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66화
송공명은 동평부와 동창부를 치고 산채로 돌아와 두령들을 점검해 보니, 모두 108명이었다. 매우 기뻐하며 형제들에게 말했다.
“송강이 강주를 소란하게 하고 산으로 올라온 후에 여러 형제 영웅들의 도움으로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108명의 두령이 모였는데, 대단히 기쁩니다. 조개 형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병마를 이끌고 나가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모두 보전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이 보우하신 것으로,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때로 사로잡히거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상처를 입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무사하였습니다. 지금 108명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은 실로 고금에 드문 일입니다. 그동안 도처에서 싸움을 일으켜 많은 생명을 해쳤는데, 하늘에 제사지내 사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 천지신명의 보우하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모든 형제들의 신심이 안락할 것을 기원하고, 둘째는 조정에서 은혜를 내려 하늘을 거스른 대죄를 사면하여 우리가 진심갈력하여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셋째는 조천왕을 따라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원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비명횡사한 사람, 억울하게 죽은 사람, 불에 타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등 무고하게 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아 극락으로 가기를 기원하고자 이 행사를 치르려고 합니다. 형제들의 뜻은 어떠합니까?”
모든 두령들이 함께 말했다.
“그것은 선한 업을 쌓는 좋은 일입니다. 형님의 의견이 옳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먼저 공손승이 제사를 주관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내려 보내 사방에서 득도한 고사들을 초빙하고, 향촉과 지전 등 제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여 준비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4월15일에 시작하여 7일 동안 제사를 지내기로 정하였다. 산채에서는 돈과 재물을 널리 베풀고, 일을 감독하고 처리했다. 기일이 다가오자, 충의당 앞에 긴 깃발을 네 개 걸고 당상에 3층의 대를 세웠다. 충의당 안에 칠보로 만든 도교 성인의 상을 설치하고, 28개 별자리와 제사를 주관하는 신들을 배치하였다. 충의당 밖에는 제단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을 배치하고 제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였다. 도사들을 초청했는데, 공손승을 포함해 모두 49명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청명하고 따뜻하였으며, 달빛도 밝고 바람도 선선했다. 송강부터 시작하여 노준의와 오용 및 모든 두령들이 차례대로 분향했다. 공손승이 주관하여 48명의 도사들과 함께 충의당에서 매일 세 차례 제사를 지냈다. 송강이 하늘의 계시를 알고 싶어, 공손승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천제(天帝)께 아뢰는 의식을 행하게 하였다.
마지막 7일째, 공손승은 제1층에, 도사들은 제2층에, 송강 등 두령들은 제3층에, 소두목들과 장교들은 단 아래에 서 있었다. 모두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계시를 빌었다. 그날 밤 자정에 하늘에서 마치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가 서북방에서 들렸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니, 금쟁반을 수직으로 세워 놓은 듯한 천문(天門)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빛살이 쏟아지고 아름다운 노을이 퍼져 나오면서 바구니 모양의 불덩어리가 제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불덩어리는 제단을 한번 맴돌고는 정남쪽의 땅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때 천문은 닫히고, 도사들은 모두 단을 내려왔다. 송강은 사람들에게 삽과 괭이를 가져와서 땅을 파고 불덩어리를 찾게 했다. 석 자 정도 파 들어가자 돌로 만든 비석이 하나 나타났는데, 정면과 양측에 천서(天書) 문자가 쓰여 있었다. 송강은 지전을 사르고 제사를 마치게 하고, 도사들에게 황금과 비단을 나누어주었다.
비석을 가져오게 하여 보니, 고대문자로 쓰여 있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도사 가운데 성이 하씨(何氏)이고 법명이 현통(玄通)인 사람이 송강에게 말했다.
“저의 가문에서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문서가 있어, 천서를 판독할 수 있습니다. 이 비석 위에 쓰여 있는 것은 고대문자인데, 빈도가 읽을 수 있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비석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비석을 한동안 바라보던 하도사가 말했다.
“이 비석의 앞뒤 면에는 의사(義士)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한쪽 측면에는 ‘체천행도(替天行道)’라 쓰여 있고 다른 측면에는 ‘충의쌍전(忠義雙全)’이라 쓰여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다행히 고사(高士)께서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 우리와의 연분이 얕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몽매함을 깨우쳐 주시니, 실로 큰 덕에 감사드립니다. 혹 하늘이 질책하는 말이 있더라도 조금도 감추지 마시고 한 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알려주십시오.”
송강은 성수서생 소양을 불러 모두 종이에 받아쓰게 하였다. 하도사가 말했다.
“앞면의 천서 36행은 모두 천강성(天罡星)이고 뒷면의 천서 72행은 모두 지살성(地煞星)입니다.”
비석 앞면에 쓰여 있는 양산박 천강성 36명.
