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ㅇ - 1
안경애 – 가을 동화
안경애 - 가을을 선물로 드릴게요
안경애 - 어느 가을날
안경애 - 어느 가을의 당신께
안광수 – 가을
안광수 - 가을 닮는 그리움
안국훈 - 가을빛
안국훈 – 가을 하늘을 보면
안도현 - 가을 햇볕
안도현 - 가을에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안도현 - 가을 엽서
안도현 - 가을의 소원
안도현 - 가을이 오기 사흘 전쯤
안도현 - 나와 잠자리의 갈등1
안도현 - 성묘
안도현 - 찬밥
안영준 - 가을날의 애상
안영준 - 그댄 가을 멋쟁이
안종환 – 가을, 단풍 그리고 낙엽
안태봉 - 추색광휘(秋色光輝)
양광모 - 내가 나를 업고
양병호 – 가을로 가는 길
양주동 – 가을
양채영 - 가을 잡념(雜念)
양현근 - 이 가을에
양현주 – 가을풍경
엄원용 - 만추(晩秋)
염경희 - 가을
염규식 - 가을 산책
염규식 - 만추(晩秋)를 기다리며
염인덕 - 가을 사랑
오광수 - 가을의 러브레터
오광수 - 한걸음 오시는 가을
오규원 - 가을이 왔다
오길원 - 가을 2020
오남일 – 가을 단상
오보영 - 가을 들꽃
오보영 – 가을 마중
오보영 - 가을 사랑
오보영 – 가을 소식
오보영 – 가을의 기도
오보영 – 가을 햇살
오보영 – 알밤의 가을
오보영 - 잠자리의 가을 축제
오세영 – 가을에
오순남 – 가을 아침
오순남 – 가을이 오면
오순화 – 가을
오순화 – 가을 그리움
오승한 - 만추의 애증
오승희 - 가을 녘
오애숙 - 가을 그리움
오애숙 - 가을 길섶에서
오애숙 - 가을날의 소야곡
오애숙 - 가을날의 애상
오애숙 - 가을날의 연가
오애숙 - 가을 단상
오애숙 - 가을 들녘에서
오애숙 – 가을 속에 축복하고픈 그대
오애숙 - 가을 여는 이 아침
오애숙 – 가을 연가(그리움)
오애숙 – 아, 이 가을에
오애숙 - 어느 가을날의 단상
오애숙 - 이 가을 그대 오시려거든
오애숙 – 이 가을 그대 정령 (웬수가 된 술)
오애숙 – 이 가을에
오애숙 - 장엄한 가을 소나타 앞에
오애숙 - 추풍낙엽 사이로
오정방 - 가을맞이 - Gabriel Park에서
오정방 – 가을 사랑
오정방 - 가을 소리
오정방 – 가을은 흐르고
오태인 – 가을꽃
옥윤정 - 가을
용혜원 - 가을 결혼식
용혜원 - 가을 기차
용혜원 -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용혜원 - 가을 노을
용혜원 - 가을 단상
용혜원 - 가을 도시
용혜원 - 가을 들녘
용혜원 - 가을 사랑
용혜원 - 가을 여행
용혜원 - 가을 이야기
용혜원 - 가을 하루
용혜원 - 가을에
용혜원 - 가을을 파는 꽃집
용혜원 - 가을이 가네
용혜원 - 가을이 고독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용혜원 - 가을이 물들어 오면
용혜원 - 가을이 오면
용혜원 - 가을이 왔다 우리 사랑을 하자
용혜원 - 갈대
용혜원 - 갈대
용혜원 - 갈대
가을 동화
안경애
연둣빛 여린 잎사귀
알록달록 색동옷 입고
빨갛게 물드는 마음 하나
단풍 같은 추억을 더듬다
꽃잎이 스러지던 가을 발자국
계절의 책갈피를 넘기듯
낙엽 비 쌓인 들길로
새파랗게 쏟아지는 눈물방울
추억에 젖다
단청으로 채색되어 가는 그 기억
사랑한 후
꽃같이 피고, 피고
또 피어
붉으레 홍조 띤 묵상의 언어
당신은
이미 내 속에 있네요.
가을을 선물로 드릴게요
안경애
그대에게
가을을 선물로 드릴게요.
선물 속엔 연초록 바람도 담고
꽃그늘의 작은 벌레 소리도 담고
또 그리움은
덤으로 드릴게요.
그대에게
가을을 선물로 드릴게요.
선물 속엔 하늘 흰 구름도 담고
쑥덕쑥덕 새소리도 담고
또 사랑은
덤으로 드릴게요.
갈바람에 물어 온
곱게 분장한 코스모스 향기는
햇빛 같은,
그대의 화답인 듯 오늘은
하루 기분 좋은 날입니다
어느 가을날
안경애
밤이면 고요히
눈에 익은
별처럼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가슴이 쿵쿵거리듯
나뭇잎들도
노랗게 빨갛게 푸르게
피고 지고 하지만
들국화 향 가득한 밤
오도카니 고개 떨어뜨린 채
당신 따라 나
더욱더 깊은 그리움으로 아파야 한다니.
