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74화
한편, 요군들은 새벽부터 성을 포위하여 오후가 될 때까지 성을 공격하였으니, 아주 피로한 상태였다. 그런데 송강의 군마가 쳐들어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병력을 거두어 퇴각하기 시작했다.
주무가 말했다.
“이때 추격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노준의는 즉시 명을 내려 네 성문을 모두 열고 군마를 총동원하여 적을 추격하였다. 요군은 대패하여 별똥별이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송강은 요군을 멀리까지 추격하다가, 날이 밝을 무렵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 옥전현으로 들어갔다.
송강은 노준의의 군대와 병력을 합치고, 계주를 공격할 일을 의논했다. 시진, 이응, 이준, 장횡, 장순, 완가 삼형제, 왕왜호, 일장청, 손신, 고대수, 장청, 손이랑, 배선, 소양, 송청, 악화, 안도전, 황보단, 동위, 동맹, 왕정륙을 남겨 조추밀과 함께 단주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좌우 2군으로 나누었다.
송선봉은 좌군 인마와 48명의 장수를 거느렸다. 군사 오용, 공손승, 임충, 화영, 진명, 황신, 주동, 뇌횡, 유당, 이규, 노지심, 무송, 양웅, 석수, 손신, 손립, 구붕, 등비, 여방, 곽성, 번서, 포욱, 항충, 이곤, 목홍, 목춘, 공명, 공량, 연순, 마린, 시은, 설영, 송만, 두천, 주귀, 주부, 능진, 탕륭, 채복, 채경, 대종, 장경, 김대견, 단경주, 시천, 욱보사, 맹강이었다.
노선봉은 우군 인마와 37명의 장수를 거느렸다. 군사 주무, 관승, 호연작, 동평, 장청, 삭초, 서녕, 연청, 사진, 해진, 해보, 한도, 팽기, 선찬, 학사문, 단정규, 위정국, 진달, 양춘, 이충, 주통, 도종왕, 정천수, 공왕, 정득손, 추연, 추윤, 이립, 이운, 초정, 석용, 후건, 두흥, 조정, 양림, 백승이었다.
이렇게 병력을 둘로 나누어, 두 길로 진격하여 계주를 취하기로 하였다. 송선봉은 평욕현으로 진격하고, 노준의는 옥전현으로 진격하였다. 조안무는 23명의 장수를 거느리고 단주를 지켰다.
송강은 군사들이 연일 전투를 치렀기 때문에 피곤한 것을 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계주를 공격하기로 했다. 계주를 공격할 계책은 이미 세워 두고 있었다. 먼저 사람을 단주로 보내 장청의 화살 맞은 상처가 어떠한지 물어보게 하였다. 신의 안도전이 소식을 전해 왔다.
“겉으로 피부만 상하고 안으로 상처가 난 것은 아니니, 주장께선 마음 놓으십시오. 고름이 멎게 되면 자연히 나을 것입니다. 요즘 날씨가 무더워 군사들이 병이 많이 날 겁니다. 그래서 추밀상공에게 아뢰어 소양과 송청을 동경으로 보내, 약재를 구입하고 태의원에서 더위 먹었을 때 쓰는 약을 받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황보단 역시 말에게 먹일 약재를 받아오라고 소양과 송청에게 부탁했습니다. 선봉께 먼저 보고 드립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다소 마음이 놓였다. 송강은 노준의와 계주 공략을 의논하며 말했다.
“지난번에 노선봉이 옥전현에서 포위당하고 있는 줄 모르고, 내가 나름대로 이미 계책을 생각해 두었었소. 공손승은 원래 계주 사람이고, 양웅도 계주에서 절급 노릇을 한 적이 있으며, 석수와 시천도 거기서 오랫동안 살았었소. 지난번에 요군을 물리칠 때 내가 이미 석수와 시천으로 하여금 패잔병 속에 섞여 들어가게 하였소. 필시 두 사람은 이미 계주성 어디에 숨어 있을 것이오. 시천이 떠날 때 계책을 내놓았었소. ‘계주성 안에 보엄사라는 큰 사찰이 하나 있는데, 중간에 대웅보전이 있고 그 앞에 하늘 찌를 듯한 높은 보탑이 있습니다.’ 시천이 그렇게 말하자, 석수가 또 이렇게 말했소. ‘시천이 보탑에 숨어 있으면, 제가 매일 밥을 날라 주겠습니다. 그리고 성 밖에서 형님이 군마를 이끌고 공격하시면, 저희가 보탑에 불을 질러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시천은 본래 처마나 벽을 타고 다니는 데 능숙한 자이니, 어딘들 몸을 숨기지 못하겠소? 석수도 때가 되면 관아에 불을 지를 것이오. 두 사람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으니, 내가 먼저 진격하겠소.”
다음 날, 송강은 병력을 거느리고 평욕현을 떠나 노준의와 병력을 합쳐 계주로 진격하였다.
한편, 계주성의 야율득중은 아들 둘을 잃고 원한을 품었다. 대장 보밀성과 천산용·동선시랑 등과 상의하여 말했다.
“지난번 탁주와 패주의 구원병은 송군의 공격을 받고 흩어져 버리고 말았소. 지금 송강이 옥전현에서 병력을 합쳐 조만간에 계주를 공격하러 올 것이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대장 보밀성이 말했다.
“송강의 병력이 오지 않으면 만사 그만이지만, 만약 그놈들이 온다면 소장이 출전하여 상대하겠습니다. 몇 놈 사로잡으면 저놈들이 물러가지 않겠습니까?”
동선시랑이 말했다.
“저 오랑캐 부대 안에 푸른 전포 입은 놈이 돌팔매질을 잘하니, 미리 방비해야 합니다.”
천산용이 말했다.
“그 오랑캐 놈은 이미 내 화살을 목에 맞았으니, 죽었을 것이오!”
동선시랑이 말했다.
“그놈을 제외하면 다른 놈들은 별 거 없소.”
상의하고 있는데, 장교가 와서 송강의 군마가 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야율득중은 황망히 삼군을 점검하여 보밀성과 천산용에게 빨리 성을 나가서 적을 막으라고 하였다. 요군은 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송강의 군대와 대치하였다.
양군이 진세를 펼치자, 보밀성이 창을 비껴들고 진 앞으로 나섰다. 송강이 그걸 보고 장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저 장수를 참하고 깃발을 빼앗아 첫 번째 공을 세우겠는가!”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표자두 임충이 달려 나가 보밀성과 교전하였다. 두 장수가 3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임충은 공을 세우기 위해 장팔사모를 깊숙이 찔러 넣으면서 우레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적장의 쟁을 쳐내면서 장팔사모로 보밀성의 목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였으며, 양군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천산용은 보밀성이 장팔사모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쟁을 비껴들고 출전하였다. 송강의 진영에서는 서녕이 구겸쟁을 들고 달려 나갔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20합이 채 되지 못해, 서녕이 천산용을 구겸쟁으로 찔러 말에서 떨어뜨렸다.
송강은 적장이 두 명 연이어 죽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대군을 몰아 혼전을 벌였다. 요군은 대패하여 계주성을 향해 달아났다. 송강의 군마는 10여 리를 추격하다가 병력을 거두었다. 그날은 영채를 세우고 삼군에 상을 내렸다. 다음 날, 영채를 뽑고 곧장 계주성으로 진격하였다.
