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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7화

Bollnow 2025. 1. 9. 08:55

한편 노지심(魯智深)은 그날부터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자 저녁나절만 되면 선방으로 가 선상(禪床) 위에서 네 활개를 뻗고 잠을 잤다. 낮뿐만 아니라 밤까지 내처 자 코 고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노지심(魯智深)의 막돼먹은 행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줌이 마려우면 불전(佛殿) 뒤고 어디고를 가리지 않고 갈겨 댔고, 똥도 아무 데고 편한 데서 일을 보았다. 그 지린내 구린내에 견디다 못한 시자(侍者) 스님이 장로에게 마음먹고 일러바쳤다.

"노지심(魯智深)이 너무도 무례합니다. 도대체 출가인이 지켜야 할 예절을 조금도 지키지 않습니다. 저런 사람을 어떻게 산문 안에 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장로는 오히려 그 스님을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그를 보낸 사람의 낯을 보아서도 그래서는 안 된다. 가만히 두면 반드시 나아질 게야."

그렇게 되자 다음부터는 아무도 노지심의 잘못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노지심(魯智深) 편에서 보면 그런 중노릇도 여간 괴롭지가 않았다. 하급 군관으로 하루 종일 창칼을 만지며 지내던 그에게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염불 소리부터가 맞지 않았다. 거기다가 예전에 거침없이 싸다니던 그에게 외진 산속의 절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은 그대로 감옥살이나 진배없었다. 먹는 것, 입는 것도 마음에 찰 리 없었다. 노지심(魯智深)이 보기에 중놈들이란 맛난 것을 모두 먹어서는 안 되는 별종들이었으며, 좋은 옷과 즐거운 일도 골라가며 마다해야 하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중생들일 뿐이었다. 어쩌다 운수가 사나워 쫓기게 된 탓에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되었지만 남자로 태어나서 세상 못 할 짓이 중노릇인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처음에는 고맙기 짝이 없던 조원외도 날이 갈수록 은근히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노지심(魯智深)이 오대산에 들어간 지도 어언 네댓 달이 되었다. 때는 초겨울로 접어들어 노지심은 곰처럼 웅크리며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햇볕이 밝고 따뜻하자 노지심(魯智深)은 갑자기 절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한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또한 못 참는 성미인지라 노지심(魯智深)은 곧 검은 승복을 걸치고 승혜(僧鞋)를 꿴 뒤 성큼성큼 걸어 산문을 나왔다. 산을 반쯤 내려가다 보니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지심(魯智深)은 거기 놓인 좁고 긴 의자에 걸터앉아 홀로 생각해 보았다.

'젠장할.....나는 항상 술과 고기를 좋아해 그것들이 매일 입에서 떠나는 날이 없었는데, 이게 뭐냐? 이제 중이 되어 버렸으니 환장할 지경이로구나. 조원외(趙員外)가 다음에 그런 것들을 보내 실컷 먹게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정말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도네. 빌어먹을, 어디서 술이라고 생겨 마음껏 퍼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보니 술 생각은 더욱 간절해졌다. 노지심(魯智深)은 그 바람에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런 노지심의 눈에 멀리서 무슨 통인가를 메고 노래를 부르며 산을 올라오는 사내가 하나 들어왔다.

구리산 옛 싸움터선

목동이 헌 창칼을 줍고

바람에 이는 오강 물은

우희와 패왕이 이별하듯이

그런 노랫소리와 함께 점점 다가온 사내는 정자에 이르자 메고 온 통을 내려놓았다. 노지심(魯智深)은 그게 술통이기를 간절히 빌며 그 사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이봐, 그 통 안에 무엇이 들었나?"

"좋은 술이지요."

사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 뜻밖의 대답에 노지심은 자신의 귀가 다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두 번 세 번 물어 그게 정말로 술이란 걸 알자 노지심(魯智深)이 다시 물었다.

"한 통에 얼만가?"

그러나 그 사내는 옷이 승복이라 그런가 공연한 소리 말라는 듯 통을 놓았다.

"스님이 쓸데없이 그건 왜 물으시오?"

"쓸데없는지 있는지 네가 어찌 아느냐? 어쨌든 저 술 한통에 얼마냐?"

"하지만 이 술은 팔 게 아니오. 저 위 문수원의 대장장이며 가마꾼들이 일할 때 마시는 거란 말이오. 거기다가 장로 스님께서 엄히 이르시기를 스님들에게는 술을 주지 말라 하셨소. 만약 스님들에게 술을 팔았다간 당장에 벌을 받고 여기서 쫓겨날 것이외다. 보아하니 스님도 이곳 절에 계신 분 같은데 어떻게 술을 판단 말이오?"

사내가 그렇게 말하는 품이 거짓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술을 보고 눈이 뒤집힌 노지심(魯智深)이 그대로 물러날 리 없었다. 이번에는 눈을 치켜뜨며 겁을 주어 물었다.

"정말로 못 팔겠느냐?"

"죽인대도 팔 수 없소!"

