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추석 한가위 2

Bollnow 2024. 8. 16. 14:58

사방천 더도 말고 한가위만 되어라

사방천 - 한가위

서정원 - 한가위 보름달

서정주 - 추석

서정주 -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서지월 추석 달빛

서지월 추석부(秋夕賦)

성명진 추석

손병흥 추석 명절

손병흥 - 추석 보름달

손병흥 한가위

손진은 - 추석날 아침

손택수 - 추석 달

송근주 추석

신성호 추석날의 보름달을 보며

신성호 - 한가위를 맞으며

신희상 한가위 보름달

심경숙 추석

심의운 중추절(仲秋節)

심의운 추석

심지향 한가위 밝은 달

심훈 가배절(嘉俳節)

안계종 추석

안계종 추석, 고향의 품

안영준 중추가절

안윤주 추석

안행덕 - 추석

양명문 추석

양재건 한가위 보름달

엄원용 추석

염인덕 추석

오경수 한가위 보름달이 웃는다

오보영 - 어머니의 추석

오보영 - 코스모스의 추석

오보영 - 한가위

오상순 - 추석

오승희 - 한가위만 같아라

오애숙 - 속 좁았던 어느 해의 단상

오애숙 어린 시절 단상(추석)

오애숙 이 가을, 한가위 사랑으로

오애숙 - 추석

오애숙 - 타향살이에 어우러진 한가위

오애숙 한가위

오정방 추석

오정방 한가위 보름달

오정방 - 한가위 보름달이

오탁번 -

용혜원 - 추석에 고향 가는 길

원무현 만월

원영래 - 추석을 맞이하여

원용문 - 중추절

유상철 추석 명절에는

유용주 - 추석

유일하 - 훈훈한 한가위

유자효 - 추석

유치환 - 가배절(嘉俳節)

유한나 추석

유홍준 들깻잎을 묶으며

윤고영 - 추석날 고향에 와서

윤득모 - 보름달 애가(哀歌)

윤보영 - 올해 추석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윤보영 - 추석

윤보영 - 추석 달

윤보영 - 행복 추석

윤의섭 추석

윤의섭 추석 밑에서

윤인애 선물

윤장규 - 봉덕이 할머니의 추석

이남일 추석날

이남일 추석 전야

이남일 - 한가위

이대준 추석

이둘임 추석

이무정 추석 명절

이문희 한가위 보름달

이범노 - 산골 이발소

이병초 - 추석

이상국 - 도둑과 시인

이상황 풍성한 추석

이상훈 한가위 보름달

이성두 - 한가위

이성복 - 추석

이세기 - 추석 무렵

이수인 나 어릴 땐 추석이

이승기 - 한가위

이승복 -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

이영걸 한가위

이영균 고향 달(한가위)

이영지 추석 선물 꿈 가슴

이영지 한가위

이영지 한가위 지나 달무리

이운용 추석을 앞두고

이원문 추석날

이원문 추석 반세기

이원문 추석의 하늘

이원문 - 추석의 회고

이윤학 추석

이은경 송편 빚던 날

이은석 한가위 보름달

이응윤 - 중년의 추석 한가위

이재무 - 추석

이재옥 한가위

이재환 추석

이재환 한가위 보름달

이채 당신이 있어 이 명절 행복합니다

이채 어머니께 드리는 한가위 편지

이채 중년의 명절

이채 - 한가위를 맞이하는 마음과 마음

이채 - 한가위에 꿈꾸는 사랑

이채 - 한가위에 드리는 기도

이효녕 - 어머니의 추석

이해인 - 달빛 기도 한가위에

이해인 한가위

임금옥 팔월 보름날

임석순 - 추석

임영준 - 올 추석

임영준 추석

임영준 추석 소묘

임영준 한가위 고개에서

임영준 - 한가위 고향길

임영준 - 한가위 달빛 아래

임영준 한가위 둘

임영준 한가위 보름달

임종호 - 추석에

 

 

 

더도 말고 한가위만 되어라

사방천

 

모든 백과 여물어 가는 만추의 계절

저 푸르던 초목의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임

지친 듯이 시들어가고 가을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니 슬피 울던 쓰르라미 소리 안 들리고

 

산허리 안고 도는 가을바람에 귀뚜라미 우는소리

어느덧 한가위 돌아오니 오가는 사람마다

선물꾸러미 손에 들고 환한 웃음으로 주고 반은

즐거움에 마을마다 웃음꽃 활짝 피우는 한가위

 

집집이 아낙 내들 모여 않자 둥근 달 바라보며

그립던 얼굴 마주 보며 지난 이야기 하여가며

오복의 송편 만들며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움 더도 들도 말고 한가위만 되어라

 

 

 

한가위

사방천

 

휘영청 달 밝은 밤

귀뚜라미 소리가 고이든 잠 깨

우고 가을바람 창문을 두드리며

오색단풍에 달도 밝고 귀뚜라미

노래하니 시 한 수 읊으라 하네

 

휘영청 밝은 밤에 귀뚜라미

노래하고 가을바람 내 품에 안겨

아양을 부리니 내 어이 너를 두고

임 없는 독수공방 홀로 누어 어이

애간장 태우라

 

잠옷 바람에 뜰 앞에 나서니

가을바람에 단풍잎 너울대며

한가위 보름달 나를 안고 돌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같이

풍요롭고 인심 좋은 세상 되라 하네

 

 

 

한가위 보름달

서정원

 

까아만 보료 위에

조그만 별들 잠 재우고

구름치마 살며시 벗으며

잠자리에 들어 간다

 

보일락 말락

신비스러움이 있을 때

아름다운데

 

한가위 보름달

발가벗으면 벗을수록

계수나무 그늘 아래서

옥토끼 같은 아들 딸 사랑하는

고운 마음씨까지 보이니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이토록 고고한 모습으로

휘영청 소나무에 걸터앉아

아름다운 몸매 자랑하니

 

꽃같이 아름답던

탐스런 여인의 엉덩이

구름에 달 가듯 스쳐 간다

 

 

 

추석

서정주

 

대추 물 드리는 햇볕에

눈 맞추어

두었던 눈썹

 

고향 떠나올 때

가슴에 끄리고 왔던 눈썹

 

열두 자루 비수匕首 밑에

숨기어서

살던 눈썹

 

비수(匕首)들 다 녹슬어

시궁창에

버리던 날

 

삼시 세끼 굶은 날에

역력하던

너의 눈썹

 

안심찮아

먼 산() 바위

박아 넣어 두었더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추석(秋夕)이라

밝은 달아

너 어느 골방에서

한잠도 안 자고 앉었다가

그 눈썹 꺼내 들고

기왓장 넘어오는고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때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 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추석 달빛

서지월

 

옥수숫대 알품는 서늘한

바람끼의 하늘 보면

저 달도 저리 밝아

옥동자(玉童子)라도 하나 품은 것일까

 

묘지 위의 혼들은 구천에 떠돌고

산 자의 옷자락은 이리도

부드럽고 가벼운데

옛기러기는 날아오지 않는다.

 

강은 흐르건만 산이 막혀 못오는가

들꽃처럼 돋아나는 별을 따고

긴 능선의 역사 앞에서

주름진 이마 잘룩한 허리의 강토

 

달이여 비추이거든

우리 가장 깊은 골짜기를 비추어

남북강산(南北江山) 할 것 없이 저 목메인 만주 땅

압록강 너머 길림 두만강 너머 연변

그리고 있잖은가, 해란강 띠를 두른

일송정에도 비추어다오!

 

옥수숫대 알품는 서늘한 바람끼의

하늘 위에

혼령은 살아 있어

색동 치마저고리 흰 바지적삼의

펄펄펄 날리는 달빛이 숨 쉬고 있네

 

 

 

추석부(秋夕賦)

서지월

 

슬슬 마당을 쓸다 보면

어느 새 달이 차고

먼 산 다랫골에서 소슬바람 듣는 소리

추석이 대문간에

아버지처럼 서 있었다.

 

하얀 도포자락에

어린 나를 곁에 두고

차례를 지내시던 아버지

향불 피워 먼저

지방 붙이고

이어 잔을 쳐 절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평안하시온지요,

보이지 않는 적막 공간에

숨결이 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코흘리개 시절에

 

밤 놓고 대추 놓고

송편도 놓고

사이좋게 온 식구 모두 모여

살아가는 것이 다 조상 덕이라

이보다 아름답고 빛나는 일이

어디 있으랴,

길이길이 기릴 일이다.

자식 효도하는 마음 길러주고

콩 하나에도 열 사람 나눠먹는

우애 기르고

 

마당을 쓸고

떡시루 항아리에 불 지피면

내일 있을 추석에

누님은 물동이 이고

물 길러 오고

어머니는 화전(花煎)을 굽고 계셨다.

어제같이 살아서 정정하시던 아버지

많이 많이 드시옵소서,

정성스레 차례 준비하면

샛노란 국화 향기가

온 뜰에 가득했다

 

 

 

추석

성명진

 

성묘를 간다.

