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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43화

Bollnow 2025. 2. 5. 10:50

화영은 성채 문을 닫게 하고, 후당으로 가서 송강을 보살폈다. 화영이 말했다.

아우가 잘못하여 형님께서 이런 고생을 하게 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나는 괜찮네. 다만 유고 그놈이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우리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네.”

이까짓 벼슬 던져버리고, 그놈과 한번 붙어야겠습니다.”

그 계집이 뜻밖에 은혜를 원수로 갚아 남편으로 하여금 나를 이렇게 때리게 했네. 내가 진짜 성명을 말하려다가 염파석 사건이 드러날까 두려워 운성현의 길손 장삼이라고 말했는데, 유고 그놈이 무례하게도 나를 운성호 장삼이라 하며 함거에 가두어 청주로 압송하려 했네. 청풍산 도적의 수괴가 되어 순식간에 칼날에 목이 날아갈 뻔했구만. 아우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언변이 뛰어났더라도 그놈에게 어떻게 변명할 수 있었겠는가?”

저는 그놈이 글을 읽은 놈이라 동성의 친척이라면 봐 주지 않을까 생각해서 유장이라고 서신에 썼는데, 그놈이 그렇게 인정머리가 없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오셨으니,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우가 틀렸네. 자네가 기세로 사람을 구해오기는 했지만, 모든 일은 세 번 생각해야 하네. 옛말에 밥을 먹을 때는 목 메일 것을 방비해야 하고, 길을 걸을 때는 넘어질 것을 방비해야 한다.’고 했네. 저놈은 공공연히 자네에게 사람을 빼앗기고, 다시 뺏으려고 군사를 보냈는데 모두 자네에게 놀라 달아나 버리고 말았네. 내 생각에, 그놈은 포기하지 않고 필시 문서를 작성하여 상부에 보고할 걸세. 나는 오늘 밤 먼저 청풍산으로 가서 몸을 피할 테니, 자네는 내일 그놈에게 모든 일을 잡아떼게. 그러면 끝내 문무 관원 간의 불화로 벌어진 소송이 되어 버릴 걸세. 내가 만약 그놈에게 다시 잡혀간다면, 자네는 그놈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될 걸세.”

아우는 용력만 있는 자라, 형님 같이 멀리 내다보는 고명한 식견이 없습니다. 다만 형님께서는 상처가 위중해서 움직이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괜찮네. 사태가 급박하니 망설일 여유가 없네. 나는 산 밑까지만 가면 되네.”

그날 송강은 상처에 고약을 붙이고 술과 음식을 먹은 다음, 보따리는 화영의 거처에 남겨둔 채 황혼 무렵에 두 군사가 성채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송강은 밤을 새워 청풍산을 향해 걸어갔다.

한편, 유지채는 군사들이 하나씩 흩어져서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화지채는 정말 용맹한 사람인데, 누가 감히 그의 화살을 피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두 교두도 말했다.

그의 화살이 박히면 몸에 구멍이 날 것이니, 아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유고는 문관이므로 계략을 쓰기 위해 깊이 생각했다.

일단 사람을 빼앗아 갔으니, 필시 밤새 청풍산으로 빼돌리고서 내일 나를 찾아와 잡아뗄 것이다. 그러면 상부에 보고하더라도 문무 간의 불화로 여길 것이니, 내가 그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오늘 밤 2~30명의 군사들을 청풍산 가는 길목으로 보내 기다리게 해야겠다. 만약 그놈을 잡는다면 집안에 몰래 가두어 놓고, 청주로 사람을 보내 군관에게 보고하여 잡아가게 하면 화영까지 한꺼번에 붙잡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혼자 이 청풍채를 다스리게 되어 그놈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게 되는 거지.”

그날 저녁 유고는 군사 20명을 선발하여 창봉을 들고 가서 대기하게 하였다. 밤중이 되자 군사들이 송강을 묶어서 끌고 왔다.

유지채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 요량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후원에 가두어 두고, 아무도 모르게 해라!”

소장을 작성하여 심복 둘로 하여금 밤을 새워 청주로 달려가 보고하게 하였다.

다음 날, 화영은 송강이 청풍산으로 갔으려니 생각하고, 집에 앉아 생각했다.

저놈이 어떻게 하나 보자!”

그리고는 주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유고도 모른 척하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편, 청주 부윤 모용언달은 금상황제인 휘종의 귀비인 모용씨의 오라버니였다. 여동생의 권세 덕분에 청주에서 권력을 마구 휘둘러 양민을 해치고 동료를 기만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었다.

모용언달이 아침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좌우의 관원들이 유지채의 소장과 도적의 정세에 대한 보고서를 접수하여 올렸다. 부윤은 유고가 보낸 문서를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화영은 공신의 아들인데, 어찌하여 청풍산 도적들과 내통했단 말인가? 이 죄는 작은 것이 아니니, 사실 여부를 알아봐야겠다.”

부윤은 병마도감을 불러, 청풍채로 가서 조사해 보라고 명하였다.

병마도감 황신(黃信)은 무예가 고강하여 그 위세가 청주를 진압하였으므로 진삼산(鎮三山)’이라고 불렸다.

청주 관할에는 험악한 세 산이 있었는데, 청풍산· 이룡산· 도화산이었다. 이 세 산은 모두 강도와 도적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황신은 이 세개 산의 도적들을 모두 잡을 거라고 장담했기 때문에, ‘진삼산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병마도감 황신은 부윤의 명을 받고, 건장한 군사 50명을 선발하였다.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상문검(喪門劍)을 들고 밤새 청풍채로 달려가, 유고의 성채 앞에서 말을 내렸다.

유지채가 맞이하여 후당으로 인도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는 한편 군사들도 음식을 마련하여 위로하였다. 그리고 송강을 황신 앞으로 끌고 왔다.

황신이 말했다.

저놈은 심문할 필요도 없다. 함거에 태워라!”

송강의 머리에 붉은 보자기를 씌우고 청풍산 도적 수괴 운성호 장삼이라고 쓴 깃발을 꽂았다.

송강은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그저 그들이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황신이 다시 유고에게 물었다.

장삼을 잡은 것을 화영도 알고 있소?”

유고가 말했다.

밤중에 잡아서 몰래 집안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에, 화영은 그놈이 산으로 간 줄 알고 집에서 안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쉬운 일이군. 내일 아침에 양을 한 마리 잡고 술과 함께 공청에 준비해 놓고 사방에 4~50명의 군사를 잠복시켜 놓으시오. 내가 화영의 집으로 가서 모용부윤이 당신네들 문무가 불화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특별히 나를 보내 화해를 권유하라고 해서 술을 준비해 놓았소.’라고 하면서 그를 청하겠소. 그를 속여서 대채의 공청으로 데려와, 내가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하여 그놈을 붙잡아 청주로 압송하겠소. 이 계책이 어떻소?”

유고는 갈채하며 말했다.

역시 상공의 고견은 대단하십니다. 이 계책이 참으로 묘합니다. 마치 독 안에 든 자라를 잡는 것과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먼저 대채 좌우의 장막 속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대청 위에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연석처럼 꾸며 놓았다. 아침밥을 먹고 황신은 말에 올라 두세 명의 종자를 데리고 화영의 성채로 갔다.

군인의 보고를 받고 화영이 물었다.

왜 왔다더냐?”

군인이 대답했다.

황도감이 특별히 찾아왔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화영은 나가서 영접했다. 황신이 말에서 내리자, 화영은 대청으로 인도하였다.

인사를 마치고, 화영이 물었다.

도감상공께서는 무슨 공무로 오셨습니까?”

황신이 말했다.

부윤의 부르심을 받고 갔더니, 청풍채에 문무관원 간에 불화가 있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부윤께서는 두 분이 사적인 원한으로 인해 공사를 그르칠까 염려되어, 특별히 저를 보내 두 분을 화해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대채 공청에 연석을 마련해 두었으니, 함께 가시면 좋겠습니다.”

화영이 웃으며 말했다.

화영이 어찌 감히 유고를 속이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정지채입니다. 다만 누차 화영의 과실을 찾아내려고 했었습니다. 부윤을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수고스럽게도 도감께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겠습니까?”

황신이 화영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윤은 오직 족하의 편입니다. 만약 병력을 동원할 일이 생기면, 유고는 문관이라 어디 써먹겠습니까? 족하는 나만 따르시면 됩니다.”

도감의 과분한 총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황신은 화영과 함께 문을 나가 말에 올랐다.

화영이 말했다.

도감께서는 잠시 술이라도 한잔 하고 가시지요?”

황신이 말했다.

화해하고 난 다음에 통쾌하게 마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화영은 말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두 사람은 말을 나란히 하여 곧장 대채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렸다.

황신은 화영의 손을 잡고 이끌어 함께 공청으로 올라갔다. 유고는 이미 공청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황신은 술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종자들이 이미 화영의 말을 끌고 나가고 대채의 문을 닫아 버렸다. 화영은 계략임을 눈치 채지 못했고, 황신이 자신과 같은 무관이라 필시 나쁜 의도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황신이 잔을 들어 먼저 유고에게 권하며 말했다.

