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87화
그날 오후 시천은 군졸과 함께 다시 암자를 찾아갔다. 시천이 노승에게 말했다.
“주장께서 아주 감사해 하시며, 작은 예물을 보내셨습니다.”
시천은 은자 20냥과 쌀을 노승에게 내놓았다. 시천은 군졸을 영채로 돌려보내고, 노승에게 부탁했다.
“번거롭지만 행자를 저와 함께 보내서 길을 인도하게 해주십시오.”
노승이 말했다.
“장군은 잠시 기다리셨다가, 밤이 깊어지면 가십시오. 낮에는 관 위에서 알게 될까 두렵습니다.”
저녁이 되자, 노승은 밥을 지어 시천을 대접했다. 밤이 되자, 노승은 행자를 불러 분부했다.
“장군께 길을 인도해 드리고, 너는 아무도 모르게 즉시 돌아오너라.”
어린 행자는 시천을 인도하여 암자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숲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칡덩굴을 잡고 올라가, 몇 리를 가자 희미한 달빛 아래 험준한 고개가 하나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데, 한 줄기 샛길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샛길 위쪽에 큰 돌을 쌓아 가로막고 높은 성벽을 쌓아 놓았다. 행자가 말했다.
“장군님! 저기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관입니다. 저 석벽을 지나면 큰길이 나옵니다.”
시천이 말했다.
“행자는 이제 돌아가시게. 내가 이제 길을 알았네.”
행자가 돌아간 후, 시천은 처마 밑과 벽을 타는 재주를 발휘하여 석벽을 기어 올라갔다. 멀리 동쪽을 바라보니, 숲속에서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노선봉이 주무 등과 함께 영채를 뽑고 군사를 일으켜 불을 지르면서 관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노준의는 먼저 3~4백 군사를 보내 지난번에 전사한 여섯 장수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산을 올라가면서 불을 질러 길을 열게 하였다. 매복한 적병들이 숨을 곳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욱령관 위의 소양유기 방만춘은 송군이 불을 질러 길을 열고 있다는 것을 듣고 혼자 말했다.
“저렇게 진격해 오면 내가 감춰둔 복병이 소용없겠군. 하지만 우리가 이 관을 지키고 있는데, 네놈들이 어떻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송군이 점점 관 아래로 다가오자, 방만춘은 뇌형과 계직을 거느리고 관 앞으로 나아가 지키고 있었다.
한편, 시천은 한 걸음씩 관 위로 올라가 큰 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곳에 숨어서 보니, 방만춘 · 뇌형 · 계직이 활과 쇠뇌에 화살을 메겨 두고 송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군 쪽을 보니, 한 무리가 불을 지르면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 임충과 호연작이 관 아래에 말을 세우고 소리쳤다.
“적장은 어찌 감히 천병에 항거하느냐?”
방만춘 등은 송군을 향해 화살을 쏘는데 정신이 팔려, 시천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시천이 가만히 나무를 내려와서 관 뒤로 돌아갔더니, 마른 풀 더미 두 개가 있었다. 시천은 풀 더미 위에 화포를 올려놓고 유황과 염초 등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관문대들보 위로 기어 올라가 거기에도 불을 붙였다.
두 개의 풀 더미에서 불이 치솟으면서 화포가 터지며 천지가 진동하였다. 관 위에 있던 적장들은 혼란에 빠져 고함만 질렀고,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기 바빴다. 방만춘은 두 부장과 함께 급히 관 뒤로 가서 불을 끄려고 했는데, 그때 시천이 지붕 위에서 또 화포를 터뜨렸다. 화포가 관문을 흔들자 깜짝 놀란 적병들은 모두 무기를 내던지고 갑옷을 벗고서 관 뒤편으로 달아났다. 시천이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미 송군 1만이 관을 넘어갔다! 너희들은 빨리 투항하라! 그러면 죽음을 면할 것이다!”
방만춘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혼이 달아난 듯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뇌형과 계직도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였다.
그때 임충과 호연작이 앞장서서 관 위로 올라왔다. 뒤이어 여러 장수들이 앞 다투어 올라와 도망치는 적군을 추격하였다. 손립은 뇌형을 사로잡았고, 위정국은 계직을 사로잡았다. 방만춘만 홀로 달아나고, 수하의 군병들도 태반이 사로잡혔다. 송군은 모두 관 위로 올라와 주둔하였다.
노선봉은 욱령관을 얻고 시천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뇌형과 계직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사진과 석수 등 여섯 장수에게 제사를 지냈다. 여섯 장수의 시신을 수습하여 관 위에서 장례를 지내고, 나머지 시신들은 모두 불태웠다.
다음 날, 노준의는 장초토에게 문서를 보내 욱령관을 얻었음을 알리고, 군사를 이끌고 진군하여 관을 넘어 흡주성 아래에 영채를 세웠다.
흡주성은 방랍의 숙부인 황숙대왕(皇叔大王) 방후가 두 장수와 함께 지키고 있었다. 하나는 상서(尚書) 왕인이고 하나는 시랑(侍郎) 고옥으로, 10여 명의 아장들과 2만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원래 왕인은 흡주 산속의 석공 출신으로 강철로 만든 쟁을 잘 썼고, 전산비(轉山飛)라고 불리는 말을 탔는데, 그 말은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기를 마치 평지를 가듯 하였다. 또 고옥도 흡주의 토박이로서 오래된 가문 출신이었는데, 한 자루의 편쟁(鞭鎗)을 잘 썼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문에도 제법 통하여 방랍이 문관으로 봉함과 동시에 병권을 쥐게 하였다.
소양유기 방만춘이 패전하여 흡주의 행궁으로 가서 황숙에게 아뢰었다.
“원주민이 송군을 샛길로 인도하여 몰래 관을 넘어오는 바람에 군사들이 달아나 적군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황숙 방후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방만춘을 꾸짖었다.
“저 욱령관은 흡주의 제일 요긴한 장벽인데, 이제 송군이 그 관을 넘었으니 조만간 흡주에 당도할 것이다. 저들을 어떻게 대적한단 말이냐?”
왕인이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승부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이니 패전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방장군의 죄를 잠시 용서하시고, 반드시 승전하겠다는 군령장을 쓰고서 군사를 이끌고 나가 앞장서서 송군을 물리치게 하십시오. 만약 또 패전한다면, 그때 두 죄를 한꺼번에 물으십시오.”
방후는 그 말에 따라, 방만춘에게 5천 군사를 주어 성을 나가 송군을 대적하게 하였다.
한편, 노준의는 장수들을 거느리고 흡주성을 공격하러 갔는데, 성문이 열리면서 방만춘이 군사를 이끌고 나왔다. 양군은 각기 진세를 펼쳤다. 방만춘이 출전하자, 구붕이 쟁을 들고 달려 나가 방만춘과 교전하였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5합이 되지 않아, 방만춘이 패주하자 구붕이 공을 세우기 위해 추격하였다. 방만춘이 몸을 돌리며 활을 쏘았는데, 구붕은 수단이 고강하여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잡았다. 구붕은 방만춘이 연이어 활을 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화살 하나를 잡았으므로 방심하고 추격하였다. 그때 방만춘이 쏜 두 번째 화살을 맞고 구붕은 말에서 떨어졌다.