이슬에 젖어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던 낙엽 비 꽃 세례
이 순간도 습관처럼
먼 추억 속
언제나 그 자리에
슬픔의 모습으로 온통 뒤덮고 있어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
벅차기만 한
슬픔인 동시에 기쁨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느 가을의 당신께
안경애
아스라이 저무는 노을 속에
몇 년 전
그 가을날의 향기 매달면
그대와
뜨거웠던 사랑
하나씩 부르고
심쿵한*
그대를 달아매고
마냥 좋기만 했던 곳으로 가는지
손을 잡고
오래도록 달콤한
마음 하나, 사랑 하나 인체
여기저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대 얼굴 따라
모여든
추억이, 그리움이, 사랑이
활짝 핀 꽃이 되어 이쁘다는
참
질리지도 않는
시나브로 꽃, 바람
어쩌면
가을이 가져다준 선물일 거야
나에게로 당신에게로
* 심쿵한 : 심장이 쿵쿵한
가을
안광수
느끼고 맡고 싶은
그 마음 가슴에
담아 놓을게요
풍성함에 물든
그대 마음처럼
입술에 바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정취를
가슴에 심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습니다
넓고 깊은 마음으로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보며 살고 싶습니다
가을 닮는 그리움
안광수
하얀 그리움으로 춤추는 너의 모습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 닮은 내 모습
서로를 위로하는 가을
가을로 가는 꽃길은
향긋한 향기로 가슴으로
숨어드는 간절한 그리움
피는 꽃으로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가을을 닮는 그대 모습처럼
흠집 하나 없는 투명한
유리알같이 영혼을 주는
가을의 속삭임은 사랑으로
물듭니다
물들고 물들어서 무지갯빛으로
자라나는 그리움은 간절한
소망으로 변해가는 나의 사랑입니다
가을빛
안국훈
하늘 높아질수록
낮 길이 점차 짧아지는 가을
하루 다르게 드높아지는 푸르른 하늘빛
눈부시도록 찬란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욕심에 빠져 살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연에서 배우며
옳고 틀림을 구분하기보다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산다
굶어 죽을지 일하다가 죽을지
스스로 선택할 문제지만
가을 지나기 전에
무엇인가 남겨놓고 떠나야지
주변은 평온한데
마음은 점차 심란해지고
그리움은 산더미처럼 쌓아가는데
왜 하늘빛은 저토록 맑은 걸까
가을하늘을 보면
안국훈
푸르른 산들바람
바람도 유리창 깰까 봐
사뿐사뿐 발걸음 걷노라니
어느새 푸른 가슴엔 그리움뿐이다
해맑은 가을 햇살
구름도 얼룩이 될까 봐
조심조심 뭉게구름 흘러가니
함부로 새들도 날아가지 않는구나
드높은 가을하늘
별빛도 갈증이 나는지
하늘하늘 수줍은 소녀의 순정
질서와 조화 지닌 우주 세계 꿈꾼다
목마른 꽃잎처럼
사무친 그리움
아름다운 가을하늘 속으로
낙엽 따라 떠난 뒤 아직 소식이 없다
가을 햇볕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 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가을에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안도현
괴로움으로 하여
그대는 울지마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아무도 곁에 없는 겨울
홀로 춥다고 떨지마라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세상 속으로
언젠가 한번은 가리라했던
마침내 가고야 말 길을 우리 같이 가자
모든 첫 만남은
설레임 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대의 귓볼은 빨갛게 달어오르겠지만
떠난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일이다
걸어온 길 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우리가
스스로 등불을 켜들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있어
이 겨울 한 귀퉁이를 밝히려 하겠는가
가을 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을이 오기 사흘 전쯤
안도현
가을이 오기 사흘 전쯤
바람이 어제의 바람이 아니어서
우우우우우우우
먼 산의 붉은 잇몸이 보일 듯도하다
누가 나를 범해줬으면
우우우우우우우
내 몸은 미쳐 버리기 직전이다.
나와 잠자리의 갈등
안도현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성묘
안도현
햇볕도 대추나무 끝에 좋은 날
어린 유경이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 성묘 갔지요
억새꽃 삼천리로 피어 있고요
방아깨비는 슬픔처럼 툭툭 튀어오르고요
할아버지 만나러 간다는
내 어릴 적 가을 한때 생각하면
아버지 발자국 되밟으며 가만히 듣던
그 벅찬 숨소리 생각하면
오늘 유경이도 따라오며 듣겠구나
생각하면 어느덧 나는
시냇물 데리고 바다로 가는 강물이지요
모든 길이 무덤에 이르러 깊어지지요
찬밥
안도현
가을이 되면 찬밥은 쓸쓸하다
찬밥을 먹는 사람도
쓸쓸하다
이 세상에서 나는 찬밥이었다
사랑하는 이여
낙엽이 지는 날
그대의 저녁 밥상 위에
나는
김 나는 뜨거운 국밥이 되고 싶다
가을날의 애상
안영준
시린 바람 속에 살살이 꽃
꺾일 듯 꺾이지 않으려
뼈마디에 힘을 다하는구나
달리는 하얀 구름 속에
어렴풋이 남아 그려지는
씁쓸한 잔영만 보일 듯 말 듯
후회스러운 이별 뒤에
그리워 외쳐보는 슬픈 연가
그 뒤 남은 건 추억의 애상
영화같이 애절하던 사랑은
아스라이 사라져가고
각본에 없는
주인공만 홀로 쓸쓸히 남았네
그댄 가을 멋쟁이
안영준
꿈틀꿈틀하면서
얼룩무늬 더 화려하게
치장을 여러 번
낮 밤 가리지 않고 변신한다
가는 계절
오죽이나 아쉬우면
멋 부리며 새 단장하고
그 자태 자랑하려 할까나
그대 사랑이 짧다고
서러워 마라
얼마쯤 있다 보면
또 만날 인연 되어 보자꾸나
산들바람과
서리꽃과 함께하며
벌거벗을 몸
나중 흔적 없는 아픔인 것을
시월의 마지막 밤
까마귀 울음 토하니
낙엽 하나 툭 떨어지고
쓸쓸함이 덩그러니 걸렸구나
가을, 단풍 그리고 낙엽
안종환
언젠가부터
차츰 차츰
차가워진 당신
그 매몰찬 냉담
서리가시 되어
가슴에 박혔어도
당신을 향한 이 열병
감출 수 없어 붉게 타네요
내 젊음의 혈기 말라
푸르렀던 웃음 내려놓고
발가벗은 몸이 된다 해도
멈출 수 없는 이 그리움
가랑잎 혼 되어
그대 가슴에 묻히겠어요
추색광휘(秋色光輝)
안태봉
사찰같이 침묵한 방구석
이미 불은 꺼지고
귀뚜라미 소리
더 깊어져 갈 때
질풍같이 들어온 가을바람
산과 뜰에서 풀빛은 현실과 멀어져가고
나무이파리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채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 줄기 달빛
피아노 음반을 타고
나에게까지
박혔지 뭐냐
어디로 가나 풍요로운 세상
일시에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
일제히 대숲으로 숨어들었다
새벽이 되자
푸른 기운이 도는 가운데
단풍은 더 곱게 곱게 피었다
서리는 흰 눈 온 것처럼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가도
햇살 한 조금에 녹아난다
가을볕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힘들게 살아간다
내가 나를 업고
양광모
나 또한
허공에 선 채 흔들리던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안다.
빛을 등지고
어둠을 헤쳐야 할 때
앞장서 이끌던 것은
언제나 너였나니
짓밟혀도 짓밟혀도
가장 먼저 땅에
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오히려 너였나니
선 그림자,
누운 그림자
일으켜 등에 업는다.
생이란
내가 나를 업고
내가 나를 안고
끝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란 것을 안다.
