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88화
송강의 인마가 천천히 전진하여 소주성 밖에 당도하였을 때, 혼강룡 이준이 풍질에 걸린 척하면서 침상에 쓰러졌다. 보고를 받은 송강이 의원을 데리고 오자, 이준이 말했다.
“형님께서는 회군하는 기한을 어기지 마십시오. 장초토가 먼저 간 지 오래 되었으니, 늦으면 조정의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저를 가련히 여기신다면, 동위와 동맹을 남겨 저를 돌보게 해주십시오. 병이 나으면 뒤를 따라 갈 테니, 형님께서는 군마를 거느리고 먼저 경성으로 가십시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내키지는 않았지만 의심하지도 않았다. 장초토가 재촉하기도 해서, 송강은 이준 · 동위 · 동맹을 남겨두고 인마를 거느리고 경성으로 출발하였다.
한편, 이준과 동위 · 동맹은 전날의 약속을 어기지 않고 비보 등 네 사람을 찾아갔다. 일곱 사람은 유류장에 모여 상의한 끝에, 가산을 모두 털어 배를 건조하여 태창항을 떠나 바다로 나아가 외국으로 갔다. 훗날 이준은 섬라국(暹羅國)의 임금이 되었고, 동위 · 동맹과 비보 등은 관원이 되어 바닷가를 지배하면서 즐겁게 살았다고 한다.
한편, 송강은 군마를 거느리고 상주와 윤주 등 지난날의 전쟁터를 지나면서 또 다시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마가 강을 건너온 이래 열에 두셋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주와 회안을 지나 경성이 멀지 않자, 송강은 장수들에게 각기 천자를 알현할 준비를 하라고 명을 내렸다.
삼군 인마는 9월 20일에 동경에 당도하였다. 장초토의 중군 인마는 먼저 도성으로 들어가고, 송강의 군마는 도성 밖에 주둔하였다. 예전에 머물렀던 진교역에 영채를 세우고 성지를 기다렸다.
그때 이준을 보살피라고 남겨두고 왔던 군졸이 소주에서 돌아와, 이준은 원래 병이 난 것이 아니라 경성으로 가서 관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동위 · 동맹과 함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송강은 또 다시 탄식하였다.
송강은 배선으로 하여금 경성으로 돌아온 27명의 장수들과 나라를 위해 전사한 장수들의 이름을 기록한 표문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장수들에게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관복을 준비하라고 명을 내렸다.
사흘 후, 조회가 열려 근신이 천자에게 아뢰자, 천자는 송강 등을 알현케 하라고 명하였다. 그날 동방이 차츰 밝아오자, 송강과 노준의 등 27명의 장수는 성지를 받들어 말에 올라 도성으로 들어갔다. 동경 백성들이 봤을 때, 이번이 세 번째 입조였다.
첫 번째는 초안을 받았을 때로서, 그때는 천자가 하사한 붉은 전포 혹은 푸른 전포를 입고 금패 혹은 은패를 차고 입조했었다. 두 번째는 요나라를 격파하고 돌아왔을 때로서, 그때는 모두 갑옷을 입고 입조했었다. 이번에는 태평한 때라 천자의 특명으로 관복을 입고 입조하였다. 동경 백성들은 백 명이 넘던 장수들이 몇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송강 등 27명은 정양문 아래 당도하여 말에서 내려 입조하였다. 시어사가 대전 아래 계단까지 인도하였다. 송강과 노준의가 앞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 여덟 번 절하고 뒤로 물러나 여덟 번 절하고 다시 중간쯤 나아가 여덟 번 절했다. 모두 스물 네 번의 절을 올리고 만세를 세 번 불렀다.
군신 간의 예가 끝나자, 휘종천자는 송강 등이 몇 명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측은하게 생각하여 모두 어전으로 올라오라고 명하였다. 송강과 노준의는 장수들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가 주렴 아래 무릎을 꿇었다. 천자는 장수들을 일어서게 하고 주렴을 걷게 하였다. 천자가 말했다.
“짐은 경들이 강남을 평정하느라 노고가 많았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경들의 형제를 태반이나 잃었다는 것을 듣고, 짐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송강이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재배하고서 아뢰었다.
“신은 어리석고 재주가 없어, 간뇌도지(肝腦塗地)하더라도 국가의 큰 은혜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날 신들 108명이 모여 의기를 함께 하고 오대산에 올라 생사를 같이하기로 발원했었는데, 오늘 이렇게 열 중에 여덟을 잃을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전사한 형제들을 감히 모두 아뢸 수 없어 그 이름을 적어 삼가 올리오니,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천자가 말했다.
“경의 부하로서 왕사(王事)에 죽은 자들에게 모두 관작을 봉하라고 짐이 명하였으니, 그 공이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송강은 재배하고 표문을 올렸다.
평남도총관 정선봉사 신 송강 등은 삼가 표문을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 송강 등은 어리석고 재주가 용렬하며 미천한 하급 관리로서, 지난날 큰 죄를 지었는데 다행히 폐하의 은덕으로 사면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아무리 높고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폐하의 은덕에 비할 수 없으며, 분골쇄신(粉骨碎身)하더라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 형제들은 양산박으로 떠남으로써 사악함을 버리고, 오대산에 올라 한마음으로 충의를 다하여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고자 발원하였습니다. 유주성에서는 요나라 군사를 물리쳤고, 청계현에서는 방랍을 사로잡았습니다. 비록 작은 공이지만 이렇게 아뢰는 것은, 장수들의 이름이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신 송강은 그들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슬픔에 잠깁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은총으로 굽어 살피시어 이미 죽은 자들도 은택을 입을 수 있게 해주시고 살아있는 자들도 보살펴 주시옵소서. 신 송강은 전원으로 돌아가 농민이 되기를 원하오니, 폐하께서 너그럽게 살펴주시옵소서.
신 송강 등은 황공하오나 죽은 형제들의 이름을 적어 삼가 올립니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정편장은 모두 59명입니다. 정장 14명은, 진명, 동평, 장청, 서녕, 삭초, 유당, 사진, 뇌횡, 완소이, 완소오, 장순, 석수, 해진, 해보입니다.
