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1
감태준 – 귀향
강경옥 – 고향의 설날
강대실 – 고향 산하(山河)
강대실 – 고향의 여름밤
강보철 – 고향 집
강신갑 – 운명의 고향
강신갑 – 초하의 고향
강한익 - 고향
강현옥 – 고향의 강
강현옥 – 고향의 강물
고명 – 마음의 고향
고연주 – 고향 집
고정희 – 귀향의 노래
고현영 - 고향
공석진 – 고향길
공재룡 – 옛 살라비
곽재구 – 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 바람 소리
곽철재 – 고향 나그네
구경숙 – 내 고향 옥려봉
구본흥 – 고향 그리움
구분옥 – 그리운 고향
구분옥 – 꿈에 본 고향
권경업 – 고향의 봄
권달웅 - 고향길
권동기 – 고향
권미영 – 고향 가는 길
권승주 – 고향의 봄
권승주 – 꿈에 그리던 고향
권영민 – 눈이 내리는 고향
권오범 – 고향 생각
권오범 - 고향에게
권오범 – 고향에 드리워진 그늘
권오범 – 이즘 고향에는
권오범 – 향수에 젖어
권윤오 – 고향 가는 길
김경렬 – 꿈에 간 고향
김경숙 – 고향 집
김경숙 – 친정 가는 길
김경실 - 고향
김경윤 – 한식날, 고향 집에 가서
김광석 – 고향의 비
김국현 – 고향 향기
김귀녀 – 고향의 눈꽃
김귀녀 - 봄날, 고향 집에 들렀지요
김나현 - 고향길
김내식 – 고향길 미루나무
김내식 – 고향의 기찻길
김대식 – 어릴 적 고향 집에서는
김덕성 - 고향길
김덕성 – 고향의 봄
김덕성 – 고향의 여름
김덕성 – 하얀 그리움
김동리 – 고향
김말란 – 꿈에 본 고향 집
김명희 – 고향 집
김민지 – 고향
김사빈 - 고향
김상익 – 고향의 소리
김선목 – 고향 생각
김소미 – 고향 생각
김소미 – 고향의 봄
김소미 – 그리운 고향 집
김소미 - 쑥꾹새
김소미 – 추억의 플랫트홈
김수미 - 고향
김수미 – 고향 가는 길
김수잔 - 고향
김숙경 - 고향
김순진 – 고향 이력서
김순태 – 고향 지킴이
김승택 - 고향
김영길 – 고향
김영길 – 그리운 고향
김영문 – 고향 집
김영아 – 향수
김영제 – 고향아 고향아
김영호 – 나의 고향은
김영환 – 고향의 부활 – 1978, 서울 구치소에서
김옥자 – 고향이 그리워
김용화 - 고향
김용화 - 귀향
김은식 – 고향 전보
김재덕 - 고향
김재덕 – 고향 생각에
김정석 – 마음의 고향
김정애 – 고향 가는 길
김정애 – 귀향
김정희 – 내 고향 가고 싶다
김종덕 – 고향
김종삼 - 고향
김종석 – 고향 가는 길
김종익 – 고향 언덕
김준태 – 고향 생각
김지우 – 고향의 봄
김찬석 – 그리운 고향
김철민 – 고향 명절
김철현 – 고향에 서다
김철현 – 내 고향에 가고 싶다
김태윤 – 고향
김풍식 - 고향
김해인 – 고향의 추억
김해인 – 향수(鄕愁)
김향아 - 향수
김현희 – 고향의 유월
김형영 – 고향 생각
김형효 – 고향 역
김혜숙 – 고향의 바람
김희경 – 고향 바다
귀향(歸響)
감태준
서울역에서, 한번은 영등포 굴다리 밑에서 잠깐 스치고 흘러 흘러
너를 다시 만났을 땐 눈이 오고, 그해도 저물었다 말이 없는 친구,
손에는 넝마줍기 삼 년에 절도이범(竊盜二犯), 기차표 한 장,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불구(不具)의 조각달이 떠 있다
되는 것은 안 되는 것뿐이라고 한없이 쓸쓸해 하는 네 얼굴에 눈은 날아가 앉고,
눈은 날아가 앉고, 우리는 타관 불빛을 맞으며 하룻밤 강소주에 혹한을 녹였다,
머리에 채 남은 눈을 떨면서, 살아도 곱게 살자 꽃같이 살자,
흩어진 마음을 챙겨 들고, 우리는 갈라섰다, 끝없이 몰리고 풀리는 행렬 속으로,
너는 이제 기적소리에도 가볍게 떠밀리고, 떠밀리는 너의 등에서,
아니, 너의 물결 소리가 들리는 머리 위 공간(空間)에서,
나는 그때 새들의 고향을 얼핏 보았다
고향의 설날
강경옥
울퉁불퉁 정든 고향길
까치 설 맞이 굴뚝마다
기다리는 온정 피어나고
줄줄이 엮어놓은 자식들
저 멀리 발걸음
처마 끝에 걸어 놓은 정
부모님 얼굴 주름 펴진다.
아버지 푸짐한 미소로
곡식 보물창고 활짝 열어
아버지 키만 한 싸릿 빗자루
마당 한가득 자식 사랑 쌓아 놓으시니
까치 까치 설날
흥겨운 인심은 큰 잔치 열어
엄마의 부엌 봄 향기 가득하여라.
까치 까치 설날
고향 하늘 푸근해
우리 우리 설날 색동저고리
부모님 사랑 복주머니 한가득 채워진다
고향 산하(山河)
강대실
아래로 아래로
몸 낮추어 살으라
무겁디무겁게
입 다스려 살으라
허나, 마음속 텃밭은
청청히 가꾸거라
고향은 나볏이
책 펴놓고 기다린다
고향의 여름밤
강대실
모낸 논다랑치
불 꺼진 외딴집,
쑥불 타는 마당 한 켠에
누런 황소 한 마리 누워
어둠 씹어 먹고
편히 쉬는 밤
접동새만
검고 깊은 뒷산에서
밤을 지새기 외로워
처량한 울음으로
고향 여름밤을 지키고 있다
고향 집
강보철
눈을 감으면
까막득히 먼 시간이
귀를 기울이면
어릴 적 모습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리움 되어
한밤중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찬기 떨군 바람
어릴 적 기억을 품고
어둠 벗기는 창가
아른거리는 고향 집
흙내음 싣고
가슴에 안긴다
운명의 고향
강신갑
어머니는
구석기 사람들 살았던
공주 장기가 고향이고
아버지는
천혜의 땅
연기 금남이 고향이라.
반짝이는 백사장 뛰어가
금강에 헤엄치고
대평리 들녘 무 깨물며 건너던
길고 긴 다리
외가 갈 때는 불티에서
부강 약물터 갈 때는 부용에서
나룻배 탔지
아직도 생생한
푸른 꿈 그리며 걷던 둑길
오늘은 가슴에 꼭 담으며 돌아보네
정다운 모습 사라질 운명의 고향아
초하의 고향
강신갑
봄은 초록빛 그림자 드리우는
녹음 남겨 놓았고
마을에는 짙은 고요의 어둠 내린다
시골 저녁 숲은 신전 같은데
흙냄새 스며있는 애틋한 추억이
상글상글 마음밭 파고든다
꽃처럼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들
불어오는 바람 타고 설레는 가슴
그리운 얼굴 다가와 비벼 쌓는다
돈후한 뜨거운 정 일깨워 주고
귀한 생명 구조할 수 있게 한
나고 자란 산하여 감사하노라
고향
강한익
가을 하늘 맑은 햇살
온몸 두르고
두둥실 뭉게구름
오라 하는 곳
옛살비* 도갓집*
정자를 찾는다.
수백 년 세월의 흐름 속에
숱한 인고의 사연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정자 지기 팽나무
허름한 이웃의 슬레이트 지붕
허물어질까 두려워
사나운 북풍을 가슴에 안는다.
장군 멍군 세월 낚던
촌노들 어디로 가고
고난의 세월 흔적 드리워진
할머니 고개는
숙였다 세웠다 반복하는데
텃밭 넘어 빼꼼히 고개 내민
감귤나무 우듬지에
힘에 겨운 둥그런 열매
노란빛 연지로
치장하고 있구나.
