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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白居易, 772~846)

Bollnow 2025. 1. 1. 15:54

歌舞                        노래와 춤

 

秦城歲云暮              서울에 해 저문다 하는데

大雪滿皇州              성 안에는 큰 눈이 내린다.

雪中退朝者              눈 내리는데 퇴궐하는 사람들

朱紫盡公侯              홍색과 자주색의 옷 모두가 고관일세.

貴有風雪興              귀족에겐 눈과 바람에도 흥취 있고

富無饑寒憂              부자들은 춥고 배고픈 일 전혀 없구나.

所營唯第宅              하는 일이란 오로지 저택에 사는 것

所務在追遊              힘쓰는 일이란 향락을 구하는 일이다.

朱門車馬客              붉은 대문에는 마차 탄 손님들

紅燭歌舞樓              등불 밝혀놓고 노래하고 춤추는 누각

歡酣促密坐              환락에 도취되어 가까이 다가앉고

醉暖脫重裘              취기가 오르면 열기에 겹 가죽옷 벗어버린다.

秋官爲主人              추관이 주인인데

廷尉居上頭              정위가 상좌에 앉았다.

日中爲樂飮              대낮부터 음주를 즐기어

夜半不能休              밤이 깊어도 그칠 줄 모른다.

豈知閿鄕獄              어찌 알까, 문향 감옥의 일들

中有凍死囚              그 곳에서 얼어 죽는 죄수가 있음을.

 

 

感舊詩卷                    옛 시집(詩集) 읽고 감상(感賞)에 젖어

 

夜深吟罷一長吁          밤 깊도록 읽고 길게 한 번 탄식하니

老淚燈前濕白鬚          등불 아래 늙은이 눈물이 흰 수염 적신다.

二十年前舊詩卷          이십 년 전 펴낸 옛 시집

十人酬和九人無          함께 한 열사람 중에 아홉 사람이 없구나.

 

 

感興                           감흥

 

吉凶禍福有來由          길흉화복 모두 그 까닭이 있으니

但要深知不要憂          깊이 아는 게 필요할 뿐 근심은 필요없네

只見火光燒潤屋          불꽃이 윤택한 집 태우는 것 볼 수 있어도

不聞風浪覆虛舟          풍랑이 빈 배를 뒤엎었다는 것 듣지 못하네

名爲公器無多取          명예는 텅 빈 그릇, 많이 취하지 말아라

利是身災合少求          이익은 몸의 재앙, 적게 구함이 맞다

雖異匏瓜難不食          조롱박과 다르니 먹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大都食足早宜休          대충 족하게 먹었으면 빨리 쉬는 것이 마땅하네

 

포과 불식(匏瓜 不食) -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구절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내가 어찌 박처럼 있겠는가 어찌 식용이 안 되면서 매달려만 있겠는가)

 

 

江南送北客                 강남에서 북객을 보니며(江南送北客因憑寄徐州兄弟書)

 

故園望斷欲何如          고향을 바라봐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하나

楚水吳山萬里餘          초나라 강물과 오나라 산이 만여 리나 막혔도다.

今日因君訪兄弟          오늘 그대가 내 兄弟 찾아간다니

數行鄕淚一封書          몇 줄기 흐르는 향수의 눈물로 한 장의 편지를 쓴다.

 

 

江南遇天寶樂叟          강남에서 천보년간에 악공을 하던 노인을 만나

 

白頭病叟泣且言          머리 희고 병든 늙은이가 울면서 말하기를

祿山未亂入梨園          안록산이 난리 전에 이원(梨園)에 들어가 있었다.

能彈琵琶和法曲          비파를 잘 타고 법곡도 잘 익히어

多在華清隨至尊          여러 번 화청궁에 있으면서 천자를 모셨다.

是時天下太平久          이 시절은 태평한 천하가 오래 지속되어

年年十月坐朝元          해마다 시월이면 조원각에서 잔치에 갔었다.

千官起居環佩合          문무백관이 일어서고 앉으면 패옥 소리 나고

萬國會同車馬奔          온 나라의 사절들이 모여들어 수레와 말이 분주했다.

金鈿照耀石甕寺          석옹사엔 여인의 비녀가 번쩍이고

蘭麝薰煮溫湯源          온탕원에 난초향과 사향이 피워졌다.

貴妃宛轉侍君側          양귀비는 우아하게 움직이며 임금님 모시는데

體弱不勝珠翠繁          가녀린 몸매는 구슬과 비취의 무게도 감당치 못했다.

冬雪飄搖錦袍暖          겨울눈이 흩날릴 때는 따뜻한 비단 옷 입고

春風蕩漾霓裳翻          봄바람 살랑이면 비단 치마폭도 펄럭였다.

歡娛未足燕寇至          환락에 물리도 않았는데 연 땅의 도둑 떼가 쳐들어와

弓勁馬肥胡語喧          강한 활, 살찐 말에 오랑캐의 말들이 소란하다.

豳土人遷避夷狄          서울 백성들은 오랑캐 避하여 달아나고

鼎湖龍去哭軒轅          황제가 서울을 달아나니 헌원황제를 울리었다.

從此漂淪落南土          이때부터 떠돌다가 남쪽 땅에 떨어져

萬人死盡一身存          만인이 모두 죽고 한 몸만 살아남았다.

秋風江上浪無限          가을바람 부는 강가에는 끝없이 물결만 일고

暮雨舟中酒一樽          비 내리는 배 안에는 술 한 동이 있었도다.

涸魚久失風波勢          마른 못의 물고기는 오랫동안 풍파에 기세를 잃었고

枯草曾沾雨露恩          마른 풀도 일찍이 비와 이슬의 은택을 적시었다.

我自秦來君莫問          내가 서울 장안에서 왔다고 그대는 묻지 말라.

驪山渭水如荒村          여산과 위수는 황폐한 마을처럼 되어버렸다오.

新豐樹老籠明月          신풍의 나무는 늙어 밝은 달을 둘러싸고

長生殿闇鎖黃雲          황혼의 구름에 막히어 장생전 닫힌 문 어둑해진다.

紅葉紛紛蓋欹瓦          붉은 나뭇잎은 어지러이 기울어진 기왓장을 덮고

綠苔重重封壞垣          푸른 이끼 겹겹이 무너진 담을 묻어버렸다.

唯有中官作宮使          오직 내시인 중관이 궁지기가 되어서

每年寒食一開門          매년 한식날에 한 번만 문을 열어준다오.

 

 

江樓月                       강변 누각의 달

 

嘉陵江曲曲江池          가릉의 강굽이에 곡강의 연못 있어

明月雖同人別離          밝은 달은 같은데 사람들만 이별했구나.

一宵光景潛相憶          하룻저녁 광경을 잊었다가 기억하니

兩地陰晴遠不知          두 곳의 흐리고 맑음을 멀어서 모르겠다.

誰料江邊懷我夜          누가 생각이나 하랴, 나를 생각하는 밤

正當池畔望君時          그 밤이 못가에서 그대 그리는 바로 이 시간임을.

今朝共語方同悔          오늘 아침 함께 나눈 말들이 후회스러우니

不解多情先寄詩          다정을 몰라 내가 먼저 시 지어 부쳐버렸소.

 

 

江上笛                       강가의 피리소리

 

江上何人夜吹笛          강가에 어떤 사람이 밤에 피리 부니

聲聲似憶故園春          소리마다 고향의 옛 봄날을 그리는 듯.

此時聞者堪頭白          이 시간 듣는 사람이야 늙음도 잊으리니

況是多愁少睡人          근심 많고 잠이 적은 사람이야 어떠할까.

 

 

江岸梨花                    강 언덕 배꽃

 

梨花有意綠和葉          배꽃에 정감 있어 푸르기가 나뭇잎 같아

一樹江頭惱殺君          강가의 배나나무가 그대를 뇌살하는구나.

最似孀閨少年婦          과부 방의 젊은 아낙과 꼭 같나니

白粧素袖碧紗裙          흰 분칠에 흰 소매 그리고 푸른 비단 치마라.

 

 

强酒                           억지로 권하는 술

 

若不坐禪銷妄想          좌선하며 망상을 삭이지 못하면

卽須吟醉放狂歌          취하여 시 읆으며 미친 듯 노래한다.

不然秋月春風夜          가을 달에 봄바람이 부는 밤이 아니면

爭那閒思往事何          어찌 지난 일을 한가히 생각이나 할까.

 

 

客中月                     객지에서 보는 달

 

客從江南來              객은 강남땅에서 왔는데

來時月上弦              내가 올 때는 상현달이었네.

悠悠行旅中              한가히 걷고 여행하면서

三見淸光圓              맑은 보름달을 세 번 보았네.

曉隨殘月行              아침에 새벽달 따라 걷다가

夕與新月宿              저녁이면 초승달과 함께 묵었지.

誰謂月無情              누가 달이 무정하다 말하나

千里遠相逐              천 리 먼 곳을 서로 쫓아다니지.

朝發渭水橋              아침에 위수교를 떠나서는

暮入長安陌              저녁이면 장안 거리에 들어오네.

不知今夜月              모르는 사이에 뜬 오늘 밤의 달

又作誰家客              오늘은 또 어느 집 객이 될 런지.

 

 

遣懷                        마음을 적음

 

寓心身體中              마음은 신체에 기탁해 살고 있고

寓性方寸內              천성은 마음에 기탁해 살고 사네

此身是外物              이 신체조차 외부의 물건일 뿐인데

何足苦憂愛              어찌 고통스럽게 염려하고 사랑하리

況有假飾者              하물며 거짓으로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들

華簪及高蓋              화려한 비녀와 높은 지붕 끝이 없네

此又疏於身              이런 부류 자기 몸은 소홀히 여기며

復在外物外              다시 신체 밖에 있는 것에 온 마음 두네

 

操之多惴慄              그것을 잡으려 그렇게 떨며

失之又悲悔              그것을 잃으면 비통해하며 후회하네

乃知名與利              오직 아는 것은 이름과 이익을 얻는 것이지만

得喪俱爲害              그 얻고 잃는 것 둘 다 모두 해로울 뿐

頹然環堵客              조용히 물러나 마음속의 근심을 느긋이 둘러보면

蘿蕙爲巾帶              천한 담쟁이 귀한 혜초 모두 두건 만들 수 있는 것

自得此道來              스스로 이 도리를 깨닫게 되면

身窮心甚泰              신체는 곤궁해도 마음은 태산 같아지지

 

 

輕肥                        가벼운 옷과 살찐 말들

 

意氣驕滿路              기세의 교만함 길에 가득하고

鞍馬光照塵              말안장의 광채 먼지조차 훤하게 비춘다.

借問何爲者              잠시 저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니

人稱是內臣              사람들 그들은 황제의 측근이라 대답하였네.

朱紱皆大夫              붉은 인끈을 한 자는 모두가 대부이고

紫綏或將軍              자주색 인끈을 한 자는 아마도 장군이겠지.

誇赴軍中宴              자랑하며 군중 연회 찾아다니며

走馬去如雲              말을 달려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罇罍溢九醞              술잔엔 잘 익은 좋은 술이 넘치고

水陸羅八珍              바다에도 땅에도 팔진미 늘려있구나.

果擘洞庭橘              과일로는 동정호의 귤을 차리고

膾切天池鱗              천지의 회감을 썰어놓았구나.

食飽心自若              배불리 먹고 나니 마음 절로 편해지고

酒酣氣益振              술기운 오르니 기세가 더해지는구나.

是歲江南旱              올해도 강남에는 가뭄이 들어

衢州人食人              구주에선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데.

 

 

溪中早春                 개울 속에 이른 봄

 

南山雪未盡              남산에는 아직 눈 녹지 않고

陰嶺留殘白              그늘진 고개에는 흰 눈이 남았다.

西澗冰已消              서쪽 개울 얼음은 이미 녹아

春溜含新碧              봄날의 여울은 새 푸름을 머금었다.

東風來幾日              봄바람은 불어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

蟄動萌草拆              겨울잠 자는 동물 움직이고 풀은 돋아난다.

潛知陽和功              따뜻한 햇볕의 공덕을 알 수 있나니

一日不虛擲              하루도 헛되이 비춰지지 않는구나.

愛此天氣暖              이러한 날씨의 따뜻함을 즐기려

來拂溪邊石              개울가의 바위 찾아 자리를 털어본다.

一坐欲忘歸              한 번 앉아보니 돌아갈 생각 잊는데

暮禽聲嘖嘖              석양에 새들은 시끄러이 소리 내어 운다.

蓬蒿隔桑棗              뽕나무와 대추나무 사이에 무성한 쑥

隱映煙火夕              저녁에는 연기와 불빛이 은은히 보인다.

歸來問夜飡              집으로 돌아와 야손(夜飡)이 있는가 물어보니

家人烹薺麥              집사람은 냉이와 보리를 삶은 것이라 한다.

 

 

古墳

 

古墳何代人              이 무덤은 어느 시대 무덤일까

不知姓與名              그 성도 이름도 알지 못 하겠네.

化爲路傍土              길가 한 줌 흙으로 변하여

年年春草生              해마다 봄풀만 돋아나네.

 

 

枯桑                        마른 뽕나무

 

道傍老枯樹              길가에 늙고 마른 나무 있는데

枯來非一朝              마르게 된 지가 하루아침이 아니다.

皮黃外尙活              껍질은 누렇지만 밖은 아직 살아있어

心黑中先焦              속이 검은데 가운데가 먼저 타들어간다.

有似多憂者              많은 근심거리가 있는 듯한데

非因外火燒              밖의 화재로 인해서 탄 것은 아니로다.

 

 

高相宅

 

靑苔故里懷恩地          푸른 이끼 옛 고을 은혜받은 이 땅

白髮新生抱病身          백발이 새로 나서 병 안은 이내 몸.

涕淚雖多無哭處          흐르는 눈물 많아도 울 곳도 없으니

永寧門館屬他人          영녕문관이 남의 손에 넘어가버렸다네.

 

 

苦熱

 

人人避暑走如狂          사람들은 미친 듯 피서를 떠나지만

獨有禪師不房出          스님만은 방 속에서 나오지 않네.

可是禪房無熱到          선방에는 더위도 얼씬거리지 못할까

但能心靜卽身冷          마음이 고요하니 몸도 시원할 테지.

 

 

古秋獨夜                  늦가을 외로운 밤에

 

井梧凉葉動              우물가 오동나무 서늘해 잎이 지고

隣杵秋聲發              이웃집 다듬이질에 가을 소리 퍼진다 

獨向?下眠               홀로 처마 아래에서 졸다가

覺來半牀月              깨어보니 침상에 반이 달빛

 

 

曲江獨行招張十八 곡강에 홀로 나가 장십팔을 부르다

 

曲江新歲後              곡강에 새해가 온 후

冰與水相和              얼음과 물이 서로 합쳐지는데

南岸猶殘雪              남안에는 아직 잔설이 있어

東風未有波              동풍에도 파도가 생기지 않네

偶遊身獨自              그냥 홀로 노니는데

相憶意如何              보고 싶은 마음 어찌 하리오

莫待春深去              봄이 깊어지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花時鞍馬多              꽃 피면 말안장하고 먼 길 떠날 일 많으니 

 

장십팔 – 장씨집 18번째 아들(?), 박사, 백거이의 다른 시에 수부원외랑 벼슬을 제수 받은 것으로 나옴

곡강 - 당나라 수도 장안(현 서안) 남쪽의 호수, 당나라 장안의 유원지 격, 두보의 시에도 나옴

 

 

曲江有感                    곡강에서 느끼어

 

曲江西岸又春風          곡강 서편 언덕에 또 봄바람 부니

萬樹花前一老翁          온갖 꽃나무 앞에 선 한 늙은이.

遇酒逢花還且醉          술 만나고 꽃 만나면 돌아와 또 취하니

若論惆愴事何窮          실망과 슬픔을 논하면 이 일이 어찌 궁한가.

 

 

哭孔戡                      공감을 곡하다

 

洛陽誰不死              낙양사람 누가 죽지 않으리오

戡死聞長安              공감의 죽은 소식이 장안에 들린다.

我是知戡者              나는 공감을 아는 사람이라

聞之涕泫然              이 소식 들으니 눈물이 흐른다.

戡佐山東軍              공감은 산동군을 도우고 있었는데

非義不可干              의리가 아니면 간여하지 않았었다.

拂衣向西來              옷을 떨치고 서쪽 향해 왔으니

其道直如絃              그의 도리의 곧음이 악기 줄과 같았다.

從事得如此              따라서 섬기고 따름을 이처럼 하였으니

人人以爲難              사람들마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人言明明代              사람들의 좋은 말은 밝은 시대를 밝히고

合置在朝端              합당한 조치는 밝아오는 아침녘에 있도다.

或望居諫司              어떤 사람의 기대는 그가 간관의 자리 차지하여

有事戡必言              간언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간언할 것이라 생각하고

或望居憲府              어떤 사람의 기대는 재판관의 자리를 차지하여

有邪戡必彈              사악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탄핵하리라 생각하였다.

惜哉兩不諧              아깝도다, 두 가지 일이 모두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沒齒爲閒官              이가 다 빠지도록 늙어서도 한가한 관리로 남아

竟不得一日              끝내 하루도 그 자리를 얻지 못하고

謇謇立君前              군왕 앞에 절절매며 서있었구나.

形骸隨衆人              죽은 몸은 보통사람처럼

斂葬北邙山              걷히어 북망산에 묻히었구나.

平生剛腸內              평생 동안 강직한 마음

直氣歸其間              곧은 의기는 그 사이로 돌아갔구나.

賢者爲生民              어진 자는 살아있는 백성을 위하고

生死懸在天              살고 죽는 문제는 하늘에 맡기는구나.

謂天不愛人              하늘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胡爲生其賢              무엇 때문에 어진 사람들을 낳았겠는가.

謂天果愛民              하늘이 과연 백성을 사랑한다 말하는가

胡爲奪其年              무엇 때문에 그 생명을 빼앗는가

茫茫元化中              망망한 우주에서

誰執如此權              누가 이와 같은 권세를 잡고 있는 것일까.

 

 

哭孟浩然                 맹호연을 곡하다

 

故人不可見              친구를 이제 볼 수가 없는데

漢水日東流              한수는 날마다 동쪽으로 흘러간다.

借問襄陽老              묻노라, 양양 땅 늙은이여

江山空蔡洲              강산은 채주를 비워둔 채로구나.

 

 

過駱山人野居小池   낙산 사람의 교외 집 연못에 들러

 

茅覆環堵亭              띠 풀로 지붕 올리고 담 두른 정자

泉添方丈沼              샘물 들여 만든 작은 연못 있다.

紅芳照水荷              붉은 꽃이며 물에 비치는 연잎

白頸觀魚鳥              하얀 목을 빼어 물고기 노리는 새.

拳石苔蒼翠              주먹만한 돌에 이끼가 푸르고

尺波煙杳渺              한 자 길이 물결마다 안개가 자욱하다.

但問有意無              뜻이 있는가 없는가만 묻고

勿論池大小              연못이 크고 작음은 논하지 말라.

門前車馬路              문 앞에 수레와 말이 다니는 길

奔走無昏曉              밤낮 없이 달리는구나.

名利驅人心              명예와 이익에 사람 마음 달리게 하여

賢愚同擾擾              어질거나 어리석은 사람 모두가 바쁘구나.

善哉駱處士              훌륭하도다 낙산의 선비여,

安置身心了              몸과 마음을 편안히도 가지시구려.

何乃獨多君              어찌 다만 그대 같은 사람 많을까

丘園居者少              전원에 사는 사람 적어서랍니다.

 

 

過李生                     이생의 집을 지나며 들러

 

蘋小蒲葉短              개구리밥 작고 창포잎 짧은데

南湖春水生              남호의 봄 물결 일어난다.

子近湖邊住              그대 호숫가에 머물러 사는데

靜境稱高情              고요한 경치 고상한 인품과 어울린다.

我爲郡司馬              나는 강주사마가 되어서는

散拙無所營              산만하고 재주 없어 해내는 일 하나 없다.

使君知性野              태수도 나의 거친 성격 알고 있으리니

衙退任閒行              관아에서 퇴근하며 한가히 걸어본다.

行携小榼去              나가면서 작은 술통 가지고 떠나

逢花輒獨傾              꽃 볼 때마다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

半酣到子舍              거나하게 취하니 그대 집에 이르러

下馬叩柴荊              말에서 내려 사립문을 두드린다.

何以引我步              무엇이 나의 발걸음 이끌었을까

繞籬竹萬莖              울타리 둘러싼 울창한 대나무 줄기로다.

何以醒我酒              무엇이 나의 술을 깨게 하였을까

吳音吟一聲              오나라 노랫소리 한 곡조 읊음이었다.

須臾進野飯              잠깐 만에 들어온 시골 밥상

飯稻茹芹英              거친 밥에 미나리 반찬이었다.

白甌靑竹箸              흰 사발에 푸른 대젓가락

儉潔無羶腥              검소하고 정결하여 비린내가 전혀 없다.

欲去復徘徊              떠나려다가 다시 망설이는데

夕鴉已飛鳴              저녁 갈가마귀 이미 와 울며 난다.

何當重遊此              어느 때나 다시 와서 이렇게 놀아보나

待君湖水平              호수가 잔잔할 때 그대 기다려 보련다.

 

 

過紫霞蘭若              자하 난약에 들러서

 

我愛此山頭              나는 이 산머리가 좋아

及此三登歷              이곳에 와서 세 번이나 올랐다.

紫霞舊精舍              자하정사는 오래된 정사

寥落空泉石              쓸쓸히 빈 산천만 남아있다.

朝市日喧隘              조정과 시정은 날마다 시끄럽고 험한데

雲林長悄寂              구름 낀 숲 속은 오래도록 고요하다.

猶存住寺僧              절에 머물러 사는 스님 아직도 살아있어

肯有歸山客              기꺼이 산에 돌아와 사는 나그네도 있으리라.

 

 

過天門街                    천문가룰 지나며

 

雪盡終南又欲春          눈 다 녹은 종남 땅에 봄이 오는데

遙憐翠色對紅塵          멀리 아름다운 비취 빛이 홍진과 맞닿았다.

千車萬馬九衢上          큰 거리마다 가득한 수레와 말들

廻首看山無一人          머리 돌려 산을 보아도 사람은 아무도 없다.

 

 

空閨怨 寒閨怨

 

寒月沈沈洞房靜          차가운 달빛 고요한 빈방에 스며들고

眞珠簾外梧桐影          드리운 주렴밖엔 오동나무 그림자.

秋霜欲下手先知          서리 내리려는 것을 손이 먼저 아는지

燈底裁縫剪刀冷          바느질 등불 아래 가위가 차다.

 

 

觀稼                        논밭의 벼를 바라보며

 

世役不我牽              세상 일에 나는 이끌리지 않아

身心常自若              몸과 마음이 항상 자유로웠도다.

晩出看田畝              저녁에 나아가 밭을 보고

閑行旁村落              촌락 사이를 한가히 걸어보았다.

纍纍繞場稼              층층이 쌓인 마당을 둘러 싼 볏단

嘖嘖羣飛雀              짹짹거리며 모여서 날아다니는 참새들.

年豐豈獨人              풍년이 어찌 사람들에게만 있겠는가.

禽鳥聲亦樂              새들 소리도 또한 즐겁도다.

田翁逢我喜              늙은 농부는 나를 만나 기뻐하며

黙起具杯杓              말없이 일어나 함께 술을 마셨다.

斂手笑相延              손짓하며 웃으며 서로 불러대며

社酒有殘酌              제사 술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媿茲勤且敬              이러한 부지런함과 공손함에 부끄러워

藜杖爲淹泊              명아주 지팡이 짚고 머뭇거린다.

言動任天眞              그의 말과 행동이 천진난만하여

未覺農人惡              농민의 고통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停杯問生事              술잔을 멈추고 생활을 물어보니

夫種妻兒穫              남편은 씨 뿌리고 처자는 추수한다.

筋力苦疲勞              근력은 고통스럽고 피곤하고

衣食常單薄              의식은 항상 간단하고 초라하다.

自慙祿仕者              벼슬하는 것이 저절로 부끄럽나니

曾不營農作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보지 않고

飽食無所勞              일 한 것 없으면서 포식하였으니

何殊衛人鶴              어찌 일하지 않고 녹만 받은 위인학과 다를까.

 

 

官舍內新鑿小池       관사 내에 새로 작은 연못을 파다

 

簾下開小池              발아래에 작은 연못 마련하니

盈盈水方積              가득히 물이 이제 모여 드는구나.

中底鋪白沙              연못 가운데 바닥에 흰 모래 깔고

四隅甃靑石              사방에는 푸른 돌로 꾸몄다.

勿言不深廣              깊고 넓지 않다고 말하지 말게나

但取幽人適              숨어사는 사람의 한적함만 맛보려네.

泛灩微雨朝              물이 가득 보슬비 내리는 아침

泓澄明月夕              물이 깊고 맑으며 밝은 달 뜬 저녁.

豈無大江水              어찌, 큰 강에 물이 있어

波浪連天白              그 물결이 하늘에 닿아 희게 보이는 일 없겠는가.

未如牀席間              그러나 평상의 자리 사이로

方丈深盈尺              사방 한 길에 한 자 깊이로 가득한 못물보다는 못하다.

淸淺可狎弄              맑고 얕아 마음대로 놀 수 있어

昏煩聊漱滌              흐릿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애오라지 씻어버린다.

最愛曉暝時              무엇보다 이른 새벽 어둑한 때에

一片秋天碧              한 조각 가을 하늘의 푸름이 가장 좋구나.

 

 

觀刈麥                     보리 베기를 보고

 

田家少閑月              농가에 한가한 달은 드물어

五月人倍忙              오월에는 사람들이 곱절이나 바쁘다.

夜來南風起              밤이 되면 남풍이 불어오고

小麥覆隴黃              언덕을 덮고 있는 소맥은 황금빛이라.

婦姑荷簞食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음식을 이고

童稚攜壺漿              아이들은 간장병 손에 들고 와서는

相隨餉田去              서로 따라와 배불리 먹이고 밭을 떠난다.

丁壯在南岡              장정들은 남쪽 언덕에 있고

足蒸暑土氣              밭은 뜨거운 흙의 열기에 익어가고

背灼炎天光              등은 불꽃같은 햇빛에 타들어 간다.

力盡不知熱              힘이 다해도 더위를 느끼지 못하고

但惜夏日長              여름해가 길어도 아쉽기만 하구나.

復有貧婦人              또 어떤 가난한 부인 있는데

抱子在其傍              어린 아이 안고서 그 곁에 있다.

右手秉遺穗              오른손으로는 떨어진 이삭을 잡고

左臂懸弊筐              왼쪽 팔뚝에는 헤어진 바구니를 걸치고 있다.

聽其相顧言              돌아가서 그들이 나누는 말 들으니

聞者爲悲傷              듣는 사람은 슬프고 마음이 상한다.

家田輸稅盡              농가에서는 세금으로 실어가 다 없어지고

拾此充飢腸              이런 것을 주워서 주린 창자를 채운다 한다.

今我何功德              나는 지금 무슨 공덕이 있어

曾不事農桑              농사 짓고 누에 치지 않았는데도

吏祿三百石              관리 봉녹으로 삼백 석을 받아

歲晏有餘糧              한 해가 다 늦도록 남은 곡식이 있구나.

念此私自媿              이런 생각을 하면 스스로 부끄러우니

盡日不能忘              종일토록 그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구나.

 

 

狂歌詞                     호방한 내 노래여

 

明月照君席              밝은 달 그대 자리 비추고

白露霑我衣              흰 이슬은 나의 옷을 적신다.

勸君酒杯滿              권하노니 술 잔에 가득 술을 채우고

聽我狂歌詞              나의 호방한 노래 들어보게나.

五十已後衰              오십 이후는 기운이 쇠하고

二十已前癡              이십 전에는 철없는 법이다.

晝夜又分半              낮과 밤으로 또 半으로 나누어지니

其間幾何時              그 사이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나.

生前不歡樂              살아서 즐기지 못하면

死後有餘貲              죽고 난 뒤에 재산이 남는다.

焉用黃墟下              그런들 어찌 황천 아래서

珠衾玉匣爲              비단 이불과 옥 상자만 사용하나.

 

 

九月醉吟

 

奈老應無計              늙음을 어찌 할까 응당 계책이 없을 것이나

治愁或有方              근심을 다스리는 데는 혹 방법이 있다네.

無過學王勣              왕적을 배우는 것보다 지나치는 것은 없으니

唯以醉爲鄕              오직 취함으로써 고향을 삼을 뿐이로다.

 

王勣 - 수나라 말기에 술을 좋아하여, 당나라 초기에는 매일 한 말의 술을 마셔서 두주학사로 불림

 

 

菊 / 咏菊

 

一夜新霜著瓦輕          간밤에 첫서리 기와에 가볍게 내리니

芭蕉新折敗荷傾          파초 잎 새로 꺾이고 시들은 연잎 고개 숙였네.

耐寒唯有東籬菊          오직 동쪽 울타리의 국화만이 추위를 이기고

金粟花開曉更清          노란 꽃술 새로 피어 아침을 더욱 맑게 하누나.

 

 

郡亭                         고을 정자

 

平旦起視事              이른 새벽 일어나 일을 보고

亭午臥掩關              정오의 정자에서 누워 문을 가린다.

除親簿領外              공문서를 가까이 하는 일 외에

多在琴書前              자주 거문고와 책 앞에 있도다.

況有虛白亭              하물며 허백정이 있는 데야

坐見海門山              어찌 앉아서 해문산만 바라보랴.

潮來一凭檻              조수가 밀려오면 난간에 기대어 보고

賓至一開筵              손님이 오면 술자리를 마련하노라.

終朝對雲水              아침이 다하도록 구름과 물을 바라보고

有時聽管絃              때때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持此聊過日              이렇게 그럭저럭 나날을 보내니

非忙亦非閑              바쁘지도 않고 한가하지도 않도다.

山林太寂寞              산림은 너무 적막하기만 하고

朝闕空喧煩              조정은 헛되이 시끄럽고 번잡하다.

唯茲郡閤內              오직 이곳의 정자 안에서만은

囂靜得中間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아 좋아라.

 

 

勸酒                            술을 권하며

 

勸君一杯君莫辭          한 잔 술을 권하거니 사양 말게나

勸君兩杯君莫疑          두 잔 술을 권하니 그대는 의심하지 말게나.

勸君三杯君始知          석 잔 술을 권하노니 그대가 비로소 내 마음 알았구나.

面上今日老昨日          사람의 얼굴은 오늘도 來日도 늙어가고

心中醉時勝醒時          취한 때 마음속이 깨어 있을 때보다 좋구나.

天地迢迢自長久          천지는 아득하고 원래부터 장구하고

白兎赤烏相趁走          흰 토끼 붉은 까마귀 서로 쫓듯 달려간다.

身後堆金拄北斗          죽은 뒤에 북두칠성에 닿을 정도로 황금을 쌓아도

不如生前一樽酒          살아서 한 통의 술을 마심만 못하리라.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春明門外天欲明          궁성 춘명문 밖의 동 틀 무렵에

喧喧歌哭半死生          시끄럽게 노래하고 곡하며 나고 죽음이 절반인 것을.

遊人駐馬出不得          그곳을 다니는 사람들 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으니

白輿素車爭路行          흰 색 장의차가 다투어 길을 나가는구나.

歸去來                        돌아가세

頭已白                        이미 머리 희어졌으니

典錢將用買酒喫          전당포에 돈 빌려서 술을 사서 마셔 버리자꾸나.

 

 

丘中有一士二首       산속에 숨어사는 선비 한 분

 

1

丘中有一士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守道歲月深              도를 지키며 세월이 깊어간다.

行披帶索衣              다닐 때는 새끼줄 옷을 입고

坐拍無絃琴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不飮濁泉水              탁한 샘물은 마시지 않고

不息曲木陰              굽은 나무 그늘에는 쉬지 않았다.

所逢苟非義              만나는 일이 진실로 의롭지 않으면

糞土千黃金              천 냥의 황금도 분토같이 여긴다.

鄕人化其風              마을 사람들이 그의 풍교(風敎)에 감화되고

薰如蘭在林              향기는 난초 숲에 있는 것 같았다.

智愚與强弱              지자와 우자, 강자와 약자가

不忍相欺侵              서로 차마 속이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我欲訪其人              내가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여

將行復沈吟              길을 나섰다가는 다시 주저하고 망설였다.

何必見其面              어찌 반드시 그 얼굴을 보아야 하는가

但在學其心              다만 그이 마음만을 배우는데 있는 것이다.

 

2

丘中有一士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不知其姓名              그 성명을 알지 못한다.

面色不憂苦              얼굴에 근심과 고통이 없고

血氣常和平              혈기는 항상 화평하였다.

每選隙地居              매일 한적한 곳을 가려 살고

不蹋要路行              벼슬길은 절대로 밟지 않았다.

擧動無尤悔              거동에는 잘못이나 후회가 없고

物莫與之爭              물질에는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藜藿不充腸              명아주나 콩잎으로도 배를 채우지 않고

布褐不蔽形              베옷이나 갈포로도 몸을 가리지 못했다.

終歲守窮餓              평생토록 궁핍과 굶주림을 지키고

而無嗟歎聲              탄식하는 소리가 全혀 없었다.

豈是愛貧賤              어찌 곧 가난과 천함을 좋아해서인가

深知時俗情              속세의 정을 깊이 알아서 이리라.

勿矜羅弋巧              그물이나 주살에 익숙하다 자랑마라

鸞鶴在冥冥              난새나 학이 넓은 세상을 날고 있단다.

 

 

勸學文 / 白樂天勸學文

 

有田不耕倉廩虛          밭이 있어도 갈지 않으면 창고가 비고

有書不敎子孫愚          책이 있어도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들이 어리석어 진다.

倉廩虛兮歲月乏          창고가 비면 세월이 궁핍해 지고

子孫愚兮禮義疎          자손이 어리석으면 예의가 소홀해 진다.

若惟不耕與不敎          만약에 경작하지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면

是及父兄之過歟          이것은 곧 부형의 잘못이니라.

 

 

琴茶                            음악과 차

 

兀兀寄形群動內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陶陶任性一生間          내 멋대로 한평생 즐겁게 살았네.

自抛官后春多夢          벼슬을 그만두니 늘그막에 더욱 한가롭고

不讀書不老更閑          책 읽기도 그만두니 늘그막에 더욱 한가롭다.

琴里知聞唯淥水          음악이라면 녹수곡이나 겨우 알고

茶中故舊是蒙山          차로 말하자면 몽산차가 바로 나의 친구.

窮通行止常相伴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함께 지내는 터

誰道吾今無往還          누가 지금 나에게 오가는 이 없다 하는가.

 

 

禁中                         궁궐에서

 

門嚴九重靜              문은 삼엄하여 아홉 겹이 조용하고

窓幽一室閑              창안은 깊숙하여 온 방은 한가하여라.

好是修心處              마음 닦는 곳으로는 이곳이 좋은데

何必在深山              어찌 반드시 깊은 산에 있어야 하나.

 

 

禁中月                     궁궐의 달

 

海上明月出              바닷가에 밝은 달 떠오르고

禁中淸夜長              궁궐 안에는 맑은 밤이 길기만 하다.

東南樓殿白              동남 쪽의 높은 전각 휘영청 밝은데

稍稍上宮牆              조금씩 궁궐 담장 위로 솟아오른다.

淨落金塘水              금당물에 깨끗이 떨어져

明浮玉砌霜              옥 섬돌에 서리가 밝게도 있다.

不比人間見              늘어선 사람들이여 보지를 말라

塵土汚淸光              세상의 티끌이 맑은 빛을 더럽힐까 한다.

 

 

洛下卜居                  낙양성으로 옮겨 살아

 

三年典郡歸              삼 년 고을을 맡고 돌아오며

所得非金帛              얻은 것은 황금과 비단이 아니었다.

天竺石兩片              천축석 두 조각

華亭鶴一隻              화정학 한 마리였다.

飮啄供稻粱              마시고 쪼는데 벼와 기장을 주고

包裹用茵席              싸가지고 옴에는 방석 자리를 썼다.

誠知是勞費              수고와 낭비를 잘 알지만

其奈心愛惜              마음으로 아끼는 것을 어찌하랴.

遠從餘杭郭              멀리 항주의 성곽에서

同到洛陽陌              낙양의 거리까지 같이 왔다.

下擔拂雲根              짐을 내리고 돌을 풀어놓고

開籠展霜翮              새장을 여니 화정학이 흰 날개를 펼친다.

貞姿不可雜              곧은 자태는 섞일 수가 없고

高性宜其適              고고한 성품은 유유자적함에 어울린다.

遂就無塵坊              마침내 먼지 없는 깨끗한 마을에 나가

仍求有水宅              연못 있는 집을 찾았다.

東南得幽境              성의 동남쪽에 그윽한 땅을 마련하니

樹老寒泉碧              우거진 나무와 차가운 샘물은 푸르다.

池畔多竹陰              못가에 대나무 그림자 짙은데

門前少人跡              문 앞에는 사람의 자취 드물다.

未請中庶祿              중서성의 복록을 청하지 않아

且脫雙驂易              말 두 필 풀어주고 바꾸었다.

豈獨爲身謀              어찌 내 몸만을 위해 도모하리오

安吾鶴與石              나의 화정학과 천축석도 편안하게 하리라.

 

 

落花古調賦 / 落花       지는 꽃의 노래

 

留春春不駐              잡을 수 없는 봄이지만 머물렀으면

春歸人寂寞              봄이 가면 남은 이만 적막해져.

厭風風不定              종잡을 수 없는 바람 그만 일었으면

風起花肅奈              바람불어 무수한 꽃잎만 지니.

 

 

南亭對酒送春          남쪽 정자에서 술을 마주하여 봄을 보내다

 

含桃實已落              앵도는 이미 떨어지고

紅薇花尙薰              붉은 장미는 꽃이 아직 향기롭다.

冉冉三月盡              흐르는 세월에 삼월도 다 지나는데

晩鶯城上聞              철 늦은 꾀꼬리 소리 성 위에서 들린다.

獨持一杯酒              홀로 한 잔의 술을 잡고

南亭送殘春              남쪽 정자에서 남은 봄을 떠나보낸다.

半酣忽長歌              반쯤 취하여 문득 길게 노래 부르니

歌中何所云              노래 속말에서 무엇을 말했던가.

云我五十餘              내 나이 오십 세가 넘었다 하나

未是苦老人              상늙은이는 아직 아니로구나.

刺史二千石              자사의 녹봉은 이천 석이니

亦不爲賤貧              또한 빈천하지는 않도다.

天下三品官              세상의 삼품 관리들

多老於我身              내 몸보다 늙은이가 많도다.

同年登第者              같이 과거에 오른 사람들

零落無一分              영락하여 십분의 일도 남아있지 않도다.

親故半爲鬼              친구의 절반은 이미 귀신이 되었고

僮僕多見孫              하인들도 대부분 손자를 보았도다.

念此聊自解              이런 일들 생각하면 그런대로 스스로 풀어져

逢酒且歡欣              술을 만나 잠시 즐거워지고 기뻐지노라.

 

 

南浦別                     南浦의 이별

 

南浦凄凄別              처연한 남포의 이별

西風嫋嫋秋              하늘하늘 서풍 부는 가을날.

一看腸一斷              바라보면, 애간장 끊어지나니

好去莫回頭              돌아보지 말고 그냥 떠나다오.

 

 

南湖早春                    남쪽 호수의 이른 봄

 

風廻風斷雨初晴          바람 불어 구름 흩어져 비 처음 개이니

返照湖邊暖復明          반사하는 석양에 호수는 따뜻하고 밝아진다.

亂點碎紅山杏發          부서진 붉은 잎이 어지러운 곳에 산 살구 피고

平鋪新綠水蘋生          신록이 평평하게 깔린 곳에 마름풀이 자란다.

翅低白雁飛仍重          날개 처진 흰 기러기 날기가 무겁고

舌澁黃鸝語未成          혀 놀림 부자유한 꾀꼬리 말소리가 서투르다.

不道江南春不好          강남 봄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않으나

年年衰病減心情          해마다 노쇠하고 병들어 흥겨운 마음 줄어든다.

 

 

浪淘沙詞六首

 

1

一泊沙來一泊去          물결 한 번 드니 모래 밀려오고, 한 번 드니 씻겨가고

一重浪滅一重生          한 번 무거워지니 물결 사라지고, 한 번 무거워지니 물결 인다.

相攪相淘無歇日          씻어내고 행궈내며 그칠 날이 없으니

會敎山海一時平          마침내 山과 바다를 일시에 평평하게 하는구나.

 

2

白浪茫茫與海連          흰 물결 망망한데 바다와 이어지고

平沙浩浩四無邊          평평한 백사장은 넓디넓어 끝이 없구나.

暮去朝來淘不住          朝夕으로 오고가며 물결 멈추지 않고

遂令東海變桑田          마침내 동해가 뽕나무 밭을 바꾸게 하는구나.

 

3

靑草湖中萬里程          호수 가운데 푸른 풀은 만 리 기다란 길

黃梅雨裏一人行          빗속의 누렇게 익은 매실꽃 한 사람 걸을 거리.

愁見灘頭夜泊處          수심 겨워 호숫가 밤에 정박할 곳 바라보니

風翻闇浪打船聲          바람이 푸른 물결을 뒤집으며 뱃전을 치는 소리.

 

4

借問江潮與海水          강물과 바닷물에 잠시 묻노니

何似君情與妾心          어찌 님의 마음과 저의 마음이 같을까요.

相恨不如潮有信          서로 원망하니 조수의 믿음만도 못하고

相思始覺海非深          그립고 보고프니 바다가 깊지 못함을 비로소 알았지요.

 

5

海底飛塵終有日          바다 밑이 흙먼지 날리니 태양만이 남아있고

山頭化石豈無時          산 머리가 바위를 변화시키니 어찌 때가 없으랴.

誰道小郎抛小婦          누가 젊은 지아비가 젊은 아낙 버렸다고 말하나

船頭一去沒廻期          뱃머리 한 번 떠나더니 돌아올 기약 묻혀버렸구나.

 

6

隨波逐浪到天涯          물결을 따르면 하늘 끝에 이르건만

遷客生還有幾家          귀양객이 돌아온 일 몇 집이나 되는가.

却到帝鄕重富貴          물리치고 서울에 이르면 富貴를 貴히 여겨

請君莫忘浪淘沙          청컨대 그대는 낭도사(浪淘沙)를 잊지 마시오.

 

 

老病                           늙고 병들어

 

晝聽笙歌夜醉眠          낮엔 생황노래 듣고 밤엔 취하여 잠드는데

若非月下卽花前          달빛 아래가 아니면 꽃 앞에 있노라.

如今老病須知分          지금처럼 늙고 병들어야 분수를 알리니

不負春來二十年          봄이 옴을 저버리지 않은 지가 이십 년이어라.

 

 

短歌行

 

白日何短短              낮은 어찌 이렇게도 짧은가

百年苦易滿              백 년은 괴롭고 쉽게도 차는구나.

蒼穹浩茫茫              창공은 넓고도 아득한데

萬劫太極長              만 겁 세월은 끝없이 길기만 하다.

麻姑垂兩鬢              마고할멈도 두 귀밑머리 드리우고

一半已成霜              절반은 이미 서리가 다 되었구나.

天公見玉女              천제도 옥녀를 보고

大笑億千場              크게 웃은 지 억 천 번이 되었도다.

吾欲攬六龍              나는 여섯 용을 고삐를 잡고

回車掛扶桑              수레를 돌려 부상목에 매달고 싶도다.

北斗酌美酒              북두칠성에 맛있는 술 따라서

勸龍各一觴              용들에게 각자 한 잔씩 권하리라.

富貴非所願              부귀는 내가 바라는 것 아니니

與人駐顔光              사람들과 젊은 얼굴빛이나 지키리라.

 

 

達理二首                  사리에 통달하여

 

1

何物壯不老              무엇이 장성하고 늙지 않겠으며

何時窮不通              어느 시운이 궁하고 통하지 않겠는가

如彼音與律              저 음률과 꼭 같아서

宛轉旋爲宮              완연히 변하였다가 처음 음으로 돌아간다.

我命獨何薄              나의 운명은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여

多悴而少豐              곤란하고 피곤한 일만 많고 풍성한 일은 적은가.

當壯已先衰              장녕에 이미 남 먼저 늙어서

暫泰還長窮              잠깐 운수가 트였다가 도리어 길이 궁하여라.

我無奈命何              나는 나의 운명을 어찌할 수 없어

委順以待終              맡기고 순조하며 종말을 기다리노라.

命無奈我何              운명도 나를 어찌할 수 없어

方寸如虛空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아라.

瞢然與化俱              흐리멍텅 자연의 조화와 함께하고

混然與俗同              혼연히 세속과 같이 하고 살아가노라.

誰能坐此苦              누가 능히 이러한 고통에 앉은 채로

齟齬於其中              그 안에서 거스르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2

舒姑化爲泉              서고(舒姑)가 變하여 샘이 되고

牛哀病作虎              우야(牛哀)가 병들어 호랑이가 되었다.

或柳生肘間              간혹 버드나무가 팔꿈치에서 생기고

或男變爲女              간혹 남자가 변하여 여자가 되었다.

鳥獸及水木              새와 짐승 그리고 물과 나무

本不與民伍              본래는 백성과 함께하지 않았었다.

胡然生變遷              어렴풋이 생겨나 온갖 모양으로 변하여도

不待死歸土              죽어서 흙으로 돌아감을 바라지는 않는다.

百骸是己物              온갖 몸들은 곧 이미 죽었으니

尙不能爲主              오히려 어찌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況彼時命間              하물며 저 시간과 운명의 사이에 있어서야

倚伏何足數              바뀌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時來不可遏              시운이 다가옴을 막을 수 없고

命去焉能取              명운이 떠나감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唯當養浩然              오직 호연함을 기름에 當하니

吾聞達人語              나는 달인의 말을 듣겠노라.

 

 

達哉樂天行                 진리를 통달한 백낙천의 노래

 

達哉達哉白樂天          진실에 깨달았다, 나 백낙천은

分司東都十三年          동도인 낙양에 파견 된지 십삼 년이구나.

七旬纔滿冠已挂          칠순이 되어서 벼슬을 그만두고

半祿未及車先懸          봉록이 반감되기 전에 벼슬을 그만두었다.

或伴遊客春行樂          놀이꾼과 짝이 되어 봄에는 행락하고

或隨山僧夜坐禪          혹은 산승 따라 밤에는 좌선 하며

二年忘却問家事          이 년 동안 가정 살림걱정도 잊어버렸다.

門庭多草廚少煙          뜰에는 잡초 무성하고 부엌에는 불기도 없어

庖童朝告鹽米盡          머슴아이는 아침에 쌀과 소금 떨어졌다 하고

侍婢暮訴衣裳穿          저녁에는 계집종이 옷이 떨어졌다 말하는구나.

妻孥不悅甥姪悶          처자도 좋아하지 않고 조카들도 근심하나

而我醉臥方陶然          나는 취하여 기분 좋게 누었도다.

起來與爾畫生計          일어나 그들과 생계대책을 의논하여

薄産處置有後先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의 선후를 가려 처분한다.

