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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 1

Bollnow 2024. 7. 10. 06:49

강경화 -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강민경 - 늦가을 잎, 바람과 춤을

강인호 - 늦가을 여행

강인호 - 늦은 가을

강한익 - 늦가을 단상(斷想)

경규민 늦가을 바람

경규민 늦가을 비

경규민 늦가을 손님

고재종 늦가을 만가

고재종 텅 빈 충만

고증식 - 늦가을

공석진 - 늦가을의 상념

곽재구 - 파란 가을의 시

권경업 늦가을

권경업 늦가을

권경업 - 늦가을 그리고 아침 산행

권경업 늦가을 비

권경희 늦가을 단상

권경희 - 늦가을 사유의 밤

권철 늦가을

김경숙 - 늦가을 단풍

김경철 - 늦가을

김대식 - 늦가을 가을비

김대식 - 늦은 가을에 단상(斷想)

김덕성 가을 산길은

김덕성 네가 아름다운 것은

김덕성 늦가을 국화 연가

김덕성 늦가을 밤의 향수

김덕성 늦가을 사랑

김덕성 늦가을 서정

김덕성 - 늦가을 애상(哀想)

김덕성 늦가을의 단상

김덕성 늦가을의 서정

김덕성 늦가을의 연가

김덕성 늦가을 이슬

김덕성 늦가을 이야기

김덕성 늦가을 편지

김문 - 늦가을, 비 오는 밤

김복수 - 나뭇잎 편지

김사인 늦가을

김상미 늦가을 비

김상현 늦가을 풍경

김수열 늦가을의 침묵

김수잔 - 늦가을

김순진 - 늦가을 풍경

김시종 - 늦가을

김시종 늦가을에

김영준 늦가을 감나무 아래서

김영호 늦가을

김유미 - 늦가을

김윤진 늦은 가을

김인태 - 늦가을

김재덕 늦가을

김정남 늦은 가을비

김정원 늦가을 숲

김정택 늦가을

김종칠 - 늦가을 청춘(靑春)

김지하 늦가을

김창환 늦가을 여느 날

김해룡 - 늦가을에 내가 우는 이유를 아는가

김행숙 늦가을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 늦가을의 저녁때

남낙현 - 늦가을 낙엽은 지고

노영환 - 만추(晩秋)

도종환 늦가을

류금선 늦가을

마경덕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문태준 -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문효치 늦가을

박경림 늦가을

박광호 늦가을 서정

박동진 - 늦가을 소묘

박신지 늦가을은

박인걸 늦가을

박인걸 - 늦가을 단상(斷想)

박인걸 늦가을 비

박인걸 늦가을 산

박인걸 - 늦가을 상념

박인걸 도시의 늦가을

박정재 늦가을 풍경

박태강 늦가을

배갑병 늦가을

배창환 늦가을에

배태성 늦가을

배혜경 - 늦가을에 오는 손님

백설부 늦가을 햇살

변용환 늦가을

복효근 늦가을

서연정 - 늦가을 피는 나뭇잎에는 눈물이 묻어 있다

석옥자 서리 내리는 늦가을

성백군 - 낙엽 밟는 소리

성백군 늦가을 나무

성백군 늦가을 땡감

성백군 - 늦가을 억새

성원근 늦가을

손병흥 늦가을

손병흥 늦가을 정취

송문헌 늦가을 소묘

송수권 늦가을

송향수 늦가을

신순말 늦가을

신순임 늦가을에

신창홍 늦가을 오후의 단상(斷想)

신형건 - 늦가을의 책갈피에서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강경화

 

서리 내린 저 밭의 배추잎 끝에서

이제 나는 가을 하늘을 볼 테다.

추위가 몰려오면 흙벽에

제 눈만 한 창문을 내고

울며 울리는 사람들.

날 부르는 뜨거운 눈물이 안 보일지라도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

삽날이 밀려와

내 집 밑둥을 자르고

밤마다 흙더미 사이로 별이 보이면

내 사랑은 흐르는 한 줄기 강물

가을빛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잘 있거라. 누런 들판아, 탱자나무야

속삭이는 낙엽 소리와 연기 내음도 두고

캄캄한 땅속에서

이제 나는 꿈을 꿀 테다.

 

 

 

늦가을 잎, 바람과 춤을

강민경

 

늦가을 바람에

나무는 나뭇잎의 손을 놓습니다

나뭇잎도 떠날 때를 알고 망설이지 않습니다

 

나뭇잎과 나무 사이를 맴돌던 바람

오랜 시간 기다렸다는 듯

출렁출렁 떨어지는

나뭇잎 붙안고 스텝을 고릅니다

 

누구라도 같이 춤을 추면 친구요, 파트너라고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알 듯 모를 듯 마음 터 온

우물물 같은 사랑으로 휘돌아 감기는

나뭇잎과 바람의 마지막 댄스

 

화려하게,

우아하게

서로를 확인하며

나뭇잎, 바람 따라 출렁입니다

무게와 두께를 극복하고

경쾌한 스텝, 골목길 누비어 갑니다

홀로 왔다

홀로 떠나는 인생길과는 다른 길

무람없이* 저물어 갑니다

 

* (친한 사이나 어른에게) 스스럼없고 버릇이 없다. 예의가 없다.

 

 

 

늦가을 여행

강인호

 

철원행 세 칸짜리 기차를 타고

들녘의 가을이 떠나고 있었어요

나도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늦가을 여행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늦은 가을

강인호

 

까마득히 잊고 지낸 이들에게서

바람 한 자락 구름 한 조각으로

어느 날 문득 소식이 찾아온다

 

어떻게 살았느냐고 별일 없냐고

조금 쓸쓸하다고 견딜 만하다고

안부를 읽다 말고 돌아다보면

저만치 가는 계절의 뒷모습

가을도 벌써 늦은 가을이다

 

 

 

늦가을 단상(斷想)

강한익

 

산자락 곱게 물들인

갈바람

은빛 물결 억새꽃 품속을 헤집으며

아스라한 추억의 한 조각

가슴에 안긴다.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은

푸르름의 청춘을

앗아 가버리고

길섶에 나르는 낙엽이어라

 

가슴을 열고

고운 추억 그림 펼치니

국화 향기 그윽한 그리운 얼굴

상긋한 미소를 보낸다.

 

세월 따라 유유히 흐르는

높은 하늘 양털 구름

어느 곳을 향해 가는지

옷깃 여미고

함께 하여 볼까나?

 

 

 

늦가을 바람

경규민

 

곱게 물든 단풍잎에

바람의 심술이 대롱대롱 걸려있다

인내의 한계를 끝내 넘지 못하고

쓸쓸히 떨어져 쌓이는 낙엽들은

남아있는 가을에 가련(可憐)하게 묻혀간다.

 

겨울의 첨병(尖兵)인지 들때밑*인지

바람은,

오가는 사람들의 원성은 아예 모른 척하고

겨울을 저만치 불러다 놓고는

삭이지 못한 분()

점점 크게 불려가고 있다

 

벌써 몸도 마음도 으스스해져

옷깃을 바짝 여민다.

오는 겨울이 걱정이다

 

* 들때밑 : 세력 있는 집의 오만하고 고약한 하인을 이르는 말.

 

 

 

늦가을 비

경규민

 

() 이을 씨받이를

순산(順産)했다는 마음에

주르르 흐르는 눈물

빛바랜 나뭇잎을 두드리며 흐느끼고 있다

검게 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리라

 

토실토실하고

때깔 좋고

탐스럽고

옹골찬 내 새끼들

벌써 겨울잠에 들었다

 

낙엽도 뒹굴면서

덩달아 소리 내 울고 있다

 

 

 

늦가을 손님

경규민

 

창 틈새로 스며드는 달빛 소리에

슬그머니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둥그스름한 달이 빙그레 웃으며

아기 구름 불러 안고는 어디론가 정답게 흘러간다

 

달님아

그렇게 쉽게 갈 거라면

왜 내게 곁을 주었니

---아무 대꾸도 없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창가에 기대선

낡은 감 나뭇잎 몇 장이

바람과 실랑이 벌이고

가을 끝자락을 붙잡고 울어대는 귀뚜라미

허한 가슴 만들어 놓았는데

옷깃을 헤집고 파고드는 싸늘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며 못질해댄다

 

오늘도 이렇게

적막 속에 꽁꽁 묶여

부질없이

하얗게 밤을 지새우려나 보다

 

 

 

늦가을 만가

고재종

 

상여는 떠난다, 상여 떠나면

조금은 시린 바람이 칠 법도 한데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빗질 소리 낸다.

그러니 때까치인들 왜 안 짖겠느냐.

그렇게 꽃상여의 꽃송이처럼

화사하게 빛나지 못했던 날들이여,

휘날리는 만장들이여, 그 위로 떠가는

흰 구름은 마냥 눈부시다.

그러니 앞냇물인들 왜 안 흐르겠느냐.

