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강대선 – 한여름 밤의 영웅전
강대실 - 고향의 여름밤
강보철 – 한여름 밤의 록(Rock)
강소천 – 여름밤
고종목 – 한여름 밤
곽종철 – 한여름 밤
곽철재 – 여름밤의 정전(停電)
권영호 – 여름밤
김국현 - 여름밤
김국현 – 여름밤의 노래
김귀녀 – 늦은 여름밤에
김귀녀 - 여름밤
김기월 – 한여름 밤의 고백
김기택 – 양수리 여름밤
김덕성 – 어느 여름밤에
김덕성 – 여름밤
김덕성 - 여름밤 메시지
김덕성 – 여름밤의 그리움
김덕성 – 여름밤의 연시(戀詩)
김덕성 – 여름밤의 향기
김동호 – 여름밤 바닷가
김미혜 – 여름밤
김상협 – 여름밤의 꿈
김선목 – 여름밤의 소리
김선필 – 여름밤의 애환
김수영 - 여름밤
김순진 -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김승종 – 한여름 밤
김안로 – 여름밤
김영재 – 긴 여름밤
김옥자 – 여름밤
김옥자 – 여름밤 홀린 듯이
김용화 – 여름밤
김재영 – 한여름 밤의 정서
김재진 - 여름밤의 소야곡
김점희 - 청보리 익어가는 여름밤에
김정택 - 여름밤
김종석 – 여름밤의 광란
김지요 – 한여름 밤의 꿈
김춘수 – 여름밤
나태주 – 여름밤
나태주 - 여름밤의 꿈
노영환 – 한여름 밤의 상념(想念)
도지현 - 여름밤의 꿈
류수안 – 목화꽃 피는 여름밤
목필균 - 여름밤
목필균 – 한여름 밤의 사물놀이
묘혜공 – 한 여름밤의 추억
문인수 – 여름밤
문장우 – 여름밤 모기
문재학 – 산촌의 여름밤
문재학 - 여름밤
문재학 – 여름밤의 꿈
문태준 – 여름밤
박영선 – 여름밤
박영숙 – 여름밤이 지나간다
박영춘 – 여름밤 숲속 너럭바위
박영호 – 여름밤
박외도 – 여름밤 강가에서
박용하 – 여름밤
박인걸 – 그때 여름밤
박인걸 – 여름밤 추억
박인걸 – 한여름 밤의 추억
박해람 – 여름밤 위원회
박현희 – 여름밤에 얽힌 추억
박형준 -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반태권 – 여름밤
배창호 – 초하(初夏)의 밤
백낙원 – 여름밤의 낭만
백원기 – 여름밤
서덕준 – 여름밤
서복길 – 여름밤
서영처 – 한여름 밤
섬그늘 – 여름밤의 상념
손병흥 – 여름밤
손병흥 – 여름밤 별자리
손병흥 – 여름밤의 꿈
송근주 – 비가 오는 여름밤
송근주 – 여름밤
송문헌 – 한여름 달밤
신성호 – 여름밤의 이야기
신원감 – 여름밤의 추억
신진기 – 무더운 어느 여름밤
안상균 – 여름밤
안영준 – 여름밤
양승준 – 여름밤
양재건 – 어느 해 여름밤
오석주 – 여름밤의 반딧불
오애숙 – 한여름 밤의 꿈
유금 – 여름밤
유영서 – 여름밤
유필이 – 한여름 밤의 꿈
윤갑수 – 여름밤의 원두막
윤갑수 – 한여름 밤의 잔별들
윤성택 – 여름밤 읽는 시
윤용기 – 여름밤의 상념
윤춘순 – 여름밤
은별 – 그리운 고향의 여름밤
이국헌 – 여름밤의 소곡
이기영 – 여름밤 풍경
이둘임 - 한 여름밤의 합창
이상정 – 여름밤의 추억
이선영 – 여름밤
이시향 – 여름밤에 바람
이영광 – 한여름 밤
이원문 – 여름밤
이윤학 – 여름밤이여, 옥상을 봐라
이일영 – 여름밤
이정은 – 여름밤
이제민 – 한여름 밤의 그리움
이준관 – 여름밤
이채 – 중년의 여름밤
이현승 – 한여름 밤의 꿈
이훈식 - 여름밤의 오선지
임성섭 – 한여름 밤의 연가
장정애 – 여름밤의 단상
정명화 – 여름밤의 풍경
정세일 – 여름밤이 깊어지면
정숙경 – 한여름 밤
정숙경 – 한여름 밤의 꿈
정숙자 – 별 고운 여름밤 박꽃에 울고
정재삼 – 여름밤
정형근 – 여름밤의 시(詩)
정호승 – 여름밤
조병화 – 무더운 여름밤
조원규 – 여름밤
주명희 - 여름밤의 축제
채홍정 – 한여름 밤 그리움
채홍조 – 여름밤
최경신 - 그 여름밤
최병도 – 여름밤의 불청객
최봉희 – 여름밤
최삼용 - 한여름 밤의 세레나데
최영준 – 여름밤 밤의 실루엣
최우서 – 한여름 밤
최홍윤 - 여름밤의 추억
최홍종 – 한여름 밤의 꿈
한용운 - 여름밤이 길어요
함기석 – 여름밤의 푸가
현상길 – 여름밤
황다연 - 여름밤의 연가
황인숙 – 그 젊었던 날의 여름밤
한여름 밤의 영웅전
강대선
공전하는 하루입니다
강력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꿈꿔봅니다
신문, 광고, 단톡방, 웹 사이트를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갑니다
고생해서 성공한 이야기는 식상하기까지 합니다
베끼고 급조하고 재탕 삼탕으로 가는
그렇고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반짝, 새로운 영웅들이 출현하기도 합니다
스킨십도 수용도 메타버스 속
운과 실력 사이에서 탄생한 영웅들이 복제 유통됩니다
대권 도전은 또 한 번 변이를 일으키고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가 지지율을 먹어 치웁니다
흥행몰이는 점입가경입니다
이제는 누가 진정한 영웅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인지 사건인지 좌인지 우인지
거짓말 같은 우화 속입니다
깜짝 영웅들이
깜깜이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밥입니다
고향의 여름밤
강대실
1
개구리 와글대는 소리 그친
으스름 달빛 아래
모낸 논다랑이
불 꺼진 외딴집
쑥불 타는 마당 한켠에
누런 황소 한 마리 누워
어둠 씹어 먹고
편히 쉬는 밤
검고 깊은 뒷산에서
밤을 지새기 외로운 소쩍새
소쩍! 소쩍! 처량한 울음
고향의 여름밤 지킨다
2
모낸 논다랑치
불 꺼진 외딴집
쑥불 타는 마당 한켠에
누런 황소 한 마리 누워
어둠 씹어 먹고
편히 쉬는 밤
접동새만
검고 깊은 뒷산에서
밤을 지새기 외로워
처량한 울음으로
고향 여름밤을 지키고 있다
한여름 밤의 록(Rock)
강보철
지친 마음 감싸 안은
찌는 듯한 여름밤
잊어요, 지난 기억들
서로의 손가락을 하늘로
우리, 토해내요 쌓였던 울분
우리, 찔러봐요. 내일로
막힌 마음 다독이는
후텁지근한 여름밤
견뎌요 지난 일들
서로의 목청을 세상으로
우리, 뱉어내요 터질 것 같은 욕망
우리, 함께해요. 내일로
힘든 마음 감추는
흠뻑 젖은 여름밤
이겨내요 지난 상처들
서로 어깨를 나란히
우리, 털어내요 답답한 현실을
우리, 나가요. 내일로
다시 찾은 여름, 이 밤
소리 질러봐, 다 같이 소리 질러봐
우린 할 수 있다고
높게 뛰어봐, 다 같이 뛰어봐
우린 할 수 있어요
여름밤
강소천
하늘의 별들이
죄다 잠을 깬 밤
별인 양 땅 위에선 반딧불들이
술래잡기를 했다
멍석 핀 마당에 앉아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빗자루를 둘러메고
반딧불을 쫓아가면
반딧불은 언제나 훨훨 날아
외양간 지붕을 넘어가곤 하였다
반딧불이 사라진
외양간 지붕엔
하얀 박꽃이 피어 있었다
한여름 밤
고종목
설설 한여름 밤이 끓는다.
북태평양 고기압 기류가 세력을 확장
설설설(說舌卨) 한반도 땅이 폭설(爆舌)로 끓는다.
속옷만 걸친 설舌 설레발친다.
한강변의 풍설(風舌) 날개에 날개 달고
여의도 공원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흔들고
풀뿌리 틱틱 건드리고
배꼽 바지 배꼽티 사이 배꼽을 흘끗흘끗
폭탄 머리 꽃미남의 어깨 가슴 툭툭 친다.
붉은색 노란색의 악마 떼
서울 천도 설화(舌火) 거리로 쏟아져
도로를 설설 넘쳐 설설(舌舌) 끓는다.
와 와 와 짝짝짝 엇박자 끓는다.
지구 밖으로 롱-슛
한여름 설전(舌戰) 열대야
한여름 밤
곽종철
한낮에는 나무 그늘에
시원한 바람까지 찾아오는데
밤에는 오라는 잠은 쫓고
가라는 잡념은 밀려오는
후덥지근한 열대야가 되어
잠을 설치는 밤이로구나.
모기가 귀찮게 치근거리고
시원한 화채 생각이 나는 밤
개울물에 발을 담가도
가슴은 식지 않는 밤이라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에
조각배 띄워 임 마중 갈거나
한밤의 시계는 더디 가나
밤새워 뒤척이다 보면
그래도 새벽은 오는 가봐
새벽닭이 울 때쯤이면
잠은 쏟아지고 몸은 천근이라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길을 나선다
여름밤의 정전(停電)
곽철재
찰나의 긴장이 사라지고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더듬거리며 꺼내 마신 냉장고의 물맛이
여름밤에 찾아온 어둠처럼 부드러운데
아파트 벽을 타고 들려오는
아마 처음 들어보는 옆집 아저씨 목소리가
생각보다 많이 가늘고 따뜻하다
늘 잘난체하던 책장 속의 책들이
오늘 밤엔 마치
퇴마사를 만난 귀신들처럼 얌전하게 늘어서고
오랫동안 방치된 옛 기억들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방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겨우 스무 살이던 그해 여름밤
집 앞 벼논의 개구리들이
끈적한 불협화음을 쉴 새 없이 토해낼 때
멀리 앞산 넘어 빗속을 뚫고 와
내 청춘 깊은 곳을 흔들던 소리
진한 서글픔이 묻어 있던 그것은
분명 습하고 어두운 들판을 달리는
서울로 가는 급행열차의 울음이었다
아 앞산 고운 능선이
땀내 나는 엄마 젖가슴처럼 아늑한 오늘 밤엔
꿈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새벽까지 쏟아졌으면 좋겠다
저 들판을 가로지르는 수만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포근한 어둠 속에 안겨드는 오늘 밤엔
민달팽이처럼 느린 기차가
낮고 묵직한 기적을 밤새 울렸으면 좋겠다
여름밤
권영호
물뱀 잔등 같은 길
자근자근 밟고
기억 속으로 숨은 바람 찾아갔었지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개구리 울음소리만
귓전 가득 생각의 북을 울려
발목 잡힌 마음만
눈먼 어둠 속 홀로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었네
여름밤
김국현
은하수 쏟아져
내리는 날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노랫소리
하나, 둘
곱게 포장했었지요
그대와
꿈속에서 만나
함께 듣고 싶어서
여름밤의 노래
김국현
달그림자 뒤에 숨어
산들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락 들이
삼복더위 식히며
개굴개굴 노래로 은하수 쏟아져 내리는
깊어가는 한 밤 시골길
간간이 행인들이 바쁘게 걸음하고
불그스레한 가로등 아래
방앗간 사랑이 영글어 간다
그날도
머리맡 바구니에 삶은 감자 냄새가
모깃불 피는 마당 평상에 삼베 이불로 이슬 적시고
감나무 그림자 아래
반딧불 곡예 하는 별똥별 맞으며
개구리 소리가 자장가처럼
옛이야기 들려주던
엄마의 향기로운 따뜻한 손이었습니다
늦은 여름밤에
김귀녀
태양 열기 빠져나간
잔디밭에 물소리가 난다
여름밤
샘터에 앉아
별을 보며 등목하던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논두렁에서 낫으로 벤
쑥 한 줌 놓고
연기를 피우며 모기를 쫓던
늦은 밤, 샘터에서 둘이서 등목하던 일 생각난다
할머니 목덜미에
샘물을 부우면
으 흐흐흐
소스라치게 놀라는
할머니 음성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바가지로 별을 푸던 여름밤
여름밤
김귀녀
수많은 별들을 헤아리다
숫자를 잃어버린 밤
밤을 밝히는 박꽃 아래
태초에 나를 이 땅에 보내주신 분 생각한다
별을 헤아리다
세는 법을 잃어버리네
나는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별들의 숫자도 헤아리시는 당신
이름도 지어 주시고
또 그 이름도 불러 주신다고 하시니
풀벌레 하늘 보고 울어대는
이 여름밤
우주를 향한 그분의 크신 뜻
사랑하지 않을 수 없네
한여름 밤의 고백
김기월
내 그리움의 반이 어느새 당신이 되었던가요
세월이 익는 사이에 그리움만큼 사랑이 깊어지고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당신이 궁금해집니다
그림자처럼 내 곁을 지켜주는 당신 때문에
어제를 살았고 힘든 세월도 이겨냈죠
영원히 가슴에 간직한 일기처럼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두려 했습니다
묻혀버린 어제처럼 사랑도 묻히고
세월을 이기고 산 내일에 그리움 하나 걸어놓을 뿐이라고
그렇게 그렇게 사는 거라고 했는데
오늘 문득 당신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마침표를 찍는
사랑의 의미를 새기고 새겨도 숨길 수 없는
먼 미래로 유배됐던 그 언어로
지금 이 순간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양수리 여름밤
김기택
양수리 어느 시인의 집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는다.