편장 45명은, 송만, 초정, 도종왕, 한도, 팽기, 정천수, 조정, 왕정륙, 선찬, 공량, 시은, 학사문, 등비, 주통, 공왕, 포욱, 단경주, 후건, 맹강, 왕영, 호삼랑, 항충, 이곤, 연순, 마린, 단정규, 위정국, 여방, 곽성, 구붕, 진달, 양춘, 욱보사, 이충, 설영, 이운, 석용, 두천, 정득손, 추연, 이립, 탕륭, 채복, 장청, 손이랑입니다.
도중에 병으로 죽은 정편장은 10명입니다. 정장 5명은 임충, 양지, 장횡, 목홍, 양웅이고, 편장 5명은 공명, 주귀, 주부, 백승, 시천입니다. 항주 육화사에서 원적한 정장 1명은 노지심이고, 팔을 잃어 관작을 원하지 않고 육화사에서 출가한 정장 1명은 무송입니다.
지난번에 경성으로 회군했을 때 소주로 돌아가 출가한 정장 1명은 공손승입니다. 관작을 원하지 않아 도중에 떠난 정편장은 4명인데, 정장 2명은 연청, 이준이고, 편장 2명은 동위, 동맹입니다.
강남으로 떠날 때 경성에 남은 사람과 후에 경성으로 불려간 의원까지 5명인데, 편장 안도전, 황보단, 김대견, 소양, 악화입니다.
현재 입조한 정편장은 27명으로, 정장 12명은 송강, 노준의, 오용, 관승, 호연작, 화영, 시진, 이응, 주동, 대종, 이규, 완소칠이고, 편장 15명은 주무, 황신, 손립, 배선, 양림, 능진, 장경, 번서, 송청, 목춘, 두흥, 추윤, 채경, 손신, 고대수입니다.
선화 5년 9월 일.
봉사 신 송강, 부선봉 신 노준의 등이 삼가 표문을 올립니다.
천자는 표문을 보고 탄식하여 마지않으며 말했다.
“하늘의 별자리에 응한 경들 108인이 이제 27인만 남았구나. 관작을 사양하고 떠난 4인까지 치면, 참으로 열에 여덟이 떠났구나!”
천자는 성지를 내려 왕사(王事)에 죽은 정편장들에게 관작을 수여하였다. 정장은 충무랑(忠武郎)에, 편장은 의절랑(義節郎)에 봉하였다. 그들 중 자손이 있는 자는 경성으로 불러 관작을 승계하도록 하고, 자손이 없는 자는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장순은 영험을 나타내어 공을 세웠으므로 금화장군(金華將軍)에 봉하였다. 중인 노지심은 역적 괴수 방랍을 사로잡은 공이 있고 큰 사찰에서 좌정한 채 선종하였으므로 의열조기선사(義烈照暨禪師)를 추증하였다. 무송은 적과 싸우면서 공을 세우고 팔을 잃었으며 육화사에서 출가하였으므로 청충조사(清忠祖師)에 봉하고 10만 관의 돈을 하사하여 천수를 마칠 수 있게 하였다. 고인이 된 여장군 호삼랑에게는 화양군부인(花陽郡夫人)을, 손이랑에게는 정덕군군(旌德郡君)을 추증하였다.
현재 입조한 자들은 선봉사 송강을 제외한 정장 10명은 무절장군(武節將軍)에 봉하여 각 주의 통제관이 되게 하고, 편장 15명은 무혁랑(武奕郎)에 봉하여 각 방면의 도통령(都統領)이 되게 하였다. 여장군 고대수는 동원현군(東源縣君)에 봉하였다.
선봉사 송강은 무덕대부(武德大夫) 및 초주 안무사 겸 병마도총관에 봉하고, 부선봉 노준의는 무공대부(武功大夫) 및 여주 안무사 겸 병마부총관에 봉하였다. 군사 오용은 무승군 선승사, 관승은 대명부 정병마총관, 호연작은 어영병마지휘사, 화영은 응천부 병마도통제, 시진은 횡해군 창주 도통제, 이응은 중산부 운주 도통제, 주동은 보정부 도통제, 대종은 연주부 도통제, 이규는 진강 윤주 도통제, 완소칠은 개천군 도통제에 임명하였다.
천자는 또 정편장들에게 관작을 봉함과 동시에 상을 내렸다. 편장 15명에게는 각각 금은 3백 냥과 비단 다섯 필, 정장 10명에게는 각각 금은 5백 냥과 비단 여덟 필을 내렸다. 선봉사 송강과 노준의에게는 각각 금은 1천 냥과 비단 열 필, 어화포(御花袍) 한 벌, 명마 한 필을 상으로 내렸다.
송강 등은 사은한 다음, 목주의 오룡대왕이 두 번이나 영험을 나타내어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고 장병들을 구원한 일을 아뢰었다. 천자는 칙령을 내려 ‘충정영덕보우부혜용왕(忠靖靈德普祐孚惠龍王)’의 칭호를 더하였다. 그리고 어필로 목주(睦州)를 엄주(嚴州)로 흡주(歙州)를 휘주(徽州)로 개명하였는데, 방랍이 모반한 곳이기 때문에 반대의 뜻을 가진 문자로 바꾼 것이었다.
청계현(清溪縣)은 순안현(淳安縣)으로 개명하고, 방원동은 물길을 내어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칙령을 내려 목주의 관아에서 돈을 내어 오룡대왕묘를 세우게 하고 친필 편액을 내렸다. 방랍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강남 지역의 인민들에게 3년 동안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그날 송강 등이 사은하자, 천자는 태평연을 열어 공신들을 경하하였다. 문무백관과 구경(九卿) · 사상(四相)이 모두 연회에 참석하였다. 연회가 끝나자, 송강이 또 상주하였다.
“신이 양산박에서 초안을 받은 이래 부하 군졸도 태반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에게 폐하께서 성은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자는 상주를 허락하고 칙령을 내렸다.
“군사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1백 관의 돈과 비단 열 필을 내리고 용맹군(龍猛軍)과 호위군(虎威軍) 두 영채에 속하게 하여 달마다 봉록을 지급하라. 군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2백 관의 돈과 비단 열 필을 내리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양민이 되게 하라.”
송강이 또 상주하였다.
“신은 운성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죄를 지은 이래로 감히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신이 고향으로 돌아가 친족들을 만나보고 초주로 부임할 수 있도록 성상께서 휴가를 주시기 바랍니다.”
