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37화
사내와 계집의 머리를 보자기에 싸 든 무송(武松)은 다시 칼을 감추고 자석가로 돌아갔다. 무송(武松)이 문을 두드리자 지키고 있던 병졸이 얼른 문을 열어 무송을 맞아들였다. 집 안으로 들어간 무송(武松)은 형의 제상 위에 두 모가지를 얹어 놓고 술을 따르며 또 한차레 섧게 곡(哭)을 했다.
"형님, 이제는 마음 놓고 하늘로 돌아가 편히 쉬십시오. 아우는 이제 남김없이 형님의 원수를 갚았습니다.
간부(姦夫)와 음녀(淫女)를 죽여 그 머리를 바치오니 부디 한을 푸십시오."
무송(武松)은 그렇게 형의 영전에 고한 뒤 위층에 있던 이웃 사람들을 아래층으로 불러 내렸다.
왕씨 할멈도 함께 끌고 내려왔다. 무송(武松)은 칼을 든 채 두 개의 머리통을 들어 보이며 네 명의 이웃사람에게 말했다.
"아직도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남았소. 돌아가시지 말고 제 말을 들어 주시오."
"말씀하십시오. 모두 도두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며 목소리를 합쳐 대답했다. 무송(武松)이 문득 처연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당부했다.
"저는 형님의 원수를 갚고 한(恨)을 씻어 드리기 위해 사람을 둘씩이나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 벌로 죽는다 해도 한스러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르신네들을 놀라게 해 드린 게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저는 이제 가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몸이니 형님의 혼백과 위패는 사르고 가겠습니다. 집안의 재산은 수고스럽겠지만 어른신네들이 내다 파시어 혹시 관청이나 여타 써야 할 곳이 있으면 쓰도록 하십시오. 저는 이 길로 현청으로 가서 스스로 죄를 알리고 법에 따라 벌을 받을 작정입니다. 한 가지 더 당부드릴 일은 제 죄가 큰지 작은지에는 개의치 마시고 여러분께서 보고 들으신 것만 바로 증언해 달라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무송(武松)은 먼저 무대의 위패와 그 앞에 쌓여 있던 지전, 축문 따위를 한데 모아 불을 질렀다.
돌봐 줄 사람도 없는 빈소를 남기고 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이 다 타 재가 되자 무송(武松)은 위층으로 가서 장롱이며 궤짝들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이웃들에게 나눠 준 뒤 왕씨 할멈을 끌고 현청으로 갔다.
그런 무송의 손에는 서문경과 반금련의 목을 싼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그때는 이미 그 일이 양곡현 전체에 짜하게 퍼져 길거리로 구경 나온 사람들이 헬 수 없을 정도였다. 무송(武松)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뒤 제 발로 현청에 찾아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은 지현(知縣)은 몹시 놀랐다.
얼른 사람을 모아 현청 마루에서 무송을 기다렸다. 무송(武松)은 왕씨 할멈을 지현 앞에 무릎 꿇리고, 사람을 죽이는 데 쓴 칼과 서문경, 반금련의 목을 계단 아래 놓았다. 무송(武松)이 할멈의 왼쪽으로 가 무릎을 꿇자 그를 따라온 이웃 사람들도 할멈의 오른편 마당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
무송(武松)은 품속에서 호정경이 적은 글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아울러 자신의 죄를 고했다.
지현(知縣)은 먼저 할멈에게 글에 적힌 게 사실인가를 물었다. 발뺌을 해 보려야 해 볼 길이 없게 된 왕씨 할멈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어 이웃들도 그게 사실임을 중언해 주었다.
지현(知縣)은 다시 하구숙과 운가를 불러 확인해 보았다. 두 사람 역시 모든 게 호정경이 적은 글의 내용과 같음을 증언했다. 사건이 명백해지자 지현(知縣)은 그날의 오작행인을 시켜 죽은 두 사람의 시체를 살펴보게 했다. 일을 맡은 관원은 먼저 자석가로 가서 계집의 시체를 조사하고 이어 사자교 아래의 술집으로 가서 서문경의 시체도 조사했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문서가 작성되자 지현(知縣)은 무송에게 칼을 씌워 감옥에 가두게 하고, 함께 온 다른 사람들은 따로이 한곳에 모아 두었다. 자신이 처결할 수 있는 사건이 못 되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증인으로 쓰기 위함이었다.
한때는 서문경의 뇌물에 마음이 흐려져 무송의 고발을 흐지부지 끝내려 한 적도 있는 지현이었으나, 일이 그 지경이 되자 제 정신이 돌아왔다. 무송(武松)이 의기 있는 장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동경까지 먼 길을 다녀온 적도 있음을 떠올리고 어떻게든 보살펴 주고 싶었다.
무송(武松)이 감옥으로 끌려가기 바쁘게 조사를 맡은 관원을 불러 의논했다.
