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 2
안계종 – 설날 아침에
안윤주 - 설날에
양광모 - 떡국을 먹으며
양광모 - 설날
양애경 – 설날에
여관구 – 설날 고향의 향기
염경희 - 세뱃돈
오광수 - 설날 가는 고향길
오보영 – 설 그리움
오보영 - 설날
오보영 - 설날 고향에 가보았더니
오보영 – 타국의 설
오세영 – 설날
오애숙 -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오애숙 – 설날과 윷놀이
오애숙 - 설날 떡국 먹으면서
오애숙 – 설 때가 되면
오애숙 – 설 이맘때면
오애숙 – 음력 설이 주는 나의 의미
오일도 – 새해 아침
오정방 – 고향 집 설날
오탁번 - 설날
오탁번 - 설날 아침의 화선지 한 장
오탁번 - 하뿔싸
오혜령 – 덕담
원영애 - 설날에
유국진 - 귀향
유안진 - 고운 세 살배기로
유용주 - 세배 가는 길
윤갑수 - 까치설날 밤엔
윤고영 - 설날이 되면
윤극영 – 설날
윤만주 – 정월 초하루의 행복
윤보영 - 설날 아침
윤보영 - 설날은
윤용기 – 설날
윤의섭 – DMZ 설날
윤의섭 – 설 풍경의 만남
윤제림 - 설날
윤주영 - 설날 아침
이길옥 – 설날
이길원 – 2000년 설날에
이남일 - 설날
이덕규 - 까치 누이
이문조 – 설날
이상례 - 설날
이성희 – 설 귀향길
이승복 – 설을 맞아
이시영 – 덕담
이영권 – 설날을 맞으며
이여균 - 설빔
이영지 – 설날이 되면
이영지 – 우리우리 설날은
이원문 – 막내의 설
이원문 - 불효의 설
이원문 – 설날
이원문 – 외갓집 설
이원문 – 잃어버린 설
이원문 – 정월
이원문 – 타향의 설
이원문 – 화롯불의 설
이재환 – 설날 아침
이정록 – 까치밥
이정록 - 까치설날
이정희 - 가래떡
이진기 - 설날
이진숙 – 설날에
이한명 – 설빔의 추억
이해인 – 복스러운 사람
이해인 - 새해 마음
이해인 - 설날 아침
이환규 – 설 대목
이효녕 - 어머니의 설날
임석순 – 설날(愼日)
임석순 – 설날, 어버이 생각
임영준 - 설날을 기하여
장수남 - 설날 새 아침
장종섭 – 설
장희한 – 설날 아침
전병윤 – 세시풍속 - 설날
전상순 - 설 가까이
전수덕 - 설
전숙 – 설날에는
전영금 – 설 명절
정기현 – 설날
정민기 - 구정
정민기 - 설
정민기 – 음력 2020년 경자년
정세일 – 설날의 풍경
정세일 – 설날이 오면
정연복 - 설날 떡국
정영숙 - 돈 벌기 쉬운 설날이 왔다
정우영 - 설날 기침
정윤목 – 숲속, 작은 설날
정은희 – 명절
정종명 – 설익은 설
정채봉 - 첫마음
정태중 - 설날
조남명 - 설날 아침에
조서연 – 명절
주선옥 – 설날의 마음
차영섭 - 설날 떡국 앞에서
차영섭 – 원단(元旦) 아침 풍경
채린 - 설날
최남균 - 까치설날
최명란 – 크레파스
최예은 – 기쁜 설날
최이천 – 그 시절 정월 초하루
최진연 - 설날 아침
최홍윤 – 설날
하영순 - 설날
하영순 – 명절이 서러운 사람
한인수 – 명절(설)이 다가오면
함동진 – 복주머니
허윤정 – 설날에
허정인 - 2021년 구정에
홍대복 - 설날
홍해리 - 설날 아침에
설날 아침에
안계종
험산 준령 거친 삶의 세월 앞에
풍랑과 사투 속에 이겨낸 바울과
폭삭 주저앉은 욥의 가정과 같이
강을 건넜더니 산이 가로막았고
산을 넘었더니 강이 있었습니다
삶의 여정은 누구나 같았습니다
엄동설한 눈 속에 피는 설화의 꿈
풍랑을 헤쳐나가는 어부들의 용기
풀과 돌을 골라내는 농부의 희망
누구나 가는 길에서 살아남으라
내 가슴에 심장이 나를 일으키니
멀리 바라보고 걸음을 옮깁니다
설날에
안윤주
새해에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햇살의 눈부심은
분명 새로운 희망을 심으라는 알림이리라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지나간 시간 되돌아 후회하지 말고
새해 첫날이 주는 희망의 선물 품어 보리라
나이 한 살 더하는 설날에
세상을 향해 돌팔매질하지 않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하여 보련다
떡국을 먹으며
양광모
먹기 위해 사는 게 인생은 아니라지만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 어디 또 있으랴
지난 한 해의 땀으로
오늘 한 그릇의 떡국이 마련되었고
오늘 한 그릇의 떡국은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든든함이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설날 떡국을 먹으면
희망처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아물지 않은 상처마다 뽀얗게 새살이 돋아난다
설날
양광모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이 세상 가장 신명 나는 축제
삼천리 방방곡곡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고
윷놀이를 벌이면
눈은 차가웁게 쌓여 있어도
마음에는 성큼 봄이 찾아와
새해에는 더욱 아름다우세요
새해에는 더욱 활짝 피어나거라
이 세상 가장 따뜻한 기도를
주고 받는다
설날에
양애경
모두들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 것 같아
떠내려가는 옆 사람을 부를 여유도 없이
그래서 넋을 잃고 있다 보면
섬 기슭 여기에 하나 산 너머 저기에 하나
모래톱에 밀려와 있는 거지
서로 만날 수조차 없는 거지
누군가 다감하고 기운 있는 사람 하나 있어
봐요 이쪽이에요 이쪽으로 손 내밀어요
하고 잡아 끌어올려 주진 않을까?
같이 흘러가 주진 않을까?
새해 첫날 그런 꿈을
꾸어본다
설날 고향의 향기
여관구
그 옛날의
고향의 추억 속에서
향수를 비집고 뛰어나오는 그리움
그대가 보고 싶어 서성입니다
그리움이 굽이치는 마을의 골목길과
마음을 씻을 수 있는
냇가의 맑은 물은 그대로 인데
눈물로 피워놓은 꽃들의 향기는 간곳이 없고
친구들의 웃음소리만이
그 향기에 취해 미소 짓습니다
마을 어귀에 묻어놓은 추억의 마디마디 마다
파릇파릇이 움이 터
싱그러운 꽃향기가 그대 안부를 묻는 듯합니다
노을빛에 정갈히 헹궈낸 추억만이
내 가슴 틈새로 살며시 빠져나오는
고향의 향기가 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세뱃돈
염경희
도둑이 오려나 보다
새벽까치 노래하고
주홍빛 햇살은 거실에 눕는다.
딩동, 뎅 동~
강아지 여덟 마리가
우리를 휘 집어 놓는다
영혼은 가출하고
기둥뿌리 들썩이는 설날
쌈짓돈마저 술술 풀어 놓는다
설날 가는 고향길
오광수
내 어머니의 체온이
동구 밖까지 손짓이 되고
내 아버지의 소망이
먼 길까지 마중을 나오는 곳
마당 가운데
수 없이 찍혀 있을 종종걸음들은
먹음직하거나 보암직만 해도
목에 걸리셨을 어머니의 흔적
온 세상이 모두 하얗게 되어도
쓸고 또 쓴 이 길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종일 기다렸을 아버지의 숨결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시고요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냥 그냥 좋아하시던 내 부모님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이젠 치울 이 없어
눈 쌓인 길을 보고픔에
눈물로 녹이며 갑니다
설 그리움
오보영
이맘때만 되면
유난히
어머니 당신이 많이 보고싶습니다
자애로운 미소
따스한 손길
포근하던 당신 품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언제나 내 편이시던 당신
북돋워 힘주시고
어루만져주시던
당신으로 인해
나는 늘
든든했고 편안했습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어머니 그립습니다
스미어진 당신 사랑으로
나도
자식들 사랑하면서
복된 가정 이루며 잘 살겠습니다
설날
오보영
집집마다
마을마다
온 나라 방방곡곡에
가족사랑 훈훈하게 넘치고 있네
자식은 부모에게
감사하며 효도하고
부모는 자식들이
대견해서 품어주고..