* 옛살비 : 고향
* 도갓집 :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옛 향사 사거리
고향의 강
강현옥
썩어 내리는 뼈를
주춧돌위에 올려 놓고
비걱거리는 관절의
앓는 소리 허공에 비운다
이슬이 내리는 여명속에
쭈구리고 앉아
남루한 옷깃 여미지 못해
서풍에 펄럭이며 운다
허물어진 살점들
여기 저기 흩어진 곳에서
부르는 텃새들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만 되새김질 하고 있다
뒤란의 감나무
마지막 잎도 떨어지고
엄상이 내리는 빈 뜰에
앞가슴 내밀고
콧구멍만 벌렁거리는
마지막 공룡같은 괴물이여
고향의 강물
강현옥
1
붉은 황토빛
거품 문 채 정체 된
강물로 다가 가보면
어두움이 내려와
걸어 다닌다
발걸음에 출렁거리는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발자국마다 박힌
옹이들이 불면의
눈을 뜨고 누워있다
한 무더기
어둠을 풀어놓고
떠나가는 밤은
수렁배미 논길 지나
정처 없이 사라진다
어미와
추억 속의
친구들이 사는 땅에
정체된 강물은 늙어
늙은이들만 녹슨 삽으로
썩은 흙속의
앙금을 파고 있다
2
자갈밭 핥으며
척추를 암벽에 부비며
예측 불허의 운명이
수심가를 부르며
계절을 싣고 흘러간다
투명한 육신으로
살아 있는 것들의
목 줄기를 적시며
세포들을 비워내는 소리
여울에 싣고 흘러간다
말갛게 스쳐 간
고요한 입술로
구구절절 중얼거리며
고장 난 시간을 싣고
한 시절의 마지막 길 찾아간다
나의 저수지는 어디에
잠들어 있는가
가슴에 무지개 뿌리를 묻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나면
밤 어귀에서 허공에 뜬 무모한
달을 싣고 흘러간다
마음의 고향
고명
무등에 노을이 내리면
중머리재 억새밭이 그대로 저녁바다가 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꽃들이
까치놀 파도를 일으키고
둥우리를 찾지 못한 물새들이
언뜻언뜻 억새바람 사이를 날으며
하룻밤 쉴 곳을 찾는다
쉬어가라 한 잠 푹 자고가라는 듯이
어둠을 다 품어 스스로 어둠의
집이 되는 바다
언제라도 돌아오라고 누구라 없이
제 낡은 무르팍을 내어주는 바다
그 어느 세월의 벼랑에서 해지는 바다를 보았는가
쉬어가라 쉬어가라며
나도 한 마리 물새가 되어
석양빛 그 바다로 날아간다
고향 집
고연주
저녁놀 숨어든 마을에
개 짖는 소리 들리고
어머니 앞치마 같은 갈바람에
구절초 향이 먼저 반긴다
집 앞 샘물은 마르지 않고
초승달 그 안에 동동 떠있다
그림자는 고무줄놀이로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다가
숨바꼭질하느라 숨어버리고
살금살금 걷는 걸음은
가슴속 깊이 숨어있던 어린시절
추억의 마당에 동네 친구들
서로 다투어 얼굴 내민다
햇살 늘어진 툇마루에
짙게 물든 단풍잎 하나
쓸쓸히 앉아있다
귀향의 노래
고정희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짐짝 위에
아직 겨울 찬비가 줄기차구나
저기가 내 그리운 귀착지,
머나먼 여정을 달려온 나의 말이여
마중 나온 북한산이 다가와
이제 무릇 날개를 접으라 한다
마중나온 관악산이 다가와
이제 응당 말을 놔주라 한다
속에서 시가 넘쳐흘러도
받아쓰지 않을 용기를 가지라 한다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내 푸득이는 어깨죽지를 더욱 작게 접어
고요의 평원에 착륙할 수 있을까
오랜, 도지는 신병 같은 내 말의 허기증을
뒤쪽으로 꾹꾹 눌러둘 수 있을까
도도한 저녁 숲에 상수리나무들이 젖고 있구나
내 자손만대도 젖고 있구나
여기가 내 사무치는 귀향지,
방울소리 설렁대는 나의 말이여
동행하는 안산이 나더러
이제 그만 상처를 싸매라 한다
동행하는 반월평야가 나더러
이제 그만 역마살을 동여매라 한다
한동한 눈 맞으며, 눈 맞으며 살자 한다
나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속에서 넘치는 말을 받아
눈그늘 깊게 하는 술 한 동이 빚을 수 있을까
향내 진진한 술 한잔 받쳐 들고
나는 너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고향
고현영
고향 땅에 들어서니
햇살도
구름도
바람도
그때 그 시절
옛 시절의 것이련가
살갑게, 정겹게
부둥켜안고 반겨주니
고향길
공석진
달구지 타고 십여 리
턱턱거리는 길을 가다
엉덩이 저려 오면
펄쩍 뛰어내려
길가 참외 밭에
시퍼렇게 설익은 놈
껍질째 먹다가
버스가 지나가면
서걱서걱 씹히는
흙먼지라도 좋았다
길 떠난 지 삼십팔 년
무심함에 서러운
고향길을 가고 있다
얼씬도 못하던
상여집은 간데없고
버찌서리 마냥 좋아
주둥이 시커멓게 물들어
낄낄대고 뒹굴던
산등성에 키 큰 굴뚝
흉스레 자리하였다
건들장마 반기던 개굴아
아우성은 어디 갔느냐
무시레 노려보던 장승아
그 기세 어디 두고
곁눈질로 눈치더냐
무던히 생채기 주던
길섶 가시넝쿨아
어느 잿빛 시간에
허허로움 달래느냐
들풀 같은 그리움은
우수에 잠긴 세월에
도적질 당하였다
옛 살라비*
공재룡
마을 어귀 늙은 느티나무 지나
순이네 참외밭 돌담길 돌아서
새 둥지 떠난 막내딸 온다고
소슬바람이 귀엣말*로 전해온다.
새털구름이 가던 길을 멈추며
감나무골에 가쁜 숨을 고른다.
뫼 허리*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막내딸 생각에 눈물을 흘리신다.
누이의 두 볼 닮은 빨간 고추
작은 텃밭에 곱다시* 익어가고
두 팔 벌려 웃는 허수아비 너머
누런 벼 이삭 사이 가을이 흐른다.
돌이네 흙, 담 옆에 장 꼬박*에
고추잠자리 파란 하늘가 맴돌고
볏짚* 지붕에 하얀 박꽃 피는 곳
꿈속에 그리는 나의 옛 살라비다.
* 옛 살라비 : 고향
* 귀엣말 : 귀에 속삭이는 말
* 뫼 허리 : 산허리에 옛말
* 곱다시 : 무던히 곱게 – 그대로. 고스란히
* 장 꼬박 : 장독대
* 볏짚 : 벼를 털어낸 지푸라기
구두 한 켤레의 시
곽재구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쑥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 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 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 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 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바람 소리
곽재구
새미골
이 첨지는
올겨울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가
자꾸만 서러웁다네
댓잎 속에
깃을 친 겨울새들
살 부비며 함박눈 날리는 하늘로
촤 솟아오를 때
아랫집
길주할멈
스무 살 청상이 된
눈빛 참 맑은 가시내
쇠죽 쑤는
이 첨지 곁 다가와
아궁이에 마른 솔잎 한줌 던져주기도 하다가
혜산선 기차 타고 삼수갑산 원족가던 여학교 때 이야기도 하다가
콜록콜록 눈 속에 파묻힌 고향집들
그날의 그리움들 불빛 속에 떠올리기도 하다가
기침 소리 끝나면
눈벙거지 쓴 장독대 곁에 서서
오래오래 북녘땅 바라봅니다
내일모레가 설날인데
눈이 펑펑 곱게도 오는데
그리운 사람들의 기척도 들리지 않고
오십 년 기다림의 바람 소리만
서러운 댓잎을 스쳐 갑니다
고향 나그네
곽철재
떠난 지 사십 년이 넘은
가끔 나그네처럼 들리던 고향 마을엔
이제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낯선 개들만 내 무심함을 짖어댈 뿐
어릴 적 내게 젖을 나누어 주시던
곱던 동무 엄마도 돌아가시고
이젠 누구도 나를 물어보지 않는다
쌀쌀한 햇살이 감나무 가지를 빠져나가고
그리움이 살던 집 굴뚝 위로
서글픈 위안이 꼬리연처럼 하얗게 날리면
나는 마음만큼이나 낡아버린 골목에서
괜시리 시든 풀줄기만 휘적거린다
보고 싶은 사람이 사는 것도
딱히 무슨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작은 마을을 무시로 기웃대는 것은
잊었던 나를 만나고 싶음인가
그리움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싶음인가
내 고향 옥려봉
구경숙
내 고향에 가면 옥려봉이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 놀며 전쟁놀이를 하던
나만의 반공호가 있는 곳
진달래, 현호색, 처녀치마 향기 뿜는 봄날이면
씀바귀, 잔대, 우산나물, 삽주싹 뜯어
최고의 영향을 공급하던 어머니의 마음
아름드리 나무숲 칡꽃향기 어우러진 칠월이면
몸도 마음도 지친 아픈 땀방울을
이슬 산소 공급하여 전인치료 하던 곳
그림 같은 단풍잎들 사이 헤집고 달려보면
도토리, 알밤 톡톡 뛰어 나와
천국 같은 풍성한 배부른 가을을 선물하던 곳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겨울 산을 오르면
아픈 사람 고쳐주는 상황버섯, 천삼, 만병초가
웃어주는 옥려봉이 있다
고향 그리움
구본흥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내 어릴 적에 함께 지내던
작은 마을 동무들과 함께
오랫만에 실컷 놀았습니다
희미한 추억의 향수들이
코끝에 진하게 전해오고
너무 행복해 울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기에
이렇게 좋은 세상 좋은 친구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풍요로운 고향이 곁에 있기에
세상 부럽지 않은 부자(富者)입니다
그리운 고향
구분옥
안개 자욱한 새벽길 따라 마음은 벌써
고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첫동네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목
꼬부랑꼬부랑 언덕 위 오지 정각 양지마을
어린 계집아이는 엄마가 사 주신 검정 고무신
신고 힘든 줄도 모르고 신이나서
이십 리 길을 단숨에 달려갔던 고향이
지금은 얼마나 멀고 먼지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높은 산 깊은 계곡 날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동네 어귀까지 내려와 무서워 줄행랑 치던
계집아이는 오십 중반이 되어 지금
지독한 향수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척에 두고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향
오늘도 자식 바라기 하실 부모님 전에
그리운 마음 고이고이 담아
눈물로 쓴 풀꽃 편지 바람 편에 보냅니다
꿈에 본 고향
구분옥
한달음에 달려간 내가 살던 곳
하늘 아래 첫 동네 양지마을
아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팎이다
부농을 꿈꾸며 귀농한 사람
컹컹 반갑다고 짖는 누렁이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무너질 듯 구멍이 숭숭 뚫린
허술한 돌담 사이로
옛날 동무들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보인다
알록달록한 버짐 꽃 핀 얼굴
멀대같이 버쩍 마른 몸
단발머리 빡빡머리 가시나 종내기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생각 잊지는 않았는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가난한 그리움에
가슴을 적시며 눈물을 훔친다
살망태에 솔바람 냄새는
아직도 그대로인데
나그네 마음 어디 정 부칠 때가 없구나
아! 못 잊어 찾아왔건만
가는 곳마다 추억만 태산 같고
구름처럼 그리움만 두둥실 떠다니누나
고향의 봄
권경업
새하얀 감꽃이
떨어진 아침
우거진 찔레덤불
기이인 찔레순
물오른 버들가지
푸른 물내음
봄눈 녹는 산자락
붉은 진달래
순이는 붉은
진달래보다 붉은
빰을 어루만지며
고향을 떠났다
그날 낮부엉이는
하염없이 울었지
고향길
권달웅
여보게, 고향에 오려면
덜컹거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오게.
콩밭을 지나 호박밭을 지나
거름내를 맡으며,
양복을 벗고 옛 길로
낡은 밀짚모를 쓰고 오게
여보게, 고향에 오려면
모든 욕심을 버리고
흙 묻은 손으로 오게.
순수한 마음으로 오게
넉 세 삼베옷 입은
옛 마음 그대로 오게
여보게, 꽁보리밥에 고추장 맛
고향의 물맛을 아는가.
