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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雪) 4

Bollnow 2024. 8. 7. 15:09

장광규 -

장광규 눈 쌓인 세상을 보며

장석남 폭설

장석주 - 눈길

전근표 눈 내리는 날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정기모 첫눈

정미화 눈이 내리면

정민기

정민기 쌀밥 같은 눈이 내리네

정상만 눈이라도 내렸으면

정성수

정성수 - 눈은

정세일 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정세일 - 첫눈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정세일 하얀 눈이 소복 거리며

정세훈 야설(夜雪)

정연복 사랑 이야기

정영자 흰 눈 나리네

정완영 눈 내리는 밤

정윤목 눈 내리는 숲에서

정윤목 설야(雪野)

정일근 전봇대

정진규 눈 내리는 날

정채봉 눈 오는 한낮

정태중 눈이 내린 세상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회선 하얀 골목길

정회선 하얀 손님

조남명 눈사람

조남명 - 눈사람을 다시 보는 것은

조서연 눈 오는 날

조위제 눈 오는 날에

조철형 눈 오는 날

조태일 사랑

조한직

조한직 눈송이

주금정 -

주응규 눈 내리는 날이면

주일례 눈 오는 밤

차영섭 눈의 마음

차영섭 요즘 눈사람

차창룡

천양희 -

천양희 몇 번의 겨울

최명운 눈 위에서 핀 꽃

최명운 함박눈이 내리면

최수홍 -

최수홍 , 그리움

최영희 눈 오는 풍경

최한식 하얀 눈이 내리네

최홍윤 눈 내리는 산장의 겨울밤

최홍윤 설경(雪景)

하영순 고개 넘던 눈길

하영순 눈 오는 날의 기도

하영순 - ! 은백의 세계다

하영순 하얀 그리움

한상숙 눈길

허태기 눈 내리는 날

허호석 눈꽃

홍경애 - 눈꽃

홍대복 그대는 하얀 천사

홍대복 눈 내리는 새벽

홍대복 하얀 계절

홍인숙 눈이 내리면

황동규 이른 눈

황동규 - 조그만 사랑의 노래

황의성 눈이 내리면

황인숙

황인숙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황지우 겨울 산

황지우 눈보라

Robert Lee Frost -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

 

 

 

장광규

 

눈이 온다

티 하나 없이

솜처럼 부드러운

저 눈은

누가 만들까

어머니일까

누나일까

귀여운 꼬마일까

 

눈이 내린다

알맞은 크기로

적당한 간격으로

뿌리는 사람은 누굴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뿌릴까

아버지가 뿌릴까

솜씨 좋은 형이 뿌릴까

 

눈이 온다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고

생각도 쌓인다

 

 

 

눈 쌓인 세상을 보며

장광규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이면

마음도 따라 하얗다

슬퍼서 눈물 흘렸던 일

가슴 아픈 실수들

괴로워하며 좌절했던 일

즐거워서 좋아했던 일

잘했다며 웃었던 일

모두 다

지워버리고

잊어버리고

비워버리고

깨끗하게 꾸미고 싶다

 

 

 

폭설

장석남

밤사이 폭설이 내려서 소나무 가지가 찢어지는 소리

폭설이 끊임없이 아무 소리 없이 피가 새듯 내려서 오래 묵은 소나무 가지가 찢어져 꺾이는 소리, 비명을 치며

꺾이는 소리, 한도 없이 부드러웁게 어둠 한 켠을 갉으며 눈은 내려서 시내도 집도 인정도 가리지 않고 비닐하우스도 폭도도 바다도 길도 가리지 않고 아주 조그만 눈송이들이 내려서 소나무 가지에도 앉아

부드러움이 저렇게 무겁게 쌓여서

부드러움이 저렇게 천근만근이 되어

소나무 가지를 으깨듯 찢는 소리를

무엇이든 한번쯤 견디어 본 사람이라면 미간에 골이 질,

창자를 휘돌아치는

저 소리를

내 생애의 골짜기마다에는 두어야겠다

사랑이 저렇듯 깊어서, 깊고 깊어서

우리를 찢어놓는 것을

부드럽고 아름다운 사랑이 소리도 없이 깊어서

나와 이웃과 나라가 모두, 인류가

사랑 아래 덮인다

하나씩 하나씩

한 켜씩 한 켜씩 한 켜씩

한 자씩 두 자씩 쌓여서

더 이상 휠 수 없고 더 이상 내려놓을 수 없고 버틸 수 없어서 꺾어질 때, 찢어질 때, 부러지고 으깨어질 때 그 비명을 우리는 사랑의 속삭임이라고 부르자

사랑에 찢기기 전에 꿈꾸고

사람에 찢기기 전에 꿈으로 달려가고

찢기기 전에 숨는 굴뚝새가 되어서

속삭임들을 듣는다

이 사랑의 방법을 나는 이제야 눈치 채고

이제야 혼자 웃는다

눈은 무릎을, 허리를 차오르고 있다

눈은 가슴께에 차오른다

한없이 눈은, 소리도 없이 눈은

겨울보다도 더 많이 내려 쌓인다

, 사랑이란

저러한 대적(大寂)의 이력서다

 

 

 

눈길

장석주

 

종일 눈보라가 쳤다.

누구였을까.

눈보라 속을 뚫고 왔다가 돌아간 사람,

눈 위에 찍힌 어지러운 발자국,

그 옆에 족제비 발자국도 가지런하다.

 

언 내()를 건너는 눈보라,

 

눈 맞고 서 있는

자두나무야, 너는 외롭냐?

 

저문 뒤

귀가 큰 어둠과 귀신이 왔다가 돌아갔는데

눈길에는 발자국이 없다

밤은 삼경(三更),

다시 귀가 큰 어둠이 내려와 있다.

