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7. 27. 12:35

고종목 한여름 밤

고현자 한여름 밤

김길자 한여름 밤의 음악회

김미숙 한여름의 선물

김수영 한여름

김수잔 한여름 나들이

김순진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김영월 한여름 속으로

나태주 매미는 한여름에

류제희 한여름, 홍씨네 계사(鷄舍)

박미산 한여름 꿈의 장례식

박상종 한여름의 미소

백우선 한여름

송정숙 한여름 밤에

양재건 한여름 조심스레 안부를 묻다

오애숙 한여름 밤의 추억

오애숙 한여름 열돔으로

오애숙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

오애숙 한여름 장 마감하는 길섶

이석구 한여름의 초록

이영지 한여름의 양산

이해인 한여름 아침

정세일 한여름 밤에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정아지 한여름 밤의 꿈

정연복 한여름 밤의 기도

정찬경 한여름

정찬열 한여름의 오후

채홍정 한여름 밤 그리움

최영준 한여름 밤의 실루엣

한하운 한여름 밤의 빙궁(氷宮)

허광빈 한여름 밤의 반가사유

 

 

 

한여름밤

고종목

 

설설 한여름밤이 끓는다.

북태평양 고기압 기류가 세력을 확장

설설설(說舌卨) 한반도 땅이 폭설(爆舌)로 끓는다.

속옷만 걸친 설() 설레발친다.

한강변의 풍설(風舌) 날개에 날개 달고

여의도 공원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흔들고

풀뿌리 틱틱 건드리고

배꼽 바지 배꼽티 사이 배꼽을 흘끗흘끗

폭탄머리 꽃미남의 어깨 가슴 툭툭 친다.

붉은색 노란색의 악마 떼

서울 천도 설화(舌火) 거리로 쏟아져

도로를 설설 넘쳐 설설(舌舌) 끓는다.

와 와 와 짝짝짝 엇박자 끓는다.

지구 밖으로 롱-

한여름 설전(舌戰) 열대야

 

 

 

한여름 밤

고현자

 

서쪽 하늘 한켠에

뼈 한 올 걸치지 않은 반달이 그녀를 읽는다

 

하루 분량의 햇살을 다 털어먹어도

흣흣한

갱년기의 알몸을 점검한다

 

그림자 긴 한여름

계절은 어느새

신록의 반경을 빠져나와

삼라만상을 시공하고

 

색깔 진한 열매들은

다리가 휘도록 시간을 달린다

 

피돌기 멈춰버린듯 먹먹한 밤

골다공증을 앓는 반쪽짜리 달빛

마지막 요염을 떨고 있다

 

다 헐어 버린 심장이 모질게도 차오르는

중년의 밤은

늦게 퇴근하는 새벽 탓일 게다

 

 

 

한여름 밤의 음악회

김길자

 

매미들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풀잎에 잠든 고향을 깨워

첫사랑 그리움이 돋아나는 추억위로

달빛은 고요를 푸르게 깔고

 

외로움이 잠 못 드는 여름밤

별빛 같은 사연 모아

풀벌레들의 밤무대를 연다

 

별똥별 보며

바위에 걸터앉은 베짱이, 실베짱이, 중베짱이

바람같이 달려와

떠듬떠듬 자기 소개하는 사연마다

들에서 살아도 힘들다하네

 

건넛마을 꿈 나르던 풍뎅이, 땅강아지도

오글오글 모여 살던 여치, 철써기, 풀종다리, 방울벌레, 방아깨비도

늦을세라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와

넋두리 같은 사연들 풀어 놓는다

 

좁은 논두렁길 타고

허겁지겁 뛰어온 메뚜기, 뚱보주름메뚜기

무대 위에 내려놓는 한시름에도

눈동자가 빛이 나는데

 

귀뚜리 가족인

어리귀뚜리, 솔귀뚜리, 알락귀뚜리도 질세라

찌르륵 귀뚤귀뚤 찌이익 찌이익 찌르르,

까치발로 부르는 합창

숲속의 밤이 한층 무르익어 가는 밤

 

어둠을 뚫고 쏟아지는 소리

2008년 한여름 밤의 더위 식는 소리

누구라도 무대의 주인공이었던

아주 특별한 밤이다

 

 

 

한여름의 선물

김미숙

 

712, 13일 사이에

절대적인 틈이 필요해

 

호수 같은 마음이 잔잔했는지

바다가 뛰어올라 펄떡이며 파도

치며 달려오는걸 너도 보았니

 