사내가 지지 않고 뻗대었다. 노지심(魯智深)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누가 널 죽이겠다 했느냐? 나는 다만 마실 술을 좀 팔아 달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그제야 사내도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모양이었다. 얼른 내려놓았던 술통을 메고 산 위로 내빼려 했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런 사내를 정자 아래까지 쫓아가 두 손으로 술통을 낚아채며 한 발길질을 넣었다. 힘깨나 쓴다던 정도조차 단번에 녹아난 노지심의 발길질을 한낱 술장수 사내가 어떻게 견뎌 내겠는가. 사내는 깨어나지 못했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런 사내를 거들떠보는 법도 없이 술통 둘을 들고 정자로 올라갔다. 바닥에는 술 데우는 그릇이 떨어져 있었다. 술통 뚜껑을 연 노지심은 그 그릇으로 찬술을 퍼서 벌컥벌컥 마셨다. 얼마 안 되어 술통 두 개가 모두 비어졌다. 그제야 어느 정도 목마름이 풀린 노지심(魯智深)은 때마침 깨어난 사내에게 느긋하게 말했다.

"이봐, 술갑은 내일 절에 와서 받아 가라구."

그러나 사내는 술값을 받으러 갈 처지가 못 되었다. 지진(智眞) 장로가 알면 밥줄이 떨어질까 봐 절로는 올라갈 엄두도 못 내고 빈 술통을 거둬 산 아래로 내뺐다. 노지심(魯智深)은 오랜만에 술을 실컷 마셔 한없이 흡족한 기분으로 정자에 기대앉았다. 한 반나절이 지나자 술기운이 차츰 머리 위로 뻗어 올라왔다. 정자 안에 있기가 답답해진 노지심(魯智深)은 이번에는 그 아래 소나무 곁으로 내려가 한참을 앉아 보냈다. 제 딴에는 술기운이 걷히기를 기다려 절로 돌아갈 속셈이었지만, 웬걸, 술기운은 갈수록 심하게 올라왔다.

'할 수 없군. 그냥 돌아가야지.......'

이윽고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승복을 어깨까지 벗어부치고 소매는 빼 허리에 묶은 차림이었다. 그 바람에 드러난 등허리에는 먹실로 뜬 꽃 그림이 요란했다. 노지심(魯智深)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절 아래 이르자 산문을 지키던 스님 둘이 선방(禪房)에서 쓰는 대나무 매(竹篦)를 들고 뛰쳐나왔다. 노지심(魯智深)이 술 취한 걸 알아보고 길을 막으려 함이었다.

"너는 불제자로 어떻게 그리 취해 이 문을 들려 하느냐? 너는 눈이 까져 고국(庫局)에 붙은 경고문도 읽지 못했느냐? 누구든 화상(和尙)이 계율을 어기고 술을 마시면 이 대나무 매로 마흔 대를 맞고 절에서 쫓겨나게 되어 있다. 네 취한 꼴을 보니 술을 마셔도 잔뜩 마셨구나. 어서 저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매질을 하여 쫓아내겠다."

하지만 노지심(魯智深)이 누구인가. 어쩌다 그렇게 몰리긴 해도 아직 중노릇한 지 오래되지 않아 이전의 성미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사형(師兄)이고 나발이고 기분 좋게 절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문 앞에서 가로막고 딱딱거리니 화부터 먼저 났다.

"이 계집 같은 놈들아, 뭐라구? 네놈들이 나를 때리겠다구? 어림없는 소리 마라. 내가 도리어 네놈들을 때려 주겠다!"

노지심(魯智深)이 두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맞받았다. 문을 지키던 스님 둘은 아무래도 형세가 불안하게 느껴진 듯했다. 하나는 나는 듯 안으로 달려가 감사(監寺)에게 그 일을 알리고, 다른 하나는 헛기세로 대나무 막대를 휘둘러 노지심을 막아 보려 했다. 원래부터가 어림없는 일이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솥뚜껑 같은 손바닥을 펴 뺨을 후리니, 길을 막던 스님은 그 한 대에 비틀비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걸 그냥 두지 않고 노지심(魯智深)이 주먹 한 대를 더 안겼다. 완전히 잘못 걸린 스님은 그 한주먹에 더 견디지 못하고 땅바닥에 꼬꾸라져 괴로운 신음만 질러 댔다.

"내 손에 맞아 죽지 않은 것만도 부처님 덕인 줄 알아라!"

노지심(魯智深)은 손을 털며 그렇게 중얼거리고 절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안으로 들어간 스님으로부터 산문에서의 일을 전해 들은 감사(監寺)는 절에서 일하는 대장장이, 요리사, 불목하니, 교꾼들을 모조리 불러 모아 노지심을 잡아 오게 했다. 불목하니는 절에서 밥을 짓고 물 긷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각기 흰 나무 몽둥이 하나씩을 쥔 일꾼들은 머릿수만 믿고 기세 좋게 몰려갔다. 서편 낭하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건들건들 걸어오는 노지심(魯智深)이 보였다. 그들이 막 노지심을 덮치려 할 때였다.

"요놈들! 요 쥐새끼 같은 놈들......."

그들을 본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며 먼저 우르르 달려왔다. 일꾼들은 애초부터 그가 군관 노릇을 했다는 것을 알 턱이 없고 그저 엄청난 기세에 질려 버렸다. 어떻게 막아 볼 엄두도 못내고 황망히 장전(藏殿) 안으로 뒤쫓겨 들어가 문을 닫아걸었다. 뒤따라간 노지심(魯智深)이 한주먹, 한 발길질로 문살을 부수어 문을 열어젖혔다. 더 달아날 데가 없게 된 일꾼들은 모조리 몽둥이를 버리고 장전 뒤쪽으로 내빼 버렸다. 그 소식에 놀란 감사(監寺)는 얼른 지진 장로를 찾아가 알렸다. 장로는 더는 눈감아 줄 수 없었던지 시중드는 스님 서넛을 데리고 급히 낭하로 내려갔다.