사랑합니다
사랑한단다
당신들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너희들이 있어서
든든하단다
데워진 사랑 열기
추위를 녹여
먼데 있는 봄기운
서둘도록 재촉하네
설날 고향에 가보았더니
오보영
설날 고향에 가보았더니
내 고향 옥천엔
역시
옥천 사람이 산다
생각만 해도 좋고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고향
옥천엔
영락없는 옥천 사람 모습을 하고
옥천 말을 쓰면서
옥천 내음을 물씬 풍기는
옥천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
타국의 설
오보영
설이
설로서 다가오지 않음은
떠나 있어서라
정겨운 고향
푸근함이 덜한
낯선 풍경 때문이라
찾아주고
반겨 맞는 모습들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받을 마음도 줄
마음도
아예
깊숙이
넣어두고 있어서라
설날
오세영
새해 첫날은
빈 노트의 안 표지 같은 것
쓸 말은 많아도
아까워 소중히 접어둔
여백이다
가장 순결한 한 음절의 모국어를 기다리며
홀로 견디는 그의 고독
백지는 순수한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
새해 첫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혀 하이얀 산과 들
그리고 물상들의 눈부신 고요는
신의 비어있는 화폭 같지 않은가
아직 채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눈길에
문득 모국어로 우짖는
까치 한 마리
떡국 한 그릇 먹으며
오애숙
철따라 수목이 무성한 엘에이 겨울
새해가 돌아왔고 어느사이 구정이
내일 모래가 된 까닭에 한 통의 전화
코로나 팬데믹으로 떡국 배달된다고
양로보건센터에서 아버님께 선물과
함께 보내니 대기해달라는 메세지
그 옛날 쌀을 정성스럽게 씻어내어
또아리 머리에 얹고 양푼에 담은 쌀
머리에 이고 떡방앗간에 갔던 기억
늘 상 먹는 떡국 식품 파는 상점마다
흔하디 흔한 까닭에 일주일 한 번은
꼭 라면에 떡국 넣고 떡라면 먹기에
떡국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기억
우리 일상 떡라면 인스탄트 식품으로
자리잡고 있어 설레임 사라진지 오래
그 옛날 떡국에 대한 옛 추억 가슴에서
물결치며 휘날려 오르고 있는 그 기억
한 살 먹는 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엄마치마자락 잡고 세상이 제것마냥
신바람에 촐랑이던 예닐곱 어린 소녀
추억 창 너머에서 씁쓸히 웃음 짓는다
설날과 윷놀이
오애숙
설날은 고유 명절로 음력 1월 1일 이며 설이라고 한다
아침에 조상에 차례 지내고 어른께 세배하는 고유 풍습이 있으며
그믐밤에 잠자면 눈썹 하얗게 샌다고 하여 날밤 지새우기도 했다
가정마다 거의 차례 지내고 세배한 후 민속놀이 하며 즐겼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동안을 정초라 했고 세배한 후에
대표적인 민속놀이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로 설을 행복하게 보냈다
민속놀이 윷놀이는 지금도 명절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모이면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어 장려하고 싶은 우리네 민속놀이다
윷놀이가 재미있는 것은 말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좌우되기에 흥겹다
교회에서도 신년이 되기 전에 송구영신 예배 바로 전에 윷놀이 해
흥겨움을 더하고 떡국도 한 사발 먹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어 정말 좋다
이역만리에서도 새해가 되기 전 빼놓을 수 없는 민속 윷놀이라 정이 간다
설날 떡국 먹으면서
오애숙
어릴 때엔 떡국 먹고 한 살 먹는다고'
철없이 좋아했던 기억 오롯이 떠올라
나이 먹어서인가 입가에 미소 번지며
이순의 열차칸 안에서 발 디디고서야
꿈 많던 그 어린 시절 그리움 살랑인다
새해는 꼭 이루리 몽실몽실 피던 결심
이젠 생각의 차원이 바뀌어 건강 향한
질주로 가는 순 번 없는 이치 등 떠밀려
순응해 가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 하며
조금씩 왔던 곳 향해 한 걸음씩 향한다
인생사 움켜잡으려면 없어진다는 것에
'욕심은 금물이다' 지금껏 살던 방향을
저울대에 달아 꼭 걸러 내어서 하늘빛
그 향기로 주변 돌아봐야겠기에 골골
백세시대로 살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네
설 때가 되면
오애숙
설렘의 물결
가슴마다 차고 넘치는
민속의 날 중의 설
온 가족이
조상에 차례 지내고
부모님과 웃 어르신께
세배 드린 후 받는 세뱃돈에
설레이게 했던 날
음력 1월 1일
일가 친척과 함께
윷놀이나 카드 놀이
하는 날이다
좀 더 거슬러 가면
널뛰기 연날리기 연싸움
팽이 치기 고누놀이등등
함께 하던 민속놀이
모든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진 사람이건
이긴 사람이건 신명나게
즐겼던 고유 문화
요즘 인터넷 게임과
스포츠와는 달라 어른과
함께 놀이 즐겼다는 것에
어릴 적 향수 스며 온다
설 이맘때면
오애숙
이맘때가 되면
그리움 하나 일렁이며
예닐곱 미소 띤 어린 소녀가
사립문 열고 들어온다
화롯가에서는
군고구마와 밤 익어가고
바암새 설빔 준비 하던 추억
가슴에 일렁인다
어른신 말 듣고선
어여쁘게 만두 빚어서
예쁜 딸 낳고파 만들었던
그 추억 피어난다
지금도 아주 머나먼
화롯가 추억 휘날리기에
빙그레 웃음꽃 띄우는
그 옛 풍습 기억나
이역만리 타향서
내 아이에게 전해 줄 때면
지금도 그 말 솔깃한 까닭에
정성스레 빚는다
음력 설이 주는 나의 의미
오애숙
어린 시절 중 가장 기쁜 날 있다면 설이다. 세배돈 때문이다
며칠있으면 그 옛날 어린 시절 그리도 설레이던 설 다가 온다
설은 한 간지가 끝나 새 간지가 시작되는 날로 낯설다는 의미며
삼가다, 설다, 익숙하지 못하다 그런 의미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날이라서 설 말고 다양한 이름 원일 (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단월(端月),연수(年首)신일(愼日)이다
삼국유사에 서기 488년 신라시대 비처왕 시절 최초로 설 쇠었으나
1910년 한일합방 후 문화 말살정책로 음력설 없애려했으나 못했다
세배 다니거나 설빔 차려입은 경우 먹물을 뿌려 옷에 얼룩지게 했으며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경찰을 동원해 감시로 탄압과 박해를 했다
설날은 한국의 2대 명절 중 하나로 음력 1월 1일 이며 이 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웃 어른께 세계하는 고유의 풍습이 있어 민속의 날이다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이름 정하여 공휴일로 공포 하였으나
1989년 민속의 날을 다시 '설날'이라 이름 바꿔 3일 연휴로 정하였다
허나 전통적인 명절 음력 1월 1일 설날(12월 31부터 1월 2일) 보다는
한 해의 첫날이라는 의미의 개념은 양력 1월 1일 양력설이 더 강하다
설렘은 누구에게나 있다. 양력이든 음력이든 새로운 걸 시도 할 수 있다
작심 삼일로 지칠 때 즈음 음력설로 인하여 뒤 돌아보며 일어서게 된다
새로운 결심을 상기 하며 오뚜기가 되어 질주 할 수 있어 감사한 일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계획의 차질로 넘어지지 않고 일어선다
새해 아침
오일도
한겨울 앓던 이 몸
새해라 산(山)에 오르니
새해라 그러온지 햇살도 따스고나
마른 가지에 곧 꽃도 필 듯하네.
멀리 있는 동무가 그리워요
이 몸에 병(病)이 낫고
이 산(山)이 꽃 피거든
날마다 이 산(山)에 올라
파-란 하늘이나 치어다볼까.
- 구(舊) 정월(正月) 초하루 아침 계산(桂山)에 올라서-
고향 집 설날
오정방
세상일 접어두고
고향 찾아가서
설빔으로 차려입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웃음꽃 맛있는 음식
배가 절로 부르리
타관서 멍든 상처
고향 가서 치료받고
그립던 일가친척
만난 곳이 낙원이라
덕담에 훈훈한 인정
해지는 줄 모르리
설날
오탁번
설날 차례 지내고
음복 한잔하면
보고 싶은 어머니 얼굴
재 볼 물들이며 떠오른다.
설날 아침
막내 손 시릴까 봐
아득한 저승의 숨결로
벙어리장갑을 뜨고 계신
나의 어머니
설날 아침의 화선지 한 장
오탁번
감나무 가지에 아스라이 매달렸던
까치밥도 어느새 동이 나고
밤새 함박눈이 쏟아져서
단군 할아버지의
무명 두루마기처럼
아이들의 남루와 헐벗은 나뭇가지를 덮으면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은
흰 화선지 한 장 크기로
문뜩 밝아오는 것이다
고드름이 뚝뚝 떨어지는
설날 아침이 되면
세뱃돈 몇 닢 쥔 고사리손은
겨울바람에 시리지만
잣눈이 내린 밭두렁 위의 까치처럼
한 살 더 먹은 설날의 아이들은
까치걸음으로 눈밭을 내달리며
이까짓 추위쯤 하며
아주 씩씩해지는 것이다
부럼 깨무는 보름이 오면
가지에 돌을 끼워서
대추나무 시집도 보내고
동무들과 연날리기를 하면
단군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옷고름처럼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 꼬리를
이마에 손을 대고 바라보는
마늘쪽 같은 아이들의 작았던 키도
쑥쑥 자라나는 것이다
인터넷 바다에서 온갖 정보를 체크하고
바라보는 한강의 하늘에는
그 옛날 설날 아침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단군 할아버지가
깜냥껏 그려보라고 건네준
흰 화선지 한 장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 위에 크레용으로 그렸던
거짓말 같은 아이들의 미래가
정말 펼쳐지는 것이다
하뿔싸
오탁번
까치설날 아침
두 돌잡이 외손녀가
두 손을 베꼽에 대고
하버지 하버지 하며
배꼽세배를 한다
5만원이 날아갔다
외손녀가
스무 살이 되어
멍게빛 배꼽 다 보이는
배꼽티 입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새배를 하면
5만원이 또 몇 장?
아니, 그때까지 내가 산다고?
하뿔싸!
덕담
오혜령
올해는 덕담 한 가마 반
작년보다 무게 더 나갔다
새배 온 영성 손주 손녀
딸 아들 사위들에게
모조리 풀어 먹이다
이뤄지이다!
뿔뿔이 흩어져 간 다음
내 입에서 나간 덕담 반추하며
큰 소리로 되풀이한다
이뤄지이다! 이뤄지이다!
오늘은 세배 받으러 뜨락으로 행차한다
울 안 가족 모두에게
해마다 꼬박꼬박 세배 받는다
이 집으로 이사온 지 21년
한 가족 된 후 공동체 일원으로
그들 향한 나의 절원
날마다 사무치고 있다
단체세배들 하시게
나무들에게 호령한다
세뱃돈 준비하지 못했네만
그 대신 덕담 선물하겠네
이 나무 저 나무 세배 끝나자
단숨에 덕담 줄줄이 잇다
벌레에게 먹히우지 말고
이파리 푸르르고 무성하시게
열매 달고 통통하시게
꽃망울 크고 영롱하시게
낮에도 꽃 피고 밤도 밝히시게
이슬 머금고 청초하시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마시게
영양 넘쳐 튼실하시게
휘지 말고 곧으시게
섭리에 순응하시게
온 세상에서 가장 말 잘 듣는 나무
온 땅에서 제일 옷 잘 벗는 나무
온 숲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나무
온 세계에서 제일 헌신적인 나무 되시게
한숨 돌린 후 신신당부한다
몸으로 때우고 몸으로 말하기
몸 내어주고 몸 바치기
몸인생 큰 본 되기
그대들에게 간절히 바라네
1년 내내 서로들 사이좋게 지내기
한 해 내내 나와 대화하기
사계절 내내 임 매만지신 손길 보여주기
열두 달 동안 생명력 증거해 주기
365일 동안 수용과 겸손 나타내기
모두 고개 끄덕끄덕할 때까지
같은 덕담 세 번씩 되풀이한다
21년 동안 나무들과 대화 시도했고
20년 만에 그들의 말 듣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교감한 오늘
한 10년은 젊어졌다
설날에
원영애
어머님 이사한 집에도
함박눈 내리겠지요.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마음처럼 부드러운 사랑이
도란도란 내리겠지요.
당신나라
언제쯤 갈지 모르지만
그 때 반겨줄 꽃 같은 웃음
이 땅에 내리고 있어요
아름다운 눈송이
손바닥에 받으면
눈물로 변할까봐
나뭇가지에 꽃으로 두었습니다
언젠가 명절에
아버지 산에 다녀오다
야금야금 마신
노란 주전자 막술에 취해
하늘이 돌고 땅이 울렁이는
그 때가 생각나 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먼저가신 아버지
어머닌 아버지가 그립다는 걸
그 땐 몰랐지요.
