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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63화

Bollnow 2025. 2. 5. 15:00

원소절이 다가오자, 양중서는 대도 문달에게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가서 비호욕에 주둔하면서 도적을 방어하라고 하였다. 14일에는 천왕 이성에게 철기마군 5백을 거느리고 성을 돌면서 순시하게 하였다.

정월 15일 원소절이 되었다. 날이 청명하여 황혼 무렵에 보름달이 떠오르고, 모든 거리와 곳곳마다 등불이 켜지고 명절놀이가 시작되었다.

그날 저녁 절급 채복은 아우 채경에게 감옥을 잘 지키라고 분부하고 말했다.

나는 잠시 집에 갔다 오겠네.”

채복이 집으로 가서 막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두 사람이 재빨리 뛰어 들어왔다. 앞선 사람은 군관 복장이었고, 뒷사람은 하인 모양새였다. 등불 아래에서 보고, 채복은 소선풍 시진임을 알아보았다. 뒷사람은 철규자 악화였다. 채복이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하여 술을 대접하였다. 시진이 말했다.

술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온 것은 긴급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원외와 석수를 족하가 잘 보살펴 줘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원소절의 소란한 틈을 타서 감옥에 들어가 한번 살펴보고자 하니, 거절하지 마시고 우리를 안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채복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간, 성이 깨뜨려지면 좋을 것이 없고 가족들도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하는 수 없이 피바다가 될 각오를 하고, 자신의 낡은 옷을 가지고 나와 두 사람에게 갈아입게 하여 공인으로 꾸며 감옥으로 데리고 갔다.

저녁 8시 무렵, 왕영·일장청·손신·고대수·장청·손이랑 세 부부는 시골사람으로 분장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동문으로 갔다. 공손승은 가시나무 광주리를 지고 있는 능진과 함께 관아 주변에 있는 성황묘 안의 복도에 앉아 있었다. 추연과 추윤은 등을 메고 성중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두천과 송만은 각각 수레 한 대씩을 밀고 양중서의 관아 앞에 와서 사람들이 소란한 틈에 섞여 있었다.

양중서의 관아는 동문 안의 큰 거리에 있었다. 유당과 양웅은 곤봉을 들고 몸에 무기를 감추고 관아 앞 다리 양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청은 장순과 함께 수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와 조용한 곳에 매복하고 있었다.

얼마 후 성루에서 밤 10시를 알리는 북이 울렸다. 시천은 유황과 염초 같은 불붙일 재료를 담은 바구니를 짊어졌는데, 위에는 여자 머리장식을 꽂아 감추고서 취운루 뒤로 돌아가 위로 올라갔다. 누각 안에서는 생황을 불고 북을 두드리는 소리로 시끄러웠고, 젊은이들이 떠들면서 등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천은 누각에 올라가 머리장식을 파는 것처럼 이쪽저쪽을 살피고 다니다가, 삼지창에 토끼를 매달고 어슬렁거리는 해진·해보를 만났다. 시천이 말했다.

시간이 다 됐는데, 바깥에서는 왜 움직임이 없습니까?”

해진이 말했다.

우리가 방금 누각 앞에서 탐마가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아마 병마가 당도한 것 같네. 자네는 맡은 일을 수행하게.”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누각 앞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양산박 군마가 서문 밖에 당도했다!”

해진이 시천에게 분부했다.

빨리 가게. 우리는 유수사 앞에서 접응하겠네.”

해진과 해보가 유수사 앞으로 달려가 보니, 패잔병들이 일제히 성안으로 달려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문대도가 영채를 기습당했다! 양산박 도적들의 군대가 성 아래에 당도했다!”

이성이 성벽 위에서 순시하다가 그 외침을 듣고 나는 듯이 유수사 앞으로 달려와, 군병을 점검하여 성문을 닫고 성을 사수하라고 명하였다.

한편, 왕태수는 백여 명을 인솔하고 죄수에게 씌우는 칼과 쇠사슬을 늘어놓고 거리에서 사람들은 진압하고 있다가, 보고를 받고 황망히 유수사 앞으로 달려왔다. 양중서는 관아에서 술에 취해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 처음 보고를 받고서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1시간쯤 후에 연이어 유성마가 달려와 보고하자, 크게 놀라 혼이 달아난 듯 황망히 말을 준비하라고 소리쳤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취운루에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달빛도 무색할 만큼 큰 불길이었다. 양중서는 불길을 보고 급히 말에 올라 취운루로 달려가려고 했는데, 두 사내가 수레를 밀고 들어와 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옆에 걸려 있던 등불로 수레에 불을 붙이자, 금방 불길이 치솟았다. 양중서가 동문으로 달려가려 하자, 두 사내가 나타나 소리쳤다.

이응과 사진이 여기 있다!”

두 사람이 박도를 들고 쳐들어오자,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은 깜짝 놀라 달아나다가 10여 명이 박도에 맞아 쓰러졌다. 두천과 송만도 접응하여, 네 사람은 동문을 점거했다. 양중서는 형세가 불리함을 알고 수행원들을 데리고 남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남문에서 도망쳐 온 군사가 말했다.

어떤 뚱뚱한 화상이 철선장을 휘두르고, 범 같은 행자가 계도 두 자루를 휘두르면서 고함을 치며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양중서는 말을 돌려 다시 유수사 앞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해진과 해보가 삼지창을 휘두르며 이쪽저쪽으로 날뛰고 있었다. 양중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왕태수는 유수사 앞으로 달려오다가, 유당과 양웅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오면서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다. 왕태수를 따라오던 관군들은 각자 목숨을 걸고 달아났다.

양중서는 급히 말을 돌려 서문으로 달려갔는데, 성황묘 안에서 화포가 일제히 터지면서 천지가 진동하였다. 추연과 추윤은 대나무장대를 들고 다니며 집집마다 처마 밑에 불을 질렀다. 남쪽 공연장 앞에서는 왕영과 일장청이 쳐들어왔는데, 손신과 고대수도 숨기고 있던 무기를 꺼내 협력하였다. 동불사 앞에서는 장청과 손이랑이 자라 모양의 산에 기어 올라가 불을 질렀다.

이때 북경성 안의 백성은 저마다 달아나기에 급급했고 집집마다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비명이 들렸다. 사방 수십 곳에서 불빛이 하늘까지 뻗쳐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양중서는 달려가다가 이성의 군마를 만나 남문 위로 올라가 성루에서 내려다보니, 성 아래에 병마가 가득 늘어서 있는데 깃발에 대장 호연작이라고 쓰여 있었다. 불빛 속에서 용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왼쪽에는 한도, 오른쪽에는 팽기가 있었다. 황신은 뒤에서 인마를 재촉하여 기러기가 날개를 펼친 듯한 형상으로 달려와 금방 남문 아래 당도하였다.

양중서는 성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성과 함께 북문으로 달려갔는데, 멀리 밝은 불빛 아래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군마 가운데 표자두 임충이 말을 타고 쟁을 비껴들고 있었다. 왼쪽에는 마린, 오른쪽에는 등비가 있었다. 뒤에서는 화영이 인마를 재촉하여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양중서가 다시 동문으로 달려가 보니, 횃불이 연이어 있는 가운데 몰차란 목홍이 왼쪽에는 두흥, 오른쪽에는 정천수를 데리고 박도를 휘두르며 천여 명의 보군을 이끌고 성안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양중서는 남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길을 뚫고 달아났다. 조교 옆에서 횃불이 일제히 밝혀지면서 흑선풍 이규가 왼쪽에는 이립, 오른쪽에는 조정을 데리고 쳐들어오는데, 이규는 웃통을 벗어 제치고 이빨을 뿌드득 갈면서 쌍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성이 앞장서서 사력을 다해 혈로를 뚫고 양중서를 보호하면서 성 밖으로 달아났다.