천자는 상주를 듣고 기뻐하면서 다시 10만 관의 돈을 하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자로 삼게 하였다. 송강은 사은하고 조정을 나왔다.
다음 날에는 중서성에서 태평연을 열어 장수들을 대접하고, 사흘째에는 추밀원에서 또 연회를 열어 태평을 경하하였다. 장초토, 유도독, 동추밀, 종참모, 경참모, 왕품, 조담은 조정에서 더 높은 관작을 얻었다. 태을원(太乙院)에서는 성지를 주청하여, 방랍을 동경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에 처하고 사흘 간 대중에게 효시하였다.
한편, 송강은 부하 군사들 가운데 군대에 남기를 원하는 자는 용맹군과 호위군에 이름을 보고하고, 민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는 은자를 주어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양민이 되게 하였다. 부하 장수들도 각기 상을 받고서 임명받은 곳으로 부임하였다.
송강은 장병들을 모두 보내고 나서 아우 송청과 함께 군졸 1~2백 명을 거느리고 하사받은 물건을 가지고 동경을 떠나 산동을 향해 출발하였다. 송강과 송청이 금의환향하자, 고향의 친척들이 모두 영접하여 장원으로 갔다.
하지만 뜻밖에 송태공은 이미 돌아가시고 영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송강과 송청은 통곡하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식구들과 일꾼들이 모두 나와 송강에게 절을 올렸다. 장원의 전답과 가산들은 송태공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송강은 스님들을 장원으로 청하여 돌아가신 부모님과 종친들의 명복을 빌었다. 고을의 관원들도 모두 찾아와 인사했다. 송강은 날을 택하여 송태공의 영구를 높은 언덕에 모셔 장례를 지냈다. 그날 고을의 관원들과 인근 노인들, 친구와 친척들이 모두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송강은 현녀낭랑(玄女娘娘)의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돈 5만 관을 내어 장인들로 하여금 구천현녀낭랑의 사당과 산문을 다시 세우게 하고 성상도 새로 장식하였다.
어느덧 여러 날이 지나 천자의 책망을 염려하여 날을 택해 상복을 벗고 연회를 열어 고향 어른들을 초청하여 대접하고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다음 날은 친척들이 역시 연회를 열어 경하하였다. 송청은 관작을 받기는 했으나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종친들의 제사를 받들기를 원하여, 송강은 송청에게 장원을 넘겨주고 남은 돈과 비단 등은 주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고향에서 몇 달을 보낸 송강은 어른들과 친구들을 작별하고 동경으로 다시 돌아갔다. 형제들 중에는 가족을 동경으로 불러들여 함께 사는 사람도 있고, 부임지로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남편이나 형제가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들은 조정에서 하사한 상을 받아 가족을 위로하러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송강도 성원의 관원들을 작별하고 임지로 부임하기 위해 행장을 수습하였다. 그때 신행태보 대종이 송강을 찾아왔다.
신행태보 대종이 송강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성은을 입어 연주 도통제를 제수 받았는데, 이제 관작을 반납하고 태안주 악묘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아우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제가 태산부군(泰山府君)에게 불려가는 꿈을 꾸었기에 선심(善心)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아우는 생시에도 신행태보라 불렸으니, 훗날 반드시 악부(嶽府)의 영험한 신령이 될 걸세.”
송강을 작별하고 간 대종은 관작을 반납하고 태안주 악묘로 가서 출가하여 매일 향화를 올리면서 성제(聖帝)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몇 달 후 어느 날 저녁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도반들을 청하여 작별 인사를 나누고 크게 웃으며 선종하였다. 후에 악묘에서 여러 번 영험을 나타냈기 때문에 주민들이 축원하고 대종의 신상(神像)을 세웠다.
완소칠은 관작을 받고 개천군으로 가서 도통제의 직을 수행했다. 그런데 대장 왕품과 조담이 지난 날 방원동에서 완소칠에 모욕당한 일에 원한을 품고서 누차 동추밀에게 완소칠의 과실을 고자질하였다. 완소칠이 그때 방랍의 곤룡포를 입었던 것이 비록 한때의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불량한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며, 개천군은 벽지인데다 주민들이 야만적이어서 필시 모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동관이 그 사실을 채경에게 알렸고, 채경은 천자에게 주청하여 결국 성지를 내려 부임한 지 몇 달 만에 왕소칠의 관작을 삭탈하여 서민으로 돌아가게 했다. 완소칠은 도리어 기뻐하면서 노모를 모시고 양산박 석갈촌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어부로 살면서 노모를 봉양하며 60세에 천수를 마쳤다.
한편, 소선풍 시진은 경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종이 관작을 반납하고 한가로운 삶을 구해 떠나가는 것을 보았고, 또 완소칠이 방랍의 곤룡포를 입었던 일을 가지고 모반할 의도가 있다고 하여 조정에서 그의 관작을 삭탈하여 서민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시진은 생각했다.
“나도 전에 방랍의 부마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 훗날에 간신들이 알게 되면 천자께 참소하여 관작을 삭탈당하고 모욕을 받게 될 것이다. 차라리 스스로 관작을 내놓아 치욕을 면하는 것이 좋겠다.”
시진은 풍질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관작을 내놓고 창주 횡해군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다. 여생을 즐겁게 살다가, 어느 날 홀연 아무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응은 중산부 도통제를 제수 받고 부임한 지 반 년 만에 시진이 한가로운 삶을 구해 떠났다는 것을 듣고, 풍탄(風癱)이라고 핑계대고 관작을 반납했다. 그리고 두흥과 함께 고향 독룡강으로 돌아가 부호가 되어 즐겁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관승은 북경 대명부 병마총관이 되었는데, 군사들이 모두 존경하고 복종하였다. 어느 날 군마 조련을 하고 돌아오다가 술에 취하여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것이 병이 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호연작은 어영지휘사를 제수 받아, 매일 어가를 수행하였다. 후에 대군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금나라의 넷째 태자 올출을 격파하고, 회서까지 진군하였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주동은 보정부 도통제가 되어 공을 세웠고, 후에 유광세를 따라가 금나라를 격파하고 태평군 절도사가 되었다.