노란 주전자에 취해 세상모르던 철부지
이렇게 길러주셨는데
이젠 어머님도 안 계신 적적한 고향
어머님 같은 꽃송이만
들녘에 내리듯
마음을 덮어줍니다
귀향
유국진
내 눈에 익은 이 길 다시 돌아왔네
지나가는 사람들 아는 이 없고
저 산 이 산만 한가로이 그대로네
설날이라 때때옷을 입고
한껏 자랑하는 어린아이들
어느 집에는 윷놀이가 한창이라
웃음소리가 햇볕을 타고 반짝이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넘든 다리 너머엔
예처럼 등댓불이 반짝이고
바다 향기가
내 몸을 파랑새로 만드네
찬 바람을 뚫고
내 눈에 익은 이 길 다시 돌아왔네
화전길을 돌아 아지랑이를 보네
멀리멀리 해원의 무정 너머
아버지의 허연 도포 자락이 보이네.
고운 세 살배기로
유안진
하루 앞서 설날을 연습하는 까치
설날 색동옷 설빔 졸라서 미리 입어도
말 잘 들어 얻은 이름 고운 세 살배기야
널도 뛰고 밤 윷도 던져보고
가자가자 감나무, 오자나무 옻나무,
십 리 절반 오리나무, 따금따금 가시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양반 동네 상나무,
깔고 앉자 구기자나무, 마당 쓸어 싸리나무,
가다 보니 가닥나무, 오다 보니 오동나무,
방귀 뽕뽕 뽕나무, 데끼이눔 대나무,
참을 인자 참나문가, 칼에 찔려 피나문가…
보는 만큼 듣는 만큼 세상이 재미나는
아이로 돌아가 설날을 기다리며
까치설날 눈썹 셀라 잠 못 자는 세 살짜리로.
세배 가는 길
유용주
차가 수유리에 접어들자
화계사 계곡물 흐르는 소리 낭랑하게 들립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길은 곧 지워지고 뼈만 남겠지요
오랫동안 걸어본 사람만이
길의 정체를 알고 무릎 또한 튼튼하리라 믿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투명 겨울 길,
살얼음 복병의 눈매로 반짝입니다
사람이 흙을 닮으면
뼈는 나무로 남는가 봅니다
꿈결처럼 웃으시며
비수를 꺼내시는 당신,
까치설날 밤엔
윤갑수
어릴 적 까치설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지
엄니가 사주신 새 신발을 마루에
올려놓고 누가 가져갈까 잠을
설치던 추억
바람에 문풍지 우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어둠 깔린 문밖을
바라보다 밤을 새우던 설날에
아버지는 뒤척이는 날 깨우신다.
큰댁에 차례 지내려 동생 손 잡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어갈 때
질기고 질긴 기차표 통고무신이
눈 위에 도장을 꾹꾹 찍어놓고
기찻길을 만든다.
칙칙폭폭 기차가 레일 위로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간다.
마음의 고향으로
설날이 되면
윤고영
겨울 중심으로 냉기가 흐른다
시베리아에서 멀리도 건너와
창문을 달그닥이는 천애의 바람
모레 글피면 설날
그동안 아는 이들께 안부도 못 전했구나
중심에서 멀리 떠나온 게지
나목의 겨드랑이를 집적대는
천진한 겨울바람을 본다
장난끼로 건드려보는 이 겨울의 저잣거리
그곳에도 지금
아릿한 설날이 연기처럼 피어오를까
그믐날 별 무데기 초롱했던
고향 있는 하늘이 어데쯤인지
고독한 기억의 주파수에
귀 기울이고 있으려나
설날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지 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정월 초하루의 행복
윤만주
묵은해를 보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설날 아침에
부엌에서
익어가는 어머니의 사랑
소쿠리 가득 소담스럽다.
투박한 가마솥에
어머니의 가족애와
누나의 효심이 어우러져
보글보글
끓어오른 떡국 한 사발
비지땀과 곁들여
후루룩 들이키면
정월
초하루의 행복은
논밭에서 아이들의 연줄로
춤을 춘다
설날 아침
윤보영
설날 아침입니다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내린 눈이 세상을 덮었듯
오늘 받은 복도
내 일상을 덮었으면 좋겠습니다
덮인 복이
조금씩 조금씩
일 년 내내
조금씩 조금씩
웃음을 그렸으면 좋겠습니다
설날은
윤보영
설날
오늘은
세뱃돈을 받고요.
설날
오늘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요.
설날
오늘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요.
설날은
내가 주인공
내가 가장 행복한 날
설날
윤용기
섣달 마지막 5일장
어물전의 조기, 오징어
그리고 제사상 올릴 사과, 배
정겨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설 빔 나온 엄마와 코흘리개 딸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떡 방아를 찧으며
"펑"하는 뻥튀기소리에 놀란
할머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구춤을 춘다.
집집마다 굴뚝에는
하얀 실을 뽑아내며
따스한 정 덧입을 옷감을 짜나 보다
아이들은 새 옷 입고 동구 밖 개울에서
얼음판 지치며 추운 날도 없어라
DMZ 설날
윤의섭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의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늘이 보내는 경오의 푸른 말 내려온다네
눈이 덮인 능선을 몇 개 지나면
아스라이 희미한 송악이 뒤에 있는
DMZ 동산에 재두루미떼 주인인체하네
눈발 자국이 없는 때 묻지 않은 곳
찬바람 치대는 빙하의 개울 물소리
양 언덕에 묻힌 혼백을 위한 진혼곡인가
올해도 설날에 손에 손잡고
부모 형제 만나고 성묘하는
민족의 전승 명절 지켜가는데
얼어버린 냉곡(冷哭)이 새벽을 깬다
설 풍경의 만남
윤의섭
후회가 많아 주춤거리나
그리운 임 소식이 오지 않느냐
서산에 떨어질 듯 황혼이 운다
진실을 배우려고 떠난 임이여
귀인을 못 만나 방황했나요
척박한 황야에서 헤맸나요
그것만 보았어도 이제 돌아오소서
자존의 반석에 올려놓으면
작은 결실도 크게 쓸 수 있다오
누천년을 경험한 설 풍속은
그렇게 되풀이하면서도
오늘도 미련없는 만남이라네
설날
윤제림
부산 고모가 안고 온 갓난아기는
세배도 안 하고 잠만 잡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시끄러운데
세상모르고 잠만 잡니다
먹을 것도 많은데
잠만 잡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잠만 잡니다
설날 아침
윤주영
식구들과
떡국을 먹던 설날 아침
설 음식상 위로 덕담들이 푸짐하게 오가는데
울타리 헐린 빈집처럼
등허리가 허전한 것은
세월이 움켜간
헐렁한 머리숱 때문도 아니고
뽀얀 국물,
평생 자신의 등골을 진국처럼 울쿼 낸
지금은 계시지 않는
어머니 같아서도 아니고
올챙이 적 꼬리를 끊고
달리던 열차를 쫒고 싶던
개구리의 오금을
이제는 하나둘 버려야 하는
그것들 때문인가
설날
이길옥
나의 설은
설렘 그것이었다.
음식 냄새만으로도 배불렀고
배탈이 났다.
새 옷에 폼이 났고
새 신에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한 숨을 못 잤어도
할아버지의 가난한 쌈지에 눈독 들이고
아버지의 짠 여유에 기대를 걸었다.
나의 설은
그렇게 일 년을 설렘으로 기다렸던
꿈이고 희망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의 설은 어디에도 설렘이 없다.
꿈도 희망도 없다.
나를 의식하는 눈길에 밀려
찡하게 가슴 저미는 추억으로 돌아와
눈앞에 어른거리는 헛것으로 돌아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2000년 설날에
이길원
세기가 바뀐다고
미국도 유럽도
TV 마다 모두 소란스러운데
내 가슴만 싱겁다
해마다 설날이면 가슴에 새기던 다짐도
수없이 하던 맹세도
이 설날엔 없다
가슴 속이 비어 있다
누구에게 세배하기도 받기도 싫다
하늘 깊은 곳 바라보는 눈길만
그저 휑하다
모두 기다리는 새 천년인데
웬 일일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해는 뜨고 지고
바람 불고
마음 흐르고
설날
이남일
하얗게 해를 넘긴 설날은
꿈꾸는 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보고 있는 꽃보다
보고 싶은 꽃이 더 예쁜 것처럼
주고받는 덕담들이
온통 꿈을 기다리는 소망 같습니다.
설날이 설레는 것은
꿈을 채우는 기쁨보다
고난을 이기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까치 누이
이덕규
간신히 중학교 나와 맨발로 논두렁 밭두렁 두리반에 밥이나 퍼 이어 나르다가
남대문 시장통 먼 일가붙이 내의(內衣) 가게 점원으로 간
어린 누이가 적금 타서 집에 오던 날
까마득한 참죽나무 위에서 까작까작
너희들이 우는 소릴 처음 들었더란다
반창고 칭칭 동여맨 얼음 박인 손가락을 어머니 손에서 자꾸 빼돌려 감추며
얘야 서울엔 자장면이 흔터란다
언젠가는 꼭 너를 그곳에 데려가겠다던 누이가
그해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반송된 편지 우표처럼 빛바랜 얼굴로 돌아온 날
수수깡 울타리 밑
양 무릎에 얼굴 묻고 웅크린 아버지 야윈 가슴을
너희는 또 그렇게 까작대며 후벼팠더란다
옆집 삼촌들 뒷집 누이들 떼거지로 몰려오던 설날
우리 집 울대 측백나무 가지 위
훌쩍 날아와 울던 낯익은 네 울음소리에 나는 단숨에 행길로 뛰쳐나갔더란다
막차는 이미 떠났고
생각해 보니, 올 사람 하나 없는
동구 밖엔 송이송이 함박눈만 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더란다
설날
이문조
온 가족이 다 모인
집은 행복하여라
설날이면
더욱 쓸쓸해지는
어머니 아버지
살기가 힘들어
못 오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행여나
행여나
동구 밖 서성이는
그리운 모정 하나
설날
이상례
어떤 이는
대학에 붙어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취직하여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시집 장가들어
부모님 효도하고
어떤 이는 용돈 두둑
부모님 효도하고
이도 저도 아닌 나는
가슴으로
효도할 수밖에는
설 귀향길
이성희
1 - 차창에 스치는 낮설지 않은 풍경,
추억을 백지 위에 그린 들녘 사이로
줄줄이 차량마다 설래이는 가슴,
정성 들인 선물과 동심의 추억을 실었다
향수의 꼬리가 길을 막아,
추억 속의 고향은 너무 멀리 있었다.
