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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六 동 트기 전

Bollnow 2025. 1. 9. 08:28

어떤 계책인데 저토록 강성한 초나라의 세력을 꺾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장량이 반가워하는 낯빛으로 그렇게 받았다. 한왕이 수저를 밀어놓고 낮에 역이기에게 들은 말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장량의 얼굴이 점점 차게 굳어지는 걸 보고 머쓱해하며 물었다. 

자방(子房)은 이 계책을 어떻게 보시오?” 

그러자 장량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가만히 되물었다. 

누가 이런 계책을 냈습니까? 대왕께서 이 계책을 따른다면 대왕께서 하시려는 일은 크게 어그러지고 말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된단 말이오?” 

한왕이 역이기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자신이 궁금한 것만 알려 했다. 장량이 가만히 왼손을 내밀어 상위에 놓인 젓가락을 몇 개 집어 들며 말했다. 

바라건대 앞에 있는 젓가락 몇 개를 빌려주시면 대왕을 위해 그 계책을 따라서는 안 될 까닭을 하나하나 일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왼손이 집어 들고 있는 젓가락 중에서 하나를 빼들면서 차분히 따져나갔다. 

옛날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걸왕을 쳐서 내쫓고도 그 후손을 기()나라에 봉해준 것은 탕왕이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걸왕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쳐 없앤 뒤에 그 후손을 송()나라에 봉한 것도 필요하면 언제든 은나라 주왕의 목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탕왕과 무왕에게는 걸왕과 주왕이 죽고 사는 일[生死之命]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후손을 다시금 왕으로 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언제든 항왕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는 못하오.” 

그렇다면 그게 육국(六國)의 후손을 다시 왕으로 봉할 수 없는 첫째 이유가 될 것입니다. 힘으로 천하를 온전히 움켜잡지 못했으면서 제후들을 왕으로 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장량이 그러면서 오른손이 뽑아든 젓가락을 상 위에 다시 내려놓고 다시 왼손에서 두 번째 젓가락을 뽑아들었다. 

무왕이 은나라로 쳐들어 갈 때 상용(商容=紂王 때의 현인으로 太行山에 은거하였다)이 살던 마을 어귀[=里門]에서 그의 밝고 어짊을 널리 드러내어 칭송하였으며, 옥에 갇혀 있던 기자(箕子=바른 말을 하다 수난을 당했다는 의 현인)를 풀어주었으며, 비간(比干=바른 말을 하다 죽은 의 현인)의 무덤에 흙을 더해 봉분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성인의 무덤에 흙을 더하거나 현자의 마을을 표창하시거나 지자(知者)의 마을 어귀를 지나며 공경을 드러낼 수 있으십니까?”

아니오. 아직 그럴 겨를이 없었소.”

한왕이 머뭇거리다 그렇게 대답했다. 장량이 두 번째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게 대왕께서 육국의 후손들을 다시 왕으로 세울 수 없는 두 번째 이유가 됩니다. 아직 천하 만민의 마음을 두루 어루만지지 못했으면서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장량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세 번째의 젓가락을 뽑아들었다.

주나라 무왕은 거교(鉅橋=은나라의 큰 창고가 있던 곳)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먹였고, 녹대(鹿臺=紂王이 꾸몄다는 사치스런 동산)의 돈을 흩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도 천하 모든 창고의 돈과 곡식을 꺼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나눠 주실 수 있습니까?”

그도 어려울 것이오. 과인은 아직 천하의 창고를 다 얻지 못했소.”

그게 세 번째 이유입니다. 천하의 돈과 곡식을 풀어 어려운 백성들을 보살펴 줄 수도 없으면서 육국의 후손을 왕으로 되세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하고 다시 네 번째 젓가락을 빼들었다.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쳐 무도한 주왕을 내쫓는 일이 끝나자 싸움수레를 사람이 일상 타고 다니는 수레로 바꾸게 하고(偃革爲軒), 창칼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 거꾸로 매닮으로써 다시는 그걸 쓰지 않겠다는 뜻을 천하에 널리 알렸습니다. 또 무왕은 싸울 때 타던 말을 화산(華山) 남쪽에 풀어 쉬게 함으로써 다시 타지 않을 뜻을 밝혔으며, 군량 나르던 수레를 끌던 소를 도림(桃林) 북쪽에 놓아주며 다시 싸움에 부리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도 무력(武力)을 버리고 문교(文敎)를 행하시며 다시는 군사를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 천하 형세를 결정짓는 싸움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제후를 왕으로 봉할 수 없으니, 이게 대왕께서 육국의 후손들을 왕으로 봉할 수 없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장량이 그래놓고 다섯 번째 젓가락을 뽑아들며 말했다.

지금 천하의 뛰어난 호걸(游士)들이 부모처자와 헤어지고 조상의 묘소와 오래된 벗들을 떠나 분주히 대왕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이 밤낮없이 바라는 것은 뒷날 대왕께서 천하를 얻으셨을 때 한 뙈기의 땅이라도 떼어 제후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대왕께서 육국의 후손들을 다시 왕으로 세우면 그들에게 떼어줄 땅은 한 뼘도 남지 않게 되고 맙니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대왕을 버리고 옛 주인을 찾아가 섬길 것이며, 부모처자와 옛 벗들과 조상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그리 되면 대왕께서는 누구와 더불어 천하를 차지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것이 대왕께서 육국의 후손을 다시 왕으로 봉해서는 안 되는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린 장량은 마지막 젓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오직 초나라가 강성할 수 없게 만드는 길만 보고 계시지만, 반드시 모든 일이 대왕의 뜻과 같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초나라가 강성해지면 대왕께서 세운 육국의 후손들은 다시 스스로를 굽혀 초나라를 따를 것이니, 그때는 그들을 어떻게 신하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그들을 다시 왕으로 봉해서는 안 되는 여섯 번째 이유가 됩니다.”

말을 마친 장량은 갈라 쥐고 있던 마지막 젓가락을 소리 나게 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잠시 입을 다물어 뜸을 들인 뒤에 자르듯 말했다.

그 계책을 올린 손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대왕께서 참으로 그 계책을 쓰신다면 천하를 얻는 일은 영영 글러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장량의 말을 듣자 한왕도 비로소 훤히 깨달아지는 일이 있는 듯했다. 마침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음식을 뱉어내며 성난 소리로 외쳤다.

그 더벅머리 유생(儒生) 놈이 하마터면 큰일을 망쳐놓을 뻔했구나!”

그리고는 일껏 만들어 놓은 육국의 왕인(王印)을 모두 녹여버리게 했다. 그런 한왕의 명이 얼마나 엄중했던지 그걸 전해들은 역이기는 무안하여 며칠이나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자치통감은 그 일을 기록한 끝에 순열(荀悅)의 논의를 실었는데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일찍이 장이와 진여가 진섭(陳涉=진승)을 찾아가 육국을 되일으켜 한편으로 삼으라(復六國自爲樹黨)고 한 것과 역생이 한왕을 찾아가 달랜 것은, 그 말한 것은 같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다르다(說者同而得失異者). 진섭이 일어날 때는 천하가 모두 진나라가 망하기를 바랐으나, 초나라와 한나라가 나뉘어 형세가 정해지지 않은 그때에는 천하가 반드시 항씨(項氏) 망하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다. 따라서 진섭에게는 육국을 되세우는 것이 말하자면 자기편을 늘리고 진나라의 적을 더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진섭은 아직 천하의 땅을 오로지하지 못했으니 제 것이 아닌 것을 남에게 주어(取其非有與於人) 속빈 은혜로 알찬 복을 얻어낸(行虛惠而獲實福) 셈이었다. 그러나 한왕에게 육국을 되세우게 하는 것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것을 잘라내 적에게 보태주는(割己之有而以資敵) 꼴이요, 헛된 이름을 내세워 실제의 화를 얻는 (設虛名而受實禍)길이었다.’

그 사이에도 형양 성밖은 점점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패왕 항우는 겉보기에는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여기저기에서 마구잡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창으로 보낸 군사들이나 용도(甬道)를 끊는 군사들 모두 패왕의 본진에서 멀리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언제든 돌아와 힘을 집중할 수 있는 거리에서 싸우다가 부름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쩌면 오창이나 용도 그 자체가 형양의 일부나 다름없이 이어져 있어, 패왕은 처음부터 한왕 유방이 있는 형양으로 대군을 집중해 왔다고 볼 수도 있었다.

형양 성안에 틀어박혀 그런 바깥의 정세를 살피고 있는 한왕의 근심은 나날이 커졌다. 한신을 불러들일 수도 없고, 달리 크게 의지할 만한 원병을 기대할 수도 없어 그런지 다가오는 패왕의 대군이 훨씬 크고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근심을 억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급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주발 장군이 용도(甬道)를 버리고 형양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종리매와 용저가 번갈아 용도를 끊고 앞뒤에서 들이치는 바람에 군사를 태반이나 잃고 쫓겨 왔다고 합니다. 용도가 모두 허물어졌으니, 이제 오창에서 오는 양도(糧道)는 온전히 끊어져버린 셈입니다.”

한왕이 그 말에 놀라고 있는데 피 칠갑을 한 주발이 비척거리며 들어왔다.

못난 신() 주발이 대왕을 뵙습니다. 형양성의 양도(糧道)를 지켜내지 못한 죄를 엄히 벌하여 주십시오.”

주발이 한왕 앞에 엎드리며 먼저 죄부터 빌었다. 버틸 대로 버티다가 쫓겨 온 흔적이 온몸에 역력했다. 한왕이 주발에게 다가가 싸안듯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장군이 초나라의 두 맹장(猛將)과 맞서 외롭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은 과인도 일찍 들었다. 진작 한 갈래 군사를 내어 장군을 도와야 했으나 형양성의 형세가 불안하여 그리하지 못했다. 이 모두가 과인이 모자란 탓이니 장군은 스스로를 너무 허물하지 말라!” 

그리고 오히려 주발을 위해 크게 잔치를 열고 그가 이끌던 장졸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넉넉히 내렸다. 그런데 주발이 형양성 안으로 쫓겨든 그 이튿날이었다. 성 밖으로 나갔던 탐마(探馬)들이 잇달아 뛰어들며 다시 급한 소식을 전해왔다. 

패왕이 군사를 하나로 모아 형양으로 다가들고 있습니다. 지금 동쪽 30리 되는 곳에 이르러 가만히 항오를 정비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형양성을 에워싸고 들이칠 듯합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한왕이 장량과 진평을 불러 물었다. 

이제 곧 형양성은 초나라 대군에게 에워싸일 것이오. 아직 성문을 드나들 수 있을 때 반드시 해두어야 할 일이 무엇이겠소?” 

먼저 각지로 사자를 보내 항왕의 등 뒤를 어지럽게 하는 일부터 재촉해야 합니다. 대장군 한신에게 사람을 보내 조나라와 인접한 땅에 있는 초나라의 군사들을 공격하게 하고, 팽월에게도 사자를 보내 보다 활발하게 양() 부근의 초나라 군사들을 유격(遊擊)하게 하십시오. 또 구강왕 경포도 형양성에 갇히기 전에 회남으로 내려 보내십시오. 경포의 군사는 이곳에서는 큰 힘이 되지 않지만, 회남으로 내려가 자기들의 옛 땅을 찾게 하면, 항백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이라도 그대로 회남에 잡아둘 수 있을 것입니다.” 

장량이 마치 묻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도 이왕 도우러 올 원병(援兵)이 없다면 포위한 적의 압력을 줄여줄 우군의 유격전이라도 독촉하는 일이 옳다 여겼다. 곧 장량의 말대로 한신과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고, 경포도 서둘러 회남으로 내려가게 했다. 

패왕 항우는 한왕 유방이 헤아린 것보다 재빨리 형양성을 에워쌌다. 다음날 새벽 날이 새면서 성루에서 망을 보던 한군은 어느새 성이 초나라 군사들에게 두텁게 에워싸여 있음을 보고 몹시 놀랐다. 종을 치고 딱따기를 두드려 여럿에게 그 일을 알렸다. 

그 바람에 새벽잠에서 깨난 한왕도 동문 문루(門樓)로 나가 적의 형세를 살펴보았다. 성 밖 곳곳에 초나라 깃발이 휘날리고 네 성문 앞에는 각기 커다란 진채가 얽어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오리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패왕의 진채를 마주보게 되자 한왕의 가슴은 자신도 모르게 서늘해왔다. 다시 팽성에서 당한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때 마치 한왕이 문루에 올라 보고 있음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문루 앞 초군 진채의 진문이 열리며 한 장수가 말을 몰아 나왔다. 보검을 차고 오추마에 높이 앉은 패왕 항우였다. 패왕이 문루를 올려보며 대뜸 우레같이 소리쳤다. 

한왕은 어디 있느냐? 한왕 유방은 나와 과인의 말을 들어라!” 

한왕 유방이 마지못해 성가퀴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패왕 항우의 말을 받았다. 

() 아무개는 여기 있소. 대왕께서는 무슨 일로 과인을 찾으시오?” 

말은 공손하게 존대를 했지만 그 말투나 표정은 유들유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한왕의 얼굴을 보자 패왕의 얼굴이 이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한왕이 여러 제후들을 이끌고 비어있는 팽성에 쳐들어와 분탕질을 친 일이 새삼 분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그 마당에도 꼬박꼬박 존대를 올리며 겸손한 척하는 그의 의뭉스러움이 더 미웠다. 저 홍문(鴻門)에서도 신()과 제()를 아울러 칭하며 비굴하게 비는데 속아 그물에 걸린 고기 같던 한왕을 놓쳐버리게 되지 않았던가. 

장돌뱅이 유계(劉季). 너는 과인이 이른 줄 알면서도 어서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지 않고 무얼 하느냐? 지금이라도 네놈이 항복하면 과인의 진중에 잡혀 있는 네 늙은 애비 어미와 못생긴 계집을 풀어줄뿐더러, 그것들과 함께 풍패(豊沛)로 돌아가 곱게 늙어죽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허나 네놈이 허풍을 떨며 뻗대다가 성이 떨어지는 날에는, 뉘우쳐도 이르지 못하는(後悔莫及) 지경에 이를 것이다. 네 고기로 젓을 담가 천하 곳곳에 돌려 과인에게 맞서려한 네 죄가 얼마나 큰지를 뭇사람들에게 깨우쳐 주겠다.” 

패왕이 대뜸 소리를 높여 그렇게 한왕을 꾸짖었다. 그러나 한왕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유들유들한 얼굴로 패왕을 내려보며 깨우쳐 주듯 말했다. 

대왕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과인은 통 알아듣지 못하겠소. 대왕과 과인은 다같이 포의에서 몸을 일으켰고, 공을 이룬 뒤에는 또한 둘 모두 의제(義帝)로부터 봉지(封地)와 왕호(王號)를 받은 제후에 지나지 않았소. 대왕이 비록 의제를 해쳤으나, 이는 제후로서 천자를 시해한 것이지, 그 일로 대왕이 곧 천자가 되어 과인보다 높이 된 것은 아니외다. 지난 여름 과인의 향리를 짓밟고 부모처자를 잡아간 것도 같은 제후로서 지나친 짓인데, 이제는 무슨 천자라도 된 것처럼 도리어 내게 죄를 묻겠다니 이 무슨 무례요?” 

저놈이 아직 제 죄를 모르고 찢어진 주둥이라고 함부로 놀리는구나. 너는 과인이 진나라의 주력(主力)을 맞아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에 잔꾀와 요행수로 먼저 관중에 들어와 진나라의 옥새와 보물을 모두 차지하였다. 그 죄만해도 백번 죽어 마땅하나, 홍문의 잔치에서 목숨을 애걸하는 네 몰골이 가긍하여 살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래도 함께 싸운 옛정을 살려 파촉(巴蜀) 한중(漢中)의 땅까지 떼어주며 왕으로 봉했다. 그런데도 네놈은 제 분수도 모르고 봉지를 뛰쳐나와 삼진(三秦)을 삼키더니, 급기야는 과인의 도읍인 팽성까지 노렸다. 제후들을 위협하여 군사를 부풀린 뒤에 과인이 잠시 비워둔 팽성으로 불시에 치고 들어와 보름 동안이나 갖은 분탕질을 쳤다. 이에 과인은 3만 정병을 몰아 네놈의 56만 대군을 사수(泗水)와 수수()에 모조리 쓸어 넣고, 다시 한 갈래 군사를 풍패로 보내 네 가솔들을 잡아들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군을 내어 그 모든 행악과 분란의 원흉(元兇)이 되는 너를 잡으러 왔거늘 그래도 네 죄를 모르겠느냐?” 

원래 패왕이 그리 잔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왕이 워낙 유들유들하게 나와서인지 패왕이 하나하나 한왕의 죄를 꼽으며 길게 꾸짖었다. 그래도 한왕은 조금도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받았다. 

지난 날 의제(義帝)께서는 먼저 관중에 드는 사람을 관중왕(關中王)으로 삼으리라 약조하셨소. 과인은 험준한 무관(武關)을 넘고 갖은 간난과 신고 끝에 진나라를 쳐부수어 함양을 차지하고 진왕(秦王) 자영의 항복을 받아내었소. 그러나 뒤에 입관(入關)한 대왕은 그 모든 공을 가로챘을 뿐만 아니라 과인을 관중에서도 가장 궁벽한 모퉁이가 되는 파촉(巴蜀) 한중(漢中)에 가두어 버렸소. 따라서 과인이 섶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듯(臥薪嘗膽)하여 다시 삼진(三秦)으로 나온 것은 원래 의제께서 약조하신 관중의 땅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였소이다. 이는 마땅히 차지해야 할 것을 되찾으려 나온 것일 뿐이니, 과인이 파촉 한중을 나온 것이 무슨 죄가 되겠소? 

거기다가 대왕은 진나라를 쳐 없애는 데 으뜸가는 공을 세웠으나, 제후로 남아 의제를 섬기기를 마다하고, 스스로 패왕(覇王)을 일컬으며 멋대로 천하의 우이(牛耳)를 잡았소. 멀고 가까움에 따라 제후를 세우고 땅을 갈라 주더니, 공론으로 세운 의제마저 침현)으로 내쫓아 마침내 장강(長江) 가운데서 시해하고 말았소. 그리고 망진(亡秦)을 대신해 천하를 힘으로 억누르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니, 제후들이 모두 과인에게 의지해 왔소이다. 과인은 관동(關東) 제후들의 간절한 부름을 외면하지 못해 함곡관을 나왔다가 낙양 신성(新城)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삼로(三老) 동공(董公)으로부터 의제께서 시해당한 소식을 들었소. 

과인은 왼쪽 소매를 벗고 크게 통곡한 뒤에 의제를 위해 발상거애(發喪擧哀)하고 사흘이나 임곡(臨哭)하였소. 그리고 천하에 사자를 보내 제후들에게 의제가 시해 당하신 일을 알리니 며칠도 안 돼 모여든 왕이 다섯에 군사가 50만이 넘었소. 이에 임금을 시해한 대역의 무리를 치고자 그 소혈(巢穴)이 되는 팽성으로 밀고 들어갔던 것이오. 군진(軍陣)의 강약이 반드시 충의(忠義)와 나란히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히도 다시 밀리고 말았으나, 원통하게 시해된 임금을 위해 보수()하려 한 것이 무슨 죄가 되겠소?” 

이 말을 듣자 패왕 항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불이 철철 듣는 듯한 두 눈을 흡뜨고 문루를 올려다보며 무어라 거친 욕설을 퍼부으려는데, 패왕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성안을 살펴보던 범증이 가만히 일깨워 주듯 말했다. 

대왕께서는 저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겪은 일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잣거리에서 닳고 닳은 한왕의 더러운 잔꾀와 반들거리는 말솜씨에 다시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한왕은 지금 일부러 말을 길게 하여 한편으로는 대왕의 들끓는 기혈(氣血)을 뒤틀어 엎고, 다른 한편으로는 듣고 있는 사졸들에게 대왕의 허물을 두루 성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는 입을 섞어 말하지 마시고 이만 진채 안으로 드시지요. 어차피 성을 깨고 한왕을 사로잡아야 끝나게 될 싸움입니다.” 

그러면서 옷깃을 끌 듯 패왕을 재촉해 진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왕 곁에서 패왕과 범증이 하는 짓을 말없이 보고만 있던 장량이 문득 한왕을 보고 말했다. 

어서 장수들을 불러 한바탕 모진 싸움을 채비하게 하십시오. 우리는 어쩌면 오늘 이 형양성 안에서 치러야 할 싸움 중에 가장 힘든 싸움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왕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성안의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으게 한 뒤에 당부했다.

이제 곧 항왕의 무서운 공성(攻城)이 시작될 것이다. 모두 죽기로 싸워 성을 지켜라. 오늘 이 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성이 떨어지면 그대들이 과인을 따라 눈비 맞고 들판에 자며 세운 공은 모두 물거품이 될 뿐만 아니라, 한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고 낯선 형양 땅에 흰 뼈를 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 성을 지켜낸다면 천하는 머지않아 우리 한나라의 천하가 된다.” 

그와 같은 한왕의 말을 받아 장량이 차분하게 장수들에게 일러주었다. 

우리가 오늘만 버텨낼 수 있으면 적의 날카로운 기세는 차차 무디어져 끝내 우리는 이 형양성을 지켜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여기서 항왕을 붙들고 있는 사이에 대장군 한신은 조() ()에 이어 제()나라를 평정하고 서초(西楚)의 동북으로 밀고들 것이며, 구강왕 경포는 회남 땅을 되찾은 뒤에 서초의 염통이나 위장 같은 땅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거기다가 위()상국 팽월은 다시 대량(大梁) 땅으로 나와 초나라 군사들의 양도(糧道)를 끊어놓을 것이니, 항왕도 더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을 수가 없게 된다. 울화가 치밀어 길길이 뛰다가 마침내는 지치고 굶주린 군사를 몰고 허둥지둥 서초로 돌아갈 터인데, 그때 우리가 그 뒤를 두들기고 대장군과 구강왕과 위상국이 양쪽에서 맞받아치면, 아무리 천하의 항왕이라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두려움으로 은근히 질려있던 한나라 장수들도 조금 생기를 얻은 얼굴이 되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항왕의 용맹과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에 기죽어 있는 사졸들을 북돋고 다그쳤다. 이에 사졸들도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수성의 채비에 들어갔다. 

한군은 창칼의 날을 벼리고 전포와 갑주를 챙겨 맹렬한 공성전에 대비했다. 활시위와 화살촉을 손질하여 성벽으로 다가오는 적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어놓을 채비를 하는 한편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에 대비해서는 그 머리 위에 퍼부을 통나무와 바위덩어리를 성가퀴 곁에 가지런히 재어놓았다. 따로 성벽 위에 큰 솥을 걸고 물과 기름을 끓이는 사졸들도 있었다. 

장량이 헤아린 대로 패왕 항우의 첫 번째 공격은 그날 해가 지기 전에 시작되었다. 패왕은 전군을 휘몰아 동서남북 네 성문에 불을 지르게 하고 일시에 성벽을 기어오르게 했다. 자신도 성벽에 구름사다리를 걸치고 이졸들보다 앞장서 기어올랐다. 

그런 초나라 장졸들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맞서는 한군의 분투도 그 못지않게 치열했다. 다가드는 적에게는 화살 비를 퍼붓다가 끝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면 장대로 사다리를 밀쳐냈다. 그래도 안 되면 기어오르는 적병의 머리위에 통나무와 바위덩어리를 내던지고 끓는 물과 기름을 퍼부었다. 

아무리 패왕의 힘과 기세가 빼어나고 한번 떨치고 일어서면 무서운 전투력을 펼쳐 보이는 초나라 군사들이지만, 한군이 그렇게 나오자 밖에서 성을 들이치는 쪽의 불리함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성벽 위로 몇 명 기어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초나라 군사만 적잖이 상하고 말았다. 장졸들 틈에 섞여 구름사다리를 기어오르던 패왕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통나무와 바위덩어리 때문에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모두 물러나라. 전열을 가다듬은 뒤에 다시 한 번 들이쳐 보자!” 

마침내 패왕은 그렇게 영을 내리고 징을 울려 군사를 물리게 했다. 

첫 번째 공성(攻城)에서 얻은 것 없이 군사만 상하고 물러났으나 패왕 항우의 기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성벽에서 물러난 장졸들을 배불리 먹이고 쉬게 하더니 날이 저물기 바쁘게 다시 형양성 성벽 위로 내몰았다. 

적은 낮의 싸움으로 지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서운 기세에 반쯤은 얼이 빠져 있을 것이다. 적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말고 몰아붙여 오늘밤으로 형양성을 우려 빼자!”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다시 장졸들의 앞장을 섰다. 그러나 한군(漢軍)의 대비도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횃불에다 화톳불까지 곁들여 성벽 위를 대낮같이 밝히고 기다리다가, 함성과 함께 성벽을 쳐들어오는 초나라 군사들을 맞았다. 낮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초군(楚軍)이 성벽으로 다가들 때까지는 활과 쇠뇌를 쏘고, 성벽을 기어오르면 그 머리 위로 통나무와 돌덩이를 내던졌다. 더러는 끓는 물과 기름을 퍼붓기도 했다. 

그래도 어둠 속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낮보다 더 많은 초군 장졸들이 성벽 위로 기어올랐다. 그 바람에 성벽 위에서 한바탕 피투성이 싸움이 벌어졌지만 초군은 그리 오래 버텨내지 못했다. 특히 패왕이 앞장선 동문 부근의 성벽 위가 그랬는데, 기세 좋게 기어오른 100여 명의 초나라 군사들도 끝내는 한군의 매서운 반격을 받아 바람에 쓸린 가랑잎처럼 성벽 아래로 다시 떨어져 내렸다.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라. 아무래도 밝은 날 다시 채비를 갖춰 싸우는 게 좋겠다.” 

밤이 깊어 이제는 창검 부딪는 소리와 성벽을 기어올랐다가 떨어지는 장졸들의 구슬픈 비명소리마저 잦아지자 항우가 마침내 그런 명을 내렸다. 더 고집을 부려 보려 해도 마련된 공성 기구가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다시 성벽 위로 몰아댈 장졸도 별로 없었다. 같은 장졸을 하룻밤에 두 번씩이나 화살비와 돌 우박 사이로 내몰 수는 없었다. 

다음날 웬일인지 패왕은 하루 종일 장졸들을 쉬게 했다. 그리고 늙고 힘없는 후군(後軍)과 시양졸(養卒)들을 풀어 하루 종일 인근에서 공성에 쓸 기구와 물품들을 거둬 오게 했다. 부서진 구름사다리를 다시 얽을 장대와 막대, 성문을 사를 불쏘시개와 장작, 먼저 성벽 위 적의 기를 꺾어놓기에 넉넉할 만큼 쏘아붙일 수 있는 활과 화살을 만들 재료 따위였다. 

패왕의 불같은 성화에 다시 형양성을 들이치는 데 쓰일 기구와 병기의 자료들이 그날 한낮으로 대강은 거둬졌다. 패왕은 다음날 아침 세 번째로 전군을 들어 성을 칠 작정으로 장졸들을 다그쳐 밤새 공성에 필요한 모든 채비를 갖추게 했다. 그런데 날이 저물기 바쁘게 범증이 찾아와 말했다. 

대왕. 오늘밤 다시 한 번 형양성을 쳐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직 채비가 갖춰지지 않았소. 내일 밝은 날 채비를 갖춰 끝장을 내겠소.” 

아닙니다. 성안에 있는 적에게 쉴 틈을 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삼경이 되기 전에 반드시 군사를 내어 적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제 하루 두 번이나 무리하게 성을 들이치는 동안 상한 우리 군사의 목숨 값을 이제 받아 내야 합니다.” 

비로소 그런 범증의 말에 딴 뜻이 있음을 알아차린 패왕이 우기는 말투를 없애며 물었다. 

아부(亞父),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상한 우리 군사의 목숨 값을 받아 내다니요?” 

어제 비록 적은 안간힘을 다 써 우리 군사를 막아냈으나, 그 날카로운 기세에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움직이면 또다시 전력을 끌어내 맞서 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둠을 틈타 성벽에 구름사다리 몇 개만 기대놓게 한 뒤 일시에 횃불을 밝히고 든든한 방패를 든 군사 약간을 함성과 함께 성벽 쪽으로 밀고 들게 하십시오. 그러면 적은 다시 우리가 어제처럼 전군을 들어 야습을 온 줄 알 것입니다. 크게 놀라 활과 쇠뇌의 살()이며 성벽 위에 마련해둔 돌과 통나무를 있는 대로 퍼 부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물러나고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군사를 더 상하지 않고도 성안의 물자를 소모케 하고 적의 심신을 고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어제 성을 공격하다 죽은 우리 군사들의 목숨 값입니다.” 

범증이 그렇게 말해 패왕에게 자신의 계책을 내놓았다. 패왕의 타고난 전투 감각도 그 말을 얼른 알아들었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 말을 따라주었다. 패왕의 무시무시한 전투력과 범증의 빼어난 병략이 다시 배합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삼경 무렵 패왕은 범증이 시키는 대로 사방으로 군사를 내어 형양성을 들이치는 척했다. 성벽의 한군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성벽으로 다가오는 초나라 군사들에게 화살을 퍼붓고 돌과 통나무를 굴렸다. 횃불이 밝다 해도 성벽 아래는 잘 보이지 않아 구름사다리가 걸쳐져 있는 곳이면 무턱대고 끓는 물과 기름을 쏟아 붓기도 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초나라 군사들이었다. 전날 싸움으로 겁을 먹었는지 성벽 아래에서 함성만 지르며 오락가락 할 뿐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군사들은 없었다. 하지만 전날 급한 지경까지 몰려 본 한군이라 끝내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초나라 군사들의 함성에 쫓기다가 날이 훤히 밝은 뒤에야 겨우 성가퀴에 기대 눈을 붙였다. 

다음날 아침 해뜨기가 무섭게 패왕은 다시 한 번 군사를 내어 성을 치는 시늉을 했다. 이번에는 낮이라서 한군의 눈을 속이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크게 군사를 상하지 않고 한나절 한군을 모두 성벽 위로 끌어내 고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성안의 한군도 무언가 초나라 군사가 달라졌다는 것은 눈치를 챘다. 

어째 초군의 움직임이 전과 같지 않구려. 간밤에도 함성만 질러대더니 지금 또 구름사다리만 성벽에 걸쳐놓았을 뿐 기어오를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지 않소? 방패 밑에 숨어 화살만 쏘아붙이고 있는 품이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소. 자방 선생은 어떻게 보시오?” 

장졸들과 마찬가지로 간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한 한왕 유방이 성벽 위를 둘러보다가 뒤따르는 장량을 보고 물었다. 

우리를 속이기 위한 거짓된 움직임(陽動)입니다. 아무래도 범증이 꾀를 낸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군사들은 밤낮없이 적의 속임수에 끌려 다니며 눈 한번 제대로 붙여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줄곧 성 밖 초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눈치이던 장량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이 그렇다면 별일 아니라는 듯 시원스레 말했다. 

그럼 장졸들에게 명을 내려 저들을 못 본 체하게 하면 되지 않소?”

아니 됩니다. 적진이 성벽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 자칫하면 적의 또 다른 계략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거짓으로 성을 치는 척하다가 갑작스레 강습으로 전환하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고단하더라도 매번 있는 힘을 다해 적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량이 어두운 얼굴로 그렇게 한왕의 말을 받았다. 한왕도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천근 무게에 짓눌린 것처럼이나 무거워졌다. 

오창(敖倉)으로 이어지는 용도(甬道)가 끊어져 군량도 넉넉지 못한데 이제는 몸까지 고단하게 되었구나! 이 형양성이 얼마나 버텨 낼지 실로 걱정이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장량의 말을 따랐다. 한왕은 장수들을 불러 모아 패왕과 범증이 노리는 바를 일러주고 초군의 움직임이 속임수로 보일지라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장수들은 그런 한왕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사졸들은 달랐다. 초나라 군사들이 같은 짓을 하루 더 되풀이하자 자기들도 다 알겠다는 듯 저희끼리 수군거렸다. 

뭐야? 누굴 놀리는 거야? 성벽 위로 기어오를 것도 아니면서 웬 난리야?” 

또 그 짓이군. 덤비지도 못하면서 고함만 질러대 어쩌겠다는 거야?” 

그리고 사흘째부터는 아예 무시해 버렸다. 초군이 아무리 성벽 가까이 다가와 금방이라도 기어오르는 시늉을 해도 한군 사졸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장수와 군리(軍吏)들이 번갈아 사졸들 사이를 돌며 싸울 채비를 다그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그날 밤 기어이 한군은 큰 낭패를 당하고야 말았다. 

2월이라고는 하나 차갑기 그지없는 밤기운에 어둠까지 짙은 삼경 무렵 또 전날 밤처럼 성벽 아래서 함성이 일었다. 한왕의 엄명을 받은 장수와 군리들이 저마다 사졸들 사이를 돌며 싸울 채비를 다그쳤으나 사졸들은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수와 군리들의 언성이 높아갈 무렵 갑자기 성가퀴를 넘어서는 그림자가 있었다. 

초나라 군사다. 초나라 군사가 성벽을 기어올라 왔다!” 

숨넘어가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와 같이 놀란 외침소리가 들렸다. 이어 성벽 여기저기서 더 많은 불길한 술렁거림과 비명이 들리고서야 한군 사졸들도 비로소 큰일이 터진 줄 알았다. 그제야 놀라 창칼을 집어 들고 초군을 맞아 싸우기 시작했으나, 어느새 성벽 위는 잇따라 구름사다리를 오른 초군들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다. 

마침 형양성 안에는 주발과 하후영 주가 기신 등 패현에서부터 따라온 장수들과 역상 근흡 종공(從公) 같은 역전의 맹장들이 남아 있었다. 또 한왕(韓王) ()과 사로잡혀온 위표(魏豹)도 장수들과 함께 사졸들을 다스렸다. 그들이 앞장서서 사졸들을 목 베어 가며 다그쳐서야 성벽 위로 올라온 수백 명의 초나라 장졸을 겨우 물리칠 수 있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위태로운 고비는 넘겼지만, 이튿날부터 말 그대로 고달픈 한군의 농성전(籠城戰)이 시작되었다. 형양성 안의 한군들은 뻔히 속임수인줄 알면서도 밤낮없이 이어지는 초군의 공세에 잠 한숨 편히 자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거기다가 날이 지날수록 성안의 양식까지 다해가 형양성은 점점 괴로운 지경으로 몰려갔다. 

형양성이 패왕 항우의 대군에 에워싸인 지 달포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초군의 양동(陽動)에 지치고 갈무리한 곡식이 바닥나 점차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 성안 군민들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한왕이 장량과 진평을 불러놓고 말했다. 

초군의 공세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데다 양도(糧道)마저 끊어져 쌀 한 톨 성안으로 들여올 수 없으니 실로 걱정이오. 식량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소?” 

끼니를 한 끼 줄이고 군마(軍馬)를 잡아 고기를 써도 두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평이 별로 헤아려 보는 법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 진평은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일했으나, 이재(理財)에도 밝아 군중(軍中)의 금전과 곡식의 출납까지 함께 맡아보고 있었다. 한왕이 장량과 나란히 진평을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달로는 대장군 한신이 제나라를 평정하고 조() () ()의 전력을 긁어모아 돌아오기를 기다리기에는 모자라오. 팽월이 양()땅을 휘저어 초군의 양도를 끊어놓는다 해도 초군이 굶주림에 몰려 돌아가기를 기다리기에는 두 달은 너무 짧으며, 또한 경포가 구강(九江) 땅을 되찾고 다시 서초로 밀고 들어가 항왕을 그리로 불러들이기를 바랄 수 있을 만큼 길지도 못하오. 우리 힘으로 양도를 뚫지 못한다면 달리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을 벌 궁리를 해봐야겠소. 무엇이든 항왕에게 내주고 싸움을 미뤄 얼마간이라도 그 날카로운 칼끝을 피해볼 길은 없겠소?” 

대왕께서 항왕에게 무엇을 내주시고 싸움을 미루자 하시겠습니까?” 

주고받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이번에도 진평이 나서서 한왕의 말을 받았다. 한왕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형양 동쪽의 땅을 모두 항왕에게 내어주기로 하고 잠시 휴전을 하면 어떻겠소?” 

형양 동쪽의 땅은 이미 항왕의 세력 아래 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형양성만 우려 뽑으면 천하가 모두 항왕의 땅이 될 참인데, 무엇 때문에 이미 차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형양 동쪽의 땅을 받고 싸움을 그치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진나라를 쳐 없애고 천하를 쪼갤 때 항왕은 우이(牛耳)를 쥐고 있으면서도 서초(西楚)만을 갈라 그 뜻이 크지 않음을 드러내었소. 또 형양 동쪽에 있는 조나라와 연나라는 지금 대장군 한신과 장이가 차지하고 있고, 양과 구강은 팽월과 경포 때문에 어수선하오. 따라서 한신과 장이에게 조나라와 연나라를 내놓게 하고, 또 팽월과 경포마저 관중으로 불러들여 서초의 앞뒤를 평온하게 만들어준다는데 어찌 항왕이 귀가 솔깃하지 않겠소?” 

그래도 진평은 그런 한왕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차마 막 대놓고 따지지는 못해도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한왕의 말을 듣다가 장량을 건너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장량이 전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평 대신 한왕의 말을 받았다. 

지금 항왕으로부터 휴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이치가 아니라 힘입니다. 먼저 우리가 휴전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 뒤에 사자를 보내 싸움을 미루자고 달래야만 항왕도 대왕의 뜻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먼저 힘을 보여준다? 그게 무슨 뜻이요? 무얼 어떻게 보여준단 말이오?” 

한왕이 문득 반가워하는 낯빛으로 장량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우리가 괴로워하는 일은 성안의 양식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과 가까운 날에는 구원을 올 우군(友軍)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왕이나 범증도 그쯤은 헤아리고 있을 터이니, 우리는 먼저 그 헤아림이 틀렸다는 것부터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사흘 뒤 술을 넉넉히 거르고 마소를 여러 마리 잡아 성벽위에서 크게 잔치를 벌이도록 하십시오. 우리 장졸들이 종일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면 항왕은 아직도 성안의 곡식과 고기가 넉넉한 줄 알고 몹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시 날을 잡아 한밤중에 성문을 열고 동 남 북 세 갈래로 군사를 내 급작스레 적을 들이치게 하십시오. 적병은 형양성을 에워싼 뒤로 처음 당하는 일이라 적잖이 허둥댈 것입니다. 그 틈을 타 길을 앗고 사자를 세 갈래로 배웅한 뒤 성안으로 돌아오면 적은 우리가 급히 원병을 부른 줄 알고 초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성을 빠져나간 우리 사자가 한신과 팽월, 경포에게 달려가 초군과 전단을 열기를 재촉하고, 성고와 오창에서도 약간의 유군(遊軍)을 움직이게 하면 항왕은 자신의 헤아림이 틀렸다고 보아 크게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때 사자를 보내 형양 동쪽을 모두 내놓고 관중으로 물러날 터이니 이만 싸움을 거두자고 해보십시오.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한신과 장이를 불러들여 위() () ()을 내놓고, 팽월과 경포를 단속해 양()과 구강(九江)을 소란스럽게 하지 않겠다고 약조하시면 항왕도 대왕의 요청을 무턱대고 뿌리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자방의 말을 들으니 비로소 길이 훤히 보이는 듯하구려. 그대로 따르리다.” 

한왕이 한층 환한 얼굴로 그렇게 장량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왠지 진평은 여전히 비웃는 듯한 미소를 입가에서 지우지 않았다. 

한왕은 그날로 장량이 하자는 대로 했다. 곡식을 아끼지 말고 술을 빚게 하더니 술이 익기 바쁘게 걸러 독째 성벽 위로 옮기게 했다. 그리고 다시 보란 듯이 수십 마리 마소를 잡아 성벽 위에서 지지고 굽게 하며 장졸들과 흥청망청 잔치를 벌였다. 또 잔치를 벌인 그날 밤에는 동 남 북 세 성문으로 급작스레 군사를 내어 낮의 일로 어리둥절해 있는 초나라 군사들을 흩고 세 갈래 사자를 10리 밖으로 배웅하였다. 

그렇게 되자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는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쓸데없이 한군을 지치게 하는 양동(陽動)을 멈추었고, 진채도 성문에서 너무 가까운 것은 몇 마장 뒤로 빼서 또 다른 성안으로부터의 기습에 대비했다. 무엇 때문인지 항왕도 며칠은 진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제 때가 된 듯합니다. 항왕에게 사자를 보내 싸움을 거두자고 해보시지요.” 

며칠 성벽 위에서 찬찬히 적진을 살피던 장량이 그렇게 한왕에게 권했다. 이에 한왕은 초나라 사람으로 말솜씨가 뛰어난 육고(陸賈)를 패왕에게 보내 휴전을 권해보게 했다. 

육고가 패왕 항우를 찾아보고 말했다. 

우리 대왕께서 형양 서쪽의 땅을 모두 패왕께 바칠 터이니 이만 싸움을 거두자고 하십니다. 형양 동쪽에서 함곡관까지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걸 막아주는 바깥울타리로 남겨둘 뿐, 한나라는 애초대로 관중(關中) 땅만으로 넉넉하다고 하십니다.”

관중 땅만으로 넉넉하다는 사람이 함곡관을 나온 지 일년이 넘도록 중원(中原)을 기웃거리고 있는가? 거기다가 형양 서쪽의 땅은 이미 과인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왕이 무엇을 과인에게 들어다 바친다는 것인가?” 

며칠 전의 일로 마음이 어지럽던 패왕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육고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육고가 미리 준비해온 대로 한신과 팽월, 경포를 들먹이며 그들의 세력을 과장했다. 그 말을 듣자 며칠 전 한왕의 세 갈래 사자가 형양성을 빠져나간 게 한층 더 께름칙했으나, 패왕은 여전히 내색 없이 말했다. 

그것들은 모두 과인이 형양성을 깨고 한왕 유방만 사로잡으면 허깨비가 되어 흩어질 머리 없는 귀신들이다. 허나 네가 명색 제후의 사자로 와서 하는 말이니 내 장상(將相)들과 그 일을 논의는 해보겠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범증을 불러오게 했다. 

유방이 사자를 보내 휴전을 청해왔소. 아부(亞父)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대군을 이끌고 먼 길을 와서 싸움을 하다 그만두는 것은 반드시 그럴 까닭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지금 한군과 더 싸울 수 없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범증이 무슨 소리냐며 묻는 듯한 눈길로 패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패왕이 구차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과인이 싸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휴전으로 얻을 게 있어서요. 유방은 과인에게 형양 동쪽을 모두 들어다 바치기로 했소.” 

유방만 죽이면 형양 동쪽만이 아니라 천하가 모두 대왕에게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신과 장이가 조나라와 연나라를 차지하고 있고, 팽월과 경포의 무리도 곧 움직일 것이오.” 

패왕이 비로소 마음속의 걱정 한 자락을 펼쳐 보이자 범증이 차게 웃으며 받았다. 

대왕, 또 장돌뱅이 유방에게 속으셨습니다. 바로 말씀드리자면 저들이 술과 고기로 흥청거릴 때나 불시에 군사를 내어 에움을 뚫고 세 갈래로 사자를 내보낼 때는 신도 적잖이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휴전을 청하는 한나라의 사자를 맞고 보니 오히려 모든 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합니다. 지금 성안의 적은 식량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급히 구하러올 원병(援兵)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도 퍼뜩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항왕도 그쯤 되자 그 며칠 형양 성안의 한군이 벌인 일들이 무엇을 노린 것인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때 다시 범증이 어린아이 달래듯 간곡하게 권했다. 

대왕, 지금이야말로 유방을 잡아 죽이고 한나라를 쳐 없애기에 절호(絶好)한 때이니, 부디 이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번에 유방의 목을 얻지 않고 다시 놓아 보낸다면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말에 패왕이 시뻘게진 얼굴로 칼자루를 잡으며 소리쳤다. 

알겠소. 아부(亞父). 내 이제 사자로 온 자의 목부터 잘라 그 주인 유방의 간교한 속임수를 벌하겠소.” 

아니 됩니다. 사자를 죽이는 법이 아니거니와, 형양성 안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도 사자는 살려 보내야 합니다. 사자가 돌아가 우리가 속지 않은 것을 성안에 전함으로써 저들을 더 큰 두려움에 떨게 하게 하십시오.” 

범증이 그렇게 패왕 항우를 말렸다. 이에 다시 육고(陸賈)를 부른 패왕은 성난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꾸짖었다. 

마땅히 너를 죽여 과인을 속이려 한 죄를 물어야 하나, 명색 사자라 목숨은 살려준다. 돌아가서 유방에게 전하라. 내 사흘 안으로 형양성을 떨어뜨려 배은망덕한 유방을 사로잡고 지난날 홍문(鴻門)에서 붙여 보낸 머리를 반드시 그 어깨에서 떼어놓으리라고.” 

겁을 먹은 육고가 목을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돌아와 패왕의 말을 전하자 기대에 차서 기다리던 형양성 안은 갑자기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했다. 장량은 자신의 꾀가 듣지 않자 소태 씹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고, 장량만 믿고 있던 한왕 유방도 무거운 한숨만 쉬었다. 장수와 막빈(幕賓)들도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앞날을 걱정했다. 

그런데 오직 한사람 호군중위(護軍中尉) 진평(陳平)만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쫓겨 온 육고가 패왕의 으름장을 부풀려 전해도 차게 비웃을 뿐,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 그걸 알아본 한왕이 진평을 불러놓고 넌지시 물었다. 

천하가 이처럼 어지러우니, 어느 때가 되어야 안정될지 모르겠소.” 

천하를 안정시키는 일은 누가 어떤 사람을 얻고 부릴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도 사람을 바로 얻지 못하면 혼자서는 결코 천하를 평정할 수가 없습니다.” 

진평이 묻기를 기다린 듯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이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물었다. 

()호군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어떻게 해야 사람을 바로 얻는 것이 되오?” 

항왕은 사람됨이 남을 공경하고 인정이 많아 청렴하고 지조 있으며 예절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그에게로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공을 쳐주고 상을 베푸는 일과 작위를 내리고 봉지(封地)를 갈라주는 데는 인색하여, 제후로 삼고도 그 도장 모서리가 닳아빠지도록 관인(官印)을 내주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일껏 항왕을 따라나선 선비들도 온전히 그의 사람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오만하시고 예의를 가볍게 여기시어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은 대왕께로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땅을 떼어주는 데는 아낌이 없으시니, 청렴과 절개를 돌아보지 않고 이익 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비들이 많이 대왕을 찾아와 따르고 있습니다. 만약 초나라와 한나라 양쪽의 잘못됨을 버리고 바른 것을 따른다면 이는 사람을 바로 얻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바로 얻으면 손 한번 휘젓는 것만으로도 쉽게 천하를 평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한왕은 진평이 말하려는 바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잠깐 진평의 얼굴을 살피다가 다시 물었다. 

공의 말이 그르지 않음은 알겠으나, 강한 적에게 에워싸여 궁색한 성안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듯하구려. 이제 와서 어떻게 사람을 불러 모으고 써야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단 말이오?” 

이쪽에서 새로 얻고 보탤 수가 없어도, 맞서고 있는 저쪽에서 덜고 빼앗을 수만 있다면, 이쪽에서 새로 얻고 보태는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마음 내키시는 대로 사람을 욕보이고 나무라시기 때문에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을 얻지 못하듯이, 항왕에게도 우리가 쓰기에 따라서는 대왕에 못지않은 단처(短處)가 있습니다. 그걸 파고들어 항왕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떠나가게 할 수 있다면, 대왕께서 좋은 선비들을 새로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을 듣고서야 한왕도 비로소 진평이 뜻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진평에게 물었다. 진평도 더는 뜸들이지 않고 물음에 답했다. 

항왕이 믿고 의지할 만한 강직한 신하(之臣)는 범 아부(亞父)와 종리매(鍾離昧) 용저(龍且) 주은(周殷)등 몇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황금 수만 근()을 푸시어 이간책을 쓰시고(行反間) 그들 군신 사이를 떼어놓아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십시오. 항왕은 사람됨이 남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데다 참소하는 말을 잘 믿으니, 머지않아 안에서 저희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 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들이치면 반드시 초나라를 쳐부술 수가 있습니다.” 

항량이 죽은 뒤로 패왕은 범증을 아비처럼 따르고 있소. 실로 그를 일러 버금아비(亞父)라 하는 것도 말치레만이 아니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그들 사이를 황금으로 갈로 놓을 수 있겠소?” 

항왕의 진심이 아니라 그의 시기와 의심이 남의 말에 넘어가 범증을 멀리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히 항왕이 우리 반간계(反間計)에 넘어가지 않으면 또 다른 독수(毒手)를 써야겠지요.” 

진평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받자 마침내 한왕도 마음을 정했다. 

좋소. 그리해 봅시다. 모든 걸 진 호군(護軍)께 맡기겠소.” 

그리고는 황금 4만 근을 진평에게 내주게 하고 그 마음대로 쓰게 했다. 정말로 그 뒤 한왕은 그 황금이 들고나는 것에 관해서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진평은 전에 패왕 항우를 섬긴 적이 있어 초나라 군중(軍中)에 연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또 한나라 이졸(吏卒)들 중에는 초나라 사람들이 많아 초나라 군중에 첩자로 넣기에 좋았다. 진평은 그들 가운데 똑똑하고 말 잘하는 백여 명을 골라 그들이 함부로 한왕을 저버리고 초군에게 넘어갈 수 없도록 꼼꼼하게 손을 썼다. 형양성 안에 누군가 인질이 될 만한 사람을 남기는 한편, 서로를 이리저리 엮어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형국이 되게 했다. 진평은 그 모든 일이 뜻대로 짜여졌다 싶자 한왕에게서 받은 황금을 풀어 그들에게 듬뿍 나누어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초나라 군중으로 들어가 황금을 뿌려 저들의 마음을 산 뒤 내가 시킨 대로 헛소문을 퍼뜨려라. 항왕이 그걸 믿고 그들 장수들을 멀리하면, 그 모두가 너희들의 공인 줄 알고 크게 상을 주겠다. 살아 돌아오는 대로 지금 가져간 만큼의 황금을 더 내릴 것이요, 뒷날 우리 대왕께서 천하를 차지하는 날에는 모두 장상(將相)의 줄에 서게 해 그 공에 보답할 것이다.”

초나라 군중(軍中)으로 숨어든 한군 첩자들은 크게 두 갈래로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 한 갈래는 초나라 장수들의 마음을 패왕 항우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패왕은 종성(宗姓)인 항씨(項氏)들만을 믿어 타성(他姓) 장수들은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종리매나 용저와 계포 등을 보아라. 오중(吳中)을 떠날 때부터 이날까지 개나 말보다 더 충직하게 패왕을 위해 싸웠지만 아무도 제후나 왕에 봉해지지 못했다. 천하가 평정된다 해도 항씨 아닌 장수는 아무도 제후나 왕에 봉해지지 못할 것이다.” 

패왕은 우()미인에게 깊이 빠져 장차 그녀를 왕후로 세우려 한다. 그리고 우씨(虞氏)와 그 피붙이들을 처족(妻族)으로 여겨 곳곳에서 무겁게 쓰고 있다. 초나라의 장수는 무릇 항씨가 아니면 패왕의 처족이라도 되어야 앞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패왕이 천하를 얻는다 해도 결코 큰 광영을 기대할 수 없다.” 

황금을 넉넉히 풀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산 뒤에 거짓과 참됨을 교묘하게 섞어 그렇게 수군거리고 다니자 항씨 아닌 장수들은 저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한군 첩자들이 퍼뜨린 다른 한 갈래의 헛소문은 패왕으로 하여금 장수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종리매는 초나라 장수로서 어떤 제후나 왕에 못지않게 큰 공을 세웠으나, 땅 한 뼘 얻지 못하고 여전히 천한 몸종처럼 패왕 곁에서 부림을 받게 되자 마음이 달라졌다. 한왕 유방과 가만히 손을 잡고 패왕을 쳐부순 뒤에 천하를 나눠 가지기로 약조하였다고 한다.” 

용저는 구강(九江) 땅 때문에 심사가 틀어져 진작부터 한왕의 사람이 되어있다더라. 항성(項聲)과 더불어 경포를 쳐부수었으나, 패왕은 항백(項伯)에게 구강 땅을 주어 경포 대신 다스리게 하였다. 용저는 아직도 패왕에게 그지없이 충성스러운 체하지만 때가 오면 칼끝을 돌려 천하를 한왕 유방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한왕이 용저에게 구강왕(九江王)을 약속했다는 소문도 있다.” 

대사마 주은(周殷)도 이미 한군과 선이 닿아 있다고 한다. 형양성을 칠 때마다 앞장을 서는 것도 실은 패왕의 눈을 속임과 아울러 한군에게 넘어갈 때를 엿보기 위함이라 한다.”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얽은 것이었는데, 특히 지독한 것은 아부(亞父) 범증에 관한 것이었다. 

범증은 스스로 옛 초나라 유신(遺臣)을 자처하였고, 항량으로 하여금 양치기 중에서 왕손(王孫)을 찾아 초왕(楚王)으로 세우게 한 것도 그였다. 항왕이 진나라를 쳐 없애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었을 때도 초왕을 지켜내었으며, 마침내는 의제(義帝)로 높여 세우게까지 했다. 그런데 항왕이 의제를 장사(長沙)로 내쫓아 죽이자 범증은 마음이 변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항왕 곁에 붙어 꾀를 짜내고 있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하루빨리 항왕을 죽여 의제의 한을 풀어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방금 항왕으로 하여금 형양성을 에워싸게 한 일도 그렇다. 가까이 있는 적은 제쳐놓고 멀리 있는 한왕을 쫓아 수천리 길을 오게 한 것은 항왕의 세력이 피폐해지기를 기다리고자 함이나 다름없다. 거기다가 강한 적이 굳게 지키는 성을 지친 군사로 거듭 무리하게 치도록 몰아대는 것은 하루빨리 초군의 기력을 떨어뜨려 한군에게 반격할 틈을 주려는 속셈이다.” 

하나같이 그럴듯하게 짜인 말들인 데다 넉넉하게 푼 황금이 뒤에서 거드니 한군 첩자들이 퍼뜨린 유언비어는 곧 초나라 군중(軍中)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그러나 장수들은 패왕 항우를 두려워하여 들어도 못들은 척하고, 패왕은 또 워낙 높은 곳에 있어 그 말이 잘 들어가지 않은 탓인지 당장은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진평이 첩자들을 푼 지 열흘이 지나도 초나라 군중이 수런거리는 기색은커녕 항우의 불같은 공격만 기세를 더해갔다. 

항왕이 저리도 무섭게 성을 들이치는 것은 아직도 범증을 믿고 그 말을 따른다는 뜻이오. 거기다가 초나라 장졸들도 아무런 동요가 없으니 어찌된 일이오?” 