글자들 사이에 자주 조그만 얼룩들이 생긴다
얼룩이 점점 많아진다
책에 모기 물린 자국이 가득하다.
글자들이 시원해지도록 책을 벅벅 긁어준다
창마다 모기장이 있지만
모기장보다 더 작은 날벌레들이
때론 모기장으로 들어오기엔 꽤 커 보이는 모기들이
손바닥에서 짓이겨지려고 달려든다
팔뚝의 검은 반점이 자꾸 꾸물거리는 것 같아
손바닥으로 내리쳤더니
그대로 살 속에 박혀 점이 되어버린다
여름밤의 글자들은 책 속에 갇혀 있는 걸 싫어해
앵앵거리며 머리 주위를 어지럽게 맴돈다.
너무 작아서
몸뚱이와 날개와 다리가 구분되지 않는
그저 날아다니는 점일 뿐인
눌러 터뜨리면 바로 색즉시공이 되어버라는 날벌레들처럼
글자들은 빛에 땀 냄새에 살갗에 자꾸 붙는다
모기 물린 자국이 많은 눈과 귀 속으로
한밤의 시냇물이 들어오기도 한다.
시냇물에서 놀고 있는 크고 작은 물굽이들이
물굽이 속에서 지저귀는 온갖 명랑한 소리들이 흘러 들어온다.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맑고 우렁찬
풀벌레 소리도 들어온다
이 모든 소리들이 스며들어
날개와 다리와 목청이 움직이는 소리들이 남김없이 스며들어
풍성해진 침묵도 들어온다
혼자 있는 시간이 보약이 되어
약이 잘 듣지 않는 내 몸속으로 쑥쑥 흡수된다
시골 밤공기에 취해 나는 빈둥거리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나 대신 밤늦도록 책을 읽어주는
양수리 여름밤
어느 여름밤에
김덕성
세미하게 들려오는
바람소리 아니 님의 숨결인 듯
밤을 깨우며 스쳐간다
하얗게 불타는 나의 영혼
님의 형상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다리다 못해 이제 지쳐버린
긴 여름밤에 찾아 헤맨다
폭염으로 이어지는 열대야
긴긴 여름밤을 촛불로 불 밝히며
꿈 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행여나 님이 오시려나
그날 떠나시며 꼭
다시 오시겠다고 한 그 한마디
어둠속에 불을 밝히며 기다리는데
고요 속에 님의 고운 숨결인 둣
세미하게 들려올 뿐
여름밤
김덕성
그대가 나를 위해
행복으로 머무는 여름밤
뜨락에 놓인 벤치에 앉았는데
실바람을 타고 고즈넉하게
나를 위한 세레나데가 들려옵니다
내 사랑의 눈동자에는
그대의 고운 얼굴이 보일뿐
그 속에 다가오는 그리운 끝에는
그대 사랑이 머물러 있어
가슴에 허전함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대는 나의 사랑입니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으로
별과 노니는 행복한 여름밤에
들려오는 그리운 사랑의 노래는
그대와 나와 함께 부르는
행복의 노래입니다
여름밤 메시지
김덕성
한 밤인데 창밖에는
고요 속에 그리움이 닿았는
사랑 비가 내리고 있소
할 말은 오랜 시간 쌓이고
마음은 그리움으로 달려가고 있는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일이기에
세월만 바라볼 뿐이라오
불러 봐도 허공뿐인데
이렇게 참으며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대에게 향한 사랑의 장미꽃이
마음에 피었기 때문이라오
그대 닮은 빨간 장미
늘 테이블 위에 피어있지만
눈빛으로 마주하면서
어서 커피 한잔을 나누고 싶구려
이 밤 떠나기 전에
여름밤의 그리움
김덕성
1
내가 이렇게 못난이였나
깊어가는 여름밤
오늘도 혼자
빙그레 바보처럼 웃는다
제구실 못하고
미련한 모습만 보여 드렸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찢어질 듯 가슴이 아프다
내 모습을
이제라도 보여 드리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으신 아버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아버지
여름밤 몹시 뵙고 싶어
그만 눈시울이 젖는
못난 자식
2
흐르는 길 따라
꿈처럼 다가오는 그리움
환한 눈빛 시리게 다가오며
그리운 가냘픈 선율
그리움은 사랑이라지만
다가서다 안으려 하면 멀어지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꿈으로 오는 그리움인가
어두운 밤하늘
밝히는 초승달은 비록 작아 보여도
은은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체취
슬며시 밝히는 달빛
깊은 밤 달빛에 실려 온
안타깝게 밀려오는 그리움
막이 내린 사랑의 촌극(寸劇)이지만
그리움은 아쉬운 사랑인 것을
여름밤의 연시(戀詩)
김덕성
사랑할 수밖에 없는
꽃으로 피어나던 아름답던 시절
불같이 타오르던 젊음은
사랑의 불꽃이었다
사랑만 희미하게 알던
사랑 없이 못 살 것 같은 순수하던
사랑밖에는 그려지지 않던 시절
원액 그대로의 사랑이었다
머리에는 억새꽃 피어도
사랑의 객이 된 지금도 그대로 사랑
석양 물든 강변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나그네
깊어가는 여름밤
아직도 그리워 홀로 별을 헤이며
그녀를 그리며 쓰는 연시
여전히 정열은 불타는데
여름밤의 향기
김덕성
그리움이 피는 계절
짙은 향에 취해 흐트러진 마음에
다가오는 임
불어오는 바람결에
몸을 담그며 은은하게 다가오는
고결한 사랑의 가슴에서
맛있게 익는다
늘어뜨려진 채
야들야들한 빨간 접시꽃 잎에서
아름다음이 새어나오는
사랑의 열매처럼
한밤 임의 모습
싱그러운 초록빛 향내로
유혹하려 그리움으로 다가온
잠 못 드는 밤
여름밤 바닷가
김동호
여름밤 바닷가
모래알처럼 뿌려있는
별들을 쳐다보며 여자가 속삭인다
"저 숫한 별들이 달 보다도 크고
우리 이 지구보다도 크지만
이렇게 멀리서 보면 저렇게 한 점
빛인 것을 생각하면 말이 나오질 않아요"
남자가 속삭인다
"이제 좀 더 어두워지면 좀 더 밝아질 거에요
저것들은 별이 아니에요
무수히 무수히 뚫린 하늘의 숨구멍이에요
저 속 빛의 바다, 거기에 이제
우리는 빠져 죽는 거에요"
그들은 정말로 죽는다
그리고 새벽녘에서야 다시 깨어난다
여름밤
김미혜
고양이 눈이
환하다
달맞이꽃이
환하다.
밤길이 밝다
여름밤의 꿈(爾惟)
김상협
나르는 새는
돌아 보지 않고
스쳐간 바람은
돌아오지 않는 데
하얀 별들만
까만 밤을 기억한다
눈 속에 오래 머문
생생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시간의 진리도
별이 뜨는 밤이면
꿈처럼 다가온다
* 爾(이) 너, 惟(유) 생각할
여름밤의 소리
김선목
아름다운 밤
여름밤을 찌르르 거리는 소리
비가 올 때면 애타는 소리
밤이슬 촉촉한 허공을 가르며
정답게 들려오네요.
시원한 바람아 불어라
빙빙 돌아 어지러울지라도
냉기 뿜는 열기의 소리
힘겨워 짜그락거릴지라도
편안한 밤을 기뻐합니다
시 쓰는 마음을 팔팔 끓여
부글부글 뜨거워진 가슴에
그대의 향기 쏟아 휘저은
한잔의 커피에 사랑을 마시는
늦은 밤마저 즐겁습니다
가슴을 적시는 찻잔에
모락모락 밤은 깊어가고
고요히 잠드는 소리
사랑을 속삭이는
여름밤의 소리에
귀뚜라미 말을 걸어오네요
여름밤의 애환
김선필
장미보다
더 붉은 진한 여름
날 감싸도는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그대의 시선 따라
움직이는 미지의 세계에서
향기 품으며 살아가고
아무도 찾지 않아도
여름밤을 능청스럽게 보내었고
임 생각으로
잠에 빠져든다
여름밤
김수영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소음도 번쩍인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여름밤은
이래서 더욱 좋다
소음에 시달린 마당 한구석에
철 늦게 핀 여름 장미의 흰 구름
소나기가 지나고 바람이 불듯
하더니 또 안 불고
소음은 더욱 번성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다 남은 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던 날
소음이 더욱 번성하기 전날
우리는 언제나 소음의 2층
땅의 2층이 하늘인 것처럼
이렇게 인정의 하늘이 가까와진
일이 없다 남을 불쌍히 생각함은
나를 불쌍히 생각함이라
나와 또 나의 아들까지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 남은 날
땅에만 소음이 있는 줄만 알았더니
하늘에도 천둥이,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없는 더 큰 천둥이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이 먼저 있는 줄 알았다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
하늘의 천둥도 번쩍인다
여름밤은 깊을수록
이래서 좋아진다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김순진
쬐어라 쬐어라
젊은 가슴팍 등골에 땀 괴도록
풀무질한 대장간 불덩이처럼 쪼이더니
여우고개 길섶 인동덩굴 시들하고
텃채마밭 오이 덩굴 조립도록 쪼이더니
서산에 숨은 태양아
이 여름밤 한 여인을 위한
주빈메타의 씸포니 오케스트라를 듣는가
반딧불이 세 마리 불빛이라도 좋구
등잔불 호야불이라도 좋으며
오 왓트 전구 불빛이라도 좋다.
조금의 달빛이라도 새어들거들랑
한 여인을 그리는 젊은 가슴으로
편지를 쓰리라
한여름 밤
김승종
여름밤, 무더위에 잡념에 잠들지 못하는 여름밤,
자정 넘어 팬티 차림으로
복도 난간에 나가 별수없이 담배나 피우는데
새로 한 시 넘을 때까지
새시 방충망에서 새나오는
옆집 신혼부부의 맑고 높은 감창소리
숨막히도록 어둡고 광막한 밤하늘에서
왜 억수로 오늘따라 별들이 총총하나 했더니
여름밤
김안로
누웁시다
누워요, 아니면
살얼음 위를 걷다 막을 내린 드라마는 끄고
우리 땅콩이나 까먹을까요
껍질이 좀 거칠고 투박하지만
꽉 찬 속 한 번 보세요
비스듬한 외계를 향하여
알알이 단단한 것 그래도 살빛 풍만한 것
먼저 드세요
세상에! 캄캄한 어둠에 길든 족속들이
내외하며 부끄럼 타네
오늘은
우리 이렇게 누워봅시다
긴 여름밤
김영제
초여름의 태양은
좀 더 뛰놀고 싶어 한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하루종일
뛰고 뛰어도
전혀 지치지를 않는다
초여름의 하루는
속임수에 물들은 하루
원하지 않는
썸머타임제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충
초여름의 낮 길이
실컷 잔 것 같은데도
태양은 아직
중천에 떠 있고
가는 청춘이
아까울 정도로 긴 계절
여름밤
김옥자
달빛 켜진 밤
나도 모르게 창가에 서 본다
살며시
내려 앉는 이슬 방울들이
또르르
불켜진 곳으로 모이는
여름 풀 벌레가 산다.
공존의 이유가
그렇게 말없이 거미줄을 치고
여름으로 걸어간다
달빛 켜진 밤
나는 너를 찿아
너는 나를 찿아
그립다 말을 꺼내 놓고
마음에 편지를 쓴다.
