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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歸鄕)

Bollnow 2024. 10. 17. 07:15

감태준 귀향

강흥수 - 귀향

고두현 미완의 귀향

고정국 바람의 귀향

고정희 귀향의 노래

곽성삼 - 귀향

김낙필 늙은 나그네의 귀향

김영환 귀향

김용화 귀향

김윤배 꽃의 귀향

김정애 귀향

김해화 - 귀향

김혜경 - 귀향

남기태 - 귀향

문효치 -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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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귀향 일기

박효찬 귀향길

손병흥 돌아온 귀향

손흥기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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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호 귀향

심현보 귀향의 가을밤

오승국 - 귀향

오장환 귀향의 노래

오장환 영원한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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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 늦은 귀향(歸鄕)

조민희 -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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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균 귀향

최두석 - 귀향

최수홍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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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귀향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 - 귀향

마인즈 귀향

마조도일(馬祖道一) - 귀향송(歸鄕頌)

 

 

 

귀향(歸響)

감태준

 

서울역에서, 한번은 영등포 굴다리 밑에서 잠깐 스치고 흘러흘러

너를 다시 만났을 땐 눈이 오고, 그해도 저물었다 말이 없는 친구,

손에는 넝마줍기 삼 년에 절도이범(竊盜二犯), 기차표 한 장,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불구(不具)의 조각달이 떠 있다,

되는 것은 안 되는 것뿐이라고 한없이 쓸쓸해 하는 네 얼굴에 눈은 날아가 앉고,

눈은 날아가 앉고, 우리는 타관 불빛을 맞으며 하룻밤 강소주에 혹한을 녹였다,

머리에 채 남은 눈을 떨면서, 살아도 곱게 살자 꽃같이 살자,

흩어진 마음을 챙겨들고, 우리는 갈라섰다, 끝없이 몰리고 풀리는 행렬 속으로,

너는 이제 기적소리에도 가볍게 떠밀리고, 떠밀리는 너의 등에서,

아니, 너의 물결소리가 들리는 머리 위 공간(空間)에서,

나는 그때 새들의 고향을 얼핏 보았다

 

 

 

귀향

강흥수

 

돌아가네 돌아가네

고향으로 돌아가네

멀고 먼 인생길 돌고 돌아서

야망도 상실도 없이 나 돌아가네

 

삼월초면 비탈 산 양지 녘에 발그레 피어나는

진달래꽃에 내 마음 또한 환해질게요

삼월 말이면 뜰 앞까지 찾아온

민들레꽃 제비꽃 더불어 밝은 햇살 즐길 테요

 

사월초면 눈부시게 피어나는 벚꽃 아래

휘파람새 함께 봄노래를 부를 테요

색시비처럼 봄비 온 뒷날 아침이면

참나무에 파릇파릇 움돋는 새싹에 설렐게요

 

사월 중순이면 못물마다 파동 치는 개구리 합창 따라

처마 끝을 들락날락하는 제비들을 볼 것이요

새순 돋는 향긋한 돌미나리로 반찬을 하고

무리지어 돋아나는 고비 뜯어 된장국을 끓이려오

 

오늘처럼 초록비가 내리는 오월이면

뒤란 한 켠에 피어나는 찔레꽃 붓꽃에

내 마음도 호젓해질 것이요

물결처럼 출렁이는 보리밭은 푸른 동심으로 이끌게요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 송홧가루 날리면

백로 한 쌍 따라 마음도 유유히 날고

소꿉친구들이 그리운 날엔

살랑대는 향기 따라 해당화 바닷가를 거닐 테요

 

밤꽃 피어나는 유월이 오면

썰물 따라 갯벌에 나가 농게와 소라를 잡고

바닷가 한쪽 모퉁이에서 친구 기다리듯 피어있는

참나리꽃과 눈빛대화를 나눌 테요

 

태풍이 온종일 휘몰아치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따뜻한 차로 마음을 적시며

고향 떠난 동무들과 흘러간 옛 시절을

하염없이 떠올릴 테요

 

왕매미 혼을 살라 노래하고

개미 떼 분주히 분화구 성을 쌓으면

방아깨비는 폴짝폴짝 뛰놀고

잠자리 떼는 온 동네를 비행할게요

 

벼이삭 인사하듯 익어가는 시절이면

코스모스 신작로 따라 함께 등하교를 하고

하굣길에 산머루를 서로에게 따주던

이제는 머나 먼 소녀를 떠올릴 테요

 

찌르레기 밤새워 노래하고

휘영청 옛 동산에 쟁반 달 떠오르면

지나가는 이 없이 외로이 짖어대는 멍멍이소리에

나 또한 잠 못 이루며 뒤척이기도 할게요

 

동지섣달 논배미에 매끄러운 얼음이 꽁꽁 얼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 맺히도록 썰매를 타고

바람 부는 날이면 동산에 올라

이제는 소망 대신 추억을 실어 방패연을 띄우려오

 

겨울바람은 쉬잉씽 전선줄로 가야금을 타고

눈발이 솔잎 위에 소복이 수묵화를 그리면

늙어가는 친구들 불러 모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소

 

돌아가네 돌아가네

옛 추억 찾아 나 돌아가네

머나먼 아리랑길 돌아 돌아서

꿈에 그리던 마음의 고향으로 이제야 돌아가네

 

 

 

미완의 귀향

고두현

 

출향한 지 십 년 넘거든

맨몸으로 오지 말라

금의환향 아니라면

나라 뺏긴 슬픔보다

남 땅에 헛뿌린 씨보다

더한 일 있어도 오지 말라

명치끝에 찔러 둔

지침이라도 있었는지

고향 땅 밟기 전 십 년을 저어하며

기다린 가슴에 못이 박혔는지

국치 이후 딱 기억상실증에 걸렸는지

길 위에서 여태

서성이고만 있는 아버지

 

 

 

바람의 귀향

고정국

 

1

갓 트인 바람 길로 촛불 행렬이 오고 있다.

