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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강아지

Bollnow 2024. 10. 17. 06:58

강경호 휘파람을 부는 개

강수 - 강아지, 강아지, 저놈의 개새끼

강태민 ()...

고영민 - 갈대

고영민 그늘

고영민 나이 든 개

공석진 강아지

공석진 강아지 왈츠

권기호 개싸움

권혁웅 돈 워리 비 해피

권현형 어는 개 같은 날의 오후

김금용 개가 바라보는 세상

김기택 -

김낙필 똥개

김남주 개 같은 내 인생

김내식 강아지 형님

김내식 개똥밭에 굴러도

김리영 -

김명배

김복수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여인

김사인 좌탈(坐脫)

김선옥 민들레와 똥개

김승희 응시

김신용 개 같은 날

김애자 - 유기견

김영승 반성 704

김왕노 여전히 개 같은 날들의 기록

김용택 유일한 계획

김용화 강아지 꽃

김용화 개밥바라기별

김용화 꽃샘 추위

김용화 노파와 개

김용화 - 대화

김용화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

김용화 모감주나무 아래에서

김용화 사람과 개

김용화 - 쎄리

김용화 어떤 개의 죽음

김용화 우리 집 강아지 루루

김용화 폐지 줍는 할머니

김윤자 철없는 강아지

김인육 개 같은 사랑에 대한 보고서

김학산 다분이와 강아지

김형수 개 사돈

류흔 개 같은

문숙 수종사 부처

문일석 개처럼

문정희 -

문태준 젖 물리는 개

박규리 성자의 집

박소유 검은 개

박윤규 나는 개다

박지웅 달의 통로

박하현 개에게서 배우다

반기룡 개새끼

백석 -

복효근 개는 없다

서지월 개 밥그릇의 노래

손택수 흰둥이 생각

신경림 -

신미나 흰 개

신현정 - 개똥

엄원태 - 강아지들

오애숙 내 강아지

오정방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짖지 않는다?

오탁번 - 엘레지

오하룡 -

유용선 -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유응교 -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

이길원 -

이덕규 밥그릇 경전

이동순 개 두 마리

이문조 개 팔자

이문조 미친개에 물리다

이상호 개 같은 날

이생진 개 조심하게

이선명 갈비집 똥개 이야기

이성이 어떤 죽음

이순영 솔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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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이정록 개도 브래지어를 찬다

이향아 개에 대하여

임백령 - 소라단 강아지들을 보내며

임보 개 밥그릇

임영준 우리 동네 똥개들은

장수남 - 개소리

장하빈 개 짖는 소리

전영관 개 같은 봄날

정윤천 젖을 향하여

정일근 묶인 개가 짖을 때

정일남 아이와 강아지

정철훈 개 같은 신념

정해철 강아지와 까치

정호승 밥그릇

조동범 -

최길준 똥개

최병무 네 발로 걷는 스승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하영순 개새끼

하옥이 -

하재청 버려진 개

하종순 - 미친개

한도훈 고물상 집 개

한도훈 나는 당신의 개

한도훈 대머리 개

한재만 개꿈

함민복

홍사성 개 같은 그대에게

황희순 개가 늑대처럼 울어

George Gordon Byron - 어느 뉴펀드랜드 개의 묘비명

 

 

 

휘파람을 부는 개

강경호

 

우리 집 개는 제가 사람인 줄 안다

단 한 번도 개를 보지 못하고

늘 사람만 보았기 때문이다

동족인 개를 만나면 짖을 우리 집 개는

사람과 개의 분별을 학습하지 못해

내게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지만

제 목에 사슬을 채운 내겐

다만, 똥개일 뿐이다

 

우리 집 개는 짖지 못한다

눈 뜨기도 전에 어미가 죽었으므로

우유를 주고 밥을 주는 내가 짖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나에게 학습한 휘파람만 분다

무료하게 꽃을 바라보다가 휘파람을 불고

석류나무 가지의 새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휘파람을 부는

개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우리 집 개는 짖지 못한다

 

 

 

강아지, 강아지, 저놈의 개새끼

강수

 

강아지가 땅을 판다

뒷발을 땅에 고정시킨 채

무게 중심을 뒷다리에 고정시킨 채

자꾸 땅을 판다

 

부정탄다며

욕을 퍼붓던 아버지

 

갑자기 없어지는 개

 

땅을 파는 것들은 위험하다

함부로 땅을 파서는 안 된다

그 가슴 속에 묻혀 있는 것을 함부로 꺼내놔서는 안 된다

 

저 개새끼가 또 땅을 판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의 땅

고아처럼 자라난 아버지의 땅

자꾸 그 땅을 판다

 

저놈의 개새끼

아직 복()날은 멀어

 

 

 

()...

강태민

 

산다는 것은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산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고

살아야 할 길을 안다는 것으로

버림을 받아야 하는 것

 

사람의 감성을 닮아버려

사람에 멋으로 살다가

사람에 기분으로 버림을 받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람에 가슴으로 아파해도

가슴 찢기게 바람을 가르고 달려

사람에 가슴을 그리워했고

사람을 더 알고 싶었어

 

사람에게 다 하지 못한 말은 가슴 가득 벅차고

사람에게 줘야 할 가슴은 아직 많은데

아무도 만나줄 이 없는 서글픈 날

 

빈 몸의 삶은 무거워도

왜냐고

왜 사람은 비정하냐고

내가 물어볼 수 없는 줄 알았어

 

너무했다고

너무했었다고

내 가슴에 숨겨두었던 말을

하지 못하는 줄 알고

 

내가 사람에게 돌아설 줄 모른다는 것을

사람은

내 용서를 구하지 않고 결국 알아버려

내 눈에

눈물이 흐르지만

 

사람을 그리워했다는 죄만으로

사람을

배신하지는 않아

 

 

 

갈대

고영민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 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그늘

고영민

 

큰누나가 시골집에 늙은 부모 둘만 사는 것이 보기에 적적했는지 기르던 강아지를 차에 싣고 왔다 몇 달을 어르고 달래도 눈이 오목한 강아지는 제 머리를 주지 않아 늙은 부모는 보송보송한 머리통 한번 쓰다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문간 옆에 쭈그리고 앉아 냉이를 다듬는데 가랑이 사이로 강아지가 쑥, 기어들어오더라 에그머니나, 어머니 가슴이 미어지더라 데려온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하고 부르는 그 소리가 들렸다 한다 식구가 되기 위한 꼭 그만큼의 여물어진 시간과 눈짓, 오늘도 제 마음 다 준 강아지는 배를 걷어차여도 어머니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이 든 개

고영민

 

나에게는 나이 든 개가 있어요*

 

잘 먹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 1년이

개에게는 왜

7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에게 늙은 개가 있어요

 

부르면 천천히

눈을 떠주는

 

* 미야가와 히로의 동화 나에겐 검둥이란 개가 있어요를 변용함

 

 

 

강아지

공석진

 

쇠줄 묶인 목은 움푹 패이고

사방 장미 가시

온몸은 상처투성이다

보기가 딱해서 목줄을 풀지만

어색한지 제자리만 맴돈다

 

한참, 눈치보다 이내 익숙해졌는지

꼬랑지 흔들며 강중강중 놀더니

주인을 보자 다시 모가지 매달라고

바동바동 얼굴을 곧춘다

 

그릇엔 언제 물인지

너겁이 켜켜이 쌓인 구정물을

할딱할딱 잘도 마신다

 

발로 툭 건드리며

"벙어린지 알았당께유"

욕심 채우기엔 너무 작아

물도 아깝다는 표정이다

 

꽁꽁대던 강아지는

자리 뜨는 나를 점이 될 때까지

그렁그렁 바라보고 있다

"넝쿨을 잘라줄 걸 그랬어"

 

 

 

강아지 왈츠

공석진

 

그늘진 사람들

화풀이 발질에

뿔난 강아지

아무렇게 던져진

몽당빗자루

모질게 물어뜯다

 

같은 처지가

안스러워

방해하는

제 꼬리 쫓으려

빙빙

왈츠를 춘다

 

 

 

개싸움

권기호

 

투전꾼의 개싸움을 본 일이 있다

한쪽이 비명 질러 꼬리 감으면 승부가 끝나는 내기였다

도사견은 도사견끼리 상대 시키지만 서로 다른 종들끼리 싸움 붙이기도 한다

급소 찾아 사력 다해 눈도 찢어지기도 하는데 절대로 상대의 생식 급소는 물지 않는다

고통 속 그것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개들이 지닌 어떤 규범 같은 것을 보고 심한 혼란에 사로잡혔다

 

이건 개싸움이 아니다

개싸움은 개싸움다워야 한다(개판 되어야 한다)

개싸움에 무슨 룰이 있고 생명 존엄의 틀이 있단 말인가

나는 느닷없는 배신감에 얼굴이 붉어왔다

 

돌이켜 보면 인간의 행동양식이

생식 규범도 없는 존재의 역설이 된다

때로 개체의 완전한 묵살 그것이 인간의 천성이니까

신의 이름으로 휴머니즘의 갑옷으로

대낮에도 캄캄한 불꽃이 되어 지적 미소로 번뜩인다

화려한 퍼레이드에서 깃발의 물결에서 심지어

촛불 시위까지도 그것은 숨어 있다

 

개들의 승리란 가쁜 숨 몰아쉬며 푸른 안광 번뜩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것은 마법의 끈이 오래 목을 감는다

 

이 끈에 숨 조여 새벽에 투신한 그룹 회장이 있었다

그의 남성적 상징에는 각기 다른 인간의 이빨 자국이 패어 있었다

생존하지 않은 남북한 공룡의 자국이란 루머가 돌기도 하면서

나머지 역시 확인할 수 없었다

익명의 우리 모두 것이란 설도 있고 그룹 회장 스스로의 것이란 설도 있다

 

물론 이것은 부검 결과에도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돈 워리 비 해피

권혁웅

 

1

워리는 덩치가 산만한 황구였죠

우리집 대문에 줄을 매서 키웠는데

지 꼴을 생각 못하고

아무나 보고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통에

동네 아줌마와 애들, 여럿 넘어갔습니다

이 피멍 좀 봐, 아까징끼 값 내놔

그래서 나한테 엄청 맞았지만

우리 워리, 꼬리만 흔들며

그 매, 몸으로 다 받아냈습니다

한번은 장염에 걸려

누렇고 물큰한 똥을 지 몸만큼 쏟아냈지요

아버지는 약값과 고기값을 한 번에 벌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성여고 수위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수육을 산처럼 쌓아놓고 금강야차처럼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씹을 듯했습니다

 

 

2

누나는 복실이를 해피라고 불렀습니다

해피야, 너는 워리처럼 되지 마

세 달만에 동생을 쥐약에 넘겨주었으니

우리 해피 두 배로 행복해야 옳았지요

하지만 어느날

동네 아저씨들, 장작 몇 개 집어들고는

해피를 뒤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왈왈 짖으며 용감한 우리 해피, 뒷산을 타넘어

내게로 도망왔지요

찾아온 아저씨들, 나일론 끈을 내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해피가 네 말을 잘 들으니

이 끈을 목에 걸어주지 않겠니?