걱정이 된 한왕이 진평을 불러 물었다. 그러나 진평은 별로 걱정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원래가 이런 일은 바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며칠 더 두고 보시지요. 소금 먹은 놈이 물켜는 법이니, 머지않아 반드시 무슨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무얼 믿는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고는 알 듯 말 듯한 미소까지 띠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닷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갑자기 초나라 군사들의 공격이 끊어지더니 초군 전령(傳令) 하나가 문루 아래 나타나 소리쳤다. 

성안의 한군은 듣거라. 내일 우리 대왕께서 사자를 성안으로 보낼 터이니 한왕에게 그리 전하고 왕사(王使)를 맞을 채비를 하라 이르라!” 

싸우다 말고 난데없이 사자는 무슨 사자냐?” 

문루를 지키던 한나라 장수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초군 전령이 대답했다. 

너희 한왕도 지난번에 사자를 보내지 않았느냐? 이번에는 우리 대왕께서 사자를 통해 물으실 것이 있다 하셨다.” 

그러자 문루를 지키던 장수가 한왕에게로 가 그 소식을 전했다. 한왕이 곁에 있던 장량과 진평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난번 육고가 과인의 사자로 갔을 때 항왕은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듯 내쫓지 않았소? 그리고 이 보름 말 한마디 없이 성만 짓두들기더니 갑자기 어찌된 일이오?” 

아마도 이제야 우리가 황금과 사람을 푼 효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항왕에게도 우리에게서 엿보고 싶은 것이 생겼음에 틀림없습니다.” 

진평이 나서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이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진평에게 물었다. 

항왕이 우리에게서 무얼 엿본단 말이오?” 

드디어 항왕의 의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그의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한나라와 내통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함입니다. 이제 범증을 항왕에게서 영영 떼어놓을 독수(毒手)를 펼쳐볼 때가 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대왕께서 신의 계책대로만 따라 주신다면 범증은 앞으로 항왕 곁에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진평은 그렇게 말해놓고 이어 귓속말로 한왕에게 무언가를 길게 일러주었다. 듣고 난 한왕이 장량을 돌아보며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무서운 계책이구나. 실로 독수라 할 만하다.”

한편 그때 패왕 항우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한 심사로 형양성에 사자로 보낼 군리(軍吏) 하나와 마주 앉아 있었다. 우씨(虞氏) 성을 쓰는 그 도필리(刀筆吏)는 초나라 군중(軍中)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처음 패왕의 귀에 넣어준 자이기도 했다.

이번에 가거든 싸움을 그만둘 것처럼 하면서, 우리 장수들의 불충스러움을 흉보아라. 그리고 한왕과 그 신하들의 눈치를 살펴 군중에 떠도는 소문이 어디까지 참인지를 알아보아라.”

그리하겠습니다.”

특히 종리매 용저 주은 등은 이름을 들먹여 가며 저들의 인물평을 구해 보아라. 저들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정말로 서로 내통하고 있다면 무언가 저들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부(亞父)의 일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군리가 그렇게 묻자 패왕의 얼굴은 마주 보기 민망할 만큼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애써 평온을 회복한 패왕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설마 아부까지 그렇기야 하겠느냐? 아부의 일은 굳이 파헤치려 하지 말라.” 

그때 사람이 들어와 범증이 왔음을 알렸다. 범증은 항우의 속마음이 어떤 지도 모르고 치하부터 했다. 

형양성 안으로 사자를 보내기로 하셨다니 실로 잘한 일이십니다. 지금 성안의 형편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면 몇 만의 대군을 얻는 것보다 유방을 사로잡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 사자는 누구를 보내려 하십니까?” 

바로 여기 이 사람이오. 언변이 좋고 눈치가 빠르니 휴전을 의논하는 척하며 성안의 형세를 가만히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오.” 

패왕이 시치미를 떼고 그 군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범증은 형양 성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이며, 그 군리가 자신의 운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그 군리가 알아 와야 할 것만 한참이나 늘어놓은 뒤에 그를 놓아주었다. 

먼저 성안 군민(軍民)들에게서 주린 기색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여자와 어린아이가 어떻게 보살펴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며, 성안을 다니는 우마의 수를 살펴야 한다. 병사들이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살펴야하고, 병장기나 갑주가 얼마나 상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사신을 접대하는 음식이 어떠하며, 그 음식을 만드는 숙수나 음식을 나르고 시중드는 사람들이 그 음식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성가퀴에 놓인 바위덩어리와 통나무도 살피고 성벽 위를 오가는 병졸들을 셈해 보는 것도 또한 네가 할 일이다.” 

다음 날이 되었다. 초나라 사자는 수레에 높이 올라 있는 위엄 없는 위엄을 다 부리며 형양 성문 앞으로 왔다. 형양 성문이 열리고 한나라 군리가 나와 사자를 맞아들였다. 

초나라 사자는 곧 한왕의 행궁(行宮) 격인 건물로 안내되었다. 기다리고 있던 한왕이 너털웃음과 함께 달려 나와 사자를 맞았다. 그리고 수인사도 나누기 전에 사자의 옷깃을 끌듯 하며 떡 벌어지게 잔칫상이 차려져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초나라 사자는 한왕이 워낙 은근하게 대하는 데 얼떨떨해졌다. 정신없이 이끌려 가다 보니 잔칫상이 차려지는 방이었는데, 상위에 오르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태뢰(太牢)였다.

태뢰(太牢)는 제사나 잔치에서 세 가지 희생, 곧 소와 양과 돼지의 고기를 두루 갖춘 음식을 말한다. 주례(周禮)에 따르면, 천자는 매일 태뢰를 먹고 제후는 소뢰(少牢)를 먹으며 대부는 세 가지 희생 중에 하나(特牲)만을 먹는다고 한다. 또 제사에서는 제후와 천자를 모시는 대부가 다 태뢰를 쓴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진나라가 옛 법을 모두 없애버린 그때는 여러 가지 고기가 갖춰진 풍성한 상은 대강 태뢰라 불렀다.

초나라 사자는 태뢰를 갖춘 상을 받게 되자 더욱 얼떨떨해졌다. 한나라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그토록 융숭하게 대접하는지 궁금히 여기며 자리에 앉는데 한왕이 불쑥 물었다.

그래, 아부(亞父)께서는 무양하시오?”

.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말을 타고 행군하시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얼결에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사자는 괴이쩍은 기분이 들었다. 한왕이 패왕을 제쳐놓고 범증의 안부부터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왕이 다시 알 수 없는 물음을 던졌다.

아부께서는 이번에 무슨 일로 그대를 보낸 것이오? 초나라 군중에 무슨 일이 있소?”

그제야 이상한 느낌이 든 사자가 쭈뼛거리며 받았다.

저는 아부께서 보낸 사자가 아니라 패왕께서 보내신 사자입니다.”

그러자 한왕의 낯빛이 싹 변했다. 한동안이나 놀라 넋 잃은 사람마냥 서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과인은 그대가 아부의 사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항왕이 보낸 사신이었구려!”

그러더니 마침 뒤따라 들어오는 진평을 보고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항왕의 사자라면 경이 알아서 접대해 보낼 것이지 어찌하여 과인에게 데려왔소? 하마터면 아부의 사자인줄 알고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쏟아낼 뻔하였소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한왕은 시중드는 이들에게도 핀잔주듯 말했다.

상을 거둬라. 손님을 잘못 알아보았다. 너희들은 아무에게나 태뢰를 갖춰 내느냐?”

그리고는 초나라 사자를 두 번 다시 거들떠보는 법도 없이 그 방을 나가버렸다. 한왕이 나가자 시중드는 이들은 일껏 차리던 태뢰 상을 거두고 보잘 것 없는 나물 요리(惡草具)로 바꾸었다. 사자는 한왕의 그같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음물이라도 한바가지 뒤집어쓴 듯하였다. 어찌할 줄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진평이 능청스럽게 상 맞은편에 앉으며 초나라 사자에게도 앉기를 청했다.

우리 대왕께서 워낙 숨김이 없는 성품이라그리고 우리 대왕과 아부의 내왕을 너무 괴이쩍게 생각하지 마시오. 군진(軍陣)을 마주하고 있어도 사자는 오가는 법이오.”

진평이 그렇게 말하자 초나라 사자가 같이 능청을 떨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한왕께 사자를 보내는 이가 어찌 범()아부 한 분뿐이겠습니까? 종리매나 용저 같은 장수들도 여럿 한왕과 내왕이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초나라 사자는 그렇게 슬며시 진평을 찔러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범증 말고도 한왕과 연줄이 닿아 있는 초나라 장수들까지 모두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진평이 그런 사자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로 따져보는 기색 없이 그 말을 받았다. 

, . 잘은 모르지만 초나라 장수 여러분이 가끔씩 사자를 보내거나 글로 우리 대왕께 안부를 전해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무신군(武信君)과 의제(義帝)께서 살아계실 때는 한편이 되어 싸우시던 분들 아닙니까?”

초나라 사자는 그런 진평의 말을 듣자 더 물어볼 것도 없다 싶었다. 물어보았자 그 이상 깊이 감춰진 속내를 알려줄 것도 아니거니와, 그때까지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초나라 군중(軍中)에 떠도는 말이 헛소문이 아님을 알기에는 넉넉했다. 이에 사자는 마음에도 없는 휴전 얘기를 꺼내 건성으로 떠들다가 성안의 사정 몇 가지를 곁눈질해 저희 진채로 돌아갔다.

뭐 아부(亞父)까지? 그리고 종리매와 용저도 정말 한왕 유방과 내통하고 있었다고?”

사자로부터 성안에서 일어난 일을 전해들은 패왕 항우가 금세 시뻘개진 얼굴로 그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우두둑 이를 갈며 보검을 끌어당기는 품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낼 것 같았다. 사자로 형양성을 다녀온 군리가 놀라 패왕을 말렸다.

대왕. 고정하십시오. 그들이 한왕과 내왕이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역심을 품고 내통하고 있는지는 신이 다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신을 접대한 자의 말대로, 그들은 한때 한왕과 한편이 되어 싸운 적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모든 것을 깊이 알아보신 뒤에 처결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패왕은 제 분을 이기지 못했다.

창칼을 맞대고 있는 마당에 사람과 글이 오고 가고 있다면 그게 내통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 이것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데 때맞춰 범증이 들어왔다. 형양성 안으로 들어갔던 사자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패왕이 보기에는 마음에 찔리는 게 있어 급히 달려온 듯 보였다.

아부, 무슨 일로 이렇게 달려오셨소? 무엇이 궁금하신 거요?”

패왕이 억지로 속을 누르고 그렇게 넘겨짚어 보았다. 그러나 범증은 조금도 그런 패왕의 말을 껴듣지 않았다.

형양성 안의 일을 알고 싶어 달려왔습니다. 이제 형양성을 우려 빼고 유방의 목을 얻을 때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는 사자로 갔다 온 군리에게 천연스레 물었다.

그래, 성안 사정은 잘 살펴보고 왔겠지? 군민(軍民)의 사기는 어떠하고 식량 사정은 또 어떠해 보이던가?”

군민에게는 한결같이 두려워 떠는 기색이 없었고, 주리거나 지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군리가 보고 온대로 대답했다. 범증이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퍼뜩 깨달아지는 게 있는지 패왕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왕. 그것은 틀림없이 꾀 많은 장량과 엉큼한 유방이 부린 술책입니다. 군민을 몰아대고 얼마 남지 않은 곡식을 퍼 대어 그와 같이 꾸몄을 것입니다. 사자를 속여 성안에 싸울 힘이 아직 남아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왕에게서 휴전을 얻어내려는 수작입니다. 어서 전군을 들어 형양성을 들이쳐 천하의 우환거리를 뿌리 뽑으십시오.”

하지만 저 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쩌시겠소? 배부르고 편안한 대군이 높고 든든한 성벽에 의지해 굳게 지키는 성을 억지로 들이치다 우리 군세만 피폐해지지 않겠소?”

패왕 항우가 이죽거리듯 그렇게 범증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범증은 아직도 패왕의 뒤틀린 심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층 간곡한 어조로 권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이라도 대군을 들어 형양성을 들이치도록 하십시오. 적은 이제 지치고 군량도 다해 며칠 안으로 항복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이 형양성을 깨뜨리고 유방을 잡아 죽일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자 더 참지 못한 패왕이 범이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아부(亞父). 지금 내 가슴과 배가 곪고 썩어들어 가는 판에 적을 돌아볼 겨를이 어디 있소? 이 장졸을 거느리고 어디를 치며 누구를 잡아 죽인단 말이요?”

대왕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슴과 배가 곪고 썩어들어 가다니요? 그리고 이 장졸이라니요? 대왕의 장수들과 강동의 자제들이 어찌됐다고 그리 말씀하십니까?”

그제야 놀란 범증이 패왕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와 같은 범증의 물음을 받자 패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억지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 둘러댔다.

그리 놀라실 것은 없소. 반드시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다만 사자가 형양성 안에서 보고 들은 것 중에 놀라운 일이 있어 잠시 과인의 감정이 격해졌던 듯하오.”

그리고는 잠시 숨을 가다듬은 뒤에 다시 덧붙였다.

과인이 숙부를 따라 오중(吳中)을 나온 뒤로 크고 작은 싸움을 수없이 치렀건만 언제 진 적이 있소? 형양성을 치는 것도 싸움, 싸우는 일이라면 과인에게 맡겨주시오. 군사를 내고 아니 내는 것은 모두 과인이 알아 결정하겠소.”

그 말에 범증도 더는 패왕을 몰아댈 수 없었다.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패왕의 군막에서 물러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패왕은 다음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어도 군사를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자 마음이 다급해진 범증이 다시 패왕의 군막을 찾았으나 위사(衛士)들이 왕명을 구실로 범증을 안으로 들여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범증이 하릴없이 거처로 돌아오니 뜻밖에도 용저와 종리매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장군들이 어찌하여 이 누추한 곳을 찾으셨소?”

범증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보며 물었다. 종리매가 대답 대신 긴 한숨과 함께 되물었다.

아부께서는 대사마(大司馬) 주은(周殷)의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아니, 못 들었소. 주은이 어떻게 되었소?”

간밤에 쫓기듯 구강(九江)으로 떠났습니다.”

그 말을 듣자 심상찮은 느낌이 든 범증이 두 사람에게로 바싹 다가앉으며 물었다.

주은이 구강으로 갔으면 갔지, 쫓기듯 떠나다니 그게 무슨 뜻이오?”

항백을 대신해 구강을 지키라고 보냈지만, 딸려 보낸 군사가 겨우 백여 기()라 맨몸으로 보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거기다가 항백에게는 구강에 있는 전군을 거느리고 대왕 곁으로 오라고 했다 하니, 주은이 구강으로 쫓겨 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장군들의 말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소. 장수를 보내고 불러들이는 것은 군왕(君王)의 당연한 권한인데, 대왕께서 주은(周殷)을 구강으로 보내고 항백(項伯)을 불러들인 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거요?”

아직도 종리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범증이 그렇게 되묻자 이번에는 용저가 나서서 물음을 받았다.

대왕께서 주은을 구강으로 보내고 항백 장군을 부르신 것은 종성(宗姓)이나 처족(妻族)이 아니면 믿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은이 한왕과 내통할까 걱정하여 멀리 구강으로 보내고 종성인 항()장군을 곁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아니, 용 사마(司馬) 그 무슨 말씀이오? 아무리 하면 대왕께서 그러실 리가 있소?”

범증이 놀라 펄쩍 뛰듯 하며 용저를 보고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다시 종리매가 땅이 꺼질 듯한 한숨과 함께 범증의 말을 받았다.

아부(亞父)께서는 대왕과 한몸처럼 가까이 계시면서도 아직 그걸 모르십니까? 지금 대왕께서는 주은만 의심하고 계신 게 아닙니다. 항씨(項氏)나 처족이 아니면 아무도 믿을 수 없으신지, 며칠 전부터는 우리들에게도 사람을 붙여 손 한번 내젓고 발걸음 한번 내딛는 것까지 살피게 하고 계십니다.”

손발만 묶이지 않았을 뿐이지 저희들은 이미 갇혀 있는 바나 다름없습니다. 대왕을 따라나서 목숨을 건 싸움만도 수십 전()을 겪은 저희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대왕의 의심이 두렵기보다는 욕스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맞장구를 치는 용저의 눈에는 죽음을 겁내지 않고 전장을 내달리던 맹장답지 않게 눈물까지 비쳤다. 그런 용저와 종리매를 보자 범증도 문득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그 며칠 패왕에게서 받은 어떤 석연찮은 느낌이 불현듯 훤하게 깨달아지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늙은이도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오? 대왕께서 이 늙은이의 말을 따르지 않고 형양성을 에워싸고만 계신 것도 바로 이 늙은이를 믿지 못해서란 말이오?”

범증이 치솟는 화를 다스리지 못해 수염까지 푸르르 떨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소리쳤다. 종리매가 어둡고 무거운 목소리로 그런 범증의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미 이틀 전에 아부에게서 병권(兵權)을 거두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기를, 앞으로는 대왕의 명이 없으면 누구도 군사 한 명 말 한 필 움직일 수 없다 하시고, 특히 아부를 지목하여 그 명을 받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범증은 종리매와 용저가 듣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 큰소리로 외쳤다.

이 더벅머리 아이[竪子]가 실로 너무하는구나. 아무리 군왕이기로서니 내게 이럴 수 있는 것이냐!”

그리고는 늙은 두 눈으로 줄줄이 눈물을 흘렸다. 종리매와 용저도 처연한 얼굴로 함께 탄식해 마지않았다. 이윽고 마음을 가다듬은 범증이 주름진 볼을 적시는 눈물을 주먹으로 훔치며 말했다.

내 늙은 몸을 이끌고 너무 오래 권세를 뒤좇다가 오늘 이 욕을 보는구나.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삭아가는 해골이라도 욕을 면하게 해줌이 옳으리라!”

범증은 그길로 패왕을 찾아갔다. 아직도 어지러운 심사를 바로하지 못한 패왕은 이번에도 범증을 만나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범증은 전처럼 곱게 물러나지 않았다. 패왕의 군막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외쳤다. 

범증이 대왕께 간곡히 청합니다. 이 늙은 것의 뼈를 돌려주소서(願賜骸骨)!”

그런 범증의 외침을 듣자 패왕도 더는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범증을 군막 안으로 들이게 한 뒤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부, 한밤중에 이 무슨 소란이오? 뼈를 내달라니, 갑자기 그 무슨 말씀이오?”

천하의 일은 대강 형세가 정해졌으니, 이제부터는 대왕께서 홀로 해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 늙은 것을 이만 놓아주시어 고향땅에 뼈를 묻게 해 주십시오!”

범증은 길게 에둘러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바로 속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함께 목숨을 건 싸움터를 내달으며 쌓인 애증(愛憎) 때문인지 절로 목소리가 떨리고 콧등이 시큰해왔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겪기는 패왕도 마찬가지였다. 패왕은 범증이 찾아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배신감에 떨며 범증을 어떻게 처결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범증이 먼저 찾아와 떠나려 하니 가슴이 철렁하며 난데없는 미련으로 다급해졌다.

아직 교활한 도적이 살아있고 큰 싸움이 남았는데, 무슨 형세가 정해졌다는 거요? 그리고 아부는 왜 이 밤에 갑자기 떠나야 하오?”

패왕이 그러면서 어물어물 범증을 말려보려 했다. 하지만 범증의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굳어진 뒤였다. 한 병가(兵家)로서는 속임수와 거짓도 마다않는 그였으나, 인정과 의리를 주고받는 데는 여리고 섬세하다 할 만큼 개결한 데가 있었다. 그런데 패왕의 불신이 그 개결함을 여지없이 짓밟아, 한시도 그 곁에 머물고 싶지 않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패왕도 난데없는 미련에 어물거리며 범증을 잡는 척하고는 있으나, 마음속의 의심이 다 풀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을 잘 믿지 못하는 천성에다 사자가 형양성 안에서 보고 들은 증거가 너무 뚜렷해, 범증을 말려도 건성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범증이 기어이 떠나기를 고집하자 오히려 자기 손으로 범증을 해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허락하고 말았다.

알겠소, 아부. 정히 그러시다면 날이 밝는 대로 떠나시오.”

그리고 다음날 일찍 범증이 떠날 때는 제법 애틋한 작별까지 나누었다.

그럼 잘 가시오, 아부. 고향에 돌아가 편히 쉬시며 길이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누리시오. 부디 강령하시오. 과인은 천하가 평정되는 대로 아부를 찾아 오늘 못다 푼 회포를 옛말삼아 풀어보겠소.”

그러나 떠나는 범증도, 보내는 항우도 자신들이 적의 이간책, 특히 진평의 독수에 걸려들어 그리 된 것이라고는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패왕과 작별한 범증은 곁에서 오래 자신을 시중 들어온 이졸 하나만 데리고 팽성으로 떠났다. 그곳에 있는 가솔들을 거두어 고향인 거소(4)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이제는 급할 것도 없어 느릿느릿 말을 몰며 늦은봄 길을 가다보니 온갖 감회가 가슴을 채웠다. 

돌아보니 내가 거소를 떠나 처음 항량(項梁)의 군막을 찾아들 때도 이맘때였구나. 보자, 벌써 네 해가 지났는가.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초나라를 다시 일으켜 망국(亡國)의 유신(遺臣)된 욕스러움을 면했고, 진나라를 쳐 없애 부조(父祖)의 나라가 당한 수모를 씻었다. 천하 만민을 가혹한 진나라의 법과 부세(賦稅)에서 구해냈고, 의제(義帝)를 세워 천하를 초나라의 것으로 하였다.’

첫날 오랜만에 한가로운 기분이 되어 그렇게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만 해도 범증의 가슴에는 뿌듯한 자부까지 일었다. 그러나 외로운 객사에서 쓴 술로 울분을 달래며 긴 밤을 보내게 되면서 이내 감회가 달라졌다.

하지만 한스러운 일이 너무 많구나. 선비()가 주인을 정해 천하를 도모한다는 것은 그 주인과 공과(功過)를 함께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 주인이 항복한 진나라 사졸 20만을 신안(新安)에서 산채 땅에 묻을 때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아무리 포악무도한 진나라였지만, 내 주인이 항복한 그 왕을 죽이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칠 때, 진나라 도읍 함양을 약탈하고 백성들의 피땀으로 일으킨 아방궁을 불사를 때 나는 어디 있었던가. 제후들을 세우고 땅을 갈라주는 게 아까워 관인(官印)모서리가 닳아빠지도록 내 주인이 제후의 인수(印綬)를 내주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무엇 때문에 보고만 있었을까. 천하를 도모하고자 그 주인을 따라나선 선비가 할 일을 나는 과연 다하였던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범증의 가슴이 후회로 미어지는 듯하면서 갑자기 등허리가 뜨끔했다. 며칠 전부터 까닭 모르게 욱신거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범증에게 거듭 술잔을 권하다 마침내는 울분 섞인 한탄으로 바뀌었다.

저 더벅머리 아이가(豎子)가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내 말만 들었더라도 천하는 일찌감치 판가름 났을 것이다. 내가 권한대로 의제(義帝)만 끼고 있었어도 서초(西楚)는 오래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유방이 한중(漢中)을 나왔을 때는 오()와 초()의 전력을 끌어 모으고 천하 제후들을 모두 불러내 함곡관 서쪽에서 쳐 없애야 했다. 그런데도 저 더벅머리 아이는 제 성을 못 이겨 살갗에 난 종기나 다름없는 전영(田榮)을 잡는데 힘을 쏟았다가 도읍인 팽성을 잃는 수모까지 당했다. 수수의 싸움은 볼만한 것이었으나 그 뒤는 마찬가지다. 어울리지 않게 이것저것 돌아보다가 유방에게 재기할 시간만 벌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 무슨 하늘의 뜻이냐? 내일이라도 전력으로 형양성을 치면 유방을 사로잡아 천하의 형세를 결정지을 수 있건만, 대군을 성 밖에 조용히 묶어두고 있다. 피붙이와 처족만 믿어 가슴이나 배와 같은(心腹) 장수들을 의심하여 내치고. 이 나마저 믿어주지 않는다.

아아, 내 명색 글을 읽은 선비로서 나아가고 물러남에 너무 등한하였다. 유방이 홍문을 빠져 나갔을 때 나는 한탄만 할 게 아니라 그 더벅머리 아이를 떠났어야 했다. 기어이 의제를 죽이고 말았을 때 떠났어야 했고, 굳이 전영을 치러 제()나라로 출병할 때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 미련을 부리다가 이 오늘을 보게 되었다. 내 살아 이 눈으로 무슨 험한 꼴을 보게 될까 실로 두렵구나.’

그러면서 마지막 식은 술잔을 비우는 데 갑자기 훅 치솟는 신열과 함께 등짝이 벌건 인두로 지지는 듯이나 뜨겁게 쑤셔와 술상에 쓰러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범증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졸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되어 술상 앞에 쓰러진 범증을 자리에 옮겨 뉘고 인근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자(醫者)를 불렀다. 진맥을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던 의자가 범증의 옷을 벗겨 온몸을 살피다가 등허리를 보고 흠칫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떤 병이 난 것입니까?” 

이졸이 그렇게 묻자 의자가 어두운 낯빛으로 대답했다. 

등에 종기가 났소(疽發背). 지금 한창 성이 나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워낙 살 깊이 자리 잡은 독창(毒瘡)이라 곪아도 쨀 수는 없소. 편히 쉬면서 약물로 다스려 종기가 삭아 없어지기를 기다려야 하오. 만약 이 독창이 터지는 날이면 그때는 편작(扁鵲)이 와도 살려낼 길이 없을 것이오.”

이에 이졸은 그 의자가 주는 약을 다려놓고 범증이 깨나기를 기다렸다.

범증은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눈을 떴다. 이졸이 다려둔 약을 올리며 간밤 의자가 남기고 간 말을 전한 뒤에 말했다.

아무래도 잠시 이곳에 편히 쉬시면서 병을 다스린 뒤에 팽성으로 떠나야 될 듯싶습니다.”

범증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편히 쉬는 것이라면 고향에 이른 뒤라도 늦지 않다. 한낱 종기 때문에 갈 길을 멈춰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억지로 말에 올라 떠나기를 재촉했다. 이졸이 말렸으나 범증의 고집을 이기지 못해 다시 동쪽 팽성을 향해 길을 잡았다. 범증은 신열(身熱)에 덜덜거리면서도 그날 하루 길은 일없이 넘겨 해질 무렵에는 진류(陳留)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다시 말에 올라 길을 재촉하다가 기어이 일을 내고 말았다. 옹구(雍丘)를 지날 무렵 갑자기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 놀란 이졸이 범증을 객사에 뉘고 약을 달이며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깨어난 범증에게 다시 그곳에 머물면서 병을 다스리기를 권했으나 범증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수레를 구하여라. 종기쯤은 수레 위에서도 다스릴 수가 있다.”

그러면서 무엇에 씐 사람처럼 팽성으로 가는 길만 재촉했다.

다음날 하는 수 없이 크고 편한 수레 한 대를 빌린 이졸은 거기에 범증을 태우고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번에는 며칠 별 일이 없었다. 그런데 수레가 외황(外黃) 우현(虞縣)을 지나 탕군(碭郡)에 이르렀을 때였다. 낮의 여독(旅毒) 탓인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범증이 한밤중에 이졸을 깨워 말하였다.

필묵과 흰 깁을 가져오너라.”

그리고 이졸이 시킨 대로 하자 병든 몸을 일으켜 날이 새도록 흰 비단에 무언가를 썼다. “내게 무슨 일이 있거든 이 글을 대왕께 전해다오.”

다음 날 새벽같이 시중드는 이졸을 부른 범증이 그 비단 두루말이를 건네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날이 밝기 바쁘게 길을 재촉했으나 끝내 팽성에는 이르지 못하고 소성(蕭城)에 못 미쳐 죽었다. 그때 범증의 나이 일흔 다섯이었다.

진평의 독수(毒手)가 불 지핀 의심과 분노로 앞뒤 없이 내닫던 패왕 항우도 범증이 떠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의심이 다 풀린 것은 아니었으나, 옷깃을 자르며 헤어지듯 뒤 한번 돌아봄 없이 떠나가는 범증에게서 자신의 의심과는 거리가 먼 어떤 개결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부(亞父)의 일은 아무래도 알 수가 없구나. 의제(義帝)를 죽인 것 때문에 내게서 멀어졌다고 하나, 가만히 돌이켜 보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경포와 형산왕, 임강왕에게 의제를 죽이라고 할 때, 그는 말릴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팔 걷고 나서 말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일년이 넘도록 나를 도와 꾀를 짜내고 일을 꾸며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독안에 든 쥐 꼴이 난 유방에게 붙는단 말인가. 또 유방에게 붙었다면 그토록 급하게 형양성을 치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으로 밤새 뒤척이던 패왕은 날이 밝는 대로 중연(中涓) 하나를 보내 범증의 군막을 살펴보게 했다.

아부께서는 이미 새벽에 길을 떠나셨습니다. 대왕께서 내리신 것은 모두 봉해 군막 안에 남겨두고 말 한 필에 시중드는 이졸 하나만을 데리고 팽성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돌아온 중연이 그렇게 보고 들은 대로 알려왔다. 그 말에 패왕은 다시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아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제라도 빠른 말로 뒤쫓게 해 범증을 데려오게 하고 싶었으나, 군왕의 체면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팽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장수들과 수령들에게 급한 전갈을 보내 아부께서 돌아가시는 길을 편안하게 보살펴 주라고 이르라.”

그런 명으로 범증을 향한 때늦은 미련을 달랬다.

범증이 그렇게 떠남으로써 패왕이 다른 장수들에게 품고 있던 의심의 불길도 차츰 잦아들었다. 대사마 주은을 내쫓듯 구강으로 보낸 뒤로 패왕은 어떤 장수도 벌주거나 내쫓지 않았다. 덕분에 불안하고 울적해 하던 종리매와 용저는 한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집극랑(執戟郞) 하나가 군막 안으로 달려 들어와 패왕에게 알렸다.

범 아부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부를 모시고 팽성으로 떠났던 이졸이 돌아와 대왕께 뵙기를 청합니다.”

? 아부께서 돌아가셨다고?”

놀라 그렇게 소리친 패왕이 얼른 그 이졸을 불러들이게 해 물었다.

아부께서는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느냐?”

소성(蕭城) 못 미친 곳에서 등에 난 독창(毒瘡)이 터져 돌아가셨습니다.”

결국 팽성에 이르지도 못했구나. 그렇다면 너는 아부의 유해라도 모시고 팽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떻게 돌아왔느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부께서 제게 글을 남기시며 무슨 일이 있거든 지체 없이 대왕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돌아가셨으니유해는 소성의 수장(戍將)께서 맡아 팽성으로 운구하셨을 것입니다.”

아부께서 남긴 글이 어디 있느냐? 어서 내놓아 보아라.”

패왕이 재촉하자 그 이졸(吏卒)은 품 안에서 흰 비단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바쳤다. 패왕이 펼쳐 보니 거기에는 눈에 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신이 듣건대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하였습니다. 간밤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신은 군왕의 믿음을 사지 못해 고향으로 내쫓기는 원통한 신하였으나, 이제 문득 죽음이 가까이 이른 것을 깨닫고 보니 모든 것이 그저 부질없을 뿐입니다. 버림받은 분한(忿恨)에서 깨어나 곰곰 헤아리다가 반드시 군왕을 깨우쳐 드려야할 일이 있어 신열로 어지러운 가운데도 이렇게 붓을 들었습니다.

다섯 해 전 무신군(武信君)의 장하(帳下)에 들어 군왕을 모신 뒤로 신에게는 자랑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았으며, 그만큼 기쁨도 크고 한도 깊었습니다. 하오나 이제 영영 이 세상을 떠나려 하니 이 늙은 신하의 바람은 오직 하나 군왕께서 큰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처음 포의에서 몸을 일으킬 때와 달리 뒤틀리고 얼룩지기는 하였으나, 그 큰 뜻이야말로 신이 군왕께 의탁해 이루고자 했던 꿈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군왕께서는 한발만 내디디면 그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곳에서 오히려 이제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셨습니다. 적의 더러운 술책에 넘어가 가슴이나 배 같은 장수를 의심하고 팔다리 같은 신하를 시기하시는 병이 도졌기 때문입니다. 신의 짐작에 적은 간세(奸細)를 풀고 황금을 뿌려 군왕과 장상(將相)들을 이간질하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간교한 잔꾀로 군왕의 눈과 귀를 속이고 가을 하늘 같은 심사를 어지럽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늙은 신하의 마지막 정성으로 엎드려 빌건대, 군왕께서는 먼저 군중(軍中)에 엄명을 내리시어 떠도는 거짓말과 헛소문의 뿌리를 캐고 거기 달려있을 간세들을 잡아 목 베십시오. 그리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 군왕의 의심으로 다치고 억눌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시오. 그런 다음 옛날처럼 아래위가 하나가 되어 형양성을 들이치면, 열흘도 안돼 성을 깨뜨리고 유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의 형세는 그것으로 결정 나고 군왕의 날이 시작될 것이오니, 부디 신이 죽음을 앞두고 올리는 이 간곡한 당부를 물리치지 마소서.’

패왕이 원래 그리 아둔한 사람이 아니었다. 범증의 글을 다 읽고 나자 그때까지도 자신의 고집에 가려져 있던 눈이 문득 훤히 밝아지는 듯했다. 걷잡을 수 없는 후회와 슬픔에 젖어 비단 두루마리를 내던지고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아부, 아부. 내가 아부를 죽게 하였소.”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먼저 장수들부터 불러 모으게 했다. 종리매와 용저를 비롯해 여러 장수들이 놀라고 겁먹은 얼굴로 모여들었다. 패왕이 그들에게 범증의 편지를 읽게 한 뒤 말하였다.

과인이 이제 아부를 위해 발상(發喪)하려 하니 장군들은 모두 상복을 갖추시오. 우리 서초의 대군은 먼저 아부의 장례를 치른 뒤에 아래위가 한 덩이가 되어 형양성을 들이칠 것이오. 반드시 성을 깨뜨리고 더러운 술책으로 우리를 이간질한 유방을 목 베어 아부의 외로운 넋을 달래주어야 하오!”

아직도 초나라 군중에 남아있는 간세(奸細)들로부터 범증이 패왕에게 버림받고 팽성으로 돌아가다 도중에 죽고 말았다는 말을 들은 형양 성안은 일시 잔칫집같이 들떠 했다. 하지만 초나라 군사들은 성안이 오래 기뻐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패왕의 명을 따라 영구(靈柩)도 없이 발상(發喪)한 지 사흘째부터 전에 없이 사나운 기세로 형양성을 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은 얼결에 막아냈으나 사흘이 자나자 성안의 한나라 군신(君臣)들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많은 군사가 죽거나 다쳐 사기가 꺾인 데다 성을 지키는 데 쓰이는 병장기와 채비들도 점점 바닥을 보였다. 화살이 떨어지고 성가퀴에 쌓아둔 돌덩이와 통나무가 다해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걱정은 성안에 먹을 것이 없는 일이었다. 오창(敖倉)에서 오는 용도(甬道)는 이미 달포 전에 끊겨 낟알 하나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소나 말도 줄어 이제는 꼭 필요한 군마(軍馬) 백여 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범증만 패왕에게서 떼어놓으면 형양성의 위급이 풀릴 줄 알았는데, 이건 오히려 잠자는 범한테 코침 놓은 격이 되었구려. 패왕이 성난 대군을 휘몰아 저렇게 길길이 날뛰니 실로 걱정이오. 게다가 군량까지 바닥이 났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어지간한 한왕도 드디어 걱정이 되는지 장량 진평과 함께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워낙 일이 급박해서인지 꾀주머니(智囊)라는 장량도, 별난 술책과 독한 수를 잘 내는 진평도 당장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량과 진평이 그러하니 다른 장수들인들 내놓을 만한 계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죽기로 싸워 성을 지키겠노라 다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런데 군신 간에 별 소득 없는 그 의논이 끝난 다음이었다. 장수들이 모두 돌아가고 한왕만 홀로 남아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노관이 와서 알렸다.

장군 기신(紀信)이 홀로 찾아와 대왕을 뵙기를 청합니다.”

기신이? 그 더벅머리 유자(儒者)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다 하더냐?”

한왕은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기신을 불러들이게 했다. 방안으로 들어온 기신은 먼저 좌우부터 물리쳐주기를 빌었다. 한왕은 그런 기신의 얼굴빛이 하도 무거워 바라는 대로 해주면서도 별 기대 없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 그리 엄중하기에 좌우까지 물리라 하는가?”

대왕, 일이 매우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신을 써서 초나라를 속이고() 그 틈을 타 이 형양성을 빠져나가도록 하십시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대가 어떻게 초나라를 속인단 말인가?” 

한왕이 기신의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해 그렇게 다시 물었다. 기신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여러 사람에게 들으니 신의 생김이 다소 대왕과 비슷한 데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신이 대왕의 복색에다 대왕의 수레를 타고 성을 나가 항복하면 초나라 장졸들을 일시 속이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의 항복으로 오랜 싸움이 끝난 줄 알고 모두 그곳으로 몰려들어 기뻐하는 사이에 대왕께서는 가만히 다른 성문으로 빠져 나가십시오. 가벼운 차림으로 위사(衛士) 수십 기만 데리고 나가시면 이 위급에서 옥체를 빼내 뒷날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장군은 어찌되는가? 장군이 과인으로 꾸미고 저들을 속인 걸 알면 패왕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장군은 나를 위하여 죽겠단 말인가?”

한왕 유방이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기신이 남의 말처럼 대답했다.

아마도 열에 아홉은 그리 되겠지요. 허나 반드시 대왕을 위하여서만은 아닙니다.”

그럼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게 신이 배움에 뜻을 둔 이후(志于學) 받은 성현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위태로운 걸 보면 목숨을 내던지는 것(見危致命)이 유자(儒者)의 바른 도리가 됩니다. 신이 몸을 일으켜(立身) 천하를 위해 일한 지도 여러 해, 이제 배운 바를 몸으로 따를() 때가 된 듯합니다.”

거기까지 듣자 한왕도 기신이 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기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는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장군의 뜻은 가상하나 과인은 차마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히 초나라를 당해내지 못하면 군신이 나란히 성벽을 베고 죽을 뿐이다.”

저잣거리의 실용에 익숙할 뿐, 유가적인 이념미(理念美)에 단련 받지 못한 한왕으로서는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기신을 내쫓듯 돌려보낸 뒤에도 한왕은 한동안 알 수 없는 감동에 빠져들었다. 그때 근시가 들어와 이번에는 진평이 찾아왔음을 알렸다.

한왕을 진평을 들이게 한 뒤 먼저 기신이 한 말부터 들려주고 물었다.

호군(護軍)은 기신의 일을 어찌 보시오?”

이제 유가의 가르침이 대왕의 나라에 찬연히 뿌리를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평소 실질을 중시하는 진평답지 않게 말을 꾸며 하는 것을 보고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대왕께서는 평소 유자들을 놀리고 욕보이셨습니다. 허나 그게 오히려 유자들을 분발시킨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양(高陽)의 객사에서 역선생 이기를 무례하게 맞았으나 역선생은 오히려 대왕을 위해 진류의 현령을 항복하게 만들었으며, 우현(虞縣)에서 알자(謁者) 수하(隨何)를 함부로 깔보다가 오히려 수하로 하여금 경포를 대왕께로 끌어들이는 큰 공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이제 기신의 분발 또한 대왕께서 우현으로 찾아온 주가와 기신을 놀린 일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요?”

실은 조금 전 기신이 신을 찾아와 대왕께 올린 말씀을 그대로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얘기 끝에 기신은 대왕께서 먼저 견위치명(見危致命)이란 말씀을 하신 바 있다고 했습니다.”

과인이 우현의 진중에서 한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였을 뿐이오.”

진중에서는 희언(戱言)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게다가 기신이 하고자 하는 바가 반드시 유자의 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만이 지금 우리 대왕께서 고르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과인은 살기 위해 기신(紀信)을 죽을 구덩이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과인은 아직도 기신의 목숨을 살 만큼 그에게 베푼 것이 없다.”

한왕 유방이 솔직한 심경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한왕이었다. 매사에 느긋하고 너그러운 편이지만,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추상적인 이치 같은 것으로 홀려 사람을 부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진평이 별로 표정 없는 얼굴로 한왕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대왕께서는 기신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눈길로 진평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진평이 대답 대신 되물었다.

대왕께서는 전에 수수() 싸움에서 지고 초나라 군사에게 쫓기실 때 태자와 공주님을 태복이 모는 수레에서 내던지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때는 왜 그리 하셨습니까?”

그것들 때문에 수레가 느려져 과인이 초군에게 사로잡히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과인이 사로잡히면 우리 한나라도 끝이고, 과인을 따라다니며 싸워온 장졸들의 땀과 피눈물도 모두 헛일이 된다.”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대왕의 몸은 이미 대왕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을 따른 수십만 장졸들의 것이오, 천하가 바른 주인을 얻어 안정되기를 바라는 뭇 백성들의 것입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이 위태로움에서 빠져나갈 길이 있다면 그리 하시어 뒷날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흙먼지 말아 일으키며 되돌아오시어 저들의 애틋한 믿음과 간절한 바람에 보답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도 한왕은 진평의 말을 얼른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내 자식이니 내가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기신은 내 충실한 장수였다. 그를 죽여 가면서까지 이 한 목숨을 구차하게 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진평이 그런 한왕에게 덮어씌우듯 잘라 말했다.

심기를 굳건히 하시고, 내일 성을 나가실 때 함께 데리고 나갈 사람들이나 골라 두십시오. 신은 기신과 함께 초나라 군사들을 속일 계책이나 빈틈없이 짜보겠습니다.”

그리고는 한왕의 대답도 듣지 않고 길게 읍을 한 뒤 물러났다.

다음날이었다. 날이 환하게 밝자 갑자기 형양성 동문이 열리며 투구 쓰고 갑옷 입은 군사 수천 명이 쏟아져 나왔다. 아침밥을 짓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그들을 보고 놀라 싸울 채비를 했다. 그런데 다시 성안에서 누런 비단으로 덮개를 한 수레 한 대가 달려나오더니 군사들을 헤치고 나가 앞장을 섰다. 아무것도 모르는 군사들이 먼빛으로 보기에도 심상찮은 수레였다. 바로 임금이 타는 황옥거(黃屋車)로서 수레 왼쪽에는 검정소의 꼬리와 꿩의 깃으로 만든 좌독(左纛)까지 내걸려 있었다. 먼저 싸울 채비가 된 초나라 군사 한 갈래가 서둘러 동문 쪽으로 몰려갔다. 군사들을 이끌고 간 초나라 장수가 황옥거 앞을 가로막으며 큰소리로 물었다 

멈춰라. 수레에 탄 것은 누구며 어디로 가느냐?” 

그때 수레의 주렴이 걷히며 임금의 복색을 갖춘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대답했다.

나는 한왕 유방이다. 성안에 식량이 다해 이제 항복하려 한다. 어서 과인을 패왕께로 데려다 달라.” 

그 말에 초나라 장수는 흠칫하며 스스로 한왕이라고 밝힌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전에 한왕이 초나라의 별장(別將)처럼 되어 한편으로 싸울 때 멀리서 한왕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오히려 탈이 되었다. 수레 안의 사람을 틀림없이 한왕이라고 여긴 그 장수는 제법 공손하게 군례(軍禮)까지 올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 대왕께서는 서문 쪽을 지키고 계십니다. 곧 그리로 사람을 보내 이 일을 대왕께 아뢰겠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들로 하여금 한왕의 수레를 에워싸게 하는 한편 부장 하나를 급히 패왕에게 보냈다. 그때 패왕은 형양성 서문 밖에서 한왕의 퇴로를 끊고 있었다. 한왕이 관중으로 달아나려면 그리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왕이 항복해왔다는 게 워낙 놀라운 일인데다, 군사들 중에도 어슷비슷 한왕을 알아보는 자들이 적지 않아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재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서문 쪽에 있는 패왕에게 그 일이 알려지기도 전에, 동문 쪽을 에워싸고 있던 초나라 군사 모두에게 그 소문이 돌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끝났구나.”

어디 보자. 한왕 유방이란 자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군사들이 그렇게 주고받으며 병장기를 놓아두고 한왕의 수레가 있는 곳으로 몰려와 구경했다. 서로 손짓하며 낄낄거리는 것이 조금도 싸움터에 있는 군사들 같지 않았다. 한왕의 수레를 따르는 수천 명 한군(漢軍)이 아무도 병장기를 쥐고 있지 않아 더욱 마음을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와 비슷한 일은 서문 쪽에서도 일어났다. 패왕은 한왕이 항복해 왔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동문 쪽에서 달려간 부장이 소식을 전하기 바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비루한 작자가 또다시 목숨을 빌러왔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안 된다. 반드시 그 머리를 제물로 올려 아부(亞父)의 원통한 넋을 달래주리라.”

그리고는 아무런 의심 없이 동문 쪽으로 달려갔다. 서문을 에워싸고 있던 나머지 장졸들도 그 소문을 듣자마자 환성을 지르며 항복하러 나온 한왕 유방을 구경하러 동문 쪽으로 몰려갔다. 서문 문루(門樓)위에서 그와 같은 초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이졸 하나가 아래를 보며 가만히 알려왔다.

이제 성문 밖에는 초나라 장졸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동문 쪽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러자 형양성 서문 쪽 성벽에 숨어있듯이 붙어서있던 수십 기()의 인마가 조용히 서문 쪽으로 다가갔다. 말위에 높이 앉아 앞장을 선 것은 뜻밖에도 여느 장수 차림을 한 한왕이었다. 곁에는 장량과 진평, 역이기가 뒤따르고, 관영 노관 하후영같은 측근 장수들이 갑사(甲士) 몇 십 기()와 함께 그들을 에워싸듯 호위했다.

어사대부 주가(周苛)와 종공(樅公), 한왕(韓王) ()과 위왕(魏王) ()가 나란히 서서 그런 한왕 일행을 배웅하였다. 한왕이 그들 네 사람을 보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반드시 돌아오겠소. 부디 그때까지만 살아계시오!”

대왕께서도 옥체를 보전하시어 천하를 포악한 항왕의 손에서 구해주십시오. 저희들은 땅 바닥에 간과 뇌를 쏟게 되더라도 이 형양성을 지켜낼 것입니다.”

네 사람이 입을 모아 그렇게 다짐했다. 한왕이 그들 넷을 한참이나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결연히 돌아서며 소리쳤다.

가자. 어서 떠나 서초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모아보자. 그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이 형양성을 구하러 돌아오는 것이 남아서 지키는 이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그리고는 말배를 박차 그 사이 소리 없이 열려있는 서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한왕과 함께 형양성을 나가게 된 사람들도 저마다 남은 사람들에게 작별의 말을 남기고 그 뒤를 따랐다.

주가(周苛)와 종공(樅公), 한왕(韓王) (), 위왕(魏王) () 네 사람은 성문 밖까지 나가 한왕 일행이 서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사이에도 한왕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군사를 이끌고 달려나갈 태세였다. 하지만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내닫던 한왕 일행은 별탈 없이 서쪽 성고(成皐)로 드는 골짜기로 사라졌다.

네 사람은 그제야 성안으로 들어와 다시 성문을 닫아걸게 했다. 그런데 성문에 굵은 빗장이 미처 다 질러지기도 전이었다. 주가와 종공이 서로 가만히 눈짓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칼을 빼들어 위왕 표를 찍었다. 위표가 놀라며 피해보려 했으나 워낙 갑작스러운 일인 데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니 피해낼 길이 없었다. 이내 칼을 맞고 버둥거리다가 숨을 거두었다.

아니, 두 분 장군. 이 무슨 일이오? 대왕께서는 우리 네 사람이 서로 합심하여 형양성을 지키라 하지 않았소?”

위표가 피투성이가 되어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놀란 한왕 신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주가가 다시 한 번 종공과 눈을 맞춘 뒤에 차갑게 대답했다.

나라를 저버린 적이 있는 왕(反國之王)과는 함께 성을 지켜내기 어렵소.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의논 끝에 위표를 죽이기로 한 것이오.”

나라를 저버린 적이 있는 왕이란 말은 전에 위왕 표가 한나라를 배신하고 초나라에 항복한 일을 가리킨다. 한왕 신도 그 말을 알아들었으나 그래도 주가와 종공이 한 일을 승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위왕은 그 일을 뉘우치고 대왕께서도 위왕을 용서하시지 않았소? 지금 강한 적을 맞아 군사 한 명도 아쉬운데 아까운 장수를 죽이니 실로 두 분의 뜻을 알 수가 없소.”

그렇게 두 사람에게 따지고 들었다. 주가가 다시 흔들림 없는 어조로 받았다.

한 번 깨진 사발을 다시 맞출 수는 없소. 사람의 신의도 그러하니, 한 번 군왕을 저버린 자가 두 번인들 못하겠소? 위표가 다시 마음이 변하여 성안에서 적에게 호응하는 일이라도 있게 되면, 형양성을 지키기는 애초부터 글러 버린 일이오. 차라리 일찍 죽여 걱정을 없애는 게 상책일 것이오.”

종공도 주가를 거들어 말했다.

, 이만 위표의 일은 잊고 맡은 자리로 돌아갑시다. 항왕이 우리에게 속은 줄 알면 결코 그냥 있지 않을 것이오.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치고들 것이니 단단히 채비해야 하오!”

이에 한왕(韓王) ()도 더 따지지 못하고 맡은 성벽 위로 가서 곧 있을 패왕 항우의 공격에 대비했다. 한편 동문 쪽으로 간 패왕은 저만치 누른 비단 덮개를 한 한왕(漢王)의 수레가 보이자 범의 울부짖음 같은 호령소리부터 먼저 내질렀다. 

한왕 유방은 어디 있는가? 항복하러 왔다면서 과인이 이르렀는데도 어찌 수레 위에 그대로 앉아 있는가?”

그러자 수레 문에 드리운 발이 걷히며 눈에 익은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군자는 죽일지언정 욕을 보이지 않는 법이라 했소. 아무리 사세(事勢) 부득이하여 항복하게 되었지만 과인도 명색이 한나라의 왕이오. 대왕과 나란히 왕으로 봉해진 과인더러 땅바닥에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거요?”

그렇게 이죽거리듯 말을 받는 사내는 얼른 보아서는 한왕 같았으나, 목소리부터가 벌써 아니었다. 좌독(左纛)까지 꽂은 황옥거(黃屋車)를 빌리고 왕의 복색을 걸쳐도 그가 한왕 유방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린 패왕은 그때 벌써 두 눈이 뒤집혔다. 그런 일을 꾸민 한왕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또 속았다는 느낌에 이가 갈렸다.

패왕이 급한 마음에 말을 몰아 한왕의 수레 앞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너는 한왕 유방이 아니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그러자 수레 안의 사내가 서슴없이 자신을 밝혔다

밝게 보셨소. 나는 한나라 대장군 기신(紀信)이오.”

과인은 그런 이름 없는 졸개(無名小卒)가 한나라 대장군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바로 말하라. 너는 누구냐?”

어버이께서 지어주신 자랑스러운 이름을 들려주었는데도 왜 내 이름이 없다 하시오? 또 이 몸이 한나라 대장군인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오. 간밤 우리 대왕께서 내게 이 형양성을 맡기시면서 나를 대장군에 가임(假任)하셨소.”

이와 같은 기신의 말에 패왕은 문득 한왕이 있는 곳이 궁금해졌다. 기신이 끝에 한 말을 되뇌며 앞뒤 없이 물었다.

너에게 이 형양성을 맡겼다? 그럼 한왕 유방은 어디 있느냐?”

이미 성을 나가셨소. 아마도 지금쯤은 관중(關中)으로 들고 계실 것이오.”

기신이 짐짓 느긋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위사(衛士)들을 이끌고 거기까지 뒤따라온 계포에게 소리쳤다.

또 그 교활하고 음흉한 장돌뱅이한테 속았다. 어서 저놈을 끌어내려라! 그리고 수레를 뒤따라오고 있는 것들도 모조리 끌어다가 땅에 묻어버려라!”

이에 위사들이 달려가 기신을 수레에서 끌어내고, 뒤이어 달려온 한 갈래 초나라 군사가 수레를 뒤따르는 한군을 덮쳐 마소 몰 듯 한곳으로 몰았다. 그런데 그때 다시 패왕을 분통 터지게 하는 일이 생겼다.

닥쳐라. 너야말로 스스로를 너무 크게 여기는구나. 네 몸도 피와 살로 이루어졌을 터, 과연 그게 네 혀처럼 굳세고 씩씩한지 보자.”

패왕은 그렇게 기신을 꾸짖은 뒤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섶과 장작을 모아 저 쥐새끼 같은 놈을 태워 죽여라!”

그러나 기신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차게 웃은 뒤 굳게 입을 다물고 패왕을 쏘아볼 뿐이었다. 명을 받은 군사들이 흩어져 섶과 장작을 구해왔다. 오래잖아 섶과 장작이 더미지어 모이자, 그걸 보고 있던 패왕이 다시 말을 바꾸었다.

섶과 장작을 동문 문루(門樓)에서 잘 보이는 곳에 쌓고 그 위에 저놈을 산 채로 묶어라.”

그리고 군사들이 시킨 대로 하자 문루 아래로 말을 몰아가 성안을 보고 외쳤다.

주가와 종공, 한왕 신과 위왕 표는 문루로 나오너라. 과인이 너희에게 이를 말이 있다.”

패왕이 거듭 그렇게 외치자 문루 위가 수런거리는가 싶더니 두 사람이 나타나 패왕의 말을 받았다.

나는 어사대부 주가요, 이 사람은 종공()이오. 대왕께서 아시듯 이 형양성을 지키려고 남은 것은 모두 넷이나 각기 맡은 구역이 있어 한 문루에 몰려 있을 수는 없소. 이곳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있을 수 없으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우리 두 사람에게 하시오.”

너희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빠져있는지 알고나 있느냐? 한왕 유방이 너희 넷을 남겼다 하나 위왕 표는 과인에게 스스로 항복해왔던 자이니 과인이 부르면 언제든 다시 올 것이다. 또 한왕 신도 과인이 왕으로 세운 자이니 때가 되면 반드시 과인의 부름을 받들 것이다. 그리되면 너희 둘이서 어떻게 이 형양성을 지킬 것이냐? 한왕 유방이 범 같은 장수들을 거느리고도 지켜낼 수 없어 버리고 달아난 형양성이 아니더냐?”

패왕이 그렇게 말해놓고 문루위에 있는 주가와 종공을 올려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순순하게 대답했다.

그 일이라면 먼저 대왕께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소이까?”

그러더니 곁에 있는 군졸을 시켜 무언가를 가져오게 했다. 오래잖아 그 군졸이 상자 하나를 가져오자 주가가 상자 속에 든 것을 꺼내 패왕 앞으로 내던지며 물었다.

대왕 그게 무엇인지 아시겠소?”

