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5. 24. 13:54

 

고은영 - 10월 끝자락 밤 풍경에 서면

고은영 - 10월의 달빛은

고정희 - 꿈꾸는 가을 노래

공석진 시월

곽기용 - 10

권오범 - 시월

권오삼 - 10월에 핀 장미

기형도 10

김남식 - 시월의 단상

김노연 시월에

김덕성 시월의 숨결

김연대 시월

김영수 시월

김영제 시월의 꽃샘추위

김영천 10

김영천 10월에 부르는 노래

김영천 - 음력 시월

김용택 - 10

김용화 - 시월의 마지막 날엔

김응길 - 10월 그 느티나무

김인숙 시월의 어머니

김지훈 - 시월의 잠수함

나호열 - 시월을 추억함

나호열 - 시월의 장미

나희덕 - 시월

도종환 - 시월 비

류병구 니스, 10월의 밤

류시화 -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류시화 - 시월의 시

류제희 시월, 초사흘

목필균 - 10월 어느 날

목필균 - 10월의 시

목필균 - 10월의 편지

목필균 - 시월

문이레 - 시월에도 내리는 눈

문인수 - 10

문태준 - 시월에

문태준 - 음색(音色)

민용태 시월

박기숙 10월의 기도

박남수 시월

박명숙 시월의 연가

박재성 10월에는

박현자 - 10월은

박현희 - 10월의 기도

박희홍 시월 사랑

반기룡 - 10월의 끝자락에서

반기룡 - 10월의 마지막 밤

백원순 10월의 노래

서정주 - 시월이라 상달되니

손순미 - 10

손택수 - 풀이 마르다

손희락 - 10월의 마지막 밤

송재학 - 시월

안명옥 - 10

안재식 - 시월, 이 비 그치면

양광모 - 10월 예찬

염경희 시월이 되면

오길원 10월의 가을

오남일 - 10월 잔디에 누워

오남일 혼자서 걷는 시월에

오보영 10월 잎새

오세영 - 10

오세영 가을

오애숙 - 그대 올 것 같은 시월

오정방 - 시월

용혜원 - 10

원영래 -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

유안진 - 10월 창호 문

유응교 - 시월의 마지막 밤에

유치환 북방(北方) 10()

윤보영 - 10월 아침에

이경미 10월 제천역

이기철 - 시월

이기철 -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이기철 - 시월의 사유

이대흠 - 붉은 시월

이문재 - 시월

이민영 시월에는

이선이 - 시월의 사흘

이세송 - 10월의 가을 아침

이시영 - 새벽에

이시영 - 시월

이외수 10

이원문 10월의 약속

이재호 - 10월의 시

이정순 10월의 시

이정순 - 10월이 떠나갑니다

이채 - 10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 10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 - 중년의 가슴에 10월이 오면

이해원 한 줌으 시월

이해인 - 10월 편지 - 대모님께

이해인 - 10월의 기도

이해인 - 10월의 시

이해인 - 10월의 엽서

이향지 - 시월 이야기

임보 - 시월

임숙희 시월

임영석 시월의 아름다운 행진곡

임영준 10

임영준 10월의 별

임영준 - 10월의 시

임재화 - 시월의 마지막 날

임정현 시월

임종봉 시월의 마지막 밤

작자 미상 10월의 기도

장석남 - 시월

장석주 - 10

장영길 - 시월의 마지막 날

장화순 - 시월

전동균 - 시월

전병조 - 그해 시월

전상숙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전영금 시월의 언덕

정복훈 - 시월애

정세훈 - 시월 서정

정소슬 - 시월 비

정연복 - 10월의 노래

정연복 10월의 장미

정연복 - 시월의 노래

정연복 - 시월의 다짐

정연화 - 10월에는

정연희 - 시월에는

정태중 - 시월애()

정현종 - 견딜 수 없네

정호승 -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조선윤 - 시월 숲에서

주선옥 시월의 엽서

주응규 - 시월 비가(悲歌)

진의하 - 10월이 오면

최갑연 - 시월을 사랑하는 가을나무

최명운 - 시월이어서 좋다

최순호 - 10월의 산보

최영희 - 시월의 마지막 밤

최원정 -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

최하림 - 가을의 말

최하정 10월의 마지막 날

최홍윤 - 10월의 마지막 날

피천득 시월

한춘화 - 20221029일 이태원

홍경나 - 아무것도 아닌, 1016

홍경임 - 10월 어느 날

홍금자 - 10월의 뜰

황동규 시월

황영칠 시월의 마지막 날

 