초반부터 반기를 든 억새 뒤에 소리 낮추며

쓸쓸히 백수를 들고 한 점 바람이 오고 있다

저것 봐, 낙향 길의 가을 하늘은 빈자의 몫

걸레스님 붓장난 같은 구름 몇 조각 데불고 와

만취해 벌겋게 누운 산을 흔들어 깨우는 이

 

2

뜯기다 꼬깃꼬깃 속옷춤에 감추고 온

실직자 아내들의 맨 마지막 체온은 남아

종점 앞 동국에 비비며 우는 얼굴이 아름답다

낡은 뼈마디가 쟁기처럼 삐걱이는

범죄 없는 마을 어귀 이삭 줍는 논등을 쓸며

고랭지 배춧잎 하늘에 폐비닐을 거두는 이

 

 

 

귀향의 노래

고정희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짐짝 위에

아직 겨울 찬비가 줄기차구나

저기가 내 그리운 귀착지,

머나먼 여정을 달려온 나의 말이여

마중 나온 북한산이 다가와

이제 무릇 날개를 접으라 한다

마중 나온 관악산이 다가와

이제 응당 말을 놔주라 한다

속에서 시가 넘쳐흘러도

받아쓰지 않을 용기를 가지라 한다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내 푸득이는 어깻죽지를 더욱 작게 접어

고요의 평원에 착륙할 수 있을까

오랜, 도지는 신병 같은 내 말의 허기증을

뒤쪽으로 꾹꾹 눌러둘 수 있을까

 

도도한 저녁 숲에 상수리나무들이 젖고 있구나

내 자손만대도 젖고 있구나

여기가 내 사무치는 귀향지,

방울 소리 설렁대는 나의 말이여

동행하는 안산이 나더러

이제 그만 상처를 싸매라 한다

동행하는 반월평야가 나더러

이제 그만 역마살을 동여매라 한다

한동안 눈 맞으며, 눈 맞으며 살자 한다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속에서 넘치는 말을 받아

눈그늘 깊게 하는 술 한 동이 빚을 수 있을까

향내 진진한 술 한잔 받쳐 들고

나는 너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귀향

곽성삼

 

이제 집으로 돌아 가리 몸은 항상 고개 넘어

끝없는 나그네 길 이제 쉴 곳 찾으리라

서산의 해 뉘엿뉘엿 갈 길을 재촉하네

저 눈물의 언덕 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리

지나는 오솔길에 갈꽃이 한창인데

갈꽃잎 사이마다 님의 얼굴 맺혀 있네

길 잃은 철새처럼 방황의 길목에서

지쳐진 내 영혼 저 하늘 친구 삼네

사랑하는 사람들아 나 초저녁 별이 되리

내 영혼 쉴 때까지 나 소망을 노래하리

 

 

 

늙은 나그네의 귀향(歸鄕)

김낙필

 

어깨 힘 빠지면

다리까지 힘겨울지도 모른다.

구비구비 뫼돌아

바다가 보이는 언덕까지 왔는데

반기는이

매 한 마리 하늘에 떠있다.

 

예서 굴뚝새처럼 매밥이 될 수는 없다.

바지락 한 양푼 삶아놓고 기다리는

주막까지라도 죽기 살기로 가자.

처진 어깨와 쥐오른 장딴지는

늙은 주모가 주물러주겠지

 

어스름 초저녁 싸릿문 앞 검둥개는

늙은 걸인를 알아나 볼까

엄마 등에 업혀 넘던 <사구실> 고개 위로

보름달은 둥둥 떠오르고

뱃길 놓은 <청산리> 포구 앞뜰 바다엔

검은 주단을 깐 듯 세월이 멈춰서

갸우뚱이 물끄러미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주마등 속으로

마을 등잔불이 하나둘 두런거리며 켜지는데

 

울컥 설움 한 덩어리 토해놓고

의식이 기억 속으로 새까맣게 달아나 버린다.

아련하게 동구 밖으로 개 짖는 소리가

까르륵 까르륵 동네 아이들

쥐불놀이하는 소리에 밟힌다.

 

당산나무 가지

펄럭이는 오색댕기 아래

오곡밥과 보름나물들이 곱상하게 차려져있다.

때맞춰 <질퍽네> 당집 개 굿판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오고

어머니의 경기민요 자장가 소리도 들려온다.

 

엄마

맥박이 숨죽이며 잦아든다

 

 

 

귀향

김영환

 

한 들녘 지나

자갈길에 먼지가 인다

장기바위 그늘 아래 아기가 졸고

미루나무 가지에 노을이 걸리면

검게 그을은 친구는

늘어진 어깨 추스르며 집으로 돌아온다

모깃불 가에 멍석이 깔리고

옻샘거리 멱간 부뚤이가 돌아오면

서리해 온 참외만큼 달콤한

서울 얘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다시는 땀과 흙을 버리고

이슬 먹고 살라던 애비 앞에

감춰둔 부잣집 따님 얘기를

조르는 에미에게

우리를 슬프게 슬프게 하는

한없는 절망의 긴 노래를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야 한다

밟히던 육신의 추억과

끝없는 좌절과 슬픔이 엉클어진

지난 초여름밤의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굵은 손마디 부여잡고

슬픈 징후를 알려야 하던

한여름밤

나는 몇 번인가 울음을 삼키고는

땀으로 멍울진 농부의 가슴에 가슴팍에

묻히고 싶었다 영원히

더운 계절이 춥기만 한 어느 해 여름밤애

신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난 슬픈 노랠 슬프게 불러야 했다

지친 몸이 멍석에 눕혀지고

생고개 넘어 바람이 일어

어둠을 걷고 있었어도

여름이 가는 소리인 줄은

정녕, 정녕 잊고 있었다

 

 

귀향

김용화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 들어가면

우물가에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화안한 그 집,

흰 무명 저고리 어머니

아랫목에 더운밥 묻어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박이는 곳으로

 

 

 

꽃의 귀향

김윤배

 

불룩해진 욕망으로 꽃의 귀향이 이루어진다

지상에 색색의 그림자를 남기고 돌아간 꽃의 영혼을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른다

돌아가던 꽃이 뒤돌아보며 슬퍼하지 말라고, 다시 찾아올 거라고 위로한다

꽃의 말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내년이면 얼마나 먼가

그 먼 날을 기다릴 수 있을까

어둠 속에 꽃을 그리며 소리 없이 운다

눈물이 어둠 속의 꽃으로 핀다

꽃은 끝내 내게로 귀향할 것이다

수 없는 꽃 무덤을 꽃으로 가꾼다

 

 

 

귀향

김정애

 

들꽃이 부른다.

