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27화
보름도 되지 않아 산을 내려간 졸개가 돌아와 알렸다.
"명을 받은 대로 곧장 동경성 안으로 들어가 전수부(殿帥府) 앞의 장교두 댁을 찾아가 보았습지요. 안됐게도 마님은 고 태위의 아들놈이 억지로 혼인을 하자고 덤비자 목을 매어 돌아가셨더군요. 벌써 반년이나 지난 일이라 합니다. 장 교두님도 그 일로 상심해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한 보름 전에 돌아가셔서 아무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어 금아(錦兒)라고 하는 계집종을 찾아보았지요. 금아(錦兒)는 시집가서 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만나서 물어보니 모든 게 사실이더군요. 다른 데 알아봐도 마찬가지라 이렇게 돌아와 알려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임충(林沖)은 줄기줄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아내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한 가지 미련은 끊어 버린 셈이었다. 조개(晁蓋)와 다른 두령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탄식해 마지않았다. 한동안은 산채 전체가 말을 잃은 듯 침울한 지경이었다. 다만 썩은 벼슬아치에 대한 원한으로 한층 조련을 엄하게 하고 관군이 몰려올 때를 대비하는 데 힘을 다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령들이 모두 취의청에 모여 산채의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졸개 하나가 헐떡이며 뛰어와 알렸다.
"제주부에서 군관을 뽑아 이천 명이 넘는 군사와 오백여 척의 크고 작은 배를 주어 보냈습니다. 지금 석갈호 가에 진을 치고 있기에 달려와 알려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조개(晁蓋)는 몹시 놀랐다. 얼른 군사 오용을 불러 의논했다.
"관군이 왔다니 어떻게 물리쳐야겠소?"
그러나 오용(吳用)은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해 보겠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고 군사가 이르면 맞아 싸울 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먼저 완씨 삼 형제를 부르더니 귀에 대고 무어라 소리 죽여 말했다. 완씨(阮氏) 삼 형제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자 오용(吳用)은 다시 임충을 불러들이고 이어 유당, 두천, 송만을 차례로 불러 무어라 계책을 주었다.
한편 제주 부윤이 이번에 뽑아 보낸 군관은 단련사(團練使) 황안이란 자였다. 황안(黃安)은 제주부의 포도군관 한 명과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석갈촌으로 밀고 들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하도(何濤)를 따라 조개네 패거리를 잡으러 갔다가 몰살당한 오백 관군의 한(恨)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호숫가에 이른 황안(黃安)은 인근의 배란 배는 모조리 끌어와 기다리다가 물결이 가라앉자 군사를 내었다. 군사를 가득 태운 배를 두 길로 갈라 양산박(梁山泊)을 향해 짓쳐든 것이었다. 양산박에 이르자 말과 함께 배에 올라 있던 황안(黃安)은 군사들로 하여금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금사탄으로 저어 가게 했다. 그런데 관군이 점차 포구 가까이로 다가가며 들으니 무언가 흐느끼는 듯한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황안(黃安)이 귀 밝은 척 말했다.
"저것은 뿔나팔 소리가 아니냐? 배가 포구에 있는 모양이다!"
황안의 말에 관군들이 물가 쪽을 보니 멀리서 배 세 척이 저어 오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던 관군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라 모두 긴장해 살피는 사이에 배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배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네 사람은 둘씩 짝을 저어 노를 젓고 하나는 뱃머리에 서 있었다. 세 척 뱃머리에 서 있는 세 사람은 하나같이 머리에 붉은 수건을 동이고 몸에도 붉은 비단옷을 걸친 게 이상하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관군들 쪽에서 그 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자가 있어 황안에게 일러 주었다.
"저 뱃머리에 선 세 사람이 바로 완소이, 완소오, 완소칠입니다."
그 말에 황안(黃安)은 귀가 번쩍 뜨였다. 일부러 뒤져서 찾아야 할 판에 제 발로 셋씩이나 나와 섰으니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너희들은 모두 힘을 다해 쳐들어가 저 세 놈을 잡아라."
그 말에 황안(黃安)이 탄 배 양쪽으로 따라오던 관군들의 배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저어 나갔다. 그러자 그 세 척의 배가 이상한 피리 소리 같은 걸 내며 얼른 뱃머리를 돌렸다. 황안(黃安)이 그걸 보고 창을 거머쥐며 크게 소리쳤다.