사흘째 되는 날, 야율득중은 두 장수를 잃고 매우 놀라고 당황하였다. 또 송군이 당도했다는 보고를 듣고, 황망히 동선시랑을 불러 말했다.
“자네가 군마를 이끌고 나가 대적하게. 나를 위해 근심을 덜어주면 좋겠네.”
동선시랑은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교아유강·초명옥·조명제와 함께 1천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가 진을 펼쳤다. 송강의 군마는 성 가까이 다가와 기러기 날개 모양의 진을 펼쳤다. 문기가 열리면서 삭초가 큰 도끼를 가로로 메고 진 앞으로 나오자, 요군에서는 교아유강이 나왔다. 두 장수는 아무 말 없이 교전했다. 20여 합이 되자, 교아유강은 마침내 겁을 먹고 싸울 마음을 잃은 채 달아나기 시작했다. 삭초는 말을 몰아 추격하여 두 손으로 도끼를 휘둘러 교아유강의 머리를 내리쳤다. 교아유강은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동선시랑은 교아유강이 죽는 걸 보고, 황망히 초명옥과 조명제를 불러 빨리 나가 싸우라고 하였다. 두 장수는 이미 겁을 먹었지만 할 수 없이 쟁을 들고 출전하였다. 송강의 군중에서 구문룡 사진이 칼을 휘두르며 곧장 두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사진이 용맹을 발휘하여 한칼에 초명옥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고, 조명제가 급하게 달아나는 것을 추격해 또 한칼에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사진은 기세를 몰아 요군의 진으로 돌격했다.
송강은 그걸 보고 채찍으로 앞을 가리키며 대군을 몰아 돌격했다. 송군이 조교 앞에까지 다다르자, 야율득중은 더욱 겁이 나서 조교를 들어 올리고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기만 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요나라 군주에게 알리고, 패주와 유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한편,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며 말했다.
“저렇게 굳게 지키기만 하니,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소?”
오용이 말했다.
“성중에 이미 석수와 시천이 들어가 있으니, 오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사방에 운제와 포가를 설치하고 즉시 성을 공격하되, 능진에게 사방에서 화포를 쏘게 하고서 쳐들어가면 됩니다. 맹렬하게 공격하면 반드시 성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송강은 즉시 명을 내려 성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밤낮 없이 공격하라고 하였다.
한편, 야율득중은 송군이 사방에서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을 보고 계주성 안의 모든 백성을 성 위로 동원하여 지키게 했다.
그때 석수는 성중의 보엄사 안에 며칠 동안 숨어 있었는데, 바깥에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초조해 하고 있는데, 시천이 와서 말했다.
“성 밖에서 송공명 형님의 군마가 성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불을 지르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석수는 시천과 상의하여, 먼저 보탑에 불을 지른 다음 불전에도 불을 놓기로 하였다. 시천이 말했다.
“형님은 빨리 관아로 가서 불을 지르십시오. 거기는 남문의 중요한 곳이므로, 불길이 치솟으면 성 밖에서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아군이 더욱 힘을 내어 성을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성을 깨뜨릴 것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 화약을 비롯한 방화 도구를 챙겨 정해 놓은 곳에 몸을 숨겼다. 그날 저녁 송강의 군마는 성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한편, 시천은 처마 아래위를 날아다니고 벽을 타는 데는 귀신같은 자여서 담장을 뛰어넘거나 성벽을 올라가는 것은 마치 평지를 가는 것처럼 했다. 먼저 보엄사의 탑 위로 올라가 불을 질렀다. 그 보탑은 성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 때문에 불길이 치솟으면 성 안팎에서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불빛이 30리 밖에까지 비쳐 마치 큰 불기둥이 솟은 것 같았다.
탑에 불을 지른 시천은 다시 불전으로 가서 또 불을 놓았다. 두 군데서 불이 나자 성안은 마치 솥에서 물이 끓어 넘치듯 난리가 났다. 백성들은 집집마다 노인과 아이들이 당황하여 울고불고 하면서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때 석수는 계주 관아의 지붕 위로 올라가 박풍판에 불을 질렀다. 계주성 안 세 군데에서 불길이 치솟자, 백성들은 이미 세작이 들어왔음을 알고 성을 지킬 마음이 없어져 각자 집을 지키러 도망쳤다. 잠시 후 보엄사 산문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시천이 보엄사를 나오면서 또 불을 지른 것이었다.
야율득중은 성안에서 반 시간 사이에 너덧 곳에서 불이 나는 것을 보고, 송강이 사람을 성 안에 들여보냈음을 알았다. 황급히 군마를 수습하고 가족과 두 아들을 데리고 재물을 수레에 싣고서 북문을 열고 달아났다.
송강은 성중의 군마가 혼란에 빠진 것을 보고 군병들을 재촉하여 성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성 안팎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가운데, 마침내 남문을 빼앗았다. 동선시랑은 중과부적임을 알고 야율득중을 따라 북문을 통해 달아났다.
송강은 대군을 거느리고 계주성으로 들어갔다. 명을 내려 먼저 사방의 불을 끄게 하고, 날이 밝은 다음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정시켰다. 삼군 인마는 모두 계주성으로 들어와 주둔하게 하고, 장병들에게 상을 내려 위로했다. 공적부에는 석수와 시천의 공을 첫째로 기록하였다. 문서를 단주에 있는 조안무에게 보내 계주성을 얻었음을 알림과 동시에 계주성으로 와서 지켜주기를 청하였다. 조안무가 문서로 회답하였다.
“나는 단주에 주둔하고 있을 테니, 송선봉은 계주를 지키고 있으시오. 요즘 날씨가 무더우니 병력을 움직이지 말고, 날이 선선해지거든 다시 의논합시다.”
송강은 회신을 보고, 노준의는 원래 거느렸던 인마를 이끌고 옥전현으로 가서 주둔하게 하고 나머지 대군은 계주를 지키게 하였다.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움직이기로 하였다.
한편, 요나라 황제의 아우 야율득중 대왕은 동선시랑과 함께 가족을 데리고 유주로 달아났다가 다시 연경으로 가서 황제를 만났다. 요나라 황제가 금전(金殿)에 올라 문무 대신들을 모아 조회를 열자, 합문대사(閤門大使)가 아뢰었다.
“계주의 대왕이 돌아왔습니다.”
황제는 야율득중을 불러들였다. 야율득중은 동선시랑과 함께 어전에 엎드려 방성대곡하였다. 황제가 말했다.
“아우는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인에게 자세히 말해 보게.”
야율득중이 아뢰었다.
“송나라의 어린 황제가 송강에게 병력을 주어 쳐들어왔는데, 그 세력이 커서 대적하기 어려웠습니다. 신의 두 아들과 단주의 대장 넷을 잃었으며, 송군이 망석을 말듯이 밀고 들어와 계주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죽여주십시오!”
황제가 말했다.
“경은 일어나라! 나와 다시 상의해 보자.”
황제가 다시 말했다.
“병력을 끌고 온 그 오랑캐는 어떤 놈인데,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냐!”
우승상 태사 저견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송강의 무리는 원래 양산박 물가의 도적들이라고 합니다. 양민을 해치지는 않고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고 하면서, 탐관오리와 백성을 속여 해치는 자들만 죽였다고 합니다. 동관과 고구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체포하려고 했지만, 도리어 송강에게 다섯 번이나 패전하고 갑옷 한 조각도 제대로 건져가지 못했습니다.