어서 오라 손짓한다

뒷동산의 금강송 위엄과 위풍당당함으로

우릴 감싸 안는다

 

고갯마루 언덕배기에 넋을 잃고 기다리는 임

그 임이 그리워 귀향을 준비한다

고향, 어머니 품속같이 아늑하고 평온한 곳

 

그곳엔 날 기다리는 임들이 있는 곳

그 임들이 뼈에 사무쳐 귀향을 꿈꾼다

 

앞 개울엔 물고기가 춤추고

뒷동산엔 종달새가 노래한다

그곳이 그리워 향수병을 앓는다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들꽃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임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어서 가야지

 

 

 

귀향

김해화

 

비가 내려야 해

눈에도 가슴에도

차마 못 버리는 목숨에도 바람이나 일어쌓고

손을 잡아도 외로운 도시에서

기침조차 캐액캐액 삶에 찌든 너와 나

눈 적시며 돌아가는 길

억수같이 비가 내려야 해

빗속에

아아 어머니 젖은 가슴

들꽃 같은 첫사랑 젖은 입술

집 앞배미 논두렁에 퍽직허니 주저앉은 아버지

젖은 노래가락

차마

마른 가슴으로는 그냥 안길 수 없는

그런 내 고향

고향에는 지금 비가 내려야 해

 

 

 

귀향(鬼鄕)

김혜경

 

님아

하늘 아래 흩날리는 꽃잎처럼

아름답구나

 

님아

그 가녀린 몸으로

거센 군화 발에 짓밟혀

어찌 견디었나

 

님아

천국 갈 때는 웃으며 갈 줄 알았는데

붉은 불꽃 고통으로 가는구나

 

하얀 나비되어

엄마 아빠 만나러 가는

님을 위해 기도하노라

 

부디 천국에서는

활짝 핀 꽃잎 되기를

 

 

 

귀향

남기태

 

오늘 아침

미음 한 그릇 훌훌 불어 마시고

국물김치 한 숟갈 쩝쩝 넘기고

동여맸던 머리띠 풀고서

자리 털고 일어났다

 

몸살로 동이 나다니

그깟 일로 맥이 빠지다니

태어나 한 번쯤 고생도 하다가

실연의 늪에 빠져 방황도 하거늘

 

점 보고 굿거리하고

침 맞도 약 달이고

청승으로 살기보다야

죽는 게 아주 낫지

 

미음이나 한 사발 마시고

휘적휘적 문을 나서

들길 걸어간다

 

고향으로 가는 게야

 

 

 

 

귀향

문효치

 

소음의 등어리에 실려

떠내려가는 길

살갗에 슬며시 내려앉는

어둠 속에서

문득, 당신의 환한 얼굴이

밝아온다

 

진초록의 풀냄새를 거느리고

안개 속에 묻혀

아른아른 다가온다

 

가슴 깊이 감돌아 감돌아

고향으로 뻗어가는 그리운 황톳길

 

다시 눈을 튼다, 사랑

새롭게 살아나는 혼령은

금색 선율 색실을 풀어내고

 

잠시 잃었던 나의 분신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아

이런 날

새롭게 나를 부르는 이름

 

 

 

귀향

박종영

 

아득한 고향 운봉산 푸른 바위와

굵은 소나무 몇 그루,

내가 갈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을 것이네,

 

샛강 나들목 아래

돌무덤 물꼬 막아 쌀 붕어 잡던 갈대숲 둠벙도,

논두렁길 깍짓손 끼고 함께 걷던

순이의 발자국 소리 그대로 남아

울렁울렁 가슴에 차오를 것이네,

 

시린 추억으로 달려가는

푸성귀 같은 바람,

사근사근 맡아보던 시절

오직 한 개의 눈물로 다시 올 수 있을까?

 

한 겹 떠도는 구름 눈빛으로 맞으니

박명의 안개로 젖어오는 고향길,

정겨운 그 길 딛고 선 자리

새벽 냄새 한 모금으로 환해지는 가슴,

 

꽃물 번지듯 정갈한 그대 미소 집어 올려

그리움 맛보고 싶었네

넓은 가슴안에 보듬어보고 싶네

 

 

 

귀향 일기

박형준

 

오래된 벌판의 한끝을 보다가

목감기를 앓는 하루가

내내 허수아비로 선

여름 오후

낡은 선풍기가

목 비틀린 풍뎅이처럼 돌아가고

차단기 앞에 선 사람들이

건널목 저편을 생각하듯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귀향은

무슨 추억으로 서 있을까

선선한 바람이 흔드는

여름의 저문 그늘에 어둠은

황혼의 목에 가래 낀 시()가 되어

집으로 가는 벌판

손금을 만들어 내려앉는다

 

 

 

귀향길

박효찬

 

도로에 차들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줄을 서고 끝이 없을 만큼 달리지도 못하고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버린 지 몇 시간째

대명절에 치르는 우리나라의 행사이다

 

고향길 어머님 품 그리워 떠난 길이

너무 멀어 돌아서고 싶은 맘 달래보아도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앉는다

 

어디선가 구급차 소리 요란하고

창문 넘어 고개 내밀어 수군수군

고향길이 저승길이 되었다는 소식에

갓길에서라도 졸음 쫓아보고 싶은 건 마음뿐

 

싱싱 달리는 버스 전용도로에 부러운 눈길

버리고 가고 싶은 내 고물차는 버리지 못하고

고희가 훌쩍 넘기신 어머니 모습에

고속도로 위에서 해맞이한다

 

