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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스님, 사찰 2

Bollnow 2024. 8. 29. 12:59

나상국 간월도 간월암

나호열 - 마애불을 찾아서

남시호 그리운 송광사 현묵 스님

남호섭 - 부처님 오신 날

도지현 - 날마다 흔들리는 마음 - 부처님 오신 날

류금선 - 스님

목필균 고담사 마애입불상

목필균 대법사(영취산)

목필균 덕숭산 수덕사

목필균 돌부처의 미소

목필균 만덕산 백련사

목필균 -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목필균 봉은사 부처님들

목필균 - 부처님 오신 날

목필균 삼각산 진관사

목필균 삼각산 화계사

목필균 상왕산 개심사

목필균 서산 마애삼존불

목필균 - 서운산 청룡사

목필균 - 성엽 스님

목필균 약천사 부처님들

목필균 - 어둠을 밝히다 연등

목필균 인암 스님

목필균 절에서 절을 하며

목필균 조계사 천진불

목필균 칠현산 칠장사

목필균 태안마애삼존불

목필균 팔공산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목필균 풍악산 마애불좌상

목필균 합장

문성해 연등

문숙 수종사 부처

문재학 - 만어사(萬魚寺)

문재학 백천사(百泉寺)

문재학 석남사(石南寺)

문재학 선암사(仙巖寺)

문정희 돌아가는 길

문정희 토불(土佛)

민영 초파일

박경임 - 서산마애불

박규리 노스님의 방석

박규리 청매화

박규리 치자꽃 편지

박기섭 - 먹빛

박노해 회향

박두규 초파일

박라연 가을 화엄사

박목월 불국사(佛國寺)

박목철 - 부처님 오신 날

박영근 - 돌부처

박종대 연못가에서

박종영 돌부처의 노래

박종해 망해사(望海寺)

박종화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박철 - 탱자꽃

박태강 낙가산 관세음보살님

박태강 - 보리암

박태강 - 부석사

박태강 - 부처님의 웃음

박태강 석가탑

박태강 - 청량사

박태강 - 태안마애삼존불(泰安磨崖三尊佛)

박형준 초파일

박희진 불상(佛像)

배영옥 무량사 가는 길

배종도 산사의 노여승(老女僧)

배태성 부처의 미소

백무산 머리 없는 돌부처

백석 여승(女僧)

법정 스님 - 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법정 스님 - 자기답게 사는 길

변종환 - 개심사

변종환 운주사 돌부처

복효근 등신불

복효근 아름다운 번뇌

복효근 쌍계사에서

사방천 전등사

서봉석 - 백담사

서연정 운문사

서영숙 와불 속으로

서정윤 탑을 돌며

서정주 관세음의 노래 - 석굴암

서정주 방한암 선사

서정주 부처님 오신 날

서정춘 눈물 부처

서희옥 - 개암사

석지공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손병흥 겨울 갑사

손병흥 만어사 미륵불

손병흥 부처님 오신 날

손병흥 운문사 사리암

손병흥 화순 운주사 와불

손병흥 화엄사 구층암

손정모 염화시중

손정모 - 천은사

손택수 메주 불()

손택수 부처 바위

송수권 - 백담사 운(百潭寺 韻)

송숙권 여승

송영숙 스님의 몸에서 김이 난다

송유미 -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네

송재학 얼굴 없는 부처

송찬호 - 금동반가사유상

신경림 주천강가의 마애불

신석종 초파일 날

신용목 화엄사 타종

신현배 범종

신현정 와불(臥佛)

신형식 연등

신혜경 - 와불

 

 

 

간월도 간월암

나상국

 

간월도 갯비린내 잔뜩 머금은 바람도

활공하던 날개 접고

달빛 내려앉은 새 둥지 찾아 잠든 밤

간월암 밤바다의 달빛 세레나데

격랑의 파도 졸음에 겨운 듯

잠을 청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면벽 수행하던 노스님

쥐오른 발끝 부여잡고

차마 입속말은 못하고

숨바꼭질 하던 달빛만

까까머리 위에

만월을 그리며 반짝이더라

해무에 갇혀 있던 섬 간월암

바다 물길이 열리면

해풍에 흔들리는 풍경소리

은은하게 뭍으로 오른다

 

 

 

마애불을 찾아서

나호열

 

표지판 일러주는 대로 걸었다

길 따라 마음은 가지 않았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세를 세우는

나무들

죽은 듯 살아라 살

아도 죽은 듯 하라

숨죽여 뿌리는 깊어지고

둥글어지고

머리와 멀어지는

아득한 깨우침

낮게 사랑하라

 

 

 

그리운 송광사 현묵 스님

남시호

 

시방 머얼리 그리움으로 갈라네

나는 나는 5군단 사령부 의무실

동료 노주현도 고치는 의사 그래

그냥 약을 나눔하는 돌팔이 의무병사

녀석 녀석은 태권도를 다루는 나의 절친 법당 지킴이

 

녀석은 군인 그만 하면 텅 빈 세상 산으로 간데요

내세를 더듬는 중으로 스님으로 간데요 글쎄

토박이 산사로 취직 하려고 간데요 글쎄

여자 생각 깡그리 잊으려

거시기 힘을 빼려 마음의 힘을 빼려

고추도 안하고 마늘도 머어얼리 하고

 

나를 유혹하는 그리움에 지친 70 즈음

그리움의 빛깔이 내 심장을 떠밀고

산그늘과 벗하는 산사로 가신님을 다부지게 찿으려 애쓰니

중으로 스님으로 간다는 그 녀석 드디어 찾았지 예

인터넷을 호령하는 조계산 큰 절 현묵스님을

우와! 다감한 설법 송광사 불붙이는 유나 스님

 

늘 상 스님 된다던 녀석

조계산 큰 절의 성스러운 큰 스님 이루었네

마음마저 착한 향기 장하구려 장섭아

이제야 거룩스러운 박수 보내노니

 

 

 

부처님 오신 날

남호섭

 

앞을 못 보던

우리 할머니

 

날마다

관세음보살

 

한숨 대신

관세음보살

 

아프지 않고 가야지

자다가 그냥 가야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처님 오신 날

정말 그렇게 가셨다

 

 

 

날마다 흔들리는 마음 - 부처님 오신 날

도지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연등 밝혀야 하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오시단 말인가?

 

연등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만 오시면 마음마저 젖어

허공에 둥둥 뜨는 눈망울

이 마음은 또 어찌해야 하나?

 

뿌리 깊은 나무 되게 해주시라

부처님 전에 빌고 또 빌었건만

이렇게 비가 오시니

또 뿌리가 생기다 만 나무가 된다

 

그 마음 하나 단속하지 못하는

설 생긴 가슴 때문에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지는

바람 잘 날 없는 꼴 사나운 모양인데

 

 

 

스님

류금선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걱정 없고 고통 없는 사람 없으니

중생들 근심 끝이 없네

 

모든 게 다 전생의 인연이라오

전생의 업보가 오늘의 고통이니

현실을 슬기롭게 이겨내야

래생에서 그 짐을 덜 수 있다오

 

수많은 중생을

보듬어 안은 스님의 말씀

한마디 말씀에도 위안이 되는 보살들

 

백팔번뇌 잊으려고

합장하고 눈감아도

속세에 묻힌 정 풀리지 않고

 

스님의 염불 소리

전생의 인연으로 와 닿았는가

가까이 들리는 목탁 소리 정겨웁다

 

 

 

고담사 마애불입상

목필균

 

온몸에 청태가 앉도록

누워보지 못한 정진의 천년

부처님 동공에 각인된

천왕봉이 구름 위에 있다

 

비구름 내려앉아도

천축으로 가는 길 보이는 곳

묵묵히 내려다보던

천년 마애불 품안에

먹물옷 하나

고단한 날개 접는다

 

칡넝큘로 뒤덮인

모진 상념 줄기들

자르고 버리고

비우고 채우면서

끝없이 돌아온 고행길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오직

스님다운 스님 되자는

원 하나로 기도하는 도량에는

백련 어리연이

햇살 품어 영글어 가고

 

중생들 귓가로 찾아가는

심진 스님 찬불가는

굽이굽이 준령을 넘더니

어느새

넓은 연잎에 은구슬로 구른다

 

 

 

대법사(영취산)

목필균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취산 백하암

명패를 몇 번 바꾸면서 대법사가 된 내력

 

구국의 선봉이었던 사명대사

나라에서 내린 벼슬을 사양하고

머물러 수행을 했다는 도량에 흐르는 전설

그 전설의 흔적은 모두 내어줬지만

 

대사의 묵직한 발걸음이 천하를 호령해서일까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살아있는 목숨이었는지

수백 년 터를 잡은 아름드리 모과나무로 남아 있다

 

모과나무가 살아있으면 육신이 어디 있든

나의 기상이라 일렀다는 사명대사

지금도 그 목소리 영취산에 머물러 있는지

 

풍성한 모과가 향기로운 차가 되어

대중들의 들끓는 번뇌를 붙잡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시원하게 보듬어 주는데

 

가파른 산정에 유영하는 목어처럼

불자들이 본분을 깨닫게 하는

청정수행도량으로 거듭나기를

여린 비구니 스님 법문이 눈물겹다

 

* 대법사 :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덕숭산 수덕사

목필균

 

그 옛날에도 이루지 못한 사랑은 애절했는지

덕수 도령과 덕숭낭자의 사랑으로 지어졌다는

덕숭산 수덕사에는

 

지혜 깨우쳐주는 석가모니부처님

병든 가슴 어루만져주는 약사여래부처님

서방정토 길이 마음에 있다는 아미타 부처님

대웅전 삼존불 자비심 이어받은 큰스님이 있다

 

착하기는 부처님보다 더했고

사납기는 호랑이보다 더했다던 경허선사도

 

꺼져가는 왕실에 불법을 전한 신표로

오동나무 거문고를 보물로 받은 만공스님도

 

자유로운 사랑으로 청춘을 불사르고

신여성도 다 허무하다고

만공스님 상좌로 들어온 일엽스님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윤회의 수레바퀴를 타고 도는 일이라

마음 비우며 살라 한다

 

 

 

돌부처의 미소

목필균

 

1 - 용화사 미륵존불

부안 바다에 정박했던 바람이

미륵골 대숲에서 수런거리며

천수경을 읊는다

 

아들 점지해주던 영험도

입으로 지은 허물 닦아주던

진언도 생매장되어

안으로만 내공을 쌓았는지

 

코가 떨어져 나가도

귓불이 잘려 나가도

기척도 없다

 

땅속에 묻히고도

다시 세상 빛을 봐도

묵언수행

 

오가는 사람 덧없어

……. …….

