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
손병흥 – 아버지 예찬
손택수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송유미 – 못 박는 아버지
신경림 - 아버지의 그늘
신달자 - 아버지
신달자 - 아버지의 빛
신석종 – 아빠의 마음
신성호 – 나의 아버지
심억수 – 아버지
심지향 - 아버지
심홍섭 – 아버지의 마음
안상학 – 아버지의 검지
안상학 – 아버지의 꼬리
안상학 – 아버지의 수레바퀴
안영준 - 아버님께 올립니다
안용기 – 아버지의 유산
안차애 – 아버지의 5시 방향
양문규 – 아버지의 감나무
양해선 – 아버지와 노인정
오봉옥 - 별리
오봉옥 – 아버지의 밥
오봉옥 – 아비
오인태 - 그때, 아버지는 어땠을까
오정방 – 우리 아버지
온기은 – 보고 싶어요, 아버지
온기은 – 아버지 당신의 마음
용혜원 – 아버지의 하늘
유자효 – 아버지의 힘
유홍준 – 포도나무 아버지
이강산 – 아버지를 넘긴다
이경 – 벽에 걸린 아버지
이권 – 아버지의 마술
이도윤 – 아버지
이병승 – 아버지의 수첩
이상국 – 고래 아버지
이상국 –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상국 –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이상국 - 혜화역 4번 출구
이선명 - 아버지께
이송희 – 아버지의 문
이승하 – 아버지의 낡은 내복
이승하 -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이승하 – 아버지한테 면회 가다
이영권 - 겨울 산
이영권 - 아버지의 오른 다리
이오덕 – 아버지
이원숙 - 숨바꼭질
이윤학 - 아버지
이정록 – 아버지의 욕
이주희 - 아버지
이주희 – 아버지의 고무신
이진선 – 아버지의 모습
이채 - 아버지의 눈물
이춘우 – 아버지와 주선사(酒禪師)
이탄 – 아버지의 안경
이한명 – 아버지의 허수아비
이현승 – 아버지
이홍섭 – 터미널
임길택 – 아버지를 죽이면서
임종호 - 아버지의 추억
장남제 – 아버지의 유산
장수남 – 아버지의 고등어
정군수 - 아버지의 지등(紙燈)
정낙추 – 갈꽃비
정수남 - 아버지
정순옥 – 거미집 아버지
정양 – 빈 무덤
정영주 – 아버지의 도시
정재영 – 아버지의 얼굴
정찬우 – 아버지처럼
정철훈 – 아버지의 등
정호승 – 아버지
정호승 – 아버지를 찾아서
정호승 -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정호승 - 첫눈
정희성 – 아버지의 안경
조남명 – 아버지의 혼불
조봉익 – 아버지
조재형 – 때늦은 서평 - 아버지
주선미 – 아버지의 세계 지도
차성우 – 아버지
최금진 – 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
최길준 – 그리운 아버지
최선 - 헌책방에 아버지들이 살고 있다
최승자 - 귀여운 아버지
최양현 - 아버지의 초상(肖像)
최연진 – 아버지의 미소
최창균 – 어느 겨울밤
최홍윤 – 아버지의 수첩
하영순 – 아버지의 손
하청호 - 아버지의 등
한상숙 – 아버지
함동수 – 아버지의 손목시계
아버지 예찬
손병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란 말에 묻혀진
비록 표현 서툴러도 그 사랑의 크기는 바다와 같은
과묵한 몸짓 시름 감춘 채 미소 속에 피어나는
단지 그 존재만으로 큰 힘이 되어주는 피붙이사랑
항상 고달픈 삶에 휘둘려 허리 휘고 다리 저리도록
가족위해 늘 몸이 부스러져라 참고 일하시는 그 노고
크고 작은 풍파에도 잘 견뎌가며 드러내지 않고서
말없이 묵묵히 거뜬하게 버터 내는 끈질기고 강한 삶
남들보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작고 보잘 것 없어도
하늘아래 무엇보다 더 높고 존귀하신 등판 널찍한 사람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못 박는 아버지
송유미
전쟁과 혁명을 좋아하던 아버지
군복을 벗자 떠돌이 도편수가 되었다
생생한 못 하나면 전국 지도에 방점 찍던 아버지
이제는 고충아파트 벽에 걸린 액자 속에 산다
그래도 한시절 떠돌이 도편수로 이름을 날렸는지
주막집 여자에게 돈만 떼이고 나를 얻은 아버지
그 뜯어내기 어려운 生들은 못질하고 대패질 하시는지
액자 속에서 더 노랗게 늙어버렸다
남의 가슴에 못질하던 니 가슴에도 못이 박히는 거여
대낮에도 액자 속에서 잔못질처럼 중얼거리는 아버지,
반평생 남짓은 못질로만 살았을 것인데,
그래도 무슨 못이 그리 남은 것인지
당신 손으로 꽁꽝 박은 棺 속으로 떠나던 아버지,
꽃상여 메고 가는 아들딸들도
다 다른 구멍에 박아서
자식끼리도, 가슴에 대못을 박게 하던 아버지,
이제는 못 박힌 액자 속을 떠나시는지
벽에 걸린 헐거운 못이 떨어졌다
아버지의 그늘
신경림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
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 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
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
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 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아버지
신달자
아버지는
바둑판 위에서도
언제나 집이 허물어지곤 하셨다
고대광실 물리고
막차 타고 떠난 고향
서울 변두리 어둡고 작은 방에서
허물고 또 지어 올리는
집
어깨 넘어 일흔
등 굽으신 채로
핏발선 남쪽 하늘
몇 번이고 꺾으시고
그래도 다시 마음 기우는
고향 산자락
골목길 누비시는
안경 너머에
노을이 걸쳐졌는지
걸음을 멈출 때마다
붉은 것을 닦아내시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빛
신달자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땅은 나의 아버지
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 들었다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
발톱 저리게 황망하다
자갈에 부딪혀도 피가 당긴다
아빠의 마음
신석종
지난 일요일 낮, 둘째 딸과
영화 '추격자'를 보았드랬지
곱상해 보이던 배우, 하정우가
검정색 창모자를 덮어쓰니까
늑대처럼 살벌한 놈이 되더군
혜림아 너, 똑똑히 잘 보았지
앞으로는 특히 모자 쓴 놈들,
그런 인간들을 조심해야 한다
아빠가 집에 없을 땐, 절대루
자장면 같은 거 시켜 먹지 말고
언니가 꼬시더라도, 알겠지?
언니한테도 꼭 알려주어라
아니, 언니는 이해시켜야 돼
아빠 말을 대충대충 듣잖아
나의 아버지
신성호
가끔마다 텅빈 마음 한구석에 좌정하시고
늘 지켜 바라 보시며 가만히 웃고 계시는 듯
쬐악볕 따가운 햇살의 그늘이 되어 주시고
폭풍우 속에서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 주시던 분
세상에서 가장 힘이 있어 이길사람이 없어 보이시던
그 분이 나의 자랑스런 우리 아버지셨습니다
배운 것은 작고 희미하여 유식하다 못 들었어도
어딜가도 다툼에 지지않는 오기가 있으 셨으니
동네 일은 아버지가 안 계시면 하나도 못할 양
앞장서서 해 내시던 정의의 우리 아버지셨습니다
이제는 먼 산에 아지랑이 뒷 모습처럼
내머리 희어져 아버지를 그리워 해봐도 아물거리고
내 나이 들고 철 들으니 거목처럼 커 보이시던
그때 그 모습이 내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심억수
나무가 쓰러졌다
지난밤 쿵 하고 넘어졌을 때
달빛만 잠깐 흔들렸을 뿐
알아챈 사람이 없다
지상에 뿌리를 내놓은 채 누워버린 나무
깃들어 살던 새들이 저만큼
쓸데없는 말들만 쪼아대고 있었다.