저 까만 밤의 향연은
새벽으로 가는 길에
내 마음에 달처럼 걸린다
여름밤 홀린 듯이
김옥자
소식도 없이 기척도 없이
한밤중에 찾아온
초롱초롱 해맑은 눈동자
촉촉이 젖어 드는 애틋한 순간
초침 소리만 매정하게 흘러서
이별도 서러움도 꿈만 같은데
날이 새면 말없이 떠나야 할
괭이 메고 호미 들고 태양촌으로
짧은 밤 애달픈 풋사랑의 길
한낮의 불볕에도 지친 줄 모르고
무더운 여름밤이 한결 시원해
이슬 머금은 잎에서 생기가 돈다
여름밤
김용화
감나무 아래
모깃불을 올리고
머슴살이 상배형, 바람피운 얘길
따라가노라면
별자리 돌아 밤은 깊어
산기슭 용샘
마을 처녀들 목욕하는 소리
노총각 앞세워 납죽납죽 오리걸음으로
다가갈 때
자발없는 어떤 놈
킬킬대어 판을 깨면
앙칼진 처녀들 목청은 밤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어 박히고
한 여름밤의 정서
김재영
헤어지자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이 땅 저만치서
저물어 가는 햇빛처럼
오래오래 숨겨둔 눈물의 흔적
허공에 주어버리고
한여름 밤의 정서를 생각한다
저 버림받은 나날과
헛맹세로 세상을 살아나온
이유는 꽃잎같이
얼룩진 나날
들끓는 어둠 속을 달리며
다시금 눈을 뜬다
저 불타는 눈그늘 끝자락
한 번도 나의 것이 아닌 채
제 스스로 힘을 내었으니
다시금 빛을 내고
모기 소리
어쩐지 너무 크게 들려
저녁답에는 모깃불을 태워야지 하면서
잠을 청한다
여름밤의 소야곡
김재진
겨우내 씻지도 아니하고
꿋꿋이 잠만 자던 선풍기 선생이
삼복더위에 그간의 밥값을 해보겠노라
자정 넘게 삐질삐질 돌고 있다
어스름 내리는 초저녁부터
시원스레 맥주 마시던 중년중년의 아저씨는
한낮에 땀깨나 흘렸는지
밤 근심도 잊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하릴없어 하품만 연거푸 던 세탁기 아줌마도
열대야에 땀내 나서 벗어 놓은
주인장 아저씨 옷가지 헹구는지
연신 숨소리가 가쁘다
해와 달이 무심히 지나는 동안에도
일순간 조용하던 것들도
나름대로 움직이는 시간대가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청보리 익어가는 여름밤에
김점희
맑은 어둠으로 가득한
상쾌한 기분 주체할 수 없는 밤
개구리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밋밋한 것 같지만
가만 가만 들어보면
각기 다른 목소리
멋진 다중(多衆) 화음
개굴개굴
울음소리는 분명 아닐 진데
저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을
내 사랑 고백도 이토록 아름답지 않았으리
청 보리 익어 가는
싱그러운 초여름 밤
찹찹한 대(竹)자리에 앉은 나는
지긋이 눈감고 기댄 벽에서
끊이지 않는 개구리들의 합창으로
이 밤 지새워도
나는 야 좋아라.
나는 야 마냥 좋다
여름밤
김정택
달빛도 열대야에 더운 듯 지친 이 밤
그리운 바람 소리 눈감고 들어본다
검푸른 저 형산강물 시원해서 좋겠네
밤벌레 우는 소리 가을을 재촉 하고
기다림 밝혀 놓은 간절한 마음 앞에
댓잎에 스치는 바람 멈추지도 않는구나
여름밤의 광란
김종석
태풍과 비바람 몰아치면
고목은 젊은 날 생각할 틈 없이
옆으로 누워 푸른 바다
보고 싶어 한다
분노처럼 검은 구름
통째 찢겨지고
텅 빈 모래사장에 나는
마음 낮추고 싶어 한다
잔잔한 파도 기다리며
취한 몸부림, 비바람 되어
태풍 되어 광풍처럼 달려 가 보고 싶은
모래사장의 꿈
태양은 어느 곳을 비추고 있는지
아쉬운 소리
얼마쯤 기다리면
파도 잔잔해질 수 있을까
봄과 가을 사이 꽉 죄여 있어
여름날 밤 그 꿈은
나의 마음이었네
한여름 밤의 꿈
김지요
깜깜한 바닷가, 밤 한 칸을 빌린다 후줄근해진 여자가 부려진다 지친 저녁을 실어 나르는 바퀴 소리들 배경으로 깔린다 간간이 파도 소리가 발가락을 간질이고 아스팔트 위 누각엔 잠이 고이
지 않는다 카톡 카톡 토막 난 잠,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소스라친다 여자는 파도 소리와 뒤엉키며 무시로 체위를 바꾼다 또다시 벨소리 남자는 남자의 말을 여자는 여자의 언어만을 쏟아낸다 다른 행성에서 온 교신처럼
치사량의 온기를 위해 여분의 베개를 부탁한다 여주인은 소란스러운 이 별에 숨어든 자가 없는지 힐끔, 방안을 스캔한다 베개를 끌어당겨 안는다 애써 아름다운 해안선을 상상한다 졸리운 물살이 종아리에 차오른다 아이들의 비명이 귓바퀴를 찌른다 터질 듯한 고요와 간헐적 소음이 샴쌍둥이처럼 얼굴을 바꾼다 책을 읽는다 덮는다 차라리 밤바다로 뛰쳐나갈까 생각한다 여자, 남자, 밤, 섬, 혼자
지리멸렬한 무대, 지상에서의 ‘쉼’을 꿈꾸는 그녀의 모노드라마
여름밤
김춘수
발가락이 가렵다
(무좀일까? 또)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밤이 온다
먼 데서 작디작은 바다가 하나 이리로 다가온다
어딘가 소리 내지 않는 악기가 숨어 있다
숲은 왜 서서 잠을 잘까
새는 어디 가고
바람이 제 혼자 눈을 뜬다
벌써 아침인가 하고
가랑이 사이로 누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뒤쪽을 보려고 한다
여름밤
나태주
깜깜한 여름밤
저녁밥을 먹고 나서도 쉬지 못하는 어머니는
뒤뜰에다가 멍석을 내어다 깔고
식구들의 빨래를
다림질하고 있었다
때로 어머니는
마음씨 고약한 산적 같은 아버지한테
붙잡혀 와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선녀님이 아닐까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엄니, 나 엄니를 위해서라면
무어든지 될래요
엄니가 돈 많은 사람 되라면 돈 많은 사람 되고
높은 사람 되라면 높은 사람 되고
공부하는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무엇이든 되어드릴 거예요
물컷 들어갈라
어여 문 닫고
나머지 숙제나 하려무나
그런 날이면 나는
어머니의 진짜 아들이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이름을 얻지 못하고서도
저들 혼자만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엄니,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별들이 우리 애기 주먹만이나 하구나
나는 다 자란 뒤에도
어머니가 애기라 불러주는 것이
은근히 속으로 좋았다
여름밤의 꿈
나태주
잊혀진 사람들이 자주 나와 주연을 맏아준다
더러는 세상에 없는 사람들도 나온다
자갈길 깔린 신작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한다
튀어 오르는 자갈돌
눈부신 햇살
자주 깨어 오줌을 누기도 한다.
밤이 참 많다
한여름 밤의 상념(想念)
노영환
하루의 해가 저물면
우리는 밤이 주는 안식에서 피로를 풀고
충전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세상은 조화롭지 않은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남과 여
낮과 밤 음양의 조화가 흥미롭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순응하면
우리의 삶은 평탄하며 평온하다
동물은 식욕만 충족하면 만족하는데
인간은 명예와 부 권력과 지위
문화의 향유 취미생활 등에서도
성취와 최대의 만족감을 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은 또 더 높은 욕망을 원하고
부와 명예와 권력 등은 제어력을 상실하면
혼돈의 늪에 빠져들어 생명력을 때론 잃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주변이 정리된 단조로운 생활과
욕망의 늪을 뛰어넘은 마음을 비운 가난한 자가
자신을 편안하게 하고 그러한 생활이 자유와 편안함을
나아가서는 행복감에 젖어 들게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지향하는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한없는 물질적 욕망을 추구할 것인지
마음의 자유와 행복감을 원하는지
행복 불행도 자신의 마음과 결단 습관 행위에서
좌우되기도 합니다
단 한 번 오르는 삶의 무대는 재연도 없으며
지울 수도 없기에 보통 사람에게는
혜안 있는 인생 멘토와 동행할 수 있다면
초연하는 인생극장이 더욱 더 성공적인
무대가 될 것입니다
여름밤의 꿈
도지현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강렬한 빛 하나가 눈에 꽂힌다
그 빛은 거문고자리의
베가 성에서 나오는 빛이다
우리말로 직녀성
우리의 시원 문화에서
마고 신이 바로 직녀성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마고 성을 가고 싶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교감하고
성안의 사람들은
너무나 순수하기에
땅에서 흐르는 지유(地乳)를 먹고 살았으니
이 여름 밤하늘을 보다
하나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마고 성에 가서 마고 여신과 함께
한 생을 살고 싶은 꿈을 꾸게 되는데
목화꽃 피는 여름밤
류수안
등잔불 아래 옥색 치마 흰 저고리 벗어
흙 부뚜막에 올려놓으신
어머니
물통 속으로 들어가시네
목덜미에 가슴패기에 물 끼얹으시며
달아라, 시원해라, 달아라.
통 밖으로 물 넘쳐 흐르네
물 흘러 부엌바닥 적시네
어머니 나른한 눈 졸음 겨운 목소리로
달아라, 시원해라, 달아라.
늦은 밤
부엌 송판대문 열리네
물거품 뽀얀 수증기 속에서 날씬한 처녀 하나
걸어나와 젖은 머리 틀어 올리네
놀란 수줍은 눈 살짝
뜰의 붉은빛을 엿보네
목화꽃 피는
여름밤
여름밤
목필균
언제부터인지 잠의 문고리는 뻑뻑하다
창밖 불빛을 암막 커튼으로 차단하고
누워도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따라
이리저리 뒤척이는 몸은 끈적거리고
새벽부터 찾아온 매미는
아파트 방충망을 붙잡고 자지러지게 울어
그냥 일어나
손 전화로 세상 이야기에 기웃대며
생각의 꼬리를 자른다
한 여름밤의 사물놀이
목필균
한여름 밤의 꿈이라더니
한적한 섬마을에서
느닷없이 펼쳐진 사물놀이는
뜨거운 축제를 연출한다.
징이 장군의 목청으로 호통을 치니
성질 급한 꽹과리가 먼저 튕겨져 나오며
갱갱 갱매갱 갱매갱매갱매갱 엄살을 떤다
양손잡이 장구가 어깨 춤을 추며
신바람을 일으키고
뒤통수 맞은 북이 얼결에
박자를 맞추며 끼여들면
귀신도 같이 노는 신명나는 시간
지이잉---. 지이잉---.
갱매갱 갱매갱 갱매 갱매 갱매갱
덩덩 궁따궁 궁따 궁따 궁따 궁따궁
둥_ 둥_ 둥둥둥 둥_ 둥_ 둥둥둥
한적한 섬마을에서 펼쳐지는
사물놀이에
우주도 하나 되어 혼을 사른다
한 여름밤의 추억
묘혜공
희미한 초롱불에 어리던 창호지
풀벌레는 머리를 박고 큰 대자로 눕는다
안방 웃녘에 왕골로 수놓은 자리
돗자리 끝으로 숨어드는 달빛
그 옛날 어머님이 해주던
묵을 생각하며
띠톱 같은 소리로 일어선다
이제 바람은 바람으로 눕고
장맛비에 녹아난 날
그날을 찾아
다시금 걸망을 메고
길을 나선다
여름밤
문인수
저인망의 어둠이 온다
더 많이 군데군데 별 돋으면서
가뭄 타는 들녘 콩싹 터져 오르는 소리 난다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
보리밥에 짱아찌 씹듯
저 별들이 먹고 있다
여름밤 모기
문장우
무더운 여름 하루 다하고
어두운 밤 아름다운 시간의 무늬를 그리며
살포시 눈을 감는데
아파트 17층까지
주소 한 장 거머쥐고 찾아온
수척한 모기 한 마리
무얼 찾아 여기까지 올라왔는가
오늘도 내 뜨거운 피 맛이 그리웠던가
너의 모든 고해성사
내 귓전에 내리꽂힌다
윙윙거리는 너의 울음 속에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너의 집념
내 육신의 끈질긴 시간의 덩굴이
어찌 너와 나의 고달픈 삶 같다
돌아가라
어서 돌아가라니까
가파른 층층을 오른 고달픈 날개
나의 성난 회초리에 찢기고
너 하잖은 생
파리 목숨인데
내 유악한 육신
날이 갈수록 무겁지만
꿀잠으로 고운 그림 그리다 말고
시간의 무덤에 널 묻어버린다
산촌의 여름밤
문재학
마음조차 허전하게 텅 빈
적막하고도 쓸쓸한 산촌 마을
고요한 사위를 흔드는
지칠 줄 모르는 풀벌레 울음소리만
변함없이 귀청을 찢고
어두운 장막 속에 애간장을 녹이며
삼경(三更)을 헤아리는
소쩍새 울음소리
소쩍소쩍 쓰라린 고독으로 스며드는 밤
바람 한 점 없는
끈적이는 열대야는
단잠을 걷어내며
심신을 괴롭히는데
상념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삶이 고달팠던 아득한 그 옛날
추억의 향기로만 남아 있는
부모형제의 북적이던 숨결이
왜 이리 애틋한 그리움의 갈증으로 탈까
여름밤
문재학
삼복(三伏)을 달구는 열기
연일 폭염 폭염이다
짜증 나는 찜통더위가
열대야로 이어지는 밤
끈적이는 온몸은
숨이 턱턱 막히고
뒤척이는 몸부림에
꿀잠은 멀리 달아난다
한 줄기
생명수 같은
시원한 냉기 바람은
갈증으로 타는데
고요를 깨드리는
풀벌레들 울음소리만
여름밤을
하얗게 지새우네
여름밤의 꿈
문재학
1
정겨운 초가지붕에 송이송이 피어나는
하얀 박꽃이 눈부시던 여름밤 속으로
전설처럼 떠오르는 순이 모습
마음이 저리도록 살아나는
순정의 풋사랑이
붉게 붉게 영글어가던 그 시절
그리움으로 방울방울 맺히네.
