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1
강건호 – 나 하나 가는 길에
강은교 - 고독
강지산 – 절대 고독
고영민 - 고독
고은영 – 고독
고재종 - 외로움은 자라서 산이 되지 못하고
고정희 – 소외
고정희 –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고형렬 – 외로움을 향해
공석진 – 고독 처방
곽상희 – 고독 – 이기심에 대하여
구분옥 – 고독
구석본 – 마네킹, 고독을 입다
구석본 – 외로움은 길이 된다
권선한 - 고독
권오범 – 고독에 대하여
권오범 – 고독을 마셨더니
권오범 – 고독을 사랑하며
권태인 – 고독
김경선 – 외로움의 면역 체계
김경철 – 고독
김관용 – 다만 저 집의 고독은
김근이 – 고독
김남조 - 고독
김대식 - 삶이란 언제나 외로움
김륭 – 고독의 형식
김명배 – 작은 고독
김명인 – 외로움이 미끼
김민정 – 고독의 순도
김상현 – 절대 고독
김석환 – 고독을 안고
김선민 - 고독
김선우 – 어른이라는 어떤, 고독
김선우 – 외로움에 대하여
김설하 – 고독한 그대에게
김소월 – 고독
김연아 – 검은 고독, 흰 고독
김영길 - 고독
김옥준 – 고독
김옥진 – 외로움을 오래 묵히면
김용언 – 고독 사냥
김윤진 -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김종석 – 고독
김종선 – 진한 고독
김진곤 – 마음의 고독
김철현 – 고독
김철현 – 찻집의 고독
김풍식 – 고독
김현승 - 고독
김현승 – 고독의 순금
김현승 – 고독한 이유
김현승 – 절대 고독
김혜정 - 고독
김화영 - 고독
나명욱 – 고독한 사람
나태주 – 내가 뿌린 고독
나태주 – 먼 곳의 고독
나태주 - 혼자서
나호열 – 고독한 사람
노천명 - 고독
노혜경 –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도종환 – 이 세상이 쓸쓸하여
도지현 – 황홀한 고독 속에
류근 – 고독의 근육
류근 – 니들이 내 외로움을
류정숙 – 고독
마경덕 – 그녀의 외로움은 B형
문리보 – 내가 아는 가장 고독한 자세로
문저온 – 자기 고백
문정희 - 고독
민경교 – 슬픔 속에 고독
박건호 – 고독
박서영 – 밤의 외로움
박소향 - 고독으로부터
박영숙영 – 고독한 그 남자
박인걸 – 고독
박인혜 - 고독
박종영 – 그래서 어떤 고독인가
박종영 – 언제 고독한가
박종영 – 외로움 때문에
박종영 - 친구가 되어 주는 외로움
나 하나 가는 길에
강건호
나 하나 가는 길에
아등바등 잘 살았다고
누구 하나 칭찬하지 않네
나 하나 가는 길에
싸늘한 안개만이 휘감더라
나 하나 가는 길에
누구 하나 동행 않네
미운 정, 고운 정
속정까지 다 주어도
나 하나 가는 길에 외로움만 앓더라
나 하나 가는 길에
가슴 아파도 홀로 가야 하고
괴로워도 혼자 가야 하네
서글퍼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려도
행복의 눈물겨움도 미움으로 지워버리고
그 길이 가시밭길이든
향기 잃은 불꽃 길이든
넘어서면 돌아오지 못할 그 길
은은한 국화 향만 곁을 맴도네
나 하나 가는 길
그 길에서
고독
강은교
잠자리 한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
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
서성대는 구름 한 장
잠자리를 덮어주었네
잠자리 두 마리가 웅덩이에 빠졌네
쭈글쭈글한 하늘이 비치고 있었네
서성대는 구름 한 장, 구름 곁 바람이
잠자리를 덮어주었네
잠자리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네
잠자리 두 마리도 울기 시작했네
놀란 웅덩이도 잠자리를 안고 울기 시작했네
눈물은 흐르고 흘러
너의 웅덩이 속으로 흐르고 흘러
너를 사랑한다
절대 고독
강지산
밤마다
어깨 위에 질긴 명주실처럼 엉켜
무섭게 짖누르는 고독에 쫒겨다닌다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할 많큼
절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다
실혼의 벽 앞에 무너져 내린다
어쩌면
세상에서 지워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망연함에 빠져
죽음마저 알지 못하고 쓰러질지도 모른다
두렵다
아니, 그립다
차라리 평안한 죽음이 다가오면
미치게 달려들어
나의 혼 마저 내 줄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내가 아니다
죽음보다 더 깊은 고독 안에서
나는 이미 죽어갔다
너는 열망으로 살. 아. 있. 어. 다. 오.
고독
고영민
그림자 아이들이 마당에 나와 논다
엎질러진 물처럼
일거리 없는 하늘이다
피 흘린 곳에 묻어다오
하나들 훝어진다, 아이들이
초저녁잠에 든다
내 꿈에 오너라
고독
고은영
살아도, 살아도
존재하는 무형의 그리움
그 선창가에 서성대는
수많은 군상들의 가슴마다
오롯이 홀로 피우는 꽃 하나
인고의 갈피마다
수고의 돛을 달고
늘 좌초되어 흔들이는 심연에
딱 한 송이어서 더욱 애달픈
고독이라는 꽃을 꺾을 자
그 누구?
