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숲 ㅇ ~ ㅎ
안갑선 – 겨울나무
안도현 – 겨울나무
안도현 – 겨울 숲에서
안성길 – 겨울나무 아래
안숙자 – 겨울나무
안영준 – 겨울나무
안은주 – 겨울나무
양수창 – 겨울나무
양수창 – 겨울 숲
염규식 - 겨울나무
염인덕 – 겨울나무
오경옥 – 겨울나무
오규원 –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보영 – 겨울나무
오보영 – 겨울 부목(腐木)
오보영 – 겨울 소나무
오보영 – 겨울 숲 애환(哀歡)
오보영 – 겨울 숲의 노래
오보영 – 겨울 숲의 비애
오순남 – 겨울 꽃나무
오애숙 – 겨울나무
오정방 – 겨울나무
옥윤정 – 겨울나무
용혜원 - 겨울나무들
용혜원 – 겨울나무야
우영규 – 겨울 숲
유한나 – 겨울나무
윤보영 –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
윤순찬 – 겨울나무
윤용기 – 겨울나무
윤의섭 – 겨울나무
이국헌 – 나와 겨울나무
이기영 - 겨울나무
이대준 – 겨울나무
이도연 – 겨울나무
이도연 – 겨울 숲의 시간
이도연 – 겨울 숲의 정적 속에서
이돈권 - 겨울나무
이동백 – 겨울 숲으로 돌아오다
이둘임 – 겨울 숲
이문재 -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이문조 – 겨울나무
이민숙 – 겨울나무 앞에 서면
이복순 – 겨울나무
이상묵 - 나무들의 겨울
이상진 - 인생도 겨울나무 같아야
이옥순 – 겨울나무
이원문 – 겨울나무의 그리움
이원수 – 겨울나무
이유리 – 겨울나무
이윤학 – 겨울나무
이윤호 –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이은경 – 겨울 나목에게
이은수 – 겨울 숲
이은숙 – 겨울나무
이익준 - 겨울나무의 독백
이재무 - 겨울나무
이재무 - 겨울나무로 서서
이재무 – 겨울 숲에서
이재환 – 겨울나무
이재환 – 겨울나무야
이재환 – 새봄을 준비하는 겨울나무
이정미 – 겨울나무
이정하 - 겨울나무
이제민 – 겨울나무
이한명 – 겨울나무여
이해인 – 겨울나무
이향아 –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이현옥 – 겨울나무
이현우 – 나목(裸木)
이현호 –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임계자 - 겨울나무
임미숙 – 겨울 나목
임영조 - 겨울나무
임영준 - 겨울나무
임영준 – 겨울나무는
임재화 – 겨울나무
임재화 – 겨울 숲
임주영 – 겨울나무
임주영 – 겨울나무 거짓말
임준재 - 지구촌 겨울나무
임준재 – 지구촌 겨울나무 아래서
장미숙 – 겨울나무
장석남 – 겨울 모과나무
장석주 – 겨울나무
장인성 – 겨울나무
전서영 -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서 있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정군수 – 겨울나무
정군수 – 겨울나무는 눈을 먹고 산다
정대구 - 겨울나무의 진실
정무현 - 겨울나무의 꿈
정세일 –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정세일 - 배골이란 동네로 나무를 하러 간 날
정연복 – 겨울나무
정연복 – 겨울나무 묵상
정연복 – 겨울나무 속 꽃
정연복 – 겨울나무와 햇살
정연복 – 겨울나무의 기도
정연복 - 겨울나무의 노래
정연복 – 겨울나무의 독백
정연복 - 겨울나무의 밤 기도
정연복 – 나목(裸木)
정연복 – 나무들의 겨울나기
정윤목 – 겨울나무의 자리
정재영 – 겨울나무
정종명 – 겨울 숲
정찬열 – 겨울 나목
정한용 – 겨울나무
조병화 – 겨울나무
조수옥 – 겨울나무
조순자 – 겨울나무는
주금정 – 겨울나무
주선옥 – 겨울나무
차성우 – 겨울나무
차영섭 – 겨울이 없는 나무
차창륭 – 겨울나무
최갑연 – 겨울나무
최동일 – 겨울나무
최범영 – 겨울나무
최봄샘 – 겨울나무
최상고 – 겨울나무
최영철 – 겨울 숲
최영희 – 지금 저 겨울 숲에서는
최진연 – 겨울나무
최해춘 – 겨울나무 얼음꽃
한천희 – 겨울나무의 독백
함동진 – 겨울이 기쁜 나무
허광빈 –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허용희 – 가을 나무의 해산
허욱도 – 겨울나무
허호석 – 겨울나무
현혜숙 – 겨울나무를 보며
현혜숙 – 겨울 소나무
홍경훈 – 겨울나무
홍금자 – 겨울나무
홍문표 – 겨울나무
홍수희 – 겨울나무
홍수희 - 겨울나무 스케치
홍수희 - 겨울나무의 시
홍수희 – 겨울 숲에서
홍수희 – 겨울 숲을 아시나요
홍영철 – 겨울 숲은 따뜻하다
홍윤숙 – 겨울나무
황경숙 - 겨울 숲에서 듣다
황금찬 - 겨울나무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겨울나무
안갑선
무성한 잎
바람에 흔들릴 때
나무도 흔들렸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쁘냐
잎 떨어낸 가지
바람에 흔들리지 못하고 떨며
꺼억꺼억 울기만 할 때
얼마나 슬퍼했겠느냐
그래서
가슴에 늘어나는 건
주름지다 못해 뭉쳐진
괴로움의 아린
나이테뿐이더냐
걱정마라
동아가 움틔고 있지 않더냐
봄이 되면 새잎으로 함께 즐거워할 것을
겨울 동안
곤줄박이 동고비 어치랑 놀아주는 것이
너의 몫이로다
겨울나무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 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제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 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겨울나무 아래
안성길
무심히 일몰에 잠기던 겨울나무들
잔가지마다 저무는 햇살 무늬로 풀어질 때였지
깨어진 하반신을 석고붕대에 밀어 넣고
하룻저녁에도 몇 번씩
이승 저승 하던
당신 소식 무너지며 들었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더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지
겨울나무
절벽처럼 깊어진 그림자 아래
무릎 꿇고
겨우내
기도했지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당신 눈 떠서
강파른 내 이름 불렀지, 마른 풀냄새처럼
하르르 타오르던 손끝
뒤미쳐 쿵쿵 가슴 때리던 설움을
어금니로 다 깨물어 죽이고는
겨울나무 아래
몇 점의 잔설마저
두 무르팍으로 누르고서야
비로소 더워 오던 눈시울
더욱 뜨겁도록 풀어 놓고
오오래
기도했지.
겨울나무
안숙자
용을 쓰며 비틀어대는
마지막 잎사귀의 절규까지도
눈물샘에 헹구어낼 심성이라면
완숙한 여인의
고혹한 미소가 아니어도
농염한 자태가 아니어도 좋다
욕망도 이기도 훌훌 벗어 버리고
가릴 것
덮을 것도 없는 맨몸으로
모로 세운 칼날 위,
멍울진 꿈 말아 쥔 채
눈 뜨고 이렇게 깨어 있으니
겨울나무
안영준
1
사방에서 불어닥치는
혹한을 견디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고 있구나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며 견뎌내는
일이라지만
정도의 차이가 심하구나
홑껍데기 하나 붙이고
혹독한 엄동설한을
고태스럽게 배겨내기란
지속되는 단말마적 순간
이 세상 모든 이여
고해(苦海)의 시련을
아프다 말고 서글퍼 마오
2
하나 망설임 없이 제 몸 불사르고
본분을 드러내는 나무도
많은 아픔은 있을 것이다
만고풍상을 견디며
청춘을 몸 바치고 느지막이
싸늘한 옷을 걸치고 있는 나무는
사리 몇 량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벌거숭이의 몸으로
당당하고도 용맹스러울 수 있음은
가장 참된 수행길 일 것이다
엄동의 혹한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동안거 들어
도량을 베풀며 득도 수행 중이다
겨울나무
안은주
눈 잠그고
가만히 숨 멈춘 그녀 몸에 손 넣어
빗장을 풀었다
완강한 고요에 날이 서고
놀란 세포가 실눈을 뜨고 무릎으로 기어 온다
엿 듣던 천 개의 귀가 붉어진 숨소리를
신음처럼 내뱉었다
그리고 몇 개의 나이테 문을 더 지났다
금줄 쳐진 자궁이 보인다
그녀의 감빛 자궁이 환하다
저것 좀 봐!
땅 냄새나는 진액을 빨며 잠들어 있는
저 고운 핏덩이 싹들을,
감추었던 그루잠이 밀린다
마음속 옹이를 반질반질하게 밀고
새싹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그녀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 근질근질 탯줄이 솟고
혈관을 따라 그녀 몸 깊숙이 흡수되고 있다
겨울나무
양수창
날이 밝도록
울고 있었구나.
한 번 닫은 마음을
열 길이 없었구나.
강물도
굽이굽이 손을 뻗는데
닿을 수 없었구나.
돌아서서
돌아서서 흐느끼는
바람소리.
겨울 나무야,
밤새
토해낸 오열(嗚咽)이
가지마다 하얗게
눈꽃으로 피었구나.
겨울 숲
양수창
새들도 흩어져 간 하늘 아래
근육통을 몰아 오는 바람,
신경통을 몰아 오는 바람,
먼 옛날부터
할아버지들이 울었고
할머니들이 울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울더니,
흰눈발 휘몰아치며
나를 향해 불어 온다.
허리를 굽혔다 펴도
바람을 노려 보아도
노려 보아도
바람은 집중적으로 허리에 와서 감기고
어쩔 수 없다.
하늘을 바라보면
노여운 눈발만 떨어질 뿐이다.
어두운 산등성이에
내 죄(罪)의 그림자가 스쳐갈 때,
내 잎들을 모두 떨구고
신경(神經)을 떨구고
모든 것을 다 떨구고
뼈대만을 세워도
발끝에서부터
다시 결려온다.