지나치게 곧은 성정 때문이라고도 하고
정작 자신에게 무심한 때문이었다고도 했다
깃들여 살던 자신들 때문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뿌리째 뽑혀 누워서도 전혀 말이 없는 나무
그 상처투성이뿐인 몸뚱어리를
지나가던 바람만 멈칫거리고 있다
무심한 달빛만 어른대고 있다
아버지
심지향
어린 날 곤히 잠든 머리맡에
꿈결처럼 슬며시 다가앉아
거친 손으로 쓰다듬어 주시던
바다처럼 넓은 당신의 품에서 풍겨나는
곰삭은 된장 같은 땀 냄새가 참 좋았습니다
한때는 피 끓는 청춘
가슴 저린 사랑을 고뇌하던
드높은 기상과 푸른 젊음으로
역동하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를 아로새기던
삶의 주인공이었던 아버지
제멋대로 뛰노는 장마철 청개구리처럼
당신의 아픈 생인손이었던 나에게
당신과는 다른 삶을 주시려고
끝없는 가시고시 사랑으로 품어 키우신
그것이 당신 마음인 것을
바위처럼 굳센 힘으로
한 세상 버티어 내시던 당신께서
거친 세월에 피 끓는 청춘 다 바치고
가랑잎처럼 야위어진 두 어깨
허물어지는 육신이 내 가슴을 아프게 저며 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
내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
내일도 모레도 오늘처럼 제 곁을 지켜 주십시요
당신께서 주신 몸 다 할 때까지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마음
심홍섭
돌아왔어요
돌아왔어요
사랑하는 내 둘째
아들이 돌아왔어요
모든 것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과거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큰 소도 잡고
큰 잔치를 벌리고
온 동네에 큰 소리로
내 아들이 돌아왔다고
소리쳤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이제는 아버지 마음
아프게 않을께요
아버지의 검지
안상학
지문이 반들반들 닳은
아버지의 검지는 유식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신체에서 눈 다음으로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독서를 할 때
밑줄을 긋듯 길잡이만 한 것이 아니라
점자 읽듯 다음 줄 읽고 읽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쪽마다 마지막 줄 끝낼 때쯤 검지는
혀에게 들러 책 이야기 들러주고
책장 넘겼을 것이다
언제나 첫줄은 안중에 없고
둘째 줄부터 읽었을 것이다. 검지는
모든 책 모든 쪽 첫줄을 읽은 적 없지만
마지막 여백은 반드시 음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유식했을 뿐만 아니라
삿대질 한 번 한 적 없는 아버지의 검지였지만
어디선가 이 시를 읽고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렇게 아버지의 여백을 읽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꼬리
안상학
딸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딸에게 장담하다 어쩐지 자주 듣던 소리다 싶어
가슴 한쪽이 싸해진다
먹고 죽을 돈도 없었을 내 아배
아들이 이럴 때마다 저럴 때마다
아부지가 어떻게든 해볼게
장담하던 그 가슴 한쪽은 어땠을까
아빠가 어떻게든 해볼게
걱정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딸에게 장담을 하면서도 마음속엔
세상에서 수시로 꼬리를 내리는 내가 있다
장담하던 내 아배도 마음속으론
세상에게 무수히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아배의 꼬리를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배의 꼬리는 떠오르지 않는데
딸은 내 꼬리를 눈치챈 것만 같아서
노심초사하며 오늘도 장담을 하고 돌아서서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꿈틀거리는 꼬리를 누른다
아버지의 수레바퀴
안상학
아버지의 인생은 오토바이 바퀴에서 그쳤다
달구지 하나 없는 화전민으로 살다가
지게 지고 안동으로 이사 나온 뒤
아버지의 인생은 손수레 바퀴였다
채소 장수에서 술 배달꾼으로 옮겨갔을 땐
아버지의 인생은 짐실이 자전거 바퀴였다
아들딸들이 뿔뿔이 흩어져 바퀴를 찾을 무렵
아버지의 바퀴는 오토바이 두 대째로 굴렀다.
아들딸들이 자동차 바퀴에 인생을 실었을 무렵
아버지의 인생은 오토바이 바퀴에서 끝났다
뺑소니 자동차 바퀴가 오토바이 바퀴를 세운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에서 마지막 바퀴는
병원으로 실려 가는 그때의 택시 바퀴였다
석 달 긴 잠 끝에 깨어난 뒤
바퀴 잃은 아버지의 인생은 지팡이였다
걸음 앞에 꾹꾹 점을 찍는 아버지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연습을 하는 것 같다
하나 남은 바퀴는 죽어서 저기 갈 때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의 노동은
오토바이 바퀴가 찌그러지면서 끝이 났다
아버님께 올립니다
안영준
돌아올 수 없는 곳
되 밟지 못하는 길
아득한 곳에 계심이 한스럽습니다
지게 내려놓으시고
한숨 돌리는 동안에도
걱정을 붙잡고 계시는 건 아닌지요
자식들에게 짊 주었다고
미안해하시더니
지금도 막걸릿잔 앞에 두고
눈물 찔끔하시는 건 아닌지요
자식을 우선시하면서
애지중지하던 당신이었기에
지금 이 자식은
당신을 우러러 눈물로 대신합니다
아버지의 유산
안용기
할아버지 같은 농군 우리 아버지께서는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돌아가신
큰형님 살아 계시는 동안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비밀이 하나 있었다.
막내 아들 이십리길 통학 자전거는
허리 굽은 아버지가 날품삭으로 막내 아들에게 사주신 유일한 선물이었다.
읍내로 타고 갔던 막내 아들이 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를 잃어 버리고 놀라
이십 리 길 울며 집 앞에 와선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나이들어 퇴역하신 주권없는 촌노였던 아버지가
큰행님 장에 가신 날 뒤주 문 몰래 열어 쌀 팔아서 사 주신 자전거란다.
손주 같은 막내 아들에 두번째 자전거 사주시며 하시던 말씀
야! 야!
인자 자전거 단디 타고 댕기거라
발판만 부지런히 밟아만 주면
자저거는 넘어 질일 없이 잘달려 나가니라
게을리 밟으면 잘 자빠진단다
땅뙈기 한평 물려 주실 게 없으신 우리 아버지 농군
유일하게 물려 주신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유산
이 지난하고도 험난한 세상 풍파에 표류 없는 순항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유산이 힘이 되었다
아버지의 5시 방향
안차애
아버지는 움찔움찔 다섯 시 방향으로 연신 발길질 중이다
두 손은 침대에 묶인 채 왼발만으로의 공격 수행이다
아버지가 걸친 중환자실 환자복은 내리닫이 배냇저고리처럼 시간을 역행 중인데
어느 역쯤을 지나시는가
미간을 찡그렸다 입을 오물거렸다 잠시 주름이 환히 펴지기도 하는 근방의 시간인데
아버지의 왼발만 흐린 지상의 시간을 걷어차고 있다
잠과 섬망 사이를 넘겠다는 듯
기도삽관과 두어 가지 수액과 ㅅ변 줄로만 남은 생명현상
주렁주렁한 줄들의 의무를 걷어차겠다는 듯
어린 가장의 무게를 들고 뛰던 생의 5시 방향을 이번에는 돌파하고야 말겠다는 듯
한 발 슈팅만 내내 간단없다
나는 아버지가 생의 전 방위 방향을 사수하며 피워낸 꽃
생애의 순간은 섬망처럼 짧아서 내내 잊고 있었다
애가 몸이 다르나?
많이 놀라지는 않더나?
굳은 표정과 메마른 언사를 복화술사처럼 걸친 채
늦은 밤 어머니와의 밀담으로 간접 화법을 완성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사코 지킨 방향이 넘어갈 방향이라는 것인지
역전의 기회는 부단한 발길질로만 완성된다는 것인지
당신의 다섯 시 방향에 슬금슬금 금을 내고 있다
추기
2019년 2월 17일 새벽 2시 24분
아버지는 다섯 시 방향의 포문을 열고
기어이 생애의 마지막 역전 골을 터뜨리다
아버지의 감나무
양문규
비탈진 밭둑가에 감나무를 심는다
뿌리가 실한, 등이 반질반질한
올곧은 놈들 골라 심는다
아버지는 그 감나무에 기대 걸으며
남은 생을 마칠 것이다
감나무는 자라 바람에 흔들리면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맑은 햇살에 잎을 반짝이며
달디 단 가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채 꽃을 피워 열매 맺기도 전
아버지 고단한 육신 내려놓을지 모른다
흙과 더불어 일생을 살아온
일흔두 살의 아버지 감나무를 묻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몸은 가난했으나 한없는 마음으로
자식인 양 눈물 주며 감나무를 키울 것이다
돌아가는 길 하늘이 아니라
감나무로 다시 태어난다는 걸
오래전부터 온몸으로 알고 있던 아버지
가을날 굵고 실한 열매로 남고 싶은 것이다
바람에도 곧잘 부러지는 여린 잔가지
태연히 끌어안고 하늘을 떠받치는,
아버지 낡은 뼛속에는 감나무가 자란다
아버지와 노인정
양해선
모처럼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다
늘 하던 대로 아버지 안부를 물으니
노인정에 가셨단다
무슨 볼 일인지 다시 물었더니
요즈음 자주 다니신단다
멈춰선 나의 마음속에서는
흘러간 세월을 가늠하지 못하고
아직도 아무 상관이 없으리라고 믿었던
아버지와 노인정
전화를 끊고 돌아서려는 순간
탁자에 놓인 낯선 주민등록증 하나
집어 들어 멀찌감치 거리를 맞추고 보니
발행일이 반년도 넘게 지난
반명함판 아들 녀석
의젓하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어디쯤 오가는지
여태껏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그래, 오늘은
머물고 있던 그 자리를 걷어낸 뒤
노인정에 들러서 미래의 나에게 절하고
무거운 책가방 짊어지고 돌아오는
젊은 날의 내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다
별리
오봉옥
가장 큰 죽음은 언제나 가슴 한켠에 길을 낸다
거기엔 늘 비바람 불고 눈보라 몰아쳐