언제나 달려가고 싶어라
아 그 옛날 여름밤 꿈이여
2
메케한 모깃불 향기로 쏟아지는 별빛들
고향 풍경이 녹아 있는 여름밤 속으로
댕기 머리 출렁이던 그 아가씨
끝없이 속삭이며 거닐었던
사랑의 꽃길들이
지금도 가슴 적시어오는 그 시절
젊은 날의 분홍빛 밀어들이
행복의 파도로 밀려오네
아 그 옛날 여름밤 꿈이여
여름밤
문태준
풀벌레가 운다
오늘 이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전경(全景)
내 만면(滿面)에도
풀벌레 소리
한 소리의
언덕
골짜기
한 소리의
여름밤
돗자리로 펴놓고
모기장으로 쳐놓고
거기에
빈 쭉정이 같은
내가
내 그림자가
일렁일렁한다
여름밤
박영선
담장 밖으로 뻗어 나간 능소화 줄기 밑으로
누군가 자물쇠를 숨기듯 걸어놓았다
잠금장치에 녹이 올라붙지 않은 건
잠근 이의 마음이 아직 새것이란 뜻인지
내 집 담장에 걸어놓은 건
내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열어 보겠다는 속셈이었을지
열쇠란 숨기고 싶은 붉은 기억 꾸러미
담 밖이 궁금한 능소화 한 줄기는
열쇠의 사용 설명서를 꽃잎 뒷장에 숨기는 능청을 부리고
개구리는 찌꺽찌꺽 열쇠 푸는 소리를 낸다
꽃대 아래에 서성이던 잠이
만월처럼 잠긴 수심을 흔들어 본다
여름밤이 지나간다
박영숙
풀벌레 칭얼거림 허공에 눕고
어둠을 끌어안은 별들의 한숨이며
숨어 있던 독버섯
습기 찬 상념들이
칼날 위로 일어서는 외로움의 모든 것들
어금니 사이로 흐르는 침묵의 비명
빈 술병 속에 뒹구는
잊어도 좋을 한이 된 넋두리
가슴 멍멍하도록 차오른다
소낙비같이 휩쓸고 오는
머언 불멸의 기억
차마 종이 위에 쓸 수 없는
바람에 나부끼는
흰 머리카락 한 올 뽑아 붙이고 싶은
줄 곳 없는 사무치는 사연들
가슴을 태우는 모켓불 봉화 연기
별들의 살 속 깊은 한숨 속으로
여름밤이 흐느적흐느적
흘러가는구나
그리움만 쌓아 놓고
여름밤 숲속 너럭바위
박영춘
자드락밭 옆 오솔길 가녘 숲속에
팔자 좋게 드러누운 너럭바위
샛별이 밝음을 돋보여주는 초저녁이면
풀벌레들은 둘러앉아 합창을 합니다
달빛이 너럭바위에 휘영청 내려앉으면
반딧불은 불을 끄고 이파리에 숨습니다
밤이 이슥히 이지러지면
별빛은 가물가물 졸고
이슬은 풀잎에서 반짝반짝
달빛을 데리고 침실로 미끄러집니다
이때쯤이면 벌레들 새들은
너럭바위 둘레 풀잎에 걸터앉아
사랑이 익어가는 소리를 엿듣습니다
사랑이 무르익어 노릇노릇할 때쯤이면
새들은 슬금슬금 둥지로 날아듭니다
별들은 눈을 반쯤 감아줍니다
너럭바위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척 잠만 잡니다
여름밤
박영호
가슴이 답답해서 깨어나 냉수 한 그릇 마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물이 목마른 꿈과 섞이며 출렁거린다
혈관 속에서 밤새 출렁이는 동해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물결이 아픈 마디를 어루만지며 신열을 식혀주고 있다
여름밤 강가에서
박외도
해는 기울고 상계 봉에 달이 뜨면
밤마다 얘기별 들을 데리고 나와
강물 속에 뛰어들어
목욕하는 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원한 강가에서 너를 바라보노라
별들이 별똥별 되어 뛰어내릴 제
강가에서 받아 품으려 했지만
모두 형체도 없이 사라져 가니
나 혼자 안타까워 서러웠노라
저를 어쩌나 밤이라 아무도 없으니
너를 도울 자 없구나
여름의 길목에서
안타깝고 불쌍하다
사람에게는 기쁨과 설움이 있고
달도 밝음과 어둠이 있으니
세상은 완벽할 수 없음이로다.
달은 자식 잃은 설움에 구슬피 우는데
강물 속의 달은 혼자 어찌할 줄을 모르고
달이 둘인가 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위의 달은 실상이요 강물 속은 허상이라
무슨 영문인가 하고 어리둥절하였노라
여름밤
박용하
열대야에 가만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이 한여름을 나고 있는
지난해마냥 부채에 의지해 이 여름을 나려는 납량 엽기 가족이여
그 가족 중에
바람 한 점 없는 열기 속에 시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
불굴의 시를 원하는 자가 있다
팔꿈치에 괴는 땀을 훔치며
날벌레들의 난무를 조용히 지켜보며
바람 한 점 없는 열기를 지키는 일이 사치라는 것을
고압의 비애라는 것을
고장 난 사람의 짓이라는 것을
사랑의 절정에서 사랑한다고 말할 때처럼 덧없는 짓이라는 것을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허망한 짓이라는 것을
시로 말해지지 않는 짓이라는 것을
그러면서 이 세상에 따스하거나 더운 정신이란 말이 없듯이
땀에 전 러닝셔츠에게 말하듯이 또 물어본다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시가 필요할까
시로서 염원할 그 무엇이 있을까
등줄기에 줄줄 땀이 채고
몸 닿는 곳마다 짜증스런 밤에 시를 쓰겠다고 덤비는 사람이
그 어느 시절 승부욕에 휩싸여 적개심과 위악을 감행하고
울분 깨나 쏟아붓던 악동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
2등은 이미 진 거라며 혈서를 쓰기도 했던 사람은
어쩌다 시(詩)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지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자주 지는 사람이 되어 있고
자신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열대야에 조용히 물어본다
너는 무엇을 소원하느냐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북쪽으로 2백 킬로미터도 갈 수 없는 나라에서
남북으로 찢기고
동서로 갈리고
신분과 계급으로 똘똘 뭉친 나라에서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그때 여름밤
박인걸
그해 밤꽃 피던 여름밤
별들이 무리 지어 흐르던 밤
달빛이 고고히 빛나던 밤
시원한 바람이 옷깃 스치던 밤
아무도 없는 밤길을 혼자 걸으며
멈춰있는 시간을 혼자 즐겼네
속삭이는 별 무리와 하나 된 나는
꿈과 희망을 쏘아 올리며
가슴에 간직한 나만의 비밀을
하늘 향해 큰 소리로 털어놓았네
풀벌레도 이미 잠든 숲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만 흐르고
아무도 몰래 피는 들꽃 무리가
길 걷는 나에게 향기를 뿌렸네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나만의 감동
그해 여름밤은 마법 같은 시간
나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엮어
일기장 구석에 걸어두었네
이 밤도 그곳에는 그때 그 순간이
고운 이야기들로 펼쳐지겠지
여름밤 추억
박인걸
별 숲에 갇힌 산촌 마을에
풀벌레 노랫소리 깊어가는 밤
은하수 강물처럼 빗겨 흐를 때
아스라이 떠오르는 어떤 그리움
북두칠성 지쳐서 산위에 눕고
길잃은 반달은 중천에 걸려
반딧불이 하나둘 불 밝힐 때면
미소 짓던 소녀가 마음흔들고
바람한 점 없는 열대야에도
거불거불 피어나는 모깃불 연기
멍석에 누운 어린 소년은
소녀와 손잡고 별숲을 달린다.
냇물은 여전히 여울져 흐르고
장독대 봉숭아꽃 여간 수줍고
점박이 바둑이 깊이 잠들 때
그리움 품은 소년도 꿈길을 간다
한여름 밤의 추억
박인걸
어둠이 장막처럼 마을을 덮으면
평화로운 고요가 밀물처럼 깃들고
모깃불 마당에 모락모락 오르면
멍석에 둘러앉아 별을 세던 정겨움
풋강냉이 오이냉국 호박잎 쌈에
밭일 지친 아버지 흐뭇한 웃음
고단한 아낙네 꿈길로 이끄는
은율 타고 흐르는 여울물 소리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노랫소리
피곤에 지친 농부 위로의 선물
초가지붕 위로 보름달 둥실 떠오르면
하얗게 핀 박꽃이 수줍게 웃고
새끼 줄 하나에 목숨을 걸고
줄줄이 피어나던 보랏빛 나팔꽃
전선 줄 하나 없는 마을 허공을
거침없이 질주하던 황조롱이야
꿈을 싣고 흘러가던 은하수 폭포
호수 위로 쏟아지던 별빛의 행렬
앞산에서 밤새 울던 등 뻐꾸기는
아직도 여전히 울고 있을까
이제는 고향마을 고안 심곡이지만
가슴 속에 영롱한 여름밤의 추억
여름밤 위원회
박해람
웅덩이에는 날파리가 왱왱댄다
물결 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소녀의 얼굴이 몇 살인지는 나도 몰라
꽃씨가 흘러나오는
소녀의 얼굴
왜 태양을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
찡그린 꽃씨라고 말하지 않는 거지
언젠가 뒷면에 침을 발라 붙인 달이 아직도 편지 봉투에 떠 있다
여름밤 위원장의 팔에 달무리가 채워져 있고 땋은 머리를 풀자 여러 개의 밤길이 사라진다
가장 큰 날개는
가장 작은 날개를 먹을 수 없지
부엉이와 날파리는 외계
확성기는 가까운 말
거수를 하는 꽃들의 한 뼘
한밤의 풀밭에 얼굴을 터는
소녀들의 파종기
주근깨라 불리는 검은 별들
돌을 던지면 머물던 장소들이 사라진다는 귓속말
방심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 달무리를 올려다보면 부르르 떨리는 웅덩이들
가상의 뼈를 활짝 여는 하품
여름밤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여름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계절이고
박수는 가장 오래된 의견이다
몇몇 번지는 의견은 제외되었다
여름밤에 얽힌 추억
박현희
아파트 빌딩 숲 너머로
까만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은빛 영롱한 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 여름밤에 얽힌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네요
쑥 내음 솔솔 풍기는 모깃불 지핀 너른 마당에
볏짚으로 짜놓은 커다란 멍석을 깔고
엄마 다리를 베게 삼아 다소곳이 누워
마치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까만 밤하늘을 예쁘게 수놓은
반짝이는 별을 하나 둘 헤던 밤
개구쟁이 동무들과 어울려
어둠 속을 헤엄치는 반딧불이 찾아
동네 어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빈 유리병에 가득 담긴
반딧불이가 어찌나 신비롭던지
밤이슬에 바짓가랑이
함초롬히 젖는 줄도 몰랐답니다
동그랗게 모아쥔 작은 두 손에
반짝반짝 반딧불이를 만지작거리며
마냥 순수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
여름밤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도심 속 오늘의 내 정서를 밝혀줍니다
달빛이 참 좋은 여름밤에
박형준
들일을 하고 식구들 저녁밥을 해주느라
어머니의 여름밤은 늘 땀에 젖어 있었다
한밤중 나를 깨워
어린 내 손을 몰래 붙잡고
등목을 청하던 어머니,
물을 한 바가지 끼얹을 때마다
개미들이 금방이라도 부화할 것 같은
까맣게 탄 등에
달빛이 흩어지고 있었다
우물가에서 펌프질을 하며
어머니의 등에 기어다니는
반짝이는 개미들을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물로 씻어내던 한여름 밤
식구들에게 한번도 약한 모습 보이지 않던
어머니는 달빛이 참 좋구나
막내 손이 약손이구나 하며
시원하게, 수줍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여름밤
반태권
먼 대숲의 바람 소리
거제 문동의 달빛처럼
엉금엉금 기어가 앉고
갈매나무 잎사귀에 어린 별빛도 보며
그냥 잠에 취해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모기
엥 소리를 내며
못질하듯 나에게 덤벼들었다
여름밤은 한없이 깊어만 가고
의패잡이 어깨에 한숨으로 내리던 장맛비
내 속으로 파고 들었다
초하(初夏)의 밤
배창호
한낮엔 열꽃이 피었어도
어스름한 어둑살 내리면
곤한 하루를 실바람으로 달랜다
찰랑거리는 들녘의 모내기 논에는 달빛만 일렁이고
비라도 오려나 날구지에 눈꺼풀이 한 짐인데
하품해대는 별조차 갈지자 놓는다
통념으로 절이고 삭힌 시절 인연은
순후한 비색(翡色)으로 내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새삼 새로울 것 하나 없건만
개구리, 길지 않은 한철
보채고 애태운다 한들 어쩌랴,
하물며 은하수를 건너는 칠석 밤도 있는데
새벽녘 창이 밝아 오려니
아서라 언제 그랬느냔 듯이
시침 뚝, 땐 한길 속 사람 마음
그대로 쏙 빼닮았으니 개굴개굴
여름밤의 낭만
백낙원
평상(平床)에 모기장 치고
앞마당에 누웠더니
총총한 하늘별들
가슴팍으로 쏟아진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너를 잊고 살았더냐.