착한 나, 내게 꼬리치는 착한 해피 목에

줄을 걸어줬지요

지금도 내 손모가지는 팔뚝에 얌전히 붙어있습니다

내가 여덟 살, 해피가 두 살 때 얘기입니다

 

 

 

어느 개 같은 날의 오후

권현형

 

내가 반쯤 젖고

당신도 절반쯤 젖었으니

우린 피차

마찬가지지요

시시한 인생들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연애나 한 번 해볼까요

저 비 오는 질척한 거리로 나가

신발이 다 해지도록

마음마저 해져 차라리 나풀나풀

화냥기 많은 계집의 치맛자락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수캐마냥 암캐마냥

나돌아다녀볼까요

사랑하노라고

당신 없이는 죽어도 못살겠노라고

혀로 입술로 거짓 맹서라도 나누며

어디 살아 견뎌볼까요

비 오는 날엔 부디 당신의 눈빛을 가두시길

젖어 희번득거리는 그 외로움을

! 숨막히도록 빨아들일 누군가를 조심하시길

발정한

또 한 외로움을

 

 

 

개가 바라보는 세상

김금용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일 미터 이내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오직 세 가지 색깔

대지에 코를 박고 잠들 때 감싸주는 푸른 공기

낯선 자를 공격할 때 덮쳐오는 까만 어둠

일용할 양식을 들고 오는 아줌마의 흰 앞치마

그 밖의 색깔은 내겐 필요없다

콧등을 어루만지는 다섯 살 박이의 서툰 애정이나

술 취해 귀가할 때만 반기는 주인아저씨의 세상 냄새

함께 집을 지키는 주인아줌마의 외로운 잔소리

코만 들이대면 모든 변덕이 냄새로 감지된다

 

나는 변방에 머무는 아웃사이더

사람들 세계로부터 소외된 방관자

하느님조차 나와 눈빛을 맞추지 않지만

아무도 키를 낮춰 나와 소통하지 않지만

게릴라처럼 달겨드는 천둥, 번개의 말씀이나

낮은 대지로부터 구름 밖 하늘의 말씀까지

나의 예언은 정확하다

열린 맨홀을 돌아나가라고 경고하는 것도

낯선 이의 통행을 먼저 차단하는 것도

골목의 하루를 점검하며 이웃 파수꾼과 교신하는 것도

모두 나의 하루치 몫

냄새나는 사람들의 하루를 지켜내는 나의 몫

 

나는 오늘도 경비를 선다

외로워 싸움을 거는 사람들 향해

불을 켜도 어둠을 쫓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김기택

 

먹을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자 즉시

개는 초점에서 내 얼굴을 지우고

내 몸 뒤 끝없이 먼 곳을

철망과 담 산과 구름과 하늘

먹을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뚫고

아득하고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깨끗하다

고막이 제거된 개의 눈 속에서

먹은 것은 남김없이 영양분이 된

영양분은 남김없이 살이 된

살은 다시 무언가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된

개의 눈 속에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넘어 어디에선가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개의 눈 속에서

 

 

 

똥개

김낙필

 

재환이네 누렁이가 삼복더위 개장수에게 끌려가던 날

어린 재환이는 땅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개장수 바지가랭이를 잡고 돌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개 팔아먹은 그 집 식구 그날 저녁상엔

돼지 삼겹살 두루치기 다섯 근이 푸짐하게 올랐단다

개 팔아 돼지 잡아 먹은 셈이다

그 시절 개 판 돈은 양은그릇이나 그릇 장만에 썼었다는데

 

어릴 적 앞마당에서 똥을 누다가 똥개 누렁이에게

고추까지 물려서 아직도 상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던 재환이는

어제저녁 친구들 모임으로 모란시장에 나타나

게걸스럽게 개고기를 먹으며 누렁이 얘기를 또 씨부렁댄다

 

한번은 말복 날 도둑맞았던 누렁이가 일주일 만에

허벅지에 깊은 고름 상처를 달고 다리를 질질 끌며 집 찾아왔더랜다

그때 재환이는 살아서 집 찾아온 누렁이가 반갑고 대견해서

부둥켜안고 같이 껑껑 울었댄다

누렁이 눈가에 흥건한 눈물 자욱을 잊지 못하겠다던 재환이는

 

오늘도 누렁이 얘기를 해가며 젓가락이 안 보이게 도마 위

개고기를 게눈감추듯 잘도 먹어치운다

그놈 몸의 반은 아마 개 살일 텐데

피와 살로 신체의 일부가 된 그 똥개 얘기를

개고기 먹을 때마다 침 튀기며 하는 그놈 심중을 영 모르겠다

 

까딱 잘못됐으면 거시기 없는 내시 아범 될뻔한 얘기를

뭔 자랑거리라고 고기 맛 떨어지게 꼭 초를 치며 달고 다닌다

사리 판단이 안 되는 건지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건지

알 수 없는 별난 놈이다

 

허긴......옛날 그 고추 사건 이후

동네에서 재환이 별명은 "똥개"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개고기 킬러는 똥개 재환이다

누렁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말할꺼다

"내 얘긴 제발 고만하고 그냥 조용히 처먹어라...."

 

자다가도 개고기 얘기만 하면

눈꼽도 안 떼고 뛰쳐나오는 똥개 재환이는

오늘도 모란시장 뒷골목에서 흥건하게 취해가며

그 골백번도 더한 누렁이 얘기를 또 하고 있다

 

죽어서 누렁이 얼굴 어찌보려고 그러는지 참 깝깝하다

 

 

 

개 같은 내 인생

김남주

 

개 같은 내 인생

이것은 영화 제목이다

길을 가다 말고 내가 훔쳐본

개처럼 끌려다니고

개처럼 두들겨 맞고

사슬에 묶여 개처럼 감금당하고

이것이 지나간 내 십 년의 인생이었다

그런데 아니 그러면

사람을 개처럼 끌고 다니고

사람을 개처럼 두들겨 패고

사람을 사람의 손과 발을 사슬로 묶어

개처럼 감옥에 쑤셔 넣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개같은 내 인생

딱 들어맞는 말투다

나와 내가 시달리고 사는 이 세상에

개 같은 이 세상살이에

 

 

강아지 형님

김내식

 

혼자 술 마시기 고적하여

강아지의 입 벌리고

막걸리를 한 숟가락 부어주니

모로 비틀 달려가다 멈추어

꼬리로 춤을 추며

하하 웃는다

 

내가 도대체 개보다 나은 점이 무언지

밤새 고민을 해보아도

마음이 가난하고 죄 없으며

정이 철철 넘치는

개보다 나은 점을

찾기 어렵다

 

새벽 담벼락에 오줌 누는 개를 보고

형님! 하고 불러주니

빙긋이 웃으며 다가와서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듯

나의 손등을 핥아주어

그 죄를 사하여 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를 믿고

따르는 아내에게

-

미안하다

 

 

 

개똥 밭에 굴러도

김내식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함은

우리의 선조들이 반만년 살아온

경험과 생활 철학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삶이 제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살아있는 자체가 축복이니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살라는

용기입니다

 

겨울철, 산비탈의 외로운 나무들

혹한의 면도칼로 제 몸을 자르고

역경을 나이테로 다지는 것은

진리입니다

 

삶이 시련과 고통을 주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을 주는

 

 

 

김리영

 

나는 개입니다.

그대가 외출한 날

혼자 남아 빈집을 지킵니다

몇백 리 머나먼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오직 그대 찾아 달려오고,

죽을 때까지 그대 명령에 따라 몸짓하는

개일 뿐입니다

내가 만약 새 또는 풀잎, 아니 별빛이었다면,

그대의 향기를 맡거나

그대 품 안에 잠들 수 없었겠지만……,

말없이 그대가 던져 준

소시지의 모서리를 삼키다가도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듣고 싶어져

목이 메고

컹컹 짖으며 달려듭니다

 

 

 

김명배

 

개에게 개새끼라고 욕()을 해도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진다

 

밤마다 주인(主人)을 짖는 검둥개야,

밤마다 귀신(鬼神)을 짖는 검둥개야.

 

꿈틀거리는 어둠 그 등 뒤에서

일곱째 날에도 짖는 개.

 

짖고 있다.

짖고 있다, 나도.

 

내가 나에게 개새끼라고 욕()을 해도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진다

 

 

 

개 같은 놈 여우 같은 여인

김복수

 

언제부터 개같은 놈이 여자들 입에 올려졌는지 모른다

우리 민박집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쌍이 사나흘 묵어간다고 찾아들었다

어찌나 다정한지 비둘기도 선배님 하며 샘을 낼 정도다

삼 일째 되는 날 우연히 사내 전화를 엿듣고 말았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 늦게 세미나가 끝날 것 같아

응응 애들은 학교 잘 다니고 아무 탈 없지요

여보 사랑해요

당신과 헤어진 삼일이 삼백 년보다 더 긴 것 같구려"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 마누라는 개같은 놈이 자고 갔다고

자꾸만 걸레질을 한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허전하여

나에게도 숨겨놓은 여우같은 여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그래! 나도 개 같은 놈인가 보다

 

 

 

좌탈(坐脫)

김사인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 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별 기우는 초겨울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민들레와 똥개

김선옥

 

나른한 어느 봄날 오후

나는 뒤뜰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깜빡 잠이 들었다

무엇인가 간지러워

잠을 깨었더니 집 똥개가

어린 조카가 싼 물똥을

핥아먹은 그 혓바닥으로

내 발등을 핥고 있었다

입수염엔 물똥을 뭍인 채,

그 옆에서 물똥처럼 노오란

민들레꽃이 배를 움켜쥐고

요절복통을 하고 있었다

 

 

 

응시

김승희

 

사슬에 매인 루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불쌍한 밥그릇 옆에

하염없이 목줄이 매여 묶여 있는 루키

----루키야, 너는 왜 개로 태어났니?

 

하늘이 비치는 순한 눈동자를 들어

루키는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흰옷 입고 걸어가던

어머니처럼 인자하게 한 번 더 나를 바라보는 루키.

----그런데, 너는 왜 사람으로 태어났니?

 

루키와 나.

그렇게.