문득
뼈대 위에 올라앉아
칼을 갈고 있는 겨울바람,
내 속죄(贖罪)하는 피가 검붉게 베어져
어둠 깊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겨울나무
염규식
기쁨과 환호의 격정, 세월의 흐름을 뒤로하고
사차원의 내면의 세계 찾을 수가 없다
내면의 속살을 숨기려 짜낸 푸름은 다 거짓인걸
아픔도 눈물까지도 진실을 외면한다
다 내어주고 발가숭이를 숨기려 수많은 날을 운다
차라리 아프고 쓰라린 고운 알몸이었으면 좋겠다
벗어버린 나의 진실을 보일 날은 언제인가
연약한 나의 거짓된 진실을 하얀 눈이 감싼다
위선으로 침묵하는 나는 오직 내면에 감춰진
동그라미의 환상만을 조각한다
겨울나무
염인덕
햇볕에 푸르던 나무
따뜻한 계절은 먼지처럼 사라져
쓸쓸함이 더해 가네요
마지막 잎새 떨어지는 소리
시냇물은 그 눈물을 알고 있기에
긴긴밤 모진 바람에도
따뜻한 봄바람 그리워하며
남몰래 외로움 감추나
투박 나무 온 힘을 다해
찬바람을 자장가 삼아
봄날을 기다리고 있네요
겨울나무
오경옥
떠난 후에야 내 모습이 보였다
어느 사이엔가
기억 깊이로 뿌리를 내린 의미들
푸르게 돋아
묶어두고 다독여온 것들이
눈부신 환상으로
색깔을 입혔던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들
심혈관들의 움직임이
안으로
안으로
낡은 습관과
허황된 관념들을 밀어올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느 먼 훗날을 위해
냉정한 된바람은
사실과 실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며
오롯이 서게 했다
떠올려진 것들마다 의미된 것들이
비로소
하얗게
하얗게
맑은 소리를 낸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겨울나무
오보영
나 비록 지금은
앙상해진 모습으로
볼품없을지라도
내겐 희망이 있단다
파릇한 새싹
싱싱한 잎으로 단장을 해서
기다리는 님께 기쁨을 주고
풍성한 맘 안겨다 줄
꿈이 있단다
겨울 부목(腐木)
오보영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왜
다들
썩은 나무라고
손가락질 하는가 했더니
속이
썩어 있네요
그러니
멀쩡한 척
말라비틀어진 껍질로
큰 허우대
나무둥치 싸고 있어도
썩은 냄새가 쉬임없이
풍길 수밖에 없던 거고
종국에는
텅 빈 몸 가누지 못하니
지 스스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별다른 수가 있으리요
겨울 소나무
오보영
1
넌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네가 있다는 자체만으로
숲은 푸른빛을 드리우고
숲에다는 맑은
솔 향기를 뿜어주니까
숲에 사는 모두에게
너는 기쁨 이란다 희망이란다
2
내가
여기 있는 건
나로 있기 위함이라
내가
나로서
소나무의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라
내가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는 건
숲을 위해서라
추위에 눈보라에 삭막해진 숲
내 푸른 빛깔로 비추게 해서
숲을 숲 되게
하고 싶은 바램이라
겨울 숲 애환(哀歡)
오보영
같은 숲에서 살아가고는 있어도
까마귀는
썩은 고기 향해보며 울고
까치는
오는 산새 반가워 웃네요
같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어도
까마귀는
제 욕심 채우려고 울고
까치는
나눔을 위해서 웃네요
겨울 숲의 노래
오보영
이미 스쳐 간 바람일랑
염두에 두지 말자구나
이미 스며들은 빗줄기에
연연하지 말자구나
지금은 오로지
내리쬐는 햇볕만을 품어 안자구나
더 우거질
내일 푸른 숲을 기대하면서
더 번성할
내일 숲의 삶을 그려보면서
오늘을 더 넉넉하게
채워 가자구나
겨울 숲의 비애
오보영
오랫동안 함께
어우러져 지내면서
추울 땐
서로 몸 부비며 보듬어 안아주고
더우면 그늘 드리워 흐른 땀 식혀주던
네가
지난여름
느닷없는 톱날에 잘려 나가고 난 후에
맘 편히 의지할 곳도
기대일 곳도 없어 허전해하던 참에
설상가상으로
불쑥 다가온 겨울 찬바람 내몰려와
몇 개 남은 잎새마저 흔들어 떨어뜨리니
더욱 춥구나
맘까지도 많이
시려오누나
겨울 꽃나무
오순남
얼어버린 햇살이
삐쳐버린 바람과 동행하던 날
무작정 빈 하늘 곁을
맴돌았다
무표정한 겨울 내음을
허기진 품속에 집어넣고
몸서리치던 날
아무도 알 수 없는
길을 찾겠노라고
팽팽하게 일어서더니
차갑게 비집고 들어오는
젖은 숨소리에
마냥 주저앉아 버렸다
하얀 눈 내음도
맡지 못한 채
까만 숨소리만
훔쳐 마시던 날
쉼을 찾아 날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이
겨울 하얀 달빛을 품더니
순백의 꽃잎들을
밤새도록 뿌려준다
깊은 숨 뿌리 속에
날을 새고
또 새더니
하얀 향 듬뿍 맡은
겨울나무 꽃이
숨 막히게도 피어있더라
겨울나무
오애숙
올해도 나의 할 일 다 했다
나 이제는 모든 것 뒤로하고
편하게 쉬고 싶수
기나긴 꿈나라 길에
툭툭 털고 가리라
새봄을 향한 이맘
인내로 신탁 미래 향하여
긴 동면을 취하며 다져가리
설한풍 휘몰아쳐도
고난의 길 맞으리
가슴에 꽃피웠던 새 봄날 기대하며
당당히 동면하며 맞서며 인내하여
칼바람 휘감겨와도 새날 위해 견디리
겨울나무
오정방
한겨울 인고 속에
견뎌내는 풍우설한
긴긴날 나목으로
죽은 듯이 고요한데
따사론
한 줄기 햇살
다정스레 비취네
겨울나무
옥윤정
하얀 눈꽃이 날려서 내게로 오던 날
한 아름 받아서
빈 가지에 하얀 사랑 만들었지요
얼음꽃이라도 피워 놓아야
외롭지 않겠다고
송골송골 만들어서
보물 인양 등에 짊어지고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이라니
슬프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하구나
모든 세상 은빛으로 만들어 놓고는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는지
눈이 부셔 바로 볼 수 없는 설화
진주보다도 더 신비로움이라
살을 파고들며 콕콕 찌르는 추위의
아픔을 참아내며
겹겹이 쌓이는 눈을 안고 보듬고
긴긴밤 지새는 그대 맘
그리운 임 기다리는 심중이 있기에
겨울나무들
용혜원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여름날 그 찬란한 햇살 속에
아름답기만 하던
옷들을 다 벗어버리고는
가지마다 서로 외로움을 비비며
추위에 떨고 있다.
아니다. 아니다.
벌써부터
봄이 오는걸
기다리고 싶은 마음에
모든 손을 다 들고
환영하기를 시작한 모양이다.
겨울나무야
용혜원
생생 불어대는
찬바람이
심장의 온도를 떨어뜨려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내 앞에
보초병마냥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겨울나무야
여름날
찬란한 햇살 아래
푸르른 옷을 입고
자태를 마음껏 뽐내더니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칼질하는
한겨울에도
옷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이 되어서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구나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우리가 연인 사이였다면
난 반하여
청혼하고 말았을 것이다
겨울 숲
우영규
1
마른 잠에 꺼져가는 혼불은
찬 바람 채찍질하는 허공
밤새 진저리치며 운 흔적은
가을이 고백한 질펀한 눈물
늪에 빠져 떠나지 못하는
어느 세월 한 그루 겨울나무
민망스런 사랑이 속내를 드러내고
오래 따뜻한 사랑 품고 같이 살았다고
숨 죽이고 쓰러져 있는 겨울숲에
속으로만 뿌리내리는 사랑 있다고
겨울 해가 퍼지기 전에 조용히
허공에다 옷 벗은 채 떠나는 겨울 숲
허공이 버린 맨발의 그림자
2
겨울 숲에 가면
겨울비가 모여서 숲으로 들어가고
멀리 북에서 중얼거리며 걸어온
새촘한 바람이 숲으로 들어가고
싯푸른 달도 내려와
겨울 숲에 숨는다
굶주려 앙상한 가지들은
이것들을 다 먹고
밤새 수런거리며 깊은 밤으로 떠난다
마른 꽃대 싸그락 거리는
한 평쯤 되는 소리는
먼 그리운 이의 새벽꿈으로 보내어져
애절히 창을 두드리고
겨울 숲을 걸어 나온 새벽은
간명히도 차려입은 길 위로
잃어버린 마른 꽃대 소리를 찾아 나선다
겨울나무
유한나
여름엔 무성히
그늘질 줄 알면서
겨울엔 맨몸으로
처량히 떨고 있는
까치가 왜 그러냐
깍깍깍 묻고
참새도 찾아와
짹짹짹 묻고
함박눈만 펑펑 내려
말없이 덮어주네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이유
윤보영
겨울나무가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가지 끝에 남긴
까치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안이 따뜻한 것은
날마다 담겨 사는
그대 생각 때문이었군요
행복합니다
겨울나무
윤순찬
텅 빈 뜰에
위엄 있는 기침소리
두어 번
사방을 살피다
문득
그대를 본다.
저녁 하늘 위로 어리는
온통 검은 실루엣
화선지에 침묵이 흐르듯
결 따라 흐른 가지
관객은 돌아갔는가
다시 내리는 경적
겨울나무
윤용기
찰랑찰랑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 맴돌다
떠나간다.
무성한 잎들은
갈 길을 찾아
훌훌 떠나고
문지기만
외로이 홀로 남아
겨울을 지키고 서 있네.
찬바람 눈보라도
새봄의 희망이 있기에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으리.
앙상한 가지에
얼어붙은 물방울
밤새
바람이 부벼대며
따스한 아침햇살
그리운 님
기다리듯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네
겨울나무
윤의섭
눈 서리
산을 덮고
찬바람 돌을 치는
마지막 동토에서
희생의 축전 낙엽 이후
벗어버린 알몸으로
산을 지키는 나목이
눈 덮인 산을 지킵니다
뿌리가 우는 소리
바람 불 때면
온기를 빨아올려
흩뿌리듯 춤을 춥니다
나와 겨울나무
이국헌
늦은 귀갓길은 휘청거린다.
밤길 속으로
언제나 빈손
그림자 하나는 뒤따른다
겨울나무 뒤로
숨죽인 채
가로등 빛은 밤바람에 날리고
달빛은 날리는 바람을 비춘다
발걸음 멈추자
길 끝자락 사이로
그림자는 숨넘어가듯이
덜컥,
어데 선가 아스팔트 깔아뭉개는
마찰음 소리
가난을 죄짓고는 못살아
늦은 귀가 길은 휘청거렸다
겨울나무
이기영
눈이 녹지 않은 들판에 한 그루 나무가 있었어요
커 가면서 세상과 담쌓은 듯
차운 바람 맞는 자신을 숙명처럼 받아들인 듯하였지요
가지에 깃든 종달새들이 둥지만 남기고 날아 가자 마음을 닫아 버렸다 해요.
종달새와 종달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사랑 하였나바요
얼었던 시냇물 흐르고
복수초 첫 꽃잎을 무채색 세상에 점으로 남기고
매화는 새악시 꽃잎 띄우며 연녹색 잎새를
꿈꾸고 있어도
나무는 겨울만 안고 묵묵히 있었지요
훈풍이 스쳐도
의지도 없이 가지에 앉아 있다 날아가는 새들을 원망하듯 보였어요
나무를 붓으로 그린다면 잎새 없이 완성된 수묵화 같다 느껴졌을 거예요
어느 날 바위틈에서 억지로 자란 듯
굽은 수양버들이 봄바람에 연두색 몸짓하며 춤추고 있었어요
잎새 물결 속에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지요
나무는 숨죽이고 보았어요.
자신의 찬란한 가지에 깃들렸던 종달새를 생각하였지요
나무는 따스한 햇살에 가지마다 잎을 틔우고 싶었지요
꽃을 피우고 싶었지요
웅크리고 자학했던 과거가 슬프듯 빈 가지를 바람에 흔듭니다
미련 없이 날아간 그들이 보고 싶었어요.
무심하게 대했던 다른 새들을 다시 깃들게 하고 싶었어요
종달새를 원망하지 않고 그들의 비상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작은 사랑이든 큰 사랑이던 이별은 아픈 것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지요
마음을 열고 햇살을 받아들이자 상처는 그리움으로 다시 아물기 시작하였어요
앞으로 나무는 잎새를 틔울수 있겠지요.