 

 

10월 끝자락 밤 풍경에 서면

고은영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제 바라본 달빛이 행복이었다면

오늘 바라보는 달빛은 우울하다

가을 위에 청춘의 잔치는 끝났다

 

별들은 자꾸만 북쪽의 길을 고집하며

북으로 북으로 이동하는 새벽

어둠 속에 을씨년스런 나무 그림자들은

진실로 고독하다

 

적멸로 돌아서는 나뭇잎

그리고 파리해진 삶의 화선지에

내리막으로 치닫는 의식의 함몰

믿음을 키우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가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다

 

이제는 기다림도 버려야 할 때

내 안의 슬픔 중

그대가 나의 고통으로서는 밤

들뜨기만 했던 뜨거운 열정들이

낱낱이 헤지고 식어 간 흔적만이 쓸쓸한데

 

언제 우리 사랑이 풍화돼 갔는지

그 행방이 묘연한 거리

불편한 진실들이 숨죽인 채

하얗게 쓰러져 있다

 

 

 

10월의 달빛은

고은영

 

10월의 길목에

달빛은

눈부신 그리움을

쑥쑥 해산하고

 

한가위 부푼 꿈으로

가슴에 불을 놓는다

염장을 지른다.

 

만월을 위해

흐르는 야상곡

풀벌레 울음에조차

영혼은 취해 가는데

 

도심의 상현달도

추억을 부추겨

묵은 기억을 들추고

 

눈물이 날만큼

고독한 빛으로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다

 

 

 

꿈꾸는 가을노래

고정희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화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시월

공석진

 

여름 내내 잠복해 있던

그리움을 앓는 거겠지

고열로 단풍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처럼 아픈 잎새 뚝뚝

떨어지는데

어쩔 거야

나 하나쯤 잠시 자리를 비운들

사는 게 급급하여

이까짓 변화쯤

몸 사려 참지를 못하고

숨 막히게 난방을 해대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낭만은

을씨년스러운 찬 바람에 혼절하였다.

 

붙잡지 마라

마침내 나는 떠나리

집요하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빗발치는 아우성을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혀 놓고

침묵으로 까맣게 채색하는

단호한 망각의 시월

 

 

 

10

곽기용

 

하늘 높고 푸르름만으로

마음의 풍선을 띄워

들과 산

풍요의 빛이 되어

왠지 모를 좋은 일로

등 따시던 갈피 부르며

 

오지랖 가지 떠날 한잎

오색 실로 새겨

반짝 수를 놓는 청춘

빛바랜 이음새 붙들어

그리던 날들

 

춤추는 단풍 이파리마져

가을이 저민 기쁨에

너른 활개치 듯 마냥 즐기려

신바람 아우성치는

꿈 그린 때

 

 

 

시월

권오범

 

마음 채마밭에 무서리 내려

여름내 무성하게 아우성치던

갈대 같은 그리움들

꼬리 사리겠지, 했건만

 

해갈하지 못해

서리서리 잉태한 불만이

알토란 같이 만삭으로 자라

한로 지나 상강으로 가는 길목

 

남자의 출산은 을씨년스런 침묵뿐

산고로 뒤척이다

매대기치는 은행들이 부추겨

길거리서 덜컥 낳아버린 고독

 

명의도 손 쓸 수 없는

산후조리를 위하여

할 수 없이 끌어안고 동행하다 앉은

낙엽이 나부대는 공원 벤치

 

 

 

10월에 핀 장미

권오삼

 

먼 길을 걸어

이제 막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 같은

10월에 핀 장미

 

늦게 피었기에 더 붉고 곱다.

 

 

 

10

기형도

 

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의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시월의 단상

김남식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듯

가을이 어느새 끝자락에

와 있는거 같습니다

 

누구나 '봄이 왔다'라고 하지만

가을은 그리말하지 않지요.

그냥 모두가

"가을이 오고있다"라고....

 

가을은 낭만과 시적감상이

풍부한 계절에 여러분은

몇편의 시와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고 좋은 인연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네요

 

가을내음과 결실의 풍성함으로

가득했던 10월도

서서히 저물어 가려합니다

 

곱고 맑은 햇살처럼

높고 푸른 하늘처럼

마음에도 행복함과 따스함으로

가을사랑과 함께...