패왕이 멀지 않은 곳에 굴러 떨어진 것을 보니 잘려진 목이었다.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눈을 흡뜬 채 죽어 쉽게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어딘가 낯익은 데가 있었다. 패왕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이 어인 사람의 목이냐?”

바로 위표의 목이외다. 대왕의 말씀처럼 또다시 우리 한나라를 저버릴 수 있는 위인이라 우리 두 사람이 미리 손을 썼소. 또 한왕 신은 설령 딴마음을 먹는다 해도 이제는 우리가 두려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오.”

주가의 그와 같은 대답에 패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터질 듯한 화를 억누르며 애써 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가에게 물었다.

너는 저 사람을 알고 있느냐?”

아무리 궁박한 처지에 빠져 있기로서니 내 오랜 벗 기신(紀信)을 못 알아볼 리야 있겠소?”

주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패왕의 물음을 받았다. 패왕도 여전히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 달래듯 다시 물었다.

기신은 과인의 눈을 속이고 한왕 유방을 달아나게 만들었으니 그 죄가 크다. 게다가 언행까지 불손하여 이제 태워 죽이려다가, 네가 마침 그 오랜 벗이라 하니 먼저 묻고자 한다. 만약 네 벗도 살고 너도 살 길이 있다면 생각을 달리 해볼 수 있겠느냐?”

그게 어떤 길이요?”

네가 성문을 열고 항복하면 기신도 살고 너도 살 수 있다. 또 네가 기신과 함께 과인을 도와 유방을 사로잡게 해준다면 너희 둘을 모두 제후로 삼고 10만 호()를 봉할 것이다.”

그러자 주가가 크게 웃으며 패왕을 나무랐다.

항적(項籍)은 듣거라. 네 일찍 잔인무도한 사람백정(人屠)으로 이름이 났으되, 앞뒤 막히고 답답하기는 마치 높은 담장 앞에 바짝 다가선 것 같구나. 너는 조금 전 네 발 앞에 굴러 떨어진 위표(魏豹)의 목을 보지도 못했느냐? 더구나 선비의 죽음은 네가 아는 그런 죽음이 아니다. 인의(仁義)를 따르고 충서(忠恕)에 맞는 죽음이라면 그 몸은 백번 죽어도 맑은 이름만으로 천추(千秋)를 사는 게 선비다. 내 벗은 이미 그 한 몸을 버려 천추의 삶을 골랐고, 나 또한 그리하려 하거늘, 네 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그와 같은 주가의 외침에 패왕의 참을성도 끝장나고 말았다. 이를 부드득 갈더니 불길이 뚝뚝 뜯는 듯한 눈길로 주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과인은 여정(呂政·시황제를 욕해 부르는 이름)이 왜 유자(儒者)들을 모조리 구덩이에 파묻었는지 알겠다. 기다려라. 내 반드시 너를 사로잡아 네 말대로 해주겠다. 네 몸을 찢어발겨 백번을 죽여 네 이름을 천추에 길이 살게 해주마!”

그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차게 명했다.

섶에 불을 붙여라!”

군사들이 시킨 대로 하자 기신의 발밑에 쌓인 섶과 장작더미에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다.

잘 가게. 기신. 불행히도 우리 대왕께서 돌아와 구해주시기 전에 이 성이 떨어지게 되면 나도 자네 뒤를 따르게 될 걸세.”

주가가 그래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기신에게 작별의 말을 던졌다. 기신도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 묶여있는 사람 같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받았다.

성현의 가르침과 함께하는 내 길이 외롭지 않으니 서둘러 따라올 것은 없네. 부디 형양성을 지켜내어 우리 대왕께서 반격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주게.”

그리고는 호탕한 웃음으로 비명을 대신하며 거세지는 불길에 그을려갔다.

살펴보면 그런 기신의 죽음은 한조(漢朝) 400년의 벽두를 장식한 유가적(儒家的) 이념미의 한 극치였다. 유학(儒學)이 제도로 정착되어 나라를 떠받드는 것은 그 뒤 거의 한 세기나 지난 무제(武帝) 이후의 일이 되지만, 다소 느닷없고 애매한 대로 그 이념은 그때 형양성에서 벌써 휘황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한편 그런 기신의 죽음을 보고 있는 패왕 항우는 까닭 모를 분노와 모욕감으로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름의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꽉 차있는 패왕으로서는 기신이나 주가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실용적인 것만 높이 치고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는 패왕에게 아직 제도로 정착하지 못한 유가적 이념미(理念美)는 기껏해야 어쩔 수 없는 책상물림의 환상이거나 홀림으로만 여겨졌다.

무슨 선비의 정신이 저같이 나약하고 비루한가. 주인이 무엇이며, 임금은 또 무엇이기에 저토록 자신을 하찮게 내던진다는 것이냐. 아무리 주인으로 정하고 임금으로 섬기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저 천박하고 비굴한 장돌뱅이 유방 놈 그 어디에 목숨까지 던져가며 받들 무엇이 있다는 것이냐. 더군다나 감히 나를 거슬러가며.

나는 온 나라 사람들이 우러르는 명문가의 후예이며, 그 안타까운 죽음 때문에 전설로 되살아나기까지 한 명장 항연(項燕)의 손자이다. 또 숙부 무신군과 더불어 진나라에 맞서 일어난 뒤로는 한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었고, 이제는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도록 노름꾼 주정뱅이에 좀도둑 떼의 우두머리 노릇이나 하다가 풍운에 떼밀려 현령으로 출발한 저 허풍선이 유방을 위해 나에게 감히 맞서려 하다니.‘

한왕 유방이 성을 빠져 나간 뒤로 사흘 밤낮, 패왕으로 하여금 전군을 들어 형양성을 공격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그런 느낌에서 비롯된 그 까닭 모를 분노와 모욕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왕은 겨우 몇십 기()만 이끌고 빠져나가 성안의 전력(戰力)은 크게 줄지 않은 데다, 성을 맡아 지키기로 한 장수들의 각오와 결의도 한창 날카로운 기세로 변해 있었다. 주가와 종공이 한왕(韓王) ()과 더불어 남은 장수들의 기운을 북돋우고, 성안의 물자와 군민을 모두 성벽 위로 끌어내어 죽기로 싸우니, 형양성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성고(成皐)에서 날아온 소식이 패왕을 맥 빠지게 했다.

어젯밤 한왕 유방이 성고성을 버리고 관중으로 달아났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바로 대군을 내어 한왕을 뒤쫓지 않은 게 한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신의 말만 믿고 제 분에 못 이겨 펄펄 뛰는 사이에 한왕은 유유히 제 소혈로 돌아가 똬리를 틀고 앉은 셈이었다. 형양성을 치는 일도 더는 무리를 할 수 없었다.

좋다. 군사를 거두어라. 며칠 더 굶주리고 지치기를 기다려 다시 형양성을 치자.”

성은 떨어질 기색이 없는데 군사들만 상하자 마침내 패왕이 그렇게 명을 내려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물샐틈없이 성을 에워싸게 해 쌀 한 톨 군사 한 명 성안에 들지 못하게 막고 나니 다시 궁금증이 일었다.

불에 타 죽은 기신뿐만 아니라 가망 없는 성안에서 저토록 완강하게 버티는 저들이 기대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내 듣기로 유방은 무례하고 오만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선비들을 모욕하기 때문에 절개 있는 선비들은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저잣거리 장사치들에게서 배운 더러운 술법으로 땅과 재물을 아낌없이 내려 탐욕스러운 무리의 환심을 살 뿐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땅과 재물에 팔린 무리들이 할 수 있는 짓 같지가 않구나. 도대체 그 엉큼하고 능글맞은 장돌뱅이가 저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런데 형양성 안이라고 모두 기신이나 주가 같은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양도(糧道)가 끊긴 채 에워싸인 지 오래되는 바람에 굶주리고 지친데다, 그 며칠 패왕의 위세에 겁을 먹어 밤중에 몰래 성벽을 넘어 도망쳐 나오는 한나라 군사들도 더러 있었다. 패왕이 그들 중에서 기신과 주가를 잘 아는 자들을 찾아오게 해 물었다.

며칠 전에 불타 죽은 기신이라는 자는 한왕으로 꾸며 나를 속이기 전에는 무엇을 하였느냐? 한왕이 그에게 어떤 벼슬을 내리고 어떤 대접을 하였느냐?”

기신은 풍패(豊沛)에서부터 막빈(幕賓)으로 한왕을 따라나선 사람입니다. 일찍이 칠대부(七大夫)에 올랐으나 이름뿐이었고, 지금까지는 대개 이졸들 사이에 묻혀 싸워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도 뭔가를 조금 알 만하다는 눈길이 되어 말했다.

그렇다면 한왕 유방은 그런 기신을 갑자기 대장군으로 올려 세우면서 자기를 대신해 죽어주기를 당부한 것이로구나.”

그건 아닙니다. 듣기로 한왕처럼 꾸미고 항복할 꾀를 먼저 낸 것은 오히려 기신이었다고 합니다. 한왕이 기신을 대장군에 가임(假任)한 것은 그저 항복하는 모양새를 제대로 갖춰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말에 패왕은 다시 알 수 없다는 기분이 되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주가는 어떠했느냐?”

벼슬은 진작부터 어사대부(御使大夫)였지만 그 또한 싸움터를 떠도는 한왕의 진중에서는 그리 대단할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왕은 주가가 유자(儒者)라 하여 수하등과 더불어 자주 놀리고 욕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왕이 벼슬이나 재물로 주가와 기신의 마음을 산 것도 아니었다.

무엇일까. 한왕은 무엇을 주고 저들의 목숨을 산 것일까.’

항복해 온 군사들을 내 보낸 뒤 패왕은 다시 한동안이나 더 생각에 잠겼으나 끝내 그게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다만 그때부터는 까닭 모를 분노와 모욕감 대신 어떤 섬뜩함으로 유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처지를 바꾸어 내가 유방처럼 된다면 기신처럼 나서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살이 불에 타는데도 뜻을 바꾸지 않고 웃으며 나를 위해 죽어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지만 어쨌든 형양성은 오래 끌지 않고 떨어뜨려야 할 성이었다. 며칠 뒤 패왕은 다시 장졸들에게 형양성을 칠 채비를 하게 했다. 그런데 그날 한낮이었다. 갑자기 성문이 열리더니 성 안에서 수천 명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초나라 군사들이 급히 마주쳐 나가 보니 이번에 나온 사람들은 늙은이와 아이들이었다.

성난 패왕은 그날을 넘기지 않고 대군을 몰아 형양성을 쳤다. 패왕이 몸소 통나무를 메고 흙 자루를 져 나르며 앞장서 싸웠으나 주가와 종공은 군민을 이끌고 한 번 더 성을 지켜냈다. 지난번에 여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날 다시 늙은이와 아이들을 내보내 군살을 던 때문인지 성안의 전력은 며칠 전보다 오히려 정비되어 있는 듯했다.

기신과 주가 모두 유자였지만, 기신은 그 이념을 한순간에 처절하게 꽃피우고 져 간 데 비해, 주가는 그 이념으로 살아남아 한나라의 방패로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기신을 내세워 초나라 군사들과 패왕의 눈을 속이고 형양성을 빠져 나온 한왕 유방은 우선 다급한 대로 성고(成皐)로 갔다. 성고성 안에는 형양성과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룬다며 따로 갈라둔 군사 5천과 장수 여럿이 있었고, 구강왕 경포와 회남(淮南)에서 긁어온 그의 군사도 2천이 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자 한왕은 다시 불안해졌다. 형양성에서 더 많은 장졸들을 거느리고서도 사로잡힐까 걱정될 만큼 어려움을 겪은 탓이었다.

아니 되겠소. 항왕의 기세가 워낙 날카로워 이 성고성도 안전한 곳이 못되오. 아무래도 관중으로 물러나 세력을 정비해야겠소.”

한왕이 가만히 장량과 진평을 불러놓고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왕께서 성고까지 버리시면 형양성은 정말로 외로워집니다. 성고가 빈 것을 안 항왕이 뒤를 걱정하지 않고 전군을 들어 형양성을 짓두들기면 주가와 종공 등은 오래 버텨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성고에 약간의 군사를 남겨 의병(疑兵)을 삼고 허장성세로 항왕을 속이면 되지 않겠소?”

한왕이 그렇게 대답했다. 장량이 그래도 고개를 무겁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루 이틀은 속일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때 진평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항왕은 기왕에도 성고를 돌아보느라 형양성을 치는데 부릴 군사를 따로 제쳐놓은 적은 없습니다. 다만 성고를 버림으로써 이곳과 오창, 형양을 잇는 관동의 발판을 잃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래도 대왕을 지키는 일이 우선이니, 잠시 관중으로 물러나 항왕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하는 것도 한 방책일 것입니다.”

과인의 뜻도 호군(護軍)과 같소. 아무래도 대세가 기운듯하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숨을 돌린 뒤에 돌아와 다시 겨뤄보는 것이 좋겠소.”

무엇에 놀랐는지 한왕이 전에 없이 기가 죽어 거듭 관중으로 물러나기를 고집했다. 장량과 몇몇 장수가 끝내 성고를 지키자고 우겼으나 다음날 밤 기어이 성고성을 떠났다. 떠나기에 앞서 한왕이 경포를 불러 말했다.

과인이 3천 군사를 보태줄 터이니 구강왕은 회남으로 가보시는 게 어떻겠소? 항백이 패왕 곁으로 불려오고, 대사마 주은이 많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그 땅을 지키러 갔다고 하니 한번 건드려 볼만한 것 같소.”

경포도 한왕을 따라 관중으로 들기보다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제 근거지인 회남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듯싶었다. 원래 이끌고 있던 구강군(九江軍) 수천에다 한왕이 나눠주는 군사 3천을 받아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거기에 한왕을 호위하며 따라가는 군사가 또 5천이라, 성고성은 늙은 군사 3천에 장수 몇 명이 남아 지키는 흉내만 냈다.

하지만 성고를 버리듯 떠난 뒤에도 한왕은 쫓기는 기분에서 쉬 놓여나지 못했다. 5천이 넘는 군사를 거느렸건만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샛길로, 그것도 어두운 밤에만 행군했다. 한왕이 그렇게 사흘을 달려 낙양에 이르렀을 때였다. 낙양을 지키고 있던 장수가 다시 5천 군사를 이끌고 한왕을 마중했다. 군사가 배로 불어나고 장수들이 늘자 한왕도 비로소 한시름 놓은 듯 군사를 멈추고 낙양 성안으로 들었다.

낙양에서 함곡관까지는 보졸(步卒)이 종일을 내달아도 사흘이 넘는 길이었으나, 초나라 세력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곳이라 안심해도 좋았다. 거기다가 낙양에서 편히 쉰 하루 밤이 한왕의 느긋한 속과 유들유들한 배포를 되살렸다. 전날 밤까지 누렇게 뜬 얼굴로 쫓기던 사람 같지 않게 기장(騎將) 관영을 불러 불쑥 말했다.

장군은 이제 군사 2000500()를 이끌고 한단(邯鄲)으로 가서 대장군 한신의 명을 따르라.”

그때껏 마음 졸이며 한왕을 호위해 온 관영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였다.

그럼, 대왕은 누가 호위합니까? 아직도 함곡관까지는 500리 가까운 길이 남았습니다.”

관영이 그렇게 묻자 한왕은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한단으로 가는 길에 오창(敖倉)으로 사람을 보내 조참(曺參)은 장군과 같이 대장군 한신에게 배속되게 하고, 주발(周勃)은 샛길로 과인을 따라오게 하라. 여기서 함곡관까지는 남은 장졸들만으로도 넉넉하다.”

마치 천하의 형세를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사람 같은 말이었다. 패왕이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롭건만, 범 같은 두 장수와 적지 않은 군사를 하북(河北)과 산동(山東)에 흩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뒷날로 보면 요긴한 배치였으나, 그때로서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결정이라 관영이 다시 한왕을 보고 물었다.

지금 우리는 기신과 주가를 죽을 곳에 남기고 간신히 형양성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성고에서도 버티지 못해 관중으로 물러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장졸을 갈라 조나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까?”

천하를 다투자면 조() () ()부터 우리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장군 한신과 장이만으로는 일의 진척이 너무 더디다. 그대들 풍패(豊沛)의 맹사(猛士)들이 가봐야겠다.”

한왕이 눈도 껌벅하지 않고 그렇게 받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관영이었다. 한왕이 그렇게 억지처럼 나오자 갑자기 무엇을 떠올렸는지 태도를 바꾸었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듯 공손하게 한왕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대왕의 뜻을 받들어 먼저 한단으로 가겠습니다. 대왕께서도 저희와 호응하는데 너무 늦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는 다음날로 500기에 보졸 2000을 이끌고 한단으로 떠났다.

관영이 그렇게 한왕의 말을 믿고 따르게 된 것은 아마도 한왕에게서 이따금씩 번뜩이는 직감이나 어려울 때마다 한왕을 구해주는 알지 못할 행운 같은 것들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량과 진평도 관영과 마찬가지인 듯했다. 알 수 없다는 눈길로 서로를 쳐다보면서도 굳이 그런 한왕을 말리지는 않았다.

한왕은 장졸 대부분을 낙양에 남겨 지키게 하고 자신은 다시 몇 십 기만 거느린 채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팽성에서 패왕에게 여지없이 지고 허둥지둥 관중으로 쫓겨든 지 꼭 1년 만이었다. 태자 영()과 함께 도읍인 역양((,))을 지키고 있던 승상 소하가 위수(渭水) 나루까지 사람을 보내 한왕을 영접하였다.

한왕이 역양((,))에 이르러 보니 사람을 풀어 관동(關東)의 소식을 꿰고 있던 소하는 마치 한왕이 그렇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빈틈없이 준비해놓고 있었다. 지난해 끝낸 호구조사를 통해 알아둔 장정 3만을 새로 뽑아 조련하는 중이었고, 창고마다 군량이며 피복 갑주에 병장기가 가득했다.

역양에 든 지 스무날도 안돼 3만이 넘는 군사가 늘고, 넉넉한 군량과 병장기까지 갖춰지자 한왕의 기세는 다시 살아났다.

어서 함곡관을 나가 때가 늦기 전에 형양성을 구하자. 기신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주가와 종공까지 항왕의 손에 죽게 할 수는 없다.”

한왕이 그러면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다른 장수들도 굳이 그런 한왕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이에 관중에 든 지 보름도 안돼 군사를 몰아 함곡관으로 나오려는데 한 서생(書生)이 한왕을 찾아왔다. 원래 진()나라 대부(大夫)의 후예였으나, 몇 대째 관중에 살고 있다는 원씨(轅氏) 성을 쓰는 서생이었다.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과인을 찾아오셨소?”

그새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한왕이 원생(轅生)을 행궁(行宮) 안으로 맞아들이고 공손하게 물었다. 원생이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

한나라와 초나라가 형양에서 서로 맞붙은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언제나 우리 한군(漢軍)이 고달프게 내몰렸습니다. 바라건대 군왕께서는 이번에는 무관(武關)으로 나가 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항왕은 틀림없이 군왕을 따라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때 군왕께서는 성벽을 높이 하고 굳게 지키기만 하시면, 항왕을 그곳에 묶어둘 수 있어 성고와 형양의 우리 군사들은 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다음 대장군 한신 등으로 하여금 하북(河北)의 조()나라 땅을 온전히 거둬들이게 하시고, 다시 연()과 제()와 굳건히 이어지게 하십시오. 군왕께서 형양으로 다시 가시는 것은 그 뒤라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만 하신다면 초군(楚軍)은 막고 지켜야할 곳이 많아져 힘이 나누어지고, 우리 한군(漢軍)은 편히 쉬었으니 다시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한왕이 들어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거기다가 이미 낙양에서 관영과 조참을 대장군 한신에게 보낸 것과도 맞아떨어지는 계책이라 한왕은 원생의 말을 따랐다. 군사를 남쪽으로 돌려 무관으로 향했다.

3만 군사와 함께 무관을 나온 한왕은 옛 한나라 땅을 가로질러 완읍(宛邑)으로 갔다. 그때 완성(宛城)은 초나라 장수가 군사 몇 천 명과 함께 지키고 있었다. 한왕은 먼저 완성을 빼앗아 요란스러운 소문부터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는 패왕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섭성(葉城)을 빼앗아 또 한번 요란스러운 소문을 북쪽으로 올려 보냈다.

완읍과 섭읍을 지키던 장수들로부터 잇따라 급한 전갈을 받자 정말로 패왕은 그냥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주가와 종공이 워낙 죽기로 맞서 형양성의 싸움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거기다가 밉살스러운 유방이 나타나 두 읍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장정과 물자까지 거둬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하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군사를 물려라! 남쪽으로 간다. 유방부터 잡아 죽여 이 형양성을 머리 없는 귀신으로 만들어 버리자.”

패왕이 그렇게 명을 내려 군사를 남쪽으로 몰고 갔다. 종리매에게 군사 2만을 남겨주며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게 하였으나 한군(漢軍)에게는 지옥 같던 공성(攻城)은 그날로 그쳤다. 그런데 남쪽으로 군사를 휘몰아 내려오던 패왕은 양성(陽城)에 못 미쳐 또다시 분통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회남으로 내려간 구강왕 경포가 그곳에서 군사 1만을 이끌고 올라와 한왕과 합세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완읍(宛邑)과 섭읍(葉邑) 사이를 휩쓸며 분탕질을 치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습니다. 그대로 두면 회북(淮北)의 땅은 영영 대왕의 다스림에서 벗어나고 말 것입니다.”

섭읍에서 쫓겨 온 이졸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패왕의 눈길에서 다시 불길이 일었다. 먹물로 떠서 시퍼런 경포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흉악하게 떠올랐다. 항백을 시켜 그 처자를 모조리 죽여 버린 일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얼굴 푸른 도적놈이 회북으로 올라왔다고? 회남을 지키러 간 대사마 주은(周殷)은 무얼 하고 있단 말이냐?”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한층 사납게 군사를 몰아댔다.

그 무렵 한왕과 경포도 패왕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섭성에서 만나 머리를 맞대고 패왕을 맞이할 궁리를 짜냈다.

항우의 성격으로 보아 이번에도 대군을 끌고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껏해야 5만을 넘지 않을 것이니, 대왕과 신의 군사를 합치면 머릿수로는 항우와 맞서볼 만합니다. 게다가 초나라 군사는 급한 마음에 천리를 달려오는 군사들이라 우리가 길목에서 쉬며 기다리다가 받아치면 못 이길 것도 없습니다. 완성(宛城)으로 대군을 물리는 척하고 매복과 유격(遊擊)을 배합하여 적을 괴롭히다가, 틈이 생기는 대로 우리 양쪽 군사를 일시에 집중하여 적을 들이쳐 보면 어떻겠습니까?”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은 원한 때문인지 경포가 그렇게 정면으로 싸워보자고 우겼다. 한왕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항왕의 무서운 돌파력은 천하가 익히 알고 있소. 항왕이 강동(江東)을 나온 이래 정면으로 그의 대군과 맞서 견뎌낸 이는 아무도 없었소. 게다가 이미 우리 싸움은 한두 번의 전투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오. 크고 작은 기세가 얽히고, 곳곳의 전기(戰機)가 엇갈리면서 풍운을 일으키다가, 때가 되면 홀연 승패가 갈리면서 천명(天命)이 그 주인을 찾아 이를 것이외다. 따라서 우리는 각기 성벽을 높이고 굳게 지키며 그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려야 하오. 섣불리 항왕의 날카로운 칼끝과 맞섰다가, 기약할 뒷날조차 없이 되어서는 아니 되오. 구강왕은 이 길로 완성에 들어 성벽을 높이고 해자(垓字)를 깊게 하시오. 과인은 섭성에 자리 잡고 역시 굳게 지키며 변화를 살펴보겠소.”

원생(轅生)이 한 말에 장량과 진평이 거들어 세밀하게 다듬어준 계책이었다. 한왕이 그렇게 말하자 경포가 성에 안찬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변화를 살펴보신다면 무엇을 언제까지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까?”

그 물음에 곁에 있던 장량이 한왕을 대신해 조심스레 대답했다.

대장군 한신이 조나라와 연나라를 평정하고 산동(山東)을 바라보고 있음은 구강왕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대왕께서는 다시 관영과 조참을 보내 대장군을 거들게 하였으니, 오래지 않아 제()나라까지 우리 편으로 거둬들이게 될 듯합니다. 또 대왕께서는 하수(河水)가에 있으면서 항왕의 양도(糧道)를 끊고 있는 팽월에게도 사람을 보내, 이번에는 수수()를 건너 서초(西楚) 깊숙이 들어가라 이르셨습니다. 그저 초군(楚軍)의 양도만 끊는 게 아니라, 바로 서초의 곡창을 불살라 아예 군량으로 보낼 곡식을 없게 하려는 뜻이지요. 따라서 그 둘 중 어느 한쪽만 일어나도 항왕은 이곳에서 한가롭게 우리를 에워싸고 있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급한 성격을 이기지 못해 북쪽으로 동쪽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기력을 소모할 터이니, 우리는 짧은 칼 한 자루만 갈아두어도 지치고 상한 호랑이의 목을 따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경포도 흔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 떼를 이끌고 젊은 날을 보내면서 막싸움으로 익힌 감각이 있어 장량이 하는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병가(兵家)들의 말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잘 싸우는 것이라더니, 자방(子房)선생의 말을 들으니 무슨 말인지 알 듯도 합니다. 성벽을 굳게 하고 싸우지 않는 것(堅壁不戰)도 좋은 싸움이 될 듯합니다.”

경포의 그 같은 말에 장량이 일깨우듯 몇 마디 보탰다.

하지만 농성(籠城)도 곧 편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거리는 멀지만 완()과 섭() 두 성이 입술과 이처럼 서로 지키고 보살펴야만 항왕이 더 급한 곳으로 옮겨갈 때까지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경포는 구강군(九江軍)을 이끌고 완성으로 내려가고, 한왕은 섭성에서 패왕을 맞아 농성할 채비에 들어갔다. 한왕이 군민을 풀어 성밖 해자(垓字)를 깊게 파고 돌을 날라 성벽을 높고 두껍게 하니 며칠 안돼 섭성은 달라졌다. 비록 쇠로 된 성벽에 끓는 물이 찬 못(金城湯池)을 두르지는 않아도 적이 결코 얕볼 수 없는 굳건한 성이 되었다.

형양성에서 곤궁을 겪어본 한군은 관중에서 날라 온 곡식을 성안에 들이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인근 촌락에서 곡식을 더 거둬들이고 가축을 몰아와, 짧아도 반년은 버틸 군량을 마련했다. 농성에 쓰일 다른 물자들도 넉넉히 모아들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패왕 항우의 대군이 섭성으로 몰려든 것은 그와 같은 농성 채비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이었다. 형양성을 끝내 떨어뜨리지 못하고 몇 백리 남쪽으로 끌려온 분풀이 삼아 패왕은 첫날부터 맹렬하게 섭성을 들이쳤다. 미리 헤아리고 있던 일이라 첫날은 한군도 잘 막아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전날 마구잡이 공성(攻城)으로 입은 손실 때문인지 그날 패왕은 성을 들이치기 전에 한왕을 먼저 문루(門樓)로 불러냈다. 한왕이 무덤덤한 얼굴로 패왕을 내려보다가 불쑥 물었다.

성을 에워쌌으면 급히 쳐서 깨뜨릴 일, 초왕은 어찌하여 과인을 찾는가?”

마치 남의 일 말하듯 그렇게 묻는 말투가 벌써 패왕의 심사를 밑바닥부터 긁어놓았다.

유방은 듣거라. 네 명색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어찌 이리 비겁하게 달아나기만 하느냐? 팽성에서 잡으려 하니 형양으로 달아나고, 형양에서 잡으려 하니 성고로 달아났다. 성고도 불안해 관중으로 숨더니, 기껏 관중을 나와서는 또 이 섭성에 숨어 자라처럼 머리를 처박고 있구나. 그렇게 달아나기만 하면서 어떻게 장졸들을 부리며, 그토록 구차하게 숨어있기만 하면서 어떻게 천하를 다툰다는 것이냐? 이번에는 성을 나와 과인과 당당하게 겨뤄보자.”

패왕 항우가 제법 말재주를 부려 한왕을 격동시켜보려 했다. 그러나 한왕은 이맛살 한번 찌푸리는 법이 없었다. 환하게 웃으며 패왕의 말을 받았다.

필부(匹夫)의 칼은 헝클어진 구레나룻에 부릅 뜬 두 눈 같으며, 철갑을 두르고 사람들 앞에서 힘과 날램을 다투는 칼이니, 초왕의 칼이 바로 그러하다. 허나 제왕(帝王)의 칼은 하늘을 칼등으로 삼고 땅을 칼날로 삼으며 만백성을 칼자루로 삼는다. 한번 휘둘러 천하를 바로잡고 두 번 휘둘러 만백성을 평안케 하니, 바로 과인의 칼이다. 어찌 제왕의 칼을 필부의 칼과 뒤섞어 스스로를 욕되게 하겠는가.”

그러자 오히려 그 말에 격동된 패왕이 목소리를 높였다.

패현의 장돌뱅이가 말재주만 늘었구나. 네가 형양성 밖에 버리고 달아난 네 신하 기신이 어찌 되었는지 알기나 하느냐?”

과인이 듣기로 군왕이 된 자는 남의 충신을 모질게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기신을 어떻게 하였는가?”

이번에는 한왕도 충격을 받았는지 묻는 말끝이 떨렸다. 패왕이 기세 좋게 소리쳤다.

장작불에 태워 죽였다. 지금쯤은 주가와 종공도 과인의 상장군 종리매에게 사로잡혀 가마솥에 삶겼을 것이다.”

패왕이 그래놓고 성벽 위에 있는 한나라 장졸들을 향해 한층 크게 외쳤다.

듣거라. 너희들도 저 허풍만 가득 찬 장돌뱅이 유방을 따르다가 성이 깨어지는 날에는 기신이나 주가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하루 빨리 성문을 열고 유방을 묶어 바쳐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누려라!”

패왕 나름으로는 한왕 유방뿐만 아니라 한나라 장졸들에게도 겁을 주려고 그렇게 외친 것이었으나 반응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기신을 어찌하였는가는 바로 군왕으로서의 그릇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딱하다. 초왕은 그같이 좁은 속과 모진 심사로 어찌 감히 천하를 바라는가?”

한왕이 차게 웃으며 그렇게 패왕을 나무랐고, 성벽 위에 나와 섰던 한나라 장졸들도 소리 높여 패왕을 욕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정말로 격동된 쪽은 패왕이었다.

저것들이 정녕 관을 열어봐야 사람이 죽어있는 줄을 알겠구나. 더 기다릴 것 없다. 모두 힘을 다해 성을 들이쳐라. 가장 먼저 성벽 위에 오른 자에게는 천금을 내리고, 유방을 사로잡아 오는 자는 상장군에 5만호()를 봉하겠다!”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앞장서서 싸움을 돋우었다. 하지만 워낙 마음먹고 지키려고만 하는 싸움이라 그날의 싸움도 패왕의 뜻같이 되지는 않았다.

연이틀 힘을 다해 섭성을 들이쳐도 끄덕 않자 패왕 항우는 더욱 성이 났다. 사흘째부터는 뒤에 있는 시양졸(養卒)까지 모두 끌어내어 성벽 위로 내몰았다.

성난 패왕이 초군(楚軍)의 무서운 전투력을 모두 끌어내 들이치니 섭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벽이 든든하고 군량이 넉넉하다 해도, 밤낮 없이 이어지는 맹공에 먼저 사람이 견뎌내지 못했다. 에워싸인 지 닷새가 지나자 성안의 군민(軍民)이 아울러 지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섭성이 초군에게 에워싸인 지 이레째 되던 날이었다. 그날도 한군은 아침부터 사면에서 공격을 퍼붓는 초군 때문에 힘든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해질 무렵 갑자기 서문 쪽의 초군 뒤편이 어지러워지더니, 이어 동 남 북 세 곳을 죄어오던 초군의 압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어디서 온 군사들인지 모르나 서문 쪽 초군을 뒤에서 들이치고 있습니다. 남문과 북문 쪽의 초군이 서문 쪽을 구원하려 군사를 빼고 있습니다.”

성벽 위 높은 망루에서 사방을 내려다보고 있던 군사가 그렇게 알려왔다. 한왕이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초나라 군사들과 싸운다면 우리 우군이다. 어디 군사들인지 알 수 없는가?”

너무 멀어 기치나 복색을 잘 알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전갈을 가져온 군사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 곁에 있던 장량이 말했다.

아마도 구강왕 경포의 군사일 것입니다.”

경포는 이곳에서 200리나 떨어져 있는 완성을 지키고 있소. 뿐만 아니라 과인처럼 성벽을 높이고 싸우지 않는 것을 계책으로 삼아 굳게 지키기만 하기로 되어 있소.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군사를 낸단 말이오?”

항왕의 그늘에 묻혀 그렇지, 구강왕도 전투력이 엄청난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항왕에게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은 원한이 있는데 어찌 성안에서 항왕의 등짝만 바라보고 있겠습니까? 아마도 정병 몇 천 명을 이끌고 기습을 나왔을 것입니다. 서쪽에서 왔다면 구강왕의 군사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한왕이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성문을 열고 구원을 나가야 하지 않겠소? 항왕이 이 섭성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를 모두 휘몰아 덮치면 구강왕이 크게 위태롭게 될 것이오.”

장량이 별로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구강왕 경포는 지난날 장강(長江)가에서 무리와 함께 수적(水賊)질을 할 때, 여러 번 진나라 관병(官兵)에게 쫓겨 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무리로 큰 군사에 맞서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잘 알 것이니, 대왕께서 크게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구강왕이 우리에게 한숨 돌릴 틈을 선사한 것쯤으로 여기시고, 성안을 단속하여 농성채비나 한층 단단히 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항왕이 제 성품을 못 이겨 무리하게 군사를 부린다면 그때는 대왕께서도 구강왕을 위해 따로 하실 일이 생길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일이오?”

항왕이 구강왕 경포를 두들겨 내쫓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완성(宛城)까지 뒤쫓아 간다면, 그때는 우리도 성을 나가 싸워야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먼저 섭성(葉城) 주변에 남겨 둔 초나라 군사를 들이쳐 완성에 가있는 항왕을 불러들이게 하고, 그래도 항왕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도 구강왕이 했던 것처럼 발 빠른 군사를 내어 항왕의 등짝을 후려쳐야 합니다.”

장량의 그 같은 말에 한왕이 문득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렇게 항왕의 화를 돋우어 섭성으로 불러들였다가 뒷감당은 어찌 하시겠소?”

장량이 태평스레 대답했다.

힘을 다해 지키면서 또 누군가가 항왕의 등짝을 후려쳐 주기를 기다려야겠지요. 정히 아니 되면, 구강왕에게 다시 항왕의 뒤를 치게 하는 것도 한 계책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항왕으로 하여금 완성과 섭성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상책이요, 항왕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스스로 빠져들게 되는 하책(下策)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패왕 항우는 바로 장량이 말하는 하책을 골라잡았다.

패왕은 몇 년 동안이나 팔다리처럼 부려 온 구강왕 경포가 다른 사람도 아닌 한왕 유방 밑에 들어갔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그 아내와 자식을 잡아 죽여 분한 속을 풀었으나, 이제 다시 한왕을 위해 자신의 등 뒤를 찔러오니 그저 되받아쳐 내쫓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예 뿌리를 뽑아버릴 작정으로 경포를 뒤쫓아 완성으로 갔다.

하지만 경포가 지키는 완성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이틀이나 불같이 들이쳐도 끄덕 없어 패왕이 은근히 조바심을 내고 있는데, 다시 섭성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남아 성을 에워싸고 한왕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로 했던 항장(項壯)이 보낸 전갈이었다.

한왕 유방이 불시에 군사를 내어 북문 쪽에 있던 우리 본진을 들이쳤습니다. 동 서 남 세 곳의 군사들을 불러 겨우 막아내기는 했습니다만, 여기 남은 군사들만으로는 한왕을 섭성에 가둬놓기 어려울 듯합니다. 자칫하면 전처럼 성을 빠져 나가 두고두고 대왕의 우환거리가 될까 실로 걱정입니다. 대왕께서 어서 섭성으로 돌아오시어 한왕의 일부터 결판을 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달려온 군사로부터 그런 말을 전해 듣고 보니 제성을 못 이겨 완성까지 달려온 패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패왕에게도 더 급한 것은 한왕 유방을 잡는 일이었다. 이에 패왕은 일껏 에워싼 완성을 버려두고 군사를 섭성으로 되돌렸다. 하지만 경포가 그를 선선히 놓아주지 않아 패왕은 다시 뒤따르던 군사 한 갈래를 잃고서야 완성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패왕이 섭성으로 돌아오니 어찌된 셈인지 한왕 유방은 아직도 성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성을 빠져나가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대로 버티는 게 께름칙했으나, 패왕에게는 그 까닭을 깊이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돌아온 그날부터 다시 전군을 들어 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패왕이 며칠 제대로 힘을 모아 섭성을 들이쳐 보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쪽에서 유성마(流星馬)가 날아들었다. 설공(薛公)과 더불어 산동에 남아 팽성의 배후를 지키던 항성(項聲)이 하비()에서 보낸 급보였다.

하수(河水) 일대에서 우리의 양도(糧道)를 끊고 분탕질을 치던 팽월이 이제는 수수()를 건너 우리 초나라의 곡창을 노리고 있습니다. 신이 설공과 더불어 막아 싸우고 있으나 팽월의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습니다. 지금은 하비()로 향하고 있는데, 저희가 끝내 지켜낼 수 있을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하비라면 팽성의 등줄기요, 강동(江東)의 곡식을 거두어 쌓아둔 서초의 곡창이기도 했다. 팽월이 설치고 다닌다고 하던 하수(河水) 부근으로부터는 1000리가 훨씬 넘는 곳인데, 팽월이 거기까지 내려가 휘젓고 다닌다니 패왕은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울화부터 치밀었다.

팽월 그 쥐 같은 늙은 것이 정말로 간이 부었구나. 우리 양도를 끊고 다닌 것만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초나라의 곡창을 노린다고? 용서할 수 없다. 내 반드시 그 늙은 도적놈을 사로잡아 갈가리 찢어놓으리라!”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칼자루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장수들에게 명을 내려 그날로 군사를 동쪽으로 빼려 했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투혼(鬪魂)이요 자신감이었지만, 실은 그와 같이 바쁘게 돌아치지 않으면 안되는데 패왕 항우의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왕 유방도 싸움터를 떠돌기는 마찬가지였으나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작전을 구사하는 세력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조나라와 연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대장군 한신과 상산왕 장이가 그러하였고, 방금 산동을 휩쓸다가 초나라 땅 깊숙이 남하하고 있는 팽월이 그러하였다. 당장은 완성에 있으면서 섭성의 한왕과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고 있지만 경포도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따로 전단(戰端)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고, 관중에 있는 소하도 징병과 보급에서는 독자적인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왕의 명을 받들고 있었지만, 한왕과 연결이 전혀 없이도 독자의 판단과 구상에 의지해 패왕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패왕 항우에게는 아무런 명령이나 지시를 받지 않고도 한왕 유방과 싸워낼 수 있는 독자의 세력이 전혀 없었다. 장수들 중에는 방금 형양성에 남아 있는 종리매처럼 간혹 패왕과 떨어져 싸우게 되는 수가 있었지만, 그때도 맡겨진 것은 한 지역의 전투에 국한된 지휘권일 뿐이었다. 때로 패왕과 온전히 연결이 끊어진 경우에도 그저 초군의 한 별동대(別動隊)일 뿐, 독자적인 세력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곧 초나라 장수들은 모두가 패왕의 부장(部將)으로서 받은 군령을 수행이나 전달할 뿐이었고, 전략 전술을 독자적으로 수립하는 작전권은 없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한 작전이거나 전략적 요충을 둘러싼 싸움은 언제나 패왕 자신이 달려가야 했다.

뒷날에 이르러서는 한나라와 초나라의 상부 지휘구조가 그렇게 달라진 까닭이 여러 가지로 따져지고, 결국은 지도자의 자질이나 개성과 연관을 맺는 논의로 번지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한왕 유방도 패왕 항우도 그런 지휘구조의 득실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때까지 해온 그대로 밀려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패왕이 천하가 좁다고 내달려온 피로를 느낄 겨를도 없이 동쪽으로 팽월을 잡으려 떠나려는데 북쪽에서 갑자기 반갑지 않은 소식이 와서 패왕의 발목을 잡았다. 형양성을 지키던 종리매가 급하게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팽월이 양도를 끊어 우리 군사도 굶주리게 된 데다, 성고(成皐) 성안에 남겨진 한나라 군사들이 대왕께서 아니 계신 줄 알고 성을 빠져나와 우리를 괴롭히자 형양성 안에 갇혀 있던 주가와 종공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이 성고성과 연결하여 앞뒤에서 우리를 치면 지금 여기 남은 군사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들 것입니다. 게다가 한나라 대장군 한신의 대군이 한단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벌써 백마(白馬)를 지나 수무(脩武)로 향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그대로 팽월을 잡으러 동쪽으로 떠날 수가 없었다. 죽은 범증의 말이 아니더라도, 형양과 성고 오창을 잇는 중원의 곡창지대가 천하 쟁패의 요충(要衝)이 된다는 것은 패왕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이 위태로워졌다 싶으니 하비()가 오히려 가볍게 보였다.

아니 되겠다. 먼저 성고로 올라가자. 거기 남아 준동하는 한나라 쥐새끼들을 쓸어버린 뒤에 형양을 뿌리 뽑고 하비로 내려간다.”

한 식경이나 망설이며 이리저리 헤아려 보던 패왕이 마침내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군사를 북쪽으로 몰아갔다. 한차례 호되게 섭성을 몰아쳐 한군(漢軍)의 얼을 반나마 빼놓은 뒤였다.

한번 움직이자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은 살별처럼 재빨랐다. 초군(楚軍)500리 가까운 길을 밤낮 없이 내달아 성고성 밖에 불쑥 나타난 것은 섭성을 떠난 지 나흘째 되던 날 새벽이었다.

종리매가 이끈 초나라 군사가 그리 많지 않은 줄 알고 겁 없이 성문을 뛰쳐나가 휘젓고 다니던 성고성 안의 한나라 군사들은 그날 새벽 갑작스러운 함성소리에 놀라 깨어났다. 허둥지둥 창칼을 찾아들고 성벽 위로 달려가 보니 땅속에서 솟은 듯 엄청난 대군이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높이 펄럭이는 것은 다름 아닌 패왕 항우의 깃발이었다.

원래도 성고성 안에 남겨진 것은 늙고 허약한 군사 3000에 이름 없는 장수 몇 명이 고작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몇 만으로 어림되는 대군을,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패왕 항우가 몸소 이끌고 성을 에워쌌으니 그걸 알아본 순간 이미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그때 패왕이 성이 허물어질 듯한 고함소리로 외쳤다.

성안의 한군은 듣거라. 이미 과인의 5만 대군이 너희를 에워쌌으니 어서 항복하라. 어리석게 맞서다가 성이 무너지는 날이면 너희는 모두 산 채 한구덩이에 묻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성문을 열어 항복하면 터럭 하나 다치지 않을뿐더러, 과인이 남쪽에서 거두어온 곡식과 재물을 듬뿍 나누어줄 것이다!”

목소리는 겁이 나도 그때까지 패왕이 해온 것으로 보아서는 드물게 후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걸 믿지 못한 한나라 장졸들은 항복보다는 달아나는 길을 골랐다. 패왕의 으름장과는 달리 아직은 막히지 않은 북문 쪽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들이 모두 달아나 막을 사람이 없자 성안 백성들이 성문을 열어 패왕을 맞아들였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성고성을 얻은 까닭인지 패왕은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백성들을 해치지 못하게 장졸들을 단속하여 성 밖에 쉬게 한 뒤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는 종리매에게 사람을 보내 일렀다.

내일 아침 일찍부터 전군을 들어 형양성 남문과 동문을 치도록 하라. 놀란 한군이 그쪽 성벽 위로 흠뻑 몰려 있을 때, 과인의 대군이 서문과 북문을 일시에 깨뜨려버릴 것이다.”

종리매는 다음날 패왕이 시킨 대로 했다. 군사들에게 새벽같이 밥을 지어먹인 뒤 남문과 동문을 한꺼번에 들이쳤다. 장졸들을 이끌고 역시 새벽 일찍 성고를 떠난 패왕은 형양성을 지키는 한군이 모두 남문과 동문 쪽으로 쏠리기를 기다려 서문과 북문으로 대군을 몰았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패왕의 장졸들이 성벽에 이르기도 전에 성벽 위에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이어 한군이 성벽 위를 새카맣게 뒤덮더니, 주가(周苛)가 성가퀴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쳤다.

항적(項籍)은 어디 있느냐? 네 천하의 패왕을 자처하면서, 어찌 이리 자잘한 속임수로 나를 이기려 하느냐? 내 벌써 간밤에 소문을 듣고 네가 이리 나올 줄 알았다.”

성고성을 거저 줍다시피한 터라 형양성도 쉽게 얻을 수 있을 줄로 알았던 패왕은 그런 주가의 외침에 뜨끔했다. 하지만 자신의 계책이 들킨 게 부끄럽기보다는 주가의 슬기로운 대처가 너무 간교하게 느껴져 화부터 났다.

서리 앞둔 풀무치나 여치의 울음소리에 어찌 일일이 대꾸하랴. 여러 말 주고받을 것 없이 쳐라! 모두 힘을 다해 성문을 깨고 성벽을 넘어라. 이번에는 반드시 형양성을 떨어뜨려 저 혀 긴 놈을 가마솥에 삶도록 하자!”

패왕이 그런 외침으로 싸움을 북돋우자 주춤했던 초나라 장졸들이 함성과 함께 형양성 서북쪽 성벽으로 기어올랐다. 하지만 주가의 기세는 말만이 아니었다. 어찌된 셈인지 성벽 위에는 군사들뿐만 아니라,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막을 준비도 전보다 나았다. 성가퀴에는 내던질 통나무와 바윗덩이가 더미 지어 쌓여 있었고, 구름사다리를 밀어내는 장대와 갈고리 달린 긴 창도 숲처럼 세워져 있었다.

성고의 군사와 합력하여 초나라 군사들의 에움을 뚫은 적이 있어서일까, 한군의 사기와 기력도 별로 줄어든 것 같지 않아보였다. 무엇을 믿는 것인지 패왕의 대군을 다시 맞고서도 두려워 떠는 한군은 하나도 없었고, 또 며칠 에움이 풀렸을 때 얼마나 많은 군량을 성안으로 거둬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주린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흔들림 없기는 종공과 한왕(韓王) ()이 지키는 동남쪽도 마찬가지였다. 종리매가 이끄는 군사가 그리 적지 않았으나 그 절반도 안 되는 군사로 잘 막아냈다. 전날 성고성에서 달아난 한군 가운데 몇이 그리로 숨어들어 미리 알려준 덕분인 듯했다.

첫날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군사만 상한 패왕은 다음날 종리매와 합쳐 성 한쪽만 들이쳐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안의 전력도 그곳으로 집중되어 초군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 그리고 그 뒤 며칠 불같은 공방을 주고받은 뒤 형양성의 싸움은 차츰 전과 같이 지루한 공성전(攻城戰)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패왕이 아무리 이를 갈며 끝을 보려 해도 이번에는 오래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형양성을 에워싼 지 닷새도 되기 전에 항성(項聲)이 하비()에서 보낸 급보가 날아들었다.

<팽월이 무리 만여 명을 이끌고 하비로 쳐들어 와 길을 막는 설공(설공)을 죽이고 하비성을 에워쌌습니다. 신이 군민을 이끌고 죽기로 싸우고 있으나 마침내 성을 지켜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다만 목을 길게 빼고 대왕의 구원을 기다릴 뿐입니다.>

항성이 보낸 군사가 가져온 글은 대강 그랬다. 패왕이 험한 눈길로 그 군사에게 물었다.

과인이 알기로 설공이 거느린 군사만도 만 명은 넘었다. 또 항성은 구강을 치러갈 때 데려간 군사만 해도 2만이 되었는데 어찌된 일이냐? 합쳐 3만이 넘는 대군으로 그 절반도 거느리지 못한 팽월에게 지고 설공까지 죽다니.”

그러자 그 군사가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 듣기로는 팽월이 워낙 교활하여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우리 군사를 어지럽히다가 돌연한 야습으로 설공을 죽이고 구원하러 온 항성 장군까지 잇달아 쳐부수었다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설공이나 항성이 허수아비가 아닌 담에야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과인이 알아듣게 자세히 말하라.”

패왕이 짐짓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그렇게 묻자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그 군사가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팽월이 수수를 건넜다는 말을 들은 설공과 항성 장군은 각기 거느린 인마를 이끌고 하비 서쪽에서 만나 팽월을 협격(挾擊)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팽월이 군사를 갈라 여기 저기 의병(疑兵)을 내어 두 분 장군의 군사를 멀리 떼어놓았습니다. 곧 설공은 팽월의 양동(陽動)에 속아 많지 않은 군사로 하비 서쪽에 본진을 세우고, 항성 장군은 하비 북쪽에 본진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팽월은 먼저 그런 설공의 본진을 야습해 설공을 죽이고, 다시 구원하러 오는 항성 장군을 도중에 들이쳐 하비성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오래된 생강이 맵다더니 팽월 그 늙은 도적이 못된 꾀는 제대로 쓰는구나. 좋다! 과인의 군사들도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가 보자!”

분노를 호승심(好勝心)으로 바꾼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모으게 했다. 오래잖아 장수들이 모두 모여들자 패왕은 의논할 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하비의 일이 마음에 걸려 힘을 다해 싸울 수 없다. 먼저 하비로 달려가 팽월을 잡고 팽성의 등 뒤를 깨끗이 한 뒤에 돌아와 형양성을 깨뜨려야겠다.”

그리고는 장수들을 돌아보다가 먼저 종리매를 불러 말했다.

장군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전처럼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으시오. 주가와 종공이 싸우러 성을 나온다면 싸우되, 그렇지 않으면 적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지키기만 하시오. 과인은 보름을 넘기지 않고 팽월을 죽인 뒤에 돌아오겠소.”

그리 하겠습니다.”

종리매가 그렇게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다시 종()가 성을 쓰는 장수를 불러냈다.

종공(終公)은 따로 군사 5000을 거느리고 성고로 돌아가 그 성을 지키시오. 성고와 형양은 이와 입술 같은 사이라 성고가 우리 손에 있는 동안은 형양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오. 장군은 성문을 높이 닫아 걸고 과인이 돌아올 때까지 다만 굳게 지키기만 하시오.”

종공 또한 두 말 없이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곧 대군을 휘몰아 하비로 달려갔다.

대왕께서는 항왕의 다음 움직임을 보고 거기에 따라 갈 곳을 고르십시오. 그리하여 항왕이 다시 대왕께서 펼치신 전국(戰局)에 끌려 다니도록 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항왕을 형양에서 이곳 완성과 섭성 사이로 불러들이신 것처럼 항왕이 마음대로 싸움터를 고를 수 없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 장량의 말을 듣자 한왕도 그 뜻을 알아들었으나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장량이 한왕을 찾아와 급하게 권했다.

대왕 이제 움직이실 때입니다. 어서 성고로 군사를 내십시오.”

자방(子房). 갑자기 무슨 일이요? 어제까지도 과인이 그리로 가서는 안 된다고 하더니.”

조금 전 형양 성고에 풀어두었던 세작 하나로부터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항왕이 종리매와 종공(終公)이란 장수에게 각기 형양성과 성고를 맡기고 팽월을 잡으러 동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팽월이 크게 일을 저지른 듯합니다.”

그렇다면 고초를 겪고 있는 형양성을 구해야지, 어찌해서 성고로 가자는 것이요?”

한왕이 아직도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는 종공의 세력이 약하고 성고를 찾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종리매는 초나라 제일의 용장일 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군사도 3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대왕께서 먼저 종리매를 치시면 그는 성고로 가서 종공과 군사를 합치고, 그 성벽에 의지해 맞설 수도 있읍니다. 따라서 우리도 항왕이 그리했던 것처럼 불시에 성고를 들이쳐 성을 먼저 뺏어두면, 종리매와 종공 두 세력이 합칠 겨를이 없을뿐더러 그들이 의지할 성도 없게 됩니다.”

장량이 그렇게 일러주며 어서 군사를 내기를 재촉했다. 한왕도 더는 묻지 않고 장량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날로 미련 없이 섭성을 버리고 성고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성고성 안의 초나라 군사들이 얼마 전 한나라 군사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당했다. 한왕이 이끈 대군이 갑자기 성을 에워싸자 초나라 장졸들은 겁부터 먹었다. 종공이 칼을 빼들고 성벽 위에 서서 장졸들을 독려했으나 싸움은 한나절도 가지 못해 한군의 승리로 끝났다. 종공은 어지러운 군사들 사이에서 죽고, 용케 성에서 빠져나간 몇 천을 뺀 나머지 초나라 장졸들은 모두가 죽거나 항복해 버렸다.

, 이제는 형양으로 가자. 가서 종리매를 쳐부수고 성안에서 오래 고단했던 우리 장졸을 쉬게 하자.”

성고를 되찾은 한왕이 그렇게 소리치며 숨 돌릴 틈도 없이 군사를 형양으로 몰았다. 그러나 미처 형양에 이르기도 전에 군사를 이끌고 마중 나온 종리매와 한바탕 격전을 치러야 했다. 성고성에서 빠져나온 초나라 군사가 알려주는 바람에 마음먹고 대군을 몰아온 종리매라, 성고성의 싸움과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치열한 격전이었다.

멀리 높은 곳에서 싸움터를 내려다보고 있던 한왕이 장량을 비롯한 여러 막빈(幕賓)들을 돌아보며 걱정했다.

종리매가 워낙 맹장인데다 그가 이끄는 군사들도 별로 싸움에 져본 적이 없어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구려. 우리 풍패(豊沛)의 맹장들이 하나도 곁에 없는 게 실로 아쉽소이다. 이대로 종리매를 꺾을 수 있을지.”

그때 한왕 유방의 처지가 그랬다. 번쾌는 몇 달째 광무 산성(山城)에 갇혀 있고, 조참과 관영 주발은 모두 조나라로 가 대장군 한신의 부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처 그런 한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남쪽에서 부옇게 먼지가 일며 군사 한 갈래가 다가왔다.

저게 어디 군사냐?”

한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그렇게 묻자 이졸 하나가 살피러 달려갔다. 그때 한왕 곁에서 가만히 살피고 있던 장량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말했다.

대왕께서는 크게 심려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초나라 군사 뒤꼬리 쪽이 흐트러지는 걸로 보아 오는 것은 아마도 형양성에서 나온 주가와 종공의 군사들 같습니다.”

그 말에 한왕도 가만히 살펴보니 정말로 초군 뒤편이 어지럽게 뒤엉키고 있었다. 달려오는 군사들이 앞세운 깃발도 붉은색을 위주로 한 것이 틀림없이 한군(漢軍)이었다.