그때 왼편에서 함성이 진동하면서 횃불이 환한 가운데 무수한 군마가 쳐들어오는데, 대도 관승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휘두르며 곧장 양중서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이 쌍도를 들고 관승을 대적하였다. 하지만 이때 이성은 이미 싸울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돌려 달아났다. 그러자 왼편에서는 선찬, 오른편에서는 학사문이 협공을 해 오고 뒤에서는 손립이 인마를 재촉하여 쳐들어왔다.

한참 싸우고 있는데, 등 뒤에서 소이광 화영이 추격해 와서 화살을 날려 이성의 부장을 맞혀 말에서 떨어뜨렸다. 이성은 그걸 보고 나는 듯이 말을 몰아 달아났다. 화살의 사정권을 미처 벗어나지 못했는데, 오른편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면서 불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가운데 벽력화 진명이 연순과 구붕을 이끌고 낭아곤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뒤에서는 양지가 또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성은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달아나 군사의 태반을 잃고서 겨우 양중서를 보호하여 길을 뚫고 도주하였다.

한편, 성안에서는 두천과 송만이 양중서의 가족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렸고, 유당과 양웅은 왕태수의 가족을 몰살하였다. 공명과 공량은 사옥사 뒷담을 기어 올라갔고, 추연과 추윤은 사옥사 앞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가로막았다. 감옥 안에 있던 시진과 악화는 불길이 치솟는 걸 보고, 채복과 채경에게 말했다.

당신네 형제들은 저걸 봤소? 못 봤소? 언제까지 기다릴 거요?”

채경이 문 앞에 나가 보니, 추연과 추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양산박 호걸이 모두 왔다! 좋은 말로 할 때 노원외와 석수를 내놓아라!”

채경이 황망히 안으로 들어가 채복에게 알리는데, 공명과 공량이 감옥 지붕 위에서 뛰어 내렸다. 채복·채경 형제가 허락하기도 전에 시진이 몸에서 기계를 꺼내 칼을 벗기고 노준의와 석수를 풀어 주었다. 시진이 채복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빨리 나와 함께 가서 가족들을 보호하시오!”

그리고는 함께 감옥문을 나갔다. 추연과 추윤이 맞이하여 함께 협력했다. 채복과 채경은 시진을 따라 집으로 달려가 가족을 보호했다. 노준의는 석수·공명·공량·추연·추윤을 데리고 이고와 가씨를 붙잡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한편, 이고는 양산박 호걸들이 군마를 이끌고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또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가씨와 상의하여 귀중품을 수습하여 등에 지고 문을 나가 달아나려고 했다. 문을 밀고 나가려 하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고와 가씨는 황망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고 담장을 돌아 물가로 내려가 피할 곳을 찾으려 하였다. 그때 물가에서 장순이 소리쳤다.

이 연놈들이 어디로 달아나려고 하느냐!”

이고는 당황하여 배 안으로 뛰어들어 숨으려고 하였다. 막 선창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손을 뻗어 이고의 수염을 잡으며 소리쳤다.

이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이고가 목소리를 들어 보니 연청이었다. 이고는 황망히 소리쳤다.

연형! 나는 당신과 원수진 일이 없소! 나를 물가로 끌고 올라가지 마시오!”

물가에서는 장순이 이미 가씨를 붙잡아 옆구리에 끼고 배 옆으로 왔다. 연청도 이고를 붙잡아 끌고 함께 동문으로 달려갔다.

한편, 노준의는 집으로 달려갔는데 이고와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불러 집안의 재물을 모두 수레에 실어 양산박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한편, 시진과 악화는 채복으로 집으로 가서 가족과 재물을 수습하여 함께 산채로 가기로 하였다. 채복이 시진에게 말했다.

대관인! 성안의 백성을 구해 주십시오! 해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시진이 그 말을 듣고 군사 오용을 찾아가 얘기했다. 오용이 급히 양민을 살해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지만, 성안 사람은 이미 절반이나 죽거나 부상당한 상태였다.

날이 밝아오자 오용과 시진은 성안에 징을 울려 군사를 철수하였다. 여러 두령들이 노준의와 석수를 유수사 앞에서 맞이했고, 노준의는 감옥 안에서 채복·채경 형제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 연청과 장순이 이고와 가씨를 붙잡아 왔다. 노준의는 연청에게 연놈을 감시하라고 이르고, 나중에 처분하기로 했다.

한편, 이성은 양중서를 보호하여 성을 나가 달아나다가 패잔병을 이끌고 오던 문달을 만나, 함께 남쪽으로 도주하였다. 한참 달아나고 있는데, 앞쪽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혼세마왕 번서가 왼쪽에는 항충, 오른쪽에는 이곤을 데리고 비도와 비창을 휘두르며 쳐들어왔다. 뒤에서는 삽시호 뇌횡이 시은·목춘과 함께 1천 보군을 이끌고 퇴로를 차단했다.

양중서는 이성·문달과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황급히 남쪽으로 달아나고 있는데, 또 두 부대의 복병이 앞뒤에서 쳐들어왔다. 이성이 앞장서고 문달이 뒤를 막으면서 양중서를 보호하여 결사적으로 싸워 포위를 뚫고 탈출했다. 투구는 삐뚤어지고 갑옷은 너덜너덜해지고 인마는 거의 다 잃었지만, 세 사람은 목숨을 건져 서쪽으로 도주하였다. 번서는 항충과 이곤을 이끌고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뇌횡·시은·목춘과 함께 북경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군사 오용은 성안에 명령을 내려, 한편으로는 방을 붙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불을 끄게 하였다. 양중서·이성·문달·왕태수의 가족 중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달아난 사람은 그대로 달아나게 두고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하였다.

대명부의 창고를 열어 금은보화와 비단 등을 모두 수레에 싣게 하고, 곳집을 열어 백성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역시 수레에 실어 양산박으로 운반하게 하였다. 모든 두령들에게 인마를 정돈하여 출발 준비를 완료하라고 명하고, 이고와 가씨는 함거에 가두어 끌고 가게 하였다. 모든 군마를 세 부대로 나누어 양산박으로 돌아왔다.

대종이 먼저 가서 송공명에게 알리자, 송강은 모든 두령들을 불러 모아 산을 내려가 영접하였다. 모두 충의당에 오르자, 송강은 노준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노준의가 황망히 답례하자, 송강이 말했다.

저희는 원외를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 함께 대의를 행하고자 했는데, 뜻밖에 이런 고난을 당하게 하여 가슴을 칼로 베듯 아팠습니다. 황천이 보우하사 오늘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노준의가 사례하며 말했다.

위로는 형님의 범 같은 위엄과 아래로는 여러 두령들의 은덕으로 이렇게 살아났으니, 간뇌도지(肝腦塗地)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노준의는 채복과 채경을 불러 송강에게 인사시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살아서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

송강이 노준의를 첫째 두령으로 앉히려고 하자, 노준의가 절하며 말했다.

제가 어떤 인간이라고 감히 산채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형님의 말채찍을 잡고 등자를 받치는 소졸이 되어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만 있다면, 실로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송강이 재삼 청했지만, 노준의가 어찌 감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러자 이규가 말했다.

형님이 만약 산채의 주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요!”

무송이 말했다.

형님이 자꾸 양보하기만 하면, 우리 형제들의 마음도 차갑게 식을 겁니다.”

송강이 소리쳤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더 이상 지껄이지 마라!”