천괴성(天魁星) 호보의(呼保義) 송강(宋江)
천강성(天罡星) 옥기린(玉麒麟) 노준의(盧俊義)
천기성(天機星)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
천한성(天閑星)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
천용성(天勇星) 대도(大刀) 관승(關勝)
천웅성(天雄星) 표자두(豹子頭) 임충(林沖)
천맹성(天猛星) 벽력화(霹靂火) 진명(秦明)
천위성(天威星) 쌍편(雙鞭) 호연작(呼延灼)
천영성(天英星) 소이광(小李廣) 화영(花榮)
천귀성(天貴星) 소선풍(小旋風) 시진(柴進)
천부성(天富星) 박천조(撲天雕) 이응(李應)
천만성(天滿星) 미염공(美髯公) 주동(朱仝)
천고성(天孤星) 화화상(花和尚) 노지심(魯智深)
천상성(天傷星) 행자(行者) 무송(武松)
천립성(天立星) 쌍쟁장(雙鎗將) 동평(董平)
천첩성(天捷星) 몰우전(沒羽箭) 장청(張清)
천암성(天暗星) 청면수(青面獸) 양지(楊志)
천우성(天祐星) 금쟁수(金鎗手) 서녕(徐寧)
천공성(天空星) 급선봉(急先鋒) 삭초(索超)
천속성(天速星) 신행태보(神行太保) 대종(戴宗)
천이성(天異星) 적발귀(赤髮鬼) 유당(劉唐)
천살성(天殺星)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
천미성(天微星)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
천구성(天究星) 몰차란(沒遮攔) 목홍(穆弘)
천퇴성(天退星) 삽시호(插翅虎) 뇌횡(雷橫)
천수성(天壽星) 혼강룡(混江龍) 이준(李俊)
천검성(天劍星) 입지태세(立地太歲) 완소이(阮小二)
천평성(天平星) 선화아(船火兒) 장횡(張橫)
천죄성(天罪星) 단명이랑(短命二郎) 완소오(阮小五)
천손성(天損星) 낭리백조(浪裏白條) 장순(張順)
천패성(天敗星) 활염라(活閻羅) 완소칠(阮小七)
천뢰성(天牢星) 병관색(病關索) 양웅(楊雄)
천혜성(天慧星) 반명삼랑(拚命三郎) 석수(石秀)
천폭성(天暴星) 양두사 해진(解珍)
천곡성(天哭星) 쌍미갈(雙尾蝎) 해보(解寶)
천교성(天巧星) 낭자(浪子) 연청(燕青)
비석 뒷면에 쓰여 있는 양산박 지살성 72명.
지괴성(地魁星) 신기군사(神機軍師) 주무(朱武)
지살성(地煞星) 진삼산(鎮三山) 황신(黃信)
지용성(地勇星) 병울지(病尉遲) 손립(孫立)
지걸성(地傑星) 추군마(醜郡馬) 선찬(宣贊)
지웅성(地雄星) 정목안(井木犴) 학사문(郝思文)
지위성(地威星) 백승장(百勝將) 한도(韓滔)
지영성(地英星) 천목장(天目將) 팽기(彭玘)
지기성(地奇星) 성수장(聖水將) 단정규(單廷珪)
지맹성(地猛星) 신화장(神火將) 위정국(魏定國)
지문성(地文星) 성수서생(聖手書生) 소양(蕭讓)
지정성(地正星) 철면공목(鐵面孔目) 배선(裴宣)
지활성(地闊星) 마운금시(摩雲金翅) 구붕(歐鵬)
지합성(地闔星) 화안산예(火眼狻猊) 등비(鄧飛)
지강성(地強星) 금모호(錦毛虎) 연순(燕順)
지암성(地暗星) 금표자(錦豹子) 양림(楊林)
지축성(地軸星) 굉천뢰(轟天雷) 능진(凌振)
지회성(地會星) 신산자(神算子) 장경(蔣敬)
지좌성(地佐星) 소온후(小溫侯) 여방(呂方)
지우성(地祐星) 새인귀(賽仁貴) 곽성(郭盛)
지령성(地靈星) 신의(神醫) 안도전(安道全)
지수성(地獸星) 자염백(紫髯伯) 황보단(皇甫端)
지미성(地微星) 왜각호(矮腳虎) 왕영(王英)
지혜성(地慧星) 일장청(一丈青) 호삼랑(扈三娘)
지폭성(地暴星) 상문신(喪門神) 포욱(鮑旭)
지연성(地然星) 혼세마왕(混世魔王) 번서(樊瑞)
지창성(地猖星) 모두성(毛頭星) 공명(孔明)
지광성(地狂星) 독화성(獨火星) 공량(孔亮)
지비성(地飛星) 팔비나타(八臂那吒) 항충(項充)
지주성(地走星) 비천대성(飛天大聖) 이곤(李袞)
지교성(地巧星) 옥비장(玉臂匠) 김대견(金大堅)
지명성(地明星) 철적선(鐵笛仙) 마린(馬麟)
지진성(地進星) 출동교(出洞蛟) 동위(童威)
지퇴성(地退星) 번강신(翻江蜃) 동맹(童猛)
지만성(地滿星) 옥번간(玉旛竿) 맹강(孟康)
지수성(地遂星) 통비원(通臂猿)후건(侯健)
지주성(地周星) 도간호(跳澗虎) 진달(陳達)
지은성(地隱星) 백화사(白花蛇) 양춘(楊春)
지이성(地異星) 백면낭군(白面郎君) 정천수(鄭天壽)
지리성(地理星) 구미귀(九尾龜) 도종왕(陶宗旺)
지준성(地俊星) 철선자(鐵扇子) 송청(宋清)
지악성(地樂星) 철규자(鐵叫子) 악화(樂和)
지첩성(地捷星) 화항호(花項虎) 공왕(龔旺)
지속성(地速星) 중전호(中箭虎) 정득손(丁得孫)
지진성(地鎮星) 소차란(小遮攔) 목춘(穆春)
지기성(地羈星) 조도귀(操刀鬼) 조정(曹正)
지마성(地魔星) 운리금강(雲裏金剛) 송만(宋萬)
지요성(地妖星) 모착천(摸著天) 두천(杜遷)
지유성(地幽星) 병대충(病大蟲) 설영(薛永)
지복성(地伏星) 금안표(金眼彪) 시은(施恩)
지벽성(地僻星) 타호장(打虎將) 이충(李忠)
지공성(地空星) 소패왕(小霸王) 주통(周通)
지고성(地孤星) 금전표자(金錢豹子) 탕륭(湯隆)
지전성(地全星) 귀검아(鬼臉兒) 두흥(杜興)
지단성(地短星) 출림룡(出林龍) 추연(鄒淵)
지각성(地角星) 독각룡(獨角龍) 추윤(鄒潤)
지수성(地囚星) 한지홀률(旱地忽律) 주귀(朱貴)
지장성(地藏星) 소면호(笑面虎) 주부(朱富)
지평성(地平星) 철비박(鐵臂膊) 채복(蔡福)
지손성(地損星) 일지화(一枝花) 채경(蔡慶)
지노성(地奴星) 최명판관(催命判官) 이립(李立)
지찰성(地察星) 청안호(青眼虎) 이운(李雲)
지악성(地惡星) 몰면목(沒面目) 초정(焦挺)
지추성(地醜星) 석장군(石將軍) 석용(石勇)
지수성(地數星) 소울지(小尉遲) 손신(孫新)
지음성(地陰星) 모대충(母大蟲) 고대수(顧大嫂)
지형성(地刑星)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青)
지장성(地壯星)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娘)
지열성(地劣星) 활섬파(活閃婆) 왕정륙(王定六)
지건성(地健星) 험도신(險道神) 욱보사(郁保四)
지모성(地耗星) 백일서(白日鼠) 백승(白勝)
지적성(地賊星) 고상조(鼓上蚤) 시천(時遷)
지구성(地狗星) 금모견(金毛犬) 단경주(段景住)
하도사가 천서를 판독하고 소양이 기록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걸 보고 놀라워하였다. 송강이 여러 두령들에게 말했다.