외로움은 자라서 산이 되지 못하고
고재종
외로움은 자라서 산이 되지 못하고
탱자울에 방자한 참새떼 소리
이제 그만 시끄럽다 한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 몇몇
죄다 비닐하우스에 가버리면
하느님도 간간 바람으로 스쳐와선
후진 곳에 쓰레기 버리듯
은행나무 잎새를 우수수 쏟아버리게 한다
외로움은 빛나서 별이 되지 못하고
청대숲의 청대잎들
저희들끼리 몸을 버히게 하고
까짓것 알몸으로 알몸으로 온통 덤벼도
어느 손목뎅이 하나 건드리지 않는 홍시들
이제 그만 붉은 눈물 떨구게 한다
외로움은 질기고 질겨서
그래도 남은 무엇이 있다는 듯
삼밭의 폭배추를 포탄이 되게 하고
여차하면 날아버릴 듯 웅등거리게 하고
더는 반짝반짝 닦아내지 않는
장독대의 옹기들을 온통 검푸르게
간이 들게 하고, 간이 들어
미륵불처럼 처연하게 하고
반갑다, 어디서 개 한마리 짓는 소리에
마을 가득한 햇살만 출렁! 하게 한다
아아 외로움은 흘러서 강이 되지 못하고
봉두난발 갈대꽃만 미쳐 흔들고
강둑의 미루나무 끝으로나 달아나서는
이제는 외로움 저도 외로워
우듬지 한 떨림으로 청천 하늘 치받는다
소외
고정희
최후의 통첩처럼
은사시나무 숲에 천둥번개
꽂히니
천리만리까지 비로
쏟아지는 너,
나는 외로움의 우산을
받쳐들었다
외로움의 우산을 쓰고, 외로운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요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고정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외로움을 향해
고형렬
뱃속에서 개구리가 개굴개굴 운다
개굴개굴거린다 뱃속에서
나는 비 오는 길 끝을 본다
멀지 않은 산속을 본다 개굴개굴
끊임없이 울어대는 뱃속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남으로 뻗은 먼 길을 내다본다
비 오는 산속 나뭇길 쏟아져
잎가지 내려오는 물살 센 계곡물
소리를 괄괄 들으면서 지금
그 길을 가로막은 찻길에서 바라본다
나보다 오늘 나보다 먼저 가는 나
모든 말을 버리고 갈 그대여
모든 빗방울이 해변가로 이어져
폭포로도 들로도 이어진 그
물길을 나는 조용히 보고 섰다
언젠가는 그 외로움의 길로 들어설 것을
뱃속에서 개구리가 운다
개굴개굴 비 오는 뱃속에서 개굴개굴
아 나의 퉁퉁 불은 배여
외로움을 향해 비 오는 산을 본다
고독 처방
공석진
외로움은 병입니다
불신의 탑을 쌓아
마음의 벽을 구축하여
우울 속으로 자신을 익사시키는
지독한 그리움의 난치병입니다
믿음은 약입니다
갓난아이의 호기심으로
세상 속에 자신을 내어놓아
살가운 시선으로 의지하는
관심이라는 약입니다
사랑은 백신입니다
무지(無知)한 잣대로 휘두른 상처에
자신을 비워낸 깊이 만큼 어루만져
고독이란 이름의 몹쓸 병으로부터
평생 면역을 제공하는 백신입니다
고독 - 이기심에 대하여
곽상희
커피 한잔에
새벽바다 물새를 띄워놓는다
하나 밖에 없는 심장에는
쓸쓸함 한 대박 영 삭지 않는
싸리 꽃나무
커피 한잔 속에는
바닷가의 물새의 눈빛 따라
흘러간 책들이 시집들이 물거품
바글거리며 나와
외롭다 외롭다 속살거리고
책꽂이에서 튀어 나와
물거품 태우며 죽도록 쓸쓸했노라
분노했노라 분노했노라
그때 차가운 불 씨앗 하나
어둠에서 일어나
한 권의 시집이 되었듯이
그때 고독한 바람의 불씨 하나
노래가 되었듯이
커피 한 잔 속에는
살아진 어제와 미완성의 오늘과
내일의 꿈이
고독
구분옥
무섭고 외롭습니다
내 안에 내가 무섭고
곁에 있는 친구가 무섭고
시린 찬 바람이 무섭습니다
꿈속 무인도에 갇혔습니다
발버둥 치며 탈출을
강행하면 할수록
바다가 외면 하고
파도는 헛기침합니다
언제쯤 저 갈매기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알 수 없는 공포
두근거리는 심장에
미동 없이 가시가 박힙니다
마네킹, 고독을 입다
구석본
거두절미(去頭截尾)된 마네킹, 머리 없는 사람이다.
입 이전의 입으로 그가 말한다.
웃음 이전의 웃음의 표정을 짓는다. 지금 나는,
치명적인 환상의 정면에 서 있다.
표정 이전의 웃음소리가
조명등 불빛으로 현란한 몸짓으로 퍼져나가면
대리석 바닥에 엎드려 있던 사람들의 고독이 입 없는 말로
은밀하고 단호하게 속삭인다
거두절미하라. 석고로 굳은 눈물은 슬픔의 폐기물일 뿐, 추억이 말라버린 그리움은 박제된 영혼일 뿐, 단칼에 잘라라. 이전의 생각을 생각으로 자르지 말라. 빛 같은 바람, 어둠 같은 빛으로 자를지니 그리고 그 자리에 고이는 허공을 머리처럼 둥글게 말아 올리면 조립된 석고의 추억과 슬픔이 일으켜 세우는 매혹적인 외로움, 너의 골격이 되어 비로소 꽃을 수놓은 의상을 입으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리를 버렸다.
그날 이후 거두절미된 나는,
밤마다 꽃으로 수놓은 고독을 입었다.
조명이 꺼진 쇼윈도 같은 내 안의 방에서
외로움은 길이 된다
구석본
러닝머신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길이 열린다.
나무도 사람도 산도 구름도 없다.
오직 길,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다.
내장된 외로움이 스르르 열린다.
외로움은 길이 된다.
내가 달리면 외로움도 달리고
외로움이 걸으면 나도 걷는다.
주어진 시간이 다할 때까지
외로움은
나와 함께 걷는다
고독
권선환
붉은 산이 탐나서
어둠이 오기도 전
빈 하늘 홀로 나선 조각달
한평생 마주보며 함께 한
호수 속 그림자 두고
무심히 갈 수 없어
한자리 발길 멈추고
긴 침묵으로
하얗게 하얗게
고독에 대하여
권오범
누구나 씨앗을 보균한 채 태어나지만
가난으로 일찌감치 발아한 독하디 독한 것
억새처럼 날 세워 감성을 야금야금 갉아먹더니
행복의 싹마저 싹둑 베어버린 지 오래
한평생 동거해 보니 알겠더라
피를 말릴지언정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고독도 인연이라는 것을
탄탄대로로 달리던 행복이 조금 배끗거린다고
금방 하늘이 무너질 듯 가슴 쥐어뜯다가
다시 어설피 라도 맞물려 돌아갈 성싶으면
호들갑스럽게 희희낙락하는 것은
진정한 고독이 아닌 줏대 없는 방정의 하나
그리하여 고독은 처참하게 고독해본 사람만이 안다
목련이 필라치면 은근히 기승을 부리다가
은행나무가 낳은 노랑나비들이 하나둘 나부대면 가슴 철렁
그러다 백설이 분분할라치면
저승에도 문지방이 있을까, 하염없이 우주를 헤매게 되는
고독을 마셨더니
권오범
앙바틈한 언더락스에 뛰어들어
그러잖아도 얼떨떨한 각 얼음에게
스카치위스키가 불같이 으름장 놓자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바탕 흔들어 싸움 부추기다
노리끼리해진 태풍 한 모금 삼켰더니
소주만 처리해오던 영세공장
오장육부가 발칵 뒤집혔다
치즈 한 조각 달랑 내려 보내자
삼겹살 기다리던 일꾼들이
구성없는 줄 아는지 투덜투덜
창자 꼬집어 생난리 난 밤
그러거나 말거나 티브이 따라 아프리카로 가
하이에나와 대작하다 얼음 떨어져
스트레이트로 홀짝거렸더니
아예 속이 파업해버렸는지 자꾸만 일렁이는 방바닥
그리하여 허기진 술병 붙잡고
우주를 뱅글뱅글 돌고 돌다
눈썹 싸움 말리지 못해
침대에 동댕이쳐진 몸뚱어리
고독을 사랑하며
권오범
매년 당해온 만추의 공격에
이젠 이골이 날만도 할 나이건만
무성했던 은행나무 추억들이
나비로 환생해 나부대니 가슴 철렁
자지러지는 앙가슴 달랠 길 없어
단걸음에 낙엽 밟아 굴리는 지구
도열한 낙엽송들 머리털이 에부수수해져
나보다 더 처참하게 허청대고 있다
멧부리 깔고 앉아
어깻숨 다독이며 둘러보니
몇몇 갈참나무들 입동도 모르는지
경잭적으로 낳아 젖물린 연녹색 이파리들
땅콩냄새에 이끌려온 다람쥐가 바위 꼭대기서
오도카니 합장하고 있어
한주먹 시주하고 저만치 서서 둘러보니
산이 여름내 추슬렀을 스란치마가 발치에 걸려 있다
고독
권태인
붉게 물든 석양이 하늘을 메우고 있지만
시간마저 멈춘 듯한 느낌으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다본다
창백한 눈빛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은
슬픈 가슴을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끝내지 못한 사랑이 막아서고
세차게 뛰고 있다고 여겼던 심장이
서서히 멈추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하늘 쳐다보는 것조차 두려움이 되었는데
통속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했던
세상살이 조각을 차표처럼 손에 쥐고
석양으로 걸어가는 길 끝에서 바람이 되었다
외로움의 면역 체계
김경선
틈날 때마다 외로움을 수집하는 것은 나의 취미
외로움도 희석이 되면 물안개로 피어오른다
비 개이면 잠시 딴전 피다가 여우비처럼
스멀스멀 내 영혼의 발목을 적시기도 하는,
외로움은 나의 오래된 지병
할머니를 뒤지고
어머니를 뒤져 누대의 계보 따라가면
굵고 가는 빗방울처럼
외로움에도 두께가 있다
수집한 외로움은 몇 종이나 있는 거죠?