 

 

 

시월에

김노연

 

무수한 말 줄임표를 놓고

침묵으로 응수하던 연모의 정

초록 숲이 변질되어 수줍음으로 눈뜰 때

이브인 나는 그 가장자리에서

연분홍 치마 자락을 흔들리라

티끌의 공백도 허락하지 않을

이율배반 속에서

바람 실은 가을밤이 짙어지면

헤어짐을 미리 준비하는 모진 맘으로

천근(千斤) 같은 이별을 한 잎 두 잎 떨구리라

어긋나지 않을 진리

만남 뒤에 오는 이별을 아는 까닭에

늘 안타까움이 서리듯 슬퍼 보였으리

표현할 길 없는 사랑을 어이할까

못다 한 고백에 핏빛의 멍든 마음을

각혈하는 지독한 사랑을 앓은

여인의 숨결

시월이 짓는 아름다움 뒤로

붉게 붉게 스미고 있다

스르르 인연의 끈을 놓고 있다

 

 

 

시월의 숨결

김덕성

 

높은 가을하늘에서

축복처럼 고운 햇살이 시리게 내리는데

하늘을 우러르며

두 팔을 벌린 나무 가지를 본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아직 겪어 보지 못한 초년병 잎사귀들

떠날 준비로

불안이 흐르고

 

불안 속에서도

내일엔 더 고운 색깔을 창조하려고

꾸준히 도전하는 잎사귀들

끈질긴 도전에

엄숙히 머리 숙힌다

 

너무 아름다운 시월의 생명에서

난 고운 숨소리를 듣는다

 

 

 

시월

김연대

 

석류꽃 그늘이

내 서투른 혀끝에 잘못 내려앉아

이 가을 더욱

말을 더듬게 한다

 

흰 서리가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나의 아침은 빛나게 오지만

거울 속으로 돌아오지 않는

또 하나 말을 더듬는

눈물 같은 내가 있어

 

감추고 숨기는 것 많아지면

더듬는 습관이 없어질 것인가

 

감추고 숨긴 것 너무 많아 망설임 없는

무한 비밀의 푸른 하늘이여

시월은

깊숙이 숨은 나를 알몸으로 끌어내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게

또다시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

 

 

 

시월

김영수

 

사실

나는 시월이 좋다

지나간 푸르른 오월이

말을 바꾼다고

질투할지라도...

 

시월이 오면

멀리 있는 친구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종일 함께 놀다

헤어지기 아쉬워

돌담길 돌아서다

다시 돌아서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빙그레 웃어주던

그 친구가 보고 싶다

 

 

 

시월의 꽃샘추위

김영제

 

갑자기 기온 떨어져

차가워진 냉랭한 날씨에

내 몸은 놀랬고

내 맘은 긴장됐다

 

일주일전 다르고

일주일후 다르다더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낮 다르고 밤 다르다

 

창밖 바람소리에

날씨를 보니 한 자리 기온

잠깨우며 제일 먼저 추위를

전해 온 부위 발가락

 

시월의 사이비 추위

십도씨 이상의 일교차에

안 사먹던 자판기커피를 빼

호호 불어가며 마신다

 

 

 

10

김영천

 

10월이 우듬지 끝에서

빠알갛게 익는다

5월의 분노 따위는 다 잊고

서둘러 머언 하늘을 베고 눕는다

상사하던 붉은 꽃잎들이 지고

다시 새파랗게 순 올라오는 언덕을 따라

바람의 숨가쁜 소리가 수상하던 밤

기어코 별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산 목숨 몇은 더불어 가고 질

긴 인연들만 파르르 떤다

가지 채 꺾어 실내에 두고

꼭지 붉은 시월을

이제 또 한 번 분노할까?

