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ㄴ ~ ㅅ
나병춘 – 봄 봄
나상국 – 봄볕에 기대어 사랑하리라
나상국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태주 – 그저 봄
나태주 - 꽃들아 안녕
나태주 – 꽃신
나태주 – 봄 사람
나태주 - 봄에게
나태주 – 봄은 담장
나태주 – 봄이 되면
나태주 – 봄 햇볕 새로이 눈을 뜨면
나태주 - 산수유
나태주 – 서러운 봄날
나태주 – 이른 봄
나태주 – 이 봄날에
나태주 – 제비꽃
나해철 – 봄날과 시
나호열 – 봄날은 간다
나호열 – 추운 봄
나희덕 – 어느 봄날
남낙현 – 봄이 오는 소리
남유빈 – 봄 멸치
남정림 – 풀꽃
남혜란 – 나른한 봄날
노명순 – 봄 까치
노순자 – 기다리는 봄
노정혜 – 봄
노정혜 – 봄빛 좋은 날
노정혜 - 봄에 피는 꽃
노정혜 – 봄이 오면
노태웅 – 봄이 오는 소리
노정혜 – 봄이 왔습니다
도종환 – 그해 봄
도종환 - 꽃잎
도종환 - 다시 오는 봄
도지민 – 봄소식
도지현 – 겨울과 봄의 교차점에서
도지현 – 그대의 봄은
도지현 – 봄 뜨락에 머물며
류시호 - 추억 속의 봄 길
류인서 – 꽃 먼저 와서
류종호 – 봄
류혜종 – 봄이 오는 소리
목진숙 – 봄
목필균 – 봄을 사다
목필균 – 봄이 오는 기척
목필균 – 잔인한 봄
문근영 – 씨앗 하나가
문병학 – 봄
문석경 - 봄의 행진곡
문인수 – 봄
문정희 – 때때로 봄은
문정희 – 아름다운 곳
문춘식 – 봄
미나 – 꽃피는 봄날엔
민경대 – 화창한 봄날
박광호 – 봄날의 그리움
박광호 – 봄맞이
박광호 – 봄을 맞는 산마을
박광호 – 옛 봄은 아니로다
박기숙 – 봄의 연가
박노해 – 봄이 오면 풀꽃들은
박명숙 – 봄이여 오라
박목철 - 막무가내 봄
박목철 – 봄에 거는 소망
박목철 – 봄의 꿈
박상휘 – 봄꽃들의 수다
박상희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선옥 – 봄의 연가
박소향 – 바람 주는 봄날에는
박순호 – 봄 꿈
박승민 – 봄과 봄 사이
박얼서 – 봄이 오는 소리
박얼서 – 새봄
박유동 - 봄소식
박유동 – 봄의 대세
박유동 – 봄의 위치
박인걸 – 그 봄이 오면
박인걸 – 더디게 오는 봄
박인걸 – 봄날 오후
박인걸 - 봄날의 감정
박인걸 – 봄 언덕에서
박인걸 – 봄은 오는데
박인걸 - 봄은 온다
박인걸 - 봄이 오네
박인걸 – 봄이 오는 길
박인걸 – 봄이 오는 소리
박인걸 – 이 도시에도 봄은 오려나
박인걸 – 춘목(春木)
박장락 – 봄을 기다리는 마음
박정숙 – 어느 봄날에
박정재 – 봄의 유혹
박정재 – 봄이 오면
박종영 – 늦봄의 거리에서
박종영 – 봄동
박종영 – 봄이 강을 건너다
박종영 – 봄이 오면
박종영 – 이토록 찬란한 봄날에
박준 – 그해 봄에
박준 –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박창기 – 봄은 겨울의
박철 – 봄
박태강 – 봄빛 천지
박태강 – 봄이 오는 길
박태강 – 오는 봄
박해림 – 봄의 문신
박현웅 – 대체로 희망적인 봄
박형권 – 봄, 봄
박효찬 – 어느 봄날
박흥락 – 봄의 미소
박희홍 - 봄동
반기룡 – 봄이 오는 소리
반기룡 - 봄, 지금은 열애 중
반칠환 –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배경숙 – 봄날은 간다
배종대 – 봄의 나그네
배창호 – 봄빛
배창호 – 섬진강의 봄
백성섭 – 여름으로 가는 봄
백원기 – 봄 길
백원기 – 봄 마중
백원기 – 봄이 오고 있다
백원기 – 봄이 와요
백원기 - 이 봄에
변종윤 – 봄이 오면 보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변학규 – 봄날
복효근 - 매화가 필 무렵
상희구 – 봄에 관한 어떤 추억
서봉석 - 어느 봄
서안나 – 늦봄에 온 전화
서영택 – 봄을 만지다
서정주 – 봄
서지월 – 봄이 오면
서효륜 – 봄을 스치다
성낙일 – 약속의 봄
성명순 – 봄은 기다리는 가슴에만 꽃을 피운다
성복순 – 봄이 오는 소리
손병흥 – 꽃 피는 봄날
손병흥 - 꽃 피는 봄이 오면
손병흥 – 봄꽃 놀이
손병흥 – 봄나물
손병흥 – 봄날
손병흥 – 봄노래
손병흥 – 봄 마중
손병흥 – 봄소식
손병흥 – 봄의 향기
손상열 – 어느 봄날
손석철 – 봄이 오는 언덕
손성태 – 도화 아래서 봄
손숙자 - 봄날의 연가
손숙자 – 봄이 오면
손우석 - 봄이 오는 소리
손정모 – 봄의 정경
손택수 – 봄은 자꾸 와도 새봄
송미숙 – 봄날의 주말농장 풍경
송미자 – 봄 언덕
송연우 - 봄을 물들이며
송정숙 – 기다림 속에 어느 봄날
송정숙 – 봄 소리
송정숙 – 봄 엽서
송정숙 – 봄 처녀
송진권 – 봄
송찬호 – 봄
송태옥 – 봄을 미리 보다
송향수 – 봄이 오면
송향수 – 어느새 봄
신광진 – 봄이 오네
신달자 – 봄
신달자 – 봄의 금기사항
신동엽 – 봄의 소식
신미균 - 봄
신석종 – 봄소식
신성호 – 봄이여 봄날이여
신성호 – 봄이 오는 길
신성호 – 봄이 오는 날
신성호 – 봄이 왔당게
신영희 - 봄맞이
신용주 – 봄
신정숙 – 나의 봄
신진식 – 봄의 유혹
심의표 – 봄이 오는 소리
심홍섭 – 봄
봄·봄
나병춘
'봄'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몸'에 싹이 돋아 있다
뿔 같기도 하고
꽃송이 같은 것이
마늘촉마냥 촉.촉.촉.
만셀 부르고 있다
긴 겨울
건너 왔으면서도
저러코롬 팔팔하게
이제 봄이 되었으니
이 몸에도 문득 꽃이 피겠구나
그 향내 맡으러
어디선가 배고픈 벌나비
날아들겠구나
어부바
남실바람 아지랑아지랑
건듯 부는 날이면
봄볕에 기대어 사랑하리라
나상국
주인 잃은 산비탈 묵정밭
산발한 살갗을 파고드는
햇빛의 낮은 속삭임
봄이 왔음을 알리네
검불 아래 꼭꼭 숨어
아직은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처럼
앙탈하던 꽃샘추위
마지막 발악을 한다
양지바른 강둑에 파랗게 돋아나던 새싹
처연하게 몸 내맡겨 지그시 눈 감고
너울성 파도를 탄다
그리움 가득한
먼 타국 땅
눈 녹듯 봄을 기다려보지만
향수가 깊은 만큼의 거리
혹한의 겨울은
다가서려는 봄을
자꾸만 밀쳐내고
낮과 밤이 뒤바뀐 시곗바늘은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듯
울컥울컥 토악질해댄다
겨울 뉴욕보다 반나절 빠른
서울은 봄꽃들이 만개하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나상국
겨우내 돌아앉아 눈감고
동안거에 든 노스님처럼
세상을 등진 채
눕지도 못하고
까치발 발돋움하여 선 겨울나무
먼발치 끝으로
강 몸 푸는 소리 들리고
굽은 낙타 등 닮은 산등성이
쌓인 잔설이 남녘 바다에서
불어온 치맛바람에
안기어 스르르 녹아 내린다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강은 강 스스로
봄이 오고 있음을 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귀 기울인다
눈감고 보이지 않는 소리에
저마다의 가슴을 열고
새들도 나뭇가지 위에 앉아
흔들리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벌 나비 날아오를 날들의
물오르는 봄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머지않아 꽃피울 봄을
그저 봄
나태주
만지지 마세요
바라기 보기만 하세요
그저 봄입니다
꽃들아 안녕
나태주
꽃들에게 인사할 때
꽃들아 안녕!
전체 꽃들에게
한꺼번에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꽃송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꽃들아 안녕! 안녕!
그렇게 인사함이
백번 옳다.
꽃신
나태주
꽃을 신고 오시는 이
누구십니까?
아, 저만큼
봄님이시군요!
어렵게 어렵게 찾아왔다가
잠시 있다 떠나가는 봄
짧기에 더욱 안타깝고
안쓰러운 사랑
사랑아 너도 갈 때는
꽃신 신고 가거라
봄 사람
나태주
내 인생의 봄은 갔어도
네가 있으니
나는 여전히 봄의 사람
너를 생각하면
가슴속에 새싹이 돋아나
연초록빛 야들야들한 새싹
너를 떠 올리면
마음속에 꽃이 피어나
분홍빛 몽글몽글한 꽃송이
네가 사는 세상이 좋아
너를 생각하는 내가 좋아
내가 숨 쉬는 네가 좋아
봄에게
나태주
오려거든
곱게 올 일이지,
눈썹 그리고
곤지 찍고
가마 타고 올 일이지,
벗은 몸 찬비로 얼리고
그것도 모자라
흙바람 먼지꽃으로
해를 가리고
산을 뭉개고
강을 흐리며 오는
봄이여,
진문둥이 눈썹으로 오는
봄이여,
오려거든 예쁘게
꽃 족두리 받들어 쓰고
춤추며 올 일이지,
노래 부르며 올 일이지,
답답한 가슴
헛기침하며
벙어리 마른 입술로 오는
봄이여,
우리 나라의
봄이여
봄은 담장
나태주
봄은 담장 밑에서 오고 꽃은 남쪽에서 피어 오는 것,
꽃이런가 구름인가 산정 위에 오라 보면
군산 포구 뱅어잡이 배, 나빈 듯 떠나가고
마음 따라 날개 달던 그 봄날의 들놀이 꽃놀이여.
봄이 되면
나태주
봄 되면 산과 들과 골짜기는
꽃과 산록으로 호사를 하고
개구리 울음소리로
귀까지 호사를 하고
가진 것 별로 없는 나도
봄 따라 호강을 한다
봄 햇볕 새로이 눈을 트면
나태주
감나무 묵은 가지 새잎 나듯
우리나라 봄 햇볕 새로이 눈을 트면
여리고 여린 햇볕 살
그 사잇길을 타고
봇짐장수 아주머니
등짐장수 아저씨들
바지런 바지런히
장삿길 떠나는 게 보인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아직도 인심 좋은 사람들
살기 좋은 마을이 남았는가
개울 건너 고개 넘어
경상도의 미역 장수
전라도의 대그릇 장수
강원도의 오징어 장수
우리나라의 산과 들을
두루두루 누비며
떠도는 게 보인다
산수유
나태주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
서러운 봄날
나태주
꽃이 피면 어떻게 하나요
또다시 꽃이 피면 나는
어찌하나요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술을 마시면서도 나는
눈물이 납니다
에그 나 같은 것도 사람이라고
세상에 태어나서 여전히 숨을 쉬고
밥도 먹도 술도 마시는구나 생각하니
내가 불쌍해져서 눈물이 납니다
비틀걸음 멈춰 발밑을 좀 보아요
앉은뱅이걸음 무릎걸음으로 어느새
키 낮은 봄 풀들이 밀려와
초록의 주단 방석을 깔려합니다
일희일비,
조그만 일에도 기쁘다 말하고
조그만 일에도 슬프다 말하는 세상
그러나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많기 마련인 나의 세상
어느 날 밤늦도록 친구와 술 퍼마시고
집에 돌아가 주정을 하고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집을 나와
새소리를 들으며 알게 됩니다
봄마다 이렇게 서러운 것은
아직도 내가 살아 있는
목숨이라서 그렇다는 것을
햇빛이 너무 부시고 새소리가
너무 고와서 그렇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 그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지요········
꽃이 피면 어떻게 하나요
또다시 세상에 꽃 잔치가 벌어지면
나는 눈물이 나서 어찌하나요
이른 봄
나태주
나뭇가지에
둑길에
강물 위에
하늘, 구름에
수채화 물감으로
번지는
햇살
방글방글
배추 속배기로
웃는 아가
웃음
밝은 나라로
더 밝은 나라로
이 봄날에
나태주
봄날에. 이 봄날에
살아만 있다면
다시 한번 실연을 당하고
밤을 새워
머리를 벽에 지어 박으며
운다 해도 나쁘지 않겠다
제비꽃
나태주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쓸쓸한 날
제비꽃이 피었습니다.
