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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애송 시(詩)

Bollnow 2024. 5. 27. 14:02

4월의 노래 - 박목월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는 길 김소월

가시리 작자 미상

가을날 - Rainer Maria Rilke

가을 노래 - 이해인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의 노래 - Charles Baudelaire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가지 않은 길 - Robert Lee Frost

강가에서 - 고정희

강물 - 천상병

개여울 - 김소월

겨울 강가에서 - 우미자

고향 정지용

공무도하가 - 백수 광부의 아내

광야 - 이육사

구두 닦는 소년 정호승

국수 - 백석

국화 옆에서 서정주

귀천 천상병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대 창가에 - 경요

그리움 - 이용악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그리움 - 유치환

금잔디 - 김소월

기다리는 마음 김민부

까마귀 검다 하고 - 이직

- 김춘수

꽃과 언어 문덕수

꽃 피는 달밤에 - 윤곤강

나그네 - /박목월

나는 왕이로소이다 - 홍사용

나무들 - 김남조

나뭇잎 나뭇잎 김은자

나비야 청산 가자 작자 미상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나의 사랑은 김억

낙엽 - Rémy de Gourmont

낙엽 시초 - 황금찬

낙화 이형기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내 마음은 김동명

내 사랑 너를 위해 - Jacques Prevert

내 젊음의 초상 Herman Hesse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달자

노래의 날개 위에 Heinrich Heine

논개 변영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John Donne

눈물 - 김현승

님의 침묵 한용운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이성희

단심가 - 정몽주

, 포도, 잎사귀 - 장만영

달밤 이호우

달밤에 친구는 오지 않고 백거이

달아 - 이상화

도봉 - 박두진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동동 작자 미상

동방의 등불 Devendranath Tagore

동짓날 기나긴 밤을 황진이

들길에 서서 - 신석정

떠나가는 배 - 박용철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마음 - 김광섭

멀리 있기 - 유안진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목계장터 - 신경림

목마와 숙녀 - 박인환

못 잊어 - 김소월

바람은 남풍 - 김동환

반지 - 이해인

밤의 이야기 - 조병화

밤 편지 김남조

밥그릇 - 정호승

별을 쳐다보며 - 노천명

별 헤는 밤 윤동주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적습니다 Khalil Gibran

복종 - 한용운

유안진

봄비 - 심훈

- 이형기

빗소리 주요한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살아남은 자의 슬픔 - Bertolt Brecht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Alexander Pushkin

서동요 - 서동

수평선 정권식

아들에게 - 문정희

아들의 죽음에 울다 허난설헌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자화상 - 윤동주

작은 연가 - 박정만

저녁에 - 김광섭

존재의 빛 - 김후란

진달래 - 김소월

청노루 - 박목월

청포도/ 이육사

초혼 김소월

- 김수영

하늘 - 박두진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이순신

박두진

햇살에게 - 정호승

행복 - 유치환

향수 - 정지용

휘파람을 불어다오 - 유안진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 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는 길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압 강(),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가시리(해석본)

작자 미상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나난[1]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난

위 증즐가 대평성대[2]

 

나더러는 어찌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렵니까 나난

위 증즐가 대평성대

 

붙잡아 두고싶지만

서운하면 아니 올세라 (두려워라)

위 증즐가 대평성대

 

서러운 임[3] 보내옵노니 나난

가시자마자 돌아오소서

위 증즐가 대평성대

 

[1] '나는'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여음구(餘音句)이다.

[2] 각각 감탄사, 악기의 조율음, 후렴구이다. '대평성대' 부분은 고려 백성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 노래가 조선시대에 궁중음악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곡과는 상관없는 유교적 내용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3] '서러운 임'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나를 떠남으로써 나를 서럽게 하는 임' 혹은 '어떠한 사정으로 원치 않게 나를 떠나게 되어 이별을 서러워하는 임'

 

 

 

가을날

Rainer Maria Rilke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가을 노래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의미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의 노래

Charles Baudelaire

 

1

머지않아 우린 차디찬 어둠 속에 잠기리니,

잘 가거라,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날의 찬란한 빛이여!

