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폭염, 열대야 1
강준철 - 무더위
강한익 - 늦더위
강효수 – 열대야
공석진 – 늦은 폭염
공석진 – 무더위
국순정 – 열대야
권경희 – 폭염아 쉬어 가자
권승주 – 더위 때문에
권승주 – 열대야
권태응 – 더위 먹겠네
김경철 – 이놈의 더위
김금자 - 열대야
김내식 – 폭염의 하얀 구름
김덕성 – 밤의 선물
김덕성 – 여름 바다
김덕성 – 팔월의 소곡
김명수 - 무더위
김명철 – 폭염
김분홍 – 폭염의 입관
김소해 – 무더위
김영길 - 폭염
김영길 – 폭염에 웃는다
김영식 – 열대야
김영천 – 열대야
김은영 – 더위 먹은 날
김인성 – 무더위
김인숙 – 열대야
김인숙 – 폭염에게
김재덕 - 폭염
김정윤 – 폭염
김정윤 – 폭염의 끝
김정현 – 더위
김참 – 열대야
김참 – 열대의 밤
김참 - 폭염
김택희 - 폭염
김희경 - 열대야
나희덕 – 열대야
남시호 - 무더위
노정혜 – 더워 고마워
노정혜 – 더위는 열정
노정혜 – 더위 열병
노정혜 – 돌아갈 길은 어디에
노향림 – 꽃을 켜다
도지현 – 폭염 속에서
도현영 - 살인 더위
류동열 – 더위 사랑
류동열 – 삼복더위의 노래
류인서 – 혹서
마경덕 – 염천(炎天)
목필균 – 열대야
문장우 – 무더위 속 상념의 나래
민만규 - 폭염
민정기 – 열대야
박경표 - 더위
박경표 – 열대야
박광현 – 늦더위
박기숙 – 폭염의 하루
박서혜 – 폭염
박소유 - 폭염
박신규 - 열대야
박얼서 – 열대야
박은율 – 여백을 읽는 밤
박인걸 – 도시의 삼복더위
박인걸 - 무궁화
박인걸 - 무더위
박인걸 – 폭염
박인걸 – 혹서(酷暑)
박재삼 – 무더위의 시
박재삼 – 혹서일기
박정재 – 여름 무더위
박진표 – 무더위
박진표 - 폭염
박태강 – 더위 맞이
박희홍 – 강더위
박희홍 – 더위 천적
박희홍 – 열대야와 모기
백낙원 - 열대야
백설부 – 폭염
백승운 – 폭염의 습격
백원기 = 늘어지는 무더위
백원기 – 삼복 날씨
사방천 – 불볕더위
사방천 - 폭염
성정우 – 더위 먹다
성백군 - 8월 폭염
성영희 – 열대야 소고
손미경 - 폭염
손병흥 – 늦더위
손병흥 – 더위 사냥
손병흥 - 무더위
손병흥 - 열대야
손병흥 – 열대야 증후군
손병흥 - 폭염
손병흥 – 폭염 주의보
손혜희 – 폭염
신광덕 – 염병 더위
심종은 – 더위
무더위
강준철
전나무가 시퍼런 장검(長劍)을 들고
여름을 썩썩 잘라 던진다
쓰르라미가 참나무 위에서
한창 오르가즘에 오른다.
그 울음소리에
나의 우주는 뒤집어 지고
나비와 벌들은 땀에 젖어
꽃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교회의 종기는
햇볕을 부수고
절간의 풍경 소리는
숲속을 떠돈다.
갑자기 한기에 몸이 떨린다
늦더위
강한익
그토록
뜨거움의 열기를
뿜어내던 여름이
꼬리의 끄트머리를
남겨 두었나 보다.
참매미
파르르 몸을 떨며
삶의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오랜 시간 푸르름을 자랑하던
고목(古木)의 우듬지 잎새
이별을 준비하는데
철모른
아기 장미 재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온 힘 다해
사랑을 쏟아붓는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구슬픈 노랫가락에
발걸음 가벼이
서산을 넘는다
열대야
강효수
태양은 물러가고
달은 어서 올지어다
주문을 외우나니
태양은 물러가고 작은
태양이 태어났네
발가벗은 달이 별 같은 땀
흘리는 밤
밤새 그렇게
서로의 이름만
끈적거려라
달 같은 땀 흘리다
아침 태양에 타버려라
늦은 폭염
공석진
이천십일년 여름 내내
채찍비는 계속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뇌성을 마비시키는 분노
큰 소리만 떵떵 치더니
자신이 무장 해제 당하여
아스팔트에 무릎 꾾은 더위
애먼 가을만 막아선다
"아직은 오지마라
체면 회복은 시간문제다"
미쳐 날뛰는 굶주린 들개처럼
분연히 일어나는 무차별 숨통조임
'가을 진입금지'머리띠를 두르고
추풍이 기웃거리는
여름 언덕 끝자락에서
핏대 올리며 주먹질하고 있다
무더위
공석진
완벽하게
세상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다리에
잔뜩 힘주고
버텨주던 빌딩들도
한번 건들면
폭발할 것 같던
충혈된 시선들도
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가진 자들의 호들갑도
이젠
아무런 저항 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사람들의
멍한 무기력
그 사람들 앞에
살아보려는
의지를 불사르는
걸인의 구걸
버스터미널 한쪽 구석
낡은 선풍기
탈탈탈
의미 없이 돌아가고
지쳐 널브러진
사람들의 의식에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나기에 대한 꿈은
정녕
없는 것이냐
열대야
국순정
오늘도 열대야인가 봐
내일은 아홉대야
모래는 여덟대야
글피는 일곱대야
그글피는 여섯대야
그렇게 그렇게
열대야는 사라져 가겠지
계절도 하루를 비워내야 또 다른 계절이 오고
그렇게 비우면서 채워지는
어느 공식 같은 세월
우린 무엇을 기다리며 이 밤
이 열대야를 힘겨워하는가
폭염아 쉬어가자
권경희
칠월의 뜨락에서
후끈후끈 닳아 오르는 무쇠솥
버선발로 반겨줄 엄마 대신
저녁밥이라도 지을 기세다
쩌렁쩌렁하게 반겨주는
매미의 애절함도
노랗게 타들어가는 텃밭도
물빛 담은 하늘바람이 그립다
울 밑에 축 처진 봉선화
등줄기라도 식혀줄 한 줄기 바람과
담을 오르는 나팔꽃
아침 기도를 위한 가랑비라도 좋고
이글대는 태양을 이고 선
실개천에 개망초꽃
타들어가는 입술을 훔칠
심술궂은 소낙비라도 좋다
옛이야기 조잘대던 시냇가
그리움도 고단함도 내려놓고
세월의 곁가지에
도란도란 쉬어갈 단비가 그립다
더위 때문에
권승주
무더위 탓일까
힘 빠진 나뭇잎에
고통스러운 땀이
줄줄 흐르고
침묵이 공원 숲을
재우고 있어요
회색빛
아파트 콘크리트 벽
뜨거움에
어찌할 줄 모르고
하늘만 원망하고
익어가고 있어요
내 몸에
여름마다 고통을 주는
붉은 땀띠는
얄미운 손님인가 봐요
마음에
즐거움보다는
무거운 먹장구름이
덮고 있어
곧
소나기가 내릴 거예요
바다가 좋아
내가 좋아하는 그대를
그리워하며
꽃이 되어 버립니다
온종일 빙빙 도는 선풍기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열대야
권승주
너는
성질이 고약해
밤까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이집 저집 다니며
잠을 깨워
네 생명도 얼마남지 않았어
가을이야
너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이
떠나겠지만
고통은 너무 커
포도처럼 알알이
가슴 깊이 박혀있어
다시는
오지 말아
더위 먹겠네
권태응
타는 듯 내리쬐는 저 들판에
일하는 사람들 더위 먹겠네
구름들아 햇볕 좀
가려라 가려라
죽도록 일해도 고생 많은
땀 철철 농군들 더위 먹겠네
바람들아 자꾸 좀
불어라 불어라
이놈의 더위
김경철
구름이 있다 한들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에
대지의 열기는
매일같이 오르고
숨쉬기는 힘들어
그냥 누우니
축 느려진 몸에
붙은 팔 다리
마치 나사가 풀린 듯하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있다 한들
뜨거운 바람 불어와
짜증은
활화산이 되어
초 싸움에 들어가는데
가을은
언제 올까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더위는
기세등등하여
최고 기온을
허구한 날 바꾸니
가만히 있어도
등을 탄 땀방울
주룩주룩
흘려내리기만 한다
열대야
김금자
태양이 뿜어낸 오수의 하품인가
미로를 헤매는 듯한 찜통의 열기
후줄근한 밤이 지새기를 뒤척인다
소금꽃을 피워 매끈한 몸매에
덜덜거리는 선풍기가 농을 걸 때
어느새 여명이 손짓한다
헐떡거리던 광란의 밤은
빗줄기에 하얗게 떠내려가고
벌겋게 달아오른 눈꺼풀이
흐느적거리던 몽롱함을 꿰맨다
고집 센 열대야를
이쁜 태풍이 얼레고 달랬는데도
아직도 생떼를 부린다
폭염의 하얀 구름
김내식
이글거리는 지열이 올려 치받는
