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李梅窓, 1573~1610)
江臺卽事
四野秋光好 사방 들판에 가을빛 좋아
獨登江上台 혼자 강 위 누대에 올라본다.
風流何處客 어디서 온 풍류객인가
携酒訪余來 술 가지고 날 찾아온다네.
故人
松柏芳盟日 송백같이 맺은 사랑의 약속
思情與海深 사랑하는 그 마음 바다처럼 깊은데
江南靑鳥斷 강남 땅의 반가운 소식 끊어지고
中夜獨傷心 이 한 밤 홀로 마음만 아프구나.
閨怨
1
離恨悄悄掩中門 혹독한 이별이 한스러워 안방문 닫으니
羅袖無香滴淚痕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 없고 눈물 얼룩뿐이로다.
獨處深閨人寂寂 혼자 있는 깊은 방엔 아무도 없이 적적한데
一庭微雨鎖黃昏 마당 가득 내리는 보슬비는 황혼조차 가리운다.
2
相思都在不言裡 말 못하는 그리운 심정
一夜心懷鬢半絲 온 밤의 회포에 머리는 반백이 되었구나.
欲知是妾相思苦 그리운 이 이 고통 아시려면
須試金環減舊圓 금환 닮아짐을 보시구려.
閨中怨
瓊花梨花杜宇啼 옥색 배꽃은 눈부시게 피고 두견새는 우는 밤에
滿庭蟾影更悽悽 뜰에 가득 달빛어려 서러움은 더해 가네.
相思欲夢還無寐 그리운 임 꿈에나 만나려 해도 잠마저 오지 않고
起倚梅窓聽五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니 새벽닭이 우는 구나.
竹院春深曙色遲 대 숲엔 봄이 깊고 날 밝기는 멀었는데
小庭人寂落花飛 인적없는 작은 뜨락엔 꽃잎만 흩날리네.
瑤箏彈罷江南曲 옥쟁으로 타던 강남곡을 멈추고 나니
萬斛愁懷一片詩 끝없는 시름으로 가슴엔 한 조각 시를 품었어라.
이 시는 규방에서의 원망을 노래한 것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옥처럼 예쁜 동산에 배꽃이 피고 밤이면 두견새가 구슬피 우는 밤, 뜰에 가득 비친 달빛을 보니 마음이 더욱 서럽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어 꿈에나 만나려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임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깊어 잠마저 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매화가 핀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으니, 오경(五更)이 되자 새벽닭이 운다. 대나무를 심은 뜰엔 대나무 잎이 돋아 봄이 깊고 날이 밝기는 멀었는데, 인적이 없는 작은 정원엔 사람이 보이지 않고 꽃잎만 흩날린다. 예쁜 거문고로 남녀 연밥을 따며 부르는 연가(戀歌)인 「강남곡」 연주를 마치니, 시름은 끝없고 마음엔 한 편의 시(詩)가 이루어진다.
매창은 1607년 유희경을 다시 만난 기록이 있지만, 그와 헤어진 뒤 10여 년을 유희경을 그리며 살았다. 매창이 마음을 준 두 번째 남자는 이웃 고을에 사는 이귀(李貴)였다. 그는 명문 집안 자제로 글에 뛰어났는데 매창이 그에게 마음이 끌렸음을 보여 주는 허균의 기록이 있다. 허균은 1601년 충청도와 전라도의 세금을 거두는 해운판관이 되어 호남에 들렀다.
‘성소부부고’에는, “23일 부안에 도착하니 비가 몹시 내려 머물렀다. 고홍달이 인사를 왔다. 창기 계생은 이옥여(옥여는 이귀(李貴)의 자)의 정인(情人)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하여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서로 화답하였다. 밤에는 계생의 조카를 침소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壬子 到扶安 雨甚留 高生弘達來見 倡桂生 李玉汝情人也 挾瑟吟詩 貌雖不揚 有才情可與語 終日觴詠相倡和 夕納其姪於寢 爲遠嫌也).”라는 기록이 있다.
寄遠
別後雲山隔渺茫 이별 후 구름 낀 산 밖은 아득도 했는데
夢中歡笑在君傍 꿈속에선 웃음 지며 그대 곁에 있었지요.
覺來半枕虛無影 깨어보니 베개 반쪽엔 그림자도 없고
側向殘燈冷落光 전전반측 이 밤을 희미한 등불도 차가움에 떨구나.