가시나무 많은 산을

꽃 차림 하고 줄지어 오르고 있다

맨 앞엔 할아버지가

그 뒤엔 아버지가 가며

굵은 가시나무 가지라면 젖혀 주고

잔가지라면 부러뜨려 주고……

 

어린 자손들은 마음 놓고

산열매도 따며

산길을 오르고 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흐르고

그렇게 정이 흐른다

산 위에 동그랗게 꽃 줄을 내는 일가족,

오늘 밤엔 꼭 요 모양인

달이 뜨겠다

 

 

 

추석 명절

손병흥

 

1

가을의 한가운데 날이자 음력 팔월 보름에 맞이하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윗날만 같아 라고 하는 속담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석 중추절

 

비록 점차 전통적인 성격이 변하고 퇴색하였을지라도

아직까지도 설날 한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인

달이 차고 유난히도 밝은 달빛이 가장 좋은 가을날 밤

 

추석 전에 먼저 조상의 묘소 찾아 깔끔히 벌초를 한 뒤

보름 만월처럼 생명력 극치 풍요다산의 상징 농사 풍작

오곡이 무르익는 풍성한 계절 햇곡으로 빚은 송편 올려

조상의 음덕기리며 차례 지내고 성묘하는 세시풍속 맞춰

차고 기움 생성 소멸 반복하는 재생적 속성 되새기는 날

 

 

2

가을추수로 거둬들이는 햅쌀과 햇과일로

송편 빚어 조상들께 감사하는 마음 갖춰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지내고

산소 찾아 성묘도 하는 전통 지키는 하루

땀 흘려 애써 가꾼 한해농사 끝내고서

무르익은 알찬 오곡백과 수확하는 시기

일 년 중에서도 가장 큰 만월이 되는 날

한가위 중추 중추절 가배일로 불리 우는

우리나라 겨레의 가장 큰 가윗날인 추석

온갖 곡식들이 영글어만 가는 결실의 계절

두둥실 탐스럽게 떠오르는 대보름달과 같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은덕을 기리는 효성

친척 이웃과 정 나누며 화합 이루는 민속 명절

 

 

 

추석 보름달

손병흥

 

더도 덜도 말고 환하게 빛나는

두둥실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요롭고 꽉 찬 푸근한 달빛으로

포근하게 설레는 마음 감싸듯이

모두들 행복스런 삶 기원해보는

알알이 소중한 명절 추석에 얽힌

중추가절 미풍양속 너무나 많아

언제나 참 의미 되새겨보는 마음

조상의 깊은 얼 높이 휘영청 떠올라

더욱 밝게 이 세상 비추이는 가을날

풍성하고 훈훈한 인심 온 누리에 가득한

웃음꽃 흥이 절로 나는 일상 추석 연휴

 

 

 

한가위

손병흥

 

마음은 벌써 설레다 못해 고향에 가있는

추석 앞둔 채 쭉 이어지는 황금연휴기간

고유 명절 한가위 민족 대이동으로 인해

전국 고속도로는 물론 항공편도 매진되어

상당수 도로들이 온통 몸살 앓는 귀성행렬

 

넓은 들에는 오곡백과가 점차 무르익어가고

이젠 한더위도 물러가며 기온조차 서늘해져가

푸른 하늘 더욱 높아서 날씨마저 쾌청할 무렵

맛과 색 달리하여 예쁘게 잘 빚은 송편 만든 뒤에

시루에다 솔잎을 송편 사이사이에 둔 채 쪄내거나

쌀 대신 감자 고구마 녹말 모시 잎 뜯어 찧고 삶아

떡국 대신 햅쌀밥 편 대신 송편을 제기 담아두고서

햇과일도 곁들여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 전하는 날

온 가족 함께 모여앉아 음식 나눠 먹고서 성묘 가는 날

 

 

 

추석날 아침

손진은

 

신나게 페달을 밟는 아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바큇살도 덩달아 광채 뿜으며 공중돌기를 하는 아침

직진하는 트럭은 아직도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붙들린 가로수의 눈초리들이

불타는 공중제비를 본다

 

소년의 손목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키는 아침

궤도에 진입하는 위성처럼

출렁이는 공기 속 소년의 얼굴은 여전히 붉고

그의 머리칼은 바람에 날리고

 

셔틀콕인 양 소년을 튕겨 올린 덤프트럭이

끼익,

도로에 바퀴자국 남기는 동안에도

 

추석빔을 차려입은 설레는 소년과 자전거는 아직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며

성큼성큼 난다

 

! ! !

아침의 때 아닌 공연에 놀라며

새들이 날아간다

 

그 어린 영혼을 받으려

옥색의 공기들이 화들짝!

가슴에서 둥근 손을 꺼내 드는 추석날 아침

 

 

 

추석 달

손택수

 

스무 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나 시켜 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한탄을 하며 구두를 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 달

 

 

 

추석

송근주

 

추석이라는

추억의 날

헤어질 땐 석별의 정

나눈다고 하지요.

 

아쉬움 남는

아쉬움 날을

꾸역꾸역 모여들어

음식 장만 하지요.

 

차례상 차리고

조상 은덕

고마움 갖출 땐

조상 있어 나 있지요.

 

친척들 모여 앉아

차례상 차리고

사람 사는 맛 나게 하니

조상 있어 가능하지요

 

 

 

추석(秋夕)날의 보름달을 보며

신성호

 

추석(秋夕)날은

해마다 우리를 찾는다

 

년중(年中)에 가장 살기좋고

모든것이 넉넉하고 아름답기에

기쁨과 즐거움을 듬뿍 안고 찾아온다

 

년중(年中)에 가장 좋은 지절(至節)

가장 밝고 티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없는 집에서도 고소한 송편 익는 솔향기가

마당을 지나 담장을 넘어 지나는 길손을 유혹한다

 

더도 말고 덜도 없어도 행복하고 넉넉한 명절인 추석날

떠오르는 둥근달을 먼저 보고 소원 빌면 이루어 진다는 말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라는 노래의 가사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마다 마음마다 꿈이 있고 소망이 있는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성도 느낌도 아니 가지면 우리는 마당에서 그냥 좋아 뛰어노는 강아지처럼

희로애락의 의미도 형제자매의 사랑도 부모의 부성애 모성애도 잃어버린 고아가 아니런지

 

하나같이 즐겁고 기쁘고 풍성하고 넉넉한 추수의 감사를 챙길 수있는 우리의 전통 고유명절인 추석날은

한없이 넓은 대자연을 비춰주는 저 밝고 둥근 보름달처럼 우리도 빛이되어 밝은세상 만들어 행복 찾으리

 

 

 

한가위를 맞으며

신성호

 

초가을의 어두움이 짙어가니

산천도 숨죽이고 잠잠히 있는 터에

종횡하며 날던 예쁜 빨간 고추잠자리도

가냘픈 풀잎에 앉아 가을밤을 추억하고

중천에 떠 있는 못다 핀 둥근달은

한가위의 보름달을 정성드려 준비하는 듯

희미한 곳 잘 닦아내고 어두운 곳 밝게 하니

그 빛에 산천초목은 화폭 중에 화폭이요

그림 중에 명화로다

얄미운 태풍 우사도 한가위를 시샘하듯

이곳저곳 할켜 놓고 흔적 없이 가버리고

그 모든 것 이겨내니 어딜 가나 풍년이라

들에 가면 오곡이요 산에 가면 백과가 풍성하니

이렇게 좋은 계절에 어김없이 찾아온 한가위는

우리에겐 큰 기쁨이요 대자연의 축복이라

한세상 살아감이 이쯤이면 족할 진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욕심 다 버려두고

즐겁고 기쁜 명절 두고두고 지켜가리

 

 

 

한가위 보름달

신희상

 

늦거나

더딘 법이 없는 달

차별 없는 얼굴로

세상을 밝혀주는구나

 

간절한 기도는

소외된 자, 가난한 자의 몫

소원을 들어주려

밝은 빛으로 응답하는구나

 

한가위 오늘 밤

부모의 얼굴 같은 보름달

대지에 원하는 것이 없고

모든 이들에게

한바탕 채워 웃어주는구나

 

 

 

추석

심경숙

 

여덟 남매 맏며느리

스물네 살부터 시작한 시집살이

몇 해인지 기억을 더듬는다

수많은 세월 흘러갔지만

송편 빚을 때마다 가슴 적시는

답답한 아린 기억

어느 추석날인가

심장 덜컹 내려앉은

청천벽력 같은 비보

어머니는 그날 그렇게 떠나셨다

눈물 삼키며 하루 종일토록

음식을 장만하고 밤이 되어서야

펑펑 쏟아지는 눈물 앞을 가려도

그 눈물 훔치고 닦으며

엄마 엄마 찾아 갔던 슬픈 날의 기억

무슨 말로 표현할까요

오늘도 종일 요리해 놓고

밤이 되면 어머니 좋아하셨던

빨간 포도주 한 병 들고

그 길을 달려가겠지

맏며느리 삶

인고의 세월 속에

이젠 반백의 머리카락

주름진 모습에 식혜를 만들고

갈비 재우고 제사 음식 준비하며

까르르 웃고 재잘거리는

손녀들의 귀여운 웃음소리에

고달픈 시름 잊어가며

갓 주어온 밤을 까서

감사함의 송편을 빚는다

그리움 가슴에 담고서

 

 

 

중추절(仲秋節)

심의운

 

알밤 삶고 찐쌀 볶아

대소쿠리 담고 고구마 쪄서

삼베보자기 덮고 손주들 기다린다

 

모과나무 밑에 서성이며

석양은 기웃기웃 차는 안 보이고

동구 밖 당나무만 바라본다

 

해저 문 쪽으로 불빛이 비쳐오면

쭈그리고 앉은 다리 펴고

지팡이 짚고 내리막길 너무멀다

 

호롱불 부엌에 연기 채울 때

해 쌀밥 냄새 진동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새는 줄 몰랐다

 

일찍이 병풍 펴고 지방 쓰고

나물 담고 탕국 끓여 햇과일 진설하여

손주들 앞세우고 두 손 모아 절한다

 

차 떠나는 길까지 내려오며

속 고쟁이에 꼬깃꼬깃해진 쌈지돈

차창 넘어 사정없이 던져주며

 

붉어진 눈 애써 감추면서

어서어서 가라고 두 손 높이 흔들며

눈가에 이슬 맺혀 아른거린다

 

 

 

추석

심의운

 

밤송이가 함박웃음 웃을 때

솔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고

알밤 삼 형제

우두둑 우두둑 떨어지고

 

논두렁 길 따라 메주콩이

노랗게 익는 사이

메뚜기 요리 폴짝 저리 폴짝

황금빛 들판에 고개 숙이는데

 

더 숙이라고 메뚜기

부부 짝짓기하고

논바닥 누런 미꾸라지 꼬리 치며

진흙탕 속으로 기어든다

 

참새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허수아비 모자 들쳐 보고

색동옷 속으로 날아들고 허리춤에

매달린다

 

논 모퉁이 나락 한 단 베어

찐쌀 찧고 송편 만들려고 뒷산에

솔잎도 따고 햇대추 배 감 좋은 것

골라 놓고 추석 명절을 기다린다

 

 

 

한가위 밝은 달

심지향

 

청량한 갈바람에

하늘은 저만치

성큼 높아지고

참새 떼 조롱하던

한 아름

넉넉한 들녘

허수아비 마른기침도

고개 숙여 잠든 밤

은빛 너울 자락에

천지를 휘감아

포근히 감싸는

풍요로운 어머니 품속처럼

빈 가슴

가득 채웠다가

차면 비워낼 줄 아는

거룩한 성자(聖者)

 

 

 

가배절(嘉俳節)

심훈

 

뒷동산에 솔잎 따서 송편을 찌고

아랫목에 신청주(新淸酒) 익어선 밥풀이 동동

내 고향(故鄕)의 추석(秋夕)도 그 옛날엔 풍성(豊盛)했다네

비렁뱅이도 한가위엔 배를 두드렸다네.