 

 

돌아온 귀향

손병흥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목숨 다할 때까지

12만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다 못내 산화하신

한 줌 재로 고국 땅을 밟은 국군 전사자 유해 송환

 

미군이 북한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 국방부의 감식 결과 국군 전사자임이 확인되어

특별수송기를 몰고 하와이로 간 유해인수단에 의해

62년 만에 봉환되어 돌아오신 호국영령 호국영웅들

 

나라를 위해 고귀한 목숨마저 희생하신 국군 용사들이시여

그 무엇보다도 귀감이 되는 가장 크신 국가 공로자들이시여

우리들은 결코 당신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서 늘 기억하리니

생전에 그토록 간절히도 지키려고 애썼던 조국의 품에 안겨

이제는 부디 아늑한 현충원에서나마 편히 쉬고 영면하소서

 

 

 

귀향(歸鄕)

손흥기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미루나무 신작로길 투덕투덕 걸어서

새마을슈퍼 처마 나즉한

장터 모퉁이 들어서니

저기 대암산이 슬핏 내려다보고

돌아 서대요. 크릉,

속울음 삼키며 돌아 눕대요

 

 

까치집 이고 선 감나무에선

늦여름 매미소리 자지러들고

쇠전마당 텅 빈 외양간에는

워랑워랑 워낭소리

들리는가도 싶어서

마른 햇살 한 줄기 댓바람에

쓸려가는 장터 모퉁이,

 

우두망찰 쭈그려 앉아

귀 기울여 봤대요

길 없는 땅바닥만

내려본대요

 

 

 

귀향 일기초

신경림

 

1

신작로 뽀얀 먼지 길에

새빨간 고추잠자리떼가 날고 있다.

 

날 따라 외지로 떠난 걸로 알았던

우리들 삶과 사랑의 애기가

술도가 뒤뜰에 가겟방 판대기 의자에

엉겨서 도란대는 것을 보고

문득 놀란다.

 

 

2

별정우체국도 단위농협 창고도

부서진 채 굳게 문이 잠겨 있다.

내년이면 물이 차리라 한다.

이곳 모두가 허허바다가 된다.

 

우리들 삶과 사랑의 애길 들어줄 이

이제 아무도 없으려나.

검은 바위와 늙은 나무에 무딘 칼로 새겨진

우리들 누님들의 투박한 이름

보아주는 이 오직 늙은 용왕뿐이려나

 

 

 

귀향(歸鄕)

신성호

 

가련다

가련다

이젠 가련다

 

언덕 푸른 초원엔

누렁소가 풀을 뜯고

 

산속엔 뻐꾸기 노래하고

산비둘기 날개 치며

쉴 곳을 찾던 곳

 

풀밭엔 벌레들이

숲속의 부엉이도

함께 하던 곳

 

깊어가는 여름밤엔

냇가 횃불 들고

물고기 잡던 곳

 

내 살던 그 고향에 가고파라

내 놀던 그 동산이 그리워라

 

지금은 흑백 사진첩 속에

고이 간직해 온 내 고향이

 

이제는 나를 보고 손짓하며

옛 살던 그 고향에 가라 하네

 

 

 

귀향의 가을밤

심현보

 

가을이 되면 특히 조용하다

거기에다가 밤에 어둠이라니

가히 그 조용함을 상상할 수 없는 경지이다

바로 그 경지를 어둠이 찍고 있는 찰나에

쏟아져 내리는 비

적막이 와르르 무너진다

가을밤 빗소리가

누군가를 계속 호명하고 있다

너 너 너 너 너

아니 나를 부르고 있잖아

아이고 덜 떨어진 놈 같으니라구

대답을 잽싸게 서두른다

네 네 네 네 네

그런데 아무 소용없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불러대는 숫자에

내 대답은 턱없이 부족하다

수억 개의 빗소리만 들릴 뿐

단지 몇 개뿐인

내 대답은 어디에서도 들리질 않는다

빗소리는 가만히 하늘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

내 목소리는 화가 치밀어

더 크게 작위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겨 먹을 수 없는 빗소리 위로 그래도 올라타 볼려고

드디어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오만이

내게도 파고들어 와 가을을 찢어 놓으려고

건설의 광기를 부리고 있다

이제 내 대답은 이미 순응을 넘어섰다

빗소리를 싹 쓸어내 버리려고까지

지상의 모든 최신식 기계 장비에게 전화를 건다

몇 개의 내 대답으로

수억 개의 하늘의 부름을 새로이 건설할려고 한다

지금의 세상이 지금까지 모두 다 그래왔는데

왜 나라고 그렇게 실행하면 안 될게 뭐가 있어

오만이 끝이 없다

비가 서서히 그쳐 간다

그것 봐!

하늘도 내 오만을 척 알아보잖아

이 세상의 오만은

그렇게 새 세상을 끊임없이 여기까지 건설해 온 거야

그런데 비가 그치자마자

왜 이렇게 내 가슴 속은 적막함으로 꽉 들어차 버리는 거지

오만의 축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다들 순식간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야

우리의 신세계가 이렇게 끼깔나게 건설되었는데

이렇게 온갖 소외로 쓸쓸한 가슴이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어쩌면 내 대답이 한참 오류일 수도 있어

더 더욱 하나 단위로 쏠려가고 있잔아

견고한 묶음을 모두 잃어버려 가고 있어

하늘은

하늘의 소명을 다한 것일 뿐인데

그러고 보면

오만한 건설은

절대로 아름다운 지구적 문명이 아니다

 

지상은 언제든지 무너져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은 가슴이다

이 가슴이 내 마지막 최후의 문명이다

빗소리가 부르는 소리가 사라졌다

내 대답도 이제 더없이 조용하다

잠시 객기 부렸던 오만은

벌써 이 세상 밖에서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하늘의 침묵이

곧 내 침묵이다

지금은 이 세상이 모두 가을밤이다

이 세상의 가슴이 투명해져 오고 있다

 