“비천한 아전이었는데 내가 원래 별들의 우두머리였고, 여러 형제들도 원래 다 같은 별들이었소. 하늘이 이처럼 응답하였으니, 우리가 뜻을 함께한 것이 당연한 것이었소. 이제 그 수가 다 찼고 하늘이 천강성과 지살성으로 서열을 정해 놓았으니, 여러 두령들은 각기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다투지 않도록 하시오. 하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될 것이오.”
모든 두령들이 말했다.
“하늘의 뜻으로 정해진 것인데 누가 감히 어기겠습니까?”
송강은 하도사에게 황금 50냥을 주어 사례하였고, 나머지 도사들도 돈을 받고 제사 물품을 수습하여 산을 내려갔다.
송강은 군사 오용과 주무 등과 협의하여, 충의당에 ‘충의당’이라고 크게 쓴 편액을 달고 단금정도 큰 편액으로 바꾸어 달았다. 앞쪽에 세 관문을 세우고, 충의당 뒤쪽에 안대(鴈臺)를 짓고 그 위에 대청을 만들고 동서 양쪽에 방을 만들었다. 대청에는 조천왕의 위패를 모시고 공양했다.
동쪽 방에는 송강 · 오용 · 여방 · 곽성이, 서쪽 방에는 노준의 · 공손승 · 공명 · 공량이 거처했다. 두 번째 언덕 왼쪽 방에는 주무 · 황신 · 손립 · 소양 · 배선이, 오른쪽 방에는 대종 · 연청 · 장청 · 안도전 · 황보단이 거처했다.
충의당 왼쪽에는 재물과 식량 창고를 관리하는 시진 · 이응 · 장경 · 능진이, 오른쪽에는 화영 · 번서 · 항충 · 이곤이 거처했다. 산 앞쪽 남쪽 길 제1 관문은 해진과 해보가 지키고, 제2관문은 노지심과 무송이 지키고, 제3 관문은 주동과 뇌횡이 지켰다. 동쪽 산 관문은 사진과 유당이 지키고, 서쪽 산 관문은 양웅과 석수가 지키고, 북쪽 산 관문은 목홍과 이규가 지켰다.
여섯 개의 관문 외에 여덟 개의 영채를 세웠는데, 네 개는 뭍에 있는 한채(旱寨)이고 네 개는 물가에 있는 수채(水寨)였다. 남쪽 한 채는 진명 · 삭초 · 구붕 · 등비가, 동쪽 한 채는 관승 · 서녕 · 선찬 · 학사문이, 서쪽 한 채는 임충 · 동평 · 단정규 · 위정국이. 북쪽 한 채는 호연작 · 양지 · 한도 · 팽기가 지켰다. 동남쪽 수채는 이준과 완소이가, 서남쪽 수채는 장횡과 장순이, 동북쪽 수채는 완소오와 동위가, 서북쪽 수채는 완소칠과 동맹이 지켰다. 나머지 두령들도 각자 임무가 주어졌다.
깃발도 새로 만들어 세웠다. 산 정상에는 ‘체천행도(替天行道)’라고 쓴 살굿빛 깃발을 세우고, 충의당 앞에는 붉은 깃발 두 개를 세웠는데 하나에는 ‘산동 호보의’ 또 하나에는 ‘하북 옥기린’이라고 수놓았다.
충의당 밖에는 비룡비호기(飛龍飛虎旗) · 비웅비표기(飛熊飛豹旗) · 청룡백호기(青龍白虎旗) · 주작현무기(朱雀玄武旗) · 황월백모(黃鉞白旄) · 청번조개(青旛皁蓋) · 비영흑독(緋纓黑纛) 등의 깃발을 세웠다. 중군에는 무기 외에 사두오방기(四斗五方旗) · 삼재구요기(三才九曜旗) · 이십팔수기(二十八宿旗) · 육십사괘기(六十四卦旗) · 주천구궁팔괘기(週天九宮八卦旗) 등 128개의 진천기(鎮天旗)를 세웠는데, 모두 후건이 제작한 것이었다. 김대견은 병부(兵符)와 인신(印信)을 주조했다.
모든 것이 완비되자, 길일을 택해 소와 말을 잡아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고, 충의당과 단금정에 편액을 걸고 ‘체천행도’ 깃발을 세웠다. 송강은 연회를 열고 병부와 인신을 받들고 호령을 반포했다.