내겐 벌써 들리네, 음산한 충격과 함께

안마당 바닥 위로 떨어지며 울리는 소리가.

 

분노, 미움, 전율, 공포, 그리고 강요된 힘든 노력

이 모든 겨울이 내 존재 안에 들어오려 하네,

그러면 내 심장은 극지의 지옥 속에 뜬 태양처럼

벌겋게 얼어붙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겠지.

 

난 몸을 부르르 떨며 장작 하나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네,

교수대 세우는 소리 그보다 더 육중하게 들리진 않으리라.

내 정신 집요하고 육중한 파성추에

허물어져 가는 탑과 같아라.

 

이 단조로운 충격 소리에 흔들리며

어디선가 누가 관에 서둘러 못질하는 소리 듣는 듯.

누굴 위해서? - 어제만 해도 여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

저 신비스런 소리는 어떤 출발신호처럼 울리네.

 

 

2

난 사랑해요, 당신의 갸름한 눈에 감도는 초록빛을.

다정한 미녀여,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씁쓰레하네.

그대의 사랑방이나 규방이나 난로 그 무엇도 모두

내겐 바다 위에 빛나는 태양만 못하오.

 

그래도 날 사랑해주오, 정다운 님이여! 내 엄마 되어주오,

은혜를 모르고 짓궂은 사람이라 해도

애인이거나 누님이거나, 영광스런 가을의

아니면 지는 태양의 순간적인 감미로움이 되어주오.

 

덧없는 인생, 무덤이 기다리는구나, 허기져 입 벌린 무덤이!

! 제발 잠시나마 내 이마 그대 무릎 위에 묻고

작열하던 뜨거운 여름 그리워하면서,

만추의 따사로운 누런 햇빛 맛보게 해주오!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가지 않은 길

Robert Lee Frost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강가에서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둑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쪽 뚝 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여놓은 목란 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겨울 강가에서

우미자

 

이제는 마음 비우는 일

하나로 살아간다

강물은 흐를수록 깊어지고

돌은 깎일수록 고와진다

 

청천의 유월

고란사 뒷그늘의 푸르던 사랑

홀로 남은 나룻배 위에 앉아 있는데

높고 낮은 가락을 고르며

 

뜨거운 노래로

흘러가는 강물

거스르지 않고 순하게 흘러

바다에 닿는다

 

강 안을 돌아가

모든 이별이 손을 잡는

생명의 합장

 

겨울 강을 보며

한 포기 지란을 기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백수 광부의 아내

 

공무도하(公無渡河)

공경도하(公竟渡河)

타하이사(墮河而死)

당내공하(當奈公何)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구두 닦는 소년

정호승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구두통에 새벽 별 가득 따 담고

별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

구두를 닦으며 별을 닦는다.

하루 내 길바닥에 홀로 앉아서

사람들 발아래 짓밟혀 나뒹구는

지난밤 별똥별도 주워서 닦고

하늘 숨은 낮별도 꺼내 닦는다.

이 세상 별빛 한 손에 모아

어머니 아침마다 거울을 닦듯

구두 닦는 사람들 목숨 닦는다.

목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닦는다.

저녁별 가득 든 구두통 메고

겨울밤 골목길 걸어서 가면

사람들은 하나씩 별을 안고 돌아가고

발자국에 고이는 별 바람 소리 따라

가랑잎 같은 손만 굴러서 간다.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엎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 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로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枯淡(고담)하고 素朴(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매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대 창가에

경요

 

그대와 함께 있고 싶어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설레는 이내 가슴 잠재우기 위하여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대 곁의 진실과 진실을 벗하여

영혼으로 남고 싶어서

그대 창가에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그대를 사랑하기에

그대 곁에서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의 진실이 영원히 내 곁에서

그대 곁에서 함께 하기를...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 검은 지붕에

 

연 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이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 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그리움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도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기다리는 마음

김민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 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까마귀 검다 하고

이직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과 언어

문덕수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꽃 피는 달밤에 A에서

윤곤강

 

