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10. 17. 07:10

서윤후 고독지옥(孤獨地獄)

선미숙 고독

손병흥 고독한 계절

손병흥 아름다운 고독

손택수 -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송근주 고독한 척 하지 마

송용식 외로움의 본색(本色)

신달자 고독이라는 사내 하나

심보선 도시적 고독에 대한 가설

안국훈 고독한 우물

안도현 - 외로움

양명호 고독

양수경 - 고독

양전형 고독하다

여림 고독

오경옥 고독

오보영 고독

오보영 고독의 원천

오정방 고독이란

오정방 - 외로움

용혜원 - 고독

용혜원 고독 속의 행복

용혜원 고독 연습

용혜원 - 고독은

용혜원 고독의 미로

용혜원 - 고독이라는 열병

용혜원 깊은 고독

용혜원 미칠 듯한 고독

용혜원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원태연 - 고독

유안진 -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유일하 가장의 고독

윤고영 고독

윤용기 - 고독

윤춘순 고독의 계절이 올 때

이국헌 고독은 밤에 피는 꽃

이규리 그게 외로움인 줄 모르고

이기철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이대흠 일곱 번째의 외로움

이문재 혼자의 넓이

이민숙 고독 한 잔 슬픔 두 방울

이복란 고독

이상국 고독이 거기서

이생진 고독의 미

이생진 외로울 때

이성부 - 외로움 얻어 돌아오는 길 빛나거니

이세복 고독

이외수 엽서를 태우다가

이용채 고독의 연주

이운룡 잃어버린 외로움을 찾아서

이원 일요일의 고독

이원 혼자 남은 지구의 고독

이원문 고독의 늪

이원문 고독의 창

이유리 고독

이정하 고독하다는 것은

이채 가끔은 외로워질 때면

이채 깊은 고독

이해인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고독의 맛

이해인 ,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희숙 -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임동확 식물들의 외로움

임영준 고독의 힘

임은숙 고독의 시

장석주 밤의 별채 같은 고독

전남혁 - 고독

전혜령 깊어 가는 가을 고독

정민기 고독의 미학

정숙자 - 고독 속의 행복

정연복 사랑의 고독

정진규 연필로 쓰기

정태중 고독

정호승 수선화에게

조동희 -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조병화 - 나는

조병화 외로운 벗에게

조용미 봄의 묵서

차진주 고독의 방

천양희 () 고독

천양희 - 외딴섬

최범영 고독도 날 버린 날

최상호 고독

최승자 58세 내 고독의 구도(構圖)

최영철 고독한 사람

하영순 고독을 즐기며 살자

하영순 고독이란 병

한상슥 - 고독

허광빈 고독

허영자 - 고독

현영길 - 고독

홍사윤 고독을 달래며

홍수희 - 고독이 앉은 의자

홍수희 - 외로움이 말을 건넬 때

홍인숙 고독

홍일표 원반던지기 선수의 고독

홍해리 하얀 고독

황금찬 - 잔인한 고독

황동규 낯선 외로움

Ella Wheeler Wilcox 고독

 

 

 

고독지옥(孤獨地獄)

서윤후

 

1

입장은 언제나 고독함

세탁기나 복사기 앞에서의 시간까지도

 

기다림은 그동안 잘 빚어 온 것

인간은 불구의 마음을 받아들고는

너무 일찍 자신의 간병인이 되는 일을

 

 

2

이 저수지는 무척 지루하고 볼 것 없는 풍경이지만 언젠가 있는 힘껏 던진 돌들이 여기에 모두 잠들어 있다

 

고독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음

사람이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일을 서두름

 

악몽은 비좁은 통로로서

이를테면 우산을 두고 내린 버스가 영원히 종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비가 그치자 지나온 길이 희미해지는 것

 

장대비는 금방 삶은 애저녁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반바지

호주머니 안쪽이 가장 늦게 마르는 비밀의 하수

 

 

3

입장은 계속 난처할 수밖에 없음

 

딱히 아픈 곳 없어 소화제나 처방받았던 환자가 몇 분 뒤 다시 찾아와 진료를 기다린다 의자가 지루해하는 엉덩이 알코올 솜이 마르는 시간보다 빨리 찾아온 통증은

기다림도 어쩔 수 없었다는 고독

 

지켜볼수록 커지는 불길처럼

이 구경거리는 잠든 돌을 깨우는 아름다운 양식

입장은 입장이 되어 가는 순간에도

고독을 쉬어 갈 수 없음

 

삼각김밥 돌아가는 전자레인지 앞에서도 설익은 컵라면을 후루룩 삼키는 편의점의 저녁 속에서도

고독은 글피에 다시 오기 위해 허기를 간직함

 

 

4

파쇄기가 파쇄기 속으로 들어가는 생각

다짐의 돌을 물 밖으로 꺼내오는 생각

 

호주머니 속에는 젖은 돌멩이가

 

한 사람이 죽기 위해선 몇 명이나 필요해요?

구해 달라고 고백하는 사랑은 이미 끝난 게 아닐까요?

 

어쩔 수 없음

고독은 입장을 표명함

 

 

 

고독한 계절

손병흥

 

점차 선선해져 가는 바람 따라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나부끼는

나들이 재촉하는 쓸쓸한 이 계절

 

길가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들이

허전한 마음 달래려 한곳으로 모여

텅 비어 버린 공허함 고독함 달래보려고

가을 색으로 바스락거리는 뜨락의 향기

 

왕성해져 버린 풍요와 고독들이 엄습해 와

외로움을 물리치고픈 흘러가는 뜬구름처럼

하나둘 화려함 속에서 야위어가는 우리네 삶

가슴에 가득하도록 고뇌의 사연들을 묻어둔 채

슬프고도 고독한 마음 그리움이 노을 진 가을날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

손택수

 

착지한 땅을 뒤로 밀어젖히는 힘으로 맹렬히 질주를 하던 그가

강물 속의 물고기라도 찍듯,

한 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장대를 내리꼽는 순간

그는 자신을 쏘아올린 지상과도 깨끗이 결별한다

허공으로 들어올려져 둥글게 만 몸을 펴올려 바를 넘을 때,

목숨처럼 그러쥐고 있던 장대까지 저만치 밀어낸다

잘 가라 결별은 그가 하늘을 만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바 위에 펼쳐진 하늘과의 만남도 잠시,

그의 기록을 돋보이게 하는 건 차라리 추락이다

추락이야말로 어쩌면 모든 집중된 순간 순간들의 아찔한 황홀

당겨진 근육들이 한 점 망설임 없이 그를 응원할 때

나른하던 공기들도 칼날이 지나간 듯 쫙 소름이 돋는다

뜨거운 포옹과 날렵한 결별 속에서 태어나는 몸

사랑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면 나는 기꺼이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되겠다

출렁, 깊게 패이는 메트를 향해 끝없이

자신을 쏘아올려야 하는 자의 고독이 장대를 들고 달려간다

폭발하는 한 점 한 점 딱딱하게 굳은 바닥에 물수제비 물결이 인다

 

 

 

고독한 척 하지 마

송근주

 

죽지 않으려 하면서

죽어 가는 게 뭐람

죽지 않으려 하면

죽지 않을 길을 찾아

 

죽어지면

사라짐을 몰라

살아있어야

죽음에 대해 알아

 

알면서 왜 죽으려해

살려고 해도

살기 어렵다 하면서

고독한 척하면서 죽으려해 하지 마

 

죽으려 하지 마

살려고 해

고독한 척 하지만

고독한 척 하면서 죽으려 하지마

 

인생은 혼자 사는 거 아니야

함께 사는 거야

살려고 해

살아야 해

 

 

 

외로움의 본색(本色)

송용식

 

한참을 울고 나서

체중계에 올랐다

 

눈물이 빠져나가

가벼워질 줄 알았더니

 

우는 날이 많아질수록

무게가 더 나갔다

 

체중계는 마음을 재고 있었다

 

 

 

고독

선미숙

 

가슴속 깊이 깊이

새겨 두고 싶었던 말

 

