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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9화

Bollnow 2025. 2. 5. 11:11

송강은 조개가 죽은 것을 보고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슬피 통곡하다가 혼절하였다. 여러 두령들이 송강을 부축해 일으키고 장례를 주관하게 하였다. 오용과 공손승이 송강을 위로하며 말했다.

형님!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니, 슬픔으로 인해 몸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큰일부터 치러야 합니다.”

송강은 울음을 멈추고, 시신을 향탕으로 목욕시키고 옷과 두건을 입혀 염을 하고 취의청에 모셨다. 여러 두령들이 모두 애도하며 제사를 지낸 다음, 내관과 외곽을 마련하여 길일을 택해 입관하였다. 신주를 세우고 양산박 주인 천왕 조공 신주라고 썼다. 송공명 이하 모든 두령들이 상복을 입었으며, 소두목 이하 모든 졸개들도 상례두건을 썼다. 화살을 영전에 바치며 복수를 맹세하였다.

산채에는 조기를 세우고, 인근 사원에서 승려들을 청하여 조개의 공덕을 기리고 명복을 빌었다. 송강은 매일 애도하면서 산채의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임충은 오용과 공손승 등 여러 두령들과 상의하여 송공명을 양산박 주인으로 세우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향을 피우고 등불을 밝히고서 임충이 앞장서서 여러 두령들과 함께 송공명을 취의청에 상석에 앉혔다. 임충이 먼저 말했다.

형님께 아룁니다. 나라에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안 되고, 집안에는 하루라도 가장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조두령께서 돌아가셨으니, 산채에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천하에 형님의 큰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길일을 택하여 형님께서 산채의 주인이 되시면 모든 사람이 그 명을 받들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조천왕께서 임종시에 유언하시기를, 사문공을 잡는 사람을 양산박 주인으로 세우라고 하셨네. 여기 있는 여러 두령들도 모두 알고 있는데, 지금 조천왕의 유골이 채 식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 유언을 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직 원수를 갚아 그 원한도 씻지 못했는데, 어찌 그 자리에 편히 앉을 수 있단 말인가?”

오용이 또 권하였다.

조천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아직 그놈을 잡지 못했습니다. 산채에는 단 하루라도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형님께서 그 자리에 앉지 않으신다면, 누가 감히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 산채의 인마를 어떻게 관장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유언이 그렇다 하더라도, 형님께서 일단 그 자리에 앉으시고 후일 다시 의논하시지요.”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오늘 내가 임시로 이 자리를 맡았다가, 훗날 원수를 갚고서 사문공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누구든 이 자리를 맡게 될 것이오.”

흑선풍 이규가 옆에 있다가 소리쳤다.

형님은 양산박 주인은 물론이요, 대송황제가 되어도 좋지 않겠습니까!”

송강이 꾸짖었다.

저 시커먼 놈이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한번만 더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놈의 혓바닥부터 먼저 잘라 버리겠다!”

이규가 말했다.

내가 형님에게 우두머리가 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황제가 되라고 한 건데, 내 혀는 왜 자르려고 하시오!”

오용이 말했다.

저놈은 위아래로 모르는 놈이니, 형님께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큰일부터 주관하십시오.”

송강은 분향을 마치고, 첫 번째 의자에 앉았다. 그 다음은 군사 오용, 그리고 다음에는 공손승이 앉았다. 좌측 자리의 우두머리에는 임충, 우측 자리의 우두머리에는 호연작이 앉았다. 여러 두령들이 절을 올리고 양쪽으로 나누어 앉자, 송강이 말했다.

제가 오늘 잠시 이 자리에 앉았는데, 오로지 형제들의 도움만 믿습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팔다리가 되어, 함께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합시다. 지금 산채에는 인마가 많이 늘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 두령들을 여섯 개 영채로 나누어 주둔하게 하고, 취의청을 충의당으로 개명하겠소. 충의당 전후좌우에 네 개의 소채를 세우고, 산 뒤쪽에 두 개의 소채와 산 앞쪽에 세 개의 관문을 세우겠소. 산 아래에 한 개의 소채를 세우고, 금사탄과 압취탄에 각각 소채를 세우겠소.