뒤엉킨 설래임은 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2 - 아! 여기다. 어머니의 품
80년 세월의 풍상에 각인된
어머니의 얼굴과 손은
내 아가적 옹아리를 바라보며 내 손 잡아주던
그 환한 모습과 사랑이 가득하다
여름내 호박 몇 덩이를 지고 있던 뒷간의 처마는
편안한 모습으로 고드름의 수염을 달았다
아가가 자꾸만 만지고 싶어 하던
하얀 얼굴에 촘촘이 돋아난 수염처럼
겨울 산은 청승스럽게 병풍을 둘렀다
설을 맞아
이승복
허전하다
문뜩문뜩
가보고 싶은 곳
아우처럼 형처럼
사는 이웃사촌들
배산임수(背山臨水) 터잡고
이성산 자락
논, 밭 갈아
고향(故鄕)을 지킨다
나는
객지(客地) 타향(他鄕)에서
허수아비가 되었다
무엇을 지키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설맞아 갈란다. 내 가서
조상 산소에 절하고
친구 만나
대포 쏘고 올란다
왕대포 주고 받고
노지(露地)의 시름 달래고
올란다
덕담
이시영
이호철 선생 댁 세배를 다녀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마포 김민숙 집에 들러 차례상에 나온 대구찜을 발라 먹다가 젊은 송기원이 덕담이랍시고 불쑥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놈은 똥을 누고 난 뒤 돌아서서 제 똥에다 침을 뱉는 사람이더라.” 김민숙도 나도 송도 한참이나 배꼽을 쥐고 웃었지만, 아침이면 서울의 달동네 공중변소마다 아랫배를 움켜쥔 사람들이 줄느런히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시절의 일이다
설날을 맞으며
이영권
미인 눈썹 같던 달이 사라진
섣달 그믐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지
오늘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그래서 잠든 가족 누구든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아침에 놀리곤 했었어
그 말씀을 곱씹어 보았는데 설날은
그냥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
객지에서 설 쇠러 온 사람들과 한데 모여
전깃불도 없어 가물거리는 등잔불 아래
못다 한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메추리알 크기의 떡국떡 손으로 빚거나
방앗간에서 뽑아 온 떡가래 썩둑썩둑 썰고
겨우내 눌어붙은 묵은 때 벗겨내고
바느질 다림질로 설빔을 마련하고
장작 패고 마당 쓸고 묵은세배 다니고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차례 상에 올릴 음식들 준비하며
정지와 봉당과 마루와 문지방 그리고
장독대와 마당과 뒤란과 사랑방과 다락방을
수십 번씩 쏘다니고 오르내려야 했다는 거
잠시 눈 붙이고
동녘 하늘이 희붐할 때 일어나
온 가족이 맞이하는 설날 아침
설빔을 차려입으면 훤해지는 방안
덩달아 얼굴에 어리는 미소로 가장 먼저
아버지 어머니께서 안방 한가운데 앉으시면
우리는 마루 위에 도열하여 세배를 드렸어
차례로 덕담하시고 세뱃돈을 주시면
우리는 다시 마주 보며 세배를 나누었지
전날 밤 빚거나 썬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으며
나이도 한 살 먹었다고 의젓해 하며
서로 새해 계획 얘기하고는 서둘러
형제들이 함께 마을로 세배하러 나섰어
제일 가까운 친척 웃어른들께는
해가 동산 위로 떠오르기 전에 해야 하는 세배
인심 좋은 숙모님 오 원 십 원 세뱃돈 받는 재미
때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집도 있었지만
어른이 계시는 집일수록 세배꾼이 많기에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러다 길 위에서 세배꾼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로 예를 갖추며
새해 첫 만남을 허리 숙여 축하했었어
차례를 지낼 집이 팔구 호는 되어
해가 동산 위로 떠오르면 누가
모이라고 하지 않아도 첫 차례 집으로 모였어
모두가 친척이니 항렬이 있어 순서가 있어
어르신들은 방으로 자리하고
젊은이들은 마루와 봉당 그것도 모자라면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차례를 지냈어
차례 후에는 차례 음식을 음복했는데
차례 상 음식을 내려 분배하는 일은 당연
미혼 청년들이고 국과 탕은 여인들 몫이었지
과일 고기 떡 전을 칼로 깎고 썰어 나누었는데
집집마다 인심과 맛이 달랐지
그렇게 마지막 차례를 다 지내고 나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 곧바로 성묘를 갔어
마을 뒤 선산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묘소를 찾아 세배를 하고
한겨울 지나온 무덤들을 돌아보았지
양지바른 곳에서는 봄기운을 느끼면서
성묘가 끝나면 어른들은 마을을 다니며
먼 친척이나 친척 아닌 어르신들께도
세배를 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빌었고
아이들은 끼리끼리 모여 제기차기 딱지치기
연날리기 널뛰기 팽이치기 얼음지치기하다
밤이면 윷놀이 화투 놀이를 즐겼어
설날 하루를 축제처럼 지내고 나면
지난해의 시름은 눈 녹듯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봄기운과 함께 부쩍 자란 느낌으로
산으로 들로 강으로 활기가 넘쳤지
지금 생각하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우리는 시골에 살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전화기 텔레비전 선풍기도 없었고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어 십 리를 걸어
기차 버스가 전부였던 그런 시절을
옹기종기 도란도란 시끌벅적 아등바등
그렇게 그렇게 살았던 거야
설빔
이여균
살갗을 감아오는
새 옷의 날선 감촉
걸을 때마다 스치는
새것의 어슷한 소름
언 몸 감싸 안던
그 겨울 말간 햇살 같다
설날이 되면
이영지
2월의 요맘때야
설날의 요맘때야
고향에 두고나온 가슴이 보고싶어
어떻게 가보면 되나 두 눈으로 보려면
새싹이 날 보네요
가슴을 내미네요
아들을 안아보라
두 번씩 곱빼기로
이파리 쭈우욱 나온 고향 땅에 왔네요
맨얼굴 들이밀어
민낯을 부비대어
갈팡을 털어내야
질팡을 빠져나야
꽃잎이 되기로 하는 아들 나와 있네요
우리우리 설날은
이영지
아가야 손잡아라
사랑아 우리 설날
때때옷 곱게 입고 사랑가 불러보자
얼씨구 지화자차차 어기여차 차차차
떡국을 먹어보렴 어얼싸 맛도좋다
심 쎄네 빙글빙글 빙그르 잘도돈다
얼씨구 일어서는 날 쿵더쿠웅 얼씨구
이이잉 우리우리 설날은 내가 좋아
봄 가슴 찰랑찰랑 너만큼 나도 좋아
아가야 내 손 잡아라 덩실덩실 쿵더쿵
아가야 하늘 높이 올라라 연 띄워라
꽃댕기 날아올라 꿈덩이 보이는 날
내 속에 자주꽃댕기 나폴나폴 좋다아
고갯마루의 설
이원문
아이들 북새통에 사람 사는 것 같았는데
보내고 돌아서니 혼자 쓸쓸하구나
낮에는 그래도 마실꾼이 놀러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친정 자랑에
시집 흉 더러는 자식 자랑까지 그렇게 지냈는데
부엌조차 쓸쓸히 그릇마다 삐뚤구나
하소연에 섞인 세월 오늘 밤은 누가 올까
기다림의 마실꾼 화롯불 식어가니
혼 자하는 그 푸념 미친 것 같구나
늙어도 청춘의 몸 옛날이 좋았는데
나서면 따라오고 멀리서 하는 시야까시
못 들은 척 못 본 척 어디 그것뿐인가
봄이면 나물 바구니에 무엇이 담겼었나
흘러가는 구름 위
찔레꽃 따 얹던 날 춤 띄우는 봄버들
지금도 그 봄버들 춤 띄우고 있는지
막내의 설
이원문
아이들이 알겠나
어른들의 마음을
뻥튀기 영감 떠난 뒤
그 한 줌에 눈물나고
쌀독 거미줄에
서러움 걸친다
섣달 그믐 새아침
소리치는 중돼지
얻어온다는 장래쌀
애아범 언제 오나
다가온 초하루
마당 끝에 서성인다
불효의 설
이원문
마음 굳혀 떠난 집
나 어디로 가야 하나
뒷산 길 접어들 때
마지막으로 본 동네
산등성이에 올라도
우리 집 굴뚝에 연기가 없었다
설날
이원문
때 되면 부모 찾기
누가 만든 법인가
모여 앉은 식구들 대견하구나
저것들이 다 내 속에서 생겨났나
큰 놈부터 작은 놈까지
저 두년들 키우느라
그 세월 다 보내고
내 안 해보고 안 간 곳이 어디에 있겠나
그래도 설이면 에미라고 찾아 오니
손에 들고오는 것은 입히고 먹일 것인가
그래 너희들도 살아보니 에미 마음 알겠지
서운하다 하던 놈들
투정하던 두 년들
제 새끼 귀엽다 물고 빨고 얼러주네
더 있어라 더 있어야 안다
너희들이 뭘 알기나 아니
네 새끼들 다 크거든
주책 같은 에미 마음 한 번 더 읽어 주렴
외갓집 설
이원문
애들아
나 설날 우리 외갓집 간다
울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할머니가 엿 해놓고
뻥튀기 튀겨 놓고
그러구 떡도 많이 해놓은다 했어
나 주려고 울엄마도 주고
때때옷은 울아부지가
돼지 팔면 사 준다 했어
뻥튀기 한 줌에 울고 웃던 날
먼 그날 그 설을 누가 기억 할까
부족함에 많은 식구들이라 하니
외할머니가 나만 기다렸을까
아니면 어머니를 기다렸을까
돼지 팔면 사 준다 하는 옷
많은 우리의 형제 누구를 빼놓을까
철없는 나의 자랑 세월에 부끄럽고
돌아보는 그 시절 부모의 마음 헤아린다
잃어버린 설
이원문
눈 내려 하얀 세상
그런 하얀 설이었는데
몇 날 며칠씩 기다렸던 설이었고
먹고 싶던 흰 가래떡에
조청 엿 강정 다식
뻥튀기는 없었나 뻥튀기도 튀겼고
옷 양말도 새것으로 갈아 신고
아껴 두었던 신발도 새것으로
세배 돈 얻으려 세배도 다녔었는데
뻥튀기 한 줌 쥐고 동네 한 바퀴
옷 자랑 신발 자랑 언제 해볼까
이웃 친구에게 내 옷 만져 봐라
썰매 타는 재미 누가 빨리 달리나
살얼음 깨어져 물에 빠졌었고
성냥 딱지 비벼가며 겨우 피운 모닥불
그 모닥불 얼마나 따뜻했나
옷 양말 태웠다 부지갱이 춤추던 날
초가의 그 하얀 설 까치에게 그려준다
정월
이원문
식구들 모여 초하루 지내고
열나흘 오곡밥에 보름날 소원 빈다
아이들 쥐불놀이에 불깡통 돌리기
어른들 짚불 태워 달맞이에 소원 빌기
다 지난 열엿새에 일만 남은 봄인가
외양간 누렁이 소 되새김질에 즐겁고
캄캄한 광 구석 작년 소쿠리 어디 갔나
굴뚝 뒤에 걸린 호미 언년이 손 기다린다
타향의 설
이원문
날마다 그믐의 마음
누가 아는 그 마음이고
맞이 해야 할 설인가
한 잔 술에 담긴 고향
눈시울에 노을진다
보리밭에 숨은 동무들
모두 모두 다 잘 있고
짧은 그날 긴 옛날
성황당 길 우리 동네
달라진 것은 없는지
마음 굳혀 떠나온 날
다시 본 나의 고향
십 년 하고도 서너 해
고드름에 매달리니
마지막 뒷산 길 오늘도 저문다
화롯불의 설
이원문
그 기다림 다 어디 갔나
그 기쁨 어디에 숨어 있고
세월이 버린 설 아직도 남아
시대의 건너편 허공에 그려진다
설빔의 꿈 고드름에 매달아
추녀 끝 지붕 위 올려 보던 날
미루나무 위 까치 집 얼마나 높았나
밤마다 화롯불에 설날의 꿈 묻었고
새 신발 때때옷 떡국에 강냉이
친구 집에 세배 가면 뻥튀기 엿 얻었고
그 눈 위의 발자국 나의 것만 있었겠나
설날의 저녁연기 아쉬운 꿈 지웠었다
설날 아침
이재환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랑의 징검다리 놓고
한 걸음 두 걸음
건너온 인생의 맛
진하게 맛나게
우려낸 어머니 손맛
나이테 쌓듯
한 살 더 먹은 떡국
까치밥
이정록
- 곶감 많이 깎았나요?