화영은 아내와 여동생을 데리고 응천부에 부임하였고, 오용은 홀몸이라 수행하는 동자만 데리고 무승군에 부임하였다. 이규 역시 홀몸이라 하인 둘만 데리고 윤주로 부임하였다. 그런데 앞의 일곱 정장들은 모두 죽음까지 얘기했는데, 이 세 사람은 부임한 것만 얘기하고 왜 결말을 얘기하지 않았을까? 다섯 정장들, 즉 송강 · 노준의 · 오용 · 화영 · 이규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송강과 노준의는 경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여러 장수들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각기 임지로 부임해 가도록 하였다. 죽은 장수들의 가족들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한편, 경성으로 올라온 편장 15명을 살펴보자. 송청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이 되었고, 두흥은 이미 이응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다. 황신은 청주로 부임하고, 손립은 손신 · 고대수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예전의 등주로 부임하였다. 추윤은 관작을 원하지 않아 등운산으로 돌아갔고, 채경은 관승을 따라 북경으로 돌아가서 서민이 되었다. 배선은 양림과 상의하여 음마천으로 돌아가 관직을 받아 한가롭게 지냈고, 장경은 고향이 그리워 담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다.
주무는 번서에게 도술을 배웠는데, 두 사람은 전진교(全真敎) 도사가 되어 강호를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공손승을 찾아가 출가하여 천수를 마쳤다. 목춘은 게양진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고, 능진은 포수로서 비범했기 때문에 화약국 어영으로 임용되었다.
방랍 토벌을 떠나기 전에 경성에 남았던 편장 다섯 사람을 살펴보자. 안도전은 도중에 칙명을 받고 경성으로 돌아와 태의원(太醫院) 금자의관(金紫醫官)이 되었고, 황보단은 어마감(御馬監) 대사(大使)가 되었고, 김대견은 궁전의 어보감(御寶監)이 되었다. 소양은 채경의 부중에서 사랑방 선생이 되었고, 악화는 부마 왕도위의 부중에서 늙도록 깨끗하고 한가롭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한편, 송강과 노준의는 작별하여 각자 부임하였다. 노준의는 가족이 없었으므로 수행원 몇 명을 데리고 여주로 가고, 송강은 조정에 사은하고 성원의 관원들과 작별한 다음 하인 몇 명을 데리고 초주로 부임했다.
한편, 송조(宋朝)는 원래 태종이 태조에게 제위를 물려받을 때 조정에 간신이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휘종황제에 이르러, 황제는 어질고 밝았지만 간신들이 길을 막고 권력을 농단하여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들을 해쳤다. 당시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 네 간신이 천하를 혼란케 하여 나라를 무너지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전수부 태위 고구와 양전은 천자가 송강과 그 장수들에게 후한 상과 관작을 내리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고구가 양전에게 말했다.
“저 송강과 노준의는 우리의 원수인데, 이제 저놈들이 도리어 공신이 되고 조정으로부터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에 오르면 군대를 다스리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고 있으니, 우리 같은 조정 관료들이 어찌 남의 비웃음을 받지 않겠습니까? 예로부터 이르기를, ‘원한이 적으면 군자가 아니요,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전이 말했다.
“나에게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노준의를 없애면 송강은 한쪽 팔을 잃게 됩니다. 노준의는 용맹하여 만약 송강을 먼저 없애면 필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떤 묘계인지 듣고 싶습니다.”
“여주 군사 몇 명을 시켜, 노준의가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군량을 쌓고 있는데, 모반할 의도가 있다고 추밀원에 고발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태사부로 가서 아뢰면 채태사를 속일 수 있습니다. 채태사가 천자께 노준의의 관작을 삭탈할 것을 주청하면, 그때 사람을 보내 그를 속여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겁니다. 황제께서 그에게 음식을 하사하실 때 그 안에 몰래 수은을 넣습니다. 수은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콩팥에 탈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러면 큰일은 성취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을 보내 송강에게 어주를 하사하되, 거기에 천천히 퍼지는 독약을 타 놓으면 반달이 못 돼 죽을 겁니다.”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합니다!”
두 간신은 계책이 정해지자, 심복을 여주로 보내 주민 두 사람을 찾아내 소장을 써서 추밀원에 고발하게 하였다. 안무사 노준의가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군량을 쌓고 있는데, 모반할 의도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노준의가 사람을 초주로 보내 안무사 송강과 연계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추밀원의 동관 역시 송강 등을 원수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소장을 가지고 태사부로 가서 아뢰었다. 채경은 소장을 보고 관원들을 모아 의논하였다. 그때 고구와 양전도 가담하여, 네 간신은 계책을 정하고 고발인을 데리고 대궐로 들어가 천자에게 아뢰었다. 천자가 말했다.
“짐이 생각건대, 송강과 노준의는 사방의 역적을 토벌하느라 10만 군사의 병권을 쥐고 있었지만 한 번도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돌아왔는데, 어찌 배반하겠는가? 과인이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조정에 반역한단 말인가? 이 가운데에는 뭔가 거짓이 있으니, 내막을 살펴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다.”
고구와 양전이 곁에 있다가 아뢰었다.
“성상께서 말씀하신 도리가 옳긴 하오나,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생각건대, 노준의는 관작이 낮은 것에 불만을 품고 모반할 마음을 품었다가 불행히도 남에게 들킨 것 같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노준의를 불러오라. 과인이 직접 실정을 알아보겠다.”
채경과 동관이 아뢰었다.
“노준의는 한 마리 맹수와 같아 그 마음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를 놀라게 하면 필시 멀리 달아나 버려 체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잠시 속여서 경성으로 오게 한 다음, 폐하께서 음식과 술을 내리시고 좋은 말로 달래면서 허실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아무 일이 없다면 반드시 캐물을 것도 없을 것이고, 또한 페하께서 공신을 잊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천자는 그 말에 따라, 즉시 성지를 내려 사신을 여주로 보내 맡길 일이 있으니 노준의를 조정으로 불러들이라고 하였다. 사신이 여주에 당도하자, 관원들이 나와 영접하여 관아로 인도하였다. 성지를 들은 노준의는 사신과 함께 동경으로 갔다.
노준의는 동경 황성사(皇城司) 앞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음 날 아침 동화문으로 가서 조회를 기다렸다. 그때 태사 채경, 추밀원 동관, 태위 고구와 양전이 노준의를 인도하여 편전으로 들어가 천자를 알현하게 하였다. 노준의가 절을 올리자, 천자가 말했다.
“과인은 경이 보고 싶었노라.”
그리고 다시 물었다.