지금도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고 슬퍼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마을 앞 이용소에 걸려 있네
고향
권동기
정겨운 입김이
다소곳 피는 들녘마다
언제라도 터질 듯한 여린 마음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떠나간 님일까
들어올 님일까
널브러진 들판 위에
고매한 숨결이 땀방울과 함께
풍요의 씨앗으로 피고 지는
농업이 무르익는 그곳에
향수의 눈물이 흐른다
전원의 신음이 정겹다
고향 가는 길
권미영
시(時)와 분(分)의 눈금 위에 놓인
일탈의 몸부림
은빛 레일 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어
황금 이불 펼쳐놓은
논밭 샛길을 달려가니
저마다 숨겨놓은 사연
꺼내 놓느라 나뭇잎은
술렁거리고
간간이 외따로 웅크린
작은 산이 정오의 햇살에
졸고 있는 들녘
두 줄로 이어진 선로 위
예전부터 타향과 고향은
한몸이었구나
손에 손을 잡은 산
꼬리에 꼬리를 문 강
모두 한마음으로
여행 떠나는 길
창가에 쏟아놓은
해의 밝은 웃음에
모든 짐 내려놓고
스르르 감긴 눈
고향의 품으로 달려간다
고향의 봄
권승주
진달래야
빨리 피어라
산이 붉어지면
내 마음도 붉어져
옛 친구를 만날 수 있으니
진달래꽃 필 즈음이면
함께 뛰어 놀던 동산이 그리워
내 마음 산기슭을 기웃거린다
연분홍 꽃잎마다
서려있는 그대의 향기는
온 동산을 적시어
내 마음을 애태우니
어찌 할까요
돌아 갈 수 없는 시절이여
봄이면
계곡마다 진달래꽃 피어
꽃잎마다 맺혀있는
그대의 미소가 나를 오라하는 유혹에
빠져 버린다
진달래꽃 한 묶음 안고 달려오던 그대의
환한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고속도로 가 고향을 절반으로 갈라놓고
무섭게 질주하는 차량은
어디로 끊임없이 가고 있는지
내 인생도
고속도로로 달려와
너무 빨리 온 것이
후회스러워
안타까운 마음뿐
꿈에 그리던 고향
권승주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
검정 고무신을 항상 신었던
내가 좋아했던 단발머리 소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밤이면
짐승들의 우는소리
인적이 끊긴 마을
크기만 했던 산과 들 그리고 시냇가
이제
길고 긴 타향살이에 지쳐
몸과 마음이 노인이 되어
꿈나라 같은 내가 뛰어놀던 곳
잊을 수가 없어
잊을 수가 없어
고향을 찾으니
왜 그렇게 작게 보이는지
하늘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너와 나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친구들 만나니
그대 얼굴에
잔주름
흰 머리만 보이네
눈이 내리는 고향(故鄕)
권영민
고향 뜰 안에
눈이 내린다
유년의 그리움 몰고
눈이 쌓여간다
유년의 그리움 몰고
눈이 쌓여간다
꿈길을 떠돌며
노래하던 벗이여
일기장(日記帳)에 접어둔
눈꽃 같은
그리움 두고 살아가는가
굽이진 고향길을
흰 눈과 함께 오시려는가
눈이 내리면
그대 떠난 고향
꿈길 덮는 눈길 속에
그날의 그리움
물밀 져 온다
고향 생각
권오범
이즘 우물 아래 둠벙배미
우렁이 춘정 발동해 쏘다닐 거야
미나리꽝 개구리밥은
아직 기척 없을 테고
쇠뜨기들 허출한 관절 뽑아 올리느라
불끈불끈 곤댓짓하고 있을 냇둑
허물없는 씀바귀 노란 미소 따라
만삭인 삐비도 꼿꼿이 서성대겠지
수다쟁이 때까치 보금자리로
세세연년 무상임대 해주던 낙락장송들
허위허위 흥청거리도록
악을 쓰며 거들고 있을 바람 소리까지
천장에 말똥말똥 그리는 노스탤지어 수채화
호드기 비틀어 불던 미루나무도
보리밭에 누운 제 그림자
찬찬히 끌어당기며
성하의 강 건널 궁리에 여념 없을 거야
고향에게
권오범
낙락장송이 이따금 흘린 햇살
한 모금씩 주워 먹고도
쑥부쟁이들 행복에 겨워
얼굴을 비비며 방실거리겠지
뒷동산 치쓰는 억새파도 사이사이
청미래 덩굴들이 반질반질하게 불 밝혔을 테지만
어깨동무들 메아리 사라진지 오래라서
허기진 까치나 기다리고 있을 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역랑 헤치는 빌딩 숲
부평초 눈시울 적시며
사부자기 다가오는 초가삼간
뚱딴지 깎아먹던 달보드레한 추억이 그립다
조석으로 구정물 뒤집어쓰던 감나무는 안녕한지
주인 잃고 헛간에 뒹굴다 녹슬었을
쇠스랑아 삽아 호미야
아직도 나를 놓지 못하는 그리움들아 미안하다
냇둑의 미루나무 밤새 별빛 채뜨리다가
햇귀에 몸 데우느라 희부옇게 떨고 서서
길어지는 제 그림자나 밟고 있겠거니
빈 가슴에 남아있을 까치집도 그립다
고향에 드리워진 그늘
권오범
봄이니 진달래는 살판났겠지만
지금쯤 종다리 사랑노래 들릴까
신혼살림 차리기 좋은
보리물결 사라진지 오래라서
한 톨이라도 더 소출 내려고
논두렁 아랫도리까지 바짝 깎아먹던
꽃 봉 허리 논다랑이들은
아카시아 망초 억새 잡것들이
아마도 살림 차렸으리라
샘 아래 닷 마지기는 시방
누가 지어먹는지
보릿고개 넘을 적에 그렇게 탐내던 어르신들
말짱 북망산에 띄엄띄엄 누워
인적마저 뜸할 텐데
이즘 고향에는
권오범
문전옥답에 입학한 어깨동무 모들
명지바람 섬마섬마 사랑에 힘입어
짱짱하게 철들어가는 모습을
황새가 목 빠지게 지켜보고 있을 거야
혼잣손인 당숙모와 맺은 연이 그리워
세세연년 찾아와 조잘대던 제비도
서까래귀퉁이서 허물없이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테고
앞산 등줄기가 뭉텅 베어 먹은 뭉게구름
냇둑 따라 띄엄띄엄 서성대는 미루나무
이역의 하늘에 그려보는 수채화가
살평상에 앉아 둘러보는 것처럼 선연하다
치근덕대는 오월 입김 어쩌지 못해
은근슬쩍 달아올랐을 감나무는
이팔청춘 가슴처럼 봉곳해진 꿈 다독이며
귀에 익은 말매미들 소야곡 기다릴 테지
대밭에 숨어 비둘기 사랑 엿보다
일찌감치 사랑에 눈뜬 개살구도
군침 돌게 성숙해져
열없이 뛰어내릴 거야, 아마 그럴 거야
향수에 젖어
권오범
한번 갈무리해놓은 추억은
나이 먹을 줄도 몰라
어느 땐 나를 착하게 먼산바라기 시켜
나도 몰래 미친놈처럼 웃도록 쏘삭거린다
연료비 걱정하다보니 방정맞게 뛰쳐나온 청솔가지
좌우지간 눈 더미 버겁게 짊어진 채
동장군에게 오지게 당해야
고분고분해져 불땀 좋았다는 거
그러고 보니 그땐 왜 아궁이마저 속 썩였을까
왕겨 불은 맛대가리 없다고 깨지락거려
풀무질로 눈물 콧물 섞어 억지로 떠먹일라치면
숨넘어갈 듯 하다 토해 머리 꼬실리기 일쑤였다
하여간 내 추억들은 말짱
가난이 흘린 찌꺼기일지언정
마음 한구석 헛간 같은 곳에 고스란히 살아 있어
툭 하면 꼬리를 물고 들락대니, 나 원 참
이따가 또 뭐가 기어 나올지 모르지만
청춘이 미끈하지 못했으니
기껏해야 솔가리 북데기 아니면 희나리겠지
가만, 지금쯤 둠벙배미서 애들 앉은뱅이 스케트 탈까
고향가는 길
권윤오
강물처럼 흘러가는 차들의 홍수
큰차 작은 차
드라이브의 경연이다
답답한 도시의 일상을 접어 두고
내 고향 호미곶
장기갑을 향해 페달을 밟는다
얼마만의 고향길인가? 야 신난다!
감동의 탄성
차창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해변의 산과 들
시원하게 불어주는
해풍이 가슴을 파고든다
고속도로위의 사람들
무서운 속도로
일직선으로
시속 100키로 넘게 질주 한다
해변을 달리는 즐거움
바다위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저 멀리
장기갑 등대가 보이고
까물 냄새 코끝에 향기롭다
그리운 내 고향 그 옛날 그대로다
꿈에 간 고향
김경렬
간밤 바람 소리에 실려간 고향
꼬막 조개 무더기 한 줄 신작로
푸른 대밭 파도 육자배기 한 마당.
한 줄로 그어 놓은 냇가 버드나무
大夫餘 모자 깃으로 한들한들
뒷산 老松 술래 잡이 해 저문 동무들
동구 밖 정자에는 학식 높은 선비
조무래기 눈망울에 삼강오륜 훈계
먹물 튀긴 옷 섬 충신 열녀 소망 가득
5대조 영의정 지냈고 6대조 장군이라
흐늘거리는 족보 책장 넘기며
힘들어간 목소리 속에 기대가 가득
목침 위로 나르는 회초리 휘파람
안광 속 저려 오는 두근거린 가슴
훈계 어긋난 인생 회한만 남는다.
먼 발치 요란하던 누렁이 자는가
소식 없이 바람으로 들른 고향
내 약은 죄상에 조상님이 大怒하다
고향 집
김경숙
대문이 없는 집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곳곳에 흩어진
이름 모를 풀들의 아우성과
텃밭에는 자식에게 보내 줄
아리한 마늘
코끝을 자극한다
정겨운 소리들 끊기고
외로움에 졸고 있는 불빛 아래
오랜 말동무
텔레비전 떠드는 수다에
한지 문틈 비집고 새어 나온
어머니의 군살 돋은 독백
고요한 밤 정적을 깨우는
그립던 고향 집 풍경
친정 가는 길
김경숙
보물을 찾으러 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마음은 벌써 우슬재를 넘어
친정 집 대문을 들어서고 있다
눈앞에 전개되는 정겨운 오월의 풍경
어줍은 표현으로 감당하기 벅차다
오전 11시 휴대폰이 울린다
오메 어디쯤 오고 있냐 머나 먼 길 힘들 텐데 어버이날 안 오면
어쩐다고 일부러 시간 내서 온다냐 나야 딸들 오니께 좋기는
하다마는 어쩌든지 운전조심하고 천천히 오니라
오후 12시 30분 전화를 받으신다
어디냐 겁나 시장하것다 니그들 오면 같이 묵을라고
밥 안 묵고 기다리고 있다 읍내 장날 가서 좋아한 것 사다
국도 끓이고 낙지 초 무침하고 게장도 만들어 놓고 맛나게
점심 준비 해 놨응께 조심해서 오니라 오냐 오냐
뚜 뚜 뚜......
