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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4화

Bollnow 2025. 1. 9. 08:47

진달(陳達)이 쳐들어오려고 할 때 사진(史進)은 말을 장원 앞에 매 놓고 일만 나면 어디든 달려갈 채비를 갖춘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 부리는 머슴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소화산의 산적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사진(史進)은 준비한 북과 대통을 요란하게 쳐 댔다. 미리 짜 놓은 대로 대통 소리가 나자 사진(史進)의 장원 앞뒤에 있는 삼사백 호의 장정들이 저마다 창과 몽둥이를 들고 몰려들었다. 한 집에서 하나만 나와도 삼사백 명은 되었다.

사진(史進)도 그새 채비를 갖춰 놓고 있었다. 머리에는 일자건(一字巾)이요, 몸에는 붉은 갑옷인데 그 위에는 푸른 비단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발에는 녹색 가죽신을 신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른 데다 가슴 앞뒤에는 심장을 보호하는 철판을 대고 있으니 바로 늠름하기 짝이 없는 장수의 모습이었다. 사진(史進)은 큰 활과 화살통을 허리에 차고 끝이 세 갈래에 양날인 한 자루 큰 칼을 손에 든 채 장정들이 끌고 온 말에 올랐다. 온몸이 불붙은 숯 같은 적토마(赤兎馬)였다.

말에 오른 사진(史進)은 삼사십 명의 젊고 날랜 장정은 앞세우고, 나이 든 팔구십 명의 마을 농부들은 뒤따르게 하고 마을 북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들이 한꺼번에 지르는 함성이 제법 우렁찼다.

한편 소화산을 단숨에 달려 내려온 진달(陳達)은 산 아래에 이르러서야 졸개들을 멈춰 서게 했다. 그리고 졸개를 보내 살펴보려는데 벌써 사진(史進)이 들이닥쳤다. 드잡이질에 들어가기 앞서 사진은 먼저 도둑 떼의 우두머리인 진달을 살펴보았다. 진달(陳達)의 차림도 꽤나 볼만했다. 머리에는 홍요면건(紅凹面巾)이요, 몸에는 금생철갑(金生鐵甲)에 한 마리 크고 흰말을 타고 있는 품이 한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그 뒤에서는 백여 명의 졸개들이 함성을 질러 대며 기세를 돋우고 있었다.

진달(陳達)도 사진을 알아보았다. 저 나름으로는 오래 굴러먹은 도둑 떼의 우두머리라 말 위에서 몸을 굽혀 제법 예()까지 표했다. 사진(史進)이 그런 진달을 꾸짖었다.

"너희들은 사람을 죽이고 남의 집을 부수고 재물 털기를 밥 먹듯 해 왔으니 그 죄가 실로 하늘에 가득하다 할 것이다. 마땅히 죽어야 할 놈이 정말 간도 크구나. 바로 태세(太歲, 목성)가 납시는 쪽 흙을 퍼서 집을 지으려 드는 꼴이니(옛날 중국 사람들은 목성이 뜨는 쪽 흙으로 집을 지으면 재앙이 온다고 믿었음) 왜 살기가 싫어지기라도 했느냐?"

사진(史進)이 턱없이 사람을 얕잡아보는 바람에 진달(陳達)은 속으로 불끈했으나 억지로 참고 능청을 떨었다.

"고정하시고 잠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지금 저희들은 산채에 식량이 모자라 화음현에 식량을 꾸러 가는 길입니다. 마침 가는 길에 대협(大俠)의 장원이 있어 지나치게 되었을 뿐이니, 만약 한 가닥 길만 빌려주신다면 이곳은 풀뿌리 하나 다치지 않게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들을 그냥 지나가게 해 주신다면 돌아올 때는 두터운 사례까지 올리겠습니다."

"헛소리 마라! 마침 나는 이정(里正) 일을 보고 있어 너희 같은 도둑 떼를 잡아야 할 몸이다. 만약 오늘 너희가 이 마을 앞을 지나가는 걸 보고도 우리가 그냥 두었다는 걸 현()에서 알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진달(陳達)은 속 좋게 사정을 거듭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형제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고 길 좀 빌려주십시오."

"좋다. 하지만 설령 내가 보내 준다 해도 너희들이 이곳을 지나려면 또 한 군데 물어봐야 할 곳이 있다."

점점 기가 난 사진(史進)이 이죽거림까지 섞어 그렇게 진달의 말을 받았다. 진달(陳達)이 행여나 해서 물었다.

"또 한 군데 물어볼 곳이라니 그게 누굽니까?"

그러자 사진(史進)이 껄껄 웃으며 손에 든 칼을 들어 보였다.