“모든 형제들은 각각 맡은 임무를 준수하고, 이를 어기거나 의기를 상하지 않도록 하라. 만약 고의로 위반하거나 준수하지 않는 자는 군법에 의거하여 다스릴 것이며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o 양산박 총병 도두령 2명 : 호보의 송강, 옥기린 노준의
o 기밀을 관장하는 군사 2명 : 지다성 오용, 입운룡 공손승
o 함께 군무에 참여하는 두령 1명 : 신기군사 주무
o 재물과 식량을 관장하는 두령 2명 : 소선풍 시진, 박천조 이응
o 마군(馬軍) 오호장(五虎將) 5명 : 대도 관승, 표자두 임충, 벽력화 진명, 쌍편 호연작, 쌍쟁장 동평
o 마군(馬軍) 팔표기(八驃騎) 겸 선봉사(先鋒使) 8명 : 소이광 화영, 금쟁수 서녕, 청면수 양지, 급선봉 삭초, 몰우전 장청, 미염공 주동, 구문룡 사진, 몰차란 목홍
o 마군(馬軍) 소표장(小彪將) 겸 멀리 정탐하고 망보는 두령 16명 : 진삼산 황신, 병울지 손립, 추군마 선찬, 정목안 학사문, 백승장 한도, 천목장 팽기, 성수장 단정규, 신화장 위정국, 마운금시 구붕, 화안산예 등비, 금모호 연순, 철적선 마린, 도간호 진달, 백화사 양춘, 금표자 양림, 소패왕 주통
o 보군(步軍) 두령 10명 : 화화상 노지심, 행자 무송, 적발귀 유당, 삽시호 뇌횡, 흑선풍 이규, 낭자 연청, 병관색 양웅, 반명삼랑 석수, 양두사 해진, 쌍미갈 해보
o 보군(步軍) 장교 17명 : 혼세마왕 번서, 상문신 포욱, 팔비나타 항충, 비천대성 이곤, 병대충 설영, 금안표 시은, 소차란 목춘, 타호장 이충, 백면낭군 정천수, 운리금강 송만, 모착천 두천, 출림룡 추연, 독각룡 추윤, 화항호 공왕, 중전호 정득손, 몰면목 초정, 석장군 석용
o 네 수채의 수군두령 8명 : 혼강룡 이준, 선화아 장횡, 낭리백조 장순, 입지태세 완소이, 단명이랑 완소오, 활염라 완소칠, 출동교 동위, 번강신 동맹
o 네 주점에서 소식을 정탐하고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두령 8명 : 동산주점의 소울지 손신과 모대충 고대수, 서산주점의 채원자 장청과 모야차 손이랑, 남산주점의 한지홀률 주귀와 귀검아 두흥, 북산주점의 최명판관 이립과 활섬파 왕정륙
o 소식 정탐을 총괄하는 두령 1명 : 신행태보 대종
o 군중 기밀을 전달하는 보군두령 4명 : 철규자 악화, 고상조 시천, 금모견 단경주, 백일서 백승
o 중군을 수호하는 마군 효장(驍將) 2명 : 소온후 여방, 새인귀 곽성
o 중군을 수호하는 보군 효장 2명 : 모두성 공명, 독화성 공량
o 형벌을 집행하는 회자수(劊子手) 2명 : 철비박 채복, 일지화 채경
o 삼군 내에서 소식을 정탐하는 마군두령 2명 : 왜각호 왕영, 일장청 호삼랑
o 물품 제조를 담당하는 두령 16명
· 문서 발급과 병력 파견을 담당하는 1명 : 성수서생 소양
· 공을 정하고 상벌을 담당하는 군정사 1명 : 철면공목 배선
· 재물과 식량의 출납을 담당하는 1명 : 신산자 장경
· 전선 건조를 담당하는 1명 : 옥번간 맹강
· 병부와 인신 제조를 담당하는 1명 : 옥비장 김대견
· 깃발과 의복 제조를 담당하는 1명 : 통비원 후건
· 말을 치료하는 의원 1명 : 자염백 황보단
·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내외과의원 1명 : 신의 안도전
· 무기와 갑옷 제작을 감독하는 1명 : 금전표자 탕륭
· 화포 제작을 담당하는 1명 : 굉천뢰 능진
· 건물 건축과 수리를 담당하는 1명 : 청안호 이운
· 가축 도살을 담당하는 1명 : 조도귀 조정
· 연회를 담당하는 1명 : 철선자 송청
· 술과 식초 제조를 담당하는 1명: 소면호 주부
· 성벽 축조를 감독하는 1명 : 구미귀 도종왕
· 수자기(帥字旗)를 붙잡는 1명 : 험도신 욱보사
선화(宣和) 2년 4월 1일 양산박 대집회 인원 분배 고시
그날 양산박 송공명은 영을 전하여, 두령들의 직분을 정하고 각각 병부와 인신을 수령하게 하였다. 연회가 끝나고 모두 크게 취하여 각각 배정된 영채로 돌아갔다. 중간에 아직 직분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은 모두 안대 앞뒤에 머물면서 명을 기다렸다가, 명이 내려지자 모두 준수하였다.
송강은 다시 길일을 택해 향을 피우고 북을 울려 두령들을 충의당에 집합시키고 말했다.
“이제는 지난날과 비교할 바가 아니니, 내가 한마디 하겠소. 오늘 이렇게 천강성과 지살성이 모두 모였으니, 하늘에 맹세합시다. 딴 마음을 지니지 말고 생사를 함께 하며, 환난에는 서로 도와 함께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합시다.”
모두 크게 기뻐하며 향을 사르고 일제히 충의당에 무릎 꿇자, 송강이 대표로 맹세하였다.
“송강은 비천한 아전으로서 학문도 없고 재능도 없는데, 천지의 은혜와 일월의 굽어살피심 덕분에 형제들을 양산박에 모아 모두 108명이 되었습니다. 위로는 하늘의 운수에 따르고 아래로는 인심에 부합하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만약 누구든 불인한 마음을 품거나 대의를 저버리는 자는, 천지가 벌하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주륙하여 만세 동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어둠 속에 가라앉게 하시옵소서. 오직 충의를 마음속에 품고 함께 나라에 공을 세워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함으로써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기를 바랍니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펴주시고 밝게 감응해 주시옵소서.”
송강이 맹세를 마치자, 모든 두령들이 한목소리로 함께 기원하였다. 살아서도 함께 하고 죽어서도 서로 만나 영원히 함께하기를 빌면서, 삽혈하고 맹세하였다.