그 호걸들을 토벌할 수 없게 되자, 어린 황제가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초안한 끝에 투항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송강만 선봉사에 봉했을 뿐 관작은 수여하지 않았고, 나머지도 아무런 관작이 없습니다. 이번에 쳐들어온 자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모두 108명인데, 하늘의 별의 운수를 타고났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저들을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찌하면 좋겠는가?”
구양시랑이 소매를 떨치며 일어나 아뢰었다.
“주군 만세! 신이 비록 재주 없지만, 한 가지 작은 계책을 바쳐 송군을 격퇴하겠습니다.”
황제가 기뻐하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 있다면 어서 말해 보시오.”
구양시랑이 아뢰었다.
“송강의 무리는 모두 양산박의 영웅호걸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송나라는 채경·동관·고구·양전 네 간신이 동자황제를 둘러싸고 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현인을 시기하고 유능한 자를 질투하여 길을 가로막고서, 자신들과 친하지 않으면 승진시키지 않고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등용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그들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주군께서 그들에게 관작을 내리고 재물을 하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신이 사신으로 가서 그들이 우리 대요국(大遼國)에 투항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만약 주군께서 저들의 군마를 얻게 된다면, 중원을 얻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신이 감히 멋대로 결단할 수 없는 일이니, 주군께서 살피시기 바랍니다.”
요주(遼主)가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소. 그대가 사신이 되어 108필의 준마와 108필의 비단을 가지고 가서, 과인의 칙령으로 송강을 진국대장군(鎮國大將軍) 겸 모든 병마를 거느리는 대원수에 봉하고 금은을 하사하여 신표로 삼게 하라. 그리고 두령들의 성명도 모두 기록해 와서 전부 관작을 봉하도록 하라.”
그때 반열에서 올안 도통군(都統軍)이 나와 아뢰었다.
“송강의 무리는 도적놈들인데, 그놈들을 초안해서 무얼 하시겠습니까? 저의 수하에는 28수(宿)의 장군과 11요(曜)의 대장을 비롯하여 맹장과 강병이 무수히 있으니, 어찌 그놈들을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겠습니까? 만약 저 오랑캐 놈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가서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습니다.”
요주가 말했다.
“그대도 호걸이요 호랑이이니, 저들을 더한다면 호랑이에게 두 날개가 생기는 것과 같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대는 이 일을 막지 말라.”
요주가 올안의 말을 듣지 않으니, 그 누구도 감히 다시 말하지 못했다. 원래 올안광 도통군은 요나라 제일의 상장(上將)으로 18반 무예에 능통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병서와 전략에도 모두 익숙하였다. 나이는 35~6세인데, 체격이 당당하고 풍모가 늠름하였으며, 키는 8척이 넘고 얼굴은 희고 입술은 붉으며 수염은 누렇고 눈은 푸르러 위의가 있고 용맹하였다. 전장에 나서면 한 자루 혼철점강쟁(渾鐵點鋼鎗)을 잘 썼고, 싸움이 한창 무르익으면 불시에 허리에서 네모진 채찍인 철간(鐵簡)을 꺼내 휘둘렀는데, 실로 만 사람도 당하지 못할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구양시랑은 요나라 군주의 칙서와 많은 예물 및 준마를 가지고 계주로 갔다. 송강은 계주에서 군사들을 쉬게 하고 있었는데, 요나라 사신이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어 구천현녀가 준 천서를 꺼내 점을 쳐 봤더니, 아주 좋은 점괘가 나왔다. 송강은 오용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아주 좋은 점괘가 나왔소. 요나라가 우리를 초안하려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오용이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저들의 계책을 역이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저들의 초안을 받아들이고, 계주는 노선봉에게 맡기고 우리는 패주를 취합시다. 패주를 얻는다면 요나라를 격파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단주를 취하여 요나라의 왼팔을 꺾어 놓은 셈이니, 이는 쉬운 일입니다. 다만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는 척하다가 나중에 받아들여야 저들이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한편, 구양시랑이 성 아래에 당도하자, 송강은 성문을 열고 받아들이라고 명하였다. 구양시랑이 성중으로 들어와 관아 앞에서 말을 내리고 대청으로 올라왔다. 예를 마친 다음, 주객을 나누어 좌정하고서 송강이 물었다.
“시랑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양시랑이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송강은 좌우를 물리치고 후당 깊숙한 곳으로 구양시랑을 데리고 들어갔다. 구양시랑은 후당으로 들어오자, 고개를 숙이며 송강에게 말했다.
“우리 대요국에서는 장군의 큰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으나, 산수가 가로막혀 존안을 뵈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또 장군께서 양산박 산채에 계실 때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향하며 여러 형제들이 동심협력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송나라 조정에서는 간신들이 어진 이의 길을 가로막고, 뇌물을 바치는 자만 고관으로 중용하고 뇌물을 바치지 않는 자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워도 등용하지 않고 매장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그처럼 간신배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아첨과 참소를 일삼아, 어진 이와 유능한 자를 시기 질투하며 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니 천하가 크게 혼란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강남 · 양절 · 산동 · 하북에 도적들이 봉기하여 양민들은 도탄에 빠져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는 10만의 정병을 거느리고 충심으로 조정에 귀순하였지만, 겨우 선봉이라는 직책을 얻었을 뿐 아무런 관작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러 형제들도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고서도 아무 관작도 받지 못한 채 사막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하면서 공을 세우고 있는데도, 조정에서는 아무런 은혜도 베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간신들의 계책입니다. 만약 도중에 노획한 금은보화를 채경·동관·고구·양전 네 간신에게 뇌물로 바치면 관작을 얻고 천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군께서 충심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여 큰 공을 세우더라도, 조정에 돌아가면 도리어 죄인으로 몰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장군을 요나라 진국대장군 겸 병마대원수로 봉한다는 대요국 군주의 칙명을 받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금은과 비단 108필, 명마 108기를 하사하시고, 108 두령의 성명을 적어 내면 모두 관작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결코 장군을 꾀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저희 군주께서 오래전부터 장군의 큰 덕을 들어 왔기 때문에 특별히 저를 보내 장군과 여러 장병들을 청하여 한마음으로 협력하여 본국을 돕게 하기 위함입니다.”
송강이 대답했다.
“시랑의 말씀이 극히 옳습니다. 하지만 송강은 출신이 미천한 운성현의 아전인데, 죄를 짓고 도망쳐서 잠시 양산박에 숨어서 재난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나라 천자께서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죄를 사면하고 초안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관직은 낮지만, 아직 죄를 사면해 준 조정의 은혜를 갚을 만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요나라 군주께서 높은 관작과 무거운 상을 내려주셨지만, 감히 받을 수 없습니다. 시랑께서는 일단 돌아가십시오. 지금은 날씨가 너무 무더워 군마가 휴식을 취하게 해야 하므로 잠시 요나라의 두 성을 빌려 머물고자 합니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다시 상의하십시다.”
구양시랑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버리지 마시고 일단 요왕께서 보낸 금은과 비단 및 명마를 받아 두십시오. 제가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천천히 의논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시랑께서는 우리 108명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목(耳目)이 많은데, 혹 소식이 새나가기라도 한다면 화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병권이 모두 장군의 손안에 있는데,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시랑께서는 우리의 속사정을 잘 모르실 겁니다. 형제들 중에는 성품이 강직한 용사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들을 잘 달래서 한마음이 된 다음에 천천히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송강은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구양시랑을 대접하고, 성 밖에까지 나가 전송했다. 송강은 오용을 불러 상의하며 말했다.