부윤께서 문무 두 분의 불화를 듣고서 걱정이 되어, 오늘 특별히 황신을 보내 두 분과 얘기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두 분은 조정에 보답하는 것만을 중하게 생각하셔서, 후에 다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합하여 상의하기를 바랍니다.”

유고가 대답했다.

유고가 재능은 없지만 이치는 조금 압니다만, 부윤께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다툰 적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잘못 전한 겁니다.”

황신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유고가 술을 마시자, 황신은 두 번째 잔을 따라 화영에게 권하며 말했다.

유지채가 이렇게 말씀하시니, 필시 한가한 사람이 잘못 전한 것 같습니다. , 한 잔 드시지요.”

화영도 술잔을 받아 마셨다. 유고는 다른 잔에 술을 따라 황신에게 권하며 말했다.

도감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한 잔 드시지요.”

황신이 술잔을 받아 손에 들고 사방을 둘러보자, 10여 명의 군사들이 한꺼번에 대청으로 올라왔다. 황신이 술잔을 땅에 던지며 후당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를 지르자, 양쪽 장막 속에서 4~50명의 건장한 군사들이 일제히 대청으로 올라와 화영을 붙잡아 대청 앞에 무릎을 꿇렸다.

황신이 소리쳤다.

묶어라!”

화영이 소리쳤다.

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황신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감히 어디서 소리를 지르느냐! 너는 청풍산 도적들과 결탁하여 함께 조정을 배반했으니, 그게 무슨 죄에 해당하겠느냐! 내가 너와의 옛정을 생각해서 너의 가족까지 놀라게 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

화영이 소리쳤다.

증거가 있습니까?”

황신이 말했다.

너에게 증거를 보여주마. 진짜 장물과 도적을 너에게 보여 주마. 내가 너를 모함하는 것이 아니다. 여봐라! 그놈을 끌고 오너라!”

잠시 후 깃발을 꽂은 함거가 한 대 들어오는데, 이마에 붉은 칠을 한 죄수가 하나 갇혀 있었다.

화영이 보니, 바로 송강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신이 말했다.

이 일은 나와는 상관없지만, 고발인 유고가 지금 여기 있다!”

화영이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이 사람은 나의 친척으로 운성현 사람입니다. 당신이 억지로 도적이라고 우기고 있는데, 상부에 가서 따져 봅시다.”

황신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너희를 청주 관아로 압송할 수밖에 없다. 거기 가서 네가 따져 봐라.”

황신은 유고에게 백 명의 군사를 선발하여 압송하라고 명하였다. 화영이 황신에게 말했다.

도감이 나를 속여 이리로 오게 해서 붙잡았지만, 조정에 가면 유고와 끝까지 시비를 가리겠소. 도감은 같은 무관으로서의 내 체면을 생각해서, 관복을 입은 채로 함거를 타고 가게 해주시오

황신이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니, 네 뜻대로 해주겠다.

유지채와 함께 청주로 가서 시비를 명백하게 가리도록 해주겠다. 잘못 사람의 목숨을 해쳐서는 안 되겠지.”

황신은 유고와 함께 말에 올라 함거 두 대를 압송하였고, 황신이 데리고 온 4~50명의 군사와 청풍채 군사 백 명이 함거를 둘러싸고 청주부를 향해 출발했다.

황신은 말에 올라 손에는 상문검을 가로로 들었고, 유지채도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손에는 삼지창을 들었다. 150명의 군사도 각각 창과 곤봉을 들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북과 징을 울리며 송강과 화영을 압송하여 청주로 향하였다.

청풍채를 떠나 3~40리를 갔는데, 앞에 큰 숲이 보였다. 산기슭에 당도하자 앞서 가던 한 병사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숲속에서 누군가가 내다보고 있습니다.”

모두 발걸음을 멈추자, 황신이 말 위에서 물었다.

왜 멈추느냐?”

앞쪽 숲속에서 누군가 내다보고 있습니다.”

황신이 소리쳤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가자!”

점점 숲에 가까이 다가가자, 2~30개의 징이 일제히 댕댕 울리는 소리가 진동했다. 병사들은 모두 당황하여 달아나려고 했다. 황신이 소리쳤다.

멈춰라! 진영을 갖춰라!”

그리고 황신은 유고에게 말했다.

유지채! 당신은 함거를 지키시오!”

유고는 말 위에서 응답도 못하고 입 속으로 기도했다.

고난을 구원해 주시는 천존(天尊)이시여! 십만권 경전이시여! 삼백개 사원이시여! 구원해 주소서!”

유고는 너무나 놀라 얼굴이 잘 익은 수박처럼 푸르게 변했다가 누렇게 변하기를 반복했다.

황신은 무관이기 때문에 대담하게 말을 박차고 앞으로 나가 살펴보았다. 숲속 사방에 4~5백 명의 졸개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데, 모두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이 흉악하게 생겼다. 머리에는 붉은 두건을 쓰고, 허리에는 날카로운 검을 차고, 손에는 긴 창을 들고서 일행을 에워쌌다.

숲속에서 세 사내가 튀어나오는데, 하나는 청색 옷을, 하나는 녹색 옷을, 하나는 홍색 옷을 입었다. 모두 머리에는 자를 금실로 새긴 두건을 쓰고, 허리에 요도를 찼으며, 손에 박도를 들고서 길을 가로막았다.

가운데는 금모호 연순, 위쪽에는 왜각호 왕영, 아래쪽에는 백면낭군 정천수였다.

세 호걸이 소리쳤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일단 멈춰서 삼천관의 황금을 통행세로 내야 한다!”

황신이 말에서 소리쳤다.

네놈들이 무례하구나! 진삼산이 여기 있다!”

세 호걸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외쳤다.

네놈이 진삼산이라고 해도 황금 삼천관의 통행세를 내야 한다! 없다면 지나갈 수 없다!”

황신이 말했다.

나는 상부에서 공사로 온 도감인데, 무슨 통행세를 내란 말이냐!”

세 호걸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상부의 일개 도감이 아니라 황제라고 해도 삼천관의 통행세는 내야 한다. 만약 없다면 죄인을 여기 두고 갔다가, 돈을 가져와서 찾아가라!”

황신이 크게 노하여 욕을 했다.

강도들아! 네놈들이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하게 구느냐!”

좌우에 명하여 북과 징을 울리게 하고, 황신은 말을 박차고 검을 춤추며 곧장 연순에게 달려들었다.

세 호걸이 일제히 박도를 들고 황신을 공격하였다. 황신은 있는 힘을 다해 세 사람과 10여 합을 싸웠는데, 혼자서 셋을 당할 수는 없었다.

유고는 문관이라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형세를 살피면서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황신은 세 사람에게 사로잡혀 명성을 잃을까 두려워 말을 박차고 왔던 길로 달아났다.

세 두령은 박도를 휘두르며 추격해 갔다. 황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나는 듯이 말을 몰아 청풍진으로 달려갔다. 군사들은 황신이 말을 돌려 달아나는 것을 보고, 함성을 지르며 함거를 내버려 둔 채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혼자 남은 유고는 형세가 좋지 않음을 보고 황망히 말머리를 돌리고 채찍을 내리쳤다. 말이 막 땅을 차며 뛰려고 할 순간, 한 졸개가 말의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는 밧줄인 반마삭(絆馬索)을 던졌다. 말은 앞발을 치켜들었다가 넘어졌다. 졸개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유고를 사로잡고, 함거의 문을 열었다.

화영은 자신이 탄 함거의 문이 열리자, 바로 튀어나와 밧줄을 끊어 버리고 다른 함거를 부수어 송강을 구출했다. 졸개들이 이미 유고를 묶었고, 그가 타던 말을 붙잡았다. 또 함거를 끌던 세 필의 말도 획득했다.

유고의 옷을 벗겨 송강에게 입히고, 말에 태워 먼저 산으로 올려보냈다. 세 두령은 화영과 졸개들을 데리고, 벌거벗은 유고를 묶어서 산채로 올라갔다.

원래 세 두령은 송강의 소식을 알 수 없어서 재주 있는 졸개 몇 명을 산 아래로 내려보내 청풍진으로 가서 정탐하게 했었다. 그들은 도감 황신이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하여 화영지채와 송강을 사로잡아 함거에 싣고 청주로 압송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산채로 올라가 보고했다.

세 두령은 인마를 거느리고 내려와 대로를 미리 막고 있었고, 소로 역시 졸개들을 보내 지키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두 사람을 구출했던 것이다.

산에 올라가니 이미 밤중이 되었다. 모두 취의청에서 만났다. 송강과 화영을 가운데 앉히고, 세 두령은 마주 보고 앉아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연순은 졸개들도 각자 술을 마시라고 분부하였다.

화영이 취의청에서 세 두령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세 분 장사께서 화영과 형님의 목숨을 구해 주시고 원수도 갚아 주셨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화영의 처와 여동생이 청풍채에 있으니 필시 황신에게 붙잡혔을 것인데, 어떻게 구할 수 있겠습니까?”

연순이 말했다.

지채는 마음 놓으십시오. 황신이 감히 부인을 잡아가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잡아간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 길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제가 내일 형제들과 산을 내려가 부인과 여동생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연순은 졸개를 불러 먼저 내려가서 정탐하라고 명하였다.