"지심아, 네 너무 예()를 모르는구나!"

장로가 그렇게 꾸짖자 노지심(魯智深)은 취한 중에도 그만은 알아보았다. 들고 있던 몽둥이를 내던지고 앞으로 나가 변명이랍시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저는 술 두 잔밖에.... 먹은 게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짓도 한 게 없는데 저 사람들이 몰려와 저를 때리려 하기에 그만....."

장로는 노지심이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만도 대견스러웠던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 달랬다.

"알았다. 오늘은 내 낯을 보아서라도 어서 돌아가 자거라.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기가 산 노지심(魯智深)이 제법 생색까지 내며 장로의 말을 들어주었다.

"이놈들아, 오늘 모두 용꿈 꾼 줄 알아라. 내가 오늘 장로님 체면을 보아 참지 않았다면 민대가리 노새 몇 놈쯤은 때려죽였을 게다!"

장로는 시중드는 스님들을 불러 그런 노지심(魯智深)을 부축하도록 했다. 스님들의 시중을 받고 선방(禪房)으로 돌아간 노지심은 선상 위에 눕기 바쁘게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모든 걸 지켜본 스님들이 모두 지진 장로에게 몰려가 떠들어 댔다.

"전에 저희들이 그토록 말렸는데도 듣지 않으시더니 이제 보니 어떻습니까? 저런 들짐승 같은 자가 본사의 깨끗한 규율을 이토록 어지럽혀도 용납해야 합니까?"

그래도 장로는 여전히 노지심을 싸고돌았다.

"비록 아직까지는 저러하나 뒷날 반드시 정과(正果)를 얻을 사람이다. 그게 아니라도 조원외(趙員外)의 낯을 보아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하도록 하자."

"내일 지심이 깨어나면 정신이 번쩍 들게 꾸짖어 주겠다."

장로가 그렇게 나오니 다른 스님들도 별수가 없었다.

"장로님은 몰라도 너무 모르신단 말이야!"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하릴없이 물러났다.

다음날 재()가 끝난 뒤 장로는 선방에 앉아 승당에서 자는 노지심을 불렀다. 그러나 노지심(魯智深)은 아직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른 스님들이 그를 깨워 승복을 입힌 뒤에 장로가 부른다는 말을 전했다. 노지심(魯智深)은 버선도 꿰지 않은 맨발로 한달음에 승당을 달려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스님들이 깜짝 놀라 그를 찾으러 나갔다. 노지심(魯智深)은 불전 뒤에서 시원스레 오줌을 내갈기고 있었다. 스님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가 그가 손을 씻는 걸 보고 다시 한번 일렀다.

"장로께서 하실 말씀이 있어 부르시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은 군소리 없이 그 스님을 따라 장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장로는 노지심이 나타나기 바쁘게 꾸짖었다.

"지심, 네가 비록 무부 출신이나 조원외(趙員外)의 천거가 있어 나는 너를 불문에 거두고 수기(受記)까지 내렸다. 함부로 죽이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며, 계집질하지 말며, 술을 탐내지 말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다섯 가지 계율은 출가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인 바, 그중에서도 술을 탐하는 것은 가장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느냐? 술에 취해 문지기를 때리고 장전의 붉은 문살을 부쉈으며 절 안의 일꾼들을 모조리 두들겨 쫓고 고래고래 소란을 피우고 다녔으니, 이미 승복을 입은 자가 어찌 그따위 몹쓸 짓들을 할 수 있느냐?"

그 소리에 술이 확 깬 노지심(魯智深)이 무릎을 꿇고 빌었다.

"이제부터는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출가한 몸이 어떻게 주계(酒戒)를 깨고 도량의 깨끗한 규칙을 어길 수 있단 말이냐? 만약 조원외(趙員外)의 낯을 보지 않았더라면 너를 이 절에서 내쫓아 마땅하나 이번만은 용서할 터이니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

장로가 그렇게 용서의 뜻을 비치자 노지심(魯智深)이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으며 다짐했다.

"결코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맹세드립니다."

노지심(魯智深)이 워낙 설설 기며 빌자 지진 장로는 적이 마음이 풀린 듯했다. 아침을 겸상으로 차려 오게 해 노지심과 함께 먹으며 좋은 말로 그의 불심을 돋우었다. 뿐만 아니라, 베 한 필을 내 찢어진 승복을 새로 짓게 하고 승혜 한 쌍을 내린 뒤에 제 방으로 돌아가게 했다.

"술은 일을 이루어지게도 하지만 그르치게 하기도 한다. 간이 작은 사람도 술을 먹으면 간이 커져 어지러운 짓거리를 하는 법인데 하물며 너처럼 성정(性情)이 거센 위인이랴!"