원래 양산박 두령들은 한가할 때 산을 내려갔는데, 인마를 데리고 갈 때도 있었고 몇몇 두령들끼리 내려가기도 했다. 도중에 객상의 수레를 만나면 그냥 지나가게 뒀지만, 임지로 가는 관원들을 만나게 되면 재물을 빼앗고 가족도 모두 죽여 버렸다. 빼앗은 재물은 산채로 가져가 창고에 넣어 두고 공용으로 쓰고, 사소한 것들은 나누어 가졌다.
거리가 백리가 되든 2~3백 리가 되든 재물과 양식을 많이 쌓아놓고 백성을 괴롭히는 부자가 있으면, 인마를 이끌고 가서 공공연하게 뺏어 오는데 아무도 막지 못했다. 또 선량한 사람을 속이고 억압하여 벼락부자가 된 소인배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거리를 불문하고 사람을 보내 그 재산을 모두 빼앗아 산으로 가져오게 하였다. 그렇게 크고 작은 약탈이 수천 번 있었지만,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재물을 빼앗긴 자들도 보복이 두려워 그 사실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소문도 별로 나지 않았다.
송강은 맹세한 이후로 한 번도 산을 내려간 적이 없었는데, 어느덧 더위가 지나가고 선선한 가을이 찾아와 중양절(重陽節)이 다가왔다. 송강은 송청을 불러 연회를 열어 형제들을 모두 모아 국화를 감상하자고 하였다. 산을 내려가 있는 형제들도 원근을 막론하고 모두 산채로 돌아와 연회에 참석하라는 전갈을 보냈다.
정한 날이 되자, 고기가 산처럼 쌓이고 술이 바다처럼 넘쳐났다. 먼저 마군·보군·수군 삼군의 소두목들에게 술과 고기를 나누어주어 각기 부하들과 함께 먹고 마시게 했다. 그리고 충의당 위에 국화를 늘어놓고 두령들이 차례대로 앉아 술잔을 나누었다. 충의당 앞 양편에서는 풍악이 울리고 서로 웃고 떠들면서 술잔을 부딪치며 두령들은 가슴을 열고 통쾌하게 술을 마셨다.
마린은 피리를 불고, 악화는 노래를 불렀으며, 연청은 거문고를 연주했다. 즐겁게 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크게 취한 송강은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주흥을 못 이겨 ‘만강홍(滿江紅)’이란 시 한 수를 쓰고, 악화에게 노래로 부르게 하였다.
즐거운 중양절을 만나 맛있는 술도 새로 익었구나.
푸른 물 붉은 산을 바라보니 갈대는 시들고 대나무는 말랐도다.
머리엔 백발이 늘어났지만 곁의 국화야 즐기지 못할 건가.
술 단지 늘어놓으니 형제의 정 금옥 같도다.
이리 같고 범 같은 형제들을 거느리고 변방을 지키면
호령은 밝고 군대의 위세는 엄숙하리라.
마음속 소원은 오랑캐 평정하여 백성을 지키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
일월은 언제나 충성스런 가슴 속에 있건만 먼지가 일어 간사한 자들이 눈을 가리네.
바라건대 천자께서 조서를 내려 초안한다면 이 마음이 비로소 만족하리라.
악화의 노래가 ‘천자께서 조서를 내려 초안하기를 바란다.’는 대목에 이르자, 무송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도 초안! 내일도 초안! 형제들의 마음을 김새게 하고 있네!”
흑선풍 이규가 눈을 부릅뜨고서 소리쳤다.
“초안! 초안! 어떤 좆같은 놈이 불러준단 말이오!”
발로 탁자를 차 버리자, 탁자가 박살이 나 버렸다. 그러자 송강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저 시커먼 놈이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하냐? 여봐라! 저놈을 끌어내어 참수하라!”
여러 두령들이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저 사람이 술이 취해 발광한 것이니, 형님께서는 너그럽게 용서하십시오.”
송강이 대답했다.
“아우들은 일어나게. 저놈을 감옥에 가두어라!”
두령들이 모두 안심하였다. 형벌을 맡은 장교 몇 명이 와서 데려가려고 하자, 이규가 말했다.
“니들은 내가 소란을 피울까 봐 두려우냐? 형님이 나를 죽인다 해도 원망하지 않고, 내 살을 깎아낸다 해도 원한이 없다. 하지만 형님 외에는 하늘도 무섭지 않다.”
말을 마치자, 이규는 장교들을 따라 감방으로 가서 잠들어 버렸다. 송강은 이규의 말을 듣고 술이 깨면서 문득 슬픈 생각이 들었다. 오용이 위로했다.
“형님이 이 모임을 마련하여 모두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놈은 원래 거친 놈이고 잠시 술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인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형제들과 함께 마음껏 즐깁시다.”
송강이 말했다.
“내가 전에 강주에서 술에 취해 반역시를 읊었다가 그놈 덕에 살아났는데, 오늘은 만강홍을 지었다가 하마터면 그놈을 죽일 뻔했네. 여러 형제들이 간해서 구해 주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그놈에 대한 내 정이 너무나 깊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네.”
송강은 무송을 불러 말했다.
“아우! 자네는 세상일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닌가? 내가 초안을 받아 잘못을 고치고 바른 길로 돌아가 국가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찌하여 형제들의 마음을 김새게 한단 말인가?”
노지심이 말했다.
“지금 조정에 가득한 문무관원들이 대부분 간사한 놈들로서 천자의 총명을 가리고 있습니다. 마치 내 장삼이 까맣게 물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걸 아무리 빤다고 해도 하얗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초안이란 건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다 때려치우고 내일 각자 제 갈길 찾아갑시다.”
송강이 말했다.