"바로 내 손안에 있는 이 칼이다. 이 칼이 너희들에게 가도 좋다고 하면 지나가도록 해라!"

진달(陳達)도 그런 놀림에는 더 참지 못했다. 그동안 꾸욱 눌러 참아왔던 분통을 일시에 터뜨리며 소리쳤다.

"달아나는 놈은 뒤쫓을 필요가 없다더니 겁 없이 뻗대는 촌놈도 어찌 달래 볼 수가 없구나."

"덤벼라! 네놈의 정신이 획 돌아오도록 해 주겠다."

그 소리에 화가 난 사진(史進)이 칼을 휘두르며 말 배를 걷어찼다. 진달(陳達)도 창을 꼬나들고 말을 몰아 마주쳐 나왔다. 두 말이 어우러지며 한동안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진달(陳達)은 사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진(史進)이 짐짓 빈구석을 보여 주자 진달(陳達)은 옳다구나 창을 들어 사진을 찔렀다. 미리 짐작하고 있던 사진이 번뜩 허리를 비틀어 피하자 창은 가슴께를 스치고 방비 없는 진달의 몸이 그대로 사진과 엇갈렸다. 사진(史進)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원숭이같이 긴 팔을 뻗어 진달의 허리춤을 움켜잡았다.

"에잇!"

사진의 용쓰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진달의 몸은 말안장에서 떴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진달(陳達)이 탔던 말은 놀란 나머지 주인을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저놈을 묶어라!"

사진이 마을 청년들에게 기세 좋게 소리쳤다.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가 아직 제정신이 아닌 진달(陳達)을 꽁꽁 묶어 버렸다. 그 광경을 본 도둑 떼들은 겁먹고 놀란 나머지 가랑잎처럼 흩어져 저희 산채로 달아나고 말았다.

진달(陳達)을 사로잡아 앞세우고 장원으로 돌아온 사진(史進)은 호기가 만장이나 치솟았다. 진달을 뜰 앞 굵은 나무 기둥에 묶어 놓고 남은 두 괴수를 잡을 때를 기다리면서 그 뒤처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관청에 사람을 보내 그 소식을 알림과 아울러 술과 고기를 내어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사진(史進)을 칭송했다.

"자네가 이토록 호걸(豪傑)인 줄은 정말 몰랐네. 이제 우리 마을은 발 뻗고 자도 되겠네그려!"

한편 산채에 남아 있던 주무(朱武)와 양춘(楊春)은 진달을 보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곧 졸개를 풀어 산 아래의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얼마 뒤에 빈 말 한 필만 끌고 돌아온 졸개가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아룁니다. 진달(陳達) 두령께서 두 분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산을 내려갔다가 기어이 일을 당하셨습니다!"

깜짝 놀란 주무와 양춘이 입을 모아 경위를 묻자 졸개가 진달이 사로잡힐 때까지의 광경을 들은 대로 전했다.

"내 말을 안 듣고 기어이 산을 내려가더니 결국 그런 화()를 입었구나!"

졸개의 말을 들은 주무(朱武)가 진달을 나무라며 그렇게 탄식했다. 곁에 있던 양춘(楊春)은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해 몸까지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안 되겠습니다. 형님, 우리 모두 함께 쳐 내려가 사진 그놈과 죽기로 싸워 봅시다!"

생각 깊은 주무(朱武)가 그런 양춘을 달래며 말했다.

"그것도 안 되네. 그놈이 이미 진달(陳達)을 이겨 사로잡았는데 자네가 어떻게 당해 낸단 말인가?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듣게. 시행하기는 괴롭지만 그래도 괜찮은 계책이 내게 하나 있으니 그대로 한번 해 보세. 만약 이 계책으로도 진달(陳達)을 구해 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우리 둘이 함께 그놈에게 덤벼 끝장을 보는 거지."

"그게 어떤 계책이우?"

주무의 꾀를 믿는 양춘(楊春)은 제 성미를 누르며 물었다. 주무(朱武)가 그런 양춘의 귀에 대고 자신의 계책을 일러 주었다. 듣고 난 양춘이 화가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좋은 계책인 듯싶우. 어서 같이 내려갑시다. 일을 서둘러야 하게 됐우."

그때 사진(史進)은 자신의 장원에서 아직 가라앉지 않은 흥분을 누르며 나머지 산적들이 다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잖아 마을 청년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산채에 남아 있던 두령 주무와 양춘이 제 발로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진(史進)은 당연히 그들이 진달을 구하기 위해 싸우러 내려온 줄 알았다. 벌떡 몸을 일으키며 머슴들에게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끝장이지. 세 놈 모두 한 끈에 묶어 관가에 바쳐야겠다. 어서 말을 끌어내 오너라!"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통을 쳐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모이게 했다. 사진(史進)은 기세 좋게 말 위에 뛰어올라 마을 어귀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셈인가. 주무(朱武)와 양춘(楊春)은 무기도 없이 걸어서 마을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둘은 사진을 보자마자 그대로 땅바닥에 꿇어앉으며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너희 둘이 그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사진(史進)이 말 위에 앉은 채 그렇게 을러댔다. 주무(朱武)가 흐느끼며 말했다.