기다림이 너무 멀어

외로움이 너무 길다고

 

구름 속에 달을 찾아

그 속에 숨겨 둔 말

 

삼켜 버린 눈물은

가슴속에 멍이 됐다고

 

당신의 애틋한 사랑마저도

슬픔 일 수밖에 없는

 

홀로된 시간들은

상처로 남아

 

가슴이 드리워진

그늘 하나 있어

 

당신 앞에 차마

고백할 수 없는 말

 

당신의 사랑 방식이

힘겹습니다

 

 

 

아름다운 고독

손병흥

 

그 알 수 없는 술렁이던 바다 풍경 취해

이미 황폐화되어 버린 마음 조금이라도 정화시키고자

내 속으로 찾아드는 고독 그리움 가득 찬 흔적 자국들을

푸르디 푸른 청보리 같은 물결 속에다 묻어 버리고서

제법 따가와진 일렁대는 저 햇빛 사이로

끝없이 타오르는 가시 끝 하나 둘씩 피어나는

향긋한 하얀 빛깔 찔레꽃 내음 맡으며

구름 널려진 하늘 무심한 바람 흔들고 갈 때까지

온몸 가득히 피어오르던 너무나 오랜 아픔만 삼키는

그리움

 

 

 

고독이라는 사내 하나

신달자

 

내 집에 사내 하나를 들여놓았다

속은 의뭉스럽지만 뚝심은 있어

냉정한 수모도 태연하게 받아들여

날카롭게 밀쳐내도

다시 무표정한 제 자리를 차지하는

그 덤덤한 사내를

아예 내 집에 눌러 앉히기로 했다

깨끗한 베개 위에 그의 머리를 쉬게 하리라

사귄지는 오래지만 늘 괴팍하게 등 돌리며

죽기 살기로 피할 만큼 피해 보았지만

세월 탓인가

손 한번 잡지 않고 눈 맞춘 적도 없지만

은근히 내 몸까지 읽고 있는

그 사내에게 더는 잘난 척할 게 나는 없다

요즘 들어 부쩍 손놀림이 강해

민망할 정도로 음탕하게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순전 깡으로 내 몸을 파고드는 사내 하나

내 건조증의 등이라도

긁어주기나 할까 몰라

고독! 너도 사내가 되기는 될까 몰라?

 

 

 

도시적 고독에 관한 가설

심보선

 

고양이 한 마리

도로 위에 낙엽처럼 누워 있다

몸통이 네모나고 다리가 둥글게 말린

코끼리 같은 버스가

죽은 고양이 앞에 애도하듯 멈춰 있다

누군가 말한다

스키드 마크는

바퀴도 번민한다는 뜻이지

누군가 답한다

종점에서 바퀴는 울음을 터뜨릴 거야

새 시장은 계몽된 도시를 꿈꾸지만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 그 증거다

멀리서 아련히 사이렌이 울린다

한때 그것은 독재자가 돋우는 공포의 심지였으나

이제는 맹인을 이끄는 치자꽃 향기처럼 서글프다

누군가 말한다

두고 봐

종점에서 바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 거야

하루 또 하루

시민들은 고독하고 또한 고독하다

친구들과 죽은 자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그 증거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고양이 한 마리 또 한 마리

 

 

 

고독한 우물

안국훈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인생에서

진정한 도전은 아름답다니

넘어야 하는 건 산이 아니라

바로 마음의 장벽이다

 

만남은 선물이고 결혼은 축복인 것을

운명적인 사랑만 철석같이 믿고

혼자 자유롭게 지내다가

마음 통하는 사람을 스쳐 보내지 마라

 

몇 번 만나거나 두드려본다고

속마음 알 수 없고

서두른다고 모든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몇 번의 헛기침으로 외로움 달랜다

 

갑자기 변하면 실성해 보이듯

울다가 웃거나 웃다가 울면 이상해 보여

가끔은 고독도 즐긴다고는 하지만

찰방거리며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내는 중이다

 

 

 

외로움

안도현

 

시 쓰다가

날선 흰 종이에 손 벤 날

뒤져봐도

아까징끼 보이지 않는 날

 

 

 

고독

양명호

 

씹을 수록

그리움의 향이 난다

퍼져가는 외 길 따라

내 영혼 홀로 따라 나선다

 

한 줄기

찬 바람이 인다

어디로부터 온 걸까

 

낙옆 한 잎 업고 온다

한 그루 나무 있을 법도 한데

산은 있어도 나무는 없다

 

머리가 어지럽다

여러가지 생각할 수 없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야 계속 가야지

실랑이 하는 동안

 

바람과 낙옆은 온데간데 없다

 

내 영혼 홀로 남은 허공 뿐

앞서 가던 향기도 사라졌다

영혼의 외로운 외침

향기 찾아 메아리 되어 헤맨다

 

 

 

고독

양수경

 

창백한 쪽달은 가슴이 없다

애절한 별빛도 빛을 잃었다

여윈잠 앓는 밤은

시리도록 그대 보고픈 날

무료한 바람이 밤새 묻는다

사랑은 주는 거니

사랑은 주는 거니

이른 아침

그대 하늘 띄워보는 여우볕 닮은 미소

 

 

 

고독하다

양전형

 

나 오늘 죽고 말리라

고독해서 그냥

콱 죽고 말리라

탑동 방파제에 우뚝 올라섰다

 

한 여자를 사붉게 바라보다

가슴에 무더기로 피어 버린 꽃에 겨워

일출봉 낭떠러지를 날아내려 죽은 나와

주식투자로 망하여

한라산 소나무 밭에서 목매 죽은 내가 다가온다

새벽길 짐승처럼 방황하다

뺑소니 차에 치어 죽은 나와

직장생활이 고달파서 술독에 빠져 죽은 나도 보인다

 

이미 죽은 녀석들이

서로 다른 곳에서 달려 나와

내 머리 위를 파닥거린다

이 사치스런 놈아, 치사스런 놈아, 한다

죽어 보니, 더 고독해서 죽겠다, 한다

그래, 고독한 걸로 죽지는 말자

 

 

 

고독

여림

 

고독은 내적 밝음의 고독과 외적 어두움의 고독이 있다

내적 밝음의 고독은 자기 성숙을 의미하지만

외적 어두움의 고독은 자기 상실을 의미한다

선택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고독

오경옥

 

불 꺼진 밤

송송 성에 낀 창마다

언 강물 흘러

가슴에 박힌 돌 하나

감싸 흐른다

 

 

 

고독의 사치 - 어느 수인의 고백에서

오보영

 

외로움

이 세상에

내 주위에

아무도 없고

오직

나 혼자라는 생각

 

캄캄한 밤

낭떠러지 절벽 위에

홀로

내팽겨쳐진 듯한

 

처절한 외로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바로

저 지독한 외로움이란 걸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않은 당신은

 

외롭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세요

 

외로움을 그저 가벼운

아픔 정도로

슬픔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건

 

외롭다는 게 정말 무엇인지

채 경험하지 못한

외롭지 않은 이의

사치랍니다

 

 

 

고독의 원천

오보영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살아있는 그 자체가 바로

고독한 것이다

 

당신도

나도

누구든지 다

 

더 오르고 싶고

더 가지고 싶고

더 나누고 싶은

 

기대를

욕망을

 

품어안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독이란

오정방

 

북극에 혼자 뚝 떨어져 있어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혀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군중 속에 있다 할지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엄청 고독하다 느낄 수 있다

 

 

 

외로움

오정방

 

밝은 태양 아래서도

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나 혼자인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눈물 한 방울 흘림없이

온 가슴으로 흐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 자신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고독

용혜원

 

넓은

세상에

갇혀 있는 마음

 

사람들 속에

외톨이로

남은 모습

 

스스로 만든 감옥

 

 

 

고독 속의 행복

용혜원

 

