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金時習, 1435~1493)
無雨雷聲何處動 비는 오지 않는데 천둥소리는 어디에서 나는고
黃雲片片四方分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
김시습이 3살 때 보리를 빻는 것을 보고 지은 시
嘉蔬 맛좋은 나물
山有嘉蔬澗有樵 산에는 좋은 나물 산골짜기 땔나무 있으니
此生端欲樂陶陶 이승에서 바르게 하여 화락함 즐기는것이라네.
雖然靑史無蹤跡 비록 청사에 자취와 업적 없을지라도
爲有英靈特見招 영령은 있으니 특별히 초대받기를 원하노라.
陶陶 - 매우 화락한 모양. 말을 달리게 하는 모양.
靑史 - 역사.
加平縣 가평현
老樹靄如雲 오래된 나무에 구름 같은 아지랑이
重圍古縣門 옛 고을 문을 거듭 두르는 구나.
有人耕綠野 녹색 들판엔 농부가 밭을 갈고
無犬吠黃昏 황혼에도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구나.
樵逕依山麓 나무꾼의 길은 산기슭으로 이어지고
柴扉傍水村 사립문은 물가 마을 곁에 있다.
吏眠山鳥語 아전은 졸고 있고 새는 노래하는데
風景似桃源 풍경은 곧 무릉도원 별천지로다.
椵峴 갈림길에 서면
驟雨暗前村 소나기에 앞마을 보이지 않고
溪流徹底渾 흐르는 시냇물도 몹시 혼탁하구나.
疊峰遮客眼 겹쳐진 봉우리 나그네의 눈을 가리고
一徑入溪源 길 하나는 시냇물 발원지로 드는구나.
靑草眠黃犢 파란 풀숲엔 누런 송아지 누워서 쉬고
蒼崖叫白猿 우거진 언덕엔 부질없이 잔나비 울부짖네.
十年南北去 십년동안 남과 북을 가보았지만
岐路正銷魂 갈림길 길에서는 바로 넋이 나가네.
看竹 대나무를 보며
其一
古寺北垣竹 오래된 절 북쪽 담장의 대나무
種來知幾春 심어 온지 몇 봄인지 알려나?
僧居不記箇 스님들 머물며 이것을 적지 않아
客來無看人 손님이 와도 보는 사람 없구나.
老根斜起糾 늙은 뿌리는 꼬여 비껴 일어나고
風葉細生皴 잎은 바람에 가늘게 트여버렸네.
愛爾移時坐 너를 사랑하여 때맞게 자리 옮겨
殷勤與汝隣 은근히 너와 더불어 이웃하리라.
其二
歲寒不改操 한겨울 추위에도 절조를 아니 고쳐
葉葉藏靑春 잎 잎마다 푸른 봄을 감추었구나.
我是新知伴 나는 이것이 새로운 벗임을 알기에
君爲舊住人 그대 위해 오래도록 머물던 사람이라.
自誇蒼節勁 푸른 마디 굳셈을 스스로 자랑하고
應笑白眉皴 주름진 흰 눈썹으로 웃으며 화답하네.
對卿殊有意 그대를 대하니 결심한 뜻이 있어
得錢買山隣 돈을 구하여 이웃의 산을 사야겠네.
其三
巖竇托根日 바위 구멍의 햇빛에 뿌리를 맡기고
邇年多少春 새해가 가까우니 때마침 봄에 빠지네.
定能知客性 정해진 능력과 나그네 성품을 알기에
應自厭塵人 속세의 사람을 따라 스스로 화답하네.
琅玕新粉滑 대나무는 새롭게 화장하여 반드럽고
箁箬舊皮皴 죽순 껍질과 오래된 거죽이 트는구나.
寂歷靑山晩 적막함이 지나자 푸른 산은 저무니
携筇乞卜隣 지팡이 들고 이웃에 무를 구걸하네.
其四
山中糜歲月 산 속에서 세월을 허비하고
行樂十年春 즐기며 다닌 지 10년의 봄이라.
竹祖書年記 대 뿌리는 시대의 기록 기억하고
龍孫問主人 죽순에게는 주인을 문초하네.
地寒無奈苦 찬 땅속에서 어찌 괴로움 없으랴 ?
風勁不應皴 강한 바람에 응해도 트지 않는구나.
我欲移君培 나는 그대를 북돋아 옮기려 하는데
幽居必擇隣 조용히 살며 반드시 이웃으로 택하리.
看花 꽃을 보며
看花終日獨躕踟 종일 꽃을 보며 혼자 머뭇거리며 주저하니
庭草毿毿午景遲 뜰의 풀은 털이 길게 늘어지고 낮의 햇살은 더디구나.
天上豈無治老藥 하늘 위엔 늙음을 다스리는 약이 어찌 없을랴마는
人間不見搘床龜 세상에는 상을 괴는 거북을 볼 수가 없구나.
年光鼎鼎如流水 세월은 바야흐로 흐르는 물과 같은데
世味紛紛似亂絲 세상맛은 어수선하여 어지러운 실 같구나.
花底直須催喚酒 꽃나무에 멈춰서 바로 마땅히 술을 불러 재촉하니
不妨連日醉扶持 연일 취하여도 방해받지 않고 견디어 이겨내리라.
感時 시절을 느끼어
千村萬村蕎花開 이 고을 저 고을, 고을마다 메밀꽃 피어있고
一聲兩聲鴻雁來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 떼 날아온다.
節物崢嶸人已老 철 만난 사물들 쟁영한데 사람은 늙어가고
感時騷客心悠哉 시절을 느낀 시인은 마음이 한가롭구나
已聞村舍收新稌 마을 집에는 이미 새 곡식 걷었다는데
復道火菑種牟來 화전에 보리 심고 온다고 거듭 말하는구나
老子山中有生涯 산중의 늙은이 생계 있으니
小圃紫豆垂纍纍 작은 밭에 붉은 콩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十年爲客西復東 십년을 나그네 되어 동으로 서로 다니다가
不覺寒暑相推移 추위와 더위가 바뀌어 온 것도 몰랐도다
如今衰病臥山丘 지금처럼 쇠하고 병들어 산언덕에 누워
細觀一歲春復秋 한 해가 봄 되고 가을됨을 자세히 보았도다
功名世上好事耳 세상 공명이란 좋은 일인데
我獨無心空白頭 나만 홀로 무심히도 덧없이 백발로 늙었도다
壯志未磨歲月遒 큰 뜻 닦지 못하고 세월만 빨라
亭畔蟪蛄鳴啁啾 정자 가, 쓰르라미와 땅강아지 울어대는구나.
紺岳晴雲 감악산의 맑은 경치
紺岳之山高揷天 감악산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았는데
縹緲洞壑浮雲煙 아득히 깊은 골짜기에 구름과 놀이 떴네.
千章喬木蔭神廟 천 가지 무늬의 큰 나무들은 신을 모신 사당을 보호하고
一道飛瀑垂龍淵 한 줄기 폭포는 용연을 향하여 떨어지네.
但聽疎鐘搖翠壁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푸른 절벽을 흔드는 듯 함을 들었으나
不見老鶴巢層巓 늙은 학이 절벽 위에 깃 든 것은 보지 못했네.
空濛似畵聚復散 하늘에 흐릿한 모습이 그림처럼 모였다가 흩어지더니
等閒作雨陽臺前 공연히 양대 앞에 와서 비를 뿌리네.
甘泉 감천에서
客路雙鬢星 나그네 길에 두 귀밑머리 희어지고
長亭復短亭 긴 역정, 짧은 역정 거듭 거쳐 왔다.
望雲何縹緲 구름 바라보면 어찌 그리도 아득하고
顧影大伶俜 발자취 돌아보면 너무나도 고독하였다.
古柳千絲碧 오래된 버드나무 올올이 실처럼 푸르고
遙岑一髮靑 멀리 산봉우리는 한 가닥 터럭처럼 푸르다.
還嗟人世事 그러나 탄식하노니 사람의 세상 일이여
誰識屈原醒 그 누가 굴원이 깨어있는 사람인 줄 알아주었던가.
感懷 마음 속 생각과 느낌
1
事事不如意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愁邊醉復醒 시름 속에 취했다가 다시 깨노라
一身如過鳥 새가 날아가듯 내 이 몸은 덧없고
百計似浮萍 그 많던 계획도 마름풀잎처럼 떠버렸네
經事莫饜腹 경사(經事)를 뱃속에 너무 채우지 말게
才名空苦形 재주와 이름은 헛되이 몸만 괴롭힌다네
唯思高枕睡 베개 높이 베고서 잠잘 생각이나 하리니
更載夢虞庭 꿈에나 순임금 만나 말을 나눠 보리라.
2
窮通聖難豫 궁통은 성인도 싫어서 꺼리는데
懶慢更如何 나태하면 어찌 당연히 고치리오
午夢驚林鵲 한낮의 꿈은 숲의 까치도 경계하고
年光怕暮鴉 세월의 흐름은 갈까마귀도 두려워하네.
事隨人物變 관직을 따르니 사람 됨됨이도 변하고
雲向海天斜 높은 것 누리다 운명도 기울어 어둡구나.
百歲悲歡事 백 년의 슬프고 기뻤던 일들이
還同水上波 도리어 물 위의 물결과 한가지더라.
3
四十三年事已非 마흔 세 살 나이의 일들은 이미 그릇되고
此身全與壯心違 이 몸과 더불어 온전하던 큰 뜻도 어긋났네.
神魚九變騰千里 신령한 물고기 아홉 번 변하여 천리를 날고
大鳥三年欲一蜚 큰 새는 삼 년 동안에 한 번 날려고 하네.
洗耳更尋東澗水 귀를 씻으려 동쪽 산골짝 물을 다시 찾고
療飢薄采北山薇 적은 나물과 북쪽 산의 고사리로 요기하리라.
從今陟覺歸歟處 이제부터 편안히 돌아갈 곳을 깨달았으니
雪竹霜筠老可依 눈과 서리 덮힌 대나무와 능히 의지해 늙으리라.
大鳥三年 - 초(楚)의 장왕이 왕이 된 지 3년이 되어도 주색에 빠져 아무런 정치도 하지 아니 하므로 신하 오거(伍擧)가 왕에게, "어느 곳에 큰 새가 있는데 3년 동안을 날지 아니하니 어찌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왕이 대답하기를, "3년을 날지 않았어도 날면 하늘에 닿도록 크게 날 것이니, 좀 기다려 보아라."하고, 다시 정치를 잘하여 나라를 훌륭하게 만들었다. 史記 楚世家[사기 초세가]
感興 감흥
1
東寺躄浮屠 동쪽 절에 다리 저는 부도(浮屠)
中廏病顙駒 마구간엔 이마에 병든 망아지.
起廢各有時 일어나고 쇠함은 각기 때가 있고
失得且勿憂 잃고 얻음에 있어 장차 근심하지 말라.
漆以用而割 옻은 쓰임이 있어 갈라지고
膏以明而煎 기름은 밝음이 있다하여 태워진다.
棄置勿復慮 내버려진다고 다시 우려말고
福兮禍所牽 복받는 것은 재앙에 끌리게 된다.
人生天地間 천지간에 사람이 태어나
爲樂將何事 즐거움을 위해 장차 무엇을 섬기나.
鼎鼎百年內 성대히 백년을 살면서
不作形驅使 물질에 쫓기지 말어라.
出則爲小草 나가면 작은 풀이라 하나
處則名遠志 차지하면 원대한 지사라 한다.
遺臭與傳芳 자취와 향기로운 이름 전하는 것
不如負朝陽 아침 햇볕 쬐는 것만 못하니라.
庇身雖襜絮 몸 가리는 것 비록 누더기라도
是非兩相忘 시비를 모두 잃어버려라.
大丈夫便軒昂 대장부는 헌걸스러워야 하나니
豈肯屑屑趨名場 어찌 즐겨 구구하게 벼슬자리를 쫓으리.
欲進未進徒彷徨 나가려해도 나가지 못하고 한갓 방황할 뿐이리니
百步九折路羊腸 백 걸음 되는 꼬불꼬불한 길이 양(羊)의 창자 같도다.
豺虎當關今憧惶 시랑이와 호랑이들 길목에서 호령이 무서운데
達固欣然窮亦可喜 잘 되면 원래 좋고 궁해도 기뻐할 것이다.
男兒未蓋棺 남자가 관 뚜껑 덮기 전에는
莫道事己巳 일이 이미 끝났다 말하지 말라.
立心勿草草 마음을 세우고 초조하지 말고
愼終常如始 끝날 때까지 신중하며 항상 처음 같이 하여라.
浩歌一長笑 호탕하게 노래하고 한 번 길게 웃나니
軒外暮山紫 처마 밖의 저문 산이 자색으로 빛나누나.
2
二鳥避行路 새 두 마리가 가는 길을 피하니
義士西山飢 의사가 서산에서 굶주려 죽었다네.
物固各有遇 만물은 원래 각각 만남이 있고
遇固各有時 만남에는 각기 때가 있다네.
窮達竟難詰 궁하고 통함을 따질 수는 없으니
問天天不知 하늘에 물어도 하늘도 모른다네.
朝避猛虎穽 아침에 사나운 호랑이가 함정 피하여도
夕竄長蛇林 저녁에는 긴 뱀이 사는 숲에 숨어든다네.
人道險而難 사람 사는 길 험하고도 어려우니
天道杳難尋 천도는 아득하여 찾기도 어렵다네.
永懷坐申朝 깊은 생각에 낮까지 앉았더니
悄悄傷我心 근심스레 내 마음만 상하였다네.
且把模稜手 가시 어루만지던 손으로
自守臃腫節 스스로 옹졸한 절개나 지키려네.
直木必先伐 곧은 나무는 반드시 먼저 베이고
甘井必先竭 단 우물은 반드시 먼저 마른다네.
人喜鵬擊溟 남들은 붕새가 바다를 치는 것 좋아한다하나
我喜龜藏六 나는 거북이 육효(六爻)를 간직하는 것을 좋아하네.
人誇犬戲麋 남들은 개가 사슴을 희롱하는 것 자랑하나
我笑微聲鹿 나는 작은 소리 내는 사슴에 미소짓는다네.
拍手歌紫芝 손뼉 치며 자지가(紫芝歌)를 노래하는데
紫芝何曄曄 붉은 지초는 어찌 그렇게 광채로운가.
貧賤足肆志 가난하고 천해도 뜻 펼치기에는 충분하니
南谿且卜築 남쪽 개울에 장차 집이나 지으려 하노라.
3
雲自茫茫山自高 구름은 스스로 망망한데 산은 저절로 높아
興亡百變水滔滔 흥과 망함 여러 번 변해도 물은 도도하구나.
是非坑裏若一夢 옳고 그름은 구덩이 속의 한바탕 꿈같고
榮辱窠中知幾勞 영욕의 구덩이 속은 얼마나 고달픈지 알리라.
得句無端空拍手 구절 얻고서 무단히 쓸데없는 박수치고
感時不勝自揮毫 계절 감응 이기지 못해 절로 붓을 옮기네.
無人說却羊裘隱 양가죽 옷에 은거함을 도리어 말하는 이 없지만
擬向金門着紫袍 궁궐 문 향해 흉내 내어 붉은 도포 입으리라.
부도(浮屠) -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
甲串 갑곶에서
雙雙鳧鴨聚晴沙 쌍쌍의 오리들이 맑은 모래에 모이고
兩岸江楓襯落霞 양 언덕 강 단풍 노을에 떨어져 드러나네.
一葉扁舟乘我去 한 잎 조각배는 나를 태우고 가는데
晩風撩亂白蘋花 저녁 바람 심란한데 갈대꽃만 빛나네.
甲串 - 강화도에 있는 포구. 승천포와 연하여 있음.
江山白雲 강과 산의 흰 구름
白雲曉羃秋江斂 새벽녘 흰 구름이 덮여 가을의 강을 감추고
江上孤峯螺一點 강 위의 외로운 봉우리 한 점의 소라 같구나.
毿毿霜蕊粘葦花 긴 털 나풀대는 갈대꽃 꽃술에 서리가 붙고
湛湛江楓猩血染 더디고 느린 강가의 단풍은 붉은 피로 물들였구나.
晩來白雲渡江去 저녁이 되니 흰 구름은 강을 건너가
渺渺江滸征冉冉 아득히 먼 강 물가로 서서히 가는구나.
白雲不是無心者 흰 구름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니
往來舒卷長自在 가고 오고 퍼지고 마는것 늘 자유롭구나.
寄語白雲須訪我 흰 구름에게 부치는 말 반드시 나를 찾아주길
過我松關吾且待 소나무 문을 왕래하며 나 또한 기다린다네.
旣與汝曹俱得意 이미 너의 무리와 더불어 함께 뜻을 얻고
朝暮相從終莫改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로 따르며 늘 바꿈이 없구나.
開窓寓言 창을 열고 寓言(교훈적이나 풍자적인 내용을 지닌 짤막한 말)
其一
靑山如畫刮雙眸 푸른 산 그림 같아 두 눈을 비비고
芳草春深歲月遒 꽃다운 풀 무성한 봄 세월이 닥치네.
七字篇章歸劇語 일곱 자로 지은 시문 심한 말로 끝내고
一年行樂付閑遊 일 년 행락은 한가히 떠돌며 의지하네.
滔滔擧世狗投骨 도도한 세상 들어 개에게 뼈 던지듯
薄薄人情免入罦 야박한 인정은 토끼가 그물에 드는 것 같네.
莫歎無成添白髮 이루지 못함 한하지 말게 백발만 더하니
仲尼盜跖一林丘 공자도 도척도 전부 숲속의 무덤 되었네.
其二
楊花如雪杏如璫 버들 꽃은 눈 같고 살구는 옥 같은데
庭草剼剼晝日長 뜰의 풀은 긴 털 뭉실 낮의 해는 길어지네.
兩兩異禽啼遠樹 짝 짝이 진귀한 새들 많은 나무에서 울제
雙雙蛺蝶過低墻 쌍쌍이 호랑나비 담장 낮게 지나가네.
詩如子美方成癖 시는 바야흐로 두자미와 같은 버릇 이루고
文似長卿便是狂 어구는 유장경 닮아 무릇 경솔하게 익혔네.
端坐小窓無一事 작은 창가 끝에 앉아 한결같이 일도 없어
客來時復坐禪床 손님이 오면 때맞추어 다시 선상에 앉는다오.
其三
簷影初移壓小墻 처마 그림자 비로소 옮겨 작은 담장 누르니
燕雛饒舌語年光 제비 새끼 지지배배 사물의 경치를 알리네.
山明水闊開新畫 밝은 산 넓은 물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고
雨霽雲收納晩涼 비 개이고 구름 걷히니 해질녁 서늘함 보내네.
蜂鑽紙窓聲嗄嗄 종이창은 벌이 뚫어 앵 앵 소리를 내고
蠹穿土壁祝吭吭 나무좀은 흙 벽 뚫어 항항대며 축원하네.
直將底事消閑日 일부러 일을 숨겨 한가히 날을 보내고
坐對碧峯添 香 푸른 봉우리 마주 앉아 향을 더하네.
盜跖 - 중국 춘추시대의 큰 도둑. 공자와 같은 시대의 노나라 사람. 현인 유하혜의 아우로 그의 도당 9천 명과 떼 지어 항상 전국을 휩쓸었다 함
開窓卽事 창을 열고 눈앞의 일을 적다.
其一
亂山空翠濕人衣 어지러이 먼 산의 푸른빛에 사람 옷이 젖고
林靄蒼蒼帶晩暉 멀리 아득한 숲 아지랑이 저녁 빛을 두르네.
縹緲鄕關何處是 아득히 멀고 먼 고향의 관문은 어디쯤일까
天風吹斷白雲稀 하늘 높은 바람 나누어 부니 흰 구름 드무네.
其二
魏闕迢遙邃九重 대궐의 정문은 멀고 먼데다 구중궁궐 깊건만
豺狼當道寂人蹤 이리와 승냥이의 정권에 사람 자취 고요하네.
皁囊曾貯治安策 검은 주머니에 치안의 방책이 이미 쌓였으니
深閉茅廬學臥龍 누추한 오두막 깊이 감추고 와룡을 배우리라.
豺狼當路 - 승냥이와 이리에 비길 만한 간악한 자가 세력을 얻어 정권을 좌우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
開天寺 개천사
碧雲深洞裏 푸른 구름 깊은 골짜기에
喜見古招提 옛 절을 보니 반갑구나.
寥落山門靜 적막한 산문 안은 조용하고
盤廻石逕迷 좁은 돌길을 따라 서성이네.
兩山松櫟老 양쪽 산엔 오랜 솔과 상수리나무
半壁夕陽低 석벽(石壁)으로는 저녁 빛이 내린다.
到處皆佳麗 이르는데 마다 아름다우니
禪心未易擠 선정(禪靜)에 드는 마음 떨칠 수 없네.
據梧 오동나무에 의지하여
我爲主人物爲客 내가 주인이 되고 물건이 나그네가 되어서
相對無言坐終日 말도 없이 서로 마주해 하루 종일 앉아있네.
眼前萬物自有趣 눈앞의 모든 물건은 스스로 풍취가 있으며
紛紛紜紜終有秩 뒤숭숭하고 번잡하지만 늘 순서가 있다네.
奔流歸我我取捨 급한 흐름에 나를 맡기고 또 버리고 취하며
我轉萬物物來謁 만물을 나는 알기에 만물이 돌아와 알리네.
鳥啼花落澗決決 꽃이 지고 새가 울며 산골 물은 졸졸 흐르고
木老巖高雲蒼蒼 높은 언덕의 늙은 나무에 구름은 창창하구나.
不與塵世競豗爭 티끌세상 맞부딪쳐 다투며 함께하지 않아도
剩得造物無盡藏 조물을 남게 얻으니 다함이 없이 매우 많구나.
休言隱者少活計 은자는 말하지 않고 적게 헤아려 살아가도
應用酬答尤悤忙 응해 베풀고 답하려니 오히려 몹시 바쁘구나.
居茸長寺經室有懷 용장사 거실에 머물던 감회
茸長山洞窈 풀잎 우거진 산골짜기 깊기도 하여
不見有人來 사람이 오는 것을 볼 수가 없구나.
細雨移溪竹 시냇가의 대나무는 가랑비에 자라고
斜風護野梅 비낀 바람은 들판의 매화를 지켜 준다네.
小窓眠共鹿 작은 창가에서 사슴과 함께 잠자고
枯椅坐同灰 마른 의자에 앉아 있으니 이내몸이 재와 같구나.
不覺茅簷畔 초가집 처마의 뜨락에서
庭花落又開 꽃이 떨어지고 또 피어남을 깨닫지 못하겠구나.
憩絶澗中盤石 낭떠러지 골짝 물속 반석에서 쉬며
盤石鋪澗底 반석이 골짝 물 바닥에 깔려 있는데
磵水流不鳴 골짝물이 흘러도 소리 나지 않는다.
分流不浸處 갈라져 흘러도 젖지 않는 곳에는
石面如砥平 돌머리가 숫돌처럼 평평하구나.
可以坐十人 십여 명이 앉을 수 있고
亦可安茶鐺 차 냄비도 편히 놓아둘 수 있다.
我喜投筇枝 나는 기뻐서 지팡이 던져 버리고
或坐又復臥 앉기도 하며 다시 누워보기도 한다.
枕流慕古人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옛 사람 사모하며
可洗塵土涴 진토에 더럽힌 몸을 씻을 수도 있다네.
耽遊忘却還 노는 데 빠져서 돌아갈 길 잊어
不覺日西過 서산에 해 넘어감을 까맣게 몰랐네.
起起懵憧骸 일어나라 일어나거라, 해골이여
咄咄木上座 허허, 물 위에 그냥 앉아 있으려는가?
京洛僑居記事寄四佳亭 서울에 살던 일을 사가정에게 부치다
僑居無一事 더부살이 하다보니 한 가지 일도 없었는데
寄傲北窓涼 멸시 당하며 붙어 사니 북창이 서늘하였다오.
隔壁人聲鬧 벽 밖에선 사람 소리 시끄러운데
傍簷蛛網長 처마 곁 거미줄은 길기만 하다오.
詩情閑裏好 시를 짓는 정취는 한가함 속에 좋고
客夢靜中忙 나그네 공상은 고요함 속에서 바빴다오.
永日垂簾坐 긴 햇살에 발 드리우고 앉으니
莓苔染短墻 이끼마저 낮은 담장을 물들였다오.
鏡浦臺 경포대
萬里抺桑望眼賖 만 리의 해 뜨는 곳 바라는 눈길은 멀고도 먼데
蒼波森森蘸朝霞 푸른 물결 아득히 아침노을에 잠겼구나.
泰皇謾愛三山藥 진시황은 한갓되어 삼신산 약초 좋아하고
漢使空浮八月槎 한(漢)나라 사신은 헛되이 팔월에 뗏목 띄웠네.
白浪滔天虌背抃 흰 물결은 하늘 넘칠 듯 자라 등을 치는데
紅雲插地蜃樓斜 붉은 구름 땅에 꽂혀 신기루가 비끼었네.
從今度學仙遊壯 이제 홀연히 선유(仙遊)가 왕성함을 깨달아
杯視東溟碧海涯 동해 푸른 바다가 술棧처럼 보이누나.
古柳 늙은 버드나무
古柳蟬聲急 늙은 버드나무에 매미 소리 급하거니
他鄕此日情 타향살이 오늘의 내 마음이로다.
長天列岫碧 먼 하늘에 벌리어 있는 산은 푸르고
疏雨半江明 성긴 빗발에 강은 반쯤 밝구나
晝永移書榻 낮이 길어서 책상을 옮겨 놓고
泉淸洗酒罌 샘물이 맑아 술병을 씻어본다
邇來來訪少 요즘에 와서 찾는 이가 적거니
牢落轉無營 뇌락하여 갈수록 할 일이 없어지는구나
高眠 마음 편히 자며
抛冊高眠夏日長 책 던지고 베개 높이 베니 여름날은 긴데
扶疏樹影映書床 엉성한 나무 그늘은 책상 위로 비춰든다.
要知自有淸虛福 나에게 맑고 호젓한 복이 있음을 아나니
爐上熏殘一炷香 화로 위에는 피다 남은 한 심주 향불이 있다.
孤雁 외로운 기러기
一聲相失萬重雲 만 겹 구름 속에서 잠시 서로의 소리를 잃고서
紫塞天高何處分 높은 하늘 자줏빛에 가려 어디에서 떨어져 나왔는가.
片影獨尋湘水闊 한쪽의 모습 홀로 찾으려니 상강의 물은 멀기만 하고
遙音偏向旅窓聞 아련한 소리 한쪽으로 치우쳐 나그네의 방 창가에 들리네.
低回暮雨誰相念 저녁 비에 머리 숙여 배회하니 누가 서로 생각하나
欲下寒塘不見群 차가운 못에 내리려 하나 무리들은 보이지 않는구나 .
應羨晩鴉無意緖 저녁 까마귀들 사특하게 응하니 찾을 마음도 없는데
荒城棲聚噪紛紛 거친 성에 모여 깃들어 떠들썩하니 뒤숭숭하게 지저귀네.
鼓巖泥滑 고암의 진흙 미끄러워
稻畦雨足水亂漂 논둑에 흡족한 비, 물은 넘쳐흘러
沙石塡街浮溪橋 모래와 돌이 길을 메우고 냇물은 다리에 넘치네
濁浪汨汨沒馬蹄 흐린 물결 어지러이 흘러 말발굽도 빠지고
靑泥滑滑齊牛腰 푸른 진흙 미끄러워 소 허리에 닿는다
燕子銜將喜輕趫 제비들 먹이 물고 가볍게 날아다니고
蛙兒鼓吹恣騰跳 개구리들 울면서 마음대로 뛰어 다닌다
世路宦途亦如此 이 세상 벼슬길도 이와 같으니
何當一洗令其潦 무슨 방법으로 한번 씻어 갈아낼 수 있을까
苦雨歌 장맛비를 노래하다
愁霖一月如懸河 근심스런 장맛비 한 달 동안 강물 쏟듯 하여
晝夜昏黑藏羲娥 밤낮으로 캄캄하게 해와 달을 가리웠구나.
已聞街巷遊蛟鼉 이미 거리에는 교룡과 자라가 논다고 하니
復患庭除生蚌螺 다시 뜰에는 조개와 소라가 생길까 걱정이구나.
高墻忽倒臥橐駝 높은 담 갑자기 넘어지니 드러누운 낙타인 듯
短屋還頹仆馬騾 작은 집 무너지니 말과 나귀가 엎어진 듯하다.
雷公揮劍刃如磨 번개가 칼을 휘두르니 칼날을 갈아세운 듯.
壁間躍出陶公梭 벽 사이에서 도공의 북이 튀어나온 듯하다
直敎平地轉盤渦 바로 평지를 물웅덩이로 만들었는데
南宅東家放鴨鵝 남쪽 집 동쪽 집에서 오리와 거위를 풀어 놓았다.
城中萬戶浮濤波 성중의 모든 집들이 파도에 떠오르고
大者如舶小如艖 큰 것은 상선 같고 작은 것은 쪽배 같구나.
一國正作海中倭 온 나라가 바로 바다 속의 왜국이 된 듯하고
擬營船舫相經過 왕래하는 나룻배를 만들어 서로 찾아 지나다닌다.
江湖混混莫分沱 강물과 호수가 서로 섞여 갈래를 못 잡는데
空舟獨艤無魚蓑 빈 배만 혼자 다닐 뿐 고기 잡는 사람도 없구나.
蓬蒿蕭艾與綠莎 다복대 쑥대 푸른 잔디
時哉得意盈山阿 때 만났다 득의만만하여 산 둔덕에 가득 찼구다.
可惜南畝漂嘉禾 아깝구나, 남쪽 논의 벼 포기가 물 위에 떴으니
其奈四海蒼生何 사해의 백성들은 어찌해야 좋을 것인가.
甕中美酒香已訛 독 안의 향기로운 술이 이미 변했으니
詎可酣飮令人酡 어찌 마실 것이며 마신들 취할 수 있겠는가.
箱底芳茶貿味多 상자 속 좋은 차는 맛이 많이 변했으니
不堪烹煮驅眠魔 끓여 먹어도 몰리는 잠을 쫓아내지는 못하리라.
掩被雖欲寐無訛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않고 자고 싶건만
打窓喧霤可從他 요란한 낙숫물이 창을 때리니 무슨 수를 쓰리오.
凡百防人多跌蹉 모든 물막이군 넘어지고 자빠지니
久矣此雨傷天和 지겨워라, 이 비가 하늘의 조화를 상하게 하는구나.
鳥藏巢底蜂藏窠 새는 둥지에 숨고 벌은 구멍에 들고
路絶車馬無鳴珂 길에는 마차 끊어져 방울 소리도 없어라.
此時行者理則那 이런 때 행인인들 무슨 재주 있을까
泥沒腰脊況襪靴 진흙이 허리까지 빠지니 신이 소용없구나.
我幸杜門聊養痾 나는 다행히 문 닫고 병을 고치고 있어
日晏而興誰復訶 늦어 일어난들 누가 다시 꾸짖겠는가
率然忽作苦雨歌 갑자기 마음에 감흥이 일어 고우가를 짓는다.
古呑 고탄에서
渺渺靑山遠 아득히 먼 청산은 멀어지고
行行綠水濱 가고 가도 잇닿은 강물은 푸르구나.
高峯留晩照 높은 봉우리에 머무는 황혼의 빛
小路礙荒榛 작은 길은 거친 덤불에 막히네.
萬里乾坤闊 만 리나 되는 천지는 광활한데
平生落魄人 평생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오.
始知爲客樂 비로소 알았네 나그네 된 즐거움도
不及在居貧 가난하게 집에서 사는 것만 못함을
古風十九首 예스런 풍취
01
山中何所有 산 속에 무엇이 있을까
白雲縈長松 흰 구름 높은 소나무에 얽혀있네
只可尋常親 다만 서로 친밀할 뿐
不可追其蹤 가히 그 종적을 추종할 수 없다네
物外託交契 세상 밖과 우정을 맺었으나
始終如駏蛩 시종일관 거허와 공공과 같다네
變化頗閑妙 변화가 자못 한가하고 기묘해서
可以怡心胸 마음속을 편안하게 해준다네.
02
上古結繩治 상고에 노끈 맺어 정치할 때
民物何熙皥 백성들은 어찌 그리도 밝았는가
天地相交泰 하늘과 땅 서로 태평했고
日星垂顥顥 해와 별 밝고 밝은 빛 드리우고
聖人繼天極 성인들은 천극을 이어받아
從容履中道 조용하게 중도를 밟아왔도다
裁成而輔相 보상의 도움으로 일을 이루어
參贊乎天造 하늘의 조화에 참여하여 왔어라.
03
虞唐法天運 우당과 당요는 천운 본받아
玉衡齊七政 옥형으로 칠정을 가지런히 했네
都兪一堂上 한 자리에 모여 모두 찬성하고
未施民先敬 미처 시행하지 않아도 백성이 공경했네
奈何周衰後 어찌하여 주나라 쇠멸한 뒤
貿貿趨華競 몽매하게도 사치를 다투었는가
素王如不作 소왕, 공자님이 작위하지 않았다면
誰能繼前聖 누가 능히 옛 성인을 계승하였겠는가.
04
闊袖曳長裾 넓은 소매, 긴 옷깃 끌고 다니신
巍巍東魯翁 동쪽의 높고도 높은 노나라 어른이시여
率其三千徒 삼천 제자 거느리고 다니시며
啓迪民顓蒙 백성의 어리고 어두운 곳 열어주셨네
彈琴杏壇下 살구나무 아래서 거문고 타며
郁郁揚儒風 성스럽게 유학의 기풍 더 날렸다네
吁嗟道不行 아, 그 도가 실행되지 못하여
擬欲浮海東 바다에 배 띄우고 바다 동쪽 가려했다네.
05
鳳兮何德衰 봉황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麟也被西狩 기린도 서쪽에서 잡히었구나
列國競呑噬 열국이 다투어 빼앗아 삼키며
紛紛相格鬪 분분하게 서로 싸우는구나
仁義反爲迂 어짐과 의리는 도리어 우활하다 하고
利名爭輻輳 명예와 이익을 다투어 모여드는구나
聖賢雖復起 성현으로 누가 다시 일어나
委靡莫能救 쇠퇴해짐을 구해낼 수는 없는가
所以狂接輿 그러므로 미치광이 노릇하는 접여는
歌山木自寇 산의 나무들 스스로 난리라 노래했구나.
06
皤皤柱下史 늙은 백발로 기둥아래 사관
出關逢尹喜 함곡관에 나가다가 윤회를 만났네
授爾道德經 도덕경을 가르쳐 주고서
仙遊終不死 신선이 되어 놀아 죽지를 않았네
至言和天倪 하늘과 함께 하리라 단언하고
高談亂朱紫 고상한 말로 주색과 자색 빛 어지럽혔네
大道自此歧 큰 진리가 그때부터 나누어져
紛然異端起 분분하게 이단들이 일어났다네.
07
始皇倂六國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니
時號爲强秦 그 때는 강진이라 국호를 지었네
焚蕩先王書 선왕의 글들을 모두 태워버리니
四海皆鼎新 세상이 모두가 새롭게 바뀌었다네
自稱始皇帝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고
率土皆稱臣 천하 백성을 신하 삼았네
防胡築長城 오랑캐 막으려 장성을 쌓고
望海勞東巡 바다 보려 수고로이 동쪽을 다녔네
驪山宮闕壯 여산의 궁궐들 장대하여
複道橫高旻 낭하가 높은 하늘 가로질렀지만
楚人一炬後 초나라 사람 한 번 올린 횃불에
空餘原上塵 언덕 위에는 흙먼지만 남아있다네.
08
隆準隱芒碭 코 높은 유방이 망탕산에 숨었는데
雲物騰蒼空 상서로운 구름이 푸른 하늘에 떠올라 있었네
竟斬白帝子 끝내는 백제의 아들 베어버리고
巍峨坐法宮 의젓하게 법구에 앉았도다
三章除秦苛 세 가지 법 조항으로 진나라 악법 없앴으니
炎祿何渢渢 한나라 왕조의 운수가 어이 그리 길었던가
皇天無私阿 저 하늘님 공평하고 사심이 없어서
有德必立功 덕행이 있으면 반 반듯이 공을 세우게 하심이라.
09
休言莽卓姦 왕망과 동탁, 간흉하다 말하지 말라
便是人主頑 이는 곧 임금이 못나서 그러하니라
勿言房杜良 방씨와 두씨, 현량하다 말하지 말라
便是君德昌 이는 곧 임의 덕행이 창성해서 이니라
源淸流益潔 근원이 맑으면 흐르는 물도 깨끗하고
鑑空照逾徹 거울이 깨끗해야 잘 비추어 지느니라
頃刻如少弛 잠시간 조금이라도 해이하면
危亡從此始 위태하고 망하는 일이 여기서 시작된다.
10
人性無不善 사람의 성품은 선하지 않음 없으니
可以爲堯舜 요임금, 순임금처럼 될 수도 있도다
只緣氣稟拘 다만 기품에 구속되어서
有賢愚逆順 현명하고 어리석고 거스르고 적응하니
聖人拔乎萃 성인은 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시어
道之以忠信 충실과 신념으로 이끌어주셨다
行之則貞吉 그것을 행하면 곧고 길한 것이 되나
否之則悔吝 그것을 부정하면 후회하고 한탄하게 된다.
11
上智不思得 상급의 지혜자는 생각지 않아도 알고
不勉而中道 힘쓰지 않아도 진리에 맞게 된다네
困知親善人 곤란한 지식자는 착한 사람과 친하여
力行而自保 힘써 행하고야 스스로를 보전한다네
下愚終不移 하급의 어리석은 이는 고치지 못하여
頑嚚多草草 어리석고 완고하니 초초함이 많도다
禮樂與刑政 예악과 형정이 생겨난 것은
從此而肇造 이런 이유에서 발단이 시작되었다네.
12
大道何寂寥 큰 진리가 어찌 그리도 적막하고
鳳兮何德衰 봉황새여, 어찌 덕망이 쇠하는가
往者不可諫 지나간 것은 간할 수 없지만
來者猶可追 오는 것은 아직 고칠 수 있도다
携筇泣路歧 지팡이 짚고 갈림길에서 우나니
踽踽何所之 쓸쓸히 어디로 가야하는가
聖人如復起 성인이 다시 일어난다면
敷衽陳其辭 옷깃 여미고 그 말씀 다시 여쭈련다.
13
嗟嗟均賦命 아, 처음 부여받은 생명은 같았는데
愚智涇渭分 지인과 우인이 경수와 위수처럼 나뉘었구나
擾擾百年內 어지러운 인생 백 년 동안에
何足以云云 어찌 족히 이러쿵저러쿵 하겠는가
不如脫屣去 차라리 못하리라, 신 벗어던지고 떠나
僻處遠囂紛 궁벽한 곳에서 시끄러운 일 멀리하는 것보다
掬水可以飮 물 움켜 마실 수 있으며
煮藜充飢窘 나물을 삶아 주린 창자 채울 수 있으리라
胡爲乎遑遑 어찌하여 급하고 급하게도
與世相矛盾 세상과 함께하여 모순되게 살겠는가.
14
君子無所思 군자는 마음에 둔 것 없으니
所思期保全 마음에 두는 일은 몸 보전하는 일
碌碌逐風塵 어리석게 풍진 세상 쫓아다님은
不如歸林泉 차라리 자연으로 돌아감만 못하다네
木以直而戕 나무는 곧아서 죽임을 당하고
膏以明而煎 기름은 밝은 빛을 내어서 태워진다네
無用足可用 용도가 없는 것이 가히 필요하니
謂之羲皇天 이것이 복희씨의 태평성대라 한다네.
15
古人何所樂 옛 사람 즐긴 일이 무엇이었나
魚鳥忘其形 물고기건 새들이건 그 형상을 잊었네
機心如或忘 이욕의 마음 혹시라도 잊는다면
喧靜應無名 소란하건 조용하건 이름 잊었을 것이네
名相旣兩立 이름과 물질 다 생각하다가
厭嗜生乎情 싫고 좋음이 마음속에 생겨난 것이네
偉哉君子人 위대하여라, 군자님들이여
存順沒吾寧 있어도 좋았고 없어도 마음 편했었다네.
16
坐久不能寐 오래 앉아있어도 잠은 안 오고
手翦一寸燭 한 치 남은 촛불 심지를 잘랐노라
霜風聒我耳 서리바람 내 귓가에 들려오니
微霰落床額 싸락눈은 침대머리에 떨어지는구나
心地淨如水 내 마음 물처럼 깨끗하여
翛然無礙隔 소연하게 막히고 떨어지지 않는구나
正是忘物我 이것이 바로 물아를 잊는 것이니
茗椀宜自酌 잔에 가득 혼자서 술 마심이 좋겠다.
17
大樹何臃腫 큰 나무는 어찌 그리 혹투성이며
大瓠何濩落 큰 박은 어찌 그리 쉽게 떨어지는가
雖不通時用 비록 그것들이 쓰이지 못해도
自喜抱幽獨 스스로 깊은 고독을 안기를 좋아한다
逍遙天地間 천지간을 한가히 거닐어 보노니
得失誰能逼 득실이 누가 능히 핍진하게 하겠는가.
18
仲尼亦何人 공자는 또한 어떠한 사람인가
喃喃說東北 이런저런 소리로 여기저기서 말했다
阿誰聽爾言 어느 누가 그대 말 들어줄까
空塡一丘壑 공연히 한 언덕 골짜기 메울 뿐이라네
牟尼亦何人 석가모니는 어떠한 사람인가
吧吧千萬說 이말 저말 온갖 말 설파하였도다
空演十二部 공연히 열 두 불경 풀이하여도
死化爲枯灰 죽어서는 마른 재로 되어버렸다네
平生謾多事 평생에 부질없이 일 많았지만
不如無事哉 아무 일 없는 것만 못하였구나.
19
我語大迂闊 내 말이 크게 허탄하지만
嚼來有滋味 씹어 맛보면 더욱 맛있으리라
譏我亦由此 나를 욕함도 이 때문이요
賞我亦由是 나를 칭찬함도 이 때문이리라
已矣不須說 말아라, 말할 필요도 없으리
紙窮且止止 쓸 종이도 떨어졌으니 그만 두련다.
古呑 고탄에서
渺渺靑山遠 청산은 멀고도 아득한데
行行綠水濱 가고 또 가도 푸른 물가로 구나.
高峯留晩照 높은 봉우리엔 황혼빛 머물고
小路礙荒榛 거칠은 개암나무는 작은 길에 장애가 되는구나.
萬里乾坤闊 만 리 먼 길 하늘과 땅은 광활도 한데
平生落魄人 이 몸은 평생을 정신줄 놓고 살았구나.
始知爲客樂 비로소 알겠으니 나그네 길 즐거움이란 게
不及在居貧 가난해도 집에서 사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供廚何所有 부엌엔 무엇이 있는가?
供廚何所有 부엌엔 무엇이 있는가?
晩菘與甛蓏 시든 배추와 달달한 열매(참외)라.
床上何所有 평상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博山添宿火 박산향로에 재계의 불을 더하네.
而我在其間 나는 그 사이에 있으며
無可無不可 옳은 것도 없으며 그른 것도 없다네.
欲臥則便臥 눕고 싶으면 곧 편히 눕고
欲坐則便坐 앉고 싶으면 곧바로 편히 앉지.
邇來三十年 삼십 여년 가까이
觸事常懶惰 하는 일마다 늘 게을러 나태하였네.
花塢蔓蒺藜 꽃동산엔 남가새와 명아주 퍼지고
筆管生蜾蠃 붓 대롱엔 나나니벌이 사는구나.
閉門斷紛厖 문을 닫아 번잡함 섞이는 걸 끊고
杜口妨話墮 입을 닫아 황폐한 말 거리끼네.
支頤睡初醒 손으로 턱을 바쳐 처음 잠에서 깨어
小室香煙鎖 작은 방에 향기로운 연기 가두었네.
觀物 물건을 보며
南枝花發北枝寒 남쪽 가지 꽃 피는데 북쪽 가지 쓸쓸하여
強道春心有兩般 봄 마음은 두 가지가 있다 억지로 말하네.
一理齊平無物我 모든 이치는 균등하여 너와 내가 없으니
好將點檢自家看 무릇 자주 점검하여 몸소 자기를 지키라.
灌蔬 채소에 물을 주며
蕭散遺人事 쓸쓸히 인생만사 잊고
持瓢灌小園 박을 들고 작은 밭에 물을 준다
風過菜花落 바람이 스치자 나물 꽃 떨어지고
露重芋莖飜 이슬이 심하게 내려 토란 줄이 뒤집히네
地險畦町短 땅이 험해 밭두둑 짧고
山深草樹繁 산이 깊어 초목은 무성하도다
晩年勸學圃 늙어서 채소재배 배우기를 권하나
不是效如樊 번지를 본받으라는 것은 아니라오
怪事 까닭 모를 이상한 일.
世事足可怪 세상 일 괴이함이 가히 지나쳐서
心中何一鬱 심중은 언제나 한결같이 답답하네.
似鉤得恩榮 갈고리 같으면 은혜와 영광 얻고
如弦遭崇孼 활시위 같으면 재앙 만나 끝나네.
世事皆以甘 세상일이란 모두 간사한 까닭에
肯向傍人說 감히 옆 사람 향해 아첨만 한다네.
僦屋又倩人 집을 빌리고 또 사람을 고용하여
杜門復문舌 문을 닫고는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
緬懷楚些章 아득히 생각나는 초사의 글을
不覺聲嗚咽 드러내지 못하고 탄식 소리 삼키네.
古來勁直者 자고이래 굳세고 곧은 사람은
蓋棺立名節 관 뚜껑 덮어야 절개와 평판 전해지네.
咄咄且揚眉 괴이함에 놀라며 또 눈썹 쳐들고
莫愁時運臲 불안한 시운을 시름 겨워하지 말자.
久雨 장마
茅簷連日雨 초가에 연일 비 내려
且喜滴庭際 처마에 물방울 지니 우선은 기쁘구나
底事消淸晝 무슨 숨겨진 일로 깨끗한 하루 보낼거나
窮愁著隱書 궁색하고 근심스러우니 은서나 지어보리라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나
通明只可自怡悅 통달하여 밝으니 다만 스스로 즐겁고도 기쁠 뿐
魯直看汝時拄笏 노둔하고 온순한 너를 보며 때맞춰 홀을 들어 가리키네.
古人曾與爾爲歡 옛 사람들 이미 기려 너를 사랑하게 되었고
我亦與爾盟已寒 나 또한 너와 더불어 이미 침묵으로 맹세하였네.
只恨往來了無迹 다만 한하기는 오고 가는 명백한 자취가 없으니
相對須臾難盡歡 마침내 잠시 서로 마주해도 기쁨을 다하기 어렵구나.
俄然風起掃長空 급작스레 바람이 일어 높고 먼 하늘을 쓸어버리니
但看萬里峯巑岏 다만 만 리에 보이는 건 뾰족한 봉우리뿐이로다.
窮愁 궁핍을 겪는 근심
窮愁如絮着旋粘 궁핍속 근심은 솜 같아 착 달라붙으니
除却淸吟不可砭 한가히 읊어 없애야 가히 경계 없으리라.
懶性已如棲木鳥 게으른 성질은 이미 나무에 깃든 새 같고
營生何異上竿鮎 삶을 꾀함은 낚싯대 앞의 메기와 무엇이 다른가?
閑刳竹筧添寒井 대나무 홈통 한가히 쪼개 찬 우물을 보태고
爲折松枝補短簷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짧은 처마를 고치네.
閉戶著書聊自慰 문 닫고 글 쓰며 에오라지 스스로 위로하니
一庭疏雨正廉纖 온 뜰에 성긴 비가 바로 보슬 보슬 내리네.
歸雁 돌아가는 기러기
數聲歸雁點淸虛 돌아가는 기러기 잦은 소리 맑은 허공에 점찍고
遙憶瀟湘萬里餘 아득한 소상강 생각하니 만 리도 넘는구나.
關塞風高鳴漸遠 변방의 높은 바람에 울음소리 점점 멀어지고
江潭木落影偏疏 강가의 잎 떨어진 나무는 그림자조차 성글구나.
曾離朔漠辭邊雪 고요한 아침 일찍 떠나며 변방의 눈을 사양하니
應帶天山寄遠書 아마도 하늘과 산을 두르며 심오한 편지를 부치리라.
好向洞庭深處宿 좋으리라 동정호 깊은 곳을 찾겠지만
楚人矰繳不饒渠 초나라 사람의 화살이 갑자기 너그럽진 않으리라.
金溪魚躍 금계에 뛰는 물고기
圉圉洋洋吹細波 어릿어릿 한없이 넓은데 잔물결 퍼뜨리며
兩兩相戱遊盤渦 둘이 짝지어 서로 겨루듯 소용돌이치며 노네.
有時聚藻飜金尺 때때로 마름에 모여 짧게 금빛을 뒤척이니
忽沫淸瀾抛玉梭 문득 거품 맑게 일으키며 옥 베틀북 던지네.
綠荇深處避人影 푸른 마름 깊은 곳에서 사람 그림자 피하고
碧草磯邊依蟹窠 푸른 풀 물가 가장자리 게의 구멍에 의지하네.
知汝得所濠梁間 네가 호수 다리 틈새에 자리 얻는걸 알지만
香餌微緡其如何 보이지 않는 줄에 향기로운 미끼 그를 어찌하나.
禽鳥向榮木以隨鳴 새들은 무성한 나무를 향해 따라 운다
洞口百禽號 동구 밖에는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데
洞裏無鳥聲 마을 안에 새 우는 소리 들리지 않네.
樹木漸向榮 나무들 점차 우거져가니
漸入高峯鳴 점점 더 높은 봉우리에 들어가 우는구나.
百舌語千般 지빠귀는 천 가지 일을 말하는데
杜宇呼自名 두견새는 한결같이 제 이름만 부른다.
一一叫年光 모두 다 목매게 세월을 불러대어
催換令人老 철 바뀜 재촉하여 사람을 늙게 한다.
韶華倏以變 아름답던 봄철이 훌쩍 지나가면
幾人生懊惱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슬퍼하며 번뇌할까.
懊惱勿復道 근심이나 걱정일랑 다시는 말 말고
宜修超世道 세상일을 초탈할 도를 닦아야 하리라.
百舌 - 백설조[百舌鳥], 지빠귀
韶華 - 화창(和暢)한 봄의 경치(景致), 젊은 때. 청춘(靑春) 시절(時節)
紀山名 산 이름을 쓰다
雨洗瘦皆骨 비에 씻겨 바위만 남은 건 개골산이고
煙收露五臺 안개 걷히자 오대산이 드러나는구나.
香峯桂子落 향로봉엔 계수나무 열매 떨어지고
雪嶽玉簪開 설악산엔 옥잠화가 활짝 피었네.
長白遙兼聳 장백산은 저 멀리 높이 솟았고
頭流壯且魁 두류산은 웅장하고도 크구나.
名山窮眼界 명산을 남김없이 보았으니
不必往蓬萊 반드시 봉래산에 갈 필요는 없어라.
寄友 친구에게 부치다
1
望中山水隔蓬萊 눈앞에 산과 물은 봉래산에 가리고
斷雨殘雪憶幾回 그친 비와 녹은 눈 속에서 얼마나 그리웠는지
未展此心空極目 이 마음 펴지 못해 공연히 눈만 치뜨고
夕陽無語倚寒梅 석양에 말없이 차가운 매화나무에 기대어본다
2
爲因生事無閑暇 살아가는 일로 한가할 때가 없어
孤負尋雲結社期 구름 찾아 결사하는 기약을 홀로 저버렸다
走殺紅塵何日了 달려가 세상풍진 없애는 일 어느 때나 다할까
碧山回首不勝思 푸른 산을 돌아보니 그대 생각 못잊겠구나
3
落盡閑花春事去 다 진 한가한 꽃나무, 봄날은 가는데
一封消息却來無 한 통의 소식조차 오지를 않는구나
想思夢罷竹窓靜 그리운 꿈 깨니 대나무 창은 고요하고
望帝城中山月孤 서울 바라보니, 산 위의 달은 외롭기만 하다
4
東望鷄林隔片雲 동쪽으로 조각구름에 가린 계림 바라보니
胡然未易得逢君 어찌하여 그대 마나기 이렇게도 쉽지가 않은가
請看天外孤輪月 청컨대, 하늘 밖 외로운 둥근 달을 보시게나
兩地淸輝一樣分 두 곳에 맑고 밝은 빛 꼭 같이 보내주고 있다오
記卽事 지금 경치를 적다
啄木丁丁山更幽 쩡쩡 나무 쪼는 소리 고요한 산에 계속되고
一軒風露似新秋 잠시 난간의 이슬 바람이 새로운 가을 같구나.
西峯返照東峯雨 서쪽 산에 햇빛 돌아오니 동쪽 봉우리 비 내리고
藏照不盡千里眸 빛 감추길 다하지 아니하니 천리를 자세히 보네.
洛山丈室座下 낙산사 주지에게
難水亭前狎泛鷗 난수정 앞 동해는 갈매기 떠있고
義湘臺畔看扁舟 의상대 옆에는 거룻배 보이누나.
禪心淡저如蒼海 참선하는 맑은 마음은 창해와 같고
法相雍容似白牛 법상(法相)의 온화한 모습은 백우 같도다.
老去頂寧頁應有眼 늙어가니 머리에는 응당 식견이 비상하고
閑來雲月更無儔 한가한데는 구름과 달은 다시없는 짝이로다.