오늘부터 형제들은 새로이 직책을 맡게 될 것이오. 충의당에는 내가 임시로 첫째 자리에 앉고, 둘째는 군사 오용, 셋째는 법사 공손승, 넷째는 화영, 다섯째는 진명, 여섯째는 여방, 일곱째는 곽성이 앉는다. 좌군 영채에는 첫째 임충, 둘째 유당, 셋째 사진, 넷째 양웅, 다섯째 석수, 여섯째 두천, 일곱째 송만이 앉는다. 우군 영채에는 첫째 호연작, 둘째 주동, 셋째 대종, 넷째 목홍, 다섯째 이규, 여섯째 구붕, 일곱째 목춘이 앉는다.

전군 영채에는 첫째 이응, 둘째 서녕, 셋째 노지심, 넷째 무송, 다섯째 양지, 여섯째 마린, 일곱째 시은이 앉는다. 후군 영채에는 첫째 시진, 둘째 손립, 셋째 황신, 넷째 한도, 다섯째 팽기, 여섯째 등비, 일곱째 설영이 앉는다. 수군 영채에는 첫째 이준, 둘째 완소이, 셋째 완소오, 넷째 완소칠, 다섯째 장횡, 여섯째 장순, 일곱째 동위, 여덟째 동맹이 앉는다. 이 여섯 영채의 두령은 모두 43명이다.

산 앞의 제1 관문은 뇌횡과 번서, 2 관문은 해진과 해보, 3 관문은 항충과 이곤이 지킨다. 금사탄 소채는 연순 · 정천수 · 공명 · 공량, 압취탄 소채는 이충 · 주통 · 추연 · 추윤이 지킨다. 산 뒤쪽의 좌측 소채는 왕영 · 일장청 · 조정, 우측 소채는 주무 · 진달 · 양춘이 지킨다. 충의당 좌측 방에는 문서를 관리하는 소양, 상벌을 주관하는 배선, 도장과 관인을 관장하는 김대견, 돈과 식량을 관리하는 장경이 앉는다. 충의당 우측 방에는 화포를 관리하는 능진, 배를 건조하는 맹강, 의복과 갑옷 제조를 감독하는 후건, 성벽 축조를 감독하는 도종왕이 앉는다.

충의당 뒤쪽의 두 곁채에는 산채의 사무를 관리하는 인원이 앉는다. 가옥 건축을 감독하는 이운, 대장간을 관리하는 탕륭, 술과 식초 제조를 감독하는 주부, 연회를 담당하는 송청, 집기를 관리하는 두흥과 백승이다. 산 아래 네 군데 주점은 원래대로 주귀 · 악화 · 시천 · 이립 · 손신 · 고대수 · 장청 · 손이랑이 맡는다. 북쪽에 가서 말을 사 오는 일은 양림·석용·단경주가 맡는다. 이렇게 배정하였으니, 각자 임무를 준수하고 어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양산박 산채의 대소 두령들은 송공명을 산채의 주인으로 받들면서 모두 기뻐하였고 약속을 잘 지켰다. 어느 날, 송강은 두령들을 모아 조개의 원수를 갚기 위해 병력을 일으켜 증두시를 치는 일을 상의했다. 군사 오용이 간했다.

형님! 서민들도 상중에는 가벼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형님께서 군대를 일으키시려면 백일이 지난 후에 해야 할 겁니다.”

송강은 오용의 말에 따라, 산채를 지키면서 매일 좋은 일을 하고 공덕을 쌓으면서 조개를 추모하였다.

어느 날, 법명이 대원이라는 승려가 산채에 왔다. 그는 북경 용화사의 승려인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제녕까지 왔는데, 양산박을 지나다가 산채의 요청을 받고 불사를 행하러 왔던 것이다. 불사를 마치고 한담을 나누다가, 송강이 북경의 풍토와 인물에 대해 묻자 대원화상이 말했다.

두령께서는 하북의 옥기린(玉麒麟)이란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송강과 오용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우리가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그걸 잊고 있었네! 북경성 안에 노대원외(盧大員外)가 있는데, 이름은 준의(俊義)이고 별명이 옥기린이지요. 그는 하북 삼절(三絕)의 하나로서, 원래 북경 사람이며 무예를 좋아하여 곤봉은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합니다. 양산박 산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관군을 어찌 두려워하겠소?”

