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강은교 – 사랑법
강은교 –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경요 – 그대 창가에
고두현 -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영민 - 첫사랑
고재종 - 첫사랑
고정희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증식 - 첫사랑
김남극 -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남조 - 그대 있음에
김남조 - 사랑
김남조 – 사랑의 말
김민소 – 사랑
김선우 – 낙화, 첫사랑
김선우 –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성덕 - 첫사랑
김소월 – 먼 훗날
김소월 - 첫사랑
김소월 – 초혼(招魂)
김용택 – 그 여자네 집
김용택 – 참 좋은 당신
김용택 - 첫사랑
김인육 – 사랑의 물리학
김재진 –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김종철 – 고백성사
김종해 -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진환 - 첫사랑
김현태 – 첫사랑
나태주 – 끝끝내
나태주 – 내가 너를
나태주 – 멀리서 빈다
나태주 - 벚꽃 이별
나태주 - 변명
나태주 – 사랑에 답함
나태주 – 어린아이
나태주 – 우체통 곁에
나태주 – 풀꽃
나태주 - 행복
남정림 – 콩깍지
도종환 – 사랑의 길
도종환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 접시꽃 당신
도종환 – 혼자 사랑
류근 - 첫사랑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 첫사랑
마종기 -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문숙 - 첫사랑
문인수 -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문정희 – 겨울 사랑
문정희 – 사랑하는 것은
문태준 – 백년(百年)
문태준 – 첫사랑
박남철 - 첫사랑
박노해 - 사랑은 끝이 없다네
박목월 - 이별가
박인환 – 세월이 가면
박재삼 – 첫사랑 그 사람은
박정만 – 작은 연가
박항률 - 사랑
박해석 - 사랑
서덕준 – 도둑이 든 여름
서안나 – 모과
서안나 - 첫사랑
서정윤 – 홀로서기
서정주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 푸르른 날
서정춘 - 첫사랑
손택수 – 자전거의 연애학
신경림 - 가난한 사랑 노래
신달자 - 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동엽 - 너에게
신석정 - 임께서 부르시면
안도현 -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 사랑
안도현 – 연애
안도현 - 첫사랑
양애경 - 사랑
오규원 – 사랑의 기교
오세영 – 원시(遠視)
오탁번 - 사랑 사랑 내 사랑
오탁번 - 첫사랑
용혜원 – 봄꽃 피는 날
용혜원 - 첫사랑
원태연 - 사랑
유안진 - 봄
유치환 – 행복
윤동주 – 별 헤는 밤
윤보영 – 첫사랑
윤보영 – 첫사랑 이야기
이강하 - 첫사랑
이근배 – 살다가 보면
이병률 – 사랑의 역사
이병률 - 첫사랑
이선영 – 사랑, 그것
이성선 - 사랑하는 별 하나
이용한 – 묘생
이윤학 - 첫사랑
이정하 -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정하 –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
이해인 – 사랑
이해인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 첫사랑
이형기 - 낙화
장석남 – 뺨의 도둑
장석주 -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세훈 - 첫사랑
정지용 - 호수
정진규 – 겨우살이
정현종 – 사랑의 꿈
정호승 – 발자국
정호승 - 사랑
정희성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조병화 - 첫사랑
조지훈 – 사모(思慕)
진은영 – 첫사랑
천수호 –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최동호 - 사랑의 목소리는 실금처럼 메아리친다
최승자 -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영미 - 가을에는
한용운 -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 사랑
한용운 – 사랑하는 까닭
허영자 - 그대의 별이 되어
홍수희 - 첫사랑
황동규 - 즐거운 편지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Aleksandr (Sergeyevich) Pushkin – 나는 그대를 사랑했다오
Alphonse Daudet - 그대가 나의 사랑이 되어 준다면
Alighieri Dante – 아름다운 사랑
Betty – 당신을 사랑해요
Dana M, Bliston – 내 마음속의 그대
Devendranath Tagore – 내가 부를 노래
Edgar Allan Poe - Annabell Lee
Eilhart von Oberg -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Elizabeth Browning -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Friedrich Schiller –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George Gordon Byron -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냐고 묻기에
Gloria Laura Vanderbilt –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Guillaume Apollinaire - 만일 당신이 바라신다면
Heath W. Carter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Heinrich Heine – 노래의 날개 위에
Herman Hesse – 내가 만약
H. W. Longfellow – 사랑하는 사람이여
J. Foster - 다시 태어나도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Jacques Prevert – 성냥개비 사랑
Johann Wolfgang von Goethe – 마음 변한 소녀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이별
Johann Wolfgang von Goethe - 첫사랑
John Dryden – 사랑
Johnnivan – 나의 사랑
J. Joey Gallo – 사랑의 기도
Johnsbury – 내 사랑은
José Julián Martí Pérez - 나는 하얀 장미를 키웁니다
Khalil Gibran – 첫 키스에 대하여
L. Edward – 그대를 사랑합니다
Lev Tolstoy – 참사랑
Matthias Claudius - 그대 향한 내 마음은 사랑이다
Napoleon – 내 인생에서 그대는
Osho Rajneesh - 사랑이란
Pablo Neruda –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Paul Éluard – 우리는
Paul Gauguin -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
P. M. Williams – 사랑하기 때문에
Rainer Maria Rilke – 사랑의 노래
Richard W. Webber – 내 사랑을 바칩니다
Robert Browning -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Roland R. Hoskins Junior - 우리 사랑에는 끝이 없습니다
Rory Croft - 내가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Steven Taff –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Susan Polis Schutz – 사랑의 노래
T. 제프란 - 그대가 이 세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Victor Hugo - 언제나 당신이 나만을 사랑한다면
Virginia Woolf – 이런 사랑
W. Cowell - 사랑은 그대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William Blake – 사랑의 비밀
William Shakespeare – 사랑과 세월
지디마자(吉狄馬加) - 첫사랑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의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그대 창가에
경요
그대와 함께 있고 싶어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설레는 이내 가슴 잠재우기 위하여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대 곁의 진실과 진실을 벗하여
영혼으로 남고 싶어서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그대 곁에서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의 진실이 영원히 내 곁에서
그대 곁에서 함께하기를
남으로 띄우는 편지
고두현
봄볕 푸르거니
겨우내 엎드렸던 볏짚
풀어놓고 언 잠 자던 지붕 밑
손 따숩게 들춰보아라.