 

눈 그친 아침

밤새 눈보라 속에서 제 몸에 채찍질을 하며

달려간 바람의 흔적,

바람의 발자국들

 

 

 

눈 내리는 날

전근표

 

초가지붕, 앞마당 돌 담 위에 소복히

하얀 하늘 꽃 내리던 겨울날

 

구비진 산 허리에

소복소복 쌓인 눈 길을 걸었다

그리운 사람 가슴에 안고 걷는 길

혼자서도 외롭지 않았다

 

삽시간에 내 머리, 어깨에 앉은 눈은

맑은 맘, 텅 빈 가슴 속까지

내 맘 하얏게 빛 바래어서

영혼은 부자였다

 

세월은 흐르고

그때 눈 내리던 길을 걷는다

오늘도 눈은 어깨위에 자꾸 내린다

 

그리운 사람 가고

또 몇 세월이 갔어도

그 때 걷던 눈길은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소리 없이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작은 지붕 위에

전봉건

 

작은 지붕 위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창틀 속에 내리는 것은 눈이고

작은 장독대에 내리는 것도 눈이고

눈 눈 눈 하얀 눈

눈은 작은 나뭇가지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오솔길에도 내리고

눈은 작은 징검다리에도 내리고

새해 새날의 눈은

하늘 가득히 내리고

세상 가득히 내리고

나는 뭔가 할 말이 있을 것만 같고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을 것만 같고

한 사람 만날 사람이 있을 것만 같고

장갑을 벗고 꼭꼭 마주 잡아야 하는

그 손이 있을 것만 같고​​

 

 

 

첫눈

정기모

 

서둘러 떠난 가을이

햇살 가득한 양지쪽에서

숨을 고르는 동안

뽀드득

첫눈 내렸습니다

파랗게 낮달 걸렸던 나뭇가지에

아침을 알리던 작은 새의 깃털에도

늦가을을 붙잡고 있던 야윈 손등에

첫눈이 하얗습니다

책갈피에 고이 묻어둔 나뭇잎에서

오래된 첫눈 냄새가 나는 동안

한적한 오솔길 홀로 걸으며

가만히 한 계절 내려놓습니다

첫눈이 왔기 때문입니다

 

 

 

눈이 내리면

정미화

 

예전엔 눈이 내리면

마냥 좋아서 마당을 몇 바퀴

돌고 동네 길을 달렸었지

 

예전엔 눈이 좋아서

보리밭에 나가 친구들과

눈싸움하고 뛰어 놀았지

 

지금은 눈이 와도

색 바랜 추억만 눈덩이처럼

커져만 갑니다

 

 

 

정민기

 

하얖고

부드러운

양털이 날린다

넓고도

눈부시게

푸른 하늘 목장

양 떼들이

뛰어놀며

날리는 하얀 솜털

소복소복 쌓이면

뽀드득 뽀드득

발자국 남길 텐데

새하얀 털실로 짠

하얗고 부드러운

엄마의 마음이다

 

 

 

쌀밥 같은 눈이 내리네

정민기

 

쌀밥 같은 눈이 내리네

밥그릇 같은 지구에 담겨

누군가가 배부르길 바라네

 

나도 지구에 담겨

아픈 그 여자가

한술 뜨길 바라네

 

 

 

눈이라도 내렸으면

정상만

 

새하얀 꽃 눈 위에

그대에게 말하지 못 한

사랑이란 두 글자를 쓰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눈 꽃이 활짝 피어나거든

한아름 듬뿍 따서

그대를 생각하며

가슴에 안으렵니다

 

새하얗게 펼쳐진 들판에

발자국 하나 덩그러니 남겨지거든

그대 찾아와 곁에

발자국 하나 남겨주소서

 

새하얀 그리움으로 남겨지도록

 

 

 

정성수

 

눈이 내린다.

눈이 없어

차디 찬 가슴 위에

더듬더듬

내리는 눈

 

눈 없는 눈은

오밤중에도 환한 눈이고

한낮에도 캄캄한 눈이고

 

그리움에는 눈이 없어

내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쉴 때까지

눈을 뜰 수 없는

그래서 슬픈

 

송이송이 내리는 눈

눈이 없는 저 눈들

 

 

 

눈은

정성수

 

눈 내리는 밤에도 눈송이 속에

눈은 숨어서 번득인다

비 내리는 낮에도 빗줄기 속에

눈은 살아서 흔들린다

그대가 홀로 길을 거닐 때

부스러지는 모래알 한 모서리에서

그대 속살 속으로 눈은 빛나고

들여다보고 찢어져 나간 바람자락에서 눈은

허덕이는 소문 위를 뒹구는

신문 쪼가리 귀퉁이에서 눈은

일평생 내내 헤매는 사람들의 눈은,

그대가 돌아온 집

책상 위 투명한 유리컵 속에서 눈은

그대 속살 속 들여다보고

부동자세로 늘어선 벽속에서 눈은

일요일에도 먼지낀 거울 속에서 눈은

눈부시게 살아남은 식구들의 눈 번쩍이고

그대가 문득 죄의 알몸에 손을 대었을 때

손바닥에서 잠든 눈 깨어나고

일시에 사방에서 그대를 에워싸고

번득인다, 수천의 눈

달아나도 숨어도 그대의 손

살아있는 눈 속으로 하얗게 빨려 들어가고

이윽고 재만 남는 죄의 뼈

 

 

 

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정세일

 

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첫눈이 내리는 날에

잠들지 못하고 호롱불을 밝혀놓으신

당신의 창가에 소복이 쌓이고 있습니다

당신은 밤이 깊었는데도

첫눈이 내리는날 눈으로 오는

나를 보시기 위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시군 요

 

