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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6화

Bollnow 2025. 2. 5. 11:07

고태위가 호연작에게 물었다.

장군은 누구를 선봉으로 삼으려 하시오?”

호연작이 아뢰었다.

제가 천거하려는 사람은 진주의 단련사인 한도(韓滔)입니다. 그는 원래 동경 사람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했고 대추나무로 자루를 만든 조목삭(棗木槊)이란 창을 잘 쓰는데, 사람들은 그를 백전백승의 장군이라는 뜻으로 백승장(百勝將)’이라 부릅니다. 이 사람이 선봉이 될 만합니다.

또 한 사람은 영주의 단련사인 팽기(彭玘)입니다. 그 역시 동경 사람인데, 대대로 장수를 배출한 가문 출신으로 한 자루의 끝이 세 갈래이고 양쪽으로 날이 있는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를 잘 쓰고 무예가 출중합니다. 하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적진을 잘 살핀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를 천목장(天目將)이라 부릅니다. 이 사람이 부선봉이 될 만합니다.”

고태위가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한도와 팽기, 두 장수를 선봉으로 삼는다면, 어찌 미친 도적 따위를 근심하겠는가?”

고태위는 전수부에서 공문 두 장을 발송하여, 추밀원에서 밤새워 사람을 진주와 영주로 보내 한도와 팽기를 동경으로 소환하게 하였다. 열흘이 지나지 않아 두 장수가 경성에 당도하여, 전수부로 와서 고태위와 호연작에게 인사하였다.

 

다음 날, 고태위는 세 사람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가서 그들의 무예 시범을 참관하였다. 그리고 전수부로 돌아와 추밀원 관원들과 함께 군사 기밀을 의논했다. 고태위가 물었다.

세 군데 군마는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호연작이 대답했다.

세 군데 군마는 5천이고, 보군은 1만 정도 됩니다.”

세 사람은 각자 자기 주로 돌아가, 정예병으로 마군 3천과 보군 5천을 선발하여 날짜를 정하고 양산박을 토벌하러 가시오.”

이 세 군데 군병은 모두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사람은 강하고 말은 건장하니, 태위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갑옷이 아직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아 날짜를 지키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태위께서는 기한을 늦춰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동경 무기고에서 수량에 구애받지 말고 임의대로 갑옷과 투구, 무기 등을 수령하여 가시오. 군마를 잘 정돈해야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이니, 출전하는 날 내가 관리를 보내 점검하도록 하겠소.”

호연작은 명을 받고 두 사람과 함께 무기고로 갔다. 철갑옷 3천 벌, 가죽으로 된 말갑옷 5천 벌, 투구 3천 개, 장창 2천 자루, 1천 자루,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활과 화살, 화포와 철포 5백여 대를 수령하여 수레에 실었다.

세 사람이 출발하는 날, 고태위는 전마(戰馬) 3천 필을 내주었다. 세 장군에게는 각각 금은과 비단을 상을 내리고, 삼군에게는 풍족한 식량을 지급하였다. 세 장군은 필승의 군령장을 제출하고, 고태위와 추밀원 관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서 말에 올라 여녕주로 달려갔다. 여녕주에 당도하자, 호연작은 한도와 팽기에게 각각 진주와 영주로 가서 군사를 일으켜 여녕주로 와서 합류하라고 하였다. 보름이 지나지 않아 세 군데의 병마가 모두 준비를 마쳤다.

호연작이 경성에서 가져온 갑옷·투구···깃발·말 등을 삼군에 나누어 주고 출전을 기다렸다. 고태위는 전수부의 군관 둘을 보내 점검하고 삼군에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호연작은 군대를 셋으로 나누어 성을 나갔다. 길을 여는 전군은 한도, 중군 주장은 호연작, 후군은 팽기가 맡아 기세당당하게 양산박을 향해 진격하였다.

한편, 양산박의 정탐꾼은 이 소식을 산채에 보고하였다. 그때 취의청에서는 조개·송강·오용·공손승 등 여러 두령들이 시진의 입당을 축하하면서 종일 연회를 열고 있었다.

여녕주의 쌍편(雙鞭) 호연작이 군마를 거느리고 토벌하러 온다는 보고를 받고, 적을 맞이할 대책을 상의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내가 들으니, 이 사람은 개국공신인 하동의 명장 호연찬의 적파 자손인데, 무예가 뛰어나고 두 개의 동편을 잘 써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반드시 용맹한 장수를 내보내 대적한 다음, 지략을 써서 사로잡아야 합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흑선풍 이규가 나서서 말했다.

내가 가서 그놈을 잡아오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네가 어딜 간다는 거냐? 내가 배정하겠다. 벽력화 진명이 선봉, 표자두 임충이 제2, 소이광 화영이 제3, 일장청 호삼람이 제4, 병울지 손립이 제5진을 맡는다. 다섯 부대가 물레 돌듯이 한 부대가 싸우다 물러나면 다음 부대가 그 뒤를 이어 싸운다. 내가 열 명의 형제와 함께 대부대를 거느리고 뒤를 받치겠다. 좌군은 주동 · 뇌횡 · 목홍 · 황신 · 여방이 맡고, 우군은 양웅·석수·구붕·마린·곽성이 맡는다. 수로는 이준 · 장횡 · 장순과 완가 삼형제가 배를 타고 접응한다. 이규와 양림은 보군을 이끌고 두 길로 나누어 매복했다가 구원한다.”

송강이 배정을 마치자, 선봉 진명이 먼저 인마를 거느리고 하산하여 넓은 들판에 진세를 벌렸다.

때는 겨울이었지만 날씨가 아주 온화하였다. 하루를 기다리자 멀리서 관군이 오는 것이 보였다.

선봉 백승장 한도가 병력을 인솔하고 와서 목책을 세우고 하채하였다. 그날은 출전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양군이 대치하여 북을 세 번 울리고 각각 장수가 진 앞으로 나왔다. 진명이 낭아곤을 들고 문기 아래 나타나자, 선봉장 한도가 창을 비껴들고 진명을 큰소리로 꾸짖었다.

천병이 당도하였으니 빨리 투항하라! 저항하지 않으면 죽음은 면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호수를 메우고 양산을 박살내, 너희 반적의 무리를 사로잡아 동경으로 압송하여 만 갈래로 찢어 죽일 것이다!”

진명은 본래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한도의 말을 듣자마자 아무 말 없이 말을 박차고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한도에게 달려들었다. 한도도 창을 들고 말을 몰아 나와 진명과 맞붙었다.

싸움이 20여 합에 이르자, 한도가 힘이 모자라 막 도주하려고 할 때 뒤에 중군 주장 호연작이 당도하였다.

호연작은 한도가 진명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척설오추마를 타고 쌍편을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진명이 보고 호연작과 싸우려 하자, 2진의 표자두 임충이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진통제는 잠시 쉬시오! 내가 저놈과 3백 합쯤 싸우는 거나 구경하시오!”

임충이 장팔사모를 들고 곧장 호연작에게 달려들었다. 진명은 군마를 이끌고 좌측 산모퉁이 뒤로 돌아갔다.

호연작과 임충은 정말 호적수였다. 사모과 강편이 오고 가는 것이 마치 한 폭의 비단을 펼친 듯했다. 싸움이 50합이 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3진 소이광 화영의 부대가 당도하여 진문 아래에서 소리쳤다.

임장군은 잠시 쉬시오! 내가 저놈을 사로잡는 걸 구경하시오!”

임충이 말을 돌려 돌아가자, 호연작도 임충의 무예가 고강함을 알고 본진으로 돌아갔다. 임충은 본부 군마를 이끌고 산모퉁이 뒤로 돌아가고, 화영이 대신 쟁을 들고 출전하였다. 호연작의 후군도 당도하여, 천목장 팽기가 삼첨양인도를 들고 황화마(黃花馬)를 타고 출전하여 화영을 꾸짖었다.

나라를 배반한 역적은 말할 건더기도 없다! 나랑 승부를 내자!”

화영이 크게 노하여 대답도 없이 달려 나가 팽기와 교전하였다. 두 사람이 교전한 지 20여 합이 되자, 호연작은 팽기가 힘이 부족한 것을 보고 말을 몰아 쌍편을 휘두르며 곧장 화영에게 달려들었다. 3합도 채 싸우지 않았는데, 4진 일장청 호삼랑이 당도하여 소리쳤다.

화장군은 잠시 쉬시오! 내가 저놈을 잡는 걸 구경하시오!”

화영이 군사를 이끌고 좌측 산모퉁이 뒤로 돌아가자, 팽기는 일장청과 교전하였다.

5진 병울지 손립의 군마가 당도하여, 진 앞에 말을 세우고 호삼랑이 팽기와 교전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먼지를 일으키며 싸우는데 살기가 등등하였다. 하나는 대간도를 휘두르고 하나는 쌍도를 휘둘렀다. 싸움이 20여 합에 이르자 일장청이 쌍도를 접고 말을 돌려 도주하였다. 팽기는 공로를 세울 요량으로 말을 몰아 추격했다.

