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64화
증장관은 또 증삭이 죽은 걸 알고 더욱 번뇌하였다. 다음 날, 증장관은 사문공에게 서신을 보내 투항하자고 했다. 사문공도 두려워 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서신을 송강의 영채로 보냈다. 증두시에서 서신을 가진 사자가 왔다는 보고를 받은 송강은 사자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송강이 서신을 펼쳐 읽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증두시의 주인 증롱이 송공명 통군두령 휘하에 머리 숙여 재배하옵니다. 지난날 저의 어린 아들이 일시적인 용맹만 믿고 호랑이 같은 위엄을 범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조천왕께서 오셨을 때에 마땅히 귀부했어야만 했는데, 아래 병졸이 제멋대로 화살을 쏘았고 또 말을 탈취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비록 입이 백 개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다 사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참으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미련한 놈들이 모두 죽었으니, 사자를 보내 강화하고자 합니다. 전쟁을 그치고 병력을 거두어 주신다면, 탈취한 말을 모두 돌려보냄은 물론이고 황금과 비단을 바쳐 삼군을 위로하고자 합니다. 서로 상하는 싸움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서신을 삼가 바칩니다. 살펴주십시오.
송강은 서신을 보고 나서, 크게 노하여 서신을 찢으며 소리쳤다.
“우리 형님을 죽여 놓고서, 이제 와서 그만두자고? 마을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것이 내가 본래 원하는 것이다!”
서신을 가져온 사자는 땅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오용이 황망히 권했다.
“형님이 틀렸습니다. 우리가 서로 싸우는 것은 모두 대의를 위해서입니다. 이미 증가가 서신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는데, 어찌 일시적인 분노로 대의를 잃을 수 있겠습니까?”
즉시 회신을 써서 사자에게 은자 열 냥을 상으로 주어 본채로 돌아가게 했다. 증장관과 사문공이 서신을 펼쳐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양산박 주장 송강이 증두시 주인 증롱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국가는 신의로써 백성을 다스리고, 장수는 용맹으로써 외방을 진압해야 합니다. 사람이 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재물은 의롭지 않으면 취해서는 안 됩니다. 양산박과 증두시는 애초에 원한이 없었으며 각자 경계를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대들은 일시적으로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로 인해 원한을 쌓게 되었습니다.
만약 강화를 원한다면, 두 차례에 걸쳐 탈취해 간 말을 반환함은 물론 말을 탈취한 원흉 욱보사도 함께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삼군을 위로할 황금과 비단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참된 정성으로 행해야 할 것이며 예의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 변한다면 다시 재결할 것입니다.
증장관과 사문공은 서신을 보고서 놀라고 근심하였다. 다음 날 증장관은 다시 사자를 보내 말했다.
“강화를 하려면, 서로 인질을 보내기로 합시다.”
송강이 거절하려 하자, 오용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즉시 시천·이규·번서·항충·이곤을 신의의 증표로 보내기로 했다. 다섯 사람이 떠날 때, 오용이 시천을 불러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차여차하되, 실수 없도록 하게.”
다섯 사람이 떠난 후, 관승·서녕·단정규·위정규가 당도하여 중군에 머물렀다.
한편, 시천은 네 명의 호걸과 함께 가서 증장관을 만나 말했다.
“형님의 명령을 받들어 시천이 이규 등 네 사람과 함께 강화하고자 왔습니다.”
사문공이 말했다.
“오용이 다섯 사람을 보낸 것은, 필시 어떤 모략이 있을 것입니다.”
이규는 크게 노하여, 사문공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증장관이 황망히 말리자, 시천이 말했다.
“이규 이 사람이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우리 송공명 형님의 심복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사람을 보낸 것이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증장관은 강화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사문공의 말을 듣지 않고 다섯 사람에게 술을 대접하고 법화사에 있는 영채에서 쉬게 하였다. 그리고 5백 명의 군인들에게 앞뒤로 에워싸서 지키게 하였다.
증장관은 증승으로 하여금 욱보사를 데리고 송강의 영채로 가서 강화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중군으로 가서 송강을 만나고, 뒤를 이어 탈취했던 말과 함께 황금과 비단을 실은 수레가 도착했다. 송강이 살펴본 다음에 말했다.
“저 말들은 나중에 탈취한 것이다. 그전에 단경주에게서 탈취한 천리마 조야옥사자는 어째서 보이지 않는 거냐?”
증승이 말했다.
“그 말은 사문공 사부가 타고 있기 때문에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너는 빨리 서신을 써 보내, 그 말을 내게 끌고 오도록 해라.”
증승은 즉시 서신을 쓰고 종자를 보내 말을 끌고 오게 했다. 하지만 사문공은 그 말을 듣고서 말했다.
“다른 말은 줘도 아깝지 않지만, 이 말은 줄 수 없다.”
종자가 몇 번 왕복했는데, 송강은 그 말을 반드시 돌려받아야겠다고 하였다. 사문공은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 말을 반드시 돌려받고 싶다면, 즉각 퇴각하시오. 그러면 바로 말을 돌려보내겠소.”