상여 떠나면, 동구밖의 느티나무쯤은

우수수 떨어댈 법도 한데

뒤따르는 상주들의 눈물마저, 길에

듣는 족족 들국송이로 빛난다면

그가 평생 어둠만 건졌던 빈 들판이

이때쯤 만가 소리로 차오른들

어떠랴, 평생 분노로 세웠던 뒷산이

이때쯤 울긋불긋 물감 칠을 한들

어떠랴, 그 갈채 속으로 떠나는 상여,

상여 떠나도 서로의 마음에

한 둘금 서리 치는 법도 없이

상여는 자꾸만 가벼워지고

상여 구경하는 마을 노인들

마음은 자꾸만 흥건하게 젖어들어

한순간 생의 관절통마저 그만 잊는다면

저기 산 초입에서, 새하얀 억새인들

어찌 꽃사래쳐 마중하지 않겠느냐.

어찌 서러움인들 빛나지 않겠느냐.

서러움으로 더욱 맑아진 빛살 속으로

어허- 어영차 여엉차- 상여는 간다

 

 

 

텅 빈 충만

고재종

 

이제 비울 것 다 비우고, 저 둔덕에

아직 꺾이지 못한 억새꽃만

하얗게 꽃사래 치는 들판에 서면

웬일인지 눈시울은 자꾸만 젖는 것이다

지푸라기 덮인 논, 그 위에 내리는

늦가을 햇살은 한량없이 따사롭고

발걸음 저벅일 때마다 곧잘 마주치는

들국 떨기는 거기 그렇게 눈 시리게 피어

이 땅이 흘린 땀의 정갈함을

자꾸만 되뇌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간간 목덜미를 선득거리게 하는 바람과

그 바람에 스적이는 마른 풀잎조차

저 갈색으로 무너지는 산들 더불어

내 마음 순하게 순하게 다스리고

이 고요의 은은함 속에서 무엇인가로

나를, 내 가슴을 그만 벅차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정함을 딛고 정정함에 이른

물빛 하늘조차도 한순간에 그윽해져서는

지난여름 이 들판에서 벌어진

절망과 탄식과 아우성을 잠재우고

내 무슨 그리움 하나 고이 쓸게 하는 것이다

텅 빈 충만이랄까 뭐랄까, 그것이 그리하여

우리 생의 깊은 것들 높은 것들

생의 아득한 것들 잔잔한 것들

융융히 살아보게 하는 늦가을 들판엔

이제 때 만난 갈대만이 흰 머리털 날리며

나를 더는 갈 데 없이 만들어버리고

저기 겨울새 표표히 날아오르는 들 끝으로

이윽고 허심의 고개나 들게 하는 것이다

 

 

 

늦가을

고증식

 

된서리 때려야

얼음골 사과

제맛이 돌 듯

 

폭풍우 건너야

마침내

단풍잎 불붙듯

 

울음 없이

타오르는 사랑은

진짜가 아니다

 

 

 

늦가을의 상념

공석진

 

밤사이 비바람 몰아치더니

하늘이 뿌연 부유물을 걷어내고

예쁜 미소를 보냅니다

 

키 높은 구름이 바쁘게 흘러가고

길가 코스모스는 목 아프게

구름을 좇아갑니다

 

어느새 내 마음도 님에게로 향하고

그렇게 가을은 종종걸음으로

산 중턱을 넘어섭니다

 

호수 알 눈동자

해맑은 미소

보석 같은 님의 목소리가 너무 그리워

 

뼈마디 삭이는 추억으로

입술 깨물며 조촘조촘

늦가을의 상념에 빠져봅니다.

 

 

 

파란 가을의 시

곽재구

 

가을에는

먼 길을 걷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며 걷고

파란 강물을 따라 걷고

언덕 위의 파란 바람을 따라 걷습니다

 

가을에는

마주치는 이의 얼굴도 파랗습니다

염소를 몰고 가는 할머니의 주름살도 파랗고

계란이 왔어요 번개탄이 왔어요

장돌림 봉고차의 스피커 목소리도 파랗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잠시 눈인사를 나눈 우편 배달부의 가방 안엔

파란 편지와 파란 파도소리가 가득 담겨있지요

 

가을에는

먼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걷다가 파란 하늘을 만나면

 

파란 나무를 사랑하고

파란 뭉게 구름을 만나면

파란 뭉게구름을 사랑하고

파란 거미줄과 파란 달빛을 만나도

금새 사랑에 빠지지요

 

, 저기

파란 징검다리 위로

파란 얼굴의 가을의 신이 건너오고 있습니다

그에게 파란 가을의 시를 들려주기 위해

나 또한 징검다리 위로

파란 바람처럼 건너갑니다

 

 

 

늦가을

권경업

 

바작바작, 누군가가 그리운 날

나는 어깨 시려 스웨터를 걸치고

지난여름 더웠다고, 산은

그제야 옷을 벗네

 

 

 

늦가을 그리고 아침 산행

권경업

 

안개 피어나는 새벽이 오면

계곡으로 스며드는

맑은 잔별들

별을 좇던 바람은 끝내

길을 잃고

하얀 억새꽃을

꿈처럼 날리운다

그 꿈따라 나서는

아침 산행

햇살이 자꾸 정겨워지고

 

 

 

늦가을 비

권경업

 

조개골에 신음이 들려요

뭇나무들 잎 진 자리에

늦가을 비 쓰리고 아려

돌아서 흐느끼는 신갈나무

서럽게 우는 개옻나무

 

약초 캐는 하 씨 토방에도 들려요

귀머거리 마누라 귀 기울이는

팔 하나 잃어버린 마흔 몇 해 전

달빛소리재 그 가을비

아직도 쓰리고 아려

 

 

 

늦가을 단상

권경희

 

가을비 그친 들녘에

갈색빛 농염한 자태가

성숙한 여인의 뒷모습같이

차분하고 기품이 풍긴다

 

가을걷이로 비운 자리

참새떼 한 무리씩 푸드덕거리고

억새꽃들이 갈무리하는 논둑길 따라

 

노랗게 깔아놓은 은행잎들

아낌없이 내어주는 비단결에

늦가을 단상이 한 폭의 그림같이 곱다

 

간이역 같은 이별 앞에 서니

내 삶의 계절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조금씩 깨달아지는 삶이

노을 지는 서산마루처럼 붉어진다

 

 

 

늦가을 사유의 밤

권경희

 

풀 먹인 모시 적삼처럼

까슬한 들녘에서

쉼 없이 키질하는 바람은

한 조각 그리움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시리다

낙엽이 뒹구는 비탈길에

굴참나무 숨결이 거칠어지고

윤회의 길로 돌아갈 채비를 하니

해거름 노을도 산자락에 주저앉았다

갈비가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밤

마지막 잎새의 단풍들은

가지 끝에 매달려 잔인한 밤을 지새우고

높다랗게 둥지를 튼 까마귀들도

하얗게 질려 동트기만을 기다렸다

살다 보면 더러는 아픈 날

사유의 심해를 건너 한없이 추락하며

온 밤을 하얗게 지새도

동녘의 햇살은 찬란하게 떠오른다

 

 

 

늦가을

권철

 

단풍나무 울긋불긋

직박구리 천국을 오가네

창밖의 아이들 노는 소리

가을은 깊어가네

 

나뭇잎은 떨어져 고요히 쌓이고

가을 공기는 내 흩어진

심상의 잡된 생각이어라

수심인 양

까치는 독을 세워 울고

아이들 조롱하듯 주위는 어수선하네

 

 

 

늦가을 단풍

김경숙

 

하얀 햇볕 아래

나무들 잠재우고

 

무슨 말이 남았는지

뒤척이는 붉은 가슴

 

저물어 가는 산사

곱게 물들이며

 

떨치지 못해 붙잡은

마지막 남은 미련

 

 

 

늦가을

김경철

 

새벽부터

흐려진 하늘에서는

아직도

비가 온다는

소식은 없지만

 

일찌감치

찾아온 꽃샘추위가

마치

계절의 주인인 양

마새 부리고

 

가끔

불어오는 갈바람에

붉은빛의 단풍잎이

이별을 고하듯

빈 몸의 나무만을 남기고

힘없이 떨어진다

 

이리저리 뒹굴다

하나둘 모인 낙엽들

헤어짐이 아쉬운지

마지막 체온을 전달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먼 여정에 오른다

 

 

 

늦가을 가을비

김대식

 

가을인가 싶어 단풍 구경 할랬더니

어느새 단풍은 빛바랜 마른 잎

성큼 다가온 때 이른 겨울바람

떨고 있던 나뭇잎 우수수 떨어지네.

한 번씩 몰아오는 쓸쓸한 가을비에

내 시린 한기 속에 스며드는 빗방울

오래도록 자리 잡은 가슴속 고독이

쓸쓸한 낙엽처럼 가을비에 젖는다.