일장청이 쌍도를 안장에 걸고 전포 밑에서 24개의 갈고리가 달려 있는 붉은 올가미를 꺼냈다. 팽기의 말이 접근하자 몸을 돌려 올가미를 공중으로 던졌다. 팽기는 손 쓸 사이도 없이 올가미에 걸려 말에서 떨어졌다. 손립이 군사들에게 명하여 팽기를 사로잡았다.

호연작은 팽기가 사로잡히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팽기를 구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일장청이 말을 박차고 달려가 호연작을 가로막고 싸웠다. 호연작은 일장청을 한 입에 삼켜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교전한 지 10합이 넘었지만, 호연작은 마음이 급해 일장청을 이기지 못하였다.

호연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발칙한 년이 나와 여러 합을 싸우다니, 대단하구나!”

마음이 더욱 다급해진 호연작은 파탄 난 척하면서 일장청이 찌르고 들어오도록 유인했다. 강편 하나는 숨기고 하나만 휘두르자, 일장청의 쌍도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으로 막으면서 오른손에 숨기고 있던 강편을 들어 일장청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눈치 빠른 일장청이 재빨리 오른손에 든 칼로 내려오는 강편을 막았다. 칼과 강편이 부딪혀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튀었다.

일장청이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도주하자, 호연작이 뒤를 추격해 왔다. 병울지 손립이 그걸 보고 쟁을 들고 말을 몰아 달려가 호연작을 대적하였다.

뒤에서는 송강이 열 명의 장수를 이끌고 당도하여 진세를 벌렸다. 일장청은 인마를 이끌고 산모퉁이 뒤로 돌아갔다. 송강은 천목장 팽기를 사로잡은 것을 보고 심중으로 몹시 기뻐하며, 진 앞으로 나가 손립이 호연작과 교전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손립은 쟁을 놓고 대나무 뿌리 모양의 강편을 손에 들고 호연작을 대적하였다. 두 사람 모두 강편을 사용하여 호적수를 이루었다. 두 사람은 진 앞에서 좌우로 돌면서 30여 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송강은 구경하면서 갈채하여 마지않았다. 관군 진영에서 팽기가 사로잡히는 것을 본 한도는 후군의 군마를 모두 일으켜 돌격했다. 송강이 채찍을 들어 신호하자 열 명의 두령들도 군사를 이끌고 돌격하고, 뒤로 물러나 있던 네 부대도 두 길로 나누어 협공했다.

호연작은 그걸 보고 급히 본부 군마를 거두어 양쪽으로 적을 막게 하였다. 호연작의 부대는 모두 연환마군(連環馬軍)이었으니, 말에게도 갑옷을 입히고 사람도 모두 철갑을 입어 말은 네 발굽만 드러나고 사람은 두 눈만 보였다.

송강의 부대도 말 갑옷을 입히기는 했지만, 단지 붉은 술이 달린 얼굴 가리개와 꼬리에 구리방울이 달렸을 뿐이었다. 호연작의 부대는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화살을 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런 3천 군마가 화살을 쏘면서 돌격해 오니, 양산박의 부대는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송강은 징을 울려 군사를 철수하였다. 호연작도 20여 리를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송강은 군대를 철수하여 산 서쪽에 하채하고 군마를 정돈하였다. 군사들이 팽기를 끌고 오자, 송강은 군사들을 물리치고 친히 포박을 풀어주었다.

팽기를 막사 안으로 인도하여 손님 자리에 앉히고 절을 했다. 팽기가 황망히 답례하고서 물었다.

저는 사로잡힌 사람이니 죽어야 마땅한데, 장군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손님의 예로 대하십니까?”

송강이 말했다.

저희들은 몸을 의지할 데가 없어 잠시 이 호수를 점거하여 피난하고 있을 뿐 크게 악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이제 조정에서 장군을 파견하여 저희를 체포하러 오셨으니, 본래는 목을 늘여 포박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까 두려워 죄를 무릅쓰고 교전했을 뿐입니다. 호랑이 같은 위엄을 잘못 범하였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팽기가 대답했다.

평소에 장군께서 의리를 중시하고 인()을 행하며, 위기에 빠진 사람을 일으키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제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과연 이렇게 의기가 있는 분인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미천한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몸 바쳐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저희 형제들은 다만 황제께서 관대히 은혜를 베푸시어 중죄를 사면해 주신다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만 번의 죽음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송강은 팽기를 산채로 보내 조천왕을 만나게 하고 그곳에 머물게 하였다. 송강은 삼군에 상을 내려 위로하고, 두령들을 불러 작전을 상의했다.

 

한편, 호연작은 군대를 철수하여 하채하고, 어떻게 하면 양산박을 이길지 한도와 상의했다. 한도가 말했다.

오늘 우리가 긴박하게 공격하자, 그놈들은 당황하여 우리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내일 전군을 총동원하여 공격하면 필시 대승을 거둘 것입니다.”

호연작이 말했다.

내가 이미 그렇게 준비해 두었네. 다만 자네와 의견이 상통하기를 바란 것일세.”

즉시 영을 하달하였다.

“3천 마군을, 30필씩 쇠사슬로 연결하여 공격하되, 적군이 멀리 있으면 활을 쏘고 적군이 가까이 있으면 창을 사용하여 돌진해 들어간다. 그렇게 3천 연환마군이 백 개 부대로 나누어 앞장서 돌격하고 5천 보군이 뒤를 접응한다.”

그리고 한도에게 말했다.

나와 자네는 앞에서 싸우지 말고 뒤에서 지휘하다가, 만약 교전이 벌어지면 세 방면으로 나누어 돌격하기로 하세.”

이렇게 계책을 정하고, 날이 밝으면 출전하기로 하였다.

 

한편, 송강은 군마를 다섯 부대로 나누어 앞장서게 하고, 후군의 장수 열 명이 호위하게 하였다. 그리고 진의 좌우에 복병을 매복하였다.

진명이 선봉에 서서 호연작에게 싸움을 걸었으나, 저쪽 진에서는 함성만 지를 뿐 교전하려고 하지 않았다.

앞장선 다섯 부대는 진 앞에 자로 벌려 섰다. 가운데는 진명, 왼쪽에는 임충과 일장청, 오른쪽에는 화영과 손립이 섰다. 뒤를 이어 송강이 열 명의 장수를 이끌고 당도하여 겹겹이 인마를 배열하였다.

송강이 적진을 바라보니, 약 천 명의 보군이 북을 울리며 함성만 지를 뿐 한 명도 출전하지 않았다. 송강은 의심이 들어 몰래 영을 전해 후군을 물러나게 하고, 말을 몰아 곧장 화영의 부대로 가서 관망하였다.

바로 그때 돌연 적진에서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1천 보군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연환마군이 돌격해 나왔다. 양편에서는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대고 가운데는 모두 장창을 들고 있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 크게 놀라 급히 군사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30필의 말이 한 부대로 연결되어 일제히 달려오는데,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만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연환마군이 온 들판을 뒤덮으면서 종횡무진으로 돌진해 오자, 전면의 다섯 부대 군마는 그걸 바라보면서 어지럽게 날뛰기만 할 뿐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후방에 있는 대부대도 막을 수가 없어 각자 달아나기에 바빴다. 송강이 황망히 달아나자, 열 명의 장수가 호위하면서 내달렸다. 등 뒤에서 연환마군 한 부대가 추격해 왔는데, 이규와 양림이 이끄는 복병이 갈대숲 속에서 뛰쳐나와 송강을 구원하여 호숫가로 도주하였다.

이준 · 장횡 · 장순과 완가 삼형제가 전선을 벌려놓고 있다가 접응했다. 송강은 급히 배에 오르면서 영을 전해 흩어져 있는 두령들을 구원하여 배에 태우게 하였다.

연환마가 곧장 호숫가에까지 진격해 오면서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댔다. 배 위에는 방패가 준비되어 있어,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면서 황망히 배를 저어 압취탄으로 건너갔다. 수채에서 인원을 점검했더니, 태반을 잃었다. 다만 두령들이 모두 온전한 것만은 다행이었다.

잠시 후, 석용·시천·손신·고대수가 도망쳐 와서 말했다.

보군이 쳐들어와서 객점을 모두 때려 부수었습니다. 만약 정찰선이 와서 접응해 주지 않았다면 저희들도 모두 사로잡힐 뻔했습니다.”

송강은 일일이 위로하고, 두령들을 점검하였다. 화살에 맞아 상처를 입은 두령은 임충 · 뇌횡 · 이규 · 석수 · 손신 · 황신이었고, 화살에 맞은 졸개들은 부지기수였다.