그렇게 되자 앞뒤로 적을 맞은 꼴이 난 종리매의 장졸들이 이내 크게 흔들렸다. 종리매가 큰 칼을 휘두르며 용맹을 자랑했으나 무너지는 기세를 되살리기에는 어림없이 모자랐다. 아래위를 가리지 않고 움츠러들며 달아날 곳부터 봐두었다.

그런 초나라 장졸들과 달리 한왕의 군사들은 원군이 이른 걸 보고 사기가 크게 되살아났다. 함성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다해 몰아붙였다. 거기다가 다시 등 뒤에서 주가와 종공이 이끄는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이 들리자, 마침내 초나라 군사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쳐라! 종리매를 사로잡고 싸움을 끝내자.”

초나라 군사들은 항복하라! 우리 대왕께서 너희들을 너그러이 살펴주실 것이다.”

적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더욱 기세가 오른 한군이 그렇게 외치며 사방에서 종리매의 군사들을 몰아붙였다.

종리매가 마지막으로 기운을 짜내 전세를 바꿔보려 했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무기를 내던지고 항복하거나 달아나는 군사들이 벌써 태반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서 다시 뒷날을 기약하자!”

마침내 종리매가 말머리를 돌려 세우며 그렇게 외쳤다. 대장이 그렇게 달아나니 그 아래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3만을 일컫던 종리매의 군사들은 여지없이 무너져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듯 사방으로 흩어졌다.

종리매의 대군을 깨뜨린 뒤 형양성 밖에서는 오래 서로를 걱정해온 임금과 신하 간의 감격스러운 만남이 있었다. 주가와 종공이 찾아와 군례를 올리자 한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 장군을 다시 보니 못난 과인이 실로 부끄럽구나. 그동안 고초가 컸을 것이다.”

실로 부끄러운 것은 살아남은 저희들입니다.”

주가와 종공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렇게 받으며 기신(紀信)의 참혹한 죽음을 전했다. 한왕도 기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미 과인을 살렸거니, 만약 그대들이 항왕에게 이 형양성을 내주고 기신을 살렸다해도 공은 이룬 것이었을텐데. 이까짓 성이 무엇이기에 아까운 장수 하나를 죽이고 두 장군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냐!”

그리고 성안으로 들어 군신이 술잔을 나누며 하룻밤 회포를 푼 뒤, 형양성은 전처럼 주가가 종공과 한왕(韓王) ()을 데리고 지키게 하고 한왕은 성고로 돌아갔다.

36월 패왕 항우는 팽성(彭城) 동쪽에서 팽월을 뒤쫓고 있었다. 하비()에서 항우의 대군을 맞은 팽월은 늘 해오던 대로 치고 빠지며 유격전을 벌였으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에 못지않은 집중과 속도로 죄어오는 패왕의 대군에게 거듭 지고 쫓기다가 마침내는 서쪽으로 길을 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패왕이 쉽게 그런 팽월을 놓아주지 않았다. 조금만 더 몰아대면 한왕 유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섭성에서 군사를 돌릴 마음을 먹게 한 것도 팽월이었고, 성고를 우려 뺀 기세로 형양까지 얻을 수 있었으나 하비로 군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한 것 또한 팽월이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팽월을 사로잡아 분을 풀고 싶었다.

그 바람에 초군(楚軍)의 추격은 치밀하고도 집요했다. 싸움에 이긴 쪽의 방심을 이용하는 계책이 번번이 패왕에게 간파되어, 팽월은 싸움다운 싸움조차 못해보고도 벌써 군사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나중에는 먼 빛으로 초군이 덮쳐오는 것을 알아보기가 바쁘게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쉽게 추격을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오래 도둑질하며 숨어 살던 거야택(巨野澤)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한 부근 지리가 팽월을 크게 도왔다. 패왕이 몸소 앞장서 무섭게 뒤쫓았으나 한군데 어지럽게 길이 얽힌 늪지 숲가에서 팽월의 군사들을 놓치고 말았다.

멈춰라. 더는 뒤쫓지 말라!”

기마대와 나란히 팽월의 군사를 뒤쫓던 패왕이 갑자기 말고삐를 당기며 크게 소리쳤다. 곁에 있던 기장(騎將) 하나가 패왕에게 물었다.

그럼 이대로 팽월을 놓아 보내실 것입니까?”

늪지와 숲길이 뒤엉켜 있는데, 적은 이미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더 심하게 몰아대면 겁먹은 적이 멀리 달아나 영영 사로잡을 수 없게 된다. 군사를 멈추어 쉬게 하고 날랜 척후 몇 기()만 몰래 뒤를 쫓게 하라. 팽월이 진채를 내린 곳만 알아오면 이번에는 우리가 몰래 밤길을 달려가 벼락같이 들이친다. 야습(夜襲)이란 게 늙은 도적놈들만 둘 줄 아는 묘수가 아니다.”

말을 세운 패왕이 그렇게 말하며 빼들고 있던 보검을 칼집에 꽂아 넣자 다른 장졸들도 뒤쫓기를 멈추었다. 패왕은 그들 중에 날래고 눈치 빠른 몇 기를 뽑아 조심스레 적의 뒤를 밟게 하고, 그곳에 머물러 보졸(步卒)과 갑병(甲兵)이 주력인 본대가 이르기를 기다렸다.

오래잖아 용저와 환초가 이끄는 초군 본대가 천여 명의 포로를 이끌고 그곳에 이르렀다. 끌려 온 포로들은 팽월을 따라다니며 여기저기서 초군을 괴롭히다가 사로잡힌 자들 같았다. 싸움다운 싸움도 없었는데 그만한 머릿수가 뒤떨어진 것으로 미루어 팽월의 다급한 처지가 짐작되었다.

저것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두 땅에 묻어버려라!”

끌려오는 포로들을 쏘아보던 패왕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자르는 듯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둘러선 장수들 가운데 섞여있던 계포가 망설이는 눈치로 패왕을 쳐다보다가 조심스레 귀띔해 주듯 다가와 말했다.

대왕. 저들은 모두 무기를 던지고 항복한 자들입니다.”

저것들은 억지로 끌려 나오거나 먹을 것이나 얻자고 팽월을 따라다닌 유민(流民)들이 아니다. 팽월 그 늙은 도적놈이 좋아 스스로 따라나선 것들이니 용서할 수 없다. 모두 묻어라.”

패왕이 불꽃이 튀는 것 같은 눈길로 그들을 한 번 더 노려보며 그렇게 받았다. 그 바람에 계포가 움찔하며 물러나자 더는 패왕을 말릴 사람이 없었다. 근처 골짜기로 끌려간 팽월의 졸개 1000여 명은 잠깐 동안에 구슬픈 비명과 함께 땅속에 묻혀 버렸다.

이곳에 진채를 내리되 기둥은 얕게 묻고 군막은 세우지 말라. 언제든지 진채를 뽑아 떠날 수 있게 해야 한다.”

패왕은 그렇게 말해 군사들을 쉬게 한 채 척후(斥候)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이 되자 땀투성이가 된 척후 둘이 지친 말을 타고 돌아와 알렸다.

서쪽으로 50리나 달아난 팽월은 상현(相縣) 못 미친 곳에 진채를 내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졸개들을 모으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곧 장수들을 불러 모아 말했다.

지금 곧 젊고 날랜 군사 1만을 골라 일찍 저녁밥을 지어 먹이고 푹 쉬게 하라. 삼경에 일어나 차림을 가볍게 하고 과인을 따라 팽월의 진채를 야습할 병력이기 때문이다. 50리 길이 결코 가깝지는 않으나, 기마와 더불어 달려가면 날 샐 무렵에는 적진을 덮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팽월 그 놈의 자다 깨 놀란 목을 벨 차례다.”

싸움이라면 패왕을 하늘같이 믿는 초나라 장수들이었다. 모두 그 말에 따라 팽월을 야습할 채비에 들어갔다. 강동에서 따라 온 오중(吳中) 자제들을 중심으로 젊고 날랜 군사 1만 명을 골라 배불리 먹인 뒤 삼경까지 푹 쉬게 했다.

그날 밤 삼경이 되었다. 패왕은 가려 뽑은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이번에도 스스로 앞장을 섰다. 패왕이 거듭 앞장을 서는 것은 그만큼 팽월이 밉살스럽다는 뜻이기도 했다.

척후가 알아 온 대로 팽월은 상현 못 미친 곳 한 갈래 회수(淮水) 지류 가에 진채를 내리고 있었다. 밤새 군사를 휘몰아 달려간 패왕은 날이 훤해 질 무렵 팽월의 진채에 이르렀다. 아직 잠들어 있는 팽월의 진채를 가만히 살피던 패왕이 오랜 만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놈. 이제 네 놈의 늙은 목은 내 주머니 속의 물건이나 다름없다. 겨우 50리밖에 달아나지 못한 주제에 진채를 얽기는커녕 파수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잠을 자? 그것도 물러날 곳 없는 물가에서. 작년에 한신(韓信)이란 더벅머리가 물을 등지고 싸워 진여(陳餘)가 이끈 조나라 대군을 이겼다 하나, 나는 진여가 아니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군사를 휘몰아 팽월의 진채로 밀고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팽월의 진채는 초군 기마대가 밀려들어 군막을 짓밟아도 조용하기만 했다. 그제야 이상하게 여긴 초나라 군사들이 이리저리 진채 안을 휩쓸고 다니며 찾아보았으나 팽월의 군사들은커녕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이 간사한 도적놈에게 또 속았구나. 이게 어찌된 일이냐?”

성난 패왕이 억지로 화를 눌러 참으며 좌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찔끔한 장수들이 군사를 풀어 부근 백성들에게 알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군사들이 돌아와 일이 그렇게 된 경위와 팽월이 달아난 곳을 일러 주었다.

팽월은 우리 척후가 뒤쫓는 줄 알고 짐짓 이곳에 진채를 내린 것 같습니다. 이곳에 머물 것처럼 군막을 세워 우리 척후의 눈을 속인 뒤 어젯밤 삼경에 몰래 군사들만 데리고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대량(大梁) 땅으로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패왕이 물었다.

팽월이 대량으로 갔다고? 어째서 하필이면 대량이라더냐?”

그러자 팽월과 여러 번 싸워본 용저(龍且)가 나서 전령 대신 아는 대로 말했다.

작년에 한왕 유방이 팽월을 위()나라 상국(相國)으로 세운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팽월은 대왕에게 쫓겨 하수(河水)가로 밀려나기 전에는 외황(外黃)을 비롯한 여러 성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크게 세력을 떨친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리로 갔다면 아마도 그때 닦아둔 발판에 의지해보려는 속셈일 것입니다.”

그 말에 패왕이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쳤다.

어젯밤 삼경에 떠났다면 아직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두 지체 없이 과인을 따르라. 내처 뒤쫓아 가서 팽월을 사로잡자!”

하지만 초나라 군사들은 밤을 새워가며 50리 길을 달려와 하나같이 지치고 허기져 있었다. 거기다가 이미 여러날 팽월을 뒤쫓느라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뒤끝이었다. 기마대까지도 내처 팽월을 뒤쫓기는 무리였다.

분김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장졸들을 몰아대기는 해도 팽월을 사로잡기 글렀다는 것은 패왕이 먼저 알았다. 장수들이 말리자 못이긴 척 무리하게 뒤쫓기를 그만두고, 그곳에 군사를 멈추어 아침밥을 짓게 했다. 그런데 미처 그 아침밥이 지어지기도 전이었다. 뒤따라오던 본대에서 급한 전령이 달려와 알렸다.

종리매 장군께서 보낸 급보입니다. 한왕 유방이 갑자기 성고를 들이쳐 한 싸움으로 성을 우려 뺐다고 합니다. 대왕의 명을 받들어 성을 지키던 종공(終公)은 난군 중에서 죽고, 그 군사도 태반이 죽거나 한왕에게 항복해버렸습니다.”

보름 전만 해도 섭성(葉城)에 죽은 듯 쭈그리고 앉았던 한왕 유방이었다. 그 유방이 어느새 성고로 밀고 올라가, 자신이 일껏 빼앗아둔 성을 하루아침에 되찾아 갔을 뿐만 아니라 믿고 성을 맡긴 장수까지 죽였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듣는 패왕의 분통이 터지고 남을 소리였다. 그런데 뒤따라오듯 또 다른 전령이 달려와 더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한왕을 맞아 싸우던 종리매 장군이 형양성을 나온 주가와 종공의 군사를 등 뒤로 받아 크게 낭패를 보셨습니다. 장졸 태반을 잃고 양적(陽翟)으로 쫓겨나 대왕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이 제 성을 못 이겨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유방 이 음흉한 장돌뱅이가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는구나. 어찌 이리도 과인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단 말이냐? 아니 되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고를 깨뜨려 그 늙은 허풍선이의 목부터 잘라놓고 봐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왕이 팽월을 아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계포가 지키는 본대로 전령을 보내 새로운 명을 전하게 했다.

과인은 이제 팽월을 뒤쫓는 척 대량(大梁)으로 갈 것이니, 계포도 남은 대군을 이끌고 대량으로 오라 이르라. 대낮에 기치를 앞세우고 보무(步武)를 당당히 하여 행군하면, 팽월은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더욱 멀리 달아날 것이다. 대량에 이르면 그곳에 가만히 머물러 대군을 정비하고 과인의 명을 기다리라. 과인이 따로 전령을 보낼 것이니, 그때는 또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래 놓고 패왕은 그날로 군사를 움직여 대량으로 달려갔다. 대량을 근거 삼아 어떻게 뻗대 보려던 팽월은 패왕이 그같이 재빠르게 뒤쫓아 오자 덜컥 겁이 났다. 무시무시한 패왕의 칼끝부터 피해 놓고 보자는 심사로 다시 북쪽 하수(河水)가로 달아났다.

팽월이 북쪽으로 멀리 달아났다는 말을 들은 패왕은 갑자기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 양적(陽翟)으로 향했다. 용저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바로 형양으로 달려가지 않으십니까? 종리매 장군은 사람을 보내 형양으로 불러들여도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바로 형양으로 가려면 번쾌가 지키는 광무(廣武) 산성을 지나야 한다. 그리 되면 적지 않은 우리 군사가 다쳐야 할 뿐만 아니라, 싸움에 시일을 끌어 과인이 다시 오고 있음을 형양과 성고에 미리 알리게 된다. 형양과 성고가 지킬 채비를 더욱 굳건히 하여 과인에게 죽기로 맞서는 것도 고약하거니와, 겁 많은 유방이 지난번처럼 몰래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과인이 이렇게 달려온 보람을 어디서 찾겠느냐? 그보다는 차라리 길을 좀 돌더라도 양적으로 가서 종리매와 함께 갑자기 형양으로 쳐 올라가는 게 낫다.”

패왕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계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뜻을 전했다.

대량에 이르거든 굳이 광무로 나아갈 것 없이 길을 양적으로 잡도록 하라. 행군의 빠르기를 곱절로 하면 사흘 뒤에는 형양에 이르러 과인의 명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대량에서 양적까지는 200리 남짓이었다. 늦여름(계하·季夏)이라 불리는 유월이지만 초순이라 그런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렸다. 그 불볕 속을 밤낮없이 달려간 패왕의 군사들은 이틀 만에 양적에 이르렀다.

패왕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종리매는 양적 성안에 없었다. 이에 성 밖에 군사를 멈추고 부근 백성들에게 물어 종리매의 군사들이 간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높은 데서 망을 보던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동쪽 골짜기에서 한 갈래 군사가 나타나 이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놀란 패왕이 군사들에게 싸울 채비를 시키는 한편 자신도 철극(鐵戟)을 잡고 말 위에 올랐다. 그때 다시 망보기가 소리쳤다.

달려오는 것은 우리 초나라 군사들 같습니다. 기치와 복색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종리매의 군사들이겠구나.”

패왕이 그러면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그 군사들은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로 접어들었다. 앞장서 터벅거리며 말을 몰아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종리매였다. 전포와 갑주 위로 먼지가 두껍게 앉아 온통 누른 옷으로만 보였다. 곁에서 따르는 부장들도 고단하고 지쳐 보이기가 그런 종리매에 못지않았다.

오래잖아 패왕 앞으로 말을 몰아온 종리매가 부끄러움 가득한 얼굴로 군례를 올렸다.

못난 신() 종리매가 대왕을 뵙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군사를 부리는 이에게는 매양 있는 일이라 하였소. 스스로를 너무 허물하지 마시오.”

패왕이 그렇게 받고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성안에 들지 않고 골짜기로 들어갔소?”

한왕과 주가 종공 등이 언제 뒤쫓아 올지 모르는 데다 남쪽에는 또 구강왕 경포가 적지 않은 군사로 버티고 있어 그랬습니다. 허술한 성안에 함부로 들었다가 남북에서 몰려든 적의 대군에게 에워싸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보다 더한 낭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방으로 빠져 나갈 길이 있는 저 골짜기에 숨어 대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종리매가 풀 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패왕이 알 수 없다는 눈길로 그런 종리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적이 그토록 강성한가?”

유방이 관중에서 이끌고 나온 것만도 3만이 넘는 데다 무관을 나온 뒤로 여기저기서 불어난 게 또 2만이 된다 합니다. 주가와 종공이 이끌고 형양성을 지키던 군사가 만여 명이요, 경포의 군사도 그새 1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래봤자 10만이 넘지 않는다. 장군은 벌써 잊었는가. 지난해 우리는 팽성에서 3만 군사로 한왕 유방이 이끄는 제후군 56만을 쇠몽둥이로 질그릇 부수듯 했다. 그런 갈까마귀 떼 같은 잡군(雜軍)10만이 아니라 100만이라도 두렵지 않다. 과인이 보기에 장군의 허물은 싸움에 진 것이 아니라 적을 너무 크게 여겨 기세를 잃은 데 있는 듯하다.”

패왕이 그렇게 나무란 뒤에 다시 힘 실린 목소리로 종리매의 꺾인 기를 되일으켜 주었다.

자아, 이제 형양성으로 가자. 이틀 뒤 계포가 이끄는 우리 본진이 이르면 우리는 가려 뽑은 군사만으로도 5만이 넘는다. 밥이나 얻어먹자고 따라나선 유민(流民)들로 급하게 얽은 한왕 유방의 잡병 10만과 비할 바 아니다. 먼저 형양성을 쳐서 주가와 종공을 죽이고, 다시 성고성을 에워싸 그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유방을 사로잡자.”

그리고 종리매의 군사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넉넉히 내어 기운을 돋워주었다.

장졸들에게 그날 남은 해와 온 밤을 푹 쉬게 한 패왕은 다음날 일찍 종리매를 앞세우고 형양으로 달려갔다. 백리 남짓 되는 길이라 뜨거운 한낮은 군사들을 그늘에서 쉬게 하고도 그 이튿날 새벽에는 형양성에 이를 수 있었다. 그들을 본 성안 군민(軍民)들이 놀라 성문을 닫아걸고 싸움 채비를 갖추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패왕은 서둘지 않았다.

조용히 성을 에워싸고 물 샐 틈 없이 지키기만 하라. 특히 유성마(流星馬)나 탐마(探馬)의 드나듦을 엄히 막아 성고의 유방이 우리가 여기 이른 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러다가 우리 본진이 이르면 이번에는 5만 대군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한 싸움으로 형양성을 우려 빼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그답지 않게 느긋이 계포가 이끄는 본진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계포의 재촉에 밤낮없이 달려온 초군 본진(本陣)이 형양에 이른 것은 패왕 항우가 이끄는 별대(別隊)가 그곳에 이른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러나 패왕은 여전히 서두르지 않았다.

먼 길 오느라 고단할 테니 본대는 하루를 쉬게 하라. 내일 성을 칠 채비는 과인과 종리매가 이끌고 온 군사들만으로도 넉넉하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공성할 채비를 갖춰 나갔다. 성벽에 걸칠 구름사다리를 엮고 밧줄을 꼬게 하는가 하면 밧줄 끝에 달 갈고리를 벼렸다. 성벽을 기어오를 군사들의 머리 위를 막아줄 방패를 만들고 쇠뇌의 살과 화살도 그 어느 때보다 넉넉히 장만했다.

계포가 꾀를 내어 전에 없던 설비도 갖추었다. 성밖 백성들을 시켜 만든 흙을 채운 자루를 몇 만 개나 성벽 가까이 쌓아올린 뒤에 그 위에다 통나무로 망루를 짜 올린 일이 그랬다. 성벽 위를 내려볼 수 있을 만한 높이였는데, 망대 앞은 두툼한 널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런 망루가 형양 성 밖 여러 곳에 솟아올랐으나, 싸움이 벌어질 때까지는 아무도 그 쓰임을 알지 못했다.

다음날이 되었다. 갑옷투구로 몸을 감싸고 말 위에 오른 패왕은 문루 앞으로 나가 주가와 종공을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달래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주가와 종공은 패왕에게 변변히 말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이놈 항적아. 네 무슨 되잖은 수작으로 한나라의 귀신이 되기로 한 우리 귀를 더럽히려느냐? 듣지 않아도 알만하니 이거나 받아라. 이게 우리 대답이니라.”

문루 위에서 얼굴을 내민 주가가 그렇게 소리치며 화살을 먹여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놓았다. 패왕이 창대로 화살을 쳐내려 하였으나 거리가 멀지 않아서였던지 뜻대로 되지 않았다. 화살촉이 투구를 치는 쨍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패왕 발밑으로 떨어졌다. 성난 패왕이 말을 뒤로 빼며 주가를 올려보고 소리쳤다.

너희가 정녕 죽기로 작정하였구나. 너희 대답이 그러하다면 과인의 대답도 들려주마.”

그리고는 보검을 빼들어 망루 쪽을 바라보며 길게 휘저었다. 그걸 본 계포가 북을 올려 명을 대신하자 성 밖 망루에서 성벽 위로 까맣게 활과 쇠뇌의 살이 쏟아졌다. 미리 화살을 재놓고 기다리던 초나라 궁수들이 성벽 위에 있는 한군(漢軍)의 향해 활과 쇠뇌를 쏘아붙인 것이었다.

성벽 위 높은 곳에 있어 화살 걱정을 별로 하지 않던 한군은 그 뜻밖의 사태에 크게 놀랐다. 넉넉하지 않은 방패 뒤로 숨어 꼼짝 없이 엎드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용케 망루위의 초군에게 화살을 날려보는 병사도 있었으나 망루 앞을 가린 두툼한 널빤지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쳐라. 모두 성벽 위로!”

이윽고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장졸들을 내몰았다. 기세가 오른 초나라 군사들이 함성과 함께 성벽에다 구름사다리를 걸치고 갈고리 달린 밧줄을 던져 올렸다. 그제야 다급해진 성벽 위의 한군이 화살 비를 무릅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나무와 바위를 굴리고 구름사다리를 밀어냈으나 그 기세는 이미 드러나게 꺾여 있었다.

오래잖아 함성과 함께 형양성 성벽 한 모퉁이가 초나라 군사들로 덮였다. 성벽 아래서 그걸 본 초나라 군사들이 더욱 기세가 올라 다투어 성벽 위로 기어올랐다. 하지만 아직 성이 떨어지기는 일렀다.

일이 다급해지자 성벽 위의 한군(漢軍)도 그 마지막 힘을 짜냈다. 저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쳐나와 어렵게 성벽을 기어오른 초나라 군사들을 밀어붙이자 이내 전세가 뒤집혔다. 초나라 군사들로 뒤덮였던 성벽 모퉁이를 다시 차지한 한군들이 보란 듯 붉은 기치를 내걸었다.

다른 쪽 성벽을 기어오르던 초나라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때의 기세로 구름사다리를 기어오르고 밧줄을 탔으나 성벽 위로 오른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들마저 한군들의 반격으로 하나 둘 구슬픈 비명과 함께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이만하면 됐다. 모두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어라. 성은 나중에 다시 쳐도 늦지 않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며 공성을 멈추게 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머지않은 승리를 예감한 것인지 군사를 물리면서도 별로 마음 상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패왕의 예감이 맞아떨어질 때까지 초나라 군사들은 그날만도 두 차례의 모진 패퇴를 더 겪어야 했다. 그래도 패왕은 별로 성내는 기색 없이 보고만 있다가 밤이 되자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오늘 우리 군사들도 많이 다쳤으나 적도 전에 없이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조용한 오늘밤이 그 점을 적에게 알게 해 내일 싸움에서 사기를 꺾어 놓을 것이다. 오늘밤은 성을 치지 말고 모두 쉬도록 하라.”

그리고 북문 쪽을 에워싸고 있던 용저에게 따로 가만히 일러주었다.

장군은 내일 일찍 북문을 틔워 주고, 북쪽으로 십리를 더 물러나 성고로 가는 길목을 지키도록 하라. 북문 밖이 비어 있는 줄 알면 누군가 그리로 달아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다음 날 군사들에게 아침밥을 든든히 먹인 패왕은 다시 전군을 내몰아 성벽 아래에 늘여 세웠다. 그리고 성벽 위까지 들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나라 장졸들은 들어라. 과인도 그대들과 함께 성벽을 오를 것이니, 오늘이 아니면 날이 없다 여기고 모두 힘을 다해 형양성을 쳐라!”

말뿐만이 아니었다. 패왕은 정말로 갑옷을 여미고 투구 끈을 고쳐 매더니 구름사다리를 번쩍 들고 성벽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다리를 성벽에 기대어 놓기 바쁘게 칼을 빼들고 앞서 성벽을 기어오르려 했다. 누군가 패왕의 전포 자락을 잡으며 소리쳤다.

대왕. 소 잡는 칼을 어찌 닭 잡는 데 쓰려 하십니까? 성벽을 오르는 일은 소장들에게 맡기시고 옥체를 보중하소서.”

그 사이에 장졸 몇이 다투어 패왕이 걸쳐둔 구름사다리로 기어올랐다. 성벽 여기저기 걸쳐진 다른 구름사다리와 밧줄도 마찬가지였다. 패왕의 외침에 기세가 오른 초나라 군사들이 다투어 기어오르니 싸움 나온 개미떼도 그보다 더 악착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성벽 위의 한군(漢軍)도 힘을 다해 맞섰다. 그러나 워낙 전날 입은 피해가 컸던 탓인지 그 기세가 많이 꺾여 있었다. 겨우 막아내고는 있어도 그리 오래갈 것 가지 않았다. 그때 다시 성벽 아래에서 우레 같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비켜라, 내가 간다. 누가 감히 내 앞을 막으려 드느냐?”

그러면서 한 손으로는 방패를 빼앗아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보검을 뽑아든 채 구름사다리를 기어오르는 것은 바로 패왕 항우였다.

항왕(項王)이 온다라는 말은 팽성의 싸움이래로 한군에는 저승사자가 온다는 말보다 더 듣기 두려운 말이었다. 그런데 그 항왕이 불이 뚝뚝 듣는 듯한 눈으로 노려보며 시퍼런 칼을 빼들고 다가오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쪽 성벽 위를 맡아 지키던 군사들이 모두 입이 얼어붙고 몸이 굳은 듯 어어, 거리며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에 날아오르듯 재빠르게 사다리를 기어오른 패왕이 성가퀴를 넘어섰다.

이놈들! 과인이 왔거늘 어서 엎드려 항복하지 못할까?”

듣는 이의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크고 높은 호통이었다. 패왕이 그런 호통과 함께 보검을 치켜들자 그쪽에 몰려 있던 한군 절반은 창칼을 내던지고 바닥에 엎드렸고, 다른 절반은 얼빠진 사람처럼 다가오는 패왕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패왕이 한칼을 휘둘러 얼빠진 듯 서있는 한군 가운데 하나를 베자 그들 나머지도 모두 창칼을 내던지고 주저앉았다.

패왕이 올라선 성벽 모퉁이는 잠깐 동안에 패왕의 뒤를 따라 성벽을 기어오른 초나라 군사들로 가득 찼다. 패왕은 창칼을 버리고 주저앉은 한군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문루 쪽을 향해 초나라 장졸들을 몰고 가며 소리쳤다.

과인을 따르라. 문루를 빼앗고 성문을 열자!”

그러지 않아도 기세가 올라 있던 초나라 장졸들이 그런 외침에 더욱 기세가 올라 함성과 함께 패왕을 따랐다.

패왕이 덮친 동쪽 문루는 그 아침까지만 해도 주가(周苛)가 자리 잡고 지키던 곳이었다. 그런데 종리매가 앞장선 남문 쪽이 위태로워지자 주가는 남문을 돌보러 가고 없었다. 거기다가 그 사이 성벽 다른 모퉁이도 사다리나 밧줄을 타고 올라온 초나라 군사들로 어지러워져 어느 곳의 한군도 동문 문루 쪽을 구원하러 갈 겨를이 없었다.

패왕이 초나라 장졸 수십 명을 이끌고 달려오자 문루를 지키던 주가의 부장(部將) 하나가 멋모르고 군사 수십 명과 함께 달려 나와 길을 막았다.

이놈. 네 감히 과인의 길을 막느냐?”

패왕이 불길이 쏟아지는 눈길로 그 장수를 쏘아보며 벽력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그 무시무시한 눈길과 고함소리에 범 만난 노루처럼 놀라 움찔하던 그 장수가 얼결에 칼을 빼들고 싸우는 시늉을 했다.

어딜.”

패왕이 나지막한 기합소리와 함께 앞으로 몸을 날리며 보검을 크게 휘둘렀다. 시퍼런 검광(劍光)이 한차례 번뜩 하는가 싶더니 비명소리조차 없이 패왕의 앞을 막아섰던 한나라 장수의 머리가 성벽 위에 굴러 떨어졌다.

이놈들. 이래도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패왕이 성벽 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집어 들고 얼빠진 사람마냥 굳어 있는 한나라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문루를 지키던 한나라 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창칼을 내던지고 털썩털썩 꿇어앉았다.

그러자 패왕은 다시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인지경 내닫듯 거침없이 성벽을 내려가 성문 쪽으로 갔다. 성문 빗장을 지키던 기장(騎將) 하나와 사졸 여남은 명이 그 갑작스런 변화에 어리둥절해진 눈길로 패왕을 쳐다보았다. 패왕이 문루를 지키던 장수의 잘린 머리를 무슨 부적처럼 그들 앞에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과인이 바로 서초 패왕이다. 이 꼴이 나기 싫거든 어서 성문을 열어라!”

그러자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은 마치 한왕 유방의 명을 받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분고분 성문을 열었다. 한나라 기장도 갑자기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듯 말 위에 앉은 채 그런 졸개들을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열린 성문으로 밖에 나간 패왕이 가까운 초나라 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성문이 열렸다. 초나라 장졸들은 모두 이리로 들라!”

그렇게 되자 지난 열 달 한왕 유방이 관동(關東)의 근거지로 삼아 온 땅이었고, 한왕이 빠져나간 뒤 두 달은 패왕의 불같은 포위 공격을 버텨낸 주가와 종공의 투지로 이름났던 형양성에도 마침내 그 마지막 날이 왔다. 동문으로 쏟아져 들어간 초나라 군사들이 성안을 휩쓸면서 성벽 위를 지키던 한군의 사기는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달아날 길이 있는 한군은 모두 달아나고 나머지는 무기를 내던지며 항복했다.

성 안팎에서 창칼 부딪는 소리가 그치고 이제는 더는 맞서는 한군이 없어지자, 한왕 유방의 행궁(行宮) 터에 자리 잡은 패왕이 장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주가와 종공, 한왕(韓王) ()은 어찌되었느냐? 사로잡지 못했으면 시체더미를 뒤져서 시체라도 찾아오너라.”

워낙 빈틈없이 에워싸고 성을 친 터라 달아났을 턱이 없다고 굳게 믿는 패왕의 말투였다. 그러나 셋 중 아무도 보지 못한 장수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있는데, 반가운 전갈이 왔다.

방금 주가를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여느 백성 차림으로 바꿔 입고 성을 빠져나가려다가 우리 군사에게 들켰는데,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려 하는 것을 겨우 말리고 묶어 이리로 끌고 오는 중이라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이 어둡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어째 살도 뼈도 없는 것처럼 뻗대던 맹사(猛士)와는 잘 어울리지 않은 끝이로구나. 하지만 잘됐다. 내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어서 이리로 데려오라!”

그러자 오래잖아 온몸을 밧줄로 동이듯 묶인 주가가 끌려왔다. 겉에 걸치고 있는 추레한 백성들의 옷에는 모질고 끔찍했던 싸움의 흔적이 여기저기 핏줄기로 배어 나와 있었다. 그러나 패왕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조금도 움츠러들거나 굽히는 빛이 없었다. 그런 데서 엿보이는 사납고도 꺾일 줄 모르는 주가의 기상이 슬며시 패왕을 감동시켰다.

공의 드높은 의기를 떠올리고 또 지금의 고단한 공의 처지를 살피니 실로 과인의 가슴이 아프오. 한왕 유방을 위한 충성은 이만하면 넉넉히 보여준 셈이니, 이제부터는 과인을 위해 일해 보는 게 어떻소? 만일 공이 우리 초나라로 돌아온다면 과인은 공을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3만 호의 식읍(食邑)을 내리겠소.”

패왕은 홍문의 잔치에서 번쾌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정감으로 그렇게 주가(周苛)를 달래 보았다. 그런 패왕에게는 이긴 자의 너그러움만큼이나 힘 있고 굳센 자의 자신만만함도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었다.

뼈에 피와 살을 입힌 인간의 몸은 신념이나 대의를 싣기에 얼마나 허약한가. 인간은 고통 앞에 얼마나 무력하며 죽음 앞에 얼마나 비굴해지는가. 너는 한때의 허영으로 충성이니 신의(信義)니 하며 함부로 목숨을 내걸었지만, 이제 네 몸과 마음은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아울러 벌벌 떨고 있을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되돌릴 길 없고, 이제 와서 차마 목숨을 애걸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너는 길이 있으면 그 고통과 죽음을 피해가고 싶을 것이다. 그 길을 내가 터주겠다. 나는 이제 네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항복할 수 있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 손을 잡아라. 황송스럽게 감격해서. 그렇게 해서 네가 지난날에 내게 입혔던 상처를 영광과 위엄으로 덮어다오.’

그런데 주가의 대답은 그런 패왕의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패왕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패왕을 쏘아보다가 차갑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놈 항적아. 네 눈은 가죽이 모자라 찢어지고, 네 귀는 머리뼈가 모자라 뚫린 것이라더냐? 지난날 내 벗 기신(紀信)이 제 한 몸을 장작불에 태워가며 네게 보여주고 일러주었거늘, 네 어찌 유가(儒家)의 충의를 이리도 작고 낮게 보느냐? 네 그러고도 남의 임금 되어 천하를 다투려 하느냐? 아서라.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빨리 우리 대왕께 항복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우리 대왕께서 너를 사로잡아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조차 누릴 수 없게 되리라. 너 같은 것은 결코 우리 대왕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

마치 어찌하면 패왕이 가장 성낼까를 헤아려 하는 소리 같았다. 패왕도 필요하면 참을 줄도 알았으나 그런 주가의 말을 듣자 더 달래볼 마음이 없어졌다. 모처럼 펼쳐 보인 자신의 너그러움을 주가가 모질게 마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이해까지 온전히 무시하자 온몸이 분노로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잠깐 주가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짐짓 목소리를 낮춰 차갑게 말하였다.

주가는 듣거라. 너는 아무래도 이 세상과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구나. 네가 꿈꾸고 있는 그런 세상과 믿고 있는 그런 휘황한 대의란 없다.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얼도 없고, 그 얼을 끝내 지켜낼 수 있는 몸은 더욱 없다. 시황제는 일찍이 너희 같은 무리를 모두 땅에 파묻어 육국혼합(六國混合) 일통천하(一統天下)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과인은 지난번에 기신을 태워 천명을 거스르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온 세상에 보여주었거니와, 이제는 또 너를 삶아 과인과 우리 서초(西楚)에 드리운 천명의 엄숙함을 다시 한번 온 세상에 드러내려 한다. 뜨거운 가마솥 속에서라도 네가 실로 어디에 사는 무엇인지를 곰곰이 돌이켜 보아라!”

곧 행궁(行宮) 뜰에 큰 가마솥이 날라져 오고 솥발 아래 장작불이 지펴졌다. 주가(周苛)는 물이 끓기도 전에 가마솥에 넣어져 천천히 삶겼다. 그 괴로움이 오죽했을까만 주가도 기신처럼 죽을 때까지 패왕을 꾸짖어 마지않았다.

마침내 주가의 숨이 끊어져 행궁 뜰이 고요해졌을 무렵이었다. 다시 한때의 군사들이 한나라 장수 한 사람을 묶어 오며 소리쳤다.

주가의 부장(副將)인 종공()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친 채 민가(民家) 마루바닥 밑에 숨어 있다가 우리 군사에게 들킨 것이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이 얼굴을 찌푸리며 보고 있다가 종공이 발 앞까지 끌려오자 빈정거리듯 말했다.

너희 유자(儒者)의 무리들은 항복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을 줄도 모르느냐? 어찌하여 한결같이 남의 수고로움으로 제 죽음을 치장하려 드느냐?”

종공이 고개를 번쩍 들어 패왕을 쏘아보며 말했다.

옛적에 공자께서 악인들에게 에워싸여 봉변을 당하게 되셨을 때, 뒤떨어진 안회(顔回)가 죽음이라도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하신 적이 있소이다. 그러나 안회는 살아 돌아와 스승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고 하오. 남의 신하된 자도 같소. 임금께서 살아계시면 마땅히 몸을 보존하여 뒷날을 도모하여야 하는 법이오. 한번 졌다고 함부로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임금께서 뒷날 이 몸을 쓰시고자 하여도 쓰실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니 불충(不忠)이 아닐 수 없소.”

그러나 사로잡혔으니 어쩌겠느냐? 너도 주가나 기신처럼 과인의 노여움을 빌려 네 죽음을 치장하고 싶으냐?”

그 죽음이 모질고 끔찍해 아름다워질 수는 있으나, 실로 그들이 원한 것은 아닐 것이오. 인정을 베풀 수 있다면 나는 되도록 빨리 죽여주시오!”

그러자 패왕이 더 길게 주고받지 않고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과인도 이제 더는 몇 백 년 전에 죽은 귀신의 말에 홀린 더벅머리 유생들의 죽음을 치장해주고 싶지 않다. 저자를 끌어내 목을 베어라!”

하지만 형양성을 지킨 모든 장수가 기신이나 주가, 종공처럼 죽은 것은 아니었다. 종공이 목이 떨어지고 오래지 않아 관중으로 달아나는 길목을 지키던 용저(龍且)가 한 장수를 잡아 묶어 왔다. 한왕(韓王) ()이었다.

끌려온 한왕 신은 이미 몰골부터가 주가나 기신의 부류와는 달랐다. 허여멀쑥한 얼굴은 두려움으로 퍼렇게 질려 있었고, 끌고 오는 군사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멀쩡한 허우대는 보기 민망하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끌려오는 동안에 주가와 종공의 죽음을 얘기 들은 탓인 듯했다.

하지만 주가와 종공의 죽음을 보며 까닭 모르게 마음이 상해 있던 패왕에게는 거꾸로 그런 한왕 신이 적지 아니 위로가 되었다. 왠지 정직하고 올바른 패장(敗將)의 모습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이에 패왕은 아직 굳어 있는 얼굴과는 달리 자못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왕은 어찌할 것인가? 주가의 무리를 뒤따르겠는가? 아니면 과인에게로 돌아오겠는가?”

한왕(韓王) ()이 그런 패왕에게서 무얼 보았는지 풀썩 무릎을 꺾으며 말했다.

대왕께서 신()을 거두어만 주신다면 이제부터라도 개나 말의 수고로움(犬馬之勞)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 목소리가 간절하다 못해 비굴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고 죽어간 주가와 종공이 워낙 심하게 비위를 상하게 한 탓인지, 패왕은 평소 그답지 않게 그런 한왕 신에게 너그러워졌다.

그렇다면 왜 진작 성문을 열고 항복하지 않았느냐?”

주가와 종공이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 통에 어찌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위왕(魏王) ()를 죽인 일은 대왕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왕 신이 어른에게 일러바치는 아이처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변명했다. 패왕도 발 앞에 떨어진 위표의 잘린 머리를 본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주가와 종공의 모질고 독한 사람됨에 치를 떤 터라 더욱 한왕 신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잠시 말이 없다가 문득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왕 신을 풀어주어라. 저를 왕으로 세워준 이를 섬긴 것이 무에 그리 큰 허물이 되겠느냐? 이제라도 과인에게 항복하였으니 그를 한번 믿어보기로 하자.”

그리고 다시 한왕 신을 살펴보며 다짐 받듯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과인을 따라 성고로 간다. 거기서 한왕 유방을 사로잡는 데 공을 세운다면 과인도 그대를 왕으로 세워 주겠다. 그러나 만약 다시 과인을 저버린다면 땅끝까지 뒤쫓아 가서라도 그 목을 어깨 위에 남겨 놓지 않으리라!”

이어 패왕은 초나라 군사들의 창칼에 묻은 형양성 군민(軍民)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성고(城皐)로 군사를 몰아갔다. 두 성 사이가 겨우 50리 남짓이라, 날이 저물기 전에 성고성은 패왕이 이끄는 5만 대군에 다시 에워싸였다.

동서남북 어디로든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이번에는 반드시 한왕 유방을 사로잡아 천하의 형세를 결정해야 한다!”

패왕은 그렇게 장졸들을 몰아대며 당장이라도 성고성을 둘러 엎을 듯하였다. 그러나 형양성을 치느라 힘을 뺀 탓인지 패왕은 그날 밤도 다음 날도 공성(攻城)을 시작하지 않았다. 다만 높은 곳에 망대를 세워 성안을 살피게 하며 형양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나절 싸움으로 성을 우려 뺄 기회만 엿보았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먼저 움직이는 것은 성안에서 지키고 있는 한나라 군사들 쪽이었다. 성을 에워싼 지 사흘 째 되던 날 해질 무렵 하여 높은 망대에서 성고성 안을 살펴보던 군사가 패왕에게 알려왔다.

성안의 한군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성벽 위는 조용하나 성벽 아래서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한데, 특히 서문 쪽이 그렇습니다. 신시(申時)부터 서문 근처에 치중(輜重)이 슬몃슬몃 옮겨와 쌓이는 듯하고, 기마대와 갑병도 모두 그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힘을 모아 서문 쪽으로 치고 나와 관중(關中)으로 달아나려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곁에서 함께 듣고 있던 종리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겁을 먹은 유방이 또 관중으로 달아나려고 하는 것이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잡아 죽여야 합니다. 제게 한 갈래 군사를 주시면 관중으로 드는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그 목을 잘라 대왕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패왕은 무겁게 고개를 바로 저었다.

같은 적과 싸우면서 전에 썼던 계책을 다시 쓰는 것은 병가(兵家)에서 엄히 금하는 일이다. 유방이 비록 하찮은 장돌뱅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나, 군사를 이끌고 싸움터를 떠돌기가 벌써 5년에 가까우니, 그만 일은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장량과 진평까지 붙어 있는데 또 그런 어수룩한 일을 꾸미겠느냐?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자 역시 함께 있던 계포가 조심스레 받았다.

그렇다면 동쪽을 시끄럽게 하다가 서쪽을 들이치는 격(성동격서·聲東擊西)으로 유방이 대왕을 속이려 드는 것이나 아닐는지요. 마치 대군을 이끌고 서문을 나와 관중으로 달아날 것처럼 하다가 저만 슬며시 남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전처럼 경포와 짜고 완읍(宛邑)과 섭읍(葉邑)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대왕께 맞서면 그보다 더 성가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야, 남쪽뿐이겠는가? 한단(邯鄲)에서 오고 있다는 한신(韓信)의 대군을 바라 동쪽으로 달아날 수도 있겠지. 어쨌든 늙은 흉물(凶物)이 꾸미는 일이니 또 속지 않도록 모두 살피고 또 살피도록 하라.”

패왕이 그러면서 성고성 안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사이에 날이 저물었다. 어둠이 깔리면서 서문 쪽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유독 그쪽에 횃불이 밝아 밤하늘을 훤하게 비추었고, 말울음 소리와 개갑(鎧甲) 부딪는 소리에 사람의 웅성거림까지 그쪽만 시끄러웠다.

그 모든 것을 보고 마침내 어떻게 할까를 결정한 패왕이 장수들을 불러 말했다.

환초와 계포는 중군과 더불어 서문에 남아 지켜보다가 유방이 정말로 관중으로 돌아가려 하면 길을 끊고 사로잡아라. 유방이 다시 관중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종리매는 군사 1만을 이끌고 동문으로 가서 조나라로 가는 길목을 지켜라. 만에 하나라도 유방이 한신의 대군을 차지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용저는 군사 1만으로 남문을 맡아 유방이 남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라. 유방이 다시 경포와 손발을 맞춰 과인에게 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

그때 성고성의 북문(北門)은 문루(門樓)를 쌓은 돌이 아름답다 하여 옥문(玉門)이라 불리었다. 계포가 불쑥 물었다.

옥문 쪽은 비워 두실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다. 북쪽으로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 유방이 그리로 달아날 리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갈래 군사를 보내 길을 끊으려 한다.”

패왕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북문으로 보낸 것은 겨우 군사 3천에 이름 없는 아장(亞將) 하나였다. 패왕 자신은 기마대와 함께 유군(遊軍)처럼 되어 살피다가 어디든 위급한 곳이 생기면 달려가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성고성 안은 더욱 술렁거렸다. 모든 군민(軍民)이 잠자지 않고 웅성거리며 성안을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서문뿐만 아니라 동문과 남문 쪽에서도 금세 인마가 뛰쳐나올 듯 드러내놓고 소란을 떨었다. 사람이 와글거리고 마소가 울부짖으며 창칼과 갑주가 절그럭거리는 것이 어느 성문이 먼저 열릴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삼경 무렵이 되면서 먼저 서문 쪽 성벽 위의 횃불이 꺼지더니 갑자기 성문이 열리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온다. 한 놈도 놓치지 말라!”

그쪽을 맡고 있던 계포와 환초가 그렇게 초나라 군사들을 다그치고 패왕 항우도 기마대를 이끌고 그리로 달려갔다. 하지만 요란스러운 발굽소리와 달려 나온 것은 다치거나 병들고 여윈 마소 수십 마리와 한 무리의 노약자뿐이었다.

속았다! 서문은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자.”

성문 쪽으로 다가가던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군사를 돌리려 하는데, 이번에는 동문 쪽 성벽 위가 훤해지며 크게 함성이 일었다. 패왕이 급히 그리로 말을 몰아 가보니 수천의 한나라 군사들이 성벽 위로 몰려나와 횃불을 밝히고 성벽 아래로 활과 쇠뇌를 쏘아붙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인마가 뛰쳐나올 듯한 성문 안의 수런거림에 속아 성벽 가까이 바짝 다가서서 기다리던 종리매의 군사들이 그 갑작스러운 화살 비에 비명을 지르며 내쫓겼다.

남문이다! 남문으로 가자. 유방은 틀림없이 남문으로 달아날 것이다.”

패왕이 갑자기 그렇게 소리치며 남문으로 군사를 몰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도 동문과 꼭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뿐, 성문을 뛰쳐나오는 인마는 없었다. 그제야 이상한 느낌이 든 패왕은 북문으로 달려가 보았다.

대왕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북문 밖을 멀찌감치 에워싸고 있던 아장(亞將)이 놀라 패왕을 맞으며 물었다.

이곳은 별일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아직 성문을 나온 군사는 없습니다.”

아장이 태평스레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떨림에 패왕이 갑작스러운 의심으로 물었다.

과인은 성안에서 대군이 밀고 나온 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사람 하나, 말 한 필 지나가지 않았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다만.”

그러자 그 아장이 갑자기 말을 더듬거렸다. 패왕이 그 말꼬리를 잡고 다그쳐 물었다.

다만, 어찌 됐다는 것이냐?”

초저녁 이곳에 자리 잡으려 할 때 북문에서 이어지는 관도(官途)로 수레가 달려가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적이 있습니다. 급하게 기마를 놓아 뒤쫓게 해보았지만, 자취를 쫓을 수 없는 것이 아무래도 저희가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성나기보다는 왠지 가슴이 철렁하였다. 드디어 한왕 유방, 이 능구렁이 같은 놈. 또 빠져나가고 말았는가 싶으며 온몸에서 맥이 쭉 빠졌다.

다음날 패왕 항우는 날이 밝기 바쁘게 성고성 문루(門樓) 앞으로 말을 몰아가 소리 높이 한왕 유방을 찾았다.

한왕은 어디 있는가? 어서 나와 과인의 말을 들으라!”

패왕이 그렇게 거듭 외치자 장수 하나가 문루를 지키는 사졸들을 헤치고 얼굴을 내밀며 이죽거리듯 패왕의 말을 받았다.

우리 대왕께서는 벌써 어젯밤 초저녁에 이 성을 버리셨소. 옥문(玉門)으로 나가셨으나 등공(謄公) 하후영이 모는 수레를 타고 계시니, 지금쯤은 평음(平陰)을 돌아 관중(關中)으로 내달리고 계실게요.”

팽성 싸움 뒤로 하후영이 수레 모는 솜씨는 패왕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 하후영이 빠른 수레에 한왕만을 태우고 밤을 틈타 잘 닦인 관도로 달아났다면 여느 말로는 뒤따라 잡기 어렵다. 간밤 북문을 지키던 아장(亞將)은 결코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패왕은 이제 성나기보다는 가슴이 철렁했다. 드디어 한왕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패왕의 기세는 아직 하늘을 찌를 듯 살아 있었다. 곧 마음을 가다듬고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태산이 울리더니 겨우 쥐새끼 한 마리가 뛰쳐나온(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격이로구나. 유방이 겨우 제 한 몸 빼내자고 간밤 그리 소란을 떨었다는 것이냐?”

그때 다시 문루 위에 두 사람이 나오더니 그중 하나가 받았다.

군왕이란 바로 우리가 무겁게 떠받들고 지켜야 할 천하이니 스스로 보중(保重)할 줄 알아야 하오. 한낱 무부(武夫)처럼 화살과 바위 덩이를 무릅쓰고 창칼 사이를 뛰어다니는 패왕과 어찌 견주겠소? 게다가 보옥을 품고 싸우면 오히려 그 때문에 싸우기가 거북해지는 법이오. 우리가 이 성을 지키는 데도 우리 대왕께서 성안에 계시지 않는 편이 훨씬 낫소.”

목소리가 귀에 익어 자세히 쳐다보니 방금 말한 것은 진평이었고, 그 곁에 빙긋 웃고 서 있는 것은 장량이었다. 자신을 속이고 한왕에게로 달아난 그들을 보자 애써 가다듬은 패왕의 마음이 순식간에 헝클어졌다.

꿩 대신 닭이라더니 너희들이 바로 그렇구나. 비록 유방은 달아났으나 너희들이라도 사로잡으면 분한 마음이 반은 풀리겠다. 기신과 주가는 태우고 삶았으니, 너희는 가죽을 벗기고 토막 내어 젓갈이라도 담가 주랴?”

그렇게 외치고는 아침부터 전군을 들어 성고성을 들이쳤다. 하지만 짐작하고 채비한 까닭인지 패왕이 그날 하루 종일 장졸들을 불같이 몰아대도 끝내 성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번에는 싸움다운 싸움도 없이 손에 넣었던 성이었건만, 이번에는 어찌된 셈인지 사흘을 내리 몰아쳐도 끄떡없이 버텨 냈다.

거기다가 더욱 패왕을 성나게 하는 것은 그 사이에도 밤만 자고 나면 한군 장수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일이었다. 한왕이 달아난 다음날 밤에는 진평과 장량을 비롯한 책사(策士)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또 그 다음날 밤이 지난 뒤에는 다른 낯익은 장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엿새째 되는 날 마침내 성난 패왕이 앞장서서 다시 성고성을 우려 뺐을 때는 성안에 변변한 장수는커녕 군사들도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대왕, 아무래도 아니 되겠습니다. 항왕(項王)의 기세가 심상치 않으니 하루바삐 이 성고(成皐)를 벗어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성고성 안에 갇혀 있는 한왕 유방을 장량과 진평이 가만히 찾아보고 그렇게 권한 것은 패왕이 성을 에워싼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듯 그들에게 물었다.

지난 사흘 항왕은 우리에게 화살 한 대 날려 보내지 않았소. 그런데 무엇이 그리 심상치 않단 말이오?”

지난번에는 한 달 넘게 에워싸고 들이치고도 빼앗지 못한 형양성을 이번에는 사흘 만에 떨어뜨린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그 사이 단 한 명의 군사도 성을 빠져나와 우리에게 위급을 알리지 못한 것만 보아도 항왕이 얼마나 철통같이 형양성을 에워쌌으며 또한 얼마나 불같이 들이쳤는지 알 만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갑자기 이 성고성을 에워쌌으니 항왕의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성을 에워싸고도 이렇게 가만히 기다리는 것 또한 항왕의 성정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무언가 형양성을 그토록 무참히 우려 뺀 무서운 힘을 다시 끌어 모으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그제야 한왕도 으스스해진 듯했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과인이 빠져 나가기도 어려울 것이오. 형양성처럼 이곳도 철통같이 에워쌌을 터인데 무슨 수로 이곳을 벗어난단 말이오?”

그러자 진평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물음을 받았다.

저희들이 성안에서 양동(陽動)으로 초군을 속일 터이니, 대왕께서는 적이 짐작하지 못하는 곳으로 빠져 나가십시오.”

저번에 형양성에 갇혔을 때도 항왕의 눈을 속이고 과인만 몸을 빼낸 적이 있소. 그런데 항왕이 또 속아주겠소?”

방금 형양성에서 이기고 왔기 때문에 그리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군사를 움직여 동 서 남 세 성문으로 한꺼번에 치고 나갈 듯 법석을 떨면 항왕도 그냥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군사를 갈라 그 세 성문을 지킬 것인데, 그때 대왕께서는 등공(謄公)의 수레를 타고 북문으로 빠져 나가시면 됩니다.”

그래도 한왕은 진평의 계책이 미덥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북문 밖에는 적이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적이 있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문으로는 관중으로 갈 수 있고, 동문으로는 조나라에 있는 대장군 한신을 찾아갈 수 있으며, 남문으로는 섭() ()으로 가시어 구강왕 경포와 힘을 합칠 수 있으나, 북문으로 나가서는 대왕께서 의지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저희들이 동 서 남 세 성문에서 금방이라도 치고 나갈 듯 수런거리는데, 어찌 북문에 많은 군사를 갈라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북문으로 가볍고 빠른 수레를 골라 대왕만 태우고 가만히 빠져나간 등공이 잘 닦여진 관도로 직접 수레를 몰고 내닫는다면, 설령 적의 기마대가 뒤쫓는다 해도 전혀 걱정할 게 없습니다.”

진평이 다시 그렇게 대답했다. 거기까지 듣자 비로소 한왕도 장량과 진평이 짜낸 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알 수 없는 일이 더 있었다.