다른 날보다 더 예쁘게
피었습니다
봄날과 시
나해철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 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 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봄날은 간다
나호열
봄날은 간다
폭죽으로 처지는 상처
악보에 걸리는
어지럽고 헛것만 보이는 하늘로
종달새는 날아와 주지 않는다
탁자 위에 놓인
아우렐리우스의 참회록
계절을 잊은 채
水菊이 미쳐서 피고
기슭을 잃어버린 파도처럼
말문을 닫고 만개하는 꽃들
입을 봉한 붕대가
푸르름까지 동여매고
진압의 무거운 발걸음으로
봄날은 간다
추운 봄
나호열
소리 없이 진군한 소문은
곳곳에 봄을 퍼뜨려놓고
철없는 아이들처럼
개나리로 피어있다
소문을 믿고
내의를 벗은 우민들은
무더기로 모여 떨고
정부는 서둘러 독감 주의보를 발표했다
수상한 공기를 조심하시오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시오
덧난 상처들이 부스럼꽃으로
피어있는 동안
사람들은 몸속에 머리를 처박고
거북이처럼
터널을 지나갔다
추운 봄이었다
어느 봄날
나희덕
청소부 김 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봄이 오는 소리
남낙현
얼음장 밑에서 졸졸졸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두꺼운 땅껍질을 뚫고 나오는
아주 작은 힘
어떠한 힘으로도 막지 못한다
작은 새싹 하나
우주를 뚫고
세상 구경을 나오려고 기지개를 켠다
벌써 양지바른 언덕에
뾰족 나온 푸른 싹들
새 생명의 탄생 알린다
봄 멸치
남유빈
비릿한 바닷바람
일정한 가락에 맞춘
억센 손으로
세상을 잡아 봄을
재빠르게 턴다
은빛 건져올린
땀방울도 물방울도
요동치듯 힘차게
널뛰듯 뛰어오르며
발버둥 친다
우리네 삶이
팔닥팔닥 뛰듯
한 그물에 가득
거기 담아낸
바 물소리
시름도
세월에 무게도 함께 턴다
시간을 턴다
풀꽃
남정림
누가 너를 보잘것없다 했느냐
잠깐 피었다 지는 소임에
실핏줄이 훤히 드러나도록
솜털이 요동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했는데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도
햇살 한 줌 머무르는
변두리 골목 귀퉁이를 데우는
너는
하늘이 눈물로 키우는 꽃
나른한 봄날
남혜란
봄 햇살에 나무들이
기지개를 켠다
전봇대에 참새들도
하품을 하는지
짹짹거린다
바람은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신이 났는지
새싹 하나를 잡고
춤을 춘다
기다리는 봄
노순자
콩닥콩닥 가뿐 숨소리
멍하니 허공만 보고
고요하지 못해 꽁꽁 언 마음에
인진쑥을 씹는 듯
입맛을 잃은 혀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잿빛 하늘은 앞뒤를 가로막아
오도 가도 못하게 몸을 가두고
마음마저 뿌옇게 물들이며
창문너머 보슬비는
비바람까지 데려와 휘몰아친다
희로애락은 삶의 동반자이거늘
버리지 못한 근심으로
새벽을 맞이하다 내 모습보니
허접한 몰골이 처량하네
따뜻한 햇살이여
청아한 하늘이여
내곁에 다정히 누워
토닥토닥 다독여 다오
난, 아오라지 처녀가 되어
애타게 봄을 기다린다
봄 까치
노명순
-수신된 메세지가 없습니다-
봄날 기다림에 지쳐
미류나무 꼭대기집 방문을 박차고 나와
대문앞 붉은 속잎 솟는 단풍나무 품에 안겨 깃털 비비대 울어보다
꽃봉오리 터트리는 앵두나무 눈총에 왈칵 목 메어
거푸집 방안으로 돌아와
한바탕 단내나게 ‘까악까악’ 울어제치었다
봄
노정혜
연초록 앞세우고
멀고 먼 길
넘고 넘어 봄이 왔다
양지바른 언덕에도
심심 계곡
청아한 물소리 경쾌하다
봄이 왔네
신선한 공기와 바람
따스한 햇볕이 좋아
넓고 넓은 바다 건너
생기 안고 왔노라
따스함이 좋아
미소가 좋아
사랑받고 싶어 왔노라
꿈 찾아왔노라
봄은
가슴마다 행복을 주려고 왔노라
봄빛 좋은 날
노정혜
봄날
나뭇잎
연초록으로 태어나 진초록으로 만들어 과정
비워진 마음에 꿈을
흐려진 모습에 밝은 빛을
지금 너무 아파하지 마라
차디찬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꿈이 있는 자리
새싹이 돈는다
밝고 씩씩한 모습
봄빛 찾아든다
봄빛 좋은 날
기다리고 준비된 자리에
영롱한 빛이 찾아든다
봄에 피는 꽃
노정혜
땅에 떨어진 씨앗
땅을 어미로
어미품에 꽁꽁 숨는다
추위에 씨앗 아기
어미 품에서 겨울 지나
봄을 맞는다
꽃은 마냥 행복하다
참고 인내한 자신에게 고마워 행복하다
영원할 것 같은 행복에 꽃은 행복하다
영원하지 않음은 꽃은 안다
주어진 시간 행복하다
활짝 웃는 봄꽃이
몸단장한다
봄꽃이 보고 싶다
봄이 오면
노정혜
1
걸음을 재촉하는 봄
겨울 심술에 봄 걸음이 아프다
가려면 그냥 가지
못된 신종 바이러스를 불러 놓고 가나
아파도 봄은 온다
봄은
언 땅을 녹여서 꽃이 핀다
봄이 오면
신선한 공기
높고 파란 하늘
계곡마다 청아한 물소리
봄 동산이 건강하다
봄이 오면
동산에 꽃잔치가 열린다
봄이 오면
마을마다 웃음꽃 피리라
2
좀 더 겨울다워라
봄에 피는 꽃이 아름답게
봄이 오면
내 고향 앞산에도 진달래 개나리가 핀다
굽이진 산이 아름답다
계곡 물소리 정겹다
하늘을 나르는 새들의 평화
봄이 오면
산이 생기롭다
시원한 봄 바다
파도가 있어 생명이 살고
희망이 솟는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
파도가 만든 작품이다
인생 바람 잘 날이 없다
세월이 흐른다
인생도 흐른다
웃음도 눈물도 있다
오늘은 또 속고 슬퍼도
올봄에는 희망의 씨앗을 심고 싶다
꿈을 향해 걸어가는 거다
봄이 왔습니다
노정혜
봄입니다
춘 3월 봄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얼음 녹여 왔습니다
앞동산 뒷동산에 꽃 피는 봄
생명 소리 들립니다
산과 들은 파란 옷 입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동산에서 노래하는 봄
농부는 콧노래 부르면 씨앗을 심습니다
꽁꽁 언 땅도 녹였습니다
참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우리 힘을 내요 힘을 내셔요
콧노래 들리는 봄
온 세상 활기로 채웠습니다
봄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봄비
노천명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에
밤새껏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줄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
노태웅
골 깊은 계곡 경사진 곳을
길 잃은 새벽달은
서릿발을 밟고 지난다
겨울을 깨우는 미풍으로
삶의 이야기를 끌고
가슴에 연정 품은 어린 새싹
몰래 숨겨놓은 사랑을 건네며
봄의 뜨락에 머리를 든다
계절의 공간 여백에
풀색 바람 불면
대지 위에 뿌린 새싹
온몸으로 파란 하늘을 품고
초록 향기로 사랑을 손짓하며
봄이 오는 소리를 낸다
그해 봄
도종환
그해 봄은 더디게 왔다
나는 지쳐 쓰러져 있었고
병든 몸을 끌고 내다보는 창 밖으로
개나리꽃이 느릿느릿 피었다
생각해 보면
꽃 피는 걸 바라보며 십 년 이십 년
그렇게 흐른 세월만 같다
봄비가 내리다 그치고 춘분이 지나고
들불에 그을린 논둑 위로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가고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도
봄은 쉬이 오지 않았다
돌아갈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꽆피는 걸 기다리며 나는 지쳐 있었다
나이 사십의 그해 봄
꽃잎
도종환
처음부터 끝까지 외로운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외로워서가 아니다
피었다 저 혼자 지는
오늘 흙에 누운
저 꽃잎 때문도 아니다
형언할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
하득하여
다시 오는 봄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살아 있구나 느끼니 눈물이 납니다
기러기 떼 열 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 있구나 생각하니 눈물 납니다
봄소식
도지민
내 작은 뜨락에
한 겨우내 앙 다물고 있던
동백 꽃 망울이
해풍에 온통 피멍든
조그만 입술 뾰족이 내밀며
고이 보듬었던 꽃잎
선 보일 듯 말 듯 하고
뒤이어
아기 능금나무 마디마다
곤한 겨울잠 자던 잎새들
꼼지락거리며 실눈을 뜬다
불 질러 태워버린 겨울 잔디 사이로
축포 터트리듯
여린 새순이 일제히 돋고
그단 새
태양만큼이나 이글거리는
활짝 핀 동백꽃
속속들이 티 하나 없는데
겨우 한 주일 불 밝히다
소임 다 한 바울처럼
꽃모가지 체 뚝뚝
순교의 길 떠났다
거짓말처럼
죽은 듯 바로 곁의 석류나무
뚝뚝 부러지고 말 마른가지 사이로
핏방울처럼 송골송골
부활의 기미 눈물겹고
엊그제만 해도
눈에 띄지 않던 해송들
어느새 돋았나 고사리 손가락들
솔잎 사이로 죽순 돋듯 하는데
내 작은 뜨락으로 사열하듯
또 한 해의 봄이 들어섰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처럼
겨울과 봄의 교차점에서
도지현
계절을 가름하는 비가 내린다
보내야 하는 슬픔에서인가
아직 잡아 두고픈 미련에서인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지난 계절의 아직 남은 잔재를
말끔히 쓸어 버리고
새로 올 계절을 위한 길을 만든다
세월이란 것은
현재가 현재를 밀어내고
또 다른 현재가 그 자리에 존재해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
하나, 계절이란 것은
없는듯함 속에서 변화하니
삭풍이 산허리를 돌아가고
훈풍이 앞섶을 파고드는데
그대의 봄은
도지현
엄동설한을 지나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문 앞을 서성거리더니
온 천지를 화사한 꽃으로 물들이고
다시 그 꽃들이 지고 있네요
꽃 진 자리엔
파릇하니 연둣빛 잎새가
여린 손을 내밀며 고물거리니
생명의 환희가 샘솟는 계절
자연의 신비가 경이로워요
이렇듯 경이로운 자연
그 섭리 속에 그대와 나도
이치의 범주 안에서 어긋남 없이
청춘을 활활 불태우다
서서히 사위어지겠죠
그러나 아직은 봄
살아 있어 행복한 계절이니
삶에서 가장 빛나는 생 살다
아침이슬 되어 스러져가도
그대에게 가장 찬란한 봄이기를
봄 뜨락에 머물며
도지현
창 너머에 있던 햇살이
어느새 문턱을 훌쩍 넘어
주방에 있는 내 뒤통수를 간질인다
그 따스함과 부드러움으로
저절로 이끌린 발길
햇살 앞에 온몸을 통째로 맡기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아직 동토 이리라 했던 뜨락에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매화나무엔 벌써 꽃이 피려 하는데
어찌 그것을 모르고 지났을까
햇볕의 따스함으로 소생하는 생명
생명의 윤기가 반질반질하고
새벽까지 내린 비를 맞아
함초롬한 모습이 가슴을 부풀게 하고
잠시 설렘까지 주는 이 신비함은
추억 속의 봄 길
류시호
어느 해 봄 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아지랑이 따라서
자전거 타고
혼자 간 적이 있다
먼 - 먼 기억 속이지만
저 길 모롱이에서 만난
들꽃 꺾어 든 소녀
눈빛이 왜 그리 따사로운지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는데
옛 기억이 봄빛 속에
향기 되어 날리는데
행여 만날까
길 모롱이에 다 달았지만
그리움만 내게 남는구나
꽃 먼저 와서
류인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 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봄
류종호
후밋길 후미진 마음들이
봇도랑 눈녹잇물에
낯주름 풀어 띄우고
찰랑찰랑 고이는 숫기에
짜글짜글 앳된 목통으로 여퉈서는
이 녘들 저 녘들에 볕발 내려
푸렁푸렁 푸렁것들로 휘돌아가는 세상
발부리를 짓차며 어서야 가자
봄이 오는 소리
류혜종
개울가 맑은 물소리
살얼음 한 방울씩 녹여
여울물 타고
봄은 흐르고 있나 봐
산과 들 넓은 초지
쑥향 가득
봄의 향긋한 내음 넘쳐난다
언 땅 녹이며 꼼지락 꼼지락
뽀하얀 솜털 세우며
돋아나는 버들강아지
봄노래 싣고 오는지
살금살금 간지럼 태우며
봄이 오는 소리 들려온다
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며
파아란 새싹이 돋아나는 봄
율동 속에 나붓나붓 몰려온다
아가야 입처럼 오물거리며
쏘오옥 내미는 돼지입술
아가야 얼굴처럼 꾸밈없는 눈웃음
불그스레 맑아지는 첫 마음처럼
봄이 오는 길목
설레이는 마음으로 즐겨 맞노라
봄
목진숙
대지의 속살 헤집고
꿈틀거리는 꿈의 조각들이
철벽의 얼음장을 밀어올린다
겨우내 웅크린 생명의 노래가
실핏줄 같은 냇물의 잠을 깨우고
햇살의 간지럼에 버들강아지가 눈뜬다
때맞추어 불어오는 남풍이
북녘으로 길 떠나는 철새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봄을 사다
목필균
베이지색 바바리코트가
걸어간다
아스팔트 보도블럭 틈새에
민들레 새싹이 돋는다
지하역 나물 할머니
갈라진 손으로 건네준
달래 한 웅큼
봄이면 아파트 입구로 오는
꽃나무 아저씨께
봄을 산다
층층이 피어나는 영산홍 한 포기
가슴에 봄을 심는다
봄빛이 집안 가득 퍼진다
달래간장에 비벼진 밥 한 그릇
거실에 옮겨진 영산홍
꽃분홍 눈웃음이 너울진다
봄이 오는 기척
목필균
아직 잎눈을 틔우지 못한 나무가, 찬 바람에 낮아진 체온이, 마른하늘 바라보며 달콤한 비를 기다리는 대지가 분명, 겨울 끝자락인데 자꾸 가을 냄새가 난다.
떠나간 것들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자리 잡는 2월. 생각만으로도 겨우내 움추렸던 육신이 저혈압으로 떨어지고. 꽃샘바람에 걸려 터지는 기침 소리만 요란하다.
지금은 비워진 것들을 다시 채우려는 시간, 꽃눈 틔울 준비로 부산한 나무들. 어둠 속에서도 속살거리며 물을 길어 올리고는 열꽃 피울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잔인한 봄
목필균
삼월 끝자락까지
눈발이 분분하더니
늦은 꽃바람 흐드러지더라
베란다 창으로 굴절된 햇살
거실 깊숙이 들어서고
손바닥만 한 화분에 사랑초도
늘어져 하품하는 오후
삼 년째 방안에서 벽을 쌓는
방울이 아범 빈 주머니에 핀
백수 곰팡이
잔술 얻어먹는 일도 시들어진 지
오래 오래 오래다
빌어먹을 꽃은 무슨
빌어먹을 꽃은 무슨
늦은 꽃바람보다
일어서서 휘돌아다니며
밥벌이할 곳이 더 급한데
몸은 늘어져 거실을 뒹군다
명자꽃 으스러지게 피어도
꽃 타령은 무슨
꽃 타령은 무슨
씨앗 하나가
문근영
꼼틀 꼼틀 태기가 있었나 보다
햇볕의 담금질로 해산할 모양이다
어둠을 꼬박 지새운 길에서
산통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고 있다
은하수 같은 꿈을 왈칵왈칵 쏟아 놓고
꽃밭인 듯 가슴 졸인 머리를 빠끔히 내민다
해산의 꿈들이 어둠을 헤엄쳐와
줄줄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탄생
꽃잎 하나 살며시 열고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가슴으로 빨려들 듯 봄이 반짝인다
봄
문병학
잊을 일도 많은 반도의 봄날
잊지 말자는 다짐도 없이
봄빛도 더듬더듬 장님 손아귀다
갓 마흔 해를 살고서도
잊어야 한다는 자각조차 죄로 갈 일들이
삶의 언저리마다 섬뜩섬뜩 밟힌다
잊지 말라는 건지
어서 잊으라는 건지
백두대간 산자락마다
산수유 매화 민들레 개나리 진달래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봄의 행진곡
문석경
노오란 병아리
치마 속에서 숨바꼭질하다가
엄마가 잠든 사이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자기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세상 첫 나들이로
빨간불도 삐약삐약
사람도 차도
약속이나 한 듯이
멈춰 서지 않으면
무조건 딱지를
그들의 악보에는
맨 끝에 겹겹으로
되돌림표가
봄
문인수
저기, 샌다
산업도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 방음벽에
알루미늄 방음판을 지탱하는 기둥 쪽으로
담쟁이넝쿨 바글바글 몰린다
어두컴컴할 때,
방뇨하기 좋은 포인트에
조것들의 귀가 참 새파랗게 쫑긋쫑긋
소복하다. 방음벽이 지금
알 슬거나 새끼 치는 것 같다. 본디, 꽉 틀어막는다는 일이 부수적으로
새는 실수를 낳곤 한다. 샜다, 차갑고 막막하고 텁텁한 판에
소문이란 것이 하긴 세상 어느 한구석
파릇파릇 틔우기도 한다.