강렬한 사랑의 고통으로 인해

고독이 와락 나를 껴안는 날엔

진한 블랙 커피를 마시고 싶다

그리고 한 편의 시를 쓴다

삶 속에서 사랑이란

기쁨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 후로는

섣부른 사랑타령이 역겨워진다

사랑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야 하는 것

무언가 부족하기에

사랑은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하는 이가 타 주는

한 잔의 커피가 있는 날은

고독이 아닌 행복이

나를 힘껏 안아 준다

 

 

 

고독 연습

용혜원

 

고독이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텅 빈 마음이다

홀로 우울한 시간을 만드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빈 가슴을 다 채우지 못하는

아픔이 있는 날은

쓸쓸한 이유를 알기에 고독을 연습한다

 

혼자라는 저린 아픔을 느낄 때

고독은 제 자리를 더 차지하려고 한다

 

혼자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혼자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혼자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른다

혼자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고독을 연습하는 것도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고독을 연습하는 것은 불행하다

 

고독해지면 괜한 시름과 걱정까지도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고독이 풀릴 때까지 고독을 연습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더 깊게 해준다

 

 

 

고독은

용혜원

 

잔잔히 흘러 들어오는

고독은

삶이란 길목에서

잠시 동안이나마 쉬고플 때

휴식할 수 있는

의자와 같다

 

고독은

아름다울 수 있다

고독은

멋질 수 있다

 

한 잔의 커피도

더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고

홀로 있다는 것을

더 깊숙이 느낄 수 있다

 

고독은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외로움으로

푹 빠져들 수가 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고독의 미로

용혜원

 

고독이 시작되면

나의 생각은

미로를 찾는다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허망해져

허무한 바람만

세차게 불어온다

 

누구를 사랑해야만 할까

 

 

 

고독이라는 열병

용혜원

외로움이

마음을 산산조각 나게 만드는

이 가을엔

피가 뜨거워져

고독이 열병을 앓는다

다 잊혀졌나 했는데

가을바람이 내 마음에 불어와

숨이 다 막혀버린 듯 답답해

외롭다는 말이

온몸을 감싼다

삶이 너무나 평범한 것 같아

벗어나고 싶다

 

타오르듯

붉어지는 단풍잎처럼

마지막까지 물들어

사랑하고 싶다

이 가을엔

흐르는 세월이 안타까워

눈물만 질벅거리는데

벌레 우는 소리조차

구슬프게 들린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누구와 사랑을 할까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후회만 가득한데

바람 불어오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꼭꼭 채워두었던

마음의 단추를

하나하나 다 풀고

먼 길을 떠나 사랑하고 싶다

 

 

 

깊은 고독

용혜원

 

깊은 고독은

침묵만 흐르는

방 안에 갇힌 듯이

혼자 있을 때

가장 깊게 느낀다

 

 

 

미칠 듯한 고독

용혜원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어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둘이 같이 있어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

혼자 있으면

정말 혼자 남았다는 느낌이 들 때

미칠 듯한 고독이 찾아든다

 

하루 종일 몇날 며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고

편지 한 통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밥도 커피도 모든 것이 다 싫어지고

온통 따분함이 가득할 때

미칠 듯한 고독이 찾아온다

 

집을 나설 때 아무 소리 없고

집을 들어설 때 아무 소리 없고

살아가면서 혼자라는 느낌이

뼈저리도록 파고들 때면

미칠 듯한 고독에 미칠 것 같다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용혜원

 

모두 다 떠돌이 세상살이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누구를 만나야 할까

 

살아갈수록 서툴기만한 세상살이

맨몸, 맨손, 맨발로 버틴 삶이 서러워

괜스레 눈물이 나고 고달파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모두 다 제멋에 취해

우정이니 사랑이니 멋진 포장을 해도

때로는 서로의 포장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는 우리들

 

텅 빈 가슴에 생채기가 찢어지도록 아프다

만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은데

생각하면 더 눈물만 나는 세상

가슴을 열고 욕심 없이 사심 없이

같이 웃고 같이 울어줄 누가 있을까

 

인파 속을 헤치며 슬픔에 젖은 몸으로

홀로 낄낄대며 웃어도 보고

꺼이꺼이 울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살면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엔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

 

 

 

고독

원태연

 

외롭긴,

별 싱거운 소릴

이 친구가

그림자보다 더 따르는데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유안진

 

내 청춘의 가지 끝에 나부끼는

그리움을 모아 태우면

어떤 냄새가 날까

바람이 할퀴고 간 사막처럼

침묵하는 내 가슴은

낡은 거문고줄 같은 그대 그리움이

오늘도 이별의 옷자락에 얼룩지는데

애정의 그물로도

가둘 수 없었던 사람아

때 없이 밀려오는 이별을

이렇듯 앞에 놓고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를 안을 수 있나

내가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그대 사랑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나

 

 

 

가장의 고독

유일하

 

새근대는 아기모습

삐죽이며 코고는 엄마

밤 고양이 걸음 멈추고

눈 안에 빛을 넣어

쏘아보는 5월의 밤

 

헐떡거리던 세상은 숨고

고요한 별빛은 생긋한 새벽녘

아기가 얼굴을 찡그렸다.

무서운 세상을 보았나 봐

 

별빛이 내려와

쓰다듬은 손발에 경련이 일자

웃기 시작한 아기의 미소

밝은 세상을 보았나 봐

 

오롯이 커가는 나의 분신

 

달과 함께 먹 갈며 자맥질하던 밤

어느덧 붉은 선혈은 산기슭에

창밖을 밝히며 솟아오르는데

가정의 단란한 구실도 찾지 못하고

뻐꾸기처럼 밤새 지저귄 내 마음

 

 

 

고독

윤고영

 

! 있잖은가

비 오는 날

창문 열어 놓으면

나무 잎새에서 토닥거리는

쓸쓸함 같은 거

 

저녁나절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쯤에서

서녘 노을 바라볼 때의

막막한 그리움 같은 거

 

! 있잖은가

지금껏 걸어온 길 처연했지만

한편으론 정성 들여 갈무리 잘했다는

대견함 느끼며

위로받고 싶은 거

 

생각해 보면

세상 한켠에 툭 떨어진

정말로 미세한 존재일 테지만

 

우주 속 어디쯤 그 한 부분 지탱하는

질량 가득한 정신 있었다고

자위하고 싶은 거

 

 

 

고독

윤용기

 

외로움이 엄습해 오는

초가을 밤

허전한 가슴 달래며

한없이 걸어본다

 

강변을 따라

네온싸인 불빛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고독의 적막함이

풀벌레 찌르르 찌르르 합창을 한다.

 

멀리서 밤의 기적이

밤의 정적을 깨우는데

가슴 속에 묻어 둔 외로움을

기적소리에 훨훨 날려보낸다

 

 

 

고독의 계절이 올 때

윤춘순

 

찬서리 맞아 생기 잃고

곡기마저 끊어버린 언저리에서

 

옹골찬 가슴마다

시퍼런 멍울 하나씩 안은 체

해 질 녘 노을로 잠겨 들 그대

이내 마음 그리움만 가득하여라

 

차갑지만 상큼한 바람아

움츠리지만 따사한 햇살아

화려한 단 풍물 들어 위로할 때

이내 마음은 쓸쓸하기 그지없어라

 

따뜻한 감국 차 감싸 쥐고

장작불의 나무향기로 음미하며

떠나려는 임 마중물로 온 고독의 계절

서로 주고받는 무언의 눈빛은

 

그리움 소복이 담긴

눈물자국은 아닐는지

거리마다 수없이 널부러진 그대

그것은 사랑의 연서인지도 몰라

 

곳간마다 가득 채운 *라 솔리뛰드

그대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네.