“여주는 지낼 만한가?”
노준의가 재배하고 아뢰었다.
“성상의 홍복 덕분에 그곳 군사와 백성들은 모두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천자가 또 몇 마디 한담을 얘기하다, 어느덧 정오가 되어 음식을 올리는 관원이 와서 아뢰었다.
“음식을 가져왔는데, 감히 함부로 들이지 못해 성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고구와 양전은 음식 속에 몰래 수은을 넣고서 상에 올려놓은 후였다. 천자는 음식을 노준의에게 내렸고, 노준의는 절하고 받아서 먹었다. 천자가 위로하며 말했다.
“경은 여주로 가서 마음을 다해 군사들을 보살피고 다른 뜻을 품지 않도록 하라.”
노준의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은하고, 조정을 나와 여주로 돌아갔다. 노준의는 네 간신이 자신을 해치려고 계책을 세운 것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고구와 양전은 서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큰일을 해치웠다!”
한편, 노준의는 그날 밤 여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옆구리가 아파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타지 않고 배를 탔다. 배가 사주 회하(淮河)에 당도했을 때, 노준의의 천수가 다했는지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날 밤 노준의는 술에 취해 뱃머리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다가, 수은이 콩팥에서부터 골수까지 스며들어 발을 헛디뎌 회하에 빠져 죽고 말았다.
가련하게도 하북의 옥기린은 억울하게 물에 빠져 죽어 원귀가 되었다. 하인이 시신을 건져 관을 마련하여 사주의 높은 언덕에 장례 지냈다. 사주의 관원이 공문을 써서 추밀원에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한편,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 네 간신은 사주에서 공문이 당도하자 천자에게 아뢰었다.
“사주에서 올라온 공문에 의하면, 노준의가 회하에서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제 노준의가 죽었으니, 송강이 의심하고서 다른 일을 벌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페하께서는 초주로 어주를 보내 그의 마음을 달래 주십시오.”
천자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네 신하의 말을 듣지 않으려니 송강의 본심을 알 수 없었고, 네 신하의 말을 듣자니 또 다른 나쁜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천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으려니, 간신들이 온갖 아첨과 참소를 교묘하게 늘어놓아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천자는 사신에게 어주 두 병을 가지고 초주로 가게 했다. 하지만 그 사신 역시 고구와 양전의 수하 심복들이었다. 송강의 천수도 다했는지, 간신들은 어주에 독약을 타서 사신으로 하여금 초주로 가지고 하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초주에 와서 안무사 겸 병마총관의 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부임 후 군사들을 아끼고 백성들을 사랑하여, 백성들은 부모처럼 공경하고 군사들은 신명(神明)처럼 우러러보았다. 재판이 공정하고 행정이 원만하여 인심이 복종하고. 군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존경하였다.
송강은 공사를 처리하고 남는 여가 시간이면 성 밖으로 나가 거닐기를 즐겨하였다. 원래 초주 남문 밖에 요아와(蓼兒洼)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호수 가운데 높은 산이 하나 있었다. 산세가 수려하였으며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창하여 풍광이 아주 좋았다. 비록 넓지는 않았지만 산 안쪽에는 봉우리들이 둘러서 있고 그 사이에 용이나 호랑이가 살고 있는 듯 길이 구불구불하고 층층을 이루고 있었다. 산 주위는 모두 넓은 물이 감싸고 있어, 마치 양산박의 수호채와 비슷하였다.
송강은 요아와의 풍광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내가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좋은 음택(陰宅)이 되겠구나.”
송강은 한가로울 때에는 늘 그곳에서 노닐면서 즐겼다.
송강이 부임한 이래 반년이 지났다. 때는 선화 6년 여름 초순이었는데, 홀연 조정에서 어주를 하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송강은 관원들과 함께 성을 나가 사신을 영접하고 관아로 안내하였다. 사신이 성지를 낭독한 다음 어주를 내놓았다. 송강은 어주를 한 잔 마신 다음, 사신에게도 어주를 권했다. 하지만 사신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핑계로 어주를 마시지 않았다. 연회가 끝난 다음 사신은 동경으로 돌아갔다. 송강이 전송하면서 예물을 바쳤으나 사신은 받지 않고 떠났다.
송강은 어주를 마신 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송강은 어주에 독이 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급히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였더니 사신은 올 때 역관에서 술을 마셨다고 하였다. 송강은 간계에 빠졌음을 알고 이는 필시 간신들이 어주에 독을 탄 것임을 깨달았다. 송강은 탄식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학(儒學)을 배우고 장성해서는 관리로서의 도리를 지켰다. 불행히도 실수하여 죄인이 되었지만, 조금도 다른 마음을 품고 일을 행한 적은 없었다. 오늘 천자가 간신들의 참소를 경솔히 듣고서 나에게 독주를 내렸으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다만 윤주의 도통제로 있는 이규가 조정에서 이런 간악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필시 다시 산림으로 들어가 무리를 모을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가 일생을 바친 깨끗한 이름과 충의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규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송강은 그날 밤 사람을 윤주로 보내 상의할 일이 있으니 초주로 오라고 이규를 불렀다.
한편, 이규는 윤주의 도통제로 부임한 이래 마음이 답답하여 사람들과 어울려 종일 술이나 마시며 지냈다. 어느 날 송강이 사람이 보내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고서, 이규는 혼자 말했다.
“형님이 나를 부른다면, 필시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이규는 즉시 배를 타고 초주로 가서 송강을 뵈었다. 송강이 말했다.
“형제들이 헤어진 뒤로, 나는 밤낮으로 그들을 생각하고 있네. 오용 군사가 있는 무승군은 멀고, 화영은 응천부에 있어 소식을 알 수 없네. 다만 아우가 가까운 윤주 진강에 있어, 큰일을 하나 상의하려고 특별히 불렀네.”
이규가 말했다.
“형님! 대체 무슨 큰일입니까?”
“일단 한 잔 하세!”
송강은 이규를 후당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는 이미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규가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송강이 말했다.
“아우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으니 조정에서 내게 독주를 보낸다고 하네. 내가 죽으면 자네는 어떡할 건가?”
이규가 큰 소리로 말했다.
“형님! 반란을 일으켜야지!”