波聲山色微塵偈 티끌 없는 산색은 파도소리 잠재우고
無智人前說夢休 무지한 사람 앞에서 길몽을 설파하네.
백우(白牛) - 시바 神이 타는 소
落葉 나뭇잎은 떨어지고
落葉不可掃 지는 잎 쓸어내지 못하니
偏宜淸夜聞 맑은 밤에 나부끼는 소리가 들리네.
風來聲慽慽 바람 불면 우수수 소리가 나고
月上影紛紛 달 뜨면 그림자 어지럽도다.
鼓窓驚客夢 창을 두드려 나그네 꿈 깨우고
疊砌沒苔紋 섬돌에 쌓여 이끼 무늬 덮는다.
帶雨情無奈 나뭇잎을 떨어지게 하는 비를 어찌할 수 없지만
空山瘦十分 전부 다 떨어지니 산이 너무 쓸쓸하네
蘆原卽事 노원에서 즉시 읊어
草綠長堤小逕斜 긴 언덕 풀은 푸르고 작은 길 비탈지고
依依桑柘有人家 산뽕나무 무성한데 인가가 나타난다
溪楓一抹靑煙濕 시냇가 단풍나무 문지르니 푸른 안개에 젖어있고
十里西風吹稻花 십리 길에 하늬바람 벼꽃에 불어든다
蘆原草色 노원의 풀빛
長堤細草何毿毿 긴 뚝길 풀빛 어찌 그리도 짙은가
萋萋風際香馣馣 수북한 곳에 바람 이니 향기가 그윽하다
江淹別浦色愈碧 강엄이 이별하던 갯포구 더욱 푸르고
李白漢曲思何堪 이태백은 한강 구비 생각을 어찌 견딜까
蒙茸壟上沒黃犢 몽실몽실한 언덕 위에 송아지 누워있고
蔥蒨橋邊含翠嵐 검푸른 다리 가에는 푸른 아지랑이 끼고
惹得王孫多少恨 왕손의 얼마나 많은 한을 자아냈던가
淡煙疏雨懷江南 담담한 연기 섞인 비에 강남 쪽이 생각난다.
江淹 -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문학가로 그의 작품인 별부(別賦) 첫머리에 "암담하게 사람의 혼을 녹여 내는 것은 바로 이별하는 그 일이라고 하겠네."라는 말이 나옴.
王孫 - 단종.
魯仲連 노중련
周轍東遷王綱揉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기니 왕실 기강 무너져
列國爭雄相格鬪 여러 제후국이 자웅을 다투어 서로 치고 싸웠다네.
不施仁義稱帝王 인의는 베풀지 않고 제왕이라 일컬었으니
紛紛紜紜莫之救 시끄럽고 어지러워도 구하지 못하였다네.
縱橫之徒又邀利 종횡가의 무리들이 또 이익을 도모하니
枉己辱身猶不恥 자기를 굽혀 몸이 욕되어도 부끄럽지 않다네.
堂堂拔萃魯先生 당당하게 그 무리에서 벗어난 노중련 선생
可堪稱爲天下士 천하의 선비라 일컬어도 충분하여라.
一言解紛不受封 한 마디로 분란을 해결하고도 봉작을 받지 않고
一札約矢下燕壘 편지 한 장 화살에 묶어 연나라 성 항복 받았네.
不肯帝秦不仕齊 진나라를 황제 삼지 않고 제나라에 벼슬 않고
嘉遯海上終不起 해변으로 멀리 가서 끝내 나오지 않았네.
人言濟河深且闊 사람들은 제하분주(濟河焚舟)의 뜻 깊고도 넓음을
可比先生三寸舌 선생의 세 치 혀에 비할 수 있다고 말하네.
人言泰山高且截 사람들 태산이 높고도 가팔라
可比先生一片節 선생의 한 조각 절조에 비할 수 있다고 말하네.
貧賤乃肆志 가난하고 천함은 뜻대로 할 수 있게 하나
富貴爲人詘 부유하고 귀하게 됨은 사람을 비굴하게 하네.
磊磊落落丈夫心 막힘없이 드높은 대장부의 마음
萬古千秋猶不滅 만고천추에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孰能與之配高風 누가 능히 그와 함께 높은 풍도에 짝하리오.
茫茫滄海一輪月 망망한 푸른 바다에 하나의 둥근 달이로다.
노중련 -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 그가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을 포위했는데,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한다면 나는 동해를 밟고 빠져 죽겠다.”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후퇴시켰다 한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綠檜 푸른 전나무
庭前綠檜參天長 뜰 앞 푸른 전나무 늘 하늘에 뒤섞여
骨節老大剛不僂 크고 오래된 절개의 몸 굳세어 굽지 않네.
直幹堅確凌雪霜 굳세고 견고한 곧은 줄기 눈과 서리 능가하고
翠蓋婆娑受風雨 푸른 우산처럼 너풀대며 비바람에 응하네.
體備松柏不隨俗 송백의 형상을 갗춰 세속을 따르지 않고
氣舍芝朮淸香馥 지초와 합주의 기를 베풀어 짙은 향기 맑구나.
人間六月煩蒸時 인간세상 6월은 번민이 많을 때인데
喜聽葉底風瑟瑟 잎 속의 우수수한 바람이 듣기에도 좋구나.
歲寒相對志不謟 세밑 추위 마주해도 뜻이 어긋나지 않고
庭雪沒腰勢愈儼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서도 형세는 더욱 근엄하네.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孔老家庭手親植 공자와 노자는 집 뜰 가까이 손수 심어서
芳馨與爾終不掩 꽃다운 향기 그와 함께 늘 그치지 않음을.
農家 농가
禾黍離離瓜瓞垂 벼와 기장 뚜렷하고 오이 덩굴 늘어지니
野人籬落豆花初 시골 사람 울타리에 두른 콩 꽃피기 시작하네.
山城薄酒墻頭過 산성의 박박주 담장 넘어 풍기고
水國香菰月下炊 물가 마을 줄 향초로 달빛 아래 불 때네.
庭有落花慵執帚 뜰에 있는 떨어진 꽃 빗자루 잡기 게으르고
門無劇飮懶當楣 요령 없이 심하게 마시니 차양 막을 의욕도 없네.
田家一味眞坦率 시골집의 참된 맛은 참으로 너그럽고 소탈하여
賽罷場頭笑語時 굿을 마치고 마당 머리에서 웃고 말할 때라네.
凌虛詞 능허사
1
碧落無雲天氣淸 벽공에 구름 없어 하늘 기운 맑은데
蹁躚時聽步虛聲 너울너울 하늘을 걷는 소리 때때로 들려오네.
十二樓上吹長笛 십이 층 루각 위에서 긴 피리 부는 건
便是神仙白玉京 그게 바로 그대로 신선의 백옥경일세.
2
朝餐沆瀣暮流霞 아침엔 널린 이슬 먹고 저녁엔 흐르는 노을 먹으니
須信凌虛有作家 하늘을 걷는 것을 모름지기 믿어야 하리.
下視塊蘇嗟渺渺 아래를 보니 흙덩이 뒤집어 지는 것 아득도 하고
大鵬飛少蠛蠓多 대붕은 적개 날고 하루살이는 많이 날구나.
3
淸晨騎鶴上淸虛 맑은 새벽에 학을 타고 상청궁 하늘에 올라 가니
洞闢紅雲玉帝居 붉은 구름 활짝 열린 곳이 옥황상제 거하는 곳이네.
特命弄臣宣紫詔 신하들에 특명 내려 자줏빛 소칙(詔敕) 쓰게 하고
朗吟天篆一行書 하늘 글자로 한 줄의 글을 쓰며 낭랑하게도 읊구나.
4
左界無雲種白楡 왼쪽 경계에 구름 없어 흰 느릅나무 심었는데
廣寒宮裏舞仙妹 광한궁 안에서는 선녀들이 춤을 추네.
泛槎銀海波爛闊 은하수에 뗏목 띄우니 물결이 밝게 트이고
金闕玉樓是帝都 금대궐 옥루각 보이니 그게 옥황상제 도읍이라네.
5
人間無地不風波 인간세계엔 풍파 아니 이는 땅이 없는데
八翼凌風是大家 여덟 날개로 바람 타고 올라가니 바로 큰 집이네.
下界蜉蝣寰宇窄 아래 세상엔 하루살이 꽉 차서 천하가 좁고
塵埃萬丈賺君何 속세 티끌 만장이나 쌓였으니 그대 속인들 어찌하리.
능허(凌虛) - 옥황상제가 있는 곳을 가려면 공중으로 올라가야하는 데 이를 능허라 이름
達朝不寐向曉偶作 아침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새벽에 우연히 짓다
向曉紙窓明 새벽 되어 종이 창 밝아져도
雲林高臥情 운림(雲林)에서 편히 지내길 좋아한다네.
翛然一室小 자유자재하면 방 한 칸이 작았겠고
優我百年榮 스스로에게 후하였더라면 백 년은 영화로웠으리.
貧似陶彭澤 가난한 것은 도연명 닮았고
酣如阮步兵 술을 즐기는 것은 원적(阮籍) 같구나.
此生吾已判 이 생을 내 이미 판결하였으니
不必負功名 쓸데없이 공명에 애 태울 필요 없다오.
潭上有感 못 위에서 느낌이 있어
峯上靑楓千萬枝 봉우리 위의 푸른 단풍 천만 가지가
傷春情緖亂如絲 애태우는 봄 심정은 실처럼 어지럽네.
巖花灼灼應無主 밝고 선명한 언덕의 꽃에 응하는 주인 없으니
胡蝶雙雙亦可悲 쌍쌍의 호랑나비 또한 슬퍼 할 만하구나.
人事那能如水鏡 어찌 능히 사람의 일을 물과 거울 같이하며
烏雛誰復識雄雌 누가 거듭하여 까마귀 새끼의 암컷 수컷을 알리오 ?
秦坑漢錮皆如此 진의 선비를 묻음과 한의 가둠은 다 이와 같으니
孰是眞吹孰竊吹 그 누가 진짜를 불고 누가 훔쳐서 불었겠는가.
秦坑漢錮 - 진(秦)에서는 선비들이 소용없이 떠들기만 한다 하여 큰 구덩이를 파고 460여 명의 선비들을 산채로 쓸어 묻었었다. 한 나라 말년에는 선비들이 나라의 정치를 논평한다고 수백 명의 명사들을 모두 금고형(禁錮刑)에 처한 일.
達朝不寐向曉偶作 날 새도록 자지 못하고 새벽에 우연히 짓다
向曉紙窓明 새벽 되니 종이창이 밝아지는데
雲林高臥情 구름 낀 숲에 높이 누운 마음이여
翛然一室小 얽매이지 않은 작은 방 하나에
優我百年榮 넉넉한 나의 백년 인생의 영광이여
貧似陶彭澤 가난함도 도연명과 같고
酣如阮步兵 술 취함은 술꾼 완적과 같음이여
此生吾已判 내 인생 내가 이미 판단했으니
不必負功名 반드시 부귀공명만 짊어질 것 아니로세
大言 큰 소리
碧海投竿釣巨鼇 푸른 바다에 낚싯대 던져서 큰 자라 낚고
乾坤日月手中韜 하늘과 땅 해와 달까지 손 안에 감추었네
指揮天外凌雲鵠 하늘 밖에 손가락 휘둘러 넓은 구름을 범하고
掌摑山東蓋世豪 산동의 세상 호걸 모두 손바닥으로 잡았네.
拶盡三千塵佛界 삼 천 부처 세계의 티끌을 전부 짓누르고
呑窮萬里怒鯨濤 만리에 세찬 고래 같은 파도 다 삼켜버렸네.
歸來浪笑人寰窄 좁은 인간 세상사람 함부로 비웃으며 돌아오니
八白中州只一毛 부질없이 나눈 중원 고을도 단지 하나의 터럭일 뿐.
挑燈話舊 심지 돋우어 불을 밝게 하고 오래 이야기하다.
夜深山院手挑燈 산 속 절에 밤이 깊어지니 손으로 등잔 돋우고
笑語團欒話與僧 우스운 이야기 단란하게 스님과 더불어 말하네.
不是將心來問我 무릇 본성으로 나에게 와서 묻는 것이 아니라면
從敎人世漫騰騰 날고뛰며 방종하는 인간 세상 가르침 따르리라.
道峯尖峀 도봉산의 뾰쪽한 산봉우리들
峰勢嵯牙如劒鋩 산봉우리들 높고 울툭불툭하여 마치 칼끝들 같은데
瘦藤老栢凌風霜 마른 등나무와 늙은 잣나무들 차가운 서리를 견디네.
幡幢杳藹列梵刹 깃발 펄럭이는 곳마다 절들이 서 있고
雷電閃爍摩靑蒼 번개 불 번쩍이며 푸른 하늘로 솟네.
湛湛霜楓惱客眼 밝은 색 단풍은 나그네의 눈을 괴롭게 만들고
霏霏巖溜漱人腸 뚝뚝 떨어지는 바위위의 물방울은 사람의 창자를 깨끗이 하네
望中不盡眉宇塞 아름다운 모습 한없이 바라보자니 세상 명리를 막아주는 것 같아
木落天高回雁行 나뭇잎 떨어지고 하늘은 높은데 기러기는 돌아가네.
渡昇天浦 승천포를 지나며
浩渺煙波蘆葦潯 갈대밭 물가에 넓고 아득한 안개
舟人晩泊近楓林 사공은 단풍 숲 가까운 곳에 배를 댄다
雲生浦漵晩潮退 구름 이는 포구에 저녁 조수 밀려가고
木落洞庭秋水深 나뭇잎 떨어진 동정호에 가을 강물 깊도다.
嗚咽一聲何處笛 흐느끼는 피리소리 어디서 들려오는지
丁東雙杵幾家砧 쿵쿵하는 공이 소리, 어느 집 절구인가
乾坤不礙飄萍跡 천지간에 막힐 것 없는 나부끼는 부평초 발길
剩得白雲千里心 남은 일은 흰 구름 얻어 천리를 가는 마음이도다.
昇天浦 - 강화도의 한 포구, 갑곶포와 연하여 있음
陶店 옹기점
兒打蜻蜓翁掇籬 아이는 잠자리 잡고, 노인은 울타리 고치는데
小溪春水浴鸕鶿 봄물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물새가 멱을 감는다
靑山斷處歸程遠 청산 끊어진 곳에서, 돌아 갈 길은 아득한데
橫擔烏藤一个枝 검은 등나무 덩굴 한 가지가 비스듬히 메어있다
途中 도중에
1
貊國初飛雪 맥국에는 처음으로 눈 날리는데
春城木葉疏 춘성에는 아직 나뭇잎이 성글구나
秋深村有酒 가을이 깊어 촌에는 술이 있고
客久食無魚 오랜 나그네라 밥상에 고기 없다
山遠天垂野 산이 멀어 하늘은 들에 드리워 있고
江遙地接虛 강물 아득해 대지는 허공에 놓여 있다
孤鴻落日外 외로운 기러기는 떨어지는 해 밖으로 날아가니
征馬政躊躇 나그네 발걸음 가는 길 머뭇거린다
2
野逕高低曲轉蛇 높고 낮은 들길은 뱀처럼 굽어있고
深林日暮有鳴鴉 저무는 깊은 숲에 갈까마귀 울고 있네.
靑山不管是非事 청산은 옳고 그른 일을 주관하지 않고
白鳥自占深淺沙 백조는 스스로 깊고 얕은 모래땅 차지하네.
十里尖峯濃似畫 십리에 걸친 뾰족한 봉우리 진한 그림 같고
一溪流水碧於紗 온 개울에 흐르는 물 푸른 옥 비단 같네.
紅塵三尺君休返 세속의 티끌 석자니 그대 되돌아와 쉬게나
縱是明珠也有瑕 비록 밝은 구슬일지라도 티가 있을 것이라네.
途中卽事 도중에 문득
一村蕎麥熟 온 고을에 메밀이 익어
十里割黃雲 십리 길을 누런 구름으로 갈라놓았다
歸思西風遠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서풍은 멀기만 한데
千山日已曛 온 산에 해는 이미 땅거미 진다
渡浿水 패수를 건너며
擔一詩筒荷一藜 시통 하나 짊어지고 명아주 지팡이 하나 메고서
呵風罵雨渡關西 바람을 꾸짖고 비를 욕하며 관서로 건너가네.
江流問我關東去 흐르는 강이 내게 묻기를 관동의 세월에는
幾首新詩幾處題 몇 수의 새로운 시를 어느 곳에 적었는가?
浿水 - 열수(洌水), 대동강, 고구려시대에는 패수(浿水), 패강(浿江) 또는 왕성강(王城江)이라고 불려오다가 고려시대 이래로 대동강이라 부르게 됨.
詩筒 - 시객(詩客)이 얇은 대나무 조각에 한시(漢詩)의 운두(韻頭)를 적어 넣어 가지고 다니는 조그마한 통, 벗에게 지어 보내는 시를 넣는 대통
獨坐逢人啜茶賦詩 홀로 머물다 사람 만나 차 마시며 시와 부를 짓다
兩耳聊聊獨坐時 두 귀로 편안히 즐기며 때마침 홀로 머무니
半簾斜日映花枝 발(주렴) 가운데 지는 해가 꽃가지를 비추네.
年來漸覺無拘束 얼마 전부터는 구속 없음을 점점 깨달아
滿肚幽懷卽是詩 마음 가득 그윽한 회포는 그대로 시가 되는구나.
獨坐書懷 홀로 앉아 회포를 적다
山房闃寂絶跫音 산방은 한적하고 사람 발소리 끊겼는데
蔌蔌時聞葉墮林 우수수 숲에 낙엽 지는 소리 들려오는구나
白鳥去邊秋色晩 흰 새 가는 곳에 가을빛도 저무는데
碧峯圍處暮雲深 푸른 봉우리 둘러싼 곳에 저문 구름 깊구나
衰遲自笑吾生樂 늙고 둔한 몸 스스로 웃으니 인생이 즐겁고
坦率寧懷處世心 탄솔하니 차라리 세상에 처할 마음 생기는구나
昨夜風高天更遠 어제 밤, 바람 높더니 하늘이 다시 멀어지니
雁行疏闊送淸吟 기러기 떼 아득하여 맑은 시를 보내주는구나.
東峰六歌 동봉(김시습의 호)의 노래
其一
有客有客號東峯 의식이 있는 나그네 있어 이름이 동봉이라
鬖䯯白髮多龍鍾 흰 머리 헝크러져 추한 모습만 남았구나.
年未弱冠學書劍 나이 약관 못되어 글과 검을 배웠는데
爲人恥作酸儒容 사람 품 욕되게 만드니 초라한 선비 꼴이라.
一朝家業似雲浮 하루아침에 가업은 뜬 구름 같게 되고
波波挈挈誰與從 급하게 이끄는 물결에 누구와 함께 따르나 ?
嗚呼一歌兮歌正悲 아! 첫 노래여 처음 슬픈 노래라
蒼蒼者天多無知 앞길 멀어 아득한 이 운명을 다만 알지 못하네.
其二
楖標楖標枝多芒 가지에 가시 많은 높은 즐률나무 禪杖(지팡이)
扶持跋涉遊四方 곁에 쥐고 밟고 건너며 사방을 유람하였네.
北窮韎羯南扶桑 북으론 말갈에 달하고 남으로는 부상이니
底處可以埋愁腸 가히 구석진 곳에 시름 겨운 마음을 묻으리라.
日暮途長我行遠 나아가는 길에 해는 저물고 내 갈 길은 멀어
安得扶搖摶九萬 어찌하면 매우 많은 꾀꼬리 모아 도움 받아 오를까 ?
嗚呼二歌兮歌抑揚 아! 두 번째 노래하니 노래를 올리고 내리니
北風爲我吹凄涼[ 북풍은 나를 위해 처량하게 부는구나.
其三
外公外公愛我嬰 외가의 외조부님 어린 나를 사랑하시어
喜我期月吾伊聲 내가 돌 지나 글 읽은 그 소리를 기뻐하셨네.
學立亭亭誨書計 바로 배워 우뚝하니 글과 셈을 가르치고
七字綴文辭甚麗 일곱 자 글을 지으니 문체는 매우 아름다웠네.
英廟聞之召丹墀 영묘(세종)께서 듣고 붉은 마루에 부르심에
臣筆一揮龍蛟飛 제 붓을 한번 휘두르니 용과 교룡이 날았다네.
嗚呼三歌兮歌正遲 아! 세 번째를 노래하니 곡은 정말 느리어
志願不遂身世違 원하는 뜻 이루지 못하고 신세만 어긋났소.
其四
有孃有孃孟氏孃 아가씨도 많고 어머니도 많지만 맹씨 어머님은
哀哀鞠育三遷坊 애지중지 사랑으로 길러 집을 세 번 옮기셨지요.
使我早學文宣王 나로 하여금 일찍 문선왕(공자)을 배우라하고
冀將經術回虞唐 장차 글과 재주로 당우를 돌이키길 바라셨지요.
烏知儒名反相誤 어찌 알리오 선비의 이름이 서로 반대로 그릇되어
十年奔走關山路 십년동안 고향의 산에서 고달프게 분주하였네.
嗚呼四歌兮歌鬱悒 아! 넷째 노래여 노래는 우울하고 답답하여
慈烏返哺啼山谷 까마귀 어미 반포하듯 산골짜기에 우는구료.
其五
碧落無雲天似掃 푸른 하늘을 쓸어 낸듯 두르던 구름 없어지고
勁風浙浙吹枯草 센 바람 쓸쓸하게 일어 메마른 잡초에 부는구려.
佇立窮愁望蒼昊 궁한 근심에 우두커니 서서 푸른 하늘 바라보니
我如稊米天何老 나는 벼의 움같은 운명을 늙어서야 받아드리네.
我生何爲苦幽獨 나의 생은 어찌하여 괴로이 홀로 피하듯 숨어서
不與衆人同所好 뭇 사람과 더불어 사이좋게 한 곳에서 지내지 못하나.
烏虖五歌兮歌斷腸 아! 다섯째 노래여 노래에 애가 끊어지니
魂兮歸來無四方 넋이여 ! 사방에 관계없이 돌아오소서 !
其六
操余弧欲射天狼 내 활을 잡고 하늘의 천랑성을 쏘려하니
太一正在天中央 태일성이 바로 하늘 중앙에 있구나.
撫長劍欲擊封狐 긴 칼을 쥐고서 무덤의 여우를 치려하니
白虎正負山之隅 백호가 산의 모퉁이를 다스리며 맡고 있네.
慷慨絶兮不得伸 손에 쥐고 펼 수 없으니 비할 데 없이 슬프고 슬퍼
劃然長嘯傍無人 문득 길게 휘파람 불어도 응대하는 사람이 없구려.
嗚呼六歌兮歌以吁 아! 여섯 째 노래여 노래로써 탄식하니
壯志濩落兮空撚鬚 크게 품은 뜻 꺾이니 쓸데없이 수염만 비비네.
東峰自寫眞讚 자화상
俯視李賀 이하를 내리 깔아 볼 만큼
優於海東 해동에서 최고라고들 말하지
騰名瞞譽 격에 벗어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於爾孰逢 네게 어이 해당하랴
爾形至渺 네 형용은 아주 적고
爾言大侗 네 말은 너무도 지각없구나.
宜爾置之 마땅히 너를 두어야 하리
丘壑之中 골짜기 속에나
冬至 동지
其一
至日江陵客 동짓날 강릉의 나그네가
長安憶故人 서울의 옛 친구를 기억나게 하네.
一陽今正復 모든 양기가 이제 바르게 돌아오는데
千里更誰親 멀리 떨어져 다시 누구와 친해지려나.
小豆煎茶鼎 팥을 솥에 달여 차로 마시고
孤燈伴老身 외로운 등잔에 늙은 몸을 의지하네.
浮名五十載 나쁜 평판의 오십년에
遇復可能伸 다시 만나 펼치기 가능할런지.....
其二
逢剝多衰耗 크게 다쳐 쇠하고 줄어듬이 많아도
今朝喜復來 오늘 아침엔 기쁨이 다시 돌아오네.
天心元本靜 하늘의 뜻은 첫째 본성이 고요함인데
物化自相催 물건의 변화는 서로 스스로 재촉하네.
希韻生琴調 바라는 소리는 거문고를 연주하여 나오고
吹陽動管灰 한낮의 바람은 관속의 재를 움직이네.
從知人世事 놓으면 알게 되는 사람들의 세상 일
亦有笑顔開 또한 알리라 명예를 비웃어야 깨우침을
管灰 - 사물이 점점 피어오름, 진서(晉書) 율력지(律歷志)에 동짓날 갈대 속의 막(膜)을 태운 재(灰)를 관 속에 넣어두면 동지에 재가 동쪽으로 날아간다.
東窓 동쪽 창
1
何以糊東窓 무엇으로 써 동쪽 창을 바르나?
細薄精繭紙 얇고 가는 비단 종이 깨끗하구나.
何以塗東窓 무엇으로 써 동쪽 창에 칠을 할까 ?
淨壓芝麻子 참깨 씨로 깨끗하게 누르리라.
巖樹透其表 바위와 나무 이미 드러나 통하고
天文映其裏 하늘의 현상 그 속에 비치는구나.
以我於其中 나로써 그 안에 있게 하니
坐臥常從容 앉고 누우며 늘 조용히 살리라.
2
十年養性情 십년간 성정을 수양하니
衆欲無由攻 많은 욕심이 공격 하지 못하네.
楷字札畫精 해서로 써 정성스레 그린 편지
看書行列明 글을 보니 행과 열이 질서 있구나.
洒然心膽淸 씻어 낸듯 마음과 담력 깨끗하고
湛然懸水晶 침착하고 무겁게 수정을 매달았네.
警爾仔細聽 경계하노니 자세히 들을 것이며
接物須惺惺 만물을 접하며 반드시 총명하길.
不愧在爾室 부끄러워 말고 이 거처에 있으며
保汝方寸靈 너 마음속의 정기를 기르리라.
登大同樓 대동루에 올라
大同波上大同樓 대동강 물결 위에 솟은 대동루
無限雲山散不收 끝없는 구름 낀 산 흩어버리고 거두지 않네
楓落浿江秋水冷 단풍 떨어진 패강 가을 물은 찬데
霜淸箕堞暮煙浮 서리 맑은 기자 성터엔 저녁연기 떠돈다
白鷗洲畔月千里 흰 갈매기 노니는 모래섬에는 달빛 뻗쳐 천리인데
黃葦渡頭風滿舟 황위 나루터의 배에는 바람이 가득하다.
因憶昔年興廢事 먼 옛날 흥망을 생각하며
登高一望思悠悠 높이 올라 바라보니 마음만 아득하네
登童津山 동진산에 올라
童津山色碧崔嵬 동진산 산색이 푸르고 높고 험준하여
絶壁層崖石逕回 층진 벼랑 절벽엔 돌길이 돌아있네.
獨荷短筇尋古寺 홀로 짧은 지팡이 메고 옛 절을 찾으니
上方政在白雲堆 스님은 바로 흰 구름 쌓인 곳에 있구나.
登樓 누각에 올라
向晩山光好 해질녘 산색은 아름답고
登臨古驛樓 오래된 역의 누대에 오른다.
馬嘶人去遠 말은 울고 사람은 멀어지고
波靜棹聲柔 물결은 고요하니 노 젓는 소리 부드럽다.
不淺庾公興 유공의 흥취가 옅지 않아
堪消王粲憂 완찬의 근심을 녹일 만하다
明朝度關外 내일 아침이면 관 밖을 건너리니
雲際衆峰稠 저 멀리 구름 끝에 산봉우리들 빽빽하다.
登摩尼山江華 마니산에 올라
摩尼山色好 마니산 산색은 좋기도 한데
矗立海天隅 바닷가 하늘가에 우뚝 솟아있다.
飛雁不能渡 기러기도 능히 건너지 못하고
晴嵐摠可圖 산바람에 맑아지니 모두 그림 같구나.
祭壇秋草老 제단에는 가을풀이 시들어가고
僧舍白雲孤 절간 숙소에는 흰 구름이 외롭다.
一望滄溟闊 잠시 바라보니 푸른 바다는 넓고
煙波接有無 물안개가 있는 듯 없는 듯 닿아있다.
登碧瀾渡樓 벽란도 누대에 올라
碧瀾之水碧如油 벽란도 물 푸르기 기름 같은데
漾漾溶溶萑葦秋 넘실거리며 출렁이며 갈대 핀 가을을 흐른다.
白鷗慣人不飛去 백구는 사람들과 낮이 익어 날아가지도 않고
綠荇隨水相飄浮 푸른 마름은 물 따라 서로 밀려 떠 다닌다.
何處一聲漁笛遠 어디인가, 한 마디 고기잡이 피리 소리 아득한데
誰家十里炊煙浮 뉘 집에선가 십리 장대 밥 짓는 연기 자욱하다.
波寒日暮不能渡 물결 차고 날 저물어 건너지 못하고
繫纜獨倚江邊樓 닻줄 매어두고 홀로 강가의 다락에 기대어 선다.
登三淸宮 삼청궁에 올라
上帝高居玉座遙 옥황상제 높이 계시는 옥좌는 멀고
群仙濟濟列層宵 선관(仙館)들은 장엄하게 하늘 층층이 벌려 섰네.
碧窓縹緲縹緲香烟繞 푸른 창가에 아득한 향연이 둘러싸고
絳闕森嚴翠羽翹 붉은 대궐에 삼엄하게도 푸른 깃털 우뚝하네.
滿院松濤醒俗夢 정원에 가득한 솔 무리는 속된 꿈 깨우는데
一庭霜彩滑雲橋 온 뜰에 서리 빛나 구름다리 매끄럽네.
天光甚邇無聲臭 하늘 빛 그리 가까워도 소리나 냄새도 없고
坱圠玄機亦孔昭 끝없이 아득한 깊고 묘한 이치 또한 크게 밝아있네.
登昭陽亭 소양정에 올라
1
鳥外天將盡 새는 하늘 밖으로 날아가고
愁邊恨不休 시름에 겨워 한이 그치지 않는다.
山多從北轉 산은 많아서 북쪽에서 굴러오고
江自向西流 강은 스스로 서쪽을 향해 흐른다.
雁下沙汀遠 기러기 날아 내리는 모래톱은 아득하고
舟回古岸幽 배 돌아오니 옛 언덕 그윽하다
何時抛世網 언제나 세상 그물 던져 버리고
乘興此重遊 흥에 겨워 여기 와서 다시 놀아볼까.
2
逶迤亭下水 정자 아래로 구불구불한 물길은
遙向鳳城東 멀리 봉성 동쪽을 향해 흐르네.
日夜歸心切 밤낮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절실하니
乾坤去路通 하늘과 땅이 고향 가는 길과 통하누나.
豺狼當白晝 훤한 대낮에 이리와 승냥이가 나오기에
鷄犬鬧晴空 닭과 개가 갠 하늘에 울어댄다.
薄暮倚欄望 날 저물어 난간에 기대 바라보며
開襟當北風 옷깃을 풀어 북풍을 맞는다.
3
縱目不知返 바라보며 되돌아 갈 줄 모르고
幽懷入泬寥 아득한 그리움만 허공에 든다.
牛頭如倡䯻 우두산은 여인이 머리를 말아 올린 듯하고
馬峴似蠶腰 마현은 누에 허리처럼 잘록하다.
雲自高飛盡 구름은 높이 날아 사라지고
天從望極遙 아득히 먼 하늘 끝없이 바라본다.
客愁聊蕩盡 나그네 시름 모두 쏟고자
時復鼓蘭橈 다시 노를 두드려보네.
4
拍拍水禽掠水過 물새 나란히 강을 스쳐 날아가고
山城東隅夕陽多 산성 동쪽 모퉁이엔 석양빛이 가득하다.
風生嬭渡帆初飽 내도(嬭渡, 모진)에 바람일어 돛이 부풀고
葉下蘆淵江自波 잎은 노연(蘆淵)에 지며 강에는 물결이 인다.
楊口山來尖似戟 양구에서 달려온 산들은 창처럼 뾰족하며
牛頭渚合曲如叉 우두산 물줄기 합쳐졌다 휘돌며 갈라지네.
倚欄弔古空搔首 난간에 기대 옛일 생각하며 머리 긁적이니
一曲采菱何處歌 채릉(采菱) 한 곡조가 어느 곳에서 들려오누나.
燈下 등잔아래서
1
燈下茶聲咽 등 아래 차 달이는 소리
惺惺坐似株 말갛게 앉으니 나무 그루터기 같아
是身如幻沫 이 몸은 물거품 같고
此影竟塗糊 이 그림자는 끝내 멍청하구나
夜雪敲窓冷 밤눈이 차갑게 창문을 두드리고
山雲羃地無 산 구름은 땅을 덮어 없어지는구나
花明餘燼落 불꽃 밝더니 남은 재 떨어지고
堗暖卷氍毹 구둘 따뜻하여 담요를 걷어 부친다
2
南寺僧來後 남쪽의 절에서 스님이 온 뒤로는
東山月上初 동쪽 산에 비로소 달이 떠오르네
閑心多放曠 한가한 마음 거리낌 없어 좋은데
靜意似籧篨 고요한 생각, 천상바라기 같아라
積雪明林薄 쌓인 흰 눈은 나무숲 엷게 밝히고
寒風入帳疏 차가운 바람 성글게 휘장에 분다
可庭霜桂影 뜰에 서리 맞은 계수나무 그림자
分與爾爲居 그대에게 나누어 주어 살게 하리라
燈下看蛾 등불아래 나방을 바라보며
近來風日厚 요즈음 바람과 볕이 늘더니
燈下有飄蛾 등 아래를 나방이 나부끼며 차지하네.
斗覺春光遍 봄빛이 두루 퍼짐을 갑자기 깨닫고
方知暖氣多 사방에 따뜻한 기운이 늘어남을 알게 되네.
靑陽將駘盪 봄볕이 문득 편안하게 갈마들고
白髮欲鬖髿 흰 머리는 헝클어져 흠치르르 하구나.
可繫西飛日 가히 매달리듯 해가 서쪽으로 지는데
堂堂奈老何 당당하게 대처하며 잠깐의 생을 마감하네.
蔓徑 덩굴이 덮인 길
巉嵒石徑草茸茸 가파른 바위와 돌길에 풀들이 우거지니
芟却荊蔓護却松 가시덩굴 베어내고 소나무를 보호한다.
客至將迎今已久 오는 손님 맞으려 한지 오래인데
滿山風雨蘚髼鬆 산에 가득한 비바람에 이끼만이 더부룩하네.
晩望 해 질 녘 바라보다
草靑沙軟望中寬 푸른 풀 보들한 모래는 보기도 너그러워
數朶芙蓉雨後巒 몇 송이 늘어진 연꽃은 비 온 뒤의 산봉우리라.
逸馬引群馳野路 빠른 말들 무리지어 다투듯 들길을 달리고
懶牛牽紲臥江干 게으른 소는 고삐에 매여 강줄기에 누워있네.
逍遙自喜吾生樂 천천히 걸으며 절로 기쁜 내 삶의 즐거움이니
寵辱多驚達者難 영예와 욕됨 놀람도 많아 통달하기 어렵구나.
投老歸歟何處好 늙게 되어 편안히 돌아가려니 어디가 좋을까?
香城楓岳碧雲漫 향기로운 고을 풍악산에 푸른 구름 흩어지네.
漫成 별 생각 없이 짓다
其一
窮山歲暮坐題詩 세모에 외진 산에 앉아 시를 지으며
氷合松煤染硯肌 얼음 모아 먹을 풀어 벼루 살에 담그네.
飢鶻下巖多壯氣 굶주린 매는 바위에 내려도 원기가 왕성한데
凍鴟蹲樹有奇姿 나무에 쭈그린 언 올빼미는 기이한 모양이네.
陶潛傲世那無醉 도잠이 세상을 멸시함에 어찌 취함이 없으며
杜甫思君不廢詩 두보는 군자를 생각하며 시를 버리지 않았네.
自有胸呑雲夢趣 스스로 알아 뜻을 감추고 구름 꿈을 취하고
丈夫老去卽豪時 장부는 늙어만 가고 호걸은 죽을 기회 엿보네.
其二
早歲功名浪自期 젊은 나이에 공명을 몸소 터무니없이 바라고
此身端合曳沙龜 이 몸은 모래땅을 끄는 거북과 맞는 느낌이네.
世情薄似蜩螗趐 세상 인정은 얇기가 날아가는 매미들 같은데
閑夢甛於瓊玉飴 한가한 꿈 달콤하기 경옥고의 엿과 같구나.
裊裊淡煙凝石逕 하늘거리는 어렴풋한 연기 돌길에 머물고
娟娟寒月上松枝 맑고 맑은 차가운 달은 소나무 가지에 오르네.
詩名老大將何用 시인의 명예 때지나 늙어 장차 무엇에 쓰나?
題遍南窓小壁時 남쪽 창과 작은 벽에 때맞추어 두루 적으리라.
其三
半生涉江海 반평생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다
餘年擬首丘 앞으로 남은 인생 고향을 향하네.
高臥林泉間 숲과 샘 사이에 깊이 숨어 살자니
歲月如轉毬 세월은 굴러가는 공과 한가지네.
旣聽春鳥喚 이미 봄새의 지저귀는 소리 듣고
又感候蟲愁 또한 철 벌레들의 수심을 느끼네.
永懷度長宵 오래 생각하며 긴 밤을 헤아리니
鬱鬱心愀愀 답답한 마음에 쓸쓸히 근심하네.
奈此夜苦長 어찌하여 이 밤은 괴롭게 긴지
燈火稍凄涼 등잔불도 자못 처량하구나.
書卷抛在床 서책은 제멋대로 상에 내던지고
濡筆置在傍 젖은 붓은 겨우 옆에 두었네.
窮懷欲著書 궁벽함 달래려 글을 쓰고자 하나
未能抒中腸 심중을 자세히 털어 놓지 못하네.
男兒不能遺臭芳 사내가 추함과 꽃다움 남기지 못하면
便是徒死三家郞 곧 이는 헛되이 죽은 여러 집(뭇) 사내라네.
漫成 엉성하게 함부로 짓다.
舊歲堂堂去 지난해는 번듯하게 가버리고
流年鼎鼎來 흐르는 세월은 빠르게 오는구나.
病多知止酒 병이 많음 알기에 술을 금하고
興盡懶傳杯 흥이 다하니 잔을 전할 의욕도 없네.
蜂鬧評花市 꿀벌은 소란스레 시가의 꽃을 품평하고
雲嬌護竹胎 아리따운 구름은 죽순을 보호하네.
悠然忘世慮 유연하게 세상의 생각 잊어버리고
終日看崔嵬 종일토록 높은데 쓸데없이 바라보네.
老大將何適 늙게 되면 장차 어디로 가나
翛然一室空 자유로운 방 하나 비어있구나.
更無形物役 다시는 몸과 일에 힘쓰지 말고
唯有主人公 오직 공평한 주인만을 알리라.
月上辛夷塢 달이 떠오르는 개나리 언덕
風來苦竹叢 바람은 깊은 대 숲에 불어오네.
拖筇吟不盡 지팡이 끌며 끝없이 시 읊으니
花影小樓東 꽃 그림자 작은 누각 동쪽으로 가네.
早歲身強健 젊어서 몸이 강건하더니
殘年病入脾 만년에는 병이 몸속에 든다
徑行從所好 지름길로 좋은 대로 따라
茶飯任便宜 마시고 먹는 것 편한대로 했도다
木落山容瘦 나뭇잎 떨어지니 수척한 산 모양
庭空月色奇 뜰은 비어있는데 달빛은 기괴하다
呼兒供藥餌 아이 불러 약을 갖추어서 먹고는
困來且支頤 피곤함이 몰려오니 또 턱을 고인다
漫遊 마음대로 놀다
川澤遨遊慣 자연에 노는 것 버릇 되어
紅塵夢已忘 세상의 꿈은 이미 잊었다오
如童放學館 아이들 학당에서 방학한 듯 하고
似馬走毬場 말이 격구장을 달리는 듯하네
屐齒遍山麓 나막신 신고 산기슭 두루 다녀
新詩盈草堂 새로 지은 시가 초가에 가득하다
後人應笑我 후세 사람들 나를 비웃을 것이니
天地一淸狂 천지간에 한 멀쩡한 미치광이 있었다고
晩意 해 질 녘
萬壑千峰外 온 골짜기와 봉우리 저 너머
孤雲獨鳥還 외로운 구름과 새 돌아오네
此年居是寺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만
來歲向何山 내년에는 어느 산을 향할까
風息松窓靜 바람 자니 소나무 창 고요하고
香銷禪室閑 향불 스러지니 스님의 방 한가롭다
此生吾已斷 이승을 내가 이미 끊어버렸으니
棲迹水雲間 내 머문 자취 물과 구름에만 남기리라
謾興 흥에 겨워
1
美人望望隔秋水 가을 물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저 미인
松桂稟異難爲情 송계(松桂, 지명)가 천품 달라 정을 풀기 어렵네.
我有一匹好東絹 내가 가진 좋은 비단(東絹) 한 필에
願紓情懷題姓名 내 성명을 적어서 정회를 풀려하네.
2
秋月團團秋露凝 가을 달 둥글둥글 가을 이슬 엉겼는데
明河皎潔風稜稜 은하수가 산뜻하고 바람이 설렁설렁.
布衾疏冷不成夢 베 이불이 선선하여 잠 못 이루노라니
時有草蟲來撲燈 이따금 메뚜기가 와서 등을 치는구나.
3
山人招我歸來篇 산인이 돌아오라는 글 보내와 나를 부르는데
筍已成林栗如拳 죽순은 숲을 이루고 밤은 이미 주먹만 하다네.
滿庭風雨養莓苔 뜰에 찬 풍우에 이끼가 가득하고
秋露濕緩梧桐絃 가을 이슬에 거문고 줄이 젖어 늘어지누나.
晩晴 늦게 날이 개임
雨後山容碧 비온 뒤 산의 모습은 푸른데
雲收齊景幽 구름 걷히니 먼 경치 가지런하네.
草根蟲有語 풀 밑의 많은 벌레들 소리 내고
花底蝶生愁 꽃 속의 나비는 근심을 만드네.
露重松枝曲 무거운 이슬은 솔가지를 굽히고
風微木葉柔 작은 바람은 나무 잎을 편하게 하네.
茅茨更淸絶 띳집 지붕 고치니 매우 한가한데
林外有鳴鳩 숲 밖에는 많은 비둘기 소리 내네.
望公山 팔공산을 바라보며
公山峭峻聳崢嶸 팔공산 험준한 봉우리 높이높이 솟아있어
碍却東南幾日程 이르기 멀고 동남으로 며칠이나 걸릴까.
多少風光吟不得 아름다운 경치 시로 짓지 못하나니
只緣憔悴病中生 다만 초췌하게 병든 생애의 인연이런가.
望懸燈山 현등산 바라보며
懸燈山色碧參差 현등산 산색은 푸르게 들쭉날쭉
白石蒼藤又一奇 흰 돌과 푸른 등나무 또한 함께 기이하네.
我欲盪胸何處是 나의 가슴 씻고자 하나 그곳이 어디인가
層崖絶壑玉虹飛 층층 벼랑 막힌 골짜기에 옥무지개 나는구나.
買蓑觀漲而還 도롱이 사서 불어난 물을 보고 돌아오다
百錢新買綠蓑衣 백 전으로 새로 푸른 도롱이 사 입고
觀漲溪橋帶晩歸 개울 다리에 불어난 물 보고 늦어 돌왔다.
細雨斜風吹不斷 가랑비에 몰아치는 바람 그치지 않는데
一肩高聳入蓬扉 어깨를 솟구치며 사립문짝으로 들어간다.
梅花 매화
花時高格秀郡芳 꽃 필 때 품격은 뭇 꽃 중에 빼어나고
結子調和鼎味香 열매(梅實)는 간 맞춰 음식 맛 향기롭네.
直到始終存大節 한결같이 시종 큰 절개를 보존하니
衆芳那敢竅其傍 다른 향기로운 풀들이 어이 짝하랴.
明窓曉望 새벽에 밝은 창을 바라보며
金門五夜曉鍾撞 궁궐 문에서 오야마다 종을 쳐서 일러주니
簪笏朝天驟馬雙 벼슬아치들 입궐하려 말을 짝하여 달리네.
爲祿爲身相並話 자신과 복록을 위해 서로 견주어 말하니
那知無語坐明窓 말이 없이 밝은 창문에 앉음을 어찌 알리오.
暮山 저물어가는 산
暮山如畫掃蛾眉 저문 산은 그림그린 듯 나의 눈썹 쓸어놓고
輕抹晴嵐淡亦奇 맑은 산기운 살짝 문지르니 담담하기 절묘하다.
月上松梢鴉亂陣 소나무 끝에 달 돋으니 까마귀 떼 어지러운데
故城秋籜有寒吹 옛 성의 가을 대나무 숲에는 찬바람이 불어온다.
木蓮 천상에서 귀양 와 절간에 머무는 행각승에 비유
以爾爲蓮葉如枾 너를 연꽃이라 이르면 감잎 같고
以爾爲枾花如蓮 너를 감나무라 이르면 꽃이 연꽃 같네.
綠葉堪作鄭虔紙 초록잎은 정건의 종이를 삼을 만하고
玉葩可比姑射仙 옥빛 꽃은 고사선자에 비할 만하네.
風來裊裊素羽搖 바람불면 하늘하늘 흰 깃이 움직이고
月下獨伴姮娥眠 달빛아래 홀로 항아와 짝하여 잠드네.
淸香冉冉襲人衣 맑은 향기 퍼져나가 사람의 옷에 스며드니
綽約仙子來翩眠 아리따운 선자가 와서 나부끼듯 하네.
玉皇謫汝深山中 옥황이 너를 깊은 산중에 귀양 보냈으리
不脫水雲袍幾年 수운(水雲, 행각승)의 도포를 벗지 못한 게 몇 해이던가.
腸斷山風捲地時 애끊는 산바람이 땅을 말아오는 때면
縞巾零落淸溪邊 흰 명주두건은 맑은 개울가에 떨어져 내리네.
我欲收拾作衣裳 내가 수습하여 의상을 지어
服之洞天雲水鄕 동천의 운수향(雲水鄕)에서 입으려하네.
夷猶玉井太華巓 아직 옥정이 태화산 꼭대기에 있는데
有時騎下初平羊 때때로 초평의 양을 타고 내려오는구나.
鄭虔 - 당나라 사람. 가난해 감잎에 글씨 연습함
姑射仙子 - 장자의 逍遙遊篇에 나오는 女子神仙으로 얼음같이 흰 살결 갖고 있음. 射는 벼슬이름 야
雲水鄕 - 雲水僧으로 탁발(托鉢)의 미칭(美稱)
初平 - 羊치기인데 도를 배워 신선됨. 바위를 양으로 만듦
目羞 눈이 부끄러워
經書今棄擲 경서 이제 내던지고
已是數年餘 이미 몇 년이 지났구나
況復風邪逼 하물며 다시 사악한 바람에 쫓겨
因成齒髮疎 이빨과 머리털도 성글어졌다
奇爻重作二 일 효가 겹쳐져 이 효로로 보이고
兼字化爲魚 “兼”자가 변하여 “魚”자로 보인다
雪夷看天際 눈이 덮인 속에서 멀리 하늘 끝을 바라보니
飛蛟滿大虛 나는 모기들만 하늘에 가득하다
夢中作 꿈속에서 짓다
一間茅屋雨蕭蕭 한 칸 초가에 우수수 비 내리니
春半如秋意寂廖 봄이 한참인데도 가을처럼 마음이 적료하다
俗客不來山鳥語 세상 손님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귀는데
箇中淸味倩誰描 그 중에 맑은 맛은 누구에게 부탁하여 그려낼까
貓兒 고양이
立功鼠穴便空虛 쥐구멍에서 공 세우고 다시 공허해져
閑臥花氈飽有餘 한가로이 꽃밭에 누워 여유롭게 포식하네.
一室淸平無外警 청평사 골방엔 바깥 경계가 없어도
却來椸下弄衣裾 도리어 옷걸이 아래서 옷자락을 희롱하네.
無量寺臥病 무량사에서 병으로 누워
春雨浪浪三二月 봄비 낭랑한 이월과 삼월에
扶持暴病起禪房 모진 병 견뎌내고, 선방에서 일어난다.
向生欲問西來意 서쪽에서 달마대사 온 까닭 묻고 싶으나
却恐他僧作擧揚 다른 중들이 부산 떨까 두려워진다.
無量寺 -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던 사찰. 부여 외산면 만수산에 있슴.
西來 -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고자하나(선문답을 나누고자하나)
擧揚 - 높이 받들어 올림, 칭찬하여 높임
無諍碑 화쟁국사(원효) 비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나
新羅異僧元旭氏 신라 이승 원욱이
剔髮行道新羅市 머리 깎고 신라 저자에 도를 행한 것을.
入唐學法返桑梓 당에 가서 불법 배워 고국으로 돌아와
混同緇白行閭里 절과 세상을 넘나들며 민간에 행하여
街童巷婦得容易 거리 아동과 아녀자도 쉽게 깨우치니
指云誰家誰氏子 그를 두고 아무개 집 아무개라 가리킬 정도였어라
然而密行大無常 그러나 큰 무상의 도를 가만히 행하여
騎牛演法解宗旨 소타고 법을 펴서 불교의 진리를 풀이하니
諸經疏抄盈巾箱 불경의 풀이 글이 책 상자에 가득해
後人見之爭仰企 후인들이 보고서 다투어 따랐도다
追封國師名無諍 국사로 뒤늦게 <부쟁>이라 시호 내려 하여
勒彼貞珉頗稱美 곧은 돌에 새겨 칭송하였도다.
碣上金屑光燐燐 비갈 위 금가루는 광채가 찬란하고
法畵好辭亦可喜 불화와 문장도 역시 좋도다.
我曹亦是善幻徒 우리도 환어를 잘하는 무리라서
其於幻語商略矣 환어에 대하여는 대략 아노라.
但我好古負手讀 다만 나는 옛 도를 좋아해 뒤서고 읽을 뿐이라
吁嗟不見西來士 아아, 서쪽서 오신 부처님 보지는 못하는구나.
無題 무제
濊邑花如海 깊은 고을에는 꽃들이 바다와 같고
東風吹客衣 봄바람은 나그네 옷자락에 부는구나.
那堪鵑夜怨 깊은 밤 두견이의 원망을 어찌 견디나
懇道不如歸 돌아감만 못하다 간절히 말하네.
濊邑 - 예맥(濊貊, 濊貊朝鮮의 준말). 古朝鮮[고조선] 관할 경계 내에 있던 한 나라, 한족(韓族)의 선민(先民)들을 통틀어 이르던 일반적 칭호
無題 무제
1
終日芒鞋信脚行 종일토록 짚신 신고 내키는 대로 걸어
一山行盡一山靑 산을 다 걸으면 또 푸른 산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은 물건이 아닌데 어찌 육체의 노예가 되며
道本無名豈假成 진리는 이름이 없거늘 어찌 위선을 행하리오
宿露未晞山鳥語 밤이슬 마르지도 않는 새벽에 사내들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봄바람 살랑 살랑 불어오고 들꽃은 밝구나
短笻歸去千峰靜 짧은 지팡이 짚고 돌아가니 수 천 봉우리 고요하고
翠壁亂煙生晩晴 맑은 저녁 하늘 이끼 낀 푸른 절벽에 안개 자욱하다
2
楓岳高低十二峯 풍악이 높고 낮아 열 두 峯인데
峯頭石角掛枯松 봉 머리 돌부리에 마른 솔이 걸리었다.
塵紛却是郭郞巧 티끌의 어지러움에 도리어 곽랑(郭郞)이 교묘한데
世事盡隨蝴蝶空 세상 일은 모두 호접을 따라 비었더라.
桂子落時殘照薄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질 때에 저녁 볕이 엷은데
楊花飛處晩山濃 버들 꽃이 나는 곳에 저문 산이 무르녹는다.
蒲團獨坐香如縷 방석에 혼자 앉았으면 향 연기는 실 같은데
愛聽楓橋半夜鍾 풍교의 밤중 종소리를 사랑스레 듣는다.
3
翩翩一錫響空飛 펄펄 하나의 지팡이가 허공을 울리며 나는데
五月松花滿翠微 오월의 소나무꽃이 푸른 산에 가득하다.
盡日鉢擎千戶飯 진종일 바리를 들고 다니매 천집의 밥인데
多年衲乞幾人衣 여러 해로 누더기 빌었거니 몇 사람의 옷이던가.
心同流水自淸淨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 스스로 청정하고
身與片雲無是非 몸은 조각구름과 함께 시비가 없다.
踏遍江山雙眼碧 강산을 두루 밟고 다니니 두 눈이 푸르렀는데
優曇花發及時歸 우담화가 피는 그때에 돌아가리라.
4
石泉凍合竹扉關 바위샘물 얼어붙고 합죽선 닫아걸고
剩得深閑事事閑 마음의 한가함 얻으니 일마다 한가롭다
簷影入窓初出定 처마 그림자 창에 들자 비로소 선정에서 나와
時聞霽雪落松閑 가끔씩 소나무 사이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 듣는다
5
不湏偸得未央丸 구태여 미앙환을 탐낼 필요 없느니
境靜偏知我自閑 경계가 고요하여 내가 편안함을 조금 알겠도다
命僕竹筒連野澗 하인에게 대통을 들판 개울에 이어 놓게 하니
一條飛玉細珊瑚 한 줄기 나는 옥 같은 물방울이 산호처럼 고아라
6
十錢新買小魚船 십전 들여 작은 고깃배 사서
搖棹歸來水竹邊 노 저어 수죽가로 돌아왔도다
占得江湖風雨夢 강호의 바람과 풍우의 꿈을 얻으니
箇中淸興與誰傳 그 속에 맑은 흥취 누구에게 전해줄까
郭郞 - 옛날 희극배우의 이름, 그 후 어릿광대를 곽랑이라고 함. 樂府雜錄에 “곽랑이란 자가 배우들의 흉내를 잘 내므로 극장이 열릴 적마다 배우들의 앞에 선다고 하였다.