폭염의 하늘에 드높이 뜬 하얀 구름
뭉칠 줄 모르고
허깨비로 동동 떠다닌다
잠 못 이룬 구름인들
제정신일까
열하의 감자밭에서
소금을 입에 털어 넣고 찬물만 계속 마시니
뱃속이 출렁거려
멀미가 난다
따가운 눈꺼풀 수건에 찍어 누르며
수없이 하늘을 보고 또 보나
여전히 희다
앞으로는 속 좁은 마음에 뜨는
근심의 검은 구름 조차
사랑을 해야겠다
그 들이 뭉치고 뭉쳐 비가 되어
한바탕 신나게 퍼붓고 나면
심신이 시원할 테니
밤의 선물
김덕성
긴 열대야
폭염 속에 잠 못 이르는 밤
이제 비로소 선선한 바람 불어오니
열대야가 물러났나 보다
쏟아붓는 가마솥 같은 폭염
30도를 오르내려 잠 잘 수 없더니
기온이 떨어진 밤의 선물
27일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던
긴긴밤이
이제 그 밤은 떠났다
자연은 거짓이 없다
정해진 이치에서 한 치의 어김이 없다
이제 가을이다
더위로 마비되었던 두뇌
선선한 밤에 새 시상(詩想)이 떠올라
가을에 담는다
여름 바다
김덕성
팔월 초순
불가마 속 같은 찜통더위에 밀려
달려와 가슴을 헤치니
글쎄 느닷없이
하이얀 거품을 물고
사자처럼 달려와
반갑게 포옹하며 물세례를 주는 파도
숨을 돌리려 하면
다시 밀려와 반복하는 바다
이제 몸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여름 바다가
이렇게 좋은걸
팔월의 소곡
김덕성
신록이 폭염에서 벗어나자
이제 지친 심신으로
새들의 노랫소리로 화답하는
숲속을 거닐다
하늘하늘 웃음 짓는 코스모스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슴에 아로새겨진 사랑
수그러진 듯싶은 햇살
가슴에 사랑이 꽃피우며
사랑의 시심(詩心)이 우러나고
열매가 넉넉하게 맺으며
과실이 맛있게 익어가는 계절
태풍이 피해 없이
한반도를 이롭게 불어가는
행복한 웃음 속에 환희의 소곡이
연주되는 팔월이어라
무더위
김명수
너는
내 옷을 벗겼지만
너를 피해서
찬물을 만났어
온몸을 만져주는
다정한 찬물 때문에
잠시라도
너를 잊을 수 있었지
폭염
김명철
내 안에서 그가 기둥처럼 넘어진 후 여름내 열병을 앓았습니다 열꽃들 지천으로 꽃잎을 펼쳤습니다 하얗게 들떠다니다 한 사내를 보았습니다 여름도 백 년 동안의 맹독을 뽑아내려는지 신도시 곳곳에서 혈맥을 터뜨렸습니다
사내는 완강한 여름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습니다.
왜에 그랴아? 난 에미 잡아먹구 애비도 쥑인 년이여어
독주를 마시는 사내를 향하여 공사장 밥집 여자는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불화살 속에서 ㄷ자로 철근만 구부리는, 허리를 펼 때마다 허공에 지글거리는 눈빛을 쏘아올리던 사내 그때마다 나도 그의 옆에 꼿꼿이 서 있고 싶었습니다
한밤, 돌아서는 사내의 검붉은 등 뒤로도 여름은 무릎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름 한복판에 난 상처는 다시 오는 여름마다 더 깊고 넓게 번진다고들 하였습니다 겨울 울음은 봉합일뿐 다음 여름을 가만가만 건너갈 수는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철근 구부리던 사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의 허리가 구부러질 때까지 제 그림자 속으로도 몸을 숨기지 않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폭염의 입관
김분홍
폭염에게 산소 호흡기를 씌워줄까 산소 호흡기를 쓰고 숨이 멎은 나처럼, 여긴 춥고 날카롭다
어디선가 살쾡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천국과 이승의 경계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사람에서 사람을 빼면 남는 건 육신인가 혼령인가
알약을 먹고 뒤척이는 열대야의 밤. 알약을 삼킬 때마다 언젠가 알약이 나를 삼킬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염습사가 폭염의 머리를 빗긴다. 뜨거웠던 생을 세척하고 있는 손끝이, 기저귀에 짓무른 엉덩이를 삼베에 싸서 포장한다
떠난 흔적만 있고 돌아온 흔적이 없는 담쟁이의 외출은 편도다. 누구나 가야 하지만,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마지막 여정
울지 말아요. 나는 그림자를 지운 망자. 사망진단서 한 통에 폭염의 죽음은 요약되고 국화꽃을 맞이하는 조문객. 매듭 풀린 폭염이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붉은 혀를 내밀고 노을로 산화해버린 맨드라미의 최후인양, 몇 달 동안, 물 한 모금 없이, 견딘 폭염의 유언은 무엇일까?
나는 폭염을 만질 수 있고, 폭염은 나를 만질 수 없고, 죽음은 단추를 채울 수 없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관 밖의 나는 관 속의 나를 기웃거린다
묶여 있던 죽음이 죽음을 푼다
무더위
김소해
마흔셋의
무더위
등줄기 시린
어둠으로 밤을 덮고 있다
칠월의 한낮
스치던 바람
물기 머금은
나뭇 잎 흔들어
그리움
바다 되었네
바위에
몸 던져
하얗게 부서져
난무하는 살점들
가슴 시린 바람
파도 머금어
광풍 막았네
가을 단풍
스져 올 바람
서릿 발 감도는
국화 꽃 필 때
향기 흔들면
그대
강가에서
동백꽃으로 서리라
폭염
김영길
숨 막히는 무더위에
얼음공장 사장님은
웃음꽃이 활짝 핀다.
찜통더위 계속되니
돈이 굴러 들어온다.
가마솥에 삶는 더위
팥빙수가 동이 난다.
빙수먹자 모여 드니
사장님은 신이 나고
금고에. 돈 넘쳐난다.
무더위가 극성이니
아이들은 얼음과자
많이 먹고 배탈 나서
병원가도 또 먹는다.
부모들은 야단이다.
무더위가 극성이던
그 옛날의 시골 밤은
집집마다 모닥불 펴
짙은 연기 숨이 막혀
모기들이 도망갔다
폭염에 웃는다
김영길
사람의 체온과 동일한
중복의 더위가 숨쉬기
힘들 정도로 연속됨에 따라
사람들의 신체리듬에
비상이 걸렸다.
이 와중에도 들판의 벼들은
뜨거운 태양의 열과 찜질하는
더위에 함박웃음을 지며
날씨에 감사함을 표시한다.
이 같은 폭염에 쑥쑥 성장하여
다가올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나를 키워준 농부에게
풍년의 기쁨을 주고자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것 같다
열대야
김영식
새벽 세 시 고양이들이 울었다
처음 그것은 잠투정하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다 데모하는 시위대처럼 울었다 나중에는
시립오케스트라처럼 울었다 그중 유독 큰 소리로 우는 고양이가
무리들의 울음을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테너로 울면 다른 녀석들도 테너로
녀석이 하이소프라노로 울면 다른 녀석들도 하이소프라노로 울었다
마트로쉬까가 품속에서 끊임없이 인형을 꺼내듯
울음주머니가 품속에서 끊임없이 울음을 퍼냈다
울음은 골목과 아파트를 쥐고 흔들었다
장마 끝난 뒤의 습한 베란다를 넘어
응접실을 넘어 안방을 넘어 울음은 해일처럼 밀려왔다
저놈의 고양이 저놈의 고양이
누군가 고양이들에게 헌 신발짝 같은 걸 던졌지만
그럴수록 녀석들은 더 악을 쓰며 울었다
발톱을 세우며 푸른 적의를 내뿜으며 울었다
어둠을 갈갈이 찢어발기며 울었다 울다가 목이 쉬면
다시 목을 가다듬어 울었다
울음은 사람들의 목구멍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이참에 온 동네를 질식시키고 말겠다는 듯
울음의 늪에 빠진 사람들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울었다
벌써 열흘째 계속이다 이놈의 고양이
열대야
김영천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열기
부끄러움
모올래 돌아누우면
이제 속에서 치오르는 허열에
세상이 울렁거린다
다 벗어도,
명예나 권력이나
부에 대한 욕망까지 다 벗어도,
무엇이 아직 남아
내 지친 영혼을 덥히는가?