잔잔한 빗물 같은 파동 하나

남겨 놓았을 뿐인데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마음에

괜한 욕심만 생겨버렸어

 

 

 

한여름

김수영

 

마흔 나이에 막내 낳은 어머니

몸져 누웠다

젖은 나오지 않고 비 오듯 땀을 쏟으며

온몸이 짓물러 갈때

 

외당숙 할아버지 술 한병 가져왔다

푸른 솔잎 사이 먹구렁이 한 마리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새까만 눈을 뜬 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구렁이 어머니 몸을 빌려

뒤란의 우물에 가득 찬 서늘한 기운을

다 들이켜고 그림자 없이 사라졌다

 

그 뒤, 쓴 것이 입에 당긴다고

쓴 것만 골라 먹고 다시 젖이 돈 어머니

 

 

 

한여름 나들이

김수잔

 

정겨운 친구들과

짙푸른 초록길을

이름 모를 초목들이

 

미소 짓는 골짜기로

달리고 달려보는

한여름의 드라이브길

 

지글지글 칠월태양아래

눈 녹듯 번쩍 그리는

아스팔트 길

 

차 안은 에어컨 냉으로

어깨와 코끝이 차가울 정도지만

 

7월 복더위 한낮의 숲들은

태양열 숨결에 늘어진 나뭇잎이

바람결에 서서히 헐렁이고

 

넓고도 넓은 북미땅

확 트인 들판에 풍부한 농작물

보기만 하여도 배부른 길은

 

울창한 숲길로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자연에 가슴이 확 트인다

 

어떻게 찾아든 냉면집서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참 맛있게 거뜬히 비웠서라

 

자연의 즐거움도 함께한

칠월 여름 한낮을

만끽해 보던 날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도

시원한 냉면에

다 식더이다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김순진

 

쬐어라 쬐어라

젊은 가슴팍 등골에 땀 괴도록

풀무질한 대장간 불덩이처럼 쪼이더니

여우고개 길섶 인동 덩굴 시들하고

텃채마밭 오이 덩굴 조립도록 쪼이더니

서산에 숨은 태양아

이 여름밤 한 여인을 위한

주빈메타의 씸포니 오케스트라를 듣는가

반딧불이 세 마리 불빛이라도 좋구

등잔불 호야불이라도 좋으며

오왓트 전구 불빛이라도 좋다.

조금의 달빛이라도 새어들 거들랑

한 여인을 그리는 젊은 가슴으로

편지를 쓰리라

 

 

 

한여름 속으로

김영월

 

화양동 계곡 찾아가는 길

산과 들녘, 숲도

파란 벼포기는 벼포기 대로

키 자란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바람한 점 없는데

칠월 하순의 햇살

그 품안으로 지상의 푸르름을

모두 데려가고 있었다

이제, 푸르름 조금만 있으면

활활 타오를 기세로

몸이 달아 오르는 중에

목쉰 매미

아직 건재함을 알린다

 

 

 

매미는 한여름에

나태주

 

매미는 한여름에 우는 것이 아니라

여름이 시작될 때 울고 여름이 끝날 때 우는 겔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추석 달을 배불려 놓고

끝물 참외 달고 부드러운 속살이 된 참매미 소리

 

 

 

한여름, 홍씨네 계사(鷄舍)

류제희

 

햇살감옥에 갇혀

피눈물 범벅으로 흐르는 땀방울, 주먹으로

훑어내린다. 밤동산 영표씨

닭장에 널부러진 허연 목숨들을 퍼담는다

 

욕지거리같이 달려드는 똥파리떼

팽팽하게 부푼 한낮, 똥중 타는 속을

계분 냄새가 꾸역꾸역 차오르고

 

성난 불도저같이

마구잡이로 쳐들어온다. 저 폭염 군단

 

 

 

한여름 꿈의 장례식

박미산

 

한여름이다

잠에 자물쇠를 채웠나보다, 그녀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데도 눈을 뜨지 않는다

눈을 뜨지 않는 게 아니라 눈동자를 버린 거다

여기저기 매달린 링거병을 따라

그녀의 눈동자를 찾으러 간다

 

초록빛 당근을 키우던 꿈도

탐스럽게 매달던 포도알 꿈도

색색의 실로 토끼의 귀를 짜던 꿈도

고양이 눈을 그려 넣던 꿈도

호미도 대바늘도 코바늘도 다 버린,

그녀와 나를 이어주었던 배꼽에 얼굴을 묻는다

 