거기 꽃 소식 벌써 듣는데
아직 설레는 가슴 남았거든
이 바람 끝으로
옷 섶 안 켠 열어두는 것
잊지 않으마
내 살아 잃어버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빛나는 너
첫사랑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그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첫사랑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 분분 난 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첫사랑의 시절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처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던 날
나는 다시 바름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부터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 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서텨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첫사랑
고증식
너무 멀리 와버린 일이
한두 가지랴만
십오 년 넘게 살던
삼문동 주공아파트가 그렇다네
열서너 평 임대에
우리 네 식구 오글거리던,
화장실 문 앞에
세 끼 밥상 차려지고
어쩌다 쟁그랑쟁그랑 싸워도
자고 일어나면
바로 코앞에서 얼굴 맞대던,
이젠 쉬 돌아갈 수도 없는
거기, 마음의 집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 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그대 있음에
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에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사랑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사랑
김남조
오래 잊히음과도 같은 병이었습니다
저녁 갈매기 바닷물 휘어적신 날개처럼
피로한 날들이 비늘처럼 돋아나는
북녘 창가에 내 알지 못할
이름의 아픔이던 것을
하루 아침 하늘 떠받고 날아가는
한 쌍의 떼기러기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도 한없는 눈물이 흐르고
화살을 맞은 듯 갑자기 나는
나의 병 이름의 그 무엇인가를
알수가 있었습니다
사랑의 말
김남조
1
사랑은 말하지 않는 말
아침해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 뒷방 병풍 너머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
생각만이 깊고
말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끝이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 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 번 쏟아 붓고도
진흥인 노을
사랑은
말해버린 잘못조차
아름답구나
사랑
김민소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너로 인해
내 눈빛은 살아있고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너로 인해
내 귀는 깨어있다
함께하지 않아도
느끼는 너로 인해
내 가슴은 타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들어와 버린 너로 인해
내 삶은 선물이어라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을 탐했네
온 마음 모이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이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첫사랑
김성덕
유통기한이 우유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첫사랑에도 있었답니다
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
영락없이 배탈 나듯이
첫사랑도
내게 머물 기간이 끝났는지
어느 날, 훌쩍 내 곁을 떠나간 뒤
불면의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향기는 꽃잎 따라 피고 지던데
그리움은
첫사랑 따라오기만 하고
그 사랑이 떠난 후에도
오래오래 가슴 속 깊이 머뭅니다
먼 훗날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첫사랑
김소월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줄기는 내려지겠지
사랑하기 위하여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숲속의 외딴집 하나
거기 초록빛 위 구구구
비둘기 산다
이제 막 장미가 시들고
다시 무슨꽃이 피려한다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산너머 갈매 하늘이
호수에 가득 담기고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초혼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는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에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 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 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는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려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치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뜰 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첫사랑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로 열렸으면
그러나
자주 찾지 않은
시골의 낡은 찻집처럼
사랑은 낡아가고 시들어만 가네
이보게, 잊지는 말게나
산중의 진달래 꽃은
해마다 새로 핀다네
거기 가보게나
삶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꽃을 보러 깊은 산중 거기 가보게나
놀랄걸세
첫사랑 그 여자 옷 빛깔 같은
그 꽃빛에 놀랄 걸세
그렇다네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고백성사
김종철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쓰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첫사랑
김진환
젊은 날 내 맘을 사로잡은 그리운 이여
시랑이란 말이 숙성되면 네게 보내려 했다
그러나 보낸 적이 없다 아니 보낼 수 없었다
네 눈빛만 보면 사랑이란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고
복사꽃 향기만이 텅 빈 가슴을 채워
내 혀가 화석처럼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 못한 사랑이란 말 내 가슴속에서
아지고 네게로 향한 채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긴장하고 있다네
첫사랑
김현태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끝끝내
나태주
너의 얼굴 바라봄이 반가움이다
너의 목소리 들음이 고마움이다
너의 눈빛 스침이 끝내 기쁨이다
끝끝내
너의 숨소리 듣고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
이 세상 네가 살아있음이
나의 살아있음이고 존재 이유다
내가 너를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어딘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벚꽃 이별
나태주
하늘 구름이 벚꽃 나무에 와서 며칠
하늘 궁전이 되어서 또 며칠
부풀어 오르던 마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마음
사랑이었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사랑이었네
바람 불어와 하늘 궁전 무너져 내려
꽃비인가 눈인가 날리는 마음
잘 가라 잘 살아라
나는 울어도 너는 울지 말아라
별이 되어 꽃이 되어
만날 때까지 우리 다시 그때까지
변명
나태주
귀가 작은 여자아이가 보고 싶다
눈이 작은 여자아이가 보고 싶다
코가 작은 여자아이가 보고 싶다
그러나 입술이 조금 크고
붉은 여자아이를 보고 싶다
실은 이것은
네가 보고 싶다는 말이다
사랑에 답함
나태주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어린아이
나태주
예쁘구나
쳐다봤더니
방긋 웃는다
귀엽구나
생각했더니
꾸벅 인사한다
하나님 보여주시는
그 나라가
따로 없다
우체통 곁에
나태주
뒷모습이 예뻤던 그녀
살그머니 다가가 한번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오랜 세월을 견뎠다
그런 뒤로 그녀는
새하얀 백합이 되었고
나는 그녀 곁에 새빨간
우체통이 되었다
풀꽃
나태주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3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행복
나태주
1
있잖아
지금 내가 아주 행복하다는걸
너는 모르지?
지금도 네가 나를 보고
웃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지나가면
난 행복하다
지금도 내가 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어서
난 참 행복하다
이런 걸
너는 모르지?
2
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여기
그리고 당신
콩깍지
남정림
그대만 보이는 콩깍지
예쁘게만 보이는 콩깍지
눈 감으면 더 크게 보이는 콩깍지
콩깍지 속에 사는 것은
그대일까?
나일까?
사랑의 길
도종환
나는 처음 당신의 말을 사랑하였지
당신의 물빛 웃음을 사랑하였고
당신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였지
당신을 기다리고 섰으면
강 끝에서 나뭇잎 냄새가 밀려오고
바람이 조금만 빨리 와도
내 몸은 나뭇잎 소리를 내며 떨렸었지
몇 차례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는 동안
우리도 남들처럼
아이들이 크고 여름 숲은 깊었는데
뜻밖에 어둡고 큰 강물 밀리어 넘쳐
다가갈 수 없는 큰물 너머로
영영 갈라져버린 뒤론
당신으로 인한
가슴 아픔과 쓰라림을 사랑하였지
눈물 한 방울까지 사랑하였지
우리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할
깊은 고통도 사랑하였고
당신으로 인한 비어 있음과
길고도 오랠 가시밭길도 사랑하게 되었지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게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가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달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한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혼자 사랑
도종환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보고 싶어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대와 조금 더 오래 있고 싶어요
크고 작은 일들을 바쁘게 섞어 하며
그대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요
여럿 속에 섞여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다 슬그머니 생각을 거두며
나는 이것이 사람임을 알아요
꽃이 피기 전 단내로 뻗어 오르는 찔레순 같은
오월 아침 첫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 같은 이것이 사랑임을 알아요
그러나 나의 사랑이 그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오늘도 말 안하고 달빛 아래 돌아와요
어쩌면 두고두고 한 번도 말 안 하고
이렇게 살게 되지 생각하며 혼자서 돌아와요
첫사랑
류근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삶은 방금 첫 눈꽃송이를 터뜨린
목련나무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아도 음악이 되는
황금의 시냇물 같은 것이었다
푸른 나비처럼 겁먹고
은사시나무 잎사귀 사이에 눈을 파묻었을 때
내 안에 이미 당도해 있는
새벽안개 같은 음성을
나는 들었다
그 안갯속으로
섬세한 악기처럼 떨며
내 삶의 비늘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곧 날이 저물었다
처음 세상에 온 별 하나가
그날 밤 가득 내 눈썹 한끝에
어린 꽃나무들을 데려다주었다
날마다 그 꽃나무들 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첫사랑
류시화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을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에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오랫동안 별을 싫어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인지 너무나 멀리 현실의 바깥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안쓰러움이 싫었다 외로워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러나 지난여름 북부 산맥의 높은 한밤에 만난 별들은 밝고 크고 수려했다 손이 담길 것같이 가까운 은하수 속에서 편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 맑은 별들의 숨소리도 정다웠다.