귀향

오승국

 

여윈 잎세 허덕이는 가을날의 억새처럼

죽음의 사선에서 굶주리던 그 시절

무도한 총칼질에 한 무덤 들꽃으로

사라져간 곱디고운 사람들

사멸의 불바람이 휩쓸고 간 폐허의 시대

목숨 하나 간절했던 마르지 않은 눈물이여

태 사른 땅 눈물수건 땀든의장 내려놓고

장엄한 제주바다 쓸쓸히 보이는

한라산 남쪽 꽃피는 고향 언덕으로

마실 가듯 놀러오세요

 

 

 

귀향의 노래

오장환

 

굴팜나무로 엮은 십자가, 이런 게 그리웠었다

일상 성내인 내 마음의 시꺼먼 뻘

썰물은 나날이 쓸어버린다

깊은 산발에서 새벽녘에 들려오는 쇠북 소리나

개굴창에 떠나려온 찔레꽃, 물에 배인 꽃향기.

 

젊은이는 어디로 갔나, 성황당 옆에…… 찔레꽃 우거진 넌출 밑에 뱀이 잠자는 동구 안 사내들은 노상 진한 밀주에 울고

어찌나, 이곳은 동무의 고향

밤그늘의 조금 따라 돛단 어선들은 떠나갔느냐

가까운 바다 건너 작은 섬들은

먼 조상이 귀양 가서 오지 않은 곳

하늘을 바라보다 돌아오면서

해바라기 덜미에 꽂고

내 번듯이 웃음 웃는 머리 위에 후광을 보라

 

목수여! 사공이여! 미장이여! 열두 형제는 노란 꽃잎알

해를 좇는 두터운 화심(花心)에 피는 잎이니 피맺힌 발바닥으로 무연한 뻘 지나서 오라

 

 

 

영원한 귀향

오장환

 

옛날과 같이 옛날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밤마다

바다는 희생(犧牲)을 노래 부르고

 

항상 도리키고 다시 돌떠스는

고독(孤獨)과 무한(無限)한 신뢰(信賴)

 

바다여!

내 몸을 쓸어가는 성

부두(埠頭)에 남겨둔 애상(哀傷)은 엇던 것인가

 

진정 나도 진정으로 젊은이를 사랑햇노라.

왓다는 다시 갈 오- 영원(永遠)한 귀향(歸鄕)

 

계후조(季候鳥)는 떠난다.

암초(岩礁)에 쎈트헤레나에 힌 새똥을 남기고

 

 

 

귀향

오정국

 

목적지 입간판이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오듯이

캄캄한 국도에서 불빛을 되쏘듯이

 

어떤 후회는 일찌감치 당도해 있고

어떤 후회는 발걸음이 더디다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고추밭과 담배밭의

저 끈질긴 토착세력들

 

여즉 남아있는 절벽들

창날 모양의 창바우, 깎아 세운 형상의 선바우 앞에서

철없던 맹세의 주먹을 몇 번 내뻗어보고

 

선글라스로 얼굴 가린 채

옛 골목을 더듬는데, 어라, 그 절간?

저녁예불 종소리 쟁쟁하던

 

저 문간을 넘어서면

그즈넉한 법당의 낡은 경전들

세상의 온갖 고통과 욕설과 참회를

모셔놓은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목구멍의 온갖 욕설을 앞세워서

험한 땅거죽을 뱃구레로 밀고 온 것 같다

 

수시로 요긴하게 써먹던 사투리가

우이쒸, 여기서 되레 먹혀들지 않고

 

말더듬이 시늉 몇 번, 절름발이 흉내 몇 번

그렇게 생가터를 지나치는데

 

산허리의 높고 낮은 무덤들

삼복염천의 무성한 풀들

 

토착 세력의 살기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귀향

윤수천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자

눈 감고도 한숨에 달려갈 수 있는 곳

 

피라미 떼 노니는 시냇물

송아지 엄마 찾는 들녘

그곳에 가서 코흘리개가 되어보자

 

느티나무집 초가 부엌에는

아직도 어머니가 지피시던 군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을 거야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에는

담요 밑에 묻어둔 밥사발이

아직도 따끈한 채로 있을 거야

 

마당가 대추나무에는 대추들이

감나무에는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거야

 

생각만 해도 해복한 곳

사는 일이 시들해지면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곳에 가서

산울음처럼

청청한 울음 한번 크게 울어보자

 

 

 

귀향

이경호

 

바람 끝에 그가 앉아 있다

물때 낀 소주병 가스통 플라스틱 물병

마른 풀 사이에 둥둥 떠 있다

늦은 오후

바늘 던졌지만 찌는 안 보이고

거머쥔 매운탕거리도 없다

북서풍이 몰고 왔으리라

갈대처럼 수그린 그를

까치놀이 얼굴 어루만진다

춥지 않느냐고 너무 웅크리지 말라고

소주병도 한때 어느 가슴 화력이었고

부탄가스통도 한 끼 밥솥 아래 있었다고

고개 들라고 수고했다고

까치놀이 그를 껴안는다

 

 

 

고향으로 돌아가리

이명희

 

달구지 마차의 타고

달렸던 해안선 따라

멀어지는 똑딱선 뱃머리

아득히 멀어지는 고동 소리

 

서울 간 오빠를 기다리면

날이면 날마다 포구에서

오빠를 기다렸는데 이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네

 

고향으로 돌아가면

내 어머님이 살아 계시고 삐삐 꽃

춤추는 언덕배기 그곳으로

 

밤이면 등댓불 잠 깨우면

사리 떼면 갑오징어 건져 올려

우리 어머님 좋아하신 농주 한 잔의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내 고향이라면

 

다시 흙을 밟으면 논밭에

내 집을 짓고, 저녁이면 별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잠자는

항구 신정리로 돌아가리라

 

 

 

귀향

이승하

 

그리 멀지도 않건만

고향으로 가는 일이 참으로 힘들구나

 

