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李滉, 1501~1570)
感春
淸晨無一事 맑은 아침 다른 일 없어
披衣坐西軒 옷을 입고 서헌에 앉았다.
家僮掃庭戶 어린 종은 뜰을 쓸고
寂廖還掩門 심심하여 도로 문을 닫는다.
細草生幽砌 가는 풀들 섬돌에 돋아나고
佳樹散芳園 나무는 향기로운 정원에 흩어져 있다.
杏花雨前稀 살구꽃은 비에 떨어져 드물고
桃花夜來繁 복사꽃은 밤사이 활짝 피었구나.
紅櫻香雪飄 붉은 벚꽃 눈처럼 휘날리고
縞李銀海飜 흰 오얏꽃은 은빛 바다인 듯 뒤척인다.
好鳥如自矜 새들은 뽐내고
閑關哢朝暄 한가로운 문빗장에서 아침을 지저귄다.
時光忽不留 세월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幽懷悵難言 가슴 속 그윽한 회포는 서글퍼 말하기 어렵구나.
三年京洛春 삼 년 동안의 서울 봄은
局促駒在轅 멍에 맨 망아지처럼 움츠렸도다.
悠悠竟何益 아득한 세월 끝내 무슨 보탬이 되었는지
日夕愧國恩 아침저녁으로 나라의 은혜에 부끄럽기만 하다.
我家淸洛上 나의 집은 맑은 낙동강 상류에 있어
熙熙樂閑村 한가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라네.
隣里事東作 이웃 고을에서 봄 농사일하면
鷄犬護籬園 닭과 개가 울타리를 지켜준다.
圖書靜几席 책 놓인 깨끗한 상에 있으려니
煙霞映川原 강과 언덕은 봄 안개와 노을에 빛난다.
溪中魚與鳥 냇가에는 고기와 새들이 있고
松下鶴與猿 소나무 아래에는 학과 원숭이가 노는구나.
樂哉山中人 좋아라, 산 속 사람들이여
言歸謀酒奠 나도 사직을 청하여 고향 돌아가 술잔이나 나누리라.
溪居雜興 시냇가에 살며 여러 가지의 흥이 일어
其一
買地靑霞外 조용히 멀리 벗어나 땅을 세내어
移居碧澗傍 푸른 산골 가까이 살 곳을 옮기었네.
深耽惟水石 오로지 물과 돌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大賞只松篁 이 소나무와 대숲을 중히 여겨 숭상하네.
靜裏看時興 조용한 속마음 계절을 즐기며 관찰하고
閒中閱往芳 한가함 속에 지나간 명성에 헛되이 늙네.
柴門宜迥處 사립문은 마땅히 먼 곳에 머무르니
心事一書牀 마음속 일이 모두 졸고 있는 글이로다.
其二
開荒臨綠岸 푸른 언덕 임하여 황무지를 개척하고
結屋對丹巖 붉은 바위를 마주하여 집을 지었네.
澗草多無號 산골짜기 잡초는 이름 모르는 것이 많고
沙禽竝不凡 모래톱의 새들은 모두 범상하지 않구나.
山居思損益 산에 살며 손과 익에 대해 사색하고
溪座聽韶咸 시냇가에 앉아 요와 순임금의 노래를 듣네.
爛煮新蔬美 문드러지게 삶은 맛좋은 나물이 새로운데
何須待晩饞 어찌 모름지기 늦도록 기다려 음식을 탐할까?
溪堂偶興十絶
1
四麓唯紅錦 사방의 산기슭은 붉은빛 비단이요
雙林是碧羅 양옆의 깊은 숲은 푸른빛 비단일세.
豈知淳朴處 누군들 알았으랴 순박한 이곳이
還被化工誇 도리어 조화옹의 자랑거리 될 줄을.
2
彴跨溪聲度 시냇물 소리 타고 징검다리 건너면
堂依壑勢開 골짝 지세 의지하여 서당이 열려 있네.
從他笑深僻 너무 깊고 궁벽하다 남들은 웃지마는
素履足徘徊 내 본분에 이만하면 배회하기 넉넉해라.
3
開鏡爲蓮沼 열어 놓은 거울처럼 연못을 만들고
披雲作石門 구름을 헤치고서 돌문을 세웠네.
和風吹澹蕩 실바람 불어 화창한 날인가 하면
時雨發絪縕 때맞춰 오는 비는 봄기운 감도누나.
4
石竇疏泉遠 바위틈에 솟는 샘물 멀리서 끌어오고
山根卜宅幽 산기슭 깊은 곳에 집 지으니 그윽해라.
客來愁絶險 손님이 오실 제에 험난한 것 걱정하나
還往儘悠悠 오고 가는 그 길이 진실로 유해라.
5
盡日雲含雨 하루가 다 가도록 구름은 비 머금고
移時鳥喚春 새들은 봄을 불러 쉬지를 않는구나.
山村頗狎虎 깊숙한 산골이라 범을 저어 아니하니
溪路少逢人 시냇길에 오가는 이 만나는 일 드물구나.
6
已著游仙枕 베개 베고 꿈속에서 신선 되어 놀고 나선
還開讀易窓 주역을 읽으려고 창문 열어 두었노라.
千鍾非手搏 천종은 손으로 잡을 것이 못 되어라
六友是心降 여섯 벗이 서로들 마음에 맞거니.
7
布穀催田務 뻐꾹새는 뻐꾹뻐꾹 농사일을 재촉하고
提壺勸客愁 사다새는 객에게 시름을 자아내네.
更憐雲外鶴 더더욱 어여쁜 건 구름 밖의 鶴이
無語立松頭 소나무 꼭대기에 말없이 서 있구나.
8
爛熳堆紅紫 붉은빛 자주빛은 난만하게 쌓여 있고
淸新遶綠靑 푸른빛 초록빛은 청신하게 둘렀는데
三杯偶獨酌 우연히 혼자서 석 잔 술 먹고 나니
萬事本無營 만사는 본래부터 경영할 것 없구나.
9
因病投閒客 병든 몸을 구실삼아 한가한 몸이 되어
緣深絶俗居 깊숙한 곳 찾아와서 세속 인연 끊고 사네.
欲知眞樂處 참으로 즐거운 일 무엇인지 알고파서
白首抱經書 백수가 되도록 경서를 끼고 사네.
10
掬泉注硯池 샘물 움켜 담아 벼루 먹물 만들고
閑坐與新詩 조용히 앉아 새로 시를 쓴다.
自適幽居趣 그윽한 삶의 정취에 자족하니
何論知不知 누가 알든 모르든 무얼 논하겠나.
溪上偶吟 계상에서 우연히 읊다.
把釣閒吟坐石磯 낚싯대 잡고 한가히 읊으며 물가 돌에 앉으니
不知林表掛斜暉 지는 해가 숲 바깥에 걸리는 줄도 몰랐네.
歸來一室淸如水 돌아오니 온 집안은 물 같이 한가한데
身上猶看半濕衣 다만 몸 위의 반쯤 젖은 옷만 바라보네.
溪上秋興
雨捲雲歸暮天碧 구름 가고 비 그치자 저녁 하늘 푸르고
西風入林鳴策策 서풍은 숲에 들어 소슬히 울고 있네.
溪禽忘機立多時 물새가 멍하니 오랜 시간 서성이다
忽然決起飛無迹 홀연히 솟아올라 자취 없이 날아가네.
溪齋 산골짜기에서 정진하다.
琴生結茅棟 거문고 만들고 용마루에 띳집 지으니
在我南溪曲 내가 있는 곳은 굽은 시내 남쪽이라오.
搖窓林影寒 흔들리는 창에 수풀 그림자 쓸쓸하고
照席嵐光綠 자리에 비치는 산기운 빛은 푸르구나.
邇來闃無人 요 근래에는 사람도 없으니 고요하고
蓬蒿翳庭菊 흐트러진 쑥들이 뜰의 국화를 가리네.
呼兒痛掃漑 아이 불러 힘을 다해 씻고 쓸게 하고
終日坐幽獨 해가 다하도록 혼자 조용히 머무르네.
手中一卷書 손 안에는 또 하나의 책과 글이 있으니
隨意繙且讀 뜻을 따라서 또한 읽기를 되풀이하네.
有理古猶今 많은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똑 같으니
有味飫如沃 맛이 있어 배부르게 마시는 것 같구나.
悲秋自懷遠 쓸쓸한 가을 절로 심오하게 생각하고
考槃甘弗告 멈춰 헤아려 근심 깨우치니 만족하네.
喟然長太息 한숨에 탄식하며 항상 크게 숨을 쉬고
商風振山木 가을바람에 산의 나무들은 떠는구나.
琴壎之 - 조선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 자는 應壎, 이황의 문인. 영춘현감, 양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퇴계집 간행실무자로 참여함.
孤山
何年神斧破堅頑 어느 해에 신이 굳은 암석 도끼로 찍어내어
壁立千尋跨玉灣 벽이 천 길이나 우뚝 만에 걸터앉았구나.
不有幽人來作主 은자가 찾아와 살지 않으면
孤山孤絶更誰攀 높은 산 외로운 산에 다시 누가 올라올까.
過吉先生閭
朝行過洛水 아침에 길을 떠나 낙수를 지나니
洛水何漫漫 낙수는 어이하여 그리도 길고 길며
午憩望鰲山 낮에는 쉬면서 오산을 바라보니
鰲山鬱盤盤 오산은 구불구불 울창도 하구나.
淸流徹厚坤 맑디맑게 흐르는 물 두터운 땅 뚫었고
峭壁凌高寒 깎아지른 절벽은 하늘 높이 솟았으니
有村名鳳溪 거기에 봉계란 마을이 하나 있어
乃在山水間 산과 물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오.
先生晦其中 선생이 그 가운데 숨어서 살았으니
表閭朝命頒 조정에서 영을 내려 정려를 표하였네.
大義不可撓 대의가 흔들리지 않음이여
豈曰辭塵寰 티끌 세상 싫어서라 어이 그리 말하랴
千載釣臺風 천 년이라 조대의 풍조여
再使激東韓 또다시 동한 땅에 울리게 되었구나.
扶持已無及 나라를 부지함은 이미 가망 없었으나
植立永堅完 절개를 세움이여 길이 굳고 완전하도다.
丈夫貴大節 장부는 큰 절개를 귀하게 여기나니
平生知者難 한평생 그 마음을 아는 이 드물었네.
嗟爾世上人 아아 그대 세상 사람들이여
愼勿愛高官 부디 높은 벼슬일랑 사랑하지 말아라.
吉先生의 旌閭 - 야은 길재가 고려말에 나라가 망할 징조를 보고 고향인 선산으로 내려와 금오산 아래 낙동강 가에 숨어 살면서 조정에서 벼슬을 주어도 받지 않고 절개를 지켰다. 조정에서는 절의를 가상히 여겨 정려를 내려주었다.
過淸平山有感
峽束江盤棧道傾 협곡에 묶인 다리 골짜기에 비겨있고
忽逢雲外出溪淸 구름 밖에서 만나 맑은 개울물로 흘러나오네.
至今人說廬山社 지금까지 사람들은 여산사를 말했지만
是處君爲谷口耕 임께서는 이곳에서 곡구 밭을 갈았다네.
白月滿空餘素抱 공중에 가득한 달빛은 남은 마음 품고
晴嵐無跡遣浮榮 갠 날 산 기운 자취 없이 헛된 영화 씻었네.
東韓隱逸誰修傳 우리나라 숨은 선비를 누가 적어 전할까
莫指微疵屛白珩 사소한 티 있다 하여 흰 구슬을 버리지 말라.
九月二十九日溪堂卽事 9월 29일 계당에서 즉석으로 짓다
冷雨寒烟暝一山 찬비와 찬 안개에 온 산이 어둑하여
園林蕭索菊花斑 동산은 스산한데 국화가 아롱졌네.
但知抵死芳香在 다만 질 때까지 꽃다운 향기를 간직하려 할 뿐이니
不管風霜夜夜寒 바람과 서리로 밤마다 차가운 건 괘념치 않네.
金剛山
巨嶽臨東溟 동해에 도래한 거대한 묏부리들
雄雄半天出 걸출한 그 모습 구름 위로 솟았네.
日月互蔽虧 해와 달은 서로 감싸며 이지러지고
靈仙粉宅窟 신선의 굴에선 향내만 전해오는데
我欲往問之 한 번 찾아가서 내 욕망 물어보려도
塵纓甚拘鬱 세상일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했네.
恨無圓寵方 어이하면 신선 되는 방법을 배워
飛去宿願畢 하늘 위로 날아올라 소원 이룰 가
超然探興客 초연히 탐승길 올라 유람객 되니
動止不羈情 굴레를 벗은 듯 발걸음도 정겹네.
境勝吟仍坐 절경 시 읊조리느라 쉴 새 없고
天晴樂便行 하늘까지 개이니 풍류길이로다.
江山千樣好 강산은 천태만상 좋은 시절인데
風月一般淸 맑은 바람, 밝은 달은 한껏 상쾌해.
物外閑消息 세상 밖인 듯 소식조차 막혔네.
無人識得情 사람 없어도 정 느낄 수 있으니
海東形勝地 해동땅 어디에나 명승지는 많지만
風景剩探佳 그 중에도 아름다운 절승경개라
浩蕩江山眼 강과 산은 눈간데 끝이 없고
淸凉風月懷 달빛은 청량한 바람을 품으니
始知安義命 처음으로 몸과 마음 쉴 곳 찾았네.
那復飾形骸 내 어찌 부귀공명에 사로잡히랴.
此去移居住 돌아가면 이곳에 집을 옮겨 살리라.
林泉起小齋 맑은 숲속에 작은 정자 지으리.
聞說金剛勝 금강산 빼어난 경치 소문만 듣고
空懷二十年 품은 뜻 없이 스무 해를 보냈노라.
玩來淸景地 놀기 위해 찾아온 맑고 깨끗한 곳
況復好秋天 하물며 때는 가을이라 호시절인데
溪菊香初動 시냇가 들국화는 첫 향기 풍기고
巖楓紅慾燃 바위 위에 단풍나무 붉게 타는 듯
行吟巖壑底 절벽 아래를 거닐며 시를 읊노라니
心慨覺蕭然 강개한 이내 마음 외려 쓸쓸하구나.
錦江亭
鵑啼山裂豈窮年 두견이는 어찌 한평생 산이 찢어져라 우는지
蜀水名同非偶然 촉나라의 강 이름도 한가지라 우연이 아니구나.
明滅曉簷迎海旭 큰 아침 해를 맞으니 가물거리던 처마가 밝아오고
飄蕭晩瓦掃秋烟 낡은 기와를 쓸듯 가을 안개 쓸쓸히 나부끼네.
碧潭楓動魚游錦 단풍나무 흔들리는 푸른 물가엔 아름다운 물고기 노닐고
靑壁雲生鶴踏氈 구름이 이는 푸른 절벽엔 학이 융단을 밟고 있네.
更約道人攜鐵笛 도인과의 약속을 바꿔서 날라리를 들고서
爲來吹破老龍眠 남김없이 다 불어 잠자는 늙은 용을 돌아오게 하리라.
記夢 꿈을 쓰다
虛窓寂寂夜如水 빈창은 적적한데 밤은 물처럼 흐르고
一枕夢中千萬里 잠깐 자는 꿈속에 천만 리로구나.
流觀楚越窮岷峨 초와 월을 스쳐보니 아미산이 드러나고
掣帆江海連天河 강과 바다에 돛을 당겨 은하에 잇닿았네.
淸都館闕空中起 하늘나라 궁전은 공중에 우뚝 솟고
玉皇高居五雲裏 옥황상제 높은 집 오색구름 속에 있네.
飛仙縹緲顔婥約 아득히 날던 신선 아름답고 예쁜 얼굴로
邀我共勸流霞酌 나를 맞이하여 함께 유하주를 권하네.
下界塵緣一念餘 세상의 속된 인연 마음에 조금 남았는지
忽然下墮形蘧蘧 갑자기 하계로 떨어지니 육신이 놀라네.
朝來市聲鏖耳側 아침 되자 저자 소리에 귓전이 시끄럽고
更憶淸都那易得 다시 하늘나라 생각하나 어찌 갈 수 있을까?
岷峨 - 촉나라의 岷산과 峨眉山(아미산)을 말함. 민아는 민산의 북쪽줄기를 말함이며 ,아미산을 민아산이라 함.
寄鄭子中正字 정 자중에게 부치다
尺素書從谷口來 짧은 편지 글을 따라서 골짜기 입구에 와서
山窓欣對碧雲開 산속 창에 푸르게 펼친 구름 즐겁게 마주하네.
躬行正似梨甜熟 스스로 행하니 때마침 배가 달게 익는 것 같고
妙處眞同火撥埋 묘한 곳에 화기 다스려 묻는 것과 참으로 같구나.
遲暮光陰難把玩 나이 들어 늙어가니 세월을 잡아 희롱하기 어렵고
別離懷抱佇追陪 헤어져 떠나는 회포는 우두커니 따르려니 더하네.
卻愁好事奇明彦 기명언(대승)은 근심 물리치는 좋은 재능 있으니
差說精微坐俊才 정밀하고 자세한 서술 달라도 뛰어난 재주 지키라.
子中 - 정유일의 자, 호는 文峯. 이황의 문인으로, 대사간과 이조 판서를 지냈다. 詩賦에 뛰어남. 또한 성리학에 있어서도 사문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주자학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시켜 이기호발설을 사상의 핵심으로 함으로써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이 사단(四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이것을 타는 것이 칠정(七情)이라 주장한 퇴계설을 추종, 발전시켰다.
寄贈李仲久三絶 이중구에게 3절을 부쳐 보내다.
其一
靜存贈我一丸朱 정존 이담이 내게 보내준 붉은 환약 한 알
我正昏眸欲廢書 나는 마침 눈이 어두워 글을 폐하려 했네.
結習未除時點染 쌓인 습관 덜지 못해 늘 조금씩 전염되어
山窓非是注蟲魚 산속 창 등지고 벌레와 물고기 주를 다네.
仲久 - 李湛의 자, 호는 靜存齋, 퇴계의 제자.
其二
晩從書裏悟迷塗 만년에 쫓는 글 속에서 길 헤매는 걸 깨우치고
病業還慙大丈夫 병이 두려워 부끄럽게 물러나는 대장부라네.
爲問靜存存底事 정존(이중구)을 부르려 하나 비웃음이 있어서
書來肝膽好相輸 속마음 글로 돌아오니 서로의 우의를 보내네.
其三
山木何能便秀穹 산의 나무는 어찌 능히 편안히 하늘에 솟아나나
存心要在積年功 요긴한 곳에 새겨둔 마음에 여러 해 공이 쌓이네.
君看日夜東流水 그대 보게나 밤과 낮 동쪽으로 물이 흐르는 것은
放海先從一坎中 먼저 쫓아서 바다로 떠나가니 구덩이 속 같구나.
金而精出遊陶山留宿 明早 見寄三絶 次韻卻寄 김이정이 도산에 나가 놀다 묵고는 아침에 3 절을 보낸 것을 보고 차운하여 보내다
1. 觀梅 매화를 보며
至後梅梢意已生 동지 뒤에 매화나무 끝에 벌써 나온 뜻을
山翁不見佇幽情 산 늙은이 보지 못하고 그윽한 정취만 기다리네.
多君獨去探消息 다만 그대 홀로 가서 소식을 찾았으니
吟到黃昏片月橫 황혼에 이르도록 읊는시가 조각달 가로 누웠네.
2. 天淵玩月 하늘과 연못의 달을 감상하다.
如覺襟懷累一塵 마땅히 품은 생각 드러내 조그만 티끌마저 벗고
此臺看月夜來新 이 돈대에서 달을 보니 오는 밤이 새롭구나.
都將灑落淸眞境 못 또한 개운하고 깨끗해 명료한 맑은 경계를
分付幽人絶俗因 범속한 인연을 끊은 유인에게 나누어주네.
3. 自歎 스스로 탄식함
已去光陰吾所惜 이미 지난 세월이 나는 안타깝지만
當前功力子何傷 그대는 이제부터 하면 되니 뭐가 걱정인가.
但從一簣爲山日 한 삼태기씩 흙을 쌓아 산을 이룰 그날까지
莫自因循莫太忙 주저하지 말고 급하게 서둘지도 말게.
踏靑登霞山 푸른 풀 밟으려 자하산에 올라
踏靑幽徑草茸茸 답청 가는 깊은 골짝 길에 풀 무성한데
來上霞山坐碧峰 자하산에 올라와 푸른 봉우리에 앉았다.
萬樹欲花春漠漠 나무마다 꽃 피려나 봄은 아득한데
一山將暮翠重重 온 산이 저물려니 봉마다 푸른빛이다.
舊遊京國渾如夢 지난날 서울 일들은 아련히 꿈 같고
新卜田園只自農 새로 밭 마련하여 직접 농사지으련다.
曲水佳辰當遏密 굽이굽이 물 흐르는 좋은 때에 국상을 당해
題詩回首涕霑胸 시 짓고 돌아다보니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大雷雨行 큰 우뢰와 빗속에 가다
以上 幷在狎鷗亭作 이상은 압구정에서 짓다.
江亭曉起推月戶 강가 정자 새벽에 일어나 입구를 달빛에 추측하니
遠近蒼茫靜林塢 원근이 모두 창망한데 둑의 수풀은 고요하네.