그런 경계의 말과 함께였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노지심(魯智深)도 조금 깨달아지는 게 있었던지 한 서너 달은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불심(佛心)이 자랐달 것까지는 없어도 그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사이 겨울이 가고 춘이월(春二月)이 되었다. 날이 따뜻하고 햇볕이 밝아 승방을 벗어난 노지심(魯智深)이 어슬렁어슬렁 걷다 보니 산문 밖까지 나오게 되었다. 거기 서서 오대산을 둘러보던 노지심(魯智深)은 자기도 모르게 호기가 일어 목청껏 한마디 뜻도 없는 소리를 외쳐 보았다. 골짜기마다 울리는 그 메아리가 때마침 순풍을 타고 산 위로 되울려왔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자신을 산 아래로 부르는 것 같아 못 견딘 노지심(魯智深)은 제 방으로 돌아가 은자 몇 냥을 괴춤에 챙겨 넣은 뒤 슬슬 산을 내려갔다. '오대복지(五臺福地)'란 팻말이 붙은 곳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아래 제법 큰 마을이 보였다. 한 육칠백 호는 됨 직한 마을로 저자까지 갖춘 듯했다. 노지심(魯智深)은 끌린 듯 마을로 내려갔다. 저자에는 고깃간, 채소전, 술집, 국숫집 해서 없는 게 없었다. 그걸 본 노지심은 금세 본성이 되살아났다.

'이런 젠장, 여기 이런 곳이 있는 줄 진작 알았으면 남의 술통을 빼앗아 마시고 말썽을 피울 까닭이 없었지 않은가? 우선 저기서 한잔 걸치고 여기저기 돌아보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좀 더 먹어야겠다.'

지진 장로와의 약속 따위는 까맣게 잊고 그렇게 마음을 정한 노지심(魯智深)은 어슬렁거리며 저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몇 발짝 떼어놓기도 전에 가까운 거리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노지심(魯智深)이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대장간이 있는데 그 안에서 세 사람이 무언가를 만드느라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주인장, 나 좀 봅시다. 여기 좋은 쇠가 있소?"

노지심(魯智深)이 불쑥 다가가 그들에게 물었다. 대장장이가 일하다가 힐끗 보니 어디서 온 중인지 모르나 짧게 깎은 머리는 텁수룩 자라 있고 눈길이 사나운 게 여간 험상궂은 생김새가 아니었다. 우선 겁부터 나 하던 일을 멈추고 굽신거리며 물었다.

"스님, 우선 여기 앉으십시오. 그런데 쇠로 무엇을 하시게요?"

"지팡이 하나와 칼 한 자루를 맞췄으면 싶은데 좋은 쇠가 있는지 모르겠소."

노지심(魯智深)이 대장장이가 내놓은 의자에 털썩 앉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선장(禪杖)과 계도(戒刀)를 말씀하시는군요. 제게 마침 좋은 쇠가 있습니다만 선장과 계도의 무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주인이 얼른 노지심의 말을 받았다.

"한 백 근은 돼야겠소."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말하자 대장장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스님, 그건 너무 무겁습니다. 제가 그걸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스님께서 어떻게 그걸 들고 다니시겠습니까?"

"관왕(關王)의 청룡도도 여든한 근밖에 안 됐습니다."

노지심(魯智深)이 그 말에 불끈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관왕에게 못 미친단 말이지? 하지만 그도 한낱 사람일뿐이라고!"

"그러지 마시고 제 말대로 하십시오. 사오십 근짜리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무겁습니다."

주인이 그렇게 권해 보았으나 노지심(魯智深)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관왕의 청룡도와 같이 여든한 근짜리로 해 주시오."

그렇게 뻗대자 대장장이가 다시 달랬다.

"스님, 그래도 그건 너무 굵습니다. 보기도 좋지 않고 쓰기에도 불편하지요. 제 말대로 따르십시오."

"예순두 근짜리 수마선장(水磨禪杖)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무거워 못 쓸 것 같지만 그렇더라도 절 나무라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계도(戒刀)........아무래도 시키는 대로는 어렵겠고 그냥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아주 좋은 쇠로 알맞게 뽑아 두겠습니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도 뻗댈 때와는 달리 쉽게 그 말을 따라 주었다.

"알겠소, 헌데 값은 그 두 가지 모두에 얼마요?"

"은자 닷 냥이면 됩니다. 더 깎으려고는 들지 마십쇼."

"그럼 은자 닷 냥을 주고 가겠소. 만약 물건이 잘 나와 마음에 들면 몇 냥 더 얹어 드리리다."

노지심(魯智深)이 그러면서 은자를 내놓자 대장장이가 굽신거리며 말했다.

"염려 맙쇼, 아주 멋진 놈으루다가 빼놓겠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노지심(魯智深)이 그런 대장장이더러 함께 한잔하자고 나왔으나 대장장이가 사양해 그렇게는 안 되었다. 대장간을 나온 노지심(魯智深)은 다시 저잣거리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한 서른 발짝도 옮겨 놓기도 전에 술이 있다는 표시를 한 깃발을 처마에 꽂은 집이 보였다. 발을 걷고 그 술집 안으로 들어간 노지심(魯智深)은 자리를 잡기 바쁘게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보슈, 술 한잔 빨리 내주슈."

주인이 달려 나오다 노지심(魯智深)이 승복을 입은 걸 보고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스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술집은 산 위 사찰의 것이고 밑천도 거기서 나온 겁니다. 장로님께서 정해 놓으시기를 만약 저희가 스님들에게 술을 팔면 이 집은 물론 본전까지 뺏고 내쫓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는 술을 내놓을 수 없으니 너무 괴이쩍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시끄러워지지 않으려거든 술을 갖구 와. 내가 이눔의 술집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 될 거 아냐?"

노지심(魯智深)이 눈을 부릅뜨며 그렇게 을러대 봤으나 소용없었다.

"시끄러워져도 할 수 없지요. 술은 안 됩니다. 다른 데로 가 보십시오."

