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불가리아 군주제의 마지막 왕가
외국어 표기 House of Saxe-Coburg and Gotha(영어), 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
시기 1887년 ~ 1946년
지역 불가리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기원
이 가문의 기원은 헝가리의 왕가인 작센-코부르크-코하리와 독일 베틴 왕가의 일파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이다. 코하리 공인 아우구스트 폰 작센-코부르크-고타가 프랑스의 루이 필립의 딸인 클레멘티나와 결혼하여 낳은 막내아들이 불가리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시작이었다.
페르디난드 1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발전: 세 명의 차르
1877년부터 시작된 러시아-터키 전쟁에서 러시아의 승리로 불가리아는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하였고, 제3 불가리아 왕국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3 불가리아 왕국의 초대 왕은 바텐베르크 가문의 알렉산더르 공으로 1879년 의회에서 추대되었다. 그러나 날로 심해져 가는 러시아의 내정 간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알렉산더르 공은 친러파에 의해 폐위되고 1887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페르디난드 1세가 새로 추대되었다.
1878년 불가리아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오스만제국의 속령으로 아직 자주권과 외교권이 없는 상황이었다. 1908년 9월 22일 페르니난드 공은 고대 수도인 터르노보에서 ‘불가리아 독립선언’을 선포했다. “불가리아 국민에 고함…”으로 시작하는 이 선언문에서 페르디난드는 1878년 2월부터 불가리아는 독립국임을 선언하고, 대외적으로 외교권을 가진 자주 국가임을 알렸다. 또한 페르디난드 1세는 차르 페르디난드로 승격되었으며, 전임자인 알렉산더르 공이 되찾은 남부 불가리아, 즉 동루멜리아 지역이 불가리아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불가리아 독립선언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 불가리아는 독일과 비밀조약을 맺어 동맹국 측에 가담하였다. 불가리아는 세르비아, 루마니아를 상대로 전투에서 승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들어간 막대한 자금과 인명 손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1918년 10월 페르디난드 1세는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권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폐위된 페르디난드 1세는 독일로 망명해 1918년부터 독일의 코부르크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페르디난드 1세가 폐위되자 그의 장자인 보리스 3세(재위 1918년 ~ 1943년 8월 28일)가 차르를 이어나갔다. 그 당시 불가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불가리아 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바르다르 마케도니아(현재는 마케도니아 영토), 서부 트라키아 지역까지 지배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차르 보리스 3세 ‘통합한 자’로 불리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압력으로 추축국1)에 가담하게 된 차르 보리스 3세는 히틀러를 방문하고 온 이후인 1943년 8월 28일 급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의 혼돈과 몰락: 어린 차르
1943년 갑작스런 선왕의 죽음으로 보리스 3세의 아들인 시메온 2세가 차르로 즉위했다. 이때 시메온의 나이는 불과 6살이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약 3년간 불가리아의 차르였던 시메온은 나이가 어려 조부인 차르 페르디난드 1세의 둘째 아들 키릴 프레슬라브스키가 섭정을 하였다. 키릴 공의 친독일적 노선은 소련의 불만을 샀고, 소련과 지속적인 외교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44년 9월 키몬 게르기에프가 주도하는 ‘조국전선’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의 승리로 키몬 게르기예프 내각이 성립하고 공산당이 주도하는 조국전선에 의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듬해인 1945년 친독 노선 정치인의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을 때 키릴 공도 처형되었다. 1946년 9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5.6%가 공화제에 찬성하여 시메온 2세와 그 가족들은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1939년 불가리아 청년 적십자에서 발행한 차르 시메온의 모습이 담긴 우표
이로써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약 80여 년간의 불가리아 왕정 시대는 끝이 나고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와 대중문화
6살에 즉위한 마지막 차르인 시메온 2세는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망명하였지만, 망명한 지 50년이 되던 1996년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그는 2001년 총리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제48대 불가리아 총리를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한때 차르였던 소년(Момчето, което беше ца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져 불가리아 국립문화궁전에서 상영되었다. 2014년에는 자서전 『특별한 운명(Една необикновена съдба)』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을 하였다. 시메온 2세는 지속적으로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키며 2015년 7월에는 CNN의 국제특파원인 아만포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