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感遇
1
盈盈窓下蘭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
枝葉何芬芳 줄기에 꽃 그리도 향기롭더니
西風一被拂 가을바람 잎새에 한 번 스쳐가자
零落悲秋霜 슬프게도 찬서리에 다 시들었네.
秀色縱凋悴 빼어난 그 모습 기울어져도
淸香終不死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感物傷我心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
涕淚沾衣袂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신다.
2
古宅晝無人 고택에는 낮에도 사람이 없어
桑樹鳴鵂鶹 뽕나무에는 부엉이와 올빼미만 운다.
寒苔蔓玉砌 옥돌 섬돌엔 차가운 이끼와 넝쿨만 무성하고
鳥雀棲空樓 빈 누각엔 새들만 깃들어 있구나.
向來車馬地 지난날 수레와 마차 오가던 곳
今成孤兎丘 지금은 토끼 언덕이 되었구나.
乃知達人言 이제야 알겠구나, 선인의 하신 말씀
富貴非吾求 부귀는 내가 구할 바가 아니라.
江南曲
人言江南樂 사람들은 강남의 즐거움 말하나
我見江南愁 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고 있네.
年年沙浦口 해마다 이 포구에서
腸斷望歸舟 애타게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千山鳥飛絶 온 산엔 새도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 온 길엔 인적마저 끊겼는데
孤舟蓑笠翁 외로운 배안에 삿갓 쓴 늙은이가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강에서 홀로 낚시질 하네
生長江南邦 강남 남쪽 따뜻한 마을에서 자라
少年無別離 어렸을 때는 이별을 모르고 자랐는데
方知年十五 나이 방년 15세에 이별을 알았다네
嫁與弄潮兒 뱃사공에게 시집을 가서
湖裡月初明 호수 속에 달이 막 뜨는데
采蓮中夜歸 연밥을 따다 밤중에 돌아오네
輕撓莫近岸 고이 배 저어, 기슭에 대지 마라
恐驚鴛鴦飛 잠든 원앙새 놀라 날아갈까 두렵구나
이 시는 강남을 노래한 것으로, 중국 악부(樂府)의 명칭을 빌려 한 여인의 애타는 기다림을 읊고 있다. 사람들은 강남이 즐겁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시름겹다. 왜냐하면 해마다 강남으로 가신 임을 모래톱 포구에 서서 애타는 마음으로 돌아올 배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심수경(沈守慶)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허난설헌의 시재(詩才)에 대한 일화(逸話)가 등재(謄載)되어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부인(婦人)으로 문장에 능한 자는 옛날 중국의 조대가(曹大家)와 반희(班姬), 그리고 설도(薛濤) 등으로 이루다 기재하지 못하겠다. 중국에서는 기이한 일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는 일로 기이하다 하겠다. 문사(文士) 김성립(金誠立)의 처(妻) 허씨는 바로 재상 허엽의 딸이며, 허봉(許篈)·허균(許筠)의 여동생이다. 허봉과 허균도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지만, 그 여동생인 허씨는 더욱 뛰어났다고 한다. 호는 경번당(景樊堂)이며 문집(文集)도 있으나 세상에 유포되지 못하였지만, 「백옥루상량문」 같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송(傳誦)하고 시 또한 절묘하였는데, 일찍 죽었으니 아깝도다(婦人能文者 古有曹大家班姬薛濤輩 不可彈記 在中朝非奇異之事 而我國則罕見 可謂奇異矣 有文士金誠立妻許氏 卽宰相許曄之女 許篈筠之妹也 篈筠以能詩名 而妹頗勝云 號景樊堂 有文集 時未行于世 如白玉樓上樑文 人多傳誦 而詩亦絶妙 早死可惜).”
그런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이와 다른 이론(異論)이 있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허난설헌의 시는 근대 규수(閨秀)들 가운데 1위이다. 그러나 참의(參議) 홍경신(洪慶臣)은 정랑(正郞) 허적(許)과 한집안 사람처럼 지내는 사이였는데, 평소에 〈난설헌의 시는 2~3편을 제외하고는 다 위작(僞作)이고, 「백옥루상량문(白玉樓上梁文)」도 그 아우 허균(許筠)이 사인(詞人) 이재영(李再榮)과 합작한 것이다〉 했다.’ 하였고, 신흠(申欽)의 『상촌집(象村集)』에도, ‘『난설헌집』에 고인(古人)의 글이 절반 이상이나 전편(全篇)으로 수록되었는데, 이는 그의 아우 허균이 세상에서 미처 보지 못한 시들을 표절 투입시켜 그 이름을 퍼뜨렸다.’ 하였고, 전우산(錢虞山)의 소실(小室)인 하동군(河東君) 유여시(柳如是)도 『난설헌집』에서 위작(僞作)들을 색출하여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난설헌의 본작(本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김성립의 후손인 정언(正言) 김수신(金秀臣)의 집이 광주(廣州)에 있는데, 어느 사람이, ‘간행된 『난설헌집』 이외에도 혹 책 상자 속에 간직된 비본(祕本)이 있느냐?’고 묻자, ‘난설헌이 손수 기록해 놓은 수십 엽(葉, 장으로 종이를 세는 단위)이 있는데, 그 시는 간행본과 아주 다르다.’라 대답하고 이어, ‘지금 세상에 전해지는 간행본은 본시 난설헌의 본작(本作) 전부가 아니라 허균의 위본(僞本)이다.’ 하였다. 그 후손의 말이 이러한 것을 보면 아마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실전(實傳)일 것이다. 지봉(芝峯)의 실기(實記)와 상촌(象村)의 정론(定論)과 후손의 실전이 낱낱이 부합되므로 쌓였던 의혹이 한꺼번에 풀린다. 내가 평소에 『동관습유(彤管拾遺)』를 편찬하면서 우리나라 규방(閨房)의 시들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는데, 경번당의 사실이 매우 자상하게 수록되었으니 함께 참고하는 것이 좋다.”
遣興
1 내 소리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梧桐生嶧陽 오동나무 한그루가 역양에서 자라나
幾年傲寒陰 차가운 비바람 속에 여러 해를 견뎠네.
幸遇稀代工 다행히도 보기 드문 장인을 만나
劚取爲鳴琴 베어다가 거문고를 만들었네.
琴成彈一曲 다 만든 뒤 한 곡조를 타보았건만
擧世無知音 온 세상에 알아들을 사람이 없네.
所以廣陵散 이래서, 광릉산 묘한 곡조가
終古聲堙沉 끝내 전해지지 않고 말았나 보네.
嶧陽 - 중국 강소성에 있는데 오동나무로 유명하다
2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네
鳳凰出丹穴 봉황이 단산 굴에서 나오니
九苞燦文章 아홉 겹 깃무늬가 찬란해라.
覽德翔千仞 덕을 보여주며 천 길 높이 날고
噦噦鳴朝陽 높은 소리로 산 동쪽에서 울어대네.
稻粱非所求 벼나 조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竹實乃其湌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네.
奈何梧桐枝 어쩌다 저 오동나무 위에
反棲鴟與鳶 올빼미와 솔개만 깃들여 있단 말인가.
3 다른 여인에게는 주지 마셔요
我有一端綺 내게 아름다운 비단 한 필이 있어
拂拭光凌亂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對織雙鳳凰 봉황새 한 쌍이 마주 보게 수놓여 있어
文章何燦爛 반짝이는 그 무늬가 정말 눈부셨지요.
幾年篋中藏 여러 해 장롱 속에 간직하다가
今朝持贈郞 오늘 아침 님에게 정표로 드립니다.
不惜作君袴 님의 바지 짓는 거야 아깝지 않지만
莫作他人裳 다른 여인 치맛감으론 주지 마세요.
4 새 여인에게는 주지 마세요
精金凝寶氣 보배스런 순금으로
鏤作半月光 반달 모양 노리개를 만들었지요.
嫁時舅姑贈 시집 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繫在紅羅裳 진홍 비단 치마에 차고 다녔죠.
今日贈君行 오늘 길 떠나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願君爲雜佩 서방님 정표로 차고 다니세요.