옛 친구 극성이 찾아
하늘 안부 물었더니
오방 살 낀 북두와 칠성이는
일 년 내내 주위만 맴돌고
태성이 삼 형제
우애는 여전하며
개밥바라기 샛별은
하얀 쪽배 길 비추고
왕성이 형제 감감소식이란다.
하도 오랜만이니
잠이야 내일 자고
이 밤 하얗게 새도록
태곳적 신비 이야기하잔다.
내일모레가 칠석인데
오작교 기다리는 견우직녀
편안한지 안부 묻다 보니
삼복에 열대야 저만치 물러가고
별똥별 쪼르르 이 밤이 깊어가네.
* 극성이 : 북극성. * 칠성이 : 북두칠성.
* 태성이 삼형제 : 삼태성.
* 개밥바라기 : 샛별, 태백성.
* 왕성이 형제 : 천왕성, 명왕성,
여름밤
백원기
별똥별 길게
미끄러지던 밤
마른 쑥 모깃불에
매운 눈 훔치다가
까만 손에 얼룩진 얼굴
울다가 서럽게 웃는 밤
달님도 환하게 웃으면
어느덧 날이 밝는다
여름밤
서덕준
여름밤입니다
체온이 오르내리는 능선에서 들나비 떼가 속살거리고
내 일기장의 낱낱 페이지 사이마다
저녁별이 책갈피를 들추고 내려앉습니다
내가 섬기는 문장들이 바람으로 불어옵니다
반딧불이 화관처럼 머리 위를 비행하는 밤
짙어지는 벌판에 개여울과 나란히 서서
꽃말도 없는 이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보다 안온한 밤이 없을 것입니다
여름밤
서복길
까만 밤사이로
몰래 감춰둔
그리움이 눈을 든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
바람을 핑계로
남몰래 스며드는
그대 그림자
보이지 않아도
잡히지 않아도
숨결 느낄 수 있음에,
밤새워 뒤척이며
까만 밤 품어
하얗게 태우는 이 밤
미명 속에 들려오는
뻐꾸기의 소리
뜨거운 열기 속에
잠 못 든 나를
재워주러 노래하나 보다
한여름 밤
서영처
내 속에 들어앉은 슬픔을 꺼내놓자
무덤이 하나 더 늘어난다
구름 같고 산 같은 무리
늙은 소나무 회나무가 능을 향해 경배한다
나는 잔디밭에 누워
노른자위 황금의 위치를 추적해 본다
덤덤하게 등 맞대는 슬픔
팽팽한 법칙을 놓친 항성들인지 모른다
신음 소리를 땅 속에 묻어버린,
순간, 고분들 두근 거린다
침묵이야 말로 오래 묵힌 소음인 것을
꺼내놓은 슬픔을 집어넣자
슬그머니 능이 하나 사라진다
여름밤의 상념
섬그늘
무더운 한여름의 태양이
우주를 작열하고
이제는 살포시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그 여운이
한밤이 깊은
자정까지도 이어진다
밤의 여신은 더욱 내려
조용히 귓전에 맴도는
벌레 소리까지 환성에 들린다
왜일까?
도시의 삶, 아스팔트 위의 삶에
나의 몸도 녹아 버렸나보다
작은 텃밭 임대해
고추랑 옥수수랑
그리고
상추며, 고구마며, 고추, 토마토, 열무
감자를 심던
그 곳이 더욱 그리워진다.
삶의 넝쿨 속에
오늘도 파묻혀 덩굴째 넘어가고 있다
아쉽지만
이밤도
내일도 오늘처럼
그런 여름밤이 두려워진다
여름밤
손병흥
숨쉬기조차도 힘든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에
앞마당에다가 모깃불을 피워놓은 채로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던
밤하늘 수놓은 반짝이던 별빛들의 향연
그때 그 시절이 몹시도 그리운 어느날 밤
한 번쯤 되돌아보고픈 아련해진 추억들
순간순간 떠올려보는 회상 속의 나날들이
그동안 바쁜 삶에 휘둘려서 잊고만 있었던
오랫동안 반추해보던 가슴속 소소한 이야기
낡은 도시의 변화처럼 아련함 되어서 맴돌던
못내 아쉬운 나날 되어버린 영원한 마음 안식처
여름밤 별자리
손병흥
하얗게 박꽃처럼 날밤을 새운 밤하늘
손에 잡힐 듯 달빛 어린 고요함이 피어난
일렁거리는 부채 바람으로 어둠을 불사른
깊어져 간 밤하늘에 무수한 별빛 드리운 채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노랫가락
밤새 느릿느릿 풀벌레 울음소리 숨어들던 밤
선한 눈빛 시로 물든 이슬 떨쳐버린 그리움
별을 따라 무더위피해 마실 나가버린 밤하늘
불면의 밤 수놓은 쏟아져 내리는 별 무더기로
반짝이는 별 신비로운 은하수 향연 펼치던 사연
여름밤의 꿈
손병흥
오래도록 굽이굽이 끝이 없는 산자락 넘고 돌아서
자연이 달콤한 세레나데 소리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절대 잊지 못할 꿈결 같은 추억들 고이 간직한 채
몰아치는 무더위에 지친 심신 달래고파 떠난 여행길
어느새 그저 꿈같은 시간 풀벌레 소리처럼 여물어가는
어김없이 가슴 가득 달맞이꽃 피어나는 달빛 어린 계절
아직 정돈되지 못한 쓸리는 온갖 사연 이야기꽃 되어버린
시원해진 바람에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마저 여유로운 밤공기
마냥 흘러만 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쉬운 두드러진 여름 휴가철
모처럼 맨얼굴 온몸 가득 여유로움 일깨워 보는 깊어져 간 긴 여운
비가 오는 여름밤
송근주
비가 시원하게 한 줄기 두 줄기 주루룩
내리는 밤이 시원하다
여름밤에 내리는 비이기에 그렇다
한 방울 떨어져도 상쾌한 비
귓전에 메아리 회오리바람으로 일고
파도치게 하여 상쾌함 더 하기에 그렇다
봄비가 아니요
가을비가 아닌
겨울비 아닐 때
여름밤에 내리는 비이기에 그렇다
여름밤
송근주
더워야 여름밤이지
선선하면 여름밤이라고 하겠어
폭염에 장마에 태풍에 열대야로
뒤집어쓴
잠이 안 와 잠이 안 와 하면서
잠에 들어 가고자 하나
잠에 들지 않아
그립거든
사랑하고 사는 곳으로 가는
잠에 들어 가는 것이
나 깨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애인이 찾아오는 꿈으로
대신하려고 해
왜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 지금
너무 잘 자고 있어
나 또한
사랑을 받고 기억하게 하거든
살아있는 놈보다
죽은 놈이 떠났다는데
잠에 들어 있다
한여름 달밤
송문헌
갈라진 벽 틈새로 한 여름밤 달빛이
잿다리*에 하얗게 빙긋 웃는다 흠칫 놀라
두리번거리는 어둠엔 눈을 감아도 생생한 것들
갈라진 벽엔 쟁기, 그 맞은편엔 멍석말이가
문간 옆엔 삼태기, 괭이, 호미, 낫, 들이...
쏙독새 소리에 번쩍 눈을 떠보니 희끄무레
모두가 그 자리, 모두가 그 자리
빈 마당 가득 엄니가 다녀갔을까?
그림자 진 추녀 아래론 밤이슬만 함초롬 차다
* 잿다리 : 재래식 변소에 똥오줌을 누기 위해 걸쳐놓은 두 개의 긴 나무 판대기
여름밤에
송정숙
모두 잠든 밤
가로등 불빛
스쳐 간 걸음 헤아리는
겸손함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어떤 이의 푸른 고독
다정해지고 싶어 한다
가난은 잔기침으로
눈물이 많아지고
희망을 따라가며
용기를 찾아가는 길가에
깊어가는 여름밤이
꿈을 꾸고 있다
홀로 견디는 밤에
생각이 찾아와서
놀이터 만들어 놀자 하니
그래 놀아보자
이 밤이 다 가도록
쾡거리 장단 맞추어
여름밤의 이야기
신성호
뜨겁게 달구던 태양은
하루종일 빈 하늘을 지키더니
심술이 발동한 듯 빛이 바래고
밤에 뜨는 보름달이 혹시 아닌가
달걀의 노른자 위 그 모양으로
제모습을 다 들어 내놓고
미워하던 것 들도
좋아하던 것 들도
다 채념해 버린 듯
긴 휴식의 보금자리로 간다
하늘가엔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
세상의 있는 물감 다 팽개쳐 버린 듯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 모습을
못내 아쉬운듯 긴 그림자로 가리운다
해가 저편으로 사라진 그길을
무슨 표시라도 해 놓으려는 듯
총총히 빛나는 별들이 제자리를 지키니
어느 땐가 또다시 떠오를 태양을 그리며
밤새도록 졸음을 쫓으며 서 있구나
숲속에는 님을 보낸 아쉬움을 달래 듯
울어대는 풀벌레들은 너나 할것 없이
각양각색 목소리로 울고 있구나
모기 쫓던 모깃불은 식어만 가고
조용한 들녁에는 긴 어둠이 잠들고
수박밭을 지키던 원두막지기도
깊어가는 여름밤에 흠뻑 취해서
모기의 괴로핌도 잃어 버리고
여름밤의 긴 이야기도 멈추었구나
여름밤의 추억
신원감
숱하게 여름밤을 지내오면서
우리의 가슴마다 담기는 혼
그것은 사랑하는 세레나데다
보고도 보고 싶은 사람들
힘차게 피어나는 우리의 순정
그렇게 달려가도 그대로 있는 순수
무더운 어느 여름밤
신진기
뙤약볕에 녹아드는
스커트만큼
짜르디 짧은
여름밤일지라도
높이 떠서 척박한
이슬에 곤두박질 갈매기
못난 놈 밤이슬 몰래
심장 저어 깊은 곳에서
몸부림 홀로 내림질하는
무대 장막
관객은 검은 연극에
등허리마저 따갑다
이십칠
조동이 어깨서 뱅기 날 때
여름밤
안상균
도심이라 그런지 모기가 많다
엥! 거리며
달려들 때이거나
모기장 속까지 들어와 물어도
그냥 지나치고
태연한 척하다
이내 모기향을 뿌린다
기름 냄새 심하게 난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이목구비가 있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것인데
매미 소리는 선잠을 깨우고
선풍기는 이미 멈춘 지 오래
열대야는 기대 이상으로 머문다
여름밤
안영준
잔잔한 주름 파도는
시야를 꽉 채우고
신선함이 파고드는 한여름 밤
맥문동꽃 숲에
귀뚜라미의 떼창이 시작되고
청아한 멜로디가 고막을 꽉 채운다
노랑 민들레 머리 풀고 고개 젖는 밤
가까이서 들리는 개구리 합창은
달팽이관 나선을 울린다
곡예 하듯 쏟아지는 별빛은
이 내 작은 가슴으로 흠뻑 쏟아져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여름밤
양승준
밤하늘에 별들이 떼 지어 떠 있다
무리를 짓는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오랜 습성,
오늘도 사람들은
밤늦도록 이 거리 저 골목을 몰려다닌다
무턱대고 세勢를 불리려는 그들의 욕망은
무정형(無定形)의 고무풍선과 닮았다
어둠보다도 깊은 대숲에서
목어(木魚)처럼 우는 직박구리 한 마리
어느덧 달이 많이 기울어졌다
별들도 제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느 해 여름밤
양재건
꿈이 영글면 세상이 네 것이라던 스승은 지금 없다
세상의 물살은 지독하리만치 가파르고 목숨 부지하며
살아남는 일이 시급한 삶의 화두다
교정의 플라타너스가 꿈을 키워주던 그래서 여름날 빗줄기를 피해
그곳에 서면 벼락이 쳐도 겁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지
구멍 숭숭 뚫린 운동화를 끌며 돌멩일 차며 아무도 함께해주지 않는 들길을 걸어도
꿈만은 야무졌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누군가 말해주는 그런 한숨 섞인 여름밤
낯선 사람이 건네주는 술 한 잔에 감동하고, 쉼 없이 달려드는 모기떼
그 거침없는 돌격 정신에 감격하기도 하며
세상에 흠뻑 두들겨 맞아 갈길 마저 잊어버린 풍경들
술잔 기울이며 내뱉는 푸념들이 여름밤 내내 이곳저곳을 헤매다
드디어는 헛된 꿈 되어 되돌아올지라도
아이들은 자라고 이런저런 모습의 어른이 되어