빛나는 해와 밝은 달이 있기로

하늘은 금빛도 되고 은빛도 돼옵니다

사랑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기로

우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으오이다

꽃 피는 봄은 가고 잎 피는 여름이 오기로

두견새 우는 달밤은 더욱 슬프오이다

이슬이 달빛을 쓰고 꽃잎에 잠들기로

나는 눈물의 진주 구슬로 이 밤을 새웁니다

만일 당신의 사랑을 내 손바닥에 담아

금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다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 갈 때에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모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빨가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 치며 으아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 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리었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좋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흗날 밤 먼지 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이나 긴가 짧은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러웁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 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면은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 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뿌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어라

-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 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 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연하고 앉았더이다

-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다 왕의 나라로소이다

 

 

나무들

김남조

 

보아라

나무들은 이별의 준비로

더욱 사랑하고 있어

한 나무 안에서

잎들과 가지들이 혼인하고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길 걸 보고

이들이 사랑하는 줄

나는 알았지

오늘은 비를 맞으며

한 주름 큰 눈물에

온 몸 차례로 씻기우네

아아~ 아름다워라

잎이 가지를 사랑하고

가지가 잎을 사랑하는거

둘이 함께 뿌리를 사랑하는거

밤이면 밤마다

금줄 뻗치는 별빛을

지하로 지하로 부어내림을 보고

이 사실을 알았지

보아라, 지순무구

나무들의 사랑을 보아라

머잖아 잎은 떨어지고

가지는 남게 될 일을

이들은 알고 있어

알고있는 깊이만큼

사랑하고 있어

 

 

 

나뭇잎 나뭇잎

김은자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은 푸른 갈채인 줄 알았다 부산의 대신동 맨 처음 열린 바닷속에 남청색 물고기들로 뿔뿔이 달아나며, 달아나며 귀띔하던 세상의 갈채 소리

나의 사랑을 만났을 때 그대 높은 바닷속으로 휘달렸다 희디흰 희열로 몸을 떨며 내리찍는 햇살에 알몸을 던지던 거대한 은색 지느러미의 고기떼 사랑이 다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 떨어지는 중에 가장 가벼운 존재여 어느 밤 사이 나의 귀 순해지고 뭍으로 돌아오는 단정한 그대 발소리 듣게 된다 젖어가는 나날의 파릇한 아픔 속에 사려 깊은 하늘이 고요히 물살 지며 가라앉는다.

 

 

 

나비야 청산 가자

작자 미상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의 사랑은

김억

 

나의 사랑은

황혼의 수면(水面)

해쑥 어리운

그림자 같지요

고적도 하게

나의 사랑은

어두운 밤날에

떨어져 도는

낙엽과 같지요

소리도 없이

 

 

 

낙엽

Rémy de Gourmont

 

시몬, 나뭇잎들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 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Autumn Leaves (Dead Leaves)

by Remy De Gourmont

 

Simone, let's go to the wood: where leaves have fallen.

They cover moss, rocks, and trails.

Simone, do you like the sound of dead leaves being stepped on?

Their colors are so soft, their tones so grave

They are on the dirt ground, so frail and wrecked.

Simone, do you like the sound of dead leaves being stepped on?

They look so dolorous at twilight

They cry so tenderly, when the wind shakes them.

Simone, do you like the sound of dead leaves being stepped on?

When crushed by feet, they cry like souls

Making sounds of wings and ladies' dresses.

Simone, do you like the sound of dead leaves being stepped on?

Come, we shalll one day be poor dead leaves.

Come: already night falls and the wind whisks us away.

Simone, do you like the sound of dead leaves being stepped on?

 

 

낙엽 시초

황금찬

 

꽃잎으로 쌓아 올린 절정에서

지금 함부로 부서져 가는 너

낙엽이여

 

창백한 창 앞으로

허물어진 보람의 행렬의 가는 소리

가없는 공허로 발자국을 메우며

최후의 기수들의 기폭이 간다.

 

이기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저 찢어진 깃발들

다시 언약을 말자

기울어지는 황혼에

내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고궁에 국화가 피는데

뜰 위에 서 있는 나

이별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문을 닫으라.