허나, 세상의 모든 길은

저마다의 고향으로 나 있는 법

그대 태어난 곳 자라난 곳

꿈을 키웠던 그곳

사춘기 시절엔 줄곧 떠나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대 고향을 버리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지

연어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데

 

한가위로다

타향의 하늘에서도 이국의 하늘에서도

두둥실 떠 있는 원반형의 달

어머니 등에 업혀 쳐다보았던 달

사랑을 잃고 술에 취해서 쳐다보았던 달

오늘밤 저 달은 한껏 발그레해지리라

 

인생행로 걸어도 달려도

어느 길 할 것 없이 험하기만 했다

망망대해 달려도 멈추어도

어느 뱃길 할 것 없이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나 있는 길에서는

지친 새도 날개를 접을 수 있다

그대 탯줄이 거기 묻혀 있기에

그대만을 기다리는 노모가 있기에

 

싸늘히 식은 가슴 지닌 이들이

고향에 돌아온 날은 왁자지껄하리라

따뜻한 고봉밥 넘치는 술잔

사투리가 갑자기 입에서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친척 아이 이름을 묻는다

잃어버린 내 별명을 여기서 찾는다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이여

이번 한가위만 같아라

 

 

 

귀향

이원문

 

그 젊어 떠난 고향

타향이 몇 곳인가

떠돌고 돌다 저문 인생

인생만 저물었나

 

거짓에 털리고

인심에 속은 세상

빈손 빈몸 이 몸 끌고

어디로 가야 하나

 

 

 

어느 시인의 귀향

이진엽

 

도시는 회색의 너울에 갇혀 있고

얼어붙은 길에는 눈발이 퍼붓고 있었다

낡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 멘 채

천 필 무명이 깔린 은빛 빙판길로 나섰다

젖은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찌를 때마다

손끝에 와 닿는 차가운 동전 몇 낱

그 싸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전해 받은 채

눈보라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먼 알프스에서 고향 슈바벤으로 돌아가는

횔덜린, 그의 시 한 구절을 주문(呪文)처럼 되뇌며

내 마음도 어느새 어머니의 품으로 가고 있었다

가슴 깊이 가라앉은 유년의 숲과 호수

그들의 깊은 잠을 깨우기 위하여

시의 나귀를 이끌고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돌아보면 저 외로운 길

어두운 벌판에서 보낸 숱한 시간들과

생의 여울터에서 가랑잎처럼 맴돌던 모습이

문득 내가 아니라 낯설게 느껴질 때

언제나 귀향을 생각했다

바람과 햇빛과 청보리가 넘실대던 고향

신성한 대지의 울림이 보석같이 감춰진 그곳을

나는 시의 열쇠로 조용히 열고 싶었다

, 새하얀 날개를 펼친 바위산

그 설산(雪山)이 바라보이는 옛집의 마당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참빗이 흙속에 묻혀 있으리

드센 눈보라에 휩싸인

별들마저 얼어붙은 이 옹색한 시대에

한 줄 시를 웅얼대며 이제 고향으로 가야 한다

차디찬 눈바람에

밤새 뼈를 꺾으며 울부짖는 겨울나무들

그 앙상한 가지에 고뇌의 시간들을 묶어두고

다시 먼 길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조그만 시의 나귀

그의 잔등에 쌓인 눈발을 거듭 털어주며

햇빛 눈부신 저 근원에 닿기 위하여

 

 

 

귀향

이철경

신도시 주변이 된 구도심은

도시 재생 사업으로 안간힘을 쓰지만

썰물처럼 빠져나간 도심 공동화로

떠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떠나갈 새들이 황량한 광장을 거닐 뿐,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 한 사발로

취기가 오르던 왕년의 구도심엔

더 이상 청춘의 웃음이 들리지 않는다

한때를 주름잡던 추억을 곱씹는

초로의 보헤미안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구도심 주변은 폐쇄된 상점들과

무료한 시간을 햇살에 태우는 노인과

아무도 반기지 않는 늙은 비둘기가

한가로이 가을볕을 핥고

KTX가 서지 않는 광주역에 늘어선

코스모스만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고향 신작로를 달리는 버스가

마을 어귀에 도착하면

시골 노인들 안전을 위해

부축하거나 앉기를 기다려주듯,

열차는 극락강역에 서서히 정차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극락이 가까울수록 속도보다는

시골길 먼지 풀풀 날리며

세월을 낚는 풍경처럼 고즈넉할 뿐

속도를 뒤로한 채 안락에 팔을 걸치고

아스라한 기적에 간이역 지나다 보면

한낮 고향 구름이 환하게 반긴다

 

 

 

눈부신 귀향

임보

 

봄이 되면 꽃들은 용케도 제 집들을 찾아 피어난다.

 

보라,

노란 개나리꽃은 어둠의 흙 속에서 헤매고 다니다 봄이 되면

가는 개나리 뿌리에 스며들어 언 개나리 줄기를 녹이며 타고 올라

작은 꽃눈의 창문을 찾아 열고 활짝 밖을 내다보지 않던가?

 

분홍의 진달래꽃은 진달래 제 번지를

노란 민들레꽃은 민들레 제 번지를

해마다 찾는 제 집들을 놓친 적이 없다.

 

백목련은 백목련 가지에

자목련은 자목련 가지에

더러 바뀔 만도 한데 엇갈린 적이 없다.

 

술 취한 사람들은 한밤중에 가끔 제 집 찾기가 헷갈려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다 낭패를 당하기도 하는데

꽃들은 그런 일이 전혀 없다

 

연어가 먼 대양을 떠돌며 살아가다

씨를 뿌릴 때가 되면 수만 리를 거슬러 그의 모천을 찾아가

거센 물살을 헤쳐 오르며 맑은 자갈밭을 열고 알을 낳듯이

 

수만 가지 나무의 영혼들도

지하의 어둠 속을 떠돌며 헤매고 다니다가도 때가 되면

제 고향 나무들을 찾아 그처럼 눈부신 회향을 한다

 

사람들아, 저 가지마다에 얼굴 내밀고 있는 화사한 귀향들을

벌 나비들이 얼마나 찬양하는지 보지 않았는가

머지않아 주렁주렁 그들의 고운 씨가 매달릴 것이다

 

 

 

귀향

임정일

 

1

고향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급하게 앞지르며 달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람이

어깨를 툭 치며 사라졌다.