"저희들 셋은 죄지은 것 없이 관가의 핍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렇듯 산중에서 도적질이나 해 먹고 사는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저희들은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는 못했어도 죽는 날은 한날한시가 되기를 맹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에게는 아득히 미치지 못함을 알지만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희 아우 진달(陳達)이 말리는 말을 듣지 않고 대협의 범 같은 위엄을 덤볐다가 오히려 대협께 사로잡힌 바 되어 이 장원 안에 묶여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힘없는 저희로서는 아우를 구해 낼 길이 없어 생각 끝에 이제 이렇게 함께 죽으러 온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협께서는 저희 셋을 한 끈에 묶어 관가에 넘기시고 상을 청하도록 하십시오. 저희들은 비록 죽는다 해도 영웅의 손 아래 죽게 되니 아무런 원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주무(朱武)는 다시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쇠나 돌로 된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물며 순진하고 인정 많은 젊은이인 사진(史進)에 있어서랴.

'저들은 참으로 의()를 아는 자들이로구나. 내가 만약 저들을 관가에 묶어 바치고 상을 받는다면 천하의 호걸들로부터 비웃음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또 예로부터 이르기를, 호랑이는 쓰러진 짐승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사진(史進)은 속으로 그렇게 가만히 중얼거린 뒤에 주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두 분은 나를 따라오시오."

이렇다 저렇다 밝힘 없이 불러들인 것인데도 주무(朱武)와 양춘(楊春)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사진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진의 집 안 대청 앞에 이르자 다시 무릎을 꿇으며 태연히 말했다.

"어서 저희를 묶어 진달과 함께 관가에 넘겨주십시오."

사진(史進)은 그런 그들의 의기에 더욱 감동이 되었다. 그들더러 일어나 마루 위로 오르기를 청했다. 그들은 세 번, 네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마루 위로 올라왔다.

"원숭이는 원숭이를 알아보고, 사나이는 사나이를 알아보는 법이오. 두 분의 의기가 그토록 무거운데 내가 어떻게 두 분을 묶어 관가에 바칠 수 있겠소이까? 만약 그리하면 나는 사나이가 아닐 것이오. 진달(陳達)을 놓아 드릴 테니 데려가시오."

사진(史進)이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조용히 말했다. 주무(朱武)가 펄쩍 뛰듯 소리쳤다.

"아니 됩니다. 저희들의 잘못에 대협께서 연루되시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부당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희를 묶어 관가에 넘기고 상을 청하시는 게 훨씬 저희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오히려 사진(史進)이 좋은 말로 그들을 달랬다.

"천만에, 어찌 그럴 수 있겠소? 그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 나누며 이야기합시다."

주무(朱武)도 그것까지는 마다하지 않았다.

"죽는 것도 겁내지 않는 저희들인데 술 한잔 마시는 걸 꺼리겠습니까? 그거라면 대협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이에 사진(史進)은 먼저 진달을 풀어 주고 대청에 큰 술상을 차리게 한 뒤 그들 셋을 대접했다. 주무(朱武), 양춘(楊春), 진달(陳達)은 그 같은 사진의 관대함에 절하여 감사하고 기꺼이 술잔을 들었다. 술잔이 오고 가는 사이에 그들 셋과 사진(史進)의 정분은 한층 두터워졌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다 보니 어떻게 도둑 떼의 우두머리가 되긴 했으나 산채의 세 사람도 그리 막돼먹은 자들은 아니었다. 흥겨운 가운데 술자리가 끝나자 세 사람은 거듭 절하여 고마움을 드러내고 산채로 돌아갔다. 사진(史進)은 그들을 마을 어귀까지 바래다주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한편 산채로 돌아간 주무(朱武)는 양춘과 진달에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이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겠느냐? 그렇게 의기로 감동시키는 길밖에는 사 대랑(史 大郞)으로부터 진달 아우를 빼내는 수가 없었을 것이네. 어쨌든, 이번에 그분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우리도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며칠 뒤 예물을 넉넉히 보내 살려 준 은혜를 갚도록 하세."

양춘(楊春)과 진달(陳達)도 거기에는 반대가 없었다.