급박하게 숨 쉬던 그녀

매미의 복화술사 같은 숨소리가 잦아든다

텅 빈 동공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무기력하게 얼어붙는다, 한여름인데도

 

13층 병실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가로수, 자동차, 오토바이, 십자가,

자전거, 사람들이 뒤섞여 이승의 험한 길들을 자유롭게 건너가고 있다

 

 

 

한여름의 미소

박상종

 

여름 산빛 바다 빛 어우러지고

산등성이 갯바위 위에 얹어

손발 물에 담가 시원한 가슴

 

실바람 나풀거리고

초록빛 해초 바위

나란히 춤추며 일렁이는

 

저기 무리 지어 어울리는

듬성듬성 보이는

작은 물고기 떼

 

여울져 가는 한 시절에

미소가 화사하게 머리에

아른거리고 있을 때

 

그 한여름에 미소가

다시 떠오르는 저 산기슭에

붉은 태양처럼

 

반사하여 서서히 바다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저녁노을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한 번 올까 되새기다

돌아가는 시나브로

 

다시 세월 딛고 또 다른

삶을 기다리고

넌지시 남 시선 애태우는

 

눈에 뜨인 시야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기약 없는 손을 내밀어

 

그렇게 다시는 오지 않을 미소로

너스레 웃음 살며시 머금고

돌아가는 초록빛 여울

 

 

 

한여름

백우선

 

나무는 저 수많은 나뭇잎으로 태양을 일일이 통째로 빨아들이며 타오르고 있다

나는 이 부풀은 다면체 거울의 가슴으로 태양을 가득 품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한여름 밤에

송정숙

 

한여름 밤에

사각사각 눈 내리는 뜰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에

하얀 눈 위를 홀로 걸어간 사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벗이

보낸 사람을 끝없이 이야기하던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추억이란 앨범에 고이 간직하고

가끔 빗소리가 커다란 날

꺼내 보며 살아갑니다

 

 

 

한여름 조심스레 안부를 묻다

양재건

 

가까이에서 함께 하면서도 조심스러워 애만 태울 때도 있습니다.

평안과 더불어 건강하시지요. 그래요 평안하시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업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무튼 계속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부터 이곳이 우기가 되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여름비는 하염없습니다.

찌뿌드드한 날엔 갈증도 더없이 짓궂은 친구가 되어 찾아듭니다.

어젠 철학이 실종되어 오후 땡볕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럴 땐 묵묵히 그대 생각으로 그 긴 시간을 잠재웁니다.

 

잠결에 가끔 그대 몸속을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습니다.

졸졸 시냇물 흐르는 듯한 그 소리가 꿈길로 이어지곤 합니다.

숲속 여기저기서 서늘한 바람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러 올 것입니다.

 

계절이 몇 바퀴 바뀌어도 평안함이 내내,

그대 마음속 깊이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한여름 밤의 추억

오애숙

 

긴장이 애간장 되었나 먹먹한 맘

한동안 가슴에 맴돌다 한 쌓이어

목마름 사위다가 그리움 남겼어라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한동안 별 볼 때 가슴에서 말했지

별밤의 옛 얘기 속에 첫사랑 향기를

 

 

 

한여름 열돔으로

오애숙

 

열돔에 시달리어 괴로운 한여름 밤

해마다 찾아와서 행사한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밤이 되어버린 여름밤

 

낮이든 한밤이든 괴로운 여름이라

계곡서 한여름을 지내고 싶다지만

할 일들 쌓여 있는 터 어찌하리 이일을

 

여름이 빨리 지나 가을이 와야겠다

맘속에 학수고대 하는 맘 이심전심

하지만 계획한 목표 차질 될까 발 동동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

오애숙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

봄날의 향그럽던 향기로

만개한 찔레꽃은 그 옛날

내 엄니 품 맘껏 누리라

온누리 웃음꽃 피더니

 

하늬바람 결 따라서

저만치 낙조 타고 갔는데

- 스미는 진한 치자향에

엄니가 그리운 건 이순을

훌쩍 넘긴 까닭인가

 

황금색 물감 쓰려고

어린 날 무명 옷감에다

물 드리던 유년의 기억과

어깨 부상 당했을 때의

아련한 기억의 회로

 

여름으로 가는 길목

내 엄니 해박한 지식과

풋풋한 사랑 치자 향기 속

그리움의 물결들 퐁퐁퐁

가슴에 피어나는구려

 