不惜棄道上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는 않지만
莫結新人帶 새 여인 허리띠에만은 달아 주지 마세요.
5 시가 사람을 가난케 한단 말을 비로소 믿겠네
近者崔白輩 요즘 들어 최경창과 백광훈 등이
攻詩軌盛唐 성당의 시법을 받아 시를 익히니
寥寥大雅音 아무도 아니 쓰던 대아의 시풍이
得此復鏗鏘 이들을 만나 다시 한 번 쩡쩡 울리네.
下僚困光祿 낮은 벼슬아치는 벼슬 노릇이 어렵기만 해
邊郡愁積薪 변방의 고을살이 시름만 쌓이네.
年位共零落 나이 들어갈수록 벼슬길은 막히니
始信詩窮人 시가 사람을 가난케 한단 말을 비로소 믿겠네.
6 부용봉에 오르다
仙人騎綵鳳 신선께서 화려한 봉황새를 타고
夜下朝元宮 한밤중 조원궁에 내려오셨네.
絳幡拂海雲 붉은 깃발은 바다 구름에 흩날리고
霓衣鳴春風 예상우의곡이 봄바람에 울리네.
邀我瑤池岑 요지 봉우리에서 나를 맞으며
飮我流霞鐘 류하주 한 잔을 권하시더니
借我綠玉杖 푸른 옥지팡이를 빌려주시며
登我芙蓉峯 부용봉에 오르자고 인도하시네.
7 임의 편지를 받고서
有客自遠方 멀리서 손님이 오시더니
遺我雙鯉魚 임께서 보냈다고 잉어 한 쌍을 주셨어요.
剖之何所見 무엇이 들었나 갈라서 보았더니
中有尺素書 그 속에 편지 한 장이 있었어요.
上言長相思 첫마디에 늘 생각하노라 말씀하시곤
下問今何如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물어셨네요.
讀書知君意 편지를 읽어가며 님의 뜻 알고는
零淚沾衣裾 눈물이 흘러서 옷자락을 적셨어요.
8 순임금을 뵈오리라
芳樹藹初綠 꽃다운 나무는 물이 올라 푸르고
蘼蕪葉已齊 궁궁이 싹도 가지런히 돋아났네.
春物自姸華 봄날이라 모두들 꽃 피고 아름다운데
我獨多悲悽 나만 홀로 자꾸만 서글퍼지네.
壁上五岳圖 벽에는 오악도를 걸고
牀頭參同契 책상머리엔 참동계를 펼쳐 놓았으니
煉丹倘有成 혹시라도 단사를 만들어내면
歸謁蒼梧帝 돌아오는 길에 순임금을 뵈오리라.
賈客詞 바다 상인의 노래
掛席隨風去 돛을 올리고 바람 따라가다가
逢灘郞滯留 여울 만나면 그곳에 머문다네.
西江波浪惡 서강의 풍랑이 거세어지니
幾日到荊州 며칠이 지나야 형주 땅에 닿을까.
哭子 자식을 곡함
去年喪愛女 작년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 올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 슬프고 슬픈 광릉 땅
雙墳相對起 두 무덤 서로 마주 보며 있네
蕭蕭白楊風 백양나무에 바람이 소소하니
鬼火明松楸 도깨비불이 소나무 가래나무 사이에 번뜩이네
紙錢招汝魂 지전을 태워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奠汝丘 정화수로 너희 무덤에 제사 지낸다
應知第兄魂 당연히 형과 동생 혼을 알아
夜夜相追遊 밤마다 서로 쫓으며 놀겠지
縱有服中孩 비록 뱃속에 아이 있지만
安可冀長成 어찌 장성하기를 기대하리
浪吟黃臺詞 허망히 황대사를 읊으며
血泣悲呑聲 피눈물로 슬퍼하며 소리 삼킨다
閨情
妾有黃金釵 제에게 황금 비녀 하나 있는데
嫁時爲首飾 시집 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입니다.
今日贈君行 오늘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千里長相憶 천 리 먼 길에 오래도록 기억해 주소서
閨怨
1
錦帶羅裙積淚痕 비단 띠 비단 치마폭에 눈물 자국 겹쳤으니
一年芳草恨王孫 해마다 방초 보며 임 그리운 이별의 한이지요.
瑤箏彈盡江南曲 거문고 한가락 강남곡을 뜯고 나니
雨打梨花晝掩門 배꽃은 비에 지고 한낮 문은 닫혔습니다.
2
月樓秋盡玉屛空 달 밝은 누각 가을은 가고 방은 텅 비었네.
霜打廬洲下暮鴻 서리 내린 갈섬에 기러기 내린다.
瑤琴一彈人不見 거문고 타고 있어도 임은 보이지 않고
藕花冷落野塘中 연꽃잎만 연못으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네.
寄夫江南讀書
燕掠斜簷兩兩飛 제비는 비스듬한 처마를 지나 쌍쌍이 날고
落花撩亂拍羅衣 떨어지는 꽃잎은 어지럽게 비단 옷을 때려요
洞房極目傷春意 규방엔 눈이 미치는 곳마다 정을 잃고
草綠江南人未歸 풀 푸른 강남의 임은 돌아오지 않네요
이 시는 강남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남편 김성립(金誠立)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그런데 ‘지봉유설’에 의하면, 평생 남편과 금슬(琴瑟)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규정(閨情)’이라 제목한 곳도 있으며, ‘난설헌집(蘭雪軒集)’에는 실리지 못하고 ‘명시종(明詩綜)’에 실려 있다. ‘지봉유설’에 의하면 이 시가 ‘유탕(流蕩)’하기 때문에 등재(謄載)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선조조(宣祖朝) 이하에 나온 문장은 볼만한 것이 많다. 시와 문을 겸한 이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이고, 시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을 제일로 친다는 것이 확고한 논평이나,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대가(大家)를 이루었으니, 이는 어느 체제이든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섬세하고 화려하여 명가(名家)를 이룬 이는 유하(柳下) 최혜길(崔惠吉)이고 당(唐)을 모방하는 데 고질화된 이는 손곡(蓀谷) 이달(李達)이며,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옛사람의 말만 전용한 것이 많으니 유감스럽다.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은 염락(濂洛)의 풍미를 띤데다 색향(色香)에 신화(神化)를 이룬 분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는 정밀한데다 식견이 있고 전아(典雅)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宣廟朝以下文章 多可觀也 詩文幷均者 其農岩乎 詩推挹翠軒爲第一 是不易之論 然至淵翁而後 成大家藪 葢無軆不有也 纖麗而成名家者 其柳下乎 痼疾於模唐者 其蓀谷乎 蘭雪 全用古人語者多 是可恨也 龜峯 帶濂洛而神化於色香者 澤堂之詩 精緻有識且典雅 不可多得也).”라 하여, 허난설헌의 시가 전용(全用)한 것이 많음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寄荷谷 오빠 하곡에게
暗窓銀燭低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 쓸쓸한 가을은 낙엽만 지는구나.
關河音信稀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 아득히 오빠 계신 청운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덩굴에 달빛만 밝다.
蘭草
誰識幽蘭淸又香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
年年歲歲自芬芳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莫言比蓮無人氣 세상 사람들이 연꽃을 더 좋아한다 말하지 마오
一吐花心萬草王 꽃술 한 번 터뜨리면 온갖 풀의 으뜸이오니.
望仙謠
1
王喬呼我遊 신선 왕교가 함께 노닐자고
期我崑崙墟 곤륜산에서 나를 기다렸다네.
朝登玄圃峰 아침에 현포 봉우리에 올라서
望遙紫雲車 멀리 붉은 구름의 수레를 바라보네.
紫雲何煌煌 붉은 구름 어찌나 빛나는지
玉蒲正渺茫 옥포는 그저 아득하구나.
倏忽凌天漢 홀연히 은하수 넘어서
飜飛向扶桑 해 뜨는 동해를 향해 날아가네.
扶桑幾千里 부상 몇 천 리 되는 그곳
風波阻且長 풍파가 길을 막아 더욱 멀구나.
我慾舍此去 이처럼 어려운 길 버리고 싶지만
佳期安可忘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랴.