“좀 전에 요나라 시랑이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오용은 송강의 말을 듣고 길게 탄식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송강이 물었다.
“군사는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탄식하시오?”
오용이 대답했다.
“저 나름대로 생각이 났습니다만, 형님께서 오로지 충의만을 생각하시니 제가 감히 다른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구양시랑이 한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지금 송나라 천자는 현명하지만, 채경·동관·고구·양전 네 간신이 권력을 농단하고 주상께서는 그들을 너무 믿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설혹 공을 세운다 하더라도 필시 상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 번이나 초안을 받았지만, 형님은 선봉이라는 이름뿐인 직책만 얻었을 뿐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송나라를 버리고 요나라를 따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형님의 충의지심을 저버리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가 틀렸소! 만약 요나라를 따를 생각이었다면, 이 일을 결코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오. 끝내 송나라 조정이 나를 저버린다 하더라도 나의 충심은 송나라를 저버릴 수 없소. 훗날 비록 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오. 만약 바른 길을 배반하고 그릇된 길을 따른다면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나라에 충성해야 하오!”
오용이 말했다.
“형님께서 오로지 충의만을 생각하신다면, 이 일을 이용해서 패주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날이 너무 무더우니, 잠시 군마를 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과 오용은 계책이 정해지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계주에 주둔하면서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날, 공손승과 군중에서 한담을 나누다가 송강이 물었다.
“아우의 사부이신 나진인께서는 이 시대의 고사(高士)라고 들었네. 전에 고당주를 칠 때, 고렴의 요술을 깨기 위해 아우를 찾으려고 대종과 이규를 보내지 않았나? 그때 그들이 말하기를, 나진인의 술법이 아주 영험하다고 하였네. 번거롭겠지만, 아우가 내일 나를 사부님께 인도해 주지 않겠나? 분향하고 참배하여 세속의 먼지를 씻고 싶네. 자네 뜻은 어떤가?”
공손승이 말했다.
“빈도도 노모와 스승님을 뵙고 싶었으나, 형님께서 아직 군마를 주둔할 곳을 정하지 못하신 것 같아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마침 형님께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형님께서 먼저 말씀하셨네요. 내일 아침 일찍 함께 가서 스승님께 참배하시지요. 빈도도 노모를 뵙고 오겠습니다.”
다음 날, 송강은 군사 오용에게 잠시 군마를 맡기고 향과 과일, 금은보화와 비단 등을 수습하여 화영·대종·여방·곽성·연순·마린과 5천 보졸을 데리고 공손승과 함께 이선산 구궁현을 향해 떠났다. 계주를 떠나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푸른 소나무가 빽빽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전혀 덥지 않았다. 참으로 경치가 좋은 아름다운 산이었다. 공손승이 말했다.
“이 산은 어비산이라 합니다.”
송강은 공손승과 함께 자허관(紫虛觀)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리고 의관을 정제했다. 향과 예물을 들고 학헌(鶴軒)으로 가니 도인들이 공손승을 보고 예를 올렸다. 공손승이 물었다.
“스승님은 어디 계십니까?”
도인들이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뒤채로 물러나 조용히 좌선하시면서 자허관에는 잘 나오시지 않습니다.”
공손승은 송강과 함께 뒷산의 거처로 갔다. 자허관을 돌아 험한 오솔길을 따라가고 구불구불한 층계를 한참 올라가니, 가시나무 울타리가 나타났다. 울타리 밖에는 모두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울창하고 울타리 안에는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가운데 세 칸 짜리 초암에 나진인이 단정히 앉아서 경을 읽고 있었다. 동자가 손님이 온 것을 보고 문을 열어 맞아들였다. 공손승이 초암 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아뢰었다.
“제자의 오랜 친구인 산동의 송공명이 초안을 받고 칙명을 받들어 선봉이 되어 병력을 거느리고 요나라를 치기 위해 지금 계주에 왔습니다. 특별히 스승님께 참배하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나진인은 송강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송강이 초암 앞으로 가자, 나진인이 계단을 내려와 영접하였다. 송강이 나진인에게 좌정하고 인사를 받으라고 재삼 간청하자, 나진인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국가의 상장(上將)이시고 빈도는 산야의 촌부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송강이 굳이 겸양하며 예배하겠다고 하자, 나진인은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송강은 먼저 향로에 향을 피운 다음 여덟 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화영 등 여섯 두령들도 절을 올리게 하였다. 나진인은 모두 자리에 앉게 하고, 동자에게 차와 과일을 내오게 하였다. 나진인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위로는 별의 우두머리이며 바깥으로는 여러 별들과 화합하여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였습니다. 이제 송나라 조정에 귀순하였으니, 그 깨끗한 이름이 만 년 간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저는 운성현의 아전으로서 죄를 짓고 산으로 도망쳤는데, 감사하게도 사방의 호걸들이 바람에 불려오듯 모여들어 서로 돕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골육과 같고 정은 팔다리와 같습니다. 하늘이 알려주어 비로소 천강성과 지살성이 서로 응하여 한곳에 모이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칙을 받들어 대군을 거느리고 요나라를 정벌하러 왔는데, 이렇게 선경(仙境)을 지나게 된 것은 전생의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참배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진인께서 저희들의 앞날을 가르쳐 주시면 그보다 더한 다행이 없을 것입니다.”
나진인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몸을 굽혀 하문하셨는데, 출가인이 세속과 멀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마음은 이미 식은 재와 같아 충성을 다할 수 없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송강이 재배하고 다시 가르침을 구하자, 나진인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잠시 앉아 계시다가 소찬이라도 드십시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산속 초당에서 하룻밤 묵으시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아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고자 왔으니, 어찌 그냥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종자들을 불러 금은보화와 비단 등의 예물을 나진인에게 바치게 하였다. 나진인이 말했다.
“빈도는 산간벽지에 사는 촌늙은이로서 집안에만 기거하고 있으니, 이런 금은보화를 받아도 쓸 데가 없습니다. 또 베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으니, 비단이 있어도 걸칠 데가 없습니다. 장군께서는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계시니, 상도 많이 주어야 하고 날마다 소비하는 양도 많을 것입니다. 이 물품들은 도로 가져가십시오.”
송강이 재배하면서 받아주기를 청했지만, 나진인은 한사코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나진인은 공손승에게 집에 가서 노모를 찾아뵙고 내일 아침 돌아와서 송강과 함께 계주성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날 밤 송강은 초당에 유숙하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일을 자세히 나진인에게 말하고 가르침을 구하였다. 나진인이 말했다.
“장군의 충의지심은 천지와 함께 할 것이니, 신명도 필시 보우하실 것입니다. 훗날 살아서는 제후에 봉해질 것이고, 죽어서는 사당에서 봉양을 받을 것이니,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다만 장군의 일생은 박명(薄命)하여 모든 것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제가 선종(善終)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장군께서는 침상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죽은 후에는 묘에 안장될 것입니다. 다만 생명이 짧을 뿐이고, 하는 일마다 어려움이 많고 즐거움이 적을 것입니다. 뜻을 얻었을 때 마땅히 물러나시고, 결코 부귀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스승님! 부귀는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형제들이 항상 모여 살고, 비록 빈천하더라도 만족할 줄 안다면 더 이상의 안락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나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기한이 되면 어찌 뜻대로 머물 수 있겠소?”