구붕이 말에서 떨어지고 방만춘이 승전하는 것을 성 위에서 본 왕인과 고옥이 성중의 군마를 이끌고 달려 나왔다. 송군은 대패하여 30리를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장병을 점검해 보니, 난군 속에서 채원자 장청이 또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 손이랑은 남편의 시신을 찾아 화장하면서 한 바탕 통곡하였다.
노선봉은 슬퍼하면서,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좋은 계책이 아님을 생각하고 주무와 의논하였다.
“오늘 성을 공격하다가 또 두 장수를 잃었네. 어찌하는 것이 좋겠는가?”
주무가 말했다.
“승부는 병가지상사입니다. 오늘 적병은 우리가 퇴각하는 것을 보고 자만하여 기세를 타고 밤중에 우리 영채를 기습할 것입니다. 우리는 군마를 사방에 매복해 놓고, 중군에는 양을 몇 마리 묶어 놓고 여차여차 하는 겁니다. 호연작은 좌측에 매복하고, 임충은 우측에 매복하고, 단정규와 위정국은 뒤편에 매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편장들은 사방의 소로에 매복하게 합니다. 밤중에 적병이 다가오면 중군에서 불로 신호하여, 사방에서 일어나 적을 사로잡으면 됩니다.”
노선봉은 계책대로 장병들을 배치하고 적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왕상서와 고시랑은 제법 전략을 아는 자들이라, 방만춘과 상의하여 황숙 방후에게 아뢰었다.
“오늘 송군이 패전하여 30리를 퇴각해 하채했습니다. 아마 군마들은 피로하고 영채는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기세를 타고 기습하면 반드시 전승할 수 있습니다.”
방후가 말했다.
“당신들이 의논한 것이니, 그대로 시행하시오.”
고시랑이 말했다.
“제가 방장군과 함께 적의 영채를 기습할 테니, 상서와 전하께서는 성을 잘 지켜 주십시오.”
그날 밤 고옥과 방만춘은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군병을 이끌고 전진하였다. 말은 방울을 떼고 군사들은 함매하고서, 빠르게 달려 송군의 영채 앞에 당도하였다. 영문은 닫혀 있어 남군은 감히 함부로 진격하고 못하고 있었는데,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처음에는 분명하게 들리더니 차츰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고옥이 말을 세우고 말했다.
“진격해서는 안 됩니다!”
방만춘이 말했다.
“왜 진격하면 안 됩니까?”
“영채 안에서 들리는 북소리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필시 계책이 있는 겁니다.”
“상공이 틀렸습니다. 오늘 적군은 패전하여 간담이 서늘해지고 피곤할 겁니다. 졸면서 북을 치니 소리가 분명하지 않은 겁니다. 의심하지 말고, 쳐들어갑시다.”
“그 말씀이 옳습니다.”
두 장수는 군병들을 재촉하여 큰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돌격했다. 영채 안으로 들어가 곧장 중군에 당도했는데, 군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버드나무에 양 몇 마리만 묶여 있는데, 양 발굽에 북채가 매어 있었다. 그래서 북소리가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장수는 영채가 텅 빈 것을 보고 당황하여 급히 소리쳤다.
“계략에 빠졌다!”
몸을 돌려 달아나는데, 중군 안에서 불길이 치솟자 산 위에서 포성이 울렸다. 그러자 사방에서 불길이 오르면서 복병이 일어나 일제히 쳐들어왔다. 두 적장은 영채 문을 빠져나가다가 호연작과 마주쳤다. 호연작이 소리쳤다.
“적장은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그러면 죽음은 면할 것이다!”
고옥은 싸울 마음이 없어 달아났는데, 호연작이 추격해 가서 강편으로 내리쳤다. 고옥은 머리통이 쪼개져 절반이나 떨어져 나가 죽었다. 방만춘은 사력을 다해 포위를 뚫고 달아났는데, 길에 매복하고 있던 탕륭이 구겸창으로 말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사로잡았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산길에서 달려 나와 적군을 쳐부수고, 날이 밝자 모두 영채로 돌아왔다.
노선봉은 중군으로 와서 좌정하고 본부 장병들을 점검했는데, 정득손이 산길 풀숲에서 독사에게 발을 물려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노준의는 방만춘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구붕과 사진 등에게 바쳐 제사를 지내고 수급은 장초토에게 보냈다.
다음 날, 노선봉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다시 흡주성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성문은 열려 있고 성 위에는 깃발이 하나도 없었으며, 성루에도 군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공을 세우려고 군사를 이끌고 성중으로 쇄도하였다. 뒤에서 중군의 노선봉이 따라갔을 때에는 두 장수는 이미 성문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원래 왕상서는 송군 영채를 기습하러 갔던 인마가 실패한 것을 보고, 거짓으로 성을 버리고 달아난 척하면서 성문 안에 함정을 파놓았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자신의 용맹함만 믿고 앞장서서 성문 안으로 달려 들어가다가 사람과 말이 한꺼번에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함정 양편에 매복하고 있는 적병들이 긴 창으로 찌르고 활을 쏘아댔다. 가련하게도 성수장군과 신화장군은 함정 속에서 원통하게 죽고 말았다.
노선봉은 또 두 장수가 죽는 것을 보고, 심중으로 분노하여 급히 군사들에게 흙덩이를 날라 함정을 메우게 하는 한편, 적병들을 죽여 함정으로 몰아넣었다. 함정이 메워지자 노선봉은 앞장서서 성중으로 달려 들어가다가, 황숙 방후와 마주쳤다. 교전한지 단 1합 만에, 노준의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평생의 위력을 다 발휘하여 한칼에 방후를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성중의 군마들은 서문을 열고 달아났다. 송군은 힘을 다해 추격하여 남군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한편, 왕인은 달아나다가 이운과 마주쳐 싸움이 벌어졌다. 이운은 말을 타지 않고 보행으로 왕인과 싸우다가, 왕인의 말에 밟혀 죽었다. 석용이 이운을 구하려 하다가 왕인의 신출귀몰한 솜씨를 당해내지 못하고 몇 합만에 왕인의 쟁에 찔려 죽고 말았다.
그때 성중에서 손립 · 황신 · 추연 · 추윤이 달려 나와 왕인을 가로막고 싸웠다. 왕인은 네 장수와 싸우면서도 용력을 발휘하여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 임충이 나타나서 또 싸움에 끼어들었다. 왕인이 설혹 머리가 세 개고 팔이 여섯 개라 할지라도 다섯 장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다섯 장수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마구 공격하자, 가련하게도 남국의 상서는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끝장이 나고 말았다. 다섯 장수는 왕인의 수급을 취하여 노선봉에게 가서 바쳤다.
노준의는 흡주성 안의 행궁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군마를 성중에 주둔시키고 한편으로 문서를 장초토에게 보내 보고하고, 다른 한편으로 송선봉에게 문서를 보내 어디서 회합할 것인지를 물었다.
한편, 송강은 목주에 주둔하면서 모든 군사들이 모이면 함께 역적의 소굴을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준의로부터 흡주를 수복하고 성중에 주둔하면서 함께 역적의 소굴을 공격하기 위해 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또 사진 · 석수 · 진달 · 양춘 · 이충 · 설영 · 구붕 · 장청 · 정득손 · 단정규 · 위정국 · 이운 · 석용 등 장수 13명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송강은 통곡하여 마지않았다. 군사 오용이 위로하여 말했다.