君心知何許 그대 마음 어디쯤 있는지 알기에
賤妾徒悲傷 내 몸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2
瓊花風軟飛靑鳥 옥구슬 꽃바람 타고 파랑새 날자
王母麟車向蓬島 서왕모 기린 수레 봉래섬 향해 간다.
蘭旌蘂帔白鳳駕 목란 깃발 꽃술 배자 흰 봉황 수레 타고
笑倚紅欄拾瑤草 난간에 웃고 기대 요초를 줍는구나.
天風吹擘翠霓裳 푸른 무지개 치맛바람이 헤집으니
玉環瓊佩聲丁當 옥고리 경패 소리 댕그렁 댕그렁
素娥兩兩鼓瑤瑟 선녀들 짝을 지어 거문고 연주하자
三花珠樹春雲香 삼화주 나무에는 봄 구름 향기롭다.
平明宴罷芙蓉閣 동트자 부용각에서 잔치를 파하고서
碧海靑童乘白鶴 청동은 푸른 바다 백학 타고 건너가네.
紫簫吹徹彩霞飛 피리 소리 사무쳐서 오색 노을 날려가고
露濕銀河曉星落 이슬 젖은 은하수엔 새벽 별이 지는구나.
暮春
煙鎖瑤空鶴未歸 안개는 공중에 자욱한데 학은 돌아오지 않고
桂花陰裏閉珠扉 계수 꽃 그늘 속에 구슬 문은 닫혔네
溪頭盡日神靈雨 시냇가는 온종일 신령스런 비만 내리고
滿地香雲濕不飛 땅에 가득한 구름은 젖어서 날지 못하네.
夢遊廣桑山
碧海浸瑤海 푸른 바다는 선계에 이어졌고
靑鸞依彩鸞 빛깔 고운 난새들은 서로 기대이네.
芙蓉三九朶 연꽃 스물일곱 송이
紅墮月霜寒 찬 서리 달 아래 붉게 떨어지네.
貧女吟
豈是乏容色 어찌 인물이 모자란다 하리오?
工針復工織 바느질도 잘하고 또 길쌈도 잘해요
少小長寒門 어려서 가난한 집에서 자라
良媒不相識 좋은 중매가 나를 알아주지 않네요
手把金剪刀 쇠로 만든 가위를 손에 잡으니
夜寒十指直 밤 추위에 곱아 오는 열 손가락.
爲人作嫁衣 시집 갈 남의 옷만 지어주고
年年還獨宿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홀로 잠든다.
이 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로, 허난설헌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어찌 내 인물이 남에 비해 모자란다 하리오? 인물뿐만 아니라 여자가 갖추어야 할 재능도 뛰어나 바느질도 잘하고 또 길쌈도 잘한다. 그런데 어려서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좋은 중매가 나서서 나에게 중매를 서 주지 않는다.
손에 쇠로 된 가위를 잡고 새 옷을 짓는데, 밤이 되자 날씨가 너무 추워 열손가락이 오므려지지가 않아 옷을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시집갈 때 입는 옷을 만들어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시집을 가지 못하고 해마다 다시 독수공방하고 있는 신세다.
허균은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우리나라 아낙네로서 시(詩)를 잘하는 사람이 드문 까닭은, 이른바 ‘술 빚고 밥 짓기만 일삼아야지, 그 밖에 시문(詩文)을 힘써서는 안 된다.’ 해서인가? 그러나 당(唐)나라 사람의 경우는 규수로서 시로 이름난 이가 20여 인이나 되고, 문헌 또한 증빙할 만하다. 요즘 와서 제법 규수 시인이 있게 되어 경번(景樊, 허난설헌의 호)은 천선(天仙)의 재주가 있고 옥봉(玉峯) 또한 대가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라 하여, 우리나라에 여류시인(女流詩人)이 적은 이유와 허난설헌의 시재(詩才)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四時詞
春
院落深沈杏花雨 그윽한 뜨락에서 살구꽃 피니 비 내리고
流鶯啼在辛夷塢 목련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지저귀네.
流蘇羅幕襲春寒 수실 늘인 휘장 안에 봄기운 차가운데
博山輕飄香一縷 박산향로에 한 줄기 향 내음이 오르누나.
美人睡罷理新粧 미인은 잠을 깨어 다시 곱게 단장하며
香羅寶帶蟠鴛鴦 원앙새 수를 놓은 비단 띠를 허리에 띠네.
斜捲重簾帖翡翠 겹발은 걷어 두고 비취 이불 개어 놓고
懶把銀箏彈鳳凰 시름없이 은 거문고로 봉황곡을 타는구나.
金勒雕鞍去何處 금 굴레 안장 얹고 임은 어디 가셨을까.
多情鸚鵡當窓語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이는데
草粘戱蝶庭畔迷 풀숲에서 놀던 나비 뜨락으로 날아간 뒤
花罥遊絲闌外舞 난간 밖 아지랑이 핀 꽃에서 춤을 춘다.
誰家池館咽笙歌 뉘 집인가, 연못가에 피리소리 구성지니
月照美酒金叵羅 밝은 달은 금 술잔에 아름다운 떠 있구나.
愁人獨夜不成寐 시름 많은 여인네는 밤새 홀로 잠 못 이루어
曉起鮫綃紅淚多 새벽이면 명주 수건에 붉은 눈물 가득하여라.
夏
槐陰滿地花陰薄 느티나무 그늘 아래 꽃 그림자 어두운데
玉簟銀床敞珠閣 대자리에 앉았보니 고운 누각 시원하네.
白苧衣裳汗凝珠 새하얀 모시 적삼 땀방울이 구슬 같고
呼風羅扇搖羅幕 비단 부채 부채질에 비단 휘장 흔들리네.
瑤階開盡石榴花 돌층계의 석류꽃은 피었다가 다시 지고
日轉華簷簾影斜 햇살은 처마 옮겨 발 그림자 비꼈구나.
雕梁晝永燕引鶵 들보에선 낮이 길어 제비는 새끼와 놀고
藥欄無人蜂報衙 인적 없는 약초밭엔 벌들만이 윙윙대네.
刺繡慵來午眠重 수를 놓다 나른하여 그만 잠시 졸았던지
錦茵敲落釵頭鳳 꽃방석에 누웠더니 봉황비녀 떨구었네.
額上鵝黃膩睡痕 이마 위에 노란 거위 낮잠 잔 자국이고
流鶯喚起江南夢 꾀꼬리 울음소리 강남 꿈을 깨웠어라.
南塘女伴木蘭舟 남쪽 연못 아가씨들 목란배에 몸을 싣고
采采荷花歸渡頭 한 아름 연꽃 꺾어 나룻가로 돌아오네.
輕橈齊唱采菱曲 천천히 노를 저어 채릉곡을 불렀더니
驚起波間雙白鷗 물결에서 흰 갈매기 한 쌍 놀라 날아가네.
秋
紗幬寒逼殘宵永 새벽은 멀었지만 비단 휘장에 찬바람 드니
露下虛庭玉屛冷 빈 뜨락에 이슬 내려 병풍이 차가워라.
池荷粉褪夜有香 연꽃은 시들어도 밤새 향기 퍼지는데
井梧葉下秋無影 우물가 오동잎 지니 그림자가 사라졌네.
丁東玉漏響西風 물시계 소리만 똑딱 서풍 타고 울리는데
簾外霜多啼夕虫 발 밖에는 서리 내려 밤벌레만 구슬프네.
金刀剪下機中素 베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玉關夢斷羅幕空 옥문관 임의 꿈 깨니 비단 휘장 적막하여라
裁作衣裳寄遠客 먼 길에 부치려고 임의 옷을 지어내니
悄悄蘭燈明暗壁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히누나.
含啼寫得一封書 눈물을 머금으며 써두었던 편지 한 장
驛使明朝發南陌 내일 아침 남쪽 가는 역인에게 전하려네.
裁封已就步中庭 옷과 편지 챙겨 놓고 뜨락에서 서성이니
耿耿銀河明曉星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았어라.