忽然江海色悽慘 갑자기 강과 바다를 오싹하고 참혹하게 꾸미더니
礮車雲起初如縷 실같이 시작하여 쇠뇌 수레바퀴처럼 구름이 이는구나.
望中紫電掣金蛇 보는 중에 자줏빛 번개가 금빛으로 구불구불 끌어당기고
怪氣颯沓相呑吐 괴기한 바람이 솟구쳐 서로 삼키고 토하네.
西來黑風撼山岳 서쪽에서 검은 바람 밀려와 산과 높은 산을 흔들고
龍捲湖波半空舞 용이 호수의 물결을 거두어 하늘 가운데로 날아다니네.
太陰崩騰鬼神惡 커다란 음기가 무너지고 뛰어오르니 추악한 귀신같고
銀河屈注傾天府 은빛 강물이 굽이쳐 흐르니 비옥한 땅이 기울어지네.
鯨鯢駕浪馳前陣 고래가 물결을 타듯 진 앞에 내달리고
虎豹爭鋒嚴後鼓 범과 표범이 칼날을 다투듯이 북소리 뒤에서 극심하구나.
穿城半夜縱千牛 천 마리의 소를 놓아 한밤중에 성을 뚫는 것 같고
斫樹黃昏飛萬弩 만 개의 쇠뇌가 날아가 황혼에 나무를 자르는 것 같네.
阿香贔屓踏狂車 향기로운 언덕을 세차게 힘써 사나운 수레로 밟아대고
劃破乾坤壯神斧 귀신이 웅장한 도끼로 하늘과 땅을 가르고 깨뜨리네.
頗疑勢觸天柱折 찌를 듯한 기세로 하늘의 기둥을 꺾을까 자못 두렵지만
鍊石區區憂莫補 잘고 용렬하게 돌을 다듬어 고치려는 근심 하지 말게나.
又恐龍門未疏鑿 용문이 소통하게 뚫지 못할까 또한 두려운데
洪流湯湯漂下土 세차게 흐르는 홍수에 아래 흙이 떠내려가네.
農夫投鍤失畎澮 농부는 밭도랑과 봇도랑을 잃어 가래를 집어던지고
賈客飄帆迷漵浦 장사꾼 질풍에 돛을 다니 물가 포구 길을 잃네.
堂上書生亦何爲 당상관이나 서생이나 모두 어찌해야 하는가
斂衽低徊上天怒 하늘의 노함에 옷깃을 바로잡고 머리 숙여 배회하네.
杜牧豪吟憶壯觀 두목은 굉장한 광경이라 호걸답게 읊지만
夏侯談經猶倚柱 하나라 인금은 글에 이르길 그대로 버텨 맡기었다네.
斯須一眼盡如掃 잠깐 사이에 모름지기 한 눈에 다 쓸어버리는 것 같더니
萬里晴光曬秋宇 만 리에 맑게 갠 빛에 시름겨운 들녁을 말리는구나.
太虛幽幽本無物 하늘은 아득히 멀어 본래 아무 물건도 없는데
孰居無事爲之主 누가 살기에 아무런 일도 없이 주인 행세를 하는가.
一闔一闢恣披拂 모든 하늘 문을 한 번에 열어 마음대로 떨치고 해치어
變化神功誰敢侮 변화의 신공으로 누구를 감히 조롱하는가.
天公號令不虛出 하느님의 호령에 헛되이 나서지 못하지만
摧殘震動皆仁煦 벼락이 쳐 사납게 꺾였어도 다함께 어진 은혜를 베푸네.
向來所見付幻境 저번 걸 보고 헤아리는 생각은 괴이한 경우라 맡기고
一笑臨風大江滸 큰 강 물가의 바람에 임하여 한 번 웃는구나.
嶋潭三峰
山明楓葉水明沙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 석양의 도담삼봉에는 저녁노을 드리웠네.
爲泊仙蹉橫翠壁 신선의 뗏목은 푸른 절벽에 기대어 머물고
待看星月湧金波 별빛 달빛 아래 금빛 파도 너울진다.
陶山暮春偶吟 도산에서 늦봄에 우연히 읊다
浩蕩春風麗景華 호탕한 봄바람과 화사한 경치인데
蔥瓏佳木滿山阿 파아랗고 영롱한 나무가 산자락에 가득하여라.
一川綠水明心鏡 한 줄기 푸른 물은 마음 밝히는 거울인데
萬樹紅桃絢眼霞 만 그루 붉은 복사꽃은 눈을 어리는 노을이어라.
陶山月夜詠梅
1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 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끝으로 둥근 달 떠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 굳이 부르지 않았어도 실바람은 불어와
自有淸香滿院間 뜨락을 온통 맑은 향기로 채우는구나.
2
步屧中庭月趁人 나막신 끌고 뜨락을 거닐자 달빛은 사람을 따르고
梅邊行繞幾回巡 난 매화꽃 주변을 얼마나 돌았던가.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옷엔 향기 가득, 몸엔 달그림자가 가득하여라.
3
晩發梅兄更識眞 늦게 피는 매화꽃 참뜻을 다시금 알겠으니
故應知我怯寒辰 일부러 내가 추위에 약한 것을 알아서겠지.
可憐此夜宜蘇病 가련하다, 이 밤 신병 치유만 된다면야
能作終宵對月人 밤 다 새도록 달과 함께하련만.
4
往歲行歸喜裛香 몇 해 전엔 돌아와 기쁘게 향기에 빠졌었고
去年病起又尋芳 지난해에는 병석에서 일어나 또 꽃을 찾았었네.
如今忍把西湖勝 지금은 서쪽 호수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며
博取東華軟土忙 부드러운 흙 위에서 동쪽의 꽃을 두루 취하느라 바쁘기만 하네.
5
山夜寥寥萬境空 산 속 밤 적막하고 온 세상은 빈 듯
白梅涼月伴仙翁 흰 매화 맑은 달이 신선 노인 벗해준다.
箇中唯有前灘響 그 속에 오직 앞 내 흐르는 소리
揚似爲商抑似宮 높을 때는 상음(商音)이요 낮을 때는 궁음(宮音)이어라.
6
老艮歸來感晦翁 노간 매화 시에 주자는 감동 받아
託梅三復嘆羞同 수동이란 글구로 세 번이나 감탄했다.
一杯勸汝今何得 너에게 한 잔 권하고 싶으나 할 수 없어
千載相思淚點胸 천 년 전 생각에 눈물로 가슴 속을 적신다.
陶山雜詠
영지산의 동쪽 기슭에 도산이 있는데 퇴계가 일찍이 물러나 거처하면서 서당을 짓고 문생을 모아 도학을 강하는데 이어 도산기를 짓고 7언시 18절구를 지어 그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또 도산잡영 26 절구가 있다. 퇴계는 도산 가운데에 서당을 세 칸 짓고 도산서당이라 편액하였다. 모두 18 절구가 있다.
1. 陶山書堂
大舜親陶樂且安 순임금은 질그릇을 구워도 즐거움이 있었고
淵明躬稼亦歡顔 도연명은 밭을 갈아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聖賢心事吾何得 성현의 심사를 내 어찌 체득하리
白首歸來試考槃 늘그막에 돌아와 은거하리라.
2. 岩棲軒
曾氏稱顔實若虛 증자는 안자더러 실하면서 허한 듯이라고 일컬었는데
屛山引發晦翁初 이를 병산이 주회암에게 가르쳤네.
暮年窺得岩棲意 늘그막에야 바위에 사는 재미를 알았으니
博約淵氷恐自疏 박문약례ㆍ임연리빙이 공부 허술할까 두렵노라.
岩棲軒 - 바위가 서쪽의 명(明)이 깃든 곳
屛山 - 유자휘
朱晦庵 - 주자가 머문 암자
博文約禮 - 광범한 지식과 이의 실천적 구현을 강조한 유학 용어
臨淵履氷 - 마음속에 잠복한 얼음 같은 추사의 기운을 연못으로 비유
이 시는 「도산잡영」 중의 하나로, “증자가 안연을 두고 ‘있어도 없는 듯하고, 찼어도 빈 듯하다.’라 일컬었는데, 병산(유자휘(劉子翬)의 호로, 주자(朱子)의 아버지 주송(朱松)과 친구이며, 주송이 죽은 뒤에 주자를 가르쳤다)이 회암의 자를 지어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축하하였다. 회암의 시에 ‘오랫동안 할 수 없음을 스스로 믿었더니, 산속에 깃들어 작은 효험 바라노라.’라 했었는데, (산속에 깃든다는 말을 취해서) 헌의 이름으로 삼고 스스로 힘쓴다.”라는 주(注)가 실려 있다.
증자가 안연에게 한 말을 주자(朱子)의 스승인 병산이 주자에게 이것으로 자(字)를 지어 주었다. 주자는 병산의 뜻을 실현하고자 여산(廬山)의 꼭대기 운곡(雲谷)에서 살았다. 퇴계 또한 주자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의도로 암서헌(巖棲軒)이라 이름 짓고 산속에 살고 있자니, 늘그막에서야 그 의미를 터득하게 되었는데, 博文約禮 臨淵履氷 하는 공부에 소홀할까 걱정된다. 퇴계는 이 시에서 주자(朱子)의 가르침을 따르고 증자(曾子)와 안연(顔淵)의 자세를 본받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3. 玩樂齋
主敬還須集義功 경(敬)을 주장해도 의(義)를 모아야 하니
非忘非助漸融通 잊지 않고 조장하지 않아도 무르익어 통하리.
恰臻太極濂溪妙 주염계 태극의 묘리에 다다르면
始信千年此樂同 이 즐거움 천 년 가도 같음을 믿노라.
玩樂齋 - 즐거운 것들이 희롱하는 것을 건너는 문
4. 幽貞門
不待韓公假大龜 한공(韓公)의 큰 거북을 빌리지 않더라도
新居縹緲映柴屝 새로운 기운이 사립문에 비치누나.
未應山徑憂茅塞 띠가 산길을 메운다고 걱정마라
道在幽貞覺坦夷 유정한 데에 도가 있어 평탄함을 깨닫겠네.
幽貞門 - 그윽하고 곧은 문
5. 淨友塘
物物皆含妙一天 온갖 물건 모두 다 묘한 이치 품었는데
濂溪何事獨君憐 주염계는 어찌하여 연꽃만을 사랑했나.
細思馨德眞難友 형덕을 생각하면 벗하기 어렵고
一淨稱呼恐亦偏 깨끗함만 칭한다면 치우칠까 걱정이네.
淨友塘 - 못이 있는 문 앞에는 벗과 깨끗함을 나누는 못
馨德 - 향기 나는 큰 덕
6. 節友社
松菊陶園與竹三 도연명의 동산은 송죽국(松菊竹) 세 가지라
梅兄胡奈不同參 매화는 어찌하여 그 속에 못 끼었나.
我今倂作風霜契 나는 매화를 넣어서 친구를 맺었노니
苦節淸芬儘飽諳 굳은 절개와 맑은 향기 너무도 잘 알았다오.
節友社 - 벗의 모임 마디를 논한다는 문
7. 隴雲精舍
常愛陶公隴上雲 항상 사랑하노니 도공의 언덕 위의 구름은
唯堪自悅未輸君 오직 혼자서 기뻐할 만하지 임에게는 줄 수 없네.
晩來結屋中間臥 늘그막에 그 중간에 집을 짓고 누웠으니
一半閑情野鹿分 한가로운 정취는 들사슴과 나눠 가지네.
隴雲精舍 - 퇴계는 정사 8칸을 짓고 물러나 거처하였는데, 시습재, 지숙료, 관란헌이라 하였는데, 합하여 롱운정사라고 편액하였다.
8. 觀瀾軒
浩浩洋洋理若何 넓고도 양양하니 그 이치가 어떠한가
如斯曾發聖咨嗟 이와 같다고 성인이 탄식하였네.
幸然道體因玆見 다행히 도체(道體)가 이것으로 인해 나타나니
莫使工夫間斷多 공부도 이렇게 끊임없이 해야 하네.
觀瀾軒 - 마음의 물결을 관(觀)하는 추녀의 뜻
9. 時習齋
日事明誠類數飛 날마다 명(明), 성(誠)을 일삼기를 새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하니
重思復踐趁時時 거듭 생각하고 다시 실천하기를 때때로 하네.
得深正在工夫熟 공부가 익숙하면 깊이 얻음이 있으리니
何啻珍烹悅口頤 좋은 음식이 입을 기쁘게 함과 같을 뿐이랴.
時習齋 - 때마다 습관을 엄숙하게 한다는 의미
明誠 - 중용에 나오는 말인데 명으로부터 성을 이루는 것을 聖이라 이른다는 의미
10. 止宿寮 자는 것을 그치고 깨친다
愧無鷄黍謾留君 부끄럽다. 닭고기와 기장도 없으면서 부질없이 그대를 머물게 하니
我亦初非鳥獸群 나도 처음에는 역시 새와 짐승과 같이 살 수 없었네.
願把從師浮海志 원컨대 스승 따라 바다에 뗏목을 탈 뜻을 가지고서
聯床終夜細云云 침상을 맞대어 밤새도록 자세히 이야기하세.
공자의 제자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 한 노인의 집에서 자는데, 주인이 닭을 잡고 기장으로 음식을 만들어 잘 대접하였다. '새 짐승과 같이 할 수 없었다'라는 것은 공자가 길을 가다가 은자인 장저에게 "안 될 줄 알면서 억지로 하려는 사람"이라는 조롱을 들었다. 공자는 이에 "새와 짐승과 같이 떼(群: 무리 군)를 할 수 없으니 내가 이 사람을 버리고 누구와 함께 살까" 하는 탄식이 논어편에 나온다.
바다에 뜰 뜻이란 공자가 말하기를 "도를 행할 수 없으니 떼배에 타고 바다에 떠서 가겠다. 나를 따를 자는 자로로다" 하였다 (논어편)
11. 谷口門
東躡江臺北入雲 동으로 강대를 밟고 북쪽으로는 구름에 들었으니
門荒谷口擬山門 곡구의 숲을 열어 산문으로 하련다.
此名偶似前賢地 이 이름이 우연히 옛 현인의 살던 땅과 합하나
耕隱風聲詎易論 밭 갈며 숨어 살던 높은 지조를 어찌 쉬 의논하리.
谷口門 - 영혼의 고향 쪽에 구름이 몰린다는 의미
한나라의 처사 鄭子愼이 곡구에 살면서 밭 갈고 살았던 것을 인용한 말
12. 天淵臺
縱翼揚鱗孰使然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는 것 누가 시켰나
流行活潑妙天淵 활발히 유행하는 묘한 이치 하늘과 못에서 보겠네.
江臺盡日開心眼 강대에서 종일토록 마음과 눈이 열리니
三復明誠一巨編 명성 큰 책을 세 번 되풀이해 외우네.
13. 天雲臺 / 天光雲影臺.
活水天雲鑑影光 거울 같은 활수에 하늘빛 구름 그림자 비추니
觀書深喩在方塘 책을 보다가 깊이 깨달음이 네모난 연못에 있었네.
我今得在淸潭上 나도 지금 맑은 못 위에서 뜻을 얻으니
恰似當年感歎長 주자의 당년에 감탄하던 것과 흡사하구나.
14. 濯纓潭
漁父當年笑獨醒 어부가 당시에 혼자 술에 깬 이를 비웃었으니
何如孔聖戒丁寧 공자께서 정녕 경계하신 말씀과 어떠한고.
我來叩枻吟風月 내가 와서 노를 두드리고 풍월을 읊으니
却喜淸潭可濯纓 맑은 못에 갓끈 씻을 수 있음이 기쁘도다.
濯纓潭 - 갓끈을 씻는 못이라는 의미
15. 盤陀石
黃濁滔滔便隱形 도도하게 흐르는 탁한 물결에는 문득 형상을 숨겼다가
安流帖帖始分明 잔잔한 물 흐를 때에 비로소 분명하네.
可燐如許奔衝裏 어여쁘다 이렇게 세찬 물결에 부딪치면서도
千古盤陀不轉傾 천고에 편편하여 줄거나 기울지를 않구나.
이 시는 반타석을 두고 노래한 것으로, 반타석은 「도산기(陶山記)」에 의하면, “반타석은 탁영담 가운데 있는데, 그 모양이 편편하지는 않으나 배를 매어 두고 술잔을 돌릴 만하다. 늘 큰비를 만나 물이 불면 소용돌이와 함께 물밑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고 물결이 맑아진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라 기록되어 있다.
반타석은 큰비가 내려 누런 탁한 물이 흘러내리면 그 형상을 물속에 숨겼다가, 물이 빠지고 물결이 고요히 흐를 때면 다시 그 형상을 분명히 드러낸다(『맹자』에 이르기를, “有孺子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孔子曰 小子 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라 한 것처럼, 정치가 혼탁하면 몸을 숨겼다가 맑아지면 다시 나타나는 현실에 대처하는 퇴계의 처신(處身)에 대한 문제이기도 함). 이 같은 거센 물결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반타석이 아름답다(세상이 혼탁하더라도 자신은 이처럼 흔들리지 않겠다는 퇴계 자신의 의지의 표명으로도 볼 수 있음).
16. 東翠屛山
簇簇群巒在翠屛 옹기종기 뭇 봉우리는 왼쪽 푸른 병풍인데
暗嵐時帶白雲橫 비 개인 뒤 산 아지랑이 때때로 흰 구름이 비꼈네.
斯須變化成飛雨 잠깐 동안에 변화하여 비를 날리니
疑是營丘筆下生 이영구의 붓끝에서 생긴 것인가 의심되네.
李營丘 - 송나라 산수화가
17. 西翠屛山
嶷嶷群峯右翠屛 우뚝우뚝 뭇 봉우리는 오른쪽 푸른 병풍인데
中藏蘭若下園亭 가운데는 절이 있고 아래는 원정이네.
高吟坐對眞宜晩 높이 읊으면서 앉아 대하기는 참으로 늘그막이 마땅하니
一任浮雲萬古淸 뜬구름 한결같이 만고에 푸르네.
18. 芙蓉峯
南望雲峯半隱形 남으로 바라보매 부용봉이 구름에 半쯤 있는데
芙蓉曾見足嘉名 부용이란 이름이 아름답구나.
主人亦有煙霞癖 주인 또한 연하의 고질병이 있으나
茅棟深懹久未成 초가집 지으려는 깊은 뜻 오랫동안 못 이뤘네.
芙蓉峯 - 상사 조사경의 집이 봉우리 아래에 있다.
芙蓉峰 - 연꽃 봉우리라 불리우는 당나라의 처사 전유암이 찾아간 고종황제의 등용 이야기에 "신은 泉石膏盲(솟아나는 바위의 물이지만, 앞 못 보는 고름이 있고) 烟霞痼疾(번뇌 같은 안개와 노을이 고질병으로 있다)이라는 烟霞痼疾이 있습니다"라 말한 것을 인용
陶山雜詠 五言絶句 26首. (제목마다 또 4언시 한 장씩 있다)
1. 蒙泉
山泉卦爲蒙 산에서 샘물이 나는 괘(卦)가 몽(蒙)이 되니
厥義吾所服 그 상(相)을 나는 늘 생각하는 바이다
豈敢忘時中 어찌 감히 시중(時中)을 잊으랴.
尤當思果育 더욱 마땅히 과육(果育)할 것을 생각하려네.
書堂之東 서당의 동쪽에
有泉曰蒙 샘이 있으니 몽천이라 한다.
何以體之 어떻게 본받으랴
養正之功 바르게 기르는 공부로다.
2. 洌井
石間井冽寒 돌 사이에 우물이 차디차니
自在寧心惻 저절로 있으니 어찌 마음에 슬프랴.
幽人爲卜居 한가로운 사람이 거처를 여기 정하였으니
一瓢眞相得 한 바가지 참으로 기쁘도다.
書堂之南 서당의 남쪽에
石井甘冽 돌우물이 달고도 차네.
千古煙沈 천고에 안개 속에 잠겼더니
從古仍冪 이제부터는 엎지를 마소.
3. 庭草
庭草思一般 뜰의 풀과 나의 의사가 일반이라 하였는데
誰能契微志 뉘 능히 그 미묘한 뜻을 알랴.
圖書露天機 도(圖)와 서(書)가 천기를 드러냈으니
只在潛心耳 다만 잠심하기에 있을 뿐.
閑庭細草 한가한 뜰에 잔 풀은
造化生生 조화로 나고 나네.
目擊道存 눈에 부딪히자 도가 있으니
意思如馨 의사(意思)가 향기 같네.
4. 磵柳
無窮造化春 무궁한 봄의 조화지만
自是風流樹 이것은 원래 풍류스러운 나무로세.
千載兩節翁 천고에 두 절옹이
長吟幾興寓 이것을 읊으며 얼마나 흥취를 붙였던가.
澗邊垂柳 시냇가에 수양버들
濯濯風度 깨끗한 풍도(風度)로다.
陶邵共賞 도연명과 소요부가 좋아하였으니
起我遐慕 나의 사모하는 마음 일어나네.
5. 菜圃
小圃雲間靜 작은 채소밭이 구름 사이에 고요하니
嘉蔬雨後滋 아름다운 채소들이 비 뒤에 자라나네.
趣成眞自得 취미를 이루었으니 참으로 스스로 즐겁고
學誤未全癡 배우겠다는 것은 틀렸으나 아주 어리석은 것은 아니로세.
節右社南 절우사의 남쪽
隙地爲圃 남은 땅에 작은 채소밭 만들었네.