가을로 가는 길
양병호
가을로 가는 길 송장 메뚜기 앞장서 이슬을 먹다가
부음(訃音)처럼 예고 없이 지는 잎사귀와 이윽고 만납니다
모두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세상은 병풍 섭니다만
칼끝으로 버려 드는 바람에 속수무책 나부껴주다가
노을로 피어나는 먼지 속에서 자욱히 참회 중입니다
아! 하루가 전 생애처럼 무거웠습니다 가을로 가는 길 내내
가을
양주동
가 없는 빈들에 사람을 보내고
말없이 돌아서 한숨 지우는
젊으나 젊은 아낙네와 같이
가을은 애처러이 돌아옵니다
애타는 가슴을 풀 곳이 없어
옛 뜰의 나무들 더위잡고서
차디찬 달 아래 목놓아 울 때에
나뭇잎은 누런 옷 입고 조상합니다
드높은 하늘에 구름은 개어
간 님의 해맑은 눈자위 같으나
수확이 끝난 거칠은 들에는
옛 님의 자취 아득도 합니다
머나먼 생각에 꿈 못 이루는
밤은 깊어서 밤은 깊어서
창 밑에 귀뚜라미 섧이 웁니다
가을의 아낙네여, 외로운 이여
가을 잡념(雜念)
양채영
1
마지막
말매미가 울고 있다.
고추잠자리를 데리고
심방 온 여집사(女執事)의
흰 테 안경 너머
흔들리는 바람이 보인다.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마른 구름 하나
시편(詩篇)에서 보았던가.
2
검사장(檢事長)님 댁 뜰에
단풍잎이 물들고 있다.
바다 쪽 난간에
연습 비행기의 폭음소리가
이 산읍(山邑)의 가을을
흔들어놓고 있다.
잠깐
아픈 타관(他關)의 하늘이
엿보여
낯 붉히는 동안
더운 여름에 보이던
풀벌레 이름들 몇이
보이질 않는다.
이 가을에
양현근
이 가을에는 젖은 음표들을 말려야지
지난여름 욕망의 이깔나무 숲을 건너오는 동안
무심코 자라난 귀를 맑게 씻어야지
노역의 상처들을 말리는 동안
아다지오의 여백 속은 참 넉넉하리라
때때로 쉼표를 찍어가며
촉촉한 노래들을 오랫동안 흥얼대리라
지상의 세간들이 따로 노래가 될 수 있다면
산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 것인가
물빛만 출렁이는
내 발자국 길어 올리는 이 없어도
이 가을에는 당당하게 웃어야지
깊은 뿌리내림으로 당당하게 일어서야지
곱지는 않아도 넉넉한 음색으로
내게 주어진 것들을
흔들림 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열꽃의 아열대
아, 그 아득함을 건널 수 있다면
이 가을에
가을풍경
양현주
집 밖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새댁으로 불리다가
아무개 엄마로 불리다가
마흔 넘어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아무도 불러주지 안았던
내 이름을 동네방네 부르는 그녀는 누굴까
창밖을 보았다
연분홍 원피스 입은 그녀가 길거리에 서 있다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한다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출렁거려
서로 바라만 보다, 무안하게 배시시 웃다가
하얀 박동이
뛴다
훤하게 웃고 있는 그녀
소시 적 코흘리개 친구처럼 정겹다
바람이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탱고 춤추는 가냘픈,
그녀의 직업은 가을댄서다
벼 익어가는 마을
큰 간판을 붙여놓고 호객 행위를 한다
내 이름이 코스모스라는 걸 그녀는 어떻게 알았을까
만추(晩秋)
엄원용
춘천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북한산 밑을 지났다.
산의 계곡 아래쪽으로는
단풍이 다투어 제 몸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등성이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나뭇잎들은
이미 제 빛깔을 잃고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뭇잎들은 여름날의 찬란했던 그 빛깔들을
가볍게 내려놓고 아주 홀가분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작별이었다.
한때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붉고 푸르던 빛깔들이
차츰 그 빛을 잃어 다해 갈 때쯤이면
우리도 떠나야 하는 단풍이겠거니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이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지나는 북한산 길
노을이 지는 나무 사이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을
염경희
올가을엔 느껴본다
눈으로 안아주고
마음으로 보듬는 가을이다
가을이 손을 내밀면
그 손 덥석 잡고 노래를 불렀지
햇살 그득한 한낮에
세상만사 부러울 게 없는 시간이다
핸드폰에서 울려 퍼지는 가을 노래에
바스락거리며 가을은 익어가고
나도 익어간다
출렁이는 황금물결은
제 몫을 다한 듯
주인장의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몸은 몸대로 거름으로 남겨지고
나락은 나락대로 커다란 주머니에 채워진다
아마도 풍년인가 보다
심술쟁이 뭉게구름은 멈칫거리며
숨겨 두었던 햇살을
웃음 짓게 하는 어느 가을날
환한 미소 담아 가을 노래 불러본다.
가을 산책
염규식
하늘은 푸르고 철길 사이 코스모스
하늘거린 속삭임에 해님의 미소
오늘보다 내일의 풍성함을 기대하면서
부는 솔바람 사이 옷깃마저
살며시 고개 숙이는구나
수줍은 고운 바람 따스한 햇살도
하늘길 코스모스 사이사이
속삭이는 구름들
나는 어느새 분홍색 꽃잎 되어
은근한 바람이 주는 프러포즈에
볼을 붉히고 만다.
태양의 손길 애무에 황홀해지고
가을은 무언의 멜로디에 춤을 추지만
한 잎씩 떨어지는 이별의 아픔도 모른다.
만추(晩秋)를 기다리며
염규식
짙은 가을이 다가오면
메마른 낙엽 한 잎 두 잎 떨어져
쌓인 거리를 차가운 달빛 밟으며
말없이 한 걸음 두 걸음 걷고 싶습니다.
떠나간 사람 그리워하며
우리 함께 하던 벤치에는
샛노란 은행잎만 쌓여 있겠지요.
붉은 옷 입은 느티나무의 수줍음 속에
재잘대며 밝게 웃는
그대의 향기가 그리운 시간
지금 내게 아련한 그리움은
가을을 기다리는 아련한 갈색 추억
그리고 당신의 환한 미소뿐
그러나 지금은 녹음 우거진
한여름의 매미의 합창
가을 사랑
염인덕
머리 위에 붉게 타올라
한들한들 춤을 추니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마음도 붉은빛
사랑도 빨갛게 타오르니
발걸음 흥겨워라
오솔길에 파란 하늘
샛노란 은행잎이
동화의 한 장면처럼 어우러져
가는 곳마다 온몸을 불살라
그리움 한 조각 남겨 놓고
가슴속에도 곱게 물들여 본다.