"이보게, 무송은 의기로운 사내니 조서를 고쳐서라도 도와주는 게 어떤가. 이렇게 한번 고쳐 보지그래. 무송(武松)이 죽은 형을 제사 지내려 하는데 그 형수 되는 여자가 못하게 하므고 그 때문에 말다툼이 일어났다고. 그 끝에 형수가 위패 얹힌 제상을 둘러엎으려 하자 무송(武松)이 그걸 막으려고 형수를 한 대 때렸는데 그게 그만 그녀를 죽게 했다고."
"서문경을 죽인 일도 이렇게 바꾸면 어떻겠나? 서문경은 원래가 그 형수와 불륜을 저질러 오던 자였는데, 그날 우연히 거기왔다가 계집을 편들어 무송과 싸우게 되었다고. 그리고 서로 치고받는 중에 사자교까지 가게 되어 거기서 싸움중에 무송에게 맞아 죽게 되었다고...."
요컨대 두 사람 모두 무송이 처음부터 살의를 품고 죽인 게 아니라 과실이나 정당방위로 죽이게 되었다고 꾸미자는 이야기였다. 그 관원도 무송을 좋게 보아 온 사람인 데다 지현이 먼저 그런 말을 하자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곧 무송에 관한 조서를 그렇게 만들었다.
지현(知縣)은 무송에게 새로 꾸민 조서를 한 차례 읽어 들려주었다. 내용을 알고 거기 맞게 응답하란 뜻이었다. 그리고 무송을 그 조사와 함께 양곡현이 속한 동평부(東平府)로 보내며 관계되는 증인들도 모두 그리 딸려 보냈다.
양곡현이 비록 작지만 의(義)를 아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밥술깨나 뜨는 사람은 모두 은자를 내어 무송을 도왔다. 무송 아래 있던 병졸들도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무송을 배웅했다.
무송을 맡은 관원은 현청에 올리는 문서 외에 하구숙이 증거로 내놓은 은자와 뼛조각을 챙겼다. 또한 호정경이 두 계집으로부터 받아 적은 글, 무송의 칼 따위 증거물과 관계된 사람들을 모두 끌고 동평부로 향했다.
그때 동평부의 부윤은 진문소(陳文昭)란 사람이었다. 양곡현에서 온 관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자 곧 사람을 모아 재판할 채비를 갖췄다.
이윽고 무송과 함께 양곡현에서 온 문서가 올려지자 부윤(府尹)은 먼저 문서부터 살펴보았다. 본시 사람됨이 밝은 부윤(府尹)은 거기서 벌써 그 사건의 처음과 끝을 대강 알아보았다.
그러나 모든 증인을 불러 일일이 사실을 맞춰 보고, 증거물도 하나 빠짐없이 살핀 뒤에야 첫날의 판결을 내렸다. 곧 무송(武松)은 큰칼을 벗기고 가벼운 칼을 씌워 보통 감옥에 내린 반면, 왕씨 할멈은 큰칼을 씌워 죽을죄를 지은 자들이 갇힌 감옥에 옮긴 것이었다.
그리고 양곡현에서 온 관원들에게는 사건을 잘 접수했노라는 공문을 내림과 함께 하구숙과 운가 및 무대네 이웃 넷을 데리고 돌아가게 했다.
"너희들 여섯은 양곡현으로 돌아가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려라."
그게 무송이 세운 증인들에게 내린 영이었다. 그러나 그곳까지 따라온 서문경의 가족은 동평부에서 그대로 머물러 조정의 판결을 기다리게 했다.
진(陳) 부윤의 후의는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무송같이 의기 있는 남아가 그 같은 처지에 떨어진 걸 가엾게 여겨 특히 사람을 뽑아 돌봐 주게 하니 옥리들도 딴 죄수들과는 대접을 달리했다. 돈 한 푼 뜯는 법 없고 오히려 술이며 밥을 들여 주는 것이었다.
부윤(府尹)은 또 무송의 조서를 한층 가볍게 꾸며 조정의 상급 관청에 올리는 한편 믿을 만한 부하를 뽑아 밀서를 주고 몰래 동경으로 보냈다. 형부(刑部)의 힘깨나 쓰는 벼슬아치에게 무송을 잘 봐 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그 벼슬아치는 진 부윤과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형부의 상관들에게 무송을 좋게만 말해 다음과 같은 판결을 얻어냈다.
'왕씨 할멈은 두 남녀를 부추겨 간통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계집을 시켜 본남편을 독살케 하고, 무송이 제사 드리는 것조차 막게 하였다. 이는 뒤에서 시켜 사람의 목숨을 해치게 한 것이요, 인륜을 저버리도록 계집과 사내를 꼬드긴 것이니 능지처참이 합당하다. 무송(武松)은 비록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 하나, 서문경까지 죽였으니 자수를 했다 해도 그대로 놓아줄 수는 없다. 척장(脊杖) 사십 대에 얼굴에 먹자를 넣어 이천 리 밖으로 귀양 보낸다. 서방질한 계집은 무거운 죄를 지었으나 이미 죽었으므로 따지지 않는다. 그 밖에 관계된 여러 사람은 모두 풀어 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문서가 이르는 대로 시행하라.'