오용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어째서 스스로 기운을 꺾으십니까? 그 사람을 산으로 불러오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그는 북경의 제일등 장자(長者)인데, 어찌 도적이 되려 하겠소?”

오용이 말했다.

제가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잠시 잊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작은 계책을 써서 그를 산으로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군사를 지다성(智多星)’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명불허전(名不虛傳)이오! 그를 속여서 산으로 불러들일 군사의 계책이 어떤 겁니까?”

오용이 말했다

제가 북경에 가서 세 치 혀를 놀려 노준의를 산으로 불러오는 것은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취하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거칠고 대담한 자와 함께 가야 합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흑선풍 이규가 큰소리로 외쳤다.

군사형님! 아우가 같이 가겠습니다!”

송강이 소리쳤다.

넌 가만히 있어! 방화, 살인, 민가 약탈, 관아 습격 등에는 네가 적합하지만, 이렇게 정탐하는 일에는 너 같은 성질은 맞지 않아! 넌 가면 안 돼!”

이규가 말했다.

형님들은 내가 못 생겼다고 싫어하는 거잖아! 그래서 날 못 가게 하는 거지.”

송강이 말했다.

널 싫어하는 게 아니야. 북경에는 관원들이 엄청 많은데, 혹시라도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넌 끝장이야.”

이규가 소리쳤다.

상관없소! 그래도 난 갈 거야!”

오용이 말했다.

아우가 세 가지 조건을 따른다면, 데리고 가지. 만약 따르지 않겠다면 산채에 앉아 있고.”

이규가 말했다.

세 가지가 아니라, 30가지라도 따르겠소!”

오용이 말했다.

첫째, 자네는 술버릇이 지랄 같으니 오늘부터 술을 끊을 것. 돌아오면 다시 마시게. 둘째, 도중에 도사의 심부름꾼인 도동(道童)으로 분장하고 나를 수행해야 하는데, 내가 시키는 것은 절대 어기지 말 것. 셋째가 제일 어려운 건데, 내일부터 나를 따라다니면서 절대로 말을 하지 말 것. 즉 벙어리가 돼야 해. 이 세 가지 조건을 따른다면, 자네를 데리고 가겠네.”

이규가 말했다.

술 마시지 않고 도동으로 분장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이 주둥아리를 닥치고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날 숨 막히게 해서 죽일 작정이오!”

오용이 말했다.

자네가 입을 열면, 꼭 사건을 일으키니까 그렇지.”

이규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입에 동전 한 닢을 물고 다니지 뭐!”

송강이 말했다.

아우! 네가 가겠다고 끝내 고집부린 거니까, 만약 잘못 되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라.”

이규가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난 이 쌍도끼만 가져가면 잠깐 사이에 그 새대가리 같은 놈들 천 명도 박살낼 수 있어!”

여러 두령들이 모두 웃었다. 누가 이규를 말릴 수 있겠는가! 그날 충의당에서 송별연을 열어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밤이 되어 각자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오용은 행장을 수습하고 이규는 도동으로 분장하여 보따리를 지고 산을 내려갔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이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하면서, 오용에게 조심하라고 부탁하고 이규에게는 실수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오용과 이규는 북경을 향해 가는 4~5일 동안, 매일 저녁 객점에 투숙하여 쉬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걸어갔다. 도중에 오용은 이규 때문에 괴로운 일을 겪기도 했다. 며칠을 걸어 북경성 밖 객점에 투숙하여 쉬었는데, 그날 저녁 이규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점원을 주먹으로 때려 피를 토하게 했다. 점원이 방으로 달려와 오용에게 하소연했다.

손님의 벙어리 도동이 너무 사납습니다. 소인이 불을 좀 늦게 피웠다고 피를 토하도록 때렸습니다.”

오용은 황망히 사과하고 돈 10여 관을 주어 달랬다. 이규가 미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나서, 오용이 이규에게 당부했다.

네놈이 죽기 살기로 따라오겠다고 해서 데리고 왔는데, 내가 너 때문에 죽겠다! 오늘 성에 들어갈 건데, 거기는 장난칠 곳이 아니다. 제발 너 때문에 내가 죽지 않도록 해 다오!”

이규가 말했다

내가 감히 그러겠소?”