열흘 뒤 금 서른 냥을 마련한 그들 세 사람은 졸개 둘을 시켜 한밤중에 사진(史進)을 찾아보고 그 금을 바치게 했다. 산을 내려간 졸개들은 곧 사가장 어귀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자리에 누웠다가 머슴으로부터 산채에서 사람이 왔다는 소리를 들은 사진(史進)이 얼른 옷을 걸치고 나왔다.

"무슨 일로 왔는가?"

사진(史進)이 그렇게 묻자 졸개 중 하나가 말했다.

"저희 세 분 두령께서 저희들을 보내 대협(大俠)께 예물을 올리라 하셨습니다. 비록 대단찮으나 대협께서 살려 주신 은혜에 보답고자 하는 것이오니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웃으면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가져온 금덩이를 꺼내 사진에게 바쳤다. 사진(史進)은 처음에는 그걸 받지 않으려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저들이 이왕에 좋은 뜻으로 보낸 것이니 안 받으면 도리어 어색해지지 않는가.'

그런 생각으로 금덩이를 거둔 뒤 술상을 차려 두 졸개들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들이 산으로 돌아갈 때는 둘 모두에게 은덩이를 내려 기분을 돋워 주었다.

그로부터 보름 뒤였다. 주무(朱武)를 비롯한 세 사람은 여기저기를 털다가 큰 구슬 하나를 얻었다. 살려 준 은혜도 은혜려니와 사진의 인품에도 깊이 반한 그들은 좋은 물건을 보자 또 사진 생각이 났다. 얼른 졸개 하나를 뽑아 사진에게 갖다 바치게 했다. 사진(史進)도 이번에는 전보다 쉽게 그 예물을 받아들였다.

다시 보름이 지났다.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던가. 두 번이나 예물을 받고 나니 사진(史進)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들 세 사람이 이토록 나를 높이 보는데 그냥 있기 어렵구나. 나도 작은 예물이나마 저들에게 보내 답을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사진(史進)은 다음 날 머슴을 장으로 보내 붉은 비단 세 필을 끊어 오게 한 뒤 그것으로 좋은 옷 세 벌을 짓게 했다. 그리고 따로 살찐 양 세 마리를 구워 큰 상자에 넣고 비단옷과 함께 머슴 둘에게 지워 산채로 보냈다. 그때 그 머슴 둘을 데리고 사자 격으로 나선 사람은 왕사(王四)란 상머슴이었는데, 벼슬아치들을 잘 구워삶고 언변이 좋아 사람들은 그를 새백당(賽伯當)이라 불렀다. 당나라 때 이름난 변설가 백당(伯當)보다 말솜씨가 낫다는 뜻이었다. 산채에 오른 왕사(王四)와 두 머슴은 파수를 보고 있는 졸개들에게 자기들이 온 까닭을 밝혔다. 졸개들이 곧 안으로 들어가 알리자 주무를 비롯한 세 두령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몹시 기뻐하며 사진(史進)이 보낸 비단옷과 양고기를 받아들이고 심부름 온 머슴들을 잘 대접해 돌려보냈다. 은자 열 냥에 사람마다 술을 여남은 잔씩 돌리니 머슴들은 입이 귀밑까지 째져 사가장으로 돌아갔다.

"산 위의 두령들이 매우 감격하며 예물을 받았습니다."

돌아온 머슴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사진(史進)도 흐뭇했다. 거기다가 산채는 산채대로 가만있지 못해 다시 답례를 하니 그로부터 사가장과 산채는 이웃처럼 왕래가 빈번해졌다.

사진(史進)이 산채로 물건을 보낼 때 주로 부리는 사람은 왕사였다. 보름에 한 번이 열흘에 한 번, 열흘에 한 번이 닷새에 한 번 하는식으로 왕래가 잦아지더니 마침내 왕사(王四)는 거의 매일처럼 산채를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사이 세월이 흘러 팔월 중추절이 되었다. 사진(史進)은 산채의 세 두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보름날 밤 자신의 장원에서 함께 달을 보며 술을 마시자고 그들을 청했다. 왕사(王四)가 그 뜻이 담긴 사진의 편지를 품고 산채로 올라가니 주무를 비롯한 세 두령이 반갑게 맞았다. 편지를 읽은 주무가 먼저 기쁨으로 응낙하고 다른 둘도 주무를 따랐다. 주무(朱武)는 곧 그런 자기들의 뜻을 한 통 글에 담아 왕사(王四)에게 주고 사진에게 전하게 했다. 그런데 왕사(王四)가 사가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왕사에게 심부름 값으로 은자 닷 냥을 준 것까지는 좋았으나 열 잔이 넘는 술을 권한 게 탈이었다. 얼큰히 취해 산을 내려오던 왕사(王四)는 산채의 심부름꾼으로 사가장을 자주 드나들어 얼굴이 익은 졸개 하나를 만났다. 그 졸개가 반갑다고 놓아주지 않아 다시 길섶 주막으로 드는 바람에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왕사(王四)가 그 주막에서 열두어 잔을 더 마시고 장원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있었다. 그래도 아니 돌아갈 수는 없어 걷는다고 걷는데 발길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서 있을 때보다 넘어져 길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한 십 리나 갔을까. 문득 왕사(王四)의 취한 눈에 작은 숲이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가보니 거기에는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왕사(王四)는 그 풀밭을 보자 더 걸을 마음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거기 드러누워 그대로 코를 골고 말았다. 왕사(王四)가 풀밭에 누워 자고 있을 때 마침 그 산 아래서 토끼를 쫓던 사냥꾼 이길이 그런 왕사를 보았다. 이길(李吉)은 왕사가 사가장 사람임을 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일으켜 세워 보려 했다. 그러나 왕사(王四)는 꿈쩍 않고 그의 가슴에 감춰져 있던 은자만 삐죽이 흘러나왔다. 그 은자를 본 이길(李吉)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놈이 몹시 취했구나. 찾아보면 은자가 더 있을 듯도 한데....어디 한번 찾아보자.'

