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7. 9. 13:38

강사랑 여름비야

고영민 여름비 한단

고은영 그리운 여름비에 젖다

공석진 여름비

김경림 비 오는 날 풍경

김경배 여우비

김경희 여름비

김경희 여름비 사랑

김나현 이별 비

김노연 당신의 여름에 소낙비 되어

김대식 야속한 비

김덕성 계곡물에 쓴 시

김덕성 사랑의 여름비

김덕성 여름비

김덕성 여름비 내리는 아침

김덕성 여름비 내리던 날

김덕성 여름비 내린 아침

김덕성 여름비는 사랑

김덕성 여름비 사랑

김덕성 - 여름비 소고(小考)

김덕성 여름비 오는 날

김덕성 여름비의 사랑

김덕성 여름비의 서정

김덕성 여름비의 순정

김설하 여름비

김억

김정남 꽃잎 젖은 여름비

김철현 여름비 같은 너

나명욱 여름비

남정림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류시호 여름비 오는 날

문귀숙 여름비

문혜진 여름비

미나 여름 소낙비

민미경 여름비

박광호 초여름의 단비

박미리 그 여름의 비

박소향 여름비

박영근 여름비

박이화 여름비

박인걸 늦여름 비

박인걸 여름비

박인걸 여름비 오는 저녁

박인걸 초여름 비

백설부 여름비

서지월 여름비

송정숙 여름비

신경희 여름날의 비

신주연 초여름날의 비

양광모 여름비

오석주 여름비

오순화 여름비

용혜원 - 여름날 갑자기 내린 소낙비

용혜원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윤갑수 무더위를 식혀주는 자드락 비

윤무중 여름비를 맞으며

윤무중 - 여름비와 함께

이대형 여름비

이민숙 한 여름밤의 비

이상혜 여름비

이성선 여름비

이원문 여름비

이은경 여름 빗소리

이응윤 이 여름비 속에서

이재무 비의 냄새 끝에는

이재무 여름비

이해인 비오는 날의 일기

이호영 여름비

장수남 초여름 비

전선희 여름비

정민기 비 오는 여름날

정상만 여름비

정세일 여름비

정일근 - 여름비

조서연 여름비

조서연 여름비 내리네

조재명 여름비

조향순 여름비

최갑연 - 여름비

최승호 여우비

홍윤표 사랑 길에 내리는 비

 

 

 

여름비야

강사랑

 

산에 온통 메아리가 되도록

당신의 이름을

목청껏 부릅니다

 

초록 빛깔로 온 대지를 물들이며

환희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여름날 떨려오는 소리로 부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곱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줄

당신을 나는 부릅니다

 

더위에 지친 여름날에

목마르던 꽃잎도 나뭇잎도

여름비에 덩달아 웃고 있습니다

 

주룩주룩 여름비는 더워야 오고

몽글몽글 내 사랑은 너여야만 옵니다

 

 

 

여름비 한 단

고영민

 

마루에 앉아 여름비를 본다

 

발밑이 하얀

뿌리 끝이 하얀

대파 같은 여름비

 

빗속에 들어

초록의 빗줄기를 씻어 묶는다

 

대파 한 단

열무 한 단

부추, 시금치 한 단 같은

 

그리움 한 단

 

그저 어림잡아 묶어놓은

내 손 한 묶음의

크기

 

 

 

그리움 여름비에 젖다

고은영

 

빗물 머금은 여름

싱싱한 초록의 길섶에 서다

고향 어귀

새파란 청춘을 연주하던 소년이

빗줄기를 타고 와 낮고 맑은 음률로

여름을 연주하고 있다

허공엔 무력한 시간을 지나온

내 발자국이 무수한데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다

기다림은 욕망을 키우지 않았어도

늘 기대를 저버린 빈손이 멍하고

순장된 사랑의 조각들이 그립기만 하다

여전히 더운 열기를 식히는 비가 내린다

빛바랜 풍경으로 나는 그저 비에 젖는다

 

 

 

여름비

공석진

 

하늘도 지쳤네

잔뜩 찌푸린 인상

후끈한 입김

 

툭툭 털어내던

땀방울을

줄줄 흘리고 있네

 

덕분에

대지를 식혀

체온을 떨어뜨리네

 

 

 

비 오는 날 풍경

김경림

 

고대하던 여름비가

내리고 있어요

우산을 써도 좋고

맞아도 좋은 날

 

푸른 숲으로

들어가네요

방울새 소리인가

여기저기 새소리가

반기고 있어요

 

연꽃이 돌다리 사이로

피어 빗방울에 살아나요

 

여름비는 우울하다지만

오늘 내리는 비는

가슴까지 시원해져요

 

만나서 반갑고

우산을 나란히 펴놓고

의자에 앉아

이야기 꽃피우면

금방 젊어져요

 

기차로 떠날 때까지

계속 내리는 여름비

오고 가는 손 가득

마음 안겨 기차는 떠나요

퐁퐁 볼우물 패는 비 따라?

 

 

 

여우비

김경배

 

우리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맺었으면 좋았을 터.

 

너 였다면

당신이었다면

마른하늘 천둥소리도

편히 들어주다 울기라도 하련만

우리는

가슴 조이는 한 사람만

놀라 자지러진단다.

인연이 아니라

못 맺을 연분이어서

하늘마저 시샘한다 하겠기에

마른 비가 오면

헤어져 돌아서야 하겠지.

 

너이었기에

아니, 나이었기에

우리 그렇게 어이없이

한 여름 여우비 맞은 체

숱한 만남을

짧은 이별로 감추어야 했구나

 

 

 

여름비

김경희

 

1

비 맞고 걸어 본 적이 없다

 

마음껏

맞아 보고 싶기도 해

 

학교 정문 앞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

추적추적 비 맞고

서럽게

 

비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울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

이 빗소리가 잠을

깨운다

 

조용히

비가 내리네

 

 

2

소녀가 된다

꿈을 꾸는 파도 속으로

 

얼굴이 떠오른다

천사 날개가 있다

 

혼을 쏙 빼고 가거든

물빛 사랑이 간다

 

 

 

여름비 사랑

김경희

 

그러겠지만

상념이 젖은 새벽이 오고서야 은밀한

빗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빗소리가 들리는 까마귀 소리에 귀를

젖히고 있는 시간

가시지 않는 어둠의 본성이 순수하기

그지없다

 

해갈의

목마른 하루 해가 뜨길 바라면

소리 없는 이야길 담아보는

사랑 그 무엇

 

 

 

이별 비

김나현

 

그토록 뜨거워 만질 수 없어

가거라 떠나라 미워했던 여름

서러움 아쉬움에 사흘 밤낮

눈물범벅 되어 하염없이

주룩주룩 토해낸다

 

네 섧은 눈물에

남은 온기 냉수마찰 한 듯

싸늘히 식어가고

온통 천지를 들썩이던

매미 소리 숨어 울다 스러진다

 

여름아

오색 찬란한 가을도

황금 물결 풍요함도

네가 있어 맞이하고

네가 땀 흘려 수고함을

잊지 않으련다

 

이제 흔적일랑

깨끗이 지우고 떠나는

네 자리 네 뒷모습에

이별비보다 슬픈

세월의 강만 속절없이 흐른다

 