노준의가 황망히 절하며 말했다.

형님께서 끝내 양보하신다고 하면, 저는 이곳에 편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규가 소리쳤다.

이런 짓거리 집어치우고, 형님은 황제가 되고 노원외는 승상이 되고 우리는 모두 대관이 되어, 동경으로 쳐들어가 그 좆같은 자리를 탈취하면 되잖아! 여기서 지랄하지 말고!”

송강이 크게 노하여 이규를 꾸짖자, 오용이 권했다.

일단 노원외를 동쪽 곁방에서 쉬게 하여 손님으로 대접하다가, 훗날 공을 세우면 그때 다시 양보하시지요.”

송강은 비로소 기뻐하면서, 연청을 불러 노준의를 거처로 모셔가게 하였다. 그리고 별도로 가옥을 배정하여 채복과 채경의 가족들이 살게 하였다. 관승의 가족도 설영이 산채로 데리고 왔다. 송강은 크게 연회를 열어 마군·보군·수군 삼군에 상을 내려 위로하고, 대소 두령들에게 수하들을 데리고 각자 술을 마시게 하였다. 충의당 위에서도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고, 대소 두령들이 서로 겸양하면서 술을 마시고 마음껏 즐겼다.

노준의가 일어나서 말했다.

음부와 간부를 붙잡아 왔는데,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잊고 있었습니다. 두 연놈을 데리고 오너라!”

군사들이 함거에서 둘을 꺼내 충의당 앞으로 끌고 왔다. 이고는 왼쪽 장군기둥에 묶고, 가씨는 오른쪽 장군기둥에 묶었다. 송강이 말했다.

저것들의 죄악은 물을 것도 없으니, 원외께서 알아서 처분하십시오.”

노준의가 단도를 들고 당을 내려가, 음탕한 년과 도적 종놈이라 욕하고서 둘의 배를 갈라 심장을 도려내고 사지를 절단한 다음 목을 잘랐다. 시체를 내버리고 당에 올라와 여러 두령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두령들은 모두 축하하여 마지않았다.

한편, 북경의 양중서는 양산박 군마가 퇴각했다는 것을 알고, 이성·문달과 패잔병을 이끌고 성으로 돌아왔다. 가족을 찾아보니 열에 여덟아홉은 죽은 것을 알고, 모두 통곡하였다. 인근 지역에서 군대를 일으켜 양산박 인마를 추격했으나, 이미 멀리 가 버린 뒤라 각자 철수하였다.

양중서의 부인은 화원으로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남편을 시켜 조정에 표를 써서 아뢰고 채태사에게도 서신을 보내, 빨리 군대를 파견하여 도적을 소탕하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요청하게 하였다. 피해 상황도 기록했는데, 민간의 피살자가 5천여 명이고 부상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며, 각 부대의 군마는 3만여 명을 잃었다.

조정에 올리는 상주문과 채태사에게 보내는 밀서를 지닌 사자가 동경 태사부로 달려갔다. 문지기가 보고하자, 태사가 불러들였다. 사자가 절당으로 가서 절을 올리고 밀서와 상주문을 바치며, 북경성이 깨뜨려졌는데 도적의 세력이 너무 커서 대적할 수 없었음을 자세히 설명했다.

채경은 처음에 도적들을 초안하여 그 공을 양중서에게로 돌리고 자신도 황제의 총애를 받으려 했었는데, 이제 일을 다 망치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전쟁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채경은 노하여 소리쳤다.

사자는 물러가라!”

다음 날, 새벽 5시를 알리는 경양루의 종이 울리고 대루원에 문무 대신들이 모이자, 채태사가 앞으로 나와 옥계에 이르러 도군황제에게 아뢰었다. 천자가 상주문을 보고 크게 놀라자, 간의대부 조정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전에도 몇 번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려 하였으나, 모두 장병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잃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신의 우견으로는, 칙령을 내려 죄를 사면하고 초안하여 궁궐로 불러들여 신하로 삼으시어, 변방의 해악을 방어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채경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너는 간의대부인데 도리어 조정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소인배들이 창궐하게 하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천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저놈을 조정에서 내쫓아라!”

즉시 조정의 관작을 삭탈하고 서민으로 강등시켰다. 그러니 누가 감히 다시 아뢸 수 있겠는가?

천자가 채경에게 물었다.

저 도적들이 창궐하는데, 누구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 좋겠소?”

채태사가 아뢰었다.

신이 생각하기에, 저런 산야의 도적떼를 소탕하는 데에는 대군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능주의 두 장수를 천거하고자 합니다. 단정규(單廷珪)와 위정국(魏定國)인데, 현재 능주의 단련사로 있습니다. 폐하께서 성지를 내려 그들로 하여금 군마를 거느리고 가서 양산박을 소탕하게 하시옵소서.”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칙령을 내려 추밀원에서 사자를 파견하도록 하였다. 천자가 일어나자 백관은 퇴청하였는데, 모두 마음속으로 몰래 비웃었다. 다음 날, 채경은 추밀원 관리로 하여금 성지를 받들어 능주로 가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북경에서 획득한 재물을 삼군에 상으로 나누어주고, 소와 말을 잡아 연일 연회를 열고 노준의가 온 것을 축하하였다. 비록 봉이나 용의 요리는 없었지만, 고기는 산을 이룰 만큼 술은 바다를 이룰 만큼 많았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오용이 송강에게 말했다.

지금 노원외를 위하여 북경을 쳐부수고 많은 인민을 살상했으며 창고를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양중서를 성에서 내쫓아 멀리 달아나게 했으니, 그가 반드시 조정에 아뢰었을 겁니다. 게다가 양중서의 장인이 조정의 태사이니,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필시 군마를 일으켜 토벌하러 올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께서 염려하는 바가 이치에 맞습니다. 북경으로 사람을 보내 허실을 정탐하고 거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오용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돌아올 겁니다.”

연석에서 상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정탐꾼이 돌아와 보고했다.

북경의 양중서가 조정에 상주하여 병력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간의대부 조정이 초안을 아뢰었다가, 채경으로부터 욕을 먹고 관직을 삭탈 당했습니다. 채경이 천자에게 아뢰어, 능주의 단련사인 단정규와 위정국으로 하여금 군마를 일으켜 토벌하라고 하였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겠소?”

오용이 말했다.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잡으면 됩니다.”

관승이 일어나 송강과 오용에게 말했다.

제가 산에 올라온 이후 형님께서 후대해 주셨는데, 아직까지 크게 힘쓴 적이 없었습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포동에 있을 때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단정규는 물을 이용하여 적을 물리치는 법에 능해 사람들이 성수장군(聖水將軍)이라 부르고, 위정국은 화공병법에 능하여 화기(火器)를 잘 사용하므로 신화장군(神火將軍)이라 불립니다.

제가 재주 없지만, 5천 군사를 빌려주시면 그 두 장수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제가 먼저 능주로 가서 도중에 맞이하겠습니다. 만약 저들이 투항한다면 산으로 데려올 것이고, 만약 투항하지 않는다면 생포하여 형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 두령들이 활을 당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형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선찬과 학사문을 불러 관승과 함께 가게 하였다. 관승은 5천 군마를 거느리고 다음 날 산을 내려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하였고, 관승 등 세 사람은 병력을 거느리고 떠났다. 두령들이 충의당으로 돌아오자, 오용이 송강에게 말했다.

관승이 지금 떠났는데, 그 마음을 아직 믿지 못하겠습니다. 다시 장수를 보내 뒤를 따라가 감독하게 하고, 상황에 따라 접응하게 하십시오.”