생생하게 꾸며주는 재미가 있다. 저와 같은 스캔들은 또 대부분
맛있다. 지린내 같은 것도 삭혀먹는,
씹는, 곱씹어먹는
이쁜 주둥이들, 쌨다. 저기, 틀림없이 무슨 중대사태가 일어날
비밀이 샌다. 저, 산천을 온통 바꾸겠다
계속 번진다
때때로 봄은
문정희
때때로 봄은
으스스한 오한을 이끌고
얇은 외투 깃을 세우고 온다.
무지한 희망 때문에
유치한 소문들을
사방에다 울긋불긋 터트려 놓고
풀잎마다 초록 화살을 쏘아 놓는다.
때때로 봄은
인생도 모르는 젊은 남자가
연애를 하자고 조를 때처럼 안쓰러운 데가 있다.
아름다운 곳
문정희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
봄
문춘식
1
수탉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달린다.
머리만 남은 황소가 햇볕 속에 졸고
개나리 가득 핀 토담 밑에
거꾸로 박힌 소주병
철 지난겨울이 담겨 있다.
2
갓 깨어낸 대리석 조각 위에
피 흘리며 누운 새
가장 약한 부분을 쪼다가
가장 철저하게 쓰러진 새
그 주검 옆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핀, 새싹.
떡잎을 떨군다.
3
허물어져 가는 담벼락
전도식기 모양으로 그린 비행기.
하늘이 없어 날지 못하고
그 밑에
누가 캐다 버린, 달래 한 움큼
4
산등성이마다 붉게 물든 욕정
고름처럼 내비치는 들꽃들이 피면
자전거를 탄 아이들.
모두 어디 가고
놀이터에 남겨둔, 어지러운 그림자.
그곳에 혼자 있는 하늘
꽃피는 봄날엔
미나
봄날에는
하늘은 더욱 푸르고
잔디밭은 파릇파릇 초록을 입는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마음
예쁜 연두색 옷 차려입고
나들이 가고 싶어 들뜬다
진달래 개나리 활짝 핀 작약꽃
제 잘 났다 향기 날리며 나비들을 유혹하고
눈을 감고 하늘 향해 얼굴을 들면
살랑이는 봄바람에
인생이 한껏 아름답다
꽃피는 봄날엔
몸도 마음도
봄과 정분이 난다
화창한 봄날
민경대
누구도 아니고 지금은 죽음의 골
비도 눈도 아는 눈물 같은 봄 햇빛
누구도 만나지 않는 금빛 시간이 잠들고
다름 아닌 불빛 그림자
어디에도 금박이는 가리어진 채
눈물만 머금고 황금 빛 언저리를 곱게 편다
누구나 한 번은 기막힌 사연으로 피고
밤은 언제나 기막힌 신세
누군들 어깨 넘어 까만 연기같은 시간을 덮고
다시는 가지 못할 그러한 점들이 봄날 꽃들로 피고
언덕에는 더 깊은 시름으로 언덕을 넘어서 간다
봄날의 그리움
박광호
지난밤엔 비바람 몰아치더니
눈부신 한낮,
밉던 먹구름도
창공에 목화송이를 피우고
연초록 살아나는 머~언 산엔
봄꽃들로 얼룩이 더욱 지네
목련꽃 벚꽃이 펼쳐놓은
꽃잎의 카펫위로
따스한 봄볕이 내려앉는 정원
긴 삼동의 풍상에도 굴하지 않고
희망을 피어낸 꽃들과 새싹들
그러기에
품겨나는 향기도 짙은 봄날이
아련한 그리움 보듬는가?
오늘은 그 임이 더욱 그립다
봄맞이
박광호
어느새
눈에 뜨인 노랑나비
황망히 가는 곳은
여기 저기 멍울 잡힌
꽃눈에 입맞춤
얼었든 밤하늘 별빛은
봄비 타고 내려와
씨앗으로 뿌려지고
진홍의
꽃향기 설레는 꿈은
기다리는
임에게도 젖어드는가
산자락 음지엔
잔설은 남아있어
완연한 봄은 아직 이름인데
겨울과 봄 사이
물안개 피어 날 적
갯버들은 이미 꽃을 피었네
흐르는 물소리도
어제와 오늘 다르고
삼라만상 숨쉬는 것은 모두
강 건너
조용히 오는
봄을 지켜보고 있구나
누이야
우리도 이제
봄을 맞을 채비를 하자
봄을 맞는 산마을
박광호
메마른 대지에
쌓인 눈 녹아들고
안개 자욱한 산마을엔
봄볕이 든다
희망의 봄맞이가 자연만은 아니어서
사과나무 전지하는
사람의 손끝에도 삶의 꽃은 피어나고
머잖아
감자심고 모판 짜고
밭갈이 논갈이 농기계장단에
땅속 아지랑이도 잠깨어나겠지
겨울이 있어 봄이 오듯
우리네 삶도
늘 겨울만은 아닐것이네
산마을에 깃든 봄볕이
진정 은혜롭구나
옛 봄은 아니로다
박광호
봄이 온들
마음이 허한데
낙이 있겠는가
봄맞이 기쁨도 마음에
꽃피울 거리가 있어야지
광풍에 꺾여진 꽃망울이
봄이라 어찌 피어나리
세월 흘러
상처 아물고 새살 돋아
꽃망울
새로 맺기까진
봄은 내게 없으리
하지만 어쩌리
세월은 한낮 지나
해는 서녘에 이우는데
긴 밤 지나
새 아침 맞을
그 세월 아직 남았는가
이래
저래
가슴속엔
춘삼월 눈발만 분분하고
봄이 와도 옛 봄은 아니로다
봄의 연가
박기숙
보랏빛 연가에 실려 오는 그윽한 향기는
그대의 체취인가?
그대의 마음인가?
저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는
누군가의 봄의 찬가일까?
행여 내게 오시는 그대 님이 아니신가?
탑처럼 쌓아 올라가는
하얀 보랏빛
라일락 향기
바람에 더욱 더 짙게
하늘 높이 피어 오른다.
훠이 훠이 날갯짓을 하면서
멀리멀리 사라져 가는
알바트로스 새여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여라
나의 꿈도 나의 희망도
황혼의 품에 안겨서
흥에 겨워 다시 한번
봄의 향기에 입 맞추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마음껏 노래하리라
봄의 아름다운 연가여
봄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를
나는 이제 꽃잎을 바라보며
통쾌하게 웃고 서 있다
봄이 오면 풀꽃들은
박노해
봄이 오면 풀꽃들은 햇살이 감싸주어서가 아니라
추위가 얼려 주어서 싹이 튼다.
봄이 오면 풀꽃들은 하늘이 끌어올려서가 아니라
대지가 밀어올려서 자라난다.
봄이 오면 풀꽃들은 누가 키워주어서가 아니라
간절한 뿌리 힘으로 꽃 피는 것이니,
사람아, 희망의 사람아 풀꽃처럼
땅속의 뿌리를 다지며
스스로의 힘으로 함께 피어나라
봄이여 오라
박명숙
봄이여 오라
연분홍빛 사연을 싣고
꽃길에 향기 가득 뿌리며
설레는 가슴마다 핑크빛
사랑으로 오라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처럼
해맑은 봄빛으로 오라
파릇파릇 돋아나는 숨결로
우리가 꽃이 되는 세상으로
봄이여
아름다운 날들이여
그대 그리고 나의 계절이여
온 세상 밝은 색으로 물들이며
마음의 창에 꽃 마음으로 오라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고 따뜻한 사랑으로 오라
그리움은 가슴마다 겹겹이 피어나
너도 피고 나도 피는
봄이여 오라
서로의 꽃으로 피어나라
막무가내 봄
박목철
뉴스를 보면
온통 살얼음판
어디를 봐도 春來不似春인데
눈치 없이
꽃망울 터졌다는 봄소식
막무가내
나, 봄이야
봄에 거는 소망
박목철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붙였다
머뭇거리는 겨울 애써 외면하고
마음 한쪽에
소망의 불씨 입김 불어 살리듯,
귀 기울이면
봄의 소리가 들린다
겨울을 견뎌 낸 바램이 내는 소리
늘 희망이었지만
올해도
또, 입춘대길(立春大吉)
봄의 꿈
박목철
겨울,
모두 떠난 텅 빈자리
시련에 맞선 고독한 세월
생명의 온기 꺼져버린
메마른 육신 안고
옹이진 투박한 삶의 흔적이
실 날 같은 부활의 희망이란다.
마른 가지 위
풍요의 추억 목마른 산새 찾아들어
봄은 어디쯤일까
애닮은 구애(求愛)의 날갯짓하고
동토의 아픔 가슴으로 삭인
뿌리만이
곧 부활이야, 소리치고 싶지만,
동면(冬眠)의 긴 잠,
봄바람이 살랑, 잠 깨라 하니
녹색의 부활이 움트고
생명이 소리를 낸다.
잠을 잔건 그들인데
춘몽(春夢),
꿈은 오늘도 내가 꾼다
봄꽃들의 수다
박상휘
꽃들의 수다에 가슴이 녹는다. 얼 만큼 웃다가 또 떠날 걸
그토록 가녀린 웃음으로
너는 바람을 휘젓는구나 사랑이 날리고
눈물이 날리고 너로 하여
어둠이 걷히어져
산 너머로 가겠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박상희
차창 하나 가득
햇살 담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탁 트인 넓은 도로
답답한 가슴 쓸어내리고
물결처럼 흘러가는
삶의 행렬
따가운 세파 바람에 날리고
이 시간 훌훌 날려버리고
얼었던 나뭇가지
하늘 높이
빈손 쫙 내밀어
엄동에도 봄 준비한 나무처럼
지친 어깨 위에 봄은 오리니
겨울을 떨치며 달린다
아직도 저만치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의 연가
박선옥
햇살 가득 품고
연초록빛으로 담쟁이꽃
하늘 끝까지 간다아닙니꺼
꽃바람에 화르르
떨고 있는 가냘픈 새순
길 가는 나그네 발길 잡으며
수줍은 새악시 마냥
낭군을 애타게 기다리며
아픈 사연 고운 사연
그리움으로 물들어
여울처럼 번지는 봄볕
지나치는 가슴마다
각시처럼 고운 미소
아름드리 피어났다 아입니꺼
바람 부는 봄날에는
박소향
흐득 익어간 봄날이
저린 걸음으로 창밖을 기웃거린다
아무도 모르게 옷속으로 파고드는
파란 바람
지나가는 사람들도
봄꽃 닮은 가슴으로 하얗게 물들고
조금씩 부족한 목마름으로
당신을 기다리는 나도
바람 부는 이 봄날
남몰래 피고 지는 들꽃인지 모른다
봄 꿈
박순호
봄바람이 저수지의 얼음을 걷어갔다
수심의 깊이를 저 혼자만 알고 있는
조약돌 하나가
하늘 위로 튕겨 오를 듯
봄밤에
물결이 뒤척이고 있다
봄과 봄 사이
박승민
한 사람이 떠났을 뿐인데
수평선 너머로 금니처럼 반짝, 했을 뿐인데
그를 생각하다가 만 서쪽 창으로
생생한 명함판 사진 한 장 떨어지고 없다
피가 하얗던 한 여자가 졌을 뿐인데
운동장에 혼자 서 있는 이 기분
산의 아랫도리만 봄이었다가 겨울이었다가
몸의 내륙으로 이동하는 찬 저기압
잊는 힘과 잊지 않으려는 힘 사이에서
콧물과 프리지어 향기 사이에서
곧 눈물 마르고 향내 지워지리라
잊고 잊히는 일은 여기서 또 얼마나 잘 훈련된 관습인가
그러니 어느 동고서저(東高西低)의 기압골로 꽃 단청 오를 때
화전 부치는 냄새 거기까지 요란할 때
네가 먼저 문병 와다오
이번 독감은 오래가는 고독에 가깝네
봄이 오는 소리
박얼서
섬마을 언덕진 파릇한 이랑을 따라
엄동 해풍과 맞서 싸운
푸성귀를 수확하는 아낙들의 웃음소리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 춘설이 날리는데
장터에서 뱃머리에서 건설 현장에서
성급한 여인의 옷차림에서
뼛속 깊이 파고든다는 봄바람은
악동의 심술처럼 매달린다
누군가 봄은
막혔던 물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겨우내 해탈을 견뎌낸 나무는
땅속 깊이 빨대를 꽂아 샘물을 길어 올리고
봄 마중 나온 이들에게
고로쇠(水) 활력을 선사한다
고샅길 오가는 이동방송국
능청스러움이 더 살가운 아나운서들
"눈을 깜박깜박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싱싱한 갈치가 왔어요! 싱싱한 갈치!"
이 골목 저 골목
봄이 오는 소리 싱그럽다
"고물 삽시다! 고물
폐지나 고철
고장 난 컴퓨터나 텔레비젼도 삽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묵은 겨울 발빠르게 걷어들이는
봄이 오는 소리 분주하다
새봄
박얼서
전원(田園)교향악으로
새봄맞이 깜짝쇼 펼치려던
화단 속 꽃망울들이
무대 밖
슬그머니 훔쳐보려다
문득 마주친
눈빛에 화들짝 놀라
초경(初經)을 터트렸다
봄소식
박유동
작년 이월 설 연휴 어느 날
여기 시골 개울가에 나왔었네
그때도 구석구석 잔설이 녹지 않았는데
돌짬에 파랗게 물이끼 같은 풀
보일 듯 말듯 이름도 모를 작은 풀
깨알 같은 꽃이 하얗게 피었었네
앞산 벼랑가의 진달래도 소식 없고
집집에 목련도 아직 동면에 잠겼으니
나는 너를 진정 봄의 선구자라 불렀었네
금년 이월도 설 연휴 바로 그날 이때
나는 또다시 시골 개울가에 나왔네
얼음 풀린 실개천은 차디차고
음달에는 마냥 눈이 하얗게 쌓였는데
나는 작년만 여기고 돌짬부터 찾았네
그 이름 모를 작은 봄의 선구자를 보려고
그런데 꽃망울도 하나 볼 수 없고
노란 새싹만 입을 짝 벌리고 쳐다보네
금년은 한파에 봄이 늦어질 거라 하네
봄의 대세
박유동
어제같이 봄기운이 확실하더니
나뭇가지에는 꽃망울이 부풀고
양지에는 파란 새싹이 움트더니
꽃샘추위가 들이 닥쳤더냐
오늘은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것 같네
북풍이 쌀쌀하고 제법 손발이 시린데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 마냥 즐겁고
바야흐로 봄은 승리의 대세로 치닫고 있네
땅에 움트는 새 싹은 생기가 차고
꽃망울은 방금 터질듯 팽팽한데
누가 추위에 잔뜩 움츠렸다 더냐
아가시의 하얗게 노출된 종아리를 보아라
시원한 찬바람을 맞받으며
가슴 내밀고 활기차게 걸어가고 있잖은가
이제 동장군은 어디도 발붙일 곳 없고
봄의 대세는 승승장구로 밀려오고 있네
봄의 위치
박유동
개울가 언덕 밑으로 걸어가니
어제같이 눈이 두텁게 덮이었었는데
오늘은 가뭇없이 흔적도 없네
눈석임물 기름진 풀밭에
언제 풀잎이 파랗게 올라왔을까
더러는 한 뼘이나 쑥쑥 자랗네
봄은 훈훈한 남풍에 밀려오고
먼 산비탈에 아지랑이 아물아물
봄 아가시 진달래꽃 들고 온다는데
어찌 눈석임물 금방 녹은 얼었던 땅에
봄의 새싹이 저렇게 두둑이 돋았느냐
봄의 싱그러운 향기가 물씬 풍기네
누가 봄은 아직 남도 끝에 머문 다더냐
겨우내 대지를 덮었던 눈 이불 재끼고
바로 땅 속에서 봄이 떠들고 나왔잖으냐
원래 봄도 눈 덮인 땅 속에 품고 있었나보네
바라보면 비바람 설한풍 모진 세월 속에서도
사랑하는 님은 언제자 내 가슴 속에 있었듯
그 봄이 오면
박인걸
계절이 흘러도 계절 밖에서 사는 사람은
가슴에 만년설이 쌓인다
봄을 느껴본 것은 아득한 신화의 모서리였고
겨울과 겨울 사이는 언제나 나에게서 삭제되었다
내가 기댈 언덕은 하늘뿐이었고
내게서 도망치는 운명을 붙잡지 못했다
삶은 조화를 잘 이룬 인체 비례의 카논이 아니다
해독(解讀)이 까다로운 파블로 피카소의 화판이다
이항대립의 모순구조는 원시부터 존재하고
무차별적 무한경쟁은 약자가 먹잇감이다
기회, 자본, 재능, 지식의 불균형은
없는 자가 있는 것까지 빼앗겨야 했다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없는 사회는
풍족(豐足)한 자만 언제나 살이 찐다
겨울만 사는 사람은 항상 빈털터리다
부여잡을 것 없는 축축한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가라앉는 암사슴이다
하지만 하나도 서럽지 않다
추운 계절도 잘 적응하면 여름이 되고
자족(自足)의 비결은 빈 주머니도 채우며 산다.