何日喜逢千里面 어느 날 반갑게 천 리 밖 님을 뵈올까
此時空斷九回腸 지금 이 시간 부질없이 애간장만 끊는다오.
窓前更有梧桐雨 창가엔 오동잎에 스치는 빗소리 들리고
添得相思淚幾行 님 생각에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할 거나.
籠鶴
一鎖樊籠舊路隔 새장에 갇힌 뒤 돌아갈 길 막혔으니
崑崙何處閬風高 곤륜 어디에 낭풍(閬風)이 높았던가.
靑田日暮蒼空斷 들판에 해지고 파란하늘 끊겼는데
緱嶺月明魂夢勞 구영(緱嶺)의 밝은 달 꿈결조차 노곤하구나.
瘠影無儔愁獨立 짝 잃고 수척한 모습으로 홀로 서 있는데
昏鴉自得滿林噪 황혼의 까마귀만 들떠서 숲에 가득하구나.
長毛病翼摧零盡 길고 멋진 날개는 꺾이고 병들어
哀唳年年憶九皐 해마다 즐겁게 놀던 물가 눈물로 그리워하네.
登千層菴
千層隱佇千年寺 천 년을 우두커니 선 천년사
瑞氣祥雲石逕生 상서로운 기운과 구름이 돌길에 서린다.
淸磬響沈星月白 달빛과 별빛 환한데 맑은 풍경소리 잦아드니
萬山楓葉鬧秋聲 온 산에 가득한 단풍잎 가을 소리로 요란하다.
泛舟
參差山影倒江波 산 그림자 어른어른 물결에 어리고
垂柳千絲掩酒家 늘어진 버들가지 주막을 덮었구나.
輕浪風生眠鷺起 바람 이는 가벼운 물결 꿈속 백로 깨우고
漁舟人語隔煙霞 강 안개 속으로 어부들 이야기 소리 들려온다.
病中
1
不是傷春病 이것은 봄을 슬퍼하는 병이 아니라오
只因憶玉郞 다만 임을 그리는 탓일 뿐이오.
塵世多苦累 티끌 같은 세상 괴로움 하도 많아
孤鶴未歸情 외로운 학이 못 떠나는 심정이라오.
2
誤被浮虛說 어쩌다 그릇된 소문이 돌아
還爲衆口喧 도리어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네.
空將愁與恨 부질없는 시름과 한에
抱病掩紫門 병을 안고 사립문을 닫습니다.
임에 대한 그리움을 지니며 살던 매창은 37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이에 예전에 만났던 허균은 파직되어 부안 우반동에 있는 정사암에 와서 쉬다가 그를 슬퍼하는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哀桂娘
妙句堪擒錦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
淸歌解駐雲 청아한 노래는 구름을 멈출 수 있어라
偸桃來下界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에 귀양 왔고
竊藥去人群 선약을 훔쳤던가? 이승을 떠나다니
燈暗芙蓉帳 등불은 부용의 장막에 어둑하고
香殘翡翠裙 향내는 비취색 치마에 남았구려
明年小桃發 명년에 작은 복사꽃 피어날 때
誰過薜濤墳 누가 설도의 무덤에 들를는지
凄絶班姬扇 처절한 반첩여의 부채요
悲涼卓女琴 비량한 탁문군의 거문고로세
飄花空積恨 나는 꽃은 부질없이 한을 쌓고
衰蕙只傷心 시든 난초는 다만 마음 상할 뿐
蓬島雲無迹 봉래섬에 구름은 자취가 없고
滄溟月已沈 큰 바다에 달은 이미 잠기었다오
他年蘇小宅 다른 해 봄이 와도 소소의 집엔
殘柳不成陰 낡은 버들 그늘을 이루지 못하네
이 시는 봄이 와서 일어나는 근심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제주(題注)에, “계생은 부안 기생인데, 시에 능하고 글도 이해하며 또 노래와 거문고도 잘했다. 그러나 천성이 고고하고 절개가 있어 음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교분이 막역하였으며 비록 담소하고 가까이 지냈지만 난(亂)의 경에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가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그를 위해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2수를 지어 슬퍼한다(桂生扶安娼也 工詩解文 又善謳彈 性孤介不喜淫 余愛其才 交莫逆 雖淡笑狎處 不及於亂 故久而不衰 今聞其死 爲之一涕 作二律 哀之).”라고 말하고 있다.