동평 부윤 진문소(陳文昭)는 그 같은 문서를 받자 그날로 집행했다. 먼저 하구숙과 운가를 비롯한 무송 측의 증인을 부르고 이어 서문경의 가족들을 끌어내 모두 부청(府廳)에 모은 뒤 판결을 읽어 주었다.
그다음은 무송이었다.
부윤(府尹)은 옥중의 무송을 끌어내 역시 조정에서 내려온 판결을 읽어 준 뒤 그대로 집행했다. 목에 쓴 칼을 벗기고 척장(脊杖) 사십 대를 때리는데 옥리들이 무송을 봐주어 매에 힘을 주지 않으니 피부도 크게 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먹자만은 어쩔 수 없어 무송은 뺨에 두 줄의 먹자를 뜨고, 맹주(孟州)의 감옥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무송에 이어 불려 와 있던 이편저편의 증인과 고소인들도 모두 양곡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씨 할멈을 끌어내 판결을 집행했다. 먼저 할멈을 목려(木驢, 죄인을 묶어 거리를 돌리는 데 쓰이던 수레)에 태워 저잣거리에 조리돌림을 한 뒤 사람 많은 장터에서 목을 자르고 시체를 흩었다.
무송(武松)도 귀양을 떠나기 앞서 왕씨 할멈의 처참한 죽음을 구경했다. 새삼 솟는 감회에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웃에 살던 요이랑(姚二郞)이 와서 무대의 가재도구를 판 돈을 쥐여 주었다. 귀양길에 쓰라는 이웃의 인정이었다.
모든 집행이 끝난 뒤에 무송(武松)은 문서를 가진 두 사람의 공인과 함께 맹주로 떠났다. 그들이 길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번에는 무송 밑에서 일 보던 병졸들이 쫓아와 정성을 합쳐 장만한 봇짐을 무송에게 건네주고 돌아갔다.
공인 두 사람도 무송의 호걸스러움에 반해 있었다. 죄수를 호송한다기보다는 상전을 모시고 가듯 공손하게 무송을 시중들며 길을 갔다. 무송(武松)은 그게 고마워 지니고 있던 은자를 넉넉히 나눠 주고, 주막이 나올 때마다 술과 고기를 사서 그들을 대접했다.
이야기를 하니 잠깐 동안의 일인 듯하지만 기실 무송(武松)이 사람을 죽인 날로부터 판결이 끝날 때까지는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따라서 무송과 공인이 맹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벌써 더위가 한창인 유월이었다. 한낮은 해가 뜨거워 걷지를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시원한 아침나절만 걸을 뿐이었다.
그럭저럭 동평부를 떠나 한 스무 날쯤 걸었을 무렵이었다. 하루는 큰 길을 따라 걷다가 어떤 고갯마루에 이르게 되었는데 때는 벌써 해가 뜨거워지는 한낮에 가까웠다. 그늘을 찾아 땀을 식히려는 두 공인을 보고 무송(武松)이 말했다.
"여기서 쉬지 말고 내처 고개를 내려가는 게 어떻겠소? 거기서 어디 주막이라도 있으면 술과 고기를 사 먹으며 쉽시다."
"그것도 옳은 말씀이오."
두 공인도 그렇게 선뜻 따라 주어 세 사람은 그대로 고개를 넘었다. 그런데 고개를 넘은 지 얼마 안 되어 고개 아래 멀지 않은 곳에 초가 한 채가 보였다. 개울가에 버드나무를 두르고선 집으로, 버드나무 가지에 걸린 깃대로 보아 주막 같았다.
"보시오, 저기 주막이 있지 않소."
무송(武松)이 반가워 그 집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두 공인도 그걸 보고 걸음을 빨리했다. 세 사람이 바삐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어떤 언덕 곁에서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해 지고 가는 게 보였다.
무송(武松)이 그 나무꾼에게 소리쳐 물었다.
"여보시오, 말 좀 물읍시다. 이리로 가면 어디요?"
"이 재가 바로 맹주(孟州)로 드는 재라오. 저 아래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십자파(十字坡)란 곳이외다."
나무꾼이 아는 대로 일러 주었다. 십자파란 곳은 아까 주막이 보이던 곳 같았다. 무송과 두 공인이 곧장 십자파로 달려가 보니 한 그루 엄청나게 큰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네댓 사람이 팔을 벌려 이어도 다 싸안지 못할 만큼 굵은 둥치에 윗부분만 마른 칡덩굴이 뒤덮인 나무였다.
주막은 그 나무를 돌아서 얼마 안 가 나왔다. 그 주막집 앞 창틀 가에 한 아낙네가 앉아 있는데 차림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초록빛 속옷이 비죽이 내보이는 흐트러진 옷차림에, 머리에는 누렇고 번쩍이는 비녀와 장식을 두르고 귀밑에는 풀꽃까지 꽂은 탓이었다.
아낙도 무송과 두 공인이 오고 있는 걸 본 모양이었다. 얼른 몸을 일으켜 달려 나와 세 사람을 맞아들였다.
