얼을 돌려버린 것이다.
노 은행가는 손잡이에 달려들어 한참을 잡아당겨 보았다.
“문이 열리지 않아!” 하고 그는 신음했다.
“시계는 태엽을 감아두지 않았고, 콤비네이션 자물쇠도 맞추어놓지 않았단 말이야!”
애거더의 어머니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애거더야 내 말이 들리느냐!”
그는 목청껏 불렀다.
잠시 후 조용해졌을 때 컴컴한 금고실 안에서 무서움에 질려 마구 울어대는 애거더의 소리가 가냘프게 들려 왔다.
“문을 부수고 열라니까요! 여러분, 남자분들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나요!”
“리틀로크에 나가야 이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아담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큰일 났군!”
“스펜서 군, 어떻게 하면 좋겠나! 저 아이는······ 금고실 안에서는 오래 견디지 못해, 공기가 별로 없고, 또 겁이 나서 까무러칠지도 모른단 말이야.”
애거더의 어머니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두 주먹으로 금고실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누군가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아나벨은 고통에 차 있으나 아직 절망하지는 않은 커다란 눈으로 지미를 돌아보았다. 여성이란 자기가 존경하는 남자의 능력은 불가능한 것이 없는 줄로 안다.
“어떻게 할 수 없나요.? 랠프,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네?”
랠프는 기묘하고 정다운 미소를 띠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나벨, 당신이 꽂고 있는 그 장미, 나에게 주지 않겠소?”
잘못 듣지 않았나 하고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그녀는 드레스 가슴에서 핀으로 꽂은 장미를 뽑아 스펜서에게 주었다. 지미는 장미를 조끼 주머니에 밀어 넣고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였다.
“여러분, 모두 문 앞에서 비켜나십시오.” 하고 그는 짤막하게 명령했다.
그는 슈트케이스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양쪽으로 열었다. 1분이 지나자, 지미의 애용 드릴이 강철 문으로 미끄럽게 들어가고 있었다. 10분이 지났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의 도둑기록을 깨뜨리고 빗장을 들어 올려 문을 열었다.
애거더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무사히 어머니의 가슴에 안겼다.
지미 발런타인은 웃옷을 입고, 난간 밖으로 나가서 정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아득히 멀리서 귀에 익은 목소리로 “랠프!”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입구에 큼지막한 사나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안녕하시오, 벤.” 아직도 그 기묘한 미소를 띤 채 지미가 말했다.
“기어이 나타나셨군, 자, 갑시다. 내가 마음을 잡고 착실하게 생활했었다. 해도 이제는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벤 프라이스는 좀 묘한 말을 했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스펜서 씨?”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선생을 알다니요. 천만에요. 선생은 마차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벤 프라이스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거리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