下帷多暇 장막 내리고도 틈이 많으니
抱甕何苦 물독을 안음이 무엇이 괴로우리.
6. 花砌
曲砌無人跡 화단 굽이에 사람 발자취 없고
幽花發秀姿 그윽한 꽃이 고운 자태 발하네.
風輕午吟處 낮에 시 읊는 곳에 바람이 가볍고
露重曉看時 새벽에 볼 제 이슬이 무겁네.
堂後衆花 서당 뒤에 여러 꽃
雜植爛熳 난만하게 섞어 심었네.
天地精英 천지에 걸출하니
莫非佳玩 아름다움 아닌 것 없네.
7. 西麓
舍西橫翠麓 집 서쪽에 푸른 산기슭이 비꼈으니
蕭灑可幽貞 그윽히 은거할 만하네.
二仲豈無有 이중(二仲)이야 어찌 없으랴마는
愧余非蔣卿 내가 장경(蔣卿) 아님이 부끄럽네.
悄蒨西麓 푸르른 서쪽 산기슭에
堪結其茅 초가집 한 채 지을 만하네.
以藏以修 학문에 전념할 수 있으니
雲霞之交 구름 안개 어우러졌네.
8. 南淵
異石當山口 이상한 돌이 산 어구에 있고
傍邊澗入江 옆으로 시냇물이 강으로 들어가네.
我時來盥濯 때때로 내가 와서 세수하고 씻으니
淸樾興難雙 맑은 숲속에 흥취가 짝이 없도다.
石之揭揭 돌이 우뚝
樾之陰陰 숲이 무성하다.
于江之沜 강의 언덕에서
納涼蕭森 시원하게 납량하네.
9. 翠微
東隴上翠微 동쪽으로 취미에 오르니
九日携壺酒 구일에 술병을 들었네.
却勝陶淵明 도연명보다 낫구나
菊花空滿手 술도 없이 국화만 손에 가득 땄던 것보다는.
翠微翠微 취미 취미여
書堂之東 서당의 동쪽이로다.
九日故事 구일의 고사가
感慨余衷 나의 마음을 감개하게 하네.
10. 寥朗
西隴上寥朗 서쪽 언덕 넓게 탁 트인 곳에
矯首望煙霞 머리를 들어 안개와 노을을 바라보도다.
安得凌八表 어쩌면 우주에 높이 날아
仍尋羽人家 신선의 집을 찾으리.
寥朗寥朗 고요하고 트였음이여, 고요하고 트였음이여
精舍之西 정사의 서쪽이로다.
仰眺俯瞰 우러러보고 구부려 봄이여
孰知其斜 누가 그 끝간 데를 알랴.
11. 釣磯
弄晩竿仍裊 늦도록 놀리니 낚싯대가 휘어졌고
來多石亦溫 자주 오매 돌도 또한 따뜻하네.
魚穿靑柳線 물고기는 푸른 버들가지로 꿰었고
蓑帶綠煙痕 도롱이는 푸른 안개 흔적을 띠었네.
臨江苔石 강에 다다른 이끼 낀 돌에
一絲颺風 한 가닥 낚시 실이 바람에 나부끼네.
貧餌則懸 미끼를 탐하면 매달리고
冒利則訌 이익을 취하려면 싸우느니.
12. 月艇
寒潭如拭鏡 차가운 못은 닦아 놓은 거울과 같으니
乘月弄扁舟 달을 실은 조각배를 희롱하네.
湖老煙波詠 호로의 연파 읊음이요
坡仙桂棹秋 파선의 계수나무 돛대는 가을이네.
一葉小艇 한 잎 작은 배에
滿載風月 풍월을 가득 실었네.
懷人不見 사람이 그리워도 볼 수 없으니
我心靡歇 나의 시름 쉬지 않구나.
13. 櫟遷
緣崖路呼遷 벼랑을 타고 오른 길을 천이라 부르니
其上多樹櫟 그 위에 떡갈나무 많이 심었네.
何妨抱離奇 울퉁불퉁 못생긴 것 무방하니
壽已過數百 수명이 벌써 수백 년이 지났네.
櫟之不材 떡갈나무 재목 안 되는 것이
多至壽老 흔히 늙도록 오래 사네.
厥或不免 혹시 면치 못하는 수가 있더라도
乃壽之道 못난 것이 오래 사는 도리로세.
14. 漆園
古縣但遺基 옛 고을에 터만 남았는데
漆林官所植 옻나무 숲은 관가에서 심은 것.
見割有警言 베임을 당한다는 깨우치는 말을 하였으니
蒙莊亦高識 장자도 또한 식견이 높구나.
漆爲世用 칠(漆)이 세상에 쓰임이 되니
其割焉保 베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厥或免割 혹시 베임을 면할지라도
乃割之道 베임을 당할 도리니라.
15. 魚梁
玉食須珍異 옥식에는 진미가 필요하니
銀唇合進供 은진어는 진상하기에 합당하네.
峨峨梁截斷 높직하게 어량이 가로질렀고
濊濊罟施重 겹겹으로 그물이 쳐 있네.
丙穴底貢 병혈에서 공납하니
編木如山 나무를 산더미처럼 엮었네
每夏秋交 매양 여름 가을 바뀔 때는
我屛溪間 나는 시내 한쪽으로 물러가네.
玉食 - 임금의 밥
16. 漁村
隔崖民風古 벼랑 저쪽에 백성의 풍속이 예스럽고
臨江樂事多 강가엔 즐거운 일이 많구나.
斜陽如畫裏 그림 같은 석양에
收網得銀梭 그물을 거두어 은어를 얻네.
太平煙火 태평의 생활은
宜人之村 의인 마을일세.
漁以代徭 물고기잡이로서 요역을 대신하니
式飽且溫 배부르고 등 따스하네.
17. 煙村
遠近勢周造 멀고 가까이 땅이 둘렀는데
漠漠迷煙樹 안개 속 나무는 까마득히 보일까말까 한다.
延望足玩心 머리 들어 바라보매 완상할 만한데
變態多朝暮 변화하는 경치는 절로 아침이요 저녁일세.
吟不盡興 읊조려도 흥취를 다할 수 없고
興不盡變 그림으로 변화하는 경치를 다 그리지 못하겠네.
春濃繡錯 봄이 짙을 제 비단무늬가 얽혔고
秋老霞絢 가을이 늦을 제 붉은 놀이 현란하네.
18. 雪徑
一徑傍溪潯 한 오솔길이 시냇가를 끼고
高低斷復逵 높았다 낮았다 끊겼다 다시 이어진다.
積雪無人蹤 쌓인 눈에 사람의 자취 없는데
僧來自雲表 흰 구름 밖에서 스님이 온다.
浩浩崖壑 하얀 벼랑과 계곡
迢迢磴逕 아득한 비탈길이로다.
踏作瑤迹 눈을 밟으매 옥의 자취가 되니
誰先乘興 누가 먼저 흥을 타려나.
19. 鷗渚
浩蕩浮還沒 갈매기는 넓은 물결에 떴다가 다시 잠기고
毰毸晒復眠 날개 털고서 햇볕 쬐다가 다시 조네.
閑情乃如許 한가한 정취가 이러하니
機事定無緣 비밀스런 일은 決코 없으리.
舞而不下 춤만 추며 내려오지 않으니
渠未可干 간섭할 수 없네.
狎而有盟 친압(親狎)하여 맹서 있으니
吾何敢寒 내 어찌 감히 저버리랴.
20. 鶴汀
水鶴煙霄下 물가의 학이 내 낀 하늘 아래 내려와
晴沙立遠汀 비 개인 뒤 모래밭 먼 물가에 섰네.
那堪無飮啄 어찌 먹지 않으리요마는
得處莫留停 먹은 곳에 오래 머물지 말라.
鳴皐聞天 구고(九臯)에서 울매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掠舟驚夢 배에 스쳐지나 꿈을 놀라게 하였네.
野田有侶 들판에 짝이 있으니
盍愼媒弄 섞여서 희롱하기를 조심하라.
21. 江寺
古寺江崖空 강언덕에 옛 절이 비어 있으니
仙遊沓方丈 신선의 놀던 것 삼신산에 아득하네.
蟠桃定何時 천도 심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結子重來賞 열매 맺으면 다시 와서 구경하리.
江上招提 강 위에 암자는
老仙舊居 신선의 옛 거처라네.
月寒庭蕪 달은 차가운데 뜰은 묵었고
風悲室虛 바람은 슬픈데 방은 비었네.
22. 官亭
小亭境自佳 작은 정자 경개 절로 좋은데
後江前皐濕 뒤에는 강이요 앞에는 언덕이다.
皂蓋不來時 검정 일산 오지 않을 때에
野禽自棲集 들새들이 스스로 날아드네.
官作之亭 관가에서 정자 지은 지
歲月茫茫 세월이 아득하네.
樂匪知濠 호량에 즐거움을 아는 것도 못 되고
擧似如棠 행동은 당에 가서 물고기 보던 것과도 같았네.
23. 長郊
炎天彌翠浪 여름날에는 푸른 보리 가득 차고
商節滿黃雲 가을철에는 누른 벼 가득하네.
薄暮歸雅望 해질 무렵에 돌아가는 까마귀를 바라보니
遙風牧笛聞 먼 바람에 목동의 피리 소리 들려오네.
郊原膴膴 들은 평평한데
籬落依依 인가는 여기저기.
戴星而出 별을 보고 나갔다가
帶月而歸 달을 보고 돌아오네.
24. 遠岫
微茫常對席 아득하나 항상 자리에 마주 대한 듯
縹緲定河洲 아물거리니 어느 고을인가.
雨暗愁無奈 비 내려 침침할 제 시름 해도 어쩔 수 없고
天空意轉悠 하늘이 트일 제 뜻이 더욱 길어라.
如黛如簪 눈썹도 같고 잠과 같으며
非煙非雲 안개도 아니고 구름도 아니로다.
入夢靡遮 꿈에 들어오매 막을 길 없고
上屛何分 병풍에 그려두니 분별할 수 없네.
25. 兎城
禦難何代人 이 성을 쌓아 난을 막은 것이 어느 시대 사람인고
古籍莽難考 문적이 없어 상고하지 못하겠네.
時平久已頹 세상에 태평하여 무너진 지 오래이니
兎穴深蔓草 토끼굴에 풀들이 우거졌구나.
維彼南山 저 남산에
因山作城 산을 인해 성을 만들었네.
海桑一朝 동해가 뽕나무밭 되기도 하루아침인데
蠻觸何事 만과 촉은 왜 싸우나.
26. 校洞
宮墻沒澗煙 궁장은 시냇가 안개 속에 묻혔고
絃誦變山鳥 글과 거문고 소리는 산새 소리로 변했구나.
誰能起廢規 뉘 능히 폐해진 규모를 일으켜
張皇道幽眇 어둡고 아득해진 도리를 밝혀낼까.
古縣鄕學 옛 고을 향교가
遺址宛然 남은 터가 완연하구나
麗季孱王 고려 말년 쇠할 때 일이라
敎化無傳 교화가 전함이 없구나.
溪山雜詠
1. 春日溪上 봄날 시냇가에서
雪消氷泮綠生溪 눈이 녹고 얼음 풀려 흐르는 물 푸릇푸릇
澹澹和風滿柳隄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 휘날리네.
病起來看幽興足 앓다 일어나 보니 그윽한 흥 넉넉한데
更憐芳草欲生荑 꽃다운 풀 싹트는 것 더욱더 어여뻐라.
2. 퇴계는 처음 시냇가에 초옥을 짓고 이름하여 한서암(寒栖庵)이라 하였는데, 시에,
茅茨移構澗庵中 시냇가에 띠집을 옮겨지었는데
正値岩花發亂紅 때마침 산꽃이 어지럽게 피었네.
古往今來時已晩 예와 지금이 가로막혀 때야 이미 늦었지만
朝耕夜讀樂無窮 밭 갈고 글 읽으며 즐거움은 그지없네.
3. 늦은 봄 망일에 홀로 도산에 이르니, 매화가 추워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햇대(窨竹)도 역시 초췌한데 거기에 이날 풍우가 주야로 계속하여 지난봄의 율시 운에 따라 이르기를,
朝從山北訪春來 아침이라 북녘 산을 거쳐 봄이 찾아오니
入眼山花爛錦堆 산꽃이 활짝 피어 비단인 양 화사하네.
試發竹叢驚獨悴 죽총은 어이하여 시들었는고
旋攀梅樹歎遲開 매화꽃 상기(上氣)도 덜 피었구려.
疎英更被風顚簸 매화꽃은 광풍에 시달린 탓
苦節重遭雨急摧 모진 비에 쓰러졌다네.
歲月同人今又阻 벗님도 시절 따라 소식 막히니
淸愁依舊浩難裁 시름은 여전히 억제하기 어렵구나.
4. 퇴계가 병으로 귀향하여 산사에서 매화를 찾으면서 방매라는 한 절구에
爲問山中兩玉仙 여보소, 산중의 두 신선님네
留春何到百花先 이렇고서 모든 꽃을 앞서 피겠나.
相逢不似襄陽館 어째서 양양관에서 만나던 그 날처럼
一笑凌寒向我前 방긋 웃고 날 맞아 주지 않나.
兩玉仙 - 매화를 가리킴
5. 매화가 답한 한 절구에
我是逋仙換骨仙 나는 참 신선 아닌 환골선인인데
公如歸鶴下遼天 임은 요양에서 내려온 학이로세.
相看一笑天應許 서로 만나 반갑게 웃을 날 있으리니
莫把襄陽較後前 양양관을 가져다 선후를 따지지 마소.
6. 퇴계는 일찍이 산수가 좋은 군의 수령이 되기를 원했는데 뒤에 단양군수로 나갔다. 시를 쓰기를,
靑松白鶴雖無分 푸른 솔에 흰 학은 비록 연분이 없으나
碧水丹山信有緣 푸른 물과 붉은 산은 과연 인연이 있구나. 하였다.
7. 경술년에 비로소 퇴계의 서쪽에 자리를 잡고 한서암을 짓고 집 이름을 정습이라 하고 그 안에서 독서하였다. 시에,
身退安愚分 몸이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나
學退憂暮境 학문은 퇴보되어 만년이 근심되네.
溪上始定居 시냇가에 비로소 살 곳을 정하니
臨流日有省 흐르는 물에 임하여 날로 반성함이 있으리.
倒垂梅
一花纔背尙堪猜 한 송이 꽃 약간 뒤돌아 피어도 오히려 의심스럽거늘
胡奈垂垂盡倒開 어찌하여 모두 거꾸로 드리워져 피었는고.
賴是我從花下看 그 까닭을 알고자 꽃 아래에서 살펴보니
昴頭一一見心來 머리 쳐든 한 송이 한 송이 꽃심이 보이네.
讀書如遊山
讀書人說遊山似 글 읽기와 산 놀이가 비슷하다 하지마는
今見遊山似讀書 이제 보니 산 놀이가 글 읽기와 같도다.
工力盡時元自下 공력이 다할 때엔 의례히 내려오고
淺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음 아는 것도 모두 이에 있더구나.
坐看雲起因知妙 이는 구름 앉아 보고서 기묘함을 알았었고
行到源頭始覺初 근원지에 이르러선 비롯됨을 깨달았네.
絶頂高尋勉公等 마루턱 찾을 것은 그대들을 기대하니
老衰中輟愧深余 늙어서 못가는 이 몸 깊이 부끄러워라.
獨尋凌雲臺 홀로 능운대를 찾아
穿林入谷訪烟霞 숲을 지나 골에 들어 안개와 노을 살피니
處處吹香野菊花 곳곳에 들국화 꽃향기를 퍼뜨리네.
忽見丹崖臨碧水 문득 보니 붉은 벼랑에 푸른 물이 에돌아
愛深從此欲移家 깊이 사랑하여 이곳에 집을 옮기고 싶구나.
下有丹崖上有臺 아래는 붉은 벼랑 있고 위에는 돈대 있어
靑山環遶白雲堆 푸른 산 에워 둘러 흰 구름 쌓였구나.
只應伴鶴蒼髯叟 다만 학과 응하여 짝이 된 늙은 소나무
見我吟詩獨上來 시 읊으며 홀로 위로 오르는 나를 보고 있네.
東齋月夜 동재의 밤 달빛.
暑雨初收夜氣淸 여름의 비가 비로소 그치니 밤공기 맑은데
天心孤月滿窓欞 하늘 가운데 외로운 달 창 난간에 가득하네.
幽人隱几寂無語 유인은 책상에 기대어 말도 없이 적막한데
念在先生尊性銘 선생의 안부 생각하며 공경의 성품 새기네.
東湖讀書黨 梅花暮春始開 用東坡韻 二首 호당에 매화가 3월에 비로소 피었기에 동파의 운을 써서 짓다
我昔南遊訪梅村 내가 옛날 남방에서 매화촌을 찾았더니
風烟日日銷吟魂 아지랑이 매일같이 시혼을 녹이었네.
天涯獨對歎國艶 땅끝에서 홀로 맞아 경국색을 찬탄하고
驛路折寄悲塵昏 역로에서 부치매 어둔 세상 슬퍼했네.
邇來京輦苦相憶 한양으로 온 이래로 간절히도 그리워져
淸夢夜夜飛丘園 맑은 꿈은 밤마다 전원으로 날아갔네.
那知此境是西湖 여기가 서호일 줄 어떻게 알았으랴
邂逅相看一笑溫 우연히 서로 만나 한 번 웃음 정다워라.
芳心寂寞殿殘春 꽃다운 맘 고즈넉이 늦은 봄에 피어나
玉貌婥約迎初暾 옥빛 자태 아름답게 돋는 해를 맞이하네.
伴鶴高人不出山 학을 짝한 높은 선비 산에서 나오지 않고
辭輦貞姬常掩門 연 사양한 정숙한 여인 항상 문을 닫고 있네.
天敎晩發壓桃杏 늦게 피어 복사, 살구 누르게 한 하늘의 뜻
妙處不盡騷人言 묘한 의미 시인인들 다 말하지 못하리.
媚嫵何妨鐵石腸 아름다운 그 모습 철석간장이 무슨 소용
莫辭病裏携甖罇 병든 몸이 술병 들고 찾아감을 사양 말게.
藐姑山人臘雪村 막고산의 신선이 눈 내리는 마을에서
鍊形化作寒梅魂 수련으로 변해 겨울에 피는 매화의 혼이 되었다오.
風吹雪洗見本眞 바람 불고 눈에 씻겨 본 모습을 나타내니
玉色天然超世昏 천연의 옥빛 자태 어둔 세상 초탈했네.
高情不入衆芳騷 고고한 기질은 뭇 꽃의 소란함에 끼어들지 않고
千載一笑孤山園 고산의 동산에서 천 년 뒤에 한 번 웃네.
世人不識嘆類沈 세상 사람 몰라보니 심제량과 같단 말가
今我獨得欣逢溫 나 홀로 기뻐하네 온백설자 만난 듯이.
神淸骨凜物自悟 정신 맑고 뼈가 차매 스스로 깨닫나니
至道不假餐霞暾 지극한 도 거짓 없이 노을 햇빛 먹는다네.
昨夜夢見縞衣仙 어젯밤 꿈속에서 흰옷 입은 선인 만나
同跨白鳳飛天門 하얀 봉새 함께 타고 하늘문에 날아가서
蟾宮要授玉杵藥 달나라에서 옥절구로 찧은 약을 달랬더니
織女前導姮娥言 직녀가 인도하여 항아에게 말하더라.
覺來異香滿懷袖 깨어나매 그 향기가 옷소매에 가득하여
月下攀條傾一罇 달 아래서 가지 잡고 술병을 기울인다.
馬上有感 말 위에서의 느낌
浮名自昔困非夫 나쁜 평판 몸소 끝내니 대저 난처하지 않고
高鳥游魚卻自娛 높은 새와 노니는 물고기 몸소 즐기길 멈추네.
但得此身無物累 다만 이 몸 만물에 연루됨이 없음을 깨달아
寧憂甲子在泥塗 어찌 세월을 근심하며 진흙을 칠하고 있을까?
晩步
苦忘亂抽書 건망증이 염려되어 책들을 어지러이 뽑아놓고
散漫還復整 질펀히 흩어진 책들을 다시 정리한다.
曜靈忽西頹 문득 바라보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고
江光搖林影 강에는 석양에 숲 그림자 드리운다.
扶笻下中庭 대지팡이 찾아 짚고 뜰로 내려서서
矯首望雲嶺 고개 들어 구름 재를 바라다본다.
漠漠炊煙生 저녁 밥짓는 연기 멀리서 피어오르고
蕭蕭原野冷 냉기 이는 언덕과 들판은 쓸쓸하구나.
田家近秋穫 농가의 가을걷이 막 시작되니
喜色動臼井 방앗간은 기쁨으로 생동이 넘친다.
鴉還天機熟 까마귀들도 돌아오고 가을도 무르익어 가는데
鷺立風標逈 바람 부는 저 멀리에는 해오라기만 우두커니 서 있구나.
我生獨何爲 나 홀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宿願久相梗 바라던 바는 오래도록 난망하구나.
無人語此懷 이 회포 나눌 사람 없어
瑤琴彈夜靜 고요한 이 밤 거문고만 뜯어본다.
望山
何處無雲山 어느 곳인들 구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淸凉更淸絶 청량산이 더더욱 청절하다네.
亭中日延望 정자에서 매일 먼 곳을 바라보면
淸氣透人骨 맑은 기운이 뼈까지 스며든다네.