 

기쁨에 넘쳐 동내방내 모여드는 그날이 오면

기저귀로 고깔 쓰고 무둥서지 않으리

쓰레받기로 꽹가리 치며 미쳐나지 않으리,

오오 명절(名節)이 그립구나! 단 하루의

경절(慶節)이 가지고 싶구나

 

 

 

추석(秋夕)

안계종

 

계절의

꽃 봄이 아침이면

가을은 저녁이 되니

 

하얀 접시에

단풍 송편 두둥실 한가위

설렘은 만남으로 풍성하다

 

빛깔 고운 들녘은 잔칫상

춤추는 바람이 마음을 울렁이고

 

부모 형제 얼싸안고

배부른 송편이 웃음 지으며

마음에 둥근 달이 떠오르니

 

농사로 얻은 오곡백과

햅쌀로 빚은 자축 차례상

올림과 나눔이 섬김과 평안이로다

 

 

 

추석, 고향의 품

안계종

 

이맘때면

어릴 적 집 옆 철둑에

반딧불이가 살아 있는지 보고 싶고

 

솔잎 따다 풋콩 넣어 만드신

어머니 손맛의 부엌 선반 위에

송편이 먹고 싶다

 

검정교복에 줄 세워 모자 쓰고

동래 남학생 여학생 선ᆞ후배, 친구들

줄지어 학교 가던 신작로 코스모스

추억의 오솔길이 그립고

 

엿가락 기차 타고 콩나물 버스 타고

고등학교 졸업하던 날

밀가루 덮어쓰고 안녕이라 말하던

옛 친구 고향 친구들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자식 둘에 손주까지 보았으니

 

절반의 고개 넘어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닌 것이

부끄러이 앙상한 어깨에

처진 눈꼬리 사이로라도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만 하신

구십 둘 되신 어머니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루나니

 

내 어찌 비싼 돈 들여

곱게 차려 신을 신고 옷을 입음이

 

한눈팔기 위함인가?

자존심인가?

불효인가?

 

허세로 다, 개살구로 다

사람아 이 사람아

돌아서서 가거라 고향의 품으로

너의 핏줄기 가이없는 품으로

 

 

 

중추가절

안영준

 

보릿고개 한 서림도 오래전 얘기

오곡백과 풍작이니

촌부 마음도 흡족하구나

 

고향길 차량 즐비하고

대청마루 아들 손주 며느리 모여

행복이 달콤하구나

 

반달 빚어

접시 위에 담아 놓으니

쟁반 같은 달 훤히 내려앉았구나

 

빌딩 숲을 지나

고향 집 감나무에 앉아있는

만삭의 은반은 엄니 얼굴 같구나

 

허리 굽은 엄니는 곳간 뒤져

아들딸 양식 챙기시고

미루나무 까치 배웅 인사하는구나

 

 

 

추석

안윤주

 

우리 엄마

다섯 손가락 꼽아

추석날을 헤아리며

눈 감고 자식 얼굴 더듬고 있겠다.

 

자식 입에 넣어 줄

앞마당 익어가는 단감, 대추

날로 더하는 노란 색깔을 쳐다보며

손자 손녀 오몰 대는 입 그리고 있겠다.

 

동네 한복 판 은행나무는

노란 낙엽 비를 준비하고

앞산 밤나무 알밤 여무는 소리에

뒷산 다람쥐 앞산 다람쥐 토닥이고 있겠다.

 

올 추석

마중하는 별빛의 향연에

보름달 웃어 두둥실 뜰까

옛 친구와 긴 달그림자 만들고 싶다

 

 

 

추석

안행덕

 

내 안에서 피고 지는 그리움들

물거품처럼 스러진 삼백예순날

날마다 대문 열어놓고 귀 열고 산다

추석이라 한가위 다가오니

휘영청 밝은 달빛에 들켜버린 얇은 가슴

 

그리운 인연 줄

저 달빛에 걸어놓으면

내 몸에서 빠져나간 총총한 별들

줄줄이 인연의 줄 따라 내게로 오려나

낡고 허름한 내 몸 바람 들듯

큰놈 작은놈 내 품에 쏙쏙 안겨오면

끝물 오이 같던 내 얼굴

보름달보다 더 환해질 텐데

 

 

 

추석

양명문

 

감파란 가을 하늘 아래

오곡은 무르익어

황금과 치는 추석(秋夕) 한가위

봄내 여름내 지어놓은

결실한 농터에

즐거운 추석(秋夕)이 왔다고

기장 노티에 녹두 지짐 지지고

차떡에 백설기 찌어 놓고

마을마다 집집이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추석(秋夕)

그 어느 시절 추석(秋夕)

이렇듯 즐거웠더뇨

새로 지은 기와집 기왓골에는

새빨간 당추를

한망판 널어놓고

목화밭 아주까리

너울너울 춤을 추는데

모두들 새옷 입고

성묘 간다네

이렇듯 우리의 농터는

즐거웁기만 하오

 

 

 

한가위 보름달

양재건

 

보름달 뜨면

둥그스레한 누이 얼굴 겹쳐오고

이따금 보름달 아래

공 굴리며 뛰놀던 골목길들 생각나건만

제대로 밤하늘 한번 올려다보며 살지 못해

보름달은커녕 밤하늘은 마냥 낯설다

보름달같이 둥글 거라 둥글 거라던

어른들 이미 곁에 없지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길 거닐다

보름달 닮은 야구공 하나 주워

집에서 키우는 개 둘에게 던져주었더니

공같이 둥근 세상 정말 살맛나는지

내 몫같이 지치지도 않고 잘도 논다

되돌아본 이내 삶은 모난 돌 상처투성이

그래 이제라도 둥근 공같이

둥글둥글 살아볼거나

모처럼 올려다본 밤하늘

공같이 둥근 정겹기도 한 한가위 보름달

 

 

 

추석

엄원용

 

꼭 제사를 지내야만 추석이더냐

퍼내도 퍼내도 부족함이 없는 저 밝은 달을 그릇마다 담아

형님 아우님 만나는 기쁨을 상마다 푸짐하게 차려놓고,

아들 손자 며느리 한 자리에 모여앉아

조상님 고마운 생각에, 대신 살아계신 부모님 정성껏 모시고

올해도 잘 익은 과일들처럼 자식들

무럭무럭 자라게 하시고, 향기 품어내게 하시고

우리 집 잘되고, 이웃이 잘되고, 이 나라 잘되라고 빌고 빌면,

그제야 오늘이 진정 추석날이지

 

 

 

추석

염인덕

 

빵빵 소리와 기다린 함성 소리

마당에는 함박꽃 웃음소리

담장 밑에는 코스모스가 빙그레 웃는다

 

부엌에는 고한 냄새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에 안부가 완숙되어

아름다운 손길이 분주하다

 

어린아이들 핏줄이 당기는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신에 자랑이 늘어지고

입가에 꽃이 활짝 피어있다

 

방안을 무대로 삼아 귀여운 재롱잔치에

가족들 넋을 놓고

한가위의 넉넉한 마음 포근히 채워간다

 

가족들은 오색 송편을 입안에 가득 채워 짙은 향기와 맛에

고향에 향수를 가슴에 가득 담아

밤송이처럼 토실토실 영글어 간다

 

 

 

한가위 보름달이 웃는다

오경수

 

하늘 가던 보름달이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

아차, 헛발 딛어

우물 속에 빠져버렸네

 

두레박에 출렁 출렁

조심조심 건져 올려

감나무에 걸어 노니

방실방실 웃는 구나

 

기쁜 마음, 환한 마음

~ 덕꿍, 좋을시고

온 동네 아이들이

골목골목 왁자지껄

 

조건 없는 은빛 날개

가슴팍에 파고들어

허리춤을 감고 도니

온 동네가 하,- ,-

 

한가위 보름달아

모나지 않는 둥근달아

우리 같이 혜량(惠諒)하여

둥글둥글 행복세상 기쁨으로 맞자구나

 

 

 

어머니의 추석

오보영

 

아침부터 마을어귀

내다보시며

아들 손주 며느리 기다리시다

긴 시간 막힌 길

뚫고 달려온

자식 등 다정하게 보듬으시며

"그 먼 길 힘들게 뭐 하러 왔어

안 와도 느덜만 잘 살면 되지!!"

대견함에 눈물 글썽이시던

울 어머니

이젠 보름달 속에서

내려보며 흐뭇한 미소지신다

"언제나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자식들과 행복하게 더 잘 살라고"

당부하며 인자하게 말씀하신다

 

 

 

코스모스의 추석

오보영

 

두 팔 벌려

오시는 님 환영합니다

연분홍 고운 얼굴

치장을 하고

고향 찾는 마음들 반겨줍니다

지친 삶 잠시

내리어놓고

편안히 가족들과 쉬고 가라고

푸근함 가슴 가득 채워가라고

마을 어귀 길섶에

도열을 하여

환한 미소 지으며

인사합니다

 

 

 

한가위

오보영

 

자식이 있어서

복되다

기다리는 마음

찾아주는 발길이 있으니

정겹다

내미는 손길

품을 수 있는 가슴이 있어

풍요롭다

 

 

 

추석

오상순

 

추석이 임박해 오나이다

어머니!

그윽한 저----

비밀의 나라에서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고운 발자국 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리는 듯하오이다.