멸종 위기에 있는 희귀종이 궁금해요
부르면 네하고 대답하는 것도 있나요?
글쎄요
궁금하긴 마찬가지에요
어느 박사의 연구논문 중 외로움 잘 타는 사람일수록
면역항체가 줄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외로움의 유전자는 돌연변이를 낳고
돌연변이는 또 다른 외로움을 낳는다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외로움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의 몸에도 절망이 잠복 중이다
고독
김경철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면
어두워진 방안에
조명을 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안은
시계의 똑딱똑딱 소리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의 소리만
연신 들릴 뿐이다
고독은
서서히 밀려오고
우물 안의 개구리 인양
우물 밖의 세상을
구경도 못 하니
바보처럼 한심해 보인다
빗소리는
잦아질 줄 모르고
나가지도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려고
침대에 누워서
뭐 없을까
애꿎은 핸드폰만
매만져 본다
다만 저 집의 고독은
김관용
저 집은 자정에 듣는 목소리 같다
첫 단추를 끄르기 위해 고독은 잃을 게 없다
가령 심장을 움켜쥐는 돌발적인 질병도 있겠으나
더운물의 욕조에서 손목을 긋거나
비싼 넥타이로 목을 맨 채 의자에 올라 확실하게 미끄러진다고 치자
이건 영혼의 일이 아니다
현관문과 지붕, 허파나 쓸개의 진실이 되어 보는 일
고독의 뼈와 살을 꺼내 다오
외쳐 보지만 당연하게도 고독은 사인이 될 수 없는 것
늦은 점심 후의 식곤증인 줄 알았다
믿지는 않았지만
대기업에 다니다 잠시 쉬고 있다는
돌멩이라도 던지면 와장창 깨져 버릴 것 같은 고독
조금쯤 취해 다녀온 공원이 그를 감싸는 껍질이었고
웃음이 터질 때까지 울어 보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
본일 말고는 다 아는 고독이었으니
늙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해
다시 태어나도 여기가 항상 고비일 거야
달리 갈 곳이 없었으므로 갈 데까지 가 보자는 것일까
결국 소름 끼치게 잔혹한 복수란 이런 것일까
우울증에서 시작해 알코올 중독으로 끝나는
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도 냄새로만 발견되는
그런 집이 들것에 실려 나온다
아직 오지 않은 집이었고 기억에서 사라진 집이라고 하자
다만 여기까지가 자정이었다
고독
김근이
오늘
한 나절
무료함을
커피
한 잔으로
다스려 놓고
허전한
저녁 시간을
술잔에
빠뜨렸다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취기를 달래주는
밤을
사랑하여 산다
고독
김남조
이제 나 다신 너 없이 살기를 원치 않으마
진실로 모든 잘못은
너를 돌려놓고 살려던 데서 빚어졌거니
네 이름은 고독,
내 오랜 날의 뉘우침이
너에게 와서 머무노니
삶이란 언제나 외로움
김대식
삶이란
늘 외로움의 연속이더라
혼자 무료할 땐
누구 함께할 이 있으면 좋으련만
수첩을 뒤져봐도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 하나 불러 같이 할 이 마땅찮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가 제 할 일 따라 도는 세상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외로움은 밀려오는 것
언제부턴가
이미 외로움에 익숙해 버린 생
작은 커피 한 잔이 무료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낙이더라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가는 거라고
이렇게 작은 커피 한 잔에다
외로움을 달래는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 그 자체더라
고독의 형식(形式)
김륭
미아삼거리 허름한 여관 세면대에서 양말을 빨았죠
팬티도 아니고 양말을 빠는데 거참, 물이 사람을 물고기로 봤는지
구중꾸중 꾸짖는 소리, 목 늘어난 넌닝구처럼 마구 쥐어짜는
물소리 한번 참 몰상식하데요
집 나간 마누라행세를 하데요 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당신 또한 구멍 난 양말을 신고 다닌 바람이었는지 모르죠 입을 틀어막기엔 걸레보다 양말이 낫다며 덜덜 목이 부러져라 얼굴을 돌리는 선풍기, 뒤돌아보면 늘 목이 탔던 길이어서 킁킁 양말 속으로 코를 들이밀었겠지만 몸이 화끈 달아오르데요 콧구멍에서 생선가시로 변한 나무 몇 그루와 구름이 조금 흘러나왔지만 나비넥타이를 매고 살기엔 머리가 너무 무거워졌더군요 발가락이 숨을 할딱거리데요 어항 속을 뛰쳐나온 금붕어처럼 울긋불긋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렸지요
내가, 내 몸을 벗어나기엔 사각 침대가
너무 깊더군요
작은 고독
김명배
거울에 비치지 않는
어릿광대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을 씹기도 하고
머리를 쪼기도 하는
너,
책을 읽고 있으면
손으로 눈을 가리고
무게로 어깨에 매달리는
너,
너는 누구니.