당신의 기다리시는 마음처럼

나는 당신의 창가를

나의 온몸을 부딪혀 당신의 창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창문을 열어서

나의 온몸이 함박눈이 된 것을 보신다면

보이는 모든곳을 당신가슴만큼이나

깊이 잠기도록 하얀 눈을 쌓아놓은

나를 보실수 있으실것입니다

 

당신의 창가에 눈으로 내릴 수 있음이

어찌 그리도 행복한지요

밝은 해가 떠서 나의 몸을 삭이더라도

당신의 창가에서 순결한 모습으로

눈처럼 하얀 꿈을 꿀 수 있으니까요

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당신의 창가에

있어서야 순결한 아름다움은 눈처럼 녹아서

가슴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창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아 주십시오

나의 온몸이 벌써 잠기고

당신의 마음의 들도

당신의 생각의 강도

당신의 바라보시는 앞산도

그리고 나를 업은

어린 생각도 잠기고 있습니다

나는 하얀 눈이 되어서 당신의 창가에

소리 없이 온밤이 다 잠기고 있습니다

 

 

 

첫눈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정세일

 

당신처럼 마음이 순결한

별 하나의 바램

첫눈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처음 날들의 생각

눈 내림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달려옴이 빠르면

별들도 골목길을 돌아

하얗게 서리

짧은 호흡을 하면서

지금쯤 저녁 길이 시작되는 곳

어두운 곳에

가로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면서 서있겠지요

그래서 당신처럼 마음을

가난하게 내려 봅니다

낮은 마음

그리고 조금은 질투의 마음까지도

별 하나의 바램처럼

지도도 없는

하늘위에

아름다운 여행에 초대되어

천사의 날개를 달아봅니다.

하얀 눈처럼

그래서 다시 아름다운 날에요

당신 마음을 바라보면

설렘 하나로

나의 그리움이

날아갈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겨울처럼 마음이 새 하얗다면

언제든 그리움을 향해

별들의 지도를 보내봅니다

마을을 지나고

골목길을 지나고

나의 그리움 속으로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늘은 하얀 눈처럼 달려올 수 있도록 말에요

 

 

 

하얀 눈이 소복 거리며

정세일

 

하얀 눈이 소복 거리며

내가 잠들어 있는

창문을 두들기며 내리는 날은

눈처럼 함박웃음을 가지고 있는 나는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기만 합니다

눈이 내리는 소리는

창문도 하얗게 눈처럼 비치고 있어서

나의 하얀 설렘은

눈이 내리는 밤에는 계속됩니다

 

가슴에 눈을 하나가득 담을 수

있는 추수가 끝난 맨몸뿐인

담옆에 있는 우리 집 논처럼

나도 눈이 내리는 날은 가슴속에

함박눈을 마음가득 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얀 마음을 보여주는 눈이

내리는 날은

내가 늘 달려가는 논길도 묻히고

신작로가 있는 언덕도

풀잎들이 겨울외투를 입은 그 들녘도

온통 다 덮어버려

나의 어린눈으로 바라보는 논길도

신작로가 있는 언덕도

그토록 넓게 보이는 들녘도 온통

다 하나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토록 하얀 눈이 내린 날은

나의 생각도

나의 마음도

나의 어린 달음박질도 달릴수 없도록

나는 그 눈 속에 다 묻혀서 눈이 됩니다

함박눈처럼 뽀드득 소리를

낼 수 있는 눈이 됩니다

하얀눈이 내리는 날은

비로소 이제야 내가 함박눈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야설(夜雪)

정세훈

 

이렇게 추운데 얘네 들 춥지는 않은지 모르겠네.”

왜 안 춥겠어요, 이렇게 추운데.”

 

두메산골

북풍 한파를 뚫고

말씀들이 날아와 앉으신다.

 

자식들을 모두 서울로 떠나보내고

벽촌에 외로이 남으신

늙으신 말씀들이,

 

밤새도록

아파트 단풍나무 위에

하얀 눈이 되어 앉으신다

 

 

 

사랑 이야기

정연복

 

겨울 찬바람을 알몸으로 버티어 온

나목(裸木)의 가지들과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만나

서로 뜨겁게 보듬어 안는다

처음에는 사르르 녹더니

쌓이고 또 쌓여

이윽고 가지마다 눈꽃이 피네

그래서 가지들은 따뜻하다

허공을 맴돌던 눈송이는

오붓이 제 집을 찾는다

삭풍 한번 몰아치거나

한 줌의 햇살이 와 닿으면

덧없이 스러질 사랑인데도

저 여리고 가난한 목숨들의

단단한 포옹

찰나의 눈부신 동거(同居)

 

 

 

흰 눈 나리네

정영자

 

메마르고 숨 가쁜

도시에

흰 눈 나리네

 

 

딛고 선 땅,

칙칙한 시멘트 위로

흰 눈 나리네

 

주고 받기의 겉치레 철학이 난무하는 동네

 

세월은 결을 삭이고

감싸주기

껴안기

기도처럼 말이 돌아도

 

얼룩지고, 먼지 쌀인

오늘에 오늘이 젖어

 

하얗게 눈 내리면

부끄러운 마음,

창밖에 흐를 뿐이네

 

 

 

눈 내리는 밤

정완영

 

산과 들, 마을과 숲, 고목나무 가지까지

한집안 식구 되어 한 이불 속 잠이 든다

한밤 내 눈은 내리고 등불 혼자 타는 밤에

 

 

 

눈 내리는 숲에서

정윤목

 

어여쁜 사람과 함께 산길을 걸어갑니다

그리워하였던 마음 뭉클해져 오고

고마워하는 은혜로움 길마다 길다랗게 꼬리를 뭅니다

하늘 보면 사르락 소리 없이 내려오는 흰 눈 정갈하여

어머니 세상 오, 순결한 꿈 마구 피어오릅니다

 