 

 

당신의 여름에 소낙비가 되어

김노연

 

무던히도 이슬을, 실개천을, 강을, 바다를

재촉했습니다

아낌없이 머금은 나는

출렁출렁 파도가 되었다가

썰물처럼 우르르 되돌아가는

망망한 그리움이 됩니다

이제는 손수건을 흔드는 이별의 항해는 그만두렵니다

녹엽 짙은 숲길 당신의 호흡 속에 살았던 바람이던 시절도 잊으렵니다

산들한 그늘도 없이

폭염의 가운데에 서서 뉘를 찾나요

송골송골한 당신의 눈물을

제 두 손으로 닦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이어도 좋다고

당신의 여름의 소낙비가 되어

한 가닥의 그리움까지도 모두 가지고 가렵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쏜살같이 잊혀지렵니다

못난 욕심에 놓지 못한 것이

큰 죄가 되었습니다

놓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웃음 짓고 떠날 수 있으니

무지개 그득한 기쁨을 내려 주시라

청할까 봅니다

 

 

 

야속한 비

김대식

 

장마라고 하는데

비는 쬐끔 내리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논밭이 다 타들어 가도

비는 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여름이 올 때까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니

뒤늦은 장마에

어떤 곳은 물벼락으로 큰 수해를 내고

어떤 곳은 비가 안 와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 비도 불공정하게 얄밉게 온다

 

세상 어디 공정한 것이 있으랴만

비조차도 야속하게 심술을 부린다.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가는 물이

겸손한 줄 알았는데

때로는 흙탕물로 마구

뒤죽박죽 약한 곳만 파괴하고 간다

 

가뭄 피해로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식수조차 고갈된 곳엔

비는 내리지도 않으면서

 

 

 

계곡물에 쓴 시

김덕성

 

여름날 아침

계곡물이 흐르는 냇가를 걷는다

 

가뭄으로 말랐던 냇물

장맛비로 제법 넘쳐흘러 가고

 

가는 길을 멈추고

냇물에 발을 담구니

너무 좋구나

 

더위를 식히고 나니

별천지에 온 듯

내 영혼도 맑게 씻어 주네

 

더위에 떠오르지 않던 시상

절로 떠오르니

 

가진 것 없으니 어쩌랴

난 냇물에 멋진

시를 쓰네

 

 

 

사랑의 여름비

김덕성

 

지나가는 비처럼

부슬부슬 내리는 나약한 비지만

초여름 날 촉촉하게 적시며

생명 비처럼 내린다

 

초록빛 물감을 뿌린 듯

나뭇가지 너무 좋아 환성을 찌르고

산야가 산뜻한 생동감 주니

이 아름다움은 무엇에 비길꼬

 

꽃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예쁘게 적시며 생명의 약진을 보이고

비 한 방울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축복처럼 사랑이 내린다

 

메마른 영혼 촉촉하게 적시며

사랑 비는 고즈넉하게 내리는데 마침

그녀의 사랑의 노래가 들려오는

6월 희망의 아침이어라

 

 

 

여름비

김덕성

 

1

어젯밤

누구의 눈물인 양 내린 여름비로

세상이 변했네

 

대지 위에 쌓였던 미세먼지

티 없이 수정처럼 말끔히 씻어 내니

오늘 아침 오랜만에

청명한 하늘을 본다

 

뿌옇던 앞산이 선명하게 보이고

초록 잎이 맑게 웃음 짓고

맑은 공기로 숨을 쉴 수 있으니

너무 좋아

시로 노래하고 싶구나

 

여름비가 축복이로다

얼마나 좋은가

함께 노래하세

이 아침에

 

 

2

오랜 기다림

추적거리며 비가 내린다

그만 지쳐 원망만 낳았는데

여름비가 내린다

 

보라 벌써

이 땅에 쌓였던 찌꺼기까지

말끔히 씻겨 흘러가고

들녘엔 과일들이

사랑으로 영글어가고 있구나

 

메마른 땅에도

목말라 헤매는 영혼에도

지금 정의로움으로

일어나고 변화의 물결

 

이 땅에

사랑의 생명수 되어

꿈을 실고

환희의 여름비가

촉촉이 내려 적신다

 

 

 

여름비 내리는 아침

김덕성

 

내려 붓는 태양열

불덩어리로 이글이글 끓고 있는 대지

건물이 녹아 휘청거리는 거리

 

비가 내린다

대지도 물을 마시며

가슴에 불을 끄더니 대지가 빛난다

 

빗물로 씻어 내고

크게 숨을 쉬는 초록 이파리들

생명이 약동하는 아침

 

더위에 찌든 사람들 이제 살았구나

여름비에 흠뻑 젖는다

이 맛에 사는가 보다

 

 

 

여름비 내리던 날

김덕성

 

열풍을 깔아 앉히고

잠결인 듯 소곤거리며 내리는 비

고향에서 온 숨결인 듯

 

아무 말도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빗방울 수만큼 사랑이 많던 시절이

가물가물 떠 오른다

 

누구는 비를

눈물이라고 말을 했지만

팔월 접는 날 내리는 빗방울은

사랑의 연결고리가 아닐까

 

아쉬운 듯 비가 내린다

손바닥에 내린 빗방울 하나하나가

따르르 그르며 속삭이듯 전하는

고향에서 온 메시지 아닌가

고향이 그립다

 

 

 

여름비 내린 아침

김덕성

 

간밤에 비가 내렸다

양이 적지만 새소리 가득한 아침

걸음마다 가볍고 상쾌한 마음

들꽃의 미소가 싱그럽다

 

세상을 말끔히 씻어

목마름에 신음하던 누렇던 초록 잎

찬란하게 물들이는 환한 초록빛

메말랐던 영혼도 씻었다

 

먼지 없는 맑은 하늘

하늬바람 스쳐가는 맑은 소리도

힘차게 활력 넣어주는 공기도

찬양하는 비 내린 아침

 

오랜 가뭄에 내린 여름비

맑게 마음까지 씻은 듯 행복한 아침

행복은 사소한 것으로 오는 것

이 비로 우리 행복해졌으면

 

 

 

여름비는 사랑

김덕성

 

어제는 열대야로

잠마저 빼서가 밤샘하고

폭염 특보에다

불덩이로 달궈 놓은 대지

 

숨도 쉬기 어려운 열기

몸에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맥이 빠져 흔들거린다

 

힘내기를 하는 태양

더위에 짜증 내며

불만을 토로(吐露)하는데

비가 내린다

 

여름비는

사랑을 실고 오나 보다

곧 풍요로운 가을이 오겠네

감사하며 살련다

 

 

 

여름비 사랑

김덕성

 

1

폭염은 간 곳 없고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리고 나니

만상이 행복해진다

 

나무도 풀도 꽃도 벌레도

사람들 모두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시들하던 길섶의 잔디도

빗방울로 되살아난다

 

신나는 아침

무리 지어 나르며 노래하는 새들

씽씽한 초록빛으로 생기 돌아

활기찬 아침이 열리고

 

시들하던 잡풀도

신의 사랑의 축복인 듯

비 한 방울로 기적이 일어나는

환희의 칠월 아침

 

 

2

하늘 열리며

촉촉이 적시며 내리는 여름비

순정을 안고 내립니다

 

그 순정은

손바닥 위에 내리면 댕글댕글 그르며

가슴에 수미는

그런 고운 사랑이었습니다.