사람만이 얼굴을 들어 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던 옛날에는 아무 데서나 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그 여름 얼마 동안 밤새껏, 착하고 신기한 별 밭을 보다가 나는 문득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죽은 동생의 얼굴을 보고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순간적인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첫사랑
문숙
1
공사 중인 골목길
접근금지 팻말이 놓여있다
시멘트 포장을 하고
빙 둘러 줄을 쳐 놓았다
굳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
2
잠깐 냉동실에 보관했던 방아잎 때문에
구운 생선에서도 볶은 멸치에서도 온통 방아잎 냄새다
여기저기 향기가 범람한 흔적
꽝꽝 얼어붙은 속을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굽고 튀기고 볶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남아 있는 냄새에 걸려 자꾸 울컥거린다
네가 나를 다녀가서 생긴 일이다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문인수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 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도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 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다만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겨울 사랑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것은
문정희
사랑하는 것은
창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오래오래 홀로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합니다"
풀꽃처럼 작은 이 한마디에
녹슬고 사나운 철문도 삐걱 열리고
길고 긴 장벽도 눈 녹듯 스러지고
온 대지에 따스한 봄이 옵니다
사랑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것입니다
백년(百年)
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자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배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 놓은 백년(百年)이라는 글씨
저 백년(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백년(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백년(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백년(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첫사랑
문태준
눈매가 하얀 초승달을 닮았던 사람
내 광대뼈가 불거져 볼 수 없네
이지러지는 우물 속의 사람
볼에 구운 돌처럼
보기만 해도 홧홧해지던 사람
그러나, 내 마음이 수초밭에
방개처럼 갇혀 이를 수 없네
마늘종처럼 깡마른 내 가슴에
까만 제비의 노랫소리만 왕진 올 뿐
뒤란으로 돌아앉은 장독대처럼
내 사랑 쓸쓸한 빈 독에서 우네
첫사랑
박남철
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 안에서 늘 새침했던
어떻게든 사귀고 싶었던
포항여고 그 계집애
어느 날 누이동생이
그저 철없는 표정으로
내 일기장 속에서도 늘 새침하던
계집애의 심각한 편지를
가져왔다.
그날 밤 달은 뜨고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엔 정말 계집애가
교복 차림으로 검은 운동화로
작은 그림자를 밟고 여우처럼
꿈처럼 서 있었다
나를 허연 달빛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얻어맞았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 옆 빈터
그 빈터에서 정말 계집애는 죽도록 얻어맞았다
처음엔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나중엔 눈물도 안 흘리고 왜 때리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달빛 아래서 죽도록 얻어맞았다
그날 밤 달은 지고
그 또 다른 허연 분노가
면도칼로 책상 모서리를
나를 함부로 깎으면서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왜 나인가
나는 자꾸 책상 모서리를
눈물을 흘리며 책상 모서리를
깎아댔다
사랑은 끝이 없다네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입맞춤
눈보라 얼음산을 함께 떨며 넘었던
뜨거운 그 숨결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어떻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지워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 난 내 가슴은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사랑은 끝이 없다네
다시
길 떠나는 이 걸음도
슬픔으로 길어 올린 이 투혼도
나이가 들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내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랑은 끝이 없다네
나에게
사랑은 한계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패배도 없고
사랑은 늘 처음처럼
사랑은 언제나 시작만 있는 것
사랑은 끝이 없다네
이별가
박목월
뭐락카노, 저 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러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습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되고
나뭇잎에 덮어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첫사랑 그 사람은
박재삼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으로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네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작은 연가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 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 초롱 하나가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 질 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 초롱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으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 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 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사랑
박항률
그대가 맑고 밝은 햇살로
내 오랜 툇마루에 와서 춤을 추어도
그대가 몇 그루 키 큰 자작나무로 김나
내 작은 산에 와서 숲을 이루어도
그대가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로
새벽마다 내 산책의 길에 고요히 놓여 있어도
난 그대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
그대가 이미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랑
박해석
속잎 돋는 봄이면 속잎 속에서 울고
천둥치는 여름밤이면 천둥 속에서 울고
비 오면 빗속에 숨어 비 맞은 꽃으로 노래하고
눈 맞으며 눈길 걸어가며 젖은 몸으로 노래하고
꿈에 님 보면 이게 생시였으면 하고
생시에 님 보면 이게 꿈이 아닐까 하고
너 만나면 나 먼저 엎드려 울고
너 죽으면 나 먼저 무덤에 들어
네 뼈를 안을
도둑이 든 여름
서덕준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나의 여름이 모든 색을 잃고
흑백이 되어도 좋습니다
내가 세상의 꽃들과 들풀
숲의 색을 모두 훔쳐 올 테니
전부 그대의 것 하십시오
그러니 그대는 나의 여름이 되세요
모과
서안나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첫사랑
서안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고 있으면 따뜻해진다
누군가 흐린 발소리로 나를 다녀간다
불의 검은 뼈를 뽑아
나의 영혼을 꺾어 버렸다
심야버스가 지나간다
상처 같은 게 나 있다
뒤돌아보면
처음이란
언제나 캄캄하다
꽃이 피면 나는 꽃을 보내지 않겠다
이것은 결심에 가깝다
단순한 것을 아름답게 여기게 되었다
홀로서기
서정윤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수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여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서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하게
이별에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첫사랑
서정춘
가난뱅이 딸집 순금이 있었다
가난뱅이 말집 춘봉이 있었다
순금이 이빨로 깨트려 준 눈깔사탕
춘봉이 받아먹고 자지러지게 좋았다
여기, 간신히 늙어 버린 춘봉이 입안에
순금이 이름 아직 고여 있다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씻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사가 탄탄대로라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도록 약간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고 여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아울러 이 모든 일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잇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너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테니께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에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부를수록
너는 멀리 있고
내 울음은 깊어만 간다
같이 울기 위해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너에게
신동엽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두고 가지 못할 차마 소중한 사람
나 돌아가는 날 너는 와서 살아라
묵은 순 터 새눈 돋듯
하고 많은 자연 중 너는 이 근처와 살아라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으로 하나로 무잔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 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사랑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울은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연애
안도현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첫사랑
안도현
그 여름 내내 장마가 다 끝나도록 나는
봉숭아 잎사귀 뒤에 붙어 있던
한 마리 무당벌레였습니다
비 그친 뒤에, 꼭
한번 날아가보려고 바둥댔지만
그때는 뜰 안 가득 성큼
가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코 밑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
양애경
내 피를 다 마셔요
내 살을 다 먹어요
그럼 나는 껍데기만 남겠죠
손톱으로 눌러 터뜨린
이처럼
당신한테라면 그래도 좋을 것 같은 건
왤까
사랑의 기교
오규원
사랑이 기교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나뭇잎 나무에 매달리듯 매달린 건 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사랑도 꿈도, 그러나 즐거워하라.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유행가라는 사실은 이 시대의 기교가 하느님임을 말하고 이 시대의 아들딸이 아직도 인간임을 말한다
이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기교, 나의 하느님인 기교여
원시(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에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서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오탁번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 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 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 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첫사랑
오탁번
천둥산 박달재 사이 낮에도 부엉새가 우는 깊은 산골
사립문 옆 향나무에서 향 냄새가 늘 독하게 퍼졌다
우리 집 오래뜰에서 굴뚝새빛
단발머리 주근깨 오소소한 소녀와
까까머리 코흘리개 소년은 퍼져나는 향냄새에 취해
영겁까지 약속하는 토끼풀 반지를 끼고
영원히 현재진행형인 줄 알았던 그 옛날의 사랑이
이제는 과거완료가 된 지워진 행간 속에서
그대 찾아가는 쪽배를 타고 흐트러진
낱말 하나하나 수틀에 놓듯 팽팽하게 당기면서
거친 은하수 물결을 노 저어갈까 한다
-너를 사랑한다
이 한마디 말 오작교 난간에 걸어둘까 한다
봄꽃 피는 날
용혜원
봄 꽃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첫사랑
용혜원
볼이 빨개졌지요
가슴이
두근 두근대며
마구 뛰었지요
누가
내 마음 알까
숨고만 싶었지요
사랑
원태연
사랑이란 멀리 있는 것
멀리 있어 안 보이는 것
그렇게 바라만 보다 고개 숙이면
그제서야 눈물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그래서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것
상처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봄
유안진
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라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각담을 기어오르는 봄햇살, 춘절을 쓰고 선 마른 갈대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 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랑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다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텃눈 맞아, 숨박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꾹 사랑 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곁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흥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에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는 까닭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햇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사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 외다
첫사랑
윤보영
때로는 내 안에
그대 생각 담고 사는 것이
짐이 되기도 하지만
잠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내리는 순간
더 아픈 짐을 져야 할 것 같아
첫사랑 이야기
윤보영
1
내려놓음의 끝에
그대가 있더이다
그래서 내려놓지 못하고
담고지냈습니다
하지만 한세월 지나고 보니
이것이 최고의 행복이었습니다.