늘 내게로 와서
나를 요구하는 작은 고독
너,
거울에 비치지 않는
어릿광대
외로움이 미끼
김명인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낚싯줄이 닿아서
그와 줄 하나로 이어졌으나
등 푸른 고등어가 팽팽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줄 끝의 내가 아니라
세 칸 낚싯대의 탄력으로 버팅기는
등 뒤의 산맥이었으리
깊이를 몰라 뒤채는 물보라 허옇게
부서져 나가자
심해의 밑자릴 넘겨주시려는지
퍼덕거림의 뿌리가 가슴속까지 덜컹,
수심으로 전해진다
그토록 박차고 싶었던 외로움의 해구를 지나와야
비로소 감지되는 바다 검푸른 촉수가
내 몸에서 돋아난다
고독의 순도
김민정
네 고독
그 절정은
순도가 얼마일까
네 고독
그 빛깔은
채도가 얼마일까
네 침묵
그 뜨거운 파문
명도는 얼마일까
절대 고독
김상현
유령에게도 대출안내나 공과금 고지서는 날아오는구나
그 외는 스마트폰에 아무런 안부가 없다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타거나
북적거리는 저잣거리를 쏘다녀 보아도
나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된지 오래다
가끔은 골목을 서성이는 길 잃은 바람이 내 옷깃을 스치거나
여태 가물거리는 배곯이 별들이 내 눈물을 닦아줄 뿐
이웃들은 아직 살아있는 나를 떠나 버렸다
심장을 펴 만든 깃발을 흔들어 봐도
홀로 있는 바다는 너무나 망망하다
비록 멀리 있다 하여도 너는 나의 불빛이 될 수 있느냐
내 어둠이 깊다
고독을 안고
김석환
혼자이기 싫어 그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온유하고 마음 너그러운 그런 사람
만산에 산새들 그리고 자연의 푸르름
나는 그곳에 머물고 싶다
생각에 지나지 않지만
떠오름 만으로도 마냥 행복하다
그대가 하늘이라면
나는 들녘에 작은 꽃 한 송이가 되고 싶다
외롭다 하기엔 너무 가혹해
나홀로 별들을 올려보며 사색에 잠긴다
은하수에 쉼 하고 꿈을 꾸고 싶어
알 수 없는 내일의 삶을 갈구하는 오늘이
야속하고 서글프다
나약하고 가여운 초로의 여정은 눈물이듯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 나 떠나고 나면
바람이 휩쓸고 문밖의 그리움처럼 정막하겠지
그냥 혼자이고 싶다
사랑을 잉태한 그리움처럼
왜 마음이 이렇게 흔들릴까
고독이 낳은 그리움은 슬프다
오늘밤은 비가 왔으면 참 좋겠다
빗소리 들으며 그대 생각으로 채우고 싶다
고독
김선민
사랑이었다 어떤 말로도 내겐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날들의 눈물
무엇이었나 그대 이름 부르면
살고 싶은 그대를 난 느낄 수 있어
무엇을 내가 주저하는지
내게 다가올 사랑인데
그대 웃으면 나도 웃게 되니
체념하듯 그대 따라가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당치 못할
그대 꿈꿀 수 있어 난 행복한데
그대보다 내가 더 아플 자신 없어
그댈 부를 수 없어요
무엇을 내가 주저하는지
내게 다가올 사랑인데
그대 웃으면 나도 웃게 되니
체념하듯 그대 따라가지만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당치 못한
그대 꿈꿀 수 있어 난 행복한데
그대보다 내가 더 아플 자신 없어
그댈 부를 수 없어요
나는 무얼 주저하고 있는 것인지
오랫동안 기다려온 내 사랑인데
사랑한다는 그 말 할 수가 없어
그댈 부를 수 없어요
어른이라는 어떤, 고독
김선우
좁은 골목길 언덕에서 소녀가 소년을 끌어안은 채 칼등을 잡고 햇빛을 자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반달칼을 자기 손톱에서 꺼내 허공을 긋던 소녀가 소년을 안는다 비닐봉지가 부푼다 흘러내리는 새싹들 흘러내려, 부서지는, 일종의 꿈들
있잖아 난 결국 너랑 자지 않을 거야 어제 배운 그 시 기억나?
응 그림자를 팔아먹은 지 오래되었네
응응 그림자가 없으니 어른이 되어도 우린 함께 자지 못할 거야
침묵이 엄마인 검은 바람의 말, 담장 밑 깨진 화분에 가득 고인 소음들, 잃어버릴 집도 돈도 부모도 가진 적 없는 꽃씨들, 떠도는, 일종의 방패인 칼들
그림자가 없는 소녀와 소년이 한낮 골목길 언덕에서 시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애들에게 들릴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한다
미안해… 나도…… 사생어른이야……
외로움에 대하여
김선우
괜찮아
어떤 경우에도
나는 나와 함께이니까
괜찮아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나를 믿어 주는 한
고독한 그대에게
김설하
깔깔한 입안에
안주 없는 깡소주를 털어넣고
독약처럼 목젖을 훌치면
못다 한 이야기들이 가슴 저 밑에서
눈물 조각으로 흩어져 따가웠던
이유 없이 고독해지고 슬퍼져서
홀로 기울이는 술잔에
아픔을 섞어 마셔보았는가 그대여
밤은 어둠에 갇혀 진저리를 치고
이유 없는 슬픔이 눈물을 짜던
방황하는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질 못하여
새벽까지 잠 못 들지 않았는가 그대여
건너 산등성이가 붉어지도록
지키고 있던 술잔이 나동그라지면
물기어려 흔들리던 동공이 희미해지고
쪽창으로 부서질 햇살을 보지 못한 채 눈이 감기던
꿈결에도 범람한 강물에 마음 적시지 않았는가 그대여
희망이 더디게 오는 것일 뿐
썩은 동아줄 같은 운명이라고 단정 지었다면
그대여 속단하지 말라
그리고 맑은 거울에 자신을 놓고 바라보라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고독이 만만했다면 희망도 만만한 것이다 그대여
고독(孤獨)
김소월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시간만 늘 저무누나
바잽의 모래밭에
돋는 봄풀은
매일 붙는 벌 불에 타도 나타나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요
봄 와도 봄 온 줄을 모른다더라
이즘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면
오늘도 지는 해니 어서 져다오
아쉬움의 바닷가 모래밭이니
뚝 씻는 물소리나 들려나 다오
검은 고독, 흰 고독 - 변기의 말
김연아
그녀는 검은 올리브 같은 열매를 한 알씩
내 입으로 떨어뜨렸다
죽은 물고기와 재스민 냄새가 내 얼굴에 스민다
오라, 오라, 나는 노래하는 변기
내 목구멍은 회전문처럼 열리고 닫힌다
당신은 땅의 자궁에 부어질 것이다
아니, 나는 변기가 아니고, 오그라든 자궁이 아니다
이곳은 고해가 행해지는 신성한 화장실
당신은 눈물과 잉크로 가득 찬 가방
장엄한 보리수 아래 앉듯
이 비어 있는 왕좌에 앉으시라
흰 고독 위에 앉은 검은 고독, 당신은 깨끗이 정화될 것이다
고행자도 끌어안고 걸인도 끌어안고
즐거운 배설물이 담긴 황홀한 반죽통,
내 목구멍으로 당신의 피가 흘러갔다
당신의 심장에선 아직도 잉크가 새고 있나?