“생사는 사람마다 다 정해진 바가 있습니다. 주장께서는 옥체를 상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국가 대사를 처리하셔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초 돌비석에 천문으로108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실로 내 수족이 잘려나가는 것 같네.”
오용은 송강의 슬픔을 위로하는 한편, 노선봉에게 청계현을 공격할 날짜를 정한 문서를 보냈다.
한편, 방랍은 청계현 방원동의 대궐에서 조회를 열고 문무백관과 송강의 군마를 물리칠 일을 의논하고 있었는데, 서주의 패잔병들이 돌아와 흡주가 함락되고 황숙 · 상서 · 시랑이 모두 전사했으며 지금 송강은 두 길로 병력을 나누어 청계현으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방랍은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경들은 모두 관작을 받고 고을과 성을 차지하여 부귀를 누려 왔는데, 어찌하여 송강의 군마가 땅을 말듯이 쳐들어와 성들이 모두 함락되고 이제 청계현 대궐만 남게 만들었단 말인가? 지금 송군이 두 길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
좌승상 누민중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지금 송강의 인마가 이미 신주에 접근하였으니, 대궐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병력이 적고 장수도 부족하니, 폐하께서 친히 싸움터에 나가지 않으시면 장병들이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방랍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소!”
방랍은 즉시 명을 내렸다.
“삼성육부(三省六部), 어사대관(御史台官), 추밀원, 도독부호가(都督府護駕), 금오영(金吾營), 용호영(龍虎營) 등 대소 관료들은 모두 과인을 따라 전쟁터로 나가 일전(一戰)으로 결판을 내자.”
누승상이 도 아뢰었다.
“어떤 장수를 선봉으로 내보내시겠습니까?”
방랍이 말했다.
“금오상장군(金吾上將軍)인 나의 조카 방걸을 정선봉으로 삼고, 표기상장군(驃騎上將軍) 두미를 부선봉으로 삼는다. 방원동 대궐을 지키는 어림군 1만3천과 아장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전진하라.”
원래 방걸은 방랍의 친조카로서, 흡주의 황숙 방후의 장손이었다. 방걸은 송군의 노선봉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듣고 원수를 갚기 위해 선봉을 자원했던 것이다. 방걸은 평생 무예를 익혀 한 자루의 방천화극을 잘 썼으며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두미는 원래 흡주 저자거리의 대장장이로서 무기를 만들었는데, 역시 방랍의 심복으로서 여섯 자루의 비도(飛刀)를 잘 썼으며 보행으로 싸웠다. 방랍은 또 따로 명을 내려, 어림군의 도교사(都教師)인 하종룡에게 어림군 1만을 주어 흡주에서 오는 노준의의 군마를 대적하게 하였다.
한편, 송강의 대군은 수륙으로 병진하여 목주를 떠나 청계현을 향해 진격하였다. 수군두령 이준 등은 수군의 배를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 나아갔다.
말을 타고 송강과 함께 가던 오용이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청계현 방원동을 취하러 가는데, 역적의 수괴 방랍이 미리 알고 도망칠까 걱정입니다. 깊은 산속이나 넓은 들판으로 숨어 버리면 사로잡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방랍을 사로잡아 경성으로 압송하여 천자께 바치려면, 반드시 안팎으로 호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방랍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방랍이 어디로 도망칠지를 알아야만 그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거짓으로 항복하여 적의 계책을 역이용해야만 안팎으로 호응할 수 있을 것이네. 지난번에 시진과 연청이 첩자로 갔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이번에는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을까? 거짓 투항이 그럴듯해 보여야 할 텐데?”
“제 생각으로는, 수군두령 이준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배에 양식을 싣고 가서 바치면서 투항하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방랍은 산골의 소인배라, 많은 양식을 실은 배를 보고서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군사의 고견이 참으로 좋네.”
송강은 즉시 대종을 불러, 수로를 따라 이준에게 가서 여차여차 계책을 시행하라고 명을 전하게 하였다. 이준은 완소오와 완소칠을 뱃사공으로 분장시키고 동위와 동맹을 일꾼으로 분장시켜, 양식을 실은 60척의 배에 양식을 바친다는 깃발을 꽂고서 강을 따라 나아갔다.
청계현에 접근하자, 적군의 배들이 나타나 일제히 활을 쏘기 시작했다. 이준이 배 위에서 소리쳤다.
“활을 쏘지 마시오! 할 말이 있소! 우리는 대국에 양식을 바치고 투항하러 온 사람들이니 받아들여 주시오!”
적군 배 위의 두목은 이준 등의 배에 무기가 없는 것을 보고, 활 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자세한 것을 묻고 배 안의 양식도 확인하게 한 다음, 누승상에게 가서 보고하였다. 누민중은 보고를 받고, 투항하러 온 자를 강안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이준이 강안으로 올라가 누승상을 뵙고 절을 하자, 누민중이 물었다.
“너는 송강 수하의 어떤 자이며, 무슨 직책에 있느냐? 이번에는 무엇 때문에 양식을 바치고 투항하러 왔느냐?”
이준이 대답했다.
“소인의 이름은 이준이며, 원래 심양강의 호걸이었는데 강주에서 형장을 기습하여 송강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송강은 조정의 초안을 받고 선봉이 된 후에 저희들의 은덕을 잊고 누차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지금 송강이 비록 대국의 고을들을 점령하긴 했지만, 수하의 형제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스스로 진퇴를 알지 못하고, 저희 수군만 진격하라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양식을 실은 배들을 끌고 와 대국에 바치고 투항하려는 것입니다.”
누승상은 이준의 말을 믿고, 이준을 대궐로 인도하여 방랍을 알현하고 양식을 바치러 온 일을 얘기했다. 이준은 방랍에게 재배하고 앞서 누승상에게 했던 얘기를 다시 했다. 방랍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이준 · 완소오 · 완소칠 · 동위 · 동맹으로 하여금 청계현의 수채에 머물면서 배를 지키게 하고 송강의 군마를 물리치고 돌아와서 따로 상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이준은 감사의 절을 올리고 대궐을 나와 양식을 강안의 창고로 옮겼다.
한편,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여 관승 · 화영 · 진명 · 주동을 선봉으로 삼아 내보냈는데, 청계현 경계에서 방걸과 마주쳤다. 양군이 각각 진세를 벌리자, 남군 진에서 방걸이 화극을 비껴들고 진 앞으로 나섰다. 그 뒤에는 두미가 보행으로 따라 나왔는데, 등에는 비도 다섯 자루를 메고 손에는 칠성보검을 들고 있었다.
송군 진영에서는 진명이 나와서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방걸에게 달려들었다. 방걸은 나이가 젊어 혈기왕성한데다 화극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진명과 30여 합을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방걸은 진명의 수단이 고강한 것을 보고 평생에 닦은 무예를 다 발휘하여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진명 역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두미는 방걸이 진명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방걸의 말 뒤에서 잽싸게 튀어나와 진명을 향해 비도를 날렸다. 진명이 급하게 비도를 피할 때, 방걸의 화극이 진명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가련하게도 벽력화의 명성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방걸은 진명을 찔러 죽이기는 했지만, 감히 송군의 진영으로 돌격하지는 못했다. 그 틈에 송군의 한 장교가 갈고리로 진명의 시신을 거두었다. 송군은 진명이 죽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송강은 관을 마련하여 진명의 시신을 안치하고, 다시 장병을 내보냈다.