가을의 러브레터
오광수
연분홍 편지지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고운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여름의 꽃밭에서
까만 분꽃 씨를 받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타는 가슴이지만
연분홍 꽃을 피운 분꽃이랍니다
한걸음 오시는 가을
오광수
흰 모시 구름옷에 은박 입힌 다홍치마
한 걸음 내디디면 바스락 소리 곱고
꿈꾸듯 다가오실 이, 맵시마저 고와라
가을이 왔다
오규원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고 담장을 넘어
현관 앞까지 가을이 왔다.
비비추를 지나 돌단풍을 지나
거실 앞 타일 바닥 위까지 가을이 왔다.
우리 집 강아지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사이로 왔다.
창 앞까지 왔다.
매미 소리와 매미 소리 사이로
돌과 돌 사이로 왔다.
우편함에서 한동안 머물다가 왔다.
친구의 엽서 속에 들어 있다가
내 손바닥 위에까지 가을이 왔다.
가을 2020
오길원
창파에 배 띄워
푸른 하늘 깊숙이 노 저어 가노라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
예쁜 색동 옷 입고 반기련만
코로나19로
자꾸만 거리를 두고 다니라니
높아진 하늘 사이로
마음은 나 홀로 멀어져 간다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일상을 멈추게 하여 만나지 못하니
하늘도 고통스러워 웃음을 잃은
천고마비(天苦痲痺)라
마스크로 하늘을 가려
끝내 빛을 보지 못한 2020의 가을이
어둠의 공포에 맥 못 추고
잊혀진 세월의 바다에 빠졌다
가을 단상
오남일
여윈 햇살이 가슴에 안겨서
그대를 사랑하려 합니다
가슴에 두고 두고 간직할 것이 있다면
오직 한 사람, 그대였으면 좋겠습니다
먼 산에 걸린 노을로 짙어지는 하늘.
찬 바람에 마음도 시리고,
아무 이유 없이 울컥하며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가을 들꽃
오보영
1
어서 오세요
당신 많이 기다렸어요
밤새
이슬 머금고 피워낸 꽃망울
당신 오면 제일 먼저 보여드리려고
아침부터
당신 오길 애타게 기다렸어요
이젠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당신 볼 날도
어느새 불어온 찬 바람이
자꾸만 재촉을 하네요
사랑하는 당신
더 많이
더 오래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데
2
평소
눈에 잘 띄지 않던
네가
먼 데서도 금방
눈에 확 들어오고
전엔
별 볼 폼 없어 보이던
네 모습이 유난히
곱게 보이는 건
아무래도
가을 이어서라
딱이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괜히
마음이 허전해지고
쓸쓸해지는
가을 분위기 덕이라
가을 마중
오보영
-메밀 잠자리-
님이 오신답니다
내 님이
멀리 갔던 내 님이 돌아옵니다
그리던 님 앞서서
맞이하려고
더 높이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맺혀있던 땀방울
닦아주려고
온 힘 다해 날개 짓 펼쳐봅니다
커진 마음 내 님을
반겨주고 싶어서
모아뒀던 내 마음
전해주고 싶어서
푸른 창공 드높이
날아갑니다
가을 사랑
오보영
뚜렷이
서두를 이유가 없는 내가
늦더위
네 뒤를 바싹 쫓는 건
네가 미워서도
널 앞서가려는
욕심에서도 아니란다
단지
애타게 기다리는
님을 생각해
서두르라 재촉하는 주위 성화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네 자리를 엿보는 거란다
따가운 햇볕 쪼여 늦장부리는
네 모습이 조금은 안됐다만은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전혀 없구나
가을 소식
오보영
여름 볕이 여전히 따갑게 쪼이는데
무얼 그리 서둘러 피어났냐고
코스모스 면전에다 핀잔주고는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져 갔네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결에도
순간 선선한 기운 느끼며
때맞추어 할 일 하는 코스모스에
진정으로 고개 숙여 사과를 했네
가을의 기도
오보영
이 가을엔
푸근함을 더해 주소서
지는 낙엽 바라보며 서글퍼하는
외로운 이 찾아가
달래주게 하소서
이 가을엔
따뜻함을 더해 주소서
흩어지는 바람결에 몸 시려하는
가녀린 이 찾아가
안아주게 하소서
이 가을엔
정겨움을 더해 주소서
멀어진 하늘 보고 눈시울 적시는
그리운 이 찾아가
마음 주게 하소서
가을 햇살
오보영
1
기다리는 님 곁으로
다가설 수 있고
반겨 맞는 님에게
기쁨 줄 수 있으니
내게 주어진
귀한
축복이어라
내가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이어라
2
화사한 볕으로
환하게
그늘 속에 가려져있는 널
비추어주련다
따사한 온기로
따뜻이
찬 기운에 움츠러든 널
보듬어주련다
넉넉한 품으로
포근히
떠나보낸 맘 허전해하는 널
감싸 안아주련다
알밤의 가을
오보영
영글어진 몸으로
님 맞이하려고
단단하게 차오른 몸
님 보여주려고
긴 여름
더위 장마
견디어내더니
님 향한 깊은 사랑
일궈냈구나
간절하던 소망을
이루었구나
잠자리의 가을 축제
오보영
이 얼마나 좋은가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날고 싶은 만큼
맘껏
날아갈 수 있고
쉬고 싶은 만큼
싫컷
쉬어갈 수 있으니
드높은 파-란 하늘 아래서
드넓은 누런 들판 위에서
한껏
이 풍성한 가을을
가득
품어 안을 수 있으니
가을에
오세영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 나
함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여름이라 한다
부벼대는 살과 살 그리고 입술
무성한 잎들이 그러하듯...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
각각 홀로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