몸을 비울수록 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눈물로 가득 찬 목구멍
뱃속에서 부화시킨 새끼를 입으로 낳는
이브검은쇠숲개구리처럼, 당신의 입은 둥근 자궁
이것은 하늘을 향해 열린 동굴, 밤으로 통하는 입구
나의 길은 하느님의 창자보다 더 길고
모든 노선은 나를 통하게 되어 있다
고백과 예언이 뒤섞이는 밤,
나의 길은 당신이 낳은 미로를 끌고 멀리 가는 것이다
눈물 흘리는 아이들의 옹알거림처럼
이미 씌어진 것들을 지우기 위해
당신의 조율에서 멀리, 잘 닦여진 메모로부터 멀리
나는 인간의 연대기를 간직하고 거대한 속삭임을 듣는 자
당신이 동물을 먹고 산 채로 동물을 묻는 동안
귀머거리가 벙어리에게 귀 기울이는 동안
나는 씌어진다 흰 고독 위의 검은 고독으로
혹등고래처럼 엎드려 자기 별자리를 향해 가는 나는
잠이 없는 어두운 동물이다
고독
김영길
고독은 외롭고 고생스러운 삶인가
고독에서 벗어나면 웃음이 나온다.
나 홀로 살고 있어 고독하다 하지만
고독을 견디다 못해 고독 사(死) 하는
고독지옥(孤獨地獄)이란 말이 나온다
고독의 보약은 웃음이 보약이라서
웃음으로 병을 치료하고 웃으면
엔도르핀이 몸에서 생산되어 이 귀한
물질이 뇌나 뇌 척수에서 액에서
추출되어 진통 효과에 매우 탁월하다
인생의 고통의 고독도 웃음이 없는
삶은 괴로우며 허전한 마음이 깊이
파고들어 세상은 고독 병에 오염되어
남을 용서할 줄을 모르고 의견이
다르다 하여 남과 다투는 것은 바로
정신적인 고독 병인 것이다
요즘 세상은 시끄럽다 고독해 보인다
고독의 몸부림은 웃으며 살려는 노력과
진실과 정직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노력이 필요한 극복의 과제로써 웃음을
찾으려는 간절한 염원일 것이다
고독
김옥준
가끔 시끌벅적한 도심을 떠나
가족도 친지도 소음도 없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혼자가 되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아무런 조건 없이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갖자
그대 자신만의 자유를 느껴라
아름다운 햇빛 빛나는 새벽은
가장 어두운 밤이 가면 오느니
인간이기에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고독의 길 혼자 있을 때
불안해지고 초조해 하면
결국 혼자 걸어가는 삶 속에 불현듯
찾아오는 고독은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그대의 몫
혼자 조용히 사색하며 인간이기에
사고를 통해 성장하며
삶을 윤택하게 하겠지
가끔 고독도 즐겨 보고 싶구나
외로움을 오래 묵히면
김옥진
외로움을
오래 묵히면
폭풍처럼 악마가 된다
도막도막 잘라
화병에라도 꽂아두라
봄바람이 불어
뿌리 내리고 잎이 내리면
하얗게 목련꽃이 필라
사랑이여, 꽃구경 오시라
꽃향기 그윽한
내 방으로 오시라
고독 사냥
김용언
고독은 곁에 있는 바람
형체는 소리
아름다움을 구함이 모험이라면
깊이를 재는 것은 위험한 몸짓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비에 젖은 연인을 생각케 한다
조금 빠져들면
사랑 같은 수렁
사랑의 상실이 고독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잃었을까
고독 사냥은
천길 언덕에서 뛰어내리는
모험
목숨을 던지면
그때사
사랑보다 깊은 고독도
자릴 비운다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김윤진
낮은 회색 돌담 주위의 몽롱한 빛깔처럼
흐릿한 윤곽으로 기쁨의 무아경은
옅은 은별 가득한 심연 속으로 던져졌다
몸 안에서도 반짝거리는 실바람 눈짓 춤
햇살같이 흩뿌려져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모래알처럼 내면의 유리창으로
쏟아져 흘러나온 애련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무작정 길을 나서서, 맞는 모든 이에게
낯설지 않은 다정을 기대 해보지만
찬바람 가슴 깊게 괴어들 소지만 다분할 뿐이다
홀로 살리라 다짐했던
수많은 나날들을 삶의 찬 마루나
누마루에 뉘어 生 가운데, 잊고 쉴 수 있기를
사랑이 곁에 있어도 외로운 날에는
사랑과 더불어
속 시원히 목청 높여 노래라도 부르자
고독
김종석
똑바로 서서 걸어가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걸으면
사람들이 보고 싶다
세상 느끼고 싶다
내 마음 안타까워해도
이것들은 나를 피한다
쓸모 있는 것 몇 가지 있으니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뼈 조각들
모두모두 주고 싶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고독을 벗어나는 유일한 것
수없이 생각하고
심장소리 들을 수 있고
앞을 볼 수 있어 죽음보다 싫다
진한 고독
김종선
마시다 남겨놓은
진한 커피의 향기와 빈 테라스 가득
조용히 내리는
비가 피어 올리는 풋풋한 흙내가
도심을 잠재운 어둠속
잠에서 깨어나는 네온 불빛들과
습관처럼 다가오는
그리움 진한 흔적들이
고즈넉한 밤 진한 고독 되어 밀려든다
마음의 고독
김진곤
심장의 고독은
어찌된 일일까
요동치며 파도치는 성산
저 요란한 바다 같다
삶을 건너야 할 인생 다리
힘들어도 가자
밤은
쏜살같이 곤두박질
인생아 희망만 부르자
고독
김철현
어디에서 내려온 하늘일까
색조 짙은 그림자는 상실된 공간을
더욱 진하게 넓혀가고 틈새로 기어드는 바람에
비좁도록 무서움이 채워져 간다.
사방으로 포위된 절망, 그것은 현실의 호흡
미처 경험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두려움
그러나 습득된 익숙한 습관들처럼
속속들이 차오는 간성 혼수로 의식을 잃는다
갇혀버린 영혼의 조각들은
울림 없는 육체 속을 외쳐보지만
터져 나오지 못하는 웅변일 뿐
손댈 수 없는 말기 병을 안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잠식하며 흩어지는 시각마저 멈추어 버려
옥고를 치른 듯 초췌해진 몰골로 완연한
병색이 짙은 채로 또 다른 교도소에 선다
이대로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 텐데
일어나려 버둥대 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곰팡내 나는 멍석자리 거두지도 못하고
밝아지지 않는 어둠에 기미를 갈망하며
감기려는 두 눈에 소망으로 매달아보지만
박약한 의지가 원망 먼저 보내는 바람에
미처 보지 못하는 희미한 등잔불이 되고
맹인 된 영혼의 꺼져 가는 발악처럼 불똥이 튄다
어디에서 솟아오른 바닥일까
어둠으로 짙어진 그림자는 남지 않은 공간을
이중벽으로 하늘을 내리고 땅을 바르더니
몸 돌릴 틈도 없는 시루떡처럼 숨을 죄어 온다.