송강이 그 말을 듣고 오용과 상의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 기 보고가 들어왔다.
“청주와 능주에서 두 길로 군마가 오고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저놈들이 이 소식을 알게 되면, 필시 마음이 변할 것이다.”
몰래 명령을 전해, 관승·단정규·위정국을 보내 청주 군마를 막게 하고, 화영·마린·등비를 보내 능주 군마를 막게 하였다. 또 은밀하게 욱보사를 불러 좋은 말로 달래면서 말했다.
“자네가 만약 이번에 공로를 세우면, 산채의 두령으로 삼고 말을 탈취했던 원한은 다 지우겠다고 화살을 꺾어 맹세하겠네. 하지만 자네가 따르지 않겠다면, 증두시는 하루아침에 격파될 걸세.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게.”
욱보사는 그 말을 듣고, 투항하여 명령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오용이 욱보사에게 계책을 일러주며 말했다.
“자네는 몰래 도망친 것처럼 꾸며 영채로 가서 사문공에게 이렇게 말하게. ‘제가 증승과 함께 송강의 영채로 강화를 청하러 갔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송강은 단지 천리마를 얻을 생각만 있지 진짜로 강화할 마음은 없습니다. 만약 천리마를 돌려주면, 필시 태도를 바꿀 것입니다. 또 지금 청주와 능주에서 두 길로 구원병이 오고 있다는 것을 듣고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서 계책을 쓴다면, 착오가 없을 것입니다.’ 그가 자네 말을 딛게 되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조치하겠네.”
욱보사는 오용의 계책을 듣고, 사문공의 영채로 가서 오용이 시킨 대로 말했다. 사문공은 욱보사를 데리고 증장관에게 가서, 송강은 강화할 마음이 없으니 기회를 틈타 기습하자고 말했다. 증장관이 말했다.
“지금 증승이 거기에 가 있는데, 만약 우리가 마음을 바꾼다면 필시 저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사문공이 말했다.
“저들의 영채를 깨뜨리면 어떻게든 증승을 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 각 영채에 명을 전해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먼저 송강의 본채를 기습합시다. 뱀 대가리만 잘라 버리면 나머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이규 등 다섯 놈을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
증장관이 말했다.
“교사께서 좋은 계책을 쓰시오.”
사문공은 즉시 명령을 전하여, 북쪽 영채의 소정, 동쪽 영채의 증괴, 남쪽 영채의 증밀과 함께 기습하기로 하였다. 욱보사는 몰래 법화사의 본채로 잠입하여 이규 등 다섯 사람을 만나 이 소식을 전했다.
한편,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였다.
“이 계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소.”
오용이 말했다.
“욱보사가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제 계략에 떨어진 겁니다. 저들이 오늘 밤 우리 영채를 기습하면, 우리는 물러나서 양쪽에 매복하여 기다리면 됩니다. 그리고 노지심과 무송에게 보군을 이끌고 가서 동쪽 영채를 공격하게 하고, 주동과 뇌힝에게는 보군을 이끌고 가서 서쪽 영채를 공격하게 하며, 양지와 사진은 마군을 이끌고 가서 북쪽 영채를 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번견복와지계(番犬伏窩之計)’ 즉 사냥개를 사냥감의 굴속에 매복시키는 계책인데, 백발백중입니다.”
한편, 그날 밤 사문공은 소정 · 증밀 · 증괴와 함께 모든 병력을 동원하였다. 그날 밤은 달빛이 흐릿하고 별빛은 하나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사문공과 소정이 앞장서고 증밀과 증괴는 뒤를 따랐다. 말방울을 떼고 사람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한꺼번에 송강의 본채로 달려갔다. 그런데 영채의 문이 닫혀 있지 않고 안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몸을 돌려 급히 본채로 돌아가는데, 증두시 안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울렸다.
그때 시천이 법화사 종루에 올라가 종을 쳤다. 그것을 신호로 하여 동서 두 문에서 화포가 일제히 터지면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더니,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군마가 쳐들어왔다. 법화사 안에서는 이규·번서·항충·이곤이 일제히 나와 공격했다. 사문공 등은 급히 본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증장관은 영채 안에서 크게 소란이 일어나고 양산박의 대군이 두 길로 쳐들어온다는 것을 듣고, 영채 안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증밀은 서쪽 영채로 달려가다가 주동의 박도에 맞아 죽었고, 증괴는 동쪽 영채로 달려가다가 난군 속에서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소정은 결사적으로 싸워 북문으로 탈출했지만 무수한 함정이 있고, 뒤에서는 노지심과 무송이 추격해 오고 앞에서는 양지와 사진에 가로막혀 어지럽게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소정의 뒤를 따르던 인마는 모두 함정에 빠져 죽었다.