낙엽

다시는 내 가는 곳을 묻지 마라.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웅 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우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 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내 마음은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내 사랑 너를 위해

Jacques Prevert

 

나는 새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새를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꽃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꽃을 샀네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고철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사슬을 샀네

육중한 사슬을

내 사랑

너를 위해

그리고는 노예 시장으로 갔네

거기서 너를 찾았네

그러나 너는 없었네

내 사랑

 

 

 

For you my love

by Jacques Prévert

 

For you, my love

I went to a bird market

And I bought a bird

For you

My love

I went to a flower market

And I bought a flower

For you

My love

I went to a junk market

And I bought a chain

A heavey chain

For you

My love

And I went to a slave market

And I searched for you

But I couldn't find you anywhere

My love

 

 

내 젊음의 초상

Herman Hesse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으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타고 있는가를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 길을 나는 이제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었고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잘못도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로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로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의 이름을 부르면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에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부를수록

너는 멀리 있고

내 울음은 깊어만 간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노래의 날개 위에

Heinrich Heine

 

숲 가의 가지들 금빛으로 빛나는

오솔길을 따라 홀로 걷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수없이 거닐던 이 길.

 

이러한 좋은 날에는

오래도록 가슴에 지니고 있던,

그 행복과 서러움이

먼 곳 향기 속에 녹아 흐른다.

 

잡초 불타는 연기 속에

흥겹게 노니는 시골 아이들,

나 또한 그 아이들과 어울려

가락에 맞추어 노래 부른다.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John Donne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우리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For Whom The Bell Tolls

John Donne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vert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ed awaw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 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hished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듬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이성희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산길 모퉁이 금강초롱

그 꽃잎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아침으로

 

새벽하늘에 돋아난 금성

그 별빛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라

 

거울에서 사라진 웃음

눈물로 번제를 드린다면

다시 눈부신 오후의

타악기처럼 웃을 수 있을까

 

징검다리의 마지막

돌 하나로 살고 싶어라

시냇물의 노래를 들으며

가장 넉넉한 자리에

안착하는 새를 보며

저녁을 맞고 싶어라

 

 

 

단심가(丹心歌)

정몽주

 

此身死了死了(차신사료사료) 이 몸이 죽고 죽어

一百番更死了(일백번갱사료) 일백 번 고쳐죽어

白骨爲塵土 (백골위진토) 백골이 진토 되어

魂魄有也無 (혼백유야무) 넋이라도 있고 없고

向主一片丹心(향주일편단심)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寧有改理與之(영유개리여지) 가실 줄이 있으랴

 

 

, 포도, 잎사귀

장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조수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곱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넝쿨 아래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

 

 

달밤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한 그림 속에 정화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 날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밤 더디 새소서​​

 

 

 

달밤에 친구는 오지 않고

백거이

 

옛사람은 낮이 짧다 하여

촛불 들고 밤놀이하지 않았나?

이토록 교교한 밤에

달빛은 서녘 다락을 비추고

넘치는 술 한 동이를

성곽에다 올려놓았건만

그대는 기다려도 오지 않고

나하고 달님만 동그마니

물을 비추자 하얗게 연기 일고

사람을 비추자 하얗게 나부끼는 머리카락

호수처럼 맑은 달빛 속에

물끄러미 넋을 뺏긴다.

 

 

 

 

달아

이상화

 

달아!

하늘 가득히 서러운 안개 속에

꿈모닥이 함께 떠도는 달아

나는 혼자

고요한 오늘 밤을 들창에 기대어

처음으로 안 잊히는 그이만 생각는다

 

달아!

너의 얼굴이 그 이와 같네

언제 보아도 웃던 그 이와 같네

착해도 보이는 달아

만져보고 지운 달아

잘도 자는 풀과 나무가 예사롭지 않네

 

달아!

나도 나도

문틈으로 너를 보고

그이 가깝게 있는 듯이

야릇한 이 마음 안은 이대로

다른 꿈은 꾸지도 말고 단잠에 들고 싶다

 

달아!