나랑 너랑 암호를 정하자. 만약 내가 머리를 흔들면, 너는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알았소! 그리 하지요.”

두 사람은 객점에서 복장을 다시 꾸미고 성으로 들어갔다. 오용은 눈썹까지 가리는 검은 두건을 쓰고, 옷깃이 검은 흰 도복을 입었으며, 손에는 도사들이 들고 다니는 자루 달린 방울 영저(鈴杵)를 들었다. 이규는 더벅머리에 상투 두 개를 틀고 짧은 도포를 입었으며, 구부러진 막대기를 어깨에 멨는데 운수점 보는데 1이라고 쓴 종이 표지를 매달았다. 두 사람은 방문을 잠그고 객점을 나와 북경성 남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는 천하 각처에 도적들이 일어난 때라, 관아마다 군마들이 지키고 있었다. 특히 이 북경은 하북 제일의 성이고 또 양중서가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질서가 엄정하였다. 오용과 이규가 느긋하게 걸어가서 성문 아래에 당도해 보니, 성문을 지키는 4~50명의 군사들이 앉아 있는 관원 한 사람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오용이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하자, 군사가 물었다.

선비는 어디서 오시는 겁니까?”

오용이 대답했다.

소생은 장용이라 하고, 이 도동은 이가입니다. 강호에서 점을 쳐서 먹고 사는데, 이번에 큰 도시에서 운수점을 봐 드리려고 왔습니다.”

오용은 가짜 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군사들이 말했다.

이 도동은 눈초리가 사나운 것이 꼭 도적놈이 사람을 노려보는 것 같네!”

이규가 그 말을 듣고 성질이 폭발하려는 찰나, 오용이 황망히 머리를 흔들자 이규는 고개는 숙이고 말았다. 오용이 성문을 지키는 군사에게 다가가 사과하며 말했다.

소생이 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 도동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인데 기운만 셉니다. 저희 집안 아이인데 어찌할 수가 없어 데리고 다닙니다. 사람의 도리를 잘 모르는 놈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오용은 군사에게 사과하고 성문을 통과했다. 이규는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걸으면서 오용의 뒤를 따라 시내를 향해 갔다. 오용은 손에 든 영저를 흔들면서 입으로 구호를 읊었다.

 

감라(甘羅)는 어린 나이에 재상이 되었지만 강태공(姜太公)은 늙어서 출세했네.

팽조(彭祖)는 장수했으나 안회(顏回)는 요절했네.

범단(范丹)은 빈궁하였으나 석숭(石崇)은 부유했네.

사람의 팔자는 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네.

 

오용이 또 말했다.

이것이 시()이고 운()이고 명()이니, 생사귀천(生死貴賤)을 알고 앞날을 알고 싶으면, 은자 한 냥을 내시오!”

말을 마치자 영저를 흔들었다. 북경성 안의 아이들 약 5~60명이 뒤를 따라오며 웃어댔다. 노원외의 전당포 문 앞에 당도하여 노래하고 웃으면서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마침 노원외가 전당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거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일꾼을 불러 물었다.

거리가 왜 이렇게 시끄러우냐?”

원외님!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길거리에 타지에서 온 점쟁이가 하나 있는데, 운수를 봐 주는데 은자 한 냥이랍니다. 누가 그런 비싼 돈을 내고 점을 보겠습니까? 그리고 도동이 하나 따라다니는데, 생김새가 우악스럽고 걸음걸이도 이상해서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 치는 걸 보니, 필시 박학다식한가 보다. 가서 그 사람을 불러오너라.”

일꾼이 나가서 소리쳤다.

선생! 원외님께서 보자 하십니다!”

오용이 말했다.

누가 나를 부릅니까?”

노원외님께서 부르십니다.”

오용은 도동과 함께 전당포 안으로 들어가, 이규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 노원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노준의도 몸을 숙여 답례하고 물었다.

선생은 고향이 어디시고,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오용이 대답했다.

소생의 이름은 장용(張用)이고, 호는 천담(天口 ; 를 나눈 글자)이라 합니다. 고향은 산동인데 주역의 괘로써 운수를 점치고 사람의 생사귀천을 알 수 있습니다. 은자 한 냥만 내시면 운수를 점쳐 드리겠습니다.”