거대한 어둠조차
한 마디 대꾸하지 못하고
마냥 엎드려만 있는지
활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너의 입김처럼
단내가 훅
풍긴다
더위 먹은 날
김은영
어머니 어머니
맑고 깊은 동해바다
푸른 파도 한 사발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요
얼른 떠다 주세요
요 녀석아 요 녀석아
바다는 너무 멀단다
바닷물은 짜기만 하단다
수박화채 한 그릇 먹고
냉큼 기운 내거라
무더위
김인성
목축인 빗방울 그치자 찾아온
반갑지만은 않은 붉은 손님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찡그리며 소리 없이 부른다
아름다운 거짓말
홍수로 인한 피해보다 낫단
슬픈 위로의 파편을 뿌려도
불편한 진실은 웃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 주신
진정한 눈물겨운 행복은
설렘의 고난 뒤에 찾아오는
인내란 지혜의 삶, 삶들
불타는 여름옷을 입은 육체 위로
태양의 진실이 드러난다
완벽한 감동이 코끝을 찌르고
아무도 모르는 새
푸른 담벼락 위에서
뜨거운 임진년의 불청객이
성실을 조롱하듯 벌써부터
흐흐흐 음흉이 웃고 있다
열대야
김인숙
뜨겁게 타오르는 팔월의 밤
끊임없이 끓는 정열을 과시하며
너도 나만큼 뜨거울 수 있느냐 ?
나 잡아 봐라
메롱 메롱
잠 못 들게 하는구나
폭염에게
김인숙
그대는
치솟는 화를 더 견딜 수 없어
화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지요
화병이 더 커지기 전에
참지 말고 실컷 뿜어내세요
다 받아들일게요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꼭 낫게 해 드리고 싶어요
청명한 하늘 온유한 땅
선한 사람의 아름다운 가을로
회복되어 어서 돌아오세요
높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
우리 속 시원하게 얼싸안을 날을
밤낮으로 손꼽아 기다릴게요
폭염
김재덕
그 성질머리가
짜증도 땀도 옷 벗게 만든다
다 타버리면 어쩌려고
밤엔 피 빨리고 낮엔 기진맥진
갈증 해소 자주 칭얼댄다
폭염(暴炎)
김정윤
금방이라도 삼킬 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열기를 피해 달려간 해변
목덜미가 따갑도록 쏟아지는 햇볕에
발가벗은 몽돌들이 엎드려
차오르지 않는 바닷물을 잡으려고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한낮의 해는 바다에 주저앉아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려고
짜디짠 바닷물을 마셔대고 있다
폭염의 끝
김정윤
광복절 오후
동풍(東風)은 숨이 막힐 것 같은
진한 흙내음을 풍기며
폭염에 휘청거리는 도시에
비를 예고한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목마른 초원을 흠뻑 적시고
도시를 향해 달려온다
뒤틀린 양철지붕을 두들기며
요란하게 쏟아지는 작달비에
폭염은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어디론가 달아난다.
폭염의 끝
시들어 가는 초원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녹색 잎은 생기(生氣)를 찾는다
더위
김정현
더위 먹은 트럭 한 대
고속도로에 길게 누웠다.
따라오던 택시도 덩달아
발랑 눕는다.
트럭과 택시가 눈 맞아
세상을 내동댕이쳤다.
잔뜩 실은 짐
길바닥에 부려 놓고
트럭과 택시는 사랑놀이에 빠졌다.
구경꾼의 시선도 뜨거워진다.
구급차 지나간 자리에는
트럭도 택시도 주인을 잃고
검은 땀 길바닥에 쏟아 놓는다.
소리 없이 번지는 더위를 따라
열대야
김참
파란 소가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름밤. 잠 못 드는 내가 파란 소와 함께 산책 나서면 잠들지 못한 사람이 틀어 놓은 음악 때문에 잠들지 못한 새들과 잠들지 못한 새들 때문에 잠들지 못한 풀벌레와 잠들지 못한 풀벌레 때문에 잠들지 못한 아기들. 잠들지 못한 아기 울음소리 아파트 창문 타고 흘러내리는 밤. 거리에 도열한 가로수 초록 잎 열풍에 조금씩 말라 가는 밤. 내가 파란 소 따라 건널목 건널 때 주황색 달이 커다랗게 떠올라 오렌지처럼 타오르는 밤. 그 열기 때문에 잠 못 드는 내가 파란 소와 함께 강변 모래밭을 횡단하는 밤
열대의 밤
김참
검은 항아리 머리에 이고 검은 얼굴 여인들 걸어가는 열대의 밤
노란 새들 나무에 앉아 커다랗게 지저귀고 어두운 하늘에 뚱뚱한 구름 흘러가는 밤
하얀 도마뱀들 벽 타고 내려와 바구니의 망고를 갉아 먹는 밤
검은 얼굴 여인들 강가 모래밭에 항아리 내려놓고 어두운 강에 들어가 파란 물고기 건져 올리는 밤
검은 얼굴 여인들 바오바브나무 아래 항아리 내려놓고 어두운 숲에서 초록 뱀을 잡는 밤
검은 얼굴 여인들 검은 항아리에 파란 물고기와 초록 뱀을 담아 어두운 오솔길 따라 돌아오는 밤
노란 달 공중에 떠올라 뜨겁게 타오르고 검은 바람이 뚱뚱한 구름을 밀고 언덕을 넘어가는 밤
잠 못 드는 내가 도마뱀처럼 벽을 타고 지붕에 올라 뜨거운 달빛 받으며 무화과 열매처럼 검은빛으로 익어가는 밤
폭염
김참
늦잠에서 일어나 거실 커튼을 걷는다. 창밖엔 우주선이 떠 있다.
우주선에서 외계인들이 뛰어내린다. 새처럼 날아 베란다로 들어온다.
그중 한 명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우린 구면이죠? 그렇군요.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안면이 있는 이다.
같이 온 두 외계인은 낯을 가리는지 베란다에서 붉은 꽃 피운 외계 식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구면인 외계인이 초면의 외계인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서로 적당히 인사를 나눈다.
나는 찬장에서 붉은 대접 네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린다.
손님이 왔으니 대접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붉은 대접에 골고루 따른다. 이건 우리 고장 특산주인데 맛을 한번 보시죠. 순식간에 잔을 비운 외계인들이 눈을 커다랗게 뜬다.
이런 기막힌 술은 처음이라며 감탄한다.
하기야, 내가 마셔본 막걸리 중에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상동 막걸리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구면인 사내가 막걸리를 좀 얻어가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아쉽지만 집엔 남은 게 없다고 했더니 꼭 좀 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다.
막걸리를 구하려면 집 근처 두배로마트에 가야 하는데, 밖에 나가기 싫어 적당히 둘러댄다.
아쉽지만 어렵게 구한 술이고,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음을 기약하자고. 미리 연락을 주고 오면 술을 구해놓겠다고.
외계인들은 아쉬워하며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뜻을 전한다.
우리는 손을 내밀고 작별 인사를 한다.
외계인들이 새처럼 날아 우주선으로 돌아간 뒤 나는 커튼을 친다.
빈 대접을 치우고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통을 꺼내 뚜껑을 딴다.