영혼의 자유, 그것은 어둠을 이기는 처방
부식되어 가는 놋쇠를 닦아내듯 환한 빛처럼
핏줄을 돌게 하는 포도당처럼 살에 꽂힌 희생에
되살아나는 생명을 본다
찻집의 고독
김철현
희미하게 흐르는 발라드의 음악 따라
먼지 묻은 전등갓이 춤추듯 흔들리고
여닫는 바람만 시린 연인 되어 마주하면
찻집의 고독은 여전한 긴 밤을 노래한다.
그리움은 탁자 위로 뒹굴며 떨어지고
불빛 하나 외로이 찻잔에 스며들면
따사로이 부어 놓은 기다림의 마음은
수증기처럼 빠져나가 사방을 맴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그리움도 깊어 가고
수차례 기울인 핑크빛의 찻잔에는
기다림의 자국이 나이테처럼 끼어있고
지루한 허공만 채우며 입 벌리고 있다.
기다려 기다려도 오지 않을 임이건만
부질없이 기다려 홀로 앉아 있는 것은
하릴없는 사랑의 허무한 그림자일 뿐
찻집의 고독은 오늘도 깊어만 가고 있다
고독
김풍식
어제
오늘
내 앞에 놓인
하얀 백지 한 장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
그저
고독하기만 하다
고독
김현승
너를 잃은 것도
나를 얻은 것도 아니다
네 눈물로 나를 씻어주지 않았고
네 웃음이 내 품에서 장미처럼 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눈물을 쉬이 마르고
장미는 지는 날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너를 잃은 것을
너는 모른다
그것은 나와 내 안의 잃음이다
그것은 다만...
고독의 순금
김현승
하물며 몸에 묻은 사랑이나
짭쫄한 볼의 눈물이야
신(神)도 없는 한 세상
믿음도 떠나
내 고독을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왔기에
흙 속에 묻힌 뒤에도 그 뒤에도
내 고독은 또한 순금처럼 썩지 않으련가
그러나 모르리라
흙 속에 별처럼 묻혀 있기 너무도 아득하여
영원의 머리는 꼬리를 붙잡고
영원의 꼬리는 또 그 머리를 붙잡으며
돌면서 돌면서 다시금 태어난다면
그제 내 고독은 더욱 굳은 순금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서 천년이고 만년이고
은밀한 약속을 지켜주든지
그렇지도 않으면
안개 낀 밤바다의 보석(寶石)이 되어
뽀야다란 밤고동 소리를 들으며
어디론가 더욱 먼 곳을 향해 떠나가고 있을지도
고독한 이유
김현승
고독은 정직하다
고독은 신(神)을 만들지 않고
고독은 무한의 누룩으로
부풀지 않는다
고독은 자유다
고독은 군중 속에 갇히지 않고
고독은 군중의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
목적 위의 목적이다
절대 고독(絶對 孤獨)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했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 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詩)는
고독
김혜정
그리움 하늘빛으로
떨어지는 언덕
바람꽃으로 누워 있는
슬픈 시절 속에
나는
한 잔의 술을 들고
에메랄드빛 고독을
털어내고 있다
고독
김화영
그 사람
함께 있어도
언제나 혼자
그대가
옆에 누워도
스미는 고독
두 줄 철로가
합치지 못해
각자 한 줄씩
외로운 여로(旅路)
석양 노을 속
못 잡은 손(手) 둘
깊은 가슴에
쌓이는 번민(煩悶)
나와 함께 가야 할
원초적(原初的) 외로움
고독한 사람
나명욱
죽어서도 잊지 말자
제 힘으로 일어나
일으켜 세운 맘
세상과 겨루며 살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으로
하루를 살더라도 떳떳하게
누가 돌을 던지면
맞아주고 웃어주는
돌아서 눈물 닦아도
더 높은 곳으로
정의의 뜻 속에서
맛 삭아 오르고 깊어지는
오! 그 영광 의지에 새긴
이 시대의 영웅
외로운 시인(詩人)
그대는 고독한 사람
오직 하늘만이 적이다
내가 뿌린 고독
나태주
내가 뿌린 고독의 씨앗이요
내가 키운 비애의 새싹인데
그놈들이 나보다 먼저 자라
내 앞길을 막고 섰네
내 하늘을 가리고 섰네
먼 곳의 고독
나태주
그곳이 얼마나
낯선 곳이니?
그곳이 또 얼마나
먼 곳이니?그러니 외롭고
먹고 자고 사는 일이
고달플 거야
그렇지만 말이야
여기서 생각할 때는
그곳이 또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고
아름다운 곳이니!
돌아오면 분명
그곳의 날들이
그리워질 거야
그곳의 고독과
그곳의 불편까지가
새로워질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그곳에 있을 때 충분히
그곳의 고독을 느끼고
그곳의 불편까지를
껴안아 주기 바라
돌아와 섭섭해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야
혼자서
나태주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꽃보다
두셋 이서 피어 있는 꽃이
도란도란 더 의초로울* 때가 있다.
두셋 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도
오직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이
더 당당하고 아름다울 때가 있다.
너 오늘 혼자 외롭게
꽃으로 서 있음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라.
* 의초롭다 : 화목하고 우애가 깊다
고독한 사람
나호열
죽어서도 결코
제 힘으로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제가 일으켜 세운 뜻을
바로 그 자리에서 지키며
오직 하늘과 겨루며 살았던
그는 누구일까
벼락을 맞은 채로
성장을 멈춘,
썩으면서도 향기로운
대청봉 부근
고사목!