노준의는 오용을 후당의 작은 방으로 안내하여, 주객이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노준의는 일꾼을 불러 은자 한 냥을 가져오게 하였다. 노준의가 복채를 내면서 말했다.

내 운수가 어떤지 좀 봐주십시오.”

생년월일시를 말씀해 주시지요.”

군자는 재앙은 물어도 복은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권세나 재물은 말씀하실 필요가 없고, 다만 앞으로의 진퇴가 어떠한지만 알고 싶습니다. 금년에 32세이고, 갑자년 을축월 병인일 정묘시에 태어났습니다.”

오용은 산가지를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뽑아 들었다가, 탁자 위에 내리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괴이하도다!”

노준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길흉이 어떠합니까?”

원외께서 기분 나빠 하지 않으시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준다고 생각하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원외님의 운명은 지금 백일 이내에 반드시 피를 보는 재앙이 있을 겁니다. 재산이 있어도 막지 못하고, 칼날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노준의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이 틀렸습니다. 나는 북경에서 태어나 부호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조상들 가운데 법을 어긴 남자도 없고 친족들 중에 재가한 여자도 없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으며, 정당한 재물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피를 보는 재앙이 있단 말입니까?”

오용은 안색이 변하면서 급히 받았던 은자를 돌려주고, 일어나 나가면서 탄식하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원래 아첨하는 말만 듣고 싶어 하는구나! 그만두자! 그만둬! 평탄한 길을 분명히 가리켜 주는 데도, 충언을 악담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소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선생! 노여움을 가라앉히시오!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소생은 사실대로 말씀드릴 터이니, 결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듣기만 할 테니, 숨기지 마십시오.”

원외님은 귀하게 태어났고, 지금까지 줄곧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금년에는 운세가 좋지 않아, 재앙을 만나 백일 이내에 몸과 머리가 다른 곳에 따로 놓일 겁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오용이 다시 산가지를 늘어놓고서 하나를 뽑아 보더니, 노준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동남쪽으로 천리 밖으로 가면 비로소 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놀라고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몸을 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 재난을 면할 수만 있다면,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원외님의 운명에 맞는 괘를 노래로 불러드릴 테니, 벽에 써 두십시오. 차후에 들어맞게 되면 비로소 소생에게 영험이 있음을 아시게 될 겁니다.”

노준의는 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흰 벽에 오용이 부르는 대로 썼다.

 

蘆花叢裏一扁舟 갈대꽃 무성한 가운데 일엽편주

俊傑俄從此地遊 준걸이 문득 이곳에 와서 노니네.

義士若能知此理 의사가 이 이치를 알 수 있다면

反躬逃難可無憂 돌이켜 보고 재난을 피하여 근심이 없을 것이라.

 

[앞 글자 네 개를 연결하면, ‘盧俊義反’, 노준의가 반역한다.’는 말이 된다.]

 

노준의가 쓰기를 마치자, 오용은 산가지를 수습하여 인사하고 떠나려 했다. 노준의가 만류하며 말했다.

잠시 앉았다가 오후에 가시지요.”

오용이 대답했다.

원외님의 후의는 감사하지만, 소생의 생업에 지장이 있으니 다른 날 다시 뵙겠습니다.”

오용이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자, 노준의는 문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 이규도 구부러진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문밖으로 나갔다. 오용은 노준의를 작별하고, 이규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왔다. 객점으로 돌아가 숙박비를 지불하고 행장을 수습하였다. 이규는 점괘 패를 짊어졌다. 객점을 떠나면서 오용이 이규에게 말했다.

큰일을 치렀다! 우리는 밤을 새워 산채로 돌아가, 올가미를 만들고 함정을 설치하여 노준의를 영접해야지. 조만간에 그가 올 것이다!”

한편, 노준의는 점을 본 이후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좌불안석이었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잠시 후 모두 모였는데, 그 가운데 집안일을 주관하는 우두머리는 이고였다.

이고는 원래 동경 사람인데, 아는 사람에게 투신하고자 북경에 왔다가 찾지 못하고, 노원외의 집 앞에 쓰러졌다.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른 그를 노준의가 구하여 집안에서 요양하게 해 주었다. 그가 근면하고 신중하며 글씨도 잘 쓰고 셈도 잘해서, 집안의 사무를 맡겼다.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를 일꾼의 우두머리인 도관에 임명하여, 집 안팎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겼다. 수하에 4,50명의 일꾼들이 있었으며, 집안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도관이라 불렀다.