한편, 방걸은 싸움에서 이기자 자신만만하여 진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송군에 또 호걸이 있거든 빨리 나와서 싸우자!”
송강이 중군에 있다가 방걸이 큰 소리를 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진 앞으로 달려 나와 보니, 방걸의 뒤편에 방랍의 어가가 나타났다. 방랍은 화려한 의장 행렬의 호위를 받으며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은빛 백마를 타고 진 앞으로 나와 친히 싸움을 감독하였다.
방랍은 송강이 진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방걸에게 출전하여 송강을 사로잡으라고 명하였다. 송군 진영에서도 여러 장수들이 방랍을 사로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걸이 막 출전하려고 하는데, 탐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어림군 도교사 하종룡이 군마를 총독하여 흡주를 구원하러 가다가 송군 노선봉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군마는 모두 흩어지고, 송군이 이미 산 뒤편에 당도하였습니다.”
방랍을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거두어 대궐을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방걸은 두미에게 진을 맡겨 송군을 막게 하고 방랍의 어가를 먼저 떠나보냈다. 그런 다음에 방걸은 두미와 함께 그 뒤를 따라 후퇴하였다.
방랍의 어가가 청계현 경계에 이르자, 대궐 쪽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불길이 치솟으며 병마의 교전이 벌어졌다. 이준 · 완소오 · 완소칠 · 동위 · 동맹이 청계현 성중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방랍이 성을 구하기 위해 어림군을 몰고 성으로 들어가, 혼전이 벌어졌다.
송강의 군마는 남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뒤를 따라 추격하였다. 청계현에 이르러 성중에서 불길이 오르는 것을 보고, 이준 등이 일을 벌인 것을 알고 급히 장수들에게 명하여 군마를 몰아 성중으로 쇄도하게 하였다. 이때 노선봉의 군마도 산을 넘어와 접응하여, 사면에서 송군이 청계현을 협공하였다. 송강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사면팔방에서 쳐들어가 남군을 사로잡고 성을 격파하였다. 방랍은 방걸이 이끌고 온 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겨우 방원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송강의 대군이 청계현으로 들어가자, 여러 장수들은 방랍의 궁중으로 들어가 금은보화를 비롯한 재물을 모두 수습한 뒤 궁전에 불을 질렀다. 송강은 노준의의 군마와 합쳐 청계현에 주둔하고, 장수들에게 공을 아뢰고 상을 청하게 하였다.
장수들을 점검해 보니, 욱보사와 손이랑이 두미의 비도에 맞아 죽었고, 추연과 두천이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이립 · 탕륭 · 채복이 중상을 입고 치료받던 중에 죽었으며, 완소오가 청계현에서 누승상에게 죽임을 당했다.
여러 장수들이 남국의 가짜 관원 92명을 사로잡아 공을 청했다. 하지만 누승상과 두미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 방을 내붙여 백성을 안무하고, 한편으로 사로잡은 가짜 관원들을 장초토에게 보내 참수하여 효시하게 하였다.
후에 백성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누승상은 완소오를 죽인 뒤 송군이 청계현을 깨뜨리자 송림 속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두미는 자주 드나들던 창기 왕교교의 집에 숨었다가, 그 기생집 주인에게 붙잡혀 왔다. 송강은 그에게 상을 내리고, 사람을 시켜 누승상의 수급을 베어 오게 하였다.
송강은 채복으로 하여금 두미의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게 하였다. 그리고 누승상의 수급과 두미의 심장을 진명 · 완소오 · 욱보사 · 손이랑 · 추연 · 두천 · 이립 · 탕륭 · 채복과 청계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혼백 앞에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다음 날, 송강은 노준의와 함께 군사를 일으켜 방원동으로 진격하여 입구를 포위하였다.
한편, 방랍은 방걸의 호위를 받아 방원동 대궐로 돌아가자, 인마를 주둔시키고 방원동 입구를 굳게 수비하면서 출전하지 않았다. 송강과 노준의는 방원동 입구를 군마로 포위하기는 했지만, 안으로 진격할 마땅한 계책이 없었다.
한편, 방랍은 방원동에 있으면서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양군이 대치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방랍이 근심하고 있는데, 홀연 비단옷을 입은 한 대신이 대전 아래에 엎드려 아뢰었다.
“대왕께 아룁니다. 신이 비록 재주 없지만, 주상의 성은을 많이 입고서도 아직 보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오랫동안 병법을 배웠고 평소에 무예를 단련해 왔으며, 육도삼략(六韜三略)을 들었으며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계책도 배웠습니다. 신에게 주상의 군마를 빌려 주시면, 송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방랍은 크게 기뻐하며 칙명을 내려 방원동 내의 모든 병마를 동원하여 송강과 싸우라고 하였다.
방랍의 대전 아래에서 병력을 이끌고 나가 송군과 싸우겠다고 아뢴 사람은 바로 부마인 주작도위 가인이었다. 방랍은 가인의 주청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가부마는 남군 병력을 거느리고 운봉위(雲奉尉) 연청과 함께 출전하였다.
방랍은 자신의 황금 갑옷과 비단 전포를 부마에게 하사하고, 또 명마 한 필을 골라 타고 나가게 하였다. 가부마는 황질 방걸과 함께 방원동의 어림군 1만과 장수 20여 명을 거느리고 방원동 입구로 나가 진세를 펼쳤다.
한편, 송강의 군마는 방원동 입구에 주둔하면서 장수들을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었다. 송강은 진중에 있으면서, 수하의 형제들 셋 중에 둘을 잃은 데다 아직 방랍을 사로잡지 못했는데 남군은 출전하지 않고 있어, 미간을 펴지 못하고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었다. 그때 전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방원동 안에서 군마가 나오고 있습니다.”
송강과 노준의는 보고를 받고, 급히 장수들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진세를 벌리게 하였다. 남군의 진영을 보니, 가부마가 앞장서서 출전하였는데, 송강의 군중에서 누가 시진을 몰라보겠는가?
송강은 화영을 출전시켰다. 화영은 명을 받고 쟁을 비껴들고 말을 몰아 진 앞으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네놈은 어떤 놈인데, 감히 반적을 도와 우리 대군에 맞서려 하느냐? 내가 너를 사로잡기만 하면, 만 갈래로 찢어 골육을 곤죽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가부마가 대답하였다.
“나는 산동의 가인이다! 아직도 내 이름을 듣지 못한 놈이 있단 말이냐? 네까짓 양산박의 도적떼들은 말할 가치도 없다! 내 수단이 네놈들보다 못할 것 같으냐? 이제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잃었던 성을 수복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송강은 노준의와 함께 그 말을 듣고, 시진이 한 말에서 그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柴)’는 본래 ‘땔나무’라는 뜻인데, 그걸 ‘나뭇가지’라는 뜻을 가진 ‘가(柯)’ 자로 바꾸고, ‘나아간다.’는 뜻의 ‘진(進)’ 자를 ‘이끈다.’는 뜻의 ‘인(引)’ 자로 바꾼 것이었다. 오용이 말했다.