화영이 사례하며 말했다.

장사의 큰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송강이 말했다.

유고란 놈을 끌고 오시오.”

연순이 말했다.

그놈은 기둥에 묶어 놓았습니다.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형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습니다.”

화영이 말했다.

내가 직접 그놈을 해치우겠습니다.”

송강이 유고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 이놈! 나는 본래 너와 원한이 없었고, 또 근래에도 원수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못된 마누라 말만 듣고 나를 해치려 했느냐! 오늘 이렇게 붙잡혀 왔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

화영이 말했다.

형님은 뭘 그런 걸 묻고 있습니까?”

칼을 들어 유고의 심장을 도려내어 송강 앞에 바쳤고 졸개들은 시체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

송강이 말했다.

오늘 비록 이 더러운 놈은 죽였지만, 그 음란한 년을 아직 죽이지 못했으니, 이 분함을 풀 수가 없다.”

왕영이 말했다.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내일 산을 내려가서 그 년을 잡아올 테니, 이번에는 제가 쓰게 해 주십시오.”

모두들 크게 웃었다. 그날 밤은 술을 마시고 각자 돌아가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청풍채 치는 일을 상의했다. 연순이 말했다.

어제 부하들이 고생을 많이 했으니,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산을 내려가도 늦지 않을 겁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 말이 맞소. 휴식을 취해야 사람도 강해지고 말도 씩씩해지니,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산채의 군마를 점검하여 출발 준비를 했다.

한편, 도감 황신은 청풍채로 돌아가 인마를 점검하고 사방의 책문을 파수하게 하였다.

황신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군사 둘을 모용 부윤에게 보내어 보고하게 하였다. 부윤은 긴급한 보고서가 올라왔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등청하여 황신의 보고서를 보았다.

배신자 화영이 청풍산 산적들과 결탁했습니다. 지금 청풍채를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사태가 긴박하니 빨리 장수를 보내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윤은 보고서를 보고 크게 놀라, 청주 지휘사의 진통제(秦統制)를 급히 불렀다.

그는 개주 사람 진명(秦明)인데, 성격이 급하고 목소리가 우레 같아 사람들이 벽력화(霹靂火)’라고 불렀다.

조부도 군관 출신인데, 단단한 몽둥이에 많은 못을 박아 늑대 이빨처럼 생긴 낭아봉(狼牙棒)을 잘 썼으며, 만 사람도 당하지 못할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진명은 부윤의 부름을 받고 관아로 와서 부윤을 만났다. 인사를 마치고, 모용부윤이 황신의 보고서를 건넸다. 진명은 보고서를 읽고 나서 크게 노하며 말했다.

도적놈들이 이렇게 무례하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군마를 거느리고 가서 도적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만약 잡아 오지 못하면, 맹세코 부윤을 다시 뵙지 않겠습니다.”

모용부윤이 말했다.

장군께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놈들이 청풍채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어찌 감히 늦출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로 인마를 점검하여 내일 아침 출발하겠습니다.”

부윤은 크게 기뻐하며, 술과 음식, 마른 식량을 빨리 준비하라고 명하고 먼저 성 밖에 대기하고 있는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진명은 화영이 배반했다는 것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말을 타고 곧장 지휘사로 달려가 기병 백 명과 보병 4백 명을 선발하였다.

모용부윤은 먼저 성 밖의 사원에서 만두를 찌고 술을 데우게 하였다. 병사 1인당 술 석 잔, 만두 2, 삶은 고기 1근을 주었다.

그날은 날씨가 맑았다.

병마총관 진통제라고 크게 쓴 붉은 깃발을 들고 성을 출발하였다. 모용부윤이 갑옷을 입고 성을 나가는 진명을 보니, 과연 비할 바 없는 영웅이었다. 원래 청풍진은 청주 동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쪽으로 가면 청풍산이 비교적 가깝고 산의 북쪽 소로에 일찍 당도할 수 있었다.

한편, 청풍산 산채의 졸개들이 소식을 탐지하여 산으로 올라가 보고했다.산채에서는 두령들이 청풍채를 치기 위해 상의하다가, 진명이 병마를 거느리고 온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화영이 말했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예로부터 병력이 당도하여 위급하면 반드시 사력을 다해 대적해야 하는 법입니다. 졸개들에게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이고, 제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먼저 힘으로 대적한 다음, 지혜를 써서 이기면 됩니다. 여차여차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좋은 계책이다! 그렇게 합시다!”

송강과 화영은 계책을 정하고, 졸개들에게 각자 준비하도록 명했다. 화영은 좋은 말 한 필을 고르고 갑옷을 입고 활과 철쟁을 준비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한편, 진명은 병력을 거느리고 청풍산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목책을 쌓고 진을 쳤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고 신호포를 쏘며 곧장 청풍산으로 진격했다. 넓은 공터를 골라 병력을 배치하고 북을 울렸다. 산 위에서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한 떼의 인마가 나타났다. 진명은 말고삐를 잡고 낭아봉을 들고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졸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소이광 화영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산기슭에 당도하여 징을 울리면서 진세를 펼쳤다.화영이 말 위에서 철쟁을 쥐고 진명에게 인사했다. 진명이 소리쳤다.

화영! 너는 조상 대대로 장군 가문의 아들이며 조정의 관원이다. 너를 지채로 임명하여 한 지방을 장악하게 하여 나라에서 봉록을 주었는데, 너는 무엇이 부족하여 도적들과 결탁하여 조정을 배반하였느냐? 내가 오늘 특별히 너를 잡으러 왔으니, 알아들었으면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 내 손에 피비린내가 나고 발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라!”

화영이 웃으며 말했다.

총관께 아룁니다. 화영이 어찌 조정을 배반하려 했겠습니까? 유고란 놈이 없는 일을 날조하여 사적인 원한을 상부에 보고함으로써, 화영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고 나라가 있어도 의지할 수 없게 핍박하였으므로 잠시 이곳에 몸을 피한 것입니다. 총관께서는 자세히 살피시어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진명이 말했다.

너는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고 또 무엇을 기다리는 거냐? 교묘한 허황된 말로 군심을 선동하지 마라!”

진명은 좌우에 명하여 북을 울리게 하고, 낭아봉을 휘두르며 곧장 화영에게 달려들었다.

화영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진명! 너는 양보를 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네가 상관이기 때문에 생각해 준 것이지, 내가 진짜로 너를 두려워할 줄 아느냐!”

화영은 쟁을 들고 말을 몰아 진명에게 돌진하였다.

두 사람은 청풍산 아래에서 싸움을 벌였다. 두 사람은 4~50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화영은 한참 싸우다가 파탄 난 척하며 말을 돌려 산 아래 소로로 달아났다.

진명은 크게 노하여 추격해 왔다. 화영은 쟁을 말안장 고리에 꽂고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먹여 시위를 당긴 후, 몸을 돌리면서 진명의 투구 끝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투구 위에 명중하여 붉은 술이 낙엽처럼 떨어졌다. 진명은 깜짝 놀라 감히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말을 돌려 졸개들을 추격하려고 했는데 졸개들은 이미 모두 산 위로 도망가 버렸다.

화영은 다른 길로 돌아 산채로 올라가 버렸다.

진명은 도적들이 모두 달아나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르면서 말했다.

저 죽일 도적놈들이 무례하구나!”

징과 북을 울리게 하여 길을 찾아 산을 올라갔다.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보군이 먼저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봉우리 두세 개를 돌아가자, 산 위에서 통나무, 바위, 횟가루를 담은 병, 쇳물 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군사들이 미처 물러나지 못해 4~50명이 맞고 쓰러지자 다시 산 아래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명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화가 불같이 일어나, 가만히 있지 못하고 군마를 거느리고 산 아래를 빙 돌면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정오까지 길을 찾고 있는데, 서쪽 산에서 징소리가 울리더니 숲속에서 붉은 깃발을 든 군사가 나타났다.

진명이 인마를 이끌고 달려가자, 징소리도 울리지 않고 붉은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진명이 그 길을 보니, 올바른 길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서 생겨난 몇 갈래 소로였는데 잘린 나무들이 어지럽게 막고 있어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병사들에게 길을 열라고 명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병사들이 돌아와 말했다.

동쪽 산에서 징소리가 울리고 붉은 깃발을 든 한 떼의 군사가 나타났습니다.”

진명이 인마를 이끌고 나는 듯이 동쪽 산으로 달려가서 보니, 징소리도 울리지 않고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진명은 말을 몰아 사방으로 다니면서 길을 찾았지만, 온통 어지럽게 널린 나무들이 소로를 막고 있었다.

길을 찾고 있던 병사가 또 와서 보고했다.

서쪽 산에서 징소리가 또 울리고 붉은 깃발을 든 군사가 또 나타났습니다.”

진명이 말을 박차고 다시 서쪽 산으로 달려가 보니, 또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깃발도 사라졌다. 진명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서쪽 산 밑에서 화를 끓이고 있는데, 또 동쪽 산에서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급히 인마를 이끌고 다시 동쪽 산으로 달려가 보니, 또 도적은 한 놈도 보이지 않고 붉은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진명은 노기가 가득 차올라 군사들에게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라고 재촉했다.