가까이서 본 아낙의 모습은 더욱 꼴불견이었다. 아래는 새빨간 비단 치마를 두르고 얼굴에는 허연 분을 덕지덕지 발랐다. 풀어헤쳐진 가슴에다 복숭아빛 속옷이 내비치는 허리 위로는 금빛 띠를 질끈 동이고 있었다.
"손님들, 잠시 쉬었다 가세요. 저희 집에는 좋은 술과 고기가 있답니다. 마침 점심때라 크고 맛 좋은 고기만두도 있구요."
아낙이 무송과 두 공인을 보며 제 딴에는 교태를 지어 말했다.
세 사람은 그런 아낙이 달갑잖은 대로 주막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두 공인이 방망이를 탁자에 기대 놓고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무송(武松)도 지고 있던 보따리를 벗은 뒤 허리띠를 풀어 겉옷을 벗어젖혔다.
공인들은 그런 무송에게 말했다.
"여기는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 칼을 잠시 벗겨 드리지요. 그래야 술이라도 한잔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칼에 붙은 봉인을 곱게 뜯어낸 뒤 칼을 벗겨 주었다. 칼은 벗어 탁자 위에 놓고 옷도 반은 벗어 창틀에 얹어 두고 나니 무송(武松)은 좀 살 것도 같았다.
그때 아낙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손님, 술을 좀 드시겠어요?"
"많건 적건 있는 대로 좀 가져다 주쇼. 고기도 서너 근 끊어 내오고. 셈은 이따가 한꺼번에 치르겠소."
무송(武松)이 그렇게 받자 아낙이 다시 물었다.
"맛 좋은 만두도 있는데요, 좀 가져다드릴까요?"
"괜찮지, 그것도 한 서른 개 내오슈. 점심으로 먹게."
이번에도 무송(武松)이 시원스레 받았다.
그러자 아낙은 무엇이 좋은지 해쭉해쭉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큰 술통 하나와 사발 셋이 나오고, 다시 젓가락 세 벌과 썬 고기 한 쟁반이 나왔다.
셋은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술이 대여섯 잔 돌았을 무렵 아낙이 다시 만두 한 광주리를 내왔다. 배가 고프던 참이라 두 공인은 만두를 덥석덥석 베어 물었다.
그러나 무송(武松)은 웬일인지 만두를 베어 무는 대신 쪼개 속을 들여다보더니 아낙을 보고 소리쳐 물었다.
"안주인, 이 만두소가 사람 고기요, 개고기요?"
"손님, 우스갯소리 마세요. 이 밝은 세상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만들다니요. 개고기도 만두소로는 맛이 없지요. 우리 집 만두는 윗대부터 쇠고기만 써 왔답니다.“
부인이 턱없이 깔깔거리며 받아넘겼다. 무송(武松)이 능청스러운 얼굴로 부인을 보며 넌지시 묻는다.
"내가 강호를 떠돌 때 들은 노래가 있소. '큰 나무 서 있는 십장파 / 나그네 뉘라서 함부로 지날까 / 살찐 이는 저며 만두소가 되고 / 야윈 이는 죽여 개울창에 던져진다네.' 이런 노랜데 혹시 여기가 그곳 아니오?"
"손님, 그 소리 어디서 들었어요? 그건 손님이 지어낸 거죠?"
"여기 이 만두소에 보니 사람의 터럭 같은 게 섞여 있는데? 꼭 음모(陰毛) 같은 게 말이야."
무송(武松)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불쑥 물었다.
"그런데 이 집 바깥양반은 어째 보이질 않소?"
"남편은 볼일 보러 나가 아직 안 돌아왔어요."
아낙이 성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 하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무송(武松)은 또 엉뚱한 수작을 했다.
"그렇다면 부인 홀로 외롭겠구려."
앞서 말한 것까지 모두 아낙을 놀리려고 한 것처럼 만드는 수작이었다. 아낙도 그렇게 알아듣고 속으로 별렀다.
'이 귀양 가는 죄수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이 마님을 놀리려 들어? 그야말로 하루살이가 제 타 죽을 줄도 모르고 등불로 날아드는 꼴이로구나. 내가 네놈을 찾으러 갈 것도 없이 네 발로 걸어 들어왔으니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그러고는 속과는 달리 웃는 낯으로 무송의 말을 받았다.
"벌써 취하셨나 봐. 우스갯소리는 그만하시고 몇 잔 더 드신 뒤 나무 그늘로 가셔서 더위나 식히세요. 묵으시려면 저희 집에 묵고 가셔도 돼요."
무송(武松)은 무송대로 아낙의 그 같은 말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계집이 틀림없이 좋은 뜻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내가 먼저 손을 쓸 테니 어디 맛 좀 봐라.'
그러고는 다시 능청스러운 얼굴로 수작을 붙였다.
"쥔마님, 이 집 술은 맛은 좋아도 너무 싱거운뎁쇼. 따로 좋은 술이 있을 듯한데 어디 그거 한번 우리에게도 맛보여 줍쇼."