전황을 들은 조개가 오용·공손승과 함께 내려와 위문하자, 송강은 양미간을 펴지 못하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였다.

오용이 위로했다.

형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했으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연환군마를 격파할 좋은 계책을 생각해 봅시다.”

조개는 수군에게 영을 내려 방책과 선척들을 점검하여 밤낮으로 단단히 방어하라고 하였다.

조개가 송강에게 산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라고 했지만, 송강은 산에 올라가지 않고 압취탄의 소채에 남고 다친 두령들을 산으로 올려보내 치료하게 하였다.

 

한편, 전승을 거둔 호연작은 본채로 돌아와 연환마들을 풀고, 장병들에게 차례로 와서 공로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죽인 적군은 부지기수이고, 사로잡은 자는 5백여 명이었으며, 빼앗은 전마는 3백여 필이었다. 즉시 사람을 경성으로 보내 승전보를 알리고, 삼군에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한편, 고태위는 전수부에서 보고를 받았다.

호연작이 양산박과 싸워 이기고 사람을 보내 승전보를 전해 왔습니다.”

고태위는 아주 기뻐하였다.

다음 날 조회에 나가 천자에게 승전을 아뢰었다. 휘종도 매우 기뻐하며 어주(御酒) 열 병과 비단 전포 한 벌을 하사하고, 관원에게 10만 관의 돈을 가지고 가서 군사들에게 상을 내리게 하였다. 고태위는 성지를 받고 전수부로 돌아와, 즉시 하사품과 관원을 호연작의 진영으로 보냈다.

한편, 호연작은 황제의 사신이 당도한 것을 알고 한도와 함께 20리를 나와 영접하고 본채로 인도하였다.

상을 받고 성은에 사례한 다음, 술을 내어 사신을 대접하였다.

한도에게 명하여 군사들에게 상으로 돈을 나누어주게 하고, 사로잡은 5백 명은 진중에 감금하였다가 수괴를 잡은 다음 함께 경성으로 압송하여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였다.

사신이 물었다.

팽기 장군은 어쩌다가 사로잡혔습니까?”

호연작이 말했다.

욕심을 내어 송강을 잡으려고 적진에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가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제 도적들이 감히 다시 나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가 병력을 나누어 공격하여 산채와 수채를 깨끗이 소탕하여 도적들을 모두 잡고 소굴을 무너뜨려 버리겠습니다. 다만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진격할 길이 없는 것이 한입니다. 저들의 산채를 두루 살펴보니, 화포를 발사하여 도적의 소굴을 박살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동경에 능진(凌振)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그는 화포를 잘 만들어 14~5리까지 날아가는데, 석포가 떨어지면 천지가 무너지고 산이 뒤집어지며 바위가 부서진다고 합니다. 이 사람을 얻는다면, 도적의 소굴을 타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무예에도 정통하고 궁마도 능숙하다고 합니다. 사신께서 동경으로 돌아가시면 고태위에게 이 일을 말씀드리고, 그를 빨리 보내주시면 일찌감치 도적의 소굴을 쳐부술 수 있습니다.”

사신은 응낙하였다.

사신은 동경에 도착하자마자 고태위를 찾아가, 호연작이 포수 능진만 있으면 대공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고태위는 그 말을 듣고, 곧 명을 내려 능진을 불러오게 하였다.

원래 능진은 연릉 사람으로, 송나라의 제일 포수로서 사람들은 그의 화포가 하늘을 울리는 우레와 같다고 해서 그를 굉천뢰(轟天雷)’라고 불렀는데, 무예에도 정통하였다.

능진은 고태위를 만나 행군통령관(行軍統領官)의 임명장을 받고, 말과 무기 등을 수습하여 출발 준비를 했다. 또 화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과 이미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화포와 포석·포가 등을 수레에 싣고, 3~40명의 군사들과 함께 동경을 떠나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군영에 당도하여 먼저 주장 호연작을 만나 인사하고 선봉장 한도도 만났다. 수채까지의 거리와 산채의 험준함 등을 알아 본 다음, 세 종류의 화포를 배치했다.

첫째는 풍화포(風火炮), 둘째는 금륜포(金輪炮), 셋째는 자모포(子母炮)였다. 포가를 정돈하여 호숫가로 끌고 가, 포대를 세우고 포를 발사할 준비를 하였다.

한편, 송강은 압취탄의 소채에서 군사 오용과 적을 격파할 방법을 상의했으나, 마땅한 계책이 없었다.

그때 정탐꾼이 와서 보고했다.

동경에서 굉천뢰 능진이라는 포수를 새로 파견했는데, 호숫가에 포가를 세우고 산채를 포격할 화포를 준비했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산채는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고 물길도 복잡한데다, 완자성은 호숫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설혹 비천화포(飛天火炮)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성까지 당도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압취탄의 소채는 포기하고 저들이 화포를 어떻게 쏘는지 본 다음에 다시 상의합시다.”

송강은 소채를 포기하고 모든 군사를 이끌고 관 위로 올라갔다.

조개와 공손승이 맞이하여 취의청으로 가서 물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적을 격파한단 말인가?”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산 아래에서 화포 소리가 들렸다.

화포를 연이어 세 발 발사했는데, 두 개는 수면에 떨어졌지만 하나는 압취탄 소채를 타격했다. 그걸 보고 송강은 더욱 근심에 빠졌고, 여러 두령들도 모두 안색이 변했다.

오용이 말했다.

능진을 호숫가로 유인하여 사로잡은 뒤에야 적을 격파할 방법을 상의할 수 있겠습니다.”

조개가 말했다.

이준 · 장횡 · 장순과 완가 삼형제는 배를 저어 가서 여차여차 행하고, 주동과 뇌횡은 호숫가에서 여차여차 접응하도록 하라.”

여섯 수군 두령들은 명을 받고 두 부대로 나누었다. 이준과 장횡이 먼저 4~50명의 수군과 함께 두 척의 쾌속선을 타고 갈대숲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그 뒤에 장순과 완가 삼형제가 40여 척의 작은 배를 이끌고 접응하였다. 이준과 장횡이 건너편 호숫가에 당도하여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포가를 뒤집어엎었다.

군사들이 황망히 달려가 능진에게 보고하자, 능진은 쟁을 쥐고 말에 올라 풍화포 2대와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갔다. 이준과 장횡은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다.

능진이 갈대숲까지 추격해 와서 바라보니, 40여 척의 작은 배들이 자로 늘어서 있는데 배 위에는 모두 백여 명의 수군이 있었다. 이준과 장횡은 얼른 배 위에 뛰어 올랐지만 일부러 배를 저어 달아나지 않고 있다가, 능진의 인마가 가까이 다가오자 함성을 지르며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능진의 인마가 당도하여 배를 빼앗았다. 주동과 뇌횡의 부대도 건너편에서 북을 치고 함성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능진은 많은 배를 탈취하여 군사들을 태우고 건너편으로 전진해 갔다.

배가 호수 중심에 당도했을 때, 주동과 뇌횡이 징을 울리자 물 밑에서 4~50명의 수군이 올라오더니 선미의 쐐기를 모두 뽑아 버렸다. 배 바닥에서 물이 콸콸콸 솟구치자 수군들이 배를 흔들어 뒤집어 버렸다.

능진의 군사들은 물에 빠졌다. 능진이 급히 배를 돌리려고 했지만, 선미의 키와 노가 이미 물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양쪽에서 두 두령이 배를 뒤집자 능진은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물속에서 완소이가 능진을 붙잡아 건너편 호숫가로 끌고 갔다. 호숫가에 있던 두령들이 능진을 넘겨받아 밧줄로 묶어 산채로 데리고 올라갔다. 물에 빠진 병사 중 2백여 명은 사로잡혔고, 거의 절반은 익사했다. 몇 명만 살아남아 달아났다.

호연작이 보고를 받고 급히 군마를 이끌고 달려왔지만, 배들은 이미 압취탄으로 건너간 뒤였다.

활을 쏴도 미치지 못했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호연작은 한동안 화를 내고 있다가 인마를 이끌고 돌아갔다.

한편, 두령들은 능진을 붙잡아 산채로 올라가면서 먼저 사람을 보내 보고하였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이 제2 관문까지 내려와 맞이하였다. 송강은 능진을 보자 황망히 포박을 풀어주고 두령들을 꾸짖었다.

내가 자네들에게 예를 갖추어 통령을 산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무례했는가!”

능진은 살려준 은혜에 감사했다.

송강은 능진의 손을 잡고 산채로 향하였다. 능진은 산채에 당도하여 팽기가 이미 두령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기가 능진에게 말했다.

조두령과 송두령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는 분들로서, 호걸들을 받아들이면서 조정에서 초안만 내리면 언제든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려 하고 있소. 우리가 이미 이곳에 왔으니, 그 명에 따를 수밖에 없소.”