그때 서쪽 산에서 또 함성이 일어났다. 진명은 노기충천하여 병마를 몰아 서쪽 산으로 달려갔다. 산 위에도 산 아래에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진명은 군사들에게 양쪽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으라고 명하였다.

한 병사가 와서 말했다.

이곳은 모두 제대로 된 길이 아닙니다. 동남쪽에 큰길이 하나 있는데, 그 외에는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길을 찾아 올라가다간 실패할까 두렵습니다.”

진명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큰길이 있다면, 밤을 새서라도 올라가자!”

진명은 군마를 몰아 동남쪽으로 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사람도 말도 지쳤다. 할 수 없이 산 아래에 하채하고 밥을 지으려고 하는데, 산 위에서 횃불이 어지럽게 오르면서 징과 북이 울렸다.

진명이 또 분노하여 마군 4~50명을 이끌고 산을 올라갔다. 산 위의 숲속에서 화살이 어지럽게 날아와 여러 병사들이 맞고 쓰러졌다. 진명은 할 수 없이 말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군사들에게 다시 밥을 지으라고 했는데, 막 불을 붙이자 산 위에서 8~90개의 횃불이 오르더니 함성을 지르며 내려왔다. 진명이 급히 군사를 이끌고 달려가자, 횃불이 일제히 꺼져 버렸다.

그날 밤은 달빛이 있긴 했으나 구름에 가려 별로 밝지 못했다. 진명은 노기를 참을 수가 없어 군사들에게 숲에 불을 지르라고 명했다. 그때 산 위에서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들렸다.

진명이 말을 몰아 달려가 보니, 산정에 10여 개의 횃불이 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화영과 송강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진명은 그걸 보고 심중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어, 말을 멈추고 산 아래에서 큰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화영이 말했다.

진통제! 초조해하지 말고, 일단 돌아가서 쉬시오. 내일 죽기 살기로 한번 붙어 봅시다.”

진명이 소리쳤다.

반적(反賊)! 얼른 내려와서 나랑 3백 합 정도 싸워보자! 그러고 나서 얘기하자.”

화영이 웃으며 말했다.

진총관! 당신이 오늘은 피곤할 테니, 내가 당신을 이긴다고 해서 강하다고 할 수 없잖아. 일단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오시오.”

진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산 밑에서 계속 욕을 했다.

본래는 길을 찾아 산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화영의 화살이 무서워 산 밑에서만 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 욕을 해대고 있는데, 본진에 있던 군마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진명이 급히 돌아가서 보니, 산 위에서 화포와 불화살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그 뒤에서는 2~30명의 졸개들이 무리를 이루어 어둠 속에서 궁노를 쏘아댔다. 군마들은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산 밑의 깊은 구덩이로 몸을 피했다.

이때는 이미 자정이 되어 있었다. 군마들이 궁노를 피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위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군마는 모두 물에 휩쓸려 가면서 각자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겨우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 병사들은 모두 갈고리에 걸려 사로잡혀 끌려갔고, 빠져나오지 못한 병사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진명은 노기충천하여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는데, 소로를 하나 발견하고 말을 몰아 산 위로 올라갔다. 4~50보 정도 가다가 사람과 말이 한꺼번에 함정 속으로 빠졌다.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갈고리를 든 자들이 나와 진명을 끌어올렸다. 전포와 갑옷을 벗기고, 투구와 무기를 빼앗았다. 밧줄로 묶어서 말과 함께 산 위로 끌고 올라갔다.

원래 이 함정은 모두 화영과 송강의 계책이었다. 먼저 졸개들을 동쪽과 서쪽에 배치하여 진명을 유인함으로써, 인마가 피곤하게 만들고 계책을 세울 여유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리 흙을 담은 포대로 양쪽 계곡물을 막아 두었다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인마가 계곡으로 쫓겨 들어가게 한 다음 위에서 물을 터서 내려 보낸 것이었다. 그 급류가 군마를 끝장내 버린 것이었다.

진명이 거느리고 왔던 5백 인마 가운데, 절반은 물에 빠져 죽고 사로잡힌 자는 150~170명 정도였다. 빼앗은 말이 7~80필이었는데, 한 마리도 돌아가지 못했다. 그 다음에 진명을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았다.

졸개들이 진명을 사로잡아 산채에 당도하자, 날이 밝아 왔다. 다섯 호걸은 취의청에 앉아 있었다. 졸개들이 진명을 포박하여 취의청 앞으로 끌고 왔다. 화영이 그걸 보고 황망히 일어나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친히 밧줄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부축하여 대청으로 올라온 다음 엎드려 절을 했다.

진명이 황망히 답례하고서 말했다.

나는 사로잡혀 온 사람인데, 무슨 까닭으로 죽이지 않고 도리어 내게 절을 하시오?”

화영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졸개들이 위아래를 몰라보고 잘못 모욕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즉시 옷을 가져오게 하여 진명에게 입혀 주었다. 진명이 화영에게 물었다.

여기 두령들은 누구십니까?”

화영이 말했다.

이분은 화영의 형님이신 운성현 송압사이시고, 저 세 분은 산채의 주인인 연순, 왕영, 정천수입니다.”

진명이 말했다.

저분들은 나도 알고 있소. 여기 송압사라는 분은 산동의 급시우 송공명 아니십니까?”

송강이 대답했다.

제가 송강입니다.”

진명은 황망히 절을 하며 말했다.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의로운 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송강도 황망히 답례를 했다.

진명은 송강의 다리가 불편한 것을 보고 물었다.

다리는 어째서 불편하십니까?”

송강이 운성현에서 일어났던 일부터 유지채에게 고문을 당하게 된 경위까지 자세히 얘기했다. 진명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한쪽의 말만 듣고서 많은 일을 그르칠 뻔했습니다. 진명을 용서하시어 돌려보내 주시면, 모용 부윤에게 모든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연순은 진명을 만류하여 며칠 묵게 하고, 소와 말을 잡아 연회를 열었다. 사로잡혀 온 군사들도 모두 산 뒤의 방에서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진명이 술을 몇 잔 마시고 일어나 말했다.

장사 여러분! 기왕에 인정을 베풀어 진명을 죽이지 않으셨으니, 저의 갑옷과 말, 무기를 돌려주시면 청주로 돌아가겠습니다.”

연순이 말했다.

총관께서 틀리셨습니다. 청주에서 거느리고 온 5백 병마를 모두 잃었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입니까? 모용부윤이 그 죄를 용서할 것 같습니까? 차라리 거친 산이지만 이곳에 얼마간 머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본래 말을 쉴 수 있는 곳은 못 되지만, 잠시 이곳에서 우리와 한패가 되어 금은을 나누어 가지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관리들의 기세에 눌려 지내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진명은 듣고 나서 대청 아래로 내려가 말했다.

진명은 살아서는 대송(大宋) 사람이요, 죽어서도 대송의 귀신이 될 겁니다. 조정에서 나를 병마총관에 임명하고 겸하여 통제사의 관직을 주었으며, 또 일찍이 진명을 잘못 대한 적이 없었는데, 제가 어찌 도적이 되어 조정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나를 죽이려거든 죽이시오. 내가 당신들을 따르리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화영이 대청 아래에 내려가 이끌며 말했다.

진형님은 노여워하지 마시고 아우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도 조정 관리의 아들인데 핍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총관께서 산적이 되지 않겠다면, 어떻게 저희를 따르라고 핍박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앉아 계시다가 연회가 끝나면, 아우가 갑옷과 투구, 말과 무기를 형님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진명이 그래도 앉지 않으려 하자, 화영이 또 권했다.

총관께서는 하루 종일 많은 힘을 쓰셨습니다. 사람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말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진명은 듣고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다시 대청으로 올라갔다. 다섯 호걸은 번갈아 가며 술잔을 권하고 얘기를 나누었다.

진명은 첫째 피곤하기도 했고, 둘째 호걸들이 권하는 술을 거절할 수 없어 많이 마신 탓에 완전히 취해 버렸다. 졸개들이 부축하여 방으로 데리고 가 자게 하였다.

진명은 다음 날 아침 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호걸들이 만류하면서 말했다.

총관! 아침밥은 먹고 가셔야죠. 우리가 산 아래까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술과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갑옷과 투구를 가져와 입혀 주었다. 말을 끌어오고 낭아봉도 가져와 졸개들을 시켜 먼저 산 아래 가서 대기하게 하였다. 다섯 호걸은 산 아래까지 내려와 진명을 전송하였다. 작별하면서 말과 무기도 돌려주었다.

날이 환히 밝아졌다. 진명은 말에 올라 낭아봉을 들고 청풍산을 떠나 청주를 향해 달렸다. 10리쯤 갔는데, 멀리서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는데 왕래하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진명은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났다.

성 밖에 당도하여 보니, 원래 수백 인가가 있던 마을이 모두 불타고 폐허가 되어 있었다. 기와와 벽돌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여기저기 누워 있는 남녀의 시신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진명은 크게 놀라며 말을 몰아 그곳을 지나 성에 당도하였다.