화려하지 않지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마음으로 받아주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지요
환한 세상 향해 동참하고
겨울나무는 겨울을 떼어 낼 거예요
쉬어가는 새들에게 아프지 않게 커갈 거예요
겨울나무
이대준
골목길에 벗고 선 나무
송이송이 어깨에 매달리는
연민이라는 단어, 나는
옛 친구와
한 잔 술을 기억하였다
토끼를 몰아
산 너머에 떨치고 왔던
매운 겨울과
상수리나무 틈에서
끌려 나와 뿔을 치켜든
사슴벌레의 여름을 핑계로
밤새 술잔이 부딪쳤다
유행가 한 자락에 놀라
눈꽃송이 흩어진다
보름달보다 환한
설원이 흐른다 여전히
봄을 손가락질하는 나무
홧김에 발길질을 하고
오줌을 뿌려보지만
고독 한 모금을 꿀컥
삼켜버린 나무는
부르르 떠는
취객을 아랑곳 않는다
겨울나무
이도연
1
해마다 이맘때면
누군가
겨울나무 옷을 입힌다
털실 곱게 수놓아
알록달록 예쁜 겨울 외투
삭풍 불어와
놀자 나무 흔들어도
나이테 속
바람 스미지 않아
겨울나무 포근한 꿈속
옷 입혀준 따뜻한 손길
부드러워 위안이 되고
겨울 거친 등걸
사랑 곱게 끌어안고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
사랑스러워
훈훈한 입김 겨우 내 불어
겨울 단잠을 잔다
2
겨울의 숲은 맑고, 건조하며
나무의 표정은
정갈하고 단아하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나무가 품고 있는
시원의 언어 소리가 들린다
사람만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닐 터
나무도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숲의 주인으로 살아왔으며 살아간다
살아온 굴곡진 삶은
나이테에 오롯하게 싸이고
나뭇등걸의 표정은 완고하고 거칠다
태양과 비바람 찬 이슬이 들어찬
거친 삶을 살아온 저항과 순응의 사연을
껍질에 명징하게 결박한다
그것은 나무가 토해낸 숨결이며
힘겨운 표현으로 각인한
삶의 언어이자 숲의 이야기이다
겨울 숲의 시간
이도연
벚나무 숲
회색빛 등걸 메마른 가지가
외로움에 지쳐가는지
겨울 끝에서 울음을 운다
봄날에 흐드러지는
연분홍 꽃잎의 절정
눈꽃 날리며 산화하던
아득한 소멸의 환희를 기억하며
혈관을 땅속 깊이 뿌리내려
힘껏 수액을 당겨보지만
입춘의 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저무는 노을은 아직 차다
해 걸음 하늘 끝으로
몸을 뉘는 석양빛은 소멸하고
무기력한 겨울을 분할하며
희미한 숲의 그림자는 초록이 감돈다
숲은 명징한 고요로 침강하고
텅 빈 머릿속은
태고의 문명을 삭제한 진공이 되어
또 다른 봄은 그렇게 피어나는가 보다
겨울 숲의 정적 속에서
이도연
검은 어둠에서 깨어난 숲이
일제히 바람의 울음을 우는 새벽
막 태어난 겨울 숲은 무채색으로
싸늘하지만 맑고 신선하다
겨울 숲의 헐렁한 여유로움이
느리게 다가와 시선 끝에 걸리고
숨죽인 발끝에서 잠자던 물까치가
푸드덕 아침의 정적을 일으켜 세운다
땅밑 숨결을 붙잡아
북풍의 서리로 지어진 유리성은
겨울 요정의 입김으로
발밑에 부서져 눈물이 된다
서리 끝에서 튕겨내는 명징한 겨울빛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환한 햇살의 부드러움을 만지며
동토의 아침을 깨운다
겨울나무
이돈권
모두 벗었다고
그런 추운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그는 봄 여름 가을
치열한 삶의 전쟁 치른 후
무거운 전투복 벗고 포근히 잠자고 있다
다 떠났다고
설익은 언어로 동정하지 마라
그는 지금 새로운 대지와
또 다른 뜨거운 봄날을 잉태 중에 있다
사람들아
겨울 벗은 나무 곁을 지날 때는
우리 발소리도 숨죽여 지나자
그는 지금 하늘 향해 두 팔 높이 벌리고
깊고 기쁜 기도 중에 있다
겨울 숲에 돌아오다
이동백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던 이파리들
땅 위에 드러눕고
가지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야윈 몸뚱아리 가만 껴안으니
떨리는 우듬지
살얼음 낀 하늘에 무언가
썼다 지우고 다시 쓴다
우듬지 끝에서 생겨나는 이름,
가는 바람에 미끌어진다
숲 끄트머리쯤 흩어지는 글자
모음은 산을 그리거나 구름 위에 얹히고
나뭇가지에 걸리는 자음들
둥근 받침 하나 굴러떨어져 냇물 속으로 숨는다
겨울 숲 한가운데 서 있으면
조금씩 가벼워지는 몸뚱아리
우듬지 끝에서 길을 잃곤 하던 나의 의문은
구름, 냇물 위에서 잠시 풀리고 있다
겨울 숲
이둘임
찬바람에 잎새를 버리더니
헐벗은 채 고난의 수행 길은
열반의 세계에서 점점 무아지경으로
청량한 새 소리
흐르는 시냇물 소리
숲을 헤치며 고요를 깨워도 미동이 없다
헤집고 들어오는 햇살 한 줄기
숲을 정화해 보지만 무표정 응답뿐
냉기만 흐른다
바람이 흔들어도 취기 오른 숲은
일제히 동면 마술에 빠져들어
꿈속 먼 계절로
광화문, 겨울, 불꽃, 나무
이문재
해가 졌는데도 어두워지지 않는다
겨울 저물녘 광화문 네거리
맨몸으로 돌아가 있는 가로수들이
일제히 불을 켠다
나뭇가지에 수만 개
꼬마전구들이 들러붙어 있다
불현듯 불꽃 나무 하며
손뼉을 칠 뻔했다
어둠도 이젠 병균 같은 것일까
밤을 끄고 휘황하게 낮을 켜놓은
권력들 내륙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해군 장군의 동상도 잠들지 못하고
문 닫은 세종문화회관도 두 눈 뜨고 있다
엽록소를 버리고 쉬는 겨울나무들
한밤중에 이상한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은 광화문(光化門)
뿌리로 내려가 있던 겨울나무들이
저녁마다 황급히 올라오고
겨울이 교란당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광화문 겨울나무들
다가오는 봄이 심상치 않다
겨울나무
이문조
다 버렸다
다 비웠다
바람 앞에 당당하다
버려야지 비워야지
말은 쉽지만
버리고 비우는 일
어렵고 어려운 일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마음 어지럽히는
근심 걱정 욕심 온갖 번뇌
겨울나무
널 닮으려고
널 배우려고
네 앞에 섰다
겨울나무 앞에 서면
이민숙
무던히도 힘겹던 것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지키려고 했던 온갖
욕심을 툭툭 벗어 놓았다
해님께 받은 사랑 겹겹이 보답하여
꽃피워 그늘 주고 고운 단풍까지
모두 내어놓고 빈 마음 벗은 몸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젠
관조하듯 앙상한 뼈마디
그 속에 흉터 자국 마디마디를 꺾어
지난 세월이 심상치 않았음은
여기저기 박힌 옹이가 말한다
맺힌 옹이의 수 앞에 나이테가 따라왔다
인고의 세월은 지난 기억 속에서
견디어 온 옹이를 뽑아놓고
나루터기에 앉아 겨울나무를 바라본다
겨울나무
이복순
1
가죽만 남은 할머니 뼈처럼
풍성함을 보시한 나무
절대 투명 매서운 바람
신경회로 마구 흔들어 와도
오로지 침묵하는 나무
안으로 더 단단해지는 나무
한자리 한 자세 오랜 수련
성불한 것일까?
떨리기만 하는 내 몸에는
나무의 침묵이 눈처럼 내려앉아
물컹한 마음이 울음 운다.
욕심의 옷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2
추운가?
나를 보라
투박한 것옷 하나라도
얼마나 뜨거운지.
봄이면 빨갛게
꽃을 피우지 않은가
외로운가?
나를 보라!
두 팔 벌려 맞닿은 가슴
뜨거운 포옹 한 번 없었어도
서운하다 쌩하니
고개 안 돌리지 않던가
힘든가?
나를 보라
매서운 바람 차가운 눈
내 가지에 얼음 갑옷 얹혀도
결국은 그 얼음
자연스레 녹아지지 않던가
아픈가?
나를 보라
통증에 약기운에 약해진 그대
힘 빠지더라도 참아낸다면
내 초록으로 어여쁜 꽃으로
달콤한 과실을 반드시 주리리
3
시린 공기 내려앉아
따습게 토닥토닥
모든 세상 시름도
곤히 잠이 들고
눈길 닿기도 멀었던 별들
어느새 가지에서 속삭속삭
또 다른 세상의 순간들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무의식
바람이 머물러 지나가고
소리가 머물러 지나가고
투명한 어둠 속에서도
존재하는 친구가 있어
외롭지가 않아
보기와는 달라
나무들의 겨울
이상묵
수풀도 경계가 있어
길들을 내어주고
제 몸을 가둔다
낮게 뜬 구름들을 보아라
허공에도 경계는 있느니
이제 보일 것 보이지 않느냐
땅바닥에 버려둔
내 연약한 밑동
숨겼던 욕심 털어버리고
하나하나 눈여겨보면
그만그만한 키들의 이웃 나무들
지난여름
잎새들 무성했을 때
이웃 나뭇가지에
몸 걸치고 죽은 나무
누울 자리 하나도 비켜주지 않았구나
전봇대들은
움쩍도 않지만
가슴 속 파고드는 이 눈바람
두 손을 들어 올리고
가만히 흔들며
통회하리라
인생도 겨울나무 같아야
이상진
내 모든 것을 주며
키워온 것들을
엄동설한에 아플까 봐
곱게 단장하여 먼저 보내고
자기를 벗을 수 있었기에
맨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을
우듬지의 노래로 참아내고
빙설(氷雪)의 눈물을
꽃보다 아름다운 눈꽃으로 피워
옹골진 나이테로 자라는 겨울나무
네 외롭고 고단한 모습이
세상 아름다움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예술가의 작품으로
철학자의 깊은 시선이 된다
봄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겨울나무가 죽음의 터널을 지나
옹골진 나이테로
생명이 깊고 견고해져
새순을 내어야 봄인 것이다
인생도 겨울나무처럼
온유한 마음으로
져주고 내어주고
고난의 주름이 만들어져야
봄꽃 같은 면류관을 쓰는 것이다
겨울나무
이옥순
그들은 외롭고 쓸쓸해 보였으며
그들은 초라해 보였고
그들은 얼어서 죽은 자 같았습니다
칼바람 추운 눈보라 속에 서 있는
그 모습은 그저 가슴 시리게 했으며
잊을 수 없기에 꽁꽁 싸맨 발길에 서로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나 봅니다
그들은 태양을 믿고 견디며
희망을 놓지 않았고 보이지 않았던
뜨거운 사랑의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대지의 움트는 사랑은
새 촉으로 머릴 내밀어
향기로운 오색 꽃 향연을 펼쳐
하나로 뭉쳐진 힘으로 아름답게 세상을 빛냅니다
죽은 듯한 그들은 겨우내 큰 뜻을 안고
뜨거운 꿈을 키워냈고 활짝 핀 모습에서
자연과 더불어 기쁨에 봄맞이
희망과 함께 공존하며 승리의 삶을 배워갑니다
겨울 나무의 그리움
이원문
허공의 파란 하늘 구름 더 높고
버리고 털어낸 나뭇가지 외롭다
겨울은 언제나 쓸쓸한 것인가
지나는 새라도 앉아 쉬어 가렴만
차가운 바람만이 나뭇가지 스치고
외로운 나뭇가지 앙상하니 떨고 있다
겨울나무
이원수
나무야 나무야 옷 벗은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
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 여름 생각하면서
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겨울나무
이유리
어느 한때
깊고도 푸르렀던 사랑
어둠을 하얗도록 밝혀
새벽이 놀란 가슴으로 달려오던 날
지금처럼
휑한 그대의 품 안으로
바람이 무리 지어 안겨 왔었지요
마지막 잎새
미련 없이 떨구고
더는 벗을 게 없는 나신
흠뻑
물오른 그리움의 옷을 입혀 주고 싶습니다
슬프도록 시린 고독감에
황량함으로 서 있어야 하는 시간들
그대여
고개 숙이지 말아요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아침이 나를 깨우러 오듯
허허로운 가슴안에
새싹 틔울 봄
꿈꾸듯 그대 향해 오게 될 것입니다
겨울나무
이윤학
잃어버림을 곰곰히 생각하는 중이다
체중 조절을 위해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하는 중,
갈수록 둔탁한 소리가
관절 사이를 옮겨다니며 일상을 괴롭힌다
오늘에야 부끄러움도 제 얼굴로
익숙하다 제 살을 제 몸으로 부딪치며
다시 떠보일 눈을 감고 있다
가늘고 긴 겨울,
뚜렷한 획을 긋고 있는
침묵의 힘이며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이윤호
눈더미를 시트처럼 뒤집어쓴 겨울나무들이 장렬(葬列)을 이루고 있다 느끄름히 이우는 하루 속을 걸어가는 사람도 겨울나무를 닮았다 바람에 쓸려 다니며 지상에 앉지 못한 마른 눈송이들은 아직 짐이 무겁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때 한 겨울나무가 팔을 분지르고 온몸을 떨며 더께 같은 눈덩이를 털어냈다 그것은, 한 영혼의 낙차
-한때 나는 다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내가 되고 싶지 않아 했다 나는 악착같이 살아서 만나자고 말하고 그를 떠나왔다 빈방에 한 마리 구름을 기르던 그가 밑줄 친 시구처럼 떠오르면, 그는 나를 대신해 슬퍼해준다-
생활이 생활을 반성하지 않듯이 때 묻은 손을 다른 한 손이 가리듯이 눈은 발자취를 첩첩 덮어주었다 줄지어 선 겨울나무들의 끄트머리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계절과도 불화하지 않았다
다시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겨울 나목에게
이은경
커다란 나목이여 그대도 나와 비슷하구려
기나긴 세월 모진 바람 맞고 자란 그대나 내나
에두르고 매섭게 인생길 타박타박 걸어도
결국은 이 한 점
겨울 숲
이은수
골바람이 참나무 가지 뒤흔들면서 올라와
성가신 듯 막무가내로 밀쳐내 숲 소리 만들고
뒤꽁무니 쫓던 햇살 빠르게 지워져 간다
치달리다가 부닥뜨림은 오히려 실존하고 있음을,
대관령 동쪽 골짜기 갈피 밀생한 숲에 핏발이 돋는다
눈송이 둑뚝 떨어뜨려 가물가물 먹먹해지는 산길 뒷목
낮술에 벌겋게 취한 낯짝
깍지 낀 손 주무르며 입 딱닥 벌려 살아있음이 죄명이 되냐고,
꽁꽁 언 발톱이 옆구리 벌컥 걷어챈다
꽁꽁 묶인 채 후들거리는 멍
몇 번이나 벌목 탐하고야 잠이 들려나,
낯선 시간 죄다 걷어내 팔면 몇 푼어치나 되겠나
아스라한 어딘가에 걸려 들먹거리는 눈발,
날개 후드득 날아올라
꿀렁꿀렁 바퀴 소리 내며 골짜기로 훤하게 내달리고 있다
겨울나무
이은숙
겨울나무여
시린 가슴 상처만 안고
모두 주었는가!