그날 일꾼들이 모두 이고를 따라 대청 앞으로 와서 인사했다. 노원외가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어찌하여 그는 보이지 않느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이 계단 앞으로 달려왔다. 키는 6척이 넘고 나이는 24~5세쯤 되었다. 그는 북경 토박이인데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노원외의 집에서 자랐다. 그의 살결이 눈처럼 흰 것을 보고, 노준의가 솜씨 좋은 장인을 불러 온몸에 꽃 문신을 새기게 하여 마치 옥기둥에 비취를 장식한 것 같았다. 몸에 새긴 문신을 비교하자면 그 누구도 그를 따라올 수 없었다.

꽃 문신만 멋진 것이 아니라, 피리도 잘 불고 거문고도 잘 타고 노래도 잘하며 춤도 잘 췄다. 한 개의 글자를 나눠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글자 놀이나, 앞 문장의 끝 단어를 이어 문장을 짓는 유희에도 뛰어나, 못하는 것이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없었다. 게다가 각 지방의 사투리나 갖가지 기예를 지닌 사람들의 전문적 용어도 잘 구사할 줄 알아, 그에 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석궁을 가지고 다녔는데, 끝이 세 가닥인 짧은 화살을 사용하여 교외로 사냥을 나가면 백발백중이었다. 사냥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적어도 작은 짐승 백여 마리를 잡아 왔다. 활쏘기 대회에 나가도 걸린 상금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게다가 아주 영리하여 하나를 말해 주면 열을 알았다. 이름은 연청(燕青)인데, 북경성 사람들은 모두 그를 팔방미인이라 하여 낭자(浪子) 연청이라 불렀다.

연청은 노준의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대청에 올라와 인사했다. 일꾼들이 모두 두 줄로 서 있는데, 이고는 왼쪽에 서고 연청은 오른쪽에 섰다. 노준의가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운명을 점쳐 보았는데, 백일 이내에 피를 흘릴 재앙이 있다고 한다. 동남쪽 천 리 밖으로 몸을 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내가 생각해 보니, 동남방으로 가면 태안주가 있다. 그곳의 동악 태산은 천제인성제(天齊仁聖帝)의 금전(金殿)이 있는데, 천하 인민의 생사와 재액을 주관하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 가서, 첫째는 향을 피워 내 죄를 없애고, 둘째는 재앙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셋째는 장사를 하면서 바깥 경치도 구경하려고 한다. 이고! 자네는 수레 10량을 준비하여 산동의 화물을 실어 두게. 그리고 행장을 수습하여 나와 함께 가는 거야. 연청은 집안을 잘 관리하도록 해라. 창고 열쇠는 이고에게서 인수해라. 사흘 안에 출발하겠다.”

연청이 말했다.

주인님이 틀렸습니다. 속담에 점괘를 팔 때는 말을 돌려서 한다.’고 했습니다. 점쟁이의 허튼 소리를 믿지 마십시오. 집안에 있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습니까?”

노준의가 말했다.

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넌 나를 거역하지 마라. 만약 재앙이 닥쳐오면, 그때는 후회해도 늦다.”

연청이 말했다.

주인님은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서 산동 태안주로 가려면 양산박을 지나가야 합니다. 근래 양산박에는 송강이라는 도적이 있어 민가를 약탈하고 있는데, 관병이 체포하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주인님이 향을 피우러 가시겠다면, 태평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십시오.

지난번 점쟁이의 헛소리는 믿지 마십시오. 어쩌면 양산박의 나쁜 놈들이 점쟁이로 가장하고, 주인님을 선동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집에 없었던 것이 애석합니다. 제가 만약 집에 있었다면 몇 마디 말로써 그 점쟁이의 정체를 밝혀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겁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너희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누가 감히 나를 속인단 말이냐! 양산박의 도적놈들이 뭐 가 대단하냐? 내가 보기에, 그놈들은 초개같은 하찮은 놈들이다. 내가 가서 그놈들을 붙잡아, 내가 지금껏 배운 무예를 천하에 드날린다면 진짜 사내대장부가 되지 않겠느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병풍 뒤에서 한 여인이 나왔다. 그녀는 노원외의 부인으로서 나이는 25세였으며 노준의에게 시집온 지 5년이 되었다. 부인 가씨가 말했다.