온몸을 떨며 흐느끼게 하고 젖어들게 한다
괜찮아, 어여 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
나를 한사코 떠밀던 울 아부지 죽어서야 호강했다
젊은 염습사가 와서 난생처음 화장을 해주니
그저 지그시 꿈을 꾸듯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아부진 죽을 복을 타고났구나,
나보다 먼저 죽는 게 대복이지 뭐냐,
홀로 남은 엄니의 그런 궁시렁거리는 소리
들으며 듣지 못하며 먼 길 떠나셨다
일평생 맛있는 흙만 파먹고 살아온 울 아부지
마침내 흙이 되었다, 흙이 되다가
외로울 땐 잠시 풀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때마침 솔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그 향기 앞세워
문지방으로 냉큼 돌아와 다시금 넘어설 것이다
아버지의 밥
오봉옥
초로인생이라는 말 입에 달고 살았다
식은 밥 한 덩어리에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이었다
고개를 자빠트리고 내일을 걱정하는 건 엄니에게 미루고
짐 자전거 타고 유유자적 사람들 만나 이약이약 하며 살았다
잡상인으로 잡혀가 경찰서 조서를 받다가도
엄니가 오면 대신 좀 받으라며 벌떡 일어서 나가곤 했다
엄니에게 목구멍은 슬프디슬픈 감옥이어서
눈물을 삼키게 하는 곳이었지만
자신에게 목구멍은 염치없는 골목일 뿐이어서
밥물 끓는 냄새만 나도 문 열리는 소리를 냈다
그런 아비에게 인생의 가장 즐거운 낙은
뚝배기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먼 산 바라보는 일이었다
아비
오봉옥
연탄장수 울 아비
국화빵 한 무더기 가슴에 품고
행여 식을까 봐
월산동 까치고개 숨차게 넘었나니
어린 자식 생각나
걷고 뛰고 넘었나니
오늘은 내가
삼십 년 전 울 아비 되어
햄버거 하나 달랑 들고도
마음부터 급하구나
허이 그 녀석
잠이 안 들었는지
그때, 아버지는 어땠을까
오인태
- 힘들어서 사람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야, 외로워서 무너지는 것이지
몇 년 전 떠난 친구의 말을 며칠 전 술자리에서 또 한 친구가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부정도 긍정도 안 하고 술잔만 채울 뿐이었는데, 지천명의 사내 둘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가면서, 나는 자꾸만 아버지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
오정방
미국이 정한 아버지 날 아침에
초청되어 머문 딸아이 집에서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 세상 소풍 50년 만에
딴 세상 가신지 어언 60주년
함께한 어릴 적 10년 세월이라
많은 기억을 갖고 있지는 못해도
내겐 짧은 그 기간이
마냥 소중하기만 하다
어촌에서 태어나 사셨지만 어부는 아니었고
큰 농사를 지었지만 농부도 아니셨다
학력도 출신교도 지금까지 모르지만
내게 천자문을 깨우쳐 주고
명심보감을 가르쳐 주신 한학자
아버지는 누가봐도 천상 선비셨다
끼치신 6남매, 그 슬하에
손자, 증손자, 고손자가 주렁주렁
그 짝들까지 다 합치면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다 셈할 수 없고
이름조차 모두 기억할 수가 없다
특별히 지병이 있은 것도 아니지만
6.25 한국전쟁으로 기인한 새 가슴
의료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시골에서
쓸쓸히 눈을 감으신 해주海州 오 吳씨,
고려 군기감(軍器監) 인(仁)자 유(裕)자인
시조(始祖) 할아버지의 27대손(孫)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편히, 아주 아주 편히 쉬세요
보고 싶어요. 아버지
온기은
아버지.
난 마음으로
아버지를 참 많이 사랑했어요
그땐
왜 그렇게
사랑한단 말이 어색하던지.
마지막
임종도 지켜 드리지 못한
못난 딸이
인제야
아버지께 사랑합니다.
고백하지만.
아버지는
듣지도 못하시네요.
사랑합니다.
이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마음
온기은
서산에 해가
머물러
있을 때면
언제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읍니다.
아버지
부르고 싶은 그 이름
그러나
이젠 부를 수 없는 이름
손 을 내밀어
잡아보려 하여도
잡을 수 없는 아버지.
가슴에
안겨보려 하여도
계시지 않는..
그런것 같습니다
살아 계실 때는 몰랐는데..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큰 의미 인지를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하늘
용혜원
푸른 하늘조차 반쪽이었다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깨금춤을 출 때면
가슴엔 하얀 국화꽃이 피었다
잃어버린 고향이 꽃으로 피어나
흰 꽃 봉우리 흔들며 다가올 때면
한없이 한없이 아버지 춤 깨금춤을 추면
눈 이슬로 이 땅이 젖었다
두 팔로 휘저어 휘저어
하늘로 하늘로 떠오르다
푸른 하늘, 푸른 땅를 본 아버지는
집 뜰에도 흰국화 하얗게 피어놓았다
꽃 두고 떠난 아버지 무덤가에
흰 국화 피어나고 고추잠자리 맴을 도는데
아버지는 지금 어디서
깨금춤을 추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나
아버지의 힘
유자효
아직은 잠들 때가 아닙니다
아버님
가실 길이 남았습니다
깨어나십시오
그 용기와 힘을 보여주시고
담대함과 거침없음
사내다움을 보여주소서
너무나 약해빠져
실패를 겁내며
속으로만 욕을 하면서
계집애처럼
한만 쌓아가는 약골들에게
벼락을 내리소서
아버님
깨어나소서
포도나무 아버지
유홍준
얘야 올해는 가뭄 때문에 포도넝쿨이 엉망이구나
아버지 팔뚝 위의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자아, 받아라 어서
이 불멸의 포도넝쿨을 이제 너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아버지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굵은 당신의 팔뚝에서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굵은 당신의 팔뚝에서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한사코 내밀고 계신다
아버지의 핏줄을 받는다
나는 포도넝쿨처럼 지문이 얽히고 설킨 두 손바닥을 내밀어
아버지의 포도나무 묘목을 받는다
깊이, 구덩이를 파고 아버지의 핏줄을 포도밭에 옮겨 심는다
넝쿨마다 아버지의 심장이 주렁주렁 달리는 포도나무 가지마다
넓적한 아버지의 손바닥 이파리가 돋아나는 포도나무를 옮겨 심는다
아버지의 포도를 딴다
나는 상자마다 크고 검붉은 아버지의 포도를 따서 담는다
상자마다 가득가득 아버지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담아 트럭에 싣고 시장에 내다 판다
얘야 내 포도를 네가 먹으니 즐겁구나
내 포도를 네가 팔아 새 옷을 사 입으니 보기 좋구나
아버지 껍질눈이 나를 바라보며 웃으신다
알맹이 발라먹고 뱉은, 아버지 껍질눈이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신다
생전의 할아버지 깊디깊은 눈 속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어린것들이 달라붙어 포도를 먹는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할아버지 포도를 먹어치운다
알맹이만 발라먹고 뱉어버린 아버지 껍질눈이 여전히 웃고 계신다
아버지를 넘긴다
이강산
벽에 걸린 사진 한 장
폭설에 파묻혀 저절로 흑백 사진이 되어버린 식민지 사택
이사 철마다 앨범과 수백 권의 책을 뒤져
십 년 만에 액자에 담았다
'올챙이 적 개구리를 꿈꾸던 집 -89, 12, 24'
인화지 뒷면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 시절 로맨티스트 청년 하나가
천정 뚫고 쏟아지는 햇살 아래
슬픔의 채송화를 키우던 집
잃어버린 흑백 사진 한 장이 더 있다
여든다섯에 이르도록 개구리가 되어본 적 없는
장돌뱅이 톱 장수 아버지
그 올챙이 아버지를 찾아
벌겋게 녹슨 기억의 책갈피를 넘긴다
아 아, 낡은 책갈피 따라 철벙철벙 넘어가는
올챙이의 무논들이여
아오지, 청진항, 관부연락선, 안면도, 춘천, 문의……
어딘가 묻혀 있을 아버지를 세상에 꺼내놓는 일이
아버지에게 갇혀 있는 나의 탈출이라도 되는 듯
그래야만 나도 개구리가 된다는 것처럼
5년 전, 10년 전, 30년 전, 60년 전의
아버지를 넘긴다
벽에 걸린 아버지
이경
벌거벗은 남자의 배경은 겨울이다
남자는 유리벽 한가운데 높이 걸려 있다
두 팔을 벌리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서서 세로로 못 박혀 있다
벌거벗은 여자의 배경은 지옥이다
하늘로 두 팔을 벌리고 두 다리도 벌린 채
몸을 열어 핏덩이를 밀어내는 여자
누워서 가로로 묶여 있다
가로와 세로가 만나면 십자가
둘이서 힘을 합해 멀리까지 지고 가야 하는
무겁고 아름다운 십자가
아버지가 먼저 십자가를 놓았다
가장 추운 겨울밤 사진틀 속 아버지는 내려와
잠든 이마들을 만져보고
누가 깰까 봐 불도 켜지 않은 채
혼자 새벽길을 나서곤 했다
아버지의 마술
이권
어느 봄날이었어요
똥지게를 지고 온 아버지가
고염나무에 마술을 걸어 놓았어요
고염나무의 마술이 풀리기도 전에
아버지는 고염나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셨지요
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던 아버지
다음 해 봄날 어린 감잎 속에서 똥지게를 지고
자박자박 걸어 나오셨지요
가을이면 감나무에 환한 등불 밝혀 놓고 계시다
감잎이 지면 다시 감나무 속으로 들어가셨어요
아버지 다시 봄이 오고 있어요
이제 아버지의 마술에서 풀려나
저도 한 그루 감나무가 되고 싶어요
봄이면 하얀 감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푸른 하늘에
붉게 물든 시 한 줄 매달아 놓고 싶어요 아버지
아버지
이도윤
모든 아버지는 살아 있다
푸르게 살아있다
복숭아뼈가 아프시다고
진통제로 연명하신 아버지 곁에 앉아
나는 자꾸 죽음을 위로해 드렸다
아버지 돌아가셔도
내가 살아 있으니
아버지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그 말씀 드릴 때마다