봄여름 가을의 찬란했던 시절을…
빈 몸으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그대
사랑하는 그분의 언약을 가슴에 품고
새 생명의 그 날을 기다리며
소망이 있기에
겨울도 두렵지 않구나.
겨울나무 앞에서
나는 모든 겉옷을 벗는다
겨울나무의 독백
이익준
다 벗고 당신 앞에 섰습니다
펄럭이던 푸른 계절
붉은 욕망의 꽃과
마지막 태웠던 불꽃도
당신의 책벌앞에
다 내려놓았습니다.
굽은 욕망에 뒤틀린 허리
갈라터진 몸둥아리
검은 버섯이 살을 파먹는
우듬지 꺾여나간 상처도
매서운 삭풍 앞에
다 드러내 놓았습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징벌의 분량이 차기까지는
살을 에는 서릿발과
칼바람 채찍은 감당하겠습니다
악취 풍기는 몸둥아리만
가려주신다면
어느 날 펼쳐진 순백의 세상
오롯이 정결의 제단이 되고
마침내 징벌을 걷우시는
당신의 손길 그 사랑이
영혼에 스미고 저며
이제사 참회의 눈물을 올립니다
겨울나무
이재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
겨울나무로 서서
이재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들을 떨군다.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잠시 안녕
더 크고 무성한 훗날의
축복을 위해
지금은 작별을 해야 할 때
살다 보면 삶이란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가 온다.
분분한 낙엽,
철을 앞세워 오는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오지만
겨울을 겨울답게 껴안기 위해
잎들아, 사랑의 이름으로
지난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군다.
겨울 숲에서
이재무
겨울나무들의 까칠한 맨살을 통해
보았다, 침묵의 두 얼굴을
침묵은 참 많은 수다와 잡담을 품고서
견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겨울 숲은 가늠할 수 없는 긴장으로 충만하다
산 이곳저곳 웅크린 두꺼운 침묵,
봄이 되면 나무들 가지 밖으로
저 침묵의 잎들 우르르 몰려나올 것이다
봄비를 맞은 그 잎들 뻥긋뻥긋,
입을 떼기 시작하리라
나는 보았다
너무 많은 말들 품고 있느라 수척해진
겨울 숲의 검은 침묵을
겨울나무
이재환
1
뜨거운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우리는 한 겹 두 겹
옷을 더 입는데
나무 너는 대단하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옷을 하나둘 벗더니
알몸으로 몸매 자랑을 하네
바람 불고
동장군 찾아오고
눈보라 치면
눈꽃도 피워주네
추울 만도 한데
새봄을 준비하고
희망을 꽃 피우기 위해
뜨거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겠지
2
화려한 가을이
떠나간 네 모습
쓸쓸하고 허전하더니
간밤에 눈꽃이 피고
온 세상이 하얀 옷을
갈아입고 폼을 잡는구나
겨울바람 매서운데
언제까지 잘난체하나
지켜봐야겠다
3
살랑살랑 봄바람에
희망의 새순 돋아
환한 웃음 보이더니
연분홍 꽃잎 피우고
벌 나비 유혹하여
즐겁게 연애하더니
사랑의 열매 맺고
떠날 때를 알았는지
이쁘게 단풍 들더니
찬 바람에 옷 벗기고
창피하고 부끄러운지
하얀 백의로 몸을 감싸네
4
잎 다 시집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외롭게 쓸쓸히 서 있구나
식구들 출근하고
텅 빈 집에 홀로 있으니
나도 네 신세와 같구나
5
울긋불긋 화려하게
온갖 치장을 하고
자랑하더니
찬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져
뒹구는 신세가 되었네
미련 없이 모두 비우고
새봄을 준비하기 위해
쓸쓸하게 서 있네
모두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걸
나무도 알고 있나 보다
6
추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예쁜 단풍 떨구고도
시치미 떼고 있다
거추장스러운 옷 모두 벗었어도
몸 자랑하며 당당한 모습 좋은데
바람 불고 추운 겨울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이다
7
봄부터 예쁜 옷 입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 주더니
가을 되어 화려한 옷 갈아입고
겨울 되니 옷 벗어 던지고
근육질 몸매 자랑하네
하얀 하늘에서
새하얀 꽃잎들이
한잎 두잎 내려와
울퉁불퉁한 살결에 안기니
포근하고 사랑스럽네
가지마다 눈꽃 송이 피우려고
옷을 훌훌 벗어 던졌나 보네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이렇게 추운 겨울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네
겨울나무야
이재환
찬바람 따라
나뭇잎 떠나고
앙상한 나무는
창피하지도 않은지
쇄골을 훤히 들어낸다
멋진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위풍당당하게
보디빌딩 하며
폼을 잡는다
바람 불어도
춥지도 않은지
하얀 눈꽃을
예쁘게 피우고
활짝 웃는다
찬바람 멈추고
눈꽃이 지고 나면
새봄이 오듯
메마른 뼈대에도
희망의 새잎이 나오겠지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을 보니
너무도 춥다
나무야 내일을 위해
잘 이겨내자
새봄을 준비하는 겨울나무
이재환
가을바람 따라
예쁜 단풍잎이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한다
떠나는 임을
잡지 못하는
나뭇가지도
눈물을 흘린다
내년에 만날 것을
굳게 약속하며
찬바람을 속에도
새봄을 맞을 준비 하네
겨울나무
이정미
다가올 날들
아무리 매섭고 혹독해도
나는 울지 않으리.
기울어지지도 않으리.
내 품에서 떨어져 나간 씨앗 하나가
칼바람에 날아가 덤불 속에 파묻혔다가
봄바람의 속살거림에 꼼질거리며
잡풀과 함께 어리어리한 싹을
성공리에 피워낼지 모르니
난 바르게 서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고
흔들리지 않고 흐뭇한 맘으로
성장을 바라보리라.
겨울나무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 되어 어지럽다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겨울나무
이제민
창가에
한 그루 나무가
외롭게 서 있다.
얼마 전
단풍으로 채색되어
그대 마음, 아름답게
수놓았는데
이제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살며시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그대, 부드러운 바람
소식 전해오길
손꼽아 기다리던 나무
맨발로 뜰까지 나와 서성인다
겨울나무
이종래
몰랐다
인동초 걸어가는 삼사월에도
몰랐다
깽깽 매미 울어대던 칠팔월에도
몰랐다
석양빛 감아 도는 구시월에도
앙상한 가지마다 휘파람 불 때도
자신이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겨울나무는 몰랐다
이것이 행복이란 것을
겨울나무여
이한명
이제 죽음의 피막을 벗고
저 날푸른 들판에 서자
젊은날 마른 풀뿌리로 부대끼던
삶의 여울에서
고통의 붉은피 쏟아내던
내 몸속 삶의 기로에서
이제 가난한 꿈 접어두고
저 날푸른 들판에 서자
홀씨로 떠다니던
우리 외로운 그림자들
이제 작은눈 튀우고
환한 봄날로 동행을 하자
어디선가 봄의 물꼬 트는
소리가 들려온다
겨울나무
이해인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있던 겨울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사랑하는 일에도 자주 마음이 닫히고
꽁해지는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또 말하네
하늘을 보려면 마음을 넓혀야지
별을 보려면 희망도 높여야지
이름 없는 슬픔의 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어느새 연인이 된 나무는
자기도 춥고 아프면서 나를 위로하네
흰 눈 속에 내 죄를 묻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나의 나무는 또 말하네
참을성이 너무 많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겨울나무 한 그루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이향아
겨울나무 마른 가지는 죽지 않았다
죽음보다 무겁게 눈을 감고 있을 뿐
짧은 봄 질컥이는 밭두렁 길과
가을 강 가라앉은 긴 이야기를
회상에 젖어 있기 아픈 나무는
열 손가락 펴서 그물을 치고
만국기 정신없이 흔들어 대던
지난 여름 잎새보다 숙성해 있다
돌아다보는 얼굴은 달빛마다 추연하다
더 붉은 꽃, 더 실한 열매를 그리면서
돌아다보는 눈물은 그렇다, 아름답다
세상에는
횃불을 밝혀도 보이지 않는 것이
두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금 같은 침묵은 시작되었다
실가지에서 뿌리로 수백 리 물길을 트고
천지에 흩어진 핏줄을 모아
새 목숨을 연습하는
겨울나무
안개 같은 숨을 속으로 내쉬면서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고 있다
겨울나무
이현옥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헤프게 웃음 쏟아내듯
붉은 양수 쏟아내더니
두터운 살비늘까지 다 떼어내 발밑에 묻더니
속이 텅 빈 피리만 불고 있을 줄
한때는 생명 품었던 둥지
쩌렁쩌렁 목청 돋우던 푸른 시절
전기 톱날같이 매서운 바람 스쳐
소금 덩어리만 남은 바다에서 햇살 건지며
폐허로 남은 시계 바늘만 맞추고 있을지 몰라
심장만 살아있는 채로
몸뚱이는 냉동고에 갇혀 지독한 에틸렌 속에서
살갗 터진 손등을 던져
슬픔의 강 깁고 있을지 몰라
어머니는
혈관 주사를 맞으며
혈관 속의 통증을 쏟아내고
싱싱한 푸른 나무를
가슴에 심는다
도드라지지 않는 혈관을 찾느라
수십 번씩 찔려야 하는 팔목 대신
줄기 푸른 나무 들이대고 싶어
입 안 가득 독한 약 냄새 퍼지면
눈을 감고 숲으로 간다
동맥을 깨워 들고 살아있는 나를 삼는다
힘찬 내달림을 하는 회복의 숲이
푸르게 웃고 있다
응고 된 시간을 풀어 약을 섞는다
숲,
내가 또 하나의 숲이 된다
나목(裸木)
이현우
이제 곧 자유를 얻으리라.
아름다운 전쟁도 막을 내리고
꽃이었다가
열매였다가
마침내 바람으로
몇 안 남은 미련마저 다 지워버린
겨울, 여백의 평화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이현호
눈더미를 시트처럼 뒤집어쓴 겨울나무들이 장렬(葬列)을 이루고 있다 느끄르미 이우는 하루 속을 걸어가는 사람도 겨울나무를 닮았다 바람에 쓸려 다니며 지상에 앉지 못한 마른눈송이들은 아직 짐이 무겁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때
한 겨울나무가 팔을 분지르고 온몸을 떨며 더께 같은 눈덩이를 털어냈다 그것은,
한 영혼의 낙차
- 한때 나는 다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내가 되고 싶지않아 했다 나는 악착같이 살아서 만나자고 말하고 그를 떠나왔다 빈방에 한 마리 구름을 기르던 그가 밑줄 친 시구처럼 떠오르면, 그는 나를 대신해 슬퍼해준다-
생활이 생활을 반성하지 않듯이 때묻은 손을 다른 한 손이 가리듯이 눈은 발자취를 첩첩 덮어주었다 줄지어 선 겨울나무들의 끄트머리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계절과도 불화하지 않았다
다시
겨울나무에서
겨울나무로
겨울나무
임계자
홀랑 벗어버린 겨울나무
맨살로 떨고 있는 너에게
흰 꽃잎들이 날려와
뉘우침의 눈바람 날리며
후회의 꽃가루 뿌려
갚아야 할 빛 갚아 라네
눈덩이에 눌려서
신음소리 내는 겨울나무
짓눌리는 척추의 고뇌에
턱까지 차오르는
겨울 나무라는 죄 때문에
참회하고 고해하고 싶어지네
따사한 햇살의 온기
지친 겨울나무 짐 덜어주고
기지개를 펴라
흰 꽃들이 떨어지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지금이라고
움 터며 속삭여 준다
겨울 나목
임미숙
한여름 뙤약볕 아래
기다란 두 팔 벌려
세상에 지친 영혼을
쉬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
찬란한 가을 햇살 받아
형형색색 물들이며
본연의 색 찾으려 고뇌하다가
돌아보니 초라한 생에 붉어진 얼굴
온전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너덜한 군더더기 떨구어내며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너에게 찬사를 보낸다
겨울나무
임영조
이젠 더 벗을 것이 없어요.