 

 

 

늦은 가을에 단상(斷想)

김대식

 

늦은 가을 하루해는 너무도 짧다

해 저무는 들녘이 어두워지듯

저물어가는 가을처럼

한해도 급속히 저물어간다.

 

더운 여름 무성하던 나무들은

이제 낙엽들을 급하게 떨구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잎들도

달린 채로 그대로 말라버린다.

 

세상은 크게 보면 모두가 냉정한 법

생의 이치란 모두가 겨울로 가는 것

잠시의 아름다움은 사라짐의 과정일 뿐

언젠가는 모두 낙엽처럼 잊혀가는 것

 

 

 

가을 산길은

김덕성

 

늦가을 산길을 간다

갈바람에 실려 온 들국화 꽃향내

산언저리를 맴돌고

 

산길에는

산새 지절대고

어쩜 이리도 맑고 깨끗할까?

 

눈이 맑아진다

사람들 속에 무쳐 살다가

산을 등에 두르니

짓눌렸던 시름 사라지고

 

영혼이 맑아지며

안식처처럼

감싸주는

산길

 

 

 

네가 아름다운 것은

김덕성

 

늦가을 비로

좋은 계절은 꿈으로 가버리고

 

계절의 끝자락

그리움이 되살아나서 그런가

온몸이 물들여 놓은 듯이

붉게 타는구나

 

인내로 견디어 낸

쓰리고 아픈 여러 사연들

붉게 물들여진 심장의 고동을 안고

사랑으로 떠나는 단풍아

 

모두 너를 좋아하게 된 것은

네가 고운 마음으로 빨갛게 단장

네 몫을 다하고

사랑으로 멋지게 떠나기 때문이야

알고 있지

 

 

 

늦가을 국화 연가

김덕성

 

가을에 피고 싶은 꽃

요염한 향기 고결하고 소박한 자태

떠나는 가을 보니 더 정겹다

떠나려 차비하는 늦가을

국화 송이 속삭이는 사랑의 밀어

햇살에 정답게 나누는 사랑에는

맑은 미소가 빛나고

청랭한 늦가을 바람에

스미는 국화 향내음에 그만 취하고

노란 사랑의 꽃잎 사르르 떨림은

님 소식 기다림이 아닐까?

작은 이슬 맺힌 늦가을

시련은 시간 속에 말끔히 묻고

짙은 향기로 은은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사랑의 여인이기에

더 사랑하고 싶은

 

 

 

늦가을 밤의 향수

김덕성

 

저무는 가을

깊어가는 고즈넉한 밤

향수에 젖는다

 

이도 병일까

예약이나 한 것처럼

고향으로 떠난다

 

그녀도 떠나가고 아무도 없는

지금은 쓰러져 가는

낡은 빈집뿐

 

왜 이리 되었을까

어머님의 품 안처럼 따뜻하고

정이 넉넉히 흐르던

고향이었는데

 

갔다가 끝내 가슴앓이로 돌아오면서도

그래도 가고 싶은 고향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늦가을 사랑

김덕성

 

1

불태우던 단 하나

지글지글 빨갛게 달아 끓이던 사랑

빨간 비 되어 내리고

 

먹음직스럽게 익은 감처럼

사랑의 그리움으로 슬며시 품어주며

정열로 이어지던 사랑의 불길

이제 꿈으로 피우고

 

따뜻이 품으며 보듬으며

보석보다 더 애지중지 사랑했는데

붙잡으려 손을 내밀어 보지만

갈림길에선 나무와 잎새

 

낙엽 비로 쌓인 빨간 사랑

그리움 위에 촉촉이 적시는 눈물

가슴 찢어지는 듯 쓰린 아픔

너를 그리 사랑하였는데

나는 어찌하라고

 

 

2

늦가을 날

갈바람에 보낸

내 진한 사랑의 향내가

스며들어 간

그대 가슴에

 

곱게 핀 한 송이

들국화로

피울 수만 있다면

 

내 심혈을 다해

그대 가슴에

영원히 지지 않는

한 송이

사랑의 꽃으로 피우고 싶습니다

 

 

 

늦가을 서정

김덕성

 

1

흘러가는 계절

순응하며 따를 수밖에 없는 변화

사라진 텅 비인 들녘

 

깊어가는 가을

불어오는 갈바람에 진하게 물들인

오색찬란한 빛도 잃어가는

아쉬움을 주는 늦가을 풍경

 

세월이 스쳐 간 내 가슴

벌써 세월이 물들여 아쉬움을 남기며

점점 굵어지는 나이테처럼

마음마저 깊어 간다

 

12월로 가는 길목에 서서

그리움만 드리우기 시작하는데

외로움만 더해가는 늦가을

훨훨 사랑 찾아 날아가고 싶어진다

그게 늦가을 사랑이 아닐까

 

 

2

햇살이 내리는 거리엔

불타던 사랑이 떠나간 듯 한산하고

 

스산한 찬바람이

가슴을 스치며 지나가는데

밀려오는 외로움

 

빛바랜 단풍 한 잎

먼 길을 떠나려 나서며

사랑한다고

내 가슴에 내려앉는

가슴을 시리게 하는 늦가을

 

그래 네가 떠나도 끝까지 사랑할게

입맞춤한다

 

 

 

늦가을 애상(哀想)

김덕성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그렇게 곱던 가을빛이 부서지며

그 빛을 잃은 거리

 

곱던 단풍도

흐르는 시간 따라 감성을 잃고

초라해 가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계절에 쫓아오는 그리움도

짙은 색으로 누런색으로 변해가고

살며시 찾아오는 불안감이

마음 비에 젖는다

 

깊어가는 늦가을

찬비에 축축히 젖어 그만

먼 길 여행을 포기하고 불시착

가을비에 애원하는 낙엽

거친 숨결을 듣는다

 

 

 

늦가을의 단상

김덕성

 

화려했던 모든 것 떠나고

그림자만 남은 한적한 늦가을 날

문득 떠오르는 상념

 

수고한 자가 마시는 물 한잔이

더 단 맛이 나고

밤이 지나야

아침 햇살이 더 밝게 보인다

 

꽃향기에 찾아 반기는 벌떼들은

좋아라 다시 부를 사랑의 노래 부르고

은은하게 들리는 속삭임은

포근한 임의 숨결

 

반가운 임을 만나

눈시울을 적시는 이 기쁨은

살아 있기에 얻은 귀한 행복이기에

한 날 한 날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살리라

 

 

 

늦가을의 서정

김덕성

 

닿을 듯

파란 고운 살결

안기고 싶은 만큼 설레는 가슴

사랑일까

 

어찌할 수 없이

그 하늘을 지붕 삼고

비옥한 땅 대지에

내 평화로운 쉼터를 삼는다

 

울창하고 청청한 숲엔

산소를 제조해

네 심장에 마음껏 공급해

생기가 중천하고

 

은색 갈대 춤추는 늦가을

고달팠던 세월

돌이켜보면

희비가 얽힌 인생 무대

 

비록 석양빛이 드리웠지만

내일을 노래하며

더 멋진 인생으로

꽃피우고 싶다

 

 

 

늦가을의 연가

김덕성

 

흘러가는 계절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던 여름

폭염도 물러간 자리에

알알이 익은 사랑의 열매

 

깊어가는 가을

곱게 물들인 황금빛 잎새

불어오는 갈바람 한 잎 두 잎

사랑이 익어 떠나가고

 

세월이 스쳐간 가슴엔

벌써 빨갛게 사랑이 익어 가는데

굵어진 나이테에 그 마음에는

그녀의 그리움만 더하고

 

오색찬란한 늦가을

그리움으로 오는 따뜻한 붉은 사랑

내 마음에 불타는 붉은 빛으로

그녀를 애타게 그려보는데

 

 

 

늦가을 이슬

김덕성

 

아침이 차다

이슬은

햇살에 안겨 수정처럼 빛난다

 

별빛의 흔적인가

영롱한 광채가 찬란하고

방울마다 풀잎위에서

따르륵 구르며 재롱부리는 소리

맑고 아름답다

 

이슬은 사랑을 먹어서인가

너무 맑다

나도 저리 맑았으면

 

 

 

늦가을 이야기

김덕성

 

그리움은 가을

가을은 누군가 그리워지는 계절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며

하늘빛 마음을 담은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가을 풀벌레 소리

감미로운 음악 소리 귀를 세우고

명상에 취하고 싶다

 

가을 외로움을 지우고 그녀와

사랑의 등불을 밝혀 놓고 밤새토록

늦가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늦가을에 흠뻑 젖으며

떠나지 못하게 사랑의 품 안에 안겨

포근한 늦가을 정취에

푹 빠지고 싶다

 

 

 

늦가을 편지

김덕성

 

1

내 사랑 그대여

오늘 들에 나갔더니

헐벗은 겨울나무를 보니

왈칵 외로움이 밀려와

울적한 마음에 한참 방황하였지

그렇게 좋았던 가을이 지나고

언 듯 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

갑자기 그대가 떠오르네

무심했던 생각도 나고

미안해 용서해 주겠지

정답고 살가운 가을사랑에 심취되어

잠시 그대를 잊었었나 봐

잎이 떠나간 자리는 너무 허전해

곧 겨울이 오겠지

꼭 만나기로 하자

오는 봄에

 

 

2

예쁜 꽃인들

너의 고운 색깔을

어찌 닮을 수가 있겠니

 

빨간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여름내 산고를 겪더니

네 자태 너무 곱다

 

빨간 너의 사랑으로

새 삶의 정기를 넣어 주렴

가슴이 뜨겁게

단풍이여

 

 

 

늦가을, 비 오는 밤

김문

 

어쩐지, 쓸쓸한 마음에

그날 그때의 낭만을 떠올려 주는

사색의 흐름

 

기러기 낙서한 자리에

그려지는 님의 얼굴

희미한 듯, 역연한 듯 알쏭달쏭

 

푸름이 퇴색한 자리에

핏빛 아픔이 넘친다

깊게 팬 골마다 이랑마다

저린 듯, 시린 듯

 

어디선가

내리는 빗속에서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는 그대

 

아서라, 만삭이면 비워내야 하지 않던가

추적추적 사색이 내린다.