송강이 재배하고 법어를 구하자, 나진인이 동자에게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여덟 구절의 법어를 써서 주었다.
忠心者少 충심 있는 자는 적고
義氣者稀 의기 있는 자는 드물다.
幽燕功畢 유연(幽燕)에서 공 이루어도
明月虛輝 밝은 달은 헛되이 빛난다.
始逢冬暮 한겨울 만나게 되면
鴻雁分飛 기러기 떼 흩어져 날고
吳頭楚尾 오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官祿同歸 관작과 봉록이 함께 돌아가리.
송강은 법어를 보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재배하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해석해 주셔서 저의 어리석음을 인도해 주십시오.”
나진인이 말했다.
“이는 천기(天機)이니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훗날 때가 되면 장군께서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밤이 깊었으니 장군께서는 자허관으로 가서 하룻밤 묵으시고 내일 다시 봅시다. 빈도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나무라지 마십시오.”
송강은 법어를 품속에 간직하고, 나진인을 작별하고 자허관으로 가서 방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송강이 나진인을 뵈러 가니, 그때 공손승은 이미 초암에 와 있었다. 나진인은 조반을 가져오게 하여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나진인이 다시 송강에게 말했다.
“장군께 빈도가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이 제자 공손승은 본래 빈도를 따라 산중으로 출가하여 속세의 먼지를 멀리 끊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데, 다른 한편 별자리의 인연을 타고나서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속세의 인연은 짧고 도를 행해야 할 날은 깁니다. 오늘 이곳에 남겨 빈도를 따르게 하고 싶지만, 형제들과의 지난 정분을 보아 그럴 수는 없겠습니다. 오늘은 장군을 따라가 큰 공을 세우도록 하고, 개선가를 부르며 경성으로 돌아오게 되면 그때는 장군께서 놓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빈도가 도를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이고, 둘째는 노모가 더 이상 문에 기대어 기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장군께서는 충의지사이니 반드시 충의의 행동을 하실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빈도의 뜻을 따라주시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제자가 어찌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공손승 선생은 송강의 형제이니, 그가 머물거나 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나진인은 공손승과 함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장군께서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송강 일행이 모두 나진인에게 절을 올리고 작별인사를 했다. 나진인은 암자 밖에까지 나와 송강 일행을 전송하며 말했다.
“장군께서는 몸을 잘 보중하시고 빨리 공을 세워 제후에 봉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송강이 작별인사를 하고 자허관 앞으로 나오자, 종자들이 말을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인들은 자허관 밖에까지 나와 송강 일행을 배웅했다. 송강은 산중턱 평평한 곳까지 말을 끌고 와서, 일행과 함께 말에 올라 계주로 돌아왔다.
송강이 계주성 관아 앞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리자, 흑선풍 이규가 맞이하며 말했다.
“형님은 나진인을 찾아가면서, 왜 이 아우는 안 데리고 갔소?”
대종이 말했다.
“나진인께서는, 네가 당신을 죽이려 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너를 미워하셨어.”
이규가 말했다.
“그 양반 때문에 나도 혼났구먼!”
모두들 웃었다. 송강은 관아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후당으로 갔다. 송강은 나진인에게 받은 법어를 오용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용도 그 뜻을 알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공손승이 말했다.
“형님! 그건 천기이니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종신토록 잘 간직하시고 함부로 추측하지 마십시오. 스승님의 법어는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송강은 그 말에 따르기로 하고, 천서 안에 잘 보관하였다.
그 후로 군마를 계주에 주둔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별다른 군사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7월 중순이 지나서 단주의 조추밀로부터 문서가 왔는데, 조정에서 출전하라는 조칙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송강은 추밀원의 문서를 받고 군사 오용과 상의하여 먼저 옥전현으로 갔다. 노준의 등과 만나서 군마를 조련하고 무기를 정돈하였으며, 인원을 배정한 다음 다시 계주로 돌아왔다.
깃발에 제사를 지내고 날짜를 택해 출전하려고 하는데, 요나라의 사신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송강이 나가서 영접하고 보니, 구양시랑이었다. 후당으로 청하여 인사를 마친 다음, 송강이 물었다.
“시랑께서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구양시랑이 말했다.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송강이 군사들을 물리치자, 시랑이 말했다.
“우리 대요국 군주께서 공의 덕을 사모하고 계십니다. 장군께서 귀순하여 대요국을 도와주신다면, 반드시 제후로 봉하실 겁니다. 대의를 성취함과 동시에 우리 군주의 소망도 이루어주십시오.”
송강이 대답했다.
“여기엔 다른 사람이 없으니, 제가 시랑께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 족하께서 오셨을 때 우리 형제들이 그 뜻을 모두 알았다는 것을 시랑께서는 모르시지요. 그런데 형제들 가운데 태반이 귀순하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 송강이 시랑을 따라 유주로 가서 요나라 군주를 알현하고자 하면, 부선봉 노준의가 필시 병력을 이끌고 추격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성 아래에서 만약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지난날의 형제 간 의기를 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제가 심복들만 데리고 갈 테니까, 어떤 성이든 제가 피할 곳을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노준의가 병력을 이끌고 추격해 와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알더라도, 그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때 그와 싸워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 그는 군마를 이끌고 동경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필시 사정이 달라지겠지요. 우리는 그때 요나라 군주를 알현하고 요나라 군마를 거느리고 그와 싸우면 될 것입니다.”
구양시랑은 송강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말했다.
“여기서 가까운 패주에 두 군데 요새가 있는데, 하나는 익진관으로 양쪽이 모두 험준한 고산이고 중간에만 역로가 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문안현으로 양쪽이 역시 험악한 산들인데 관문을 지나면 현청이 나옵니다. 그 두 곳이 바로 패주의 두 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군께서 만약 그렇게 하시겠다면, 패주로 가서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패주는 우리 대요국의 국구(國舅)인 강리정안이 지키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그곳으로 가셔서 국구와 함께 있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밤새 사람을 본가로 보내 아버지부터 모셔놓아 근본적인 걱정부터 끊어야겠습니다. 시랑께서는 몰래 사람을 보내 저를 인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말한 대로 하기 위해서 오늘 밤에 준비해 놓겠습니다.”
구양시랑은 크게 기뻐하며 송강을 작별하고 돌아갔다.
그날 송강은 노준의·오용·주무를 계주로 불러 패주를 취할 계책을 의논하였다. 계책이 정해지자 노준의는 먼저 떠나고, 오용과 주무는 여러 장수들에게 몰래 여차여차 하라고 분부하였다. 송강은 임충·화영·주동·유당·목홍·이규·번서·포욱·항충·이곤·여방·곽성·공명·공량 15명 두령과 1만 군사를 거느리고 가기로 했다.
인원을 선발해 놓고 구양시랑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틀 뒤 구양시랑이 달려와서 송강에게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장군이 참으로 좋은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귀순하셨으니, 송군을 두려워할 게 뭐 있겠습니까? 우리 대요국에도 훌륭한 장수와 병사들이 많이 있으니, 용감한 사람들과 씩씩한 말들로 장군을 돕겠습니다. 부친을 모시는 것이 염려되시면 패주의 국구와 함께 계시도록 하시지요. 내가 사람을 보내 모시고 와도 늦지 않을 겁니다.”
송강이 시랑에게 말했다.