송강이 사과하자, 능진이 말했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은 괜찮지만, 노모와 처자식이 모두 동경에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알게 되면 필시 죽음을 당할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곧 통령께 데리고 오겠습니다.”

능진이 사례하며 말했다.

두령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개가 말했다.

! 연회를 열어 축하합시다.”

다음 날, 취의청에 두령들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연환마를 격파할 계책을 상의했다. 마땅한 계책이 없었는데, 금전표자 탕륭이 일어나 말했다.

제가 재주는 없지만, 한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한 가지 병기와 제가 아는 형님 한 분만 있으면 연환마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오용이 물었다.

아우가 말하는 병기는 무엇이며, 형님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탕륭이 말했다.

저는 조상 대대로 병기 제조를 생업으로 해 온 집안의 자손입니다. 선친께서는 기술이 뛰어나 연안부 경략상공 밑에서 지채(知寨) 벼슬까지 했습니다. 선조 때에는 연환마를 사용해 승전하기도 했는데, 연화마의 진을 격파하려면 반드시 구겸창(鉤鐮槍)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저의 조상 대대로 구겸창 그림이 전해져 내려와, 필요하면 지금 바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사용할 줄은 모릅니다. 구겸창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저의 고종사촌 형님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형님 집안에서 대대로 구겸창 사용법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말 위에서 사용할 수도 있고 보행하면서 사용할 수도 있는데, 모두 법칙이 있고 신출귀몰합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임충이 물었다.

그 사람은 현재 금쟁반(金鎗班) 교사(教師)로 있는 금쟁수(金鎗手) 서녕(徐寧) 아닌가?”

,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자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도 잊을 뻔했네. 서녕의 금쟁법과 구겸창법은 정말 천하에 독보적이지. 동경에 있을 때 그와 여러 번 만나 무예도 겨루어 보고 서로 친하게 지냈네. 그런데 그를 어떻게 산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서녕에게는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보물이 하나 있는데, 세상에 비할 바 없는 것으로 집안을 지키는 보물입니다. 제가 예전에 지채를 지냈던 선친을 따라 동경의 고모님 댁에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기러기 깃털로 만들었다는 안령갑(雁翎甲)’이라는 갑옷인데, 몸에 입으면 가볍고 편안하면서 칼이나 화살에 뚫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당예 갑옷보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새당예(賽唐猊)’라 부르기도 합니다. 당예는 머리는 사자 같고, 뿔은 사슴 같고, 발톱은 매와 같고, 꼬리는 용과 같은데 그 끝에는 비바람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는 전설상의 짐승인데, 가죽이 질겨서 그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면 화살이 관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많은 귀공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만, 함부로 남에게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 갑옷을 자기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 가죽상자에 담아 침실 대들보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만약 그 갑옷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그는 이리로 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오용이 말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 여기에 고수들이 있잖아. 이번에는 고상조 시천이 한 번 갔다 오게.”

시천이 즉시 응답했다.

그 물건이 그곳에 없다면 모르지만, 있기만 하다면 무조건 가져오겠습니다.”

탕륭이 말했다.

자네가 갑옷을 훔쳐오기만 하면, 내가 그를 속여서 산으로 데리고 오지.”

송강이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그를 속여서 산으로 데려올 건가?”

탕륭이 송강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몇마디 말을 하자, 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하다!”

오용이 말했다.

동경에 세 사람을 더 보내야겠습니다. 한 사람은 화포 재료를 사오게 하고, 두 사람은 능진의 가족을 데려오게 해야 합니다.”

팽기가 그 말을 듣고 일어나서 말했다.

한 사람을 영주로 보내 저의 가족을 데려오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마음 놓으시오. 두 분이 서신을 써 주시면, 내가 사람을 보내 데려오겠소.”

양림을 불러 금은과 서신을 주어 졸개들을 데리고 영주로 가서 팽기의 가족을 데려오게 하고, 설영은 창봉술 약장수로 변장하여 동경으로 가서 능진의 가족을 데려오게 하였다. 또 이운은 객상으로 변장하여 동경으로 가서 화포 재료를 사 오게 하였다. 악화는 탕륭과 같이 가되, 설영이 왕래할 때 도와주도록 하였다.

먼저 시천을 내려 보내고, 탕륭에게 구겸창 견본을 하나 만들게 하였다. 산채의 대장장이들에게 견본에 따라서 구겸창을 만들게 하고, 뇌횡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다. 원래 뇌횡의 조상도 대장장이 출신이었다.

대채에서 송별연을 열고 양림·설영·이운·악화·탕륭을 내려 보냈다. 그 다음 날 또 대종을 내려보내, 왕래하면서 사정을 정탐하게 하였다.

시천은 무기와 여러 가지 도구를 몸에 감추고, 동경으로 가서 객점에 투숙하였다. 다음 날, 성안을 돌아다니면서 금쟁반 교사 서녕의 집을 탐문하였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금쟁반 문으로 들어가서 동쪽으로 다섯 번째 검은색 작은 문이 바로 그 집이오.”

시천은 금쟁반 문으로 들어가, 먼저 앞문을 살펴보고 다시 뒷문으로 가서 또 살펴보았다. 담장은 높은데, 담장 안에 두 칸짜리 작은 누각이 하나 있고 그 측면에 버팀목이 있었다. 시천은 한번 살펴보고 나서, 다시 거리로 나와 이웃사람에게 물었다.

서교사는 집에 계십니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까?”

언제 돌아오시는지 아십니까?”

새벽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십니다.”

실례했습니다.”

시천은 객점으로 돌아와 도구들을 챙기고, 점원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밤에 아마 못 돌아올 것 같은데, 방 잘 좀 지켜주게.”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시천은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저녁밥을 사먹고, 금쟁반 서녕의 집으로 갔다. 좌우를 살펴보니,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금쟁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달빛이 없었다. 시천은 토지신 사당 뒤에 큰 측백나무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무를 기어 올라가 꼭대기의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서녕이 돌아와 집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이 등불을 들고나와 문을 잠그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성의 망루에서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저녁 8시였다. 구름은 차고 별빛도 없는데, 이슬은 사라지고 서리꽃이 점점 하얗게 변해 갔다. 시천은 금쟁반 안이 고요해지자 나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서녕의 집 뒷문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담장을 넘어가는 데에는 힘을 조금도 들이지 않았다. 살금살금 기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조그마한 정원이 하나 있었다. 시천이 주방 바깥에 엎드려서 안을 들여다보니,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하녀 둘이서 주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시천은 누각의 버팀목을 기어 올라가 지붕 밑의 바람막이 판자 곁에 웅크리고 엎드려 누각 안을 살펴보았다.

서녕이 화롯가에 부인과 마주앉아 있는데 6~7세쯤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침실 안을 살펴보니, 대들보에 과연 가죽상자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방문 옆에는 활과 요도 한 자루가 걸려 있고, 옷걸이에는 여러 가지 옷이 걸려 있었다.

서녕이 말했다.

매향아! 이리 와서 관복을 개어 놓아라!”

그러자 아래층에서 하녀 하나가 올라와 옆에 놓여 있는 자줏빛 관복을 먼저 개고 또 녹색 도포를 개어 놓았다. 그리고 허리띠와 머리띠 등을 정돈하여 보자기에 싸서 바구니 안에 넣었다. 시천은 한동안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10시쯤 되어 서녕이 책상을 정리하자, 부인이 물었다.

내일도 천자를 모십니까?”

서녕이 말했다.

내일은 천자께서 용부궁으로 행차하시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대기해야 하오.”

부인이 하녀에게 말했다.

나리께서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셔야 하니까, 너희들은 3시에 일어나서 물을 끓이고 아침밥을 준비하도록 해라.”

시천은 생각했다.

저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가죽상자 안에 분명히 갑옷이 있을 것이다. 밤중에 손을 쓰면 좋겠지만, 만약 시끄러워지게 되면 내일 성을 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니, 큰일을 그르치게 될지도 모른다. 새벽 5시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써도 늦지 않겠다.”

서녕 부부는 침상에서 잠이 들었고, 두 하녀도 방문 밖의 잠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방안 탁자 위에는 작은 등불만 하나 켜져 있고, 다섯 사람이 모두 잠들었다. 시천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갈대 대롱을 하나 꺼내 격자창 구멍으로 넣어 훅 불자, 등불이 꺼졌다. 새벽 3시쯤 되자 서녕이 일어나 하녀를 깨워 물을 끓이라고 했다.

두 하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의 등불이 꺼진 것을 보고 소리쳤다.

어머나! 밤새 등불이 꺼졌네!”

서녕이 말했다.