죽음을 베고 누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의 수첩
이병승
돌아가신 아버지의 수첩에는
이런 시가 적혀 있었다
4월의 어느 날
벤치에 앉아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운다
커다란 개 한 마리
흐르는 강
빠리의 어느 하늘 밑
쟝 꼭도도 그랬을 테지
나도 가끔은 아버지처럼 시를 쓴다
살아가면서 겪는 수치와 모욕들
이런저런 일들
아버지도 그랬을 테지 하면서
고래 아버지
이상국
아버지는 고래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살았다고 했다
나도 고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자연교과서에서나 보다가
티브이가 나오며 겨우 보았는데
크고 힘차고 신비스러웠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작았다
아버지도 실제 고래를 보았더라면
옛집 자랑은 그렇게 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걸핏하면
고래등 같은 집을 들먹였던 것은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를 머슴처럼 살고 나서
집은 전쟁으로 불타버리고
여름 제사에 이밥을 먹으면
배탈이 날 정도로 가난했지만
우리가 그래도 밥술이나 먹었다거나
본래 이렇게 살 가문이 아니라는 거였다
멀리 있거나 보지 못한 것은 대부분 아름답다
아버지도 고래가 되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이상국
자다 깨면
어떤 날은 방구석에서
소 같은 어둠이 내려다보기도 하는데
나는 잠든 아이들 얼굴에 볼을 비벼보다가
공연히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
들에서 돌아오는 당신의
모자나 옷을 받아들면
거기서 나던 땀내음 같은 것
그게 아버지 생의 냄새였다면
지금 내게선 무슨 냄새가 나는지
나는 농토가 없다
고작 생각을 내다 팔거나
소작의 품을 팔고 돌아오는 저녁으로
아파트 계단을 오르며
나는 아버지의 농사를 생각한다
그는 곡식이든 짐승이든
늘 뭔가 심고 거두며 살았는데
나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아버지가 보고 싶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고 싶다
이상국
벌써 오래 되었다
부엌 옆에 마구간 달린 아버지의 집을 떠나
마당도 굴뚝도 없는 아파트에 와 살며
나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다
이제는 그 부드러운 풀이름도 거반 잊었지만
봄 둑길에 새 풀이 무성할 때면
우리 소 생각난다
어떤 날 저녁에는
꼴짐지고 돌아오는 아버지 늦는다고
동네가 떠나갈듯 우는 울음소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소도 아버지도 다 졸업했다고
이 도시의 시민이 되어 산지 오래인데도
우리 소 잘 먹던 풀밭 만나면
한 짐 베어지고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 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 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아버지께
이선명
당신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던 날처럼 눈이 내릴 때도
누군가의 구슬픈 하모니카 연주를 들을 때도
당신이 몹시 그립지만
한 고비 한고비 넘기며 삶을 선택 할 때면
당신이 그리고 당신이 자주 들던 그 매가 그리워집니다
수염 덥수룩한 못난 모습이 당신을 닮았지만
박자 놓치며 막 부르는 노래 실력까지 꼭 당신이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해갈수록 당신이 필요합니다
지갑을 잃어버리던 날 그 속엔 당신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쌓이고 쌓인 시간만큼 당신의 얼굴이 희미해져 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젓가락질 못하는 바보스런 모습까지 당신을 닮았으니까요
양치질하는 작은 삶까지 당신에게 배웠으니까요
요즘은 자꾸 당신이 더 그립고 미워집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가정을 꿈꾸고 아이을 생각하며
서른 당신처럼 고민 많은 철없는 아들은
당신이 그리고 당신이 자주 들던 매가
그래도 괜찮다 안아주시던 그 사랑이 더 그리워집니다
아버지의 문
이송희
내 귓속 어디쯤에 문들이 열릴 때
어머니는 밤늦도록 그 문을 열어 둔 채
문 밖의 그가 오기를 쪼그리고 기다렸다
틀니가 맞지 않아 씹지 못한 밥알과
삐걱이던 문틈으로 새나오던 바람소리
칠흑의 시간 속에서 문은 자꾸 덜컹거렸다
그 해 겨울, 문들이 꽁꽁 입을 다물 때
덜 들어온 아버지가 문틈에 끼어 있다
조용히 닫힌 문밖에 찬바람만 서 있었다
아버지의 낡은 내복
이승하
화장터 불길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
불태울 유품과 남길 유품을 고른다
사진첩을 태우고 돋보기는 간직한다
장롱 서랍을 여니 와락 덮치는 아버지 냄새
노인네 속옷을 누구에게 주나 다 태워버리자
걸인에게 줘도 안 입을 낡은 팬티와 낡은 러닝
아 이렇게 구멍이 날 때까지 입으셨구나
장롱 구석에 보자기로 싼 것은
낡디낡은 내복 한 벌
첫 월급으로 사드린 겨울 내복 한 벌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계셨다니
평생을 두고 내가 미워했던 아버지
이 내복 도대체 몇 날을 입으셨나
태울 수 없어 아버지를 부둥켜안는다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이승하
볼품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
차갑고 반응이 없는 손
눈은 응시하지 않는다
입은 말하지 않는다
오줌의 배출을 대신해주는 도뇨관(導尿管)과
코에서부터 늘어져 있는
음식 튜브를 떼어버린다면?
항문과 그 부근을
물휴지로 닦은 뒤
더러워진 기저귀 속에 넣어 곱게 접어
침대 밑 쓰레기통에 버린다
더럽지 않다 더럽지 않다고 다짐하며
한쪽 다리를 젖히자
눈앞에 확 드러나는
아버지의 치모와 성기
물수건으로 아버지의 몸을 닦기 시작한다
엉덩이를, 사타구니를, 허벅지를 닦는다
간호사의 찡그린 얼굴을 떠올리며
팔에다 힘을 준다
손등에 스치는 성기의 끄트머리
진저리를 치며 동작을 멈춘다
잠시, 주름져 늘어져 있는 그것을 본다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
활화산의 힘으로 발기하여
세상에 씨를 뿌린 뭇 남성의 상징을
이제는 내가 노래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이것의 힘으로부터 왔다
지금은 주름져 축 늘어져 있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하나의 물건
나는 물수건을 다시 짜 와서
아버지의 마른 하체를 닦기 시작한다
아버지한테 면회 가다
이승하
이곳에는 아버지,
술이 없습니다
숙취의 아침에 다시 마시는
해장술도, 외상 술값도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욕할 대상도, 발길질할 식구도
명정(酩酊)의 상태에서 기억이 끊겨
때때로 저를 보고
니 누고……?라고 물어보셨죠
아버지…… 저예요……
면회 오지 마라…… 고만 와……
지금은 손을 떨고 계시지 않네요
온갖 것을 보는 환각 증세와
온갖 소리에 시달리는 환청 현상
무조건 술 냄새라고 우기는 환취 현상
그 모든 금단 현상에서 벗어난 것입니까
이제는 정말 술 없이
살아가실 수 있는 겁니까
주기적인 자살 협박과 살해 충동
아버지 손에 부엌칼을 들게 한
좌절감과 열등감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아버지는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낀
한 마리 바퀴벌레였어요
눈치를 보다 술로 달아나던
술로써만 해방감을 만끽하던
손을 떨다가도 당당하게, 호탕하게
아버지
이 병원 문을 도대체
몇 번이나 다시 들어와야
그 술, 술의 쇠사슬에서
풀려나시는 겁니까
술의 유혹 술의 협박
아아, 술의 압제에서
겨울 산
이영권
벌거벗고 살아가는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
군불 지피지 않고
격자무늬 창호지 문도 낡아
손자의 응석처럼 파고드는 칼바람에
잔등 잔뜩 웅크리고 외로워한다
가슴에 곧추선 잔털처럼
군데군데 상록수들
눈물겨이 서성거리고
얼기설기 추위에 떨며 그리워 운다
누군가 산길 오르는 발소리에
커다란 귀 쫑긋 새워
시린 얼굴 길게 내밀고
넓게 가슴을 연다
계곡마다
은빛 투명한 겨울 노래 듣다
산비탈 양지쪽 햇살 쬐다
산 그림자에 묻혀 성급히 돌아눕는다
사람들 옷이 두꺼워질수록
어쩌면 저렇게 얇게,
결국은 듬성듬성
알몸까지도 드러내는가
아버지의 오른 다리
이영권
아버지의 오른 다리 무릎 아래는 의족이었다
짝 잃은 왼 다리가 거금 들여 해주었다
왼 다리는 보족을 짚어 오른 다리 떠받쳤고
어디든지 가고 싶고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왼 다리에게
오른 다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족이나마 신고 왼 다리를 따라가는 것
아버지의 다리는 튼튼했었다
생사를 넘나든 육이오 전쟁통에도
나락 단 가득 실은 리어카가 굴렀을 때도
초가지붕 이다가 마당으로 낙상했을 때도
뒷산 고개 너머 나뭇짐 가득,
매일 같이 아귀처럼 먹어대는 소꼴을 베어,
지게에 짊어지고 다닐 때도 그러다
뱀에게 발목까지 물려 며칠을 누웠어도
왼 다리도 나중에야 알았다
버 - 거 - 씨 - 디,
발가락 사이가 짓무르며 진물이 나오자
온갖 입들이 푸성귀처럼 일어나
왼 다리의 귀를 잡아당겼다
왼 다리는 발이 닳도록 소리들을 따랐고
산으로 들로 야생초들도 애끓는 나날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그림자 뒤에 숨어
오른발은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바뀌고
재생의 저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절룩거리며 돌아오자
들판, 산 밭, 누렁소까지 소리 내어 울었다
몇십 년을 농사짓던 농토가 전답이
어미 잃은 망아지 같이 풀이 죽어 있었다
'막내야, 니가 농사 지으만 안 되겠나?'