천이백 년 고행길

안으로 삼켜지는 목탁 소리

풍화되지 않은

돌부처의 미소만이

한겨울 눈부신 햇살로 돋아난다

 

 

2

봄인 듯 여름이고 가을인 듯 겨울이니

돌고 도는 세월의 수레바퀴

오너라 가거라 말없어도

가는 듯 오고 오는 듯 가는 사람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풍화되지 않는 불심 응고시킨 육신

아는 듯 모르고 모르는 듯 아는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세상사

말없이 미소 짓는 천년고찰 돌부처

 

 

 

만덕산 백련사

목필균

 

만덕산 백련사

사천왕은 어디로 갔는지

오욕에 물든 허물 많은 중생들에게

지엄한 보검도 부릅뜬 눈도 보여주지 않네

 

시끄러운 세상이 다 남의 탓이겠냐고

참회와 수행으로 정토를 만들고자 결사했다는

백련사 *요세 스님 법문이

범종의 울림으로 전해오고

 

노스님 독경 소리에 마음을 닦았는지

수백 년 묵은 근육질 배롱나무가

한겨울에도 결 고운 가지를 뻗는데

 

다산선생도 초의선사도 선문답으로 오고 갔을

동백나무숲길 따라

천수경 첫 장도 넘기지 못한 땡땡이 불자들도

사철 푸른 잎에 붉은 입맞춤으로

정진의 길을 닦는다

 

* 요세 스님 : 1211(고려 희종 7)에 원묘국사 요세(1163~1245) 스님이 옛터에 중창하고 백련 결사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백련사(白蓮社)로 불리우게 되었다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목필균

 

흔들리는 촛불 같은 마음이

세상이 공()이라 한들

밝음도 어두움도 가슴에 새길 수 없어

 

대웅전을 끌어안은 병풍바위에

탐진치 마음 보따리 다 내려놓은

보살을 새겼네

 

바위의 곡면 따라 숙여진 머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 피어난

온화한 미소가 새겨진

5미터가 넘는 마애보살좌상

 

풍화되지 않는 불심에

발아래 엎드려 올리는 백팔 배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보타사 : 서울시 성북구 개운사길 60(안암동)

 

 

 

봉은사 부처님들

목필균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아 들어가는 진여문

문고리도 잡지 않고 들어서니

보우 스님*이 지켜온 도량에 연꽃이 만발하다

중국에서 짊어지고 온 포대 자루가

사람들과 보태며 나누다 보니

무거워졌다 가벼워졌다 하더라고

삼복더위에도 파안대소하는 포대화상

일어나지 않을 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안한 세상살이

빌어서 이룰 소원이라면

무릎이 닿도록 빌어보겠다는

미련한 중생들 구제하겠다고 오신

미륵대불

사는 일이 번뇌의 바다라고

물길도 없이 봉은사에 온 해수관음보살

부처님들 법문에 귀 기울이다

잠든 동자승이 연꽃으로 피어나도록

사천왕들이 눈을 켜고 지키고 있다

 

* 보우 스님 : 조선 명종 때 억불 정책에 눌려있던 불교 중흥에 앞장선 스님

 

 

 

부처님 오신 날

목필균

 

햇살이 세상을 고르게 밝히듯이

시방 삼세를 두루 살피시는 부처님

생사를 윤회하면서 지은 죄업은 모른 채

제 복만 비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룸비니 동산에 탄생하심을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탐욕의 끈을 놓지 못하고

풀리지 않는 세상사에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무량한 가피를 내려주소서

불자들 가슴마다 절을 지어놓고

물질도 마음도 이웃과 나누는 공덕 쌓으며

전생에 지은 죄업도 참회하며

불법에 따라 낮은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부처님 오신 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기를

바른 믿음으로 실천하기를

무릎 끓어 절하며 절절하게 다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삼각산 진관사

목필균

 

사악한 손길 피해

왕의 목숨을 구한 진관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나라 잃은 불심이 무슨 소용일까

칠성각 깊숙이 숨겨둔 얼룩진 태극기에 새겨진

백초월 스님의 호국 불심은

진관사 입구에서 일주문까지 길을 열었다

 

백초월길 따라 들어가다 보면

극락문 열겠다는 중생들

살아온 마음길이 정직했는지

들여다보는 아미타부처님

바위에 새겨진 연화대에 앉아 있고

 

해탈문 지나면 극락일까

대웅전 뜰을 붉게 물들이는

연꽃이 합장하며 올리는 예불이

평안히 흘러가는데

 

진관대사, 백초월 스님이 치는 죽비는

물불은 계곡물 소리로

삼각산 도량을 지키고 있다

 

 

 

삼각산 화계사

목필균

 

삼각산 계곡 푸른 도량이 아름답다

일주문에 들어서며

합장하는 마음도 아름답다

 

오백 년 느티나무 그늘에서 열리는 법회에

푸른 눈의 스님도, 검은 피부의 스님도, 맨발의 스님도

범종의 울림을 끌어안고 살고자 기도한다는

국제 선원 화계사

 

천불 오백성전에 모여든 신륵사 오백 나한도

바스라지도록 낡은 목어도

천년 고찰로 향하는 발길을 지키고 있는데

 

불심으로 중생들을 천축으로 인도했는지

대웅전 부처님 내려다보는 보화루 옆에 앉아

엄마 따라온 아기보살도

장난삼아 쳐보던 목탁 소리에

깨달음의 길로 들어섰는지 미동도 없다

 

 

 

상왕산 개심사

목필균

 

코끼리 닮았다는 상왕산(象王山)

호젓한 숲길로 쉬엄쉬엄 오르면

마음 열어 깨달음을 얻으라는

개심사가 있다

 

도량 앞 연못가에는

해묵은 배롱나무가 붉은 꽃으로

복닥거리는 세상에 빗장을 지르지만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해탈문 들어가서도

허물 많은 죄업은 접어두고

소원성취, 건강기원, 복만 달라는 사람들

 

연꽃 위에 앉아있는 아미타부처님 곁에

지장보살부처님도 관세음보살부처님도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이 없으니

 

찰나 같은 이승에서

탐욕을 버리고, 자비심을 베풀며

참다운 나를 찾아가라 한다

 

 

 

서산마애삼존불

목필균

 

바위의 불성을 깨운 석공

그 투박한 손길을 만진다

 

눈 크게 뜨고 미소 짓는 부처님

풍화되지 않는 자비심이 빛난다

 

탐욕의 무거운 짐 내려놓으면

미소 짓지 않을 일이 무엇이랴

 

날아갈 듯한 가파른 절벽에

머무른 삼세 부처님이

전생도 이승도 내세도

불국정토의 땅으로 인도한다

 

서산마애삼존불 미소

그 아름다운 파장에

가슴 적시며 바람이

반야심경을 봉독한다

 

 

 

서운산 청룡사

목필균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청룡의 전설이

나옹화상 목탁 소리로 흐르는 도량에는

대웅전 부처님 내려다보며

진흙탕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같이 살라 한다

 

대웅전 지붕과 공포를 수백 년 떠받친

자연목 기둥은 허술한 듯 견고하게

정진의 불심을 지켜왔는데

세월 따라 부는 바람이야 어쩌랴

 

전국을 돌아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로 살아가는 남사당패를

남루한 탁발승 발걸음으로 품어 안은

청룡사는

 

누구라도 마른 목축이게 하는

옥천수 같은 자비로움으로

두 손 모으게 한다

 

 

 

성엽 스님

목필균

 

눈부신 마가렛 꽃길에

치마를 감춘 스님의

고된 발자국이 숨어있다

 

벚꽃도 지고

민들레도 흰머리 풀은 지 오랜

6월 한나절

작설차 우려내는

스님의 가는 손가락

 

다 두고 가세요

힘겨운 병고

수많은 번뇌

다 두고 가세요

 

미륵부처님 앞에

삼배하기도 어설픈 불자

죽비로 내려치지 않고

오고 가며 들린 인연이라도

어깨 눌리는 일들 다 풀고 가라

마음을 치신다

 

올이 성글은 푸대자루 같은

몸뚱이에서 풀풀풀 날리는

삶의 찌든 먼지들

정갈한 스님의 말씀으로

탈탈 털어낸다

 

꽃길 밟으며 돌아오는 길

소리 없는 범종의 무게를

법문으로 들으며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 성엽 스님 : 충남 아산에 있는 대윤사 주지 스님

 

 

 

약천사 부처님들

목필균

 