 

* : 고독

 

 

 

고독은 밤에 피는 꽃

이국헌

 

고독은 밤에 피는 꽃

깊은 밤으로의 질주

 

멈출 수 없는 급행열차

뿌려지는 별빛들

레일 위에 부서지고

흩날리는 침묵의 피 바다

 

상처 입은 절규

절규 속에서 내리치는 장대비

벼락은 창가에 낙서처럼 긋고 사라져갔다

 

떨어져 나가는 상념들

밤에만 피는 고독의 꽃

정적 속에서

이 밤에 끌어안고 잠들어 버렸다

 

 

 

그게 외로움인 줄 모르고

이규리

 

시멘트와 물을 비벼 넣으니 단박에 벽이 생기고

벽을 사이로 순식간에

안과 밖이 나왔다

 

단단하구나 너에게

그게 외로움인 줄 모르고 비벼 넣었으니

어쩌자고 저물녘을 비벼 넣어 백년을 꿈꾸었을까

 

벽이 없었다면 어떻게 너에게 기댈 수 있었겠니

기대어 꿈꿀 수 있었겠니

 

벽이 없었다면 날 어디다 감추었겠니

치사한 의문들 어떻게 적었겠니

 

받아주었으니, 기대었으니

그거 내 안으로 들어온 밖 아니겠니

밖이 되어 준 너 아니겠니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이기철

 

누구도 함부로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로움을 사랑해 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을 저만치 보내놓고

혼자 앉아 외로움의 얼굴을 그려본 사람만이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외로움만큼 사치스러운 것은 없다

그의 손으로 무지개를 잡듯이

외로움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외롭다고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의 가슴속에 들어가

바알간 불씨가 되어보지 않는 사람은

외롭다고 말해선 안 된다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그 때, 한 방울 이슬처럼

외롭다고 말해야 한다

 

 

 

일곱 번째의 외로움

이대흠

 

빈 깡통에 고이는 장맛비처럼 외로움은 차고 넘쳤습니다 한 외로움이 오고 금세 다른 외로움이 줄을 지어 옵니다 처음의 외로움은 무겁고 큰 외투처럼 불편했습니다 나는 해충 피하듯 외로움으로부터 도망 다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외로움은 더욱 사나워졌습니다 외로움이 많을수록 외로움이 더 외롭습니다 어떤 외로움은 소리도 없이 다가와 나를 물어뜯습니다 오래도록 나는 외로움이 외로워하지 않도록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저 혼자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나를 찾아온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은 열일곱 번째의 외로움이 왔을 때입니다

 

 

 

혼자의 넓이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 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고독 한 잔 슬픔 두 방울

이민숙

 

그리운 건 그리운 거고

나는 그립다기보다는

외로웠다

 

질긴 등나무 이파리처럼

파르르 떨다 떨어지는

마른 줄기의 외마디 외침처럼

참 쓸쓸하고 고독이 깊었다

 

혼자라서 슬펐고

질긴 핏줄을 타고 오르는

눈물을 짜고 짜서 만든

독주를 매일 마셨다

 

한 잔은 슬픈 내 영혼을 위해서

또 한 잔은 눈물 많은 내 눈을 위하여

마지막 잔은 아픈 내 가슴을 위하여

 

 

 

고독

이복란

 

스스로 재가 되어 누워 있는

텅 빈 침실에는 자정만이 존재한다

텅 빈 침실

마치,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처럼 비어 있다

 

시침과 분침의 엇박자,

모든 움직임을 용서해 버린 시간

이제 자정은 스스로에게 돌아간다.

 

소멸의 잠 속에 건설한 밤,

부재는 성취되었으며

거기 흐르는 침묵은 순수하다

 

암흑의 고독

시간의 흐름을 깨는 이 행복

 

 

 

고독이 거기서

이상국

 

동해안 국도를 지나다보면

바닷가에 '고독'이라는 까페가 있다

통나무로 지은 집인데

지날 때마다

마당에 차 한대 없는 걸 보면

고독이 정말 고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독은 아주 오래된 친구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영혼이나 밤을 맡겨놓고

함께 차를 마시거나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온몸을 간판으로 호객행위를 하며

사는 게 어려워 보인다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으므로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가끔 동해안 국도를 지나다보면

고독이 거기서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으므로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가끔 동해안 국도를 지나다보면

고독이 거기서

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인다

 

 

 

고독의 미

이생진

 

절해고도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면 천벌을 받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예쁜 무당벌레

등에 원불교 짊어지고 온다

이것까지 미워하면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고독 앞에서는 미운 것이 없다

 

 

 

외로울 때

이생진

 

이 세상 모두 섬인 것을

천만이 모여 살아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욕심에서

질투에서

시기에서

폭력에서

멀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떠있는 섬

이럴 때 천만이 모여 살아도

천만이 모두 혼자인 것을

어찌 물에 뜬 솔밭만이 섬이냐

나도 외로우면 섬인 것을

 

 

 

외로움 얻어 돌아오는 길 빛나거니

이성부

 

크낙한 슬픔 한 덩리를 들고 나와

햇빛에 비춰보는 사람은

비로소 큰 기쁨을 안다

잃어버린 말 잃어버린 웃음

잃어버린 날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끝내 더 큰 획득에 이르지 않았더냐!

무릎 꿇고 멍에를 짊어지고

긴긴 밤 하늘에 내 별 길을 잃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음에 온 더 맑은 밤들마다

승리에 반짝였으니

 

이제 또 봄이다

아픔을 나의 것으로 찾아가는 사람만이

가슴 뛰는 우리들의 봄이다

외로움을 얻어 돌아오는 길

더 빛나는 우리들의 봄이다

 

 

 

고독

이세복

 

소슬바람에 시린 몸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햇살 한 줄기가

연탄불 같은 뜨거운 사랑으로 느껴진다

 

젊음을 홍엽처럼 불태웠어도

이젠 모든 것이 허무한 청춘

바람 따라 세월 따라

지는 낙엽 같은 얄미운 사랑

 

허우룩한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물밀 듯이 부채질하는 고독한 바람아 세월아

내 마음 흔들지 말아다오

 

시간은 물 흐르듯 황혼을 재촉하고

어느덧 고목 같은 육신에 옹이가 진다

 

힘듦도 아픔도 숨죽이는 가을처럼

열정마저 끝자락에 누이고

겨울의 문턱에 갈증을 풀어도 좋을

촉촉이 마르지 않는 사랑을 채우고 싶다

 

 

 

엽서를 태우다가

이외수

 

지난밤 그대에게 보내려고 써둔 엽서

아침에 다시 보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성냥불을 붙였다.

끝까지 타지않고 남은 글자들

 

 

 

고독의 연주

이용채

 

고독한 술병과

술잔에 떨어지는 복잡한 음악과

어느 숙녀의 홀로된 모습과

낯선 그림들이 있는

비창의 냄새가 나는 카페에서

헌 시집 하나 손에 들고

겉표지에서 흘러나오는

슬픈 냄새를 맡았다

앞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쯤이면

멀리서 들리는 추억만이

쓰러지는 나의 고독을 떠받들고 서 있다

소망으로 밝혀둔 촛불도

아주 여린 숨소리로 죽어가고

아파해야 할 시간들은

내가 연주해야 할 몫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잃어버린 외로움을 찾아서

이운룡

 

외로움을 찾아서 외로움과 함께

비를 기다리네.

발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고

온몸이 젖어 마음을 비우고

불러들일 나를 찾아서

 

떠나고 만나는 걸음들

이미 흩어져 간

한밤의 역광장 시계탑 아래

보내고 맞을 사람도 없이 나는

혼자 외로움 만나 외롭지 않은

참 오랜만의 내 어릴 적

꾀벗은 기쁨

 

외로움을 모르고 외로움 없이

어떻게 풀잎이 섰겠는가,

풀꽃이 피었겠는가,

기를 쓰고 악을 쓰며

휙휙 지나가는 시간에 실려서

흔들리고 깨지는 자갈길을 가면서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이 뒤집혔는지

모르고 덜컹거리는 우리들

가슴 밑장을 들여다보면

어느 틈새에도 외로움은

보이지 않네.