무송(武松)이 일부러 해 보는 소린지도 모르고 계집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향기 좋고 맛난 술이 있기야 하지만 술 빛이 좀 흐린데요."
"아주 좋소. 술은 흐릴수록 좋단 말도 있으니."
무송(武松)이 그렇게 받자 아낙은 속으로 싸늘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낙이 술 한 주전자를 내오는데 정말로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엤다. 무송(武松)이 그 술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했다.
"그 술 정말 잘 빚은 술 같군. 데워서 마시면 더 맛있겠는걸."
"손님이 뭘 좀 아시는군요. 그럼 제가 데워 올 테니 한번 맛보세요.“
아낙이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속으로는 차게 웃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정말 죽을 짓만 골라 가며 하는구나. 도리어 데워 마시겠다니. 그러면 술에 탄 약의 효과가 훨씬 빨리 난다는 것도 모르고.... 이제 네놈은 끝장이다. 네놈들이 가진 것은 모두 내 것이 되고.'
원래 술이 흐린 것은 약을 풀었기 때문인데, 그것도 모르고 데워 달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얼마 후 아낙은 그 술을 따끈하게 데워 세 사발을 부었다.
"손님들 이제 한번 드셔 보세요."
아낙이 살풋 웃으며 술을 권하자 눈치 없는 두 공인은 각기 한 잔씩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때 무송(武松)이 불쑥 말했다.
"이보슈, 마신 술이 적지 않아 그러니 안주 좀 실한 걸루 내오쇼. 고기나 좀 썰어 내오란 말이오."
이미 술에 약이 든 걸 알고 하는 소리였지만 아낙은 무송이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의심 없이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자기 사발의 술을 눈에 안 띄는 곳에 몰래 쏟아 버린 무송이 짐짓 혀가 뒤틀린 소리로 말했다.
"좋은 술이야. 술이 금방 오르네!"
그러자 고기를 가지러 가는 척 나간 아낙이 빈손으로 달려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쓰러져라! 쓰러져라!"
그 소리에 두 공인이 소리 한마디 못 내지르고 뒤로 벌렁벌렁 자빠졌다. 무송(武松)도 두 눈을 감고 탁자를 안듯 쓰러졌다. 물론 일부러 해 보는 짓이었다. 그걸 알 리 없는 아낙이 낄낄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떠냐? 이 귀신 같은 것들아. 이 마님의 발 씻은 물이 괜찮더냐?"
그러고는 안쪽에다 대고 소리쳤다.
"소이(小二)야, 소삼(小三)아, 어서 나오너라!"
그 말에 집 안에서 사내 둘이 달려 나왔다. 무송(武松)이 들어 보니 사내들은 먼저 공인들부터 안으로 옮겨 가는 듯했다. 그사이 아낙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공인들의 짐보따리를 풀어 젖혔다. 전대에서 적잖은 금은이 나오자 아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낄낄거렸다.
"오늘은 이 세 놈의 보따리에다 이틀은 잘 쓸 만두소까지 생겼구나!"
그러고는 보따리를 모두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공인들을 안으로 끌어 간 사내 둘이 다시 나와 무송을 마저 옮기려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아무리 무송의 팔다리를 잡고 끌어도 무송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몸무게가 천 근은 나가는 사람 같았다.
그걸 본 아낙이 안에서 소리를 질러 댔다.
"저 멍청한 것들이 밥만 처먹을 줄 알았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꼭 내가 손을 써야 되겠니?"
그러고는 녹색 저고리와 빨간 치마를 훌훌 벗어 던지고 뛰어 나왔다.
"이놈은 감히 이 마님을 놀려 먹으려던 놈이란 말이야! 하지만 살이 피둥피둥한 게 황소 한 마리 고기는 나오겠는걸. 저 안의 비쩍 마른 두 놈도 물소 한 마리분의 고기는 될 것이고. 우선 이놈부터 안으로 끌어다 살을 벗겨야지!"
아낙은 벌겋게 벗어부친 몸으로 다가오더니 가볍게 무송을 들어올렸다. 무송(武松)이 갑자기 두 손을 뻗어 그런 아낙을 껴안고 몸을 젖혔다. 순식간에 무송의 몸이 아낙 위에 얹혔다.
무송(武松)이 두 다리로 아낙의 몸을 누르고 걸터앉자 아낙이 버둥거리며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두 사내가 놀라 덤비다가 무송의 고함에 얼이 빠져 주춤했다. 그사이로도 무송이 주먹을 내리치면 아낙의 얼굴은 그대로 묵사발이 될 판이었다.
아낙은 일이 그 지경이 되고서야 무송이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대로 깔린 채 처량한 소리로 용서를 빈다.
"호걸을 못 알아봤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때 다시 어떤 사람이 나뭇짐을 지고 주막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무송(武松)이 아낙을 깔고 앉은 걸 보고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말했다.
"호걸께서는 노기를 거두시고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공손해도 비굴하지는 않은 말투였다.