다른 용도로 쓰이지 못해
늘 외로운
이 시대의 영웅은
고독
노천명
변변치 못한 화(禍)를 받던 날
어린애처럼 울고 나서
고독을 사랑하는 버릇을 지었습니다
번잡이 이처럼 싱그러울 때
고독은 단 하나의 친구라 할까요
그는 고요한 사색의 호숫가로
나를 달래고 데리고 가
내 이지러진 얼굴을 비추어 줍니다
고독은 오히려 사랑스러운 것
함부로 친할 수도 없는 것
아무나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것인가 봐요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
노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댈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왔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하여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이 세상이 쓸쓸하여
도종환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황홀한 고독 속에
도지현
내 앞엔
검은 아가리를 쩍 벌린
동굴 하나가
축축하고 차가운 입김을 내뿜으며
점점 내 몸을 휘감고 있다
스르르 감아 당기는
차가운 뱀의 혀
내 의지가 아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누구도 없는 나 혼자만의 세계
어둠의 장막에 갇힌
천애 고아가 되었다
그럼에도 싫지 않은 건
은근히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내재하였을지도
고독의 근육
류근
내게서 한 걸음도 달아나지 못하고
일없이 왔다 가는 밤과 낮이 아프다
며칠씩 눈 내리고
길은 홀연 내 안의 굽은 등성이에서도 그쳐
여기서 바라보면 아무런 뜻도 아닌
열망과 그 너머 자욱한
추억의 첩첩 도끼 자국들
내 안의 저 게으른 중심에
집도 절도 없이 가로누운 뼛조각 환하고
이제 어디로든 흘러가 몸 풀고 싶은
옛사랑 여기 참 어둡고
변방까지 몰린 시간이 오래도록 누워 사는
생각의 지붕들 위에 낮은 키로 쌓인다
눈 맞은 나무들이 고스란히
제 생애의 무게를 향해 손을 내밀 때
어디로도 향하지 못한 존재의 저,
광활한 배후
니들이 내 외로움을
류근
술 처먹고 사고 치는 잉간 쌨어도 대마초 빨고 사고 치는 년·봤냐? 쌔꺄, 니가 봤냐? 봤어? 술 처먹고 포장마차 앞에 세워진 일제 오토바이 한 대 냅다 걷어찬 죄로 방범한테 잡혀서 학동2동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대마초보다는 술을 더 처먹은 것 같은 아가씨 하나가 의경 귀싸대기를 후리치며 외쳤다 씨발놈아,
대마초가 영어로 뭔지나 알어? 내 이름이 마리다, 마리! 졸라 무식한 것들이 대마초를 잡고 지랄이야!
술 처먹고 사고 친 나는 마누라까지 불러 합의 보는데 나보다 더 술 처먹은 것처럼 보이는 아가씨는 의경 무전기까지 뺏어 들고는 밍구 씨,밍구 씨, 내가 밍구 씨 때문에 얼마나 외로운지 알어? 나 너무 외로워서 한 대 빨았어. 와 줄 거지? 올 거지? 에로 영화 배우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발로 찬 합의금이 두 달 치 월급에 이르는 사이 밍구 씨보다 먼저 강남경찰서 봉고차가 도착했고 대마초가 니들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어? 니들이 내 외로움을 알어? 이 씨발놈들아! 민주 투사 같은 자세로 아가씨 간신히 실려 가고 나자 미친년, 외롭다고 대마초 피워서 좋아질 거 같으면 난 대마초 아랫도리랑 간통이라도 하겠다. 합의서에 서명 마친 마누라가 담배 하나 빼어 물며 말했고 술 처먹고 사고 친 나도 그제서야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마초를 한 대 빨면 정말로 조금 덜 외로워져서 술 안 처먹고도 늠름히 버틸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싶어 순경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물었다 아저씨, 대마초는 합의금이 얼마쯤 해요? 순찰 나온 달빛이 흐흥흐흥 웃는 밤이었다
고독
류정숙
깨물면
오도독
뼈마디 무너지는 소리를 낸다
삼키면
양주보다 독하게
취해온다
뱉어내면
단장의 아픔
깨물 수도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형벌이구나
그녀의 외로움은 B형
마경덕
앞집 렌지후드에서 빠져나온 저녁메뉴와 반쪽 창문에 걸린 거실 표정을 책상위에 올려두고 잠을 설쳤다
프라이팬과 여자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닭다리튀김, 소시지볶음, 햄, 생선튀김…여자는 늘 프라이팬을 의지한다. 팬은 지나치게 입이 크다. 뱃살이 늘면 외로움도 품을 넓힌다
먼저 ‘마른 A형’과 ‘비만 B형’으로 외로움을 분류한다
소파나 여자의 무릎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오는 고양이 울음도 B형이다. 두 마리 고양이와 비만형 여자는 24시간 서로를 의지한다. 주방에서 맴도는 고양이의 허기는 여자의 우울증과 비례한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가면 여자는 프라이팬과 고양이를 붙잡고 있다
간간이 끼어드는 기침 소리, 그 음습한 소리는 주방 반대편에 산다. 문턱을 넘지 못한 누군가 그 방에 단단히 밀봉되어 있다. 여자는 가끔 방문을 향해 프라이팬을 던지며 소리를 지른다. 기침 소리에 그녀는 왈칵 고등어통조림처럼 쏟아진다. 마당 늙은 살구나무가 창문을 가리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외로움’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로움과 프라이팬, 폭식과 허기는 사랑과 동일한가? 리포트는 아직 미완성이다
내가 아는 가장 고독한 자세로
문리보
칩칩한 동굴 끝자락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쥐로 살지 않는다
새로 살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살지 않으니 무엇으로도 살 수 있다
텅 빈 눈동자가
보채는 어린것의 작은 얼굴을 가만히 핥는다
툭
박쥐, 네 거꾸로 사는 세상은 눈물도 거꾸로 흐른다
자기 고독
문저온
자기 고독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시인이 말했다
나는 토막 난 고등어처럼 앉아
자기고독,
읊조렸다
읊조리면서
간장과 고춧가루와 찧은 마늘과
된장을 푼 양념장을 내 몸에
끼얹었다 편으로 썬
무 위에 납작 누워
자기고독,
엄마가 죽을 때는
고등어조림 비법을 유언으로
받아 적어야 할지 모른다
내장을 긁어 낸 몸과
간장과 고춧가루와 찧은 마늘과
옆자리에 누운 모르는 고독
낙태하고 멍하니 눈 뜨던 대낮
체면을 구기니 태(胎)자를 과(果)자로 바꿔 쓰고
낯을 쓸어내리는데
낯이 없다
고독
문정희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다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몸이 깨어져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 번개
그대 참으로 아는가 모르겠다
슬픔 속에 고독
민경교
사람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말로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세상이 취할 때
나의 마음은
길도 없는 벤치에
홀로 앉아
뇌 속에 흐르는 세상을 본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고독이건
슬픔 속에서
요동치는 물결이든
모두가 보이지 않은
비탈을 타고
내 마음 깊숙이 흘러내린다
저 멀리서
어울려 드는 긴 메아리처럼
고독
박건호
나는 고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독이 찾아오면 생각이 비수처럼 날카로워지고
그 때마다 하나의 노래가 탄생한다
1989년 이후 고독은 절정에 이르러
모든 혈관마다 덩어리로 뭉쳐서 흐르고
어떤 것은 입술 끝이나 이빨 사이에서 바르르 떨기도 한다
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고
