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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4화

Bollnow 2025. 2. 5. 11:05

송강이 일장청과 왕영을 부부로 맺어주자, 두령들은 모두 송공명의 인덕을 칭송하며 연회를 열어 축하했다.

한창 술을 마시고 있는데, 주귀의 주점에서 일하는 소교가 올라와 보고했다.

수풀 앞 대로에 한 무리의 길손들이 지나가길래 졸개들이 가로막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이 운성현 포교 뇌횡이라고 했습니다. 주두령이 그를 주점으로 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저를 보내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조개와 송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군사 오용과 함께 영접하러 산을 내려갔다.

주귀가 이미 배를 보내 금사탄에 당도해 있었다.

송강은 뇌횡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못 본 지 오래되었는데, 항상 생각하고 있었소. 오늘은 무슨 연유로 이곳을 지나가시게 되었소?”

뇌횡이 황망히 답례하며 말했다.

저는 동창부에 공무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졸개들이 길을 막고 통행료를 내라고 해서 제 이름을 밝혔더니, 주형이 저를 붙들었습니다.”

천행이오!”

송강은 뇌횡을 산채로 청하여 여러 두령들과 인사를 나누게 하고 술을 내어 대접했다. 닷새 동안 머물면서 매일 송강과 얘기를 나누었다. 조개가 주동의 소식을 묻자, 뇌횡이 말했다.

주동은 지금 본현의 감옥 절급을 맡고 있는데, 신임 현령에게 아주 신임받고 있습니다.”

송강이 완곡하게 산에 올라와 입당하기를 권하자, 뇌횡이 말했다.

노모께서 연세가 많아 그 말씀을 따르기 어렵습니다. 노모께서 돌아가신 후에나 입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강 등은 재삼 간곡히 만류했으나 뇌횡이 산을 내려가겠다고 하자, 여러 두령들은 각기 황금과 비단을 선물했다. 뇌횡은 한 보따리의 금은을 받아 산을 내려갔고, 두령들은 길 입구까지 따라와 전송했다. 뇌횡은 운성현으로 돌아갔다.

조개와 송강은 취의청으로 돌아와 군사 오용과 산채의 직무를 상의했다. 다음 날 오용은 두령들을 취의청에 불러 모았다. 먼저 바깥의 주점을 지키는 일에 대해 송강이 말했다.

손신과 고대수는 원래 주점을 운영하던 사람이므로 동위·동맹과 교체하고, 동위·동맹은 따로 임무를 주도록 하겠다.”

시천은 석용을 돕게 하고, 악화는 주귀를 돕게 하며, 정천수는 이립을 돕게 했다. 동서남북 네 개 주점에서는 술과 고기를 팔면서 사방에서 입당하러 오는 호걸들을 맞이하게 하고, 각각 두 명의 두령을 배치한 것이다.

일장청과 왕영은 뒷산 아래 산채에서 말을 감독하게 하고, 금사탄의 소채는 동위·동맹 형제가 지키게 하며, 압취탄의 소채는 추연·추윤 숙질이 지키게 하였다. 산 앞의 대로는 황신과 연순이 마군을 거느리고 지키게 하였다.

해진과 해보는 산 앞의 제1 관문을, 두천과 송만은 완자성의 제2 관문을, 유당과 목홍은 대채 입구의 제3 관문을 지키게 하였다. 완가 삼 형제는 산 남쪽의 수채를 지키게 하고, 맹강은 종전대로 전선 건조를 감독하게 했다.

이응 · 두흥 · 장경은 산채의 재물을 관리하게 하고, 도종왕과 설영은 양산박 내의 성벽과 돈대 건축을 감독하게 하였다. 후건은 의복 · 갑옷 · 깃발 · 전포 등의 제작을 감독하게 하고, 주부와 송청은 연회를 담당하게 하며, 목촌과 이운은 가옥과 목책 짓는 일을 감독하게 했다.

소양과 김대견은 빈객을 응대하는 일과 서신·공문을 담당하게 하고, 배선은 군정사로서 상벌을 담당하게 했다. 여방 · 곽성 · 손립 · 구붕 · 마린 · 등비 · 양림 · 백승은 대채의 여덟 방면을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조개 · 송강 · 오용은 산정의 성채에 머물고, 화영 · 진명은 산 왼쪽 성채에, 임충 · 대종은 산 오른쪽 성채에 거주하게 했다. 이준·이규는 산 앞의 성채에, 장횡 · 장순은 산 뒤쪽의 성채에 거주하게 하고, 양웅 · 석수는 취의청 양쪽을 수호하게 하였다.

두령들의 배치가 정해지자 연회를 열어 축하했다. 산채의 체제는 이렇게 정비되었다.

한편, 뇌횡은 양산박을 떠나 운성현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서 노모를 뵙고 옷을 갈아입고 공문을 가지고 관아로 가서 현령을 만나 보고했다. 예전처럼 매일 오전에 출근하여 업무를 보았다.

어느 날 관아의 동쪽을 지나가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포교님!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뇌횡이 고개를 돌려 보니, 관아의 일을 돕는 이소이였다. 뇌횡이 대답했다.

며칠 전에 돌아왔네.”

포교님께서 출장가신 동안에 동경에서 새로 온 기생이 있는데, 미모와 재주가 모두 뛰어납니다. 이름은 백수영으로 포교님께 인사하러 왔는데, 마침 출장이시라 뵙지 못했습니다. 지금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데, 구경하려는 사람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습니다. 포교님께서도 한번 가 보시지요. 정말 끝내주는 계집입니다!”

뇌횡은 마침 한가하기도 해서 이소이와 함께 공연장으로 갔다. 문 앞에는 많은 휘장이 걸려 있고 깃대에는 공연 광고가 매달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맨 앞줄에 앉았다. 무대 위를 보니, 희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이소이는 술 한잔하기 위해 뇌횡을 버려두고 혼자 나갔다.

희극이 끝나자, 한 노인이 부채를 들고 나와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동경에서 온 백옥교라고 합니다. 저는 이제 늙어서 딸 수영의 가무를 뒷바라지 하면서 천하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징 소리가 울리자 백수영이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하고 징채를 잡고서 콩을 두드리듯 징을 두드리면서 노래하다가 얘기하고 얘기하다가 노래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뇌횡이 보니, 과연 미모와 재주가 모두 출중했다. 백수영이 노래를 마치자, 백옥교가 나와 말했다.

비록 대단한 재주는 아니지만 귀 밝은 사람을 감동시킬 정도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는 이제 내려가고 다음 극을 공연하겠습니다.”

백수영은 쟁반을 들고서 말했다.

재물의 문에서 일어나고, 이로운 땅에 머물고, 길한 땅을 지나가며, 번성한 곳에 가게 해주십시오! 손을 내밀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백옥교도 말했다.

우리 아이가 한 바퀴 돌 테니, 모두들 상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백수영이 쟁반을 들고 먼저 뇌횡 앞으로 왔다. 뇌힝이 전대를 뒤졌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뇌횡이 말했다.

오늘 깜빡 잊고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니, 내일 와서 상을 주겠네.”

백수영이 웃으며 말했다.

“‘처음 내린 식초가 진하지 않으면 끝까지 묽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나리께서 좋은 자리에 앉으셨으니 마수걸이로 좀 내시지요.”

뇌횡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했다.

내가 어쩌다 돈을 안 가지고 나온 것이지,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네.”

나리께서는 노래를 들으려 오시면서, 돈 가지고 오는 걸 어찌 잊으셨단 말입니까?”