으스대며 세상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고개 숙이고 변방에 머물기도 하겠지
교정의 플라타너스가 노을 지는 들녘을 향해
제 잎사귀들로 그리움을 전하는 시간이 되면
꿈이 영글면 세상이 네 것이라던 스승이 진정 그리운
어느 해 여름밤
여름밤의 반딧불
오석주
선명한 초록 잎
살랑살랑 춤추며 한 폭의
풍경화로 담은 수채화
산자락에 서 있는 나무도
더위에 지쳐 바람과 함께
달밤을 바라보는구나
어둠이 내리는
적막한 밤 열대야로
밤잠 못 이루는 어느 날
창살에 살며시 들어오려나
삐죽 내미는 보름달
지친 몸 달래며 한숨 자려니
반짝반짝 불빛이 날아와
어디론가 날아간다
반딧불 여행 중이라며
내 곁에 다가와 속삭이네
한여름 밤의 꿈
오애숙
한여름 밤하늘 보며
잿빛 도시의 쳇바퀴
허공 속에 던지우고
고즈넉한 심상에 빠져
시 한 수 읊고픈 맘에
우연히 집어낸 고운 시
모든 시름 뒤로한 채
그 옛날 대청마루에
누워 속삭이는 향연
삶의 언저리 속에서
청아한 은빛 초롱으로
칠흑의 어둠 불사른다
여름밤
유금
저녁 먹자 초승달이 아까워
사립문 닫고 더위에 누웠네
하늘 맑으니 모기가 귓가를 지나고
별 흩어지니 거미가 처마로 내려오네
박꽃은 하얗게 피고
국화잎은 점점 커지네
이웃집 아이 달 노래 부르는데
그 가락 어찌 그리 간드러진지
여름밤
유영서
하늘 이야기
별처럼 쏟아지고
숲속에서
풀벌레 운다
별빛도 잠이 들면
우리 모두 돌아갈 테지만
수국 환하게
불 밝히는 길을 따라
발걸음 소리
가만가만 접어놓고
나와 그대
애태우는 밤
한여름 밤의 꿈
유필이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내 그림자 위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보니
눈 뜨면 사라지는 꿈이었다
꿈이지만 입은 옷은 흠뻑 젖어 있고
수척해진 이마엔 신열이 펄펄 끓었다
한여름 밤의 지독한 꿈은
마음 밭 빈 고랑에
자글자글 주름살을 만들어 놓았다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주름지고 젖은 마음을 조용히 펴서
정성껏 다림질한 후
제자리에 곱게 가져다 놓아야겠다
까만 밤을 하얗게 태운
비몽사몽 악몽의 흉터가 남지 않도록
여름밤의 원두막
윤갑수
어둑 저녁 땅거미 질 때
달빛에 젖은 참외밭엔 쫴만 별들이
내려앉자 숨기 장난 놀이 중이다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룬
새벽이면 달은 저물고 샛별만이
파수꾼처럼 농익어가는 참외밭을
지킨다.
원두막 모기장 새로 들어온
모기 한 마리 밤새 배터지게 피의
잔치를 열고는 눈앞에서 죽임을
기다리듯 요지부동
한참을 바라보다 먹다 남은 누룽지를
한 잎 깨무니 으깨지는 소리에 놀라
기절하고 만 모기처럼 날 새우며 울던
참외밭엔 풀벌레 소리 멈춘 지 오래다
한여름 밤의 잔별들
윤갑수
어둠에 쌓인 하늘엔 잔별들이
깨어나 서성이고 바라보는 이의
눈길 따라 보일 듯 말 듯 잔별은
이렇게 자신을 알린다
별빛이 녹아나는 가로 등불 아래
모여든 하루살이 잔별만큼이나 한밤을
좋아하듯 빛을 좇아 나랠 편다
달빛 저문 새벽이면 투덜대는
바람의 속삭임에 졸고 피어나 반겨주는
달맞이꽃이 이슬을 머금는다
어둠 뚫고 먼동이 트면 별과 함께
꽃잎 저미니 날이 저물 때까지
긴긴 잠을 잔다
여름밤 읽는 시
윤성택
한밤중 휴대폰을 내다보는 사람이
시 한 편 횡단하는 밤기차를 탔습니다
손 안 차창에는 눈발이 날리고
흠칫 뿔 치켜든 순록이 흰 김 내뿜는
그 너머
자작나무들이 번번이 눈티를 터는 풍경
함흥 나진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 같은 행간
같은 시각
같은 창문
몇 량의 객차에 접속된 사람
두구 두구 두구
레일 구르는 리듬과
손끝에서 미끄러지는 스크롤이
어둠 속 질주해
터널 같은 눈동자를 지납니다
사각 안이어서 눈송이 더 흩날린다고
습기 품은 고목 냄새로
기차는 별밭을 스치는 중인데
어쩌다, 문득, 가만히 깨어
눈이 눈을 하염없이 마주 보는 창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희고 희미하게 곁을 따라와
커튼처럼 나부낍니다
누가 기다리는가 싶어
발간 코끝 시큰하도록
기차가
시가
아득하게 멀어져 갑니다
여름밤의 상념
윤용기
무더운 한여름의 태양이
우주를 작열하고
이제는 살포시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그 여운이
한밤이 깊은
자정까지도 이어진다
밤의 여신은 더욱 내려
조용히 귓전에 맴도는
벌레 소리가지 환성에 들린다
왜일까?
도시의 삶, 아스팔트 위의 삶에
나의 몸도 녹아버렸나 보다
작은 텃밭 임대해
고추랑 옥수수랑
그리고
상추며, 고구마며, 고추, 토마토, 열무
감자를 심던
그곳이 더욱 그리워진다
삶의 넝쿨 속에
오늘도 파묻혀 덩굴째 넘어가고 있다
아쉽지만
이 밤도
내일도 오늘처럼
그런 여름밤이 두려워진다
여름밤
윤춘순
바람길이 시원한 샘가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한 토막 여름날의 수채화를 담는다
옥수수 쪄내 와 도레미 송
할머니의 재미난 구미호 이야기
더위는 저만치 달아난 듯
소름 돋는 오싹한 납량특집극
스르륵 잠들다 마주한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의 꿈
소스라치다 헤맨 할머니 품속
여름날만 되면 이유없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만함
쑥대머리로 모깃불 피워
매캐한 연기에 켁켁
별이 우수수 쏟아내면
반딧불이도 밤 별 인양 반짝반짝
유년의 한여름 밤이
그립습니다
그리운 고향의 여름밤
은별
땅거미 짙게 내리고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에 별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초저녁 하늘에
반딧불이 수놓으며
풀벌레들의
합창연주가 시작되었지
암울했던 시절
여름밤이면
마당 멍석에 누워 별을 헤아리며
형제들과 도란도란
웃음꽃 피우고 행복했었지
아
추억도 별이 되어 흐르는
아름다운 밤이여
기억 속에 멈춰버린
지난날들이
순간 와르르 몰려와
그리운 이야기를 텅 빈 방 안에
한가득 풀어놓는다
여름밤의 소곡
이국헌
1
소쩍새 운다
돌로 울음 찍고
달빛은 산성 청마로 위에 걸렸다
저 언저리 파고 앉아
소쩍새 운다
피 뿌린다
살아생전 환한 미소
누이여 슬퍼 마소서
쓴 물 토해 내는 누이여
어머님은 외동딸 부여잡고
죄 짓는 오늘 밤도
독 짓는 기도소리
산에 달빛 넘긴다
2
바닷가 외딴 마을에
홀로 앉아 모닥불을 피운다
바닷바람이 피어나는 연기 사이로
풀잎대 속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바람으로 토닥이며 소리를 낸다
멀리서 부서지는 몽산포 파도 소리는
날 빛 생명처럼 젖어서 마침내,
논두렁가 속의 개구리를 울렸다.
매운 연기 맛에 못 견디고 울음소리 날릴까
그 전날,
연기 속에 가냘픈 목숨 한 줄에 매달려
기도원으로 가시던 누님을 알았을까
바닷가 외딴 마을 파도 소리에
울어 대는 개구리 소리가 씻기어 간다
여름밤 풍경
이기영
소낙비 그치고
뒤란 장독대
떨어진 감나무 파란 열매들
나팔꽃 오므리는 저녁
매미가 늦은 소리 내다 그치고
폭 좁은 평화가 주위를 감싸자
장대 매단 전등에 의지해
감꼭지 명주실 꿰던 까만 손끝
나직한 헛간 초가지붕
박들이 달빛 안고 잠들때
잠든 동생 팔목에 둘러주고
같이 잠들었던 여자아이
여름밤
농도 연하게 그려진 수채화 한 점
한 여름밤의 합창
이둘임
고요함도 잠시
갑자기 일제히 울어대는 매미 소리
떼창 같은 전주곡이 울려 퍼진다
환생의 기쁨에서 짧은 생의 송가까지
밤이 이슥해 지자
낮은 곳 풀벌레들 어둠을 뚫고
일제히 제 목소리 내기 시작한다
숨죽였던 낮보다 대담하게
깊어가는 합창 소리
계절의 전령사 귀뚜라미는
제철이 온다고 합세한다
귀뚤귀뚤
찌르찌르
쯔쯔쯔쯔
찌이지이
영역 지키고자
몸을 부비는 아픔 감내하고
끝없는 멜로디로 이어
더 큰 소리로 서로 밀고 당기며
한 여름 밤의 대전은 이어간다
밤의 가스파르
여름밤의 추억
이상정
풀빛으로 덮을 모깃불
평상에는 참외, 수박, 복숭아까지
둔딱한 어머니 부채까지
아련하게 떠오를 때
또래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우물을 길어다
등목 한 번이면
단지 우리의 눈빛은 달랐다
생은 여귀처럼 자라
아무런 생각도 없이
쏟아지는 별빛만 쳐다보았다
서럽게 살아도
그곳에 웃음도 심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사람도 만났다
산빛은 산빛대로 눕고
어머니의 기침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고양이
여름밤
이선영
방바닥을 옮겨 다니며 잠 못 드는 여름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건 바로 섭씨 30도 넘어가는 너란 무더위
창문을 열고
잠옷의 단추 몇 개를 끄르고
나는 너를 견디려고 밤 내 허덕인다
한 여름밤의 무더위
나에겐 선잠 드는 더운 밤들만 계속된다
여름밤에 바람
이시향
여름을 꽉 채운
바람의 몸짓은
한 점 흔들림도 없이
밤이 되어도
끈적한 땀방울 흘린다
선선한 가을로
다이어트한 바람 불어오길
바라며 찾은 태화 강변
부채의 날갯짓으로
겨울 찬바람을 추억하는
손놀림이 바쁘다
숨이 턱턱 막히는지
수면 위로 나와
뻐끔거리는 열대어
바라보는 도시의 밤이
열대야로 흐느적거린다
한여름 밤
이영광
조치원 내창천 곁 침침한 돼지 목살 집엘 들어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선풍기에 손을 얹은 채
주인에게 말대답을 하고는 내려다보니,
그 낡은 선풍기, 헤드엔 덮개도 없이
강풍으로 맹렬히 돌고 있더라고
주인이 한마디 더 하고
내 손이 몇 센티만 아래로 미끄러졌다면
피범벅 됐을 거야
놀랐어, 놀라긴 했는데 고기를 구우며
늦는 학생들을 기다리면서도
어떻게 사람들 드나드는 길목에
저걸 덮개도 안 씌우고 틀어놨는지 이해가 안 되고
저러다 누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주인은 대체 무슨 경을 칠 건가
싶어서, 일어나 그 선풍기 꺼버리고 자리로 왔다
고기가 알맞게 익자
도착한 학생들에게 선풍기 얘기를 하며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무감각, 무신경할 수 있느냐고
목살이 목에 걸린 듯 연신 얼굴을 찡그렸다
두 학생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다 건너다보니
그 선풍기 또 웽웽 잘만 돌아가고 있고
밤은 후덥지근하기만 해서 서둘러
이차 가자며 먼저 일어섰다
저 집엔 다신 안 간다
술기운 누르며 비틀대고 있자니
조만간 어디 농가 주택 구해 텃밭 일구며 살자던 다짐이며
몸 부려 땀 흘리고 사는 꿈인지 현실인지가 생각났다
손가락 없는 손으로 어쩔 뻔했나?