아버지는 주무실 때마다 의족을 벗고
오른발이 달아난 곳을 만지작거리며
어린 나에게 잠꼬대처럼 말씀하셨다
잠결에 왼 다리는 없는 오른발을 찾았고
찾다가 허방을 짚으면 깜짝깜짝 놀라
오른 다리를 잡고 밤새 울었다
담배를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삶의 한쪽을 절룩이며 가셨다
아버지
이오덕
- 얘, 너 아버지 오신다.
- 저거, 너 아버지냐?
자연 공부 하러 가는 길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아이들.
산더미 같은 짐을 지고
아, 저기 아버지가 오시는구나.
햇볕에 그을린 흙빛 이마가 땀에 젖어 보인다.
얼마나 무거울까? 아이들이 자꾸 수군거린다.
남의 집 머슴이란다 - 누가 하는 말소리.
고개 숙이고 걸어가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딜 숨어버리고 싶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
치밀어 오르는 미움.
- 오냐, 그래 우리 아버진 머슴이다.
머슴이면 어쩔 테냐?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 주고 싶은 마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얼굴을 못 들고
땅만 내려다보고 걸어간다. 아버지는 나를 보셨을까?
내 해진 바지와 다른 아이들의 잘 차린 옷을
견주어 보고
얼마나 슬퍼하셨을까?
아니, 보시지 않았을 거야
무거운 짐에 눌려
땅만 보고 걸어가셨을 거야
아, 싸움터에 두 아들을 잃고,
빚 때문에 집도 팔고,
남의 논밭을 부치다가 품팔이를 하다가,
어깨에 굵다란 혹이 생기고
등에 시퍼런 멍이 드신 아버지.
그래도 강원도 탄광에서 일하다가
가슴을 앓고 드러누워 있는
이웃집 승규 아버지보다는 낫다 하시면서
밤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내 걱정만 하시는 아버지
- 그래, 너희들의 아버지는 모두
어떤 아버지들이냐?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머슴살이하는 사람을
비웃을 처지가 되느냐? 나는 갑자기 두 다리에 힘이 올라
어깨를 확 펴고
하늘을 쳐다보며 걸었다.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어
나를 보고 수군거리던 아이들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어 주었다
그러나, 너무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골병이 들어 오래 못 산다는데----
남의 집 머슴을 사는 사람은 불쌍하다
남의 머슴을 사는 나라가 불쌍하듯이
숨바꼭질
이원숙
한 달을 누워만 있던 아버지
어린아이가 되었나, 숨바꼭질 하자시네
탯줄같이 휘늘어진 링거 줄 떼버리고
흰 시트 속으로 엇, 숨어버렸네
술래만 술래만 하던 아버지
이번에는 나더러 술래 하라시네
아버지는 나빴다,
눈 가리고 열까지 다 세지도 않았는데
이제 숨어도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디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며
하늘공원 화장장 불 속으로 뛰어들었네
저기 저 흰 뼈가 아버지일 리 없지
고개 갸우뚱거리는 사이에
백자 단지 속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네
하얗게 센 머리칼도 헐거운 옷자락도 보이지 않지만
앞세운 커다란 영정 사진
아버진 줄 다 알아
찾았다 빨리 나와요, 소리치자
한 줌 뼛가루로 변신한 내 아버지
머리 긁적긁적 계면쩍은 웃음 흘리며
솔솔솔, 한지 꾸러미 속에서 빠져나와
섬잣나무 그늘 밑 깊은 구덩이에
영영 숨어버렸네
아버지
이윤학
활처럼 흰 논두렁을 걷는다
하나 둘 셋 튕겨나가는
개구리를 만난다
너라도,
새벽부터 불려나와,
논두렁 이슬을 털지 말아라
지게를 지고 걸어가시는 아버지
뒤를
지게 끈이 졸졸 따른다
아버지의 욕
이정록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
어릴 적에 들은 아버지의 욕
새벽에 깨어 애들 운동화 빨다가
아하, 욕실 바닥을 치며 웃는다
사내애들 키우다 보면
막말하고 싶을 때 한두 번일까마는
아버지처럼, 문지방도 넘지 못할 낮은 소리로
하지만, 삼십 년은 너끈히 건너갈 매운 눈빛으로
'개자식'이라고 단도리 칠 수 있을까
아이들도 훗날 마흔 넘어
조금은 쓸쓸하고 설운 화장실에 쪼그려 제 새끼들 신발이나 빨 때
그제야 눈물방울 내비칠 욕 한마디, 어디 없을까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온" 고아인 듯 서글퍼진다
"어른이라서 부지런한 게 아녀
노심초새한테 새벽잠을 다 빼앗긴 거여"
두 번이나 읽은 조간신문 밀쳐놓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술빵처럼 부푼 수국의 흰 머리칼과 운동화 끈을
비눗물 방울이 잇대고 있다
아버지
이주희
그리도 추운 날
제 옷 벗어 남에게 입히느라
시린 어깨는 지푸라기 검불
자식에게 방패막이 못 돼주어
뻥 뚫린 가슴은 방패연
생시에 말씀대로 잠자리 날개 달고
뉘엿뉘엿 지는 해 따라
허~어이 연줄 끊어
부랴부랴 떠나가신 아버지
불효자식 볼멘소리 들으시나
이젠 그리워도 만날 수 없어
바다 건너 이즈음 머문 핏줄
즐기신 콩나물 국
나도 따라 고춧가루 듬뿍
살고 가신 만큼 갑절을 살아가도
알 수 없는 인생살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구경
보고 듣기만 해도 좋은 걸
그땐 왜 난 몰라서
약수터에서 가르쳐주신 노래
이제야 부릅니다.
♬ 댕 댕 종소리 장엄히 울고
쿵닥쿵닥 쿵닥 쿵 북소리 난다
흰옷 입은 동포들 어서 일어나
팔다리 걷고서 행진 합시다 ♬
아버지의 고무신
이주희
햇살 다냥한 댓돌 위에서
앞뒤가 고르게 닳은 왼쪽 신발과
뒤축만 닳은 미농지처럼 얄팍해진 오른쪽 신발이
금실 좋은 부부처럼 시설거리고 있다
단장(短杖)과 짝을 이룬 하얀 고무신은
엘리베이터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40년 지기
따로 노는 물지게처럼 다리와 의족이 어그러져
무릎을 펴고 구부리기가 힘겨운 아버지는
양복차림에도 고무신을 신는다
오른손의 단장이 앞장서 바닥을 짚으면
온몸을 실은 오른발 뒤축이 따라 딛고
꽃잎에 앉는 나비처럼 앞축이 살포시 놓인다
왼발도 뒤쫓아 와 수평을 이룬다
단장 손잡이만큼이나 굽은 양어깨를 품은 채
바람 가득 싣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댓돌 위 아버지의 고무신
아버지의 모습
이진선
꿈을 꾸었네
누런 가을 논에서 벼를 베었지
꿈틀대며 기어 나온 뱀
낫에 걸려 두 동강이 되었지
아니, 그건 발이 있는 용이었네
불길한 예감
맞아! 아버지가 용띠지
아침 일찍 안부 전화 하였지
아무 일 없다는 어머니 목소리
가슴을 쓸어 내렸네
외손주들 보고 싶어
큰언니 집부터 막내인 나의 집까지 오신 아버지
하얀 백발,
거미발 같은 손가락,
얼굴엔 주름이 그물을 짰고
마른 어깨 쭉지엔, 힘들었던 세월이 얹혀 있었지
다정했던 아버지의 뒷모습
일주일 후
다급한 전화벨 소리, 떨리는 음성
애기 들쳐 업고 달려간 응급실
하얀 까운 속 누워 있는 아버지
평화롭게 주무시는 듯한 모습
마지막이었네
가슴이 휭하니 뚫렸네
49재 날 아침, 늦잠을 잤지
또, 꿈을 꾸었네
평소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자전거 끌고,
대문 열며 들어오시는 아버지
읍내 장에 갔다 오시는 줄 알았네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네
아버지의 눈물
이채
남자로 태어나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남자보다 강한 것이 아버지라 했던가
나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온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더라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손님을 비추는 달빛 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없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아온 세월
애당초 사치스런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구나
하늘을 보면 생각이 많고
땅을 보면 마음이 복잡한 것은
누가 건네준 짐도 아니건만
바위보다 무거운
무겁다 한들 내려놓을 수도 없는
힘들다 한들 마다할 수도 없는 짐을 진 까닭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메일 수밖에
용기를 잃은 것도
열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아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무엇 하나 만만치 않아도
책임이라는 말로 인내를 배우고
도리라는 말로 노릇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눈물이 없으니 가슴으로 울 수밖에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아버지는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기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해서도 울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는 혼자서 운다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다
하늘만 알고
아버지만 아는
아버지와 주선사(酒禪師)
이춘우
아랫목을 차지하고
좌선(坐禪)에 든 술단지
혼자 세상을 품었다
뚜껑 연
호기심이 미웠던지
어린녀석 딸기코 만들어 버렸네
놋화로 두들겨
새벽을 연 아버지
쉰 김치 다져 만든
어머니의 메밀묵채에다
농주 한 사발로
뜨거운 먼동을 불러낸다
한 때는 밀주(密酒)라
관청에서 단속나오면
볏가리 속 들락거린
술단지
늘 갈증과 배고픔을 달래주고
힘든 아버지의 쟁기질에
마력(魔力)을 가하던 위대한 존재
이젠 나도 농주 맛 보고픈데
안방에는
아버지도 주선사도 없고
사무치는 그리움만 가득하다
아버지의 안경
이탄
무심코 써 본 아버지의 돋보기
그 좋으시던 눈이 점점 나빠지더니
안경을 쓰게 되신 아버지
렌즈 속으로 아버지의 주름살이 보인다
아버지는 넓고 잔잔한 바다같은 눈으로
자식의 얼굴을 바라보신다
그 좋으시던 눈이 희미해지시고
돋보기안경을 쓰시던 날 얼마나 가슴 찡하셨을까
돋보기안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주름살이 자꾸만 자꾸만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아버지의 허수아비
이한명
햇살들이 부서져
내리고
그 들녘 위로 달려오던
밤바람 소리에
작은 울타리를 지키던
그마저
먼 귀를 움츠리고
내 스스로 버린 그곳의
논두렁길
가슴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가을의 슬픈 몸짓들은 이 세상
가장 낮은곳
아버지의 땅으로 몸을
뉘이고
서걱이는 선잠들이 모여 앉아
황촛불에 시름앓던
가난한 땅
저 뒤편에 서성이는 세월의
무덤가에
한잔 술을 따르던 가슴아픈
삶의 뒷모습들
이삭 줍던 늙은 손길은
산자락에 잠들고
대처로 떠났던 불효자식
빈몸으로 돌아서던 선산으로 향한
황톳길
그 길 걸음마다
타박타박 묻어나던
아버지의 하늘 그림자
아아!