이길(李吉)은 그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왕사의 가슴께를 뒤졌다. 편지 한 통과 함께 정말로 은자 몇 냥이 더 나왔다. 은자만 거둬 달아나려던 이길(李吉)은 문득 호기심이 일어 그 편지를 뜯어보았다. 앞머리에 소화산(小華山) 석 자와 주무, 진달, 양춘이란 이름들이 보였다. 그러나 가운데 쓰여 있는 내용은 무식한 그로서는 읽어 낼 수가 없었다. 겨우 소화산 두령 이름 셋만 알아본 이길(李吉)은 한동안 아쉬운 듯 편지를 뒤적이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나 같은 한낱 사냥꾼이 언제 한번 기 펴고 살 날이 오겠나? 그러나 점을 치니 올해에는 큰 재물이 생긴다 했는데, 이게 바로 그 기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걸 관가에 갖다 받쳐 도적의 우두머리 셋을 잡게 하고 삼천 관 상금이나 타자. 더군다나 그 사진(史進)이란 놈도 그냥 둘 수 없는 놈이지. 전에 내가 난쟁이 구을랑을 찾아갔을 때 내게 무얼 엿보러 왔느냐고 소릴 꽥꽥 질렀겠다. 알고 보니 산도둑놈들과 내통하느라 찔리는 구석이 많아서 그랬구나.'

그리고 그길로 이길(李吉)은 화음현 관가로 달려가 은자와 편지를 내놓으며 모든 걸 일러바쳤다.

한편 풀숲에서 한잠 늘어지게 잔 왕사(王四)는 초저녁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벌써 해가 저물어 달빛이 온몸을 비추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사방을 돌아보았다. 보이는 것은 모두 소나무뿐 아무도 없는 숲속이었다. 비로소 자신이 술에 취해 아무 데서나 곯아떨어졌음을 안 왕사(王四)는 편지와 은자를 갈무리했던 가슴께부터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가슴께는 누가 헤집어 놓은 듯 옷깃이 벌어져 있고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 놀란 왕사(王四)는 사방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풀밭에 버려진 빈 보자기뿐 거기 싸여 있던 은자와 편지는 간 곳이 없었다. 그래도 왕사(王四)는 괴롭게 낑낑대며 한참이나 풀밭을 뒤졌다.

'은자야 그렇다 쳐도, 그놈의 편지를 잃어버렸으니 어쩌면 좋으냐? 정말로 누가 훔쳐 갔지?'

그러다가 이윽고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만약 돌아가서 편지를 잃어버렸다고 하면 사진(史進) 나리는 반드시 화를 내고 나를 내쫓을 것이다. 차라리 편지 같은 것은 받지 않았다고 말하자. 그런들 무슨 수로 알아채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정한 왕사(王四)는 곧 마을로 달려 내려갔다. 뛴다고 뛰었건만 왕사가 사가장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날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마침 깨어 있던 사진(史進)이 헐떡이며 돌아온 왕사에게 물었다. 왕사(王四)가 능청스레 대답했다.

"나리 덕분에 그리됐습니다. 산채의 세 분 두령께서 저를 잡고 놓아주시지 않아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보니 이렇게 늦어진 것입니다."

"답장은 없었느냐?"

사진(史進)이 다시 물었다. 왕사(王四)는 속이 뜨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둘러댔다.

"세 분 두령께서 답장을 쓰시려다 말고 제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미 가기로 했으니 따로이 답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하시던군요. 저도 술을 마신 뒤라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싶어 굳이 조르지 않았습니다."