주인이 끝내 그렇게 나오자 노지심(魯智深)은 불끈 화가 치밀었으나 아직은 맨정신이라 주먹까지 내지르지는 않았다. 들기 싫은 엉덩이를 억지로 들어 일어나며 겁만 주고 그 술집을 나섰다.

"좋다. 다른 데 가서 마시지. 우선 목부터 축인 뒤 네놈을 찾아와 따지겠다."

그러나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다. 노지심(魯智深)이 주먹까지 을러메며 을러댔으나 모두가 한입으로 술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네댓 집을 돌아도 술 한잔 못 얻어먹은 노지심(魯智深)은 머리를 짜내 보았다.

'도무지 어찌해 볼 도리가 없구나. 무슨 수로 술을 마신다? 가만있자......'

하지만 원래가 잔꾀에는 밝지 못한 그였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좋은 궁리가 나지 않아 속만 끓이고 있는데 문득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멀리 거리 끄트머리에 살구꽃이 만발한 가운데 있는 작은 술집이었다. 술집임을 알리는 베 조각 대신 풀잎으로 빗자루 같은 걸 만들어 꽂아 둔 게 보잘것없는 주막 같았다. 노지심(魯智深)은 얼른 그 집으로 달려가 사립문 앞에서부터 소리쳤다.

"주인장, 길 가는 중이니 술 한잔 하고 갑시다!"

주인이 나와 노지심을 보며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스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묻는 품이 그도 오대산의 승려에게는 술을 팔지 못하게 되어 있는 듯했다. 그 눈치를 알아챈 노지심(魯智深)이 거짓말을 했다.

"나는 여기저기 떠다니는 중이외다. 방금 이곳에 이르렀으니 술 한잔 주시오."

"스님, 만약 오대산에서 오셨다면 드릴 수가 없는데요."

"나는 오대산에서 오지 않았소. 그러니 어서 술이나 내오시오."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시치미를 떼자 주인은 한 번 더 그를 살펴보았다. 생김이나 음성이 남다른 게 전에 보던 오대산의 승려들 같지는 않았다.

"술은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윽고 술을 팔기로 작정한 주인이 물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얼른 대답했다.

"많고 적고 있는 대로 내오시오. 다만 술잔은 좀 컸으면 좋겠소."

이에 주인은 처음부터 큰 잔으로 술을 나르기 시작했다. 큰 잔 열 개를 잇달아 비운 노지심(魯智深)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고기는 없소? 한 접시만 가져다주시오."

"조금 전까지 쇠고기가 약간 있었습니다. 이제 다 팔리고 없습니다."

주인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고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노지심(魯智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냄새를 따라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노지심의 눈에 문득 불이 지펴진 가마솥 하나가 들어왔다. 마당 한구석 담 곁에 걸어 둔 솥이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개 한 마리를 삶는 중이었다.

"당신 집에 개고기가 있는데 그건 왜 내게 팔지 않소?"

노지심(魯智深)이 주인을 잡고 따지듯 물었다. 주인이 어이없어하며 대답했다.

"출가한 분은 개고기를 잡숫지 않는다기에 그랬습니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이 태연히 말했다.

"내게도 은자가 있소. 저 개고기가 돈 받고 팔지 않는 것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좀 내오시오."

그리고 괴춤을 털어 은자를 탁자에 내놓으며 덧붙였다.

"이만하면 반 마리 값이 되겠소?"

그렇게 되자 주인도 할 수 없다는 듯 삶은 개 반쪽을 썰어 양념과 함께 내왔다. 개고기를 보자 노지심(魯智深)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젓가락을 쓸 겨를도 없이 손으로 집어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 고기와 함께 술도 큰 잔 열 잔을 더 들이키자 어지간한 노지심(魯智深)도 속이 좀 차는 듯했다.

"스님, 이제 그만 드시렵니까?"

큰 잔으로 스무 잔 술을 들이키고 삶은 개고기 반 마리를 다 먹어 치운 뒤에도 끄떡없이 앉아 있는 노지심에게 얼이 빠진 주인이 와서 물었다. 노지심(魯智深)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나 실은 오대산에서 내려왔소. 그런데 나는 틀림없이 이 집에서 마시지 않았다고 해 주겠소만, 주인장은 나를 위해 무얼 해 주겠소?"

그제야 노지심(魯智深)이 오대산의 승려라는 걸 안 주인이 기가 막혀 물었다.

"무어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술 한 통 더 갖다주시오."

노지심(魯智深)이 그런 떼를 쓰니 주인은 어쩌는 수 없이 술 한 통을 더 내왔다. 잠깐 동안에 그 술 한 통까지 다 마신 노지심(魯智深)은 남은 개다리 한 개를 옷섶에 찔러 넣고 일어나며 말했다.

"은자 중에서 남는 것은 내일 다시 와서 먹겠소."

주인은 그 엄청난 주량과 사나운 기세에 말도 한마디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하고 산으로 올라가는 노지심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산을 오르던 노지심(魯智深)은 그 중턱에 있는 정자에 이르렀다. 전에 술을 빼앗아 먹고 사람을 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정자에 한참 앉아 있으려니 슬슬 오르던 술기운이 꼭뒤까지 차올랐다.