동네 어귀 노송 한 그루,
버팀목에 의지한 채 흔들리며 서 있다
고향 들녘 보리밭, 눈 안에 잠긴다
고향
김경실
내 꿈만큼
긴 기차를 타고
진부령을 넘던 날
아침은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고향집 뒷곁에선
술 괴는 소리
사금파리 소꼽 놀던 밭머리
하지감자 꽃 피면
알토란 같은 감자알이
땅넓이를 재가고
토방밑 복실 강아지
오뉴월 하룻볕에
몽실 살 올랐어라
한식날, 고향 집에 가서
김경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한 번이라도 더 다녀와야 한다고
한식날, 고향 집에 가서 아이들과 꽃씨를 심었다
살가운 햇살은 아이들의 볼에 보송보송 땀방울로 맺히고
철없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호 하하 꽃이 피었다
마당귀 멍석만 한 텃밭 모롱이 어머니의 꽃밭에서
마른 풀 걷어내고 녹슨 호미로 묵은 땅을 파며
봉숭화 채송화 나팔꽃 해바라기 꽃씨를 심는 동안
나는 자식을 꽃씨처럼 키워온 어머니의 세월을 생각했다
좁쌀만 한 이 씨앗들이 어서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이 오면
어머니의 뜰에도 향기 가득한 봄날이 올까
오랜만에 온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새우잠을 잔
그날 밤, 창밖의 별빛은 당산나무 가지마다 총총하고
십리 밖 파도 소리도 밤새 쟁쟁하였다
고향의 비
김광석
어머니 자식 온다고
너무 기뻐 웃음 대신
따뜻한 눈물로 반기네
타향살이 지친 마음
그리움에 멍든 가슴
어머니 사랑으로
온몸을 감싸 안아주네
날마다 독백하며
영혼이 머무는 머리맡에
온수 비 내리고
어머니는 가슴가득 안기네
사랑하는 어머니
비가 그치고 나면
무지갯빛 미소로 오소서
고향에 내린 비
고향 향기
김국현
고향에서
푸른 사랑 담긴 그리움이
단비처럼 내려와
그윽한 향기로 밀려옵니다.
오손도손 정담 나누던
평상에는
은하수 솟아져 내리고
감나무 그림자 아래
떨어지는 별똥별 보며
자장가 들려주던
추억의 노래가
긴 목숨 가진 불꽃처럼
꽃이 되어 피어납니다.
고향은
힘들고 치쳐 어려울 때
웃음 지며 불러주던
보고 싶은 사람들의 영혼이
손짓하며 반겨주고
하얀 치자꽃 미소에
편지를 쓰면
어느새 눈물로 찾아옵니다.
고향이 그리울 때
푸른 하늘을 봅니다
한없이 높은 푸른 하늘에
그리운 사람이
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고향의 눈꽃
김귀녀
흐느낌 소리 들었는가
모두 잠든 새벽 꿈에
가지에 핀 꽃
서글픔에 죽어 간
영혼의 달램인가
나뭇가지에 얹힌
냉소의 웃음꽃 차갑게 피어
아비를 묻으러 장지로 떠나는
여식의 상복 위에도
하얗게 피었다
데려온 딸
집 한 칸 없이 내친 설움
두고 떠나는
안타까운 눈물방울 하얗게 얼어
가슴에 맺힌 한
달래준다
봄날, 고향집에 들렸지요
김귀녀
고향 집에 들렸지요
어머니도 오라버니도 없는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는
바닷가 이층집
떼어버린 문짝들
산더미처럼 쌓여 있네요
뼈대만 남았네요
파도소리 숨 들이 쉬고 내 쉬고
입 벌린 이층집
별들이 모여 살던
알싸한 어머니 향기 맡을 수 없네요
묵묵히 바라보니
갓길 끝에 물이 오른
느티나무 통곡을 하네요
능소화 마른 가지 목마르다 하고
그 바람에 가슴 앓네요
이 밤 내내
허공을 다 던져도
그 아픔 사라지지 않네요
고향길
김나현
고향은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가을비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명경처럼 하늘을 닦아 놓고
벌써 중년이 된 여인의 얼굴과
마을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흰 구름은 산마루에서
한없이 노닐고
하늘과 맞닿은 거대한 산맥은
청록색 병풍으로 사방 둘러있어
고향은 포근히 그 속에 담겨있었다
굽이굽이 대관령 삽당령
늘어선 고개마다 흰 눈을 뿌린듯
구절초는 청초한 빛으로
쏟아져 내리고
유유히 흐르는 냇가엔
섬섬옥수 떠 있는 기암괴석
맑은 하늘 고운 빛은
고스란히 단풍으로 내려앉았다
벅찬 가슴 어찌다 표현하랴
어디를 둘러 보아도
내 고향 정선에선
먼지 한 톨을 못 보겠다
목 내밀어 보고 또 보고
몇 시간을 달려가도
내 고향 정선은
지루한 줄 모르겠다
감자 마늘 떡 호박
주섬주섬 따뜻한 정 보따리
사랑 한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향은 끝없는 길 따라
나를 배웅해 주었다
고향길 미루나무
김내식
고향 가는 시오리 길
강가에 미루나무
한 많은 매미들 울어대더니
흘러가는 강물처럼
어디론가 종적이 없다
무더운 여름 한 철
재롱부리던 까치 한 쌍
아이들을 데리고
건너말 양지바른 은행나무로
가을바람에 옮겨간 후
둥지위로 뻗쳐오른
허전해진 두 팔이
높아진 구름의 가슴 만지려
바람의 무등 타고 흔들거리니
잎새들 힘없이 물 위에 떨어진다
가방 든 아이들은 도시로 가고
지구온난화에 쫓기어 가는
강변의 들꽃들도 북으로 옮겨가도
여전히 강물에 발을 담그고
고향길을 지키고 있다
고향의 기찻길
김내식
산 높아 물 맑은 고향마을
징검다리 사이로 물이 흐르고
빨랫방망이 두드리는 소리
기적소리가 안고 간다
장보러가는 아버지와 어머닌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앞뒤로 말없이 걷고
선로는 나란히 간다
운명의 철길은 만나지는 못해도
그렇다고 헤어져 본적이 없으며
어두운 굴에서는 빛을 받아
서로의 얼굴은 본다
만나서는 아니 되는 운명으로
지금은 남이 된 첫사랑 순이
우리도 만나지는 못하나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다
어릴 적 고향 집에서는
김대식
겨울밤 엄마는 밤마실 가고
어린 우리만 옹기종기 모여 귀신 얘기로 밤을 보낸다.
어스름 호롱불 그림자가 귀신처럼 움직이는 밤
무서움에 이불 속으로 머리조차 숨기면
뒷문으로 으스스 귀신이 발 잡아끌 것만 같아
몸조차 움츠린다.
하필이면 똥은 꼭 밤에 마렵다.
대숲이 으스스 어둠이 귀신같이 어른대고
부엉이 도토리나무에서 울어대는 곳
뒤 헛간 지나 정낭은 하필이면 대밭 아래 있다.
똥을 누면서도
하얀 종이 줄까 빨간 종이 줄까 하며
엉덩이를 닦아줄 것만 같은 똥 할미귀신이
금방이라도 손을 쓰~윽 내밀 것만 같아 무서운 긴장
어른들께 들은 말
닭장에 가서 세 번 절하고 빌면
밤똥 안 마려울 거라는 말에
닭장 가서 절한다.
그러고는 무섭지 않은 듯 방으로 들어간다.