과인은 그렇게 이 성을 빠져나간다 치자. 남아 있는 공들은 어찌하겠는가?”

한왕이 그렇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장량이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다.

대왕께서 무사히 빠져나가신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저희들에게는 따로 몸을 보전할 방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평도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들은 모두 항왕을 가까이에서 섬겨본 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항왕의 불같은 성정은 미워하는 적을 만나면 무섭게 타오르지만, 그 적이 없어지고 나면 어이없이 사그라지고 맙니다. 따라서 대왕께서 성안에 계시지 않음을 알게 되면 그 맹렬한 전투력은 절반으로 줄어, 주가와 종공을 사로잡기 위해 형양성을 칠 때와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며칠 힘을 다해 버틴 뒤에 틈을 보아 하나 둘 가만히 몸을 빼내면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장수들도 얼마든지 이 성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한왕도 조금은 걱정이 줄었다. 그러나 홀로 달아나기에는 아직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장량이 그런 한왕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층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께서 어디로 가 계시든 열흘 안으로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기한을 어기면 군령으로 다스려도 대왕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장량의 그 같은 말에 한왕도 드디어 마음을 정했다.

좋소. 과인은 오늘 밤 옥문(玉門)을 나가 관중으로 돌아가겠소. 소하에게서 군사를 얻어 다시 동쪽으로 나올 것인즉 공들도 너무 오래 날을 끌지 말고 과인을 따르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날 밤 날이 어둡기 바쁘게 옥문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장수들이 동, , 남 세 성문에서 금세라도 밖으로 치고 나갈 듯 소란을 떨기 시작한 때였다.

하후영은 성안에서 가장 빠르고 튼튼한 말 네 마리를 골라 발굽을 헝겊으로 싸매고 낮부터 따로 손질해 둔 수레에 묶었다. 달리는 데 꼭 필요한 뼈대만 남긴 가볍고도 단단한 수레였는데, 바퀴에는 잔뜩 기름을 쳐 구르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수레에 전포만 걸친 한왕을 태우고 가만히 북문으로 빠져나간 하후영은 관도에 올라서기 바쁘게 말을 채찍질했다.

아무리 말발굽을 헝겊으로 싸매고 수레바퀴에 기름칠을 해도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가 내닫는데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북문 쪽을 지키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듣고 기마대를 내어 쫓았다. 곧 어두운 관도 위에서 하후영이 모는 수레와 초군 기마대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원래는 수레 쪽이 어림없을 추격전이었다. 하지만 수레를 모는 하후영은 패현 마구간에서 잔뼈가 굵어, 옛적 조보(造父)와 견줄 만큼 말과 수레에 밝은 사람이었다. 일찍이 패현의 사어(司御)가 되었고, 그 수레 모는 솜씨 덕분에 현령리(縣令吏)로 중용되기도 했다.

거기다가 한왕 유방을 따라나선 뒤로 하후영의 수레 모는 솜씨는 한층 날래고도 빈틈없어졌다. 태복(太僕)이 되어 한왕의 수레를 몰면서 수많은 위기를 뚫고 나갔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홀로 싸움수레[전거]를 몰고 빠르게 싸움터를 내달리면서 눈부신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하후영이 워낙 빨리 수레를 몰아 추격을 벗어나니, 얼마간 뒤쫓던 초군 기마대는 처음부터 잘못 들은 걸로 알고 저희 군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등공(謄公) 하후영은 뒤쫓는 초군 기마대를 따돌린 뒤에도 30리나 북쪽으로 내달은 뒤에야 말고삐를 당겨 빠르기를 줄였다. 하후영의 등 뒤에서 수레 채를 잡고 가슴 졸이던 한왕도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뒤쫓는 적병은 없는 듯하구나.”

그렇습니다.”

하후영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슬며시 고삐를 당겨 수레를 끄는 말머리를 왼쪽으로 돌리려 했다. 어둠 속에 한 갈래 동서(東西)로 난 길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왼편으로 가면 서쪽 관중(關中)으로 돌아가는 길로, 하후영은 당연한 듯 그리로 길을 잡으려 했다. 그때 한왕이 문득 소리쳤다.

멈추어라. 수레를 동쪽으로 몰도록 하라.”

관중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십니까?”

하후영이 희끗 뒤돌아보며 알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한왕이 전에 없이 지긋한 목소리로 물음을 받았다.

적은 과인이 성고를 빠져 나갔음을 알면 반드시 관중으로 갈 줄 알고 그 길을 끊으려 할 것이다. 거기다가 무사히 관중으로 돌아간다 해도 승상 소하(蕭何)가 과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새로 긁어모은 장정 몇 만일 터인데, 제대로 된 장수 하나 없는 그런 까마귀 떼 같은 군사로 과인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장량과 진평을 비롯해 성고에 남은 장수들도 모두 틈을 보아 대왕을 따라 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기약할 수 있는 일이 못되거니와, 설령 그리된다 해도 너무 더디다. 한신과 장이가 조나라를 평정하고 여러 달에 걸쳐 길러낸 5만 정병에 견줄 바 아니다. 그들이 수무(修武) 쪽으로 오고 있다 하였으니, 동쪽으로 가자. 그들을 거두어 하루 빨리 항왕을 되받아치는 것이 지금 형편없이 기울어진 전세(戰勢)를 되돌리는 길이다.”

대왕께서 홀몸으로 쫓겨 가시어도 한신과 장이가 대왕을 임금으로 받들며 곱게 대군을 바칠는지요.”

한신은 등공이 처음 내게 써볼 만하다고 천거한 사람 아닌가?”

그때 신이 천거한 것은 한신의 재주이지 충심이 아닙니다.”

신하된 자에게는 충심도 큰 재주가 된다. 게다가 조왕(趙王) 장이는 과인이 저를 왕으로 삼았을 뿐더러 젊어서부터 저와 교유한 적이 있어 그 사람됨이 충직함을 잘 안다. 아무 걱정 말고 어서 말을 동쪽으로 몰라!”

한왕이 그렇게 잘라 말하자 하후영도 미덥지 않은 대로 그 뜻을 따랐다. 얼른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밤새 수레를 달렸다. 날이 훤해질 무렵 한왕이 탄 수레는 한 갈래 하수(河水) 지류를 만났다. 하후영은 어렵게 배를 구해 말과 수레까지 함께 물을 건넌 뒤 다시 수무로 달려갔다.

한왕과 하후영이 수무에 이른 것은 이튿날 한낮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워 달린 데다 다시 6월 염천을 반나절이나 내달려온 말들을 잠시 쉬게 하고 전사(傳舍)에 들었다.

수무(修武)는 예전 은()나라 시대에는 영읍(寧邑)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주()나라를 연 무왕(武王)이 포악한 주왕(紂王)을 치기 전에 그곳에서 군사를 조련시켰다 하여 땅이름을 수무로 바꾸었다고 한다.

하후영과 함께 어렵게 하수(河水)를 건널 때만 해도 한왕 유방은 대장군 한신이 수무에 군사를 머물게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수무의 전사(傳舍)에 들어 알아보니 한신은 그곳에 없었다. 한신은 장이와 더불어 그곳에서 동쪽으로 백여 리 떨어진 소수무(小修武)란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한신이 그곳에 없다는 것을 알아온 하후영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나 한왕은 별 내색 없이 말하였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잠시 말을 쉬게 한 뒤 소수무로 가자.”

그러면 소수무에 이르기 전에 날이 저물게 됩니다. 성문이 굳게 닫혀 있을 터인데, 과연 성안에서 대왕을 알아보고 쉽게 성문을 열어줄까요?”

성 밖 전사에서 자고 아침 일찍 성안으로 들어간다. 날이 밝으면 성문을 열게 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고 마침 날라져 온 음식을 태평스레 먹고 마셨다. 하후영은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았으나 한왕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날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낮잠까지 한숨 늘어지게 자고 난 뒤에야 소수무로 수레를 몰아갔다.

해가 제법 뉘엿해진 데다 말들도 서너 식경(食頃)이나 쉬어서 그런지 잘 달려주어 밤이 깊기 전에 한왕과 하후영은 소수무에 이를 수 있었다. 성안에 대장군 한신이 조나라에서 거둔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 다시 하후영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한왕은 여전히 태평스럽기만 했다.

여기서 자고 날이 밝으면 성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도 말도 푹 쉬게 하여라.”

전사에 짐을 풀게 한 뒤 그렇게 말하고는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시켰다. 그리고는 걱정에 싸인 하후영을 불러 앉혀 밤늦도록 먹고 마시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이었다. 겨우 전사의 창문이 희끄무레 밝아 오는데 한왕이 하후영을 불러 깨웠다. 하후영이 천근으로 내려앉는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한왕이 조용히 말했다.

등공은 옷차림을 바로 하고, 어서 수레에 말을 메우라.”

하후영이 보니 한왕도 마음 써서 복색을 갖춰 입고 있었다. 위엄과 격식은 있어도 왕이나 장군의 차림은 아니었다. 그런 한왕이 꾀하는 바를 다 알 수는 없어도 무언가 뚜렷한 계책에 따라 한왕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하후영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사태의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그 핵심을 단숨에 잡아채는 능력 또는 한왕을 따르는 이상한 행운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하후영이 수레를 끌고 오자 한왕은 곧바로 수레를 성문 앞으로 몰아가게 했다. 날이 밝았다 해도 늦여름이라 그런지, 문루(門樓)에는 파수 보는 군사 몇밖에 없었다.

성문을 열어라! 나는 한왕께서 좌승상(左丞相) 한신에게 보내신 사신이다.”

한왕이 문루 앞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 그렇게 소리치자 졸고 있던 군사 하나가 어리둥절해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왕의 사자가 이 새벽에 웬 일이냐?”

성고성이 위급해서 급히 달려왔다. 시각을 다투는 일이니 어서 성문을 열어 좌승상 한신 대장군께 안내하라!”

한왕이 다시 한번 소리치자 문루 위의 그 군사는 잠자던 저희 장수를 깨워왔다. 성문을 지키던 장수가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내려다보니 달랑 수레 한 대에 마부와 스스로 한왕의 사신이라 일컫는 사내 하나가 타고 성문을 열어주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가 어두운 밤이었으면 그 장수는 경계심이 일어 확인을 하느라 시간을 끌고 또 미리 한신에게 알려 나름으로 한왕을 어떻게 맞이할까를 궁리한 뒤 맞이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훤한 아침이라 두 사람의 차림이 뚜렷이 보이는 데다 태도까지 당당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졸들을 시켜 성문을 열게 하고 한왕의 수레를 맞아들였다.

대장군은 어디에 묵고 있는가?”

성안으로 들어서자 한왕이 수레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앞을 막는 장수에게 물었다. 그런 한왕에게서 우러나는 알 수 없는 위엄에 질린 그 장수가 작은 망설임도 없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현청(縣廳)을 중군막(中軍幕) 대신 쓰고 있습니다. 대장군께서는 객청(客廳) 곁에 붙은 큰 방을 숙사로 쓰고 계십니다.”

알겠소. 내 그리로 가 볼 테니, 장군은 적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밀히 살펴 성문을 지키도록 하시오!”

한왕은 그런 당부까지 하고 등공에게 수레를 몰게 했다. 등공이 잽싸게 수레를 몰아 잠깐 사이에 그 장수가 가리킨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 집 대문 앞에서도 군사 몇 명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길을 막았다.

비켜라. 대왕의 사자시다. 대장군께 급한 전갈이 있어 밤길을 달려오셨다. 왕사(王使)를 지체케 하여 일을 그르치면 무거운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이번에는 하후영이 나서 그렇게 군사들을 얼러댔다. 거기에 다시 한왕의 위엄 실린 목소리가 더해졌다.

등공은 저들을 시켜 어서 장수들을 이리로 모이게 하시오. 상장군 조참과 주발, 기장(騎將) 관영을 먼저 불러들이게 해야 하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하후영도 한왕이 무엇을 믿고 홀몸으로 한신을 찾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일이 어떻게 된지를 몰라 눈만 껌벅이고 서 있는 군사들을 내몰아 먼저 조참과 주발, 관영을 불러오게 하고 이어 다른 장수들도 중군막처럼 쓰이는 객청으로 모아들이게 했다.

그사이 한왕은 혼자 객청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신이 사인(舍人)처럼 부리고 있는 장수 하나가 객청 구석에서 졸고 있다가 놀라 한왕을 맞았다.

대왕. 이 새벽에 여기는 어인 일이십니까?”

한왕의 얼굴을 알아본 그 장수가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성고가 위급해 빠져나온 길이다. 어쩌면 지금쯤은 성고가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한왕이 그렇게 대답한 뒤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신과 장이는 어디 있느냐?”

옆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한신의 사인(舍人)이자 호위인 셈인 장수가 얼른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이 다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물었다.

과인이 내린 대장군의 인부(印符)와 부월(斧鉞)은 어디 있느냐?”

저기 저 상자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 장수가 여전히 아무런 의심 없이 객청 한쪽을 가리키며 그렇게 아는 대로 일러 주었다. 그러자 한왕은 그 상자를 가져오게 해 먼저 대장군의 인부부터 거두었다.

한왕이 그렇게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두는 동안에도 한신과 장이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아침잠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만큼 철저하게 한왕이 한신 주변의 장졸들을 장악했다는 뜻이었다. 한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어떤 매섭고도 세찬 기운이 그들을 억눌러, 한왕의 명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한신과 장이를 깨울 수 없게 했다.

그 사이 하후영이 군사들을 풀어 불러들인 장수들이 하나 둘 객청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달려 온 것은 성격이 불같고 몸놀림이 재빠른 관영()이었다. 지난번에 간신히 형양성을 탈출한 한왕을 낙양까지 호위하고 갔던 관영은 한왕이 미처 안전하게 관중으로 드는 걸 보지 못하고 한신에게 배속되었다. 그 바람에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던 까닭인지 관영은 한왕을 보자 그답지 않게 눈물까지 글썽였다.

비록 엄명을 받고 조나라로 왔으나 대왕을 어려움 가운데 버려두고 떠난 터라 항시 걱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대왕을 호위하려 잠시라도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하는 관영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든 것은 조참(曺參)이었다.

형양이 떨어지고 성고가 위태롭단 말에 대왕의 안위를 걱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꿈인가 싶습니다.”

오다가 하후영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인지 조참의 목소리에도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한왕은 평소처럼 태평스럽기가 산악 같았다. 대수롭지 않은 듯 성고에서 있었던 일을 되뇌고는 뒤이어 달려온 주발(周勃)을 맞았다. 주발 역시 한왕이 벼랑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걱정하다가 한왕이 그곳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끝내 오창(敖倉)을 지키지 못하고 조나라로 달아난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대장군이 정히 군사를 움직이지 않으면 저만이라도 성고로 달려갈 작정이었습니다.”

이어 여러 장수가 줄을 이었다. 눈치 빠른 하후영이 짠 일인지, 오래전부터 한왕을 따르다가 한신에게 배속된 장수들이 먼저 오고, 한신이 새로 얻거나 항복한 조나라 출신 장수들은 한발 늦게 객청에 이르렀다.

어지간히 사람이 모였다 싶자 한왕이 문득 대장군의 인부(印符)와 부월(斧鉞)을 높이 쳐들어 보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 한신에게서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두고 모든 장수들의 관작과 직책도 새로 정하고자 한다. 먼저 상장군 조참은 나와 과인의 명을 받으라!”

그리고 조참이 장수의 반열에서 나와 서자 위엄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조참에게 우승상(右丞相)의 일을 우선 맡기니(가임·假任) 이제부터 조참은 우승상으로서 대장군인 좌승상 한신을 도와 산동(山東)을 평정하는 데 가진 힘을 다하라.”

그리고 다시 주발과 관영을 불러내 명하였다.

상장군 주발은 과인의 중군(中軍)으로 되돌아와 성고를 구하러 간다. 서둘러 거느린 군사를 점고하여 과인과 더불어 서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라! 어사대부 관영은 그대로 기장(騎將)으로 남아 낭중(郎中)의 기마병을 이끌고 대장군 한신을 따른다. 우승상 조참과 더불어 대장군 한신을 받들고 제나라를 거두어 과인의 근심을 덜도록 하라!”

이어 한왕은 다른 장수들도 각기 그 관작과 직책을 바꾸어 나갔다.

한신이 잠에서 깨난 것은 대장군의 인부와 부월을 거둔 한왕이 한창 장수들의 배치를 바꾸고 있을 때였다. 바깥의 알지 못할 수런거림을 이상하게 여긴 한신이 방 밖에서 숙위(宿衛)를 서던 군사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그제야 그 군사가 우물거리며 아는 대로 객청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다.

한왕이 새벽에 홀로 수레를 타고 성안으로 달려 들어와 인부와 부월을 거둔 뒤에 모든 장수들을 객청(客廳)으로 불러 모아놓고 있다는 말을 들은 한신은 깜짝 놀랐다. 얼른 옆방에 자고 있는 장이를 깨우고 물었다.

한왕이 홀로 성안으로 돌아와 중군을 차지하고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하오. 우리 둘은 깨우지 않고 다른 장수들만 불러 모은 까닭이 무엇이겠소?”

꾀를 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한신이었다. 그러나 워낙 뜻밖의 일을 갑자기 당하고 보니 잠시 머리가 굳어진 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금 잠에서 깨나기는 해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차리는 데는 산전수전 다 겪고 나이 지긋한 장이 쪽이 나았다.

아마도 대왕께서 우리를 의심하시는 듯하오. 우리가 오래 조나라에 머물면서 대왕의 위급을 구해주지 않은 탓일 것이외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번 군사를 거둬 보내주지 않았소? 이제 와서 우리가 갑자기 대군을 빼 서쪽으로 구원을 가게 되면 조나라는 곧 주인 없는 땅이 될 것이오. 힘들여 얻은 조나라를 다시 내놓은 꼴이라 이쯤에서 성고 형양과 조나라 양쪽 모두를 견제하고 있었던 것인데, 의심할 게 무엇이란 말이오?”

한신이 억울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장이가 다시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다가 어두운 얼굴로 받았다.

아마도 대왕께 다급한 일이 생겼겠지요. 성고성이 떨어진 것이나 아닐지 모르겠소이다.”

아무리 성고성이 떨어졌다 해도 장졸 몇십 기()는 남아있지 않겠소? 그런데 우리 대왕께서 홀로 수레를 타고 새벽같이 달려왔다니 실로 알 수가 없소.”

대왕께서 아무도 거느리실 수 없게 될 만큼 참혹한 꼴을 당했는지도.”

이번에는 장이도 자신 없는 듯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 말을 듣자 잠시 굳어 있는 듯하던 한신의 머리가 비로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고성은 깨어지고 대군은 함몰하여 한왕 홀로 남게 되었다.”

한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일의 앞뒤를 헤아리고 재보았다. 이내 실상이 잡혀왔다.

(그렇다. 모든 장졸을 잃고 쫓기게 되면서 한왕은 내가 거느린 조나라 군사들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홀몸으로 내 진채를 찾아오게 되자 갑자기 나를 믿지 못하게 된 듯하다. 내가 거느린 5만 대군과 내 병략이 두려워 나름대로 나를 기습한 것이다. 내가 딴 마음을 먹을 틈을 주지 않고 내 병권을 빼앗으려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문득 한신의 간담이 서늘해왔다. 그 기습의 적절하고도 신속한 방식 때문이었다. 한왕 유방은 상대편이 뜻하지 아니한 때와 곳으로 나아간다(出其不意)는 병법의 요체를 실로 절묘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객청에 모여 있다는 장수들을 생각하자 한신의 가슴은 더욱 섬뜩해졌다.

한신이 처음 한왕에게서 떨어져 나와 조나라로 떠날 때는 군사도 장수도 모두가 한왕에게서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한신이 위()나라에 이어 대()나라를 쳐부수면서 한왕은 한신에게 주어 보낸 장졸들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꺼번에 몇 만씩 뽑아간 군사뿐만 아니라 장수들까지도 한왕에게서 받은 사람은 한신에게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렵 들어 병가(兵家)인 한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몇 번 있었다. 형양에 포위되어 있다가 겨우 몸을 빼 낙양으로 간 한왕이 기장(騎將) 관영에게 군사 몇 천을 주어 한단(邯鄲)으로 보낸 일부터가 그랬다. 제 코가 석 자라고, 패왕 항우에게 쫓겨 관중으로 달아나는 처지에 관영 같은 맹장과 기마대를 빼내 조나라로 보낸 게 병가의 이치에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오창을 지키던 조참이 조나라로 쫓겨 오고 뒤이어 초나라 군사들로부터 용도(甬道)를 지키던 주발까지 패군(敗軍)을 이끌고 그리로 찾아왔다. 겨우 보름 사이에 풍패(豊沛)의 맹장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세 사람이 적지 않은 군사들과 함께 한신 아래로 몰려든 것이었다.

(나를 의심하면서도 홀몸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 관영과 조참, 주발 세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해도 한왕은 여느 군왕을 넘는 기지와 과단성을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 세 사람에게 나를 찾아가게 한 것이 바로 한왕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오늘과 같은 날을 위한 대비였다면, 그는 실로 무서운 사람이다.)

한신이 그렇게 혀를 차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 사이 옷을 갖춰 입은 장이가 앞장서며 말했다.

우리도 객청으로 가서 대왕을 뵙도록 합시다.”

그 말에 한신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디뎌 장이를 앞서듯 하며 객청으로 갔다. 관영과 조참, 주발의 호위를 받으며 장수들의 배치를 대강 바꾸고 난 다음 한숨을 돌리고 있던 한왕이 객청으로 들어오는 한신과 장이를 보고 물었다.

대장군과 상산왕은 어찌 이리 늦으셨소?”

별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한왕의 목소리였으나 한신과 장이는 왠지 꾸짖는 듯 들렸다.

한신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부르심을 받지 못해진작 대왕을 받들어 모시지 못해 죄스럽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등공이 중군막(中軍幕)에 주무시는 두 분을 깜박 잊은 모양이오. 어쨌든 잘 오셨소. 두 분에게도 서둘러 해야 할 새 일을 주겠소.”

한왕이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돌연 말투를 바꾸었다.

이제부터 대장군 한신을 우리 한나라의 상국(相國)으로 삼는다. 한 상국은 조나라의 장정 가운데 아직도 군사로 뽑히지 않은 자를 모두 거두어 이끌고 제나라로 가라. 새로 우승상이 된 조참과 기장(騎將) 관영을 딸려줄 터이니, 반드시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사로잡아 과인의 뜻을 받들게 해야 한다. 전 상산왕 장이는 조왕(趙王)의 일을 우선 맡아[가임] 조나라를 지키도록 하라. 이미 지난봄에 대장군의 청이 있어 장이를 조왕으로 삼기를 허락한 바 있으나, 인수(印綬)와 부절(符節)을 갖출 겨를이 없었다. 머지않아 격식을 갖춘 즉위(卽位)가 있을 것이니, 그때까지 제 땅을 잘 지켜내야 한다.”

한신과 장이는 모두 실속 없는 관작은 올랐지만, 거느리고 있던 군사는 한왕에게 깨끗이 빼앗기고 만 셈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로 한왕이 인심 쓰듯 떼어준 군사 몇 천을 거느리고 한단(邯鄲)으로 돌아가 새로 군사를 모으고 전곡을 거두어들여야 했다.

한신과 장이가 여러 달 조나라에 머물면서 기른 5만 대군을 빼앗아 거느리게 되자 한왕은 다시 성고 쪽을 돌아보게 되었다. 곁에 남은 주발과 하후영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성고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자방과 진평은 성을 버리고 빠져나갈 것이라 했으나 그게 어찌 쉽겠는가? 급히 군사를 몰아 성고를 구하러 감이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성을 에워싼 패왕 항우의 무서운 기세를 겪어본 두 사람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하후영은 어제그제 겨우 빠져나온 범아가리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구하러 가려 해도 구해야 할 성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사람을 풀어 성고의 형편을 알아보고 군사를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한왕도 그 말이 옳게 들렸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성고 쪽에서 제 발로 사람이 찾아왔다. 어렵게 초나라 군사들의 에움을 뚫고 성고성을 빠져나온 한나라 장수들이 그들이었다.

정말로 너희들이 성을 빠져나와 과인을 찾아왔구나. 그래, 성고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을 알아본 한왕이 객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에게로 달려가 두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손을 잡힌 장수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지금쯤은 성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제 밤 저희들이 빠져 나올 때만 해도 이미 성안에는 남아 있는 장졸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역상과 근흡 장군이 몇 백 안 되는 군사로 백성들을 몰아 항왕의 눈을 속이고 있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럼 장 자방(子房)과 진평은 어찌 되었느냐?”

한왕도 눈물이 어린 눈으로 그 장수를 보며 다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장수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두 분께서는 대왕께서 성을 빠져나가신 다음 날 산동(山東)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문으로 나가셨습니다. 적에게 잡혔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나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마지막으로 성고성을 빠져나온 역상((,))과 근흡((,))이 피투성이로 달려와 장량과 진평이 간 곳을 알려주었다.

자방 선생과 진() 호군(護軍)은 관중으로 달아난 듯합니다. 대왕께서 관중의 소() 승상이 아니라 대장군을 찾아 동쪽으로 가신 일은 저희들도 오늘 새벽에야 들었습니다.”

그런 저런 소식에 한왕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엉거주춤해서 며칠 일이 돌아가는 형편만 살피고 있는 사이에 이번에는 장량이 보낸 사자가 소수무(小修武)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자방이 과인에게 어찌하라고 하더냐?”

마침 밥상을 받고 있던 한왕이 수저를 내던지고 객청으로 달려 나가 장량이 보낸 사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사자가 가슴에 품고 온 글을 바쳤다. 한왕이 보니 장량의 글씨였다.

신 장량은 호군 진평과 함께 낙양에 머물면서 대왕께 문후 드립니다. 성고를 빠져나온 뒤 바로 대왕을 찾아가지 못한 죄가 작지 않으나, 이렇게 낙양에 자리 잡고 보니 이 또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우리 한나라를 지켜내는 한 방책이 될 듯합니다. 항왕은 성고를 깨뜨리면 그 여세를 몰아 서쪽으로 밀고들 것입니다. 천하의 온갖 화근이 대왕께 있다하여 이번에는 반드시 관중을 둘러엎고 역양을 우려 빼려 들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초나라 군사가 관중으로 들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에 신이 가만히 둘러보니, 저희가 머무는 낙양은 함곡관으로 드는 길목일 뿐만 아니라 성벽이 두껍고 높아 지키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또 낙수(洛水) 사이에 있는 공현(鞏縣)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적을 막기에 공고(鞏固)한 땅이라 이름마저 그렇게 붙여졌습니다. 그 두 곳에 각기 용맹한 장수 하나와 군사 1만 명씩만 보내시면, 신과 진 호군이 각기 한 곳씩을 맡아 굳게 지켜보겠습니다.

대왕께서 관중을 버려두고 동쪽으로 가신 까닭은 조나라에서 온 대장군 한신의 군사를 거두시기 위함이었으니, 이제는 대군을 거느리고 계실 것입니다. 어서 빨리 공() ()으로 장졸을 보내시어 대왕의 기업(基業)이 항왕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을 막으십시오.’

글을 읽은 한왕은 무엇보다도 장량과 진평이 아무 일 없이 성고성을 빠져나갔다는 게 반가웠다. 거기다가 장량이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가 하는 말에 한층 믿음이 갔다. 한왕은 곧 주발과 역상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들에게 각기 1만 군사를 줄 터이니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 낙양과 공현으로 가라. 가서 자방 선생과 진 호군을 받들고 그곳을 지키되 먼저 나가 싸우지 말고 오직 성안에서 지키기만 하라. 항왕이 낙양과 공현을 잇는 선 서쪽으로 못 가게만 하면 된다.”

그러고는 그날 밤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그 사이에도 한왕 유방이 소수무(小修武)에서 다시 대군을 거느리게 되었다는 소문은 널리 퍼져 더 많은 한나라 장졸들이 그리로 찾아들었다. 태위(太尉) 일을 보며 항시 한왕 곁에 붙어있던 노관이 역이기를 비롯한 여러 빈객들을 데리고 한왕에게로 되돌아왔고, 주설()과 육고(陸賈)도 여러 날 하북(河北)을 떠돌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그렇게 되자 주발과 역상이 2만이나 되는 군사를 빼가도 한왕의 진채는 활기가 가득했다.

그 무렵 패왕 항우는 성고성에 머물러 군사를 쉬게 하고 있었다. 방금 어렵게 형양성을 우려 빼고 온 뒤라 그런지 장수다운 장수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성고성을 떨어뜨리는 데도 초나라 장졸은 몹시 지치고 힘들어했다. 어쩌면 지난 달포 팽월을 뒤쫓으며 쌓인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형양 성고로 달려온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지간한 패왕도 지쳐 있기는 매한가지라 처음 며칠은 별 생각 없이 장졸들과 함께 쉬었다. 그러나 기력을 되찾자마자 평소의 격정과 자만이 다시 패왕을 몰아대기 시작했다. 무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장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물었다.

한왕 유방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범증이 죽은 뒤로 간세(奸細)를 풀어 적정(敵情)이나 민심을 살필 줄 아는 책사(策士)는 이미 아무도 패왕의 막하에 남아있지 않았다. 한신이나 진평처럼 다른 주인을 찾아가거나, 계포처럼 입을 다물어 남은 것은 용저나 종리매처럼 치밀한 용간(用奸)과는 거리가 먼 용장(勇將)들뿐이었다. 그들이 낸 척후나 파수로는 밤중에 수레 한 채로 몰래 달아난 한왕의 간 곳을 알 길이 없었다.

전처럼 관중으로 달아난 듯합니다. 거기서 다시 군사를 긁어모아 관동으로 기어 나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장수들이 추측으로 대강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계포처럼 제법 실상에 가까운 추측을 하는 장수도 있었다.

관중으로 드는 길목을 지키던 장수들에게서 아무런 기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조나라로 간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중으로 가서 조련도 안 된 농투성이들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보다 한신이 그곳에 길러둔 대군을 빼앗는 편이 재기(再起)하는 데 더 손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패왕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

한신은 이미 한 번 주인을 바꾼 자다. 잘 조련된 대군을 거느리고 이미 여러 달 조나라에서 왕 노릇을 해 온 셈인데, 무엇 때문에 패망해 홀로 쫓겨 오는 유방을 받아들이겠느냐? 또 유방은 장돌뱅이로 노름방을 떠돌아 사람됨이 비루하면서도 의심이 많다. 그렇게 함부로 자신의 목숨을 한신에게 맡길 리 없다.”

그러고는 칼자루를 움켜잡으며 자르듯 말했다.

모두 유방을 뒤쫓아 관중으로 가자. 이번에는 반드시 관중을 둘러엎고 유방을 잡아 죽여 뒷날의 근심거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패왕이 대군을 이끌고 관중으로 들어가려 하자 초나라 장수들은 걱정이 되었다. 근거가 되는 서초 땅을 비워두고 멀리 관중으로 몰려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에 종리매와 용저가 일어나 한목소리로 말했다.

관중(關中)은 그 땅이 천하의 서북쪽에 치우쳐 우리 대군이 모두 그리로 몰려가면 비다시피 된 중원(中原)에서 무슨 변괴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조나라에 있는 한신의 대군은 말할 것도 없고, 제왕(齊王) 전광의 무리도 아직은 대왕의 명을 받들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대왕의 위엄에 쫓겨 꼬리를 사리고 숨었으나 팽월도 적지 않은 무리를 거느린 채 하수(河水)가를 떠돌고, 경포 또한 회수(淮水) 남북을 오가며 대왕께 앙갚음하고자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곳곳에서 불측한 무리가 저마다 시커먼 속을 드러낼 것인즉, 대왕께서는 가볍게 전군을 관중으로 몰아넣으셔서는 아니 됩니다. 한왕 유방을 쫓아 관중으로 들어가는 일은 저희 둘이서 맡아 할 것이니, 대왕께서는 이대로 형양과 성고 사이에 걸터앉으시어 오창의 곡식으로 장졸을 먹이면서 중원을 노려보고 계십시오. 그리되면 아무리 간 큰 도적이라도 함부로 천하를 어지럽히지 못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패왕 항우에게도 그 말이 옳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종리매와 용저에게 각기 3만 군사를 갈라주며 말하였다.

그대들은 어서 빨리 한왕 유방을 뒤쫓아 그 목을 잘라오라. 유방이 그 사이 제 소혈 역양((,))에 들었거든, 역양성을 우려 빼서라도 반드시 그 목을 가져와야 한다.”

이에 종리매와 용저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는 하수(河水) 남북 두 갈래로 길을 나누어 서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먼저 하수 남쪽 길을 잡고 한왕 유방의 자취를 쫓던 종리매는 이틀을 달려 낙양에 이르렀다. 형양과 성고를 잇달아 떨어뜨린 기세에다 이틀이나 무인지경 달리듯 해온 터라 겁이 없어진 종리매는 대뜸 낙양성을 에워싸고 그곳을 지키는 수장(戍將)을 불러냈다.

나는 패왕의 명을 받들어 성고에서 쥐새끼처럼 홀로 살고자 달아난 한왕 유방을 사로잡으러 왔다. 성안에 유방이 있거든 어서 묶어 바치고 항복하라. 그러면 상장군에 만호후(萬戶侯)를 내릴 것이요, 헛된 고집으로 맞서려들면 성이 깨어지는 날 성안에 살아 숨 쉬는 것은 모두 산 채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문루에 나온 장수를 보고 종리매가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한나라 장수가 껄껄 웃으며 받았다.

천리 밖 조나라에 계시는 우리 대왕을 이곳 낙양성에 와서 찾으니 저런 미친놈을 보았나? 대군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으로 보아 아주 이름 없는 졸개는 아닌 듯한데, 도대체 너는 누구냐?”

나는 초나라 대장군 종리매다. 내 이름을 들었거든 어서 성문을 열고 항복하여 목숨을 건져라!”

성난 종리매가 그렇게 소리쳐 자신을 밝혔다. 그 장수는 그래도 놀라기는커녕 투구까지 들쳐 얼굴을 내보이며 비웃듯 소리쳤다.

이놈 종리매야. 너는 벌써 대한(大漢) 농서도위((,)西都尉) 역상((,))을 잊었느냐? 거야현(巨野縣)에서 땅에 떨어질 그 목을 한번 붙여주었거늘, 이제 와서 다시 떼어주기라도 해달란 말이냐?”

그 말에 종리매도 역상을 알아보고 흠칫했다.

역상과 종리매는 전에 거야현에서 한번 맞붙은 적이 있었다. 방금 역상이 말한 것처럼 종리매가 목숨까지 위태로운 지경이 된 것은 아니었으나 전투는 매우 격렬하였고, 종리매의 군사들이 밀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역상이 난데없이 낙양성을 맡아 지키고 있다는 게 왠지 종리매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다시 역상 곁에 섰던 장수가 종리매에게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하며 끼어들었다.

종리(鍾離) 장군은 이 몸을 잊으셨소? 한솥밥을 먹은 날이 적지 않은데 어찌 그렇게 무정하게 알은체도 않으시오?”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다 전포를 겨우 이겨내고 있는 듯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자 종리매도 그가 누군지를 알아차렸다. 마지못해 두 손을 모으며 말을 받았다.

한왕의 꾀주머니(智囊)라는 자방 선생이 여기 계셨구려. 그렇다면 한왕도 이 낙양 성안에 있다는 말이오?”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해도 이미 심기는 한풀 꺾여 있었다. 역상 같은 맹장에다 장량같이 뛰어난 책사가 붙어 있어 일은 점점 고약하게 꼬여 간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장량의 대답이 한술 더 떴다.

이 성은 원래 나와 진평이 만여 군민(軍民)과 더불어 지키고 있었으나, 우리 대왕께서 장군이 이리로 오실 줄 알고 벌써 며칠 전에 역((,)) 상국(相國·그때 역상의 신분은 양나라 재상이었다)과 상장군 주발에게 대군을 딸려주시며 우리를 돕게 하셨소. 이에 진평과 주발은 공현(鞏縣)을 지키러 가고 나와 역 상국만 여기 남았소. 우리 대왕은 역 상국의 말대로 조나라에 있는 대장군 한신의 진채에 머물고 계시오. 머지않아 항왕과 크게 보수전()을 벌이리라 벼르고 계시오.”

그 말을 듣자 종리매는 맥이 죽 빠졌다. 조금 전까지의 드높던 기세는 다 어디 가고 오히려 자기가 한군의 계략에 말려든 것 같아 불안해졌다.

종리매의 마음가짐이 그와 같으니 이어지는 싸움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대군을 이끌고 먼 길을 왔다가 아무 얻은 것 없이 돌아갈 수가 없어 몇 번 성을 치는 흉내는 냈으나, 그 끝이 뻔했다. 헛되이 군사만 꺾이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장량과 진평이 성을 나와 뒤쫓지 않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하수(河水) 북쪽 길을 잡아 한왕을 뒤쫓던 용저도 마찬가지였다. 하수를 건너 공현까지는 거침없이 달려갔으나 그 다음은 낙양성의 종리매와 비슷했다. 풍패(豊沛)의 맹장 중에서도 손꼽히는 주발이 이미 대군을 이끌고 와 있는 데다, 독한 꾀로 이름난 진평이 곁에서 주발을 거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왕 항우는 믿고 보낸 종리매와 용저가 낙양과 공현을 잇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원병을 청해 오자 불같이 화가 났다.

이는 틀림없이 한왕 유방이 관중으로 달아났다는 증좌이다. 유방이 거기서 마지막 발악을 하기 때문에 종리매와 용저가 낙양과 공현에서 더는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단정하고 다시 대군을 휘몰아 서쪽으로 가려 했다. 그때 멀리 동쪽으로 나가 있던 척후로부터 급한 전갈이 들어와 다시 한번 패왕의 부아를 질러놓았다.

한왕 유방이 대군을 이끌고 동쪽에서 하수(河水)를 건넜다 합니다. 지금 소수무(小修武) 남쪽에서 오창(敖倉)을 향해 오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여간 아니라는 소문입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이 분노를 실소로 바꾸어 허허거리며 말했다.

그 장돌뱅이 놈이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단 말이냐? 한 놈은 서쪽에서 종리매와 용저를 막고 있고, 또 한 놈은 동쪽에서 대군을 몰고 온다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냐?”

한왕은 애초부터 서쪽으로 달아난 게 아니라 동쪽 한신에게로 가서 그 대군을 거둬들였습니다. 거기다가 며칠 전에는 관중에서 적지 않은 군사가 다시 한왕에게 이르렀다 합니다.”

멀리 척후를 나갔던 군사가 그곳 백성들에게서 들은 대로 전해 주었다.

그 소리야말로 장량이나 진평이 과인을 이곳에 묶어 놓기 위해 퍼뜨린 헛소문일 것이다.”

패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소리쳤으나 군사를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다시 한번 사람을 동쪽으로 보내 그 말이 맞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하지만 패왕이 들은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때 한왕 유방은 정말로 하수를 건너 소수무 남쪽에다 진채를 벌여 놓고 있었다. 한신의 군사를 거두어들이자 삽시간에 불어난 한군은 소하가 한왕 유방의 사촌 형 유고(劉賈)에게 관중에서 긁어모은 군사 3만을 보내면서 더욱 크게 세력을 떨쳤다. 이에 힘이 솟은 한왕은 패왕과 다시 한번 맞붙어 보려고 형양 성고 쪽으로 군사를 몰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한왕의 투지는 장해도 그 하려는 바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유고가 이끌고 온 관중의 군사들 때문에 머릿수로는 패왕이 거느린 초나라 군사와 비슷해졌지만 그 질은 아직 초나라 군사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싸움에 져본 적이 별로 없는 초군은 여전히 강동의 정병(精兵)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군은 대개가 여기저기서 새로 긁어모은 데다 조련도 제대로 안 된 잡군(雜軍)이었다. 또 장수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패왕 밑에서 단련된 초나라 장수들을 당해낼 만한 맹장이 한왕 곁에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한왕을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은 쓸 만한 책사(策士)들이 모두 멀리 나가 있다는 점이었다. 막빈으로는 겨우 역이기 정도가 있었으나, 역이기는 유생(儒生)이고 유세가(遊說家)였다. 아무리 그 재주를 크게 봐주어도 싸움터에서 장량이나 진평의 빈자리를 메워줄 만한 책사는 결코 못 되었다. 그런데 한 사람 알려지지 않은 책사가 있어 한왕을 그 무모한 싸움에서 건져냈다.

한왕 곁에서 시중드는 낭중(郎中) 가운데 정충(鄭忠)이란 사람이 있었다. 정충은 평소 헤아림이 깊고 충직하여 한왕을 편하게 모셨으나 말이 없어 그 재주는 별로 드러난 바 없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한왕을 찾아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 삼가 대왕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그대가 어쩐 일인가? 말하라. 과인이 귀담아들으리라.”

워낙 말이 없던 사람이라 한왕이 그렇게 받았다. 정충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대왕의 처지는 석 달 전 형양성을 빠져나가 관중으로 들어가셨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대처하시는 모습은 어찌 이리도 그때와 다른지 실로 알 수 없습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정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면서도 한왕이 시침을 떼고 물었다. 정충이 별로 흔들리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 승상이 군사와 곡식을 모아주고 장수들이 모두 돌아오자, 그때도 대왕께서는 함곡관을 나가 항왕과 싸우기를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원생(袁生)이 말려 무관(武關)으로 나가시게 되고, ()과 섭() 사이에서 새로운 전단을 열어 전국(戰局)을 주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 이렇게 서둘러 항왕의 날카로운 칼끝으로 다가가시는 것입니까?”

지금 서둘러 항왕과 싸우지 않으면 무얼 하란 말이냐? 또 달아나기라도 하라는 것이냐?”

우리 군사들이 낙양과 공현에서 초나라 군사들을 막아내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초군의 기세는 사납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용맹한 항왕과 그 장수들을 당해낼 만한 장수들도 없으면서 서둘러 부딪쳐 가는 것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전처럼 누벽(壘壁)을 높이 쌓고 참호를 깊게 파 굳게 지킴만 못합니다.”

그 말에 문득 싸움터를 사납게 휩쓸어 오는 패왕 항우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린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전에 원생의 말을 따랐어도 결국은 홀로 성고에서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음을 다시 떠올리고는 뒤틀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과인더러 다시 자라 모가지를 하고 항왕을 피해 다니기만 하라는 말이냐?”

정충이 갑자기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대답했다.

결코 그래서는 아니 됩니다. 천하 여기저기 불을 질러 항왕으로 하여금 잠시도 쉴 틈 없이 팽이처럼 돌며 그 불을 끄게 해야 합니다.”

또 팽월이나 경포로 항왕의 화를 돋워 끌고 다니게 하라는 말이로구나. 그러나 그 불로는 항왕의 수염 한 올 그을지 못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항왕은 그들이 지른 심화(心火)로 나날이 그을리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다가 조왕으로 세우신 장이도 있고, 제나라로 보내신 상국 한신도 있지 않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왕께서 새로운 불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태위 노관은 대왕께 가슴이나 배(심복·心腹) 같은 사람이요, 장군 유고는 대왕의 종형(從兄)으로 대왕께는 손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에게 군사를 나눠주고 초나라 땅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게 하십시오. 그리 되면 항왕은 더욱 바삐 뛰어다니며 그 불을 꺼야 하니, 그사이 편히 쉬시며 힘을 기르고 계시는 대왕 쪽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한왕도 정충이 뜻하는 바를 모두 알아들었다. 서둘러 군사를 서쪽으로 몰아가는 대신 유고와 노관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에게 군사 2만과 기마대 몇 백을 줄 터이니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초나라 땅으로 들어가라. 가서 팽월을 도와 초나라의 곡식과 재물을 불사르고, 그 백성들이 벌이할 터를 부숴 없애 항왕의 군사들에게 먹을 것을 댈 수 없게 하라. 그러다가 만약 적이 오면 나아가 맞서지 말고 물러나 지키기만 하라. 성벽을 튼튼히 하고 더불어 싸우지 않으면서 팽월과 서로 도우면 지키기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자 패왕이 고단하게 뛰어다니며 꺼야 할 불길이 다시 둘이나 늘게 되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참으로 군사를 부리기에 좋은 철이다.’

() 39월 패왕 항우는 성고성 문루에서 맑은 가을 하늘을 우러러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며칠을 쉬자 형양성과 성고성을 잇달아 떨어뜨리느라 쌓인 피로는 말끔히 가시고 없었다. 거기다가 사람을 보내 뒤쫓고 있는 한왕 유방이 제 발로 오고 있다는 소문에 패왕은 벌써 온몸이 근질거렸다. 다시 사람을 동쪽으로 보내 그 말이 맞는지를 알아보게 하였지만 머릿속은 벌써 거침없는 전의(戰意)로 가득했다.

그때 동쪽에서 기마 한 필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전날 소수무 쪽에서 오고 있다는 유방의 움직임을 살피러 갔던 탐마(探馬) 같았다. 패왕이 성문을 열어주게 하자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사졸 하나가 말에서 뛰어내려 군례를 올린 뒤 말했다.

동쪽에서 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한왕 유방의 대군입니다. 한신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에다 소하가 관중에서 뽑아 보낸 군사를 보태 스스로 10만 대군을 일컫는데 엄청난 기세였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대왕과 자웅을 가르겠다고 큰소리를 치며 몰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벌컥 화부터 치밀었다. 그 무렵부터 울화와 격분은 차츰 패왕의 고질처럼 되어 가고 있었다. 한왕 유방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되풀이해 쓰는, 패왕이 보기에는 한없이 비겁하고 지저분한 술책 때문이었다. 패왕이 잠시라도 군사력을 집중하려 들면 그들은 그 바람에 비어 있는 곳을 제 땅인 양 마구 휘젓고 다니다가, 패왕이 달려가기만 하면 참새 떼처럼 흩어져 달아나 그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혔다.

유방 그놈이 또 더러운 잔꾀를 부리고 있다. 그렇게 큰소리를 쳤다면 틀림없이 어딘가로 내뺄 궁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꼬리를 사리고 멀리 달아나 숨기 전에 우리가 달려가 그 쥐새끼들을 모두 때려잡자.”

패왕이 화를 못 이겨 그렇게 소리치며 제 편에서 군사를 움직이려 했다. 그때 계포가 나서 조심스레 말렸다.

대왕 고정하십시오. 유방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구태여 장졸을 수고롭게 하며 우리가 찾아 나설 까닭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유방이 들고 나는 방식을 살피면 어떤 틀 같은 것이 있습니다. 힘에 부치면 비겁하게 달아나지만, 그래도 때를 넘기지 않고 반드시 되받아쳐 왔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거느린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 듯한데,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여기서 더 밀리면 실망한 장졸들이 모두 흩어져 버릴 것이니 이판사판으로 나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패왕이 성난 가운데도 듣고 보니 계포가 하는 말이 옳은 듯했다. 한왕 유방은 파촉(巴蜀) 한중(漢中)에서 나온 뒤로도 벌써 네댓 번이나 여지없이 지고 쫓겨 갔지만, 한 달을 넘기지 않고 반드시 어딘가로 반격해 왔다. 패왕이 가만히 헤아려 보니 이번에도 유방 스스로 앞장서 되받아치는 시늉을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좋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방을 기다리기로 하자. 촘촘하고 질긴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다가 이번에는 반드시 유방을 사로잡자!”

그러면서 성고에서 유방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패왕 항우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한왕 유방의 움직임이었다. 패왕은 한왕이 그 부근에 이르기만 하면 갑옷 한 조각 찾아가지 못하도록 온갖 채비를 갖추고 기다렸으나,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한군(漢軍)의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패왕이 다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한왕은 오창(敖倉) 동북 하수(河水=황하)가에 군사를 멈추고 진채를 벌였습니다. 녹각(鹿角)과 목책을 몇 겹으로 두른 데다 누벽(壘壁)을 높이 쌓고 참호를 깊게 파 어지간한 성곽보다는 더 굳고 든든하다고 합니다.”

오래잖아 한왕의 움직임을 알아보러 간 이졸이 돌아와 그렇게 알렸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다시 울컥 화가 치밀었다. 두어 달 전에 완성(宛城)과 섭성(葉城) 사이를 오락가락 끌려 다니며 한왕과 경포에게 시달리던 일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 흉물스러운 장돌뱅이 놈이 또 지난번과 같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낙양(洛陽) 공현(鞏縣)에 있다는 것들과 연결하여 과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심산인 듯하지만,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용저와 종리매를 보내 낙양과 공성의 것들을 제자리에 묶어 놓고 있으니, 과인은 뒤를 걱정하지 않고 유방을 칠 수 있다. 제아무리 굳게 얽은 진채라 해도 과인이 들부순 함곡관(函谷關)에 견줄 수야 있겠느냐? 이번에는 반드시 유방 그놈을 사로잡아 그 어깨에서 머리를 떼어 놓으리라!”

그렇게 소리치고는 곧 장수들을 불러 모아 명을 내렸다.

지금 곧 군사들에게 한왕 유방을 잡으러 갈 채비를 갖추게 하라. 서두르면 내일 새벽에는 한군의 진채를 들이칠 수 있을 것이다. 단숨에 적진을 짓밟고 모두 하수(河水)에 쓸어 넣어 버리자!”

하지만 패왕은 끝내 한왕을 치러 갈 겨를이 없었다. 불려온 장수들 가운데 있던 군량관(軍糧官)이 반열 밖으로 나와 궁한 소리를 했다.

대왕. 대군을 움직이려면 무엇보다 군량이 넉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거지인 서초(西楚)에서는 며칠 전부터 쌀 한 톨 오지 않아 오직 오창의 곡식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오창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대군은 고스란히 굶게 되었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찌하여 서초에서는 쌀 한 톨 오지 않는단 말이냐?”

패왕이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길로 군량관을 노려보며 물었다. 군량관은 제 죄도 아니면서 기어드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팽월이 다시 양() 땅에 나타나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벌써 여러 날 전부터 초나라에서 보내오는 군량이 우리 진중에 제대로 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며칠 노관과 유고란 한나라 장수가 보졸 2만과 기마대 수백 기()를 이끌고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일껏 날라 온 군량을 불사르고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들판의 곡식마저 짓밟아 버려 가까운 곳에서는 곡식을 구해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패왕으로서는 듣느니 처음이었다. 팽월이 다시 움직였다는 말만해도 분통이 터질 판인데, 다른 한나라 장수들까지 하수를 건너 초나라 땅으로 밀고 들어왔다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묻는다기보다는 무섭게 꾸짖듯 물었다.

노관(盧官)은 유방의 오래된 종놈이라는 걸 나도 안다마는 유고(劉賈)는 또 누구냐? 어떤 놈이기에 감히 과인의 땅으로 기어 들어왔다는 것이냐?”

패왕의 그와 같은 물음을 유고를 아는 장수가 받았다.

유고는 한왕 유방의 육촌 아우로, 한왕이 파촉(巴蜀) 한중(漢中)을 나올 때부터 장수로 부렸습니다. 특히 새왕(塞王) 사마흔을 칠 때 공이 있었는데, 그 장재(將材)가 만만치 않다는 평판입니다.”

그 말에 패왕은 범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유방이 사람을 너무 작게 보는구나. 이놈 저놈 다 장수라고 군사를 떼어주며, 과인의 땅에서 분탕질 치게 하니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유방의 머리부터 잘라 그 손발까지 쓸모없게 만들어야겠다. 어서 군사를 재촉해 유방을 잡으러 가자!”

그때 다시 땀에 흠뻑 젖은 유성마(流星馬) 한 필이 성고 성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부연 먼지를 뒤집어쓴 이졸 하나가 뛰어내려 다급하게 알렸다.

진류성(陳留城)이 팽월에게 떨어졌습니다. 팽월이 1만 군사로 불시에 들이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빼앗겨 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패왕은 성난 중에도 멈칫 했다. 성고 동남쪽에 있어 초군(楚軍)들로 보아서는 등 뒤가 되는 진류가 팽월에게 떨어졌다면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걸 모른 척 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한왕 유방의 진채를 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오래잖아 더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어젯밤 외황성(外黃城)이 팽월의 야습으로 떨어졌습니다. 듣기로 팽월은 다시 수양()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수양까지 떨어져 대량(大梁) 인근의 땅이 모두 팽월의 손에 들어간다면 서초(西楚)의 심장부와 성고 사이에는 길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만다. 아니, 그 이상으로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대군은 동서남북 모두 한왕 유방의 세력에 에워싸인 섬 같은 신세가 된다. 아무리 한왕 유방이 미워도 패왕이 그걸 못 본 체하고 대군을 북쪽으로 몰고 갈 수는 없었다. 생각 끝에 패왕은 종제인 항장(項壯)에게 군사 3만을 나눠 주며 말했다.

너는 먼저 동쪽으로 가서 유고와 노관이 이끄는 군사를 뒤쫓아 쳐부수어라. 만약 네가 그 두 종놈들을 때려잡아 끊긴 양도(糧道)를 다시 잇고, 다시 남으로 내려가 팽월을 멀리 쫓아버릴 수 있다면 과인은 여기서 바로 유방을 잡으러 갈 수가 있다. 그럼 가서 잘 싸워라.”

그러고는 다시 사람을 용저와 종리매에게 보내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성고에 있는 패왕의 본진으로 돌아오도록 했다. 아직도 한왕 유방 쪽을 노려보고 있는 패왕이라 아무래도 군사를 여기저기 갈라 보낸 것이 마음에 걸린 까닭이었다. 용저와 종리매를 되불러들여 압도적인 군세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패왕이 항장에게 건 것은 헛된 바람이었다. 씩씩하게 떠날 때와는 달리 항장은 양 땅(梁地)으로 내려간 지 사흘도 안 돼 유성마를 보내 알려왔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날부터 잇따라 여남은 성에서 위급을 알리는 유성마가 달려왔다.

팽월이 고양(高陽)으로 밀고 들었습니다. 속히 구원이 없으면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곡우(曲遇)가 팽월에게 떨어졌습니다. 곡우를 지키던 장졸들은 하양(夏陽)으로 달아났으나, 하양 또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양() 땅의 성이 떨어지는데 헤아려보니 금세 열 손가락을 넘었다. 그제야 패왕도 한왕 유방을 치러 가기를 단념했다.

어쩔 수 없구나. 팽월 그 늙은 쥐새끼부터 먼저 잡아 죽여야겠다. 패현의 장돌뱅이는 팽월을 죽인 다음에 잡아 없애리라.”

패왕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하며 군사를 먼저 양 땅으로 내기로 했다. 하지만 어렵게 되찾은 형양과 성고를 그대로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믿을 만한 수장(守將)을 남기기로 하고 장수들을 살피다가 해춘후(海春侯)에 대사마(大司馬)인 조구(曺咎)를 불러 말했다.