여보! 당신이 하는 말을 다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1리만 밖으로 나가도 집 안에 있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쟁이의 헛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바다 같이 넓은 가업을 버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굴이나 용이 사는 못 같은 곳에 가서 장사를 하려 하십니까? 집안에서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줄여 고요하게 있으면 절로 무사하게 될 것입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당신 같은 여인이 무얼 알겠소? 있다고 믿는 것이 낫지, 없다고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자고로 화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 필시 길흉이 있는 것이오.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너희들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마라!”

연청이 다시 말했다.

저는 주인님 덕분에 조금이나마 봉술을 배웠습니다.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고, 주인님을 수행하다가 노상에서 도적이라도 만나게 되면 4~50명 정도는 해치울 수 있습니다. 이도관은 남아 집안을 보살피고, 제가 주인님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내가 장사하는 데에 모르는 것이 있어, 이고를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이고, 나대신 힘을 써야 할 일은 너에게 맡기는 것이다. 장부 관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되, 집안일은 네가 주관하도록 해라.”

이고가 말했다.

소인은 근래 발에 무좀 증상이 심해서 먼 길을 걷기가 힘듭니다.”

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천 일 동안 병사를 양성하는 것은 하루를 쓰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거 너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했는데, 너는 무슨 핑계가 그리 많으냐! 누구든 나를 가로막는 자가 있으면, 내 주먹맛을 보게 될 것이다.”

이고는 깜짝 놀라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아무도 다시는 말하지 못하고 모두 흩어졌다. 이고는 분을 참으며 소리를 삼키고, 행장을 준비했다. 수레 10량을 마련하고 10명의 수레꾼도 부르고, 수레를 끌고 갈 4~50마리의 말도 끌고 왔다. 행장과 상품도 수레에 실어 준비를 마치자, 노준의가 친히 점검했다.

사흘째 되는 날 여행길의 무사함을 빌면서 귀신의 형상을 그린 종이를 불사르고, 집안의 모든 사람을 불러 한 사람씩 할 일을 분부하였다. 그날 저녁 먼저 이고와 일꾼 둘이 수레를 끌고 성을 나갔다. 부인은 수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새벽, 노준의는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무기를 꺼내 들고 후당으로 가서 조상에게 향을 피워 올리고 하직 인사를 했다. 문 앞에서 부인에게 말했다.

집안을 잘 보살피시오. 길어야 3개월이고, 짧으면 4~5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부인 가씨가 말했다

도중에 항상 조심하시고, 서신을 자주 보내 주세요.”

연청도 절을 올리자, 노준의가 분부했다.

너는 집에 있으면서 모든 일을 직접 살피고, 기생집이나 오락장에 가서는 안 된다.”

연청이 말했다.

주인님께서 이렇게 길을 떠나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태만하겠습니까?”

노준의가 곤봉을 들고 성 밖으로 나가자, 이고가 맞이했다. 노준의가 말했다.

너는 일꾼 둘을 데리고 먼저 가다가, 깨끗한 객점이 나오면 밥을 지어 놓고 기다려라. 그리고 수레꾼들이 먼저 밥을 먹게 하여 노정이 지체되지 않도록 해라.”

이고는 몽둥이를 들고 일꾼 둘과 함께 먼저 떠나고, 노준의는 여러 일꾼들과 함께 수레를 따라 걸어갔다. 도중에 풍광이 좋고 길이 넓고 평탄한 것을 보고, 노준의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내가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좋은 경치를 어찌 볼 수 있었겠는가!”

40여 리를 가자, 이고가 주인을 맞이하였다. 점심을 먹고 이고는 또 먼저 떠났다. 다시 또 4~50리를 가서 객점에 당도하자, 이고가 수레와 인마를 맞이하여 투숙하였다. 노준의는 객점 방 안으로 들어가 곤봉을 기대놓고 삿갓을 벽에 걸고 요도를 풀고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수레를 끌고서 다시 길을 떠났다.