寒衾轉輾不成寐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니
落月多情窺畵屛 지는 달이 다정하게 병풍 안을 엿보는가.
冬
銅壼滴漏寒宵永 구리병 물소리에 추운 밤은 깊어 가고
月照紗幃錦衾冷 휘장에 달 비추어도 금침은 차가워라.
宮鴉驚散轆轤聲 궁궐의 까마귀는 두레박에 놀라 흩어지고
曉色侵樓窓有影 새벽 먼동에 다락 창가 그림자가 어른거리네.
簾前侍婢瀉金甁 발 앞에다 시비가 금병에 물 쏟으니
玉盆手澁臙脂香 찬물에 손 담기 어려워도 분내는 향기롭네.
春山描就手屢呵 시린 손 호호 불며 눈썹을 그리노니
鸚鵡金籠嫌曉霜 새장의 앵무새는 새벽 서리 싫어하네.
南隣女伴笑相語 남쪽의 벗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玉容半爲相思痕 임 생각에 고운 얼굴 반쯤이나 여위었군.
金爐獸炭暖鳳笙 숯불 지핀 화로 위로 피리소리 울려나고
帳底羔兒薦春酒 장막 밑의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리라.
憑闌忽憶寒北人 난간에 기대어 변방의 임 문득 그리니
鐵馬金戈靑海濱 말 타고 창 들며 청해 물가 달리겠지.
驚沙吹雪黑貂弊 몰아치는 눈보라에 가죽옷은 닳았을 테고
應念香閨淚滿巾 향기로운 아내 방을 그리워해 수건 적시리라.
山嵐
暮雨侵江曉初闢 늦은 비가 강을 적시면서 새벽이 처음 열리고
朝日染成嵐氣碧 아침 해가 물들면서 아지랑이 더욱 푸르러지네.
經雲緯霧錦陸離 구름과 안개 얽히면서 緋緞이 땅에 깔리는데
織破瀟湘秋水色 소상강가에서 찢어지며 가을 물빛을 보여주네
隨風宛轉學佳人 바람 따라 완연히 돌며 예쁜 여인을 배우다가
畵出雙蛾半成蹙 굽은 눈썹 그려내었지만 반쯤은 찌푸려졌네.
俄然散作雨霏鞴 잠시 뒤에 흩어져서 비가 되어 흩뿌리더니
靑山忽起如新沐 푸른 산이 갑자기 일어서는데 새로 목욕한 듯싶어라.
相逢行 만남의 노래
1
相逢長安陌 서울의 거리서 서로 만나
相向花間語 꽃밭 속 찾아가 속삭인다.
遺却黃金鞭 황금 말채찍 흘려두고서
回鞍走馬去 안장에 앉혀 말 달려 돌아갔도다.
2
相逢靑樓下 청루에서 서로 만나서
繫馬垂楊柳 수양버들 아래서 말 매어놓고
笑脫錦貂裘 웃으며 비단옷과 갓 옷 벗어
留當新豊酒 신풍주를 사서 같이 마셨다네.
送荷谷謫甲山 하곡 오빠가 갑산에 귀양 가기에
遠謫甲山客 멀리 갑산으로 귀양 가는 나그네
咸原行色忙 함경도로 가는 행색 황망하기만 하다.
臣同賈太傅 신하의 심정은 가태부나
主豈楚懷王 임금은 어찌 초회왕이리오.
河水平秋岸 강물은 가을 언덕에 평평히 흐르고
關雲欲夕陽 변방의 구름에 석양이 물들려 한다.
霜風吹雁去 서릿바람 불어와 기러기 날아가니
中斷不成行 마음이 아파 더 이상 못쓰겠구나.
夜夜曲 깊은 밤의 노래
玉淚微微燈耿耿 옥 같은 눈물 찔끔찔끔 등잔불 깜박깜박
羅瑋寒幅秋宵永 비단 휘장 싸늘하고 가을밤은 길기도 하다.
邊衣裁罷剪刀冷 변방에 보낼 옷 다 짓고 나니 가위는 싸늘해지고
滿窓風動芭蕉影 바람 따라 움직이는 파초 그림자만이 창을 채우네.
染指鳳仙花歌
金盆夕露凝紅房 달빛 어린 저녁 이슬 규방에 맺히면
佳人十指纖纖長 아가씨 열 손가락 곱기도 해라.
竹碾搗出捲菘葉 대절구로 봉선화 짓찧어 배춧잎으로 말아
燈前動護雙鳴璫 등잔앞에 매느라 귀고리도 딸랑인다.
粧褸曉起簾初捲 새벽에 일어나 주렴 걷어 올리니
意看火星抛鏡面 반가와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
拾草疑飛紅蛺蝶 풀잎을 뜯으면 호랑나비 나는 듯
彈箏驚落桃花片 가야금 탈 때는 복사꽃 떨어지듯.
徐勻粉頰整羅鬟 정성껏 분 바르고 쪽머리 손질하면
湘竹臨江淚血斑 소상죽 대나무에 피눈물 얼룩지듯.
時把彩毫描却月 이따금 예쁜 붓 고운 눈썹 그리면
只疑紅雨過春山 춘산에 붉은 비를 뿌리고 가는 듯하여라.
遊仙詞
1
天載瑤池別穆王 천 년이 고인 요지에서 목왕과 헤어져
暫敎靑鳥訪劉郞 파랑새로 하여금 유랑을 찾게 했네.
平明上界笙簫返 밝아오는 하늘에서 피리 소리 들리니
侍女皆騎白鳳凰 시녀들 모두 다 흰 봉황탔구나.
2
瓊洞珠潭貯九龍 골짜기 연못에 구룡 잠겨있고
彩雲寒濕碧芙蓉 서늘한 오색구름 부용봉 물들이네.
乘鸞使者西歸路 난새 탄 동자따라 서쪽으로 오는 길에
立在花前禮赤松 꽃 앞에선 적송자에게 예 올렸네.
3
露濕瑤空桂月明 맑은 이슬 함초롬하고 계수나무에 달이 밝은데
九天花落紫簫聲 꽃 지는 하늘에선 퉁소 소리 들리네.
朝元使者騎金虎 금 호랑이 탄 동자는
赤羽麾幢上玉淸 붉은 깃발 앞세우고 옥청궁 올라가네.
4
瑞風吹破翠霞裙 상서로운 바람 불어 푸른 치마 휘날리며
手把鸞簫倚五雲 난새 새긴 퉁소 쥐고 오색구름에 비껴있네.
花外玉童鞭白虎 꽃 너머 동자는 백호를 채찍질하며
碧城邀取小茅君 벽성에서 소모군 맞아들이네.
5
焚香邀夜禮天壇 긴 밤에 향불 피우고 천단에 예 올리는데
羽駕翻風鶴氅寒 수레 깃발 바람에 펄럭이네.
淸磬響沈星月冷 해맑은 풍경 소리 은은하고
桂花煙露濕紅鸞 계수나무 꽃 이슬이 붉은 난새 적시네.
6
宴罷西壇星斗稀 서단에서 잔치 끝나자 북두성도 성글고
赤龍南去鶴東飛 붉은 용은 남으로 학은 동으로 가네.
丹房玉女春眠重 단청한 방에 선녀는 봄 졸음에 겨워
斜倚紅闌曉未歸 난간에 기댄 채 날 밝도록 돌아가지 않네.
7
氷屋珠扉銷一春 하얀 집 구슬 문 봄 내내 닫혀있고
落花烟露濕綸巾 지는 꽃에 이슬이 비단 수건 적시네.
東皇近日無巡幸 동황님 요즘엔 순행 없어
閑殺瑤池玉色麟 한가롭기 그지없다네.
8
閑解靑囊讀素書 한가로이 푸른 주머니 풀어
露風烟月桂花疎 달빛 이슬 바람에 흐릿하고 계수나무 꽃 성글어지네.
西妃小女春無事 서왕모 시녀는 봄날이라 할 일 없어
笑請飛瓊唱步許 웃으며 비경에게 보허사 불러달라네.
9
瓊樹玲瓏壓瑞煙 계수나무 영롱하고 상서로운 안개 뒤덮이는데
玉鞭龍駕去朝天 채찍 든 신선이 용 타고 조회가네.