허리 꼬부라진 어미가 감도 따랴?
- 처마 밑 곶감 연등이 보기 좋던데.
해마다 까치밥이 늘어
올해는 통째로 주렁주렁하다야
- 나중에 얼음 홍시 따먹으면 되겠네.
청설모하고 새들이 뭔 예절을 알아서
네 것을 남겨두겄냐?
- 개들은 학교 안 다니나?
대학원까지 십수 년 공부한 너도 이 모양인데
두서너 해 살다 가는 것들이 뭔 공부를 하겄냐?
- 아이고, 제가 내려가서 딸게요.
그나저나
동네 까치들 죄다 변비 걸리겄다.
까치 똥구멍 찢어지겄다
까치설날
이정록
까치설날 아침입니다.
전화기 너머 당신의 젖은 눈빛과 당신의 떨리는 손을 만나러 갑니다.
일곱 시간 만에 도착한 고향, 바깥마당에 차를 대자마자 화가 치미네요.
하느님, 이 모자란 놈을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선물한 점퍼로 마당가 수도 펌프를 감싼 아버지에게 인사보다 먼저 핀잔이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내가 사준 내복을 새끼 낳은 어미 개에게 깔아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개만도 못해요?
악다구니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파리 목숨이 뭐 중요하다고 손주 밥그릇 씻는 수세미로 파리채 피딱지를 닦아요?
눈 치켜뜨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옷 벗다 쓰러졌잖아요.
어머니, 꼭 목욕탕에서 벗어야겠어요?
구시렁거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마트에 지천이에요.
먼젓번 추석에 가져간 것도 남았어요.
입방정 떨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루 더 있다 갈게요.
아니 사나흘 더 자고 갈게요.
거짓부렁하게 해주십시오.
뭔 일 있냐?
고향에 그만 오려고 그러냐?
한숨 내 쉴 때, 파리채며 쥐덮을 또 수세미로 닦을까 봐 그래요.
너스레 떨게 해주십시오.
용돈 드린 거 다 파먹고 가야지요.
수도꼭지처럼 콧소리도 내고, 새끼강아지처럼 칭얼대게 해주십시오.
곧 이사해서 모실게요.
낯짝 두꺼운 거짓 약속을 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당신의 나무만이 아님을 가르쳐주었듯, 내 나무 그늘을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대대로 건네받으셨다는 금반지는 다음 추석에, 그다음, 그다음, 몇십 년 뒤 설날에 받겠습니다.
당신의 고집 센 나무로 살겠습니다.
나뭇잎 한 장만이라도 당신 쪽으로 나부끼게 해주십시오.
가래떡
이정희
가래떡을 뽑으려 방앗간에 갔다
설날을 앞둔 설레임이 길게 줄을 섰다
한 칸 한 칸 기다림은 더디기만 했다
방앗간 주인의 걸음은
바쁜 마음을 쫓아가지 못했다
드디어 내 차례
기계가 크르릉 소리를 지르며
하얀 쌀가루가 광목천처럼 흘러 내리고
찜통으로 들어가 김이 올랐다
통째로 쏟아붓는 한 말
작은 절굿공이는 구멍으로 떡을 밀어 넣고
두 줄기 구멍에서 김이 술술 나는
가래떡이 쏟아졌다
남의 떡 꼬리를 이어받은
말캉한 두 줄기 흰떡
우리 집 가래떡도 꼬리를 남기고
누군가의 시작이 되었다
꼬리에 꼬리가 이어지는 동안
각자의 나이를 들고 설은
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날
이진기
설날이 다가오고
원하지 않는 외로움은 나를
벗으로 삼고
나는
그 깊은 속으로 점점
자신을 묻는다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린
거부할 수 없는
핏빛 그리움일까
애틋한 혈연의 기억들은
시간을 거슬러
작은 가슴속에 둥지를 튼다
설날에
이진숙
마른 가지에 눈꽃 핀
그 어떤 날의 환희를 말하지 말자
우울한 계절의 눈빛을 따라 떠도는
서러움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자
강이 강을 따라서 길이 길을 따라서 흐를 때에도
세월이 덧없다고 말하지 말자
접시 뽀얗게 닦아
식기 건조대 위에 얹어놓듯
우리들의 추억 하나둘
가슴에 얹어두지 말자
모든 시작은 아름답고 또한 슬픈 것,
사라져 가는 것
지쳐 쓰러지는 그때까지
우리들의 사랑 같은 건 더더구나 말하지 말자
설빔의 추억
이한명
그것은 유년의 겨울나기 중 가장 설레는
설날의 이야기다
세 살 터울의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모자 달린 잠바는 이미 올 겨울부터 입던
옷이다
키가 자랄수록 바지 끝단 접어놓은 거
한 두어 개 다시 풀면 또 입을 수 있다
세밑 대목장이라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다녀오신 어머니
시골 신작로 길을 이고 들고 온 보따리들을 푼다
까만 털고무신 한 켤레
누가 훔쳐 갈까 봐 이불장 깊이 숨겨두고
밤이면 꼭 품고 잤던
설빔 한 켤레
설날 아침이다
꿈속에 신고 자랑하러 다녔던
까만 털고무신
반짝반짝 마음이 먼저 섬돌에 내려선다
복스러운 사람
이해인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많은 인사말 중에서도 `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가장 정겹고도 포근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 말을 설날이 아닌 날에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복(福)이라는
금박이 글자가 찍힌 저고리의 끝동이나 옷고름,
은이나 자개로 복을 새겨 넣은 밥그릇이나 젓가락,
복주머니 등을 보면 괜스레 즐거워지고
행복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설레이곤 했습니다.
어쩌다 누가 자기에게 예기치도 않는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면 그 고마운 마음을 “복 받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많습니다.
복을 생각하면 왠지 늘 뺨이 붉고
동그스름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즉시 “넌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 애들처럼 좀 복스럽게 생겼으면
복을 많이 받을텐데...'하고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복자, 복순, 복희, 복련, 순복, 등의
이름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도 복스럽게 생겼지만
어려서의 귀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람,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어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 복을 빌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자기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 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덕스러운 삶이 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면서,
우리 각자는 잠시라도 이웃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복덕방(福德房])`의 역할을 하는
복된 새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외모 못지않게
내면이 복스러운 사람이 되길 함께 기원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1.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3. 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4.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5.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새해 마음
이해인
늘 나에게 있는
새로운 마음이지만
오늘은 이 마음에
색동옷 입혀
새해 마음이라 이름 붙여줍니다
일 년 내내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며
행복을 손짓하는
따뜻한 마음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며
감동의 웃음을
꽃으로 피워내는
밝은 마음
내가 바라는 것은
남에게 먼저 배려하고
먼저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
다시 오는 시간들을
잘 관리하고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마음
실수하고 넘어져도
언제나 희망으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마음
곱게 설빔 차려입은
나의 마음과 어깨동무하고
새롭게 길을 가니
새롭게 행복합니다
설날 아침
이해인
햇빛 한 접시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빠도 엄마도
하늘에 가고
안 계신 이 세상
우리 집은 어디일까요
일 년 내내
꼬까옷 입고 살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식구들 모두
패랭이꽃처럼 환히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네요
설 대목
이환규
설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
재래시장은 대목으로 생기를 찾고
정체된 차량의 매연과 경적소리에
길을 걷는 사람은 몸살을 앓는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거리와 시장은 인파로 북적이고
상점의 상인들은 호황을 맞는다
마음이 기억하는
옛 정취 찾아볼 수가 없는 명절
설빔 한벌에 세상을 얻고
새신 신어보고 한해를 보냈는데
인심은 변하여 정은 메마르고
이웃도 없는 마음이 가난한 명절
그래도 세상은 분주히 돌아가고
고향 집 앞마당에는
아들 며느리 손자 기다리는
노부모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어머니의 설날
이효녕
유년의 세월 앞에 두고 떠나온 고향
귀향 열차 기적소리 들길 걸어오면
마음으로 타오르는 그리움 불길 지펴
객지로 떠나보낸 자식 기다리시는 어머니
이마의 주름은 세월의 강입니다
삶의 변방에서 자식들 돌아온다는
설레는 마음에 며칠 밤 지새우며
세월로 스쳐 간 기억만큼 풍성하게 차린
자식들 많이 먹이려 마련한 설날 음식
돌아보는 기쁨이 마음을 흔들던 어제의 설날
그러나 이제는 숨 쉬는 것마저 힘든
어머니 몸에 엉킨 매듭입니다
가벼워진 몸 이불자락에 의지하면서
물끄러미 물밑 내려다보시는 어머니
자식들 얼굴조차 희미하기에
이제 바깥 거동은 조금도 못 하시지만
내 사랑의 자리는 삶의 강물로 흐르다가
설 차림 상위에 올라앉아 계시는 어머니
아직 생전에 계신 얼굴 들어
앞으로 떠나가실 하늘 바라보는 모습
빨래하시던 강을 건너려
강가의 매어 놓은 작은 나룻배입니다
설날(愼日)
임석순
설렘으로 가득하여
언제 오나 손꼽아 헤어보고 기다려지고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지
첫~날에는
신성한 날, 저 멀리서 밝아 오는 벅찬 가슴
고유(固有) 한 설날 아침 정갈함 간직하며
영혼이 깃들고 고귀한 ‘만남’ 갖는 시간들
초하루 맞이하니
차례(茶禮) 날 꼬까옷 맛난 음식 차려
조상(祖上) 님 반가이 맞아 주니 엄숙히
성묘(省墓) 하였네
기다림에 안타까워
언제 오나 손꼽아 헤어보고 기다려지고
고향 찾는 물결 이루고 좋았더라
서운함 서리어
고향 부모 안절부절
언제 보나 노심초사하니
‘어른’이 자녀 찾는
역류(逆流) 현상(現像) 형성되었구나
고향(故鄕) 찾는 시간 사라져
한~숨 짓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아쉬움 어찌할꼬
설날, 어버이 생각
임석순
살아생전 든든한 버팀목 되어 주시어
치열한 삶의 전쟁도 행복이었습니다
오늘, 가슴 한편이 먹먹해 오네요
그곳은 어떠하신지
설날 아침 막걸리 한잔 올립니다
편안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만나 뵈어도
말씀이 없으시니
알 길이 없네요
그곳은 슬픔도 배고픔도 없고
그곳은 고생도 어려움도 없이
그곳은 봄날의 햇볕 가득하겠지요
지난날 예쁘고 멋진 화사한 옷 한 벌,
새 신 한번 사들이지 못한 세상살이
슬픔과 아쉬움에 가슴 저미어 오네요
찾아뵈어도 말씀이 없으시니
인사를 드려도 알 수가 없으니
복받치는 설움만 더해 오네요
찾아뵈어도 뵐 수도 없으니
인사를 드려도 알 길이 없으니
못다 한 마음에 아픔만 더해 오네요
설날을 기하여
임영준
그나마
원단을 디디는 여명이
풀뿌리를 어룬다
깃털 하나쯤 남았는지
예정된 수순일지라도
변환점인 것을
못이기는 척 따라야 하는
마지막 행진일지도
설날 새 아침
장수남
설날 새 아침
때때옷 갈아입고 우린
엄마 아빠 손 잡고
외할머니댁에 세배
가던 날.