先賣南坊十畝園          먼저 남쪽의 십 무의 밭을 팔고

次賣東郭五頃田          다음에 동곽의 오경(五頃) 밭을 팔려고 한다.

然後兼賣所居宅          그런 뒤에는 살고 있는 집을 판다면

髣髴獲緡二三千          아마도 이삼천 금의 돈이 들어올 것이다.

半與爾充衣食費          절반은 너희들이 의식비로 충당하고

半與吾供酒肉錢          나머지 반은 술과 안주 값으로 쓰려고 한다.

吾今已年七十一          나는 이미 칠십의 나이가 되었으니

眼昏鬚石頭風眩          눈은 어둡고 수염은 희고 정신은 흐리다.

但恐此錢用不盡          다만 두려운 것은 이 돈 다 쓰지 못하고

卽先朝露歸夜泉          아침 이슬보다 더 빨리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未歸且住亦不惡          죽지 않고 좀 더 사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니

飢餐樂飮安穩眠          배고프면 먹고 즐거우면 마시며 편히 잠 들 수 있다.

死生無可無不可          죽고 사는 것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라

達哉達哉白樂天          진리에 달통 하였구나, 달통하였구나, 백낙천이여!

 

 

答故人                     친구에게 답하여

 

故人對酒歎              친구가 술잔 마주하고 탄식하니

歎我在天涯              내가 먼 하늘 끝에 있음을 탄식한다네.

見我昔榮遇              지난 날 내가 영전하게 됨을 보고는

念我今蹉跎              내가 지금 역경에 처해있음을 생각하네.

問我爲司馬              나에게 묻기를 사마 되었다가

官意復如何              새로 관직을 가진 마음이 어떠한가 물었다네.

答云且勿歎              대답하여 이르기를, 탄식하지 말고

聽我爲君歌              들어보게나, 그대 위해 노래 부르리라.

我本蓬蓽人              나는 본래 빈곤하고 천한 사람

鄙賤劇泥沙              지루하고 천함이 흙모래보다 심하다오.

讀書未百卷              책 읽은 것이 백 권도 못되고

信口嘲風花              되는 대로 풍월을 지껄인다오.

自從筮仕來              벼슬길에 들어선 이래로

六命三登科              여섯 번 전임되고 세 번을 과거에 올랐다네.

顧慙虛劣姿              돌아보건 데 부끄러워라, 자질은 보잘 것 없고

所得亦已多              소득도 또한 이미 많아졌다네.

散員足庇身              한직의 관직이나 몸을 충분히 비호하고

薄俸可資家              박봉이나마 집안 살림은 꾸릴 만하다네.

省分輒自愧              순수를 살피니 문득 스스로 부끄러웠고

豈爲不遇耶              어찌하여 불우하게 되었던가.

煩君對杯酒              번거롭게도 그대 술잔 마주하고

爲我一咨嗟              네 한 몸 때문에 탄식하게 되었다네.

 

 

答勸酒                        술을 권하시니

 

莫怪近來都不飮          근래에 도무지 마시지 않는 것 이상하다 마오

幾回因醉却沾巾          취하여 두건을 적신 일 몇 번이나 되었던가.

誰料平生狂酒客          평생을 술에 미친 나그네 신세 누가 알리오

如今變作酒悲人          지금은 술에 취한 비참한 인간이 다 되었다오.

 

 

答友問                     친구의 물음에 답하여

 

似玉童顔盡              옥 같았던 아이 얼굴 다하고

如霜病鬢新              서리 같은 병들고 희어진 귀밑머리.

莫驚身頓老              놀라지 말라, 몸 갑자기 늙었다고

心更老於身              마음은 몸보다 더욱 쉽게 늙어 가리라.

 

 

大林寺桃花                 대림사 복숭아꽃

 

人間四月芳菲盡          인간 세상 4월에 꽃은 다 졌는데

山寺桃花始盛開          산속 절 복숭아꽃 이제 활짝 피었네

長恨春歸無覓處          봄은 가고 찾을 곳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不知轉入此中來          이곳에 들어와 있는 줄은 알지 못했네

  

대림사 - 려산(廬山 - 강서성 구강(九江)시 소재의 려산 3대 명산의 하나. 지금은 호수 속에 잠겼다 함

 

 

對酒                           술을 마주하다

 

1

巧拙愚賢相是非          솜씨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 서로 따지는데

如何一醉盡忘機          술 한 번 취해서 몽땅 잊음이 어떨 런지?

君知天地中寬窄          하늘과 땅 사이 넓고 좁음을 그대는 아시는가?

鵰鶚鸞凰各自飛          독수리, 물수리, 난새, 봉황새 제 멋대로 나는 세상이거늘.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나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번쩍이는 찰나에 이 몸 머무르는데

隨富隨貧且歡樂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모두 기쁨이라

不開口笑是癡人          입 열어 크게 웃지 않는 사람은 바로 바보

 

蝸牛角上爭 -  장자에 나오는 우화. 달팽이 뿔의 왼쪽에는 觸氏 오른쪽 뿔에는 蠻氏가 사는데 서로 싸워 수만의 시신이 즐비하면서 다시 반복했다는 이야기. 좁은 세상에서 하찮게 다툼을 이름

 

3

丹砂見火去無迹          단사(丹砂)에서 불빛 보듯 가서는 자취 없고

白髮泥人來不休          백발이 사람을 썩히려 와서는 쉬지 않네.

賴有酒仙相暖熱          주선(酒仙)의 힘을 입어 서로들 따뜻해져

松喬醉卽到前頭          큰 솔에 취하여 누우니 앞머리만 닿았네.

 

4

百歲武多時壯健          백 세를 산들 건강한 때 얼마이며

一春能幾日晴明          봄철이라 한들 맑은 날 얼마이랴.

相逢且莫推辭醉          이렇게 만났으니 마다말고 마시며

聽唱陽關第四聲          양관의 서글픈 이별가나 듣자네.

 

 

代鶴                        학을 대신하여

 

我本海上鶴              나는 본래 바닷가 학이었는데

偶逢江南客              우연히 강남 나그네를 만났다네.

感君一顧恩              황제의 한 번 베푼 은혜에 감격하여

同來洛陽陌              함께 낙양의 거리로 왔었다네.

洛陽寡族類              낙양에는 나와 동류가 드물어

皎皎唯兩翼              교교히 두 날개만 가졌을 뿐이었다.

貌是天與高              모습은 곧 하늘과 같이 고고하고

色非日浴白              몸은 햇빛을 받지 않아 희기만 하였다.

主人誠可戀              주인을 참으로 그리워했지만

其奈軒庭窄              집과 뜰이 좁은 것을 어찌하리오.

飮啄雜雞羣              먹고 쪼이며 닭의 무리들에 섞여 살다가

年深損標格              나이가 많아지며 품격만 손상당하였다.

故鄕渺何處              고향은 아득한 어느 곳인가

雲水重重隔              구름과 물가로 겹겹이 막히었도다.

誰念深籠中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깊은 조롱 안에서

七換摩天翮              하늘 나는 날갯죽지 일곱 번이나 바뀔 것을.

 

 

途中感秋                  길 가다 가을은 느껴

 

節物行搖落              철 따라 만물은 더욱 요락해 가고

年顔坐變衰              나이 따라 얼굴빛도 절로 변하여 쇠락한다.

樹初黃葉日              나무에 처음 누런 잎 지는 날

人欲白頭時              사람도 백발이 되어가는 때이로구나.

鄕國程程遠              고향 가는 길마다 아득하고

親朋處處辭              친구들은 곳곳에서 떠나가는구나.

唯憐病與老              오직 가련한 것은 병들고 늙어감이

一步不相離              한 걸음도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로다.

 

 

同李十一醉憶元九      이씨집 열한 번째 아들과 같이 취하여, 원구를 생각하다

 

花時同醉破春愁          꽃필 때에 같이 취하여, 봄날 시름 떨치고

醉折花枝當酒籌          취한 채로 꽃가지 꺾어 술잔을 헤아려본다.

忽憶故人天際去          갑자기 먼 길 떠난 친구가 생각나서

計程今日到梁州          여정을 헤아려보노니 오늘은 양주에 닿았을까.

 

 

冬初酒熟二首         초겨울, 술은 익어 가는데

 

1

霜繁脆庭柳              서리 자주 내리자 뜰의 버들 시들고

風利剪池荷              바람 매서워지자 연못의 연꽃이 꺾인다.

月色曉彌苦              달빛은 새벽이 되니 더욱 괴롭고

鳥聲寒更多              새소리는 차가워지니 더욱 시끄럽다.

秋懷久寥落              가을은 마음이 늘 서글퍼지는데

冬計又如何              겨울 대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一甕新醅酒              한 독에 가득한 새로 빚은 술빛이

萍浮春水波              마름 떠다니는 봄 연못 물결 같구나.

 

2

酒熟無來客              술이 익어도 찾아오는 손님 없어

因成獨酌謠              혼자 마시고 노래 부르게 되었구나.

人間老黃綺              인간세계 늙어가는 하황공과 기이계

地上散松喬              지상에 내려온 적송자와 왕자교이로다.

忽忽醒還醉              문득문득 깨었다가 다시 또 취하고

悠悠暮復朝              편안하게 밤에도 낮에도 취하리라.

殘年多少在              남은 인생 얼마간 살아있을 동안을

盡付此中銷              술 마시고 취하며 모든 날을 삭이리라.

 

 

東坡種花                동파에 꽃을 심으며

 

持錢買花樹              돈을 가지고 가서 꽃나무 사와

城東坡上栽              성의 동쪽 언덕에 위에 심었다.

但購有花者              꽃 피는 나무만을 구입했으나

不限桃杏梅              복사꽃, 살구꽃, 매화꽃에 한하지 않았다.

百果參雜種              온갖 과실수를 참작하여 심으니

千枝次第開              수많은 가지들이 차례로 벌어진다.

天時有早晩              자연의 시기는 이르고 늦음이 있고

地力無高低              토지의 힘에는 높고 낮음이 있도다.

紅者霞豔豔              붉은 것은 노을처럼 아름답고

白者雪皚皚              흰 것은 눈처럼 희고 깨끗하다.

遊蜂逐不去              날아다니는 벌 떼는 쫓아도 달아나지 않고

好鳥亦來栖              기뻐하는 새들도 날아와 둥지에 깃든다.

前有長流水              앞에는 긴 강이 흐르고

下有小平臺              아래에는 작고 평평한 누대가 있다.

時拂臺上石              때때로 樓臺 위의 돌을 들어내고

一擧風前杯              한 번씩 바람 앞의 술잔을 들어올린다.

花枝蔭我頭              꽃가지는 나의 머리를 덮고

花蕊落我懷              꽃술은 나의 품속에 떨어진다.

獨酌復獨詠              혼자 술을 마시고 다시 혼자 시를 읊으니

不覺日平西              모르는 사이에 해가 떠서 서쪽에 나란하다.

巴俗不愛花              파현의 풍속은 꽃을 좋아하지 않아

竟春無人來              봄이 다하도록 찾아오는 사람 아무도 없다.

唯此醉太守              오직 이 몸, 술 취한 태수만이

盡日不能廻              종일토록 돌아갈 줄을 모르는구나.

 

2

東坡春向暮              동파에는 봄이 저무는데

樹木今何如              나무들은 지금 어떠할까

漠漠花落盡              막막하게 꽃은 다 지고

翳翳葉生初              짙은 잎이 막 생기는 때라

每日領童僕              날마다 종아이 거느리고

荷鉏仍決渠              호미 메고 가서 도랑을 탄다.

剗土壅其本              흙을 긁어 뿌리를 덮어주고

引泉漑其枯              샘물 끌어들여 그 마른 곳에 대었다.

小樹低數尺              작은 나무도 낮은 것은 몇 자나 되고

大樹長丈餘              큰 나무는 긴 것은 한 길도 넘었다.

封植來幾時              북돋우고 심고 돌아온 지가 얼마인가

高下齊扶疎              높고 낮은 잎이 서로 받쳐 나란하다.

養樹旣如此              수목 기르기도 이처럼 하거늘

養民亦何殊              백성을 위함에도 어찌 다르겠는가.

將欲茂枝葉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하려면

必先救根株              반드시 먼저 뿌리와 둥치를 보호하라.

云何救根株              무엇을 일러서 뿌리와 둥치를 보호한다고 하는가

勸農均賦租              농사를 권장함에는 세금을 균등히 해야 한다.

云何茂枝葉              무엇을 일러서 가지와 잎을 무성히 한다고 하는가

省事寬刑書              번잡한 일을 간단히 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해야 한다.

移此爲郡政              이것을 그대로 옮겨 고을 행정을 베풀면

庶幾甿俗蘇              백성과 풍속이 살아나는 것을 바랄 수 있으리라.

 

 

杜陵叟                        杜陵의 老人

 

杜陵叟                        두릉의 노인은

杜陵居                        두릉에 살며

歲種薄田一頃余          해마다 척박한 밭 일 경 남짓에 씨를 뿌린다네.

三月無雨旱風起          삼월에는 비 안 내리고 이른 바람 불어오니

麥苗不秀多黃死          보리 묘목 패지 않고 누렇게 죽은 것 많다네.

九月降霜秋早寒          구월에 서리 내려 가을 날씨 일찍 추워지더니

禾穗未熟皆青干          벼 이삭 익지 않고 모두 파랗게 말랐다네.

長吏明知不申破          장리(長吏)는 잘 알고 있지만 벼 농사 망친 것 알리지 않고

急斂暴徵求考課          심하게 세금 거두어 고과 성적만 올리네.

典桑賣地納官租          뽕나무 잡히고 땅을 팔아 세금을 물어서

明年衣食將何如          내년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剝我身上帛                 내 몸의 비단 옷 벗기고

奪我口中粟                 내 입 속의 밤까지 빼앗아 가네.

虐人害物即豺狼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 해치는 것은 승냥이와 이리니

何必鉤爪鋸牙食人肉   어찌 반드시 갈고리 발톱과 톱 같은 이빨로만 사람 고기를 먹을까.

不知何人奏皇帝          누가 황제에게 알렸는지 몰라도

帝心惻隱知人弊          황제의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백성의 피해를 아셨다네.

白麻紙上書德音          백마지 위에 후덕한 말씀 적으셔서

京畿盡放今年稅          경기지방 금년 세금은 탕감한다 하셨다네.

昨日裡胥方到門          어제야 아전들이 문 앞에 당도하여

手持敕牒榜鄉村          칙첩을 손에 들고 고을에 방을 붙였다네.

十家租稅九家畢          열 집 조세에 아홉 집이 이미 다 바쳤으니

虛受吾君蠲免恩          우리 임금 면제의 은혜 헛되이 받았다네.

 

 

登樂遊園望              낙유원에 올라 바라보며

 

獨上樂遊園              혼자 낙유원에 오르니

四望天日曛              사방 하늘에 온통 황혼빛이라.

東北何靄靄              동북쪽은 어찌 자욱한가

宮闕入煙雲              궁궐에 안개와 구름이 몰려온다.

愛此高處立              이런 광경이 좋아서 높은 곳에 서니

忽如遺垢氛              문득 내가 속된 기운을 남긴 듯하다.

耳目暫淸曠              귀와 눈이 잠시 맑아지고 밝아져도

懷抱鬱不伸              마음에 품은 울적함은 펴지지 않는다.

下視十二街              아래로 열두 가닥 큰 길을 바라보니

綠樹間紅塵              푸른 나무들 사이로 흙먼지가 일어난다.

車馬徒滿眼              눈에 가득한 것은 다만 수레와 말 뿐

不見心所親              마음에 친숙한 것은 보이지 않는구나.

孔生死洛陽              공생은 낙양에서 죽었고

元九謫荊門              원구는 형문으로 귀양 갔도다.

可憐南北路              가련하다, 남북으로 떨어진 길에

高蓋者何人              높은 모자 쓴 그 사람이 누구이더냐.

 

 

登香爐峯頂              향로봉 정상을 오르며

 

迢迢香爐峯              아득하다, 향로봉이여

心存耳目想              마음으로는 듣고 싶고 보고 싶었어라.

終年牽物役              해가 다가도록 세상일에 끌리어

今日方一往              오늘에야 한 番 오르는구나.

攀蘿踏危石              넝쿨을 부여잡고 높은 바위 타고

手足勞俯仰              굽어보고 쳐다보아 손발이 피곤하여라.

同遊三四人              함께 어울린 사람이 서너 명

兩人不敢上              두 사람은 감히 오르지도 못했어라.

上到峯之頂              위로 향로봉 정상에 올라보니

目眩心恍恍              눈은 어지럽고 마음은 두려웠어라.

高低有萬尋              높고 낮은 높이는 만 길인데

阔狹無數丈              넓고 좁은 폭은 몇 길도 안 되어라.

不窮視聽界              끝없이 보이고 들리는 세계

焉識宇宙廣              우주의 광활함을 어찌 알겠는가.

江水細如繩              양자강은 노끈처럼 가늘고

湓城小於掌              분성은 손바닥보다 작아라.

紛吾何屑屑              어지럽거니, 나는 그리도 자잘한가

未能脫塵鞅              아직도 세속의 굴레를 벗지 못하여라.

歸去思自嗟              돌아가려니 생각할수록 한탄스러워

低頭入蟻壤              고개 숙이고 개미 땅 속으로 들어가노라.

 

 

晩來天欲雪

 

綠螘新醅酒              부글부글 술은 익어가고

紅泥小火爐              작은 화로엔 숯불이 벌겋다.

晩來天欲雪              저녁이 되어 눈이 올 것 같은데

能飮一杯無              여보게 우리같이 한 잔할 수 없겠나.

 

 

晩望                        저물녘에 바라보며

 

江城寒角動              강 언덕에 차가운 피리소리 들려오고

沙州夕鳥還              모래섬에 저녁 새 둥지 찾아 돌아온다.

獨在高亭上              나 혼자 높은 정자에 올라

西南望遠山              서남쪽으로 아득히 먼 山을 바라본다.

 

 

望江樓上作              망강루 위에서 짓다

 

江畔百尺樓              강가의 백 척 누대

樓前千里道              누대 앞에는 천 리 먼 길.

憑高望平遠              높은 곳에 기대어 평원을 바라보니

亦足舒懷抱              또한 마음속에 품은 생각 풀리는구나.

驛路使憧憧              역으로 통한 길에는 사신들이 왕래하고

關防兵草草              관문의 방어벽에는 병사들이 바쁘게 다닌다.

及茲多事日              이처럼 다사한 세월에는

尤覺閒人好              한가하게 사는 사람 좋음을 더욱 알겠다.

我年過不惑              내 나이 마흔을 넘기고

休退誠非早              물러나 쉬어도 진정 빠른 것은 아니다.

從此拂塵衣              이제부터 먼지 묻은 세상 옷 털고

歸山未爲老              아직 늙어지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賣炭翁                        숯 파는 늙은이

 

伐薪燒炭南山中          남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굽는다

滿面塵灰煙火色          연기와 재로 시커먼 얼굴

兩鬢蒼蒼十指黑          양쪽 잿빛 구래나릇에 새카만 열 손가락

賣炭得錢何所營          숯 팔아 번 돈 어디다 쓰는가 하니

身上衣裳口中食          겨우 옷 한 벌 걸치고 목구멍에 풀칠만 하지.

可憐身上衣正單          가련하구나, 몸에 걸친 옷은 단지 홑겹일 뿐인데

心憂炭賤願大寒          행여 숯 값이 떨어질까 봐 추워지라고 빌고 있네.

夜來城外一尺雪          어젯밤 성 밖에 눈이 한 자 내려서

曉駕炭車輾冰轍          새벽에 수레 몰고 빙판길 위로 숯을 나른다.

牛困人飢日已高          해는 중천에 떠서 소는 지치고 사람은 허기지네.

市南門外泥中歇          시장 남문 밖 진흙길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翩翩兩騎來是誰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는 저기 말 두 필.

黃衣使者白衫兒          노란 옷의 사자와 하얀 옷의 젊은이

手把文書口稱勅          손에는 공문서, 입으로는 칙령이라 외치며

廻車叱牛牽向北          수레를 북쪽 궁중으로 돌려 끌고 가 버리네.

一車炭重千余斤          수레 가득 실은 숯은 일천 근

宮使驅將惜不得          관리를 상대로 어찌 싸우리.

半匹紅綃一丈綾          고작 붉은 비단 반 필과 무늬비단 한 조각만

繫向牛頭充炭直          소머리에 걸어 놓고 숯 값이라 하는구나.

 

 

買花                        꽃을 사다

 

帝城春欲暮              장안에 봄 저물어 가는데

喧喧車馬度              마차들이 요란하게 지나간다.

共道牡丹時              모란 철이라고 이야기하며

相隨買花去              줄지어 모란꽃을 사가지고 간다.

貴賤無常價              품질에 따라 정해진 가격 없고

酬直看花數              꽃송이 수에 따라 값이 정해진다.

灼灼百朶紅              불타는 듯 붉은 꽃 백 송이

戔戔五束素              자잘한 다섯 묶음 꽃다발들

上張幄幕庇              위에는 천막을 펴 꽃 가려주고

旁織笆籬護              옆에는 울타리로 막는구나.

水灑復泥封              물을 뿌리고 흙으로 북돋우어

移來色如故              옮겨와 심어도 빛깔은 그대로다.

家家習爲俗              집집마다 유행하는 풍속이 되어서

人人迷不悟              사람마다 정신없이 깨닫지 못한다.

有一田舍翁              어떤 시골 늙은이

偶來買花處              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

低頭獨長歎              고개 숙여 혼자 길게 탄식하니

此歎無人喩              이러한 탄식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一叢深色花              한 떨기 짙은 꽃송이

十戶中人賦              열 가구 중 농가의 세금과 같음을.

 

 

暮江吟                        저문 강가에서

 

一道殘陽鋪水中          한 줄기 석양빛 물속으로 퍼지고

半江瑟瑟半江紅          강물의 반은 바람소리요 또 반은 붉은빛.

可憐九月初三夜          구월 초사흘 밤은 아름다워라

露似珍珠月似弓          구슬 같은 이슬에 활처럼 굽은 달이여.

 

 

牡丹芳                       모란의 향기

 

牡丹芳牡丹芳             모란꽃 향기여, 모란꽃 향기여,

黃金蘂綻紅玉房          황금 꽃술이 붉은 옥방을 터뜨리니

千片赤英霞爛爛          천 조각 꽃부리에 노을이 찬란하여라.

百枝絳焰燈煌煌          백 개의 가지에 붉은 점이 등불처럼 찬란하고

照地初開錦繡段          땅에 비치니 금빛 비단 여러 단이 열리는구나.

當風不結蘭麝囊          바람에 묶지 않은 난초 사향 주머니 같고

仙人琪樹白無色          신선의 옥나무 깨끗하고 아무 색깔도 없으니

王母桃花小不香          서왕모의 복사꽃은 작고도 향기 없도다.

宿露輕盈泛紫艶          밤이슬이 가벼이 차서 자주빛 요염함 넘치고

朝陽照耀生紅光          아침 햇빛 비추니 붉은 빛을 내는구나.

紅紫二色間深淺          붉음과 자주빛 깊고 얕음에 차이를 두니

向背萬態隨低昻          등을 돌리니 온갖 교태가 아래 위를 따른다.

映葉多情隱羞面          잎에 비친 다정함은 부끄러운 얼굴 가리고

臥叢無力含醉粧          힘없는 듯 누운 꽃떨기 취한 화장을 머금었다.

低嬌笑容疑掩口          애교 띤 웃는 얼굴 내려 입이 가릴까 하노니

凝思怨人如斷腸          사람 원망하는 생각이 짙어지니 마음은 애끊는 듯.

濃姿貴彩信奇絶          농염한 자태와 고귀한 빛이 참으로 기이하니

雜卉亂花無比方          잡된 풀과 어지러운 꽃이 비교할 방법이 없도다.

石竹金錢何細碎          석죽과 금전화는 어찌하여 가늘게 부서지나

芙蓉芍藥苦尋常          부용꽃과 작약꽃은 언제나 괴롭구나.

遂使王公與卿相          마침내 왕공들과 경상들을 부리어서

游花冠蓋日相望          기생과 관리들이 매일 서로 바라보겠구나.

痺車軟輿貴公主          메추라기 털 수레와 부드러운 수레에 귀족 여자들

香衫細馬豪家郞          향기 나는 소매, 날씬한 말은 부호의 아들들이로다.

衛公宅靜閉東院          위공 택은 고요하여 동쪽 집을 닫았고

西明寺深開北廊          서명사 절은 깊어서 북쪽 곁채를 열었도다.

戱蝶雙舞看人久          노는 나비의 쌍쌍춤을 사람들이 본지 오래고

殘鶯一聲春日長          남은 꾀꼬리 한 소리에 봄날은 길기만 하다.

共愁日照芳難駐          모두가 걱정하는 비춰드는 햇빛에 향기 머물기 어려워

仍張帷幕垂陰凉          이에 휘장을 펴서 그늘의 서늘함을 드리운다.

花開花落二十日          꽃 피고 꽃 떨어지기 이십 일이 되니

一城之人皆若狂          온 성안 사람들 모두가 미친 듯 행동한다.

三代以還文勝質          삼대이래로 도리어 꾸미는 일을 내용보다 좋게 여기니

人心重華不重實          인심은 화려함 중히 여기고, 내용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重華直至牡丹芳          화려함을 중요하게 여김은 바로 모란꽃 향기이니

其來有漸非今日          그것이 내게 천천히 옴은 오늘날의 일이 아니로다.

元和天子憂農桑          원화 천자는 농사와 뽕나무 일을 걱정하고

恤下動天天降祥          아래 사람을 근심하니 하늘을 움직여 상서로움 내리도다.

去歲嘉禾生九穗          지난해에는 좋은 볍씨가 한 줄기에 아홉 이삭 생산해도

田中寂寞無人至          오는 사람 아무도 없어 들판의 밭 속에 적막하였다

今年瑞麥分兩岐          금년에도 상서로운 보리가 양쪽으로 나누어지니

君心獨喜無人知          군왕이 마음속으로 혼자 기뻐함을 아무도 모른다.

無人知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니

可歎息                        가히 탄식하리로다.

我願暫求造化力          나는 원컨대, 조화옹의 힘을 구하여

減却牡丹妖艶色          문득 모란의 요염한 색을 줄이고

少廻卿士愛花心          높은 벼슬아치들의 꽃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 돌려서

同似吾君憂稼穡          우리 임금님처럼 곡식 심고 추수하는 근심을 함께 하였으면.

 

 

暮立                           저물녘에

 

黃昏獨立佛堂前          황혼녘에, 불당 앞에 홀로 서니

滿地槐花滿樹蟬          땅에 가득한 홰나무 꽃, 나무 가득 매미소리.

大抵四時心總苦          무릇, 사시사철 마음은 괴로운 법

就中腸斷是秋天          마음 속 단장의 아픔, 이것이 가을이로구나.

 

 

母別子                        어머니가 자식과 이별하며

 

母別子                        어미는 자식을 이별하고

子別母                        자식은 어머니와 이별하니

白日無光哭聲苦          태양도 빛을 잃고 울음소리 처절하다.

關西驃騎大將軍          관서의 표기 대장군

去年破虜新策勳          작년에 오랑캐 격파하고 새로 공을 세워

勅賜金錢二百萬          이백 만 백만 량 상금 받아

洛陽迎得如花人          낙양에서 꽃 같은 미인을 맞았도다.

新人迎來舊人棄          새댁을 맞아들이고 옛 아내를 내버리니

掌上蓮花眼中刺          새댁은 손안의 연꽃, 옛 사람은 눈 안의 가시

迎新棄舊未足悲          새 각시 얻고서 조강지처 버린 일은 슬프지 않으나

悲在君家留兩兒          그대 집에 남겨 둔 두 아들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一始扶行一初坐          한 놈은 이제 걸음마하고 한 놈은 겨우 혼자 앉는데

坐啼行哭牽人衣          두 아이 울며불며 옷자락에 매달린다.

以汝夫婦新婉              그대들 부부 되어 새로 사랑함이

使我母子生別離          우리 모자를 생이별 시켰도다.

不如林中烏與鵲          우리 신세 숲 속의 까마귀와 까치만도 못하구나.

母不失雛雄伴雌          어미 새도 새끼 잃지 않고 암수가 짝을 짓거늘

應似園中桃李樹          우리 모자는 뜰 안의 복숭아와 오얏 같아

花落隨風子在枝          바람에 꽃잎 지고 열매만 가지에 남았구나.

新人新人聽我語          새댁이여, 새댁이여! 내 말 좀 들어보소.

洛陽無限紅樓女          낙양 많은 홍루에 미인도 많아

但願將軍重立功          장군이 다시 한 번 무공 세우신다면

更有新人勝於汝          다시 너보다 더 예쁜 새댁을 맞으리라.

 

 

夢仙                         신선을 꿈꾸며

 

人有夢仙者              신선을 꿈꾸는 者 있었으니

夢身升上淸              꿈속에서 몸이 푸른 하늘에 올랐다.

坐乘一白鶴              한 마리 흰 학에 앉아 타니

前引雙紅旌              앞에서는 두 개의 붉은 깃발 인도한다.

羽衣忽飄飄              날개옷이 갑자기 펄럭펄럭 날아

玉鸞俄錚錚              옥으로 만든 난새 방울 쩔렁거린다.

半空直下視              반쯤 올라간 공중에서 바로 내려다보니

人世塵冥冥              인간세상이 먼지 속에 아득하도다.

漸失鄕國處              점점 고향과 나라 땅이 보이지 않고

纔分山水形              겨우 산과 물의 형태가 구분될 뿐이었다.

東海一片白              동해가 한 조각 흰 것으로 보이고

列岳五點靑              늘어선 큰 산들이 다섯 점으로 푸르게 보인다.

須臾羣仙來              잠간 사이에 여러 신선들이 다가와

相引朝玉京              서로 아침의 옥경으로 안내해갔다.

安期羨門輩              안기(安期)나 선문(羨門)같은 신선들이 있어

列侍如公卿              줄지어 모시고 있음이 공경들과 같았다.

仰謁玉皇帝              옥황상제를 우러러 알현하고

稽首前致誠              머리 숙여 앞으로 나가 정성을 바치니

帝言汝仙才              선제가 말하기를 너는 신선의 자질이 있으니

努力勿自輕              노력하여 스스로 경솔하지 말라.

却後十五年              물러가 오십 년이 되면

期汝不死庭              너는 신선의 뜰에서 죽지 않으리라고 하니

再拜受斯言              재배하고 이 말을 받아들이는데

旣寤喜且驚              이미 깨어나니 기쁘고도 놀라웠다.

袐之不敢泄              이를 숨기고 감히 세상에 누설하지 않고

誓志居巖扃              뜻을 맹서하고 바위굴 속에 살았다.

恩愛捨骨肉              은애로움으로는 골육을 버리고

飮食斷羶腥              먹고 마심에는 누린내 비린내 나는 음식은 끊었다.

朝飧雲母散              아침에는 운모산이라는 선약을 먹고

夜吸沆瀣精              저녁에는 항해정이라는 선약을 마셨다.

空山三十載              빈 산에서 삼십 년을 살면서

日望輜軿迎              매일 휘장 두른 수레를 맞이할 것을 바랐다.

前期過已久              전 번 기약이 지나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鸞鶴無來聲              난새와 학은 오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齒髮日衰白              치아와 두발은 날마다 쇠약해지고 희어지고

耳目減聰明              귀와 눈은 총명한 기능이 감하였다.

一朝同物化              하루아침에 물질과 같이 변하고

身與糞壤幷              육체는 똥과 흙과 같이 되어버린다.

神仙信有之              신선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俗力非可營              세상 사람의 힘으로는 될 수 있음이 아니다.

苟無金骨相              진실로 신선의 골상을 없다면

不將丹臺名              신선의 단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리라.

徒傳辟穀法              다만 벽곡법을 전수 받아

虛受燒丹經              헛되이 소단경의 가르침을 받았다.

只自取勤苦              단지 스스로 노력과 고통을 받았을 뿐

百年終不成              백 년이 되어도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悲哉夢仙人              슬프구나, 신선을 꿈꾸는 사람들이여

一夢誤一生              한 번 꿈에 일생을 망치고 있도다.

 

 

問劉十九                 유 십구에게 묻노니

 

綠螘新醅酒              부글부글 새로 익어가는 술

紅泥小火爐              작은 화로에 숯불이 벌겋구나.

晩來天欲雪              저녁에 눈 내릴 것 같은데

能飮一杯無              우리 술 한 잔 할 수 없을까.

 

 

聞早鶯                     아침 꾀꼬리 소리 들으며

 

日出眠未起              해가 솟아도 잠에서 일어나지 않았는데

屋頭聞早鶯              지붕 위에서 앵무새 소리 들린다.

忽如上林曉              홀연 상림원의 새벽에

萬年枝上鳴              만년수 나뭇가지 위 우는 듯하다.

憶爲近臣時              돌이켜 보건데 天子의 근신이었던 때

秉筆直承明              붓을 잡고 승명원에서 당직했었다.

春深視草暇              봄은 깊어가고 글을 보던 여가시간

旦暮聞此聲              아침저녁으로 이 소리를 들었었다.

今聞在何處              지금 듣는 곳은 어디란 말인가

寂寞潯陽城              바로 적막한 심양성이로다.

鳥聲信如一              새소리는 진실로 하나같지만

分別在人情              사람의 마음 따라 달라지는 법이어라.

不作天涯意              하늘 끝 떠도는 마음 되지 못하면

豈殊禁中聽              어찌 대궐 안에서 듣는 것과 다르리오.

 

 

微雨夜行                보슬비 속을 밤에 가다

 

漠漠秋雲起              어둑한 가을 구름 솟고

悄悄夜寒生              초초한 밤 한기 인다.

但覺衣裳濕              옷 젖는 줄 알겠으나

無點亦無聲              빗방울도 빗소리도 없다.

 

 

縛戎人                       결박 당한 오랑캐

 

縛戎人縛戎人             묶인 오랑캐여, 묶인 오랑캐여,

耳穿面破驅入秦          귀 뚫리고 얼굴 깨어진 채 몰리어 진나라에 오니

天子矜憐不忍殺          천자도 불쌍하여 차마 죽일 수 없었다.

詔徙東南吳與越          동남쪽 오나라와 월나라 땅으로 보내라 명하셨다.

黃衣小使錄姓名          누런 옷 입은 아전들이 성명을 적은 뒤

領出長安乘遞行          거느리고 장안을 빠져나가 역체에서 갈아타고 간다.

身被金瘡面多瘠          몸에는 무기에 상처 입고 얼굴은 수척하여

扶病徒行日一驛          병든 몸 붙잡고 맨발로 걸으니 하루에 한 역이라.

朝飡飢渴費盃盤          아침저녁 굶주리니 큰 소반 음식을 다 비우고

夜臥腥臊汚床席          밤에 누우니 누리고 비린내가 잠자리 더럽힌다.

忽逢江水憶交河          문득 양자江 물 만나니 고향 교하가 생각나서

垂手齊聲嗚咽歌          손 내리고 일제히 소리 내어 오열하며 노래 부른다.

其中一虜語諸虜          그들 중의 한 포로가 여러 포로들에게 말하기를

爾苦非多我苦多          “너희 고통은 많은 게 아니고 내 고통이 많도다.”하였다.

同伴行人因借問          동반하여 가던 사람이 그 까닭을 물어보니

欲說喉中氣憤憤          말하려 하더니, 목 안에 기가 막혀

自云鄕管本涼原          스스로 이르기를, “본래 고향이 량주 언덕이었으나

大曆年中沒落蕃          대력연간에 토번에게 흡수되고

一落蕃中四十載          토번에 떨어져 사십 년을 지나오며

遣著皮裘繫毛帶          가죽옷 걸치고 털 허리띠를 둘렀었다.

唯許正朝服漢儀          다만 설날에 한나라 법식이 허락되어

斂衣整巾潛淚垂          옷 차려입고 건을 바로 쓰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誓心密定歸鄕計          마음에 맹서하고 고향 돌아갈 계책 몰래 결정하고

不使蕃中妻子知          토번의 처자도 알지 못하게 하였었다.

暗思幸有殘筋力          가만히 상각하니, 다행히 근력이 남아있으나

更恐年衰歸不得          더욱 두려운 것은 나이 쇠하면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蕃候嚴兵鳥不飛          토번의 수비병과 엄한 무기에, 새들도 날지 못하는데

脫身冒死奔逃歸          몸 벗어나 죽음을 무릅쓰고 달아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晝伏宵行經大漠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큰 사막을 지나오니

雲陰月黑風沙惡          구름은 어둑하고 달은 검은데 바람과 모래 심하였다.

驚藏靑塚寒草疏          놀라 푸른 무덤에 숨기려니 날이 차가워 풀도 드물었다.

偸渡黃河夜冰薄          몰래 황하를 건너려니 밤의 얼음은 얇은데

忽聞漢軍鼙鼓聲          문득 한나라 군사의 북소리가 들려와

路傍走出再拜迎          길옆으로 달려 나와 두 번 절하고 환영하였었다.

游騎不聽能漢語          기마 순라병은 능숙한 한나라 말을 듣지도 않고

將軍遂縛作蕃生          장군은 마침내 나를 결박하여 토번 출생으로 만들었다.

配向東南卑濕地          동의 저지대 습기 찬 땅으로 유배당하여도

豈無存卹空防備          어찌 위로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 없으니 헛되이 방비하리오.

念此呑聲仰訴天          이런 생각하면서 소리를 삼키며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나

若爲辛苦度殘年          고생하여 여생을 지나게 될 것 같도다.

涼原鄕井不得見          양주 언덕도 고향 우물도 볼 수 없는데

胡地妻兒虛棄捐          오랑캐 땅에 처자를 공연히 버리고 왔도다.

沒蕃被囚思漢土          토번 땅에 갇히어서는 한나라 땅을 그리워하고

歸漢被劫爲蕃虜          한나라에 돌아와서는 잡히어 토번인 포로 취급을 당하였다.

早知如此悔歸來          이런 점을 미리 알았다면 돌아온 것이 후회스러워라

兩地寧如一處苦          두 곳에서 고생이라, 차라리 한 곳의 고생만 못하리라

縛戎人                        결박당한 오랑캐여.

戎人之中我苦辛          오랑캐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고생하는구나.

自古此寃應未有          예부터 이러한 원한 결코 있지 않으리니

漢心漢語吐蕃身          한나라 마음 가지고 한나라 말을 쓰면서 토번 오랑캐 신세로다.

 

 

放言                            거리낌 없이 말하다

 

泰山不要欺毫末          태산은 털끝만한 것을 속일 필요 없고

顔子無心羨老彭          안자는 노팽을 부러워할 마음 전혀 없으리라.

松樹千年終是朽          소나무는 천 년을 살아도 끝내는 썩어버리고

槿花一日自爲榮          무궁화는 하루를 피어도 스스로 영화를 누린다.

何須戀世常憂死          어찌 현세에 연연하여 항상 죽음을 근심하나

亦莫嫌身漫厭生          또한 육신을 혐오하여 삶을 함부로 싫어 말라.

生去死來都是幻          살고 죽고 가고 오는 일 모두가 환상인 것을

幻人哀樂繫何情          환상에 사는 인간의 애락이 어떤 마음에 매였나.

 

 

白鷺

 

人生四十未全衰          인생 사십은 완전히 늙음이 아닌데

我爲愁多白髮垂          나는 근심이 많아 백발이 드리웠구나.

何故水邊雙白鷺          무슨 까닭으로 물가에 있는 두 마리 백로

無愁頭上亦垂絲          근심 없는 머리 위에도 흰 실을 드리웠나.

 

 

白雲期                      백운과 약속하여

 

三十氣太壯              서른 나이는 기운이 가장 왕성하니

胸中多是非              가슴 속에는 시비 가리는 일 많구나.

六十身太老              예순 나이는 몸이 너무 늙어서

四體不支持              사지마저 지탱하고 유지하지 못한다.

四十至五十              마흔에서 오십 나이에 이르면

正是退閒時              바로 은퇴하여 한가히 지낼 시기라.

年長識命分              나이가 많아 천명과 순수를 알아

心慵少營爲              마음은 게을러져 하는 일도 적어진다.

見酒興猶在              술을 보면 여전히 흥이 나고

登山力未衰              산에 올라도 힘은 모자라지 않는다.

吾年幸當此              다행히 내 나이가 바로 이러한 나이라

且與白雲期              장차 백운과 기약하여 지내리라.

 

 

白雲泉

 

天平山上白雲泉          천평산 위에 있는 백운천이여!

雲自無心水自閑          구름은 무심하고 물은 한가한 법이거늘

何必奔衝山下去          급하게 산 밑으로 달려내려 가

更添波浪向人間          이 세상에 파랑을 보탤 필요 있는가?

 

 

泛湓水                     분수에 배 띄워

 

四月未全熱              사월이라 아직 완전히 무덥지 않아

麥涼江氣秋              보리에 서늘한 바람, 강 기운은 가을.

湖山處處好              호수와 물은 곳곳이 좋으나

最愛湓水頭              분수의 머릿가가 가장 좋아라.

湓水從東來              분수는 강 쪽에서 동쪽으로 와서

一派入江流              한 줄기는 장강 물줄기에 흘러든다.

可憐似縈帶              아름다워라, 구불구불한 띠 같아서

中有隨風舟              강 가운데는 바람으로 가는 배 있다.

命酒一臨泛              술 가져오라 명하고는 한 번에 배 띄우고

捨鞍揚棹謳              말안장 버려두고 소리 날리며 뱃노래 부른다.

放廻岸傍馬              언덕 기슭의 말은 놓아 돌려보내고

去逐波間鷗              말 떠난 뒤에는 물결 사이의 백구를 쫓는다.

煙浪始渺渺              자욱한 물결은 아득하고

風襟亦悠悠              바람에 날리는 옷깃도 아득하구나.

初疑上河漢              처음에는 은하수에 올랐나 하였는데

中若尋瀛洲              中間에는 신선 사는 곳을 찾는 것 같았다.

汀樹綠拂地              물가의 나무 푸름은 못을 떨치고

沙草芳未休              모래벌판의 향기로운 풀은 가시지 않았구나.

靑蘿與紫葛              푸른 담쟁이와 자주빛 칡은

枝蔓垂相樛              가지와 덩굴을 늘어지고 서로 얽혀있다.

繫纜步平岸              닻줄을 매어놓고 평평한 언덕을 걸으며

回頭望江州              머리 돌려 강주를 아득히 마라본다.

城雉映水見              성가퀴는 물에 비춰 보이고

隱隱如蜃樓              신기루처럼 은은하기만 하구나.

日入意未盡              해가 저물어도 뜻은 다하지 않아

將歸復少留              돌아가려다가 다시 잠시 머무노라.

到官行半歲              강주의 관리 생활 반년도 지나지 않아

今日方一遊              오늘에야 비로소 한 번 노니노라.

此地來何暮              이 땅에 돌아옴이 그리도 저무니

可以寫吾憂              이렇게 나의 근심을 베껴내 버릴 수 있으리라.

 

 

泛春池                     봄 못에 배 띄워

 

白蘋湘渚曲              상수 물가에 흰 마름

綠篠剡溪口              섬계 어구에는 푸른 조릿대.

各在天一涯              각각 하늘 먼 곳에 있어

信美非吾有              정말 아름답지만 나의 소유 아니다.

如何此庭內              어떠한가, 이 정원 안

水竹交左右              수죽은 좌우로 얽혀있다.

霜竹百千竿              서리 맞은 대나무 여러 줄기들

煙波六七畝              예닐곱 이랑이 물안개에 덥혀있다.

泓澄動堦砌              맑은 물속에는 섬돌이 일렁거리고

淡泞映戶牖              깨끗한 물에는 문과 창문이 비추인다.

蛇皮細有紋              뱀 껍질 같은 문양이 섬세하게 보이고

鏡面淸無垢              거울 표면처럼 맑아 먼지하나 없구나.

主人過橋來              주인이 다리를 지나오는데

雙童扶一叟              두 어린 아이가 한 노인을 부축하고 있다.

恐汙淸冷波              맑고 찬 물결 더럽힐까 두려워

塵纓先抖擻              갓에 앉은 먼지부터 털어낸다.

波上一葉舟              물결 위에 작은 배 띄우고

舟中一樽酒              배 안에는 한 동이 술을 실었다.

酒開舟不繫              술동이는 열어놓고 배는 풀어

去去隨所偶              배가는 대로 따라 가고 또 간다.

或遶蒲浦前              부들 물가 앞은 둘러싸고

或泊桃島後              복숭아 섬 뒤에 멈추기도 한다.

未撥落杯花              술잔에 떨어진 꽃잎을 건져내지도 않고

低衝拂面柳              얼굴을 스치는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半酣迷所在              반쯤 취하니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倚榜兀回首              노에 기대어 우뚝 머리를 돌려본다.

不知此何處              이곳이 어느 곳인지 모르겠는데

復是人寰否              혹시 인간세상이 아닌가.

誰知始疎鑿              누가 알리오, 처음 연못을 뚫고서

幾主相傳受              몇 사람의 주인이 서로 바뀌었는지를.

楊家去云遠              양씨는 떠난 지 오래되고

田氏將非久              전씨는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天與愛水人              하늘은 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었으니

終焉落吾手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도다.

 

 

別橋上竹

 

穿橋迸竹不依行          다리를 뚫고 솟은 대나무 통행에 도움 못되니

恐礙行人被損傷          행인이 가다가 걸려 부상당할까 걱정 되는구나.

我去自慙遺愛少          내가 떠나며 부끄럽나니, 남긴 애정이 적어

不敎君得似甘棠          그대를 앵도나무처럼 되게 하지 못하였음이라.

 

 

病氣                            병 증세

 

自知氣發每因情          정 때문에 병나는 것을 나는 알아

情在何由氣得平          정이 어디 있어야 병세가 나아지나.

若問病根深與淺          병 뿌리의 깊음과 엷음 묻는다면

此身應與病齊生          이 몸은 반드시 병과 함께 살리라.

 

 

病假中南亭閑望

 

欹枕不視事              베개 베고 누워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兩日門掩關              이틀간 문짝에 빗장을 걸어두었다.

始知吏役身              이제야 알겠느니, 관리생활이 몸을 부려

不病不得閑              병이 나지 않고 한가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閑意不在遠              한가로운 마음은 먼 곳에 있지 않고

小亭方丈間              이 작은 정자 한 간의 방 안에 있는 것을.

西簷竹梢上              서쪽 처마 밑 대나무 가지 위를

坐見太白山              태백산을 가만히 앉아서 바라본다.

遙媿峯上雲              아득히 부끄러워라, 봉우리 위 구름

對此塵中顔              구름을 마주보는 세속에 더렵혀진 내 얼굴이여.

 

 

病中逢秋招客夜酌        병중에 가을밤 손님을 청해 술자리를 갖다

 

不見詩酒客              시객도 주객도 만나지 못한 채

臥來半月餘              누워서 반 달여를 지나왔었다.

合和新藥草              새 약초를 섞어보고

尋檢舊方書              옛 의약서적도 찾아보았다.

晩霽煙景度              안개 지난 뒤 저녁이 개어

早凉窗戶虛              이른 추위에 창문도 허전하다.