 

 

 

개 같은 날

김신용

 

나는 개였다

빌딩이 허공의 엉덩이를 찌르는데

공장의 굴뚝들이 하늘의 턱에 주먹질을 하는 서울인데

시장에, 거리에 저렇게 물신(物神)들이 넘쳐흐르는데

허기의 끈에 목줄을 맨, 품삯의 뼈다귀에 침 질질 흘리는

오뉴월, 비루먹은 개였다

어떤 밥을 먹어야 사나

굶주려도, 차라리 서울역 남산공원에서 난장을 꿀려도

개밥은 먹지 않아야 하나

오늘도 구청의 댓빵들은 15,000원짜리 뼈다귀를 내밀며

양동의 개들을 흘리고 있다

방세 하루치만 밀려도 마귀할멈으로 변하는 주인 뭉치

지하도에서 후리가리의 발길질에 넋의 척추가 부러져도

눈쌉 하나 까딱 않는 서울,

내 배고픔의 거리에 쓰러져 신음할 때

물 한 모금 부르튼 입술 적셔주는 이 없는 시멘트 벌판에서

, 저 구수한 생선 뼈다귀 냄새 어이하나

냄새 코를 막고 뼈다귀 쥔 손을 물어뜯어야 하나

일일취업소의 철제문이 떨어지는 아침이면

목잘려 거리에 뒹구는 이 하루,

감장의 철문도 너무 낯익어, 니 또 왔나? , 바깥에는 잘 데 없드나?

부끄러워, 얼굴에 아무리 철판을 깔아도 철문 보기가 민망해

염치없이 가다밥 좀 씹자고 또 빈대 붙을 수도 없어

눈먼 손에 쥐어주는 함마, 산비탈 판잣집을 내리치며

몸 속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있는 허망을 박살낼 때

이 개 같은 놈들아! 철거민의 울부짖음의 손톱에

가슴 갈가리 찢겨도, 이 하루를 헐떡이는 개였다

뼈를 다 뽑아서라도 이 판잣집 한 채 몸 짓고 싶은

아무거나와 흘레붙는 나는 개였다

 

 

 

유기견

김애자

 

어둠 속에 승용차 하나

속도를 늦추는가 싶더니

뭔가 슬쩍 던져놓고는

바람같이 사라진다

 

섬뜩하게 꿈틀대는 검은 물체

비척이며 일어선 그것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리저리 왔다갔다

어쩔 줄 모르고 허청거린다

 

잠시 후

어두운 골목길로 허둥허둥 사라지던

유기견 한 마리

 

사랑에 흠뻑 길들여 놓고는

영하 10도의 강우취 어둠 속에

사정없이 던져버리고 간

얼굴을 감춘 저것은, 분명

사람이다

 

 

 

반성 704

김영승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 보고

생선 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는다

부엌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똥을 싸 놓은 강아지들을 보면

낑낑낑 밍키를 보며 칭얼대는

네 마리 귀여운 강아지를 보면

나는 꼭 밍키의 남편 같다

 

 

 

여전히 개 같은 날들의 기록

김왕노

 

개 같은 날들을 기록하는 사내가 있다.

시골로 내려가 파초 이파리에 새파란 하늘 모서리에

허기지나 빈틈없는 정신으로 전심전력으로 개 같은 날이므로

세상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명아주 그림자처럼 흔들리다가

세상에 저런, 저런 하다가 인간 말종들이라 하다가

그는 한 몸이 된 듯 앉은 의자에서 개 같은 날을 기록한다.

청무 굵어갈 때 논병아리 우는 날에도 기록한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개 같은 놈

자신도 언젠가 반드시 피눈물 흘리게 될 것이라며

내 울던 골에 너도 울게 될 거라며

벼가 끝없이 물결치는 벌판 위에다 모호한 안개에다

소쩍새 울음 위에 경칩이 뜨거운 울음 속에

개 같은 날을 천천히 기록하는 것이다.

잉크 같은 가슴에 펜을 푹 담갔다가 기록하는 것이다.

개 같은 날을 보면 울분이 터져 도저히 절필할 수 없다는 사내

여전히 개 같은 날이므로 여전히 기록할 수밖에 없다며

비바람 휘몰아쳐 창문 덜컹거리는 밤도 개 같은 날이라

잠들 수 없다는 사내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 속에서

그리움을 환히 밝힌 채 여전히 개 같은 날을 기록하고 있다

 

 

 

유일한 계획

김용택

 

이사를 가면

개를 키우겠다

 

큰물이 나가면

물가에 나란히 앉아

물구경하다가

 

아내가 마당에 서서

밥 먹자고 부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보다 먼저 일어서는

개를 한 마리 키우겠다

 

 

 

강아지 꽃

김용화

 

강아지야 강아지야

오요요-

강아지야

입은 옷

벗어놓고

너 어디 갔니?

하늘하늘

무지개 건너

꽃구름 타고

하늘나라 갔지요

하늘나라

심심해서

누구랑 노나?

……

강아지 꽃

입에 대고

오요요-

강아지 꽃

 

 

 

개밥바라기별

김용화

 

개장수 줄에 묶여

-을려가던

복실이

 

울음빛 노을 속에

산모롱이

돌아갈 때

 

찬찬히

뒤따르던

 

개밥바라기별

 

 

 

꽃샘추위

김용화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구로구

오류시장 인근 길가에

누렁이 한 마리,

헌 옷가지 좌판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평생을 지켜온

삶의 터전,

할머니가 헌 옷 주우러 나간 사이

 

진홍빛 목도리 돌돌 말아 두르고 눈이 빠지게

할머니를 기다리는

누렁이 곁에

두 팔 벌려 기지개를 켜는

겨울나무들,

 

연둣빛 실핏줄 톡톡

터뜨리며

꽃눈, 잎눈, 하늘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노파와 개

김용화

 

노파가 죽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흰둥이

혼자

 

주검 곁을

지키고 있다

 

 

 

대화

김용화

 

노파와 개가

마주 앉았다

……

복실아,

너도 심심하니?

……

나도

그렇단다

……

사는 게

그런 거란다

……

 

 

 

루루를 위한 세레나데

김용화

 

너와 함께 거닐던 솔밭 사이 산책길 따라가며

이름 불러보면

초저녁 초록별로 떠올라

눈빛 반짝이는 너,

 

지구는 너한테 살 만한 곳이 못 되었나 보다

천둥소리가 무섭다고 울면서

집을 나간 너,

천둥 번개가 없는

천왕성이나 명왕성 어디쯤 조용한 별에 가서

다시 태어나거라

 

시츄, 4.5kg의 여덟 살 난 여아, 이름 루루,

임신 경험 없고 날씬한 몸매,

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시력 약한 편임,

밝은 갈색 털에

이마와 뒷목덜미에 흰색 다이아몬드 무늬

 

루루, 이름만 부르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두 귀를 쫑긋,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잘 가라,

우리 집 착한 루루, 이젠 너의 모든 것을

놓아 주련다, 솔바람 소리에게

노오란 애기똥풀에게

모감주나무 이파리에 붙은 풀잠자리 작은 알들에게

 

 

 

모감주나무 아래에서

김용화

 

강아지로 왔다 사람으로 간 루루,

모감주나무

샛노란 꽃등을 켜다는 유월

신발장 아래 가지런히

옷 벗어놓고

목줄에 달아준 어여쁜 이름표 떼어놓고

무지개 건너

천둥번개 없는 고요한 세상 찾아

알몸으로 떠나간

여덟 살,

어느 하늘가 작은 별로 떠 있을까

 

 

 

사람과 개

김용화

 

이삿짐이 떠나고

강아지 한 마리

버려진 가구 곁에

오도마니

앉아 있었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앉아 있었다

발자국 소리

날 때마다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쎄리

김용화

 

쎄리가 팔려갔다, 할머니는 막내를 업고

방죽머리까지 따라 나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주었다

 

이튿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응앙응앙- 문살 긁으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빗속을 뚫고

읍내 삼십 리 길을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쳐 온 것이었다

 

영물이여, 영물이여……

할머니는 하얀 행주로 쎄리 몸뚱이를 닦아주고

쎄리는 꽃잎 같은 혀로

할머니 손등을 핥아 주었다

 

날이 밝았다

문밖에 개장수가 서 있었다

납죽 배를 깔고 파들파들 떨며

슬픈 눈빛으로 식구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스피커 줄에 묶여

자운영 꽃 붉은 논둑길 따라

멀리 희미한 한 개 점으로 지워져가던 쎄리

 

 

 

어떤 개의 죽음

김용화

 

문전을 기웃거리던

강아지

한 마리

 

가을 깊을수록

털 빠지고

뼈 앙상하더니

 

오늘 아침, 그의

주검 위에

조용히

눈이 내린다

 

흰 쌀밥 같은 눈이

소복

쌓여

동그란 봉분 만든다

 

 

 

 

 

우리 집 강아지 루루

김용화

 

우리 집 강아지 루루는 미용하러

가는 날을 제일 싫어합니다

딸아이가 전화 예약을 하는데

전화기 옆에 납죽 엎드려

왕방울만한 눈알 휘둥그렇게 뜨고

눈 깜작, 귀 쫑긋,

통화 내용 콕콕 짚어내고는

푸푸 한숨만 내쉬더니

신발 물어다 감추고 시치미 뚝 떼며

식구들 눈치 하나하나 살핀답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

김용화

 

출근길에 옛 성심여학교 앞 지나다 보면

반달처럼 굽은 노파가

눈망울 초롱초롱한 강아지

두 마리를 앞세우고

골목골목 폐지를 줍고 있었다

 

긴 겨울 지나고 노파의 모습 보이지 않았다

온갖 재롱에 바지런을 떨며

노파의 아침을 열어 주던 강아지들

보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 출근길

쓰레기 더미 근처에서 눈 마주치자

줄행랑 놓던

강아지 한 마리

머릿속에서 가물거리고 가물거리고 있었다

 

 

 

철없는 강아지

김윤자

 

강아지 한 마리

성균관 문턱에서 얼쩡거리다가

교내로 버젓이 들어간다.

사람들, 모태에서 떨어져

글줄의 코뚜레 뚫느라 십여 년

지식의 자루 속 책벌레로 십여 년

참선하듯

하얀 밤 수없이 말리고

채석장 마름돌 되어

저 문턱 겨우 넘었는데

너는 쉽게 잘도 넘는구나

체육 특기생으로 들어온 거니?

넌 발이 넷이구나

달리기를 잘하여

두 발로 뛰는 사람들 제치고

그렇게 빨리 들어온 거야?

아니면, 너의 주인님 추천으로?