연일 폭염이 계속된다. 막걸리 사러 나가기엔 너무나 더운 날이다
폭염
김택희
입에 넣어 주던 것이 버찌였나
붉은 얼룩이 주루룩
열정마저 물러버린
막막함이
다시 왁자하게 울음을 놓는다
밟힌 목련처럼
대책 없는 소란의 계절
새벽 세 시는 넘치는 부재 은밀한 압박
웅크린 등 뒤로 마구 달려들어
쪼그려 앉아
빽빽한 삼나무 숲 그리면
돌아가고 싶어 붉어진 등 뒤와 머물지 않을 시푸른 자존이
엎어놓은 몽환의 그림자
강물로 흐르지
귓전을 타고 흐르는 스메타나의 몰다우
간극을 좁히는 물 따라
몸이 촘촘해져
무른 시간 달래다 희부연 모퉁이
내게로 돌아오는 길 잃어
오래도록 붉어
열대야
김희경
낮이 긴 영역이 두려운 이에게
낮이 밤보다 더 지리멸렬인 이에게
어둠이 결코 위안이 될 수 없다고
밤이 어둠을 끓이는 채찍일지라도
홀로 견딤이 이골이 난 이에게는
홀로 삭힘이 뇌가 두 개여서 다행인 이에게는
질금질금 거르며 발효되길 바라는
밥통 속 식혜의 시간과도 같은 것
이 밤에도
익어가다 멈춘 이가 있을 터이고
이 밤에도
잠조차 가난하여 밤을 밥통에 넣어둔 이가 있을 터이고
이 밤에도
몰래 밥통 열며 그 속에 불은 눈물 쏟는 이가 있을 터이고
다시 한소끔 삶을 끓여내었을 때
그곳에 달콤한 시절을 넣었을 때
동동 떠오르는 낯선 내 모습을 자꾸 걷어내기도 할 터이고
그렇게 며칠 아프게 앓다 보면
배가 고파져서
그 식혜를 내가 마시며
생을 소화해 낼 시간이
분명 있다고
열대야
나희덕
얼마나 더운지
그는 속옷마저 벗어 던졌다
엎드려 자고 있는 그의 엉덩이,
두 개의 무덤이 하나의 잠을 덮고 있다
잠은 죽음의 연습,
때로는 잠꼬대가 두렵고
내쉬는 한숨의 깊이 쓸쓸하지만
그가 다녀온 세상에 내가 갈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렵고 쓸쓸한 일이 있을까
그의 벗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
누구도 데려갈 수 없는 그 강을
오늘도 건넜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는
밤은 열대처럼 환하다
무더위
남시호
거기 누구 없소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리 불러 보아도
겨울 한 점 없네
젊은 부채가 힘껏 불러보아도
그 겨울은 아니어라
그 맛 아니어라
아무래도
누군가가 그 겨울만
금지 했길래
숨넘어가는 무더위에
그 겨울의 열정 한 점 있으면
지루한 삶도 지워질텐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리 불러 보아도
더워 고마워
노정혜
더워 더워
덥다고 불평했노라
미안 미안
마스크 가려
거리두기
땀 흘리지 않고 보내려니
미안 미안
아침저녁 공기
가을 오려한다
더워 더워
가을 풍요로워
더위
너 없이 곡간 채울 수 있나
마지막 더 더워라
알곡 튼실하게
가을에는 가을에는
풍년가 부르리라
마지막 태양빛 떠거워라
농심 미소 보고싶다
가려는 여름
오려는 가을
가을 오면 가을 오면
황금빛 파도
가을바람에 춤춘다
더위는 열정
노정혜
덥다 더워
더위는 열정
청춘을 불 살고 있다
산과 들 개울과 바다가 푸르다
시원하게 바람이 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기롭다
짙푸른 청춘 청
년의 기운
청년들은 바위도 들 수 있는 힘
여름은 청춘이다
더위가 머문 곳에는
자연이 쑥쑥 자란다
가을 희망을 부르면
힘찬 걸음
청년의 걸음
올가을엔 곡간마다
알곡이 가득
집집마다 웃음소리 들린다
더위 열병
노정혜
산과 들이 열병을 앓는다
농부들의 구슬땀
알알이 영걸은 과일이
빨갛게 웃음 짓네
자연의 가뿐 숨소리
누굴 위하여 열병을 앓나
알곡을 만들기까지
알곡의 운명이라
우리는 먹거리
생명의 신비
보람이라
바람과 손잡고
열병을 앓는다
곡식과 과일
알알이 익혀주리라
돌아갈 길은 어디에
노정혜
여리고 여린 새싹이 진초록 숲이 되었다
개울이 흘러 흘러 바다로 개울에 동무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데 길은 어디에
여름이 봄이 그리워 돌아가려니 길은 어디에
우리네 인생 왔던 길 돌아가려니 길은 어디에
세월은 돌아감을 몰라 여름이 알곡을 향하여 달리고 달린다
삼복더위 피해 갈 수 없다 흐르는 인생 끝 닫는 곳은 어딘가?
꽃을 켜다
노향림
습한 공기가 제 몸을 짜서
내다 넌 등꽃 그늘
그 아래는 무더위가 점령했다
수십 송이 보랏빛 꽃잎이 비듬처럼 떨어지고
내 발등을 덮는 동안은 눈이 부셨다.
그러나 향기는 나에게까지 건너오지 않았다
그 독한 향기들은 어디론가 뛰어가
길 잃은 모양이다
속절없이 기다리는 동안
재로 삭아내려 꽂히는 한 움큼의 시간,
누군가 두런거리며 지나갔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무형의 길들이
피어나는 일은 꿈이었을까
대낮에도 환한 얼굴 내다 건
등꽃들의 거푸집은 따로 있었구나
등꽃 밖의 세상이 점점 어두워 온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사람의 거리엔
창백하게 매달린 가로등 대신 꽃을
켜기 시작한 날
폭염 속에서
도지현
표피가 한 겹씩 벗겨진다.
정수리에서 솟아나는 물은
폭포가 되어 흘러
페이브먼트를 흥건하게 적시고
엿가락처럼 늘어진 빌딩
그 사이로 熱沙의 태풍이 분다.
삶은 언제부터인가
용광로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가로는 이제 플라타너스의 무덤
늘어진 시체밖에 보이지 않는데
바람까지 합장을 했나 보다
도회는 공기까지 가둔 섬
이세한 막으로 뒤덮여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라
호흡까지 막는 둔탁한 벽이다
살인 더위
도현영
청명한 하늘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솜털 구름도 지쳤는지 흐느적거리며
한가로이 두둥실 노는 모습을
찌푸린 눈동자에 담아본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불을 지피고
아스팔트 열기에 얼굴 후끈거림은
외출하려는 발목을 붙잡는다
동물은 열 꽃이 활짝 피어나
벌컥벌컥 심장에 북을 치고
식물은 불볕더위에 눌려 고개 숙이니
선풍기 에어컨이 몸살을 앓는다
세상 구경 떼 지어 나온 땀방울
쉴 새 없이 부지런 떨며
등줄기와 가슴골이 미끄럼틀인 양
쏠쏠한 재미에 푹 빠져
흐르고 흘린 육신을 지치게 한다
더위 사랑
류동열
한 홉 큼
땀방울 훔칩니다
심호흡을 하고
살아남아야지
더위와 싸워 승리를
알아주지 않지만
보아주지 않지만
나 여기 있음을 기억하게
찐한 더위
잘 익은 사랑
달콤함을 맛볼 수 있게
아
여름이여
끈기를 시험하게 한다
삼복더위의 노래
류동열
아이고 더 부라
아이고 더 부라
하늘의 구름은 어디에 가셨나
방패도 없는데
불화살은 세상을 행해 쉼 없이 쏟아붓는다
길가는 바람도 땡볕에 장단을 내고
아스팔트는 빤짝빤짝 빛이 난다
이 동네 저 동네
에어컨 바람
선풍기 바람 놀이터가 되어 신이 나고
길가는 이웃들 비명을 질러 된다
더 부라
아이고 더 부라
혹서
류인서
동네 마트에서는 기우제 지내듯 연일 비의 음악을 틀고 있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이 빗방울은 지난 세기의 빗방울,
거리는 빛의 제국이다
머리 위로 뜨거운 그림자를 쏟으며 공중 기차가 간다
선크림 허옇게 뜬 내 얼굴을 분장극의 입구라 하자
가면을 뚫고 나온 땀줄기가 목을 핥는다
노랫말을 찢고 나왔나, 침대보다 더 커다란 발을 가진 남자 둘
바닥뿐인 아이스크림 통을 젓다
열 수도 닫을 수도 없는 바깥을 향해 핑 핑 헛총질을 한다 빈손으로 뛴다
오늘도 화약 냄새 요란한 협곡,
퇴로 없는 정지화면 안의 탈주극,
떨어진 커다란 통꽃들이 열대의 나방처럼 기괴하다
염천(炎天)
마경덕
산기슭 콩밭에 매미울음 떨어진다
울음을 받아먹은 밭고랑 열무 바짝 약이 올랐다
상수리 그늘에 앉아 쓰르 쓰르
속 쓰려, 쓰려
혼자서는 속 쓰려 못산다고
짝을 찾는 쓰르라미 울음이 대낮 콩밭보다 뜨겁다
이놈아 그만 울어!