사진(史進)이 들어 보니 조금도 이상한 데가 없었다. 왕사(王四)가 어려운 심부름을 잘하고 돌아온 것만 기특해 칭찬까지 해 주었다.

"사람들이 너를 '백당(伯當)보다 낫다' 한다더니 이제 그 까닭을 알겠다. 이래저래 애썼다."

"제가 어찌 감히 늑장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 한 번 쉬게 함이 없이 똑바로 달려왔습니다."

기가 살아난 왕사(王四)는 그런 거짓말까지 보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깨끗이 감춰버렸다. 거기에 완전히 넘어간 사진(史進)은 아무 걱정없이 잔치 준비만 서둘렀다.

"알겠다. 안으로 들어가거든 사람을 장에 보내 안줏거리와 술을 사 오게 해라. 이왕 남을 청했으니 잔칫상이 허술해서야 쓰겠느냐?"

며칠 안 되어 중추절이 되었다. 그날 사진(史進)은 또 큰 양 한마리와 닭, 오리 백여 마리를 잡게 해 미리 마련해 둔 술과 안주에 보태니, 왕공(王公)을 대접해도 모자람이 없을 잔칫상이 되었다. 날씨까지 맑아 달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대보름이었다.

소화산에 있는 세 두령 주무(朱武)와 진달(陳達)과 양춘(楊春)은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산을 내려왔다. 산채는 졸개들을 남겨 지키게 하고 평소 가까이 지내는 네댓만을 거느렸는데, 그런 세 두령의 차림도 전에 없이 단촐했다. 박도(朴刀) 한 자루에 말도 타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내려오는 게 누가 보아도 흉악한 산도둑 떼의 우두머리 같지는 않았다. 세 두령이 사가장에 이르니 기다리고 있던 사진(史進)이 반갑게 맞았다. 서로 예()를 표한 뒤에 사진은 이미 잔칫상이 펼쳐져 있는 후원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사진(史進)은 사양하는 그들을 윗자리에 앉히고 머슴들을 소리쳐 불렀다.

"지금부터 장원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말라."

뭐니뭐니 해도 그들 세 사람은 법을 어기고 관가에 쫓기는 산채의 두령들이었다. 사진(史進)은 자신이 그들과 내왕하는 게 여럿에게 알려져서는 좋지 않다 싶어 먼저 문단속부터 시키게 했다. 이어 흥겨운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머슴들이 돌아가며 술잔을 채우고 요리한 양고기를 내와 술을 권했다. 술잔이 서너 순배 돌 무렵 동쪽으로 달이 솟아오르니 술자리는 한층 흥이 일었다. 사진(史進)은 주무와 진달, 양춘과 더불어 지난 이야기와 앞일의 의논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장원 담 밖에서 크게 함성이 일며 횃불이 어지럽게 밝혀졌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사진(史進)이 밖으로 나가기에 앞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세 분은 이대로 앉아 계시오. 내가 나가서 살펴보고 오겠소."

그리고 머슴들에게는 대문을 열지 못하게 한 뒤 사다리를 담에 걸치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뜻밖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말 위에 앉아 있는 화음현의 현위(縣尉)였다. 그 곁에는 낯익은 도두(都頭, 하급 군관) 두 사람이 붙어 서 있는데 그들 뒤에는 삼사백 명의 군사들이 장원을 에워싸고 있었다. 산채의 세 두령이 내려온 걸 알고 관군이 잡으러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안으로 들어간 사진(史進)이 세 사람에게 바깥의 형세를 대강 일러준 뒤 괴롭게 중얼거렸다.

"자아, 이제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세 사람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형은 원래 죄 없는 몸으로, 저희 세 사람 때문에 어려움에 말려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얼른 저희 세 사람을 묶어 넘기시고 상()을 청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형이 저희 일로 연루됨을 면한다면 저희로서는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사진(史進)이 펄쩍 뛰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외다. 어찌 차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소? 만약 내가 나를 찾아온 세 분을 묶어 관가에 바치고 상()을 구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크게 비웃을 것이오. 나는 죽더라도 세 분과 함께 죽을 것이며 살더라도 함께 살 것이오. 이러지들 마시고 일어나시오. 마음을 풀고 따로 좋은 궁리를 내 봅시다. 먼저 내가 저들에게 이렇게 몰려온 까닭이나 들어 보는 게 좋겠소."

그리고 다시 사다리 위로 올라가 전부터 낯을 익힌 두 도두(都頭)에게 물었다.

"두 분은 무슨 일로 이같이 한밤중에 나의 장원으로 몰려오셨소?"