 

영롱한 이슬처럼

초롱초롱 반짝이며

다가오는

그런 고귀한 사랑이었습니다.

 

여름비가 내리는 날

슬며시

가슴에 찾아드는

그리운 사랑

 

난 그 곱고

고귀한 사랑

그런

사랑에 흠뻑 젖어 듭니다

 

 

 

여름비 소고(小考)

김덕성

 

칠월의 더위로

이글이글 끓고 있는 거리

오늘은 보슬비 내린다

 

태풍은 지나가고 그 여파로

어떤 곳에는 비로 물난리가 나고

어떤 곳은 마른장마와 가뭄으로

호수가 말라가고 있다

 

비가 공평성을 잃어

좁은 땅에 너무 편차가 심해

가뭄 대지에 보슬비로 내리다니

비 내리기 싫은가 보다

 

보슬비라도 고마운지

잎사귀 입가엔 미소가 가득한데

여름비든지 장맛비든지

넉넉히 골고루 내렸으면 좋으련만

 

 

 

여름비 오는 날

김덕성

 

햇살에

축 누러진 초록 잎

내가 우습잖니

 

오늘 너를 만나

말끔히 세수한 나

 

내 초록색

얼굴이 빛난다

천사처럼

 

이제 생기가 얻어

나임을

자랑할 수 있으니

 

모두

너 때문이야

고마워

 

 

 

여름비의 사랑

김덕성

 

여름비가

시원스럽게 내린다

그렇지 네가 안간힘을 다해도

내겐 별수 없을 거야 하며

여름비는 더위에게 대항하며

민의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기세 당당하게 쏟아지는 여름비

으르렁대는 위험이 대단하다

더위에 지친 나뭇잎을

사랑으로 촉촉하게 적시니

수그러졌던 잎 빳빳이 펴지며

신기하게 되살아난다

금세 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듯

세상 초록 세상이 되고

더위는 고개 숙인다

사랑으로 내려 주는 여름비인데

더위인들 당하랴

 

 

 

여름비의 서정

김덕성

 

여름비가 내린다

아직 봄비를 벗어나지 못해서인가

부슬부슬 감정을 돋우며 내린다

 

투명한 눈물인 양

고귀한 생명체로 내려오는 생명수

한 방울로 생명의 활력을 주며

대기오염을 말끔히 씻는다

 

폭염으로 추욱 느려진 나무들

사랑 비라 이리 좋을 수가 없나 보다

하늘하늘 춤추며 웃는 초록 웃음

맑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숙명의 길에 선 내 마음엔

비에 젖으며 떠오르는 그리움

영원히 삶 속에 묻혀 버릴 이루지 못한

그녀와의 애틋한 사랑

여름비가 맺어 주려는가

 

 

 

여름비의 순정

김덕성

 

여름비답잖게 잔잔히 사랑을

싣고 오는 날

괜스레 창문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는 나

 

더위에 지치고

숨쉬기조차 어려운 찜통더위

시원하게 식혀주며 오는

사랑의 여름비

그녀의 사랑을 실고 내린다

 

여름비는 사랑을 실고 오나보다

 

사랑을 찾으며 꿈꾸던 시절

이루지 못한 그 사랑

함께 사랑을 나누며 거니는데

사랑비가 내린다

잔잔히

 

 

 

여름비

김설하

 

머그잔 가득 뽑은 묽은 커피가 쿨렁대도록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내리자

투명 유리문을 메우고 허물며

빼곡하게 호러(horror)체를 쓰는 비의 낱말들

섬유 린스 냄새 폴폴 풍기는 커튼이 탐났을까

새로 장만한 인견 이불에 제멋대로 뒹굴고 싶은 걸까

낡은 벽지에 낙서라도 해볼 심산일까

그윽한 커피 향이 집안을 감돌고

창가에 기대어 비의 언어와 조율하는 한나절

필사적으로 담벼락을 기어오르던

담쟁이 푸른 잎맥이 부르르 떨자

조롱조롱 달렸던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져서

물 비늘 일으키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길

봉숭아꽃 몇 잎도 동동 떠간다

우산 없이 뛰어가는 아이의 종아리가 찰방대고

제 발보다 큰 슬리퍼가 첨벙대는 골목

종일토록 비의 수다는 끊일 줄 모르고

정강이 당기도록 서성이며 엿듣는 하루

 

 

 

김억

 

포구십리(浦口十里)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 한나절을

모래알만 올려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漁泳島)라 갈매기 떼도

지차귀가 촉촉히 젖어

너훌너훌 날아를 들고

 

자취 없는 물길 삼백 리

배를 타면 어데를 가노

남포(南浦) 사공 이내 낭군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꽃잎 젖은 여름비

김정남

 

사나운 초여름 비가

질투심을 허리에 동이고

밤새 그치지 않는

세찬비로 땅에 떨어지고 있다

 

봄꽃을 모두 쓸어가려고

빗물 되어 땅에 누웠다

집 앞에 선 사과꽃이

불안하듯 젖은 눈으로

내 눈과 마주쳤다

 

꽃잎마다 예쁜 꽃

모두 떨어뜨리고 나면

무성해져 버린 나무들의

예민한 헛기침 소리는

비 섞인 나뭇잎들의 반짝임에

햇빛마저 무지개 뒤로 고개를 숨긴다

 

 

 

여름비 같은 너

김철현

 

지나치는 길손처럼 사랑도 그리움도 없이

얇은 옷깃 적시고 해 비칠 새라

짧은 꼬리 거두며 달아나는 여름비 같은 너

 

적셔진 마음만 애꿎은 애달픔에

뒤척여 잠 못 이루지만 갈라진 대지 위로

숨어들듯 사라지는 너는 언제나 여름비

 

쉽게 왔다가 제 멋대로 사라지는

변덕스러운 너이지만 내 몸속에 들어와 앉아

떠나지 않는 익숙한 냄새가 아직도 너는 여름비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남은 열정 쏟아붓더니

수 리도 못 가서 돌아설 것을 다 말리우지도 못한 몸을

재차 눈물로 얼룩지게 하는 너는 여전한 여름비

 

 

 

여름비

나명욱

 

이제 5월에 접어드니

폭풍처럼 여름비가 쏟아지네

 

창 너머 하얗게 내리는 빗속을 거닐며 걷던

그날이 언제였나

 

라일락 연보라 꽃 피는 계절

비 내리는 날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오락가락

 

가슴까지 때리는 저 여름비

곧 장마가 올지도 모를 천둥 소리처럼 요란하다

 

 

 

빗방울이 두드리고 싶은 것

남정림

 

빗방울은

꽃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싶어

구름의 절벽에서 떨어져

지구까지 달음박질한다

 

빗방울은

어두운 대기에 둥근 희망의

사선을 그으며

투명하게 다가선다

 

빗방울이

무지개 우산 두드리면

 

빗 망울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린다

 

꽃의 가슴으로 달려가

기어이 안기고 만다

 

 

 

여름비 오는 날

류시호

 

공룡이 살았다는

전설의 땅 고성

아담한 정원이 있는

2층 테라스 창가에

초록색 비가 내린다.