“아우! 군마도 모두 없어지고 형제들도 모두 흩어졌는데, 어떻게 반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내가 있는 진강에 3천 군마가 있고, 형님이 계신 초주에도 군마가 있습니다. 군마와 백성을 모두 일으키고 또 군사를 불러 모으고 말을 사들여 쳐들어가면 됩니다. 그러고 다시 양산박으로 돌아가 즐겁게 살면, 저 간신 놈들 밑에서 수모를 당하는 것보다 나을 겁니다.”
“아우는 서두르지 말게.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세.”
송강은 이규에게 권하는 술에 이미 독약을 타 놓았었다. 그날 밤 이규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배를 타고 떠나면서 송강에게 말했다.
“형님! 언제 의병을 일으키시겠습니까? 그때 저도 군사를 일으켜 접응하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아우! 나를 너무 탓하지 말게! 며칠 전에 조정에서 보낸 독주를 내가 마셔서 조만간에 죽을 것이네. 나는 평생 ‘충의’ 두 글자만 주장하며 살아왔고, 조금도 양심을 속인 적이 없었는데 조정에서는 아무 잘못 없는 나에게 죽음을 내렸네. 하지만 조정이 비록 나를 저버렸을지라도 나의 충심은 조정을 배신할 수 없네. 내가 죽은 후에 자네가 모반하여 우리 양산박의 ‘체천행도’의 충의의 이름을 무너뜨릴까 염려되어, 자네를 불렀던 것이네. 어제 마신 술에는 내가 이미 독약을 탔으니까, 자네는 윤주로 돌아가면 반드시 죽을 것이네. 자네는 죽은 후에 갈 곳이 있네. 초주 남문 밖의 요아와라는 곳은 풍경이 양산박과 똑같으니, 거기서 우리 음귀(陰魂)가 되어 다시 만나세. 나는 죽은 후에 내 시신을 그곳에 장례 지내 달라고 미리 정해 두었네.”
말을 마치자 눈물이 비 오듯 흘렸다. 이규 역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됐소! 됐어! 살아서 형님을 섬겼으니, 죽어서도 형님의 부하 귀신이 되겠소!”
말을 마치자 눈물을 흘렸는데,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규는 눈물을 뿌리며 송강을 작별하고 배에 올라 윤주로 돌아갔다. 과연 독이 온몸에 퍼져 죽음에 임하자, 이규는 하인들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죽거든, 영구를 초주 남문 밖 요아와로 옮겨가 형님 옆에 묻어 다오.”
이규가 죽자, 하인들은 이규의 말대로 영구를 요아와로 모시고 갔다.
한편, 송강은 이규와 작별한 후 오용과 화영을 생각했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독이 퍼져 죽음에 임하자 송강은 친하게 따르던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내가 말한 대로, 내 영구는 남문 밖 요아와 옆 높은 곳에 묻어 주게. 자네들의 은덕에 반드시 보답할 테니, 내 부탁을 꼭 들어 주게.”
말을 마치자 세상을 떠났다. 송강의 하인들은 관을 준비하고 빈소를 차렸다. 초주의 관리들은 송강의 부탁을 어기지 않고 영구를 요아와 옆에 모셨다. 며칠 후 이규의 영구도 윤주로부터 와서 송강의 묘 옆에 장례 지냈다.
한편, 송청은 집에서 병환을 앓고 있었는데, 송강이 초주에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다. 운성현에서 앓고 있던 송청은 갈 수가 없어서 식구를 보내 제사를 올리고 분묘를 돌보게 하였다.
한편, 오용은 무승군의 승선사로 부임한 후 항상 마음이 우울하여 늘 송강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황홀해져 잠자리가 불안하였는데, 꿈속에 송강과 이규가 나타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군사! 우리는 충의를 지켜 하늘을 대신에 도를 행하면서 한 번도 천자를 저버린 적이 없었는데, 이제 조정에서는 독주를 내려 무고한 우리를 죽였소. 우리는 초주 남문 밖 요아와 곁에 묻혔으니, 군사는 옛날의 정을 생각해서 우리 분묘에 한 번 와 주시오.”
오용은 자세히 물으려다가 문득 깨어나 보니, 남가일몽이었다. 오용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앉아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꿈을 꾸고 나니 잠자리와 음식 먹기가 더욱 불안하였다. 다음 날, 오용은 행장을 수습하여 아무도 데려가지 않고 혼자 초주로 갔다. 과연 송강은 세상을 떠났는데, 그곳 사람들은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오용은 제물을 마련하여 남문 밖의 요아와로 가서 분묘를 찾아가, 송강과 이규의 묘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오용은 묘를 손바닥으로 치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형님의 혼이 깨어 있다면 살펴주시오. 오용은 시골의 한낱 글방 선생으로, 처음에는 조개 형님을 따르다가 후에 형님을 만나 목숨을 구하고 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수십 년이 모두 형님의 은덕입니다. 그런데 이제 형님은 국가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형님께 보답할 길이 없어 구천에서 형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말을 마치자 오용은 통곡하였다. 막 목을 매려고 하는데, 화영이 배에서 내려 묘 앞으로 달려오다가 오용을 보았다. 두 사람은 다 깜짝 놀랐다. 오용이 물었다.
“아우는 응천부에 있으면서 어떻게 형님이 돌아가신 줄을 알았는가?”
화영이 말했다.
“저는 형제들과 헤어져 부임한 이후 형제들과의 정을 생각하면서 하루도 심신이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어젯밤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송공명 형님과 이규가 나타나서 저를 붙잡고 하는 말이, 조정에서 내린 독주를 마시고 죽어 지금 초주 남문 밖 요아와 곁에 묻혀 있으니 옛 정을 버리지 않았다면 묘에 한 번 와주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내던지고 밤을 새워 달려온 것입니다.”
오용이 말했다.
“나도 아우와 같은 이상한 꿈을 꾸고 이리로 왔는데, 마침 아우가 잘 왔네. 나는 송공명 형님의 은의를 저버릴 수 없고 또 그 정을 보답할 길이 없어, 여기서 목을 매고 죽어 혼백이나마 형님과 함께 하려 하네. 내 죽은 후는 아우에게 부탁하네.”
“군사께서 그런 마음이시라면, 아우도 따라가 송공명 형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우가 나를 여기에 묻어 주기를 바랐는데, 자네도 어찌 함께 죽으려 하는가?”