얼른 뒤에 가서 불을 붙여 오지 않고 뭐 하냐!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

하녀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시천은 기둥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와 뒷문 옆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하녀가 뒷문을 열고 나와 담장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 시천은 주방으로 몰래 숨어들어 탁자 아래 숨었다. 하녀가 등불에 불을 붙이고 뒷문을 닫고 주방으로 들어가 부뚜막에 불을 지폈다. 한 하녀는 부뚜막에서 숯불을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고, 좀 있다가 물이 끓자 또 한 하녀가 물을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녕이 세수한 다음 술을 덥혀 오라고 하자, 하녀가 내려와 밥과 술을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 서녕이 밥을 먹으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하인들에게도 밥을 주라고 하였다.

시천은 서녕이 아래로 내려와 보따리를 매고 손에 금쟁을 들고 문을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두 하녀는 등불을 들고나와 서녕을 배웅했다.

시천은 주방 탁자 아래에서 나와 이층으로 올라가 곧장 대들보 위로 올라가 엎드려 있었다. 두 하녀는 문을 닫고 들어와 등불을 끄고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어 잠이 들었다. 시천은 두 하녀가 잠드는 소리를 듣고, 대들보 위에서 갈대 대롱으로 등불을 불어 껐다.

대들보에 매달려 있는 가죽 상자를 풀어 아래로 내려오려는데, 서녕의 부인이 잠에서 깨어 소리를 듣고 하녀에게 말했다.

대들보 위에서 뭔 소리가 나지 않냐?”

시천이 쥐소리를 내자, 하녀가 말했다.

마님! 쥐소리 들리지 않으세요? 지들끼리 싸우느라 시끄러운가 봐요.”

시천은 쥐들이 싸우는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내려와, 가죽상자를 매고 살금살금 이층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와 바깥문을 열고 나왔다. 금쟁반 문에 당도해 보니, 출근하는 사람들이 이미 문을 열어 놓았다. 시천이 단숨에 성 밖으로 나와 객점에 당도하니,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행장을 수습하고 방값을 계산한 다음 객점을 나와 동쪽으로 내달렸다.

시천이 40여 리를 가서 비로소 반점에 들어가 아침밥을 지어 먹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반점으로 뛰어 들어왔다. 시천이 보니, 다른 사람 아닌 신행태보 대종이었다. 대종은 시천이 물건을 가져온 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먼저 갑옷을 갖고 산채로 갈 테니, 자네는 탕륭이랑 천천히 오게.”

시천은 상자를 열고 안령갑을 꺼내 보자기에 쌌다. 대종은 보자기를 몸에 묶고 신행법을 써서 양산박으로 달려갔다. 시천은 빈 가죽상자를 눈에 잘 띄게 멜대에 묶어서 지고, 밥값을 치른 다음 반점을 나와 걸어갔다.

20리쯤 걸어가다가 탕륭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주점으로 들어가 상의했다.

탕륭이 말했다.

자네는 내가 가라는 대로 가되, 지나치는 주점·반점·객점의 문 위에 흰 분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걸 보면 들어가서 술이나 고기를 사먹으면서 쉬었다 가게. 그러면서 가죽상자는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놓고. 여기서부터 하루 걸어갈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게."

시천은 계책대로 떠나가고, 탕륭은 천천히 술을 마시고서 동경성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서녕의 집에서는 날이 밝자 두 하녀가 일어나 보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열려 있었다. 아래의 중문과 대문도 모두 닫혀 있지 않았다. 두 하녀가 황망히 집안을 살펴보았는데,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녀가 이층으로 올라가 부인에게 말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문이 모두 열려 있는데, 없어진 물건은 없습니다.”

부인이 말했다.

새벽에 대들보 위에서 소리가 났는데, 너희들이 쥐들이 싸우는 소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가죽상자는 살펴보았느냐?”

두 하녀가 대들보를 쳐다보고는 소리쳤다.

에구머니! 가죽상자가 없어졌어요!”

부인이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

빨리 사람을 용부궁으로 보내 나리께 알려라! 빨리 오셔서 상자를 찾아보시라고 해라!”

하녀들이 급히 하인을 용부궁으로 보내 서녕에게 알리게 하였다. 연이어 하인 서너 명을 보냈는데, 모두 돌아와서 똑같은 말을 했다.

궁을 지키는 군사가 말하기를, ‘금쟁반이 어가를 따라 내원으로 들어갔고 바깥은 모두 친위대가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가 귀가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서녕의 부인과 하녀들은 마치 뜨거운 불판 위의 개미처럼 다급했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밥도 먹지 못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서녕은 황혼 무렵에야 비로소 금쟁을 등에 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금쟁반 문 앞에 당도하니, 이웃이 말했다.

부인이 말하기를, 집안에 도둑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이제 오시는군요.”

서녕이 깜짝 놀라 황망히 집안으로 달려들어 가니, 하녀가 문에서 맞이하며 말했다.

나리께서 출근하신 후 도적이 몰래 들어와 대들보에 걸려 있는 가죽 상자만 훔쳐 갔습니다.”

서녕은 그 말을 듣고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뱃속에서부터 연달아 나왔다. 부인이 말했다.

도둑이 언제 집안으로 숨어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서녕이 말했다.

다른 물건을 잃어버려도 별것 아니지만, 이 안령갑은 조상으로부터 4대째 물려받은 보물이니 잃어버려서는 아니되오. 지난번에 왕태위가 돈 3만 관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내가 팔지 않았소. 훗날 군대에서 사용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대들보에 매달아 둔 것이오. 많은 사람들이 보여 달라고 했지만 모두 물리치고 보여 주지 않았는데, 이제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이오!”

서녕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훔쳐갔을까! 필시 내가 갑옷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놈이겠지.”

부인이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간밤에 등불이 꺼졌을 때 도둑놈이 이미 집안으로 숨어든 게 아닐까요? 필시 그 갑옷을 탐내던 사람이, 돈을 준다고 해도 당신이 팔지 않으니까, 수완이 뛰어난 도둑을 시켜 훔쳐갔을 거예요. 당신이 사람을 시켜 조용히 찾으면서,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요. 자칫 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듯, 도둑이 놀라지 않도록 해야 돼요.”

서녕은 부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심하면서 궁리하고 있는데 날이 밝아왔다. 서녕이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하인이 나가 이름을 물어보고 들어와 말했다.

연안부 탕지채의 아들 탕륭이 뵈러 왔답니다.”

서녕이 손님을 들이라고 하였다.

탕륭은 서녕을 만나 절을 하고서 말했다.

형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서녕이 말했다.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들었는데, 관직에 매인 몸인데다 길도 멀고 해서 조문을 가지 못했네. 아우의 소식도 몰랐는데, 그동안 어디서 지냈는가? 오늘은 어쩐 일로 왔는가?”

말하자면 끝이 없지요. 부친께서 돌아가신 후 시운이 맞지 않아 강호를 떠돌았습니다. 지금은 산동에서 형님을 만나러 경성으로 왔습니다.”

일단 앉게.”

서녕은 술과 음식을 내오게 하여 탕륭을 대접했다. 탕륭이 보따리에서 20냥짜리 황금 두 덩어리를 꺼내 서녕에서 건네면서 말했다.

선친께서 임종 때 이걸 형님께 남겼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보내드리지 못했는데, 이번에 경성에 왔으니 형님께 드리려고 왔습니다.”

외삼촌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다니 감사할 뿐이네, 나는 조금도 효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형님은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선친께서 살아계셨을 때 항상 형님이 무예가 뛰어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날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걸 형님께 남기셨던 겁니다.”

서녕은 탕륭에게 사례하고 황금을 받았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서녕은 양미간을 펴지 못한 채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였다. 탕륭이 일어나며 말했다.

형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신 것 같습니다. 무슨 근심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서녕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우는 모르네.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네! 간밤에 집안에 도둑이 들었네.”

뭘 도둑맞았습니까?”

조상께서 물려주신 안령갑을 간밤에 도둑맞았네. 그래서 근심하고 있는 중이네.”

그 갑옷은 저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선친께서도 항상 칭찬하셨습니다. 어디에 두셨는데, 도둑맞았습니까?”

가죽상자에 담아 침실 대들보 위에 묶어 놓았는데, 도둑놈이 언제 들어와서 훔쳐갔는지 모르겠네.”

그 가죽상자 모양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붉은 양가죽 상자인데, 안에는 솜을 채워 놓았네.”

탕륭은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양가죽 상자요? 혹시 윗면에 푸른 구름무늬의 여의주를 실로 수놓고 중간에 사자가 공을 굴리는 그림이 있는 상자 아닙니까?”

자넨 그걸 어디서 보았나?”

제가 어젯밤에 성에서 40리쯤 떨어진 시골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어떤 눈빛이 선명하고 마른 체격의 검은 사내가 멜대에 그 상자를 달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상자에 어떤 물건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주점을 나오다가 그 가죽상자는 어디에 쓰는 겁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내가 대답하기를 원래는 갑옷을 넣어두었던 건데, 지금은 잡다한 옷가지가 들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필시 그놈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놈은 다리를 삐었는지 걸음걸이가 시원찮았습니다. 우리가 쫓아가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그놈을 쫓아가 잡을 수만 있다면, 하늘이 도와주신 것이지!”