 

 

 

한가위만 같아라

오승희

 

먹음직도 하여라

햇곡식 조물조물

 

송편이라 이름 놓고

가득히 소 채우니

 

앉은 자리 찰떡이라

담방담방 솔잎 깔고

 

임 맞을 채비하니

애모(愛慕)의 정 익어

 

속 보이는 욕심

해죽이 벌어진다

 

담장너머 달그림자

그리움도 한몫이라

 

옹골지게 차오르니

보암직도 하여라

 

 

 

속 좁았던 어느 해의 단상

오애숙

 

한겨레 정과 숨결 속에

"1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라"

 

이웃과 먹방의 나눔 장터

선조의 지혜와 정감으로

이역만리 휘날리는 추석

 

타향살이에 한겨레의 얼

지나치는 안타까운 현실

그나마 조촐한 모임 있어

 

과일 3박스와 준비한 음식

허나 예상 밖 꽉찬 지인들

기쁨의 날갯깃 달았었건만

 

턱없이 부족한 음식과 선물

손 부끄러워 꼬리 감추려다

반가움 마저 자라목 되었네

 

 

 

어린 시절 단상(추석)

오애숙

 

고향이 서울이라

추억이 많지 않아

아물 거리는 기억

 

고향 찾아 나서면

가슴으로 다가와

내게 미소하는 맘

 

오손도손 앉아서

추석을 위한 별미

송편 빚었던 기억

 

이국 땅에 피어나는

맘속 추억의 수채화

일렁이는 그 그리움

 

밤하늘의 잔별 속에

행복했던 옛날이라

속삭이며 노래하네

 

 

 

이 가을, 한가위 사랑으로

오애숙

 

이 가을 한가위만 같아라

나르셔 하는 희망참으로

비췻빛 가슴에 솟구치길

두 손 모아서 기도합니다

 

삶이 들숨과 날숨 사이에

기쁨과 사랑의 꽃 화알짝

이웃 속에 휘날리고픈 맘

내님의 향기로움에 피어나

 

내 곁에 있는 눈빛 속에서

슬픔과 기쁨의 빛 발견하여

소망의 빛으로 반짝거리며

한가위만 같게 되길 비오니

 

한겨레의 얼 속에 간절한 맘

한가위 사랑으로 웃음 피어나

서로를 돌아보는 희망 샘물로

이 가을, 흘러넘쳐 나게 하소서

 

 

 

추석(秋夕)

오애숙

 

한가위 고유 명절 추석의 다른 이름

뜻으론 가을 저녁 가을의 달빛 중에

어즈버 가장 좋은 밤이라고 해 설레네

 

최초의 기록 없어 알 수는 없다지만

신라 때 대표적인 명절임 확인됐고

풍농을 기원한다는 의미 담고 있었지

 

그 옛날 남녀 칠세 부동석이던 시대

전통적 놀이 통해 남몰래 사랑 키워

올인한 경우도 있어 연예 장소였다네

 

 

 

타향살이에 어우러진 한가위

오애숙

 

어렵게 사는 사람도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음식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하던 고유명절 추석

 

한겨레 가슴 속에

온갖 오곡 백화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에 정으로

한얼의 깃발 휘날리는 날

 

LA 가을 하늘에도

서울 하늘에 떴던 달이

정과 한겨레의 혼 어우러져

휘영청 동산 위에 떴습니다

 

유난히 큰 보름달

그 달 속의 어머니 얼굴 활짝

웃음꽃 피우고 한겨레의 얼이

다민족 속에 반짝이고 있습니다

 

 

 

한가위

오애숙

 

어렵게 사는 사람도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한가위 속에 즐기던

우리네 고유명절

 

한겨레 가슴 속에

오곡 백화 무르익어

결실의 계절 정으로

가슴에 펄럭입니다

한 얼의 깃발이

 

고국 하늘에 떴던 달

한겨레의 혼 어우러져

정으로 휘영청 떴다

LA 가을 하늘에도

 

유난히 큰 보름달

달 속의 어머니 얼굴

웃음꽃 화~알짝 피네요

한겨레 얼 다민족 속에

반짝이고 있다고

 

 

 

추석(秋夕)

오정방

 

한가위 중추가절

제일가는 큰 명절에

고개를 길게 뽑아

고국하늘 향한채로

눈감고

그리는 그림

보고 싶은 모습들

 

십오야 둥근달이

휘영청 떠있는데

머리를 치켜들고

차분하게 바라보니

그리운

얼굴얼굴들

하나하나 보인다

 

 

 

한가위 보름달

오정방

 

한가위 저 보름달

중천에 높이 솟아

 

이 세계 사방천지

골고루 비추노나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몸소 보여 주시네

 

고국의 하늘에도

저 달이 떳으련만

 

뉘라서 이내몸을

보고파 쳐다볼꼬

 

올해도

이국 하늘아래서

고향 산천 그린다

 

 

 

한가위 보름달이

오정방

 

휘영청 보름달이

너무나도 눈부시니

이웃의 별님네들

빛을 잃어 잠적하고

마알간

하늘 가운데

오직 저만 떠 있네

한밤중 깊은 잠을

흔들어서 깨우더니

귓가에 속삭이며

무슨 말씀 하시는고

고향이

그립냐기에

고개 끄떡하였네

자명종 벽시계가

두세 점을 때렸는데

아련한 추억들은

조수처럼 밀려오고

새 잠을

청하건마는

고대 잠이 안 오네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 생애의 껍질을 까고 있다

 

 

 

추석에 고향 가는 길

용혜원

 

늘 그립고 늘 보고픈 고향

둥근 달덩이 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추석이 다가오면 발길이 가기도 전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습니다

 

어린 날 꿈이 가득한 곳

언제나 사랑을 주려고만 하시는 부모님

한 둥지 사랑으로 함께하는 형제 자매

학교 마당, 마을 어귀, 골목길, 냇물가, 동산

어디든 함게 뛰놀던 친구들이

모두 다 보고 싶습니다

 

점점 나이 들어가시며 주름살이 많아지신

어머님, 아버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추석 명절 고향길엔 부모님께

드리고픈 마음의 선물이 있습니다

 

추석 명절 고향가는 길엔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우리 민족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추석 명절 고향가는 길엔

추석에 뜨는 달 만큼이나 환한

가족들의 행복이 가득해져 옵니다

 

 

 

만월(滿月)

원무현

 

작은 추석날

사람들 말에는 모난 구석이 없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둥글둥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둥글둥글 빚은 송편을

둥그런 쟁반에 담는 동안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던 넷째를 기다리던 당숙께서

밭은기침을 담 너머로 던지면

먼 산 능선 위로 보고픈 얼굴처럼 솟은 달이

궁글궁글 굴러와서는

느릅나무 울타리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와락와락 껴안아

길이란 길엔 온통 달빛이 출렁

 

보시는가

가시 돋친 말이 사라진 밤

이 둥글고 환한 세상*

 

* 고재종의 어느 시에서

 

 

 

추석을 맞이하여

원영래

 

보라

저 벌판을 적시며 흐르는

황금빛 찬란한 풍요로운 물결을.

꽃샘추위와

모진 비바람

간단없이 찾아오는 병충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랴

마음 졸이며 지켜보아야 했던

태풍 그 험로를 건너

땀방울로 영그는 가을의 결실

농부의 마음 하늘도 감동하니

나비도 감히 범접하지는 못하더라.

가을볕은 따사롭고

들판을 흐르는 바람은 맑고 그윽하여

오곡백과는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가을을 맞이하니

이 풍요로운 성찬을 준비한

농부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하느니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어가나니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으로 주리고 지친 마음 달래는

햇빛도 비껴가는 음습한 그늘 아래

쓸쓸히 처량한 한가위를 맞이하는 이웃은

둥근 보름달이 서럽고 원망스럽더라.

휘영청 보름달의 넉넉함과

무르익는 가을의 풍성함으로

나누는 기쁨이 함께하는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시기를

 

 

 

중추절

원용문

 

해마다 가윗날은

하늘 나라 사는 날

 

은도끼 금도끼로

초가 산간 집을 짓고

 

순이야 네 손목 잡으면

꽃구름도 일었지

 

달빛어린 소반 위에

둥그런 어머니 사랑

 

하나, 둘 빚노라면

솔바람도 일어오고

 

순이는 하늘에 닿아

등근 달이 되었지

 

사자 골 머루 섶에

꿈을 묻고 살던 날

 

가을 빛에 영근 정분

소근대는 네 눈동자

 

순이야 나즉이 부르면

메아리로 안겼지

 

 

 

추석 명절에는

유상철

 

추석 명절에는 좀

뒤로 느긋이 물러앉아 보자

지나가는 바람에 손짓하고

앞서는 자동차를 웃음으로 보내주자

추석 명절에는 좀

눈을 길게 뜨고 둘러보자

조카놈들 키 큰 것도 보고

담 너머 과부댁과도 눈 한번 맞춰 보자

추석 명절에는 좀

얼큰하게 취해도 보자

주식으로 날린 돈은 잊어버리고

쥑일놈도 살려주기로 마음 먹자

그래서 추석 명절에는 좀

눈물을 쏟아 보자

텔레비전 전원을 뽑아내고

아버지 빛바랜 사진 앞에서 꺼억 꺽

울음 예배를 드리자

 

 

 

추석

유용주

 

빈집 뒤 대밭 못미처

봐주는 사람 없는 채마 밭 가

감나무 몇 그루 찢어지게 열렸다

숨 막히게 매달리고 싶었던 여름과

악착같이 꽃피우고 싶었던 지난 봄날들이

대나무 받침대 세울 정도로 열매 맺었다

뺨에 붙은 밥풀을 뜯어 먹으며

괴로워했던 흥보의 마음,

너무 많은 열매는 가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거적때기 밤이슬 맞으며

틈나는 대로 아내는 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소슬한 바람에도 그만 거둬 먹이지 못해

객지로 내보낸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뺨 서너 대쯤이야

밥풀이나 더 붙어 있었으면

중 제 머리 못 깎아

쑥대궁 잡풀 듬성한 무덤 주위로

고추잠자리 한세상 걸머지고 넘나드는데

저기, 자식들 돌아온다

낡은 봉고차 기우뚱기우뚱

비누 참치 선물세트 주렁주렁 들고서

 

 

 

훈훈한 한가위

유일하

 

손때묻어 피어나는 굴뚝들의 구름모자

손자손녀 몽실몽실 웃음꽃이 피는구나.

가마솥에 피어나는 송편들의 아우성이

촐랑대는 손자들의 천진스런 모습일세

두손모아 엎드려서 지극정성 큰절하니

조상님의 영령들이 지방들고 춤을추네

하얀수염 거머쥐고 흰저고리 풀어헤쳐

진수성찬 춤사위로 달빛마저 가렸구나

오고가는 세상사가 헝클어진 실패지만

오늘만은 웃음속에 배려하는 마음일세

풍요로운 마음들이 오늘처럼 지속되어

겸허하게 받아주고 사랑으로 베푸리라

 

 

 

추석

유자효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

, 추석이구나.

 

 

 

가배절(嘉俳節)

유치환

 

하늘은 높으고 기운(氣運)은 맑고

산과 들에는 풍요한 오곡의 모개

신농(神農)의 예지와 근로의 축복이

땅에 팽배한 이 호시절 -

오늘 하로를 즐겁게 서로 인사하고

다 같이 모혀서 거룩한 축제를 드려라

올벼는 베여다 술을 담어 비지고

해콩 해수수론 찧어서 떡을 짓고

장정들은 한 해 들에서 다듬은 무쇠다리를

자랑하야 씨름판으로 거지고 나오게

장기를 끄른 황소는 몰아다 뿔싸홈을 붙혀라

새옷자락을 부스스거리며 선산(先山)에 절하는

삼간 마음성들 솔밭새에 흩어지도다

 

 

 

추석

유한나

 

하늘엔 보름달 떠도

가슴엔 쪽박 뜨는

사람 왜 없겠습니까

 

밤송이 툭툭 터지고

가을에 쫓긴 감

처녀 가슴처럼

부풀어 올라도

푹푹 꺼져가는

사람 왜 없겠습니다

 

그래도 송편 빚듯

꼭꼭 눌러 여민

곱게 빚은 마음으로

보름달 맞아야지요

한가위 잘 지내야지요

 

 

 

들깻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어린 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 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 묶는, 이 얼마만의 기쁨?