 

 

 

나뭇잎 편지

김복수

 

비가 내린다

늦가을 비가 내린다

바람과 어울려 춤추듯 떠나지 못한 이파리마다

툭툭 건반을 두드리며

이제는 떠나야 한다고. 헤어져야 한다고

어디에선가 당신도 이 비를 보고 계시겠지요

행여 비에 젖은 낙엽을 바라보며

눈물 글썽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랑으로 산 날 보다 기다림으로 산 날이 많았던 당신

외로운 사람들은

비에 젖은 낙엽처럼 서럽다는 말도 하지 마세요

안부 먼저 눈물을 전하는 가을비가

야속하단 말도 하지 마세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것을

하느님도 아시잖아요

이제 이 비 그치고 나면

첫눈이 내릴 거예요

그리고 긴 겨울 꿈도 꾸겠지요

우리 내년 봄에 다시 만나요

새 이파리 새 얼굴로 다시 만나요

잘 가라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눈물만 보이지 말아 주세요

 

 

 

늦가을

김사인

 

1

호두나무 잎에 싱거운 비 뿌린다

성큼 옮겨놓는 황새 다리가 더 길어졌다

물 말아 찬밥 한술 뜨고

이웃에 곶감이나 깎아주러 갈까

돋보기를 밀어올리며

어머님은 양말을 꿰메고 계시고

그런데 귀뚜라미들은 대체

어디서 이 비를 긋겠나

 

 

2

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 고무신 옮겨보는 것

 

적막 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늦가을 비

김상미

 

나는 오늘 부당해고 당했다. 늦가을 오후 7. 이곳이 견고한 그물처럼 잘 짜인 인맥 사회라는 걸 깜박 잊고, 사장 조카의 비리를 눈감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내게 찍어놓은 당장 해고라는 화인을 넋 놓고 바라보다, 눈앞이 캄캄해져 추적추적 내리는 늦가을 빗속을 우산도 없이 걷고 또 걷는다. 벌써 몇 번째인가. 비정규직에 대한 횡포. 어둡고, 깊고, 스산한 비, 늦가을 비는 쓸쓸하고, 차갑고, 끈적끈적한 혈류처럼 온갖 죽음의 냄새, 껍질의 냄새를 피우다 지상보다 더 캄캄한 심연으로 구슬프게 나를 몰아붙인다. 한꺼번에 온몸으로 스며드는 한기. 오늘은 날씨조차 나를 비껴가는구나. 약속도 없이 나는 불 켜진 허름한 주점으로 들어선다. 잘 익은 열매는 모두 다 떨어뜨리고 마지막 잎새들만 남겨놓은 퀭한 나무들 같은, 서울 홍제동 어느 허름한 주점. 나는 육체 없는 그림자처럼 서글픈 내 마음에 연거푸 술잔을 들이붓는다. 막막한 빗소리처럼 자꾸만 목이 멘다. 이제 또 무엇을 해서 나를 먹여 살리나? 늦가을 빗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나. 그 위로 하염없이 내리는 비. 늦가을 비명 같은 비.

 

 

 

늦가을 풍경

김상현

 

슬픔이 옷을 벗어 슬픔에게 준다

 

 

 

늦가을의 침묵

김수열

 

호연지기

가을 품에 안겨 익어가는

세월만큼 익어가는 인생이면

그도 좋으련만

깨고 나면 서릿발 입은

애호박처럼 초동이 섧기만 하다

 

삶은 입동 잎에 내려앉아

가시 발 세운 서리 되어 가슴을 찌르니

어이 아프지 않을 가슴 있으랴

 

늦게 핀 정열의 꽃은

뭉게구름 핀 노을 같아

가슴만 섧어 우는 늦가을의 침묵,

익어야 하는데

익지 못할 애호박 같은 인생은

세월만 탓하니

 

밤 낮 깨고 깨도 그 자리인 듯해

노을 보는 인품은 섶청올치라

늦서리에 시들은 호박잎이 된듯해

먼 발 갈 길에 노을은 빨리도 지는구나

 

 

 

늦가을

김수잔

 

된서리 내린 우리 정원에

향기 자존심에 끝까지 버티던 국화도

파김치 되어 축 늘어졌다

모두가 떠나고 있구려

 

푸석한 나무토막에 앉아서

떠나는 그들과 무언의

작별을 고하는 설움에

 

저 멀리 노을빛에

내 그림자가

길고 애처롭구나

 

짧은 저녁노을 따라

으스스 추운 발길을

나도 한발씩 가고 있음에

 

 

 

늦가을 풍경

김순진

 

비포장 도로가에 줄지어 피었다 진 코스모스 빈 대공들이

볏짚 지고 가는 주름 패인 농부를 향해

스산히 손을 흔들며 남은 아양을 떨려 하고

 

누덕누덕 낙엽을 기워 입은 소년은

쓸쓸함을 주머니 속 불알 두 쪽 같은

호두 두 알로 빠드득 빠드득 늦가을을 이기고

 

새 쫒던 뚫어진 밀짚모자의 외로운 허수아비는

유행 지난 큰 카라의 찢어진 와이셔츠 차림으로

벌판의 승냥이 같은 바람에 항전하며 외다리로 서 있고

 

여름내 참 먹던 콩밭둑 북나무 정자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선형 붉은 잎새는

최후의 가을인 양 울먹이다 목매어 매달리고

 

쥔 게으른 콩밭의 장렬하게 목 바친 수숫대는

누군가 콩서리라도 해 먹었는지 분노하여

목 잘린 수탉처럼 피흘리며 떨고 있다.

 

 

 

늦가을

김시종

 

노란 은행잎을 밟으면

짤랑짤랑 금화 소리가 난다.

 

간밤엔 섰다판이

대판으로 벌어졌나 보다.

 

은행나무가

탕진한 금화들이

인도에 무더기로 뒹굴고 있다.

 

 

 

늦가을에

김시종

 

잎새가 푸를 때는

잎이 많은 줄도 몰랐더니,

 

잎이 떨어지매,

낙엽이 지천으로 많아라.

곁에 있을 때는

있는 둥 만 둥한 사람도,

 

떠나면

빈자리는 메울 수 없이

크나니.

 

 

 

늦가을 감나무 아래서

김영준

 

삶의 감이 잡히지 않는 날

감나무 아래 선다

 

감나무 가지에 눈을 올리면 알 수 있을까

그런 기분으로

늦가을 햇살의 따뜻함도 잠시 젖혀 둔다

 

비워가면서 채워간다는 홍시 두어 개

그러나 점점 점액질이 되었다가

마지막엔 물인 듯 흘러내려 묵묵히

하강하는 몸짓들 보면

하향하여 묽은 똥이 되어가는 몸짓들 만나면

실은 채워가면서 비워가는 홍시임을 알겠다

 

그래, 저렇게 소진하는 방법도 있음을

단단하게 익었다가 묽게 물이 되어 흐르고

끝내 거름이 되어가는 일도 있음을

그 몸 하나로 조용히 보이고 있다

 

늦가을 햇살이

늙은 감나무에 닿아 마음 고즈넉한 날

 

 

 

늦가을

김영호

 

풍성했던 들녁에 신식기계들에 힘찬 소리에

황금 들판은 군데군데 잘려 나가고

돌 맞은 머리에 생채기 난 머리통처럼

들판은 수확으로 인하여 생채기투성이로 변한다.