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을 아침
오순남
아침 발길에
스치는 낙엽 소리
햇살도 듣기 좋은 듯
툭 툭 건드려 본다
찬바람 속으로
가을 향은
빨려들어만 가고
한 계단
한 계단 떨어진
단풍잎들은 아쉬워
가을 나무를 그리워하겠지
걸어가다 보니
노란 국화가
수줍게 입술을 오므린 채
입맞춤하자는데
갈 길을 잊은 채
가을 앞에 서성이는
여인이 아름답다
가을이 오면
오순남
코스모스꽃 바람에
한들거리며 날 부를때
구름처럼 사뿐히
그대 마중 나가리
하얀 들국화
가을 햇살 머금고
그 향기 짙어 유혹하던 날
꽃잎에 살포시 입맞춤하리
파란 하늘 빛 아래
흥겨운 휘파람 소리
잠자리 날개 위에 얹고
가을 바람 불면
그리움의 언덕을
훨훨 날아오르리
가을이 오면
그대 머무는 곳마다
아름다운 추억의 빛으로
곱게 물들이리
가을
오순화
가녀린 아카시 단풍잎 털어내는
바람이
당신의 목소리였다는 것을
오월의 신부보다 더
화사한 꼬까신 신고
저 산을 스르르 내려가던 발걸음이
당신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가을은
그리워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입니다
더운 가슴
남은 정열을 다해 사랑하다
가을 속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은
아무도 모르는 나의 비밀
꽃이 지네
잎이 지네
가을 그리움
오순화
숲속 아침
햇살이 쓸어내리는 몸짓에
물드는 가을빛
누구의 사랑이었을까
황홀한 떨림
바람이었나
낙엽이 할 일 없이
길 위에 쓰는 가을사랑
주머니 속에는 도둑처럼 찾아든 가을
내 마음을 훔치고 있다
그리운 사람
그리운 얼굴
그리운 사랑
만추의 애증
오승한
노을처럼 물든 잎새가
그토록 아름다운가
심장을 적시고 스며 나온
세월의 눈물인 것을 아는가
진하게 물든 잎새
떨어져 날리는 사연은
낙엽이 아닌,
세월이라는 걸 아는가
바람에 끌려가는
낙엽의 소리를 들으며
말라가는 인생과 사랑,
세월의 고독을 보았는가
잎새를 떠나보낸
앙상한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복받쳐 터지는 세월의 한숨이
정녕 아름답게 들리는가
가을 녘
오승희
넌 그냥 푸르기만 하여라
내내 푸르른 젊음이
시리도록 아름다워 빠져들 수 있도록
갈바람에 스치는 멍하나 쯤이야
쉬이 품어 주리니
온몸이 퍼렇도록 푸르게 적셔라
넌 그냥 붉기만 하여라
수줍은 미소에 낯붉히며
훨훨 달아올라 불바다를 이룰 수 있도록
가슴을 태우는 일쯤이야
혼자 안고 갈 터인즉
알몸이 될 때까지 붉게 물들여라
푸른 듯, 붉은 듯
황금빛 물결 가름할 때면
그림자 하나 그어놓은 노적가리가
가을을 이고진체 헐떡이겠지
이렇듯 부산한 가을 녘에
달빛소나타를 그려주는
행복한 전령사로
넌 그렇게 가을을 노래해다오
그리운 이름인 체로
가을 그리움
오애숙
향그러움 곱게 스미는 밤
이 밤 잔별 초롱초롱 이는
별빛 속에 일렁이는 심연
어린 날의 무채색 그 추억
포근히 내게 입 맞추고 있어
이 가을 속에 휘날리는 맘
그 어린 시절 철둑 길 거닐 때
곱게 피어 하늘하늘 휘날리며
웃음꽃 내미는 코스모스 곁에
하늬바람 살랑 사~알랑일며
꽃잎 사이사이 살갗 스치어
쪽빛 하늘 속에 노래 불렀지
그 노랫소리에 연서 쓰려고
첫사랑의 향그러움에 노니는
빨간고추잠자리의 그 향연
그 시절 방해꾼 되어 낚아채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어린 향수
밤하늘 별빛 속에 오롯이 핀다
가을 길섶에서
오애숙
황홀함 살랑이는
초가을의 길섶이다
청잣빛 하늘 속에
자연이 주는 청명함
꿈결처럼 속삭이고
금빛 태양광 속에
여울지는 산야의 풍광
맘 설레게 하더니
해 질 녘 석양 속에
호수가 술에 취한 듯이
홍 빛에 비틀거린다
아- 이 가을 길섶
황홀함에 입 맞춘다
가을날의 소야곡
오애숙
누굴 그리 애타게 찾고 있나
하늘은 쪽빛으로 물들어 가는데
호수 길섶에 자리 잡고 사르륵
새악시 발그레한 수줍은 얼굴로
숨겨진 홍빛 마음 붓 들어서
물결치는 사랑의 향그럼 채색하나
한여름 밤의 불타던 그 사랑
저만치 달그림자로 사위어 갔는데
가을날의 애상
오애숙
아직 내 가슴에 붉은 단풍잎 하나가
심연에 스며 홍조를 띠고 있는데도
아쉬워하고 있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해 질 녘 해걸음 뒤 서성이는 맘속에
그림자 일렁이고 있는 그대의 진실
나에게 미소 짓기에 그리운 날 이누나
온 산야 울긋불긋 오곡백화 여물 때
세월 속 나도 곱게 익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푸성귀처럼 풋내 풀풀 나누나
앞마당 단풍잎은 가을 햇살 머금고
화알짝 웃음 짓고 내게 손짓하건만
아직도 쥐구멍만을 찾고 있는 자련가
이 가을
못내 아쉬워
가슴 저려 오누나
가을날의 연가
오애숙
가을날
팔색조로
맘속에 살랑이어
그리움
휘날리는
그대는 누구련가
만추의
홍빛 사이로
물든 사랑이어라
가을 단상
오애숙
농부의 구릿빛 땀방울
송글송글 맺혀있는 모습
내 진정 맘속에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 가을걷이
이룬 것 하나 없다 싶어
해 질 녘 풀벌레 소리에
소스라친 심연 쥐구멍만
찾는 이 현실의 비참함
새삼스레 화살 같은 세월
아쉬운 심연의 물결 속에
온 누리 금빛의 가을 영상
화알짝 펼치어 보노라니
가을 서정 가슴 속으로
넘실넘실 물결 쳐 오나
구릿빛 수고 고개 숙여
감사함 날개 펼쳐보며
이 가을 탐스러운 열매
한 아름 가슴에 안는다면
바랄 게 없어 계수하고자
진실의 날개 펼치는 맘
고통의 풀벌레 소리가
기쁨의 하모니로 바뀌어
감사의 꽃 향그럼 속에서
마음껏 취하고 싶습니다
가을 들녘에서
오애숙
이 시간 내 맘속에
여백의 한 모퉁이
허물어 보는 시간
색색이 물들이던
잡다한 것 하나를
갈 들판 행궈 낼 때
목울음
사라져가고
여백의 미 스민다
가을 속에 축복하고픈 그대
오애숙
낙엽 태우는 향긋함
하늬바람 불어올 때면
코끝에 스미며 가을 속에
그리움의 향그롬 피어납니다
이른 아침 지지배배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 깨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서야