 

 

 

추석날 고향에 와서

윤고영

 

눈에 익은 햇발이

붉게 굴러다니는 동네 어귀에 서면

발신지도 수상한 소문이

잽싸게 달겨들며 멱살을 후린다

파랗게 젊은 시절

머리 다독여 주시던

고향 친구의 어머니는

지난 여름날 더위에 치여

그만 하늘나라로 가셨대

삼류 유행가의 가사처럼

내가 아는 이들 모두

이 세상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 빈손으로 돌아가는 그 길

나 어린 조카들 앞세워

성묘길 다녀오는 아침나절

풀섶 이슬을 말리고 있던

바람과 햇볕을 만나

안녕, 반갑게 인사를 한다

 

 

 

보름달 애가(哀歌)

윤득모

 

언제쯤이었을까

그 한가위 보름달 아래서

우리는 울어버렸지

온갖 정 묻은 뒤안길 바라보며

칠흑 같은 밤하늘에

운동장만 한 보름달 장충단 공원 숲에서

두 손 마주 잡고

가로등은 말없이

희미한 얼굴 숙인 채 숨죽이며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네

울다 지쳐

귀를 건드리는 소리에

뒤돌아보았지만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서글픈 낙엽뿐

그렇게 사랑은 지나갔는데

계절은 또 왔어

 

 

 

올해 추석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윤보영

 

추석입니다

산과 들이 넉넉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밝은 것은 내가 먼저.

내 안과 내 밖을 사랑으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 이대로

추석이 지나도

넉넉한 기분으로

사랑을 나누겠습니다

내가 더

사랑하겠습니다

 

 

 

추석

윤보영

 

추석이

모두에게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부터

추석을 즐겁게 보내겠습니다

즐거움이

도미노처럼 퍼져 나갈 수 있게

행복한 마음까지 보내겠습니다.

 

 

 

추석 달

윤보영

 

추석이다

오늘 저녁

보름달이 뜨면

뚝 따다가

가슴에서 굴려야겠다

 

그동안 쓸쓸한 마음

지금까지 힘든 마음

달빛에 둥글둥글

웃음소리 나게 굴려야겠다

 

 

 

행복 추석

윤보영

 

내일모레가 추석

벌써부터 마음이 뛰죠?

더러는 좋아서 뛰고

더러는 부담이 되어서 뛰고

 

그러면 가슴에

사랑을 올려놓아 보세요

좋아하는 마음은 더 뛰게

부담되는 마음은 덜 뛰게

 

 

 

추석 밑

윤의섭

 

가을바람이 슬쩍슬쩍

배나무밭으로 기어든다

 

누렇게 익은 배가

나무에서 흔들흔들 흔들거린다

 

윤기 흐르는 촉촉한 잎이 두툼하고

껍질 두툼 나무줄기 향기를 뿜는다

 

얼마나 달까

숙성도를 재는 손길

과수원주인이 두근거린다

 

태평한 올해 추석

오곡백과 진설하여

조상숭배 후손번영 기원하련다

 

 

 

추석 밑에서

윤의섭

 

풋내가 가시지 않았는데

이슬이 차니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억수 같은 비가 퍼붓고

태풍의 광폭한 칼날에

농어촌의 파괴된 상처로

신음이 아직도 들리는데

 

벼이삭은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이고

먼저 익은 과수의 골라 따기

새로 심은 채소밭의 거름주기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추석이 다가오니

밀린 외상값도 갚아야 하고

신세를 끼친 귀인에게

고마움은 어떻게 표현할까?

 

추석을 앞둔 밤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뒤척뒤척 어른거려

추억과 기대감이 뒤섞여

잠 못 이룬다

 

 

 

선물

윤인애

 

지난해 추석

두 시간 거리에 사는 시인께

보름달이 참 밝습니다

문자를 띄웠더니

이곳엔 달이 오지 않아 쓸쓸하다고

날아든 답장이

홀로 비운 술잔 같다

마침 내게는 두 개의 보름달이 있어

연못에 걸린 달을 급행으로 보내주고

빈자리에는 흰 구름 한 덩이 걸어 두었다

도착했노라,

소식을 듣던 깊은 밤

시인의 마을에서는 달도 시를 쓰는지

계수나무 아래서 은유를 즐기고

떡 방앗간 토끼도 별을 빚는다는데

이번 한가위에는

교통체증으로 복잡할 하늘길 피해

덜 여문 달이라도 서둘러 부쳐야겠다

 

 

 

봉덕이 할머니의 추석

윤장규

 

돌아가셨네

봉덕이 할머니, 행여나

상여 메고 나갈 사람 없을까 봐

추석 전날 돌아가셨네

충북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주동 술햇골 양짓말

상일꾼들 다 나가버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만 사는 동네

장가간 남정네 다 모아도

상여꾼도 안 되는 동네

내일은 추석

동네 떠나 살던 살붙이 피붙이들 환하게 돌아오네

하얀 얼굴도 있고 까만 얼굴도 있네

매끄러운 손과 꺼칠한 손이 서로 잡고 흔드네

온 동네 종일 돌아오고 마중 가는 사람들로 붐비네

살랑살랑 바람결에 어둠이 내려오면

집집마다 젖빛 저녁연기가 올라

온 마을을 감싸 안으며 젖을 물리네

두 번 세 번 덧붙인 창호지마다 불빛이 노랗고

갈비뼈 켜 켜마다 묻어두었던 웃음 새어 나오네

부르르 문풍지가 떨 때마다 가슴은 또 울렁거려

아아, 누가 오는 걸까

기다리는 마음들 발갛게 달아 보름달로 뜨네

동네에 돌아온 사람들 모여

제일 먼저 봉덕이 할머니 조문하러 가네

온 동네 소식통이었던 봉덕이 할머니

온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모으네

내일은 추석

상여꾼은 다 모였네

흥겨운 추석이네

 

 

 

추석날

이남일

 

잘 이룬 차례상을 올리고

풍성하게 익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늘보다 높은 날

 

꿈을 못 이룬들 어떠랴

조금 늦어진들 어떠랴

꽃향기보다

언제나 꽃 피우는 시간은 길었다

 

우리는 이루는 것보다

이루기 위해 살지 않았는가

이룬 기쁨보다

땀 흘린 시간에 감사하는 날

 

 

 

추석 전야

이남일

 

추석 전날

도시에서 갓 돌아 온 우린

먼저 약속이나 한 듯이

끝도 없이 들길을 걸었다.

비탈 밭에는 여전히

퉁퉁 불은 고구마가

밭고랑 살을 가르고

청량 바람에 늘씬한 수수는

스러지듯 몸을 꼬았다.

메뚜기의 탱탱한 발길질도

아랑곳없이

우린 가을 들녘 끝자락에

고향 노을을 깔고 앉았다.

밤이슬이 내리고

짚 널 위로 보름달이

벙긋 내려다볼 때까지 우린

손을 꼭 포갠 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한가위

이남일

 

보고 싶을 때

소쩍새 울음은 길어라.

 

그리울 때

가을 밤 별빛은 멀어라.

 

그토록 눈물 같던

보름달 만남은 짧아라

 

 

 

추석

이대준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면 나는

성성한 고무신을 바위에 문질렀다

멀쩡한 신발을 갈아댄다고

길 가던 어르신이 꾸중을 내려도

이마에 땀방울 여물 때까지 기어이

새 신발을 신고 나서는 명절날 아침은

상큼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오늘 아침 새 양복이 부담스럽다

무엇이든 오래도록 곁에 둔 것들이

살가운 것을 보면

내게도 어느새 아버지처럼, 다 늦은

가을이 찾아왔는가 보다

문뜩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이

눈앞에 삼삼한 것은

내 얼굴과 내 손바닥과 내 발바닥이

그때 그것처럼 닳아 퍽이나

얇아진 때문일 것이다

 

 

 

추석

이둘임

 

추석 대목장에 바쁘신 부모님

고난도 잊으시고

웃음 띤 얼굴

행복에 묻혀 계셨다

 

돈 통과 돈주머니는

이미 배가 불러

뒤뚱 그렸고

밤늦게 귀가하여

방바닥에 지폐는 벌거벗은 채

구겨진 종이 되어 여기 저기 뒹굴었고

 

돈 세는 모습 몰래 훔쳐본 어린소녀

명절에만 입어보는

새 옷 생각에

등 달아 힘껏 어깨 춤추었다

 

달이 차 올라갈수록

달따러 가자던 동생과

하얀 송편으로 달을 만들던 시절

달처럼 부푼 마음

두둥실 피어나던 행복감

보름달은 내 마음 한가운데 차지하고

온 누리 환하게 물들고 있었지

 

 

 

추석 명절

이무정

 

9월이 오면

고까옷 차려입은 코스모스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긴다

 

내 마음은 벌써 고향으로 달려간다

언제나 제일 먼저 동민(洞民)을 반기는 그분이

이번 추석에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줄까

 

나잇살 한 해 두 해 들어갈수록

걱정이 많아진다

저어기 어렴풋이 보인다.

작년 그 자리에서

곰방대 물고 있는 할배

 

아니나 다를까

나를 보자마자 육두문자 쏟아낼 태세

"이자슥 안 뒈지고 잘 왔데이"

"할배도 건강하시지예"

 

쌍욕을 할 적에

할배는 건강해 보인다

내년 내후년에도

할배 욕을 듣고 싶구나

 

 

 

한가위 보름달

이문희

 

회한의 한숨 지우며

겨울로 미끌어져

가는 내 인생 아직은

 

붉게 물들어 가는

알알이 영그는 꿈

가을이고 싶어라

 

탯자리 흙냄새 그리운

한가위 보름 달

은하수 가로질러

무심히 흐르는 밤

 

눈시울 어른거린 그린 임.

모든 시름 다 접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고

 

지금도 여전히

타는 그리움 간절한 기도.