시골길 걸어
나지막한 고개를 하나
오르면. 넌
미운 바람개비야.
얼마쯤 기다렸는지
나 얼싸 끌어안고
얼굴 발갛게 비벼놓고.
하늘나라 계신
우리 할아버지 얼마나
화나셨을까. 요 녀석을
이놈. 하시면서.
놀란 바람개비 꽃바람
마을 뒷산으로
나 살려라. 줄행랑.
잠깐 내려다본
햇살. 지긋이 눈뜨고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나
얼굴 호호 불어주었네
설
장종섭
강 건너 산 넘어로
봄과 함께 설이 옵니다
오른손엔 세뱃돈 들고
새싹처럼 옵니다
싱글벙글 손자 손녀
웃음꽃 피울 적에
왼손에는
나이 한 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에서는 세월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설날 아침
장희한
잎이 다 떨어진 가지 끝에 봉긋이 맺힌 아목
머문 듯 가만히 있어도
포르라니 달라져 보이는 건 내 눈의 시각 차인지 몰라도
벗고 준비하는 나무처럼
설날 초하루
무엇을 다짐해 보는 마음 해마다 있어도
크게 한번 이룩해 보지 못하는 건 웬일일까
한평생 살아오면서 계획하고 실행해 보지 못하는
그런 삶
돌아보는 마음인들 없었으면 어쩌나 하지만
또 오늘 같은 날
아목처럼 맺고 필 것이라 다짐하고 다짐 한다
세시풍속 – 설날
전병윤
어머니는 섣달 내내
설을 만들고 계셨다
베틀을 세우고,
무명실로 잉아에 날줄을 걸어놓고,
씨줄을 감은 실꾸리와 함께
북통에 들어앉으셨다
북통은 미친 듯이 낮과 밤을
무명베에 짜 넣어서
하얗게 설빔을 만들었다
어느 해인가 천지인(天地人) 모두가
흰 세상이 되었을 때
백의민족 얼을 풀어내시는 아버진
단군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설은 내 가슴을
들로 산으로 바다로 밀어냈다
그래서 지구가 보이고, 우주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 가까이
전상순
그립다 하니
숨지 못하고
보고 싶다 하니
친구 새털구름이라도 내보내고
이미 고랑 패도록
바라만 봐도 좋다 하니
조금만 스쳐도
환한 빛 띠는 저 대지 위
해 하나 떠 있다
한파를 피해 움푹 팬 논에서
친구 동네로 설 떡 하러 간
엄마 오기를 기다리던
겨울이어도 봄 같던
설
전수덕
삶의 품삯 쪼개어
그리운 얼굴 떠올리며
선물 고르는 행복
마음은 벌써 고향 집
아랫목에 누웠구나
거센 물살 헤치고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귀향 본능처럼
뿌리를 찾는 민족의 대이동
어찌 막을 수 있으리오
자욱하게 피어오른 안개
군데군데 녹지 않은 잔설
결코 멈추지 못하리라
산등성이 올라서니
아늑한 고향마을 보이고
괜스레 벅차오는 가슴
울컥 눈물이 고인다
까치 소리 앞세우고
이제나저제나 마음졸여
동구 밖까지 나와 선
등 굽은 내 어머니
반가움에 맞잡은 손
가늘게 떨리는 입술
붉어진 콧잔등
목이 메 부르는 한마디
어머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설날에는
전숙
무장 무장 뜨거워지는 것이다
양팔에 출렁 그리움을 안고
오매불망 당신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곰팡이 하얗게 핀 메주 냄새,
골방에 엎어져 후욱 들이키고
정자나무 헐벗은 등짝도 투욱 건드려보고
굴뚝에서 폴폴거리는 매콤한 연기와
샅바 매고 엎어져 질금거리는 눈물 자국
손등으로 쓰윽 닦고 싶은 것이다
소꿉동무 얼싸안고
‘이놈아 잘 살았더냐’ 욕깨나 퍼주고 싶은 것이다
빙글빙글 휘어 도는
고샅 막바지의 당숙 댁에도 덕담 올리고
선산에서 기도 중인
봉분들께도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은 것이다
때때옷 지어 입혀주던
여윈 그 몸에 때때옷 입혀드리고
맛난 음식 해주던
합죽한 그 입에 맛난 음식 올리고 싶은 것이다
마이너스통장도, 대출이자도
깨진 장독에 숨겨두고
'으앙'하고 나 첫울음 울 때처럼
천둥벌거숭이로 달려오는 햇덩이를
빈 가슴에 꼬옥 껴안으면
발가락마다 얼음 든 차디찬 세상도
구들장 눌어붙은 안방처럼 뜨거워지리라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설날에는
설 명절
전영금
나 어릴 적 설 명절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고
온 땅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면
추녀 끝에 눈 녹은 고드름 따다
얼음 사탕처럼 먹던 나 어린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가마솥에 조청을 달였고
아버지는 대나무 광주리에
흰 가래떡을 한 짐 지고 오시는 날
우리는 설빔을 기다리며
연 날리고 썰매 타기 하루해가 짧았다
그 시절 구수한 인심은
나 어릴 적 고향의 추억이 되고
같이 살던 이웃들은 소식도 몰라
설날이면
어른들께 세배 드리던
아름다운 풍습은 전설 속의 이야기
고향길 다녀오는 사람들아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같은 곳
정겨웠던 고향길에
가족 간의 화목한 정 듬뿍 나누고
도란도란 오시는 길 행복한 날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설날
정기현
이맘때면
전 굽는 냄새 나는
고향집 골목
눈에 그립고
가래 떡방앗간
쌀 함지박은
저절로 바쁘다.
젖은 행주치마
채 마르기도 전에
홀로 부지런 떠시던
젖은 엄마 손
그리움 되어
가슴을 파고든다.
설날이 오면
유행 가사처럼
홍시가
열리지 않아도
울 엄마가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구정
정민기
신정이 날아가고
해가 햇살을 쏘듯 구정이 왔다
까치의 둥지만 한 그릇에 담긴
떡국 한 그릇, 깍깍거리며 나눈다
새로운 해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떠오른다 코로나바이러스
지배하는 세상
코로나 강점기에서 해방이 되겠지
동쪽 수평선에서 태어난 해의
양수가 출렁거리는 듯 파도 일어난다
그믐날 밤 자고 일어나니 그믐달 눈썹
떡국 떡처럼 하얗게 센다는 전설은
이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들레 꽃씨처럼 한 집 대문을 열고
우르르 쏟아지는 아이들
구정의 볼거리였는데,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별빛만 떠들어댄다
설
정민기
밤하늘에 별이 끓고 있었습니다
다 끓을 때까지 팔짱 끼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쓰러지듯
잠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가로등 빛입니다
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잠 이루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 끓여진 별을 북두칠성으로
한 국자 퍼 내렸습니다 쫄깃쫄깃한
떡국처럼 반짝반짝하였습니다
그믐달이 지고 음력 정월 초하룻날
눈처럼 하얀 날이 밝아왔습니다
아침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혼자라고 한참 울어주었습니다
자기도 혼자이면서 나를 위해
바람 속에서 울어주고 있었습니다
백설 같은 눈 내리는 날 그립습니다
음력 2020년, 경자년
정민기
신체 포기 각서를 쓰고
2019년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2020년이
쥐가 갉아 먹는 듯 야금거린다
2019년을 신체 포기 각서 쓰게 한
'경자'라는 여자를 잡기 위해
경자년, 경자년, 네 이년 경자
올해는 '경자'라는 여자와
모두 인연이 되겠다
설날의 풍경
정세일
설날이 오면 다리를 건너
강 건너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을 하는 할아버지 댁에
다섯 명의 우리 형제는 앞을 다투어 갑니다
한쪽 팔이 없는 할아버지는
강 건너 작은 고개를 두어 번 돌면
할머니와 둘이서 산기슭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도 민족의 아품이 있던
6. 25 전쟁에서 외아들은 죽고
할아버지 자신도 전쟁에서 팔을 다쳐서
오른쪽 손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할아버지 집은 설날이 오면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쓸쓸했답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위해서 어머니는
우리 형제 다섯 명을 언제나 설날이 오면
세수도 깨끗이 하고 설빔으로 준비한 옷을
입게 해서 언제든 다리를 건너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가도록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댁에 우리 세배를 갈 때면 신이 납니다
할머니는 강정과 들깨로 만들 맛있는 과자와
할머니가 가장 자랑하시는 호박떡을 많이
우리는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언제나 새뱃돈을 빳빳한 돈으로 주셨는데
언제나 제일 큰 나에게 다른 형제보다 더 많이
주시곤 하셨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할아버지 댁에 가지만
우리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겨울 그물을 강에서
걷다가 배 위에서 넘어져 다치셨으니까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강을 건너오는 사람 편에 우리 형제들이
세배를 꼭 오도록 말씀을 하셔서 우리는 다리를 건너
강을 밟고 가지만 마음이 어둡습니다
설날이 오면
정세일
설날이 온다는 소리에 누이와 나는 다리 건너편으로 마중을 갑니다.