"어서 저놈들을 잡아라. 저놈들을 잡는 자에게는 큰 상을 주겠다."
그 소리에 관군들은 힘을 냈다. 앞서 달아나는 그 배 세 척에 화살을 퍼부으며 뒤쫓았다. 완씨 삼형제가 선창으로 내려가더니 각기 가죽 방패 하나씩을 들고나와 화살을 막았다. 그러는 사이 관군들은 더욱 빨리 노를 저어 그들을 뒤쫓았다. 그럭저럭 포구가 두어 마장밖에 안 남은 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황안의 등 뒤로 작은 배 한 척이 나는 듯 저어 오더니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뒤쫓지 마십시오! 우리 쪽 관군은 모조리 죽고, 배는 모두 뺏겼습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황안(黃安)이 믿기지 않는 듯 그렇게 물었다. 작은 배 위의 사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희가 배를 저어 나가니 멀리서 배 두 척이 다가왔는데, 각기 다섯 명씩 타고 있더군요. 저희들은 힘을 다해 그놈들을 뒤쫓았습죠. 그런데 서너 마장쯤 뒤쫓았을 때 갑자기 사방에서 일여덟 척의 배가 달려 나와 비 오듯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저희는 할 수 없이 배를 돌려 달아났는데 얼마 안 가 아주 목이 좁은 물길이 나타나더군요. 그런데 그 양쪽 언덕에 각기 스무남은 명이 굵은 쇠사슬을 수면 위에 늘어뜨려 배가 나갈 수 없게 하고 있지 뭡니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양쪽 언덕에서는 또 돌과 기와조각이 마구 날아드니 견딜 수 있어야지요. 별수 없이 저희는 배를 버리고 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져 보려 했습니다. 겨우 물가까지 헤엄쳐 길은 찾았습니다만 저희 말이 있던 곳에 가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말 한 필 안 남고 말을 지키던 군사들도 모두 죽어 물속에 처박혀 있지 않겠습니까? 그 바람에 잠시 얼이 빠져 있다가 마침 갈대숲에서 작은 배 한 척을 찾아냈기로 이리로 달려와 아뢰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황안(黃安)은 가슴이 철렁했다. 괴로운 신음 소리와 함께 흰 깃발을 흔들게 해 관군의 배가 더는 완씨 삼 형제를 뒤쫓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겁을 먹은 관군의 배들이 허둥지둥 뱃머리를 돌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껏 쫓기던 배 세 척이 갑자기 뱃머리를 돌리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다시 여남은 척의 배가 나타났다. 모두 네댓 명이 타고 붉은 기를 흔들며 피리를 어지럽게 불어 대는 게 여간 기괴하지 않았다. 황안(黃安)은 그들이 덤벼들자 배를 나누어 맞서려 했다. 그때 다시 갈대숲에서 한 소리 포향이 울리더니 사방에서 붉은 깃발이 올랐다. 그게 모두 배인 줄 안 황안(黃安)은 덜컥 겁이 났다. 제대로 말을 안 듣는 손발을 놀려 배를 돌리게 하는데 등 뒤에서 섬뜩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황안은 목을 내놓고 가거라!"
정신이 아득해진 황안(黃安)은 힘을 다해 배를 갈대 자욱한 언덕 쪽으로 몰아갔다. 갑자기 양쪽 물굽이 안쪽에서 수십 척의 작은 배가 몰려나오며 비 오듯 화살을 퍼부어 댔다. 황안(黃安)은 더욱 정신이 없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아래 길을 따라 달아나다 보니 뒤따르는 배는 겨우 서너 척뿐이었다. 황안(黃安)은 얼른 빠른 배로 건너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배를 저어 달아나다 힐끗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배의 관군은 하나하나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황안(黃安)은 힘을 다해 달아났지만 멀리는 못 갈 팔자였다. 갑자기 갈대숲에서 배 한 척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니 뱃머리에 우뚝 선 것은 유당이었다. 유당(劉唐)은 갈고리를 던져 황안의 배를 자신의 배 곁으로 끌어당기더니 훌쩍 황안의 배로 뛰어올랐다.
"이놈, 꼼짝 마라!"