세 번 절 받은 그놈의 닭들
새벽마다 요란하게 세 번씩이나 꼬끼오하고 야단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다음날부턴 밤똥이 마렵지 않다는 거야
고향길
김덕성
설 귀성길은
겨레가 함께 대이동하는
사랑의 고향 길
그리움 있고
정이 강같이 흐르는
사랑의 길
고된 길이어도
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루어도
개의치 않고 달려가는
정성어린 길
그리운 정이 있고
즐거운 사랑의 귀성길
안전 운행으로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고향의 봄
김덕성
1
해맑게 웃는 아침 햇살
아파트 화단에는 핀
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인 듯싶은
하얀 목련
고향에도 피었겠지
벌써 떠나온 지 수 십 년
지금은 모두 떠났지만
그래도 목련만은 피었겠지
화사하고 우아하게 꾸밈새 없던
순백의 꽃으로
젊은 학창 시절에 꿈을 주었던 꽃
고향 집 마당에도 피어
깨끗하고 단아하고 세련미 넘쳤는데
마치 흰옷을 입은 여인처럼
아름다운 봄꽃이었지
고향이 그립다
2
산들산들 봄바람
훈풍에 봄 향기 가득 불어오고
제법 큰 동네였던 고향
파릇파릇한 돋은 쑥부쟁이
들에 널려 있는 쑥을 깨는 봄처녀
가슴 환하게 제치고
봄바람 마시며 마냥 즐거웠던
그 시절은 옛날인가
아낙네들도 질세라
들로 나와 치마 자락 날리며
나물 캐는 잊을 수 없는
그림 같은 동네
햇살에 설마
얼굴이 태울 가 싶어 가리던
좋아하던 애들 간데없고
지금은 그리움뿐
고향의 여름
김덕성
칠월 햇살은
꽃에게 다소곳이 다가가
탈 듯이 내려 쪼인다
바람은 바람대로
자연은 좋은 것을 공급하면서
과일이 맛있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고향이었다
지금쯤
내 고향 칠월에도
햇살로 과일들을 빨갛게 달구며
맛있게 익어가고
강바람 불어오는
버드나무 그늘 밑에는
그녀와의 사랑이 익어가는
사랑의 계절이었다
하얀 그리움
김덕성
깜짝 추위로
칼바람이 창문을 두들기는 겨울밤
외로움이 밀려오면
화가는 아니지만
잊어가는 눈 내린 하얀 고향 풍경
마음으로 스케치한다
해가 질 무렵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저녁 짓는 냄새
굶주린 가난한 때라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었고
어머니의 푸근한 체온이 흐르던
그리운 아련한 고향
잊혀가지만 아직 생생한 하얀 그리움이
내겐 살아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어라
고향
김동리
십 년 지나 고향에 돌아오니
내 나서 자라던 마을 그대로 있네
흙담장 돌각담 찌그러진 오막 속에
해솟병 할머니가 그저 살아 계시고
시꺼멓게 구멍 뚫린 마을 앞의
늙은 회나무도 아직 그냥 서 있네
돌멩이 지푸라기 엉크러진 채
물 메인 개천도 그냥 다 있네
이렇게 옛날도 있은 것처럼
백 년이 또 지나도 이대로 있을까
십 년 지나 고향에 돌아오니
골목의 저녁노을 그대로 있네
꿈에 본 고향집
김말란
고향 찾아가는 길 어귀엔
붉은 장미 넝쿨
끝없이 펼쳐지고
간간이 서 있는 이팝 꽃 사이로
아카시아 함께 하니
별천지가 돼버린 정겨운 길
대문 활짝 열고 들어서자
맨발로 뛰어나오시는 우리 엄니
한참 웃고 떠들다
뒤돌아보니
엄니 모습 간 곳 없고
빨간 장미만 애처로이 바라보네
꿈에라도 보고팠던 엄니 모습
순간 지나는 바람이었나
소리 없이 떠나는 오월처럼
두 눈에 눈물만 고인다
고향 집
김명희
매미울음
미류나무 끄트머리
빨갛게 익어있는
시골집 앞마당
장독대 그늘삼아
채송화 봉숭아꽃
주인 없는 집에 잘도 피어있다
쓸고 닦던 엄마 손길
멀어진 고향 집은
낯선 여자 분 냄새를 하고 있다
키 큰 해바라기
엄마처럼
채송화 봉숭아
손잡고
대문까지 마중 나와 환하게 웃고
매미소리 떼창으로
여름을 지키고 선 곳
귀뚜라미 소리
한뼘 정도 더 가까이 들리는
무너진 흙담 곁으로
울엄니 웃음
굴비처럼 엮인 채
돌담을 따라 마중을 나온다
고향
김민지
해거름 울긋불긋
찢기어진 붉은 노을
가고파도 아니 가고
보고파도 아니 보니
배돌며 서른 해가 두 번이나
휘돌까 두렵기만 하구나
옛동무 뿔뿔이 흩어 살아
어느 즈음에나 만나련가
얼기설기 얽히어진 노을은
눈물이 그렁그렁
내 가슴에 멍 같은 먹물이 들어
먼바다 바라본 까치놀은
윤슬이 되어
그리움 속에서 반짝인다
* 배돌다 : 한데 어울리지 아니하고 조금 동떨어져 행동하다.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 까치놀 : 석양을 받은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
고향
김사빈
지금도 고향 어귀에 들면
꽃잎만한 설레임
그리운 이름들이 더러는 아파오고
묻어둔 세월 한자락이
별빛으로 물든다
30년전, 동문다리 뽕밭 사잇길 끼고
울며울며 매달리는 어린 것들 차마 떨치며
서울로 간 어머니, 도시로 간 어머니
그 눈물만큼이나 긴 장항역 새벽 기차소리
내 마음 울고 가고
뒤돌아보고 타이르며 내닫는 차창 너머로
자꾸만 하늘이 멀어 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움추린 동심(童心)에도
봄기운은 찾아와 따스했건만
잃어버린 고향의 품은 아니던 것을
오늘은 저 하늘에서 편안히 머물
어머니의 모습이
꿈속에서나마 보고 싶다
향의 소리
김상익
참으로 오랫만에
맞아보는 싱그럼
코끝으로 스며드는 흙내음이
온 심신을 평화롭게 잠재우고
우짖는 개골이 노랫소리에
선계가 어디메쯤 있을쏜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벼 이삭은
누런 이 드러내며 웃음 웃고,
파아란 하늘가로 넘나드는
참새들의 무리가
마음의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황혼이 묻혀가는 논두렁에
시나브로 드리워진 노을빛은
어둠을 살라 먹고
스며드는 땅거미가 노래 부르듯
논밭을 물들이며 달려온다.
까만 밤하늘을 유영하는 별들은
여지껏 보아왔던 그것이 아니며,
향내 또한 평상의 것이 아니어라.
고향의 내음 바로 그것이었어라.
밤새껏 노래하는 개골이의
정겨운 소리 들으며
혼탁한 도시에의 호흡과,
냄새를 바람 맡에 털어버리고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까만 밤을 지새운다
고향 생각
김선목
화성이라 내 고향
산딸기 따며 놀던 두메산골
대문을 열고 살고
마음을 열고 살던
서당마을 내 고향 그리워라
장승이 서 있던 장승배기에서
바라보는 절터와
고갯마루 서낭당의 돌탑은
터만 남아 전설이 되고
글 읽는 소리 구성지던 서당마을
옛 모습 생각이 난다
산천이 대여섯 번을
바뀌고 바뀐 지금도
꾀꼬리 한 쌍의 노랫소리는
옛 생각을 즐겁게 하고
숨어 우는 뻐꾸기 소리는
보이지 않는 친구가
그리운 내 마음이어라
시냇가에 얼음이 풀려 흐르고
하얀 눈이 시냇물 따라 길 떠나는
이른 봄날에
다정하게 손잡아 주던
친구가 보고 싶다
옛사랑 돌담길 초가지붕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진달래 피고 꾀꼬리 노래하는
고향이 그립지 아니한가
고향 생각
김소미
장작불 아궁이에
군고구마 익어가는
고향 집 부뚜막이
서럽게 그리운 밤입니다
소쩍쩍 소쩍새 소리
깊은 한 겨울밤 깨우는
추억 속의 그 구들목으로
눈구름 타고 달려갑니다
달빛 푸른 뒤뜰에
사락사락 함박눈 내리고
송이송이 흩어지는
그 아린 그리움들이여
너무나 멀리 와버린
나의 발자국만큼이나
긴긴 옛이야기 속으로
이 밤 줄달음 박질 칩니다
고향의 봄
김소미
봄 제비 넘나드는
처마 밑 석가래
무청 시래기
옥수수 씨눈 마르는
유년의 뒷 뜰
햇살 한 바구니 소복한
장독대 옆에
지금 쯤
제비 꽃 무리무리
피어 나겠다
그리운 고향 집
김소미
산새 소리 자지러지는
내 고향 두메 산골
조랑조랑 산 다래 익어가고
안지골 밭고랑에
옥수수 알알이 수정처럼 빛나는 곳
내 맘속에 향상 그리움 이네
앞 또랑 송사리떼
줄지어 숨바꼭질하는 시냇가
지금쯤 수양버들 하늘하늘
시름에 겨워 춤추겠네
장독대 옆 맨드라미
기다리다 기다리다
붉은 눈물 뚝뚝 흘리겠네
풀벌레 소리 애잔한 여름밤
어머니 무릎 베고 누어
옛 이야기 소리에 잠들던 고향 집
그 언제 다시 돌아가
쓰르라미 우는 호두나무 뒤뜰
은 달빛 툇마루 끝에 앉아 볼거나
쑥꾹새
김소미
앞산 뻐꾸기 뻐꾹 뻐꾹
뒷산 쑥국새 쑥국 쑥쑥국
아지랑이 밭고랑에 달래 냉이 씀바귀
찔레순 꺽어 물고 풀 피리 불며 달린다
보리피는 언덕에 종달새 휘바람 소리
안지골 가시나들 봄 바람이 난다네
진달래꽃 화관 쓰고 대소쿠리 옆에끼고
노랑나비 흰 나비 훠월훨 쑥 캐러간다
영자야 순자야 옥이야
부르시는 엄니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가시나들 노을 속으로 달음박질 친다
그날 저녁 쑥 된장국 밥상에 달님도 별님도
초가지붕 처마 끝에 새하얗게 자지러졌다
옛 고향에서는
뻐꾸기를 쑥꾹새라 했다.
추억의 플랫트홈
김소미
눈이 내리면
기차를 타야 겠다
큰 가방 하나 들고
차표를 사고
낮선 사람들 틈에서
집시처럼 헤매도 좋으리
눈 퍼붓는 날
고향에 가야겠다
쏟아지는 눈 발 사이로
미끄러지는 기차를
눈이 시리게 바라보리라
긴 경적 소리 울리며
추억의 터널을 지나
고향 역으로 달려가야겠다
가슴속에는 돌돌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옥빛 시냇물 소리 들려 온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기차를 타고 황혼이지는
아름다운 내 고향의
플랫트홈으로 달려 가볼 일이다
고향
김수미
울퉁불퉁 시골길
구불구불 고향길
덜컹덜컹, 흔들흔들
버스 안에 순박한 미소의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정겨운 고향.
마음이 따뜻하고 인정이 넘쳐나는
고향에는 언제나 평화로움이 가득하다
고향 가는 길
김수미
뿌연 흙먼지 피어나는
울퉁불퉁 돌밭 길
빼곡히 들어선 나무그늘과
구비 돌아 흐르는 시냇물의
흥겨운 휘파람소리
한 고개 넘어가니,
수줍다고 얼굴 붉히며
모여있는 산딸기들
두 고개 넘어가니,
반갑다고 초록융단 펼쳐주는
토끼풀밭 길
세 고개 넘어가니,
옹기종기 이마 맞대고
모여있는 작은마을
이곳이,
넉넉한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고향
김수잔
고향은
말만 들어도 포근한
엄마의 젖가슴 같고
오늘에 나를 존재케하는
한 알의 작은 씨앗 길러 주었지
그 고향을
오랜만에 찾아가도
구수한 된장 맛 옛 그 대로에
앞 뒤뜰 과일나무에
단감 대추 주렁주렁
푸짐한 풍년이라
애타게 기다리다
터져버린 가슴에서
알알이 쏟아진 빨간 석류알
쎄콤 달콤 그 맛 어디에 비할까
어느 해 봄날
아버지가 첫 손주 얻고
심은 기념 수 무화과 그루에도
뽈룩한 얼굴 경쟁하듯 드러내고
푸짐한 인심에 담고 담아도
무엇인가 한없이 안겨주는
내 고향 종갓집 옛마을은
아직도 파릇파릇
봄날 새싹 같은 희망이고
늘 푸름으로 마음 한복판에 앉아
생각만 해도 따뜻한 기운이
가슴으로 안겨오고
늘 애끓는 그리움으로
착한 마음 되어
어머니 품속 같은 포근한 고향
내 마음의 영원한 안식처다
고향
김숙경
먼 이야기
전설인지 모를 일
도심에서 숲의 냄새를 맡는다
보리밭에 간간이 섞인 곤밥숭이를 캐려다
바구니에 흐르는 구름을 따 담으려 했던
이야기 속의 한사람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
고향의 언저리만 떠올려도 아릿해지는 아픔으로
얼굴 없는 또 다른 상처로 남는다
몸짓 비릿한 실바람에
삐비 살찌고 자운영 연보라가 애상 했던 춤사위
아, 아 아 광풍에 씻기운
정작은 그리운 고향
먼 이야기
전설일까 회한일까 상채기에 새살은 돋고
영락한 가족의 초상이
세월처럼 아득하다
고향 이력서
김순진
나의 이름은 군고구마다
질화로에 둘러 앉은 겨울 출석부
나의 나이는 술래잡기다
언제나 가고픈 그리운 유년(乳年)
나의 학력은 그리움이다
못잊어 마시는 탁배기 한 잔
나의 주소는 처마 밑이다
지푸라기로 엮어 말린 무청 시래기
나의 성격은 청국장이다
청량고추 넣고 끓인 뚝배기 찌개
나의 특기는 손님 맞기다.