해일처럼 휘돌아 감기는
내 가슴속
또 다른 배반의 함성
춤의 소리여
아버지
이현승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왔는지
눈물이 말해준다
점점 멀어져가 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점점 멀어져가 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터미널
이홍섭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아버지를 죽이면서
임길택
쉰도 못되었는데
우리 아버지 이제
병원에만 계셔야 한대요
우리 선생님은
열심히 일해야
잘산다 하시었는데
만근만 하셨던 우리 아버지
이제
죽는 날까지
병원에만 계셔야 한대요
폐에 박힌 석탄가루들이
아버지의 숨을 가쁘게 하고
우리 식구들은
조금씩 나오는 보상금으로
쌀도 사고
우리들 학교도 가야 한대요
아버지를 죽이면서
우리 식구
살아가야 한 대요
아버지의 추억 - 1997년 어버이날에
임종호
아버지는 일곱 살 난
아들의 손을 잡고 소학교로 갔다
1942년 그때에
일본인 교장 앞에서
기부금 삼 십 원은 형편에 과하니
십 원만 내겠다고 당당히 말씀했다
그리고는 합격 통지서를 기다렸다
우체부가 올 때에는 뛰어나갔다
어머니도 누님들도 뛰어나갔다
그러나 우체부가 내민 것은
일본으로 징용간 외삼촌의 편지였다
아버지는 여덟 살난
아들의 손을 잡고 갈립학교로 갔다
구렁목과 산자락 길과 신작로와
산골길을 꾸불꾸불 걸어 갔다
갈립학교는 산지기가 사는 초가집 두 칸을 헐어서
교실로 삼고 있었고, 벌써 세 학년이나 있었다
아들은 그 곳에 다니며 왜말을 배웠다
아버지는
1945년 봄 어느날 비29가 하늘 높이
수증기를 달고 가는 것을 보고는
“왜놈은 망한다 그래도 공부는 혀얀다”
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유산
장남제
긴 여름 해도 빨리 지는
산 아래 노루골, 그 양지바른 산자락에
고구마밭이 길게 드러누워 있다
가난한 아버지의 땀방울을 잉태한 채
수수가 알알이 익은 날
아직도 파랗게 기어가는 줄기를 걷어내면
어미소 앞세운 쟁기 뒤로 쏟아지는 고구마,
쪼막손이 한옆으로 던져놓으면
송아지는 재미 삼아 무너뜨리고
철없는 아들은
바빠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올해는 씨알이 둥글고 고와서
아버지는 연신 미소뿐이고
배고파 보채는 송아지
한시가 급한 어미 소는 바삐도 간다
온종일 숲속에서 놀던 산 그림자
들머리를 밟고 오면
고구마 하얀 진물이 덕지덕지한 쪼막손을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실개천 맑은 물에 씻겨주신다
힘들었제?
그 날밤 꿈에 아버지는
둥글고 고운 씨고구마 하나
내 가슴에 심어주셨는데
나는 내 아이 가슴에 무엇을 심어줄까?
아버지의 고등어
장수남
장터 아이들이
굴리는. 동그란 굴렁쇠가
지구를 빙글빙글
몇 바퀴 째 돌았다.
아이들은 손등으로
닦아내는 누런 콧물 때가
꼬지지 엉켜있다.
해가 서산에
너울너울. 첨벙
바다 속에 빠져든다.
아버지 손에는
고등어 한손이 아이들을
기다린다.
애들아!
밥 먹어라.
엄마의 억척스런 목소리
들리는 둥. 아이들은
아직도 지구를 돌린다
아버지의 지등(紙燈)
정군수
측간도 쓸고 뒤안도 쓸고
외양간도 쳐내고
휘영청 달 밝은 정월 대보름
아버지는 지등(紙燈)을 달았다
달빛이야 저 먼저 밝았어도
달빛이야 저 혼자 밝았어도
불빛마다 고여오는 당신의 사랑
밤마다 혼자 안고 뒹굴다
밤마다 사립 열고 먼 길을 가다
아버지는 지등을 달았다
그것이 눈물인 줄을 모르고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르고
한밤내 지등에다 기름을 부었다
갈 꽃비
정낙추
아버지께서 갈꽃비를 만드신다
지난가을
당신처럼 하얗게 늙은
갈대꽃을 한 아름 꺾어 오시더니
오늘은 당신 몫의 생애를
차근차근 정리하여 묶듯이
갈꽃비를 만드신다
나이 들어 정신도 육신도
가벼워진 아버지와 갈대꽃이
한데 어우러져 조용히 흔들린 끝에
만들어진 갈꽃비
평생 짊어진 가난을 쓸기엔 너무 탐스럽고
세상 더러움을 쓸기엔 너무 고운
저 갈꽃비로
무엇을 쓸어야 할까
서러운 세월 다 보내신
아버지의 한 방울 눈물을 쓸면
딱 알맞겠는데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으신다
아버지
정수남
거랑말코 같은 세상……. 아버지는 손을 씻으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으시며,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말씀을 되뇌곤 하셨다. 섭섭할 때나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는 더 많이 씻으셨다. 거랑말코 같은 세상, 거랑말코 같은 세상……. 작은고모가 시집에서 쫓겨 왔을 적에도, 추석날 혼자 외롭게 낚시를 가시면서도, 어머니와 다툴 적에도 아버지는 늘 그랬다. 피난 내려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그렇게 손을 씻으며 살다 가셨다.
왜 아버지는 그렇게 손을 씻고 또 씻으셨을까.
무엇이 역겨워서 늘 거랑말코 같다고 세상을 비아냥거렸을까.
나이 칠십이 넘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손을 씻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놀란다.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서도, 성경을 읽다가도, 나는 내 손에서 문득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것 같아 화장실로 급히 달려가 손을 씻곤 한다. 씻고, 씻어도 악취가 가시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고 또 씻는다. 거랑말코 같은 세상…
아, 아버지.
아버지가 그립다.
거랑말코 같은 세상….
거미집 아버지
정순옥
장맛비가 그친 오늘
두 아이들 데리고 오랜만에 찾은 아버지 묘소
푸른 머리 위로 투명한 거미줄 얹어
바람결에 보여 주시네 평생 하신 일이란
허공에 집 짓던 일뿐이란 걸
비 온 뒤에야 그 모습으로
쉬이 바람 뚫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허방에서 절뚝이는 내 발길 붙잡아
잠시 쉬어 가라고만 말씀하시네
나 오늘
아버지 성묫길 하늘그물에 파닥이는
작은 날벌레이고 싶네
싶기만 하네
빈 무덤
정양
형무소에 끌려가서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육이오를 맞았고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냈다는
그럴듯한 풍문도 아랑곳없이
인공 난리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안 돌아오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던 점쟁이 아줌마는
마을을 온통 사람범벅으로 만들어놓고
돌아온다고 못 박은 그 날짜에 으시딱딱
종적을 감추기도 했었습니다
휴전선이 생기던 해부터 어머니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오다가
몸져눕기 한해 전에
팔아먹다 남은 산자락에
빈 무덤 하나 지었습니다
사람 죽으면 어채피 흙 되드라
넋은 넋대로 떠돌드라도
떠돌다가 필경은 담길 디가 있어야지
탄광파업철도파업대구폭동여순반란
아직도 그런 일로 떠돌지 싶은
떼죽음 따라 난리를 따라 풍문을 따라
떼죽음의 산기슭 검붉은 속살을 헤집어
백지에 삼베에 명주베에
겹겹이 퍼담은 지리산 흙
살 대신 뼈 대신 어루만지며
넋받이로 깊이 파묻은 지리산 흙
전라도 땅 김제군 공덕면 마현리
산 십구 번지 야산 자락에
잡초 무성한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시
정영주
아버지를 따라온 먹바람은
방바닥에 늘 그물 무늬를 내었다
구멍 뚫린 천장 밑으로
이따금 쏟아지는 별들이
검은 방바닥을 쓸어내 주다가 반짝이고
아버지의 밤은 아침이었다
아버지의 아침은 다시 골목으로 들어와
드러눕는 깊은 잠
한 번도 정착해 보지 못한
떠돌이 도시를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들어와 꼬부라진 혀끝에서 부숴뜨리는,
우리의 터울도 그래서 일정치 못했다
삼 년, 오 년, 팔 년의 터널
바람이었을까? 우리의 숨터?