제주도 약천사

대적광전에서 내려다보면

수평선 너머 서방정토*로 가는 길이 보이는데

아득히 먼 그 길

어느 쪽인지 모르는 그 길이 어디인지

묻지도 않고 무심히 가는 사람들에게

눈 뜨고 가라 이르는 비로자나 부처님

서귀포 바다에 마음 넓히고

약천사 맑은 물로 몸 씻으며

갈 때 가더라도 고통 없이 살다가라고

세파에 찌든 가슴들

어루만져 주는 약사여래 부처님

합장된 두 손으로 엎드려 절하며

물질이 아니어도 수행하면 복을 짓는다는

무제칠시* 그 마음이 등대가 될 것이라고

어둠을 밝혀 서방정토 가는 길로

인도하는 아미타 부처님

 

* 서방정토 : 서쪽으로 10만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아미타불의 국토. 극락세계

* 무제칠시 :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

 

 

 

어둠을 밝히다 - 연등

목필균

 

무명을 깨워서 지혜롭게 살겠다는 발현으로

연꽃 피워 부처님께 공양하네

 

관세음보살 옷자락처럼 아름다운 꽃등이

어둠이 내려앉은 산사에 은은히 빛으로 발하면

고요한 부처님의 미소가 피어나네

 

발걸음마다 손길마다 쌓아지는 공덕이

어찌 화려하고 요란하겠냐고

지혜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을 어둠에서 구하고자

공양한 연등만이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는데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 길을 밝혀주고

마음으로 등잔이 되어

믿음으로 심지를 삼아

계향이 늘어가는 것을 힘으로

지혜를 밝히고

 

자기 수행을 통해서야 만이

마음에 행복을 품는다고 한다

 

 

 

인암 스님

목필균

 

풍경 소리 없는

도심지 법당에서

청정한 마음 다듬기

 

부처님 믿는다는 것은

알기 위한 길

하나하나 깨우쳐 나가는 길

절제의 식탁을 차리는 길

 

흐려진 눈 크게 뜨고

어리석은 마음 버리고

정신차려 깨달아서

세상 이치 훤하게

몸과 마음 부자 되라고

 

한 명 불자 앞에서도

두 명 불자 앞에서도

목탁소리 울리고

요령소리 울리고

염불 소리 울리고

 

짧은 호흡

선 굵은 울림으로

법당 그득 채우는

바위 같은 불심

인암

 

 

 

절에서 절을 하며

목필균

 

살다가 지은 죄업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마음 길에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지은 죄가 버거워

절에서 절을 하며 죄업의 무게를 덜어낸다

 

누더기 한 벌이면 이승 길 끝나고

삼천 배이면 저승길도 끝난다는 큰 스님 말씀

알다가도 모를 화두로 맴돌고

 

바람에 흔들린 나무 같이

욕심에 꺾여 구정물이 된 가슴

무릎 꿇어 올리는 절마다 촛불 켜는데

 

영원한 것도 없고, 무상한 것도 아니고

고통만도 즐거움만도 아니라는 세상살이

말없이 지켜보는 부처님 앞에

 

이승이 버겁고

저승은 더욱 두려워

참회의 절을 올린다

 

 

 

조계사 천진불

목필균

 

첩첩산중 아니라도

청정한 도량은 도처에 있다고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계사 천진불

 

대웅전 큰 부처님들 그늘에 모셔놓고

땡볕 더위에도 연꽃은 불심으로 피더라고

꽃같이 살라 한다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고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게 하지 않고

주변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연꽃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청하게 마음을 닦아

그윽한 향기로 만나는 인연마다 보시하라고

 

누구라도 반갑다

손 내밀며

천진한 눈웃음 바위에 새기고 있다

 

 

 

칠현산 칠장사

목필균

 

쏜살같이 빠르다는 세월

천년이 흘러도 고즈넉한 칠현사 칠장사에는

얽힌 전설도, 품은 사연도, 유물도 많다

 

궁예가 유년기를 보내며 활쏘기를 했다는 활터

도적 일곱 명에게 지성으로 가르침을 주어

현인이 되게 했다는 해소국사

왕자로 태어난 것이 죄라고 어린나이에 죽은

영창대군의 극락왕생을 빌어주었다는 인목대비

병해대사와 임꺽정에 얽힌 스승과 제자 이야기

박문수의 장원급제를 도왔다는 나한전 꿈 이야기

일제강점기 독한 쇠 공출을 면한 당간지주까지

 

그 많은 이야기 다 품은 부처님들

대웅전에서, 명부전에서, 극락전에서

극락왕생 하는 길은

죄업을 닦으며, 자비로 이승을 사는 거라고

진리의 법문을 늘 그 자리에서 전하고 있다

 

 

 

태안마애삼존불

목필균

 

바위가 많은 백화산을 품고

태을암 독경소리는

백제의 숨결을 이어오고 있다

 

모진 바닷바람으로 씻긴 풍화보다

소원이 깊어진 사람들 손에

뜯겨진 살점 내주고도 의연히 서 있는

마애삼존불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 석가여래불

누구라 가리지 않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

질병의 고통을 구제하는 약사여래불

연화대좌 위 삼존입상 앞에서

누구라 석공의 손길을 돌아보지 않을까

 

지나가는 뜨내기 발길이라도 합장하며

어둠을 밀어내는 불심 따라

촛불 올리게 한다

 

 

 

팔공산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목필균

 

팔공산 산자락 어디쯤인지

천년 고찰 동화사로 더듬더듬 오르니

 

암벽 구름 위에 앉아있는 부처님

결가부좌했던 오른 다리를 풀며 맞아준다

 

살면서 무성히 피어나는

탐욕도 어리석은 마음도, 분노도

물리쳐야할 악의 기운이 아니겠냐고

항마촉지인* 모습으로 천년을 지켜온 마애불

 

대승적 깨우침의 불심으로

법화경 7만 개 글자를 경판에 새기는 대작불사가

눈 속에서도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었다는

동화사 전설처럼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

 

 

 

풍악산 마애불좌상

목필균

 

푸른 솔바람은

풍악산 중턱에 머물러

말없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다

 

도선국사가 하루 만에 조성했다는

마애불좌상이 들려주는

청태 낀 먼먼 이야기

 

인적 드물어 청정한 도량

법당도 없이 홀로

세월을 공양하는 스님의 기도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홍서원이

구름이 되고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천축으로 가는 길이 된다

 

 

 

합장

목필균

 

대웅전 문턱을 넘어서도

모르는 척 미동 없이

연꽃잎만 헤아리는 부처님

 

지은 죄업의 손과

죄업을 사하는 손이

마주한다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

금빛 침묵

 

오면 간다던가

가면 온다던가

 

어둠을 비워내는

촛불이 흔들린다

 

구정물로 빠져나가는

모진 세상살이

 

찰나의 평온함이

가슴에 피어난다

 

 

 

연등

문성해

 

이 나이 되도록

나는 한 번도 연등을 달아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자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일은

나를 작게 둥글려 연등 속에 넣고

바람과 빗속에 흔들리는 일

방에 돌아와 누워도

흔들리는 연등을 생각하는 일

 

어떤 자는 제 몸을 활활 불사르고

어떤 자는 일찍이 심지를 끄고

어떤 자는 바람에 균형을 잡고

나는 그중 가장 나중의 자가 되고 싶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연등의 시절이 오면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립문짝에

발그레 뺨 붉힌 그것을 매달고 싶어

 

등불 위로 뜨거움을 참고 내려앉는 어둠을

내가 나를 보듯 들여다보고 싶어

연등을 켜고 끌 때

 

내 얼굴을 웃음을 숨소리를

생각하고 싶어

 

 

 

수종사 부처

문숙

 

절 마당에 검은 바위처럼 엎드려 있다

한 자리에서 오전과 오후를 뒤집으며 논다

단풍객들이 몸을 스쳐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가면 가는가 오면 오는가 흔들림이 없다

산 아래 것들처럼

자신을 봐달라고 꼬리를 치거나

경계를 가르며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생각을 접은 눈동자는 해를 따라 돌며

동으로 향했다 서로 향했다 보는 곳 없이 보고 있다

까만 눈동자를 따라 한 계절이 기침도 없이 지나간다

산 아래 세상은 마음 밖에 있어

목줄이 없어도 절집을 벗어날 생각을 않는다

메이지 않아

지금 이곳이 극락인 줄을 안다

지대방을 청소하는 보살에게 개 이름을 물으니

무념이라고 한다

 

 

 

만어사(萬魚寺)

문재학

 

울창한 숲속 급경사 길

꼬불꼬불 해발 칠백 미터를 숨차게 오르면

하늘을 향한 소리 없는 아우성

김수로왕의 창건 설화로 유명한 만어사(萬魚寺)

수많은 바위(萬魚石)들이 탄성으로 반긴다.

 

아득한 전설이 서려있는 거대한 돌너덜

쇳소리. 목탁소리. 종소리 등

돌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가슴을 울리는 청아한 긴 여운의 신비로움은

감동으로 젖어들었다.

 

동글 뾰족한 어산불영(魚山佛影)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넘실대는

이색적인 풍광은

금옥소리를 내는 경석(磬石)의 보고(寶庫)였다.

 

여기저기 돌 부위마다

호기심의 발동으로 두드려본

백색분말의 상처가

염천(炎天)에 하얗게 타고 있었다.

 

* 만어사는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사찰이다

 

 

 

백천사(百泉寺)

문재학

 

사천시 와룡산 기슭

숨 막히는 풍경 속에 터 잡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백천사

 

가을 햇살을 희롱하는

졍결한 소슬바람이

심신을 휘감아 돌고

 

병마를 씻어주는

약사와불(藥師臥佛)의 자애로운 미소는

민초들의 경건한 두 손을 모으게 했다.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우보살(암소) 신비로운 목탁소리는

고요한 산사를 흔들고

 

영생의 안식에 들어간

수많은 새하얀 불탑들이

인생무상의 연을 끊고 있었다,

 

돌아서는 길

맑디맑은 대형 저수지 위로

고운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석남사(石南寺)

문재학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가지산의 준령(峻嶺)

나풀거리는 연초록(軟草綠)

오월의 물결이

산자락을 감돌고

 

유구(悠久)한 고찰의

석남사(石南寺)

신라 현덕왕 시

도의국사의 혜안(慧眼)

천년 절경에 스며든다.