 

외로움을 모르고 외로움 없이

어떻게 인생을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일요일의 고독

이원

 

햇빛이 어린 나무 그림자를 아스팔트 바닥에서 꼼짝 못 하게 하고 있다

아이가 제 그림자 속에 공을 튕기며 걸어갔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나란히 땅에서 하늘로 수평을 끌어올리며 솟구쳤다

타워크레인의 기다란 줄 끝으로 나무 한 그루가 끌어올려졌다 비닐 안에 뭉쳐진 흙더미가 뿌리를 감추고 있었다

시간은 수십만 개의 허공을 허공은 수십만 개의 항문을 동시에 오므렸다

 

 

 

혼자 남은 지구의 고독

이원

 

체육관에는 공 튕기던 소리가 빽빽하다 엇갈리며 빠져나가던 발들이 가득하다 2층에는 스탠드가 있다 오래 비어 있었는데도 사람 형상이다 곳곳에 함성이 굳어 있다 문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밀고 있는 순간은 벽을 벗어난다

뛰기 좋아, 뛰는 발들이 있다 발을 들면 허공이 시작된다 더 뛰어오르는 허공이 있다 울기 좋아, 문이나 창 삼키지 않고 주륵주륵 흘러내기 그 자리에서 미끄러지기 불길처럼 날뛰기 이것은 허공의 놀이 쇄골에 알들이 놓이던 날 바닥은 피부처럼 벗겨지고 있던 날 둥그렇게 깎는 법을 알고 싶다 넓은 깃 셔츠처럼 허공을 입어보던 날 이것은 지구의 천성

뛰기 좋아, 자꾸자꾸 사라지고 체육관은 남는다 아직도 텅텅 울리는 탁탁 내리치는 턱턱 막히는 소리가 있다 벽은 더 물러선다 체육관은 계속된다 그림자들을 펴서 말리고 있다 성한 울음을 골라내고 있다 공은 뒹굴고 있다 발소리들은 몰린다 가장자리에 오도 가도 못하는 희미가 있다

체육관은 약간 높은 곳이다 자세히 보면 그렇다 조금씩 조금씩 밀어 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벽의 놀이인지도 모른다 놓친 제 얼굴처럼 허공이 체육관을 쓸어보는 장면도 있다 자국은 허공에 난다 체육관은 시멘트로 만들어졌다 희고 단층인 그곳은 시체를 보관하는 곳이라고도 들었다 휘슬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고독의 늪

이원문

 

그날의 그 시간도

이 시간의 오늘도

나에게 꼭 있어야 할 시간도 있었고

있어서는 아니 될 그 시간도 있었다

 

밤과 낮을 모르고

찾아 오는 적막감

앉아 있다 일어났다 이 몸 무엇 하나

나 어디에 와 있는지 나도 모를 마음

 

다음 길 여러 갈래

어느 길을 딛을까

깨무는 이 손톱 아프다 하지 않으니

지나온 그 날도 아프다 하지 않을까

 

기쁜 날도 있었고

슬픈 날도 있었다

가야 할 그 먼 길 앞도 뒤도 없는 길

먼 내일이 그리워 그날 찾아 나선다

 

 

 

고독의 창

이원문

 

앉아 있다

일어났다

긴긴 밤은 그렇게

꿈과 함께 지난는데

홀로 갇힌 나만의 방

 

함께 할 꿈 없고

밤 아닌 이 한낮

누구의 소식도 안 온다

그저 보이는 창밖 넘어

기다림 아닌 기다림

 

넋 잃은 이 마음

무엇을 바라보나

허공의 파란 하늘

모두를 꺼내더니

한 조각 구름 위 이 마음 얹는다

 

 

 

고독

이유리

 

스멀스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도적질한다

 

부를 이름조차 없는

외로움으로 비틀거리다

쓰러지면

 

슬픔을 위장한

어설픈 미소로

나를 향해 비웃듯 쏟아내는

웃음, 웃음소리

 

 

 

고독하다는 것은

이정하

 

날고 싶을 때 날 수 있는 새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피고 싶을 때 필 수 있는 꽃들은 또 얼마나 행복한가

 

고독하다는 것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을 고스란히 비워 당신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그래서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고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그런 뜻입니다

 

 

 

가끔 외로워질 때면

이채

 

가끔 외로워질 때면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생각에 젖어 본다

무엇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까,라고

외로움의 정체에 대해서

그 뿌리에 대해서

 

실연을 겪은 것도 아니고

삶이 힘겨운 것도 아닌데

징그러운 벌레가 살갖을 기아가 듯

소름이 끼치도록 외로운 것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겠지

삶에 대해 고뇌한다는 것이겠지

 

존재하기에 겪어야 하는 것

생이 다하는 날까지 느껴야 하는 것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보람이 있듯이

이별과 아픔과 외로움과 좌절이 있겠지

 

사랑의 그림자는 이별

행복의 그림자는 불행

어쩌면 외로움 또한

그 맞은 편에서 서 있는 감정의 그림자일 수도

 

가끔 외로워질 때면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생각에 젖어 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까에 대해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은 어떨까,라고

철저하게 즐기는 것

 

가끔 외로워질 때면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외로움을 즐긴다

그리고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돌아 세워진 삶과

현재의 삶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서

설탕 대신 외로움을 듬뿍 넣은

한 잔의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깊은 고독

이채

 

뻥 뚫린 가슴으로

밤하늘이 통째로 내려앉아요

 

투명한 슬픔으로

찾아드는 휭하는 바람 소리

귓볼로 챙겨 넣고

어둠에 묻힌 길 떠나는

밤 나그네가 되어요

 

하룻밤이 상실한다 하여

내가 와해 되지 않으며

백날을 고독 속에 묻힌다 하여

내가 증발하지도 않아요

 

홀로 피고 진 꽃

꿈속 낭떠러지에서

산산조각 꽃씨를 뿌려요

 

텅 빈 허전함보다

뿌리 깊은 고독이

차라리 사랑인 것을

 

 

 

고독을 위한 의자

이해인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고독의 맛

이해인

 

근거 없는 소문에 시달릴 때

아무도 내 편이 되어지지 않는

구설수에 휘말려

설 자리가 없을 때

혼자서 감당하는 고독의 맛은

씁쓸하고 씁쓸하여 오히려 달콤하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도 살아 있기에

그런 말도 들을 수 있는 거야

내가 나를 위로하며

슬며시 한 번 안아주니 새 힘이 솟는다

 

 

 

,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이해인

 

어느 날 혼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히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이희숙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이 말처럼 외로운 말이 또 있을까

같은 공간 마주 보고 있어도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는 사람처럼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래

이 말처럼 가벼운 말도 또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면 왠지 쓸쓸하고 쓸쓸해져

화롯불 같은 따뜻한 말이 그립다

 

오늘도 주인 없는 말이 하늘을 날고

시장 한복판을 서성이다

사연들로 넘쳐나는 저녁거리를 돌아

기억에도 없는 술집에서 막을 내린다

 

잘 가라

온 생애를 걸고 무시로 곁을 지킨 말

더러 위로도 되었지만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어 외로웠던 말

 

 

 

식물들의 외로움

임동확

 

한사코 어미의 품에서 떼쓰는 아이들처럼 찰진 논바닥에 도열한 벼들. 낱낱이면서 하나인, 또 하나이면서 낱낱인 식물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건 결코 내부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다

홀연 태풍처럼 밀려왔다가 그 자취를 감추고 마는 낯선 동력. 누구에게나 단호하고 거침없는 죽음 같은 바깥의 힘

필시 하나의 정점이자 나락인, 끝없는 나락이자 정점인 푸른 줄기마다 어김없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을 외로움의 화인(火印)이 찍혀 있는

여럿이면서 홀로인 벼 포기들이 끝내 제 운명의 목을 쳐 내는 낫날 같은 손길에 기대서야 겨우 고단한 직립의 천형을 벗어나고 있다

 

 

 

고독의 힘

임영준

 

 

 

끝도 보이지 않는 황무지에

속절없이 고랑을 파고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것만도

커다란 행운이다

절대 해갈할 수 없는

욕망을 지고

비참하게 쪼그라들기만 하는

딱한 몰골은

벗어날 수 없는 천형이다

그래도 그나마 몸에 붙은

고독의 힘이 아니라면

어찌 버틸 수 있었겠나

포기를 모르고

당당히 결기를 지킬 수 있겠나

 

 

 

고독의 시

임은숙

 

별 같은 환상만으로

순간의 희망을 안고 내일로 가기엔

슬픔의 깊이만큼이나 진한 고독을 짊어져야 합니다

하나씩 잃어가며 얻어지는

작디작은 빛들은

가슴 떨리는 아픔의 대가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내가 그대에게

사랑한다 속삭이며 뜨겁게 포옹하는 날까지

우리는 식은 차 한 잔과 스산한 바람의 대화를

수없이 엿들어야 합니다

 

밤기차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올 때

그대의 따스한 음성은 늘 내 귀가에 머무르고

슬픈 듯 흐느끼는 뻐꾸기울음소리

내 그리움이 되어 그대 창을 두드리고

 

하나씩 밀려왔다 다시 멀어져가는 하얀 밤이

잎새 끝에 매달려

새벽이슬 같은 여운을 남깁니다

 

 

 

밤의 별채 같은 고독 - 자동기술법으로

장석주

 

당신은 지나가는 사람. 무지몽매한 몸으로 떠도는 우리,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산다. 오후에 한가롭게 중국차를 마시고 책을 읽을 때, 당신은 다육식물을 키우는 일에 열심이다. 우리가 서로를 잘 알려면 몇 억겁의 세월도 모자란다.