한편, 사문공은 빠른 천리마 덕분에 서문을 탈출하여 무작정 달아났다. 그때는 검은 안개가 하늘에 가득하여 남북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20여 리를 달려갔는데, 도대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숲속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4~5백 명의 군사가 튀어나오면서, 앞장 선 장수가 봉을 들어 말 다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그 말이 천리마인지라, 봉이 날아오는 순간 장수의 머리를 뛰어넘어 달아났다.
사문공은 또다시 정신없이 달렸는데, 어두운 구름이 깔리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끼쳐오고 시커먼 안개가 퍼져나가면서 광풍이 불어 닥쳤다. 그때 허공에 한 사람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사문공은 그것이 신병(神兵)인가 의심하면서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동서남북 사방에 모두 조개의 혼령이 에워싸고 있었다.
사문공이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하다가 낭자 연청과 마주쳤다. 그 순간 옥기린 노준의가 나타나 소리쳤다.
“네 이놈!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사문공은 노준의가 휘두르는 박도에 넓적다리를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노준의는 사문공을 포박하여 증두시로 끌고 갔고, 연청은 천리마를 끌고 따라갔다. 송강은 사문공을 보고, 한편으로 기뻐하면서 또 한편으로 노하였다. 기뻐한 것은 노준의가 공을 세웠기 때문이고, 노한 것은 조천왕을 죽인 원수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먼저 증승을 끌어내어 참수하고, 증가 집안은 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 버렸다. 모든 재물과 식량을 수레에 실었다.
한편, 관승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청주 군마를 물리치고, 화영은 능주 군마를 물리치고 돌아왔다. 대소 두령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천리마 조야옥사자도 얻고, 그 외에 수많은 물품을 얻었다. 사문공을 함거에 태우고, 군마를 수습하여 양산박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마을에서 조금도 백성을 해치지 않았다.
충의당에 모두 모여 조개의 영전에 참배하였다. 송강은 소양에게 제문을 짓게 하고, 모든 두령들은 상복을 입고 애도하였다. 사문공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꺼내 조개의 영전에 제사 지냈다.
송강은 충의당에서 두령들과 함께 산채의 주인을 세우는 일을 상의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께서 첫째 자리에 계시고, 노원외는 둘째로 하시지요. 나머지 형제들은 예전대로 하면 됩니다.”
송강이 말했다.
“전에 조천왕께서 유언하시기를, ‘사문공을 잡는 자가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양산박의 주인으로 삼으라’고 하셨소. 이번에 노원외가 그놈을 사로잡아 조개 형님께 제물로 바쳐 원한을 풀었으니, 마땅히 산채의 주인이 되어야 하오. 다른 말은 필요 없소.”
노준의가 말했다.
“저는 덕도 없고 재주도 부족한데, 어찌 감히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말석에 앉게 해주셔도 오히려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내가 겸양해서가 아니라, 노원외보다 못한 점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송강은 키도 작고 피부도 시커먼 것이 외모가 보잘 없고 재주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노원외는 풍채가 당당하고 늠름하여 귀인의 상을 지녔습니다. 둘째, 송강은 아전 출신으로 죄를 짓고 도망쳤는데, 여러 형제들 덕분에 잠시 이 자리에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노원외는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 오래도록 호걸의 명예를 지니고 있으며, 비록 흉한 일을 당하기는 했으나 하늘이 보우하였습니다. 셋째, 송강은 문(文)으로는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무(武)로는 여러 사람을 따르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손으로는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고, 몸으로는 짧은 화살 한 대를 쏠 수 있는 공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노원외는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고금의 일에 널리 통달하여, 천하 사람들이 바람에 불려오듯 몰려와 복종할 것입니다. 이러한 덕과 재능을 지녔으니 마땅히 산채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훗날 조정에 귀순하여 공을 세우고 높은 관작에 오르면, 우리 형제들을 모두 빛나게 해 주실 겁니다. 송강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노준의가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형님께서 잘못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이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형님의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오용이 권했다.
“형님께서 첫째가 되시고 노원외가 둘째가 되면, 모두 심복할 것입니다. 만약 형님께서 재삼 사양하시면 형제들의 마음이 차갑게 식을까 두렵습니다.”
오용은 이미 두령들에게 눈짓을 하고서 이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다. 그러자 흑선풍 이규가 나와 소리쳤다.
“나는 강주에서 목숨 걸고 당신을 따라왔고,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첫째 두령 자리를 양보했소. 나는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오. 그런데 당신네들은 지금 양보를 하네 마네 개지랄을 떨고 있는데, 내가 다 죽여 버릴 테니 각자 흩어지자고!”
무송도 오용이 눈짓하는 것을 보고 앞으로 나와 소리를 질렀다.
“형님의 수하에 많은 군관 출신들이 있는데, 모두 조정의 명을 받았던 사람들이오. 그들이 양보한 사람은 바로 형님인데, 어찌 다른 사람을 따를 수 있겠소?”
유당도 말했다.
“우리 일곱 사람이 처음 산에 올라왔을 때에 형님을 첫째 두령으로 모시자고 했었는데, 오늘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겠다는 겁니까?”
노지심도 소리쳤다.
“만약 형님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면, 우리는 각자 해산합시다!”