 

넉넉한 늦가을에 풍요로움은

생채기투성이 같지만

명년 봄 새로운 생명을 낳고 기르기 위해

모진 겨울 삭풍을 견디며. 내일을 꿈꾸며 희망을 노래 한다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배추밭에서 잘 결구된 배추를 수확하기 위해

짚으로 배추의 허리를 묶어 주곤 하시던 어머니

 

반백의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콩알이 튀어나오도록

앞섶에 한 아름 놓고 방망이질하던 늦가을

 

 

 

늦가을

김유미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정 주고 정 받고

 

조금씩 기대고 부벼대다가

때로는 남인가 봐 착각도 하다가

 

찬 바람 불어오면

돌려줄 거 서둘러 돌려주고

 

훠이훠이 홀가분히 떠나가는 것

산다는 거 그런 거지 뭐

 

근데 그게 왜 그리 힘든지 몰라

 

 

 

늦은 가을

김윤진

 

분연히 일어나 걸어가길

더 높고 푸른 날을 위해

우거진 숲으로 향유하는

활기찬 젊음은

화려한 여름이 지난 후에도

온유하여 찬미 받을 수 있도록

 

숙연한 가을은

더욱 심오한 뜻으로

심장에 부딪히고

각인 된 겸양(謙讓)의 사슬은

분신처럼 늦은 계절에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늦가을

김인태

 

국화 꽃잎 따서

소주에 동동 띄우고

애기 단풍잎 띄어

늦가을과 같이

마시게 친구야

 

높푸른 하늘 아래

하얀 갈대

흐드러지는 언덕의

혼자서 그리운 마음을

어디에 부칠 곳 없어

눈물겹게 아리다

 

해지는 노을 넘어

늦가을이 사라지면

 

옷매무새 고쳐가면서

저 훗날의 전설로

남겨지겠지요

 

 

 

늦가을

김재덕

 

낙엽이 사락사락

고쟁이 벗는 소리

 

산 들녘 들쑤시던

갈대의 밀어 소리

 

단풍이 물들다가 만

가슴앓이 길목에

 

 

 

늦은 가을비

김정남

 

마지막 가을비가 천둥과 함께

현란한 몸부림으로

겨울의 차가움 속으로 들어간다

 

기나긴 어둠을 뚫고

먼동 뜬 아침,

여정의 빚을 사모했지만

후드득 쏴아~

떨어지는 빗줄기의 무게,

그 소리에

수다스럽던 그들의 목소리들은

어디론지 다 사라져가 버리고

가을을 순간 잊은 듯

잠시 동안 추위에 한기를 느낀다

가슴 안에 다 담을수 없어

 

100년도 아닌 또 한 계절의 생명을

이어가는 가을의 짧은 시간이

이리저리 미끄러질 듯 찾아오는 바람 앞에

맥을 잃은 빗줄기의 눈빛으로

오늘 하루도 자연에 맞춰 살라고

내 안에 풍운(風雲)을 던진다

 

 

 

늦가을 숲

김정원

 

이고 지고 쥔 것들을 내려놓으니

여태 보이지 않던 높은 하늘이 보인다

 

우리 함께 사는 눅눅한 세상 발부리까지

고실고실한 햇볕이 어루만지고

끊어졌던 소식이 새 소리처럼 들려오며

그 사람이 그리워진다

 

지난 무성한 계절에

 

왜 더 다정히 얘기하지 못했을까

왜 더 넉넉히 품어주지 못했을까

왜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을까

 

몸부림쳐도 돌아갈 수 없고

참회해도 얻을 수 없는 날들

 

그날들이 오히려 찬 바람 부는 날들을

거뜬히 살아갈 힘이 되고 슬기가 되길

나무마다 빈손으로 팔을 벌려 기도한다

 

 

 

늦가을

김정택

 

서산에

지는 해는

노을을 뿌려놓고

 

단풍은

낙엽 되어

바람에 흩날리니

 

밤하늘

기러기 떼는

서러움에 눈물짓네.

 

 

 

늦가을 청춘(靑春)

김종칠

 

갈바람이 불어오는 날

해 저무는 창 너머에서

기러기가 날아가는 날갯짓에

홍단풍이 슬퍼하며 떨어진다.

 

심연(深淵)에 묻어두었던

임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

천릿길 떠나는 저 철새는

 

여름 내내 외로움으로 말라 버린

아픈 상흔(傷痕)으로

피를 토하는 울음소리 쏟아내며

서리 내린 창공(蒼空)

찬바람 가르며 날아간다.

 

쓸쓸한 갈바람이 불어오는 날

다 타지 못하고 떨어져

길바닥에 힘없이 뒹구는

낙엽의 모습은

 

아무리 잡아도

덧없이 흘러만 가는

내 청춘(靑春) 같구려

 

 

 

늦가을

김지하

 

늦가을

잎새 떠난 뒤

아무것도 남김 없고

내 마음 빈 하늘에

천둥소리만 은은하다.

 

 

 

늦가을 여느 날

김창환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행운이 있을까

그런 희망을 꿈꾸며 산다

 

어딘가 아픔을 간직하고 살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아프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도 아프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으로 생각들이 바뀌어간다

 

삶에 묻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게 하던 수족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울타리가 되어 열심이던

자신을 돌아보던 여느 날

인생 반환점을 훨씬 넘어버렸음을 안다

 

젊음의 흔적이

내 외모 어디에도 없고

공허한 가슴속에 흐느끼는 젊음을 보듬고 있다

 

그 젊음을 달래려

핑크빛 메모지를 힘주어 하늘에 끼워보는

그 이슬 맺힌 눈동자 얼마 동안 초롱초롱할 수 있을까

 

 

 

늦가을에 내가 우는 이유를 아는가

김해룡

 

마지막 낙엽마저 떨구는

늦가을 이때쯤

스치는 소슬바람에도

그토록 서럽게 우는 이유를

그대는 아는가

 

하늘 끝 저만치

빈 둥지 덩그라니 매달아 놓고

일찌기도 훌쩍 떠난

야속함에 우는 것을

정 떼려고 우는 줄만 아는가

 

이제는 장년이 다 된 나이

새록새록 되새겨지는 건

거부의 날갯짓도

속마음 삭이려는 몸부림도

서러움도 야속함도 아닌

절절한 그리움

 

내던져도 내던져도

", 아버지 !"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그리움 때문임을

그대는 아는가

 

 

 

늦가을

김행숙

 

넘실넘실 춤추며 허수아비가

풍경처럼 걸어온다

밭고랑을 넘어 둔덕을 넘어

거인처럼 걸어온다

 

장마도 이기고

태풍도 견디고

지금은 늦은 가을

 

어깨에 둘러맨

북치며 장구치며

어릿광대처럼 걸어온다

꽹과리 치며 날라리 불며

남사당패처럼 걸어온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 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늦가을의 저녁때

나태주

 

마지막 저녁 햇빛 비쳐 빠안히 건너다 보이는

저 건너 황토 언덕길로

생선장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신가,

늙수그레 시골 아낙네 한 사람

함지 이고 가는 게 보인다.

예닐곱 살쯤 되었음직한 계집애 하나

그 아낙네 치마꼬리 잡고 따라가는 것도 보인다.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뒤 따라 가는 것도 보인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사람 사는 재미가 뭐 별건가,

생선장사 갔다간 저물어 돌아오기도 하고

막내딸년 마중 나오기도 하고

우리네 살림살이 가난해서 빡빡하고 옹색하긴 해도

마음만은 아기자기 색동옷 입고 사는 사람들.

늙수그레 내 어머니와

안 낳을 걸 늦게 하나 낳아 좀 창피하구나,

어머니 늘 그러시던 내 막내 누이 같은 사람들 세상.

 

 

 

늦가을 낙엽은 지고

남낙현

 

찬비가 세차게 내리고

늦가을 낙엽은 지고

마지막 남은 잎새마저

다 떨군 나무는

1년 동안 가꾸어온

삶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구나.

이리저리

발밑에 구르는 낙엽은

누군가 이승에 벗어놓고 간

햇살 한 줌

그리움 한 줌

슬픔 한 줌

추억 한 줌

 

 

 

만추(晩秋)

노영환

 

늦가을

휘영청청

달 밝은 삼경인데

 

애끓는 귀뚜라미

울음은 무슨 사유

 

새벽녘 상고대 꽃피면

장 별리를 예감한 듯

 

만추는

사색하며

성숙의 계절임을

 

수목은 잎을 털고

동면에 접어드네

 

해 저문 들녘길에는

노을 꽃이 곱구나

 

 

 

늦가을

도종환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나 살아야 할 이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늦가을

류금선

 

스산한 벌판에

가을을 휘젓는 소리

 

모두들 떠나는 계절 앞에

나뒹구는 기억들이

갈 곳을 몰라 하고

 

시름을 달래듯이

서성대는 들녘 바람 뒤에는

울음만 남는다

 

싸늘한 목덜미

원색의 그리움만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이 가을

난 어디에도 없다

 

 

 

늦가을 공원이 소란하다

마경덕

 

가을 나무들 일 년 소득을 계산한다

분수대 옆 은행나무 봉지에 주워 담은 은행알을 세고 빨간 장갑으로 한 밑천 챙긴 단풍나무는 비가 잦아 재고가 많다고 엄살이다 바늘쌈지를 차고앉은 그늘 귀퉁이 소나무 채머리를 흔드는데 아무 데나 바늘 좀 흘리지 말아요 눈을 흘기는 쥐똥나무 송이송이 쥐똥열매를 헤아린다 어디론가 팩스를 전송하는 플라타너스는 새 발자국 탁본으로 소득공제가 늘었다 까치 부부는 토지세가 올랐다고 깍깍깍 미루나무에게 항의 중인데 벤치에는 무표정한 얼굴 셋, 말없는 지팡이 둘, 그사이 흘린 비둘기 울음 한 보따리, 바람이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가을 나무들 수런수런 연말정산을 서두른다 해거름에 공원을 찾아든 떠돌이 사내만 신문지를 덮고 벤치에 눕는다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문태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살았지

 

 

 

늦가을

문효치

 

나는 지금

갈비뼈 하나를 앓고 있다.