이렇게 며칠 동안 밤에는 객점에서 자고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났다. 어느 날 한 객점에 투숙하였다가 아침에 일어나 떠나려 하자, 점원이 노준의에게 말했다.

나리께 알려드립니다. 이 객점에서 20리를 채 못 가면 양산박 입구를 지나게 됩니다. 산 위에 있는 송공명 천왕이 왕래하는 길손을 해치지는 않지만, 나리께서는 조용히 지나가시되 좀 이상한 일이 있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노준의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구먼.”

노준의는 일꾼을 불러 옷상자를 가져오게 하였다. 상자를 열어 보따리를 하나 꺼내, 그 안에서 흰 깃발 네 개를 꺼냈다. 점원에게 대나무 장대 네 개를 얻어 깃발을 하나씩 매달았는데, 깃발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慷慨北京盧俊義 강개한 북경 노준의

遠馱貨物離鄉地 화물을 싣고 고향을 떠나 멀리 왔네,

 一心只要捉強人 오직 도적을 잡겠다는 마음으로 왔으니

那時方表男兒志 이제 비로소 남아의 뜻을 나타내노라.

 

이고를 비롯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일제히 아이고!’ 비명을 질렀다. 점원이 물었다.

나리께서는 산 위의 송대왕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노준의가 말했다.

나는 북경의 부자인데, 그런 도적놈들과 무슨 친분이 있겠느냐! 나는 특별히 송강이란 놈을 잡으러 온 것이다.”

나리께서는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제발 소인까지 연루되게 하지 마십시오. 괜한 장난 하지 마십시오. 1만 인마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합니다.”

방귀 뀌는 소리 마라! 네놈들도 모두 도적놈과 한 패로구나!”

점원은 아이고!’ 비명을 질렀고, 수레꾼들은 모두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고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주인님! 저희들을 가련히 여기시어 목숨을 부지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극락왕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 제비나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 같은 큰 새의 뜻을 알겠느냐? 내가 평생 동안 무예를 닦아 왔는데, 아직 적수를 만나지 못했다. 오늘 다행히 이런 기회를 만났는데 실력 발휘를 하지 않는다면, 또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저 수레 위에 있는 포대 안에 밧줄이 준비되어 있다. 저 죽어 마땅한 놈들이 내 손에 걸리면 이 박도로 한 놈씩 베어 쓰러뜨릴 것이니, 너희들은 그놈들을 밧줄로 묶어라. 중요하지 않은 화물은 버리고 그놈들을 수레에 실어 경성으로 압송하여 상을 청하여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룰 것이다. 만약 너희들 중에 한 놈이라도 안 가겠다는 놈이 있으면, 그놈부터 먼저 죽여 버리겠다.”

앞쪽 네 대의 수레에 깃발 네 개를 꽂고, 여섯 대의 수레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고를 비롯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노준의는 박도를 들고 수레를 따라 양산박을 향해 갔다. 이고 등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갔으나, 노준의는 의연하게 걸어갔다.

아침 일찍부터 정오 무렵까지 걸었는데, 저 멀리 아름드리나무 수천 그루가 빽빽한 숲이 보였다. 막 숲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어디선가 호각소리가 들렸다. 이고와 일꾼들은 깜짝 놀랐으나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노준의는 수레를 한쪽으로 밀어놓게 하였다. 수레꾼들은 모두 수레 밑으로 숨어들어 아이고!’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내가 놈들을 쓰러뜨리면, 너희들은 재빨리 묶어라!”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숲속에서 4~5백 명의 졸개들이 뛰쳐나왔다. 그때 뒤편에서도 징소리가 울리더니, 4~5백 명의 졸개들이 나타나 퇴로를 차단했다. 숲속에서 포성이 한 발 울리더니, 이규가 쌍도끼를 들고 나타나 큰소리로 외쳤다.

노원외! 벙어리 도동을 알아보시겠소?”

노준의가 문득 생각나서 소리쳤다.

내가 항상 너희 도적놈들을 잡으러 오려고 생각하다가 오늘 특별히 이곳에 왔으니, 빨리 송강 놈에게 하산하여 투항하라고 해라! 만약 고집 부리며 미적거리면, 내가 네놈들을 한 놈도 남겨 놓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이규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오늘 우리 군사의 묘계에 빠졌으니, 얼른 와서 두령 자리에나 앉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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