내가 자네에게 너덧 냥 은자를 주는 건 별 것 아닌데, 오늘 깜빡 잊고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니깐.”

나리께서는 지금 한 푼도 없으면서 은자 너덧 냥을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게 바로 매실을 바라보면서 갈증을 잊고, 그림 속의 떡을 보면서 배고픔을 달랜다.’는 것 아닙니까?”

백옥교가 말했다.

얘야! 너는 눈도 없니? 성안 사람과 촌사람도 분간 못하냐? 그런 사람에게 뭘 달라고 하냐? 그 사람은 지나치고, 분별 있는 사람에게 마수걸이 부탁해라.”

뇌횡이 말했다.

내가 어째서 분별이 없단 말이오?”

백옥교가 말했다.

당신이 예절을 안다면, 개 대가리에 뿔이 나겠소.”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자, 뇌횡이 크게 노하여 욕을 했다.

이 건방진 놈이 어찌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백옥교가 말했다.

너같이 촌에서 소나 키우는 놈에게 욕을 좀 한들 뭐가 문제냐?”

뇌횡을 아는 사람이 소리쳤다.

그러지 마시오! 이 분은 본현의 뇌포교요!”

백옥교가 말했다.

아이고! 당나귀 x대가리가 참 무섭네요!”

뇌횡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백옥교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 백옥교의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날아갔다. 사태가 험악해지자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리고, 뇌횡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원래 백수영은 신임 현령이 동경에 있었을 때 왕래하던 사이라, 오늘 특별히 운성현에서 공연했던 것이었다.

백수영은 부친이 뇌횡에게 맞아 중상을 입은 것을 보고, 가마를 불러 타고 관아로 가서 뇌횡을 고발하였다.

뇌횡이 부친을 구타하고 공연장의 관객들까지 쫓아 버리고, 저를 모욕했습니다.”

현령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얼른 소장을 써라!”

현령이 이른바 베갯머리송사를 듣고, 백옥교에게 소장을 쓰게 하고 상처를 검사하여 증거로 삼았다.

현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뇌횡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교대로 현령에게 가서 좋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집이 관아에 지키고 앉아서 교태를 부리니 현령이 그 말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령은 사람을 보내 뇌횡을 체포하여 관아로 끌고 오게 하여, 곤장을 치고 진술서를 강요하여 쓰게 한 다음, 칼을 씌워 옥에 가두었다. 계집은 자신의 권세를 보여주고자, 또 현령에게 가서 뇌횡을 공연장 문 앞에서 조리돌림 하라고 졸랐다.

다음 날, 현령은 뇌횡을 공연장 문 앞에서 조리돌리도록 명했고, 계집은 현장에 나갔다. 하지만 형을 집행하는 자들이 모두 뇌횡과 같은 관원들이라 옷을 벗기려고 하지 않았다. 계집은 잠시 궁리하다가 혼자 말했다.

기왕에 말을 꺼냈는데, 그만두면 안 되지!”

계집은 공연장을 나가 다방에 앉아 옥졸을 불러 말했다.

저놈을 편하게 해주는 걸 보니, 당신들도 모두 저놈과 한통속이군. 현령께서 저놈의 옷을 벗기라고 했는데, 당신들이 멋대로 인정을 베풀고 있네. 잠시 후에 내가 현령에게 다 일러바치면, 당신들은 어떻게 될까?”

옥졸이 말했다.

낭자! 노여워하지 마시오. 우리가 옷을 벗기면 되지 않겠소?”

그렇게 하면 내가 당신들에게 상을 주겠소.”

옥졸들이 뇌횡에게 말했다.

형님!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옷을 벗겨야겠습니다.”

옥졸들은 길거리에서 뇌횡의 옷을 벗겼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가운데, 마침 뇌횡의 모친이 밥을 가지고 왔다가 아들이 발가벗긴 채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울면서 옥졸들을 꾸짖었다.

당신들은 내 아들과 같은 관아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돈이 그렇게 좋소? 당신들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누가 보장하겠소?”

옥졸이 대답했다.

어머님! 제 말씀도 좀 들어보세요. 저희들은 사정을 봐주려고 했는데, 원고가 저기서 감시하고 있으니 저희들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불시에 현령을 찾아가서 고해바치면 저희도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체면을 봐줄 수 없는 겁니다.”

피고에게 내려진 명령을 원고가 감시하는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이오?”

옥졸들이 다시 음성을 낮춰 말했다.

어머님! 저 여자는 현령과 사이가 좋아서, 한 마디만 하면 저희들은 끝장납니다. 저희들이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뇌횡의 모친은 직접 밧줄을 풀면서 욕을 했다.

저 천한 년이 권세에 빌붙어 함부로 날뛰는구나! 내가 이 밧줄을 풀면 네년이 어떻게 하나 보자!”

백수영이 다방에서 그 말을 듣고 뛰어나오며 말했다.

이 할망구가 지금 뭐라고 했냐?”

모친도 화가 나서 손가락질하며 욕을 해댔다.

네 이년! 천 사람이 올라타고 만 사람이 눌러대, 아무 놈이나 쑤셔대는 천한 암캐가 어디 감히 되레 나를 욕하느냐!”

백수영은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부릅뜨며 욕을 했다.

이 늙어빠진 음란한 년아! 빌어먹을 천한 년이 어디 감히 나를 욕하느냐?”

내가 네년을 욕했다! 어쩔래? 네년이 운성현 현령인 줄 아냐?”

백수영이 크게 노하여 달려들어 따귀를 때리자, 모친이 맞고서 비틀거렸다. 모친이 대들려고 하자 백수영이 다시 달려들어 눈앞이 번쩍하도록 세게 따귀를 때렸다. 뇌횡은 본래 효자인지라 모친이 맞는 것을 보고 일시적으로 분노가 폭발하여 쓰고 있던 칼을 들어 백수영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백수영은 정통으로 얻어맞아 머리통이 깨지면서 땅에 쓰러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백수영은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나오고 눈알이 튀어나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즉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백수영이 맞아 죽은 것을 보고 뇌횡을 관아로 끌고 가서 현령에게 사정을 아뢰었다. 현령은 즉시 뇌횡을 데려오게 하고, 검시관과 이장, 이웃들을 불러 시체를 검사하게 했다.

뇌횡은 모든 것을 순순히 인정하였다. 모친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뇌횡은 칼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다. 감옥의 절급은 바로 미염공 주동이었는데, 뇌횡이 잡혀 온 것을 보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옥졸들을 시켜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편히 쉬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모친이 밥을 갖고 와서 울면서 주동에게 애원했다.

이 늙은이가 예순이 넘었는데 멀쩡하게 눈을 뜨고서 저 아들을 어찌 보겠는가? 절급형님이 형제의 정을 생각해서 우리 아들을 가련히 여겨 잘 보살펴 주시오.”

주동이 말했다.

어머님은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앞으로는 밥을 가져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방도를 찾아서 구하겠습니다.”

형님이 우리 아들을 구해준다면 다시 낳아준 부모나 마찬가질 겁니다. 만약 우리 아들이 잘못되면 이 늙은이의 목숨도 끝장이오.”

제가 명심할 테니,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친은 사례하고 돌아갔다.