너는 나를 보네

밤마다 손 치는 그이 눈으로

달아 달아

즐거운 이 가슴이 아프기 전에

잠 재워다오, 내가 내가 자야겠네

 

도봉(道峰)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골을 되돌아올 뿐

산 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마음 고요히 고흔봄 길 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의 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십다​​

 

 

 

동동(動動)

작자 미상

 

()으란 뒤에(뒷잔에, 신령님께) 바치옵고, ()으란 앞에(앞잔에, 임금님께) 바치오니

()이며 복()이라 하는 것을 진상하러 오십시오.

아으 동동(動動)다리

 

정월 냇물은 아으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데

누리 가운데 나곤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아으 동동(動動)다리

 

이월 보름에 아으 높이 켠 등불 같구나

만인 비취실 모습이시도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삼월 지나며 핀 아으 만춘(滿春)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녀 나셨도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사월 아니 잊어 아으 오셨구나 꾀꼬리 새여

무엇 때문에 녹사(錄事)님은 옛 나를 잊고 계십니까

아으 동동(動動) 다리

 

오 월 오 일에 아으 수릿날 아침 약()

즈믄 해를 길이 사실 약이라 바치옵니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유월 보름에 아으 벼랑에 버린 빗 같구나

돌아보실 임을 잠시나마 따르겠습니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칠월 보름에 아으 백종(百種) 벌여 놓고

임과 함께 살고 싶어 원()을 비옵니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팔월 보름은 아으 가배(嘉俳) 날이지만

임을 모셔 지내야만 오늘날이 가배로구나

아으 동동(動動) 다리

 

구 월 구 일에 아으 약이라고 먹는

노란 국화꽃이 집안에 피니 초가집이 고요하구나.

아으 동동(動動) 다리

 

10월에 아으 베어 버린 보리수나무 같구나

꺾어 버리신 후에 (나무를) 지니실 한 분이 없으시도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11월 봉당 자리에, 아아 한삼을 덮고 누워

슬프구나, 고운 임을 (여의고) 제각기 살아가는구나.

아으 동동(動動) 다리

 

12월 분지나무로 깎은 아아 (임에게) 차려 드릴 소반 위의 젓가락 같구나.

임의 앞에 들어 놓았더니, 손님이 가져다가 입에 물었나이다.

아으 동동(動動) 다리

 

 

 

동방의 등불

Devendranath Tagore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은 장벽으로 세계가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펴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The Lamp of the East

by Rabindranath Tagore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bearers

And the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of the East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

Where knowledge is free;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Where words come out from the depth of truth;

Wher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s perfection;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ert sand of dead habit;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

Into that heaven of freedom,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지(冬至)ᄉ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가운데를 베어 내여

봄바람처럼 향긋하고 따스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임께서 오시는 밤이 되면 구비구비 펴리라

 

동짓달의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둘로 나누어서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간직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날 밤이면 굽이굽이 펴서 더디게 밤을 새리라.

 

 

 

들길에 서서

신석정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두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 거야.

나두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두야 간다.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마음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멀리 있기

유안진

 

멀리서 나를

꽃이 되게 하는 이여

향기로 나는 다가갈 뿐입니다.

 

멀리서 나를

별이 되게 하는 이여

눈물 괸 눈짓으로 반짝일 뿐입니다.

 

멀어서 슬프고

슬퍼서 흠도 티도 없는

사랑이여

 

죽기까지 나

향기 높은 꽃이게 하소서.

 

죽어서도 나

빛나는 별이게 하소서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모란[牡丹] :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활엽 관목.(본음은 목단’)

* 하냥 : 한결같이, 줄곧

 

 

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靑龍) 흑룡(黑龍)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天痴)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있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 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못 잊어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바람은 남풍

김동환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 녘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보니

 

-얀 버들꽃

웃으며 손짓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가 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왼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러 오르내리노라.