가슴 깊이 동상(凍傷) 자국이 몇 개 있지만
그 봄이 오면 새살처럼 치유될 것이다
더디게 오는 봄
박인걸
당신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지 않고
여러 번 망설이다.
아주 더디게 다가왔지
어떤 때는 토라지고
차갑게 냉소 짓다
어느 날은 환한 미소로
내 마음을 흔들었지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부러 차갑게 대할 때
한 없이 야속했지만
천천히 마음 문을 열고
애태우며 다가온 당신이
결코 얄밉지 않은 건
너무나 아름다워서입니다
봄날 오후
박인걸
꽃향기는 경계선 없이 흩날리고
오후 햇살은 화살처럼 쏟아진다
그림자는 일제히 동쪽으로 비켜서고
귀룽나무 꽃가지에 나비 떼 존다
길손 뜸한 숲길에는
앙증맞은 풀꽃이 오수(午睡)를 즐기고
앙당그레 뒤틀어진 고사목에
딱따구리 한 마리 열심히 굴을 판다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연무에 갇혔지만
작은 숲에는 내가 원하는 평화가 흐른다
차량들 질주하는 저 아랫마을에는
간판과 간판 사이에 뜨거운 불꽃이 튀고
온갖 지저분한 언어들이 휴지처럼 뒹군다
팽팽한 긴장감은 고압 전류처럼 흐르고
웃음 뒤에 숨겨진 비수는 늘 상대를 조준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어가는
치매 노인은 하나도 없다.
대낮에도 두 눈에 불을 켜고
먹잇감을 쫒는 아쿠라움의 물고기들이다
나도 그 가운데 휩싸여
물레바퀴처럼 쉬지 않고 돌지 않았던가
공해에 찌든 가슴을 솔바람에 헹구고
독기 가득한 두 눈을 꽃잎에 씻으면
머리카락처럼 일어서던 스트레스가
방광 아래로 가라앉는다
4월의 하늘빛이 내 얼굴로 쏟아진다
봄날의 감정
박인걸
정오의 햇살은 옥구슬처럼 쏟아지고
구름은 산등성 위에서 한가롭다.
아지랑이 벽돌 담장에서 춤추고
매화나무가 기지개를 켠다
나뭇가지를 비틀던 추위와
산새들을 내쫓던 차가운 눈이
우수(雨水)에 빗물이 되어버린 지금
봄기운에 마음이 설렌다
그 겨울에 추웠던 기억들이
못 잊을 설움처럼 명치에 맺혀
봄꽃이 활짝 피어도 늘 괴롭히던
증세가 봄바람에 파묻히지만
산수유 노란 꽃망울과
연분홍 진달래 무리 지어 피던
병풍산 둘러싸인 옛집 생각이
뒤숭숭하게 교차 되는 이 마음
앞마당서 물레 젓던 어머니
낮 닭 울던 봄날의 오수(午睡)
기적(汽笛)소리도 깊이 잠든 정오
갈피 못 잡는 이 몸 어찌할거나
봄 언덕에서
박인걸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나 오늘 봄 언덕을 거닌다
앙증맞은 들꽃이 봄바람에 출렁이고
어머니 마음 닮은 설유화 눈부시며
어느 소녀의 양볼 닮은 복숭아 꽃
눈부신 정오의 햇살에 반짝인다.
봄바람은 꽃향기 가슴에 담고
풀잎 피는 산등성을 넘어 달아나고
하나도 거리낌 없는 나뭇잎들은
무늬 벽지처럼 세상을 도배한다
아주 오래전 아무도 없는 오지(奧地)에서
감당하기 힘들만큼 벅찼던 풍경을
우연히 넘던 봄 언덕에 마주했을 때
감추어 놓았던 세상을 발견한 감격이다
제각각의 생명들은 벅차게 호흡하고
나름대로의 생김새는 조화롭게 뒤엉켰고
오로지 푸른빛으로 움직이는
삼림(森林)과 들판의 푸른 혁명은
어떤 신조를 따르는 종교의 축제 같다
아직 지지 않은 벚꽃과
푸른 잎과 흰 꽃이 반반인 귀룽나무꽃들과
벌써 눈부시게 피어나는 철쭉까지
나는 오늘 나만의 궁궐에 갇힌다
봄은 오는데
박인걸
내가 맞은 봄을
손으로 꼽아보니
甲이 되돌아와
반갑지만도 않네
금년 봄이 가고
앞으로 또 몇 차례 지나면
그 다음 봄은
맞이할거나
새봄이 언제나
기다려지던 때가 그립고
꽃 피고 새울 때면
가슴이 울렁이던 때가
아련하구나
혈기방장 그 시절이
손에 잡힐 듯 한데
서글프다 이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가
봄은 온다
박인걸
태양은 겨울의 꺼풀을 하나씩 벗기고
봄의 속살을 조금씩 열어 보인다
그동안 깊게 잠가 두었던 얼음장도
햇살 앞에서 빗장을 열고 있다
나는 혹독한 역경(逆境)에 둘러싸여
발을 구를 뿐 퇴로는 없었고
퍼붓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따스한 영토를 기대할 뿐이었다
꿈이 깨지는 굉음(轟音)은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보다 두려웠고
희망을 옥조이는 수은주(水銀柱)는
쇠사슬처럼 잔인(殘忍)했다.
지독한 동토(凍土)를 탈주하여
양지쪽 모퉁이를 기어갈 때
잔인한 파수병의 억센 손은
나의 멱살을 여러 번 낚아챘다
자유로 가는 길은 이토록 험하고
억압을 벗어나는 길은 아득하던지
그물망처럼 뒤덮은 속박을
벗겨줄 누군가만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회생(回生)이 보인다
한줄기 불빛이 저 멀리 끔뻑인다
그렇게까지 고대하던 새봄이
매화꽃 향기 안고 온다 한다
봄이 오네
박인걸
봄이 오네
시냇물 소리 타고 오네.
징검다리 건너오네.
양지바른 비탈로 걸어오네
봄이 자라네
생강나무 꽃망울과
매화 가지 끝에서 자라네
도시 가로수에서 자라네
봄이 퍼지네
바이러스처럼 퍼지네
아지랑이 타고 퍼지네
여기저기 사방으로 퍼지네
봄이 이겼네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겨울을 저 멀리 밀어냈네
햇살을 등에 업고 이겼네
봄을 노래하네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열고
봄을 힘차게 찬미하네
산새들이 신나게 노래하네
봄이 오는 길
박인걸
나의 문밖에서 서성이던 지겨움은 떠났다
그토록 집요한 미련에 빠져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집념도
따스한 바람 앞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나는 안으로 실속 있게 걸어 잠그고
한 치의 침윤도 너에게는 허락지 않으려 했지만
침략군보다 더 잔인한 칼날은 내 발등을 찍었다
나는 너로 인하여 많은 꿈의 노래를 잃고
힘겹게 한 가닥 사슬로 내 의지를 하늘에 걸었을 뿐이다
아슬아슬한 빙판을 딛고 미끄럼을 타며
가파른 암벽에 가는 밧줄로 오래도록 걸려 있었다
너는 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나 또한 너에게 쉬운 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지루하고 혹독한 밤이었지만
내 영혼은 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를 악물고 바람벽을 뻗딛으며 서 있었을 뿐이다
꿈을 심장에 깊이 묻고 끝없는 기다림으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한 뼘씩 앞으로 나갔다
그토록 몹쓸 겨울은 내게서 물러갔다.
주사야몽 소망했던 봄이 마당을 에워쌌다.
내게로 달려온 온기는 묻어두었던 꿈을 꺼내게 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봄은 언 영혼을 녹이고
나를 붉은 꽃밭에 세우리라
봄이 오는 소리
박인걸
찬바람 사이로 비친 햇살이
물오른 가지를 쬐일 때
움츠린 진달래꽃 봉오리에서
실핏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발이 더러 날리는
춘분으로 가는 길목에
뒤뜰 감나무 가지서
되새 한 쌍이 짝짓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묵은 낙엽 더미를 헤집고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맑은 얼굴을 내민다
봄은 이렇게
가녀린 소리로 오지만
생명들의 찬가는
곧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
이 도시에도 봄은 오려나
박인걸
미세먼지 자욱해 먼 산이 흐릿하고
잿빛 하늘과 맞물려 도시는 온통 회색이다
연일 들려오는 경제 뉴스는 어둡고
신경이 곤두선 사람들의 눈초리가 무섭다
꽃 한 송이 없는 겨울 거리에는
참새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사람들만
고개를 숙인 채 어디론가 흘러간다
가시처럼 돋친 간판을 쳐다보며
나 자신도 인파에 휩쓸러 지나간다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는 보도블록에는
도시의 삭막함이 박혀있다
여기저기 빈 상가가 공허하고
빛바랜 임대 광고지가 나부낀다
떨이를 목이 터지게 외치는 상인마다
텅 빈 가슴이 춥다고 아우성이고
차가운 불황(不況)의 경기 감도(感度)는
인파의 명치끝을 자극한다
그해 겨울보다 더 추운 이 도시에
과연 그때처럼 봄은 찾아오려나
갈 지(之) 자로 배회하는 겨울바람만
옷깃을 파고들며 나를 괴롭힌다
춘목(春木)
박인걸
동국(冬國) 군대와 싸우고
살아 돌아 온 생명들이
나뭇가지마다 일렬(一列)로 서서
대견한 듯 바라보고 있다
지루했던 동절(冬節)의
살을 에는 들판에서
은폐 엄폐 하나 없이
육박전(肉薄戰)을 치른 첨병(尖兵)들
삭풍(朔風) 일던 전장(戰場)에서
구사일생(九死一生) 비결은
거추장스런 잎들을 털고
오직 홀홀단신으로
산고(産苦)만큼 심한 고통
참고 또 견디면서
장엄한 전사를 각오(覺悟)하며
이를 악문 인고(忍苦)의 시간들
찬란한 춘광(春光)이
북풍한설(北風寒雪)을 추방하던 날
춘목(春木)들의 승리 함성이
온 땅을 진동케 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
박장락
봄을 기다리다 지쳐버린 채
하늘을 빗질하고 내리는
순백의 수정체가
온 대지를 뒤 덥으니
겨울의 의미는 차가운 한기로
미몽 속에 잠들어 버리고
그리움으로 지새우던
삭풍의 긴 세월을 반추하면서
보내온 동백 꽃잎은
피지도 못하고
각혈을 토해 놓으니
하염없이 순백의 흰 눈이 지금도
내 머리와 네 머리위에
시새움 하며 내리는데
어느 날까지 향기 가득한 천지에
순수함을 이고 져야 하는가
솔가지에 내린 눈꽃은
햇살에 반사되어 대지를 누비며
모래 언덕 버들강아지 살며시
계절을 유혹하는데
매화는 어느 날에 고운 꽃술로
봄을 기다려야 하는가
어느 봄날에
박정숙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어느 봄날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던 울 엄니
소녀의 수줍은 미소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웃던 얼굴
그해 봄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떨어진 꽃잎 하나 주워 머리에 꽂곤
그토록 좋아하시던 울 엄니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이듬 해 입원하고 당연하게 퇴원할 줄 알았다
한치 앞도 모른다는 것이 운명이라고 했던가
야속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네
그렇게 떠난 빈자리를 까맣게 잊고 있었네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건
진달래 입에 물고 있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있고
병상에 누워 괴로워하던 모습만 남아 있는 울 엄니
어느 봄날에 있었던
경마장 들어가는 입구의 추억 한 자락
이제 와서 잊고 있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들
아무 소용없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봄의 유혹
박정재
생동이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생명들이
고개 내밀어
그 무엇을 찾듯
초봄의
포근함 속에서
그대 생각 겹겹이
마음에 포갠다
내 마음에
찾아드는 그리움
주체할 수 없어
먼 산만 바라본다
봄이 오면
박정재
마른 가지 사이로
산들바람 고개 내밀면
마른 가지에서
매화꽃 다투어 피고
얇게 깔린 흰 눈
아쉬운 듯 녹아내리면
갈잎 아래 숨은 들꽃
얼굴 내밀기 시작하고
늙은이 마른 가슴에
숨죽인 추억 들썩이고
힘없는 설레임으로
먼 산을 바라본다
늦봄의 거리에서
박종영
늦봄의 행간에 우뚝 선
가로수의 잎이 푸르게 열리고 있다
따스한 봄기운이 바람에 실려 와
움트는 생명의 몸부림이 경이롭다
해마다 눈여겨보는 새잎의 행렬을 기억하지만
유독 이토록 늑장 부리는 봄에
궁금한 나무들의 나이테를 알아내기까지
지루한 성장의 해법이 있었음을 부인 못 한다
우리가 늘 순리를 뒤따르는 생각의 깊이는
이 세상 선물로 받은 푸름의 세월에 한 획을 긋고
밝은 세상을 바라보며
귀한 생명을 선물로 받아
지금까지 행복했음을 고백하는 시간
그러므로 내 울음의 무게가
가벼워서는 아니 되는 것
봄동
박종영
납작 엎드린 네 얼굴
노란 웃음 선사 받고 보니
저절로 가슴이 환하다
삼동, 눈발에도 어김없이
뜨거운 숨 몰아쉬며 땅심 녹이던 날이 엊그제
이제야 겨우 나를 돌보는 시간
천지간에 부러운 눈총뿐이다.
너의 강인함이 부러워 찾아오는
봄바람이 시샘하고,
푸른빛으로 치장하는 2월의 들녘에서
사람들은 싱싱한 얼굴 다듬어 맛을 실어 나른다
봄동이여,
오늘은 작정하고 너를 꽃으로 부르랴
아니면 얼갈이배추로 다듬으랴
달라붙은 봄기운이 어느새 잎사귀마다 두툼하다
봄이 강을 건너다
박종영
산수유 노란 웃음으로
풀리는 고향의 봄, 샛강은
허리춤 곧추세워 징검다리 건너뛰고
아프게 흐르는 흙빛 물살
자운영 꽃길 따라 산은 강을 건너고
강은 그림자 드리운 채 물가에 서 있다.