“여러 형제들은 내 말을 들어보게. 지금 황제께서는 지극히 총명하신데, 다만 간신들이 가리고 있어 잠시 어두운 것일 뿐이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나면, 우리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고 양민을 괴롭히지 않은 것을 아시고 죄를 사면하고 초안하실 걸세. 그래서 우리가 한 마음으로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청사에 이름을 남긴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그래서 빨리 초안이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지,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네.”
두령들이 모두 그 말에 찬동하기는 했지만, 그날은 더 이상 기분이 나지 않아 자리를 파하고 해산했다.
다음 날 아침, 두령들이 이규를 찾아갔더니 아직도 자고 있었다. 두령들이 깨워서 말했다.
“어제 자네가 크게 취해서 형님한테 욕을 해서, 오늘 형님이 자넬 죽이려 하네.”
이규가 말했다.
“난 꿈에서도 감히 형님을 욕한 적이 없는데, 날 죽인다고? 어쨌든 형님이 날 죽이겠다면 그냥 죽어야지.”
두령들은 이규를 데리고 충의당으로 가서 송강에게 죄를 청했다. 송강이 소리쳤다.
“내 수하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모두 너같이 그렇게 무례하면 법도가 어지러워지지 않겠느냐? 이번에는 여러 형제들의 체면을 봐서 네 목을 붙여 두겠지만, 다음에 또 그러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규는 ‘예’ ‘예’ 하면서 물러났고, 두령들도 모두 해산하였다.
그 후로 별다른 일 없이 세월이 흘러 연말이 다가왔다. 한동안 눈이 계속 내리다가 맑게 갠 어느 날, 산 아래에서 졸개가 올라와 보고했다.
“산채에서 7~8리 떨어진 곳에서, 내주에서 동경으로 등을 팔러 가는 사람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 관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들을 포박하지 말고 잘 모시고 오너라.”
얼마 후 충의당 앞으로 데리고 왔는데, 두 명의 공인과 8~9명의 등 만드는 장인, 그리고 수레 다섯 대였다. 우두머리가 말했다.
“소인들은 내주의 공인이고, 이 사람들은 등 만드는 장인들입니다. 해마다 동경에서는 저희들에게 등 세 시렁을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는데, 올해는 두 시렁을 더 만들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옥붕영령구화등(玉棚玲瓏九華燈)입니다.”
송강은 그들에게 술과 대접하고, 등을 꺼내 보여 달라고 하였다. 장인들이 옥붕등을 꺼내 사방에 걸자 위아래로 81개의 등이 충의당 위에서부터 땅까지 드리워졌다.
송강이 말했다.
“내가 본래 당신들이 가진 모든 등을 놔두고 가게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당신들이 고통을 당하겠지. 구화등만 여기 남겨 놓고, 나머지는 가지고 가시오. 등 만든 수고비로 은자 20냥을 주겠소.”
공인과 장인들은 감사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송강은 등을 조천왕의 위패를 모셔둔 당에 걸게 하였다.
다음 날, 송강이 두령들에게 말했다.
“나는 산동에서 나고 자라 아직까지 경성에 가 본 적이 없소. 듣자 하니, 금상께서 등불을 많이 내걸고 백성과 함께 즐기면서 원소절(元宵節)을 경축한다고 하오. 동지에서부터 등을 달기 시작했으면 지금쯤 완비되었을 것이오. 내가 몇몇 형제들과 몰래 경성으로 가서 등불 구경을 한번 했으면 좋겠소.”
오용이 간했다.
“안 됩니다. 지금 동경에는 관원들이 엄청 많을 겁니다. 만약 실수하면 어찌합니까!”
송강이 말했다.
“낮에는 객점에 숨어 있다가 밤에 성으로 들어가 등을 구경하면, 무슨 염려가 있겠소?”
두령들이 모두 말렸지만, 송강은 끝내 고집을 부렸다.
송강은 충의당에서 등 구경하러 갈 인원을 정하였다.
“나와 시진, 사진과 목홍, 노지심과 무송, 주동과 유당, 이렇게 네 길로 나누어 가겠소. 나머지 두령들은 남아서 산채를 지켜 주시오.”
이규가 말했다.
“동경에 등 구경 간다면, 나도 가야겠다.”
송강이 말했다.
“네가 어딜 가려고?”
이규가 죽어도 가야겠다고 하자, 그 집요함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송강이 말했다.
“네가 꼭 가겠다면 절대 말썽을 피워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인으로 꾸미고 나를 따라다녀야 된다.”
송강은 연청을 불러 이규와 붙어 다니게 하였다.
그런데 송강은 얼굴에 문신이 있는데 어떻게 경성에 갈 수 있을까? 신의 안도전이 산채에 온 후에, 문신을 독약으로 지운 다음 좋은 약으로 치료하여 붉은 흉터가 생기게 하였다. 그리고 좋은 금과 옥을 갈아 가루를 만들어 매일 흉터에 바르자 피부가 깨끗하게 되었다. 의서에 ‘옥이 점을 없앤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뜻이었다.
그날 송강은 먼저 사진과 목홍을 나그네로 꾸며 내려보내고, 노지심과 무송을 행각승으로 꾸며 내려보냈다. 그다음에는 주동과 유당이 객상으로 변장하여 각각 요도를 차고 박도를 들고 몸에 무기를 감추고서 내려갔다.
송강과 시진은 한량관(閑良官)으로 분장하고 대종은 군관으로 분장하여 따르게 하였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산채로 달려가 알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규와 연청은 하인으로 꾸며 보따리를 짊어졌다. 두령들이 모두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했다. 오용이 이규에게 재삼 분부했다.
“자네가 산을 내려갈 때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사건을 일으켰어. 이번에 형님과 함께 동경으로 등 구경하러 가는 것은, 다른 때와는 다르니 도중에 술 마시지 말고 십분 조심해야 하네. 만약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말썽을 피웠다간, 형제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고 함께 살기도 어려울 거야.”
이규가 말했다.
“군사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이번에는 절대 말썽피우지 않겠소.”