 

처마에선 또 다른 세상의 빗소리가

타닥타닥 고향을 찾아 들어온다

고향 상념의 그리움이

빗방울로 모여오는 발걸음 소리

 

진한 커피 한 잔을 내려

창가에 앉았다

여름의 향기 좋은 빗소리가

들녘을 넘어

공룡을 찾으러 숲으로 스며든다

 

 

 

여름비

문귀숙

 

수박을 한 덩이만 따오라 했다

 

엄마의 양귀비밭으로 뻗어나가던,

산자락을 야금 파먹은 된 땅의 수박 넝쿨

사정없이

잘리자

필사적 산 쪽으로 뻗었다

 

뜬금없이 쏟아지는 여름비

 

산 어디쯤 애기 무덤이 많다는 우리들의 전설, 밭에서 주워 던진 작은 돌무더기마다 애기들이 울고 있다

수박을 두들겨 귀 기울이면, 텅텅 소리 뒤로 따진 꼭지를 따라오는 애기들의 심장 소리 수박을 안고 가는 발자국 따라 새액쌕, 구멍 난 심장 소리로 따라오는 발자국

뒤돌아보면 빗방울을 입고 쏟아지는 애기들

 

여름 해가 숨어버린 한 낮으로

수박이 떨어졌다

 

덜 여물어 더 싱싱한 씨앗들이 꿈틀거리는 젖은 시간은

침이 고이는 붉은 살덩이 맛을 흩트려 발등을 쓸고 간다

 

굵은 빗줄기가 길 옆 무덤을 허물고 있다

엄마 배를 빠져나왔을 때의 한기

갓 태어난 넝쿨들 스르륵, 배꼽을 쫓아오는 탯줄

비가 뚝 그쳤다

 

햇빛이 말끔한 얼굴로 내려와도 무섬증을 말리지 못했다

다 자라서도 비를 입고 오는 이들이 있다

 

 

 

여름비

문혜진

 

여름 빗속을 뚫고 맨발로 왔다

빗물을 뚝뚝 떨구며

도마뱀의 잘린 꼬리를 감고

독을 품은 두꺼비처럼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넘어

할례 날의 소년처럼

피 흘리며

피를 삼키며

 

백 년 만이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세상의 온갖 풍문 속에서만

그를 만나왔다

그리고 오늘,

백 년 만에 비가 내렸다

그 사이 내 귀는 구멍만 깊어져

바람이 들고난 자리가 우묵했다

 

창백한 젖은 이마

빗물이 흐른다

나는 긴 혀로 빗물을 핥는다

그러자

그의 희고 긴 손마디에서 푸른 이파리가 돋아났다

젖은 몸은 금새 오랜 숲처럼 울창해졌다

 

우리는 빗속을 뚫고

턱이 높은 말에 나란히 걸터앉아

서울을 떠났다

빗속에서 스매싱 펌킨스*를 들으며

탄력 있는 암말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어둠 속으로 말발굽 소리 또각이며

뒤돌아보지 않으며

 

* 미국의 4인조 밴드로 약물 중독으로 멤버가 죽고 지금은 해체되었다.

 

 

 

여름 소낙비

미나

 

소낙비가

젊은 청춘의 용솟음 같다 하면

조용히 내려앉는 봄비는

차분한 중년의 마음일세

누군가 나에게 말했었지

소극적인 사람은

가랑비 사랑의 주인공

정열적인 사람은

소낙비같은 사랑의 주인공이라고

금방 그칠 소낙비보다

은은히 흠뻑 적시울

봄가랑비가 더욱 로맨틱한 것을...

그래도 시원하게 퍼붓는

어름 소낙비

답답한 마음까지 뚫어주는

무더운 여름날의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것일세

 

 

 

여름비

민미경

 

꿈결처럼

마음 만지며 내리는

소나기 소리

멍하니 바라보며 웃어봐

 

영혼까지 따뜻해지는

빗소리 사이

아른거리는 너의 얼굴

새초롬 흩어지는 꽃잎

투명한 고요 속

널 바라보고 있어

 

쉴 새 없이 달려와

차가운 심연

와락 포근히 안아주는 너

어디서부터 왔을까

 

 

 

초여름의 단비

박광호

 

바람 잠든 초여름 날

조용히 내리는 비

~언 산은 는개에 가려 있고

베란다 난간 손잡이엔

조롱조롱 빗방울 달렸네

 

공원에 키 큰 소나무는

함초롬히 비를 맞으며

송홧가루 씻는 솔 순을 하늘 향해

뻗혀 올리고

 

초여름 가문 날에

산천초목의 고달픔 달래고

논밭 농작물의 성장을 이끄는

사랑의 초여름 비

 

삼라만상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 속에

고적한 삶의 나의 영혼에도

단비를 내리신다

 

 

 

그 여름의 비

박미리

 

따닥따닥 자작자작

타드는 장작 같은 저 빗소리

 

흙이 패이도록 솟대를 꽂고

녹음이 우짖도록 애무한 후엔

저 고운 노래도 그쳐지겠지

 

내 마음 다독이던

님의 손길처럼 하염없는 너

네 노래에 소르르 잠들고 싶어

 

분꽃 과꽃 채송화꽃 곱던

그 여름날, 청춘의 뜨락을 적시던

그 빗소리 그 불꽃 소리

 

꽂혀 드는 솟대를 타고

비의 리듬을 타고 우뢰처럼

너를 찾는 여름비, 그 꿈길이여

 

 

 

여름비

박소향

 

까마귀 날아간 칠월칠석 들길에

여름비 내리고

먼 산 안개에 젖어

마을로 가까워오면

 

촌로의 모자처럼 낮게 걸린 저녁이

출출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젖은 연기처럼 번진다

 

능소화 담장 위로

몇 조각

그리움 저무는 소리

곰방대 물고 앉은 할아버지 목소리

 

길 건너 옥수수밭에는

아직도 쏴아쏴아 여름비 소리

 

 

 

여름비

박영근

 

장독 뚜껑에 고여 있는 빗방울

맨드라미 붉은 꽃벼슬에도 빗방울

줄행랑을 놓던 고양이란 놈

뽈뽈뽈 다 늙은 감나무 가지에 기어올라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데

검둥개는 낑낑거리며 나무 밑을 맴돌고

낙숫물 떨어지는 처마 밑엔

길 잃은 두꺼비 한 마리

언젯적 하늘인가

무지개가 활짝 선다

 

 

 

여름비

박이화

 

호박잎처럼 크고 넓은 기다림 위로 투다다닥 빗방울 건너 뛰어오듯 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볕 아래 지친 그늘처럼 맥없이 손목 떨구고 늘어지던 내 그리움의 촉수들이 마침내 하나둘 앞다투어 눈떠 사방 꽃무늬 벽지처럼 내 마음 온통 분간 없이 휘감아 뻗고, 예고 없이 들이친 소낙비의 행렬에 또 한바탕 허둥대며 젖는 잎, 잎들 전선이 젖고 그 선을 타고 오는 그의 목소리 열대어처럼 미끈한 물비늘로 젖어와 어느새 내 몸은 출렁출렁 심해로 열리고

 

 

 

늦여름 비

박인걸

 

가을을 재촉하는

늦여름 비가

땀으로 얼룩진

나뭇잎을 닦는다.