"내가 여태까지 주먹질 발길질을 못 해 봤더니 온몸이 찌뿌듯하구나. 오늘 한번 손발을 써 봐야겠다."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자 아래로 내려가 소매를 걷고 주먹질을 해 보았다. 오랜만에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어 그런지 힘이 솟아 헛주먹질만으로는 영 속이 차지 않았다. 이에 노지심(魯智深)은 대뜸 그 곁에 있는 정자 기둥에 덤벼들었다. 노지심이 정자 기둥에 한쪽 어깨를 대고 한번 용을 쓰자 우지끈하고 정자 기둥이 부러지며 정자가 반쯤 기울어졌다. 산문을 지키던 스님이 그 소리에 놀라 내려다보았다. 산 중턱에 있던 정자가 반이나 내려앉아 있고, 그걸 보며 무엇이 좋은지 낄낄거리던 노지심(魯智深)이 비틀거리며 산 위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저 짐승 같은 놈이 오늘 또 술에 취했구나. 안 되겠다."

문을 지키던 두 스님은 그렇게 말하며 얼른 산문을 닫아걸었다. 비틀거리며 산문 앞에 이른 노지심(魯智深)은 문이 잠긴 걸 보고 주먹으로 쾅쾅 내질렀다. 꼭 사람이 힘껏 미는 것처럼 문이 흔들거렸다. 그래도 문지기 스님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자 노지심(魯智深)은 무얼 찾는지 몸을 돌려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산문을 지키는 금강역사(金剛力士)의 상이 들어왔다.

"너 이놈, 덩치 한번 크구나. 나 대신 문을 좀 두드려 주지 않고, 주먹만 불끈 쥐고 섰으니 사람을 겁주자는 거냐, 뭐냐? 오냐, 내가 상대해 주마. 네 따위는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노지심(魯智深)은 대뜸 금강역사에게 그렇게 호통을 치더니 받침대 위로 올라가 둘러쳐져 있는 난간을 부수었다. 그리고 그중에 몽둥이로 쓰기 좋은 나무토막 하나를 집어 금강역사의 허벅다리를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흙으로 빚은 금강역사가 부서져 내리며 흙가루와 흙에 스며 마른 물감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날렸다.

"저런, 저런!"

숨어서 살피던 문지기 스님이 지진 장로에게 알리려고 뛰어갔다. 한편 금강신상 하나를 부수고 나서 한차례 숨을 돌린 노지심(魯智深)은 다시 오른편에 있는 금강역사에게 덤벼들었다.

"너는 이눔아, 왜 그리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섰느냐?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게냐?"

그런 욕설과 함께 다시 그쪽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놈, 너도 맛 좀 봐라!"

노지심(魯智深)이 그런 소리와 함께 몽둥이로 후려치자 그 금강역사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받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노지심은 몽둥이를 짚은 채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 문지기 스님이 장로를 찾아가 노지심의 행패를 알린 것은 그 무렵이었다.

"건들지 말고 그대로 둬라. 가서 너희들 할 일이나 하도록."

듣고 난 장로가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수좌(首座), 감사(監寺), 도사(都寺) 등 절의 일을 맡아보는 스님들이 모두 한꺼번에 장로를 찾아가 떠들었다.

"저 산짐승 같은 놈이 오늘 또 취해 왔으니 큰일입니다. 산중턱의 정자를 반이나 부숴 놓고 지금은 산문을 지키는 금강상을 들부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래도 장로는 별로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천자도 술 취한 사람은 피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늙은 중이겠느냐? 정자를 부수었다면 저를 이곳에 보낸 조원외더러 고쳐 달라면 될 것이다. 또한 금강(金剛)을 부쉈다면 금강도 그보고 다시 만들어 내라고 하지. 저 하는 대로 버려둬라."

그렇게 속 좋은 소리만 했다. 듣고 있던 스님들이 다시 입을 모아 말했다.

"금강(金剛)은 산문을 지키는 으뜸입니다. 어떻게 그걸 아무렇게나 갈아 치우신단 말씀이십니까?"

"금강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대웅전의 삼세불(三世佛)을 때려 부순달 한들 어찌하겠는가? 그저 피하는 수밖에...., 너희들은 전에 그가 흉악하게 날뛰는 걸 못 보았느냐?"

장로가 그렇게 나오니 다른 스님들도 하는 수 없었다. 다만 문을 지키는 스님에게 문을 열어 주지 말라는 것만 한목소리로 권할 뿐이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다가 화가 치솟을 대로 솟은 노지심의 고함소리가 절 안까지 들려왔다.

"이 머리 벗겨진 노새 같은 놈들아! 어서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만약 나를 안으로 들여 주지 않으면 여기 불을 질러 이눔의 절을 확 그을려 버릴 테다!"

그 소리에 스님들은 깜짝 놀랐다. 마음만 먹으면 능히 그럴 수도 있는 위인이라 문지기 스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어이, 안 되겠네. 어서 빗장을 벗겨 저 짐승 같은 자가 들어오게 해야겠어. 안 그러면 정말로 불을 지르고 말 것일세."