望湖堂尋梅
望湖堂裏一株梅 망호당 뜰 안에 한 그루 매화꽃
幾度尋春走馬來 몇 번이나 봄을 찾아 말을 달려왔던가.
千里歸程難汝負 천 리길 가는 길에 그대 저버리기 어려워
敲門更作玉山頹 문 열고 옥산이 무너지듯 취하리.
梅
手鍾寒梅今幾年 손수 매화를 심어 몇 해가 지나니
風烟灑蕭小窓前 작은 창 앞이 깨끗하고 산뜻하다.
昨來香雪初驚動 어제부터 흰 꽃이 놀라 움직이듯 피어나는데
回首群芳盡索然 둘러보니 다른 꽃들은 아직 쓸쓸하기만.
梅落月盈
一樹庭梅雪滿枝 뜰에 잇는 한 그루 매화 그 가지에 눈이 소복한데
風振護海夢差枝 바람과 먼지가 요동을 침에 꿈마저 어지럽구나.
玉堂坐對春素月 옥당에 앉아 봄밤의 달을 마주하는데
鴻雁聲重維素思 기러기 우는 소리에 생각은 절로 향하는 곳이 있구나.
梅花
溪邊粲粲立雙條 시냇가에 산뜻하게 쌍으로 된 가지 서있는데
香度前林色映橋 향기가 먼저 숲을 넘고 빛은 다리 까지 비치네.
未怕惹風霜易凍 가벼운 바람서리에 쉬이 얼까 두렵지 않지만
只愁迎暖玉成消 다만 따뜻함 맞아 아름다움 사라질까 근심하네.
梅花
梅萼迎春帶小寒 봄을 맞는 매화 송이 찬 기운을 띠었기에
折來相對玉窓間 한 가지 꺾어내어 옥창에서 마주 보네.
故人長憶千山外 산 첩첩 저 밖에 옛사람의 추억 그리워라
不耐天香瘦損看 여위고 축나는 천향을 못 견디리.
墓碣銘 퇴계가 스스로 지은 명(銘)에
生而大癡 나서는 아주 어리석었고
長而嬰疾 좀 커서는 병이 났으니
中何嗜學 중년에 어찌 배우기를 좋아하겠으며
晩何叨爵 만년에는 어찌 벼슬을 탐하겠는가.
學求猶邈 배움을 구할수록 더욱 아득하고
爵辭猶嬰 벼슬 사양함에 오히려 얽혀지네.
進行之跲 나아가 행하니 난처하고
退藏之貞 물러나 숨기를 굳게 하였다.
深慙國恩 국은에 깊이 부끄러워하고
亶畏聖言 임금님 말씀 진실로 두렵네.
有山嶷嶷 산은 높디높고
有水源源 물은 끊임없는데
婆娑初服 처음 옷으로 한가히 거닐며
脫略衆訕 여러 비방을 못 들은 척하네.
我懷伊阻 나의 회포 막히니
我佩誰玩 나의 패 누가 구경할거나.
我思古人 고인 생각하니
實獲我心 실로 나의 마음 얻었으니
寧知來世 어이 알리 오는 세상
不獲今兮 지금 세상보다 못할 줄
憂中有樂 걱정 가운데 즐거움 있고
樂中有憂 즐거움 가운데 걱정 있으니
乘化歸盡 자연의 조화 타고 다함으로 돌아가니
復何求兮 다시 무엇을 구할거나.
步自溪上 踰山至書堂
花發巖崖春寂寂 꽃이 가파른 벼랑에 피어 봄은 고요하고
鳥鳴澗樹水潺潺 새가 시내 숲에 울어 시냇물은 졸졸 흘러가네
偶從山後攜童冠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閑到山前問考槃 한가히 산 앞에 와 고반을 묻는다
이 시는 제자들을 데리고 계상부터 걸어서 산을 넘어 서당에 도착하여 지은 것으로, 성리학적(性理學的) 수양(修養)의 최고 경지를 보여 주는 시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꽃이 가파른 벼랑에 피고 새가 시내 숲에 울어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은 자연의 이(理)이다. 이것은 ‘연비어약(鳶飛魚躍)’, 즉 솔개는 연못에서 뛰어놀 수 없고 물고기는 하늘을 날 수 없듯이 솔개는 하늘에서만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만 뛰어노는 것이 이치인 것이다. 천지자연의 이치가 유행(流行)하고 있음을 말한다. 자연의 이(理)가 흐르는 곳을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한가히 산 앞에 이른 것은 자연과의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천리(天理)에 순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의 제자인 이덕홍(李德弘)이 「답이굉중(答李宏仲)」에서, “읊으신 ······라는 시는 위아래의 조화가 같이 유행하여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은 신묘함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라 하였던 것이다.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에 의하면,
“‘임금과 신하의 이(理)가 진실로 나에게 갖추어 있다면 초목의 이(理)도 나와 같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선생은 ‘같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단지 하나일 뿐이다. 만일 형체가 있는 물건이라면 저것과 이것의 구별이 있겠지만, 이(理)는 형체가 없는 사물인데 어찌 저것과 이것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라 답했다”라 하여, 퇴계(退溪)는 이(理)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은 동질성(同質性)을 지녔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浮碧樓
永明寺中僧不見 영명사에 스님은 보이지 않고
永明寺前江自流 절 앞에는 강물만 흘러가네.
山空孤塔立庭際 산은 고요하고 뜰에는 탑만 우뚝 서 있고
人斷小舟橫渡頭 나루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조각배만 매어 있네.
長天去鳥欲何向 높은 하늘을 날아가는 저 새는 어디로 가나
大野東風吹不休 넓은 들에 봄바람은 끝없이 불어오네.
往事微茫問無處 지난 일 아득하여 물을 곳 없고
淡煙斜日使人愁 뿌연 안개 속의 석양은 사람을 수심케 하네.
盆梅答 매화가 나에게 답함
聞說陶仙我輩凉 듣건대 선생께서도 저처럼 외롭다 하시니
待公歸去發天香 공께서 돌아오시면 향기를 피우리다.
願公相對相思處 바라건대 공께서 누구와 마주 앉아 생각할 때에도
玉雪淸眞共善藏 옥과 눈처럼 맑고 참된 마음 고이 간직하소서.
山居四時 各 四詠 十六絶
1. 春四詠
朝吟
霧捲春山錦繡明 안개 걷힌 춘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珍禽相和百般鳴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幽居更喜無來客 유거에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었으니
碧草中庭滿意生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다.
午吟
庭宇新晴麗景遲 뜰 앞에 비 갠 뒤 고운 볕이 더딘데
花香拍拍襲人衣 꽃 향기는 무럭무럭 사람 옷에 풍기네.
如何四子俱言志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성인께서는 읊고 돌아옴을 홀로 탄식하는고.
夕吟
童子尋山採蕨薇 동자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캐니
盤飱自足療人飢 반찬이 넉넉하여 요기가 되네.
始知當日歸田客 비로소 알겠구나 당일 전원에 돌아온 손님
夕露衣沾願不違 저녁 이슬이 옷을 적셔도 피하지 않는 것을.
夜吟
花光迎暮月昇空 꽃빛이 저녁을 맞자 달은 동쪽에서 떠 오르니
花月淸宵意不窮 꽃과 달이 맑은 밤에 이 뜻이 끝이 없네.
但得月圓花未謝 다만 달이 둥글고 꽃이 지지 않으면
莫憂花下酒杯空 꽃 밑에 술잔 빔을 걱정하지 말라.
攻이 空內集에는 東 字로 되어 있다
2. 夏四詠
朝吟
晨起虛庭竹露淸 새벽에 일어나니 빈 뜰의 대 이슬이 맑은데
開軒遙對衆山靑 헌함(軒檻)을 열면 멀리 푸른 여러 산을 대하네.
小童慣捷提甁水 작은 아이 빨리 물병을 가져오나니
澡頮湯盤日戒銘 탕의 반명처럼 세수하네.
午吟
晝靜山堂白日明 낮이 고요한 산당에 대낮이 밝은데
葱瓏嘉樹繞簷楹 우거진 아름다운 나무는 처마에 둘러 있다.
北窓高臥羲皇上 희황씨 이전의 사람으로 창문 아래 높이 누워 있으면
風送微冷一鳥聲 시원한 산들바람은 새 소리를 보내오네.
夕吟
夕陽佳色動溪山 석양의 아름다운 빛 시내와 山을 흔들고
風定雲閑鳥自還 바람은 자고 구름은 한가한데 새는 스스로 돌아가네.
獨坐幽懷誰與語 홀로 앉은 그윽한 회포를 누구와 이야기하리
岩阿寂寞水潺潺 바위 언덕은 고요하고 물은 잔잔히 흐른다.
夜吟
院靜山空月自明 서재는 고요하고 산은 비고 달은 절로 밝은데
翛然衾席夢魂淸 깨끗한 이불 속에 꿈도 맑도다.
寤言弗告知何事 깨어나 말하지 않은 것 무슨 일인고
臥聽皐禽半夜聲 누워서 한밤중 학의 소리를 듣는다.
3. 秋四詠
朝吟
殘暑全消昨夜風 어젯밤 바람에 남은 더위가 모두 가고
嫩涼朝起洒衿胸 아침에 일어나니 시원한 기운이 가슴에 스민다.
靈均不是能言道 영균이 원래 도를 말할 줄 아는 이 아니라면
千載如何感晦翁 어떻게 천 년 뒤에 회옹이 느끼도록 하는가
午吟
霜落天空鷹隼豪 서리는 내리고 하늘은 비고 매는 한참 힘찬데
水邊岩際一堂高 물가의 바위 끝에 한 당이 높다.
近來三徑殊牢落 요즘 와서 삼경이 유난히 쓸쓸한데
手把黃花坐憶陶 국화를 쥐고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네.
夕吟
秋堂睡望與誰娛 가을 당의 조망을 누구와 즐길꼬
夕照楓林勝畫圖 단풍 숲에 석양이 비치니 그림보다 낫더라.
忽有西風吟雁過 갑자기 서쪽 바람이 불어 기러기 지나가니
故人千里寄書無 옛 친구는 편지를 보내오지 아니하네.
夜吟
月映寒潭玉宇淸 찬 못에 달이 비쳐 천제가 있는 곳은 맑은데
幽人一室堪虛明 사람의 그윽한 방이 하나 고요하고 맑다.
箇中自由眞消息 그 가운데 스스로 참된 소식이 있나니
不是禪空與道冥 선(禪)의 공(空)도 아니요, 도가의 명(冥)도 아니네.
4. 冬四詠
朝吟
群峯傑卓入霜空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찬 하늘을 찌르고
庭下黃花尙依叢 뜰 아래의 국화는 아직 떨기 남았는데
掃地焚香無外事 땅을 쓸고 향을 사르니 바깥 일 없고
紙窓銜日曒如衷 종이창에 해가 비치니 밝기가 마음 같다.
午吟
寒事幽居有底營 추운 철 그윽하게 사는 이 무슨 경영 있겠는가
藏花護竹攝羸形 꽃 가꾸고 대나무 돌보며 여윈 몸 건강을 조섭하네.
慇懃寄謝來尋客 찾아오는 손님을 은근히 사절하노니
欲向三冬斷送迎 겨울 석 달 동안에 손님 영접 끊으려 하네.
夕吟
萬木歸根日易西 나뭇잎은 모두 뿌리로 돌아가고 해는 짧은데
煙林蕭索鳥深棲 쓸쓸한 안개 낀 숲에 새는 깊이 깃들었네.
從來夕陽知何意 옛날부터 저녁까지 조심함은 무슨 뜻일까
迨欲須防隱處迷 은밀한 곳에서 미혹을 방지하려 함이었네.
夜吟
眼花尤怕近燈光 눈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으니 등불 가까이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老病偏知冬夜長 늙고 병드니 겨울밤 긴 것을 절실히 알겠네.
不讀也應惟勝讀 책 읽지 않아도 읽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
坐看窓月冷如霜 앉아서 창문의 달을 바라보니 서리보다 차더라.
山川形勢
龍淵雲氣曉凄凄 용연 못 구름 기운에 새벽이 쓸쓸하고
鶻峀摩空白日低 작서봉 높이 솟아 밝은 해가 낮아 보인다.
坐待山城門欲閉 산성에 앉아 보니 성문은 닫히려 하는데
角聲吹度大江西 피리 부는 소리 큰 강 서쪽을 건너간다.
書堂次金應霖秋懷 서당에서 김응림의 秋懷에 차운하여
秋入梧桐撼一年 오동나무에 가을이 드니 한 해가 흔들리고
飜思宿債負山川 묵은 빛 뒤집어 생각하며 산천에 탄식하네.
病中猶憶聖呼酒 아 맑은 술 자리를 오히려 병중에 생각하고
貧裏寧甘兄事錢 돈 늘리는 재능 모자란 속에 편안히 만족하네.
紫氣仙人函谷外 보랏빛 기운의 선인이 함곡관 밖에서
黃冠道士鑑湖邊 누런 갓 쓴 도사가 호수의 가를 살펴보네.
平生謬廁金閨彦 평생 잘못 섞인 귀한 안방 선비라
不及渠家養寸田 그 지체를 따르지 못하니 작은 밭이나 가꾸리라.
石蟹 가재
負石穿沙自有家 돌을 지고 모래 파서 스스로 집을 짓고
前行卻走足偏多 앞으로 가다가 도리어 뒤로 달리니 다리는 더욱 많구나.
生涯一掬山泉裏 한평생 산 속 샘 한 번 움켜잡고서는
不問江湖水幾何 강호의 물이 얼마나 되는가는 묻지도 않는구나.
15세 때 지음
仙舟巖瀑 次金應順 선주암 폭포 김응순에 차하여
靑山界破徐凝句 서응의 시구처럼 청산이 경계로 나누어지고
銀漢飛流太白詞 이태백의 글귀 같은 은하수가 날아 내리는 듯하구나.
千載廬山曾說盡 천 년 전의 여산폭포 시에 이미 다 말하였는데
何言更賦八公奇 어떤 말로써 다시 팔공산의 절경을 읊을까 ?
應順 - 김명원의 자. 호는 酒隱이며 선조 때 좌의정을 지냈다.
徐凝 - 당나라 사람으로 그의 폭포 시에, 한 줄기가 청산의 색을 둘로 갈라놓았네(一條界破靑山色) 라고 한 구절이 있다.
銀河 - 이백의 ‘望廬山瀑布’ 시에 나는 듯이 흘러 삼천 자 높이를 곧바로 내려오니, 구천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揮盡千峯筆 일천 봉우리 같은 붓을 다 휘둘러,
吟成萬瀑雷 일만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폭포소리를 읊었네.
千張白石紙 흰 돌이 천장의 백지를 펼쳐놓은 것 같은데,
深鎖黑雲堆 언덕에는 거무스름한 안개가 짙게 깔리어 있네.
善竹橋頭血
善竹橋頭血 선죽교 머리 위의 피
人悲我不悲 사람들은 슬퍼하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네.
忠臣當國危 충신이 나라의 위기를 맞아
不死更何爲 죽지 않고 어찌하리.
蕭蕭草蓋屋 보잘 것 없는 초가 오막살이
上雨以旁風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치네.
就燥屢種狀 마른 곳을 찾아 가구를 옮기고
叛書故萊中 서적은 헌 상자 속에 거두네.
雪竹歌
漢陽城中三日雪 한양의 성 안에 삼 일간 눈이 내리니
門巷來人遽隔絶 거리로 오던 사람들 갑자기 막혀 끊어졌네.
病臥無心問幾尺 병들어 누웠으니 몇 자인가 물어볼 생각도 없고
唯覺衾裯冷如鐵 다만 홑 이부자리가 쇠처럼 차가운걸 깨닫네.
幽軒綠竹我所愛 고요한 집의 푸른 대나무를 나는 사랑하니
夜夜風鳴如戛玉 밤마다 바람에 내는 소리는 옥을 치는 것 같았지.
兒童驚報導我出 어린 아이 나를 이끌며 나가자 다급히 알리니
攜杖來看久嘆息 지팡이 끌고 와서 보다가 오랫동안 탄식하네.
梢梢埋沒太無端 나무 끝까지 심하게 묻혀 실마리도 없고
枝枝壓重皆欲折 가지마다 무겁게 눌려 모두 부러지려 하네.
最憐中有一兩竿 오로지 두 그루 속에 가장 사랑스러움이 있으니
高拔千尋猶抗節 높이 뽑아 매우 높으니 오히려 절개를 겨루네.
不愁虛心受凍破 추위를 다 받아들이는 빈 마음을 근심하지 않으니
無柰老根逬地裂 땅을 찢고 솟아나는 늙은 뿌리를 어찌 무시하랴 ?
杲杲太陽頭上臨 밝고 밝은 태양이 머리 위로 임하여도
不應彩鳳終無食 늘 먹이를 무시하던 아름다운 봉황도 응하지 않는구려.
宿淸心樓 秋赴召 청심루에 묵으며 가을에 임금의 부름에 나아가다.
沙彌撞鐘一山暮 사미승이 종을 치니 모든 산이 저물고
江城鼓角迎歸櫓 강성의 북과 나발 돌아오는 배를 맞이하네.
望中燭影撒如星 촛불 그림자 보는 중에 별은 마침 흩어지고
淸心樓高啓窓戶 높다란 청심루에서 지게 창문을 열어보네.
使君置酒慰客愁 사군은 술자리 차려 나그네 시름 위로하고
笛聲憤怨霜飛秋 어지럽고 슬픈 피리 소리에 가을 서리 날리네.
酒闌人散江月出 술자리 파해 사람들 흩어지니 강에 달이 올라
夢騎白鶴遊蓬丘 흰 학을 꿈에 타고서 봉래산 언덕을 즐기리라.
淸心樓 - 여주에 있던 누각
櫓 - 방패, 배 젖는 노, 상앗대(배를 젓는 기구)
使君 -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지방에 온 서신의 경칭
宿淸風寒碧樓
半生堪愧北山靈 반평생 지난 일이 북산의 영에 부끄럽고
一枕邯鄲久未醒 베개 속 청운의 꿈은 아직도 못 깨었어라.
薄暮客程催馹騎 황혼의 타향 길에 역말을 달리는데
淸宵仙館對雲屛 맑은 밤 선관에서 구름 병풍 마주했어라.
重遊勝地如乘鶴 경치 좋은 땅에 다시 노니 鶴 탄 것 같아
欲和佳篇類點螢 좋은 시에 화답하려니 반딧불 켜진 듯하여라.
杜宇聲聲何所訴 두견의 슬픈 울음, 무슨 하소인지
梨花如雪暗空庭 눈빛 같은 배꽃이 빈 뜰에 몰래 피었어라.
邯鄲 -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 당 현종 때 呂翁이라는 도사가, 하루는 한단이라는 곳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었는데 허름한 차림의 盧生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와 한참 신세타령을 하더니 여옹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도자기로 된 베개로 양쪽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이 차차 커지게 되어 노생이 이상히 여겨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훌륭한 집이 있었고, 노생은 거기서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진사시험에도 급제하여 京兆尹[경조윤]을 거쳐 어사대부, 이부시랑에 까지 올랐다. 한때 모함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다시 재상으로 등용되어 천자를 보필하다가,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포박되니 그는 고향에서 농사나 지을 걸 하는 후회 때문에 자결하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자결하지 못했다. 몇 년 뒤, 노생은 무죄로 판명되어 다시 중서령이 되고, 燕國公에 봉해져 천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그 후 다섯 아들과 십여 명의 손자를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으로 죽고 말았다. 노생이 언뜻 깨어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는데, 주모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노생이 이상히 여겨 "어찌 꿈일 수 있는가?"하자 여옹은 웃으며 "인생지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하고 말했다고 한다.
十月十日夜 大雷雨 10월 10일 밤 큰 천둥치며 비가 오다.
十月中宵風亂鳴 시월의 한밤중 바람이 포악하게 소리 내며
雷驚電激雨如傾 다투듯 비오니 세찬 번개와 천둥에 놀라네.
只今天意何多舛 지금 하늘의 뜻이 크게 어그러짐을 꾸짖으니
起坐茫然百感生 망연히 일어나 앉으니 만감이 나는구나.
十一月 入淸凉山 동짓달에 청량산에 들어가다
休官處里閭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마을에 살면서
養疾頗相梗 병을 다스리려하나 자못 도움이 통하지 않네.
仙山不在遠 신선의 산이 멀리 있지 않기에
引脰勞耿耿 목 늘여 마음에 잊지 않고자 노력하였네.
夜宿孤山庵 고산의 암자에서 밤을 지새고
晨去越二嶺 새벽에 나서 두 고개를 넘었네.
俯看積曾冰 숙여 바라보니 이미 얼음이 쌓였고
仰視攢疊穎 잇닿아 모인 빼어남 우러러보네.
跨木度奔川 나무를 넘고 빠른 내를 건너서
凌兢多所警 두려움이 심하니 많은 곳을 조심하네.
深林太古雪 깊은 숲에는 아주 오랜 옛날의 눈이요
白日無纖影 밝은 한낮에도 가는 그림자도 없구나.
側徑滑以阽 비뚤어진 지름길은 미끄러워 위태롭고
其下如坑穽 그 아래의 구덩이는 함정 같구나.
行行力已竭 가고 가다보니 힘은 이미 다하고
上上心愈猛 오르고 오르니 마음은 갑자기 유쾌하네.