바람이, 그 환장할 바람이
날마다 정신없이 흔드는 대로
모두 다 벗어 준 알몸인걸요.
날로 높아만 가는 하늘 우러러
선생님, 저요! 저요! 손을 들어도
대답조차 꽁꽁 얼어 버린 마을
너무 춥고 긴 겨울이라
무서운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우리들 고향 四月은
정말 어디쯤 오고 있나요?
겨울나무
임영준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조소하지 않을 수 없다
역경에 굴하는 것들아
눈보라가 죽비가 되어
매섭게 꾸중을 내려도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을
아리고 서럽지 않았다면
어찌 이 은혜로운 생령을
기꺼이 품고 갈 수 있으랴
겨울나무는
임영준
겨울나무는
이유 있는 서러움이 걸려
허청거릴 수밖에 없어
한 해를 꼬박 다 바쳐
잉태했던 핏줄들이
허망하게 떨어져 나가고
해갈할 수 없는 혼돈만 남아
깊이 주름 짓고 있는 거야
가끔씩 눈보라가
어루만져 줄 때에야
비로소 사무치는 뿌리를 딛고
호소할 날들을 헤아려 보기도 하는 거야
나름 까닭 있는 몸짓인 거야
겨울나무
임재화
1
차마 놓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분신 빛고운 낙엽을
찬바람에 몽땅 다 날려 보낸 뒤
그리움에 남몰래 눈물짓는데
저만치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
여린 가지를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고
미쳐 상처 채 아물지 못한 나뭇가지
추위에 오들오들 가련한 몸짓
오히려 연민 가득합니다
2 - 겨울 왕벚나무 고목
온몸에 난 상처가
세월의 연륜과 함께 새겨져 있는
고즈넉한 산사 앞마당의
왕벚나무 고목이
한겨울의 몸 가릴 수 없어
오랜 세월을 버텨온
영광의 상처런가
몸통이 썩어 움푹 팬 구멍을
어떻게 감출 수가 없네
벌거벗어 찾는 이
하나 없어도
새봄이 다시 오면
화려한 모습 되찾을 수 있고
벚꽃향 온 세상에
풍겨낼 수 있는
오랜 세월 축적된 에너지
아직도 가득하구나
나그네 또다시 찾아오면
언제나 넉넉한 마음 되찾아
오랜 세월의 연륜으로
옛이야기 전할 수 있으리라
깊어가는 겨울날
고즈넉한 산사의 왕벚나무 고목은
계절 때문에 벌거벗고 있어도
언제나 덕과 지혜
자신의 몸속에 가득하고
아무 말 없어도 위풍이 당당하다
3
그렇게도 놓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분신을
찬 바람에 몽땅 다 날려 보낸 뒤
그리움에 남몰래 눈물짓는다.
매섭게 부는 바람 여린 가지를 후려치고
미쳐 상처 채 아물지 못한 나뭇가지
추위에 오들오들 가련한 몸짓
오히려 연민 가득하다
자연의 섭리와 이치
그대 알 수만 있다면
오히려 찬 바람에 가슴을 열고
시원하게 웃음 지으리라
한겨울 매서운 추위 없이
어찌 아름다운 봄 있을 것이며
깊은 밤 포근한 꿈 꿀 수 있을까요
겨울 숲
임재화
눈 덮인 겨울 숲속에
우뚝 솟은 바위가 의연한데
늘 푸른 솔숲 위에도
목화솜처럼 흰 눈 덮이고
고요한 겨울 숲은 한결 더 맑다
꽁꽁 얼어있는 계곡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솔숲에 솔향이 그윽하다
이따금 한 줄기 바람 불어오면
우수수 눈꽃 가루 휘날린다.
차마 발길을 떼지 못하며
겨울 숲속에 오롯이 마음 머문다
겨울나무
임주영
벌거벗은 몸뚱이로
시내 한 폭 만에
덩그러니 넋을 잃고
갈 길을 잃어버렸다
어여쁜 친구들이
마음을 열어 다가와도
좀처럼 열리지 않고
초라함만 굳어 가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 한마디를 못 하고
추위에 떠는 몸 잡고
사계를 돌아보는 순간
환한 빛이 들어와
다시 문은 활짝 열리고
내려놓았던 간절함에
내년을 약속하는 겨울나무
겨울나무 거짓말
임주영
추워도 안 춥다고
아파도 괜찮다고
껍질만 가득 채워진
거짓말이 눈에 보인다
들키지 않으려고
꽃잎처럼 꽃향기처럼
단 내 쩌억 풍기며
짙푸른 잎이라 한다
영원하자는 것도
변치 않는다는 것도
맨몸이라도 연초록
싱그러움 보여준다
괜찮다고 거짓말하며
겨울꽃을 위로해주는
헐벗은 겨울나무는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지구촌 겨울나무
임준재
저 무심한 눈빛 뒤축이 다 닳도록
다가가지 못했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돌아다녔다지만
옛 영화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가을바람에 다시 찾아올 내일을 위하여
낙화하는 지구촌 겨울나무
청정한 하늘가에서 내 길을 찾는다
양팔 벌려 맞이하는 버릇
오늘까지 쭉 이어졌다
한솥밥 먹으며
오직 내일을 위하여
나 혼자 겨울나무를 키웠다
누구의 안중에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제 속살을 허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구르는 바퀴 자락에 깔리어 죽을지언정
푸른 창공을 맞이하려
하늘 높이 힘차게 날아올랐다
지구촌 겨울나무 아래서
임준재
영원한 비애의 낱말처럼
빨간 슬픔들이 가지에 매달려
그대여 지구촌의 북풍을 아는가
주시의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너무나 선명한 빛깔을 지녔다
저 마른 땅에 목숨을 던지고
나무는 홀로 하늘을 우러러
차가운 정적을 듣는다
구멍 뚫린 낙엽
먼먼 세월의 산비탈을 돌고 돌아
이제 겨울나무 아래서
머리 풀고 통곡을 한다
겨울나무
장미숙
마른 잎사귀
뚝. 뚝.
떼어버리고
흰 눈 속에 든다
가으내 토하지 못한 사랑
검게 멍든 가슴
어깨 누르던 위선 조각들
훌훌 벗어 던지고
하늘 물 목욕
구름으로 물기 거둔
알몸
흰눈 밟고 서 있는 나무
겨울에는
진실한 사람 만났을 때처럼
허위의 옷을 싶다
겨울 모과나무
장석남
저녁에 아이 데리러 시립 어린이집에 간다
철문 기웃이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잠시 창에 이마 바짝 대고
어떻게 놀고 있나 내부를 들여다본다 잘 뵈지 않는다
아직은 밖이 더 훤한 까닭, 그러다
잠시 돌아서서
어린 모과나무 가지들
만져 보기도 한다
맨질맨질한 살갗이 외출에서 돌아와
양말 벗으며 만지는 찬 발목
복숭아뼈께 같다
데리고 나온 아이 잠시 딴전을 피울 때
내게 오기 기다리며 다시 전지자국 아문
얇은 가지 사이 사이 올려다보면 어느새
어린 별들 돋아
모과나무에 돋은 매화 같다
가난한 집에 세든 세입자들
이런 이쁜 나무는
성욕없이 평생 만날 수 있는 여자 같다
나는 잠시 내 노년을 훔쳐보고
아이 걸리어 모과나무로 걸어 들어간다
아빠 손톱달
그래 손톱달
리키다 소나무 가지가 품고 있는
아빠 반달
그래 반달
며칠 후 이런 말도 하리라
겨울나무
장석주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흠 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끌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겨울나무
장인성
겨우내
발가벗고 춤추던 겨울나무
꽃샘바람이 와
미안하다며
우리 다시 만나요
아양을 떤다
미워도
또다시 만나야 하는
인연이라면
이별은 서러운 것
어쩌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본다
겨울나무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서 있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전서영
매서운 바람에 바들바들 떠는 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여겼습니다
한 계단만 밟고 올라섰더라면
유리벽 너머
많은 사람들이 짓고 있는 그 따뜻한 미소가
나의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오로지 한 가지밖에 모르는
미련퉁이기에
일념으로
그대 오는 발소리만 기다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기다려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혹여라도
그대 오시다 보이지 않는
나로 인하여
짧은 슬픔이라도 스치고 지나갈까 봐
차마 얼어붙은 몸일지언정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서 있어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대가 오실 때까지
겨울나무
정군수
겨울이면
나무는 혼자이어야 한다.
가지를 놓지 않던 바람도
둥지를 짓던 새들도 보내야 한다.
보내야 할 것들을 보내고
벗어야 할 것들을 벗어버리고
왜 홀로인가를 생각하는
고독한 나무이어야 한다
겨울이면
나무는 혼자가 아니다
모든 생명들이
언 땅으로 문을 닫고
아무도 없어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어
겨울이면
세상은 나무의 것이 된다
겨울나무는 눈을 먹고 산다
정군수
겨울나무에 눈이 쌓였다
지하도 음울한 울림을 타고
찬송가가 들려온다
내 주를 가까이 하기에는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라
얼어터진 손등이 낯설지 않은
늙은 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찬송가를 부른다
거지는 일요일에 쉬지도 않나
성경가방을 든 사람들은
성당으로 교회당으로
바삐 지하도를 빠져나간다
십자가 첨탑에 눈이 쌓였다
겨울나무에도
축복처럼 눈이 쌓였다
겨울나무는 눈을 먹고 산다
겨울나무의 진실
정대구
겨울나무의 진실은
남성적이다.
여자야 어디 견디겠느냐.
사내대장부인 나의 참뜻을 알려거든
설한풍에도 빳빳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아라.
일체의 장식을 떨구어 버리고
가슴팍을 가는 칼질 소리
선명하게 드러내 놓고 버티어
버티어서는 골격
겨울나무의 진실을 보아라.
절제를 보아라.
그 이상 사나이가 무슨 가식이 필요한가.
여자야, 견디겠느냐.
최소한의 표현으로
나는 너에게
살 한 점 붙지 않은
순 뼈로써 말할 뿐이다.
겨울나무의 꿈
정무현
가지는 회색 공간에 박히고
몸뚱어리는 돌처럼 굳어
주위는 박제된 표정이다
어디선가 참새 떼들이 날아들고
짹짹거리며 가지 위를 뒹군다
슬쩍 칼바람을 그으니
후두둑 잽싸게 내뺀다
잎이 무성한 시절에는
이곳에서 바람을 피했었다
떼구르르 방향 잃은 녹슨 낙엽 소리
깡통마저 튕튕거리며 제멋대로 구른다
쭈구렁한 이파리 몇 개가 팔랑댄다
앙상한 몰골로 바람의 길을 일러준다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다시 안녕하신가요.
별처럼 수많았던 이야기들
풀잎들의 속삭임처럼 도란도란
꽃들의 주고받은
별빛 같은 무지개의 아름다움들은
소소한 이야기로
마음까지 감동시키는
꽃잎들은 서둘러 회오리바람을 만들어
향기의 중심에 서고
종달새들은 이미 둥지를 만들러 갔습니다.
하얀 새알을 만들어
별처럼 빛나는 태어남의
단 하나의 감동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당신이여
이제 당신에게 드릴
단 하나 남아있는 것은
그것은 바스락거리는 가을날의 속삭임
낙엽들의 소리만을 모아서
당신의 기억 속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가을이 수레바퀴 앨범 속에 넣어서 노래를 만들고 있는 시간입니다
노을이 걸어온
가을 산 둘레마다
그리움이 걸어갈 수 있는 단풍잎의 길을 하나 만들고
별처럼 빛남 때문에
이제는 슬퍼할 수도 없는
마음 한곳에 또 다른 공허함이 있을지라도
당신의 마음처럼
아침이슬의 눈물처럼
단풍잎의 생각처럼 다시 마음을 씻어봅니다
사랑하는 당신이여
당신의 고결함처럼
가을이 다시 올 수 있으면
나의 마음을 붉게 물들일 수 있는 곳에
그렇게 별빛으로 오기를 기도해 봅니다
순수의 시대에서
꿈과 낭만과 그리고
당신을 향한 아름다움을 위해
겨울나무처럼 스스로 비울 수 있도록
배골이란 동네로 나무를 하러 간 날
정세일
오늘은 배골이란 동네로 나무를 하러 갑니다
배골은 유난히 갈대와 싸리나무가 많아서
겨울이 오면 갈대는 베어서 인삼밭을 덮는
발을 만들고
싸리나무는 베어서 겨울을 날 땔감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나무를 하러 가는 날
나는 새로 사 온 리어카를 가지고 두 짐을 하러
도시락과 간식으로 고구마를 싸서
배골이란 동네로 나무를 하러 갑니다
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
솔솔 산바람이 부는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 위는 적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대낮인데도 발자국 소리가 겁이 납니다
후닥닥 나무를 해서 지게에 둘러매지만
무거운 산속의 발걸음이 앞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갸우뚱거립니다
싸리나무들의 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나는 바람 소리에 더욱 겁이 나고 있습니다
나는 지게를 지고 발을 헛디뎌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겁이 나서 얼른 짐을 추시러 보지만
일어섬과 동시에 옆으로 다시 넘어집니다
산속에 적막함은 왜 그리도 겁이 나는지
나는 겁이 많아서 마음이 무서움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겨울나무
정연복
1
나무도 엄연히
살아 있는 목숨인데
겨울 추위가
어찌 고통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인내심으로
버티는 거지.