그러면 꾸물대지 말고 빨리 쫓아갑시다!”

서녕은 급히 요도를 차고 박도를 들고 탕륭과 함께 동곽문을 나가 달려갔다. 가다가 보니 벽에 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주점이 있었다.

탕륭이 말했다.

저 주점에 들어가서 술 한 잔 마시면서 물어 봅시다.”

탕륭이 주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주인장! 뭐 좀 물어 봅시다. 혹시 눈빛이 선명하고 체격이 마른 검은 사내가 멜대에 붉은 양가죽 상자를 메고 가는 것을 보지 못했소?”

주점 주인이 말했다.

어젯밤에 어떤 사람이 멜대에 붉은 양가죽 상자를 메고 갔는데, 어디서 넘어졌는지 다리를 절면서 갔습니다.”

탕륭이 서녕에게 말했다.

형님! 들으셨죠!”

서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황급히 술값을 치르고 주점을 나와 달려갔다. 앞에 또 객점이 하나 나타났는데 벽에 흰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탕륭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형님! 저는 더 이상 못 가겠습니다. 이 객점에서 쉬었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쫓아갑시다.”

서녕이 말했다.

나는 관직에 있는 몸이라 점고할 때까지 가지 못하면 분명히 문책을 당하게 될 건데, 어찌하면 좋은가?”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수님이 적당히 핑계를 대서 처리할 겁니다.”

그날 밤 객점에 들어가서 또 물어 보니, 점원이 대답했다.

어젯밤에 눈빛이 선명하고 마른 체격의 검은 사내가 우리 객점에서 하룻밤 자고 오늘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떠났습니다. 산동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탕륭이 말했다.

이제 쫓아갈 수 있습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쫓아가면 그놈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객점에서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추적해 갔다. 탕륭은 벽에 흰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만 있으면 들어가서 술이나 밥을 사 먹으면서 물어 보았고, 그럴 때마다 같은 대답을 들었다. 서녕은 갑옷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급해서 그저 탕륭을 따라 쫓아갈 뿐이었다.

날이 또 저물어 가는데 저 멀리 낡은 사당이 하나 보였다. 사당 앞 나무 아래 시천이 멜대를 내려놓고 땅에 앉아 있었다. 탕륭이 보고 소리쳤다.

옳지! 저 앞의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이 형님의 갑옷 상자 아닙니까?”

서녕은 그걸 보고 달려가 시천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네놈이 정말 대담하구나! 어째서 내 갑옷을 훔쳐갔느냐?”

시천이 말했다.

잠깐! 가만있어 봐! 소리치지 말라고! 내가 갑옷을 훔쳤다면 어쩔 건데?”

서녕이 소리쳤다.

이 무례한 짐승! 네놈이 도리어 나한테 덤벼드느냐!”

시천이 말했다.

상자 안에 갑옷이 있는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탕륭이 상자를 열어 보니 텅 비어 있었다.

서녕이 말했다.

네놈은 내 갑옷을 어디로 빼돌렸냐?”

시천이 말했다.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소인의 이름은 장일인데, 태안주 사람입니다. 그곳에 부자가 한 사람 있는데, 경략상공과 친분을 맺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 집에 안령갑이 있는데 팔지 않는다는 걸 듣고서, 저와 이삼이란 놈에게 훔쳐오면 돈 1만 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네 집 기둥에서 내려오다가 다리를 접질러서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삼이에게 먼저 갑옷을 가져가게 하고, 저는 빈 상자만 가지고 여기 남아 있게 된 겁니다. 당신이 만약 나를 관아에 끌고 가서 어떻게 해 보려고 하면, 나는 맞아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나를 살려 준다면 당신과 함께 가서 갑옷을 되찾아 주겠습니다.”

서녕은 한동안 주저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탕륭이 말했다.

형님! 이 자식이 달아날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같이 가서 갑옷을 찾읍시다. 만약 갑옷이 없으면 그때 이 자식을 관아로 끌고 가면 됩니다.”

서녕이 말했다.

아우 말이 맞네.”

세 사람은 걸어가다가 객점에 투숙하여 하룻밤을 쉬었다. 서녕과 탕륭은 교대로 시천을 감시하면서 쉬었다.

원래 시천은 명주로 다리를 묶어 마치 삔 것처럼 하고 있었다. 서녕은 시천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걸 봤기 때문에 철저히 감시하지는 않았다. 세 사람은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천은 도중에 술과 고기를 사서 대접하면서 사과했다. 또 하루를 걸어갔다.

다음 날, 걸어가는 도중에 서녕은 정말 갑옷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초조했다.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길옆에 서너 사람이 빈 수레를 하나 끌고 가는데 뒤에는 또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

길을 가던 사람이 탕륭을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하자, 탕륭이 물었다.

아우는 여기 어쩐 일인가?”

정주에 가서 장사하다가 태안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잘됐네. 우리 세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태안주까지 가 주면 좋겠네.”

세 사람이 아니라 더 많아도 괜찮습니다.”

탕륭이 기뻐하면서 그 사람을 서녕에게 인사시켰다.

서녕이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군가?”

탕륭이 대답했다.

제가 작년에 태안주에 분향하러 갔다가 이 아우를 알게 됐습니다. 이름은 이영이고, 아주 의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서녕이 말했다.

그렇다면 장일이도 제대로 걷지 못하니, 우리 모두 수레를 타고 가지.”

네 사람은 수레를 타고 갔다. 서녕이 시천에게 물었다.

장일! 그 부자의 이름을 말해 주게.”

시천은 서너 번 핑계를 대며 미루고 말을 하지 않다가, 엉터리로 말했다.

그는 유명한 곽대관인입니다.”

서녕이 이영에게 물었다.

태안주에 곽대관인이라는 사람이 있소?”

이영이 대답했다.

우리 주의 곽대관인은 대단한 부호입니다. 관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왕래하고 문하에는 한량들도 제법 기르고 있습니다.”

서녕은 이영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주범이 있으니 어려울 거 없겠지.”

이영이 노상에서 창봉술에 대해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하여 어느 새 하루가 지나갔다. 양산박에 거의 다가가자, 이영이 수레꾼에게 호리병을 주면서 술과 고기를 사 오라고 하여, 수레 위에서 술을 마셨다. 이영이 먼저 한 바가지를 마시고 서녕에게 권했다.

서녕이 한 바가지를 마신 후, 이영이 다시 술을 따르려고 하는데 수레꾼이 실수한 척하며 호리병을 손으로 쳐서 술이 모두 땅바닥에 쏟아졌다. 이영은 수레꾼에게 다시 가서 술을 사 오라고 소리쳤다. 그때 서녕이 입에서 침을 흘리며 쓰러졌다.

이영은 바로 철규자 악화였다. 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곧장 한지훌률 주귀의 주점으로 갔다. 사람들이 서녕을 들어 배에 태우고 금사탄으로 건너갔다. 송강이 이미 보고를 받고 두령들과 내려와 맞이하였다.

서녕이 이때 마취약에서 조금 깨어났는데, 사람들이 또 해독약을 먹였다. 서녕은 눈을 뜨더니 여러 사람들 보고 깜짝 놀라 탕륭에게 물었다.

아우! 자네는 어찌하여 나를 속여 이리로 데려왔는가?”

탕륭이 말했다.

형님은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송공명이 사방의 호걸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들었는데, 또 지난번에 무강진에서 흑선풍 이규 형님과 의형제를 맺고 산채에 투신하였습니다. 지금 호연작이 연환마의 전법으로 쳐들어와서, 격파할 계책이 없습니다. 제가 구겸창법의 계책을 올렸는데, 그건 형님이 아니면 아무도 사용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계책을 세워, 먼저 시천으로 하여금 형님의 갑옷을 훔치게 하고 제가 형님을 속여 뒤쫓게 하였습니다. 후에 악화가 이영으로 가장하여 형님께 마취약을 먹인 겁니다. 형님도 산에 올라와서 두령 자리에 앉으시지요.”

서녕이 말했다.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송강이 사과하며 말했다.

지금 송강이 잠시 양산박에 머물고 있지만, 조정에서 초안을 내리기만 하면 충심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결코 재물을 탐하거나 살인을 좋아하여 불인하고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진정을 잘 살피셔서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십시다.”

임충도 권했다.

저도 여기 있습니다. 형씨의 청렴한 덕은 많이 들었습니다만 물리치지 마십시오.”

서녕이 말했다.

탕륭 아우! 자네가 날 속여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집안의 처자식은 필시 관아에 붙잡혀 갈 것이니 어찌하면 좋은가?”

송강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한테 맡기시면, 조만간에 가족을 이곳으로 모시고 오겠습니다.”