송강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관승은 의기가 늠름하고 시종여일(始終如一)합니다. 군사는 너무 의심하지 마시오.”

오용이 말했다.

그의 마음이 형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임충과 양지로 하여금 손립과 황신을 부장으로 삼아 5천 인마를 거느리고 즉시 산을 내려가게 하십시오.”

이규가 말했다.

나도 갈래.”

송강이 말했다.

이번 일에는 너를 쓸 수 없다. 다른 장수를 보내 공을 세우도록 할 것이다.”

이규가 말했다.

난 한가하면 병이 생긴단 말이오. 날 안 보내주면 혼자서 갈 거요.”

송강이 꾸짖었다.

내 군령을 듣지 않으면, 네놈 목부터 잘라 버리겠다!”

이규는 그 말을 듣고 우울해 하면서 당에서 내려갔다. 임충과 양지는 병력을 거느리고 산을 내려가 관승을 접응하러 갔다.

다음 날, 군졸이 와서 보고했다.

흑선풍 이규가 어젯밤에 쌍도끼를 들고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송강이 보고를 듣고 아이고!’ 소리치며 괴로워했다.

내가 어제 그놈을 좀 나무랐더니, 아마 다른 데로 가 버렸나 보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우가 거칠기는 하지만 의기를 중하게 여기므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 겁니다. 아마 이틀쯤 지나면 돌아올 것이니,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송강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먼저 대종에게 쫓아가라고 한 다음, 다시 시천·이운·악화·왕정륙에게 네 길로 가서 이규를 찾게 하였다.

한편,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밤에 산을 내려와 지름길을 택해 능주를 향해 가면서 생각했다.

그 좆같은 장군 두 놈이 뭐라고 그렇게 많은 군마를 데리고 치러 간다는 거야! 내가 성안으로 들어가 도끼 한 방에 한 놈씩 죽여 버리고, 형님을 놀라게 해줘야지! 그러면 딴 사람들도 기가 죽겠지!”

반나절을 걷다 보니 배가 고팠는데, 너무 서둘러 산을 내려오다 보니 노자를 가져오지 않아 음식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이규는 생각했다.

어디 가서 이 좆같은 기분을 한번 풀어 볼까?”

걷다 보니 길옆에 시골 주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이규는 주점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 세 병과 고기 두 근을 시켜 먹고서 일어나 주점을 나가려고 했다. 점원이 가로막고서 돈을 내라고 하자, 이규가 말했다.

내가 먼저 가서 장삿거리를 좀 찾아서 올 테니, 넌 기다려라.”

그렇게 말하고서 막 나가려고 하는데, 바깥에서 표범 같은 덩치 큰 사내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이 시커먼 놈이 참으로 대담하구나! 누가 연 주점인데, 네놈이 감히 공짜로 처먹으려고 하냐! 빨리 돈을 내놓아라!”

이규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 어르신은 어디를 가든 공짜로 먹는다!”

사내가 말했다.

내가 누군지 말하면, 네놈은 깜짝 놀라 오줌을 질질 싸고 방귀가 절로 나올 것이다! 이 어르신은 양산박의 호걸 한백룡이시다! 이 주점의 밑천도 모두 송강 형님이 대주신 것이다!”

이규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내가 산채 어디서도 이런 좆같은 놈을 본 적이 없는데

원래 한백룡은 강호에서 강도짓을 하면서 살다가 양산박으로 가서 입당하려고 한지홀률 주귀를 찾아갔었다. 그때 마침 송공명이 등에 종기가 나고 북경으로 병력을 보내느라 바빴기 때문에, 주귀가 잠시 주점을 열고 술을 팔면서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이규는 허리춤에서 쌍도끼를 뽑아 내밀면서 한백룡에게 말했다.

이 쌍도끼를 저당 잡히겠다.”

한백룡은 그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손을 내밀어 받으려고 했는데, 이규가 도끼를 들어 머리를 정통으로 내리찍어 버렸다. 가련하게도 한백룡은 반평생을 강도로 살다가 이규의 손에 죽고 말았다. 두세 명의 주점 일꾼들은 부모가 다리를 두 개만 낳아준 것을 원망하며 마을로 달아났다. 이규는 주점을 뒤져 노자를 챙기고 불을 지른 다음, 능주를 향해 걸어갔다.

그날 하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걸었는데, 관도 옆을 지나가던 어떤 덩치 큰 사내가 이규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규가 사내를 보고 소리쳤다.

네놈은 왜 이 어르신을 쳐다보냐?”

사내가 대답했다.

네가 무슨 어르신이냐?”

이규가 달려들다가, 사내의 주먹에 한 대 맞고 나가 떨어졌다. 이규는 생각했다.

이놈이 제법 주먹을 쓸 줄 아네!”

이규는 땅바닥에 앉아서 사내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이! 이름이 뭐요?”

사내가 말했다.

이 어르신은 이름이 없다. 한번 붙어 보려면 일어나 봐라!”

이규는 크게 노하여 벌떡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사내의 발길에 옆구리를 걷어 채이고 벌러덩 넘어졌다. 이규가 소리쳤다.

졌다!”

이규가 기어서 일어나 달아나려 하자, 사내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시커먼 놈아! 넌 누구냐?”

내 이름을 말해 주면, 네놈이 놀랄 건데? 나는 양산박의 흑선풍 이규다!”

정말이냐? 거짓말 하지 마라!”

못 믿겠거든, 이 쌍도끼를 봐라.”

양산박의 호걸이라면, 혼자서 어디로 가는 거냐?”

내가 형님에게 삐쳐서, 단가놈과 위가놈을 죽이러 능주로 간다.”

양산박의 군마가 이미 떠났다고 들었는데, 누가 갔는지 아냐?”

먼저 대도 관승이 병력을 이끌고 갔고, 뒤를 이어 표자두 임충과 청면수 양지가 접응하러 갔다.”

사내는 그 말을 듣고 엎드려 절을 했다. 이규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누구요?”

저는 중산부 사람인데, 조상 때부터 삼대째 씨름을 생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손발 쓰는 기술은 부자간에만 전수하고 제자를 길러 가르치지 않습니다. 평생 누구의 체면도 봐주는 법이 없고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므로, 산동과 하북에서는 모두 저를 몰면목(沒面目) 초정(焦挺)이라 부릅니다. 근래에 들으니, 구주 고수산에 평생 살인을 좋아하는 포욱(鮑旭)이라는 강도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이 그를 재앙의 신인 상문신(喪門神)에 비교한다고 합니다. 지금 그를 찾아가서 입당하려고 합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어찌하여 송공명 형님을 찾아오지 않았소?”

저도 여러 번 양산박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연줄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형님을 만났으니, 형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내가 송공명 형님과 말다툼을 하고 산을 내려왔는데, 한 놈도 죽이지 못하고 빈손으로 어떻게 돌아가겠소? 나랑 같이 고수산으로 가서 포욱을 설득하여 함께 능주로 가서 단가와 위가를 죽이고 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능주는 큰 성이어서 군마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한들, 거길 갔다간 헛되이 목숨을 잃고 말 것입니다. 차라리 고수산으로 가서 포욱을 설득하여 양산박으로 가서 입당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데, 뒤에서 시천이 쫓아와 말했다.

송공명 형님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지금 네 길로 나누어서 형님을 찾고 있어요.”

이규는 초정을 시천에게 인사시켰다. 시천이 이규에게 산으로 돌아가기를 권했다.

송공명 형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규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초정과 상의했는데, 먼저 고수산으로 가서 포욱을 설득해서 같이 돌아갈게.”

시천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형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산채로 돌아갑시다.”

이규가 말했다.