굽어보니 숲속 신기로움

바람의 벽이 있었습니다

하얀 벽, 길다란 나무 위 흰 빛 차갑게 단절된 공간

적막한 고요가 소복소복 쌓여있습니다

 

더불어 내 안 차오르는 언어들

기어이 노래를 부를 땐, 눈꽃 송이들 춤추고

숲속은 고요로 헹굼질하여 노래는 희어집니다

순간, 살갗 닿으면 녹아 없어지는 눈 위로 나의 눈물을 뜨거이 포개어봅니다

먼 길 높은 곳에서 수고로이 더불어 달려온 길

형체 없이 녹아 뵈지 않는 결과, ()

 

나와 그대의 삶도 그저 눈꽃 송이

보송보송 내려오는 두 개의 눈꽃

 

 

 

설야(雪野)

정윤목

 

희디 흰 순수의 하늘 아래

초록이며 황금물결 일렁이던

사계(四季), 지나간 시간들 춤을 춥니다

흰 머리카락

하얀 눈 소복소복이

눈물처럼 아름다와라

 

풍만해진 하늘 주시는 은총

한가지 빛으로 여기 저기

응시할 때

뜨거이 차오르는 열망

삶 온 것처럼 간절하리니

 

지나가는 시간마다

웅장하고 고귀한 만남들

새겨두리라

흩날리는 눈발처럼

녹아 없어지는 사멸이어든

 

 

 

전봇대

정일근

 

은현리 겨울 들판을

전봇대가 걸어가신다

하루도 쉬지 않고

뛰엄뛰엄 발자국 남기며

들판을 건너 마을을 지나

마을을 지나 험한 산길을 따라

키다리 아저씨가 찾아가시는 곳

솥발산 7부 능선에 웅크리고 있는

하늘 아래 저 먼 첫 집

양철지붕을 인 오막살이에

밤마다 삼십 촉 알전구가

따뜻하게 켜진다

 

 

 

눈 내리는 날

정진규

 

눈 내리는 날, 거기가 어디였지? 밖에서 그에게 전화를 거네 이 한 마디만으로도 우리들의 대화는 통하네 길이 열리네 나는 알면서도 다시 묻네 거기가 어디였지? 내 털실 목도리를 뜨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만 코가 빠졌다고 다시 풀어야겠다고 그는 말하고 나는 너무 아름답고 깊어서 다시 감탄사를 쓰고 싶었다고 그래서였다고 그걸로 털실 코를 다시 꿰어보라고 말하네 눈 내리는 날, 운악산 조공마을 외길, 시오리 숲길 거길 지금 가보자고 지금 떠나자고 나는 다시 말하네 들키고 싶지 않은 길, 누가 먼저 발자국을 내면 어쩌겠느냐고 나는 말하네 그는 또 코가 빠졌다고 다시 풀어야겠다고 말하고 나는 당신을 위해 사둔 속옷과 향수를 오늘 드리겠다고 그걸로 코를 다시 꿰어보라고 말하네 눈 내리는 날, 거기가 어디였지? 밖에서 그에게 전화를 거네

 

 

 

눈 오는 한낮

정채봉

 

그립지 않다

너 보고 싶지 않다

마음 다지면 다질수록

고개 젓는 저 눈발들

 

 

 

눈이 내린 세상

정태중

 

제법 많은 눈이 내렸어요

 

세상이 깨끗해 보이는 순간이네요

아픔과 시련을 덮어 주는 듯

온통 하얀 눈뿐인 오늘입니다

 

나뭇가지도 오랜만에

새 옷을 입어서 그런지

포근하게 보이네요

 

모두가 깨끗하고 따뜻한

마음의 옷 한 벌 서로에게

선물했으면 좋겠어요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 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얀 골목길

정회선

 

미로 같은 좁은 길 따라

함초롬히 걸어간 두 발자국

하얀 눈 위에 고운 흔적 남겼어

 

이른 새벽 다정스레 걸어간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 따라

보조를 맞추어 예쁜 자국 남겼어

둘은 연인일까 그냥 우연이었을까

 

그 길을 따라 걷는 나

뽀드득 소리에 참새들 잠 깨우는

하얀 골목길을 아련한 당신을 추억하며

한 발 한 발 내 안의 그리움 안고 걷는다

 

앞서 간 당신 흔적 지워질까봐

새벽 희뿌연 가로등 조명 아래로

조심스레 하얀 골목길을 홀로 걷는다

 

내가 걸어간 인생 길 뒤에는

어떤 흔적이 추억으로 남을까

그저 당신의 그리움 떠오르면 좋을 텐데

 

 

 

하얀 손님

정회선

 

깜깜한 밤

모두가 잠든 때

손님이 왔어 하얀 옷을 입고

 

소리도 없이

온다는 기별도 없이 와서

나를 그리움으로 이끌어 낸다

 

나뭇가지

지붕과 앞마당

온 들판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그리움

 

너를 보니

어두운 내 맘이

영롱한 마음으로 채색 되었어

 

그리움아

언제나 아무 때나 보고프면

예고 없이 날 찾아와 안기어 다오

 

그리고

나의 보고픔을

달래 줄 따스한 손길이 되어 주세요

 

나의 바램은

내가 꿈에서도 기다리는

님의 소식을 한 아름 안고 오는 거예요

 

 

 

눈사람

조남명

 

동네 어귀 홀로

앉은 듯 서 있는

야윈 눈사람

그리움

몸속에 안고

제 속을 비우며

망부석인양 서 있다

사랑했던

순결한 그리움은

뜨거운 피로

몸속을 녹여 내린다

녹아

먼지만 남을 때까지

그리워하다

거기 남는다

 

 

 

눈사람을 다시 보는 것은

조남명

 

눈사람을 보는 것은

속 전체가 깨끗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듬직하고

우리 민족이 입었던

흰옷을 입었기 때문이오.