송강이 말했다.
“자네들은 여러 말 할 필요가 없네. 나에게 다른 방도가 있으니, 하늘의 뜻이 어떠한지를 보고 결정하도록 하겠네.”
오용이 말했다.
“어떤 고견이 있으신지 말씀해 보시지요.”
송강이 말했다.
“두 가지 일이 있소.”
송강은 조개의 유언에 따라 노준의에게 첫째 두령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지만, 두령들이 따르지 않았다. 송강이 다시 말했다.
“지금 산채에 돈과 식량이 부족한데, 양산박 동쪽에 돈과 식량이 풍족한 2개 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평부이고, 또 하나는 동창부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곳의 백성을 괴롭힌 적이 없었지만, 만약 식량을 빌리러 가면 내주지 않으려 할 겁니다. 지금 제비뽑기를 하여 나랑 노원외가 각각 한 곳을 맡아, 먼저 성을 깨뜨리는 자가 양산박의 주인이 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용이 말했다.
“좋습니다. 천명을 따르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형님은 양산박의 주인이시고, 저는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송강은 노준의의 말을 듣지 않고, 철면공목 배선을 불러 제비 두 개를 만들게 했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한 다음 각각 제비를 뽑았다. 송강은 동평부를 뽑았고, 노준의는 동창부를 뽑았다. 두령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며, 송강은 파견할 인마를 선발하라고 명하였다.
송강의 부하는 임충 · 화영 · 유당 · 사진 · 서녕 · 연순 · 여방 · 곽성 · 한도 · 팽기 · 공명 · 공량 · 해진 · 해보 · 왕왜호 · 일장청 · 장청 · 손이랑 · 손신 · 고대수 · 석용 · 욱보사 · 왕정륙 · 단경주 등 25명의 두령에 마보군병 1만이었다. 수군두령 3명 완소이 · 완소오 · 완소칠은 배를 타고 접응하기로 하였다.
노준의의 부하는 오용 · 공손승 · 관승 · 호연작 · 주동 · 뇌횡 · 삭초 · 양지 · 단정규 · 위정국 · 선찬 · 학사문 · 연청 · 양림 · 구붕 · 능진 · 마린 · 등비 · 시은 · 번서 · 항충 · 이곤 · 시천 · 백승 등 25명의 두령에 마보군 1만이었다. 수군두령 3명 이준·동위·동맹은 배를 타고 접응하기로 하였다.
나머지 두령들과 다친 사람들은 산채를 지키기로 하였다. 배정이 끝나자, 송강은 여러 두령들을 거느리고 동평부를 공략하러 가고, 노준의는 여러 두령들을 거느리고 동창부를 공략하러 갔다. 때는 3월 초순으로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도 온화하였으며 풀은 푸르고 땅도 풀려 싸우기 좋은 때였다.
송강은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동평부에서 40리 떨어진 안산진이라는 곳에 군마를 주둔하였다. 송강이 말했다.
“동평부 태수 정만리에게는 병마도감이 하나 있는데, 하동 상당군 사람으로 동평(董平)이라 한다. 그는 쌍쟁을 잘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쌍쟁장(雙鎗將)이라 부르며, 만 사람도 당하지 못할 용맹을 지니고 있다. 그의 성을 치러 왔지만, 예의를 갖추어 먼저 전서(戰書)를 보내야겠다. 만약 그가 투항한다면 병력을 동원한 필요가 없겠지만, 따르지 않는다면 대규모 살육이 벌어지더라도 원망하지 못하겠지. 누가 전서를 가지고 가겠는가?”
험도신 욱보사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가 동평을 알고 있으니, 전서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때 또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송강이 보니 왕정륙이었다. 욱보사와 왕정륙이 함께 말했다.
“저희들은 산채에 와서 아직까지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오늘 함께 갔다 오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전서를 써서 두 사람에게 주었다. 전서에는 단지 식량을 빌려달라는 말만 쓰여 있었다.
한편, 동평부의 정태수는 송강이 군마를 일으켜 안산진에 주둔했다는 보고를 받고, 병마도감 쌍쟁장 동평을 불러 상의했다. 두 사람이 상의하고 있는데, 문지기가 와서 보고했다.
“송강이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정태수가 불러들이라 하자, 욱보사와 왕정륙이 들어와 전서를 바쳤다. 정만리가 전서를 읽어 보고, 동도감에게 말했다.
“저들이 식량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동평은 그 말을 듣자 크게 노하여, 당장 두 사람을 끌어내어 참수하라고 소리쳤다. 정태수가 말했다.
“안 됩니다. 자고로 양국이 서로 싸울 때 사자를 참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저 둘에게 곤장 20대씩을 때리고 본채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평은 노기가 식지 않아, 좌우에 명하여 욱보사와 왕정륙을 묶어서 엎어 놓고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터지도록 곤장을 쳐서 성 밖으로 내쫓게 하였다. 두 사람은 본채로 돌아와 울면서 송강에게 아뢰었다.