불볕에 속곳까지 흠뻑 젖은 할망구
등 긁어줄 영감 지심* 맬 딸년도 없어 더 속이 쓰리다
호미 날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떨려 나가고
청상으로 키운 아들이 죽고 콩밭짓거리**로
김치 담궈 올린 외며느리에게서 떨려 나온 할멈도
쓰름쓰름 다리 뻗고 울고 싶은데
그동안 쏟아버린 눈물이 얼마인지, 평생 울지 못하는
암매미처럼 입 붙이고 살아온 세월
슬픔도 늙어 당최 마음도 젖지 않고
콩 여물듯 땡글땡글 할멈도 여물어서
이젠 염천 땡볕도 겁나지 않는다
팔자 센 할멈이나 돌밭에 던져지는 잡초나
독하긴 매한가지
살이 물러 짓무르는 건 열이 많은 열무
손끝만 스쳐도 누렇게 몸살을 탄다
호랭이도 안 물어가는 망구도 살이 달고
열무같이 풋내 나던 시절이 있었던가
폭염 같은 세월에 쪼글쪼글 졸아붙은 할망구
생전에 영감도 못 본 엉덩이를 훌러덩 까고 앉아
밭고랑에 쫄쫄쫄 오줌을 눈다
오줌발에 발등이 젖은 참나무숲은
산그림자 따라 슬금슬금 콩밭으로 내려오고
쓰르……쓰르……쓰르…
호미 날에 울음이 뚝 잘렸다
해는 식어도 고랑 고랑 펄펄 끓고
하루치 울음을 퍼낸 뒷산이 적막하다
* 지심 : `풀(草)`의 전라도 사투리
** 콩밭짓거리 : 콩밭 고랑 사이에 심은 야채, 주로 김칫거리를 말함. 전라도 사투리
열대야
목필균
온종일 뜨겁게 달구어진
아파트에
어둠이 내려섰다
딸이 빠져나가고
아들이 빠져나간
거실에는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조바심도 사라졌는데
텅 빈 거실에
대형 TV가 온도를 높이며
몇 시간째 리모컨 번호대로
화면을 바꾸고 있다
기울 진 나이만큼
점점 무거워지는 몸에
진득한 땀이 배어드는데
뒤척거리는 밤을
자지러지는 매미 소리가
긴 여름밤을
한 자락씩 가쁜 음계로 가르고 있다
무더위 속 상념의 나래
문장우
뜨거운 여름 속 폭염
오고 또 가게 내버려 두고
오직 세월의 속도만을
바라보련다
세월의 바람이
폭염을 한 움큼씩 쥐고 달아나다 보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여름도
안녕이라 하고 손 흔들면 떠나겠지
산 까치 한 쌍이
시간을 물고 땀방울 훔치며
고갯길 넘어가니
기다림이란
나의 시간과 나의 속도라
붉은 오색단풍이
신선한 바람과 함께 나타나
지난날의 희한도 희열도
촉촉이 묻어나리라
서산을 넘는 붉은 해는
하품 끝에 눈물 만 훔치는데
무더위 속 시원한 가을 길은
날마다 그리워도
손 닿지 않는 곳에
아직 머물고 있으니
해묵은 기억들은 구름밭을 이루고
어릴 적 물장구 치며
뛰어놀던 강가에는
내 유년의 종이배가
조용히 떠다닌다
폭염
민만규
1
강렬한 햇살이
심술을 부리니
산천초목이
바람 속에 숨어든다
개망초가 빳빳이 고개 들고
폭염과 맞짱 뜨니
풀 죽은 풀꽃이
슬금슬금 눈치 보며
냅다 도망친다
2
햇살이
짓궂게 심술을 부린다
우주에서
별들끼리 싸움질 하나 보다
불똥이
지구로 떨어졌으니!
3
햇살의 히스테리에
산천초목 쓰러지고
못 살겠다 울부짖는
풀벌레는
피난길에 나선다
탄다
꽃심도 타고
농심도 타고
민심도 타들어 간다
4
얄미운 당신
밤새 열대야를 데리고 와서
잠 못 자게 하더니
이른 아침부터
또 투정을 부리시나요
당신 등살에
오늘 하루도 어찌 견뎌야 할지
긴 한숨이 천 리를 가오
열대야
민정기
삼복을 부채질하던
더위 따돌리려
잠을 청하는데
누가 날 부르네
들려오는
저 푸른 매미소리
삼복을 지우는가
밤도 잊은 채
풀잎 같은 음성으로
열대야를 밀어내며
더위 쫓는 그 울음이던가
여름을 업고 떠나가는
청량한 너의 울음 뒤엔
가을 풀벌레 소리 들리고
점점 내 곁에 오고 있네
더위
박경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냉동고에 물수건 넣었다 냉찜을 한다.
37도 38도 계속 오르는 수은주
선풍기 에어컨 다 동원
올 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이다.
겨울엔 핫팩
여름엔 냉팩
물수건을 목에 걸고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죄를 생각해 본다
열대야
박경표
우와아 덮다 더워
주르르 흐르는 땀 방울
이십 삼시 삼십 일도
이십 오도 넘으면 열대야
앞뒤 열려진 아파트 창문
실바람을 맞이 한다.
선풍기 제습기 활용
방안 공기 최적화
환자처럼 얼음 찜질
냉수건으로 더위를 식힌다.
대자리 펴고 누워 잠님 모신다.
새벽에도 이십팔도 지난 밤도 열대야를 이긴
감사한 이 한밤
늦더위
박광현
여름이 다 지난 줄 알고
매미도 울음을 멈추고
장대비도. 화려한 장미꽃도
멀리 떠나 보냈는데
처서(處署)도 지난 9월 날씨가
폭염(暴炎)에 가까운 30도를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높아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따갑게 내리쬐는
햇님 눈치만 볼뿐
오늘도 에어컨. 선풍기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네
폭염의 하루
박기숙
오늘 하루도 우중충한
폭염의 하루다
비지땀을 흘리며 풀섶에
주저 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씽끗 웃는다
온 산야가 태양의 이글 거림 속에서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드는듯 하다.
멀리 보이는 하얀 개망초,
꽃들이 미리내
하얀 물결 속에서 춤추는듯 바람에
살랑살랑 나비 춤을 춘다
아! 인생이란 누군가 말했다
꽃병과 약병사이에서
오락가락 방황 하고 있다고,
무덥고 힘들지만,
농원 이랑에서 다시금
기쁨의 수확을 맛보며
오늘 하루도 꽃병을 가슴에
안고 즐거운 여정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폭염
박서혜
마당에 나와등받이 의자에 기대어하늘을 올려다보니
저녁놀에 물든 구름들이 빠르게 가고 있다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눈시울이 더워진다
과연 저곳에 그리운 사람들이 있을까,
해는 한참 기울었는데 바람은 여전히 덥다
폭염
박소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의족을 베고 잠든 사람
한여름 땡볕 아래
자신의 앞길을 뚝 잘라 눕혀버린 것이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가도 가도 바닥은 뜨거운데
어디까지 갈 거냐고 묻는 것 같다.
저 먼 지평선까지
도망 치듯 기어이 갈 건 뭐냐고,
나는 여기 이렇게 산다고
타이르듯, 어깃장 놓듯
가장 아픈 것을 뚝, 잘라 베고 자는
그 사람 이마에는 구름 한 점 없는데
갑자기 튀는 물은 얼마나 촉력적인지
물차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곁을 지나간다
열대야
박신규
씹할 새끼, 가 넘어왔다
연남동 술집들 사이
어두운 연립주택 주차장에서
열 번도 넘게 넘어왔다, 참고 있던
이 씹할 년이, 도 건너왔다
10이 10에 닿을 때마다 추억은
한 꺼풀씩 벗겨지며 녹아내린다
속옷을 찢고 물집을 찌르고
푹푹 내장을 쏟아낸다
목을 걸고 빨갛게 커지기만 하는 18,
꽃비 내리는 시절에
누워첫눈 뿌리는 창가에 앉아
죽음도 갈라놓지 못할 거라던
28과 28, 누가 보든 말든
강제로 만지고 빠는 악다구니가
달콤한 입술을 짓이긴 주둥이들이
뻘뻘 피를 흘린다 흥건히 젖어
맨홀로 떨어진다
담장 너머로 볼 장 다 훔쳐본
자귀꽃 떨어진다, 불콰한 볼과
마스카라 뭉개진 속눈썹을 뜯어내며
목숨처럼, 모가지를 걸고 진다
열대야
박얼서
정면 돌파 맞불 작전이라
병법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이열치열 훅
훅 내뿜던 열기들
술병으로 나뒹군다
열기를 더하느라
후끈 달아오른 처마 밑 백열등이
밤샘 근무에 지친 모습으로
새벽 홀로 졸고 있다
여백을 읽는 밤
박은율
열대야, 뒤척이는 밤
이백(李白)시선 1975년 초판본 민음사 값 700원
누런 시집을 들추자 황급히 숨는 희디흰 좀벌레들
백남준은 말했지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바라보는 순간 허공에 켜지는 달
나타났다 사라지는 내 마음의 홀로그램
내가 바라볼 때 달도 나를 바라보지
서로를 되비추는 두 개의 거울, 두 개의 달
오늘 밤 내가 보는 달은
이백이 보던 달
백남준이 보던 달
열대야, 뒤척거리는 밤
자작나무 희디흰 재 같은 좀벌레들이
시 속의 달을 쏠아 먹는다
이백의 여백을 쏠아 먹는다
쏠아 먹고 쏠아 먹어도 둥그런 달
이백이 흘러가고 백남준도 흘러가고 은하의 별들도 좀벌레도
나도 흘러가는 밤
흐르고 흘러서 사라져 가는 밤
묵은 시집 갈피에서 달빛이 흘러나온다
도시의 삼복더위
박인걸
중천에는 용암이 이글거리고
아스팔트는 엿을 굽는다.