 

 

 

10월에 부르는 노래

김영천

 

9월이 오면

지나가는 이 아무나 붙들고

가슴 뜨거운 악수를 나누자

 

이유 없이 복받치는 슬픔에 머리를 감던 버릇처럼

지금 가로수들은 모두

갓 씻긴 마알간 자태로 섰다

 

잽싸게 불어 가는 바람이야

사통팔달 도심을 지난다만

소리 죽여 몰래 돌아오는 저 숱한 소문들

 

이 때에 사랑은 더욱 깊숙이 감추고

서러운 것들은 하나 둘 떠나보내야 하는지

너는 떨켜를 닫듯 단호히 돌아 앉는구나

 

이제야 꽃망울을 머물고

시린 계절 내내 꽃을 피워 내는 것들도 있으리니

가자,

가여운 어깨끼리 서로 껴안고

이 서러운 광장을 서둘러 지나자

 

무슨 상처라 하더라도 오늘은

그냥 감추고

목 매인 이름을 차마 부르자

 

 

 

음력 시월

김영천

 

음력 시월을 이르는 말에

소춘(小春),

양월(良月),

응종(應鐘),

방동(方冬),

상동(上冬),

이렇듯 여러 말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갑자기 추웠다가

다시 따뜻해지는 작은 봄에

이렇듯 여러 이름이 있는 이유가 있을 터이어서요

나는 내 아내의 모든 병이 낫고

새로 찾아온 봄을 두고

오래오래 감격해하는 것입니다

 

 

 

10

김용택

 

부드럽고 달콤했던 입맞춤의 감촉은 잊었지만

그 설렘이 때로 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10월이었지요.

행복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엔

김용화

 

시월의 마지막 날엔

잎새마다 꽃이 되었다.

어느 누가 미치도록 그리웠으면

가을이 되었겠는가

그리움이 모이면 가을이라 했는데

어느 누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으면

저리도 절절한 가을 유서를 쓰겠는가

순희의 가을 낙엽은

고독한 이의 마른 눈물이라 했고

순희의 가을은

잊고 잊는 것이라 했다

첫눈 오는 날까지

까마득히 잊는 것이라 했다

 

 

 

10월 그 느티나무

김응길

 

한결같은 모습으로

햇살과 빗살을 가리며

온 동네 소식을 모으던

그 많은 이파리들은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

 

한해의 기쁨과 한숨

일상의 수다들을

이파리 하나하나에 매달고

바람이 집배원이 되어

가가호호(家家戶戶) 나누고 있어.

 

 

 

시월의 어머니

김인숙

 

구부러진 허리를 일으켜

하루를 세우시고

마른 가지 손으로 햇살을 끌어

밭에 배추 무 빨갛게 익은 고추를

거두어들이는 시월의 어머니

 

장성한 잎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나고

막내 잎새 하나 곁을 지킨다

찬 서리 내리는 소리 허공에 떠돌고

겨울 준비 위해 새까맣게 쌓이는

연탄이 바쁘다

 

마당에 화초들 집 안으로 들어가고

휑한 마당 귀퉁이에는 거미줄

쓸쓸한 바람 타고 기타를 친다

 

곤히 잠든 시월의 야윈 등에

숨소리 들리는가 가만히 귀 대어 보는 밤

적막한 것들은 죄다 모여 기도하듯

간절한 시월의 밤하늘

잠 못 이룬 별 하나

어머니 뜨락에

시를

 

 

 

시월의 잠수함

김지훈

 

구름이 입술 위에 달라붙는

이 자리는 북한산 어디쯤일까. 지닌 것 없이

숲만 가득 담아둔 나무 그늘에 앉아

기거이 가져온 새 책에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혈이 탁 트이고서야 내 온몸이 잠망경으로 솟아오를 수 잇었다

작은 물줄기 속에서도 잘 돌아가는 스크루

사방 가득한 수억 촉()의 소리가 큰 닻이 되어

산봉우리들이 신들의 전함으로 불리었던 그 바다 위에 박혀 있다

밤낮이 한꺼번에 몰아오는 내연기관의 큰 울림

그 안에는 칼 대신 나뭇잎 들고 싸우던 날도 있다

힘줄 선명한 잎 하나가 공기를 잘게 저미며 내려온다

신들은 어디에서 배를 만드는 중일까

베어낸 나무 밑동에 그려진 선명한 음파탐지기 자국

나는 녹슨 쇠를 털며 가라앉고 있는 배들의 그림자를 본다

나뭇잎을 칼처럼 쥐고 싸우던 시절

앙상해진 주물기계들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바람이 떠미는 결이 물 속인 줄 알고