無題 무제
擧鍾贈郞君 잔 들어 낭군에게 드리노니
莫道吾情薄 나의 정이 각박하다 말하지 마소.
山深水重複 산 깊고 물이 더욱 겹쳐 있으니
誰與郞相謔 누가 낭군과 서로 농담하려 하리오.
濊邑花如海 예읍에 꽃이 바다 같은데 깊을예
東風吹客衣 봄바람 불어 나그네 옷에
那堪鵑夜怨 어찌 견디랴 두견이 밤 탓 두견이견
懇道不如歸 목 놓아 말해 불여귀 라며 돌아옴 같지 않아
無酒 술이 없어서
李白把酒問月飮 이백은 술잔 잡고 달과 문답하며 마셨는데
塊然一斗詩百篇 괴연히 홀로 앉아 한 말 술에 지은 시가 백 편이라.
淵明引壺眄庭醉 도연명은 술병 끌어 뜰을 보며 취했는데
悠然自樂羲皇天 유연하게 복희씨 적 세상을 스스로 즐겼어라.
而我千載猶爲人 그러나 나는 천년 뒤의 사람 되어
獨對靑山無酒錢 혼자 청산 바라보며 술 살 돈 하나 없는가.
司業助廣文 사업 소원명이 광문 정건을 도왔는데
坐客寒無氈 앉은 손님 추워도 방석 하나 없었어라.
王弘送彭澤 왕홍이 평택령을 보낼 때에는
空坐菊花邊 공연히 국화 가에 앉아 있었어라.
吾非請息交 사귀기를 그만두자고 청하지 않았건만
自然絶世緣 저절로 세상 인연 끊어지고 말았어라.
世我相矛盾 세상과 나 서로 모순되어선가
遨遊三十年 삼십 년을 마음대로 즐겁게 놀았어라.
無人過濁醪 탁주 한 잔 넘겨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情悄如耽禪 마음 적적하기 참선 즐기는 것 같아라.
安得盡捻書籍賣 어찌해야 서적을 모두 집어 팔아
卜築移家居酒泉 집 지어 이사하여 주천가에 살까.
毋津 무진나루에서
毋津初解纜 무진에서 비로소 닻줄을 풀자
楊柳晩潮生 버드나무에 저녁 밀물이 이네.
淡淡沙汀遠 맑고 깨끗한 모래 물가는 깊은데
茫茫煙樹平 아득한 안개에 나무들 가지런하네.
閑鷗分渚泊 한가한 물새들 물가에 나누어 머물고
明月共船行 밝은 달은 배와 함께 가는구나.
渺渺水雲外 아득히 물과 구름 밖으로
一身歸去輕 돌아가는 몸 하나 가벼이 간다네.
聞杜宇 소쩍새의 알림
杜宇促人歸 소쩍새는 사람들 돌아가길 재촉하니
令人淚濕衣 착하고 어진 이는 눈물에 옷이 젖는구나.
萬峯千疊裏 천 겹으로 겹쳐진 많은 봉우리 속에서
百叫一番飛 백번을 울고서야 한 번 날아간다네.
迸裂春山竹 봄 산의 대나무 솟아나며 찢어져도
啼殘曉月輝 새벽 달빛 빛나니 우는 것도 모자라네.
訴冤冤不盡 원통함 억울함 호소하길 다하지 못해도
聞爾正依依 바르게 따르며 순종함을 너에게 듣는구나.
聞子規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千峯疊疊萬木深 수많은 봉우리 거듭 겹치고 많은 나무들 무성한데
山靄蒼蒼斜日暮 산 아지랑이 아득하여 저물녘 해는 기울어가네.
獨坐茅簷思不禁 띠집 처마에 홀로 앉아 그리움을 억제하지 못하는데
子規啼在籠煙樹 안개 자욱한 나무에 두견이 제멋대로 울어대네.
曾聞爾是蜀帝魂 이전에 듣길 너는 바로 촉제의 혼이라는데
胡乃不歸蠶叢路 어찌하여 잠총 길로 돌아가지 않는가 ?
人言有翼可能飛 사람들 말이 날개가 있어 가히 넘어갈 수 있다는데
誰向空山苦搊柱 누굴 향해 빈산에서 괴로이 거문고를 타는가 ?
蜀帝 - 촉나라 임금. 촉나라의 망쩨(望帝)의 원혼이 두견새가 되었다는 고사.
蠶叢路 - 촉으로 가는 험한 산길.
聞鵲 까치 소리를 듣고
査査乾鵲繞庭枝 까악까악 우는 까치가 뜨락 나뭇가지 두르고
細料無人款我扉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 집 사립문 찾아주는 이 없네.
只有淸風似相識 오직 맑은 바람만이 알아주는 듯
故來摵摵撼簾幃 일부러 와서 불어와 설렁설렁 발과 휘장을 흔든다.
悶極 심히 깨닫지 못하여
花是山中曆 꽃은 무릇 산 속의 책력이요
風爲靜裏賓 바람은 고요 속의 손님이 되네.
恨無沽酒債 외상 술 살수 없음이 한스럽고
又欠過墻隣 또 담장 넘어올 이웃도 없다네.
竹塢涼吹急 대나무 둑에서 급히 부는 바람 쐬고
松窓月色新 소나무 창가엔 달빛이 새롭구나.
閑吟聊遣寂 한가히 읊으며 적막함 즐기며 보내니
箇是道中人 이것이 무릇 사람의 바른 이치라네.
薄暮 황혼
怕風棲鵲鬧松枝 바람이 두려운 까치 깃드니 소나무 가지 시끄럽고
天氣層陰日暮時 하늘 기운 층층이 어두워져 저물어 가는 때
雪打明窓淸坐久 눈발이 날리는 밝은 창에 오래도록 고요히 앉아
更看山月上城陬 산의 달이 성 모퉁이에 떠오르는 것을 다시 본다
爐灰如雪火腥紅 화로의 재는 눈 같고 불빛 고기 살같이 붉은데
石鼎烹殘茗一鍾 돌솥에는 차가 끊여지고 있다
喫了上房高臥處 차 마시고 상방에 높이 누운 곳에
數聲淸磬和風松 몇 차례 맑은 경쇠소리 솔바람에 화답한다
盤飧 밥상
其一
白鹽赤米盤中味 흰 소금과 붉은 쌀을 소반 가운데 맛보니
紅蓼靑蔬椀裏香 붉은 여뀌 푸른 채소는 주발 속에 향기롭네.
午睡覺來供一頓 낮잠에서 깨어나면 약간의 끼니를 베풀어주니
陶陶無事送年光 일 없이 화락하게 세월만 보내는구나.
其二
爛蒸蘿蔔又燔苽 쑥과 무는 익히고 찌며 또한 줄을 말려서
山飯隨宜旋煮茶 형편에 따라 절에서 먹고 차로도 끓인다네.
不飽不飢閑偃臥 배부르지 않고 굶지도 않으니 한가히 누워 쉬면서
方知身世似浮槎 떠다니는 뗏목과 같은 신세임을 견주어 아는구나.
其三
井冽寒泉盎有糧 맑은 우물에 찬물이 솟고 동이엔 양식이 넉넉한데
胡爲乎自欲遑遑 어찌하여 스스로 허둥지둥 하려하는가?
碧山終日無伎倆 푸른 산에 해가 다해도 재능과 솜씨를 따지지 않고
半映詩脾半映牀 절반은 시심에 비추고 절반은 평상에 비추네.
赤米 - 쌀 속에 섞여 있는 빛깔이 붉은 나쁜 쌀.
紅蓼 -: 붉은 여뀌, 어린 순을 식용함.
陶陶[도도] - 매우 화락(和樂)한 모양(模樣). 말을 달리게 하는 모양(模樣)
年光[년광] : 변하는 사철의 경치,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햇수, 지나가는 날이나 달이나 해, 기간이나 때, 지내는 형편이나 사정, 날마다의 날씨
苽 - 줄, 씨앗은 말려서 쌀 대신 식용함, 줄기 뿌리도 말려 약용이나 차로 상복함.
渤海 발해
渤海秋深驚二毛 발해에 가을 깊으니 새치머리 놀라게 하고
鴻飛遵渚求其曹 기러기도 물가에 내려 제 무리를 찾는구나
莫思閑事祗自勞 한가한 일 생각하지 말자, 나만 피곤하구나
且與鐺杓同死生 음악과 술과 생사를 같이하여
逞盡丈夫平生豪 장부의 평생호기를 다 부려보자구나.
放言 함부로 지껄이다
1
眇將一粟身 한 알 좁쌀 같은 몸 가지고
復何心懵憧 어찌 다시 어리석은 마음 동경할까?
百年只一息 백년이라 겨우 잠시 사는 것인데
萬事猶倥傯 만사는 오히려 바쁘기만 하다
旣得還恐失 얻고서는 잃을까 두려우니
奚暇尊周孔 어찌 주공과 공자를 숭상할 겨를 있나
有人早歸休 일찍 돌아와 쉬는 사람 있어
視彼同蠛蠓 그를 보기를 하루살이처럼 여긴다
溪聲激潺湲 개울물 소리 잔잔히 들려오고
山色聳巃嵷 산빛은 우뚝하게 솟아오른다.
雖云縱性遊 비록 본성대로 논다 하지만
非禮卽勿動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2
幽軒竹數竿 그윽한 마루 앞에 몇 줄기 대나무
小庭花萬種 작은 뜰에는 많은 꽃을 심었네
看竹復看花 대나무를 보다가 또 꽃을 보니
亦是一榮寵 이 또한 하나의 은총이로구나
洞口雲自生 동네 어귀에서 구름 절로 피어오르고
石眼泉自湧 돌 틈에서는 샘이 절로 솟아난다
逍遙復逍遙 거닐다가 또 거닐며
俛仰歌垂拱 굽어보고 쳐다보면서 태평한 옛 정치 노래하네
3
顓孫學干祿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워
唯恐其不迨 성취하지 못할까 오직 두려워했다네
干祿心旣切 녹을 구하는 마음 간절하거늘
何知寡尤悔 어찌 허물과 후회 없음을 알겠는가
言行苟無愧 말과 행동에 정말 부끄러움 없다면
穀亦不外待 복록 또한 남에게 기대지 않을 것이네
外待何人期 남에게 의지하니 어떤 사람 기약하리오
天祿棄不採 하늘이 주는 복을 버리고 택하지 않네
4
犢角抽東軒 쇠뿔이 동쪽에 높이 솟아나니
乃知生竹筍 그것이 죽순임을 알겠노라
竊期長且大 길고 큰 것을 몰래 바라며
作竿釣蛟蜃 낚싯대 만들어 고래를 낚으려했다
一夜盜折去 하룻밤에 도둑이 꺾어갔으니
此計還可哂 그 계획이 도리어 우습게 되었도다
5
於斯有一玉 여기에 옥이 하나 있나니
久向匵中韞 오랫동안 상자 속에 감추어졌다네
光輝耀天地 광채가 천지에 빛나니
炯炯不敢隱 번쩍거림을 숨기지 못한다
何用沽於世 어찌 그것을 세상에 자랑할까
聲已聞遠近 명성이 이미 멀리서 가까이 들리네
6
爲人性疏散 사람 되는 천성이 탐탁지 못하니
於事太多懶 일마다 게으름이 너무 많구나
山月有燈燭 산에 뜬 달에 촛불 있고
松風有絃管 솔바람에 관현악이 있도다
閑中經數卷 한가한 중에 여러 권 책 읽으며
渴來茶七椀 목마르면 일곱 주발의 차를 마신다
心當遊此樂 마음은 마땅히 이러한 것을 즐기는데
何暇較長短 어느 겨들에 좋고 나쁜 것을 견주리오
7
稚松移種庭 어린 소나무 뜰에 옮겨 심고
禁人使勿翦 사람들이 잘라가지 못하게 했도다
亭亭漸百尺 꼿꼿하게 자라나 점점 백 자나 되고
鱗甲鎖苔蘚 껍질에는 이끼가 막히었다
枝長葉復密 가지는 길고 잎도 빽빽하여
日夜聞鶴喘 밤낮으로 학이 우는 소리 들린다
幾時生茯苓 어느 때나 복령이 생겨나
薄採貢玉輦 그것을 캐어서 임금님께 바칠까
與人延頹齡 사람에게 주면 늙은 목숨도 연장되어
壽與天不殄 목숨과 천성이 결코 다하지 않으리라
倘未生茯苓 혹시 복령이 생기지 않아도
歲寒姿亦善 날이 차가우면 그 자태도 좋으리라
8
春風無私心 봄바람 조금도 사심 없이
普被於大小( 크거나 작거나 널리 불어준다
啓口動群蟄 입 벌려 여러 벌레 움직여 주고
弄舌啼百鳥 여러 새들 혀를 놀려 울게 해준다
桃李偃短墻 복사꽃 오얏꽃 작은 담장에 나부끼고
芙蓉泛碧沼 연꽃을 푸른 늪에 뜨게 하는구나
時雨好風俱 때맞춰 오는 비와 함께하니 좋고
大平從此肇 태평성은 이로부터 시작되노라
山人樂舞蹈 산사람들 춤추고 따르며 즐기고
浩浩歌窈窕 호방하게 요조장을 노래하네
豈獨春風然 어찌 다만 봄바람만 그러할까
聖化流億兆 성인의 교화도 만민에게 흐르리라
9
幽齋靜且深 그윽한 집, 고요하고도 깊숙하여
寓形堪送老 이 한 몸 노년 보내기 넉넉하구나
萬事奚足務 인생만사 어찌 족히 힘쓰겠는가
一閑是所寶 한 가지 한가함이 곧 보배이로다
門無車馬喧 문 앞에는 오는 수레 하나 없는데
衣裳肯顚倒 어찌 의상을 거꾸로 입으리오
莫罪步世表 세상 밖에 나다닌다 탓하지 마라
是亦一種道 이것 또한 일종의 도일 것이리라
自古此流多 예부터 이런 부류의 사람 많았으니
巢許可訂考 소부와 허유를 본받아 성취하리라
考槃亦有人 은거하며 사는 일에도 사람 있으니
不惟吾獨好 오직 나만이 즐겨함은 아니로다
汲盡東溟水 동해의 바닷물 다 길러내어도
利欲垢難澡 탐욕의 때는 씻어내기 어렵도다
帚盡大山木 태산의 나무로 비를 만들어도
名路塵難掃 명예 길의 티끌은 쓸어내기 어렵도다
然則吾奈何 그렇다면 나는 어찌할까
落落從素抱 울타리 가에서 평소대로 안고 살리라
吟罷竹窓靜 시 읊고 나니 대나무 창가는 고요하고
山雨洒庭草 산에 내리는 비가 뜰에 난 풀에 뿌려진다
10
直上南山頭 바로 남산 꼭대기로 올라
騁目驅萬像 눈 달려 만 가지 형상을 몰아본다
日月低回腰 해와 달은 기슭에 낮게 돌아가니
乾坤括分掌 하늘과 땅은 손바닥에 잡힐 듯하다
胸次豁爾遠 가슴 속 시원하게 터이는 듯 하고
怳爲登仙想 황홀하기가 신선이 되어 오르는 것 같네
神飆産石竇 돌 틈에서 신풍이 부는 듯
身輕骨亦爽 몸은 가볍고 뼛속까지 상쾌하도다
斯游不易得 이런 놀음 쉽게 얻지 못하리니
放蕩恣偃仰 방탕하게 마음대로 누었다가 일어난다
向晩興盡回 날이 저물어 흥이 다하여 돌아오니
白雲生藤杖 흰 구름이 등나무 지팡이에서 인다
11
有客趁暮來 손님 하나 저물어 찾아오니
皤皤白頭叟 희고 흰 백발의 노인이로다
行裝一筇杖 행장은 지팡이 하나 뿐
衣破半露肘 의복은 찢어져 팔뚝이 반이나 드러나네
我問從何方 내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遙指靑山後 멀리 청산의 뒤를 가리킨다
碩大固無匹 몸집이 굵고 커 정말 짝이 없을 것 같으니
塞淵端寡偶 곤궁한 근본 바르게 짝하여 돌보리라
心知非常輩 마음에 평범한 무리 아닌 것 같아
斂容恭俛首 얼굴빛 고치고 공손히 머리 숙이네
引坐松筠軒 이끌어 송균헌에 앉게 하고
翦韭復釃酒 부추 뜯고 다시 술을 걸렀다
相與期酩酊 서로 취하기로 약속하여
酬酢不停手 수작하기를 그치지 않았도다
醉來放志意 취한 뒤에는 마음대로 지껄이니
孰知孰無咎 누가 알까, 누구에게나 허물없는 것을
客起歌且舞 손님이 일어나 노래하고 춤추니
我坐亂擊缶 나는 앉아서 어지럽게 동이를 두들겼다
歌舞旣云罷 노래와 춤이 다 끝나니
明月生甕牗 밝은 달이 담장에 항아리처럼 솟아오르네
我倒客亦去 나는 쓰러지고 손님도 가고 나니
淸風動槁柳 맑은 바람은 바른 버들을 흔든다
12
韜晦隱山阿 못난 채로 산언덕에 숨어 사니
蕭然情慮淡 쓸쓸하지만 마음과 생각은 담담하여라
囊無一粒粟 자루에는 한 톨의 곡식이 없어도
固窮無斯濫 궁한 일 이겨내 천하게 탐하지 않으리라
世事自隆替 세상만사 저절로 바뀌어들어도
至樂何增減 지극한 즐거움이야 어찌 변하리오
積中必形外 마음에 쌓이면 반드시 밖으로 드러나리니
周旋凜儀範 행동이 늠름하고 법도가 있으리라
彼其碌碌輩 저 호락호락한 무리들이란
不麾自不犯 가르치지 않으면 스스로는 이기지 못하네
邈焉千古懷 아득히 천 년 전의 일을 생각하며
默默倚雲檻 말없이 구름 난간에 기대어 있도다
13
苦厭人間強迎送 사람들 억지로 맞고 보냄이 정말 싫어
抽此形骸臥碧洞 이 몸을 뽑아내서 푸른 산골짜기에 누웠다
是非榮辱於吾何 시비와 영욕이 내게 무슨 소용일까
松風吹破槐陰夢 솔바람 불어와 느티나무 그늘 꿈을 깨운다
14
長年好與煙霞住 오랫동안 안개와 노을에 머물며
拾橡供廚送朝暮 도토리 주워 음식 만들어 아침저녁 보냈도다
石床高枕睡陶然 돌평상에 베개 높이 베고 편안하게 자는데
有夢不飛紅塵路 꿈속에라도 속세의 길로는 날아가지 않으리라.
訪隱者 은자를 방문
1
白石蒼藤一逕深 흰 돌과 푸른 등나무 사이로 좁은 길 깊숙이 나 있고
三椽茅屋在松陰 솔 그늘 아래 석가래 세 개 걸친 작은 띳집이 보인다
紛紜世上無窮爭 분분한 세상살이 끝없는 싸움
不入伊家一寸心 한 치 작은 그 집엔 들어가지 않으리라
2
自言生來懶折腰 태어나서부터 허리 굽히기 싫어
白雲靑嶂恣逍遙 흰 구름 푸른 산을 마음대로 소요한다네
松風吹送前山雨 솔바람 불어 앞산의 비를 보내어
一朶紫荊花半凋 한 떨기 자형화가 반이나 시들어 떨어지네
排譴 허물을 바로 잡다.
面壁觀空我豈能 벽 마주해 허공 보는 일 내 어찌 능할까만
愛閑長是伴山僧 늘 이 한가함 좋아하여 산 스님과 짝하였네.
園蔬心嫩靑堪摘 속이 연한 뜰의 나물 푸른빛 따내기 즐기고
山薊苖肥軟可蒸 삽주나물 살찐 싹은 찌면 가히 부드럽다네.
養拙十年同鶴化 서투른 수양 십년에 학을 함께 본받아
天遊九萬似鯤騰 구만리 하늘 떠돌며 곤(鯤)이 오름 흉내 내네.
傍人莫說無功業 곁의 사람들 큰 공로 없다고 말하지 말지니
早晩雲林話葛藤 조만간 구름 걸친 숲에서 갈등을 말하리라.
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 달마(達磨)가 526(양나라 보통7년)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던 끝에 소견이 맞지 않아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숭산 소림사에 숨어서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지내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석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냄.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함.
鯤 - 큰 물고기
排㽅 질그릇을 밀어내고
淸寒鍊士少風情 청빈함에 익숙한 선비 경관의 정취에 빠졌는데
手排瓦㽅邀客迎 질그릇 손으로 밀어내고 손님을 영접하여 맞네.
不識靑眼看世人 청안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이 바라보기에
擬將警句相嘲評 경구로 문득 견주어 서로 비웃으며 품평하네.
地僻山深人不來 산이 깊고 궁벽한 곳이라 오는 사람도 없으니
鵑啼白晝猿夜鳴 대낮에도 두견이 울고 밤엔 원숭이 우는구나.
松柯亂繚倚蒼石 어지럽게 감긴 소나무 가지 푸른 돌에 기대고
半老疏枝風濤鳴 반 쯤 늙은 성긴 가지 바람 물결에 울리는구나.
道人自有幽居趣 도인은 몸소 알아서 그윽한 풍취 속에 사는데
不與俗士同條生 속사도 같은 가지에서 나왔지만 함께할 수 없구나.
排悶 마음속 번민을 물리침
磊落東山一老翁 활달한 동쪽 산의 오래된 한 늙은이
頹然閑臥北窓風 북 창의 바람에 쓰러지듯 한가히 누었네.
草荒陶徑吟歸去 거친 풀 도잠의 세 갈래 길에 귀거래사 읊고
花落祗園悟色空 기원정사에 꽃이 지니 색즉시공 알겠구나.
人世幾回雲雨變 인간 세상 몇 번이나 비와 구름 변하고
江山依舊畫圖中 강과 산은 옛날처럼 그림 속에 있구나.
日長庭院渾無事 해는 길어져도 정원에는 전혀 일도 없고
徙倚南軒看竹叢 남쪽 난간에 옮겨 기대고 대 숲 바라보네.
陶逕 - 도잠(陶潛), 도연명이 다니던 길, 귀거래서(歸去來辭)의 삼경취황(三逕就荒).
祗園 - 기원정사(祗園精舍)의 준말. 옛날 중인도 마가다 사위성(舍衛城) 남쪽에 있던 절. 석가모니의 수도와 설법을 위해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세움.
百年 백년
百年一飛鳥 일백년은 새가 잠시 나는 것
令名千古身 좋은 명성은 천고의 몸이라네.
恥爲齊景富 욕됨은 제나라 경공의 부유함
願得伯夷貧 원하는 것은 백이의 가난이라오.
歲晏松含態 세밑엔 소나무 모습으로 견디고
春回杏吐唇 봄 오니 살구나무 입술 드러내네.
境閑無个事 한가한 처지에 하나의 일도 없으니
行止恃蒼旻 가고 멎는 것 푸른 하늘에 의지하네.
白石寺 백석사
老僧高臥掩松關 노승은 높이 누워 소나무 빗장 가리고
白石山房百慮閑 깨끗한 바위 산방에서 온갖 생각에 한가롭다.
車馬不來門逕小 수레와 말들 다니지 않아 문도 길도 좁은데
一雙幽鳥語綿蠻 한 쌍의 그윽한 새소리 끝없이 지저귄다.
別秋江 추강과 이별하며
昔人似今人 옛 사람도 지금 사람과 같고
今人猶後人 지금 사람도 뒷사람과 같으리라.
世間若流水 세상일이란 흐르는 물 같아
悠悠秋復春 가을이 지나면 또 봄 된다.
今日松下飮 오늘은 소나무 아래서 마시고
明朝向嶙峋 내일 아침이면 첩첩산중으로 가리라.
嶙峋碧峯裏 첩첩산중 푸른 산봉우리 속에서
思爾情輪囷 그대 생각하는 마음은 수레처럼 구른다.
悠悠 - 아득하게 먼 모양, 때가 오랜 모양, 침착하고 여유가 있는 모양, 한가한 모양, 많은 모양
病中言志 병중에 뜻을 이야기하다
世味多端我自如 세상 맛 다양하나, 난 언제나 나
是身天地一籧篨 천지간에 이 한 몸은 대자리 하나로구나
山堂日午寂無事 오후의 산 속 집엔 할 일도 없어
臥曝腹中千卷書 누워서 마음속 천여 권 책을 말리노라
七尺幻軀榮辱外 일곱 척 덧없는 몸 영화와 치욕 밖이라
百年人世笑談中 백년 인생살이 웃음 속에 이야기하네.
但知此物非他物 다만 이 물건이 다른 물건 아님을 알기에
笑殺瑞巖呼主公 서암의 주인 불러 큰 소리로 비웃네.
瑞巖 - 서암승(瑞巖僧)을 말함, 주희(朱喜)가 이르길 서암의 중은 매일 자기에게 묻기를 "주인옹(主人翁)은 성성(惺惺)하는가" 묻고 스스로 답하길 "성성하노라" [시경 1권], 마음을 수양하는 것을 뜻함.
普濟餞飮 보제원에서 전송하며 마시다
東風碧草雨新沐 봄바람에 푸르른 풀들이 비에 씻겨 새롭고
聯騎公子餞行客 말 탄 공자들 연이어 가는 손님 전송하네.
紅叱撥嘶嚼玉勒 홍질발 말이 울며 옥 재갈을 씹어대고
金叵羅飛泛春色 금빛 술잔에 봄빛을 띄워 날리네.
鵾絃鐵撥響驪駒 곤계의 현줄을 쇠로 타니 이별의 노래 울리고
憑陵大叫呼五白 의기 양양 크게 외치며 오백을 부르네.
宴罷徘徊不忍別 술자리 마쳐도 배회하며 차마 이별 못하는데
女墻月上昏鴉集 성가퀴에 달 오르고 해질녘 까마귀 모이네.
紅叱撥 - 명마의 이름. 당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서역에서 여섯 한혈마(汗血馬)를 바쳤는데, 그 이름을 각각 홍질발(紅叱撥), 자질발(紫叱撥), 청질발(靑叱撥), 황질발(黃叱撥), 정향질발(丁香叱撥), 도화질발(桃花叱撥)이라고 하였다 한다. 續博物志 卷4
金叵羅 - 이백(李白)의 대주(對酒)라는 시에 蒲萄酒金叵羅 吳姬十五細駄(포도주를 황금 술잔에 따라 마실 제, 십오 세 미인은 작은 준마를 타고 달려왔네.)
鵾絃 - 당 개원(開元) 연간에 악공 하회지(賀懷智)가 비파를 잘 연주하였는데, 돌로 조(槽)를 만들고 곤계(鵾雞)의 힘줄로 현(絃)을 만들어 쇠로 퉁겼기 때문에, 소식(蘇軾)의 시에 鵾絃鐵撥世無有(곤계의 현줄을 철로 퉁기는 솜씨여,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도다.)라는 표현이 있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 山堂肆考 권162 雞筋作絃에 나옴.
驪駒 - 여구곡(驪駒曲) 손님이 떠나려 하면서 이별의 정을 표시하는 노래. 驪驅在門 僕夫具存 驪驅在路 僕夫整駕(검정 망아지 문밖에 있고 마부 모두 대기하오. 검정 망아지 길 위에 있고 마부 멍에 올리었소.) 라고 노래하면 주인은 客無庸歸曲(손님이여 돌아가지 마오)라고 노래했다함. 漢書 卷 88 王式傳
五白 - 고대의 윷놀이, 두보(杜甫)의 금석행(今夕行) 시에 馮陵大叫呼五白 袒跣不肯成梟盧(의기양양 큰 소리로 오백을 외쳐대며, 웃통 벗고 맨발로 뛰지만 효로는 이뤄지질 않는구나.) 杜少陵詩集 卷1
逢梅又別 만났다 헤어지다
1
上人別仲夏 한 여름에 스님과 이별하고
阻話數旬餘 한 달 남짓 대화가 끊겼네.
花岳山深處 화악산 깊은 곳엔
春城水漲初 춘성(春川)에 물이 넘쳐나네.
倚門時斫額 문에 기대어 때때로 이마를 부딪치며
望月又長歔 달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 짓네.
却喜重携手 다시 만난 것을 기뻐했는데
今朝更別余 오늘 아침에 다시 나와 헤어졌네.
2
今年霾雨久 올해엔 흙비 오래 내려
凶歉問來方 흉년의 처방을 물어보네.
江水幾篙漲 강물이 얼마나 범람했는지
菜田應盡傷 채마밭은 응당 다 망쳤으리라.
天事旣如彼 하늘의 일이 이미 저와 같은데
人情那敢詳 인간의 뜻이 어찌 상세하게 할 수 있겠는가?
關東磽薄地 관동지방은 돌 많은 메마른 땅이라
官租可能當 세금은 감당할 수 있을까.
3
鳥飛返故鄕 새 날아 고향에 돌아가는데
瀟洒動行裝 빗물은 행장을 적시네.
納納江山遠 축축이 젖은 강산은 아득하고
行行道路長 가도 가도 갈 길은 멀기만 하네.
昭陽秋水碧 소양강 가을 물은 푸르고
花岳晩雲涼 화악산 늦구름은 서늘하구나.
我語君須省 내가 그대에게 한 말을 꼭 살펴보시게
山僧忙不忙 산 스님이 바쁜지 바쁘지 않은지.
4
聞說淸平洞 청평산 골짜기 이야기 들어보니
靑苔白石間 흰 돌 사이에 푸른 이끼 끼었다네.
山深梨栗熟 산 깊은데 배와 밤은 익어가고
巖靜鶴僧閑 바위 고요한데 학과 스님은 한가롭다네.
君去幾時返 그대 떠났다가 언제 돌아올까
我歸當共看 나도 돌아와 함께 보아야지.
如今分袂後 지금 헤어진 뒤엔
楓葉正斕斑 단풍잎만 알록달록하구나.
鳳尾寺 봉미사
萬丈蒼崖上 만 길 되는 푸른 언덕 위에
荒涼有梵宮 거칠고 쓸쓸한 불당이 있구나.
定僧依竹塢 둑의 대나무에 의지해 스님이 편안하고
睡鴨傍蘆叢 갈대 숲 곁에서 오리는 졸고 있네.
山影涵虛碧 산 그림자 푸른 하늘에 잠기고
波聲漾半空 물결 소리는 하늘 가운데 출렁이네.
道人挽我袖 도인이 나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一宿聽松風 하룻밤을 묵으면서 솔바람 소리 듣자하네.
俯仰 굽어보고 쳐다봐도
俯仰杳無垠 내려 보고 쳐다봐도 아득히 끝없는데
其中有此身 그 가운데 이 몸 태어나 사는구나.
三才參竝立 삼재에 참여하여 나란히 서니
一理自相分 한 가지 이치가 자연히 나누어진다.
形役爲微物 몸에 구속되어 보잘것없는 사람 되니
躬行卽大君 몸소 실천하면 큰 인물이 되는 법이도다.
古今何間斷 예와 지금에 무슨 단절이 있을까
堯舜我同群 요임금 순임금도 나와 한 무리인 것을
盆竹(분죽) 화분 속 대나무
爲憐貞節操 곧은 절개와 지조를 사랑하여
種得小瓦盆 작은 질그릇 동이를 얻어 심었다네.
玲瓏如有態 영롱하고 환한 듯한 모습이 있어
瀟洒又無煩 맑고 엄숙하며 또한 번잡하지 않구나.
嫋嫋風吹動 바람 불어오니 산들산들 흔들리고
漙漙露滴飜 흠뻑 내린 이슬이 싱그럽게 흐르네.
誰知一撮土 누가 알리오, 한 줌 흙 속에서
迸却化龍根 틈새로 솟아올라 용 될 뿌리 있음을.
洒 - 씻을 세, 뿌릴 쇄, 험 할 최, 공손할, 선, 엄숙하다.
不覺 어느덧
不覺一年過 어느덧 일 년이 지나가는데
逢秋今又冬 가을을 맞았는데 이제 겨울이구나
靑山爲伴侶 청산은 친구가 되고
茅屋長疏慵 초가집에서 길이 게으르기만 하다
夜靜風生竹 밤은 고요하고 대숲에 바람
庭寒月掛松 뜰이 차갑고 소나무엔 달이 걸려있다
禪房愛無事 선방에는 일이 없어 좋고
非學坐如樁 공부하지 않으면 말뚝처럼 앉아 있다
不出 나가지 않다
不出杜山門 산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前峯下鹿群 앞산에 사슴이 무리지어 내려오네.
床前鳴蟋蟀 난간 앞에는 귀뚜라미 소리 내고
庭畔有椿萱 뜰 밭두렁은 참죽과 원추리가 차지하네.
猒客常稱疾 사람들이 싫증나니 늘 병을 핑계하고
勞煩欲默言 고달프고 성가시어 말하기도 싫어하네.
小窓誰是伴 작은 창가에 그 누구와 짝을 하나?
安息一爐熏 화로 하나 취하여 편안히 쉬리라.
琵瑟山 비슬산
山水厭山塵土去 산골짜기 물은 산이 싫어 속세로 가고
山僧憎俗碧雲臥 산승(山僧)은 속세에 증오를 느껴 푸른 구름 속에 누웠다.
水乎爾性元淸淨 물아! 너의 성정은 원래 맑고 깨끗함이니
莫向人間反復歸 다시는 인간세상으로 돌아오지 말기를.
飛瀑 폭포
穿雲直下亂峯前 구름 뚫고 바로 떨어져 봉우리 앞을 어지럽히며
一道銀河落九天 한 줄기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네.
遶石喧豗山鬼泣 바위를 휘돌아 시끄러워 산은 귀신처럼 울고
傾湫澹泞毒龍眠 기운 연못 맑은데 독한 용이 잠을 자네.
人間萬恨從敎洗 인간의 수많은 한을 씻게 해주는데
客裏孤懷勿使湔 나그네 외로운 회포는 씻어주지 못하네.
却愧明朝入塵土 내일 아침 속세로 돌아가
寒聲和夢故依然 시원한 폭포소리가 꿈결같이 아득해질까 도리어 부끄럽네.
四季 一朶始開 사계절 내내 늘어져 있다가 마침내 꽃을 피우네
一點臙脂惱殺人 한 점 연지 빛은 사람을 몹시 괴롭히고
含羞半掩自精神 수줍음 머금고 반쯤 숨어도 스스로 뛰어나 신비롭구나.
若敎解語應傾國 만약 말뜻을 알도록 가르치면 아마도 나라가 기울텐데
不獨西施與太眞 어찌 서시와 더불어 양귀비에 이르지 아니할까?
一朶始開 - 갓 피어난 장미 한 송이
四節回文
春 봄
紅杏山桃溪寂寂 붉은 살구 산 복숭아 시냇가에 쓸쓸이 섰고
小塘春草夢依依 작은 연못가의 봄풀은 꿈속에 아른거리네.
東城鎖霧香風暖 동쪽 성은 안개에 잠기고 향그러운 봄바람 따뜻하니
北舍啼鶯乳燕飛 꾀꼬리 우는 북쪽 집에는 어린 제비 나는구려.
回文詩
飛燕乳鶯啼舍北 제비 날고 어린 꾀꼬리는 집의 북쪽에서 울고
暖風香霧鎖城東 따뜻한 바람에 향기로운 안개는 동쪽성을 가리네.
依依夢草春塘小 아련한 꿈 속의 풀과 작은 연못에 봄이오니
寂寂溪桃山杏紅 쓸쓸한 시냇가의 복숭아와 산살구는 붉어지네.
夏 여름
涼簟藤床寒徹骨 서늘한 대자리 등나무 걸상에 한기가 뼈에 사무쳐
錄科氷咸冷侵進 초록이 무성하니 얼음같이 차서 냉기가 엄습함을 더하네.
堂圍竹影淸風産 집을 두른 대 그림자는 맑은 바람 일으키고
檻透山光碧黛顰 난간에 들어온 산 빛에 푸른 여인의 눈썹을 찌푸리네.
回文詩
顰黛碧光山透檻 찌푸린 여인의 눈썹 푸른빛이 산에 드는 걸 막고
山風淸影竹圍堂 산위의 바람에 맑은 그림자 대나무가 집을 에워쌌구나.
進侵冷咸氷科綠 냉기 머금고 더 엄습하여 푸르고 무성하여 식히니
骨徹寒床藤簟涼 뼈를 뚫는 차디찬 평상은 등나무 대자리처럼 서늘하구나.
秋 가을
疏桐砌雨催更逼 오동나무 성글고 섬돌에 내리는 비 재촉하듯 들이치니
泣露秋蛩語草叢 걱정스런 가을 귀뚜라미 풀숲에 모여 우는구려.
虛白漾波江吐月 하늘은 빛나고 출렁이는 물결은 강물에 달을 토하고
冷光搖葉竹生風 찬 빛이 잎을 흔드니 대나무에 바람이 이네.
回文詩
風生竹葉搖光冷 대 잎에 이는 바람 쓸쓸한 풍경을 흔들고
月吐江派漾白虛 달을 토하는 강물의 물결은 밝은 하늘에 빛나네.
叢草語蛩秋露泣 풀숲의 귀뚜리들 울면서 가을 이슬 걱정하는데
逼更催雨砌桐疏 다시 다그치듯 재촉하는 비에 오동잎 겹쳐 깔리네.
冬 겨울
明窓紙帳橫梅小 빛이 잘 드는 종이 막 창의 어린 매화 곁에
談月所廉英竹韓 으스름 달빛 청렴하니 난간의 대나무 뛰어나구나.
晴雪壓枝棲鶴老 눈이 그치니 숙인 가지에 늙은 학이 깃들고
冷風敲夜點星團 싸늘한 바람이 밤을 알리니 별들은 모여 불을 밝히네.
回文詩
團星點夜鼓風冷 별들은 밤새 불을 켜고 쓸쓸한 바람은 시간을 알리니
老鶴棲枝壓雪晴 늙은 학은 가지에 깃들고 눈이 진정되어 맑아지네.
韓竹英廉所月談 난간의 대나무 재주가 검박하여 달빛을 기리는 바
小梅橫帳紙窓明 작은 매화는 장막을 가로지르듯 종이창을 밝히네.
乍晴乍雨 잠시 개였다가 다시 비 내리고
乍晴乍雨雨還晴 개였다가 비 내리고 비 내리다 다시 개인다
天道猶然況世情 하늘도 이러한데 하물며 세상의 인정이야
譽我便是還毁我 나를 칭찬하다 도로 나를 비난하고
逃名却自爲求名 이름 버리고 자신을 숨기더니 명성을 구하려하네
花開花謝春何管 꽃이야 피던 지던 봄이야 무슨 상관이랴
雲去雲來山不爭 구름 가고 오는데 산이 다투겠는가
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들에게 기이르노니 모름지기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 환락을 붙잡아도 평생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山居 산에 살며
山勢周遭去 산세는 주변을 둘러싸고
江流縹妙廻 강물은 흘러 옥빛처럼 흘러간다
一鳩鳴白晝 비둘기 한 마리 한낮을 울어대고
雙鶴啄靑苔 한 쌍의 학은 푸른 이끼 쪼아 댄다
拄笏看雲度 홀을 잡고 흘러가는 구름 바라본다
吟詩逼雨催 시 읊으며 비를 재촉하노라
我如陶然靖 나는 도연명과 같아서
守拙碧雲堆 푸른 구름 더미에 쌓여 졸함을 지켜 사노라
山居集句
洗耳人間事不聞 귀를 씻으니 인간세상의 일은 들리지 않고
山林投老倦紛紛 산림 속에서 늙어가니 개으름도 분분하다.
白頭不義公侯事 늙어서 공후(公侯)의 일을 논하지 아니하고
最愛深溪枮白雲 흰 구름 더불어 깊은 시내를 사랑했네.
山房卽事 산속 집 방에서 일어나는 일
蠮螉何事負螟蛉 구멍 벌은 무슨 일로 배추벌레를 지고서
盡力提持苦上楹 힘을 다해 잡고 끌어당겨 기둥 위에서 힘쓰네.
紅蓼深深飛蛺蝶 여뀌는 붉어져 무성히 우거져 호랑나비 날고
靑蒲獵獵立蜻蜓 푸른 부들 가벼이 흔들리니 잠자리 머무는구나.
病餘自喜身初健 병을 앓은 뒤 몸이 전처럼 건강하니 절로 기쁜데
老去堪驚髮又星 늙어 가는 두려움 참지만 머리털은 또 희뜩해지네.
悶極不知書大字 번민이 심하여 책의 큰 글씨도 알지 못하고
布衫飜倒揷花甁 병에 꽃을 꼽으려니 베적삼이 뒤집혀지네.
山北 산의 그늘
料峭風尙寒 이른 봄 쌀쌀한 바람이 오히려 차갑고,
積雪映峯巒 쌓인 눈 산봉우리에 가득하다.
草抽微霜萎 풀은 얇은 서리 약하게 밀어올리고,
花開凍雨殘 꽃은 언 봄비 뚫고 피네.
暖簷僧獨曝 따뜻한 처마 아래 중 홀로 햇빛 쪼이고,
高樹鳥相歡 높다란 나무 위에 새들 서로 지저귄다.
下界春應盡 이 땅은 봄 맞을 준비 다 되었고,
檉枏葉正繁 정염나무 잎은 곧 바로 무성하리라.
山畬 산 속 따비밭
石田多犖确 돌밭에 자갈이 너무나 많아
高下半藤蘿 높고 낮은 곳 절반이 덩굴이라.
地薄多生朮 땅이 척박해 잡풀이 많고
畦危不長禾 둔덕은 높아 벼가 자라지 못한다.
飢烏鳴樹杪 굶주린 까마귀 나무 끝가지에서 울고
羸犢臥陂陀 여윈 송아지 비탈에 누워있다.
縱是山深處 비록 산이 깊은 곳이나
年年可免科 해마다 세금을 면할 수가 없어라.
山亭 산 속 정자
白雲爲帳碧山屛 흰 구름 휘장 삼고 푸른 산을 병풍 삼으니
絶勝羲之修禊亭 뛰어난 경치는 왕희지의 수계정 같아라.
莫羨石家椒百斛 석씨 집의 호초 백 섬을 부러워하지 말라
苔錢十萬散中庭 이끼 돈 십만 냥을 뜰 가운데에 흩어 뿌리리라.
修禊亭 -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禊事也. 회계산 북쪽 난정(蘭亭)에 모였는데, 계제사(禊祭祀)를 지내기 위해서이다.
山中 산중
山中與猿鳥 산중에서 원숭이와 새와 더불어
共結歲寒盟 큰 추위에 함께 다지길 맹세했네.
有意芒鞋曳 뜻이 있으니 미투리 집신을 끌고
無心竹徑行 생각도 없이 대숲 길을 간다네.
園中瓜瓞長 뜰 가운데에 오이 덩쿨 자라고
墻下薜蘿生 담장 아래 담쟁이덩굴 싱싱하네.
冉冉百年內 약하디 약한 백년 친하게 지내며
都忘寵若驚 대충 잊게 영화와 놀람은 같다네.
山中竹 산 속 대나무
綠竹出巖隈 가파른 낭떠러지에 솟은 푸른 대나무
托根巖下土 바위 아래 땅에다 뿌리를 붙였구나.
老去節愈剛 늙어갈수록 더욱 굳어지는 절개
蕭蕭藏夜雨 우수수 밤비를 머금었구나.
根迸化蒼龍 뿌리는 뻗어 푸른 용으로 되고
枝短不棲鳳 가지는 짧아 봉황이 깃들지 않는구나.
幹凌雪霜侵 줄기는 차가운 눈서리를 능멸하나
影受風月弄 그림자는 바람과 달의 희롱을 받는구나.
却恨長深谷 도리어 한스러워라, 깊은 골짜기서 자라
欠遇徽之諷 왕희지의 풍자를 만나지 못한 것을.
我來久徘徊 내가 와서 오랜 시간 배회하다
嘯吟忘出洞 휘파람 불며 시 읊으며 골짝 벗어남 잊었다.
日暮輕颯起 해 저무니 가벼운 바람이 일어나니
戛戛相摩鬨 사각사각 부딪히는 소리 들린다.
似歎無知音 그 소리 몰라줌을 탄식하는 듯
空山悲憁恫 빈 산에 아쉬운 듯 서글퍼지는구나.
山行卽事 산행 중 즉흥적으로
兒打蜻蜓翁掇籬 아이는 잠자리 잡고 늙은이 울 고치고
小溪春水浴鸕鶿 개울 봄물에는 가마우지 멱을 감는다
靑山斷處歸程遠 푸른 산도 다한 곳, 갈 길도 먼데
橫擔烏藤一个枝 검붉은 등나무 지팡이 메고 걸어가노라.
三角山 삼각산
三角高峰貫太靑 삼각산 높은 봉오리가 하늘을 꿰뚫었으니
登可接撫北斗星 올라가 북두성을 따서 어루만질 만하네.
非徒岳峀雲霧興 한갓 멧부리에서 구름과 안개가 일뿐만 아니라
能使王都萬世榮 능히 왕도로서 만세까지 영화를 누리리.
三角祥煙 삼각산의 좋은 경치
三峰高聳祐我邦 세 봉우리 높이 솟아 우리나라를 도와주는데
祥煙覆頂垂如幢 상서로운 아지랑이 산봉우리를 덮어 마치 깃발을 느려놓은 듯하네.
列刹相望映金碧 여러 절들은 총총히 서 있어서 금빛, 푸른빛이 빛나고
滴翠濃抹浮軒窓 산의 푸른 기운은 짙게 번지어 집안의 창문까지 적시네.
惟嶽降神生甫申 큰 산이 신을 내려 훌륭한 재상을 탄생시킨다고 하는데
彼蒼垂象臨鴻庬 저 하늘, 좋은 징조를 내려 주기 위하여 이곳에 보냈겠지.
護我龍圖千萬歲 우리 왕업을 천년만년 보호하기 위하여
鬱蔥佳氣衝天杠 저 산의 번창한 기운 하늘을 향해 솟았네.
上四佳亭 사가정에게 올리다
抱病年來與世疏 병을 안고 나이드니 세상과 더불어 멀어지고
蘧蒢夢幻又籧篨 까마중 패랭이꽃 헛된 꿈 대자리에 거듭되네.
出門西望長安道 문을 나서 서쪽을 바라보니 서울길이라
渺渺樹雲愁殺予 아득히 무성한 나무에 나는 근심을 지우네.
窯原春草綠如茵 요원의 봄풀은 방석처럼 푸른데
得句池塘想轉新 못가에서 시 얻으니 생각 더욱 새로워라.
山舍蕭條寒食近 산속 집이 쓸쓸하니 한식이 가까운데
杏枝風緊眼初勻 살구 가지에 바람 얽혀 두루 첫눈 트는구나.
書感 감회를 적다
1
不向金門浪掛名 궁궐 문 향해 방자하게 이름을 걸지 않고
却來靑嶂解塵纓 푸른 산으로 다시 돌아와 속세의 갓끈을 풀었네.
花如識面逢人笑 꽃은 얼굴을 아는 듯 사람 만나면 웃고
鳥不知情隨意鳴 새는 정을 알지 못하니 제멋대로 우는구나.
小院樹陰靑裊裊 작은 집의 나무 그늘엔 푸른 빛 간드러지고
滿園蔬菜綠菁菁 뜰에 가득한 나물과 채소 푸르게 우거지네.
一生可是無功業 한 평생을 가히 아무런 공적 없으니
管却淸溪洗耳聲 맑은 시내에 귀 씻는 소리나 관리하리라.
2
富貴生前身後名 죽기 전의 부귀와 죽은 뒤의 명예로
百年長是起愁城 많은 세월을 항상 근심 더욱 구축하네.
醉來偃臥方爲樂 취해 돌아와 누워 쉬니 바로 즐거움 되고
飽可閑眠始得榮 배불러 한가히 잠 드니 비로소 영화를 얻네.
點點遠山明似黛 점점이 있는 먼 산은 빛이 검푸르게 보이고
澄澄古澗淨如瓊 맑고 맑은 산골 물은 깨끗하기 구슬 같네.
幽居不用治生業 궁벽한곳에 살며 쓸데없이 생업을 익혀
荷製新衣筆代耕 연으로 새 옷 짓고 붓으로 밭갈이 대신하네.
書金鰲新話後 금오신화를 적은 후
1
矮屋靑氈暖有餘 작은 집에 푸른 담요엔 따스한 기운 넉넉하고
滿窓梅影月明初 매화 그림자 창에 가득하고 달이 처음 밝아온다
挑燈永夜焚香坐 기나긴 밤을 등불 돋우고 향 사르고 앉으니
閑著人間不見書 한가히 세상에서 보지 못한 글을 짓고 있노라
2
玉堂揮翰已無心 옥당에서 글 짓는 것은 이미 마음에 없고
端坐松窓夜正深 소나무 창에 단정히 앉으니 깊은 밤이라
香鑵銅甁烏几靜 향관과 동병과 오궤는 고요하기만 한데
風流奇話細搜尋 풍류스런 기이한 이야기 자세히 찾아본다
敍悶 번민을 늘어놓다
八朔解他語 여덟 달만에 남의 말 알아들었고
三朞能綴文 세 돌에 글을 엮을 수 있었네
雨花吟得句 비와 꽃을 읊어 싯구를 얻었고
聲淚手摩分 소리와 눈물 손으로 만져 구분 했네
上相臨庭宇 높은 정승 우리 집에 찾아 오셨고
諸宗貺典墳 여러 종중에서 많은 책을 선사했네
期余就仕日 내가 벼슬하는 날에는
經術佐明君 경학으로 밝은 임금 도우려 했네
西風 서쪽 바람
昨夜西風撼我幬 어젯밤 서풍이 나의 방 휘장에 불고
滿天星斗冷如流 하늘에 가득한 별은 흐르는 물처럼 차다.
菊含蓓蕾徑霜艶 국화 꽃봉오리는 서리 맞아 곱고
楓染燕脂映日羞 단풍은 연지 발라 햇빛을 수줍어한다.
曳曳雲飛汾水岸 질질 끌리듯 분수 가로 구름이 날아
蕭蕭葉墜洞庭舟 우수수 나뭇잎이 동정호로 떨어진다.
平生最是關心處 평생에 가장 마음 끌리는 곳
窓外梧桐葉葉愁 창밖 오동나무에는 잎마다 수심이 인다.
書笑 비웃는 글
其一
板屋如轎小 판자 집은 작은 가마와 같고
矮窓闔不開 난쟁이 창문 문짝은 열리지 않네.
階前鼯出沒 섬돌 앞엔 날다람쥐 출몰하고
簷外鳥飛回 처마 앞에는 새들이 날기를 피하네.
蕎麥和皮擣 메밀과 보리를 합하여 찧어 벗기고
葑根帶葉檑 순무 뿌리는 잎을 두른 무기 같구나,
和羹作餑飥 보리떡 수제비 만들어 함께 끓여서
喫了笑咍咍 먹기를 마치고 비웃듯 즐기며 웃는구나.
其二
鼠竊翻陶器 쥐들은 날듯이 질그릇을 훔쳐가고
烏爭落板簷 까마귀들 다투다 판자 처마에 떨어지네.
日長唯有睡 해는 길어 오직 졸음만 있으니
風靜可無簾 가히 주렴을 무시하듯 바람은 고요하네.
盤饌唯沈菜 소반의 반찬은 오직 오래된 나물에
床排只海鹽 다만 바닷물에 절인 걸로 음식상을 갖추네.
莫思多重味 더 좋은 맛을 삼가하여 생각하지 말고
下筯太廉纖 매우 검소하게 아끼며 젓가락을 내리네.
檑 - 무기 이름 뢰, 나무를 원기둥 모양으로 깎아 높은데서 밑으로 굴려서 적을 막음
書懷 회포를 적다
頭邊歲月苦奔流 머릿 가의 세월은 계속 흘러 달아나
不覺推遷又白頭 모르는 사이 옮겨 붙어 더 흰머리 되었네.
雉岳去年鋤火種 지난 해 치악산에 호미로 화전에 씨 뿌리고
鼇岑昔日治春疇 옛날에는 금오산에서 봄 농사를 지었다네.
飮峯啄澗吾生願 골짜기 쪼아 산에서 먹는 것 내 평생 원함이오
枉道從人已不求 사특한 길로 사람들 따라도 이를 구하지 못하네.
更擬好山移住處 좋은 산 다시 헤아려 살 곳을 옮기려니
碧雲秋色屬雙眸 푸른 구름 가을빛이 두 눈동자에 흡족하네.
碩鼠 큰 쥐
碩鼠復碩鼠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場粟 우리 마당의 곡식을 먹지 마라.
三歲已慣汝 삼 년째 벌써 너를 알고 지냈는데
則莫我肯穀 나를 살려 주지 않으려면
逝將去汝土 떠나서 장차 너의 땅을 버리고
適彼娛樂國 저 즐거운 나라로 가리라.
碩鼠復碩鼠 큰 쥐야, 큰 쥐야
有牙如利刃 날카로운 칼날 같은 어금니가 있어서
旣害我耘耔 이미 내 농사를 망쳐 놓았고
又囓我車軔 또 내 수레의 바퀴굄목마저
使我不得行 내가 가지도 못하게 해 놓고
亦復不得進 또한 다시 나아갈 수도 없게 해 놓았네.