“일단 화영이 그와 싸우는 걸 봅시다.”
화영이 쟁을 들고 말을 달려 나가 가인과 교전하였다. 두 말이 엇갈리고 두 무기가 서로 부딪혔다. 두 장수가 한창 싸우면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시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은 패한 척 해 주시오. 내일 다시 봅시다.”
화영은 그 말을 듣고, 3합 정도 더 싸우다가 말을 돌려 달아났다. 가인이 소리쳤다.
“패장아! 내 너를 추격하지 않겠다! 너보다 나은 놈 있으면 내보내 나랑 교전하게 해 봐라!”
화영이 본진으로 돌아와 송강과 노준의에게 시진의 말을 전하자, 오용이 말했다.
“다시 관승을 출전시켜 교전하게 합시다.”
관승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가 소리쳤다.
“산동의 졸개야! 감히 나와 싸워 보겠느냐?”
가부마가 달려 나와 관승을 대적하였다. 두 장수는 교전하면서 전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5합이 되지 않아, 관승이 패한 척하면서 본진으로 달아났다. 가부마는 추격하지 않고 진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송군에는 나와 대적할 더 강한 장수가 없느냐?”
송강은 다시 주동을 출전시켜 시진과 교전하게 하였다. 두 장수가 교전한지 5~6합 만에 주동 역시 패한 척하면서 달아났다. 시진이 추격하여 쟁으로 허공을 한 번 찌르자, 주동은 말을 버리고 본진으로 달아났다. 남군은 좋은 말 한 필을 먼저 얻었다.
가부마는 남군을 휘돌아 송군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송강은 급히 군사를 이끌고 10리를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가부마는 군사를 이끌고 한 동안 추격하다가, 군사를 거두어 방원동으로 돌아갔다.
누군가가 달려가 방랍에게 보고하였다.
“가부마는 대단한 영웅입니다. 세 적장을 연이어 이기고 송군을 물리쳤습니다. 송강은 일진을 패하고 10리를 후퇴하였습니다.”
방랍은 크게 기뻐하면서 연회를 열게 하였다. 가부마가 돌아와 갑옷을 벗고 후궁으로 들어오자, 방랍은 친히 술잔을 들어 권하면서 말했다.
“부마가 그처럼 문무를 겸전했을 줄은 몰랐네! 과인은 사위가 문장에만 뛰어난 선비인 줄 알았는데, 이런 영웅호걸임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많은 고을을 잃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부마는 기이한 재능을 떨쳐 적장들을 베고 나라의 기업을 중흥하여, 과인과 더불어 태평과 무궁한 부귀를 함께 누리도록 하라.”
가인이 아뢰었다.
“주상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신하된 자로서 마땅히 마음을 다해 은덕에 보답하고 함께 나라를 부흥하겠습니다. 내일 성상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 제가 송강의 무리를 베는 것을 구경하십시오.”
방랍은 크게 기뻐하며, 밤늦게까지 연회를 즐기다가 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방랍은 소와 말을 잡아 삼군을 배불리 먹인 다음 방원동 입구로 나가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고 북을 울리면서 싸움을 걸게 하였다. 방랍은 내시와 근신들을 거느리고 산정에 올라가 가부마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한편, 송강은 명을 내려 장수들에게 분부했다.
“오늘 싸움은 다른 때에 비할 바가 아닌 가장 요긴한 때이다. 여러 장수들은 각기 힘을 다하여 역적의 수괴 방랍을 사로잡도록 하고 결코 죽이지 말라. 군사들은, 남군 진에서 시진이 말을 돌려 인도하면 곧장 방원동 안으로 돌격하여 힘을 합쳐 방랍을 사로잡도록 하라. 결코 어긋나서는 안 된다!”
삼군의 장수들은 각자 주먹을 비비면서 창검을 뽑아들고, 방원동의 금은보화를 빼앗고 방랍을 사로잡아 공을 세우고자 하였다.
송강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방원동 앞에 당도하여 군마를 벌려 진세를 펼쳤다. 남군의 진에서는 가부마가 문기 아래 서 있다가 출전하려 하자, 황질 방걸이 화극을 비껴들고 말했다.
“도위께서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먼저 나가 송군의 한 장수를 참하면 그때 도위께서 군사를 몰아 적을 치십시오.”
송군에서는 연청이 시진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오늘의 계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장수들은 각자 싸울 준비를 하였다.
한편, 방걸은 말을 몰고 앞으로 나와 도전하였다. 송강의 진에서는 관승이 출전하여 청룡도를 휘두르며 방걸과 교전하였다. 두 장수는 앞뒤로 왔다갔다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10여 합 넘게 싸웠다. 송강은 또 화영을 내보내 관승과 함께 방걸과 싸우게 하였다. 방걸은 두 장수가 협공하는데도 전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힘을 내어 대적하였다. 하지만 몇 합이 지나자 비록 지지는 않았지만 단지 막고 피하기에만 급급하였다.
송강의 진에서 다시 이응과 주동이 달려 나가 싸움을 도왔다. 네 장수가 협공을 하자, 방걸은 비로소 말을 돌려 본진을 향해 달아났다. 가부마는 문기 아래 있다가 돌아오는 방걸을 가로막고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관승 · 화영 · 주동 · 이응이 추격해 왔다. 가부마는 쟁을 들고 곧장 방걸에게 달려들었다.
방걸은 비로소 형세가 좋지 않음을 깨닫고 급히 말에서 내려 달아났는데, 시진이 달려가 쟁으로 찌르자 배후에서 운봉위 연청이 한칼에 베어 버렸다. 남군 장수들은 그걸 보고 모두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각자 도망치기에 바빴다. 가부마가 소리쳤다.
“나는 가인이 아니라, 시진이다! 송선봉의 부하 정장 소선풍이 바로 나다! 나를 따르는 운봉위는 낭자 연청이다! 우리는 이미 방원동의 안팎을 자세히 알고 있다. 방랍을 사로잡아 오는 자에게는 높은 관작을 줄 것이며 투항하는 자는 죽음을 면할 것이다. 하지만 항거하는 자는 온 가족이 참수될 것이다!”
시진은 몸을 돌려 네 장수와 대군을 이끌어 방원동 안으로 쳐들어갔다. 방랍은 내시와 근신들을 거느리고 산정에 있다가, 방걸이 죽고 삼군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보고 일이 위급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앉아 있던 의자를 차 던지고 깊은 산속으로 달아났다.
송강은 대군을 일으켜 다섯 길로 나누어 방원동으로 쳐들어가 방랍을 사로잡게 하였다. 하지만 뜻밖에 방랍은 이미 도망친 뒤여서 시종들만 붙잡혀 왔다. 연청은 방원동 안으로 뛰어들어 몇 명의 심복들과 함께 창고의 금은보화들을 꺼내온 뒤 궁궐에 불을 질렀다.
시진은 동궁으로 달려갔는데, 금지공주는 이미 목을 매고 자결한 뒤였다. 시진은 그걸 보고동궁에 불을 지르고 시종들은 모두 달아나도록 놓아주었다. 여러 장수들은 정궁으로 쳐들어가 비빈과 시녀들 및 방랍의 친척들을 모두 죽이고 금은보화를 모두 가지고 나왔다. 송강도 대군을 이끌고 궁궐로 들어와 방랍을 수색하게 하였다.