빌딩 벽이 손풀무질을 하니
도시 전체가 찜질방이다.
울던 매미도 숨을 죽이고
넉 점 잠자리도 비행을 멈췄다.
가로수는 비틀거리고
길 잃은 고양이가 헐떡거린다.
햇살은 총알처럼 퍼부어
간간히 불던 바람도 도망을 치고
치열한 전쟁터만큼
오가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등골에는 냇물이 흐르고
이마에는 구슬이 맺힌다.
물에 잠긴 초벌 빨래처럼
속옷마다 땀범벅이다.
자동차들도 발이 뜨거워
징징 울며 뛰어 다니고
건물 안에 갇힌 인파들만
물끄러미 창밖을 살피고 있다.
팔목의 시계는 오후 세 시인데
도시는 여전히 달아오르고 있다
무궁화(無窮花)
박인걸
무궁화라 이름 하여 끝없이 피나요
그지없이 피라하여 무궁화라 하였나요.
그리하여 무궁화는 피고지고 또 피네요.
아욱과의 낙엽 활엽 관목(灌木)이며
대한민국의 국화(國花)이지요.
령관(領官)의 어깨에도 달리고
숙박(宿泊)집의 등급(等級)을 알리지요.
애국가에서 항상 제창되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 명칭(名稱)이고요.
무궁화 위성이 대기권을 돌고 있지요.
하얀빛을 띤 엷은 붉은빛과
깨끗한 눈이나 밀가루 색으로 피지요.
한그루의 거목(巨木)이 아니라
포기를 이루는 잡목(雜木)이지요
장미 갖지 않아 매혹됨이 없고
목련(木蓮) 갖지 못해 우아함은 없어도
삼복더위를 넘어서 피는
대기만성의 민족혼으로 피는 꽃
현란(眩亂)하지 않으나 은근(慇懃)하고
사로잡아 호리지 못하나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꽃이여
어느 모로 살필지라도
흠모(欽慕)할만한 모양새는 아니어도
내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여
내 가슴에 포기지어 피는 꽃이여
무더위
박인걸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 해제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 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 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폭염(暴炎)
박인걸
1
내 생애에 한두 번 있을 법한 더위가
한반도를 찜질방에 가둔다.
아스팔트 위에는 신기루가 왕래하고
도시 전체가 도가니다
가로수는 지쳐서 휘청거리고
왕래하던 도시는 한산(閑散)하다.
연일 갱신되는 수은주(水銀柱)에
사람들은 소스라치며
작열(灼熱)하는 태양에 가슴을 끓인다.
이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면
아버지 기억(記憶)에 먹먹하다.
삼복더위에도 밭고랑에 앉아
등줄기에 땀이 도랑처럼 흘러도
보랏빛 콩꽃에 웃음을 주며
웃자란 바랭이를 뽑으시던 손길
무딘 호미로 굳은 땅을 파내
북을 돋우시던 울 아버지는 농부(農父)
깊은 주름에 흙먼지가 고이고
거칠어진 손마디는 갈퀴가 되었어도
딸린 식솔을 굶기지 않으려
개미처럼 부지런했던 호주(戶主)
시원한 에어콘 앞에 앉아
오래된 서적을 뒤적이던 나는
차마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폭염(暴炎)에 나를 자해(自害)한다
2
태양이 중천(中天)서
이글거리며 타고 있을 때
도시의 생명체들은
규환(叫喚)의 고통이다.
바람은 길을 잃었고
빌딩숲은 찜질방이다.
그늘 하나 없는 길가의
가로수도 곤혹하다.
구름도 녹아버린
사막 같은 잔인함
긍휼 없는 광탄(光彈)에
저항 못하는 도시
비틀거리는 군상(群像)
아우성치는 무리들
더위 먹은 자동차들도
헉헉대며 언덕을 오른다.
인공에 섬에 갇힌
길 잃은 태양열이
성난 사자(獅子)되어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 있다
혹서(酷暑)
박인걸
아직 장마가 오지 않았다.
찜통더위에 가로수 가지가 늘어지고
바람마저 놀라 달아나버렸다.
끓을 것 같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마찰음에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들이 달린다.
내 젊은 시절 격렬했던 꿈들은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종횡무진하며
한 겨울에도 한증막 같았는데
그 열정은 백발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간단없이 달려 온 먼 길에서
일말의 후회 없이 젊음을 불태우며
어떤 때는 어금니를 악물고
물구나무서기로 여울목을 건넜다.
열사(熱沙)의 땅을 맨발로 지저 밟고
혹한의 벌판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방망이질 하던 꿈들도
영화 화면처럼 까뭇이 사라졌다.
활화산같이 타오르던 열정(熱情)도
재만 남은 바닷가 모닥불이다.
혹서(酷暑)는 세상에 불을 지르는데
봉력(鳳曆)은 가슴에 불을 끄니 슬프다.
하지 무렵의 대낮은 쇠화덕이다
무더위의 시
박재삼
너는 시원한 바다를 보고
어찌 풍덩 뛰어들 생각만 하고 있느냐
네가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아름답고 자유로이
바닷속을 누비고 놀던
천하태평인 고기들에게
원자폭탄과도 같은
으시시한 공포를 주고
다시 말하면 목숨을 단축케 하고
그것들은 다시
영원을 향한
더할 나위없는 순수한 리듬을
뒤흔들며 깨뜨리고 있는 줄을
깜빡 잊고 있느냐
더위를 참고 견딜 수 있는
아, 조금은 땀을 흘리는 일이
지금 너에게 주어진 제일 큰
시를 살리는 길에 직결되는지고
혹서일기
박재삼
잎 하나 까딱 않는
30 몇 도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 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청춘이 만리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 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절벽만을 두드린다
여름 무더위
박정재
바람 한 점 없고
활활 타는 태양이
가림막 없는 지구를
사정없이 후려치면
지구는 부글부글 끓는다.
가만히 있어도
피부는 몸부림치고
몸속의 물기를
쥐어짜면
나는 기진맥진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면
잠시 더위를 잊는다.
나무 그늘
지나가는 바람
우리 삶에도 이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무더위
박진표
올테면 오거라
뜨겁게 뜨겁게
활활 타올라라
용광로
가슴으로 품어
너를 녹여
뜨거운 정열
나를 만난다
정직한 땀방울
오늘도 네 속에 꽃피어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노력한 그 만큼만
행복을 받는다
네가 품고 있는
그 풍성한 가을을 기다리며
뜨거운 심장 뜨겁게 사랑하며
폭염
박진표
우주의 노른자
지구가 달궈진다
둥근 불덩이
활활 타올라
의기양양
위풍당당
거드름 피우며
불꽃 레이저
지구를 데운다
아-
뜨겁다
끓는 청춘의 피처럼 뜨겁다
매미 소리조차 익어가고
민초들의 꿈까지 타들어 간다
익어가는 여름은
불꽃의 축제를 벌인다
이제 좀 쉬려므나
더위 맞이
박태강
뜨거운 여름 햇살 피하여
우리는
시애틀로 간다.
방태산 깊은 계곡 맑은 물
한기되어 피어나는 곳
시애틀의 하얀 얼굴
푸른 녹음에 꽃피어
수줍은 색시처럼
반기는
연인 찾아 우리는 간다
푸른 그늘
넓은 잎 사이로
찾아드는 하늘 보며
누워
옛 시인을 생각하고.
흐르는 물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
하모니 되어
반겨주는
시애틀의 아름다움이여
안주인의 시원한
차 한 잔에
인정을 묻어두고 올
나흘간의
천국 삶은 행복이어라
강더위
박희홍
연일 하늘은
땀 비지떡을 지지려
가마솥 뚜껑을 뜨겁게 달군다
학동들은 분수대로 몰려와
물기둥 사이를 돌고 돌며
술래잡기 놀이에 바쁘다
엄마는 아이의
분주함을 따라다니느냐
입은 웃고 눈은 피곤하다
이런 날에는
소낙비 한판 후줄근하게
옷이 푹 젖도록 내린다면 좋겠다
더위 천적
박희홍
한참 극성을 피우던
파리 모기마저 지쳐
숨죽이게 하는 불볕
재앙 뒤집을 바람이
장대비를 몰고 와도
꿈쩍도 하지 않더니
어서 물러가라 해도
처서 보내 놓고서도
물러날 기미 없다가
동그마니 날아오는
백로의 긴 날갯짓에
혼비백산할 줄이야
열대야와 모기
박희홍
가마솥더위에
앵앵거리던 암모기가
죽음보다 어둡고 고요함을 헤집고
도둑고양이처럼 살포시 찾아와서
피를 빨아 배를 남산같이 불리니
아이는
애간장이 타 녹아내리듯이
강그러지게 징징 울어대다
웬일인지 일순간
깊고 깊은 잠의 바다에 빠져든다
몰아쳐 오는 졸음을 이겨낼
장수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열대야(熱帶夜)
백낙원
백여 년 만에 찾아온 나그네 때문에
밤마다 외로운 소쩍새처럼
잠 못 이뤄 뒤척이는 귀뚜라미 신세
장죽(長竹)에 도포 자락 휘날리며
팔자걸음 휘젓든 조상님들의
합죽선 바람에도 줄행랑을 쳤는데
선풍기 바람도 어림없고
에어컨 냉기에 미동도 하지 않는
이 몹쓸 불청객 어쩌면 좋을꼬.