주동이 하루 동안 생각해 봤지만, 뇌횡을 구할 방도가 없었다. 현령을 찾아가서 간청도 하고 아래위로 인정도 썼다. 현령이 비록 주동을 총애하기는 했지만, 뇌횡이 자신의 애인인 백수영을 때려죽였기 때문에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백옥교가 뇌횡은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재촉하면서 누차 소장을 내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감옥에 갇힌 지 60일이 지나 기한이 차자, 제주부로 넘기게 되었다. 문서를 작성한 압사를 먼저 보내고, 주동으로 하여금 뇌횡을 압송하게 하였다. 주동은 10여 명의 옥졸을 데리고 뇌횡을 압송했다. 운성현을 떠나 약 10리쯤 가니 주점이 있었다.

주동이 말했다.

우리 저기서 술이나 한잔 하고 가지.”

모두 주점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주동은 측간에 간다고 핑계대고 뇌횡을 뒤쪽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칼을 벗겨 주고 분부했다.

아우는 집으로 돌아가서 노모를 모시고 밤새 다른 곳으로 도망가게. 내가 대신 처벌받으면 그만이야.”

뇌횡이 말했다.

제가 달아나는 것은 괜찮지만, 필시 형님이 연루되실 겁니다.”

아우는 잘 모르고 있네. 현령은 자네가 자기 애인을 때려죽였기 때문에 자네를 사형시키라는 문서를 만든 것이네. 제주부에 압송되어 가면 필시 사형을 당할 걸세. 내가 자네를 놓아준 것은 결코 사형에 해당할 죄는 아니네. 게다가 나는 걱정해야 할 부모도 없고, 배상에 가산을 다 써도 상관없네. 자네는 앞길이 구만리이니 얼른 가게.”

뇌횡은 절을 하고 뒷문으로 달아나 집으로 가서, 보따리를 수습하고 노모를 모시고 밤을 새워 양산박으로 가서 입당하였다.

한편, 주동은 빈 칼을 풀밭에 던져버리고 돌아가 옥졸들에게 말했다.

뇌횡이 도주하였으니 어쩌면 좋은가?”

옥졸들이 말했다.

빨리 그놈 집으로 가서 붙잡아야 합니다!”

주동은 일부러 한동안 시간을 끌다가 뇌횡이 멀리 달아났으리라고 생각될 즈음에, 옥졸들을 이끌고 관아로 돌아와 자수했다.

주동이 말했다.

소인이 부주의하여 노상에서 뇌횡이 달아났는데, 붙잡지 못했습니다. 어떤 죄든 달게 받겠습니다.”

현령은 본래 주동을 총애했기 때문에,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백옥교가 상급 관아에 주동이 고의로 뇌횡을 놓아주었다고 고발했다. 현령은 할 수 없이 주동이 죄를 지은 사정과 연유를 제주부에 보고했다. 주동의 집안에서는 제주부에 뇌물을 썼다. 주동이 제주부로 압송되어 오자, 죄가 명백하여 곤장 20대를 때리고 창주로 유배 보냈다.

주동에게 칼을 씌우고, 두 압송관이 문서를 가지고 길을 나섰다. 주동의 집안사람들이 옷과 여비를 마련해 주고 두 압송관에게도 돈을 주었다. 운성현을 떠나 창주 횡해군을 향해 떠나갔다. 창주에 당도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곧장 관아로 갔다. 마침 부윤이 등청해 있어서, 두 압송관이 주동을 대청 계단 아래로 끌고 와서 공문을 올렸다.

부윤은 주동의 의표가 범상하지 않음을 알았다. 얼굴이 대춧빛처럼 붉고 아름다운 수염이 배를 덮고 있는 것을 보고, 부윤은 이미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지시를 내렸다.

이 범인은 감옥으로 보내지 말고 본부에 두고 심부름을 시키도록 해라.”

그 자리에서 칼을 벗기고, 압송관에게는 공문을 주어 돌려보냈다. 주동은 부중에 머물면서 매일 대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심부름을 했다. 창주부 관아에 근무하는 모든 관원들에게 인정을 쓴데다, 주동이 본래 온화한 사람이라 다들 주동을 좋아하였다.

어느 날, 주동이 계단 아래에 시립하고 있는데, 부윤이 대청 위로 불러 물었다.

자네는 무슨 연고로 뇌횡을 놓아주어, 이곳으로 유배를 왔는가?”

주동이 아뢰었다.

소인이 어찌 감히 뇌횡을 놔주었겠습니까? 순간적으로 부주의하여 그가 달아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중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단 말인가?”

원고가 소인이 고의로 놓아 주었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이렇게 중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뇌횡은 왜 그 창기를 죽였는가?”

주동은 뇌횡의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부윤이 말했다.

자네는 그가 효자임을 알고 의기로 그를 놓아준 것이 아닌가?”

소인이 어찌 감히 상공을 속이겠습니까?”

얘기를 나누는 중에 병풍 뒤에서 한 어린애가 나왔는데, 나이는 네 살이고 단정하게 잘 생긴 부윤의 아들이었다. 부윤은 그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사랑했다. 아이는 주동에게 다가와 안아달라고 했다. 주동이 아이를 품에 안아주자, 아이는 두 손으로 주동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난 이 수염 아저씨에게만 안길 거야.”

부윤이 말했다.

얘야! 얼른 손을 놓아라! 말썽피우지 말고.”

아이가 또 말했다.

난 이 수염 아저씨에게만 안길 거야. 아저씨! 나랑 놀러가!”

주동이 아뢰었다.

소인이 공자님을 안고 관아 앞을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부윤이 말했다.

아이가 그렇게도 자네 품에 안기고 싶어 하니, 데리고 한 바퀴 돌고 오게.”

주동이 아이를 안고 부중을 나와 설탕과자를 사 주고, 한 바퀴 돈 다음 부중으로 돌아왔다.

부윤이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왔냐?”

아이가 말했다.

수염 아저씨가 거리 구경도 시켜 주고, 설탕과자도 사 줬어.”

부윤이 말했다.

자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걸 사 주었나?”

주동이 아뢰었다.

소인의 작은 정입니다. 별것 아닙니다.”

부윤은 술을 내어 주동을 대접했다. 부중의 시녀가 은 술병과 과자함을 가지고 와서 술을 따라주었다.

주동은 큰 술잔으로 연거푸 석잔을 마셨다. 부윤이 말했다.

앞으로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면, 자네가 안고 나가서 놀아줘도 좋네.”

상공의 분부를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이때부터 매일 주동은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서 놀았다. 주동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부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아이를 위해 돈을 썼다.

보름쯤이 지나 715일 우란분(盂蘭盆) 법회 날이 되었다. 해마다 각처에서 강물에 등을 띄우고 좋은 일이 있기를 비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유모가 주동에게 말했다.

주포교님! 아이가 오늘밤 강물에 등 띠우는 걸 보고 싶다고 합니다. 부인께서 아이를 안고 나가서 구경시켜 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소인이 안고 나가겠습니다.”

푸른 적삼을 입고 머리를 두 개의 뿔처럼 묶고 구슬을 단 아이가 안에서 뛰어나왔다. 주동은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부중을 나와 등을 구경하기 위해 지장사로 향했다. 절을 한 바퀴 돈 다음 수륙당의 방생 연못가에서 등 띠우는 것을 구경했다.

아이는 난간에 기어 올라가 구경하면서 웃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주동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형님! 잠깐만 이리 와서 얘기 좀 나누시지요.”

주동이 고개를 돌려 보니, 뇌횡이었다. 주동은 깜짝 놀랐다. 주동은 아이에게 말했다.

공자님! 이리 내려와서 앉아 보세요. 내가 가서 설탕과자 사 올 테니까, 절대 딴 데로 가면 안 돼요.”