억만의 저

자작나무 잎사귀들

모두 흔들어 흙으로 보내고

이제 속 빈 수수깡이 되어

바람의 손톱으로 퉁기기만 해도

툭툭 부러지며

병 같은 사랑 하나 얻어

앓고 있다.

 

 

 

늦가을

박경림

 

그 속은 이미 온전치 않다고 합니다

울긋불긋한 것이

천지에 깔렸다 합니다

 

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누렇게 변한 몰골이

오그라진 마디가

바스라진 조각이

뼈만 앙글한 줄기가 우왕좌왕인

그곳은

길이 엉켜 엉망이라고 합니다

 

엉망인 체

서로의 사이를 유지한다고

더 이상 물들지 않는다고

 

천지를 집어삼킬 것 같던

그들은 이제

 

 

 

늦가을 서정

박광호

 

스산한 늦가을

찬바람은 옷깃에 스며들고

움츠린 어깨 위로 낙엽 또한 흩날리니

마음조차 나목인 듯

쓸쓸하고 허전하다

 

세월을 등에 업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며

한 소절의 노래를 부르고 나면

또 한 소절의 음표를 그려야 하는

숨 가쁜 여정에서

 

삶의 길 되돌아보는

가을 타는 남자의 가슴에도

낙엽은 쌓이는데

여생에 바라는 것 있다면

걷는 황혼 길에 노을빛만이라도

고왔으면 싶다

 

 

 

늦가을 소묘

박동진

 

약천사 돌확 속

산란 끝낸 잠자리 한 마리

동안거 준비하는 수련 곁에서

양 날개 쭈욱 펴고 입적하셨다

 

죽었나 살았나,

벚나무 가지에 걸린 조각구름이

살살 건드려보는데

점정(點睛) 앞둔 약사여래의 약탕기에

무슨 특효약이 들어있는지

대광보전 불상 앞에 엎드린 중생들 엉덩이

천근만근이다

 

혹여 그대도

물 바튼 작은 웅덩이 안에서 심란할까

염려스럽네

 

 

 

 

늦가을은

박신지

 

돌아서 가는 뒷모습

눈물 지워진 가랑잎 자욱이다

 

온갖 빛깔의 겉치장으로도

텅 빈 속

 

서리 내린 샘터에서

세수한 맨얼굴에

드러나는 잔주름

 

이제 막 눈썹에 매달린

빨강 자동차 후미등

닳아진 아스팔트 위로

떠다니는 피 묻은 낙엽이다

 

불어라 바람아

넌 나의 마지막 비밀

 

깊숙이 묻어둔 설움 하나

순명(順命)하는 술 한 잔이다

 

 

 

늦가을

박인걸

 

산비둘기 멀리 떠나니

앉아 울던 나무 가지가 쓸쓸하다.

토종 까치들만 종종걸음칠 때

붉나무가 그 앞에 열매를 던져준다.

늦가을 접어드는 길목에는

서글픈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지천으로 뒹구는 가랑잎을 밟을 때

삶의 허무가 뼛속까지 스민다.

구름에 달이 천천히 가던

아주 오래전 서리 내리던 밤

옥수수 섶 베던 아버지 낫질 소리에

연민(憐憫)이 치밀어 울었었다.

허리 졸라맨 어머니가

등잔불 밑에 앉아 가난을 꿰맬 때

불빛에 반사된 눈에 맺힌 눈물이 슬펐다.

늦가을 낙엽이 나부낄 때면

어머니 낡은 옷자락이 눈에 밟힌다.

 

 

 

늦가을 단상(斷想)

박인걸

 

길 위에 깔린 낙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간다.

근접 불가하던 명성이

한낱 휴지 조각처럼 짓밟힌다.

 

까마득한 정상에서

세상을 눈 아래에 두고

고고(孤高)한 자존심으로

의연히 지켜온 자리

 

험악하던 폭풍우와

아사 직전의 긴 가뭄과

역겨운 벌레 떼의 습격에도

억척같이 견뎌온 세월

 

된서리 내리던 날

헤어져 흩어지는 잎아

세력 잃은 사람 같아

마냥 불쌍하구나.

 

 

 

늦가을 비

박인걸

 

1

늦가을 찬비가 내리면

가슴 지층에 가득 고인다.

그렇게 고인 빗물은

오래전에 고인 빗물과 곶자왈이 되어

이따금 밖으로 솟구친다.

 

깊이 고인 빗물에는

고운 추억이 분자(分子)로 떠돌고

혹은 슬픈 입자(粒子)로 방황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류()와 만나

가슴을 뒤흔들며 치솟아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빗물에 젖은 나뭇잎에 동정을 느끼며

지층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바람이 없어도 한쪽으로 쏠리며

그리움의 출처로 달려가고프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을비는 그리움 병을 도지게 한다.

 

 

2

스러진 마른 잎 위로 비가 뿌리면

숨이 붙어있는 낙엽들이 흐느낍니다.

서리 맞아 헐떡대던 용담초 꽃이

창백한 얼굴로 스러집니다.

붉게 타오르던 단풍은 자취를 감추고

쏟아내던 산열매들도 사라졌습니다.

외로운 기러기도 울며 떠났고

가을비에 남은 잎들 서럽습니다.

노목(老木)이 쏟아내는 낙엽을 보며

어떤 허무가 가랑잎처럼 뒹굴고

마지막 잎사귀 곤두박질 칠 때

이별 아픔이 내 영혼을 울립니다.

빗물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헤어지는 아쉬움에 서성입니다.

몇 번을 뒤돌아 봐도 떠나야 하는

가련한 발걸음 되돌릴 길 없습니다.

매정하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는

순수도 순진함도 빛이 바래고

점점 차가워지는 늦가을 비처럼

뜨겁던 가슴도 싸늘하게 식어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접지 못한 작은 미련이

내 명치끝에 대롱대롱 매달립니다.

늦가을 밤비가 천둥 번개를 몰고 와

침실 창문을 두드립니다.

 

 

 

늦가을 산

박인걸

 

산은 조용히 일어서 있고

옷 벗은 나무들 홀가분하다.

어저께까지 황홀하게 빛났으니

이별 앞에 슬퍼할 수는 없다.

바람마저 멀리 도망친 숲에는

너부러진 낙엽들이 눈부셔서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

어차피 그날이 오면

나는 혼자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에 꽃은 처연(悽然)한 그림자만 남기고

붉은 단풍은 종소리처럼 흩어지며

나는 외로운 눈물을 흘릴 걸 짐작했다.

가을 산이 공림(空林)으로 변할 때면

나는 아랫배에 살며시 힘을 주고

두 주먹 사이에 몽사(蒙死)를 각오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새파랗던 시절의 달아오르던 사랑도

녹슨 나뭇잎처럼 사라지고

둘둘 말려 떠나가는 저녁노을에

그리움마저 휩쓸려 높은 산등성을 넘는다.

어둠이 구릉지로 걸어올 때

처음 느끼는 쓸쓸함이 출렁거린다.

올 해 늦가을 산은 더 높아 보인다.

 

 

 

늦가을 상념

박인걸

 

찬 서리 내리는 들녘에

풀들이 스러지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그 위를 짓밟는다.

 

보랏빛 들국화가

목이 꺾인 채 주저앉고

죽은 플라타너스 잎이

가엽게 나뒹군다.

 

우거진 강기슭의

갈대 몸짓은 외롭고

얼어버린 먼 하늘의

회색 구름이 차갑다.

 

처마 밑으로 파고드는

발이 시린 참새 떼의

잔뜩 움츠린 걸음과

가녀린 신음도 애달프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타임아웃 된 경기장처럼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허가

외로운 가슴을 두렵게 한다.

 

 

 

도시의 늦가을

박인걸

 

저녁노을이 빌딩 벽면에 길게 드리우고

국적 불명의 나뭇잎들이 이국땅에 눕는다.