자네가 나를 따라가지 않겠다면, 먼저 산채로 돌아가 내가 곧 돌아갈 거라고 형님께 알리게.”

시천은 이규가 두려워서 혼자 산채로 돌아갔다. 초정은 이규와 함께 구주 고수산을 향해 떠나갔다.

한편, 관승은 선찬·학사문과 함께 5천 군마를 거느리고 능주에 접근했다. 능주태수는 동경으로부터 군사를 일으키라는 칙명과 채태사의 공문을 받고, 병마단련사 단정규와 위정국을 불러 상의했다. 두 장수는 공문을 받고 즉시 군병을 점검하고 무기와 군량을 수령하여 날을 정해 출병할 준비를 했다. 그때 포동의 대도 관승이 군마를 이끌고 쳐들어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하여 군마를 수습하여 성을 나가 적을 맞이하였다. 양군이 접근하여 깃발이 서로 보일 거리가 되자, 문기 아래에 관승이 말을 타고 나왔다. 반대 진영에서는 북소리가 울리면서 성수장군 단정규와 신화장군 위정국이 말을 타고 나왔다. 관승이 그들을 보고 마상에서 말했다.

두 분 장군! 오랜만입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크게 웃고서 관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꾸짖었다.

무능한 소인배! 나라를 배반한 미친 놈! 위로는 조정의 은혜를 배신하고 아래로는 조상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서도 죽을 줄도 모르는 놈아! 군사를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무슨 예의를 말한단 말이냐?”

관승이 말했다.

두 분 장군이 틀렸습니다. 지금 주상은 사리에 어둡고 간신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어, 자기들과 친하지 않으면 등용하지 않고 자기들과 원수가 아니면 비판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송공명 형님은 인덕으로 은혜를 베풀며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고 있는데, 특별히 두 분 장군을 초청하기 위해 저를 보냈습니다. 함께 산채로 가시지요.”

단정규와 위정국은 크게 노하여 일제히 말을 몰아 달려 나왔다. 한 사람은 북방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처럼, 또 한 사람은 남방에서 밀고 올라오는 열화처럼 나는 듯이 달려왔다. 관승이 막 대적하러 나가려는 찰나, 왼쪽에서는 선찬이 오른쪽에서는 학사문이 달려 나가 진 앞에서 두 사람과 맞붙었다.

칼과 칼이 부딪히니 만 갈래 서늘한 빛이 번쩍이고, 쟁과 쟁이 마주치니 살기가 뻗쳤다. 관승이 멀리서 보고 있자니, 신화장군은 싸울수록 패기가 넘치고, 성수장군도 한 점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한참 싸우다가, 두 장수가 말머리를 돌려 본진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하자, 학사문과 선찬은 즉시 추격하여 진중으로 돌입하였다.

위정국은 왼쪽으로 돌고 단정규는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선찬은 위정국을 추격하고 학사문은 단정규를 추격하였다. 선찬이 추격해 가자, 붉은 갑옷을 입고 붉은 깃발을 든 5백 명의 보군이 에워싸면서 일제히 갈고리를 던져 사람과 말을 한꺼번에 사로잡아 버렸다. 학사문도 단정규를 추격하여 오른쪽으로 돌아갔는데, 검은 갑옷을 입고 검은 깃발을 든 5백 명의 보군이 에워싸면서 뒤에서 일제히 달려들어 학사문을 사로잡아 버렸다. 가련하게도 두 장수의 용맹이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두 장수를 능주로 끌고 가는 한편, 5백 정병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 관승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대패하고 퇴각하자, 단정규와 위정국이 말을 박차고 추격해 왔다. 관승이 한참 달아나고 있는데, 앞에서 두 장수가 나타났다. 관승이 보니, 왼쪽에는 임충, 오른쪽에는 양지였다. 두 장수가 양쪽에서 협공하여 능주 군마를 물리치자, 관승은 본부 패잔병을 수습하여 임충·양지의 군사와 합쳤다. 뒤이어 손립과 황신도 당도하여 영채를 세웠다.

한편, 단정규와 위정국은 선찬과 학사문을 사로잡아 승전하고 성중으로 돌아갔다. 장태수가 맞이하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축하하였다. 한편으로 함거를 만들어 선찬과 학사문을 가두고, 한 편장으로 하여금 3백 보군을 이끌고 동경으로 압송하여 조정에 아뢰게 하였다.

편장이 3백 인마를 거느리고 선찬과 학사문을 압송하여 동경으로 가는 도중에 고목이 울창하고 갈대가 무성한 어떤 산 앞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강도들이 튀어나왔다. 앞장선 자는 손에 쌍도끼를 들고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는데, 바로 양산박의 흑선풍 이규였다. 뒤를 따라 나온 호걸은 몰면목 초정이었다.

이규와 초정은 졸개들을 이끌고 길을 가로막더니, 아무런 말없이 함거부터 공격했다. 편장이 급히 달아나는데, 뒤에서 험악하게 생긴 또 한 명의 호걸이 달려들었다. 바로 상문신 포욱이었다. 포욱이 한 칼에 편장을 베어 말에서 떨어뜨리자, 나머지 병사들은 함거를 내버리고 모두 달아났다. 이규가 함거를 들여다보니, 선찬과 학사문이었다. 이규가 사정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선찬이 먼저 이규에게 물었다.

여긴 웬 일이오?”

이규가 말했다.

송공명 형님이 날 싸우러 가지 못하게 해서, 혼자 몰래 산을 내려왔다가 먼저 한백룡을 죽이고 후에 초정을 만났는데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소. 포욱은 처음 봤는데 마치 오래된 친구 같았고, 친형제처럼 대접해 주었소. 그래서 능주를 공격하려고 상의하고 있었는데, 한 졸개가 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가 한 떼의 인마가 함거를 압송해 가고 있다고 보고를 했소. 관병이 도둑을 체포해 가나 보다 생각했는데, 뜻밖에 두 분이었소.”

포욱은 두 사람을 산채로 청해 소를 잡아 대접했다. 학사문이 말했다.

형제가 이미 양산박에 입당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본부 인마를 이끌고 가서 함께 능주를 공략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소.”

포욱이 말했다.

저도 이형과 그렇게 상의했는데, 족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희 산채에 좋은 말이 2~3백 필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섯 호걸은 6~7백 명의 졸개를 이끌고 능주를 공략하러 갔다.

한편, 달아난 군사들은 능주로 돌아가 장태수에게 보고했다.

도중에 강도들이 나타나서 함거를 탈취하고 편장을 죽였습니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보고를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번에 잡히기만 하면 여기서 죽여 버리겠다!”

그때 성 밖에서 관승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걸었다. 단정규가 먼저 말을 타고 검은 갑옷을 입은 5백 보군을 거느리고 성을 나갔다. 문기가 열리면서 성수장군 단정규가 나와 관승을 꾸짖었다.

나라를 욕되게 한 패장아! 어찌 아직도 뒈지지 않았냐!”

관승은 그 말을 듣고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50여 합을 싸웠을 무렵 관승이 말머리를 돌려 황망히 달아났다. 단정규가 즉시 추격하여 약 10여 리쯤 달려갔을 때, 관승이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네 이놈!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단정규가 쟁으로 곧장 관승의 등을 찌르자, 관승이 귀신같은 위력을 발휘하여 칼등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떨어져라!”

단정규가 칼등에 맞고 말에서 떨어지자, 관승이 바로 말에서 내려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장군! 용서하시오!”

단정규가 황공하여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항복하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관승이 말했다.

내가 송공명 형님께 장군을 여러 번 천거했었소. 두 분 장군과 함께 대의를 행하고자 특별히 온 것이오.”