 

우거진 수목 사이

푸르름을 더하는

산들바람은

고색창연(古色蒼然)

비구니의 선원(禪院)으로

찾아드는데

 

재잘거리던 동녀승(童女僧)

흔적은 간곳없고

 

낭랑한 여승의 독경(讀經) 소리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가

무아(無我)의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구나

 

 

 

선암사(仙巖寺)

문재학

 

호남의 명산 조계산 자락에

천오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선암사 찾는 길

 

계곡을 따라

솔바람과

단풍의 향기 가득하다.

 

떨어진 낙엽의 소리는

가랑비가 잠재우고

 

만추(晩秋)의 스산함이

밀물처럼 밀러오네

 

승선교(昇仙橋) 돌다리 지나

일주문(一柱門) 다달어니

 

수많은 대사들 흔적(痕迹)

선풍(禪風)이 감돈다.

 

육백 년 수령(樹齡)

천연기념물 백매화(白梅花)

발길 붙잡고

 

천년 고찰의 정경(情景)

속세(俗世)의 분진(粉塵)

씻어 내린다.

 

 

 

돌아가는 길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토불(土佛)

문정희

 

잘 가요 내 사랑

나는 진흙 속에 남겠어요

나무와 나뭇잎이 헤어지듯

그렇게 가벼운 이별은 없나 보아요

당신 보내고 하늘과 땅의 가시를 홀로 뽑아내요

끝까지 함께 건널 줄 알았는데

바람이 휘두르는 칼날에 그만 스러집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조차 때로 집어등(集魚燈)처럼

사람을 가두고 눈멀게 하네요

나 모르는 것을 숨기고 있다가

진흙탕, 가장 깊은 진흙탕에 넘어뜨리네요

더 이상 갈 곳 없어 광활한 심연

꽃도 죄도 거기 녹이며

검은 씨앗으로 나 오래 어둡겠어요

당신이 또 다른 이름이 되어가는 동안

홀로의 등불을 홀로 끄고 켜는

작은 토불 되어 뒹굴겠어요

 

 

 

초파일

민영

 

진달래꽃 피었다 지고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다 지고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함박꽃이 피었다 지면

제비붓꽃 피어날까요?

 

하늘과 땅에

청노새빛 햇살 퍼지고

 

바다 건너 서천(西天)에서

아기 부처님 목소리 들려옵니다

 

 

 

서산마애불

박경임

 

삼국시대부터

바위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부처님

 

아직도 나오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 뒤쪽은 못 나왔는데

그래도 좋은지

웃고 있다

 

 

 

노스님의 방석

박규리

 

노스님의 방석을 갈았다 솜이 딱딱하다

저 두꺼운 방석이 이토록 딱딱해질 때까지

야윈 엉덩이는 까맣게 죽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몸뚱어리는 놓았을 것이다

눌린 만큼 속으로 다문 사십 년 방석의 침묵

꿈쩍도 않는다, 먼지도 안 난다

퇴설당 앞뜰에 앉아

몽둥이로 방석을 탁, , 두드린다

제대로 독 오른 중생아

이 독한 늙은 부처야

 

 

 

청매화

박규리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 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깎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 사람 떠나고 다시 꽃 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겨울 내복 두 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치자꽃 편지

박규리

 

스님!

어느덧 상강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도량석 치는데, 등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더니 코끝이 차가워지더이다. 벌써 겨울이 왔나봅니다. 이곳에 온지 어느 덧 반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새봄이 오면 드디어 스님이 됩니다. 어제부터 명등(明燈)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의 상명등 스님은 키가 저보다 한 뼘이나 적은데다가 몸까지 약해 걱정입니다. 몸도 몸이지만 요즘은 아마 마음이 많이 아픈가봅니다. 새벽예불 모시는데 오늘따라 등꽃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입니다. 저는 못본 척 했지만 왠지 제 가슴도 울적해졌습니다. 법당을 나온 상명등 스님은 미안했는지, 저는 그만 마을로 돌아갈까봐요 하며 저물듯 웃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만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마음은 아닙니다. 물빛 등처럼 슬픈 마음이 들어서 괜스레 그래 본 것뿐입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서울 처사님 때문에 저러실까도 싶지만, 꼭이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명등 스님은 왜 슬퍼하는지요. 왜 저에게도 늘 가슴 먹먹한 슬픔이 깊이 또아리 틀고만 있는지요. 이 쓸쓸한 것들이 무엇인지 어디서 오는 건지 알수 없지만, 저는 그냥 꾹 참고 견딥니다. 견디다보면, 견디다보면, 그래요 스님은 그러셨지요. 무엇이든 다 견딜수 있다고. 그렇게 그렇게, 어디든 다 건널수 있다고. 스님! 저는 지금 어느 망망한 생사바다를 헤메고 있는지요. 아니, 어느 외로운 바닷길에 한송이 파도로 꽃피어 흐르는지요. 포로롱, 갑자기 새 한마리 제 책상위로 날아듭니다. 푸득이는 날개 속에서 미칠듯 그리운 스님의 치자꽃 향기가 눈부시게 쏟아집니다. , 그날 스님과 함께 마셨던 차 향기가 제 몸 속속들이 스며 흩날립니다.... 이제 그만 공양간에 채공* 살러 가야 합니다. 새봄에 무사히 스님이 되면, 그때 다시 소식 여쭙겠습니다. 참 보내주신 약 덕분에 무릎관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요즘에는 하루에 오백 배씩밖에 안 드리거든요. 걱정 마셔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저는 스님 속으로만 흐르고 흘러갑니다. 홀로가는 이 두려운 바닷길도 늘 그곳에 닿아 있어 저는 울지 않습니다.

법체 보존하소서.

*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일

 

 

 

먹빛

박기섭

 

여승도 늙는구나

늙은 여승 둘이서 먹물 옷 먹물 실을 올올이 풀어내다 멀거니 창밖을 본다

진눈깨비 치는 창밖

 

아무래도 이승 얘기는 아닌 듯한 그런 얘기를 이승 사람 아닌 듯이 먹빛으로 건네주고는 태연히 또 먹빛으로 건네받고는 한다

 

 

 

회향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 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 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초파일

박두규

 

초파일, 등 하나 달러 간다

어느 옛적 고단한 비구니도 올랐을 비탈길 돌아

휘파람새 소리 섧던 이승의 꿈도 지나

초저녁별 틈새에 꽃등 하나 건다

세상에 끌려다닌 이름 석 자는 말고

막 이승의 잠에서 깨어났을 이름 뒤의 그대와

그대 떠난 빈자리, 계수나무 깊은 그늘도 건다

이고 지던 보따리도 없이 꽃길을 잘 가시는가

산사의 밤은 깊어 별빛도 사위는데

잘 가셨는가

 

 

 

가을 화엄사

박라연

 

그리움에도 시절이 있어

나 홀로 여기 지나간다 누군가

떨어뜨린 부스럼 딱지들

밟히고 밣히어서 더욱 더디게 지나가는데

슬픈 풍경의 옛 스승을 만났다

스승도 나도 떨어뜨리고 싶은 것 있어 왔을 텐데

너무 무거워서 여기까지 찾아왔을 텐데

이렇게 저렇게 살아온 발바닥의 무늬

안 보이는 발그림자 무게를

내 다 알지 하면서 내려다보는 화엄사의

눈매 아래서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무엇인가

탁탁, 탁탁, 탁탁

모질게 신발을 털며 가벼웁게 지나가려 해도

안 떨어지는 낙엽

화엄사의 낙엽은 무엇의 무게인가

 

 

 

불국사(佛國寺)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부처님 오신 날

박목철

 

1

언제 오시는 겁니까?

극락정토(極樂淨土) 미륵 님은,

 

곧 오신다던 예수(耶蘇)

가신지 2천 년이 지났는데,

미륵 님,

오십육억 칠천만 년 후에 오신다지요,

 

십자가에 불 밝히고 기다리듯

연등이 가득합니다

 

제 생일도 못 챙기는 중생이

-南無阿彌陀佛-

부처님 오신 날에,

 

 

2

오신 뜻이 고마워

, 가신 임이 아쉬워

꽃등이 화려합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불국(佛國)의 소망

가득 매달린

중생의 백팔번뇌(百八煩惱) 아프시겠지요

 

이기심이라 꾸짖지 말아 주세요

건강, 사랑, , 진학, 출세

움켜쥔 업()

꽃등에 매달린 소망 되어 펄럭이지만,

 

누구도 이룬 이 없는

그래도 놓지 않는

바람이 곱지 않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돌부처

박영근

 

저렇게 오래

돌아앉은 돌부처는 말이 없다

골짜기 저 밑바닥에서 안개는 올라와

지난날의 전나무와 갈참나무 숲을 지우고

어두워가는 살 깊은 곳으로

바위 가파로운 산줄기를 문득 밀어버린다

어느 때쯤 돌부처마저 보이지 않고

알 수 없구나

다만 맨몸인 내가

사방 허공에

뼈마디까지 적나라한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물소리 들리고

바람에 불려가는 안개

뜨거운 이마에 맺히는 시간의 물방울들

내 안에서 수천수만 햇살의 숨구멍들이 한꺼번에 열린다

돌부처 하나이 바위절벽 속에 제 몸을 새기고 앉아

빙그레 웃고 있다

 

 

 

연못가에서

박종대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

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앉을

이슬방울 같은 사람

 

 

 

돌부처의 노래

박종영

 