가을 하늘 짙푸른 강위에

일편단심 조각배 띄운다

 

 

 

산골 이발소

이범노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아름 다가옵니다

 

 

 

추석

이병초

 

굵은 철사로 테를 동여맨 떡시루

어매는 무를 둥글납작하게 썰어 시루구멍을 막는다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호박고지를 깔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통팥 뿌리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낸내 묻은 감 껍질 구겨 넣고

쌀가루 한 둘금 그 위에

자식들 추석 옷도 못 사준 속 썩는 쑥 냄새 고르고

추석 장만한다고 며칠째 진이 빠진 어매

큰집 정짓문께 얼쩡거린다고 부지깽이 내두르던 어매

목 당그래질 해대는 것이 무지개떡 쇠머리찰떡만은 아닌지

쌀가루 이겨 붙인 시루뽄이 자꾸 떨어지는지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어매는

부지깽이 만지작거리며 꾸벅꾸벅 존다

 

 

 

도둑과 시인

이상국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람에 훔친 것도 없으니까

잡히지 말고 추석 달빛 속으로

그림자처럼 달아나라는 시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경찰은 몰라보게 편리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게만큼 찌그러진 차

지붕을 새로 얹는 데 만만찮은 수리비에 대하여서는

앞집은 물론 경찰도 전혀 알은 체를 하지 않았다

그 시로 원고료를 소소하게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시를 물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도둑이라도

이 시를 읽어주었으면 하는데

 

 

 

풍성한 추석

이상황

 

민족 대명절

사랑 가득 어우러지니

가족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말 꽃 주절주절

시냇물 흐르는 소리

그릇 모양 한가득

보름달 올라 찬

즐거움은 행복이요

 

풍성한 추석

한가위 차오른

보름달 방긋방긋

전하니

행복 건강

행운까지 순간 반 차

뛰어넘는

즐거운 추석 연휴

행복입니다

 

 

 

한가위 보름달

이상훈

 

티 없이 맑고 고운 너의 얼굴

어찌도 아름다운지 가슴이 뿌듯하다

우리도 네 고운 모습에 사랑꽃 피우리

 

오곡이 무르익고 햇과일 풍성 할 때

멀리 멀리 비추시네 우런님 얼굴까지

뛰면 가 임을 만날까 이 밝고 기쁜 날

 

높게 높게 솟고 있네 머언 먼 꿈처럼

나도 함께 잡아보리 그 날 그 기쁜 행복을

달빛에 화안히 핀 임 고이 품고 살리라

 

 

 

한가위

이성두

 

저 꽉 찬 달

묵언이면 어떠하리

 

금빛 가루

그윽한 세상

 

과실은 이날을 기다려

일 년을 자랐고

 

바람은 이 계절을 위하여

코스모스를 피우고

 

사람은 을 나누기 위해

추석을 지었다

 

인연과 인연 사이

기쁨이 풍요로운데

 

오늘은 당신 마음에도

휘영청 달이 뜹니까

 

 

 

추석

이성복

 

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 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는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추석 무렵

이세기

 

햇고구마 순을 다듬고

산도라지를 다듬는 손길이 부지런도 하여라

누구의 입에 서로 나눠 먹을 것인가

 

가을빛 손때 묻은

바쁜 손길에 내려앉은

갱 줍는 고향 모습일레

 

가슴이 뜨거울레라

가슴이 시방 뜨거울레라

 

 

 

나 어릴 땐 추석이

이수인

 

나 어릴 땐 추석이

둥근 보름달로 알았지

쟁반같이 둥근달 동구 밖에 떠오르면

동네 꼬마 모두모여 때때옷 곱게 입고

서로 서로 손잡고 달마중 강강수월래 불렀지

 

나 어릴 땐 추석이

무지개 시루떡인줄 알았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색깔

고운 꿈이 정지에서 솔솔 익어 나왔거든

 

나 어릴 땐 추석이

송편 이름인줄 알았지

온 가족이 모이면 쟁반 가득 웃고 있는 송편

아빠 송편 너털웃음

엄마 송편 함박웃음

동생 송편 조물조물

아기 송편 옹알옹알

내 송편은 초승달

할머니는 배부르다 웃고만 계셨네

 

 

 

한가위

이승기

 

길쌈내기 진 편

애통한 한 여인네

'회소, 회소' 노랫가락

달빛 애처롭고 아름다워라.

 

가배의 놀이

달빛 더 밝아질수록

노랫가락 애잔한 가배

가애 가위로 달을 닮았어라.

 

애잔한 노랫가락

서라벌 젊은 여인네들

허연 속살 빛 같이 높낮아

달빛 더 밝아 사내 애태운다.

 

아아, 달이 너무 밝아서

제 계집 품은 사내놈 보고

달빛 환한 밖으로 못 나오고

홀로 춤만 추어대는 처용이.

 

아아, 보름달 너무 밝아라

 

 

 

한가위엔 연어가 된다

이승복

 

백여 폭 병풍으로 산들이

둘러리 서고 꽹과리 장구의

신명 난 굿패 장단에 웃음꽃

피우며 손들을 잡았다

한가위 만월을 감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일상 등짐을 벗고서

놀았던 춤사위, 신명 난 어깨춤으로

더덩실 춤을 춘다

 

고향이 타향이 된 이들이

고향이 객지가 된 이들이

한가위엔 연어가 되어서

한 옛날 맴돌던 언저리서

술잔에 푸념을 타 마시며

거푸 잔을 돌린다

어색한 서울 말투가 낯설게

톡톡 튄다 '치워라귀간지럽다'

잊을만하면 불나비 되어

고향지기를 찾아와 몸을 태운다

재가 되는 몸들이 벌겋게 변하다가

달빛 흠뻑 먹어 하얗게 익어간다

 

고향을 떠난 이는

외톨로 떠돌아 외롭고

남은 이는 다 떠나서 서럽단다

정들면 어디든 고향이라지만

미물도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데

못내 가슴에 고향을 키우는 은빛 연어도

선영하(先瑩下) 어버이 발끝에 앉아

고향을 가슴에 심는다

눈에다 고향을 담는다

 

 

 

한가위

이영걸

 

우련한 능선들은

안개 속에 이어지고

길 옆 코스모스

바람에 나부낀다

언제부터 내려오는

한가위 명절인가

묵직한 호박 덩어리

저 아래에 누워 있다

고향 잃은 사람들의

그리움도 간절하리

버얼겋게 익은 벼는

가을비에 젖고 있다.

사랑도 미움도

넘어선 정이어라

 

못내 턴

그 청춘들이

사뤄 오르는 저 향로

 

 

 

고향 달(한가위)

이영균

 

훈기 아직 남은 낸 불 내

송편 쪄낸 솔 향

자식 기다린 어미 냄새

굴목가득 달 흐름 그윽하면

달빛 새드는 소슬 사립문

마음 훤한 마당 지나

대청 길게 더듬어

문풍지 당겨 어머니 얼굴 엿보고

담장 말뚝 박힌 조롱박

하얀 달물 듬뿍 받고

잠깐 놀다 간 여름 손자재롱

할머니 마음 동구 밖 서성이신다

 

 

 

추석 선물 꿈 가슴

이영지

 

꿈 꽃이 하나같이 내리는 둥근달에

천천히 느릿느릿 쏴아아 꽃내음의

분홍이 짙어지다가 진분홍에 일곱 번

그리움

해와 달이 꽃가게 차린 날에

해야 넌 이리 와라 달도 넌 그리하라

꽃말의 하얀 발음이

여호수아

우리지

사랑의 종소리가 울리는 햇빛 꿈이

빨간 꽃 햇빛 빨강 노란꽃 노란 햇빛

나란히 푸른 숲 햇빛 밝음으로 비취지

다 나눠 주고 나도

햇빛 든 48 성읍

들이며 신도들이

두 눈에 넣어놔도

안 아픈 물나라 음표 날리는 게

여기지

하늘의 꿈자리가 방울의 음표 위에

반 박자 놓이다가 조금은 빠른 음표

한 묶음 한 구절씩만 입 모아도 가나안

사랑의 꽃들 잔지

하늘의 푸르름과

바다의 푸르름과

우리의 푸르름이

삼면이 바다로 된

물나라로

눈 뜨지

 

 

 

한가위

이영지

 

따놓은 덜 붉은 감 더 붉게

익고 있고

따 놓은 덜 붉은 대추가

익고 있고

떨어진 내 사랑 알이

익고 익어 둥글고

달빛에 덜 붉은 내 볼이

익고 있고

한 밤이 한 낮처럼 덜 붉다

익고 있고

떨어진 내 사랑 알이

익고 있어 둥글고

 

 

 

한가위 지나 달무리

이영지

 

파아란 서울버스

 

반이나 물이 차며

눈물을 흘리면서

 

달무리 하늘가에

눈가에

아직 남아돌

눈물 흘려

 

안 마른

하늘을

올리려고

빨갛고

파란빛을

 

달무리 물이 되어

우아히

그야말로

 

여늬의 형광등과는

비교조차

꽃피는

 

 

 

추석을 앞두고

이운용

 

적은 몫을 나누니 오히려 배부르다

남 생각 들어갈 틈 없다가도

몫이 적으니 빈 틈새가 많구나

 

먹고 차릴 것 없는 집안에

가난이랑 외로움 사철 꽃 피어

담 너머 골목까지 울긋불긋 화사하다

 

한때는 문학상을 받았고

제자를 많이 길러 훌륭하게 성공시켰으나

만년에는 홀로 산책길 숨가쁜 해강시인

서울의 분노와 고향의 술독을 피해

낯선 곳 도서관 촉탁 공무원으로

가족의 입과 시의 적막을 지키는 시인

아파트 건축회사가 와르르 무너져

몇 달의 봉급과 퇴직금이 묻히고

회사 담보로 제 집까지 날려버린 처남

 

병적인 좌절과 고생을 죽쑤어 먹다

재수에 옴 올라 교통사고를 당한

우리 반 실장네 빼빼 마른 아버지

 

내일이면 추석 내 적은 몫을 나누니

배부를 땐 소화제나 찾던 등신의

빈 틈새마다 눈물이요 기쁨이다

 

 

 

추석날

이원문

 

즐거운 아이들

어른도 즐거울까

겉으로는 즐거워도

웃음 밖 근심이다

어머니 시할머니

그리고 내 아이들

속 썩이는 큰 시누 하나

그 한 몫에 더 걱정이다

 

이 집 온 지 십수 년

그 잘 보냈다는 시집이

이 모양 이 꼴인지

처음은 그렇게 남 부럽지 않았는데

갈수록 기울어 근심 걱정이 늘어 가니

이것이 속은 세월 팔자요 운명이 아닌가

아버님은 몇 해 전 그렇게 돌아갔고

이제 남은 것이 집터 말고 또 무엇이 있나

 