성문을 열라고 소리치려다 보니, 성의 조교는 높이 올라가 있고 성 위에는 군사들이 늘어서서 깃발을 세우고 통나무와 바위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진명은 말을 세우고 소리쳤다.

조교를 내려 나를 입성하게 해라!”

성 위의 군사들이 진명임을 알아보고 북을 울리며 함성을 질렀다.

진명이 소리쳤다.

나는 진총관이다! 어째서 나를 입성시키지 않는 거냐!”

모용부윤이 성 위에 나타나 소리쳤다.

반적아! 너는 어찌하여 수치도 모르느냐! 어젯밤에 인마를 이끌고 와서 성을 공격하고 허다한 백성을 죽이고 집들을 불태우고서, 오늘은 또 와서 우리를 속여 성문을 열라는 것이냐! 조정에서는 일찍이 너를 박대한 적이 없었는데, 네놈은 어찌하여 이처럼 악한 일을 저지른단 말이냐! 이미 사람을 조정에 보내 아뢰었으니, 조만간에 네놈을 붙잡아 능지처참을 할 것이다!”

진명이 소리쳤다.

상공이 잘못 아셨습니다! 진명이 인마를 잃고 저놈들에게 사로잡혀 산 위로 끌려갔다가 방금 탈출했는데, 어젯밤에 어떻게 성을 공격할 수 있었겠습니까?”

부윤이 말했다.

내가 어찌 네놈의 말과 갑옷, 무기, 투구 등을 몰라보겠느냐? 성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네놈이 도적들을 지휘하여 살인 방화하는 것을 명백히 보았는데, 네놈은 어찌 발뺌을 하려는 것이냐! 네놈이 싸움에 져서 사로잡혔다면, 어찌하여 5백 군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도망쳐 와서 보고하지 않았단 말이냐? 네놈이 지금 우리를 속여 성문을 열게 한 다음, 네 가족들을 데려가려는 것 아니냐? 네놈의 처자식은 이미 죽었다. 못 믿겠다면 여기 머리를 보여주마!”

군사가 진명 아내의 수급을 창끝에 매달아 보여 주었다. 진명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아내의 수급을 보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슬픔만 삼켰다.

성 위에서 쇠뇌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져 진명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돌렸다. 돌아가면서 보니, 들판에는 아직도 화염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진명은 말을 돌려 폐허를 지나면서, 죽을 곳을 찾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한동안 생각하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10여 리를 갔을 때 숲속에서 한 떼의 인마가 나오는데, 앞장선 다섯 필의 말에는 다섯 호걸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송강· 화영· 연순· 왕영· 정천수였는데, 1~2백 명의 졸개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송강이 말 위에서 몸을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총관께서는 어찌하여 청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혼자서 어디로 가십니까?”

진명은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말했다.

천지도 용납하지 못할 어떤 찢어 죽일 놈이, 나로 변장하고서 성을 공격하고 인가를 불태웠으며 양민을 학살했느냐! 그 때문에 결국 내 가족도 몰살당하고 말았다! 내 지금 하늘로 올라가려 해도 길이 없고, 땅으로 들어가려 해도 문이 없는 신세가 됐다! 내 만약 그놈을 찾기만 하면, 이 낭아봉으로 박살을 내버릴 것이다!”

송강이 말했다.

총관께서는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기왕 부인께서 돌아가셨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중매를 서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가 있는데, 여기서는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산채로 가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진명은 할 수 없이 송강을 따라 다시 청풍산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산 위 정자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리고, 일제히 산채로 들어갔다.

졸개들은 이미 술과 음식을 취의청 앞에 차려놓았다. 다섯 호걸은 진명을 대청 위로 맞이하여 가운데 자리에 좌정하게 하였다. 다섯 호걸이 일제히 무릎을 꿇자, 진명도 황망히 답례하며 역시 무릎을 꿇었다.

송강이 말했다.

총관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어제 총관께서 산에 머무시게 하려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하셨기 때문에, 송강이 한 계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총관과 닮은 한 소졸에게 총관의 갑옷을 입히고 총관의 말을 타고 낭아봉을 들고서, 붉은 두건을 쓴 자들을 이끌고 청주성 아래로 가서 사람들을 죽이게 하였습니다. 연순과 왕영이 50여 명을 데리고 가서 싸움을 도우는 한편 총관 댁으로 가서 가족들을 데려오려고 했습니다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총관께서 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끊어 버리기 위해 살인 방화를 했던 겁니다. 오늘 이렇게 사죄드립니다.”

진명은 송강의 말을 듣고서 분노가 치밀어 송강 등과 사생결단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봤다.

첫째, 이것도 하늘이 정한 운명이 아닐까? 둘째, 내가 사로잡혔을 때 저들은 예의로써 나를 대우해 주었다. 셋째, 저들과 싸워 봤자 이길 수도 없다.”

진명은 분노를 누르고 말했다.

형제들이 비록 호의로 진명을 머물게 하려고 한 일이지만, 결국 내 가족이 몰살당하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지독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송강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총관께서 이곳에 남으려고 했겠습니까?

부인을 잃은 것이 애석하시다면, 화영의 여동생이 어질고 지혜로우니 송강이 중매를 서서 총관의 배필로 맺어드리고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진명은 사람들이 이처럼 서로 공경하고 총애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모두들 송강에게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고, 진명, 화영, 그리고 세 두령이 차례로 앉았다.

북을 울리고 술을 마시면서, 청풍채 칠 일을 상의했다.

진명이 말했다.

그건 쉬운 일이니, 형제들은 마음 쓰지 마시오.

첫째, 황신은 나의 수하입니다. 둘째, 진명이 그에게 무예를 가르쳤습니다. 셋째, 그는 나와 아주 친합니다. 내일 내가 먼저 가서 책문을 열게 하고 그를 설득하여 투항하게 하겠소. 그리고 화지채의 가족을 데려오고 유고의 계집년을 잡아 와서 형님의 원한을 갚도록 해드림으로써, 입당의 예물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송강이 기뻐하며 말했다.

총관께서 그처럼 해주신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날 연회를 마치고 각자 돌아가 쉬었다.

다음 날 아침, 각각 갑옷을 입었다. 진명이 말에 올라 낭아봉을 들고 먼저 산을 내려가 곧장 청풍진으로 달려갔다.

 

한편, 황신은 청풍진에 도착하여 군사와 백성을 모두 동원하여 밤낮으로 방비하였다.

책문을 굳게 지키면서 감히 출전하지는 못하고 누차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였는데, 청주에서 보낸 병력은 소식이 없었다.

그날 보고가 들어왔다.

책문 밖에 진통제가 혼자서 말을 타고 와 책문을 열라고 합니다.”

황신이 그 말을 듣고, 말에 올라 책문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진명이 아무도 데려오지 않고 혼자 있었다.

황신은 책문을 열고 조교를 내리라고 명하여, 진명을 안으로 영접하였다.

곧장 대채의 공청으로 가서 대청에 오르게 하였다. 인사를 마친 다음, 황신이 물었다.

총관께서는 어찌하여 단기(單騎)로 오셨습니까?”

진명은 먼저 군마를 잃은 사정을 설명한 다음, 말했다.

산동의 급시우 송공명은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중시하여 천하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니, 누가 공경하지 않겠는가? 그는 지금 청풍산에 있는데, 나도 이번에 산채에 가서 입당했네. 자네는 가족도 없으니, 나와 함께 산채로 가서 입당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러면 문관 놈들의 수모를 받지 않아도 되잖아?”

황신이 대답했다.

이미 총관께서 입당하셨다면, 황신이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송공명이 청풍산에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지금 말씀하신 급시우 송공명이 언제 왔답니까?”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지난번에 압송해 가던 운성호 장삼이 바로 송공명일세. 진짜 성명을 밝히면 자신의 사건이 드러날까 두려워 장삼이라고 했던 걸세.”

황신은 그 말을 듣고, 다리를 비틀거리며 말했다.

그가 송공명인 줄 알았더라면 도중에 놓아줬을 겁니다. 한순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유고 한쪽 말만 들었다가, 자칫 그 목숨을 빼앗을 뻔했습니다.”

진명과 황신이 떠날 일을 상의하고 있는데, 병사가 와서 보고했다.

두 갈래 군마가 징과 북을 울리며 진으로 오고 있습니다.”

진명과 황신이 말로 올라 적을 맞이하러 나갔다. 책문에 당도한 군마를 보니, 먼지가 자욱하게 해를 가린 가운데 살기가 충천하였다.

두 갈래의 군병이 진 앞에 당도했는데 네 호걸이 산에서 내려온 것이었다 진명과 황신이 책문에 당도하여 바깥을 내다보니, 두 갈래 군마가 당도했다. 한 갈래는 송강과 화영이, 한 갈래는 연순과 왕영이 각각 150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황신이 병사들에게 조교를 내리고 책문을 열게 하여, 두 갈래 인마를 모두 진으로 맞아들였다.