쌓인 폭설에
덩치가 큰 나무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걸 보면
나무라고 해서
천하무적은 아니지.
긴긴 겨울
모진 북풍한설
온 힘을 다해
눈물겹게 견디면서
새봄의 연초록 새순을
몸속에 기르는 거지
2
살아가다가
어쩌다가 한 번쯤은
겨울나무같이 몽땅
비울 줄 알아야 하리.
겉모양으로만
비우는 체할 게 아니라
안팎으로 화끈하게
비울 때가 있어야 하리.
아낌없이 남김없이
비워버린 후
지금껏 몰랐던 새것으로
채워지기를 희망해야 하리.
3
베란다 너머로 하루에도
몇 번은 눈에 띄는 겨울나무
빈가지의 벌거숭이로
죽은 듯 고요히 서 있다.
지금은 한겨울
숨죽인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이윽고 새봄 오면
연푸른 잎들 되살아오리.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지만
겨울나무의 속에서는 이 순간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
4
창문 너머 겨울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
나무 자체가 그냥
한 편의 시로 다가온다.
나 죽은 듯이 보여도
실은 시퍼렇게 살아 있다고
나 헐벗은 것 같지만
안으로는 아주 충만하다고.
몸서리치게 추운 겨울이
하염없이 길게 느껴지더라도
꽃 피는 봄날의 희망 있어
나 지금 행복하다는 말 없음의 시
5
긴긴 겨울 내내
빈 가지들뿐이기 떄문에
새봄에 새잎을 내는
겨울나무들을 바라봅니다.
아낌없이 비움으로써
새것 새 생명으로 다시 채워지는
자연의 신비한 리듬을
잠시 조용히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버려야 할 것이
참 많이 있습니다
새롭고 참사람다운 삶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6
매서운 한파 몰아쳐
세상이 꽁꽁 얼어붙고
거리의 사람들
종종걸음을 치는데도
빈 가지들뿐인
알몸의 겨울나무들
참 의연한 모습이다
꿈쩍없이 곧게 서 있다.
연초록 새순이 돋아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까지는
어차피 견뎌야 할
혹독한 시련이라면
끝내 견디리라
끝끝내 참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 하나로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겨울나무들
겨울나무 묵상
정연복
오래
정들었던
제 몸의
피붙이들
이제는
빛바랜
한 잎
또 한 잎
비우면
비울수록
하늘에
가까이 가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세요?
겨울나무 속 꽃
정연복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봄이 되어
비로소 꽃 피는 게 아니라
겨울나무 속에
꽃은 이미 들어 있다
겨울 너머 오는 봄은
겨울과 맞닿아 있고
겨울 지나 피는 꽃은
겨울나무와 연이어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목(裸木)의 온몸에는
수액이 돌아
봄의 연둣빛 이파리를
잉태하고 있을 터
겨울나무와 햇살
정연복
끝없이 이어지는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빼빼마른 겨울나무에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잔뜩 움츠려들어
꿈쩍도 않고 있었던
앙상한 빈 가지들
부스스 기지개를 편다
봄기운 머금은
좋은 햇살을 받았으니
나무는 있는 힘을 다해
연둣빛 새봄을 낳고야 말 거다
겨울나무의 기도
정연복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 우러러
드리는
작은 기도 하나.
<빈 가지의
이 몸에
파릇파릇
새잎 돋는
따뜻한
새봄까지
그냥
살아 있게
살아 있게만
하소서>
겨울나무의 노래
정연복
1
칼바람 불어와
이 몸 사정없이 때려도
울지 않으리
죽지 않으리.
이미 떨칠 것 다 떨치고
빈손의 결연함뿐인
나의 존재
나의 삶인 것을.
살을 에는 듯한 바람
온몸으로 맞으며
안으로 안으로는 새봄
새 생명을 만들어 가리.
2
복잡하게 생각할 것
하나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겨우살이를 위해
모든 것 훌훌 털어내고
지금 칼바람 앞에 결연히
서 있는 내가 아니더냐.
어느새 겨울이 깊어
나의 고통 또한 깊어 있으니
3
쓸쓸한 빈 가지
겉모습일지라도
안으로는 봄날의 희망
가득 담고 있으니
찬 바람 쌩쌩 불어와
이 몸 춥고 흔들려도
울지 않으리
울지 않으리
간절한 희망은
생명의 힘이 되어
끝내 연초록 봄은
오고야 말리니
겨울나무의 독백
정연복
오늘 밤은
바람이 몹시 차갑다
하늘의 초승달도
추위에 사르르 떨고 있다
겨울이 더욱
깊어 가는 모양이다
이 밤이 지나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따스한 햇살 한줄기도
나를 찾아오리니
마음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인내해야지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겨울 너머 오는
꿈같은 초록의 봄이
이 밤도 내 몸 속에서
몰래 자라고 있으니
겨울나무의 밤 기도
정연복
어제도 오늘도
긴긴밤
어둠 속 칼바람은
잠도 없습니다
달랑
맨몸뚱이의 나
살을 에는 추위에
눈물도 말라버렸습니다
내 가슴속 새봄의 꿈이야
간절하고도 간절하지만
오늘 밤은 다만
얼어 죽지만 않게 하소서
나목(裸木)
정연복
봄, 여름, 가을
잎새들 무성한
찬란한 세 계절에는
스치는 바람에도 뒤척이며
몸살을 앓더니
겨울의 문턱에서
그리도 빛나던 잎새들
털어내고서는
생명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너
떨칠 것 미련 없이 떨치고
이제 생명의 본질만 남아
칼바람에도 미동(微動) 없이
의연한 모습의
오 너의 거룩한 생애
나무들의 겨울나기
정연복
나무들의 겨울나기는
단순하다
본질만 꼭 필요한
알맹이만 달랑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가만히 내려놓는 것
봄부터 가을까지
세 계절 동안
알뜰히도 키웠던
자식같이 정든 이파리들
훌훌 떨쳐버리고
빈 가지로 서 있는 것
이로써 새봄의 새순을
말없이 기약하는 것이다.
나무들의
이 단출한 겨울나기는
뭔가를 끊임없이
쌓고 채우려고 안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참 많은 걸 암시해 준다
겨울나무의 자리
정윤목
휙 스쳐 아프게 한 바람을 흘겨보는지
빈 나뭇가지 앙상히 떠는 소리 허공 속
흩어질 양이면
어디서 보고 계신지 뭉게구름은 너털웃음
웃고 계신다
“삶이란 그런 것이지, 허허허”
수염 어루만지시며
모름지기 관조함에 있어
이렇듯 아파하는 고난을 비웃을 양이면
높은 허공 속에나 없을 것이지,
다시금 직립의 자세로 꼿꼿이 허리 세울 양이면
다시 투욱 가지와 기둥마저 분지르고 가는 거센 폭우는
해 무수히 거듭하여도 한결같다
오래된 나무의 몰골은 험상궂게 굽어 휘어
지상에 주저앉을 모양이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일수록 더 윙윙대며
너른 땅일수록 바람은 요동치니
겨울 나무는 사묻 긴장이 곡선마다 흐르고 있다
뿌리 깊이 박아 근원 튼튼히 세우길
바람의 결대로 힘 썼으니
나무는 바람의 역사요 숨겨진 전설이다
그의 자리는 한 자리요
평생을 살아도 그곳이니
고귀한 학의 배설이거나
어떤 조류의 배설이라도
달게 받아 묵묵히 임무 수행 중이다
지금은 겨울의 시작 즈음
이천십일년 십이월 삼일
북풍 한파가 몰아치는 밤
겨울 나무는 얼마나 무수히 떨어야 할까,
오, 고귀하구나 나의 겨울나무여,
겨울나무
정재영
청색 날염으로 펼친
종이 하늘.
찢어진 사이로 구름을 띄워
엿본 기다린 날들.
하얀 눈
초배지 삼아 도배한 들판으로 달려오는
귀향의 소리
손아귀로 펼친
뿌리로 거머쥔 대지
하늘의 구름을 짜면서
거친 피부를 축인다
겨울 숲
정종명
무겁고 칙칙했던 거죽 훌훌 벗어던지고 선 앙상한 겨울 나목에서 진한 세월의 향수가 훅 풍겨온다
주변에 겹겹이 몰려선 나목들 거친 풍파 걸어온 세련미가 선연하다
곁을 지나던 댑바람이 고개를 꺾으며 존경의 머리를 조아리며 위세에 누린듯 짚불처럼 사그라들고 초롱초롱한 새들의 화음에 묵은 해가 옅은 미소로 발을 뻗쳐 화답으로 빛난다
허접해진 늙은 옷가지에 지워진 옛길은 영화의 흔적마저 삼켜버린 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언젠가는 걸었을 산짐승도 간 곳 없고
세월에 삭은 비늘 같은 문장이 빼곡한 꺼풀에 선명히 새겨진 상형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까막눈
절규조차 사치여서 입을 열지 못한다
시린 발 윗도리 벗어 덮고 혈맥을 돌리는 뿌리들의 대화에 귀 기울여 염탐해 보지만 거룩한 생명의 신비에 주눅이 들어 끼어들 길을 찾지 못한다
나는 한바닥의 숙제를 받아 들고 겨울 숲에서 몸을 돌리니 둘러선 나목의 푸른 결의에 온몸에 식은땀이 서린다
겨울 나목
정찬열
계절이
바뀌면서
나뭇잎 석별하는 가을
대지를 덮어주며
보온으로 모정을 준다
봄부터 입은
온 대지의 은덕
보은으로 은혜를 감싸준다.
행여 내린 눈이 추울까 봐서다.
색동옷을 만들며 곱게 덮는다
오래도록
묵은 세월 돌아봐도
나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대지가 주는 물과 영양을 먹을 뿐
여름은 더울까 봐 그늘도 드리웠다
모두 떨어지고
나뭇가지마다 마른 껍질 되어
대지에 서리가 내리고 눈이 쌓이는데
내 몸을 불사르며 나목(裸木)이 된다
겨울나무
정한용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가만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중심 줄기의 무게가 있다
땅에서 나무를 지나 저 하늘까지의 거리
처음 바람이 비롯된 곳부터 불어가야 할 목적지까지의 곤고함
그 가운데서 그 깊이를 측량하며
나무는 서 있다
뿌리가 빨아들인 지난 여름의 빗방울과
대륙 쪽에서 물어온 공기의 입자들이 거기에서 만난다
만나 서로의 선물을 건네고 협상하고 새 힘을 세우며
내일 올 봄을 위하여 거대한 잎을 준비한다
중심은 깊고 무거워
겨울 찬 흙에 꽂은 발톱으로 세상이 고요하다
겨울나무
조병화
겨울나무는 종교처럼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냉랭한 대기 속에서
세찬 눈보라 속에서
오로지 곧은 이념
묵묵히
카랑카랑한 기침 소리를 내부로
내부로 숨기며, 죽이며 의연한 모습으로
겨울나무는 스스로의 종교처럼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안으로 안으로 스스로의 하늘을 넓히며
파릇 파릇 생명을 닦으며
밤에도 잠자지 않는 꿈을 품고
투명한 영원으로, 쉬임없이
겨울나무는 스스로의 종교처럼
스스로의 하늘로 솟아오른다.