아니, 왜 나는 내 잘린 손가락들은 잊어먹고
선풍기 걱정만 늘어놓았나?
살 만큼 산 건지 철딱서니 없는 건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던 한여름 밤이었다
여름밤
이원문
1
홑이불 눅눅한
멍석 위 마당의 밤
누워 보는 별자리
하나 둘 드러나고
은하수 길 더 먼 별
볼수록 작아진다
손 접어 찾는 별
어느 별이 들어 올까
들어오면 다 나의 별
어느 곳에 따 담을까
담을 곳 찾는 밤
꿈속에 모아진다
2
밤하늘의 별나라
저 별 나라에 누가 살고 있을까
은하수 길 따라 별 나라에 가던 날
누가 나의 마중을 그렇게 기다렸지
밤하늘에 별 가득
모깃불 연기 속 어디에 숨었었나
그 잠깐 다시 나와 두 눈에 쏱아지면
별 하나 나 하나 어느 시간이 세어줄지
다 못 세고 지친 밤
내려오는 눈꺼플을 어찌할까
모깃불 꺼지는 밤 하늘에 별만 가득
댑싸리의 밤하늘 별만 남아 반짝였다
여름밤이여, 옥상을 봐라
이윤학
양옥 옥상에 다리 포개고 앉은 어머니
아래 사랑채 지붕 위로 오른
측백나무 벼슬을 바라보신다
때 낀 손톱으로 옥수수 알을 떼어내
입안에 털어 넣는 어머니의 눈시울
붉은 페인트칠 달빛이 들어앉는다
새벽에 일어나 돌아다니다 보면
아침 먹을 때가 되고
들일 나갔다 들어와 점심 챙겨 먹고
낮잠 한숨 자고
담뱃잎 따다 엮어 하우스에 널면
금방 저녁 먹을 때가 되지
마루에 전깃불 밝히면
언제 들어왔는지
제비 한 쌍이 똥 받침대 대못에 앉아
저녁 먹는 걸 구경하지 뭐냐
저 낭구*들은 다 지켜봤을 겨.
별것 있남. 금방 지나가는 겨.
저녁 먹으면 텔레비 틀어놓고
다리 뻗고 잠들어야 하는 겨.
어제가 모두 전생 같은 것이여.
* 낭구 : 나무의 충청남도 사투리
여름밤
이일영
휑하니 뒤가 열려
오 가는 바람 쉬이 지나고
별빛 그림자 어른대는 대청마루
방금 퍼올린 감자밥 열무김치
미역 된장국 윤기 나는 찰옥수수
구수하게 술렁대는 저녁 밥상
매캐한 쑥대 모기향 피우며 할머니는
우물물 차가운 수박 한 통 썰으시고
우리 손주 꼬마들은 입담 좋으신
할아버지의 구구절절
옛이야기에 숨죽이다 보면
아까는 그렇게 요란하던
개굴개굴 개구리 합창 소리
아스라이 점점 멀어지면서
어느새 스르르
꿈나라
여름밤
여름밤
이정은
어둠이 내려앉은 이 밤
그 찌는 듯한 열기 속에
여름을 노래하는 매미의 열창 속 대낮의 향연은 다 어디로 갔을까
조용히 어둠이 드리운 속에 웃음 짓고 내려 보는 달님의 정원 속 이 밤
고요히 열기만이 남아 찌는듯하게 여름밤을 식혀줄 줄만 알았건만 식을 줄 모르는 삼복더위
여름밤은 유유히 한낮의 열기를
이 밤도 이글대듯 찌는듯하게 열기를 내 뿜는다
헉헉거리며
이 밤을 맞장을 치고
더위가 누그러지는 한여름 밤을 지내고프다
이 밤을
한여름 밤의 그리움
이제민
뜨거운 태양 익어가는 여름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종일 시끄러운 매미도
지쳤는지 잠시 울지 않는다
밤하늘 별을 보며
꿈으로 다가온 그리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모습
시원한 차를 마시며
가슴을 식혀 보지만
깊어가는 여름밤
그리움은 더해 간다
여름밤
이준관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여름밤은 뜬눈으로 지새우자
아들아, 내가 이야기를 하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꼭 끼고 가까이 오라
하늘의 저 많은 별들이
우리들을 그냥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는구나
나뭇잎에 진 한낮의 태양이
회중전등을 켜고 우리들의 추억을
깜짝깜짝 깨워놓는구나
아들아, 세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은
너는 밤새 물어라
저 별들이 아름다운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 열 손가락에 달을 달아주마
달이 시들면
손가락을 펴서 하늘가에 달을 뿌려라
여름밤은 아름답구나
짧은 여름밤이 다 가기 전에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뜬눈으로
눈이 빨개지도록 아름다움을 보자
중년의 여름밤
이채
화가는 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별을 보고 시를 쓰겠지만
나는 별을 보고 추억에 젖습니다
여름이 오고, 또 밤이 오면
밤바람 시원한 창가에서
어린 날의 눈망울처럼
초롱초롱한 별을 바라봅니다
웃고 있어요. 별도 나도
유난히 내 눈에 빛나는 별 하나
나를 알고 있나 봅니다
퍽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별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운 별
밤마다 별을 심은 적이 있었지요
어른이 되면 그 별을 꼭 따오리라 믿으며
우정의 별로 일기를 쓰고
사랑의 별로 편지를 쓰고
소망의 별로 꿈을 꾸던 나이
세월은 흘러도 별은 늙지 않고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되었지요
눈물의 별로 술을 마시고
추억의 별로 커피를 마시는 나이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어요
별은 따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며, 이렇게 그리워하며
그저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여름 밤의 꿈
이현승
나뭇잎에 베인 바람의 비명
몸이 벌어지면서 나오는 신음들
수도꼭지의 누수처럼 집요하게 잠을 파고드는
불편한 소리들
아, 들끓는 소리와 소리 사이
폭발과 폭발 사이 화산의 잠
어둠 속에서 숨죽여 우는 사람이 있다
누가 밤하늘에 유리 조각을 계속 뿌려대고 있다
여름밤의 오선지
이훈식
높은 별자리
다 장조
바람은 여리게
성산 마루에 걸터 앉은 달빛 내려와
논배미마다 선을 긋고
떨어져 내린 별을 줏으며
마디마디 숨표를 찍던 맹꽁이
첫음을 잡는다
낮은음에 이음줄 잡은 뻐꾸기
동구 밖 소식 전하는데
봇물 넘치는 음율에 감정 풀린 개구리
휘몰이 장단에 빠져들고
오늘도 만나지 못한 걸음에
꼬리표 달던 소쩍새는
되돌이표 없는 오선지에다
4분의 3박자 울음을 적는다
한여름 밤의 연가
임성섭
이파리가 수줍은 듯 숨죽인 채
파랗게 놀라서 고개를 떨구었다
철 지난 장맛비가 시시각각
흔들리는 여름 안고
그리운 이 달려와
파문으로 안긴다
어깨를 나란히 맞추었던
잊혀진 기억도
새록새록 솟아나
경칩에 팔딱이던 개구리 대신
두꺼비가 시샘을 더하는 장대비가
내 안의 땜을 넘치게 한다
도심의 얼룩들이
빌딩 앞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포동포동 살찐 빗줄기를
밤새워 탐하고
밤은 빗속으로 녹아내려
두꺼비 화들짝거린 우레에
아스팔트 위
몇만 볼트 전기가 흐른다
여름밤의 단상
장정애
낮과 밤의 경계가
푸르스름한 시간
풀벌레 화음 맞춰
노래 부르고
아슴아슴 풍겨오는
어머니 향기
소리 없는 눈물
밤하늘 별이 되어
슬픔만큼 빛나는 밤
아픈 어둠 등진 채
하늘 여행 떠나신 어머니
행여나 오셔서 앉으실까 봐
닦고 또
닦아 놓은
빈 의자
여름밤의 풍경
정명화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모기 떼를 몰고 와 극성이라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니
연기가 온 집안에 진동해요
풀잎 위에 내려앉은
밤이슬을 여치도 좋아하고
반딧불은 풀숲에서
숨바꼭질하고 다니나 봐
가마솥에 삶은 감자와
옥수수도 평상에 올려놓고
수박을 가르니 향이 흐르고
달빛은 우물에 와 쉬고 있어요
울타리 밑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에
가만가만 걸어가 작대기로 풀숲을
이리 뒤적 저리 뒤 적 들춰도 보고
깊어가는 시골의 여름밤은
고요하니 적막감이 흐르고
평상에 누워 부채로 살살
여름밤을 달래 보고 있어요
여름밤이 깊어지면
정세일
내 마음 고향 들판엔
여름밤이 깊어지면 반딧불이
밤을 밝힙니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곳곳마다 물을 가두어
종아리가 까칠한 벼들이 이삭 포기를 나누고
여름밤이 깊어지면
반딧불의 꼬리에 빛을 달아서
밝고 높은 저녁 밤하늘에 별이 떠 있는 곳으로
별처럼 날립니다
내 마음 고향 들판엔
언제든 가슴이 새벽하늘처럼 밝아오면
희미하게 잃어버렸던
고향의 옛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반딧불이 고향의 초가집을 날아다니며
온 앞마당을 하얗게 꼬리에 수를 놓은 얘기도 있고
어두운 대문을 밝혀놓아
손님이 고향 집을 찾아오도록
반딧불이 등불을 들고
둥구나무 앞에 서 있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내 마음 고향 들판엔
반딧불이 별이 되어 반짝입니다
엄마의 별도 있고
누나의 별도 있습니다
늦은 저녁 밤 논에 물을 가두러 가시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도 반딧불 소리에는
별처럼 살아 있습니다
한여름 밤
정숙경
한낮의 열기는
잠시 사라지고
샤한 바람이
빰 위로 스친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
금방이라도 우르르
쏟아 내릴 것 같다
사방은 정적만 흐르고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멈추었네
도시의 한 여름밤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밤 하늘의 별
오늘따라 유난히 빤짝거린다
내일은 좋은 일 생길려나
그렇게 한 여름밤이
깊어만 가는데
한여름 밤의 꿈
정숙경
깊고 깊은 밤
하늘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이 떨어진다
어느 곳으로 떨어졌을까
한없이 달려간다
한참을 뛰어오니
사방은 깜깜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미로에 섰다
여기가 어딜까
갑자기 무서움에
소름이 돋았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별은 보이질 않고
사방은 어둠뿐
눈을 떴다
꿈
한여름 밤의 꿈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별 고운 여름밤 박꽃에 울고
정숙자
별 고운 여름밤 박꽃에 울고
달 맑은 가을밤 바람에 우오
그리움 불같이 일어날 때면
두 눈은 뜨고도 장님이 되어
지나가는 발소리
혹여 임인가
낙엽 흩는 소리도
혹여 임인가
고쳐섰다 나부끼는 옷고름마다
기러기들 놓고 가는 눈물의 숯불
폭포수 아름으로 끌어안아도
기름인 뜻 화염은 세어만 지고
줄기줄기 무너지는 외롬의 폭죽
서릿발 오르도록 하늘에 지오
여름밤 일기
정재삼
푹푹 찌는 여름밤
가는 길이 멀다하여
잠 없는 물소리 처량하다
심야(深夜) 정적을 깨고
짝을 찾는 매미 울음
애절하게 울어 댄다
청청 푸른 숲 속
풀벌레 파닥거림
귀 기울여 들어보면
할 말을 잊었는가 보다
깊어가는 여름 밤
밤 깊도록 읽었다
여름 밤 소리
우리 쓰는 말을 다 들추어 궁리를 해 봐도
끝내 읽지 못했다
여름밤의 시(詩)
정형근
나뭇잎 위에
웅크리고 잠든 둥근 이슬이 슬프다
가시지 않는 매일의 통증
희미한 불꽃이 밤을 지킨다
온갖 해충(害蟲)이 달려들어 와
심장을 가두고 소리 질러도 의연할 뿐
오롯이 밤이면 어둠을 밝힌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너처럼 밤이 지나면 잠드는 허수아비
노을이 지면 괜스레 설렌다
밤이 좋아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기쁨으로 너의 필요를 알고
비 오는 밤
빗소리는 득음의 시(詩)가 된다
여름밤
정호승
1
아파트 경비원 혼자 라면을 끓인다
한 평 남짓한 좁은 경비실에 앉아
입을 벌리고 졸다가 일어나
끓인 라면을 혼자 먹는다
한낮에 맑게 울던 매미는 울지 않고
오늘따라 별들도 보이지 않고
밤늦게 주차하는 자동차의 찬란한 불빛을 뚫고
키 작은 소녀
김치 한 사발을 들고 온다
인간에게는 왜 도둑이 있는지
인간이 왜 아파트를 지켜야 하는지
인생을 지키기도 힘든 여름밤
거미줄이 내 얼굴에 걸려 무너진다
나는 아직 거미의 먹이가 되지 못하고
거미의 일생만 뒤흔들어놓는다
2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어머니께 드린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내일 밤엔
상춧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무더운 여름밤
조병화
무더운 여름밤
밤에 익은 애인들이 물가에 모여서
길수록 외로워지는
긴 이야기들을 하다간..... 밤이 깊어
장미들이 잠들어버린 비탈진 길을
돌아들 간다
마침내 먼 하늘에 눈부신 작은 별들은
잊어버린 사람들의 눈
무수한 눈알들처럼 마음에 쏟아지고
나의 애인들은 사랑보다 눈물을 준다
내일이 오면 그날이 오면
우리 서로 이야기 못 한 그 많은 말들을
남긴 채
영 돌아들 갈 고운 밤
나의 애인들이여
이별이 자주 오는 곳에 나는 살고
외로움과 슬픔을 받아주는 곳에 내가 산다
무더운 여름
밤이 줄줄줄 쏟아지는 물가에서
이별에 서러운 애인들이 밤을 샌다
별이 지고
별이 뜨고
여름밤
조원규
1
밤이란
그 밤에 부는 바람
그 바람결에조차
하지 못한 말들
2
얼굴이란
그 얼굴이 놓친 무엇.