모처럼 커피 한 잔 음미합니다
오랫동안 건강 위해
뒤 편에 두었던 모카커피
왠지 오늘은 그 향에 취하고파
이삼십 대 먹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모카향
그 향기 속에 어리는 얼굴들
예닐곱 어린 시절 풋풋한 그리움
커피잔 속에 떠 오르며 일렁입니다
내 삶의 획을 그었던 그 애
오늘따라 가슴에서 뭉클하게
살랑이며 피어나는 감사의 노래에
고옵게 물든 단풍잎으로 연서 띄웁니다
허나 생사 몰라 옛 그림자 보며
백세시대 살아가도 만날 수 없기에
그 시절의 변치 않는 풋풋함 되새기는 맘
가을 여는 이 아침
오애숙
에메랄드빛 붓으로
작열한 붉은 하늘에
물감 풀어 채색했나
푸르름이 말갛게
물결치는 구월의 문
활짝 연 아침이다
허나 들리는 소식
여기저기 재난으로
숨통 조이어 온다
휘파람 불던 삶이
휘청이며 아우성치는
가을의 문턱이다
징크스도 아닌데
조여드는 맘속 흔들림
휘날리는 갈대인가
허나 여기저기서
구호성금 날개 친다기에
아침을 상큼하게 연다
가을 연가(그리움)
오애숙
온누리 황금물결 넘노는
갈 들판 사이 만산의 풍광
가슴에 홍엽의 아름다움
휘날리는 가을 날의 환희
앞마당에 홍빛 너울 쓰고
행복 뿌려주던 감나무와
해 쫓던 해바라기 그 미소
어느날 주관 세운 당당함
어느덧 깊어가는 늦가을
마지막 까치밥 내어 주던
풍요의 너울 사윈 맘속에
살며시 웃음짓고 있기에
그 이름 가슴에서 조용히
불러봅니다 아 가을이여
아, 이 가을에
오애숙
이 가을 청자빛 사랑
내 님의 향그럼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옵게 부메랑 되는
하늘빛 청아한 물결
내 안 가득 차고 넘친
하늘 울림의 메세지
세상이 주는 어떠한
기쁨보다도 삶 속에
담금질해 숙성시킨
주의 사랑 물결치는
맘속 메아리에 감사
내 안 가득 피어난다
하늘빛 내 님 사랑이
어느 가을날의 단상
오애숙
이토록
아려오는
심연의 이 아픔들
그 누가
이 찹찹함
알고나 있을 런지
이제야
소슬바람 결
우는 네가 보이누
이 가을 그대 오시려거든
오애숙
그대 오시려거든
열돔의 뜨거운 용광로 위에
팍 사그락진 열무의 한 푸사
만추의 풍광 속
갈바람 나부끼기 전에
가을비로 사윈 맘에 오사
붉힌 시울 가리게 하소서
그대 그리움 속에
오늘도 목메는 맘
가슴에서 시울 붉히며
단풍잎에 연서 쓰나니
그 옛날 우리만의
옛 얘길 가슴에서 꺼내어
뜨거웠던 추억의 그림자
붉디붉은 물감으로
그대의 가슴에 풀어
수채화로 온통 붉은 붓 들어
내 가슴에 채워 낙풍잎으로
그대에게 연서 쓰려 하오니
그대 오시려거든
사윈 맘 갈바람 휘날리기 전
가을비로 어서 오소서
이 가을 그대 정령 (웬수가 된 술)
오애숙
그대 정령 내 친구여
나와 함께 동거동락
기뻐하던 일 제치고
술독에서 헤어 나와
푸른 하늘 보련마는
돌이키니 술이 웬수
술 한잔만 할 거라고
늘상 그리 말한 것이
한 잔의 술 두 잔 돼
술이 술을 마셔 되니
마술이가 되었는가
분별 못해 헤롱헤롱
결국에는 간세포를
죽게 하여 간경화라
아 아불싸 망했구려
귀한 제 몸 간수 못해
망했다고 땅을 쳐도
시동 걸은 기차 됐누
그대 정령 내 친구여
그 누구가 말했는가
술이 정령 웬수라고
타인들
조언의 말씀
그대 정령 들었누
이 가을에
오애숙
이 가을에
한 편의 멋진 시를 쓰고 싶습니다
가을 닮은 한 편의 시를
불타고 있는 산의 풍광처럼
내 마음이 붉은 단풍잎이고 싶습니다
예닐곱 순정 어린 마음으로
알알이 익어가는 가을 들판 보며
감사의 기도 드리는 밀레처럼 기도합니다
알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이 가을에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한 편의 시로
장엄한 가을 소나타 앞에
오애숙
가을 길섶에 들어서면
설렘의 물결 피아노시모
갈바람속에 나뭇잎의 합창
포르테로 이끌고 가다가
사랑의 노랠 부를 때
들판의 오곡백화
만발하게 휘날린 화음
장엄한 대자연의 합창속
오케스트라로 피는 메드리
아 감격할 그 하모니
소슬바람 시나브로
휘날리며 만추의 풍광 속
후두득 후드득 추풍낙엽
서글픔 일렁이는 인생 서녘
해넘이 속 스미는 맘
낙엽이 한 잎 두 잎
강물따라 흐르는 세월
흘러 흘러 알토와 베이스에
담금질로 목울음 맘으로
삼키고 있는 심연
아 야속한 세월이여
풀 벌레 처량하게 우는 밤
그대가 오늘 따라 그리웁게
가슴에 일렁이고 있기에
그대에게 바라는 맘
또다시
내게로 와서
화사하게 피구려
추풍 낙엽 사이로
오애숙
휘날리다 나뒹구는
만추의 거리마다
추억 물결치고 있다
하늬바람 속에선
휘파람 불더니만
갈바람 엔 다르네
계절은 잎이 나올 때
나목 통해 소망의 꽃
선사 하고 있으나
단풍의 화사한 거리
젊은날 교정의 추억에
살며시 윙크하는 맘
서녘의 해걸음 뒤로
아쉬움이 추풍 낙엽에
서걱이는 것은 뭔지
그저 만추의 거리
가을비에 사라져 가는
찬란했던 젊음인가
젊은 날의 아쉬움
심연에 추억의 그 거리
모락모락 피어난다
가을맞이 - Gabriel Park에서
오정방
그냥 집안에만 앉아 있기에는
가을 햇살이 너무나 풍성하고 아름답다
절기로는 가을이 드는 추분, 주말이다
차를 몰아 가까운 큰 공원에 이르러
부부가 손을 잡고
잔디밭을 거닐다가
벤치에도 앉았다가
나무 그늘 아래로 옮겨 쉬기도 하며
때에 맞는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수목들
벌써 가을옷으로 서서히 갈아입고
지난여름 땡볕을 굳건히 이겼듯이
다가올 한 겨울 모진 추위를 이겨내려고
스스로 살아남을 채비도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내외도 이제
인생의 한가을에 다다라
지나간 44년을 잠시 되돌아보며
가을걷이를 속으로 셈해 보기도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였음을…
가을 사랑
오정방
봄철에 심은 사랑
여름에 영글어서
마침내 가을철에
거두니 기뻤도다
사랑은
꿈에서라도
결코 후회 않는 것
가을 소리
오정방
가을철 깊은 밤에
귀익은 벌레 소리
지난해 이맘때에
밤새워 듣던 소리
풀벌레,
너희들로 하여
가을임을 아노라
가을은 흐르고
오정방
강물이 흐르듯이
가을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가을을 따라
인생도 흐르고 있다
가을꽃
오태인
뜨거운 사랑도
죄가 되는 이 땅
교단의 바깥에서
서러워라