얼른 몸을 일으킨 무송(武松)이 왼발로 아낙을 밟은 채 두 주먹을 움켜쥐며 그 사람을 보았다. 머리에는 푸른 머릿수건을 매고 몸에는 흰 비단 겉옷에 삼으로 짠 신을 신고 있는 게 주막의 일꾼 같지는 않았다. 우락부락한 얼굴 양편에 구레나룻이 듬성듬성한데 나이는 서른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호걸의 크신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두 팔을 모아 싸울 뜻이 없음을 보이며 무송에게 물었다. 무송(武松)이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떠돈다고 이름을 바꾸지 않고 자리 잡고 앉았다고 성을 고치지 않는 사람이다. 도두 무송(武松)이 바로 나다!"
"그럼 경양강 고개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도두 무송 바로 그분이십니까?"
"그렇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대로 넙죽 업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크신 이름은 오래전부터 들었으나 오늘에야 뵙게 되는군요. 제 절을 받으십시오."
"그럼 당신이 이 여자의 남편이오?"
무송(武松)도 마구다지로 해라만 할 수는 없어 말을 올려 물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못난 제 아낙입니다. 태산을 몰라봐도 분수가 있지. 도두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요? 제 낯을 보아서라도 이번만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말은 간곡해도 어딘가 막볼 수 없는 기품 같은 데가 있었다. 무송(武松)이 얼른 밟고 있던 아낙을 놓아주며 물었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 부부도 여느 사람들 같지는 않소. 이름이나 알아 둡시다."
그러자 그 사내는 아낙을 꾸짖어 옷을 입게 한 뒤 무송에게 절부터 올리게 했다.
무송(武松)이 멋쩍은 얼굴로 아낙에게 말했다.
"서로 몰라서 한 일이니 너무 서운하게 여기지 마시오."
"제가 두 눈을 가지고도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한때의 잘못이니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세요."
아낙이 아까와는 사람이 달라진 듯 그렇게 용서를 빌며 무송을 집 안으로 청하였다.
집안으로 들기 전에 무송(武松)이 물었다.
"두 분의 성함은 어찌 됩니까? 어떻게 제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까?"
그 사내가 대답했다.
"제 성은 장(張)이요 이름은 청(靑)인데, 전에는 여기 광명사(光明寺)에서 채마밭지기를 했었지요. 그러다가 대단찮은 일로 다투던 끝에 화가 나서 광명사의 중을 죽이고 절을 태워 버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은 죄가 두려워 멀리 달아날까도 생각해 보았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누가 따지고 들지도 않고 관청 또한 잡으러 나서는 낌새가 없어 이곳 대수파(大树坡)에서 나그네를 털며 살게 되었습니다."
장청(張靑)은 거기까지 이야기해 놓고 잠깐 숨을 돌린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늙은이가 나뭇짐을 지고 지나가더군요. 저는 그 늙은이를 털 생각으로 덮쳤지요. 하지만 어찌 알았겠습니까? 스무 합도 겨루기 전에 저는 그 늙은이의 한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늙은이야말로 젊을 때부터 나그네만 털며 솜씨를 닦은 대단한 고수였지요."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인연이었던지 그분은 제 솜씨가 시원찮은 걸 보고 집으로 데려가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시더군요. 나중에는 딸까지 주어 저를 사위로 삼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재주로는 성안에 살 수 없는 게 저희들 아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들어와 초가를 얽고, 술을 팔아 살게 되었지요."
"허나 술을 판다는 건 눈가림이고 실상은 지나가는 장사치나 나그네에게 몽한약을 먹여 봇짐을 터는 게 저희 일이었습니다. 봇짐뿐 아니라 약을 먹고 쓰러진 사람의 고기도 써, 크게 썰 수 있는 살덩이는 쇠고기로 팔고 잘게 벗겨지는 살코기는 만두소로 쓰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강호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해 사람들은 저를 채원자(菜園子, 채마밭 일꾼) 장청이라 부르지요. 제 안사람은 성이 손(孫)인데 장인의 온갖 재주를 다 물려받아 사람들에게는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娘)이라 불립니다."
"오늘 제가 돌아오는 길에 안사람이 죽는 소리를 하는 걸 듣자 이상하긴 했지만 그게 도두님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저는 전에도 안사람에게 세 부류의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타이르곤 했지요."
"첫째는 구름처럼 떠다니는 도사나 중입니다. 그 사람들은 명운이 기구하여 집까지 나온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 전에도 안사람은 깜짝 놀랄 만한 사람을 하나 건드려 저를 난처하게 했습니다. 연안부의 노충 경략 상공 아래서 제할로 있던 노달이란 분으로, 주먹질 세 번으로 진관서(鎭關西)를 때려죽이고 오대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지요. 사람들은 그분의 등허리에 꽃수가 놓여 있다 하여 화화상(花和尙) 노지심이라 부르지요."
"한 자루 쇠로 만든 선장을 잘 쓰는바, 그 선장의 무게는 육십 근이나 된답니다. 바로 그분이 무슨 일로 이 길을 지나게 되자 안사람은 그분이 뚱뚱한 것만 보고 술에다 몽한약을 타 먹인 겁니다. 제가 돌아온 것은 안사람이 막 그분의 고기를 벗겨 내려 할 때였지요."