송강 일행은 제주, 등주, 단주, 조주를 지나 동경의 만수문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 객점을 찾아 들어가 쉬었다. 송강이 시진과 상의했는데, 때는 정월 11일이었다. 송강이 말했다.
“내일 대낮에 성으로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정월 14일 밤에 사람들이 시끌벅적할 때 들어가는 것이 좋겠소.”
시진이 말했다.
“제가 내일 연청과 함께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길을 알아놓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좋습니다.”
다음 날, 시진은 의복을 단정하게 입고 두건도 새것으로 쓰고 깨끗한 가죽신으로 갈아 신었다. 연청도 깔끔하게 꾸몄다. 두 사람이 객점을 나서서 성 밖의 인가들을 살펴보니, 집집마다 떠들썩하게 원소절을 경축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주 태평스런 풍경이었다. 성문에 당도했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경은 과연 번화한 곳이었다.
시진과 연청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궁궐의 한 대문인 동화문 근처로 갔다. 비단옷을 입고 꽃모자를 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복색을 하고 다방과 주점을 드나들고 있었다. 시진은 연청을 데리고 작은 주루로 들어갔다.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방에 자리를 잡고 난간에 기대어 내려다보니, 많은 관원들이 동화문을 출입하는데 모두 머리에 푸른 잎이 달린 꽃가지를 하나씩 꽂고 있었다. 시진이 연청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차여차하게.”
연청은 영리한 사람이라 자세히 묻지도 않고 급히 주루를 내려갔다. 주루의 문을 나가는데, 마침 늙은 관원 한 사람과 마주쳤다. 연청이 인사를 하자, 관원이 말했다.
“누구신지요?”
연청이 말했다.
“소인의 주인은 관찰님과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래서 소인더러 관찰님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장관찰님 맞으시죠?”
“나는 왕씬데…”
연청은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주인께서 왕관찰님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깜빡했습니다.”
왕관찰은 연청을 따라 주루 이층으로 올라갔다. 연청은 발을 걷으며 시진에게 말했다.
“왕관찰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시진은 왕관찰을 방안으로 맞이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왕관찰은 시진을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었다.
“제가 눈이 어두워 족하를 어디서 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시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와 족하는 어릴 때 알던 사이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시진은 술과 고기를 주문하여 왕관찰과 술잔을 주고받았다. 점원이 안주를 가져오자 현청도 은근히 왕관찰에게 술을 권하였다. 술이 좀 오르자 시진이 물었다.
“관찰님의 머리에 꽂은 꽃가지는 무슨 뜻입니까?”
“금상천자께서 원소절을 경축하시면서 우리 24반(班) 5천7백여 명에게 각기 옷 한 벌과 푸른 잎이 달린 꽃가지 하나, 그리고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새겨진 금패 하나를 하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점검할 때 이 꽃가지와 비단옷이 있어야 궁을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술을 몇 잔 더 마신 다음, 시진이 연청에게 말했다.
“따뜻한 술을 좀 가져오너라.”
잠시 후 연청이 술을 가지고 오자, 시진이 일어나 왕관찰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족하께서는 이 아우가 따라 드리는 술을 한 잔 받으십시오. 그러면 이제 제 이름이 생각나실 겁니다.”
왕관찰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성함을 알려 주시지요.”
왕관찰은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는데, 잠시 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두 다리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의자에서 벌렁 뒤로 넘어졌다. 시진은 황망히 자신의 옷을 벗고 왕관찰의 옷을 바꿔 입고 꽃가지가 꽂힌 모자를 썼다. 그리고 연청에게 분부했다.
“점원이 와서 물으면, 이 관찰은 취했고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게.”
연청이 말했다.
“분부하지 않으셔도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시진은 주루를 나와서 곧장 동화문으로 들어갔다. 금문(禁門)을 통과하는데, 복색을 갖추었기 때문에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전을 지나 문덕전에 당도해 보니, 문마다 쇠사슬이 걸려 있어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응휘전을 끼고 돌아가다 보니 작은 편전이 있는데, ‘예사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곳은 관원들이 문서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진은 옆에 있는 주홍색의 작은 문으로 살짝 들어가 보았다. 정면에는 어좌가 놓여 있고, 양쪽에 늘어서 있는 책상에는 문방사보, 붓·종이·먹·벼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가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책마다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다. 정면 병풍에는 청색과 녹색으로 산하와 사직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병풍 뒤로 돌아가 보니, 흰색 병풍이 또 하나 있는데 거기엔 천자의 친필로 네 명의 큰 도적 이름이 쓰여 있었다.
산동 송강(山東 宋江)
회서 왕경(淮西 王慶)
하북 전호(河北 田虎)
강남 방랍(江南 方臘)
시진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국가가 우리 때문에 피해가 많아, 잊지 않으려고 여기에 써 놓았구나.”
시진은 칼을 꺼내 ‘산동 송강’ 네 글자를 잘라냈다. 황망히 예사전을 나왔는데 누가 뒤쫓아 오는 것 같기도 해서, 재빨리 내원을 지나 동화문 밖으로 나왔다. 곧장 주루로 돌아와 보니, 왕관찰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빌려 입었던 왕관찰의 의복을 벗어서 옆에 두고, 시진은 자신의 의복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연청에게 점원을 불러 술값을 계산하게 하고, 덤으로 10여 관을 더 주었다. 주루를 내려가면서 점원에게 부탁했다.
“나와 왕관찰은 형제인데, 그가 마침 취했기 때문에 대신 점고를 받고 왔는데 아직 술이 깨지 않았네. 나는 성 밖에 살기 때문에 성문이 닫히기 전에 나가야겠네. 거스름돈은 자네가 가지게. 그의 의복은 모두 옆에 놔두었네.”
점원이 말했다.
“나리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시진과 연청은 주점을 나와서 만수문을 나갔다.
왕관찰은 저녁에 되어서야 깨어났는데, 의복과 모자는 그대로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점원이 시진이 한 말을 전해주었는데, 아직 술이 덜 깬 왕관찰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누군가가 왕관찰에게 말했다.