모이니 좋기는 한데

큰 시누 시집살이를 더 해야 한단 말인가

보냈으면 그만이지 왜 이 집에 또 왔나

그동안 그 시집살이가 모자라 더 시키나

쫓겨온 주제라 어머니 말 못하는 것인지

그전 같으면 편 들며 두둔 했을텐데

그 버릇 못 버려 눈에 거슬린다

그래도 말 못하고 못 보고 못 들은 척

 

내 아이도 에미 편 큰 시누 싫어한다

철없는 막내 놈 고모 이제 고모네 집 가

그 소리에 가슴 뜨끔 하지도 않은지

흰 머리의 어머니 그 그늘 그저 찾는다

이 추석 명절 작년 같으면 집안싸움이 났을 것을

그래도 올해는 다들 조용히 웃는 낯이다

오늘 지나 내일이면 다들 떠날 것인데

쓸쓸한 집 이 가을 큰 시누 그냥 눌러 앉을려나

 

 

 

추석 반세기

이원문

 

신장로 위 그 하늘

찿아가도 볼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인가

반세기의 그 고향

여기가 어디인가

 

보름달 안 그 고향

늙은 몸에 그려보는

꿈 속의 고향인가

기억의 이 늙은 몸

감춘 눈물 흐른다

 

 

 

추석의 하늘

이원문

 

올려보는 추석 하늘

저 흩어진 새털 구름

누구의 것이었나

더 멀리 바라보면

고향이 보이고

불어오는 가을바람

그 시절로 데려간다

 

타향 창 밖 보름달 안

저 보름달 안 동무들

누가 먼저 부를까

머리 위 보름달 안

그 시절 그리고

어서 오라 함께 가자

내 동무들 뛰어온다

 

 

 

추석의 회고

이원문

 

추석에 모은 옛날

어느 날을 잊을까

헤아리는 그 옛날

추석이면 찾아든다

비탈길 많았던

어제의 그 먼 옛날

그 많은 날 다 잃고

여기에서 무엇 하나

철새에 들꽃까지

뛰어놀던 뒷동산

넘어야 할 보릿고개

굽이굽이 흘렸고

베갯머리에 찾아 드는

미움에 고마운 얼굴

못 잊는지 안 잊는지

그 맨드라미꽃에 얹어진다

 

 

 

추석

이윤학

 

바깥 마루에 털퍼덕 앉아서는 물가에 선 미루나무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미루나무는 수심을 닮아서 하늘을 자신의 키 높이로 끌어내려 황혼의 취기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올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어느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오지 않았기에 나는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쯤 억새가 피기 시작했을까요.

내 늙은 시절이 떠오릅니다. 내 애인은 나와는 육십 살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나는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돌팔이 의사들은 거의가 단명했습니다. 나를 업고 각시낭골 돌팔이 의사에게 뛰어가던 어머니. 나는 노루의 등에라도 탄 듯 뜨겁게 안겨오는 피의 온기에 맘껏 젖어 시들었다 피는 꽃이곤 했습니다. 내 몸은 십대 초반이었고 내 마음은 칠십이 조금 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십대 초반이고 내 몸은 칠십이 넘었습니다. 나는 누구를 업고 뛴다는 걸 상상조차 못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물가에 선 미루나무는 그만한 쇠꼬챙이로 내 쓰라린 슬픔의 한나절을 후비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돌팔이 의사들은 단명했고 불에 구워지는 미루나무 쇠꼬챙이 물가에 우뚝 서 있을 것입니다. 황혼녘, 나는 알싸하게 취해 뒤로 짚은 힘 없는 두 팔에 몸을 바치고 저 세상인 듯 물가 미루나무를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간혹 동전을 두 손안에 모으고 흔드는 것처럼 경운기가 지나가고 번쩍거리는 차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바퀴로 해괴한 비명을 연주할 것입니다. 돈사(豚舍) 지붕 앞으로 뻗어 나온 밤나무 가지에선 밤송이들이 입안에 세 알 두 알 한 알씩 밤알을 물고 있을 겁니다. 나는 그런 말을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송편 빚던 날

이은경

 

풀벌레 울음 한가닥

건져 올리지 못하는

고층 아파트 유리창 너머

달은 둥실 떠올라

생각에 잠겨있다

 

한낮의 아비규환

풀이 꺾이고

목을 뽑은 희멀건 어둠

방안을 기웃거릴 때

 

햅쌀로 송편을 빚으면

흘러간 유년의 강줄기

물구나무로 서서

달려온다

 

고향집 대청마루

흰 떡가루 뽀얗게 묻은

어머니의 손

지금은 저 달 속에서

송편을 빚고 계신다

 

부드럽고 탄력있는

아이의 귓불 같은

떡살이 손끝에서

풀벌레 울음소리

그리움을 몰고 온다

 

열 개 서른 개 백 개.....

쫑긋 귀를 세운

추억의 송편

나란히 줄지어 서서

엉엉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아이가 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가위 보름달

이은석

 

뉘 있어 알았으랴

존재조차 느낄 수 없었던

눈썹보다 작은 초승달의 의미를

 

바람의 고운 정 야금야금 쌓아 두었는가

별들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 두었는가

한없이 부풀어 가는 네 모습을

누구인들 짐작이나 했겠는가

 

대추 알 발그레 익어 가듯

볏 이삭 황금빛으로 영글어 가듯

슬그머니,

온 세상 밝히는 보름달이 되었구나

 

그 어떤 번뇌인들 사그라지지 않겠는가

두려움의 찌꺼기인들 남을 수 있겠는가

밤하늘 밝히는 저 휘황찬란한

한가위 보름달 앞에 두고

 

이 가슴에 너를 새겨 놓으리

 

 

 

중년의 추석 한가위

이응윤

 

내가 노인이 되어간다는 건가

묘한 블랙심리에

중년의 한가위

 

추석 밤 떠 오른 달은

빙글빙글

추억의 레코드판이 되고

이슬 젖도록 제짝이 좋아

껴안는 풀벌레 노랫소리

쬔 한 향수만 젖게 하네

 

우째, 오늘은

망막(網膜)의 배경으로

내 온 몸 소리 모은

고막(鼓膜)의 원성(願聲)으로

옛 향수

그리움만 쌓이는 구나

 

어무이, 송편 바른 기름

오늘 같은 날 고소할 기름이었건만,

어무이, 인절미 고물 듬뿍 묻혀

내 입 밀어 넣던 손길

오늘 같은 날에 원기(原氣)였건만

 

제 모양도

제 나이테 하나 없는

성긴 나무인 것을

 

열기 식어 가는 밤에도

저 할 일하다 쏟아지는

별 똥별 운명(運命)있으니

아직은 얼마인지

할 수 있는 대로 살자,

또 살아 보자 구나

 

 

 

추석

이재무

 

쉰다섯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아부지의 나이. 엄니 돌아가신 뒤

 

두어 해 뒤꼍 그늘처럼 사시다가

인척과 이웃 청 못이기는 척

 

새어머니 들이시더니

생활도 음식도 간이 안 맞아

 

채 한 해도 해로 못하고 물리신 뒤

흐릿한 눈에

 

그렁그렁 앞산 뒷산이나 담고 사시다가

예순을 한 해 앞두고 숟가락 놓으셨다.

 

그런 무능한 아비가 싫어

담 바깥으로만 싸돌았는데

 

, 빈 독에 어둠 같았을 적막

오늘에야 왜 이리 사무치는가.

내 나이 쉰다섯, 음복이 쓰디쓰다.

크게 병들었는데 환부가 없다

 

 

 

한가위

이재옥

 

자연이 제공한 풍성한 계절 가을!

인간이 정해 놓은 즐거운 중추절!

이 절묘한 하모니의 아름다움

소중한 인연 고운 님들 얼굴이

한가위 만월처럼 떠오르는군요

한 분 한 분 회원님께 가을 햇살로

익어가는 들녘의 튼실한 열매처럼

소중한 삶 이루시길 소망합니다.

거친 돌이 정을 맞는다지요?

세상을 은은하게 비취는 한가위 둥근 달처럼

모나지 않은 고운 마음 세상을

아름답게 조성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온 가족 친지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추석

이재환

 

휘영청

보름달 밝은 밤

넉넉하고 풍성한 계절

 

들판은

황금 물결 춤추고

과일은 탐스럽게 익어가고

 

어려웠던 시절

추석빔과 먹을 것을 생각하며

추석이 오길 기다렸지

 

어머니의 정성 어린

송편과 음식들이

최고였지

 

지금 모든 것이

풍족해졌어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네

 

오늘 어머니 맛은 아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형제가 모여 행복한 시간이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보시며

행복하게 미소 지으실

부모님의 웃음이 그립다

 

 

 

한가위 보름달

이재환

 

달아 둥근 달아

우리 가족 건강하게

나의 소원 들어줘요

 

나를 비추는 보름달아

아들딸 잘살게

나의 소원 들어줘요

 

하늘에 보름달아

우리 형제 행복하게

나의 소원 들어줘요

 

한가위 보름달아

꿈속에서라도

돌아가신 부모님 뵙게

나의 소원 들어줘요

 

 

 

당신이 있어 이 명절 행복합니다

이채

 

뿌리를 찾아가는 길엔

나를 만나는 세계가 있고

고향을 찾아가는 길엔

평화를 만나는 나라가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돌아갈 집이 있고

반겨줄 마음이 있다는 것은

오늘 살아갈 힘이 되고

내일 맞이할 희망이 됩니다

바람 속에서도 꿈을 키우며

어두운 흙 속에 자신을 묻고서야

비로소 잎이 되고 꽃이 되는

한 알의 꽃씨처럼..

돌아와 지저귀는 새는

따스한 숨결만으로도

푸른 꿈, 소망의 꽃이 피어나는

당신은 내게 햇빛촌 가슴인걸요

가르침이 메아리가 되어

눈시울을 적실 때

세월의 깊은 주름으로

더불어 내 삶의 풍경이 되어 주시는

살아 계심으로 감사한 분이시여!

당신이 있어 이 명절이 행복합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한가위 편지

이채

 

보름달이 참 고운 한가위가 오면

저는 왜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은걸까요.

은은한 저 달빛처럼

깊은 밤에도 홀로 깨어나

제 삶의 길을 비춰주시던 어머니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저 또한 흔들릴 때

흔들려도 부러지지는 말고

부러져도 뿌리째 뽑히지는 말라시며

인자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기억하시겠지요.