송강이 백성을 해치지 말고 병사들을 상하지 말라고 호령을 내렸다. 먼저 남쪽의 소채로 가서 유고의 가족을 붙잡아 모두 죽였다. 왕영은 먼저 유고의 부인을 붙잡았고, 졸개들은 집안의 재물을 모두 챙겨 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말과 소, 양 등도 모두 끌고 갔다.

화영은 집으로 가서 재물을 모두 수레에 싣고 부인과 여동생을 데려갔다. 청풍진에 남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돌려보낸 다음, 일행은 청풍진을 떠나 산채로 돌아갔다.

수레와 인마가 산채에 당도하자, 정천수가 맞이하여 취의청으로 인도했다. 황신은 호걸들과 인사를 마치고 화영 옆에 앉았다. 송강은 화영의 가족에게 처소를 마련해 주어 쉬게 하고, 유고의 재물을 졸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왕영은 유고의 부인을 붙잡아 와서 자기 방에 숨겨두었다.

연순이 물었다.

유고의 처는 지금 어디 있나?”

왕영이 대답했다.

이번에는 아우의 아내로 삼아야겠습니다.”

연순이 말했다.

주려면 자네에게 주어야지. 일단 불러오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송강이 말했다.

나도 물어 볼 말이 있네.”

왕영은 여인을 대청 앞으로 데려오자, 여인은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송강이 소리쳤다.

네 이년! 네가 관원의 부인이라 나는 호의로 구해서 내려 보냈건만, 네년은 어찌하여 도리어 원수로 갚았느냐! 오늘 이렇게 붙잡혀 왔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연순이 일어나며 말했다.

이런 음탕한 년에게 뭘 묻습니까?”

요도를 뽑아 한칼에 두 동강을 내버렸다.

왕영은 계집이 칼에 베이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박도를 들고 연순과 싸우려고 했다.

송강이 일어나 말리며 말했다.

연순이 저 계집을 죽인 건 옳은 일이네. 형제! 내가 힘을 써서 구하여 내려 보냈더니 부부가 똘똘 뭉쳐 안면을 바꾸고 도리어 나를 해치려 한 걸 자네도 보지 않았는가? 저런 계집을 가까이 두면 백해무익하네. 송강이 차후에 좋은 여인을 골라 주겠네.”

연순이 말했다.

아우도 잘 생각해 보게. 지금 죽이지 않으면 후에 필시 자네에게 해를 끼칠 걸세.”

왕영은 여러 사람들이 설득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순은 졸개들을 불러 시체를 치우고 피를 닦아 내게 한 다음,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다.

다음 날, 송강과 황신이 혼례를 주관하고 연순· 왕영· 정천수가 중매가 되어 화영의 여동생을 진명에게 시집보냈다. 모든 예물은 송강과 연순이 준비하였다.

사나흘 동안 연회를 열었고, 혼례가 끝난 후 6~7일이 지났다. 졸개가 사정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였다.

청주의 모용부윤이 화영·진명·황신이 배반했다는 공문을 중서성에 보냈고, 조정에서는 대군을 일으켜 청풍산을 토벌하러 온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고 두령들이 상의했다.

이곳의 작은 산채는 오래 머물 곳이 못됩니다. 만약 대군이 와서 사면을 포위한다면, 어떻게 대적하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내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여러분 마음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두령들이 모두 말했다.

양책을 듣고 싶습니다.”

남쪽에 양산박이란 곳이 있습니다. 둘레가 8백여 리이고, 가운데 성이 있고 해자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조천왕이 4~5천 군마를 모아 지키고 있는데, 관군도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인마를 수습하여 거기로 가서 입당하면 어떻겠습니까?”

진명이 말했다.

그런 곳이 있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인도해 줄 사람이 없으면, 그들이 우리를 받아주려 하겠습니까?”

송강이 크게 웃고 나서, 생일선물을 탈취한 일에서부터 유당이 서신과 황금을 가져온 일, 또 그로 인해 염파석을 죽이고 강호로 도망친 일까지 모두 얘기했다.

진명이 듣고 나서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형님이야말로 그들의 큰 은인입니다. 이 일은 지체할 수 없으니, 빨리 수습하여 떠납시다.”

계책이 정해지자, 수레 수십 대를 준비하여 가족과 재물 등을 싣고, 2~3백 필의 말도 준비하였다.

졸개들 가운데 가고 싶지 않다는 자는 은자를 나누어주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게 하고, 따라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부대에 편입시켰는데 진명을 따라온 자들까지 모두 4~5백 명이었다.

송강은 무리를 셋으로 나누어 하산시켰는데, 양산박을 치러 가는 관군으로 위장했다. 산 위에서 모든 것을 수습하여 수레에 싣고, 산채는 불을 질러 황무지를 만들었다.

송강과 화영이 기병 4~50기를 거느리고 수레 일곱 대에 가족들을 태워 호위하면서 먼저 출발했다.

진명과 황신은 기병 8~90기를 거느리고 수레 몇 대를 끌고 두 번째로 출발했다.

뒤에 연순· 왕영· 정천수 세 사람이 4~50필의 말과 1~2백 명을 거느리고 청풍산을 떠나 양산박을 향해 나아갔다.

도적을 잡으러 가는 관군임을 알리는 깃발을 들고 갔으므로, 아무도 감히 가로막는 자가 없었다. 6~7일 행군하여 청주로부터 멀어졌다.

송강과 화영은 말을 타고 선두에서 가고 뒤에는 가족을 태운 수레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서로 간에 20여 리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가다 보니 앞에 산이 하나 나타났는데, 대영산이라고 했다. 양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그 가운데에 넓은 역참대로가 나 있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앞서가고 있는데, 앞쪽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화영이 말했다.

앞에 필시 강도가 있을 것이다!”

화영은 말을 멈추고 쟁을 들었다. 활과 화살을 정돈한 다음, 화살을 다시 화살통 안에 꽂았다. 기마병을 불러 뒤에서 따라오는 군마를 재촉하는 한편, 수레를 멈춰 세웠다. 송강과 화영은 20명의 기마병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가 길을 살폈다.

반 리쯤 갔는데, 약 백여 명의 인마가 붉은 갑옷을 입은 청년 장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청년 장사가 방천화극을 들고 말을 타고서, 산기슭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오늘 나랑 너랑 싸워서 승부를 가려 보자!”

그때 맞은편 언덕 뒤에서 또 백여 명의 인마가 나타났는데, 앞에 흰 갑옷을 입은 청년 장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 청년 장사도 손에 방천화극을 들고 있었다.

방천화극

저쪽은 모두 흰 깃발이었고, 이쪽은 모두 붉은 깃발이었다. 흰 깃발과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두 청년 장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각각 화극을 들고 말을 몰아 가운데 큰길 위에서 교전하였다.

화영과 송강이 말을 멈추고 바라보았는데, 과연 호적수였다. 두 청년 장사는 각각 방천화극을 썼는데, 3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화영과 송강은 마상에서 구경하다가 갈채를 보냈다. 화영은 한 걸음 한 걸음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 구경했다. 두 장사가 싸우면서 점점 깊은 계곡에 다가갔다.

한쪽 화극에는 표범꼬리 같은 술이 달려 있고, 다른 한쪽 화극에는 오색실을 꼬아 만든 술이 달려 있었는데, 한순간 두 술이 뒤엉켜 풀어지지 않았다.

화영이 마상에서 그걸 보고 말을 멈춘 다음,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한 대 먹여 날렸다.

화살은 바람처럼 날아가 두 술이 엉킨 곳에 명중했고, 두 화극은 서로 떨어졌다.

바라보고 있던 2백여 명이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두 장사는 싸움을 멈추고 말을 달려 곧장 송강과 화영 앞으로 왔다. 마상에서 몸을 굽혀 인사하고 말했다.

신전장군(神箭將軍)의 큰 이름을 듣고자 합니다.”

화영이 대답했다.

이분은 나의 의형 운성현 압사이신 산동 급시우 송공명이시고, 나는 청풍진 지채 소이광 화영이오.”

두 장사는 화극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했다.

존함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송강과 화영도 황망히 말에서 내려 두 장사를 일으키고 말했다.

두 분 장사의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붉은 갑옷을 입은 장사가 말했다.

저는 여방(呂方)인데, 본적은 담주입니다. 평소 여포를 좋아하여 방천화극을 익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작은 여포라는 뜻으로 소온후(小溫侯) 여방이라 부릅니다. 산동에 약재를 팔러 갔다가 본전을 다 까먹고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이 대영산을 점거하여 노략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저 장사가 나타나 저의 산채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각자 산을 하나씩 나누었는데, 저자가 만족하지 못해 매일 하산해서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원래 인연이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뜻밖에 여기서 존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송강이 이번에는 흰 갑옷을 입은 장사의 이름을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저는 곽성(郭盛)인데, 본적은 서천 가릉입니다. 수은을 팔러 다니다가 황하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가릉에서 병마군관에게 방천화극을 배웠는데, 후에 열심히 연습해서 익숙해지자, 사람들이 당나라 명장 설인귀(薛仁貴)에 견줄 만하다고 해서 새인귀(賽仁貴) 곽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강호에서 화극을 잘 쓰는 자가 대영산을 점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겨루어 보고자 왔습니다. 10여 일을 계속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예기치 않게 두 분을 만난 것은 참으로 천행입니다.”