겨울나무
조수옥
잿빛 언 하늘이
쩍쩍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산꼭대기에서 톱날 같은 바람이
뛰어내릴 때마다 나무는
껍질 속에서 바람의 모습을 보며
뿌리 하나로 온 산을 껴안는다
"그래, 나는 내 가슴에 겨울을 심기 위해
땅에 이파리 모두 떨구었지"
눈물 썩어 환생하는 날을 위해 날마다
수액 빚어 밑동 데피는 나무
시퍼렇게 날선 바람 앞에서도
가지 끝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것은
초록의 불씨를 틔우기 위해
눈물겨운 사랑을 치고 있기 때문이리
울창한 평화의 노래를 부리기 위해서리
맴찬 어둠이 뺨을 때리는 산비탈에서
눈을 밝혀 영차영차
산 오르는 나의 겨울나무여
너로 인해 산이 저렇게 살아 있음을
희망은 마음의 뿌리에서 솟아 나오리니
절벽인들 올라가지 못하랴
청봉(靑峰) 바라보는 네 눈빛
가지 뻗어 네 이웃들의 가슴에 귀 기울여 다오
뿌리 하나로 바위의 무게를 가늠하며
바위의 힘을 쪼갤 줄 아는
침묵의 지혜를 내게 말해 다오
한평생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네 길을 청청히 걸어가는 너는
결코, 이 결빙의 계절에도
외롭지 않으리 춥지 않으리
내 언 가슴에 고동치는 겨울나무여
겨울나무는
조순자
발가벗은 겨울나무의 시리고 아픈 고통
하얀 눈 속에서 윙윙거리며 울부짖는다
저 울음은 민족 열사들의 원한의 통곡이다
몸서리쳐지는 일제 침략기
대항할 수 없는 약소국가의 비참한 민족은
무례한 야만인들의 총 칼에 무참히 짓밟혀
해방의 날을 꿈꾸며 속절없이 억울하게 숨졌다
천인공노할 무례한 일제의 야욕에 벌벌 떨며
차마 눈 감지 못한 채 쓰러져간 민족 열사들
겨울나무처럼
혹독한 아픔으로 해방의 봄을 간절히 기도했다
빼앗긴 국토와 민족의 자유 주권이 억눌린 채
생체 실험으로, 징용으로, 위안부로 짓밟힌 절통한 아픔
그보다 더 부끄럽고 억울한 슬픔이 그 어디 또 있으랴
파란 새싹과 고운 꽃잎, 풍성한 열매를 잉태한
겨울나무는 죽어간 민족 열사들의 절개요 표상이다
모진 눈보라를 이겨내는 겨울나무는 민족 열사의 강기이다
겨울나무
주금정
누군들 용서하고 싶지 않으랴
끓어넘치던 욕망의 잎들로
무수히 흔들리다
밤 깊어 차르르 날바람에 몸 헹군 별빛과
문득 눈 마주치면
부리가 노란 저어새
너는 잘 지내는지
강남의 따뜻한 고층아파트 숲에서
아들 낳고 딸 낳고
견실한 어깻죽지로 먹이는 잘 물어 나르는지
떠남이 네 날갯짓의 이유이듯
기다림은 또
내 인동의 핑계가 될 터
정지된 생장점 부근 슬그머니 간지러워 와도
여전히 네 몫인 한 팔
차마 내릴 수는 없으리
맨살 파고드는 바람의 깊이로
비로소 나이톄 한 켜 석연히 각인되는
밤이면
누군들
용서받고 싶지 않으랴
겨울나무
주선옥
묵언에 든 수행자 같아 좋다.
온갖 소란스러움 훌훌 떨쳐내고
삭발염의한 듯 단촐한 풍경
비워서 홀가분한 자유로
모진 바람도 전신에 감아 고요히
깊은 삼매에 들었다.
소리 없이 짙어가는 어둠 같은 겨울
온갖 생명들이 생장을 쉬는 때
물고기 같이 깨어 화두만 챙긴다.
우리의 삶도 침묵으로 익어가서
훨훨 저 피안의 언덕에 이를지니라
겨울나무
차성우
나무들은 제 속살에 시간을 챙겨 넣고
겨울로 떠났다.
여름동안 발치쯤에 사는 생명들에게 드리웠던
짙고 푸른 외투를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찬란한 눈보라를 맞는다.
태양이 햇살을 접어 들고 하늘 끝으로 돌아가면
어둠은 들녘에 밤을 펼치고
겨울바람이 수런거리는데
꽃피는 날을 위하여
꽃피는 날을 위하여
겨울나무는
안으로, 안으로 거친 눈보라를 견디며
새봄, 중생들이 누릴 봄을 다듬는다
겨울이 없는 나무
차영섭
여름만 있는 나무는
무럭무럭 잘 크지요
그러나 겨울이 없었기에
줄기가 물러서 약한 바람에도
부러지고 말아요
사람도 이와 같아서
고생 없는 사람은
작은 시련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아요
어려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해요
겨울나무
차창룡
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겨울나무
최갑연
긴 시간 인내하며
모진 바람 막아내고
찬 서리도 안아주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고 좋아하며
미소로 화답하는 그대
실오라기 하나 없이
입성마저 다 주고
마음을 다 주고도
한결같은 마음을 준다
돌아오는 내년 봄엔
화사한 연초록 재켓
곱게 지어 입혀줘야지
내 마음 그대 겨울나무
겨울나무
최동일
(비록 한 발자국도 나아가진 못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오랫동안 청청(靑靑)했다)
잘못된 일들 저리 많았었나
결국은 모두 지워버리고
한결 가벼워진 언어들만이
스스로 지나온 길을 덮는다
체온은 이미
몸을 떠난 지 오래
무채색으로 서 있는 지금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잎이 머물던 자리
더욱 환하다
겨울나무
최봄샘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여자를 감싸는 햇살 밟으며
오고야 말았다
그는
그남자가 여자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낸다
흩어진 옷가지들
어지러운 초겨울 언저리에
망부석이 된 그녀
한 세월 누군가의 뜨거운 그림이었던
한 시절 누군가의 시원한 그늘이었던
이제는
다 비워진 여인
삭정이가 되어버린 가슴에도
돌아올 그님 있어
둥지 트는 북풍마저 음미하며
저리도 도도한가
겨울나무
최범영
한겨울 빈 벌판에 나를 심었더니
황소 콧김 같은 바람이 가지마다
너 닮은 그리움만 열게 하고 간다
눈과 바람과 한 몸으로 선 나
외롭지 말라고 하얗게 자라나는
시나위 가락 주렁주렁 춤추는데
눈밭 위로 까치 두 마리가
저 멀리 오는 봄 맞으러
내 눈물을 콩콩 찍으며 걸어간다
겨울나무
최상고
벌거벗은 채로
겨울로 오는 나무야
너 홀로 서서 흐느끼고
지난 그해 푸르름
자태 한껏 뽐내어
사랑의 잎새들
줄줄이도 매달더니
오늘 도대체 말이 없구나
산도 울리고
새도 울리고
강도 울리고
우리들도 울리려나
벌거벗은 모습
봄이라도 서둘러야 될 텐데
겨울 숲
최영철
잎 떨구고 빈 몸뚱이로 남은 저 숲이 비로소 온전하다
봄에서 여름까지 파릇하기만 한 죄 씻고
여름에서 가을까지 우후죽순 울창한 죄 벗고
누가 한마디 뭐라 하면 우르르 떨어져 죽을 각오로
마냥 고개 떨구고 간 늦은 가을의 업(業)
남은 죄 때마침 불어 준 눈바람에 코끝 빨갛다
찬 서리 흠씬 두들겨 맞아 일제히 고개 푹 숙이고
조금 더 뭐라 하면 우르르 달아나려고
아까부터 줄서기 기다리고 있는
색과 향을 모두 버린 수의(囚衣)의 행렬
지금 저 겨울 숲에서는
최영희
지금 아득해 보이는
저 겨울 숲속에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
마른 풀잎과 풀잎 사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사이 사이에는
수런수런
봄을 기다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아- 드디어 오늘은
눈이 온단다
하늘 이야기 가득 담긴 눈이 온단다
창밖
멀리 보이는 저 십자 탑 위에
눈이 내리면,
하얀 눈이 내리면
목이 잠긴 산새들은 마른 목을 추기고
봄을 기다리는
모든 소망의 마음에 꽃이 피겠다.
겨울나무
최진연
손끝이 오므라드는 추위를
말없이 견디고 섰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웅― 웅― 신음 소리도 내지만
세상이 뒤흔들면 흔들릴지라도
꺾이지 않는 선비처럼 서 있다.
꽃들이 허드러지게 핀
환상(幻想)의 뜰에서
무도(舞蹈)의 절정에 멈춰 선 신사.
보라, 저 침묵의 빙벽 속에
타오르는 불길
녹아 흐르는 겨울밤을.
어느 저녁에는
혼례 날의 신부처럼 오는
눈을 맞으면서
폭우와 폭염의 그 여름을
명상하기도 하지만,
맨주먹으로 홀로 서서
겨울 군단과 맞서 싸우는 용사.
봄은 그에게로
팔을 펴 들고 기다리는 품으로
어디만큼 오고 있는가.
내 정신이
한 그루 나무라면
팔짱조차 지르지 않는
겨울나무가 되리라.
내 시가 한 송이 꽃이라면
겨울나무 눈꽃으로 피어나리라.
겨울나무 얼음꽃
최해춘
세상 인연 털어버린
마른 가지에
눈 먼 바람 몰고 온
얼음 꽃송이
까칠한 어깨위에
둥지를 튼다.
칼바람 막고 서서
저 혼자도 힘겨워 헉헉 대는데
햇살에 반짝이는
얼음 꽃송이
스산한 산골짝에 축제를 연다.
시리게 담금질한
마른 몸뚱이
아픔으로 배어드는 축제에 앉아
상흔처럼 찍어가는
겨울 나이테.
햇살이 쓰다듬는
오후 한나절
눈물로 떨어지는 푸른 날의 꿈
방울방울 모두어
발끝에 묻고
아름아름 피어날 봄을 키운다
겨울나무의 독백
한천희
부엉이 울음소리에 바람이 춤추면
나뭇가지에 쌓였던 순백의 숨결이
허공을 가르며 흩어진다
세월이 흘러가며 계절이 쌓이듯
진실보다 많아지는 거짓을 숨기려
하나하나 덮은 잎세가 울창했다
먼 길 떠난 나그네의 괴나리봇짐이
고뇌와 객고로 기워져 가는 것처럼
여기저기 낡아지고 멍든 세월이
눈물에 젖어 물들어 가는 인생길
푸르름에 감추어진 혼돈의 영혼이
숨겨진 과거를 모두 벗어 버리고
계절의 정의 앞에 나신이 된다
마지막 계절이
순백의 백설로 진실을 고백할 때
벌거벗는 나목의 가지에 노을이
붉게 운다
겨울이 기쁜 나무
함동진
나는 겨울이 오면 기쁜 나무입니다
봄은 어찌 지났는지 기억에 없고
풋것으로 어릴 적 내내
산새가 비웃고 산짐승이 얕보고
내 엄마조차 가지와 잎으로
좁쌀 자욱한 나를 가리고
바깥세상 가리워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었습니다
가을 동안 단풍든 나무들
뽐내며 으쓱대던 산비탈에서
나는 외로웠습니다
삭풍이 훑고 지나간 겨울
낙엽 떨궈 볼품없는 앙상한 숲에
흰 눈이 사락사락 나리는 날에는
산은 새하얀 도화지
나와 친구들은 빨간 부채춤을 추는
수채화가 됩니다
비로소 산새와 산짐승들이
우러러보는 빨간 숲
나는 겨울이 오면 기쁜 팥배나무입니다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허광빈
억겁의 세월 서로를 위로하며
바라본 눈길로
자신의 몸 내던져
질곡의 세월 막고 서서
마른 피부 말리는 갈잎
관절의 뼈마디 신음이 깊다
그렇게 살아 온 나모들도
그렇게 살아 온 사람들도
몸을 곧추세워 살가운데
혼자는 외로워 하나의 사랑 연리지(連理枝)
아픔은
고통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외로움은
함께하면 의지하여 즐거웁고
그리우면
온몸으로 따스한 인정 나누고
슬플 때면
머언길 돌아와 보듬어 주며
고독한 자유 속에
북풍한설 우로 받아 아픈 가슴으로
그 자리에 선 나모처럼
귓전에 칼 바람소리
황혼의 붉은 빛 토하며
즐거운 시간 속 길고기인 여정
함께 하리라고 약속 전하듯
홀갑게 벗어 던진 빈 몸
무념(無念)의 눈빛을 보낸다
진솔한 마음으로 겨을 나무를 바라보며
가을 나무의 해산
허용회
피붙이 다 출가시키고
혼자서 뒷산을 지켜내던 여인네가
솜이불 몇 번 덮더니만
덜컥, 애가 들어섰다
뗄까 말까 망설임도 없이
잘 키우겠다던 산모였는데
웬걸, 자궁외 임신이 되었다
일란성 쌍둥이들은
산모의 팔과 손에 터를 잡더니
헛발질하며 바람과 잘도 논다
파릇파릇...