아무리 그래도

화장실 가는 법은 배우고 들어와야지

철없는 강아지야

 

 

 

개 같은 사랑에 대한 보고서

김인육

 

솜털 보송보송한 아홉 살 적,

하굣길에 흘레붙은 개들을 보았다

땡볕 대낮에 똥개 연놈이

서로의 튼실한 엉덩이를 맞대고 목하 열애 중이었다

서로의 몸과 몸을 관통한

붉고 뜨거운 기둥을 공유한 채

한통속이 되어 헐떡이며 불타고 있었다

그 거리낌 없는 사랑의 합체가

어린 심장을 사정없이 쿵쾅쿵쾅 쑤셔 박았다

민망함이었을까, 시샘과 질투였을까

나는 돌멩이를 집어 연놈에게 던졌다

따악, 놈의 마빡에 돌멩이가 정통으로 꽂혔다

한심하다는 듯

연놈은 잠깐 나를 쳐다보았을 뿐

붉고 뜨거운 기둥 더욱 단단히 서로를 꿴 채

암수한몸의 비경 끝내 풀지 않았다

오오, 놀라워라

붉고 황홀한 저 깊은 결속의 뿌리여

오오, 위대하여라

내 것과 네 것이 하나 되는 저 뜨거운 합체여

 

어느덧, 세상 눈치 살피는 중년의 세월

문득 개 같은 영혼이 그립다

개 같은,

이 세상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어울림에 대하여

너와 나 섞이어 더욱 견고해지는 하나 됨에 대하여

애꿎은 돌멩이에 철철 피 흘릴지라도

철부지 돌팔매쯤이야 애당초 두렵지 않은

그 열혈의 자세, 그립다

 

사랑은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당당해야 한다는

그날의 가르침 한 수

 

 

 

다분이와 강아지

김학산

 

스스로의 보행조차도

넘치는 기쁨인 것을

모르는 자 누구인가

80cm의 행복 가득

휠체어에 싣고 돌아가는

왜소증인 다분이와 강아지의 하교 길

저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어린이

짙은 산 그림자 하나 붙들고

길을 묻는 바람의 작은 무늬

시간의 문장은

실존의 늪에 버려진

짙은 흉터이다

 

 

 

개 사돈

김형수

 

눈 펑펑 오는 날

겨울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 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 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홀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물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개 같은

류흔

 

굶주린 애완견 셋이 주인을 먹었으니

주인 입장에선 죽어서도 애완견을 돌본 셈이지

참 충직한 주인이라는 칭찬이 자자했어

지금은 개똥으로 떨어뜨린 주인을 땅에 묻고

십시일반 갹출한 뼈다귀로 비표를 세운 후

경건하게 컹컹, 짖어주었다지

개들은

 

순한 눈매를 굴려가며 묵비권 행사를 했으나

경찰의 끈질긴 설득으로 실토를 하였다네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보면,

애초에 그 주인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는데

심장마비의 몸으로 개 사료를 꺼낼 수도

개들에게 직접 꺼내 먹으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그렇게 딱 3일을 굶은 개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애완견이기를 포기한

A견이 먼저 용기를 내어, 그의 앞발을 들어 주인의 볼을 톡톡 건드렸고

B견은 주인의 귀에다 "자고 있나요?"라고 물어보았고

C견은 검게 변한 주인의 입술을 쓰윽 핥아보았는데

대답이 없자,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견이 부드러운 볼을 한입 물어뜯자

C견이 도톰한 입술을 덥석 물었고

잠시 망설이던 B견은 오돌뼈가 감칠맛 나는 귓볼을 오독오독 씹었단다

 

그게 첫날의 식사였고

2개월 후 개들이 발견될 때까지 계획된 식단으로

영양을 고려하여, 부위별로 골고루, 일사불란하게

식사를 했음이 밝혀졌다

다만, 평소에 주인이 애지중지하던 질기고 빳빳한 생식기와 터럭,

감자탕에 넣으려 했는지

흰 등뼈만 남기고 먹어버린

수수만년을 지나도 늑대는 늑대, 개는 개, 애완견은 개, 개 같은

 

 

 

수종사 부처

문숙

 

절 마당에 검은 바위처럼 엎드려 있다

한자리에서 오전과 오후를 뒤집으며 논다

단풍객들이 몸을 스쳐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가면 가는가 오면 오는가 흔들림이 없다

산 아랫것들처럼

자신을 봐 달라고 꼬리를 치거나

경계를 가르며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생각을 접은 눈동자는 해를 따라 돌며

동으로 향했다 서로 향했다 보는 곳 없이 보고 있다

까만 눈동자를 따라 한 계절이 기침도 없이 지나간다

산 아래 세상은 마음 밖에 있어

목줄이 없어도 절집을 벗어날 생각을 않는다

매이지 않아

지금 이곳이 극락인 줄을 안다

지대방을 청소하는 보살에게 개 이름을 물으니

무념이라고 한다

 

 

 

개처럼

문일석

 

우리 집 애완견은 말티즈, 이름은 코코.

식구가 아무도 없을 땐 혼자 외롭게 집을 지킨다.

 

코코와 놀아주어 제일 좋아하는 막내가 외출할 때면 옹알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내 침대를 오락가락한다

출입문을 응시하며 시간을 죽이는 게 일상이다

 

개는 자기가 좋아하는 주인을 기다릴 줄 안다

집에 들어오면 환영할 줄도 안다

만져달라고 손을 핥으며 끙끙대기도 한다

 

내 귀엔 들리지 않은 발자국 소리를 먼저 듣고

작은 체구로 우주가 무너진 듯 컹컹거리며 짖어대고

온몸을 요동치고, 꼬리를 흔들고

만남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듯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며 오줌을 질질 싸기도 한다

 

그대가 사람이라면, 그 개를 개새끼라고 욕하지 말라

 

그리움을 잊어버리고 목석처럼 사느니

차라리 개처럼 사는 게 낫지

 

하루 종일 주인 기다림에 목을 빼는

개처럼 살고 싶지는 않지만

개가 아닌 사람이 그리움에 목말라하며 개처럼 사는 게 어때

 

누군가를 향해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개가 아닌 사람으로

 

 

 

문정희

 

햇살 뽑아 올리는 산 그늘에 앉아

여자들은 날개 달린

개 한 마리씩을 키운다

 

불의 끝을 헤매는

바람을 쓰고

아무 데나 쉬어 가는 저 하늘 아래

 

밤이면 수천의 개떼들이

물구나무서서

달아나는 사랑을 짖어댄다

 

문을 잠가 버릴까 보다

가장 완전한 도둑으로

깨어진 식기를 핥는

철없는 유희

 

번득이는 눈에서

누우런 봄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이슬 속으로 들어가다

햇살이 이마를 깨듯

드디어 산 그늘의

칼 쓰러지는 소리

 

이 세상은

그러나 날지 못하는

네가 살다 가기 편한 곳이다

 

 

 

젖 물리는 개

문태준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마른 젖을 물리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성자의 집

박규리

 

눈보라 속 혹한에 떠는 반달이*가 안쓰러워

스님 목도리 목에 둘러주고 방에 들어와도

문풍지 웅웅 떠는 바람소리에 또 가슴이 아파

거적때기 씌운 작은 집 살며시 들쳐 보니

제가 기른 고양이 네 마리 다 들여놓고

저는 겨우 머리만 처박고 떨며 잔다

이 세상 외로운 목숨들은 넝마의 집마저 나누어 잠드는구나

오체투지 한껏 웅크린 꼬리 위로 하얀 눈이 이불처럼 소복하다

 

* 절에서 키우는 잡종개의 이름

 

 

 

검은 개

박소유

 

그날 밤 나는 개의 주인이 되었다

개가 먼저 나를 알아 본 것이다

전생이라는 말이 참 각별했다

종일 사람 주위를 서성이며 먹이를 구하던

개의 주둥이와 다리가 얌전하게 어둠 속으로 깊어졌다

털모자 같았다

온기란 제 것이 전부였기에

그토록 깊숙이 파묻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다

잠든 개의 자세로 그 밤의 기온을 점칠 수 있다는

히말라야 마을은

바람꽃 피듯 절벽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내 모든 자세를 버렸다

그게 어둠이라면

우리는 같은 꿈속에 있었던 거다

또 다른 전생이었다

 

 

 

나는 개다

박윤규

 

나는 개다

이곳에 돌아온 걸 후회한다 황야를 떠돌 때도 이 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

불쌍한 짐승이 돌아온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

 

시를 쓰지 못한 밤에는 달이 대신 뜬다

달 가까이로 바람이 불어가며 우우 짐승의 울음소리를 낸다

황야에서도 그랬다

황야에 있을 때 나는 시를 쓰는 시인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총소리가 들리는 밤마다 내 눈빛은 살아있었다

짐승의 고기 냄새가 그립다

그리운 오후 그리운 새벽 나절마다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운다

슬픈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그리운 것은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정장을 하고 집 밖을 나선다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서 지상의 덜컹거리는 햇살을 살핀다

봄 햇살처럼 두근거리며 사람들이 네 발로 걷는다

내가 언제 개였던가 쓸쓸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면 내 생각의 벽도 굽혀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네가 보이지 않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 안녕하세요? 어젯밤은 잘 주무셨나요?

상처와 같은, 나는 사랑했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꽃들도 노을도 빗방울도 황야에서는 울음이다

사는 것이 울음이다

멋진 바이올린 음악을 들으며 나는 밤새 앉아 있다

울고 있는 현처럼 나는 팽팽히 당겨진다

 

 

 

달의 통로

박지웅

 

개한테는 개줄이 미로인 것이다

라일락 나무에 개를 묶고 나는 개 줄 바깥에 앉아

어린 개가 미로 속을 도는 것을 보았다

길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개는 미로에 갇힌 것을 알았다

길들어진 개는 밥그릇과 나무를 오가며

제게 주어진 길을 걸었다

그 개가 한번 미로를 빠져나온 것을 보았다

목줄 풀린 개들은 왜 하나같이 쥐약을 먹고 돌아올까요?

힘껏, 힘껏 달리면 죽음을 추월할 수 있을까요?

나는 봉당에 서서 발만 동동 굴리고

지팡이를 따라 돌리며 외할머니는 통로를 읽고 있었다

눈깔 뒤집힌 흰둥이 자꾸자꾸 돌던 옛집 마당

개줄을 개 끌듯이 끌고 한바탕 달린 뒤

개줄 바깥에 드러누워 흰둥이는 마지막 오줌을 길게 길게 누었다

건넛산 나무숲에 달이 하나 생겼다

 

 

 

개에게서 배우다

박하현

 

개가 사람을 키운다

목숨 같은 밥때 맞춰 주질 않고

갈 곳 많은데 진종일 묶어 두고

몸 한 번 깨끗이 닦아주지 않으면서

실수해 밥그릇이라도 엎으면 이때라는 듯

눌러 온 속마음 죄다 드러내

욕질 발길질 질질대는 주인더러

사는 게 그리 고달프냐

나라고 이해 못하겠냐며

세상 다 품을 눈빛 실어 보낸다

뼈 부수는 송곳니 잘 감추고

함부로 발톱 내밀지 않고

사랑 받을 생각 없이 제 자리 지키며

뭉텡이 외로움 푸르르 털어내

차가운 골방도 포근하게 만드는

, 워리가

죽는 날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려면

배고픔도 쓸쓸함도 삭이며 사는 거라고

사람을 가르친다

, 개를 키우며 배운다

 

 

 

개새끼

반기룡

 

사전을 찾아보니

개새끼와 개자식은 똑 같은 말이라 쓰여있다

"개새끼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저런 개새끼 같은 놈이 있나 "

"저런 개자식이 있나"라며

손가락질을 받을 때가 올망졸망 있다

 