설날은 마음이 급하고 강을 건너오기 전에 우리는 벌써 색동옷을
입고 있습니다
설날은 돌아오면서 길게 길게 구비 진 고갯길마다
고향에 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온 달을
동네 길 어귀마다 걸어주면서
새벽하늘 따라 달려오는 설날은 올해도 어김없이 달 주머니 속에
선물을 안아 가지고 옵니다.
그 달주머니 속에는 할머니 털신도 들어있고
실로 짠 할머니 조끼가 들어있습니다.
눈이 큰달은 고갯길을 돌아올 때
올해도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도 까맣게 두고 왔던
고향은 반가운 삽살 대문이 가슴을 열고
바둑이와 함께 마중을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갈수록 겨울 논에선 졸졸졸 숨 쉬는 소리가 가슴이 시원하고
신작로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잃어버렸던 고향의 고동을 돌려줍니다
설날 떡국
정연복
설날 아침 맛있는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덩달아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나무로 치자면 나이테
한 줄이 더 그어지는 셈이다
그래, 올해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자
하루하루 전혀
조급함 없이 살면서도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고
겁먹거나 허둥대지 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좋은 사람 쪽으로 변화하면서
내가 먹은 나이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살도록 하자
돈 벌기 쉬운 설날이 왔다
정영숙
여동생의 아들이 결혼한 지 7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손자인지 말로다 글로다 표현할 수 없이 자랑스러운데, 그 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아들은 수의사인데 요즘 구제역으로 인하여 바빠서 힘이 들고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설은 왔다.
손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절 한번 하면 만 원을 받았다. 설 다음 날, 여동생의 손을 잡고 슈퍼에 간 손자가 놀이 카드를 사려고 하니까 손자보고 말하기를“집에 카드가 많이 있는데 왜 또 살려고 하느냐 요즘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아빠를 봐라!”고했다. 손자가 조르며 대답하기를 “할머니, 요즘은 돈 벌기가 파리 한 마리 잡는 것보다 쉬워요. 파리는 잡으려고 하면 금방 도망을 가는데 돈은 절만 한번 예쁘게 하면 주는데 뭐가 그리 어려워요”라고-. 아침에 전화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에는 시집에 금년에는 친정에 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외손자 이야기도 하며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했다. 아이들에게 설은 1년 중 돈 벌기 가장 쉬운 날이다. 이렇게 순진 난만한 아이도 철들면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을 날이 올 것이지만, 세뱃돈 받는 이때가 행복이요 미래의 추억거리다.
우리도 어릴 적 그랬으니까 하! 하하하!
설날 기침
정우영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까치야, 까치야, 새 이 다오. 목청껏 외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목울대를 넘어온 말들은 입을 벗어나는 순간, 가래 끓는 소리가 되어 흩어진다. 김노인은 천장 밑에 바짝 달라붙은 지하 창 위를 쳐다보며 망연히 누워 있다. 저런 망할 놈, 슬날 아침에 먼 지랄로 성깔을 부린댜? 그는 깜짝 놀란다. 분명 돌아가신 어머님 목소리다. 두리번거리는 마음속으로 정경 하나가 툭 불거진다. 그는 장날 아버지가 사다 준 검정 고무신이 맘에 안 들어 앞니로 물어뜯고 있다. 눈물 글썽이며 질겅질겅 씹고 있다. 갑득이는 씨이, 희컨 운동화 사줬다는디. 울컥 싸한 전율이 스치더니 곰팡내 나는 방안을 환하게 감싼다. 그래, 그는 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육친의 그림자 너울거리는 세상 껴안을 수 있는 추억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저 멀리서 울리던 까치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오늘 내게도 뭔 손님이 찾아들라나. 싸늘하게 굳어가는 볼을 타고 밭은 기침 한 방울 툭 떨어진다
숲속, 작은 설날
정윤목
솔잎, 가랑잎더러
"시끄러워, 바스락거리지 마"
가랑잎, 솔잎에게
"아니냐, 내가 아니라구, 조기를 봐
다람쥐야 그 놈이 자꾸 내 몸을 들썩여 그래"
바람 휘익
화들짝 솔잎이며 가랑잎이며
"고것들 대단히 오도방정 떠네
요란들하구먼 먹을 것도 없으메,
앗따, 저 굴참나무 동네로 가야겄어,"
다람쥐 쪼로롱 쪼로롱 산모롱이 길 떠나
뵈지 않아 영 볼 수 없어
솔잎, 가랑잎더러
"왜 이리 조용해 쫌 부지런히 손 좀 놀려봐"
가랑잎
"내 몸 들썩여 먹잇감 구하던 고 쪼끄만 놈
다시 오질 않네 그립네,"
솔잎
"그려 내 몸 찾아들던 송충이도 요 즘
통 뵈질 않아 나두 그립네"
기다림, 또 기다려
그리움 숲 속 정적 길러갈 때
하나의 기쁜 비명 말없이 고요로만
조상님네 봉곳 오른 젓가슴들 기다림이니
구름아저씨 말없이
"호연지기 길러라 나날이 길러라"
수염 매만지며 하늘 높이 느릿느릿 하얗다
명절
정은희
매번 명절 때가 오면
쓸쓸한 외로움과 고독으로 보내는데
가족들이 있다 한들
가까이하지 않는 왕래가 없다면
그저 외로움으로 달랜다
그대와 함깨하는 명절
새롭게만 느껴오고
외로움이 사라진다
익숙해져 버린 생활들도
다시 탄생으로 바뀌어 간다
그대와 함께한 이 공간에
영원하길 빌어 본다
설익은 설(명절)
정종명
살다 살다 옛 멋 실종된
낯선 설을 지낸다
숭배와 화목 효를 기반한
명절 설레고 들뜬 기다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감정 무너진 공동체
달달한 홍시 맛 잃어버린
설익은 떨감 씹은 앙금 맛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고향
처음 맞는 설익은 텁텁한 설
그래도
희망 충만한 새해이기를
넉넉한 웃음꽃 피우시기를
첫마음
정채봉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설날
정태중
때 빼고 광내던
읍내 낡은 이발관
그 아저씨 보이지 않고
산까치 울음
색동옷 고사리 손도
보이지 않네
동네 모퉁이
무섭던 그 길이
너무도 작지만
오랜 시간
정자곁에 서 있는
향나무가 있고
나를 반기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어
설날이 행복하네
설날 아침에
조남명
매년 오는 해를
맞이하지만
새 마음으로 맞아야 하리
무언가 소망을 안고
첫날을 맞이하라
꼭 이뤄야 할 일
마음에 담고 첫 아침을 맞으라
나이 더 늘었으니
그 값을 해야 하고
내 나이 먹는 줄만 알면서
아이들 머리 크는 것 모르면 안 되느니
핏줄들 모여 조상 기리고
둘러앉아 떡국 한 그릇
술 한 잔 나눌 수 있음을
기뻐하고 만족해야 할 일이다
그리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갑자 넘도록 새해를 맞지만
덧없는 세월은 흐르는 물 같으니
시간을 가볍게 허비하지 말 일이다
이 땅 어디, 누구에도 축복이 있기를
또, 아침 해에 빌어 보노라
명절
조서연
살다 보면
본의든 타의든 부모 형제 자매 에게 상처를 주고 받고
그 서운함으로 지척에 두고도 가고 오지도 못하고 명절때만
되면 가슴한쪽에 그리움만 품고 남처럼 사는 그런 가슴 아픈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들 있습니다
살아 보니 그런 서운한 마음들
때문에 핏줄끼리 원수 아닌 원수처럼 살아 간다는게
다 부질없고 어리석은 사람 마음이라는 걸 느껴집디다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았거든요
형제가 여럿이니 경제적으로 잘사는 형제 못사는 형제
부모의 대한 거처 문제 이혼한 형제 사업의 망한 형제
여러 형제들이 서로서로 서운했던 일들로 상처주고
받았던 순간들 - 많았지요
그렇게 세월 흘러 몇 해가 지나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너무 멀리 멀어져 이젠 명절 때가 오면 갈때도
오는 사람도 없는 쓸쓸한 명절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젠 가고 싶어도 갈 때가 올 사람들도 다들 먼 나라로
간지 오래
요즘 따라 가장 부럽고 또 부러운 것이 명절 때마다
부모 자식 형제들이 북적북적 모여앉아 그동한 어찌 살았는지
묻고 걱정하고 때론 멱살 잡고 싸우는 일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부러운 풍경이 되버린지 오래입니다
명절 때만 되면 우박처럼 내리 쏟는 쓸쓸함은 가족들의 대한
그리운 서러움 입니다
그것도 다-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포악과 땡깡질입니다
그것마저도 그리운 사람입니다
하여 이번 명절 구정 때는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들
조금씩만 양보하고 먼저 손 내미는 따뜻한 명절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전화 하고
내가 먼저 화애 하고
다가가면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라
아무리 깊게 서운했던 것도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시국도 어지러운데
이럴수록 가족이 소중한 때입니다
서로 서로 위로하고 다둑이는 그렇게 해묵은 오해와 상처들
풀어내는 행복한 구정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명절 되십시요
가고 오는 귀성길 안전 운행하시길 바라오며 돌아올땐
웃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헤여짐이 되시길 바랍니다
문우님들 올해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설날의 마음
주선옥
물보다 낮고 은근하게
바다보다도 깊게
더 넓게 흘려 보내야 합니다
채송화보다 가련하게
백합보다 순결하나
수선화처럼 고결하게
사람보다 위에
사람보다 아래
저 비둘기의 생명도 무겁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벼이 보고
누군 누구를 우러러보고
귀한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삼백예순날의 첫날
그 하룻날의 첫 마음이
정화수 처럼 맑게 고였다가
마음 고단한이 만나거든
가는 길이 멀어 외로운이 있거든
향기로운 우담바라 함께 피워요
설날 떡국 앞에서
차영섭
보이지도 않는 부모님 얼굴 뵙고
명절 상 앞에서
떡국을 먹는다
우리 부모님
보지도 못한 당신의 며느리
정성 깃든 그때 그 떡국을 드신다
세월 먹은 떡국 앞에 앉으면
끊긴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는다
아, 나는 10대 소년으로 돌아가
아, 생생하게 어머님 아버님 만난다
아, 세월 지우니 이렇게 눈물겹다
원단(元旦) 아침 풍경
차영섭
초승달이 동녘하늘에 해를 마중나갔다
가냘픈 눈매가 즐거운 미소를 띄고,
해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해무리만이 기미를 불그스름하게 드리우고 있다
검단산이 가슴에 별똥별 하나 안았을까!