 

비바람에 엎어진

갈대를 어루만지고

더위에 지친

마루 나무를 위로한다.

 

따가운 햇볕에

발갛게 익은

홍옥(紅玉) 사과에도

뜨거운 키스를 한다.

 

치열한 생존에 지친

기식(氣息)하는 존재마다

굵은 빗줄기는

생명의 손길이다.

 

때맞추어 쏟아붓는

고마운 빗줄기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돌보시는 이의 은총이다.

 

 

 

여름비

박인걸

 

1

바람과 함께 비는 그치지 않는다

횡으로 내리는 비에 우산이 무색하다

빗물은 처음 와본 도시에 흔적을 남기고

축축한 습기로 유령처럼 떠돈다

길손에 밟힌 빗물은 신음도 없이

자기 길을 찾아 굵게 흐른다

귀에 익은 노래가 들린다

어릴 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저음이다

툇마루에 앉아 낙숫물을 바라보며

햇강냉이 먹던 내가 보인다

사라지지 않는 빗소리는

오래된 추억들을 몽땅 불러오고

잔뼈가 굵은 마을로 마음은 뛰어간다

사람들은 색색의 우산을 들고

질척거리는 빗물을 밟으며 걷는다

빗소리를 듣는 사람들마다

나와 똑같은 추억에 빠져있을까?

우산을 든 여인의 앞길을

갑자기 불어온 바람이 가로막는다

당황한 여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바람 줄기에 섞여 내리는 비는

추억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을 깨닫는다

감상에 빠졌던 자신을 후회한다

비는 더욱 세차게 프라다나스를 공격한다

 

 

2

적 목련 나무 한 그루

여름비가 어루만질 때

매우 고단한 잎들이

큰 위로를 받는다.

 

뙤약볕 내리쬐는 길가에서

아스팔트 열기에 진땀을 빼며

귀찮고 성가신 기계음에

매일 불면증에 시달렸다.

 

손 뻗을 곳 없는 공간에서

외로운 뿌리를 내리며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서

의젓한 기풍이 돋보이나

 

이야기 벗 하나 없는

거대한 독방에 갇혀

전봇대만 바라볼 뿐

희망을 단념한지 오래다.

 

봄에 진 목련꽃의 눈물이

굵은 빗방울이 되었나.

늦여름 어귀에서

목마른 나무는 힘을 얻는다

 

 

3

나뭇잎 위로

빗방울 뛰어가는 소리에

그대 걸어오시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어느 해 여름

아직 비는 그치지 않고

어둠이 내려앉는 거리로

당신이 걸어오고 있었죠.

 

묵직한 발걸음으로

작은 여운을 남기며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시던

당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긴긴 기다림에

아득하기만 했던 당신이

느닷없이 오시던 날

나는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여름비 내리는 날이면

그날의 추억을 되짚으며

행여 당신이 오시지 않을까

비를 맞으며 서 있습니다

 

 

4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오늘에야 오시니 반갑습니다

어디를 두루 돌아

이제야 오시었었나요

 

내 곁에 계실 적에는

목마름을 몰랐었는데

긴 가뭄에 타는 갈증으로

신음하며 견디었어요

 

긴 목을 빼든 기린이

가지 끝에 붙은 잎을 따듯

매일 하늘을 우러러

사랑의 관수(灌水)를 사모했어요

 

가슴 구석구석

골수까지 적셔주시는

당신의 흡족한 생수의 은총에

시든 영혼이 되살아납니다

 

 

5

하염없이 쏟아지는

맑은 물방울들이

가슴속에 쌓인

지저분한 생각들을 씻는다.

 

 

허망한 탐욕들과

미련하고 어리석은 판단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오만과 불손까지

 

 

지칠 줄 모르고 퍼붓는

소방 살수(撒水)

불처럼 달아오른 욕정을

얼음처럼 식히고 있다.

 

 

과분(過分)을 넘어선

삶의 수많은 욕망들을

완급(緩急) 조절하는

 

 

 

여름비 오는 저녁

박인걸

 

구름은 어둔 장막을 치고

산은 거대한 벽처럼 일어섰다

가로등 불빛 희미한 도시에

여름비는 추적이며 내린다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면

옛 추억들이 전등처럼 켜지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의 눈동자가

기억 속에서 곱게 껌뻑인다

그 해 어느 여름날

오늘처럼 비가 가슴을 적실 때

우리는 어느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엮었다

시간은 커피잔에 갇히고

빗물은 우리의 가슴으로 흘렀다

멈추지 않는 빗소리는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였다

나는 그때 그 찻집으로 달려가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

그때처럼 빗소리를 들으며

오지 않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싶다

 

 

 

초여름 비

박인걸

 

이틀째 비가 내린다

초여름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학동(學童)의 마을을 서성인다

짝꿍이던 고운 피부의 소녀가

파란 우산을 들고 내 곁에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받쳐주던 추억이 그립다

너무나 먼 세월의 강을 건넜다.

그 강물은 몇 번을 윤회하여 바다로 갔고

지금도 강물은 계속 차오른다

떠밀리어 온 삶은 참 멀리도 왔고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귀하다.

기대한 만큼 갖지 못했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가슴에 묻어둔 그리움들을 불러오며

초여름 비는 여전히 내린다

아직 들춰내지 못한 모든 기억들을

오늘은 몽땅 파헤치려나 보다

그 소녀도 지금 나처럼 익었겠지

생각보다 매우 그립다

 

 

 

여름비

백설부

 

꽃잎은 비에

깔려서 질척거리고

 

초록 생명들은 희망을

수줍은 몸짓으로

남몰래 펄럭인다.

 

삽상한 비바람에

먹빛 비늘이 날려

알 수 없는 서러움에

내 삶이 너덜너덜해진다

 

자클린의 눈물이

찻잔 속으로 떨어지고

 

온 마음을 다잡으며

무심히 차를 음미한다.

 

하루는 또 이렇게

빗속에 바스락거리는가

 

 

 

여름비

서지월

 

잠 오지 않는 밤 내게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네

 

그 여인(女人)

남들도 이쁘다고 하는데

멍든 풀잎 세월 함께해 온 건 아니지만

 

호젓한 산길 가다가

이름 없는 풀대궁에

산 나비 한 마리 찾아와 앉듯

그렇게 만나는 게 인생이듯

 

아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사막 같은 내 마음에

이제,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어요

 

 

 

여름비

송정숙

 

생각 없이 무작정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

찔레꽃 시샘하여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 협주곡

빗속에 나체를 세워놓고 싶은

욕망에 본질

 

 

 

여름날의 비

신경희

 

당신 괜찮으세요

언제나 그리웁지만

언제나 비켜 서 있는 한 사람

 

당신을 처음 만났던 날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날

하늘에 구멍이 난 줄 알았습니다

 

함께 듣던 야상곡과

여름날의 비, 그 날 처럼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맑은 피아노 소리에

쇼팽이 살아서 걸어 나오고

서걱거리고 우는 바람 소리에

 

스쳐 간 인연인 줄 알았던 당신이

저벅저벅 걸어 나오고

심장이 떨려 옵니다

 

당신 괜찮으세요.