病中愁思
空閨養拙病餘身 홀로 사는 몸 제대로 돌보지 못해 몸엔 병만 남고
長任飢寒四十春 오랜 동안 굶주리고 추웠는데 마흔 살이네.
借問人生能幾許 묻노니 인생이 얼마나 되는가 ?
胸懷無日不沾巾 가슴에 맺힌 마음 하루도 눈물 거둘 날 없구나.
惜別
1
東風一夜雨 봄바람 불어올 때 한 밤에 비 내리니
柳與梅爭春 버들과 매화가 봄을 재촉한다.
對此最難堪 이럴 즈음 가장 난감한 일은
樽前惜別人 님과 헤어지려 술잔을 앞에 둠이라네.
2
含情還不語 품은 정 말 못하고 돌아서려니
如夢復如癡 꿈꾸는 것만 같고 바보인 듯싶구나.
緣綺江南曲 거문고에 사랑 노래 실어 보련만
無人問所思 뉘 있어 이 내 마음 알아주리오.
3
翠暗籠烟柳 푸릇한 버들에 아득히 안개가 피어오르니
紅迷霧壓花 자욱한 안개에 붉은 꽃마저 기세에 눌린다.
山歌遙響處 나무꾼 노랫소리 아련히 멀어지니
漁笛夕陽斜 어옹(漁翁)의 대금 소리에 노을은 기운다.
仙遊 선계(仙界)에 노닐며
1
千載名兜率 옛부터 이름하여 두솔천(兜率天)이라 부르는데
登臨上界通 올라보니 하늘나라와 통하는 곳이어라.
晴光生落日 밝은 빛은 마치 저녁햇살처럼 비치고
秀嶽散芙蓉 높은 산봉우리는 부용(芙蓉)을 흩어 놓은 듯하구나.
龍隱宜深澤 용은 당연히 깊은 연못에 숨어있을 거고
鶴巢便老松 학은 늙은 소나무에 깃들었네.
笙歌窮峽夜 생황소리가 깊은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밤에는
不覺響晨鐘 새벽 종소리 울리는 것도 알지 못했어라.
2
三山仙境裡 삼산 신선들이 노니는 곳엔
蘭若翠微中 푸르른 숲 속에 아스라이 절간이 보이는구나.
鶴唳雲深樹 학은 구름에 잠긴 나뭇가지에서 울고
猿啼雪壓峰 원숭이는 눈 덮인 산등성이에서 울고 있네요.
霞光迷曉月 해 뜨는 아침노을에 새벽달은 희미한데
瑞氣映盤空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 가득 서리었구나.
世外靑牛客 속세를 떠나 푸른 소를 탄 나그네가
何妨禮赤松 신선 적송자를 찾아가 인사한들 어떠하리.
3
樽酒相逢處 두 사람 서로 만나 술잔을 나누는데
東風物色華 봄바람 불어와 물색이 화려해라.
綠垂池畔柳 푸른 버들이 연못가에 드리웠고
紅綻檻前花 누각 앞의 붉은 꽃들은 봉우리를 터뜨렸네.
孤鶴歸長浦 외로운 학은 물가로 돌아가고
殘霞落晩沙 날 저무니 모래밭엔 저녁노을 드리웠네.
臨盃還脈脈 술잔을 잡고 연달아 주고받지만
明日各天涯 날 밝으면 각기 하늘 끝에 가 있으리라.
愁思
1
平生不學食東家 평생 여기 저기 떠도는 생활 배우지 않고
只愛梅窓月影斜 매화가지에 비스듬히 비치는 달만 사랑했네.
時人未識幽閑意 사람들은 깊고 고요한 마음 몰라주고
指點行雲枉自多 뜬구름이라 손가락질하며 잘못 알고 있구나.
2
雨後凉風玉簞秋 비 뒤에 산들바람 가을을 몰고 오니
一輪明月掛樓頭 둥근 달은 누각 위에 밝게 걸려 있네.
洞房終夜寒蛩響 긴긴 외로운 밤 서늘한 귀뚜라미 소리
搗盡中腸萬斛愁 이내 간장 모두 녹아내리네.