“동평이란 놈이 무례하게도 우리를 깔보고 있습니다!”
송강은 두 사람이 맞은 것을 보고 노기가 치밀어 올라 동평부를 삼켜 버릴 듯했다. 우선 욱보사와 욍정륙을 수레에 태워 산채로 돌려보내 쉬게 했다. 구문룡 사진이 일어나 말했다.
“제가 예전에 동평부에 있을 때 이서란이라는 창기와 친밀하게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금은을 조금 가지고 몰래 성으로 들어가 그녀의 집에 머물고 있겠습니다. 약정한 날짜에 형님께서 성을 공격하시면, 동평이 출전한 틈을 타서 제가 망루에 올라가 불을 지르겠습니다. 그렇게 안팎으로 호응하면 성공할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좋은 계책이다!”
사진은 금은을 수습하여 보따리를 챙기고 몸에 무기를 감추고서 떠나려 하자, 송강이 말했다.
“아우가 요령껏 잘 처리하게. 나는 잠시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있겠네.”
사진은 몰래 성으로 들어가 유흥가에 있는 이서란의 집을 찾아갔다. 이서란의 삼촌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안으로 맞이하여, 이서란을 불러 만나게 하였다. 이서란이 사진을 누각 위로 안내하여 자리에 앉아, 사진에게 물었다.
“어째서 한동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까? 양산박의 두령이 되어 관아에서 체포하려고 방을 붙였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송강이 식량을 빌리기 위해 성을 치려 한다고, 요 이틀 동안 거리가 소란한데, 어떻게 여기로 왔습니까?”
사진이 말했다.
“내가 사실대로 말할게. 내가 지금 양산박의 두령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세운 공이 없네. 지금 송강 형님이 식량을 빌리기 위해 성을 치러 왔는데, 내가 자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염탐하러 왔네. 금은 한 보따리를 자네에게 줄 테니, 이 일이 절대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해주게. 내일 일이 끝나면, 자네 일가를 산으로 데리고 가서 즐겁게 살도록 해주겠네.”
이서란은 일단 승낙하고 금은을 받은 다음, 술과 고기를 대접하였다. 이서란은 사진 몰래 숙모와 상의하였다.
“저 사람이 예전에 손님으로 왔을 때는 좋은 사람이어서 우리 집을 출입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나쁜 사람이 되었으니 만약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떡해요?”
삼촌이 말했다.
“양산박 송강의 무리는 호걸들이라, 만만히 생각해서는 안 돼. 저들이 공격해서 깨뜨리지 못한 성이 없어. 만약 말이 새나갔다가, 저들이 성을 깨뜨리고 들어오는 날엔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숙모가 욕을 했다.
“늙은 버러지 많은 물건아! 세상 물정을 알기나 하는 거야? 자고로 ‘벌이 품 안으로 날아들면 옷을 벗어 털어라’고 했어. 자수하는 자는 죄를 면해 주는 것이 천하의 통례야. 당신은 빨리 관아로 가서 고발해 저놈을 잡아가게 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라도 연루되면 좋을 것 없어.”
삼촌이 말했다.
“그가 우리한테 금은도 많이 주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팔아넘길 수 있겠나?”
숙모가 또 욕을 했다.
“이 늙은 짐승아! 그런 방귀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 같은 이런 기생집에서 함정에 빠진 놈이 무수히 많은데, 저런 놈 하나 갖고 뭘 그래! 당신이 고발하러 가지 않으면, 내가 가서 고발할 건데 당신도 한통속이라고 할 거야.”
삼촌이 말했다.
“성질부리지 마! 일단 조카한테 그놈을 붙잡아 두라고 해. 괜히 풀을 쳐서 뱀이 놀라 달아나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해. 내가 먼저 공인들에게 알려서 저놈을 붙잡은 다음에 관아로 가서 고발할 거야.”
한편, 사진은, 이서란이 누각 위로 올라오는데 얼굴색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면서 불안한 것을 보고 물었다.
“자네 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인가?”
이서란이 말했다.
“방금 계단을 올라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했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사진은 영특하고 용맹한 사람이지만, 남을 속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서란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진이 이서란과 오랜만에 만난 정을 나누고 있는데,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계단 아래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바깥에서 함성이 들리더니 10여 명의 공인들이 누각 위로 올라왔다. 사진이 미처 손쓸 새도 없이, 마치 매가 참새를 낚아채듯 달려들어 묶어 버렸다. 공인들이 사진을 관아로 끌고 가자, 정태수가 사진을 보고 욕을 했다.
“네 이놈! 간댕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혼자서 염탐하러 오다니! 이서란의 애비가 고발하지 않았다면, 우리 고을의 양민들이 다칠 뻔했다! 네놈은 무엇을 염탐하러 온 거냐? 송강이 왜 널 보냈느냐?”
사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동평이 말했다.
“도적 근성이 골수에 밴 저런 놈들은 맞지 않으면 불지 않습니다.”