겹 도는 구부나루 흐느끼는 안개,
그 안갯속으로 아득한 강줄기 흐르고 흘러
구진포 휘돌아 치니 회진이라 했던가
지난겨울 칼끝 바람 언 강을 가르더니
보송보송 버들강아지
찬 기운 몰아내느라 붕붕거린다.
해동기(解凍期) 맛 들여 풋대 세우는 청보리 물결
긴 사래 끝자락 흩어진 풍경을 주어 모으고,
얇게 봄을 벗기는 유채꽃 웃음소리
오래된 그리움 데리고 와 꽃씨방 어르고
몽탄나루 거슬러 오르는 버들치 물장구치는 소리
살아 있으므로 융숭한 영산강(榮山江)의 맥박 소리
이때쯤, 날씬한 봄이 강을 건너온다는 소식
먹이 찾아 촐싹거리며
차가운 봄 물살 콕콕 쪼아대는
민물 도요새 한 쌍
봄이 오면
박종영
봄이 오면,
언 손 호호 불어
넉넉한 강물을 녹여주는 일
하늘 끝 따스한 바람
지상으로 불러와
앵무새 입술 같은 꽃봉오리
간지럼 태우는 일
봄꽃이 그립다고
나긋나긋 우는 새
사랑이 되어 주는 일
익숙하게 방치한 겨울나무
새순 돋아나게
잘 익은 햇살 한 줌 보태주는 일
이토록 찬란한 봄날에
박종영
이토록 찬란한 봄날
기억의 중심에 놓이는 꽃의 숨결이
나른하므로 허우적대는 나를 바르게 세웁니다
세상의 꽃들이 너무 환하고 고와서
그리운 것들을 모두 불러 모아 깨물고 싶도록
찬란한 봄날입니다
움쑥움쑥 솟아나는 꽃들의
용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것들을 향해 자꾸만 살아 있음의 기쁨이
손을 흔드는 소중한 날입니다
지극히 단순한 생명의 진리를
알려주고 떠나는 꽃잎의 행렬이
잔 먼지 자욱한 세상의 길에 만장으로 펄럭일 때마다
내 저승길의 예고를 두려워합니다
새로운 기품으로 바쁜 하루를 사는 동안에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의 순결에
잠시 마음을 바치는 길목에서
처음의 풍경으로 웃고 있는 꽃 소리 담아
남루한 마음을 씻겨내는 시간입니다
그해 봄에
박준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미인처럼 잠드는 봄날
박준
믿을 수 있는 나무는 마루가 될 수 있다고 간호조무사 총정리 문제집을 베고 누운 미인이 말했다 마루는 걷고 싶은 결을 가졌고 나는 두세 시간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트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미인은 식당에서 다른 손님을 주인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의 솜털은 어린 별 모양을 하고 어린 별 모양을 하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은 밥을 먹다가도 꿈결인 양 씻은 봄날의 하늘로 번지고 나는 손발이 뜨겁다 미인을 생각하다 잠드는 봄날, 설핏 잠이 깰 때마다 나는 몸을 굴려 모아둔 열을 피하다가 언제 받은 적 있는 편지 같은 한기를 느끼며 깨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봄은 겨울의
박창기
마음을 열면 눈물이 나는가
마르지 않는
뜨거운 눈물이 절로 나는가
옥죈 손을 놓게 하고
봄은, 변덕스런 봄은
기어이 겨울을 닥달하여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선
저 혼자 찬란하게 날개를 단다
그러나 봄은 승천하지 못한다
겨울의 가슴을 빌려 화려해진
자신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
겨울은 봄의 외출을 준비하면서
봄보다 더 뜨거운 가슴으로
꽃씨를 다듬고, 꽃잎을 손질하고
긴긴 겨울 이야기까지 뿌리에 담는다
짧은 봄 한순간에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탄생의 신비를 꿈꾸면서
민들레 같은 봄날의 투정을 받으려
빈 가슴으로 심호흡을 준비하면서
겨울은 봄의 무지를 묻지 않는다
봄
박철
그 향기 아직 뜨거운
저 꽃의 마음을 안다
순대며 떡볶이 명잣빛 섬김을 뒤로 하고
구석에 등 돌려 오뎅 고치를 삼키는 목멘 외로움
그 외로움 혹여 세상이 알아챌까
유리창 밖으로 얼굴 들지 못하고
없는 고향 흰 눈이나 뿌리며
행여 누군가 알아볼까 숨죽여 뜨건 국물 넘기는
병든 노구의 기울지 않는 향기
그게 꽃이 아니고 무에냐
봄빛 천지
박태강
따스한 햇살이 온 누리에 뒤덥혀
가는 곳마다 노랑빛 우유빛 붉은빛
꽃들이 나풀거리며 춤을 추더니만
시샘 난 푸른 잎들이 이젠 마음을 잡아
꽃을 잡아 당기며 저의 세상 만드네
앞서면 어떻고 뒷서면 어떠랴
너 나 구별 없이 고루 비칠 빛인데
황토빛 잿빛 들판이 이제 정신 차려
푸른 옷을 갈아 입고 없던 친구
불러 모아 한판 신명굿을 하누나
봄이 오는 길
박태강
햇살 스잔한 봄
미소 짖는 꽃
연두색 잎 어울리는
산 오르면
다람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실개천 광장에
봄맞이 축제를 한다
땅속 깊숙이
삶을 움추린 놈
실눈 뜨고
푸르름 솟구쳐
봄은 오는 듯
세월 등에 업고
종종으로 내달아
여름으로 빠진다
오는 봄
박태강
낮 온도가 영상 아닌
영하로 흐르고
봄은 오다 멈칫 서 버렸다
그러나 발코니
유자나무꽃이 향기를 품으며
활짝 웃고 자태를 뽐낸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흐름은 그스럴수 없듯
겨울이 발버둥 쳐도
봄은 멀어지지 않고
꽃을 피우는 조화 앞에 숙연해진다
봄의 문신
박해림
언 땅의 포장이 뜯겨져 나갔다
수많은 상처가 우수수 솟아올랐다
어떤 것들은 입이 없고
어떤 것들은 발이 없다 또 어떤 것들은
손이 없다 엎어진 채
뒤로 나자빠진 채 봉긋 숨겨둔 날개를 펼쳐들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지만
이미 온 봄이 어디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오랜 믿음이
이 마을 어딘가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던 거다
만삭의 여인처럼 뒤뚱이는 봄이
골목을 지나 학교 담장을 지나 보도블록을 지나더니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하고 냅다 달린다
입이 없고 발이 없고 손도 없이 날개만 펄럭이면서
대체로 희망적인 봄
박현웅
봄은 왔는데
배부른 각시와 종아리가 여문
사내의 변두리 옥탑방은 언제 도배를 하나
홀쭉한 개나리는 담장에 기대어 축축 늘어지고
주저앉는 자리마다 궁색한 항문의 문신이
노랗게 찍히는 잎 갈기갈기 찢어진 민들레
쉬쉬 몸을 움츠리던 농부의 비구름은
황사 바람에 메마른 기침만 하다 눈물만 찔끔,
목젖이 허옇게 드러난 앞강은 먼 산 돌 틈 사이
헝클어진 물줄기를 자으며 물레질 하는 옹달샘의 안부를
더 이상 송사리 떼에게 들려주지 못한다
손금 좋은 하얀 나비가 날면 구겨진 살림도 활짝 펴지겠지
기우뚱거리며 똥물 찍찍 갈기는 저 씨암탉
황금알을 줄줄이 낳을지도 모르고
세풍에 흩어진 자식들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 날아들어
사랑의 문신을 새기며 가정을 이룰 테니,
지문 같은 논밭 둑이 다 닳도록 오가다보면
출렁이는 곡식들이 허리를 잡고 덩실 춤추는 계절도 오겠지
송사리 떼 이제 너희들의 지느러미로 강물을 지휘하라
황홀한 가락으로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비가 온단다
꽃이 핀단다
봄, 봄
박형권
두 젊음이 다리 끝에서 아지랑이를 피워올린다
연애질하고 있다
눈빛 마주칠 때 참꽃 피고
손닿을 듯할 때 개나리 벙글어지고
내일 들에서 쑥 캐는데
너 나올래
불쑥 오지 말고
늑대처럼 침 흘리며 빙글빙글 둘러서 다가올래, 할 때
목련꽃 흐드러지고
동네가 눈을 틔우는 마늘 싹 만해서
봄비 기다리는 마루 끝에 앉아서도
아닌 체 서로 끌어당기는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의 좋은 시절도 복숭아꽃 피었고 복숭아털 같은 최루탄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해 다니며
잘 모르는 자유, 노래하다 지치고
전자석처럼
문득 나를 끌어당기는 여자가 있었다
이제는 예쁘게 노는 모습에 참으로 눈이 부시기 시작하는 나이
해줄 것은 없고 시계를 한 시간씩 되돌려놓으면 그것도 부질없다
봄은 노루 꼬리보다 짧으니 힘껏 하는 만큼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고
속마음은 제비꽃처럼 부리가 뾰로통해지고
그때 그 나이인 저 아이들 믿고
봄을 맡겨도
괜찮을까 하며
겨울이 능구렁이 꼬랑지를 담부랑에 남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꽃봉오리로 팬티를 해 입고 싶은
봄이
쑥 캐는 년 궁둥짝만큼 염치없다
봄은 저 아이들 연애질하게 오는 것이니 행여 나비처럼도 밟지 마시라
봄, 봄 해봐도 젊음 속의 봄 만한 게 없다
어느 봄날
박효찬
여인(女人)은
긴긴 겨울밤을 벗는다.
검은색 오버를 벗고 내복도 벗는다
알몸으로 잘 다듬어진 조각의 모습에
삐죽이 고개 내민 따스한 해님은
속살 여미듯
진달래꽃
개나리꽃
꽃비 내러 곱게 단장을 시작한다
연지 곤지도 찍으며
슬쩍 마주치는 봄바람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네
춤을 추네
아마도
온 동네 잔칫날인가 보다
봄의 미소
박흥락
산사 풍경 소리가
대웅전 처마 위에 앉아
봄맞이할 때
산등선 자락에 핀
진달래꽃 향기가
봄바람 손 마주 잡고
풍경 소리 마중 가면
봄노래 흥얼거리고
대웅전 부처님 미소가
합장한 손바닥 사이로
슬며시 파고들어 가슴에 닿으니
합장한 그대의 입가에
부처님 미소 닮아간다
봄동
박희홍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다른 몸을 깨우기에는
겉절이 무침 일품이라더니
한 잎 펼쳐 지진 부침개 속에
봄이 살아 숨 쉬고
펑퍼짐한 제 몸 사르는
아삭아삭 고소한 맛
나른한 봄날의 밥도둑
식욕을 돋우어주네
봄이 오는 소리
반기룡
겨우내 움츠렸던 가지마다
햇살이 입맞춤하고
미풍이 이마를 할퀴고 간다
어느새
닫혔던 껍질이
슬몃 과감한 노출을 시도하고
가끔 창살에 기대어
비 오는 소리에 귓바퀴를 굴린다
후두둑 후두둑
이 소리도 아니고
쭈르륵 쭈르륵 이 소리는 더 아니지
외씨버선 신은 듯
사르르 사르르 오는 소리라지
가는 비에 탱탱 불었던
꽃 몽우리 톡 터질 때
가슴 깊이 장전했던 불꽃은
산하를 우렁차게 불사르리
비 오는 길목에서
툭! 툭! 툭!
발기하는 저 소리
봄, 지금은 열애 중
반기룡
진달래 몽우리
쪼옥 쪽! 햇살이 핥고 지나간 자리
사랑의 신열로 연분홍빛 되어
산하를 두근거리게 합니다
개나리는 노오란 옷
사방팔방 살포시 들추더니
산천은 열정으로 물들고
노오란 병아리 떼
골목마다 지천을 이루며
생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산수유는 꽃가루 고샅 고샅 뿌리고
상춘객 끌어모아 어울마당 펼치며
텃밭에 화알짝 핀 장다리꽃은
긴 다리로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노오란 바다를 이룬 유채꽃은
꿀벌을 한 무더기 데불고 와
들녘마다 열애하느라 진저리를 칩니다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봄날은 간다
배경숙
우리 삶은 늘 멈칫거린다
몇 날 몇 밤의 더운 피를 순순히 받아들인 이곳에서
별들이 찾던 꽃향기는 언제부터 희미해진 것일까
영원히 퇴락하지 않을 것 같던 꽃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버리고 무심히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다
당신의 가슴으로 빨아들인 저 꽃잎들의 행진은
언뜻언뜻 이 시리게 부서져 내리는 허무한 포옹일 뿐인가
잘 가라, 미소보다 희고 보드라운 시간들
온몸으로 부닥치며 담아 빛나던 당신의 눈은
껴안은 팔에서 마침내 숨을 끊은 꽃들의 부신 웃음으로
내일은 또 봄비가 내릴 것이라 속살거린다
다시 또 몇천 년이 눈을 감아 이 길에 설 것인가
당신의 가슴에 박힌 지상의 별자리를 찾아
잎들이 마지막 빛을, 희미한 슬픔을 내리고 있다
파란 같은 세찬 바람 사이로 당신의 입술이 잠시 떨리는 듯하지만
이제 곧 초록의 불길이
불타는 기쁨으로 세상을 뒤덮을 것이므로
봄의 나그네
배종대
짧았던 봄이여
세월의 침묵 속에
봄은 정녕 시들어 가는가?