마당에 쑥대 모깃불 피워놓고
죽부인 껴안고 멍석에 드러누워
태평가 부르던 옛날이 그립구나
폭염
백설부
뜨겁게 뜨겁게
사랑을 뜸 들여
아픈 꽃을 피워내는
한여름 햇살
희망은 전봇대에 묶인 채
꼬깃꼬깃해져 가는 의욕들
특별히 건조해져 가는 감성들
나는 나를 그늘에 숨긴다
폭염의 습격
백승운
여름 한낮 힘겨움에
바람 없는 나무 그늘 밑에서
뻐끔뻐끔 거칠게 숨 몰아쉬며
물가에 잉어 지쳐 졸다가
따가운 햇빛에 깜짝 놀라
비늘도 버리고 줄행랑
꼬리 치며 깊게 깊게 숨어버렸다
늘어지는 무더위
백원기
늘어지더니 점점 더 늘어진다
한 번 맛 들이면 의기양양한가
무더위 몰려오면
날씨만 늘어지나 했더니
초목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나나 모두 그렇다
팽팽해야 새도 앉고
바람 소리 명랑한데
축 늘어진 전깃줄이라
아무 쓸모가 없네
초복 대서 중복 지나 찬바람 나야
제 모습 찾아 팽팽해지려나
내가 하는 말 네가 하는 말
서로의 귀에 잘 들리고
오수에 곁눈질로 대충 보던 거
선선한 가을바람에
잘 들리고 잘 보여서
그럴듯한 시어 쏟아낼 거야
삼복 날씨
백원기
기다려봐도 오지 않던 비
시원하게 퍼붓고
칠색 무지개 띄우며
해 반짝 웃어주면 좋겠다
지지난밤
고작 일 미리 뿌리고 달아나더니
미안해 돌아왔나보다
나가나 들어오나
끈끈하고 눅눅한 날씨
입술에 묻은 밥알이 무겁고
열대야에 잠들지 못해
태엽 풀린 눈과 눈
어서 보송하기를 바라고
어쩌다 맞힌 일기예보
칭찬의 박수를 보내며
한여름 밤의 꿈 아름답기를
불볕더위
사방천
이글대는 태양 아래 계곡물 흐르는
연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물소리와 하늬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추다 계곡물에 뛰어들러
목욕을 하니 옆에 구경나온 개미가
꽃잎을 타고 뱃노래 부른다!
바라보던 참나무 뽕나무 보고 참아라. 참아라.
하니 뽕나무가 참지 못하고 뽕하고 방귀를
뀌니 소나무 사이로 솔솔 냄새 풍기니
바라보던 대나무가 방귀 소리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노래 부르던 개미가 물에 빠져
허위적 거리니 수영하던 고기가 널름 집어 먹네.
이글대던 태양도 기우러 저
붉은 노을 토하며 고개 숙이니
재 넘어 기다리던 가을바람 행장 준비에
어느덧 올 한해도 불볕더위와 같이
반년이 기울어진다
폭염
사방천
세상을 다 태워 버릴 듯
쏟아 붓던 폭 염도 시간이
흘려가니 고개 숙이고
바라보던 가을바람 달려오니
폭 염에 지쳐 있던 초목들
너울너울 춤을 춘다.
우리의 삶도 닥쳐온 실현의
고난을 참고 견디는 자만이
성공과 행운을 맞볼 수 있다,
성공과 행복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고 인내와 노력에서 오느니라.
농부가 봄의 논과 밭에
씨앗을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추수할 곡식이 없듯이
젊어서 노력하지 아니하면
노후의 행복을 누릴 수 없으니라.
각자의 재능 발휘하여
긍지와 인내로 중지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여 차후 존중받는
행복한 삶을 살아 값이다
더위 먹다
서정우
일주야 내내 폭음에 누워있다
내가 만든 그늘은 진득한 더위만 통과시키고
바람은 전격 차단이다
땀구멍마다 솟아 오른 땀이
땀구멍 모두 막고 저들끼리 흘러 내려
나는 누운 자리에서 미끄럼 타다가 혼절한다.
이 사막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이 들수록 집어삼킨 이성과 지식의 알갱이들
사람과 사람 사이 얕은 물길 하나 트지 못하는
모래 산. 내가 만든 사념 덩어리
사념은 더 많은 모래 무덤을 도처에 깔아놓아
이제는 내가 빠져 자꾸 헛걸음만 내딛다가
그만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또 일 주야를 폭염 아래 누워 있다가
무심히 눈 떠 입가에 붙은 모래를 털어 낸다
문득 뒤꿈치가 뜨끔해지며 온몸이 상쾌하다
고개 돌려 바라보니 흑갈색 전갈 한 마리
한 생 제 영역만 지키고 무지하게 살아온 못 생긴 놈이
꼬리 힘껏 치켜들고 총총히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8월 폭염
성백군
저건 난동이다
단지 8월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열기를 뿜어대며 무전취식 하려 드니
제집이라 한들 어느 누가 견딜 수 있으랴
산이며 바다며 사람 홍수다
계곡에서는 다 큰 남자들이 벌거벗고 엉금엉금 기며 물장구치고
바다에서는 파도를 안고 뒹굴다 못해
모래에 묻혀 시체놀이를 하는 멀쩡한 여자들
사람이 더위를 먹으면 완전 도나 보다
종일 미치다가 간 백사장에는
비닐봉지, 담배꽁초, 음식물 쓰레기, 빈 병, 삼각팬티가
낡은 달빛 아래 부끄러움도 없이 도도하다.
마치 승전(勝戰)의 포획물처럼,
텃밭에서 일하던 노인이 발갛게 익어 죽고
차 안에서 잠자든 젖먹이를 깜박 잊었다가 죽였다고 하고
폭염에 죽음이 무슨 유행병처럼 보도되는 데도
중동에는 열돔 현상으로 체감온도가 C 74도가 넘는다고 하니
이런 일 가지고 국제기구에 구호기금을 청구할 수도 없고
이러다간 대한민국 사람들 주택가 골목은 무인지경이 되겠다 싶은데
그래도 담 그늘 뒤지며 늙은 개 한 마리는
혀 빼물고 졸고 있다
털옷도 벗지 않은 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을 보면
폭염도 잠시 지나가는 난동이지 주인은 아닌가 보다
말복 지나 처서가 오면
제풀에 숨죽이며 까무러질 것이라며
다가서는 나를 보고도 짖을 생각은 않고 눈만 껌벅인다
저 비굴한 모습, 나도 기꺼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개처럼 죽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폭염을 견디어 보면 어떠하랴
누구는 천지를 얻기 위하여 무식한 놈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데
잠시 시간에 기대어 사지를 늘어뜨리고
바닥을 기며 겸손을 배우는 것
그러면 폭염이 혹 봐주지 않을까? 아니더라도
힘없는 나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 터
괜찮은 피서 방법이라고 권하고 싶은데
어느새 벌컥벌컥 폭염보다 더한 화가 치솟는다
열대야 소고
성영희
천변을 걸으면 곤충들의
속옷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망치 소리 하나 없이도 밤마다
일렁일렁 춤추는 도시를 건설하는 강물
더위의 혈통은 물의 뿌리인가
기록적 폭염은 먼 옛날의 여름 몇 개를 가져와
긴 천변에 뒤척이는 소리들만 풀어 놓았다.
조그만 수족관에서
인공 수초들 사이를 유영하는 열대어처럼
폭염과 열대야 사이를 횡단하는 나는
어느 변방의 뒤척이는 잠인가
열대야에 내몰린 잠을 쫓으며 천변을 걷다 보면
내 몸 어디에서도 작은 유충이
저 먼 별처럼 꼼지락거리며 살 것만 같다.