“떠나려는 장병들은 이미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언제 갈까요?”
“그럼 오늘밤에 바로 떠나시죠. 장군께서는 그렇게 명을 내리십시오.”
송강은 즉시 명령을 내려, 말은 방울을 떼고 군졸들은 함매(銜枚)하고서 저녁에 출발할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한편으로 사신을 잘 대접하였다.
황혼 무렵이 되자, 서문을 열고 나갔다. 구양시랑은 수십 기를 이끌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송강은 군마를 이끌고 그 뒤를 따라갔다. 약 20리쯤 갔는데, 송강이 갑자기 ‘아이고!’ 소리치며 말했다.
“군사 오학구도 함께 요나라에 귀순하기로 약속해 놓고서, 급하게 서두르다가 그가 오는 걸 기다리지 못했다! 군마는 천천히 가도록 해라! 빨리 사람을 보내 그를 데려와야겠다.”
때는 이미 자정에 다 되어 가고 있었는데, 앞에 익진관 관문이 나타났다. 구양시랑이 큰 소리로 외쳤다.
“문을 열어라!”
관문을 지키던 장수가 문을 열어주자, 송강의 군마는 모두 관문을 지나 패주에 당도하였다. 그때 날이 밝아왔다. 구양시랑은 송강을 성 안으로 청하고, 국구 강리정안에게 알렸다. 국구는 요나라 왕비의 오라비로서 대단한 권세를 지니고 있었으며 담력과 용맹도 있는 자였다. 두 명의 시랑을 거느리고 패주를 지키고 있었는데, 금복시랑과 섭청시랑이었다.
강리정안은 송강이 투항하러 왔다는 말을 듣고, 군마는 성 밖에 하채하고 송강만 성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하였다. 구양시랑은 송강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가 정안국구를 뵈었다. 국구는 송강의 의표가 범속하지 않음을 보고 계단을 내려와 영접하였다. 후당으로 청하여 인사를 나눈 다음 자리를 권하였다. 송강이 말했다.
“국구께서는 금지옥엽(金枝玉葉)이신데, 소장은 투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구께서 이렇게 귀하게 대접해 주시니, 송강이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습니까?”
정안국구가 말했다.
“장군의 명성이 천하에 전하고 위엄이 중원을 진압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요국에도 장군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 주군께서도 장군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소장이 국구의 은덕을 입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대요국 군주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정안국구는 크게 기뻐하면서 연회를 열어 경하하였다. 또 소와 말을 잡아 삼군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성중에 거처를 마련하여 송강과 화영을 비롯한 두령들이 쉬게 하고, 군마도 모두 성 안으로 들어와 머물게 하였다. 화영을 비롯한 두령들도 모두 국구를 만나 인사하고, 요나라 사신 일행과 한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송강은 구양시랑을 불러 말했다.
“번거롭겠지만 시랑께서 관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 군사 오용이 오면 들여보내라고 분부해 주십시오. 저는 그와 한곳에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어젯밤에 급하게 오느라 그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족하와 함께 올 생각만 하느라 잠시 그를 잊었습니다. 군사에 관한 모든 일은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됩니다. 게다가 우리 군사는 문무를 겸비하고 지모가 뛰어나며 육도삼략(六韜三略)에 통하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구양시랑은 즉시 사람을 익진관과 문안현 두 곳으로 보내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에게 말을 전했다.
“수재(秀才) 차림을 한 오용이라는 사람이 오면 그대로 통과시키도록 하라.”
한편, 문안현에서는 구양시랑의 말을 전해 듣고, 사람을 익진관으로 보내 그대로 알렸다. 관문 위에서 바라보니, 멀리서 흙먼지가 하늘 가득 피어오르면서 해를 가리는 가운데 군마가 관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관문을 지키는 군사들은 뇌목과 포석을 준비하여 적을 맞이할 채비를 했다.
그때 수재 차림을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나타났는데, 그 뒤에는 행각승과 행자가 따르고 또 그 뒤에는 수십 명의 백성이 따라오고 있었다. 수재 차림을 한 사람이 관문 앞에 당도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송강 수하의 군사 오용이다! 형님을 찾으러 왔는데, 송군이 추격해 오고 있다! 빨리 관문을 열어 나를 구하라!”
관문을 지키는 장수가 말했다.
“바로 저 사람이다.”
즉시 관문을 열어 오학구를 들어오게 했다. 그때 행각승과 행자도 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군사들이 막아서자, 행자는 문을 붙잡았고 행각승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출가인인데, 군마에게 쫓기고 있소! 우리도 구해 주시오!”
군사들이 문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자, 행각승과 행자가 성질을 내며 소리쳤다.
“우리는 출가인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 죽이는 귀신 노지심과 무송이다!”
노지심은 선장을 휘둘러 가로막는 군사를 때려눕히고, 무송은 쌍계도를 꺼내 마구 죽이는데 마치 오이나 채소를 베듯 하였다. 수십 명의 백성은 해진·해보·이립·이운·양림·석용·시천·단경주·백승·욱보사 등이었는데, 재빨리 관문 안으로 달려들어 문을 빼앗아 버렸다. 뒤를 이어 노준의가 거느린 군마가 관문에 당도하여 일제히 문안현으로 돌격해 갔다. 관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는가? 노준의는 문안현을 점령하였다.
한편, 오용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패주성 아래에 당도하였다. 성문을 지키는 장수가 성 안으로 받아들였다. 송강은 구양시랑과 함께 오용을 맞이하여 국구 강리정안에게 데리고 갔다. 오용이 말했다.
“제가 형님과 함께 오지 못하고 좀 늦었습니다. 그런데 성을 막 나오는데, 생각지도 않게 노준의가 알고 추격해 왔습니다. 익진관 앞까지 추격해 왔는데, 저는 성 안으로 들어왔지만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유성탐마가 달려와 보고했다.
“송군이 문안현을 탈취하고, 패주에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정안국구가 병력을 점검하고 성을 나가 대적하려 하자, 송강이 말했다.
“아직은 군사를 동원하지 마십시오. 저들이 성 아래 당도하면, 제가 좋은 말로 달래 보겠습니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그때 싸워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탐마가 또 달려와서 보고했다.
“송군이 성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정안국구은 송강과 함께 성 위에 올라가 바라보았다. 송군은 질서정연하게 성 아래에 늘어서 있었는데, 노준의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쟁을 비껴들고 말 위에서 장병들을 지휘하며 무위를 떨치고 있었다. 노준의가 문기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조정을 배반한 송강 나와라!”
송강이 성루에서 담장 아래로 내려다보며 노준의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제! 송나라 조정은 상벌이 분명하지 못하고 간신들이 길을 막고 참소와 아첨으로 권력을 농단하고 있네. 나는 이미 대요국 군주께 귀순하였으니, 자네도 한마음으로 나를 도와주게. 함께 대요군주를 받든다면, 양산박에 모인 뜻을 잃지 않을 것이네.”
노준의가 크게 꾸짖었다.
“원래 나는 북경에서 편안하게 생업을 즐기고 있었는데, 네가 나를 속여 산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느냐? 송천자가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 우리를 초안했고, 너를 배신한 적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어찌 감히 조정을 배반했단 말이냐! 너 이 식견이 짧고 무능한 인간아! 잔소리 말고 빨리 나와 승부를 가리자!”