雪生衰鬓久              늙은 귀밑머리 서리 내린지 오래인데

秋入病心初              병든 마음에 가을이 들기 시작한다.

臥簟蕲竹冷              자리에 누우니 대자리가 차갑고

風襟邛葛疎              옷깃에 바람부니 공갈도 성기다.

夜來身校健              밤에는 몸도 비교적 건강한데

小飮復何如              술 조금 마신들 또 무슨 일 있겠는가.

 

 

步東坡                     동파 언덕을 밟으며

 

朝上東坡步              아침에 동파 언덕에 올라 보고

夕上東坡步              저녁에는 동파에 올라 걸었다.

東坡何所愛              동파에서 좋은 것이 무엇일까

愛此新成樹              이러한 새로 심은 나무를 좋아한다.

種植當歲初              마땅히 그해 초엽에 심은 것이라

滋榮及春暮              커지는 번성이 봄날 저녁까지 미친다.

信意取次栽              마음대로 가져다 차려로 심었더니

無行亦無數              줄 무수하고 또 숫자도 무수해졌다.

綠陰斜景轉              푸른 그늘은 비탈진 광경으로 바뀌고

芳氣微風度              향기로운 기운은 미풍에 날아 건너간다.

新葉鳥下來              새로 돋은 잎사귀에는 새들이 내려오고

萎花蝶飛去              시든 꽃에는 나비가 날아간다.

閑攜斑竹杖              때때로 얼룩진 지팡이를 짚고

徐曳黃麻屨              누런 삼으로 만든 신을 신고 천천히 걷는다.

欲識往來頻              얼마나 오고갔는지 알아보려니

靑苔成白路              푸른 이끼가 흰 길이 다 되었구나.

 

 

逢舊                         옛 벗을 만나다

 

久別偶相逢              오랫동안 떠나있다 우연히 서로 만나

俱疑是夢中              이것이 꿈이라 모두가 의심했노라.

卽今歡樂事              지금은 이렇게 즐거운 일이지만

放盞又成空              술잔 놓으면 다시 허무한 일이 되는 것을.

 

 

賦得高原草送別      고원의 풀을 시로 읊어 송별하다

 

離離原上草              무성한 언덕 위의 들풀

一歲一枯榮              한 해에 한 번씩 나고 시든다.

野火燒不盡              들불에 타도 다 하지 않고

春風吹又生              봄바람이 불면 또 자라난다.

遠芳侵古道              멀리 뻗힌 풀은 오래된 길을 덮고

晴翠接荒城              맑은 풀빛은 거친 옛 성터에 어린다.

又送王孫去              다시 그대를 보내어 전송하니

萋萋滿別情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마음 가득하다.

 

 

府西池                        관아 서편 연못에서

 

柳無氣力枝先動          가녀린 버드나무, 가지 먼저 흔들리고

池有波紋冰盡開          얼음 풀려 흐른 못물에 파문이 이는구나.

今日不知誰計會          누가 일 꾸몄는지 오늘은 모르지만

春風春水一時來          봄바람, 봄 물결이 일시에 찾아왔구나.

 

 

北亭獨宿                  북정에 홀로 묵으며

 

悄悄壁下床              초초한 벽 아래 침상 있노라니

紗籠耿殘燭              비단 초롱에는 촛불이 깜빡인다.

夜半獨眠覺              밤 깊어 홀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疑在僧房宿              내가 승방에서 자고 있지 않는가.

 

 

不如來飮酒

 

莫隱深山去              깊은 산에 들어가 은거하지 말 게나

君應到自嬚              그대여 틀림없이 싫어하게 될 테니.

齒傷朝水冷              아침 물이 차서 이빨이 시리고

貌苦夜霜嚴              저녁 서리가 심하여 얼굴이 거칠어진다네.

漁去風生浦              어부가 떠난 뒤 갯벌에 바람이 일고

樵歸雲滿巖              나무꾼이 돌아가면 바위엔 구름만 잔뜩 끼이네.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相對醉厭厭              서로 마주보며 싫증나도록 취하는 것만 못하니.

 

莫作農夫去              농부가 되려하지 말 게나

君應見自愁              그대 스스로 근심하게 될 테니.

迎春犁瘦地              봄을 맞아 척박한 땅을 쟁기질 하여야 하고

趁晩餧嬴牛              저녁 서리가 심하여 얼굴이 거칠어진다네.

數被官加稅              몇 번이나 관가에서는 세금을 늘리고

稀逢歲有秋              해마다 제대로 추수하기가 드무네.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相伴醉悠悠              서로 짝하여 유유자적하게 취하는 것만 못하니.

 

莫作商人去              장사꾼이 되려하지 말 게나

恓惶君未諳              허둥지둥 대며 그대 익숙해지지 못하리라.

雪霜行塞北              눈과 서리에 변경 북쪽을 가야하고

風水宿江南              비바람에도 강남에서 묵어야한다.

藏鏹百千萬              수백 수천 만 전을 숨겨야 하고

沉舟十二三              배의 침몰도 열에 둘 셋.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仰面醉酣酣              얼굴 마주보며 유쾌하게 취하세.

 

4

莫事長征去              전쟁터에 나가지 말 게나

辛勤難具論              고통과 고생은 말로 하기 어려우리라.

何曾畫麟閣              어찌 기린각에 얼굴이 그려지겠는가

只是老轅門              단지 군영에서 늙어 갈 뿐이다.

蟣虱衣中物              옷 속에 이가 가득하고

刀槍面上痕              얼굴에는 칼자국과 창자국.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合眼醉昏昏              서로 어울려 아득히 취하세.

 

莫學長生去              장생술을 배우려 하지 말 게나

仙方誤殺君              그것은 자칫하여 그대를 죽이리라.

那將薤上露              어찌 염교 풀에 맺힌 이슬이

擬待鶴邊雲              학을 타고 구름 위 오르기를 期待하는가.

矻矻皆燒藥              부지런히 선약을 만들어 보아야

累累盡作墳              결국은 줄줄이 무덤으로 돌아갈 뿐이다.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閑坐醉醺醺              한가로이 앉아 거나하게 취하세.

 

莫上青雲去              입신출세하고 벼슬길에 나가려고 하지 말 게나

青雲足愛憎              입신출세한 사람은 애증의 표적이 되리라.

自賢誇智慧              스스로 현명하다며 지혜를 과시하고

相糾鬥功能              공로와 재능이 서로 뒤엉켜 다투네.

魚爛緣吞餌              물고기 문지러짐은 미끼를 먹었기 때문이고

蛾焦為撲燈              나방이 타는 것은 등불속으로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任性醉騰騰              본성대로 기세좋게 취하세나.

 

莫入紅塵去              먼지 자욱한 세상에 들지 말 게나

令人心力勞              힘들여 마음 쓰게 될 테니.

相爭雨蝸角              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싸운들

所得一牛毛              얻어야 한 가닥 소털뿐인걸.

且滅嗔中火              잠시 분노의 불길을 끄고

休磨笑裏刀              웃음 뒤 감춘 칼갈이도 그치고

不如來飮酒              차라리 이리와 술이나 마시며

穩臥醉陶陶              평온히 누워 도도히 취하세.

 

 

不出門                        문밖에 나가지 않고

 

不出門來又數旬          문 밖 출입하지 않은지 수십 일

將何銷日與誰親          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친구할까.

鶴籠開處見君子          학의 조롱 연 곳에 군자가 보이고

書卷展時逢古人          책을 펼칠 때에는 옛사람 만나는구나.

自靜其心延壽命          제 마음을 고요히 하면 더 오래 살고

無求於物長精神          물질에서 구하지 않으면 정신력도 강하다.

能行便是眞修道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곧 참된 수도이니

何必降魔調伏身          어찌 마귀를 이기고 육신을 다스려야만 하나.

 

 

不致仕                     물러나지 않는 관리들

 

七十而致仕              일흔이면 관직에서 물러나라

禮法有明文              예법에 분명히 적혀 있도다.

何乃貪榮者              어찌하여 영화를 탐하는 자들은

斯言如不聞              이 말을 못 들은 척 하는구나.

可憐八九十              가련하다, 팔구십 살이 다 되어

齒墮雙眸昏              이 빠지고 두 눈동자 흐려져도

朝露貪名利              아침 이슬 처지로도 명예와 이익 탐하고

夕陽憂子孫              지는 해 처지에서 자손을 근심하는구나.

掛冠顧翠緌              걸어둔 관끈을 돌아보고

懸車惜朱輪              매어둔 수레바퀴 아까워한다.

金章腰不勝              허리에 찬, 금 인장 무게도 감당 못하여

傴僂入宮門              곱사등이 모습으로 입궐한다네.

誰不愛富貴              누가 부귀를 싫어하고

誰不戀君恩              임금의 은총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年高須告老              늙으면 마땅히 늙음을 告하고

名遂合退身              명예를 얻었으면 물러나야 마땅하네.

少時共嗤誚              젊을 때는 같이 비웃어 놓고

晩歲多因循              늙어서는 대부분 악습을 따른다.

賢哉漢二疏              어질구나, 한의 소광(疏廣)과 소수(疏受)여

彼獨是何人              그들은 곧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寂寞東門路              적막하다, 동문 밖 길이여

無人繼去塵              아무도 속된 풍속을 없애지 못하다니.

 

 

琵琶行 

 

琵琶行 幷序

元和十年, 予左遷九江郡司馬. 明年秋, 送客湓浦口. 聞舟中夜彈琵琶者, 聽其音錚錚然有京都聲. 問其人, 本長安倡女. 嘗學琵琶於穆曹二善才,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 遂命酒, 使快彈數曲. 曲罷憫然. 自敍少小時歡樂事, 今漂淪憔悴, 轉徒於江湖間. 予出官二年, 恬然自安, 感斯人言, 是夕始覺有遷謫意. 因爲長句, 歌以贈之, 凡六百一十二言,命曰 <琵琶行>.

 

비파행을 지으며 서문을 쓰다

원화 10년에 나는 구강군사마로 좌천되었다. 다음해 가을 손님을 배웅하러 분포강 포구에 나갔다가, 배 속에서 비파 타는 소리를 들었다. 쟁쟁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니 전에 서울에서 듣던 소리였다. 그 사람을 찾아보니 원래 장안에서 노래하던 여자였는데, 일찍이 유명한 목(穆), 조(曹) 두 선생에게서 비파를 배운 비파의 고수였다고 한다.

나이 들어 모습이 쇠퇴하게 되자 장사꾼에게 시집가서 의지하게 된 것이라 한다. 끝내 술상을 차리게 하고 몇 곡 청해 들었는데, 연주를 끝내고 참담해졌다. 젊고 예뻤을 시절엔 웃고 즐기기만 하다가 이제는 시골구석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고. 나 백거이도 이 시골로 쫓겨 온지 2년, 스스로 편안하게 마음먹으려 했지만, 오늘 밤 이 여인의 말에 끝내 감격해서 비로소 멀리 귀양살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긴 장구의 노래를 지어 이 여인에게 보낸다. 모두 612 자인데, <琵琶行> 이라 부른다.

 

第一段                        심양강 나루에 울려 퍼진 천하절창 비파소리

 

潯陽江頭夜送客          심양강 나루에서 손을 밤에 보내려니

楓葉荻花秋瑟瑟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바람 쓸쓸하다.

主人下馬客在船          주인은 말 내리고 손은 배에 타고

擧酒欲飮無管絃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네.

醉不成歡慘將別          취해도 즐거움 없는 이별을 하려하니

別時茫茫江浸月          망망한 이별의 강에 달빛만 젖어 있네.

忽聞水上琵琶聲          그 때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          주인도 손도 자리를 뜨지 못하네.

尋聲暗問彈者誰          소리 찾아 조용히 누구인지 물으니

琵琶聲停欲語遲          비파소리 그치고 대답은 늦어

移船相近邀相見          배를 옮겨 가까이가 자리를 청하며

添酒回燈重開宴          술 따르고 등 밝혀 술자리를 다시 폈네.

千呼萬喚始出來          부르고 또 청해 겨우 나타났는데

猶抱琵琶半遮面          비파 안고 얼굴을 반쯤 가리웠네.

轉軸撥絃三兩聲          축 돌려 현을 골라 두 세 번 소리 내니

未成曲調先有情          곡조도 이루기 전 정이 먼저 흐르네.

絃絃掩抑聲聲思          줄을 누르고 눌러 가락마다 마음 실어

似訴平生不得志          평생에 못다한 마음속 한을 호소하듯

低眉信手續續彈          눈썹을 내리깔고 손에 맡겨 비파 타니

說盡心中無限事          마음속 숱한 사연 모두 털어 놓는 듯

輕攏慢撚撥復挑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다시 퉁기니

初爲霓裳後六么          처음은 예상곡 뒤에는 육요(六么)구나.

大絃嘈嘈如急雨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 같이

小絃切切如私語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 같이

嘈嘈切切錯雜彈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大珠小珠落玉盤          큰 구슬 작은 구슬 옥 쟁반에 떨어지듯

間關鶯語花底滑          때로는 꾀꼬리 소리 꽃가지 사이 흐르듯

幽咽泉流氷下灘          샘물이 어름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 듯

氷泉冷澁絃凝絶          찬물이 얼어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凝絶不通聲漸歇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네.

別有幽愁暗恨生          그러자 깊은 근심 남모르는 원한 일어

此時無聲勝有聲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네.

銀甁乍破水漿迸          갑자기 은병 깨져 술이 쏟아져 나오듯

鐵騎突出刀槍鳴          철기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울듯

曲終收撥當心畫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 번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          네 줄이 한꺼번에 비단을 찢는 소리.

東船西舫悄無言          강 위의 모든 배들 고요히 말을 잊고

唯見江心秋月白          오직 강 가운데 가을 달만 휘영청 하구나.

 

第二段                        늙은 창부의 회상과 하소연

 

沈吟放撥揷絃中          시름에 잠겨 있다 비파를 거두고

整頓衣裳起斂容          의상을 정돈하고 앉음새를 고친 후에

自言本是京城女          스스로 말하기를 본시 서울 여자로

家在蝦蟆陵下住          집은 하마릉 아래 있었다하네.

十三學得琵琶成          열 셋에 琵琶 타기를 모두 배우고

名屬敎坊第一部          이름이 교방 제일부에 속해 있었는데

曲罷曾敎善才服          곡을 끝내면 늘 스승이 감복하였고

粧成每被秋娘妬          화장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하네.

五陵年少爭纏頭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一曲紅綃不知數          한 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었고

鈿頭銀篦擊節碎          자개 박은 은빗을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血色羅裙飜酒汚          붉은 비단치마 술로 얼룩졌었다하네.

今年歡笑復明年          웃고 즐기며 한 해 한 해 보내느라

秋月春風等閑度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는데

弟走從軍阿姨死          동생은 군대 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暮去朝來顔色故          어느덧 나이 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門前冷落車馬稀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도 드물어

老大嫁作商人婦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 되니

商人重利輕別離          상인은 이익보다 이별을 가벼이 여겨

前月浮梁買茶去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하네.

去來江口守空船          강 어귀에 왔다 갔다 빈 배만 지키자니

繞船月明江水寒          배 비추는 밝은 달에 강물만 차가와

夜深忽夢少年事          밤이 깊어 문득 어린시절 꿈을 꾸면

夢啼妝淚紅欄干          꿈도 울어 화장 눈물 얼굴을 적신다네.

 

第三段                        백낙천의 좌천 생활 하소연

 

我聞琵琶已嘆息          비파 소리 듣고 이미 탄식 했는데

又聞此語重喞喞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네.

同是天涯淪落人          우리는 같은 천애의 불행한 신세

相逢何必曾相識          상봉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我從去年辭帝京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떠나

謫居臥病潯陽城          심양성에 귀양 와 병들어 누웠다네.

潯陽地僻無음악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終歲不聞絲竹聲          한해가 다가도록 악기소리 못 듣고

住近盆江地低濕          분강 가까이 살아 땅이 낮고 또 습해

黃蘆苦竹繞宅生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타네.

其間旦暮聞何物          그 간 아침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杜鵑啼血猿哀鳴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슬픈 소리.

春江花朝秋月夜          봄 강의 아침 꽃과 가을 밤 달빛 아래

往往取酒還獨傾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이고

豈無山歌與村笛          어찌 산 노래와 초동의 피리 없으랴만

嘔啞嘲哳難爲聽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네.

今夜聞君琵琶聲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          신선 음악 들은 듯 귀 잠시 맑았네.

莫辭更坐彈一曲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 들려주오

爲君飜作琵琶行          내 그대 위해 비파항을 지으리니.

 

第四段                        동병상련의 눈물에 화려한 날들은 가고

 

感我此言良久立          나의 말에 느꼈는지 한 동안 서 있더니

郤坐促絃絃轉急          물러앉아 줄 울리니 곡조는 점점 급해져

凄凄不似向前聲          슬프기 그지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滿座重聞皆掩泣          듣는 모든 사람 소리죽여 흐느끼네.

座中泣下誰最多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의 청삼에 흠뻑 젖어 있구나.

 

구강군 - 양자강 남쪽에 임한 현 구강시 일대

심양 - 중국 강서성 감당호가 양자강으로 들어가는 곳. 현재의 구강시에 해당

분수 - 구강시 서쪽을 흘러 양자강에 들어가는 작은 강

간관(間關) - 울퉁불퉁 험하다. (소리가) 아름답다. 새가 지절대는 소리의 의성어

예상 – 예상우의 곡을 말함 당나라 중기에 매우 중시되던 악곡. 10여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36단으로 구성된 음악

육요 - 당나라 시대의 비파곡명

하마릉 - 중국 서안의 중심지의 동남 수km 지점. 기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함

선재 - 비파의 명인

추랑 - 당나라 명기 두추랑을 말함

전두 - 행하. 무희의 머리 장식 비단

오릉소년 - 장안 북쪽 함양 오릉 부근에 사는 부유한 자녀

부량 - 현 강서성 경덕진 동북부 차의 명산지

강주 - 당나라 시기의 지명. 현재의 구강시 일대

 

 

悲哉行                     슬픔의 노래

 

悲哉爲儒者              슬프구나, 선비 된 자여

力學不知疲              피로도 모른 채 힘써 배웠고

讀書眼欲暗              눈이 침침해지도록 책 읽고

秉筆手生胝              손에 굳은 살 지도록 붓을 잡아도

十上方一第              열 번 응시해야 간신히 급제한다.

成名常苦遲              이름 얻기가 항상 고생스럽고 늦으며

縱有宦達者              비록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라도

兩鬢已成絲              양 귀밑머리는 벌써 백발이 된다.

可憐少壯日              가련하다 젊은 날들이여

適在窮賤時              궁핍하고 천한 때를 살다가

丈夫老且病              장부가 되어서는 늙고 병들어 버리니

焉用富貴爲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데 무슨 소용이리오.

沈沈朱門宅              깊고 깊은 권문세가 집

中有乳臭兒              그 안에 젖비린내 나는 아이

狀貌如婦人              외모는 여자들 같이 여리고

光明膏粱肌              기름진 음식에 살결은 밝고 빛난다.

手不把書卷              손에는 책도 잡아보지 않고

身不擐戎衣              몸에는 군복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다.

二十襲封爵              나이 이십에 봉록을 세습 받으니

門承勳戚資              가문에서 공훈과 위세를 이어받기 때문이다.

春來日日出              봄이 되면 날마다 나가는데

服御何輕肥              복장과 말은 어찌 그리도 가볍고 기름진가.

朝從博徒飮              아침에는 노름꾼들과 술 마시고

暮有娼樓期              저녁이면 기생집에서 사랑을 나눈다.

平封還酒債              봉토의 수입으로 술 외상 갚아주고

堆金選蛾眉              황금을 쌓아놓고 미인들을 고른다.

聲色狗馬外              노래와 주색잡기 외에는

其餘一無知              그밖에 아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山苗與澗松              산 위는 작은 나무요 골짜기는 소나무

地勢隨高卑              지세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다.

古來無奈何              예부터 어찌할 수 없었거늘

非獨君傷悲              오직 그대만이 상처받아 슬퍼하는가

 

 

貧家女                     가난한 집안의 여자

 

天下無正聲              천하에 바른 음악 없으니

悅耳卽爲娛              듣기 좋으면 기쁘다 여긴다네.

人間無正色              세상에 바른 용모 없으니

悅目卽爲姝              보기 좋으면 예쁜다 여긴다네.

顔色非相遠              용모는 별 차이 없지만

貧富則有殊              빈부는 차이가 있다네.

貧爲時所棄              가난하면 세상에 버림받고

富爲時所趨              부유하면 세상이 따르게 된다네.

紅樓富家女              붉은 누각의 부자집 딸

金縷繡羅襦              금실로 수놓은 옷 입는다네.

見人不斂手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

嬌癡二八初              순진한 열여섯 어린 나이인데도

母兄未開口              오빠가 말 꺼내지 않아도

已嫁不須臾              시집가는 건 문제 없으리라.

綠窗貧家女              녹창가의 가난한 집 딸

寂寞二十餘              쓸쓸히 보낸 지 이십여년이구나.

荊釵不直錢              가시나무 비녀는 일푼도 안되고

衣上無直珠              옷에는 값진 구슬 하나도 없도다.

幾廻人欲聘              몇 번이고 폐백을 보내려도

臨日又蜘躕              기일이 되면 또다시 머뭇거리고

主人會良媒              주인은 중매장이 불러놓고

置酒滿玉壺              옥호리병에 술을 가득 채운다.

四座且勿飮              사람들아 잠시 마시지 말고서

聽我歌兩途              나의 노래 두 가지 들어보소서.

富家女易嫁              부자집 딸은 시집가기 쉬워

嫁早輕其夫              일찍 시집가도 남편 무시하고

貧家女難嫁              가난한집 딸은 시집가기 어려워

嫁晩孝於姑              늦게 가도 시부모께 효도한다오.

聞君欲娶婦              그대 장가가려 한다는데

娶婦意何如              어떤 아내를 얻고 싶은지.

 

 

四十五                     마흔 다섯 살

 

行年四十五              내 나이 이미 마흔 다섯

兩鬢半蒼蒼              두 귀밑머리 반백이 되었다.

淸瘦詩成癖              성격이 말쑥하고 작시가 버릇되어

粗豪酒放狂              억세고 거칠어 취하면 광태로다.

老來猶委命              늙어서는 오히려 천명에 맡기고

安處卽爲鄕              편안히 처할 곳은 고향이로다.

或擬廬山下              혹 여산 기슭쯤에다가

來春結草堂              봄이면 초당이나 엮어 볼까나.

 

 

思竹窓                     그리운 대나무 창가

 

不憶西省松              서성(西省)의 소나무 기억나지 않고

不憶南宮菊              남궁의 국화도 기억나지 않는다.

惟憶新昌堂              오직 기억나는 것은 신창당 뿐

蕭蕭北窓竹              쓸쓸하다, 북창의 대숲이여.

窓閑枕簟在              한가한 창가에 베개와 삿자리 남았는데

來後何人宿              내 돌아 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묵을까.

 

 

山路偶興                  산길에서 우연히 흥겨워

 

筋力未全衰              근력은 아직 다하지 않았고

僕馬不至弱              마부와 말도 약해지지 않다.

又多山水趣              더욱이 자연에 흥취가 많아

心賞非寂寞              마음에 느껴짐이 적막하지는 않다.

捫蘿上煙嶺              덩굴 부여잡고 안개 낀 고개 올라

蹋石穿雲壑              바위를 지나 구름 낀 산골짜기 지난다.

谷鳥晩分啼              골짜기 새들은 저녁에도 나누어져 울고

洞花秋不落              골짝의 꽃들은 가을인데도 지지 않는다.

提籠復攜榼              대그릇 쥐고 가다 다시 술동이 들고 가

遇勝時停泊              절경을 만나면 때때로 멈추어 머문다.

泉憩茶數甌              샘이 보이면 쉬면서 차를 몇 잔 마시고

嵐行酒一酌              안개 속을 걸으며 술 한 잔을 마신다.

獨吟還獨嘯              혼자 시를 읊으며 다시 혼자 휘파람 부니

此興殊未惡              이러한 흥취는 결코 싫지가 않다.

假使在城時              만약 성 안에 있을 때였다면

終年有年樂              한 해가 다가도 즐거울 날 없었으리라.

 

 

山中獨吟                  산중에서 홀로 읊다

 

人各有一癖              사람은 고유한 병적 버릇하나 있는데

我癖在章句              나의 병적 버릇은 글 쓰는 것에 있다네.

萬緣皆已消              온갖 인연이 다 이미 사라졌지만

此病獨未去              이 병폐만 오직 아직 떠나지 않았도다.

每逢美風景              좋은 풍경을 만날 때마다

或對好親故              혹 친한 친구라도 만나는 듯하다네.

高聲詠一篇              소리 높여 한 편을 읊고 나면

怳若與神遇              마치 신을 만난 듯이 멍해진다네.

自爲江上客              스스로 강호의 나그네 되어서

半在山中住              절반을 산 속에 머물러 산다네.

有時新詩成              때때로 새로 시가 지어지면

獨上東巖路              홀로 동쪽 바윗길로 올라간다네.

身倚白石崖              흰 바위 언덕에 몸을 기대고

手攀靑桂樹              손으로 푸른 계수나무 잡고 오른다네.

狂吟驚林壑              미친 듯이 읊으면 산골짜기 놀래고

猿鳥皆窺覰              원숭이와 새들도 모두 가만히 엿본다네.

恐爲世所嗤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 될까 두려워

故就無人處              그래서 사람 없는 곳으로 나간 것이라네.

 

 

山下宿                     산 아래서 묵으며

 

獨到山下宿              홀로 산 아래에 이르러 묵으며

靜向月中行              고요히 달빛 속을 향해 걸어본다.

何處水邊碓              어느 곳인가, 물가 방앗간에서

夜舂雲母聲              밤에 운모(雲母) 찧은 소리가 들려온다.

 

 

三年別

 

悠悠一別已三年          아득한 한 번의 이별이, 벌써 삼 년

相望相思明月天          보고 싶고 그리운 달 밝은 하늘

斷腸靑天望明月          애타는 맑은 날에 밝은 달 보니

別來三十六回圓          이별한 후 서른여섯 번 째 둥근달.

 

 

三年爲刺史二首       삼 년 동안 자사를 지내고서

 

1

三年爲刺史              삼 년 동안 자사가 되어 일했어도

無政在人口              백성의 입에 오르는 치적도 없었다.

唯向郡城中              오직 고을 성읍 안을 향하고

題詩十餘首              십여 수의 시를 지었었다.

慙非甘棠詠              부끄러워라, 선정을 읊는 시 없으니

豈有思人否              어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2

三年爲刺史              삼 년 동안 자사가 되어 일했어도

飮氷復食蘗              찬 물 마시고 다시 당귀만 먹었구나.

唯向天竺山              오직 천축산을 향하여

取得兩片石              두 조각 돌을 취하였도다.

此抵有千金              이것을 밀어내고 천금을 찾았으니

無乃傷淸白              이것이 바로 청백리 정신을 상하게 한 것 아닌가.

 

 

三月三日                    삼월 삼짓날

 

暮春風景初三日          저문 어느 봄날에 풍경은 초 사흘

流世光陰半百年          흐르는 세월에 반백년이 다되었다.

欲作閒遊無好伴          한가한 시간 가지려도 친구 없어

半江惆愴却回船          반쯤 온 강에서 서러워 배를 되돌린다.

 

 

商山路有感              상산 가는 길에

 

萬里路長在              만 리 먼 길은 언제나 있었지만

六年今身歸              육 년 지나 이제야 이 몸 돌아왔구나.

所經多舊館              지나는 곳마다 옛 여관 많았지만

太半主人非              거의 태반이 옛 주인들이 아니었다.

 

 

上陽人                       상양 사람

 

上陽人上陽人             상양궁의 궁녀여

紅顔暗老白髮新          홍안은 이미 늙고 백발만 새로워

綠衣監使守宮門          푸른 옷의 궁지기가 궁문을 지킨다.

一閉上陽多少春          상양궁에 갇힌 세월 그 얼마이던가

玄宗末歲初選入          현종 말년에 처음 뽑힘에 들어

入時十六今六十          열여섯에 입궐하여 지금은 육십이라.

同時采擇百餘人          같은 때 뽑힌 궁녀 백여 명이었으나

零落年深殘此身          시들고 늙어 죽어 이 몸만 남았구나.

憶昔呑悲別親族          지난 슬픔 삼키며 친척과 이별할 때

扶入車中不敎哭          수레에 오르는 나를 잡아주며 울음 달래며

皆云入內便承恩          입궐하면 임금의 총애 받으리라 사람들의 말이었다.

臉似芙蓉胸似玉          얼굴은 부용같고 젖가슴 옥과 같았는데

未容君王得見面          미처 황제의 눈에 들기도 전에

已被楊妃遙側目          이미 양귀비의 눈 흘김 질투를 받았다.

妬令潛配上陽宮          그녀의 질투로 상양궁에 갇히어서

一生遂向空房宿          일생을 독수공방으로 지냈었다.

宿空房秋夜長              독수공방하니 가을밤은 길기만 했고

夜長無寐天不明          밤은 길어 못 이루는 데 날마저 더디 새었다.

耿耿殘燈背壁影          가물거리는 새벽 등잔에 비쳐진 그림자

蕭蕭暗雨打窓聲          쓸쓸한 밤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春日遲                        봄날은 지루하고 길기도 하다

日遲獨坐天難暮          지루하게 홀로 앉은 채로 날은 저물지 않았다.

宮鶯百囀愁厭聞          궁궐 안 꾀꼬리 소리 수심 겨워 듣기 싫고

梁燕雙栖老休妬          들보의 짝 지은 제비 늙어서 질투도 않았도다.

鶯歸燕去長悄然          꾀꼬리와 제비가 돌아가니 오래도록 외로웠고

春往秋來不記年          봄 가고 가을 와도 세월을 기억 못하였다.

唯向深宮望明月          오직 깊은 궁궐에서 밝은 달만 바라보며

東西四五百廻圓          보름달 뜨고 지고 사오백 번은 되었었다.

今日宮中年最老          이제는 궁궐 안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大家遙賜尙書號          천자께서 상서의 호칭을 내리셨다.

小頭鞋履窄衣裳          신발 끝이 뾰쪽하고 옷은 좁으며

靑黛點眉眉細長          푸른 먹으로 그린 눈썹은 가늘고 길어서

外人不見見應笑          궁궐 밖의 사람이 보면 반드시 웃으리라.

天寶末年時世粧          촌스런 천보말년의 세태라고 말이요

上陽人苦最多              상양궁의 인생이여, 고생이 너무 심하구나.

少亦苦老亦苦              젊어서도 고생 늙어서도 고생이로다.

少苦老苦兩如何          젊어서 고생 늙어서 고생 이 두 고생을 어찌하나

君不見昔時呂尙美人賦 그대는 못 보았는가, 옛날 여상의 미인부를

又不見今日上陽宮人白髮歌 또한 못 보았는가, 오늘날 상양궁인의 백발가를 말일세.

 

 

傷友                         벗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陋巷孤寒士              골목의 외롭고 빈한한 선비

出門苦恓恓              문 나서면 너무나 고통스럽다.

雖云志氣高              비록 그 기개가 높다 하더라도

豈免顔色低              어찌 쓸쓸한 얼굴빛 없으랴.

平生同門友              평생동안 같은 문하의 친구는

通籍在金閨              명패가 금규(金閨)에 걸려있구나.

囊者膠漆契              옛날에는 돈독한 사이였으나

邇來雲雨睽              지금은 서로의 벽이 생겼구나.

正逢下朝歸              마침 대궐에서 퇴근하던 길에

軒騎五門西              오문의 서쪽에서 마차를 만났다.

是時天久陰              이때 날씨는 오랫동안 흐리고

三日雨凄凄              삼일동안 비가 처량하게 내렸다.

蹇驢避路立              절름발이 당나귀는 길 피해 서 있는데

肥馬當風嘶              살찐 말은 바람 맞아 소리 내어 우는구나.

廻頭忘相識              머리 돌려 모르는 채 하고

占道上沙堤              길을 차지하고 모래 언덕 위를 지나간다.

昔年洛陽社              그 옛적 낙양사에서는

貧賤相提攜              가난하고 비천한 것을 서로 도왔는데

今日長安道              오늘날 장안의 길에서는

對面隔雲泥              얼굴을 맞대고도 아주 외면해 버린다.

近日多如此              요즈음 이런 일이 많으니

非君獨慘悽              그대만의 처참함이 아니로다.

死生不變者              생사의 길에서도 변치 않은 자는

唯聞任與黍              오로지 임공숙과 여봉일 뿐이라 한다.

 

 

傷春詞                        봄날에 마음 아파서

 

深淺檐花千萬枝          짙고 옅은 처마 가의 꽃 천 만 가지

碧紗牕外囀黃鸝          창밖 푸른 버들잎에 꾀꼬리들 지저귄다.

殘粧含淚下簾坐          얼룩진 화장에 머금은 눈물, 주렴에 떨구며 앉아

盡日傷春春不知          종일토록 봄날에 마음 아파도 봄은 모른다.

 

 

傷宅                         저택을 보고 마음 상하다

 

誰家起甲第              누구 집이 저렇게도 좋은가

朱門大道邊              붉고 큰 대문은 대로변에 있다.

豊屋中櫛比              우람한 지붕은 안으로 즐비하고

高牆外廻環              높은 담장은 밖으로 둘러싸있구나.

纍纍六七堂              겹겹이 솟아있는 예닐곱 채 집들

棟宇相連延              마룻대와 처마는 줄줄이 이어있다.

一堂費百萬              집 한 채에 백만 금이나 되고

鬱鬱起靑煙              가득히 푸른 연기 피어오른다.

洞房溫且淸              안房은 따뜻하고도 시원하고

寒暑不能干              추위나 더위가 침범하지 못한다.

高堂虛且逈              높은 집은 넓고도 앞이 탁 트여

坐臥見南山              앉아도 누워도 남산이 다 보인다.

繞廊紫藤架              행랑을 두른 자주색 등나무 시렁 있고

夾砌紅藥欄              섬돌을 끼고 있는 작약 울타리도 보인다.

攀枝摘櫻桃              가지를 휘어잡고 앵도를 따고

帶花移牡丹              꽃 있는 채로 이식된 모란꽃도 보인다.

主人此中坐              주인은 이 안에 앉아 있는데

十載爲大官              십 년동안 고관대작을 지냈다네.

廚有臭敗肉              부엌에는 썩어 냄새 나는 고기가 있고

庫有貫朽錢              창고에는 녹슨 돈이 가득하다네.

誰能將我語              누가 자기 말로 말할 수 있겠는가

問爾骨肉間              묻노니, 너희 가까운 친척 중에서도

豈無窮賤者              어찌 곤궁한 자들이 없겠으며

忍不救饑寒              가난과 추위를 어찌 구제해주지 않겠는가.

如何奉一身              어찌하여 네 한 몸만 봉양하고

直欲保千年              천 년토록 누리려고 하는가.

不見馬家宅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마씨 일가가

今作奉誠園              지금은 봉성원으로 되어 있는 것을.

 

 

上香爐峯                     향로봉에 오르며

 

倚石攀蘿歇病身          바위에 기대고 덩굴 잡아 병든 몸 쉬노니

靑笻竹杖白紗巾          흰 깁 수건에 푸른 대나무 지팡이 짚었구나.

他時畫出廬山障          훗날 여산의 언덕을 그릴 때 장애는

便是香爐峯上人          곧 향로봉 위에 있는 이 사람이리라.

 

 

西涼伎                        서량 땅의 광대

 

西涼伎                        서량 놀이

假面胡人假獅子          가면 쓴 오랑캐 가면 쓴 사나이

刻木為頭絲作尾          나무 깎아 머리 삼고 실로 꼬리 만들었네.

金鍍眼睛銀貼齒          금으로 눈알 칠하고 은으로 이빨 붙이고

奮迅毛衣擺雙耳          털옷을 빨리 털고 두 귀를 흔들어대네.

如從流沙來萬裡          마치 유사지방에서 만 리나 멀리서 온 듯이

紫髯深目兩胡兒          자주빛 수염에 깊은 눈알을 한 두 오랑캐 놈

鼓舞跳粱前致辭          북치며 날뛰듯 춤추고서 앞으로 나와 말하네.

應似涼州未陷日          아주 꼭 같도다 양주가 함락되기 전 날

安西都護進來時          안서 도호가 진상하던 때와 같아요.

須臾운得新消息          잠시 후에 새 소식을 전하기를

安西路絕歸不得          안서 길은 끊어져 돌아가지 못한다네요 하니

泣向獅子涕雙垂          울면서 사자를 향하는데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네.

涼州陷沒知不知          양주가 함락된 것 아느냐 모르느냐

獅子回頭向西望          사자는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며

哀吼一聲觀者悲          서럽게 한 소리로 울부짖으니 보는 사람도 슬퍼하네.

貞元邊將愛此曲          정원연간 국경의 장군들은 이 노래를 좋아하여

醉坐笑看看不足          취하여 앉아 웃으면서 보고 또 보고 하였다네.

享賓犒士宴三軍          손님과 군사를 청하여 삼군에게 잔치를 벌이니

獅子胡兒長在目          사자와 오랑캐 언제나 눈앞에 보인다네.

有一征夫年七十          나이 칠십 된 늙은 병사 나타나

見弄涼州低面泣          서량놀이를 보고 얼굴을 숙이고 울었다네.

泣罷斂手白將軍          울고 나서 손을 잡고 장군에게 이뢰기를

主憂臣辱昔所聞          임금의 근심은 신하의 치욕이라 전에 저는 들었습니다.

自從天寶兵戈起          천보연간부터 전쟁이 일어나

犬戎日夜吞西鄙          오랑캐들이 밤낮으로 서부 구석진 곳을 병탄하여

涼州陷來四十年          양주가 함락된 지 이미 사십 년이고

河隴侵將七千裡          하롱이 침략 당한 것이 칠천 리나 됩니다.

平時安西萬裡疆          평화롭던 시절 안서는 만 리나 되는 우리의 영토

今日邊防在鳳翔          지금은 국경지방 봉상이 되어있습니다.

緣邊空屯十萬卒          변경에 헛되이 주둔한 십만 병사들

飽食溫衣閒過日          배불리 머고 따뜻이 입으며 한가로이 세월만 보냅니다.

遺民腸斷在涼州          단장의 고통 받는 백姓은 지금 양주에 버려져 있는데도

將卒相看無意收          장군과 병사들은 보기만 하고 수복할 뜻이 없습니다.

天子每思長痛惜          천자께서 생각 때마다 오랫동안 괴롭고 안타깝게 여기시니

將軍欲說合慚羞          장군께서 말씀 올리고 싶으나 부끄러울 것입니다.

奈何仍看西涼伎          어찌하여 그냥 서량의 놀이만 구경하시면서

取笑資歡無所愧          웃고 기뻐하기만 하시니 부끄러움도 없습니까.

縱無智力未能收          설령 지혜와 능력이 없어 수복하지 못하시더라도

忍取西涼弄為戲          차마 서량놀이를 장난삼아 할 수 있습니까.

 

 

西原晩望                  서쪽 언덕에서 저녁에 바라보다

 

花菊引閑步              봄 가을날에는 한가히 걷는데

行上西原路              서쪽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노라.

原上晩無人              언덕 위에는 저녁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어

因高聊四顧              높이 올라가서 애오라지 사방을 돌아본다.

南阡有煙火              남쪽 길에는 밥 짓는 연기 오르고

北陌連墟墓              북쪽 길에는 무덤만이 들어서 있도다.

村鄰何蕭疎              고을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가

近者猶百步              가까운 곳은 백 걸음 정도로다.

吾廬在其下              내 오두막집도 그 아래에 있는데

寂寞風日暮              적막하게도 바람에 해가 저물어간다.

門外轉枯蓬              문밖에는 마른 쑥이 바람에 굴러다니고

籬根伏寒兔              울타리 아래에는 겨울 토끼가 엎드려 있도다.

故園汴水上              고향은 변수 위에 있었으나

離亂不堪去              혼란하여 떠나지 않을 수 없었도다.

近歲始移家              근래에 비로소 이사 와서

飄然此杓住              표연히 이곳에서 살게 되었도다.

新屋五六間              새로 지은 집은 대여섯 칸

古槐八九樹              오래된 느티나무 여덟아홉 그루.

便是衰病身              이곳은 곧 노쇠하고 病 든 몸이

此生終老處              이 人生이 늙은 삶을 마칠 곳이로다.

 

 

惜落花                    지는 꽃이 애달파

 

夜來風雨急              간밤에 비바람 심하였으니

無復舊花林              옛 꽃과 숲을 회복하지 못하리라.

枝上三分落              가지 위의 삼분의 일이나 떨어져

園中二寸深              정원 안이 두 치나 깊어졌도다.

日斜啼鳥思              해 지는 저녁에 우짖는 새들의 심사

春盡老人心              저무는 봄날에 늙어가는 사람들 마음이라.

莫怪添盃飮              술잔을 보탠다 이상히 여기지 말라

情多酒不禁              정이 많아 술을 금할 수가 없다네.

 

 

惜牧丹花                    목란화를 아쉬워하다

 

惆愴階前紅牡丹          섬돌 앞 붉은 목란을 아쉬워하노니

晩來唯有兩枝殘          해지는 저녁에는 오직 두 가지만 남았구나.

明朝風起應吹盡          내일 아침 바람 일면 모두가 불어 날리리니

夜惜衰紅把火看          지는 꽃잎 아쉬워 이 밤 불 밝히고 바라본다.

 

 

歲暮                        한 해가 다가는데

 

已任時命去              이미 시운이 가는대로 맡기고

亦從歲月除              또한 세월이 가는대로 따라간다.

中心一調伏              심중을 하나로 바로 가져

外累盡空虛              외부의 얽힘을 다 비워버렸다.

名宦意已矣              명예로운 벼슬자리에 대한 마음 버리고

林泉計何如              자연으로 돌아갈 생각이 어떠한가.

擬近東林寺              동림사 가까운 곳 어디

溪邊結一廬              개울가에 한 채의 오두막 지어볼까.

 

 

小曲新詞二首            짧은 곡의 새 노랫말

 

霽色鮮宮殿              갠 날빛에 궁궐은 선명하고

秋聲脆管絃              가을 소리에 음악소리 가냘프다.

聖明千歲樂              태평한 세상 천 년이 즐거운데

繼情似今年              이어지는 속마음도 올해와 같아라.

 

2

紅裙明月夜              밝은 달 밤, 붉은 치마

碧簟早秋時              이른 가을철에 푸른 대나무.

好向昭陽宿              기분 좋아 소양궁에 가 묵으니

天涼玉漏遲              천량한 날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消暑                        더위를 삭히다

 

何以消煩暑              무엇으로 성가신 더위 삭일까

端居一院中              집 안에 단정하게 앉아 있으면 될 일.

眼前無長物              눈앞에 거추장스러운 것들 없고

窓下有淸風              창 아래서 시원한 바람이 이네.

熱散由心靜              마음 고요하니 열기 흩어지고

涼生爲室空              방 안이 텅 비어 서늘함이 감도네.

此時身自得              이러한 것 나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

難更與人同              다른 이와 함께 하기는 어렵다네.

 

 

逍遙詠                      자유로운 삶을 노래함

 

亦莫戀此身,            이 몸 사모하지도 말고

亦莫厭此身。            이 몸 혐오하지도 마라

此身何足戀,            이 몸을 어찌 사모하리오

萬劫煩惱根。            만겁 번뇌의 뿌리이거늘.

此身何足厭,            이 몸을 어찌 혐오하리오

一聚虛空塵。            허공의 먼지가 한 번 모인 것뿐인데

無戀亦無厭,            사랑도 미움도 없어지면

始是逍遙人。            그때야 비로소 소요인

 

전당시 卷434에 실린 시

 - 소요인이란 소풍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도교의 절대자유를 얻은자, 무위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뜻으로 쓰임

 

 

蕭員外寄新蜀茶          소원외가 신선한 촉나라 차를 부쳐오다

 

蜀茶寄到但驚新          촉차를 부쳐옴에 신선함이 놀라워라

渭水煎來始覺珍          위수의 물로 달여 내니 귀한 맛 알겠다.

滿甌似乳堪持翫          젖빛 주발에 가득 채워 천천히 맛보나니

況是春深酒渴人          이렇게 짙은 봄날 술 고픈 사람에게야.

 

 

小池二首

 

1

晝卷前齋熱              낮에는 앞 서재가 더웠는데

晩愛小池淸              저녁에는 작은 연못에 물이 맑다.

映林餘景沒              햇볕 든 숲에 경치가 어둑한데

近水微涼生              가까운 물가에 미풍이 가볍게 인다.

坐把蒲葵扇              앉은 채로 포규선 손에 잡고

閒吟三兩聲              한가하게 두 세 마디 시를 읊는다.

 

有意不在大              뜻이 큰 곳에 있지 않아

湛湛方丈餘              담담하여 마음이 여유롭구나.

荷側瀉淸露              연꽃 곁에 맑은 이슬 쏟아지고

萍開見游魚              개구리밥 열리니 헤엄치는 물고기들.

每一臨此坐              매번 이곳에 앉을 적마다

憶歸靑溪居              청계의 거처에 돌아가고 싶어라.

 

 

贖雞                        닭을 되사서 풀어주며

 

淸晨臨江望              맑은 새벽 강가에서 바라보니

水禽正諠繁              물새들이 마침 어지럽게도 소란스럽다.

鳧雁與鷗鷺              물오리와 기러기, 갈매기와 백로들이

游颺戲朝暾              노닐며 날아올라 아침 햇살을 희롱한다.

適有鬻雞者              마침 닭을 파는 사람이 나타나

挈之來遠村              닭들을 끌고 먼 시골에서 왔다.

飛鳴彼何樂              날아 지저귀는 소리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窘束此何寃              막히어 갇힌 이것들은 얼마나 원망스럽겠는가.

喔喔十四雛              꼬꼬댁 거리며 악을 쓰는 열네 마리의 닭들

罩縛同一樊              갇히어 한 닭장에 있구나.

足傷金距蹜              다리 다친 쇠 발톱으로 종종 걸음치고

頭搶花冠翻              머리 서로 부딪쳐 벼슬이 뒤집혀있구나.

經宿廢飮啄              밤새도록 마시지도 먹이를 쪼지도 못하고

日高詣屠門              새가 높이 솟으면 도살장으로 가겠구나.

遲廻未死間              죽지 않은 기간에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은

飢渴欲相呑              주리고 목말라 삼키고 싶어서라.

常慕古人道              언제나 옛사람의 도리를 흠모하여

仁信及魚豚              어짊과 믿음이 물고기와 돼지에도 미친다.

見茲生惻隱              이 닭들을 보니 측은한 마음 일어나

贖放雙林園              돈 들여 되사서 쌍림원에 놓아준다.

開籠解索時              닭장 열고 끈을 풀어 줄 때

雞雞聽我言              닭들아 내 말 좀 들어라

與爾鏹三百              너희들을 삼백 량 돈을 주었으나

小惠何足論              어찌 足히 작은 은혜를 논하겠는가.

莫學銜環雀              배우지 말라, 옥을 물고 온 공작새가

崎嶇謾報恩              거북하게도 보은의 도를 더럽힌 일을.