 

눈사람을 다시 보는 것은

차고 냉정하지만

속이 온화하기 때문이오.

 

탐욕 없이 제 속을 비워내고

그 자리에 만족하면서

짧은 생을 묵묵히 마감하기 때문이오

 

 

 

눈 오는 날

조서연

 

눈이 내리는 날이면

잊어버리고 있던 그 옛날

맑고 고운 엄마의 다정한

품속 향기가 그립습니다

엄마 품에서 나는

추운 바람 냄새가

그 어떤 향수보다는 향기로웠습니다

꽁꽁 언 어린 자식의

작은 두 손을 잡고

엄마의 달콤한 입김으로 호호 불어

따뜻한 가슴으로 부비부비 녹여

꼭 끌어 안아줬던

엄마의 이쁘고도 애달픈 사랑

엄마한텐 특별한 향기가 있었습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기다리기라도 했듯이

빨강 목도리와 하얀 비닐우산을

밭쳐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매번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 짜릿짜릿 한 감격과 행복감을

당신께서도 즐기신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의 가슴에선

감동의 향기가 흘러넘칩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엄마의 그 향기가 그립습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 눈길을 어느 중년 여인 하나

빨강 목도리도 하얀 비닐우산도

없이 걷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

소리 없이 쌓이는 눈에서

엄마의 가슴에서 나는

싸한 바람의 향기가 납니다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시큰한 눈물도 흐릅니다

엄마가 온 것만 같습니다

모습은 반백의

중년의 어린아이가 행복하게

눈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추억이란 이르듯 설레고

아름다운 슬픔인가 봅니다

 

 

 

눈 오는 날에

조위제

 

순결함이 내린다.

하얀 그리움이 내린다.

행복 하자던

발자국 찍으며

팔짱 끼고 걷든 길

지금은 가고 없는

첫사랑 그 여인

잊혀졋던 숱한 사연들이

하얀 송이송이

소리 없이 내린다.

하염없이 내린다

 

 

 

눈 오는 날

조철형

 

눈 오는 날

카페에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은

나의 심장을 쾅쾅 밟고 갔느니

 

그 큰 두눈에 그렁그렁 눈물달고

빨간 코트에 하얀꽃

송이송이 얹어 오시려는 님아

 

오늘처럼 눈 오는 날

우리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

그냥 펑펑 울어 버릴것 같다

 

 

 

사랑

조태일

 

첫눈이 내린다

어디고 없이 제멋대로

내리고 내리는 것 같지만

내릴 곳을 보아 가며

서둘지 않고 내린다.

첫눈이 내린다.

지상의 왼갖 성명聲明들을 잠재우며

지상의 왼갖 낙서들을 지우며

한량없이

하이얗게 내린다

높고 높은 하늘을 지나서

가파른 절벽을 지나서

풀잎들의 머리 위를 지나서

움직이는 것들 위에 내린다

숨 쉬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꿈꾸는 것들 위에서 내린다

오오, 오오, 소리치지는 않고

오오, 오오, 그 입 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귓바퀴 근처에 내린다

보아라, 보아라, 소리치지는 않고

보아라, 보아라, 그 입 모양만 보이며

우리들 눈앞에

뺨 비비며

첫눈은 그렇게 그렇게

붐빈다

 

 

 

조한직

 

퍼 얼 펄

퍼 얼 펄

하늘에서 꽃나비 나네

 

둥실 두둥실

큰 나비 작은 나비

한데 어우러져 나네

 

사뿐사뿐

하얀 춤 덩실덩실

하늘에서 내려와

 

하얗게

하얗게

하얀 꽃나비 허공을 나네

 

 

 

눈송이

조한직

 

하얀 춤 덩실대는

저 먼 곳

너는 그리움이런가

 

가까이서 하얀 꿈을 꾸듯 너울대며

내 품에 닿아 눈물이 되는 하얀 실체

너는 정녕 그리움이런가

.

천사처럼 너울너울

내 품에 사르르 안기누나

 

어둠에서도 속마음은

어찌 그리도 하야며

어찌 그리도 보드라운 거니

 

내 마음도 너처럼

하얗고 보드라워지고 싶어 손 내미니

내 품에 사르르 녹아드는 너

 

 

 

주금정

 

네 가지런한 치열(齒列)의 나라에도

오늘 눈 내리고 있는가.

눈 내려 잘 정돈된 세월의 또아리

풀고 있겠는가.

 

해발 몇만 킬로미터 상공 어디쯤서

지금도 찢어지고 있을 구름의 육신

그 살점들 하늘을 덮어

숲과 숲의 경계를 지운다.

 

간혹은 불빛 고운 창가에 모여

몇 시간이고 맴돌다가

커튼이 열리면 와락 달려들어

유리창에 부딪혀 스스로 울음이 되어가는

서서히 슬픔이 되어가는

 

그러나 오래 바람에 깍이면 알지

육각형의 사슬 풀리며 살점들

다시 만나 얼싸안는 소리

서로의 살 속에 가만히 뿌리내리며

유리알 위면 어디든 둥글게 자라는 힘

 

눈과 눈으로, 입술과 입술로

무릎과 무릎으로 마주설 때

슬픔을 녹이는 더 큰 슬픔 있음을

그것이 우리 시대의 사랑법임을

 

 

 

눈 내리는 날이면

주응규

 

오랜 허물을 가리가리 풀어헤치듯

흰 눈이 사뿐히 내리는 날이면

현실에 안착하려 가쁘게만 질주하던

이내 마음마저 추억 속을 더듬으며

편편이 흩날립니다

 

형언(形言)할 수 없는 삶의 무게도

추억이라는 울타리 안에 놓이면

아름다운 풍경이 됩니다

 