전생에 따라다니는 중생의 불행 바르게 잡으려는 것인가

무거운 고행 감추고 허공에 둥근 우주 하나 만들어 합장하고

실눈 곱게 열어 세상 바라보는 눈웃음은

천년세월 다독여 뽐내는 인자함이 철철 넘치더라

번뇌를 가슴에 심고 어둠의 강을 건너 일체의 귀의로 다스리는

부연 끝 풍경의 쟁그랑 소리 빌어 악귀 몰아치더라

밤이면 범종 다스려 장엄한 새벽을 열게 하고

고즈넉이 발 궤고 앉아 무지하고 탁한 세상 일깨우며

세상 밖 어디서나 외톨이로 남아

앉아있어도 누워 있는 듯 평온한 기다림은 어느 세월의 모범이며

목어 울음으로도 간구 못하는 중생의 구휼이 어려울 때

감은 눈엔 슬픈 공양이 덩그렇게 맺혀 토닥토닥 잿불로도 살찌우고

염화시중(拈華示衆), 허리 굽혀 명상으로 발복을 비는 시간에

앞산 골마다 불붙은 진달래 첫 봉오리 터지는 날도

오층석탑 기운찬 돌부처 근처에선 타오르지 못하더라

명부전 휘 맴돌아 헛헛한 천년 세월 눈자위에

파란 이끼가 봄꽃 웃음으로 피어날 때도

득도가 게을러 불타의 길에 엎드린 백팔기도 소복 여인이

바람 허리 잡고 비스듬히 사라질 때도

붉은 영토 산 넘고 강 건너 다비(茶毘)의 그 적멸을 혼자 지키며

정녕코 누대에 걸쳐 세상 다스리는 자비의 웃음이더라

낡은 산사 깊은 산허리 겹겹산 어둠 날빛으로 두드려

연화(蓮華) 향기 은은한 돌부처를 닮고 싶은 미망의 날에

무디고 동그란 얼굴 잔잔한 미소는 만상의 빛으로 으뜸이더라

 

 

 

망해사(望海寺)

박종해

 

울산 율리

바다가 바라뵈는 영축산 기슭에

신라 헌강왕이 처용을 위해 지었다는 절

아슴히 바라뵈는

개운포의 흐릿한 원경은

안개인가 공단의 연기인가

(망해사(望海寺)가 망해사(亡海寺)인가)

그 질문의 답을 궁리하는 듯

망해사지 부도가 멍청하니 서 있다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박종화

 

1

千年(천년) 大佛(대불)

聖處女(성처녀)로 모시우다

胡蘆(호로) 한 병으로

東海(동해) 물을 불리시다.

웃는 듯 자브름하신가 하면

조는 듯이 웃으셨네

담은 듯 열으신 듯 어여쁜 입술

귀 기울여 들으면

향기로운 말씀

도란도란 구으는 듯하구나

 

 

2

원광보관(圓光寶冠)이 모두 다 거룩하다

부드러운 두 볼

날씬한 두 어깨

춘산아미(春山峨眉)가 의젓이 열리셨네

결곡하게 드리우신 코

어여쁘다 방울조차 없구나

 

 

3

고운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백어(白魚) 같다

신라(新羅) 옛 미인(美人)

저렇듯이 거룩하오?

무릎 꿇어 우러러 만지면

훈향(薰香) 내 높은 나렷한 살 기운

당장 곧 따스할 듯하구나

 

 

 

탱자꽃

박철

 

뉘요

하고 한 번쯤 돌아볼 만도 하건만

연기 피고 해 지고

쇠북 끊는 산막(山幕), 미타사

여승

뉘시요

한 번쯤 돌아봐줄 만도 하건만

황혼에 젖어가는

목탁 소리

난 모르오

헛기침 보림향(寶琳香)에 피워 올리며

불길 쓸린 마루 위

피는 하얀 꽃

어느 해인가 탱자나무 울타리에

가시처럼

아름답던

사람

 

 

 

낙가산* 관세음보살님

박태강

 

가쁜 숨 몰아쉬며

사백십칠 계단 오르면

눈섭 바위에

정좌한 관세음 보살

 

인간 냄새 풍기는

향내음에 마음 묻고

부처님께 소원비는

창맹(蒼氓)의 작은 원()

 

말없는 미소에

돌아보니

조용하면서 살아있고

살아 있으면서 조용한 바다

 

- 환희(歡喜)

저것이 삶이로다

저기에 마음을 담으면

물처럼 유순하고 파도처럼 강한 삶을

 

()한 듯 차 있고

차 있는 듯 비어있는 삶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을

수백년을 가르키는 부처님의 참뜻을

 

이제야

느꼈습니다

부처님의 크신 뜻을

 

* 낙가산 : 강화 석모도 보문사 뒷산

 

 

 

보리암

박태강

 

아찔한 절벽 바위 끝

하늘 처마에 제비집처럼 붙은 보리암

많은 사람 오르면 무게에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조심조심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큰바위와 분제소나무

스님과 보리암

하나되어 하늘나라 일군곳

 

좌우로 겹겹이 둘러선 산

발아래 펼친

하얀공 떠있는 양식장

쪽빛 호수바다

 

맑은 햇살 빤짝이는 물결

가랑잎 같이 떠있는 섬

해안을 감도는

가리마 같은 도로

 

하늘에서 물밑까지

입에서 터진 탄성 아 아 아

마음 요동치는

천혜의 명승지 금산 보리암

 

 

 

부석사

박태강

 

하늘이 부서지고 비가 쏟아지며

천둥 번개에

바위와 돌이 날아

 

악한들이 스스로 놀라

먼곳으로 자취를 감춘 후

봉황산 기슭에 터잡은 부석사

 

양지바른 소백산을

뜰안에 보듬고

천혜의 요지요 반도의 중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신

의상 대사

 

지금도 그 흔적

살아계셔

수많은 중생에게 참을 깨우친다

 

 

 

부처님의 웃음

박태강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부타

인생(人生)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잔잔한 미소(微笑)

세상(世上) 악은 물러나고

오직 참만이 흐르나니

 

부처님의 미소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을 화평하게 한다

 

세상사 모두가 마음속에

있어 참마음 찾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웃으신다

 

나쁜 마음은 욕심(慾心)에서

나오나니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처님의 웃음을 가진다

 

부처님 웃음은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

 

허황(虛荒)에서 벗어나

마음을 참으로 하면

부처님의 웃음을 웃을 수 있나니

 

진실한 웃음은

진정(眞正)한 복()을 가져다주니

소욕(小慾)으로 부처님 웃음을 본받자

 

 

 

석가탑

박태강

 

일천오백여 년 오랜 풍상에도

간결하면서 장중함 잃지 않고

부분 비율이 전체 조화 만들고

하나하나 보면 불균형처럼 보이나

전체 균형미는 마음이 화평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남성미를 느낀다

보면 볼수록 우아하고

아름하여 마음의 행복을

쭉 솟은 키에 하늘 끝없음을

느끼는 석가여래 탑.

서탑(석가탑)과 동탑(다보탑)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사이

두 개처럼, 두 개가 한 개처럼

아사달과 아사녀 보는 것 같다

 

 

 

청량사

박태강

 

깎아지른 눈썹 길 돌고 돌아

기암절벽으로

둘러선 병풍바위 언덕에

자리한 청량사

 

좁은 계곡 외로운 곳

부처님 계신 절

사방이 산으로 막혀

적막이 감도는 청량사

 

등산객이 절을 지나

병풍석 사이로 오르 내리고

절벽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뛰어 넘어도 될 청량산

 

숲이 욱어 산새들의 놀이터

시원한 바람소리

사시사철 살아 숨쉬는

수도하기 좋은 명당 중의 명당

 

청량사 도량에 풍경소리 땡땡땡

옛부터 도량 높은

스님들의 깨달음의 명소

이곳이 경치 좋은 청량사라오

 

 

 

태안마애삼존불(泰安磨崖三尊佛)

박태강

 

당당한 체구에 딱벌어진 어깨

보일 듯 감추듯 잔잔한 미소는

천년동안 간직한 깊은 속을 내밀어

 

백제왕의 나라 사랑 백성 사랑

호국불교로 부국강병 하려

좌우로 부처님을 모셔 소원 빌어

 

물 좋고 기름진 넓은 들판 백제 땅

부처님 원력으로 나라 다스리려

거대한 불국토를 세우려 하였네

 

 

 

초파일

박형준

 

바닥에서 연꽃을 주웠다

물이 없고 다만 자갈뿐인 강 속으로 걷는다

모래내시장 가는 길

등불이 거리에 걸려 있고 비가 내린다

길은 바닥이 드러난 심연으로

곤두박질친 연꽃을 위해

등불 속에 비친 실밥 같은 빗줄기에 젖는다

강바닥 위로 흐르는 내부순환도로,

교각은 지옥을 떠받들고 있는 역사(力士)들이다

빗물에 섞인 빛이 교각에 힘줄처럼 꿈틀거린다

여기는 자갈만 있고 물이 없다

모래내시장 가는 길

등불이 거리에 걸려 있고 나는 다만

허연 강바닥에서 실밥 같은 연꽃을 떼어낸다

 

 

 

불상(佛像)

박희진

 

그의 둘레엔 항시 원시의 바닷내가 풍긴다.

그이 음성은 바위를 뚫고 솟는 물소리 같다.

그의 눈짓엔 즈믄해의 고요가 서리어 있다.

그의 가슴은 만상이 비쳐 오는 맑은 거울이다.

그의 침묵엔 뭇 소음도 그 안에 녹아 든다.

그의 피부는 순금의 빛과 달내를 갖고 있다.

그의 혈액은 깊은 못물 위에 연꽃을 솟게 한다.

그의 한 손은 허공을 가리킨 채 미동도 않는다.