 

 

續古詩

 

掩淚別鄕里              눈물을 가리고 고향을 떠나

飄颻將遠行              쓸쓸히 장차 먼 곳으로 가려네.

茫茫綠野中              아득하고 푸른 들판 속

春盡孤客情              봄도 다 지난 외로운 나그네 심정

驅馬上丘隴              말을 몰아 언덕을 오르니

高低路不平              높고 낮아 길은 평탄치 않도다

風吹棠梨花              바람이 해당화와 배꽃에 불고

啼鳥時一聲              때때로 새들도 울어 댄다

古墓何代人              이 옛무덤은 어느 시대 사람의 무덤인지

不知姓與名              그 성명도 알지 못 하겠네.

化作路傍土              길가의 한 줌 흙으로 변하여

年年春草生              해마다 봄풀만 돋아나는구나.

感彼忽自悟              이에 느껴져서 문득 저절로 생각나네

今我何營營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送客                            손님을 보내며

 

病上籃輿相送來          병으로 람여에 올라 전송하고 돌아오니

衰容秋思兩悠哉          쇠한 얼굴 가을 생각이 모두 아득하다.

涼風嫋嫋吹槐子          찬바람 하늘하늘 홰나무에 불어와

却請行人勸一盃          도리어 행인에게 한 잔 술을 권한다.

 

 

松聲

 

月好好獨坐              달이 좋아 혼자 앉기도 좋나니

雙松在前軒              두 소나무가 집 앞에 서 있도다.

西南微風來              서남쪽에서 미풍이 불어와

潛入枝葉間              몰래 가지와 잎 사이로 불어온다.

蕭寥發爲聲              쓸쓸히 날 위해 소리 내고

半夜明月前              밤 깊어지자 밝은 달이 내 앞에 있다.

寒山颯颯雨              차가운 산에는 삽삽히 비 내리고

秋琴泠泠絃              가을 거문고의 영령한 줄 소리

一聞滌炎暑              한 번 들으니 불같은 더위 씻기고

再聽破昏煩              다시 들으니 어둡고 번잡한 일 없어진다.

竟夕遂不寐              저녁이 다하도록 잠 못 이루니

心體俱翛然              마음과 몸이 모두 찢어지는 듯하다.

南陌車馬動              남쪽 거리에 수레와 말이 움직이고

西鄰歌吹繁              서쪽 마을에는 노랫소리 빈번하다.

誰知茲簷下              누가 알리요 이 처마 아래서는

滿耳不爲喧              귀에 가득 차나 결코 시끄럽지 않은 것을.

 

 

松齋自題                  송재에서 스스로 짓노라

 

非老亦非少              늙지도 않고 또한 젊지도 않으니

年過三紀餘              기(紀) 12년 나이 서른여섯 지났네.

非賤亦非貴              천함 아니고 또한 귀함도 아니니

朝登一命初              조정에 올라 첫 명받은 초기

才小分易足              재주 적어 분수 쉽게 족하고

心寬體長舒              마음 너그러워 몸이 늘 편하다.

充腸皆美食              배 채우면 모두 맛난 음식

容膝卽安居              무릎 받아들이면 편한 거처

況此松齋下              하물며 송제 아래서

一琴數帙書              거문고 하나, 수 질의 책.

書不求甚解              책은 깊은 이해 구하지 않고

琴聊以自娛              거문고는 스스로 즐기네.

夜直入君門              밤 당직으로 대궐 들고

晩歸臥吾廬              저녁에 돌아와 집에 눕는다.

形骸委順動              몸뚱아리는 움직임에 순응하여 맡겨두고

方才付空虛              방도의 재주는 공허함에 붙인다네.

持此將過日              이것 지녀 장차 날 보내면

自然多晏如              자연 편함 많다네.

昏昏復黙黙              어두운 듯 또 침묵한 듯

非智亦非愚              지혜도 아니고 또 어리석음도 아니네.

 

 

送春

 

三月三十日              때는 삼월 삼십 일

春歸日復暮              봄은 가려하고 해도 다시 지려한다.

惆悵問春風              아쉬움에 봄바람에 물어보노니

明朝應不住              내일 아침에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거야.

送春曲江上              곡강 위에서 봄을 보내려니

眷眷東西顧              아쉬움에 동서로 돌아보노라.

但見撲水花              보이는 것은 물위에 떨어지는 꽃

紛紛不知數              분분하여 그 수를 알지 못하겠다.

人生似行客              인생이란 길가는 나그네 같아

兩足無停步              두 발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日日進前程              날마다 앞을 향해 나가지만

前程幾多路              가야할 길은 얼마나 많이 남았을까.

兵刀與水火              전쟁과 천재지변의 재앙을

盡可違之去              모두를 피해 갈 수가 있지만

唯有老到來              오직 늙음이 다가오는 것은

人間無避處              인간으로는 피할 길이 하나 없다.

感時良爲已              시절을 느낌을 진정 그만두고

獨倚池南樹              홀로 못 남쪽 나무에 기대어본다.

今日送春心              오늘 이 봄을 보내는 마음

心如別親故              마치 친구를 보내는 마음 같아라.

 

 

睡覺偶吟                    잠에서 깨어 우연히 읊다

 

官初罷後歸來夜          관리 초임에는 일 마치고 밤에 귀가하고

天欲明前睡覺時          날이 밝기도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었다.

起坐思量更無事          일어나 앉아 생각에 잠겨도 할 일도 없어

身心安樂復誰知          마음과 몸이 편하고 즐거움을 누가 알기나 할까.

 

 

垂釣                        낚싯대 드리우며

 

臨水一長嘯              강가에서 길게 휘파람 불어보니

忽思十年初              문득 지난 십 년 전 일이 생각난다.

三登甲乙第              세 番 진사과에 합격하고

一入承明廬              한 번 한림원에 들어갔었다.

浮生多變化              덧없는 인생 변화가 많나니

外事有盈虛              세상일이란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법.

今來伴江叟              지금은 강가의 노인들과 벗하여

沙頭坐釣魚              모랫가에 앉아서 물고기 낚고 있다

 

 

宿簡寂觀                간적관에 묵다

 

巖白雲尙屯              바위에 흰 구름 아직 모여 있고

林紅葉初隕              숲에는 붉은 단풍잎 처음으로 진다.

秋光引閒步              가을 경치에 끌리어 한가히 걸어감에

不知行遠近              얼마나 멀리 걸었는지도 모르겠구나.

夕投靈洞宿              저녁에 영동관에 투숙하여

臥覺塵機泯              누우니 세상 속된 기운 사라짐을 느낀다.

名利心旣忘              명예와 이익, 마음속에서 이미 잊고

市朝夢亦盡              저잣거리와 조정의 일들 꿈에서도 사라졌다.

暫來尙如此              잠시 와 있어도 이러하거늘

況乃終身隱              하물며 평생토록 숨어 산다면 어떠할까.

何以療夜飢              무엇으로 저녁 시장기 면하여볼까

一匙雲母粉              한 숟가락 운모 가루나 먹어 보련다.

 

 

宿西林寺                     서림사에 묵으며

 

木落天晴山翠開          나뭇잎 지니 하늘 개고 산빛은 푸르러

愛山騎馬入山來          산이 좋아 말을 타고 산에 들어왔노라.

心知不及柴桑令          시상령에게 가지 못할까 생각되어

一宿西林便却回          서림사에 하루 묵고 곧 다시 돌아가노라.

 

 

宿楊家                       양씨 집에서 묵으며

 

楊氏弟兄俱醉臥          양씨 형제는 모두가 취하여 누워있고

披衣獨起下高齋          옷 풀어헤치고 혼자 일어나 재실을 내려간다.

夜深不語中庭立          밤은 깊어가는 데 말없이 뜰 가운데 서니

月照藤花影上堦          달은 등나무 비추고 그림자는 섬돌을 오른다.

 

 

宿紫閣山北邨            자각산 북촌에 묵는데

 

晨遊紫閣峯              새벽에 자각봉을 유람하다가

暮宿山下邨              저녁에는 산 아래 고을에서 묵었소.

邨老見予喜              고을 노인이 나를 반갑게 맞아

爲予開一尊              나를 위해 한 동이 술통을 열었소.

擧杯未及飮              따른 술잔을 들고 마시기지도 전에

暴卒來入門              포악한 군졸들이 찾아 문 열고 들어왔소.

紫衣挾刀斧              자색옷에 칼과 도끼를 들고 온

草草十餘人              초라한 열 명의 사람들이었소.

奪我席上酒              우리 자리의 술을 빼앗고

掣我盤中飧              우리 소반의 저녁밥을 끌어갔다오.

主人退後立              주인은 물러나 뒤에 서서

斂手反如賓              손을 모으며 도리어 손님 같았소.

中庭有奇樹              뜰 가운데에는 진기한 나무 있었는데

種來三十春              심은 지가 이미 삼십 년은 다 되었다오.

主人惜不得              주인은 아까워도 어찌할 수 없었으니

持斧斷其根              군졸들은 도끼로 그 뿌리를 끊어버렸소.

口稱采造家              말하기로는 캐어서 집을 짓는다지만

身屬神策軍              신분은 황제의 군대에 속해있지요.

主人愼勿語              주인은 조심하면서 말 내지 못하게 했으니

中尉正承恩              중위는 바로 황제의 은혜를 받은 자라오.

 

 

宿樟亭驛                장정역에 묵으며

 

夜半樟亭驛              밤 깊은 장정역에는

愁人起望鄕              수심 겨운 사람 일어나 고향 바라본다.

月明何所見              밝은 달에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湖水白茫茫              호수에 가득한 물은 희고도 망망하구나.

 

 

宿竹閣

 

晩坐松檐下              저녁에 소나무 처마 아래 앉고

宵眠竹閣間              밤에는 죽각 사이에서 잠을 잔다.

淸虛當服藥              청허한 마음은 선약을 복용함 같고

幽獨抵歸山              그윽한 기분은 산으로 돌아온 것 같아라.

巧未能勝拙              재치는 졸렬함을 이길 수 없고

忙應不及閒              바쁜 것은 한가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無勞別修道              따로 도를 닦으려 수고할 필요 없으니

卽此是玄關              이것에 이르면 곧 현묘한 경지가 되니라.

 

 

時世粧 流行 淸虛

 

時世粧時世粧            지금 유행하는 청허는, 只今 유행하는 청허는

出自城中傳四方          장안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時世流行無遠近          지금 멀고 가까운 곳 어디서나 유행하는데

顋不施朱面無粉          뺨에는 연지도 바르지 않고 얼굴에는 분도 바르지 않는다.

烏膏注唇唇似泥          검정 기름 입술에 발라서 입술은 마치 진흙 같고

雙眉畫作道八字低        두 눈썹은 여덟팔자 낮추어 그리는구나.

姸蚩黑白失本態          곱거나 추하거나 검거나 희어서 본래 모습 잃고

粧成盡似含悲啼          화장을 마치면 모두가 슬픔을 머금고 우는 모습이다.

圓鬟無鬢椎髻樣          둥글게 쪽지어서 살쩍도 보이지 않은 망치머리

斜紅不暈赭面狀          둥그렇게 바르지 않은 비스듬한 진흙 빛 얼굴

昔聞被髮伊川中          이천에 머리 뒤집어쓴 사람 나타났다 하더니

辛有見之知有戎          신유가 이를 보고 오랑캐의 침입 있음을 알았도다.

元和粧梳君記取          원화년간에 이런 화장술 유행하니, 그대는 기억하라

髻椎面赭非華風          망치머리와 붉은 얼굴 화장은 북화의 풍속 아닌 것을.

 

 

食飽                         배불리 먹고서

 

食飽拂枕臥              배불리 먹고 베개 털고 눕고

睡足起閒吟              충분히 자고 일어나 한가하게 시를 읊는다.

淺酌一杯酒              가볍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緩彈數聲琴              천천히 거문고 노래 몇 곡을 타노라.

旣可暢情性              이미 마음 속 기분을 펼 수 있고

亦足傲光陰              또한 세월을 편안히 보내기에 충분하다.

誰知名利盡              누가 알리오, 명예심과 이해심을 다하여

無復長安心              다시는 장안 그리운 마음 조금도 없음을.

 

 

食後

 

食罷一覺睡              식사 후 한 숨의 잠

起來兩甌茶              깨어나면 두 잔의 차.

擧頭看日影              머리 들어 해 그림자 보니

已復西南斜              이미 서남쪽으로 기울었다.

樂人惜日促              즐거운 사람은 한 날이 짧음 아쉬워하고

憂人厭年賖              우울한 사람은 한 해가 더디 감을 싫어한다.

無憂無樂者              우울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람은

長短任生涯              인생의 길고 짧음도 생애에 맡기노라.

 

 

新製布裘                새로 지은 옷

 

桂布白似雪              계림의 무명베는 눈처럼 희고

吳綿軟於雲              오나라 솜은 구름보다 부드럽다.

布重綿且厚              겹으로 펴고 촘촘하고 두터워

爲裘有餘溫              옷을 만드니 따뜻한 기운 넘친다.

朝擁坐至暮              아침에 입어 저녁까지 앉아있고

夜覆眠達晨              밤에 덮으면 새벽까지 잠이 든다.

誰知嚴冬月              심한 겨울 추위를 누가 알겠으며

肢體暖如春              몸이 봄날처럼 따뜻하구나.

中夕忽有念              한밤에 문득 생각나면

撫裘起浚巡              옷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돌아다닌다.

丈夫貴兼濟              장부는 남을 구제함을 귀하게 여기니

豈獨善一身              어찌 내 한 몸만을 좋게 하리오.

安得萬里裘              어찌 만 리 먼 곳까지 옷 구하여

蓋裹周四垠              사방 이웃을 감싸 주지 않겠는가.

穩暖皆如我              모든 사람 나처럼 따뜻이 하여서

天下無寒人              세상에 추위로 떠는 사람 없게 하리라.

 

 

新秋夜雨                  초가을 밤비

 

蟋蟀暮啾啾              귀뚜라미 추런거리는 저녁

光陰不少留              세월은 잠시도 머물지 않는구나.

松檐半夜雨              소나무 처마에 비 내리는 한밤

風幌滿牀秋              바람 이는 커튼, 침상엔 가득한 가을.

曙早燈猶在              이른 새벽에도 켜져 있는 등잔불

凉初簞未收              서늘한 첫 추위라 발을 걷지 못한다.

新晴好天氣              새로 하늘 날씨도 좋은데

誰伴老人遊              누가 늙은이와 짝이 되어 놀아줄까.

 

 

夜琴

 

蜀桐木性實              촉나라 오동나무는 든든하고

楚絲音韻淸              초나라 악기는 소리가 맑기도 하다.

調慢彈且緩              느슨한 줄을 골라 퉁기다 늦추며

夜深十數聲              밤 깊도록 열 몇 곡을 타노라.

入耳淡無味              귀에 들리는 소리 담담하여 맛도 없는 듯

愜心潛有情              마음에 흡족히 젖어들어 정겨워라.

自弄還自罷              스스로 즐기다가 도리어 그치나니

亦不要人聽              또한 다른 사람이 듣기를 바라지 않아서라.

 

 

夜涼                            밤은 차가운데

 

露白風淸庭戶涼          흰 이슬에 맑은 바람과 싸늘한 뜰

老人先著夾衣裳          늙은이가 가장 먼저 겹옷 입는다.

舞腰歌袖抛何處          무희와 가수들 어디에 버려두고

唯對無絃琴一張          다만 줄 없는 거문고를 바라 볼 뿐.

 

 

夜雪                         밤 눈

 

已訝衾枕冷              이상하게 이부자리 싸늘하여

復見窓戶明              둘러보니 창문도 훤하게 밝구나.

夜深知雪重              깊은 밤 눈 내림 알게 하는 건

時聞折竹聲              때때로 대나무 꺾어지는 소리 들리기에.

 

已訝 : 이상하게 여기다

 

 

夜深行                       깊은 밤 길 걸으며

 

百牢關外夜行客          관외의 모든 집을 밤길 걷는 사람

三殿角頭宵直人          삼전각 꼭대기에서 한밤에 번 서는 사람.

莫道近臣勝遠使          근신(近臣)이 원신(遠臣)보다 낫다고 하지 말라

其如同是不閒身          그들도 이처럼 한가하지 않은 몸이라오.

 

 

夜雨

 

早蟋啼後歇              새벽 귀뚜라미 쉬었다 다시 울고

殘燈滅又明              기우는 등불은 꺼질 듯 또 밝는데

隔窓知夜雨              창밖에 밤비 내림 알게 하는 건

芭蕉先有聲              파초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있기에.

 

 

夜坐                           밤에 혼자 앉아

 

庭前盡日立到夜          종일토록 뜰 앞에 선채 밤이 되니

燈下有時坐徹明          등잔 아래에서 때로는 앉은 채로 날이 밝는다.

此情不語何人會          이런 내 마음을 말하지 않으니 누가 찾아올까

時復長籲一兩聲          가끔씩 다시 길게 나오는 한두 번의 탄식소리.

 

 

夜坐                         밤에 혼자 앉아

 

斜月入前楹              지는 달빛은 앞 기둥으로 드는데

迢迢夜坐情              아련해지는 밤 홀로 앉은 내 마음이여.

梧桐上階影              오동나무는 섬돌 위로 그림자 지우고

蟋蟀近牀聲              귀뚜라미 다가와 침상 가까이 우는구나.

曙傍窓間至              새벽빛 창문 사이로 들어오고

秋從簟上生              가을은 대자리 위를 따라 오는구나.

感時因憶事              계절을 느끼니 온갖 일들 생각나

不寢到雞鳴              잠 들지 못한 채로 새벽닭이 우는구나.

 

 

夜招晦叔                    밤에 회숙을 초대하며

 

庭草留霜池結冰          정원의 풀에는 서리 내리고 못에는 얼음 얼어

黃昏鍾絶凍雲凝          황혼에 종소리 끊이고 구름도 얼어 엉기었다.

碧氈帳上正飄雪          푸른 전직 휘장 위로 지금 한창 눈발이 날리고

紅火爐前初炷燈          붉은 화로 앞에 처음으로 등불 심지에 불을 붙인다.

高調秦箏一兩弄          높은 음조로 진나라 쟁으로 한 두 번 노는데

小花蠻榼二三升          작은 꽃무늬 오랑캐 술통에 두 세 되 술도 있다.

爲君更奏湘神曲          그대 위해 다시 상신곡을 연주하려는데

夜就儂家能不能          밤이면 바로 우리 집에 올 수 있을까 없을까.

 

 

楊家南亭                     양씨네 남쪽 정자

 

小亭門向月斜開          작은 정자문은 달 향해 열려 있고

滿地凉風滿地苔          서늘한 바람과 이끼는 땅에 가득하여라.

此院好彈秋思處          이 집은 가을 마음 노래하는 곳으로 좋아

終須一夜抱琴來          끝내 온 밤을 거문고 안고 와서 보내는구나.

 

 

養拙                         바보처럼 살리라

 

鐵柔不爲劍              쇠가 휘면 칼이 될 수 없고

木曲不爲轅              나무가 굽으면 멍에가 될 수 없다.

今我亦如此              이제 나도 이와 같으니

愚蒙不及門              어리석고 몽매하여 입문도 못하는구나.

甘心謝名利              마음에 달갑게 명예와 이익 버리고

滅跡歸丘園              자취를 숨겨 전원으로 돌아가리라.

坐臥茅茨中              초가집에 앉았다가 누웠다 하면서

但對琴與樽              오로지 거문고와 술을 마주보며 살리라.

身去韁鏁累              몸은 고삐의 얽음에서 벗어나고

耳辭朝市喧              귀는 조정과 거리의 소란함을 떠났다.

逍遙無所爲              자유롭게 거닐며 억지로 하는 일 없이

時窺五千言              때때로 노자의 오천 마디 글을 살피며

無憂樂性場              근심 없이 본성의 바탕을 즐기며

寡慾淸心源              욕심을 줄여서 마음의 근원을 맑게 하리라.

始知不才者              이제야 알았노라, 재주 없는 사람이라야

可以探道根              진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兩朱閣                        두 채의 붉은 전각

 

兩朱閣                        두 채의 붉은 전각 있어

南北相對起                 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솟아있다.

借問何人家                 잠깐 누구의 집인가 물어보니

貞元雙帝子                 정원연간의 황제의 두 자식이라 한다.

帝子吹簫雙得仙          황제의 자식이 퉁소 불어 두 사람 모두 신선 되어

五雲飄颻飛上天          오색구름 타고 훨훨 상천으로 날아갔다.

第宅亭臺不將去          저택과 누대 가지고 가지 못하여

化爲佛寺在人間          부처의 집으로 바꾸어 세상에 남겨놓았단다.

粧閣妓樓何寂靜          화려하게 꾸민 전각, 기녀들 누각에서 어찌나 고요한지

柳似舞腰池似鏡          버들은 무녀의 허리 같고, 연못은 거울 같이 맑도다.

花落黃昏悄悄時          꽃 진 황혼에 근심스러워 질 때

不聞歌吹聞鍾磬          노랫소리, 퉁소소리 들리지 않고, 종소리 풍경소리 들려온다.

寺門勑牓金字書          절문에 하사받은 문방에는 금빛 글자 써놓고

尼院佛庭寬有餘          여승의 암자나 절 뜰은 넓고 한가하기만 하다.

靑苔明月多閑地          푸른 이끼 밝은 달 아래 한가한 땅이 많고

比屋疲人無處居          늘어선 작은 집에는 지친 사람 살 곳도 없구나.

憶昨平陽宅初置          지난 평양 공주 처음 지은 집을 기억해보면

呑倂平人幾家地          평범한 백성들의 얼마나 많은 집터를 병탄했을까.

仙去雙雙作梵宮          신선되어 떠난 두 저택을 절로 만들었으니

漸恐人間盡爲寺          인간세상 모두가 절이 될까 점점 두려워 진다.

 

 

養竹記

 

竹似賢何哉              대나무는 현명한 사람과 비슷한데, 왜 그런가?

竹本固                     대나무 뿌리는 단단하여

固以樹德                  단단함으로써 덕을 세우고 있다.

君子見其本              군자는 그 뿌리를 보면

則思善建不拔者       곧 뽑히지 않는 훌륭한 덕을 세울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性直                     대나무의 성질은 곧아서

直以立身                  곧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서게 하고 있다.

君子見其性              군자는 그 성질을 보면

則思中立不倚者       곧 어느 편에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서게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心空                     대나무 속은 비어서

空以體道                  비어있음으로써 도를 체득하고 있다.

君子見其心               군자는 그 빈속을 보면

則思應用虛受者        곧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 남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응용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竹節貞                      대나무 마디는 곧아서

貞以立志                  곧음으로써 뜻을 세우고 있다.

君子見其節              군자는 그 마디를 보면

則思砥礪名行           곧 자기 이름과 행실을 갈고 닦아서

夷險一致者              순경에서나 험경에서나 한결 같을 것을 생각하게 된다.

夫如是故                  이러하기 때문에

君子人                     군자들이

多樹之                     이것을 많이 심어

爲庭實焉                 정원수로 삼고 있는 것이다.

貞元十九年春          정원십구 년 봄에

居易以拔萃選及第   발췌과에 급제하여

授校書郞                  교서랑 벼슬이 제수되었다.

始於長安                  처음 장안에 와서

求假居處                  빌리어 살 곳을 구하다가

得常樂里故關相國私第之東亭   상락리의 작고하신 관상국 사저의 동쪽 정자에

而處之                      거처하게 되었다.

明日                          다음 날

屨及于亭之東南隅    정자의 동남쪽 모퉁이로 산책을 나갔다가

見叢竹於斯               거기에 대나무 숲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枝葉殄瘁                   가지와 잎새가 말라 죽어

無聲無色                   볼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詢乎關氏之老            관상국 댁의 늙은 하인에게 물어보니

則曰                           대답하기를

此相國之手植者         “이것들은 關相國께서 손수 심었던 것입니다.

自相國捐館                관상국께서 집을 내어놓아

他人假居                    다른 사람이 빌려 살게 되었는데,

繇是                           이때부터

筐篚者斬焉                광주리를 만드는 자들이 베어가기도 하고

篲箒者刈焉                빗자루를 만드는 자들이 잘라가기도 하여,

刑餘之材                    형벌을 받듯 잘리우고 난 나머지 대나무들에는

長無尋焉                    한발 길이로 자란 것도 없고

數無百焉                    그 수도 백이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又有凡草木                 또 뭇 풀과 나무들이

雜生其中                     그 속에 섞여 나서

苯䔿薈蔚                    무성히 잡생하게 되어

有無竹之心焉              대나무는 없어진 듯한 마음까지 갖게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居易惜其嘗經長者之手 나는 이것들이 일찍이 훌륭한 분의 손을 거쳤으나

而見賤俗人之目           천하고 속된 사람들의 눈에 띄어

翦棄若是                      이처럼 잘려지고 버려지게 되었으나

本性猶存                      그 본성만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이 애석하였다.

乃刪翳薈                     이에 무성한 초목은 잘라내고

除糞壤                        더러운 흙은 긁어내고

疏其間                        대나무 사이를 티워주고

封其下                        그 아래 흙을 북돋아 주었는데

不終日而畢                 하루가 다가기 전에 일을 끝내었다.

於是日出                    이렇게 하여 해가 뜨면

有淸陰                        맑은 그늘이 생기고

風來有淸聲                 바람이 불어오면 맑은 소리가 들리며,

依依然欣欣然             휘청휘청 기쁜 듯하여

若有情於感遇也          마치 감정이 있어 은덕에 감사하고 있는 듯하였다.

嗟乎                            아아!

竹植物也                     대나무는 식물이다.

於人何有哉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以其有似於賢              대나무가 현명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而人猶愛惜之              사람들은 그것을 애석하게 여겨

封植之                        북돋아 심어주었으니

況其眞賢者乎             하물며 진정 현명한 사람에 대해서야 어떠하겠는가?

然則竹之於草木          그러니 대나무를 보통 풀과 나무에 비긴다면

猶賢之於衆庶              마치 현명한 사람과 보통 사람들을 견주는 것이나 같다.

嗚呼                            아아!

竹不能自異                 대나무는 스스로 기이함을 나타낼 수가 없는데도

惟人異之                    오직 사람들이 그것을 기이하게 대해주고 있다.

賢不能自異                현명한 사람도 스스로 기이함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고

惟用賢者異之             오직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야할 사람이 그를 기이하게 해주어야 한다.

故作養竹記                 그러므로 양죽기를 지어

書于亭之壁                  정자의 벽에 써 놓아

以貽其後之居斯者        뒤에 여기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亦欲以聞於今之用賢者云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현명한 사람을 등용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이 뜻이 알려지도록 하려는 것이라 한다.

 

 

涼風歎                        차가운 바람의 탄식

 

昨夜涼風又颯然          어젯밤 찬바람 또다시 바람소리

螢飄葉墜臥床前          반딧불 날리고 나뭇잎 침상 머리에 진다.

逢秋莫歎須知分          가을을 맞아 탄식 말고 분수를 알아라

已過潘安三十年          이미 반안을 지난 지 삼십 년이 되었어라.

 

 

憶江南                        강남을 생각한다

 

江南好                        강남이 좋아라

風景舊曾諳                 그 풍경 옛날부터 기억하고 있었지

日出江花紅勝火          해 뜨는 강의 꽃은 불꽃보다 더 붉었고

春來江水綠如藍          봄 오는 강물은 쪽빛보다 더 파랬지

能不憶江南                 어찌 강남이 생각나지 않으리

 

江南憶                  강남을 생각하면

最憶是杭州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항주

山寺月中尋桂子          산사에서 달빛 속에 계화꽃을 찾았고

郡亭枕上看潮頭          관사 정자에 누워 조수가 몰려드는 것을 보았지

何日更重游              어느 날 다시 머물 수 있을까

 

江南憶                        강남을 생각하면

其次憶吳宮                 그 다음으로 오나라 궁궐이 생각나네

吳酒一杯春竹葉          오나라 술 한 잔은 봄 댓잎 색

吳娃雙舞醉芙蓉          오나라 미녀들의 춤은 취한 연꽃

早晩復相逢                  또 언젠가 다시 만나리

 

杭州 - 절강성의 성도. 백거이가 자사로 있었던 곳. 전당강의 하구. 상해와 인접함

潮頭 - 바닷물이 전당강으로 들어오면서 만든 파도의 머리

吳宮 - 춘추시대 오나라의 궁전, 오왕부차가 서시를 살게 한 궁전. 소주의 서쪽 연석산 위에 있었다.

 

 

憶元九                    원씨네 아홉째 아들을 생각하며

 

渺渺江陵道              아득하다, 강릉가는 길

相思遠不知              그리워도 멀어서 알지 못한다.

近來文卷裏              근래의 글들 중에서

半是憶君詩              절반은 그대 그리는 시로구나.

 

 

驪宮高                        여궁은 높아라

 

高高驪山上有宮          높고 높은 여산 위에 궁궐이 있어

朱樓紫殿三四重          붉은 누각 자색 전각 삼중 사중 겹쳐있네.

遲遲兮春日                 길고 나른한 봄날이여

玉甃暖兮溫泉溢          옥벽의 돌은 포근하고 온천물은 넘치네.

嫋嫋兮秋風                 한들한들 부는 가을바람이여

山蟬鳴兮宮樹紅          산에 매미 울고, 궁궐에 나무들 단풍드네.

翠華不來歲月久          비취빛 천자의 깃발 오지 않은 채, 세월은 오래 흘렀네.

牆有衣兮瓦有松          담장은 이끼로 옷 입혀지고 기와지붕은 소나무 나있네.

吾君在位已五載          우리 황제님 재위에 오르신지 이미 오 년인데

何不一幸乎其中          어찌하여 한 번도 그 안에 안 오실까.

西去都門幾多地          서쪽으로 서울과 떨어짐이 얼마나 먼 땅이라고

吾君不遊有深意          우리 황제 유람하지 않음은 깊은 뜻이 있으리라.

一人出兮不容易          한 사람 나아감이 쉽지가 않나니

六宮從兮百司備          육궁이 따라가고 백관이 수행하리라.

八十一車千萬騎          팔십 한 량 수레꾼과 천만 명의 기병에게

朝有宴飫暮有賜          아침 연회에 배불리 먹이고 저녁 하사품 있으리니

中人之産數百家          중산층 사람의 재산 수백 가정 분이라도

未足充君一日費          황제의 하루 비용에도 충분하지 않도다.

吾君修己人不知          우리 황제 자기 수양을 백성들은 모르리라

不自逸兮不自嬉          스스로 안일하지 않고 스스로 기뻐하지도 않으신다.

吾君愛人人不識          우리 황제 백성 사랑 백성들은 모르리라

不傷財兮不傷力          재물을 손상 않고 인력을 손상하지 않으셨다.

驪宮高兮高入雲          여궁은 높고 높아서 구름 속에 들었고

君之來兮爲一身          황제가 오심은 자기 한 몸을 위함이요

君之不來兮爲萬人      황제가 오시지 않음은 만 백성을 위함이로다.

 

 

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

 

少時猶不憂生計          젊었을 때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던 터

老後誰能惜酒錢          나이 들어 무슨 술값 따윌 아낄 것이랴.

共把十千沽一斗          우리 일만 전으로 술 한 말 사서 함께 잔 잡으세

相看七十欠三年          우리네 나이 이제 셋 모자란 일흔이네.

閑微雅令窮經史          한가롭게 경전이나 사적에서 화제 끌어오고

醉聽淸音勝管絃          취하여 듣는 그대 청음은 관현악보다 나으리.

更待菊黃家醞熟          또 다시 국화철 집에서 담근 술 익으면

共君一醉一陶然          우리 다시 만나 한바탕 또 취해보세.

 

 

鷰子樓三首                 연자루에서

 

1

滿窗明月滿簾霜          창에 가득한 밝은 달, 주렴에 가득한 서리

被冷燈殘拂臥牀          이불은 차고 등불 희미한데 잠자리 추켜올린다.

燕子樓中霜月夜          연자루 안, 서리 내리는 달 밤

秋來只爲一人長          가을이 오니 오직 이 한 사람 위해 길기만하다.

 

2

鈿暈羅衫色似煙          흐릿한 금비녀와 비단 적삼 색깔이 연기 같아

幾回欲著卽潛然          몇 번인가 입어보려 하나 곧 눈물만 흘러내린다.

自從不舞霓裳曲          예상곡으로 춤추지 않은 채로

疊在空箱十一年          빈 옷장에 쌓아둔 지가 이미 십일 년이 되었도다.

 

3

今春有客洛陽回          금년 봄 낙양에서 돌아온 나그네

曾到尙書墓上來          언젠가 상서의 무덤을 찾아 갔었단다.

見說白楊堪作柱          무덤의 백양목이 기둥 삼을 만하다 하니

爭敎紅粉不成灰          아름다운 그 얼굴이 다 시들지 않았으리요.

 

 

燕詩示劉叟              제비를 노래한 시를 유노인에게 보이며

 

梁上有雙燕              들보 위에 한 쌍의 제비 있어

翩翩雄與雄              펄럭펄럭 암수가 함께 나는구나.

銜泥兩椽間              흙 물어다 두 서까래 사이에 집 지어

一巢生四兄              한 둥지에 네 형제가 살았다.

四兒日夜長              네 마리 새끼 밤낮으로 자라는데

索食聲孜孜              먹이 달라고 서로가 짹짹거린다.

靑蟲不易捕              푸른 벌레 쉽게 잡을 수 없어

黃口無飽期              새끼들은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다.

嘴爪雖欲弊              부리와 발톱이 다 닳아져도

心力不知疲              마음의 힘으로 피곤한 줄 몰랐다.

須臾十來往              잠깐 동안에도 열 번을 왕래하는 것은

猶恐巢中饑              둥지의 새끼가 굶주릴까 걱정되어서라.

辛勤三十日              고생하고 부지런히 보낸 삼십 일에

母瘦雛漸肥              어미는 야위고 새끼는 점점 비대해졌다.

喃喃敎言語              지저귀며 말을 가르쳐주고

一一刷毛衣              하나하나 털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一旦羽翼成              어느 날 아침에 날개가 생기니

引上庭樹枝              뜰의 나무의 가지 위로 끌어 올렸다.

擧翅不回顧              날개를 펴고 돌아보지도 않고.

隨風四散飛              바람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 버렸다.

雌雄空中鳴              암수 한 쌍의 어미 새가 공중에서 울면서

聲盡呼不歸              소리가 다하도록 불러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卻入空巢裏              문득 빈 둥지 속에 들어와

啁啾終夜悲              찍찍 짹짹 밤새도록 슬피 울었다.

燕燕爾勿悲              제비여, 제비여, 슬퍼 말아라.

爾當返自思              너희들도 마땅히 돌이켜 스스로 생각해봐라.

思爾爲雛目              너희를 생각해보면, 너희도 새끼 되어서

高飛背母時              공중 높이 날아가 버리고 어버이를 때를

當時父母念              당시의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今日爾應知              오늘에야 너희도 반드시 알 것이니라.

 

 

鹽商婦

 

鹽商婦                        소금장수 부인

多金帛                        돈과 비단 많고

不事田農與蠶績          밭농사 누에 길쌈 일 없어

南北東西不失家          동서남북로 집 잃지 않고

風水爲鄉船作宅          바람과 물이 마을 되어 배가 집이라

本是揚州小家女          본시 양주 가난한 집 딸인데

嫁得西江大商客          서강의 큰 장사치에게 시집갔네.

綠鬟富去金釵多          푸른 쪽진 머리 가멸기는 금비녀가 넘치고

皓腕肥來銀釧窄          흰 팔 살진 것이 은팔찌가 좁을 지경.

前呼蒼頭後叱婢          앞에서 사내종을 부르고 뒤로는 계집종을 꾸짖으니

問爾因何得如此          묻노라 네가 어떻게 이와 같이 될 수 있었나?

婿作鹽商十五年          남편이 소금 장사 십오 년에

不屬州縣屬天子          주와 현, 황제에게 속하지 않고

每年鹽利入官時          매년 소금판 이윤을 관가에 납입할 때

少入官家多入私          관가에는 적게 내고 사사로이 취하는 것이 많았네.

官家利薄私家厚          관가의 이익은 적고 사사집만 후한데도

鹽鐵尙書遠不知          염철상서 소금과 철의 담당 관리는 멀리 있어 알지 못했지.

何況江頭魚米賤          하물며 강나루에 생선과 쌀은 값이 싸

紅膾黃橙香稻飯          붉은 회와 등황빛의 향미도 품질 좋은 상등미 쌀밥으로

飽食濃妝倚柁樓          배불리 먹고 짙은 화장에 타루배의 키를 움직이는 망대에 기대

兩朵紅腮花欲綻          두 늘어진 붉은 뺨은 꽃봉오리 터지려 하네.

鹽商婦                        소금 상인 부인은

有幸嫁鹽商                 운 좋게 소금장수에게 시집 가

終朝美飯食                 온종일 맛좋은 밥에

終歲好衣裳                 일 년 내내 좋은 옷.

好衣美食有來處          좋은 옷과 맛난 음식에 이유가 있었으니

亦須慚愧桑弘羊         또한 마땅히 상홍양한 무제 때의 인물로 소금과 철을 총관하는 직책을 맡아 국가 수입을 증대시켰음을 부끄러워 해야 하리.

桑弘羊                        상홍양은

死已久                        죽은 지 이미 오래이나

不獨漢時今亦有          한나라 때뿐만 아니라 지금 또한 있다네.

 

 

詠老贈夢得              늙음을 읊어 몽득 유우석에게 주다

 

與君均老矣              그대나 나도 이제 모두 늙었노라

自問老如何              스스로 묻는다, 늙으니 어떠한가를.

眼澁夜先臥              눈은 뻑뻑해서 밤이면 먼저 눕고

頭慵朝未梳              머리 손질 게을러서 아침에도 빗지 않는다.

有時扶杖出              때로 지팡이 짚고 나가기도 하나

盡日廢門居              종일토록 문 닫고 처박혀 있다.

懶照新磨鏡              새로 닦은 거울 보지도 않고

休看小字書              깨알 같은 글자는 보지 않노라.

情於故人重              옛 친구 향한 정은 소중해지고

跡共少年疏              젊은 사람들과는 소원해진다.

唯是閑談興              오로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싶은 맘은

相逢尙有餘              그대 만나면 넘쳐나리라.

 

 

永崇里觀居              영숭리 도관에 머물면서

 

季夏中氣候              늦여름 반이 지난 날

煩暑自此收              무더위가 지금부터 물러난다.

蕭颯風雨天              쌀쌀한 비바람 내리는 날씨

蟬聲暮啾啾              저녁이면 매미소리 들리고

永崇里巷靜              영숭리 골목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華陽觀院幽              화양관 원내는 조용하고

軒車不到處              귀인 탄 수레는 어디고 오지 않는다.

滿地槐花秋              회나무 꽃 땅에 가득한 가을

年光忽冉冉              세월은 홀연히 흘러만 가고

世事本悠悠              세상사란 원래 아득하기만 하다.

何必待衰老              하필 늙어 쇠하기만 기다려야

然後悟浮休              죽고 사는 것의 진리를 깨달을까.

眞隱豈長遠              진정한 은일(隱逸)이 어찌 멀리 있을까

至道在冥搜              지극한 도는 깊이 추구하는 데 있다.

身雖世間住              몸은 비록 세간에 머물러 있으나

心與虛無遊              내 마음은 아득한 하늘과 노닌다.

朝飢有蔬食              아침에 배고프면 나물밥 먹고

夜寒有布裘              저녁에 차가우면 무명옷을 입는다.

幸免凍與餒              헐벗음과 굶주림 면하기만 한다면

此外復何求              그밖에 다시 무엇을 바랄까보냐.

寡慾雖少病              비록 조금 아프지만 욕심을 줄이고

樂天心不憂              천명을 즐기니 마음이 우울하지 않다.

何以明吾志              어찌해야 나의 뜻을 밝힐까

周易在床頭              주역이 내 책상머리에 놓여있다.

 

 

詠意

 

常聞南華經              남화경의 말을 항상 들었다

巧勞智憂愁              재주 있는 자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자는 근심한다고.

不如無能者              차라리 못하리라, 무능한 사람이

飽食但遨遊              배불리 먹고 마음대로 노는 것만 말이다.

平生愛慕道              평생토록 그 도를 좋아하고 그리워했는데

今日近此流              오늘에야 이런 부류에 가깝게 되었구나.

自來潯陽郡              심양군에 온 이래로

四序忽已周              사계절이 흘러 벌써 이미 일 년이 되었구나.

不分物黑白              일의 흑백을 가리지 않고

但與時沈浮              다만 때와 더불어 부침하였다.

朝飧夕安寢              아침에는 밥 먹고 저녁에는 편히 잠자며

用是爲身謀              이렇게 하며 자신을 위해 살았다.

此外卽閑放              이 외에는 한가하게 지내며

時尋山水幽              때때로 자연의 그윽함을 찾았다.

春遊慧遠寺              봄에는 혜원사를 노닐었고

秋上庾公樓              가을이면 유공루에 올랐다.

或吟詩一章              간혹 시 한 편을 읊기도 하고

或飮茶一甌              간혹 차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

身心一無繫              몸과 마음 어느 한 곳에도 얽히지 않아

浩浩如虛舟              호방함이 마치 빈 배 같았다.

富貴亦有苦              부귀한 사람에게도 고통이 있나니

苦在心危憂              고통이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스럽다.

貧賤亦有樂              빈천한 사람에게도 즐거움이 있나니

樂在身自由              즐거움은 몸의 자유로움에 있다.

 

 

詠拙                        모자람을 노래한다

 

所稟有巧拙              타고난 재주는 정교함과 졸렬함이 있어

不可改者性              고칠 수 없는 것이 성품이도다.

所賦有厚薄              주어지는 것은 두터움과 엷음이 있어.

不可移者命              옮길 수 없는 것이 운명이도다.

我性拙且憃              내 성품은 졸렬하고 어리석고

我命薄且屯              내 운명은 박복하고 어렵도다.

問我何以知              나에게 묻기를, 무엇으로 아는가

所知良有因              아는 것은 진실로 원인이 있도다.

亦曾擧兩足              또한 일찍이 두 발을 들고 가서

學人蹋紅塵              사람에게 배워 티끌세상을 밟았다.

從茲知性拙              이로써 내 성품이 졸렬함 알았으니

不解轉如輪              수레처럼 굴러갈 줄을 알지 못했다.

亦曾奮六翮              또한 일찍이 여섯 날개 떨치어

高飛到靑雲              높이 날아 청운에 이르렀도다.

從茲知命薄              이로써 내 운명이 박복함 알았으니

摧落不逡巡              꺾이어 떨어도 머뭇거리지 못했다.

慕貴而厭賤              부귀를 부러워하나 천박함을 싫어하고

樂富而惡貧              부유함을 좋아하나 가난함을 싫어한다.

同此天地間              남과 같이 이 천지 사이에 태어났거늘

我豈異於人              내가 어찌 남과 다르겠는가.

性命苟如此              타고난 성품과 운명이 그러하니

反則成苦辛              어겼다가는 도리어 고생스러워진다.

以此自安分              이 때문에 스스로 분수에 만족하고

雖窮每欣欣              비록 궁색하여도 매양 기뻐하노라.

葺茅爲我廬              띠풀 엮어 나의 집 만들고

編蓬爲我門              쑥대 엮어서 나의 대문을 삼는다.

縫布作袍被              베를 재봉하여 솜이불 만들고

種穀充盤飧              곡식을 심어 반찬과 밥을 만든다.

靜讀古人書              조용히 옛 사람의 책을 읽으며

閑釣淸渭濱              한가롭게 맑은 위수에서 낚시질 한다.

優哉復游哉              한가롭기도 하여 다시 마음껏 놀며

聊以終吾身              애오라지 조용히 한 평생을 마치리라.

 

 

詠懷                         마음 속 생각을 읊다

 

1

冉牛與顔淵              공자의 제자 염우와 안연

卞和與馬遷              옥공 변화씨와 역사가 사마천

或罹天六極              그들은 혹 하늘의 육극(六極)을 만나고

或被人刑殘              혹은 인간의 가혹한 형벌을 당했다.

顧我信爲幸              나를 돌아보면, 다행하기만 하니

百骸且完全              온 몸뚱이가 우선 완전히 남아있다.

五十不爲夭              오십 살은 요절하는 것도 아닌데

吾今欠數年              나는 지금 몇 년이 부족할 뿐이다.

知分心自足              분수를 알면 마음은 절로 흡족하고

委順身常安              순리에 맡기면 몸은 항상 편안하도다.

故雖窮退日              그래서 궁하고 물러나 있어도

而無戚戚顔              슬퍼하는 얼굴빛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昔有榮先生              옛 영계기 선생이 있어서

從事於其間              그러한 경지에 처신하였다.

今我不量力              지금 나는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擧心欲攀援              온 마음으로 잡아당겨 올라가려고만 한다.

窮通不由己              곤궁함과 영달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고

歡戚不由天              즐거움과 슬픔은 하늘에 달려있지도 않도다.

命卽無奈何              운명은 곧 어찌할 수 없으나

心可使泰然              내 마음은 태연하게 할 수 있도다.

且務由己者              우선은 내 의지에 달려있는 것에 힘쓰고

省躬諒非難              자신을 성찰하면 실로 어려운 일은 아니도다.

勿問由天者              하늘에 달려있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

天高難與言              하늘은 높아서 같이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盡日松下坐              종일토록 소나무 아래 앉았고

有時池畔行              때로는 못 둑을 거닐기도 한다.

行立與坐臥              가다가 서고 앉았다가 눕는데

中懷淡無營              마음속이 담담하니 할 일이 없다.

不覺流年過              자신도 모른 채, 흐르는 세월 지나고

亦任白髮生              백발 또한 생기는 대로 맡겨둔다.

不爲世所薄              세상사람 싫어하는 일 하지 않으니

安得遂閒情              어찌 能히 한가한 마음 얻지 못하리오.

 

自從委順任浮沈          맡기고 순종하여 인간 성쇠를 맡기니

漸覺年多功用深          깨닫는 해가 많아져 수양의 효험 깊어진다.

面上滅除憂喜色          얼굴에는 근심과 기쁨의 표정 없어지고

胸中消盡是非心          가슴 속에는 시비를 가리는 마음 사라졌다.

妻兒不問唯耽酒          처자도 묻지 않고 오직 술만 탐하고

冠帶皆慵只抱琴          벼슬도 다 귀찮아하고 거문고만 타게 된다.

長笑靈均不知命          영원히 우습구나, 굴원이 천명도 모르고

江蘺叢畔苦悲唫          물가 천궁 풀 두둑에서 괴롭게 슬퍼하던 일.

 

 

吾廬                            내 오두막집

 

吾廬不獨貯妻兒          내 오두막에는 아내와 자식들만 없으니

自覺年侵身力衰          나이가 많아져 몸이 쇠약해짐을 알았다.

眼下營求容足地          현실은 발하나 들여 놓을 작은 땅 찾지만

心中準擬挂冠時          마음속 기준으로는 갓 걸어놓을 때와 같다.

新昌小院松當戶          신창의 작은 관아 집 앞에 소나무

履道幽居竹遶池          그윽한 내 집을 걷자니 대숲이 못을 둘러있다.