맨발로 뛰어나와 볼을 부빈다
나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
멍석에 고루 펴서 나물 말린다
나의 노래는 송아지 울음
어미따라 나간 들판 풀 먹는 소리
나의 피부는 고동색이다
깨부셍이 둘둘 무친 도토리묵이다
고향 지킴이
김순태
고향 언덕 위의 곧은 소나무는
성품이 아버지와 닮았다
일출의 희망과
낙조의 붉은 빛이
소나무 위에
우산처럼 펼쳐진 위압감은
아버지 삶이 엿보였다
저만치서 볼 때는
변함없어 보이더니
가까이서 보니 자신을 보호하듯
한 올 한 올 뽑아낸 솔가리가
아버지 가슴속에 쌓인 한처럼
소복이 쌓였다
듬성듬성 잃어야 하는 아픔과
춘풍이 불어올 때
한 올 한 올 채움 하는 이치는
지혜롭게 펼쳐놓은 삶을 보는 듯하다
자신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둔 솔가리가
곡풍에 부엽토 향기로 뿜어낼 때
성글 지신 아버지는
고달픈 농사일로 허리가 휜다
해를 거듭할수록
거북등같이 짝짝 갈라지더니
두꺼운 피부를 만들고
마디마디 휘어짐은
늙은 소나무와 같았다
삶의 굴레를 쓰신
아버지 어깨 위로
석양만이 훑어 간다
고향
김승택
지난 추석에 갔더니 옆집이 빈집이 되었고
이번 추석에 가니 뒷집마저 빈집이 되었다
동네 들어가는 도로 양쪽으로 코스모스는 여전히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신작로는 포장되어 세상은 좁아졌는데 이집 저집 빈집만 늘어갔다
낮은 담 넘어 빈집 마당에는 살아 있는 엄마의 부지런한 손길을 받은 무와 배추가 자라고 주인 없는 줄 모르는 대추나무 올해도 가지 축축 늘어지게 오지게도 열렸다
가을이 오는지도 모르는 매미들 대추나무에 달라붙어 마지막 합창을 하고 있었고
먼지 가득한 툇마루에는 길고양이 두 마리 집주인 된 듯 어슬렁거렸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몇 그루 아이들이 그리운 듯 지나가는 구름에 눈물을 보이고 철봉이며 시소는 잡초에 가려 뒷머리만 내어놓고 있었다
빈집이 더 많은 고향이지만 오랜만에 집마다 연기가 오르고 고소한 튀김 냄새가 풍겼다
팔순 부모들이 지키는 고향 자식들이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부모님들 가슴은 모래톱처럼 슬픔으로 젖었다
고향
김영길
고향 언덕 비탈길에 새봄이 오면
파릇파릇 피어나던 찔레꽃들이
실개천의 물길 따라 꽃피던 고향
버들피리 꺾어 불며 흥얼거렸다
시냇가에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한여름 밤 곡조 따라 울어대던 밤
개구리도 밤새 울며 소리 지르며
소낙비에 떠내려가 길을 잃었다
정들었던 내 고향을 떠나오던 날
뒤돌아본 그때 마음 서러웠는데
세월 속에 옛 추억은 쌓여만 가고
눈을 감고 고향 생각 그리워한다
번져오는 슬픈 생각 낙엽도 지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향 산천도
지는 낙엽 바람 따라 흩날릴 텐데
어린 추억 고향 생각 그리워진다
그리운 고향
김영길
내가 태어난 그리운 고향
고향 떠난 수 십 년에
또렷해지는 향수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만 쌓여만 가네
놀이터 삼아 뛰놀던 뒷 동산
어머니의 배내향이 흠뻑 젖어 있고
코에 익은 시냇가의 풀 비린내
흙냄새 풀 내음이 파고들어 온다.
노래하고 춤추며 거닐던
어린 추억의 학교 길 고향 하늘에
뭉게구름도 두둥실 오늘도
옛 추억을 기억할까 산야는 알고 있겠지
옛 고샅길 내가 살던 초가집은
사라지고 신작로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에 산을 구멍 뚫어
직통선을 연결하여 옛길을 찾아
볼 수가 없구나
고향 집
김영문
말복이 지난 어느 여름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에
뙤약볕으로 끓은 듯
대지의 열기가 숨차 오른다.
마당에 펼쳐놓은 멍석 위에는
빨간 고추가 양광에 움츠려들고
영글면 저절로 터져 버린
참깨 들깨를 수확하려고
또 다른 멍석위에 농심이 묶였다.
아침부터 들에 나가
논밭에서 김을 매고 와서는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나면
졸려오는 낮잠에
시원한 바람을 찾아서
사방 문이 활짝 열린다.
포플라나무에 앉아있는 매미도
한낮의 정적에 기가 질려서
소리를 지르다 말고
울음을 뚝- 그치니
자장가 삼아서 잠들었던 첫돌박이가
가만히 눈을 뜨고 베시시 웃는다.
내려 쬐는 늦여름 햇볕에
장독대의 간장 된장이 익어 가고
담장에 올려 놓은 호박 넝쿨에
마디 마디 호박이 열려서
알차게 영글어 가는 한가한 시골집.
쥐 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에
집을 지키는 삽살개마저도
그늘을 찾아서 코를 골고 있으니
찾아온 길손을
누가 나가서 마중하려나
향수
김영아
백설이 이름 모를
산자락에 하얀 융을 친다
흰눈이 즐거워 마냥 설레던
그 마음엔 어느새 먼지만 쌓였는지
인적 없는 외진 산골짝
새 바람 물소리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
와시랑 와시랑
낙엽끼리 부딪치는 소리
내 설움의 시원이 어딘지
알 순 없지만
두고 온 고향집이 그리워
정든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 수화기 들고 다이얼 돌리면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코끝이
아려옴은 애틋한 향수병인가
고향아 고향아
김영제
손바닥만 한
작은 땅덩이지만
지역마다
흙냄새가 다 달라
눈을 감고도
내 고향의 흙냄새를
알 수가 있다.
어쩌며는
그 냄새가 역겹다
말하겠지만
난 그 냄새를 맡으며
성장했듯이
도시의 화장품 냄새보다
훨씬 나으오.
그 냄새는 대대로
이 땅에서 살아 온
토박이들의
땀내와 분뇨내가
어우러진
세상에서 가장 짙은
향기를 가진 향수이리라
고향아 고향아
나 가는 곳마다
동행을 하며
무덤까지 함께
같이 가자
은은한 풀피리 소리
음에 맞춰
내 주위서 꽃이 항상
춤출 수 있게
나의 고향은
김영호
1
나의 고향은
김매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휜 어깨 위에 앉은
어스레 달빛이었다.