2
첫사랑을 열었다가
혼났습니다
언젠가 열었다가
여름에 흰 눈이 내렸는데
오늘도 그때처럼
진달래 핀 봄산에
구절초꽃이 만발해 있어서.
3
첫사랑을 만나면
커피부터 마시자고 해야겠습니다
가슴에 담고 지냈던
애절한 그리움
커피 향으로 먼저 지우고
일상 속 나로 돌아와
반갑게 인사 하려고요.
4
너에게는 내가
첫사랑이 아닐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는
네가 첫사랑이란 사실이야
그러기에 내 안의 너는
한세월 지나도 설렘이고.
5
첫 번째로 생각 나는 사람
첫 번째로 보고 싶은 사람
첫 번째로 소식이 궁금한 사람
첫사랑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너를 만날 것 같은 예감에
가슴까지 뛴다.
6
첫사랑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사냐고 물으셨죠?
그럼 어떻게 해요
강물에 던지면
강물을 담고 가슴으로 들어와
그리움이 되겠다 하고
산에 버리면
산까지 데리고 와
이만큼 보고 싶었지?
하고 묻는데.
7
나를 생각하면
꽁꽁 언 네 마음에 싹이 돋는다 했지
한 술 더 떠, 나는
꽃까지 피었다 했어
네 생각하다 보니
수없는 꽃이 지고
그리움만 열렸는데
내 마음 받아 줄 너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첫사랑
이강하
놀라운 미(美)의 ballroom이다. 세노테*의 햇살처럼 물길이 만들어 낸 희귀한 석순처럼, 세월이 지나도 빛을 낸다. 쉼 없이 서로를 에메랄드빛으로 학습한 노래, 황홀한 물의 결집이다. 어떤 일이든 함께 공감할 때 서로의 존재는 믿음을 먹고 더 높이 성장한다. 간혹 마음의 창문에 구멍이 뚫려 검은 바람이 들기도 하지. 그러나 이는 내 생각이 네 생각이기 전에 응고된 고독일 뿐, 완전한 함몰은 아니다
이별한 첫사랑은 잊을만하면 되살아난다. 푸른 운명의, 이보다 긴장된 역사는 없다. 나이를 모른다
* 세노테 : 낮은 편평한 석회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함몰 구멍에 지하수가 모인 천연 우물
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의 역사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친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첫사랑
이병률
젊은 날 우리 한 사랑을 돌아보지 마오
눈 비비면 후두둑 떨어지는 소금 같은 시절
뙤약볕 아래
물 새는 병을 쥐고 서서
뽑을 것처럼 머리채를 움켜쥐고 극치를 맞던
몸부림을 곱씹지 마오
몸 구석구석 철조망에 긁힌 자국과
때운 살점들 자리
몸에 박혀드는 못냄새를 맡는 일처럼
젊은 날 묶어 치운 열매들을 꺼내지 마오
단 우리가 열일곱으로 돌아갈 것인가만 생각하오
이 세상 다 신어야 할 구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지
질식해 죽을 것만 같은 아침
이마에 내려앉은 슬픔의 그림자 따라
좋은 옷 한 벌 훔쳐 내달릴 수 있을 것인지
문득 우리가 열일곱 살로 돌아가
첫술을 마신다면
사랑, 그것
이선영
그러고 보니 나는 어느덧 덜그럭거리는 철물점이 돼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가게가 크기를 늘려왔던 것은 아니다
그저 흘러들어온 것들과 때로 애써 모은 것들
더러는 쓴웃음으로 떠안아야 했던 것들이 누런 고철들이 되어서
빈 곳을 남기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잘못 벽에서 튕겨져 나온 굵은 못처럼
그때 네가 내 심장으로 날아 들어온 것은
어쩌면 우연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너는 너를 쫓는 숙명의 쇠망치까지 불러들였다
못과 쇠망치가 쩡쩡 철물점의 덜그럭거리는 일상을 들어 엎는 소리에
나의 얇다란 심장은 곧 멎어버릴 듯 빨라지고
그래, 나를 부수며 계속 너를 던져다오
내 네게 꼭 맞는 무덤이 되어주마
너와 내가 서로 몸을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한 무더기 고철로 변해간들 어떠랴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지다 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회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묘생
이용한
도망칠 것도 없이
이번 생은 망했다
그러니 여기서 망가진 꼬리나 쓰다듬어야지
골목은 저렇게 아프고
아프지 않은 것들은 돌아앉았으니
지붕을 베고 힘껏 잠들어야지
당신이 떠난 봄날에
죽은 듯이 누워서
사랑한다는 문장이나 핥아야지
첫사랑
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이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
이정하
세상엔 수도 없이 많은 길이 있으나
늘 더듬거리며 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눈부시고 괴로워서 눈을 감고 가야 하는 길,
그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행로입니다
그 길을 우리는 그대와 함께 가길 원하나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면 나 혼자 힘없이
걸어가는 때가 있습니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그대가 먼저
걸어가는 적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은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보다는 고통
만족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형벌의 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햇빛 따사로운 아늑한 길이 저 너머 펼쳐져 있는데
어찌 우리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
이해인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워진다는 것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은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을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첫사랑
이해인
두근거리는 가슴 들킬까 봐
애꿎은 손톱만 깨물다가
그때부터 조금씩
가슴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
뺨의 도둑
장석남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널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이 기다렸다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은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첫사랑
정세훈
녀석이 나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도
학업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내 끝내 좋아한다는 그 말 한마디
전해지 못했던 그녀와
한 쌍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적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버렸다
호수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가락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수밖에
겨우살이
정진규
내 사랑 겨우살이 한번 풀어보려고 겨우살이 찾아, 직효라는 그걸 찾아 눈 덮인 삼산 들었다. 참나무 뽕나무 오리나무에 붙어살지만 겨울날 홀로 초록 잎새 싱싱한 독야청청 겨우살이, 나 좀 살려다오 내 후살이로 조심조심 모셔왔다 네 몸이 달이어 나를 깊게 뎁혔으나 아직도 여적지다 너나 나나 아직도 겨우살이다 내 사랑 겨우살이 아직도 여적지다 몰랐었구나.