송강은 크게 노하여 성문을 열라고 소리치고서, 임충·화영·주동·목홍을 내보내 노준의를 사로잡으라고 하였다. 노준의는 네 장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편 군사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서 홀로 쟁을 비껴들고 말을 몰아 네 장수에게 곧장 달려들었는데 조금도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
임충 등 네 장수는 20여 합을 싸우다가 말머리를 돌려 성을 향해 달아났다. 노준의가 쟁으로 신호하자, 뒤에 있던 대군이 일제히 성안으로 돌격하였다. 임충과 화영은 조교를 점거하고 몸을 돌려 다시 싸우다가 패한 척하면서 노준의를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뒤에서 삼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성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성안에 있던 송강의 장수들이 일제히 태도를 바꿔 노준의 군대를 접응하여 사방으로 달려 나가며 요군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다. 요군들은 속수무책이 되어 항복하기 시작했고, 정안국구는 얼이 빠져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으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시랑들과 함께 사로잡히고 말았다.
송강이 군사들을 이끌고 관아에 당도하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인사를 했다. 송강은 정안국구 · 구양시랑 · 금복시랑 · 섭청시랑 등을 불러오게 하여 자리를 나누어 앉고 예로써 상대했다. 송강이 말했다.
“당신네 요나라는 우리를 잘못 보았소! 우리 형제들은 단순히 산림에 모인 도적떼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별의 운세를 갖고 태어난 송나라의 신하들이오. 그러니 어찌 주군을 배반하고 요나라에 투항할 수 있겠소? 다만 이 패주를 취하기 위해 이 기회를 이용했을 뿐이오. 이제 성공하였으니, 국구를 비롯한 여러분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해칠 마음이 없으니, 결코 의심하지 마시오. 여러분의 부하와 가족들도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소. 패주성은 이제 송나라에 속하게 되었으니, 다시 빼앗으러 오지는 마시오, 이후로 다시 전쟁터에서 만나면 되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송강은 명을 내려, 성중에 있는 요나라 관원들은 모두 정안국구를 따라 유주로 가라고 하였다. 송강은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정시키고, 부선봉 노준의로 하여금 절반의 군마를 거느리고 계주로 돌아가 지키게 하고, 자신은 절반의 군마를 거느리고 패주를 지키기로 하였다.
송강은 조추밀에게 첩보를 보내 패주를 얻었음을 알렸고, 조안무는 크게 기뻐하면서 표문을 써서 조정에 아뢰었다.
한편, 정안국구는 세 명의 시랑과 관원들을 이끌고 연경으로 돌아갔다. 군주를 알현하고 송강이 거짓 투항한 것에 속아 사로잡히고 패주를 빼앗겼음을 자세히 아뢰자, 요주는 크게 노하여 구양시랑을 꾸짖었다.
“입만 살아있는 네놈이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요충지인 패주만 잃었구나! 이제 이 연경은 어떻게 지켜야 한단 말이냐? 여봐라! 저놈을 끌어내어 참수하라!”
그때 반열에서 올안 도통군이 나와 아뢰었다.
“주군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까짓 놈들 때문에 주군께서 힘을 낭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에게 나름의 방도가 있으니, 일단 구양시랑의 참수는 멈춰 주십시오. 송강이 그걸 알면 도리어 우리를 비웃을 겁니다.”
요주가 구양시랑을 사면하자, 올안 도통군이 또 아뢰었다.
“제가 수하의 28수(宿) 장군과 11요(曜) 대장을 거느리고 나가서 진세를 펼치고, 저 오랑캐 놈들을 일고(一鼓)에 평정하겠습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반열 가운데서 하통군(賀統軍)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주군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에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습니까? 그만한 일에 도통군께서 친히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가서 작은 계책을 써서 저 오랑캐 놈들이 죽어 묻힐 땅도 없게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요주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경의 묘책을 듣고 싶다.”
하통군의 이름은 중보인데, 요나라 올안 도통군 아래에서 부통군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신장은 10척이고 힘은 만 사람을 대적할 만한 한데, 요술을 잘 부렸으며 한 자루의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를 잘 썼다. 현재 유주를 지키고 있으며, 여러 방면의 군마를 총독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하중보가 요주에게 말했다.
“제가 지키고 있는 유주에 청석욕이란 곳이 있습니다.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딱 한 길뿐인데, 사방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빠져나갈 데가 없습니다. 신이 10여 기를 이끌고 가서 그 오랑캐 놈들을 청석욕 안으로 유인한 다음 군마로 입구를 막아 버리면, 그놈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도 없고 뒤로 물러날 길도 없어 필시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올안 도통군이 말했다.
“그런데 그놈들을 어떻게 유인한단 말인가?”
하통군이 말했다.
“그놈들은 우리의 큰 고을을 세 군데나 빼앗아,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 필시 유주를 탐내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병력을 나누어 그놈들을 유인하면 필시 기세를 타고 추격해 올 것입니다. 일단 함정 속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올안 도통군이 말했다.
“자네 계책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네. 내가 대군을 거느리고 가야만 할 것 같은데, 일단 자네가 가서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지.”
하통군은 요주를 작별하고 유주성으로 돌아갔다. 군마를 점검하여 세 부대로 나누었다. 한 부대는 유주를 지키고, 두 부대는 패주와 계주로 보냈다. 큰 아우 하탁은 패주로 보내고 작은 아우 하운은 계주로 보내면서 당부하기를, 자신에게 계책이 있으니 송군을 이기려 하지 말고 거짓 패한 척하여 유주 경계로 유인하기만 하라고 하였다.
한편, 송강은 패주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고가 들어왔다.
“요군이 계주를 침범하였습니다. 계주를 잃을지도 모르니, 구원병을 보내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쳐들어온다면 대적해야지. 이번 기회에 유주까지 취해야겠다.”
송강은 적은 군마만 남겨 패주를 지키게 하고, 대다수 군병을 이끌고 계주로 가서 노준의의 군마와 합쳐서 진격하고자 하였다.
한편, 요나라 장수 하척은 병력을 이끌고 패주로 가다가 도중에 송강의 군마와 마주쳤다. 3합도 싸우기 전에 하척은 패주하였으나, 송강은 추격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하운도 계주를 공격하러 가다가 도중에 호연작을 만나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였다.
송강은 노준의와 만나 유주를 취할 계책을 상의하였다. 오용과 주무가 말했다.
“유주에서 병력을 두 길로 나누어 쳐들어온 것은, 필시 우리를 유인하려는 계책입니다. 함부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군사가 틀렸소! 저놈들은 연이어 패전했는데, 어떻게 유인하는 계책을 쓸 수 있겠소? 마땅히 취해야 하는데 취하지 않으면, 지난 후에는 취하기 어려울 것이오. 지금 유주를 취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린단 말이오?”
송강이 말했다.
“저놈들은 기세도 꺾이고 힘도 다 빠졌는데, 무슨 양책이 있겠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오.”