천 개의 폐를 가진 밤, 바람이 스칠 때 별은 기침을 한다. 오늘 밤하늘에는 별의 기침 소리로 가득 찼구나! 건강은 인류의 과거다. 방광이 깨끗하다는 건 지독히 외로운 일이다. 외로움은 당신에게만 일어난 존재 사건이다. 외로움이 늘 슬픔을 부양하는 건 아니다. 나는 가끔 담낭에서 시를 끄집어낸다. 고양이는 노조를 결성하지 않는 유일한 야간 노동자다. 김밥 한 줄을 먹고 외투를 걸친 채 산책에 나선다. 눈사람이 서 있는 거리에서 참다운 고독은 돌연한 존재의 정전(停電)이다.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뒹구는 검은 비닐봉지 속의 주검. 고양이의 수염과 사지는 이미 뻣뻣하다. 당신은 항상 늦게 도착한다. 모든 것을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리기엔 늦었다. 당신은 쓸개즙 같은 검은 고독 속에서 표류한다. 고독은 386백만 년 전의 숲에서 살아온다

밤의 밑바닥에 당신의 이름을 썼다가 지운다. 이름은 세계와 나 사이의 중재자다. 눈 속으로, 하얀 눈 속으로 빠지는 당신의 발. 눈사람은 자꾸 어디로 사라진다. 당신은 말하고 입을 가리고 겨울의 시든 풀밭처럼 조용히 웃는다. 봄이 오면 기분이 좋아지겠지. 우리는 기린을 보러 동물원에 간 적이 없다. 봄이 오면 당신은 초록 화관(花冠)을 쓰고 거리를 걷겠지. 잘 웃는 당신, 겸손한 당신은 시금치를 좋아한다. 당신이 시금치를 먹을 때 소량의 철분이 당신의 핏속으로 녹아든다. 당신 속으로 하루치의 고독이 녹아서 스며든다. 당신은 밤의 별채 같은 고독을 끌어안으며 웃는다

 

 

 

고독

전남혁

 

혼자이고 싶어

텔레비전도 끄고

사랑하는 사람도 잊고

들리지 않던 내 숨소리도

싫어

벽에 아날로그 시계가

똑닥거려도 싫은 거지

설겆이거리 숟가락 꼴도 보기 싫어

좋은 꽃과 꽃말도

함께 했던 인연도

귀찮아

접어 두었던 것도

펼쳐 보는 습관마저 싫어

찰라 길어도 혼자이고 싶어

 

 

 

깊어 가는 가을 고독

전혜령

 

한잔의 술을 마시고

세상에서

잊혀지기를 염원한다

 

늘 동행하는 고독

이제는

익숙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아파하는 것은

 

아직도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하고

예쁘게

알콩달콩 살고픈 소망하나

 

가슴에 품고

운명이라는 실타레를 바라본다

 

깊어 가는 가을밤

적막을 흔드는

그리움은 서럽게 일렁이고

 

가을 고독은

뼛속까지 각인된 것 같다

 

 

 

고독(孤獨)의 미학(美學)

정민기

 

한밤중 혹은

비가 내리는 날엔

 

그대는 고독에

잠겨있지 않은가

 

한 번쯤

그 고독의 끝에 서서

 

그대를 생각하며

이 밤을 다 지새운다

 

 

 

고독 속의 행복

정숙자

 

좋은 책도 아니에요

두세 권 윗목에 놓고

쉬엄쉬엄 읽으며 살고 싶어요

 

많은 음식도 아니에요

상추 쑥갓 호미질하며

조용 조용히 살고 싶어요

 

옷이야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크면 줄이고

작으면 늘려 입지요

 

제가 참으로 원하는 것은

유리알처럼 영롱한 마음

죄 없이 저무는 하루이지요

 

그리고, 그리고 많은 노래도

뛰어난 노래도 아니랍니다

다만 꾸준히 부르면 그뿐

 

풀꽃 하나 새로이 피고

낙엽들 우수수 몰리는 저녁

행복도 쉬엄쉬엄 찾고 싶어요

 

 

 

사랑의 고독

정연복

 

졸졸 조르르

흐르는 시냇물

 

명랑의 춤을 추느라

외로울 틈이 없다

 

저 먼바다로

유유히 굽이도는 강물

 

어떨 땐 문득

고독한 얼굴이다

 

사랑은 생이

묵묵히 깊어지는 일

 

사랑하면 할수록

고독 또한 깊어지리

 

 

 

연필로 쓰기

정진규

 

한밤에 홀로 연필을 깎으면 향그런 영혼의 냄새가 방안 가득 넘치더라고 말씀하셨다는 그 분처럼 이제 나도 연필로만 시를 쓰고자 합니다. 한 번 쓰고 나면 그뿐 지워버릴 수 없는 나의 생애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고 지워버릴 수 있는 나의 생애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나의 생애 용서받고자 하는 자의 서러운 예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연필로 쓰기 잘못 간 서로의 길은 서로가 지워드릴 수 있기를 나는 바랍니다. 떳떳했던 나의 길 진실의 길 그것 마저 누가 지워버린다 해도 나는 섭섭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추고자 하는 자의 비겁함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오직 향그런 영혼의 냄새로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독

정태중

 

바람은 소리 없이 다가와

창가에서 친구가 되어주고

멀리서 오는 녹음은

고향을 찾게 하네

 

한 줄기 외로움을 쏟을 듯

마음은 뭉클해지고

힘없는 구름은

파도처럼 부서지네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조동희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힘겨운 어제들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이렇게 내 맘이 서글퍼질 때면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고독하다는 것은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 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나는

조병화

 

나는 약한 벌레와 같이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이오나

누구에게도 열 수 없는 외로움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약한 벌레이오나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 그와도 같이

미미한 인생이오나

 

나는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외로움 하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나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운 벗에게

조병화

고독하십니까,

운명이옵니다

몹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습니까,

운명이옵니다

어이없는 배신을 느끼십니까,

운명이옵니다

고립무원, 온 천하에 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계시옵니까

그것도 당신의 운명이옵니다

, 운명은 어찌할 수 없는

전생의 약속인 것을

그곳에 그렇게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는 것도

이곳에 이렇게

가랑잎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도

 

 

 

봄의 묵서

조용미

 

당신은 몸뚱이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독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요 살가죽의 고독, 눈꺼풀의 고독, 입술 가운데 주름의 고독, 엄지와 검지 사이 살이 구겨진 듯 오래 접혀 있을 때의 고독, 무너지지 못하는 등뼈의 고독, 종아리 속 정강이뼈의 고독, 뭉클뭉클 흘어나오는 어두운 피의 고독을

당신도 혹 이곳에 발붙이고 있어도 늘 저곳을 향하고 있는 마음이 따로 있진 않은지요 자의식 과잉의 먹구름이 늘 폭우를 동반하고 머리 위를 떠다닌다면 그 정신과 육체는 너무 습도가 높아 목까지 찰랑이는 슬픔이 그득 차 있겠지요