사랑이 본시 겨우살이인 것을, 후살이가 본시 겨우살이인 것을, 합환이여, 철든 사랑아
사랑의 꿈
정현종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생 뒤에 온다
그대는 살아 보았는가
그대의 사랑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랑일 뿐이다
만일 타인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 뒤에 온다면
그리고 타인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 뒤에 온다면
사랑은 항상 생 뒤에 온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생은 항상 사랑 뒤에 온다
발자국
정호승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은 발자국들끼리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남은 발자국들끼리
서로 뜨겁게 한 몸을 이루다가
녹아버리는 것을 보면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
정호승
1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2
강가에 초승달 뜬다
연어떼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그네 한 사람이 술에 취해
강가에 엎드려 있다
연어 한 마리가 나그네의 가슴에
뜨겁게 산란을 하고
고요히 숨을 거둔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난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첫사랑
조병화
밤나무 숲 우거진 마을 먼 변두리
새하얀 여름 달밤
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짙은 밤꽃 냄새 아래
들리는 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개구리 소리
유월 논밭에 깔린 개구리 소리
사모(思慕)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랑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려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첫사랑
진은영
소년이 내 목 소매를 잡고 물고기를 넣었다
내 가슴이 두 마리 하얀 송어가 되었다
세 마리 고기 떼를 따라
푸른 물살을 헤엄쳐 갔다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아버지는 다섯 딸 중
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
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
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
아버지보다 내가 곱절 아팠다
아버지의 실실한 미소는 행복해 보였지만
아버지의 파란 동공 속에서 나는 파르르 떠는 첫 연인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
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라고 짧게 결별을 알릴 때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
아버지 연인이었던 눈길로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
사랑의 목소리는 실금처럼 메아리친다
최동호
누구나 알 수 있는 고요는
작고 여린 물살에도
쉽게 부스러진다
큰 고요는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모르고
어떤 것으로 깨뜨릴 수 없는
바위 속에 들어 있다.
금붕어의 등지러미가 물살을 따라 흐르는 고요는
물결처럼 고요를 부르고
고요의 파동이 깨어지지 않고 둥글어져
고요의 메아리가 화답하는 작은 고요보다
더 작은 흔들림이
실금처럼 지나간 사랑을 오롯이 파동친다
고요에 화답하는 사람들의 낮은 사랑의 목소리도
작은 고요의 물결보다 더 작은 지느러미를 흔들어
실금처럼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메아리친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서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이다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고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자리를 꺽어
네
꽃
병
에
꽂
아
다
오
가을에는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 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만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도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사랑
한용운
봄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 말하리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대의 별이 되어
허영자
사랑은
눈멀고 귀먹고 그래서 멍멍히 괴어 있는 물이 되는 일이다.
물이 되어 그대 그릇에 정갈히 담기는 일이다.
사랑은
눈뜨고 귀 열리고 그래서 총총히 빛나는 별이 되는 일이다.
잠 안 자고 지키는 일이다.
사랑은
꿈이다 생시이다가 그 전부이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그대 한 부름을 고즈넉이 기다리는 일이다
첫사랑
홍수희
그것의 완성은 결별,
이별이 없이는 알 수가 없는
신비가 없이는 느낄 수 없는
보호색이 없이는 유지가 되지를 않는
거리가 없이는 가능성 없는
의지가 없이는 타당성 없는
고통이 없이는 대가가 없는
미로가 없이는 도달점 없는
아, 그것은 상실의 미학
그것의 완성은 과감한 결별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背景)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산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기다림의 자세(姿勢)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치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들 믿는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나는 그대를 사랑했다오
Aleksandr (Sergeyevich) Pushkin
나는 그대를 사랑했다오
그 사랑은 나의 영혼 속에서 여전히 불타고 있으리라
하지만 나의 사랑은 이젠 그대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오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오
희망도 없이 침묵으로 난 그대를 사랑했다오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질투로 가슴 조이며
신이 그대로 하여금 누군가의 사랑을 받게 만든 그대로
나는 진심으로 묵묵히 그대를 사랑했다오
아름다운 사랑
Alighieri Dante
성자의 추도식 날에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바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맨 처음 아가씨가 내 옆을 지나갈 때 사랑은 우리를 마주보게 하였답니다
타오르는 불꽃의 정령인 양 내 마음엔 뜨거운 불길이 타올라 천사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그 해맑고 순한 아가씨의 눈에서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사랑의 밀어를 보고 깨닫는 사람의 마음속엔 무한대의 행복이 넘치게 마련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아아, 아름다운 아가씨는 천국에서 살다가 이 지상에 온 것이라 생각될 만큼 나는 그녀를 보기만 해도 행복하였습니다
그대가 나의 사랑이 되어 준다면
Alphonse Daudet
그대가 나의 사랑이 되어 준다면
내 인생을 모두 걸고서라도
그대와 함께 이 길을 가겠습니다
외롭고 힘겨운 이 길,
그러나 그대가 내 곁에 있기에
언제나 행복한 길
그대의 사람이 되어
영원히 저 무덤 속까지
당신을 사랑해요
Betty
당신을 사랑해요
나날의 삶을 아름답게 해주시고
삶의 고된 일을 보람되게 해주시므로
하루하루가 아무리 고달파도
당신을 떠올리면 미소 짓게 해주시므로
당신을 사랑해요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나누고
당신 곁에서 이야기하고 웃으며
꿈꾸게 해주시므로
당신을 사랑해요
내 속마음을 말하게 해주시고
내가 말한 뒤의 나의 느낌을
깊이깊이 생각해 주시므로
내 자신을 돌이키게 해주시고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도와주시므로
내가 항상 영원하고 참된 이상을 좇도록 힘을 주시므로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의 소망으로 나를 채워주시고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내게 주시므로
신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당신의 사랑에 보답할 때
한 인간으로서 내가 지닌 능력들을 모두 일깨워 주시므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내기 필요할 때 가까이 와 주시고
혼자 있어야 할 때 물러나시고
내 나날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나누시므로
내가 지쳤을 때 위안을 주시고
세상이 너무 힘겨워 보일 때 힘을 주시므로
당신을 사랑해요.
이 모든 것을 다 주시고도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해 주시므로
당신이 계신 까닭에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의 참뜻을 배웠으므로
내 마음속의 그대
Dana M, Bliston
나는 매일 그대가 그립습니다
그대를 사랑하며, 그대를 생각합니다
날마다
매 시간마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그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속에 아주 가까이 있고
내 기억 속에서는 내 곁에 앉아 있습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손을 잡아볼 수는 없지만
그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을
더욱 더 굳게 할 따름입니다
사랑하겠습니다
Daniel Hogan
꿈을 꿀 수 있다면
생각할 수 있다면
기억할 수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볼 수 있다면
들을 수 있다면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내 영혼이 숨 쉴 수 있다면
당신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사랑이 있다면
당신이 있다면
당신을 부를 숨결이 남아 있다면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부를 노래
Devendranath Tagore
내 진정 부르고자 했던 노래는 아직까지 부르지 못했습니다
악기만 이리저리 못했습니다
악기만 이리저리 켜보다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고 말도 다 고르지 못했습니다
준비된 것은 오직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꽃은 피지 않고 바람만이 한숨 쉬듯 지나갔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당신의 목소리 또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 집 앞을 지나는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뿐입니다
내 집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아직 등불을 켜지 못했으니 당신을 내 집으로 청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당신을 만날 희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당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애너벨 리(Annabell Lee)
Edgar Allan Poe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들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다.