碩鼠復碩鼠 큰 쥐야, 큰 쥐야
有聲常喞喞 소리도 늘 찍찍거리면서
佞言巧害人 간사한 말로 교묘하게 사람을 해쳐
使人心怵怵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네.
安得不仁貓 어디서 사나운 고양이를 얻어
一捕無有孑 한 번에 잡아 씨도 없게 할까?
碩鼠一産兒 큰 쥐가 한 번 새끼를 낳으면
乳哺滿我屋 젖먹이 새끼들이 내 집에 가득하리.
我非永某氏 나는 영모씨가 아니니
付之張湯獄 장탕의 감옥에 너를 넣고서는
塡汝深窟穴 너의 깊은 소굴을 메워
使之滅蹤跡 너의 발자취를 없애리라.
石耳 석이버섯
蒼崖萬丈仰難企 한없이 높은 절벽 올려보기도 어려운데
雷雨長此石上耳 늘 이 천둥과 비속에 돌 위에서 무성하구나.
內面髼鬆外面滑 안쪽은 거칠게 헝크러지고 외면은 미끄러워
摘來煩撋淸似紙 번거롭게 비벼 따 내면 종이같이 깨끗하네.
煎以鹽油甛且香 기름에 절이어 달이면 달고 또 향기롭고
悅口芻豢那擅美 입에 맞는 좋은 음식 오로지 편안히 즐기네.
啖餘不覺肝膽涼 씹고 나니 속마음 서늘한 것 깨닫지 못해도
知爾胚胎松石裏 거친 돌 속에서 움터 자란 그를 알겠구나.
以此撑腸棲碧峯 이로 인해 배부르게 푸른 봉우리에 살면서
居養已移氣與體 살며 기르니 이미 몸과 더불어 기로 변했네.
已忘十載雲泥蹤 십년의 구름과 진흙의 자취를 이미 잊었으니
不須臟腑時出洗 모름지기 때맞춰 내장을 드러내 씻을 줄 모르네.
芻豢 - 풀을 먹는 소, 말, 양 등과 곡식을 먹는 개, 돼지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仙洞 신선골
細徑縈紆接翠巒 오솔길 휘돌아 푸른 산에 이어지고
寒泉倒瀉落琤潺 서늘한 샘물 거꾸로 쏟아져 맑은 냇물에 떨어지네.
石床香桂煙霞老 돌마루 향기로운 계수나무엔 노을이 지고
玉鼎靈砂日月閑 가마솥엔 약재가 끓고 세월은 한가롭다.
龍漢赤明空劫外 공겁의 시간 밖으로 용한이 붉게 빛나고
瑤池玄圃上淸間 상청사이엔 요지와 현포가 펼쳐졌네.
觀棋竟夕忘歸思 바둑 구경하다가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고
雲遶天壇鶴未還 구름 두른 천단엔 학이 아직 돌아오지 않네.
雪覆蘆花 눈 덮인 갈대밭
滿江明月照平沙 강에 가득한 밝은 달빛 모래 벌을 비추고
裝點漁村八九家 어촌 열아홉 가구를 환하게 장식 하는구나
更有一般淸絶態 다시 하나의 맑고도 뛰어난 자태 있으니
暟暟白雪覆蘆花 차갑게도 흰 눈이 갈대꽃을 눌러 덮었구나
雪夜
紛紛飛雪洒寒簷 펄펄 날리는 눈은 차가운 처마에 내리고
月色薰窓映細簾 은은한 창가의 달빛은 가는 발을 비추는구나.
地爐火燒炕子暖 땅 화로에 불을 지피니 구들은 따뜻하고
擁衾高臥意懕懕 이불 두르고 높이 누우니 마음은 편안하도다.
雪岑 설잠(김시습의 法名)
萬壑千峰外 천 봉우리 만 골짝 저 넘어
孤雲獨鳥還 외로운 구름 새 홀로 돌아가네
此年居是寺 금년은 이 절에서 머문다만
來歲向何山 내년에는 어느 산으로 가야할지.
風息松窓靜 바람 쉬매 소나무 창 고요하고
香銷禪室閑 향불 꺼진 선실은 한가롭네.
此生吾已斷 이생도 나와는 이미 인연을 다해
棲迹水雲間 물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리라.
雪曉 눈 내린 새벽에
1
滿庭雪色白暟暟 뜰에 가득한 눈빛은 희고 아름다워라
瓊樹銀花次第開 옥나무 은빛 눈꽃이 차례로 피어나는구나
向曉推窓頻著眼 새벽 되어 창문 열고 자주 눈을 돌리니
千峰秀處玉崔嵬 일천 봉우리 빼어난 곳에 옥이 높게도 쌓였구나
2
我似袁安臥雪時 내가 원안처럼, 눈에 누워있어
小庭慵掃捲簾遲 조그마한 뜰도 쓸기 싫고, 발마저 늦게 걷는다
晩來風日茅簷暖 늦어 부는 바람과 해, 초가집 처마 따뜻해져
閒看前山落粉枝 한가히 앞산을 보니, 나뭇가지에서 떡가루가 떨어진다
3
東籬金菊褪寒枝 동쪽 울타리에 금국화의 퇴색된 울타리
霜襯千枝个个垂 서리 내의 천 가지에 하나하나 널어놓았다
想得夜來重壓雪 생각컨대, 밤 동안에 무겁게 눌린 눈
從今不入和陶詩 이제부터 도연명의 화운시에도 들지 못한다
誠意 진실되고 정성스러움
靈臺宰萬物 마음이 만물을 주재하는데
出入意先驅 나고 듦에 뜻이 먼저 몰려간다.
發於幾微處 아주 은밀한 곳에서 출발하여
奔乎善惡途 선과 악 위의 길을 달려간다.
毋欺心自慊 속이지 않으면 마음 절로 만족하고
不愧體常舒 부끄러움이 없으면 몸이 항상 편안하다.
此是誠中驗 이것은 정성속의 경험인 지라
君其愼獨無 그대는 신독(愼獨)을 조심하는지.
愼獨 - 남이 보지 않는 곳에 혼자 있을 때에도 道理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하여 말과 행동을 삼감
誠之來學人天眼目 수락산 시절에 성지라는 사람을 위하여, 송나라 지소(智昭)의 저술인 人天眼目을 강학한 바가 있었다
菩提涅槃路非遙 보제(菩提)와 열반의 길 아득한 것 아니니
參介工夫在半朝 그깟 공부랬자 반 나절의 일일 뿐.
一句透時千句透 한 구를 꿰뚫을 때 천 구절이 환해지고
聖心消處妄心消 성심 지운 곳에 망심도 지워지네.
祖燈似續皆吾分 조등(祖燈)을 잇는 것은 다만 나의 문제이니
心印傳持不外邀 심인(心印)의 전지(傳持)를 밖에서 맞을 일 아니지.
但得惺惺方寸地 그저 이 마음 이치에 깨어있다면
何論三句與三要 3구와 3요는 따져 무엇하리.
世故 세상 도리
世故屢多變 세상 도리가 자주 변하니
惻惻傷我心 가엾고 슬프게 내 마음 애태운다
朝畏豺虎關 아침에는 승냥이와 호랑이 소굴 두렵고
暮避荊棘林 저녁에는 가시나무 우거진 숲을 피한다
冉冉白日飛 유유히 빛나던 해는 떨어지고
鼎鼎光陰老 빠르게 흐르는 세월에 늙어만 간다
丈夫在世間 사나이 세상에 있으면서
胡不展懷抱 어찌 품은 뜻 펴지 못 하는가
人生如磨礪 인생은 닳아 없어지는 맷돌갈이와 같아
磨盡自有時 다 갈아내는 것도 스스로 때가 있도다
直須愼行藏 정직에는 마땅히 행장을 근신하며
志大終有期 뜻이 크다면 끝내 기약이 있으리라
天如使不鳴 하늘이 만약 울지 못하게 한다면
立言要後知 글을 적어 후세 사람들이 알게 하리라.
蘇武贊 소무를 기리며
蘇武使虜 소무는 오랑캐에 사신 갈 적에
手把旄節 손에 한나라의 깃발을 잡았다오. 節:깃발, 기치.
常殺衛律 우상(虞常)이 위율(衛律)을 죽이려 하여
連副坐律 우상 때문에 위율에게 죽게 되었네.
武自刎頸 소무는 자결하려 하였고
幾死復息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났네.
律又擬劍 위율이 또다시 칼을 겨누었으나
神色自若 정신과 안색이 태연하였네.
知其不伏 흉노는 그가 굴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幽于大窖 큰 움 속에 가두었네.
飢絶飮食 음식이 떨어져 굶주리니
和旃嚙雪 눈을 씹어 털방석의 털과 함께 삼켰다오.
海上牧羝 바닷가에서 숫양을 치니
歸望益絶 귀환할 희망 더욱 끊겼네.
飢堀野鼠 굶주리면 들쥐의 구멍을 파고
啗去草實 풀과 열매를 먹었으며
坐臥起居 앉고 눕고 기거할 때에
常杖漢節 항상 한 나라 깃발 잡았네.
節旄盡落 깃발의 털이 다 해졌으나
向漢誠切 한 나라를 향한 정성 간절하여,
李陵誘言 이릉(李陵)의 꾀는 말
終不聽閱 끝내 듣지 않았다오.
惠語虜使 상혜(常惠)가 오랑캐 사신을 속여
誣傳書札 서찰을 전하였다고 거짓말하게 하였네.
生還漢地 한 나라로 살아 돌아오니
愁腸斯割 근심하는 마음 이에 끊어졌네.
猗嗟蘇子 아, 소무여
忠誠貫日 그 충성 태양도 뚫을 만하네.
笑浮生兼慶岑寂 덧없는 인생 비웃으며 쓸쓸하고 적막한 복을 포용하다.
自笑營生薄 스스로 비웃으며 야박한 생을 꾀하고
而無長者風 그러나 무시하네 거부들의 풍속들을.
客至從無語 손님이 이르면 말도 없이 시중 들고
貧來任固窮 가난이 와도 곤궁함 겪는 것 능하다네.
題詩聊遣寂 시를 적으며 쓸쓸히 보내기를 즐기고
擲筆欲摩空 붓을 던져서 허공을 스치길 좋아하네.
老去壯心在 늙어 가면서도 견고한 의지가 있으니
欣聆松院風 소나무 뜰의 풍도를 즐기며 따르네.
昭陽江 소양강에서
渡頭煙暝夕陽波 안개 어둑한 나루에 석양의 물결
一葉扁舟一棹歌 일엽편주엔 한결 같은 노 젓는 노래.
鷗鷺不管人世變 물새와 백로는 세상사람 변해도 간섭치 않고
雙雙飛過上灣渦 소용돌이 물굽이 위로 쌍쌍이 날며 지나가네.
小言 작은 걸 말함
秋毫作紐繫蟭螟 가을 터럭을 매듭 지어 하루살이 묶었더니
撞著蚊眉墜薄翎 모기 눈썹에 부딪혀 얇은 깃이 떨어졌네.
細析微塵裁物像 작은 먼지 가늘게 쪼개 물건 형상을 만들고
精雕纖刺塑猴形 가는 가시에 정성스레 새겨 원숭이 모양 만드네.
粉糜鏡面團團點 거울 표면의 가루 부수어 점을 둥글게 모으니
輕霧空中細細零 가벼운 안개처럼 공중에서 잘고 가늘게 떨어지네.
坐看秋天蠅一箇 가을 하늘 앉아서 바라보니 파리 한 마리가
翩翩扣翼上靑冥 날개 치며 푸른 하늘 위로 훨훨 나는구나.
蟭螟 - 강물과 개천가에는 아주 작은 벌레가 있으니, 이 벌레를 '초명(蟭螟)'이라 불렀다. 이 벌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 蚊[문: 모기]의 속눈썹 위에 놓여 있어도 모기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심지어, 얼마나 작은지 모기의 눈썹 속에서 집을 짓고 새끼를 까고 살아도 모기는 초명의 살림살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자> '소요유편', <열자>'탕문편'
掃葉 낙엽을 쓸며
掃葉聲中午夢驚 잎을 쓰는 소리 속에 낮 꿈에 놀라
起看東嶺白雲生 일어나 보니 동쪽 고개에 흰 구름이네.
直將魚鳥無心趣 무릇 온순한 물고기와 새는 서두는 마음도 없어
剩得煙霞不世情 안개와 노을 길게 이르니 세상의 실상이 아니로다.
簾外菊香人正靜 발 밖의 국화 향기에 사람들 정말로 조용하고
庭前苔潤雨初晴 비가 개이기 시작하니 뜰 앞의 이끼는 윤이 나네.
無端起我悲秋興 무단히 가을의 슬픔이 나에게 일어나기 시작하여
細讀離騷心未平 이소경을 자세히 읽어도 마음은 편치 못하네.
疏雨 성긴 비
疏雨蕭蕭閉院門 소슬한 가랑비에 문을 닫고
野棠花落擁籬根 해당화 떨어져 울타리 밑에 쌓였구나
無端一夜芝莖長 까닭 없이 밤새도록 지초 줄기 자라나
溪上淸風屬綺園 개울 위로 불어오는 맑은 바람 기원과 같아라
小雨 보슬비
天街小雨灑紛紛 서울 거리에 보슬비 분분히 뿌려
半作靑煙半作雲 반은 푸른 안개 반은 구름이 되는구나.
獨掩柴關人正靜 혼자 사립문 닫으니 인적은 고요한데
一聲泥滑隔山聞 진흙덩이 미끄러지는 소리 산 건너에서 들려온다
笑浮生兼慶岑寂 덧없는 삶 웃어넘기고 한적한 삶이 다행하다
自笑營生薄 나의 삶이 박복함을 스스로 비웃으니
而無長者風 장자의 풍도가 없어서라.
客至從無語 손님이 와도 그와 말도 없고
貧來任固窮 가난이 와도 궁한 대로 맡겨두노라.
題詩聊遣寂 시를 지으며 그런대로 적막하게 살며
擲筆欲摩空 붓을 던져 허공을 만져보련다.
老去壯心在 늙어가도 젊은 마음은 여전해
欣聆松院風 흔연히 솔 가득한 집에 부는 바람 듣는다.
松菌 송이버섯
一夜松岡風雨足 하룻밤 솔 고개에 비바람이 넉넉하니
寒枝亂滴松花汁 찬 가지와 송화 그릇에 물방울이 가득 차네.
風薰日炙土髼鬆 바람 솔솔 햇살 가까워 땅은 느슨하게 헝크러지고
松釵落處蕈花白 솔 비녀 떨어진 곳에 버섯 꽃이 빛나네.
戴葉穿花頭角起 잎을 이고 꽃처럼 뚫고 상투 머리처럼 우뚝 솟아
稠處撥開盈什百 많은 곳에서 치켜들어 일어나 열배 백배 불어나네.
紫笠蒙茸酥釘長 자줏빛 삿갓 어두운 싹이 긴 못처럼 매끄럽고
嬌脆猶帶松花香 연하고 부드럽지만 오히려 송화의 향기를 띠었구나.
霜鹺烹出色味佳 흰 소금에 삶아 내니 빛과 맛은 훌륭하고
啖之已覺牙齒涼 얇은 어금니로 이를 씹으니 조금 후에야 깨닫네.
可堪作腊滿筠籠 조금 참고 대바구니 가득 채워 햇볕에 말려서
爛煮小钂秋後嘗 푹 삶아 작게 꿰어 가을이 지난 뒤에 맛보리라.
松濤 물결치는 소나무
松聲飜作海濤喧 솔 소리 뒤쳐 올라 바다 물결인양 소란한데
入耳淸音政不煩 귀에 든 맑은 소리 이제는 번거롭지 않아라.
澎湃有時搖我夢 솟구쳐 올라 때때로 나의 꿈결 흔들지만
一團和氣判胚渾 한 무리 화목한 기운 따뜻하게 느껴진다.
松絡 소나무 겨우살이
有石嵯峨千萬丈 높은 바위 솟아 천만 길이나 되고
有松楂牙三百尺 소나무처럼 뗏목처럼 삼백 자나 솟아있다.
劍戟攢天磨碧雲 칼과 창이 하늘을 뚫어 푸른 구름에 닿아
鬖髿長此靑絲絡 이곳에 푸른 겨우살이 수북이 자라있어라.
織女初洗金繭絲 직녀가 고치실을 처음으로 씻어내어
晒此蒼壁枯松枝 이곳 푸른 벽 마른 소나무 가지에 말리었다.
乃命蜚廉轉繅車 바람의 신 비렴에게 명하여 물레를 돌리게 하니
繅車無聲漫相儡 물레는 소리도 없이 아무렇게나 걸려있구나.
織女下顧憂彼猖 직녀는 내려다보며 저 미친 짓을 근심하며
怒拶和雲抛澗傍 노여워 구름과 마주쳐 골짜기에 던져버린다.
涓涓澗水更練洗 졸졸 흐르는 골짝 물에 다시 익혀 씻어
淡碧可織雲錦裳 옅은 푸른빛을 구름 비단 치마 짜는구나.
英靈如或相憫我 영령의 혹시라도 나를 불쌍히 여긴다면
惠我一兩應不妨 내게 한 두 벌을 주어도 무방하리라.
松林寺 松都 송도 송림사
蕭洒松林寺 쓸쓸하고 소탈한 송림사
僧閑客到稀 찾는 이 드물어 스님은 한가하네.
鳥啼春寂寂 새 울어도 봄은 외롭고 쓸쓸한데
花落雨霏霏 꽃이 지며 비가 부슬부슬 내리네.
地僻人寰少 궁벽한 곳이라 고을 사람도 적고
垣頹竹木圍 무너진 담은 대나무가 에워쌓네.
夕陽山色翠 저녁나절 해에 산 빛은 푸르고
淸影映朱扉 맑은 그림자 푸른 문에 비치네.
松明 관솔
臘灰初吹季月管 섣달 재(臘灰)를 처음 막달 피리에 불어
寒日苦短宵正長 찬 낮이 몹시 짧고 밤은 길고 긴데
山居不能煎膏燭 산에 사는 내가 촛불을 켤 수 없어
兀兀坐臥如風狂 오뚝이 앉았다 눕다 미친 사람 같구나.
閑敲石角十里聲 한가히 부싯돌을 10리나 울리게 쳐서
助我雪窓看道經 도경을 읽는 내 설창(雪窓)을 돕고자
地爐旋撥一點星 지로에 별똥만한 불을 꺼내어
爎以十枚當囊螢 열 가지에 붙여서 반딧불 대신
照之不減蘭膏明 비쳐보니 촛불보다 못하지 않아
千行萬點曢熒熒 만 줄 천 점이 아른아른 다 뵈누나.
眼前鳥兎鳥飛過 눈앞의 세월이 새 날 듯 지나가니
人生百歲如長亭 인생 백 년이 떠나는 나그네길
騰騰度日奈老何 훨훨 날 보내다가 늙어지면 어이하리
且須萬卷硏其精 만권을 펴놓고 정화를 연구하자.
考古閱今不自怠 고금을 상고하여 부지런히 공부하니
初如噉蔗冬建甁 처음엔 감자 먹기 끝내는 처마에 병 물 쏟기
顔何人哉睎則是 안자(顔子)는 누군고 바라면 나도 될 것
彼旣丈夫我亦爾 그가 이미 장부라면 나도 장부다.
縱不馳名聲譽間 비록 세상에 널리 이름은 못 날려도
變化咀嚼窺神鬼 변화를 씹으며 귀신을 엿보리.
君不見闕里一司寇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궐리의 한 공자
時聽楚歌悲德衰 쇠한 덕을 슬퍼하는 초가를 들었음을
又不見梁齊一迂臾 또 보지 않았는가 양제의 한 우활한 첨지가
戰國擾擾爭誹詆 전국이 시끄러이 다투어 헐뜯고 하니
自然驚談撼百世 자연 놀라운 말도 백 세 흔들어서
頑愚懶夫皆能師 완우ㆍ나부들도 다 스승 삼은 것을
不採而佩蘭何傷 캐서 차지 않은들 난초 어이 설워하리
萎死林薄揚其香 숲 서리에 시들어 죽어도 그 향기는 날리네.
昨者聖賢非今人 지난 날 성현들이 지금 사람 아니나
開卷讀想如相期 책을 펴고 생각하니 아침ㆍ저녁 만나볼 듯
勿言吾道方未夷 우리 도가 바야흐로 평탄치 않다 말하지 마소
終然天命不我欺 마침내 천명은 나를 안 속이네.
猩鼯哦哦山夜深 찍찍 박쥐 소리 산 밤이 깊어
閃閃松風吹簾幃 솨솨 솔바람이 휘장을 치는데
且取松明仔細看 관솔 등을 비춰서 자세히 보자
籧瑗六十知前非 거원이 60살에 전비(前非)를 알았다네.
丈夫行事不可煩 장부의 행하는 일 번거롭지 않을 것
大江浮木能自知 큰 강의 뜬 나무는 제가 알 수 있는 것
松明明滅欲三更 관솔 등불 가물가물 삼경이 되려는지
童子仰視星斗稀 아희 놈 쳐다보더니 별이 드물다네
借問蒼穹遙幾何 묻노니, 저 푸른 하늘은 얼마나 먼고
冷冷月露沾裳衣 선선한 달과 이슬이 내 옷을 적시노니.
松聲 소나무 소리
庭院松濤吹耳寒 정원의 소나무 물결이 귀에 불어 찬데
松釵飛入小欄干 소나무 부딪치는 소리 작은 난간에 불어든다.
從今始覺陶弘景 신선 도홍경을 지금에야 깨달았으니
自樂此聲泉石間 자연 속의 이 소리를 스스로 즐기리라.
도홍경(452~536) -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 사람으로 한때 벼슬을 한 적도 있었으나 도교사상의 영향으로 구곡산(句曲山) 산속에 은거하여 산중재상(山中宰相)으로 불림. 특히 소나무를 좋아해 온산에 소나무를 심고 소나무 소리를 즐겼다 함.
送僧還鄕 승려를 보내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다
遙指家山携影歸 멀리 고향의 산천을 가리키며 그림자 이끌고 돌아가는데
短筇高與塞雲飛 짧은 대나무 지팡이 높이 들고 변방의 구름과 함께 나네.
臨歧泣洒濕秋色 갈림길 앞에서 눈물을 뿌려 가을빛을 적시니
不盡西風吹別衣 끝없는 가을바람이 별의(別衣, 승복)에 불어오네.
松蕈 송이버섯
滋潤松花汁 송화즙이 물에 젖어 번식하며
髼鬆落葉塵 헝크러져 떨어진 솔잎을 더럽히네.
酥釘甛似蜜 매끄럽게 융기하니 꿀 같이 달고
紫笠滑於蓴 자줏빛 삿갓은 파초 따라 미끄럽네.
撲鼻淸香蘸 코를 닦아내고 맑은 향기를 담고
侵牙異味勻 조금씩 깨무니 뛰어난 향이 두루 미치네.
欲知無俗態 속된 모습이 없음을 알고자 하여
鹽豉淡如銀 메주처럼 절이니 담백하기 은과 같네.
送尋隱上人歸故山詩 尋隱上人(심은상인)을 보내고 산으로 돌아오며 지은 시
碧山深處結茅菴 푸른 산 깊은 곳에 띠풀 암자 지으니
菴下澄澄萬丈潭 암자 아래는 만 길 깊고 맑은 못이로세.
行處嬾從雲共去 구름 따라 같이 막연히 움직이고
住時閑與月同龕 절방에 달과 함께 한가로이 머무네.
煎茶小室烟生櫥 차 달이는 작은 방엔 부엌 인양 연기나고
采藥遠峯雲滿藍 약 캐는 먼 봉우리는 푸른 구름만 가득하네.
不二法門怎麽認 최상의 방법을 어찌 알련가?
前三三與後三三 前三三 後三三이로구나.
前三三與後三三 - 당나라 무착선사의 일화에 나오는 것으로 금강신(金剛神)이 보호하는 일반 대중을 말한다. 후에 선문의 중요한 참선화두의 하나
送牛上人遊方 우상인에게
手錫一介藤 등나무 지팡이 하나로
飄然何處去 바람 따라 어디로 가는가?
楓城千萬疊 첩첩 산 낙엽 지는 나무숲이요
碧苔濺芒履 푸른 이끼에 짚신이 다 낡았네.
槲葉滿山徑 떡갈나무 잎은 산길에 가득하고
幽鳥聲無數 온갖 새소리 들려오네.
暮扣白雲扃 해가 지면 흰 구름 속 문빗장 두드리니
蕭蕭半山雨 산중턱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네.
松亭 소나무 숲속, 정자
松亭寂寂松枝蟠 소나무 숲속 정자는 고요하고 솔가지는 서렸는데
幅巾藜杖來盤桓 복건과 청려장으로 짚고 와 서성거린다.
影落一庭碧苔潤 뜰에 가득 그림자 떨어지고 푸른 이끼 윤택한데
聲撼半天淸風寒 하늘 반만큼이나 흔들고 맑은 바람이 차갑다.
擧頭不見有赫日 머리를 들어도 붉은 해 있음을 보지 못하고
側耳時聽搖狂瀾 귀 기울이면 때로 거친 물결 소리 들린다.
茶煙颺處鶴飛去 차 끊이는 연기 날리는 곳에 학은 날아가고
藥杵敲時雲闌珊 약 절구 두드리는 때 구름이 머뭇거린다.
人散夕陽禽鳥鳴 사람들 흩어진 석양판에 새들 우는데
正是客去棋初殘 때맞춰 손님 떠나고 처음의 바둑만 남았어라.
睡起 자다가 일어나
山窓瞥飛鳥 산쪽 창문에 새가 나는 게 언뜻 보이고
朝日煖如烘 아침 햇살이 화롯불 같이 따뜻하구나.
書冊紛紛墜 서류와 책들 어지러이 섞여 널려있고
塵埃細細幪 티끌과 먼지는 자잘하게 덮혀 있네.
香銷銅篆冷 향기 사라진 꽃무늬 구리 그릇 싸늘하여
火烈竹篝融 대나무 모닥불 불사르니 따뜻하구나.
喜聽廚人語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 말 기쁘게 듣기를
蔬甘豆粥濃 맛난 나물에 진하고 맛좋은 콩죽이라네.
水落山聖殿庵 수락산 성전암
山中伐木響丁丁 산속에 나무치는 소리 정정거리고
處處幽禽弄晩晴 곳곳에 깊숙한 산새는 늦어 갠 날을 노래한다
碁罷溪翁歸去後 바둑을 마친 개울가 늙은이 돌아간 뒤
綠陰移案讀黃庭 푸른 그늘에 책상을 옮기고 황정경을 읽는다
水落殘照 수락산의 저녁 풍경
一點二點落霞外 차츰차츰 떨어지는 저녁노을 밖으로
三介四介孤鶩歸 서너 마리 외로운 오리들 둥지를 향해 돌아가네.
峰高剩見半山影 산봉우리가 높으니 아직도 산의 반쯤은 그늘진 것을 볼 수 있고
水落欲露靑苔磯 물이 잦아지니 푸른 이끼 낀 돌이 드러나려고 하는구나.
去雁低回不能度 돌아가는 기러기는 낮게 날아 산을 넘지 못하고,
寒鴉欲棲還驚飛 가을 까마귀 둥지로 돌아오려다가 도로 놀라서 날아가네.
天外極目意何限 하늘 밖으로 눈을 바라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데
斂紅倒景搖晴暉 붉은 색을 거둔 저 하늘 높은 곳에 맑은 빛이 흔들리네.
修山亭 산 속 정자를 수리하고
1
最愛玆亭好 이 정자의 아름다움을 가장 사랑하니
靑山映小簷 작은 처마는 푸른 산이 덮어 가리네.
經行雲去遠 지나며 바라보니 구름은 멀어져가고
穩坐鳥來覘 조용히 앉으니 새가 다가와서 살펴보네.
花草年年長 화초는 해마다 자라나고
風光歲歲添 경치와 풍경은 해마다 더해만 가네.
誅茅更修葺 띠를 베어다 다시 수리를 하니
幽境最淸恬 그윽한 경지 가장 한가하고 평온하네.
2
水石淸奇處 물과 돌이 맑고도 기이한 곳
山亭愜野情 산 속 정자의 질박한 정취에 흡족하다.
鳥歸庭有跡 새들이 돌아가니 뜰에는 자취만 남고
花落樹無聲 꽃이 떨어져도 나무에는 아무 소리 없다.
遊蟻緣階上 떠도는 개미 섬돌 따라 올라가고
飛蝗趯草行 나는 메뚜기 풀에서 뛰어 다닌다.
興來看物化 흥이 나서 만물의 조화를 살펴보니
頓覺脫塵纓 티끌 묻은 갓끈 벗은 줄을 문득 깨닫는다
3
列岫千層碧 늘어선 산은 천 겹이나 푸르러 있고
長江一帶明 긴 강은 한 줄기 띠처럼 선명하구나.
自與人世遠 스스로 인간 세상과 멀리 한 것은
非愛嶺猿盟 산과 잔나비의 약속 때문이 아니어라.
小徑緣松曲 길이 좁은 것은 소나무가 굽은 탓이며
荒階與草平 거친 섬돌이 평평함은 잡초가 함께 함이니.
此生須得意 이 평생에 모름지기 뜻을 이루어야 하거니와
無物不風情 정이 묻어나지 않는 사물은 없다네.
水草站 수초참에서
白石蒼蒼惹綠苔 빛이 바랜 흰 돌에는 푸른 이끼 엉겨붙고
碧峯高樹路崔嵬 나무 위 푸른 봉우리 길마저 높고 험준하네.
深深煙壑無人迹 안개 낀 골짜기 깊고 깊어 사람의 자취 없고
時有山花向我開 때맞추어 산속 꽃들이 나를 향해 피는구나.
水波嶺 수파령에서
小巘周遭水亂回 작은 봉우리를 두루 돌며 물이 어지러이 휘돌고
千章喬木蔭巖隈 일천 그루 높은 나무 바위 가에 그늘 지운다
山深不見人蹤迹 산 깊어 사람의 자취 보이지 않고
幽鳥孤猿時往來 깊은 산에 외로운 원숭이만 때때로 오고 간다
宿价川客館 개천 객관에 묵으며
峨眉山月小 아미산 작은 달
影落价川溪 개천계에 떨어진 그림자.
庭畔三更露 뜰에는 한밤의 이슬
天邊一雁嘶 하늘가엔 기러기 울음소리.
費吟供笑語 읊은 시 웃음거리 될까
狎韻整高低 압운의 높낮이를 조정해 본다.
明日安州路 내일 안주로 가는 길
遙岑與樹齊 먼 산봉우리 나무는 가지런하리라.
狎韻 - 글을 짓는데 운을 다는 것
宿德川別室 덕천 별실에서 묵으며
客裏靑燈秋夜長 객지의 푸른 등불, 가을밤은 긴데
床前蟋蟀語新涼 상 앞의 귀뚜라미는 가을을 노래한다.
倚窓詩思淸於水 창가에 기대니 흥취는 물보다 맑은데
更聽關河雁報霜 관하의 기러기 서리 알리는 소식 다시 들린다.
宿寶禪寺 보선사에 묵으며
寺壓澄江江水淸 무너진 절 맑은 강 강물은 고요한데
高低山影映澄明 높고 낮은 산 그림자 맑고 밝게 비치네.
居僧住久忘塵世 자리한 스님 오래 머물러 세상 티끌 잊고
慣聽滄波今古聲 검푸른 물결의 고금의 소리 익숙하게 듣는구려.
宿峯頂 산마루에서 자며
蘿月掛明鏡 소나무 겨우살이 사이에 맑은 거울처럼 달이 걸려있고
松泉鳴古琴 소나무 아래 샘물은 옛 거문고 소리인양 울린다.
夜深心地惺 깊어가는 밤, 마음은 고요해지는데
無復去來今 오가는 일 되풀이 하고 싶지 않네.
宿山村 산골에서 자며
雨歇千山暮 비 개니 온 산이 저물고
煙生碧樹間 푸른 숲에선 안개가 오른다.
溪橋雲冉冉 개울 다리에 구름이 뭉게뭉게
野逕草蔓蔓 들길에 풀이 덩굴져 있구나.
世事渾無賴 세상사 모두 믿을 수 없으니
人生且自寬 사람의 세상살이 스스로 참아야지.
何如拂塵迹 어떠할까, 세상 먼지 떨어버리고
高嘯臥林巒 휘파람 높이 불며 산속 숲에 누운 삶이여.
宿水村 물가 마을에서 묵으며
日暮投江岸 날 저물어 강언덕에 투숙하니
鯉風魚鼈鄕 잉어 바람, 물고기와 자라의 고향.
水禽驚客夢 물새에 나그네 꿈 놀라 깨고
漁笛引風長 어부의 피리소리 바람에 멀리 퍼진다.
浦口牙檣立 포구에는 돛대들이 서 있고
潮頭雪浪忙 조수의 머리에는 눈이 흰 물결 바쁘다.
人家依小渚 작은 물가에 인가가 붙어있고
蒲葦咽寒螿 갈대밭 속에는 찬 쓰르라미 흐느껴 운다.
宿村家 시골집에서 묵으며
信宿龜山子弟家 구산의 아들 집에서 이틀 밤을 묵는데
肆筵釃酒樂堪誇 자리 펴고 술 걸러 노래 즐기며 편안하네.
醉來夜寂燈花落 고요한 밤 취하니 등불 심지 떨어지니
擊缶聲中月欲斜 장구 치는 소리 뚫고 달이 지려하는구나.
純金鑄像 순금 불상
麗水蛟龍吐沴氣 여수의 교룡이 요기를 내뿜고
南蠻瘴霧亦可畏 남만의 독 안개도 두렵도다
觸熱淘沙一萬鈞 볕을 무릅쓰고 일만 근 모래 일어
往往數粒逢可貴 어쩌다 얻은 몇 알이 귀하기도 하여라
可畏可愕幾番遭 두렵고 놀라운 일 몇 번이나 겼었던가
入冶百練輸萬費 일백 번 단련하려 만금을 쏟아서
入貢帝庭便成珍 천자에게 올려서 보물이 되었도다.
幾年鑿破民腸胃 몇 년이나 백성의 내장을 쪼개었던가
數錠鑄出半尺許 몇 덩이를 녹여서 겨우 반 자 크기
面目過眞如幻語 참 모습보다 낫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
我王置之百寶臺 우리 임금이 백보대에 안치하시고
朝朝暮暮撞鐘鉏 아침저녁 종을 치며 주문을 읽는구나
壽國富民風雨序 길이 백성 넉넉하고 비바람 순조로워
四海安妥爲屳洲 온 세상 태평하여 신선 나라 되게 하소서.
一軀至小所係巨 비록 작은 몸뚱이지만 관계됨 매우 크니
頗可勞民蘇息不 자못 백성들 위로하여 살려 줄 것인가.
述古 옛 일을 말하다
1
自傀學儒術 공자의 학문 배운 것 스스로 부끄러우니
文章多誤身 문장을 잘하여 내 몸을 그르침 많았도다
衡門荒徑草 사립문 앞 거친 길에는 잡초만 돋는데
甲第聳車塵 거대한 집 앞에는 수레 먼지 솟아오른다.
佞諛眞良策 교묘히 아첨함이 정말 좋은 처세술이나
淸高異世人 맑고 고상한 이는 세상 사람과 다르도다.
不如終歲嘿 평생을 마치도록 말 없느니만 못하니
守道索居貧 도를 지키며 쓸쓸히 가난하게 살리라.
2
浩蕩乾坤大 넓고도 넓은 천지는 크기만 하고
逍遙天地寬 여기저기 다녀보니 천지는 넓기도 하여라.
焉能守蝸角 어찌 달팽이 뿔 만한 것을 지키어
祗是附鵬摶 다만 붕새의 날개에 붙어 살리오?
落日荒荒遠 지는 해는 어둠침침 멀기만 하고
淸溪激激寒 맑은 개울물은 철철 차갑게 흐른다.
空山有松柏 빈산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있어
歲暮倚盤桓 한 해가 저무는데 넓은 세상에 의지해본다.
3
此日何時盡 이 하루는 언제나 다 지날까?
明朝又復來 내일 아침이면 또다시 오리라
脩名終不立 이름을 닦아도 끝내 세우지 못하고
懷抱爲誰開 마음에 품은 것을 누굴 위해 열어보나?
見月中宵立 달구경하며 한밤중에 서 있었고
聽泉半夜哀 샘물소리 들으려 한밤에 슬퍼했다.
泉聲哀可羨 샘물 소리 애달파도 부러워함은
達海向蓬萊 바다에 이르면 신선 사는 봉래섬 향함이다.
4
園綺非無主 원기에 임금 없지 않았으니
龐梁豈乏時 방덕공과 양홍에게 어찌 시간에 쫓겼나?
所如如不合 따르는 바가 합당하지 않으면
且可可隨宜 옳은 것 따를 수 있으면 마땅하다 하리라
攫鼠鳶長飽 쥐 잡는 솔개는 길이 배부르고
沖天鶴屢飢 하늘을 찌르는 학은 여러 번 굶주린다.
古今皆若此 고금의 일이 모두 이와 같으니
惆悵獨奚爲 한탄하며 슬퍼하여도 홀로 어찌 하리오?
5
扶持無復望 붙들고 잡아줘도 다시 희망이 없으니
聖學太荒唐 공자님 학문은 이미 아주 황당해졌도다.
月露詞章淺 달과 이슬이나 읊는 글들은 천박해지고
秕穅訓詁長 쭉정이나 겨 같은 훈고도 길기만 하여라.
惟能捷科第 오직 재빨리 과거에 붙을 수 있나니,
不必擧賢良 반드시 어질고 착함을 배울 것 못된다네.
誰識漆雕意 칠 조개의 품은 뜻을 누가 알아줄까?
鑿圓空枘方 구멍은 둥근데 공연히 자루만 모나 있구나.
6
擬欲遊人世 인간 세상에서 놀아볼까 했으나
世談堪觸屛 말 많은 세상이 부딪고 막는다.
趨炎如救火 권세에 붙어 쫓는 것은 불에 섶을 던지는 것이고
疾技孰扶傾 재주를 질투하니 누가 이 위태로움 도와주랴?
霜冷蘭先瘁 서리가 차가워지면 난초가 먼저 시들고,
天寒橘欲零 날씨가 차가워지면 귤이 떨어지려 하는 법
側身吟獨立 몸 기울이고 시를 읊으며 홀로 서서
遙望四愁幷 아득히 사수시와 같은 분위기를 바란다.
7
不欲遺人世 인간 세상에 남아 있고 싶지 않고
孤高薄杳冥 고고하고 희미하고 그윽하게 살련다
畏途難着脚 길을 두려워하여 발붙이기도 어렵고
雲路易傷翎 길에 구름 일어 날개 상하기도 쉽구나.
白日哀猿狖 낮에는 원숭이 울음 애처롭고
黃昏激震霆 저녁에는 천둥과 벽력 격렬하구나.
遲遲終去魯 느리고 느려도 결국 노나라를 떠나
浮海作飄萍 바다에 뜬 부평초 같이 되어버린다.
8
甚矣吾衰也 심하구나! 내가 늙었음이여!
今其已矣夫 이제는 아마도 그만두어야 하리라
焉知仁義外 어찌 알았으랴? 인애와 정의 외에
亦有利名乎 또한 이익과 명예가 있다는 사실을...
厭見蘋中鳥 마름 속에 있는 새 보기 싫어
空瞻屋上烏 공연히 지붕위의 까마귀를 바라본다.
乘桴桴海日 노를 잡고 바다에 배 띄우던 날,
由也可從無 자유야, 쫓아가려나, 아니 가려나?
9
毋投與狗骨 개에게 뼈다귀를 주지 마라
集類亂喍啀 떼 지어 어지러이 다툴 것이니
不獨其群戾 제 무리와 어긋날 뿐만 아니라
終應與主乖 끝내는 주인과도 어그러지리라
尊周專戰伐 주나라를 높인다고 정벌 일삼고
安漢弑弑孩 한(漢) 왕실 안정시킨다며 아이 죽이다니
莫若嚴名分 무엇보다 명분을 엄정히 하여
勤王作止偕 다함께 근왕에 나서야 하리
10
述古傷千世 지난 일 말하다가 천 년의 일 상심하며
崢嶸歲暮時 분명하구나,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때이라.
候蟲依砌草 때를 알리는 벌레들은 뜰 풀에 의지하고
霜葉下庭枝 서리 맞은 나뭇잎은 뜰 나뭇가지에서 진다.
陳蔡傷吾足 진나라와 채나라에서는 내 발 다치고
齊梁莫我知 제나라와 양나라는 나를 알아주지 아니한다.
天時苟如此 천시가 진실로 이러할 진데
孔孟亦奚爲 공자와 맹자 또한 어찌 하겠는가.
菘菜肥 살찐 배추
1
菘菜肥時稻正香 배추는 때맞춰 알차고 벼는 바로 향기로와,
山童炊洗喚來嘗 산골아이 그릇에 밥을 짓고 불러와 맛보게 하네.
近來士夫還知味 요사이 사대부들 도리어 맛을 잘 알기에
盤上應誇食萬羊 소반위의 많은 양을 먹었다고 아마도 자랑하리라.
2
菘菜肥心嫩正濃 살찐 배추 속은 연하고 순수하게 진하며 맛이 좋고
葉間芒刺細髼鬆 잎가엔 작은 가시가 있고 더벅머리는 헝클어졌구나.
河鋤耘了偶然立 김을 매고 호미 둘러매니 허수아비 그럴듯이 서있고
白雲捲盡東南峯 동남쪽 산위의 흰 구름은 모두 거두어 사라졌구나.
習之山居一 골짜기의 꽃
野草有花名自春 들풀과 골짜기의 꽃에 봄이 왔는데
十年行脚眼中塵 10년의 떠돌이 생활 부질없네.
一聲啼鳥破閑夢 새 우는 한 소리에 꿈은 깨어지나니
鼎鼎光陰惱殺人 바삐 가는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네.
市街 시가지
紛紛車騎正喧闐 분분한 수레 기마 가운데 거마소리 시끄럽고
舞館歌臺接市廛 춤집과 노래 무대가 시장 가게에 접하였구나.
樹色遶城三十里 꾸민 나무가 성을 에워 싸 삼 십리 길이요
江流入海幾千年 흐르는 강물은 바다로 든지 몇 천년일런지 ?
嘉賓宴罷倡優散 반가운 손 잔치 파하니 뛰어난 기생들 흩어지고
太守歸衙將吏旋 태수가 관아로 돌아가니 아전도 대부분 돌아갔네.
況是太平無事日 더군다나 이렇게 태평하고 일이 없는 날이라
人人扶醉畫樓前 사람마다 그림 같은 누각 앞에 취하여 부축하네.
鳲鳩 뻐꾸기
均呼七子綠陰叢 푸른 수풀 그늘 속에 일곱 자식 두루 부르고
麥熟梅肥五月中 보리 익어가고 매실도 살찌는 오월 중순이어라.
叫斷年光渾不識 한결같이 우느라 세월이 변했음을 알지 못하니
隴頭桑葚已殷紅 언덕 위에는 벌써 뽕나무 오디가 검붉게 익었어라.
是是非非詩
年年年去無窮去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日日日來不盡來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年去月來來又去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天時人事此中催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是是非非非是是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해도 이것이 옳음 아니고
是非非是非非是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是非非是是非非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이 아닐진대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金삿갓의 "是是非非詩"는 이미 金時習이 지은 것으로 洪萬宗의 "小華詩評"에 紹介되고 있다
示學梅 학매 스님에게 보이다
學梅髡者學詩書 학매스님은 시와 글을 배우는데
家在昭陽江上廬 집은 소양강 위에 있는 초가이다.
斷機有親新覲到 짜던 베를 자른 어미가 처음 찾아와서
論文無地已參余 글을 논의할 곳 없어 나에게 참여시켰네.
松如翠蓋雲如絮 소나무는 비취빛 일산, 구름은 솜털 같고
霜似瓊麋月如梳 서리는 옥가루 같고 달은 빗 같구나.
點爾與吾曾有夙 너와 내가 점찍은 것은 묵은 인연이니
靑山穩處必從渠 푸른 산 조용한 곳엔 반드시 그대 따르리라.
食粥 죽을 먹으며
白粥如膏穩朝餐 흰죽이 기름 같아 아침 먹기 좋구나
飽來偃臥夢邯鄲 배불러 번듯이 누워 한단의 꿈을 꾼다
人間三萬六千日 인간생애 삼만 육천 일에
且莫咻咻多苦辛 아직은 편하다고 말하지 말라, 괴롭고 슬픈 일 많으리니
한단(邯鄲) -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 당나라 현종 때 여옹(呂翁)이라는 도사가, 하루는 한단이라는 곳의 한 주막에서 쉬고 있었는데 허름한 차림의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들어와 한참 신세타령을 하더니 여옹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 베개는 도자기로 된 베개로 양쪽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이 차차 커지게 되어 노생이 이상히 여겨 그 속으로 들어가 보니 훌륭한 집이 있었고, 노생은 거기서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진사시험에도 급제하여 京兆尹[경조윤]을 거쳐 어사대부, 이부시랑에 까지 올랐다. 한때 모함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다시 재상으로 등용되어 천자를 보필하다가,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포박되니 그는 고향에서 농사나 지을걸 하는 후회 때문에 자결하려다가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자결하지 못했다. 몇 년 뒤, 노생은 무죄로 판명되어 다시 중서령이 되고, 연국공(燕國公)에 봉해져 천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그 후 다섯 아들과 십여명의 손자를 두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노환으로 죽었다. 노생이 언뜻 깨어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는데, 주모가 끓이던 조(粟)가 아직 익지도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노생이 이상히 여겨 "어찌 꿈일 수 있는가?" 하자 여옹은 웃으며 "인생지사 또한 이와 같은 것이라네."하고 말했다.(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
新譯蓮經 새로 번역한 연화경
蓮經譯自九重深 연화경 번역을 구중 깊은 곳에서 하니
一句頻迦出衆禽 한 구절의 빈가가 뭇 새 울음보다 뛰어나다.
梵筴到秦言尙澁 범어 서적이 중국에 이르렀으나 언어가 난삽하고
華言自什趣難尋 구마라습이 중국어로 번역했으나 취지 찾기 어려웠다
琅琅諦語昭雲漢 옥 같은 진리의 말은 은하처럼 밝고
歷歷眞詮演妙音 역력한 참된 저울은 오묘한 음을 번역하였다.
觀彼漢唐飜解迹 한나라 당나라의 번역한 자취를 보니
奘蘭能似我王心 현장과 등란이 어찌 우리 임금님 마음과 같으리오.
鳩摩羅什 -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경승(譯經僧). 인도 귀족인 아버지와 구차국 왕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7세 때 출가. 법화경, 아미타경, 유마경 등 많은 경전을 번역했으며, 문도가 삼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新漲 새로 불어난 시냇물
昨夜山中溪水生 어제 밤 산속에서 계곡물 불더니
石橋柱下玉鏗鏘 돌다리 기둥 아래 옥구슬 부딪는 소리
可憐嗚咽悲鳴意 가련토록 흐느끼며 구슬피 우는 뜻은
應帶奔流不返情 빨리 흘러가면 되돌아오지 못함이겠지
失笑 웃음 터뜨리며
細窮今古事 고금 역사를 살펴보노라니
失笑屢呵呵 웃음을 못 이겨 자꾸 껄껄
誤國言言協 나라를 그르치곤 말끝마다 협력하자
謀身事事和 제 몸만 돌보면서 일마다 화합하자
直躬身齷齪 정직한자는 매사에 옹졸하고
佞色狀巍峨 아첨쟁이는 그 모양 의젓도 하네.
衛有乘軒鶴 수레만 타던 높은 벼슬아치들
兵來不執戈 적이 쳐들어올 때는 무기 들지 않았다오.
尋訪 찾아가서 만나봄
靑藜一尋君 청려장 짚고 그대 찾으니
君家住海濱 그대 집은 바닷가에 있었구나
寒花秋後艶 국화꽃은 늦가을이라 더욱 곱고
落葉夜深聞 깊은 밤 낙엽 지는 소리 들려온다
野外金風老 들 밖에 바람소리 세차고
簷頭夕照曛 처마 위엔 저녁 빛이 어둑해진다
寧知今日遇 어찌 알았겠나, 오늘 그대 만나
團坐更論文 다정히 둘러 앉아 다시 글을 논할 줄을
十年 십년
十年泉石洗心肝 십년간 산수에 깊은 마음 다듬어도
身世都如醉夢闌 신세는 모두가 한창 취한 꿈같구나.
未盡甘英窮海外 명예 만족 못하니 민간에 어둡고 궁하여
空留戱墨滿人間 헛되이 머물며 먹 놀이로 사람 사이에 만족하네.
山阿眞隱前生願 산속 집에 본성 숨김이 전생의 소원인데
雲水仙遊此日歡 구름과 강 신선놀이 이런 날이 기쁘구나.
安得如椽王氏筆 어찌 서까래 같은 왕씨의 붓을 얻어
一揮豪氣壓儒酸 한번 휘두르는 호기로 나약한 슬픔 누를까 .
我生 나의 생애
我生旣爲人 나는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네
胡不盡人道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리오.
少歲事名利 젊어서는 명리를 일삼았고
壯年行顚倒 장년이 되어서는 세상에 좌절하였네.
靜思縱大恧 가만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우니
不能悟於早 어려서 깨닫지 못한 탓이네
後悔難可追 후회해도 돌이키기 어려워
寤擗甚如擣 깨닫고 보니 가슴이 방아 찧듯 하네.
況未盡忠孝 하물며 충효도 다하지 못했으니
此外何求討 이외에 무엇을 구하고 찾겠는가.
生爲一罪人 살아서는 한 죄인이요
死作窮鬼了 죽어서는 궁색한 귀신이 되리
更復騰虛名 다시 헛된 명예심 또 일어나니
反顧增憂悶 돌아보면 근심과 번민이 더해지네.
百歲標余壙 백년 후에 내 무덤에 표할 때는
當書夢死老 꿈속에 죽은 늙은이라 써주시게나
庶幾得我心 행여나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千載知懷抱 천년 뒤에 속마음 알 수 있으리.
牙蚛 벌레 먹은 어금니
伊昔少年日 옛적 젊은 시절에는
矘眉決彘肩 눈 부릅뜨고 돼지다리 뜯었는데
自從牙齒齵 어금니 벌레 먹은 뒤로는
已擇脆甘嚥 무르고 단 것만 가려서 먹는다네
細芋烹重爛 작은 토란도 삶은 걸 또 삶고
兒鷄煮復煎 어린 닭도 익히고 또 익히네
如斯得滋味 이렇게 해야 먹을 수가 있으니
生事可堪憐 사는 일이 참 불쌍타 하겠네
鳲鳩
均呼七子綠陰叢 푸른 그늘 숲속에 일곱 자식 두루 부르고
麥熟梅肥五月中 보리 익고 매실 살찌는 오월중순이다.
叫斷年光渾不識 가는 세월에 절규하나 앞일은 알 수 없고
朧頭桑葚已殷紅 언덕 위 뽕나무엔 이미 오디만 붉게 익어가누나.
巖竇 바위굴
煙生巖竇深 연기 나는 바위굴 깊기도 한데
禪榻護檉林 참선하는 걸상 호위하는 위성버들 숲.
不許俗塵雜 속세와 섞이는 것 티끌도 허락지 않아
多爲猿鳥尋 대개는 잔나비와 산새 찾게 된다네.
苔侵一逕細 이끼가 침범해 길은 온통 좁아지고
雲擁半山陰 구름이 가리워 산의 절반이 그늘진다.
誰識有嘉遯 숨어서 즐기고 있음을 그 누가 알랴
已忘生滅心 이미 생과 멸을 생각하는 마음 벌써 잊었다.
鴨峯路花 압봉 가는 길의 꽃
春山寂寂春鳥啼 봄산은 적막한데 새는 울고
竹杖芒鞋遊山蹊 대지팡이에 짚신 신고 산길을 노닌다
萬點燕脂綴芳叢 만점 연지자국 꽃떨기에 찍혀있고
數點紅雨流寒溪 몇 방울 붉은 비가 찬 개울에 흘러간다
謝豹哀鳴亂山疊 어지러운 첩첩산중에 두견은 슬피 울고
雄蜂狂唼繁枝低 수벌은 비친 듯, 휘늘어진 가지에 입 맞춘다
朗吟不覺攪花影 낭낭하게 읊음에 꽃그늘 흔들리는 줄 모르고
香霧霏霏行徑迷 향기로운 안개 뭉개 뭉개, 가는 길 잃겠구나
謝豹 - 전설에 괵주(虢州)라는 굴속의 짐승으로 사람을 보면 앞다리를 내밀어 자신의 얼굴을 가려 마치 부끄럽다는 모습을 취한다 함. 두견새의[異名], 예전에 어느 사람이 사씨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그 집 딸이 그를 좋아했는데 그 사람은 두견이 우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動[동]해서 가 버리니 그 딸은 매우 한 되게 여겨 그 뒤로는 두견이 소리를 들으면 표범의 우는 소리로 들려서 마음이 떨렸다 한다. 그래서 '사표'라 하였다 한다.<낭환기>
崖上丹楓 절벽 위의 단풍
崖上丹楓千萬枝 절벽 위 단풍은 수천 만 가지인데
一枝一葉映漣漪 가지와 잎이 잔물결에 비치구나.
故山歲莫不歸去 옛 산 세밑에 돌아가지 못하고
搘杖獨吟眞可悲 지팡이 짚고 홀로 읊조리니 참으로 서글퍼라.