정태수가 소리쳤다.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양쪽에서 옥졸들이 달려들어 먼저 허벅지에 냉수를 뿜고 나서, 곤장 백 대를 때렸다. 사진이 그렇게 맞고서도 입을 열지 않자, 동평이 말했다.
“저놈에게 큰 칼을 씌워 사형수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가, 송강을 잡으면 한꺼번에 경성으로 압송하여 처분하시지요.”
한편, 송강은 사진이 떠난 후에 자세한 사정을 서신에 써서 오용에게 보냈다. 오용은 송공명의 서신을 받아 보고, 사진이 염탐하기 위해 창기 이서란의 집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오용은 급하게 노준의에게 알리고, 밤새 송강에게 달려가 물었다.
“누가 사진을 보냈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자원해서 갔습니다. 이서란과는 예전에 정이 깊은 사이라고 하면서 갔습니다.”
“형님께서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 있었더라면 결코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창기의 집이라는 곳은 새 손님은 맞이하고 묵은 손님은 내보내는 곳이라, 거기에 빠져 신세 망친 사람이 많습니다. 게다가 물의 성질이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창기가 비록 은정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포주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사진은 이번에 필시 화를 입을 것입니다.”
송강이 오용에게 계책을 묻자, 오용이 고대수를 불러 말했다.
“번거롭지만 자네가 한번 갔다 와야겠네. 가난한 할멈으로 변장하고 성중으로 잠입하여 구걸하다가, 만약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급히 돌아오게. 만약 사진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 옥졸에게 가서 ‘옛정을 생각해서 밥 한 그릇 넣어주고 싶다.’고 애원하게. 그래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몰래 사진에게 이렇게 말하게. ‘우리가 그믐날 밤 황혼 무렵에 성을 공격할 것이니, 급하게 측간에 가야 한다고 핑계대고 탈출할 계책을 생각해 두시오.’ 그리고서 그믐날 밤에 자네가 성중에 방화하여 신호를 보내면, 우리가 공격할 것이네.”
오용은 다시 송강에게 말했다.
“형님께서는 먼저 문상현을 치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이 필시 동평부로 도망쳐 갈 것이니, 그때 고대수가 그들 틈에 섞여 성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오용은 계책을 일러주고 동창부로 돌아갔다.
송강은 해진과 해보에게 5백 인마를 이끌고 가서 문상현을 공격하게 하였다. 과연 백성들은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서 마치 쥐가 이리에게 쫓기듯 동평부로 도망쳤다. 고대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남루한 옷을 입고서 백성들 틈에 섞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다가 관아 앞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과연 사진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고대수는 오용의 지혜가 귀신같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다음 날, 고대수는 밥통을 들고 사옥사 앞에서 오락가락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한 늙은 공인이 감옥에서 나오는 걸 보고, 고대수는 그 앞으로 가서 절을 하면서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늙은 공인이 물었다.
“할멈은 왜 그렇게 우시오?”
고대수가 말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대랑은 저의 옛 주인인데, 헤어진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강호에서 장사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일로 감옥에 갇혔는지 모르겠습니다. 밥을 갖다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이 늙은이가 밥 한 그릇이라도 들여보내 주인의 굶주린 배를 채워 드리고 싶습니다. 이 늙은이를 가련하게 여기시어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면, 칠층보탑을 쌓는 것보다 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공인이 말했다.
“그는 양산박의 도적으로 죽을죄를 지었는데, 누가 감히 당신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겠소?”
고대수가 말했다.
“그의 죄는 칼로 살을 한 점씩 발라내더라도 순순히 그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가련히 여겨 이 늙은이로 하여금 밥 한 끼라도 먹여 옛정을 표현하게 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고대수가 또 슬피 울자, 공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남자라면 데리고 들어갈 수 없지만, 늙은 여자 하나야 뭔 일 있겠나?”
공인은 고대수를 감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진은 목에 무거운 칼을 쓰고 있었고 허리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었는데, 고대수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대수는 한편으로 슬피 울면서 한편으로 밥을 먹였다. 그때 다른 절급이 와서 소리쳤다.
“이놈은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다! 감옥에는 바람도 통하지 않아야 하는데, 누가 너더러 밥을 가져오게 했느냐? 빨리 나가지 않으면 몽둥이맛을 보게 될 거다!”
고대수가 감옥 안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자세히 말하지 못하고 한 마디만 했다.
“그믐날 밤 성을 공격할 것이니, 감옥 안에서 어떻게든 해 보세요.”
사진이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고대수는 절급에게 끌려 나갔다. 사진은 단지 ‘그믐날 밤’만 기억했다.
원래 3월은 30일까지 있는 달이다. 29일이 되었는데, 사진은 감옥 안에서 두 절급이 서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한 절급이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다른 절급이 날짜를 잘못 알고 대답했다.
“오늘이 그믐날이니, 밤에 지전을 살라서 외로운 영혼을 위로해야겠네.”
사진은 그 말을 듣고 밤이 되기만 기다렸다. 밤에 한 절급이 술에 반쯤 취한 채로 사진을 측간으로 데리고 갔다. 사진이 절급에게 소리쳤다.