흔들면 나무들이 별들을
살구처럼 떨구던 밤,
소쩍새의 메아리에 물어오는 철쭉냄새는
산불로 타오르던 너의 이름이었고
허기 속에서만 내려와
빈뜰에 가득찬 흰 눈송이
온몸으로 딩굴어
입어도 입어도 알몸만 비치는
투명한 옷이었다
나의 고향은
밤이면 더욱 숨찬 물소리
꺼억 꺼억 울부짖다 죽은 가슴앓이 누이
젖은 빨래처럼 쓸려간 바람 대찬 강
하얗게 삭은 연탄 모양의 해가
모가지가 잘린 수수밭으로 들어가고
서녘으로 쫓기는 까마귀의 부리엔
누이의 신발 하나 물려 있었다
2
나의 고향은
여름 해의 지친 발을 씻겨주고
낮달의 땀이 밴 등을 밀어주던 물고기들
동산의 화초들 들어가 머리를 감고
누나들 가슴띠를 풀어주던 서쪽새
수줍은 얼굴의 냇물, 냇물 마을이었다
흰구름에 악보를 그리며 날던 종달새 울음소리
논둑의 콩알들을 부풀리고
미루나무 키를 높이 키워
나의 두 귀는 그 끝가지에 올라서서
깊은 밤 귀가하는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를 기다렸다
풀을 뜯던 어미소를 몰고
마을로 들어온 저녁 종소리
손녀를 앞세운 몇몇 노파를 부축하고
예배당 안으로 걸어 들던 보리꽃 마을
교회 마당엔 늙은 개 한 마리 귀를 세워
울려 나오는 찬송가속 주인의 목소리를 헤아리고
약물내기 연못 개구리 울음소리 밤구름 열어
별들을 떨구던
밤이 더 환하던 은하의 마을이었다
나의 고향은
고향의 부활 - 1978, 서울구치소에서
김영환
이 봄에 찢긴 하늘이
고요히 내려앉아
수인(囚人)의 잠긴 마음속에
고향의 봄이 떠오른다
매봉산 아래 왜가리 날고
산은 온통 꽃바다
나물 캐다 찬 만들고 솔순으로 술 빚어
먹고 마시고 그리고 일하는 고향의 봄은 삶이었다
이곳에 때아닌 눈비가 나리던 날이면
성황당 느티나무 아래 여인의 비명소리 들리고
대추나무골 아기묘에 애장이 일어나 춤추던 그날
기어이 돌씽이 처가 미쳐 날뛰던
고향의 봄은 죽음이었다
차라리 소리없는 눈망울이
들녘에서 들려오는
상여꾼의 노래를 듣지만 않았어도
배고파 담을 넘은
선이의 얼굴을 보지만 않았어도
화대 받아 서울 간 내가
책을 던지지는 않았을걸
옆방 사형수가 건네준
부활절 달걀을 들고 앉아
스미는 봄비 속에
지워도 지워버려도
되살아나는 고향의 봄이여
고향이 그리워
김옥자
저물어 가는
넓은 바다
흰 거품 위에
어디서 떠나왔는지
주소 없는 기선 한 척
쓸쓸히 누웠는데
기러기 한 쌍
고향이 그리워
그 위를 맴돌고 있다
고향
김용화
우리 동네
시집 온 이쁜 새댁들은
물을 긷다 풋살구 하나씩 몰래 따먹고
애기를 뱄다
처녀들은 달밤에
살구나무 밑에서 옷고름을 풀고
집을 나갔다
살구나무 올라가 가슴 죄며
한참을 찾아봐도 온통 푸르름뿐
그제야 얼굴을 내밀던
살구
살구 하나 따 먹고
늑대할배한테 코빠지게 혼났다
네놈들, 불알을 따먹을 테다
잠결에도 겁이 나
가랑이에 손을 넣고 있으면
나뭇잎 사이로 무수히 떠오르던 살구가
꼭 그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귀향
김용화
이제는 가리, 은하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 들어가면
우물가에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화안한 그 집,
흰 무명저고리 어머니
아랫목에 더운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박이는 곳으로
고향 전보
김은식
내 친구 푸른 소년 소나무에게
늙은 어머니 편지 부탁하고
작은 냇가 개울물 소리에겐
고향 소식 부탁했었지
떠나올 적 살구나무 아래
술래로 묻어 둔 유리구슬은
까만 눈을 가리고 별에게 소원을 빌며
아직도 작은 소년, 고사리 흙손을
눈 비비며 찾는다 하네
소꿉친구 내 각시 꽃순이가
윗마을 만치한테로 시집가던 날
하늘이 검어지더니
돌개바람이 일어
누렁이가 겁에 질려 짖어대고
소나기는 작은 개울에 성난 듯 불고
고향 마을 입구 진창길을
차가 들어오지 못해
어린 내 각시 꽃순이는
신랑 등에 업혀 갔다 하네
유리구슬이 눈물을 글썽이고
별들도 눈 가리던 그 밤
비에 젖은 내 친구 푸른 소나무
우정의 비 같은 눈물, 젖은 무게에
솔가지 부러져 울었다 하네
고향
김재덕
굴뚝에 하얀 연기 어머니 시름이요
나부낀 은행잎은 아버지 애환이다
솟대에 서성일 영혼 그리워서 못가네
잔치가 있는 날엔 온 동네 시끌벅적
가마솥 뽀글뽀글 석쇠엔 돼지 불알
목젖이 꿀꺽거리던 그 시절 어디 갔나
어른들 떠나시니 동네가 한산하고
사람이 바뀌어서 인심도 낯설더라
품앗이 나눈 정들을 하늘에서 나눌까
고향 생각에
김재덕
농게 짱뚱어 세발낙지가 노닐던
짓궂은 아이들 갯벌 헤집을 때
바닷물 가둔 저수지에 숭어 망둥이
파드닥 폴짝 신났다 신났어
소금 꽃 핀 염전을 둘러보는
아버지 숨 가쁜 발소리에
자갈밭 둥지 맴돌며 전전긍긍 도요새
공중부양한 종다리 눈치를 본다
논밭에 김매는 아낙의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지나던 제비의 날갯짓에 떨어지고
잠자리 모자 위에 살포시 앉은
공존의 그림이 그려지는데,
집 지킴이 은행나무 감나무
무궁화가 어우러진 울타리는
벌 나비, 풍뎅이 불러 숨바꼭질하다
참새의 입방아에 시무룩
선잠 깬 백구의 하품만 바라본다
돼지는 밥 달라 꿀꿀 꿀꿀
텃밭 헤집던 씨암탉들 잰걸음이
툇마루에 걸터앉은 아련한 스케치가
추억에 갇힌 가슴 속에 선명하다
마음의 고향
김정석
콧물 흐르던 추억아
어디에 있느뇨
애기 울음 소리 내는
무명의 새가 추억을 먹어 버렸느뇨
도깨비 풍덩 물에
추억이 잠겨 버렸느뇨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던
벌거벗은 추억을 찾아
고향 여행을 떠나자
혹시 많은 세월 보내는
돌배나무 한그루
철모르던 추억을 간직해 놓았을까
순수한 생각을 틀고
마음으로 고향 모습을 본떠 놓은
그 추억을 찾아
고독한 길을 떠나자
고향 가는 길
김정애
먼 추억의 파편들을
불러일으켜
벌거숭이 알몸으로 고향을 향한다
아직은 풋보리 일렁이는
보릿고개 목숨 바다
목 길게 빼고
마른침 삼키던 순이 할매
코끝에 스며드는 소금 내음
수마를 끌어올려 핥고 간 들녘
샛바람의 위력도 그리움 되어
물안개 아물아물 고향을 그린다
내 고향 가는 길은 멀어도 좋소
기다림에 지친 끝없는 긴 고통의
행렬이라도 좋소.
나,
오늘
백발 성성한 부모님 향해
샛바람 타고 고향을 향한다
귀향
김정애
들꽃이 부른다.
어서 오라 손짓한다.
뒷동산의 금강송 위엄과 위풍당당함으로
우릴 감싸 안는다.
고갯마루 언덕배기에 넋을 잃고 기다리는 임
그 임이 그리워 귀향을 준비한다.
고향, 어머니 품속같이 아늑하고 평온한 곳
그곳엔 날 기다리는 임들이 있는 곳
그 임들이 뼈에 사무쳐 귀향을 꿈꾼다.
앞 개울엔 물고기가 춤추고
뒷동산엔 종달새가 노래한다.
그곳이 그리워 향수병을 앓는다.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들꽃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어서 가야지 어서 가야지
임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어서 가야지
내 고향 가고 싶다
김정희
지금쯤,
누런 갈 보리밭 골 속에
목화가 크고
굽진 밭둑 너럭바위 쪽
산딸기 벌겋게 익어서 기다릴 텐데,
봉당 시렁에 얹힌 꽁보리밥
고추장 비벼서 먹고
소 몰고 춘매하고 냇가로 가면
뻐꾹새 울고
밤꽃 향기 산들바람으로 향기로워라
삐죽삐죽한 처마 깃 참새가 날아들고
예쁜 새끼 제비 두 마리
노란 주둥이를 다물고는 잠을 자는 곳
가고 싶다
논배미 그득한 물속에서
어린 벼 나날이 자라고
황새 놀다 가면
뜸 북새 울어 서울 가고 싶던 곳
허물어진 담장 인동초꽃도 예쁜데
아래채
디딜방아 새끼로 만든 손잡이 쪽에
큰 거미가 그물을 치고
밤새 벌레를 기다리며 졸고 있던 곳
가보고 싶다
고향(故鄕)
김종덕
양 가로 시내가 흐르고
가운데로 길게 펼치진 평화
냇가 언덕에 키다리로 뿌리박아
어디에서도 반겨주는 버드나무
버들강아지가 눈 틔우며
얼음을 녹이고
쩡 갈라진 얼음은
조각배 되어 떠난다
파릇한 논바닥엔
아가 흰 염소
팔딱거리며
뛰어 노닐고
풀피리 소리에
피비가 솟아오르고
달콤한 그 맛에
하루가 넘어간다
아카시아 향기에
뻐꾸기 짝 맞추고
임 잃은 까투리
목매어 우짖는데
아기 송아지 쟁기질하는
엄마 찾아 보채고
한숨 자던 누렁이
배꼽시계 소리 지른다.
뉘엿뉘엿 석양
이까리 쥔 꼬마 그림자
길게 늘어져 발에 밟히고
굴뚝 흰 연기
하루를 엮는다
살랑거리는 대나무 가지 사이로
맑디 밝은 아침 햇살
참새를 깨우고
지게 끈에 한 팔 걸고
나락 베러 나간다
먼 산 돌배나무
울긋불긋 손짓하고
코흘리개 아이들
묘사 떡 기다린다
아궁이에 타박 고구마
익어가고
기러기 떼 지어
서쪽 하늘 잠재운다.
대나무 가지
소복한 눈
휘어져 인사하고
여물 먹는 소
흰 입김에
군침 따라 나오고
햇살은 등 떠밀어
굼벵이 꿈틀거려
따스한 아랫목은
엉덩이를 붙잡고
중천에 떠오를 해
꽁지 끄잡고 누워있다
고향
김종삼
예수는 어떻게 살아갔으며
어떻게 죽었을까
죽을 때엔 뭐라고 하였을까
흘러가는 요단의 물결과
하늘나라가 그의 고향이었을까 철따라
옮아다니는 고운 소릴 내릴 줄 아는
새들이었을까
저물어 가는 잔잔한 물결이었을까
고향 가는 길
김종석
나 태어났던 곳 보고 싶어
그 속에 살았던 모습 그리며
비행기타고 내 고향 생각했네
막상 고국에 도착하니 갈 곳 없고
모든 것 변해 발걸음 움직이지 못하네
택시 타고 고향 가는 버스 터미널
해는 저물었지만 버스 있어
가면 여관에 자면 되겠지
버스 타고 고향 가는 길
차창 어두워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
어둠 속의 풍경도 그리움으로
가슴에 저며오는 걸 어떡하겠어
창에 눈 바짝 붙이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창 속에 흐르는 빗물 같은 어두움
흐르고 흘러 닦아낼 수도 없네
노란 방안의 모습들
모두들 행복할 것 같은 생각
고향 언덕
김종익
유년의 언덕 오르면
저녁 연기 모락모락
초가집이 나를 반긴다
퉁가리는 고요한 강물
힘껏 휘저어 놓는다
저녁 어스름에
물안개 오락가락한다
치매 걸린
샘터 늙은 정자나무
나를 몰라본다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큰 눈망울 순이에게
부크러워 하지 못한
그 말
오늘
울고 싶은
그리움이다
고향 생각
김준태
멀면 얼마나 아득히 있으랴
들기러기 논바닥에 엎드려 우는
남쪽 십일월의 저녁 어스럼
갈대밭 푸른 강물에 달이 안기면
아 꽃조개처럼 떠오르는 고향 아이들
- 아빠, 옆으로 먹고 옆으로 똥 누는 것은 뭐지?