한편, 완소칠은 궁궐 깊숙이 들어왔다가 상자 하나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방랍이 사용하던 평천관(平天冠) · 곤룡포(袞龍袍) · 벽옥대(碧玉帶) · 백옥규(白玉珪) · 무우리(無憂履) 등의 천자 의복이 들어 있었다. 완소칠은 그것들이 모두 진귀한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고 용봉(龍鳳)이 수놓인 것을 보고 생각했다.
“방랍이 입던 것 같은데, 내가 한 번 입어 본다고 해서 안 될 것 없겠지.”
완소칠은 곤룡포를 입고 그 위에 벽옥대를 매고서, 발에 무우리를 신고 머리에 평천관을 썼다. 그리고 백옥규를 가슴에 꽂고서 말에 올라 채찍을 쥐고 궁궐 앞으로 나갔다. 삼군의 장수들은 방랍인 줄 알고 사로잡기 위해 일제히 달려들었다가, 완소칠임을 알아보고 모두 크게 웃었다. 완소칠은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을 타고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때 동추밀이 데리고 온 대장 왕품과 조담도 싸움을 돕기 위해 방원동으로 들어와 있었는데, 삼군이 방랍을 사로잡기 위해 소란하다는 것을 듣고 자신들도 방랍을 사로잡아 공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런데 왕소칠이 천자의 의복을 입고 장난치고 있는 것을 보고서 왕품과 조담이 꾸짖었다.
“네놈은 방랍을 본받으려는 것이냐? 어찌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느냐!”
완소칠은 크게 노하여 왕품과 조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두 놈은 무슨 좆같은 놈들이냐! 우리 송공명 형님이 아니었다면, 너희 두 놈의 당나귀 같은 대가리는 이미 방랍의 칼에 잘렸을 것이다! 오늘 우리 형제들이 공을 세웠건만, 네놈들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조정을 기만하여 되레 두 대장이 협조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할 것 아니냐!”
왕품과 조담이 크게 노하여 완소칠과 싸우려 하자, 완소칠도 군사의 창을 빼앗아 왕품을 찌르려고 하였다. 호연작이 그걸 보고 급히 그 사이로 달려 들어가 말리고, 군사를 보내 송강에게 알리게 하였다. 보고를 받고 달려온 송강과 오용은 완소칠이 천자의 의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빨리 말에서 내려 의복을 벗으라고 명하였다. 송강이 사과했지만, 왕품과 조담은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었다.
그날 방원동 안에는 죽은 시체가 들판을 뒤덮고 흐르는 피가 개울을 이루었다. 『송감(宋鑑)』이란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참살된 방랍의 군사는 2만이 넘었다고 한다. 송강은 명을 내려 사방에 불을 놓아 방랍의 궁전을 완전히 불태워 버리게 하였다.
송강은 궁전이 모두 불에 타는 것을 감독하면서, 군사를 방원동 안에 주둔시키고 사로잡은 적장들을 점검하였다. 아직 사로잡지 못한 자는 역적의 수괴 방랍뿐이었다. 송강은 명을 내려, 군사들로 하여금 산속을 수색하게 하고, 방랍을 사로잡는 자에게는 높은 관작을 내리고 방랍이 있는 곳을 신고하는 자에게 상금을 내리겠다고 주민들에게 고시하였다.
한편, 방랍은 방원동 산정에서 도망쳐 깊은 산속과 넓은 들판을 지나면서 천자의 의복을 다 벗어 던지고 미투리를 신고서 정신없이 달아났다. 밤을 새워 산을 다섯 개나 넘어 어떤 산속의 오목한 곳에 당도하여 보니 암자가 하나 있었다.
방랍은 배가 고파 음식을 얻고자 암자로 다가갔는데, 갑자기 송림 속에서 뚱뚱한 중이 하나 나오더니 선장으로 방랍을 때려눕히고 밧줄로 묶어 버렸다. 그 중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화화상 노지심이었다. 노지심은 방랍을 끌고 암자로 가서 밥을 먹은 다음, 다시 방랍을 끌고 나오다가 산속을 수색하고 있던 군사들을 만나 함께 송선봉에게로 갔다.
송강은 방랍을 사로잡아 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노지심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이 역적 수괴를 사로잡았습니까?”
노지심이 말했다.
“저는 오룡령 위의 만송림에서 적과 싸우다가 하후성을 추격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적병들과 싸우는 데만 정신이 팔려 너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임랑산에서 홀연 한 노승을 만났습니다. 노승이 저를 그곳 암자로 데려가서 말하기를, ‘땔감과 쌀과 채소는 모두 있으니 여기서 기다리다가, 덩치 큰 사내가 송림 속에서 나오거든 바로 사로잡으시오.’라고 했습니다.
간밤에 산 앞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는데, 그곳이 어딘 줄도 모르고 길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 역적 놈이 산을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선장으로 때려잡아 묶었는데, 뜻밖에 방랍이었습니다!”
송강이 또 물었다.
“그 노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노지심이 말했다.
“그 노승은 소승을 암자로 데리고 가서 땔감과 쌀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고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노승은 성승(聖僧)이나 나한(羅漢)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영험을 나타내어 우리 스님이 큰 공을 이루게 한 겁니다. 경성으로 돌아가면 조정에 아뢰어, 스님에게 높은 관작을 내리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환속하여 관리가 되어 경성에서 처자식을 거느리면서, 조상을 빛나게 하고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도록 하십시오.”
“제 마음은 이미 차가운 재와 같습니다. 관리가 되는 것은 원치 않고, 다만 조용한 곳을 찾아 이 한 몸 평온하게 살면 족하겠습니다.”
“스님이 환속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경성의 명산에 있는 큰 사찰의 주지가 되어 스님들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역시 조상을 빛내고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노지심이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모두 쓸데없는 짓입니다. 단지 이 몸을 온전히 하여 죽는다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송강이 장수들을 점검해 보니 이번에는 잃은 사람이 없었다. 방랍을 함거에 실어 동경으로 압송하여 천자께 바치기로 하고, 삼군을 재촉하여 방원동을 떠나 목주를 향해 나아갔다.
한편, 장초토는 유도독 · 동추밀 · 종참모 · 경참모 등을 모두 목주로 모아 병력을 합쳐 주둔하고 있었다. 송강이 큰 공을 세우고 방랍을 사로잡아 목주로 압송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모든 관원들이 와서 장초토에게 경하하였다.
송강과 여러 장수들이 와서 절을 하자, 장초토가 말했다.
“장군께서 변방에 와서 많은 고생을 하시고 또 많은 형제들을 잃었음을 들었습니다. 이제 큰 공을 세우셨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송강이 재배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초 소장 등 108명이 요나라를 격파하고 경성에 돌아왔을 때에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랍을 토벌하러 올 때에는, 생각지도 않게 공손승이 먼저 떠나고 또 경성에 몇 사람을 남겨두고 오게 되었습니다. 양주를 수복하고 대강을 건널 때에 이미 열에 일곱을 잃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오늘 송강이 비록 살아있지만, 무슨 면목으로 다시 산동의 어른들과 고향의 친척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장초토가 말했다.