흔히 성질이나 행실이

못된 사람을 일컬어 개새끼라고 부른다

그럼 난 개새끼 축에 드는 걸까

개의 새끼인 강아지 축에 드는 걸까

 

사람과 밀접한 관계있는 개를 보며

왜 하필이면 개새끼라고 할까 의문이

실타래처럼 펄럭거렸다

 

그리고 병술년은 ""자가 있고 ""자가 있으니

이중으로 욕을 얻어 먹는 나쁜 년()같다

 

어떤 이는 병술년은

술을 병술로 먹는 년()이라며

언어도단 같은 개똥철학으로

수캐 사정하듯 침을 튀긴다

 

저 멀리 뜨락에 쭈그려 앉아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개새끼 한마리가 컹컹컹 울부짖는다

 

이 개새끼들아

 

 

 

백석

 

접시 귀에 소기름이나 소뿔등잔에 아즈까리 기름을 켜는

마을에서는 겨울밤

 

개 짖는 소리가 반가웁다

 

이 무서운 밤을 아래웃방성 마을 돌아다니는 사람은 있어

개는 짖는다

 

낮배 어니메 치코에 꿩이라도 걸려서 산()너머 국수집에

국수를 받으러 가는 사람이 있어서 개는 짖는다

 

김치 가재미선 동치미가 유별히 맛나게 익는 밤

 

 

 

개는 없다

복효근

 

무슨 원죄로 개는 개로 존재하지 못하고 비유로서 존재하는가 너는 개야 개새끼야 이건 개를 두고 한 말이 아니다 개의 새끼인 개새끼마저 개새끼라 불리지 못하고 강아지라 불리는 것을 보면 그 반증이 아니겠나 단고기나 보신탕 사철탕을 보아도 그렇다 명명법이 영 개판이다 개고기나 개탕이면 어떤가 개 씹에 보리알이란 말은 데릴사위를 이르는 말인데 개에게도 사람에게도 치욕이긴 마찬가지다 개 좆은 또 무슨 죄냐 주구(走狗)라 해도 형편은 같다 편자를 들먹이는데 하필이면 개 발이냐 감기를 일러도 개좆부리라 하고 약에 쓰려면 없다는 개똥도 비유다 가령 여기 개 한 마리가 지나간다 하자 이것이 말로 표현되는 순간 사람들은 전현직 대통령가운데 하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개는 가엾은 짐승이다 얼굴이 없다 실체가 없는 보조관념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말하면 뉘 집 개가 짖느냐 할지도 모른다 거봐라 개의 실체는, 개 같은, 개는 없다

 

 

 

개밥그릇의 노래

서지월

 

나는 철저히, 철저히 유배당한 지상에서의 짝잃은 고무신 누가 뭐래도 웃지 않고 울지 않는다 한낮의 해와 부엉이 우는 밤의 골짜기 둥근 달이 내 움푹 패인 겨드랑이 훑고 가도 퍼담을 수 있는 건 주인이 내어다 주는 음식 찌꺼기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나는 이내 속이 비어져 늘 여유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낮과 밤의 시간을 함께 한다

너희들의 식사시간을 은근히 습관처럼 기다리지만 너희들이 수저 놓고 자리 뜰 때 분주한 건 나 아무렇게나 마당가에 놓여져 나의 여윈 뼈와 살까지 핥는 강아지들을 보라 얼마나 눈물겨운 만찬인가

철저히 유배온 이 지상에서 때론 빗물도 고여 마당 가득 채워주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이라는 자부심에 넘쳐 흐르며 꽃송아리를 헤는 아이마냥 해와 달을 셈하며 살아간다

 

 

 

흰둥이 생각

손택수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보신탕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어서 도망가라, 멀리멀리, 자꾸 뒤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다음 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그날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흰둥이는 그런 나를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신경림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았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왔다

쫓으라면 쫓고 물라면 물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기운이 빠지자

주인은 그를 개장수한테 팔았다

그리고 그는 살과 뼈가 따로 추려진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식탁에 올랐다

주인도 끔찍이도 사랑하던

제 개의 고기를 먹으며 자못 흡족했다

 

그 개는 죽어서 헐값의 가죽밖에 남긴 것이 없다

가죽보다 더 값진 교훈을 남겼다는 거짓과 함께

 

 

 

흰 개

신미나

 

다리 위에서

흰 개가

내 쪽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알아차렸다

그 개는 오래전에 죽은

나의 할머니인 것을

 

할머니는 따라오라는 듯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꿈에서도 할머니는

마르고 쓸쓸한 개

 

우리는 같이 걸었다

예전에

그녀가 살았던 곳

 

우물 옆 흙집

파꽃 핀 채마밭을

빨래터를 지나

언덕 위의 장로교회

논물이 반짝이는 논길을

 

좋겠다,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다음을 내려놓았으니까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끌어안았다

품에서 흰 것이 빠져나갔다

 

조용한

눈물이 귀로 흘러내렸다

 

 

 

개 똥

신현정

 

쇠사슬을 풀어주자 쏜살같이 뛰쳐간다

급하기도 하여라 그러나 개는 똥 눌 자리를 찾아

한동안을 쩔절매다가

비로서 엉덩이를 좌정하고는 똥을 눈다

, 똥 봐라

똥에는 하루종일 쇠사슬에 묶여 물고 뜯고 흔들고 집어넣은 이빨자욱이

요만치 없다

그렇게 물고 뜯고 했는데도

전쟁의 상흔이란 요만치 없다

오히려 화해의 승리의 질펀한 냄새가 생짜로 오르는 똥이다

그래도 개는 무엇이 못 미더운지 제가 눈 똥을

코로 몇번이고 킁킁거리다가 간다

아 마침 하늘은 파랗고

, 그냥 저 똥에 경배하고 싶어진다

 

 

 

강아지들

엄원태

 

젖 뗄 때가 된 동네 강아지 셋

아침 산책 때면 먼저 알아보고 우르르 달려온다

와서는 제 몸에 묻은 먼지들을 떨어낸다

털에 달라붙은 늦봄 햇살까지 마구 털어놓는다

저희들끼리 밟고 깨물고 짓까불면서도

지척에서 알짱거릴 뿐, 쉽사리 손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막내인 듯한 검둥이 암놈만

배를 드러내고 누워 다리를 달달 떨어 댄다

개들에게선 어쩔 수 없이, 개 냄새가 난다

개들로선 어쩔 수 없는 것

저희들끼리 짓까불던 장난마저 심심해지자

네발로 우뚝 서서 무심한 듯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각각의 슬픔으로 여문 검은 눈망울을

서로가 처음인 듯 가만히 들여다보곤 하는 때가 있다

 

 

 

내 강아지

오애숙

 

들녘의 강아지풀 보노라니

가슴에 피어나 물결치며

옛 생각 잠기는 맘

그리움 향수로 피어 보고파 지네요

 

그 옛날 옛 추억들 피어나는 옛 얘기

어릴 적 할머니는 아이고 내 강아지

날 보고 그리 부르며 어여뻐 했지요

 

언제나 눈에다가 넣어도 안 아프다

늘 그리 말씀하고 쓰담았던 내 머리

이제는 나도 조카를 만나면 그리해요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짖지 않는다?

오정방

 

우리나라 속담에

'도둑을 맞으려니 개도 짖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잡아 먹기 위해

개를 기르는 것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둑을 쫒기 위해 사나운 개를 키운다

요즘 사행성 도박 '바다이야기'

신성한 바다를 모욕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정말 그 내막이 궁금한 이야기로

심심잖게 시중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애매한 개 이야기가 등장한 모양이다

어쩌면 개들도 화가 날지 모른다

짖지 않는 개도 다 이유가 있다는데 주인이 도둑이니 주인보고 짖는 충성된 개가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항변한다지 않는가

개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고 했다는 개소리는 아직 듣지 못해 모르거니와

'바다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한 번도

사행성 도박장에 가보지 않았어도 이미 국민들은

많은 것을 앉아서 도둑맞았다

이 도둑은

개가 짖거나 짖지 않음에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자존심을 엄청 훔쳐갔다

개가 짖어

배고픈 도둑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지극히 상식적인

그 시대가 몹시 생각난다

 

 

 

엘레지

오탁번

 

말복날 개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말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엘레지 몰라요? 개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오하룡

 

, ,

개는 짖어 주인을 반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은 황급히

입 막는 시늉

 

철없는 개는

꼬리 살랑 살랑

 

, ,

더욱 크게 짖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뒷집 창문 여는 소리

 

주인은 사색 되어

입 막는 시늉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

유용선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아버지와 함께 간 그 냄새 나는 식당,

그 옆에 냄새나는 변소,

그 앞에 묶여 있던 양치기,

는 그렇게 묶인 채로 내 엉덩이를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안 물어.

그 새끼 그 개만도 못한 주인 새끼의

그 말만은 믿지 말았어야 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는 말이 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번번이 짖는 개에게 물렸다

 

사랑을 부르짖는 개

는 교회에서 나를 물어뜯었다

정의를 부르짖는 개

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덮쳤다

예술을 부르짖는 개

는 백주대로에서 내 빵을 훔쳐 달아났다

 

괜찮다, 괜찮다,

는 개소리는 지금도 내 엉덩이를 노린다.

괜찮아, 괜찮아, 물지 않을 거야

저 새끼 저 개만도 못한 새끼의

싸늘한 속삭임을 나는 도시 믿을 수 없다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

유응교

 

소유한다는 건

오히려 큰 짐이라고

물 한잔 마실 컵만 가지고 다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그도 어느 날

한 소년이 손으로

물을 받아먹는 걸 보고

컵마저 버렸다

 

그런데 만일 개들이

디오게네스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손까지 필요하다고요?