조개·오용·공손승도 서녕에게 사과하고,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다. 한편으로 대종과 탕륭을 동경으로 보내 서녕의 가족을 데려오게 하였다. 열흘이 지나지 않아, 양림은 영주에서 팽기의 가족을 데려오고, 설영은 동경에서 능진의 가족을 데려왔으며, 이운은 화약 재료를 다섯 수레에 싣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에 대종과 탕륭이 서녕의 가족을 데리고 왔다. 서녕은 처자식이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나가고 나서 관아에서 점고가 있었는데, 제가 금은과 장신구를 좀 쓰고서 병이 나서 누워 있다고 핑계를 댔더니 더 이상 부르러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탕시숙이 안령갑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갑옷은 되찾았는데, 형님이 도중에 병이 나서 객점에서 죽게 생겼는데, 형수님과 아이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하면서 저희를 수레에 태워 이곳까지 데려왔어요.”

서녕이 탕륭에게 말했다.

아우! 잘했는데, 갑옷을 집안에 두고 온 것은 애석한 일이네.”

탕륭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별걱정을 다하십니다. 형수님을 수레에 태운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가 갑옷을 가지고 왔지요. 그리고 두 하녀도 유인하여 집안의 귀중품을 수습해 가지고 왔습니다.”

서녕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다시는 동경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탕륭이 말했다.

형님께 한 가지 사건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는 도중에 한 떼의 길손들과 마주쳤는데, 제가 형님의 안령갑을 입고 얼굴에 칠을 하고서 형님의 이름을 대면서 길손들의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아마 조만간에 동경에서 공문을 보내 형님을 체포하라고 할 겁니다.”

서녕이 말했다.

아우! 나를 해치는 것이 아주 심하구나!”

조개와 송강이 사과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사께서 이곳에 머물려 하시겠습니까?”

즉시 집을 배정하여 서녕의 가족이 거처하게 하고, 두령들은 모여서 연환마를 격파할 방법을 상의하였다.

이때 뇌횡은 구겸창 제조를 이미 완료한 상태였다. 송강과 오용은 서녕을 청하여 구겸창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서녕이 말했다.

제가 열심히 훈련시키겠습니다. 건장한 병사들을 선발해 주십시오.”

조개·송강·오용·공손승과 여러 두령들은 취의청에서 서녕에게 구겸창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였다.

두령들이 서녕을 보니, 과연 비범한 인물이었다. 키는 6척 반 정도 되고 얼굴은 둥글고 흰데 세 가닥의 수염이 나 있었다. 군사 선발이 끝난 다음, 서녕이 취의청 아래에서 구겸창을 쥐고 시범을 한 번 보이자, 사람들이 모두 갈채를 보냈다.

서녕이 군사들에게 말했다.

말 위에서 이 구겸창을 사용할 때에는, 허리와 허벅지에 힘을 주어 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찌르고 베는 기본적인 창법 외에 걸어서 당기거나 미는 방법이 있다. 보행하면서 구겸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먼저 크게 자세를 잡고 베고 찌르다가, 상대를 걸어서 당기거나 밀어 쓰러뜨리는 것이다.”

서녕이 시범을 보이자, 두령들과 군사들이 모두 환호했다. 그날부터 선발된 정예병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구겸창을 연습했다. 또 보군들은 풀밭에 엎드려 있다가 구겸창으로 적의 말발굽을 걸어 당기는 비법 세 가지를 훈련했다. 보름이 채 되지 않아 6~7백 명의 군사가 구겸창 사용법을 완전히 익혔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그걸 보고 크게 기뻐하며 적을 격파할 준비를 했다.

한편, 호연작은 팽기와 능진을 잃고서 매일 마군을 이끌고 호숫가로 와서 싸움을 걸었다. 산채의 수군 두령들은 각처의 물가를 견고히 수비하면서 물밑에 보이지 않는 말뚝들을 박아 놓았다. 호연작은 산의 서쪽과 북쪽의 두 길로 정찰병을 보냈지만, 산채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양산박에서는 능진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화포를 서둘러 만들게 하여, 하산하여 대적할 준비를 마쳤다.

또 구겸창을 사용하는 군사들도 모두 훈련을 마쳤다.

송강이 말했다.

내 생각엔 적을 무찌를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여러 두령들의 생각은 어떠시오?”

오용이 말했다.

그 전략을 듣고 싶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내일은 기마군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니, 여러 두령들은 보군만으로 싸우시오. 손오병법(孫吳兵法)에 따르면, 산림과 소택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였소. 지금 보군을 이끌고 하산하여, 열 개 부대로 나누어 적을 유인하시오. 적의 군마가 돌격해 오면, 모두 갈대숲이나 가시나무숲으로 흩어져 도주하시오. 그곳에 미리 구겸창을 든 병사들을 매복해 놓을 것이오. 구겸창을 든 군사 열 명마다 갈고리를 든 군사 열 명을 섞어 둘 것이오. 적군의 말이 당도하면 구겸창으로 쓰러뜨리고 갈고리로 사로잡는 겁니다. 들판이든 좁은 길이든 이렇게 매복할 겁니다. 이 전법이 어떻습니까?”

오용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적의 장병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서녕이 말했다.

구겸창과 갈고리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전법입니다.”

송강은 보군 10개 부대를 배정하였다. 유당과 두천, 목홍과 목춘, 양웅과 도종왕, 주동과 등비, 해진과 해보, 추연과 추윤, 일장청과 왕영, 설영과 마린, 연순과 정천수, 양림과 이운이 각각 한 부대씩을 거느리게 하였다. 10개 보군 부대가 먼저 산을 내려가 적군을 유인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준·장횡·장순·삼완·동위·동맹·맹강 아홉 수군두령은 전선을 타고 접응하고, 화영 · 진명 · 이응 · 시진 · 손립 · 구붕 여섯 두령은 말을 타고 군사를 데리고 산 옆에서 싸움을 걸게 하였다. 능진과 두흥은 호포 발사하는 일을 맡고, 서녕과 탕륭은 구겸창 군사들을 지휘하게 하였다. 중군의 송강 · 오용 · 공손승 · 대종 · 여방 · 곽성은 모든 부대를 총괄하여 지휘하고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나머지 두령들은 각기 산채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날 밤 자정에 먼저 구겸창 부대가 호수를 건너가 사면에 나누어 매복하였다. 뒤를 이어 열 개 보군부대가 호수를 건너갔다. 능진과 두흥은 높은 언덕에 포대를 세우고 풍화포를 설치하였다. 서녕과 탕륭도 신호깃발을 가지고 호수를 건너갔다. 해가 떠오르자 호수를 건너가지 않은 송강의 중군에서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깃발을 흔들었다.

호연작은 중군 막사에 있다가 정탐병의 보고를 받고, 먼저 선봉 한도를 내보내 정찰하게 하고 즉시 연환마를 준비하였다. 호연작은 갑옷을 입고 척설 오추마를 타고 쌍편을 들고 군마를 몰아 양산박으로 쳐들어갔다.

호수 반대편에 송강이 많은 인마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연작은 마군을 벌려 세웠다. 선봉 한도가 와서 호연작에게 말했다.

정남쪽에 보군 한 부대가 있는데, 수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연작이 말했다.

수가 얼마이든 간에, 연환마로 공격하라!”

한도가 5백 마군을 이끌고 나는 듯이 달려갔다. 그때 또 동남쪽에서 한 부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병력을 나누어 보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서남쪽에서 또 한 부대가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한도가 마군을 이끌고 돌아와 호연작에게 말했다.

남쪽에 적병 세 부대가 나타났는데, 모두 양산박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호연작이 말했다.

저놈들이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한꺼번에 몰려나오는 걸 보니 필시 뭔가 계책이 있을 것이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북쪽에서 화포소리가 들렸다. 호연작이 욕을 하며 말했다.

저 화포는 필시 능진이란 놈이 도적의 편이 되어 쏘는 것이다.”

군사들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북쪽에서 세 부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호연작이 한도에게 말했다.

이는 필시 적군의 간계이다. 나와 자네가 인마를 양로로 나누어, 나는 북쪽을 칠 테니 자네는 남쪽을 치게.”

막 병력을 나누려고 하는데, 서쪽에서 또 네 부대가 다가왔다. 호연작은 당황했다. 그런데 또 정북쪽에서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포탄이 곧장 언덕까지 날아왔다. 이 화포는 한 개의 어미포 주위에 49개의 새끼포가 있는 자모포(子母砲)’라는 것인데, 포성의 위세가 대단했다. 호연작의 군병들은 싸우기도 전에 혼란에 빠졌다.