“선봉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빈부귀천은 전생에 정해진 것이고, 수명의 길고 짧음은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속담에 ‘복 있는 사람이 복 없는 사람을 먼저 보낸다.’는 말도 있습니다. 장수들을 잃은 것이 어찌 수치가 되겠습니까!
오늘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으니, 조정에서 알고 필시 중용할 것입니다. 높은 관작을 받고 가문을 빛내며 금의환향(錦衣還鄕)하면, 누가 칭찬하고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작은 일에 너무 괘념치 마시고, 군대를 수습하여 회군할 준비를 하십시오.”
송강은 장초토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와, 장수들에게 회군할 준비를 하라고 명을 내렸다. 장초토는 군령을 내려, 방랍은 동경으로 압송하고 나머지 역적의 무리들은 모두 목주 저자거리에서 참수하라고 하였다.
아직 수복하지 못한 구현과 무현 등에서는 역적의 관원들이 방랍이 이미 사로잡힌 것을 알고, 절반은 도망치고 절반은 자수하였다. 장초토는 자수한 자들은 모두 양민으로 돌아가게 하고, 방을 내붙여 각처의 백성들을 안무하였다. 나머지 역적을 따랐던 자들 중에 사람을 해치지 않은 자들로서 자수한 자들은 역시 양민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수복한 고을에는 관군을 보내 경계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게 하였다.
장초토와 여러 관원들은 목주에서 태평연을 열어 경하하고, 삼군의 장병들에게 상을 내렸다. 그리고 송선봉과 장수들에게 명을 내려 군대를 수습하여 경성으로 회군하게 하였다. 군령이 전해지자, 모든 장병들은 행장을 준비하여 차례로 출발하였다.
한편, 선봉사 송강은 잃은 장수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항주에서 양림과 목춘이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장횡 · 목홍 · 공명 · 주귀 · 양림 · 백승이 병을 앓고 있다가 양림만 살아났고, 주부와 목춘이 간병하고 있었는데 주부도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었다.
송강은 여러 장수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태평함이 있음을 상기하고 전사한 장수들의 명복을 빌기로 하였다. 목주에 있는 도관에 긴 깃발을 휘날리며 제사를 지내 죽은 장수들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 날, 소와 말을 잡아 희생을 준비하고서 송강은 오용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과 오룡신묘에 가서 비단을 태우며 오룡대왕에게 제사를 바치며 보우해 준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 영채로 돌아온 송강은 전사한 장수들의 시신을 할 수 있는 한 수습하여 모두 안장하였다.
송강은 노준의와 함께 군마를 수습하여 장초토를 따라 항주로 가서 성지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여러 장수들의 공로를 적은 책을 만들고 표장을 써서 어전에 올려 천자께 아뢰었다. 삼군을 정비하여 차례로 출발하였는데, 송강이 돌아보니 남은 장수는 36명뿐이었다.
호보의 송강, 옥기린 노준의, 지다성 오용, 대도 관승, 표자두 임충, 쌍편 호연작, 소이광 화영, 소선풍 시진, 박천조 이응, 미염공 주동, 화화상 노지심, 행자 무송, 신행태보 대종, 흑선풍 이규, 혼강룡 이준, 활염라 완소칠, 병관색 양웅, 낭자 연청, 신기군사 주무, 진삼산 황신, 병울지 손립, 철면공목 배선, 금표자 양림, 굉천뢰 능진, 신산자 장경, 혼세마왕 번서, 출동교 동위, 번강신 동맹, 철선자 송청, 소차란 목춘, 귀검아 두흥, 독각룡 추윤, 일지화 채경, 소울지 손신, 모대충 고대수, 고상조 시천이었다.
송강은 여러 장수들과 병마를 거느리고 목주를 떠나 항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군사를 거두는 징소리가 모든 산에 울리고 승전을 알리는 깃발이 10리에 걸쳐 붉게 휘날렸다. 항주에 당도하였는데. 장초토의 군마가 성중에 있었기 때문에 송선봉은 육화탑 부근에 병마를 주둔하고 장수들은 모두 육화사(六和寺)에 머물렀다. 송강과 노준의는 아침 저녁으로 성을 드나들며 장초토의 명을 받았다.
한편, 노지심은 무송과 함께 절 안의 조용한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성 밖의 강산이 수려하고 경치가 비상하여 심중으로 기뻐하였다. 그날 밤은 달이 밝고 바람이 맑았으며 하늘과 물빛이 모두 푸르렀다. 두 사람은 승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홀연 강에서 조수가 밀려드는 소리가 우레처럼 들렸다.
노지심은 관서 사람이라 절강의 조수에 대해서는 알 리 없었기 때문에, 전쟁터의 북소리로 듣고 적이 쳐들어온 줄 알았다. 자리에 벌떡 일어나 선장을 찾아 들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방에서 뛰어나왔다. 중들이 깜짝 놀라 모두 달려와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일로 이러십니까?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노지심이 말했다.
“전쟁터의 북소리가 들려 싸우러 나가려는 거요.”
중들이 모두 웃으며 말했다.
“스님께서 착각하신 겁니다. 저건 북소리가 아니라 전당강의 조신(潮信) 소리입니다.”
노지심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스님들! 조신 소리라는 것이 무엇이오?”
중들이 창문을 열고 밀물이 밀려드는 것을 가리키며 노지심에게 말했다.
“이 조신은 하루에 두 번 오는데 결코 시각을 어기는 법이 없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이라 자정에 밀물이 들어오는 겁니다. 시각을 어기지 않으므로 조신(潮信)이라 이릅니다.”
노지심은 밀물을 바라보다가 심중으로 홀연 깨닫고는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나의 스승이신 지진장로께서 나에게 사구게를 준 적이 있소. ‘봉하이금(逢夏而擒)’은 내가 만송림에서 하후성을 사로잡은 것을 말하고, ‘우랍이집(遇臘而執)’은 내가 방랍을 사로잡은 것을 말하오. 오늘은 ‘청조이원 견신이적(聽潮而圓 見信而寂)’이란 구절에 상응하는 것 같소. 내가 생각하기에 조신(潮信)을 만났으니 마땅히 원적(圓寂)해야 할 것 같소. 그런데 하나 물어봅시다. 원적이란 게 무엇이오?”
중들이 대답했다.
“스님은 출가인이면서, 불문(佛門)에서는 원적이 죽음을 뜻하는 것임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노지심은 웃으며 말했다.
“죽음을 원적이라 한단 말이지. 그러면 내가 이제 반드시 원적해야겠소. 번거롭겠지만 물 한 통만 데워 주시오. 목욕을 해야겠소.”
중들은 모두 노지심이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또 그의 무서운 성격을 알기 때문에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중들이 물을 데워 오자, 노지심은 목욕을 하고 천자가 하사한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군졸을 불러 일렀다.
“송공명 선봉 형님께 가서 내가 뵙고자 한다고 전해라.”
또 중들에게 지필묵을 빌려 게송을 하나 썼다. 그리고 법당 가운데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좌정하였다. 향로에 좋은 향을 피우고, 게송을 쓴 종이를 평상 위에 펼쳐 놓고,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 가부좌를 틀었다. 송공명이 여러 두령들을 데리고 급히 달려와 보니, 노지심은 이미 의자 위에 좌정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노지심이 남겨 놓은 게송은 이러하였다.