山僧笑且勞 산승 우선 웃으며 위로하고
延我西寮靜 나를 서쪽의 조용한 집으로 인도하네.
安神八九日 팔구일을 마음을 편안히 하고
閉戶藏頭頸 출입구 닫고는 머리와 목을 감추었네.
不見滕六怒 물 솟듯한 기세를 죽이며 보이지 않으니
焉知屛翳逞 숨어 은퇴한 즐거움 어찌 알리오.
今朝愛日姸 오늘 아침 아름다운 해를 사랑하여
策杖巖路永 지팡이 짚고 바위 길 가려니 요원하구나.
陟彼揷天嶺 저 중첩한 산은 하늘에 산봉우리 꽃고
宇宙雙眼騁 우주에 견주어 회포를 풀며 본다네.
衰筋畏峻極 쇠한 힘이 두려워 조심하여 높이 다다르니
此願未遽幸 이 염원에 어찌 은혜를 베풀지 못할까 ?
躋攀猶少試 더위잡고 오르니 오히려 살필 것은 적고
顧眄雲千頃 다만 천 이랑의 구름만 바라보네.
妙意祗難言 오묘한 정취 다만 말하기를 삼가고
佳處每獨領 아름다운 곳 탐내어 홀로 차지하네.
歲律行欲窮 세월의 법은 행하길 다하려 하는데
不恨身幽屛 몸을 가두어 감춘 것을 후회하지 않네.
懷哉平生友 평생을 가까이 비롯하며 생각하니
使我心怲怲 나로 하여금 마음에 근심하고 근심하네.
珍諾未成踐 진귀함 따라 밟기를 아직 다 이루지 못하니
遐蹤又難請 멀리 좇아 다시 청하기가 어렵구나.
安得此同來 편안함 얻어 이에 함께 와서
努力造絶境 힘을 다해 멀리 떨어진 땅을 성취할까?
十一日曉地震 십일일 새벽에 땅이 흔들리다
其一
風雨雷霆天怒甚 비바람 번개와 천둥소리 하늘이 몹시 노하니
如何地道亦靡寧 어떻게 하여 땅에서도 또 편안치 못하게 하는가 ?
勢崩山岳聲驅海 산악의 기세가 무너져 바다가 달리는 소릴 내니
誰使神龍戰血腥 누가 신룡을 시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나?
其二
風起荒城葉亂飛 황폐한 성에 바람 일어 잎들이 어지러이 날리더니
頑雲如墨雨霏霏 먹장 같은 사나운 구름에 비는 끊임없이 내리네.
不知天意緣何怒 어떤 이유로 노했는지 하늘의 뜻도 모르는데
陰雹交揮更逞威 음침한 우박 섞어 뿌리며 또 마음대로 협박하네.
其三
兇雲虐雪極陰獰 흉악한 구름 혹독한 눈이 매우 모질게 덮고
風勢如奔百萬兵 바람의 기세는 백만의 병사가 달리는것 같구나.
凍及日中烏可畏 낮에도 추위가 닥쳐 까마귀도 가히 두려워하니
溝中未暇念民生 도랑 속 민생을 생각할 겨를이 없구나.
雙淸堂月夜 쌍청당 달 밤
楊柳梧桐院落深 수양버들 오동잎 뜰에 무성히 떨어지고
夜窓唯有月窺臨 어두운 창엔 오직 달빛만 비추어 엿보네.
何當淨澈萍池水 언제나 맑고 깨끗한 부평초 뜬 물처럼
看取氷輪印鏡心 얼음같은 달을 취하여 마음에 비추리라.
鴨綠天塹 압록강은 천연의 해자라네
日暮邊城獨倚闌 저물어 변방 성 난간에 홀로 기대니
一聲羌笛戍樓間 한줄기 오랑캐 피리 소리 수루에 들려온다.
憑君欲識中原界 그대에게 장안의 소식을 부탁하니
笑指長江西岸山 웃으며 긴 강의 서쪽 언덕을 가리킨다.
夜起有感 밤에 일어나 느낌이 있어.
缺月懸空窓夜明 이지러진 달이 하늘에 매달려 침실의 창을 밝히니
壁間絡緯響機鳴 벽 사이의 베짱이 기교있는 소리로 울어대네.
凄凄切切如相促 차고 싸늘함이 절절하여 서로 함께 재촉하는데
不惟懶婦壯士驚 젊은 사내는 두려워 게으른 아낙을 생각치 못하네.
隣雞不歌更漏遲 물시계 더디 지나가니 이웃의 닭들도 노래하지 않고
櫪馬齕草風雨聲 바람 불고 비오는 소리에 말은 말구유의 풀을 씹는구나.
攬衣呼童睡不應 옷을 잡아당겨 아이를 부르니 자느라 화답하지 못하고
牀頭暗蕊垂短檠 평상 앞의 꽃술이 보이지 않아 작은 등불을 기울이네.
挑燈照我簡編讀 지은 편지 읽으려 등불 돋우어 나를 비추니
口角瀾飜銀河傾 입아귀는 은하수가 기운듯이 뜨물이 넘친것 같네.
古人去我不待我 옛 사람은 나를 떠나고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芻豢悅口同性情 잘 차린 음식이 입에 맞 듯 성품과 욕망은 한가지라네.
安得平生金石友 평생에 변함 없는 친구를 어찌 얻을까 ?
重玄玉匙開鍵扃 옥 열쇠로 빗장과 자물쇠를 열듯 소중하고 신묘하구나.
十年國恩重於山 십여년 나라의 은혜는 산처럼 무거운데도
一生多病終無成 한 평생 병이 많아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네.
去年霜髮映黑絲 작년에는 흰 머리가 검은 머리를 감추더니
今年瘦骨仍崢嶸 금년에는 야윈 뼈가 한 껏 높아졌구나.
拓窓看月月未斜 창을 열고 달을 보니 달은 아직 기울지 못하고
白練一道澄江平 하나의 이치를 명백히 익히듯 평평한 강처럼 맑구나.
野塘 뜰앞 연못
露草夭夭繞水涯 이슬에 젖은 풀잎 싱그러이 물가를 둘렀는데
小塘淸活淨無沙 작은 연못 맑디맑아 티끌도 없네.
雲飛鳥過元相管 지나가는 구름과 새는 원래 비추는 것이지만
只怕時時燕蹴波 다만 제비가 차고 갈 때 물결 일렁일까 그게 두렵네.
野池
露草夭夭繞水涯 고운 풀 이슬에 젖어 물가를 둘렀는데
小塘淸活淨無沙 조그마한 연못 맑고 깨끗해 모래도 없네
雲飛鳥過元相管 구름 날고 새 지나는 것이야 제 맘대로이나
只怕時時燕蹴波 단지 때때로 제비가 물결 찰까 두려워라
이 시는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에, “선생께서 젊었을 때 우연히 연곡(燕谷, 온계(溫溪)에 가까운 마을 이름)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연곡에는 조그마한 못이 있는데, 물이 매우 맑았다. 선생께서 시를 지었다.”라고 제작 유래를 밝히고 있으며, 담담한 가운데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송풍(宋風)의 시이다.
연곡에 있는 조그마한 연못가에 고운 풀이 이슬에 젖어 물가를 둘렀다. 연못은 맑고 깨끗해 모래도 보이지 않는다. 그 연못 위로 때로는 구름이 날고 새가 지나는 것이야 괜찮다. 연못의 물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걱정스러운 것은 때때로 제비가 날아와 물결을 차서 수면이 일렁이는 것이다(사람이 지닌 순수한 본성이 인욕(人慾)의 개입으로 순수성을 상실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제자인 김부륜(金富倫)이 『퇴계언행록(退溪言行錄)』에서, “이것은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하는데 혹시 인욕(人慾)이 낄까 두려워한 것이다[천리유행(天理流行) 이공인욕간지(而恐人欲間之)]”라 하였던 것임).
憶陶山梅
湖上山堂幾樹梅 호수 위의 도산서당엔 몇 그루 매화꽃이
逢春延停主人來 봄철 접어드니 옛 주인 오길 기다리네.
去年已負黃花節 지난해 국화의 계절에 그대와 헤어지고
那忍佳期又負回 아름다운 그 기약 어찌 재차 저버릴까.
丙歲如逢海上仙 병인년 맞이하여 바다 신선을 만난 듯
丁年迎我似登天 정묘년은 나를 만나 하늘에 오르는 듯.
何心久被京塵染 어떤 마음도 한양의 풍진 오래 물들어
不向梅君續斷絃 매화와 끊긴 인연 어서 잇지 못하누나.
與驪州牧李公純訓導李畬遊神勒寺乙未 여주목사 이공순과 훈도 이여와 더불어 신륵사를 유람하며(을미년)
京洛風塵一夢悠 서울의 풍진은 한 차례 꿈으로 생각하며
從公聊作靜中遊 편안히 하며 공을 따르니 고요한 마음으로 유람하네.
江山曉作雙眸畫 새벽에 일어나 강과 산을 두 눈에 그리고
樓閣晴生六月秋 누각은 맑고 싱싱하여 6월에도 추상같구나.
問數可能探理窟 가능하면 자주 방문하여 움집에서 이치를 연구하고
談仙直欲謝時流 신선의 말씀대로 곧게 하고자 시류를 물리치네.
歸來穩放輕舟下 거처로 작은 배에 편안히 의지하여 돌아오는데
自喜猶能近白鷗 근처의 흰 갈매기보다 오히려 능하니 절로 즐겁구나.
蓮亭小集 연정의 작은 모임
淸池虛檻逗微涼 맑은 연못 빈 난간에 조금 서늘함이 머무니
高樹風生送夕陽 높은 나무에서 나온 바람이 저녁 해를 보내네.
紅燭不須催騕褭 날씬한 말 재촉하니 붉은 등불 필요치 않고
待看新月滿華堂 화려함 가득한 집에서 초승달 기다려 보리라.
嶺南樓
樓觀危臨嶺海天 누대 높이 영해 하늘에 우뚝 솟고
客來佳節菊花前 좋은 계절에 국화 앞으로 손님 오시네
雲收湘岸靑楓外 소상강(중국) 언덕 푸른 단풍 바깥 구름 걷혔네
水落衡陽白鴈邊 형산(중국) 해 밝은데 흰 기러기 물에 내려앉네
錦帳圍將廣寒月 광한전(달의 성) 달 비단 휘장 둘렀네
玉簫吹入太淸烟 태청(태허) 안개 속으로 옥 퉁소 들려오네
平生儘有騷人興 평생에 진실로 시인의 흥이 있어
猶向尊前踏綺筵 술 항아리 앞에서 아름다운 비단 자리에 춤을 추노라.
映湖樓
客中愁思雨中多 나그네 시름이 비 만나 더한데
况値秋風意轉加 더구나 가을바람에 더욱 심란하구나.
獨自上樓還盡日 홀로 누각에 올랐다 해져야 돌아오니
但能有酒便忘家 다만 술잔 들어 집 그리움 잊는다.
慇懃喚友將歸燕 은근히 벗을 불러 돌아가는 제비는
寂寞含情向晩花 쓸쓸히 정을 품고 늦은 꽃을 향하는구나.
一曲淸歌響林木 한 곡조 맑은 노래 숲속을 울리는데
此心焉得似枯槎 이 마음 어쩌다 마른 삭정이같이 되었나.
玉堂憶梅
一樹庭梅雪滿枝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 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만하네.
龍湫
巨石贔屓雲溶溶 큰 바위 힘이 넘치고 구름은 넓고 조용히 흐르니
山中之水走白虹 산속의 물 내달아 깨끗한 무지개를 이루었네.
怒從崖口落成湫 낭떠러지 어귀에 세차게 나아가 떨어져 못을 이루니
其下萬古藏蛟龍 그 아래엔 먼 옛적부터 교룡이 숨어 있네.
蒼蒼老木蔽天日 푸르게 우거진 노목들이 하늘의 해를 가리니
行人六月踏氷雪 나그네는 유월에도 얼음이며 눈을 밟는다네.
湫邊官道走玉京 웅덩이 곁에는 관도가 서울로 이어져 있고
日日輪蹄來不絶 날마다 수레며 말발굽이 끊이지 않는다네.
幾成歡樂幾悽若 기쁘고 즐거움 몇 번이며 슬픈 일 몇 번이던가?
笑撫乾坤睨今古 온 세상 비웃으며 돌다가 지금과 옛적을 엿보네.
大字淋漓寫巖石 바윗돌의 큰 글자를 본뜨는데 물을 뿌린 듯 흐르니
後夜應作風和雨 밤중에는 응당 바람과 합쳐 비 내리리라.
龍湫 - 문경새재 교귀정 바로 옆에 있는 폭포 이름. 龍潭으로도 불림.
又四絶
以下四絶所詠 皆天淵所望 然皆有主 故不係陶山 而別錄于下 亦山谷所謂借景之義也
이하 4절을 지은 것은 다 천연대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다 주인이 있어, 도산에 매이지 않아 뒤에 따로 적으니 또한 황산곡이 "경치를 빌린다"하던 뜻이다.
1. 聾巖
在西翠屛東 故知中樞李先生亭館在其傍
서취병 동쪽에 있는데 고 지중추 이현보선생의 정관이 곁에 있다.
西望岩崖勝 서쪽으로 바위 벼랑 좋은 곳을 바라보니
高亭勢欲飛 높은 정자는 형세가 날 듯하네.
風流那復覩 풍류를 어찌 다시 보랴
山仰只今稀 높은 산처럼 우러러봄도 지금엔 드물었다.
山谷 - 黃庭堅의 호 중국 북송의 시인. 자는 魯直
聾巖 - 조선 중종 때 이현보가 만년에 벼슬에서 은퇴하여 고향에 돌아가 농암이란 바위에 올라 산천을 두루 살피며, 세상 소리에 귀를 막고 살자는 귀먹바위의 뜻을 자기 호로 삼음.
2. 汾川
在西翠屛南 實里名也 知事之胤大成所居 大成號碧梧
서취병 남쪽에 있으며 마을 이름이다. 지사의 아들 대성이 살던 곳인데 대성의 호는 벽오다.
汾川非異水 분내가 다른 물이 아니라
回水想梧陰 머리 돌이키니 오동나무 그늘 상상하네.
摵摵鳴疎雨 성긴 비에 우수수 울리니
秋來戀主深 가을이 오매 임 그리움 깊어라.
知事 - 知中樞府事 이현보.
大成 - 이문량의 자 호는 碧梧, 이황과는 이웃에 살면서 절친하였는데, 1564년 이황과 함께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3. 賀淵
在西翠屛下 承旨李公幹亭舍 在其上
서취병 아래에 있는데 승지 이공간의 정사가 그 위에 있다.
激湍下爲淵 급한 물결이 떨어져 못이 되었는데
深處知幾丈 깊은 곳은 몇 길이나 되는지.
主人在銀臺 주인이 은대에 있으니
煙波頻夢想 강호가 자주 꿈에 들리.
李公幹 - 이중량의 자, 지중추부사 이현보의 4남
銀臺 - 승정원의 별칭,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임금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
4. 屛庵
在西翠屛崖壁中 上舍李大用所構 命僧守之 舊有淨室 近聞守僧改置其室 殊失佳致云
서취병 절벽 가운데 있는데 상사 이대용이 세운 것으로 중을 시켜 지키게 했다. 전에 깨끗한 방이 있었는데 근래 들으니 지키는 중이 그 방을 고쳐 전의 아름다운 풍치를 잃었다 한다.
屛庵在懸崖 높은 벼랑 위에 병암이 있으니
石縫泉氷齒 돌 틈에서 나는 샘물 이가 시리다.
舊愛一室明 전에는 깨끗한 방이 사랑스럽더니
如今定何似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고?
李大用 - 이숙량의 자, 호는 梅巖, 이현보의 아들. 퇴계 이황의 제자. 저서에 매암집.
又雪月中賞梅韻 李滉
盆梅發淸賞 화분의 매화가 맑은 감상을 발하고
溪雪耀寒濱 시냇가의 눈은 찬 물가에서 빛나네.
更著氷輪影 다시 차갑고 둥근 달그림자 떠오르지만
都輸臘味春 한겨울인데도 봄을 맛보네.
迢遙閬苑境 아득하니 신선의 경지요
婥約藐姑眞 아름다우니 막고사산의 선녀일세.
莫遣吟詩苦 시를 읊조리느라 고심하지 말게
詩多亦一塵 시가 많은 것도 또한 하나의 흠이라오.
雨留新蕃縣 비 만나 신번현에서 묵으며
已見中秋月欲虧 중추의 달을 바라보니 기울어가고
南州行客尙逶遲 남녘 고을로 떠난 나그네 머뭇거린다.
紅雲北闕三千里 붉은 구름 대궐에서 삼천 리나 되고
白髮高堂十二時 백발의 어머님 밤낮으로 못 잊겠다.
醉別故人風挽袖 옛 벗과 이별하니 바람이 소매를 잡고
愁吟孤館雨催詩 객관에서 시 읊으니 비는 시를 재촉한다.
徒令倦僕知飢渴 부질없이 마부가 기갈 느끼게 했으니
屈指歸程倂日期 손꼽아 돌아갈 길 이틀을 하루로 잡는다.
偶題 우연히 적다
1
桂棹蘭槳一葉舟 계수나무 노와 목련 상앗대의 일엽편주
澄江如練靜涵秋 비단 같은 맑은 강에 가을 고요히 잠기네.
無端一夕西風急 하룻밤 느닷없이 가을바람 재촉하더니
鷗鷺驚飛過別洲 갈매기 백로 놀라 날며 물가 지나 떠나네.
2
江上淸風直萬錢 강 위의 맑은 바람은 일만 전의 값이오
扁舟無計買秋天 조각배는 계획 없어 가을 하늘 세내네.
可憐明月如相識 밝은 달도 가련함을 서로 아는것 같아
猶向山間盡意圓 산 사이로 이미 향해 둥근 뜻을 다하네.
雨中賞蓮
畵樓東畔俯蓮池 화루에서 동쪽 연못을 굽어보는데
罷酒來看急雨時 술자리 끝내고 보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溜滿卽傾欹器似 연잎이 젖혀질 때는 기울어진 그릇 같고
聲喧不厭淨襟宜 소리는 요란해도 싫지 않아 가만히 옷깃을 여민다.
遊山書事 用雲谷雜詠韻 운곡의 잡영의 운을 이용하여 산을 유람한 일을 쓰다
1 登山
尋幽越濬壑 그윽한 곳을 찾아서 깊은 골짜기 지나고
歷險穿重嶺 험한 곳을 지나 첩첩한 고개를 뚫었네.
無論足力煩 다리 힘이 번잡함을 말하지 못해도
且喜心期永 바라는 뜻이 영원하니 또한 즐겁네.
此山如高人 이 산은 고상한 사람과 같으니
獨立懷介耿 홀로 서서 맑고 강직함을 따르네.
2 値風 바람을 만나
今日大塊噫 오늘은 큰 땅덩이가 탄식을 하며
簸撼百圍木 모든 나무를 에워싸고 흔들며 까부르네.
聲雄萬馬驅 소리는 웅장하여 만마가 달리는 듯
勢劇九溟覆 기세 대단하여 남쪽 바다를 엎어놓네.
笑我爲病軀 우습구나 나는 병든 몸을 위하여
牢關自縮恧 우리를 닫고 스스로 물러나니 부끄럽구나.
3 翫月 달을 감상하다
千巖雪嵯峨 많은 바위에 눈이 내려 우뚝 솟은 산에
月出愈淸肅 달이 솟아 점점 맑고 엄숙하구나.
幽人坐不寐 그윽한 이 잠들지 못하고 앉았으니
寒鏡低梵屋 차디찬 명월이 깨끗한 집에 머무는 구나.
夜久香寂寂 밤이 오래되니 향기마저 사라져 쓸쓸하고
眞成媚幽獨 다만 그윽하고 아름다운 본성을 이루네.
4 謝客 適有此事 손님을 사절하다. 마침 이런 일이 있었다.
山人亦款人 산 사람도 역시 사람을 좋아하니
酒食要餉夕 술과 음식을 모아 저녁에 보내왔네.
我云子休矣 내가 이르길 당신은 그만 두어라
後者情難極 뒷사람 사정이 극진하기 어렵네.
山人笑而去 산 사람은 웃으며 가버리니
日墮遠山黑 해는 지고 먼 산이 어두워지네.
5 勞農 애쓴 농민
山農住山城 산중의 농민들 산성에 거주하며
沃土耕非緩 기름진 땅 밭가는 걸 늦추지 않았네.
如何捨此去 어찌 이같이 돌보지 않고 버려두어
町疃荊棘滿 남새밭에도 가시나무만 가득하네.
欲反畏里胥 돌아가고자 하나 마을 아전이 두려워
非關生理短 짧게 다스려 사는 것 관계하지 않는구나.
6 講道 도를 강론하다
聖賢有緖言 성현의 말씀 차례가 있으니
微妙非玄冥 섬세하고 오묘하여 검거나 어리석지 않구나.
源流有所自 근원의 흐름이 차례로 있었으니
毫末有所爭 털끝만한 곳의 차이도 알 수 있네.
講之欲何爲 강론함은 장차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 ?
志道求其寧 도리의 뜻을 구하여 이에 편안하리라.
7 懷人 마음에 있는 사람을 그리며
孤蹤在世間 외로운 발자취 세상 사이에 있으니
常恨少朋遊 늘 한함은 사귀는 친구가 적음이라.