언제나 그리웁지만

언제나 비켜 서 있는 한 사람

 

오늘도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당신 괜찮으세요

 

 

 

초여름날의 비

신주연

 

바람이 분다

 

창문을 뒤흔든다

 

하늘 여는 초여름의 비구름이

새털구름을 얼싸안고

어화 둥실 춤을 춘다

 

바람아, 불어라

 

봄비는 가고 초여름의 폭우가

훈풍을 타고 신나게 내리고 있다.

 

고추 파 마늘 양념 채소도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논밭 사이로 검붉은 흙물이

졸졸 흘러 들어간다

 

우주의 신비로운 빗물결이 어디론가

하염없이

흘러내려 가고

 

여름을 알리는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더욱더 애달프게 들려온다

 

초여름날의 시원하게 쏟아지는

저 소낙비여

어서 내려라

 

붉게 타오르는 광란의 황금벌판을

더욱 짙푸르게

적셔다오

 

 

 

여름비

양광모

상한 영혼 맑게 씻어주는

새벽 산사의 풍경 소리

낮은 곳으로 흘러가거라

흘러가 바다의 자식이 되어라

 

 

 

여름비

오석주

 

강렬함의 내열로

온 세상 벗어나고 싶었는데

먹구름 몰고 천둥 번개

요란한 소리에

등지고 찾아온 소낙비

 

그리움의 목마름

촉촉한 대지를

품에 안고 싶은 비

한낮에 그에게

옷 비 젖는 마음이어라

 

여름비 속으로

그리움은 몰려가고

타들어 가는 농촌의 허망함

농부의 서글픔

땀 흘려 결실 보는 시기인데

 

 

 

여름비

오순화

 

물안개 젖어 드는 거리에

머언 기억의 편린들이 빗방울 되어 내린다

아무 말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빗방울 수만큼

하늘만큼 사랑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던 그대 향한 마음도

마른 입술에 눈물만 고였었다

사랑해서 이별했다는 거짓말도

이별 후에 사랑인 줄 알았다는 후회도

때로는 알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

비오는 창가

비내리는 저녁

비를 마시는 바다

바다는 비를 마셔도 마셔도 젖지 않고

슬픈 눈물꽃으로 피어나는 물안개만 가득해라

바다 건너에

채마밭 들녘에도

추적이는 거리에도

불타는 정열

사랑에 울다 웃다 사라져간 내 젊은 날

사랑해서 이별했다는 말도

이별 후에 사랑인 줄 알았다는 알 수 없는 얘기가

여름비 되어 내린다.

그때는 왜 가지 말라는 말을 못 했을까

 

 

 

여름날 갑자기 내린 소낙비

용혜원

 

하늘비 난데없이

먹구름이 마구 몰려들어

머리에 머리를 맞대더니

성이 났나 보다

골이 터지게 싸우는 듯이

천둥 번개가 사납게 치더니

흠씬 두들겨 맞아

울화가 치밀었는지

울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신이 나도록 울기를 시작했다

한참 울고 나더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는지

먹구름 사이에 생긋 웃듯이

한 줄기 햇살이 비춰 온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용혜원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사랑에 더 목마르다

 

온몸에 그리움이 흘러내려

그대에게 떠내려가고 싶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그리움이

구름처럼 몰려와

내 마음에 보고픔을 쏟아놓는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온몸에 쏟아지는

비를 다 맞고서라도

 

마음이 착하고 고운

그대를 만나러 달려가고 싶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자드락 비

윤갑수

 

무더운 한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아침 녘 굵은 자드락 비가 내린다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여름 한날 밤새 열대야 속에

나에게 꿈을 꾸라 유혹한다

 

말라비틀어진 화단의 꽃들이

메마른 가슴 움켜쥐고 고갤 떨구던

하이얀 밤

이제는 화색의 얼굴로 꽃망울을

터드린다

 

한동안 열사병에 걸려 헤매이던

나에게 생명수가 되어 온몸을

적신다

 

주르륵 주르륵 비가 내린다

끝나지 않은 그대 목마름에 시달리는

가슴 적혀주는 단비가 내린다

 

 

 

여름비를 맞으며

윤무중

 

억센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나부끼는 한낮에

시커먼 구름이 햇볕을 가리더니

우두둑우두둑

여름비가 쏟아지면

더위가 어디론가 가버린 뒤

어느덧 시원한 곳에 와 있다

 

시골엔 장독 뚜껑 덮으랴

논물 빼고 밭이랑 돋우랴

닭은 처마 밑으로 몸을 숨기는데

어리둥절한 내 마음

낮게 엎드린 채

살며시 드리운 그 고향에

오늘만은 여름비에 젖어 본다

 

비는 변덕스러우나

내 곁에선 끈질긴 생명줄이 되어

나를 붙잡고 놓을 줄 모르는데

그래도 여정의 변곡점이려니

오늘도 가볍게 하려 한다

마음을 빗속에 두고 몸만 피하노니

나는 홀가분하게 달릴 수 있을까

 

 

 

여름비와 함께

윤무중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비를 불러 장마가 되었다

여름을 맞으면 비와 함께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비가 그치면 메말랐던 땅을 촉촉히

나뭇가지엔 잎이 우거져

찬바람이 찾을 때를 준비하겠지

 

비는 길고 긴 터널을 가는데

이 길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이다

너는 가을로 향하는 나그네다

 

비와 함께 여름은 다가오고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면

너는 나에게 기꺼이 안식을 위한

아름다운 터전을 마련해 주겠지

 

 

 

여름비

이대형

 

여름비에 이 밤도 젖고

시간도 젖고 추억도 젖는다

언제나 어느 해 그러하듯

가는 여름을 적시고야 만다

 

창문 너머 이따금 들리는

젖어 버린 자동차 속도 음

꿈도 젖고 적막도 젖고

사람도 젖었다

 

어느 초라한 선술집 젖은 술잔

잃어버린 마음 담아 털어 넣고

목놓아 울던 여름비여

 

비와 여름은 닮았다

잊었던 시간도 닮았고

잊었던 사랑도 닮았고

내려놓은 외로움도 닮았다

 

오늘도 가슴속 편지 접어

젖은 바닥에 흩뿌려 보낸다

여름비도 추억도 하나다

또 아쉬운 추억를 적시고야 만다

 

 

 

한 여름밤의 비

이민숙

 

투둑 투둑 툭툭

창을 두드리는 소리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저리도 창을 두드리고 있다

 

쏴아- 덜커덕덜커덕 바람까지 몰고서

여름밤을 흔들어 놓는 빗소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수많은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은

더는 힘겹고 무거워 견딜 수 없어

가벼워지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다, 저 하늘 목도 참 많이 아팠겠다

주룩주룩 내리는 걸 보니

이 많은 물을 머리에 이고 어떻게 있었을까

 

보이지 않게 감추어 두었던

하늘 강은 방천이 무너지기 전에

수문을 열어 비워내고 있다

 

울고 싶었을 때

울어 버리라고

 