유당(劉唐)이 그런 외침과 함께 황안의 허리를 덥석 껴안았다. 황안과 한배에 타고 있던 관군들은 놀랐다. 그러나 헤엄을 칠 줄 안다 해도 화살에 맞아 죽을 판이라 아무도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모두 배와 함께 고스란히 사로잡혔다. 황안(黃安)이 유당에게 끌려 물가 언덕에 오르니 멀리 조개와 공손승이 오륙십 명을 거느리고 말 위에 높다랗게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유당(劉唐)이 황안과 사로잡은 관군 백여 명을 그들 앞으로 데려가자 그들은 그 모두를 끌고 남쪽 수채로 갔다. 이윽고 사로잡은 자들과 빼앗은 배를 그곳에 남겨 둔 조개 일행은 산채로 올라갔다. 크고 작은 두령들도 모두 그 뒤를 따라 산채로 모였다. 조개(晁蓋)가 취의청에 자리 잡고 앉자 다른 두령들도 모두 병기를 원래 있던 곳에 걸어 두고 돌아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조개(晁蓋)는 사로잡은 황안을 데려오게 해 높게 세운 말뚝에 매달게 한 뒤 금은과 비단을 풀어 졸개들에게 상을 내렸다. 헤아려 보니 빼앗은 말만도 육백여 필이나 되었다. 조개(晁蓋)는 졸개들에 이어 두령들이 세운 공도 살펴보았다. 말을 뺏은 것은 임충(林沖)의 공이요, 동쪽 물굽이에서는 두천(杜遷)과 송만(宋萬)이 공을 세웠다. 서쪽 물굽이서 싸움에 이긴 것은 완씨(阮氏) 삼 형제의 힘이요, 황안을 사로잡은 것은 유당(劉唐)이었다. 조개와 여러 두령들은 소와 말을 잡고 크게 잔치를 열어 양산박에서의 첫 싸움에 이긴 걸 함께 기뻐했다.
이번의 잔치는 그전 며칠보다 훨씬 풍성했다. 좋은 술을 거르고 양산박의 신선한 물고기에 그 산기슭에서 난 복숭아, 살구, 매실, 오얏 같은 과일이 곁들여졌다. 산채에서 기른 닭, 돼지, 오리도 한몫을 거들어 여느 도적 떼의 산채에서는 볼 수 없는 진수성찬을 이루었다. 여러 두령들이 한창 흥겹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졸개 하나가 들어와 알렸다.
"산 밑 주(朱) 두령께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들라 이르라."
조개(晁蓋)가 그렇게 주귀가 보낸 심부름꾼을 불러들인 뒤 물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주 두령께서 한 떼의 장사꾼들이 이리로 오고 있음을 알아내셨습니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오는데 지닌 재물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려 드리려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주귀(朱貴)가 보낸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다. 조개(晁蓋)가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 재물을 거둬 써야겠는데 누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거둬 오겠는가?"
그러자 완씨(阮氏) 삼 형제가 선뜻 일어났다.
"저희 형제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자네 형제들이라면 좋네. 조심해서 얼른 다녀오게."
조개(晁蓋)가 별 반대 없이 완씨 삼 형제가 가는 걸 허락했다. 이에 완씨 삼 형제는 각기 무기를 갖추고 졸개 백여 명을 뽑아 산을 내려갔다. 조개(晁蓋)는 다른 두령들과 취의청에 남아 술잔을 나누었으나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했다. 다시 유당(劉唐)에게 졸개 백여 명을 붙여 주며 산을 내려가 완씨 삼 형제를 돕게 했다. 유당(劉唐)이 산을 내려갈 채비를 마쳤을 때 조개가 당부했다.
"되도록이면 사람은 상하지 않고 재물만 빼앗아 오게. 장사꾼들의 목숨을 해쳐서는 결코 아니 되네."
그런데 산을 내려간 유당(劉唐)도 삼경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또 걱정이 된 조개(晁蓋)는 이번에는 송만과 두천을 불러 말했다.
"자네들이 쉰 명 데리고 한 번 더 내려가 보게. 무슨 일이 있으면 산채에 급히 알리도록 하고."
그러고는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이는지 놓았던 술잔을 다시 잡는 것이었다. 조개(晁蓋)와 오용(吳用), 공손승(公孫勝), 임충(林冲)은 날이 밝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날이 훤해지고 얼마 안 되어 졸개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주 두령께서 스무남은 대의 금은과 비단이 실린 수레와 사오십 필의 노새를 얻어 돌아오고 계십니다."