단정규가 대답했다.

제가 재주는 없지만,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여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말을 나란히 하여 돌아오자, 임충이 두 사람을 맞이하면서 함께 온 까닭을 물었다. 관승은 승패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산의 후미진 곳에서 옛정을 호소하고 새 일을 논의하여, 투항을 권했습니다.”

임충 등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단정규가 다시 본진 앞으로 돌아가 자신이 투항했음을 알리자 5백 명의 병사들 대다수가 투항하고, 나머지는 성중으로 돌아가 황망히 태수에게 보고했다.

위정국은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하였다. 다음 날,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왔다. 단정규가 관승·임충과 함께 진으로 나왔다. 문기가 열리면서 신화장군 위정국이 나와, 단정규가 관승에게 투항한 것을 보고 크게 꾸짖었다.

은혜를 잊고 주군을 배반한 의리도 없는 필부야!”

관승이 크게 노하여 말을 박차고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싸운 지 10합도 되지 않았는데, 위정국이 말을 돌려 본진을 향해 달아났다. 관승이 막 추격하려 하자, 단정규가 소리쳤다.

장군! 추격해서는 안 됩니다!”

관승은 황급히 말을 세웠다. 그때 능주군의 진 안에서 붉은 갑옷을 입고 손에 화기(火器)를 든 5백 명의 화병(火兵)50대의 화차(火車)를 밀고 나왔다. 화차 위에는 갈대 같은 인화물이 가득 실려 있었고, 군인들은 각자 등에 쇠로 만든 호리병을 지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유황과 염초 및 오색 연기를 내는 화약이 들어 있었다. 수레에 불을 붙여 밀고 오면서 호리병에 불을 붙여 던졌다. 사람들이 쓰러지고 말들이 화상을 입었다. 관승의 군병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40여 리를 퇴각한 다음에야 멈추었다. 위정국이 군마를 수습하여 성으로 돌아갔는데, 성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흑선풍 이규가 초정·포욱과 함께 고수산의 인마를 거느리고 능주성 뒤로 돌아가 북문을 깨뜨리고 성안으로 난입하여, 불을 지르고 창고를 약탈했던 것이다. 위정국은 감히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황망히 군사를 돌렸는데, 관승이 뒤쫓아와서 공격하니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아볼 겨를이 없게 되었다. 능주성을 잃은 위정국은 할 수 없이 퇴각하여 중릉현에 주둔하였다. 관승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중릉현을 사방으로 포위하고 공격하였지만, 위정국은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단정규가 관승·임충 등 여러 두령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용맹한 사람이라, 공격이 긴박해지면 비록 죽을지언정 욕을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은 느긋하게 하면 완수할 수 있지만, 급하게 하면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칼날을 피하지 않고 현으로 들어가 좋은 말로 위무하여 투항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군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단정규가 혼자 말을 타고 현으로 가게 하였다. 군졸이 보고하자 위정국이 나와서 만났다. 단정규가 좋은 말로 권했다.

지금 조정이 밝지 못하여 천하가 크게 혼란하고, 천자가 사리에 어두워 간신이 권력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송공명에게 투항하여 양산박에 살다가, 훗날 간신들이 쫓겨나면 그때 바른 길로 돌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오.”

위정국은 그 말을 듣고서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나를 투항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관승이 친히 와서 청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도 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오!”

단정규가 돌아와 관승에게 알리자, 관승이 말했다.

대장부가 일을 하는데 무엇을 의혹하겠소?”

관승이 단정규와 함께 필마로 가려 하자, 임충이 간했다.

형님!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세 번 생각해 보시고 행하십시오.”

관승이 말했다.

호걸이 하는 일이라 무방합니다.”

관승이 곧장 현의 관아로 가자, 위정국이 맞이하며 절을 하고 투항하였다. 옛정을 서로 얘기하면서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그날 5백 명의 화병을 이끌고 영채로 가서 임충과 양지 등 여러 두령들과 인사를 나누고 즉시 군사를 거두어 양산박으로 갔다.

송강이 대종을 보내 맞이하였는데, 대종이 이규에게 말했다.

네가 몰래 산을 내려가는 바람에 여러 형제들이 여기저기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아느냐? 지금 시천·악화·이운·왕정륙은 먼저 산으로 돌아갔고, 내가 지금 가서 형님께 알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관승 등 군마가 압취탄에 당도하자, 수군 두령들이 배를 가져와 군마를 건네주었다. 그때 한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허급지급 달려오는데, 사람들이 보니 금모견 단경주였다. 임충이 물었다.

자네는 양림·석용과 함께 북쪽으로 말을 사러 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허급지급 달려오는 건가?”

단경주가 헐레벌떡 달려와 임충 등에게 말했다.

제가 양림·석용과 함께 북쪽으로 가서, 튼튼하고 근력이 있으며 털색이 좋은 준마 2백여 필을 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청주를 지나는데, 욱보사(郁保四)라는 놈이 2백여 명의 도적떼를 이끌고 와서 말을 모두 약탈하여 증두시로 끌고 갔습니다. 욱보사라는 놈은 키가 엄청 커서 장례행렬 때 앞장서는 신과 같다 하여 험도신(險道神)이라 불립니다. 석용과 양림은 어디로 간지 모르고, 저는 밤새 달려와 이렇게 보고하는 겁니다.”

임충이 듣고서, 산채로 올라가 형님을 뵙고 상의하자고 하였다. 모두 호수를 건너 충의당에 당도하여 송강에게 인사했다. 관승이 단정규와 위정국을 인도해 와서 두령들에게 인사시켰다. 이규는 산을 내려가서 한백룡을 죽이고 초정과 포욱을 만나 함께 능주성을 깨뜨린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송강은 또 네 호걸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였다. 단경주가 말을 빼앗긴 일을 얘기하자, 송강은 크게 노하여 말했다.

지난번에는 내 말을 탈취하더니, 이번에 또 이런 무례한 짓을 저지르다니! 조천왕의 원수도 아직 갚지 못해 밤낮으로 근심하고 있는데, 만약 이번에도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남들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오용이 말했다.

마침 따뜻한 봄날이라 쳐들어가기 좋을 때입니다. 지난번에 진병했을 했을 때에는 지리적 이점을 잃었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지혜로 취해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이 원한이 골수에 깊이 박혔으니, 원수를 갚지 않으면 맹세코 산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용이 말했다.

우선 처마 위를 날아다니고 벽을 탈 수 있는 시천을 보내 소식을 정탐한 다음에 상의하시지요.”

시천이 명을 받고 떠난 후, 2~3일 지나 양림과 석용이 산채로 돌아와 증두시의 사문공이 양산박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다고 말했다. 송강이 그 말을 듣고 바로 병력을 일으키려고 하자, 오용이 말했다.

시천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기다렸다가 가도 늦지 않습니다.”

송강은 노기가 가슴에 가득 차 당장이라도 원수를 갚고 싶어 잠시도 참기가 어려워, 또 대종을 보내 정탐하게 하였다. 며칠 후 대종이 돌아와 보고했다.

증두시는 능주의 원수를 갚겠다고 군마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 증두시 입구에 큰 영채를 세우고 법화사 안에 중군 막사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수백 리에 걸쳐 깃발이 꽂혀 있어서, 어디로 진격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다음 날, 시천이 돌아와 보고했다.