尋眞 진경(眞景)을 찾아
1
可憐東海水 가련하다, 동해로 흐르는 물이여
何時西北流 어느 때라야 서북쪽으로 흐르는가.
停舟歌一曲 배를 멈추고 한 곡조 노래하며
把酒憶舊遊 술잔 들고 옛 놀던 때를 생각하노라.
2
巖下繫蘭舟 바위 아래 고운 배 매어놓고
耽看碧玉流 벽옥같은 맑은 물 정신없이 바라본다.
千年名勝地 천 년 명승지에
沙鳥等閒遊 물새가 한가롭게 놀고 있구나.
3
遠山浮翠色 먼 산엔 푸른빛 감돌고
柳岸暗煙霞 버드나무 언덕엔 물안개로 어둑하다.
何處靑旗在 어느 곳에 주막이 있는가
漁舟近杏花 고기잡이배는 살구나무 가까이로 돌아드누나.
夜坐
1
西窓竹月影婆娑 서쪽 창가 대나무에 달그림자 너울대고
風動桃園舞落花 복사꽃 핀 뜨락에는 낙화가 흩날린다.
獨倚小欄無夢寐 작은 난간에 홀로 기대선 채 잠 못 이루는데
遙聞江渚採菱歌 저 멀리선 마름 따는 노래만이 들리누나.
2
風飜羅幕月窺窓 바람은 비단휘장을 펄럭이고 달빛은 창가를 기웃거리는데
抱得秦箏伴一釭 홀로 거문고 껴안고 외로운 등잔불과 벗하고 있다네.
愁倚玉欄花影裡 꽃 그림자에 묻혀 시름겹게 선 난간으로
暗聞蓮唱響西江 채련가만 아스라이 울려 퍼진다.
御水臺
王在千年寺 임금이 계셨던 천 년의 사찰에
空餘御水臺 텅 빈 어수대(御水臺)만 남아 있구나.
往事憑誰問 지난일 뉘에게도 물어 볼 데 없고
臨風喚鶴來 바람이 불러온 학만이 찾아와 임하였구나.
遊扶餘白馬江
1
水村來訪小柴門 강 마을 사립문 찾아드니
荷落寒塘菊老盆 연꽃 떨어진 쓸쓸한 연못, 국화꽃 시든 화분
鴉帶夕陽啼古木 석양에 갈가마귀는 고목에서 울어대고
雁含秋氣渡江雲 가을 기운 머금은 기러기 강 건너 구름에 든다.
2
誰云洛下是多變 누구나 세상 변화 심하다 하나
我願人間事不聞 나는 인간사 듣는 것 원치를 않다네.
莫向樽前辭一醉 술동이 앞 한 잔 술 사양 마시게
五陵公子草中墳 잘 나가던 오릉의 공자들도 죽으면 풀 속 무덤이라네.
自傷 마음 상하여
1
京洛三年夢 서울 꿈 삼 년
湖南又一春 호남에서 또 한 봄이 가는구나.
黃金移古意 황금에 처음 마음이 바뀌어
中夜獨傷神 한밤에 홀로 마음이 상하는구나.
2
洛下風流客 서울 풍류객 있어
淸談交契長 청담을 나누며 약속했는데
今日飜成別 오늘 번복하고 이별하니
離盃暗斷腸 이별 술잔에 암담히 마음이 아프네
3
一片彩雲夢 한 조각 꽃구름 이는 꿈
覺來萬念差 깨어나면 허망하여라
陽臺何處是 임과 만나는 포근한 누대는 어느 곳인가
日暮暗愁多 날은 저물어 어둑한데 수심만이 쌓여간다.
4
夢罷愁風雨 꿈 깨니 비바람 근심스러워
沈吟行路難 세상 길 어려움을 조용히 읊어 본다.
慇懃樑上燕 무심하구나, 들보 위의 제비여
何日喚人歸 어느 날에야 임 불러 돌아오게 하려나.
自恨
1
夢罷愁風雨 꿈에서 깨니 비바람이 근심스러워
沈吟行路難 고요히 행로난을 읊노라.
慇懃梁上燕 은근한 들보 위의 제비야
何日喚人還 어느 날에야 임을 불러 돌아오게 하려나.
2
故人交金刀 옛사람 돈으로 사귀더니
金刀多敗裂 돈으로 패망한 사람 많도다.