아버지가 오셨다 바람으로 나가면
어머니의 배는 동해의 달처럼
둥그러이 부풀어 오르고
묵호항 큰 아가리배에도
석탄이 가득 실리는 것을 보았다
떠나고 싶은 우리의 욕망까지
그곳에 채우고픈,
그때마다 어머니의 젖무덤에선
묵호에서 탱탱 불어난 검은 젖이
꿀처럼 흘러내려 주었다
아버지의 얼굴
정재영
간혹 불던 미풍마저 삼켜버린
정자나무 가지 아래
언제나 하늘처럼 파아란 빛의
움직일 줄 모르는 비석
천둥이 쏟아내는 폭우일수록
새겨놓은 글자들은
더 선명하게 말씀하시지만
깊은 각의 속 깊음을
알아 볼 수 없는
풍채 좋은 화강암 앞에서
경건한 침묵의 묵도만
골 깊은 표정으로 서 있다
아버지처럼
정찬우
가슴 아파서 그냥 눈물이 나요
고단한 내 하루에 자꾸 생각이 나요
듣기만 해도 눈물부터 나오는
언제나 내겐 벅찬 그 이름
때론 친한 친구처럼 때로는 남자처럼
그렇게 살아온 그대를 난 왜 몰랐을까
어떡해야 할까요. 가르쳐 주세요
아직 어린애처럼 두렵기만 할까요.
나를 어깨에 지고 힘겹게 살아왔던 그대
이젠 내가 알 것 같은데
나의 아버지
거친 손마디 마냥 창피해하고
걱정뿐인 그대를 자꾸 무시도 하고
사랑하면서 사랑인 줄 몰랐던
철없던 내가 원망스럽다
때론 친한 친구처럼 때로는 남자처럼
그렇게 살아온 그대를 난 왜 몰랐을까
어떡해야 할까요. 가르쳐 주세요
아직 어린애처럼 두렵기만 할까요
나를 어깨에 지고 힘겹게 살아왔던 그대
이젠 내가 알 것 같은데
나의 아버지
지켜주던 그 모습도 웃어주던
그 미소도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는데
나의 아버지 다시 불러 봅니다
아버지의 등
정철훈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너머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바닥에 쿵, 하고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누운
아버지의 검은 등짝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 년이나 지난 어느 날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슬며시 홑이불을 덮어주고 가는
딸년 땜에 일부러 코를 고는데
바로 그 손길로 내가 아버지를 묻고
나 또한 그렇게 묻힐 것이니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서러운 등짝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검은 등짝은 말이 없다
아버지
정호승
눈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빚잔치를 하고 고향을 떠나
숟가락도 하나 없이 식구들을 데리고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만 쳐다보며
내 집 한칸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가난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아버지를 찾아서
정호승
겨울새들에게 주려고
호주머니에 늘 생보리를 넣고 다니시던
새싹들이 밟혀 죽는다고
제발 살살 좀 걸어 다니라고 야단을 치시던
돈은 나무가 아니므로
더 이상 물을 주지 말라고 하시던
인간은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다고
술만 취하시면 나무를 보고 꾸벅 절을 하시던
내 얼굴에 침을 뱉은 나를
그래도 용서해주시던
아버지를 찾아서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승강장 입구 쪽으로 한 사내가 바삐 걸어간다
아버지인가 싶어 얼른 다가가 본다
아버지가 아니다
술집을 나와 한 사나이가 비틀걸음으로
골목 모퉁이를 돌아선다
아버지인가 싶어 얼른 따라가 본다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나이
정호승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정호승
오늘은 면도를 더 정성껏 해드려야지
손톱도 으깨어진 발톱도 깎아드리고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아야지
TV도 켜드리고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시라고
창밖에 잠깐 봄눈이 내린다고
새들이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말해야지
울지는 말아야지
아버지가 실눈을 떠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시면
활짝 웃어야지
어릴 때 아버지가 내 볼을 꼬집고 웃으셨듯이
아버지의 야윈 볼을
살짝 꼬집고 웃어야지
가시다가 뒤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굳이 손을 흔들지 않으셔도 된다고
가시다가 중국 음식점 앞을 지나가시더라도
짜장면을 너무 드시고 싶어 하지 마시라고
아니, 짜장면 한 그릇 잡수시고 가시라고
말해야지
텅 빈 아버지의 입속에 마지막으로
귤 향기가 가득 아버지의 일생을 채우도록
귤 한 조각 넣어드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 때문에 죽음이 아픈 것이라고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고
첫눈
정호승
첫눈이 내린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대소변도 남에게 맡기시는
아버지가 창가에 누워 말한다
밖에 눈 오나
얼른 밖에 나가
눈을 함빡 맞고 들어와
아버지 보세요 밖에 눈 와요
어깨에 소복이 쌓인 함박눈을 보여드린다
아버지 입가에 번지는
눈송이 같은 작은 미소
아버지 눈 오니까 좋으세요
아무 말이 없다
아버지는 아직도 아무 말이 없다
그리운 아버지의 미소만
첫눈이 되어 내린다
아버지의 안경
정희성
돌아가신 아버님이 꿈에 나타나서
눈이 침침해 세상일이 안 보인다고
내 안경 어디 있냐고 하신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나는
설합에 넣어둔 안경을 찾아
아버님 무덤 앞에 갖다 놓고
그 옆에 조간신문도 한 장 놓아 드리고
아버님, 잘 보이십니까
아버님, 세상일이 뭐 좀 보이는 게 있습니까
머리 조아려 울고 있었다
아버지의 혼불
조남명
시골 외딴집 등잔불 희미한 방안
아랫목엔 편찮으신 아버지 누워 계시고
어린 나 홀로 곁에 있었다
밖은 칠흑 같은 한밤중인데
별안간 창호지 문살이
대낮처럼 환하게 방으로 비쳐
민경*으로 내다보았다
우리 집 마당에서
긴 불덩어리가
건너편 산으로 둥실둥실
여운을 남기며 떠가는 게 아닌가
아버지는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아버지의 혼불이었을 줄이야
* 민경 : 방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창호지 문 가운데 조그맣게 붙인 투명 유리
때늦은 서평 - 아버지
조재형
어깨 너머는 천인단애보다 깊다
내 生을 통틀어야 열람할 수 있는
주름진 문장은 아득해
행간의 속내를 다 읽지 못했다
할머니의 주석이 없는 한
이면을 헤아릴 수 없다
두터운 그늘로 나를 온전케 하였느니
통독이 버거웠던 권장도서, 아버지
일생 밝혀 주마던 그가 영구히 꺼진 후
내 청춘을 추스른다
복원할 수 없는 경전
끝내 완독하지 못하고
하늘에 미소 한 권을 반납한다
아버지의 세계지도
주선미
세계 지도가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주가 맑게 고이는 헛헛한 저녁
속살을 파고드는 송곳니 같은 바람에서
건져 올린 갯벌은
남자의 주머니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학도, 유럽 여행도
동생만 보내놓은 흐릿한 식탁에
배우지 못한 낯선 단어들이 서성거리고
모든 걸 내어 준 그 남자
아프리카 오지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 없는 태평양의 작은 섬마다
주소를 만드는 남자 꿈속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거친 손 안에 옹송그리고 있던 볼펜
꾸깃꾸깃 귀가해진 세계지도 따라 일어선다
국경선마다 길을 열어 놓고
유럽의 어느거리에 있을 맑은 눈의 동생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여권을 펼쳐
형의 검푸른 바다를 그려 넣는다
세계 지도가 남자의 꿈을 건너가고 있다
아버지
차성우
‘니는 자라
부자 되거라‘
뻐꾹새가 짬도 없이 울어대던 논두렁에서
감나무 껍질 같이 터진 손등으로
물꼬를 트며 하셨던 말씀이다
다섯 배미의 논과
등골이 지치도록 땀방울만 맺게 하던
몇 평의 밭뙈기로
아버지는 일곱 식구를 키우셨다
옛날에,
청춘 하나와 당신의 근심스런 눈길
손가방에 담고 햇살을 바라며 고향 떠났다
조각구름으로 떠돈 지 수십 년
세상 그 어디에서도
부자 될 길은 멀기만 했다
아버지는 도시의 셋집에서
목숨 거두시고
고향에 가면
푸르디푸른 산언덕 뻐꾹새로 오셔서
‘니는 자라 돈 많이 벌어
부자되거라‘
진정 서러운 말씀이셨다
가난한 아버지들의 동화
최금진
가난한 아버지는 가난한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학교 가는 아들 앞에
초라하지만 정성스럽게 상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가난이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먹어!