낙엽이 벗었다가 도로 신는 잠수화를 본다

아직도 능선에는 사나운 기운이 넘친다

신들의 칼을 나는 나뭇잎이라고 고쳐 부르고 싶다

이 배를 붙들며 한 자리에서 먼바다를 돌아오는 사계절

내 고함으로 한 방의 어뢰를 뭉쳐

사령관의 함교가 있는 백운대를 한 방 때릴 셈이다

갑판이 낙엽을 털 듯 몸을 털며 다시금 방향을 잡고 나아갈 때

수리공들이 큰배를 향해 떼지어 몰려가는 항로를 따라

푸른 위장을 한 잠수함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월의 장미

나호열

 

고고하다

시월의 장미

시들어 버리지는 않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찬바람을 맞으며

똑똑 떨구어내는

선혈

붉음이 사라지고

장미꽃이 남는다

내 너를 위하여

담배를 피어주마

야윈 네 가시를 안아주마

 

 

 

시월을 추억함

나호열

 

서러운 나이 그 숨찬 마루턱에서

서서 입적한 소나무를 바라본다

길 밖에 길이 있어

산비탈을 구르는 노을은 여기저기 몸을 남긴다

생이란 그저 신이 버린 낙서처럼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풀꽃이었을까 하

염없이 고개를 꺾는 죄스런 모습

아니야 아니야 머리 흔들 때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검은 씨앗들

다 버린 눈물로 땅 위에 내려앉을 때

가야 할 집 막막하구나

그렇다 그대 앞에 설 때 말하지 못하고

몸 뒤채며 서성이는 것

몇 백년 울리는 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었던가

향기를 버리고 빛깔을 버리고

잎을 버리는 나이

텅 빈 기억 속으로

혼자 가는 발자국 소리 가득하구나

 

 

 

시월

나희덕

 

산에 와 생각합니다

바위가 산정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 위로 무심히 띄워 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 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산문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토리, 청설모, 쑥부쟁이 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 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 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 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시월 비

도종환

 

메밀꽃 지는 고개를 넘어오며 당신을 생각했지. 감잎이 바람에 끌리는 소릴 들으며 당신을 생각했지. 차가와 오는 시간 속으로 끌리어 나와 홀로 새는 방안에 어제는 쥐들이 새끼를 치고 가는 비 굵게 스며 천장을 적시었지.

올해는 시월까지 장맛비 길어 당신을 누이고 다져 밟은 발소리 아래로 빗줄기 오래오래 지나갔으리. 머리맡에 따라와 우는 벌레 소리 달 없는 밤에도 깊이깊이 땅끝을 두드렸으리.

얼마나 많은 바람과 비에 씻긴 뒤에야 흙 속에서도 고요히 이승 저승 넘나들고 바람 속에서도 너울너울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어느 하늘 어느 구름 아래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니스, 10월의 밤

류병구

 

지중해 쪽빛 해변

 

흰 낮

뜨거웠던 숨결 접고

몽돌 쓸리는 소리 보듬는

밤바다

 

한 줌 달빛

저 아귀찬 유혹에

내 묵는 곳을

그만 일러주고 말았다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류시화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 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을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 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 봐

이 모든 것을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시월의 시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 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 가르시아 로르까 - "기억하는가, 8월의 긴 눈짓을

 

 

 

시월 초사흘

류제희

 

누가 던져놓았나, 길 없는

하늘 중천에

막내 고모 눈썹 같은 초승달

달빛에 야윈

미루나무 꼭대기에 서너 장

봉함엽서 떨고 있네.

흰 눈발 서성이면

덧나던 그리움도, 기우뚱

헛발 딛는 초저녁

 

 

 

10월 어느 날

목필균

 

세월은 내게 묻는다

사랑을 믿느냐고

 

뜨거웠던 커피가 담긴 찻잔처럼

뜨거웠던 기억이 담긴 내게 묻는다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이

렌지 위에 찻물로 끓는 밤

빗소리는 어둠을 더 짙게 덮고 있다

 

창밖에 서성이는 가을이 묻는다

지난여름을 믿느냐고

 

김삿갓 계곡을 따라가던 물봉숭아

꽃잎새 지금쯤 다 졌을 텐데

 

식어진 사랑도

지난여름도

묻는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울어진 가을밤

부질없는 그리움이

째각째각 초침 소리를 따라간다

 

 

 

10월의 시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품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가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10월의 편지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

 

 

 

시월

목필균

 

파랗게 날 선 하늘에

삶아 빨은 이부자리 홑청

하얗게 펼쳐 널면

 

허물 많은 내 어깨

밤마다 덮어주던 온기가

눈부시다

 

다 비워진 저 넓은 가슴에

얼룩진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는

시월

 

 

 

시월에도 내리는 눈

문이레

 

괜찮아요, 아직 장롱 속 감춰둔 상자가 있고, 읽다가 그만둔 편지가 있고,

거실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빈 화분이 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내일이 있습니다

 

장미가 피지 않아도 밖으로 나가 햇빛에 빨강을 널어야겠어요!