紅雲寒路無人到 붉은 구름이 길 막아
短尾靈庬籍草眠 꼬리 짧은 삽살개 풀밭에 앉아 잠이 들었네.
10
烟銷瑤空鶴未歸 하늘에 안개 끼고 학은 돌아오지 않고
桂花陰裏開珠扉 계수나무 그늘 속에 구슬 문 닫혔네.
鷄頭盡日神靈雨 시내엔 하루 종일 신령스런 비 내려
滿地香雲濕不飛 땅에 덮인 향기로운 구름 날아가지 못하네.
11
靑苑紅堂鎖泬廖 푸른 동산 맑은 집들 맑은 하늘에 잠기는데
鶴眠丹竈夜迢迢 멀고 먼 학은 단약 굽는 부엌에서 졸고 있네.
仙翁曉起喚明月 늙은 신선은 새벽에 일어나고
微隔海霞聞洞簫 노을 자욱한 건너편에서 퉁소 소리 들리네.
12
香寒月冷夜沈沈 날 차고 달빛 침침한데
笑別嬌婢脫玉簪 웃으며 교비에게 하직하네.
更把金鞭指歸路 다시 금 채찍 잡아 돌아갈 길 가리키자
碧城西畔五雲深 벽성 서쪽 언덕에 오색구름 자욱하네.
13
新訴東妃嫁述郎 동비에게 새로 분부하사 술랑에게 시집 가라시니
紫鸞烟盖向扶桑 붉은 난새와 해 가린 수레, 부상으로 향하네.
花前一別三千歲 벽도화 앞에서 헤어진 후 삼천 년이니
却恨仙家日月長 신선 세상 해와 달 긺이 오히려 한스러워라.
14
閑携姉妹禮玄都 한가로이 자매데리고 현도관에 오르니
三洞眞人各見呼 삼신산 신선들이 저마다 보자고 부르시네.
敎箸赤龍花下立 붉은 용타고 벽도화아래 서서
紫皇宮裏看投壺 자황궁 안에서 투호놀이 구경했네.
15
星影沈溪月露沾 별 그림자 시내에 잠기고 달빛 이슬에 젖었는데
手援裙帶立瓊簷 손으로 치마끈 만지며 구슬 처마에 서 있네.
丹陵羽客辭歸去 단릉 신선 하직하고 돌아오려 하자
白下珊瑚一桁廉 산호 한 꾸러미 내려주시네.
16
瑞露微微濕玉虛 상서로운 이슬 내려 허공 적시는데
碧牋偸寫紫皇書 푸른 종이에 자황 글 몰래 베끼네.
靑童睡起捲珠箔 동자가 잠 깨어 주렴을 걷자
星月滿壇花影疎 별과 달이 단에 가득하여 꽃 그림자 성그네.
17
西漢夫人恨獨居 서한 부인 홀로 삶 한스러워
紫皇令嫁許尙書 상제가 명령하여 허상서에게 시집 보냈네.
雲衫玉帶歸朝晩 오색 적삼에 옥띠 두르고 아침 늦게 돌아왔더니
笑駕靑龍上碧虛 웃으며 청룡 타고 푸른 하늘 날아오르네.
18
閑住瑤池吸彩霞 한가로이 요지에 살며 노을 마시는데
瑞風吹折碧桃花 바람 불어 벽도화 가지 꺾이네.
東皇長女時相訪 동황의 장녀 이따금 찾아뵙느라
盡日簾前卓鳳車 주렴 앞에 진종일 봉황 수레 세워두네.
19
滿酌瓊醪綠玉巵 비취옥잔에 술 가득 따라
月明花下勸東妃 달 밝은 꽃 아래서 동황비에게 권하네.
丹陵公主休相妬 단릉 공주님 질투하지 마오
一萬年來會面稀 일 만 년 지나도 서로 만나기 어려우니.
20
愁來白著翠霓裙 시름겨워 푸른 무지개 치마 입고
步上天壇掃白雲 천단에 걸어 오르며 흰 구름 쓸었네.
琪樹露華依半濕 구슬 나무 맺힌 이슬에 옷 반쯤 젖은 채
月中閑拜玉眞君 달 속 옥진군에게 한가로이 절하네.
21
雲角靑龍玉絡頭 옥으로 머리 꾸미고 피리 부는 청룡을
紫皇騎出向丹丘 옥황이 타시고 단구로 향하네.
閑從璧戶窺人世 한가로이 문 기대어 인간 세상 엿보니
一點秋烟辨九州 한 점 가을 아지랑이 천하를 알아보겠네.
22
花冠蘂帔九霞裙 화관 꽃 휘장 두르고 아홉 폭 무지개 치마 입으니
一曲笙歌響碧雲 한가락 피리 소리 푸른 구름에 메아리치네.
龍影馬嘶滄海月 용 그림자 말 울음소리 창해 달빛 비치는데
十洲閑訪上陽君 신선 사는 십주로 상양군 찾아가네.
23
樓鎖彤霞地絶塵 누대은 붉은 노을에 잠기고 땅에는 먼지 걷혔는데
玉妃春淚濕羅巾 양귀비 눈물이 비단 수건 적시네.
瑤空月侵星河影 아름다운 은하수 그림자에 잠기고
鸚鵡驚寒夜喚人 추위에 놀란 앵무새 밤에 사람 부르네.
24
新拜眞官上玉都 신임 진관 제수하여 옥황궁 올라가니
紫皇親授九靈符 상제께서 친히 구령부 주시네.
歸來桂樹宮中宿 계수나무 궁으로 돌아와 잠자려 하니
白鶴閑眠太乙爐 흰 학이 한가로이 태을로 앞에 졸고 있네.
25
烟飄盖颻向碧空 꽃구름 흩날리며 하늘 향해 오르다
翠幢歸殿玉壇空 푸른 깃대 궁전에 돌아오니 옥단이 비었네.
靑鸞一隻西飛去 푸른 난새 한 마리 서쪽으로 날아가자
露壓桃花月滿空 이슬이 벽도화 적시고 달빛은 하늘에 가득하네.
26
廣寒宮殿玉爲梁 광한전은 옥으로 대들보 올렸는데
銀燭金屛夜正長 은 촛대 금 병풍 밤 참으로 기네.
外欄桂花凉露濕 난간 밖 계수나무 꽃 차가운 이슬에 젖고
紫簫聲裏五雲香 붉은 퉁소 소리에 오색 구름 香氣 롭네.
27
催呼藤六出天關 서둘러서 등육 불러 하늘 문 나서는데
脚踏風龍徹骨寒 바람과 용을 밟고 가려니 추위가 뼈에 스미네.
袖裏玉塵三百斛 소매 속 옥 티끌 삼백 섬이
散爲飛雪落人間 흩날리는 눈송이 되어 인간 세상에 떨어지더라.
28
瓊海漫漫浸碧空 구슬 바다 아득하여 푸른 하늘에 잠기는데
玉妃無語倚東風 옥비가 말없이 동풍에 오르네.
蓬萊夢覺三千里 봉래산 삼천 리 꿈 깨고 나니
滿袖蹄痕一抹紅 소매 적신 울음 자국에 연지 묻어나네.
29
宓妃閑製赤霜袍 복비가 한가로이 붉은 도포 짓는데
手頻回玉剪刀素 흰 손으로 부지런히 가위질 하네.
眉銷睡痕花影午 눈썹엔 졸음 내리고 꽃 그림자 한낮인데
紫皇令賜碧葡萄 옥황이 시동보내 푸른 도포를 주셨네.
30
華表眞人昨夜歸 화주표 신선 어젯밤에 돌아왔는데
桂香吹滿六銖衣 계수나무 꽃 향기 가벼운 옷자락에 가득하네.
閑回鶴驅瑤壇上 한가로이 학 타고 단 위에 오르니
日出瓊林露未晞 해는 숲에 떠오르는데 이슬 아직 안 말랐네.
31
管石金華四十年 금화산 석실에 사십 년 있노라니
老兄相訪蔚藍天 늙은 형이 검푸른 하늘 찾아왔네.