우리는 평생을

너무 커서 입에 물 수 없는 건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

 

개들은 때가 되면

그냥 길에다 두고 오고

집으로 가져오는 법이 없다

많은 걸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개들은 칭찬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으며

자신을 남과 비교 하지도 않으며

놓아야 할 때를 안다

 

배신을 모르며 늘 기뻐하며

쉽게 용서하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고

매트 와인스타인은 말한다

사람이 이보다 더 행복 할 수 있느냐고

 

그는 애완견 블루가 세상을 뜨자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이곳에는 아름다웠으나

허영심이 없었고

강했으나 사납지 않았으며

인간의 악덕은 알지 못했으나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던

고귀한 영혼이 묻혀있다

 

 

 

이길원

 

시모산 기슭에 개를 키우는 집이 있다. 언젠가는 보신탕집에 팔려 갈 누런 똥개들을 쇠사슬에 묶어 우리에 가두고 키우는 집이 있다. 갇힌 똥개들은 사육장 근처를 얼씬거리는 발그림자에도 지레 놀라 시끄럽게 짖어댄다. 그럴 때면 집을 지키는 사냥개가 으르렁 발톱을 세운다. 꼬리를 내리는 똥개들. 안방을 오가는 스피츠란 놈은 그런 똥개들이 안중에 없다. 주인이 바뀌어 죽어야 하는 똥개에겐 관심이 없다. 꼬리 흔들며 사냥개 근처나 살랑거린다. 주인 눈치에 익숙한 사냥개는 방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는 스피츠에겐 꼬리를 흔들면서도 끼깅대는 똥개에겐 이빨을 세운다. 그 집에는 으르렁대는 개와 꼬리 흔드는 개와 꼬리 내리는 개들이 함께 산다

 

가만 보니

으르렁대는 개나

꼬리 흔드는 개나

꼬리 내리는 개나

모두 개는 개다

 

 

 

밥그릇 경전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개 두 마리

이동순

 

지난여름 장에 가서

암수 강아지 한 쌍을 사왔다

이놈들이 커서 이젠 제법 개 구실을 한다

어느 날 과자 하나씩을 주었더니

제각기 자기 과자 앞에서 과자를 지키며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두 시간이 지나고 오전이 다 가도록 서로

눈치만 보며 먹지를 못한다

등털 곤두세우고 침만 질질 흘리는

이 어이없는 긴장

나는 늦게사 그걸 알고

가서 과자를 멀리 던져버림으로써 팽팽한 긴장을 깨뜨렸다

이놈들은 그제사 고개 들고 하늘도 보고

또 서로 핥아주기도 한다

 

 

 

개 팔자

이문조

 

오일장 가축시장

한켠

개 잡는 곳

 

가마솥엔

물이 펄펄 끓고

털 뽑는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간다

 

개 나라 저승사자 앞에

또 개 한 마리

끌려나왔다

 

아무리 성질 더러운 개라도

이들 앞에서는

꼬랑지 내린다

 

쇠 파이프 한 방이면

세상과의 이별이다

 

이 처참한 광경

바라보고

고개 돌리는 개 몇 마리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이들

팔자를 탓하기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미친개에 물리다

이문조

 

미친개에 물린 셈 치고

잊으라고들 한다

 

미친개에 물린 기분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미친개에 물린 상처

얼마나 큰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미친개에 물린 셈 치라는 말

쉽게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개 같은 날

이상호

 

주인 없는 날들 중엔

개가 주인이 되는 날이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퀴 사이로

흥건한 아침을 묻은

잡종 개죽음

개뼈다귀 같은 삶에도

불륜이라도 뜯고 싶다는

친구의 아픈 이야기가

이빨처럼 박힌 점심

개뿔도 쥐뿔도 없는 손에

놓지 못할 목걸이

희망처럼 개꿈을 꾸는

 

 

 

개 조심하게

이생진

 

개 조심하게

그 집 개 사나우네

몸조심하게

바깥 날씨 여간 아닐세

조심해 살게

여간 어려운 것 아닐세

조심해 죽게

여간 싱거운 것 아닐세

 

 

 

갈비집 똥개 이야기

이선명

 

퇴근하는 길 갈비 집 배부른 똥개에게

깜직한 아니 보기에 따라선 끔직한 윙크를 날린다

부족한 게 없는 놈이라 여전히 무심한

멍한 눈으로 나를 보는 도도한 똥개

그래도 갈비 보단 관심이 더 필요한 거라고

용기를 내서 애교있게 몇번 더 윙크 윙크 하지만

여전히 무심히 하품뿐인 배부른 똥개!!

누군가에 관심엔 아랑곳 없이

주인에 팔다 남은 갈비에 꼬리를 흔든다

'이봐 똥개!!

그 갈비는 주인을 위한거야!

그렇게 포동 포동 살만 찌단 무더운 어느 여름

그때서야 알게 될거야 내 윙크의 감사를...'

웃긴 만큼 씁쓸한 운명

똥개의 관심도 갈비가 있어야 한다

내일 죽어도 오늘 갈비를 준다면

순정은 오로지 그대의 것

 

 

 

어떤 죽음

이성이

 

떨이 짧고 갈색인 애완견이

며칠 전부터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가능하면 혼자 있으려고 한다

천성인 듯 사람을 잘 따르고

언제나 경쾌하던 개가

좋아하던 고기나 치즈를 줘도

제 발 위에 올려놓은 턱을 꿈쩍도 않았다

다만 주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젖은 눈망울을 한번 껌벅이고

스르르 눈꺼풀을 닫는다

15년 함께 한 주인이 가까이 오는 것도 거부하고

혼자 현관 앞으로 가

대문을 향해 엎드린다

외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개와 나 사이가 참 적막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 자세로 죽어 있었다

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솔로 강아지

이순영

 

우리 강아지는 솔로다

 

약혼 신청을 해 온 수캐들은 많은데

엄마가 허락을 안 한다

 

솔로의 슬픔을 모르는 여자

인형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우리 강아지

 

할아버지는 침이 묻은 인형을 버리려한다

정든다는 것을 모른다

 

강아지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외로움이 납작하다

 

 

 

복구

이시영

 

화엄사 들머리 산채정식 집에 사는 복구라는 개는 사천왕상 같은 험악한 얼굴에다 승냥이 같은 덩치로 마구 짖어대는 바람에 이 집의 유명한 비빔밥 소문을 듣고 마당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깜짝 놀라게 해 입이 건 주인마님에게 늘 저 개 같은 새끼!”라는 야단을 맞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단 한 사람, 연주암 사는 방장 스님의 사미승에게만은 미소년처럼 굴어 사립 밖에 거의 발짝 소리만 들렸다 하면 불같이 달려나가 가슴까지 뛰어오르며 죽고 못 살아 둘 사이가 이상한 관계라는 소문이 인근에 자자하다고들 하는데, 하여튼 화엄사 범종각의 범종 소리가 산자락을 은은히 적시며 울려 퍼지는 저녁 무렵이면 심부름 왔던 고운 사미승을 따라 연주암 가는 산기슭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걷는 복구군의 공순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강아지와 구름과

이영지

 

구름을

한 아름씩

안고서 걸어간다

가벼워 몽실몽실

살아서 싱그럽다

바닥에 내려 놓으면

졸랑졸랑

꼬리로

 

꼬리를

도리돌돌 돌리며 살랑살랑

하늘 봐

나를 봐 봐

하늘을 꿈꾸는 법을

하얀 구름

돌리며

 

 

 

다롱이의 꿈

이옥근

 

산골 폐교 미술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던 다람쥐를 보고 온 날,

한 달 동안 가둬 기른 우리 집 다롱이를

베란다에 풀어주었습니다.

베란다는 금세 다롱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침 햇살 한 움큼씩 쥐어 주던 해님도

거실을 기웃거리며 웃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오신 어느 날

산짐승은 산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

다롱이를 뒷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저 들꽃처럼 바람처럼 너울너울 살라며

기도하고 풀어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꼬리 닮은 억새들이 손짓하며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뿌리치고 뛰었습니다.

다롱이가 떠난 며칠 후

베란다 화분마다 해바라기 씨앗이

소복하게 싹을 틔웠습니다.

먹이를 줄 때마다 조금씩 묻어 둔

다롱이의 겨우살이 식량이었나 봅니다.

다롱이가 떠난 그 자리에

다롱이의 꿈들이 고물고물 흙을 뚫고 나와

하나씩 음표를 세우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개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이윤학

 

점심 무렵,

쇠줄을 끌고 나온 개가 곁눈질로 걸어간다

얼마나 단내 나게 뛰어왔는지

힘이 빠지고 풀이 죽은 개

더러운 꼬랑지로 똥짜바리를 가린 개

벌건 눈으로 도로 쪽을 곁눈질로 걸어간다

도로 쪽에는 골목길이 나오지 않는다

쇠줄은 사려지지 않는다

무심코 지나치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밀려가듯 개가 걸어간다

늘어진 젖무덤 불어터진 젖꼭지

쇠줄을 끌고 걸어가는 어미 개

도로 쪽에 붙어 머리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다

하염없이 꽃가루가 날린다

* 발레리의제쳐놓은 노래에서 인용

 

 

 

개도 브래지어를 찬다

이정록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은 아이들을 쏙 빨아들인다

심심해진 운동장 한가운데로

어미 개가 강아지 여섯 마리를 데리고 간다

이렇게 넓은 세상도 있단다

이렇게 넓은 세상도 작은 모래알들이 주인이란다

젖통을 출렁거리며 제 새끼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끼들은 자꾸 급식실 식단표

고등어조림에다 코를 들이밀 뿐이다

참고 젖이나 먹자고, 서둘러

운동장을 벗어나 문방구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어미 개가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밀자

콩꼬투리처럼 새끼들이 어미 젖통에 매달린다

젖을 가리기엔 우리들의 입이 젤 좋지요

뒷발에 힘 모으고 쪽쪽 쪽쪽 젖을 빤다

강낭콩 같은 젖꼭지들이 제 브래지어의 솜털을

흠씬 적셔놓는다, 어미 개만이

브래지어를 찰 수 있다

 

 

 

개에 대하여

이향아

 

흔히 '개 같은 무엇'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만 나는 맹세코 그런 적 없다

내가 감히 개를 무시하다니.... 나는 단지 개가 두려울 뿐이다

마주 보면 그 눈에 빨려들었고, 손에 닿으면 그 털에 놀랬으며

반갑다고 뛰어오르면 원시의 정글에 갇힌 듯 눈앞이 캄캄했다

그중 미미는 약 먹은 쥐를 먹었다

그중 뽀삐는 바람나서 가출했다

그중 럭키는 술이 취해 죽었다

햇살이 치렁치렁 취기처럼 흔들거리던 날

감나무 아래 파묻은 포도주 찌꺼기를

그가 파먹을 줄 꿈에나 알았겠는가

요약해서 말하자

하나는 자살로, 하나는 연애로, 하나는 과음으로 떠났지만

그것은 핑계. 그들은 연신 내 사랑이 모자람만 짖어댔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했다. 영물이니까

오래 응시하다가는 들킬 것이 뻔하니까

개 같은 것이나 무서워하는 인간인 나를 들킬 것이고

안아 들일 품이 좁은 나를 들킬 것이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을 들키고야 말 것이니까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영물이 아닌 보통 개라도 날 깔볼 거야

겨우 개 같은 것이나 겁내는 나 같은 인간을, 그는 철저히 무시할 거야

 

 

 

소라단 강아지들을 보내며

임백령

 

버림받지 마라

병들지 마라

잡어먹히지 마라

 

너희 엄마는 유기견

숲에서 만나 곁으로 오기까지

여러 달이 걸렸지만

아주머니 동료 아이들 함께

하루 세 끼를 부처 모시듯 공양했다.

너희들 중 첫 아이는 내 손으로

끊은 탯줄을 땅에 묻기도 했지.