 

 

 

반지

이해인

 

약속의 사슬로

나를 묶는다

조금씩 신음하며

닳아가는 너

난초 같은 나의 세월

몰래 넘겨보며

가늘게 한숨 쉬는

사랑의 무게

말없이 인사 건네며

시간을 감는다

나의 반려는

잠든 넋을 깨우는

약속의 사슬

 

 

 

밤의 이야기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요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밤 편지

김남조

 

편지를 쓰게 해다오

이날의 할 말을 마치고

늦도록 거르지 않는

독백의 연습도 마친 다음

날마다 한 구절씩

깊은 밤에 편지를 쓰게 해다오

밤 기도에 이슬 내리는 적멸(寂滅)

촛불에 풀리는 나직이 습한 악곡(樂曲)들을

겨울 침상에 적시이게 해다오

새벽을 낳으면서 죽어가는 밤들을

가슴 저려 가슴 저려 사랑하게 해다오

 

세월이 깊을수록

삶의 달갑고 절실함도 더해

젊어선 가슴으로 소리 내고

이 시절 골수에서 말하게 되는걸

고쳐 못 쓸 유언처럼

기록하게 해다오

 

날마다 사랑함은

날마다 죽는 일임을

이 또한 적어두게 해다오

눈 오는 날엔 눈밭에 섞여

바람 부는 날엔 바람결에 실려

땅끝까지 돌아서 오는

영혼의 밤 외출도

후련히 털어놓게 해다오

 

어느 날 밤은

나의 편지도 끝 날이 되겠거니

가장 먼 별 하나의 빛남으로

종지부를 찍게 해다오

 

 

 

밥그릇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헛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으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별을 쳐다보며

노천명

 

나무가 항상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댓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댓자

또 미운 놈을 혼내 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뭋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Khalil Gibran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복종

한용운

 

남들이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유안진

 

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흘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라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운 보랏빛 돌 각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 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

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랑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런 움집에서 다순 손길이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 자기에는

뻐꾹뻐꾹 사랑 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러움증 산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춤

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봄비

심훈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엔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숨도 못 이루시네

 

 

 

이형기

 

적막강산(寂寞江山)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 자리

타지 않는 일모(日暮).....

텅 빈 내 꿈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며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正座)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 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 살아서

청명(淸明)과 불안(不安)

기대(期待)와 허무(虛無)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린다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빗소리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짓을 버리고,

비는 뜰 우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으지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우에 창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살아남은 자의 슬픔

Bertolt Brecht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Alexander Pushkin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서동요

서동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수평선

정권식

 

요란한 파도 소리

물결은 거칠어도

하늘과 닿은 선은

언제나 직선이다

바다는 넘치지 않는

계영배 술잔인가

 

 

 

아들에게

문정희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아들의 죽음에 울다

허난설헌

 

지난해 귀여운 딸을 잃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이 떠났네

슬프고도 슬프다,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오슬오슬 바람이 일고

숲속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 태우며 너의 넋을 부르며

너의 무덤 앞에 술잔을 붓는다

안다,안다 어미가 너희들 넋이나마

밤마다 만나 정답게 논다는 것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하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기나 바랄 것이냐

하염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 혼자 삼키네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다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작은 연가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가 천리 밖까지

나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 질 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존재의 빛

김후란

 

새벽 별을 지켜본다

사람들아

서로 기댈 어깨가 그립구나

적막한 이 시간

깨끗한 돌계단 틈에

어쩌다 작은 풀꽃

놀라움이듯

하나의 목숨

존재의 빛

모든 생의 몸짓이

소중하구나

 

 

 

진달래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淸雲寺)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 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청포도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초혼(招魂)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하늘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초가을 따가운 햇볕에

목을 씻고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마신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하루만의 위안

조병화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그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늘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햇살에게

정호승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던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휘파람을 불어다

유안진

 

이 허황된 시대의 한구석에

나를 용납해준 너그러움과

있는 나를 없는 듯이 여기는

괄시에 대한

보답과 분풀이로

가장 초라하여 아프고 아픈

한 소절의 노래로

오그라들고

꼬부라지고 다시 꺾어 들어서

노래 자체가 제목과 곡조인

한 소절의 모국어로

내 허망아

휘파람을 불어 다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을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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