나만을 생각하고 나만을 사랑하며
나밖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어린애였고 그녀도 어린애였으나
바닷가 이 왕국 안에서
우리는 으뜸가는 사랑으로 사랑했었다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날개 달린 하늘의 천사들도
시샘할 만큼 그렇게 사랑했었다
오랜 옛날, 분명 그 때문에
바닷가 이 왕국에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내 아리따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하고
그녀의 지체 높은 친척들이 몰려와
내게서 그녀를 앗아가 버렸고
바닷가 이 왕국에 있는
무덤 속에 가두고 말았다
우리의 반만큼도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천사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시샘한 것이었다
단연코 그것이 이유였다
(바닷가 이 왕국에선 모두 알고 있다시피)
밤사이에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닥쳐
너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인 것은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훨씬 굳세었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
그 때문에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밑에 웅크린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리따운 애너벨 리의 영혼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달빛이 비칠 때엔
아리따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고
별빛이 돋아나면 나는
아리따운 애너벨 리의 눈동자를 만난다
그러면 나는 밤새워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누워 있다
거기 바닷가 무덤 속에
물결치는 바닷가 그녀 무덤 곁에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Eilhart von Oberg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가
몇 가지나 되는지 헤아려 봐야 한다면
그 수가 너무 많아서 온 세상을 다 돌고도 남을 거예요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로나 그를 써보라고 하면
그 말을 다하기도 전에 내 목은 쉬고
그 글을 다 쓰기도 전에 손가락이 아파오고 말 거에요
그리고 저는 모르게 화가 나겠지요
그건 너무 힘겨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대를 향한 제 사랑에도 기적은 있을 거예요
그건 바로
사랑하는 이유를 헤아릴 필요도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으며
멋진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대가 나의 사랑임을 알아주는 거예요
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마음이 산란하거나
서로 침묵을 지킬 때라도
제가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건 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끝없는 진심임을 알아주세요
사랑합니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Elizabeth Browning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헤아려 보겠습니다
비록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이 이를 수 있는
그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사랑합니다
태양 밑에서나 또는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부름 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Friedrich Schiller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이별을 눈물로서 대신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먼 길을 떠나는 순간
사랑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져 간다 할지라도
그대 가슴속에 남겨진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냐고 묻기에
George Gordon Byron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느냐”
그것을 내게 묻다니 가혹하군요.
수많은 눈길을 읽으시고도 그대를 보는 순간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 것을...
더구나 사랑의 종말을 알고자 하나요?
미래가 두려워 마음은 늘 제자리지만 사랑은 끝없는 슬픔 속을 말없이 헤매이며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것을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Gloria Laura Vanderbilt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
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지그시 송이송이 내려앉은 눈과도 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는 밀
사랑의 열은 더디고 조용한 것
내려왔다가 치솟는 눈처럼
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조용히 씨앗은 싹을 틔운다
달이 켜지듯 천천히...
만일 당신이 바라신다면
Guillaume Apollinaire
만일 당신이 바라신다면
난 당신께 드리겠어요.
아침을
나의 명량한 아침을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빛나는 나의 머리카락과
금빛 도는 나의 푸른 눈을
만일 당신이 바라신다면
난 당신께 드리겠어요.
따사로운 햇살 비추는 곳에서
눈 뜨는 아침 들려오는
모든 소리와
근처 분수 속에서 치솟아 흐르는
감미로운 물소리들은
그리고 이윽고 찾아들 석양을
나의 쓸쓸한 마음의 눈물인
저 석양을
또한 조그마한 나의 손
그리고
당신의 마음 가까이
놔두지 않으면 안 될
나의 마음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Heath W. Carter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의 불꽃이 끝없이 타오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거대한 불꽇을 키워내는 것
그렇게 철저히 고독과 싸워
재가 될 때까지 자기 자신을 태우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태움으로서 사랑의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것
스스로 타다가 재가 되어
결국엔 그대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사랑이 탄생하도록 하는 것
노래의 날개 위에
Heinrich Heine
노래의 날개 위에 사뿐히 올라서 함께 가요. 사랑하는 사람이여
갠지스강 그 기슭 푸른 풀밭에 우리 둘이 갈 만한 곳이 있어요
환한 달 동산에 고요히 떠오를 적에 빨갛게 활짝 피는 아름다운 꽃동산
잔잔한 호수에 미소 짓는 연꽃들은 아름다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꽃들은 서로서로 미소를 머금고 하늘의 별을 향하여 소근대고
장미는 서로서로 넝쿨을 엮고서 달콤한 밀어 속삭이는 뺨을 부빈 답니다.
깡충깡충 뛰어나와 귀를 쫑긋거리는 귀여운 염소의 평화로운 모습과
해맑은 시냇물 노래하는 소리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지는 곳
그 아름다운 꽃동산 종려나무 그들에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누워서
사랑의 온갖 즐거움을 서로 나누며 아름다운 꿈 끝이 없도록 살아가자고요
내가 만약
Herman Hesse
내가 만약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H. W. Longfellow
사랑하는 사람이여, 편히 쉬세요
그대를 지키러 나 여기에 왔습니다
그대 곁이라면
그대 곁이라면
혼자 있어도 나는 기쁩니다
그대 눈동자는 아침의 샛별
그대의 입술은 한 송이 빨간 꽃 사랑하는 사람이여 편히 쉬세요
내가 싫어하는 시계가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동안에
성냥개비 사랑
Jacques Prevert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시간
성냥개비 세 알에 하나씩 하나씩 불을 붙여본다
하나는 당신의 얼굴을 비추기 위해
또 하나는 당신의 눈을 보기 위해
마지막 하나는 당신의 입술을
그 후에 어둠 속에서 당신을 포옹하며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사랑의 기도
J. Joey Gallo
말없이 사랑하여라
내가 한 것처럼 아무 말 말고 자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사랑하여라
사랑이 깊고 참된 것이 되도록 말없이 사랑하여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봉사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여라
그리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말없이 사랑하여라
꾸지람을 듣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마음 상하는 이야기에도 말대꾸하지 말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네 마음을 사랑이 다스리는 왕국이 되게 하여라
그 왕국을 타인 향한 마음으로 자상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사람들이 너를 가까이 않고 오히려 멀리 떼어버려 홀로 따돌림을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오해를 받을 때도 말없이 사랑하여라
네 사랑이 무시당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참으면서
슬플 때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주위에 기쁨을 나누어주고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도록 마음을 써라
타인의 말인지 태도로 인해 초조해지거든
말없이 사랑하여라
마음 저 밑바닥에 스며드는 괴로움을 인내하여라
네 침묵 속에 원한이나 은혜롭지 못한 마음, 어떤 비난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여라
언제나 타인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마음을 써라
나의 사랑
Johnnivan
나는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그대를 원합니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해
그대를 필요로 합니다.
그대를 느끼기 위해
그대를 만지기 위해
그대와 함께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도, 한낮에도
우리가 함께 할 때에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사랑하고
햇살과 그늘
따뜻함과 서늘함
미소와 눈물까지도
사랑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어느 것이라도
오직 당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합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는
진실한 사랑의 의미와
당신을 찾아내기 전까지
알지 못하던 것을
그대로 인해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며
나의 사랑입니다
내 사랑은
Johnsbury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느리게 옵니다
시간은 용기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빠르게 옵니다
시간은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길게 옵니다
시간은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짧게 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영원히 올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J. Foster
다시 태어나도
그대를 사랑하고 싶은 것은
한 번이라도 나를 위해 울어 준 사람이
바로 그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한 번도
그대 자신을 위해 울어 본 적이 없는
그렇게도 강인한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연약한 나를 위하여
눈물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그대를 사랑하고 싶은 것은
이제 내가 그대를 위해
울어 줄 차례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변한 소녀
Johann Wolfgang von Goethe
노을진 햇빛을 온몸에 받으면서
조용히 숲 언저리를 걸어가노라니
다몬이 앉아서 피리 불고 있었지
그 소리 바위틈에서 울리는 듯
솔 랄 라!
그는 나를 제 곁에 끌어당기더니
부드럽고 달콤하게 입 맞추었지
그에게 말하기를 "좀 더 불어요!"
그이는 다시금 피리를 불었지
솔 랄 라!