송강은 얘기를 듣고서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행운이니, 두 분은 화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두 장사는 크게 기뻐하며 화해하였다.

후대 인마가 모두 도착하여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여방이 먼저 산 위로 청하여, 소와 말을 잡아 연회를 열었고, 다음 날에는 곽성이 술을 준비하여 연회를 열었다.

송강이 두 사람에게 입당하여 함께 양산박으로 가자고 말하자, 두 사람은 매우 기뻐하며 동의하였다.

두 산의 인마를 점검하고 재물을 수습하여 떠나기로 하였다.

송강이 말했다.

잠깐!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우리 4~5백 인마가 한꺼번에 양산박으로 간다면, 거기서도 정탐꾼을 사방으로 보내 정탐하고 있을 것이오. 만약 우리가 정말로 도적을 토벌하러 하는 관군이라고 생각하면, 큰일이오. 내가 연순과 함께 먼저 가서 알릴 터이니, 나머지는 뒤를 따라 셋으로 나누어 출발하시오.”

화영과 진명이 말했다.

형님의 고견이 옳습니다. 형님이 반나절 먼저 가시면, 우리는 인마를 재촉하여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송강과 연순은 말을 타고 10여 명의 졸개를 데리고 먼저 양산박으로 출발했다. 이틀째 되는 날 정오쯤에 길가에 큰 주점이 있는 것을 보았다.

송강이 말했다.

졸개들이 피곤할 테니, 술을 마시고 가세.”

송강과 연순은 말을 내려 주점으로 들어갔다. 졸개들도 말을 매어 놓고 모두 주점으로 들어갔다. 송강과 연순이 먼저 주점으로 들어가 보니, 큰 자리가 셋 있고 작은 자리도 몇 개 안 되는데, 한 사람이 큰 자리를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송강이 그 사람을 살펴보니, 머리에 두건을 썼는데 뒤에 태원부의 관원임을 알리는 동고리가 두 개 달려 있었다. 탁자 옆에 짧은 봉을 기대 놓았는데 옷 보따리가 걸려 있었다. 키는 8척 정도 되는데, 얼굴은 누렇고 눈은 반짝이고 수염은 없었다.

송강이 점원을 불러 말했다.

우리 일행이 많은데, 우리 둘은 안으로 들어가서 앉겠네. 자네가 저 손님에게 다른 자리로 옮기고 우리 일행에게 큰 자리를 양보해 주라고 말해 보게.”

점원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송강은 연순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앉아 점원을 불렀다.

먼저 우리 일행에게 한 사람당 술 석 잔씩을 돌리고, 고기도 갖다 주게. 그리고 우리한테 와서 술을 따르게.”

점원은 일행이 화로 주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관원 복장의 손님에게 가서 말했다.

나리! 죄송하지만 이 큰 자리를 안에 앉아 계신 저 두 관원의 일행에게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사내는 나리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화를 내며 말했다.

먼저 온 사람이 있고 뒤에 온 사람이 있는데, 무슨 관원의 일행이라고 자리를 바꿔 달라는 거냐! 이 어르신은 못 바꿔 준다!”

연순이 그 말을 듣고 송강에게 말했다.

저놈이 너무 무례한 것 아닙니까?”

송강이 말했다.

내버려 두게. 안 그러면 자네도 그와 같네.”

송강은 연순을 진정시켰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송강과 연순을 쳐다보며 냉소를 띠었다. 점원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나리! 소인의 장사를 위해서라도 자리를 바꿔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내는 크게 노하여 탁자를 치면서 말했다.

x같은 새끼가 사람을 몰라보느냐! 이 어르신이 혼자라고 무시하고 자리를 바꿔 달라는 거냐! 황제가 오더라도 이 어르신은 절대 바꿔 주지 않는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이 주먹은 눈이 없어서 네놈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점원이 말했다.

소인이 무슨 말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사내가 소리쳤다.

네까짓 놈이 감히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는 거냐!”

연순은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한 마디 던졌다.

! x같은 놈아! 바꿔 주면 그만이지, 왜 사람을 놀라게 하고 지랄이냐!”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봉을 잡고 말했다.

내가 욕을 하든 말든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이 어르신은 천하에 단지 두 사람에게만 양보할 뿐이고, 나머지는 내 발바닥의 때만큼도 안 여긴다!”

연순은 화가 치밀어 의자를 들고 사내를 치러 가려고 했다. 송강은 사내가 하는 말이 범상치 않아 끼어들어 말했다.

잠시 멈추시오! 하나 물어봅시다. 당신이 천하에서 양보하는 두 사람이 누굽니까?”

사내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아마 놀라 자빠질 걸?”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듣고 싶습니다.”

한 사람은 창주 횡해군의 소선풍 시진, 시대관인이다.”

송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또 한 사람은 누구요?”

이 사람도 훌륭한 분이지. 운성현 압사인 산동 급시우 호보의(呼保義; 의를 지키는 사람) 송공명이다.”

송강이 연순을 보며 몰래 웃음을 짓자, 연순은 의자를 내려놓았다.

사내가 말했다.

이 어르신은 이 두 사람 외에는 대송황제라고 해도 두렵지 않다.”

송강이 말했다.

하나 더 물어봅시다. 당신이 말한 그 두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오. 당신은 어디서 그 두 사람을 만났소?”

당신이 알고 있다면, 내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3년 전에 시대관인의 장원에 4개월 정도 머물렀고, 송공명은 아직 만난 적이 없다.”

흑삼랑을 만나고 싶소?”

내가 지금 그를 찾아가는 길이다.”

누가 당신에게 그를 찾아가라고 했소?”

그의 친형제 철선자 송청이 그에게 보내는 서신을 내게 부탁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가 사내의 손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인연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고 만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바로 흑삼랑 송강입니다.”

사내는 송강을 한 번 쳐다보더니 넙죽 절하며 말했다.

천행으로 형님을 만났습니다. 잘못 지나쳐 공태공 댁까지 헛걸음할 뻔했습니다.”

송강은 사내를 안으로 이끌고 들어가 물었다.

우리 집은 별일 없습니까?”

사내가 말했다.

형님께 아룁니다. 제 이름은 석용(石勇)이고 원래 북경 대명부 사람입니다. 평소 도박을 생업으로 삼아 왔습니다. 고향에서는 저를 석장군(石將軍)이라고 부릅니다. 도박을 하다가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죽여 시대관인의 장원으로 도망갔습니다. 강호를 왕래하는 사람들에게서 형님의 이름을 많이 듣고 운성현으로 형님을 찾아갔는데, 사건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우만 만났는데, 제가 시대관인 댁에서 왔다고 하니까 형님께서 백호산 공태공의 장원에 계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형님을 찾아뵈러 가겠다고 하니까, 서신을 주면서 공태공 장원으로 가서 형님을 찾거든 빨리 집으로 돌아오시라고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송강은 그 말을 듣고 의혹이 생겨 물었다.

우리 집에 며칠이나 머물렀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뵈었습니까?”

석용이 말했다.

저는 하룻밤만 머물렀기 때문에 태공은 뵙지 못했습니다.”

송강이 지금 양산박으로 가는 길임을 석용에게 설명했다.

석용이 말했다.

저는 시대관인의 장원을 떠나 강호를 떠돌면서, 형님께서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의리를 중히 여기시며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고 위급한 사람을 일으켜 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형님께서 양산박으로 가신다면,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송강이 말했다.

한 사람쯤 더 간다고 해서 안 될 것 있겠소? 여기 연순과 인사하시오.”

점원을 불러 술을 따르게 하고, 석 잔을 마셨다. 석용은 보따리를 가져와 서신을 꺼내 송강에게 건넸다.

송강이 서신을 받아 보니, 봉투가 거꾸로 붙어 있고 평안이라는 두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송강은 마음속으로 더욱 의혹이 일어나 황급히 봉투를 찢고 서신을 읽었다. 반쯤 읽어 내려가니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부친께서 금년 정월 초에 병환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집에서 상례를 멈추고, 오로지 형님이 돌아와서 장례를 치르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절대! 절대! 늦지 않으시길! 송청이 피눈물로 서신을 올립니다.”

 

송강은 서신을 읽고 나서, ‘아이고!’ 소리치며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말했다.

불효막심한 놈이 이런 잘못을 저질렀구나! 늙으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으니,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송강은 벽에 머리를 들이받으며 통곡하였다. 연순과 석용이 만류했지만, 송강은 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만에 깨어나자, 연순과 석용이 위로하며 말했다.

형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송강이 연순에게 말했다.

내가 박정해서가 아니라, 오직 늙으신 아버지가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돌아가셨으니 밤을 새워서라도 돌아가야겠네. 형제들은 알아서 양산박으로 가게.”

순이 말했다.