평생 좋은 업은 닦지 않고
다만 살인 방화만 좋아했더라.
홀연 쇠사슬이 풀리고
옥 자물쇠가 끊어지는구나.
쳇!
전당강에 조신이 오니
오늘에야 비로소 내가 나인 것을 알겠네.
송강과 노준의는 게송을 보고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여러 두령들도 노지심이 원적한 것을 보고 향을 사르며 예배하였다. 성중에 있던 장초토와 동추밀을 비롯한 관원들도 와서 향을 사르며 예배하였다. 송강은 황금과 비단을 중들에게 나누어주고 사흘 밤낮 동안 노지심의 공덕을 기리게 하였다.
송강은 노지심의 시신을 붉은 관에 담고 경산의 주지 대혜선사(大惠禪師)를 청하여 화장을 부탁하였다. 다섯 산의 열 개 사찰의 선사들이 모두 와서 불경을 독송하고 관을 육화탑 위로 옮겨 화장하였다. 대혜선사가 손에 횃불을 들고 관 앞에 서서 노지심을 가리키며 몇 마디 법어를 말했다.
노지심! 노지심!
녹림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눈에서 불길이 나오고
마음속엔 오직 살인할 생각뿐.
홀연 조수를 따라 떠나가니
과연 그 간 곳을 찾지 못하겠네.
아!
그 깨달음은 하늘 가득 백옥을 날리고
그 능함은 대지를 황금으로 바꾸었네.
대혜선사가 불을 붙이자, 중들이 불경을 독송하며 참회하였다. 관이 다 불타자 남은 뼈와 재를 수습하여 육화탑 뒤뜰에 장례 지냈다. 노지심이 쓰던 의발과 조정에서 상으로 받은 금은 과 여러 관에서 보시한 재물 등은 모두 육화사에 시주하여 공용으로 쓰게 하였다. 철선장과 검은 장삼 역시 육화사에 고인의 유품으로 바쳤다.
송강이 무송을 보니,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이미 폐인이 되어 있었다. 무송이 송강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폐인이 되었으니, 동경으로 가서 천자를 알현하지 않겠습니다. 상으로 받은 모든 금은은 육화사에 헌납하여 공용으로 쓰고, 한가로운 도인(道人)이 되어 지내고자 합니다. 형님이 공적부를 쓰실 때 제 이름은 넣지 마십시오.”
송강이 말했다.
“자네 뜻대로 하게.”
무송은 육화사에서 출가하여, 후에 80세까지 살다가 선종(善終)하였다.
한편, 송강은 매일 성중으로 들어가 명을 받다가, 장초토가 중군 인마를 거느리고 떠난 후 군병을 이끌고 성중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다. 보름쯤 지나서 조정에서 사신이 와서, 선봉 송강 등은 회군하여 경성으로 돌아오라는 성지를 전하였다. 장초토 · 동추밀 · 유도독 · 종참모 · 경참모 · 왕품 · 조담 등의 중군 인마는 차례로 경성으로 회군하고, 송강 등도 그 뒤를 따라 군마를 수습하여 경성으로 회군하였다.
출발할 무렵, 뜻밖에 임충이 풍질에 걸려 온몸이 마비되고, 양웅은 등창이 나서 죽고, 시천은 다시 장에 탈이 나서 죽었다. 송강은 슬퍼하여 마지않았다. 단도현에서 공문이 왔는데, 양지가 죽어 본현의 산에 장례 지냈다고 하였다. 임충은 풍질이 낫지 않아 육화사에 남겨 무송으로 하여금 간병하게 하였는데, 반년 만에 죽었다.
송강이 장수들과 함께 항주를 떠나 경성을 향해 출발할 때, 낭자 연청이 은밀히 노준의를 찾아와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주인님을 따르면서 많은 은덕을 입었는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제 대사는 마쳤으니, 주인님과 함께 관작을 반납하고 종적과 이름을 감춘 채 조용한 곳을 찾아가 천수를 마치고 싶습니다. 주인님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노준의가 말했다.
“양산박에서 조정에 귀순한 이래 우리 형제들이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형제들을 많이 잃었는데, 다행히 우리 둘은 살아남았다. 이제 금의환향하여 처자식을 거느리고 살게 되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아무런 보람이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느냐?”
연청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께서 틀리셨습니다. 제가 가려는 길이야말로 보람 있는 일입니다. 주인님께서 가시려는 길이 도리어 보람이 없을까 염려됩니다.”
“연청아! 나는 지금까지 조금도 다른 마음을 가진 적이 없는데, 조정이 어찌 나를 저버리겠느냐?”
“주인님께서는 듣지 못하셨습니까? 한신(韓信)이 열 가지 큰 공을 세우고서도 미앙궁에서 참수되었으며, 팽월(彭越)은 소금에 절여져 젓갈로 담겨졌고, 영포(英布)는 독주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화가 머리에 떨어질 때면 피하기도 어렵습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한신은 제나라에서 멋대로 왕을 칭했으며, 진희(陳豨)로 하여금 모반하게 하였다. 팽월이 죽임을 당하고 집안을 망하게 한 것은, 대량(大梁)에서 고조(高祖)를 받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포는 구강(九江)에 부임하여 한나라 강산을 도모하려다가, 고조가 운몽으로 놀러간 척하면서 여후(呂后)로 하여금 참수하게 하였다. 나는 비록 그들만큼 높은 관작을 받지도 않았지만, 또한 그런 죄를 짓지도 않았다.”
“주인님께서 제 말씀을 듣지 않으시다가, 후회가 늦을까 두렵습니다. 제가 본래는 송선봉께 작별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분은 의리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라 필시 저를 놓아주려 하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주인님께만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너는 나를 작별하고 어디로 가려 하느냐?”
“저는 주인님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노준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지. 네가 가긴 어디로 간단 말이냐?”
연청은 노준의에게 팔배를 올리고, 그날 밤 금은보화를 수습하여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한 군사가 편지 한 장을 수습하여 송선봉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송강이 편지를 펼쳐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못난 아우 연청이 선봉 주장 휘하에 백 번 절을 올리며 간곡히 아룁니다. 저를 거두어 주시고 베풀어 주신 두터운 은덕은 목숨을 바쳐도 다 갚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저는 운명이 박하고 신분이 미천하여 국가의 임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산야로 물러나 한가롭게 살고자 합니다. 본래는 찾아가 뵙고 작별 인사를 드려야 하지만, 주장께서는 의기를 중히 여기시는 분이라 놓아 주시지 않을 것 같아 밤중에 몰래 떠납니다. 이제 몇 마디 말을 남겨 작별 인사를 대신하려 하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줄지어 날던 기러기 흩어지니 절로 놀라며
관직을 반납하고 영화를 구하지 않네.
몸은 이미 군왕의 사면을 받았으니
풍진을 씻어 내고 이 삶을 마치리.
송강은 연청의 편지를 읽고 나서 마음이 더욱 우울해졌다. 송강은 죽은 장수들의 임명장과 패를 거두어 경성으로 돌아가면 조정에 반납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