雁飛南浦雲如絮 기러기 나는 남쪽 포구에 구름은 솜과 같고
人在西樓月似眉 나그네 머문 서쪽 누각엔 달이 눈썹 모양이다.
此情此時堪把酒 이런 때 이러한 심정으로 술잔을 잡고
撚鬚無語倒千巵 수염 어루만지며 말없이 여러 잔을 기울이노라.
夜宿江樓 밤에 강가 누각에 묵다
淸江秋月白 맑은 강에 가을 달빛 환하게 밝은데
浪打古城頭 물결이 옛 성 근처를 때린다.
遠浦漁燈逈 먼 갯포구에 고기잡이 등불이 아득하고
滄波蜃氣浮 검푸른 물결에 신기루 떠 있다.
蘋洲風力緊 마름 뜬 모래톱엔 바람이 급하고
沙磧雁聲愁 자갈밭엔 기러기 울음소리 시름겨워라.
一夜逢僧話 하룻밤 중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團欒敍舊遊 그 옛날 놀던 일 단란하게 이야기 한다.
蜃氣 - 이무기의 기운
團欒 - 빈 구석이 없이 매우 원만(圓滿)함, 친밀(親密)하게 한곳에서 즐김
夜宿祭署有懷 밤에 묵으며 자연에 대해 생각에 잠기다
至道渺難名 지극한 도는 아득하여 이루기 어렵고
實理常一致 실상과 이치의 도는 항상 서로가 맞지 않은가.
俯仰廣無垠 굽어보고 쳐다보아도 넓기 한도 없음은
只有天與地 다만 하늘과 땅이 있을 뿐일세.
夜深 밤이 깊어
夜深山室月明初 깊은 밤, 산속 집에 달 밝은 때
靜坐挑燈讀隱書 조용히 앉아 등불 돋워 은서를 읽는다
虎豹亡曹相怒吼 무리 잃은 호랑이와 표범들 울부짖고
鴟梟失伴競呵呼 부엉이와 올빼미 짝을 잃고 다투어 부르짖는다
頤生爭似安吾分 편안한 삶 다툼이 어찌 내 분수에 편안만 하리오
却老無如避世居 도리어 늙어서는 세상 피하여 사는 것만 못하리라
欲學鍊丹神妙術 오래 사는 법을 배우려면
請來泉石學慵疏 자연을 찾아 한가하고 소탈한 것이나 배워보시오
夜如何 이 밤을 어이 하리
夜如何其夜未央 이 밤은 어이 이리 날이 새지 않고
繁星燦爛生光芒 별무리만 찬란하여 빛이 발하누나.
深山幽邃杳冥冥 깊은 산 그윽하여 어둡기만 한데
嗟君何以留此鄕 아, 그대 어찌하여 이 고을에 머무는고.
前有虎豹後豺狼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승냥이
況乃鵬鳥飛止傍 하물며 올빼미도 곁을 날도다.
人生百歲貴適意 한 평생 뜻대로 삶이 중하거늘
君胡爲乎獨遑遑 그대 어이하여 홀로 허둥대는고?
我欲爲君彈古琴 내 그대 위해 거문고 타고자 해도
古琴疏越多悲傷 거문고 소리 산만하여 슬픔이 밀려오고
我欲爲君舞長劍 내 그대 위해 칼춤을 추고자 해도
劍歌慷慨令斷腸 칼과 노래 강개하여 애를 끊네.
嗟嗟先生何以慰 아아, 선생, 무엇으로 위로할꼬?
柰此三冬更漏長 이 삼동 긴긴 밤을 어이하려오?
夜如何其夜嚮晨 어찌 그 깊은 밤에 맞서나 밤은 새벽으로 향하는데
衆星收芒餘北辰 많은 별은 황홀함을 거두고 북극성만 남았구나.
焚香禮拜祝無算 향을 사르고 예배하며 수 없이 축원하니
願天早生明哲人 명철한 사람이 일찍 나오길 하늘에 기원하네.
笙鏞黼黻佐聖主 생황과 쇠북에 수를 놓은 예복으로 성군을 보좌하고
坐令四海如虞唐 앉아서 명령하여 사해를 요순 시대와 같게하소서.
郊有麒麟兮岡有鳳凰 봉황은 언덕에 기린은 성 밖에 넉넉하고
網羅豪俊兮立賢無方 호걸 준걸 모두다 구애 없이 어질게 세우소서.
纖雲四散兮天無痕 고운 구름 사방에 흩어지니 하늘엔 자취가 없고
狐貍屛跡兮豺虎奔 여우와 삵 자취를 감추고 범과 승냥이 달아나네.
胡爲獨守深山中 어찌 하여 깊은 산 속을 홀로 지키며
盍歸乎來朝至尊 어찌 돌아가지 않고 지존을 만나러 돌아오느냐 ?
立賢無方 - 인재를 登用[등용]함에 그 친소(親疏)나 귀천(貴賤)에 구애받지 아니함
夜雨記事 비 내리는 밤의 일을 적다
山堂夜坐久 산당에서 오래도록 앉으니
窓外雨聲急 창밖에는 빗소리 급하구나
四壁悄無人 사방은 사람 없어 쓸쓸하고
靑燈花欲滴 푸른 등에는 불꽃이 떨어질 듯
薨薨蒼蠅聲 윙윙거리는 파리 소리
裊裊淸香煙 하늘하늘 맑은 향기 올라간다
紛紛書冊橫 어지러이 책이 가로 놓여있고
狼籍置我前 문서는 내 앞에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童子喚不應 아이 불러도 대답 않고
鼻鼾聲如雷 코 고는 소리가 우레같다
庭梧風正起 뜰 오동나무에 바람이 막 일고
簾帳相排推 발과 휘장이 서로 밀려 오른다
感此不能寐 이런 느낌에 능히 잠 못 이루는데
草蟲吟正哀 풀벌레 우는 소리 정말 애처롭구나
因思十年事 지난 십년 일들을 생각하니
慷慨添華髮 강개한 일로 흰 머리만 더 한다
喜我老林泉 나의 기쁨은 자연에서 늙는 것
無復墮刺刺 어찌 다시 자자한 세상에 빠지리오
恰似雲際中 흡사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아
勁翮飛籠脫 굳센 깃촉으로 새장을 벗어나 날리라
耿耿達申朝 뒤척이며 오후까지 잠 못 이루니
雨霽簷溜滴 비는 개고 처마에 낙숫물 떨어진다
復起憑欄干 다시 일어나 난간에 기대니
水螢光熠熠 물에 반딧불 빛이 곱게 빛나네.
野人烹岷芋有感 야인이 산의 토란을 삶으며 느낌이 있어
窮年卒歲事耘耔 김매고 북을 돋우는 일로 가난한 한 해를 마치니
半入征科半償私 반은 세금으로 들이고 반은 사채를 갚았네.
妻子啼呼猶且忍 처자식은 울며 탄식하나 오히려 참아야 하고
縣官催督正堪悲 현령은 꾸짖고 재촉해도 노역을 참아내며 슬퍼하네.
牛羊已賣尋無處 소와 양은 이미 팔아 찾을 곳 도 없고
鷄犬從攙蓋勿思 개와 닭도 섞여 따라 죽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으리오 ?
玉粒珍羞閶闔遠 옥같은 쌀 진귀한 음식은 거적문에 멀어졌으니
芋根甛美乞遙知 토란 뿌리 달고 맛난 것 떠도는 거지도 알리라.
野鳥 야조 들에 사는 새
綿蠻枝上鳥 나무 위의 새소리 잇달아
隨意便能鳴 제 뜻대로 거침없이 울어댄다.
適志從吾好 뜻이 맞으면 내 기분대로 따르고
安心只欲平 마음을 편하게 하여 평화롭고자 한다
驕榮爭似隱 부귀영화 교만함이 어찌 숨어 삶과 다투랴
苦學不如耕 고생스레 배움이 어찌 농사만 하리
詩酒消閑日 시와 술로 한가한 날 보내며
陶然送平生 기분 좋게 한 평생 보내고 싶어라
夜坐看經 밤에 앉아 불경을 읽으며
一炷香殘秋夜深 한 줌 향은 사위어가고 가을밤은 깊어지는데
蛩聲月色攪禪心 귀뚜라미 소리 밝은 달빛이 선정(禪靜)에 든 마음을 흔드네.
百年人事不可計 백 년 사는 사람살이도 헤아릴 길 없고
三世妄緣無處尋 3세의 망령된 인연은 찾을 곳이 없구나.
庭樹正愁風露勁 뜰 앞의 나무는 매서운 바람 이슬 근심하듯 고개 숙였고
山禽似話洞雲侵 산새들은 골짜기로 구름이 몰려온다고 알리는 듯 지저귀네.
蒲團紙帳淸於水 창포로 만든 방석과 종이 장막이 물보다 더 맑으니
閑展禪經閱古今 한가롭게 불경을 펼쳐놓고 고금의 일들을 열람하노라.
夜坐記事 밤에 앉아 적다
東嶺風初急 동쪽 고개 마루에 막 바람이 일고
西峯月落時 서편 봉우리에 달 지는 시간이로다.
禪心唯寂寞 참선하는 마음 적막하고
夜色轉淸奇 밤빛은 맑고도 기이해 진다.
露冷雁聲緊 이슬은 차고 기러기 소리 급한데
更深燈燼垂 깊어지는 밤, 등불 재가 떨어진다.
枕涼無夢寐 베개머리 서늘하여 꿈도 못 꾸는데
此境有誰知 이러한 경지, 그 누가 알고 있을까.
佯酒歡甚 거짓으로 마시고 매우 기뻐하며
自喜生來放且閑 태어난 이후 몸소 즐기며 방자하고 또 등한하니
世間名利不相關 세간의 명예와 이익을 상관하지 않았네.
少陵太瘦元非瘦 두보가 심히 야윈 것 처음부터 야윈 것 아니오
彭澤求官豈是官 팽택의 관직 구함은 어찌 이 관직 때문이리오.
落拓不因縈世網 불우한 것에 처함은 세상 그물에 얽혀서가 아니오
磊塊只好壓儒酸 홀로 우뚝함 좋아함은 선비의 고됨 막기 위함이라.
小窓終日無思慮 종일토록 작은 창에 깊은 생각 없이
閑看遊絲上小闌 작은 난간 위에서 아지랑이 한가히 바라보네.
소릉(少陵) - 두보(杜甫)의 호,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712~770). 자는 子美.
彭澤 - 평택공전출(彭澤公田秫), 동진(東晉)의 도잠(陶潛)이 평택령(彭澤令)이 되었을 때 모든 공전(公田)에 수수를 심게 하고 내가 항상 술에 취할 수 있으면 족하다
憶故山 고향 산을 생각하며
棲迹王幾已有年 살던 자취를 크게 살피니 이미 여러 해이고
故山歸夢正依然 고향에 돌아가는 꿈은 바로 전과 다름없구나.
雲收鼇背千重岫 구름 쉬는 금오산 뒤엔 많은 산봉우리 겹치고
風定鯨波一葉船 바람이 다스리는 큰 파도에 배는 나뭇잎 같네.
長有梅心懸眼底 매화 생각 항상 있어 헛되이 어린 싹에 멈추고
可堪蕉雨滴窓前 파초에 오는 비 능히 견디며 창 앞에 떨어지네.
春來筍蕨年年長 봄이 돌아오니 죽순과 고사리 해마다 자라고
應有英靈待我旋 응당 영혼이 존재하니 나 돌아오길 기다리네.
憶舊遊 옛 유람을 생각하며
浮碧樓高秋水深 부벽루는 고상하고 가을 물은 깊은데
畫船笳鼓動江心 그림 배 피리와 북소리 강 가운데 흔들리네.
如今重憶曾遊處 지금 거듭 생각나는 이전에 유람하던 곳
陳迹依俙成古今 지난 자취 전과 비슷하게 고금을 정리하네.
旅宿 여숙
孤館蕭條坐夜深 외로운 여관에 쓸쓸히 밤 깊도록 앉으니
一梢涼月政森森 나뭇가지 끝 서늘한 달이 정말로 오싹하구나.
如何攪我西牕畔 어찌하여 서쪽 창가의 나를 훼방 놓아
孤枕依依思不任 외로운 베개에 그리운 마음 맡기지 못하네.
與僧夜話 스님과 밤에 이야기를 나누며
半輪明月照西床 반달이 밝게 떠서 서쪽 상을 비추는데
小鑵煎茶熱炷香 작은 다관에 차를 달이며 향을 피워 놓고
共是操心同一致 함께 마음 다잡아 운치를 같이 하니
莫將玄白錯商量 검고 흰 것을 가지고 잘못 헤아리지 말라.
旅情 나그네 마음
旅情如浪漲昭陽 울적한 마음 물결 같아 소양강 물 넘치듯
無限春愁浩莫量 한도 없는 봄 수심 헤아릴 수 없이 크구나.
借問白鷗儂可笑 흰 물새에게 묻노니 내가 가소롭지만
與他萍草任悠揚 부평총와는 다르게 듬직하게 감내한다네.
蓮經讚 구름 피어
雲起千山曉 온 산 새벽인데 구름 일고
風高萬木秋 바람은 높이 불어 나무마다 가을이네
石頭城下泊 성 아래 돌 머리에 묵으니
浪打釣魚舟 물결은 고깃배에 부딪는다.
燕燕 한 쌍의 제비
燕燕飛飛過短墻 제비들 빨리 날며 낮은 담장을 지나려니
也無閑事爲誰忙 한가한 일이야 없겠지만 누굴 위해 바쁜지?
靑山影裏獨穩步 청산의 그림자 속을 홀로 편안히 거닐다가
翠竹陰中閑鎖房 푸른 대나무 그림자 속에 조용히 방문을 잠그네.
古樹夕陽扶拄杖 석양의 고목나무 곁에 지팡이로 버티다가
小亭秋日據胡床 가을 햇살 작은 정자의 높은 걸상에 의지하네.
放歌大笑復自謔 크게 웃고 노래하다 다시 스스로 희롱하려니
意氣老來猶激昂 의기는 오래 되었지만 오히려 밝고 높아지네.
濂溪室 염계의 집
其一
蓮花峯下小溪邊 연화봉 봉우리 아래의 작은 시냇가 주변에
卜築團茆浩氣全 띠를 모아 집을 지으니 온전한 기운 넉넉하네.
霽月光風涵物像 갠 날의 달과 맑은 바람에 만물 형상 넉넉하고
請看牕外草悠然 바라보길 청하는 창 밖에는 풀들이 유연하구나.
其二
精硏太極先天圖 정성으로 궁구한 태극도설은 천도를 이끌고
便識先生味道腴 편하게 기록한 선생은 도의 참 뜻을 맛보셨네.
卦未畫前馮翼始 아직 걸지 못한 그림 앞에 먼저 받들어 의지하며
不知亦有伏犧無 알지 못하는 것 또한 있으니 복희씨를 무시하네.
其三
孔孟道學已陵夷 공맹의 도리를 배웠으나 이미 성하다 쇠하여
征戰之餘老佛披 치고 싸우다가 남은것은 불경을 펴다 늙었네.
蠱惑人君傷世道 임금의 마음을 호려 세상 이치를 상하게하니
天生賢者樹民彝 하늘이 낳은 어진 것을 백성들 떳떳이 세우리.
詠妓 기생
其一
綠羅新剪製春衫 초록 비단 말라 봄옷을 마련할제
理線掂針玉手織 바늘 따라 실 따라서 고운 손길 노닐더니
自敍一生人命薄 서러워라 이내 일생 왜 이리도 박명한가.
隔沙窓語細喃喃 창가에 의지하여 소곤소곤 속삭이네.
其二
誰家園裏曉鶯啼 어드메 뒷동산에 꾀꼴 소리 요란하냐.
撩亂春心意轉迷 춘심을 자아내니 심사 더욱 산란하다
自愧妾身輕似葉 가엾어라 여자의 몸 갈잎 같은 신세런가
食須東里宿須西 동쪽 집 저녁 먹고 서쪽 집 침방 드네.
其三
死麕茅束者何斯 꿈결인 듯 얼핏 마난 그 사나이 누구더냐
一見飄風姓不知 한 번 보고 헤어지니 성명조차 모를레라.
狂且狡童如鬼亦 교할해라 그의 거동 귀신인 듯
去時批額奪笄兒 금비녀 은비녀도 떠날 적에 다 빼앗겼네
詠山居贈山中道人 산중도인을 맞으며
1
支遁山中結草堂 지둔(支遁, 晉나라 고승)이 산중에서 초당을 얽으매
許詢來訪共匡床 허순(許詢, 동진의 학자)이 찾아와서 광상(匡床)을 같이했네.
雲松趣味閑來雅 운송(雲松)의 취미는 한가할수록 높은데
雪竹襟懷老去剛 설죽(雪竹)의 정회는 늙을수록 굳세어라.
烏几倩繙方外語 검은 책상에는 방외(異端)의 책을 빌려서 뒤적이고
鴨爐親揷海南香 향로에는 해남의 향을 손수 꽂도다.
休言定罷無伎倆 약속을 파한 뒤에는 수단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淸水明燈祀古皇 맑은 물과 밝은 등불로 고황(古皇)에 제사하도다.
2
春山無伴獨行時 봄 산에 짝이 없이 혼자 갈 때에
猿狖雙雙先後隨 원숭이가 쌍쌍이 앞뒤를 따랐네.
槲葉蔭溪迷小徑 떡갈나무 잎이 시내를 그늘 지우매 오솔길에 헤매이고
松槎偃石碍通歧 솔삭정 돌에 누워 통하는 길 막았도다.
年年收票忘貧歉 해마다 밤 주워서 가난한 흉년 잊고
處處團茅任適宜 곳곳에 띠를 엮어 적당한 집 마련한다.
點檢一生忙事少 일생을 점검해 보매 바쁜 일이 적었거니
世間韁勒不曾知 세간의 고삐와 굴레는 일찍 알지 못했네.
3
客來無語對筠床 손이 와서 말없이 균상(筠床)에 마주하니
林靄霏霏染夕陽 숲속의 아지랑이는 아물아물 저녁볕에 물든다.
不怕山靈來惱我 산신령이 와서 나를 괴롭힐까 두렵지 않지만
深嗔野鼠解偸糧 들쥐가 양식 훔칠 줄 아는 것이 몹시 화가 난다
地爐撥火將煨栗 화로에 불을 피움은 밤을 구우려 함이요
銅鑵盛泉欲煮湯 구리 탕관에 샘물을 뜨는 것은 탕을 끓이려 함이로다.
不是苦爲形所役 이런 괴로움은 부역이 아니거니
隱居生業此尋常 숨은 선비의 살아가는 일로는 보통이리라.
4
世味於人苦似煎 세상 맛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볶는 것 같은데
林泉淸興政翛然 숲과 샘물의 맑은 흥취는 참으로 자유롭구나
草分野徑靑如染 풀은 들길을 나뉘어 푸르게 물든 것 같은데
花擁山齋紅欲燃 꽃은 산의 서재를 끼고 붉게 타는 것 같구나.
日灸嫩苔鸜鵒語 해는 어린 이끼를 굽는데 구관조는 울고
風柔苦竹麝香眠 바람은 참대에 부드러운데 사향노루 졸고 있다.
不堪更說塵中事 다시는 티끌 속의 일을 말하기 싫었나니
高臥煙霞已數年 안개와 놀 속에 높이 누운 지 이미 여러 해이다.
5
別有生涯住碧山 따로이 생애가 있어 푸른 산에 머무르거니
閑情不欲語人間 한가한 정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네.
莓苔一逕通脩竹 이끼 낀 한길은 대밭을 통하고
松檜千株匝小巒 천 그루 솔과 전나무는 작은 뫼를 둘렀도다.
岩鳥下窺宗炳社 바위의 새는 내려와 종병사를 엿보고
洞雲來護祖師壇 골짜기의 구름은 와서 조사단을 보호하네.
阿誰爲爾題招隱 어느 누가 너를 위해 招隱詩(은자를 부르는 시)를 지을 건가
丹桂叢生怎可攀 박달목서의 꽃이 무더기로 났나니 어찌 잡아보랴.
宗炳社 - 남조 송나라 종병이 은거하여 유람하기를 좋아했는데, 일찍이 여산의 동림사에서 雷次宗, 慧遠, 慧永, 劉遺民 등 18인과 白蓮社를 결성하여 함께 염불하였다. 즉 은거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풍월을 즐기는 청아한 모임을 뜻함.
詠三諫臣 간하는 세 명의 신하를 노래하다
比干 비간
靡靡樂盡魚終變 망국의 노래 다하니 마침내 물고기 변하고
長夜酣終杵到漂 긴 밤 흥겨움 다하니 절굿공이 거꾸로 떠갔네.
覆轍前車如鑑戒 앞 수레 넘어 엎어진 걸 거울삼아 경계했다면
商孫應不裸周朝 상나라 후손이 주 왕조에서 헐벗지 않았으리라
屈原 굴원
湘江千古弔幽魂 상강에 오랜 세월 숨은 넋을 조문하노니
憔悴行吟爲底冤 초췌한 귀양살이를 읊다 몹시 원통하게 되었네.
若使先生遭盛世 만약 선생이 태평하고 융성한 세상을 만났다면
汨羅應欠斷腸猿 멱라수에는 응당 창자 끊는 원숭이 없어지리라.
伍員 오원
至德廟前禾黍堆 오나라 지덕묘 앞에는 벼와 기장 쌓이고
姑蘇臺畔猿猱哀 고소대 근처에는 원숭이소리 애처롭구나.
怒濤不是無功業 물결이 세찬 것은 공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管領人間雪禍胎 인간들 다스리어 재앙의 근원 씻으려 함이라.
比干[비간] - 중국 은(殷) 주왕(紂王)의 제부(諸父). 주왕의 학정(虐政)을 강하게 간했기 때문에 분노를 샀고, 주왕은 성인(聖人)의 가슴에는 7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시험해본다고 하여 비간을 죽여서 그 가슴을 갈랐다고 한다.
靡靡 - 靡靡之樂[미미지악], 은의 주왕이 악사 사연에게 만들게 한 노래.
覆轍 - 수레가 뒤집힌 자리, 전거복철(前車覆轍), 다른 사람이나 자기가 전에 실패한 것을 비유하여 경계함을 이름.
屈原 - 굴원은 전국시대 초의 충신으로 이름은 平이다.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았으나 참소를 입어 축출되자 이소(離騷)를 지음. 그 후 회왕은 진(秦)의 장의(張儀)에게 농락당해 죽고 말았다. 굴원은 다시 경양왕(頃襄王) 때에도 멀리 쫓겨났으며, 초가 멸망하기에 이르자 스스로 돌을 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초사(楚辭)에 있는 그의 작품들에는 임금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울분이나 자신의 불우함을 슬퍼하는 격정이 보인다. 전통시대 중국에서는 충군애국의 대표적 인물로 간주되었다.
伍員 - 오자서(伍子胥),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본명은 원(員)이며 오원(伍員)은 그의 字. 아버지와 형이 모함을 받아 초평왕(楚平王)에게 죽임을 당하자, 오자서는 적국인 吳[오]나라로 망명하여 후일 오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의 수도에 들어온 오자서는 복수를 하려 하였으나, 평왕은 이미 죽었고 아들인 소왕(昭王)이 달아나자,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평왕의 시체를 꺼내 채찍질을 하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였다함. 합려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부차에게 월의 화친 요구를 거절하고 제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진언했다가 왕의 분노를 샀으며, 나중에 자결하라는 왕명을 받고 죽었다.
嶺雲 고개 위의 구름
嶺雲吹作雨 고개 위의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리니
朝露點成珠 아침 이슬은 점점이 구슬을 이루었도다.
病後知身健 병후에 몸이 회복 됨을 알겠으나
貧來認我愚 가난으로 찌든 나의 어리석음을 인식한다.
殘年唯藥物 여생은 오직 약물로만 살아야 하니
永日愛枯梧 종일을 늙은 오동나무만 그리는구나.
漸覺衰遲甚 노쇠하여 감에 심한 것을 점점 깨달으니
靑山不負吾 청산은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하겠구나.
翳翳 그늘로 가리다
翳翳雲遮日 그늘로 가리듯이 구름이 해를 가리니
團團雪覆松 둥글게 모인 눈이 소나무를 덮었네.
遠山尖更好 먼데 산은 뾰족하여 더욱 아름답고
幽興淡還濃 그윽한 흥이 담백하다 다시 짙어지네.
對客排愁悶 손님 마주하여 근심과 번민 밀어내고
課詩可盪胸 시 읊고 공부하며 가히 마음을 씻네.
外人如問我 바깥사람이 이르러 내게 묻는다면
天地一疏慵 천지간에 오로지 드문 게으름뱅이라오.
吾廬 내 집에서
從來吾亦愛吾廬 전부터 나는 내 집이 좋아
野性偏宜水竹居 야성에 치우쳐 물가나 대숲에 산다.
問字僧來隨說字 글 묻는 중이 찾으면 글을 이야기하고
投書人到勉酬書 편지 보낸 사람이 오면 편지에 답한다.
溪流淺碧迷芳草 개울물 얕고 푸르고 방초는 여기저기
山色蒨蔥擁古墟 산 빛은 울창한데 낡은 집터가 끼었구나.
遠矚遐觀皆自得 멀리 보고 아득히 봐도 모두가 만족하니
吾廬佳興足瀛壺 내 집 좋은 멋에 신선고을처럼 족하도다.
午寢 낮잠
茅屋翛翛午夢長 띳집에서 늘어지게 낮꿈이 긴데
高低花影轉西廊 높고 낮은 꽃 그림자 서편 회랑으로 돈다.
隔簷燕子呼來醒 처마 밖 제비 새끼들 잠 깨라 소리치니
方覺身遊華胥鄕 이 몸이 요임금의 화서향에 놀았었구나
屋漏歎 지붕이 새는 걸 한탄하다.
屋漏淋泠意不平 지붕이 새니 장마 깨닫고 마음이 불편하여
抛書偃臥壓愁城 책 던지고 쓰러져 누워 근심의 성 눌러보네.
廉纖疏雨千山暝 가늘고 설핀 성긴 비에 무성한 산은 어둡고
料峭長風萬樹鳴 싸늘한 먼 바람에 많은 나무들 소리 내는구나.
志士胸襟存節義 뜻있는 선비의 마음속엔 절의가 있는데
壯夫氣槪立功名 장부의 기개는 공명을 세우려 하는구나.
功名節義皆吾事 공명과 절의는 모두 다 나의 일인데
得失相傾恨莫幷 득과 실이 서로 다투니 아우르지 못함 한하네.
枉心煙墟 왕심 연기 나는 언덕
依依墟里靑煙生 무성히 우거진 언덕 마을에 푸른 연기 나고
桑柘陰陰鷄犬鳴 산뽕나무 그늘에 닭과 개들이 소리를 내네.
十里麥壟一樣綠 십리 보리밭 두렁은 모두 초록빛 모양이고
幾家繅車三兩聲 몇 집에선 두세 번씩 고치 켜는 물레 소리 나네.
梨花落處白酒香 배꽃 지는 곳에는 술 익는 향기 분명하고
榕葉蔭中黃鸝鳴 용나무 잎 그늘 속에 노란 꾀꼬리 우는구나.
老婦城裏賣菜還 늙은 아낙 성안에서 채소 팔고 돌아오니
兒童喜迓跳柴荊 아이들은 기뻐 맞으며 사립문으로 뛰어가네.
遙億彌多因和 아침 햇살
窓透朝陽愛日暄 아침 햇살 창을 뚫고 쏟아지는데
蕭然端坐欲無言 단정히 앉아 말이 없네
維摩曾漏文殊印 유마는 벌써 문수의 비밀을 누설했나니
雲滿靑山風滿軒 청산에 구름 가득하고 난간에는 바람이 많네.
훤(暄) - 따뜻하다.
소연(蕭然) - 조용한 모양.
牛頭原 우두원에서
牛頭原上暮煙收 우두원에 오르니 저문 연기 걷히고
萬頃黃雲麥隴秋 넓은 들판 누런 물결 언덕의 보리가 여무네.
白鳥一雙飜落日 흰 새 한 쌍이 지는 해에 날아가니
蒼波十里送歸舟 푸른 물결 십리에 돌아가는 배 배웅하네.
江山處處詩添興 강과 산 곳곳에 시 짓는 흥겨움 더하고
風月年年酒解愁 청풍명월에 해마다 술로써 시름을 푸네.
野水斷橋村逕曲 거친 강물에 끊긴 다리 마을길은 굽이지고
牧童相喚穩騎牛 목동들은 서로 부르며 편안히 소를 타는구나.
偶書 우연히 쓰다
禿筆如刓木 새로 지은 시 둥글게 가는 것 같네.
掣分三峽水 삼협의 물처럼 길게 뻗어 갈라지고
擘破九華山 구화산처럼 나누어 흩뜨리었네.
濩落交遊絶 텅 비게 되니 왕래도 끊어지고
淸貧世事艱 청빈하려니 세상 일만 괴롭구나.
孤峯離物我 떨어진 봉우리처럼 물아를 가르고
相對大無端 서로 마주해보니 끝도 없이 크구나.
偶成 우연히 짓다
櫪葉深深布穀啼 상수리나무 잎 무성한데 뻐꾸기 울고
山深五月尙凄凄 오월의 깊은 산은 오히려 쓸쓸하네.
朝來霧重巖光潤 아침 되니 짙은 안개 바위 적셔 빛나고
晩後風過樹影低 해 저문 뒤엔 지나가던 바람 나무에 머무네.
老境唯思身似鶴 늙게 되니 생각은 오직 학을 닮은 몸이오
病餘方覺面如梨 병을 앓고 깨달은 건 늙은이 얼굴 같구나.
平生習氣消磨盡 평생의 버릇은 다 닳아 사라졌지만
未斷醉倒花下迷 꽃 아래 헤매며 취해 넘어짐은 끊지 못하네.
偶吟 우연히 읊다
1
淸風蕭蕭撼寒竹 맑은 바람 쓸쓸히 불어 찬 대나무 흔들리고
月影參差篩庭松 달그림자 들쭉날쭉 뜰의 소나무에 새어드네.
幽人獨臥不成寐 숨어사는 사람 홀로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니
仰視碧空星斗東 우러러 보는 푸른 하늘 북두성 동쪽으로 가네.
利名榮辱隴上雲 명예와 이익 영예와 치욕은 언덕 위의 구름이니
死生往復無終窮 나고 죽으며 가고 돌아옴 다하는 끝이 없다네.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나
北邙山下纍纍塚 북망산 산 밑에 겹겹이 쌓인 무덤들을
盡是名場趑趄翁 이 모두 이름 난 곳에 머뭇거리던 노인이라네.
人生適意是仙境 인생 마음에 맞음이 바로 신선의 경지인 것을
不必駕海求瀛蓬 필요 없이 바다를 타고 영주와 봉래산 탐할까?
2
最憐松竹菊 소나무, 대나무, 국화가 가장 어여뻐라
獨守歲寒心 차가운 날에도 홀로 지키는 마음 있도다
揷棘編籬短 가시나무 꽂아서 낮은 울타리 엮고
芟林築徑深 숲 풀 깎아내어 깊숙한 길을 낸다
幅巾多野趣 복건은 들사람의 멋이 많이 나고
藜杖稱閑吟 명아주 지팡이는 한가히 읊기에 어울린다
蕭散遺人事 시원스럽게 세상일 남겨두고
橫經閱古今 경서 펴놓고 고금의 일을 살펴본다.
3
滿眼靑山不世情 눈에 가득한 푸른 산은 세상의 실상이 아니고
多事已結歲寒盟 바쁜 일로 세한의 약속은 이미 못하게 되었네.
蒲團烏几明窓靜 부들방석 검은 책상에 창문은 조용히 밝아오고
紙帳淸香細靄橫 종이 휘장 맑은 향기 가늘게 피어올라 섞이네.
塵外極知身老大 속세 밖의 혹독함 알기에 때를 지나서 늙은 몸
人間無處立功名 인간 세상에 공명을 세워 머물 곳이 없구나.
暮雲初捲天如水 저녁 구름 처음 걷히니 하늘엔 수성이 따르고
時聽長空雁一聲 먼 하늘에 때맞춰 들리는 한결같은 기러기 소리.
勢寒心 -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 논어 자한(子罕)에 勢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계절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조락한 것을 안다)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꿋꿋한 송백 같은 마음.
寓意 뜻을 붙이다
三十年前學豢龍 삼십 년 전, 벼슬할 일 배웠지만
三十年後看無蹤 삼십 년 후, 자취마저 없어진 것 보았다
世人莫笑浪遊遨 사람들이여, 쓸데없이 논다고 비웃지 말라
固余自喜多龍鍾 진실로 나는 너절한 일 많음을 좋아한다오
多事不如省事好 일 많은 것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고
有心何似無心悰 유심이 어찌 무심의 즐거움과 같겠는가
日長庭院蓬簾下 해 긴 정원의 쑥대 주렴 아래서
細讀陶詩情亦濃 도연명 시를 세심히 읽으니 정취 또한 깊구나
寓意 뜻을 붙이다
海棠花落午風凉 한낮의 서늘한 바람에 해당화 꽃 떨어지고
簾影重重鏤小床 문발 그림자 겹겹이 조그마한 상위에 아로새겨진다.
多少閑愁銷未了 다소간의 한가한 근심은 사라지지 않으니,
人間唯有酒澆腸 인간에겐 오직 술만이 애타는 마음을 씻어줄 뿐일세.
偶題 우연히 짓다
夜來風急紙窓鳴 밤에 오는 급한 바람 종이창을 울리고
閑聽空階落葉聲 빈 섬돌에 한가히 들리는 낙엽 지는 소리.
雲有機心舒或卷 딴 마음 있는 구름은 펴다가 또 말아도
月多情緖翳還明 마음의 정 많은 달빛 그늘에 다시 밝구나.
山城秋暮客初到 산마루 늦은 가을에 나그네 처음 이르니
水國煙銷舟自橫 바다에 안개 사라지며 배는 제멋대로 따르네.
老我十年無事地 늙은 나는 십년 동안 아무런 일도 없을 뿐
一身終不釣功名 이 한 몸 평생토록 공명을 낚지 못했다네.
雨中悶極 비 오는데 고민을 삭이려고
連空細雨織如絲 베를 짜는 양 가랑비 하늘에 가득하고
獨坐寥寥有所思 적적히 홀로 앉으니 생각나는 바가 많구나
窮達縱云天賦與 궁하고 달하는 것 하늘이 준 것이라 하지만
行藏只在我先知 가고 머물고는 내게 있음을 알고 있다네
霏霏麥隴秋聲急 부슬부슬 비 내리는 보리밭에 가을소리 급하고
漠漠稻田晩色遲 막막한 벼 밭엔 저녁 빛이 늦어 드는구나
老大頤生何事好 늙어서 편안한 삶에는 어떤 일이 좋은가
竹床凉簟乍支頤 대나무 평상에 서늘한 돗자리에서 턱이나 괴는 것이네
雨中書懷 빗속에 달래며 쓰다
滿溪風浪夜來多 개울 가득한 풍랑 밤새 많아지니
茅屋蓬扉奈若何 초가집 사립문은 어찌 해야 하는가
亂滴小簷聲可數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 헤아릴 수도 있으니
塊然身在碧雲窩 외롭도다, 이내 몸은 푸른 구름 속에 있는 듯하여라
雨晴 비 온 뒤 갬
濃雲簇簇展西東 짙은 구름 뭉게뭉게 서쪽과 동쪽에서 피어오르고
檉葉初飜昨夜風 버들 잎새는 어젯밤 바람에 처음으로 펄럭이는구나.
十里江山明似畵 십 리 기나긴 강과 산은 그림 같이 밝은데
一雙白鷺下靑空 한 쌍의 백로가 창공을 내려오는구나.
寓歎 탄식에 부쳐
堪嘆浮生早不休 읊고 즐기던 덧없는 인생 젊어서 쉬지도 못하고
十年書劍買閑愁 십년의 학문과 무예는 한가한 시름만 불러왔네.
老無可却靈方少 늙음도 물리치지 못하고 총명한 수단도 적은데다
生不長延宰木幽 삶은 길게 늘이지 못하니 무덤가 나무만 고요하네.
寵極定如芻狗擲 극진한 은혜 편안히 따르다 쓸데없어 버려지니
窮來還似涸鱗游 궁벽한곳의 수레바퀴 자국에 노는 물고기 같구나.
人人盡說人間好 사람들마다 모두 인간 세상 아름답다 하지만
春到人間肯暫留 봄은 사람들 사이에 와서 잠시 머물며 즐기는구나.
涸鱗 - 학철부어(涸轍鮒魚),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라는 뜻으로 곤궁한 처지에 빠진 사람을 일컬음.
雨後 비 온 뒤
雨過虛簷納晩涼 처마 틈에 비 지나자 해질녘 서늘함 즐기며
凄凄風露襲衣裳 싸늘한 이슬 바람에 옷과 아랫도리 껴입네.
蟬藏葉底聲猶澁 매미는 잎 속에 숨어 소리내기 되려 어렵고
虹㮑溪心影有芒 산골짜기 어지러운 숲에 북망산 환상 있네.
詩瘦從來因病得 시수로 근심하다가 그로 인해 병을 얻고
離情多爲故人忙 본성을 잃고 생각이 많은 까닭에 몸만 급하네.
生涯點檢無拘束 한 평생을 점검해보니 구속될 것도 없어
一鼎新茶一炷香 솥 하나에 새로운 차와 향을 하나 불사르네.
旭日 아침에 돋는 해
旭日照東窓 아침 해 햇살이 동쪽 창에 비치니
素屛依短釭 흰 병풍에 작은 등잔을 기대어놓네.
愁魔已敗績 근심의 마귀에 이미 일은 해쳤으니
詩陣若爲降 한바탕 시 읊어 반야와 화합하네.
野馬飛還散 아지랑이 오르다가 다시 흩어지고
癡蜂咽又撞 어린 벌들 목메어 다시 부딪히네.
笑看浮世事 웃으며 바라보는 덧없는 세상사
搔首轉紛厖 머리 긁으니 오히려 번잡함만 커지네.
耘苗 모를 김매다
長鑱草屩步南岡 긴 보습 풀 짚신 남쪽 언덕에 걸어가니
十畝禾田半是稂 열 이랑 벼논에 절반이 강아지풀이라네.
雲水十年如倦鳥 떠돌이 생활 십년이 고달픈 새 같아
林泉穩處任飛翔 숲 샘 편안한 곳에 마음껏 날아가리.
鑱 - 침, 보습 :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 쓰는 농기구.
畝 - 이랑(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는 말)
耘苖 김을 매며
長鑱草屩步南岡 긴 가래 짚신 신고 남쪽 언덕을 걸어
十畝禾田半是稂 열 마지기 논에 절반은 강아지풀이구나.
雲水十年如倦鳥 떠돌아 산 십년이 게으른 새 같아
林泉穩處任飛翔 자연에 숨어 살며 마음껏 날아다닌다.
運籌樓 운주루
却敵奇謀樽俎間 적 물리치는 기묘한 작전 술잔치에 있고
熊羆帳外列成班 곰 같은 용맹한 것들이 장막 밖에 열 지어 있다.
山城風勁琱弓健 산성에 바람 거세나 옥으로 새긴 활이 튼튼하고
海國煙消白馬閒 바다에 안개 사라지니 백마도 한가롭다
車騎燕然初勒石 거기 장군은 연연산에 처음 돌에 새겼고
伏波交趾已征蠻 복파 장군은 교지에서 이미 오랑캐 정벌했다
運籌壯策人如問 계획을 썼던 큰 책략을 사람이 묻는다면
刀斗收聲門不關 칼싸움 소리 없고 관문도 닫지 않았다 하라.
圓覺寺 落成會 원각사 낙성회
給園初敝市街前 도시에 버려졌던 급원 절터가
聖曆鴻圖萬萬年 성군의 큰 생각에 만년 가게 되었구나
毳服圓顱逢竺日 솜옷에 둥근 머리, 부처 만나는 날
緇巾曲領頌堯天 치건에 도포 입으니 요순시대 송축한다
香煙裊裊隨龍駕 향불연기는 임금수레 따라 너울거리고
瑞氣緜緜繞佛邊 상서로운 기운이 불상을 감싸는구나.
誰信逸民參盛會 평범한 백성이 성대한 모임에 참여하다니
五雲朶裏喜周旋 오색구름 꽃 속에 돌아다님이 즐겁구나
月 달
故山今夜月 오늘 밤 고향의 달빛은
二十四回明 스물네 번째 밝게 빛나겠지.
時時照書幌 휘장의 글씨에 때때로 비치며
夜夜注銅罌 구리 항아리에 밤마다 부으리라.
落影庭前樹 뜰 앞 나무 그림자 쓸쓸하고
沈光戶外楹 문 밖의 기둥에 빛이 잠기리라.
如今誰與共 지금은 누구와 더불어 함께
來此慰人情 이 울적한 인정을 위로할까 ?
翻覆不可預 뒤집기 되풀이됨을 미리 듣기 어렵지만
焉知來此鄕 이곳에 올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海濱長作客 바닷가에서 늘 과거를 저주하며
老去一霑裳 늙어 버려져 한결같이 바지를 적시네.
旅久樽無綠 나그네로 오래 묵으니 술통엔 술이 없고
悲多鬢有霜 귀밑털이 흰 것을 아니 슬픔만 많아지네.
故山今夜月 고향의 오늘 밤 달빛은
依舊照松堂 예전처럼 의젓한 소나무를 비추리라.
月色 달빛
長空月色正嬋娟 높은 하늘에 달빛이 고와
欹枕夜凉人未眠 싸늘한 밤, 베개 베고 누워도 잠은 오지 않네
何處斷腸江上笛 어디선가 애끊는 강 위의 피리소리
一聲吹破碧雲天 한 곡조 피리소리 푸른 하늘 구름을 흩어버린다
月夜 달밤
絡緯織床下 여치는 평상 아래에서 베 짜듯 울고
月白淸夜永 밝은 달빛, 맑은 밤은 길기도하여라
靈臺淡如水 마음은 물 같이 담담하고
萬像森復靜 만물은 가득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風動鳥搖夢 바람 불어 새는 꿈에서 깨고
露滴鶴竦驚 이슬방울에 학은 놀라 움츠리는구나
物累不相侵 만물의 질서는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箇是招提境 그것이 바로 부처님 나라의 경지이로다
月夜獨步庭中 달밤에 홀로 뜰을 거닐며
滿身風露正凄凄 몸에 가득한 바람과 이슬 쓸쓸하기만 한데
夜半鐘殘斗已西 깊은 밤, 종소리 잦아들고 북두성은 서쪽으로 기운다
松鶴有機和月唳 소나무에 앉은 학 마음 있어 달에 화답하여 울고
草蟲牽恨向人啼 풀벌레 한에 끌리어 사람 향해 우는구나
半窓孤枕燈花落 홀로 누운 창에 등불 불꽃이 떨어지고
幽樹一庭簾影低 나무 그윽한 뜰에 발그림자 나직하구나
侍者正眠呼不起 시중 드는 이, 바로 잠 들어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好詩吟了便旋題 좋은 시 읊고 나서 바로 시 제목 생각해본다
月夜聞玉笛新羅舊物 옥피리
誰橫玉笛暗飛聲 저 누가 옥피리를 부는가.
散入秋風百感生 가을바람 타고 온갖 감회가 이네
詞腦調高雲渺渺 그 가락은 높아 구름 속에 아득하고
羅候歌緩月盈盈 여유 있는 그 음절은 달빛 타고 흐르네.
霜粘鮑石衣冠盡 서리 내린 포석정에 신라의 꿈은 다하고
木落鷄林星斗明 잎 지는 계림에 별은 빛나네.
不是欲吹腸斷曲 이것이 애를 끊는 단장곡인가
故城淸夜更關情 아니면 고향을 기리는 그 곡조인가.
詞腦調 - 향가의 가락.
渺渺 - 수면이 한없이 넓은 모양.
羅候歌 - 향가의 한 가지.
緩 - 부드럽고 여유 있다.
粘 - 끈끈하다. 여기서는 서리가 내린 모양.
星斗 - 별.
關情 - 고향의 정.
月夜聞子規 달밤에 두견새 울음 듣고서
東山月上杜鵑啼 동산에 달이 뜨니 두견새 우는데
徙倚南軒意轉悽 남쪽 난간에 옮겨 앉자 마음이 처량하다.
爾道不如歸去好 좋게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너는 말하지만
蜀天何處水雲迷 촉나라 하늘이 어디인가 물과 구름처럼 아득하다.
歸去春山幾度聞 봄산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나
春山處處結愁雲 봄산 가는 곳마다 시름 겨운 구름만 모여있네.
不知何許蠶叢路 누에치는 방법 찾아 가는 길이 어딘지 모르지만
還有思君不見君 그대 생각하고 못 본 사람 아직도 있었던가.
月夜偶題 달밤에 우연한 주제
滿庭秋月白森森 뜰에 가득한 가을 달 흰빛 창창하고
人靜孤燈夜已深 외로운 불빛, 사람은 말이 없고 밤은 깊어간다
風淡霜淸不成夢 살랑거리는 바람, 맑은 서리에 잠은 오지 않고
紙窓簾影動禪心 종이창의 발그림자에 부처마음 이는구나
月中聞雁 달빛 속에 기러기 소리 들으며
小堂秋夜月團團 작은 집의 가을밤 둥글고 둥근 보름달
閑聽征鴻獨倚欄 홀로 난간에 기대어 먼 길 떠나는 기러기소리 한가히 듣는구나.
斷續聲來天淡淡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에 하늘은 맑고 깨끗한데
聯翩影過路漫漫 연달아 나부끼며 지나는 모습에 길은 멀고도 지리하구나.
玉關霜重邊衣冷 옥문관에 서리가 겹치니 변방의 옷차림은 썰렁하고
香幄風高錦衾寒 향기로운 장막에 가을바람 부니 비단 이불도 싸늘하구나.
到此情懷遽如許 이곳에 이르러 생각하는 정과 회포는 저와 같이 급하니
牽愁且莫響雲端 구름의 느낌에 답하여 구차히 근심에 구애되지 말게나.
渭川漁釣圖 위천에서 고기 잡는 그림을 보고
風雨蕭蕭拂釣磯 비바람에 날이 쓸쓸하여 낚싯대를 띄우니
渭川魚鳥識忘機 위천의 물고기와 새들도 알아보고 미끼를 문다
如何老作鷹揚將 어찌하여 늙어서도 매처럼 용맹을 떨쳐
空使夷齊餓採薇 백이숙제로 하여 헛되이 굶어죽게 하였나
有客 나그네
有客淸平寺 길손 청평사에 머물며
春山任意遊 봄산을 한가로이 노니는데
鳥啼孤塔靜 새는 울고 외로운 탑은 고요한데
花落小溪流 꽃은 떨어져 작은 개울에 흐른다.
佳菜知時秀 맛있는 나물은 때맞춰 돋아나고
香菌過雨柔 향긋한 버섯은 비온 뒤라 부드럽구나.
吟行入仙洞 중얼거리며 걷다 신선골에 들어가니
消我百年愁 나의 백년 시름 모두 사라지네.
有客自春川來 言其鄕中十景 因題以贈 나그네가 춘천에서 와서 그 고을의 10경을 말하기에 시를 써서 주다
采藥仙洞 神仙(신선)골에서 藥草(약초)를 캐다
我欲采藥還 나는 약초 캐서 돌아가고자
艤舟淸平渚 청평산 물가에 배를 대었네.
我如劉阮行 나는 류령(劉伶), 원적(阮籍)처럼 유람하다가
食盡歸無處 먹을 것이 다하면 돌아갈 곳이 없네.
行行見桃實 길 가며 복숭아 열매를 보니
團團甛可茹 둥글둥글 달콤하여 먹을 만하다.
身輕骨欲仙 몸이 가벼워져 육신은 신선이 된 듯하여
行至數里許 몇 리 가량 계속 걸어갔네.
溪流淸且淺 시냇물은 맑고 얕아서
一杯隨水去 한 잔 물 따라 흘러가네.
杯中何所有 한 잔 속에 소유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胡麻飯新貯 검은 깨 밥만 새로 챙겨 두었네.
溪邊窈窕女 물가의 아리따운 아가씨
一笑來延佇 웃으며 와서 우두커니 서있네.
迎入設床帳 침상의 휘장 속으로 맞아들이는데
禮數秩有序 예에 따라 질서가 있네.
伴宿玉堂淨 정결한 옥당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無夢淸夜阻 청아한 밤에 막혀 꿈도 꾸지 않았네.
深嗟我塵人 나는 속세인임을 깊이 탄식하노니
已覺爾仙侶 네가 신선의 짝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送我出洞門 나를 계곡 입구에서 전송했는데
重尋迷處所 다시 찾았지만 그곳을 모르겠네.
幽居 쓸쓸하고 궁벽한 곳에 살며
1
幽居臥小林 숲 속에 누워 그윽이 사니
靜室一煙氣 고요한 방안에 한 줄기 향기 오른다
夜雨林花爛 밤비에 숲 속 꽃이 찬란하고
梅天風氣凉 육칠 월 날씨에 바람은 서늘하구나
葉濃禽語警 나뭇잎 짙고 새들은 지저귀고
泥濕燕飛忙 진흙에 질퍽하고 제비는 바삐 날아다닌다
何以消長日 긴 날을 어찌 보낼 것인가
新詩寫數行 새로운 시나 몇 줄 지어볼까나
2
松下茅齋靜 소나무 아래 초가집이 고요한데
幽居思不凡 그윽한 살림에 생각이 범상치 않다.
百年同一指 백 년 동안 같은 손가락으로 엮여
萬事付三緘 모든 게 세 번 동인 새끼줄에 달렸구나.
風送月溪艇 바람은 달 밝은 시내의 작은 배 보내고
雲藏天架巖 구름은 높은 하늘을 얽어매어 감추네
小窓成獨倚 작은 창에 홀로 기대어 있노라니
山翠濕靑衫 산의 푸르름이 조용히 청삼을 적셔주네
悠悠 여유로운 마음
萬事悠悠一夢間 온갖 일은 유유하니 잠깐 꿈꾸는 동안이라
勸君高臥且加餐 그대에게 권하노니 높이 누워 음식 많이 들게나.
身如逆旅心爲客 몸은 나그네 맞이하고 마음은 나그네 위하니
世似長途愁是關 한평생이 먼 길 같고 근심은 관문 같구나.
得酒莫辭多酩酊 술 얻으면 사양 말고 곤드레만드레 취하고
吟詩且欲喜盤桓 시 읊으면 또 욕심내어 크게 돌며 즐거워하네.
晩來雨過山堂靜 저녁 되어 비 지나가니 산 집은 고요하여
搔首長歌澧有蘭 머리 긁으며 감천(甘泉)의 난간에서 늘 노래하네.
踰岊嶺 산모롱이 절을 넘으며
棧路橫如線 사다리길 실처럼 가로 놓이고
危峯斷復連 높은 봉우리 끊어졌다 이어진다.
層氷人馬慴 얼음 층계가 두려운 사람과 말
古樹薛蘿纏 오래된 나무에 댕댕이가 얽혀있구나.
山菓經霜隕 산 과일은 서리 맞아 떨어지고
江楓向日姸 강가의 단풍나무 해를 향해 곱구나.
南歸心更切 남쪽으로 돌아갈 마음 더욱 절실해
日下望雲邊 해 아래서 구름 가를 바라보누나.
遊圃 즐거운 채소밭
滿眼靑山繞菜畦 눈에 가득 찬 청산이 채마 밭두렁을 둘러싸
靑靑蘿葍葉初齊 푸르고 푸른 무 잎들이 비로소 가지런하네.
十年慣却修場圃 십 년을 채소밭 손질하기 익숙한데
剩聽鵓鳩枝上啼 길게 들리는 집비둘기 가지 위에서 우네.
蘿葍 - 무, 무우. 십자화 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場圃 - 집 가까이 있는 채소 밭.
有懷 회포가 있어
開落山花又一年 산의 꽃이 피고 지며 또 한 해가 지나고
古今人事正潸然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변고에 바로 눈물 흐르네.
展禽三黜元非辠 전금이 세 번 쫓겨남은 큰 허물이 아니며
正則孤忠豈有愆 굴원의 외로운 충성이 어찌 허물되리오.
禍福何須占以筮 화와 복을 어찌 잠시 점대로써 점 칠 수 있나
窮通無不關於天 궁하고 통하는 건 하늘이 관여하지 않는 것 없구나.
時行時止非由力 때맞춰 행하고 그치는 건 힘으로 꾀함이 아니니
去矣吾耕負郭田 가자꾸나 내가 성 밖의 밭가는 걸 떠맡으리라.
展禽 - 유하혜(柳下惠) 춘추전국시대에 노(魯)나라 대부(大夫), 자는 季, 유하읍(劉下邑) 살면서 사사(士師)가 되어, 시호가 惠이므로 해서, 유하혜라고 하였다 하며, 그는 죄인을 다스리는 士師(재판장)으로 있으면서 세 번이나 자리에서 쫓겨나자, 어떤 이가 묻기를, "당신은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없었던가요" 하자 "올바른 도리로 사람을 섬기다 보면 그 어디에 간들 세 번쯤은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겠소" "올바른 도리를 굽혀 가면서까지 사람을 섬긴다면야 조상이 있는 노나라에 있을 것이지 왜 하필이면 다른 나라로 갈 필요가 있겠소.“
留侯引 유후로 물러남
人知子房謀 사람들이 자방의 꾀는 알아도
未識子房志 자방의 뜻은 아직 모른다네
謀漢報韓仇 한(韓)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한(漢)을 도왔으니
相漢曾無意 한을 도움이 원래 본뜻이 아니라네
功成勇退後 공 이루고 용퇴한 뒤에
世累如棄屣 세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願從赤松遊 적송자 따라 놀기를 원하였으니
保全是能事 몸을 보전하여 능히 일을 이루었네.