그이 미소는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별빛이다.

그의 둘레엔 항시 미지의 바닷내가 풍긴다

 

 

 

무량사 가는 길

배영옥

 

무량사 팻말 아래 화살표는 보신탕집을 가리키고 있다

한 팻말에 절 이름과 보신탕집 이름이 사이좋게 합방하고 있다

도량 건너에는 오리전문점과 암소갈비집도 있다

일종의 묵계 아래 성업 중인,

개들이 꼬리를 말고 당도하는 저곳에서

향냄새를 말끔히 지운 사람들이 질근질근 살코기를 씹어댄다

하릴없이 화살표를 따라 걷거나

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무량사와 보신탕집까지의 백여 미터 거리

그 짧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독경 소리보다 개 짖는 소리에 번번이 마음을 빼앗긴다

죽은 부처에게 바치는 오체투지도

지복을 달래는 향공양도

제 육신마저 흔쾌히 연옥의 불길에 던져버린

견공들의 성불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저 화살표가 안내하는 곳이 소신공양의 정토인가

무량사 가는 길이 까마득하다

 

 

 

산사(山寺)의 노여승(老女僧)

배종도

 

비탈진 고갯길을

힘든 듯 힘들이지 않고

고운 맵시 고운 모습

나비 날 듯 하는 걸음

 

황혼 속에 묻힌 산사(山寺)

고깔 들어 쳐다 볼 때

지나온 세월이 적지 않은 듯 한

얼굴에 주름은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어라

 

범접하기 어려운 청정한 모습은

평화로운 삶의 표본인 듯한데

 

독음부생 독양부생*

(獨陰不生 獨陽不生)

 

옛 말이 무색하게

저토록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황혼에까지 간직하였네

 

고운 맵시 고운 걸음

피안(彼岸) 찾아 가시는가

발걸음 끝날 곳이

피안(彼岸)의 세상일까

 

온갖 것 버리고 초월한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의 관음보살인 듯

 

청정하고 숭고한 아름다움 거느리고

비탈진 고갯길을

나비 날 듯 걸어가는

산사의 노여승

 

* 獨陰不生 獨陽不生 : 남자나 여자나 혼자 살 수 없으며 반드시 남녀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긍정하는 글귀임. <춘추곡양전(春秋穀梁傳)에서 인용>

 

 

 

부처의 미소

배태성

 

생로병사

왜 인간에겐 탄생, 성장, 소멸이란

우주 순환 법칙이 적용 안 되고

고통이 뒤따르는 병을 하나 더 얻을까

 

부처의 알듯 모를듯한 미소에서

인간은 그 해답을 얻어야 한다

 

그럼 왜 부처는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하지 않고

잔잔한 웃음으로 묘한 여운을 남기는가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남아서인가

아니면 무지막지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것인가

 

동안거 하안거를 반복하고 좌불묵언 수행하는 그 긴 세월을

고통과 인내로 깨달음을 얻으려는 인간에 대한 슬픈 분노를

애써 참으려 해서인가

 

- 부처의 미소는 그 자체에 답이 있다

선과 악,욕망으로 인한 번뇌를 태초부터 안고 사는

고뇌의 늪에서 자신을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병을 얻게 되고 죽음에 이르는

 

부처는 그것을 꺠달은 것이다.

깨달음은 먼데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것을,

그래서 부처의 미소는 정답을 말한다.

 

- 인간 너 자신을 편하게 하여라

욕심을 없이 하면 번뇌가 오지 않고

본성을 살리면 착함이 함께 있을지니

 

-너 자신을 즐겁고 기쁘게 하라-

부처의 미소는 오늘도, 내일도 늘 그러하듯이

그 잔잔한 미소 속에서 간단한 진리가

인간에게 있음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 행하고 있음을

 

 

 

머리 없는 돌부처

백무산

 

머리 없는 돌부처는 바위에 앉으셨네

그 무슨 상관이냐고 처연히도 앉으셨네

 

놓아라 전부 내려놓아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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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것 하나 들고 계실까

여섯 도적을 때려잡아라 하셨으니

스스로 머리를 내려놓으셨나

 

그 어깨 위로 밤이면 달이 앉았다 가고

구름이 잠시 모였다 흩어지고

봄밤 꽃향기도 머물다 가고

지나가는 토끼 노루 머리도 잠시 얹히고

아침엔 새들이 앉았다 가더니

저녁엔 흰 눈이 소복이 내리고

나를 내려놓으니 나 아닌 것이 없노라는데

 

내 어쩌다 오가는 산길에 계신

머리 없는 부처님

그 길 지날 때면 나는 조심을 하네

내 머리가 어쩌다 저기 얹히면

몸통이 얼마나 괴로우실까

 

 

 

여승(女僧)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금덤판 : 금 캐는 광산

* 섶벌 : 일벌

* 머리오리 : 머리카락

 

 

 

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법정 스님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 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당은 살아 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 가려 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자기답게 사는 길

법정 스님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 불교이다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을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건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개심사

변종환

 

길 잃어

휘휘 산길

감돌아 다시 찾아가는

개심사

 

미리 기별했건만

어디론가

가버린 주지스님 대신

 

요사채 창문

격자무늬 창살위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을볕

 

모나면

모난 대로

굽으면 굽은 대로

저 혼자 정정한 해동 솔 같이

나중에 나 쓰일 자리

하나는

있으리라 믿으며

 

눈 시린

푸른 하늘 아래서

탑돌이를 했다

 

 

 

운주사(雲住寺) 돌부처

변종환

 

운주사에는

못생긴 돌이 모두 부처다

문드러지고 닳아 떨어져 나간

돌부처의 코와 귀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하나 둘 못생긴 돌이

탑이 되고 부처가 되는

천불천탑의 이 땅에 눈이 내린다

여리게 떨고 있는 슬픈 것들이

기도로 길을 열어 찾아가는

생명의 세상

버려지고 부서지면서

부싯돌처럼 되살아나는

금가고 일그러진 목숨의 섭리

추운 몸으로 누워

제 몸을 다듬는 와불의 깊은 시름

눈 내리는 운주사에는

못생긴 돌이 모두 부처다

 

 

 

등신불

복효근

 

중앙성당 앞 길가에

졸고 있다

다 팔아도 2만 원어치가 안 될

푸성귀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

 

양버즘나무가 제 그림자를 끌어당겨 덮어주려 하지만

8월 오후 세 시의 햇볕이

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 불상 하나

 

-한 찰나라도 먼저 56억 년 저쪽에 이르기 위해

자동차들이 질주해가는 동안

 

이미 용화세계에 들었을까

가끔 꿈결에 깨어

경전을 넘기듯 무심히 몇 가닥씩 다듬어놓는

우엉경 열무경 부추경 상치경

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아름다운 번뇌

복효근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뿌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쌍계사에서

복효근

 

일주문 지나 오른편 언덕에

몇백 년 묵은 아름드리나무가

묵선에 든 듯 바위 위에 앉아 자라는 것과

대웅전 옆 토담

그 토담 속에 박힌 기와 몇 장이

꽃잎 모양으로 꽃핀 것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은 하여도

 

풍찬노숙 팍팍한 노구를 끌고 와

죽어서의 일까지로 머릿속이 왁자한 할매 한 분

대웅전에 들지 않고도

연신 거기에 합장하는 것을 보면

저 나무 하나도 부처만다워서

저 기와꽃 한 송이도 조사(祖師)만다워서

 

그 노파도 보살만다워서

삶과 죽음, 두두물물(頭頭物物)

한 마당 안에서 고요로히 화해하는 것만 같아서

두루 하나인 것만 같아서

 

 

 

전등사

사방천

 

청명한 하늘에 봄바람의 실려

너울대는 바닷물에 갈매기 너울대는

전등사 당도하니 많은 역경에 역사를

간직하고 묵묵히 견디어온 전등사

 

충렬왕의 정화 공주가 인기의 스님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의 보관과

옥으로 만든 등을 시주한 유래로

불법을 전해오다 전 종사에서

옥 등을 보관한다 하여 전등사로

계명하였다

 

1600년의 고찰이 병인양요 때

단군에 아들 부여 부우 부소 삼 형제가

산 지평을 이용하여 성을 쌓아

국운을 지켜온 역사 깊은 사찰이라 한다

 

 

 

백담사

서봉석

 

오늘은 허공을 두고 덜컹 나오셨는지

하늘이 높고 푸르다

물어가며 가는 산길은 멀어도

계곡 물소리는 깊어져서 나들이 나간다

산 아래로 부는 바람에게서는

어느 암자 처마 밑

기미낀 그늘을 두드리던 풍경소리인지

스치는 나뭇잎 마다 염불소리가 나고

산 깊게 화두처럼 백담사가 있어

백 번을 놓아야만 가벼워지는 인두겁을

헹굼 질 하는 물길로 이는 포말은

돌아가려는 속된 인연들 보고

길 몰라서 찾아 온 산에서

아는 것도 두고 가라고 타이르는 소리

하늘이 구겨져라 부는 바람 속

부처인지 만해인지 더듬는 동안

깊은 산보다 더 높이 절 이 솟는다

수만 마디 덜 익은 시인의 말들이

오늘 보다 내일에 경을 세우고

물음 많은 백담사는

절집으로 남아서 아직 깊다

 

 

 

운문사

서연정

 

흰 고무신 코에 쓰인

볼 견()

흰 고무신 코에 그려진

돛단배

 

단정하게 저녁 마당 지나다가도

푸른 물너울 일으키며 법고가 울면

따라 우는 제 마음

가락에 얹어 염불을 왼다

 

날개에 묻어 있는 물기를 말리기 위해

마당 가득 휘몰아치는 검은 잠자리

어디서 묻혀오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안쪽이 젖어 있는

내 목숨의 날개도 덩달아 휘몰아칠 때

 

다정하고 씩씩하게 내려 쌓이는 울울창창 땅거미

 

흰개미 질끈 감긴

볼 견() 자 위로

흰개미 발가락에 매인

돛단배 위로

 

 

 

와불 속으로

서영숙

 

백천사 법당 마루바닥에 한 사내가

모로 누워 꿈을 꾼다

얼굴이 누렇게 뜬 사내다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미소 짓는 저 능청,

참 환장하게 편 하겠다.