- 오양간의 여물을 써는 작두란다!
- 으음, 그럼 …… 구멍 하나로
입이 되고 귀가 되는 것은 또 뭐지요?
- 그것, 그것은 옷을 꿰매는 바늘일 테지!
저녁상을 물리신 피곤한 아버지를 붙들고
지금쯤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새근새근 잠들어가고 있을까
상수리나무 골짜기에 예쁜 조약돌을 던지면
풍뎅이처럼 푸드득 빙빙 날으는
남쪽 십일월의 내 고향 아이들
제발 옆으로 먹고 옆으로 똥 누는 작두가 되지 말았으면
구멍 하나로 입이 되고 귀가 되는
못난 요술쟁이들의 꿈을 꾸지 말았으면
고향의 봄
김지우
개구리 긴 잠을 깨운 시냇물 소리
귓가에서 졸졸 흐르고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양지바른 곳 나의 고향집
돌담을 끼고 쟁기질 하던 아버지가
허기진 배 채우러 돌아오는 소리에
물오른 산수유 꽃이 반겨주니
종달새 쉬어가는 상수리 나무가지는
연초록의 잎새들로 싱그런 봄을
가득 채워나간다
산 허리 감고 내려온 바람이
민들레 꽃 하얀 나래에 봄 소식 실어
기약 없는 여정 서둘러 떠나 보내고
살랑이는 냉이꽃 흥겨운 몸짓에
내 어머니의 고단함이 베어있는 청보리가
따스한 햇살에 여물어가는 정겨운 그 곳은
나의 고향
그리운 고향
김찬석
내 고향 새미실
산도 들도 옛 그대로인데
반겨줄 벗은 어디로 갔는지
간 곳이 없어라
그 옛날 열녀(烈女) 나무 밑에서
공기놀이 자치기 하며
뛰놀든 개구쟁이 악동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여름 밤 찌든 더위를 못 이겨
너도나도 나무 밑에 모여 앉아
모깃불 놓고 잠 청하던 그때가
그립고 그립다
창밖은 어둠이 내리고 장대비가
하염없이 내리니 내 마음
옛 추억 속으로 깊게 빠져
잠 못 드는 밤이다
고향 명절
김철민
젖내 올라오는
내 고향의 그리움
투정하고 싶은 어릴 적 향연에
사립문 두드리는 치장한 얼굴이 보인다
그 품속 달려들면
반겨줄 듯
함박 웃는 얼굴이 날 만지작거린다
주름살에 박혀있는 자식들
하나 둘 세어보니
그건, 손때 묻은 추억
오르락내리락 열고 닫는
허허 웃는 웃음이 정을 나른다
부엌 칸에 걸린 치마폭으로 날 감싼다
고향에 서다
김철현
내 살점이 묻어 난 곳 그곳에 가면
새 살 돋듯 온몸은 근질거린다
어귀에 풍겨 오는 비릿한 내음은
여태껏 내가 그리운 고향의 색깔이다.
때를 따라 찍어 놓았던 발자국을 따라가면
골목마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터벅머리에 비벼놓은 코는 녹슨 대문짝에 번질거리고
까까머리에 헤매다 놓은 밤마실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집 앞마다에 서면 문패를 단 듯 이름마저 생생한 동무들은 멀리 두고
그리 높았던 담장 안마당이 훤히 뵈는 빈집을
바라보는 이제 우리는 나보다 더 작아져 버린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나 보다
내 고향에 가고 싶다
김철현
내 고향에 가고 싶다.
날 나무랄 사람 누구도 없고
무료함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곳
시답잖은 꼬투리 잡을 악이 없는
내 고향에 가고 싶다
기별이라도 닿으면 방장에 버선발로
먼 상거(相距)에서 달려 나와 어긋 맞춘 어깨로
당신보다 커버린 자식 안아주실 내 어머니
팔순을 짊어지느라 꼬부라진 허리에도
자식 위해 군불 지피는 정성이 남아 있는
내 고향에 가고 싶다
벌건 아궁이가 하품하듯 입 벌리고
오늘은 고구마, 사랑처럼 달라 하고
내일은 콩국수, 끄트머리 뭉텅 잘라
자식 이름 달아 숫자대로 구워내는
내 어머니 사랑이 구수하게 익어 가는
내 고향에 가고 싶다
집 나간 자식 행여 괄시받고 살라
여차히 우세라도 당할세라 새벽마다
어둠 길 헤쳐 기도 길을 여시는
내 어머니의 사랑, 그 크기는
혹여 제 자식 흉이라도 볼라치면
부지깽이 들고 뛰어오실 게다
고향
김태윤
고향이 무조건 그리운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 삶의 시작이었고,
돌 틈과 돌 틈 사이
논밭 사이, 사잇길
발자죽들이 엉겨 붙고
언덕과 언덕,
들풀, 들꽃들의 숨결들을
내가 안다는 것이다
마을의 전설을 익히 알고
코흘리개 친구들의 알몸도
안다는 것이다
물이 어디에서 오고
또 어디로 가며
어제는 어느 분이 세상을 등지고
또 오늘은 누가 오는 것인지를
살며시 안다는 것이다
까닭 없는 슬픔과 기쁨들도
내 그림자처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집을 지나도
그래서 그 언덕 그 들길
그 개울을 지나면 만감이 교차하고
울컥하는 것도 그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고향인 것이다
고향
김풍식
한때
나의 정겨운 고향이었던 서울 한복판
청계천의 물이 흐르고
삶의 터전이었던 청계천 일대엔
옛 추억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조차 알 수 없는
시골 촌놈이 다 되어
이곳 서울에 다시 돌아왔다
한때는 강남이 촌이었고
강북권이 중심권 이었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강남이면 뭐하고
강북이면 뭐하리오.
지금 내가 사는 이곳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으면
여기가 명당인 것을
고향의 추억
김해인
고향의 추억이란 화제의 북한화가에 그림을 본다.
눈 녹은 골 냇물가에는 빨래하는 아낙에 모습이 그리도 평온할 수 없고
풀빛이 파릇하니 돋아나는 언덕에는 안개 드리운 산자락 아래
이슬 맺힌 나뭇가지 연둣빛 잎새 사이에
새 들에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느 때나 다시 가볼 수 있으려나
아프지 않고 서럽지 않은 고향이었음 좋으련만
그래도 고향에 그림은 멍든 가슴 속에서도
이렇듯 애틋하게 자리하고 있으니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나
풀 냄새가 나고 있구나
송사리가 모여들고 있고
아
저기 개구리 한 마리 뛰어가다 돌아보고 있다
향수(鄕愁)
김해인
검푸른 산등성이 어둠이내려오면
눈썹달 흘러가는 은하의 하늘가
달맞이꽃 님을그려 애타는 저녁
어딘가에 나처럼 달보고 있을
윗말순이 휘파람불어 꼬여내어
무명바지 휘줄구레 젖을지라도
샘 도랑에 우거진 풀 내음 따라
이슬 내린 논밭길을 마냥 가며는
그 밤에 울던 쪽박새 오늘 밤도 울어주려나
향수
김향아
마냥 즐거웠던 길
행복에 겨워
콧노래 부르며 걷던 길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폼 나게 걷던 길
친구와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걷던 길
그 길이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이 난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잠시 잊고 살았던 길
연어가 고향을 찾듯
오늘 문득 되돌아가고 싶다
그 길을 걷고 싶다
그 땅을 밟고 싶다
그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
그곳에서
추억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텅 빈 마음의 주머니에 담고 싶다
고향의 유월
김현희
계절 따라 예쁜 색으로 갈아입는
동화 속 같은 그곳은 나의 고향
고향엔
잘 삭혀진 노모가
느릿한 세월을 만지고 있다
모내기 끝낸 다랭이 논에선
개구리 목청껏 노래하고
앞산 구렁목에선
향긋한 꽃바람이 불어오는 그림 같은 곳
이슬이 내리고 어둑해지면
소쩍새가 오늘 일기를 쓴다
어느새 천지는 보석 같은
수많은 별이 쏟아져 내릴 듯 하고
길을 나서면
반딧불이가 온 들녘을 차지하고
가슴엔 그리움으로 촉촉해진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
고향 생각
김형영
저 안개 걷히면
고향 보이리
가지는 못해도
먼 하늘에
가는 듯 눈 감아
길을 내어서
산길 들길
물길 내어서
그리움에 밀리어
가보는 고향
저 안개 걷히면
고향 보이리
고향 역
김형효
발걸음과 손길이 만나
오롯이 서서 눈길 주고받는다.
그때마다 말없이 주고 받던 밀어
살며시 접고 역에 당도하였다.
아무도 나와 맞아주지 않았지만
손길 눈길을 외따로 가져가지만
모두가 맞아주었다
사람들 날 멈춰 서게 하고
사람들 날 머뭇거리게 한다
어눌한 사투리 억센 손길
그 곁에 서면 어색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가도
오나가나 외따로 가나
자유로운 그곳에서
나는 오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언제나처럼 젖은 옷매무시로 살아오는
발길 손길이 된다
고향의 바람
김혜숙
문 열어라, 문 열어라.
내 고향 바다가 일으킨 바람은
대관령 넘어
영서의 옥수수밭을 다 지나서
쏴-쏴
쇳소리 내며 쇳소리 내며
타관(他官)살이 서툴어
문 잠그고 사는
나의 대문을 흔든다.
내 고장의 꽃들을 다 피우고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서울 사는 나의 집
고향 잊고 사는 나의 집
그래 가끔 거짓말도 잘하는
나의 집
잠근 대문을 흔든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앞마당 몇 포기 게으른 꽃나무들
내 고향 바람의 푸른 서슬에
놀라서 잠 깨어 꽃을 피운다.
있는 대로 모두 다 꽃을 피운다
고향 바다
김희경
넌 언제나 거기에 있고
정갈함이 싫증 나면
나는 타도록 그리운 너를 찾아 나섰다
뱃고동은 밧줄 거두기도 전에
겹겹이 내려앉은 세월의 주름을 밀치고
고향으로 바삐 치달았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품 속을 달려
땀에 절은 맨발로
두 팔 벌려 껴안는 어머니시여
형편없이 쪼그라든 당신 가슴에
지난날의 상처를 묻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돌아서는 나보다야
먼저 쓸쓸히 등을 돌리고
가슴 하나 가득
눈물 그렁이며 서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