곧 찾아올 어둠을 의식하며

내 발자국은 버석대는 낙엽을 밟으며 빨리 걷는다.

예리한 눈동자들이 살피며 간 거리에는

뛰어내린 고독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도시가 뱉어내는 허영은 길거리에 어지럽다.

마스크로 틀어막은 두려움은

바람에 쓸린 낙엽처럼 쌓여만 가고

두려움이 빼앗아 간 두 번의 붉은 가을이

줄에 묶인 채 나를 따라온다.

이미 어두움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쫓기고

누가 스위치를 올렸는지 가로등이 핀다.

목도리를 겹겹이 두른 후두(喉頭)

찬 바람이 달려와 몸을 숨기고

아무 그리움도 없이 나는 늦가을을 생각한다.

내 의식 속에는 낭만도 감수성도 사라졌다.

박명(薄明)의 빛을 밟으며 총총히 걸어

새들처럼 안식처를 찾는 일이다.

그곳이 비록 멀리 떨어진 벽경(僻境)이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밝혀내야 한다.

 

 

 

늦가을 풍경

박정재

 

가을의 끝자락

파고드는

옷깃 여미는 바람에

목이 짧아지고

 

잊혀 소외된

지난 일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여미는데

 

풍년의 노래가

길게 퍼지는

고향의 하늘에

하얀 구름 두둥실

춤을 추는구나

 

 

 

늦가을

박태강

 

낟알 쪼는 멧 비둘기

날아오르면

가을 거지 후 텅 빈 들은 더욱 넓어

맷비둘기 따라

푸른 하늘

더욱 높아지고

높이 솟은 감나무

붉은 감

눈으로 찾아드는데

내 마음

옛 님

생각에

외로운 논두렁 길

혼자 걸으며

사그락 사그락

텅 빈 넓은들

내 마음

쓸쓸히 붙잡네

 

 

 

늦가을

배갑병

 

늦어

더 화려하다

 

눈물이 날까

 

하여간

 

속리산 뒤켠

산길에 서 있다

 

 

 

늦가을

배태성

 

1

창문 너머 끝

오래된 참나무 그루들

 

수없는 세월을

모퉁이길 꼬불꼬불 견뎌 내고

말없이 홀로 눈비 맞으며

장맛비 쓸어내려 누런 황토흙 덕지덕지

성상이 허연 가지들 앙상해도

 

우수수 소리 내며 떨어지는

참나뭇닢 수북히 낙엽 된다

 

 

2

서리가

내릴 때쯤이면

 

가을은

이미 떠나고 없다.

 

배추밭

무 우 밭에

 

은빛

새벽을 열어놓고

 

서릿김

피어오르는

아침을 맞는다.

 

모닥불이

따스한

햇살을 곁눈질하며

 

텅 빈

가을을

쏟아붓는다

 

 

 

늦가을에 - 아이들

배창환

 

떠날 사람들은

오래전에 이 들녘을 떠났다

파장에, 끝까지 남은사람들끼리

기울어가는 술막에 모여

꼬리 길어진 저녁 햇살 배웅하듯이

잎 다 털어버린 백양목 사이로

산 그늘 내려오는 학교 운동장

여학생 몇, 양지 돌계단에 쪼그려 앉아

사내아이들 공 차는 그림자 좇으며

웃고 떠들고 재잘대면서

바람이 몰아가는 낙엽처럼

조금씩 여길 떠나는 꿈을 익히고

 

 

 

늦가을에 오는 손님

배혜경

 

늦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찿아오는

손님이 있어요

입술 위에

살포시 앉아

간질이며

애교 떨고 있는 너를

달래 주기도 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곱게 떠나기를

기원하건만

터주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게

꽃을 피우며

웃고 있는데

네가

보고 싶은

그대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늦가을 햇살

백설부

 

하루 분량의 기운을

다 쏟아부은

늦가을 햇살이

기력을 잃어갈 때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

푸드득 날아와

소나무 가지 위에

잠시 쉬어가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늘 위로가

되는 존재였기에

위로를 받는 일이

낯설기만 하지만

 

햇살 한 줌은

행복하게 부서지리라

 

 

 

늦가을

변용환

 

가랑잎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오후

시인은 생각 한다

하얀 사발에 불어 터진 쌀알이 동동 떠 있는 시큼한 동동주와

홀랑 벗고 하얀 밀가루 화장을 하고 누워있는 뜨거운 파전을

 

이런 날은 춤을 추고 싶다

머리띠 질끈 동여매고 탈바가지 쓰고

무명천 바지저고리에 댓님까지 메고

풀쩍 휘청휘청 흐느적흐느적 얼쑤

비틀비틀 머슴 춤을 추고 싶다

 

 

 

늦가을

복효근

 

술 덜 깬 아침 한나절

약속 어긴 것 화 안 내고

혼자서 지리산 둘레길 산행 나가는

낡은 아내 미웁지 않다

혼자 돌아가는 음악

무슨 뜻인지 몰라 소프라노

낯선 나라 말 그냥 악기 소리처럼 싫지 않다

너무 많은 나에게 내가 지쳐서

전화 한 통 없는 이 쓸쓸함이 좀 오래갔으면 좋겠다

마당귀엔 산에서 옮겨 심은 용담

꽃잎 벌리는 의뭉스런 햇살 손길

내 몸이 간지럽다

벌 한 마리 꽃우물에 빠져 맴돌고

가만가만 진저리 쳐대는 꽃

저들의 한바탕 음화 같은 풍경에

때 아닌 내 거시기가 선다

무리에서 처져서 산다는 부끄럼 말고도

처진 자만이 아는 권태로운 즐거움도 있어

아주 먼, 여자를 떠올리며 수음을 했다

이 좀스러운 외도가 그리 죄스럽지 않은

마흔아홉 늦은 가을

 

 

 

늦가을 피는 나뭇잎에는 눈물이 묻어 있다

서연정

 

가을도 허리 구부러진 가을인데

플라타나스는 열심히 속잎을 피우고 있다

서리 내리면 이내 부서져 버릴 목숨을

무엇에 기대고 키우는 것일까

잘 자란 잎사귀보다 더욱 자랑스럽게

흔들어대는 연초록 잎새

늦게 핀 푸른 꽃송이

눈물이 묻어 있다

빨아 둔 깨끗한 수건을 꺼내 쓰듯

다발의 꽃 중에서 한 송이를 집어들듯

쌓여진 시간을 떠내는 무표정한 나의 삽질

떠내선 흘려버리는 무의미한 반복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플라타나스는

늦가을

부득부득 연초록 세계 하나를 밀어 올리고 있다

 

 

 

서리 내리는 늦가을

석옥자

 

나뭇잎이 물들어가는 가을이 오면

나도 붉어지는 잎처럼 변색 될까 봐

걱정이 반입니다

 

서리 맞으면 시리고 아린 늦가을

풀벌레도 어디로 몸을 피했을까

제 갈 길 갔는지 나도 모진 추위 어이

이길까 걱정이 반입니다

 

지줄 대던 새들도 제 둥지 찾았는지

갈바람에 낙엽 지는 소리 들리면

내 검정 머리 파 뿌리 될까 두려워

또한 걱정이 반입니다

 

 

 

낙엽 밟는 소리

성백군

 

늦가을

나목이 되어가는

가로수 길을 걷습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겨워 자꾸 밟다 보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밟히는 것은 낙엽이고

밟는 것은 난데

십 대도 아니고 고희가 넘은 이 나이에

그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았기에……,

회고해 보았자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저 낙엽

나 같아서

밟히는 것이 서러운지

바람에 날리며

발걸음 피해 바스락거립니다

 

 

 

늦가을 나무

성백군

 

초록 잎은

폭우에도 여상한데

단풍잎은

실바람에도 떨어집니다

 

여름 내내 열심히 살았으면

가을에는 그 성과(成果)를 누릴 만한데

나무는 점점 가난해지고

황금 들녘은 금세 비워집니다

 

나도 이제 나이 많아

아이들은 떠나가고

수입은 줄어들고

계급장마저 떼어내고 나니

기댈 곳이 없습니다

 

마음 비워야 하는데

허한 맘 달랠 길 없어

나뭇잎 떨구는 늦가을 나무를 바라보며

빈 마음 되어 봅니다.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나목이 되어 봅니다

 

 

 

늦가을 땡감

성백군

 

우리 이제 가을이라

자식들 다 분가시키고 손자 손녀도 여럿

단풍 들만 한데

금방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영감, 나 땡감 된 것 아니냐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아내

 

, 여름, 지나면서

때 이른 반시, 홍시, 단맛에 취해서

가을이 오기도 전에 아내를 과식한 것 아닐까

갑자기 땡감이 되다니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괜찮아

땡감이면 어때

깎아 문설주에 달아놓고

들며 나며 사모하다 보면

겨울에는 속이 빨간 달콤한 곶감이 되겠지

 

아내는 하얗게 웃고

나는 입맛을 다시지만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서방은 서방대로

백치처럼 찔끔찔끔 눈물이 난다

 

 

 

늦가을 억새

성백군

 

늦가을

산마루를 거닐던 노신사

오름길이 힘든지 잠시 멈춰서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봅니다

 

실바람에도

흰 머리카락은 먼 길 떠나려 하고

굽은 등은 수렁에 빠진 양 휘청거리는데

발밑, 저 유년의 산기슭에는

아직도 세상을 이기려고 악착 떨던

초록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버리면 되는데

이 나이 먹도록 포기가 안 돼

삶을 놓을 수가 없어서

골짜기에 이는 고운 단풍은 울긋불긋 피멍인 것 같고

언덕 위 나목의 힘찬 가지들은 쓸쓸합니다

 

그래도, 낙엽은 지고

떨어지면서 바람과 함께 멀리 떠나 가는데

늦가을 억새는

몇 안 남은 홑 씨 그걸 놓지 못해서

바람에 목을 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것이 다인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상사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늦가을

성원근

 

먼 하늘에 별이 하나 떨어진다.