"저는 쇠로 만든 그 선장만 보고도 그분이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안사람을 꾸짖어 해약(解藥)을 먹이고 깨워 보니 다름 아닌 그분이라 저는 그분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요사이 듣자니 그분은 이룡산 보주사(寶珠寺)를 빼앗아 청면수 양지(楊志)란 이와 함께 근거로 삼고 있다 합니다. 그사이 제게 몇 번이나 함께 지내자는 글을 보내왔습니다만 아직은 선뜻 옮겨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장청이 다시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무송(武松)이 끼어들었다.
"그 두 사람은 나도 여러 번 이름을 들었소."
"하지만 지금까지도 아깝게 여겨지는 중이 한 사람 있지요. 키가 일고여덟 자나 되는 사람이었는데 제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네 각이 뜨여진 뒤라 구해 내지 못한 겁니다."
"아직도 쇠로 된 머리띠 하나와 한 벌 검은 승복, 그리고 도첩(度牒) 한 장이 저희 집에 남아 있습니다. 지니고 있던 보따리에는 이렇다 할 게 없고 다만 두 가지 물건은 흔치 않은 것이더군요. 하나는 사람의 머리뼈로 만든 백팔염주이고 다른 하나는 새하얀 쇠로 만든 계도였습니다. 아마도 그 중 또한 사람을 많이 죽였는지 계도는 지금도 깊은 밤이 되면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냅니다. 정말 그를 못 구한 게 얼마나 한스러운지......."
"제가 두 번째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부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재주를 파는 기녀(妓女)들입니다. 그 여자들은 주와 부의 눈치를 보며 놀이판을 만들어 재주를 보여 주고, 거기서 얻는 몇 푼 돈으로 겨우겨우 살아가지 않습니까?"
"불쌍한 사람들을 죽였다가는 강호의 호걸들이 모두 저희 내외를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고도 장청(張靑)의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제가 세 번째로 안사람에게 건드리지 못하게 한 부류는 죄짓고 귀양 가는 죄수들입니다. 그중에는 호걸들이 자주 끼여 있어 절대로 손대지 못하게 한 거지요. 그런데도 안사람은 제 말을 안듣다가 오늘 또 도두님을 건드려 노엽게 한 겁니다. 만약 제가 때맞춰 들어오지 않았던들 어찌 될 뻔했습니까?"
모야차 손이랑이 무안한 듯 변명을 했다.
"저도 원래는 손을 안 쓰려 했지만, 첫째는 저분의 보따리가 묵직해 보였고, 둘째는 저분의 말투가 나를 희롱하는 것 같아서....."
"사람의 목을 자르고 피를 뒤집어쓴 뒤인데 내가 무슨 흥이 있어 여염의 아낙을 희롱하겠소? 나는 아주머니가 내 보따리에 탐내는 눈길을 보내기에 먼저 의심이 들었소. 그래서 아주머니를 농지거리로 격하게 해 솜씨가 무디어지도록 한 겁니다. 약이 든 술은 몰래 쏟아 버리고 짐짓 중독된 척 누워 있었더니 아주머니가 과연 나를 끌고 가려 하더군요. 그래서 되레 잡으려던 게 그리됐으니 너무 괴이쩍게 생각하지 마시오."
무송이 그녀를 희롱한 까닭을 그렇게 밝히자 장청(張靑)이 껄껄 웃으며 일어나 무송을 집 뒤 조용한 방으로 청했다. 무송(武松)이 일어나 장청에게 물었다.
"노형, 이제 그 두 공인도 풀어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장청(張靑)은 무송을 고기 장만하는 곳간으로 데려갔다. 벽에는 몇 장의 사람 가죽이 걸려 있고 대들보에는 대여섯 개 사람의 뒷다리가 매달려 있었다. 두 공인은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 도마로 쓰는 탁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서 이 두사람을 깨워 주시오."
무송(武松)이 다시 장청을 재촉했다. 장청(張靑)이 그런 무송에게 물었다.
"도두께서는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무송(武松)은 서문경과 반금련을 죽이게 된 경위를 자세히 일러 주었다. 듣고 난 장청 부부가 후련하기 그지없어 했다. 그리고 지현과 부윤의 호의를 제 일처럼 다행으로 여기다가 장청(張靑)이 불쑥 물었다.
"제가 드릴 말씀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해 보시오."
무송이 장청의 속마음을 몰라 그렇게 받자 장청(張靑)이 조용히 말했다.
"제가 모질어 하는 소리도 아니니 도두께서도 헤아려 들어 주십시오. 이번에 도두께서 노영으로 가면 겪으셔야 할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닐 겝니다. 차라리 저 두 공인을 이대로 없애 버리고 저희 집에 머무시는 게 어떻습니까? 만약 도둑 떼 사이에 몸을 숨기고 싶으시다면 이룡산 보주사까지 제가 모셔 가 노지심과 함께 계실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송(武松)이 고개를 무겁게 저으며 대답했다.