“뒤에 누구요?”
절급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진은 목에 쓰고 있던 칼을 들어 절급의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쳤다. 절급은 땅에 쓰러졌다. 사진은 벽돌을 주워 칼을 두드려 풀고서, 매의 눈을 부릅뜨고 정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몇 명의 공인이 정자 안에서 술에 취해 있다가, 사진에게 맞아 죽은 자도 있고 도망친 자도 있었다. 사진은 감옥 문을 열고 바깥에서 호응해 주기를 기다렸다.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를 모두 풀어 주니, 5~60명이 되었다. 그들은 감옥 안에서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달려 나왔다.
누군가 달려가 태수에게 보고하였다. 정만리는 보고를 받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황망히 병마도감을 불러 상의하였다. 동평이 말했다.
“성중에 필시 염탐꾼이 있습니다. 일단 많은 사람을 보내 그 도적놈부터 겹겹이 포위하여 잡아야 합니다. 저는 이 기회를 틈타서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송강을 사로잡겠습니다. 상공께서는 성을 굳게 지키면서, 감옥을 포위하여 한 놈도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동평은 말에 올라 군사를 점검하러 갔다. 정태수는 절급과 우후 등을 모두 동원하여 각자 창봉을 들고 감옥 앞으로 가서 함성을 지르게 하였다. 사진은 감옥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못했고, 감옥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도 감히 안으로 돌입하지 못하였다. 고대수는 멀리서 단지 ‘아이고!’ 비명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도감 동평은 병마를 점검하여 새벽에 송강의 영채로 쳐들어갔다. 길에 매복해 있던 군사가 달려와 송강에게 보고했다. 송강이 말했다.
“이는 필시 성안에서 고대수의 일이 잘못된 것이다. 저들이 쳐들어온다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
호령이 내리자 모든 군사가 일어났다. 날이 밝아올 무렵 동평의 군마가 당도했다. 양군이 진세를 펼치자, 동평이 말을 타고 나왔다. 원래 동평은 모든 학문에 통달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산동과 하북 사람들은 ‘풍류 쌍쟁장’이라 불렀다. 송강은 진 앞에 나와 동평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의 화살통에는 작은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거기에는 ‘영웅쌍쟁장 풍류만호후’라고 쓰여 있었다.
송강은 한도를 내보내 동평을 대적하게 하였다. 한도가 철쟁을 들고 곧장 동평에게 달려들었는데, 동평의 쌍쟁 쓰는 솜씨가 신출귀몰하여 당해내지 못하였다. 송강은 다시 금쟁수 서녕을 내보내 한도와 교체하게 하였다. 서녕은 구겸쟁을 들고 달려 나가 동평과 맞붙었다. 두 사람은 5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교전이 오래 되자, 송강은 서녕이 실수할까 염려되어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서녕이 말을 돌려 돌아오자, 동평이 쌍쟁을 들고 추격하여 송강의 진 안으로 돌입했다. 송강이 채찍을 휘두르자, 사방의 군병들이 일제히 동평을 포위했다. 송강이 말을 몰아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보니, 동평이 진 안에서 포위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동평이 동쪽으로 달리면 송강의 깃발도 동쪽을 가리켜 군마들이 동쪽으로 달려 포위하고, 동평이 서쪽으로 달리면 송강의 깃발도 서쪽을 가리켜 군마들이 서쪽으로 달려 포위하였다.
동평은 진 안에서 좌충우돌하며 두 자루 쟁을 휘두르며 싸우다가, 정오가 넘어서야 비로소 길을 뚫고 빠져나갔다. 송강은 추격하지 않았다. 동평은 승전하지 못하자, 저녁에 군사를 거두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송강은 병력을 일으켜 곧장 성 아래까지 돌격하여 겹겹이 포위하였다. 고대수는 감히 불을 지르지도 못하고 있었고, 사진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 채 양편이 대치하고만 있었다.
원래 정태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주 아름다웠다. 동평은 아내가 없어 여러 번 사람을 보내 혼인을 청했으나 정만리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동평은 그날 저녁 성으로 들어와서, 또 정태수에게 사람을 보내 혼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정태수가 회답을 했다.
“나는 문관이고 당신은 무관이니, 사위를 삼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도적이 성 아래까지 쳐들어와서 사태가 위급한데, 이럴 때 만약 혼인을 허락한다면 사람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적병을 물리치고 성을 보호하여 무사해진 다음에 혼사를 의논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회답을 전해들은 동평은, 입으로는 ‘그 말이 옳습니다.’라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다.
그날 저녁 송강이 더욱 거세게 성을 공격하자, 정태수는 동평에게 나가 싸우라고 재촉했다. 동평은 크게 노하여,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삼군을 이끌고 성을 나갔다. 송강이 친히 문기 아래에 나와서 소리쳤다.