형님! 태공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집에 가도 뵐 수 없습니다. 천하에 돌아가시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마음을 넓게 가지시고 저희 형제들을 인도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아우가 형님을 모시고 상례를 치르러 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옛말에 뱀이 대가리가 없으면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형님이 떠나시면, 그들이 저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만약 자네들을 양산박까지 데려가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니 그럴 수가 없네. 내가 자세하게 서신을 써줄 테니, 석용도 데리고 가서 함께 입당하고 다른 형제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게. 내가 몰랐다면 모르지만, 하늘이 내게 알렸으니 하루가 1년 같고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조급하네. 말도 필요 없고 종자도 필요 없으니, 혼자서 밤을 새서라도 집으로 달려가겠네.”

연순과 석용은 더 이상 만류할 수가 없었다. 송강은 점원에게 지필묵을 빌려 눈물을 흘리며 재삼 부탁한다는 서신을 썼다. 서신을 다 쓰고 봉투는 붙이지 않고 연순에게 주었다.

석용의 미투리를 빌려 신고, 은자를 챙겨 품속에 넣었다. 요도를 허리에 차고 석용의 짧은 봉을 쥐고 술과 음식은 먹지도 않고 문을 나섰다.

연순이 말했다.

진총관과 화지채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만나고 가도 늦지 않을 겁니다.”

송강이 말했다.

난 기다릴 수 없네, 내 서신을 가지고 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걸세.

석용 형제가 잘 설명해 주게. 송강이 부친상을 치르러 급하게 가니, 가련하게 여겨 너무 탓하지 말라고 말해 주게.”

송강은 한달음에 집에 도달할 수 없음을 한스럽게 생각하며 혼자 나는 듯이 떠나갔다.

연순과 석용은 주점에서 술과 음식을 먹고 돈을 치렀다.석용은 송강이 탔던 말을 탔고, 두 사람은 졸개들을 데리고 주점에서 4~5리 떨어진 곳에서 큰 객점을 찾아 쉬면서 후대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에 일행이 모두 도착했다. 연순과 석용이 맞이하여, 송강이 부친상에 달려간 일을 자세히 애기했다. 두령들이 모두 연순을 원망하며 말했다.

어째서 만류하지 않았소?”

석용이 나서서 말했다.

부친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듣고 자신도 죽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며 날아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데, 어떻게 붙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자세한 내용을 서신에 써 놓고, 우리더러 알아서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서신을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화영과 진명이 서신을 보고 여러 사람들과 상의했다.

일이 도중에 진퇴양난에 처했습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흩어질 수도 없습니다. 일단 가서 서신을 보여줍시다. 만약 서신을 보고서도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합시다.”

아홉 호걸이 한 무리를 이루어 4~5백 인마를 거느리고 점차 양산박에 접근해 갔다. 일행이 갈대숲을 지나가는데, 물 위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온 산과 들판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발이 깔렸고 호수 가운데서 두 척의 쾌속선이 다가왔다.

앞장선 배에는 4~50명의 졸개들이 타고 있고 뱃머리에 한 두령이 앉아 있는데, 바로 표자두 임충이었다.

뒤를 따라온 순시선에도 4~50명의 졸개가 타고 있고 뱃머리에 한 두령이 앉아 있는데, 바로 적발귀 유당이었다.

앞장선 배에서 임충이 소리쳤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디서 온 관군이냐? 감히 우리를 잡으러 와?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네놈들에게 양산박의 큰 이름을 알려 주마!”

화영과 진명이 말에서 내려 호숫가에 서서 응답했다.

우리는 관군이 아니오! 산동 급시우 송공명 형님의 서신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산채에 입당하러 왔습니다.”

임충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의 서신이 있다면, 저 앞에 있는 주귀의 주점으로 가시오. 먼저 서신을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합시다.”

배 위에서 파란 깃발을 한 번 흔들자, 갈대숲에서 작은 배 하나가 나타났는데 안에는 어부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배에 남고 두 사람이 뭍에 올라와 말했다.

여러 장군들은 저를 따라 오십시오.”

물 위에 있던 두 척의 배 가운데서 한 척의 배 위에서 하얀 깃발을 흔들자 징소리가 울리더니, 두 척의 배가 일제히 사라졌다. 일행은 그걸 보고 모두 깜짝 놀라며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정말 이런 곳에 관군이 누가 감히 쳐들어오겠나? 우리 산채와는 비교도 안 되는군,”

두령들이 두 어부를 따라 한 바퀴 돌아가니 한지홀률 주귀의 주점에 당도하였다. 주귀가 나와서 맞이하고 인사를 나눈 다음, 황소 두 마리를 잡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주귀가 서신을 받아 보고서, 먼저 물가의 정자에서 소리 나는 화살을 맞은편 갈대숲으로 쏘자 쾌속선 한 척이 나타났다. 주귀는 졸개를 불러 서신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보고하게 하였다. 돼지와 양을 잡아 주점에서 아홉 호걸을 대접하는 한편, 군마도 사방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다음 날 아침, 군사 오용이 주귀의 주점으로 와서 여러 두령들을 영접하였다. 한 사람씩 인사를 나누고 예를 마친 뒤, 자세한 내용을 묻고는 2~30척의 큰 배들이 마중하러 나왔다. 오용과 주귀는 아홉 호걸을 배에 태우고, 가족과 수레, 인마와 짐을 모두 배에 싣고 금사탄으로 건너갔다.

뭍에 올라 소나무 숲을 지나자, 조개를 비롯한 두령들이 나와 북을 울리며 맞이하였다. 조개를 필두로 하여 아홉 호걸과 인사를 나누고 관문을 지나 취의청으로 갔다.

왼쪽에는 조개오용· 공손승· 임충· 유당· 완소이· 완소오· 완소칠· 두천· 송만· 주귀· 백승이 앉았다.

이때 백일서 백승은 몇 개월 전에 제주 감옥을 탈출하여 양산박으로 왔는데, 모두 오용이 사람을 보내 돈을 뿌려 탈출시킨 것이었다.

오른쪽에는 화영· 진명· 황신· 연순· 왕영· 정천수· 여방· 곽성· 석용이 앉았다.

두 줄로 앉은 가운데에 향로에 향을 피우고 맹세했다.

풍악을 울리고 소와 말을 잡아 연회를 열었다. 새로 온 다른 일행도 대청 앞으로 불러 인사를 하도록 하고, 소두목들이 대접하게 하였다. 뒷산의 방들을 정리하여 가족들도 쉬게 하였다.

진명과 화영이 송공명을 칭찬하면서 청풍산에서 원한을 갚은 일 등을 얘기하자, 두령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또 여방과 곽성이 화극으로 싸울 때, 화영이 얽힌 술을 화살로 맞춰 끊은 얘기를 하자, 조개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모호하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활을 잘 쏜다면, 다른 날 구경 한 번 합시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르고 음식도 배부르게 먹은 후, 여러 두령들이 말했다.

저 산 앞쪽으로 가서 한가하게 한 번 거닐고 옵시다.”

두령들은 서로 양보하면서 계단을 내려와 한가하게 거닐며 산 경치를 구경했다. 산채의 제3관문에 당도했을 때, 공중에서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영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조개는 내가 화극의 술을 화살로 끊었다는 것을 못 믿는 눈치였어. 오늘 내 솜씨를 보여주면, 차후로도 나를 무시하지 못하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수행원 중에 활과 화살을 든 자가 있었다. 화영은 그에게 활과 화살을 빌렸다. 화살을 시위에 먹이고서 조개에게 말했다.

좀 전에 화영이 화살로 화극의 술을 끊었다는 얘기를 듣고, 형님을 비롯한 여러 두령들이 믿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기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가 보이네요. 화영이 과장하지 않고, 저 기러기 행렬에서 세 번째 놈의 머리를 맞춰 보겠습니다. 명중하지 않더라도 웃지 마십시오.”

화영은 시위를 당겨 공중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과연 기러기 행렬 가운데 세 번째 놈이 맞고 땅으로 떨어졌다. 급히 군사를 시켜 주워 오게 했는데, 화살이 정확하게 머리를 꿰뚫고 있었다. 조개와 두령들은 그걸 보고 모두 깜짝 놀라 화영을 귀신같은 팔을 지닌 신비장군(神臂將軍)이라 불렀다.

오용이 칭찬하며 말했다.

장군은 이광에 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명궁인 양유기(養由基)도 미치지 못할 신궁입니다. 진정 우리 산채의 복입니다!”

이때부터 양산박에서는 화영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두령들은 다시 취의청으로 가서 연회를 즐기다가, 밤이 되어 각자 돌아가 쉬었다.

다음 날, 산채에서 다시 연회를 열어 두령들의 서열을 정하였다.

본래 진명이 화영보다 관직이 높았지만, 화영이 진명의 손위 처남이기 때문에, 화영을 임충 다음의 다섯째 자리에 앉혔다.

진명은 여섯째, 유당은 일곱째, 황신은 여덟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완씨 삼형제 아래로 연순, 왕영, 여방, 곽성, 정천수, 석용, 두천, 송만, 주귀, 백승의 순으로 모두 21명 두령의 서열이 정해졌다.

축하 연회가 끝난 다음, 산채에서는 큰 배를 더 건조하고, 가옥을 짓고, 수레와 집기 등을 더 만들었다.

창칼 같은 무기와 갑옷, 투구 등을 주조하고, 깃발과 궁노, 화살 등을 준비하여 관군을 방어할 대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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