아이가 말했다.

빨리 갔다 와. 난 다리 위에서 등 구경하고 있을게.”

곧 돌아올게요.”

주동은 몸을 돌려 뇌횡에게 말했다.

아우는 여기 어쩐 일인가?”

뇌횡이 주동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가서 절하고 말했다.

형님께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노모를 모시고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양산박으로 가서 송공명께 투신하고 입당하였습니다. 아우가 형님의 은덕을 얘기했더니, 송공명 역시 형님께서 지난날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천왕과 여러 두령들도 모두 깊이 감격하여 오늘 특별히 오군사가 형제들과 함께 정탐하러 왔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오선생은 지금 어디 계신가?”

등 뒤에서 오용이 돌아 나오며 말했다.

오용이 여기 있습니다.”

오용이 절을 하자, 주동도 황망히 답례하고 말했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는데, 선생은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용이 말했다.

산채의 여러 두령들이 안부를 전하면서, 이번에 오용과 뇌포교를 특별히 보내 족하를 산으로 청하여 대의를 함께 하고자 하였습니다. 여기 온 지 며칠 되었지만, 감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밤에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귀한 걸음을 옮기셔서 함께 산채로 가서 조두령과 송두령의 뜻을 만족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동은 듣고 나서 한동안 응답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까 두려우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뇌횡 아우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제가 의기로 놓아주었고,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산에 올라가 입당했습니다. 저도 이곳으로 유배 오기는 했지만, 하늘이 가련히 여겨 1년 반 정도만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양민이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그런 일을 기꺼이 하겠습니까? 두 분은 돌아가십시오. 이곳에서 일이라도 벌어지면 좋지 않습니다.”

뇌횡이 말했다.

형님이 여기 있으면 남의 아래에서 시중이나 들어야 하는데, 그건 대장부가 할 짓이 아닙니다. 이 아우가 산으로 올라가시자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조두령과 송두령께서 형님을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지체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동이 말했다.

아우!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노모를 생각해서 자네를 놓아주었는데, 자네는 오늘 되레 나를 불의에 빠뜨리려고 하는가!”

오용이 말했다.

포교께서 가지 않겠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여러 두령들에게 안부 전해 주십시오.”

함께 다리로 돌아왔는데, 주동이 살펴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주동은 아이고!’ 소리치면서 이리저리 찾으러 다녔다. 뇌횡이 부동을 붙잡고 말했다.

형님! 찾지 마십시오. 제가 한 사람을 더 데리고 왔는데, 아마 형님이 가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이를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찾으러 갑시다.”

주동이 말했다.

아우! 날 희롱하지 말게. 저 아이는 부윤의 생명 같은 아이인데, 나에게 맡겼단 말이야.”

뇌횡이 말했다.

형님은 절 따라오십시오.”

주동은 뇌횡과 오용을 따라 지장사를 떠나 성 밖으로 나갔다. 주동이 당황하여 물었다.

자네와 같이 온 사람이 아이를 어디로 데려간 건가?”

뇌횡이 말했다.

형님께서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까지 따라오시면 아이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늦으면 부윤이 화를 낼 걸세.”

오용이 말했다.

우리가 데리고 온 사람이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아이를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당신들이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굽니까?”

뇌횡이 말했다.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흑선풍 이규라고 들었습니다.”

주동이 놀라며 말했다.

강주에서 살인한 이규 말인가?”

오용이 말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동은 비틀거리며 아이고!’ 소리치며 황망히 달려갔다. 성을 떠나 20리쯤 갔는데, 이규가 앞에 나타나 소리쳤다.

나 여기 있소.”

주동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아이는 어디 있소?”

이규가 인사하며 말했다.

절급형님께 인사 올립니다. 아이는 안에 있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당신은 아이를 빨리 내게 돌려주는 것이 좋을 거요.”

이규가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의 머리카락은 내 머리 위에 있습니다.”

주동은 다시 물었다.

아이는 대체 어디 있는 거요?”

이규가 말했다.

아이의 입에 마취약을 바르고 곧장 성을 나왔는데, 지금 숲속에서 자고 있으니, 가 보시지요.”

주동이 숲속으로 들어가 밝은 달빛 아래 찾아보니, 아이가 땅에 엎어져 있었다. 주동이 급히 달려가 아이를 안아 보니,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져 이미 죽어 있었다. 주동은 크게 노하여 숲에서 뛰쳐나왔는데, 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찾고 있는데, 멀리서 흑선풍 이규가 쌍도끼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여기야! 이리 와 봐! 나랑 2~30합 싸워보자!”

주동은 분노가 치솟아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적삼을 걷어붙이고 큰 걸음으로 쫓아갔다. 이규는 몸을 돌려 달아났고 주동은 그 뒤를 추격했다. 이규는 산을 오르고 고개를 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 주동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잠시 멈춰 서자, 이규가 앞에 나타나 또 소리쳤다.

! 와보라니까! 나랑 목숨 걸고 한 번 붙어보자!”

주동은 이규를 한입에 삼켜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쫓고 쫓기는 가운데 하늘이 점점 밝아져 왔다. 이규는 앞에서 급히 쫓아가면 급히 달아나고 천천히 쫓아가면 천천히 달아났다.

그러다가 이규는 드디어 어느 큰 장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동은 그걸 보고 혼자 말했다.

저놈이 이제 저리로 들어갔으니, 가만두지 않겠다.”

주동이 장원으로 들어가 대청 앞에 가 보니, 양쪽에 많은 무기들이 꽂혀 있었다. 주동은 혼자 말했다.

여기는 필시 관원의 집인 것 같은데

발걸음을 멈추고 큰소리로 외쳤다.

안에 누구 없습니까?”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소선풍 시진이었다. 시진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주동이 보니, 인물이 헌앙하고 자질이 수려하였다. 주동은 황망히 인사하고 말했다.

저는 운성현 절급 주동인데, 죄를 범하여 이곳에 유배 왔습니다. 어젯밤 부윤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강에 등 띄우는 걸 구경하러 나왔는데, 흑선풍 이규가 아이를 죽이고 지금 이 장원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습니다. 그놈을 붙잡아 관아로 끌고 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미염공이시군요. 이리 올라와서 앉으시지요.”

감히 대관인의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소선풍 시진입니다.”

큰 이름을 들은 지 오랩니다.”

주동은 황망히 절을 하고 말했다.

뜻밖에 오늘 존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미염공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후당으로 가서 얘기하시지요.”

주동은 시진을 따라 후당으로 가서, 말했다.

흑선풍 그놈이 어찌하여 이 장원으로 들어와 몸을 피했습니까?”

시진이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저는 평생 강호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했습니다. 저의 가문은 송나라 태조황제께 양위한 공이 있어 죄를 면해 주는 보증서인 단서철권(丹書鐵券)을 하사받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우리 집에 숨으면 누구도 감히 수색할 수 없습니다.

근래에 아끼는 벗을 하나 사귀었는데, 족하에게도 오랜 벗이고 지금은 양산박의 두령이 된 급시우 송공명입니다. 송공명이 밀서를 보내 오용·뇌횡·흑선풍을 우리 장원에 머물게 해 달라고 했는데, 족하를 산으로 청하여 대의를 함께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족하께서 거절하여 따르지 않자 일부러 이규로 하여금 아이를 살해하게 함으로써 족하의 돌아갈 길을 먼저 끊어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도록 한 겁니다."

"오선생과 뇌형은 왜 나와서 사과하지 않습니까?"