莫道兩都空有宅          두 도읍에 공연히 집 가졌다 말하지 말라

林泉風月是家資          숲속 바람과 달이 곧 내 집의 재산인 것을.

 

 

烏夜啼                     까마귀 밤에 울어

 

城上歸時晩              성 위에 돌아온 때는 저녁

庭前宿處危              뜰 앞 잠자는 곳은 높기만 하다.

月明無葉樹              밝은 달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

霜滑有風枝              눈 내려 미끄러운 가지에 바람 인다.

啼澀飢喉咽              굶주린 목구멍에 울음소리 껄끄러운데

飛低凍翅垂              낮게 날다가 얼어버린 날개가 처진다.

畫堂鸚鵡鳥              집안에 그려진 앵무새는

冷暖不相知              차가움도 따뜻함도 알지 못한다.

 

 

吾雛                         내 새끼

 

吾雛字阿羅              내 새끼의 이름은 아라

阿羅纔七齡              아라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다.

嗟吾不才子              아, 나는 못난 놈이라

憐爾無弟兄              형제도 없는 네가 불쌍하다.

撫養雖驕騃              애지중지 길러서 철없지만

性識頗聰明              타고난 머리는 자못 총명하다.

學母畫眉樣              어미를 배워 눈썹모양 그리고

效吾詠詩聲              내가 시 읽는 소리도 흉내 낸다.

我齒今欲墮              내 치아는 빠져 떨어지려는데

汝齒昨始生              너의 치아는 작금에야 나왔다.

我頭髮盡落              나의 머리털은 다 빠지는데

汝頂髻初成              너의 정수리에 머리갈래 이제야 생겼다.

老幼不相待              늙음과 젊음은 서로 기다리지 않아

父衰汝孩嬰              아버지는 늙고 너는 아직 어리구나.

緬想古人心              아득히 옛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봐도

慈愛亦不輕              자애로움은 또한 가볍지가 않구나.

蔡邕念文姬              채옹응 딸 문희를 늘 생각했고

于公歎緹縈              우공은 딸 제영의 효심에 감탄했었다.

敢求得汝力              감히 너의 도움 얻기를 바라겠는가

但未忘父情              다만 아비의 정을 잊지나 말아다오.

 

 

五絃

 

淸歌且罷唱              맑은 노랫소리 잠시 멈추고

紅袂亦停舞              붉은 소맷자락 춤도 멈추어라.

趙叟抱五絃              늙은 어르신 조옹이 오현금 가져와

宛轉當胸撫              둥그렇게 가슴에 안고 연주한다.

大聲麤若散              강한 음은 흩어질 듯 거칠고

颯颯風和雨              쓸쓸히 부는 바람 비바람 소리 같구나.

小聲細欲絶              약한 소리는 끊어질 듯 가늘고

切切鬼神語              애절한 귀신의 속삭임 같구나.

又如鵲報喜              또 까치의 기쁜 소리 같다가도

轉作猿啼苦              원숭이의 고통 소리로 바뀌는 것 같아라.

十指無定音              열손가락에 정해진 음 없고

顚倒宮徵羽              음률이 어지럽게 뒤바뀌는구나.

坐客聞此聲              초대받은 손님들 이 소리 듣고

形神若無主              넋은 주인을 잃어버린 듯하다.

行客聞此聲              길 가는 나그네 그 소리를 듣고

駐足不能擧              능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구나.

嗟嗟俗人耳              아아, 세상 속된 사람의 귀는

好今不好古              옛것은 좋아하지 않고 지금 것만 좋아하니

所以綠窗琴              그래서 녹색 창가의 오현금에는

日日生塵土              날마다 날마다 흙먼지만 쌓이는구나.

 

 

翫新庭樹因詠所懷        뜰에 새로 난 나무를 보며 감회를 읊다

 

靄靄四月初              구름 어둑한 사월 초순

新樹葉成陰              새로 나온 나뭇잎 그늘졌구나.

動搖風景麗              흔들리는 풍경이 아름답고

蓋覆庭院深              나뭇잎으로 덮인 뜰은 깊숙하다.

下有無事人              나무 아래에 일 없는 사람 있어

竟日此幽尋              종일토록 이러한 그윽한 곳 찾는다.

豈唯翫時物              어찌 시절 물상만을 보았을까

亦可開煩襟              번뇌하는 속마음도 열 수 있다.

時與道人語              때때로 도사와 말을 나누고

或聽詩客吟              가끔씩 시인들과 시를 읊는다.

度春足芳色              봄 지나가도 香긋한 기분 충분하고

入夜多鳴禽              밤에 드니 지저귀는 새소리 많아진다.

偶得幽閑境              우연히 깊고 한적한 곳 찾으니

遂忘塵俗心              잡되고 속된 마음 다 잊어버렸다.

始知眞隱者              이제야 알았느니 진정한 은자란

不必在山林              반드시 살림 속에 있어야 함이 아님을.

 

 

王昭君

 

1

滿面胡沙滿鬢風          얼굴에 가득 오랑캐 모래 귀밑머리엔 바람 가득

眉銷殘黛臉銷紅          눈썹에 먹 자국 뺌에는 빨간 연지자국 남았구나.

愁苦辛勤憔悴盡          근심과 고통 고난에 초췌하고 말라버린 몸

如今却似畫圖中          지금의 모습이 잘못 그린 그림 속 얼굴 같구나.

 

2

漢使却廻憑寄語          한나라 사신 돌아와 부치는 말

黃金何時贖蛾眉          황금으로 어느 때에 미인의 눈썹 되살까.

君王若問妾顔色          임금님 만약 내 안색 물으시면

莫道不如宮裏時          대궐에 있을 때보다 못하다 하지 마세요.

 

 

欲與元八卜隣先有是贈

 

平生心迹最相親          평생 마음 쓴 자취로는 가장 서로 친하니

欲隱墻東不爲身          동쪽에 은거하기 바라지만 내 세우진 않았다.

明月好同三徑夜          밝은 달이 좋은 세 줄기 시골 밤 길

綠楊宜作兩家春          푸른 버들 돋아나면 두 집의 봄을 즐기었다.

每因暫出猶思伴          매번 잠시 길 나서도 친구 생각 간절한데

豈得安居不擇隣          편안히 살 집 찾았으니 친구 택하지 않겠는가.

何獨終身數相見          어찌 다만 죽을 때까지 자주 서로 보면서

子孫長作隔墻人          자손만대 오래도록 이웃 사람 될 수 있을까.

 

 

繚綾 繚綾緋緞

 

繚綾繚綾何所似          요릉비단, 요릉비단 무엇과 같다고 할까

不似羅綃與紈綺          엷은 색 비단도 흰 깁과 무늬 비단과도 같지 않다.

應似天台山上明月前   응당 천태산 위, 밝은 달 앞

四十五尺瀑布泉          사십오 척의 폭포 샘이로다.

中有文章又奇絶          가운데 무늬 있고 게다가 뛰어나게 절묘하다.

地鋪白烟花簇雪          땅에서 흰 연기 피어오르고 꽃에서 눈이 쌓인 듯하다

織者何人衣者誰          짜는 사람 누구이고 입는 사람 누구인가

越溪寒女漢宮姬          월계의 가난한 여인, 한나라 궁궐의 궁녀들이로다.

去年中使宣口勑          지난 해 궁중의 사신이 구두로 칙령을 알리어

天上取樣人間織          궁중의 문양 취하여 사람들이 짜게 하였다.

織爲雲外秋雁行          구름 밖 가을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 짜서 만들고

染作江南春水色          강남 봄날의 물빛으로 염색하여 만들었다.

廣裁衫袖長製裙          넓게 마른 적삼 소매 길게 만든 치마

金斗熨波刀剪紋          금으로 만든 인두로 주름 펴고 칼로 무늬를 자른다.

異彩奇文相隱映          이채롭고 기묘한 무늬가 서로 어울려 은근히 빛나고

轉側看花花不定          기울여 꽃을 본 듯 꽃 모양이 일정하지 않도다.

昭陽舞人恩正深          소양전 무녀들이 은총 받음이 깊어서

春衣一對直千金          봄옷 한 벌 값이 천금이나 가는구나.

汗沾粉汙不再著          땀에 젖고 분에 얼룩지면 다시 입지 않으며

曳土蹼阿無惜心          땅에 끌리고 흙에 밟혀도 全혀 아까워하는 마음 없도다.

繚綾織成費功績          요릉 비단 짜니 그 공과 수고를 낭비하니

莫比尋常繒與帛          보통의 비단과는 비교하지 마라.

絲細繰多女手疼          실이 가늘어 켜는 일 많아 여자들 손이 아프고

扎扎千聲不盈尺          찰칵찰칵 천 번 소리에 한 자도 차지 못한다.

昭陽殿裏歌舞人          소양전 안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若見織時應也惜          만약 배 짜는 때를 본다면 반드시 아까워하리라.

 

 

渭上偶釣                 渭水가에서 낚시하며

 

渭水如鏡色              위수의 물은 거울 같아

中有鯉與魴              그 속에 잉어와 방어가 산다.

偶持一竿竹              우연히 낚싯대 하나 들고

懸釣在其傍              그 강 곁에다 낚시를 놓는다.

微風吹釣絲              바람은 살랑살랑 낚싯줄에 불고

嫋嫋十尺長              열자 긴 낚싯줄은 바람에 하늘거린다.

身雖對魚坐              몸은 비록 고기를 향해 앉았으나

心在無何鄕              마음은 무아지경에 놀고 있어라.

昔有白頭人              그 옛날에 백발노인 있어

亦釣此渭陽              또한 위수의 북쪽에서 낚시하였다.

釣人不釣魚              낚시꾼은 고기를 낚지 않았고

七十得文王              칠십에 문왕을 만났었다.

況我垂釣意              하물며 내가 낚시하는 뜻은

人魚亦兼忘              사람도 고기도 다 잊는 것이다.

無機兩不得              노리지 않으니 둘 다 잡지 못하고

但弄秋水光              다만 가을의 강 빛만 즐기노라.

興盡釣亦罷              흥이 다되면 낚시 마치고

歸來飮我觴              돌아와서 나의 술잔 들이키노라.

 

 

劉家花

 

劉家牆上花還發          유씨 집 담장 위에 꽃들 다시 피고

李十門前草又春          이씨 집 문 앞에는 풀빛이 또 봄이로다.

處處傷心心始悟          곳곳에서 상심하여 비로소 알았느니

多情不及少情人          다정이 미치지 못하여 정인이 적었구나.

 

 

有感                         유감스러워

 

絶絃與斷絲              백아의 의리와 맹모의 교훈

猶有却續時              여전히 시대를 이어가야 하나.

唯有衷腸斷              오직 단장의 슬픔만 있을 뿐

無應續得期              이어야 하지만 기약할 수 없구나.

 

 

庾樓曉望                     유루에서 새벽에 바라보다

 

獨憑朱檻立凌晨          새벽녘에 서서 붉은 난간에 기대니

山色初明水色新          산색이 밝아오고 물빛이 신선하여라

竹霧曉籠銜嶺月          대숲 새벽안개 고개 위 달을 머금고

蘋風煖送過江春          가래풀에 인 따뜻한 바람, 봄 강을 지난다.

子城陰處猶殘雪          자성 그늘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衙鼓聲前未有塵          관아의 북소리, 아직 흙먼지 일지 않는다

三百年來庾樓上          삼백 년 동안 유루 위에서

曾經多少望鄕人          지금껏 고향 그리던 사람 얼마나 많았을까.

 

 

遊石門澗                  석문간에서 놀다

 

石門無舊徑              석문에는 묵은 길 없어

披榛訪遺跡              덤불을 헤치며 유적을 방문한다.

時逢山水秋              시절은 마침 산수의 가을 만나니

淸輝如古昔              맑은 빛이 옛날과 같았다.

嘗聞慧遠輩              일찍이 들었노라 혜원의 무리들이

題詩此巖壁              이 암벽에 시를 적어두었다는 말을.

雲覆莓苔封              구름은 매태를 봉하여서

蒼然無處覓              창연하여 장소를 찾을 수 없도다.

蕭疎野生竹              소소히도 들판에 대나무 나있는데

崩剝多年石              무너지고 깎여 오래된 돌이 많았다.

自從東晉後              동진 시대 이후부터

無復人遊歷              또 다시 돌아보며 구경하는 사람들 없다.

獨有秋澗聲              다만 가을 골짝의 물소리만 들리어

潺湲空旦夕              잔잔하게 흐르는 소리 아침저녁 쓸쓸하다.

 

 

遺愛寺                     유애사에서

 

弄石臨溪坐              수석을 즐겨 개울가에 앉았다가

尋花繞寺行              다시 꽃을 찾아 절을 돌아다닌다.

時時聞鳥語              때때로 새 우는 소리 들리고

處處是泉聲              여기저기 어디나 샘물소리 들려온다.

 

 

遊悟眞寺詩              오진사에 놀며 지은 시

 

元和九年秋              때는 원화 9년 가을

八月月上弦              팔월이라, 달은 상현달.

我遊悟眞寺              나는 오진사를 유람했는데

寺在王順山              절은 왕순산에 있었다.

去山四五里              산을 떠나, 사오 리 쯤 되는 곳

先聞水潺湲              먼저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린다.

自茲捨車馬              여기서 말과 수레를 두고

始涉藍溪灣              푸른 개울 굽이를 걸어 건넌다.

手拄靑竹杖              손에 푸른 대지팡이 짚고

足蹋白石灘              여울의 깨끗한 돌을 밟고 지난다.

漸怪耳目曠              점점 이상하게도, 눈과 귀 환해지고

不聞人世喧              세상의 시끄런 소리 들리지 않는다.

山下望山上              산 아래서 산 위를 바라보니

初疑不可攀              처음에는 오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誰知中有路              안에 길이 있을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盤折通巖巓              평평한 바닥길이 꺾여 바위 위까지 통했다.

一息幡竿下              번간 아래에서 한 번 쉬었다가

再休石龕邊              돌 감실 곁에서 다시 한 번 쉬었다.

龕間長丈餘              감실 간격은 길이가 한 길이 넘었고

門戶無扃關              문에는 빗장이 전혀 없었다.

俯窺不見人              내려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石髮垂若鬟              돌에는 풀이 귀밑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驚出白蝙蝠              흰 박쥐들이 놀라 나오는데

雙飛如雪翻              쌍쌍이 나는 것이 눈 흩날리듯 했다.

回首寺門望              고개 돌려 절문을 바라보니

靑崖夾朱軒              푸른 언덕에 끼어있는 붉은 집이 있다.

如擘山腹開              손톱 같이 산 중턱이 열렸는데

置寺於其間              그 사이에 절이 위치해 있었다.

入門無平地              절문에 드니 평지는 없었고

地窄虛空寬              땅이 좁아 빈 곳도 거의 없었다.

房廊與臺殿              방의 회랑과 누대의 전각이

高下隨峯巒              산봉우리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巖崿無撮土              바위와 낭떠러지에 흙은 조금도 없었다.

樹木多瘦堅              나무은 마르고 단단한 것이 많았고

根株抱石長              나무뿌리는 길게 돌을 감싸고 있었다.

屈曲蟲蛇蟠              울룩불룩한 뿌리는 뱀처럼 서리어 있다.

松桂亂無行              소나무가 어지러워 다닐 길 없고

四時鬱芊芊              사시사철 울창하고 무성했다.

枝梢嫋淸翠              가지는 늘어져 하늘거리고 빛은 푸르고

韻若風中絃              그 운치는 바람 속의 음악소리 같았다.

日月光不透              햇빛과 달빛이 들지 못하여

綠陰相交延              푸른 나무그늘이 섞이고 이어져있다.

幽鳥時一聲              그윽한 새소리 때때로 한 번씩 들리니

聞之似寒蟬              들으면 마치 가을매미 소리 같았다.

首憩賓位亭              처음에는 빈위정에서 쉬면서

就坐未及安              자리에 앉았으나 편안하지 않았다.

須臾開北戶              잠시 북쪽 문을 열어보니

萬里明豁然              만 리 먼 곳까지 환하게 밝았다.

拂簷虹霏微              처마 걸쳐 가랑비에 무지개 서고

遶棟雲回旋              마룻대를 둘러 구름이 돌아 흐른다.

赤日間白雨              붉은 해가 소나기 사이에 보이는데

陰晴同一川              흐리고 개는 것이 한 내에 같이 있다.

野綠蔟草樹              들판의 푸른 기운이 초목에 모이고

眼界呑秦原              내 시야는 중국 벌판을 삼킨다.

渭水細不見              위수는 가늘어 보이지 않고

漢陵小於拳              한나라 언덕은 주먹보다도 작다.

却顧來時路              물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縈紆映朱欄              얽히고 굽은 것이 붉은 난간에 비친다.

歷歷上山人              산 위의 사람들도 뚜렷하여

一一遙可觀              하나하나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前對多寶塔              앞에 마주보이는 다보탑

風鐸鳴四端              바람에 풍경소리는 사단을 울린다.

欒櫨與戶牖              난 두공과 지게 창

恰恰金碧繁              부드러운 장식이 금벽처럼 번화롭다.

云昔伽葉佛              이르기를 옛날 가엽 부처가

此地坐涅槃              이 땅에 앉아서 열반하였다고 한다.

至今鐵鉢在              지금까지 쇠 바리때가 남아있어

當底手跡穿              아래에는 손자취가 뚫려있단다.

西開玉像殿              서쪽으로 옥상전이 열려있고

白佛森比肩              흰 부처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다.

抖擻塵埃衣              흙먼지 붙은 옷을 털고

禮拜永雪顔              영설안에 예배하였다.

疊霜爲袈裟              겹겹이 쌓인 눈을 가사로 삼고

貫雹爲華鬘              우박을 꿰어 흰 머리로 삼았다.

逼觀疑鬼功              핍진히 보고 귀신의 공인가 했는데

其跡非雕鐫              그 자취는 결코 꾸민 것이 아니었다.

次登觀音堂              다음으로 관음당에 오르는데

未到聞栴檀              미처 이르지도 않아 전단 향기가 난다.

上階脫雙履              계단에 올라 두 신을 벗고

斂足升瑤筵              발을 거두어 예배하는 자리에 올랐다.

六楹排玉鏡              여섯 기둥에 거울은 없고

四座敷金鈿              사방 자리에는 금 세공품을 놓아두었다.

黑夜自光明              칠흑 같은 밤에 절로 빛이 밝아지고

不待燈燭燃              등촉 타는 것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衆寶互低昂              여러 보석들이 번들거리고

碧珮珊瑚幡              푸른 구슬과 산호가 번쩍이었다.

風來似天樂              하늘 음악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相觸聲珊珊              서로 부딪쳐 그 소리가 쟁쟁거린다.

白珠垂露凝              흰 구슬은 늘어진 이슬이 맺힌 듯

赤珠滴血殷              붉은 구슬은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

點綴佛髻上              부처 머리 위에 점철되어

合爲七寶冠              합하여 칠보관이 되었다.

雙甁白琉璃              한 쌍의 병은 흰 유리이고

色若秋水寒              색은 가을 물의 차가움과 같았다.

隔甁見舍利              병 너머로 사리가 보이는데

圓轉如金丹              둥글게 구르는 것이 금단 같았다.

玉笛何代物              옥피리는 어느 시대의 물건인가

天人施祗園              천인리 지원에 시주하였다.

吹如秋鶴聲              부는 소리는 가을 학의 소리 같아

可以降靈仙              신령한 신선을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是時秋方中              이때는 마침 가을이었는데

三五月正圓              보름달이 한참 둥글었다.

寶堂豁三門              보당에 확 뚫린 세 개의 문

金魄當其前              달이 그 앞에 와있었다.

月與寶相射              달과 보당이 마주 보여.

晶光爭鮮姸              수정 빛이 선명함을 다투었다.

照人心骨冷              사람을 비춰 마음과 뼈가 차가운데

竟夕不欲眠              저녁이 다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曉尋南塔路              새벽에 남탑로를 찾으니

亂竹低嬋娟              어지러운 대나무 선연히 늘어져있다.

林幽不逢人              숲이 깊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寒蝶飛翾翾              가을나비가 파득파득 날아다닌다.

山果不識名              산속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데

離離夾道蕃              길게 뻗혀 길을 끼고 무성하였다.

足以療飢乏              배고픈 것을 족히 면할 수 있어서

摘賞味甘酸              따다가 그 맛을 보니 달콤새콤하였다.

道南藍谷神              길 남쪽의 푸른 골짜기는 신비롭고

紫繖白紙錢              자주빛 천에는 흰 종이돈이 있었다.

若歲有水旱              만약에 한해가 있다면

詔使修蘋蘩              조서를 내려 풀을 깎아버리게 했다.

以地淸淨故              땅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獻奠無葷羶              비리고 누린 음식을 못 올리게 했다.

危石疊四五              큰 바위가 네댓 개나 쌓여

嵬欹敧且刓              높고 기울어지고 또 깎여있었다.

造物者何意              조물주는 무슨 의도로

堆在巖東偏              바위 동쪽에 치우쳐 쌓아 놓았는가.

冷滑無人跡              차고 미끄러워 사람 자취 없고

苔點如花牋              이끼 얼룩이 마치 꽃종이 같았다.

我來登上頭              내가 와서 위쪽으로 올라서

下臨不測淵              아래를 보니 못을 헤아릴 수 없었다.

目眩手足掉              눈이 어지럽고 팔다리가 흔들려

不敢低頭看              감히 머리를 숙이고 살펴보지 못했다.

風從石下生              바람은 돌 아래에서 일어나고

薄人而上搏              사람을 하찮게 여겨 올라가 친다.

衣服似羽翮              의복은 날개 같아서

開張欲飛騰              펼쳐서 날아오르고 싶었다.

巍巍三面峯              높고 높은 삼면의 산봉우리

峯尖刀劍攢              칼끝을 모아 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

往往白雲過              가끔씩 흰 구름이 지나가고

決開露靑天              구름 터진 틈으로 푸른 하늘 드러난다.

西北日落時              서북으로 해가 넘어갈 시간

夕暉紅團團              저녁 햇볕 붉게 둥글었다.

千里翠屛外              푸른 병풍 밖, 아득한 천 리

走下丹砂丸              붉은 둥근 모래판으로 달려 내려갔다.

東南月上時              동남쪽에 달 뜰 시간

夜氣淸漫漫              밤기운은 맑고 질펀하였다.

百丈碧潭底              백 길이나 되는 푸른 못 아래

寫出黃金盤              황금빛 둥근 쟁반이 쏟아져 나왔다.

藍水色似藍              푸른 물, 물빛은 쪽빛 같았고

日夜長潺潺              밤낮으로 길이 졸졸 흘러갔다.

周廻繞山轉              주변을 돌아 산을 둘러 돌아가니

下視如靑環              아래로 내려 보니 푸른 고리 같았다.

或鋪爲慢流              혹은 퍼져 천천히 내려가고

或激爲奔湍              혹은 부딪쳐서 빠른 여울물이 된다.

泓澄最深處              가장 깊은 곳은 넓고도 맑아서

浮出蛟龍涎              교룡의 침처럼 둥둥 떠서 나온다.

側身入其中              몸을 비스듬히 그 안으로 들이면

懸磴尤險難              돌길이 매어달린 듯이 더욱 험난하다.

捫蘿蹋樛木              덩굴 붙잡고, 굽은 나무 밟으며

下逐飮澗猨              계곡물 마시는 원숭이를 아래로 쫓는다.

雪迸起白鷺              눈이 흩어지니 백로가 놀라 일어나고

錦跳驚紅鱣              붉은 상어에 놀라 비단결처럼 뛰어오른다.

歇定方盥漱              쉴 곳을 정하고 세수하고 양치하여

濯去支體煩              다 씻고 나니 팔다리가 피곤하였다.

淺深皆洞徹              옅고 깊은 모든 골짝물이 투명하니

可照腦與肝              가히 뇌와 간이라도 비출 것 같았다.

但愛淸見底              오직 바닥 보이는 맑음이 좋아

欲尋不知源              찾으려 했으나 그 근원을 알지 못했다.

東崖饒怪石              동쪽 언덕에는 괴석이 많고

積甃蒼琅玕              돌을 쌓아놓은 것이 푸른 옥돌 같았다.

卞和死已久              변씨와 화씨가 죽은 지 오래되어

良玉多棄捐              좋은 옥돌이 많이도 버려졌었다.

或時洩光彩              혹 때때로 광채를 끌어들이고

夜與星月連              밤에도 별과 달이 이어졌다.

中頂最高峯              가운데 꼭대기가 최고봉이라

拄天靑玉竿              하늘을 밭치는 푸른 옥 줄기 같도다.

형령上不得              올라가려 해도 갈 수가 없으니

豈我能攀援              어찌 내가 능히 잡아당겨 갈 수 있을까.

上有白蓮池              위에는 백연지 연못이 있어

素葩覆淸瀾              흰 꽃이 푸른 물결을 덮었구나.

聞名不可到              이름을 들었어도 가보지 못했으니

處所非人寰              사는 곳이 사람의 세계는 아니었으리라.

又有一片石              또 한 조각, 돌이 있는데

大如方尺甎              크기가 사방 한 자의 벽돌과 같았다.

揷在半壁上              벽 절반 위에 꽂아 두었으니

其下萬仞懸              그 아래로 萬 길이나 매달려있었다.

云有過去師              사람들이 이르기를, 과거에 스님이 있었는데

坐得無生禪              앉아도 선을 이루지 못했었단다.

號爲定心石              정심석이라 이름을 지어

長老世相傳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왔다.

却上謁仙祠              물러나 신선 사당에 올라가 아뢰니

蔓草生綿綿              덩굴풀이 綿綿히 자라났도다.

昔聞王氏子              옛날에 들으니, 王氏의 子息

羽化升上玄              神仙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고 했다.

其西曬藥臺              그 서쪽에 쇄약대가 있는데

猶對芝朮田              여전히 지출전과 마주보고 있다.

時復明月夜              때로 다시 밝은 달 뜬 밤이면

上聞黃鶴言              황학의 말이 위에서 들린다고 하였다.

廻尋畵龍堂              돌아서 화용당을 찾았더니

二叟鬚髮斑              두 늙은이는 수염이 반백이 되었다.

想見聽法時              생각해 보니 불법을 들을 때

歡喜禮印壇              예인단을 보면서 기뻐하였느니라.

復歸泉窟下              다시 천굴 아래로 돌아와

化作龍䖾蜒              바꾸어서 용완연을 만들었다.

階前石孔在              계단 앞에는 돌구멍이 있는데

欲雨生白煙              비가 내리려하면 흰 연기가 생긴단다.

往有寫經僧              왕년에 경전을 베끼는 중이 있었는데

身靜心精專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정성스럽고 순수했다.

感彼雲外鴿              저 구름 밖 비둘기 느끼어

羣飛千翩翩              수천 번을 퍼득이며 떼 지어 날았다.

來添硯中水              내려와 돌 속에 물을 보태고

去吸巖下泉              날아가서는 바위 아래 샘물을 들이킨다.

一日三往復              하루에 세 번씩 왕복하면서

時節長不僭              시절마다 언제나 교만하지는 않았다.

經成號聖僧              자신을 다스려 이루어 성승이라 불렀는데

弟子名揚難              제자를 양난이라 명명하였다.

誦此蓮花偈              이 연화의 게송을 외웠는데

數滿百億千              그 수가 백억천 개를 채웠다.

身壞口不壞              몸은 부서져도 입은 부서지지 않았으며

舌根如紅蓮              혀는 붉은 연꽃 같았다.

顱骨今不見              해골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石函尙存焉              돌함에는 아직 그것이 남아있다.

粉壁有吳畫              가루발린 집에는 오도자의 그림이 있는데

筆彩依舊鮮              붓으로 그린 채색 그림이 옛날처럼 鮮明하였다.

素屛有楮書              흰 병풍에는 저수량의 글씨가 있었는데

黑色如新乾              먹빛이 금방 마른 것만 같았다.

靈境與異跡              신령한 경지와 이색적인 자취들

周覽無不殫              두루 살펴보아도 끝이 없었다.

一遊五晝夜              한 번 돌아다니면 오일 밤낮 다녔고

欲返仍盤桓              돌아가려니 머뭇거려 졌다.

我本山中人              나는 본래 산중 사람인데

誤爲時網牽              잘못 시대의 그물에 끌려들었다.

牽率使讀書              나를 끌고 와서 책을 읽게하고

推挽令效官              나를 추천하여 관리가 되게 했다.

旣登文字科              이미 글로써 과거에 올라

又忝諫諍員              욕되게도 간쟁하는 관리가 되었다.

拙直不合時              졸렬하게 곧아서 시대에 맞지 않아

無益同素餐              유익함 없이 녹만 함께 먹었다.

以此自慚惕              이 때문에 스스로 부끄럽고 두려워

戚戚常寡歡              불안해 하면서 항상 기뻐함이 적었다.

無成心力盡              일을 이루지 못하면서 심력을 다하여

未老形骸殘              늙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쇠약해 졌다.

今來脫簪組              이제 비녀의 끈을 풀고 벼슬길에서 물러나니

始覺離憂患              비로소 우환에서 벗어남을 깨달았도다.

及爲山水遊              산수에 노닐게 되어

彌得縱疎頑              내게 소홀하고 완고함 가득해도

野麋斷覇絆              들판의 사슴처럼 구속됨을 끊어버렸다.

行走無拘攣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거리낄 것이 없어

池魚放入海              못의 고기를 놓아 바다로 들게 함이다.

一往何時還              한 번 가면 어느 때나 돌아오나

身著居士衣              몸에는 거사의 옷을 입고

手把南華篇              손에는 도덕경을 들고 돌아다녔다.

終故此山住              끝내는 고향의 이 山에 머물러 살며

永謝區中緣              영원히 이 땅 안에 인연에 감사한다.

我今四十餘              나는 이미 마흔 살이 되었지만

從此終身閑              지금부터 죽을 때 까지 한가하리라.

若以七十期              만약 칠십 살이 내 생애라면

猶得三十年              여전히 삼십 년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隱几 / 隱幾               안석에 기대어

 

身適忘四支              몸이 쾌적하니 손발을 잊고

心適忘是非              마음이 쾌적하니 시비도 잊는다.

旣適又忘適              이미 쾌적하니 쾌적함도 잊으니

不知吾是誰              내가 곧 누구인지도 모르겠구나.

百體如槁木              온 몸이 마른 나무 같아

兀然無所知              멍하니 아는 것 아무것도 없어라.

方寸如死灰              마음은 꺼져버린 재와 같아서

寂然無所思              적막하게도 아무런 생각도 없어라.

今日復明日              오늘 아침 또 내일 아침

身心忽兩遺              몸과 마음을 홀연히 모두 잊는다.

行年三十九              살아온 내 나이 이미 서른아홉

歲暮日斜時              세모에 해가 기우는 때이로다.

四十心不動              마흔 살이면 마음 동요가 없다는데

吾今其庶幾              나는 지금 그러한 경지에 가까울까?

 

 

履道西門                     이도서문에서

 

履道西門獨掩扉          이도서문에 홀로 문을 가리고

官休病退客來稀          벼슬 그치고 병들어 물러나니 손님 드물다.

亦知軒冕榮堪戀          높은 벼슬 그리워 할 만하다는 것도 알지만

其奈田園老合歸          전원이 늙어서 돌아갈 곳임을 어쩌리오.

跋鼈難隨騏驥足          절뚝이 자라는 천리마의 다리를 따르기 어렵고

傷禽莫趁鳳皇飛          상처 난 새는 봉황새의 비상을 쫓아가지 못한다.

世間認得身人少          세상에는 자기 몸을 얻는 자가 드무니

今我雖愚亦庶幾          이제 나는 비록 어리석어도 도에 가까우리라

 

 

移家入新宅              이사하여 새집에 입주하며

 

移家入新宅              이사하여 새 집에 들고 보니

罷郡有餘資              군의 벼슬을 그만 두어도 자산이 넉넉하다.

旣可避燥濕              건조함과 습기를 피할 수 있고

復免憂寒飢              다시 추위와 굶주림의 근심 면하였다.

疾平未還假              병이 나았는데 휴가는 끝나지 않았고

官閒得分司              관직은 한가하게도 분사의 자리라.

幸有俸祿在              다행히도 봉록은 나오고

而無職役羈              얽어매는 직무도 전혀 없구나.

淸旦盥漱畢              맑은 아침 세수를 마치고

開軒卷簾幃              마루문을 열고 발과 휘장을 걷는다.

家人及雞犬              식구들과 닭과 개는

隨我亦熙熙              나를 따르며 즐거워한다.

取興不過酒              흥을 갖는 데는 술이 빠질 수 없나니

放情或作詩              마음을 풀기 위해 간혹 시를 짓는다.

何必苦修道              어찌 반드시 애서 도를 닦아야 하나

此卽是無爲              이런 것들도 곧 무위자연인 것을.

外累信已遣              외물에 얽매임이 이미 사라지고

中懷時有思              마음속엔 때때로 생각이 난다.

有思一何遠              생각남은 하나같이 어찌나 먼지

黙坐低雙眉              말없이 앉으니 두 눈썹을 내려 본다.

十載囚竄客              지나온 십 년이 귀양 온 나그네 처지

萬里征戍兒              만 리 변방 수자리간 젊은이 신세로다.

春朝鏁籠鳥              봄날 아침에 새장에 갇힌 새 처지

冬夜支牀龜              겨울 밤 동안 책상을 바치고 있는 거북이로다.

驛馬走四蹄              역마의 달리는 네 발굽은

痛酸無歇期              아프고 쓰라려도 쉴 기간이 전혀 없도다.

磑牛封兩目              맷돌 가는 소는 두 눈을 가리니

昏閉何人知              어둡고 갑갑함을 어느 누가 알아줄까.

誰能脫放去              누가 풀어주고 놓아주어 떠나가게 하여

四散任所之              사방으로 흩어져 마음대로 가고

各得適其性              각자 그들의 본성에 맞추어

如吾今日時              나의 오늘날의 시간과 같게 할 수 있을까.

 

 

立碑                         비석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勳德旣下衰              공적과 덕행이 미미하면

文章亦陵夷              그것을 기록한 글도 그것에 맞아야지.

但見山中石              산속에 있는 돌덩이로 보았던 것을

立作路旁碑              길가에 비석으로 세운단다.

銘勳悉太公              새긴 공적은 모두가 태공처럼 높고

敍德皆仲尼              적은 내용은 공자 같은 덕행이란다.

復以多爲貴              또 글자가 많아야 좋다고 여기고

千言直萬貲              많은 돈을 들여서 일천 자를 새긴단다.

爲文彼何人              비문을 지은 자는 누구일까

想見下筆時              생각해 보니 비문을 지을 때

但欲愚者悅              어리석은 자들의 기쁨만 생각해 지었단다.

不思賢者嗤              현자들의 비웃음은 생각지 못했으니

豈獨賢者嗤              어찌 현자들만 비웃으리오.

仍傳後代疑              후대까지 전해지며 의심을 사리라

古石蒼苔字              오래된 돌에 푸른 이끼 낀 글자들이

安知是愧詞              어찌 부끄러운 말뜻을 알겠는가.

我聞望江縣              내가 들으니, 망강현의 현령은

麴令撫惸嫠              외로운 백성들을 위로하였단다.

在官有仁政              관리로 있을 때에 어진 정치 베풀었으나

名不聞京師              그 명성이 서울에는 들리지 않았단다.

身歿欲歸葬              죽은 후 고향에 장사지내려 했으나

百姓遮路岐              백성들이 그 길을 가로막았단다.

攀轅不得歸              수레 끌채를 잡고 가지 못하게 만류하니

留葬此江湄              망강 강변에 그를 장사지냈단다.

至今道其名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부르면

男女涕皆垂              남자와 여자들 모두가 눈물 흘린다.

無人立碑碣              비석을 세운 사람 아무도 없어도

唯有邑人知              고을 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다 알고 있단다.

 

 

自覺二首                  나는 알았네

 

1

四十未爲老              인생 사십 아직 늙은이도 아닌데

憂傷早衰惡              걱정과 근심에 늙고 추해졌구나.

前歲二毛生              작년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今年一齒落              금년엔 치아가 하나 빠졌구나.

形骸日損耗              몸은 날마다 허약해지고

心事同蕭索              마음은 같이 쓸쓸해지는구나.

夜寢與朝餐              밤에 잠과 아침에 먹는 밥도

其間味亦薄              그 사이 맛도 없어졌다.

同歲崔舍人              같은 나이인 최사인은

容光方灼灼              용모가 한참 건장하구나.

始知年與貌              이제야 알겠노라 나이와 용모도

衰盛隨憂樂              근심과 즐거움 따라 성하고 쇠함을.

畏老老轉逼              늙음이 두려우나 늙음은 갈수록 닥쳐오고

憂病病彌縛              병나는 것 두려우나 병은 더욱 속박해온다.

不畏復不憂              두려워말고 또 근심하지도 말자

是除老病藥              이것이 늙음과 병을 없애는 약이니라.

 

2

朝哭心所愛              아침에는 사랑하는 딸을 통곡하고

暮哭心所親              저녁에는 친애하는 어머님 곡하다니.

親愛零落盡              자식과 부모 다 돌아가니

安用身獨存              어찌 이 몸만 혼자 살아갈 필요 있나.

幾許平生歡              평생의 기쁜 일이 얼마인가

無限骨肉恩              끝없는 부모님의 은혜이로다.

結爲腸間痛              근심을 맺어 속병이 되고

聚作鼻頭辛              슬픔을 취하여 코끝이 얼얼하다.

悲來四肢緩              슬픔에 사지가 늘어지고

泣盡雙眸昏              눈물이 다함에 두 눈동자 흐려진다.

所以年四十              그래서 나이 사십에

心如七十人              마음은 칠십 노인이로다.

我聞浮圖敎              내가 들은 불교의 가르침

中有解脫門              그 중에는 해탈의 문이 있었도다.

置心爲止水              마음 가지기를 고요한 물처럼 하고

視身如浮雲              내 몸 보기를 뜬 구름처럼 해야 한다.

抖擻垢穢衣              때 묻은 더러운 옷을 떨어내고

度脫生死輪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야 한다.

胡爲戀此苦              어찌해야 이 고통을 바꿀까

不去猶逡巡              떠나지 않으면 꾸물거린다.

回念發弘願              생각을 돌려 큰 소원을 빌어

願此見在身              이러한 것이 내 몸에 나타났으면

但受過去報              다만 과거의 업보를 받아

不結將來因              장래의 인과를 맺지 말았으면

誓以智慧水              맹서하건데 지혜의 물로

永洗煩惱塵              번뇌의 흙먼지를 영원히 씻어 내리라.

不將恩愛子              은애로운 것을 거느리지 않고

更種悲憂根              다시는 슬픔과 근심의 뿌리를 심지 않으리라.

 

 

自江陵之徐州路上作寄兄弟   강릉의 서주 노상에서 형제들에게 부치다

 

岐路南將北              남과 북으로 갈리는 길에서

離憂弟與兄              형제는 헤어지는 슬픔을 나누었다.

關河千里別              국경과 강 건너 천 리 먼 길을

風雪一身行              눈바람 속에서 나 홀로 걸어간다.

夕宿勞鄕夢              밤잠자리에서는 애써 고향 꿈꾸고

晨裝慘旅情              아침 행장에 여행의 고달픔 비참하다.

家貧憂後事              집마저 가난해서 뒷일도 걱정스럽고

日短念前程              앞길을 생각하니 해는 짧구나.

煙雁翻寒渚              안개 속에 기러기는 차가운 물가를 날고

霜烏聚古城              서리 맞은 까마귀는 옛 성으로 모여 드는구나.

誰憐陟岡者              누가 가련하다 하리 언덕에 오르는 자가

西楚望南荊              서초 땅에서 남형 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紫薇花

 

絲綸閣下文章靜          사륜각 아래 문장은 고요하고

鐘鼓樓中刻漏長          종고루 안 물시계 소리만 길다.

獨坐黃昏誰是伴          홀로 앉는 황혼녘 곁에 뉘 있나

紫薇花對紫薇郞          자미화과 자미랑과 마주본다.

 

 

自詠                         스스로 읊다

 

夜鏡隱白髮              밤에 거울 속에 백발이 숨어있고

朝酒發紅顔              아침술에 얼굴이 붉어진다.

可憐假年少              가련하다, 여생이 얼마 되지 않음이여

自笑須臾間              짧은 인생에 절로 우습다.

朱砂賤如土              주사를 흙처럼 천하게 여겨

不解燒爲丹              태우면 단약이 됨을 알지 못한다.

玄鬢化爲雪              검은 머리 백발이 되어도

未聞休得官              아직 벼슬을 그만 두지 못한다.

咄哉箇丈夫              한심하여라 못난 한 사내여

心性何墮頑              심성이 얼마나 게으르고 어리석은가.

但遇詩與酒              시와 술만 만나면

便忘寢與餐              잠자고 먹는 일도 잊어버린다.

高聲發一吟              소리 높여 한 번 읊으면

似得詩中仙              마치 시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引滿飮一琖              가득 채워 술 한 잔 마시면

盡忘身外緣              세상 일은 모두를 잊어버린다.

昔有醉先生              그 옛날 취선생은

席地而幕天              땅을 자리로 삼고 하늘을 장막으로 삼는다.

于今居處在              지금 거처할 곳이 있어

許我當中眠              나는 그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眠罷又一酌              잠에서 깨면 또 술 한 잔 마시고

酌罷又一篇              마시고 나서 또 한 편의 시를 읊는다.

回面顧妻子              고개 돌려 처자식을 보니

生計方落然              생계는 이제 막막하다.

誠知此事非              정말 이런 일이 잘못인 줄 알고

又過知非年              또 내 나이 잘못을 아는 나이 오십 세가 지났다.

豈不欲自改              어찌 스스로 고치려하지 않았을까만

改卽心不安              고치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였다.

且向安處去              우선 마음을 편히 가지면서

其餘皆老閑              그 나머지 일은 모두 버려두고 살리라.

 

 

慈烏夜啼                자비한 까마귀 밤에 우네

 

慈烏失其母              자애로운 까마귀 어미를 잃고

啞啞吐哀音              "까악까악" 슬픈 소리를 토해낸다.

晝夜不飛去              밤낮으로 날아 떠나지 않고

經年守故林              한 해가 다하도록 옛 숲을 지킨다.

夜夜夜半啼              밤마다 밤 깊도록 울음 우니

聞者爲沾襟              듣는 사람은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聲中如告訴              울음소리가 호소하는 것 같음은

未盡反哺心              부모은혜 다 갚지 못한 마음 때문이라.

百鳥豈無母              모든 새에게 어찌 어머니가 없을까마는

爾獨哀怨深              너만 홀로 슬퍼하고 원통함이 깊구나.

應是母慈重              자애롭고 소중한 건 어머니 사랑이라

使爾悲不任              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게 하였구나.

昔有吳起者              옛날 오기라는 장수 있었는데

母歿喪不臨              제 어미가 죽어도 장례에 오지 않았다.

嗟哉斯徒輩              슬프도다! 이런 불효한 무리들이여

其心不如禽              그 마음 씀이 새만도 못하구나.

慈烏彼慈烏              자비한 까마귀, 저 까마귀여

烏中之曾參              새 중에서도 증삼 같은 효자로구나.

 

 

自題寫眞                초상화에 스스로 글을 짓다

 

我貌不自識              내 모습을 내가 모르는데

李放寫我眞              이방이 초상화를 그려주었구나.

靜觀神與骨              신기와 골격을 가만히 살피니

合是山中人              산 속에 사는 사람이 분명하다.

蒲柳質易朽              갯버들 체질이라 썩기가 쉽고

麋鹿心難馴              사슴 같은 마음이라 길들이기 어렵네.

何事赤墀上              무슨 일로 대궐에 올라와

五年爲侍臣              오 년간을 황제 모신 신하되었나.

況多剛狷性              하물며 고집과 고지식함이 많아

難與世同塵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라.

不惟非貴相              귀골의 인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但恐生禍因              화를 초래할 원인이 될까 두려워라.

宜當早罷去              마땅히 일찍 파직하고 물러나

收取雲泉身              산과 물에 사는 처신을 택하여라.

 

 

自歎                         스스로 탄식하다

 

豈獨年相迫              어찌 다만 나이만 많아지니

兼爲病所侵              아울러 병마저 찾아오는구나.

春來痰氣動              봄이 되니 가래기운이 끓어오르고

老去嗽聲深              늙어가니 기침소리가 깊어지는구나.

眼暗猶操筆              눈이 어두워져도 붓을 잡고

頭斑未挂簪              머리가 빠져 비녀마저 꼽지 못한다.

因循過日月              습관대로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다니

眞是俗人心              진정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심정인가.

 

 

長相思                  끝없는 그리움이여

 

1

汴水流                        변수가 흐르고

泗水流                        사수도 흐르고

流到瓜州古渡頭          흘러흘러 과주 옛 나루터에 이르면

吳山點點愁                  오나라 산들도 점점이 수심에 잠겨있네

 

思悠悠                        생각이 아득하고

恨悠悠                        한도 아득하고

恨到歸時方始休          사람이 돌아올 때 한이 비로소 풀리겠지만

月明人倚樓                  달 밝은데 누가 누각에 기대어 서있네

 

長相思 - 사패(詞의 형식)의 하나, 36자의 쌍조 평운이다.

汴水 - 수양제가 개착한 대운하의 일부분, 회하(淮河)로 흘러 들어간다.

泗水 - 산동성에서 시작해 곡부를 지나 대운하로 합쳐지는 강.

瓜州 - 감숙성의 지역명, 여기서는 양자강 북안의 강소성 양주시 瓜州鎭, 대운하가 양자강과 만나는 지점

吳山 - 오나라 산, 남쪽 지방의 산

 

 

2            

九月西風興              구월에 서풍은 불어오고

月冷霜華凝              달빛이 차가워 서리 희게 엉킨다.

思君秋夜長              그대 생각에 가을밤은 길기도 하여

一夜魂九升              넋은 하룻밤에도 아홉 번이나 올라본다.

二月東風來              이월 봄바람이 불어오니

草拆花心開              풀은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난다.

思君春日遲              그대 생각에 봄날은 더디 가고

一夜腸九廻              하로 밤에 애간장 아홉 번이나 뒤집힌다.

妾住洛橋北              첩은 낙교의 북쪽에 살았고

君住洛橋南              당신은 낙교의 남쪽에 살았었지요.

十五卽相識              열다섯 나이에 서로 알게 되어

今年二十三              금년에 스물세 살이 되었지요.

有如女蘿草              마치 담쟁이덩굴 같은 처지 되어

生在松之側              소나무에 기대어 사는 것 같습니다.

蔓短枝苦高              줄기가 짧아 가지는 높이 자라기 힘들고

縈廻上不得              아무리 타고 오르려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人言人有願              사람들의 말에 사람에게 소원이 있으면

願至天必成              소원이 지극하면 하늘도 반드시 이루어준다지요.

願作遠方獸              원하기는 먼 곳의 비견수가 되어

步步出肩行              걸음마다 나란히 걸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願作深山木              또 원하기는 깊은 산에 나무가 되어

枝枝連理生              가지마다 이어져 서로 닿아 살 수 있으면 해요.