烟衰月蓫人間事 아지랑이 속에 사립 쓰고 달 아래 피리 불던 인간 세상
笑指溪南白玉田 웃으며 시내 남쪽 백옥전 가리키네.
32
緱嶺仙人碧玉箏 구령신선이 푸른 옥쟁 타면서
折花閑倚董雙成 동쌍성에게 기대어 한가로이 꽃 꺾네.
瑤絃誤拂黃金柱 줄 잘못되어 황금 기둥에 스치자
遙隔彤霞廳笑聲 아득한 붉은 노을에서 웃음소리 들리네.
33
乘鸞來下九重城 난새 타고 아홉 성 내려와
絳節霞旌別太淸 붉은 깃발 오색 깃발 태청궁 떠나네.
逢着周靈王太子 주나라 영왕태자 만나
碧桃花裏夜吹笙 벽도화 속에서 한밤 중에 생황을 부네.
34
海畔紅桑幾度開 바닷가 붉은 뽕나무 몇 번이나 피었던고
羽衣零落暫歸來 깃옷 다 떨어져 잠깐 돌아왔네.
東窓玉樹三枝長 구슬 나무 세 그루 동쪽 창가에 자랐는데
知是眞皇別後栽 진황과 헤어진 후에 심은 나무라네.
35
催龍促鳳上朝元 용과 봉황 몰아 타고서 조회 올라가
路入瑤空敞八門 하늘 들어가니 여덟 문 활짝 열렸네.
仙史殿頭宣詔語 사관이 옥황 앞에서 조서 선포하는데
九華王子主崑崙 구화궁 왕자에게 곤륜산 맡기신다네.
36
鏡孤鸞怨上元粧 거울 속 외로운 난새 상원부인 원망하고
雲車春暮下天門 봄 저문 수레 천문에서 하직하네.
封郞大是無情者 벼슬살이 낭군, 참으로 무정한 사람이라
翠袖歸來積淚痕 푸른 소매에 눈물 자국만 적셔 돌아왔네.
37
靑童孀宿一千年 청동 과부로 홀로 천 년 살고
天水仙郞結好緣 천수 신선과 좋은 인연맺었네.
空樂夜鳴簷外月 하늘 풍악 소리 추녀밖에 울리자
北宮神女降簾前 북궁 선녀가 주렴 앞에 내려왔네.
38
天花一朶錦屛西 하늘 꽃 한 송이 벼랑 서쪽에 피었는데
路入藍橋匹馬嘶 길 남교에서 말이 우는구나.
珍重玉工留玉竿 옥공이 옥절구 남겨서
桂香烟月合刀圭 계향 그윽한 어스름 달밤에 선약 넣어 찧네.
39
東宮女伴罷朝回 동궁 선녀들 조회 마치고 나와
花下相邀入洞來 꽃 아래서 만나 골짜기 돌아오네.
閑倚玉峰吹鐵笛 한가로이 봉우리 의지해 피리불자
碧雲飛遶望天臺 푸른 구름 일어나 망천대 에워싸네.
40
烟盖歸來蘇有天 구름타고 소유천 돌아오자
紫芝初長水邊田 새로 돋은 난초 물가에 자라고
瓊筐採得英英實 구슬 바구니에 꽃 열매 따 담느라
遺却紅悄制鶴鞭 붉은 보자기로 싸다 학 다룰 채찍 잃었네.
41
群仙相引陟芝日 신선들 이끌고 불로초밭 건너다
暫向珠潭學採蓮 잠시 연못에서 연밥 따게 했네.
斜日照花瓊戶閉 지는 해 꽃에 비치자 구슬 문 닫혀
碧烟深鎖大羅天 푸른 노을이 하늘에 짙게 깔리네.
42
玲瓏花影覆瑤碁 영롱한 꽃 그림자 바둑판 덮었는데
日午松陰落子遲 한낮 소나무 그늘에서 천천히 바둑 두네.
溪畔白龍新睹得 시냇가 흰 용을 내기해서 얻고
夕陽騎出白天地 석양에 그를 타고 천지를 향해가네.
43
珠洞銀溪鎖端烟 골짜기와 은하수 안개에 덮였는데
大郞多病罷朝天 신선은 병 깊어 朝會에 가지 못했네.
雲謠讀盡靑鸞去 백운요 다 읽고 푸른 난새 날아가자
日午紅龍戶外眠 한낮인데 문밖에서 용이 졸고 있네.
44
騎鯨學士禮瑤京 고래 탄 한림학사 백옥경에 예 올리니
王母相留宴碧城 서왕모 반기며 벽성에서 잔치 벌이네.
手展彩毫書玉字 무지개 붓 손에 쥐고 구슬 옥 글자 쓰니
醉顔猶似進淸平 취한 얼굴 마치 청평조 바칠 때 같더라.
45
皇帝初修白玉樓 옥황께서 처음 백옥루 지으실 때
璧階璇柱五雲浮 구슬 계단 옥기둥에 오색구름 떠 있었지.
閑呼長吉書天篆 장길 부르시어 전서로 하늘 천 글자 쓰게 해
掛在瓊楣最上頭 구슬 문 상인방에 가장 높이 거셨지.
46
芙蓉城闕錦雲香 부용성 궁궐에 비단구름 향기로운데
別詔曼卿主畵堂 만경에게 조서 내려 그림 그려진 집 내렸네.
朝日駕龍千騎女 아침에 일천 선녀 용 타고 나가면
白蘭叢裏合笙篁 흰 난초 떨기 속에서 생황 어울려 부네.
47
別詔眞人菜小霞 채소하에게 특별 조서내려
八花磚上合丹砂 여덟 꽃 벽돌 위에 단사 만들게 하셨네.
金爐壁炭成圓汞 향로에 구슬 숯으로 수은 만들어
白玉盤盛向帝家 백옥 소반에 담아 궁궐로 향하네.
48
玉女群中價最高 선녀 중 가장 뛰어난 이는
十倍王母喫仙桃 서왕모를 열 번 모시고 선도 먹었네.
閑指玉管白於手 손보다 흰 붓을 한가로이 들어
道是月宮霜兎毫 월궁 흰 토끼털이라고 자랑하네.
49
西歸公子幾時廻 서쪽으로 가신 공자는 언제 돌아오려나
南岳夫人早晩來 남악부인은 머잖아 오신다는데.
巡歷十洲猶未遍 십주를 돌아다니다 돌지 못하고
夜闌笙鶴降蓬萊 밤늦게 피리 불며 학 타고 봉래산에 내려오네.
50
琴高昨日奇書來 어제 금고신선이 편지 보내왔지
報道瓊潭玉蘂開 연못에 구슬 꽃 피었다고.
偸寫尺牋憑赤鯉 몰래 답장 써서 붉은 잉어에게 주고
蜀中明夜約登臺 내일 밤 촉땅 누대에 오르자 했네.
51
綱闕夫人別玉皇 붉은 대궐에서 옥황이 부인을 하직하고
洞天深閉紫霞房 동천자하방 굳게 닫았네.
桃花落塵溪頭樹 시냇가 복사꽃 모두 졌으니
流水無情賺阮郞 흐르는 물에 완랑을 속일 뜻 없었지요.
52
乘龍長伴九眞遊 용타고 언제나 아홉 선녀와 노니
八島朝行夕己周 아침에 팔도 떠나 저녁까지 두루 다니네.
深夜講壇風雨定 바람에 강단에 비바람 멎자
小仙歸去策靑虯 작은 신선이 돌아가려 푸른 용 채찍질하네.
53
鳧伯閑乘白鹿遊 부백이 한가로이 흰 사슴 타고 노닐다
折花來上五雲樓 꽃 꺾어 들고 오운루 오르네.
丹經滿藥案堆鼎 책상에 단경 가득하고 탕관에 약 쌓였는데
何事玉郞霜滿頭 어찌하여 옥랑은 머리에 서리 가득하신가.
54
彤軒碧瓦飾搖墀 붉은 난간 푸른 기와에 구슬로 섬돌 꾸미고
不遣靑苔染履綦 푸른 이끼 그대로 두어 신발 적시네.