오용과 뇌횡이 옆 다락방에서 나와 주동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이 송공명 형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산채에 가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주동이 말했다.

당신네 형제들이 호의로 했다지만, 이건 너무 지독한 일 아니오!”

시진이 힘껏 권하자, 주동이 말했다.

내가 갈 땐 가더라도 흑선풍의 낯짝은 봐야겠소!”

시진이 말했다.

이형! 빨리 나와서 사과하시오.”

이규가 옆방에서 나와 큰소리로 인사했다. 주동은 이규를 보자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규에게 달려들어 목숨 걸고 싸우려고 했다.

시진 · 오용 · 뇌횡 세 사람이 극구 말려 멈추게 했다.

주동이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을 들어주면 산으로 올라가겠소.”

오용이 말했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라도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주동이 말했다.

내가 산으로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흑선풍을 죽이시오. 그래서 나의 분노를 풀어주면 그렇게 하겠소.”

이규가 듣고서 크게 노하여 말했다.

왜 나만 물고 늘어지는 거야! 조개, 송강 두 형님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내가 뭐 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겠어!”

주동이 노기가 발동하여 이규와 싸우려고 하자, 세 사람이 겨우 말렸다. 주동이 말했다.

만약 흑선풍이 있으면, 나는 죽어도 산에 올라가지 않겠소!”

시진이 말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내게 방도가 있습니다. 이형은 여기에 남고, 세 분만 산으로 올라가서 조개와 송강 두 분의 뜻을 만족시켜 드리십시오,”

주동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부윤이 필시 운성현에 공문을 보내 추적하고 우리 가족을 잡아가려 할 건데, 어쩌면 좋습니까?”

오용이 말했다.

족하는 안심하십시오, 지금쯤 이미 송공명께서 가족들을 모두 산으로 데려갔을 겁니다.”

주동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시진이 술을 내어 대접하고, 세 사람은 그날 저녁에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시진은 장객들을 불러 말 세 필을 준비하게 하고, 성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

오용이 이규에게 분부했다.

자네는 조심하게. 대관인의 장원에 머무는 동안 절대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되네. 몇 달쯤 기다려 주동의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산으로 부르겠네. 아마 그때쯤이면 시대관인에게도 입당하라고 청할 걸세.”

세 사람은 말에 올라 떠나갔다. 창주 경계를 벗어나자 장객들은 말을 가지고 돌아갔고, 세 사람은 양산박을 향해 걸어갔다. 주귀의 주점에 당도하여 먼저 사람을 산채로 보내 알렸다.

조개와 송강은 사람들을 이끌고 북을 울리고 피리를 불면서 금사탄으로 나와 영접하였다. 일행이 모두 인사를 나눈 뒤 말을 타고 올라가 취의청에 당도하였다. 옛 얘기를 나누다가 주동이 말했다.

제가 지금 부름을 받고 산채에 올라왔는데, 창주부윤이 필시 운성현으로 공문을 보내 우리 가족을 체포하려고 할 것이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송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우는 마음 놓으시게. 제수씨와 아들이 여기 온 지 며칠 됐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우리 부친을 모시고 쉬고 있으니, 자네가 가서 위로해 주게.”

주동은 크게 기뻐하였다.

송강은 주동을 송태공의 처소로 인도하여 가족들을 만나게 했다.

주동의 부인이 말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서신을 가져와서 당신이 이미 산채에 입당했다고 해서, 가산을 수습하여 밤새워 이곳으로 왔어요.”

주동은 여러 두령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송강은 주동과 뇌횡을 산정의 성채로 청해서 연회를 열고 새로 온 두령들을 축하했다.

한편, 창주 부윤은 저녁이 되어도 주동이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자, 사람들을 사방으로 보내 밤중까지 찾게 하였다. 다음 날,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아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윤에게 알렸다. 부윤은 크게 노하여 친히 숲속으로 가서 보고, 통곡하고 관을 준비하여 화장하였다.

다음 날, 부윤은 등청하여 공문을 각처로 보내 주동을 체포하라고 하였다. 운성현에서는 주동의 가족이 이미 가산을 가지고 도망쳤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부윤은 각 주와 현에 상금을 걸고 주동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한편, 이규는 시진의 장원에 한 달 동안 머물렀는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서신을 가지고 황급히 장원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시대관인은 그를 맞이하여 서신을 보더니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가봐야겠다.”

이규가 물었다.

대관인! 무슨 일입니까?”

시진이 말했다.

나에게 시황성이란 숙부가 계신데, 현재 고당주에 살고 계시네. 그런데 고당주 부윤 고렴의 처남인 은천석이란 놈이 화원을 빼앗으려고 해서 화병에 걸려 누워 계시는데, 상태가 위중하여 나에게 유언할 것이 있으니 오라고 하시네. 숙부에게는 자식이 없으니 내가 가보지 않으면 안 되네.”

대관인께서 가신다면, 저도 따라가는 것이 어떨까요?”

이형이 가겠다면 같이 가지.”

시진은 즉시 행장을 수습하고 좋은 말 10여 필을 선발하고 장객 몇 명을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시진과 이규는 장객들과 함께 말을 타고 장원을 떠나 고당주를 향해 떠났다. 하루도 안 걸려 고당주에 당도하여 성으로 들어가 곧장 시황성의 저택으로 갔다.

이규와 장객들은 바깥방에서 기다리게 하고, 시진은 침실로 들어갔다. 시진은 숙부를 보고 침상 앞에서 소리 내어 통곡했다. 시황성의 후처가 나와 시진을 달래며 말했다.

대관인께서 말을 타고 오느라 힘드셨을 건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진이 인사를 하고 사정을 묻자, 후처가 대답했다.

신임 부윤 고렴은 동경 고태위의 사촌형제인데, 고태위의 권세를 빌어 이곳에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은천석이란 처남을 데리고 왔는데, 사람들은 모두 은직각이라고 부릅니다. 이놈은 나이도 어린데 매형의 권세를 믿고 멋대로 행패를 부려 사람을 해칩니다. 그런데 그놈에게 아부하여 자리를 하나 얻으려고 하는 놈이, 우리 집 뒤편의 화원과 연못가의 정자가 좋다고 그놈에게 얘기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그놈이 간사한 놈들 2~30명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화원을 보고는, 우리를 내쫓고 자기가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황성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선조 때부터 단서철권이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업신여길 수 없소. 당신이 어찌 감히 우리 집을 강탈하려고 하는가? 우리 가족을 어디로 쫓아내려 하는가?’ 하지만 그놈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우리더러 집을 나가라고만 했습니다. 황성께서 그놈을 붙잡았다가 도리어 그놈에게 얻어맞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화병이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음식도 못 드시며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곧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오늘 대관인께서 이렇게 오셨으니, 설혹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걱정을 덜 수 있겠습니다.”

시진이 말했다.

숙모님은 안심하십시오. 우선 용한 의원을 청하여 숙부님을 치료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주의 집으로 보내 단서철권을 가져오게 하여 그놈이 깨닫게 하겠습니다. 관아에 고발하여 황제께도 아뢸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황성께서는 하시는 일도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었는데, 대관인께서는 이치대로 처리하시네요.”

시진은 숙부의 상태를 다시 한번 보고, 나가서 이규와 장객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이규가 듣고서 펄쩍 뛰며 말했다.

도리를 모르는 놈! 내가 그놈에게 도끼 맛을 보여준 다음에 다시 상의하시죠.”

시진이 말했다.