“저도 송공명 형님의 인의를 저버릴 수 없고 그 은덕을 잊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양산박에 있을 때 이미 큰 죄인이었는데 다행히 죽지 않고, 천자의 사면과 초안을 받아 남북을 토벌하면서 공을 세우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정에서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다면 필시 사소한 잘못까지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간신들의 모략에 걸려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지금 형님을 따라 황천으로 함께 가게 되면, 깨끗한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시신도 무덤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아우는 내 말을 들어 보게. 나는 홀몸으로 가족이 없으니, 죽어도 무방하네. 하지만 자네는 어린 자식과 젊은 아내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그 일은 무방합니다. 모아놓은 재물이 있어 먹고살기에 족하고, 처가에도 돌봐줄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한 바탕 크게 통곡하고서, 나무에 나란히 목을 매고 죽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화영이 오지 않자, 묘 앞으로 가 보니 오용과 화영은 이미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급히 응천부에 보고하고 관을 마련하여 송강의 묘 옆에 장례 지냈다. 초주 백성들은 송강의 인덕과 충의에 감동하여 사당을 세우고 사시로 제사를 올렸는데, 기도를 드리면 감응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한편, 도군황제는 송강에게 어주를 하사한 후에 의심이 들었지만 송강의 소식을 알 수 없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고구와 양전이 매일 허황된 말로 황제를 현혹시키고 어진 이들의 길을 막고 충량한 사람들을 모해하고 있었다.
어느 날 황제는 내궁에서 한가롭게 거닐다가 문득 이사사가 생각나서, 어린 내시 둘을 데리고 지하도를 통해 이사사의 후원으로 가서 방울 달린 줄을 당겼다. 이사사가 황망히 달려 나와 황제를 영접하여 안방으로 모시고 갔다. 황제는 앞뒤 문을 모두 닫게 하였다. 이사사가 화사하게 차려입고 앞에 대령하자, 황제가 말했다.
“과인이 근래 몸이 좋지 않아 신의 안도전에게 치료를 받느라, 수십일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더니 더 보고 싶었다. 오늘 이렇게 보니 짐이 참으로 기쁘구나!”
이사사가 아뢰었다.
“폐하께서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사사는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황제와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겼다. 황제는 술을 몇 잔 마신 후 심신이 피곤했는데, 홀연 등불이 깜빡이더니 방안에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누런 적삼을 입은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황제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넌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누런 적삼을 입은 사람이 아뢰었다.
“신은 양산박 송강의 부하인 신행태보 대종입니다.”
“넌 무슨 일로 왔느냐?”
“신의 형 송강이 근처에 있으니, 폐하께서는 함께 가시지요.”
“과인에게 어디로 가자는 말이냐?”
“경치가 맑고 수려한 곳이 있으니, 폐하께서는 놀러 가시지요.”
황제는 일어나서 대종을 따라 뒤뜰로 나갔다. 뒤뜰에는 말이 준비되어 있어, 황제는 말을 타고 갔는데 사방은 구름과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고 비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리더니 어느덧 한곳에 당도하였다.
황제가 대종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냐? 왜 과인을 이리로 데려왔느냐?”
대종이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으로 가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황제는 말을 몰아 산을 올라갔다. 세 개의 관문을 지나가자, 백 사람이 땅에 엎드려 있는데 모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장수들이었다. 황제가 깜짝 놀라 물었다.
“경들은 누군가?”
맨 앞에 황금 갑옷을 입고 황금 투구를 쓴 자가 아뢰었다.
“신은 양산박의 송강입니다.”
“과인이 경을 초주의 안무사로 보냈는데, 어째서 여기 있는가?”
“폐하께서는 충의당으로 오르셔서 신들의 억울한 죽음을 들어 주십시오.”
황제가 충의당으로 올라가 좌정하고 보니, 당 아래에 많은 사람들이 희부연 안개 속에 엎드려 있었다. 황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송강이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제가 물었다.
“경은 왜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송강이 아뢰었다.
“신들이 비록 천병에 항거한 적은 있었지만, 평소 충의를 품고서 추호도 다른 마음을 지닌 적이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칙명을 내려 초안하신 후, 요나라를 물리치고 세 역적을 평정하면서 수족 같은 형제들을 열에 여덟을 잃었습니다. 신이 폐하의 명을 받고 초주에 부임한 이래, 군사들과 백성들이 모두 편안하게 잘 살고 있음은 하늘과 땅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신에게 독주를 내리셔서, 신은 그걸 마시고 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고 나면 이규가 원한을 품고 다른 마음을 일으킬까 두려워, 신이 이규를 윤주에서 불러 제가 독주를 먹여 죽였습니다. 오용과 화영은 역시 충의를 지키기 위해 신의 무덤 옆에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신들 네 명은 초주 남문 밖의 요아와 옆에 함께 묻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가련히 여겨 사당을 세워 주었습니다. 신들의 음귀(陰魂)가 흩어지지 않고 이곳에 모여 저희들의 충심을 아뢰는 것이니, 폐하께서는 살펴주시옵소서.”
황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과인이 친히 사신을 보내면서 어주를 봉했는데, 누가 독주로 바꾸어 경에게 내렸단 말인가?”
송강이 아뢰었다.
“폐하께서 사신을 심문해 보시면, 간악한 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는 관문과 영채가 웅장한 것을 보고 물었다.
“여기는 어디며, 경들은 어째서 이곳에 모였는가?”
송강이 아뢰었다.
“이곳은 신들이 예전에 모였던 양산박입니다.”
“경들은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이곳에 모이게 되었는가?”
“대제(大帝)께서 신들의 충의를 가련히 여기시어 칙명을 내려 저희들을 양산박 토지신으로 봉하셨습니다. 저희들의 충심을 하소연하고자 대종을 보내 폐하를 이곳으로 모셔오게 한 것입니다.”
“경들은 어째서 궁궐로 와서 과인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신들은 저승의 혼백이온데, 어찌 감히 궁궐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 폐하께서 궁궐을 나오셨기 때문에 이곳으로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과인이 살펴봐도 되겠는가?”
송강은 재배하였다. 황제는 충의당을 내려와 고개를 돌려 당상의 편액을 보았다. 편액에는 ‘충의당’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내려왔다. 홀연 송강의 등 뒤에서 이규가 손에 쌍도끼를 들고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황제! 황제! 네가 네 놈의 간신들 말을 듣고서, 우리 목숨을 빼앗았지! 오늘 잘 만났다. 복수를 해야겠다!”