초록초록...
울긋불긋...
새벽부터
찬 이슬로 몸을 불리던 산모는
먼동이 트자 산통을 시작했다
산모가 미주알 빠지도록 힘을 주고
태아도 덩달아 힘을 쓰니
태아의 온몸이 알록달록해졌다
헉, 난산이다
새벽부터 삐댔는 데도
탯줄을 끊어야 할 태아들은 보름 남짓 남아 있다
겨울나무
허욱도
아침 해가 초록을 안고 나옵니다
새싹 돋아나는 가지를 비추어 줍니다
햇살을 몸속에 고이 묻어둡니다
웃는 모습 아주 좋아 가슴에 품습니다
아침 해가 붉게 물들어 나옵니다
낙엽도 불타듯 붉게 물들어 갑니다
찬 서리 내리니 가슴에 품은 마음
앙상하게 가지만 보입니다.
이젠 사랑 대신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빗물처럼 흐르고 있더이다
겨울나무
허호석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은 생각이 깊어진다
생각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은 시를 쓴다
지웠다 하면서 빈 나뭇가지에
어찌 쓸쓸한 하늘을 걸어놓는가
잊었다 하면서 주소도 없는 허공에
어찌 옛 생각이 물든 시를 띄우는가
모두가 떠나간 빈 뜰에
수북수북 쌓아놓는 쓸쓸한 시
보내고 남는 마음 어쩌라고
억새꽃 산모퉁이에 빈 하늘을 걸어놓는가
겨울나무를 보며
현혜숙
겨울나무가 하늘에 서 있다
진눈깨비 오는 저녁 귀갓길에
생선 가시처럼 가슴 깊이 손을 내어
휘청거리는 바람을 흔들고 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안았는지
꼭 다문 시간을 둘둘 말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을 구분하려고
흩뿌리는 눈꽃으로 살 발라가며
하얗게 바람을 말리고 있는지 모른다
눈발은 서로 부둥켜안기도 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날들을 모아
자신을 녹여 스스로 버릴 줄 안다
어쩌면 하늘은 아무런 흔들림 없이
지상의 파닥거리는 상처를 덮어가는데
세상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눈 부릅뜨고 떨고 있는 잔가지들
뼛속 깊숙이 흘렀던 울음 같은 진액
서늘한 그늘에 묻어 둔 것을 기억한다
온몸이 가시다, 얼음 꽃이 핀다
죽지 않을 만큼 얼어 간다 해도
견딘다는 것은 속살에 금을 내는 게야
그래, 더는 결빙이라 하지 않는다
어느 목숨 환하게 풀려나가듯
소리 없는 겨울 강
안으로 뜨겁게 흐르는 게다
겨울 소나무
현혜숙
마지막 계절이 가기 전 물오름처럼
온몸 이끼 돋아나 있다
숨겨진 호흡의 잔재
금방이라도 찬 기운에 무너져 버릴
가슴 한 켠 자리 잡은 기억들
숨죽이는 연습의 배추 고갱이처럼
천천히 얼며 얼마나 더 선명해야 하는가
아직까지는 하늘하늘 지탱해주는
작은 바람에 위태로운 가지들
애써 눈빛 끌어 올리고
허연 살점 뜯길 듯 파리한 하늘
외마디 내 지르는 비명에
아프게 몸을 뒤척인다
와락 달려드는 현기증인가
알몸으로 남은
끝나지 않은 시간 밖의 시간
고대 문자의 등뼈처럼
안으로 울리는 소리조차
둥글게 말아가며
땅끝으로 곧게 숨을 내뱉는다
제각기 따로 가는 겨울
산울림 같은 길, 마디마다
투명하게 새겨진다
겨울나무
홍경훈
저 나무, 푸르게 푸르게
한 시절 싱그러움을 더하며
뭇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주더니
가을을 보내고 한겨울을 맞으면서
깊은 명상에 잠겼나
아니, 참선하는 마음인가
단 하나의 너울도 모두 벗어 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어 미동도 없구나
이따금 심술 궂은 바람이 몰려와
흔들어 놓고 가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강추위도
아랑곳않고, 오직, 다시 올
봄만을 기다리는 네 마음
애처럽기만 하다
어디, 아픔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만
일관된 네 마음은 봄이 오면
다시 또 부푼 꿈에 젖어 들겠지
힘차게 희망차게 하늘 향한
푸른 나래를 활짝 펼쳐 가거라
겨울나무
홍금자
그날
허전한 하늘 너머로
드러난 도시의 아픈 상흔은
어둠을 타고
흐르는 겨울밤.
떨리며, 흐느끼는
빗물처럼
추락하는 절망
눈발 맞으며
너 위해
잔을 든다.
오가는
시간과 공간 사이로
돌아오지 않는
나를 부르며
비늘켜 두꺼운
고목 사이로
외로운 그림자만 남는다
겨울나무
홍문표
겨울나무는
외로운 바람이다.
일 년 내내 들녘을 헤매던
갈망의 손짓들이
앙상한 가지 끝에 매달려
잉잉 울어대는 바람이다.
겨울나무는
하얀 눈밭에 버틴 초병이다.
동구 밖 길가에 열병을 하고
밀물처럼 밀려오는 겨울밤의 고독을 지켜주는
용감한 초병이다.
겨울나무는
잠자는 나비의 꿈이다.
무성하던 잎새들의 기억에
온몸을 온몸을 떨며
소로륵 눈이 내리는 밤이면
한 마리 노오란 나비가 되어
초록의 하늘을 난다.
겨울나무는
봄이 오는 골목이다.
눈 덮인 지하에 뿌리를 내리고
진달래 꽃길을 마련하는
분주한 길목이다
겨울나무
홍수희
1
하릴없이 눈 내리는 이 벌판에
나 이대로 서 있겠네
고독이 그대로 사랑이 되기까지
어둠이 그대로 별이 되기까지
침묵이 그대로 노래가 되기까지
수천의 고독과
수천의 어둠과
수천의 기나긴 침묵이 모여
그리운 그대의 얼굴이 되기까지
나 여기
있었고 있었던 그대로 서 있겠네
2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잎 떨어진 자유입니다
가지만 앙상히 마르고 마른
추운 바람 씽씽 기다리는
겨울나무입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자 없습니다
행복의 수치를 강요하는 자 없습니다
그런대로 나는 꺼릴 것 없는
하늘 아래 정직한 평화입니다
이 산에 해가 지면
이 산에 다시 해가 뜨기를
조용히 갈망하는 자유입니다
이 기나긴 헐벗음의 끝,
금빛으로 화사한 웃음을 웃는
저 기약의 찬란한 봄을
오로지 맨몸으로 기다려 섰는
그렇지요,
나는 끝도 없이 인내로운 침묵입니다
겨울나무 스케치
홍수희
구부렸던 손가락을
하나 하나
펴보니 나무가 된다
휘감았던 두 팔을
느슨히
놓아주니 나무가 된다
저절로 무성했던
잎새, 가거라
보내니 나무가 된다
그 또한 겨울나무가 된다
더 이상은 바랄 것 없네
가난은 이리도 자유로워라
겨울나무의 시
홍수희
내게는
최소한의 수분만 남겨놓습니다
흰 눈이 내 어깨에 쌓이고 쌓여
당신 없는 어둠 하얗게 견디도록
따스한 위로의 한 말씀 안 주셔도
침묵 속의 기약을 읽을 수 있도록
사랑은 채워지지 않는 술잔처럼
늘 목마르고 무작정 슬픈 일이었지만
겨울이 깊으면 깊을수록
내 것으로 내가 얼어붙지 않기 위하여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뿌리 아래 조용히 흘러보냅니다
이제 내가 당신의 빈 잔을 채워드릴
차례입니다
겨울 숲에서
홍수희
나무가 자꾸 걸어 나온다
잎 떨어진 나신(裸身)으로 부끄럼 없이
겨울의 복판으로 걸어 나온다
자갈 많은 산길 위에 버티고 선 건
어릴 적 내가 그린
판화(版畵) 속의 무채색 그리움 하나
길은 그대 앞에 있던 것인데
어느새 그 길은 내 앞에 있다
뚫어지게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흐려지는 시야,
길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
실눈을 뜨고 바라볼 때만
내 앞으로 다가오는 그런 것인지
꿈꾸는 꽃병처럼,
어느 외로운 운석(隕石)에 새긴
내 유년의 그리움을 해독할 때에
겨울 숲을 아시나요
홍수희
잎 지고 새 떠나간 겨울 숲에는
외로움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남아 윙윙 부는
바람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인기척에 놀라 툭,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삭정이만 사는 것도 아니지요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어 꽃씨가 산답니다
파릇파릇 새순이 산답니다
부끄럽게 웃고 있는
꽃무리도 숨어 살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숨어 살지요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는 말아요
희망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니까요
겨울 숲에는 두근두근
설레는 봄날이 숨어 살아요
겨울 숲은 따뜻하다
홍영철
겨울 숲은 뜻밖에도 따뜻하다
검은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말없이 늘어서 있고
쉬지 않고 떠들며 부서지던 물들은 얼어붙어 있다
깨어지다가 멈춘 돌멩이
썩어지다가 멈춘 낙엽이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시간을 붙들어놓고 있다
지금 세상은 불빛 아래에서도 낡아가리라
발이 시리거든 겨울 숲으로 가라
흐르다가 문득 정지하고 싶은 그때
겨울나무
홍윤숙
떨어버리는가
마지막 한 잎을
한 잎의 아픈 미련(未練)까지를
무지(無知)와
수치로
물들었던 여름
상(傷)한 여름의 기억들을
병든 사랑의 환부(患部)를
나무여
그리도 찬란히 베어내는가
은빛 바람의 칼로 베어내는가
네가 말하는 혼신(渾身)의 말
땅 위의 윤리(倫理)를
아름다운 상실을
나무여
내가 배운다
겨울이 되어
겨울의 견고한 나목(裸木)이 되어
다시 우러르는 하늘
그 끝없이 빈 충만(充滿)의 그릇
차고 투명한 유리의 지혜
네가 꾸미는
이리도 고독한 희열(喜悅)의 잔치에
내가 섰노라
겨울나무여
겨울 숲에서 듣다
황경숙
바위에도 귀가 생기는 마른 덤불 속에서
바스락,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겨울에 눈(眼)이 귀를 닮아가는 병에 걸린 나는
새 소리에 걸림이 없다
하늘과 땅 경계 가까이에서 웃는 듯 우는 새가 된다
나무처럼 봄에 산란했던 어린 새
부리로 물어온 마른 연못을 풀숲에 떨어뜨릴 때
끝이 먼 긴 문장의 행간처럼
음표 사이에 숨어 있던 오랜 쉼표처럼
지나갈 것은 잘 지나가도록 비어 있는
겨울 숲은 허공의 집
갓 돋아난 무덤 속이 그럴까
먼 곳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부리 모양이 다른 새
겨울의 감정을 모자이크한다
되짚어 돌아 나오는 그 숲에서
마음만 출렁이던 유배의 비망록을 지우고
바람과 바람 사이 침묵으로 몸을 씻는다
아직 아픈 하나가 된 눈과 귀
들려도 보이지 않는 봄으로 옮아간다
겨울나무
황금찬
1
다 버리고
네 앞에 섰다
겨울나무
지금 너처럼
여기가 바로 내가 서야 할
그 땅인가 부다
겨울나무
2
눈을 감고
서 있었다.
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다 같은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겨울 나무
바람이 눈보라를 몰고
지나갔다.
산울림 산울림도
울려갔다.
손수건, 손수건들이
수없이 수없이
내려와선
깔리고 있었다.
눈떠라
그리고 말하라.
겨울 나무
이젠 살겠노라
겨울이 가고
봄 동산
잎이 무성하듯이
꽃도 피우겠노라.
메아리
메아리처럼
말하렴아
겨울나무
3
겨울나무는
하나의 소슬한
종교처럼
내 앞에 서 있다.
4
말하려나
참고 견디어온
긴 세월
보석으로 닦은
그 한마디의 말.
한 줌
자랑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오늘 이 남루한 지대에서
주저할 것이 없으리
노을이 걷히듯
끝나기 전
한가락 머리카락에 새겨둘
슬픈 피리 소리
시대의 겨울나무여.
말하려나
이젠 말하려나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