대명천지에 넉살도 좋지

지난겨울 동안거 때

산문 빠져나가 신나게 놀다 번열이 난 게다

슬픔을 녹여 짐을 풀고 가는

사내의 뱃속에선 전생과 이생이 한창 발효 중이다

 

오장육보 다 쏟아 버린 사내 몸 속 깊숙이

나를 밀어 넣는다.

부질없는 욕심, 미움으로 굳어진 지방종(脂肪腫)

콸콸 쏟아 버리는 것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은 숲속의 바람처럼

서녘으로 가는 뱃속은 텅 비었어도

따뜻이 웃어주는 사내, 그를 사랑하고 싶다

나도 그처럼 속내 다 퍼내 주고

 

 

 

탑을 돌며

서정윤

 

진흙이 물을 담고

옹기가 되어 서 있다

모든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는

침묵을 보고 있으면

세상은 찬란하게 빛난다

아름다움 속에 죽음이 숨어 있다

삶의 흰 이빨이 보인다

 

 

 

관세음의 노래 - 석굴암

서정주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 가는 바람 속에 지새는 나달이여

땅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이 한 마디 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이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을 차고

이 싸늘한 바위 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 아직은 내 것이로다

 

 

 

방한암 선사

서정주

 

난리 나 중들도 다 도망간 뒤에

노스님 홀로 남아 절마루에 기대 있다.

 

유월에서 시월이 왔을 때까지

뱃속을 비우고

마음 비우고

마음을 비워선 강남으로 흘려 보내고

죽은 채로 살아

비인 옹기 항아리같이 반듯이 앉다.

 

먼동이 트는 새벽을 담고

비인 옹기 항아리처럼 앉아 있는 걸

수복(收復)해 온 병정들이 아침에 다시 보다

 

 

 

부처님 오신 날

서정주

 

사자(獅子)가 업고 있는 방에서

공부하던 소년들은

연꽃이 이고 있는 방으로

1학년씩 진급하고,

 

불쌍한 아이야.

불쌍한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야.

너는 세상에서도 제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

 

돌을 울리는 물아.

물을 울리는 돌아.

너희들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만 사람의 심청이를 가진

뭇 심봉사들도

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텔레비여.

텔레비여.

도솔천 너머

무운천 비상비비상천 너머

아미타 불토의 사진들을 비치어 오라, 오늘은…….

 

삼천 년 전

자는 영원을 불러 잠을 깨우고,

거기 두루 전화를 가설하고

우리 우주에 비로소

작고 큰 온갖 통로를 마련하신

석가모니 생일날에 앉아 계시나니

 

 

 

눈물 부처

서정춘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 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있네

빗물 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있네

 

 

 

개암사

서희옥

 

목탁 소리 강물 따라 흐르고 가면

초저녁 매미 소리에 젖어 들고는

비단 안개 울금바위에 머물러 있으면

산사를 휘감아 놓은

천년의 영겁은 물줄기처럼 흐르고

주류성(우금산성) 페허만 남아

찾는 길손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석지공

 

영겁 전에도 사바에 나투신 몸

비록 자그마한 체구 속

팔만 사천의 말씀 담은 채

소리 없이 내리던 꽃비처럼

사방을 물들게 했습니다

 

우리는 내 속의 불성을 모르고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으니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새벽 종성은 더 날카로웠습니다

 

천지를 깨우고는 남은 법력

일곱 걸음으로 세상을 밝혔으니

거룩한 몸짓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고뇌에 찬 우리들을 일깨워 주시려

짐짓 인간사

그 모습 하나로

먼 길을 열었습니다

 

오늘 사월 초파일

성전의 팔륜을 돌리며

다시금 오실

님을 되새겨 봅니다

 

부처님

우리들의 부처님이시여

 

 

 

겨울 갑사

손병흥

 

절정기 지난 가을이 머물다간

낙엽으로 뒤덮여진 계룡산자락

단풍져버린 갑사계곡의 오솔길

 

오리 숲에서 금잔디고개에 이르는

어느새 화사했던 색깔의 향연으로

막바지 가을 풍경을 가득 채워주던

늦은 단풍마저도 사라져버린 쓸쓸함

 

거목과 고목들에 뒤덮여진 이끼사이로

하늘 땅 사람 가운데에 가장 으뜸이라던

아도화상이 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창건한

첩첩산중에 무심한 소멸의 상념 쌓여가는

당대 최고의 사찰이었다던 천년고찰 갑사

 

 

 

만어사 미륵불

손병흥

 

밀양강 낙동강이 합쳐지는 삼랑진에 위치한 벌판 지나 큰 산 깊은 골짜기 따라서 가득 찬 산모퉁이 돌면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돌덩이 수없는 바위 떼인 검은 바위들의 범상한 위용 각기 다른 저마다의 사연 간직한 기묘한 형상

용왕의 아들이 인연 다해 무척산 신승 찾아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 터라는 법문 듣고서 왕자가 길을 떠나니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도 그 뒤를 따르다가 머물러 쉰 곳이 만어사인데다 그 용왕 아들은 마침내 미륵 돌로 변해버렸었고 물고기들도 돌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깃든 터

삼국유사엔 가야 땅 옥지(玉池)에 사는 독룡과 사람들을 잡아먹는 나찰녀 다섯 명이 사귀면서 번개 치고 비 내려 4년간이나 오곡 영글지 않아 왕이 주술로도 이를 막고자 했으나 실패해버려 부처님께 청해서 설법을 한 후에야 나찰녀들이 오계(五戒)를 받음으로 그 폐해가 없게 된 이후 동해의 용과 물고기가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곳

지금도 여전히 쇠북과 경쇠 소리가 난다는 돌들 그 돌소리에 마음을 씻고 부처의 그림자에 비쳐 사악한 마음일랑 버리고 영혼조차도 맑게 해주어 혼탁한 세상 명경처럼 맑고 밝아 아름다워지게끔 그런 살맛 나는 세상 기원해보는 기도 도량 수행처

 

 

 

운문사 사리암

손병흥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의 미륵불을 기다린다는

나반존자상을 일명 독성각인 천태각에다 봉안한

사람 욕심으로 쌀이 나오는 대신 물이 나온다는

사리굴 전설 전해져오는 운문사 사굴 중의 하나

 

운문사 말사인 호거산 중턱 급경사지에 있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로 미륵불이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중생 제도하려는 원력 세운 뒤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고 하고 있는

나반존자 기도처로 방방곡곡 알려진 작은 절

 

고려 초 930년 보양국사가 초창하였다고 전해지는

간사한 마음 다스린 채 삿된 것 여의라는 의미담긴

관세음보살 모신 관음전인데도 옆으로 돌아앉아서

우측 벽면 유리창너머로 올려다 보이는 그곳 향해

꼭 한 가지 소망 이루게 해달라는 창불소리 가득한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소재한 수행 기도처

 

 

 

화순 운주사 와불

손병흥

 

새로운 세상 갈망하려는 민초들의 소원들로

여기저기 크고 작은 불상과 탑으로 만들어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도 등재된 사찰

 

임진왜란 때 법당 석불 석탑이 크게 훼손되어

이후에 중건한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이 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

 

절 좌우 산등성이에 조성된 투박하고 친숙한 모습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하는

커다란 바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부부와불로 조각된 불상

 

 

 

부처님 오신 날

손병흥

 

수행자였던 싯다르타 왕자가

비로소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음력 사월 초파일인 공휴일

석가모니의 탄생 기념하는 날

 

길거리 사찰마다 연등 달리고

당일 전후로 용맹정진 참선 수행

 

크고 작은 법회가 북적이며 열리는

자비 지혜 불빛처럼 따뜻한 봉축 행사

 

 

 

화엄사 구층암

손병흥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정리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한적한 산중의 산사 절집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

대웅전 뒤편 계단 올라서면 이내 펼쳐진

오솔길을 쉬엄쉬엄 올라 만난 아담한 건물

 

천불보전 수세전 두 채의 요사채가 전부인

작은 암자이면서도 승방의 모과나무 기둥엔

나뭇가지의 흔적 옹이와 결이 잘 드러나 있어

무엇하나 거스름 없다는 자연스러움이 매력인

삼 층 석탑 석등 배례석 모과나무의 오묘한 조화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는 작은 암자인 선방에서는

연일 죽로 야생차의 향긋한 다향이 풍겨져 나오고

건축물 다포의 토끼 거북이와 새 동물 조각상들도

빨갛게 물든 배롱나무 꽃그늘처럼 고즈넉한 정취 속

또 다른 느낌으로 와 닿던 솔바람 꽃향기 풍경 소리

 

 

 

염화시중

손정모

 

산자락 적시며 휩쓸리는

바람소리

공허한 궤적마다

소리, 소리들이 흐르고 있다

만물로 통하는 깨달음

송화에 뒤덮여

빛살처럼 흩날리는데

그 누구도 섬세한 선율에

접근할 수조차 없어라

석가

솔바람에 입술 적시고도

안타까운 듯

연꽃을 드니

군도들 속에서

물결처럼 흘러드는 미소

 

 

 

천은사

손정모

 

노고단 횡단도로

시작되는 계곡의

지리산 고찰

 

이무기를 몇 마리는

감춘 듯한

저수지를 끼고

 

사찰이 고요에 잠겨

풍경 소리마저

바스러져 한숨이 된다.