이형! 참게. 그럴 필요 없어. 그런 무식한 놈과 싸워 뭐 하겠나? 그놈이 비록 권세를 업고 사람을 괴롭히지만, 우리 가문에는 황제께서 보호하라고 한 성지(聖旨)가 있네. 그놈과 이치를 따져 안 되면, 경성에 가서 그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고해서 법규에 따라 명백하게 밝혀 소송할 것이네.”

이규가 말했다.

법규! 법규? 법규대로 됐다면 천하가 이렇게 혼란해졌을까? 난 우선 그놈을 패고 나서 생각하겠습니다. 만약 그놈이 관아에 고발하면, x같은 관원도 한꺼번에 다 베어버리지 뭐!”

시진이 웃으며 말했다.

주동이 자네와 싸우면서도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한 심정을 알 것 같네. 여기는 엄중한 성안인데, 산채에서처럼 멋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엄중한 성이 뭐 어떤데? 강주 무위군이라고 해서 내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줄 아시오?”

내가 형세를 봐서, 이형이 필요할 때가 되면 요청하지. 지금은 별일 없으니 방안에 앉아 있게.”

얘기하고 있는데, 안에서 시첩들이 황망히 달려와 황성께서 대관인을 보고 싶어 한다고 알렸다.

시진이 안으로 들어가 침상 앞으로 가자, 황성이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시진에게 말했다.

조카는 뜻이 굳세니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게. 나는 오늘 은천석에게 맞아 죽지만, 자네는 골육의 체면을 봐서 직접 서신을 갖고 경성으로 가서 황제께 아뢰어 내 원수를 갚아주게. 내가 구천(九泉)에 가서라도 조카의 은혜를 잊지 않겠네. 조심, 또 조심하게! 이제 더 이상 부탁하지 못하겠네.”

말을 마치자 숨을 거두었다. 시진은 한 바탕 통곡하였고, 후처는 시진이 혼절할까 두려워 달래며 말했다.

대관인! 슬퍼하는 것은 다른 날로 미루고 먼저 다음 일을 생각하십시오.”

시진이 말했다.

단서철권이 집에 있는데,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 밤새 가져오게 하여, 동경으로 가서 고소해야겠습니다. 숙부님의 시신은 관을 마련하여 염하고, 상복을 입은 다음에 다시 상의하시지요.”

시진은 관제에 의거하여 내관과 외곽을 준비하고 예에 따라 위패를 설치했다. 가문 사람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애도했다.

이규는 바깥에서 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먹을 비비며 기운을 돋우고 있었는데, 하인들에게 사정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승려를 불러 의식을 행했다.

 

사흘째 되는 날, 은천석이 말을 타고 건달 2~30명을 데리고 성 밖에 나가 놀면서 술이 반쯤 취했는데, 완전히 취한 척하면서 시황성의 저택으로 왔다. 말을 세우고는 집사 나오라고 안에다 소리 질렀다. 시진이 듣고서 상복을 입은 채로 황망히 나가 인사했다. 은천석이 말 위에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시진이 대답했다.

저는 시황성의 조카 시진입니다.”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이 집에서 나가라고 분부했는데,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 거냐?”

숙부께서 병환이 나셔서 감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간밤에 돌아가셨으므로 49재를 지내면 나가겠습니다.”

방귀 뀌는 소리 하지 마라! 사흘 내로 나가라! 만약 사흘 내로 나가지 않으면 먼저 본보기로 네놈부터 곤장 백 대를 맛보여 주겠다!”

함부로 하지 마시오! 우리 가문은 황제의 자손으로 선조 때부터 단서철권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감히 공경하지 않는단 말이오?”

은천석이 소리쳤다.

어디 보여 봐라!”

현재 창주의 집에 있는데, 사람을 보내 가지러 갔소.”

은천석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이놈이 헛소리 하고 자빠졌네! 단서철권이 있다고 한들 내가 무서워할 줄 아냐? 여봐라! 이놈을 두들겨 패라!”

건달들이 손을 쓰려고 할 때, 방안에서 문틈으로 엿보고 있던 흑선풍 이규가 방문을 박차고 큰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와 은천석을 말에서 끌어내려 주먹으로 한 방 갈겼다. 건달들이 달려들었지만, 이규가 휘두르는 주먹에 대여섯 명이 나가떨어지자 모두 달아나고 말았다. 이규는 은천석을 붙잡아 일으키고는 다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다. 시진이 말렸지만, 은천석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시진은 아이고!’ 소리치며 이규를 후당으로 데려가 상의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자네는 여기 있으면 안되겠네. 관아에는 내가 적당히 둘러댈 테니, 자네는 빨리 양산박으로 돌아가게.”

이규가 말했다.

내가 달아나면, 대관인이 연루될 건데요.”

나는 단서철권이 보호해 줄 거네. 자네는 바로 떠나게. 지체하면 안 돼.”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여비를 챙겨 뒷문으로 나가 양산박으로 달려갔다.얼마 후, 2백여 명이 칼과 창봉을 들고 시황성의 집을 포위하였다. 시진이 밖으로 나가서 말했다.

내가 관아로 함께 가서 해명하겠소.”

사람들은 먼저 시진을 포박하고, 집안으로 들어가 수색했지만, 시커먼 덩치는 보이지 않았다. 시진을 관아로 끌고 가서 대청 앞에 무릎을 꿇렸다. 부윤 고렴은 처남 은천석이 맞아 죽었다는 것을 듣고 대청에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분노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진을 계단 아래에 엎어놓고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우리 은천석을 때려 죽였느냐?”

시진이 고했다.

소인은 시세종의 적파자손으로, 가문에 태조께서 하사하신 단서철권이 현재 창주의 제 거처에 있습니다. 숙부 시황성의 병환이 위중하여 뵈러 왔는데, 불행히도 간밤에 운명하시어 지금 상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은직각이 2~30명을 데리고 와서 저희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제가 변명하려 했으나 듣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명령해 저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객 이대가 저를 보호하려다가 그만 사람을 때려죽이게 되었습니다.”

고렴이 소리쳤다.

이대는 지금 어디 있느냐?”

겁이 나서 달아났습니다.”

그놈이 장객이라면, 어찌 너의 명령 없이 감히 사람을 때려죽인단 말이냐? 네놈이 고의로 그를 달아나게 해 놓고서, 관아를 속이려 하느냐! 네놈이 얼마나 맞아야 제대로 불겠느냐? 여봐라! 저놈을 있는 힘껏 때려라!”

시진이 소리쳤다.

장객 이대가 주인을 구하려고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때려죽인 것이니, 제가 관여한 일이 아닙니다. 태조께서 하사하신 단서철권이 있는데, 어찌 형법에 의거하여 나를 함부로 때릴 수 있습니까?”

단서철권이 어디 있느냐?”

이미 사람을 창주로 보내 가져오게 했습니다.”

고렴은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저놈이 관아에 항거하는구나! 여봐라! 매우 쳐라!”

옥졸들이 매를 내리쳐, 시진은 살갗이 찢어지고 살이 터져 선혈이 흘러내렸다. 시진은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장객 이대에게 은천석을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고 진술하였다. 고렴은 25근짜리 사형수 칼을 씌우고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은천석의 시신은 검사한 후에 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다. 은부인은 형제의 원수를 갚고자 남편 고렴을 시켜 시황성의 가산을 몰수하고 가족들을 감금했으며 저택도 점거했다. 시진은 감옥 안에서 고통을 겪게 되었다.