불현듯이 생각나는 아련한 날들은

아름다운 추억이라서

하얀 미소로 피어납니다

 

오늘처럼 눈 오는 날이면

그리움은 눈송이와도 같이

가슴에 부슬부슬 내립니다

 

 

 

눈 오는 밤

주일례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까닭이야

펑펑 쏟아지는 저 함박눈에게 물어봐라

 

답이 없다고 한들

답이 있다고 한들

 

심장에 깃든 고요만큼 무거우랴

 

 

 

눈의 마음

차영섭

 

눈은 꽃 마음

꽃송이를 닮은 하얀 마음

눈은 별 마음

어둔 밤에도 길을 인도하는

눈은 천사의 마음

살포시 잠든 나를 찾는 꿈나라 같은

 

눈은 어린아이 마음

춤추며 함께 즐기며 잘 노는

눈은 어머니 마음

추울수록 포근히 이불이 되는

변화하는 마음

때론 비로, 때론 눈송이로 대지를 찾는

 

 

 

요즘 눈사람

차영섭

 

요즘 눈사람은 어디 갔을까

요즘 고드름은 왜 안 열릴까

겨울인대도

눈은 아니 오고,

 

새벽 방문 열면

마당에 달빛 같은 하얀

눈포단은 온데 간데 없어,

기다리던 손님이 그립기만 하구나

 

겨울이면 마냥 꿈에 그리던

하얀 손님,

요즈음엔 만날 수가 없네

 

 

 

차창룡

 

바다로 흘러가 버리던 당신의 사랑이

오늘 이렇게 소복이 쌓여 있으니

세상 곳곳이 당신의 몸이어서 황홀함 한량없지만

차마 당신의 몸 밟고 갈 수 없음이여

 

빗자루로 당신의 몸 쓸어 한쪽으로 치우며

사랑은 결국 아픔임을 확인하고야 뼈저리다

바다로 흘러가 버린 당신의 전생이

전생이 아니라 생생한 현생임을 알알이 만지면서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새하얗게 증명해야 했던가

미처 쓸지 못한 당신의 몸은 사람의 발에 밟혀

반들반들한 미끌미끌한 투명해지는 얼음

당신은 이렇게 사랑을 견고하게 증명해야 했던가

 

알 수 없다는 나의 표정이 당신의 얼굴에 비칠 때

당신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듯 땅 위에 쌓였지만 끝내는

눈물을 데불고 바다로 흘러가는 사랑이여

 

 

 

천양희

 

눈을 보고 있는 그대 눈 속에

어느새 눈이 녹아 눈물이 되었네요

눈물은 왜 눈처럼 녹지 않고

눈 속에 자꾸 고이기만 할까요

고여서 자꾸 넘치기만 할까요

 

눈을 맞고 있는 그대 눈 속에

어느덧 눈이 쌓여 눈길이 되었네요

눈길은 왜 눈물처럼 녹지 않고

눈 속에 자꾸 쌓이기만 할까요

쌓여서 자꾸 높아지기만 할까요

 

 

몇 번의 겨울

천양희

 

하늘 추워지고 꽃 다 지니

온갖 목숨이 아까운 계절입니다

어떤 계절이 좋으냐고 그대가 물으시면

다음 계절이라고 답하지는 않겠습니다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봄이라고

아주 평범한 말로

마음을 움직이겠습니다

실패의 경험이라는 보석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내가 간절한 것에

끝은 없을 것입니다

 

 

 

눈 위에서 핀 꽃

최명운

 

무위도식한 사람도

열심히 뛰며 산 사람도

흥망성쇠 관계없이

세월은 유수 처럼 흘러 연말이다

수백 번 뜨고 진 해와 달

그것에 맞게 움직이며

쏠리는 대로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모두가 아쉽다는 십이월

어쩌면 넉넉한 달이다

발품이나 머리를 써 쌓았던 물건

슈퍼마켓에서 물건 골라 사듯

나눠서 쓰는

겨울은 편안함의 시작이지 않은가

꽃같이 고운 서릿발

어긋나거나 부딪침이 없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겨울이면 좋겠다

 

 

 

함박눈이 내리면

최명운

 

함박눈이 내리면

그에게 데이트 신청해야겠다

대지를 하얗게 눈으로 덮이면

새하얀 세상처럼

품은 감정 솔직 담백 터놓고

사랑한다고 고백해야겠다

 

함박눈이 내리면

그에게 여행 가자고 말해야겠다

열차를 타고 해안선을 달리며

짙푸른 겨울 바다도 보고

굽이 굽은 계곡 은근한 풍경 보듬듯

마음과 뜻이 통하는

둘만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햇솜처럼 탐스러운

함박눈이 밤새도록 펑펑 쏟아지면

예스러운 찻집에서

그윽한 국화차를 마시며

눈 쌓인 산자락처럼 가뭇없더라도

포근한 그대 매력에 빠져

낭만적인 달콤한 성취감 맛보고 싶다

 

 

 

최수홍

 

아무리

북풍한설 눈보라가

시끄럽고 거칠고 거세게

휘몰아쳐도

 

언제나 그랬듯이

눈은

살며시 소리 없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 그리움

최수홍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

 

그리움이 소리 없이

조용히 내 곁에 찾아오듯

하얀 눈이 내린다

 

 

 

눈 오는 풍경

최영희

 

하늘에서 눈이 오네

다독다독 이불 끌어 덮어주던 어머니 손길처럼

하늘에서 눈이 와

- 세상

하얀 눈 이불 덮어주네

 

하늘에서 어머니 사랑처럼

눈이 내리네

욕구불만 아이를 달래듯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폭신폭신한 눈 이불 덮어주네

 

왁자지껄하던 거리도 집도 자동차도

금세 잠든 듯 고요하고

마술에 걸린 듯 요동도 못 하네

어머니 손길 같은 고요함

세상이 온통 쌔근쌔근 잠이 든

착한 아가의 얼굴처럼 평온하네

 

- 나도 저 포근포근한

사랑의 마술에 걸리고 싶어라

눈맞으러 가야겠네

 

 

 

하얀 눈이 내리네

최한식

 

눈이 내리네

하얀 눈이

당신에 마음에도

하얗게 흰 눈이 펑펑 내리네

흰 눈이 내리면 내 임에 생각,

 

그날에 좋았던 아름다운 추억들

지금도 눈 오는 날에는

그때가 그리워

함박눈을 맞으며

그 임에 생각에 젖어 봅니다.