제가 증두시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정탐했습니다. 지금 5개의 영채를 세웠고, 증두시 앞에는 2천여 명이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든 영채는 교사 사문공이 관장하고, 북쪽 영채는 증도와 부교사 소정이, 남쪽 영채는 둘째 증밀이, 서쪽 영채는 셋째 증삭이, 동쪽 영채는 넷째 증괴가, 중앙 영채는 다섯째 증승과 부친 증롱이 지키고 있습니다. 또 청주 욱보사란 놈은 신장이 10척이고 허리가 여러 아름이 될 정도여서 험도신이라 불리는데, 약탈한 말들을 법화산 안에서 기르고 있습니다.”

오용은 모든 두령들을 모아 상의했다.

저들이 다섯 개의 영채를 세웠다고 하니, 우리도 다섯 부대로 나누어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노준의가 일어나 말했다.

저는 여러 두령들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산에 올라왔는데, 아직 보답을 못했습니다. 이번에 목숨을 바쳐 앞장서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강이 기뻐하며 말했다.

원외께서 산을 내려가시겠다고 하니, 선봉이 되어 주시죠.”

오용이 간했다.

원외께서는 이제 막 산채에 오셨기 때문에 아직 전투를 경험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산길이 험하여 말을 타는 데에도 불편하므로, 선봉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따로 한 부대를 거느리고 평지에 매복하고 있다가, 중군에서 화포 소리가 울리면 접응하도록 하십시오.”

오용이 이렇게 말한 속내는, 혹시 노준의가 사문공을 사로잡게 되면 송강이 조개의 유언에 따라 그에게 자리를 양보할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선봉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송강의 속내는, 노준의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여 그 기회에 그를 산채의 주인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용은 송강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노원외는 연청과 함께 5백 보군을 거느리고 평지의 소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게 하였다.

오용은 다섯 부대를 편성하였다. 증두시 남쪽 영채는 마군두령 벽력화 진명과 소이광 화영이 마린과 등비를 부장으로 삼아 군사 3천을 이끌고 공격한다. 증두시 동쪽 영채는 보군두령 화화상 노지심과 행자 무송이 공명과 공량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3천을 이끌고 공격한다. 증두시 북쪽 영채는 마군두령 청면수 양지와 구문룡 사진이 양춘과 진달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3천을 이끌고 공격한다.

증두시 서쪽 영채는 보군두령 미염공 주동과 삽시호 뇌횡이 추연과 추윤을 부장으로 삼아 3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한다. 증두시 중앙 영채는 총두령 송공명과 군사 오용·공손승이 여방·곽성·해진·해보·대종·시천을 부장으로 삼아 5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한다. 보군두령 흑선풍 이규와 혼세마왕 번서는 항충과 이곤을 부장으로 삼아 마보군 5천을 이끌고 뒤를 받친다. 나머지 두령들은 산채를 지킨다.

한편, 증두시의 정탐꾼이 달려가 양산박의 침공을 보고하자, 증장관은 사문공과 소정을 불러 상의하였다. 사문공이 말했다.

양산박 군마가 올 때, 많은 함정을 파 놓으면 저들의 맹장과 강병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도적놈들을 상대할 때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증장관은 즉시 사람들에게 삽과 괭이를 가지고 가서, 마을 입구에 수십 개의 함정을 파고 그 위에 흙을 살짝 덮어놓게 하였다. 그리고 사방에 군병을 매복시키고, 적군이 오기를 기다리게 하였다. 또한 증두시 북쪽 길에도 10여 곳에 함정을 파놓게 하였다.

한편, 송강의 군마가 출발할 때, 오용은 먼저 시천을 다시 보내 정탐하게 하였다. 며칠 후 시천이 돌아와 보고했다.

증두시 남쪽과 북쪽에 함정을 파놓았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 군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용은 보고를 받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까짓 것은 기묘한 계책이라 할 수도 없지!”

송강은 군마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증두시 가까이에 당도하였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선봉부대가 바라보니, 멀리서 한 기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말의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고 꼬리에는 꿩의 꼬리털이 묶여 있었다. 말 위에 탄 사람은 파란 두건을 쓰고 흰 전포를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단창을 들고 있었다. 선봉부대가 추격하려 하자, 오용이 저지하였다.

오용은 군마를 하채하고, 사면에 참호를 파고 적병의 침입을 막는 세모꼴로 된 뾰족한 철질려를 뿌려 놓게 하였다. 그리고 명을 전하여, 다섯 부대는 각기 하채하고 마찬가지로 참호를 파고 철질려를 뿌려 놓게 하였다.

사흘이 지났는데, 증두시에서는 아무도 출전하지 않았다. 오용은 다시 시천을 매복한 병졸로 변장시켜, 증두시에서 출전하지 않는 의도가 무엇인지 정탐하게 하였다. 그리고 함정이 있는 곳에 몰래 표시를 하고, 영채로부터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또 몇 개나 되는지 알아보게 하였다. 시천은 하루 동안 자세히 알아보고 몰래 표시를 한 다음, 돌아와 오용에게 보고하였다.

다음 날 오용은 명을 전하여, 선봉보군은 각자 괭이를 들고 두 부대로 나누어 대기하게 하였다. 또 군량을 싣고 온 수레 백여 대에 갈대와 마른 장작을 실어, 중군 속에 감추어 두게 하였다. 그날 저녁에 또 명을 각 영채의 두령들에게 전하여, 내일 아침에 동서 양쪽의 보군이 먼저 적의 영채를 공격하고, 증두시 북쪽 영채를 공격하게 되어 있는 양지와 사진은 마군을 자로 벌려놓고 북을 요란하게 울리고 깃발을 흔들며 마치 공격할 듯한 형세만 취하고 결코 진격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편, 증두시의 사문공은 송강의 군마가 영채를 공격하도록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영채 앞의 길은 좁았기 때문에, 달아날 길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영채 앞에서 화포 소리가 울리면서 대부대가 남문으로 쳐들어왔다. 이어서 동쪽 영채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한 중놈이 철선장을 휘두르고 또 행자 한 놈이 쌍계도를 휘두르며 앞뒤로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사문공이 말했다.

그 두 놈은 필시 양산박의 노지심과 무송일 것이다.”

혹시 실수가 있을까 염려되어 군사를 나누어 증괴를 도우러 보냈다. 이번에는 서쪽 영채에서 또 보고가 들어왔다.

수염이 긴 사내와 호랑이 같이 생긴 사내가, ‘미염공 주동삽시호 뇌횡이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급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문공은 또 군사를 나누어 증삭을 도우러 보냈다. 그때 또 영채 앞에서 화포 소리가 울렸다. 사문공은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적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함정에 빠지면 산 뒤의 복병을 일제히 일으켜 사로잡으려고 하였다.

오용은 마군을 산 뒤편에서부터 두 길로 나누어 증두시 영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전면의 보군은 단지 영채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게 했다. 양쪽의 복병은 영채 앞에 늘어서 있다가 배후에서 오용의 군마가 밀고 내려오자 모두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사문공이 막 출전하려고 할 때, 오용이 채찍 끝으로 가리키자 양산박의 영채 안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백여 대의 수레가 일제히 나오면서 불이 붙었다. 수레 위에는 갈대와 마른 장작, 유황과 염초 등이 실려 있어 순식간에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사문공의 군마는 불붙은 수레에 가로막혀 급하게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공손승이 진중에서 검을 휘두르며 술법을 부리자, 바람이 크게 일어나면서 화염이 남문까지 불어 닥쳐 망루와 목책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오용은 징을 울려 군대를 철수하고 영채로 들어가 그날 밤은 쉬게 하였다. 사문공은 그날 밤 영채를 수리하게 하였다. 양쪽 군대는 싸움을 멈추었다.

다음 날, 증도가 사문공에게 말했다.