안 익은 열매가 푸른 이유를

어린 저에게 일러 주시고

익은 열매가 붉은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하시던 어머니

지혜의 샘터였고

겸손의 밭이었고

제 삶의 해답이신 어머니, 당신은

세상을 향해 천년을 살아있는 보름달처럼

언제나 영원한 빛으로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중년의 명절

이채

 

말이 없다 해서 할 말이 없겠는가

마음이 복잡하니 생각이 많을 수밖에

고향 산마루에 걸터앉아

쓸쓸한 바람 소리 듣노라니

험난한 세상, 힘겨운 삶일지라도

그저 정직하게 욕심 없이 살라고 합니다

 

어진 목소리, 메아리 같은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기에

떳떳할 수 있고 후회 또한 없다지만

이렇게 명절이 다가오면

기쁨보다는 찹찹한 심정 어쩔 수 없습니다

 

부모·형제 귀한 줄 뉘 모르겠는가마는

자식 노릇, 부모 노릇

나이가 들수록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참으로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은 뜻과 같지 아니하고

삶이란 마음 같지 아니하니

강물 같은 세월에 묻혀버린

내 젊은 날의 별빛 같은 꿈이여!

올해도 빈손으로 맞이하는 명절

그래도 고향 생각 설레어 잠 못 들까 합니다

 

 

 

한가위를 맞이하는 마음과 마음

이채

 

사는 일에 묻혀서

안부를 묻기에도 바쁜 나날들, 그러나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명절의 기쁨

부푼 마음에는 벌써 보름달이 뜹니다.

 

고향의 단풍은 여전히 곱겠지요?

이웃과 벗들이 정겨운 그곳에

나이를 먹어도 어릴 적 꿈이 살아 숨 쉽니다.

고향의 들녘은 언제나 풍요로운 가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정성스레 가을꽃 한 송이의 리본을 달 때

좋아 하실까? 라는 생각

엷은 미소 지으며 설레는 마음

그동안 소홀했던 인사도 함께 포장합니다.

 

송편처럼 둥글게 빚은 마음으로

우애를 다지며 모나지 않게 살기를

기울면 차고, 차면 또 기운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기까지 너무 많이 써버린 시간들

열어야 비로소 담을 수 있음을, 안을 수 있음을

이제는 알게 하시어

보름달처럼 멀리 비추어 겸허한 자세로 살 수 있기를

 

생각하면 그립고 그리우면 눈물 나는

아버지! 어머니! 부르면 부를수록

어두운 한켠이 서서히 환해지고

비좁던 마음도 넓게 넓게 밝혀주시는

보름달처럼 변함없는 사랑

그 크신 사랑으로 맞이하는 한가위가 마냥 행복합니다.

 

 

 

한가위에 꿈꾸는 사랑

이채

 

사랑은

미움이 사라진 마음에

피어나는 꽃입니다

 

행복은

비워낸 마음에

채워지는 기쁨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찌 미움이 없겠으며

사람이 한평생 살아감에

어찌 불만이 없겠습니까마는

 

한 번 더 이해하고

한 번 더 양보하는

보름달처럼 온유한 모습으로

나를 밝혀 남을 비추는 삶은 지혜롭습니다

나를 접고 남을 배려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보름달처럼 모나지 않게

송편처럼 둥글게 빚은 마음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가을처럼 풍요롭고 넉넉한 명절이었으면

 

보고 싶은 부모 형제

다시 만나는 설레임으로

한가위엔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위에 드리는 기도

이채

 

잠시 오해했다면 고백하고

한동안 미워했다면 뉘우치고

황금빛 들녘의 넉넉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는 화해의 걸음이게 하소서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어머니처럼 포근한 보름달, 그 넓음으로

작은 것의 소중함의 알게 하시고

큰 것일수록 의연할 수 있게 하소서

 

잘 익은 한가위처럼

잘 다려진 숙성된 빛으로

나를 발효시키는 성숙함이게 하소서

 

대낮같이 비추는 천지의 보름달, 그 깊음으로

화안의 친절한 미소로

일상의 기쁨을 이웃과 나눌 수 있게 하시고

춥고 낮은 곳일수록

베풀 수 있는 따뜻한 관심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포용의 그릇이 클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가다듬는 기도

소박한 꿈을 꾸는 내일의 희망이게 하소서

고운 인연들에 감사하며

함께 기대며 살아가는 둥근 세상이게 하소서

언제나 웃기만 하는 보름달,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머니의 추석

이효녕

 

돌아가는 세월의 일몰 앞에

금방이라도 웃음 내미는 한가위 달

가을의 들은 빈들이 아니라서

아주 완전하게 둥글게 만들어

한가위 날까지 채우는 동안

귀향 열차의 흩날리는 기적소리

송편 빗던 어머니는 손길 멈추시고

기다림을 더하신다.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깊이 패인 주름 진 얼굴로

며칠 동안 들판에 나가셔서

동부알 햇볕에 고루말려

푹 고아 놓으시고

고향 뒷동산 밤나무에서

아람 밤 주워 속을 만들어

솔향 가득한 송편 쪄내시며

자식을 기다리시는 어머니

달디단 사랑의 불씨로

둥그런 보름달 만드시는가

어쩔 수 없이 흘러간

외로운 삶의 변방에서 돌아와

고향의 마루에 걸터앉아

넉넉한 마음으로 보름달 바라보며

어머니 가슴속에 진하게 밀려오는

지난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면

사랑은 탐스럽게 익어

애달픈 열매로 맺히고

어머니 손을 살며시 잡으면

가슴에서 익어나는 어머니 사랑

불 담은 넓은 은총으로

징처럼 찌잉 가슴 울리는가

 

 

 

달빛 기도 한가위에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한가위

이해인

 

사람들이 모두 가족이 되어

사랑의 인사를 나누는 추석날

이승과 저승의 가족들이

함께 그리운 날

감사와 용서를 새롭게 배우는 날

하늘과 땅 고향의 산과 강

꽃과 새가 웃으며 달려오네.

힘든 중에도 함께 살아갈 힘을

달님에게 배우며

달빛에 마음을 적시는 우리

고향을 떠날 때쯤은

조금 더 착해진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둥근 달이 되어주는 "추석날"

 

 

 

팔월 보름날

임금옥

 

어둠에

잠겨가는 잿빛 하늘에

희뿌연 달빛만이

여울지는데

 

마음의

향기 얹은 소망을 담아

정화수 떠 놓고서

두 손 모으니

 

폐부 속

그리움은 모습이 되어

물빛에 반영되어

찰랑거린다

 

그날의

등 내음은 향기 되어도

흐려진 워낭소린

가고 없는데...

 

 

 

추석(秋夕)

임석순

 

1

휘영청

밝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 옛날

어린 시절

맛난 음식

동네 어귀

 

추석에

이쁜 꼬까옷

뛰어놀던

친구들

 

 

2

계절은

시간 속의

계절은

변함없이

 

조상을

생각하고

은덕에

감사하는

 

보름달

오늘 저녁이

되었구나

추석날

 

 

3

추석날

온누리를

비춰주는

중추가절

 

저 높은

달을 보며

한가위

맞이하여

 

즐거운

추석을 맞아

풍요로운

마음을

 

 

 

올 추석

임영준

 

풍성한 한가위라더니

망설이다

천신만고 다다른

동네 어귀

늘 반기던 친구들이

몇몇 보이지 않네

쥐불놀이 달맞이

막걸리에 윷놀이

올 추석은 아예

접어야겠네

두 집 건너 하나씩

빈집도 늘었다네

그래도 아직

저 잘난 잡새들은

살만하다 한다네

 

 

 

추석

임영준

 

달빛 머금은 솔밭에서

잃어버린 옥토끼를 찾는다

 

아련히 떠나버린

옛 임들을 불러본다

 

물려받은 건 하해 같은데

남길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추석 소묘

임영준

 

도도한 달빛이

대청마루에서

싸리 담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지

 

성찬을 나누는

친지들의 웃음이

삼동네에 넘쳐

여물어가고 있었지

 

알속을 저당잡고

영원히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게

꽁꽁 묶고 있었지

 

 

 

한가위 고개에서

임영준

 

고개에 걸린 보름달에서

추억을 더듬지 마라

 

고즈넉한 밤바람 속에서

동무들을 부르지 마라

 

누릴 만큼 누려보았으니

경건하게 기도할 수 있으리라

감내하고 스며들 수 있으리라

 

 

 

한가위 고향길

임영준

 

걸음마다 되새기게 되는

고향의 주름과

평생을 달고 살아야 하는

불효의 통증

지금까지 누린 것 중에

아직도 믿을 만한 것은

한결같은 보름달과

혈맥으로 이어진 끈뿐인가

그래도 어릴 적 포만했던

한 아름 추억은

뒷동산 무덤 곁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으려나

 

 

 

한가위 달빛 아래

임영준

 

한가위 달빛 아래

그립지 않은 게 무엇인가

 

못난 아들 때문에 홀로 계신 어머니

귀여운 손자들을 마음껏

안아 보지도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오던 친구들

눈감으면 그려지는 정겨운 거리들

 

사무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한가위 달빛 아래 이방인이

 

 

 

 

한가위 둘

임영준

 

눈에 담아온 고향이

가지를 뻗었다

 

가슴에 새겨둔 인연이

둥지를 틀었다

 

간절한 달빛이

시나브로 스며들어 온다

 

또 한 번의

아스라하기만 한 한가위다

 

 

 

한가위 보름달

임영준

 

한가위 깊은 밤

덩그러니 하얀 얼굴

서늘바람 타고 내려

앙가슴 건드리네

 

아련한 숨결

시린 옛이야기

걸핏하면 찾아와

꿈자리 적시겠네

 

 

 

추석에

임종호

 

우리 집 뒤뜰에는

대나무밭이 있고

감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추석을 위하여

아버지와 나는 주황색으로 물든

대접 감과 홍시를 딴다

어머니는 감 우리는데 으뜸이셨다

딱신한 물에 약간의 소금 간을 하고

항아리에 감을 잠기도록 담그고 솔가지와

감잎으로 아궁이를 채운 뒤

항아리를 따뜻한 아랫목에 놓고

이불로 항아리를 감싸서 온기를 보존한다

스물 네 시간 정도 지나면 감은

영롱한 빛을 내며 그대로 우린 감이 된다

그 감을 한입 덥석 물면

아삭, 하면서 한입 떨어져 나오고

씹히는 소리 또한 아삭아삭 한다

단물이 목안으로 흐른다

그 감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어버이는 가고 아니 계시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