무거운 태양의 한낮이
여전히 밤의 근처를 배회하는 한여름 밤도
먼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촘촘히 나는 반딧불이쯤으로 보이지 않을까
치솟는 열기에 야금야금 타들어 가는 소리들
별들도 목이 타는지 기침 소리 잦다
폭염
손미경
이글거리는 태양의 숨결에도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던 장미는
맥없이 고개를 숙이고
오가는 이들 표정엔 짜증이 베였다
공원 분수대 물줄기는
어른, 아이 모두 보라는 듯이
하늘 높이 치솟던 분수가
갑자기
폭염의 잊으라는 위무를 하려는지
요리조리 춤사위가 흥겹다
물줄기에 온몸이 흠뻑 젖어도
깔깔깔 신이 난 아이들 웃음소리가
허공으로 울려 퍼지고
그늘 벤치의 할아버지 엷은 미소는
그 옛날 동심이 그리우신지
부채 바람으로 더위를 달랜다
늦더위
손병흥
말복 지나 처서 며칠 앞두고서도
아직껏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날씨조차 아열대지구로 바뀌어 가는지
여전히 찜통 늦더위가 마구 기승부리는
연일 높은 수은주 후덥지근한 낮 기온
밤에는 뒤늦은 열대야로 밤잠 설치다
구름 한 점 없는 고기압 영향권 든 날
못내 다가올 풍성한 결실의 계절 그리며
너그럽고 여유로운 마음 가득 가슴 담아보던
그냥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이 맺혀 흐르는
점차 지구 온난화로 사라져가는 계절의 감각
더위 사냥
손병흥
1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시달리다 하나 둘씩 더위 피해
녹음 짙어 그늘지고 시원한 바람 부는 계곡 찾는 피서 철
맑은 물 졸졸 흐르는 개울에서 몸을 적시거나 발을 담근 채
지저귀는 새소리와 물소리 매미 소리 한가롭게 듣는 여유로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철썩거리는 바닷가에서의 추억 쌓기
마냥 여름 뙤약볕 지나 청명한 하늘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대나무로 엉성하게 엮어 만든 공기 잘 통하는 죽부인 안고 자거나
이열치열 오히려 뜨거운 탕을 먹어 허해진 원기를 돋우는 전래풍속
나름 지혜롭고 슬기롭게 선호하는 휴양지로 길 떠나는 여름 휴가철
푸르른 창공 초록빛 피안의 나무숲이 한껏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
2
예년보다 빨리 성큼 다가서버린
입맛 없고 의욕 떨어지는 나날 속
조금만 움직여도 이내 땀방울 솟는
푹푹 찌는 무더윌 못내 잊기 위해
나름대로 고육책을 찾아보는 계절
아직 장마철 마저 끝나지 않아
본격적인 더위 시작되기도 전에
후끈 잠 못 드는 열대야에 밀려나
지쳐버린 심신 달래보는 저녁나절
밤 이슥해지도록 쉽사리 잠 못 이뤄
높은 습도 온도 모기 소리에 뒤척이다
벌떡 일어나 시원한 냉수 들이키곤 하던
무조건 봉쇄할 수도 없는 여름나기로 인해
점차 쇠약해져 가는 원기 북돋우고 싶어지는
염열 다습 짜증 불쾌 하나 둘 늘어만 가는 여름
무더위
손병흥
1
폭염 일수가 평년보다도 웃돌아
고기압이 한반도 덮친 열돔 현상
더군다나 장마마저 일찍 끝나버린 채
최고 기온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 덩어리가 갇혀버려
지속적으로 지표면 온도 높이는 자연 상태
점차 현실화가 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사례
예보부터 피해 복구까지 원인 극복하기 위한
실효적인 대응책이 더 절실해진 환경생태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찜통더위 기상 현상
2
점차 태양고도가 높아져 고온다습해진
북태평양 기단의 지배하에 들어가버린
최고기온이 매일 30도를 넘나드는 나날
대기 흐름 지구온난화로 인한 무더운 날씨
매년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일지라도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자연재해
가벼운 옷차림 야외활동 자제 휴식만으론
쉽사리 견뎌내기 힘든 힘겨운 폭염의 시기
심각한 열지수로 지내기 어려워 위험 처해질
지친 심신 달래려 피서지 찾아 떠나는 한여름
열대야
손병흥
잘 익은 젓갈 같이
숱한 세월 인생 역경 겪으며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쏟아본 적 없는 마음씨로
무작정 흘러만 가는 저 강물처럼
그저 눈물 흔적도 삼킨 채
낡은 재봉틀 닮아가는
초라해진 등줄기 추스리다
문득 바람 헝클리고
구겨진 속눈썹 거두고서
눈 못 뜨게 켜로 앉은
땀방울 여과 거듭해도
오히려 미쁜 피빛으로
타오르던 무더운 열기는
약삭빠른 밤고양이 눈빛 되어
여지없이 들락거렸던 지난밤
열대야 증후군
손병흥
주로 세수를 한다거나 세탁을 할 때에
물을 담아 쓰는 둥글넓적한 대야 그릇
한여름 밤에도 쉽게 열기 내려가지 않아
마치 열대지방 밤처럼 잠들기 어려운 밤
높아진 수은주로 폭염특보까지 내려진 채
연일 찜통더위가 이어지고만 있는 나날들
밤사이 잠들지 못해 이리저리 뒤척거리다
잠을 설치고야 마는 짜증스러운 여름날밤
여름철 삼복(三伏)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큰물 그릇에다가 열을 가득 담아놓은 열대야
폭염
손병흥
1
해마다 여름철 가마솥 찜통같이 기승을 부리는
연일 무더위 열기가 맹위 떨치는 심한 불볕더위
예년보다도 폭염 발생이 지속적으로 빨라지는 추세
전국 곳곳에서 더욱 더 기세가 강해진 한낮 최고 기온
무척 더운 날씨 발생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이어지는
북태평양 기단의 가장자리에 든다는 매우 심각한 시기
찌는 듯 몹시 더운데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불면의 밤
햇볕 강렬하게 내리쬐는 한낮처럼 밤에도 푹푹 찌는 폭서
2
낮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경우가
이틀 정도 지속될 때 내려지는 폭염특보
그 원인조차도 지구 온난화로 보는 쪽과
대기 흐름으로 인한 현상으로 나눠지듯이
폭서와 블볕더위로 인한 생체리듬 이상증세에다
심한 무더위에 불면증 피로감이 더욱더 증대되는
개인의 건강이나 산업 경제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한여름 무더운 날에 발생하기가 쉬운 환경적 재난
국민 생활 불편마저 초래하는 정전사태 생산성 감소
각종 전염병 불쾌지수의 발병 가능성 증대하는 시기
3
장마 끝난 뒤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날마다 최고조로 치닫는 후덥지근한 무더위
하루가 다르게 점차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가는
경기마저도 바닥으로 치달아 더욱 힘들기만 한 삶
연일 땅바닥을 달군 지열처럼 너무나 가혹해진
크고 작은 피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폭염경보
일사병 열사병의 위험성조차 높아지고 커져 버린
기상 통보문이 재난 문자 방송으로 발송되는 힘든 시기
폭염 위기 심각 단계로 이글거리는 태양 가마솥 찜통더위
충분한 수분 섭취 온열 질환 예방 대처요령 지켜나갈 여름철
폭염 주의보
손병흥
오월의 봄 햇살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같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높은 기온으로 수은주 치솟던 날
강한 일사에다 따뜻해진 서풍 유입으로
최고 기온 33도가 넘는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이 되는 재해 발생 예상되는 기준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햇볕이 너무나 강해져
수분도 마르게 되는 불쾌지수 치솟는 나날
식물이나 동물들 삶도 불편해지는 폭염 기간
폭염
손혜희
파도가 부서진다
대양의 기세는 맹렬하다
태풍이 불어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의 절정
그곳엔 언제나 태양이 중심이다
모든 자연은
강렬함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생명 덩어리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태양이
그대를 비추고 있다
염병 더위
신광덕
무더위 유난히 극성떠니
흩뿌려 흩어진 열기
아지랑이 아련아련 하다
옥상의 나팔꽃 널브러지니
아파트 골목길엔
뜨거운 바람 숨통을 막는다
비 소식 요원하니 기우제라도 지내랴
숲길을 울려오는 매미 소리 힘에 겨웠나
염병할 땡낮엔 잠자리
빨랫줄에 쉬어 앉는다
더위에 널브러진 강아지
그늘 밑에 숨어 눈알만 굴리니
참새란 놈
개밥 훔쳐 먹기에 땡 잡았다
오늘같은 염병 더위엔
시원한 한 바가지 등물이 간절하다
더위
심종은
사방 돌아다니며 쪽문까지 열어젖혀도
해갈되지 않는 찜통더위라
땡볕에 주춤거리기만 해도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구슬땀.
아무리 서늘한 바람 그리워
길 떠나도
인파에 떠밀리면
더위만큼이나 솟아나는 짜증.
복중에 옷을 낱낱이 벗어도
속 시원하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 저질러 놓은 자연 파괴와
물질문명의 발달이 원인 제공한
오염 공해가 복합되어
이상 난동 현상을 가져온 세상 탓이리.
찬물에 발 담그고
얼음 수박 한입 가득 깨무는 것이
유명 해수욕장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좋은
차라리 속 편한
나만의 유일한 피서법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