내 마음에 침착함은 사라져 버렸고
내 기쁨도 멀리로 도망가고 말았지
이제금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다몬이 부는 피리소리뿐이라네
솔 랄 라! 레 랄 라.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Johann Wolfgang von Goethe
희미한 햇빛 바다에서 비쳐올 때 나 그대 생각하노라
달빛 휘영청 샘물에 번질 때 나 그대 생각하노라
저 멀리 길에서 뽀얀 먼지일 때 나 그대 모습 보노라
어두운 밤 오솔길에 나그네 몸 떨 대 나 그대 모습 보노라
물결 높아 파도 소리 아득할 때 나 그대 소리 듣노라
고요한 숲속 침묵의 경계를 거닐며 나 귀를 기울이노라
나 그대 곁에 있노라
멀리 떨어졌어도
그대 내 가까이 있으니
해 저물면 별아
나를 위해 곧 반짝여라
오오, 그대 여기 있다면
이별
Johann Wolfgang von Goethe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이별을
내 눈으로 말하게 하여 주십시오
견딜 수 없는 쓰라림이 넘치오
그대로 어느 때는 사나이었던 나였건만
상냥스러운 사랑의 표적조차
이제는 슬픔의 씨앗이 되었고
차갑기만 한 그대의 입술이여
쥐여 주는 그대의 힘없는 손이여
여느 때라면 살며시 훔친 입 맞춤에조차
나는 그 얼마나 황홀해질 수 있었던가
이른 봄 들판에서 꺾어 가지고 온
그 사랑스런 제비꽃을 닮았었으나.
이제부터는 그대 위해 꽃다발을 엮거나
장미꽃을 셀 수조차 없게 되었으니
아아 지금은 정녕 봄이라는데 프란치스카여
내게만은 쓸쓸하기 그지없는 가을이라오
첫사랑
Johann Wolfgang von Goethe
아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날
첫사랑의 그때를
아아 누가 돌려줄 것이랴
그 아름다운 시절의
다만 한 토막이라도.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슬픔에
잃어진 행복을 슬퍼하고 있으니
아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다운 나날
첫사랑의 그 즐거울 때를
사랑
John Dryden
아, 사랑은 얼마나 달콤한가
아, 젊은 욕망은 얼마나 즐거운가
처음 사랑의 불꽃에 다가서면 즐거운 아픔을 느낀다
사랑의 아픔은 다른 모든 기쁨보다 훨씬 달콤하구나
연인들의 한숨은 고요히 가슴을 부풀게 하고 홀로 흘리는 눈물도
흘러내리는 향기로운 기름처럼 그 아픔을 치유하게 하는구나
숨결 잃은 연인들도 아무 괴로움 못 느끼며 피 흘려 죽어가는구나
사랑과 시간을 아껴야 한다
떠나는 벗처럼 아쉬워하라
청춘에 주어지는 황금빛깔 그 선물을 마다하지 말지어다
해가 갈수록 그 값어치는 더해 가고 예전만큼 단순하지 않으니
봄날 밀물처럼 가없이 높은 사랑은 젊은 핏줄마다 힘차게 솟아난다
그러나 썰물이 오면 사라지고 어느새 그 선물은 바닥이 난다
늙어서 아무리 홍수가 되어도 그것은 단지 빗물에 불과해 깨끗하게 흐르지 못하니
나는 하얀 장미를 키웁니다
José Julián Martí Pérez
나는 하얀 장미를 키웁니다
6월에도 1월에도
내게 정직한 손을 내미는
진정한 나의 친구를 위하여
엉겅퀴나 쐐기풀을 키우지 않습니다
나의 심장을 송두리째 뽑아가는
악당을 위하여
나는 하얀 장미를 키웁니다
첫 키스에 대하여
Khalil Gibran
그건 여신에 의해 생명의 즙으로 채워진 잔을
마시는 첫 모금
그건 정신을 속이고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의심과 내면의
자아를 기쁨으로 넘치게 하는 믿음 사이의 경계선
그건 생명의 노래 그 시작이며 관념적인 인간 드라마의 제1막
그건 과거의 낯설음과 미래의 밝음을 묶는 굴레, 감정의 침묵과 그 노래 사이의 끈
그건 네 개의 입술이 마음은 왕좌, 사랑의 왕, 성실은 왕관이라고 선언라는 말
그건 산들바람의 섬세하고 예민한 손가락이 안도의 한숨과 달콤한 신음을 하고 있는 장미의 입술을 스치는 부드러운 접촉
그건 사랑하는 이들을 무게와 길이의 세계로부터
꿈과 계시의 세계로 이끄는 신비로운 떨림의 시작
그건 향기로운 두 송이 꽃의 결합, 그리고 제3의 영혼의 탄생을 향한 그들 향기의 혼합
첫 눈 마주침이 마음의 들판에 여신이 뿌린 씨와 같다면 첫 키스는 생명의 나뭇가지 끝에 핀 첫 꽃망울
그대를 사랑합니다
L. Edward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나의 마음과 육신에 영혼에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단 하나뿐인 사람이기에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나 자신을 믿는 힘을 주시어
내 스스로
내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으므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내게 행복이란 만족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슴속에 담긴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 소망의 한 조각이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하는 것임을 알려주시어
나의 삶을 다채롭고 더 재미있고
한결 활기차게 해주셨으므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내게 행복이란 만족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담긴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 소망의 한 조각이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하는 것임을 알려주시어
나의 삶을 다채롭고 더 재미있고
한결 활기차게 해주셨으므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는
내가 어떤 일을 하거나
끊임없는 행운의 흐름을 타게 해주어
내게 평생의 기회를 주셨던
내 일생의 유일한 사람이었으므로
참사랑
Lev Tolstoy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향락을 사랑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그와의 관계를 끊을만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하고 자문해보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대 향한 내 마음은 사랑이다
Matthias Claudius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 어떤 것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그 어느 곳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그대를 향해서만 나아갑니다
사랑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를 향해
나아가는 나의 마음을
사랑이라 부릅니다
내 인생에서 그대는
Napoleon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내겐 그 어떤 즐거움도 의미도 없습니다
당신과 멀리 헤어져 있을 때 이 세상은 마음을 열고 상냥함을 내보일 수도 없이 나 홀로 외롭게 살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나의 영혼 이상의 것을 가져갔습니다
내 인생에서 그대는 하나의 사상입니다
사랑이란
Osho Rajneesh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합니다
사랑이란 갈 수 없는 곳을 가게 하며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합니다
사랑이란 살아 있는 나를 보지 못하고 이미 죽어 버린 그를 동경하게 합니다
사랑이란 고통의 무게를 덜어 가는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에서 찾아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나를 부르는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나를 부르는 내 목소리는 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Pablo Neruda
당신은 해 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우리는
Paul Éluard
우리 둘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어디서나 마음속 깊이 서로를 믿습니다.
아늑한 나무 아래 어두운 하늘 아래
모든 지붕 아래 난롯가에서
태양이 내리쬐는 빈 거리에서
민중의 망막한 눈동자 속에서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 곁에서라도
어린아이들이나 어른들 틈에서라도
사랑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우리들은 그것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서로를 믿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
Paul Gauguin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을 발견합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P. M. Williams
그대가 나에게 주는 사랑으로 인하여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주는 사랑으로 인하여
그대가 나를 사랑합니다
누가 먼저 주었고 누가 먼저 받았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하지만 사랑이 시작되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사랑이 존재함으로 해서
나는 행복합니다
지금 이대로 영원토록
수많은 말로 표현해도
단 한마디로 표현해도
사랑하고 있음으로 해서
나는 행복할 따름입니다
사랑의 노래
Rainer Maria Rilke
그대 넋에 내 영혼이 스치지 않으려면 내 영혼을 어떻게 지탱해야 할 것인가?