人知子房志 사람들이 자방의 뜻을 알아도
未識子房智 자방의 지혜는 아직 모르네.
擇齊三萬戶 제 나라의 삼 만 호를 택하라 해도
猶如草芥視 그것을 마치 초개처럼 보았네.
封留亦可足 유후에 봉해짐이 또 만족한 일
何用功名利 공명과 이익이 무슨 소용이리오.
韓彭受葅醢 한신과 팽월도 죽음을 당했으니
寵祿造物忌 총애와 녹봉은 조물주도 시기한다네.
有功不自伐 공 있고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處身甚淸閟 그 처신 맑고도 신비롭구나.
人知子房智 사람들이 자방의 지혜는 알아도
未識子房義 자방의 의리를 아직 모르네.
已蒙漢家恩 이미 한나라의 은혜를 입어
擘我中心恚 내 마음 속 분풀이 다하였거니
終企呬呵方 마침내 선이나 수양하면서
不慕將相地 장상을 사모하지 않았네.
竟招商嶺皓 끝내 상산의 사호(四皓)를 불러
以固儲副位 태자의 자리를 굳히었으니
不獨爲韓忠 다만 한(韓)을 위한 충성 뿐 아니라
計漢亦不二 한(漢)을 위해서도 또한 두 마음이 없었네.
子房一生業 자방의 일생 한 일을 살펴보니
其來必有自 그 유래가 반드시 장상에 까닭 있으니
一卷素書中 저 한 권 황석공의 소서 가운데
子房行事備 자방이 행한 일이 모두 있다네.
無事試一覽 일하기 전에 한 번 읽어 보고
不過正其誼 그 도리를 밝혔음에 불과하지만
知足又知恥 족한 줄을 알고 또 부끄러움을 아니
永永無顚躓 엎어지고 미끄러짐 끝내 없었다네.
子房 - 張良(?~BC 186)의 字. 한고조 유방의 책사로서 항우를 꺾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많은 공을 세웠으나 유후로서 만족하고, 攻城身退. 黃石公으로 부터 太公兵法書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商山四皓 -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난리를 피하여 상산에 살던 東圓公, 夏黃公, 甪里先生, 綺里季를 가리킴. 이들이 모두 눈썹과 머리카락이 희었다는데서 붙여진 명칭
日暮 날이 저물어
其一
日暮長天碧 해가 저문 높고 넓은 하늘은 푸른데
雲收列岫明 구름 걷힌 봉우리 차례로 나타나네.
砌蛩愁更語 섬돌의 벌레 시름 겨운 소리 계속하고
庭草剗還生 뜰의 풀은 깎아도 다시 나오는구나.
地僻絶來往 궁벽한 처지라 오고 감도 끊어지고
山深無送迎 산이 깊으니 보내고 맞이함도 없네.
支離誰與伴 이 지루함을 누구와 더불어 짝하나
床下看蟲行 평상 아래 벌레 가는 걸 바라보네.
其二
夕露圓蛛網 저녁 이슬이 둥근 거미줄을 덮으니
流螢入燕巢 반딧불 떠돌고 제비는 둥지에 드네.
細煙浮草際 미미한 안개는 풀숲 가에 떠다니고
缺月上松梢 이지러진 달은 소나무 끝에 오르네.
杜口絶排難 입 닫고는 결코 바로잡기 어렵나니
逢人能解嘲 사람을 만나면 응당 조롱을 풀리라.
小堂秋色淨 작은 당에 가을 경치가 깨끗하니
落葉墜衡茅 낙엽 떨어지며 띳집을 가로지르네.
一身 내 한 몸
一身跡如寄 내 한 몸 발자취 붙여 사는 것 같아
江湖四十年 강과 호수에 사십 년 이로구나.
但知人自老 사람들 저절로 늙음을 알지만
肯諳歲回旋 세월이 돌고 도는 것 즐겨 깨닫네.
影外無相弔 그림자 외에는 서로 묻는 이 없고
雲邊政可憐 변방의 구름처럼 정말로 가련하네.
如今侵白髮 지금 같이 흰 머리로 초라해지면
造物恐無權 조물주도 권세 없음을 두려워하리.
一室 방 하나
茅簷疏雨滴 띳집 처마에 성근 비 떨어지니
一室正翛然 온 집안이 때마침 자유롭구나.
詩句疑催老 시와 구를 늘 재촉하는 것 같아
松醪欲伴眠 송진 술 의지해 쉬니 편안하구나.
固窮安老境 궁함 견디니 늙으막에 편안하고
護病養殘年 병을 지켜 남은 생을 즐기리라.
何以娛幽獨 무엇으로 쓸쓸한 외로움 삭이나
關門寫太玄 문 닫고 태현경이나 베껴보리라.
翛然 - 사물에 얽매이지 않은 모양, 자유자재한 모양.[장자 대종사]
松醪 - 송진을 넣어 빚은 술.
太玄 : 태현경(太玄經), 태는 미칭(美稱)이고 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본체를 말함. 중국 한(漢)나라의 양웅이 지은 책. 현이 만물로 전개되어 가는 모양을 상징적인 부호(符號)와 난해한 문구로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역을 본 뜬 것임.
一日 하루
一日復一日 하루 다시 또 하루
一日何時窮 하루가 다할 때는 언제일까 ?
天如輿輻轉 하늘은 수레 바퀴살 도는것 같고
地似蟻封崇 땅은 개미가 흙을 높이 쌓은것 같네.
俯仰岡涯涘 숙이고 올려보며 고개와 물가 가늠하고
盈虛無始終 채우고 비움은 시작과 끝도 없다네.
其間人世事 그 사이에 인간 세상의 일들은
幾替幾興隆 얼마나 망하고 얼마나 번영했나.
立石麥浪 입석(선돌)의 보리 물결
萬頃芃芃含淺靑 넓은 들판 무성한데 엷은 푸른빛 머금고
綠波初漲雲浮汀 초록 물결 넘쳐나며 물가엔 구름 떠가네.
望中不盡翳遠野 끝없이 보는 사이 먼 들판 흐려지고
割後無痕乾滄溟 베어낸 뒤엔 흔적 없어 큰 바다처럼 비리라.
野雉藏深香穗潤 들꿩은 깊이 숨고 보리이삭 향기를 더하며
雛燕掠去輕花零 비 새끼 스쳐 가니 꽃이 가볍게 떨어지네.
不用鼓枻遡牛渚 쓸데없이 노를 휘둘러 시내 물가로 향하니
眞一一勺通神靈 정말로 오로지 한 잔술에 신령과 통하리라.
子規 두견새
千疊峯頭月欲低 첩첩이 산봉우리에 달이 지려하는데
聲聲偏向耳邊啼 소리소리 한편에서 귓가로 들리어온다.
不如歸去將何去 돌아감만 못하다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故國天遙只在西 고향 하늘 아득하여 서녘만 살펴보네.
煮菌蔬於小鐺 작은 솥에 버섯과 나물을 삶으며
洞中雪未消 골짜기 속 눈이 녹지 않았어도
雪底山蔬秀 눈 밑에는 산의 나물이 자라네.
嫩芽戴白緜 어린 새싹은 흰 솜을 머리에 이고
脆莖肥且富 연한 줄기는 살찌고 또 풍성하네.
採之煮小鐺 이를 캐어 작은 솥에 삶으니
細細蚯蚓鳴 매우 가늘게 지렁이가 우는 것 같네.
足以充我飢 이로써 내 굶주림 채우기 족하고
可以保餘生 이로써 남은 생 가히 유지하리라.
可笑鍾鼎人 우습구나 부귀공명의 사람들
區區利與名 이익과 더불어 명예는 구차하구나.
頭上紅塵深 머리 위엔 속세의 티끌 무성하고
足下羅網縈 발아래는 그물 벌려 얽혔네.
三萬六千日 삼만 육천 날[인생 백년]을
乍歡又乍驚 잠깐 기쁘다 또 별안간 놀라네.
何似鐺中蔬 어찌 솥 안의 나물 같이
一味和且平 좋은 맛으로 화해 편안할 수 있을까 ?
煮芹 삶은 미나리
野味濃如芻豢香 질박한 맛이 잘 차린 음식의 향보다 더 짙으니
煮芹那及太官羊 큰 관청의 양이 어찌 삶은 미나리에 미치리요.
靑泥坊底人相過 둑 밑에서 푸른빛 윤기 돌아 사람들 서로 옮기니
脩竹窓前我自嘗 지게문 앞에서 대나무 술잔에 나는 절로 맛보네.
隱之不能忝節操 은지는 능하지 못하니 절개와 지조를 더럽히고
陳平今已厭糟糠 진평은 얼마 되지 않아 술 찌꺼기 싫어하였네.
困眠終日從心懶 의욕 없는 마음 따라 종일 지쳐 쉬기만 하니
喚酌人蔘蟹眼湯 가물치에 어린 싹 끓여 늘어진 사람 불러 마시네.
隱之 - 지조 있는 은지가 광주의 자사로 가서 貪泉[탐천] 샘물을 먹고 천금을 생각한 일. 몽구(蒙求) 隱之感隣에서 인용
煮茶 달이는 차
松風輕拂煮茶煙 솔바람 다 달이는 연기 몰아 올리고
裊裊斜橫落澗邊 하늘하늘 기울어져 골짝물가로 떨어진다
月上東窓猶未睡 동창에 달 떠올라도 아직 잠 못 자고
挈甁歸去汲寒泉 물병 들고 돌아가 찬물을 기는다
自怪生來厭俗塵 나면서 풍진 세상 스스로 괴이하게 여겨
入門題鳳已經春 문에 들어가 “봉”자를 쓰니 이미 청춘 다지나갔다
煮茶黃葉君知否 달이는 누런 찻잎 그대는 알까
却恐題詩洩隱淪 시 짓다가 숨어사는 일 누설될까 오히려 두렵다
自勉 스스로 힘쓰다
老子正無知 노부는 정직하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客至而從嗔 손님 이르면 제멋대로 성을 내는구나.
日午掩柴扉 한 낮이 다되도록 사립문 닫아걸고
高臥羲皇民 높이 누웠으니 복희 황제의 백성이네.
不求出世法 출세하는 방법도 구하지 아니하고
亦不戀風塵 또한 풍진 세상을 아쉬워하지도 않네.
多年事蹭蹬 여러 해 동안 일마다 길을 잃었어도
貧窶無酸辛 가난한 살림이 괴롭거나 슬프지 않네.
吟詩不待伴 시를 읊어가며 벗을 기다리지 않고
高嘯搖其唇 크게 울부짖다 이에 놀라서 움직이네.
得失兩忘筌 얻음과 잃어버림 둘 다 잊어버리고
萬事歸蒼旻 모든 일을 푸른 하늘(창천)에 맡기네.
勖哉勉此心 처음 힘쓰듯 이 마음으로 부지런하기를
莫學周彥倫 주언륜은 배우지 말지니라.
周彦倫 - 주언윤이 북산(北山)에 숨어 있다가 천자의 부름을 받고 산을 나가 해염현령(海鹽縣令)이 되었는데, 뒤에 그 산을 또 찾으려하자 공치규(孔稚珪)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북산 신령의 뜻을 빌려 주언륜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북산이문(北山移文)이란 글을 지어 북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다 함.
自笑 스스로 조소하다
詩酒悠悠三十年 시 읊고 술 마시며 한가히 여유 있게 삼십 년
傍人錯會愛逃禪 옆 사람은 좌선 피하기 즐긴다 잘못 이해하네.
靑雲亦有投閑日 벼슬길에도 또한 한가한 날들이 있을 것이나
一段淸遊恐不全 한 가지 자연을 즐기는 것도 온전치 못할까 두렵네.
慈烏啼 어미 까마귀 울음
啞啞枝上吐哀音 까악까악 가지 위에서 슬픈 소리 토하더니
飛遶荒城楓樹林 거친 성곽을 날아 돌다 단풍 숲으로 들어간다.
莫向綠窓啼更苦 푸른 창 향하여 울어 더욱 괴롭게 하지 말라
五更殘夢正關心 새벽 시간 남은 꿈속 일에 정말 마음 쓰인다.
自貽 스스로에게 주다
1
處士本閑雅 처사는 본래 조용하고 고상하니
早歲好大道 어린 나이에 큰 도를 좋아했다
志與時事乖 품은 뜻이 세상과 어긋나
紅塵跡如掃 세상 자취는 마땅히 버렸다오.
少小遊名山 젊어서 명산에 조금 놀다가
甿俗不交好 무지한 속인들 좋아하지 않아
晩居瀑布傍 늙어서는 폭포가에 살면서
欲作淸溪老 맑은 개울의 늙은이가 되려했다
世人那得知 세상 사람들 어찌 알리오
尋常稱潦倒 흔히들 신세 망쳤다고들 말하네.
處士亦不猜 처사도 시기하지 않고
每被風花惱 매양 바람과 꽃의 번뇌를 받아들이네
.隱顯或無時 때 없이 나타나고 숨어 다녀도
期往蓬萊島 신선 세상 봉래도로 가기를 기약하노라
2
碧山淸隱好稱君 푸른 산에 한가히 숨어 군자라 칭하기 좋고
願住高峯臥白雲 높은 뫼에 살며 흰 구름에 눕기를 기원하네.
宦路若逢淸隱子 벼슬길에 만약 탐욕 없는 은자를 만나거든
草堂蘿月更移文 초당의 담쟁이넝쿨의 달빛에 이문을 고치리라.
雀舌 작설차
南國春風軟欲起 남쪽 지방에 봄바람이 부드럽게 일기 시작하니
茶林葉底含尖觜 차 숲속 잎새 밑에는 뾰족한 부리를 머금었어라.
揀出嫩芽極通靈 연한 싹을 가려내니 신령스러움과 통하고
味品曾收鴻漸經 그 맛과 품질은 흥점의 다경에 수록되었어라.
紫筍抽出旗槍間 붉은 싹은 잎과 줄기 사이에서 뽑아내고
鳳餠龍團徒範形 봉병과 용단 차는 모양을 본뜬 같은 무리라.
碧玉甌中活火烹 푸른 옥병 속에 넣어 불을 살라 달이니
蟹眼初生松風鳴 게 눈 같은 거품 생기며 솔바람처럼 울린다.
山堂夜靜客圍坐 산속 집 고요한 밤에 손님과 둘러앉아
一啜雲膄雙眼明 운수 차 마시니 두 눈이 밝아진다.
黨家淺斟彼粗人 거친 사람들 마을 집에서 미숙하게 조리하니
那識雪茶如許淸 어찌 알리오, 설다가 얼마나 맑은 차인 줄을.
殘燈餘一寸 한 치가 남은 잔등
殘燈餘一寸 잔등이 한 치가 남고
新燭高一尺 새 촛불은 높이가 한 자.
夜長仍獨息 긴 밤에 혼자 쉬노라니
閑愁難可遏 한가로운 시름을 막기 어렵네.
起來倚空床 일어나 빈 상을 의지하여
馳騁紙上墨 옛 글을 두루 훑어보니
古人雖已邁 옛 사람들 간지 오래이나
音響何緜邈 그 메아리 아득히 들려오누나.
開卷想形容 책 펴고 그 모습들 상상해보매
使我空感觸 맘속에 온갖 느낌 다 일어난다.
巢由甘曳沙 소부(巢父), 허유(許由)는 구속 안 받으려고
終老雲林壑 마침내 운림(雲林) 구렁에서 늙었고
夷齊是何人 백이숙제는 또 어이한 사람인가
餓死首陽谷 수양산 골짜기에 굶어 죽어서
殷祚不能扶 은나라의 국조(國祖)도 못 붙들고
又作周家贅 또 주나라의 혹이 되었단말가.
雖爾百世師 비록 백세의 스승은 되었을망정
一生徒呆呆 그 일생은 한갓 어리석었네.
鴟夷何孟浪 치이(鴟夷, 范蠡)는 어찌 맹랑스럽게
五湖搖桂楫 오호(五湖) 배를 타고 노를 저어서
空結越王恨 부질없이 월왕의 한을 맺었는가.
未逐姑蘇鹿 고소대의 사슴을 못 쫓은
伍員獨何人 오자서는 또 무슨 사람이길래
謇謇遭誅戮 바른 말 하다 주륙을 면치 못하여
魂添浙江濤 넋이 절강의 물결을 더하였으니
那如松下收殘骨 솔 아래 뼈를 거둠만 하였을손가.
李斯上東門 이사(李斯)는 동문의 형장에 올라
徒嘆何所益 부질없이 탄식한들 무엇하리.
已招天隕殃 하늘의 재앙을 이미 불렀으니
爰補嬴秦錄 영진(嬴秦)의 운명에 무슨 도움일꼬.
方朔譏武帝 동방삭은 한무제가
屢進延年藥 연년약을 누차 달임을 기롱했으나
胡乃五柞宮 어찌하여 끝내 오작궁에서
不能延一百 一 백의 천수를 못 누렸던가.
曹操恃英雄 조조는 영웅이라 뽐내었지만
終困劉郞戟 마침내 유랑(劉郞)의 창에 혼났네.
善名不可聞 선한 이름도 듣지 못할 것
惡聲不可驩 악한 소리도 즐기지 말 것이라
人生百歲間 사람이 백 년을 사는 동안에
欲保誠獨難 제 몸을 보전하기 참 어려워라.
夫子厄於陳 부자(夫子)는 진에서 액을 만나고
昌黎傷遷謫 창려(昌黎)는 조주로 귀양갔으며
南宋數君子 남송의 현철들 몇몇 군자도
繼往開後學 전성 이어 후학을 열어놨으나
不能扶棟橈 기울어진 나라를 못 붙들었으니
事業空抛擲 평생의 사업이 부질없었네.
疊山縱發憤 나라 亡한 뒤에 첩산(疊山, 謝枋得)이 비록 발분하여서
餒斃竟何得 굶어 죽었으나 무엇하리.
善者誰云善 선한 자를 누가 선하다 이르는가
莫庇枝與幹 가지와 줄기를 비호치 못하네.
惡者不可論 악한 자는 아예 논하지 말 것인바
炎炎招禍難 혹독한 재난을 불러오나니
有布且勿喜 베가 있다 아직 기뻐하지 말고
無布固勿慾 베 없어도 진실로 욕심내지 말 것이
兩旣竟無裨 둘 다 이미 마침내 소용 없으니
兀兀將何爲 우뚝 선 이 몸을 어이할건가.
蘿月掛松枝 나월이 소나무가지에 걸려
寒光來照衣 찬 빛이 와서 옷에 비치고
又照床上琴 또 상위의 거문고를 비치길래
鼓之轉淸淡 타니 그 소리 청담하네만
古曲無鍾期 옛 곡을 알아줄 종자기 없으니
莫能辨眞濫 진짜와 허튼 가락 분별 못 하네.
剪燭且安眼 촛불 꺼지면 잠이나 편안히 자자
炷盡淸暉暗 심지가 다하면 어두워지리니.
新燭又將寸 새 초도 어느덧 한 치가 되고
晨鍾令我感 새벽 종이 또 나를 느끼게하네.
殘雪 남은 눈
隔林殘雪在 수풀 너머 녹다 남은 눈이요
千峯風料峭 산봉우리마다 봄바람이 세차구나.
蕭森萬木中 빽빽한 나무 사이
時有山禽呌 때때로 우는 산새 소리 들린다.
聽此意慘悽 마음이 서글퍼지니
起歌還自笑 노래 부르다가 헛웃음 나오네.
人生天地間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所樂爲功名 공명을 세우는 것이 즐거움인데
奈何棄如屣 어찌하여 헌신짝처럼 버리고
放曠丘壑情 산야를 떠다닐 생각만 하는가.
爾顔日以頹 네 얼굴 날마다 늙어가고
年光相遞更 세월은 번갈아 바뀌누나.
固意守素志 평소에 품은 뜻 굳게 지켜
淡泊終平生 담박하게 한 평생 마치려 하네.
蠶室 잠실에서
十年爲客走西東 십 년을 나그네 되어 동서로 떠다니니
身世都如陌上蓬 아! 이내 신세 길 위의 쑥대 같구나.
行路世途俱嶮巇 살아가는 세상길이 모두가 험난하니
不如無語嗅花叢 말없는 꽃떨기의 향기 맡음만 못하네.
壯歲 한창 나이
壯歲功名頗自期 젊은 나이에는 공명을 자못 스스로 바라며
虞庭吁咈接咎夔 조정을 속이고 부름을 어겨 고기를 접하였네.
老駒伏櫪心千里 늙은 망아지 말구유에 엎드려도 마음은 천리요
病鶴開籠笑一枝 병든 학도 새장 열리면 한번에 흩어지며 비웃네.
樗櫟不能爲世用 무능한 사람은 세상 위해 쓰일 능력 없지만
麒麟豈肯作人羈 기린이야 어찌 인간이 만든 구속을 즐기리오.
衰遲自笑狂豪甚 쇠하고 둔해져 스스로 심히 미친 호걸 비웃지만
落筆崢嶸勝舊時 붓을 들면 한껏 높아 옛날 보다 뛰어나네.
咎夔 - 요순시대 훌륭한 신하.
咎 - 고요(咎繇) 우순(虞舜)의 신하 고도(皐陶)의 별명, 사(士)로서 오형(五刑)을 맡아 바로잡음 夔 - 기룡(夔龍) 음악가, 순(舜) 임금이 전악(典樂)으로 임명. 순(舜)과 우(禹)와 고요(皐陶)가 군신(君臣) 간에 서로 화합하여 좋은 말을 주고받은 가운데서 나온 말이고, 기룡(夔龍)은 순 임금의 두 현신(賢臣)으로, 기는 악관(樂官)이었고, 용은 간관(諫官)이었으므로, 전하여 명군현신(明君賢臣)이 서로 화합하여 예악문물(禮樂文物)이 성대해진 것을 의미한다.
壯志 원대한 꿈
壯志桑弧射四方 큰 뜻으로 뽕나무 활 사방에 쏘면서
東丘千里負淸箱 동쪽나라 천리 길 푸른 상자 지고 다녔네
欲參周孔明仁義 주공과 공자에 참여하여 인의를 밝히며
又學孫吳事戚揚 또 손자와 오기를 배워 무위를 날리려 했네
運到蘇秦懸相印 운이 닿으면 소진처럼 정승이 되고
命窮正則賦離騷 운이 궁하면 정칙처럼 이소경이나 지으리
如今落魄無才思 지금은 낙백하여 한 치의 재주와 사려 없으니
曳杖行歌類楚狂 지팡이 끌고 노래하기가 초나라 광접여와 같네
桑弧 - 상호봉시(桑弧蓬矢),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옛날 중국에서 남자가 태어나면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화살로 천지 사방에 쏘아 큰 뜻을 이루기를 빌던 풍속에서 유래하였음.
楚狂 - 접여(接輿), 초나라의 은사로 육통(陸通) 난세를 만나 미친 척하며 공자를 비웃은 일화가 전함.
栽松原 소나무 심은 언덕
去日無裝束 떠나던 날에 행장 없었는데
來時只浪吟 돌아올 때는 다만 콧노래 뿐.
浿江秋水闊 대동강의 가을물 불어나 있고
香岳暮雲深 묘향산엔 저문 구름이 깊도다.
蒼海一鵬志 푸른 바다 나는 붕새의 뜻
碧山千里心 푸른 산에 담은 천 리 먼 마음.
歸歟何處是 돌아갈까 어느 곳이 옳은가
楓嶺聳崟岑 풍악산 고개에 치솟은 험한 봉우리.
狄城嶺 적성령
嵯峨山路險 높고 높은 산길은 험하고
格磔有鳴禽 찍찍 우는 새들 이곳에 있다
殘照千峯外 일천 산봉우리 밖에 지는 해 비치고
孤鴻一片心 외기러기 같은 한 조각 마음이로다
行行溪水近 걷고 또 걸으니 개울물 가깝고
去去嶺雲深 가도 또 가지 고개 위 구름은 깊어진다
林壑吾生願 숲 속 계곡이 내 삶의 소원이라
塵緣不可侵 세상살이 인연이야 침범하지 못하리라
田家卽事 농가에서
1
一間茅屋倚山岡 산등성이 한 간 초가집
場畔翁姑語正長 마당가에 노부부 긴 정다운 대화.
未解平生榮爵祿 평생 영광과 벼슬 알지도 못하고
只誇卒歲富農桑 다만 농사와 누에가 잘됨을 자랑하네.
溪橋日晩牛羊下 저문 개울가 다리에 소와 양들 내려오고
秋壟風高禾秫香 바람 높은 가을 언덕에 향기로운 벼와 차조.
待得兒童沽白酒 아이가 술 사오기를 기다려
旋炊菰飯喚人嘗 바로 고미 밥 지어 사람들 불러 맛보리라.
2
門靜鷄群啄晩禾 문 앞은 고요한데 닭들이 늦벼를 쪼고
初聞南舍釀新醝 남쪽 집에서 새 술 빚은 소식 비로소 들리네.
擊壤歌罷催科少 풍년가 다했어도 세금 독촉 적으니
賽社人歸醉舞多 마을 굿에 사람들 취하여 춤추며 돌아간다.
區芋脆來兒共堀 둔덕의 토란 연한데 아이들 모두 캐고
香橙熟處手親搓 향긋한 귤 익는 곳에서 직접 따본다.
老翁喜說秧田熟 늙은 노인 밭벼 익었다 기뻐 말하며
叱犢驅牛荷短蓑 짧은 도롱이 입고 송아지 재촉하며 소를 몬다.
3
西崦人家社酒香 서쪽 언덕 인가에 제사 술이 향기롭고
村童來報老先嘗 시골 아이 알려와 노인어른 먼저 맛보네.
妻挑野菜和根白 아내가 뜯어온 들나물 뿌리마저 희고
兒摘山梨帶葉黃 아이가 따온 산배는 누런 잎이 달려있다.
不識干戈事征戰 방패와 창으로 전쟁하는 일 모르고
唯知耕耨足稻粱 갈고 김매어 벼와 기장 풍족함을 알 뿐이라.
田家所樂將何事 농가의 즐거워 할 일 무엇이 있겠는가
寒背蓬廬曝大陽 추운 날 초가집에 등 붙이고 햇볕 쬐는 것이리라.
靜夜 고요한 밤에
三更耿不寐 깊은 밤 근심에 잠은 오지 않고
明月滿東窓 밝은 달만 동쪽 창에 가득하구나
杜口傳摩詰 입 막고 왕유를 전하고
無心學老龐 물욕 없이 늙어 방씨의 은거함만 배웠네
最憐淸似水 물처럼 맑은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安得筆如杠 어찌 깃대 같은 붓을 얻을 수 있을까
剪燭拈新語 초심지 자르며 새로운 말을 찾아내고
排聯押韻雙 배율시를 지으며 운을 맞춘다
老龐 - 방거사라 불림. 상당한 부호였으나 재물은 탐욕을 부른다며 전 재산을 버리고 돗자리를 팔며 궁핍하게 일생을 마쳤음.
筆如杠 - 嗟我欲說 安得巨筆如長杠(아! 내가 말하고자 하노니, 어이하면 긴 기둥과 같은 큰 붓을 얻을꼬!)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여산고(廬山高), 문장력이 매우 뛰어남을 비유함.
祭壇綠蕪 제단의 거친 풀들
東城門外松萬株 동쪽 성문 밖에는 일만 그루의 소나무
松下祭壇多綠蕪 소나무 아래 제단에 거친 풀이 많구나.
苞桑枝下免領兒 우거진 뽕나무 가지 아래 토끼가 새끼 데리고
淺草叢邊烏哺雛 연한 풀 섶 곁에는 까마귀가 새끼를 먹이네.
無數野花自開落 무수한 들꽃들은 저절로 피고 지고
不盡細藤相緣扶 죽지 않은 가는 등나무 서로 얽혀 둘렀네.
點也情懷莫之禁 점이여 ! 정과 회포를 금할 길 없었으니
風乎竟日空踟躕 아 바람에 해가 다하도록 헛되이 머뭇거리네.
題梅公房 매월당의 방에 제하여
綠樹陰濃夏日長 푸른 나무들 그늘은 짙고 여름 해는 긴데
高低簷影入禪房 높고 낮은 처마 그림자 선방에 드는구나.
梅師偃臥睡初醒 매월당 거만하게 누워 자다 비로소 깨더니
時見藤花垂短墻 짧은 담장에 드리워진 등나무 꽃을 엿보네.
題壁 시문을 지어 벽에 쓰다
水落山中尋古寺 수락산 산속에서 옛 절을 찾는데
前年街錫又今年 지난해 석장을 올해 또 짚었구나.
頭邊日月跳丸過 해와 달의 꼭대기는 도환처럼 지나가고
眼底星霜飛鳥遷 세월 눈 바닥은 나는 새처럼 옮겨 간다
破屋何妨容此幻 파옥이 어떻게 방해하여 이 환상을 용납하랴
淡餐且可樂吾天 담찬 또한 풍류를 즐기는 옳은 방법이리라
興來支杖經行處 흥진비래에 지팡이 짚고 버팀은 불도를 닦는 것과 같고
風樹鳴蜩咽似絃 풍수에 매미가 우는 것은 목구멍이 현과 같은 것이리
興來 - 興盡悲來의 약자.
風樹 - 나무는 고요하고자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는 뜻.
題細香南窓 세향원 남쪽 창을 자세히 보니
朝日將暾曙色分 아침 해가 밝으려는가 새벽빛이 분명한데
林霏開處鳥呼群 늘어선 숲 열린 곳에 새가 짝을 부른다.
遠峯浮翠排窗看 먼 봉우리에 떠 있는 푸른빛은 창을 열고 바라보고
隣寺疏鍾隔巚聞 이웃 절의 느린 종소리는 언덕 넘어 들린다.
靑鳥信傳窺藥竈 파랑새는 소식을 전하며 약 달이는 부엌을 엿보고
碧桃花落點苔紋 하얀 복숭아꽃은 떨어져 이끼 무늬에 점 찍는다.
定應羽客朝元返 정녕코 신선은 상제께 조회하고 돌아와
松下閑披小篆文 솔 아래서 한가히 소전(小篆)의 글을 펴보리.
小篆 - 중국 한자 서체의 하나
題小林菴 소림암을 보니
禪房無塵地 선방 티끌 없는 그곳에
逢僧話葛藤 스님을 만나 얽힌 이야기 나눈다
身如千里鶴 몸은 천 리를 나는 학 같고
心似九秋鷹 마음은 가을 철 매 같도다
石逕尋雲到 돌길에 구름 찾아 여기에 와
松窓獨自빙 소나무 창가에 홀로 기대어본다
無端更回首 까닭 없이 다시 머리 돌려보니
山色碧崚嶒 산 빛은 푸르고 험하기만 하구나
題昇曦道人詩券 승희도인의 시집을 자세히 보니
獨樂亭前冪酒漿 독락정 앞에는 술즙을 덮어 놓고
金仙床下換茶香 금선상 아래는 차 향기로 바꾸네.
名高列傳言非爽 열전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 이름 높고
道秀禪燈韻己彰 선등의 운치 창창한 듯이 도가 드러나네.
流水浮雲三世過 흐르는 물 뜬 구름처럼 3생이 다 지나가고
洛花啼鳥百年忙 꽃이 지고 새가 울 듯이 백년 세월도 애닯다.
操心澹泊眞無累 마음을 다스려 담박하면 진실로 누 되지 않아
貞靜住蹤沒不亡 곧고 고요함은 죽어도 그대로이리라.
題院樓 원루에서 쓰다
1
玉山東畔淸風院 옥산 동쪽 거리의 청풍원 그 집에
衝雨登臨一少留 비 맞으며 올라가서 한차례 조금 쉬었다.
忽聽夕陽江上笛 서양의 강 위에서 피리 소리 문득 듣고
白雲鄕思也悠悠 흰 구름에 고향 생각마저 유유히 떠오른다.
2
四面溪山擁小樓 사면의 개울과 산이 작은 누각 싸안았는데
淸風吹骨忽驚秋 맑은 바람 뼈에 불어와 가을임에 문득 놀랐다.
金龜換酒人何處 금거북으로 술 바꾸던 그 사람 어디 있나
斷雨殘雲自在愁 그친 비와 남은 구름이 그대로 근심이어라.
題知止師房 방안에서의 깨우침
月明如畵山家夜 달은 밝아 그림 같은 산집의 이 밤
獨坐澄心萬慮空 홀로 앉으니 내 마음엔 일만 생각이 공허하다.
誰和無生歌一曲 누구와 더불어 무생가를 부를 건가.
水聲長是雜松風 물소리 길게 솔바람에 섞이우네.
題淸平山細香院南窓 청평산 세향원 남창에서 쓰다
朝日將暾曙色分 아침에 동트면서 새벽빛 나누어지고
林霏開處鳥呼群 숲속 안개비 걷히는 곳엔 새들이 지저귀네.
遠峯浮翠排窓看 먼 봉우리에 떠있는 푸른 기운 창문 열고 바라보고
隣寺疏鍾隔巘聞 이웃 절 성긴 종소리 언덕 너머에 들리네.
靑鳥信傳窺藥竈 파랑새는 소식 전하며 약 달이는 솥 엿보고
碧桃花落點苔紋 벽도화는 이끼에 점점이 떨어지네.
定應羽客朝元返 아마도 신선은 조원각에 돌아가서
松下閑披小篆文 소나무 아래서 한가로이 소전문을 펴보리라.
夕陽山色淡還濃 석양에 산빛은 엷었다가 진해지고
倦鳥知歸趁暮鍾 지친 새는 돌아갈 때를 알아 저녁 종소리를 좇아가네.
棋局不收邀客訪 바둑판 거두지 않고 나그네를 맞이하고
丹房慵鎖倩雲封 신선의 방은 게을리 닫혀 어여쁜 구름에 가려있네.
方塘倒揷千層岫 못에는 천 겹의 山봉우리가 거꾸로 꽂혀 있고
絶壁奔飛萬丈淙 절벽엔 만 길 물줄기가 날리네.
此是淸平仙境趣 이것이 청평산 신선의 정취이니
何須喇喇問前蹤 어찌 시끄럽게 지난 자취를 물어보리오.
槽嶺村 조령촌
山路險且脩 산길은 험한데다 또한 멀고
山雲濃欲滴 산 구름 짙어져 비 떨어지려하네.
陰陰老木中 오래된 나무속은 습기 차 축축하고
日暮杜鵑哭 해는 저무는데 두견이 우는구나.
隔林叱犢聲 숲 건너 송아지 꾸짖는 소리 나고
人家負林麓 인가는 한적한 산기슭 등지고 있네.
稚子語籬根 울타리 밑둥엔 어린 아이들 떠들고
籬畔野花落 들꽃들은 울타리 가에 떨어지네.
裊裊炊煙起 밥 짓는 연기 가늘게 일어나고
林深山路黑 깊은 숲 산길은 보이지 않는구나.
坐久主人來 오래 앉아있으니 주인이 오는데
溪村山月白 산골 마을 산에는 달빛만 밝구나.
嘲二釣叟 낚시질하던 두 노인을 조롱하다
1
風雨蕭蕭拂釣磯 비바람 소소히 낚시터를 스치고
渭川魚鳥識忘機 위천의 물고기와 새는 술수를 잊었구나.
如何老作風雲將 어찌하여 늙어가며 풍운의 장수 되어
終使夷齊餓采薇 끝내 백이와 숙제를 굶겨 고사리 캐게 했나.
2
桐江江上釣煙波 동강 강위에서 안개 낀 물결에 낚시질하니
生計蕭條一短蓑 짧은 도롱이 하나 걸치고 생계도 쓸쓸하다.
漢家若無星象動 한나라의 별들의 움직임이 만약 없었다면
千秋定不累完名 수천 년을 진정 완전한 이름 누 되지 않으리라.
朝日 아침 해
1
朝日蘸紅霞 아침 해가 붉은 노을을 담그고
雲間玉柱斜 구름 사이로 옥기둥이 기우네.
蒼涼升海域 푸르고 맑은 해역에서 떠오르며
奕赫遍天涯 크게 빛나며 하늘가에 퍼지네.
透隙塵堪數 환하게 갈라지며 몇 시간을 즐기니
烘窓暖可賖 밝은 창은 가히 느리게 따뜻해지네.
負暄仁已盎 따뜻한 빛이 이미 자애롭게 넘치고
況復熨梅花 게다가 다시 매화를 따뜻하게 하네.
2
朝日照欄干 아침 해가 난간을 비추니
鮮麗光可悅 선명한 고운 빛 가히 기쁘구나.
浥浥草上露 풀 위에는 이슬이 젖어
團團手可綴 동글게 모아서 엮여있네.
東峯霧初霽 동쪽 봉우리 안개비가 개이니
磊碨丘壑列 우둘툴한 돌 언덕 골짜기 줄졌네.
醒然心爽塏 청신한 마음 상쾌하여 높은 곳에
身輕秋隼掣 몸 가벼운 가을 송골매 바람을 타네.
灌我園中花 나는 씻고서 뜰 가운데 꽃잎을
庭除掃令潔 뜰을 지나 쓸면서 깨끗이 하였네.
凝然夜旦氣 단정하고 진중한 새벽녘 아침 기운
方壹未接物 모든 만물에 아직 접촉하지 못하네.
但使至日昏 다만 날이 어둡도록 이르게 하면
勿爲形所拂 창황히 일정한 형상에 덥게 되리라.
聖賢如此耳 성현들께 이와 같이 들었으니
匪遠最親切 멀리하지 않음이 가장 친한 것이라.
嗟哉行屐人 아 ! 길을 가는 사람들아 !
孜孜莫踐末 부지런히 힘쓰고 천하게 밟지 말게나.
早行 이른 아침에 나섬
曉鷄鳴喔咿 새벽닭 한참을 우는데
裝束向何之 여장을 챙기고 어디로 갈까.
黯淡千山曉 옅은 어둠에 온 산은 새벽인데
凄涼一首詩 처량하게 시 한 수를 읊어본다.
殘星隨月落 남은 별은 달 따라 지고
宿鳥訝人移 자던 새도 사람에 놀라 옮겨간다.
客路身多病 나그네 길에 병 많은 몸
無端詠楚辭 하염없이 초사(楚辭)를 읊어본다네.
楚辭 - 중국 초나라 때의 굴원과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나 후인의 글을 모은 책
種竹 대나무를 심으며
其一
和泥種得碧琅玕 약하고 순한 푸른 대나무 묘목을 얻어
移培瓷盆靠假山 질 그릇에 북돋아 옮겨 석가산에 의지하네.
不是與君同節操 그대와 더불어 절조를 함께함이 옳지 않아
此君風味等閑看 대나무의 풍미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네.
其二
小春天氣稍寒溫 시월의 천기는 따뜻하다 갑자기 추워지니
移竹南隣養小軒 옮긴 대나무 이웃한 남쪽 작은 집에서 기르네.
問爾俗人能愛爾 속인이 너를 찾아 능히 너를 사랑하여도
澹然相對已忘言 담담히 서로 대하니 이미 말을 잊는구나.
其三
瘦碧含風節更剛 푸른빛에 가늘어도 바람 견디어 절개 더욱 강하나
可憐委棄壞垣傍 무너진 담장 곁에 버려 돌보지 않으니 가련하구나.
森森一徑無人掃 빽빽한 숲에 길 하나 쓰는 이도 없어
黃葉堆根蔓草荒 밑둥에 쌓인 누런 잎들 풀과 덩굴을 덮었네.
其四
碧根曲曲帶枯菱 푸른 뿌리 굽이굽이 시들은 마름을 띠고
稚筍尖尖已孕胎 어린 죽순 뾰족 뾰족 이미 새싹을 품었네.
穿我莓苔渾不厭 무성한 풀 이끼 뚫으니 함부로 막지 못하고
蒨蔥引得鳳凰來 푸르게 우거지니 봉황을 인도해 오리라.
其五
辛苦移居只爲君 단지 그대 위해 괴롭게 거처를 옮기니
風霜月夜揖淸芬 달밤의 서릿바람에 맑은 향기 모이네.
飜思蔣子開三徑 장자는 뜻을 바꾸어 세 개의 길을 열고
輸了高標眼有筋 높은 뜻 똑똑히 알리는 눈엔 힘이 있구나.
其六
凜凜淸威老更臞 늠름하고 맑은 위엄 오래되어 작게 바뀌니
翛然風露翠相扶 자유로운 바람과 이슬에 푸른빛 서로 돕네.
杜陵饒舌君知不 두보의 너그러운 말 그대는 알지 못하나
曾道環圍十萬夫 이미 길을 십만의 장부가 둘러 쌌다하네.
其七
桃李芳華能幾時 복숭아 오얏 화려한 꽃다움 얼마나 갈까 ?
無情風雨謝繁枝 무정한 비바람에 번성한 가지 쇠퇴하네.
要看留得長春意 봄날의 긴 정취 머물러 보기를 바라지만
須待氷霜凜冽時 모름지기 된서리 더한 추울 때 늠름하구나.
其八
尖葉瘦枝最可憐 여윈 가지에 뾰족한 잎들 모두 가련하고
結根石上已多年 돌 위에 엉긴 뿌리 이미 여러 해라네.
從今移向閑田地 이제부터 논과 밭 틈새로 옮겨 심으려 하는데
階下蒼苔任汝穿 섬돌 아래 푸른 이끼를 너는 능히 뚫었구나.
其九
不厭成林鳥雀喧 숲을 이루니 참새들 떠들어도 싫지 않지만
只愁雪壓折新枝 다만 새 가지가 눈에 눌려 부러질까 근심하네.
殷勤扶援防搖褭 은근히 도와 구원하여 낭창거려 흔들림 막으니
榮瘁還應汝自知 병들고 성함은 아마도 너 스스로 알리라.
縱筆 붓 가는대로
其一
靑山如戟月如環 청산은 창과 같고 달은 둥근 옥 같은데
雲自無心月等閑 구름은 절로 무심하고 달빛만 한가하네.
得失浮休兩丘土 득과 실, 떠가고 멈춤 둘 다 하찮고 공허하니
不如孤嘯對靑山 청산을 마주해 홀로 휘파람 부는 것만 못하네.
其二
百年書劍走長途 여러 해 학문과 무예로 항상 길을 달렸는데
剩得閑名滿五湖 남은 것은 덧없는 이름 오호에 가득함 깨닫네.
畢竟此身俱是夢 결국에는 이 몸도 모두 다 꿈일 터이니
一生無事莫如吾 한 생애에 일 없으니 나 같은 이 없으리라.
其三
晝㬠胸中萬卷書 낮에는 마음속의 만권 책을 말리고
白雲深處賦歸歟 흰 구름 깊은 곳에 편안히 읊으며 돌아가리.
平生虛負功名手 평생의 공명의 솜씨 헛되이 저버리고
猶把長鑱帶雨鋤 다만 늘 보습 잡고서 김매다 비오면 띠를 두르네.
其四
我似兒童放學時 나는 배우다가 쉴 때의 어린 아이를 닮아
思山疊石植松枝 산을 그리며 돌을 쌓고 소나무 가지를 심네.
十年蹤跡煙霞外 십년을 안개와 노을 밖을 쫓던 발자취에
榮辱由來兩不知 영화와 치욕의 유래를 둘 다 알지 못하네.
坐茂樹以終日 무성한 나무 따라 앉아 하루를 보내고
老樹如虯布樾陰 늙은 나무는 규룡 같이 가만히 나무그늘 드러내니
科頭箕踞正彈琴 맨 머리로 두 다리 뻗고 앉아 바르게 거문고를 타네.
斷猿無日不淸叫 애끓는 원숭이 해도 없어 한가히 울부짖지 못하고
幽鳥有時遺好靑 그윽한 새는 계절을 알아 자주 고요함을 남겨주네.
白石了無塵土想 깨끗한 돌이 조금도 없으니 티끌과 흙만 생각하고
淸風曾乏往來心 맑은 바람이 이미 떨어지니 오고 갈 것을 생각하네.
閑居終日忘人世 한가하게 살면서 종일토록 인간 세상 잊어버리고
淸隱山書幾度尋 맑게 숨어 산속의 글로 얼마나 깨달음 거듭할까나 ?
坐臥 자리에 누워서
坐臥消長日 자리에 누워서 긴 날을 보내는데
無人地更偏 사람 없어 땅은 더욱 궁벽한 곳에 사네.
春風無厚薄 봄바람은 후하고 박하고가 전혀 없으니
桃李自年年 복숭아나무 오얏나무 해마다 절로 피는구나
晝景 경치를 그리다
天際彤雲晝不收 하늘가 붉은 구름 낮에도 걷히지 않고
寒溪無響草莖柔 차가운 개울물 소리 없고 풀줄기는 부드럽네
人間六月多忙熱 인간세상 유월은 바쁘고도 무더우니
誰信山中枕碧流 산 속에서 푸른 물베개 한 줄을 누가 믿어줄까
晝意 한 낮의 정취
驟暄草色亂紛披 홀연 따뜻하여 풀색은 어지러이 널리 퍼지고
睡覺南軒日午時 잠을 깨니 남쪽 창엔 해가 한낮이로구나.
更無世緣來攪我 다시는 세상 인연으로 날 흔들일 없으니
身心鍊到化嬰兒 마음과 몸 단련 되니 어린 아이로 변하네.
晝意 한 낮의 정취
庭花陰轉日如年 뜰에 핀 꽃그늘 돌아 하루가 일 년 같은데
一枕淸風直萬錢 베개로 불어드는 맑은 바람 만금의 값이 나가네
人世幾回芭鹿夢 사람은 몇 번이나 득실을 헤아리는 꿈을 꾸는가
想應終不到林川 그러나 생각은 끝내 자연의 삶에 이르지 못하리라
竹筍 대나무 순
昔我遨遊南土時 옛날에 내가 남쪽 지방을 놀며 떠돌 때
山中脩竹如雲披 산속의 많은 가늘고 긴 대를 헤치고 갔었네.
不憚山中嶮巇路 산속의 험하고 험준한 길을 꺼리지 않으니
飽參石頭玉版師 돌비늘 머리 같은 많은 죽순이 빽빽이 가득하네.
春風喚起籜龍兒 봄바람 부르짖어 어린 죽순 일어나
嶄然頭角無人知 뾰족한 뿔이 뚫고 나와도 아는사람 없구나.
抽犀抱錦森森立 아름다운 싹이 무소뿔처럼 빽빽이 서있어
折得琅玕圍粉籜 대나무 꺾어 빻아서 대껍질로 에워쌌네.
燒來飱玉潤詩腸 안달하며 돌아와 저녁밥에 마음이 윤택해 읊고
鵝掌熊蹯當避席 거위 물갈퀴 곰 발바닥 당연히 피해 자리하네.
及時供廚勿踟躕 때가되면 부엌에 주고 머뭇거리지 말지니
明日風吹應作竹 내일 바람이 불면 대나무에 화답하여 저작하리.
重登百祥樓 백상루에 다시 올라
重過此地無窮思 다시 이 땅 지나니 떠오르는 생각 끝없고
一望平原送落暉 멀리 보이는 평원에 지는 해를 보낸다.
薩水故城殘靄散 살수 옛 성터에는 사나운 구름 흩어지고
晴川秋樹暮煙歸 청천강 가을 나무에는 저문 연기 돌아간다.
空濠荒草埋翁仲 빈 못에 거친 풀은 옹중을 묻었는데
華表凝雲語令威 화표주는 구름에 엉겨 영위를 말하는구나.
獨倚畫欄無與語 그림 난간에 홀로 기대어 이야기 나눌 사람 없는데
白鷗依舊向人飛 흰 갈매기만 옛날처럼 사람을 보고 날아든다.
翁仲 - 옹중의 이름은 원옹중(阮翁仲)이라 하며, 진(秦)나라 사람으로 신체가 보통 사람보다 컸다고 한다. 진시황이 그를 시켜 변경을 지키도록 하자 흉노들이 그를 매우 두려워했다 한다. 그가 죽자 진시황은 그의 모습을 본떠 동상을 만든 다음, 함양(咸陽) 황궁의 사마문(司馬門) 밖에 세우게 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옹중을 동상이나 석상을 대신한 명칭으로 불렀다.
令威 - 한(漢)나라 요동사람 정여위(丁令威)를 말하며 그가 일찍이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鶴)으로 화하여 요동으로 돌아와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갔다는 고사가 있음
華表(華表柱) - 무덤 앞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重送 다시 보내며
昭陽春水漲 소양강에는 봄물이 불어나고
花岳暮雲濃 화악산에는 저무는 구름 짙어간다.
子去復幾許 자네 떠나면 또 얼마나 걸리나
碧山千萬重 푸른 산은 천 겹 만 겹 가리어있다.
中秋夜新月 한 가을 밤에 달을 보며
半輪新月上林梢 숲 속 나뭇가지 끝에 둥그레한 초승달 뜨면
山寺昏鐘第一鼓 해 저문 산사의 북소리에 이어 종소리 울리네
淸影漸移風露下 맑은 그림자 옮겨오고 바람과 이슬이 내리는데
一庭凉氣透窓凹 온 뜰에 서늘한 기운 창틈을 스며드네
白露溥溥秋月娟 하얀 이슬 방울지고 가을달빛 고운데
夜虫喞喞近床前 밤 벌레소리 시끄럽게 침상에 앞에 들려오네
如何撼我閒田地 어쩌자고 나의 한가한 마음 흔들어 놓는가
起讀九辯詞一篇 일어나 구변의 노래 한 편을 읽어 보네
卽景 눈앞의 경치
深山伯勞鳴 깊은 산에 때까치 울어대니
火麥動秋耕 보리가 급하여 가을 농사 시작하네.
每怕風霜早 바람과 서리 일찍 올까 늘 두렵고
仍憂霾旱幷 가뭄과 흙비가 겸할까 자주 근심하네.
瘦藤緣樹老 메마른 등나무 늙은 나무를 두르고
細草覆墻生 가는 풀은 담장을 덮어 자라는구나.
倦客閑消日 게으른 나그네 한가히 세월을 보내고
扶藜晩逕行 명아주 잡고서 저물녘 좁은 길을 간다네.
竹筍初尖松子團 죽순은 비로소 뾰족해지니 솔방울은 둥글고
櫻桃半熟杏添酸 앵두가 반쯤 익으니 살구는 신맛을 더하네.
桐花風送黃梅雨 오동 꽃에 바람을 보내니 황매우가 내리어
惱我竹房淸夢闌 원망하던 나는 죽방에서 마음대로 한가히 꿈꾸네.
天街小雨細於絲 하늘과 거리에 작은 비가 가는 실처럼 내리니
徙倚南窓和古詩 남쪽 창가에 옮기어 기대며 옛 시에 화답하네.
燕子日長無介事 제비 새끼들 매일 자라며 머무르는 일도 없고
一雙蝴蝶弄花枝 한 쌍의 호랑나비는 가지의 꽃들을 희롱하네.
卽事 즉시 읊다
東山雲起西山雨 동쪽 산에 구름 일더니 서쪽 산에 비 내리고
北岳斜輝南岳風 북쪽 산에 아침 해 비끼니 남악에 바람부네.
一道石泉鳴作惡 모든 길의 돌 샘물은 어찌 소리를 만드는가 ?
喧轟吹落半天中 관악을 이뤄 시끄럽게 울리며 반천에 가득 차네.
蜻蜓款款立風蒲 잠자리 하늘거리다 바람 이는 부들에 머물고
小雨初晴草木蘇 작은 비 비로소 개이니 풀과 나무 되살아나네.
睡起南軒成獨倚 잠자다 일어나 남쪽 난간에 홀로 기대니
一天涼颯落庭梧 온 하늘 서늘한 바람에 뜰의 오동잎 떨어지네.
滿庭花木最淸幽 뜰에 가득한 꽃과 나무 모두 맑고 고요하니
風送南軒五月秋 남쪽 창에 알리는 바람이 추상같은 오월이네.
忽覺靜中生意鬧 고요 속에 문득 나타난 성한 정취 싱싱하고
數竿斜日一聲鳩 몇 그루에 해가 기우니 비둘기 잠시 소리 내네.
有穀啼深樹 뻐꾸기가 울창한 나무숲에서 우네
前村桑葚紅 앞 고을에는 오디가 푹 익었다
農雲峯上下 짙은 구름은 산봉우리로 오르내리고
疏雨埭西東 가랑비는 뚝 위로 오락가락
懶覺身無事 게을러 몸에 할 일 없음을 알고
衰知酒有功 몸이 쇠약해짐에 술에 공덕이 있음을 알았다
已得歸歟興 이미 돌아갈 마음 얻었으니
江山屬此翁 강산이 이 늙은이의 것이라오
布穀啼深樹 뻐꾸기는 우거진 나무에서 울고
前村桑葚紅 앞마을엔 뽕나무 오디 잘 익었네.
濃雲峯上下 짙은 구름이 오르내리는 봉우리
疏雨埭西東 성긴 비는 동과 서쪽 둑에 내리네.
懶覺身無事 게으름 터득하니 할 일도 없는 몸
衰知酒有功 쇠약함 알리니 술의 공로 있구나.
已得歸歟興 이미 편히 돌아갈 흥겨움 얻으니
江山屬此翁 강과 산은 이 늙은이가 거느리네.
卽事 즉시 읊다
其一
査査喜鵲繞松枝 깍깍 기쁜 까치 소나무 가지 둘러싸니
正是南窓獨倚時 이에 바로 남창에 때맞춰 홀로 기대네.