개똥벌레처럼 반짝 반짝거리고 있다
아침 해맞이 노을에 검단산 가슴은 새카맣게 탔다
아침 햇볕이 수돗물이라면 검단산은 마중물인가?!
불현듯 어스름 하늘 끝에서 이름 모를 새떼가
동남쪽으로 날아간다
어젯밤을 한 우리에서 잠자고 일찍 일어나
무슨 약속을 서로 소통했는지 신비스럽다
겨울은 끝자락이고 봄은 문턱에 닿았으니
동면하는 식물과 동물은 꿈을 깰까 말까 찰나겠지
고요한 원단(元旦)의 아침은 거룩하다
나도 이 아침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올 한해를 갖고 싶다
설날
채린
예쁘게 머리 빗고 할머니 댁 갑니다
아이구 내 새끼 부둥켜 입 맞추어요.
삣쭉삣쭉 만두 오빠가 만들고
동글동글 만두 내가 만들어요
주머니 세뱃돈 만지작거리고
집 앞 저수지 알록달록 웃음꽃
아아 오늘은 설날이래요
까치야 너도 오렴 썰매 타자구나
까치설날
최남균
아카시아 둥지서 까치가 울면
흩어진 윷가락 한목에 잡히듯
떠났던 형제들 제자리 돌아와
도, 개, 걸, 윷, 모, 한통속이
동네가 시끌벅적 판을 짜고
맨발로 황톳빛 뜰 구르던 날
도리깨질하던 마당에 모여서
윷가락 하늘 높이 던지던 시절
혼자서 나뒹구는 법 익혔고
도, 개, 걸, 윷, 모, 배필 만나서
세상살이 더불어 사는 법 배워
걸어온 세월 타작하여 풍성하던 날
전 지지는 불쏘시개 연기가
꼬리를 물고 온 동리에 어둠이 오면
부지깽이처럼 바쁘던 어머니도
도, 개, 걸, 윷, 모, 안방에 둘러앉아
윷 밭에 밤늦도록 뛰어놀던 길이
저마다 가슴속에 별자리가 되었던 날
고속철도가 놓여도
되돌아갈 수 없는 날
오직, 모만 놓아 판치는 세상에
걸 놓아 걸어서 천천히 가고픈 날
먼 밤하늘 사라지는 별자리에
윷처럼 환한 그리움이 빛나는 날
크레파스
최명란
설날이다
친척들이 많이 왔다
빽빽하게 누워 잔다
촘촘 비좁다
크레파스다
기쁜 설날
최예은
도란도란 둘러앉아
정담 나눠 좋은 자리
옛정을 떠올리며 집안 가득
웃음꽃 피어나고
밀려오는 그리움은
반가움으로 마음에 와닿아
진한 가슴 안겨주고
서로 간에 정겨움을 더한다
드나드는 친인척님들
반갑기는 매한가지라네
선물은 쌓이고
반가움도 쌓여가는
설날은 너무나 좋은 날
세월은 가고
사람도 변해가지만
아름다움 퇴색될까
걱정일랑 거두어 주고
보고 싶던 가족 친지들
그리웠던 친구들아
가슴 찡한 그 순간이
사람 사는 모습이라
설날처럼 좋은 자리
다시 보마 친구들아
사랑하는 그 옛정이
새록새록 추억을 떠올리네
그 시절 정월 초하루
최이천
백지 같은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날
푯대를 세우고 각오한다
거지도 얻어먹지 않겠다고
동냥을 안 하고 노름꾼도
손을 씻쳐 끊으며
과거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안 어르신
마을 어르신께 세배하러 간다.
형제들 먼저 종갓집 찾아가고
또래들 만나 동네 어르신
찾아 단이며 세배하며 덕담 들었다
아련한 추억 속 보물들이
내 속에서 눈을 깜박여
누군가를 찾는다
개구쟁이 나에게
깍듯이 당숙님 오시야고
인사하던 종갓집 질부님
따뜻한 떡국과 다과상을
내오시던 그 모습이 영화같이
머릿속에 상영됩니다
그 앞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의젓해지고 싶어 마음을 꼭꼭
누르던 내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어 봅니다
설날 아침
최진연
마당 가 감나무 꼭대기를 비추는 햇살
그 햇살 쬐고 앉은 까치 한 마리
깍, 깍, 깍, 깍
꽁지 까딱이며 깃을 털 때마다
떨어지는 발간 햇살 부스러기들
깃털 무늬 아롱진 축복의 씨앗들.
까치와 새해 인사를 나누려는지
설빔을 차려입은 한 아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본다
동그래진 눈 속으로 빨려드는
하얀 봉당 끝, 하얀 마당
무럭무럭 김을 뿜으며 소죽을 먹는
외양간 지붕에도 소복 눈 덮인 풍경들
까치는 그 새 어느 집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날아가고
새파란 하늘을 인 앞산 머리 위로
아침 세수한 해가 솟아오르는데
앞집은 아직도 떡국을 안 먹었을까?
용마루가 묻힌 그 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게
설날
최홍윤
소꿉장난 시절에는
까치설날 설렘에 밤을 지새우며
어서 어른이 되고자 했다
벅찬 숨을 몰아쉬며
하얀 눈 발자국 따라
손꼽아온 세월의 수레바퀴
세밑 입춘이 지나고
얼음장 밑 다정한 물소리
홀로 움에 익숙했던 눈동자가
안개 걷힌 동구 밖에 머물고 있다
설이 뭐기에
머나먼 길 살냄새 맞으러
세세손손 영혼들이 모여들어
그믐밤을 하얗게 밝히는가
설날이 무슨 날이기에,
목로주점에 나그네 시름은 깊어지고
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이슬이 맺히는
늙어서도 그리운 날인가?
오늘 저물면 내일이 오고
내일은 언제나 새날인데
설날은 더욱 새로운 날이고
팔자라도 튀는 날인가 보다
설날
가슴 뭉클한 언어가
삼백예순 날을 지칠 줄 모르고
비상했으면 좋겠다
명절이 서러운 사람
하영순
명절을 앞두고 동구 밖 자동차 소리
귀를 세우고
이제나 저 제나 기다리는 마음
올해는 그 기다림 마저 빼앗아 가버렸으니
명절이 서러운 사람
바람 불면 날아갈 세라
놓으면 꺼질 세라
애지중지 키운 자식
민들레 씨앗처럼 다는 토양에 자라 잡아
양 명절에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
하루가 여 삼 초인 삶
그마저 잃었으니
어찌 서럽다 아니하리
명절 고아 명절 고독
지붕 위에 까치가 운다
까치야 너는 왜 우니
너마저 울면 내 마음도 따라 서럽다
설날
하영순
설은 연시(年始) 원단(元旦) 연두(年頭)
한 해의 시작을 말합니다
연두(年頭)에 먹은 마음
섣달그믐까지 변함없기를 다짐해 봅니다
지난 한 해 그 많은 아픔 속에
오늘이 있음이 감사입니다.
365일
재해 없는 삶을 원합니다
받아서 무거운 마음보다
비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기적이며 행운입니다
설은
덜 익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글지 못한 인생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영글고 싶습니다
정초에 먹은 마음
흐트러짐 없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계묘년(癸卯年) 원단에
명절(설)이 다가오면
한인수
올해에도 겨울이 다가오면
눈이 펑펑 쏟아져 눈싸움도 하고
명절이 다가와서 오순도순하게
행복하고 웃는 날이 오겠지
나이 든 사람들은
그리 큰 기대는 없고라도
어린아이들은 마음이 부 푸러
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북한 땅에는 배가 고픈 어린아이들이
명절이라는 날이나 알고나 있을는지
배고픔에 지쳐 정신이 없는데
명절이라는 날을 알고 있을 리가 있겠나
하루속히 통일되는 날이 되어
불쌍한 북한 어린아이들과
얼싸안고 웃으면서 행복을 나누는
명절날이 다가오기를 소망한다
복주머니
함동진
설날 아침
엄마 아빠께서 주신 덕담
네 마음속에
평생 사랑 주머니 달고 다녀라
언제나 따스한 사랑 가득 채우고
사랑에 주린 사람 만나거든
나누어주거라
어디서든
설날에
허윤정
설날 가족이 다 모여서 차례를 지났다
남자들만 한복을 차려입고 며느리들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제사를 모신다
서로 건강히 만나 아이들 세뱃돈도 주고
세뱃돈도 받고 받은 세뱃돈으로
두 며느리에게 세뱃돈 인심도 쓰고 우리의
초하루 설날은 행복하게 지나간 셈이다
밀물처럼 밀려와 북적대던 가족은 모두가
떠나고 집안은 겨울 바다 빈 모래밭처럼
썰렁하다. 곧바로 대구 아들은 떠나가는
귀갓길에 남양주 자기 아빠 묘소로 가서
참배를 했다
그곳 남양주 양지바른 계곡의 잔디 위에
놓아둔 임종의 새가 그대로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이들은 그 새를 차 거운 땅속에
묻어주겠다고 한다. 그곳 통나무집의 문 위
지난봄에 새끼를 부화해간 새의 오두막이
비어 있으니 그곳에 놓아주고 가라고 했더니
무슨 이유인지 엄마 말을 안 들어준다
저 예쁜 새는 할아버지 생전 아침마다 새들을 불러
모이를 주실 때 그 모이를 먹고 자란 새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먼 곳까지 할아버지를 찾아온 새가
아닌지 손녀딸 소영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 편히 그곳에 묻어주어야
한다고 아이들은 우긴다. 임종의 새는
큰 나무 밑에 수목장을 했다고 한다
나는 오늘 슬픈 설날이다
2021년 구정에
허정인
우울증이
쿵 가슴에 안기니
머리는 혼미하고
몸은 천근이다
미련의
긴 시간
기다림을 마쳤다
날 위해서
핸드폰에 있던
이름들을 지우기로
마음 청소를 한다
티끌 날아가듯
손가락 하나로
이름들이 사라진다
세상은
힘 있는 자들만이
누리는 것이란 걸
명심하며
허허로운 마음
부추기며
꽃을 사다 심었다
주홍빛 화분에
심은 꽃
어루만지니
핑 도는 눈물이 웃는다
후, 후후
...
ㅎ.
설날
홍대복
소복소복
내려앉은
하얀 눈꽃은
담장 옆
빨간 동백 웃음꽃 피우고
처마 밑
유리 같은
수정 고드름
앙상한
가지 위에 까치가 운다
색동옷에
내 동생
벙어리장갑
이른 새벽
얼어붙은 하얀 눈밭에
뽀드득뽀드득 발걸음 소리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 가는 날
오늘은 즐거운 우리의 설날
설날 아침에
홍해리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잤더니
눈썹이 하이얗게 세어 버렸네
창밖엔 흰 눈이 세상을 덮고
새소리 바람 소리도 얼어붙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