“네까짓 무능한 장수가 어찌 우리를 당해내겠느냐? ‘큰 집이 장차 무너지려 하는데, 기둥 하나로는 지탱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내 수하에 웅병 10만과 맹장 천 명이 있어,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여 곤경에 처한 자를 구제하고 위급한 자를 일으켜 주는 것을 너는 보았을 것이다. 빨리 항복하여 죽음을 면하도록 해라!”
동평이 크게 노하여 대답했다.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아전 놈아! 네놈은 죽어 마땅한 미친 무리인데, 어디서 감히 함부로 지껄이느냐!”
말을 마치자, 동평은 쌍쟁을 들고 곧장 송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송강의 왼쪽에서는 임충이, 오른쪽에서는 화영이 달려 나와 동평을 맞이하여 싸웠다. 싸움이 몇 합에 이르자, 두 장수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송강의 군마도 패한 척하면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동평은 공로를 세우고자 말을 박차고 추격했다. 송강 등은 수춘현 경계까지 퇴각했다. 송강이 달아나자 동평이 뒤에서 추격했다.
성에서 10여 리쯤 떨어진 곳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양쪽으로는 모두 초가집이 늘어서 있고 가운데는 큰 길이 나 있었다. 동평은 계략인 줄도 모르고 말을 몰아 추격했다. 송강은 동평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날 밤에 이미 왕왜호 · 일장청 · 장청 · 손이랑으로 하여금 백여 명을 데리고 초가집 안에 매복하게 하였었다. 그리고 말을 옭아매는 밧줄을 길 위에 설치해 놓고 흙을 얇게 덮어 놓고 대기하고 있다가, 징소리를 신호로 하여 동평을 사로잡도록 준비해 두었었다.
동평이 송강을 추격하여 그곳에 당도하자, 뒤편에서 공명과 공량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우리 주인을 다치게 하지 마라!”
그러자 양쪽 초가집 안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문이 일제히 열리더니 길에서 밧줄이 들려 올라가자, 말이 밧줄에 걸려 넘어지면서 동평이 말에서 떨어졌다. 왼쪽에서는 일장청과 왕왜호가, 오른쪽에서는 장청과 손이랑이 일제히 달려 나와 동평을 사로잡았다. 투구와 갑옷을 벗기고, 쌍쟁과 말을 빼앗았다. 두 여두령이 동평을 밧줄로 꽁꽁 묶어 송강 앞으로 끌고 갔다.
송강은 초가집들을 지나가서 말을 세우고 푸른 버드나무 아래에 서서, 두 여두령이 동평을 붙잡아 오는 것을 맞이했다. 송강은 두 여두령에게 소리쳐 물러나게 하였다.
“내가 동장군을 모셔 오라고 있지, 이렇게 묶어 오라고 했느냐!”
두 여두령이 물러나자, 송강은 황망히 말에서 내려 친히 밧줄을 풀어주고 자신의 전포를 벗어 동평에게 입혀주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절을 했다. 동평도 황망히 답례했다. 송강이 말했다.
“장군께서 미천한 저를 버리지 않으시면, 산채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동평이 대답했다.
“소장은 사로잡힌 몸이니, 만 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용서하여 살려만 주신다면 참으로 천만다행입니다.”
“저희 산채는 호수에 면해 있어 평소에 백성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는데, 요즘에 식량이 부족하여 동평부에 식량을 빌리러 왔을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정만리 그놈은 원래 동관의 문하에서 글방선생을 하던 놈인데, 이런 좋은 직위를 얻었으니 어찌 백성을 해치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형님께서 저를 용납해 주신다면, 제가 그놈을 속여 성문을 열게 하고 식량을 빼앗아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명을 내려, 투구와 갑옷, 쌍쟁과 말을 동평에게 돌려주게 하였다. 동평이 앞장서고 송강은 깃발을 말아 감추고 그 뒤를 따라 성 아래로 갔다. 동평의 군마가 앞에서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횃불을 비추어 보고, 동도감임을 확인하고서 즉시 성문을 활짝 열고 조교를 내렸다. 동평이 먼저 말을 박차고 들어가, 조교에 연결된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뒤에서 송강의 군마가 성안으로 쇄도하여 동평부 관아에 당도했다. 송강은 급히 명을 내려 백성을 해치지 말고 집에 불을 지르지 말라고 하였다.
동평은 관아로 달려 들어가 정태수 일가를 모두 죽이고 딸을 탈취하였다. 송강은 감옥 문을 열어 사진을 구출하게 하고, 창고를 열어 금은보화와 식량을 모두 수레에 싣게 하였다. 수레를 양산박 압취탄으로 호송하여, 삼완 두령에게 인계하여 산채로 옮기게 하였다.
사진은 이서란의 집으로 달려가, 포주 일가를 모두 갈가리 찢어 죽였다. 송강은 태수의 가산을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백성을 괴롭히던 관리들은 죽었으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고시문을 길거리에 붙여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송강이 군사를 수습하여 안산진에 당도하자, 백일서 백승이 달려와 동창부의 현황을 보고하였다. 송강은 보고를 듣자,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형제들은 산채로 돌아가지 말고 나를 따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