어서 먹어!
안 먹어?
아버지는 가난한 자신이 부끄러워 화를 냈습니다
자신 앞에 누워있는
어리고 착한 가난의 뺨을 힘껏 때렸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난의 배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먹어!
어서 처먹어!
그 아들도 커서 똑같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이제 그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직장도 없는 그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툭하면 술 먹고 손버룻 나쁜 남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뚝!
그쳐!
안 그쳐!
이런 식으로 울음을 달래는 가난한 가장을
아무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최길준
그리운 아버지
당신이 가 버린 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내 생애 제일 깊은 사랑을 주시던 당신의
생각에 젖어 눈시울 적십니다
쇠죽 끓이던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몸을 씻겨 주시며 볏짚으로 박박 문질러
때 밀어주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당신의 따스한 손길 한없는 마음은
겨울을 녹이는 여신의 숨결입니다
아름드리 감나무에 감홍시 몇 개 달아놓고
까치밥이라 남겨 놓으니
절대 따 먹지 말라고 당부하시던 말씀
이제야 그 깊은 뜻의 의미와 사랑을 느낍니다
언젠가 잔칫집 다녀오시던 길 호주머니 속에
손수건을 접어 내놓는 시루떡 감귤 하나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먹으라고 건네주던 손길
당신의 고픈 배보담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당신이 누워 계신 곳은 춥지 않는가요?
햇볕이라도 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란 국화 환송이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헌 책방에 아버지들이 살고 있다
최선
사북 탄광촌 갱도를 통과한 모노레일처럼
숨 가쁘게 오르던 계단 대신 거꾸로 내려가는 지하방
얼마간 성공을 맛본
스타 교수님과 시인 철학자 요리사
세상 떠난 전직 대통령들까지 종착역에 모였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려도 어색하지 않은 곳
심장처럼 멈추지 않던 새벽 알람
오를 곳도 더 내려갈 곳 없어
이제는 울지 않는다
잘나가던 시절
정가(正價)는 이제 주장할 수 없다
새 상표처럼 붙어 있는 시세 폭락한 몸값
긴 휴식 틈으로 누군가 헤집고 끼어든다
어리둥절 떠밀린 새파란 명퇴자가 마지막 들르는
눕지 못하고 서 있는 곳
그것도 호사라는 듯
자리를 좁혀 앉는 진열대원들
자존심처럼 받든 모서리가 갈라졌다
다음 정착지를 묻지 않는 이곳
들락날락하는 그 바람 사이
적막이 만조를 이루고
갈피가 품고 있던 잘 마른 은행잎 한 장
유서처럼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귀여운 아버지
최승자
눈이 안 보여 신문을 볼 땐 안경을 쓰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박씨보다 무섭고,
전씨보다 지긋지긋하던 아버지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내 장단에 맞춰
아장아장 춤을 추는,
귀여운 아버지
오, 가여운 내 자식
아버지의 초상(肖像)
최양현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는
히포크라테스의 말본을 쓰고
아버지는 고해도 없이 묵시록을 쓰는
나도 늙으면 병원엘 가리다
돌아오는 길엔
먼 초원 넘어가는 새 한마릴 본다.
새는 뭉크의 풍경으로 일그러지고
나는 돈을 세고 있다
셈을 모르는 바위 때문에
눈에는 눈물이, 코에는 콧물이 까닭없이 흐른다.
다시 저녁 여섯시,
자명종은 크게 울리는데 긴 그림자 드리우고
집으로 돌아올 홀소리 바람이 닿는다.
님은
바람처럼 바위처럼 뭉크처럼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가약 없는 소리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산이로소이다
아버지의 미소
최연진
아버지의 미소가
헛간에 걸려 있다
삼태기며 맷방석
망태기며 가마니가
힘 겨운
삼남매 등을
다독이고 계시다
삶이란 꼬이는 거
꼬이는 게 삶이라고
멍석이 되기 위해
둥구미가 되기 위해
수 많은
지푸라기들
꼬여 있지 않느냐
어느 겨울밤
최창균
자다 깬 어느 겨울밤이었다
얼어붙은 어둠을 뚝뚝 분지르며 밖에 나가
축사 앞 쇠똥 더미에다 오줌 누려 했더니
그 자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질 않은가
볼일 보면서 생각해 보니 혹시 누군가
나처럼 이곳을 방금 전에 다녀갔다는 것인데
순간 머리가 서고 귀가 확 열리더니
축사 안에서 무슨 기척이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두엄더미에 늘 꽂혀 있는 쇠스랑 거머쥐고
시커멓게 소들이 매여 있는 축사 안을 주시하니
아니나 다를까?
그 기척의 누군가가 어른거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때까지도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던 나는
쇠스랑 높이 치켜들고 슬금슬금 다가갔는데
갑자기 이눔아 여기 네 애비다 하는 소리
거기 칠흑의 어둠을 인광으로 밝히며
소에게 깔 짚 넣어주고 있는 아버지였다
산다는 것이 저리 자다 깨어서도
꼼지락거려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쇠스랑으로 두엄을 쳐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수첩
최홍윤
장롱 속에 묻어둔
고즈넉한 세월 하나 건져
회한의 이슬에 젖눈다
꼬옥 꼭 누른 글자
갈피에 묻어나는 애증
파르르 떨리는
전화번호 하나로
고모님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다
머나먼 길
무거웠던 짐,
깨알같은 핏줄의 여정을
고모님은 낱낱이
풀어놓았다
아버지의 손
하영순
언젠가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이
윗대에 예술 하신 분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던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리고도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어버이날 나는 어미의 어미가 되어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아버지의 직업은 40년대 대목이었다. 지금 말하는 목수
산에 나무가 대들보가 되고 기둥이 되기까지 수작업을 해야 했던 시절
내가 살던 인근뿐 아니라 먼 곳까지
큼직큼직한 제각 누각 할 것 없이 아버지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늦은 밤 집에 오시면
날카로운 칼로 손바닥에 굳은살을 깎아내며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는 별생각 없이 보았는데
왜 이 늦지 막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벅차 몇날 며칠 전신이 저려
참다못해 기억을 더듬어본다
지금도 가끔 문화재를 보면 못을 치지 않고 지은 집을 본다
아버지의 공법이 그리하셨다
자구로 삐지고 대패로 밀고 끌로 구멍을 파서 끼워 놓는 공법
큰 집이 완성되기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일을 하면서 그 많은 굳은살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되는지
예전에 어른들이 하는 소리. 관속에 들기 전에 철들겠느냐 하는 소리가
나를 두고 하던 소리인 것만 같다. 나 이제야 철이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다니
지금 호화스럽게 자란 자식들에게 부모의 고생을 알아 달라고 하기엔
내 자신 부터가 이렇게 모자라는데
어찌 자식에게 보모의 삶을 이해해 달라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술인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못하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아버지는 그러하셨다 눈으로 본 것뿐 아니라 머리가 시키면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예술인이었다
일제 치하에 일본 선생님이
아버지의 명석한 두뇌에 감탄하고 일본 가서 공부 시키겠다고 하던 것을
노부모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살집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대목이 되었다는 아버지
그 때 일본 가서 공부를 했더라면 예술가가 되었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 선생님께
윗대에 예술인이 없었다고 한 말이 아버지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하신 일이 바로 예술인 것을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죄송한 이 글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바치고 싶다
아버지의 등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아버지
한상숙
속상해도 참아야 했습니다
삶이 슬퍼도 내 잘못인 양
죄스러워했습니다
늘 침묵해야 했고
자신에게 스스로
엄해야 했습니다
통곡하고 싶은 날에도
내비치지 못하고
가슴으로 울어야 했습니다
가슴속 깊이 들이쉬는
담배 연기 한 모금과
슬픈 눈물 같은 소주 한잔으로
자신을 달랬습니다
한없이 나약한 인간인데도
신처럼 강한 모습만
가족 앞에서 보여야 했습니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아버지의 손목시계
함동수
거실에 울타리를 치고 앉아
오는 이는 있어도 결코
수월하게 나갈 수 없는 엉거주춤
그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경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시간이 지루한 탓일까
얇은 손목에 시계가 없으면
방 안에 불안이 가득한 이유는 뭘까
- 시계가 안 간다-고
- 고장 난 시계를 보내세요! -
- 시계를 찾을 수 없어서 못 보낸다-고
팔순 때 둘째 아들이 사드린 세이코도
어느 관청에서 선물 준 시계도 자꾸 멈추니
시간만 보고 있는 아버지는 매일
초침 바늘처럼 가다 멈추기를 자주한다
어젯밤에도 자는 나를 깨워
‘시계가 안 간다’고
왜, 아버지의 시계는 자꾸 멈추는 것일까
왜, 아버지는 자꾸 먼 길을 다녀오는 것일까
아버지는 왜,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손목시계를 잊어버리거나
시곗바늘이 멈추거나
시계 줄이 손목을 빙빙 도는 시간
생각해 보니
그 시간, 이미
아버지의 경계 시간
지금도 아버지는
초침을 좇아
그, 어느 시간을
찾는 중인지도 모른다
미지의 세상을 들락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