朝罷列仙爭拜賀 조회 끝나자 신선들 다투어 하례 올리고
內家新領八霞司 안에선 새롭게 팔하사 거느리네.
55
海上寒風吹玉枝 바다 찬바람 구슬가지에 부는데
日斜玄圃看花時 현포에서 꽃구경하다 해 저무네.
紅龍錦襜黃金勒 붉은 용에 비단 휘장과 황금굴레
不是元君不得騎 선녀 아니라면 탈 수 없겠지.
56
蟠桃結子宴崑崙 반도 열리자 곤륜산에서 잔치 베풀어
滿酌瓊醪勸上元 잔에 술 가득 부어 상원부인께 권하네.
催喚彩鸞東去疾 오색 난새 재촉하여 동쪽으로 바삐 가자
玉峰邀取老軒轅 옥봉 늙은 헌원씨 맞아들이네.
57
足下星光閃閃高 방아래 별빛 드높이 반짝이는데
月篩溪影濕龍毛 은하수 그림자 용수염 적시네.
臨霞笑喚東方朔 노을에 다다르자 웃으며 동방삭 불러
休向氷園摘玉桃 얼음 동산에서 복숭아 따지 말라시네.
58
氷屋春回桂有花 얼음집에 봄 되자 계수나무 꽃피는데
自驂孤鳳出彤霞 손수 봉황 타고 붉은 노을 밖 나가네.
山前逢着安期子 산 앞에서 안기자 만나니
袖裏携將棗似瓜 소매 속에 참외만한 대추 가져왔네.
59
瓊海茫茫月露溥 넓은 구슬 바다에 달빛 이슬 퍼졌는데
十千宮女駕靑鸞 일만 궁녀 푸른 난새 탔네.
平明去赴瑤池宴 날 밝자 요지 잔치로 날아가는데
一曲笙歌碧落寒 한가락 피리 소리에 푸른 하늘 차가워지네.
60
瓊樹扶疏路氣濃 구슬나무 우거진 잎 새에 이슬 짙은데
月侵簾室影玲瓏 달빛이 발 사이로 방 안에 드니 그림자 영롱하고
閑催白兎鼓靈藥 한가로이 흰 토끼 시켜 선약 찧으니
滿臼天香玉屑紅 천향 붉은 옥가루 절구에 가득하구나.
61
綠章朝奏十重城 푸른 종이에 쓴 글 옥황님께 아뢰고
飮鹿嵩溪訪叔卿 사슴에게 숭산 물 먹이려 숙경을 찾았네.
宴罷紫微人上鶴 자미궁에서 잔치 끝나 학 타고 오르니
九天環佩月中聲 하늘 노리개 소리 달빛 속에 낭랑하네.
62
露盤花水浸三星 이슬 노반 물속에 별 그림자 잠겼고
斜漢初低白玉屛 기울어진 은하수, 백옥 병풍에 나직한데
孤鶴未廻人不寐 학이 돌아오지 않아 신선도 잠들지 못하고
一條浪落珠銀庭 한 가닥 흰 물방울만 뜨락에 떨어지네.
63
蓬萊歸路海千重 봉래산가는 길은 바다가 첩경이니
五百年中一度逢 오백 년 만에 한 번 건널 수 있네.
花下爲沽瓊液酒 꽃 아래서 경액주 마시고 싶으니
莫敎靑竹化蒼龍 푸른 대, 푸른 용으로 변치 않게 하소서.
64
身騎靑鹿入蓬山 푸른 사슴 타고 봉래산 들어가니
花下仙人各破顔 꽃 아래서 신선들이 얼굴 펴고 웃네.
爭設衆中看易辨 다투어 말하길 그대는 우리 가운데서 가려내기 쉬우니
七星符在頂毛間 북두칠성 표시 이마에 있음일세.
65
簷鈴無語閉珠宮 추녀 끝 풍경 고요하고 대궐 문 닫혔는데
紫閣凉生玉簟風 돗자리에 바람이니 다락 서늘하네.
孤鶴夜驚滄海月 한밤중 외로운 학 바다에 뜬달 보고 놀라고
洞簫聲在綠雲中 퉁소 소리 푸른 구름 속에 울려 퍼지네.
66
后土夫人住玉都 후토부인이 백옥경 궁궐에 살아
日中笙笛宴麻姑 피리 불며 마고에게 잔치 베푸네.
韋郞年少心慵甚 위랑은 젊은데도 유난히 게을러
不寫輕綃五岳圖 얇은 비단에 오악 모습 그리다 말았네.
67
閑隨弄玉步天街 한가로이 농옥 따라 하늘길 걷는데
脚下香鹿不染鞋 발아래 향기로운 티끌이 신발에 묻지 않네.
前導白麟三十八 앞에서 길잡이 하는 서른여덟 흰 기린
角端都掛小金牌 뿔 끝에 모두 조그만 금패 달았네.
68
紫陽宮女捧丹砂 자양궁 궁녀 단사 받들고
王母令過漢帝家 서왕모 명으로 무제 집 찾았네.
窓下偊逢方朔笑 창 아래서 우연히 동방삭 만나 웃었는데
別來琪樹六開花 헤어진 후 복숭아꽃 여섯 번 피었네.
69
獨夜瑤池憶上仙 한밤중 홀로 요지 옥황님 그리워하는데
月明三十六峰前 여섯 봉우리 위에 달이 밝네.
鸞笙響絶碧空靜 난새 피리 소리 끊기고 푸른 하늘 고요한데
人在玉淸眠不眠 임은 궁에 있어 잠 못 이루네.
70
東皇種杏一千年 동황이 심은 살구나무 천 년 자랐는데
枝上三英蔽碧烟 가지 위 꽃봉오리 셋이 푸른 아지랑이 가렸네.
時控彩鸞過舊苑 이따금 난새 끌고 옛 동산에 올라
摘花持獻玉皇前 꽃 꺾어 옥황상제께 바치네.
71
棠昌館裏簇瓊花 당창관 안에 구슬 꽃 소담히 피어
仙子來看駐鳳車 신선이 봉황 타고 가다 멈춰 구경하네.
塵染蕙衣蓬島遠 티끌은 난초 옷에 묻고 봉래산은 멀어
玉鞭遙持海雲涯 채찍으로 멀리 바다 끝 가리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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羽客朝升碧玉梯 신선들이 아침에 푸른 사다리 오르자
桂巖晴日白鷄啼 계수나무 바위 맑은 햇살 속에 흰 닭이 우네.
純陽道士歸何晩 순양도사는 어찌 늦으시는지
定向蟾宮訪羿妻 아마도 달나라에 후예 아내 맞으러 갔겠지.
73
玉林風露泬廖廖 숲에 바람도 이슬도 고요한데
月引仙妃上石橋 달이 신선 이끌고 돌다리 오르네.
斜倚紫烟頭不擧 비스듬히 노을에 기대어 머리 들지 않고
赤城南畔憶文簫 적성 남쪽 언덕 문소를 그리네.
74
沙野先生閉赤城 사야 선생이 적성문 닫으니
鳳樓凝碧悄無聲 봉황루도 푸른 숲에 잠겨 쓸쓸하고 고요하네.
香悄玉洞步虛夜 향기로운 옥동의 허공 거니노라니
露濕桂花凉月明 이슬이 계수나무 꽃 적시고 서늘한 달 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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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幡絳節曉霞中 붉은 깃발 새벽 노을 속 나부끼는데
別殿淸齊待五翁 별전에서 목욕재계하고 오방신선 기다리네.
秋水一絃輕戞玉 가을물 한줄기 맑게 흐르고
碧桃花滿紫陽宮 푸른 복숭아꽃 자양궁에 가득 피었네.
76
一春閑伴玉眞遊 봄 한철 한가로이 옥진과 놀았는데
倏忽星霜己報秋 어느새 세월 흘러 벌써 가을이네.
武帝不來花落盡 무제는 오지 않고 꽃도 져버려
滿天烟露月當樓 하늘엔 노을 깔리고 달이 다락에 다가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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彤閣銀橋駕太虛 붉은 누각에 은빛 다리 하늘에 걸렸는데
劍光閑射九眞墟 밝은 달빛이 구진산에 한가로이 비치네.