 

좋았던 시간 지금은 나 혼자

창문 밖 눈 오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그때의 아름답던 시간을

회상해보며

그이와의 추억을 그려봅니다

 

 

 

눈 내리는 산장의 겨울밤

최홍윤

 

외로운 산장에

이렇게

첫눈이 하염없이 내릴 줄이야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 외로운 밤에

펄펄 내리는 눈송이만

속수무책으로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간간이 들리던

재 넘어 외딴 마을

개 짖는 소리도 점점 멀어지고

 

내 곁에는

마실 술, 한 방울도 없이

적막 속으로 내리는 눈송이도

나와 같이 외롭습니다

 

혼자 지새우는

외로운 산장에

눈을 퍼붓는 겨울 밤하늘이

 

얄밉도록

가혹하게

몹쓸 짓을 하고 있습니다

 

 

 

설경(雪景)

최홍윤

 

우리는

하얀 눈꽃에 탄성을 질렀지만

 

너 나 없이

하이얀 눈꽃이 핀 나무들은

 

상처 난 자존심에

새봄을 벼르고 있었다

 

 

 

고개 넘던 눈길

하영순

 

눈 소식 들으면 옛 날이 생각난다

겁이 없었음인지

간이 컸던 것인지

눈 온 뒷날 시골 간다고 한들을 잡고

고개를 넘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하얀 들이 좋았고

하얀 산이 좋았다

겁 없는 철부지 그 때 무사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지금은 자동차는 물론이고

11호 자가용도 끌고 나가지 못하는

겁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세월이란 놈이

그래서 돌아보면 모두가 그리움이다

하고 노래 불러 본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오는 날의 기도

하영순

 

지상의 허물을 덮어 주는

큰 사랑 앞에

내 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다가서지 못하고 바라만 봅니다

 

편견 없는 당신의 사랑이

가녀린 마음에

촉촉한 그리움으로 젖어

순백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허물일랑 묻어 버리고

하얗게하얗게

티 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끝없이 펼쳐지는

당신의 뜻

하얀 눈길 위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발자국을 남기게 하소서

 

 

 

! 은백의 세계다

하영순

 

세상이

신기하리만치 동화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앙상한 가지는 없다

싸릿대 가느다란 가지에도

메마른 풀잎에도

하얀 눈꽃 옷을 입었다

 

언제

내 마음 저토록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보았던가?

저 아름다운 눈매

저 순수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자연의 신비가 동화의 나라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여기서 무었을 찾을 것인가

숨죽이고 잠든 땅

내 어머니

숭고하리만치 고귀한 대지는

고요 속에 잠이 들었다

 

쉬쉬!

저토록 고귀한 순수를 깨우지 말자

다가설 수 없는 내 발걸음

이대로

이 자리에 눈사람이고 싶다

 

 

 

하얀 그리움

하영순

 

가끔 하얀 눈 밭에

강아지처럼

뒹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이 땅의 허물을 덮어주는

하얀 눈 밭

일 년 내 말없이 푸른

저 소나무

얼마나 꽃을 피우고 싶었을까?

나도

소나무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싶다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하얀 그리움의 꽃

 

 

 

눈길

한상숙

 

세상에 눈꽃이 날리는 날엔

들풀도 나무들도

하얀 면사포를 쓰고

축복의 세상을 노래한다

동행의 기쁨에 벅찬 감동으로

하얀 융단을 밟고 걸어갈 때면

내 뒤에 남는 하얀 발자국

마치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

순수하고 이쁜 추억만 만들라고

세상이 청하는 약속 같아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할머니가 걷고 어머니가 걸어오신 하얀 눈길

나의 하얀 발자국으로 인해

흙색으로 스며들었으니

먼 훗날 내 인생의 흔적도

하얀 발자국처럼 깨끗하여

누구라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내 발자국 언제든지 흙 속으로 사라져도 좋으리

 

 

 

눈 내리는 날

허태기

 

따끈한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 창으로 다가서서

꽃비처럼 흘러내리는

눈송이를 무심히 바라보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하얀 백지가 되어

 

고향을 그리면

고향이 다가오고

어린 시절을 그리면

옛 동무가 찾아준다.

 

커피의 진한 향을

혀끝으로 음미하면서

떨어지는 눈송이에

넋을 맡기면

 

흘러내리는 눈송이 마다

그리운 사람

사랑하던 사람들이

꽃잎처럼 피어나고

지난 시절의 시린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눈꽃

허호석

 

저 눈밭에

하늘 과수원

눈꽃이 화안하다

 

밤사이

하늘의

은혜로운 말씀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저 하늘 밭에

은하의 별빛

막 눈을 뜬 햇살이

무너지게 열렸다

 

아침 종속에서

쏟아지는 해

그 해에서 나오는 아이들이

 

하늘을 가고 있다

천국을 가고 있다

 

 

 

눈꽃(雪花)

홍경애

 

소복 소복

내려오는 하얀 눈은

숭고한 회상들의

장엄한 행렬

그리고 황홀한 눈부심이었네

 

활짝 열린

마음의 창은

미래를 합창하는

대자연의 설경

소리높여

메아리 치네

 