有如鶴鳴陰 마땅히 학이 몰래 우는 것 알기에
和者何悠悠 화답할 사람 얼마나 멀리서 그리워할까
空山歲暮時 빈산에 한 해 저무는 때에
獨詠無相猶 홀 로 노래하니 마땅히 따름이 없구려.
8 倦遊 松岡欲擬我按江原。令遊金剛山。余辭之。벼슬살이에 지침. 송강 조사수가 나를 강원도 관찰사로 금강산에서 놀게 하고자 하였으나 내가 이를 사절하다.
故人欲薦我 옛 친구가 나를 추천하여
勸我遊丹丘 내게 권하길 단구에서 즐기라네.
此意固已厚 이 뜻이 대단히 두텁고 완고하니
此事寧非愁 이 일이 어찌 근심스럽지 않으리
焉有受方面 어찌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면서
爲謀方外遊 지방 밖에 노니는 걸 꾀할 수 있나
9 修書 글을 정리하며
我讀啓蒙書 나는 계몽서를 이해하고
一管窺玄關 대롱 구멍 하나로 심오한 관계를 살펴보았네.
傳疑自備忘 전의로 몸소 소홀히 함을 예방하고
不托麻衣姦 마의의 간사함에 의지하지 않으리라.
靜中聊一修 깨끗한 마음으로 에오라지 한결같이 익히니
得處非世間 깨달아 은거하니 세간의 틈새가 아니로다.
傳疑 - 조선 명종 때 이황이 역학(易學)의 계몽을 위해 설명과 주석을 붙인 책
麻衣 - 마의의 역주(易註)는 대사유(戴師愈)의 위작(僞作)으로, 정역심법(正易心法)이라 하였으나 주자에게 발각되었다.
10 宴坐 고요히 앉아서
朝市竟何裨 조정이나 저자가 도리어 무슨 도움이 될까 ?
山林久無厭 산 속 숲엔 오래 머물러도 물리지 않는구나.
身羸好燕養 몸은 고달퍼도 편안히 가르치니 좋고
質愚須學砭 어리석은 품성 반드시 경계하며 배우네.
禪窓白日靜 좌선하는 창은 밝은 낮에도 조용하니
不用珠數念 구슬을 써서 세는 것 생각하지 않으리.
11 下山 산을 내려가며
移棲萬仞崖 매우 높은 경계에 거처를 옮기니
其下臨無底 그 아래 내려다보니 바닥이 없구나.
抱病畏處險 병을 안고 있으니 험한 곳이 두렵고
頗妨寄衰齒 쇠한 연령에 의지하니 자못 거리끼네.
翛然下山去 빠른 듯이 산 아래로 내려가니
雲林杳幾里 구름숲이 몇 리나 아득한지.
12 還家 집으로 돌아오다.
遊山何所得 산에서 즐기며 얻은 것이 무엇인가
如農自有秋 농부와 같이 진실로 넉넉한 가을이라.
歸來舊書室 예전의 서실로 돌아오길 마치고
靜對香烟浮 향불 연기 떠도는 고요함 마주하네.
猶堪作山人 오히려 산 사람이 된 듯 즐기니
幸無塵世憂 다행히 속세의 근심이 없구나.
月瀾寺和西林院詩韻 월란사에 묵으면서 주자의 서림원 시운에 화답한 시
似與春山宿契深 봄 산과 묵은 약속 깊었던가
今年芒屩又登臨 올해도 짚신 신고 또 올라본다.
空懷古寺重來感 쓸쓸히 옛 절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고
詎識林中萬古心 숲속 오랜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從師學道寓禪林 스승 따라 도를 배우려 선림에 머무니
壁上題詩感慨深 벽에 붙인 시구에 감개가 깊어진다.
寂寞海東千載後 적막한 우리나라 천 년 세월 지난 뒤
自憐山月映孤衾 산에 솟은 달 이불에 비춰 어여쁘다.
月影臺
老樹奇巖碧海堧 오래된 나무, 기이한 바위의 푸른 바다 공터에
孤雲遊跡總成烟 최고운(최치원) 노닌 자취 다 연기가 되었구나.
只今唯有高臺月 지금은 다만 높은 누대에 달만 떠있고
留得精神向我傳 정신만 여기 남아 나에게 전해오네.
威化島
麗季狂謀敢逆天 고려 말에 무모하게 역천을 꾀했으나
飛龍京會尙田淵 비룡의 맑은 빛이 모여 오히려 못처럼 깊도다.
自從神勸回旌後 천신의 도움으로 군사를 되돌린 후로
東海春融萬萬年 동해나라 봄의 어울림 억만 년을 이어가리.
游春詠野塘 봄놀이에 들판 연못을 읊다
露草夭夭繞水涯 싱싱한 이슬 맺힌 풀이 곱게 물가를 둘러
小塘淸活淨無沙 작은 연못은 맑고도 깨끗해 모래 하나 없구나.
雲飛鳥過元相管 구름 날고 새 지나감은 원래 서로 관계되니
只怕時時燕蹴波 다만 때때로 제비가 물결을 차는 것이 두려워라.
義州
龍淵雲氣晩凄凄 못에 서린 구름 기운 저녁 되니 쓸쓸하고
鶻岫磨空白日低 높은 산 위의 송골매는 하늘 해 위에 솟았구나.
坐待山城門欲閉 산성의 문이 닫히기를 앉아서 기다리니
角聲吹到大江西 피리 소리 큰 강의 서쪽으로 불어오는구나.
李剛而見訪月下詠梅
歷盡崎嶇荷遠尋 험한 길을 마다 않고 멀리 찾아주었으나
花殘春老恨休深 지는 꽃 저문 봄을 너무 상심하지 마오.
天敎緩緩梅花發 매화가 더디 핌도 하늘의 뜻일진대
月白風淸待子吟 달 밝고 바람 맑아 그대 기다려 읊으리라.
移竹 次韻康節高竹 대나무를 옮기고 강절의 고죽에 차운하다,
1
穉竹兩三叢 어린 대나무 두 세 포기를
移來見其生 옮겨 와 그가 자람을 살피네.
且喜新萌抽 장차 새로운 죽순을 뽑아내면 기쁜데
何妨逸鞭行 어찌 격하게 매질함을 꺼리는가 ?
物遇人之幽 대나무는 숨어 사는 사람을 만났고
人荷時之明 사람은 이를 숭상 할 기회를 맡았네.
山園一畝內 산속 화원의 어느 밭이랑 안에서
幸矣相娛情 다행이 서로 즐기는 멋을 만났구려.
鞭行 - 竹迷日, 즉 5월 13일. 이날 대를 옮겨 심는데 비가 내려 대나무를 비가 매질하듯이 때리면 다음해에 죽순이 많이 난다.
康節 - 邵擁, 자는 堯夫, 自號를 安樂先生, 시호가 강절로 소강절선생으로 더 잘 알려짐.
2
穉竹種前庭 어린 대나무를 뜰 앞에 심으니
我窓淸且幽 나의 창이 맑고 또한 그윽하구나.
猗猗見長夏 여름에 연약하고 길게 자라는걸 보니
凜凜期高秋 하늘 높은 가을에는 늠름함을 기약하네.
入而對此君 들어오면 대나무를 마주하고
出而漱溪流 나가서 산골짜기 흐르는 물에 씻는다네.
淸寒不厭多 차갑고 추운 것이 겹쳐도 싫어하지 않으니
遇境恣所收 뜻이 맞는 경우엔 마음대로 쉬며 거처하리라.
猗猗 - 중국어로는 아름답고 무성함, 번창하다. 아름답고 성하다. 바람 소리가 부드럽다.
此君 - 대나무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3
穉竹種我庭 어린 대나무를 나의 뜰에 심으니
亦在幽巖下 또한 그윽한 바위도 뒤에 있구나.
有松倂有梅 소나무 있는 곳에 나란히 매화도 있으니
三節足成詑 삼절이 갖추어짐에 으쓱하구나.
畸人有時來 기인이 있어 때 맞춰 찾아오시니
俗駕寧對謝 속인을 능가하니 편안히 대하여 사례하네.
誠堪老此間 삼가하고 즐기며 이 사이에서 늙으니
肉食久已罷 육식은 옛날에 이미 그만두었다네.
4
穉竹始成行 어린 대나무 비로소 의지가 굳세어지니
已似伯夷淸 이미 백이와 숙제를 닮아 사념이 없다네.
挺然衆卉中 초목의 무리 가운데 뛰어나게 훌륭하니
自可樹風聲 스스로 가히 품격과 성망을 세우는구려.
讓國一時義 나라를 사양함은 한결같은 시대의 의리요
恥粟百世情 곡식을 부끄러워하니 백세의 진리라네.
長歌採薇曲 고사리 캐는 노래가 긴 노래라고
孰云鳴不平 누가 불평하며 이를 말하리오.
讓國 - 백이와 숙제가 임금이 되기를 사양하던 일.
恥粟 -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무왕의 곡식을 부끄러워하여 수양산으로 들어 감
採薇曲 -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뜯으며 불렀던 노래.
5
穉竹移難活 어린 대는 옮기면 살리기 어려우니
日夕勤灌蓋 매일 저녁 물을 주고 덮어주었네.
托地如有欣 땅에 닿아 의지하니 기쁨이 있고
植立儼相對 똑바로 자라 서로 대하니 의젓하구나.
蕭灑淸眞意 바람 불어 흔들려도 참된 풍정은 사념이 없으니
忽與我心會 문득 나의 마음과 더불어 깨닫는구려.
譬德詠淇澳 덕을 비유하여 기욱편을 읊나니
詩人眞知愛 시인은 참으로 즐길 줄을 알았구나.
6
穉竹有美姿 어린 대나무 아름다운 자태가 있으니
尖新脫綳初 뾰족한 새순이 처음으로 묶은 것을 벗어났네.
遷地醉來忘 땅을 옮겨 올 때는 취하여 잊었고
舞梢笑時舒 춤추는 가지 끝은 웃을 때마다 펴지네.
重露淸晨後 맑은 새벽이슬 자주 내린 뒤에
微涼小雨餘 적은 비 내린 나머지 조금 서늘하구나.
何須鳳鳴管 어찌 구태여 봉황새가 우는 율관의
長短算分銖 길고 짧음을 저울눈으로 셈하여 나눌까.
遷地醉 - 대나무를 옮겨 심는 음력 5월 13일을 竹醉日, 竹迷日이라고 부름.
舞梢笑 - 대나무가 바람에 구부러지는 것을 대가 웃는 것 즉 竹笑[죽소]라 함.
鳳鳴管 - 황제가 영륜(伶倫)을 시켜 해곡(嶰谷)의 대나무를 베어오니 두 마디 사이의 길이가 여섯 치 아홉 푼이니 그것으로 봉황의 울음을 모방하여 율관(律管)을 만들었다.
7
穉竹拔地生 어린 대나무 땅위에 성하고 싱싱하니
意欲干雲上 마음은 높은 구름을 범하려하네.
丹穴五色禽 단혈의 다섯가지 빛깔의 새는
雝雝去何向 화락하게 즐기며 어디를 향해 가는가.
蕭蕭伴幽居 쓸쓸함과 벗하여 조용히 살다보니
柴門日淸曠 사립문은 나날이 한가하여 황량해지네.
足明溪上翁 넉넉하게 갖추어져 산골짝 어른께 드리니
不願封侯相 봉후의 도움도 바라지 않는구려.
丹穴 - 오색영롱한 봉황새가 사는 곳,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삶.
8
穉竹自成林 어린 대나무 스스로 숲을 이루니
爽籟生寒葉 차가운 잎에서 서늘한 소리가 나네.
樊川豈爾知 번천[두목]이 어찌 너를 알리오
比之萬夫甲 갑옷 입은 일만 장부에 비유하였구나.
亦恐道太孤 길도 또한 매우 고루할까 염려되어
栽菊繞成匝 국화를 널리 둘러싸 무성해지도록 심었네.
除害不可無 해로운 것을 없애는데 불가함이 없으니
時時親操鍤 때때로 친히 삽질을 한다네.
樊川 - 杜牧의 호, 자를 牧之, 별명은 小杜, 중국 만당 전기의 시인
萬夫甲 - 두목이 대나무를 읊은 시에 '萬夫甲'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진나라 左思의 吳都賦에서 읊기를 " 대나무 숲은 십만 장부가 갑옷을 입고 칼을 쥐고 선 것이다"라고 하는 구절을 杜牧之가 이를 인용한 것이다.
移草屋於溪西名曰寒棲庵 초가집을 시내 서쪽에 옮기고 이름을 한서암이라 하다.
茅茨移構澗巖中 띠집 지붕이어 골짜기 언덕에 옮겨 지으니
正値巖花發亂紅 때마추어 언덕의 꽃들이 붉게 가득 피었네.
古往今來時已晩 옛날부터 지금까지 기회는 이미 늦었지만
朝耕夜讀樂無窮 아침에 밭갈고 밤에 읽으니 즐거움 끝이 없으리.
林居四詠
早春
臘酒春光照眼新 납주 봄빛이 눈에 비쳐 새로우니
陽和初覺適形新 따스한 기운에 처음으로 몸과 정신이 알맞은 줄 알겠네.
晴簷鳥哢如呼我 비 갠 뒤 처마에 우는 새는 손님을 부르는 것 같고
雪磵寒梅似隱眞 눈 속 찬 매화는 은군자 같구나.
初夏
田家相賀麥秋天 농가에서 보릿가을 잘 되었다고 서로 축하하는데
雞犬桑麻任自然 닭, 개, 뽕나무, 삼도 절로 자라도록 맡겨두네.
縱使年來窮到骨 비록 이즈음에 궁하기가 뼈에 사무쳤어도
免敎匍匐井螬邊 우물가에 기어가서 벌레 먹은 오얏 열매 삼키는 것 면하리.
早秋
切切陰虫聽到明 벌레 울음소리 밤새도록 들으니
不平何事訴聲聲 무슨 일로 소리 소리 불평을 호소하나
極知搖落來無奈 차가운 가을철 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
深爲叢筠護節莖 총죽을 위해 절조 있는 줄기를 보호해 주려네.
初冬
役車休了靜門扃 농사 일 끝내고서 집안이 조용하니
卒歲豳風事爾馨 빈풍에 나오는 대로 겨우살이 이러하네.
羸骨土床宜煖熨 야윈 몸 방에 들면 따뜻해야 할 것이니
却須朝夕問樵靑 아침저녁에 초청에게 물으리.
臨風樓 七夕
勝事由來天所慳 뛰어난 사적의 유래는 하늘이 아끼는 바
臨風樓上且偸閒 또다시 틈을 내어 임풍루에 오르네.
樹遮午熱風生檻 한 낮의 열기 나무가 가리니 난간에 바람 일고
雲破秋陰日映山 산에 햇살이 비추니 가을 그늘과 구름을 흩뜨리네.
老鶴飮多如酒渴 늙은 학이 많이 마시듯 급히 술을 마시며
寒蟬吟苦欲詩斑 쓰르라미 애써 노래하듯 시를 나누고자 하네.
萬竿脩竹臨池岸 많은 그루의 가는 대가 언덕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니
塵土城中自不關 도시 속 티끌과 흙은 몸소 관계하지 않으리라.
翦開檻外樹作 난간 밖의 나무를 잘라 없애며 짓다.
南樓意不愜 남쪽 누각의 풍정은 쾌하지 못하고
檻前樹蓊蓊 난간 앞의 나무들만 아주 무성하구나.
那聞竽籟響 피리와 퉁소의 소리를 어찌 들으며
祇見螻蟻孔 다만 땅강아지와 개미굴만 보이는구나.
勃然難恕宥 왈칵 성이나 너그러이 용서하기 어려워
腰斧奚奴勇 과감하게 하인 놈에게 도끼를 차라하고
丁丁落遠揚 쩍쩍 찍어 떨어뜨리니 먼 곳까지 드러나
豁豁去蔽壅 가리고 막힌 것 덜어 없애니 넓게 뚫렸네.
川原忽紛披 내와 언덕에 갑자기 꽃이 만발하여도
宴坐不移踵 고요히 앉아 뒤따르며 옮기지 않고
遠山入簾鉤 주렴을 끌어당겨 먼데 산을 들이고
愁髻樊姬擁 상투의 근심은 번희가 막는구나.
平湖熨氷紈 투명한 비단을 다림질한 듯 호수는 평평하고
几席天光動 안석과 자리에는 맑게 갠 하늘빛이 나타나네.
怳如學變化 잠시 비슷하게 흉내 내어 고치고 제거하니
臺殿雲間聳 대와 큰집이 구름 사이에 솟아 있네.
向來墻面界 담장 쪽 경계를 향하여 오니
萬象爭獻捧 많은 형상이 다투어 섬기듯 보이네
飛鴻渺天末 기러기 날아 하늘 끝에 아득하고
世事等蠛蠓 세상의 일이란 하루살이와 같구나.
人心辟邪蠱 사람의 마음은 사악한 일에서 벗어나려하고
國政去微尰 나라의 정사는 작은 부기를 덜어 없앰이라네.
較我開林功 조금 고집을 부린 보람에 숲이 열리니
無分輕與重 소중함과 더불어 천함을 분간하지 않으리라.
折梅揷置案上 매화를 꺾어 책상 위에 꽂아 두다
梅萼迎春帶小寒 매화 꽃받침 봄을 맞아 매운 추위를 띠었고
折來相對玉窓間 한 가지 꺾어와 옥창 사이에서 마주 대하네.
故人長憶天山外 천산 밖 고인 오래도록 생각하니
不耐天香瘦損看 천향이 사그라짐을 차마 보지 못하겠네.
節友社訪梅
花發巖崖春寂寂 바위 벼랑에 꽃은 피었는데 봄은 적적하고
鳥鳴澗樹水潺潺 산골 나무에는 새가 울고 물은 졸졸 흐르는구나.
偶從山後携童冠 우연히 산뒤로 쫒아 동자와 관자들을 이끌고
閒到山前看考槃 한가로이 산앞에 이르러 은거하는 집을 보도다.
節友社示李朴諸君 - 절우사에서 이, 박제군에게 보이다)
陶山主老病畸人 - 도산의 주인, 늙고 병든 비뚤어진 사람이
正月二日立春
黃卷中間對聖賢 누런 서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며
虛明一室坐超然 밝고 빈방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가에서 또 봄소식을 보면서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노라.
題金上舍愼仲畫幅 八絶
湖上精廬絶俗緣 호수가 깨끗한 집 세속의 인연과 끊어진 곳이니
胎仙栖託爲癯仙 학이 깃들어 여윈 신선이 되었구나.
不須翦翮如鸚鵡 앵무처럼 깃촉을 꺾을 필요 없으니
來伴吟梅去入天 장차 함께 매화를 읊으며 하늘로 들어가세.
上舍 金愼仲의 화폭에 쓴 제화시(西湖伴鶴)
題靈川子墨竹 영천자 묵죽에 제하다.
舊竹飄蕭新竹長 옛 대나무 쓸쓸히 나부끼니 새 대나무 자라나
林間奇石狀奇章 숲 사이의 기이한 돌이 기장의 모습이구나.
不知妙墨傳湘韻 알 수 없는 묘한 먹으로 소상의 운치를 전하니
唯覺風霜滿一堂 오직 바람과 서리만이 집안 가득함을 느끼네.
奇章 - 수나라 때의 기장군공(奇章君公)에 봉해진 牛弘을 말함. 우홍이 평소 기암괴석을 즐겨 모았다.
早秋夜坐 초가을 밤에 앉아서.
僦屋近西城 서쪽 성 근처에 집을 빌리니
空庭翳樹木 빈 뜰에는 수목들이 그늘져있네.
群蟬得佳蔭 매미 무리들 좋아하는 그늘을 얻으니
日夕如相促 날 저물기를 서로 재촉하는 것 같구려.
須臾入黃昏 마침내 잠깐사이에 황혼이 드니
窓戶失炎溽 창과 집에는 찌는 듯한 더위가 물러나네.
新月出海來 달이 새로이 바다에서 나온 후
皎皎臨牆曲 밝은 달빛이 굽이진 담장에 비추네.
蟲鳴在四壁 사방 벽에 있는 벌레들이 울어대고
草露飜似沐 이슬이 풀을 적시니 넘쳐흐르는 것 같구나.
感時忽興嘆 계절을 느끼니 문득 한숨이 일어나
徂年水流速 지나간 해는 물이 흐르듯 빠르구나.
舊學苦已晩 구학문에 힘쓰려니 이미 늦었고
新知良可恧 새로운 지식을 들으려니 참으로 부끄럽구려.
沈痾喜負心 즐겁던 마음은 숙병이 오래되니 탄식하고
謬算難諧俗 그릇된 지혜로 속인과 화합하려니 어렵구나.
小人思獻愚 소인의 생각으로 어리석게 표현하려니
君子貴知足 군자를 공경하며 만족함을 알겠네.
悠悠不成寐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耿耿照書燭 깜빡이는 촛불에 글을 비춰보네.
種瓜 오이를 심다
山居非東陵 산에 살지만 장안 동릉은 아니오
野人非故侯 숨어 살아도 옛 동릉후는 아니라오.
種瓜聊適意 오이를 심어 애오라지 정취를 즐기니
寧知桃柳憂 어찌 복숭아와 버들의 근심을 알리오?
種菊 국화를 심으며
十年種都下 십년은 서울 아래에서 심었고
二年種郡圃 이년은 관아의 정원에 심었네.