다가설 수 없는 거리
들국화 구절초는
저리도 예쁘게 피어
먼발치에서나
그리운 이름들
하나씩 불러 보면
그만 꽃은 지고
꽃은 지고
가을
옥윤정
나를 부르는 소리에
살포시 마중을 나간다
붉은 마음 살짝이 건넬 때
그 깊이만큼이나 깊어지는 그대 마음
고개 숙여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그리울 만큼이나
떠나보내야 하는
그대 마음 헤아려
잊지 못하는 내 마음은
그대를 위해 색색으로 치장하여
맞이하면서
기약 없는 약속을 무언으로 하는 그대
지난밤 뜬눈으로 보내 버린 새벽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그리움에 힘겨워 놓아버린
또 그렇게 기약 없이
가버리고 마는구나
가을 결혼식
용혜원
가을에는
하늘의 축복 속에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들의 축제와 함께
갈색으로 물드는 단풍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어느 누가 이 가을 나뭇잎들처럼
아름답게 단풍이 들 수 있을까
이 가을에 사랑하는 사람들
이 가을에 결혼하는 사람들
가을 결혼식의 사랑의 빛깔은 아름답다
갈색의 나뭇잎들이
떠남을 노래하는 계절에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만남을 노래하며 결혼하는 사람들
가을의 신랑 신부는 행복하다
이 가을 결혼식에
축복이 가득하다
이 가을
우리도 사랑을 하자
가을 기차
용혜원
가을 들녘에
곡식들이 익어 갈 때면
내 사랑도 익어가고 싶은데
나만 홀로
가을 기차를 타고 어디로 가나
고독을 찾아 떠난다
고독의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다.
가을 길을 걷고 싶습니다
용혜원
손톱 끝에 봉선화물이 남아 있을 때
가을은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
이 가을 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만 싶습니다
낙엽을 밟으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을엔 시가 더 많이 써집니다
갈색빛으로 물든 낙엽 하나하나가
시 한 편입니다
높고 푸르기만 한 하늘이
시 한 편입니다
고독해 보이는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가
시 한 편입니다
이 가을 길을 그대와 함께
걷고 싶습니다
찬 바람이 불어도
손을 꼭 잡고 걸으면
어느 사이에 우리들 마음도
갈색빛으로 곱게 물들어
한 편의 시가 됩니다
가을 노을
용혜원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붉게 물든
가을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사랑도 저만큼은
열렬해야 해
소리쳐 본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끝까지 욕망을 다 분출하는
그 열정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사랑하는 이 마음껏
껴안고 싶어
온몸에 열꽃이 핀다
가을 저녁노을이
너무나 아름답다
갈대들의 아쉬운 몸부림 속에
마음껏 타오를 수 있음이
아름답다
숨질 때까지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는
저녁노을이 되고 싶다
가을 단상
용혜원
단 하나의 낙엽이 떨어질 때부터
가을은 시작하는 것
우리들 가슴은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거리로 나서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낙엽과 함께 날리며 갑니다.
사랑은 계절의 한 모퉁이
공원 벤치에서 떨리는 속삭임을 하고
만남은
헤어짐을 위하여 마련되듯
우리들의 젊은 언어의 식탁엔
몇 가지 논리가 열기를 발산할 것입니다.
가을이 푸른 하늘로 떠나갈 무렵
호주머니 깊이 두 손을 넣은 사내는
어느 골목을 돌며 외투 깃을 올리고
여인들은 머플러 속에 얼굴을 감추고
떠날 것입니다.
모든 아쉬움은
탐스런 열매들을 보며
잊혀져가고
초록빛들이 사라져갈 무렵
거리엔
빨간 사과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가을 도시
용혜원
열매는 동그라미속에 가득하다.
사각형으로 쌓이는 도시를 직각으로 걷는다.
시계탑 바늘이 원을 돈다.
나뭇잎이 수직으로 돌며 떨어진다.
서점에 책들이 일렬로 서 있다.
사람들이 가을 글자를 골라서 읽고 있다.
가난은 춥다.
낙엽들의 이야기가 끝났다.
다가올 겨울의 코트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가을 들녘
용혜원
기차를 타고
지나는 들녘마다
황금색 물결을 자랑하고 있었다.
열차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낯익은 시선의 감나무에
익어가는 감들이
"나 익었어요!" 하며
즐겁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가을 들녘을 달려가며
풍요로움에 행복해졌다.
가을 사랑
용혜원
짙은 고독의
빛깔로 물들은
가을 하늘
황홀할 것만 같았던
여름날 풀잎들의 노래도
순간이었나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들
그 속을 살아가는
너와 나
붉게 물들은 가을 산처럼
홀~활 타오르는 사랑을 하자
너의 가슴과
나의 가슴을 덮고 남을
사랑을 하자
모든 화려함이 마지막 빛으로
장식하는 이 가을에
우리 숨 막히도록 좋은
그런 사랑을 하자
때론 흐르는 시간이
너무나 안타깝다
내 사랑아
내게 오라
너를 꼭 안고 싶다
가을 여행
용혜원
가을 속으로
가을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의 손짓을
따라 갔습니다.
찬란했던
여름을 잊고자
마지막 잎새 하나까지
떠나가는 계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이 땅에서
고별의 시간이 올 때까지
우리들의 사랑 노래를
우리들의 색깔로
부르고 싶습니다.