못내 아쉬워
떠나지 못하는 가녀린 벗 꽃잎
내 님 기다리는 커피숍 차창 밖
하얀 눈물 되어 심연으로 가고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속
님의 얼굴 커피잔에 머물러
눈가에 젖은 눈물 마르면
다시 오리라는 해후를 기다리다
황사 씻기는 봄비 내리는 날
하늘 받쳐 들면
누군가 날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망각의 착각이
빗속 대화 마련하는 봄의 나그네
봄빛
배창호
필까 말까
시나브로 뜸 들이고 있는 돌 개천 갯버들
해롱해롱 눈이 튀어나올 만한데도
쉬이 곁을 주지 않아 설렘만 낭창댄다
가지마다 매달린 움 닢이
깨어 있는 문을 향해 발돋움하는데도
까칠한 임을 빼닮아 아직은 이르다는
밀당에 정신줄을 놓았다
첫사랑이 원래 서툰 것이라지만
이내 보란 듯이
숨 가쁘게 빠져들 동공이 될 터인데
조석으로 변하는 마음인들 어쩌랴,
자지러진 봄이 오동통 물오를 때면
실개천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련을 이겨낸
유두 같은 망울이 참, 곱다 수더분해도
섬진강의 봄
배창호
은빛 모래톱이 반짝이는 섬진강의 봄은
다압골이 절창이다
지리산 기슭을
끼고 돌아 태동의 숨결을 불어 넣는
춘삼월 강변에는
바람이 일 때마다 뒤안길로
떨어지는 꽃잎이 눈처럼 휘날린다
짧은 환희도 한순간인 것을,
이별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서럽다 말도 못 하는 그리움을
강물에 띄워 보냈어도
멍울진 편린들이 야속할 뿐이라 하지만
오늘만이 아니기에
내 안에 아직도 보내지 아니한
가고 옴의 행간을 넘나들 뿐이다
여름으로 가는 봄
백성섭
개나리 진달래 아람치라 했더니
봄에 그림자 햇살에 가리어
푸른 잎 속으로 사라진다
한 잎 두 잎 꽃 떨어진 자리에
잎파랑이 솟아 나는 소리
풀벌레 기지개 켜는 소리
밤을 잊은 채 힐조를 맞는다
여름인가
내려 쪼이는 불볕더위에
고개 숙인 여린 우듬지
봄이 타오를 듯 노을이 지고 있다
별빛 사이로 이슬 내려와 힐조 되면
다시 머리 들어 마루를 바라보며
불쏘시개가 된다
* 아람치 : 자기가 차지하는 몫
* 힐조 : 이른 아침
* 우듬지 : 나무 끝 가지(순)
* 마루 : 하늘
봄 길
백원기
아침저녁 쌀쌀한 겨울 끝자락
나무마다 파랗게 움돋고
흙은 물기 촉촉하다
세상모르고 철없는 봄
뛰어오다 넘어져
아픈 무릎 쓰다듬고
일어서 달려오다
난데없는 코로나에
부딪혀 넘어졌구나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오고
꽃 피고 새우는
춘삼월인데
꿈에도 그리던 봄 길은
멀고도 험한가 보다
봄 마중
백원기
산기슭 양지 녘에 눈 녹는 소리
날이 풀리려나 보다
해동의 그날이면 새봄
꽃피고 새 울면 마음도 열려
아픈 시간의 흔적 다 지우고
가득 채워지는 기쁨
벚 꽃잎 흐드러질 때면
마음의 평화, 자유스러움이
활개 치며 창공을 나르리
춥고 차가웠던 산바람 강바람에
살아온 일상의 시름을 실어서
넓고 넓은 바닷물에 띄워 보내자
게으른 봄 햇살이 얄밉지만
마음 속 깊은 앙금 비워내고
꽃망울 터트릴 야생화의 새싹 찾아
틔워줄 뿌리를 그리움으로 쓰다듬자
봄이 오고 있다
백원기
눈에서 미끄러지고 얼음에서 미끄러지다
이제는 꽃잎에 미끄러지는 세월로 다가서고 있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다더니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올 날 가깝고
아침마다 강변 가는 길가에 목련꽃 나무
봉오리가 봉곳 하게 제법 통통하니 만지고 싶은 충동
담장 밖으로 고개 내민 목련은
벌어지려는 딱딱한 껍질이 보송하다
촉감 좋은 손끝에 오늘도 즐거운 데이
봄이 오고 있다는 반가움에 기쁨이 샘솟는다
하얗게 쌓인 눈 아래 이미 봄은 와있던 것처럼
벌써 기다리고 있던 봄인데
우리만 눈감고 몰랐던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어린 새의 울음소리와
어린 꽃잎마저 하르르 웃는 작은 봄이 올 께야
미룸미룸하던 동장군 가시면 봄님이 오실 거야
봄이 와요
백원기
개울에 얼음 녹아
동장군 자리 뜨니
구름 타고 비 오시고
징검다리 건너서
파랗게 봄이 와요
이맘때면
어김없이 오는 봄
햇살 바라보는 나목들이
낯선 몸짓으로 화답할 때
태연히 웃으며 와요
머지않아
벼랑 끝에서도 꽃은 피고
어린 새 노랫소리 아름답겠죠
궁금해 신 신고 나서면
아직은 쌀쌀한 겨울바람
몇 밤 지나 잦아들면
오색찬란한 꽃의 향연
넘치게 베풀겠지요
이 봄에
백원기
염소 한 마리
한가로이 풀 뜯는 언덕
겨우내
누렇게 말랐더니
초록빛 고운 옷
갈아입는구나
스프링처럼
약동하는 계절은
잔잔한 파도가 되어
잠들고 싶은
초원을 이루는데
이리 떼 불청객
코로나 휘정거림에
평화의 금 갔지만
믿을 수 없는 중국산
곧 반품되리라
봄이 오면 보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변종윤
봄이면 꽃밭에서 꽃처럼 예쁜 마음을
얼굴에 심어 준 꽃 한 송이 있었지요
여름이면 매미가 울어 슬퍼했습니다
싱그러운 풀냄새
코끝에 머무는
그 오솔길이 그렇게 좋다고
해마다 그곳에는 오곡이 풍성한
작은 산골 마을이었지요
그곳에 아이들은
시냇물에 멱을 감고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기 위해 꿈 많던 아이들
여름이 간다고 매미는 통곡을 합니다
가을이 오면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가을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 시끄러운 소리
밤도 줍고 대추도 따고
유난히 소박했던 아이들
어른이 되어 시집 장가는 갔는지
보고픈 사람은 어찌 지내는지
봄날
변학규
버들가지 눈 비벼 바람 비껴 춤추고
나비 떼 지친 봄날 장다리 밭 곰돌고
처자애 바구니 낀 채 고개 넘는 아지랑이
보리밭 물결치는 구름실은 도랑물
목매기 목을 뽑다 발목 잠근 할머니
바람도 푸른 숨결에 한대 무는 비알길
매화가 필 무렵
복효근
매화가 핀다
내 첫사랑이 그러했지
온밤 내 누군가
내 몸 가득 바늘을 박아넣고
문신을 뜨는 듯
꽃 문신을 뜨는 듯
아직은
눈바람 속
여린 실핏줄마다
핏멍울이 맺히던 것을
하염없는
열꽃만 피던 것을.....
십수삼 년 곰삭은 그리움 앞세우고
첫사랑이듯
첫사랑이듯 오늘은
매화가 핀다
봄에 관한 어떤 추억
상희구
국민학교적 소풍날
꽁보리밥에 양념 친 날된장을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는데
다른 친구들 모두 쌀밥으로 싸 왔거니 하고
산모퉁이에 숨어서 점심을 먹었다
이 기억만은 선연한데
그날 그 소풍간 곳이 어딘지
그날 어머니는
무슨 색깔의 옷을 입으셨는지
그날 날씨가 개었는지 흐렸는지
그날 아침밥은 무슨 반찬으로
어느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는지
그날 내가 사자표 가루 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날 우리 집 뜨락에
철쭉이 몇 송이나 꽃봉오릴 매달았는지
그날 우리 집 앞을 어떤 자동차가
몇 대나 지나갔는지
그날 신문에 무슨 기사가 실렸었는지
그날 또 어머니가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셨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어느 봄
서봉석
봄빛 참 좋고 포근하다
이런 날은 진신으로 오시는 부처
번뇌하시라고
절집 추녀 끝 풍경도, 조용
조용 소리 다문다
구름 혼자 기웃하며 지나가다가
툭 하고
빗줄기 하나 던져 본다
아래쪽에서
계도 받지 못한 사미승이
다기 공양 위해
정화수 모시러 나서다가
문득 하늘을 보며
툴툴, 혼잣말한다
'구름도 소피 보시나'
그 말을 들었는지
절 마당 여기저기
어처구니없어하던 그늘들이
쿡 하고 웃음꽃으로 피어난다
어느새 봄비 긋고
만상이 다 깨어나셨는지
울긋불긋 풍경이 소리 낸다
훅하니 매화가
하늘 냄새처럼 다녀갔다.
-세상은 번뇌를 벗어야 해탈하고
부처는 번뇌를 해야 제도하느니-
늦봄에 온 전화
서안나
언니 잘 살고 있어요?
잊힐 만하면 걸려 오는 그녀 H는
국문과 출신의 고향 후배다
한때 같이 시를 쓰고
밤늦도록 열정적으로 시를 이야기하던
인도풍의 얼굴을 한 여자애였다
부모 반대 무릅쓰고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하고
도망치듯 사라졌던 그녀
남편 사업이 여러 번 실패하고
지금은 경기도 어디쯤 지하 단칸방에서
딸 둘과 남편과 개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일주일에 오일을 야채 트럭을 몰고
남편과 함께 아파트 상설시장을 돈다는 그녀
나도 시를 쓰고 싶은데요 그게 잘 안 돼요
언니는 요즘도 시 많이 써요?
야채를 팔며 흥정을 하다
문득 시들어 떼어낸 푸성귀 잎들이
자신의 얼굴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그녀
가냘프던 그녀의 목소리엔 삼십 줄 후반의
노련함이 배어 있다
애는 잘 크고 있느냐는 내 안부에
그녀의 목소리가 환해진다
그럼요, 무처럼 쑥쑥 자라요
토마토처럼 입술도 붉고요
아이들은 무섭게 클 수 있는 힘을
어디서 배우는 걸까요
아이들이 요즘은 구구단을 외는데
엄마가 집에 없으니까 자꾸 셈이 틀리나봐요
수학 공식도 엄마의 손길이 닿아야
아이들에게 뿌리를 내리는 건가 봐요
구구단처럼 집이 빨리 두 배로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언니 시를 생각하면 난 너무 멀리 걸어와 버린 것 같아요
야채를 다듬다가
야채를 싼 신문 귀퉁이에서
시집 소개라도 읽게 되면
왜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날까요
언니 내가 너무 많이 걸어와 버렸나 봐요
언니 내일은 가락동 시장에 싱싱한 채소들을 고르러 가야 해요
또 전화할게요
그녀는
매일 트럭을 타고
온몸으로 푸른 야채들과 함께
시를 쓰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문장 안에서
시든 잎들을 떼어내고
아이들 푸른 몸뚱이를 씻기며
너무 길게 자란 생각의 뿌리들을 칼로 다듬고
아이들의 눈동자가 상하지 않게
싱싱한 소금도 듬뿍 뿌리면서
봄을 만지다
서영택
빛이 번지는 터널의 끝이다
돌고 돌아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별들이 그물에 걸려 출렁일 때마다 나무는 휘어버린 통증을 삭히느라 몸을 떨었다
시간은 각질을 뚫고 가시를 뱉어낸다 환부가 드러난 통증이 벽에 박힌 못처럼 반짝인다
세상의 모든 지붕과 나뭇가지들 막다른 골목길이 흔들린다
뛰어오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돌아온 너를 맞이하는 일이다
내일의 창을 열고 풀잎처럼 엎드려 희망을 불러보는 것이다
걸어온 길들이 조용히 빛난다
다시 돌아갈 오늘의 노래처럼 끝나지 않은 음표다
봄
서정주
복사꽃 피고
뱀이 눈 뜨고
초록 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
피가 잘 돌아
아무 병도 없으면서
가시내야, 슬픈 일 좀
슬픈 일 좀 있어야겠다
봄이 오면
서지월
봄이 오면
나는 홀로 거닐 것이어요
민들레꽃 핀 들길을
이 세상의 모든 때 묻어 퀴퀴한 이들을 멀리해
혼자라도 서럽지 않은
봄 길 그 위에
나는 나의 민들레를 피울 거여요.
그리고 입맞춤할 거여요
가장 건강한 자세로
하늘 보며 흘러가는 구름 손짓하며
나의 소녀는 도시로 나가
스타를 꿈꾸는지 몰라도
사람의 한평생
부귀도 좋지만 공명도 좋지만
마늘같은 달이 뜨면
혼자 울고
새소리 건반처럼
나는 나의 밑도 끝도 없는 분별을 위해
육신 하나
민들레처럼 살 거여요
봄을 스치다
서효륜
인왕산 가는 길목
좌판에 도라지를 펼쳐놓은 아이의 눈빛이
똘망똘망하다
길섶에 핀
제비꽃, 개불알꽃, 쥐오줌풀, 애기똥풀이
아이의 눈망울과 겹친다
산은 보지 않고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의 발자국만 부산하다
아직도
도라지 앞에
고개만 떨구고 있는 아이
화창한 봄날
도라지 향에 찔려
산을 내려왔다
약속의 봄
성낙일
키를 조금 낮추고
아니, 쪼그리고 앉아서 보면
봄이 왔네 봄.
논둑 길 돌아 밭으로 가는 길가로
벌써 봄이 와 있네.
우리 아베 쉰 머리카락 마냥
듬성듬성하게 헝클어진 빛바랜
풀들 속에서
쑥이랑 냉이 씀바귀 잡풀들이
겨우내 땅속에서 쓴 물 빨아먹고
비죽비죽 돋아나네, 이 어린 것.
살아있었노라고 눈 틔우네
봄은 참으로 고마운 약속
씨앗을 품고 온몸으로 겨울을 견뎌낸 대지와
거짓말처럼 씨앗이 밀어 올려낸 약속
보면 볼수록 눈물겨운 약속
대지가 어지러운 열로 몸이 붓기 시작하는 이유를
내 이제 알 것도 같네.