 

比肩獸 - 앞발이 워낙 짧아서 달리지 못하므로, 항상 공공거허와 나란히 다니면서 공공거허에게 감초를 먹여 주어, 혹 위기를 만나면 공공거허가 그를 등에 업고 도망친다고 한다.

 

 

張十八

 

諫垣幾見遷遺補          간원에서 몇 번 보았는데 유보로 옮겨가고

憲府頻聞轉殿監          헌부에서 자주 들었는데 전감으로 옮겼구나.

獨有詠詩張太祝          오직 시 읊는 장태축이 있으니

十年不改舊官銜          십 년 동안 옛 관함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長安早春旅懷             이른 봄날 장안에서 나그네 회포

 

軒車歌吹喧都邑          수레와 노랫소리로 장안이 시끄러운데

中有一人向隅立          그 가운데 구석 향해 서있는 한 사람 있다.

夜深明月卷簾愁          깊은 밤 달은 밝은데 주렴 걷으니 수심 겹고

日暮靑山望鄕泣          해 저무는 청산에서 고향 바라보며 눈물 흘린다.

風吹新綠草芽拆          신록에 바람 부니 풀싹이 트고

雨灑輕黃柳條濕          가볍게 뿌리는 비에 연두빛 버들가지 물오른다.

此生知負少年春          이 몸은 젊어 봄날을 저버린 것을 알았나니

不展愁眉欲三十          근심스런 눈썹 펴지 못한 채로 삼십 년이 되어간다.

 

 

長恨歌                       장한가

 

漢皇重色思傾國          황제는 색을 좋아해 미인을 생각하고

御宇多年求不得          재위 여러 해 구했지만 구하지 못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집에 한 처녀 커가자

養在深閨人未識          집안 깊숙이 두고 키워 사람들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하늘이 내린 미모 마음대로 버릴 수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에 선택되어 군왕의 옆에 있게 되었네

回眸一笑百媚生          눈동자를 돌리며 한번 웃으면 백가지 교태가 생겨

六宮粉黛無顔色          후궁의 미녀들은 낯빛이 무색해졌네 

春寒賜浴華清池          봄추위에 화청지에 목욕하게 하자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 매끄러운데 하얀 살결 씻었네

侍兒扶起嬌無力          시동이 부축해 일으키자 힘없이 교태를 보이고

始是新承恩澤時          이때가 바로 처음으로 은택을 입을 때였다.

雲鬢花顔金步搖          둥근 귀밑머리 꽃같은 얼굴 금 머리장식

芙蓉帳暖度春宵          연꽃 장막이 따뜻하니 봄밤의 일이 헤아려지네

春宵苦短日高起          밤의 정사 힘들어 짧은 해 높아서야 일어나고

從此君王不早朝          이후로 군왕은 조회에 일찍 나오지 않네

承歡侍宴無閑暇          기분 맞춰 연회에서 모시니 한가한 틈이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에는 봄나들이 밤에는 밤일

後宮佳麗三千人          후궁은 아름다운 삼천 명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는 오직 한 몸에 있네

金屋妝成嬌侍夜          금 전각에 화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

玉樓宴罷醉和春          옥 누각 연회 파하면 봄과 함께 취하네

姊妹弟兄皆列土          자매 형제 모두 높은 자리

可憐光彩生門戶          가련한 광채가 집안에 생겨나네

遂令天下父母心          마침내 천하의 부모의 마음마저 움직여

不重生男重生女          남자아이 중요시하지 않고 딸 낳기를 중시하네

驪宮高處入青雲          려산의 궁궐 높아 푸른 구름이 들어가고

仙樂風飄處處聞          신비한 음악 바람에 날려 곳곳에 들리네

緩歌謾舞凝絲竹          느린 노래 우아한 춤에 거문고와 피리소리 합쳐지고

盡日君王看不足          날이 다하도록 임금은 보고 즐기지만 끝이 없었다

漁陽鼙鼓動地來          어양에서 북소리 울리고 땅이 흔들려 오자

驚破霓裳羽衣曲          놀라서 예상우의곡의 음악은 멈추었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에 연기와 먼지 생기고

千乘萬騎西南行          천 수레 만 기병이 서남으로 떠나네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수레 흔들흔들 행렬이 다시 멈추고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으로 나와 백여 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이 펼쳐지지 않으니 어찌하리

宛轉蛾眉馬前死          부드럽던 그 눈썹 말 앞에서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꽃 비녀는 땅에 떨어져도 거두는 이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비취깃털 금공작 옥비녀 흩어지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낯을 가릴 뿐 구해주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돌아보며 피눈물 서로 흘렸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먼지 날리고 바람 스산해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잔교를 돌고 돌아 검문각에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 행인들 적은데

旌旗無光日色薄          깃발은 빛이 없고 햇빛도 옅어라

蜀江水碧蜀山青          촉나라 강물은 푸르고 산은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          임금은 아침마다 저녁마다 정을 잊지 못하네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빛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를 끊는 소리

天旋地轉回龍馭          천지가 뒤바뀌어 어가가 돌아올 때

到此躊躇不能去          이곳에 도착해서는 주저하며 가지를 못하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옥같은 얼굴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공허하네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은 서로 돌아보며 옷이 눈물에 젖으며

東望都門信馬歸          동쪽으로 도성문을 보며 말이 돌아가기를 믿을 뿐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오니 연못과 정원은 모두 옛과 같은데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연꽃 미앙궁의 버들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얼굴 같고 버들은 눈썹같아

對此如何不淚垂          이것을 마주하고는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꽃 배꽃이 피던 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오동나무 낙엽 지던 날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쪽 정원은 가을 풀로 가득하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은 계단에 가득 붉어도 쓸지 않았지

梨園弟子白髮新          이원의 자제들 이제 흰머리 새로 나고

椒房阿監青娥老          황후전의 환관들과 궁녀들도 늙었다

夕殿螢飛思悄然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날고 마음은 근심가득

孤燈挑盡未成眠          외등이 꺼져도 잠을 이루지 못하네

遲遲鐘鼓初長夜          천천히 종과 북 울려 긴 밤이 시작되고 

耿耿星河欲曙天          총총한 은하수가 하늘을 밝히려고 하네

鴛鴦瓦冷霜華重          원앙 기와 차가운데 서리꽃이 더하고

翡翠衾寒誰與共          비취 이불 차가와 누구와 함께 할까

悠悠生死別經年          길고 긴 인생사 다시 해를 더하는데

魂魄不曾來入夢          혼백이라도 꿈속에 들어온 적이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사가 장안에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을 다하면 혼백에 다가갈 수가 있었다

爲感君王輾轉思          군왕의 잠 못 이루는 생각에 감동해

遂敎方士殷勤覓          마침내 방사에게 간절히 찾아보도록 시켰네

排空馭氣奔如電          공중으로 솟구쳐 번개처럼 달리고

昇天入地求之遍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와 두루 찾았네

上窮碧落下黃泉          궁벽에 올랐다가 아래로 황천까지 내려갔지만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해 보이지를 않았지

忽聞海上有仙山          문득 바다 위에 신선산이 있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山在虛無縹渺間          산은 텅 비고 아득히 어렴풋한 곳에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 일었고

其中綽約多仙子          그 속에는 단아한 많은 신선들 있었지

中有一人字太真          그 중에 한사람 이름이 태진인데

雪膚花貌參差是          흰 피부와 꽃 같은 용모 대략 다르지 않았다

金闕西廂叩玉扃          금대궐 서쪽 행랑 옥대문을 두드려

轉敎小玉報雙成          시녀 불러 서왕모 시녀에게 알리게 했다

聞道漢家天子使          중국 천자의 사신이 왔다는 이야기 듣고

九華帳裡夢魂驚          첩첩화려한 장막 속에서 놀라 꿈을 깨었네

攬衣推枕起徘佪          옷을 쥐고 베게 밀며 일어나 서성이며

珠箔銀屛迤邐開          주렴과 은 병풍을 비스듬히 밀며 차례로 열었다.

雲鬢半偏新睡覺          둥근 귀밑머리 한쪽으로 밀려 있네 금방 잠이 깼구나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이 일어 신선의 소매 표표히 들리니

猶似霓裳羽衣舞          오히려 예상우의 춤을 추는 듯하다.    

玉容寂寞淚闌乾          옥같은 얼굴 적막한데 눈물은 멋대로 흘러 붙어

梨花一枝春帶雨          배꽃 가지 하나 봄비에 젖었다   

含情凝睇謝君王          정이 가득한 눈길로 군왕에 사례하기를

一別音容兩渺茫          한번 헤어진 후 목소리와 모습 모두 아득하군요

昭陽殿裡恩愛絶          소양전 속의 은혜와 사랑 끊기니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의 세월은 길기만 합니다.

回頭下望人寰處          고개 돌려 아래로 인간세상 바라보지만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볼 수 없고 먼지 안개만 보일 뿐입니다.

惟將舊物表深情          오직 옛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고자 하니

鈿合金釵寄將去          나전함과 금비녀를 가져가도록 부칩니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 하나 함 하나

釵擘黃金合分鈿          비녀는 황금을 쪼개내고 함에는 나전을 분리했어요.

但敎心似金鈿堅          만약 주신 마음이 금이나 나전처럼 굳기만 하다면

天上人間會相見          하늘 위에서 인간으로 서로 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臨別殷勤重寄詞          작별 전에 간절하게 거듭 전하는 말이 있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말 중에 두 사람만 아는 맹세가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깊은 밤 사람 없어 다정히 말씀하실 때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 되자 하셨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 되자 하셨죠

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길고 영원해도 그 끝이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은 길고 길어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네요

 

당 현종과 양귀비의 고사를 읊은 서사시

傾國 - 경국지색

御宇 -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粉黛 - 분을 바른 얼굴과 먹으로 그린 눈썹. 화장한 미인

雲鬢 - 구름 같은 귀밑머리

承歡 - 사람의 기분을 맞추어 기쁘게 함

驪宮 - 서안의 동쪽 려산 아래의 궁전. 화청지가 이곳에 있다

漁陽鼙鼓 - 안록산의 반란

霓裳羽衣曲 - 신선들의 세상인 월궁의 음악을 본떠 만들었다는 곡

翠華 - 물총새의 깃털로 장식한 천자의 가마 혹은 천자의 깃발

縈紆 - 빙돌아 얽힘

劍閣 - 검문관을 말함. 촉으로 가는 가장 험준한 관

馬嵬坡 - 서안의 서쪽 興平市 서북12km. 양귀비 묘가 있다

太液 - 궁의 가장 큰 연못

未央 - 한나라때의 궁전 이름

梨園 - 당 현종이 설립한 궁중 음악 교습소

椒房 - 산초를 발라 향이 나게 한 방. 왕후나 후궁의 방

小玉 - 시녀나 궁녀를 보통 지칭하는 이름

雙成 - 서왕모의 시녀

昭陽殿 - 한나라 성제가 후궁을 위해 건축한 궁전

蓬萊宮 - 바다 한가운데 있는 전설상의 신선궁궐

比翼鳥 -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전설상의 새. 암수가 만나야 날수 있다

連理枝 - 두 나무가 자라면서 붙게 된 나무 혹은 가지

天長地久 - 하늘과 땅이 영원함

 

 

適意                         기꺼워서

 

十年為旅客              십 년을 떠돈 나그네 신세

常有饑寒愁              항상 배고프고 춥고 근심스러웠지요.

三年作諫官              삼 년간의 간관 노릇

複多尸素羞              놀고먹어 부끄러움이 많았지요.

有酒不暇飲              술이 생겨도 마실 여가 없고

有山不得游              산이 있어도 놀 수도 없었지요.

豈無平生志              어찌 평생에 품은 뜻 없으리오만

拘牽不自由              벼슬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지요.

一朝歸渭上              하루아침에 위수가로 돌아와

泛如不繫舟              매이지 않은 배처럼 떠다녔지요.

置心世事外              마음을 세상 밖 일에 두어

無喜亦無憂              기쁜 일도 없었고, 슬픈 일도 없었지요.

終日一蔬食              종일토록 나물밥 한 가지에

終年一布裘              일년이 끝나도록 베옷만 입었었지요.

寒來彌懶放              추위가 오면 더욱 나태해지고

數日一梳頭              며칠 만에야 한 번 빗질 했었지요.

朝睡足始起              아침까지 실컷 자고야 일어나고

夜酌醉即休              밤에는 취하도록 마셔야 그만 두었지요.

人心不過適              사람의 마음은 편한 게 최고인데

適外複何求              마음 편한 것 외에 또 무엇을 바라겠어요.

 

 

錢塘湖春行                 전당호에의 봄나들이

 

孤山寺北賈亭西          고산사의 북쪽 가정의 서쪽에는

水面初平雲脚低          수면이 잔잔하고 구름이 나직한데

幾處早鶯爭暖樹          일찍 나온 꾀꼬리는 다투어 따뜻한 가지를 찾고

誰家新燕啄春泥          막 돌아온 제비는 집 지으려고 진흙을 쫀다.

亂花漸欲迷人眼          여기저기 핀 꽃은 점점 눈을 어지럽히고

淺草才能沒馬蹄          짤막한 풀은 이제 겨우 말발굽이 묻힌다.

最愛湖東行不足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수 동쪽 흰 모래 둑

綠楊陰裏白沙堤          버들이 늘어진 그곳을 다 돌아보지 못했도다.

 

 

田園樂七首

 

1

出入千門萬戶          천문만호의 황궁을 출입하고

經過北里南鄰          북과 남 온갖 마을을 다 오간다.

蹀躞鳴珂有底          천천히 말 구슬 울리며 다녀도

崆峒散髮作人          공동산 속 산발한 사람 누구인가.

 

2

再見封侯萬戶          두 번째 알현으로 만호 식읍의 제후에 봉해져

立談賜璧一雙          선 채로 담화하며 한 쌍의 고리옥을 하사 받는다.

詎勝耦耕南畝          그것이 어찌 남향의 논밭을 경작함보다 나으며

何如高臥東窓          동쪽 창가에 높이 누워 살아가는 것만 하겠는가.

 

3

採菱渡頭風急          마름을 캐는데 나루터에 바람은 급하고

策杖邨西日斜          서쪽에는 해 저무는데 지팡이 짚고서있다.

杏樹壇邊漁父          은행나무 제단가에 어부 하나 있어

桃花源裏人家          도화원 안에는 사람의 집들이 보인다.

 

4

萋萋芳草春綠          우거진 방초로 봄은 푸르고

落落長松夏寒          늘어진 긴 소나무에 여름도 차갑다.

牛羊自歸邨巷          소와 양은 절로 마을 골목으로 돌아오는데

童稚不識衣冠          어린 아이들은 벼슬아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5

山下孤煙遠邨          산 아래 먼 마을에 외로운 연기

天邊獨樹高原          하늘 가 고원에 외로운 나무.

一瓢顔回陋巷          한 쪽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 사는 안회

五柳先生對門          오유선생과 서로 대문을 마주보고 있다.

 

6

桃紅復含宿雨          복사꽃 붉은데다 지난 밤비 머금고

柳綠更帶春煙          버들잎 푸른데 더욱이 봄 안개 가득하다.

花落家憧未掃          꽃잎이 떨어져도 어린 하인은 쓸지 않고

鶯啼山客猶眠          꾀꼬리 울어도 山속 나그네 여전히 자고 있다.

 

7

酌酒會臨泉水          샘물가에 모여 술 따라 마시며

抱琴好倚長松          거문고 안고 와 긴 소나무에 기댄다.

南園露葵朝折          남쪽 동산 아욱을 아침에 따고

東谷黃粱夜舂          동쪽 골짝 매조는 저녁에 찧는단다.

 

 

折劍頭

 

拾得折劍頭              칼 부러진 머리 주웠는데

不知折之由              부러진 사유는 알 수 없구나.

疑是斬鯨鯢              혹은 고래를 잘랐나

不然則蛟虬              아니면 교규을 잘랐을까.

缺落尼土中              흙 속에 떨어져 있어

委棄無人收              버려둔 채, 줍는 사람 없구나.

我有鄙介性              나는 지루한 고집 있어

好剛不好柔              강직한 것 좋고 굽히는 것 싫도다.

勿輕直折劍              곧아서 부서진 칼 얕보지 말라

猶勝曲全鉤              굽혀서 온전한 갈구리보다 낫도다.

 

 

折臂翁                        팔뚝 부러진 노인

 

新豐老翁八十八          신풍의 늙은이 나이는 여든여덟 살

頭鬢眉鬚皆似雪          머리털, 눈썹, 수염이 모두 눈처럼 희다.

玄孫扶向店前行          현손이 부축하여 점포 앞으로 나가는데

左臂憑肩右臂折          왼팔 어깨에 달려있고 오른팔은 꺾여있다.

問翁臂折來幾年          팔 부러진 지 몇 년 되는가를 묻고

兼問致折何因緣          겸하여 무슨 일로 부러진 것인지도 물었다.

翁云貫屬新豐縣          노인이 이르기를, “나는 본래 신풍현 사람인데

生逢聖代無征戰          태평성대에 태어나 전쟁이란 없었지요.

慣聽梨園歌管聲          이원의 자제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만 들어와

不識旗槍與弓箭          깃발과 창 그리고 활과 살은 알지도 못했었다.

無何天寶大徵兵          난데없이 천보년간에 크게 징집령이 있어

戶有三丁點一丁          집집마다 장정이 셋이면 한 명씩을 뽑았지요.

點得驅將何處去          뽑은 장정을 몰아다가 어디로 떠나보냈는가

五月萬里雲南行          오월에 만 리 먼 운남 땅으로 갔다오.

聞道雲南有瀘水          운남 땅에는 로수라는 강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椒花落時瘴烟起          산초꽃이 떨어질 철에는 풍토병이 있다고 하였소.

大軍徒涉水如湯          대군이 맨발로 열탕 같은 물을 건너는데

未過十人二三死          다 건너지도 못해서 열이면 두 세 명은 죽었다오.

村南村北哭聲哀          남촌 북촌에 통곡소리가 너무나 애절했으니

兒別爺娘夫別妻          아이는 부모와 헤어지고 남편은 아내와 이별했었소.

皆云前後征蠻者          모두들 말하기를 전후하여 남만 땅으로 전쟁 간 사람

千萬人行無一廻          천만 명이 나갔으나 돌아온 사람 하나 없다고 하였소.

是時翁年二十四          당시에 노인의 나이는 스물넷 살 청년이었다오.

兵部牒中有名字          병부의 명단에 내 이름이 있어

夜深不敢使人知          밤이 깊어지자 감시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고서는

偸將大石鎚折臂          몰래 큰 돌을 가지고 내 팔뚝을 쳐서 꺾어버렸다오.

張弓簸旗俱不堪          활 당기고 깃발 흔드는 일을 모두 못하여

從茲始免征雲南          이때부터 비로소 운남 땅으로 원정 가는 일을 면하였소.

骨碎筋傷非不苦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상하여 고통스럽지 않으리오마는

且圖揀退歸鄕土          장차 고향으로 물러나 돌아갈 길을 찾아야만 했었다오.

此臂折來六十年          팔 부러진 지 이제 예순 한해

一肢雖廢一身全          한 팔은 병신이지만 이 한 몸 살아있소.

至今風雨陰寒夜          지금까지 비바람 치는 차가운 밤에는

直到天明痛不眠          날 새도록 아파서 잠들지 못한다오.

痛不眠終不悔            아파서 잠들지 못해도 끝내 후회하지는 않는데

且喜老身今獨在          또한 늙도록 혼자 살아남았으니 기쁘다오.

不然當時瀘水頭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에 로수 머리에서

身死魂孤骨不收          몸은 죽고 혼백은 흩날리고 뼈는 뒹굴어

應作雲南望鄕鬼          틀림없이 운남의 망향귀신 되어

萬人塚上哭呦呦          만인총 무덤 위에서 훌쩍훌쩍 통곡하고 있었으리라

老人言君聽取            노인의 말을 그대는 들어라

君不聞開元宰相宋開府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개원의 재상 송개부는

不賞邊功防黷武          변방의 공을 상주지 않고 욕된 전쟁을 막은 것을.

又不聞天寶宰相楊國忠    또 듣지 못했는가, 천보의 재상 양국충이

欲求恩幸立邊功          황제의 은총을 얻으려하여 변방의 공을 세웠다는 것을.

邊功未立生人怨          변방의 공을 세우기도 전에 백성의 원망이 생긴 것을

請問新豐折臂翁          신풍의 팔 부러진 노인에게 물어 보았으면 하노라.

 

 

截樹                         나뭇가지를 치며

 

種樹當前軒              심은 나무가 앞 건물에 닿아

樹高柯葉繁              나무는 높고 가지의 잎은 무성하다.

惜哉遠山色              아쉽구나 먼 산의 산빛이여

隱此蒙籠間              몽롱한 사이에 이를 감추고 있구나.

一朝持斧斤              어느 날 아침 도끼를 들고

手自截其端              손으로 그 끝을 잘라내었다.

萬葉落頭上              수많은 잎이 머리 위에 떨어지고

千峯來面前              천 개의 산봉우리 얼굴 앞에 다가온다.

忽似決雲霧              홀연히 구름과 안개가 흩어지는 듯

豁達覩靑天              훤하게 푸른 하늘이 바라보인다.

又如所念人              또 그리워하는 사람 같고

久別一欸顔              오랫동안 이별하였다가 만나는 얼굴 같았다.

始有淸風至              비로소 맑은 바람은 불어오고

稍見飛鳥還              날아가는 새가 돌아오는 것이 조금 보였다.

開懷東南望              마음을 열고 동남쪽을 바라보니

目遠心遼然              시야는 멀고 마음은 요연해진다.

人各有偏好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치우친 호감이 있어

物莫能兩全              사물은 양자를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豈不愛柔條              어찌 나무를 좋아하지 않는가 마는

不如見靑山              청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만 못하니라.

 

 

正月十五日夜月          정월 대보름달

 

歲熟人心樂              풍년이 되니 사람들 마음 즐거워

朝遊復夜遊              아침에 노닐고 다시 밤에도 노네.

春風來海上              봄바람 바다 위로 불어오고

明月在江頭              명월은 강두에 있도다

燈火家家市              등불을 집집마다 동네마다 밝히고

笙歌處處樓              생황에 노랫소리 누각마다 울리니

無妨思帝里              임금과 가족이 있는 장안 생각나는 건 무방하지만

不合厭杭州              항주와 부합하다고는 할 수 없구나.

 

 

井底引銀甁                  우물 바닥에서 은 두레박을 당겨 올리다

 

井底引銀甁                  우물 바닥에서 은 두레박을 당겨 올리니

銀甁欲上絲繩絶          은 두레박은 올라올 듯 끈 끊어집니다.

石上磨玉簪                  돌 위에 옥비녀를 갈아보니

玉簪欲成中央折          옥비녀는 갈아질 듯 가운데가 부러집니다.

甁沈簪折知奈何          두레박은 빠지고 비녀는 잘리니 어찌하나

似妾今朝與君別          저의 오늘 아침 남과의 이별과 비슷합니다.

憶昔在家爲女時          생각해봅니다, 옛날 처녀시절 집에 있을 때

人言擧動有殊姿          사람들은 내 거동이 특별한 자태 있다 하였지요.

嬋娟兩鬢秋蟬翼          아리따운 두 살쩍은 매미 날개 같고

宛轉雙蛾遠山色          둥그스름한 눈썹은 먼 산 빛과 같았지요.

笑隨戲伴後園中          후원 안에서 웃으며 친구 따라 놀았는데

此時與君未相識          그때는 나는 당신과 아직 알지도 못했습니다.

妾弄靑梅憑短牆          내가 청매를 들고 낮은 담장에 기댔을 때

君騎白馬傍垂楊          그대는 백마 타고 수양버들 옆에 계셨었지요.

牆頭馬上遙相顧          담장 머리, 말위에서 아득히 서로 눈 마주쳐

一見知君卽斷腸          한눈에 그대 속 타는 심정을 알았었지요.

知君斷腸共君語          그대의 속 타는 심정을 알고 서로 이야기 하며

君指南山松柏樹          그대는 남산의 송백을 가리키며 맹서하셨지요.

感君松柏化爲心          그대의 송백 같은 굳은 마음에 감격하여

暗合雙鬟逐君去          남몰래 머리손질하고 마침내 그대를 따랐지요.

到君家舍五六年          그대 집에 와서 산지 대 여섯 해 되었는데

君家大人頻有言          그대 아버님은 자주 제게 말씀하시기를

聘則爲妻奔是妾          ˝혼례 해야 아내가 되지 달아나면 첩이라

不堪主祀奉蘋蘩          조상의 제사상을 차리게 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終知君家不可住          끝내 그대 집에 더 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其奈出門無去處          그러나 문을 나서면 갈 곳도 없음을 어찌할까.

豈無父母在高堂          어찌 부모가 생존해 계시기는 않았겠는가마는

亦有親情滿故鄕          또한 고향에는 아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요.

潛來更不通消息          더구나 몰래 가출하여 소식이 끊겼으니

今日悲羞歸不得          오늘날 슬프고 부끄러워 돌아 갈 수가 없습니다.

爲君一日恩                  그대 위한 하루 사랑 때문에

誤妾百年身                  저의 일생의 신세가 그르치게 되었소.

寄言癡小人家女          세상의 철부지 어린 아가씨들에게 충고하니

愼勿將身輕許人          신중하게 처신하여 몸을 경솔히 남에게 주지 마라.

 

 

題東壁                       동벽에다 쓰는 시

 

日高睡足猶慵起          해는 높이 솟고 잠은 깼지만 일어나기 싫다.

小閣重衾不怕寒          이층에 이불을 깔아 두고 따뜻함을 즐기네.

遺愛寺鐘欹枕聽          머리맡에 울리는 유애사 종소리에

香爐峰雪撥簾看          발을 걷으니 눈 덮인 향로봉이 눈에 가득하다.

匡廬便是逃名地          여기 여산은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

司馬仍爲送老官          사마라는 관직도 늙은 몸에는 과분한 사치.

心泰身寧是歸處          마음 고요하고 몸이 편한 곳이 本來 자리이니

故鄕何獨在長安          장안만이 어찌 고향이라 하리오.

 

 

齊物二首                  평등한 만물이여

 

1

靑松高百尺              푸른 소나무 높아서 백 자

綠蕙低數寸              초록빛 혜초는 낮아서 몇 치.

同生大塊間              천지간에 함께 자랐건만

長短各有分              길고 짧음에는 서로 구분이 있다.

長者不可退              긴 것은 짧게 할 수 없고

短者不可進              짧은 것은 길게 할 수 없도다.

若用此理推              만약 이와 같은 이치로 헤아린다면

窮通兩無悶              궁하건 통하건 모두 번민할 것 없도다.

 

2

椿壽八千春              참죽나무의 수명은 팔천 년

槿花不經宿              무궁화꽃은 하룻밤도 지나지 못한다.

中間復何有              그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冉冉孤生竹              부드럽게 홀로 자란 대나무가 있다.

竹身三年老              대나무 몸은 삼 년이면 늙어지나

竹色四時綠              대나무 몸빛은 사계절 푸르다.

雖謝椿有餘              비록 여유 있는 참죽나무만 못하나

猶勝槿不足              무궁화 꽃의 부족함보다는 여전히 낫다.

 

 

題潯陽樓                심양루에 제하여

 

常愛陶彭澤              항상 팽택 도연명을 좋아하나니

文思何高玄              문章과 생각은 어찌 그리도 높고 깊은가.

又怪韋江州              또한 위강주도 특별하니

詩情亦淸閑              그가 지은 시의 정취도 맑고 한가하다.

今朝登此樓              오늘 아침 이곳 누각에 올라보니

有以知其然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大江寒見底              큰 강은 차가운 계절에는 바닥이 드러나며

匡山靑倚天              광산은 푸르게도 하늘에 높이 솟았구나.

深夜湓浦月              심야에는 포구의 물에는 달이 떠오르고

平旦鑪峯煙              평탄한 향로봉에는 안개가 자욱하도다.

淸輝與靈氣              맑은 빛과 신령한 기운이

日夕供文篇              밤낮으로 그들의 글을 짓게 했구나.

我無二人才              나에게는 이런 두 사람의 재주가 전혀 없으니

孰爲來其間              누가 그들 사이에 이를 수 있게 하리오.

因高偶成句              높은 곳에 올라 우연히 글귀를 지었으니

俯仰愧江山              하늘을 보고 땅을 보아도 강산에 부끄럽다.

 

 

題岳陽樓                     악양루에 제하여

 

岳陽城下水漫漫          악양성 아래로 물결은 출렁거리는데

獨上危樓凭曲欄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둥근 난간에 기대어본다.

春岸綠時連夢澤          봄 언덕 풀빛 짙어지는 시절 몽택이 닿아있고

夕波紅處近長安          저녁 물결 붉어지는 곳 장안이 가깝구나

猿攀樹立啼何苦          나무에 올라선 원숭이 울음 어찌나 괴로운지

雁點湖飛渡亦難          기러기 호숫물 치며 날아 건너기도 어렵구나.

此地唯堪畫圖障          이 곳 누각 가림벽에 오직 글 새길만 만하니

華堂張與貴人看          화려한 당 안에 시를 적은 후 귀인과 함께 보노라.

 

 

除夜                           섣달 그믐날 밤에

 

病眼少眠非守歲          아픈 눈 잠이 적어 묵은 해도 못 지켰는데

老心多感又臨春          다감한 늙은이 마음 또 다시 봄을 맞는구나.

火銷燈盡天明後          불 사그라지고 등불마저 꺼지고 날은 이미 밝은데

便是平頭六十人          평범한 이 백성 나이 벌써 예순여덟 이라오.

 

 

題元十八溪亭

 

怪君不喜仕              이상하나니 그대 벼슬살이 싫어하고

又遊煙霞里              연기와 놀 낀 마을을 나다니지도 않다니.

今日到幽居              오늘 그윽한 그대 거처에 와보니

了然知所以              그 까닭을 확실히 알았도다.

宿君石溪亭              그대의 석계정에 묵으니

潺湲聲滿耳              졸졸 흐르는 물소리 귀에 가득하고

飮君螺盃酒              그대에게 소라잔으로 술을 권하니

醉臥不能起              취하여 누운 채로 일어나지 못하는구려.

見君五老峯              그대 사는 오로봉을 보고나니

益悔居城市              시내에 사는 것이 더욱 후회스럽소.

愛君三男兒              사랑스런 그대 세 아들을 보니

始歎身無子              자신이 자식 없음을 비로소 한탄스럽소.

余方鑪峯下              나도 이제야 향로봉 아래에 있어

結室爲居士              집 짓고 거사가 되리라.

山北與山東              산 북쪽과 산 동쪽을

往來從此始              오가며 이제부터 시작하리라.

 

 

照鏡                        거울을 비춰보며

 

皎皎靑銅鏡              밝고 맑은 청동 거울

斑斑白絲鬢              얼룩덜룩 흰 실 같은 귀밑머리.

豈復更藏年              어찌해야 고쳐서 나이를 감출까

實年君不信              실제 내 나이를 믿지 못하리라.

 

 

早發楚城驛              초성역을 일찍 떠나며

 

過雨塵埃滅              지나간 비에 흙먼지 없어지고

沿江道徑平              강 따라 난 길은 평탄하기만 하다.

月乘殘夜出              새벽녘 달은 아직 떠있고

人趁早涼行              사람은 아침 차가움을 쫓아 걷는다.

寂歷閒唫動              적막함이 지나고 한가함이 움직여

冥濛闇思生              고요하고 어둑하여 생각이 떠오른다.

荷塘翻露氣              연꽃 핀 연못에 이슬 기운 날아들고

稻壟瀉泉聲              논두렁에는 샘물 솟는 소리 들려온다.

宿犬聞鈴起              잠자던 개가 방울소리 듣고 일어나고

栖禽見火驚              둥지에 깃던 새는 등불을 보고 놀란다.

曨曨煙樹色              안개에 싸인 나무의 빛이 롱롱하여

十里始天明              십 리쯤 가서야 비로소 하늘이 밝아온다.

 

 

早秋獨夜                 초가을 외로운 밤에

 

井梧凉葉動              우물가 오동나무 시원히 흔들리고

隣杵秋聲發              가을인가 이웃에선 다듬이소리 들린다.

獨向檐下眠              홀로 처마 아래 잠들어 있다가

覺來半牀月              깨어보니 평상에는 달빛 반쯤 들었구나.

 

 

早春                        이른 봄날

 

雪散因和氣              따뜻한 기운으로 차가운 눈 흩어져

氷開得暖光              얼음이 풀리니 따뜻한 봄빛 비친다.

春銷不得處              봄에 다 녹으면 얻을 곳 없지만

唯有鬢邊霜              오직 귀밑머리에 서리 있을 뿐이로다.

 

 

早寒                        이른 추위

 

黃葉聚牆角              누런 나뭇잎 담장 모퉁이에 모이고

靑苔圍柱根              푸른 이끼는 기둥뿌리를 둘러싸있다.

被經霜後薄              서리 지나간 뒤에는 더욱 엷어져

鏡遇雨來昏              거울이 비를 맞아 어두워지는구나.

半卷寒簷幕              차가운 처마 아래 휘장 반쯤 걷히니

斜開暖閣門              따스한 전각문이 비스듬히 열리는구나.

迎冬兼送老              겨울 맞아 늙음을 보내는 것 함께하며

只仰酒盈樽              오직 술이 술독에 가득한 것을 바라만 본다.

 

 

晝臥                        대낮에 혼자 누워

 

抱枕無言語              말없이 베개를 안고 누우니

空房獨悄然              홀로 있는 빈 방이라 초연하구나.

誰知盡日臥              누가 알겠는가, 종일 혼자 누워있어도

非病亦非眠              병든 것도 잠자는 것도 아닌 것임을.

 

 

舟中讀元九詩             배 안에서 원구의 시를 읽다

 

把君詩卷燈前讀          자네 시를 잡고 등불 앞에서 읽었는데

詩盡燈殘天未明          다 읽고 나니 등불 가물거려도 날은 밝지 않구나.

眼痛滅燈猶闇坐          눈이 아파 등불 끄고 여전히 어둠 속에 앉으니

逆風吹浪打船聲          거슬러 부는 바람에 물결의 뱃전 치는 소리만 들리네.

 

 

舟中晩起

 

日高猶掩水窓眠          해가 높이 솟아도 문 가리고 잠자고

枕簟淸涼八月天          베개와 잠자리가 맑고 시원한 팔월이라.

泊處或依沽酒店          정박한 곳에서 혹 술집에 머물러

宿時多伴釣魚船          그곳에 묵으면서 자주 고깃배와 친구한다.

退身江海應無用          은퇴한 몸이라 강호에 쓰일 곳 없고

憂國朝廷自有賢          나랏일 걱정은 조정에 어진 사람 있으리라.

且向錢塘湖上去          장차 전당호로 올라가서

冷吟閒醉二三年          이삼 년간 냉정히 읊으며 한가히 취해보리라.

 

 

舟夜贈內

 

三聲猿後垂鄕淚          세 마디 원숭이 울음소리 뒤엔 고향 눈물

一葉舟中載病身          일엽편주 속에 병든 이 몸 싣고서

莫凭水窓南北望          물가 창에 기대어 남북을 바라보지 말지니

月明月闇總愁人          달이 밝아도 어둑해도 사람을 근심케 한다네.

 

 

重賦                        무거운 세금


厚地植桑麻              두터운 대지에 뽕나무 심음은

所要濟生民              백성들 구제함이 중하기 때문이요

生民理布帛              백성이 삼베와 비단을 짬은

所求活一身              한 몸을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라.

身外充征賦              먹고 남는 것은 세금으로 바쳐서

上以奉君親              위로는 임금님을 봉양한다.

國家定兩稅              나라에서 양세법을 정함은

本意在愛人              본뜻은 백성 사랑에 있었도다.

厥初防其淫              애초에 문란함을 막으려

明敕內外臣              안팎의 신하에게 명백히 칙서 내렸다.

稅外加一物              세금 외에 하나라도 더 거두면

皆以枉法論              모두 위법으로 논죄한다 했도다.

奈何歲月久              어찌하여 세월이 오래되니

貪吏得因循              탐욕스런 관리들 악습을 답습하는구나.

浚我以求寵              우리를 짜내어 은총을 구하려

斂索無冬春              세금 거둠에 봄도 겨울도 없도다.

織絹未成匹              비단이 채 한 필도 못되고

繅絲未盈斤              고치 켠 실 한 근도 안 된다.

里胥迫我納              아전은 바치라고 독촉하여

不許蹔逡巡              잠시도 지체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歲暮天地閉              세모가 다되어서 천지가 막히고

陰風生破村              음산한 바람 황폐한 고을에 불어온다.

夜深煙火盡              깊은 밤에는 불씨마저 꺼지고

霰雪白紛紛              싸락눈도 하얗게 날리는구나.

幼者形不蔽              어린 것은 몸 하나 가리지 못하고

老者體無溫              늙은이는 몸에 온기조차 없구나.

悲喘與寒氣              슬픈 숨이 한기와 함께

倂入鼻中辛              콧속으로 쓰리도록 들어온다.

昨日輸殘稅              어제는 남은 세금 바치며

因窺官庫門              우연히 관청의 창고 속 엿보았다.

繒帛如山積              비단은 산처럼 쌓여 있고

絲絮似雲屯              실과 솜은 구름처럼 모아두었다.

號爲羨餘物              이름 붙여 남은 물건이라 하여

隨月獻至尊              달마다 천자에게 바쳤다더구나.

奪我身上暖              우리들 몸의 따스함을 빼앗아

買爾眼前恩              너희 눈앞의 은총을 샀었구나.

進入瓊林庫              천자의 경림고에 들어가면

歲久化爲塵              오래되어서는 먼지로 될 것이거늘.

 

 

重尋杏園                    살구농원을 다치 찾아

 

忽憶芳時頻酩酊          젊은 시절 자주 술 취한 일 생각나서

却尋醉處重徘徊          문득 취한 곳 찾아서 다시 배회하노라.

杏花結子春深後          살구꽃 열매 맺고 봄이 무르익은 뒤

誰解多情又獨來          누가 알까 정겨워 다시 혼자 찾은 것을.

 

 

重題四首                     거듭 제(題)하다

 

1

喜入山琳初息影          기쁘게 산에 들어 쉼을 얻었고

厭趨朝市久勞生          속세에 스산한 삶 더는 쫓기 싫었네.

早年薄有煙霞志          젊어서는 산수에 별로 뜻이 없었고

歲晩深諳世俗情          나이 들어 세상정리 능란해졌다.

已許虎溪雲裏臥          호계의 구름 속에 누워 살게 되었으니

不爭鏞尾道前行          궁궐속으로 나아가는 길 다투지 않으려네.

從玆耳界應淸淨          이곳에선 듣는 것 모두 청정한 소리이니

免見啾啾毁譽聲          주절주절 칭찬과 비방 안 들어도 되겠네.

 

2

長松樹下小溪頭          키 큰 솔 아래 작은 시냇가

斑鹿胎巾白布裘          얼룩 사슴 두건 쓰고 갖옷 입고 사네.

樂圃茶園爲産業          약초와 차를 심어 살림에 쓰고

野麋林鶴是交潤          산과 들의 사슴과 학을 벗 삼아 지내네.

雲生澗戶衣裳潤          구름일면 사는 집과 입은 옷을 적시고

嵐隱山廚火燭幽          남기 이는 산에서는 불을 켜도 어둑하네.

最愛一泉新引得          가장 기쁜 한 가지는 새 샘물을 얻은 것

淸冷屈曲繞階流          차가운 물 굽이굽이 섬돌 돌아 흐르네.

 

日高睡足猶慵起          해는 높이 뜨고 잠도 충분한데 일어나기 귀찮아

小閣重裘不怕寒          작은 누각에서 겹이불 덮으니 추위도 두렵지 않다.

遺愛寺鍾欹枕聽          유애사의 종소리 베개 높이 베고 누워 듣는데

香爐峯雪發簾看          향로봉의 남은 눈을 발을 제치고 바라본다.

匡廬便是逃名地          광속이 살던 이곳 여산이야 말로 은둔할 땅이고

司馬仍爲送老官          사마 벼슬도 바로 노년을 보내는 관직이로다.

心泰身寧是歸處          마음 편하고 몸이 안녕한 이곳이 은퇴할 곳이니

故鄕何獨在長安          고향이 어찌 장안에만 있어야 하겠는가.

 

4

宦途自此心長別          벼슬길 여기서 맘으로 길이 이별하고

世事從今口不言          세상일 이제부터 입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豈止形骸同土木          어찌 한 몸을 흙이나 나무에 그치며

兼將壽夭任乾坤          아울러 장수하고 요절함을 천지에 맡기랴.

胸中壯氣猶須遣          가슴 속에는 사나이 기상이 필요하니

身外浮雲何足論          몸 밖의 뜬 구름을 어찌 족히 논하리오.

還有一條遣恨事          도리어 남겨진 한스런 일이 하나 있으니

高家門館未酬恩          귀인의 집으로 아직 인사 한 번 못 드렸다오.

 

 

仲夏齋戒月              한여름 한거 기간에

 

仲夏齋戒月              한여름 한거 기간

三旬斷腥羶              한 달 동안 육식을 끊었다.

自覺心骨爽              마음과 몸이 상쾌함을 느껴

行起身翩翩              일어나 다님에 몸이 날 것 같다.

始知絶粒人              이제야 알겠다 곡기 끊은 사람이

四體更輕便              사지가 더욱 가볍고 편해짐을.

初能脫病患              처음에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고

久必成神仙              오래 계속하면 신선이 되리라.

禦寇馭冷風              열어구(列禦寇)가 시원한 바람 부리고

赤松游紫煙              적송자가 붉은 연기 속에서 논 일들.

常疑此說謬              항상 이러한 말이 거짓이라 의심했는데

今乃知其然              이제야 그런 것들이 사실임을 알겠다.

我年過伴百              내 나이 이미 반백이 지나고

氣衰神不全              기력이 쇠하고 정신도 온전하지 않다.

已垂兩鬢絲              이미 두 귀밑머리도 실같이 드리우고

難補三丹田              세 단전에 기운 보충하기도 어렵도다.

但減葷血味              다만 훈채와 고기 맛이라도 줄여서

稍結淸淨緣              조금이라도 청정의 인연을 맺어보리라.

脫巾且修養              벼슬살이 하면서 수양도 하여

聊以終天年              애오라지 하늘이 주신 나이를 누려보련다.

 

 

贈內                        아내에게

 

生爲同室親              살아서는 같은 방의 친구 되고

死爲同穴塵              죽어서는 같은 무덤 흙먼지 되겠소.

他人尙而勉              남들도 높여주고 노력하거늘

而況我與君              하물며 그대와 내에 있어서야.

黔婁固窮士              검루는 정말로 궁핍한 선비였으나

妻賢忘其貧              아내는 어질어 그들의 가난을 잊었소.

冀缺一農夫              기결은 한 사람의 농부이었으나

妻敬儼如賓              아내는 공경하여 손님처럼 공손했소.

陶潛不營生              도잠은 생계를 도모하지 못했으나

翟氏自爨薪              아내 적씨가 스스로 살림을 꾸렸었소.

梁鴻不肯仕              양홍은 기꺼이 벼슬살이 하지 않았으나

孟光皯布裙              아내 맹광은 무명치마 옷에 만족하였소.

君雖不讀書              당신은 비록 책으로 읽지 않았어도

此事耳亦聞              이 일들을 또한 귀로는 들었겠지요.

至此千載後              천 년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

傳是何如人              이들이 어떠한 사람으로 전해 졌는가.

人生未死間              사람이 태어나 살아있을 동안

不能忘其身              자신의 몸을 잊을 수 없을 것이요.

所須者衣食              필요한 것은 의복과 음식일 것이니

不過飽與溫              배불리고 몸을 따뜻이 할 뿐이라오.

蔬食足充飢              채소를 먹어도 허기를 채울 수 있으니

何必膏粱珍              어찌 반드시 고기와 쌀이 기름져야 하리오.

繒絮足禦寒              무명 솜으로 추위를 막으면 족하지

何必錦繡文              어찌 반드시 비단옷에 무늬가 있어야 하리오.

君家有貽訓              당신, 집에 가훈에

淸白遺子孫              청렴과 결백을 자손에게 남기라 하였지요.

我亦貞苦士              나도 정절을 지키는 근면한 선비인지라

與君新結婚              당신과 새로 결혼 했었지요.

庶保貧與素              바라건대, 가난과 소박함을 지키어

偕老同欣欣              해로하며 함께 즐겁게 살았으면 하지요.

 

 

贈談客                        담소하는 손님에게

 

上客淸談何亹亹          손님은 그렇게도 애써 청담을 나누시나

幽人閒思自寥寥          숨어사는 사람의 한가한 심사는 절로 편안하오.

請君休說長安事          청하노니, 서울 장안의 일들일랑 말하지 마오

膝上風淸琴正調          무릎 위에 맑은 바람이 바로 거문고 가락이라오.

 

 

贈賣松者

 

一束蒼蒼色              한 묶음 푸르고 푸른 빛

知從澗底來              골짜기 아래에서 온 것을 알겠다.

斸掘經幾日              찍어서 파낸지가 며칠이나 지났나

枝葉滿塵埃              가지와 잎에 흙먼지가 가득하다.

不買非他意              사지 않은 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城中無地栽              성 안에는 심을 땅이 전혀 없어서라네.

 

 

贈言                        드리는 말씀

 

捧籯獻千金              바구니에 받들어 천 금을 바쳐도

彼金何足道              저 황금이 어찌 만족스럽다 말하랴.

臨觴贈一言              술잔을 마주하여 한 마디 말 드리니

此言眞可寶              이 말은 정말 보배롭습니다.

流光我已晩              흐르는 세월에 나는 이미 늙어

適意君不早              마음에 맞추는 일 그대 빠르지 않습니다.

況君春風面              하물며 봄바람 같이 부드러운 얼굴

柔促如芳草              유연하나 짧기가 향기로운 풀 같습니다.

二十方長成              나이 스물에야 장성해져서

三十向衰老              서른이 되면은 늙어지기 시작합니다.

鏡中桃李色              거울 속 복숭아 자두 같은 얼굴빛도

不得十年好              좋은 때는 십 년도 못갑니다.

胡爲坐脈脈              무엇 때문에 거저 묵묵히 앉아서

不肯傾懷抱              마음 속 회포를 풀려고 하지 않는가.

 

 

贈吳丹                      오단에게 드리다

 

巧者力苦勞              간교한 자는 몸이 괴롭고 고달픈데

智者心苦憂              지혜로운 자는 마음이 괴롭고 근심스럽습니다.

愛子無巧智              사랑하는 선생은 간교와 지혜가 없어

終歲閑悠悠              평생토록 한가하고 여유롭습니다.

嘗登御史府              일찍이 어사부에 등청하시고

亦佐東諸侯              동쪽의 제후들도 보좌하셨지요.

手操糺謬簡              몸소 그릇된 기록을 바로 잡고

心運決勝籌              마음으로 좋은 정책을 결정했었지요.

宦途似風水              벼슬길은 바람과 물 같고

君心如虛舟              당신의 마음 빈 배와 같았지요.

汎然而不有              마음이 넓어서 집착하지 않으시고

進退得自由              벼슬에 나가고 물러남에 자유로웠지요.