한편, 이규는 양산박 산채에 당도하여 두령들을 만났다. 주동은 이규를 보자 분노가 치밀어 박도를 들고 이규에게 덤벼들었다. 이규도 쌍도끼를 뽑아 들고 주동과 맞붙으려 했다. 조개와 송강 등 여러 두령들이 말렸다.

송강이 주동에게 사과했다.

지난번에 아이를 죽인 일은, 이규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군사 오용이 자네를 산에 올라오게 하기 위해 꾸민 계책이었네. 오늘 이미 산채에 왔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동심협력하여 대의를 일으키도록 하세. 그래야 남들이 우리를 비웃지 않을 걸세.”

송강은 이규를 불러 주동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이규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왜 그만 옳다고 하는 거야! 나는 산채를 위해 힘을 많이 썼는데, 그는 반점의 공도 없소. 그런데 내가 왜 그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송강이 말했다.

아우! 자네가 아이를 죽인 것이 비록 군사의 엄명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나이를 따져 봐도 그가 형이야. 내 체면을 봐서라도 자네가 예를 갖추어 사과하게.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절을 하겠네.”

이규는 송강의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네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형님이 날 핍박하니까, 할 수 없이 너한테 사과한다.”

이규는 송강의 독촉을 받고 쌍도끼를 내던지고 주동에게 두 번 절을 했다. 주동은 비로소 화가 누그러졌다.

조개는 산채에서 연회를 열어 두 사람을 화해시켰다. 이규가 말했다.

시대관인이 고당주에 있는 숙부 시황성의 병문안을 갔는데, 부윤 고렴의 처남 은천석이 숙부의 화원을 강탈하려고 시진을 욕하고 때리길래, 내가 은천석 그놈을 때려죽였소.”

송강이 듣고서 놀라며 말했다.

너는 도망쳐 왔지만, 필시 시대관인이 소송에 연루될 것이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은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대종이 돌아오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규가 물었다.

대종형님은 어디 가셨는데?”

오용이 말했다.

자네가 시대관인의 장원에서 일을 저지를까 염려되어, 자네를 산채로 불러들이려고 특별히 그를 보냈네. 대종이 갔다가 자네가 없으면, 필시 고당주로 자네를 찾으러 갔을 거야.”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소교가 와서 대원장에 돌아왔다고 보고하였다. 송강이 나가서 맞이하고 당상으로 와서 좌정한 다음, 시대관인의 일을 물었다.

대종이 대답했다.

시대관인의 장원에 당도하니 이미 이규와 함께 고당주로 갔다 해서, 그리로 가서 정탐을 했습니다. 성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은천석이 시황성의 장원을 강탈하려고 하다가 시커먼 덩치에게 맞아 죽었는데, 시대관인이 연루되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황성의 가족들은 감금되고 가산도 모두 몰수되었다고 합니다. 시대관인의 목숨도 조만간에 끝장날지 모릅니다.”

조개가 말했다.

저 시커먼 놈은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는구나.”

이규가 말했다.

시황성이 그놈에게 맞아서 화병이 나서 죽었고, 또 집을 빼앗으려고 시대관인까지 구타했는데, 살아있는 부처라도 그걸 어떻게 참나?”

조개가 말했다.

시대관인은 우리 산채에 많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가 위난에 처했으니 우리가 어찌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직접 가겠다.”

송강이 말했다.

형님은 산채의 주인인데 어찌 가볍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시대관인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형님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고당주는 성은 비록 작지만, 군사도 많고 식량도 풍족하므로 가볍게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번거롭지만 임충 · 화영 · 진명 · 이준 · 여방 · 곽성 · 손립 · 구붕 · 양림 · 등비 · 마린 · 백승 12명의 두령이 마보군 5천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시오. 그리고 주장 송공명과 오용 · 주동 · 뇌횡 · 대종 · 이규 · 장횡 · 장순 · 양웅 · 석수 10명의 두령은 마보군 3천을 거느리고 접응합니다.”

모두 22명의 두령은 산채를 떠나 고당주를 향해 진격하였다. 양산박의 전군이 고당주 경계에 당도하자, 군졸이 부윤 고렴에게 보고하였다. 고렴은 보고를 받고 냉소를 띠며 말했다.

양산박 소굴에 있던 도적떼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소탕하려고 했는데, 오늘 네놈들이 스스로 잡히려고 왔구나. 이는 하늘이 내가 공을 이루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여봐라! 빨리 호령을 전하라! 군마를 점검하여 성을 나가 대적하고, 백성은 모두 성 위에 올라가 지키도록 하라!”

고렴은 한편으로 군사들을 점검하고 또 한편으로는 백성을 준비시키며 명령을 하달했다. 장막 앞에 도통·감군·통령·통제·제할 등의 직책을 맡은 관원들이 각각 소속 군마를 거느리고 모여들었다. 훈련장에서 점검을 마친 다음 성을 나가 진을 펼쳤다.

고렴의 수하에는 3백 명의 심복 군사가 있었는데, 비천신병(飛天神兵)이라 불렀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산동·하북·강서·호남·양회·양절 지역에서 선발한 건장한 사내들이었다.고렴은 갑옷을 입고 등에 검을 메고 말에 올라, 친히 3백 신병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갔다. 진세를 펼쳐 부하 군관들을 배치하고 3백 신병은 중군에 두었다.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울리며 북을 두드리고 징을 울리면서 적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임충·화영·진명도 5천 인마를 거느리고 당도하였다. 양군이 대치하자 깃발을 올리고 북을 치면서 각기 강궁과 쇠뇌를 발사하여 양진이 거리를 두고 자리 잡았다. 양군에서 뿔피리를 불고 북을 울리자, 화영과 진명이 열 명의 두령과 함께 진 앞에 나섰다. 임충이 장팔사모를 비껴들고 말을 몰아 진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고당주는 목숨을 바치러 나와라!”

고렴이 30여 명의 군관을 거느리고 문기 아래 나와서 임충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제 죽는 것도 모르는 반적이 어찌 감히 나의 성을 침범하느냐?”

임충이 소리쳤다.

백성을 해치는 강도 놈아! 내가 조만간 경성으로 쳐들어가 임금을 속이는 역적 고구를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고렴은 크게 노하여 고개를 돌려 보며 물었다.

누가 출전하여 먼저 저 도적놈을 잡겠느냐?”

군관들 중에서 우직이라는 통제관이 말을 박차고 칼을 휘두르며 진 앞으로 나와 임충을 보자 곧장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싸움이 5합에 이르렀는데, 우직이 임충의 사모에 가슴을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고렴은 그걸 보고 크게 놀랐다.

다시 누가 나가서 원수를 갚겠느냐?”

온문보라는 통제관이 장쟁을 들고 황표마(黃驃馬)를 타고 곧장 임충에게 달려들었다.

진명이 보고 소리쳤다.

형님은 잠시 쉬시오! 내가 저 도적놈 참하는 걸 구경하시오.”

임충이 말을 세우고 사모를 거두어 진명이 온문보와 싸우도록 양보했다. 두 사람이 싸운 지 10여 합이 되었을 때, 진명이 빈틈을 보여 상대가 쟁으로 찌르고 들어오도록 유인하여 낭아곤으로 내려치자 온문보의 머리가 두 쪽으로 쪼개져 말 위에서 죽었다. 말은 펄쩍 뛰어 본진으로 돌아갔다.

양진에서 모두 함성을 질렀다.

고렴은 연이어 두 장수를 잃자 등에 메고 있던 태아보검(太阿寶劍)을 뽑아 들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소리쳤다.

가라!”