봄은 기다리는 가슴에만 꽃을 피운다
성명순
산자락 한 모퉁이 산수유 가지 위에
하얗게 빛나던 잔설
저들이 녹아 스며들며 일깨울 뿌리
생명의 거룩한 율법을 듣는다
봄은 저 들녘 이름 없는 풀부터
수백 년 옹이를 감춘 고목에 이르기까지
공평한 햇살로 꿈을 꾸게 하지만
모두가 꿈을 꽃으로 피울 수는 없다
한겨울 견디기 위해
숨죽였던 가지와 뿌리
잠들었던 게 아니다
봄을 기다리는 꿈이었다
봄은 움츠린 가슴에는 오지 않는다
간절한 기다림만큼 활짝 편 가슴에만
모진 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낸 훈장처럼
꽃을 달아준다
봄이 오는 소리
성복순
봄비가 언대를 저거꺼정 적시주몬
여짜 저짜서 기지개 올라오는 소리 억수로 만타
남구들꺼정 퍼어런 싹을 올릴라꼬
저 밑에서버터 가지꺼지
쭈욱~쭉 물줄기 대기 심있개 퍼 올리삿내
땅안에서도 새싹들은 소곤그리먼서 이바구하고
나들이 준비 해싸아타
뻘건거 퍼런거 누루스룸한거 지마다
새촙개 몸에 바리고
얼라 걸음마 자죽자죽따라
저짜서도 여짜서도 깍꿍,깍꿍 하는기라
인자 저거끼리 어깨 내밀먼서 해바라기 하는기다
이리도 이뿐 꽃들에게
내일 이맘 때쭘 또 나부가 올란지
아- 참말로 조은 햇살인가
쪼개이 바라보는 봄의 소린강
꽃 피는 봄날
손병흥
한겨울 내내 찬바람 추윌 물리고서
봄철 따뜻한 산 들판 양지녘 따라
화사한 햇볕 받으며 곱게 자라나는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별꽃의 향연
산기슭 풀밭 여러해살이 봄꽃 꿀풀
산지 숲속 양지바른 풀밭 애기나리
건조한 양지에 피어나는 솜방망이
산지 반그늘쪽 서식하는 너도바람꽃
온 세상 노란색 물들여 놓은 유채꽃
수줍은 분홍빛 산지 낙엽관목 진달래
노랗게 담장가 물들이는 개나리꽃
크고 탐스런 고운 자태 돋보이는 목련꽃
향긋한 향기 나는 바람 따라 꽃피우는 매화
노란색 꽃 피고 지는 키 큰 나무 산수유
수수꽃다리 속 물푸레나무 라일락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해당화
장미과 낙엽소교목 살구나무 꽃
생화용 정원수 흰 꽃 공조팝나무
계절의 여왕 2만 5천여 종 장미꽃
맑은 봄날 분홍빛 화사한 복숭아꽃
분홍색 흰색 겹으로도 피는 벚꽃
신바람나는 봄꽃 여행 봄나들이
분홍빛 꽃길 봄 기운 가득한 여행길
꽃 피는 봄이 오면
손병흥
점차 따사로워지는 햇빛 화창한 날씨가
화사한 봄 햇살 따라서 슬며시 손짓하는
아지랑이의 숨결로 다가선 여린 봄 향기
어느새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온
설렘이 예쁜 꽃들로 성큼 피어나 버린
환한 웃음 터뜨리는 고운 꽃나무처럼
자꾸만 맴돌다 떠오르는 고운 님 얼굴
얼어붙었던 마음 눈 녹듯 사라져 버린 뒤
차가웠던 겨울바람마저도 물러가 버린 채
온몸으로 새봄 홍역을 치르는 완연한 봄
꽃단장하고서 봄 맞으러 가고 싶은 계절
봄꽃 놀이
손병흥
하얀 매화 벚꽃 노란 산수유 개나리꽃 핑크빛 철쭉들
불어오는 봄바람 따라 은은하게 꽃향기 어리도록 퍼져
앞다퉈 연녹색 잎사귀 잘도 어우러져 화사함을 더하는
나뭇가지마다 풍성하게 꽃무리로 매달려 피어나는 계절
울긋불긋 꽃 대궐 더욱 투명하게 반짝이는 햇살 풍경처럼
온 세상 흐드러지게 끊임없이 피어나는 낭만적인 빛깔 따라
겨우내 잔뜩 움츠렸던 몸 굽은 등 종종걸음 모두 다 물리고서
그토록 봄이 오는 걸 시샘하던 꽃샘추위 끝에 맞은 상춘 봄맞이
그저 아무런 연고 없이도 익숙해져 버린 여정 시작되는 세상 풍경
봄나물
손병흥
봄비가 내린 뒤 산과 들 양지바른 곳에서
몸속의 기운과 활력 북돋워 주는 새싹들이
응축한 생명력 키워나가는 봄나물의 계절
달래 냉이 쑥 씀바귀 돌나물 두릅 봄동 등
향긋 쌉쌀한 각종 산나물들이 향내 풍기며
입맛 돋게 하는 다양한 효능의 봄나물 요리
비타민이 풍부한 달래 위와 장에 좋은 냉이
해열 해독과 신경통 지혈에 도움을 주는 쑥
소화 기능을 돕는 씀바귀 피로 회복 피부 건강
특히 갱년기 증상까지 완화해준다는 돌나물
머리를 맑게 하는 두릅 아미노산 풍부한 봄동
우리 몸에 좋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건강식품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는 효능을 갖춘 제철 음식
몸의 피로 풀어줄 춘곤증에도 효과 있다는 나물
봄날
손병흥
1
연푸른 녹색 카페트 깔아놓은 산야
벌 나비 불러 모아 연분홍 꽃장식 하고서
온 가득 풍겨나는 봄꽃 향기 맡으며
따뜻한 봄 햇살 속 나들이 떠나고픈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하는 꿈들이
설레이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계절
소리 없는 향기 팔랑개비 날리는
싱그러운 맑은 햇볕 설레이는 마음
활짝 핀 목련꽃 개나리 진달래
수줍은 미소 노랫소리 흐르는 봄
기지개 켠 채 맞이하는 기쁨 설레임
오래 머무르지 않을 허망함 서글픔
그러다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버릴
붙잡으려 해도 머무르지 않을 아쉬움
문득 되살아나는 쓸쓸함 그리움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인생의 덧없음
결코 길지 않을 화사함에 둘러싸여
토라진 애인처럼 돌아서던 서글픔조차
멋진 풍경 되고 분홍빛 색깔로 변해버린
되살아나는 희미한 기운 아련한 옛 추억
2
꽃도 피기 전 그리움 하날 남기고 가버린
아직 몹시 여리고도 아린 기억 떠올리며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내 마음속 언저리
마치 묵은 일기장 펼쳐보는 듯한 추억들
다시금 되살아나는 너의 감미로운 목소리
소리 없는 산들바람 되어 스쳐 가는 계절
잃어버린 편린 좋았던 순간조차 희미하게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선율로 다가설 즈음
더욱 화사한 햇살만큼 움츠려드는 이 가슴
밀려오는 그때 그 시절 서글픈 사랑의 단상
저 푸르른 하늘처럼 멀어져 버린 그대 모습
그토록 짓이겨지고 볼품없던 그 무렵 회상
왠지 모르는 그냥 아쉬움 가득한 미련들이
문득 가끔씩 피어나는 그 사람 자취 향기
봄노래
손병흥
새록새록 움트는 여린 잎새처럼
봄 향기 물씬 풍겨나는 계절
기지개 켜고서 소리 없이 다가선
온 가득 싱그러운 봄바람 따라
정답게 지저귀던 새들 노랫소리
아름답게 피어나던 우리네 사랑
만물이 생동하는 새싹의 향연
꽃샘바람 이겨낸 생명의 부활
가녀린 풋사랑 같은 그런 봄날
봄비 촉촉이 내려 옷깃 가슴 적시듯
꽃이름 불러보면 떠오르는 얼굴
햇살 한 줌 벌 나비 불러모아
너울너울 춤을 추고픈 봄의 왈츠
연두빛깔 온기 가득 담긴 향기로운 봄
봄 마중
손병흥
1
따사로운 햇살 포근한 날씨 속
이따금씩 알싸한 봄바람 불어와
솜털 앙증맞은 목련 젖몸살 꽃눈
채 피지 않은 매운 바람꽃 꽃망울
쌀알만 한 산수유 꽃 노란 물 올라
어느새 새싹 잎 틔워내는 설렘의 봄
소리 없이 나직하게 내리는 봄비조차
싱그러운 모습 반겨 봄 마중 나섰던 길
홀로 넋 놓고 꽃 피는 모습 그냥 지켜보는
머지않아 다가올 향기 가득할 봄의 향연처럼
온통 푸르른 연둣빛 세상 가장 아름다운 계절
연분홍빛 사연 푸른 하늘 가득히 다발로 요동쳐
가슴 깊숙이 봄기운 만끽해보는 보고파 그리운 날
2
일명 얼음새꽃이나 설연화로도 불리기도 하는
눈 속에서도 꽃망울을 터트리는 화사한 복수초
가장 먼저 봄이 오는 소식 전해주던 다년생식물
이른 봄 시샘하는 꽃샘추위 속에서도 피어난
노란색 산수유 꽃의 향연에 봄소식 전해지는
화사한 그 모습 매료되어본 봄맞이 색채여행
언 땅 메마른 대지 위를 떨치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봄놀이 재촉하는 포근한 날씨 속에 열리는 꽃 잔치
마음 설레게 하는 산수유꽃 매화 철쭉 동백꽃 축제
매서운 한파 찬바람 눈비 내리던 한겨울을 이겨내고
때맞춰 새 생명을 잉태하고 싹 틔우는 자연의 섭리가
여린 가지 끝 흔들리던 마음 토닥여주던 봄의 전령사
산천초목 봄 햇살 꽃길 따라 떠나는 새봄 맞는 여행길
3
화창한 날씨가 점차 따사로운 햇빛에
화사한 봄 햇살 따라 슬며시 손짓하는
아지랑이의 숨결로 다가서는 봄의 향기
어느새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려 온
어여쁜 꽃들로 설레 임이 성큼 피어나
환한 웃음을 터뜨리는 고운 꽃나무처럼
자꾸만 맴돌다가 떠오르는 고운님 얼굴
얼어붙어 버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 뒤
차가웠던 겨울바람마저도 냉큼 물러가 버린 채
조금씩 봄을 타는 목마름 치르는 완연해진 봄
한껏 꽃단장을 하고서 맞으러 가고 싶은 계절
봄소식
손병흥
1
수은주가 영하를 웃돌고 바람마저도 거센
강추위로 움츠려드는 꽃샘추위 속에 찾아온
가장 먼저 피어나는 봄소식의 전령사 복수초
제주에선 겨울 눈옷 입은 채 수선화가 피어나고
광양 매화마을 양산 통도사엔 홍매화의 웃음꽃이
구례 산동에서는 샛노란 산수유나무꽃이 만개해
화사한 미소 드리우는 개나리 분홍빛 진달래 자태
점차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의 기온이 상승하면서부터
버들강아지 봄꽃들이 앞다투어 피게 되는 봄의 계절
앵두꽃 모란꽃 목련 벚꽃이 피어나는 빨라진 개화 시기
2
흐릿해져 버린 미세먼지 황사로 하얗던 눈썹
숨겨진 흔적처럼 잦은 바람 속 얼굴 내밀다
한동안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버렸던 하늘 길
눈 먼 여정 훈풍 되어 떠돌던 한줄기 실바람
그렇게 한들거려 뒤척이는 체증으로 시달렸던
걷잡을 수 없는 묵언의 세계 햇살 담긴 그리움
봄비 그친 뒤 연신 앙금으로만 남아있던 거울 속
시퍼렇게 멍들었던 자국들이 아른거리는 그 자리에
또다시 은밀하게 조금씩 돋아나는 꿈결 같은 얼굴빛
행복에 겨워 미소가 피어나는 입가로 번지는 햇살이
슬며시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 안달하는 봄 향기 취해
나비처럼 날갯짓하며 온몸이 날아오르는 풋풋한 봄바람
봄의 향기
손병흥
겨울 오면 봄도 멀지 않다는 말처럼
견디기 힘들었던 강추위마저 물러가
만물 소생하여 온 천지 꽃피고 새우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조차 정감어린
새봄을 맞이하는 설레임 애틋한 마음
가슴 한 구석 채워지지 않는 갈증들이
허공 날려보낸 젊은날 꿈처럼 되살아나
다시금 생경스런 꽃바람 돼버린 어느날
살며시 설레는 맘 추스려 나섰던 나들이
한결 시원해 가볍게 느껴지는 산뜻한 바람
그윽한 새봄의 향기 마음속 깊이 느끼며
화사한 활기 기운 가득스런 따스한 계절
불어오는 훈풍에 마음 대문 활짝 열고서
여과 없이 온몸으로 들이켰던 봄의 향기
어느 봄날
손상열
잠에서 깨어난 아침
밤새 머리맡에 빠진 머리카락처럼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철없이 새긴 첫사랑의 희미한 문신과
몸 속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
머리를 흔드는 이명(耳鳴).
몇 번을 뒤척여야 잠에서 깨어나는 불면증을
깔깔거리며 다가와 조롱하는 햇살
집 앞 전파사의 낡아빠진 전축에서
늘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노래처럼
잔인하리만치 정확하게 제 자리에 돌아와 있는
시계바늘,
겨울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골목을 사라져 가는
낯익은 풍경이 자꾸만 신열을 앓게 한다
봄이 오는 언덕
손석철
소리 없이 언덕으로 오른다
저기 한 동아리쯤의 햇빛 붓는 언덕 모퉁이
한동안 보지 못하던 얼굴들 보이네
노오란 기저귀 파란 기저귀 저 아이들
봄의 방문이구나
도화 아래서 봄
손성태
이사 온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베어 버린다는 게 그만,
대추나무를 베고야 말았다
집주인은 붉으락푸르락
10만 원으로 애틋하게 달래면서
속으론 웃었다
대추나무 잘못이다
마당 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가 석류든 보리수든
잿빛 겨울은 복숭아나무로 둔갑시켰고 나는,
거슬리는 기억을 시원하게 캐 팽개치듯
둥치를 자르고 뿌리째 뽑아버렸다
덕분에 나무는 매화, 산수유, 개나리, 살구꽃 뒤로
벚꽃과 더불어 도도하게 피었다
어떻게 죽임을 피하고 살아남았을까
귀신도 눈을 피한다는 복숭아
나무가 틔우는 도화
아래에서 쳐다보는 연분홍
꽃잎 속의 선홍빛 핏방울
절정의 향긋한 내음에 봄이 비틀거린다
삶은 늘 열매에 취해 갈증이 일지만
이렇게 대추를 자르고 도화를 보게 된 것은
내 생의 마당 가에서 썩 잘했던 일이고
부푼 종기에 고약을 붙여 뿌리째
뽑아내는 일이었다
봄날의 연가
손숙자
아카시아 만개하면
아름답고 짙은 향기는
코끝에 살랑이며 유혹하겠지
밥사발 엎어놓은 듯
하얀 찔레꽃 벌들을 모으고
내 마음 따라 바쁘다
보도블록 옆에 들꽃들
무슨 얘기 나누고 있을까
그들의 숨은 얘기 듣고 싶다
돌아보면 어느 한 곳도
소중하지 않은 곳 없고
함께 한다는 게 참 행복하다
봄이 오면
손숙자
봄바람 살랑이면
박속 같은 목련
샛노란 개나리 이보다
고운 그림 있을까
공원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봄 느낄 즈음
봄 내음에 행복해할
그 사람도 느끼겠지
봄 햇살 함초롬 담고
시리도록 눈부신
아지랑이 속에 님의 모습
남실남실 내게 오려나
봄이 오는 소리
손우석
근심이 너무 많았음을
대를 이어 천년을 쌓아온 걱정이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은
움츠린 진달래꽃 봉오리 실핏줄에서
누군가가 우는 듯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입니다
꽃이 질 것을 염려하면서 제 피를 말리듯
돈이나 목매어 매달려온 탐욕
무엇보다 없이 돌아가신
어머니 영정 앞에서
오늘도 세습된 버릇처럼 생각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으며 사랑과 건강
배부른 게트림의 권태도 있어야 했고
볶닥이며 잠들지 못하면서 불면을 걱정하고
바닥에 갈앉아서도
더 빠지지 않기 위해 두 손 모아
시름의 바다 위 부초로 떠돌다
되밀려 오곤 하던 후줄근한 모래톱
늘 맑지 않은 핏대가 몰려
지끈대는 머릿속 매양 같기만 한 날
아직 찬바람 스미는 때 묻은 속옷을 뚫고
겨우내 얼었던 마음 균열이
탁탁- 터지는 소리가 들려
돌아다 본 미로 한 켠에
근심의 울타리 넘어
아!
개나리 노랗게 피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봄의 정경
손정모
4월의 새벽을
새 한 마리
날고 있다
안개 자욱한
산허리를 비껴
구름 흐르듯 난다
떡갈나무에서는 아직
움도 트지 않았는데
흐르는 물소리 드높다
새와 안개와 나무가
깃털처럼 나부끼는
봄의 산길은 활기차다
봄은 자꾸 와도 새봄
손택수
사랑은 지루하지 않죠. 지루한 건 사랑이 아니예요
아무리 지루한 풍경이라도 사랑 속에 있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사랑은 그러니까
습관이 되어도 좋아요. 중독이 되어도 괜찮죠
파도는 지치지 않잖아요
봄은 자꾸 와도 자꾸 반복되어도
여전히 새봄이잖아요
꽃은 자꾸 펴도, 자꾸 졌다 피길 버릇해도
물릴 일이 없잖아요
절망이 습관이면 곤란하죠. 반성도 버릇이면 곤란하죠
사람이 절망과 반성의 기계가 된다면
그처럼 속상한 일이 어딨겠어요
사랑 속엔 결코 버릇이 될 수 없는 절망과 반성이 있거든요
그러니 사랑에만 중독이 되기로 해요 우리
자꾸 와도 새봄인 봄처럼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기로 해요
봄날의 주말농장 풍경
송미숙
따스한 봄비로 차가움을 어루만져주고
농장 땅바닥에 핀 키 작은 이름 모를 꽃에는
꿀벌들이 예쁘게 노느라 바쁘구나
가끔씩 불어오는
봄 향기 담은 바람에 냉기는 있으나
추운 겨울을 이겨낸 키 작은 봄나물과 새싹은
새 생명의 기다림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추어
호미 끝은 예쁘게 춤을 추고
꿀벌들은 꽃향기에 취한 듯
한 수 시를 을픈 듯 소리를 내고
창틀에 턱을 걸치고
옆 산을 바라본 봄 풍경은
새떼들이 소풍 가듯
대나무에 줄지어 사뿐히 내려앉는다
사랑하는 님과 같이 나란히 누워
한눈에 들어오는 봄
수채화를 보며 여유와
한 해 시작의 봄 향기에 스르르 꿈나라로
집에 오는 길에 마주친
한 쌍의 고운 천사 같은 눈을 가진 고라니는
반가운 듯 밝게 웃어주듯 껑충거린다
봄은 소생하는 만물들에게
아름다운 희망이구나
봄 언덕
송미자
철은 철따라
터엉 빈 가슴에도
흙 내음 몰아다 쌓아주면
그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듯한
휘 바람 소리에 설레는 마음
이 봄엔
이 몸 통 채로 부서져
흙이 되리다.