그대를 넘어서 다른 것에 이르려면 내 영혼을 어디로 드높여야 할 것인가?
아아, 어둠 속 어느 잃어버린 자리에 내 영혼을 묻어 두고 싶구나
그대 흔들리지 않는 낯선 어느 고요한 자리에 하지만 우리, 그대와 나를 스치는 것은 모두가 우리를 한 몸으로 묶어 놓는 것 활줄 둘을 그으면 소리 하나 흘러나오듯
어느 악기를 타고 우리는 팽팽히 늘어서 있는 것인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 손에 우리는 묶여 있는 것인가?
오오 달콤한 노래여
내 사랑을 바칩니다
Richard W. Webber
내 사랑을 바칩니다
그대가 내 인생에 가져다준 그 조화로움에
내 사랑을 바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해주고
그대가 내게 가져다준 수많은 미소에
내 사랑을 바칩니다
내 마음에 가져다준 기쁨
나를 부드럽게 감싸안은 그대 포옹에
내 사랑을 바칩니다
그대가 내게 가져다준 그 편안함과
우리가 함께한 그 숱한 소중한 시간들에
내 사랑을 바칩니다
내게 친구가 되어준 것에
또 우리의 사람에 대한 그 아기자기한 그대의 속삭임에
내 사랑을 바칩니다
내가 그대 인생의 일부가 되도록 허락해 준 그대에게
내 사랑을 바칩니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Robert Browning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난 저 여자를 사랑해 주세요.” 미소 때문에 예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꼭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 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한 것은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변할 테니까요
그처럼 짜여진 사랑은 그처럼 풀려 버릴 거에요
내 뺨에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 사랑 어린 연민으로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로를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기를 잊어버려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오로지 사랑을 위해 날 사랑해 주세요.
그래서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할 수 있게 영원한 사랑을 위해
우리 사랑에는 끝이 없습니다
Roland R. Hoskins Junior
지금까지 나는 그대를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 밝으면 그대 향한 내 사랑은 계속 자랄 것입니다
더욱 찬란하게, 더욱 강하게, 더욱 깊게
그리고 전보다 더욱 온화하면서도 아름답게 여전히 새날은 올 것이며 같은 기적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사랑에는 끝이 없음을 믿고 있답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Rory Croft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지금 당신이 당신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당신 곁에서 내가 또 다른 나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내 삶의 목재로
헛간이 아니라 신전을 짓도록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을 꾸중함이 아니라
노래가 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신앙보다도
바로 당신이 나를 더욱 선하게 만들었고
어떠한 운명보다도
바로 당신이 더욱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손도 대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기적도 없이 당신은 모두 해냈습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참된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Steven Taff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저녁놀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사월의 소나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
그 모두는
그냥 아름다운 것인 까닭에
사랑의 노래
Susan Polis Schutz
나의 몸은 사랑의 저녁노을 속에 타오르는 불덩이입니다
천둥 번개, 그리고 지진이라도 당신에 대한 나의 열정보다는 뜨겁지 못합니다
나의 심장은 우리의 사랑을 향한 불덩이입니다
푸른 하늘과 무지개, 그리고 꽃들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만큼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T. 제프란
그대가 이 세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내 눈에 비친 세상은 더없이 눈부십니다
그대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립니다
세상이 무너져 버린다 해도 그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세상
그대의 마음속은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세계입니다
그대가 존재한다는 이유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그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이유는
영원히 내가 그대를 사랑해야 할 이유입니다
언제나 당신이 나만을 사랑한다면
Victor Hugo
당신이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언제나 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우리 서로가 비록 가까이 있지 않을 때라도
우리의 영혼을 끊임없이 함께 있게 만드는
이 감미롭고 친밀한 생각의 일치를 신뢰하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랍니다
이런 사랑
Virginia Woolf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나 이 세상 하나뿐인 다정한 엄마도 가끔 멀리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당신은 아직 한 번도 싫은 적이 없습니다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리는 벨트나 예쁜 색깔의 매니큐어까지도 몇 번 쓰고 나면 바꾸고 싶지만 당신에 대한 마음은 아직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새로 산 드레스도 새로 나온 초콜릿도 며칠만 지나도 곧 싫증 나는데 당신은 아직 한 번도 싫증 난 적이 없습니다
오래 숙성된 포도주나 그레이프 디저트도 매일 먹으면 물리는데 당신은 매일매일 같이 있고 싶습니다
사랑은 그대와 함께하는 여행이다
W. Cowell
그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초록 짙은 숲속 외길을 따라 걸으며
혼자되지 않은 나와
곁에 있는 그대만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굽이도는 강가나 계곡에서 쉬어가며
드넓은 마음 풀어헤칠 바다로 가서
손짓하는 뭉게구름에 인사도 하고
온갖 꽃들로 마음에 비단을 놓아
그 위에서 뛰어놀며 추억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대와의 사랑은
반드시 한 번은 가야 하는 여행과도 같은 것
그대는 내 마음에 시를 심고
나는 그대를 꽃피우는 시인이 됩니다
사랑의 비밀
William Blake
그대, 사랑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은 말로 할 수 없는 것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눈에도 안 보이는 바람 같은 것
일찍이 내 사랑을 말했었지요
두려움에 떨면서 내 마음 모두 말했지요
아, 하지만 그녀는 떠나가고 말았어요
그녀가 내 곁을 떠나간 후, 한 나그네 다가오더니 어디론가 알 수 없게 한숨 지으며 그녀를 데려갔어요
사랑과 세월
William Shakespeare
나는 진실한 마음의 결합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변한다거나 반대자에 의해 굽힌다고 하면 그런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가 없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사랑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고정된 이정표이다
사랑은 이리저리 헤매는 모든 배에게 얼마나 높을지는 알 수 있어도 그 가치는 모르는 빛나는 별이다. 장밋빛 입술과 뺨이 세월이 휘어진 낫을 비록 피할 수는 없다고 해도
사랑은 세월의 어리석은 장난감이 아니다
사랑은 한두 달 사이에 변하기는커녕 운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견딘다
이것이 착오라고 내 앞에서 증명되었다면 나는 글 한 줄도 쓰지 않았을테고 아무하고도 사랑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사랑
지디마자(吉狄馬加)
어린 시절 어른들은 말했네
아이들의 얼굴은 모두 둥글다고
엄마에게 왜냐고 물었더니
그저 손가락으로 달님만 가리키셨지
그 달은 정말 둥글었네, 나뭇가지 끝에 고요히 잠든 모습에
나는 동생의 잠자리채를 떠올렸네
어떻게 하면 저런 어여쁜 색시를 채 올까
그때 지붕 밑엔, 황금빛 옥수수 다발이 가득 걸려 있었지
나는 소녀의 목걸이가 생각났네
나무 밑에서 놀던 숨바꼭질
달빛 아래 놀던 *‘신부 채기’
왜 그랬을까, 내가 찾아다닐 때마다
그녀는 살금살금 다가와
물 같은 달님이 되었지
그녀의 웃음소리가 내 옷을 흠뻑 적셨어
어느 날 그녀는 백양나무로 뻗어나
들판에서 사랑을 노래했네
그녀가 꽃 안장 위에 올라탔을 땐
나의 신부가 아니었어
그날 밤, 엄마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며
못 입게 된 작은 옷들을
동생에게 주라고 하셨지
그러나 나는
웃음소리에 젖었던 그 옷만은
숨겨 두었네
그날 밤의 달빛을 찾아다녔지만
오직 나의 영혼 속에 있을 뿐
나는 동생의 잠자리채를 떠올렸네
어떻게 하면 저런 어여쁜 색시를 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