거리에서

한 가닥 음률을 달고 낙엽이 구른다.

무거운 외투 속에서

선명히 내다보이는 세상,

나뭇가지에

내일 눈이 쌓일 것이다

 

 

 

늦가을

손병흥

 

뉘엿뉘엿 해가 기우는 해거름녘에

그윽한 향기 풍기는 서늘해진 바람

 

느티나무 단풍그늘에 가득 내려앉은

노랗고 알록달록하게 뿌려진 가을햇살

 

그늘진 숲에서부터 가을이 끝나는 무렵

점차 기온변화의 추이로 겨울을 맞는계절

 

약화된 북태평양 고기압은 남쪽으로 가고

시베리아 고기압이 대륙에 형성해지는 시기

 

낮의 길이 일조시간 짧아져 기온 내려간

안개 서리도 내려 일교차가 큰 쓸쓸한 풍경

 

 

 

늦가을 정취

손병흥

 

몰아치는 찬바람에 낙엽 휘날리는

두 계절이 어우러진 가을의 끝자락

전국 내륙을 중심으로 찾아온 맹추위

울긋불긋 붉고 노란 단풍 든 늦가을 풍경

추운 날씨 불구하고 만추의 정취 느끼려

두툼한 옷차림새에 탐방로 오르는 사람들

수려한 산세 느끼며 감상해보는 이 계절

아름답고 멋진 걷기 좋은 단풍명소 여행지

 

 

 

늦가을 풍경

손병흥

 

오색단풍들로 화려했던 산자락

온통 황금물결로 넘쳐나던 들녘

비탈길 사이로 떨어져 버린 나뭇잎

이미 가을걷이 끝나버린 허허벌판

철따라 준 선물 늦가을 산골 풍경

 

일교차가 심해 찬 바람 거세게 부는

마냥 스산하게 저물어만 가는 가을

빈 하늘 떼 지어 나르는 기르기 떼

하얀 억새의 쓸쓸함 바람에 나부끼는

더욱 그리워진 아쉬움 고즈넉한 정취

따스한 가을 햇살이 고마워져 가는 계절

 

바스라지고 메말라져만 가는 하늘 아래

가을 색으로 떨어져 버린 낙엽을 밟으며

청정한 바람 햇빛 가득 받으면서 자라난

머잖아 사라져버릴 야생화 바라보던 그 날

쉬엄쉬엄 천천히 숲길을 걸어보는 산책길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 향연

자연과도 절묘한 조화 속에 불태우는 시절

 

 

 

늦가을 소묘(素描)

송문헌

 

빗방울을 털어 내며 땅거미를 들추고 휘적휘적

낡은 포장마차를 찾아 들던 그 사내,

한숨 같은 어깨 추스름으로 초점 잃은 시선

자주 길 건너 시외버스 정류장을 바라본다

빈 소주병 속의 공허만큼이나 길어지는 기다림은 무엇일까

가을비 세차게 포장마차를 양철지붕처럼 두드리며 간다

 

온기 없는 터미널 대합실, 불 꺼진 난로 옆에

오도마니 쪼그리고 거리에 나뒹구는 바람 소리에도

움칠움칠, 오가는 이들을 두리번거리는 그 사내,

그는 또 무슨 기다림일까

이따끔 힐끗거리던 포장마차 속 사내

어쩌다 길 건너 마주치는 시선을 허공에 담배 연기처럼 내던지고

자욱하게 흐려지는 어둠만큼이나 발밑에 패잔병처럼 젖어드는

담배꽁초들의 슬픈 반란을 본다.

 

 

 

늦가을

송수권

 

늦가을엔 떠도는 이 나라의

시인들 너무 많다.

천 이랑 만 이랑

술빛으로 익어 가는 저녁 바다

누에 머리 흔들흔들 이백李白과 함께

채석강에 내려와

참 가당찮은 세월

해인海印이란 말뜻을 아느냐고

머리 도장을 찍더니

오늘은 내소사來蘇寺에 들러

우두커니 혼자 저무는 돌장승이 민망했던지

죄없는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여기 손도장 하나 찍고 간다고

호들갑을 떤다.

오백 년 묵은 키 큰 미루나무 잎새들

'쟤가 왜 저러나'

덩달아 웃다가

와르르르 무너진다

 

 

 

늦가을 풍경

송향수

 

바람이 불지 않아도

향기가 풍겨오고

들꽃의 깊은 사랑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햇살이 비치지 않아도

미소를 활짝 머금은

단풍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대 안에 머물면

신비감으로 가득하고

맑고 청초한 파란 눈동자 속으로

빠져든다

 

생각은 손바닥에 놓여

손금처럼 여러 갈래 길 위에서

지문처럼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다

 

떨어져 있는 만큼 그리움도

깊어지는 계절은

언제나 같이 있고 싶은

나만의 착각은

낙엽 지고 있다

 

멀어지는 그대를

손짓하며 부르지만

못 듣고 멀어지는

그대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늦가을

신순말

 

포도송이를 따낸 밭은 어쩐지 고요하다

 

왕성했던 덤불과 잎

한로 상강에 무서리 된서리 고루 맞더니

시름해진다

 

남편이 거름을 뿌린다

한 해 동안 애썼을 나무에게

월동에 들기 전 주는 비료다

 

농사일지 머리에 씌여있는 말

'감사비료(感謝肥料)'

 

문득, 가을이 물씬 깊다

 

 

 

늦가을에

신순임

 

석양 뒷배경으로

황혼 속살

고스란히 내비추우고

멧새들에게 성찬 차린

홍시

 

반백인 나도

황혼 되면

전신 공양할 수 있을까?

 

 

 

늦가을 오후의 단상(斷想)

신창홍

 

하늘이 내려와 머물던 지평선 끝자락엔

식어가는 화로에 지워지는 화톳불같이

먼 산등성에 걸린 구름 뒤로

단풍빛 반사된 미지근한 석양이 걸리고

 

땅거미 숨 가쁜 숲속 나무 그늘엔

점점 진하게 자리 잡는 어둠이 다가오고

쫓겨난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이

두려운 신음으로 소리 내어 떨고 있다

 

가을은 잊었던 기억들을 다시 흔들어 놓지만,

또 하나의 아픔으로 기억하는 그대는

따스한 눈빛 하나 남겨둔 체

이제는 흐릿한 모습마저도 지워지고

 

어설픈 치기(稚氣)에 무거운 마음만큼

그리움 간절한 자리엔 낙엽만 쌓이는데

행여 하는 마음에 떠날 수 없어

이 가을 끝자락에 머물고 있네

 

그리고 가을이 떠나는 자리

겨울 입김에 차갑게 멀어질 기억과

서서히 잿빛으로 묻혀질 소중한 조각들

가을은 늘 독감처럼 마음을 여위게 한다

 

 

 

늦가을의 책갈피에서

신형건

 

무심코 펼쳐본 책갈피에서 팔랑

노랑나비처럼 은행잎 하나가 날아왔습니다

그대였지요, 언젠가 그 날

곱게 물든 이 은행잎을 건네준 이는

그대 눈에 비쳤던 그 빛깔 그대로

고이 간직하려고

내 마음의 갈피에 살며시 끼워두었는데

그 순간뿐, 금새 까맣게 잊고 말았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처음 본 순간 쉽게 토해냈던 감탄사만큼이나

또 그렇게 너무도 쉬이 잊혀지나 봅니다

은행잎은 고치 속의 누에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참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보는 밝은 빛이 너무 눈부셔

숨을 죽인채 내 손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 어느새 한 마리의 노랑나비로 살아나

내 마음속으로 날아듭니다

그 빛깔 그대로

이제 다시 내 마음의 갈피에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그러나 맨 처음의 그 약속처럼

영영 잊지 않으리라는 다짐은

섣불리 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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