이에 문지기 스님은 조심조심 문 곁으로 다가가 빗장을 벗기고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승방 쪽으로 달아났다. 다른 스님들도 저마다 노지심(魯智深)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렸다. 그것도 모르고 힘을 다해 문을 밀던 노지심(魯智深)은 갑자기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대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게 다시 그의 화를 돋우었으나 아무도 따질 만한 사람이 없으니 별수 없었다. 엉금엉금 기듯 일어나서는 곧바로 승당으로 갔다. 승당 안에는 수많은 스님들이 자리 잡고 앉아 선()을 하고 있었다. 술 취한 노지심(魯智深)이 갑자기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자 깜짝 놀란 스님들은 모두 자라같이 목을 음츠렸다. 다행히도 노지심(魯智深)은 선을 하는 스님들에게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들을 못 본 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속이 받쳐 오는지 왝왝거리며 도량 바닥에 먹은 것을 토해냈다. 개고기가 뒤섞인 술이 한 말은 족히 도량 바닥에 쏟아졌다. 아무리 그런 노지심을 못 본 체하려 해도 그 냄새만은 견딜 수 없었다.

'잘한다!'

스님들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코를 싸쥐었다. 그런 스님들이 안중에 없는 듯 한바탕 시원하게 토한 노지심(魯智深)은 늘상 자신이 누워 자는 선상(禪床)으로 갔다. 띠를 풀고 승복을 벗어젖히고 모든 게 제멋대로였다. 그런데 옷을 벗어젖히다 보니 산 밑 술집에서 감춰 온 개다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좋아, 한바탕 토하고 나니 마침 속이 출출하던 차에."

노지심(魯智深)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개다리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차마 그 꼴을 볼 수 없어 소매로 눈을 가렸다. 그들 중에 젊은 선승(禪僧) 둘이 견디다 못해 비실비실 자리를 피했다. 그걸 본 노지심(魯智深)은 짓궂은 마음이 일었다. 개고기 한 점을 뜯어낸 뒤 그 스님들 중 하나에게 쑥 내밀며 말했다.

"어이, 한번 먹어 보지그래?"

그 스님이 질겁을 하고 두 소매로 입을 가리며 피했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은 다른 스님을 잡고 말했다.

"이거 한번 안 먹어 보겠나?"

말뿐이 아니었다. 노지심(魯智深)은 달아나려는 그 스님을 붙들어 귀를 잡고 개고기를 입에 쑤셔 넣으려 했다. 맞은편에 있던 스님 몇이 보다 못해 노지심을 말렸다. 그러자 노지심(魯智深)은 개고기를 내던지고 주먹을 들어 그들의 번쩍이는 머리통을 마구 쥐어박았다. 그렇게 되자 더 참을 수 없게 된 승당의 모든 스님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각기 제 바랑을 찾아 메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자리를 말아 뿔뿔이 흩어지는 판이라 수좌(首座)들도 어떻게 붙들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소동에 재미를 붙인 노지심(魯智深)은 승당 밖까지 그들을 쫓아 나왔다. 그러자 태반의 선객(禪客)들은 낭하를 따라 우르르 쫓겨갔다.

그 광경을 본 감사(監寺)와 도사(都寺)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장로에게 알릴 것도 없이 절 안의 일꾼들과 젊은 스님들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합쳐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자 감사와 도사는 그들에게 노지심을 잡게 했다. 그들은 모두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몽둥이와 쇠 막대, 곤봉 따위를 휘두르며 노지심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그들을 본 노지심(魯智深)은 무언가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지르더니 승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 딴에는 무기를 마련하러 들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승당 안에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여기저기를 찾아보던 노지심(魯智深)은 갑자기 부처님 앞에 놓인 공양 탁자를 뒤엎고 거기서 탁자 다리 두 개를 빼냈다. 노지심(魯智深)이 탁자 다리를 휘두르며 다시 뛰쳐나오자 그 사납고 거친 기세에 눌린 절간 일꾼과 스님들은 겁을 먹었다. 모두 몽둥이를 끌고 낭하를 따라 달아났다. 노지심(魯智深)이 오히려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들은 두갈래로 흩어졌다가 다시 노지심을 에워싸고 양쪽에서 치고 들었다. 그 바람에 몇 대 얻어맞은 노지심(魯智深)은 정말로 화가 났다. 동쪽을 겨냥하는 척하며 서쪽을 치고 남쪽을 겨냥하는 척하며 북쪽을 치는 식으로 두 갈래를 한꺼번에 상대했다. 노지심(魯智深)이 평생 익힌 무예를 다 풀어 덤비니 다시 스님들 쪽이 밀리기 시작했다. 노지심은 기세가 올라 그들을 법당 쪽까지 따라가며 두들겼다. 그때 갑자가 지진 장로가 나타나 큰 소리로 양쪽 모두들 꾸짖었다.

"지심아, 무례하지 마라. 그리고 너희들도 모두 손을 멈춰라."

이미 사람이 여남은 명이나 상해 스님들도 몹시 화가 나 있었으나 장로가 나타나 말리니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일제히 몽둥이를 거두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흩어지는 걸 보고 노지심(魯智深)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탁자 다리를 내던지고 장로 쪽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장로님, 이놈을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본성을 괴로워하며 하는 소리였다. 그러는 노지심(魯智深)은 이미 술이 거의 깨어 있었다. 지진 장로가 전에 없이 엄하게 노지심을 꾸짖었다.