고렴의 진중에서 한 줄기 검은 기운이 일어나더니 공중으로 흩어지면서 모래와 돌을 날렸다. 천지가 요동치고 괴상한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양산박 진영으로 몰아쳤다. 임충·진명·화영 등 장수들은 서로 얼굴을 대하고서도 볼 수가 없었고, 놀란 말들이 포효하면서 마구 날뛰었다. 군사들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고렴이 검을 휘두르며 지시하자 3백 신병이 진중에서 튀어나오고 그 뒤를 관군이 협조하여 한꺼번에 쳐들어왔다.

임충 등의 군마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며 연결이 모두 끊어졌다. 형을 부르고 아우를 부르며 아들을 찾고 아비를 찾는 아비규환에 빠졌다. 5천 가운데 천여 명을 잃고 50리를 퇴각하여 하채하였다. 고렴은 양산박 인마가 퇴각을 하는 것을 보고, 본부 군병을 거두어 고당주 성안으로 회군했다.

한편, 송강의 중군 인마가 도착하자, 임충 등이 맞이하고 앞의 일을 얘기했다. 송강과 오용은 듣고서 크게 놀랐다. 송강이 오용에게 말했다.

어떤 술법이기에 그처럼 대단한 겁니까?”

오용이 말했다.

요술 같습니다. 만약 바람과 불을 돌려 보낼 수 있다면 적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송강이 천서를 펼쳐 보니, 3권에 바람과 불을 돌려보내 진을 격파하는 법이 있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주문과 비결을 외어 두었다.

인마를 점검하고 새벽에 밥을 지어 먹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성 아래로 진격하였다. 군사가 달려가 보고하자, 고렴은 다시 인마를 점검하고 3백 신병과 함께 성문을 열고 조교를 내리고서 밖으로 나와 진세를 펼쳤다.

송강이 검을 잡고 말을 몰아 진 앞으로 나서 보니, 고렴의 군중에 한 무리의 검은 깃발이 보였다.

오용이 말했다.

저 진중의 검은 깃발은 신사계(神師計)의 군병을 부리는 것입니다. 저들이 그 술법을 사용하면 어떻게 대적하시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군사는 안심하시오. 나에게 적진을 격파할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장병들은 놀라거나 의심하지 말고 앞으로 돌격하라!”

고렴이 대소 장교들에게 분부했다.

강적들과 맞서 싸울 필요 없다. 방패가 울리는 소리를 듣거든 일제히 송강에게 달려들어 붙잡아라.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양군이 함성을 울렸다.

고렴의 말안장에는 갖가지 짐승의 얼굴이 그려진 구리방패가 걸려 있는데 이상한 문자들이 쓰여 있었다.

고렴이 보검을 들고 진 앞으로 나오자, 송강이 고렴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어젯밤에는 내가 도착하지 않아서 형제들이 일진을 패했으나, 오늘은 필히 네놈들을 몰살시켜 버리겠다!”

고렴도 소리쳤다.

너희 반적들은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하라!”

말을 마치자 검을 휘두르며 입으로 주문을 외우더니 소리쳤다.

가라!”

검은 기운이 일어나면서 괴상한 바람을 몰고 왔다.

송강은 바람이 도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입으로 주문을 외우고 왼손으로 수결을 짓고 오른손으로 검을 들어 가리키며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송강의 진으로 불어오던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고렴의 신병부대로 몰려갔다. 송강이 인마를 불러 막 돌격하려는 때에, 고렴은 바람이 방향을 바꾼 것을 보고 급히 구리방패를 들고 검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신병부대 안에서 한 줄기 황사가 일어나더니 그 속에서 한 떼의 맹수와 독충들이 돌진해 왔다.

송강 진중의 인마는 놀라고 얼이 빠졌다. 송강이 검을 내던지고 말을 돌려 달아나자, 두령들도 송강을 호위하면서 모두 달아났다. 장병들은 서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기에 바빴다.

고렴이 뒤에서 검을 휘두르자, 신병이 앞서고 관군이 뒤를 이어 일제히 쳐들어왔다.

송강의 군대는 대패하였다. 고렴은 20리를 추격하다가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 성으로 돌아갔다.

송강은 언덕 아래에 이르러 인마를 수습하고 목책을 세웠다. 비록 군졸들을 제법 잃었지만 두령들이 모두 무사한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군마를 주둔시키고 군사 오용과 상의하였다.

고당주를 치러 와서 연이어 두 번이나 패전했소. 신병을 격파할 계책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오용이 말했다.

만약 저놈들이 신사계를 사용한다면, 필시 오늘 밤에 기습하러 올 것이니 먼저 계책을 써서 방비해야 합니다. 이곳에는 약간의 군마만 주둔시키고 우리는 지난번의 목책 안에서 대기합시다.”

송강은 영을 전하여 양림과 백승에게 목책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인마는 이전의 목책 안으로 퇴각하여 휴식하게 하였다. 양림과 백승은 인마를 이끌고 목책에서 반 리쯤 떨어진 풀숲에 매복하였다.

밤중에 비바람이 크게 불어대는 가운데, 고렴이 3백 신병을 거느리고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다가왔다.

휘파람 소리를 신호로 하여 진 안으로 일제히 쳐들어갔다가, 진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몸을 달려 달아났다.

양림과 백승의 부대가 함성을 지르자, 고렴은 계책에 빠진 것을 알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3백 신병도 각자 도주하였다.

양림과 백승의 부대가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댔는데, 그 중 하나가 고렴의 왼쪽 어깨에 꽂혔다. 양림과 백승의 부대가 비바람을 무릅쓰고 공격하자, 고렴은 신병들을 이끌고 멀리 달아났다. 양림과 백승은 인원이 적어 깊이 추격하지 않았다.

잠시 후 비바람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자 하늘에 별빛이 반짝였다. 달빛 아래에서 보니, 풀밭 속에 창에 찔리고 화살에 맞아 쓰러진 신병 20여 명이 있어 송강의 진으로 끌고 갔다. 양림이 비바람이 몰아친 일을 얘기하자, 송강과 오용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이곳은 5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비도 없고 바람도 없었다!”

두령들이 모두 모여 상의했다.

정말 요상한 술법이다. 여기서 겨우 3~40장 거리밖에 안 되는데 구름이 일고 비가 내렸다면, 아마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양림이 말했다.

고렴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검을 들고 진으로 쳐들어왔다가, 내가 쏜 화살을 몸에 맞고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인원이 적어 감히 추격하지 못했습니다.”

송강은 양림과 백승에게 상을 내리고, 붙잡아 온 부상당한 신병들은 모두 베어 버렸다. 두령들을 나누어 7~8개의 소채를 세워 대채를 에워싸게 하여, 기습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리고 산채로 사람을 보내 원병을 요청하였다.

한편, 고렴은 화살을 맞고 성중으로 돌아가 치료하면서 영을 내렸다.

성을 수비하면서 밤낮으로 방비하고 저놈들과 싸우지 마라. 내 상처가 회복되고 나서 송강을 잡아도 늦지 않다.”

한편, 송강은 인마를 많이 잃어 심중으로 근심하며 군사 오용과 상의하였다.

지금 고렴도 아직 격파하지 못했는데, 만약 다른 곳에서 군마가 더 오면 어찌 하오?”

오용이 말했다.

제 생각에 고렴의 요술을 깨뜨리려면 여차여차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데려오지 못한다면, 시대관인의 목숨도 구하지 못할 것이고 고당주의 성도 영원히 얻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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