호연작은 한도와 함께 각각 마보군을 이끌고 사방으로 쳐들어갔다. 호연작의 부대가 동쪽으로 쳐들어가면 양산박의 열 개 부대는 동쪽으로 달아나고, 서쪽으로 쳐들어가면 서쪽으로 달아났다. 호연작이 크게 노하여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쳐들어가자, 송강의 군병들은 모두 갈대숲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호연작이 연환마를 몰아 땅을 휩쓸며 쳐들어갔다. 갑옷을 입은 말들이 일제히 내닫는데, 멈출 수도 없이 곧장 갈대를 짓밟으며 달려갔다.

그때 갈대숲 속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더니 구겸창이 일제히 나타나 연환마 양쪽 끝의 말 다리를 걸어 쓰러뜨리자, 가운데 말들은 울부짖으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올가미를 든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땅에 떨어진 호연작의 군사들을 올가미로 걸어 넘어뜨리고 포박했다. 호연작은 구겸창 전법에 걸려든 것을 보고 말을 돌려 남쪽의 한도에게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는 풍화포가 머리 위로 날아왔다. 이쪽저쪽 온 산과 들판을 뒤덮으며 양산박의 보군이 추격해 왔다. 한도와 호연작이 거느리던 연환마 부대는 모두 갈대숲 속에서 넘어지면서 사로잡히고 말았다.

두 사람은 계략에 빠져든 것을 알고 사방으로 달리면서 마군을 수습하면서 길을 찾아 달아났다. 하지만 대다수의 길들은 이미 양산박의 깃발들이 삼밭처럼 빽빽하게 늘어서 있어 뚫고 나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곧장 서북쪽을 향해 내달렸다. 5~6리쯤 달렸는데, 한 부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앞장선 대장은 몰차란 목홍과 소차란 목춘이었다.

두 사람이 박도를 들고 소리쳤다.

패장은 달아나지 마라!”

호연작은 분노하여 쌍편을 휘두르며 목홍과 목춘에게 달려들었다. 4~5합을 싸우다가 목춘이 달아났다.

호연작은 계략에 빠질까 봐 추격하지 않고 정북쪽의 큰길로 도주했다. 그러자 산모퉁이에서 또 한 부대가 나타났는데, 앞장선 대장은 양두사 해진과 쌍미갈 해보였다. 둘은 각각 삼지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호연작은 쌍편을 휘두르며 두 사람과 싸웠다. 싸움이 6~7합에 이르자, 해진과 해보가 발걸음을 돌려 달아났다. 호연작이 반리도 채 추격하지 않았는데, 양편에서 24개의 구겸창이 나와 땅을 말듯이 달려들었다. 호연작은 싸울 마음을 잃고 말을 돌려 동북쪽의 큰길로 달아났다.

이번에는 왕영과 일장청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호연작은 길이 평탄하지 않고 사방이 모두 가시나무로 막혀 있는 것을 보고 쌍편을 휘두르며 길을 뚫고 달려갔다.

왕영과 일장청이 곧장 추격했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호연작은 동북쪽으로 달아났다. 호연작의 군대는 대패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한편, 송강은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 산채로 돌아갔다. 두령들은 각기 공을 아뢰고 상을 청하였다.

3천 연환마는 태반이 구겸창에 걸려 넘어져 발굽이 상했기 때문에, 갑옷을 벗기고 잡아먹게 하였다.

사로잡은 멀쩡한 말들은 산으로 끌고 올라가 기르게 하였다.

연환마를 탔던 군사들도 모두 사로잡혀 산채로 끌려오고, 5천 보군도 삼면이 포위되어 위급해지자 중군 쪽으로 달아나다가 모두 구겸창에 걸려 사로잡혔다. 호숫가로 달아난 군사들은 모두 수군 두령들에게 사로잡혀 산으로 끌려왔다. 그리고 지난번에 호연작에게 사로잡혔던 마필과 군사들을 되찾아 모두 산채로 데려왔다.

호연작의 영채는 모두 뽑아 버리고, 호숫가에 소채를 세웠다. 두 곳에 정탐용 주점을 다시 세우고 예전처럼 손신·고대수와 석용·시천이 각각 맡게 하였다. 유당과 두천이 한도를 붙잡아 포박하여 산채로 데리고 오자, 송강은 친히 밧줄을 풀어주고 취의청으로 인도하였다.

연회를 열어 대접하고 예를 갖춰 사과하였고, 팽기와 능진이 입당하라고 설득했다. 한도도 원래 72지살성(地煞星)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여 양산박의 두령이 되었다.송강은 한도에게 서신을 쓰게 하여, 진주로 사람을 보내 한도의 가족을 데려오게 하였다. 송강은 연환마를 격파하고서 많은 군마와 갑옷, 무기 등을 획득하였으므로, 연회를 열어 자축하였다. 그리고 예전처럼 각 길목을 지키며 관병을 방비하게 하였다.

한편, 호연작은 많은 관군을 잃고 감히 경성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 홀로 척설 오추마를 타고 갑옷은 벗어 말에 묶고서 도망쳤다. 노자도 없어 허리에 묶었던 금띠를 팔아 노자를 마련하였다.

호연작은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 별안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을 어찌 생각했던가? 누구를 찾아가야 하나?”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청주의 모용 부윤은 오래 전부터 나와 아는 사이니, 그를 찾아가야겠다. 그리고 모용 귀비(貴妃)를 통하면 다시 군대를 이끌고 와서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틀이 지나 저녁이 되었는데 배도 고프고 갈증도 났다. 길가의 시골 주점을 발견하고 말에서 내려 말을 나무에 묶어 놓고 주점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점원을 불러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점원이 말했다.

우리 주점에서는 술만 팝니다. 고기가 드시고 싶다면, 마침 마을에서 양을 잡았으니 제가 가서 사다 드리겠습니다.”

호연작은 요대를 풀어 금띠와 바꾼 은자를 꺼내 주면서 말했다.

양다리 하나 사와서 삶아 주게. 그리고 내 말에게도 풀을 먹여 주게.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청주로 갈 거네.”

나리! 여기서 숙박하셔도 되지만, 좋은 침상이 없습니다.”

난 군인 출신이라 쉴 곳만 있으면 되네.”

점원은 은자를 받고 양고기를 사러 갔다.

호연작은 말 등에 실려 있는 갑옷을 내리고, 말의 뱃대를 풀어주고 문 앞에 앉았다. 한동안 기다리고 있자니, 점원이 양다리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다. 호연작은 양다리를 삶게 하고, 밀가루로 전병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술 두 병을 주문했다.점원은 한편으로 고기를 삶고 전병을 만들면서, 한편으로 물을 끓여 호연작이 발을 씻을 수 있게 해주었다. 말은 집 뒤쪽의 마구간으로 끌고 갔다. 점원이 건초를 잘라 삶는 동안, 호연작은 먼저 술을 데워 한 잔 마셨다.

잠시 후 고기가 익자, 호연작은 점원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분부했다.

나는 조정의 군관인데, 양산박 도적들을 잡으려다가 실패하고 청주의 모용부윤을 찾아가려 하네. 내 말은 황제께서 하사하신 척설 오추마인데, 자네가 잘 보살펴주면 내가 상을 주겠네.”

감사합니다. 상공! 그런데 상공께서 아셔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도화산이라는 산이 하나 있는데, 산 위에 도적들이 있습니다. 첫째 두령은 타호장 이충, 둘째 두령은 소패왕 주통이라고 하는데, 5~6백 명의 졸개를 모아 민가를 약탈하고 수시로 마을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관아에서 누차 포도관군을 보냈지만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공께서는 밤중에 경계하시면서 주무셔야 할 겁니다.”

나는 만 사람도 당해낼 수 있는 용맹을 지닌 사람이니, 그까짓 놈들 전부 달려든다 해도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내 말이나 잘 돌봐 주게.”

술과 고기와 전병을 먹고, 점원은 주점 안에 자리를 깔고 호연작이 잘 수 있게 해주었다.

호연작은 며칠 동안 피로하기도 했고 술도 몇 잔 마셔서,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다가 자정쯤에 깼는데, 주점 뒤편에서 점원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호연작은 황망히 일어나 쌍편을 들고 뒤편으로 달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소인이 일어나 말에게 풀을 주려고 하는데, 울타리가 넘어지면서 어떤 자가 들어와 상공의 말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저기 3~4리 밖에 불빛이 아직 보이는데, 아마 그리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저쪽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

저 길로 가는 걸 보니, 아마 도화산 졸개들이 훔쳐 가는 것 같습니다.”

호연작은 깜짝 놀라 점원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하여 밭두렁 길을 2~3리쯤 쫓아갔는데, 불빛은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호연작이 말했다.

황제께서 하사하신 말을 잃어버렸으니,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점원이 말했다.

상공께서 내일 청주로 가셔서 관아에 알려, 관군을 보내 체포하면 말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호연작은 우울하여 날이 밝을 때까지 앉아 있다가, 점원에게 갑옷을 짊어지게 하고 청주로 갔다.

성안에 들어가니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객점을 찾아 하룻밤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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