今來脫豸冠              이제야 치관을 벗으시고

時往侍龍樓              때대로 용루에 가서 모십니다.

官曹稱心靜              관리들은 마음이 고요하여

居處隨跡幽              사시는 곳은 자취 따라 그윽하답니다.

冬負南簷日              겨울에는 남쪽 처마의 햇빛 받아

支體甚溫柔              지체는 대단히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夏臥北窓風              여름에는 북쪽 창에서 바람 불어

枕席如涼秋              잠자리는 서늘한 가을 같았습니다.

南山入舍下              남산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시면

酒甕在牀頭              술단지가 언제나 평상 머리에 있었지요.

人間有閑地              인간세상에 한가로운 땅 있는데

何必隱林丘              어찌 반드시 숲 속 언덕에 숨어야만 합니까.

顧我愚且昧              저 자신을 돌아보니 어리석고도 우매하여

勞生殊未休              삶을 수고롭게 하고 특별히 쉬지도 못하여

一入金門直              한 番 대궐에 들어 직분을 맡아

星霜三四周              세월은 벌써 삼사 년이나 되었습니다.

主恩信難報              임금의 은혜는 진정 보답하기 어렵고

近地徒久留              가까운 곳에서 헛되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終當乞閒官              결국에는 마땅히 한가한 관직을 빌어

退與夫子遊              물러나 선생과 즐겁게 교유하고 싶습니다.

 

 

贈王山人                  왕산인에게 드리다

 

聞君減寢食              듣건대, 그대가 침식을 줄이고

日聽神仙說              날마다 신선의 설교를 듣는다지요.

暗待非常人              남몰래 대단한 분 모셔다가

潛求長生訣              장생의 비결을 은밀히 구한다지요.

言長本對短              장수란 본래 단명과 상대적이라 하나

未離生死轍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거라오.

假使得長生              비록 장생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才能勝夭折              겨우 요절보다 나을 정도라오.

松樹千年朽              소나무는 천 년을 살다 썩고

槿花一日歇              무궁화 꽃은 하루 만에 진다오.

畢竟共虛空              그러나 필경에는 모두가 공허하니

何須誇歲月              어찌 반드시 세월 긴 것만 자랑하리오.

彭殤徒自異              팽조의 장수와 팽자의 단명은 헛된 차이

生死終無別              살고 죽음이 끝내는 구별이 없어진다오.

不如學無生              차라리 무생(無生)을 배움만 못하며

無生卽無滅              무생이 바로 멸하지 않는 것이라오.

 

 

贈元稹                     원진에게

 

自我從宦遊              내가 관리로 다닐 때부터

七年在長安              칠 년 동안을 장안에 있었다.

所得惟元君              얻은 것은 다만 원진이라는 친구

乃知定交難              친구를 선택하는 어려움을 알겠다.

豈無山上苗              어찌 산 위에 묘목이 없겠는가

徑寸無歲寒              산길이 좁아 차가운 해가 없었다.

豈無要津水              어찌 긴요한 나루터의 물이 없으랴

咫尺有波瀾              가까이에 물결이 있는 것이다.

之子異於是              원진은 이러한 사람들과 다르며

久要誓不諼              오랜 세월 동안 맹서코 거짓되지 않았다.

無波古井水              파랑이 일지 않는 옛 우물의 물이요

有節秋竹竿              마디처럼 절개 있는 가을 대나무 줄기였다.

一爲同心友              한 번 마음 같이하는 친구 되니

三及芳歲蘭              삼 년이나 향기로운 친구가 되었도다.

花下鞍馬遊              꽃나무 아래에서 말 타고 놀며

雪中杯酒歡              눈 속에서 잔술을 나누며 기뻐했었다.

衡門相逢迎              형문에서 서로 만나서

不具帶與冠              혁대와 의관을 갖추지 않고 허물없었다.

春風日高睡              봄바람에 해는 높이 떠 잠들고

秋月夜深看              가을 달을 밤이 깊어가도록 바라본다.

不爲同登科              과거에 같이 등용되지 않았고

不爲同署官              같은 관청에서 일하지도 않았었다.

所合在方寸              단합하는 것은 작은 마음속에 있나니

心源無異端              마음 속 근원에는 다른 마음 전혀 없도다.

 

 

池畔二首                  연못가에서

 

1

結構池西廊              못 서편에 행랑 짓고

疏理池東樹              동쪽의 나무들을 손질했다.

此意人不知              이러한 뜻 남들은 몰라

欲爲待月處              달구경하는 곳으로 만들려한다.

 

2

持刀剮密竹              칼을 잡고 빽빽한 대숲 쳐주니

竹少風來多              대나무가 성기어 자주 바람이 분다.

此意人不會              이런 내 마음 남들은 모르리라

欲令池有波              연못에 물결일게 하려는 것인 줄을.

 

 

池邊卽事                    못가에서

 

氈帳胡琴出塞曲          모직 휘장, 오랑캐 거문고에 출새곡

蘭塘越棹弄潮聲          난초 못 건너는 노가 조수소리 희롱한다.

何言此處同風月          풍월 같은 이곳을 어찌 말로 하랴

薊北空南萬里情          계북의 하늘 남쪽 만 리 먼 풍정이로다.

 

 

池上二絕

 

1

山僧對棋坐              산승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데

局上竹陰清              바둑판 위에는 대나무 그늘이 시원하네.

映竹無人見              대나무 그림자에 가려 사람은 보이지 않고

時聞下子聲              때때로 바둑알 놓는 소리 들려오네.

 

2

小娃撑小艇              소녀가 작은 배를 저어서

偸採白蓮回              흰 연꽃을 몰래 꺾어 돌아가누나.

不解藏蹤迹              그 자취를 감출 것을 잊어

浮萍一道開              부평초가 한 길을 남겨놓았구나.

 

 

池西亭                      못 서편 정자에서

 

朱欄映晩樹              붉은 난간에 저녁 나무 비치는데

金魄落秋池              가을의 신이 가을 연못에 내렸구나.

還似錢塘夜              오히려 전당 연못의 밤 같아라

西樓月出時              서편 누대에 달 떠오를 이때는

 

 

池窓                        못가 창문에서

 

池晩蓮芳謝              연꽃 향기 가득한 연못가의 저녁

窓秋竹意深              창밖은 가을이라 대나무도 유정(有情)하다.

更無人作伴              친구 삼을 사람도 다시 아무도 없어

唯對一彈琴              오직 거문고 하나만을 마주하고 있다.

 

 

采詩官                        시 모으는 관리

 

采詩官                        시를 채집하는 관리가

采詩聽歌導人言          시를 모으고 노래를 들음은 백성의 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言者無罪聞者誡          시로 말하는 자 죄가 없고, 듣는 자는 경계하게 되니

下流上通上下泰          아래로 흐르고 위로 통하여, 상하가 태평하게 된다.

周滅秦興至隋氏          주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흥하여 수나라가 되도록

十代采詩官不置          십대까지 채시관(采詩官)을 두지 않았었다.

郊廟登歌讚君美          교묘(郊廟)에 부르는 노래는 임금의 장점을 찬미하고

樂府豔詞悅君意          악부의 요염한 노랫말은 임금의 뜻만을 즐겁게 하였다.

若求興諭規刺言          풍자하여 깨우치고 규제하여 비판하는 말을 구하여도

萬句千章無一字          만 구절, 천 문장에서 단 한 글자도 없었다.

不是章句無規刺          바로잡고 풍자하려는 글자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漸及朝廷絶諷議          점차로 조정에서 풍의가 사라졌다.

諍臣杜口爲冗員          간쟁하는 신하는 입 다물어 쓸모없는 관원이 되고

諫鼓高懸作虛器          간쟁을 위한 북은 높이 걸려 소용없는 도구만 되었다.

一人負扆常端黙          존엄한 한 분은 병풍을 업고 늘 단정하고 침묵하시고

百辟入門兩自媚          모든 고관들은 입궐하여 저마다 아첨하고 아부만 한다.

夕郎所賀皆德音          저녁 관리들 경하의 말도 모두 듣기 좋은 말들이다.

春官每奏唯祥瑞          예악을 맡은 춘관도 연주할 때마다 상서롭다고만 한다.

君之堂兮千里遠          임금의 궁궐은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고

君之門兮九重閟          임금의 출입문은 아홉 겹으로 굳게 닫혀있다.

君耳唯聞堂上言          임금의 귀는 오직 당상관의 말만 들을 뿐이고

君眼不見門前事          임금의 눈은 대궐 문 앞의 일도 보지 못한다.

貪吏害民無所忌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해침에 꺼리는 바가 전혀 없고

奸臣蔽君無所畏          간악한 신하들은 임금을 가리고도 두려움이 전혀 없다.

君不見                        임금님은 보지 못하시는가.

厲王胡亥之末年          주나라 려왕과 진나라 호해의 말년을

羣臣有利君無利          여러 신하들만 유익하면 임금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君兮君兮願聽此          임금이시여, 임금이시여!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欲開壅蔽達人情          막히고 가린 것을 열고 백성의 마음에 이르려면

先向歌詩求諷刺          먼저 백성의 노래와 시에서 풍자를 찾으십시오.

 

 

采地黃者                  지황(地黃)을 캐는 사람

 

麥死春不雨              봄에 가물어 보리가 죽고

禾損秋早霜              가을 이른 서리에 벼농사 망쳤단다.

歲晏無口食              세모에 입에 먹을 것이 전혀 없어

田中采地黃              밭에서 지황을 캐고 있단다.

采之將何用              그것을 캐어서 어디에 쓰느냐 하니

持以易餱糧              그것을 가져다 양식과 바꾼단다.

凌晨荷鋤去              새벽에 호미 메고 나가서

薄暮不盈筐              저녁 되어도 광주리를 못 채운다네.

攜來朱門家              붉은 대문 집에 가지고 가서

賣與白面郎              희멀건 도령에게 팔아버린단다.

與君啖肥馬              도령은 살찐 말에게 먹이어

可使照地光              땅에 광택이 비치도록 하더란다.

願易馬殘粟              바라기를 말먹이고 남은 곡식 주어서

救此苦飢腸              그렇게 쓰리고 주린 창자를 구해달란다.

 

 

淸調吟                  청조로 부르는 노래

 

索索風戒寒              씽씽 부는 바람은 추위를 경계시키고

沈沈日藏耀              어둑해지는 해는 그 빛을 감추는구나.

勸君飮濁醪              권하노니, 탁주를 마시며

聽我吟淸調              나의 청조로 읊는 노래를 들어주게나.

芳節變窮陰              방초의 계절이 음산한 계절로 변하고

朝光成夕照              아침의 햇살이 저녁의 황혼으로되었구나.

與君生此世              그대와 이 세상 살아가지만

不合長年少              오랜 세월 젊지만은 않으리라.

今晨從此遊              오늘 아침은 이처럼 다니지만

明日安能料              내일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若不結跏禪              가부좌 틀고 참선하지 않는다면

卽須開口笑              곧바로 입 벌리고 웃어야 하리라.

 

 

初見白髮                  백발을 처음 보고

 

白髮生一莖              흰머리 터럭이 한 줄기 생겨

朝來明鏡裏              아침에 거울 속에 분명하도다.

勿言一莖少              한 줄기가 적다고 말하지 말라

滿頭從此始              머리에 가득한 백발도 여기서 시작된다.

靑山方遠別              청산을 멀리 떠나 이별하여

黃綬初從仕              누른 인끈 두르고 처음 벼슬하였다.

未料容鬢間              얼굴과 귀밑머리 생각도 못했는데

蹉跎忽如此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구나.

 

 

招東鄰                      동쪽 이웃을 초대하며

 

小榼二升酒              작은 통에 담긴 두 되의 술

新簟六尺床              새 삿자리 깔린 여섯 자의 평상.

能來夜話否              오셔서 밤에도 얘기 않으리오

池畔欲秋涼              못가에는 지금 가을 찬 바람 입니다.

 

 

初授拾遺                처음으로 습유의 벼슬을 받고

 

奉詔登左掖              조서를 받들고 좌액으로 등청하여

束帶參朝議              속대하고 조회의 의논에 참여하였다.

何言初命卑              첫 벼슬이 낮음을 어찌 불평하리오.

且脫風塵吏              거리의 풍진 속 아전의 신세 면하리라.

杜甫陳子昻              두보와 진자앙과 같은 분도

才名括天地              재능과 명성이 천하는 묶었으나

當時非不遇              당시에는 불우하여

尙無道斯位              오히려 이러한 지위를 넘지 않았으니

況予蹇薄者              하물며 나 같은 우둔하고 박덕한 자에게

寵至不自意              천자의 총애는 뜻하지 않은 것이다.

驚近白日光              햇빛 같은 천자를 가까이 모심에 놀라고

慙非靑雲器              청운의 그릇이 못됨을 부끄러워한다.

天子方從諫              천자는 지금 간언을 받아주시지만

朝廷無忌諱              조정에 꺼려할 일이 전혀 없으니

豈不思匪躬              어찌 내 몸을 돌보지 않을 생각이 없을까만

適遇時無事              마침 아무런 일이 없는 때를 만나서

受命已旬月              명을 받은 지 이미 한 달이 되었지만

飽食隨班次              배불리 먹으면서 차례만 기다린다.

諫紙忽盈箱              간언의 글들이 어느덧 상자에 가득해져

對之終自媿              이것을 보니 끝내 스스로 부끄럽구나.

 

 

初貶官過望秦嶺          처음 좌천되어 망진령 고개를 지나며

 

草草辭家憂後事          초초히 집 떠나 뒷일을 걱정하며

遲遲去國問前途          느릿느릿 고향땅 떠나 갈 길을 물어본다.

望秦嶺上回頭立          망진령 고개 위에서 머리 돌려 서있으니

無限秋風吹白鬚          끝없는 가을바람이 내 흰 수염에 불어온다.

 

 

村居.                           시골에 살며

 

1

田園莽蒼經春早          짙푸른 전원 봄은 일찍 가고

籬落蕭條盡日風          쓸쓸한 울타리에 종일토록 바람만 분다.

若問經過談笑者          지나며 이야기하던 사람이 묻는다면

不過田舍白頭翁          시골에 사는 백발 늙은이에 불과하다오.

 

2

門閉仍逢雪              문이 닫히면 바로 날리는 눈 맞고

廚寒未起煙              차가운 부엌에는 불도 피우지 못한다.

貧家重寥落              가난한 집안 살림 더욱 요락해져서

半爲日高眠              반나절이 다 되도록 잠만 자고 있다.

 

 

村居苦寒                시골 생활의 고통

 

八年十二月              팔년 십이월

五日雪紛紛              초닷새 날 눈이 펄펄 내린다.

竹柏皆凍死              대나무 잣나무 모두 얼어 죽었는데

況彼無衣民              하물며 저 옷 하나 없는 백성들이야.

廻觀村閭間              시골 마을의 집들을 돌아보면

十室八九貧              십중팔구는 빈곤하구나.

北風利如劍              차가운 북풍은 칼과 같은데

布絮不蔽身              솜옷으로 몸도 가리지 못한다.

唯燒蒿棘火              오직 잡초와 잡목을 불사를 뿐

愁坐夜待晨              쓸쓸히 앉아서 밤이 새도록 기다린다.

乃知大寒歲              대한이 있는 해임을 알았는데

農者猶苦辛              농민들은 여전히 고생이 심하였다.

顧我當此日              나를 돌아보면 이러한 날에는

草堂深掩門              초가집은 깊이 문을 닫아놓고서

裼裘覆絁被              갓 옷을 입고 깁 이불을 덮었다.

坐臥有餘溫              앉거나 누워도 온기가 있었고

幸免飢凍苦              다행히도 굶어 얼어 죽는 고생을 면하였다.

又無壟畝勤              또 밭에 나가 일도 하지 않았으니

念彼深可愧              그들 농민을 생각하면 매우 부끄러워

自問是何人              스스로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어본다.

 

 

村夜

 

霜草蒼蒼蟲切切          서리 풀 속에 벌레소리 애절하기만 한데

村南村北行人絶          마을 남과 북엔 인적이 끊겼네.

獨出門前望野田          홀로 문을 나서 들밭을 바라보니

月明蕎麥花如雪          눈인 듯 달빛 아랜 하얀 메밀꽃.

 

 

崔興宗寫眞              최흥종의 그림

 

畫君年少時              그대의 소년 때를 그렸으니

如今君已老              지금 보면 그대도 이미 늙었구나.

今時新識人              요즈음 처음 알게 된 친구들도

知君舊時好              그대 지난 날 아름다웠음을 알아주리라.

 

 

秋江送客                 가을 강에서 손님을 보내며

 

秋鴻次第過              가을 기러기 차례로 지나가고

哀猿朝夕聞              애처로운 원숭이 울음 조석으로 들린다.

是日孤舟客              오늘 외 딴 배 탄 나그네

此地亦離羣              이 땅에서도 친구들과 떠나는구나.

濛濛潤衣雨              부슬부슬 옷을 적시는 비

漠漠冒帆雲              막막하게 돛단배를 덮는 구름.

不醉潯陽酒              심양주에 취하지도 않는데

煙波愁殺人              자욱한 물보라에 수심 겨워 사람 죽는다.

 

 

秋暮郊居書懷

 

郊居人事少              교외에 다니는 사람 적고

晝臥對林巒              낮에는 누워서 숲 가득한 산을 본다.

窮巷厭多雨              궁핍한 골목길에 내리는 비 싫고

貧家愁早寒              가난한 집안에 이른 추위 걱정된다.

葛衣秋未換              갈포 옷을 가을에도 못 바꿔 입고

書卷病仍看              서책은 병들어도 여전히 읽고 있노라.

若問生涯計              앞으로의 생애의 대책을 문는다면

前溪一釣竿              앞개울에 낚싯줄이나 드리고 살리라.

 

 

秋思                         가을 생각

 

夕照紅於燒              석양은 불타는 것보다 붉고

晴空碧勝藍              갠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구나.

獸形雲不一              동물 모양 구름 하나가 아니고

弓勢月初三              활 모양의 달은 처음 삼 일이로다.

雁思來天北              기러기 마음은 하늘 북쪽으로 오고

砧愁滿水南              다듬이질하는 수심은 강 남쪽에 가득하다.

蕭條秋氣味              쓸쓸하여라, 가을 기운의 맛

未老已深諳              늙지도 않았는데 이미 깊이 기억된다.

 

 

秋山

 

久病曠心賞              오랜 병으로 경치를 즐겨본지 오래 되어

今朝一登山              오늘 아침 한 번 산에 올랐네.

山秋雲物冷              산은 가을이고 구름은 찬데

稱我清羸顏              수척해진 내 얼굴과 어울린다 하네.

白石臥可枕              깨끗한 돌은 누워 베개 삼을 만하고

青蘿行可攀              푸른 담쟁이덩굴 잡고 오를만하네.

意中如有得              마음속에 득의함이 있어

盡日不欲還              종일토록 돌아가고 싶지 않았네.

人生無幾何              인생은 얼마 되지 않으니

如寄天地間              천지 사이에 더부살이 같다네.

心有千載憂              마음에는 천 년의 근심이 있고

身無一日閒              몸에는 하루의 한가함이 없네.

何時解塵網              어느 때라야 속세의 그물에서 벗어나

此地來掩關              이곳에 와 대문 닫고 살아보려나.

 

 

秋遊

 

下馬閒行伊水頭          말에서 내려 한가히 이수 가를 걸으니

涼風淸景勝春遊          서늘한 바람 맑은 경치가 봄나들이 보다 좋아라.

何事古今詩句裏          무슨 일로 고금에 시구 안에는

不多說著洛陽秋          낙양의 가을을 논하여 적은 글이 많지 않았을까.

 

 

秋日懷杓直              어느 가을날에 표직을 떠올리며

 

晩來天色好              저녁이 되니 하늘빛이 좋아

獨出江邊步              홀로 나가 강변을 거닌다.

憶與李舍人              기억하노니, 이사인과 함께

曲江相近住              곡강 서로 가까이 살았던 일을.

常云遇淸景              항상 이르기를, 좋은 경치 만나면

必約同幽趣              그윽한 정취 함께 하자 약속했었다

若不訪我來              만약에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還須覓君去              도리어 반드시 그대 찾아 나섰었다.

開眉笑相見              미간을 펴고 웃으며 서로 만나

把手期何處              손을 잡고 어느 곳을 약속했던가.

西寺老胡僧              서쪽 절에는 늙은 서역 중이 있었는데

南園亂松樹              남쪽 동산에는 소나무 어지럽게 있었다.

攜持小酒榼              작은 술통을 가지고 가서

吟詠新詩句              새로 지은 시구를 읊었다.

同出復同歸              같이 나갔다가 다시 같이 돌아와

從朝直至暮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함께 하였다.

風雨忽消散              비바람처럼 갑자기 서로 흩어져

江山眇回互              강산을 두고 아득히 서로 바라보게 되었다.

潯陽與涔陽              심양과 잠양에서

相望空雲霧              쓸쓸한 구름과 안개 사이를 바라만 본다.

心期自乖曠              마음의 기약을 스스로 어겼지만

時景還如故              시절의 경치는 여전히 지난날과 같다.

今日郡齋中              오늘 마을 관사에서는

秋光誰共度              가을 풍광을 누구와 함께 지낼 것인가.

 

 

秋蝶                        가을나비

 

秋花紫蒙蒙              가을꽃은 자색으로 덮혀 있고

秋蝶黃茸茸              가을 나비는 노란빛으로 가득하다.

花低蝶新小              꽃 아래 나비는 새롭고도 작은데

飛戲叢西東              날아다니며 놀다가 동서로 모여든다.

日暮涼風來              해 저물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紛紛花落叢              어지러이 꽃잎이 떨기에 떨어진다.

夜深白露冷              밤 깊어지니 흰 이슬이 차가운데

蝶已死叢中              나비는 이미 떨기 속에 죽어있다.

朝生夕俱死              아침에 나서 저녁이면 다 죽었으니

氣類各相從              기운이 같은 종류는 서로 따르는구나.

不見千年鶴              천 년 학이 보이지 않나니

多棲百丈松              대부분 백 길 소나무에 깃들어있구나.

 

 

春老                            봄 늙은이

 

欲隨年少强遊春          젊은이들 따라서 억지로 봄놀이 같지만

自覺風光不屬身          경치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단다.

歌舞屛風花障上          병풍의 꽃 언덕 위에선 노래하고 춤추니

幾時曾畫白頭人          어느 때라야 백머리의 사람을 그려넣을까.

 

 

春眠

 

枕低被暖身安穩          베개 낮추니 따뜻해져 몸이 편안해

日照房門帳未開          해가 방문 비춰도 커튼은 열지 않네.

還有少年春氣味          여전히 소년은 봄기운 맛보는데

時時暫到睡中來          때때로 잠깐 와 보면 잠들어 있었다.

 

 

春題湖上                     호수에서 봄날 시를 짓다

 

湖上春來似畫圖          호수에 봄이 오니 흡사 그림 같구나

亂峯圍繞水平舖          주변 봉우리 에워싸니 수면이 잔잔하다

松排山面千重翠          소나무들 산에 늘어서 천 겹 푸르름

月點波心一顆珠          달은 물결 가운데 한 알 구슬을 찍어두네

碧毯線頭抽早稻          푸른 융단 끝자락에는 새싹이 올라오고

青羅裙帶展新蒲          파란 비단 치마로 새 자리를 펼쳐놓은 듯

未能抛得杭州去          항주를 떠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데

一半勾留是此湖          절반쯤 붙잡는 것이 이 호수

 

이 시의 湖는 항주의 서호를 말함

 

 

春葺新居                  봄날 새 거처를 고치며

 

江州司馬日              강주사마 시절

忠州刺史時              충주자사 시절이었다.

栽松滿後院              후원에 심은 소나무 가득

種柳蔭前墀              섬돌 위에 버드나무 그늘졌어라.

彼皆非吾土              그곳은 모두 우리 땅 아니었지만

栽種尙忘疲              심고 가꾸어도 피곤함을 몰랐어라.

況茲是我宅              하물며 이곳은 바로 우리 집인데

葺藝固其宜              수리하고 가꿈은 진정 마땅하여라.

平旦領僕使              이른 아침 종들을 거느리고

乘春親指揮              봄을 맞아 직접 지휘하였다.

移花夾暖室              꽃나무는 온실에 가득 채우고

徙竹覆寒池              대나무는 옮겨 연못을 덮어라.

池水變綠色              연못의 물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池芳動淸輝              연못의 방초들은 깨끗해 졌어라.

尋芳弄水坐              꽃을 찾고 물과 놀며 앉았노라면

盡日心熙熙              종일토록 마음은 희희낙락 즐거워라.

一物苟可適              한 물건이라도 진실로 마음에 맞으면

萬緣都若遺              만사는 모두 잊어버림과 마찬가지라.

設如宅門外              설사 문 밖 세상에서

有事吾不知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몰라라.

 

 

春寢                        봄잠에 겨워

 

何處春暄來              어디서 봄날의 따스함이 오는가

微和生血氣              조금 풀린 날씨에 혈기가 일어난다.

氣薰肌骨暢              날씨가 온화하니 기골이 생기 통하고

東窓一昏睡              동쪽 창가에서 한바탕 깊은 잠에 빠졌다.

是時正月晦              때는 바야흐로 정월 그믐날

假日無公事              휴가일이라 공무도 하나 없도다.

爛熳不能休              깊은 잠에서 깰 수가 없고

自午將及未              오시부터 미시가 가까워진다.

緬思少健日              아련히 젊고 건강한 날 생각해보니

甘寢常自恣              달콤한 잠은 언제나 절로 가능했었다.

一從衰疾來              일단 한 번 늙고 병들어버린 뒤로

枕上無此味              잠자리가 이처럼 맛있는 적은 없었다.

 

 

春風                           봄바람

 

春風先發苑中梅          봄바람에 먼저 핀 동산 안의 매화꽃

櫻杏桃梨次第開          앵도꽃, 살구꽃,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薺花楡莢深村裏          냉이꽃 느릅나무 열매 마을 안에 깊숙하니

亦道春風爲我來          또한 말하리라 봄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왔다고

 

 

出府歸吾廬              관청을 나와 내 집에 돌아와

 

出府歸吾廬              관청을 나와 집에 돌아오니

靜然安且逸              고요하여 편안하고 한가롭구나.

更無客干謁              게다가 만나자고 오는 손님도 없고

時有僧問疾              때로 병문안 오는 승려가 있다.

家僮十餘人              사내 종 십여 명이 있고

櫪馬三四匹              마구간에는 서너 필의 말이 있다.

慵發經旬臥              게을러지면 열흘을 누워있고

興來連日出              흥겨우면 며칠 동안 나가 논다.

出遊愛何處              나아가 놀 때면 어느 곳을 좋아하는가.

嵩碧伊瑟瑟              숭산의 푸름이 그렇게 보석 같다.

況有淸和天              하물며 맑고도 따뜻한 날씨

正當疎散日              마침 한가로운 달이라면 어떠하리오.

身閒自爲貴              몸이 한가하면 저절로 고귀해지니

何必居榮秩              어찌 반드시 영화를 누리는 지위에 있어야 할까.

心足卽非貧              마음이 흡족하면 가난하지 않나니

豈唯金滿室              어찌 오직 황금을 집안에 가득히 채워야 할까.

吾觀權勢者              내가 권세 있는 자를 살펴보니

苦以身徇物              고통스럽게 자신을 물질을 따르게 한다.

炙手外炎炎              손에 불 쪼이고 밖으로는 기세가 타오르지만

履冰中慄慄              얼음을 밟은 듯이 마음속으로 떨고 있다.

朝飢口忘味              아침에는 배고파도 입맛을 잃었고

夕惕心憂失              저녁에는 마음속으로 잃을까 걱정한다.

但有富貴名              다만 부귀의 이름만 있을 뿐이지

而無富貴實              부귀의 실리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出山吟                      나아가 산을 읊다

 

朝詠遊仙詩              아침에는 유선시를 읊고

暮歌采薇曲              저녁에는 채미곡을 노래한다.

臥雲坐白石              구름에 눕고 흰 바위에 앉아

山中十五宿              산속에서 보름 동안을 보냈다.

行隨出洞水              걸어서 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따르고

回別緣巖竹              되돌아오며 바위가 대나무를 떠난다.

早晩重來遊              조만간 다시 와 놀려니

心期瑤草綠              마음으로 요초의 푸르름 기대한다.

 

 

醉中對紅葉              단풍잎을 마주하여

 

臨風梢秋樹              늦가을 찬바람 을씨년스런 나무

對酒長年人              술잔 마주하고 앉은 쓸쓸한 노인

醉貌如霜葉              취한 모습 서리 맞은 나뭇잎 같아

雖紅不是春              불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

 

 

七德舞

 

七德舞七德歌             칠덕무와 칠덕가

傳自武德至元和          덕무년간부터 전하여 원화년간에 이르렀다.

元和小臣白居易          원화년간의 미천한 신하 백거이가

觀舞聽歌知樂意          춤을 보고 노래를 들어보고 음악의 뜻을 알았고

樂終稽首陳其事          음악이 끝나자 머리를 조아려 그 일을 진술한다.

太宗十八舉義兵          태종 십팔 년 의병을 일으키시어

白旄黃鉞定兩京          흰 쇠꼬리 깃발과 황금 도끼를 들고 두 서울을 평정하고

擒充戮竇四海清          왕세충을 사로잡고 두건충을 죽이니 온 세상이 깨끗해졌다.

二十有四功業成          이십사 세에 공업을 이루시고

二十有九即帝位          이십구 세에 황제에 오르시고

三十有五致太平          삼십오 세에 태평성대 이루셨다.

功成理定何神速          공업을 이루고 다스림의 안정이 어찌 이렇게 신처럼 빠른가.

速在推心置人腹          그 신속함은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뱃속에 넣어주고

亡卒遺骸散帛收          죽은 병사들의 유해를 비단을 나누어주어 수습하게 하고

饑人賣子分金贖          굶주린 자들이 자식을 팔아버리니 금을 나눠주어 되사게 하였다.

魏徵夢見子夜泣          위징을 꿈에서 보고 자시에 깨어나 눈물을 흘리시고

張謹哀聞辰日哭          장근의 죽음을 애처로이 듣자 신일에도 통곡하셨다.

怨女三千放出宮          원망하는 삼천 명을 놓아주시어 출궁시키고

死囚四百來歸獄          사형수 사백 명을 보내어 감옥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剪鬚燒藥賜功臣          자신의 수염을 잘라 태워 약을 만들어 공신에게 내려주니

李勣嗚咽思殺身          이적이라는 사람은 오열하면서 나라에 몸 받칠 것을 생각했다.

含血吮瘡撫戰士          피를 머금고 종기를 빨아주시며 전사를 어루만져주니

思摩奮呼乞效死          이 사마는 흥분하여 소리치며 죽기를 원했다.

不獨善戰善乘時          이런즉 알았노라, 그는 다만 전쟁을 잘하고 때를 잘 탔을 뿐만 아니라

以心感人人心歸          마음으로 사람을 감복시켜 마음을 돌아오게 했음을 말이다.

爾來一百九十載          그 이후로 일백 구십 년이 되어

天下至今歌舞之          천하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를 노래하고 춤추고 있다.

歌七德舞七德             칠덕을 노래하고, 칠덕을 춤추어보니

聖人有作垂無極          성인이 지은 것이 있어 전해져 끝이 없도다.

豈徒耀神武                  어찌 다만 신묘한 무덕만을 빛내고

豈徒夸聖文                  어찌 한갓 성스러운 글만 과장하려는 것이겠는가.

太宗意在陳王業          태종의 뜻은 왕업을 진술하여

王業艱難示子孫          왕업의 어려움을 자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彈秋思

 

信意閒彈秋思時          마음에 맡겨 가을 마음을 타는 시간

調淸聲直韻疎遲          맑은 음조 곧은 소리에 운율은 성글고 더디다.

近來漸喜無人聽          근래에 점차 기뻐지는데 들어주는 사람 없으나

琴格高低心自知          거문고 격조의 높고 낮음이야 마음이 절로 아노라.

 

 

太行路                       태행산 길

 

太行之路能摧車          태행산 험한 길 능히 수레를 부수지만

若比君心是坦途          그대 마음과 비교하면 평탄한 길

巫峽之水能覆舟          무협의 물살 능히 배를 뒤집지만

若比君心是安流          그대 마음에 비교하면 편안한 흐름

君心好惡苦不常          그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쓰라리게 일정치 않아

好生毛羽惡生瘡          좋을 때는 깃털로 쓰다듬다 싫어지면 염증을 내네

與君結髮未五載          그대와 함께 한 지 오년도 채 못 되어

豈期牛女爲參商          견우직녀 기약하고는 어찌 동과 서로 멀어지나

古稱色衰相棄背          옛부터 색이 쇠하면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고

當時美人猶怨悔          옛 미인들도 원망하고 한탄할 뿐이었지

何況如今鸞鏡中          그러나 어찌 지금처럼 거울 속의 난새 같고

妾顔未改君心改          얼굴 아직 변하지 않은 내게 그대 마음 바꾸시나

爲君薰衣裳                  그대를 위해 향기 나는 옷을 입어도

君聞蘭麝不馨香          그대는 난초 사향만 묻지 향기는 맡지도 않네

爲君盛容飾                  그대 위해 치장하고 얼굴 꾸며도

君看金翠無顔色          그대는 금 비취만 살펴보지 얼굴은 보지도 않네

行路難                        인생길 어려워

難重陳                        거듭 말하기도 어려워

人生莫作婦人身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여자 몸 되지 말아야지

百年苦樂由他人          백년의 괴로움과 즐거움 타인 손에 달렸으니

行路難                        인생길 어려워

難於山險於水            산보다 어렵고 물보다도 더 험해

不獨人間夫與妻          비단 부부 사이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近代君臣亦如此          요즘 군신 간에도 역시 그러하니

君不見                        그대 보지 못했소

左納言右納史            궁정의 왼쪽 신하 오른쪽 신하들

朝承恩暮賜死            아침에 은혜를 입고 저녁에 죽음을 당하는 것을

行路難                       길이 험한 것은

不在水不在山            물에도 없고 산에도 없고

秖在人情反覆間          다만 사람의 정이 뒤바뀌는 사이에 있을 뿐이네

 

태행산 - 중국 하북성 북경 서남의 산맥

무협 - 양자강의 삼협 중의 하나

우녀 - 견우성과 직녀성. 28수 별자리. 牛수와 女수 모두 북방의 별들인데 나란히 있다. 북쪽 별 순서 - 斗牛女虛危室壁

參商 - 參성과 商성(心宿) 삼성은 동쪽별. 심수는 서쪽별임. 모두 28수의 하나.

납언 - 임금의 뜻을 전하고 아래의 뜻을 올리는 관리

납사 - 임금의 언행을 기록하는 관리

 

 

罷藥

 

自學坐禪休服藥          좌선을 배우고부터 복약을 그만두었더니

從他時復病沈沈          다른 때를 따라 다시 병이 심해진다.

此身不要全强健          이 몸이 완전히 강건해지기 바라지 않지만

强健多生人我心          강건함은 남과 나의 마음에서 생기는 법이라오.

 

 

八月十五日夜禁中獨直對月憶元九  팔월 십오일 밤에 홀로 번을 서며 달을 보고 원구를 생각하다

 

銀臺金闕夕沈沈          화려한 누각과 궁궐의 밤은 어두워지는데

獨宿相思在翰林          한림원에서 혼자 당직하니 서로 그리워진다.

三五夜中新月色          깊은 밤, 새로 떠오른 달빛은

二千里外故人心          이천 리 밖에 떨어진 친구 그리는 마음이라.

渚宮東面煙波冷          저궁의 동편에는 안개가 차갑고

浴殿西頭鍾漏深          욕전의 서편 언저리에는 종루가 깊숙하다.

猶恐淸光不同見          두렵거니, 맑은 달빛 함께 보지 못하고

江陵卑濕足秋陰          강릉 땅은 낮고 습하여 가을날이 어둑한 것을.

 

 

八月十五日夜湓亭望月    팔월 십오일 밤 분강의 정자에서 달을 바라보다

 

昔年八月十五夜          한해 전 팔월보름 중추절에는

曲江池畔杏園邊          곡강의 행원가를 거닐었는데

今年八月十五夜          일 년 뒤 같은 날 중추절에는

湓浦沙頭水館前          분강의 모래밭 낀 객사 앞에 서있네.

西北望向何處是          장안에서는 어디를 보든 이랬었는데

東南見月幾回圓          동남에서 본 달은 몇 차례나 둥글었나.

昨風一吹無人會          어젯밤 바람 불어 모인 사람 없더니

今夜淸光似往年          오늘 밤 뜬 맑은 달빛 옛 날것을 닮았네.

 

曲江 - 또는 곡강지라고도 하는데 장안성 남쪽에 있었다

湓水 - 강서성에 있는 용개하의 옛 이름

 

 

烹葵                         아욱을 삶으며

 

昨臥不夕食              어제 저녁을 먹지 않고 누웠다가

今起乃朝飢              이제 일어나니 아침 시장기가 생긴다.

貧廚何所有              가난한 집 부엌에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炊稻烹秋葵              밥 짓고 가을 아욱 정도를 삶는다.

紅粒香復軟              붉은 밥알은 향기롭고도 부드럽고

綠英滑且肥              녹색 꽃부리는 부드럽고도 두터워라.

飢來止於飽              굶주리면 배가 불러져야 그치고

飽後復何思              배불리 먹었으면 다시 무얼 생각하리오.

憶昔榮遇日              지난 날 영화로웠던 그날을 생각하니

迨今窮退時              궁하게 물러난 지금에 이르렀다.

今亦不凍餒              지금도 춥고 굶주리지 않으나

昔亦無餘資              지난날도 여유 있지는 않았었다.

口旣不減食              밥 먹기를 굶지 않고

身又不減衣              몸에는 옷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撫心私自問              가슴을 부비며 혼자서 물어보노니

何者是榮衰              무엇이 영달이고 무엇이 쇠락이던가.

勿學常人意              배우지 말자, 세상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을

其間分是非              영달과 쇠락 간에 시비 가리는 그 마음을.

 

 

閉關                         門 닫아 걸고

 

我心忘世久              나는 마음으로 세상 잊은 지 오래고

世亦不我干              세상도 나를 상관하지 않는다.

遂成一無事              마침내 전혀 아무 일 없게 되니

因得長掩關              오래도록 문 닫고 지낼 수 있었다.

掩關來幾時              문 닫고 지낸지 얼마나 되었을까

髣髴二三年              아마도 이삼 년은 되었을 것이다.

著書已盈帙              저서는 이미 한 질을 채웠고

生子欲能言              태어난 자식은 이미 말을 다 배웠다.

始吾身易老              이제부터 이 몸 쉽게도 늙어가니

復悲世多艱              세상에 어려운 일 많음이 다시 슬퍼진다.

廻顧趨時者              뒤돌아보면 시류를 쫓아 사는 사람들도

役役塵壤間              속된 세상 속에서 힘겨워한다.

歲暮竟何得              늙어가는 형편에 결국 무엇을 얻을까

不如且安閑              차라리 편안하고 한가한 삶만 못하리라.

 

 

浦中夜泊                    포구에서 밤에 정박하다

 

暗上江隄還獨立          어두워 강둑에 올라 둘러보며 홀로 서니

水風霜氣夜稜稜          강바람에 서리 기운 밤은 더욱 차갑구나.

回看深浦停舟處          깊은 포구 배 댄 곳을 뒤돌아보니

蘆荻花中一點燈          갈대꽃 안에 있는 깜박이는 한 점 등불.

 

 

下邽莊南桃花             하규장 남쪽의 복사꽃

 

村南無限桃花發          마을 남쪽에 끝없이 복사꽃 만발하여

唯我多情獨自來          나만이 다정하여 홀로 찾아왔도다.

日暮風吹紅滿地          해지고 바람 불어 붉은 꽃잎 땅에 가득

無人解惜爲誰開          애석해 하는 사람 없거늘 누굴 위해 피었나.

 

 

賀雨詩

 

皇帝嗣寶曆              황제가 황위를 계승한 것은

元和三年冬              원화 삼년 째 되던 겨울이었다.

自冬及春暮              겨울부터 봄이 저물도록

不雨旱爞爞              비가 내리지 않아 가물고 더웠다.

上心念下民              황제는 마음으로 백성을 생각하고

懼歲成災凶              재앙의 한 해가 될까봐 두려워했다.

遂下罪己詔              마침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조서를 내리고

殷勤告萬邦              은근히 온 세상에 알리었다.

帝曰予一人              황제가 이르기를, 내가

繼天承祖宗              하늘의 뜻을 잇고 조상의 덕을 받들어

憂勤不遑寧              우려하고 근면함에도 편안하지 못하였다.

夙夜心忡忡              아침저녁으로 마음은 근심스럽고

元年誅劉闢              즉위 원년에는 유벽을 베어버리고

一擧靖巴邛              일거에 파고을 편안히 다스렸었다.

二年戮李錡              즉위 이년에는 이기를 도륙하여

不戰安江東              싸우지 않고도 강동지방을 편안해 했었다.

顧惟眇眇德              회고해보건데 보잘 것 없는 덕으로

遽有巍巍功              갑자기 커다란 공을 이루었는지라

或者天降沴              어쩌면 하늘이 가뭄을 내린 것이니

無乃儆予躬              어찌 내 몸을 삼가지 않겠는가.

上思答天戒              위로는 하늘의 경계에 답할 것을 생각하고

下思致時邕              아래로는 시절의 조화를 이룰지를 생각하노라.

莫如率其身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데는

慈和與儉恭              자애와 온화, 검소와 공손보다 나은 것이 없도다.

乃命罷進獻              이에 공물을 진상하는 것을 그치게 하고

乃命賑飢窮              굶주리고 궁핍한 사람을 진휼하게 하였다.

宥死降五刑              사형죄를 용서하여 오형(五刑)으로 내리고

已責寬三農              질책함을 그치고 삼농(三農)의 조세를 관대히 하였다.

宮女出宣徽              궁녀는 선휘원에서 나가게 하고

廐馬減飛龍              마구간의 말은 날랜 말들을 줄였다.

庶政靡不擧              서민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皆出自宸衷              모두가 황제의 충정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었다.

奔騰道路人              분주한 길 위의 사람들

傴僂田野翁              구부정한 들판 논밭의 늙은이들

歡呼相告報              환호하며 서로가 알려주니

感泣涕沾胸              감격하여 울고 눈물이 가슴을 적시었다.

順人人心悅              백성에게 순응하니 백성들 마음이 기쁘고

先天天意從              하늘을 앞세우니 하늘의 뜻도 따른다.

詔下纔七日              조서를 내린지 겨우 칠 일

和氣生沖融              온화한 기운이 가득 찬 곳에서 생겨나

凝爲油油雲              엉기어 부드러운 구름으로 되었고

散作習習風              흩어져 솔솔 부는 바람으로 되었도다.

晝夜三日雨              밤낮 삼 일 동안 비가 내리니

淒淒復濛濛              초목은 우거지고 다시 날은 자욱해졌다.

萬心春熙熙              만물의 마음은 봄처럼 밝아지고

百穀靑芃芃              온갖 곡식은 푸르름이 짙어져간다.

人變愁爲喜              사람도 변하여 수심이 기쁨이 되고

歲易儉爲豐              한 해도 변하여 황폐한 것이 풍부해졌다.

乃知王者心              알겠노라, 왕의 마음은

憂樂與衆同              근심과 즐거움을 백성들로 함께하고

皇天與后土              하늘과 땅의 신

所感無不通              서로 느끼는 것이 통하지 않음이 없도다.

冠珮何鏘鏘              관에 붙은 패물이 어찌 그렇게도 쟁쟁한가

將相及王公              장군과 재상 그리고 왕공들

蹈舞呼萬歲              뛰며 춤추며 만세를 부른다.

列賀明庭中              밝은 대궐 뜰에서 줄지어 하례하오니

小臣誠愚陋              저는 정말로 우둔하고 고루한 신하인지라

職忝金鑾宮              한림원의 직책으로 금란궁을 욕되게 하였으니

稽首再三拜              머리를 조아려 두세 번 절하며

一言獻天聰              한 번 말로써 황제의 총명에 바치오니

君以明爲聖              임금은 총명으로써 성군이 되시고

臣以直爲忠              신하는 곧음으로써 충신이 되나니.

敢賀有其始              감히 그 시작함이 있음을 경하드리며

亦願有其終              또한 그 끝마침이 있을 것을 바라옵니다.

 

 

夏日                         어느 여름날

 

東窗晚無熱              동쪽 창문은 저녁이라 덥지 않고

北戶涼有風              북쪽 문에는 써늘히 바람이 불어온다.

盡日坐複臥              종일토록 앉았다가 다시 누워서

不離一室中              방 안을 떠나지 않았다.

中心本無繫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얽매임이 없어

亦與出門同              또한 함께 문 밖으로 나와 친구 되었소.

 

 

何處難忘酒七首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長安喜氣新              장안에서 공기의 신선함을 즐긴다.

初登高第日              처음 과거에 오르던 날

乍作好官人              잠깐 동안 좋은 관료가 되었다.

省壁明張牓              성벽에는 밝게 방이 붙어있고

朝衣穩稱身              공복이 편하게도 몸에 꼭 맞았다.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奈帝城春              다투어 서울의 봄을 어찌해야 하나.

 

2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天涯話舊情              하늘 끝 먼 곳에서 친구의 정 나눈다.

靑雲俱不達              청운의 꿈 이루지 못하고

白髮遞相驚              백발이 갈아드니 서로가 놀라는구나.

二十年前別              이십 년 전에 이별하여

三千里外行              삼천 리 밖을 돌아다니는구나.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以敍平生              무슨 수로 평생의 마음을 풀어보나.

 

3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朱門羨少年              주문의 사람들 젊음을 부러워한다.

春分花發後              춘분날 온갖 꽃 활짝 핀 뒤

寒食月明前              한식날에 달은 눈앞에 밝기도하다.

小院廻羅綺              작은 궁궐에 비단옷 걸친 여인들 다니고

深房理管絃              깊은 방 안에서는 음악소리 들린다.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過艶陽天              아름답고 따뜻한 날들은 다투어 지나가리라.

 

4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霜庭老病翁              서리 내린 뜰에 늙고 병든 사람.

闇聲啼蟋蟀              으슴푸레한 소리로 귀뚜라미 우는데

乾葉落梧桐              마른 잎은 오동나무에서 떨어지는구나.

鬢爲愁先白              귀밑머리털이 수심에 먼저 희어지고

顔因醉暫紅              얼굴은 취하여 잠시 붉어지는구나.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計奈秋風              무슨 수 있어 가을바람을 어찌해보나.

 

5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을 잊기 어려워

軍功第一高              군사의 공은 제일 높도다.

還鄕隨露布              고향에 돌아가려니 군사들 따르고

半路授旌旄              거리는 반이나 깃발로 덮여있구나.

玉柱剝蔥手              거문고 발에 고운 손 다 벗겨지고

金章爛椹袍              금빛 문장이 도포보다 찬란하구나.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以騁雄豪              무슨 수로 영웅호걸을 불러올까나.

 

6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靑門送別多              청문에서는 송별의 잔치도 많아라.