"형께서 나를 생각해 하시는 말씀이라 고맙기 그지없으나 그리는 안 되겠소. 이 무송은 평생을 의리 굳은 사내로 살고 싶소. 저 두 공인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지성으로 나를 모셨는데, 내가 그들을 해친다면 하늘이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요. 만약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위해 주시려 한다면 어서 저들을 깨워 주시오. 결코 저 두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되오."
"도두께서 의리를 내세워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얼른 깨워 드리지요."
장청(張靑)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일꾼들을 불러 두 공인을 밖으로 끌어내게 했다. 그사이 손이랑(孫二娘)이 안으로 들어가 해약을 한 사발 만들어 왔다.
손이랑이 만들어 온 해약을 장청(張靑)이 두 공인의 입 안으로 들이붓자 반 시간도 안 되어 둘은 잠에서 깨어난 듯 엉금엉금 기며 일어났다.
"우리가 어찌 그리 취했지? 정말로 이 집 술이 대단하구나. 별로 많이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이 모양이 되다니! 이 집을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올 때 또 한잔 사 마셔야지."
무송을 알아본 그들이 저희끼리 마주 보며 그렇게 주고받았다.
지옥 문턱에 갔다 온 줄도 모르고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그들을 보며 무송(武松)이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장청(張靑)과 손이랑(孫二娘)도 참지 못하고 따라 웃었다.
그때 두 일꾼이 닭과 오리를 잡아 지지고 볶고 하여 새로이 술상을 마련해 왔다. 장청(張靑)은 집 뒤뜰 포도 덩굴 아래 탁자와 의자를 옮겨 놓게 하고 거기에 무송과 두 공인을 앉게 했다. 무송(武松)은 윗자리를 두 공인에게 내어 주고 자신은 아랫자리에 장청과 마주 보고 앉았다.
손이랑(孫二娘)도 모서리에 자리를 얻어 함께 술판에 끼었다. 두 일꾼은 번갈아 술과 안주를 내오고 장청(張靑)은 잔이 비기 바쁘게 술을 채워 무송에게 권했다.
주인과 손님이 한가지로 흥겹게 마시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 왔다. 장청(張靑)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낮에 말한 그 계도를 꺼내와 무송에게 보여 주었다. 과연 좋은 쇠를 벼리고 벼려 뽑아낸 듯한 게 하루 만에 만들어 낸 흔한 칼 같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칼을 들여다보며 다시 강호의 호걸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들이 의리와 인정, 분노와 사랑을 이야기하다 보니 절로 방화와 살인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야기 끝에 무송(武松)이 말했다.
"산동의 급시우 송공명은 의를 보면 재물을 아끼지 않는 호걸이지요. 그런데 이번에 보니 무슨 일에 말려들었는지 시 대관인(大官人)댁에 피해 있더군요."
조개네 패거리가 황니강(黃泥岡)에서 벌인 일이나 뒤쫓던 관군이 몰살당한 것, 그리고 송강의 쫓김 따위는 두 공인도 들어 알고 있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은 딴 사람들이지만, 그 모든걸 뒤에서 꾸민 게 송강인 것으로 알고 있던 그들은 무송이 그 송강과도 왕래가 있었단 소리를 듣자 깜짝 놀랐다.
장청과 주고받은 말만 듣고도 이미 제 맛이 아니던 두 공인은 술잔을 놓고 무송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나를 맹주로 데려다 주려 애쓰는 두 분을 무슨 까닭으로 해치겠소?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강호의 호걸들에 관한 것이니 두 분은 놀라지 마시오. 우리는 착한 사람을 해치지는 않소. 자, 술이나 한 잔 더 하시오. 내일 맹주에 이르거든 내 따로이 감사드리리다."
무송(武松)이 그렇게 두 사람을 안심시켜 주었다.
그날 밤 무송과 두 공인은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장청의 집에서 잤다. 다음 날 무송이 떠나려 하자 장청이 간절히 붙들어 떠날 수가 없었다.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장청이 붙들어 무송(武松)은 내리 사흘을 그 집에 머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렇게 되자 무송(武松)은 그 같은 장청 부부의 인정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에 무송(武松)은 장청과 의형제를 맺게 되었는데 나이를 따져 보니 장청이 아홉 살 위라 장청은 형이 되고 무송은 아우가 되었다.
드디어 무송이 떠나는 날, 장청(張靑)은 그가 지니고 있던 보따리와 전대를 모두 되돌려 주고 그 위에 은자 열 냥까지 얹었다. 두 공인에게도 두세 냥씩 주어 무송을 잘 보살피라 당부했다. 무송(武松)은 자신에게 준 열 냥까지도 두 공인에게 주고 풀어 놓았던 칼을 썼다. 공인들이 떼어 냈던 봉인을 다시 칼에 붙이니 모든 게 원래처럼 되었다.
장청(張靑)과 손이랑(孫二娘)은 집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했다. 무송(武松)은 내외의 깊이 모를 정에 감격해 눈물을 지으며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