심연에서 껴안던
기억을 잃고
여름밤의 축제
주명희
개구리, 두꺼비, 귀뚜라미, 찌르레기 풀벌레 친구들
여름 떠나보내기 싫다고
밤마다 그렇게 슬피 우는 것이냐
달과 별들의 무리가 멋진 조명으로
갈무리들은 무대를 꾸며주고
바람 소리 음향으로
한여름 밤의 축제를 벌인다.
나도 노래 한 소절 뽑고 싶지만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조용히 귀 기울이며 관객으로
눈감고 감상만 하련다
한여름 밤 그리움
채홍정
희미한 초승달이 별 숲에 갇혀 졸고
가끔씩 운석 행렬 길 잃은 별똥별들
반딧불 깜박 지새며
쏟아지는 여름밤
어머니 팔베개에 못 다한 옛 얘기꽃
별빛도 아스라이 멍석 위 같이 누워
정겨움 한 뼘씩 자라
살몃살몃 쌓인 밤
길섶에 터줏대감 수줍던 달맞이야
달콤한 그 속삭임 은하수 정갈 따라
또 언제 한껏 나뉘랴
사무치는 그 날이
여름밤
채홍조
하루 뜨겁게 달구던 태양도
앞산 힘겹게 넘어가는구나
노란 달맞이꽃 하얀 박꽃
수줍은 얼굴 내밀고
풀벌레 합창 깊어간다
진종일 염천 흐르는 들녘
김매기 고추 따기, 끝내고
소꿉장난처럼
저녁밥 버너에 지어먹고
바람 시원한 호숫가
풍덩 물고기 자맥질 소리
푸드덕 날아가는 물새
일파만파 번지는 물 주름
뽀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누가 저 깊은 호수 밑에
불 짚 피고 있기에
밤이면 저리도 김이 무럭무럭 날까
아마 고기도 뜨거워서 펄떡 튀었던 게야
별들이 살포시 내려와
소곤소곤 멱감는 호수
보석 같은 별 하나 건질 수 있을까
뜰채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그 여름밤
최경신
내 어릴 적 여름
뒤껕 우물가에 목물할 땐
심장에 소름이 돋고
칼끝의 짝 소리에
우물에서 건져 올린 수박에
서릿발이 서는 밤이면
하늘에는 별들의 잔치가 열렸었지
생풀 타는 매콤한 연기를
어머니의 부채 바람에 날리며
앞뒷문 열어제친 모기장 속의 단잠이
홰를 치는 새벽을 밀어내고
이슬 먹은 풀벌레 소리에
삼복도 맥 놓고 지나갔었지
열대야 그 여름에는 이런 것도
없었는데
여름밤의 불청객
최병도
앵앵
깊은 밤을 깨우는 소리
불을 켰다
방 구석구석 찾아보지만 흔적도 없다
겨우 잠들려고 하는데
앵앵
파장을 일으키며
귓전을 스쳐 간다
불을 켜
졸린 눈 비비며
사방을 훑어보지만
어디에도 놈은 보이지 않는다
불을 끄고
자는 척 신경을 곤두세웠다
앵앵 귓가를 스치며
얼굴에 앉는듯하다
철썩
뺨을 후려쳤다
죽은 걸까
조용하다
또 잠들려는 찰라
앵앵거리는 소리다
모기에 물리면
간지러워 피가 나도록 긁기에
몇 번인가
불을 켜고 끄는 사이
새벽이 깨어나며
아침으로 달려간다
오늘도
모기와의 전쟁에서
백기를 올리며
지친 몸으로 출근에 나선다
여름밤
최봉희
논배미
달이 뜨면
마음을 합장하고
문간 등
붉은 웃음
개구리 신명나고
여름은
한숨 돌리고
고즈넉이 웃는다
한여름 밤의 세레나데
최삼용
황혼의 절정마저 어둠에 혼절당한 후
오늘은 달빛 펼쳐 테이블보로 깔고
별빛을 장신구로 건다
적막 속에서 가로등 불빛 등블 삼아
멍 파티 오픈한 여름밤
홀림체로 적어 아무나 읽지 못할
오늘 치의 내 일기처럼
밤은 몸을 열어 숨길 수 없는 전부를 숨기지만
어둠 자락 비집던 도심 불빛은
덧난 사랑의 상처 되어 화닥거린다
병앓이 중 통증마저 황홀한 게 사랑병 아니던가
별 모가지 꺾어 고압 전선줄에 음표로 걸쳐 놓고
바람의 촉수가 바이올린 활 되어
닿는 장애물마다에서 하모니를 만든다면
그대 가슴 녹아질 세레나데가 될까?
오늘 밤 메신저로도 전하지 못한 내 사랑의 노래
한여름 밤의 실루엣
최영준
열대야 밤이면 선풍기 바람에서 살냄새가 난다 체온의 열기가 목까지 차오르고 알몸뚱이를 핥는 바람의 혀끝이 귀를 간질인다 어둠 속에서도 관성처럼 방향과 속도를 잃지 않고 궤도운동을 반복한다 뜨거워진 심장에서 절정에 이른 열기를 내뿜자 밤하늘 하트 성운이 붉게 타오른다 주변의 놀란 별들은 눈망울만 깜박거리고 수줍은 별들은 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멀리 달아난다
은하수의 꼭지점, 변광성이 보내오는 보랏빛 혹은 물빛 모르스 신호, 잠이 없는 별나라 여자와 나누는 대화, 열대야 밤이면 별이 된 내 몸에서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뜨거운 전파가 쏟아져 나온다
한여름 밤
최우서
한줄기 소나기 지나간 여름
빗물 스며든 호숫가 뜨락에
짙은 운무 어둠을 감싸는 밤입니다
뜨거운 커피 한잔 마주하고
앉아
설렘 한 알 살짝 넣어 입술에 닿으면
두근두근 설레는 커피 향이 납니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는
한여름 밤
한줄기 소나기 쏟아지듯
그대 향기가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구름다리 위에 올라
호수에 녹아든 불빛 속
웃는 그대 바라보는 사이
나 그대 마음에 녹아버렸습니다
한여름 밤 그대 안에 내가 있습니다
여름밤의 추억
최홍윤
희미한 달빛 어린
마당가 멍석에 둘러앉아
감자 보리밥에 호박잎 쌈으로 배를 채우고
도란도란 사는 얘기 나누며
뜰 앞에 초랑초랑 도랑물 가는 소리
자장가 삼이
별을 덮고 스르르 잠이 들다
새벽이 되면
쑥부쟁이 모닥불에
모기란 놈은 배곯아 죽고
옥수수 낟알에 붙은 파리란 놈은
배 터졌는지 제대로 날지도 못했었다.
우린 초가지붕에 하이얀 박꽃처럼
창백하게 여태껏 잘 살았다
한여름 밤의 꿈
최홍종
겨우 차를 얻어 타고 나선길이라
마음은 이미 허공중에 애드벌룬을 띄우고
질척이는 시골길 비포장도로를 죽을힘을 다해 가보지만
차는 중도에서 바퀴가 땅속에 묻혀 오도 가도 못하여
모두 내려 차를 밀고 당기고 고생 끝에 차는 움직이고
그러나 이것이 무슨 낭패란 말입니까? 난감하네...
그만 자동차는 나를 길에 혼자 내버려 두고
저희들끼리 훌쩍 떠나고 말았지요.
초행길을 묻고 찾아 겨우 버스정류장에 왔건만
돈도 지갑도 없어 이쪽저쪽을 뒤져 찾은 현금은
천 원짜리 몇 장이 고작이고 그나마 빨래로 구겨져
돈으로 거의 쓸모가 없어 애를 태우며 차를 기다리나
종일 기다려 온 버스는 대롱대롱 매달려가고
아우성이 긴급 사이렌소리와 함께 겁을 주어
타 볼 엄두가 나지 않고 전혀 탈 수도 없다
걸어야지 방향도 모르고 물어볼 이도 없이
가까스로 죽을힘을 다해 찾아낸 집은
문이 잠겨 들어 갈 수 없는데 창문이 조금 열려
창문 틈 사이로 몸을 던져 이젠 되었다고
겨우 머리와 몸이 빠져나와 휴 하고 한숨 돌리니
어디서 시계의 알람 소리가 요란스레 울린다
여름밤이 길어요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나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 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망의 성(城)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깨어서 일천(一千)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여름밤의 푸가
함기석
콘크리트 담 아래 맨드라미가 피어 있다
핏덩이 낙태아다
고양이가 굶주린 새끼들을 데리고
어두운 지붕 난간을 아슬아슬 내려온다
금속 가위와 폐가 떠가는 공중
하늘에서 음표들이 내려오고
아기의 발목 하나가 시퍼런 땀을 흘리며 초조히
골목을 걸어 다니는 밤
콘크리트 담 아래 맨드라미가 되어 있다
어린 꽃살이 흘리는 비린 꿈 비린 울음
옥상에서 창백한 달이 몰래 이마를 내밀고 본다
어느 여고생의 얼굴일까
여름밤
현상길
하늘 펴고 누우면
별들은 까실까실
등을 찔렀다
밤 향기 넘나드는 우물가에
줄기줄기 여름은 가라앉고
마당의 바스락거림 잔잔해지면
어머니의 합장만이 고요했다
가슴에 손 얹고
나는 잠들지 않으려 했다
아침이 오지 말아야 했다
휑뎅그렁한 새벽의 없고
동생들 칭얼거림도 없는
멍석 위를 구르며
은하수 잘라 내어
날개 접고 꿈을 잣고...
코고무신 붙잡아 둘
한 나흘 장대비는 소식 없어도
여름밤은
기다림만큼이나 넓었다
여름밤의 연가
황다연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를
어둠이 내려와 덮어 놓으면
하루의 일과에 지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에 나선다
혼자 또는 둘 셋
아니면 가족 단위로
더위 먹은 강아지도 따라나서고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간간이 피어나는 웃음꽃
탁 트인 하천가에
강아지풀 백일홍 이름 모를 들꽃들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도
동행을 한다
초롱거리는 별빛 대신
네온사인 불빛이
땅거미 위에 내려앉을 때
지친 심신 맑아져 청정해지고
풀어놓고 내려놓은 마음 위에
새록새록 스며드는 건
한 겹 한 겹 내려앉는 건
사랑이다 기쁨이다
소담하게 여름밤의 행복 꽃이 핀다
그 젊었던 날의 여름밤
황인숙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냐고, Y가 물었다
아니, 전화 받고 있어
내 대답에 그는 쿡쿡 웃더니
그냥 나한테 전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그냥, 그냥만 되풀이하다가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다가 그는
툭,
전화를 끊었다
아직 젊었던 날의
계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또 한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 K인데……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는 K는
어린 여자에게 가버린 애인에 대해
K를 못마땅해하던 애인의 가족에 대해
지운 아기에 대해
물거품이 돼버린 그림 같은 집과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해
설움과 분노를 토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잠 못 이루다 새벽에
전화로 나를 찾았던 Y와 K는
둘 다 별 연락 없이 지내던
먼 친구였다
그 뒤 Y와 K는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안다
나도 살아 있다
우리를 오래 살리는
권태와 허무보다 더
그냥 막막한 것들
미안하지만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겁기만 무거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