何如故園中 어떻게 하면 고향 동산에도
自有山野趣 산과 들의 풍취가 절로 있을까?
種梅 매화를 심으며
廣平銷鐵腸 광평의 철장 석심이 녹아서
西湖蛻仙骨 서호의 신선이 되었구나.
今年已蕭疎 올해엔 이미 쓸쓸히 흩어지지만
明年更孤絶 내년에는 다시 외로움 끊으리라.
種松 소나무를 심으며
樵夫賤如蓬 나무꾼은 쑥처럼 천히 여기지만
山翁惜如桂 산 늙은이는 계수나무처럼 아끼네.
待得昂靑霄 푸른 하늘 높이 이르길 기다리려면
風霜幾淩厲 풍상을 얼마나 힘써 헤쳐 나가야 할지.
種竹 대나무를 심으며
此君不可無 대나무가 가히 없으면 아니 되는데
栽培最難活 심어 다스려 살기가 가장 어렵다네.
如何艾與蕭 어찌하여 쑥과 더불어 맑은 대쑥은
翦去還抽櫱 베어 버려도 다시 움에 싹이 트네.
州城地利 의주성의 지리
雉堞峩峩地勢雄 성가퀴는 높고 지세도 웅장하여
分疆遼左壓山戎 요동 왼편 경계 나눠 산 오랑캐를 눌렀다.
國門鎖鑰如天設 나라 관문에 자물쇠 하늘이 마련한 듯
長得平安報夕烽 평화로운 소식 저녁 봉우리에 길이 전한다.
池方寺瀑布 지방사의 폭포
灑灑仙風襲客衣 맑고 깨끗하게 날 듯한 바람 나그네 옷에 스미니
陰陰山木怪禽飛 습하고 축축한 산속 나무에 괴이한 새가 나는구나.
何人好事同來看 일벌이기 좋아하는 어떤 이 함께 와 보려니
獨對蒼崖信筆揮 푸른 물가 홀로 대하여 마음대로 붓을 휘두르네.
坐石沈吟日欲斜 돌에 앉아 오래 읊으니 해는 기우려 하고
碧潭增色湛無波 색을 더하는 푸른 못은 물결도 없이 잠기네.
莫辭再訪淸秋後 맑은 가을 지나고 다시 찾기를 사양 말고
要看楓林爛似紗 비단 같이 고운 단풍나무 숲 요긴히 보리라.
次友人韻
性癖常耽靜 항상 조용함을 즐김이 나의 성벽
形骸實怕寒 체구는 허약하여 추위도 잘 참지 못한다.
松風關院聽 솔바람 소리 들으며
梅雪擁爐看 눈 쌓인 매화를 화로를 끼고 본다네.
世味衰年別 세상 재미 늙어서는 또 달라지는 것
人生末路難 인생이야말로 정말 어렵도다.
悟來成一笑 깨달으면 모든 일 한 바탕 웃음거리
曾是夢槐安 난 지난날 허망한 꿈을 꾸고 있었소.
次韻奇明彦追和盆梅詩見寄 기명언이 화답해 온 분매시를 차운하여 보내다
任他饕虐雪兼風 그대를 모진 눈바람 속에 맡겨두고
窓裏淸孤不接鋒 나는 창가에서 무이하며 맑고 외롭게 지냈다네.
歸臥故山思不歇 고향산천 돌아와도 그대 걱정 그치지 않으니
仙眞可惜在塵中 선녀 같은 참됨이 티끌 속에 있음이 애처롭구나.
次韻黃仲擧 幷序 仲擧曾求拙跡 僕書晦庵廬山諸詩寄去 仲擧, 時得公山仙舟巖瀑布, 適得廬山詩帖, 以爲喜幸, 二絶見寄 次韻奉答 중거가 일찍이 나의 글씨를 요구하였는데 내가 회암이 여산에서 읊은 여러 시를 써 보내었다. 중거가 이때에 팔공산에서 선주암 폭포를 발견하고, 마침 여산 시첩을 얻었으므로 기뻐서 절구 2수를 지어 보내왔으므로 차운하여 답시를 보낸다.
新發雲泉勝 새로 발견한 안개 속의 물줄기 빼어나니
千尋想怒雷 생각건대 천 길의 물줄기 성난 우레와 같으리라.
遨牀來玩處 태수가 방문하여 완상하는 곳에
嵐翠幾重堆 푸르스름한 남기가 폭포의 언덕에 몇 겹이나 둘렀으리라.
夢想廬山河落水 꿈속에 여산의 은하 물줄기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며
風塵三復紫陽詞 티끌세상에서 자양(주자)의 시를 여러 번 다시 읽어보노라.
聞君訪得仙巖瀑 듣건대 그대가 선암 폭포를 발견하였다 하니
相逐何時攬絶奇 어느 날에 그대를 쫓아가 절경을 구경할까?
天淵臺 천연대
高臺臨眺敞無儔 높은 대에 임하여 보니 필적할 곳 없이 탁 트여
萬事如今付釣洲 만사를 이제부터 물가에 낚시하며 의지하리라.
綃幕悠揚雲翼逸 멀고 아득한 비단 장막의 구름 날개 편안하고
金波潑剌錦鱗游 금빛 물결 발랄하게 비단 물고기처럼 헤엄치네.
風雩得處難名狀 무우에서 바람 쏘이며 얻은 경지 형용키 어렵고
壽樂徵時詎外求 편히 오래 살며 때마다 이루니 어찌 밖에서 구할까.
老我極知蹉歲月 늙은 이 몸 세월이 지남에 병들고 지치는걸 아니
遺編何幸發潛幽 남겨진 책의 그윽이 잠긴 것 밝히면 얼마나 다행일까.
靑谷寺
琴山道上晩逢雨 저물녘 금산 가는 길에서 비를 만났는데
靑谷寺前寒瀉泉 청곡사 앞 샘에서는 차가운 물이 솟네.
謂是雪泥鴻瓜處 아, 이게 바로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자리이려니
存亡離合一潸然 존망과 이합이 하나 되어 흐르는구나.
靑谷寺 - 경남 진주시에 소재
矗石樓
落魄江湖知幾日 낙백하여 강호에 떠돈 지 몇 날이던가
行吟時復上高樓 길을 걸으며 시 읊으며 높은 누각에 오른다
橫空飛雨一時變 공중을 날아내리던 비도 일시에 변하여
入眼長江萬古流 들어가 바라보니 긴 강은 만고를 흘러간다
往事蒼茫巢鶴老 지난 일들 아득하고 둥지에 깃든 학도 늙어가니
羇懷搖蕩野雲浮 마음은 흔들려 어지럽고 들판의 구름은 하늘을 떠돈다.
繁華不屬詩人料 번화한 세상 일은 시인이 뜻한 일 아니니
一笑無言俯碧洲 말없이 한 번 웃으며 푸른 물가를 내려다본다.
秋日 遊陶山夕歸 己未 가을 날 도산에서 놀다가 저녁에 돌아오다.
秋懷憀慄蕙蘭腓 가을 기분 쓸쓸하고 난초들은 시드는데
水落天空雁欲飛 쓸쓸한 강물 빈 하늘에 기러기 날려하네.
不係窮通憂與樂 깊은 생각 매이지 않고 근심 함께 즐기니
何知今古是兼非 옛과 지금의 옳고 그름 겸하여 어찌 알리오.
天淵臺迥閒吟坐 천연대 멀리에 한가하게 앉아 읊조리다가
柞櫟遷長帶醉歸 떡갈나무 긴 벼랑에 취한채 돌아가리라.
但使淵明終老地 오직 도연명 따르며 다만 늙어갈 뿐이니
衣沾夕露願無違 저녁 이슬에 옷 젖어도 원망 없길 원하네.
秋日 南樓晩霽 가을 날 남쪽 누각에 늦게야 비가 개이다.
蕭蕭晩雨霽 쓸쓸히 떨어지다 해질녘 비가 그치니
決決小溪響 빠르게 흐르며 작은 산골짜기 울리네.
湖雲薄未歸 호수의 구름 야박하게 돌아가지 않아도
天日淡猶朗 하늘의 해는 오히려 담백하게 환하구나.
小樓地勢高 작은 다락의 땅의 형세는 높아서
孤座几席爽 떨어진 자리의 안석과 돗자리 상쾌하네.
騷情喜曠蕩 시부의 멋을 즐기며 헛되이 방종하고
病眼怯莽蒼 병든 눈은 푸른 시골의 경치가 두렵구나.
落葉滿林蹊 떨어진 잎이 숲의 좁은 길에 가득하고
涼風撼書幌 서늘한 바람에 휘장의 글씨가 흔들리네.
萬物各歸根 세상 모든것 각각 근본으로 돌아가니
龍蛇思蟄養 용과 뱀도 겨울잠을 즐기려 생각하네.
邃古民大朴 아득한 옛날의 나는 지나치게 소박했는데
末路世密網 막바지 한평생은 그물처럼 빽빽하구나.
幽鳥亦何意 먼 곳의 새들은 모두 무슨 뜻으로
下啄還飛上 아래를 두드리고 또 다시 위로 오르는가?
春日閒居
1
昨日雲垂地 어제는 구름이 땅에 드리웠는데
今朝雨浥泥 오늘 아침은 비가 진흙땅을 적신다.
開林行野鹿 숲을 헤치고 들길을 다니는 사슴
編柳卻園雞 버드나무 엮어두니 뜰 안의 닭 같네.
2
不禁山有亂 산꽃의 어지러움 싫지않으며
還憐徑草多 길섶에 우거진 풀도 사랑스럽다.
可人期不至 온다고 약속한 사람 오지 않으니
奈此緣樽何 이 녹음 속에 놓여진 술 항아리를 어쩌면 좋아.
3
水聲含洞口 동구 밖에 물소리 들리고
雲氣帶山腰 산 중턱엔 구름 서린다.
睡鶴沙中立 학은 모래 벌에 선 채로 잠들고
驚鼯樹上跳 놀란 다람쥐 나무 위로 오른다.
4
山田宜菽粟 산 속 밭엔 콩과 조
藥圃富苗根 약초 밭에는 싹과 뿌리.
北彴通南彴 남북에 이어진 돌다리
新村接舊村 나란히 붙어있는 신구촌(新舊村)
5
綠染千條柳 푸른 가닥 천 줄기 버들
紅燃萬朶花 만 송이 꽃이 붉고 환하다.
雄豪山雉性 웅장하고 호방한 산 꿩의 본능
奢麗野人家 화려하고 고운 시골집이 보인다.
秋朝 가을 아침
殘暑全銷昨夜風 어젯밤 바람 불어 남은 더위 사라지고
嫩涼朝起灑襟胸 아침 되어 서늘함이 가슴속에 스미누나.
靈均不是能言道 영균이 원래 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면
千載如何感晦翁 어이하여 천 년 뒤에 회옹 느끼겠나.
靈均 - 굴원의 자(字)
晦翁 - 주희의 호(號)
春寒 이른 봄추위
破屋春寒怯透颸 허물어진 집에 봄추위가 꿰뚫고 지날까 두려워
呼兒添火衛形羸 아이 불러 불을 더해 파리한 몸을 지키네.
抽書靜讀南窓裏 남쪽 창가에 책을 당겨 조용히 읽으니
有味難名獨自怡 그 맛 알지 못해도 혼자 스스로 즐기네.
七月望日狎鷗亭卽事 칠월 보름날 압구정에서 본 바를 짓다
時書堂有故稟啓移寓於此 이때 서당에 사고가 있어 여쭙고 사뢰어 이곳으로 옮겨와 있었다.
其一
奔雲陣陣度簷楹 처마 기둥 넘어 내닫던 구름이 한바탕 진을 치니
雨過長江一半明 비가 지나간 긴 강은 한 쪽 반이 밝아지네.
隱几笑看爭渡客 다투며 건너는 사람들 안석에 기대어 웃으며 바라보니
漢江樓下雪山傾 한강의 망루 아래에 흰 산이 기울어지네.
其二
歸舟搰搰上前灘 돌아가는 배가 여울 위로 힘을 써서 나아가는데
忽掛風帆萬里閒 갑자기 바람불어 돛을 다니 만 리에 한가롭구려.
總把向來牽挽力 모두 잡고 힘써 당기어 이끌어 나아간 뒤에
一時酣寢浪花間 아름다운 물결 사이에 잠시 때맞춰 술을 즐기며 쉬어보네.
其三
江中風起雨冥冥 강 가운데 바람 일더니 어두워지며 비 오는데
葉上靑蛙止復鳴 잎파리 위의 청개구리 그쳤다가 다시 우네.
兩兩漁舟依別岸 쌍쌍의 고기잡이배는 언덕을 의지해 따로 떨어지고
晩來收釣入柴荊 해 저물자 낚시 거두어 사립문으로 들어가네.
其四
望中奇變忽無蹤 보름 사이에 기이하게 변하여 갑자기 자취가 없어지고
日照西雲淡夕容 서쪽 구름에 해가 비치니 맑은 저녁을 꾸미는구려.
未露四圍靑黛色 푸르고 검푸른 빛을 아직 적시지 못하고 사방을 에워싸니
唯看千頃白銀鎔 오직 은을 녹인 듯 하이얀 아름다운 이랑을 바라보네.
七月旣望 7월 16일
野曠天高積雨晴 들판 휑하고 하늘은 높고 장맛비 개었는데
碧山環帶翠濤聲 푸른 산이 둘러싸고 푸른 물결 소리 들린다.
故知山水無涯興 짐짓 자연의 끝없는 흥취 알겠노니
莫使無端世累攖 무단한 세상의 일들로 구속하지 말게 하라.
退溪
身退安愚分 몸은 물러나 어리석은 분수에 편하지만
學退憂暮境 학문이 퇴보하니 늙어 근심이 되는구나.
溪上始定居 개울가에 집을 지어
臨溪日有省 개울물 소리 들으며 날마다 성찰하며 사노라.
退溪草屋 喜黃錦溪來訪 퇴계 초가에서 황금계에 방문을 반기며
溪上逢君叩所疑 개울 위에서 그대 만나 궁금증 풀고
濁醪聊復爲君持 그대 위해 다시 막걸리를 차린다.
天公卻恨梅花晩 하늘은 매화꽃 늦음을 한하여
故遣斯須雪滿枝 일부러 눈꽃 송이를 가지에 가득 달아 놓는다.
夏日 林居卽事 여름 날 숲에 앉아서 보다.
1
窄窄柴門短短籬 좁고 궁색한 사립문에 짧고 작은 울타리
草庭苔砌雨新滋 거친 뜰 섬돌 이끼 비 내려 새로 느는구나.
幽居一味無人共 그윽이 숨어사는 맛을 남과 함께하지 않고
端坐翛然只自怡 단정히 앉아 자유 자재하니 다만 절로 기쁘네.
翛然 -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초탈한 모습. ‘장자‘의 ’대종사‘에 나오는 표현, 세상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지도 않고 들어가는 것을 꺼려하지도 않았다. 얽매이지 않고 갔다가 얽매이지 않고 왔을 뿐이다. 자유자재
2
薄雲濃日晩悠悠 엷은 구름 짙은 날 한가하게 해 저무는데
開遍川葵與海榴 들판 해바라기 널리 피고 석류도 함께하네.
始覺遠山添夜雨 먼 산이 비로소 나타나며 밤비를 더하니
前溪石瀨響淙流 앞개울 돌 여울에 흐르는 물소리 울리네.
寒棲 한서 암자에 살면서
結茅爲林廬 띠풀을 엮어 숲속에 초가집 지으니
下有寒泉瀉 아래로는 차가운 샘물 흐른다.
棲遲足可娛 늦게 찾아와 살지만 가히 즐거워
不恨無知者 아는 사람 없어도 한스럽지 않도다.
寒棲雨後書事 한서암에 비온 뒤에 글씨를 쓰다.
浪浪夜雨聲 마구 마구 소리 내어 밤새 비오더니
朝起靑山濕 아침에 일어나자 푸른 산이 젖어있네.
宿雲半解駁 오래 머물던 구름 반 쯤 벗겨져 치우치니
澗水流更急 산골짜기 물이 더욱 급하게 흐르는구나.
巖林迎光景 바위와 숲이 햇빛을 맞이하는 풍경에
衆綠如新沐 초록의 무리가 새롭게 씻는 것 같구나.
野人相喚出 들녁 사람들 서로를 부르며 나서고
幽鳥語款曲 그윽한 새들은 매우 정답게 노래하네.
柴荊澹無事 누추한 집에는 일이 없어 조용하고
圖書盈四壁 도서와 책들은 네 벽에 가득하네.
古人不在玆 옛 사람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其言有餘馥 마땅히 말씀은 남아 있어 향기롭구나.
望望三益友 바라고 바라기는 이로운 세 벗을 사귀어
來從三徑讀 조용히 돌아와 재삼 바르게 이해하리라.
漢城寓舍盆梅贈答 서울에서 내가 매화에게
頓荷梅仙伴我凉 고맙게도 매화가 나의 외로움을 함께 하니
客窓蕭灑夢魂香 나그네 쓸쓸해도 꿈만은 향기롭다네.
東歸恨未携君去 예안으로 돌아갈 때 그대 함께 못가니 한스럽지만
京洛塵中好艶藏 서울의 티끌 속에서도 아름다움 간직해 주게나.
東歸 - 죽령에서 수로로 동으로 가면 예안면에 이른다
湖上園亭偶出效康節體 호상의 원정에서 우연히 나와 소강절의 시체를 본받아 짓다
何限名園漢水頭 어찌 한강수 머리에만 좋은 동산 있을까
閒來無處不堪遊 한가한 몸이라면 어디 간들 놀 곳 없으리오.
白魚切玉家家興 옥을 자른 듯 가는 회에 집집마다 흥겹고
黃菊排金院院秋 노오란 국화 금을 늘어놓은 듯 뜰마다 가을이라.
酌酒喜臨高榭豁 술잔 잡고 즐거이 올라보니 높은 정자 시원하고
題詩愛向曲闌幽 시를 지어 굽은 난간 향하여 그윽함을 좋아했다.
更知易厭紅裙醉 붉은 치마에 술 취함도 쉽게 싫어짐을 알 것이니
要學沙鷗浩蕩吟 해오라기 호탕하게 노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다.
和陶集飮酒 選十 도연명집 중에 실린 음주 시를 화답하여, 열 수를 짓다
其一
無酒苦無悰 술이 없을 때는 실로 즐거움 없으나
有酒斯飮之 술 있으면 혼자서도 마시며 지나네.
得閒方得樂 마음이 한가해야 즐거움을 얻게 되고
爲樂當及時 즐거움을 누리려면 때를 놓쳐선 아니 되리.
薰風鼓萬物 훈훈한 저 바람이 온갖 생물 고무시켜
亨嘉今若玆 형통하고 아름답게 오늘에 이르렀네.
物與我同樂 나와 만물 다함께 즐거움을 같이 하니
貧病後可疑 가난하고 병 있은들 무엇이 걱정될까.
豈不知彼榮 저들의 영화를 내 어찌 모르랴만
虛名難久持 헛된 이름이야 오래 가질 못하리라.
其二
我欲挾天風 하늘 바람을 끼고 쉬이 날아 가
遨遊崑崙山 곤륜산에 올라앉아 원 없이 놀고 싶다.
區區未免俗 구구히 사는 일로 속세를 뜨지 못해
至今無足言 오늘에 이르러도 할 말이 전혀 없다.
前有百千世 내 앞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 흘렀는지
後有億萬年 내 뒤에도 억만 년이 이어지고 있으리라.
醉中見天眞 술 취한 그 가운데 천진함을 보여주니
那憂醒者傳 깨어 있는 사람에게 전해짐을 근심할까.
其三
智者巧投機 지혜 있는 사람은 기회를 잘 잡고
愚者滯常情 어리석은 사람은 고정관념 못 벗네.
滔滔汨末流 도도한 말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總爲中利名 제마다 이름과 이익에만 빠져있나.
古來賢哲人 옛날에는 어질고 착한 사람 많았는데
吾獨後於生 어이해 나만 홀로 지금 태어났나.
此道卽裘葛 도라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따름인데
奈何或猜驚 무엇을 시기하고 놀라고 있는가.
拳拳包苦心 근심스레 마음은 괴로움에 쌓여서
淹留愧無成 머물러서 성취 못해 부끄러움뿐이네.
其四
白雲在空谷 텅 빈 골짜기에 흰 구름이 끼더니
無心上天飛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늘로 날아간다.
偶然隨風起 우연히 바람 따라 한가히 일어났으니
何更有戀悲 어찌해 사랑하고 슬퍼함이 있겠는가.
游空恒泛泛 허공에 노닐 때는 언제나 떠 있고
含雨亦依依 비를 품을 땐 의지하듯 서로 모이네.
苟不霈嘉澤 때맞춰 흡족히 내려주지 않는다면
曷若遄其歸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감만 같으랴.
我思高賢達 내가 옛 현달한 사람을 생각해 보니
末路何多衰 삶의 끝이 어찌해 쇠잔함이 많았던가.
旣雨不能罷 비 내리기 시작하면 그만두지 못하니
亦與天道違 이 역시 천도와는 어긋나게 되리라.
其五
東方有一士 이 나라에 한 사람 선비가 살고 있어
夙志慕斯道 일찍이 뜻을 세워 이 학문을 연모했네.
舂糧欲往從 양식 준비해 백 리 길 찾아가려 하였으나
守隅今向老 모퉁이만 지키느라 이젠 벌써 늙어가네.