어떤 마음은 슬픔의 힘으로 무럭무럭 자라 꽃과 잎을 피우고 열매 맺고 스러져갑니다 어떤 마음은, 몸속 어딘가에 깨알 같은 혹을 만들어놓고 키웁니다 습도가 불러들인 미세한 파장으로 단단하게 뭉쳐진 혹은 몸 안에서 따뜻하고 서글프게 머뭅니다

생강나무에 물이 올라 노란 꽃이 맺혔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꿰뚫어보면 그 실체가 물질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노랑에서 분홍으로 봄이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습니다 아아, 몸이 달라지고 있는 봄입니다

늘 걷던 길이 햇빛 때문에 달라 보이는 시간, 봄볕에 발을 헛디딥니다 햇빛 때문에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가 달라지다니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봄볕에 하릴없이 연편누독만 더합니다 부디, 마음 때문에 몸을 소흘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독의 방

차진주

 

사방으로 흐르는 하이얀 잉크에

투명한 창을 내고 시를 쓴다

바람을 묶어 단단히 메어두고

그 시로 난 길에 청보리밭

청명한 내음이 입속에 오도독 씹힐 때

영원으로 가는 내밀한 계단이

나직이 나를 부를 때

그 손 잡아 여여히 흐르는 강으로 회양목을 돌아

고이 들어앉은 앉은뱅이 숲

오래된 서커스처럼 안개 같은 향이 피어 오른다

영혼을 견인하는 차 야곱의 사다리

스톡홀름 증후군

콰지모도 콤플렉스의 아가씨들

영원을 향한 길목에서 자유를 찾은 소녀들의 밤

인생의 복락 삶의 뒤안길

수를 셀 수 없는 생의 명과 암

시간을 잊은 고독의 방

파두의 라틴어 원류가

깨어 있는 영혼으로 침묵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아서라,

영겁의 향기 부처님 자비가

고독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 고독

천양희

 

고독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가 그토록 고독을 사랑하사

()와 독()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었더니

어느덧 독고인이 되었다

고독에 몸바쳐

예순여섯번 허물이 된 내게

허전한 허공에다 낮술 마시게 하고

길게 자기 고백하는 뱃고동소리 들려주네

때때로 나는

고동소리를 고통소리로 잘못 읽는다

모든 것은 손을 타면 닳게 마련인데

고독만은 그렇지가 않다 영구불변이다

세상에 좋은 고통은 없고

나쁜 고독도 없는 것인지

나는 지금 공사중인데

고독은 제 온몸으로 성전이 된다

 

 

 

외딴섬

천양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밟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절망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일어설 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믿게 되었다

 

 

 

고독도 날 버린 날

최범영

 

피댓줄을 타고 나락이

방아간 기계를 쉴새 없이 스쳐가듯

이것 저것 그다음 또 이것 저것

한 시도 헛눈 팔 수 없는 삶이 있다

 

고개를 젖힐 때마다 마주치는 눈초리

한눈 팔면 날아올듯 째려보는 채찍

온몸은 한가지 일로만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외로운 싸움이다

어깨 저림과 눈 감김

더 이상 버틸 힘도 없다

 

모두가 다 떠나고 눈만이 덮힌 산

천둥과 번개를 갈갈이 찟겨

할 테면 해보라고 서 있는 고사목처럼

고독도 오늘은 날 버렸다

 

 

 

고독

최상호

 

백령도 떨어진 섬 꼭대기에

까만 수염의 염소가 홀로이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에 상처 입은 젊은이 모습으로

세파 다 겪은 늙은이 걸음으로

두 눈 껌벅이며 한참을 따라오다가

참꽃나무 뒤에서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 느리고 까만 소리

파도 위에 염소똥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58세 내 고독의 구도(構圖) / 최승자

 

 

고독은 끄려 하면 낱낱이 흩어져 보이지 않는다

고독은 먼지처럼 편재한다

그것은 58, 내 고독의 구도,

부르봉 왕가 태생도 어쩔 수가 없다

 

이 풍경의 구도 속으로 누가 흠칫 발을 들여놓는다

그림자도 없는 누군가가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칠판 위에 써놓는다

See thing as they really are

그러나 나는 안성맞춤의 정반대로 읽을 수 있는 시인이다

 

그리하여 허()한 시간들이 밀려온다

삶도 죽음도 없는, 유무(有無)를 넘어선,

허허(虛虛)가 밀려온다, 유유무무(有有無無)의 총체를 넘어선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노래했던 사나이는

저 초월의 허()에도 불구하고

질펀하게 쏟아지는 현실의 허()

어떻게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허()를 도()로 대체시켰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그래도 58, 내 고독의 구도

부르봉 왕가 태생도 어쩔 수가 없다

 

(폐허로 오시라 나의 아씨들이여,

더욱 슬퍼하기 위하여 오시라 내 시()의 아씨들이여

고독과 슬픔은 한 뿌리에서 나오는 것을)

 

* 노자, <도덕경>의 첫 두 구절

 

 

 

고독한 사람

최영철

 

말수가 뜸한 사람은 윗입술과 아랫입술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다 윗입술과 아랫입술 궁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사이를 아무나 함부로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어 잠시라도 멀어지면 심심하고 보고 싶어서 입술이 파리해지는 사람이다 잠시 떨어져 헛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가면 금방 침이 말라 죽을지도 모를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손발과 팔다리의 취미가 고독인 사람이다 소싯적 취미란에 아무 의심 없이 고독이라고 쓴 적이 있는 사람이다 손발과 팔다리가 제 일에 바빠 조금만 흩어져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사람이다 팔다리가 한통속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사람이다 보고픈 이도 없고 찾아 나서거나 악수할 이도 하나 없는 사람이다 온 힘을 풀고 손과 발을 허공에 늘어뜨린 채 홀로 묵상하는 척하는 사람이다

 

 

 

고독을 즐기며 살자

히영순

 

밥그릇 헤아리며 밥 담던 시절도

꿈같은 옛이야기

달랑 남은 두 식구

한 사람이 외출하면 끼니때가 서글프다

 

예전에 읽은 책이 생각난다.

마음한번 바꿔 먹으니

극락이 여기다란 책

 

그래 요리 강습을 하자 즐거운 마음으로

듣는 사람 없어도

보는 사람 없어도

 

갖은양념으로 조몰조몰 나물도 무치고

찌개도 보글보글

생선도 굽자

지난가을 까서 넣어둔 제비 콩 넣고

돌솥에 고슬고슬 밥도 짓고

 

이 귀중한 한 끼를 흘려버리면

평생에 찾지 못할 시간이 아니던가.

직접 만든

와인 한잔 곁들여 즐기는 시간

이 시간이야말로

진정 내 시간이며 나를 위한 시간인걸

 

 

 

고독이란 병

하영순

 

우울증이 안개 처럼

가슴을 적시는 날은

두 어깨가 무겁다

 

내 노트에는 우울증이란

입력되지 않았는데

누가 던져 놓았나

 

싸리비로 싹싹 쓸어버리려는데

가슴팍에 딱 달라붙어

스파크가 인다

 

김이 술술 나는

물이라도 덮어씌우면

도망가려나

 

두어라

차라리 바람을 몰아내자 허나

대문 박엔

동서남북 이정표가 없다

 

 

 

고독

한상숙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밤새 뒤척이며

삶에 몸살로 마음을 앓던 날

밤이 가져온 적막감에

감당못할 고독함으로

쑥쑥 고개드는 불량스런 마음에

스스로 죄인의 밧줄을 옮아매고 있다

이 시간

나는 침묵의 자폐아가 된다

세상에 다가서지 못하고

기름에 섞이지 못하는 물처럼

겉에서 빙빙 돌다

깊은 밤이면 서러움에

속울음 삼키고 나서

눈물 자국보다 더 선명한

외로운 그림자와 마주한다

 

 

 

고독

허광빈

 