身世兀如槎泛渚 신세 위태로워 물가에 뜬 뗏목 같아도
不妨看菊和陶詩 거리낌 없이 국화를 보니 도잠의 시 같네.
其二
爐上煙銷簷日移 화로 위 연기 사라지고 햇살 처마로 옮기니
紙窓寒透冷侵肌 종이창에 한기 뚫어 살에 냉기가 엄습하네.
廣丈氈席何曾暖 넓은 길이 담요 자리는 언제나 따뜻해지나
却恨才名買得癡 재명을 다시 한하는데 어리석게 얻으려하네.
其三
張翰都忘身後名 장한 수령은 신후명을 돌보지 않고
卽時杯酒占平生 즉시 잔의 술을 마시며 평생을 헤아렸지.
夷齊孔跖俱塵土 백이숙제 공자와 도척 모두 티끌과 흙 되고
不及柴桑醉似泥 도잠에 미치지 못하니 진창에 빠진 것 같구나.
張翰 - 자가 계응(季應) 제왕(齊王)의 동조연(東曺椽)으로 있다가 가을바람에 "인생은 뜻에 쾌한 것이 제일인데 수천 리 객지에서 이름과 벼슬 구할 것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가서 술 마시기를 즐겼다. 친구가 "그에게 신후명(身後名)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는 답하길 "眼前一杯酒 즐길 뿐 어찌 身後天載名을 생각하랴" 그 후 제왕이 패하였다는 일화.
喞喞 풀벌레 우는 소리
喞喞何喞喞 찌르찌르 잠시 또 찌르르르르르
草蟲鳴相弔 풀벌레 서로 안부 묻듯 소리 내네.
西堂臥無夢 서쪽 마루에 꿈도 없이 누웠는데
皓月當前照 밝은 달이 갑자기 앞을 비추네.
世固各有好 세상엔 참으로 각자 좋은 것 있지만
余獨愛幽寂 나만 홀로 그윽한 고요함 사랑하네.
乘流遇坎止 흐름을 타다 구덩이 만나면 멈추고
恣意得所適 방자한 마음으로 즐길 곳에 이른다네.
生當老丘壑 살아서는 마땅히 언덕과 구렁에서 늙고
死當埋山麓 죽어서는 마땅히 산기슭에 묻히지.
古來共如此 예로부터 모두가 이와 같으니
已矣何戚戚 그치리라 잠시의 근심과 슬픔을
贈白雲庵閑上人 백운암의 한가한 스님께 드리다.
林泉養性靈 숲과 샘물에 성령을 길러
得妙不看經 묘를 얻었으매 경전은 보지 않네
勝景山雲護 뛰어난 경치는 산구름이 감싸주고
天音野鶽聽 하늘 소리는 들의 학이 듣는다
會三硏白業 세 가지 모아 백업을 갈며
抱一守黃庭 하나를 안고 황정을 지킨다
洞府煙蘿繞 연기와 담쟁이덩굴 골짝을 둘러 쌌거니
柴扉設不扃 사립문 만들어 놓고 걸지 않는다
白業 - 불교에서 착한 일하여 업보(業報) 받는 것을 백업이라 한다.
上人 - 스님
贈三淸監點 삼청감 점에게 시를 적는다
玄都觀裏看花郞 현도관 속에서 화랑을 보니
詩賦風流耀一鄕 시부(詩賦)의 풍류는 한 나라에 빛났네.
暫屈玉堂揮翰手 잠깐 옥당에서 글 짓던 손을 내리고서
來參貝闕煉砂房 패궐의 단약 짓는 방에 와서 참여하네.
洞門深鎖看周易 동문을 깊이 닫고 주역 책을 읽고서
圓竈牢封禮紫皇 둥근 부엌의 약 솥을 봉하고 옥황께 예를 올리네.
異日登瀛攀鳳扆 뒷날 영주에 올라가 봉의(鳳扆)를 받들 때엔
刀圭分與濟蒼生 역규(刀圭)랑 나누어 주어 창생을 제도하소서.
三淸監 - 도교 제례 기관
玄都觀 - 수(隋)의 왕조 때 도교 교학을 연구하던 곳, 복사꽃으로 유명
鳳扆 - 천자의 자리
刀圭 - 약을 뜨는 숟가락
贈肅川府使 숙천 부사에게 드리다
美政淸於水 정사는 물보다 밝으시고
威儀重似山 위엄은 태산처럼 무겁습니다.
三年宣聖化 삼년 교화를 펴고 나니
一邑剔民姦 고을 백성의 간악을 척결했습니다.
喬木城池古 교목이 서있어 성지가 오래되고
甘棠訟獄閑 감당나무 그늘 밑에는 송사가 한가합니다.
豚魚恩澤厚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은택이 두터워
外戶不曾關 바깥문을 언제나 닫지 않았었답니다.
威儀 - 무게가 있어 외경할 만한 거동. 예법에 맞는 몸가짐, 계율(戒律)의 다른 이름, 장사(葬事)에 쓰는 항오(行伍)
聖化 - 성인이나 임금의 德化[덕화], 거룩하게 되거나 또는 되게 함,
甘棠 : 팥배나무, 甘棠之愛[감당지애], 중국의 사기 燕世家[연세가]에 주나라 초기의 재상 소공(召公)이 임금의 명으로 합서(陜西, 산시)를 다스릴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방을 순시할 때마다 감당나무 아래에서 송사를 판결하거나 정사를 처리하며 앉아서 쉬기도 했다. 그래서 소공이 죽자 백성들은 그의 치적을 사모하여 감당나무를 귀중하게 돌보았으며 甘棠이란 시를 지어 그의 공덕을 노래했는데, 시경 소남 감당 편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豚魚 - 돼지와 물고기, 미련하고 못난 사람의 비유,
贈正上人 정 스님에게
草蟲鳴啾啾 풀벌레는 찌륵찌륵 울고
蒼鼠鳴喞喞 검붉은 쥐는 찍찍 운다.
磊磊閫闠閒 고결한 문지방은 한가하고
簇簇煙林碧 뾰죽뾰죽 안개 댓숲은 푸르다.
鼎鼎好光陰 더디고 더뎌야 좋은 세월이고
轔轔載車轄 덜컹덜컹거리는 수레는 넓다.
勸君且短檠 그대에게 권하노니 작은 등불에
更撚鬢一握 다시 수염 한줌 말며 시를 읊게.
贈峻上人 준 스님에게
其一
南山紫翠鬱芙蓉 남산의 붉고 푸르름 연꽃 모여 빽빽한데
寺在曹溪第一峯 절은 조계曹溪 제일 첫 봉우리에 앉았네.
萬古乾坤雙草屩 만고萬古의 하늘과 땅에 한 쌍의 짚신뿐이요
百年身世短瘦笻 백 년 동안의 신세는 짧고 마른 지팡이뿐일세.
有時對月看僧話 때로는 달을 대하며 중이 말한 것을 보는데
何處焚香坐枯松 어느 곳에 향 피우고 고송枯松에 앉아 있는가?
要識吾師眞面目 우리 대사 참 모양을 알려고 한다면
竹林西畔石橋東 대 수풀 서쪽 끝 돌다리 동녘에서일세.
其二
翩翩一錫響空飛 지팡이 하나 펄펄 공중에 나는 소리
五月松花滿翠微 오월달의 송화(松花) 가루 높은 산에 가득하다.
盡日鉢擎千戶飯 진종일 바리때엔 천 집의 밥 담겨 있고
多年衲乞幾人衣 여러 해 장삼은 몇 사람 옷 빌렸던가?
心同流水自淸淨 마음은 유수 같아 저절로 청정하고
身與片雲無是非 몸이야 한 조각구름이라 옳고 그름 없다네.
踏遍江山雙眼碧 강산은 다 밟았어도 두 눈은 푸르른데
優曇花發及時歸 우담화(優曇花) 피었을 적에 때 맞춰 돌아왔네.
其三
只愛靑山不愛名 청산만을 사랑하고 이름은 사랑하지 않는데
靑山相對可忘情 청산을 마주보니 정情이야 잊을 수 있으랴!
苔痕一徑白雲鎖 외길에 이끼 흔적 있는 것 흰 구름이 막은 거요
花影半窓紅日明 꽃 그림자 창에 반이니 붉은 날이 명랑하다.
澗暗但聞泉浙瀝 시내는 어두컴컴 들리느니 시냇물 소리일 뿐
峯回剩見月虧盈 산봉우리 돌아서니 차고 기우는 하늘의 달 보겠네.
葛藤三尺無人和 칡과 등이 석 자라도 인간의 화응 예 없으니
付與隔林幽鳥聲 건너편 숲 그윽한 새 소리에나 마음 붙여 보리라.
其四
一炷淸香一卷經 한 주먹 맑은 향에 한 권의 불경이요
一輪孤月一溪聲 한 바퀴 외로운 달 한 개울의 물소릴세.
鼎中甘茗黃金賤 솥 속의 단 차(甘茗)가 황금도 천하게 여기고
松下茅齋紫綬輕 솔 아래 띳집이 붉은 관복도 가벼이 보네.
漂渺煙霞心與潔 아득한 안개 노을煙霞 마음과 함께 깨끗하고
嬋娟水月性常明 고와라 물 위의 달, 성품도 항상 명랑하네.
閑眠盡日無人到 한가로이 잠들어 종일 가도 오는 이는 없고
自有淸風撼竹楹 청풍만이 절로 와서 대 난간을 흔드네.
其五
肯學參禪求出離 즐거이 참선하는 것 배워 티끌 세상 떠나려는데
眞空笑我又相欺 진(眞)·공(空)이 날 보고 또 속는다 웃으리라.
爭名塵土渾無意 진토(塵土)의 명리(名利) 다툼엔 전연 뜻이 없지만
放志江湖已不疑 강호에 방랑함은 이미 의심 않는 일.
榻上坐聞松落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 평상 위에 앉아 듣고
林間行見竹生稚 숲 사이로 가다가 대 순 돋아나는 모양 보네.
只將枯影飄然去 그저 마른 그림자랑 표연히 가거니
綠水靑山何處期 푸른 물 푸른 산 그 어디에 기약하리오?
其六
有身何處不爲家 이 몸이 있으려면 어느 곳에 집 못 지으리
甘分靑山試一嗟 달갑게 나눠줄지 청산에 한 번 시험해 보게나.
雨後荷鋤種瑞草 비온 뒤면 호미 들고 서초(瑞草)를 심고
風前扱袵綵胡麻 바람 불면 옷섶 걷고 들깨나 거두소.
一窓明月一窓徹 창에 가득 밝은 달 창 하나를 온통 꿰뚫고
千里浮雲千里遮 천리 장공(長空)에 뜬 구름은 천리를 막고 있네.
好向煙霞君莫出 이 좋은 안개 노을 두고 그대여 가지 마오.
小溪流水長蘚花 작은 시내 흐르는 물 이끼꽃이 자라나네.
其七
八萬峯頭月欲低 팔만봉(八萬峯) 머리에는 달도 나직이 떠 있는데
曙光和霧落庭除 새벽 빛 안개 섞여 뜰 가에 내려앉네.
半溪雨夜藤花老 반계(半溪)는 밤비에 등꽃이 늙었고
一逕春風芋葉齊 외길의 봄바람에 토란잎 가지런하네.
松子打窓雲入戶 솔방울은 창을 치고 구름은 문에 들고
苔痕繞砌竹芽階 이끼 흔적 섬돌에 둘려 있고 대는 계단을 뚫었네.
世間甲子知多少 세상의 甲子·乙丑 몇 번이나 지났는가?
唯有空林山鳥啼 빈 숲속엔 산새만이 홀로 울어대누나.
其八
終日芒鞋信脚行 진종일 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가는데
一山行盡一山靑 산 하나 가고 나면 또 산 하나 푸르렀네.
心非有像奚形役 마음이야 형상 없거니 어이 물질에 종이 되며
道本無名豈假成 도(道)야 본래 무명이어니 어이 빌릴 수 있으리.
宿霧未晞山鳥語 간밤 안개 축축한데 산새들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봄바람 다하잖아 들꽃은 환하네.
短笻歸去千峯靜 단장 짚고 돌아가니 일천 봉峯이 고요하고
翠璧亂煙生晩晴 푸른 석벽에 얽힌 연기 늦게서야 맑게 개네.
其九
楓岳高低十二峯 단풍 산 높고 낮게 열두 봉이 보이는데
峯頭石角掛枯松 봉우리 위의 돌뿔엔 고송(故松)이 걸려 있네.
塵紛却是郭郞巧 티끌 분분한 것 이건 되려 곽낭의 교묘함인가?
世事盡隨蝴蝶空 세상일은 모두 다 나비 따라서 공(空) 되었네.
桂子落時殘照薄 계수 열매 떨어질 땐 남은 햇살도 엷은데
楊花飛處晩山濃 버들꽃 나는 곳엔 늦도록 산빛 짙어
蒲團獨坐香如縷 창포 둥근 방석에 앉았으니 향 연기 실같이 오르고
愛聽楓橋半夜鍾 즐겨 듣는 소리 한밤에 울리는 풍교(楓橋)의 종 소릴세.
其十
空色觀來色卽空 공(空)·색(色)을 보아오니 색이 바로 공이어서
更無一物可相容 다시 예서 한 물건도 없으면 서로 용납 안 되네.
松非有意當軒翠 소나무가 뜻이 있어 추녀 끝에 푸른 것 아니요.
花自無心向日紅 꽃도 무심한 체 해를 향해 붉어 있네.
同異異同同異異 같고 다르고 다르고 같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니
異同同異異同同 다르고 같고 같고 다르고 다르면서 같고 같네.
欲尋同異眞消息 같고 다른 참 소식을 굳이 찾으려거든
看取高高最上峯 높고 높은 최상봉에서 보아 알 것이로세.
其十一
怪來無事可馳奔 괴이한 거야 달리고 뛸 만한 일 없는 것인데
時有淸風來歸門 때로 와서 맑은 바람 문을 쓸어 주네.
春鳥弄成絃管節 봄새들 우짖는 소리 관현(管絃)의 음악 이루고
晩山濃作畵圖痕 저문 산 짙은 빛은 화도(畵圖)의 흔적일세.
滿庭天篆幽禽踏 뜰에 가득한 천연의 전(篆)자는 산새들의 발자취요
八尺人爻凉簟紋 팔 척 긴 인자(人字) 무늬의 서늘한 돗자릴세.
情慮萬端都殺了 만 가지 얽힌 정(情)과 생각 다 죽여 버리니
夜深風趁一窓雲 깊은 밤 창에 가득 바람이 구름 몰아 오네.
其十二
夜爛孤塔月徘徊 밤 깊어 외로운 탑엔 달이 어정거리는데
人靜蓬窓風自開 인적 고요한 뺑대 창문 바람에 절로 열리네.
蝴蝶夢中運縹渺 나비 꿈꾸는 속에 구름 멀어 아득한데
子規聲裏月崔嵬 두견새(子規) 우는 속에 달만 저리 높이 떴네.
一甁一鉢無心老 병 하나 바리때 하나로 무심히 늙었는데
萬水千山得意回 만수(萬水)요 천산(千山)이 마음 흡족해 돌아왔네.
自怪俗人渾不到 괴이한 건 세속 사람 도시 오지를 않는데
春風養却綠莓苔 봄바람은 푸른 딸기와 이끼를 길러 주네.
其十三
十年江海走風塵 십년동안 강해(江海)로 풍진 세상 달렸더니
笑向靑山入夢頻 웃으며 청산을 향하면 꿈에 자주 보이네.
世上縱榮爭似隱 세상에 영화 있은들 숨느니만 어이 같으리
朱門雖貴不如貧 붉은 칠 대문이 귀하다지만 가난함만은 못하네.
客稀竹架懸蓬榻 손 드물어 쑥 평상은 대 시렁에 달려 있고
菴靜松梢掛葛巾 고요한 암자 솔가지 끝엔 갈건(葛巾)이 걸려 있네.
獨坐無人堪共話 함께 얘기할 말벗 없어 홀로 앉았으니
桂樹萱草是嘉賓 계수나무 원추리 풀이 바로 좋은 손님일세.
其十四
幽鳥一聲啼曉煙 깊은 산새 한 소리 새벽 연기에 우짖는데
當門松檜碧連天 문 앞에 서 있는 소나무·전나무 하늘에 푸른 빛 연했네.
十年人事隨流水 십년 세월 사람의 일 유수 따라 흐르고
半日風光空杜鵑 한나절 풍광은 공연한 두견일세.
詩句每因閑裏得 시귀(詩句)는 언제나 한가로운 속에 얻고
禪心多向靜中牽 선심(禪心)은 거의 다 고요한 속에 끌리네.
靑山强對癡然笑 창산은 억지로 어리석은 이 보고 그렇듯 웃고
明月誰分落小泉 밝은 달은 누가 나누어 적은 샘에 떨어졌나?
其十五
半生江海友如雲 반평생을 강해(江海)로 돌아 벗이 구름 같았네만
今日相逢道味眞 오늘 서로 만나니 도(道)의 맛이 참인 듯하여라.
飛錫獨行潭底影 지팡이 날리며 혼자 가는데 못속에 그림자 지고
敷床數息樹邊身 평상 펼쳐 놓고 나뭇가에 한 몸 자주 쉬네.
四千經偈留胸臆 사천 권의 불경·진언 가슴속에 남아 있고
百二山河轉一塵 백(百)하고 둘(二) 되는 산(山)과 내 한 티끌로 변했네.
氣味蕭然無與話 기미氣味가 쓸쓸한 듯 함께 얘기할 벗 없는데
煮茶鐺水細粼粼 차 끓이는 냄비의 물 가늘게 소리 낸다.
其十六
楓岳香峯總有名 풍악산·묘향산 유명하지만
從師我欲問無生 대사 따라 나는 가 생生 없는 것 묻고 싶으이.
寒溪已了八千偈 한계(寒溪)에서 팔천 진언 벌써 다 외웠는데
山鳥更和三兩聲 산새는 다시 또 두세 소리 화답한다.
瓢鉢擎來山月靜 표주박 바리때 받쳐 오니 산달이 고요하고
鶉衣掛處暮雲輕 누더기 옷 걸린 곳 저문 구름 가볍네.
有人若問安禪處 만일 안심하고 선(禪)할 곳 묻는 이 있거든
流水一軒花滿楹 흐르는 물 한 마루에 들보까지 꽃 차 있다 하소.
其十七
參透禪關話葛藤 선(禪)의 관문 뚫으려고 갈등된 것 말하는데
列峯如戟碧層層 벌려 있는 산봉우리 창인 양 층층이 푸르렀네.
尋根拔蔕君知否 뿌리 찾아 꼭지 뽑는 것 그대 아는가, 모르는가?
摘葉尋枝我不能 잎새 따고 가지 찾는 건 나는 하지 못하네.
藥杵聲中敲翠竹 약 방아 소리 속에 푸른 대 두드리고
茶鐺影裏點紅燈 차(茶) 냄비 그림자 속에 붉은 등 켜 놓았네.
自然會得禪家趣 자연히 선가禪家의 취미 깨달아 알았거니
肯向傍人說上乘 즐거이 옆 사람 향해 큰 법(上乘)을 얘기하네.
其十八
一吟一吟復一吟 한 번 읊고 한 번 읊고 다시 한 번 읊조리니
靑山慣識去來今 청산도 오가는 이제를 익히 알고 있으리.
風吹蘿蔔脩淸供 무밭에 바람 불어 깨끗한 공양 올리게 하고
月照梅花伴古心 매화꽃에 달 비치어 태고 적 마음을 벗하게 하네.
千里海天橫縹渺 천리나 먼 바다 하늘 가로질러 아득한데
百年身世寄浮沈 한백년 이 신세야 뜨고 잠기는 데 부쳐 두네.
滿庭凉葉無人見 뜰에 가득 서늘한 잎새 보는 사람 없는데
寂寞竹房生聲音 적막한 대방(竹房)에서 소리 나는 듯하여라.
其十九
翩翩一鶴自無蹤 훨훨 나는 학 한 마리 그대로 종적이 없으니
擬住修禪最上峯 선(禪) 닦는 최상봉에 행여 있을까 생각하네.
歷歷金鈷猶解虎 역력한 쇠꼬챙이 범의 싸움 풀어 줬고
團團瓦鉢已降龍 둥글둥글 흙 바리때 벌써 용(龍)을 항복받았네.
平生豈解愁塵事 평생에 속세 일 시름인 줄 어이 알았으리!
到老惟知樂大空 다 늙은 이제에도 크게 공(空)한 것만 알 뿐일세.
未識吾師何處去 우리 대사 어딜 갔나 알지는 못하네만
落花微雨獨携筇 지는 꽃 이슬비에 지팡이 끌고 혼자 갔으리.
其二十
豈作人間糊口客 어쩌다 인간으로 호구(糊口)하는 객(客)이 되었는가?
自言曾往祝融峯 스스로 말하네만 증왕에 축융봉에 살았다 하네.
心凝半夜梅花月 마음은 한밤에 핀 매화 달에 엉켜 있고
道響深山樹葉風 도(道)는 심산(深山) 나뭇잎 바람에 메아리치네.
禪旨十編曾了議 선(禪)의 뜻 열 권 책 벌써 다 논하였고
玄關一句已窮通 현(玄)에 드는 관문 한 귀절 벌써 다 통했네.
平生踪跡人誰識 평생의 발자취를 그 누가 알 것인가?
問法方知不落空 법(法)을 묻고서야 공(空)에 떨어지지 않은 것 알았네.
地爐 질화로
山房淸悄夜何長 산방은 맑고 고요한데 밤은 어찌 그리 긴지
閑剔燈火臥土床 한가로이 등불 돋구며 흙마루에 누웠다네.
賴有地爐偏饒我 다행히 질화로 있어 더욱 나를 넉넉하게 하고
客來時復煮茶湯 손님 오실 때 다시 찻물을 달인다네.
地僻 외진 곳
地僻無人事 땅이 궁벽하여 사람 일은 없고
春情惻惻寒 봄의 정은 가엾게 차갑기만 하다.
風搖千尺樹 바람은 천 척 높은 나무를 흔들고
雲過萬重山 구름은 만 겹 싸인 산을 지난다.
歲月常沉疾 세월은 늘 침울하고 빠른데
年華少展顔 세월은 언제나 얼굴 펴는 일이 적구나
誰知潘岳鬢 누가 알리오, 반악의 흰 귀밑머리
愁至最先斑 근심이 오면 가장 먼저 얼룩지는 줄을
葺松檜以爲廬 소나무와 전나무로 지붕을 이어 오두막집이 되다.
倚巖架小廬 바위 의지해 작은 오두막집 얽으니
僅得容我軀 겨우 얻은 게 내 몸 하나 받아들이네.
落葉以爲氈 떨어진 잎을 가지고 담요로 삼고
枯査以爲櫨 마른나무 찌꺼기가 서까래 되었네.
葺之兮松檜 소나무와 전나무로 지붕을 이으니
室小心愉愉 방은 작지만 마음은 즐겁고 기쁘네.
雲霞爲帳幄 구름과 노을로 휘장을 삼고
碧山爲屛風 푸른빛 산이 병풍이 되었구나.
猿鳥爲伴侶 원숭이와 새들 짝과 벗이 되니
得我心所同 내 마음과 한가지로 만족한다네.
我是放浪人 나는 무릇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
夷猶雲水中 구름과 물이 오히려 안온하다네.
物性亦馴擾 다만 물성에 길들여져 움직이고
飮啄依枯叢 마시고 쪼는 것 텅 빈 숲 의지하네.
願結歲寒盟 삼가하며 맺은 세한의 맹세는
行樂無終窮 즐겁게 지냄이 늘 다함없기를.
次徐相居正韻 차 서상거정운
高低石逕拂煙開 높고 낮은 돌길이 연기를 헤치고 열리는데
倚杖閑吟歸去來 지팡이를 짚고 한가히 돌아갈 것을 읊조린다
破悶只應南舍酒 답답증을 풀려면 다만 남쪽 주막의 술이 마땅하고
療飢猶有北山萊 굶주림을 달래려니 오직 북쪽 산의 나물이 있다
白雲岩下無端去 흰 구름은 바위 밑으로 무단히 가고
紅葉窓前有幾堆 붉은 잎은 창 앞에 몇 무더기 쌓였는가
安得能文王翰輩 어떻게 글 잘하는 왕한(당 나라 시인)의 무리를 얻어서
筆端流出一環杯 붓 끝에서 하나의 경배를 흘려 내리
一陣金風落井桐 한 떼의 가을바람이 우물가의 오동잎을 떨어뜨리매
楚蟬鳴咽夕陽中 슬픈 매미는 저녁 볕 속에서 목메어 운다
夜深霜露䰒鬆白 밤이 깊으면 서리와 이슬은 자욱하게 희고
日暮江楓深淺紅 해가 저물면 강가의 단풍잎은 짙고 옅게 붉더라
懶慢臥看新墜葉 게을리 누워서는 새로 떨어지는 나무 잎을 보고
疏慵坐聽獨愁蛩 태만히 앉아서는 혼자 근심스러운 벌레소리 듣는다
小軒月色明如晝 작은 난간에 달빛은 밝기가 낮 같은데
吟罷不知簷影東 읊조리기 마치매 처마 그림자가 동쪽으로 기운 것을 몰랐었다
窓日 창가에 비친 햇살
滿窓紅日可人心 창에 가득 붉은 햇살 사람들 마음을 허락하니
方丈維摩道力深 방장의 유마 거사 도력이 심오하구나.
不語正襟危坐處 말하지 않고 옷깃 바로잡아 엄히 꿇어앉는데
一庭松籟是知音 온 뜰의 솔 소리 이것이 친한 친구의 소리라네.
維摩 - 부처의 俗弟子. 인도 비사리국(毘舍離國)의 장자로서 속가(俗家)에 있으면서 보살 행업을 닦았다. 대승 불교의 경전인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
采藥仙洞 신선골에서 약초를 캐다
我欲采藥還 나는 약초 캐서 돌아가고자
艤舟淸平渚 청평산 물가에 배를 대었네.
我如劉阮行 나는 류영(劉伶), 원적(阮籍)처럼 유람하다가
食盡歸無處 먹을 것이 다하면 돌아갈 곳이 없네.
行行見桃實 길 가며 복숭아 열매를 보니
團團甛可茹 둥글둥글 달콤하여 먹을 만하네.
身輕骨欲仙 몸이 가벼워져 육신은 신선이 된 듯하여
行至數里許 몇 리 가량 계속 걸어갔네.
溪流淸且淺 시냇물은 맑고 얕아서
一杯隨水去 한 잔 물 따라 흘러가네.
杯中何所有 한 잔 속에 소유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胡麻飯新貯 검은 깨 밥만 새로 챙겨 두었네.
溪邊窈窕女 물가의 아리따운 아가씨
一笑來延佇 웃으며 와서 우두커니 서있네.
迎入設床帳 침상의 휘장 속으로 맞아들이는데
禮數秩有序 예에 따라 질서가 있네.
伴宿玉堂淨 정결한 옥당(玉堂)에서 함께 잠을 자는데
無夢淸夜阻 청아한 밤에 막혀 꿈도 꾸지 않았네.
深嗟我塵人 나는 속세인임을 깊이 탄식하노니
已覺爾仙侶 네가 신선의 짝이라는 것을 깨달았네.
送我出洞門 나를 계곡 입구에서 전송했는데
重尋迷處所 다시 찾았지만 그곳을 모르겠네
采薇曲 고사리 뜯는 노래
山澤何妨老大平 산천에서 편안히 늙어 마침을 어찌 방해하나
放勳時有許由氓 허유 같은 백성이 관등을 버린 시절이 있었네.
北山薇蕨甛如蜜 북산의 고사리와 고비는 달기가 꿀과 같은데
何羨千鍾縛此生 일천 술잔에 이승에 얽매임 어찌 부러워하리오.
許由 - 요(繞)임금이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하자 받지 않고 자기의 귀가 더러워졌다며 영천(潁川)에서 귀를 씻고 기산(箕山)으로 숨어 들어감.
川原驛樓 천원역 누각에서
原平宜遠樹 언덕 평평하니 나무는 의당 멀고
曖曖接人家 희미하게 인가에 접해 있구나.
地饒田收秫 풍요로 밭에서는 차조를 거두고
山低貢有茶 산은 낮고 차를 공물하네.
蘆峯雲黯淡 노봉에는 구름이 암담(黯淡)한데
楞岳岫槎牙 능악(楞岳)의 묏부리는 뾰족하구나.
收拾江湖景 강호의 경치를 제대로 감상하고
登臨日半斜 올라가니 해가 반쯤 기울었네.
天柱寺看花 천주사에서 꽃구경
春半庭花落又開 봄이 한창인 뜨락의 꽃은 졌다가 또 피니
看花猶自費吟來 꽃구경하며 여전히 주절주절 읊고 있노라.
東風可是無情物 봄바람은 가히 무정한 것이려니
狼籍嬌紅點綠苔 흐드러진 아름다운 붉은빛에 푸른 이끼 얼룩 지웠네.
甛菜 달콤한 나물(사탕무)
甛菜滿沮洳 사탕무 물에 젖게 가득 담그니
綠莖大如股 푸른 줄기가 정강이처럼 크구나.
春風雨露均 봄바람에 비와 이슬도 고르고
百草含滋煦 온갖 초목 꽃피워 자라게 은혜를 베푸네.
奈何山中人 어찌하다가 산 속의 사람이
逢春年又老 봄을 맞으니 나이는 또 늙는구나.
老大不足道 심하게 늙으니 깨달음 만족하지 못하고
恨不收功早 뉘우치지 않고 서둘러 공을 거두려하네.
朝負巖上薪 아침나절엔 언덕 위에 섶을 지고
暮鋤庭前草 저녁나절엔 뜰 앞의 잡초를 매네.
短歌臥蓬廬 봉래산 오두막에 누워 짧은 노래 지으니
我生何潦倒 나의 삶이 어찌 초라하다 하리오.
山僮報我起 절의 아이 나에게 일어나길 알리니
美茹已爛熟 이미 문드러지게 익어 연하고 맛이 좋구나.
淡味愈勵操 담담한 맛이 뛰어나 잡고 권하니
一飽萬事足 하나로도 배불러 만사에 만족하네.
甛葫蘆 단 호리병 박
苦葉由來不可嘗 잎은 쓰다 전해지니 가히 맛 볼 수 없지만
甛葫也勝太官羊 단 호리병박은 큰 관청의 양보다 뛰어나구나.
爛蒸莫折天然頂 꼭대기 자르지 말고 그대로 문드러지게 삶아서
飫我淸齋糠籺腸 겨 싸라기에 탐욕 없는 식사로 내 마음 배부르네.
靑山如許好 청산은 이리도 좋은데
靑山如許好 청산은 저리도 좋은데
澗水如許淸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더욱 좋구나.
四座無人聲 사방에는 사람의 소리 하나 없고
一鳥簷前鳴 한 마리 새만이 처마 앞에서 울고 있구나.
頹然臥筠床 쓰러지듯 대나무 평상에 누우니
黃葉堆前楹 누런 나뭇잎이 기둥 앞에 쌓이는구나.
得句頗尖新 시 한 구절 지으니 자못 참신하여
一笑豪氣橫 한번 웃어 제치니 호기가 가로 뻗친다.
欲倒三峽流 삼협의 흐르는 물에 이르러
欲掃千人兵 천 사람의 무기를 다 쓸어버리려 하네.
可笑費屠龍 우스워라, 용 잡는데 비용을 써버렸으니
博學無成名 박학하여도 이름 하나 이루지 못했어라.
晴景 개인 풍경
小池荷葉能飜白 작은 연못에 연꽃잎은 희게 뒤집기 능하고
別院鶯翎細簸紅 떨어진 뜰의 꾀꼬리 깃은 붉고 가늘게 까부네.
乳燕雙雙來巧語 어린 제비들 쌍쌍이 돌아와 예쁜 소리 내고
靑泥坊底苦泥融 절 구석 동쪽 수렁에서 진흙 개느라 힘쓰네.
晴景
落盡長春褪海棠 모든 게 쓸쓸한 긴긴 봄날 해당화 지고
邇來風雨惱人腸 근래의 비바람이 사람들 마음 괴롭히네.
龍門峽口江波闊 용문의 골짜기 입구 강의 물결도 거칠고
雉岳峯頭雲影長 치악의 봉우리 꼭대기 구름 그림자 길구나.
鼎鼎年光催老境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 늙는 처지 재촉하고
萋萋草色送微涼 무성한 풀빛이 서늘함을 조금 전해주네.
可人霽景渾無礙 비개인 경치에 사람쯤은 전혀 거리낌도 없이
喜見鳧鷖浴小塘 오리 갈매기 기쁘게 나타나 작은 못에 목욕하네.
淸晨 새벽녘
淸晨何以慰飢腸 맑은 새벽 어찌해야 굶주린 장을 위로할까
藜藿新蒸黍飯香 명아주와 콩잎 새로 찌니 기장밥이 감미롭네.
白屋自甘氷氏困 초라한 집에 만족하니 괴로움 무너져 깨끗하고
靑山不受熱官忙 청산을 누리지 못하는 고관들만 바쁘구나.
鵑啼北嶺雲猶濕 두견이 우는 북쪽 고개의 구름은 이미 마르고
鴉起東林日已黃 까마귀 일어난 동쪽 숲엔 해가 벌써 금빛이네.
餌藥學仙都是妄 경단 약으로 신선 흉내 이는 모두 허망하니
安心箇是越人方 마음 편안함 이것이 사람을 멀리하는 방법이라.
淸平寺有客 나그네로 청평사에 들르다
有客淸平寺 나그네로 청평사에 와서
春山任意遊 봄 山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노니누나.
鳥啼孤塔靜 새들은 우짖는데도 외로운 탑은 고요하고
花落小溪流 꽃잎은 떨어져 작은 여울물에 흘러가네.
佳菜知時秀 맛있는 산나물은 때를 아는 듯 돋아 나오고
香菌過雨柔 향기로운 버섯은 비 그친 뒤에 더 부드럽네.
行吟入仙洞 거닐며 시를 읊조리며 신선이 사는 산골짜기에 들어서니
消我百年憂 나의 오랜 근심이 녹아 없어지는구나.
淸平山 청평산에서
淸平山色映人衣 청평산의 색깔은 사람들 옷을 가리고
慘淡煙光送落暉 처량한 안개 기운이 쓸쓸한 빛을 보내네.
巖溜洒空輕作霧 바위의 낙숫물 허공에 뿌려 가벼이 안개 되고
春蘿拱木碧成幃 봄 담쟁이 나무를 둘러 푸른 장막 되었구나.
玉沙瑤草人間遠 옥 모래땅의 요초는 인간 세상 멀리하고
琪樹瓊花世慮微 좋은 나무 옥 같은 꽃에 세상의 근심 적어지네.
只好誅茅棲絶頂 다만 좋아하는 띠풀 베어 높은 언덕에 살면서
從今嘉遯莫相違 이제부터 숨어 사는 즐거움 어긋나지 말지니.
瑤草 - 신농의 딸 요희가 죽어서 피어 난 꽃
琪樹 - 구슬을 드리우고 있다는 선경(仙境)의 옥수(玉樹)
瓊花 - 양주(陽州)의 경화원(瓊花院)에 있는 명화(名花)
貂溪洞 초계동에서
偶入貂溪洞 우연히 초계동에 들어가니
煙霞水石間 안개와 노을이 물과 돌 사이에 돈다.
松檜鬱蒼蒼 소나무 전나무 울창하여 푸르고
溪澗鳴潺潺 시냇물 잔잔하게 소리 내며 흐른다.
落葉沒谿徑 낙엽은 골짜기 길을 모두 덮었고
羚羊竄巖阻 산양은 바위틈에 달아나 숨는다.
蒼苔滑如鋈 푸른 이끼 금을 입힌 듯 미끄럽고
白雲飛如絮 흰 구름은 솜같이 날아든다.
洞深雪猶積 골짝이 깊어 눈이 아직 쌓여 있고
草芽屈金箸 풀들의 새싹은 노랗게 움트고 있네.
松桂相縈纏 소나무 계수나무 서로 얽혀
淸香撲我鼻 맑은 향기 이내 나의 코를 찌른다.
境靜稱我心 이곳의 고요함이 내 마음에 맞아
頓忘身世累 별안간 이 몸의 누를 잊었다.
寄語同隱者 숨어 사는 사람에게 말 붙이니
福地神所閟 신선이 사는 곳이라 귀신에게도 숨겨 놓았네.
絶嶮嵯峨岡 깎아지른 듯 높고 험한 언덕 위
揷竹以爲誌 대를 꽂아 그것으로 표지 삼으리라.
草盛豆苗稀 풀만 무성하여 콩 싹이 드물다.
我有數畝田 내게 넉넉한 몇 이랑 경작지는
高下依巖碕 위와 아래 언덕 굽은 물가 의지하네.
種豆蕪不治 콩을 심고 다스리지 않으니 거칠어
草盛豆苗稀 풀만 무성하고 콩 모종은 드물구나.
仰天歌嗚嗚 하늘 우러러보며 노래 소리로 읊고
靜言思古人 조용히 말하며 옛 사람을 생각하네.
人生行樂耳 인생은 그저 즐겁게 살아야 하는 것
富貴勞我身 부귀하고자 나의 몸은 고달프구나.
我身勿復慮 나의 몸을 다시 헤아려 보지 않으니
否泰在蒼旻 불행과 행복은 푸른 하늘에 있구나.
衆人正啁噍 여러 사람이 마침 시끄럽게 떠드니
世我相矛盾 세상과 나는 서로 모순된 것이리라.
細和淵明詩 도연명의 시에 세세히 화답하니
乘化以歸盡 헤아려 따르면서 죽어 돌아가리라.
村燈 촌등
日落半江昏 해가 지니 강의 절반이 어둑해져
一點明遠村 한 점 등불 아득히 먼 고을 밝힌다
熒煌穿竹徑 등불의 불빛은 대나무 좁은 길을 쫓고
的歷透籬根 또렷하게 울타리 밑을 비춰오는구나
旅館愁閒雁 여관에 들려오는 기러기 소리 수심 깊고
紗窓倦繡鴛 비단 창가 비치는 원앙 수놓기 권태롭구나
蕭蕭秋葉雨 우수수 가을 잎에 내리는 비
相對正銷魂 마주 바라보니 내 넋이 녹아버리는구나
悤悤 바쁘게 서둘다
悤悤百年內 바쁘게 서둘다보니 가만히 백년이라
何爲勞此形 무엇을 위하여 이 몸만 고단한지 ?
榮其辱之漸 명예는 어째서 점점 수치스럽고
否與泰相傾 돕지 않으니 서로 다툼만 심하네.
露冷蟲喧座 찬 이슬에 벌레들 자리에 시끄럽고
簷虛月入欞 빈 처마 난간에 달빛이 드는구나.
無人堪共話 사람 없으니 함께 말하길 참고서
靜夜聽風鈴 밤은 고요하여 풍경소리 기다리네.
槌嶺 추령에서
逕入山腰石角危 산허리 좁은 길에 드니 모진 돌 위태롭고
野花初謝子纍纍 들꽃이 비로소 시드니 열매는 주렁주렁.
十年往事夢初覺 십년 동안의 지난 일 비로소 꿈인 걸 깨닫고
百歲風光梁未炊 백년 풍광에 아직도 기장 밥 짓지 못했네.
雙燕引雛低掠草 제비 한 쌍 새끼 데리고 풀숲 낮게 스치니
片雲拖雨恰催詩 조각구름 비를 끌고 와 마치 시 짓기 독촉하는 듯
登高可得槌千恨 가히 높은 데 올라 일천 한을 내던져 버리고
願上峯頭一展眉 원하는 건 산꼭대기 올라 잠시 눈썹 펴보리라.
秋思 가을 생각
秋思驅人睡不成 사람 내모는 시름 겨운 생각에 잠 못 이루는데
小窓淸越讀書聲 좁은 창으로 글 읽는 소리 맑게 넘어오네.
十年舊事了無迹 십년의 오랜 일들이 마침내 자취 없는데
半夜百蟲鳴不平 깊은 밤 모든 벌레들 불평을 이야기하네.
白紙帳邊燈一點 흰 종이의 휘장 곁에 등불 하나 켜니
碧梧桐上月三更 벽오동 나무엔 삼경의 달이 올라오네.
古人如可重相見 옛사람 가히 좇아 다시 만나 뵐 수 있다면
欲把離騷問宋生 장차 이소경 잡고서 송옥에게 물어보리라.
離騷 - 중국 전국 시대 楚의 굴원(屈原)이 지은 부(賦)의 제목. 조정에서 쫓겨난 후의 시름과 연군의 정을 노래한 서정적인 장시. 한나라 이후의 詩賦[시부]에 영향을 끼침.
宋生 - 송옥(宋玉), 생애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시인이었으며 굴원의 제자였다고 한다. 초사(楚辭) 가운데 구변(九辯), 초혼(招魂)은 그가 지은 것이라고 하며 문사가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됨.
秋意 가을 정취
黃葉年年落 해마다 낙엽은 지고
銀河夜夜明 밤마다 은하는 밝은데
但看星斗換 다만 별자리 바뀜을 볼 뿐
不覺老衰幷 노쇠함 깨닫지 못하네.
對月欺孤影 달을 보며 외로움 달래고
臨風笑此生 바람결에 한 생을 웃어넘기는데
千峯甘寂寞 천 봉우리 고요하니
雲物有誰爭 뜬 구름 다툴 것이 무엇이리.
秋日 어느 가을날에
庭際無人葉滿蹊 아무도 없는 뜰, 길에는 낙엽 가득
草堂秋色轉凄凄 초당엔 가을빛이 쓸쓸해져 간다.
蛩如有意跳相咽 정취를 아는 메뚜기도 서로 흐느끼듯 날뛰고
山似多情翠又低 정이 많아 보이는 산들이 푸르르 지고 낮아진다.
世事到頭之者也 세상사는 마침내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閑情輸却去來兮 한가한 마음도 왔다가 가는구나.
欲談細話誰將伴 자상한 이야기 함께 할 사람은 누구이던가
銷得南山一杖藜 남산의 한 청려장 지팡이 다 닳아 버렸구나.
秋亭 가을 정자
秋亭山氣好崢嶸 가을 정자 산 기운이 좋고도 우뚝한데
江上猩楓刮眼明 강 위에 붉은 단풍 눈부시게 환하다.
巖瘦不因嫌太富 바위가 여윔은 풍성함을 싫어한 탓이 아니고
澗淸非是釣完名 골짜기 물 맑음이 완전한 이름 낚음은 아니다.
寒花千朶經風曲 찬 꽃 천 떨기는 바람에 겪어 구부정하고
嫩苔一庭緣雨生 뜰에 가득한 고운 이끼는 비에 생긴 것이라.
點檢人間無勝事 인간 세상 살펴봐야 좋은 일이란 없는데
林泉興味老多情 임천의 산간 흥미는 늙을수록 다정하구나.
秋晴 맑은 가을날에
秋雨初晴枕簟涼 가을비 맑게 개니 베개와 돗자리 서늘하고
小窓時復閱篇章 작은 창가에 앉아 가끔씩 시를 다시 읽는다.
吟三千首有餘樂 삼천 수를 다 읽어도 남아도는 흥겨운 여운
想五百年無此狂 오백 년을 생각해봐도 이런 미친 이 없으리라.
漢水風煙迷蝶夢 한강에 자욱한 바람과 안개가 나의 꿈 흐리고
華山雲月沁詩腸 삼각산에 구름과 달은 시심을 씻어준다.
邇來嗔客關門坐 지금까지 손님을 꾸짖다 문 닫고 앉으니
不覺莓苔侵短墻 벌써 이끼가 자라나 낮은 담장에 올랐구나.
春咏 봄노래
東風習習吟無盡 봄바람 솔솔 불고 또 불어
枯者重英臭者香 마른 나뭇가지 되살아 꽃향기 풍기네.
苦也天工有私意 만약에 조물주가 사심이 있었던들
野人那得此春光 들사람이 이토록 봄빛을 받을쏜가.
春遊山寺 봄에 절에 놀러가다
春風偶入新耘寺 봄바람 불어 우연히 신운사에 들렀더니
房閉僧無苔滿庭 방문은 닫혀있고 스님도 없는데 마당에 이끼만 가득하네
林鳥亦知遊客意 숲속의 새도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隔花啼送兩二聲 꽃을 사이에 두고 두어 번 새 울음 보내오네
新耘寺 - 중국, 한국 문헌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절 이름
春川十景 춘천 10경
其一
醉遊春城 취하여 즐기는 춘성
春城百花開 春興何嬌哉 춘성에 수많은 꽃 활짝 피어나, 어찌나 아름다운지 춘흥을 일으키네
薄言酌金罍 且以寬心懷 묵묵히 있어도 금잔에 술을 따라주니, 너그런 마음으로 품어준다
叱撥金絡頭 日斜花間回 말을 재촉하는데, 저무는 해 꽃 사이로 비치네
紅雨亂紛紛 撲鼻淸香來 꽃비가 어지럽게 흩날리는데, 맑은 향기 코끝을 스친다.
美娃舞婷嫋 低唱相徘徊 예쁜 미인 아름답고 가냘프게 춤추는데, 낮은 소리로 시 읊으며 거닌다.
借問是何曲 細細歌落梅 그것이 무슨 곡이죠? 가냘프게 낙매를 노래하는 거지요
落梅歌未闋 馬首傳深杯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 머리에서 움푹한 술잔을 권한다.
酌以碧葡萄 槽床新發醅 청포도주로 대작하니, 술상에 새로 거른 술도 내온다.
嘉殽爭後先 笑語聲咍咍 좋은 맛의 안주는 서로 다투며, 농담하며 헤헤 웃는다.
江風細如縷 江水靑如苔 강바람 부드러움 비단결 같고, 강물 푸르름 이끼 같다.
覽物興無窮 樂極生悲哀 경물을 보니 끝도 없이 흥겨운데,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생긴다오
其二
返棹昭陽 노 저어 돌아오는 소양강
昭陽水初漲 浪蹙縠縠紋細 소양강물 처음으로 불어나니, 보리밭 비단 물결 일어난다.
風靜鏡面平 兩岸萑葦淠 바람이 고요하니 강물은 거울 같고, 양 안의 갈대 잎 무성하다.
乘興泛扁舟 長歌鼓蘭枻 춘흥에 쪽배 띄우고, 노래 부르며 뱃전을 두드린다.
垂我千尺竿 翛然多不世 긴 낚싯대를 드리우니, 초연히 속세를 벗어나네.
侵晨遡江流 言發毋津汭 새벽을 틈타 강을 거슬러 올라가, 모진강 합수머리서 떠난다 하네
擊浪聲不停 舟行亦無滯 노 젖는 소리 끊임없고, 배 또한 멈춤이 없네.
仰見淸平山 數峯工遠勢 청평산을 우러러 보니, 수많은 봉우리들 멀리 묘하고 우람하다.
眉黛忽有無 淡淡煙光霽 눈썹 같은 산봉우리 보일 듯 말 듯, 비는 그쳤는데 옅은 안개 아른하다.
興盡暮將返 晩山濃如䯻 흥겨움도 끝나고 저물어 되돌아가려는데, 저문 산은 더벅머리같이 짙구나.
款乃聲不絶 東方吐蟾桂 정겨운 삿대질소리는 끊기지 않는데, 동쪽 하늘은 달을 토해놓네.
楊柳陰陰中 短篷又還繫 어둑해진 버드나무 밑에, 작은 거룻배 돌아와 매 달리네
翛然 -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不世 - 세상에 드묾.
款乃 - 정겨운 삿대질소리,
其三
采藥仙洞 약초 캐는 신선 골
我欲采藥還 艤舟淸平渚 약초를 캐 오려, 청평산 물가에 쪽배를 대었네
我如劉阮行 食盡歸無處 나는 흡사 유완처럼 돌아 다녔는데, 먹을 것은 떨어지고 갈 곳도 없네
行行見桃實 團團甛可茹 여기저기 다니다 복숭아를 보았는데, 둥글둥글하고 달아 먹을 만하네.
身輕骨欲仙 行至數里許 몸 가벼워져 신선처럼 되어, 수 십리 되는 곳까지 갈 거 같았네.
溪流淸且淺 一杯隨水去 맑고 얕은 시냇물이 흘러, 한 잔 들고 물 따라 들어가보네
杯中何所有 胡麻飯新貯 잔 속 세상에 무엇이 있겠는가, 호마밥 새로 담아놓았네
溪邊窈窕女 一笑來延佇 시냇가 요조숙녀, 방끗 웃으며 반기네
迎入設床帳 禮數秩有序 움막에 상을 차려 놓고 맞아드리며, 주인과 손이 만나 공손이 인사 나눈다.
伴宿玉堂淨 無夢淸夜阻 함께 밤을 지내도 규수의 집은 고요한데, 날 밤을 새워도 서먹해
深嗟我塵人 已覺爾仙侶 아! 나는 속인이지만, 이미 선녀와 짝이 되었네
送我出洞門 重尋迷處所 문 앞에서 나를 전송했는데, 다시 가보고 홀린 것을 알았네
劉阮 - 사람 이름, 중국 청나라 유완이 천태산에서 선녀를 만난이야기.
一杯隨水 - 한잔에 드리워진 물.
里許 - 심리 줌 되는 곳.
胡麻 - 참깨 들깨 통칭.
延佇 - 오래 동안 서서 기다림.
伴宿 - 밤샘하다.
其四
尋僧華岳 스님 찾는 화악산
暇日扶靑藜 陟彼華山岡 한가한날 명아주 지팡이에 의지해, 저기 화악산에 올라간다.
石逕何犖确 蒼蒼松檜涼 협소한 돌길은 어찌나 바위가 많은지, 울창한 소나무 숲은 시원스럽다.
山雲暗藤枝 山風吹桂香 구름 낀 산은 덩굴가지에 어둡고. 산바람은 계수나무 향기를 풍긴다.
徑盡見蒼崖 飛瀑流泱泱 오솔길이 끊긴 푸른 언덕엔, 폭포수 날려 끝도 없이 흐른다.
一條素如練 直下林巒傍 흰 폭포수는 명주 같고, 떨어지는 물줄기 숲 곁으로 이어진다.
上有千丈松 下有十笏房 위로 뻗은 것은 천 길의 소나무가 있고, 아래는 십 척의 방성집이 있다.
老僧雪眉皺 觀空坐石床 노승은 흰 눈썹에 주름진 모습을 하고, 공을 관조하며 석상에 앉아 있다.
迢迢難攀緣 默默遙相望 아득한 인연 가늠하기 어렵고, 묵묵히 거닐다 서로 바라본다.
我無身八翼 亦無修鍊方 나는 날 재주도 없고, 수양할 방법도 없다네.
火宅透塵網 朅來投古皇 번뇌는 속세를 괴롭히는데, 어찌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을까.
願借一神通 哀愍垂慈光 부처의 신통력으로, 어여삐 여겨 자비심을 베푸시길
靑藜 - 명아주 지팡이.
十笏 - 사방 3미터 크기 방.
觀空 - 관음 상.
其五
釣魚新淵 낚시하는 신연강
前年買綠蓑 今年買箬笠 작년에 녹사의를 사고, 올해는 약립을 샀네.
志慕玄眞子 酒酣吹長笛 마음은 현진자를 그리고, 술을 즐기며 피리를 분다.
吹入西塞山 三峯岌然揷 피리 불며 삼악산에 들어가니 세 봉우리 우뚝 서 있네.
吹入西塞山 三峯岌然揷 아래에는 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속에 산 그림자 드리워 있네.
苔磯平如床 俯瞰淸潭碧 물가에 이끼는 평상처럼 평평하고, 굽어보니 맑고 깊은 연못 푸르르네.
斜風細雨中 垂綸一千尺 지나는 바람 가랑비 내리는데, 드리운 낚시줄 일천척일세.
小魚吹喣喣 大魚跳喞喞 작은 물고기는 입만 뻐금 뻐금, 큰 고기는 펄쩍 펄쩍.
紅塵日日忙 綠水年年色 번거로운 속세는 날마다 바쁘기만 하고, 녹수는 해마다 푸르네.
持竿不投餌 坐茅瞑兩目 미끼 없는 낚시 대 걸쳐놓고, 풀밭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네.
閱盡世間途 朝暮風波惡 세상 일 겪어보니, 조석으로 풍파는 고약하구나.
打槳日暮還 半江山月白 노를 저어 저녁에 돌아오는데, 강산에 달빛 비치네.
新淵 - 춘천시 서면에 위치한 江으로 신연강 나루는 1939년에 신연교(現 의암호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서울로 가는 통로였다. 조선 양란(倭亂, 胡亂) 때 還鄕女들에게 몸을 씻어 과거의 貞操 상실에 대한 죄를 씻게 하던 곳이기도 하다.
綠蓑 - 도롱이. 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玄眞子 - 당 나라의 은자 張志和의 호. 벼슬을 버리고 강호에서 연파조수(烟波釣嶲)라 일컬으며 어부로 살았음.
세조의 왕위찬탈로 속세를 등지고 자연을 벗 삼아 流浪하던 시절 춘천의 관문인 신연강에서 낚시를 하며, 당시 政治狀況을 자연에 빗대어 諷刺한 시이다. 맑은 연못 속에 음산함으로 찬탈 속셈을 小魚와 大魚는 권세가로 미끼 없는 낚시로 세월을 보내는 그의 ‘閑’ 의 미학이 숨어 있는 듯하다. 그의 해학적이고 풍자한 詩는 韓明澮가 지은 ‘젊을 때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눕는다. (靑春 扶社稷, 白首臥江湖.)’의 시를 金時習은 ‘젊을 때 나라를 망치고, 늙어서는 세상을 오염시키네. (靑春亡社稷, 白首汚江湖.)’로 바꾸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其六
喚渡孤山 사공 불러 건너는 고산
江平風不起 鏡面無査滓 강물 잔잔하고 바람없으니, 거울처럼 맑아 티끌이 없네.