 

수홍루

자욱한 물안개 속

합장하여 선 여승

 

뭘 염원하기에

가냘픈 어깨선이

저토록 물결치고 있을까?

 

 

 

메주 불()

손택수

 

절집 처마 아래 메주가 마른다

금강경독경 미륵존여래불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염불을 들어야 메주가 잘 뜨거든

곰팡이가 알맞게 피어오르거든

정지에서 나온 보살님이 메주 아래 합장을 한다

겨울 햇살과 바람과 먼지와 눈 내리는 소리까지

눈 속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온 산짐승 울음까지

몸속에 두루 빨아들여 피워내는 메주 곰팡이

나무아미타불, 자연 발효시킨 부처님이시다

 

 

 

부처 바위

손택수

 

경주 남산 스님 한 분 바위 속에 갇혀 있다.

반야 나무 망고나무 잎 아래 결가부좌 튼 채 안으로

금이 가고 금길 따라 빗물이 흘러드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

죽어서 바위는 모래알을 남기고 고승은 사리알을 남긴다는데……

천년 비바람에 가사 옷 주름이 지워지고

얼굴선이 희미해지면서 둘은 이제 어지간히 닮아도 보인다.

그러나 바위가 사리알이 되기까지,

스님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크낙한 저 침묵은 또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선정에 든 바위에서 흐르는 눈물, 모래 쓸리는 소리가 아릿하다

 

 

 

백담사 운(百潭寺 韻)

송수권

 

변산 뻘에 절인 소금기 씻으러

불원천리 열여섯 시간을 달려

백담사 무금당(無今堂)에 들렸더니

무금당은 비어있고 인기척은 없었다

신발짝 하나 놓이지 않은

댓돌이 그리 허전할 수 없었다

 

은산 철벽을 날아올라

무산(霧山)

저 월명(月明)을 깨뜨리려

동해에 나간 것일까

 

댓돌을 두어 번 쾅쾅 내리치며

냇물로 내려서서 이() 시인, () 시인, 나 셋이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다 무슨 원 그리 깊어

견우직녀처럼 만나

또 부질없는 돌탑 백 개를 쌓았다

 

절 고랑 풍경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백 개의 못물이 푸르러 백담(百潭)을 이룬들

사람 없이 만인산을 뒤집어쓴

절집은 무에다 쓰랴

내년 여름, 만해 시인학교엔 결단코 오지 않으리라

 

 

 

여승

송수권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리 집 처마 끝에 걸린 그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무 애 지고 막막하여져서 사립을 벗어나

먼발치로 바리때를 든 여승의 뒤를 따라 돌며

동구 밖까지 나섰다

여승은 네거리 큰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뒤돌아보고

우는 듯 웃는 듯 얼굴상을 지었다

(도련님, 소승에겐 너무 과분한 적선입니다. 이젠 바람이 참사온데 그만 들어가 보셔얍지요.)

나는 무엇을 잘못하여 들킨 사람처럼 마주 서서 합장을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뛰어오며 열에 흐들히 젖은 얼굴에

마구 흙바람이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 나는 여승이 우리들 손이 닿지 못하는 먼 절간 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따금 꿈속에선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털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만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내 가슴이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넘쳐흐르기를 기도하며 시를 쓴다

 

 

 

스님의 몸에서 김이 난다

송영숙

 

유성 온천에서

깎아 놓은 듯한 여스님의 몸을 보았습니다

때 묻지 않은 육신의 아름다움을 훔쳐보면서

날개옷을 잃은 선녀의 슬픔을 생각합니다

 

뜨겁게 익은 살결

 

손길 닿는 곳마다

비누거품 하얗게 화산처럼 일어나고

나는 마냥 빨려 들어가

마치 남자가 된 듯 그녀가 아름답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 순결을 바쳤을까요

자비가 탕 안 가득 바다로 펼쳐지고

문득 긴 머리칼이 부끄러워집니다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네*

송유미

 

운주에서 손 없는 머슴 부처 만났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참 반가웠지만

두 손을 기브스하고 있어

악수를 청할 수가 없었다

흰 눈을 가사처럼 겹겹이 껴입고

초병의 부동자세로, 다리 없는 부처

목이 없는 부처, 앉은뱅이 부처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촘촘한 속눈썹에 눈이 쌓여가는 밤이면

뚜벅뚜벅 순찰이라도 도는 것일까

주위에는 발자국 무수히 찍혀 있었다

우리네 세상살이처럼

잘난 부처들은 잘난 부처끼리

못난 부처들은 못난 부처끼리 사는 것이 편한 것일까

사진 멀쩡한 부처 하나 없는 천 명의 부처들

팍팍한 돌 속에서 다리 없는 부처는

팔이 없는 부처의 팔이 되어주고

눈이 없는 부처는

팔이 없는 머슴 부처의 손이 되어

운주(運舟) 한 척 정박해 놓았다

* 송재학 시인의 시에서 인용

 

 

 

얼굴 없는 부처

송재학

 

뺨 일부와 얼굴 아래만 남은 돌부처는

화재로 탄 흔적을 앞장세우기도 하고,

눈코입을 갈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도 있지만

불두를 손수 떼어냈다는 게 가장 끔찍하기에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무릎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이라는 자세,

깨달음의 법열이라는 저 수인은

얼굴 대신 주목을 받았기에

목 위로 굽이칠 이목구비라도 불쑥 생길 듯했지만

무두상 부처는

얼굴이 있다면

다시 불타거나 갈아 먹히거나 머리가 뚝 없어지거나 할 것인데

또다시 얼굴이 도착한다면

금시 사라질 얼굴인데

이 무두상 부처 역시

오래 행방불명된 얼굴로,

눈과 눈썹이 있다해도 무표정할 터인데

얼굴이 얼굴에 기대지 않을

표정만큼은

, 궁금하다

 

 

 

금동반가사유상

송찬호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어느 절집에서 그냥 내다 버린 것 같았다

금칠은 죄다 벗겨지고

코와 입은 깨져

그 쾌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줄기 희미한 미소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표정의 그것이

반가사유보다 더 오래된 자세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골짜기를 벗어나 돌아보니 다시 그것은 금빛이었다

 

 

 

주천강가의 마애불

신경림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 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치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초파일 날

신석종

 

공영주차장을 건너

24시 편의점 앞마당으로

기웃기웃 들어서는

편백나무 그림자를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웃다가 울다가 했었지

 

 

 

화엄사 타종

신용목

 

이 세상

꼴깍 모르고 지나치고 말

여름 풀꽃들을

범종 소리가 불러세워

산 깊이 하얗게 흩어졌음을

안다. 이 늦은 바람의 시간 뒤에

화엄이 있어 화엄을

찾는 그늘 맡에

타종 -섬진강 살 같은 그물이 일고

어머니의 젖꼭지를 떠나온

입술이 씻겨진다

산사는

산이 품은 그리움

자궁으로부터 상속받은 하루하루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범종의 둘레에 모이는 세월들이며

지리산에서

세속의 인연 다 끊고 눈머는

참나리꽃으로 앉아

타종의 물결이 만드는 그물에 갇혀

나 또한 한 세상

모르고 지나갈 걸음

여기에 머물고 있음을 안다

 

 

 

범종

신현배

 

1

꼿꼿이 등을 세우고

종각 안에 앉은 범종

 

천년을 살았지만

주름 하나 없습니다

 

수없이 울고 울어도

눈물 자국 없습니다

 

 

2

천 년쯤 살았으면

목청도 녹슬 만한데

 

울리는 그 소리만은

하늘빛을 닮았다

 

날마다 하늘을 깨워

그렇게 맑은가 보다

 

검버섯이 끼어 있는

구릿빛 얼굴인데

 

절에 사는 큰스님은

범종 소리를 닮았다

 

날마다 범종을 깨워

그렇게 맑은가 보다

 

 

 

와불(臥佛)

신현정

 

나 운주사에 가서 와불(臥佛)에게로 가서

벌떡 일어나시라고 할 거야

한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와불이 누으면서 발을 길게 뻗으면서

저만큼 밀쳐낸 한 세상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아마도 잠버릇 사납고 무심코 내찼을지도 모를

산 두어 개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그만큼 누워 있으면 이무기라도 되었을텐데

이무기 내놓으시라

이무기 내놓으시라

이무기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정말 안 일어나실 거냐고

천년 내놓으시라

천년 내놓으시라고 할 거야

 

 

 

연등

신형식

 

두 손 모아

등 하나 밝혀두고

내려오는 길

 

가슴 깊은 곳에

꽃불 지펴두고

돌아 나오는 길

 

걸음걸음마다 빨간 꽃 피어

어두운 길 가로등 되고

잠든 밤 취침등이 되며

낯선 도로 위의 신호등 되길

 

염화미소 짓는 여인의 등 뒤로

온 산 밝은 미소 물들어

굽이굽이 따라 돌고 있는

간절한 탑. . .

 

지지 말거라

꺼지지 말거라

 

 

 

와불(臥佛)

신혜경

 

운주사에는

산을 베고 누운 돌부처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일 생길 때마다

깊은 잠 속으로 걸어가던 아버지가 거기 있다

 

속전속결에 능한 사람들이야

와불의 천년 잠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곁에 누워보면 알 수 있다

몸도 없는 바람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것을

형체도 없는 마음이 사람을 뿌리째 흔드는 것을

바람이 잦아들거나 마음이 가라앉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누워있는 동안은

잠을 드나드는 꿈조차 푸른 이불을 덮고

 

운주사 와불을 보면

사람들이 잠드는 이유 알 수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잊은 듯 다시 하루를 시작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산으로 들어가 누운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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