 

 

여름비

이상례

 

빈집에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니

여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양 새 한 마리가 비를 맞고 허공을 향해 날아간다

 

왜 이리 내 마음이 답답하단 말인가

이유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니 더욱 답답하다

비는 두 줄기 강을 타고 내려와 가슴으로 범람한다

 

걸어온 길 만큼 빗물 자국 느꼈을 때

어깨로 맞던 비를

가슴으로 젖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비는 내를 이르고 강을 이르고 가슴으로 흘러 넘친다

 

나는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따라

숲으로 가고 있었다

 

 

 

여름비

이성선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후두둑

문밖에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여름비

이원문

 

쏟아지는 그 세월

낙숫물에 고이고

맹꽁이 울음에 실 가닥 된다

 

늘려도 늘려도

끝없는 세월

청개구리 울음이 헤아리는가

 

굿은 비에 녹는 마음

눈언저리 뜨겁고

청춘이 물들인 백발에 서롭다

 

 

 

여름 빗소리

이은경

 

올해 여름비 오는 소리는 이 새벽 내도록

케케묵은 애증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맑은 풀피리 소리

누군가에겐 사람 얼굴을

개의 젖은 몰골로 헷갈려 보이게 할

매미 소리

하늘이여

물줄기를

사정없이 내뿜어다오

이른 여름의 열기를 찢어 발겨라

열대로 변해가는 이 나라의 열기를 찢어 발겨라

그렇게 계속 승부가 끝날 때까지 퍼부어다오

 

 

 

이 여름비 속에서

이응윤

 

이 여름비 속에는

당신의 사랑이 내리는 거겠지요

 

내리는 줄기마다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며

나의 영혼을 맡깁니다

 

나는 당신이

참말로 행복해 할 굵직한 사랑을

당신 가슴가득 뿌려주고 싶습니다

 

당신을 꼭 안고 싶어요

이처럼 내일

또 내일도 행복할 날들이라는 믿음을 위하여,

 

당신은 들리나요

저 빗소리,

내일 우리의 행복을 비는 저 박수 소리를

 

빗속에 당신은 더 아름다워요

이 비 다 내리도록

걸어봐요

 

당신의 사랑이 내리니까요

우리의 축복이 내리니까요

이 여름비 속에서

 

 

 

비의 냄새 끝에는

이재무

 

여름비에는 냄새가 난다

들쩍지근한 참외 냄새 몰고 오는 비

멸치와 감자 우려낸 국물의

수제비 냄새 몰고 오는 비

옥수수기름 반지르르한

빈대떡 냄새 몰고 오는 비

김 펄펄 나는 순댓국밥 내음 몰고 오는 비

아카시아 밤꽃 내 흩뿌리는 비

청국장 냄새가 골목으로 번지고

갯비린내 물씬 풍기며 젖통 흔들며

그녀는 와서

그리움에 흠뻑 젖은 살

살짝 물었다 뱉는다

온종일 빈집 문간에 앉아 중얼중얼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혼잣소리 내뱉다

신작로 너머 홀연 사라지는 하지(夏至)의 여자

 

 

 

비오는 날의 일기

이해인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 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여름비

이호영

 

장맛비가 내리는 첫날

구슬프게 흩뿌리는 보슬비에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그동안 원망 꽤나 들었던 하늘이

구멍 난 듯 양동이로 쏟아부으며

성난 사자처럼 사납게

온 동네를 뒤집어 놓는다

 

성이 난 황소 소낙비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인양

아스팔트로 성난 뿔을 내리친다

 

-

하늘아

하늘아

이제 그만

제발

이제 그만 마음을 가라앉혀 주렴

 

 

 

초여름 비

장수남

 

기억 속에 멀어져 가는

그해 오월 어느 날

때 묻은 손등 맨주먹으로 피는 무궁화

한강에서 낙동강으로 흐르는

숨찬 물결이

마디마디 붉게 타오르고

들녘엔 넘친 독재의 잔류가 그해 오월

하늘아래 쏟아 내렸다

사슬에 묶인 민주의 횃불은

암 흙의 창고 속에서 통곡하고 초여름

햇살은 무덤 위에 내린 비

생명보다 강한 분신의 행진은

방방곡곡을 헤맬 때

무자비하게 몰아치는 돌풍

잎 떨어지면 피를 토하는 파도의 비명

무덤가에 무궁화 한 송이

유언으로 꽃피웠네

 

 

 

여름비

전선희

 

태양이 이글거리는 뜨거운 한낮

포도와 석류가 영글어 갈 때

여름비는 초록 물이 되어 대지에 내린다

 

진한 태양의 색을 담은

해바라기와 노랑 코스모스는

흩날리는 빗방울에 고개를 하늘거린다

 

그리움에 젖은 내 마음은

싱그러운 바람에 잠시 숨을 멈추고

마음속 영원한 여름에 시원함을 건넨다

여름비 내리는 날에

 

 

 

비 오는 여름날

정민기

 

천둥 함성 들려온다

번갯불 번쩍, 하더니 닭 바비큐 익는 냄새

솔솔 코끝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비 닭털 보슬보슬 떨어진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집어 들고

호랑이처럼 게 눈 감추듯 먹는다

유리창은 눈물 한 컵 흘려 택배로 보낸다

투명한 울음 한 방울에 나는 보이지 않는다

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얼룩진 마음

닭 바비큐를 뜯으며 옆에서

그가 방아깨비처럼 꾸벅거리고 있다

널어놓은 구름 다 젖어

햇볕에 말려야 하지만 아직 내키지 않는다

맛은 못 본 사이에 어느 순간 무성하게 자라고

처마 밑 거친 숨소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좀처럼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먹구름은 날개를 펴고 더 멀리 날아가다가

시멘트 바닥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다 금이 간다

순살만 열심히 공격해대는 식탐이 멈춘다

닭 볏 버린 자리에 피어있는 계관화(鷄冠花)

석양빛에 한층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다

 

 

 

여름비

정상만

 

비꽃이 몰고 온 세찬 모다깃비가

답답했던 마음속에 꿀비처럼 스며들며

흘러가는 빗물에 어울려 흘러가고

잠비의 울림 따라 기분 좋은 쉼을 하네

 

하늘 가득 담겨있는 물방울이

행복한 미소 지으며 방울져 흩어지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나부끼며 춤을 추니

나뭇잎도 발걸음도 덩달아서 춤을 추네

 

어린 시절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라서

맨발로 웅덩이에 팔짝팔짝 뛰어보니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그렇게 그렇게 즐겁게 살라 하네

 

어린 시절 해맑던 모습으로 살라 하네

꾸밈없던 그 마음을 느껴가며 살라 하네

 

 

 

여름비

정세일

 

여름비가 오면

풀잎은 키가 큰다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자고 나면 키가 큰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풀잎은 키가 큰다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

손을 어영차 흔들리면서

노래하듯 키가 큰다

 

여름비가 후두둑 소낙비

소리를 내면은

풀잎은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에 키가 큰다

자신도 바라볼 수 없는

나무들의 키 큰 모습을 생각하면서

풀잎은 그리도 키가 큰다

 