장군에게 군사 1만을 남겨줄 터이니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장사(長史) 동예()와 더불어 성고를 지켜주시오. 많은 장졸을 남기지 못하지만 성안 백성들을 잘 다독여 그들과 함께 삼가 지키기만 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오. 설령 한군(漢軍)이 코앞에 다가와 싸움을 걸어와도 결코 맞붙어 싸우지 마시오. 그저 지키면서 한군이 성고 동쪽으로 밀고 나오지 못하게만 하면 그걸로 넉넉하오. 과인은 보름 안에 반드시 팽월이 날뛰는 양 땅을 평정한 뒤 돌아와 장군과 함께하겠소. 생사를 건 큰 싸움은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 대사마께서는 부디 자중하시어 굳게 지키기만 하시오.”

조구는 젊은 시절 진나라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해 기현(夔縣)의 옥연()을 지냈다. 옥연은 감옥을 관장하는 관리의 부관(副官)으로 군현(郡縣)에서도 하찮은 벼슬이었다. 그러나 조구는 뜻이 커서 널리 호걸 사귀기를 좋아했는데, 그중에도 자신처럼 역양현((,)陽縣)에서 옥연 노릇을 하던 사마흔과 특히 가까웠다.

그 무렵 패왕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이 무엇인가 큰 죄를 짓고 역양현에 갇히게 되었다. 다급해진 항량은 바깥에 있는 조카 항우로 하여금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조구를 찾아보고 구명(救命)을 부탁하게 하였다. 항우가 찾아가 숙부의 위급을 알리자 항량을 범상치 않게 보던 조구는 사마흔에게 글을 보내 항량을 놓아주도록 했다.

사마흔은 조구의 당부를 무겁게 여겨 항량을 풀어주었다. 지은 죄도 죄려니와 그 일로 자신이 초나라 명장 항연(項燕)의 아들이라는 게 진나라 관부(官府)에 밝혀질까 걱정하던 항량은 그 두 사람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항우도 아버지 같은 항량을 구해준 그 두 사람을 아주 좋게 기억했다.

뒷날 항량은 무신군(武信軍)이 되어 한때 관동에서 위세를 떨쳤으나, 정도(定陶)의 싸움에서 진나라 장수이던 장함에게 죽어 조구(曺咎)와 사마흔(司馬欣)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패왕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게 된 항우는 그 두 사람을 불러 무겁게 썼다. 장함의 부장(副將)으로 함께 항복해 온 사마흔은 나중에 옹왕(雍王) 장함과 나란히 새왕(塞王)으로 올려 세웠고, 따로 패왕 밑에 들게 된 조구도 해춘후로 열후(列侯)에 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사마란 높은 벼슬을 내렸다.

패왕은 그 두 사람을 가까이 두고 부릴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믿고 아꼈다. 다만 조구를 내세워 성고를 맡긴 것은 사마흔이 한왕에게 봉지(封地)를 잃고 항복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패왕은 그 일로 전처럼 사마흔을 깊이 믿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다시 찾아온 정성을 높이 쳐 한왕에게 항복한 잘못을 벌하지 않았다.

삼가 명을 받들어 대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이 성을 꼭 지키겠습니다.”

대사마 조구가 패왕이 믿어주는 데 감격하며 그렇게 명을 받았고, 사마흔과 동예도 함께 머리를 조아려 항우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패왕이 덧붙여 말하였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종리매와 용저의 군사들이 이를 것이오. 대사마는 종리매와 용저가 돌아오면 과인의 뜻을 전하시오. 종리매는 1만 군사로 형양을 지키되 역시 성을 나가서 한군과 싸우지는 말라고 이르시오. 또 용저는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과인을 따라 진류로 오되 날짜를 너무 끌지 말라 하시오. 힘을 한곳에 모아 빠른 바람처럼 몰아치지 않으면 보름 안에 그 늙은 쥐새끼를 잡아 죽이고 이곳으로 되돌아오기 어려울 것이오.”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환초(桓楚)가 패왕에게 물었다.

오창(敖倉)은 누구에게 맡겨 지키게 하시겠습니까?”

그 물음에 패왕이 낯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곳은 한낱 곡식창고에 지나지 않는 곳이 아닌가? 거기다가 하수(河水)를 끼고 있어 지키는 데 많은 군사가 필요한 성이 아니다. 아장(亞將) 하나에 약간의 시양졸(養卒)을 딸려 주고, 죄수와 부로()들을 모두 그리로 옮겨 함께 지키게 하면 된다.”

환초는 은근히 자신에게 오창을 맡겨 주기를 바라며 물었으나 패왕이 그렇게 잘라 말하자 군말 없이 물러났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패왕 항우의 전쟁을 보는 안목이었다. 이미 유방과의 전쟁은 천하의 패권(覇權)을 다투는 정치적 권력투쟁의 단계로 들어섰는데도 그에게는 오직 군사적 승리만이 목적인 한바탕 전투의 연속일 뿐이었다. 먹는 것은 군량이란 뜻으로만 이해되어 전투력의 미미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이었고, 따라서 그런 그에게 오창은 또다시 많은 군사를 나눠 지킬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이미 기형적으로 굳어져 버린 초군의 지휘 체계였다.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는 패왕과 그 나머지로 엄격하게 양분되어 있고, 모든 중요한 결정권은 패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나머지 모든 장수와 병졸들은 패왕의 손발이거나 이와 발톱이요, 도구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패왕의 결정을 간섭하던 범증이 죽은 뒤로는 천하의 맹장 종리매와 용저도, 신의로 이름 높은 계포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패왕 항우가 초군(楚軍) 주력을 이끌고 다시 양() 땅으로 내려갔다는 소문은 오래잖아 한왕 유방의 귀에도 들어왔다. 하수(河水) 가에 진채를 내리고 굳게 지키기만 하던 한왕은 조구와 종리매가 많지 않은 군사로 성고와 형양 두 성을 지키기만 한다는 말을 듣자 슬며시 마음이 변했다.

조구와 종리매가 성안에 틀어박혀 지키기만 한다면 성고와 형양 사이는 비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틈에 우리도 서쪽으로 가서 낙양과 공현(鞏縣)에 있는 군사들과 합치는 게 어떤가? 그러면 항왕의 대군이 다시 성고로 돌아온다 해도 겁날 것이 없다. 설령 싸움에 다시 밀린다 해도, 물러나 지키기만 하려 들면 그들이 관중으로 밀고 드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한왕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렇게 물었다. 곧 형양과 성고를 버리고 낙양과 공현을 잇는 선으로 물러나자는 말이었다. 낭중(郎中) 정충의 계책에 따라 누벽을 높이고 참호를 깊게 하여 지키기만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여러 날이 되니 좀이 쑤신 듯했다. 거기다가 성고와 형양 부근에서 한왕이 워낙 여러 번 험한 꼴을 본 터라 그 땅에 정나미가 떨어진 탓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역이기가 펄쩍 뛰듯 일어나 말했다.

신이 듣기로 하늘이 하늘인 까닭을 아는 사람이라야 왕업을 이룰 수 있다(지천지천자 왕사가성·知天之天者 王事可成)’고 하였습니다. 무릇 왕 노릇을 하려는 이는 백성을 하늘로 여기나,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고 있습니다(왕자이민위천 이민이식위천·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 저 오창은 오래전부터 천하의 물산(物産)이 모였다 나눠지는(전수·轉輸) 곳으로서, 신이 듣기로는 그곳에 엄청난 곡식이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초나라 사람들은 그토록 어렵게 형양과 성고를 우려 빼고도 그 오창을 굳게 지킬 줄 모릅니다. 오히려 대군은 동쪽으로 빼돌리고, 군사를 나누어 성고와 형양을 지키게 하면서도 오창에는 죄수와 부로()들을 보낸 것은 하늘이 우리 한나라를 돕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아두고 되레 물러나 스스로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를 내던지고 있습니다. 신이 가만히 헤아리기에 이는 크나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두 영웅이 언제까지 함께 나란히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래 서로 맞서 노려보기만 하고 결판을 내지 않는다면, 온 세상이 흔들리고 들끓으며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베 짜는 여인은 베틀에서 내려올 것이니, 천하의 민심이 안정되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서둘러 군사를 내시어 형양을 거두시고 오창의 곡식을 차지하십시오. 성고의 험한 지세에 의지하고 태항(太行)으로 가는 길을 끊으며, 비호(蜚狐)의 입구를 막고 백마(白馬) 나루를 지켜, 제후들에게 형세를 어느 편이 제압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시면 천하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한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약하게 물러나려던 마음을 거두고 역이기의 말을 따랐다. 낙양으로 가는 대신 오히려 주발과 역상의 군사들을 동쪽으로 불러내어 세력을 형양 성고 쪽으로 모아들였다. 장량과 진평이 다시 한왕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주발과 역상이 낙양과 공현에서 부풀린 군사를 데리고 돌아오고, 장량과 진평이 한왕 곁에 있게 되자 한군은 다시 세력을 크게 떨쳤다. 호기가 치솟은 한왕이 장졸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백성들에게는 먹을 것이 바로 하늘이라고 한다. 어서 오창을 빼앗아 우리 군민(軍民)이 먹을 곡식부터 차지하고 보자. 대군을 몰아 단숨에 성을 깨뜨려 버려라!”

그때 장량이 나와 말렸다.

듣기로 오창 성안에는 늙고 힘없는 시양졸(養卒)들과 형도(刑徒·죄지어 끌려온 군사)의 무리 몇 백이 지키는 시늉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왕의 군령이 엄하여 그들이 성안 백성을 이끌고 죽기로 지키면 적지 않은 군사가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꾀를 써서 성을 버리고 달아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군사를 상하지 않고 오창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일이 어디 있겠소? 무슨 꾀로 그렇게 할 수 있겠소?”

한왕이 귀가 솔깃해 장량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량이 차분히 받았다.

시양졸과 형도는 잘 싸우지 못할뿐더러 싸우기를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우리 군사의 위세를 보여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항왕의 벌을 면할 구실을 주고 길을 열어 주면, 두말없이 성을 내주고 달아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이 싸울 엄두조차 먹지 못할 만큼 겁을 줄 수 있소?”

오창 북쪽으로는 하수(河水)가 흐릅니다. 그 하수 가득 배를 띄워 물길로도 대군이 이르는 듯 꾸미고, 우리 10만 군사로는 성 동쪽과 남쪽을 뒤덮어 버리도록 하십시오. 적병이 성벽 위에서 동 서 남 세 곳을 돌아보면 절로 기가 죽을 것입니다.”

항왕의 벌을 면할 구실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곡식을 가지고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대왕께서 직접 동문 문루(門樓) 앞으로 나가시어 적장을 부르신 다음 성안의 곡식을 가지고 비워 둔 서문으로 떠나도 좋다고 허락하십시오. 다행히 대왕께서는 백성들을 함부로 죽인 일이 없고 약조를 어긴 적도 없어 성안 군민들은 모두 그 말을 믿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초군(楚軍)들로 보아서도 곡식을 가지고 가면 항왕이 지키라는 것을 지킨 셈이 되니, 목숨은 건질 수 있습니다. 오창 성안에서 버티다가 죽느니보다는 차라리 자기네 편이 든든하게 지키는 성고로 돌아가 항왕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곡식을 주어 보낸다면 우리가 오창을 차지하는 게 무슨 뜻이 있겠소?”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장량이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오창 성안에 쌓인 곡식은 하수의 물길과 관동의 관도(官途)를 따라 천하에서 모여든 것입니다. 저들 늙고 약한 잡졸(雜卒) 몇 백 명이 가지고 가봤자 얼마나 되겠습니까? 쫓기는 마음이라 수레를 모아 싣고 간다 해도 백 섬(·)을 넘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성고에 이르면 성안 군민(軍民)이 며칠 먹을 양식도 되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듣고서야 한왕도 장량의 말을 알아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뒤 그날로 장졸을 움직여 장량이 하자는 대로 했다.

전날 오창 성안의 초나라 군사들은 한나라의 깃발을 가득 꽂은 배들이 벌겋게 하수(河水)를 덮고 거슬러 올라오자 화살 한 대 날아오지 않는데도 벌써 기가 죽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아침 성 동남쪽 벌판을 바라보고는 모두들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이래저래 10만 가까운 한나라 군사가 진채를 벌이자 넓은 벌판은 시퍼런 창칼과 붉은 기치로 뒤덮였다. 늙고 힘없는 군사 몇 백 명이 죄짓고 싸움터로 끌려온 잡군(雜軍)과 성안 백성들만 데리고 맞서 싸우기에는 애당초 글러 보이는 대군이었다.

하루 사이에 구름처럼 몰려든 한나라 대군을 보고 성안의 초나라 군사들이 아래위 할 것 없이 어쩔 줄 몰라 성벽 위에서 허둥대고 있는데, 갑자기 동문 문루에서 수장(戍將)을 찾는 목소리가 있었다. 늙은 수장이 무릎을 덜덜거리며 문루 위에 나가 내려다보니 바로 한왕 유방이 말 위에 높이 앉아 있었다.

과인은 장군이 많지 않은 시양졸과 형도의 무리를 이끌고 이 성을 지키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나 또한 항왕의 엄명을 받고 성안의 곡식을 지키고 있어, 함부로 성을 버리면 항왕에게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과인이 물과 뭍으로 데리고 온 10만 대군으로 들이치면 이 성을 우려빼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항왕의 엄명 때문에 죽어날 군민의 목숨이 가련해 장군에게 한 가닥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오늘 한나절을 줄 터이니 성안의 곡식을 거두어 비어 있는 서문으로 떠나라. 곡식을 가지고 성고로 가면 항왕의 명을 어기지는 않은 셈이 되니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가 지고도 이 성을 떠나지 않으면 과인은 전군을 들어 성을 깨뜨리고 옥과 돌을 함께 태우리라(玉石俱焚)!”

한왕이 그렇게 소리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지 않아도 성을 에워싼 한군의 엄청난 기세 때문에 아침부터 제정신이 아니던 오창의 수장은 그 같은 한왕의 말을 듣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가닥 빛이라도 본 듯하였다. 하지만 속임수와 모질고 독한 것을 마다않는 전장인지라 그 말을 얼른 믿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서려는 한왕의 옷깃을 잡듯 물었다.

하지만 싸움은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는다(兵不厭詐) 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대왕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왕이 고개를 돌려 지그시 쏘아보며 말했다.

네 그래도 한 성을 맡아 지키는 장수라면 이름 없는 졸개는 아닐진대 어찌 이리도 과인을 작게 보느냐? 과인이 언제 항복한 군사를 죽이는 걸 보았느냐? 과인이 언제 너희에게 한입으로 두 소리를 하더냐?”

그리고 일시 말문이 막힌 늙은 수장이 멍하니 보고 있는 사이에 진문(陣門) 안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한왕의 자취가 보이지 않자 퍼뜩 정신이 든 수장이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찌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부근에 있던 이졸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한왕이 인정을 베풀 때 오창을 내주고 성고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왕의 대군과 맞서 싸우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곡식을 가지고 간다면 반드시 패왕의 명을 어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늙은 초나라 장수도 달리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곁에서 살펴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그래도 한동안은 망설이고 괴로워하는 체하다가 결연히 말했다.

하는 수 없다. 성고로 돌아가자. 성안의 수레와 마소를 모두 모아들여 창고에 있는 곡식을 싣고 서문으로 빠져나가자!”

말은 그럴 듯했으나, 한번 그렇게 정해지자 오창을 지키던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그때부터가 허겁지겁 쫓기는 도망길이 되고 말았다. 우선은 성안을 뛰어다니며 수레와 마소를 모은다고 모았으나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수레 서른 대에 마소 100마리를 넘지 못했다. 거기다가 성고로 따라가려는 백성들도 없어, 초군은 겨우 긁어모은 수레와 마소에 되는 대로 곡식을 나눠 싣고 급하게 오창 서문을 나섰다.

그때 한나라 진채에서는 진평이 가만히 한왕을 찾아보고 다시 독한 꾀를 냈다.

우리 군사를 다치지 않고 성을 얻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 톨이라도 곡식이 성고 성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저들이 달아나기 시작하면 슬며시 한 갈래 군사를 보내, 사람은 놓아 보내되 곡식은 빼앗아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한왕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장량이 한 말을 되뇌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쫓기는 마음이라 많은 곡식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오. 우리가 오창을 차지함으로써 얻게 될 곡식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양이니 그냥 보내 주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저들이 곡식 수백 섬을 날라 가면 성고 성안 군민이 몇 달을 버틸 양식이 됩니다. 배불리 먹고 지키는 성을 빼앗자면 그만큼 우리 군사가 많이 상할 것이니 그 일은 또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래도 한왕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령 그리된다 해도 하는 수가 없소. 과인은 이미 성 안팎 10여 만의 군민(軍民)이 보고 듣는 앞에서 그리 약조하고 말았소. 제후나 왕은 거짓말로 속여도 되지만, 졸오(卒伍)에 든 병사나 힘없는 백성들을 속여서는 아니 되오.”

그러면서 끝내 진평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의 군왕(君王)이 되어 쫓고 쫓기며 보낸 지난 몇 년의 세월이 나름의 터득을 준 듯했다.

오창을 버리고 달아난 초나라 군사들의 뒷일은 장량이 제대로 맞춘 셈이 되었다. 초군이 성을 나설 때만 해도 서른 대 수레에 곡식을 가득 싣고도 남은 마소마다 곡식 바리를 얹어 수백 섬이 넘었다. 하지만 일없이 성문을 빠져 나오자, 정말로 성 밖이 조용하고 아무도 길을 막지 않는 게 오히려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들게 했다. 아무도 뒤쫓지 않는데도 공연히 겁먹어 허둥대며 한시라도 빨리 오창에서 멀어지려 했다.

마음이 그렇게 급해지니 무겁고 부피 큰 곡식을 옮기는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먼저 걸음 느린 소가 끄는 수레가 버려지고, 다시 말이 끄는 수레 위의 곡식도 빨리 달릴 수 있게 덜어졌다. 거기다가 나중에는 곡식 바리 실은 마소까지 놓아두고 달아나 실제 성고 성안에 들어간 곡식은 100섬이 넘지 못했다.

한왕은 그날 해질 무렵에야 장졸들을 이끌고 텅 빈 오창 성안으로 들어갔다. 창고에 가득한 곡식을 풀어 군민을 배불리 먹이고, 오랜만에 잔치를 열어 장수들을 위로했다.

다음 날 역((,))선생 이기(食其)가 한왕을 찾아보고 말했다.

이제 오창을 차지하셨으니 대왕께서는 하늘이 하늘로 여기는 큼지막한 쌀뒤주를 끼고 싸우시게 된 셈입니다. 여기에 다시 성고와 형양을 빼앗아 동쪽을 제압하는 발판으로 삼으시면, 관중은 절로 지켜질뿐더러 주린 항왕의 대군을 멀리 내쫓는 데도 더할 나위 없는 지리(地利)를 차지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신이 가만히 살피니, 이 일만으로 자족해 하실 때는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동쪽의 일을 이대로 보고 있어서만은 아니 되겠습니다.”

하늘이 하늘로 여긴다함은 곧 백성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임금 노릇 하려는 자는 백성들을 하늘로 여기고(왕자이민위천·王者以民爲天)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라는 말에서 나온 비유이다. 한왕은 전에 역이기에게서 한번 들은 적이 있어 그 말은 쉽게 알아들었지만, 동쪽의 일이 무얼 가리키는지는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쪽은 한신과 장이를 보냈고, 또 조참과 관영까지 보태주지 않았소? 그런데 갑자기 왜 그쪽 일을 꺼내는 것이오?”

한왕이 그렇게 묻자 역이기가 진작부터 생각해 온 일인 듯 열기 있는 목소리로 쏟아놓았다.

한신과 장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조참과 관영이 할 수 있는 일이 또 따로 있습니다. 지금 연()나라와 조()나라는 평정되었으나, ()나라는 아직도 대왕의 뜻을 받들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항왕을 맞받아친 그 기세로 우리 한나라를 경계하고 있어, 조나라나 연나라를 거둘 때와 같이 했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전광(田廣)은 왕이 되어 넓은 제나라를 차지하고, 그를 왕으로 세운 전횡(田橫)은 의기와 용맹으로 전광을 도와 제나라를 굳건히 떠받들고 있습니다. 전간(田間)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역하(歷下)에 머물러 있으며, 그 밖에 많은 전씨(田氏) 일족이 적지 않은 군사들을 이끌고 곳곳에 흩어져 제나라를 지키고 있습니다. 실로 만만히 볼 수 없는 종성(宗姓)입니다.

또 제나라 땅은 남쪽으로는 태산의 험난함에 의지할 수 있으며, 동쪽으로는 달아나 숨을 수 있는 바다를 등지고 있습니다. 서쪽은 맑은 제수(濟水)가 가로막고 있고, 북쪽으로는 흐린 하수(河水)가 막아주고 있습니다. 굳게 지키기와 달아나 숨기에 아울러 좋은 땅입니다.

거기다가 제나라는 땅이 남쪽으로 초나라와 붙어있는 데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변덕이 많고 속임수를 잘 씁니다(인다변사·人多變詐). 어제까지는 초나라와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언제 마음이 변해 초나라와 한편이 되어 대왕께 맞설지 모릅니다. 지금 보내 놓은 장졸들만으로는 평정하기 어려울뿐더러, 대왕께서 몸소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가신다 해도 몇 달 또는 한 해 안에 쳐부술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되겠소?”

바라건대 신을 사신으로 삼아 제나라로 보내 주십시오. 그리하면 신이 세치 혀로 제왕(齊王)을 깨우치고 달래 대왕의 뜻을 받들도록 해보겠습니다.”

역이기가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했으나 한왕은 영 미덥지 않았다.

과연 제왕이 선생의 말을 들어주겠소?”

그러면서 역이기를 마주 보았다. 역이기가 제풀에 달아올라 큰소리를 쳤다.

신은 삶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제왕(齊王)으로 하여금 스스로 한나라의 동쪽 울타리 노릇을 하는 나라(東藩)가 되기를 원하게 만들겠습니다!”

그와 같은 역이기의 큰소리에 한왕이 너털웃음을 치며 받았다.

좋소. 그리 해보시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마솥에 삶겨서는 아니 되오.”

그렇다면 먼저 한신에게 사람을 보내 잠시 제나라로 쳐들어가는 일을 멈추라 하십시오. 창칼을 쓰는 일은 말로 달래 본 뒤라도 늦지 않습니다.”

번거롭게 사람을 따로 한신에게 보내느니, 그 일도 선생께서 해주시구려. 여기서 제나라 도읍 임치(臨淄)까지는 2000여 리, 길이야 바로 제나라로 들면 조금 줄일 수도 있지만 밤이 길면 사나운 꿈도 많은 법이오. 너무 일찍 우리 사신이 제나라로 가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선생께서는 먼저 한단(邯鄲)으로 가보시면 어떻겠소? 그곳에 있는 한신과 장이에게 선생께서 직접 과인의 뜻을 전하고 하수(河水)를 건너 제나라로 들어가면, 임치까지 가는 길 절반은 우리 군사들이 차지하고 있어 안전한 조나라를 거쳐 가게 되는 셈이오. 거기서 동아(東阿)와 역성(曆城)을 거쳐 임치로 들면 별탈 없이 제왕을 만날 수 있을 것이외다.”

이에 역이기는 한왕의 말을 따라 그날로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먼저 자신이 탈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는 데다 덮개가 있고 휘장까지 드리운 것으로 골랐다. 그리고 그 수레 앞뒤에는 번쩍이는 마구(馬具)를 갖춘 기마 몇 기()와 키 크고 허여멀쑥한 갑졸(甲卒)들에게 크고 작은 깃발을 나눠주고 따르게 함으로써 위의(威儀)를 갖추었다. 하지만 따르는 사람이 모두 합쳐 서른을 넘지 않게 해 누가 보아도 싸우러 오는 사람들 같지는 않게 했다.

역이기가 한단에 이르렀을 때 상국(相國) 한신은 제나라를 치기 위해 군세를 키우는 데 한창이었다. 한신이 소수무에서 쫓겨오듯 하며 한왕으로부터 받아 온 군사는 3000을 채우지 못했다. 천하의 패왕 항우도 끝내 꺾지 못한 제나라를 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군사였다.

하기야 그때 한신 곁에는 조참과 관영이 각기 적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따라와 있었다. 그러나 조참은 한나라 우승상(右丞相)으로 조나라 상국인 한신보다 오히려 벼슬이 높았다. 조참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군사를 한신의 뜻대로 부릴 수는 없었다. 또 관영은 명목상으로는 한신에게 배속되어 있었으나, 낭중(郎中)의 기마대를 이끈 기장(騎將)으로서 실제로는 한왕 유방에게 직속된 별장(別將)이었다. 따라서 제나라를 치기 위해서는 한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군사가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했다.

이에 한신은 조왕(趙王)으로 가임(假任)된 장이를 내세워 조나라 장정들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한신과 장이는 전에도 조나라에서 적지 않은 군사를 거둬 한왕에게 보낸 적이 있었으나, 다행히도 조나라는 땅이 넓고 기름진 만큼이나 군사로 뽑아 쓸 수 있는 장정도 많았다. 백성들을 어르고 달랜 끝에 그럭저럭 1만여 명을 긁어모을 수가 있었다.

역이기가 한단으로 간 것은 한신이 그렇게 긁어모은 장정들이라도 정병(精兵)을 만들어 제나라로 가보려고 한창 조련에 열중해 있을 때였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군사로 부릴 만하다 싶을 때 역이기가 찾아와 제나라로 군사를 내지 말라는 한왕의 뜻을 전했다.

한신은 무덤덤한 얼굴로 한왕의 뜻을 받아들였다. 당장 제나라로 쳐들어가라고 자신의 등을 떼밀 듯 조나라로 내쫓은 지 두 달도 안돼 다시 역이기를 제나라에 세객(說客)으로 보내는 것이 한왕의 온당치 않은 변덕처럼 느껴졌으나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다.

역이기는 한단에서 며칠 여독(旅毒)을 풀고 지친 말을 바꾼 뒤에 제나라로 떠났다. 길을 떠난 첫날 저물 무렵 하수(河水)를 만나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하수를 건넌 지 또 하루 만에 동아(東阿)에 이르렀다. 동아는 한단에서 하수를 건너 제나라로 들면 처음 만나게 되는 큰 성읍이었다. 역하(歷下)와 견줄 바는 못 되었으나, 그곳에도 전씨(田氏) 일족의 장수 하나가 적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한나라의 사신으로 역이기라 하오. 우리 대왕의 명을 받들어 제왕(齊王)을 만나러 임치(臨淄)로 가는 길이니 성문을 열어주시오.”

성문 가까이 수레를 댄 역이기가 문루에 나와 선 제나라 장수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한신이 곧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올 거란 소문에 바짝 긴장해 있던 제나라 장수가 경계하는 눈길로 역이기 일행을 살펴보았다. 왕이 보낸 사신답게 위의를 갖추고 있었으나, 따르는 군사가 많지 않아 안으로 들여도 별일 없을 듯했다.

성문을 열어주자 성안으로 들어온 역이기는 제 밑에 있는 사람 부리듯 제나라 장수에게 말했다.

왕사(王使)가 먼 길을 무릅쓰고 왔으니 어서 전사(傳舍)로 안내하시오. 그리고 임치에 계시는 제왕께 사람을 보내 내가 가고 있음을 알려주시오. 도중에 있는 역하에도 기별을 놓아 우리 사행(使行)길이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오.”

그런 역이기의 위엄에 눌렸는지 동아를 지키던 장수가 군소리 없이 역이기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다시 이틀 뒤 역이기가 역하에 이르렀을 때는 형편이 달랐다.

역하는 역성이라고도 하는데 뒷날의 제남(濟南)이 바로 그 땅이다. 역하는 제수(濟水) 가에 서있는 성으로서, 하수(河水·황하) 가에 있는 평원성이 무너지면 그 다음으로 산동을 지키는 요충이 된다. 그때 역하는 전간(田間)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지킨다고 되어 있었으나 실은 전해(田解)와 화무상(華無傷)이라는 장수가 지키고 있었다.

전해와 화무상이 대군을 이끌고 역하에 머물게 된 것은 조나라에 있는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로 쳐들어오리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한신이 배수진으로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쳐부순 일은 그때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제나라 장졸들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패왕 항우를 물리친 그 기세로 오히려 한신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왕의 사자가 온 것은 우리 대왕을 달래기 위함일 것이다. 먼저 우리 군사들의 기세를 보여 주어 한왕의 사자가 우리 제나라를 업신여길 수 없게 해야 한다.”

역하에 이른 역이기가 성문을 열어주기를 빌자 전해가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가만히 이르기를, “그대들은 되도록 많은 기마와 갑졸(甲卒)을 성문 안팎으로 늘여 세워 우리 제군(齊軍)의 위엄을 떨쳐 보이도록 하라라고 한 뒤 역이기로 하여금 성밖 멀리서 수레에서 내려 성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였다.

수레 밖으로 수풀처럼 창대를 늘어세운 기마대와 갑옷투구로 온몸을 싼 보졸들이 늘어선 것을 보고 역이기는 전해(田解)의 속마음을 읽었다. 그럴수록 기죽지 않기 위해 거느린 인마를 큰 소리로 다그치며 성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다시 삼엄하게 군사를 벌여 놓은 전해가 나와 거만하게 맞았다.

화무상(華無傷) 장군이 거느린 10만 군사까지 모두 성안에 들여놓을 수 없어 그들은 성 밖 벌판에 따로 진채를 벌이고 있소. 그래도 성안에 군사가 또 10만이 넘어 전사(傳舍)를 넉넉하게 비워두지 못했소이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나를 너무 허물하지 마시고 하룻밤 묵어가시오.”

그러면서 은근히 성안의 군세를 자랑하더니 제법 역이기에게 겁까지 주었다.

우리 제나라는 항우의 10만 대군도 싸워 이긴 적이 있소. 우리 대왕의 명만 있으면 여기 있는 군사만으로도 거꾸로 조나라와 연나라를 우리 제나라의 북쪽 울타리로 만들 수 있을 터, 무엇 때문에 구차하게 한나라의 사신을 받아들이시는지 모르겠소. 나와 화무상 장군이 거느린 군사만도 20만이니, 조나라 연나라가 아니라 관중인들 우려빼지 못하겠소?”

그 말에 듣다 못한 역이기가 한마디 쏘아주었다.

성안군(成安君) 진여가 지수((,,)) 가에서 우리 대장군 한신에게 목이 잘린 것은 거느린 군사가 20만이 되지 못해서는 아니었소. 싸움의 승패는 군사의 머릿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외다. 거기다가 나나 장군이나 남의 신하되어 시위에 얹힌 화살 같으니, 시위를 놓으면 날아갈 뿐 임금 된 이의 크고 깊은 뜻을 어찌 함부로 헤아리겠소?”

하지만 역이기와 전해의 그런 보이지 않는 기 싸움도 그날이 끝이었다. 다음날 아침 역이기 일행이 비좁은 전사에서 찌뿌듯한 몸으로 일어날 무렵 임치에서 달려온 유성마가 전해에게 재상 전횡(田橫)의 뜻을 전했다.

한왕의 사신을 잘 대접하고 우리 인마를 딸려 돌보게 하며 임치로 보내라.”

제왕(齊王)도 한손으로 쥐락펴락하는 재상 전횡이 그렇게 말하자 전해도 더는 뻗대지 않았다. 역이기 일행을 하루 더 붙잡아 푹 쉬게 한 뒤 군사 몇 백까지 딸려 도읍인 임치까지 500리 길을 호위하게 했다.

역이기가 다시 엿새를 걸려 임치에 이르니 전횡이 성문 밖 10리나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횡은 항우와 맞서 싸워 이겨낸 맹장(猛將)일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재상으로 천하의 형세를 살피는 데도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한왕이 멀리 사신을 보낸 까닭이 듣지 않고도 짐작되는 바가 있었으나, 몸소 마중을 나가 슬며시 살펴보기로 했다.

임치는 그때 벌써 인구 50만을 일컫는 큰 도시였다.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할 때도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곳이라 모든 것이 넉넉하고 흥청거렸다. 역이기는 편안한 왕궁의 객관(客館)에서 며칠을 쉰 뒤 제왕 앞으로 불려나갔다.

선생께서는 무슨 일로 이 먼 길을 오셨소? 한왕께서 과인에게 무슨 말을 전해 달라 하시더이까?”

역이기가 사신의 예를 올리자 제왕 전광(田廣)이 그렇게 물었다. 역이기가 그 물음에 대답은 않고 딴전을 피웠다.

이 며칠 객관에 머물면서 임치 성안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참으로 크고 넉넉한 도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나라가 앞으로도 그 크고 넉넉함을 지켜나가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비록 전횡(田橫)이 힘으로 제나라를 차지한 뒤에 왕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제왕(齊王) 전광도 그리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제 힘으로 삼제(三齊)를 아울러 왕이 된 아비 전영(田榮)을 닮아 생김이 헌걸찰 뿐만 아니라 사람됨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역이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강 짐작한 듯 제왕이 덤덤하게 받았다.

천하가 어지러우니 당연히 그럴 것이오. 실은 그 때문에 과인도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소.”

그 말에 역이기가 다시 딴전을 펴듯 불쑥 물었다.

왕께서는 천하가 마침내 어디로 돌아갈지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소. 그것만 알아도 과인의 걱정이 절반은 덜어질 것이오.”

이번에도 제왕이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받았다. 그러자 역이기가 좀 더 속을 드러냈다.

그렇습니다. 왕께서 만일에 천하의 민심이 어디로 몰리게 될지를 아신다면 제나라는 온전하게 지켜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걸 아시지 못한다면 제나라는 끝내 지켜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선생이 보시기에는 천하의 민심이 어디로 돌아갈 것 같소?”

제왕이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제야 역이기도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반드시 한나라와 우리 대왕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선생은 어째서 그렇게 잘라 말하시는 것이오?”

지금 우리 대왕과 함께 천하를 다툴 만한 세력은 항왕이 다스리는 서초(西楚)뿐입니다. 따라서 우리 대왕이신 한왕과 서초 항왕의 사람됨을 살펴보면 곧 천하의 민심이 어디로 돌아갈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왕과 항왕의 사람됨 가운데서 먼저 따져볼 것은 신의(信義)입니다. 지난날 한왕과 항왕은 다 같이 의제(義帝)의 신하로서 서로 힘을 합쳐 진나라를 치되, 먼저 함양(咸陽)으로 들어가는 쪽이 관중의 왕이 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그런데 한왕이 먼저 함양에 들어가자 항왕은 약조를 저버리고 한왕에게 관중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궁벽한 파촉(巴蜀)과 한중(漢中)만을 떼어내 주며 한왕으로 삼았을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신하되어 마땅히 바쳐야 할 충성입니다. 항왕은 겉으로는 섬기던 임금 회왕(懷王)을 높여 의제로 세웠으나, 속으로는 오직 임금을 해치고 홀로 우뚝할 마음뿐이었습니다. 의제를 재촉해 멀리 외진 장사(長沙)로 내쫓은 뒤 끝내는 형산왕과 임강왕을 시켜 시해(弑害)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왕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파촉 한중의 군사를 이끌고 삼진(三秦)을 쳐부순 뒤에 함곡관을 나와 항왕이 의제를 시해한 죄를 따졌습니다. 천하의 군사를 불러 모아 항왕의 도읍인 팽성을 들이쳤을 뿐만 아니라 남의 임금 되는 옛 제후들의 후예를 찾으면 다시 제후로 세워주었습니다.”

역이기가 그렇게 말하고는 한 차례 숨을 고른 뒤에 이었다.

한왕(漢王)께서는 성을 빼앗으시면 공을 세운 장수를 후()로 봉하시고, 재물을 얻으면 바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언제나 천하와 더불어 이익을 함께 하시니 영웅과 호걸, 현인(賢人)과 재사(才士)가 모두 한왕께 모여들어 기꺼이 부림을 받고자 합니다. 제후의 군대가 사방에서 한왕을 도우러 달려왔으며, 파촉과 한중의 곡식이 뱃머리를 나란히 하여 장강(長江)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왕(項王)은 어떻습니까? 약조를 저버리고 의제를 시해한 큰 죄가 있으면서도 사람을 부리는 데는 야박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세운 공은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가 지은 죄는 잊어버리는 일이 없고, 성을 떨어뜨린다 해도 봉토(封土)를 내리거나 재물을 나눠주는 법이 없습니다. 항씨(項氏) 일족이 아니면 결코 무겁게 쓰지 않으며, 어쩌다 장수들을 제후로 봉하려고 후인(侯印)을 새겨놓고도 내주기 아까워서 도장 모서리가 닳도록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천하 사람들은 저마다 항왕에게 반기를 들고, 현인과 재사들은 그를 원망하여 아무도 그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인재들은 모두 한왕께로 돌아갈 것이며, 한왕께서는 힘들이지 않고 그들을 얻어 부릴 수 있었습니다. 이에 파촉 한중에서 군사를 일으켜 삼진(三秦)을 평정하셨고, 서하(西河)를 건너 위표(魏豹)를 사로잡고 상당(上黨)의 군대를 아우르셨습니다. 그런 다음 한신을 시켜 정형()으로 치고 들어 조나라를 등에 업고 맞서는 성안군(成安君) 진여를 지수((,,))가에서 목 베었습니다. 북위(北魏)를 쳐부수시고 서른두 개의 성을 떨어뜨리셨으며, 그 밖에 한왕의 위엄에 눌려 스스로 항복해온 성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는 실로 치우(蚩尤)의 군사들이 보여준 기세와도 같은 것으로, 사람의 힘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내리신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한왕께서는 이미 오창(敖倉)의 곡식을 차지하셨으며, 성고의 요해(要害)를 막고 계십니다. 백마(白馬) 나루를 지키면서 태행산(太行山)으로 드는 길목을 끊고, 아울러 비호(蜚狐)의 목줄기를 틀어쥐고 계십니다. 따라서 천하의 제후들 가운데 뒤늦게 한왕께 항복하는 제후는 그만큼 남보다 먼저 망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도 서둘러 우리 대왕께 항복하신다면 제나라를 보전하실 수 있을 것이나, 굳이 항복을 마다하시면 앉아서 제나라가 망하는 날을 기다리시게 될 것입니다.”

제왕 전광(田廣)이 결코 기백이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거기까지 듣자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른 보기에는 언제나 패왕 항우 쪽이 우세해 보였으나, 역이기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대세가 한왕 유방 쪽에 있다는 말이 모두 옳게 들렸다. 역이기를 내보내고 가만히 재상 전횡(田橫)과 의논했다.

저 사람의 말이 아무래도 세객(說客)의 속임수 같지는 않은 듯하오. 어찌하면 좋겠소?”

싸움터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맹장이었으나, 전횡에게도 역이기의 말을 알아들을 만한 귀는 있었다. 어렵게 패왕 항우를 물리치기는 해도 그와 다시 싸울 생각을 하니 으스스해 한왕과 손잡고 맞서는 쪽을 골랐다.

이에 전광은 한나라에 사신을 보내 화평을 맺기로 하는 한편 20만 대군으로 역하(歷下)를 지키고 있는 전해(田解)와 화무상(華無傷)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일을 알리게 했다.

제왕(齊王) 전광이 한나라와 손잡게 된 일을 스스로 다행히 여기면서 연일 잔치를 벌여 역이기와 술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다시 며칠이 지나갔다. 그렇게 되니 역이기가 한단을 떠난 지 보름이 훌쩍 넘었다.

장이의 도움을 받아 한단에서 군사를 기르고 있던 한신은 역이기가 떠나고 보름이 넘어도 아무런 전갈이 없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먼저 조참과 관영을 불러 속을 떠보았다.

제나라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고 속임수가 많은 데다 남의 밑에 들기를 싫어하오. 시황제가 육국(六國)을 아우를 때도 제나라가 가장 늦게 진나라 밑에 들었고, 작년에는 항왕의 불같은 10만 대군도 끝내 막아냈소. ((,)) 선생이 아무리 변설이 뛰어나다 해도 싸움 한번 없이 우리 한나라에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런데 역 선생이 떠난 지 보름이 되어도 제나라에 풀어둔 간세(奸細)들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아무래도 일이 글러버린 것 같소. 이제 우리는 어찌하면 좋겠소?”

조참과 관영 또한 장수로서 오래 싸움터를 누빈 사람들이라, 유세(遊說)니 화평이니 항복이니 하는 것을 별로 믿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신의 말을 받았다.

역 선생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면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치(臨淄)로 밀고 들어가기 좋은 곳으로 군사를 옮겨 두었다가 역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요.”

그 말에 한신이 잠시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마음을 정한 듯 말했다.

우리가 먼저 군사를 움직이는 게 대왕의 엄명을 어기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구려. 마침 새로 얻은 군사의 조련도 대강 끝났으니, 일이 터지면 대처하기 좋은 곳으로 옮겨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소.”

그때 한신의 책사(策士)로서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광무군 이좌거(李左車)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듣기로 역 선생께서는 한단 남쪽에서 하수(河水)를 건너셨다 했으니 아마도 동아(東阿)와 역성(歷城)을 거쳐 임치로 갔을 것입니다. 임치에서 일이 잘못되었다면, 역 선생께서 동아와 역성을 지나신 것이 수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 격이 됩니다. 우리는 멀리 북쪽으로 올라가 평원(平原) 맞은편 나루에서 하수를 건너면 어떻겠습니까? 거기서 제나라로 들어가면 곧장 임치로 치고들 수 있습니다.”

한신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다음 날로 군사를 일으켜 하수를 따라 동북쪽으로 올라갔다. 자신이 서둘러 부풀린 군사에다 조참과 관영의 군사를 좌우 날개로 삼은 3만 군사였다.

한신의 군사는 밤낮없이 내달아 한단을 떠난 지 사흘 만에 평원성 맞은편 하수 나루에 이르렀다. 거기서 하루를 쉬며 한 번 더 사람을 풀어 임치의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그런데 그날 날이 저물기도 전에 하수를 건너갔던 사람들이 잇따라 돌아와 알렸다.

제왕이 우리 대왕께 항복하였습니다. 벌써 열흘 전에 제나라 사신이 그 같은 제왕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오창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제왕은 70여 개의 성을 한나라에 바치고 충성을 맹세했다 합니다. 역이기 선생은 수레 위에 앉아서 세치 혀로 제나라를 평정한 셈입니다.”

한신은 제나라가 항복했다는 말을 듣자 반갑기보다는 맥이 쭉 빠졌다. 석달 전 한왕 유방에게 등을 떼밀리듯 조나라로 온 뒤로 자나 깨나 한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게 제나라를 치는 일이었다. 군사를 모으고 조련하면서도 그의 눈길은 언제나 제나라 안팎의 움직임에 쏠려 있었다.

한신이 사람을 풀어 알아본 제나라는 그 이름만 들어도 울던 아이가 그친다는 패왕 항우를 물리친 족속들이 사는 천험(天險)의 산해(山海)였다. 밖에서 보는 기세로는 제나라를 치려면 3만이 아니라 30만이라도 부족할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얼른 군사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살피고만 있는데, 역이기가 찾아와 군사를 움직이지 말라는 한왕의 명을 전했다.

한신은 역이기가 제왕(齊王)을 달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좀 더 군사를 키우고 조련시킬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고 보아 기꺼이 한왕의 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역이기가 정말로 제왕을 항복시켜 자신이 할 일을 없애버리니 맥이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하수(河水)를 건널 까닭이 없어졌구나. 여기서 군사를 멈추고 대오를 정비하라. 이제는 서쪽으로 돌아가 형양과 성고 쪽의 형세나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한신이 그렇게 탄식처럼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변사(辯士) 괴철()이 나섰다.

아니 됩니다. 여기서 멈추셔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장군께서는 한왕의 조칙을 받들어 제나라를 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여기서 돌아간단 말씀입니까.”

한왕께서 역((,))선생을 보내 조칙을 바꾸지 않았소?”

장수가 부월을 받고 싸움터로 나오면 왕명(王命)조차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한왕께서는 이미 조칙으로 장군께 제나라를 치게 하시고, 다시 홀로 가만히 사신을 보내(獨發間使) 제나라를 항복시켰습니다. 장군께서 들은 것은 역이기가 제나라로 가는 길에 전해준 말뿐, 제나라 치는 일을 그만두라는 조칙을 장군께 내린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군사를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괴철은 이름이 한무제(漢武帝)의 이름(劉徹)과 같다 하여 사기(史記)’에서는 기휘(忌諱)로 괴통()이라 기록된 사람이다. 범양(范陽)에서 나고 자랐는데, 진승(陳勝)의 장수 무신(武臣)이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일컬으며 조나라를 평정할 때 뛰어난 변설로 이름이 세상에 드러났다. 곧 범양 현령 서공(徐公)과 무신 사이를 오가며 양쪽을 달래 무신에게 싸움 없이 범양을 얻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른이 넘는 다른 성들까지도 항복하게 만들어 무신이 조나라의 왕이 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조왕(趙王)이 된 무신은 장이를 승상으로, 진여를 대장군으로 삼고 괴철은 책사로 곁에 두었다. 그러나 조나라 장수였던 이량(李良)이 반역하여 한단을 급습하고 조왕을 죽이자, 괴통은 장이와 진여를 따라 이량과 맞섰다. 오래잖아 장이와 진여는 이량을 내쫓고 옛 조나라 왕손 헐()을 조왕으로 세웠는데, 그때도 괴철의 공이 적지 않았다.

거록(鉅鹿)의 싸움 때 괴철은 장이와 더불어 거록 성안에 있었다. 그러나 항우가 거록을 구한 뒤 장이와 진여 사이가 벌어져 싸움이 났을 때는 진여 곁에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장이와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정형()으로 들어와 진여의 대군을 쳐부수자, 광무군 이좌거와 더불어 한군(漢軍)에 사로잡혀 한신의 막하(幕下)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제나라가 이미 항복하였다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병마(兵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오?”

괴철의 말을 듣고 있던 한신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되물었다. 괴철이 무언가를 일깨워주듯 차분히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장군께서는 반드시 제나라로 군사를 내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역이기는 한낱 변사(辯士)로서 수레 앞채에 기대 세 치 혀만으로 일흔 개가 넘는 제나라의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몇 만의 군사를 거느리고서도 한 해가 넘도록 겨우 조나라의 쉰여 개 성을 항복받았을 뿐입니다. 대장군으로서 동쪽을 맡아 한왕을 떠난 지 여러 해 되었는데, 그 공은 한낱 선비보다 못하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거기다가 제왕이 우리 한나라에 항복한 것은 반드시 역이기의 변설에 넘어가서만은 아닙니다. 한단에서 제나라를 노려보고 있는 장군의 대군이 두려워 역하(歷下)20만이나 되는 대군을 보낸 그들 아닙니까? 그리 해놓고도 장군과의 피투성이 싸움이 두려워 항복한 것이니, 역이기는 오히려 세 치 혀를 놀려 장군의 승리를 훔친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우리가 제나라를 치면 임치에 있는 역 선생은 어찌 되는 것이오?”

천리 적지에 홀로 들어갔으니 빠져 나올 방도도 마련해 두었겠지요. 정히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장군께 군사를 멈추라는 요청이라도 보내 올 것입니다. 그때 군사를 멈추면 원래 장군께 돌아가야 할 공적을 반이나마 되찾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신도 듣고 나니 괴철의 말이 옳게 여겨졌다. 곧 조참과 관영을 불러들인 뒤 괴철에게 들은 말을 전하고 어찌할까를 물어보았다. 조참과 관영도 같은 무장이라 그런지, 역이기가 자신들의 공을 가로챘다는 괴철의 부추김에 바로 넘어갔다.

제나라 사람들은 반복이 많고 속임수를 좋아한다고 들었소. 입으로 한 말은 언제 뒤집을지 모르니 그 말만 믿고 여기서 군사를 되돌릴 수는 없소.”

조참이 그렇게 말했고, 관영은 한술 더 떴다.

차라리 잘됐소. 물 건너 평원성뿐만 아니라, 역하에 있다는 20만 제군(齊軍)도 저희 임금이 우리에게 항복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방비가 허술해졌을 것이오. 오늘 밤 조용히 하수(河水)를 건너 평원성을 떨어뜨린 뒤, 밤낮 없이 군사를 휘몰아 역하로 달려갑시다. 우리 군사가 쳐들어왔다는 소문보다 먼저 역하에 이르러 거기 있다는 제나라 군사 20만만 불시에 흩어버릴 수 있다면, 임치는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소. 제왕(齊王) 전광과 재상 전횡(田橫)만 사로잡으면 동쪽의 근심은 사라지는 것이오.”

그러면서 앞장 서 하수를 건너자고 우겨댔다. 이에 한신도 마음 놓고 괴철의 말을 따랐다. 그날로 전군에게 명을 내려 하수를 건널 채비를 갖추게 했다.

때는 한() 4년이 시작되는 겨울 10월 중순이었다. 한나절도 안돼 떠날 채비가 갖춰지자 한신은 그날 밤으로 군사를 움직였다. 으스름 달빛 아래 하무를 물린 장졸들을 하수 가에 모은 한신은 얼음이 굳게 얼어붙는 새벽을 기다려 조용히 하수를 건넜다. 자신이 조나라에서 새로 기른 군사와 조참 관영의 군사를 합쳐 3만 남짓이었으나, 밖으로는 10만을 일컫는 대군이었다.

하수(河水)를 건넌 한신의 군사들은 곧바로 제나라의 평원성(平原城)을 덮쳤다. 원래 평원성은 하수 남쪽 나루에 세워진 군사적 요충으로, 북쪽에서 하수를 건너 쳐들어오는 적을 막는 첫 번째 방어벽이기도 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안에는 1만 명이 넘는 제나라 군사들이 성안 백성들까지 성벽 위로 끌어내 시퍼렇게 치켜뜬 눈으로 북쪽을 노려보며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역하(歷下)에서 놀라운 전갈이 왔다.

우리 제나라는 한왕을 받들고 항우와 싸우기로 하였다. 이제 한신이 이끄는 한나라 군사는 이리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백성들은 모두 성벽 위에서 내려 보내고 군사들도 번갈아 파수나 서도록 하라.”

하지만 한신이 오지 않는다면 더는 북쪽에서 하수를 건너 내려올 적이 없었다. 이에 성안 장졸들은 그날로 모든 싸움이 끝난 것처럼 오랜 긴장을 벗어던지고 흥청거리며 쉬었다. 특히 한군이 하수를 건넌 그날은 성안의 제나라 군사들 거의 모두가 파수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고 깊은 아침잠에 빠져 있었다.

한군이 갑작스러운 함성과 함께 성을 에워싸자 성안의 제나라 군사들은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놀란 눈을 비비며 성벽 위로 올라와 살펴보니 그사이 사방이 온통 한군의 붉은 깃발로 뒤덮여 있었다.

성을 지키는 장수가 누구냐? 평원성의 수장은 어서 문루로 나와 내 말을 들어라!”

성문 앞 공터에 말을 세운 장수가 큰소리로 그같이 외쳤다. 키가 크고 얼굴이 허여멀쑥한 것이 이름 없는 장수 같지 않았다. 그제야 겨우 갑옷 투구를 꿰고 온 평원성의 수장이 문루로 나가 기죽지 않으려고 애쓰며 큰소리로 맞받았다.

내가 평원성을 지키는 전욱(田昱)이다. 적장은 누구며 왜 나를 찾느냐?”

나는 한나라의 대장군이요, 조나라의 상국 한신이다. 한왕의 명을 받들어 너희 제나라를 거두려고 왔다.”

한신의 그와 같은 말에 전욱이 어리둥절해 받았다.

듣기로 우리 제나라는 한나라에 항복하고, 우리 대왕은 한왕 밑에 들어가 함께 서초패왕 항우에게 맞서기로 하였다고 했소. 그런데 새삼 군사를 내어 우리 성을 에워싼 까닭이 무엇이오?”

제왕(齊王)이 한나라에 항복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면 무엇이 더 궁금하단 말이냐? 어서 성문을 열어 우리를 맞고 너희는 우리를 따라 항우와 싸우러 남쪽으로 내려가자.”

한신이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소리쳤다. 그제야 전욱도 짚이는 게 있는지 갑자기 얼굴색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알아볼 게 더 있어 터지려는 분통을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

우리 대왕께서 한왕께 항복하신 까닭은 제나라의 땅과 백성을 보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오. 그런데 이제 한군이 와서 우리 성을 차지하고 우리 군사들을 끌고 간다면 항우가 와서 제나라를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정녕 한왕께서 이 일을 알고나 계신 것이오?”

하늘에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땅에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제왕이 이미 우리 한왕께 항복했다면 그것은 바로 신하가 되어 우리 한왕을 받들겠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 너희 임금의 뜻이 그러하거늘 너희가 어찌 한왕의 명에 맞서려 하느냐?”

한신의 말에 기가 막혀서인지 평원성을 지키던 제나라 장수 전욱(田昱)은 한동안이나 대꾸를 못했다. 격한 감정을 못 이겨 거친 숨만 몰아쉬다가 이를 갈며 받았다.

아무래도 우리 대왕과 상국(相國)이 교활한 한왕의 꾀에 넘어간 듯하구나. 하지만 어림없다. 나는 이 성을 너희에게 넘겨주라는 왕명이 있기 전에는 결코 성문을 열어줄 수 없다!”

그리고는 곁에 있는 장졸들을 재촉해 싸울 채비를 갖추게 했다. 제나라의 종성(宗姓)다운 기개와 성품이었다.

전욱의 재촉을 받은 제나라 군사들은 아직 잠들어있는 동료들을 깨우고 성안 백성들을 성벽위로 끌어내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하지만 한군(漢軍)은 그들에게 싸울 채비를 할 틈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동문과 서문쪽에서 요란한 함성이 일며 조참과 관영의 군사들이 성벽을 기어올랐다.

한신의 부름에 북문 쪽으로 쏠려있던 제나라 군사들은 급히 동서로 달려갔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조참과 관영이 서로 다투듯 앞장서 성벽을 기어올라 비어 있다시피 한 평원성의 동문과 서문을 한꺼번에 열어젖혔다. 그래도 제나라 군사들은 한동안 거칠게 맞섰으나 장수들이 모두 죽거나 항복하자 모두 창칼을 내던졌다.

성문을 닫아걸어라. 아무도 성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라!” 평원성을 차지한 한신은 그렇게 엄명을 내려 성이 한군에게 떨어진 일이 바깥으로 전해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성 안팎의 장졸들에게 가만히 명을 내렸다.

여기서 밥을 지어먹고 한나절을 쉰 뒤에 역하(歷下)로 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닫기를 배로 하여 평원성이 우리에게 떨어졌다는 소문보다 우리가 먼저 역하에 당도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제나라 장수 전해(田解)와 화무상(華無傷)이 이끈 20만 대군과 힘든 싸움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에 평원성에서 한나절을 쉰 한군은 저물 무렵 가만히 성을 나와 역하로 달려갔다. 역성(歷城)은 제수(濟水) 남쪽에 세워진 성으로, 제나라로 보아서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막는 두 번째의 방벽과도 같았다. 하수를 건넌 적에게 평원성을 잃으면, 제수를 낀 역성에 기대 다시 한번 적을 막아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역성 안팎에는 아직도 제나라의 20만 군사가 머물러 있었다. 성밖에 진을 친 화무상이 10만 군사를 이끌었으며, 성안의 전해가 이끄는 군민도 10만을 일컬었다. 그러나 한군(漢軍)이 오지 않으리란 소식 때문에 지키는 것은 시늉에 가까웠다.