재촉하는

싱그러운 삶은

희미해진 시상 더듬어

차라리

하얀 눈꽃으로 덮고만 싶네

 

 

 

그대는 하얀 천사

홍대복

 

아나 한 드레스에 순결한 그대

우주에서 내려온 백옥 같은 하얀 천사

설 향으로 피어나는 청순함에 취하노라

사계 중

겨울에만 피어나는 맑고 깨끗한 꽃

그대는 꽃 중의 꽃 고귀한 사랑이여

간밤에 내려앉은 하얀 눈꽃처럼 아름다워라

 

 

 

눈 내리는 새벽

홍대복

 

하얀 백설 소복소복

내 마음에 내려앉네

 

포근한 솜이불같이

따뜻하게

내 마음 덮어 준다

 

내리는 눈은

어떠한 조건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만가만 백옥처럼

내 마음의 창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지난 겨울 새벽에

 

 

 

하얀 계절

홍대복

 

동창으로 스며드는 밤을 잊은 슬픈 잔영

못 잊어서 그리운 임 꿈길에서 만나려나

밀려드는 그리움에 창문 열고 밖을 보니

첫눈 내린 감나무에 날아든 까치 한 쌍

잘 익은 빨간 홍시 까치밥은 새촘하다

 

그리움만 움켜쥐고 사라지는 하얀 계절

찬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작은 잎 새

날카롭게 파문 일어 마음 한편 숨어들고

삼켜 버린 슬픈 사랑 숯덩이 된 까만 가슴

납 색 얼굴 하늘빛에 그리움은 목이 탄다

 

 

 

눈이 내리면

홍인숙

 

눈이 내리면 무엇을 할까

그리움의 무게 가늠할 수 없듯

침묵으로 내리는 그 맘 알 수 없어도

반갑다 소리치며 투정이나 부려볼까

 

눈이 내리면 무엇을 할까

소리 없이 그리움으로 눈이 내리면

홀로 낸 발걸음 쓸쓸해

되돌아 꼭꼭

세상 끝 네게까지 걸어가 볼까

 

눈이 내리면

불빛 희미한 찻집에 앉아

70년대 유행가 들으며

낡은 유리창 너머 천 갈래 흩어지는

허무의 눈가루를 바라볼까

 

눈이 내리면 무엇을 할까

흰빛이 흰빛을 삼키고

쓸쓸함이 쏟아지는 거리에 서서

얼굴마저 지워진 이름 하나

이제야 소리쳐 불러볼까

 

, 눈이 내리면

初經의 설렘으로 눈이 내리면

그 눈밭에 얼굴 묻고

하얗게, 하얗게 울어나 볼까

 

 

 

이른 눈

황동규

 

갑자기 안타까와진다

이 도시 이 잘 닦인 안경이

상처입은 집들이 차례로 붕대를 풀다

땅이 진창으로 바뀌는 골목 입구에

늙은 거지 여자가 전선주에 상체 세우고 앉아

흥얼대고 있다

기름먹인 천으로 만든 신발이 벗겨져

나란히 눈을 맞고 있다

방금 떨어지는 눈송이를

아프지 않게 가볍게 맞고 있다

 

 

 

조그만 사랑의 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의 눈

 

 

 

눈이 내리면

황의성

 

아득한 눈길을 걸어가는

내 마음이 등불이다

아침이 와야 잠들 수 있는 가로등처럼

너를 만나야 잠들 수 있는 등불

 

이승의 삶이었을까

너를 사랑하고 아파한 날들

사랑했던 만큼

난 아직도 더 아파해야 하는데

 

저승의 꿈이었을까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한 날들

멀어져간 만큼

난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끝내 볼 수 없음에 대한 보고픔이

그리움임에야

 

까치가 날지 않는 아침이면

비라도 내려야 한다고

아파했습니다

 

꽃이지는 밤이면

달빛이라도 서러워야 한다고

눈물지었습니다

 

부질없이 바라보는 설국엔

침묵만이 흐르고

 

야윈 가슴으로 목말라 하며

아직도 널 사랑하고

아직도 널 그리워하는 나는

어디쯤에나 나가

기다리는 눈사람이 될까

 

그대가 떠나간 발자욱을 지우고

그대가 떠나간 길을 지우며

이렇게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데

 

기다림 마저 없었다면

내가 머물 곳은 어디였을까

 

 

 

황인숙

 

무슨 걸음이 저럴까?

비틀 비틀 비틀

저 뒤를 쫓아가면

비틀 비틀 비틀

난 볼 수 있을까?

비틀 비틀 비틀

 

발자국이 찍힌다

발자국이 어지럽게

종으로 횡으로 대각선으로

사지 팔방으로 그들은

부딪혀도 부서지지 않고

정연하게 흩어지고

어지럽게 모인다.

분주히 안테나를 세우고

그들은 교신하고

그들은 보이지 않고

발자국이 어지럽게

자꾸만 자꾸만 찍혀

자기의 발자국이 자기의 발자국을

자기의 발자국이 남의 발자국을

자꾸만 자꾸만 밟으면서 자꾸 주파수를 바꿔 교신하면서

 

비틀 비틀 비틀

걸음을 멈추니 보인다

볼품 있어 커다란

하나의 발자국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황인숙

 

눈이 온다

먼 북극 하늘로부터

잠든 마당을 다독이면서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갸우뚱거리던 눈송이가

살풋이 내려앉는다

살풋살풋 둥그렇게

마당이 부푼다

둥그렇게, 둥그렇게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마당은 커다란 새가 됐다

그리고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작은 새가 내려앉는다

 

저 죽지에

뺨을 대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의 잠을 깨우지 않고?

 

 

겨울 산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 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 있게 하고

눈밭을 민 히말라야 소나무 숲을 삼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 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나믹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

Robert Lee Frost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 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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