가을 이야기
용혜원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숲길을 지나 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
우리들이 미처 나누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마음껏 탄성을 지르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하는
설레임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들 속에.
꿈과 같은
사랑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호반에는
가을을 떠나보내는 진혼곡이 울리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가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잔의 커피와 같은
삶의 이야기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가을 하루
용혜원
하루가 창을 열었습니다
막 필름을 갈아 낀 사진기자의 눈동자처럼
초점을 맞추며 거리를 나섭니다
시인의 노래보다 더 푸른 하늘에
빨간 점 하나 찍으며 날아온 고추잠자리
가지 끝에 달려 있는 나뭇잎에
외마디처럼 남아 있던 가을이 바람에 날립니다
오늘은 기억에 남을 몇 장의 스냅 사진 같은
일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의 표정도 진지한데
신나는 일이 없을까요
수북이 쌓인 낙엽과 함께
나의 발자국마저 쓸어 담는 청소부를 보며
마음만 외로워져 돌아왔습니다
가을에
용혜원
가을이라
하늘이 푸르고
날씨가 너무나 좋다
그리움을 풀어 놓았더니
더욱 고독해졌습니다
찬란히 꽃피운
봄날의 가득함도
떠나고
무성했던 잎들의
이야기도 하나 둘
떨어져 가는 가을
다 마셔버린
빈 잔의 고독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푸른 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햇살도 좋지만
그대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가을을 파는 꽃집
용혜원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 같은 갈대와 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가을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바람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사람들 속에서도 불어오니까요
어느 사이에
그대 가슴에도 불고 있지 않나요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가을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을을 파는 꽃집으로
다 찾아오세요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가을이 가네
용혜원
빛 고운 낙엽들이
늘어놓은 세상 푸념을
다 듣지 못했는데
발뒤꿈치를 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을이 가네
가을이 가네
내 가슴에 찾아온
고독을 잔주름
가득한 벗을 만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함께 나누려는데
가을이 가네
가을이 가네
세파에 찌든 가슴을
펴려고 여행을 막
떠나려는데
야속하게
기다려주지 않고
가을이 가네
가을이 가네
내 인생도 떠나야만
하기에 사랑에 흠뻑
빠져들고픈데
잘 다듬은
사랑이 익어가는데
가을이 가네.
가을이 고독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용혜원
우리에게 좋은 기억
생각하면 아름다운 그리움이 없으면
삶은 더 고독해질 꺼야
더 늦어지기 전에
사랑에 푹 빠져들어야 해
내 마음이 너에게로 다가가지 못할 때
더 고독해지는 거야
왜 진작 사랑을 고백하지
가을이 되서야
온몸에 열이 복받쳐
단풍이 들까
가을이 사랑을 고백하기에
좋아서일까
가을이 고독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빨리 고백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이 물들어 오면
용혜원
가을이 물들어 오면
내 사랑하는 사람아
푸르고 푸른 하늘을 보러
들판으로 가자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살며시 와 닿는 그대의 손을 잡으면
입가에 쏟아지는 하얀 웃음에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기뻐할까
가을이 물들어 오면
내 사랑하는 사람아
흘러가는 강물을 보러 강가로 가자
강변에 앉아 우리의 삶처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슴속에 진하게 밀려오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
우리의 사랑은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가 되지 않을까
가을이 오면
용혜원
가을이 오면 같이 걷고픈 사람이 있다
낙엽 지는 길을 걸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 공원 벤치에서 간간이 웃으며 속삭일 수 있고
낭만이 있는 카페에서 마주 바라보며
갈색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는
파스텔톤 색감에 젖어 들어
편안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사람 함께 머무르고 싶은
시간이 짧기만 하고 아름다운 그리움으로만 남는 이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어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이
음악처럼 흐르는 사람이 있다
서로의 가슴이 마구 설레고 심장의 고동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도
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서로를 아껴주며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오색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축복하듯이
떨어져 가는 가을 풍경 깊은 곳에서 마음껏 더 사랑하고 싶다
노란 은행잎들이 한결 운치를 더하는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서
서로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싱그럽고 달콤하게 입맞춤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가을날이면 촉촉한 그리움에 젖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낙엽이 쌓여 가는 길을 한없이 끝없이 걷고 또 걷고 싶은 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가을이 왔다 우리 사랑을 하자
용혜원
가을이 왔다
우리 사랑을 하자
모든 잎사귀들이
물드는 이 계절에
우리도 사랑이라는 물감에
물들어보자
곧 겨울이 올 텐데
우리 따뜻한 사랑을 하자
모두들 떠나고 싶다고
외치는 것은
고독하다는 증거이다
이 가을에
고독을 깨뜨리기보다
고독을 누리고
고독을 즐기고 싶다
가을이 왔다
우리 사랑을 하자
모든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들과 열매들도
거둘 때가 되었다
살아오는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 순간만큼은
마음껏 나타내 보자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모든 것들이 잊혀지는데
우리 가을이 머무는 동안에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해도 좋을
멋진 사랑을 하자 이 가을에
갈대
용혜원
나에겐 당신의 열 손가락에
붙잡힐 사랑이 없습니다
당신을 갈망하는 눈으로 쳐다보지만
나는 미친 듯이 들판을 헤매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바람에 온몸을 날리며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소리가
신음처럼 들리는 나의 고통이
그대에게 무슨 사랑의 이유가 되겠습니까
붉은 노을 속에 불 지르고 싶은 몸짓밖에
남은 것은 없습니다
갈대
용혜원
그대와 마주 설 날이 다시 온다면
사정없이 밀려오던
모든 그리움을 다 떨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홀로 서서 몸부림치며
기다린 세월이 너무나 외로웠는데
그대는 감정마저 무디어져
가벼운 목례만 남기고
떠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가슴에 묻어둔 사랑이
아름답다는 말이 옳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다
모든 걸 다 잃어버렸는데
그대가 외면한다면
기다리던 내 마음은 이 가을에
한없이 흐느낍니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더 외롭게 몸부림칩니다
갈대
용혜원
광화문 커피 전문점
세가 프레도 문 옆에
갈대가 세 묶음 꽂혀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들판에서 강변에서
가을을 자유롭게 몸 비비며
노래하고 싶어하는
갈대를 무참하게 꺾어온 사람은
갈대는 고통스러운지
손을 제대로 흔들지도 않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습니다
아마 눈요깃감으로 팔려 오거나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꺾어 왔을 갈대가
가을을 마음껏 노래하지 목하고
숨죽이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 비 내리는 가을날에
갈대도 함께 울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