 

 

한여름 장 마감하는 길섶

오애숙

 

해질녘 한가로움이

한낮의 열기와는

사뭇 다른 바닷가

 

사막의 뜨거움인데

출렁이는 바닷물 속에

녹아든 싸늘한 백사장

 

해질녘 파도 소리

들으며 개개인의 인생사

흔적도 없이 사라진듯

 

허허롬 가을 낙엽처럼

사각이던 맘 온데간데없이

하늘빛 슬은 생명참

 

하늘과 땅 사각지대 사이

인생의 비문 바로 곧춰 쓰자

마음 곧추며 휘파람 분다

 

 

 

한여름의 초록

이석구

 

가랑비가 자분자분

싱그런 초록 위에 내려앉은 뒤

영롱한 빛이 그리는

아름다운 희망을 본 적 있나

 

바람 한 줄 세차게

우악비 몰고 지난 뒤

모진 삶에 주저앉아 방울방울 눈물 흘리는

초록의

다친 영혼을 본 적 있나

 

어뜩하여라

한여름의 초록

그 자그마한 세계에조차

끊임없이 갈마드는 희망과 절망

 

구름 더러 거니는 하늘

오늘은 또 그것이

가랑비일까

아니면 우악비일까

 

 

 

한여름의 양산

이영지

 

새파란 개울가

빠알간 양산 쓰고 호호호

웃음 반

담아 든 하얀 꽃에 서로들

달짝지근한 하얀 미소 더위

꿈 익는 개울가

구름을 들고

와서 두둥실 걸어가며 박자를

맞추느라

웃음 반 깨소금 반이 달린 미소 더위

 

 

 

한여름 아침

이해인

 

비 온 뒤의 햇살에 간밤의 눅눅한 꿈을,

젖은 어둠을 말린다.

바람에 실려 오는 치자꽃 향기.

오늘도 내가 꽃처럼 자신을 얻어서

향기로운 하루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열매를 위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꽃의 겸손 앞에 내가 새삼 부끄러워

창가에 선 한여름 아침

 

 

 

한여름 밤에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정세일

 

한여름 밤에도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당신과 함께 강가에서

서로 밤을 밝히면서

가슴에 숨겨진 뜨거움을 강물에 비쳐보려고 해서입니다.

 

당신의 강물에 붉게 비치는 얼굴은

강물 불빛속에서도 여름만큼이나

뜨겁고 자신이 있어보입니다

한여름밤 모닥불에 비치어 빨간빛으로 돌아가는 강물을

우리는 바라보면서

슬프고 외로운 일이 있을때면

저 강물처럼 돌아서 가자고 마음을 비쳐봅니다.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때는

저 강물에 비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저 산처럼

마음을 두드려 주고 변함없이 어깨를 기대어주어서

서로 말없이 기뻐하며 웃어주자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강물에 우리들의 마음을 비쳐보면서

행복처럼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자고 생각을 합니다

한 여름밤에도 우리들이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강 속으로 마음이 같이 빨려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

정아지

 

잠든 산자락 덮고

여름밤은 꿈을 꾼다

숨죽여 흐르는 계곡물 소리

정적 고요 평화를 만끽하기에는

한여름 밤은 짧기만 하다

먹빛 어둠, 가지마다 별 등 켜고

보금자리 튼 산새

꿈꾸며 요동치는 몸 위로

별똥이 우수수 쏟아진다

잊어야 하는 순간에도 잔영으로 남아

못 잊게 만든

현실을 가로채 버린 판타지

그 딜레마에 빠져

한여름 밤, 꿈이 허덕거린다

 

 

 

한여름 밤의 기도

정연복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서산너머 가니까

 

간간이 시원한 바람 불어

한결 숨통이 트입니다.

 

땡볕에 조금은 더

초록이 짙어졌을 이파리들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으려

가만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직은 한여름

가을이 오려면 한참 남았으니

 

밉다고 등 돌리지 말고

더위를 사랑으로 품게 하소서.

 

하루하루

한여름 밤마다

 

불꽃같이 열정적인 사랑이

가슴에 꽃 피는 꿈을 꾸게 하소서

 

 

 

한여름

정찬경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개미 한 마리 없다

세상이 잠시 정지하였다

 

맹꽁이는 숨 고르기

저승사자 초고리처럼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뱀이 늘어지니

모든 중생이 흐느적거린다

 

삶이 무기력하고

권태가 이 땅을 지배할 때

벌 한 마리가 날아온다

 

한여름에

마른벼락보다

벌침 한방 쏘여 보자

 

 

 

한여름의 오후

정찬열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하얀 구름

동영상을 보는 듯 환상에 나래 속에

 

외롭게

질주하는 철탑 사이로.