꿈을 밴 마음
한 가지만 꺾어
정히 옮겨주소서
봄을 물들이며
송연우
거울 속을 건너다보며 빗질을 한다
세월의 밀물이 쓸고 간 자리
흰 머리칼 몇 올 어깨 위에 드러눕는다
참빗질 사잇길로
어머니 곱고 따순 손길로 다듬어 온
윤기 흐르던 머리는
어느새 밑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아이들 키워 한 살림 두 살림 내어주고
돌아볼 겨를없이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하얀 가르마길
넓어 가는 줄 몰랐다
된바람 잘 날 없는 억새밭
저 반짝거리는 슬픔 위에
먹물 들이면 봄 같은 시간 돌아올까
찬란히 핀 서리꽃
뉘 고운 손 있어 올올히 빗어 주시려나
기다림 속에 어느 봄날
송정숙
강을 열며
다가오는 아침 해
물결에 금빛 날개 달아주면
주인 닮아 허름한 나룻배도
그때만큼은 행복하다
휘돌던 바람
산수유 사이 숨어
고난을 통해 성숙해진 소박함으로
봄날의 눈부심을 맞이할 때
철새의 울음은
잠시 잊었던 아픔이어라
그래 산다는 것은
오랜 기다림 속에 익숙해지는 것
밤을 지나 눈부신 아침처럼
너와나 우리가 되었던 것처럼
밝고 깨끗한
기다림 속에 어느 봄날이여
봄 소리
송정숙
길잡이가 아름답구나
달리는 자동차 불빛도
정겹다
창을 여니
바람이 예전 같지 않네
친구야 내가 왔다
봄 엽서
송정숙
1
잔설 사이 진달래 피니
지평선 느릿느릿 걸어오고
확인 할 수 없는 희망
팻말로 우두커니 서 있다
잠들지 못한 사람이나
잠든 사람 모두
빈 술병 속에서 꿈꾸리니
작은 우체통 엽서 한 장
축하 합니다 합격을
2
봄노래 부르기 싫어
바람은 차고
가난한 이의 일기장에
옷깃 여미며 고개 숙인 봄
꽃잎이 지레 질려 시들었다
은사시나무 숲
붉은 노을 지는데
시간, 숨고르기를 하다
촉수 낮은 모습으로 찬바람에 떤다
봄 창가에서
송정숙
날지 못하고 내 안에 있는 봄
작은 숨소리 파닥이며
오늘도 살아 있음을 알리고
봄 소리 커지고 꽃향기 짙어질수록
숨어드는 소리
우유를 마시며 햇살 한 줌 넣어준다
고등어 사라고 외쳐대는 여인
가을 열매보다 더 붉은 새소리
분주히 몸단장하는 호수공원 학
멀리서 명자 꽃망울 소리 들린다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봄
작년 봄을 이제 보내주자
이 봄을 위하여서
봄 처녀
송정숙
봄 바람났다
꽃길로 나서 볼까
꽃반지 끼고
목련 아래서
봄 처녀 만난다네
꽃 치마 입자
흐린 날이다
그래도 오시는 님
꽃마차 달려
아찔한 오늘
꽃밭은 분주하다
울타리 넘어
귀, 간지럽다
봄 소리가 커진다
나도 봄 탄다
봄
송진권
팔자를 고쳐 달아난 여자를 좇아
천릿길을 걸어왔다
실뭉치 풀어 굴리며
요강뚜껑 굴리며
감발하고 괴나리봇짐 메고
봉두난발 폐포파립 흉중에 칼을 품고
핏발선 눈으로
제비꽃에 눈 흘기고
꽃다지를 짓뭉개고
물어물어 찾아온 여자가 산다는 집
곱게 비질된 마당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이 두 켤레
빨랫줄 가득 펄럭이며 날리는 기저귀
갓난것이 우는 소리
여자의 웃음소리에 섞인
굵은 남자의 목소리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
고샅 살구나무에 살구꽃만 피워놓고
뒤안 자두나무에 흰 자두꽃만 피워놓고
흉중의 칼은 물에 가라앉히고
실뭉치 헝클어뜨리고
요강 뚜껑 던져버리고
나는 돌아왔다
봄
송찬호
이 적막한 계절의 국경을 넘어가자고 산비둘기 날아와 구욱 국 울어대는 봄날
산등성이 헛개나무들도 금연 구역을 슬금슬금 내려와 담배 한 대씩 태우고 돌아가는 무료한 한낮
그대가 오면 함께 찻물로 마시려고 받아온 골짜기 약숫물도 한번 크게 뜨거워졌다가 맹숭하니 식어가는 오후
멀리 동구가 내다보이는 마당가, 내가 앉아있는 이 의자도 작년 이맘때보다 허리가 나빠져, 나도 이제는 들어가 쉬어야 하는 더 늦든 오후
어디서 또 봄이 전복됐는가 보다
노곤하니 각시멧노랑나비 한 마리,
다 낡은 꽃 기중기 끌고
탈, 탈, 탈, 탈, 언덕을 넘어간다
봄을 미리 보다
송태옥
태미산에 갔다가 꺾어온
산수유나무 가지
추운 한겨울이라 방 안 화병에 꽂는다
가지는 나목 그대로
아직 물도 오르지 않은 죽어 있는 마른 막대기다
회초리 하나 꽂아놓은 듯
몇날 며칠이 가도 산수유 가지는 그 모습 그대로다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휘어진 가지로 노래했을 생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묵묵히 마른 가지 하나 붙들고 매달린 생이 된다
마른 가지에 매일 물을 주고
말을 건네가며 어루만져 준다
산수유와의 사랑이 깊어가던 어느 날
산수유가 꽃망울을 고물고물 달기 시작했다
산수유 꽃눈이 꽃망울을 터뜨려
겨자빛 산수유꽃을 함빡 피워냈다
나는 산수유꽃 봄을 맞았다
봄이 오면
송향수
잎보다 먼저 꽃이 피듯이
아침보다 먼저 하루를 열어주는
봄이 오면 그대와 사랑을 할래요
조금은 빈 마음에 햇살 같은
고운 빛을 내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내 목을 감을 때 봄은
그대를 내 품에 내려놓고 가네요
풀꽃 만개한 그 날에
나는 꽃이 되어 그대 향기에 젖을 때
봄볕에 숨겨놓은 미소가 피어나고
호수에 내려앉은 꽃구름이 두둥실
하늘과 입맞춤을 하네요
차가운 벼랑 끝에 서성이던 바람도
그대 품 찾을 고운 봄이 오면
당신과 사랑을 하고 싶어요
어느새 봄
송향수
또다시 봄이 왔다
산수유가 상냥하게 웃는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차 한잔 마시며 봄날을 느껴본다
훈훈한 바람에 봄맞이해보니
곳곳엔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주변이 따듯하여
마음조차 포근해진다
봄바람이 한 번씩 살짝 불어와
머리를 헝클어트리지만
그것마저 사랑스러운 봄이다
절절한 삶을 다시 시작하고
무엇이든 소생하는 위대한 계절
초록으로 무성해질 녹음을
준비하는 봄처럼 나의 삶도
싱그럽던 그 아침의 신록처럼
다시 시작하련다
그 어떤 욕심도 없는
기적 같은 새싹처럼
둥지를 박차고 처음 날아오르는
새처럼 훨훨 날고 싶다
봄이 오네
신광진
마음은 그대로인데 세월만 흘러
끝없이 속삭였던 꿈꾸는 사랑
떠나간 빈자리에 홀로 선 외로움
뛰어가는 마음을 붙들어 잡아도
세월이 나이를 먹고 속인 것 같아
살아 숨 쉬는 젊음을 어쩌나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용기
밤새도록 속삭이고 싶은 애절함
작은 상처도 더 아픈 여린 마음
봄이 오는 소리에 두근두근
마음이 먼저 맞이한 진달래 향기
멀리서 손짓하는데 어찌 잊으랴
봄
신달자
선물을 싼 줄은
절대로 가위로
싹둑 자르지 마라
고를 찾아
서서히 손끝을 떨며
풀어내야지
온몸이 끌려가는
집중력으로
그 가슴을 열어가면
따뜻한 줄 하나
언 땅 밑에서
조용조용 끌려 나오려니
우주의 하체가 손끝에
움찔 닿으리
곧 선물의 정체가
보이리라
봄의 금기사항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면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라
봄의 소식
신동엽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 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났다커니
봄은 위독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 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 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봄 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봄
신미균
날씨가 풀리면서
들판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식물도 저마다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위취는 바위취대로 소곤거리고
쥐오줌풀은 쥐오줌풀대로 중얼거리고
광대수염은 광대수염대로 버벅거리고
목소리의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다릅니다만
땅속에선 듣는 이가 없어
못한 이야기들을
바깥에 나온 김에
원 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들어보면 별로 중요할 것도 없는
사소한 이야기들이지만
입 냄새 풍겨가며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봄소식
신석종
우수 지나고
들에, 쑥닢 쏙쏙 돋는
이 무렵만 다가오면
시집갔다 미친 여자처럼
해마다 나는, 사방팔방을
무작정 쏘다니고 싶었다
생목처럼 목줄기 훑는
쌉싸름한 풋봄 비린내가
이 무렵에, 주소 없이
내게 오는 우편물이다
마냥 헛헛하고
수시로 몽롱해진다
봄이여 봄날이여
신성호
그렇게
또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여
이제사 옆집 금순이처럼
기웃거리다가 얼굴을 보이니
진즉 꽃도 피고
따뜻한 햇살이 넘나들고
두툼한 외투도
벗어 버리고
너를 만나 반기려 했더니
개눈 감은 듯 있다가
놀랜 듯 너를 보니 정말로 반갑구나
그저 반갑고 기뻐할 뿐이라
이제는 꽃도 활짝 피워 향기도 날리며
네가 지닌 멋진 추임새까지도
죄다 보여준다면 나는 너로 인해
행복한 날들로 삼아
너를 노래하며 춤추어도 좋으리라 싶다
봄이 오는 길
신성호
봄이 온다네
문풍지 사이로 마중 가세
어제는 분명 나무 끝에
안쓰럽게 매달려 졸고 있더니
어느새 눈 비비고
마당을 지나 토방 앞에 왔네
지나가던 햇살이
홍매화 향기를 홀려서
따뜻한 바람을 보채더니
기어이 처마 끝에 매달았네
아! 춘삼월 그대여
진정 계절 중의 꽃이라
봄이 오는 날
신성호
남녘에 아지랑이 손짓하고
냇가에 수양버들 움트는 날
새 봄이 구름타고
지난해의 기억을 찾아
입춘대길 건양다경 기원하며
한해의 축복으로 찾아오는 날
삼라만상 긴 잠에서 일어나
생명의 용틀림이 시작되는 날이어라
봄이 왔당게
신성호
옛날 울엄니 살아생전에
봄이 올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봄에는 부지갱이 심어도
싹이 나서 꽃도 피고 했단다
논두렁 밭두렁에 가보면
봄나물이 돋아나서 반찬 걱정 없었단다
엉기성기 매어놓은 울타리에
노란 개나리꽃이 필 때면
봄이 벌써 왔당게
하시면서 웃으시던 모습이
이제는 다시 못 뵐 울엄니에
그리움의 그림자가 되어 버렸네
봄맞이
신영희
휘파람새 봄을 노래하고
낮달과 구름 한 점 구포대교 거닐 적에
갈대 숲속 개구리 숙면에서 깨어난다
다리밑 둑길 새로 고개내민 냉이, 쑥
등짝에 쏟는 햇살 나물 캐는 아낙들
거리마다 환하게 새 옷 갈아 입고
벚꽃나무, 가로수들 하얀 물결 이룰 때
먼 산에서 불어오는 떠돌이 봄바람과 함께
오색 수놓는 양지바른 들녘엔
어느새 봄 단장에 마음은 바쁘기만 하구나
봄
신용주
봄을 기다리다
눈을 감았습니다
연둣빛 세상이 그려집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온 세상에
생동감, 화창함
그리고 탄생을 알려 주는 봄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대가 봄
오래전에 다가와
웃는 얼굴로 꽃을 피우고
내 안에 머무는 봄
나의 봄
신정숙
은빛 노래하는 어린 쑥
바구니에 듬뿍 뜯어 담고
참쑥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거라고 알려주시던
정겨운 어머니의 사랑도 그려 넣고
돌미나리 넓게 한 자리 차지하고
수다 한 자락 풀어내는 자리
어린 시절 친구들과 내 것 네 것
영역 나눔 하던 이야기도 뜯어
바구니에 담고
꿩 한 마리 덤불 속에서
알을 품다가
푸드덕 날개 치는 바람에
뒤로 벌러덩
바구니에
새봄을 담고
추억을 담는 내 곁에서
내 짝꿍은 고추, 상추, 여주
봄을 심는다
봄의 유혹
신진식
내 어릴 적에는 겨울이 좋았다
눈밭을 뒹굴고
소나무 다듬어 철사줄 얽어맨
스케이트를 타고 깔깔대며 놀았다
이젠 싫다
마음도 시린데 너까지 추우니
30대 초반에는 여름이 좋았다
이글대는 태양이 좋았고
달 그늘 아래
밤새는 줄 모르고 한없이 나누며
부딪치는 우정이 좋았다
이젠 싫다
끈적거려 싫고
쭉쭉 빠진 여인네의
관능미를 보노라면
시샘이 나서 싫다
50대 초반에는 가을이 좋았다
현란한 단풍이 좋았고
몽실몽실한 열매 들이 좋았다
이젠 싫다
떨어지는 낙엽을 붙잡을 수 없으니
늦가을 앙상한 가지들은 더욱 싫다
희끗희끗한 반백이 되니 봄이 좋다
비집고 용트림하는 새싹이 좋고
딱딱한 껍질을 박차고 나오는
숨 막히게 다가오는
잎새의 향기 때문에
뛰어가 나누고 싶은
봄의 유혹
그래서 봄이 좋다
봄이 오는 소리
심의표
살랑거리는 봄바람 타고
휘날리던 연분홍 치맛자락
지금은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가.
달래랑, 냉이랑
쑥부쟁이 파릇파릇 숨을 고르고
나물 캐는
봄 처녀는 아직도 보이지 않고
앞산 아지랑이
소근거리는 소리만 들리네
봄
심홍섭
봄은 왔는데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자들
들을지어다
들판의 새순의 합창의 소리를
불임자들은 일어나라
대자연과 함께
생명을 낳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