"사람은 죽이지 않았느냐?"
조개(晁蓋)가 문득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졸개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사치들은 우리 기세가 사나운 걸 보고 수레는 물론 들고 있던 보따리까지 내동댕이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하나도 죽이지는 않았습죠."
그제야 조개(晁蓋)는 환한 얼굴로 은 한 덩이를 꺼내 그 졸개에게 상 주고 몸을 일으켜 주귀를 맞으러 나갔다. 조개(晁蓋)와 두령들이 금사탄에 이르니 주귀(朱貴)는 빼앗은 물건들을 양산박으로 옮기느라 분주했다. 조개를 비롯한 두령들은 그런 주귀를 산 위로 불러 다시 잔치를 벌였다. 관군과의 첫 싸움에 이긴데다 생각지도 않은 재물까지 얻으니 기뻐할 만도 했다. 두령들이 흥겨운 술잔을 나누는 사이에 어수선하던 산채는 차츰 정돈되어 갔다. 빼앗은 재물은 종류대로 창고에 갈무리되고, 말과 노새는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로잡힌 황안(黃安)과 관군들은 양산박에 얽은 감옥에 갇혔다.
"우리가 이 산채로 처음 찾아들 때는 우선 닥친 화나 피하려는 뜻뿐이었소. 왕륜 밑에서 작은 두령 노릇이나 하면 다행이라 여겼던 거요. 그런데 임충(林冲) 아우가 뜻밖에도 나를 우두머리로 올려 세워 이처럼 되었구려. 하지만 오늘 두 가지 좋은 일이 생겼으니 여간 기쁘지 않소. 그 하나는 관군과 싸워 이겨 수많은 마필과 배를 얻은 데다 황안까지 사로잡은 일이요, 다른 하나는 밤새 적잖은 재물을 얻게 된 것이오. 이 모두 여러 형제들의 재주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될 법이나 한 일이겠소?"
조개(晁蓋)가 문득 술잔을 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여러 두령들이 입을 모아 그 말을 받았다.
"그 모든 게 형님의 복이지요. 저희가 무슨 재주가 있어 그리했겠습니까."
그러자 조개(晁蓋)는 또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오용을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우리 일곱 형제의 목숨은 모두 송 압사(押司)와 주 도두(都頭) 덕분에 건진 것이네. 옛날에 이르기를, 은혜를 알고도 갚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 하였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넉넉함과 편안함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약간의 금은을 운성현으로 보내 주 도두와 송 압사에게 사례를 하는 게 좋겠네. 그게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일 것이네. 그리고 아울러 아직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백승(白勝)을 빼낼 궁리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 일이라면 형님께서는 너무 걱정 마십시오. 송 압사는 원래 인의를 중히 여기는 분이라 재물로 사례하는 것은 급하지 않습니다. 형님께서 말하신 대로 한다 해도 예(禮)를 다 갖춘 것은 못 되니 산채가 정돈되는 대로 우리 중에 하나가 직접 가 보는 게 좋을 겁니다. 또 백승(白勝)의 일은 먼저 재물을 뿌려 윗사람은 구워삶고 아랫사람은 달래는 게 급합니다. 그래서 관원들이 백승을 너그럽게 대하게 되면 빼내 오기도 쉬워질 테니까요. 우리는 그사이 이 산채나 든든히 해 두지요. 배를 더 만들고 병기를 넉넉히 장만하며, 돌성과 목책을 높이 쌓고, 군량과 싸움에 들 재물을 늘려 다시 몰려들 관군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오용(吳用)이 그렇게 조개의 말을 받았다. 조개(晁蓋)도 듣고 나니 그 말이 옳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든 일은 오직 군사(軍師)의 가르침을 따르겠네."
그렇게 되니 양산박(梁山泊)의 아래위가 함께 힘을 쏟는 것은 그곳의 방비를 든든히 하고 살림을 늘리는 것이었다. 왕륜 때처럼 하루하루 견디는 것만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양산박의 기세는 날로 더해 갔다. 수백의 도적 떼가 깃들인 한갓진 물가가 아니라 맹장 강졸(猛將强卒)이 버티고 있는 철옹성으로 변해 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