 

해 지는 저녁 어둔 밤 곁을 지키며

배를 쓸어 주고 새끼 잘 크고 있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던 소리

다섯 마리 너희들이 들었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를 물리치고 숲가에서 눈을 떴으니

언제나 강인하게 자라거라

소리를 얻고 냄새를 익히며 세우던 이빨

불러주는 소리 변함없이 듣고

향기로운 냄새만 꽃피길 바라며

따뜻한 손 핥으며 부드러운 이빨 되거라

 

너희 족보에서 유기라는 말은 지워질 것이다.

흰둥이 엄마는 애들이 지어준 이름 망고

공원을 찾아온 누렁이는 너희 아빠 해피

하얀 애가 세 마리 두 색이 섞인 두 마리

바람처럼 사랑이 새겨졌으니 발발이 종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피가 예쁘기도 하지

 

사방으로 흩어져도 다섯 남매 하나같이

밤을 지키고 밝은 아침 열어젖혀라

새 사람 만나 정들이는 터전에서

처음처럼 사랑받고 어둠 속에서 내미는

절망의 손끝에도 눈 뜨고 안겨라

쫓기며 꽁무니 내리고 숨는 일 없이

꼬리 저어 반기는 반려 되어 살아라

 

오늘 축복을 빌며 쓰다듬는 나의 손길

먼 길 찾아가 항상 너희 등을 쓸어주리라

 

 

 

개밥그릇

임보

 

한 나그네 시골 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있는데

마당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개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쓸 만한 백자 막사발이 아닌가?

개는 잡종 똥개인데 밥그릇 호사를 하는구나

저 멍청한 주인이 백자도 못 알아보고

개밥그릇으로 쓰고 있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옳지, 저놈을 내 수중에 넣고 가야지……

나그네 속으로 이 궁리 저 궁리 한다

저 그릇을 그냥 팔라고 하면 눈치를 채게 될 터이고,

옳지, 저 개를 사겠다고 하여 덤으로 얻어가야겠다고 꾀를 낸다

나그네가 주인을 불러, 혹 개를 팔지 않겠느냐고 묻자

의외로 주인이 선선히 팔겠노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나그네는 주인이 요구한 대로 헐찮은 개값을 치른 다음

지나가는 말처럼, 저 개밥그릇을 끼워 줄 수 없는가고 묻는다

그러자, 주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길

 

"저 밥그릇 덕으로 개를 여러 마리 팔았습죠!"

 

 

 

우리 동네 똥개들은

임영준

 

우리 동네 똥개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미쳐 날뛴다

구석자리에만 숨어 누던 똥오줌을

울타리 안까지 쳐들어와

마구 싸질러놓는다

우리 동네 똥개들은

4년마다 버젓이 짝을 바꾼다

돌려붙기도 하고 따로 붙기도 하고

육덕 좋은 놈들끼리 잘도 붙는다

우리 동네 똥개들은

4년마다 구역다툼으로 날밤을 샌다

달리 짖는 소리만으로

다들 쏠쏠하게 한몫 잡는다

 

 

 

개 소리

장수남

 

덥수룩한 더벅머리

갈색 새벽하늘 등에 지고 간다

 

지친 다리 신발 벗으면

하얀 새벽

꼬기꼬기 구겨진

지폐 몇 장 동전 한 잎 헤아리면

동은 트고

 

새벽 개 짖는 소리

밤에 짖고 낮에 짖고

시도 때도 없는 개 소리

세상 두꺼운 먼지만 쌓인다

 

 

 

 

개 짖는 소리

장하빈

 

개 짖는 소리 들으면

누가 고갯마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동네 사람인지 외지 사람인지

굵은 빗줄기 재 넘어오고 있는지

개 짖는 소리의 파장으로

금방 가늠할 수 있다

 

꼬리 흔드는 개를 보면

마을 손님 어디쯤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청도원인지 먹감나무집인지

동구나무 그늘 빠져나가고 있는지

먼 발소리 듣고

개는 꼬리로 신호를 보낸다

 

개 짖는 소리에 귀 쫑그리는 고개티 사람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산다

 

 

 

개 같은 봄날

전영관

 

열차처럼 개나리 무더기가 지나가는 정오

아스팔트에도 겹겹 현기증이 쌓여있다

몸살인지 허기인지를 지우러 들어간 식당

이 동네선 눈치 보이는 음식이라는 듯

황사 분위기의 여주인을 중심으로

식탁들만 공손하게 엎드려있다

 

개장국 한 그릇 주문하며 앉아버렸다

울음이 흘러내리는 길목에 간판 건 식당

불 지르기 좋게 마른 봄날인데도

방석이 눅눅하다 참지 못할 일이라도 당했는지

뚝배기는 식탁에 올라와서까지 부글거린다

고깃점은 어금니에 짓이겨지면서도 비명이 없고

허연 아랫도리를 된장으로 대충 가린 냉이를

햇빛이 집적거린다 다들 얼굴 젖어있는

저 위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몸살이 아니라 허기였다며 국물은

구수하게 넘어간다 녀석도 좋아했던 맛이다

 

잘라버리겠다는 기세로 내리꽂히는 햇빛 사이로

개장국 건더기처럼 느릿느릿 걷다가 굴뚝을 보았다

화장(火葬)이 끝나지 않았는지 희미한 연기가 올라온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뭉개진 허벅지 한 짝을

끝내 맞춰주지 못하고 녀석에게 수의를 입혔다

개장국에 소주를 좋아했던 내 친구

점심도 거르고 절뚝거리며, 뛰어가고 있다

 

 

 

젖을 향하여

정윤천

 

빨갛게 드러난 젖들이 걸음을 옮길 적마다

산처럼, 바다처럼 출렁거린다

차라리 젖으로 길 걷고 있는 어미 개여

열두 목숨 건사하는 꼿꼿함이

느린 발자국마다 서려있다

 

열두 개쯤 되어 보이는

마음껏 불어난 탱탱한 젖통을

땅바닥에 가깝게 늘어뜨리고

집을 향해 돌아가는

늙은 개 한 마리를 본다

 

이때쯤이면 한낮의 햇빛들도

젖을 향하여, 제빛을 모은다

 

 

 

묶인 개가 짖을 때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 ! !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 ! !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아이와 강아지

정일남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이 하나가 강아지를 풀어놓고 간다

강아지가 앞질러 저만치 가다가 아이를 돌아본다

그리곤 안심이 되는지 다시 저만치 내달린다

서로 은연중에 여물어버린 눈짓

아이가 가는 길이 강아지 길과 겹쳤다

강아지와 아이가 가는 길을 낮달이 굴렁쇠를 굴리며 따라붙는다

길이 강변을 계속 이어가니 물이 동행하며 춤춘다

강아지와 아이는 어린 세상이고 아직 자랄 부분이 많다

꽃망울 같은 것이 많다

수초와 나비와 잠자리들이 그림 같고 교과서처럼 반듯하다

마른 모래 서걱이는 날이 많았고

여기 저기 눈물진 기슭은 얼마나 많았던가

여울이 모든 것을 작파하고 수평이 되려고 애쓸 때

나도 적막이 되려고 낮은 곳을 찾았다

유장하게 흘러온 세월은

낮은 곳을 찾이하려는 물이 되려고 했기에

아이와 강아지가 저렇게 즐거워한다

 

 

 

개 같은 신념

정철훈

 

밖에는 비가 오고 아내는 지금 샤워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젖어드는 칠월 장마철

비애의 강이 안팎으로 흘러가는데도

나는 내가 젖지 않는 이유를 모른다

빗줄기와 샤워 물줄기 사이에 서 있으면서도

물 한 방울 묻지 않는 내가 죽이고 싶도록 밉다 하지만

아내는 죽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어젯밤 아내는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나를 기다리다

화장실 문고리에 넥타이를 걸어놓고 목매는 시늉을 했더랬다

그러니까 아내는 자살 미수 후 긴 잠에서 깨어나

비 오는 아침에 뜨거운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인데 아내는

내가 늦바람이 나서 뻔뻔하게도 어떤 낯선 분냄새를

버젓이 묻혀왔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아내여, 죽음은 리허설이 없다

딸년도 아들놈도 조금은 슬프게 웃지 않았던가

혼절한 듯 쓰러진 엄마를 일으키던 아이들이

우리가 벌이는 애정행각에 시큰둥하지 않았던가

녀석들은 아마도 유행가로 배웠을 테지만

사랑이야말로 쓰라린 배반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비와 샤워는 의심의 음악인 셈이지만

나는 그 의심에 젖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한번 삿갓을 눌러쓰면 하늘이 보이지 않듯

아무리 비가 와도 나는 젖지 않는다

그래도 어젯밤은 너무 아슬아슬해

하마터면 모든 걸 실토할 뻔했다

아내의 신파적 자살 시늉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가 비애의 강에 풍덩 빠져버렸을 때

나 역시 자살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이 두려웠다

아내여, 내가 젖는다고 세상이 바뀔까

사랑도 죽음만큼이나 간단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미수 사건 후 집에서 키우는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가

아내의 품속을 번갈아 들락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내가 불러도 녀석들은 오지 않는다

개들이 진실의 냄새에 더 민감한 것이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코와 입에서

연기를 내뿜던 나를 녀석들은 차갑게 외면했다

그건 개들의 신념이다 본능이다

사랑의 기압골이 맞부딪쳐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아내는 지금 뜨거운 샤워를 하고 있다

아내여, 지금 맞고 있는 물줄기가 사랑임을 왜 모르는가

물 위에 쓰는 것이 사랑인 것을

내가 젖지 않는 이유는 내가 이미 젖어 있기 때문임을

개들의 신념보다 나의 신념이 때로는 진보일 수 있는 게다

그러므로 나는 뉘우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실토하지 않을 참이다

아이들도 못난 아버지를 이해할 날이 오겠지

사랑도 죽음과 같아서 리허설이 없다는 것을

빗줄기가 아무리 거세게 나를 의심한다 해도

나는 참말 고백할 게 없다

아내여, 물기가 마르거든 말을 붙여다오

고백하지 않는 당신의 신념이 뭐냐고

물 위에 쓰는 사랑이 대체 뭐냐고

 

 

 

강아지와 까치

정해철

 

소한

겨울조차 추위에 떨든

지난밤

바람이 몹시도 울더니

앙상한 가로수 밑에

다소곳이 양발을 턱에 괴고

잠을 자는 강아지

이 겨울을

처음 보낸 것도 아닐 텐데

지난밤이 몹시도

외로웠나 보다

길지도 않은 생명을

놓아 버렸으니

부산한 아침

관심조차 없는 죽음 앞에

문상하듯 주위를

서성이는 까치 한 쌍

세상은 점점 의미 없는

죽음으로 채워져 간다

 

 

 

밥그릇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조동범

 