새를 새라 부르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이제 나의 고독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기로 한다
사람이 떠나든지 말든지 나의 고독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세월이 가면 원시의 모습 그대로
태초 솔가리 타는 냄새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나를 위로하려는 자는 좀더 고독한 다음에 찾아오라
나는 고독을 초대한 적이 없지만
눈뜨면 마주치는 것 대부분이 고독이며
고독은 때로 눈부신 금강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고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슴 위에 떨어지는 서늘한 흙의 감촉을 느끼면서
태연한 척 하지만
고독이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
그러나 나는 하나의 노래가 탄생할 때마다
하나의 우주를 만난다
밤의 외로움
박서영
열대야를 고장 난 선풍기 한 대로 보냈다
빗나간 목을 두꺼운 스카치테이프로 동여맨
밤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정이 들었나
선풍기를 끄면 잠이 오지 않는다
밤새 텔레비젼을 켜놓고 자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셋이서 한꺼번에 한 사람을 지목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달은 병을 앓다가 그들을 놓아주었다
나는 달의 뼈 하나를 집어 뭔가 쓰고
쓰다가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괜스레 선풍기의 미풍 약풍 강풍 버튼을 번갈아 눌러보았다
죽기 전에 저 고장 난 선풍기를 가장 먼저 버려야겠다고
심장에 몇 마디 꾹꾹 매장해 보는 가을밤
선풍기는 어떤 무늬를 가진 새처럼 울기 시작했다
고장 난 선풍기 속에 부엉이가 사나
밤의 외로움은 날개를 접고 부엉부엉 울다가
슬픔을 탈탈탈탈 털어내기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선풍기에서 깃털 같은 바람이 쏟아지곤 했다
고독으로부터
박소향
가슴을 닫은 자의 모든 정열은
다 시시하다
그 순간 네게
고독은 영원히 부재다
세월에 둘러싸여
더 이상 뜨겁지 않은 것들은
문을 닫아라
문틈 사이로 스며들지 모르는
고독을 위하여
고독한 그 남자
박영숙영
새벽에 눈을 뜨면
하루의 고된 삶을
또 시작해야 하기에
눈 감으면 시간이 달려갈까 봐
부풀어 오르는
생의 고뇌를 가슴에 안고
잠들지 못하는
고독한 그 남자
황소처럼
삶에 코가 끼어
사랑의 책임과 가족을 등에 업고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 되고
자식에겐
북극성이 되어야 하는
밤바다의 등대처럼
고독한 그 남자
한 번쯤은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고
한잔의 맥주를 마시면서
강아지와 함께 잔디 위를 딩굴며
어린아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의 휴가를 가져보고 싶은
고독한 그 남자
고독
박인걸
1
한파가 휩쓸고 간 계절
동상 걸린 가슴 위로 흰 눈이 내린다.
차가운 눈발이 오히려 포근한 것은
추위보다 외로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부풀어 오른 상처 위로
아픈 기억들이 쌓여만 가고
뼛속까지 저려드는 고독은
덧난 상처를 더욱 깊어가게 한다.
초승달은 잿빛 구름에 갇히고
빛나던 별들도 눈을 감은 시간
어둠에 갇힌 조각난 영혼은
가는 바람 소리에도 움찔거린다.
붙잡아 두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매몰차게 떠나버린 그대
버림받은 영혼의 동공(洞空)은
블랙홀보다 더 캄캄하다
2
태초부터 지금까지
허공을 달리는 태양아
어슴푸레한 밤하늘에
외롭게 떠가는 달아
억겁의 세월을
바다에 떠 있는 섬들아
홀로 지내는 고독을
내 어찌 모르랴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낙타와
둥지서 기른 새끼를 보내고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야
석양을 바라보는
주름살 깊은 노신사
우리는 모두
동류가 아니더냐
고독
박인혜
하나의 인간임을 알게 하는 것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더욱 자신답게 하는 것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 빛으로 인해
또 다른 빛을
찾아 헤매는
무엇이든 닿고 싶고
닿으면
빛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하나의 불꽃
그래서 어떤 고독인가
박종영
슬픈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겨우내 한참 동안의 침묵은
안부가 궁금한 그대의 이름으로 더욱 고독하다
매년 초겨울이면
북극에서 찾아온 기러기 가족이 빈 논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합창으로 차가운 하늘 녹이는 것을 보면
오래된 가족의 웃음이 그립고,
지난날 누군가 그리운 노래 불러주던
그 노래가 지금은 들리지 않는다 해도
미망의 아픔 속 서러움은 누구에게나 남아있는 것,
짧은 한나절,
메마른 바람에 푸석거리는 황톳길을 밟다 보면
가슴 풋풋하게 젖어오는 향기로운 이 땅의 흙냄새
그 땅 위에 푸르게 돋아나는 고향 보리밭길이 환하고,
동짓달 찬 바람에 봉창문 우는 소리
이 밤 먼 길 돌아오는 나그네의 귀향이 선연하고,
강바람에 나붓나붓 흔들리는 갈대의 눈물은
누구의 아픔도 위로하지 못한다
오늘, 속울음 감추고 서성거리는 그대여
추억의 빈칸에 채울 그리움이 없다면
그래서 지금은 어떤 고독인가
언제 고독한가
박종영
산을 오르려다
산이름을 잊어버렸다가
산이름을 기억하여
오르는 길에
거기
억새꽃이 하얀 마음 열고
산새 그리워 편지 쓰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토록 흩날리는 손 흔듬을
배우려고 해도
산그늘 울음으로 가득 채워진 옹달샘에
손을 담그면
살아온 날들이 슬프게 출렁이며
너는 언제 고독한가?
외로움 때문에
박종영
당신의 외로움이 나는 좋습니다
당신의 외로운 냄새를 기억하면
라일락 짙은 향기처럼
가슴이 콩닥거리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깊어 사랑을 알았고
외로움 때문에 이별의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외로움은
혼자 불타오르거나 쓸쓸히 사라지는
낙엽 같은 것이어서
나누어 갖지 못하는 질긴 슬픔의 인연입니다
낯선 사람의 외로움은 보이지 않아
내 외로움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세상 모두의 외로움은 빛깔이 다르고
슬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대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운 날입니다
그대의 뜨거운 위로가
모두의 당신을 위해 그리운 시간입니다
친구가 되어 주는 외로움
박종영
외로움도 어느 때는 친구가 될 수 있다.
고독과 쓸쓸함을 벗으로 삼기에는
흉이 되는 삶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왕에 혼자라면,
외로움을 친구로 삼아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 들리지 않는 곳에서
혼자의 생각을 줍는 것도 짝없는 시간을 즐기는 일이다.
간혹 그 길의 동행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그 사람에게 모두 선물하는 것으로
외로움의 반려로 즐거운 동행이 되는 것이다.
침묵에 기대어 보는 오늘 하루,
얇아지는 겨울이 안기는 긴 밤의 고독은 사라지고
외로움의 길은 더 환하게
새봄의 기운으로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고요한 순간마다 매듭 풀어
서러운 기억으로 불어오는 고향의 바람 냄새,
상큼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그대의 외로움이 더욱 간절한 초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