斂襟收涕淚              옷깃을 걷으며 눈물을 거두리니

簇馬聽笙歌              늘어선 말들은 생황 소리 듣는다.

煙樹灞陵岸              파릉 언덕에 안개 낀 나무들

風塵長樂坡              장락궁 언덕에 풍진이 일어난다.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爭奈去留何              떠나고 머무는 것을 다투어 어찌하려나.

 

7

何處難忘酒              어느 곳에서나 술 잊긴 어려워

逐臣歸故園              쫓겨난 신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赦書逢驛騎              임금의 사면 조서 역마에서 만나니

賀客出都門              축하의 나그네 도성 문을 나온다.

半面瘴煙色              얼굴 절반에는 흐릿한 병색 지고

滿衫鄕淚痕              옷에 가득한 고향 그린 눈물 자국.

此時無一盞              이러한 때 한 잔의 술도 없다면

何物可招魂              무엇으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을까.

 

 

鶴 

 

人各有所好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바가 있으나

物固無常宜              사물에는 애당초 꼭 그래야만 된다는 법도 없다네.

誰謂爾能舞              누가 너를 일러 춤을 잘 춘다고만 하는가

不如閑立時              한가롭게 서 있을 때만 못한 것을.

 

 

寒閨夜                  차가운 규방의 밤

 

夜半衾裯冷              밤 깊도록 이불 겉감이 차갑고

射眠懶未能              잠들려도 나른하여 잠들지 못한다.

籠香銷盡火              상자 속 香도 다 타들어가고

巾淚滴成氷              수건 눈물방울은 얼음이 되었다.

爲惜影相伴              그림자 서로 친구 됨이 애석하여

通宵不滅燈              밤새도록 등불을 끄지도 못했도다.

 

 

寒閨怨                        차가운 규방의 원망

 

寒月沈沈洞房靜          차가운 달빛 침침하고 안방이 고요한데

眞珠簾外梧桐影          진주 주렴 밖으로 오동나무 그림자.

秋霜欲下手先知          가을 서리 내리려는지 손끝이 먼저 알아

燈底裁縫剪刀冷          등잔 아래 재봉하는 가위가 차가워라.

 

 

邯鄲邯鄲夜思家          감단에서 동지날 밤에 집 생각하며

 

邯鄲驛裏逢冬至          감단역에서 동지날을 맞아

抱膝燈前影伴身          등불 앞에 앉으니 그림자와 짝이 된다.

想得家中夜深坐          생각나노니 고향집에선 밤 깊도록 앉아

還應說著遠行人          필시 먼 길 떠난 내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閒夕                        한가한 저녁에

 

一聲早蟬發              한 가닥 철 이른 매미 소리 들리고

數點新螢度              파란 반딧불 몇 마리가 날아서 지나간다.

蘭釭耿無煙              아름다운 등불은 맑아서 연기 하나 없고

筠簟淸有露              맑은 대나무 멍석에는 이슬이 맺혀있다.

未歸後房寢              아직 뒷방에 잠자려 돌아가지 못하고

且下前軒步              잠시 동안을 앞마당에 내려가 걸어본다.

斜月入低廊              기우는 달은 행랑 아래로 들고

涼風滿高樹              서늘한 바람은 높은 나무에 가득하다.

放懷常自適              회포를 풀어버리니 언제나 여유롭고

遇境多成趣              경치를 보면 운치를 느끼는 일이 많도다.

何法使之然              어떠한 법이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가

心中無細故              마음속에 자잘한 일이 없는 까닭이리라.

 

 

寒食夜                        한식날 밤에

 

四十九年身老日          마흔아홉 나이 몸은 늙어가는 나날

一百五夜月明天          일백 오 일 밤 달 밝은 날이었다.

抱膝思量何事在          무슨 일 있었는지 무릎 안고 생각하니

癡男騃女喚鞦韆          어리숙한 남자와 여자 불러 그네를 탄다.

 

 

寒食夜有懷                  한식날 밤 감회에 젖어

 

寒食非長非短夜          한식날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밤

春風不熱不寒天          봄바람은 덥지도 춥지도 않도다.

可憐時節堪相憶          가련하다 서로가 그리운지 이 시간

何況無燈各早眠          어찌 등불도 없이 일찍 잠들 수 있나.

 

 

閒詠                        한가하게 읊다

 

步月憐淸景              달빛 아래 걸으니 맑은 풍광 애련하고

眠松愛綠陰              소나무 아래서 잠드니 푸른 그늘이 좋아라.

早年詩思苦              젊어서는 시를 지음에 애를 쓰고

晩歲道情深              늙어서는 도를 찾는 마음이 깊어진다.

夜學禪多坐              밤에는 참선을 배우려 앉아있는 일이 많고

秋牽興暫吟              가을에는 흥에 이끌려 잠시 시를 읊는다.

悠然兩事外              이 두 가지 일 외에는 아득하니

無處更留心              다시 마음 머물게 할 곳이 하나도 없도다.

 

 

閒出                           한가히 나아가

 

兀兀出門何處去          올올히 문을 나서니 어디로 가나

新昌街晩樹陰斜          신창 거리의 저녁에 나무그늘 기울었네.

馬蹄知意緣行熟          말발굽은 내 뜻 아노니 길이 익숙해서라

不向楊家卽庾家          양가집 향하지 않으면 유가집이라네.

 

 

閒行                           한가히 걸으며

 

五十年來思慮熟          오십 년 동안 익숙한 생각이 있나니

忙人應未勝閒人          바쁜 사람은 한가한 사람보다 못하다네.

林園傲逸眞成貴          숲에 사는 자부심과 편안함이 정말 귀하고

衣食單疎不是貧          입고 먹는 간편함은 가난함이 아니라네.

專掌圖書無過地          책만 간직하니 허물이 없는 처지이며

遍尋山水自由身          산수를 두루 찾아다니니 자유의 몸이라네.

儻年七十猶强健          만약 나이 칠십이라도 여전히 강건하다면

尙得閒行十五春          오히려 편히 걷는 십오 세 청춘을 얻은 것이네.

 

 

杭州春望

 

望海樓明照曙霞          망해루에 날이 밝아 새벽 놀 비치고

護江隄白蹋晴沙          호강제는 깨끗하여 청명한 모래를 밟는다.

濤聲夜入伍員廟          파도소리는 밤에 오원의 사당에 들고

柳色春藏蘇小家          버들 빛은 봄날 소소가에 숨겨있다.

紅袖織綾誇柿蔕          붉은 소매 비단 짜며 감꼭지 문양 과시하고

靑旗沽酒趁梨花          주막에서 술 사서는 배꽃으로 쫓아간다.

誰開湖寺西南路          누가 호수가 절의 서남쪽 길을 열어

草綠裙腰一道斜          초록 치마 가는 허리인양 한 줄기 길이 비껴있네.

 

 

海漫漫                        바다는 출렁이고

 

海漫漫                        바다는 출렁이는데

直下無底旁無邊          아래는 밑이 없고 사방에는 끝이 없다.

雲濤煙浪最深處          구름 낀 파도 안개 덮인 물결의 가장 깊은 곳

人傳中有三神山          사람은 그 속에 삼신산이 있고

山上多生不死藥          산위에는 불사약이 많이 나는데

服之羽化爲天仙          먹으면 날개 돋아 하늘 나는 신선이 된다 하네.

秦皇漢武信此語          진시황과 한무제가 이 말을 믿고

方士年年采藥去          방사에 명을 내려 해마다 약 캐러 보냈도다.

蓬萊今古但聞名          봉래산은 예나 지금이나 이름만 들릴 뿐

烟水茫茫無覓處          자욱하고 아득하여 물길 속에 찾을 곳이 없도다.

海漫漫風浩浩              바다는 출렁이고 바람은 넓게도 부는구나.

眼穿不見蓬萊島          눈이 뚫어지게 보아도 봉래섬이 보이지 않고

不見蓬萊不敢歸          봉래섬 찾지 못하면 감히 돌아 올수도 없는데

童男丱女舟中老          데려간 소년 소녀도 뱃속에서 늙어버렸다.

徐福文成多誑誕          방사인 서복과 문성은 거짓말도 많아

上元太一虛祈禱          상원부인과 태일성에 드린 기도해도 효과가 없도다.

君看驪山頂上茂陵頭   그대들 보게나, 여산의 꼭대기와 무릉의 머리에

畢竟悲風吹蔓草          끝내는 슬픈 바람이 무성한 풀숲에 불어오는구나.

何況玄元聖祖五千言   하물며 어찌한단 말인가, 현원성조 노자의 오천 마디 말에는

不言藥不言仙              선약을 말하지 않았고 신선에 대해도 말하지 않았고

不言白日昇靑天           밝은 해가 푸른 하늘에 오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네.

 

 

杏爲梁                       살구나무를 대들보로

 

杏爲梁桂爲柱             살구나무를 대들보로 계수나무를 기둥으로 만들었으니

何人堂室李開府          어떤 사람의 바깥채 안채일까 바로 이개부라네.

碧砌紅軒色未乾          푸른 섬돌 붉은 처마 색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去年身沒今移主          지나간 주인 죽고 이제 또 주인이 바뀌는구나.

高其牆大其門             담장을 높이고 대문을 크게 하였으니

誰家宅第盧將軍          어떤 집안 저택일까 바로 종사 노장군이라네.

素泥朱板光未滅          흰 담벼락 붉은 판자, 광채가 다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今歲官收別賜人          올해 관아에서 몰수하여 다른 사람에게 내려주었도다.

開府之堂將軍宅          개부지 이임보의 집이나 종사 노장군의 집도

造未成時頭已白          개조도 미처 못 하고서 머리는 백발이 되었구나.

逆旅重居逆旅中          집을 집안에 집을 거듭 있게 하나

心是主人身是客          마음이 곧 주인이고, 몸이 바로 객이로다.

更有愚夫念身後          게다가 어리석은 남자 있어 죽은 뒤 생각하여

心雖甚長計非久          마음 비록 심히 길게 생각하나 계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窮奢極麗越規模          사치를 다하고 화려함을 지극히 하여 규모를 넘겨

付子傳孫令保守          자손에게 전하려 간직하게 하려한다.

莫敎門外過客聞          문 밖의 과객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撫掌廻頭笑殺君          손뼉치고 머리 돌려 그대를 비웃어 죽이리라.

君不見馬家宅尙猶存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마씨네 집이 남아있어도

宅門題作奉誠園          문에는 봉성원이라 쓰여 있는 것을

君不見魏家宅屬他人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위씨네 집이 남의 집에 속하였다가

詔贖賜還五代孫          황제가 다시 사서 오대 후손에게 돌려주게 명한 것을

儉存奢失今在目          검박한 집안은 살아남고 사치한 집안은 망함이 눈앞에 있나니

安用高牆圍大屋          어찌하여 담장 높이고 큰 집을 둘러싸려하나.

 

 

香鑪峯下新置草堂        향로봉 아래에 초당 지어

 

香鑪峯北面              향로봉 북쪽

遺愛寺西偏              유애사의 서쪽 치우친 곳

白石何鑿鑿              흰 바위는 어찌나 잔잔하고

淸流亦潺潺              맑게 흐르는 물도 잔잔하도다.

有松數十株              소나무가 수십 그루 있고

有竹千餘竿              대나무가 천여 그루나 있도다.

松張翠傘蓋              소나무는 비취빛 우산 펼친 듯 하고

竹倚靑琅玕              대나무는 푸른 옥돌에 의지하여 있다.

其下無人居              그 아래에 사는 사람 아무도 없어

悠哉多歲年              아득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有時聚猿鳥              때때로 원숭이와 새들이 모여들고

終日空風煙              종일토록 쓸쓸히 바람과 이내만 인다.

時有沈冥子              당시에 깊숙한 곳에 사는 녀석 있었으니

姓白字樂天              성은 백이요 자는 낙천이었단다.

平生無所好              평생토록 좋아하는 것이 없다가

見此心依然              이것을 보고 마음이 흡족했단다.

如獲終老地              마침내 늙어 죽을 곳을 얻은 듯하여

忽乎不知還              갑자기 돌아갈 줄을 몰라 했어라.

架巖結茅宇              바위사이 가로 질러 작은 초가집 짓고

斲壑開茶園              골짜기를 파서 차밭을 만들었단다.

何以洗我耳              어디 가서 나의 귀를 씻으리오

屋頭飛落泉              처마머리에서 날아 떨어지는 샘이 있도다.

何以洗我眼              어디 가서 나의 눈을 씻으리오

砌下生白蓮              섬돌 아래에는 백련 꽃이 피었구나.

左手攜一壺              왼손에는 술 한 병을 들고

右手挈五絃              오른손에는 거문고 끼고 다녔단다.

傲然意自足              도도하게도 뜻이 절로 만족하여

箕踞於其間              그 사이에 다리를 걸터앉았단다.

興酣仰天歌              술에 취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노래하니

歌中聊寄言              노래 속에 애오라지 할 말을 담았도다.

言我本野夫              나는 본시 시골 사람으로

誤爲世網牽              잘못하여 세속의 그물에 걸렸단다.

時來昔捧日              지난날엔 때를 만나 임금 받들었는데

老去今歸山              늙어버린 지금에는 산으로 돌아왔단다.

倦鳥得茂樹              날다 지친 새는 무성한 숲을 얻고

涸魚反淸源              마른 물의 물고기는 맑은 물로 돌아왔단다.

捨此欲焉往              여기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人間多險難              인간세상은 험난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胡旋女                         뺑뺑이 춤을 춤추는 오랑캐 여자

 

胡旋女胡旋女              호선녀여, 호선녀여!

心應絃手應鼓              자유자재로 손 놀리고 북을 치는구나.

絃鼓一聲雙袖擧          북소리 한 장단에 두 소매를 펼쳐들고

廻雪飄颻轉蓬舞          휘날리는 눈처럼 펄럭이다가 구르는 다북쑥처럼 춤춘다.

左旋右轉不知疲          좌로 돌고 우로 구르면서 피로한 줄도 모르고

千匝萬周無已時          천 번 돌고 만 번 돌며 그칠 때를 모른다.

人間物類無可比          인간세상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고

奔車輪緩旋風遲          달리는 수레바퀴도 느리고 회오리바람도 오히려 늦다.

曲終再拜謝天子          곡이 끝나자 천자께 재배하고 물러나니

天子爲之微啓齒          천자도 이 때문에 만족하여 입 벌리고 미소 짓는다.

胡旋女出康居              호선녀는 강거 땅에서 왔지만

徒勞東來萬里餘          헛되이 동쪽으로 만 리 넘게 왔구나.

中原自有胡旋者          이곳 중원 땅에도 원래 호선자가 있으니

鬪妙爭能爾不如          다투는 교묘함과 싸우는 능란함에 너보다 났으리라.

天寶季年時欲變          천보말년에 세상 형편이 바뀌려하여

臣妾人人學圓轉          신하와 백성들이 교활함만 배웠었다.

中有太眞外祿山          대궐 안에는 태진이요, 밖에는 안녹산이 있었으니

二人最道能胡旋          두 사람이 뺑뺑이 춤에 능하다고 가장 많이 일컬어졌다.

梨花園中冊作妃          이화원 안에서 태진을 귀비로 책봉하고

金雞障下養爲兒          안녹산을 금계병풍 아래서 길러서 양자로 삼았단다.

祿山胡旋迷君眼          안녹산의 뺑뺑이 춤은 황제의 눈을 미혹케 하여

兵過黃河疑未反          반역의 군사가 황하를 건너도 반란 아닌가 했단다.

貴妃胡旋惑君心          귀비의 뺑뺑이 춤이 황제의 마음 미혹케 하여

死棄馬嵬念更深          마외에서 죽여 내버렸어도 양귀비 생각 더욱 깊었단다.

從茲地軸天維轉          이로부터 땅의 축대와 하늘의 줄기가 굴러 기울어져

五十年來制不禁          오십 년 내로는 바로잡지 못하였다.

胡旋女莫空舞              호선녀의 헛되이 춤추지 말고

數唱此歌悟明主          이 노래 자주 불러 총명한 황제 깨우쳐라.

 

 

湖中自照                     호수 안에 자신을 비추어보다

 

重重照影看容鬂          몇 번이고 그림자 비춰 얼굴과 살쩍을 바라보니

不見朱顔見白絲          혈색있는 젊은 얼굴 보이지 않고 흰 머리만 보인다.

失却少年無覓處          젊은 날들을 잃어버리고 찾을 길이 없으니

泥他湖水欲何爲          남의 호수에 빠져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花非花                        꽃이면서 꽃 아니어라

 

花非花                        꽃이면서 꽃 아니고

霧非霧                        안개이면서 안개 아니어라.

夜半來                        밤 깊어 왔다가

天明去                        날 밝아 떠나가더라.

來如春夢幾多時          봄꿈처럼 왔던 것이 얼마나 되던가

去似朝雲無覓處          아침 구름처럼 떠나고는 찾을 곳이 없어라.

 

 

和春深                      봄은 깊어 가는데

 

何處春深好              어디서 무르익은 봄을 즐겨보나

春深貧賤家              빈천한 집안에도 봄은 깊어만 가는구나.

荒凉三徑草              황량한 뜰 안 길섶에 풀은 무성하고

冷落四隣花              차갑게 흩어진 사방 이웃의 꽃잎들이여

奴困歸傭力              종은 지쳐 밭갈이에서 돌아왔는데

妻愁出賃車              아낙은 수심겨워 나가 품팔이 하는구나.

途窮平路險              곤궁에 빠진 이들은 평탄한 길도

擧足劇褒斜              걷기 힘들기가 포사 언덕보다 험하구나.

 

 

效陶潛體詩 

 

余退居渭上              내가 위수가로 물러나 살며

杜門不出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時屬多雨                당시는 우기가 되어

無以自娛                스스로 즐거움이 없었다.

會家醞新熱            마침 집안에 술이 익었기에

雨中獨飮                빗속에 홀로 술을 마시고

往往酣醉                왕왕 취하니

終日不醒                종일토록 술이 깨지 않았다.

懶放之心                나태하고 방종한 마음은

彌覺自得                점점 스스로 만족을 느꼈다.

故得於此                그래서 이것에서 얻으니

而有以忘於彼者      저것을 잊게 되었다.

因詠陶淵明詩         그래서 도연명 시를 읊다가

適與意會                마침내 마음에 합당한 것을 얻었다.

遂傚其體                마침내 그의 시체를 모방하여

成十六篇                십육 편을 이루었다.

醉中狂言                취중에 미친 듯 말하고

醒輒自哂                술이 깨면 스스로 겸연쩍게 웃는다.

然知我者亦無隱焉   그렇지만 나를 아는 자에게는 이것을 숨길 것이 없다.

 

 

效陶潛體詩 

 

1

不动者厚地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두터운 땅이고

不息者高天              쉬지 않는 것은 높은 하늘이다.

無穷者日月              끝없는 것은 일월이고

長在者山川              영원한 것은 산천이라네.

松柏與龜鹤              소나무, 백양나무, 거북, 학은

其壽皆千年              모두 천 년을 산다네.

嗟嗟群物中              아! 많은 사물 가운데,

而人獨不然              사람만이 오직 그렇지 못하네.

早出向朝市              아침에 조정과 저잣거리로 나서고

暮已歸下泉              저녁이면 저승으로 돌아온다네.

形質及壽命              형체와 목숨은

危脆若浮烟              위태롭고 부서지는 것이 마치 뜬 안개 같고

堯舜與周孔              요순과 주공, 공자

古來稱聖賢              예로부터 성현이라 불렀지만,

借问今何在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본다면

一去亦不還              한 번 가서는 역시 돌아오지 못했다.

我無不死藥              나는 불사약이 없으니

萬萬随化遷              아무리 애써도 죽음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所未定知者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는

修短遲速間              빠르고 늦은 삶 속에서 수양이 짧다.

幸及身健日              다행히 몸이 건강한 날에

當歌一樽前              술통 하나 앞에 놓고 노래하리라.

何必待人勸              하필 사람이 술 권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持此自爲歡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즐기면 될 일을.

 

2

翳翳踰月陰              달빛도 없는 침침한 날에

沈沈連日雨              울적하게 날마다 비가 내리고

開簾望天色              발을 걷고 하늘을 바라다보니

黃雲暗如土              흙처럼 노란구름 어두컴컴하네.

行潦毁我墉              흙탕물 지난 자리 담장이 무너지고

疾風壞我宇              집조차 빠른 물길에 부서져 버렸네.

蓬莠生庭院              정원에는 쑥이며 씀바귀 자라나고

泥塗失場圃              흙탕물 몰려들어 남새밭도 사라졌네.

椳深絶賓客              마을 깊어 찾아오는 손님 끊기고

窓晦無儔侶              창밖은 어두워 함께 할 벗도 없네.

盡日不下牀              종일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더니

跳䵷時入戶              때때로 개구리가 방으로 뛰어드네.

出門無所往              문 나서도 갈 만한 곳이 없어서

入室還獨處              방에서 무료하게 혼자 지내네.

不以酒自娛              술로써 스스로 즐기지 않는다면

塊然與誰語              외로워도 누구와 말을 할까!

 

3

朝飮一杯酒              아침에 한 잔 술 마시니

冥心合元和              그윽한 마음 천지조화에 부합하네.

兀然無所思              홀로 태연한 자세로 아무런 야심도 없이

日高尙閒臥              해가 높이 떴건만 아직도 한가로이 누워있네.

暮讀一卷書              날 저물자 한 권의 책 읽으니

會意如嘉話              즐거운 벗과 말하듯 뜻이 통하며

欣然有所遇              만날 사람 만난 듯 기쁨이 넘쳐

夜深猶獨坐              밤이 깊어도 여전히 홀로 앉았네.

又得琴上趣              또한 거문고에 흥을 느껴

按絃有餘暇              줄 타니 더욱 한가로울 뿐.

復多詩中狂              시 속에서 더더욱 미친듯하게

下筆不能罷              붓을 들어 휘갈기며 그칠 줄 모르니

唯玆三四事              오직 이러한 일들로서

持用度晝夜              낮과 밤을 지새는데

所以陰雨中              음산한 장마철에도

經旬不出舍              십여 일을 두문불출하니

始悟獨往人              비로소 알았도다! 고독하게 사는 사람만이

心安時亦過              마음 편하게 세월 보낼 수 있다는 것을.

 

4

東家采桑婦              동쪽 집 뽕잎 따는 아낙네는

雨來苦愁悲              비 오자 시름 겨워 슬퍼하고

蔟蠶北堂前              북당 앞섶에서 잠든 누에는

雨冷不成絲              차가워진 날씨에 실 못 만드네.

西家荷鋤叟              서쪽 집 호미 들고 나간 늙은이도

雨來亦怨咨              비 오는 것 원망하며 탄식하는데

種豆南山下              남산 밑에 콩 심고 보살폈더니

雨多落爲箕              비 많이 내려 콩대가 떨어졌다네.

而我獨何幸              나는 이제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하나

醞酒本無期              집에서 빚은 술은 기약이 없었는데

及此多雨日              이렇게 비까지 많이 내리는데

正遇新熟時              때마침 술이 새로 익는 때라네.

開甁瀉罇中              술독을 열고 술항아리에 쏟고

玉液黃金巵              옥같은 술을 황금 술잔에 따른다.

持翫已可悅              술잔을 손에 드니 이내 즐겁고

歡嘗有餘滋              즐겁게 맛보니 맛이 넘쳐난다.

一酌發好容              한 잔 술에 얼굴이 환해지고

再酌開愁眉              두 잔 술에 근심이 없어진다.

連延四五酌              네, 다섯 잔을 연거푸 마시니

酣暢入四肢              사지가 모두 풀어진다.

忽然遺物我              갑자기 세상의 사물과 내 자신을 잊으니

誰復分是非              누가 다시 시비를 분별하겠는가?

是時連夕雨              이날은 밤비가 계속 내렸지만

酩酊所無知              술에 흠뻑 취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人心苦顚倒              사람의 마음이 아주 뒤바뀌어 버렸으니

反爲憂者嗤              오히려 근심을 가진 者의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5

朝亦獨醉歌              아침에도 홀로 취해 노래하고

暮亦獨醉睡              저녁에도 홀로 취해 잠을 잔다.

未盡一壺酒              아직 술항아리 하나도 다 마시지 못했는데

已成三獨醉              이미 세 번이나 홀로 취했다.

勿嫌飮太少              주량이 너무 적다고 미워하지 마소

且喜歡易致              즐거워지는 일이 쉽게 생긴다오.

一盃復兩盃              한 잔 마시고 다시 한 잔 마셔도

多不過三四              많아봐야 고작 서너잔을 넘지 못한다.

便得心中適              곧 마음속에 적당함을 얻으니

盡忘身外事              몸 밖의 일을 다 잊는다.

更復强一盃              다시 억지로 한 잔을 더 마시면

陶然遺萬累              거나해져 만 갈래 근심을 다 잊는다.

一飮一石者              한 번에 한 섬의 술을 마시는 자는

徒以多爲貴              공연히 많은 주량 자랑하지만

及其酩酊時              곤드레만드레 취한 다음에는

與我易無異              그대나 나나 다를 바가 없어라.

笑謝多飮者              웃으며 다음자에게 말하노니

酒錢徒自費              술값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게나.

 

6

天秋無片雲              가을이라 하늘에 구름 한 點 없고

地靜無纖塵              땅 또한 깨끗하여 작은 먼지도 없네.

團團新晴月              날 개어 산위로 둥근 달 떠오르자

林外生白輪              숲밖에 하얀 달무리 생겼네.

憶昨陰霖天              어제까지 내린 비 생각해보니

連連三四旬              쉬지 않고 달을 넘긴 장마였는데

賴逢家醞熟              때마침 집에서 담근 술이 익어서

不覺過朝昏              해 뜨고 지는 것을 알지 못했네.

私言雨霽後              속으로는 비가 개인 후에나

可以罷餘樽              마시던 술 그만 둘 것을 생각했는데

及對新月色              날 개고 새로 뜬 달 마주하고 보니

不醉亦愁人              취하지 않으면 역시 근심스럽네.

牀頭殘酒榼              침대 가에 마시다 남은 술이 남아서

欲盡味彌淳              술 맛에 끝까지 흠뻑 취해보고 싶어서

攜置南簷下              술통 들고 나가서 남쪽 처마 밑에 두고

擧酌自殷勤              잔들고 술 따라 은근히 마셨네.

淸光入盃杓              술잔과 국자에 맑은 달빛 비치고

白露生衣巾              옷과 두건에 맑은 이슬 스밀 때

乃知阴與晴              이내 알겠노라! 흐리거나 날이 갤 때나,

安可無此君              어찌 이 술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我有樂府詩              나에게 악부시가 있어

成来人未聞              지어 완성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네.

今宵醉有興              오늘 저녁술에 취해 흥이 생겨

狂咏驚四鄰              미친 듯 읊으니 사방의 이웃이 놀란다.

獨賞猶復爾              나 홀로 즐기고 거듭 술과 지내니

何況有交親              어떻게 이웃과 친해 질수 있겠는가.

 

7

中秋三五夜              팔월 한가위 대보름 밤에

明月在前軒              마루 앞에서 밝은 달을 보네.

臨觴忽不飮              술盞을 마주하고도 갑자기 마시지 못함은

憶我平生歡              다만 평생 나의 즐거웠던 일이 생각났기에.

我有同心人              내게는 마음 맞는 사람 있는데

邈邈崔與錢              지금은 멀리 있는 최모와 전모이고

我有忘形友              내게는 또 잘나가는 벗도 있는데

迢迢李與元              그 역시 멀리 있는 이모와 원모일세.

或飛靑雲上              어떤 이는 벼슬살이 잘하고 있고

或落江湖間              어떤 이는 강호로 쫓겨나 지내는데

與我不相見              서로가 얼굴 못 보게 된 뒤로

于今三四年              어느새 삼사 년 훌쩍 지났네.

我無縮地術              나는 축지법 도술을 모르고

君非馭風仙              그대는 바람 부리는 신선이 아니니

安得明月下              어떻게 밝은 달 아래 함께 모여서

四人來晤言              얼굴 맞대고 이야기 나눌 수 있겠는가.

良夜信難得              좋은 저녁은 정말로 얻기 어렵고

佳期杳無緣              좋은 시절은 인연이 없는 듯 묘연하구나.

明月又不駐              명월은 또한 머무르지 않고

漸下西南天              점점 서남쪽 하늘로 흘러가는구나.

豈無他時會              어찌 다른 때 만날 날이 없겠는가?

惜此淸景前              이런 깨끗한 경치가 아쉬울 뿐.

 

8

家醞飮已盡              집안에 담궈 놓은 술을 이미 다 마셨고,

村中無酒賖              마을에는 꾸어올 술도 없다.

坐愁今夜醒              저녁에 술이 깨어서 근심으로 나와 앉으니

其奈秋懷何              이 가을에 느끼는 근심을 어찌할꼬?

有客忽叩門              어떤 객이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데

言語一何佳              말하는 말 한마디가 어찌나 정답던지.

云是南村叟              자기는 남쪽마을 노인이라 하는데

挈榼來相過              평소 서로 술 들고 오가는 사이라네.

且喜樽不燥              게다가 더 기쁜 것 술잔 마르지 않은 일

安問少與多              어찌 많고 적은 것을 물을 수 있겠는가.

重陽雖已過              시절 비록 중양절 지났다지만

籬菊有殘花              울 밑에 국화 꽃 아직 남아 있네.

歡來苦晝短              술 온 것은 반갑지만 낮이 짧아 씁쓸한데

不覺夕陽斜              해 기울어 가는 것도 알지 못했네.

老人勿遽起              노인네 갑자기 급하다면서 일어나더니

且待新月華              다른 달 달빛 좋은 날 기다리라네.

客去新餘趣              객 떠나고 난 뒤에도 흥취 남아 있어

竟夕獨酣歌              다 저녁에 혼자서 술에 취해 노래하네.

 

9

原生衣百結              원생은 백조각 헝겊 기운 옷을 입고

顔子食一簞              안자는 한 그릇의 거친 밥을 먹었지만

歡然樂其志              기쁘게 그 뜻을 즐기며

有以忘飢寒              주리고 추은 것을 잊었다.

今我何人哉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

德不及先賢              덕은 옛 현인에 미치지 못하지만

衣食幸相屬              입고 먹는 것이 다행이 끊이지 않으니

胡爲不自安              어찌 스스로 편안치 않을까.

況茲淸渭曲              하물며 변방에도 싸움 일지 않아서

居處安且閑              지내기 편안하고 한가롭기까지 하네

楡柳百餘樹              버드나무 백여 그루 옮겨 심었고

茅茨十數間              띠로 지붕이은 집 열 칸 남짓 하네.

寒負簷下日              추우 때는 처마 및 벽에 기대 햇빛 쬐고

熱濯澗底泉              더운 날은 시내 밑 샘에서 탁족을 하네.

日出猶未起              해가 떠도 일어나지 않고

日入已復眠              해지면 일찌감치 다시 잠든다.

西風滿村巷              서풍이 마을 골목에 가득 불어오는

淸涼八月天              청량한 팔월의 가을 날

但有雞犬聲              다만 닭 울고 개 짓는 소리가 있을 뿐,

不聞車馬喧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고

時傾一樽酒              때때로 술잔을 기울이며

坐望東西山              집안에 앉아서 동서산을 바라본다.

稚姪初學步              어린 조카가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해서

牽衣戲我前              옷을 잡아끌며 내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卽此自可樂              이것을 즐기면 되지

庶幾顔與原              안연과 원생처럼 되기를 바랄 것인가?

 

10

湛湛樽中酒              술통 속 술이 잘도 익었는데

有功不自伐              공이 있으면서도 공을 자랑 않고

不伐人不知              자랑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르니

我今代其說              지금 내가 그 말 하려 하네.

良將臨大敵              좋은 장수가 큰 적을 만나면

前驅千萬卒              천 명이나 만 명의 병사를 앞장세우고

一簞投河飮              죽통 하나를 강에 던져 물을 마실 때는

赴死心如一              죽음의 길 택하듯이 여일한 마음 되네.

壯士磨匕首              장수와 병사는 비수를 날카롭게 날 세워 갈고

勇憤氣咆勃              용기와 분기를 드러내 소리치지만

一酣忘報讐              술 취하면 보수도 까마득히 잊고

四體如無骨              사지가 흐물흐물 뼈 없는 이 되고 마네.

東海殺孝婦              동해 어느 마을에선 효부를 죽여

天旱踰年月              가뭄으로 달을 넘고 해를 넘기자

一酌酹其魂              술 한잔 땅에 부어 그 혼을 달랜 뒤

通宵雨不歇              그 밤으로 쉼 없이 비가 내렸고

咸陽秦獄氣              함양의 진나라 감옥 기운은

寃痛結爲物              원통함이 뭉쳐서 귀신이 되어

千歲不肯散              천 년동안 흩어지려 하지 않았고

一沃亦銷失              기름진 한잔 술에 역시 사라졌네.

況茲兒女恨              하물며 그 자식들의 한스러움이야

及彼幽憂疾              근심과 비통으로 병 될 수도 있을 테니

快飮無不消              재빨리 술을 마시면 근심이 사라지고,

如霜得春日              서리가 봄날을 만난 듯하다.

方知麴蘖靈              바야흐로 알겠네, 누룩의 정령은

萬物無與匹              만물이 필적할 만한 것이 없구나.

 

11

煙霞隔玄圃              연하는 현포를 가리고

風波限瀛洲              풍파는 영주를 가로 막는다.

我豈不欲往              내 어찌 가고 싶지 않으랴만

大海路阻脩              대해와 같이 험하고 멀구나

神仙但聞說              신선이란 그저 소문일 뿐

靈藥不可求              선약은 얻을 수 없는 법

長生無得者              불로장생을 얻은 사람 없으니

擧世如蜉蝣              온 세상 사람이 하루살이 같구나.

逝者不重廻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存者難久留              산 사람은 오래 머물기 어려워라.

踟躕未死間              잠시 지나가는 한 평생인데

何苦懷百憂              어찌 갖가지 근심을 품는가.

念此忽內熱              이 생각에 문득 애타고 초조해지니

坐看成白頭              어느 덧 부질없이 머리만 세었다.

擧盃還獨飮              잔 들어 또 홀로 술을 마시면서

顧影自獻酬              그림자 돌아보며 스스로 권한다.

心與口相約              마음은 입과 서로 다짐하며

未醉勿言休              취하지 않으면 그치지 말자고.

今朝不盡醉              오늘 실컷 취해보지 않겠는가

知有明朝不              내일이 없을 지도 모르나니.

不見郭門外              보지 못했는가? 성문 밖

纍纍墳與丘              겹겹이 쌓인 무덤으로 된 언덕을.

月明愁殺人              달빛이 밝아 근심으로 사람을 못살게 만들고

黃蒿風颼颼              누런 쑥이 바람에 날린다.

死者若有知              죽은 사람 속에 만약 이런 이치를 아는 자 있다면

悔不秉燭遊              촛불을 잡고 밤에 놀지 않은 것을 후회하리라.

 

12

吾聞潯陽郡              내가 듣기로 심양군에는

昔有陶徵君              옛날에 도연명이 있었다네.

愛酒不愛名              술을 좋아했지만 명성을 좋아하지 않았고

憂醒不憂貧              술이 깰 것을 걱정했지만 가난을 걱정하지 않았네.

嘗爲彭澤令              일찍이 팽택현령이 되어

在官纔八旬              고작 팔십 일을 근무했네.

愀然忽不樂              홀연 즐겁지 않다고 되뇌이곤

掛印著公門              인장을 관공서 문에다 걸어 났지.

口吟歸去來              입으로는 귀거래사를 부르고

頭戴漉酒巾              머리엔 술 거르는 망건을 썼지.

人吏留不得              사람들이 머물라고 해도 듣지 않고

直入故山雲              곧장 옛 산 구름 속으로 드셨네.

歸來五柳下              다섯 그루 버드나무 아래 돌아와

還以酒養眞              또다시 술로서 진리를 기르시네.

人間榮與利              인간세상 모든 즐거움과 이로움을

擺落如泥塵              진흙이나 티끌처럼 버리셨네.

先生去已久              선생은 이미 오래전에 떠나시고

紙墨有遺文              종이와 먹물로 글을 남기셨네.

篇篇勸我飮              매편 매편 나에게 술을 권하시니

此外無所云              이 외에는 다른 말씀하시는 게 없네.

我從老大來              나는 늙어가면서부터

竊慕其爲人              그 사람됨을 가만히 그리워하노라.

其他不可及              다른 것을 따라 잡을 수 없어도

且傚醉昏昏              흔히 취하는 것을 본받는 수 있으리라.

 

13

楚王疑忠臣              초왕이 충신을 의심하여

江南放屈原              굴원을 강남으로 귀양 보냈다.

晉朝輕高士              진나라는 식견이 높은 선비를 가벼이 여겨

林下棄劉伶              유령을 숲속으로 버렸노라.

一人常獨醉              한 사람은 항상 홀로 취했고

一人常獨醒              한 사람은 항상 홀로 깨었는데

醒者多苦志              깨어있는 자는 고심이 많고

醉者多歡情              취한 자는 즐기는 마음이 많다네.

歡情信獨善              즐기는 마음은 정말로 홀로 수양할 수 있지만

苦志竟何成              힘든 포부는 결국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兀傲甕間臥              오만하게 술독들 틈에서 취하여 드러눕고

憔悴澤畔行              초췌하여 연못가를 거닌다네.

彼憂而此樂              저 사람의 근심이 이 사람의 즐거움이니

道理甚分明              도리가 매우 분명하구나.

願君且飮酒              원하노니 그대 역시 술을 마시게

勿思身後名              죽은 뒤의 명성일랑 생각하지 말고.

 

14

有一燕趙士              연조 땅에 살던 선비 한 사람

言貌甚奇瓌              말씨며 생김새가 남과 많이 달랐는데

日日酒家去              날마다 술 파는 주막으로 가서

脫衣典數盃              옷 잡히고 몇 잔 술 얻어 마셨네.

問君何落魄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물어보며

云僕生草萊              자기가 한미한 집에서 태어 난 탓이라네.

地寒命且薄              바탕이 척박하면 운명도 야박해서

徒抱王佐才              왕을 끼고 인재가 도와도 헛일이라네.

豈無濟時策              세상 구할 시책이 어찌 없었겠나

君門乏良媒              그대 가문에 좋은 줄이 없어 그렇지.

三獻寢不報              세 차례나 시책을 올려도 대답이 없어

遲遲空手廻              되는 일 없이 빈손으로 돌아 왔다네.

亦有同門生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들 역시

先升靑雲梯              앞서서 출세의 끈 잡고 나아간 뒤

貴賤交道絶              귀천이 갈려서 교유가 끊어지고

朱門叩不開              그 집 대문은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네.

及歸種禾黍              집으로 돌아와 벼와 기장을 심었지만

三歲旱爲災              삼 년이나 가뭄 드는 재앙이 찾아 왔고

入山燒黃白              산에서 금과 은 만드는 연단술 익혔으나

一旦化爲灰              하루아침에 다 타서 재가 되어 버렸네.

蹉跎五十餘              공부도 때 놓치고 나이 쉰을 넘었는데

生世苦不諧              사는 게 고달프고 되는 일도 없네.

處處去不得              가는 곳마다 뜻하는바 얻지 못하니

却歸酒中來              오히려 술 속으로 돌아가려네.

 

15

南巷有貴人              남쪽 골목에 귀인이 살고 있는데

高蓋駟馬車              지붕 높은 수레는 네 마리 말이 끄네.

我問何所苦              내가 그대 괴로운 게 있느냐고 물으면

四十垂白鬚              나이 사십에 늘어진 백발이라 하네.

答云君不知              그이가 하는 말 나는 모를 거라면서

位重多憂虞              자리가 높으면 걱정도 많아진다네.

北里有寒士              북쪽 마을에는 가난한 선비 사는데

甕牖繩爲樞              깨진 기와로 창내고 노끈으로 문 엮었네.

出扶桑藜杖              해 뜨면 대추나무 지팡이 짚고 나오고

入臥蝸牛廬              오두막에 들어가면 달팽이처럼 드러눕네.

散賤無憂患              미천해도 걱정 따위 하지 않으니

心安體亦舒              마음 편하고 몸 역시 상쾌하다네.

東鄰有富翁              동쪽 이웃에는 부자집 노인 사는데

藏貨徧五都              가진 재물은 온 나라에서 들여온 것이네.

東京收粟帛              동경에서는 곡식과 비단 가져오고

西市鬻金珠              서쪽 시장에는 금과 진주 내다 파는데

朝營暮計算              아침에 계획하고 저녁에는 계산하며

晝夜不安居              밤낮으로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한다네.

西舍有貧者              서쪽 집에는 가난한 사람 사는데

匹婦配匹夫              그저 그런 남자와 여자 부부로 사네.

布裙行賃舂              여자는 베옷 입고 방앗간에서 일하고

裋褐坐傭書              남자는 짧은 잠방이 입고 앉아 글씨 품을 파는데

以此求口食              이렇게 일해서 먹고 살면서도

一飽欣有餘              배부른 것으로 즐거워하고도 남음이 있네.

貴賤與貧富              귀천과 빈부

高下雖有殊              높고 낮음에 차이가 있겠지만

憂樂與利害              근심과 즐거움, 이익과 손해에 있어선

彼此不相踰              피차 서로 우월할 수 없다.

是以達人觀              이러한 까닭에 달인의 관점엔

萬化同一途              만물의 변화는 하나의 길로 통하겠지.

但未知生死              다만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하여

勝負兩何如              승부는 양쪽 다 어떠할까?

遲疑未知間              알 수 없는 와중에 미적미적 의심되니

且以酒爲娛              잠시 술로써 즐기겠노라.

 

16

濟水澄而潔              제수는 맑아서 깨끗하고

河水渾而黃              황하는 혼탁하여 누렇구나.

交流列四瀆              교류하여 네 개의 큰 강으로 펼쳐지니

淸濁不相傷              깨끗함과 탁함으로 인해 서로 피해를 주지 않구나.

太公戰牧野              강태공은 목야에서 전투를 하고

伯夷餓首陽              백이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네.

同時號賢聖              똑같이 성현으로 불리는데

進退不相妨              진퇴는 서로 방해하지 않네.

謂天不愛民              하늘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지만

胡爲生稻粱              어찌 벼와 기장을 낳아주었는가.

謂天果愛民              하늘이 백성을 사랑한다고 한다만

胡爲生豺狼              어찌 시랑이 이리를 낳아주었는가.

謂神福善人              신령은 착한 사람에게 복을 준다지만

孔聖竟栖遑              공자께서 끝내 분주히 주유천하 하셨네.

謂神禍淫人              신령은 사특한 자에게 화를 준다지만

暴秦終霸王              폭군 진왕은 마참내 패왕이 되었네.

顔回與黃憲              안회와 황헌은

何辜早夭亡              무슨 허물이 있다고 요절했는가?

蝮蛇與鴆鳥              독사와 독이 있는 짐새

何得壽延長              어찌 장수를 누리나.

物理不可測              사물의 이치 측량할 수 없고

神道亦難量              신묘한 도는 헤아리기 어렵다.

擧頭仰問天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묻지만

天色但蒼蒼              하늘색은 다만 푸르고 푸르네.

唯當多種黍              오직 마땅히 기장을 많이 심어서 술을 빚어

日醉手中觴              손에 술잔을 들고 날마다 취할 것이네.

 

 

後宮詞

 

淚濕羅巾夢不成          비단 수건 눈물 젖고 잠은 오지 않고

夜深前殿按歌聲          깊은 밤 앞 궁궐에서 박자 맞춘 노랫소리.

紅顔未老恩先斷          늙지 않은 홍안에 임금 사랑 끊어져

斜倚薰籠坐到明          향료 상자에 기대어 날 새도록 앉아있다.

 

 

凶宅                        흉가

 

長安多大宅              장안에는 저택이 많아

列在街西東              큰 길 동서로 벌려있다.

往往朱門內              가끔씩 붉은 대문 안

房廊相對空              방과 복도가 비어 있다.

梟鳴松桂枝              솔과 계수나무에 올빼미 울고

狐藏蘭菊叢              난과 국화 떨기에 여우가 산다.

蒼苔黃葉地              땅에는 푸른 이끼와 누런 단풍잎

日暮多旋風              날 저물자 회오리바람 불어댄다.

前主爲將相              옛 주인은 모두 장군과 재상이나

得罪竄巴庸              죄를 얻어 사천과 호남으로 귀양 갔다.

後主爲公卿              그 뒤의 주인은 공경과 같은 귀족이나

寢疾歿其中              병들어 누웠다 그 안에서 죽었단다.

連延四五主              계속하여 네댓 명의 주인이 있었으나

殃禍繼相鍾              앙화가 계속 이어졌단다.

自從十年來              십 년 전부터 죽어서

不利主人翁              주인 늙은이에게 이롭지 못하였단다.

風雨壞簷隙              비바람에 무너져 처마에 금이 가고

蛇鼠穿牆墉              뱀이나 쥐가 담이나 벽에 구멍을 내었다.

人疑不敢買              사람들이 의아하여 감히 사지 않으니

日毁土木功              날마다 흙과 나무 건축물이 무너졌단다.

嗟嗟俗人心              답답하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여!

甚矣其愚蒙              심하도다, 그들의 어리석고 몽매함이여!

但恐災將至              재앙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할 뿐

不思禍所從              재앙의 원인을 생각해보지 않는구나.

我今題此詩              나는 지금 이 시를 지어서

欲悟迷者胸              미혹한 사람들 마음을 깨우치려 하노라.

凡爲大官人              무릇 높은 관리가 된 사람이란

年祿多高崇              나이와 녹봉이 많고도 높도다.

權重持難久              권세가 중하면 지키기 어렵고

位高勢易窮              지위가 높으면 형세는 다하기 쉽도다.

驕者物之盈              교만한 자리는 물질이 가득함이요

老者數之終              장로의 자리는 목숨이 끝나간다는 것.

四者如寇盜              권세와 지위, 녹봉과 권위, 이 넷은 도둑과 같아

日夜來相攻              밤낮으로 서로 공격해온다.

假使居吉土              설사 좋은 집터에 산다고 하여도

孰能保其躬              누가 능히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因小以明大              작은 일을 가지고 큰 도리를 밝히나니

借家可諭邦              집의 이야기 빌어 나라의 일을 깨우칠 수 있도다.

周秦宅崤函              주나라와 진나라는 효관과 함곡관을 택지로 삼아

其宅非不同              그 택지는 같지 아니함이 아니나

一興八百年              한 쪽은 팔백 년 간을 흥성하고

一死望夷宮              다른 한 쪽은 죽어서 이궁만 바라보고 죽었다.

寄語家與國              집안이나 국가에 대하여 말을 부치노니

人凶非宅凶              사람이 나빠서이지 집터가 나빠서가 아니로다.

 

 

戲招諸客                     놀이로 여러 객을 초청하다

 

黃醅綠醑迎冬熟          누른 술과 푸른 술이 겨울에 익어가고

絳帳紅爐逐夜開          붉은 휘장과 붉은 난로 밤 쫓아 열린다.

誰道洛中多逸客          누가 낙양에 名士가 많다고 말하나

不將書喚不曾來          책으로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