도로 위에 납작하게 누워 있는 개 한 마리

터진 배를 펼쳐놓고도 개의 머리는 건너려고 했던 길의 저편을

향하고 있다. 붉게 걸린 신호등이 개의 눈동자에 담기는 평화로

운 오후. 부풀어 오른 개의 동공 위로 물결나비 한 마리 날아든다

나비를 담은 개의 눈동자는 이승의 마지막 모퉁이를 더듬고 있다

개의 눈 속으로, 건너려고 했던 저편, 막다른 골목의 끝이 담긴다

개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감는다. 골목의 끝이, 개의 눈 속으로 사라진다

물결나비 한 마리

출렁이는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납작하게 사라지는 개의 죽음 속으로

 

 

 

똥개

최길준

 

별 속에 두고 온 고향

춤추는 겨울 나비 그리움이 하얀 눈꽃에 젖는다

하얗게 변해버린 은빛세상 감격에 겨운 몸부림

안으로 억눌린 상실된 비애 허공 속 컹컹 소리 내 짖는다

 

말은 없어도 눈빛 속에 담은 슬픔

오직 순종하는 마음 인간 속에 들어와 삶을 공유하네

꿈을 펼쳐 날개를 달고 하늘을 비상하고 싶은데

아직 피지도 않은 얼어버린 매화꽃 등걸에 기대어 운다

 

자유를 구속당한 설움

목에 매어진 갈고리 같은 견고한 밧줄

용맹을 나타내는 상징 인가 골목길 발걸음 소리에

온 정성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똥개 거룩한 천사의 후예일까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두 귀를 쫑긋 세워 밤을 지켜주는 불침번

깊은 사랑 안에 품어 흘러넘치는 강물 같은 기쁨을 주리라

사랑스런 누이 같은 똥개

 

 

 

네 발로 걷는 스승

최병무

 

네 발로 걷는 스승이라는 책()이 있었다

거기, 악보를 볼 줄 알고 산수를 하고

천리안을 가진 개들이 있었다

인간이 개의 입장에서 본 이야기였는데

둘 사이에 대화(對話)도 가능하다는 것,

물론 나도 개를 사랑하지만,

(내 누이는 장애견이나 유기견을 거두고 있지만,

그 중 '자비' 녀석은 기일(忌日)까지 기념하지만,

한겨울 뒷산에서 학대와 기아로 동사(凍死) 직전에

구출된 '기쁨'이는 다시 얻은 이름 그대로

재활에 성공한 케이스지만,)

오늘 나는 보았다

출가한 것이 분명한 어느 집 개인지

도심의 횡단보도를 단정히 건너는 준법적인 모습을

진화한 개들은 과연 그럴 수 있다

 

개들이 얼마나 세상을 알려고 하는지

차에 태워보면 안다 슬픈 가축의 역사(歷史)

초롱하기도 하고 그윽한

그 눈이 선량하다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廢水)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개새끼

하영순

 

옆집 개가 자동차에 치여

잘숙잘숙 절더니

어느 날 새끼를 낳았다

 

개가 새끼를 낳았으니

개새끼

 

눈 떨어지자

꼬물꼬물

온통 개판이다

 

이젠 꼬리를 잘래잘래

제법 귀엽게 놀고있는 너

개자식인가

개새낀가 묘한 이름

 

개새끼

-

 

 

 

하옥이

 

돌연

우리집 개가 짖는다

 

누가 왔다 싶어

나가보니 아무도 없다

 

옆집 개가 짖으니

그냥 따라 짖은 거다

 

바야흐로

뒤숭숭한 선거철이다

 

사람은 결코 개를 흉내 내어 짖으면 안 된다

 

 

 

버려진 개

하재청

 

하필 버려진 아이가

버려진 개에게 물렸다

그동안 잘 감추어 둔 송곳니

임자를 만난 듯이 벌떡 일어섰다

인사동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눈꼽 낀 개 한 마리

복수의 칼날을 한번 스윽 갈았다

골목길 어귀를 지키며

어둠을 내쫓던 똥개

입가 메마른 수염에

말라붙은 밥풀데기 두어개

숨길 수 없는 훈장처럼 달고

두 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추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아무리 어슬렁거려도

새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신을 사육한 주인장

저만치 의기양양 걸어오면

마지막 배려에 고개 숙이고

막다른 골목 벽에 붙어서서

두 다리 오금 저린다

어느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날 세운 송곳니,

가야 할 길 찾지 못하고

입 안으로 물컹 들어오는

아이가 내민 손을 덥썩 물었다

어딘가 향해야 할 무딘 칼날이

자신을 물어뜯으며 웃고 있는 오후

 

개와 아이가 서로 손을 내리고

꼬리를 감추었다, 사라졌다

 

 

 

미친개

하종순

 

참 옛날이다 보리 꽃이 필 무렵

미친개가 다닌다고 조심 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하교 길이 무서웠다

 

보리밭 사이에서 뛰어 나올 것만 같은

미친개

걸렸다 하면

물고 늘어진다 하여

봄이면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땐 그런대로 무사했다

 

현대판 미친개는 텔레비전 화면을 채운다.

병세가 심각하여

물고 물리고

물고 뜯고

물었다 하면 놓을 줄 모르니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하다

 

개더나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란 바람이

회오리를 치는데

세상에 독이 퍼질까 겁난다

 

 

 

고물상 집 개

한도훈

 

이월의 붉은 저녁해가

고물상 집 집게차 위에 걸리면

고물상 집 털 빠진 개는

한무더기 똥을 싼 뒤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막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저녁해는 그 개의 무념무상한 모습을

넋 나간 얼굴로 지켜보다

연방 흔드는 개꼬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녁해가 고물상집 개가 되고

고물상집 개가 저녁해가 되는

이 기막힌 풍경 앞에

집게차만 무거운 몸을 뒤틀며

길게 하품을 해댄다

유성식당(遊星食堂)에서 개고기를 먹고

이쑤시며 돌아온 주인이

해탈한 개 옆구리를 냅다 차면

깨갱깽깽 고물상집 개의 비명이

울림과 동시에

저녁해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우우우 비명 소리를 지구 위로 올려보낸다

 

 

 

나는 당신의 개

한도훈

 

나는 온밤내 당신을 지키는 개입니다

당신이 심하게 코를 골 때나

가끔씩 침대에서 떨어질 때

작은 목소리로 컹컹 짖어

당신의 건강을 염려하다가

발길질에 채이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아침이 오고

하루종일 당신을 기다리며

찢어진 신문지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연거푸 터지는 전화벨소리에 놀라

화장실로 몸을 숨기기에 바쁩니다

늦은 저녁이면

당신이 초인종을 누르기가 무섭게 달려나와

당신의 발을 핥고

튀어 올라 당신의 얼굴도 핥고

당신의 몸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별들도 핥습니다

나는 당신의 개입니다

그저 개이기에 개의 철학은 없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길만 따스울 뿐입니다

 

 

 

대머리 개

한도훈

 

그의 목에 개 목걸이를 달아 맸어

발버둥 치면서 반항하더군

몸뚱이는 개, 머리는 대머리

그를 끌고 경동시장으로 나갔어

이 시대 희한한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죽 끓듯 하더군

지나가던 차들도 멈추어 섰지

대머리 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어

척 하니 안경 하나 걸쳐주고 싶었지만

그놈의 노숙 시대에 돈이 있어야지

모여든 사람들이 대머리개를 향해

침을 뱉기 시작하더군

에이, 재수 없어 개 같은 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대머리 개에게 쏠려 있었어

경동시장 사거리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지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경찰들이 들이닥쳤어

기세등등하던 경찰들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개 혓바닥처럼 곤봉을 늘어뜨렸어

대머리 개가 아이 똥을 핥고 있었기 때문이야

허허, 세상 많이 변했군 변했어

뜨르르 산천초목 울리던 대머리개가

이제는 아이 똥이나 핥고 있군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어

그렇게 사람들은 몰려들고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순간 돌들이 날아왔어

대머리개가 깨개개개갱 비명을 올리며

쓰러지고 이마에 돌을 맞아

피떡이 되는 것을 보면서

꿈에서 벗어났어

하지만 이게 정말 꿈이었을까?

 

 

 

개꿈

한재만

 

인간답게 살겠다고

노동쟁의를 하다가 목이 짤린

친구가 목이 셋 달린 바람에*

평화시장을 미친개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봄날이 온다던 광화문사거리에서 벤츠차에 깔려죽었네

 

* 3선개헌

 

 

 

함민복

 

망둥이를 낚으려고

노을 첨벙거리다가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서도 개는 내 수상함을 간파하고

나를 겁주며 짖는다

내가 여기 더 오래 살았어

네가 더 수상해

나는 최선을 다해 개를 무시하다

시끄러워

걸음 멈추고 개와 눈싸움을 한다

사십여 년 산 눈빛으로

초저녁 어둠도 못 뚫고

똥개 하나 제압 못 하니

짖어라

나도 내가 수상타

서녘 하늘에

낚싯바늘 같은 달 떠 있고

풀뀅기에 낀 망둥이 댓 마리

푸덕거린다

 

 

 

개 같은 그대에게

홍사성

 

한 수행자가 조주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라고 묻자, 어느 날은 있다()’ 하고 어느 날은 없다(’) 했다고 한다

 

있다고 해도

없네

없다고 해도

있네

 

없는 것 같지만

있네

있는 것 같지만

없네

 

개처럼 살아도

부처

부처처럼 살아도

 

눈뜨고 보니 보이네

눈감고 보니 더 잘 보이네

 

개 같은 그대

부처 같은 그대

 

 

 

개가 늑대처럼 울어

황희순

 

팔공산에서 들은 늑대 울음소리가 개소리였다네

늑대가 없어진 세상은 개가 늑대 노릇을 한다나

또 누구는 개가 늑대랑 교미하면 늑대처럼 운다나

나도 처음엔 순하디순한 아이였지

'엄마' 소리밖에 못 하는 할아버지의 이쁜 강아지였지

처음부터 순종 아닌 게 어딨으랴

살다 보니 이상한 잡종이 돼버린 거지

개가 늑대처럼 울듯 나도 가끔 그렇게 운다네

새끼 잃고 밤새 우는 어미 소

울음 같기도 한 소리로 몇 년째 울고 있다네

그 개는 아마 새끼 잃은 개일지도 몰라

산속을 헤매며 하 슬피 울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일지도 몰라

 

 

 

Inscription on the Monument of a Newfoundland Dog

George Gordon Lord Byron

 

Near this spot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one

who possessed beauty without vanity

strength without insolence

courage without ferocity

and all the virtues of man without his vices.

This praise, which would be unmeaning flattery

if inscribed over human ashes,

is but a just tribute to the memory of

Boatswain, a dog

who was born at Newfoundland, May, 1803,

and died at Newstead Abbey, Nov. 18, 1808.

 

 

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

조지 고든 로드 바이런

 

이곳 근처에

그의 유해가 묻혔도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그 악덕은 갖지 않았다

이러한 칭찬이 인간의 유해 위에 새겨진다면

의미 없는 아부가 되겠지만

18035월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1118일 뉴스테드 애비에서 죽은

개 보우썬의

영전에 바치는 말로는 정당한 찬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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