도적의 수괴를 먼저 참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문공에게 영채를 굳건히 지키게 하고, 증도는 군병을 이끌고 나가서 싸움을 걸었다. 송강은 중군에서 증도가 싸움을 걸고 있다는 것을 듣고, 여방과 곽성을 데리고 진 앞으로 나갔다. 문기의 그림자 아래에 증도가 보이자 오랜 원한이 폭발하여, 송강은 채찍으로 증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저놈을 사로잡아 지난날의 원수를 갚겠는가?”

소온후 여방이 방천화극을 들고 말을 박차고 달려 나가 곧장 증도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교전하여 30여 합에 이르렀을 때, 곽성이 달려 나가 두 사람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원래 여방의 실력은 증도를 대적하기에는 부족했다. 30합이 되기 전에는 그럭저럭 대적할 수 있었지만, 30합이 넘어가자 화극을 쓰는 법이 점점 어지러워지면서 간신히 막아내면서 피할 뿐이었다. 곽성은 여방이 실수할까 염려되어 방천화극을 들고 달려 나가 증도를 협공한 것이었다. 세 말이 뒤엉켜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움을 벌였다.

원래 화극에는 표범꼬리가 달려 있었다. 여방과 곽성이 증도를 잡으려고 일제히 화극으로 찌르자, 증도가 재빠르게 창으로 두 화극을 휘저어 밀쳐냈다. 그 순간 두 화극의 표범꼬리와 증도의 창에 달린 붉은 술이 뒤엉켜 버려 풀리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각기 무기를 빼내려고 애를 썼다. 그때 소이광 화영이 진중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두 사람이 패할까 염려되어 말을 몰아 달려 나가며 증도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때 증도는 창을 막 빼냈는데, 두 사람의 화극은 여전히 얽혀 있었다.

증도가 창으로 여방의 목을 찌르려는 찰나, 화영의 화살이 먼저 증도의 왼팔에 명중하였다. 증도는 두 다리가 허공으로 솟구치며 말에서 떨어졌다. 여방과 곽성의 화극이 동시에 증도를 찌르자, 증도는 비명을 지르며 숨이 끊어졌다. 10기의 마군은 나는 듯이 돌아가 사문공에게 보고하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증장관은 방성대곡하였다.

증승은 무예가 절륜하였으며 두 자루의 비도(飛刀)를 잘 써서 누구든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증도의 죽음을 듣고 이빨을 부드득 갈며 소리쳤다.

빨리 내 말을 가져와라! 형님의 원수를 갚아야겠다!”

증장관이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증승은 말에 올라 비도를 쥐고 곧장 앞쪽 영채로 달려갔다. 사문공이 맞이하며 말했다.

소장군은 적을 가벼이 보지 마시오. 송강의 군중에는 지용을 겸비한 맹장들이 아주 많소. 내 생각에는, 다섯 영채를 굳게 수비하면서 몰래 사람을 능주로 보내 조정에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래서 조정에서 장수를 선발하고 많은 관군을 동원하여 두 방면으로 나누어, 한편으로는 양산박을 공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증두시를 보호하게 해야 하오. 그리하면 적들은 싸울 마음이 없어져 필시 퇴각하여 산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오. 그때 내가 여러 형제들과 함께 추격하면 반드시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북쪽 영채에서 부교사 소정이 달려와, 굳게 수비해야 한다는 사문공의 말을 듣고서 말했다.

양산박의 오용은 속임수와 지모가 많아 가벼이 대적할 수 없습니다. 물러나 굳게 수비하면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증승이 소리쳤다.

저놈들이 내 친형을 죽였는데, 그 원수를 갚지 않고서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린단 말이오! 도적들의 기세가 더 오르기를 기다리다가는, 적을 물리치기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사문공과 소정은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증승은 말에 올라 수십 명의 마군을 거느리고 영채를 나가 싸움을 걸었다. 송강은 보고를 받고, 명을 전하여 선봉부대가 나가서 대적하라고 하였다. 진명은 명을 받고 낭아곤을 휘두르며 진을 나가 증승과 싸우려고 했는데, 돌연 흑선풍 이규가 쌍도끼를 들고 튀어나오더니 불문곡직하고 적진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이규를 알아본 한 병사가 증승에게 말했다.

저놈은 양산박의 흑선풍 이규입니다.”

증승은 이규를 보고 병사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하였다. 원래 이규는 진에 있을 때에도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항상 항충과 이곤이 방패로 막아 주었었다. 그런데 이때는 혼자서 뛰어들었기 때문에 증승이 쏜 화살을 다리에 맞고 태산 같은 덩치가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증승의 뒤를 따르던 군마들이 일제히 이규에게 달려들었다.

송강의 진에서 진명과 화영이 달려 나가 필사적으로 이규를 구해 내고, 뒤를 이어 마린·등비·여방·곽성이 일제히 접응하여 진으로 돌아왔다. 증승은 송강의 진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감히 다시 싸우지 못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송강도 군사를 거두었다.

다음 날, 사문공과 소정은 싸우지 말고 지키기만 하자고 주장했지만, 증승은 형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출전을 재촉했다. 사문공은 어쩔 수 없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랐는데, 그 말은 바로 지난번에 단경주로부터 빼앗은 천리마 조야옥사자(照夜玉獅子)였다.

송강도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세를 펼쳤다. 사문공이 쳐들어오자, 송강의 진에서는 진명이 수훈을 세우고자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두 사람이 어울려 싸운 지 20여 합이 되었을 때, 진명은 힘이 달려 본진으로 달아났다. 사문공이 용맹을 떨쳐 추격하여 창을 내질렀는데, 진명은 다리를 창에 찔려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여방·곽성·마린·등비가 일제히 달려 나가 목숨 걸고 싸워 진명을 구출하였다. 하지만 진명을 구하기는 했으나 이미 한번 기가 꺾였기 때문에 군사를 철수하여 10리나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송강은 진명을 수레에 실어 산채로 보내 휴식을 취하게 하고, 다시 오용과 상의하여 관승·서녕·단정규·위정국을 불러 돕게 하였다. 송강은 향을 사르고 기도하며 점을 쳐 보았다. 오용이 점괘를 보고 말했다.

이곳에서 적을 격파하게 되겠는데, 오늘 밤에 필시 기습이 있을 것입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겠소.”

걱정 마십시오. 먼저 명을 전해 세 영채의 두령에게 알리십시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동쪽과 서쪽의 영채를 일으켜 해진은 왼쪽에 해보는 오른쪽에 있게 하고, 나머지 군마는 모두 사방에 매복하라고 하십시오.”

그날 밤, 하늘이 맑아 달빛도 밝았고 바람도 고요하여 구름도 한가로이 흘렀다. 사문공은 영채 내에서 증승에게 말했다.

적병이 오늘 두 장수를 잃었기 때문에 필시 겁을 내고 있을 것이니, 그 틈을 타서 기습하는 것이 좋겠소.”

증승은 그 말을 듣고, 즉시 북쪽 영채의 소정, 남쪽 영채의 증밀, 서쪽 영채의 증삭과 함께 적의 영채를 기습하기로 하였다. 10시경 말방울을 떼고 사람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살그머니 송강의 중군 영채로 다가갔다. 그런데 사방 어디에도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영채는 텅 비어 있었다.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급히 소리쳐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때 왼쪽에서는 양두사 해진이, 오른쪽에서는 쌍미갈 해보가, 뒤에서는 소이광 화영이 쳐들어왔다. 증삭은 어둠 속에서 해진의 강차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불길이 치솟으면서 영채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더니, 동서 양쪽에서 병력이 공격해 왔다. 한밤중에 혼전이 벌어졌는데, 사문공은 겨우 길을 뚫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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