"고발이 있어 왔소이다. 사 대랑(使 大郞)도 여기 이길(李吉)을 보시면 짐작 가는 게 있을 것이오."

두 도두(都頭) 중 하나가 자못 거만한 말투로 그렇게 대꾸하고 곁에 있는 사냥꾼 이길을 가리켰다. 그러나 왕사(王四)가 편지를 잃어버린 걸 알 길 없는 사진(史進)은 좀 어리둥절했다. 평소의 위엄을 잃지 않고 꾸짖듯 이길에게 물었다.

"너 이놈 이길(李吉), 너는 무슨 일로 죄 없는 사람을 고발하였느냐?"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숲속에서 편지를 주웠기로 관가에 갖다 보였더니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길(李吉)이 움찔하여 그렇게 대답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진(史進)이 얼른 왕사를 불러 물었다.

"너는 전에 받은 편지가 없다 했는데 저놈이 말하는 편지란 건 또 무엇이냐?"

그제야 왕사(王四)가 벌벌 떨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깜박 술에 취해 답장이 있었음을 잊었습니다."

"이 짐승 같은 놈! 네가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사진(史進)이 소리 높여 그런 왕사를 꾸짖었다. 밖에 있던 도두(都頭)와 군사들은 그 같은 사진의 엄청난 위세에 겁을 먹고 감히 집 안으로 뛰어들 생각을 못 했다. 그때 담 밑에 와 있던 세 두령이 손짓과 함께 사진에게 말했다.

"어서 바깥의 말에 대답부터 하시지요!"

군사들이 한꺼번에 집 안으로 몰려들 게 걱정되어 적당한 말로 시간을 벌어 두라고 하는 소리였다. 사다리 위의 사진(史進)이 얼른 그 뜻을 알아차리고 바깥을 향해 천연덕스럽게 소리쳤다.

"알겠소. 두 분 도두(都頭)께서는 수고롭게 창칼을 휘두를 필요가 없소이다. 잠시 몇 발짝만 물러나 기다려 주시오. 내 스스로 산채의 두령들을 묶어서 나가겠소."

은근히 사진을 두려워하고 있는 두 도두(都頭)는 그 말에 차라리 잘됐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소이다. 우리는 아무 짓도 않고 당신이 그들을 묶어 올 때만 기다리겠소. 그런 뒤 우리와 함께 현청(縣廳)으로 가서 그들의 목에 걸린 상이나 청합시다."

그리고 군사들을 몇 발짝 물러나게 했다. 필요한 시간을 번 사진(史進)은 곧 사다리를 내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왕사(王四)를 불러 한칼에 죽인 뒤 머슴들에게 가만히 명했다.

"지금부터 짐을 싼다. 집 안에 값나갈 만한 물건을 모조리 꾸려 나서도록 해라."

오랫동안 섬겨 온 주인일 뿐만 아니라 당장은 그의 위세에 질려 머슴들은 사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집 안의 온갖 재물을 꾸려 등에 진 머슴들이 마당에 모이자 사진(史進)은 수십 개의 횃불을 켜 들게 한 뒤 장원 뒤편으로 갔다. 그리고 산채의 세 두령을 불러 말했다.

"모두 갑옷으로 몸단속을 하고 박도(朴刀)를 뽑아 들도록 하시오. 알맞은 곳을 골라 힘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소."

사진(史進)의 의리에 감격한 산채의 두령들은 말없이 따랐다. 대충 준비가 갖춰지자 사진(史進)은 먼저 장원 뒤쪽의 초가에 불을 질렀다. 불길을 본 바깥의 관군들은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갔다. 사진(史進)은 다시 가운데 집채에 불을 질러 관군을 더욱 현혹시킨 뒤 사람들을 몰아 장원 앞문을 활짝 열고 뛰어나갔다. 앞장선 사진(史進)에 이어 주무와 양춘, 진달의 순으로 칼을 휘두르고 달려 나오는데 그 뒤를 산채에서 따라온 졸개들과 사진의 머슴들이 따랐다. 그들은 몰려드는 관군들을 이리 치고 저리 치며 길을 열었다. 특히 사진(史進)은 한 마리 호랑이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니 아무도 그를 막아내지 못했다. 뒤에서는 불길이 어지럽게 일고, 뛰쳐나오는 사람들은 죽기로 싸우자 시골 관군 몇백 명으로서는 그들을 당해 낼 길이 없었다. 마침내 한 줄기 길이 열리고 그 사이로 사진(史進) 일행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진(史進)이 막 관군의 에움을 벗어날 무렵이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 두 명의 도두(都頭)와 이길(李吉)이 들어왔다. 이길을 본 사진(史進)은 화가 꼭뒤까지 치솟았다.