中有渡人舟 遠望一點耳 그 가운데 배가 있는데, 멀리서 보니 하나의 귀와 같구나.
孤山在中央 斜面峭揷水 한 가운데 있는 고산은, 가파른 절벽으로 물에 꽂아 놓은 듯하다.
我來喚爭渡 彼岸舟已艤 내가 당도하여 건너려 하나, 배는 이미 저쪽나루에 대었다.
久立舟不來 孤山登以俟 오래 기다려도 배가 오지 않아, 고산에 올라가 기다린다네.
俯視白蘋洲 浪淘沙成汜 하얀 부평초 모래사장 굽어보니, 물결이 모래웅덩이 만든다.
夕陽暝色遠 浮煙生江涘 해가 져 먼 곳에 어둠이 깔리고, 강물에는 운무가 피어 오르네.
上灣寒波激 下潭澄江渳 위쪽 물가에 차가운 파도가 넘실대고, 아래 못은 맑은 강물이 가득하다.
蕭蕭蘆葦叢 嗷嗷雁相倚 소슬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숲, 울며 날아가는 기러기 서로 의지하네.
何處髼鬆子 卷釣淸江沚 어느 곳 더벅머리 고기잡이가 맑은 강가에서 낚시를 거둔다.
撫景獨徘徊 忘却歸千里 경치를 쫓아 홀로 헤매다가, 먼 길을 돌아 가야함을 잊었노라.
其七
送客江亭 나그네 보내는 강상 누정
江頭遠送人 餞別江之亭 나루터에서 객 멀리 보내는데, 전별도 강가 정자에서 하네.
主人不忍別 客亦難爲情 주인은 차마 보내지 못하고, 객 또한 아쉬워하네.
相對兩黯然 亭前江水明 주객 모두 안색 어둡건만, 무심한 앞 강물은 맑기만 하네.
班荊贈以言 滿酌飛巨觥 회포의 정담을 선물로 건네며, 큰 잔 넘치도록 술 따르네.
取醉不成歡 慘別臨行程 취해도 즐거워지지 않고, 참담한 마음으로 먼 길 나서네
有客抱琵琶 來作驪駒聲 객은 비파를 안고, 말울음 소리를 내네
聲聲悲帶歡 鐵撥彈鏦錚 소리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쇠채로 북소리 징소리를 내는구나.
主亦不能返 客亦遲遲行 주인은 돌아서기 어렵고. 객도 멈칫멈칫 가는구나.
秣馬添酒樽 白日西山傾 여물과 술 가득 채우는데, 해는 서산에 기우네.
主人復投轄 勸聲歌渭城 주인은 거듭 비녀를 뽑아 주며, 위성가 한 곡 들려 달라네.
回燈更痛飮 明日當西征 발길 돌려 통음하며, 날 밝는 대로 서쪽으로 떠나리라.
班荊道故(班荊道舊) - 옛 친구를 만나 정을 나누는 것
行程: 멀리 가는 길
驪: 가라말(털빛이 온통 검은 말)
其八
吟過石橋 시 읊으며 지나는 돌다리
平生愛山水 有意輒駕之 한평생 자연을 좋아하니, 생각이 나면 갑자기 출타하고 싶네.
駕言恣遨遊 不憚行嶮巇 말이 제멋대로 가게 놔두니, 험하고 위험한 곳도 두려워 않네.
山巓與水涯 得意忘勞疲 산꼭대기든 물가든, 맘대로라 피로도 잊어버리네.
興盡且復返 何必訪戴逵 흥취가 다하여 돌아오는데, 굳이 큰 길을 찾을 필요가 있는가?
時値雪初霽 萬徑行人迷 마침 눈 개이기 시작할 때, 나그네 길을 잃고 헤매네.
日暮騎蹇驢 醉著白接䍦 해질 무렵 절룩이는 당나귀 타고, 술 취해 얼굴 가리네.
苦吟眉山皺 高聳肩峯危 시 짓기 힘들어 눈썹 찡그리고, 어깨는 치켜 올리네.
風吹鬢鬖髿 不覺帽簷欹 바람이 불어 귀밑머리 헝클어지고, 삿갓이 삐뚤어진 것도 모르네.
興闌夕陽薄 獨鳥投林飛 흥이 다하자 석양도 엷어지고, 외로운 새는 숲으로 날아가네.
銀屑隨回飆 瓊穈簸松枝 은빛 눈가루 회오리바람에 날리고, 옥같은 싸락눈 솔가지를 흔드네.
誰知蕭索中 磊落多詩思 누가 알랴! 맑은 마음으로 시구 찾는 중에, 돌무더기 떨어지듯 많은 시가 생각나는 것을
其九
秣馬松院 말 먹이는 송원
我行村墟中 言旋秣我馬 이 사람이 마을 언덕길을 가다가, 꼴 먹일 곳을 물어.
秣之何處好 秣之松院野 꼴 먹임 어디가 좋은가, 꼴은 송원 뜰이라네.
卸鞍脫羈韁 放之靑林下 안장을 풀고 굴레를 벗겨, 푸른 들에 풀어놓네.
蕭蕭仰天鳴 似厭鞭驅者 하늘 치켜보며 울어 제키는 것, 채찍 든 마부를 싫어하는 듯.
綠鬃散如雲 赤汗沫如赭 푸른 말갈기 구름처럼 흩날리는데, 붉은 땀은 방울져 핏빛 같네.
奮首齧芳草 喜氣如逸厊 머리 흔들며 풀을 뜯으며, 기뻐하는 모습 마구간에 있는 듯.
寄語飛黃駒 汝勿相憚也 날뛰는 망아지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서로서로 꺼리지 말라.
國家大平久 落日邊烽寡 나라가 오래 태평하니, 해가 져도 변방에 봉화가 적어졌구나.
不馳天山場 惟返鷄豚社 천산의 전장터로 가지 않으면, 오직 고향으로 돌아가 개나 돼지와 같이 살리.
假如虜塵飛 王命征戎覩 만약 오랑캐가 처들어 와도, 왕명으로 정벌하는 것을 보리라.
六轡若若垂 咄爾其踦跨 말고삐 길게 늘어지면, 내 너를 불러 안장에 걸터앉으리.
其十
伐免楸林 토끼 쫓는 추곡 숲
昨日西風吹 郊原霜意豪 어제는 서풍이 불더니, 성 밖 들에는 서리가 호걸스럽네.
牽黃臂蒼去 伐免秋林皐 누런 개를 끌고 창망히 가더니, 가을 숲에 토끼 좇는 소리라.
跨馬出閈門 飛騎追吾曹 말 타고 이문을 나서더니, 말은 날듯이 우리를 따라 오네.
蹴踏馬不發 噴空鬃生飆 발로 차도 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허공을 향해 울부짖음 말갈기에 회오리바람 이네.
怪來仰看雲 盤谷雙鵰嘷 기이하여 구름을 바라보니, 반곡에 쌍 독수리 우짖는데.
欲以壯伏人 挽弓馳一遭 장함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려, 활 당겨 말달리며 한 번 만났네.
一發落雙鵰 左右皆豎毛 한 발에 떨어지는 두 마리 독수리, 좌우 모두 더벅머리 터럭이니.
我言君勿訝 是事何足高 그대 놀라지 말게나, 이런 일 어찌 뽐낼 만한 일인가.
鷹揚朔漠塵 馳騖長城壕 송골매 나는 북쪽 사막 먼지 속이나, 만리장성 참호를 치달리며.
琱弓白羽箭 手握寒霜槍 조궁과 백우전을 메고, 손에는 서리 빛의 창을 잡고서.
一戰報我王 却勝遭我峱 한 번 싸워 임금께 보답함이, 오히려 노에서 나를 만남보다 나으리.
醉酒 술에 취해
得酒無端喜欲狂 술 얻으면 무한히 기뻐 미칠 것 같아
百年人世定蹉跎 한 백년 인생살이 정말 낭패이어라.
莊周初醒胡蝶夢 장주는 처음으로 나비 꿈에서 깨어났고
元載新挑鼻準魔 원재는 새롭게 폭로되어 악마의 본보기가 되었네.
花徑浪遊同蔣詡 꽃길에 마음껏 노닌 장후와도 같고
詩壇獨步似廉頗 시단에서 염파처럼 독보적이었어라.
問山我是何爲者 산에게 묻노니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宇宙開來知我麽 우주가 열린 이래로 나를 알아주는 자 있을까.
莊周 - 장자의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호접몽(蝴蝶夢), 장자의 이름이 周이다.
元載 - 대종 때 환관들과 결탁하여 지위를 다짐, 나라를 다스림에 탐욕스럽고 전횡이 심했고, 공공연히 뇌물을 받고, 도당을 만들어 반대파를 제거, 770년 대종과 상의하여 환관 어조은을 죽임. 그 후 대종은 원재의 전횡과 교만 방자함에 분노하여 777년(대력 12) 그를 처형 함.
蔣詡 - 漢나라 왕망(王莽)이 집권 시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뜨락의 대나무 밑에 세 오솔길을 내고는 오직 구중(求仲),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종유했었다는 일. 장후삼경(蔣詡三逕)
廉頗 - 사기(史記) 廉頗藺相如列傳에 조(趙)나라 장군 염파와 대신 인상여의 고사. 문경지교(刎頸之交)가 유래 함. 늙어서도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함을 자신의 시작과 비교한 듯.
醉鄕 취하여
醉鄕日月亦佳哉 취하니 세월마저 좋은데
依舊狂心傑且魁 언제나 미친 마음 높고도 크구나.
身世浮游微似稊 갈 곳 없이 떠도는 신세 가라지풀 같으나
乾坤濩落大於杯 하늘과 땅은 넓어 술잔보다는 크구나.
二豪侍側從敎倣 두 호걸을 곁에서 모시니 따르라며
千丈流胸驀地來 천길 흐르는 가슴 속에 땅을 달려온다.
一斗百篇兒戱耳 한말 술에는 백편의 시가 아이들 장난
何人會得醉鄕恢 그 누가 취한 세상 넓은 줄 알기나 할까.
一斗百篇 - 두주백편(斗酒百篇), 이태백이 한자리에서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백편을 지었다. 두보의 음주팔선가(飮酒八仙歌)에 李白一斗詩百篇에서 인용.
蹭蹬 길을 잘못 들다.
蹭蹬功名事已訛 공명에 오르다 실족하니 일은 이미 잘못되고
少年那計此中過 어려서부터 이런 속에서 지낼 줄 어찌 헤아렸으랴?
靑山茅屋壯心在 청산의 초가집에 훌륭한 큰 뜻이 있지만
白髮老翁兒戱多 백발 된 노옹은 아이들 놀이를 더 좋아하네.
小苑飛花藏小篋 작은 동산에 흩날리는 꽃잎, 조심스레 상자에 감추고
淸溪流水壅盤渦 맑은 시내에 흐르는 물, 큰 돌로 막으니 소용돌이치네.
却訝無事還多事 의심을 피하니 일이 없어 도리어 경치는 좋아지고
又摘殘蔬旋種茄 다시 남은 나물 뜯어내고 가지를 조금 심어보네.
雉嶽山 치악산
雉嶽崢嶸聳碧空 치악산은 우뚝우뚝 푸른 하늘에 솟았고
煙霞明滅有無中 연기와 놀은 보일 듯 말 듯 아득히 멀었네.
一泓春水莓苔滑 한 줄기 흐르는 봄날의 시냇물에는 이끼가 미끄럽고
千丈蒼崖躑躅紅 천 길 낭떠러지에 핀 진달래꽃은 붉기도 하구나.
路轉層峯殘雪在 산봉우리로 난 산길에는 눈이 아직 남았고,
巖廻石棧晩雲濃 바위로 둘러있는 돌층계에는 저녁 구름이 짙게 깔렸네.
靑山處處行應好 푸른 산은 가는 곳마다 경치가 좋은데
脚力有窮山不窮 다리에 힘이 따 빠지도록 가도 산은 끝이 없네.
七夕 칠석날
烏鵲橋邊路正賖 하늘의 오작교 다리 가는 길은 멀기도 한데
銀河淸淺浪淘沙 은하수 맑고도 얕아 물결이 모래를 씻네.
人間乞巧何心看 사람들은 재주 구걸하며 무슨 마음으로 볼까
怕見扶桑一抹霞 조용히 보는 동쪽 바다에 잠시 노을이 스쳐가네.
啄木 딱다구리
啄木啄木爾何窮 딱다구리야 딱다구리야 뭐가 그리 궁하여
啄我庭樹聲丁東 뜰에서나 어디에서나 그렇게 뚝딱거려 대느냐
啄之不足鳴怡怡 두들김도 부족하여 시끄러이 짖어가며
畏人避向深林中 인간이 싫어서 숲에 숨어 산다지만
林深山靜啄愈響 숲이 깊어 메아리만 더하더라
懼機槎牙枝上蟲 붙어 사는 벌레는 얼마나 잡았느냐
蠹多蟲老飽汝腹 벌레가 굵직해서 너는 좋겠고
爾於啄蠹多全功 숲을 살리는 공로도 적지 않지만
世上蠹物害民者 세상에 백성을 등쳐먹는 자는
千百基數無人攻 아무리 들끓어도 내버려두니
縱汝利嘴除木災 그 날카로운 부리로 나무는 살리지만
人間蠹穴詎能空 인간을 빠는 벌레는 어쩔 수 없나보구나
濯淸泉以自潔 맑은 샘물로 써 씻어 스스로 깨끗하네
淸泉嗚咽作琴聲 맑은 샘물 목이 메어 울며 거문고 소리 이루고
流下澄潭靜不鳴 흘러내린 맑은 못은 소리 내지 않고 고요하네.
徹底澹於氷鑑淨 밑까지 통하여 맑으니 얼음 거울처럼 깨끗하고
映空明似玉壺淸 하늘을 비쳐 깨끗이 보이니 옥병처럼 맑구나.
濯纓濯足從吾好 갓끈 씻고 발을 씻으니 내가 좋을 대로 따르고
觀水觀瀾任意行 강물을 보고 물결을 보며 생각에 맡겨 간다네.
魚鳥亦知余所樂 물고기와 새들 또한 알지니 내가 즐기는 바를
得忘機處便忘情 권세 지위 잊는 것 알아 편히 욕망을 잊는다오.
脫意 떠돌이
萬壑千峰外 수많은 골짜기 봉우리 저 너머
孤雲獨鳥還 외로운 구름 외로운 새 돌아가네
此年居是寺 금년은 이 절에서 머문다만
來歲向何山 내년에는 어느 산으로 발길이 갈지
風息松窓靜 바람이 자니 松窓이 고요해
香鎖禪室閑 향가지 불 삭아 禪室이 한가롭다
此生吾已斷 이 生은 이미 내 몫이 아님이여
樓迹水雲間 물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리라
探梅 매화 핀 곳을 찾아
花時高格秀群芳 꽃 필 때 높은 품격은 꽃중에도 빼어나고
結子調和鼎味香 매실은 음식과 잘 어울려 그 맛이 향기롭다.
直到始終存大節 한결같이 절개를 보존하니
衆芳那敢窺其傍 어찌 방초(芳草)무리들이 감히 어깨를 겨루리요.
榻銘 의자에 새기다
不華晥以飾大夫之簀 빛나고 곱게 하여 대부(大夫)의 죽석(竹席)처럼 꾸민 것도 아니요
不斑爛以文小戎之茵 찬란하고 아롱지게 하여 소융인(小戎人)의 문장처럼 윤낸 것도 아니라도
展我土床 나의 토상(土床)에 깔아 놓으니
溫如陽春 봄과 같이 훈훈하구나.
穿膝累脚 무릎 꿇고 다리 포개고
危坐待晨 오뚝이 앉아 밤을 지새며
窮理密察 이치를 궁구하며 정밀히 따져
思晞古人 옛사람과 같이 하련다.
不偏不倚 뒤틀지도 않고 기대지도 않아
省躬惟寅 몸뚱이를 살펴 오직 공경하네.
從居闇室 어두운 방에 처해서도
如對大賓 큰 손님을 대한 듯이 하며
不愧屋漏 옥루에도 부끄럽지 않고
如在祭神 신명을 제사하 듯 하며
主一無適 하나를 목표하여 갈리지 않고
惺惺堅硬 마음가짐 굳고 단단하네.
泥團木槊 니단(泥團)과 목삭(木槊)은
廣博平正 광박하고 평정하니
惟君子賴爾以居敬 군자는 너를 힘입어 공경을 갖는다.
耽睡 잠을 탐하다
竟日臥耽睡 종일토록 누워서 잠만 즐기다가
懶慢不出戶 나태해져 문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圖書抛在床 책들을 책상에 던져두니
卷帙亂旁午 책갑과 두루마리 뒤섞여 어지럽구나
.
瓦爐起香煙 질화로에서는 향기 피어오르고
石鼎鳴茶乳 돌솥에는 차와 우유가 슬슬 끓는다.
不知海棠花 미처 알지 못하였구나, 해당화가
落盡千山雨 온 산에 내린 비에 다 떨어진 줄을.
破悶 답답한 마음 털어내며
閉戶硏思著巨篇 문 닫고 생각 다듬어 큰 저술하노니
只緣運命太屯蹇 다만 내 운명이 너무나 막히고 궁색해서라.
人平不語非虛說 편해지면 말하지 않는 것이 헛된 말 아니니
天道無知蓋固然 천도(天道) 앎이 없음이 본래 그런 것이라.
賊子亂臣容世上 적자(賊子)와 난신(亂臣)이 세상에 용납되고
名公烈士困身前 명공과 열사가 생전에 곤란을 당한다.
若缺後者明誅賞 만약 뒷사람들이 상벌을 밝힘이 없다면
死共枯株倒岸邊 죽어서 모두 고목되어 언덕가에 거꾸러지리라.
芭焦 파초
一種春心寫綠羅 한 가지 봄 마음이 녹색 비단을 베꼈는데
春心續續倒抽多 봄 마음은 언제라도 바뀌고 넘어짐이 많네.
展了無語斜窓外 피고나선 말없이 창밖에 비스듬히 서서
疏雨時時替說多 가랑비엔 때때로 대신해서 말도 많았네.
飽食 배불리 먹고
飽食今朝臥土牀 오늘 아침 배불리 먹고 흙 침상에 누워
陶然扣腹傲羲皇 거나하게 배 두드리며 복희 임금 비웃네.
頗知食肉憂無盡 자못 육식이란 근심이 끝이 없음을 알기에
頓覺飯蔬樂未央 문득 깨닫는 채식은 장차 원하는 즐거움이라.
石鼎換添新澗水 돌솥에 골짜기 물을 새로 바꾸어 더하고
瓦爐初擿舊焚香 질화로 조용히 들추어 묵은 향을 태우네.
閑人放浪由來事 한가한 사람 방랑함은 이런 까닭인지라
那計淸貧拙與狂 청빈함 헤아려 질박하게 정처 없이 떠도네.
抱川縣 포천현
弊邑民居少 흩어진 고을에 사람은 적고
荒村樹色稠 황량한 마을 나무색은 짙어라.
好風經麥壟 부드러운 바람 보리이랑 지나고
細雨過蘋洲 보슬비는 마름 뜬 못섬을 지나간다.
逕小人蹤斷 길 좁아 사람 자취 끊어지고
山回石洞幽 산이 둘러있어 바위 골짝은 깊숙하구나.
去去峯如畫 가면 갈수록 산봉우리 그림 같고
行行可解愁 가고 또 가면 나의 수심도 풀어지리라.
何處秋深好 어디에 가을이 깊으면 좋은가
何處秋深好 어디에 가을이 깊으면 좋은가
漁村八九家 여덟아홉 인가가 있는 어촌이라네.
淸霜明柿葉 맑은 서리에 감나무 잎은 훤한데
綠水漾蘆花 푸른 물결에 갈대꽃이 일렁인다네.
曲曲竹蘺下 구불구불한 대 울타리 아래에
斜斜苔徑賖 비뚤비뚤한 이끼 낀 길이 멀구나.
西風一釣艇 가을바람에 낚싯배 한 척 띄우고
歸去逐煙霞 안개와 노을을 따라 돌아가리라.
何處秋深好 가을이 깊어 그 어디가 좋은가
秋深隱士家 은사의 집에 가을이 깊었구나
新詩題落葉 새로운 시는 낙엽에다 쓰고
夕膳철籬花 저녁 찬에는 울타리 꽃을 줍네
木脫千峰瘦 나뭇잎 떨어지니 산봉우리 야위고
苔深一徑사 이끼가 깊어 외로운 길이 멀다
道書堆玉案 도서를 옥책상 위에 쌓아 두고서
瞑目對朝霞 눈감고 아침노을을 마주하네
何處秋深好 그 어떤 곳이 가을이 깊어 좋은가
秋深商旅家 가을이 깊은 장사하는 여관이도다
石穚留月色 돌다리에는 달빛이 머무는데
楓樹染霜花 단풍나무는 서리꽃에 물들었다
孤館三年夢 외로이 여관에서 3년을 꿈꾸며
離亭十里사 떠나 온 정자는 10리나 멀어졌네
關山何處是 고향은 그 어느 곳에 있는가
遙望隔雲霞 구름과 노을 넘어서 멀리 바라본다
木脫 - 나무가 옷을 벗다. 즉 나뭇잎이 떨어진 것
道書 - 도교의 서적
關山 - '고향'을 일컫는 말
謔浪笑 실없는 말로 희롱질하며 비웃네
我會也我會也 나는 깨닫고 또한 나는 이해하니
拍手呵呵笑一場 박수치고 껄껄대며 한바탕 웃어보네.
古今賢達俱亡羊 옛날과 지금의 현달도 모두 망양이리니
不如結茅淸溪傍 맑은 시내 가까이 띳집 짓느니만 못하네.
畏途側足令人忙 산기슭 곁 두려운 길에 사람들 조급하니
不如安坐曝朝陽 아침 해 쬐며 편안히 앉음만 못하리라.
百年熟黃梁 백년이 흘러야 메조 밥 익을 것이며
談笑防龜桑 담소함에는 거북과 뽕나무를 막으리라.
百了千當 백 가지 마치면 천 가지 만나나니
不如坐忘 앉아서 잊느니만 못하리라.
碧山峨峨 푸른 산은 높고 위엄 있고
碧澗泱泱 푸른 빛 산골 물 깊고 넓구나.
自歌自舞 스스로 노래하고 절로 춤추니
憂樂兩忘 괴로움과 즐거움 다 잊는다네.
或偃或臥 쓰러져 있다가 혹은 누워자고
或行或坐 혹은 가다가 혹은 앉아 있네.
或拾墮樵 혹은 줍고 떨어뜨려 나무하고
或摘甛蓏 또 달콤한 열매를 딴다네.
一領布衫 한 벌의 베적삼 차지하니
半眉裸臂 반쪽 둘레 팔뚝은 벌거숭이
骨癯麤筋瘰野 야윈 뼈 거친 살에 옴 걸려 비천하고
冠粗粗纓下嚲 갓은 거칠고 갓끈은 아래로 늘어졌네.
眼底不見人 눈 아래 사람은 보이지 않고
與我步月長歌 나와 함께 걷는 달과 항상 노래하네.
腰裊灘笑入 간드러진 허리에 웃으며 여울에 드니
煙蘿洞雲鎖 안개 낀 울타리 구름이 가두어 그윽하구나.
龜桑 - 신상귀(愼桑龜), 귀상신(龜桑愼), 거북이가 잡혀가며 자기는 죽지 않는 것을 자랑함에 뽕나무가 나의 영험으로 삶으면 죽는 것을 비웃으며 알려주어 죽게 된 고사. 座中談笑 愼桑龜 莊子 座右銘
學詩 시 배우기
1
客言時可學 손님 말이 시를 배울 수 있느냐기에
余對不能傳 내 대답이 시는 전할 수 없는 거라 했네.
但看其妙處 다만 그 묘한곳만 볼 뿐이지
莫問有聲聯 소리 있는 연(聯)은 묻지 말게나.
山靜雲收野 산 고요하면 구름은 들에서 걷히고
江澄月上天 강물 맑으면 달이 하늘에 오르느니.
此時如得旨 이런 때 만일 뜻을 얻는다면
探我句中仙 나의 시귀 가운데서 신선을 찾으리라.
2
客言詩可學 객은 시를 배울 수 있다 말을 하지만
詩法似寒泉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은 거라
觸石多嗚咽 돌에 부딪치면 목메어 울다가도
盈潭靜不喧 연못에 가득차면 고요해 소리 없네
屈莊多慷慨 굴원과 장자는 강개함 많았는데
魏晉漸拏煩 위진(魏晉)에 이르러선 점차 번다해졌지
痋斷尋常格 심상(尋常)한 격조야 끊어 없앤다 해도
玄關未易言 묘한 이치 말로는 전하기 어렵다오
寒溪 한계
嗚咽寒溪水 오열하는 한계수
空山日夜流 빈산에 밤낮으로 흐르네
不能隨俊乂 인걸들을 따를 수도 없어
且可任優休 또 멈추어 쉼에 몸을 맡기네
地僻雲牙淨 땅이 궁벽하니 운지 버섯 깨끗하고
潭淸石髮柔 소가 맑으니 물이끼 부드럽다
夢魂歸未得 꿈속의 넋도 돌아가지 못하고
飄轉實堪愁 방랑으로 떠돌며 실로 시름만 견디네
한계 - 한계령 계곡
준예(俊乂) - 준재, 인걸
운아(雲牙) - 의미 불상, 전당시에 天寒夜漱'雲牙'淨,雪壞晴梳石髮香。이라는 구절이 있으나 다른 뜻. 문맥으로 보아 雲芽(운지버섯 싹)가 아닐까 하고 해석했음.
석발(石髮) - 조류, 물이끼, 청태, 녹태
閑意 한가한 정취
1
莫道生涯薄 생애가 박복하다 말하지 말라
苔錢散一庭 돈 같은 이끼가 온 뜰에 흩어져있다.
孔方兄絶契 돈이 나와 교제를 끊었으나
管城子通靈 붓은 나의 심령에 통해있도다.
曉日明書榻 새벽 해는 서탑을 밝게 비추고
山雲擁草亭 산속 구름은 초가 정자에 둘러있다.
小軒風露冷 작은 난간에 바람과 이슬 차가워
蛺蝶夢回醒 나비의 꿈에서 돌아와 깨어났도다
2
終日倚窓軒 해가 다하도록 집의 창에 기대어
蕭然不世情 쓸쓸한 듯 인간의 정이 아니로다.
庭花掃更落 뜰의 꽃은 계속 쓸어도 떨어지고
階草剗還生 섬돌의 잡초는 베어도 다시 자라네.
地僻少人事 궁벽한 곳이라 사람의 일도 적고
山深唯鳥鳴 깊은 산에는 오직 새들만 우는구나.
將何消永日 장차 어찌 긴 날을 보낼까나 ?
移枕近書檠 베개 옮겨 책을 등불에 가까이하네.
寒鴉栖復驚 겨울 갈가마귀 깃들다 다시 놀라는데
楓葉冷吳江 단풍잎은 오강에 싸늘도 한데
蕭蕭半山雨 쓸쓸한 산중에 비가 내리네.
寒鴉栖不定 갈가마귀 보금자리 정하지 못해
低回弄社塢 낮게 돌며 사당 언덕 서성거리네.
渺渺黃雲城 아스라히 먼지 구름 자욱한 성에
依依紅葉村 안타까이 붉은 잎 물들은 마을
相思憶遠人 먼데 있는 그대가 그리운데
聽爾添鎖魂 네 소리 듣자니 애가 녹는다.
閑寂 한적
自少無關意 젊어서부터 세상일에 무관심하여
而今愜素心 지금은 욕심 없는 마음이 유쾌하다
種花連竹塢 꽃을 심어 대숲 언덕에 연결하고
蒔藥避棠陰 아가위 그늘 피해 약초를 모종낸다.
苔蘚人蹤少 이끼 끼어 사람 자취 드물고
琴書樹影深 나무 그늘 깊이 거문고와 책이 있도다.
從來樗散質 전부터 허약한 체질이라
更來病侵尋 다시 병이 침입해 찾아드는구나.
閑興 한가한 흥취
淵明嗜酒杜陵詩 도연명은 술 즐기고 두보는 시 읊지만
天地無涯生有涯 천지는 무궁하나 인생은 끝이 있었도다.
閑據枯梧仍不寐 마른 오동나무에 기대어 잠들지 못하고
白雲吹散月如眉 흰 구름 바람에 흩어지고 달은 눈썹 같도다.
向江東 강동으로 향하며
季鷹今日向江東 계응이 오늘 날 강동으로 향하는데
千里蕭蕭蘆葦風 갈대에 바람 일어 천리 길이 쓸쓸하네.
客裏情懷何渺渺 나그네 가슴속 정회는 얼마나 아득한지
靑山無數白雲中 수 없이 많은 푸른 산들 흰구름 속이로다.
季膺 - 진(晉)나라 장한(張翰)의 자인 바, 대사마동조연에 임명되었는데 나라가 어지럽자 고향 강동의 순채 나물과 농어회가 그립다는 핑계로 배를 타고 돌아갔다는 고사.
海月 바다의 달
年年海月上東陬 해마다 바다의 달 동켠에서 떠올라
來我床前遺我愁 내 평상으로 와 근심을 가져주네
萬里更無纖翳隔 만리장공에 조금도 막히는 것 없어
一天渾是玉壺秋 온 하늘이 모두 옥병 같은 가을이로다
秦宮漢苑人橫笛 진나라 궁궐과 한나라 정원에서 피리 부는 사람
楚水吳江客艤舟 초나라 오나라 강가에서 배를 대는 나그네
離合悲歡應共伴 만나고 헤어짐과 슬퍼하고 기뻐함 함께 하리니
停杯且莫問從由 잠시 술잔을 멈추고 그 이유를 묻지 말아라
紅柿 홍시
秋風烈烈霜作威 가을바람 차고 서리가 위세 높고
雨過園林紅葉稀 비 지난 동산 숲에 홍시가 드물구나.
朝輝初出海天宇 아침햇살 나와서 바다 위 하늘로 솟으니
光芒射我園中樹 빛발이 나와 동산 속 나무에 비추이네.
團團萬點頳虯卵 둥글고 둥근 만 개의 붉은 규룡의 알
映日玲瓏圍火傘 비친 햇빛 영롱히 불빛 우산을 둘러싼다.
味甘豈同柑橘奴 단맛이야 어찌 단감이나 귤과 같으랴만
肌豐不比棗荔癯 살 많기는 대추나 여지 말린 것과 견주랴.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沈瑀種之敎民富 심우가 심어서 백성을 풍족하게 하고
鄭虔書葉成巨儒 정건은 감잎에 글을 써서 큰 선비가 된 것을
七絶堪爲百果雄 칠언절구 즐겨 배우니 일백 과일의 으뜸이라
愛見葉裏垂紅珠 잎 속에 드리운 붉은 구슬을 사랑스레 바라본다.
紅葉 단풍
秋霞翦作淺深紅 가을은 노을을 잘라 옅고도 짙은 홍색을 만들고
靑女多情巧不窮 서슬 퍼런 서리는 웬 정이 그리 많은지 끝도 없이 솜씨를 보인다.
點點欲燒殘照外 낙조 밖으로 점점이 타오르고
層層如畵亂山中 층층 화폭이 이 산 저 산에 펼쳐진다
數行書字悲心事 사연담긴 글 몇 줄은 심사를 슬프게 하고
幾个牽愁落晩風 이런저런 시름 끌어안고 저녁 바람에 낙엽진다.
莫向秋深怨零落 깊어가는 가을 영락(零落)함을 원망은 말아야지
東君應又綴殘叢 봄바람은 또다시 시든 풀숲에서 풀을 엮고 있을 테니.
花開花謝 꽃이 피고 꽃이 지는
花開花謝春何官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리고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가고 구름이 오는 것을 산이 어찌 하겠는가.
寄語世人須記憶 세인에 붙이오니 나의 이 말을 잘 기억하오
取歡無處得平生 즐거움 누릴 곳은 평생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花狼籍 꽃이 어지럽게 흩어지네
花狼籍甚可憐 꽃잎이 심하게 흩어지니 참으로 가련하오
一陣狂風何大顚 한바탕 부는 사나운 바람에 어찌나 심하게 뒤집히는지
點着綠苔猶慰我 푸른 이끼에 떨어져 붙으면 오히려 위로가 될 텐데
莫敎泥涴更潸然 더러운 진흙을 덮게되니 그로인해 다시 눈물 흘리네.
霏霏紅雨萬點香 매우 많은 향기 시들어 붉은 비가 부슬 부슬 내리니
綠陰庭院人斷腸 푸르게 그늘진 정원은 남의 애간장을 끊는구나.
君不見長信宮中失寵姬 장신궁에서 사랑을 잃은 여인을 그대 보지 못했나
玉顔寂寞爲誰媚 고요하고 쓸쓸한 옥같은 얼굴은 누굴 위해 아름다웠던고.....
花落更發明年枝 꽃은 떨어져도 내년에는 가지마다 다시 피지만
一棄永巷無出期 한 번 버린 궁전에 나타날 기약조차 없구나.
長信宮 - 중국 漢[한]나라의 長樂宮[장락궁] 안에 있던 주로 태후가 살았던 궁. 선제의 사랑을 받던 반첩여가 조비연의 아첨에 사랑을 잃고 장신궁에 머물며 "원가행"을 지은 고사.
永巷 - 宮中[궁중]의 긴 複道[복도], 죄 지은 궁녀를 가두던 곳, 주되는 宮殿[궁전]의 뒤쪽에 있는 궁전.
畵梅花 그림 속 매화
香魂玉骨先春姸 향기로운 혼 옥골은 봄에 앞서 곱고
獨占孤山煙雨邊 홀로 외로운 산의 비 오는 곳을 차지했구나.
疏影暗香雖不動 성긴 그림자 은은한 향 움직이지 않아도
淸姝風韻正依然 맑은 숙녀의 풍모와 운치가 정말 의연하여라.
和靖節形影身 형체가 그림자에게
與汝苦相累 그대와 이리 천생으로 얽혀서
相從能幾時 서로 따른 지 얼마나 되나?
月燈汝隨我 달빛과 등불 곁에선 그대 날 따르지만
處陰汝何之 그늘 속에선 그대 어디로 가는가?
同處悲歡中 슬픔과 기쁨 속에 함께 살아가지만
不知常在玆 항상 내 곁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라
我靜汝亦靜 내가 고요할 땐 너 또한 고요하지만
動則如有期 움직이면 약속이나 한듯 따라 움직이니
適從何處來 그때그때 맞추어 어디에서 오는지
暝目時紬思 때로 눈을 감고 생각해보네.
相期辭舞中 노래하고 춤출 땐 만나도 좋지만
莫伴涕交洏 눈물 흘릴 땐 짝하지 마세나.
向曉拭鏡看 새벽에 거울을 닦고 들여다보면
似我無復疑 내 모습 그대로여서 의심할게 없어라.
願言百歲內 바라건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爲歡君勿辭 그대여! 즐거움을 사양치 마오.
- 他人의 시 운을 빌림을 뜻함. 陶淵明 의 형영시 차운
畫杏花 살구 꽃 그림
活色生紅第一梢 싱그럽고 붉은빛 생기 있게 칠한 첫 가지 끝
何人拈筆上床描 어느 사람이 붓을 잡아 상 위에 그렸는지 ?
出墻千朶多才思 드러난 담장에 무성히 늘어져 재치 있는 생각 많아
腸斷飄香賣酒橋 애끊는 마음에 향기 나부끼며 다리에서 술을 파네.
環堵 銘 환도라 이름(銘) 짓다
內鈍外黠 안은 둔하고 겉만 영리한 것은
小人爲質 소인의 자질이요
外括內豁 곁은 오므리고 안이 활달한 것은
君子之吉 군자의 길조로다.
闇而日章 모르는 속에 날로 빛나고
的而日亡 똑똑한 척하면 날로 망(亡)하나니
衣錦尙褧 좋은 옷은 안감을 중히 여기고
惡衣表揚 궂은 옷을 가죽만 치례한다.
無咎無譽者爲括囊 허물도 명예도 없는 자는 괄낭(括囊)이라 하니
翰音登于天何可長 한음(翰音)이 하늘로 오르면 어찌 길 수 있나.
列我圖書 나의 도서를 벌여 놓고
溫古勿忘 옛 것을 복습하여 잊지 말며
勵我志氣 나의 지기(志氣)를 가다듬어
浩浩堅剛 넓고 굳고 굳세게 하렸다.
所以君子 이러기에 군자란
知柔知剛 부드러움도 알고 강함도 알며
知微知彰 숨기는 것도 알고 밝히는 것도 알아서
爲萬夫之望也哉矣夫 뭇 사람이 우러러는 명망이 되는 것이다.
- 도화(圖書)와 필연(筆硯)을 곁에 벌여 놓고, 이름을 知命環堵라 하고 따라서 이름을 지어 담벽에 붙이다.
還山 산에 돌아와
山中四月盡 산 속엔 4월이 다가고
客臥動輕旬 나그네는 가볍게 열흘이 지나간다
四壁圖書蛀 사면 벽에는 도서에 좀이 슬어
三間几席塵 삼간 방 책상엔 먼지만 쌓였다
菁花多結實 우거진 꽃에는 열매 많고
杏子已生仁 살구 열매엔 이미 씨가 생겼다
靜倚屛風睡 고요히 병풍에 기대어 잠드니
風爲入幕賓 바람은 휘장 속으로 들어와 손님이 된다
懷東都 동도를 생각함
故山猿鶴思依然 고향의 원숭이와 학의 생각은 전과 다름없는데
淸夢頻驚已數年 분명한 꿈꾸며 자주 놀라길 이미 몇 년이구나.
日射鼇頭峯展畫 해 비치는 금오산 부근엔 그림 봉우리 펼쳐지고
煙開鯨背浪滔天 안개 사라진 고래 등엔 물결이 하늘까지 넘치네.
自緣身病不能去 본연의 이유로 몸은 병들어 능히 가지 못하니
無復世情相累牽 회복 할 수없는 세상 물정에 서로 자주 거리끼네.
歲暮欲歸歸未得 세밑에 돌아가고자 하나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니
碧雲秋樹月城邊 푸른 구름 추상같은 나무 달빛이 두메를 지키네.
回想 회상
少小趨金殿 아주 어릴 때 황금 궁궐에 나갔더니
英陵賜錦袍 영릉(英陵, 世宗)께서 비단도포를 내리셨다.
知申呼上膝 지신사(知申事, 承旨)는 날 무릎에 앉히시고
中使勸揮毫 중사(中使,宦官)는 붓을 휘두르라고 권하였지.
競道眞英物 참 영물이라고 다투어 말하고
爭瞻出鳳毛 봉황이 났다고 다투어 보았었다.
焉知家事替 어찌 알았으랴 집안일이 결딴이 나서
零落老蓬蒿 쑥대머리처럼 영락할 줄이야!.
檜巖寺 회암사
古松藤蔓暗相連 옛 소나무와 등나무는 보이지 않게 서로 이어져 뻗어나가고
一徑深深入洞天 일경은 깊고 깊어 동천에 들어간다
佛殿尙留三世火 불전은 오히려 삼계가 불사르도록 남았는데
法門今絶五宗禪 법문에는 지금 오종의 선이 끊어졌다
崢嶸樓閣雲爲鎖 한껏 가파른 누각은 높으나 닫아 걸었으며
牢落庭除草作氈 지나가던 뜰에 쓸쓸히 덜어져 모전(毛氈)을 지었다
勝境宛如那爛寺 장소는 마치 나란다와 같이 뛰어나건만
恨無人導祖燈傳 법등을 이끌어 전할 사람이 없는 것이 한이다.
曉起 새벽에 일어나
曉起看庭宇 새벽에 일어나 집의 뜰 바라보니
庭宇整且肅 뜰과 집 또한 엄숙하고 가지런하네.
婀娜海棠花 아리답고 요염한 해당화 꽃이
美艶隨風落 아름답게 바람을 따라 떨어지네.
雲歸巖壑靜 구름에 맡긴 바위와 골짜기 고요하고
鳥啼煙蘿碧 새가 우는 안개 낀 울타리 푸르구나.
自喜放曠人 스스로 즐기며 거리낌 없는 품성에
林泉甘寂寞 임천의 고요한 적막에 만족하네.
曉起
老去苦夜長 늙어 가면서 항상 밤이 괴롭고
愁來淸吟少 시름 오니 한가히 읊음도 줄어드네.
山禽報五更 산속의 새들이 오경을 알리기에
喜看窓已曉 기쁘게 바라보니 창은 이미 밝구나.
起來眄東方 일어나서 동쪽 방면 바라보니
明霞何縹緲 밝은 노을이 잠시 어렴풋하구나.
露墜靑蘿長 이슬 드리운 긴 쑥은 푸르고
雲卷遠山澆 구름이 감싼 먼 산은 엷구나.
頓覺遺世人 갑자기 잠 깨어 세상사람 잊으니
閑情頗淸悄 한가한 정취 자못 맑고 고요하네.
曉望 새벽에 바라보다
朝登西山亭 서쪽 산 정자에 아침에 오르니
千村煙羃羃 많은 마을을 안개가 덮어씌웠네.
江水澄且明 강의 물은 맑고 또 깨끗한데
泛泛舟一葉 떠다니는 배는 하나의 낙엽 같구나.
遠山點可數 먼데 산은 가히 몇개의 점 같고
輕霏霽丘壑 산골짜기에 오던 가벼운 비 그치네.
因憶龐德公 방덕공의 연유를 생각하며
鹿門采靈藥 녹문산에서 영약을 캐리라.
羽人如可仍 신선과 같이 가히 따르며
吾將訪名岳 나는 장차 이름 있는 큰 산 찾으리라.
龐德公 - 후한 때의 은사(隱士)로 속세를 떠나 숨어 삼. 처자를 거느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을 캐면서 다시 세상에 돌아오지 않음.
曉色 새벽 빛
滿庭霜曉色凌凌 뜰에 가득한 새벽 서리 광택은 얼음 능가하고
巖溜無聲疊作氷 바위 낙숫물은 소리 없이 얼음을 거듭 만드네.
老鴉附枝迎旭日 늙은 까마귀 가지에 붙어 돋는 해를 맞이하니
凍雲依石襯疏藤 찬 구름에 돌에 의지한 성긴 등나무 나타나네.
閑中詩與棋爲崇 한가함 속에 시와 더불어 모이면 바둑을 두고
病裏茶兼藥可仍 병중에는 차를 겸하니 이에 가히 치료를 하네.
紙帳氈床初睡覺 종이 휘장 담요에서 졸다가 비로소 잠을 깨니
篝爐火氣暖騰騰 모닥불 화로 불기운이 타 오르며 따뜻해지네.
曉意 새벽의 정취
昨夜山中雨 어젯밤 산속에 비 내려
今聞石上泉 오늘 아침 바위샘 물소리 난다
窓明天欲曙 창 밝아 날 새려하는데
鳥聒客猶眠 새소리 요란하나 나그네는 아직 자네
室小虛生白 방은 작으나 공간이 훤해지니
雲收月在天 구름 걷혀 하늘에 달이 있음이라
廚人具炊黍 부엌에서 기장밥 다 지어놓고
報我懶茶煎 나에게 차 달임이 늦다고 나무란다
曉霽 비 개인 새벽
其一
朔風吹曉雪初晴 북쪽 찬바람 부는 새벽에 비로소 눈이 개이니
列壑崢嶸萬樹明 한껏 높게 늘어선 골짜기 많은 나무가 드러나네.
趺坐蒲團初睡覺 부들방석에 가부좌하니 잠이 비로소 깨이고
皚皚一色沒階平 하얗고 하얀 하나의 빛이 평원과 섬돌을 숨기네.
其二
長枝偃亞小枝垂 긴 가지는 눌려 쓰러지고 작은 가지 늘어지니
宿鳥初驚雪落時 자던 새들 비로소 놀라며 때마침 눈이 떨어지네.
紅日煖簷尤可愛 처마 따뜻하게 하는 붉은 해가 더욱 사랑스러운데
喜聞融溜滴茅茨 녹아떨어지며 즐겁게 들리는 띳집 지붕의 물방울.
其三
凍雲和雪抹重峯 눈과 같은 찬 구름 봉우리에 또다시 스치더니
滿樹梅花昨夜風 매화꽃이 가득한 나무에 지난밤에 불었구나.
點點落時煩我耳 점점이 떨어질 때 마다 나는 듣기 괴로운데
打窓聲作撲飛蟲 날아다니는 벌레가 창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구나.
曉霽 비 개인 새벽
其一
夜來微雨霽空山 밤사이 내리던 보슬비 쓸쓸한 산에 개이니
露濕芙蓉月一彎 이슬에 젖은 연 꽃은 달을 당긴것 같구나.
古木斷崖猿鳥外 낭떠러지의 고목에는 새와 원숭이 떠나고
蒼藤白石水雲間 흰 돌과 푸른 등나무 물과 구름 사이에있네.
行裝草草只雙屩 행장 차림은 간략하게 겨우 짚신 두짝이니
身世悠悠歸八還 아득한 신세 한가하니 팔환으로 돌아가리.
紙帳素屛淸似水 종이 장막 흰 병풍은 물과 같이 깨끗하고
博山消盡鷓鴣斑 향로의 향이 다 사라지니 자고무늬 아롱지네.
其二
昨夜銀河洗有聲 어젯밤에 은하수를 씻어내는 소리 있더니
碧天遼闊月空明 푸른 하늘 멀리 트이며 허공에 달빛 밝구나.
滿庭松葉毿毿落 솔잎이 뜰에 가득 긴 털 드리운 듯 떨어지고
遶砌泉流歷歷鳴 흐르는 샘물 섬돌 두르고 넘치면서 소리 내네.
飮啄十年同鶴化 부리로 마신지 십 년에 학으로 함께 변하고
疏慵終日看雲生 느리고 게으르니 왼 종일 이는 구름 바라보네.
最憐雨霽空堂靜 모두 사랑하는 비가 개이니 빈 대청 고요하여
信手拈棋子落枰 손에 맡겨 바둑 집고 바둑판에 알을 떨어뜨리네.
曉行 새벽
曉色照林墩 새벽빛은 수풀 언덕을 비추는데
鷄聲鬧水村 닭소리는 강 마을에 시끄럽다
煙光凝野外 연기 빛깔은 들 밖에 어리었고
露色遍郊原 이슬 빛은 들판에 둘렀다
浩蕩乾坤濶 호탕하게도 건곤은 너르나니
蹉跎歲月奔 미끄러지는 듯 세월은 내달린다
衆人皆有托 사람들 모두 의탁할 데 있거니
底事獨高鶱 무슨 일로 나 혼자 높이 들려 있나
萱花 원추리 꽃
庭院日長無事家 정원에 해는 길고 집안엔 일이 없으니
一雙鵠嘴向人呀 한 쌍의 백조 부리인 듯 사람 향해 입을 딱 벌렸구나.
知渠定是忘憂物 이것이 근심 잊게 하는 물건임을 어찌 알까나 ?
不競東風桃李花 봄바람에 복숭아 오얏 꽃과 다투지 않는구려.
毁譽 남을 비방하고 칭찬함
毁譽無虞自在身 헐뜯던 칭찬하던 근심 없고 몸은 자유가 있어
逍遙何處不通津 어느 곳이나 소요하며 정을 통하는 인연 없을까 ?
道深如海看非遠 바다와 같이 깊이 깨달아 싫은 것 가리지 않고
事重於山約便塵 일을 삼가고 산에 의지하니 쉬는 시간을 약속하네.
朝灌蔬園靑箬笠 채소밭에 아침 물 줄 때는 푸른 대껍질 삿갓에
晩遊花逕白綸巾 저녁놀이 꽃길에는 흰 베로 만든 두건 쓰네.
仍聞下界風波惡 아래 세계의 추한 분란과 분쟁이 거듭 들리니
半是歡娛半是顰 그 반은 즐겁고 기쁘나 그 반은 눈살 찌푸리네.
戱甚走題 희롱이 심하여 달리듯 쓰다.
江淹五色筆 강엄의 오색 붓
釘鉸五色毬 정교의 오색 구슬
千古漫悠悠 영구한 세월 방종하며 한가하니
已往不可求 이미 지난일 가히 구할 수 없구나.
眼前有生涯 눈앞엔 생계가 앞선다지만
筆下雲煙繆 붓 아래 운치 있는 필적 꿈틀거리네.
詩成自有韻 시를 이루면 자연히 운치 있고
戛戛如鳴球 새 소리처럼 옥경쇠를 울리는 것 같네.
我願得其妙 내가 원하는건 그 오묘함 얻는 것인데
不勞空哦咻 힘쓰지 않고 헛되이 지껄이며 읊조리네.
淸溪咽如笙 맑은 시냇물은 생황을 삼킨 것 같고
草堂淸而幽 초당은 한가하며 고요할 뿐이구나.
景物自蕭條 시절의 경치는 자연히 조용한데
宛轉盈雙眸 더욱 완연히 두 눈에 가득 차네.
朗吟詩數篇 소리높이 읊어 몇 편 시를 지으니
靄靄春雲浮 뭉게뭉게 봄 구름이 떠다니네.
擲地不成響 땅에 던져도 울림 이루지 못하니
罰我三千觩 나를 벌주어 삼천을 진설하소서.
江淹五色筆 - 뛰어난 문재(文才)를 비유하는 말. 남조(南朝)의 문학가 강엄(江淹)이 宋, 齊, 梁 3朝에 걸쳐서 문명(文名)을 떨쳤는데, 만년에 이르러 꿈속에서 곽박(郭璞)이라고 자칭하는 이에게 다섯 가지 채색의 붓을 돌려주고 난 뒤로는 문재가 감퇴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 59 江淹列傳
三千 - 小千, 中千, 大千을 말함. 불교의 세계관. 지옥 내지 불계(佛界)가 열이고, 그 열이 열 개의 세계를 가짐으로써 백 개가 되며, 그 백 개는 열 가지 상(相)이 있어 천이 되고, 그 천이 중생, 국토, 오음(五陰)의 구별이 있어 모두 삼천이 된다 함.
喜友見訪 친구의 방문을 기뻐하여
客裏無人弔 객지에 있는 동는 아무도 오지 않아
柴扉盡日關 사립문을 종일토록 닫아 두었지.
無心看世事 무심코 세상 일 보려니
有淚憶雲山 산 위의 구름 보며 눈물 젖는다.
故舊成疏闊 멀리 있는 친구를 오래 만나지 못하니
親朋絶往還 친한 친구들의 왕래가 끊겨버렸네.
喜君留半日 그대 찾아와 한나절 머물러주니
相對一開顔 서로 마주보고 얼굴빛 한번 펴본다.
喜正叔見訪 正叔(권극중)의 방문을 기뻐하여
寂寂鎖松門 솔문을 닫아걸고 외로이 사니
無人踏鮮痕 이끼 흔적 밝는 이 아무도 없구나
澗聲搖北壑 바윗물소리 북쪽 골짝을 흔들고
松籟颭東軒 소나무 바람소리 동헌에 물결친다.
世事寧緘口 세상일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閒情似不言 한가한 정은 말 하지 못하는구나
喜君來一訪 그대 찾아오니 너무 기뻐서
相對敍寒溫 마주 보며 그간 온갖 일을 풀어본다
喜晴 날이 갠 것이 기뻐서
1
雙燕呢喃報午晴 제비 한 쌍이 재잘거리며 갠 낮을 알리는데
庭花爛熳綴紅英 뜰의 꽃은 밝게 빛나며 붉은 꽃봉오리 엮었도다.
槐陰濃綠可人意 느티나무 그늘 짙어 사람 마음에 들고
天色淸和諳鳥聲 하늘빛은 맑고 따뜻하여 새소리와 어울린다.
簇簇野雲如卷絮 모여든 들판의 구름 솜을 말아놓은 듯 하고
浪浪巖溜似鳴箏 거침없는 벼랑의 낙숫물은 풍경을 울리는구나.
日長庭院渾無賴 해가 긴 정원에는 온통 아무런 소리 없고
自酌新泉煮小鐺 신선한 샘물 길러다가 작은 냄비에 차를 다린다.
2
昨夜屢陰晴 어젯밤 여러 번 흐렸다가 날이 개니
今朝喜見日 오늘 아침 해를 보니 기쁘기만 하다
陰陰夏木長 여름 나무는 자라서 그늘지고
嘒嘒鳴寒蚻 가을을 알리는 매미는 쓰르르 울어댄다
樹有櫟與樗 나무로는 가죽나무와 참나무가 있고
穀有稗與糲 곡식에는 피와 조가 있도다
世我苦相違 세상과 나는 괴롭게도 서로 어긋나고
年來添白髮 나이는 많아져 백발이 늘어난다
開襟納新凉 옷깃을 헤치고 새로이 시원함 드니
淸風轉颷䬍 맑은 바람 더욱 휘몰아 부는구나
戱黃龍大像 황용사의 큰 불상을 희롱하다,
唯一銅像 獨立丘上 구리 불상 하나만 홀로 언덕 위에 서 있다
銅人屹立向丘原 언덕에 우뚝 선 저 동상은
興廢從來欲不言 지나간 흥폐를 말하려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