풀잎은 키가 큰다

도토리 들이 키재기를 하는 것도

바라보면서

여름 소리가 발밑에서

들리는 그곳에서

풀벌레들의 찌르르 거리는

소리를 듣는 풀잎은 키가 큰다

 

풀잎은 키가 큰다

여름이 다 가기 전

숲속마다 물을 가두는 소리를

잊을 수 없어

풀잎은 넉넉하게 녹색으로 키가 큰다

나무처럼 키가 큰다

가슴 속에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풀잎은 자고 나면

여름비가 오기를 기다려 키가 큰다

 

 

 

여름비

정일근

 

은현리 대숲이 비에 젖는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잉크병에

녹색 잉크가 그득해진다

죽죽 죽죽죽 여름비는 내리고

비에 젖는 대나무들

몸의 마디가 다 보인다

사랑은 건너가는 것이다

나도 건너가지 못해

내 몸에 남은 마디가 있다

젖는 모든 것들

제 몸의 상처 감추지 못하는 날

만년필에 녹색 잉크를 채워 넣는다

오랫동안 보내지 못한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사람

푸른 첫 줄 뜨겁게 적어놓고

내 마음 오래 피에 젖는다

 

 

 

여름비

조서연

 

푸른 풀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

어린잎들은 나풀나풀 춤을 춥니다

반짝이는 잎줄기에 이슬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구름이 환하게 웃습니다

후두두 빗방울이 장난을 겁니다

깜짝 놀란 어린 나뭇잎들이 파르르 모여듭니다

 

햇살 먹은 얼굴이 푸르게 달아올랐습니다

목이 마른 모양입니다

미안한 햇살이 구름 뒤에 숨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빗방울들이 사방으로 뛰어내립니다

 

 

 

여름비 내리네

조서연

 

부산은

어젯밤부터 비가 겁나게 내리 쌔리 내렸네요

시원하게 찌르르 장마 전에 내리는 여름비

비 냄새가 참 좋습니다

밤새 내린 비는 한바탕 거하게 사랑 후에

오는 꿀맛 같은 노곤함에

자장가처럼 속삭이듯 내리고 있습니다

등을 토닥토닥 쓸어내려 주는 님의 손길처럼

다정한 살갗 향기 풍기며 기분 좋게

 

마음 같아선

우산 하나 들고

낙동강 둘레길 나가보는 것도 참 좋겠다

시원한 비 냄새 비에 젖은 바람 냄새

낙동강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

강수면 여기저기 작은 물풍선

터트리는 모습이 얼마나 이쁠까

그 모습 보고 싶어 상상이 간질거려

창문 열고 손 내밀어 쇠기를 가늠해보니

이 정도면 산책해도 되겠다 싶어

빗속을 빨리 걷고 싶은 마음에

이미 꽁꽁 뛰는 가슴

물방울 모양에 예쁜 우산 챙겨 들고 나가려다

 

훅 들어오는 불길한 예감

괜히 센치해져 비 오는 날 나갔다가

비 오는 날 동한다는

싸이코 패스 정신병자들의 난립?

에그머니나 무시라

혹시 내 키보다 커진 수풀 속에 숨어 있다

나처럼 천지 분간 못하고

철없이 우산 쓰고 나갔다가 공포영화 찍는 것 아닐까

예전 화성 여성 연쇄살인이 확마 스치는 게

센치고 지랄이고 디지는 게 아닌가 하고

순간 무서운 생각 겁이 덜컥 나는 바람에

죽어도 그렇게는 아니라고 아찔한 생각에 미치자

 

레인코트에 이 아름답게 빗속을 걷는 여인에 흉내는

끝이 났습니다

에효 14층 베란다에서

저 멀리 보이는 비 내리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그래도 이 분위기를 그냥 보낼 수 없어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들고 폼 한 번 잡고 있슈

비 오는 날 커피 맛은

빗소리가 설탕처럼 녹아내려

온몸을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이

비에 젖은 바람이 더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비 오는 날 센치는 무르익어 터집니다 그려

 

 

 

여름비

조재영

 

서두르지 마 서두르지 마

제비들은 낮게 날면서 부딪쳐 서로 이마 찧지 마

하늘이 힘껏 움켜쥐었다 놓아버린

어느 한순간

구름의 말들 와르르 쏟아져 나오네

잡목림 수풀 사이 텅텅 발 구르며

뛰어내리는 함성들

더러 영탄조가 되어 울고 웃던 말들

나무 잎사귀 흔들면서

제 생이 휘청이는 것을 보네

오지 마 오지 마

치자나무 꽃지고 꽂망울도 지고

입술도 향기도 지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여다보았던

젊은 날의 성긴 길들도 지워지고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한 낮 장대비

그렇게 깊게 내려서지 마

파헤쳐 상처 내지 마

그때 왜 우린 그런 무모한 말을 했을까

이제 말들은 지쳐 숨을 몰아쉬네

언제 다 쏟아버릴지 알 수 없는 하늘 보며

물 그림을 그리네 말을 잃은 채

물로 된 빈집에 눕네

 

 

 

여름비

조향순

 

그랬을 것이다

네가 머문 이유

앞섶에 묻힌 그리움

바람 빠져나간

철없는 길

어쩌다 잃어버렸기에

 

밤마다 네가 울던 이유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에 베이고

심장을 떨구어서

벌어진 지퍼 사이로

살갗이 베었을 것이다

 

갈증이 나 구름 한 조각

베어 물었다

한 입 물고 있으려니

왈칵 눈물이 돌기를 한다

 

늘 뜨겁고 늘 냉기 돌고

새까만 물줄기가

살갗을 베어버리고

새살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 팔월이 너무 싫었다

 

왜 당신이었을까

마음 잃어버린 뜰

 

 

 

여름비

최갑연

 

빈 마음으로

곁을 지키려 하고

희미한 불빛

그 아래 서 있다

 

엇갈린 듯

살아가는 삶 속에

물보라처럼

설레는 마음

 

꽃이 피어 가는

내 소망 흙더미에

단비가 되어

사랑 주는 여름비

 

 

 

여우비

최승호

 

시간 속에 늙어온 남자가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둔해 가던 감각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

 

탯줄에 매달린

애처럼

애호박이 점점 살찌는 여름

물로 가득한 줄기들은

꿈틀거리며 태양을 향해 기어오르고

 

자라나며 굵어지던 등뼈 속에

점점 커지던 얼굴 속에

쭈굴쭈굴 시들던 꿈의 떡잎,

체념이

충동을 억누르며

글썽이는 땅 위에서

두꺼운 체념을 뚫고

충동이 화산처럼 불을 뿜지 못하는

마그마 같은 가슴,

가슴이 점점 식어 굳어가는 땅 위에서

 

결실도 없이 늙어온 남자가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커다란 초조 속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

 

 

 

사랑 길에 내리는 비

홍윤표

 

여름 한쪽이

여름 한쪽이 무너지나 보다

봄빛 여의고 신록을 마시는 오후

꽃눈은 문을 닫고 아쉬움으로 설레인다

긴 무더위 속 깊이 박혀 오줌발처럼 내리는 비

소나기보다 강한 아쉬움이

쏟아진다

강한 빗소리다

강렬한 태양이 눈부시게 내린다

사랑길에

사랑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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