어지러운 발자국들과 놓칠세라 꽉 잡은 손과 손

문득 나만 혼자인 것 같아 씁쓸하다가도

고향으로 가는 마음에 기분은 좋다.

푸석푸석 씁쓸하게 안개 피어오르는 개찰구를

지친 어깨로 밀며 빠져나와 기차에 오르면

뚜걱뚜걱 저녁 이끼 어슴푸레한 흐린 불빛 아래

고향으로 가는 길은 혼자라도 좋다.

그물망 속에 담긴 사과 빛이 고갯마루 잘 익은 노을처럼 붉고,

삶은 계란 고소하게 허물 벗는 고향 이야기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홍익회 직원이 끌고 가는 수레바퀴에도 흥이 돋는다.

몇은 졸고

수런수런 어깨를 맞댄 연인들은 무엇이 좋은지 연방 웃음이다.

어둠이 차창에 기대와

그 옛날의 계란 장사와 그물망 속에 담긴

사과 파는 장사치가 그리워지는 밤

시원한 맥주 캔 하나와 씁쓰레한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고향집 폐교의 낡은 칠판 같은 히뿌연 차창에

그리운 이름들을 그리다 지운다.

한숨 자고 나면 고향 역에 닿을 것이다.

셀 수 없는 살들을 품었을 의자에, 나도

몸을 맡긴다

 

 

2

고향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으르렁거리는 도시의 철도를 도망하는

숨어든 낮달 품에 안고

어머니 고쟁이 속 고추밭 도둑맞던 날

동승한 새벽어둠을 뒤따라

고단한 서울살이 처마 밑을 기어들던 기차 칸

스물너댓 해 겹겹이 껴안은 그리움의 여장을 푼다.

 

닮은 사람들이 눈으로 눈으로 나누는 인사

가까이 가까이로 개울물 소리 흘러들고

저무는 보랏빛 강을 건너

뒤꼍 대나무밭을 흔드는 바람 소리

어머니는 노을 등에 지고 고추밭 길을 걸으신다.

'어머니 내가 왔수.

'어머니 내가 왔수.

 

역마다 기차는 보따리를 내린다.

귀에 익은 목소리 가까워질수록

고향길을 더듬는 기적소리

철길 뜨겁게 달구며 달려들면

어머니 무명 저고리 고름 서걱서걱

언 손 부비며 나와 섰는 동구엔

가슴 살 에이고 나선 달이 먼저 중천에 떠 있다

 

 

 

귀향

전윤호

 

오동나무 그늘진

옛집을 서성인다

몇 가지 썩지 않은 기억들이

장독대에 옹관처럼 서 있다

강변에 앉아 부러진 손톱에 햇볕을 모으면

서산에서 날아오르는 까마귀

짐승 발자국 하나 없는 눈 속에서

옥수수 대들이 겨울바람에 몸을 말리는

사방 길이 지워진

무덤 위에 지은 무덤

 

 

 

귀향

정양

 

못 떠나는 혼들이 모여 사는 곳

못 떠나는 악에 바치어

겨울이 깊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노라고

누가 구태여 말할 수 있으리

수척한 바지랑대를 붙들고

다시 찾아오마던 눈물만

뜰에 쌓인다.

 

대숲엔 절량(絶糧)

참새 떼들이

추운 별빛을 쪼아먹는 밤

 

겨울밤 저 끝에서

마른기침 소리 한 소절씩

눈을 감고 주저앉는다

 

 

 

귀향

정윤목

 

고향 그리워

피어난 꽃들마다

님의 뜨락에서 고우면

어느새

아득한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빛들로

화르락 피고 진 자리마다

고향의 굴뚝, 거뭇하다

귀향 아니고서야

목숨꽃들 저토록

환히 생존하겠는가

끼리 끼리 다른 모양이지만

서로에게 귓속말로 속삭일테니

살아가는 나날마다

슬픔 서러움 그리움 그 모두

고향 가는 발자욱들

안개는 자욱하겠지만

다시 드러내며 꿈이야기

돌고 도는

꽃들의 나눔

 

 

 

귀향

정재영

 

왜 떠났을가

돌아가고 말 일

 

왜 모른 체 했을까

잊을 수 없는 것을

 

속금산* 끝자락 마을

황토 흙

 

내 몸이라서 그런가

 

짧은 하루 해

멈추고 간

봄날만 아득히 길다

 

* 속금산 : 전북 진안의 마이산

 

 

 

늦은 귀향(歸鄕)

정재영

 

긴 길이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버스에서 내려

달구지 바퀴 움푹 패인 길을 한 시오리 걸어야 했습니다

혼자 터벅터벅 걸으면 바람이 서들러 달려와 고개 숙여야 가는 길 중간

동란 시절 배고파 죽은 어린애 하얀 찔레꽃 울음소리로

낮 길도 가슴 조이던 아장터 산모퉁이를 돌아

산비탈 끝자락에 작은 옹기처럼 옹기종기 모인 동네

장독대 가운데 큰 독처럼 세월로 버티고 있는 고샅길 끝 집

반절은 뛰듯 항상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먼저 인사를 하는 두엄 냄새 가득한 마당은 모두 들일 나가 텅 비어있어

언제나 한가로움으로 적적한 집안 안팍

어머니 부르는 소리만 권태를 깨트려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허물어진 뒷담 사이로 허둥지둥 들어오시는 흙손 모습에

뒷산 비탈진 밭고랑들도 함께 웃어주고 있었습니다

 

금년은 고향집도 모두 출타 중이나 봅니다

밤늦어도 마당에 내려와 쉬고 가던 달이

아는 이 하나 없어 하늘 중턱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는

만월이 배불러 그리움마저 체한 오늘 같은

그리움은 장소가 아닌 사람인 것을 아는 순간

가슴 속 깊이 비치는 달빛을 따라

누구나 다시 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귀향

조민희

 