모였다 흩어지는 푸른색 도화지에

 

뜨거운 바람결

흐느적거린 솜털 그림에

들짐승 날짐승 새털구름 새로워라

 

언덕배기

저만큼 뒤집힌 초록 잎이

갈증에 목이 말라 뒤 짚인 잎 세

한 자람 커 보겠다던 끝 오름 넝쿨 새순

 

한낮 땡볕에

검은 구름 그리워도

넓게 펴진 구름에 열기를 식혀보지만

 

유례없는 8월의

타는 열기에 목이 말라, 한낮 오후

비 내려줄 먹구름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한여름 밤 그리움

채홍정

 

희미한 초승달이 별 숲에 갇혀 졸고

가끔씩 운석 행렬 길 잃은 별똥별들

반딧불 깜박 지새며

쏟아지는 여름밤

 

어머니 팔베개에 못 다한 옛 얘기꽃

별빛도 아스라이 멍석 위 같이 누워

정겨움 한 뼘씩 자라

살몃살몃 쌓인 밤

 

길섶에 터줏대감 수줍던 달맞이야

달콤한 그 속삭임 은하수 정갈 따라

또 언제 한껏 나뉘랴

사무치는 그 날이

 

 

 

한여름 밤의 실루엣

최영준

 

열대야 밤이면 선풍기 바람에서 살 냄새가 난다 체온의 열기가 목까지 차오르고 알몸뚱이를 핥는 바람의 혀끝이 귀를 간질인다 어둠 속에서도 관성처럼 방향과 속도를 잃지 않고 궤도운동을 반복한다 뜨거워진 심장에서 절정에 이른 열기를 내뿜자 밤하늘 하트성운이 붉게 타오른다 주변의 놀란 별들은 눈망울만 깜박거리고 수줍은 별들은 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멀리 달아난다

은하수의 꼭지점, 변광성이 보내오는 보랏빛 혹은 물빛 모르스 신호, 잠이 없는 별나라 여자와 나누는 대화, 열대야 밤이면 별이 된 내 몸에서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뜨거운 전파가 쏟아져 나온다

 

 

 

한여름 밤의 빙궁(氷宮)

한하운

 

한여름밤의 빙궁(氷宮)은 기적

홀리데이··아이스 쇼

음악은 <백조의 호수>

불꽃빛 조명

무희는 춤추다 숨끊기는 신음을

하르르 하르르 한발 딛고

빙글빙글 도는 피루에트가

영육(靈肉)을 활활 불사르는 분신(焚身) 불사조

장엄한 시(). 움직이는 시

이어 군무(群舞)

은어 은어떼가 무리져 흘러가는

빙상의 발레

뭉게뭉게 오르는 흰 빙무(氷舞)

영원으로 가는 환상

휘황찬란한 조명이

빙상에 교차하는 추상적 영상은

해프닝 전위예술

움직이는 미술 룸직이는 시

한여름밤의 빙궁은

우의등선(羽衣登仙) 하려는 천일야(千一夜)

 

 

 

한여름 밤의 반가사유

허광빈

 

숨은 존재들이 벌레 울음소리처럼 쏟아져 나온다

여인들의 수다 발자국이 골목을 걸을 때

아파트 난간을 타고 넝쿨장미향 전해지면

푸른 꿈이 감긴 아파트 창은 생각의 꽃이 피고

삶의 낯 뜨거운 날들, 별빛 이슬로 덮은 섶에서

달빛은 강물 거느리고 독백처럼 외마디를 토해낸다

날 저문 강가에 무명새 자맥질하며 울고

물안개 미리내 따라 외로운 낮달을 거닐면

차마 피지 못한 꽃들의 넋들만 바람에 나부끼는데

마음에서 지워진 사연들이 마지막 숨을 헐떡인다

새벽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밤들을 弔文한다

묻어두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둠을 갈망하는 것

삶의 텃밭에 핀 꽃을 짓밟고 갈아 업는 일

산다는 것은 순리의 길을 따라 희망의 꽃을 파종하며

저 들에 핀 꽃이 내 꽃이 아니고, 내가 그 꽃이

될 수 없듯이가파른 존재를 세운 그 안에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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