흑선풍이 도끼를 휘두르며 황제에게 달려들었다.
황제가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남가일몽이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등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사사는 아직 잠들지 않고 있었다. 황제가 물었다.
“과인이 어디 갔다 왔느냐?”
이사사가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베개를 베고 누워 계셨습니다.”
황제는 꿈속에 겪었던 신기한 일을 이사사에게 자세히 얘기했다. 이사사가 아뢰었다.
“사람으로서 정직한 자는 반드시 신이 된다고 합니다. 송강이 이미 죽어서 폐하의 꿈속에 신령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인이 내일 반드시 이 일을 알아봐야겠다. 만약 정말로 송강이 죽었다면, 사당을 세워주고 열후(烈侯)에 봉해야겠다.”
“그렇게 하시면, 폐하께서 공신의 덕을 저버리지 않음을 드러내시는 겁니다.”
황제는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다음 날, 황제는 성지를 내려 대신들을 편전으로 모이게 하였다. 하지만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 등은 황제가 송강의 일을 물어볼까 두려워 이미 궁을 나간 후였다. 다만 숙태위 등 몇 명의 대신들만 나와 있었다. 황제가 숙원경에게 물었다.
“경은 초주 안무사 송강의 소식을 알고 있소?”
숙태위가 아뢰었다.
“신은 송안무사의 소식은 알지 못하지만, 어젯밤에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경의 꿈 얘기를 과인에게 해 보시오.”
“신의 꿈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송강이 나타났는데, 폐하께서 독주를 내려 그걸 마시고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초주 사람들이 그의 충의를 가련히 여겨 초주 남문 밖 요아와에 장례 지내고 사당을 세워 사시로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황제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군. 짐의 꿈과 똑같소.”
황제는 숙원경에게 분부하였다.
“경은 심복을 초주로 보내 사실을 알아오게 하여 나에게 바로 보고하시오.”
숙태위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숙태위는 집으로 돌아가 심복을 초주로 보내 송강의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다.
다음 날, 황제는 문덕전에서 고구와 양전이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경들은 근래에 초주의 송강 소식을 알고 있소?”
두 사람은 감히 사실대로 아뢸 수가 없어 모른다고 대답했다. 황제는 의심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편, 숙태위의 심복은 초주에 가서 사실을 알아와 숙태위에게 보고하였다.
“송강은 황제께서 하사한 어주를 마시고 죽었으며, 초주 사람들이 그 충의에 감동하여 요아와 곁의 높은 산 위에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용 · 화영 · 이규도 함께 그곳에 묻혔습니다. 백성들이 가련히 여겨 묘 앞에 사당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기도를 올리며 영험이 있다고 합니다.”
숙태위를 듣고 나서 급히 심복을 데리고 대궐로 가서 천자에게 자세히 얘기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다음 날 조회 때 천자는 크게 노하여 백관 앞에서 고구와 양전을 꾸짖었다.
“나라는 망치는 간신들이 과인의 천하를 무너뜨리는구나!”
두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찧으며 사죄하였다. 채경과 동관이 앞으로 나서 아뢰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성원에 공문이 오지 않아 감히 아뢰지 못했는데, 어젯밤에 비로소 초주에서 공문이 와 아뢰려고 하던 참입니다.……”
네 간신들이 온갖 말로 변명을 해대는 바람에 황제는 벌을 내리지 않았다. 황제는 고구와 양전을 쫓아내고, 어주를 가지고 갔던 사신을 잡아오라고 명하였으나 그들은 벌써 돌아오던 도중에 죽임을 당하고 없었다.
다음 날, 숙태위는 편전에 들어 황제에게 다시 송강의 충의에 대해 아뢰었다. 황제는 송강의 아우 송청에게 송강의 관작을 잇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송청은 풍질에 걸려 관작을 받을 수가 없어 표문을 올려 사양하며 다만 운성현의 농민이 되기를 원하였다. 황제는 그 효성에 감동하여 돈 10만 관과 전답 3천 무(畝)를 하사하였으며, 자손은 조정에서 등용하도록 하였다. 후에 송청의 아들 송안평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작이 비서학사(秘書學士)에 이르렀다.
또 황제는 숙태위의 주청에 따라 친히 성지를 써서 송강을 충렬의제영응후(忠烈義濟靈應侯)에 봉하고 양산박에 사당을 짓고 송강을 비롯하여 전쟁에서 전사한 장수들의 신상을 세우게 하였다. 그리고 친필로 ‘정충지묘(靖忠之廟)’라고 쓴 편액을 내렸다.
훗날 송공명은 누차 영험을 나타내어, 백성들이 사시로 제사를 끊이지 않고 올렸다. 그리고 양산박에 가서 비를 빌면 비가 내리고 바람을 빌면 바람이 불었다. 초주의 요아와에서도 영험을 나타내어, 그곳 인민들은 대전(大殿)을 건립하고 회랑을 두 개 더 만들었으며 천자께 주청하여 편액을 내리게 하였다. 정전(正殿)에는 36명 정장들의 신상을 세우고, 양쪽 회랑에는 72명 편장들의 신상을 세웠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만민이 예를 올렸다.
훗날 사관들이 양산박 영웅들을 애도하여 두 수의 시를 지었다.
행적이 묻혔다고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한신과 팽월도 가련하게 멸족 당했도다.
일심으로 보국하다 꺾인 그날까지
백 번을 싸워 요나라를 물리치고 방랍을 사로잡았네.
천강성과 지살성은 이제 모두 죽었는데
간신과 역적의 무리는 아직도 살아있구나.
독주를 마시고 황천에 묻힐 줄 이미 알았더라면
범려처럼 배 타고 멀리 떠날 것을.
살아서는 진수성찬을 먹고 죽어서는 열후에 봉해졌으니
남아 평생의 뜻은 이미 보상받았네.
굳센 말은 산 위에서 울고 달빛은 밝은데
원숭이 휘파람 소리에 가을 저녁 구름이 짙게 끼네.
정말 있었던 일인지 출처를 따지지 않고
충량(忠良)들의 얘기를 즐겁게 엮어 보네.
요아와 묻힌 이름은 천고에 전해지니
떨어지는 꽃잎과 새 우는 소리에 변방은 쓸쓸하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