가을 깊숙이 낙엽으로 지고

그리움 하나 마음 깊은 곳에

차가운 바람으로 품고

반가웠던 가을은

하루가 침몰해 가듯

또다시 쓸쓸해지는

어깨를 움찔하며 어색한 겨울을 품어야 하는

 

나는

가슴 속 그윽한 강물 거느리고

차가운 서릿발로

입김 모락이며 주절이는

햇볕 향해 꺾여진 갈대밭

외로운 몸살로 누워

숨차 오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편지를 쓴다

 

닫혀 있는 창 날빛 스며들면

창문을 열어 본다

행여 당신이 올세라

 

 

 

고독

허영자

 

그는

어깨동무

 

홀로 있는

많은 때를

찾아와주는 그는

 

지난 일을

후회하지 마라

세월이 너를

낫게 하리니

 

사람 사는 길

그 두려운 깊이를

가장 정적히

일러주는 그는

 

나를 키우며

나랑 함께 자라는

 

하나뿐인 내

어깨동무

 

 

 

고독

현영길

 

고독 외로울 때

찾아오는 친구! 당신 절망 속

다가오는 친구! 고독 삶 위로되기보다 나

돌아보는 친구가 된다면 그 친구! 희망 아니겠는가!

그대 힘들게 하는 고독한 발자국 뒤돌아본다면

삶 행복했던 순간 보이지 아니한가? 그대

고독할 수 있다는 것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 기다리고 있지

아니한가?

 

 

 

고독을 달래며

홍사윤

칠흑 같은 어둠

침묵의 강이 흐르고

허전함이 가슴을 파고든다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고개 숙인

애달픈 동병상련의 그림자

외로움을 떨치지 못한

비련의 소설 속 주인공인 양

삶을 눈물로 채우고

가슴을 파고드는

어두운 골방의 차디찬 입김

침묵의 망부석이 되어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

햇살이 비치는 십자가를 응시

무언의 기도를 올린다

 

세상에 빗장을 걸었던

고독한 심사(深思)

한 줄기 햇살에 실어 보내리라

 

 

 

고독이 앉은 의자

홍수희

한동안 비워두었던 의자에 앉았습니다

멀리 안개를 두른 초여름 숲이 웃음을 보냅니다

이렇게 조용히 마주보기도 얼마 만인지...

 

오래 내 마음속 소란한 동안 비워두었던 의자에

고독이 저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독이 앉았던 그 자리에 오늘은 내가 앉았습니다

고독으로 가는 길에 나에게로 가는 길이 있으니까요

나에게로 가는 길에 당신께로 가는 길이 있으니까요

 

나 이렇게 서둘러 당신께로 돌아온 것은

당신께로 가는 길에 세상으로 통하는 환한 길이 있기 때문,

 

가진 이와 가지지 못한 이 힘있는 이와 힘이 없는 이

기뻐하는 이와 슬픔 중에 있는 이

더불어 어울려 살아가는 살맛 나는 세상

오직 당신께 해답이 있기 때문

 

마음은 소란한 도시를 배회하고 돌아오는 날

나 끊임없이 당신께로 돌아섭니다

 

 

 

외로움이 말을 건넬 때

홍수희

 

외로움은

외로움을 알아본다

저를 닮은

얼굴을 알아본다

 

너의 외로움이

내 안의 외로움에게

끈질기게 말을 건네는 이유가 그것

어깨 위에 바람을 싣고

쓸쓸히 돌아서던 뒷모습이여,

 

내 안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을 불러 세워

따뜻이 손 잡아주고 싶지만

 

세상에는

애초에 시작하지 말아야 할

만남이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도

있는 것이다

 

내 안의 외로움이

저를 닮은 외로움에게

눈 시리게 손을 흔든다

 

 

 

고독

홍인숙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시()를 썼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시()를 쓴다

 

그러나

내 앞엔 언제나

백지(白紙) 한 장

 

눈물에 젖는다

 

 

 

원반던지기 선수의 고독

홍일표

 

너는 하나 남은 태양을 쥐고 있다

차고 딱딱한

어느 날의 이별 같은 것

단 한 번의 사랑 같은 것

 

해 지는 저녁에도 너는 너를 던져서

사라진 방향을 읽는다

내가 어디 갔지?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몸에서 빠져나간 몸은 눈보라로 산화한다

고백하자

우리는 언제나 이곳이 아니었다고

우리는 단지 구름의 높이로 부풀어 꽃피는 심장이었다고

 

입이 없는 노래처럼

너에게 날아가는 돌멩이는 불붙지 않는다

심장을 조여 매고

겨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크고 둥근 태양을 강행한다

몸밖으로 던진 슬픔이

다시 돌아와 발등을 짓찧는 날

 

반쯤 기울어 빈 수숫대로 서 있는 저녁

흙투성이 태양을 방패처럼 잡고 혼자 어스름을 견딘 몸이 말한다

 

길 끝에 서서

밤새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그의 눈가에 죽은 이의 이름들이 오래 붐비고 있을 거라고

 

 

 

하얀 고독

홍해리

 

너는

암코양이

밤 깊어 어둠이 짙을수록

물음소리 더욱 애절한

발정 난 암코양이

동녘 훤히 터 올 때

슬슬슬 꼬리를 감추며 사라지는

밤새도록 헤매 다녀

눈 붉게 충혈된

새벽이슬에 젖은 털을 털며

사라지는

비릿한 발걸음

유령 같은

 

 

 

잔인한 고독

황금찬

 

언제부턴가 내게 와서

벗이 되었다

 

입이 없다

 

한번 오면 갈 줄 모르고

끝장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외출이라도 하면

책갈피 속에나

서랍 안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가

어느새 나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선다

 

키는 신통히도

나와 꼭 같다

 

눈을 감으면

그는 반대로 눈을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새벽 다섯 시 오 분 전

꼭 그 시각에 잠을 깨우고

싸늘한 만년필 뚜껑에 앉아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듣고 있다

 

 

 

낯선 외로움

황동규

 

자기만의 길이와 폭과 분위기를 가지고 살면서 풀에겐들

왜 저만의 슬픔과 기쁨이 따로 없으랴.

마주 앉아 찻잔 비울 때까지

속으로 삭이고 삭여야 할 생각 왜 없으랴.

삭이고 일어설 때 사방에 썰물 빠지는 적막, 속의 황홀

학교 식당 건물과 땅 틈새에 배죽 나온 저 풀,

오늘은 노란 꽃대 하나 조그맣게 내밀었다.

손가락 끝으로 얼굴 들어보니

죄끄만 꽃잎과 꽃술들이 오밀조밀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조금 싸한 냄새까지 한 모양을.

왜 한 뼘쯤 앞으로 기어 나와 좀 편히 살지 않을까,

거기도 인간의 발길 채 닿지 않는 곳인데.

풀에게도 끼가 있는가?

기차게 고달파도 제 본때로 살아보겠다는?

말이 없어서 그렇지

몸을 온통 졸이는 황홀한 낯선 외로움이?

 

 

 

고독

Ella Wheeler Wilcox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게 된다

이 후줄근한 세상은 근심거리가 차고 넘치지

그래서 어디선가 즐거움을 빌려야 한다

 

노래하라, 그러면 산천이 응답하지만

한숨을 쉬면 허공에 흩어진다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에 튀어 오르고

근심하는 소리에는 움츠러든다

 

즐거워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찾지만

탄식하면 오다가도 발길을 돌린다

그들은 너의 즐거움은 전부 나눠갖길 원하지만

너의 슬픔은 아무런 필요가 없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가 많아지지만

슬퍼하면 있던 친구도 모두 잃는다

너의 달콤한 포도주를 마다할 사람은 없지만

인생의 쓴맛은 혼자 맛봐야 할 것이다

 

잔치를 열어라, 그러면 집안이 북적이지만

음식을 아끼면 세상은 너를 지나쳐 간다

성공하고 베풀어라, 그러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만

너의 죽음에는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연회장에는 으스대는 저들을 위한

넓은 공간이 있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 둘

고통의 좁은 회랑을 지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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