孰能諭斯道 뉘라서 나에게 잘못된 길 잡아 줄까
人皆惡衰槁 쇠약하고 곤궁함은 이를 모두 싫어하네.
蹙蹙顧四方 움츠리고 조급하여 사방을 돌아봐도
不見同所好 내 마음과 함께할 이 만나 보지 못했다오.
空知五車書 오거서를 읽어서 걸림 없이 아는 것이
終勝萬金寶 만금의 보배보다 마침내는 나으리라.
至哉天下樂 지극하기 그지없는 천하의 즐거움은
從來不在表 본래부터 형식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네.
其六
我思千載人 내가 천 년 전 그 사람을 생각하니
蘆峰建陽境 노봉과 건양 땅 그곳에 계셨다네.
藏修一庵晦 쉬지 않고 학문하여 집 지어 숨어 살며
著書萬古醒 책들을 지어내어 만고를 깨우쳤네.
往者待折衷 옛날의 경전들은 그를 만나 손질되고
來者得挈領 후배들은 그를 배워 요령을 얻었다네.
懿哉盛授受 아름답다! 지성으로 이어받음 뛰어나
源遠雜魯穎 근원은 멀어 어리석고 영리함 섞이네.
口耳障狂瀾 천박한 학문의 거센 물결 막았으니
心經嘉訓炳 심경의 한 책에 밝은 교훈 나타났네.
其七
舜文久阻世 순임금과 주문왕이 오래 전에 세상 떠나
朝陽鳳不至 산의 동쪽 밝은 곳에 봉황새 아니 오네.
祥麟又已遠 상서로운 저 기린도 그마저 멀어져서
叔季如昏醉 말세 되니 혼탁하여 취한 듯이 어둡네.
仰止洛與閩 증자와 주자를 멀리서 우러르니
羣賢起鱗次 수많은 현인들이 줄줄이 일어났네.
吾生晩且僻 나는 어이 뒤늦게 외진 곳에 태어나
獨昧修良貴 고귀함을 닦아도 어두움을 못 벗었네.
朝聞夕死可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더니
此言誠有味 참으로 이런 말씀에 깊은 맛이 담겨있네.
其八
道邇求諸遠 가까이에 있는 도를 먼 곳에서 찾으며
滔滔曠安宅 세상의 물결 속에 편안한 집 비워둔다.
哲人有緖言 철인들은 가야할 곳 실마리 보였으니
因可追心迹 그 마음 자취 따라 찾아가면 되리라.
苟未及唯一 공부하여 하나 됨에 이르지 못한다면
何異誇聞百 온갖 것 안다 해도 과장함과 다르리오.
常怪楚狂輩 참으로 괴이하다 초나라 미친 무리
忘自分黑白 망령되이 제멋대로 흑백을 나누면서.
遇聖不遜志 성인을 만나도 겸손하지 못하고
潔身還可惜 자신만 깨끗하다 하니 도리어 가소롭네.
其九
吾東號鄒魯 이 땅은 예부터 추로라 불렀는데
儒者誦六經 선비들은 모두 다 육경을 암송했다.
豈無知好之 그것을 좋아하고 배운 이 없었으랴만
何人是有成 몇이나 여기에 성공한 이 있었던고.
矯矯鄭烏川 그 중에서 뛰어난 정포은은 씩씩해서
守死終不更 죽음으로 절개 지켜 변함이 없었도다.
佔畢文起衰 점필재(김종직) 뒤를 이어 기운 문운을 일으켜
求道盈其庭 구도하는 선비들이 그의 뜰을 메웠다.
有能靑出藍 남색에서 나온 색깔은 더욱 파랗고
金鄭相繼鳴 김굉필과 정여창이 서로 이어 울리었다.
莫逮門下役 나는 일찍이 그 문하에 이르지 못했기에
撫躬傷幽情 이 몸을 쓰다듬고 깊이 마음 상해 하네.
其十
小少聞聖訓 내 젊었을 때 성인 교훈 들으니
學優乃登仕 배운 뒤 여유 있으면 벼슬도 한다 했네.
偶爲名所累 어쩌다가 명예욕에 얽힌 바 되어서
輾轉徒失已 이리저리 다니다가 본 모습을 잃었다네.
龍鍾猶强顔 보잘 것 없으면서 억지로 버티어
竊獨爲深恥 가만히 생각하니 부끄러움 깊다네.
高蹈非吾事 높은 곳을 밟음은 내 할 일 아니라서
居然在鄕里 잠자코 시골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
所願善人多 착한 사람 많기를 바라는 마음은
是乃天地紀 이것이 천지의 바탕 되기 때문일세.
四時調玉燭 철마다 날씨가 조화롭고 화창하면
萬物各止止 만물은 제마다 머무를 곳에 머무네.
畢志林壑中 수풀 속 골짜기에 일생을 마치리니
吾君如怙恃 우리의 임금님을 부모처럼 의지하네.
和西林院詩韻
似與春山宿契深 마치 봄 산과 더불어 옛날 약속이 깊었던 것 같이
今年芒屩又登臨 이 해에도 짚신 신고 또 올라와 앉았네.
空懷古寺重來感 부질없이 옛 절을 그리워함을 다시 오며 느끼게 되었지만
詎識林中萬古心 어찌 알리요? 숲속에 담긴 만고에 변하지 않는 마음을.
和子中閒居二十詠 자중 정유일의 한거에 화답하여 20수를 읊다
1. 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
同流亂德勢侵淫 한 무리로 덕을 어지럽혀 간사한 기세가 범하니
墜緖茫茫不易尋 계통은 무너지고 아득하여 찾기가 쉽지 않구나.
只向彝倫明盡道 다만 떳떳한 인륜을 길잡아 모두 가르쳐 밝히니
更因情性得存心 인정과 성질을 고침으로 인해 존심을 얻는다네.
須知糟粕能傳妙 술 찌개미 마땅히 알아야 능히 오묘함을 전하고
始識熊魚孰味深 곰과 물고기 중 어느 맛이 깊은지 비로소 알리라.
卻恨山樊無麗澤 도리어 한함은 산울타리에 배울 친구 없음이니
齋居終日獨欽欽 종일토록 재계하고 앉아 혼자 삼가하고 삼가네.
存心 - 마음에 두고 잊지 않음, 처심(處心), 택심(宅心). 마음속의 생각. 맹자에 기원하는 유가(儒家)의 實踐命題 慾望 등에 의해서 본심을 해치는 일 없이 항상 그 본연의 상태를 지니며, 선천적으로 내재하는 도덕성을 길러야 할 것을 논했음.
糟粕 - 술을 빚고 난 찌꺼기, 학문, 서화, 음악 등에서 옛사람이 다 밝혀내어 전혀 새로움이 없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熊魚 - 의리를 취함, 맹자는 "생선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바이며, 곰 발바닥도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곰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이며 의리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 孟子 告子 上.
2. 求志 평소의 자기 뜻대로 나가기를 원함.
隱志非他達所由 숨은 뜻은 다름 아닌 도리를 현달하는 것이니
天民德業尙須求 하늘 백성 덕업을 마침내 구하여 숭상하리라.
希賢正屬吾儕事 현명함 바라면 바르게 권해 우리 함께 힘쓰고
守道寧忘此日憂 도리 지켜 편안함 버리고 이에 매일 고생하네.
大錯鑄來容改範 후세 양성 심히 급박한데 어찌 규범을 고치나
迷途覺處急回輈 미혹한 길 밝혀 대비해 굳세게 피해 경계하네.
秖從顔巷勤攸執 다만 안연의 근면 따라 오래 벗하여 힘쓰려니
貴富空雲一點浮 귀하고 부유함 쓸데없는 구름 한 점 떠다니네.
顔巷 - 顔子陋巷의 준말로 궁벽한 시골살이를 말한다. 공자]의 제자인 안연은 벼슬하지 않고 시골에 있어 집이 매우 가난했으므로 빈궁한 것을 가리킨다.
3. 習書
近世 趙, 張書盛行 皆未免誤後學
근세에 조맹부(趙孟頫)와 장필(張弼)의 글씨가 성행하니 다 후학을 그르친다.
字法從來心法餘 자법은 남은 마음의 법이 따라서 오는 것이니
習書非是要名書 글자 익힘은 이름난 글씨를 원함이 아니라네.
蒼羲制作自神妙 창힐과 복희씨의 제작은 스스로 신묘하지만
魏晉風流寧放疎 위와 진의 풍류를 어찌 버려 소홀히 하리오.
學步吳興憂失故 오흥 걸음 배우려니 옛것을 잃을까 걱정되고
效顰東海恐成虛 동해를 잘못 본받아 헛되게 이룰까 두렵구나.
但令點畫皆存一 다만 점과 획의 규칙은 모두 동일하게 있으니
不係人間浪毁譽 인간들 함부로 비방과 칭찬함에 매이지 않으리.
吳興 - 오흥 땅에 살았던 원나라의 저명한 서화가 조맹부
效顰 - 월의 서시(西施)가 불쾌하여 찡그렸더니, 어떤 추녀가 그걸 보고 미인은 찡그린다고 여겨 자기도 찡그렸다는 옛일에서,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을 이르는 말. 남의 결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
東海 - 동해옹(東海翁) 장필, 자가 여필(汝弼)이며, 화정(華亭) 사람으로 초서가 절묘하여 천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4. 吟詩 시를 읊음
詩不誤人人自誤 시는 사람을 그르치지 않고 사람 스스로 그릇되고
興來情適已難禁 흥이 겨우면 정취 즐기니 이미 억제하기 어렵구나.
風雲動處有神助 바람과 구름 움직이고 머무는 것 신의 도움이 있고
葷血消時絶俗音 매운 것과 고기 삭일 때마다 속된 소리는 끊어지네.
栗里賦成眞樂志 율리에서 문채를 이루니 참으로 마음은 즐거웠고
草堂改罷自長吟 초당에서 고치기를 마치면 항상 길게 읊는다네.
緣他未著明明眼 다르다는 이유로 밝고 맑은 눈 드러내지 못하니
不是吾緘耿耿心 이 빛나고 맑은 마음을 나는 봉하지 않으리라.
栗里 - 중국 강서성 구강현에 있는 지명으로 도연명이 이곳에서 은거함. 뒤에는 흔히 고향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草堂 - 杜甫草堂, 시인 두보가 살았던 중국 쓰촨 성 청두에 있는 초가집과 정원, 완화계 부근에 초당을 짓고 200여수의 시를 지음.
5. 愛閒 한가함을 사랑하며
林間茅屋石間泉 숲속 사이에 띠풀로 이은집 샘은 돌 사이에 있어
閒愛秋風灑靜便 한가함 사랑하는 가을 바람 문득 고요히 흔드네.
易玩羲文一兩卦 복희씨와 주문왕의 주역을 익히니 양 괘는 같고
詩吟陶邵五三篇 도잠과 소요부의 시 읊기를 여러 편을 거듭하네.
園容野鹿栖雲宿 들의 사슴 뜰에 받아들이니 구름 깃들어 지키고
窓對沙禽向日眠 창을 마주한 물가의 새는 햇살을 향해 쉬는구나.
不獨身閒心亦泰 한가한 몸이 외롭지도 않고 마음 또한 편안하니
任從多病在人先 많은 병을 견디며 나아가 앞선 사람을 찾아보리라.
犧文 - 복희씨와 주 문왕으로, 복희씨는 팔괘를 그리고 주 문왕은 괘사(卦辭)를 지었다고 한다.
陶昭 - 도연명과 소요부(邵堯夫)
6. 養靜 조용히 수양하다.
休道山林已辦安 산속 숲에서 너무 편안함만 찾는다 말하지 말게
心源未了尙多干 마음의 바램 깨닫지 못해도 재능은 오히려 느네.
眼中灑若常恬養 마음속은 항상 고요하게 길러 깨끗한 것을 쫓고
事過超然莫控摶 초연히 일을 치르면서도 오로지 급함이 없다네.
九歲觀空非面壁 아홉 해를 허공을 보았으니 면벽수행은 아니오
三年服氣異燒丹 삼 년 동안 기를 다스리니 소단보다 뛰어나네.
聖賢說靜明如日 성현들의 고요한 말씀은 태양과 같이 밝으며
深戒毫釐錯做看 털끝만큼 어긋남 만들까 깊이 헤아려 경계하네.
7. 焚香 향불을 피우며.
焚香非是學禪僧 향불을 태운다고 무릇 선승을 배움이 아니오
淸坐無塵思若凝 티끌 없이 한가히 앉아 마음 좇아 집중하네.
已遣襟靈渾洗滌 마음속의 혼탁한 것을 깨끗이 씻어 보낼 뿐
從敎心地凜淵氷 마음 바탕 가르침 따라 못과 얼음 두려워하네.
史巫祈祝唯增怪 소망을 비는 무당들은 다만 괴이함만 더하고
羅綺薰濃只長矜 겨우 화려한 의복에 짙은 향을 항상 자랑하네.
誰與沈材除此厄 누구와 더불어 오래된 재능으로 이 액을 덜까
敬拈一瓣爲顔曾 꽃향 하나 집어 들어 안자와 증자 공경하리라.
淵氷 - 如臨深淵如履薄氷의 준말. 시경 소민편, '깊은 연못가에 있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한다', 행실을 신중히 한다.
8. 服藥 약을 먿으며.
重重積病等丘陵 거듭 거듭 병들이 쌓이니 나직한 산과 같고
藥裏君臣有減增 약 속에는 군제와 신제의 더하고 덜함이 있네.
道驗若神難對證 효험 말하자면 신과 같아 증거 답하기 어렵고
試方偶中已稱能 처방대로 쓰니 잘 맞아 벌써 재능을 칭찬하네.
庸工失診輕生誤 용렬한 장인은 진맥 그르쳐 천하게 그르치고
良劑無傷久見徵 좋은 약제는 상함 없이 효험이 오래 나타나네.
但得服勤差少病 다만 복용에 힘쓰면 병의 작은 차도 깨달으니
何妨瘦骨似枯藤 야윈 뼈 등나무 같이 마른들 무엇을 거리낄까 ?
藥裏君臣 - 君臣佐使, 약방문을 낼 때 구성 약재의 작용에 따라 네 가지로 갈라놓은 것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제일 주되는 약인 군제(君劑)와 그에 배합하여 쓰이는 보조약인 신약(臣藥), 좌약(佐藥), 사약(使藥)로 구분함.
9. 彈琴 거문고를 타며.
先王作樂意尤深 선왕께서 음악을 일으키니 정취는 더욱 깊고
天地中和發自心 온 세상 중화는 자연히 마음에서 나타난다네.
鳳下南薰元盡美 훈훈한 남풍에 봉황이 내리니 가장 아름답고
鶴來東國別成音 동쪽 나라에 학이 오니 특별한 음악을 이루네.
平生我未專師學 평생 나는 벼슬에 전일하여 아직 배우지 못해
此日君能古譜尋 이 날에야 그대 능히 오래된 악보를 찾아보네.
好待明年山月夜 내년에 산에 달이 밝은 밤을 사이좋게 기다려
無絃琴和有絃琴 줄 없는 거문고로 줄있는 거문고와 화답하리라.
南薰 - 南薰詩, 순 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노래한 남풍시에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남풍의 훈훈함이여 가히 우리 백성의 노여움이 풀리리라) 곧 성군의 정치로 태평성대를 누림.
10. 投壺
禮樂從來和與嚴 예법과 음악엔 화와 더불어 엄이 그대로 따르니
投壺一藝已能兼 병에 던지는 기예 하나로도 이미 기량을 겸하네.
主賓有黨儀無傲 주인과 손님 많은 무리들 거동에 오만하지 않고
算爵非均意各厭 술잔 수가 고르지 않아도 서로 마음에 들어 하네.
比射男兒因肄習 남아들 자주 쏘면서 이어받아 익숙하게 익히니
其爭君子可觀瞻 군자들의 그 다툼은 가히 여러 사람이 바라보네.
心平體正何容飾 몸 바로잡고 마음 편안한데 어찌 용모를 꾸미랴
一在中間自警潛 그 속에 한결같이 있으니 몸소 경계하며 감추네.
和與嚴 - 논어 학이에 예의 용은 화가 귀하게 되고 엄은 의식을 행하기 위해 의식에 참여한 관원들에게 준비하도록 알리는 신호로 세 번의 북을 치는 것을 말함
11. 賞花 꽃을 감상하며.
一番花發一番新 한 차례 꽃이 피더니 잠시 새롭게 갈마들며
次第天將慰我貧 차례로 하늘이 오히려 나의 가난 위로하네.
造化無心還露面 무심한 자연의 이치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乾坤不語自含春 온 세상은 말이 없이 스스로 봄을 머금었네.
澆愁喚酒禽相勸 엷은 근심 술을 부르니 새들과 서로 권하며
得意題詩筆有神 뜻을 얻어 시를 적으니 붓에는 혼이 있구나.
詮擇事權都在手 가려 뽑고 다스리는 권한 모두 스스로 있으니
任他蜂蝶謾紛繽 벌 나비 설만하게 어지러이 섞여도 그냥 두네.
12. 釣魚
淸時多病早投閒 태평한 시절에 병이 많아 일찍 한가하게 보내며
萬事漁竿本不干 낚싯대로 고기 잡으며 만사에 본디 간여치 않네.
小艇弄殘宜月宿 어설프게 다루는 작은 배 아름다운 달빛 지키고
寒絲收罷任風餐 찬 낚싯줄 거두어들이고 바람 맞으며 밥을 먹네.
荻花楓葉深秋岸 단풍나무 잎에 물억새 꽃이 가을 언덕을 감추고
箬笠蓑衣細雨灘 대 삿갓에 도롱이 입으니 여울에 가랑비 내리네.
可笑從前閒失脚 어처구니없게도 이 전에는 등한히 발을 헛디뎌
軟紅塵土沒高冠 연한 붉은빛 티끌 흙에 높은 갓을 빠트렸다네.
13. 曬冊 책을 볕에 말리며.
古稱書畫損梅黃 예전에 일컫기를 글과 그림은 장맛비에 상하니
一日園林喜得陽 한 날에 야외의 뜰에서 좋아하는 햇볕을 얻네.
散帙白魚驚不定 책을 흩으면 좀벌레는 놀라 머물지 아니하고
護庭赤脚倦思僵 붉은 다리로 지키다 고달픈 심정에 쓰러지네.
愧無可曬惟空腹 부끄럼도 없이 볕에 쬐니 오로지 배는 텅 비고
閒勝隨人或倒裳 한가함 견디다 게으른 사람은 혹 옷을 뒤집네.
莫歎塵編寥落甚 묵은 책 매우 휑하니 쓸쓸하다 한탄하지 말게
櫝中珠在最難忘 함 가운데 있는 구슬처럼 가장 버리기 어렵네.
梅黃 - 梅黃雨細時, 매실이 노랗게 익어갈 때 내리는 비, 황매우(黃梅雨)나, 매우(梅雨), 장마를 뜻하기도 함. 蘇軾의 한시에서 인용.
14. 對客
本收蹤跡入深林
何意親朋或遠尋
齰舌未須談別事
開顔正好款同心
溪雲婉婉低相酌
山鳥嚶嚶和共吟
他日思君獨坐處
不堪明月盡情臨
15. 煮蕨
東風習習踏靑過
美食春山不作魔
晨採趁樵雲壓擔
晩烹汲澗雪飜和
首陽歌激人爭慕
坡老嘲慙我已多
扣腹儘知書籍穩
荒哉日食萬錢麽
16. 飮酒
逃入昏冥我不求
但師陶令爲忘憂
年荒可怕塵生甕
客至何妨葛喚篘
月到天心應婉戀
風將花事故遲留
可憐李白疎狂甚
枉詫同杯憶五侯
17. 玩月
十分圓未一分偏
況復沈痾近少痊
把酒李生吟且問
傷時杜老坐無眠
斫來桂樹應多白
栖得姮娥底用姸
珍重至人心地妙
一般灑落又誰傳
18. 納涼
寒暑相推酷與嚴
人情當劇每難淹
雲峯矗熱如團戶
火傘張空欲透簾
大廈深簷渠自得
茂林泠澗我還添
氷頒玉井渾如夢
感此淸陰豈病嫌
19. 治圃 채소밭 가꾸기
褊性幽栖嗜簡便 조급한 성격 탓에 은둔지에서도 간편할 걸 좋아해도
不煩老圃也能先 농사일은 번거롭다 여기지 않음에 능히 우선할 만하지
瓊苗沃沃培雲壤 모가 기름진 건 하늘과 땅이 길러줬기 때문이고
玉本鮮鮮洗澗泉 줄기가 신선한건 윤택한 샘물에 씻겨져서 라네
理罷拋鋤閒曳杖 김메기 끝마치자 호미를 던지고 한가롭게 지팡이를 끌고
摘來迎客不憂錢 수확물을 따서 오면 손님을 맞아도 돈 걱정 안 해도 된다네
秋深更愛黃金菊 가을이 깊어질 때 더욱 황금빛 국화를 사랑하는 건
滿地風霜尙傑然 온 누리 가을바람 서리 가득해도 여전히 빛나서이지
20. 種松
嶺上蒼蒼盡對楹
移根何事下崢嶸
山苗枉使校長短
院竹何如作弟兄
風雨震凌根不動
雪霜凍裂氣餘淸
誰知喜聽茅山隱
隴上和雲有宿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