“예사전 병풍에 쓰여 있던 ‘산동 송강’ 네 글자가 사라졌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각 성문을 철통같이 지키면서 출입하는 사람을 철저히 검문한다고 합니다.”
왕관찰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감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한편, 시진은 객점으로 돌아가 궁궐 안에서 있었던 일을 송강에게 자세히 얘기하고 천자의 친필로 쓴 ‘산동 송강’ 네 글자를 보여주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서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14일 황혼 무렵 밝은 달이 동쪽에서 떠올랐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송강과 시진은 한량관으로 꾸미고 대종은 군관으로 꾸몄으며, 연청은 하인으로 꾸몄다. 이규는 남아서 방을 지켰다.
네 사람은 놀이패들 사이에 끼어들어 봉구문으로 들어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밤인데도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도 온화하여 놀기 좋은 날이었다. 마행가를 돌아가니 집집마다 문 앞에 등불을 걸어놓아 대낮처럼 밝았고, 누각 아래위에도 등불이 비추고 있는데 수레나 말을 탄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마행가를 지나 어가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기생집임을 알리는 연월패(煙月牌)가 걸려 있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집에 푸른 휘장이 쳐져 있고 그 안에 대나무발이 걸려 있는데, 양편에는 푸른 그물창이 나 있었다. 창문 밖에 걸린 두 개의 패에는 각각 ‘가무신선녀(歌舞神仙女)’ ‘풍류화월괴(風流花月魁)’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 다방으로 들어가 차를 주문하면서 점원에게 물었다.
“저 앞 모퉁이에 있는 기생집은 누구 집이오?”
점원이 말했다.
“그 집은 행수 이사사의 집입니다.”
“금상께서 좋아하는 그 기생이오?”
“큰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송강은 연청을 불러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사사를 한번 만나서 몰래 일을 꾸며보고 싶네. 자네가 어떻게든 해보게. 우리는 여기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겠네.”
송강은 시진·대종과 함께 다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연청은 이사사의 집으로 가서 푸른 휘장을 젖히고 대나무 발을 걷어 올리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원앙등이 걸려 있고, 물소가죽을 씌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구리 향로에서는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양쪽 벽에는 명인이 그린 네 폭의 산수화가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물소가죽을 씌운 의자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어 연청은 더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큰 손님방이 있었는데, 향남목으로 만든 꽃무늬가 영롱하게 새겨진 침상이 세 개 있는데 낙화유수를 수놓은 보랏빛 비단 이불이 깔려 있었다. 옥으로 만든 시렁에는 아름다운 등불이 걸려 있고 이상한 모양의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연청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자, 병풍 뒤에서 계집종이 하나 나와 인사하면서 물었다.
“손님은 누구시며 어디서 오셨습니까?”
연청이 말했다.
“아가씨! 번거롭겠지만 마님 좀 나오시라고 하시오. 내가 할 말이 있소.”
계집종이 들어가고 잠시 후, 이사사의 어미인 듯한 노파가 나와 연청에게 자리를 권한 뒤 네 번 절을 하고 말했다.
“손님은 누구십니까?”
연청이 대답했다.
“할머니! 잊으셨습니까? 저는 장을의 아들 장한입니다. 멀리 나가 있다가 오늘 막 돌아왔습니다.”
원래 세상에 장가·이가·왕가가 제일 많았기 때문에, 노파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등불 아래에서 자세히 볼 수는 없어 문득 생각했다.
“네가 태평교 아래 살던 꼬마 장한이냐? 어딜 가서 오랫동안 안 왔냐?”
“제가 한동안 집에 없어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지금 산동에서 오신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 재산이 어마어마합니다. 아마 하북에서 제일가는 부자일 겁니다. 이번에 원소절 구경도 하고 경성에 있는 친척도 찾아보면서 장사도 할 겸 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낭자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시는데, 이 집에 어찌 함부로 출입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자리에서 술이나 한 잔 나누려는 것이지 별 다른 뜻은 없으십니다. 금은을 댁으로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노파는 이익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라, 연청의 말을 듣고 욕심이 동하여 황망히 이사사를 불러냈다. 연청이 등불 아래에서 이사사를 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용모였다. 연청이 절을 하자, 노파가 자세한 얘기를 하였다. 이사사가 말했다.
“그 원외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연청이 말했다.
“요 앞 다방에 계십니다.”
“모시고 오세요.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으시니 함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노파가 말했다.
“빨리 가서 모시고 오너라.”
연청은 다방으로 달려가 송강에게 귓속말로 소식을 전했다. 대종이 찻값을 치르고, 세 사람은 연청을 따라 이사사의 집으로 갔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계집종이 나와서 손님방으로 안내했다. 이사사가 두 손을 모으고 인사하며 말했다.
“좀 전에 장한에게서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산간벽지에 사는 무식한 촌놈이 이렇게 꽃같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게 되니 실로 평생의 행운입니다.”
이사사는 자리를 권하고서, 시진을 보고 물었다.
“이 분은 누구십니까?”
송강이 말했다.
“이 사람의 나의 이종사촌 섭순간입니다.”
송강은 또 대종을 이사사에게 인사시켰다. 송강과 시진은 왼쪽 손님 자리에 앉고, 이사사는 오른쪽 주인 자리에 앉았다. 계집종이 차를 내오자, 이사사는 직접 송강 · 시진 · 대종 · 연청에게 차례로 찻잔을 건넸다. 차를 마신 다음, 송강이 숨긴 뜻을 얘기하려고 하는데, 계집종이 와서 알렸다.
“나리께서 뒤채로 오셨습니다.”
이사사가 송강에게 말했다.
“감히 더 앉아 있지 못하겠습니다. 내일은 어가가 상청궁으로 가실 것이니, 여기로 못 오실 겁니다. 여러분이 그때 다시 오시면 술이라도 몇 잔 대접하겠습니다.”
송강은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