송강과 노준의는 오용과 주무의 말을 듣지 않고 병력을 거느리고 유주로 진격하였다. 두 군데 군마를 합쳐 세 길로 나누어 나아갔는데, 전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요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송강이 앞으로 나가서 보니, 산언덕 뒤에서 한 떼의 검은 깃발이 나타났다. 송강이 전군을 벌려 세우자, 요군도 산언덕 앞에 네 갈래로 나누어 섰다. 송강과 노준의 등 여러 장수들이 보니, 마치 검은 구름 속에서 수만 명의 인마가 쏟아져 나온 것 같았는데 그 가운데 한 장수가 삼첨양인도를 비껴들고 진 앞에 말을 타고 서 있었다. 깃발에는 ‘대요 부통군 하중보’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이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요나라 통군이면 필시 상장일 것인데, 누가 출전하겠는가?”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대도 관승이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적토마를 박차고 달려 나가 아무 말 없이 하통군과 싸웠다. 30여 합쯤 싸웠을 때, 하통군은 기력이 달려 칼을 거두고 본진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관승이 말을 몰아 추격했다. 하통군은 패한 군사를 이끌고 산언덕을 돌아 달아났고, 송강은 군마를 몰아 추격하였다.
약 4~50리쯤 가자, 사방에서 북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송강이 급히 군사를 돌리려고 할 때, 산언덕 왼쪽에서 한 떼의 요군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송강이 급히 병력을 나누어 막으려고 할 때, 오른쪽에서도 요군이 나타났다. 앞에서는 하통군이 병력을 돌려 협공해 왔다. 송강의 병마는 거의 구원할 수가 없게 되어 두 토막으로 끊어지고 말았다.
한편, 노준의는 뒤편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앞쪽의 군마가 보이지 않자 급히 길을 찾아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옆쪽에서 또 요군이 쳐들어왔다. 요군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사방에서 공격해 와, 노준의는 요군에 의해 포위되고 말았다. 노준의는 장수들로 하여금 좌우로 치고 앞뒤로 공격하면서 길을 뚫고 나가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들은 위무를 발휘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사방으로 치고받으면서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때 홀연 어두운 구름이 덮이고 검은 안개가 하늘을 가리면서 환하던 대낮이 마치 칠흑 같은 밤이 되어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노준의는 당황하여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급히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캄캄한 속에서 앞에서 들리는 말방울소리를 따라 달리다가 보니 산 입구에 당도하였다. 골짜기 안에서 사람들 소리와 말 울음소리가 들려, 군마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미친 듯한 바람이 불어대고 돌과 모래가 날려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노준의는 무작정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밤중이 되자 비로소 바람이 멎고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의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모두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좌우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고 보이는 건 모두 높은 봉우리뿐이어서 올라갈 길도 없었다. 따라온 인마를 점검해 보니, 서녕 · 삭초 · 한도 · 팽기 · 진달 · 양춘 · 주통 · 이충 · 추연 · 추윤 · 양림 · 백승 등 12명의 두령과 2천 군마였다. 별빛 아래에서 돌아갈 길을 찾아보았지만,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나갈 수가 없었다.
노준의가 말했다.
“군사들이 하루 종일 싸우느라 심신이 피곤할 것이다. 일단 여기서 하룻밤 쉬고 내일 돌아갈 길을 찾도록 하자.”
한편, 송강은 한창 싸우고 있었는데,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돌과 모래가 날려 군사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서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공손승이 그걸 보고 요술임을 알아채고, 말 위에서 급히 보검을 뽑아 들고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다가 소리쳤다.
“가라!”
보검으로 한곳을 가리키자,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그쳤다. 요군은 그걸 보고 싸우지 않고 퇴각하였다. 송강은 포위를 뚫고 높은 산으로 후퇴하여 본부군마를 수습하였다. 군량을 실은 수레를 앞뒤로 연결하여 목책을 대신하고, 인마를 점검해 보니 노준의 등 13명의 두령과 5천 군마가 보이지 않았다.
날이 밝자, 송강은 호연작 · 임충 · 진명 · 관승으로 하여금 각각 군병을 거느리고 사방으로 노준의 일행을 찾게 하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찾아다녀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송강은 구천현녀의 천서를 꺼내 향을 피우고 점을 쳐 보고서 말했다.
“큰일은 없겠지만, 깊고 어두운 곳에 빠져 빨리 탈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송강은 마음을 놓을 수 없어, 해진과 해보로 하여금 사냥꾼 차림으로 산을 돌아다니면서 찾게 하고, 또 시천 · 석용 · 단경주 · 조정을 사방으로 보내 소식을 정탐하게 하였다.
해진과 해보는 호피로 만든 옷을 입고 강차를 들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인가는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으로 들어갔다. 해진과 해보는 산봉우리 몇 개를 넘어갔는데, 그날 밤은 달빛이 희미하였다. 멀리 산기슭에 등불이 하나 있는 걸 보고, 형제는 말했다.
“저기 등불 있는 곳에 필시 인가가 있을 것이다. 저기 가서 밥이나 얻어먹자.”
등불을 바라보면서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1리를 채 못 갔는데, 숲 옆에 세 칸짜리 초가가 있었다. 깨진 벽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해진과 해보가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나이가 예순이 넘은 한 노파가 등불 아래 앉아 있었다. 형제는 강차를 내려놓고 노파에게 절을 했다. 노파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왔나 했더니, 뜻밖에 손님들이 왔구려. 절은 하지 마시오. 어디서 온 사냥꾼들인데, 여기는 어쩐 일이오?”
해진이 말했다.
“저희들은 원래 산동 사람으로 예전엔 사냥꾼이었는데, 요즘에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군마들의 싸움에 휘말려들어 본전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갈 길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는 산짐승이라도 잡아서 먹고살려고 했는데, 그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룻밤 묵고 가게 해주십시오.”
노파가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누가 머리에 방을 이고 다니는가!’라고 했소. 우리 집의 두 아들도 사냥꾼인데, 곧 돌아올 거요. 손님들은 잠시 앉아 있으시오. 내가 저녁밥을 지어 올 테니, 같이 먹읍시다.”
해진과 해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노파는 안으로 들어가고, 형제는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얼마 후 문 밖에서 두 사람이 노루 한 마리를 짊어지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어머니! 안에 계셔?”
노파가 나오며 말했다.
“너희들 왔구나. 노루는 내려놓고 저 두 분 손님과 인사해라.”
해진과 해보가 황망히 절을 하자, 두 사람도 답례를 하고 물었다.
“손님들은 어디서 왔는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해진과 해보는 좀 전에 노파에게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형제에게 했다. 형제가 말했다.
“우리는 조상 때부터 여기서 살아 왔습니다. 나는 유이(劉二)이고, 아우는 유삼(劉三)입니다. 부친은 유일(劉一)인데 불행히도 돌아가시고, 모친만 남으셨습니다. 우리는 사냥으로만 살아온 지 2~30년 되는데, 이곳 산길은 아주 복잡해서 우리도 잘 모르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은 산동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이곳까지 와서 밥을 얻어먹게 되었습니까? 우리를 속이지 마십시오. 두 분은 사냥꾼이 아니지요?”
해진과 해보가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무얼 감추겠습니까? 사실대로 말씀드리지요.”
해진과 해보는 땅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희들은 본래 산동의 사냥꾼 형제로, 해진과 해보라고 합니다. 송공명 형님을 따라 양산박으로 가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지금 조정의 초안을 받고 형님을 따라 요나라를 치러 왔습니다. 어제 하통군과 크게 싸우다가 한 떼의 군마가 흩어졌습니다. 어디에 빠졌는지 알지 못해, 형님이 우리 형제를 보내 소식을 정탐해 오라고 하였습니다.”
두 형제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은 호걸이셨군요. 일어나십시오. 저희가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잠시 앉아 계십시오. 노루다리 삶고 술을 데워 올 테니, 한잔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