때는 동지가 멀지 않은 겨울이라 밤이 긴데다, 한신이 닫기를 재촉해 한나라 군사들은 다음날 해들 무렵 하여서는 벌써 제수 북쪽 나루에서 30리 쯤 되는 황토 골짜기에 이를 수 있었다. 한신은 거기서 다시 군사를 멈추고 소리 소문 없이 쉬게 한 뒤 밤이 어두워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경이 지나 제수 가에 이른 한군은 강물이 굳게 얼어붙기를 기다려 동틀 무렵 제수를 건넜다.

오래잖아 새벽 어스름 속에 저만치 역성이 보였다. 그 한쪽 벌판에 화무상이 이끈 제나라군 진채가 아직도 깊은 새벽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군사를 멈추게 하고 화무상의 진채를 살피던 한신이 먼저 관영을 불러 말했다.

평원성에서 여기까지 200리 길을 달려오는 동안 장군이 이끈 기마대가 가장 덜 지쳤을 것이니, 이곳 역하에서의 첫 싸움은 장군이 앞서 주시오. 장군은 기마대를 이끌고 앞장서 성 밖에 진을 친 거기장군 화무상(車騎將軍 華無傷)의 군사를 들이치시오. 먼저 그 기마대와 거기(車騎)를 찾아 흩어버린 뒤에 중군(中軍)을 짓밟고 군막을 불태워 적군의 얼을 빼놓아야 하오.”

이어 한신은 조참을 불러 일렀다.

나는 본대를 이끌고 기장(騎將) 관영의 뒤를 받쳐주며 화무상의 진채를 휩쓸어버릴 것이오. 장군은 날랜 보갑(步甲)을 이끌고 먼저 가서 적의 뒤를 끊어 주시오. 적병이 성안으로 쫓겨 가 전해의 농성을 돕거나 임치로 달아나 제왕(齊王)에게 힘을 보태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되오.”

그리고는 조참을 재촉해 먼저 보낸 뒤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전군을 움직였다. 한신이 관영의 기마대를 앞세워 역성(歷城) 밖에 진을 치고 있던 제군(齊軍)을 벼락같이 들이치자, 평원성과 마찬가지로 파수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깊은 새벽잠에 빠져 있던 화무상의 진채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갑옷투구를 걸치기는커녕 창칼조차 제대로 찾아 쥐지 못하고 허둥댔다. 먼저 뛰어든 게 관영의 기마대라 그 속도와 타격의 맹렬함이 더욱 제나라 군사들을 놀라고 겁먹게 한지도 모를 일이었다.

관영의 군사들은 무인지경 가듯 화무상의 진채를 휩쓸다가, 중군인 듯싶은 곳을 되풀이 오가며 짓밟아 제나라 군사들의 얼을 빼놓았다. 그러더니 마장(馬場)을 찾아 제나라 군사들의 싸움 말을 사방으로 흩어버리고 군막 여기저기에 불을 질렀다. 일이 그리 되자 제나라 군사들의 진채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하지만 화무상이 그래도 명색 거기장군이었다. 그 황망한 중에도 싸움수레 여남은 채와 100여 마리 싸움 말을 거두어 기마대를 이루고 관영을 막아보려 했다. 그때 다시 한신이 이끄는 한군 본대가 요란한 함성과 함께 제나라군의 진채를 덮쳐 왔다. 놀라 잠에서 깨어난 제나라 군사들에게는 그저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의 홍수로만 보였다.

모두 항복하라. 항복하면 해치지 않는다.”

너희 임금과 재상이 모두 한왕께 항복했으니, 너희도 창칼을 내려놓고 우리를 맞으라.”

한신이 군사들을 시켜 그렇게 외치게 했다. 그러지 않아도 겁먹고 놀라 허둥대던 제나라 군사들은 그 소리에 더욱 머릿속이 헷갈려 어찌할 줄을 몰랐다. 멍하니 밀려오는 한군을 바라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뒤돌아서서 냅다 뛰거나, 창칼을 내던지고 털썩털썩 땅에 퍼질러 앉았다.

기마대를 모아 어떻게 전세를 되돌려 보려던 화무상도 그 꼴을 보고는 기가 꺾였다. 관영의 군사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기세가 오른 관영이 그런 화무상을 곱게 보내주지 않았다. 뒤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달아나는 적 기마를 쫓아라. 한 기()도 놓아 보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앞장서 화무상을 뒤쫓으며 무섭게 꾸짖었다.

적장은 어디로 달아나느냐?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온몸이 투지로 뭉친 것 같은 관영이 기마대를 휘몰아 뒤쫓아 오자 화무상(華無傷)은 더욱 급해졌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한편인 전해(田解)가 지키는 역성 쪽으로 말 머리를 돌리고 정신없이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오래 달아날 팔자는 못되었다. 갑자기 눈앞에 수풀처럼 깃발이 솟아오르는 것 같더니 한 갈래 인마가 길을 막았다.

() 우승상 조참이 여기서 너희를 기다린 지 오래다. 적장은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앞선 장수가 큰 칼을 뽑아들고 그렇게 소리쳤다. 놀란 화무상은 얼결에 말 머리를 돌려 맞은편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몇 번 말의 배를 차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 앞을 보니 어느새 관영의 기마대가 앞을 막고 있었다.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게 된 화무상은 굴러 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관영에게 항복했다. 화무상을 따르던 장수와 이졸들도 모두 관영의 기마대에 사로잡혔다. 무기를 거두고 헤아려 보니 화무상을 빼고 사로잡힌 제나라 장리(將吏)만도 합쳐 마흔 여섯 명이나 되었다.

바깥에서 그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깊이 잠들어 있던 역성이 깨난 것은 화무상이 사로잡히고 그 진채가 한군에 의해 완전히 쑥밭이 된 뒤였다. 문루 위에서 졸며 파수를 서던 제나라 도위(都尉)가 먼저 성 밖의 소란을 알아차렸다.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나와 가만히 살펴보다가, 화무상의 군사들이 기습당해 이미 가망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놀라 성안으로 되쫓겨 들어갔다.

장군, 장군. 큰일 났습니다!”

그 도위가 한달음에 전해를 찾아보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잖아도 왠지 성 밖의 수런거림이 심상치 않아 문루 위로 나가 보려던 전해가 놀라 일어나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로 아침부터 이같이 요란을 떠느냐?”

적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성 밖에서 기각지세(角之勢)로 진채를 펼치고 계시던 화무상 장군이 적의 기습에 당한 것 같습니다.”

적이라니? 어디서 온 적이 이 새벽에 화()장군의 진채를 덮쳤다는 것이냐?”

한나라 군사 같습니다. 사방이 온통 붉은 깃발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러자 전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혹시 무엇을 잘못 본 것은 아니냐? 한군이 왜 서쪽으로 가서 항우와 싸우지 않고 이리로 쳐들어왔단 말이냐? 우리 대왕께서는 한왕과 함께 항우를 치기로 하지 않았느냐?”

저도 그게 통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무상 장군의 진채를 급습한 것은 틀림없이 한군입니다. () 우승상 조참이란 기호(旗號)까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때 다시 이졸 하나가 뛰어들어 전해에게 알렸다.

동문 문루(門樓) 아래서 조나라 상국(相國) 한신이라는 장수가 대장군을 찾고 있습니다.”

그제야 전해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한신이라고? 한신이라면 한나라 대장군 한신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한군이 제나라로 쳐들어 왔다는 것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동문 문루로 나가 보았다.

전해가 문루 위에서 내려다보니 성 밖은 어느새 한군의 창검과 깃발로 두껍게 에워싸여 있었다. 도성인 임치로 가는 동문 쪽이 그 모양이라면 다른 성문은 가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전해(田解)가 당해도 너무 어이없이 당한 데 망연해 하고 있는데 문루 아래에서 자신을 찾는 외침이 들렸다.

전해는 어디 있느냐? 어서 나와 내 말을 들어라!”

내가 제나라 대장군 전해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느냐?”

나는 한나라 대장군으로서 지금은 잠시 조나라 상국을 맡고 있는 한신이다. 우리 대왕의 명을 받들어 너희 제나라를 거두려 왔다. 어서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들여라.”

앞서 외친 한나라 장수가 그렇게 전해의 말을 받았다. 전해는 그때 이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이 갔으나 그 또한 화무상처럼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내가 듣기로 우리 군왕께서는 한왕에게 항복하여 한나라와 함께 항우를 치기로 했다 하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군사를 내어 우리 진채를 몰래 들이치고 성을 빼앗으려 드느냐? 그럼 임치에 와 있다는 한왕의 사자는 미끼에 지나지 않고, 그가 한 말은 간교한 속임수였을 뿐이란 말이냐?”

제왕이 우리 대왕께 항복한 일을 네가 이미 알고 있다면 무얼 더 따지고 뻗대는 것이냐? 마땅히 성과 군사를 우리에게 바쳐 너희 군왕의 뜻을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 이리 미련을 떠느냐? 너도 여기 이 화무상 장군처럼 항복하여 우리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하 평정의 공업을 이루어 보지 않겠느냐?”

한신이 이번에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전해를 달랬다. 그러나 전해는 화무상과 달랐다. 그래도 제나라 왕가의 종성인 전씨(田氏)라고 고분고분 한신이 바라는 대로 항복하지 않았다. 전해가 먼저 화무상을 크게 꾸짖은 뒤에 다시 이를 갈며 한신에게 소리쳤다.

우리 대왕이 어리석어 너희 임금 유방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 같다만, 나는 너희 시커먼 속셈을 안 이상 결코 성과 백성들을 내놓을 수 없다. 성벽을 베개 삼고 죽을지언정 너희같이 간교한 무리에게 어찌 항복하겠느냐? 이제라도 고이 군사를 돌린다면 나도 뒤쫓기를 그만두고 사람을 임치로 보내 우리 대왕께 항복한 참뜻을 물어볼 것이다. 그러나 힘으로 성을 빼앗고자 한다면 성안의 10만 군민과 더불어 죽기로 싸워 지난번 성양(城陽)에서 항우에게 보여준 매운맛을 너희에게도 보여주겠다.”

그러자 한신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잘라 말했다.

너희가 정녕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로 바꾸어 마실 작정이구나. 성이 깨어지는 날 내 솜씨가 독하다고 원망하지는 마라!”

그리고는 한바탕 불같은 공격을 퍼부은 뒤에 군사를 성벽에서 물려 세웠다.

그날 밤 관영과 조참이 한신을 찾아보고 걱정했다.

역성(歷城)의 성벽이 높고 두꺼운 데다 전해 또한 만만치 않은 장수라 실로 걱정입니다. 오늘 아침의 공격만 해도 우리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평원성이 떨어지고 화무상이 사로잡힌 터라 적은 속으로 적잖이 겁을 먹고 있을 것이오. 그렇게 겁먹어 다급해진 적의 속마음을 이용하면 우리 군사를 크게 상하지 않고 역성(歷城)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외다.”

그런 한신의 말을 관영이 아무래도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받았다.

그 사이 임치(臨淄)에 우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어쩌시겠습니까? 제왕(齊王) 전공과 상국 전횡이 방비를 굳게 하면 남은 싸움이 정말로 어려워질 것입니다.”

한신이 마침 잘 물어 주었다는 듯 정색을 하고 관영을 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장군에게 그 일을 부탁하려던 참이었소. 장군께서는 이제부터 날랜 기마를 동남쪽에 풀어 임치로 가는 길목을 모두 막으시오. 성안의 적군이 제풀에 다급해져 임치로 구원(救援)을 청하는 날이 바로 이 역성이 떨어지는 날이 될 것이오. 장군께서 그 사자(使者)만 잡아 오신다면 다음 계책은 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소.”

무얼 믿고 하는 소린지 그렇게 말하는 한신의 얼굴에는 자신이 가득했다. 조참과 관영도 그런 한신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각기 진채로 돌아가 한신의 명을 따랐다.

그날부터 한신은 연일 역성을 에워싸고 들이쳤으나, 요란한 것은 소리와 시늉뿐이었다. 멀리서 활이나 쏘아 대거나 방패를 앞세운 군사들을 시켜 성문을 불사르려는 척하며 성안의 적군에게 겁만 주었다. 하지만 성안에 갇혀 있는 제나라 군사들은 날이 갈수록 기가 죽고 어지러워졌다.

굳게 지키고는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전해(田解)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잘 버텨 내는가 싶더니 끝내 견디지 못해 부장(部將)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다.

아무래도 임치에 이 소식을 알리고 구원을 청해야겠다. 누가 에움을 뚫고 나가 이 소식을 임치에 전하겠느냐?”

그러자 젊은 부장 중에 하나가 나서 말했다.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오늘밤 삼경 무렵 빠른 말 여남은 기로 북문을 가만히 빠져나가 얼어붙은 제수(濟水)를 끼고 달리면 사흘도 안돼 임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대왕께 이곳의 위급을 전하고 원병(援兵)을 얻어 돌아오겠습니다.”

좋다. 나는 오늘밤 삼경 동문으로 한 갈래 군사를 내어 적의 진지를 야습할 터이니 너는 그 틈을 타 북문으로 나가거라. 역성이 임치의 구원을 입어 이 위급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공이다.”

전해가 제법 머리를 써서 그런 계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은 공연히 다급해 서둔 그 계책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그날 밤 삼경 전해는 군사 3000을 내어 동문 쪽에 있는 한나라 진채를 야습했으나, 한나라 진채가 워낙 성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펼쳐져 있어 뜻과 같지 못했다. 한군 진채에 닿기도 전에 벌써 그 움직임이 들켜 하마터면 3000 군사를 모두 잃을 뻔하였다.

그래도 임치로 가는 사자가 북문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원병이 온다.”

전해가 그렇게 스스로 위로를 삼았으나 실은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역성 동문 쪽이 소란한 틈을 타 임치로 가는 사자를 에워싼 제나라 기마 여남은 기()가 북문을 빠져나올 때만 해도 전해(田解)의 계책은 잘 풀리는 듯했다. 가로막는 적군이 없는 북쪽 길을 20여 리 달렸다가 동쪽으로 길을 바꾸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날이 새도록 달려도 앞을 막는 한군은 없었다.

됐다. 여기서 잠시 숨을 돌린 뒤에 임치로 달려가자.”

저만치 얼어붙은 제수(濟水)를 끼고 동쪽으로 달려가던 젊은 부장(部將)이 말고삐를 당기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미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강변의 야트막한 구릉 사이에서 말 울음소리가 길게 나더니 갑자기 한 떼의 기마가 땅속에서 솟아오른 듯 길을 막았다. 바로 관영의 기마대였다. 한신의 명을 받고 진작부터 거기 나와 지키고 있던 100여 기가 제나라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에 깨어 달려나와 길을 막았다.

누구냐? 어디서 온 기마대냐?”

저희 편일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로 제나라 젊은 부장이 다가가며 물었다. 그때 마주 달려오던 기마대의 앞장을 선 장수가 기세 좋게 대꾸했다.

우리는 관영 장군의 명을 받고 온 한나라의 낭중(郎中) 기병들이다. 여기서 너희를 기다린 지 오래니 순순히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그러면서도 두 손은 벌써 한 길이 넘는 장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제나라의 젊은 부장이 결코 겁 많은 사람이 아니었으나, 적이 쳐 둔 덫에 걸려들었다는 느낌에 여지없이 기세가 꺾였다. 겉으로는 씩씩하게 철극(鐵戟)을 뽑아들었으나 그 움직임은 알아보게 허둥대고 있었다.

그렇게 되니 승패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딜!”

사자로 나선 젊은 제나라 장수가 허둥대며 휘두르는 철극을 그런 외침으로 피한 한나라 장수가 나지막한 기합소리와 함께 자신의 장창을 내질렀다. 그걸 피하지 못한 제나라 장수가 무거운 신음과 함께 말 위에서 떨어지자, 호위하던 기병들이 놀라 달아나다가 모두 한군에게 사로잡히거나 죽었다.

한나라 장수는 죽은 사자(使者)의 몸을 뒤져 찾아낸 편지와 사로잡은 기병들을 모두 관영에게로 보냈다. 관영이 다시 그것들을 한신에게 보내자 한신은 매우 기뻐했다.

앞으로 사흘 뒤면 역성은 우리 손에 들어온다. 이제 남은 것은 임치로 가는 길이다.”

곁에 있던 괴철이 물었다.

겨우 원병을 청하는 서신 한 장을 손에 넣고, 사자를 호위하던 기사(騎士) 몇을 잡았을 뿐인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한신이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잎으로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작은 전기(轉機) 하나로도 큰 싸움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오. 전해는 이제껏 내 헤아림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내 헤아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외다.”

그리고는 전날과 다름없이 역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는 시늉만 되풀이했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한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날도 전과 똑같이 하루를 보냈다.

한신이 장수들을 모두 자신의 군막으로 모아들인 것은 임치로 구원을 요청하러 가는 역성의 사자 일행을 죽이거나 사로잡은 날부터 사흘이 지난 날 밤이었다. 한신은 먼저 기장(騎將) 관영을 불러 말하였다.

장군은 기마대를 이끌고 가만히 북쪽으로 돌아 역성 북문 쪽 제수(濟水) 가로 가시오. 말에는 재갈을 물리고 발굽은 헝겊으로 싸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야 하오. 그러다가 삼경이 되거든 크게 횃불을 밝히고 북문 쪽으로 다가 가시오. 임치에서 온 원병이 그리하면 역성 쪽에서도 마중을 나가 그들을 성안으로 맞아들이겠다고 저들의 사자(使者)가 지닌 서신에 쓰여 있었소. 그리하여 적이 마중을 나오거든 장군은 가차 없이 그들을 들이치시오. 나도 한 갈래 군사를 보내 길을 끊어 그들이 성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겠소. 그렇게만 되면 원병은커녕 성안의 군사만 적지 아니 줄어 적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오.”

그런 다음 다시 조참을 불러 말하였다.

장군은 휘하 장졸들을 데리고 남문으로 들어가시오. 삼경 무렵 북문에 이어 동문 쪽이 시끄럽거든 한꺼번에 대군을 밀어붙여 남문을 치면 되오. 아마도 적군은 북문을 나갔다가 앞뒤로 치이고, 동문에서 우리에게 속아 어지러워져 남문 쪽에는 그리 많은 군민(軍民)을 보낼 수 없을 것이오. 장군은 되도록 빨리 남문을 열어젖혀 성안을 휘저어 놓으시오.”

그리고 자신은 그대로 동문에 눌러앉아 또 다른 계책을 펼쳤다. 곧 항복한 화무상의 군대에게서 얻은 기치와 복색으로 한 갈래 제나라 군사를 꾸민 일이 그랬다. 먼저 그들을 동쪽으로 보낸 뒤 삼경 무렵 제나라 원병인 양 한신의 진채를 뒤에서 급습하게 한다. 그리고 한신이 기습에 못 견디는 척하며 길을 열어주면, 곧장 동문 아래로 달려가 성안의 제나라 군사를 속여 성문을 열게 한다는 계책이었다.

그날 밤 삼경이 되었다. 전해는 사자에게 주어 보낸 서신이 한신의 손에 들어간지도 모르고 눈 빠지게 원병을 기다리다가 북쪽 제수 가의 밤하늘이 훤할 만큼 횃불이 타오르는 걸 보고 몹시 기뻐했다.

드디어 임치에서 원병이 왔다. 적이 가로막을지 모르니 어서 마중 나가 저들을 성안으로 데려오라.”

전해가 그런 말과 함께 군사 1만을 떼어 북문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뜻밖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속았습니다. 제수 가에서 다가온 것은 임치에서 온 우리 원병이 아니었습니다. 성을 나갔던 우리 군사는 적의 속임수에 빠져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때 다시 동문 쪽이 소란하더니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동문 쪽에서 병장기 부딪는 소리와 군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게 아무래도 크게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북문 쪽의 일로 멍해져 있던 전해는 그 말을 듣고 동문 쪽으로 달려가 보았다. 문루 위에서 내려다 보니 정말로 어둠 속에서 창칼이 부딪고 사람의 외마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어둠 속을 살펴보아도 한쪽은 성을 에워싸고 있던 한나라 군사들일 것이란 추측뿐, 다른 한쪽은 어디 군사인지 영 알 길이 없었다.

한참 뒤에 갑자기 동문 근처의 한군(漢軍) 진채가 무너지는 것 같더니 곧 횃불을 밝혀 든 군사 한 갈래가 문루 아래에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서 성문을 열어라. 임치에서 온 원군이다.”

전해가 그 소리를 듣고 눈길을 모아 문루 아래를 내려다보니 횃불 사이로 어른거리는 기치와 복색이 모두 제나라 군사의 것이었다. 그러나 북문 쪽에서 한 번 속임수에 당한 뒤라 얼른 성문을 열어 줄 수 없었다.

이놈들 누구를 또 속이려 드느냐? 누구든 제나라 기치와 복색만 걸치면 모두가 제나라 군사라더냐? 바위 우박과 화살 비를 맞기 전에 어서 물러가라!”

전해가 어림짐작으로 그렇게 몰아세워 보았다. 그때 어디서 본 듯한 기호(旗號) 아래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장군,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 거기(車騎)를 따르던 중연(中椽) 서창(徐昌)입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전해가 들으니 알 만한 이름이었으나 그래도 아직 믿을 수가 없었다.

이놈, 화무상의 군사는 모두 적에게 항복했다. 너도 화무상을 따라 한나라의 개가 되었으면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 드느냐?”

다짜고짜로 그렇게 꾸짖기부터 했다. 서창이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화 거기가 항복했다고 해서 모든 장졸이 다 한나라에 항복한 것은 아닙니다. 태반이 임치로 달아났다가 이제 원병을 얻어 이렇게 돌아오는 길인데 어찌 저희를 이리도 박절하게 대하십니까?”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몇몇 귀에 익은 목소리가 더 들려왔다.

저는 낭장(郎將) 공상(孔祥)입니다. () 중연과 함께 임치로 피했다가 이제 이렇게 원병을 안내해 돌아오는 길입니다.”

저는 대장군의 싸움수레를 몬 적도 있는 구장(廐將) 이특(李特)입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겠습니까? 대장군, 어서 문을 열어주십시오. 적이 언제 전열을 정비해 다시 몰려들지 모릅니다.”

그때였다. 정말로 그들 후미에서 다시 횃불이 모여들며 대군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문루 아래서의 외침은 더욱 간곡하고 애절해졌다.

장군, 적이 다시 몰려옵니다. 어서 성문을 열어주십시오.”

여기서 개죽음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 우리를 성안에서 함께 싸우다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찌할 줄 몰라 문루 위를 오락가락하던 전해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성문을 열어주어라!”

전해가 그렇게 소리치자 무거운 성문이 열리고 문루 아래 몰려들었던 수천 명의 군사가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처음에는 낯익은 얼굴이 많고 화급하게 쫓겨 들어오는 게 원병으로 온 제나라 군사들 같았다. 그런데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바짝 뒤따라오는 한군을 들이지 않기 위해 성문을 닫으려 할 때 갑자기 변괴가 일어났다.

산동(山東)의 억양을 쓰기는 하지만 낯선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와 다시 성문을 닫아걸려는 제나라 군사들을 베어 넘겼다. 임치로 달아났다가 되돌아왔다고 우기던 화무상의 장졸들도 태도가 돌변했다. 그 수상쩍은 원병(援兵)들을 도와 성문을 열고 한군(漢軍)이 뒤따라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도왔다.

모두 성벽을 내려가 성문을 지켜라. 저것들을 내쫓고 성문을 닫아걸어라!”

놀란 전해가 그렇게 소리쳤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역성을 지키던 군민들이 동쪽 문루 부근의 성벽을 모두 비우다시피 하며 달려 내려갔으나 동문을 되찾고 닫아걸기는 틀린 일로 보였다. 그 사이 뛰어든 적이 벌써 천 명이 넘어, 넓지 않은 동문 안 공터에서 수천 명이 우글거리며 밀고 밀리는 피투성이 혼전이 되고 말았다.

전해가 발을 구르며 그곳 싸움을 독려하고 있는데, 다시 남문에서 급한 기별이 왔다. 조참이 거느린 한나라 군사 부대가 남쪽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해가 되는 대로 군사를 갈라 남문 쪽으로 보내려는데 이번에는 북문 쪽에서 사람이 달려왔다.

적의 두 갈래 군사가 힘을 합쳐 북문을 깨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성문이 깨어질 듯하니 어서 군사를 보내 주십시오.”

그 말에 전해는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이제는 더 보낼 군사도 없는데, 북문이 깨진다면 성을 지키기는 벌써 글러버린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크게 함성이 일며 전해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성벽 위로 한신의 본대가 한꺼번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해가 망연히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니 언제 마련한 것인지 한군의 구름사다리가 오뉴월의 무성한 호박 넝쿨처럼 성벽을 뒤덮고 있었다.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로구나.’

전해가 꼭 남의 말 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칼을 빼 들었다. 전해가 성벽 가득 기어오른 한군에 둘러싸여 마지막 한칼을 휘두른 뒤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은 것은 그로부터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전해가 죽고 세 성문이 열리자 역성 안에서는 한군에 맞서는 군사가 더는 없었다. 한신이 항복하는 군민은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하니, 날이 밝기 전에 역성은 품에 안기듯 한군의 손에 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역하(歷下)의 싸움에 대한 사기(史記)’의 기록이다. 여러 가지로 미루어 역하의 싸움은 한신에게 결코 정형()의 싸움보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역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제나라의 주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20만 대군이었다. 거기다가 역성은 북으로 제수(濟水)를 두르고도 또한 높고 든든한 성벽을 자랑하는 군사적 요충이었다.

그 역성에 기대 지키는 20만의 제나라 대군을 3만도 안 되는 군사로 쳐부순다는 것은 아무리 병법에 뛰어난 한신이라도 적잖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엄정하기로 이름난 사기는 어찌된 셈인지 이 부분에서 그저 이겼다는 말뿐 기록이 소략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제나라 정벌 뒤에 있었던 한왕 유방과의 불화와 그 때문에 끝내 목숨까지 잃게 된 모반의 혐의가 태사공(太史公)의 붓대마저 무디게 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군사의 움직임을 빨리 하고 도성 임치로 가는 길은 끊는다고 끊었지만, 역하의 싸움에서 대여섯 날을 더 쓰고 나니, 제왕(齊王) 전광의 귀에도 한신의 대군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날도 역이기와 늦도록 술잔을 나눠 아직 얼얼한 머리로 늦은 아침상을 받고 있던 전광은 한신이 평원성에 이어 역성까지 떨어뜨렸다는 소문을 듣자 불같이 화를 냈다. 들고 있던 수저를 내던지며 객관에 머물고 있는 역이기를 끌고 오게 했다.

늙은 것이 잘도 과인을 속였구나. 죽을 각오는 되었느냐?”

전광이 그렇게 소리치자 역이기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길로 전광을 올려보며 물었다.

왕께서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내가 무얼 속였다는 것입니까?”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하수를 건넜다. 평원성을 급습해 떨어뜨린 뒤 다시 역하로 쳐들어와 전해와 화무상의 군사를 쳐부수고 역성까지 차지했다고 한다. 역하에 있던 우리 군사 20만은 제나라의 주력이고, 전해와 화무상도 산동이 알아주는 맹장들이었다. 그런데도 한신에게 그렇게 어이없이 지고 만 것은 바로 네놈 때문이다. 유방이 화평을 바란다는 네놈의 말만 믿고 방심하였다가 갑자기 등 뒤를 찔린 셈이니, 이래도 네놈이 과인을 속이지 않았느냐?”

그제야 역이기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너무 뜻밖이라 잠시 눈앞이 아뜩하였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곰곰 앞뒤를 헤아려 보았다. 냉정하게 살피니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알 듯도 했고, 그걸 미리 헤아리지 못한 것이 섬뜩한 후회로 다가들기도 했다.

변사(辯士)가 남을 달래기 위해 못할 말이 없지만, 제 목숨까지 내던져 남을 속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소. 만약 내가 왕을 속이려 왔다면, 뜻을 이룬 그날로 제나라를 빠져나가 멀리 달아났을 것이오. 무엇 때문에 여기 이렇게 남아 내 몸을 인질로 내주고 있었겠소?”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렇게 받았으나 가슴속은 머지않아 다가올 참혹한 고통과 죽음의 예감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역이기의 그와 같은 대답에 제왕이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이를 갈듯하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하수(河水)와 제수(濟水)를 건너 천리를 쳐들어온 한신의 대군은 어찌된 것이냐? 태산이나 동해로 놀이라도 나온 것이라더냐? 좋다. 네가 정히 나를 속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한나라 군대를 멈추게 하여라. 그러면 너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과인은 너를 가마솥에 삶아 죽이겠다.”

그 말을 듣자 역이기는 자신에게 다가드는 죽음의 구체적인 모습을 감지했다. 그래도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게 일순 반가웠으나, 이내 변사로서의 냉철한 인식이 그럴 수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나라가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위로 하늘에 이르는 자도 아래로 못()에 이르는 자도 함부로 멈출 수 없는 큰일이다. 한나라 군사가 제나라로 쳐들어 온 것이 우리 대왕의 뜻이 바뀌어서인지 한신이 멋대로 움직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한낱 늙은 세객(說客)이 멈출 수 있는 일이 못된다.”

역이기가 아뜩하게 무너져 내리는 몸과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그렇게 받았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일이 되면서 오히려 가슴속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역이기의 대답에 듣고 있던 제왕(齊王) 전광(田廣)의 얼굴이 한층 무섭게 일그러졌다.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길로 역이기를 내려다보며 목청을 높였다.

그것 보아라. 결국 네 놈이 과인을 속인 게 아니고 무엇이냐? 너는 한왕 유방과 짜고 화평을 내세워 과인과 제나라 군사들을 방심하게 만든 뒤에 갑자기 한신의 대군을 끌어들였다. 그래놓고도 구구하게 발뺌을 하려 드느냐?”

역이기가 그런 제왕을 한 번 더 충동질해 죽음을 재촉했다. 한바탕 껄껄 웃어 스스로 삶에 대한 미련을 털어 버리고는 아이 달래듯 제왕에게 말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덕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나무람이나 비웃음을 귀에 담지 않는다. 네가 이미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면 내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겠구나. 내 너를 위해 다시 무엇을 말하겠느냐?”

그러자 제왕도 더는 참지 못했다. 시뻘게진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봐라.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저 늙은 개를 삶아 죽여라!”

그러자 시위들이 세 발 달린 큰 솥을 궁궐 뜰 안으로 옮겨 와 솥 안에 물을 가득 채우고 역이기를 집어넣었다. 솥 아래 장작불을 지핀 지 한 식경이 되자 솥 안의 물이 뜨겁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식경 역이기는 끓는 물에 삶긴 채 죽었으나, 끝내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역이기를 삶아 죽인 제왕과 재상 전횡(田橫)은 그래도 다 풀지 못한 분노를 억누르며 한신과 맞설 의논을 했다. 싸움에 익숙한 전횡이 급한 대로 계책을 내놓았다.

임치는 오래된 땅이라 사는 사람은 많아도 기대어 싸우기에는 좋은 성이 못됩니다. 성벽이 낡고 헐었을 뿐만 아니라, 지켜야 할 전선이 길어 적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 이내 토막 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임치는 도성이라 함부로 적에게 내줄 수도 없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 재상으로 세운 뒤에 한 갈래 군사를 주어 죽기로 지키게 하십시오.”

전횡은 그렇게 말하고 족제인 전광(田光)을 재상에 가임(假任)한 후 5천 군사와 더불어 임치를 지키도록 하라고 권했다. 제왕이 그 말을 받아들이자 전횡이 다시 이었다.

대왕께서는 동쪽 고밀(高密)로 물러나 계십시오. 고밀성은 동쪽에 치우쳐 있지만 성벽이 높고 두꺼워 많지 않은 군사로도 버텨내기 좋은 곳입니다. 또 장군 전기(田旣)1만 군사로 교동(膠東)에 진을 치게 하고, 신은 남은 전군을 들어 영() 땅과 박() 땅 사이에서 한신의 대군을 맞아 보겠습니다.”

만약 한신이 과인을 노리고 먼저 고밀로 대군을 몰아오면 어찌하겠소?”

제왕이 문득 걱정되는 듯 물었다. 전횡이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받았다.

화무상의 대군이 깨져 아무래도 우리 힘만으로는 한군을 이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고약하지만 초나라에 원군(援軍)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패왕은 유방이 미워 반드시 원군을 보낼 것이니 그들을 고밀로 불러들이면, 설령 한신이 조나라의 백성들을 모두 그리고 내몬다 해도 대왕께서 크게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기 살기로 맞서 싸우던 패왕 항우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천하의 맹장 전횡에게 결코 기꺼울 수는 없었다.

사수(5)는 사수현() 동남 30리 되는 곳에 있는 방산(方山)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하수(河水=황하)에 합쳐지는 강물이다. 하수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성고(成皐) 동쪽을 흐르는데, 그때는 제법 물이 깊고 넓었다.

() 410월 중순 한동안 오창의 곡식으로 배불리 먹고 편히 쉰 한나라 군사들은 갑자기 사수를 건너 성고성을 에워쌌다. 한왕 유방이 몸소 앞장을 선 5만 대군이었다. 그러나 한왕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성고성을 지키는 조구(曺咎)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지킬 뿐 성을 나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 전서(戰書)를 띄우기도 하고 군사들을 시켜 욕을 퍼붓게도 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초나라 군사들이 성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왕은 마침내 전군을 들어 성고성을 들이쳤다. 이래저래 사기가 올라 있던 한나라 군사들이라 성벽을 기어오르는 기세가 자못 사나웠으나 조구와 사마흔 동예는 성안 군민들을 이끌고 흔들림 없이 잘 막아냈다. 다시 닷새가 지나도 적지 않은 한나라 군사만 잃었을 뿐 성고성은 끄덕도 않았다.

저것들이 어찌된 일이냐? 군사도 많지 않아 보이고 항왕도 없는데 어찌 이렇듯 거세게 뻗대느냐?”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한왕이 탄식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장량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성벽 위를 바라보며 받았다.

항왕이 떠나면서 조구에게 함부로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단단히 당부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함께 성을 지키는 사마흔과 동예는 바로 새왕(塞王)과 적왕(翟王)으로 모두 대왕께 한번 항복했던 자들 아닙니까? 다시 사로잡혀서는 용서받기 어려울 것을 알고 죽기로 조구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함께 있던 진평이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성안에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것도 많겠지요. 잃으면 장졸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만큼 귀하고 값나가는 것들이.”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왕이 진평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진평이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듣기로 항왕은 지난번 대왕께 도읍인 팽성을 잃어본 뒤로 왕궁을 군막(軍幕)에 담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동안 얻은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피붙이와 미녀까지도 패왕의 군막과 함께 움직이다가 싸움터와 가장 가까운 성으로 옮겨 가장 믿을 만한 장수에게 지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고성과 조구가 바로 그 성과 장수인 셈이지요.”

그럼 이번에는 왜 항왕을 따라 양() 땅으로 옮겨가지 않았는가?”

항왕이 그만큼 팽월을 가볍게 본 탓이겠지요. 성안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어 보니 항왕은 조구에게 보름을 기한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곧 보름 안으로 자신이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버티라고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한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탄식했다.

보름이면 수양()까지 대군을 이끌고 달려갔다 오기에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날수이다. 그런데도 바람같이 나타나 치고 빠지는 팽월을 잡고 돌아오겠다니 도대체 저 사람은 자신을 누구로 여긴다는 것이냐?”

그 자부심이 오늘날의 패왕을 만들었지만, 앞날의 패망이 또한 거기서 비롯되겠지요.”

한왕의 탄식을 부러움에서 나온 걸로 보았는지 진평이 그렇게 빈정거리듯 받았다. 한왕이 갑자기 그런 진평에게 매달리듯 물었다.

그렇다면 호군(護軍)에는 성고성을 떨어뜨려 자만에 찬 항왕을 낭패시킬 좋은 계책이 있는가?”

성고성을 떨어뜨리는 일은 멀리 있는 항왕이 아니라, 성안에 있는 조구나 사마흔을 살펴 계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진평의 그와 같은 대답에 한왕이 다시 한번 매달리듯 말했다.

그런 계책이 있다면 어서 말하라. 조구를 성 밖으로 끌어내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과인은 무슨 말이든 따르겠다.”

그러자 한동안 뜸을 들이던 진평이 조심스레 말했다.

조구나 사마흔처럼 하찮은 벼슬에서 몸을 일으킨 자들에게는 두 가지 같은 병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평판에 얽매여 남의 이목을 두렵게 여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자질구레하지만 거듭된 성공으로 자라난 오기입니다. 특히 조구와 사마흔은 두 사람 모두 시골의 옥리(獄吏)에서 몸을 일으켜 왕후(王侯)의 줄에까지 끼어 서게 되었으니 그 병통은 남보다 훨씬 더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그들의 그와 같은 병통을 도지게 하시면 성고성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병통을 도지게 할 수 있는가?”

우선은 병졸들을 시켜 그들을 욕하게 하시되, 이전과는 달리 그들의 신의나 위엄과 관련된 평판을 깎아내리고 오기를 건드리는 말을 골라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에움을 풀고 물러나시면서 군사들로 하여금 깃발을 질질 끌고 항오(行伍)를 흩게 하여 저들이 그동안에 얻은 병가(兵家)로서의 평판과 오기를 건드려 보십시오. 저들은 반드시 성문을 열고 나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한왕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과인도 사상(泗上)의 정장(亭長)에서 몸을 일으켰으니 그 벼슬의 하찮음이 포의(布衣)나 다름없다. 그러나 장부가 큰 뜻을 펴려 하면 한때의 욕된 평판을 겁내거나 되잖은 오기로 시세와 맞서서는 아니 된다 믿고, 또 그리해 왔다. 그런데 저들이라고 그걸 모르겠느냐?”

그때 한왕과 진평이 주고받는 말을 한동안 듣고만 있던 장량이 가만히 끼어들었다.

그것은 또 대왕께서 대왕이 되신 까닭이요, 장차 천하를 얻을 밑천이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따라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물며 조구 따위겠습니까.”

그 말에 한왕의 얼굴이 치켜세워진 아이처럼 환해졌다. 그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당장부터라도 그렇게 해봅시다.”

한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날부터 성고성 안은 두껍게 성을 에워싼 한나라 군사들이 소리소리 질러대는 욕설로 시끄러웠다. 모두 장량과 진평이 머리를 짜내 고른 욕설이었다.

해춘후(海春侯)는 뭐고 대사마(大司馬)는 또 뭐냐? 아무리 허울 좋은 벼슬을 씌워 놔도 낮고 하찮은 근본은 못 속인다. 기현((,)) 옥지기 조구는 나오너라.”

주인 없는 집 지키는 개새끼가 따로 없다. 항우도 없는 성에 그 재물과 계집을 지키고 앉았으니 조구 네놈이 바로 그 개새끼다.”

호걸이네 임협(任俠)이네, 잘도 세상을 속였구나. 싸움이 두려워 성안에 숨어 있는 게 호걸이냐? 성안 군민이 다 굶어 죽어도 저 한 목숨 부지하며 모르는 척하는 게 임협이냐?”

힘든 싸움은 항우에게 맡기고 그 꽁무니에 숨어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게 그리 달더냐? 너도 명색이 장수라면 장수답게 나와 싸우자!”

항우의 청지기 노릇이 젊은 날 네놈이 꾸었다던 그 푸른 꿈이요, 입만 떼면 내세우던 큰 뜻이더냐? 이미 제후(諸侯)에 올랐다면 성을 나와 제후의 위엄을 보여라!”

조구뿐만 아니라 사마흔과 동예에게도 뼈아픈 욕설들이 퍼부어졌다.

너희가 이끄는 대로 항복했던 진나라 이졸 20만 명을 모두 산 채로 땅에 묻고 너희만 살아나니 그리도 즐겁더냐?”

장함은 그래도 부끄러움이라도 알아 자결할 줄이라도 알았다. 여기저기 무릎 꿇어 구차한 목숨을 이어 가니 너희는 부끄러움도 모르느냐?”

이미 우리 대왕께 한 번 꿇었던 무릎이거늘 두 번 꿇지 못할 건 또 무엇이냐? 이번에도 어서 항복해 구차한 목숨을 빌어라!”

하지만 성안의 조구와 사마흔, 동예는 잘 참아냈다. 귀에 솜이라도 막았는지 사흘이 지나도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에 한왕은 다시 계책을 바꾸었다. 다음 날로 에움을 풀고 군사를 거두기 시작했다.

취한 한군들이 흐느적거리며 진채를 거두더니, 깃발을 비뚜름하게 잡고 창칼을 끌며 동쪽으로 물러났다. 앞뒤도 없고 아래위도 없어 보이는 게 까마귀 떼가 따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터무니없는 큰소리로 성안 초나라 군사들의 부아를 돋우었다.

시골 옥리(獄吏) 놈들 말이나 잘 듣고 기다려라. 먼저 항우부터 잡고 너희를 잡으러 오마.”

그러자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젊은 초나라 장수들이 더 참지 못하고 울근불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조구는 잘 참아 냈다. 젊은 장수들을 엄하게 다그쳐 성문을 나가는 것을 막았다.

모두가 적의 속임수다. 한때의 혈기에 치우쳐 큰일을 그르치지 말라. 성문을 나서는 그때로 너희는 적이 쳐둔 덫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구와 사마흔을 낯없게 하는 일이 곧 벌어졌다. 성 밖이 조용해지고도 한참이나 있다가 살펴보러 나갔던 군사 하나가 돌아와 말했다.

한군은 사수(5)를 건넜습니다. 정말로 동쪽으로 가버린 듯합니다.”

이어 멀리까지 살피러 나갔다 돌아온 군사들이 알아온 것은 더욱 조구와 사마흔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한군은 식량이 다해 급히 돌아간 듯합니다. 사수를 건너기 전 몇몇 마을을 덮쳐 씨앗으로 묻을 곡식까지 빼앗아 먹고 갔다고 합니다.”

우리 패왕께서 보내신 한 갈래 군사가 오창을 들이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한군은 앞뒤로 적을 맞게 될까 두려워 급히 돌아간 것입니다.”

패왕께서 벌써 팽월을 잡고 성고로 돌아오시는 중이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사수(5) 건너편에서 온 백성이 양() 땅을 오가는 장사꾼에게서 들었다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모두 장량과 진평이 성고성에서 물러나면서 지어 퍼뜨린 헛소문이었다. 그러나 듣는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한결같이 분통 터지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몰려 쫓겨가는 한나라 군사들에게 화살 한 대 날리지 못하고 성안에 처박혀 떨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못해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일이 대사마 조구와 사마흔, 동예 같은 나이든 장수들이 겁이 많아 그리되었다 여긴 젊은 장수들과 이졸들이 저희끼리 둘러앉아 불평으로 웅성거렸다. 그 소문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는 조구도 답답했다. 소문이 정말이라면 겁쟁이에 졸장부란 소리를 듣게 생겼고, 적이 지어 퍼뜨린 헛소문이라 해도 당장은 그걸 밝힐 길이 없어 성안 군민의 비웃음과 빈정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찍 한왕 유방의 사자가 달려와 난데없는 전서(戰書) 한 통을 성안으로 던져놓고 갔다. 조구가 받아 읽어 보니 내용은 대략 이랬다.

서초(西楚) 해춘후(海春侯) 대사마(大司馬) 조구는 들으라.

지난날 듣기로, 기현((,))에는 누워있는 용(와룡·臥龍) 같고 엎드린 범(복호·伏虎) 같은 호걸이 있어, 몸은 비록 옥리로서 낮게 있어도 그 뜻과 기상은 구름 위를 넘실거린다고 하였다. 그 뒤 난세의 풍운을 만나 천하를 휘젓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뉘 알랴, 그 용과 범은 이제 남의 집이나 지키는 개가 되고 말았구나. 허울은 좋아 왕후(王侯)를 일컬으나 주인 없는 성에 남아 그 재물과 가솔을 지키고 있으니 집 지키는 개와 다름이 무엇이랴. 대사마로서 허다한 병마를 거느리고서도 마침내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 성안에 틀어박힌 꼴이 더욱 주인의 엄명을 받아 집을 지키는 데만 급급한 개와 닮았다.

과인은 여러 날 너의 옛 뜻과 기상의 자취나마 엿보려고 애썼으나, 사람이 그 몸 두었던 바탕을 벗어나기는 정녕 이리 어려운가. 너는 스스로 시골 옥리의 금도(襟度)에 갇혀 천하의 이목을 돌아보지 않으니 실로 보기조차 딱하구나. 군사를 시켜 대엿새나 욕설로 격동시켜도 너는 성안에 틀어박혀 오직 항왕의 명을 충실하게 지키는 데만 골몰하였다. 이에 과인은 군사를 물려 돌아가다가 그래도 세상의 평판이 너를 비웃는 게 애석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 한다. 과인이 바라는 것은 성이 아니니, 우리 차라리 성고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한바탕 병진(兵陣)을 펼쳐봄이 어떠냐? 사수 동쪽 벌판이라면 설령 싸움에 져도 네 주인이 지키라고 엄명한 성은 잃지 않을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제후다운 제후요 이름만의 대사마가 아니라면 사수 벌판에서 당당하게 대군을 펼쳐 과인 장졸과 자웅을 겨뤄보도록 하라.’

누가 써준 글인지 모르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러지 않아도 뒤틀릴 대로 뒤틀린 조구의 심사를 돋우고 오기를 건드렸다.

이 패현 저잣거리의 장돌뱅이 놈이 사람을 너무 작게 보는구나!”

조구가 그렇게 씨근거리며 전서를 사마흔과 동예에게 내보였다. 사마흔과 동예도 그 며칠은 잘 참아냈으나 그때에 이르러서는 더 참지 못했다. 조구가 성을 나가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저희 스스로 그를 따라나섰다.

조구는 함께 성고를 지키던 항양(項襄)을 불러 군사 3000을 남겨 주며 말했다.

장군은 성안에 남아 뜻밖의 변고에 대처해 주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패왕의 재보(財寶)와 가솔(家率)을 잘 지켜내야 하오.”

그 말에 항양이 걱정스레 조구를 보며 말렸다.

대왕께서 떠나시면서 다만 굳게 지키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껏 잘 참아놓고 어찌 글 몇 줄에 격동되어 큰일을 그르치려 하십니까?”

패왕께서 말씀하신 보름이 멀지 않았소. 들리기로는 패왕께서 돌아오고 있다고 하니, 지금이 바로 성을 나가 유방을 사로잡을 때요. 패왕께서 유방의 뒤를 끊고 있는 형국이라 우리가 갑자기 치고 나가면 한군은 금세 무너지고 말 것이오.”

하지만 대사마께서는 이 성고성을 지키기만 하시면 됩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는 날이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지난번 팽성에서 낭패를 당해본 적이 있는 항양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 말로 거듭 조구를 말렸다. 조구가 결기 서린 목소리로 항양의 말을 받았다.

만약 성고성에 무슨 일이 있다면 이 늙은 목을 바쳐 패왕께 사죄하겠소!”

그리고는 남은 군사를 모조리 긁어모아 3만 대군을 일컬으며 성고성을 나갔다.

성난 조구가 군사를 휘몰아 동쪽으로 달려가니 오래잖아 얼어붙은 사수(5)가 저만치 보였다. 침착한 부장(部將) 하나가 그대로 군사를 내몰려는 조구를 말리며 말했다.

강물 동쪽 언덕 위로 살기가 뻗쳐 있고, 얼음의 두께도 기마가 건너기에는 넉넉지 못합니다. 잠시 군사를 멈추고 주변을 살핀 뒤에 사수를 건너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조구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물 건너는 일을 서둘렀다.

세상의 평판과 남의 이목을 말하는 자가 비열한 암습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수 동쪽 벌판에서 당당하게 병진을 펼쳐보자 해놓고 딴 짓이야 하겠느냐? 또 말 타고 건널 만큼 얼음이 두껍지 못하다면 먼저 보졸부터 건너가게 하면 된다. 기마대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걸어서 보졸을 뒤따르게 하면 전군이 사수를 건너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먼저 보졸부터 얼어붙은 사수 위로 내몰았다. 동짓달이 가까워서인지 보졸들이 대오를 갖춰 강물 한가운데에 이르러도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그걸 보고 조구는 다시 기마대를 뒤따르게 했다. 말고삐를 잡고 가만 가만 걸어서 뒤따르게 하자 이번에도 얼음은 잘 버텨 주었다.

그렇게 하여 기마대가 사수 한가운데쯤 왔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함성이 일며 동쪽 언덕 뒤에서 몇 갈래의 한나라 기마대가 철갑을 번적이며 나타나 이제 막 사수를 다 건너가는 초나라 보졸들을 덮쳐왔다. 그 뒤를 다시 창칼로 숲을 이룬 한나라 보졸들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앞장선 보졸(步卒)들 가운데로 적의 철기(鐵騎)가 뛰어들면 전군의 혼란은 피할 수가 없다. 그 혼란을 끝내는 길은 이편의 철기가 나가 적의 철기를 꺾어 주는 것뿐이다. 뒷날 대기병(對騎兵) 전술이 정교하게 발전될 때까지 보졸들만으로는 철갑으로 몸을 감싼 기마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기마대에 섞여 사수(5)를 건너던 조구는 앞장선 초나라 보졸들이 한나라 기마대에 쫓겨 어지럽게 흩어지는 것을 보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발밑의 얼음 두께를 따질 겨를도 없이 자신이 먼저 말 등 위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모두 말 위에 올라라! 어서 가서 적의 기마대를 맞자.”

그러자 다른 장졸들도 분분히 말에 올라 박차를 찼다. 처음 한동안은 그래도 얼음이 견뎌 내는 듯했다. 하지만 수백 필의 기마가 속도까지 얻자 동짓달 얼음으로는 그 무게를 견뎌 내지 못했다. 초나라 기마대가 사수를 다 건너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얼음이 깨어지고 말과 사람이 아울러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물 속으로 잠겼다.

다행히도 앞장서 있던 조구는 사마흔, 동예와 더불어 강물 속에 처박히지 않고 사수 동쪽에 내려설 수 있었다. 몇몇 기병들도 무사히 그들 뒤를 따랐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못했다. 기마대 태반은 아직도 차가운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말과 사람이 아울러 지른 비명이 그러잖아도 한나라 기마대에 몰리고 있는 초나라 보졸들을 더욱 겁먹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한번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질 판이었다. 조구가 물속에 빠진 기마대를 기다릴 틈도 없이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모두 앞으로! 적의 기마부터 막아라.”

그리고 앞장서 내닫더니 저희 보졸 사이에 뛰어든 한나라 기사(騎士) 하나를 베어 넘기며 소리쳤다.

모두 겁내지 마라. 내가 왔다. 죽기로 싸우면 절로 살길이 열릴 것이다!”

그런 조구에게는 보잘것없는 곳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스스로 갈고 다듬어 이룩한 맹사(猛士)의 기개와 풍모가 있었다. 그러나 싸움이 기개와 풍모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한번 꺾인 기세인 데다 군사의 머릿수까지 턱없이 모자랐다. 오래잖아 얼음 물속에서 기어 나온 초나라 기마대까지 힘을 합쳤지만 이미 기운 전세를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거기다 한신이 조나라와의 싸움에서 위력을 보여 준 배수진(背水陣)의 원리와는 달리 조구가 이끈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물을 등졌다는 것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달아날 길조차 없다는 아득한 절망감이 되어 전의(戰意)를 꺾어 놓았다. 따라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살길을 찾아 달아나는 군사가 생기자 초나라 군사들은 그대로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안간힘을 다해 무너지는 전열을 가다듬던 조구도 마침내는 일이 글러 버린 것을 깨달았다. 사마흔과 동예를 불러 남은 전력(戰力)을 원진(圓陣)으로 뭉친 뒤 사수를 따라가며 싸웠다. 물이 얕고 얼음이 두꺼운 곳을 찾아 물러날 길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한신이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더욱 세차게 한군을 휘몰아 물러날 길을 찾는 초나라 군사들의 삼면(三面)을 두텁게 에워싸기 시작했다.

내 오늘 이곳을 빠져나가기 어렵겠구나. 패왕께서 맡기신 재화와 사람만이라도 지켜낼 방도를 찾아야겠다.”

마침내 체념한 조구가 그렇게 탄식하며 그때까지도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던 기마 몇 기()를 가까이 불렀다. 그들이 다가오자 조구가 말했다.

이제 내가 가진 힘을 다해 서쪽으로 가는 길을 열어볼 터이니 너희들은 그 틈을 치고 나가 성고성으로 돌아가거라. 가서 항양(項襄)에게 패왕께서 맡기신 사람과 금옥(金玉) 화뢰(貨賂)를 보전하여 형양성의 종리매 장군에게 의지하라 이르라. 내가 여기서 죽기로 싸워 한군을 붙잡아 두면 너희가 형양성으로 물러날 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군사를 풀어 사마흔과 동예를 찾아오게 했다.

두 분 장군께서는 여기서 중군을 지탱하고 계시오. 내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서쪽을 뚫어, 성고의 항양에게로 가는 사자에게 길을 열어주고 오겠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버텨 주시오.”

조구는 사마흔과 동예에게 그렇게 당부한 뒤 몸소 한 갈래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치고 나갔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서운지 일시 한군의 에움이 뚫리며 한 줄기 길이 열렸다.

가거라. 반드시 성고성으로 돌아가 항양에게 내 뜻을 전해야 한다.”

조구가 그렇게 소리쳐 사자로 뽑은 기마를 서쪽으로 내몬 뒤에 다시 기세를 회복해 몰려오는 한군과 맞섰다. 그 사이 조구의 명을 받은 기마 몇 기가 에움을 뚫고 성고성으로 달아났다. 그들이 무사히 사수를 건너 사라지는 걸 본 조구는 미련 없이 군사를 돌려 사마흔과 동예가 맡고 있는 중군으로 달려갔다.

사마흔과 동예는 아직 중군을 지키고 있었으나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게 기울어 있었다. 몇 천 남지 않은 초나라 군사들이 두껍게 에워싼 한군의 파도 속에 작은 섬처럼 남아 있었다.

모두 힘을 내라. 내가 돌아왔다. 이제 우리 사자가 성고성으로 갔으니 멀지 않아 원병이 이를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조구가 그런 말로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어 보려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몇몇 장졸이 조구의 외침에 마음을 다잡고 창칼을 고쳐 쥐었으나 에워싸고 밀려드는 한군이 워낙 대군이었다. 모닥불에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적진에 뛰어드는 족족 자취 없이 사라져 갔다.

조구는 그래도 그 뒤 한 시진을 버텼으나 마침내는 마지막이 찾아왔다. 겨우 수백 명 남은 군사들과 얼음 깨진 사수가 한 모퉁이에 몰려 곧 한군에게 사로잡힐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조구가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며 처절하게 외쳤다.