"원수 놈을 잡으려고 내 눈까지 밝아진 모양이구나! 요놈 이길아, 너 잘 만났다."

사진(史進)은 그렇게 소리치며 악귀 같은 모습으로 그쪽을 덮쳤다. 이길 곁에 있던 두 도두(都頭)는 겁부터 났다. 앞뒤 돌아볼 것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놀란 이길(李吉)도 어떻게 몸을 빼쳐 달아나 보려고 했으나 그보다는 사진의 솜씨가 더 빨랐다. 어느새 다가간 사진의 칼이 번쩍 치켜지는가 싶더니 이길(李吉)은 비명 한마디 못 지르고 두 동강이 났다. 달아난 두 도두(都頭)도 끝내 무사하지는 못했다. 재수 없게도 양춘과 진달에게 걸린 그들은 각기 박도(朴刀) 한 칼질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현위(縣尉)는 이길과 두 도두가 죽는 광경에 얼이 빠졌다. 어떻게 관군을 수습해 싸워 볼 생각은 않고 그대로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말았다. 현위(縣尉)가 그 지경이니 시골 관군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느새 싸움판은 누가 누구를 잡으러 왔는지 모르게 되고 관군들은 모두 제 한 목숨 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한편으로 그들을 죽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달아나기를 게을리 하지 않던 사진(史進)은 오래잖아 일행과 함께 소화산(小華山)에 이르렀다. 산채에 남아 있던 졸개들이 그런 사진과 자기들의 두령을 반갑게 맞아 들였다. 산채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게 된 뒤에야 사진(史進)은 비로소 숨을 돌렸다. 그사이 주무(朱武)와 양춘(楊春)은 졸개들을 시켜 소를 잡고 술을 걸러 잔치를 마련했다. 그리고 사진(史進)을 윗자리에 앉히고 극진히 대접했다. 연이은 잔치에 며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어느 날 아침 술에서 깨어난 사진(史進)은 홀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저들 셋을 구한다고 집을 모두 태워 버렸으니 이를 어쩐다? 약간의 재물을 건지기는 했지만 정말로 값진 것은 모두 잃어버렸구나......'

물론 땅이야 남아 있겠지만, 사람을 많이 죽인 마당에 다시 마을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산채에 남아 한패로 지낼 수는 없었다. 작은 도둑 떼의 우두머리로 한평생을 살기에는 자신의 지난날이 너무 아까웠다. 이에 이래저래 울적해진 사진(史進)은 궁리 끝에 주무와 양춘, 진달을 찾아보고 말했다.

"내 스승인 왕 교두님이 관서의 경략부(經略府)에 계시니 나는 먼저 그분을 찾아뵈어야겠소.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금 달리 가볼 곳도 없는 데다 집과 재산을 모두 잃었으니 어찌하겠소? 아마도 스승님을 찾아뵙고 앞날을 의논하는 게 가장 나을 듯싶소."

그러자 주무(朱武)를 비롯한 세 사람이 말렸다.

"안 됩니다. 형님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이 산채에 며칠 더 계시면서 따로 궁리를 짜내 보도록 합시다. 만약 형님께서 저희들과 같이 산적이 되는 게 싫으시다면 바깥이 조용해진 뒤에 저희들이 모든 걸 되일으켜 드리지요. 집도 새로 짓고 묵은 땅도 일궈 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사진(史進)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만약 당신들이 참으로 나를 생각해 준다면 이제 떠나려는 나를 붙잡지 말아 주시오. 내가 스승님을 찾게만 된다면, 거기서 이 한 몸이 뒤집어쓴 허물을 털어 버릴 길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아직 많이 남은 앞날을 위해서도 나는 가야 하오."

"그럼 여기서 이 산채의 주인이 되어 지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산채가 작고 편안한 곳은 못 되지만 이 또한 한 가지 길은 될 것입니다."

주무(朱武)가 다시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사진(史進)의 뜻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원래 허물없는 장부였소. 어떻게 부모에게서 받은 깨끗한 몸과 이름을 이런 곳에 머물러 더럽힐 수 있겠소? 나더러 산도적이 되라고는 두 번 다시 권하지 마시오."

그리고 날을 정해 떠나기만을 고집했다. 주무(朱武)를 비롯한 세 사람이 되풀이해 그런 사진(史進)을 말렸으나 끝내 산채에 잡아 둘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진(史進)은 드디어 소화산의 산채를 떠났다. 데리고 간 머슴과 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산채에 남기고, 그들에게 지워 간 재물도 노자로 쓸 은자 몇 냥을 빼고는 모두 산채에 맡겼다. 우연히 말려든 일탈(逸脫)의 길에서 벗어나 다시 법과 제도 속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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