나 돌아가리라 논두렁에 종달새 노래하고

미루나무엔 쓰름이 우는 저녁 향기 가득한 내 고향으로 가리라

냇가에 꺼먹 잠자리 날개짓하고 버들치 노는 곳

한낮 소슬바람 쉬어가는 곳으로 가리라

나 돌아가리라

달빛 머무는 툇마루 귀뚜라미 울고 뒷산 소쩍새

노랫소리 귓가에 들리는 듯 그리워라

겨울밤 화롯가에 모여 듣던 할머니의 옛이야기 흐르는

그리운 내 고향으로 가리라

 

 

 

 

고요한 귀향

조병화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비가 내리다 개이고

개다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다 폭설이 되고

폭설이 되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홍수가 되다 가뭄이 되고

가을 겨울이 되면서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 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귀향

최남균

 

한겨울 함박눈 내리거든

귀향하여 늙으신 아버지와 구들에 누워

수북이 쌓이는 사연 귀 기울여 들으라.

 

홀아비의 고독한 밤은

천장 쥐 구르는 소리 벗 삼아

보일러가 허전한 옆구리만 뜨겁게 달구더라.

 

나란히 누워 있으면 먼 산

칼바람에 찢긴 꿈 솜이불 당겨 덮어주고

빙판 아래 개울은 봄 길 찾아 나서더라.

 

지천명에 이르러 귀향길이 설레는 것은

그리운 날은 그리운 대로 분분한

눈꽃이 하얀 연유더라

 

 

 

귀향

최두석

 

민통선 지나

연천군 왕정면 동중리

예전에 집터였던 밭에는

배추 몇 포기 얼어죽어 있고

당신은 마침내 귀향하셨군요

피난길 떠나던 날

후퇴하며 들이닥친 미제 트럭

등 뒤에서 불타던 집이며 깨진 장독

뒤쫓듯이 들리던 포성

이제 꿈속에서도 지우고

새댁 시절 아지랑이 너머로 보았을

앞산 진달래 꽃잎 떨구는데

동전 몇 닢 손에 쥐고

쌀 한 줌 입에 물고

이제 칠성판에 누웠군요

아내의 어진 어머니여

어미보다 정든 손주들의 할매여

부르튼 맨손 시장바닥 타향살이에

무슨 이념이 있었겠어요

다만 삶의 넝쿨을 붙들고 늘어졌을 뿐

포탄 터진 곳에서도

맨 먼저 뿌리박는 칡넝쿨

당신이 묻힌 자리에서 파낸

팔뚝만 한 칡뿌리가

여우비에 젖습니다

 

 

 

귀향

최수홍

 

해는 져서 어두운데

오늘도 대문 밖에 외로이 홀로 나와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그림자 밟으며

서성대는 그대여

 

이제 오시려나 저제 오시려나

기다리고 기다림에 지쳐

목이 길어 학이 되어버린

나의 님이여

 

인고(忍苦)의 시간 모진 바람 불어

가련한 하얀 목련 꽃잎

그리움에 지고

나는 돌아가련다

 

돌아가 춥고 얼었던 하얀 목련꽃을

가슴속 깊이 깊이 꼭 안아주련다

 

 

 

귀향

함민복

 

낯설지 않던 도시를 떠돌다

낯선 고향에 돌아왔네

이 땅에 이쯤 살았다면

같이 살던 동네 사람들

내 나이 수만큼은

흙속에 묻어주었을 텐데

문이 문을 여는 빌딩을 기웃거리고

들이 아닌 강이 아닌 산이 아닌

식당에서나 음식물을 만나

죽은 고기를 씹고

똥물 내리는 물소리나 들으며

풀 냄새라곤 담배 냄새나 맡다가

여자 몸 속에 아이 하나 못 심고

사십이 다 되어 홀로 돌아와

살아온 길 잠시 벗어 보네

낯선 고향에서 쉬이 잠 오지 않네

 

 

귀향(歸鄕)

홍해리

 

()의 질긴 끈 놓지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떠나온 물집을 그리다

 

달려온 불길을 추억하다

 

돌아갈 바람의 고향 생각으로

 

꼭 잡고 있는

저 머나먼 푸른 영원

 

 

 

귀향

나카하라 츄야(中原中也)

 

기둥도 마당도 말라 있는

오늘은 좋은 날씨다

마루 밑에선 거미줄이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네

 

산속의 마른나무도 숨을 내쉬는

아아 오늘은 좋은 날씨다

길가의 풀섶 그늘엔

천진난만한 슬픔이 있네

 

이것이 내 고향이다

맑은 바람도 불어오고

마음 놓고 울어버리라는

노처녀의 낮은 목소리도 들려오네

 

아아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냐......

불어오는 바람이 나에게 말하네

 

 

 

귀향

마인즈

 

집을 떠나던 날

파도치는 설렘은

처음 받아본 생일 선물 같았다

 

한참을 먼지같이 떠돌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집으로 가고 있음을

선명히 깨달았다

 

어디를 떠돌고 헤매어도

내가 설렐 수 있었던 것은

 

내 방랑이 눈보라와 모래바람이 아니라

꽃향기와 수평선일 수 있었던 것은

 

돌아올 집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한참을 떠나 있다 돌아올 때에서야

분명하게 알았다

 

 

 

귀향송(歸鄕頌)

마조도일(馬祖道一)

 

勸君莫還鄕(권군막환향) 仄平仄仄平

還鄕道不成(환향도불성) 仄平仄仄平

溪邊老婆子(계변노파자) 平平仄平仄

喚兒久時名(환아구시명) 仄仄仄平平

 

그대들에게 권하니, 고향에는 가지 마소.

고향에 돌아가면 도가 이루워지지 않네,

계변에서 빨래하던 늙은 노파가

어릴 때 내 이름을 자꾸 부르나니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비가(悲歌) 귀향: 친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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