不惜金刀盡 돈 다 쓰는 것 아깝지 않으나
且恐交情絶 사귀는 정이 끊어질까 걱정이라오.
3
悖子賣莊土 패륜아가 농토를 파니
莊土漸次裂 농토가 점차 줄어드는구나.
不惜一莊土 한 뙈기 농토는 아깝지 않으나
只恐宗祀絶 조상님 제사 끊어질까 두렵도다.
4
春冷補寒衣 봄날이 차가워 엷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 비단 창가로 햇볕이 스민다
低頭信手處 머리 숙여 바느질을 하고 있자니
珠淚滴針絲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을 적시누나.
이 시는 자신을 원망하는 시로, 아마도 유희경(劉希慶)이 떠난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매창은 1590년 무렵 부안을 찾아온 시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과 만나 사귀었다. 매창도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촌은집(村隱集)』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 부안에 놀러갔었는데, 계생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계생은 그가 서울에서 이름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유희경(劉希慶)과 백대붕(白大鵬) 가운데 어느 분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곳까지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찍이 기생을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이때 비로소 파계하였다. 대개 서로 풍류로써 즐겼는데, 매창도 시를 잘 지어 『매창집』을 남겼다(少遊扶安邑 有名妓癸生者 聞君爲洛中詩客 問曰 劉白中誰耶 盖君及大鵬之名動遠邇也 君未甞近妓 至是破戒 盖相與以風流也 癸亦能詩 有梅窓集刊行).”
유희경은 매창을 처음 만난 날 「증계랑(贈癸娘)」이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曾聞南國癸娘名 일찍이 남국의 계랑 이름 알려져서
詩韻歌詞動洛城 글재주 노래 솜씨 서울에까지 울렸네
今日相看眞面目 오늘에야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却疑神女下三淸 선녀가 신선의 궁에서 내려온 듯하여라
40대 중반의 대시인 유희경과의 사랑은 18세의 매창으로 하여금 그의 시세계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가고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들의 재회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전쟁을 맞아 의병을 일으키는 등 바쁜 틈에 매창을 다시 만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정 마음이 통했던 연인을 떠나보낸 매창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후 쓰인 그의 시들은 임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 서러움과 한(恨)을 드러내고 있다.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중 한 편을 보면,
懷癸娘
娘家在浪州 그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 서로 그리워해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桐雨 오동나무에 비 뿌릴 땐 애가 끊겨라
絶命詩
結約桃園洞裏仙 복사꽃 동산의 백년가약 신선에 견주었건만
豈知今日事凄然 오늘에 이르러 처연한 심사 어찌 알았을고
坐懷暗恨五絃曲 한 많은 이 내 가슴 거문고에 실어보니
萬意千事賦一篇 천만사 얽힌 사연은 한 권의 책이로다.
塵世是非多苦海 티글 세상 시비꺼리 하도 많아 고해라하니
深閨永夜苦如年 깊은 규방 기나긴 밤 서러움이 몇 해더냐.
南橋欲暮重回首 남쪽 다리에서 지는 해를 보며 다시머리 돌려보니
靑疊雲山隔眼前 청춘은 아득한데 구름 산이 눈앞을 가리누나.
1610年 여름, 38세로 그녀는 애지중지하던 거문고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라고 한다.
早秋
千山萬樹葉初飛 온 산의 나무마다 잎이 처음 지는데
雁叫南天帶落暉 지는 햇빛에 기러기는 남쪽으로 울고 가네.
長笛一聲何處是 어디서 들려오는 저 피리 소리인고
楚鄕歸客淚添衣 타향의 나그네 눈물이 더욱 옷깃을 적시네.
贈別
我有古秦箏 나에게 진나라 거문고 있어
一彈百感生 한 번 타면 온갖 느낌 일어난다네.
世無知此曲 세상에는 이 곡조 아는 사람 없어
遙和緱山箏 멀리 구산쟁(緱山箏)에만 화답하노라.
贈醉客
醉客執羅衫 취객이 내 저고리를 붙잡아
羅衫隨手裂 저고리가 손에 찢어졌네.
不惜一羅衫 한 갓 저고리야 아깝지 않으나
但恐恩情絶 다만 임과의 정 끊길까 두렵다네.