기현((,))의 조구, 참으로 멀리도 왔구나. 옥리(獄吏)에서 몸을 일으켜 제후에 오르고, 대사마로 천군만마를 호령해 보았으니 무슨 여한이 있으리!”

그리고는 들고 있던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새왕(塞王) 사마흔도 조구의 뒤를 따랐다.

나도 그러하이. 시골 옥지기에서 일어나 왕 노릇까지 해보았으니 여한은 없네.”

그러면서 조구 곁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아 빠져나갈 길을 찾던 적왕(翟王) 동예도 끝내는 그들 뒤를 따랐다.

진나라의 도위(都尉)로서 장한을 따라 함곡관을 나왔던 이 동예(), 일찍이 신안(新安)에서 20만 항졸(降卒)과 함께 땅에 묻혔어도 억울할 것 없었다. 구차하게 살아남은 부끄러움이 있으나, 또한 그리해서 왕후(王侯)의 영화까지 누려 보았으니 생판 밑진 장사는 아니었다. 무엇을 뉘우치고 무엇을 한탄하리!”

동예가 제 칼로 제 목을 찌르기 전에 한 말은 그랬다.

한왕 유방이 사수(5)가에 이른 것은 조구와 사마흔, 동예 세 사람이 차례로 목숨을 끊고, 나머지 살아남은 초나라 장졸들은 모두 항복한 뒤였다. 세 사람의 주검을 돌아본 한왕이 처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염치를 아는 자들이었다. 모두 정중하게 묻어 주어라.”

그때 진평이 다가와 깨우쳐 주었다.

들으니 적의 기마 몇 기가 우리의 에움을 뚫고 성고성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급하게 뒤쫓아 성안의 적들에게 우리를 맞아 싸울 채비를 갖출 겨를이 없도록 하십시오.”

성고의 주력은 조구를 따라와 여기서 무너졌으니, 성안에는 그리 큰 병력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오. 서둘 것 없소.”

한왕이 그렇게 느긋하게 대꾸했다. 그때 장량이 다가와 진평을 거들었다.

그럴수록 서둘러 성고성을 쳐야 합니다. 겁먹은 적이 사람과 재보를 챙겨 형양성으로 달아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항왕에게서 우리 볼모를 되찾을 모처럼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대왕께서는 태공(太公) 내외분과 왕후께서 항왕의 군막에 볼모로 계신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런데 성고성 안에는 항왕이 천하에서 긁어모은 재보와 함께 그 가솔과 총애하는 미인들까지 모두 있다고 합니다. 급히 성고성을 에워싸 그들만 사로잡을 수 있다면 우리도 그들을 볼모로 삼아 태공 내외분과 왕후를 구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눈앞의 싸움에 정신이 뺏겨 항왕에게 볼모로 잡혀 있는 태공 내외와 여후(呂后)를 깜박 잊고 있던 한왕도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장졸들에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사수를 건너게 한 뒤 회오리바람처럼 전군을 휘몰아 성고로 달려갔다.

한왕이 성고에 이르니 성벽 위에는 지키는 군사가 없고 성문은 사방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 한왕은 급한 마음에도 적군의 속임수가 있을까 걱정이 돼 군사를 멈추고 탐마를 보내 성안을 살펴보게 했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탐마가 돌아와 알렸다.

적은 이미 사람과 재보를 챙겨 달아나고 없습니다. 남문으로 나갔다는 것으로 보아 형양성으로 달아난 듯합니다.”

적이 달아난 지 얼마나 되었다더냐?”

한왕이 그렇게 묻자 살피러 갔다 돌아온 군사가 들은 대로 말했다.

우리 대군이 이르기 한 식경(食頃) 전쯤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장량이 나서서 말했다.

적군은 많은 재보와 아녀자를 보호해 가는 길이라 움직임이 더딜 것입니다. 거기다가 형양까지는 50리가 넘는 길이니 서두르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알겠소. 먼저 기마대를 내어 적을 급히 쫓게 하겠소.”

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고 먼저 1000여 기마대를 내어 형양으로 가는 지름길로 달려가게 했다. 이어 3000의 날랜 보졸이 기마대의 뒤를 받치고, 다시 한왕이 이끄는 본대가 내닫듯 그 뒤를 따랐다.

그때 항양(項襄)은 조구의 당부를 따라 거느리고 있던 3000 군사로 성고성에 있던 사람과 재보를 보호하며 형양성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패왕의 가솔이라 하지만 아녀자가 태반이라 사람이 탄 수레가 여남은 채요, 패왕이 그동안 천하에서 긁어모은 금은과 보화가 다시 수십 수레였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그 수레들을 소중하게 지키며 가야 하니, 마음만 바쁠 뿐 길은 더디기 짝이 없었다.

빨리 가자. 적이 언제 뒤쫓아 올지 모른다.”

두 시진 가까이 몰아쳐도 채 30리를 가지 못하자 다급해진 항양이 행렬 앞뒤로 말을 달리며 인마를 재촉해 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사졸이 행렬 뒤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저기 저 자우룩한 먼지는 적 기마가 일으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항양이 보니 정말로 멀리 북쪽 하늘로 부옇게 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적지 않은 기마대의 말발굽소리와 은은한 함성도 들려오는 듯했다. 한왕이 기마대를 내어 급하게 추격하기 시작한 것임에 분명했다.

놀라지 말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기마 몇 기를 보내 우리를 겁주려는 수작이다.”

항양이 그렇게 군사들을 진정시키며 젊은 부장 하나를 불러 명했다.

너는 군사 1000명을 이끌고 이 길모퉁이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이 오면 들이쳐 그 기세를 꺾어놓아라.”

그 부장이 군사 1000명과 남아 길모퉁이에 매복하자 놀란 수런거림이 가라앉았다. 이어 항양은 추격에 대비해 행렬을 다시 배치시켰다.

패왕께서 아끼는 사람들이 탄 수레를 맨 앞으로 세우고 재물을 실은 수레를 그 뒤로 하라. 군량과 마초가 그 다음이고 마지막은 군사들이 따르며 뒤를 끊는다.”

그리고 날랜 말을 모는 군사 하나를 형양으로 달려가게 했다.

너는 종리매 장군에게 가서 알려라. 패왕께서 대사마 조구에게 맡기신 사람과 재보가 모두 한군에게 쫓기고 있으니 어서 날랜 군사를 내어 맞아들여 달라고.”

그리고 한층 급하게 인마를 몰아댔다. 한군의 추격이 가까워서인지 성고성에서 빠져나온 행렬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졌다. 하지만 그리 멀리 달아날 수는 없었다. 복병으로 남겨진 초나라 군사들과 뒤쫓는 한나라 기마대가 부딪는 함성이 아련히 들으며 달린 지 한 식경도 안 돼 다시 한나라 기마대가 따라붙었다.

항양이 행렬 맨 끝에 붙어 따라오던 군사들에게로 말을 말려가 소리쳤다.

“500명은 나를 따라 수레를 지키고 나머지는 여기 남아 뒤를 끊어라. 곧 형양성에서 구원이 올 것이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수레를 형양성으로 몰았다. 아직도 남은 길은 20리나 되었다. 쫓기는 군사들에게는 멀다 못해 아득하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항양이 남은 500명과 더불어 수십 채의 수레를 보호해 10리쯤 가는데 다시 한나라 군사들이 따라붙었다. 뒤쫓는 쪽도 노리는 바가 있어서인지 악착스러운 데가 있었다.

할 수 없다. 금옥과 화뢰(貨賂)를 실은 수레를 버려라. 적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 어지러운 틈을 타 패왕께서 맡기신 사람이나 보존하자.”

항양이 그렇게 명을 내려 재물을 실은 수레를 버리게 했다. 한 젊은 부장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왕의 가솔이랬자 겨우 당내(堂內)에나 들 정도로 먼 종성(宗姓)들뿐입니다. 거기다가 별것 아닌 시중들과 시녀들이 있을 뿐인데, 그들을 구하려고 저 많은 재보를 흩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대왕께서는 함께 눈비를 맞으며 싸운 맹장들보다도 우리 항씨(項氏) 종친들을 더 믿고 아끼신다. 거기다가 저기 저 수레에 탄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미인(美人)으로 봉해진 우희(虞姬)가 저 수레에 타고 있다. 우 미인을 도읍 팽성에 두는 것도 못 미더워 군막과 함께 옮겨 다니게 하고 있는데, 그녀를 한왕에게 뺏기고 무슨 수로 대왕께 용서를 구하겠느냐?”

항양이 나무라듯 그 젊은 부장의 말을 받았다. 젊은 부장도 수레에 탄 사람 가운데 우 미인이 있다는 말을 듣자 더는 군소리 없이 항양이 시키는 대로 했다. 군사들로 하여금 재물 실은 수레 수십 대를 버리게 해 뒤쫓는 적 기마대의 길을 막는데, 일부러 수레를 뒤집거나 보화가 담긴 궤짝을 열어젖혀 보는 사람에게 절로 물욕이 일도록 했다.

머지않아 그곳에 이른 한나라 기마대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 수십 채가 길가에 나뒹굴고 있는 걸 보자 눈이 뒤집혔다. 항양을 뒤쫓는 것도 잊고 저마다 말에서 내려 닥치는 대로 금은보화를 거두었다. 이어 그들의 뒤를 받치는 한나라 보졸들이 이르렀으나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졸과 기마대가 뒤엉켜 수레와 함께 버려져 있는 재화를 다투었다.

한왕이 이끈 중군이 그곳에 이른 것은 재물에 눈이 먼 한나라 장졸들이 저희끼리 치고받으며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한왕은 그런 장졸들을 꾸짖어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뒤 형양성으로 달려갔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새 항양이 이끈 인마와 수레는 종리매가 끌고 나온 대군의 호위를 받으며 형양성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없었다.

한왕은 대군을 풀어 형양성을 에워싸게 하고 낮에 군사들이 나눠 가진 패왕의 금은보화를 모두 거두어들이게 했다. 군사들이 감춘다고 감추었으나 그래도 거둬 놓고 보니 엄청난 재화였다. 그걸 보며 한왕이 탄식하듯 말했다.

과연 말로만 듣던 패왕의 재보답구나. 군막에 싣고 다니는 금은보화가 이 정도이니 그가 천하에서 거둔 것을 다 합치면 도대체 얼마나 된다는 것이냐.”

그리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내 듣기로 항왕은 아직 격식을 갖춰 혼인한 적이 없다 하였다. 그런데 무에 그리 소중한 가솔이 있어 항양이 저 많은 재보를 흩뿌리면서까지 그들을 구해냈다는 것이냐?”

그때 곁에 있던 장량이 가만히 웃으며 받았다.

대왕께서는 옛날 함양 궁궐에서 만났던 우씨(虞氏) 성 쓰는 소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그 같은 장량의 물음에 한왕은 까닭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왕이 무관(武關)을 넘어 진나라의 항복을 받고 그 도읍 함양을 차지한 것은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호기롭게 왕궁으로 들어갔다가 궁녀가 되기 위해 끌려와 있던 소녀들 중에서 우씨 성을 쓰는 소녀(虞姬)에게 눈길이 끌린 적이 있었지만 잠깐 동안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4, 창칼이 부딪고 화살과 돌이 나는 싸움터를 내달려 왔는데도 한왕은 장량이 그 말을 꺼내자 이내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청초한 아름다움은 한왕의 머릿속에 깊은 인상으로 새겨져 있었다.

함양 왕궁의 재보와 미녀에게 손대는 것을 번쾌와 장량이 그토록 엄숙하게 말리지 않았다면, 한왕은 어김없이 우희를 그날 밤의 잠자리에 불러들였을 것이다. 나중에 항우가 왕궁의 재보와 미녀를 모두 거두어 팽성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한왕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너무 아름다워 쓸쓸하고 슬퍼 보이던 우희의 모습이었다. 이듬해 제후들과 함께 팽성을 함락시켰을 때도 한왕은 슬며시 우희를 찾아보게 했다. 그녀가 항양의 보호를 받아 팽성을 빠져나간 것 같다는 말을 듣자 그때도 까닭 모르게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이는 듯하였다.

기억할 듯도 싶소. 그런데 자방은 왜 갑자기 그 일을 물으시오?”

한왕이 애써 마음속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그렇게 받았다. 장량이 희미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항왕은 우희를 거두어 미인(美人)으로 봉하고 총애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번 팽성에서 낭패를 본 뒤로는 재보와 미녀들을 거두어 자신의 본진에 가까운 성읍에 두고 지키게 하였는데, 바로 그 우미인(虞美人)이 성고성에 있었습니다. 도성과 맞바꾸어도 아까워 하지 않을 만큼 항왕이 총애하는 우미인인데, 그까짓 재보를 아껴 뺏겨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한왕이 갑자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졸들의 물욕이 실로 큰일을 그르쳤구나. 만약 우미인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면 아버님 어머님을 항왕에게서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는 이내 엄숙한 군왕의 얼굴로 돌아가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서 장수들을 과인의 군막으로 불러 모아라! 항왕이 양() 땅에서 돌아오기 전에 형양성을 함락하고 과인의 부모님을 항왕에게서 구해 낼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게 바로 한왕이었다. 호탕하고 풍류도 알았지만 감상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지는 않았다.

한왕이 앞서 싸움을 돋우자 다음 날부터 치열한 공성전이 벌어졌다. 한군 10만 명이 형양성을 에워싸고 밤낮없이 들이쳤으나, 성안에 있는 종리매도 만만한 장수가 아니었다. 군민 5만 명을 이끌고 높고 든든한 성곽에 의지해 굳게 지키니 한왕이 아무리 장졸들을 다그쳐도 형양성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안되겠다. 광무산을 지키는 번쾌를 부르고 한신에게도 사람을 보내 관영과 주발만이라도 이리로 보내라고 하여라. 이번에는 반드시 형양을 되찾아 성고 오창과 더불어 관동의 근거지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성안에 있는 항왕의 가솔들을 사로잡아 항왕이 부모님을 볼모로 삼고 과인의 손발을 묶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한왕이 그러면서 번쾌와 한신에게까지 사람을 보내려 하였으나 그보다 먼저 이른 것은 패왕이 벌써 돌아오고 있다는 놀라운 소문이었다.

하남(河南)이라고는 하지만 동짓달로 접어들자 외황(外黃)의 추위도 만만치 않았다. 성고를 떠날 때 나름대로 채비를 한다고 해왔지만 성을 에워싸고 있는 초나라 장졸들은 벌써부터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포에 갑주를 걸치고 오추마()에 올라 외황성 성벽을 노려보고 있는 패왕 항우도 마찬가지였다. 말과 사람이 아울러 허연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성밖 멀리 농가들이 모여 있는 마을 쪽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대여섯 기()의 기마가 달려왔다. 패왕의 명을 받고 정탐을 나갔던 군사들이었다.

그래, 알아보았느냐?”

패왕이 다가오는 그들을 알아보고 손짓해 불러 바로 물었다. 그중의 하나가 시퍼렇게 언 얼굴로 대답했다.

팽월은 성안에 없습니다.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팽월은 벌써 엿새 전에 이곳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여우같은 놈. 어디로 갔다고 하더냐?”

그게 좀 이상합니다. 어떤 이는 하수(河水)를 건너 제나라로 갔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수양()으로 달아났다고도 합니다. 다시 진류(陳留) 쪽으로 가는 걸 보았다고 우기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본시 간사한 여우는 굴을 팔 때 달아날 길을 아홉 갈래로 내는 법이다.”

패왕은 그렇게 대답하며 양() 땅으로 달려와 맨 처음 떨어뜨린 진류성을 떠올렸다. ‘항왕이 왔다는 외침 한마디로 성문을 열고 무릎을 꿇던 진류성의 군민들이었다. 옹구(雍丘)와 고양(高陽)도 비슷했다. 고양에 팽월의 군사가 있어 겨우 하루 낮 하룻밤을 버티었으나, 그것도 다음 날은 성안 백성들만 남겨 놓고 모두 달아나고 없었다.

그 바람에 패왕의 대군이 성고에서 외황까지 오는 데는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대로 간다면 수양까지 되찾고도 대사마 조구(曺咎)와 약속한 보름 안에 성고로 돌아갈 수 있을 듯싶었다. 그런데 외황에서 그만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군민이 합심해 얼마나 굳게 버티는지 초나라 군사들이 사흘이나 힘을 다해 들이쳤지만 누구 한 사람 성벽 위에 한번 제대로 올라가 보지 못했다.

그러자 패왕은 다급해졌다. 양 땅에서 오래 붙들려 있다가 성고에서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몰라 더욱 급하게 군사들을 몰아댔다. 그러나 다시 이틀이 더 지나도 외황성은 여전히 끄떡 않았다. 거기다가 묘한 일은 상하(上下)와 군민(軍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지킨다는 것뿐, 누가 우두머리 되는 장수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패왕은 그날 다시 외황성을 들이치기 전에 정탐하는 군사를 풀어 성을 지키는 적장부터 알아보게 했는데 방금 돌아온 기마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럼 성을 지키는 장수는 누군지 알아냈는가?”

패왕이 마침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갑자기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몇 사람의 젊은 장수들이란 말은 들었으나 그 이름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름이 없다면 하찮은 졸개일 터, 많지도 않은 군사를 이끌고 과인에 맞서 닷새나 버틸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 농투성이들이 너희들을 속였을 것이다.”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들은 거야택(巨野澤)100 소년가운데 몇이라 했습니다.”

거야택의 100 소년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패왕 항우가 알 수 없다는 듯 탐마를 나갔다 온 군사에게 물었다. 그때 곁에 있던 계포가 그 군사를 대신해 패왕의 물음을 받았다.

팽월이 거야택에서 도둑질하며 살다가 처음 몸을 일으킬 때 따라나선 인근 마을 소년들로, 저희들이 먼저 팽월을 부추겨 기의(起義)에 나서게 했을 만큼 기백 있는 젊은이들입니다. ‘팽월의 일참(一斬)’으로 단련된 그들이 장수가 되어 이 성을 지키고 있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얕보아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팽월의 일참이란 또 무슨 소리요?”

모질기로 이름난 팽월의 군율입니다. 처음 그들 소년 100여 명이 팽월을 찾아가 우두머리가 되어 주기를 청했을 때, 팽월은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겨우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돋을 때 모여 거병(擧兵)하기로 하였는데, 그때 팽월은 시각을 어기면 참수(斬首)해도 좋다는 약조를 받아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이웃 마을 어른으로만 여겨 온 팽월이라 소년들은 그 약조를 무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여남은 명이나 늦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늦은 소년은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에야 정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팽월은, ‘내가 나이 들어 사양했는데도 그대들이 나를 억지로 졸라 우두머리로 세웠다. 그리고 오늘 해가 돋을 때 모이기로 약조를 했는데, 이렇게 지키지 않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늦게 온 사람이 많아 다 죽일 수는 없되, 가장 늦게 온 사람은 죽여 군율을 세워야겠다라고 말하고는 소년들 중에 대장을 뽑은 뒤 가장 늦게 온 소년의 목을 베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년들이 모두 웃으면서 차마 그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다음부터는 감히 군율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팽월은 기어이 그 소년을 끌어내 목을 베고, 제단을 차려 제사를 올리면서 군율의 엄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명을 내리니, 모두 놀라고 두려워 감히 얼굴을 들고 팽월을 바라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팽월의 무리가 나아감과 물러남에 저토록 재빠르면서도 빈틈이 없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이 모진 군율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팽월의 사람 부리는 재주에 은근히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슬며시 호승심이 일었다.

그 늙은 도적놈에게 제 졸개를 다루는 못된 꾀가 있다면, 과인에게는 겁 없이 맞서는 적을 다스리는 엄한 법이 있다. 저놈들에게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를 보여 주어야겠다.”

그러고는 먼저 외황성을 지키는 팽월의 장수들을 불러내 항복하기를 권해 보았다.

끝까지 과인에게 맞서다가 성이 떨어지면 너희들은 모두 산 채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다시 죽을 목숨이 남아 있지 않는데 팽월을 두려워할 게 무엇이냐? 어서 항복하라.”

그러나 대답 대신 날아온 것은 화살과 쇠뇌의 살이었다. 이에 성난 패왕은 그날로 다시 전군을 들어 무섭게 외황성을 들이쳤다.

그날 초나라 군사들은 날이 저물도록 공격을 퍼부었으나 외황성은 여전히 끄덕도 않았다. 날이 저물자 패왕은 징을 쳐 군사를 거두어들이게 했다. 헤아려 보니 앞서의 어느 날보다 많은 군사가 죽거나 다쳐 장졸들의 사기까지 말이 아니었다.

팽월은 주로 흩어진 위()나라 군사들을 거두어들여 군세(軍勢)를 불렸을 뿐만 아니라 한왕에게 항복하기 전에도 외황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 뒤에 다시 한왕이 팽월을 위나라 상국(相國)으로 삼아 양() 땅과 연고가 더욱 두터워지니, 이 땅의 백성들조차 그를 따르는 것 같습니다.”

용저가 성을 떨어뜨리지 못한 것을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이를 지그시 사리물고 듣던 패왕이 혼잣말처럼 받았다.

늙은 도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겁내는 거겠지. 그렇다면 성안 백성들에게 팽월보다 더 무서운 과인이 있음을 알려주어야 겠다.”

그리고는 도필리(刀筆吏)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밤 안으로 수백 통의 글을 써서 성안으로 쏘아 보내라. 만일 과인에게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가 성이 떨어지는 날이면 성 안에서 열다섯 살이 넘는 남자는 아무도 살아날 수 없을 것이라고. 모두 성 밖으로 끌어내 산 채로 땅에 묻을 것이라고. 그리고 또 덧붙여라. 하루를 더 기다려 줄 테니, 성 안 백성들은 힘을 합쳐 팽월의 졸개들을 쫓아내고 성문을 열어 과인에게 목숨을 빌라고.”

그런 패왕의 명에 따라 그날 밤 외황성에는 화살에 매달린 흰 비단천이 눈송이처럼 휘날리며 날아들었다. 이튿날 패왕은 정말로 군사를 내지 않고 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나 성안에서는 여전히 항복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날이 저물자 패왕은 한 번 더 문루 앞으로 나가 성안 군민들을 겁주었다.

너희들이 아무래도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받으려고 하는구나. 과인이 마음만 먹으면 이따위 성은 질그릇 부수듯 할 수 있다. 양성(襄城)과 신안(新安)의 일이 남의 얘기가 아닐 것이니라.”

양성과 신안은 모두 패왕 항우가 싸움에 이기고 사로잡은 적병을 모조리 생매장한 곳이다. 특히 신안에서 20만 항졸(降卒)을 산 채로 묻은 일은 울던 아이도 항왕이 온다(項王來)’고 하면 그칠 정도로 천하가 패왕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패왕은 우레 같은 소리로 그렇게 거듭 성안을 향해 외쳤을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정말로 전군을 들어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였다.

초나라 군은 바깥에서 에워싸고 있는 쪽이라 물자가 넉넉한 데다 머릿수도 원래부터 성 안에서 지키는 군민의 몇 배가 되었다. 하루 사이에 구름사다리가 수풀처럼 세워지고, 성문을 부술 충차(衝車)와 쇠뇌를 건 바퀴 달린 누각도 성밖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외황성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또 하루를 더 버텨냈다.

어쩔 수 없다. 내일 새벽 날이 밝는 대로 성을 친다. 이번에는 전군을 몰아 반드시 성을 떨어뜨려야 한다.”

더 참지 못한 패왕이 마침내 그런 명을 내렸다. 그런데 미처 그 밤이 새기 전이었다. 갑자기 외황성의 동문이 열리며 한 갈래의 군사가 치고 나왔다.

동문 쪽을 에워싸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급히 창칼을 집어 들고 맞섰으나 적병이 워낙 갑작스레 치고나온 터라 잘 막아내지 못했다. 죽기 살기로 덤비는 적병의 날카로운 기세에 밀려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때 패왕은 성벽 다른 쪽의 군막에서 새벽잠에 빠져 있었다. 성안에서 적병들이 뛰쳐나왔다는 말을 듣고 동문 쪽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적병이 길을 앗아 달아난 뒤였다.

적이 얼마나 되었느냐?”

많아야 삼천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잠깐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던 패왕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모두 깨워라. 어서 성문을 깨뜨리고 성벽을 넘어라. 적의 주력은 이미 달아났다.”

그때 갑자기 성벽 안이 수런거리며 성문이 절로 열렸다. 초나라 군사들이 창칼을 다잡으며 바라보니 이번에 성문을 나오는 것은 늙은이와 아녀자들을 앞세운 성안 백성들과 몇몇 현리(縣吏)들이었다.

외황 현령 장() 아무개가 성문을 열고 대왕을 맞아들입니다. 죄 없는 창맹(蒼氓)들을 가엾게 여겨 거두어 주옵소서.”

현리들 가운데 앞서 있던 늙은이가 패왕의 말 아래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빌었다. 머리칼이 허연 노인이 찬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항복을 비는 모습이 자못 애절했으나 패왕에게서 터져 나온 것은 벽력같은 호통이었다.

이놈들 어디서 과인을 속이려 드느냐? 네놈들은 어제까지 팽월의 졸개들을 도와 과인에게 맞서다가, 그것들이 모두 성을 빠져나가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그래놓고 간사한 낯짝과 애절한 눈물로 빈다고 너희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느냐?”

그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이것들을 모두 끌고 가 한곳에 몰아두고, 성안으로 들어가서 열다섯 살이 넘는 남자는 모조리 끌어내 오너라. 오늘 이것들을 모두 산 채로 땅에 묻어 과인의 군령이 엄함을 천하에 보여 주려 한다.”

갑작스러운 강습을 받은 탓에 많지 않은 적에게 밀려 길을 열어 주고만 초나라 장졸들도 심사가 뒤틀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두말없이 성안으로 뛰어들어 열다섯 살이 넘는 남자는 모조리 잡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이제 막 밝아오는 외황성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성안으로 뛰어든 초나라 군사들은 남자 꼴을 하고 있으면 코흘리개 어린아이를 빼고는 모조리 창칼로 마소 몰 듯 몰아 동문 밖으로 끌어냈다. 무섭게 덮쳐 오는 초나라 군사들을 보고 얼결에 달아나다 죽거나 다친 백성도 많았다.

해뜰 무렵이 되자 삼만이 넘는 외황성의 남자들이 모두 동문 밖으로 끌려나와 두려움과 추위에 떨며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것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하라!”

패왕이 그들을 버러지 떼 보듯 하며 다시 장졸들에게 놋그릇 깨지는 소리로 외쳤다. 초나라 군사들이 그들에게 괭이와 삽 따위를 던져 주며 무자비한 매질로 구덩이를 파게 했다.

초나라 군사들의 모진 매질과 자신들이 떨어진 처지가 기막혀 괴로운 외침과 구성진 울음을 쏟아내는 것은 구덩이를 파고 있는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초나라 군사에게 끌려간 아버지나 남편을 뒤따라온 여인네들과 아버지나 형을 따라온 아이들도 멀리서 자신이 묻힐 구덩이를 파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함께 비명을 지르고 울었다.

저것들을 모두 쫓아버려라!”

패왕이 듣기에 성가신 듯 그런 아녀자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사들이 그리로 우르르 달려가 창대로 그들을 몰아냈다. 그때 그들 중에 한 소년이 패왕 앞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대왕, 제가 한마디 물을 것이 있습니다. 대답해주시겠습니까?”

패왕이 돌아보니 이제 겨우 코흘리개를 면한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워낙 당찬 데다 눈빛도 아이 같지 않게 번쩍이는 것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데가 있었다. 창대로 소년을 몰아내려는 군사를 손짓으로 말리고 물었다.

너는 누구며 몇 살이냐?”

저희 아버님은 외황 현령의 문객(門客)으로 지금 저기서 구덩이를 파고 계십니다. 저는 열세 살이라 이렇게 죽음을 면했습니다만 그게 반드시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닙니다.”

말하는 품이 열세 살 난 아이 같지 않게 맹랑했다. 그러나 패왕은 짐짓 험한 표정으로 받았다.

좋다. 네가 과인에게 물어볼 것이 무엇이냐? 네 나이 열셋이라 하나 허튼 수작을 부리다가는 네 아비와 함께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겁먹은 눈길이 아니었다.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대왕께서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장수로 전장을 떠돌면서 한 세상을 마치시겠습니까? 아니면 민심을 거두어 천하를 얻고 가여운 창맹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십니까?”

어린놈이 그건 왜 묻느냐?”

만약 대왕께서 민심을 거두어 천하를 얻고 가여운 창맹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신다면 이렇게 해서는 결코 아니 되십니다.”

그럼 너는 늙은 도적놈에게 빌붙어 감히 과인에게 맞서온 저 벌레 같은 것들을 살려두란 말이냐?”

대왕.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팽월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힘으로 외황 사람들을 억누르니 사람들은 두려워서 짐짓 항복한 체하고 대왕을 기다려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새벽 팽월의 졸개들이 모두 달아나자 바로 성문을 열고 대왕께 항복한 것인데, 이렇게 모두 산 채 땅에 묻으려 하시니, 만약 이 일이 널리 알려지면 앞으로 어느 백성이 대왕을 믿고 의지하려 들겠습니까? 대왕께서 기어이 저들을 죽이신다면 천하는커녕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팽월이 차지하고 있던 양() 땅의 성 열 개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항복해봤자 산 채 땅에 묻힐 것이니 두려워서 누가 항복하려 들겠습니까?”

전에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알 수 없게도 그날따라 그 소년의 소리가 패왕의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싸움이 길어지고 정치적이 되면서 패왕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어떤 이치를 그 소년이 뚜렷하게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과인은 지난날 양성(襄城)에서도 3만을 묻은 적이 있고 신안(新安)에서도 20만을 묻었다. 모두 과인에게 빨리 항복하지 않고 끝내 맞서다가 그리되었으니, 그게 과인을 거스르는 자들을 다스리는 법이다.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그 법을 바꾼단 말이냐?”

패왕 항우가 자신도 모르게 풀리는 목소리를 짐짓 다잡으며 거칠게 되물었다. 소년이 어린 나이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저리로 보내 아버지와 함께 묻어 주십시오. 대왕을 기다려 새로운 세상을 기약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일찍 죽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 채로 가만히 눈을 감는 품이 마치 한세상을 다 산 늙은이 같았다. 전란의 시대가 길러 낸 그 애절한 조숙에 감동한 것일까, 순간 패왕의 바위 같은 심사가 슬며시 움직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아직도 엄격하기 짝이 없었다.

좋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한번 믿어보겠다. 그러나 아직 모두 용서한 것은 아니다. 만약 수양()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성이라도 다시 과인에게 맞서는 성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와 너희들까지 산 채 땅에 묻겠다!”

그러면서 땅에 묻으려던 외황의 남자들을 모두 놓아 보내게 하였다.

다음 날 패왕은 다시 동쪽으로 군사를 냈다. 그 사이 소문이 퍼졌는지 첫날 저녁나절 초나라 군사들이 이른 성은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성문을 열어 패왕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사흘, 패왕이 동쪽 수양성에 이를 때까지도 항복하지 않고 뻗대는 성은 하나도 없었다.

수양성까지 싸움 없이 항복해 오자 패왕은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허망한 기분까지 들었다. 팽월이 전에도 오래 머물렀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그리로 달아났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은 터라, 수양성이 싸움 없이 항복해 온 것이 패왕에게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싸우는 자가 이제 싸워 이기려는 적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니 이 무슨 괴상한 이치냐. 많이 죽여야 자랑이 되는 게 싸움이 아니냐. 거기다가 알 수 없는 일은 더 있다. 싸울 채비를 하고 기다리다가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하다니, 그것은 또 얼마나 어이없는 노릇이냐. 적의 투지를 녹일 너그러움이 정말로 있다는 것이냐, 아니면 비겁한 적의 두려움이 구실을 얻은 것뿐이냐.)

패왕처럼 타고난 전사(戰士)로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옛날 숙부 항량에게 병법을 배울 때 흘려들은 구절을 퍼뜩 떠올리고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인가. 병가(兵家)들이 걸핏하면 우겨대듯, 이렇게 이기는 것이 가장 잘 이기는 것이라면, 군사를 부려 싸운다는 게 얼마나 까다롭고 성가신 일이 되겠는가.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싸움이 이런 것이라면 참으로 암담하구나.)

어쩌면 그때 패왕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 늦었고, 그가 빠져 있는 처지도 그 깨달음을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오래잖아 날아든 놀라운 소식이 모처럼 가라앉고 있던 패왕의 심기를 바닥부터 휘저어 놓았다.

성고성이 한왕 유방의 손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성고가 떨어지다니? 대사마 조구는 어찌되었느냐? 과인이 떠나올 때 적지 않은 군사를 남겨 주고 사마흔과 동예까지 붙여 주었거늘.”

전갈을 가지고 달려온 군사에게 패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형양의 종리매에게로 몸을 피한 항양이 보낸 그 군사가 구성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사마께서는 목을 찔러 자결하셨습니다. 전 새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사마를 뒤따랐습니다.”

과인이 떠나올 때 조구에게 성안에서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그런 꼴을 당했다는 것이냐?”

들을수록 기막히고 분통이 터지는지 패왕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한왕이 군사들을 시켜 대사마께 며칠이나 계속 욕을 퍼붓게 하다가, 갑자기 사수(5)가로 물러나 글로 다시 대사마를 꾀어냈습니다.”

대사마나 사마흔에게 있던 서생 기질이 끝내 일을 그르쳤구나. 어서 군사를 돌려라! 내 이 엉큼하고 능글맞은 장돌뱅이 놈을 반드시 사로잡아 목 베어야겠다.”

패왕이 더 참지 못해 칼을 짚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러다가 잊고 있었던 것을 문득 기억해낸 듯 물었다.

그렇다면 성고성 안에 있던 사람과 물자는 어찌 되었느냐?”

그러나 패왕의 목소리에는 진작부터 궁금히 여겨온 것을 억눌러온 침중함이 느껴졌다. 그 군사도 패왕이 정작 무엇을 궁금해 하는 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대사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성 안에 있던 항양 장군에게 전갈을 보내 사람과 재물을 형양으로 옮기게 했습니다. 대왕의 가솔과 행궁(行宮)의 사람들은 모두 형양성으로 옮겨 종리매 장군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군사가 그래놓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패왕의 얼굴이 알아보게 펴지는 것을 보고 다시 조심스레 이었다.

추격이 워낙 다급하여 금은과 화뢰(貨賂)가 실린 수레는 모두 한나라 군사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말에 다시 벌컥 화를 내며 그 군사를 노려보던 패왕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문득 목소리를 풀었다.

재보야 다시 되찾아오면 된다. 내 당장 달려가 그 흉물스러운 장돌뱅이를 죽이고 빼앗긴 재보를 되찾으리라.”

그러고는 장졸들을 군막으로 불러 모아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게 했다.

다음 날 패왕을 따라 팽월을 잡으러 왔던 초나라 군사들은 일껏 차지한 열일곱 개의 성을 내놓고 다시 성고로 돌아갔다. 그것도 되도록 빨리 가기 위해 짐 될 만한 것은 모두 버리니, 대군이 먹을 곡식도 닷새치를 넘지 못했다. 곡우(曲遇)에 이르기도 전에 종리매가 보낸 사자가 달려와 다시 급한 소식을 알렸다.

성을 에워싼 한군의 기세가 여간 사납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이르시기 전에 성이 깨지는 낭패를 당할까 두렵습니다.”

그때 한왕 유방은 형양성을 에워싸고 마지막으로 불같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패왕이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어 그 전에 형양성을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종리매도 무얼 믿고 그러는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성을 지켜냈다.

연이틀 공성으로 적지 않은 군사만 잃은 한왕은 잠시 군사를 형양성 동쪽으로 물린 뒤에 장량과 진평을 불러 걱정했다.

아무리 전군을 몰아 들이쳐도 형양성이 끄덕도 않으니 큰일이오. 게다가 항왕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실로 걱정이오.”

아무리 항왕이라 할지라도 수백 리에 펼쳐진 여남은 성을 보름 만에 평정하고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항왕이 성고를 떠날 때 조구에게 친 허풍이 씨가 되어 생겨난 헛소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진평이 그렇게 한왕을 위로했다. 그러나 장량은 진평과 생각이 다른 듯했다.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날 장하()를 건널 때, 군사들에게 솥과 시루를 깨고 사흘치 군량만을 지닌 채 달려가게 해 거록(鉅鹿)을 구해낸 항왕입니다. 거기다가 팽월은 항왕의 그림자만 보고도 자취 없이 달아나 버리니 보름이면 양() 땅의 여남은 성쯤은 쓸어버리고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마땅히 그때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마치 그런 장량을 편들기라도 하듯 탐마(探馬)로 나갔던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아룁니다. 항왕의 대군이 어제 아침 곡우를 떠났다고 합니다.”

뭐 벌써 곡우를 지났다고?”

패왕 항우의 무서운 속도와 집중력을 잘 알고 있는 한왕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장량의 낯빛도 더욱 어두워졌다.

항왕이 마음먹고 군사들을 몰아쳤다면 벌써 이 부근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어서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하자 유방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장졸들과 함께 잠시 서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소? 관중으로 돌아가 쉬면서 항왕의 예봉을 피한 뒤에 다시 나와 싸워 보는 것도 한 방책일 것이오.”

그건 아니 됩니다. 만약 종리매가 성을 뛰쳐나와 우리 앞길을 막고 그 뒤를 항왕의 대군이 들이치면 그야말로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 되고 맙니다.”

이번에는 진평이 정색을 하고 나서 그렇게 말했다. 장량도 진평을 거들어 말했다.

대왕께서는 벌써 역((,))선생 이기(食其)의 말을 잊으셨습니까? 무릇 임금 노릇 하려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안다 하였습니다. 오창은 물과 뭍으로 천하의 곡식이 모였다 나뉘는 곳이니, 바로 백성들의 하늘이 있는 곳입니다. 또 성고와 형양은 오창과 더불어 관동을 경영하는 든든한 발판이라 결코 잃을 수 없는 땅입니다. 이번에 이 땅을 버리고 관중으로 물러나시면 다시는 되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고로 돌아가 항왕과 싸워보잔 말이오?”

장량의 말을 들은 한왕이 왠지 질린 듯한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장량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받았다.

성고는 몇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주인이 바뀔 만큼 모진 싸움을 치렀습니다. 그 성벽은 헐고 해자는 메워져 지키기에 좋은 곳이 못됩니다. 더구나 대왕께서 그리로 드시면 성난 항왕이 전력을 다해 들이칠 것인데, 그 기세를 어떻게 당해 내시겠습니까?”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머뭇머뭇 말했다.

차라리 광무산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광무산으로?”

한왕이 얼른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그곳은 형양을 대신해 오창 성고와 연결해 지킬 수 있는 땅입니다. 거기다가 광무산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번쾌 장군이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산성은 번쾌가 이끄는 1만 군사로도 비좁다 들었소. 과인의 5만 대군이 그 작은 산성에 어떻게 든단 말이오? 또 어렵게 성안에 대군을 우겨넣는다 해도 무얼 먹고 싸운단 말이오?”

그 서쪽 산기슭에는 마른 땅을 파고 지붕을 덮어 만들어 곡식을 갈무리하는 창고(穴倉)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으니, 오창의 곡식은 태반이 거기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 곡식을 먹으며 산봉우리 전체를 성채 삼아 험한 동쪽 기슭에 의지해 싸우면 아무리 항왕이라도 쉽게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항왕이 대군을 이끌고 광무산을 돌아 서쪽 기슭으로 밀고 들면 어찌할 것이오?”

아무래도 걱정스럽다는 듯 한왕이 다시 그렇게 물었다. 말을 해 나가는 동안에 더욱 자신이 생겼는지 장량이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광무산 서쪽은 하수(河水)가 흘러 조나라에서 오는 우리 원군에게 열려있는 셈이니, 항왕으로서는 뒤가 불안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 기슭은 경사가 완만한 대신 정면이 넓게 펼쳐져 있어 병력을 집중하기에 아주 나쁩니다. 또 산기슭의 혈창(穴倉) 앞에는 높고 든든한 누벽(壘壁)이 쳐져 있어 어떤 산성에 못지않습니다. 기세를 높이 치고 신속함과 집중을 귀하게 여기는 항왕의 성품으로 봐서는 결코 그리로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한왕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하지만 언제 패왕의 대군이 몰려올지 모르는 터에 그곳에서 한없이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마침내 한왕은 묻기를 그만두고 결단을 내렸다.

좋소. 광무산으로 갑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사람들을 보내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오래잖아 장수들이 몰려오자 한왕이 말했다.

광무산에서 항왕과 싸운다. 모두 진채를 뽑아 광무산으로 가자.”

그러면서 말 위에 올라 앞장을 서는 한왕의 얼굴은 언제 두려워하고 걱정했느냐는 듯 태평스럽기 짝이 없었다.

패왕 항우가 군사를 몰아 형양 동쪽에 이르렀을 때 이미 한왕 유방은 광무산으로 물러난 뒤였다. 앞서 살피러 보낸 군사들로부터 한왕이 북쪽 어딘가로 달아나 숨어버렸다는 말을 듣자 패왕이 분한 듯 소리쳤다.

이 쥐새끼 같은 장돌뱅이 놈이 또 꼬리를 사리고 달아나 버렸구나. 어서 사람을 풀어 유방이 어디 숨었는지 알아보아라.”

그리고는 형양성으로 군사를 몰았다. 얼마 가지 않아 형양성 쪽에서 부옇게 먼지가 일며 한 갈래의 인마가 달려왔다. 패왕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마중을 나온 종리매의 군사였다.

대왕께서 한군을 쳐부수고 신이 뒤에서 길을 끊으면 이번에는 유방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실로 아깝습니다. 유방은 이제 달아나는 데도 이력이 붙은 듯합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몸소 달려온 종리매도 분한 듯 씨근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패왕과 종리매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형양성 동문으로 들 무렵이었다. 그새 한왕의 자취를 알아낸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한왕 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유방이 광무산으로 갔다고?”

패왕이 뜻밖이라는 듯 그렇게 물었다. 용저가 옆에서 제 짐작대로 말했다.

대왕의 위엄에 겁을 먹은 한왕이 광무산성을 지키는 번쾌에게로 달아난 듯합니다.”

그러자 패왕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유방은 이제 독안에 든 쥐다. 내 전에도 광무산성이 손톱 밑의 가시처럼 거슬렸으나 보잘것없는 성 하나에 대군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길만 앗으면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유방이 그리로 갔다 하니 광무산성은 전군을 몰아 깨뜨려 볼 만한 독이 됐다. 모두 그리로 쳐들어가 유방을 사로잡고 이번에는 싸움을 끝내도록 하자.”

그때 계포가 패왕의 옷깃을 잡듯 하며 조심스레 일깨웠다.

한왕이 비루하고 겁 많기는 하지만 또한 장돌뱅이로 여러 해 저자 바닥을 헤매 눈치가 빠르고 남과 나를 아울러 잘 압니다. 거기다가 장량과 진평이 곁에 붙어 있으니 그리 지각없이 군사를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군을 가볍게 보아 함부로 대군을 광무산으로 몰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다면 광무산으로 가지 않았단 말인가?”

패왕이 못마땅한 눈길로 계포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군의 기세로 이어질 패왕의 호기에 찬물을 끼얹은 잘못을 눈길로 나무라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계포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지낼 때였다. 패왕의 눈길에 속으로 움찔했으나 내친김이라 그대로 속을 털어놓았다.

한왕이 광무산으로 간다 해도 번쾌가 지키는 산성으로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성은 한왕이 이끈 대군이 들어앉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너무 내려앉아 있어 지키기에도 그리 좋은 곳이 못됩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한왕이 군사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갔다면 아마도 서광무(西廣武) 봉우리에 올라타고 산성을 발치의 보루로 삼으며 혈창(穴倉)의 곡식으로 군량을 삼을 듯합니다. 그리 되면 설령 대왕께서 대군을 이끌고 가신다 해도 한왕에게 지리(地利)를 잃어 자칫하면 낭패를 겪게 될 것입니다.”

서광무(西廣武)는 무엇이며 혈창(穴倉)은 무엇인가? 또 산봉우리가 높아도 치고 올라가면 될 것이고, 산성이 가로막아도 깨뜨리면 그만이다. 그 험한 함곡관도 쳐부수고 넘었는데, 지리(地利)는 무슨 놈의 지리냐?”

패왕이 완연히 심기가 상한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그래도 계포는 물러나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대왕께서도 아시듯 광무산은 오창 서남쪽 30리 되는 곳에 있는데 삼황산(三皇山)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산 위에 있는 동서 두 개의 봉우리 가운데 서쪽에 있는 봉우리를 서광무라 하며, 번쾌가 지키는 산성은 그 중턱에 있습니다. 또 서광무 서쪽 등성이에 땅을 파 만든 큰 곡식창고가 여럿 있는데 이를 혈창이라 합니다. 진나라 때부터 오창에 모인 곡식을 옮겨 갈무리하던 곳입니다. 신이 지리를 말한 것은 동서 광무가 깎아지른 듯한 광무간(廣武澗)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데다, 그 바닥에는 변수((,))라는 물까지 흐르고 있어 병진(兵陣)을 펼쳐볼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계포가 젊은 날 임협(任俠)으로 떠돌며 익힌 지리를 바탕으로 그렇게 자세히 일러 주자 패왕도 그 뜻을 알아들었다. 성난 기색이 조금 가신 얼굴로 계포에게 다시 물었다.

광무간이 그렇게 좁고 험하다면 다른 기슭으로 서광무를 치면 되지 않겠는가?”

서광무의 다른 삼면은 전면이 넓은 데다 비탈이 가팔라 위에서 지키기에는 좋고 아래에서 쳐 올라가기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산 위에 흔해 빠진 바위만 굴려대도 나무꾼 하나가 날랜 군사 열 명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거기다가 조금 비탈이 덜한 곳은 높은 산성과 혈창의 누벽(壘壁)이 막고 있습니다. 함부로 얕볼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먼저 형양성으로 드신 뒤에 형세를 면밀히 살펴 군사를 내도록 하십시오.”

계포가 거기까지 말하자 부근의 지리를 잘 아는 다른 장수들도 용기를 내어 계포의 말을 뒷받침해 주며 은근히 패왕을 말렸다. 어느새 저물어 가는 동짓달의 짧은 해도 패왕의 서두름을 달랬다. 거기다가 저만치 형양성이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떠올리게 된 우미인(虞美人)의 모습이 불현듯이 욕망과 함께 패왕을 성 안으로 잡아끌었다.

형양성 안으로 들어간 패왕은 갑주와 전포를 벗고 그동안 덮어쓴 싸움터의 먼지를 씻어내기 바쁘게 술상과 함께 우미인을 불러들이게 했다. 오래잖아 패왕의 성품에 맞게 차린 소박한 술상이 먼저 나왔다. 패왕이 즐기는 고기 몇 접시에 독한 술 한 동이, 큰 잔 하나가 놓인 술상이었다. 이어 역시 그 술상처럼 소박하게 단장한 우미인이 나와 가볍게 아미를 숙인 뒤 상머리에 앉았다. 알아볼 듯 말 듯 은은한 화장에 패왕이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으로 지은 옷이었다.

따르라.”

패왕이 큰 잔을 내밀며 말했다. 우미인이 말없이 국자를 들어 술 한 잔을 따르고 다시 그림자처럼 앉아 그윽하게 패왕을 올려보았다. 목마른 사람처럼 국대접만 한 술잔을 단숨에 비운 패왕이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걱정하였다.”

그리고 힐끗 우미인을 건네본 뒤 패왕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만약 너까지 유방에게 빼앗겼다면 항양(項襄)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조구(曹咎)조차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희(虞姬)를 자신의 여자로 만든 지는 벌써 3년이 되어가고 후궁(後宮)으로 들여 미인(美人)에 봉한 지도 2년이 넘었지만, 패왕은 아직도 우희의 맑고 그윽한 두 눈과 마주치면 함양 궁궐에서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었다. 패왕의 목소리를 떨리게 한 것도 바로 그런 가슴 두근거림이었다.

벌써 여러 날 패왕과 함께 밤을 보내고도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난 듯하기는 우희도 마찬가지였다. 죽은 듯 몸을 맡기고 있던 잠자리는 이제 뜨겁게 마주 안는 사이로 변했지만, 다른 곳에서 만나면 패왕은 여전히 낯설고도 위태로운 힘과 열정의 추상일 뿐이었다. 따라서 어쩌다 패왕과 눈길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잠자리에서 숨 막힐 듯 끌어안아 올 때와 달리 우희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먼저 움츠러들기부터 했다.

신첩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발그레해진 아미를 숙인 우 미인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받았다. 듣고 있는 패왕의 얼굴도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정인(情人)을 마주 보고 있는 사람처럼 불그레했다.

하지만 패왕과 우 미인이 처음 만난 때부터 그때까지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와 같은 그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녀로 만난 지 3년이라지만 한 지붕 아래 머물면서 정분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패왕이 처음 팽성에 도읍을 정하고 개선한 뒤의 몇 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패왕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기 시작한 첫해의 분주함 사이사이에 불어간 봄바람일 뿐이었다.

이듬해 정월 패왕은 전영(田榮)을 치러 제나라에 가 있고 우 미인은 팽성에 남겨졌다. 그러다가 4월에 팽성이 한왕 유방에게 떨어지자, 겨우 거기서 몸을 빼낸 그녀는 그 열흘 뒤 5월에 들어서야 산동(山東)의 진중에서 패왕을 만나게 된다. 날수를 헤아려 보면 패왕과 우 미인이 함께 지낸 날보다는 떨어져 있으면서 그리워한 날이 더 많았다.

그 뒤 패왕은 지켜야 할 가까운 사람과 재물을 자신의 군사들과 함께 움직이게 했지만, 그래도 그들을 진채 안에 둘 수는 없었다. 패왕의 본대가 진채를 벌인 곳에서 가까운 성읍을 골라 그 안에 두고 돌보게 하였는데, 그때 가장 소중하게 돌보아야 할 사람이 우 미인이었다. 그러나 멀리 팽성에 있을 때보다 좀 더 패왕과 가까이 있게 되었다는 것뿐, 여자로서 패왕과 함께할 수 있는 밤은 많지 않았다. 갈수록 늘어나는 전선과 그만큼 분주해지는 패왕 때문이었다.

전횡(田橫)이 아직 제나라 성양(城陽)에서 버티고 있고, 한왕 유방이 팽성을 함락해 패왕의 위신에 크게 흠집을 내기는 했으나, 그때가지만 해도 싸움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패왕이었다. 제나라 전토를 짓밟고 전영을 죽인 뒤에도 전군을 무사히 빼내 돌아왔고, 자신은 그중에서 뽑은 3만 정병으로 한왕 유방의 56만 군사를 쳐부수어 그들의 시체로 두 번이나 강물을 막았다. 따라서 그 뒤로도 패왕의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은 부풀기만 했다. 거기다가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완벽 지향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해 패왕을 누구보다 바쁘고 고단한 장수로 만들었다.

한왕 유방은 막상 패왕과 마주치기만 하면 흠씬 두들겨 맞은 개처럼 꼬리를 사리고 도망쳤지만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며칠 되지 않아 또 어디선가에서 군사를 모아 멀리서 으르렁거리거나 어느새 다가와 발뒤꿈치를 물려고 덤벼들었다. 그러다 보니 전선이 이리저리로 오락가락해 그를 상대하는 패왕으로서는 그만큼 전선이 넓어진 꼴이 되었다.

거기다가 한신에게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치러 보낸 뒤로 한왕은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패왕과 맞서는 새로운 전선을 만들어 내는 데 맛을 들였다. 경포를 꾀어 구강(九江)에 전단(戰端)을 여는가 하더니, 다시 팽월을 꼬드겨 양() 땅을 어지럽혔다. 관영과 조참을 떼내 한신 밑에서 따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노관과 유고(劉賈)를 양 땅으로 보내 팽월을 돕게 하였다. 제나라에도 사람을 보내 그 왕을 어르고 달래는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기야 패왕도 때로 사람을 보내 딴 전선을 열고 맞서게 했지만, 그 성격은 유방이 형성한 전선과 아주 달랐다. 기껏해야 종리매나 용저처럼 오래된 심복(心腹)에게 자신이 거느리던 군사를 떼어주어 보냈고, 그들이 맡은 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작전범위가 정해진 한 전투거나, 아니면 패왕이 그곳에 이를 때까지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따라서 한왕이 펼쳐둔 여러 전선을 번갈아 뛰어다니며 싸우는 것은 실상 패왕 혼자인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나라인 서초(西楚)와 그 도읍 팽성에 패왕이 편히 머물 수 있는 날은 하루도 없고, 심지어는 한 전선에도 한 달 넘게 머물기 어려웠다. 또 지그시 참고 기다리는 것은 패왕이 좋아하는 병략(兵略)이 못돼 전선에서도 한가한 날은 별로 없었다. 싸움이 없는 날보다는 피투성이 전투를 벌이는 날이 더 많아, 우 미인을 찾아보러 군막을 떠날 수 있는 밤이 드물 수밖에 없었다.

멸문(滅門)의 참화를 겪고 어렵게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는 때가 와도 처자를 두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는데, 숙부 항량과 마찬가지로 패왕도 그랬다. 쫓기던 어린 날의 참혹한 기억 때문일 테지만, 패왕은 그때 이미 나이 스물아홉이고 세력은 천하를 호령하면서도 왕비를 맞아 후사(後嗣)를 두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둘 사이에 정궁(正宮)이 가로막지 않은 것 또한 우 미인과 패왕 사이를 여느 군왕과 후궁(後宮) 사이보다 각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밖에 전쟁이란 생존양식의 격렬함과 그 승패가 연출하는 비장미에 홀려 있는 젊은 무장의 순직함도 우 미인과의 사랑을 뒷사람의 입에까지 오르내리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패왕은 싸움 이외에는 모든 것에 단순하고 소박하였다. 먹고 마시는 것에 그러했고, 걸치는 옷과 머무는 집에 그러했듯, 여자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아마도 우 미인은 싸움터를 떠돌면서 젊은 날을 보내던 패왕이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였다.

그런 우 미인이 밉살맞은 적의 손에 떨어질 위기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다시 패왕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그 밤이 조용하겠는가. 몇 차례 술잔을 비우며 띄엄띄엄 어눌한 정담(情談)을 주고받던 패왕이 갑자기 우 미인을 삼키듯 껴안았다 풀어 주며 나직하게 말하였다.

불을 끄고 침실로 들라. 오늘밤은 그대와 산이 뽑히고 땅이 뒤집힐 전투를 치르리라.”

그리고 함께 불같은 하룻밤을 보낸 뒤 믿고 부리는 집극랑(執戟郞) 하나를 불러 말했다.

우 미인에게 맞는 갑주를 한 벌 구해 주고, 시양졸(養卒)들의 군막 한 채를 내주어라. 앞으로는 과인의 중군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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