"이놈 지심아, 너는 이 늙은 몸을 괴롭혀 죽일 작정이라도 했더란 말이냐? 저번에도 취해서 한바탕 난리를 벌여 놓고 이제 다시 이게 무슨 꼴이냐? 지난번 일은 네 형 조원외(趙員外)에게 알렸더니 그가 특히 글을 보내 여러 사람에게 사죄함으로써 대강 마무리 지었다마는 이번에는 안 되겠다. 출가한 자가 술에 취한 것도 죄가 가볍지 않은데, 정자를 허물고 금강상까지 부숴 놓다니.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참선하는 객승들을 모조리 내쫓다니..... 우리 문수보살 도량은 천백 년 깨끗한 향불을 이어 온 곳인데, 어떻게 그 같은 더럽힘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우선 너는 나를 따라와 방장실로 가 있도록 하라. 며칠 안으로 네가 갈 만한 곳을 정해 주겠다."

그 같은 장로의 꾸짖음에 노지심(魯智深)은 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좀전의 기세는 다 어디 갔는지 끽소리 없이 방장실로 따라갔다. 한편 장로는 절 안의 모든 스님들을 모아 각기 제 할 일로 돌아가게 했다. 선객(禪客)들은 승당으로 돌아가 좌선을 계속하게 하고, 직사승(職事僧, 절간의 일을 맡아 하는 승려)은 각기 맡은 일로 돌아가게 했다. 또한 그 소동에서 다친 사람은 제 방으로 돌아가 다친 곳을 돌보게 했다. 그리되니 절 안은 다시 전처럼 조용해져 부서진 금강역사(金剛力士)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같이 되었다.

다음 날 지진 장로는 수좌(首座) 스님과 의논하고 노지심을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조원외(趙員外)가 맡긴 사람이라 그냥 보내지는 못하고 먼저 조원외에게 절에서 있었던 일부터 알리기로 했다. 장로가 써 보낸 글을 받아 본 조원외(趙員外)는 마음이 즐거울 리 없었으나 그 자리에서 답장을 보내 장로에게 사죄하고 덧붙여 적었다.

"부서진 금강상과 정자는 제가 즉시 되세워 드리겠습니다. 지심의 일은 장로님의 뜻을 따르겠사오니 알맞은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 같은 답장을 받아 본 장로는 곧 노지심을 불러 새 승복과 승혜에 은자 열 냥을 내놓으며 말했다.

"지심아, 너는 지난번에도 술에 취해 승당에서 행패를 부렸는데, 이번에 또 술에 취해 이같이 엄청난 짓을 했으니 네 죄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조원외(趙員外)의 낯을 보아 그냥 내쫓을 수는 없구나. 내 글 한 통을 줄 터이니 일러 주는 곳으로 가서 그 글을 보이고 거기서 지내도록 해라. 네 한 몸은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노지심(魯智深)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떠나란 소리를 들으니 앞일이 아득해 급히 물었다.

"스승님, 어디를 가면 제자가 편안히 숨을 곳이 있겠습니까?"

"내게 한 사제가 있는데, 지금 동경의 대상국사(大相國寺) 주지인 지청선사(智淸禪師). 내가 그에게 글을 써서 너에게 직사승 자리라도 하나 내주라고 했으니 모르는 척은 않을 것이다. 동경의 대상국사로 가 보도록 해라."

지진 장로는 그렇게 말해 놓고 한동안 노지심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마디 보탰다.

"내가 간밤에 네 상을 헤아려 지은 네 귀의 게언(偈言)이 있다.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따르도록 해라."

"그게 어떤 것입니까?"

노지심(魯智深)이 얼른 물었다. 장로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시를 읊조리듯 외웠다.

숲을 만나 일어나고

산을 만나 가멸해지며

고을을 만나 옮기고

강을 만나 그치리라

무슨 뜻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노지심(魯智深)은 그 네 구절을 소중히 기억했다. 그리고 지진 장로에게 아홉 번 절을 한 뒤 승복에 바랑 하나만 멘 채 오대산을 떠났다. 절 안의 스님들은 한결같이 그가 떠나게 된 걸 기뻐해 마지않았다.

산을 내려온 노지심(魯智深)은 먼저 지난번에 갔던 저잣거리의 대장장이부터 찾아갔다. 맞춘 지 며칠 되지 않아서인지 선장(禪杖)과 계도(戒刀)는 아직 완성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노지심(魯智深)은 그곳 객점에 며칠을 더 묵으면서 그것들이 다 되기를 기다렸다. 대장장이가 서둘러 선장과 계도는 오래잖아 노지심의 손에 들어왔다. 노지심(魯智深)은 대장장이에게 몇 푼 인심을 쓴 뒤 계도(戒刀)는 칼집을 만들어 꽂고 선장(禪杖)은 검은 칠을 해 짚었다. 승복과 바랑에 그렇게 선장과 계도까지 갖추니 누가 봐도 떠도는 스님 같았다.

드디어 길을 떠난 노지심(魯智深)은 말할 것도 없이 동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길을 가는 방식은 여느 스님들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다른 것은 잠자리였다. 보름 동안을 걸으면서도 해가 져서 절을 찾는 법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객점을 찾아 뜨뜻하고 편안한 방 안에서 밤을 보냈다. 먹는 것도 다른 스님들과는 전혀 달랐다. 버얼건 대낮에도 고기건 술이건 먹고 싶은 대로 사 먹었다. 말하자면 스님다운 것은 복색과 머리뿐인 셈이었다.

한편 오대산의 뒤치다꺼리는 죄 없는 조원외(趙員外)가 도맡았다. 노지심(魯智深)이 떠나고 며칠 안 되어 오대산으로 올라간 조원외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노지심이 부순 금강상을 새로 빚고 무너진 정자를 다시 세웠다. 얼마 안 되어 문수원(文殊院)은 전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도량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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