金牌挂向雙麟角 금패로 쌍기린 뿔에 걸고 가노라니
碧月寒侵玉札書 푸른 달빛이 싸늘하게 편지에 스며드네.
78
絳燭熒煌下九天 붉은 촛불 휘황하게 하늘에 서리고
日升螭陛玉爐烟 용트림 옥화로 위로 해 솟아오르네.
無央鸞鳳隨金母 무앙궁 난새와 봉황이 서왕모 따라와
賀東皇一萬年來 동황님 만수무강 하례 올리네.
79
鰲峀雲低日欲斜 오수산에 구름 나직하고 해 기우는데
水宮簾箔捲秋波 수궁의 가을 물결 주렴처럼 걷히네.
楓香月鶴經年夢 단풍 향기에 달빛과 학과 일 년 지내는 꿈 꾸는데
斷閶門咢綠華腸 대궐 문 앞 악록화 애를 태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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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昌公子欲朝天 문창공자가 하늘에 조회 오려 하자
笑泥嬌妃索玉鞭 서왕모 웃으며 채찍 달라 하시네.
庭下彩鸞三十六 뜰 아래 오색 난새 서른여섯 마리
衣翠相對碧池蓮 푸른 날개를 벽지 연꽃과 마주하였네.
81
星冠霞佩好威儀 별과 노을 노리개 위의가 훌륭해
三島仙宮入奏時 삼신산 신관들 임금께 아뢰러 들어가네.
頻把金鞭打龍角 자주 채찍 잡고 용의 뿔을 치며
爲嗔西去上天遲 서쪽 하늘에 오르는데 더디다고 꾸짖네.
82
八馬乘風去不歸 말 여덟 마리 바람 타고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桂枝黃竹怨瑤池 계수나무 가지와 황죽 노래로 요지 원망하네.
昆庭玉瑟雲中響 곤륜산 뜰 비파소리 구름 속에 메아리치며
傳語凌華罷畵眉 꽃에 치어서 눈썹 그리기 그만두었네.
83
楡葉飄零碧流流 느릅 잎 떨어지고 은하수 흐르는데
玉蟾珠露不勝秋 달빛에 구슬 같은 이슬 가을을 견디지 못하네.
靈橋鵲散無消息 신령한 다리에 까치도 흩어져 소식 없고
隔水空看飮渚牛 건너편에서 물 마시는 견우만 부질없이 바라보네.
84
珠露金飇上界秋 이슬에 회오리 불어 하늘나라 가을 되자
紫皇高宴五雲樓 옥황상제 오운루에서 잔치 베푸시네.
霓裳一曲天風起 예상우의곡 한 곡조에 바람 일어나니
吹散仙香滿十洲 신선 향기 흩어져 온 세상에 가득하네.
85
乘鸞夜入紫微城 난새 타고 한밤중에 자미성 들어가니
桂月光搖白玉京 계수나무 달빛이 백옥경 흔드네.
星斗滿空風露薄 하늘에 별들 가득하고 바람, 이슬 적은데
綠雲時下步虛聲 푸른 구름에서 때때로 경 읽는 소리 나네.
86
黃金條脫繫羅裙 황금 끈 풀어서 치마 묶고
十幅花牋染碧雲 십 폭 꽃 편지에 푸른 구름 물들이네.
千載玉淸壇上約 천 년 옥청궁 단 위에서 약속
笑憑三鳥寄羊君 웃으며 세 마리 새에게 시켜 양군께 부치네.
87
六葉羅裙色曳烟 여섯 폭 비단치마 노을에 끌면서
阮郞相喚上芝田 완랑 불러서 난초밭으로 올라가네.
笙歌暫向花問盡 피리 소리 홀연히 꽃 사이에 스러지니
便是人寰一萬年 그 사이 인간 세상에선 일만 년 흘렀네.
采蓮曲
秋淨長湖碧玉流 가을에 맑은 호수 벽옥처럼 흘러가고
蓮花深處繫蘭舟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목란주를 매어놓고
逢郞隔水投蓮子 당신을 보고 물 건너에서 연밥을 던지고선
或被人和半日羞 혹시 남이 봤을까봐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다오.
이 시는 연밥을 따며 부른 노래로, 애정의 표현이 파격적(破格的)이면서도 대담함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가을날 호수가 얼마나 깨끗한지 푸른 옥이 흐르는 듯하다. 호수 중에서 연꽃이 많이 핀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고 남자 친구를 만나려고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진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발각되어 낯이 뜨거워 어쩔 줄 모른다.
허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허난설헌을 포함한 조선의 시사(詩史)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조선의 시(詩)는 중종조(中宗朝)에 이르러 크게 성취되었다. 이행(李荇)이 시작을 열어 눌재(訥齋) 박상(朴祥)·기재 신광한(申光漢)·충암(冲庵) 김정(金淨)·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일세(一世)에 나란히 나와 휘황하게 빛을 내고 금옥(金玉)을 울리니 천고(千古)에 칭할 만하게 되었다. 조선의 시는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서 크게 갖추어지게 되었다. 노수신(盧守愼)은 두보(杜甫)의 법을 깨쳤는데 황정욱(黃廷彧)이 뒤를 이어 일어났고,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은 당(唐)을 본받았는데 이달(李達)이 그 흐름을 밝혔다. 우리 망형(亡兄)의 가행(歌行)은 이태백(李太白)과 같고 누님의 시는 성당(盛唐)의 경지에 접근하였다. 그 후에 권필(權?)이 뒤늦게 나와 힘껏 전현(前賢)을 좇아 이행(李荇)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니, 아! 장하다(我朝詩 至中廟朝大成 以容齋相倡始 而朴訥齋祥, 申企齋光漢金冲庵淨鄭湖陰士龍 竝生一世(병생일세) 炳烺鏗鏘 足稱千古也 我朝詩 至宣廟朝大備 盧蘇齋得杜法 而黃芝川代興 崔白法唐而李益之闡其流 吾亡兄歌行似太白 姊氏詩恰入盛唐 其後權汝章晩出 力追前賢 可與容齋相肩隨之 猗歟盛哉).”
秋夜曲
1
蟪蛄切切風瀟瀟 쓰르라미 즐즐하고 바람은 소소한데
芙蓉香褪永輪高 연꽃 향기 바래고 가을 달은 높기만 하다.
佳人手把金錯刀 가인이 금 가위 손에 잡고
挑燈永夜縫征袍 등불 돋운 기나긴 밤에 길 떠날 옷 깁는다.
2
玉漏微微燈耿耿 물 시계 소리 희미하고 등잔 불은 반짝거리는데
罹幃寒逼秋宵永 휘장 안으로 추위 스며들고 가을밤은 길기만 하다.
邊衣裁罷剪刀冷 변방으로 보내는 옷 다 지으니 가위는 차갑고
滿窓風動芭蕉影 창에 가득 바람 불어오니 파초 그림자 어른거린다.
秋恨 가을 한
絳紗遙隔夜燈紅 붉은 비단 창 너머 멀리 밤 등불 붉고
夢覺羅衾一半空 꿈에서 깨니 비단 이불 절반이 비었네
霜冷玉籠鸚鵡語 찬 서리에 옥 조롱 앵무새 지저귀는데
滿階梧葉落西風 뜰 계단에 가득 찬 오동잎 서풍에 떨어지네
春雨
春雨暗西池 못 위엔 자욱히 봄비 내리고
輕寒襲羅幕 살랑한 찬 기운 방장에 스민다.
愁倚小屛風 시름겨워 침병에 기대니
墻頭杏花落 담장엔 살구꽃이 떨어지누나.
橫塘曲
紅藕香殘風雨多 비바람 잦아지자 연꽃 향내도 스러지고
吳姬爭唱竹枝歌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사랑 노래를 부르네.
歸來日落橫塘口 해 저무는 횡당 어귀로 돌아오자니
煙裏蘭燒響軋鴉 안개 속에 삐거덕 노 젓는 소리 들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