이 시는 취한 손님에게 준 것으로, 매창의 성품과 인생관이 드러난 시이다. 취한 손님이 명주로 된 저고리를 잡으니, 몸을 돌려 피하려다 명주저고리가 손님의 손에 찢어졌다. 비싼 명주저고리지만 아까울 것이 없다. 다만 손님께서 보내 주신 은혜의 정이 이 일 때문에 깨질 것이 두렵다. 신분이 기생이었던 매창에게 술에 취한 손님들이 덤벼들며 집적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매창은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 않았으며, 시를 지어 무색하게 하기도 하였다. 홍만종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기녀(妓女)의 시와 위의 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어 놓았다.
“옛날 재주 있고 시에 능한 기생으로 설도(당(唐)나라의 여류시인) · 취교 같은 무리가 상당히 많았다. 우리나라의 여자들은 비록 글을 배우지 않았으나, 기생들 중에 자질이 영특하고 빼어난 자가 없지 않다. 그러나 시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전혀 없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를 살펴보니, ‘우리나라 여자들의 시는 삼국시대에는 알려진 것이 없고, 고려 오백 년 동안 용성의 창기인 우돌과 팽원의 창기인 동인홍만이 시를 지을 줄 안다.’고 하였는데, 이들 시 또한 전해지지 않는다(‘보한집’에는 실려 있다). 근자에 송도의 진낭 황진이와 부안의 계생은 그 사조가 문사들과 비교하여 서로 겨룰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 진랑의 「영반월」은 다음과 같다. ······ 계생의 호는 매창으로 ‘증취객(贈醉客)’ 시가 있다. ······ 시어가 모두 공교하고 곱다. 아! 승려와 기녀는 사람들이 매우 천하게 여기어 함께 나란히 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작품이 이와 같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뛰어난 재주를 볼 수가 있다(古之才妓能詩者 如薛濤翠翹之輩頗多 我東方女子 雖不學書 妓流中英資秀出之徒 不無其人 而以詩傳於世者絶無 何哉 按魚叔權稗官雜記 東方女子之詩 三國時則無聞焉 高麗五百年 只有龍城娼于咄彭原娼動人紅 解賦詩云 而亦無傳焉 頃世松都眞娘扶安桂生 其詞藻與文士相頡頏 誠可奇也 眞娘詠半月詩 ······ 桂生號梅窓 其詩云 ······ 語皆工麗 噫 緇髡娼妓 人之所甚賤 羞與爲齒者也 而今其所作如此 則可見我東人才之盛也).”
鞦韆
兩兩佳人學伴仙 두 사람씩 짝 지은 미인이 신선을 배우려
綠楊陰裡競鞦韆 푸른 버드나무 그늘에서 그네를 타는구나.
佩環違響浮雲外 노리게 소리 구름 밖 하늘까지 울리니
却訝乘龍上碧天 도리어 용을 타고 푸른 하늘 오르는 듯하여라.
春思
東風三月時 삼월의 봄바람에
處處落花飛 곳곳마다 꽃 져 흩날리고
綠綺相思曲 거문고 뜯으며 임 그려 노래해도
江南人未歸 강남으로 가신 님은 돌아오지 않구나.
彈琴
1
誰憐緣綺訴丹衷 우리 사랑 진정에 호소함을 누가 알리오
萬恨千愁一曲中 온갖 원한 가진 수심이 한 곡조에 들어있네.
重奏南江春欲暮 강남곡을 거듭 탈 제 봄날은 저물어 가고
不堪回首泣東風 머리 들어 맞이하는 봄바람엔 하염없는 눈물만이.
2
幾歲鳴風雨 몇 해 동안 바람과 비는 소리를 내었는지
今來一短琴 지금까지 지녀 온 하나의 작은 거문고.
莫彈孤鸞曲 외로운 난새의 곡조는 뜯지를 말자더니
終作白頭吟 끝내는 백두음 가락을 지어 읊었구나.
白頭吟 - 한의 사마상여가 무릉의 여인을 첩으로 삼으려 하자 그의 아내 탁문군은 '白頭吟'이란 시를 지어 축첩을 막았다.
閑居
石田茅屋掩柴扉 돌 밭 초가 사립문 닫아
花落花開辨四時 꽃 지고 꽃 피고 계절마저도 모르겠다.
峽裡無人晴盡永 골짝엔 사람 없고 맑은 날은 길기도 한데
雲山炯水遠帆歸 구름 낀 산과 반짝이는 물에 돛단배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