 

무릎이 깨지도록 손 모으는 일

시월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여자처럼

입술을 빈 화분에 심어야겠어요

 

붉다는 건, 무엇이든 녹일 수 있으니까요

푸른 잎이 하나둘 사라진대도 실망하진 마세요

 

그 혀 속에는 말 못 한 나무가 한 그루,

상자엔 아직 선물이 남았으니까

 

첫눈을 기다리기엔 점점 멀어지는,

 

시월에도 눈이 내려, 빨갛게 물드는 그런 일

처음 한 약속은 어디쯤 머물렀는지,

 

그러니까, 아무런 상관없이 빨강을 담을 거예요

 

손안에서 사라지는 알 수 없는 색

 

맹렬하게 녹아내리는 붉힌 마음으로

사라져야 볼 수 있는,

 

오랜 고백의 자세로 간직해온

난 빨강을 믿어요

 

 

 

10

문인수

 

호박 눌러앉았던, 따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빰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음색(音色)

문태준

 

시월에는

물드는 잎사귀마다 음색이 있어요

봄과 여름의 물새는 어디로 갔을까요

빛의 이글루인 보름달은 어디로 갔을까요

뒤섞여 있던 초록들은 누구의 헛간으로 갔을까요

나는 갈대의 흰 얼굴 속에 있었어요

마른 잎에서는 나의 눈을 보았어요

얇고 고요한 물, 꺾인 꽃대, 물에 잠기는 석양

그리고 그 곁엔

간병인인 시월

 

 

 

시월

민용태

 

하늘에서 걸려 오는 전화벨 소리

떼 각 떼 각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소리

사무실이 바닥보다 창문 높이로 올라서고

벽에서는 횟가루 대신 구름냄새가 난다.

먼 구름에서 알밤이 빠지듯

너는 그렇게 내 품에 떨어진다.

너의 얼굴을 보면 보석을 머금고 있는 것이

석류만이 아닌 것을 안다.

너의 가슴을 보면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진다.

서류뭉치들이 연이 되어 나르고

시계추 끝에선 포도송이가 여린다.

시월은 하늘과

하늘의 친척들이 몰려오는 달

꿈과 기다림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온 도시가 잠깐

하늘의 식민지가 되는

 

 

 

10월의 기도

박기숙

 

! 존귀와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시는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또 한 번 하늘이 울고 땅이

통곡하는 천둥뇌동 하는 일이 생겨났습니까?

 

할로윈데이의 압사 참사에 온세계인이

슬픔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요

 

10, 20대 청소년들이 한평생의 꿈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별들의 고향인

하늘 나라를 그렇게도 빨리 가다니

 

너무나 가슴 아파그들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저 천국에서 그대들의꿈과 , 이상과

희망이 별빛 처럼 빛나기를 간구 기도 합니다.

 

평화와 축복이 함께 히기를...

너무너무 가슴이 찢어지는듯,

마음이 아프네요.

 

 

 

시월

박남수

 

들국화 옆에

들국화가 흔들리고 있다.

어깨 부비며 서럽게 시들은

들국화 옆에

들국화가 서럽게 시들고 있다.

 

이별을 위하여

내리는 서릿발에, 잎은

부황이 들고,

역시 부황이 든

잎사귀는 작별을 위하여

서릿발에 몸을 섞고 있다.

 

 

 

시월의 연가

박명숙

 

가뭇가뭇 연기가

피어오르는 짚불 냄새가

그리움의 바람을 몰고 온

시월, 나를 설레게 한다

 

계절은 익어가고

청춘의 기억만이

지친 하루를 넘겨다 보고

시월의 미소는

설레는 가슴마다

소녀처럼 수줍게 붉어진다

 

사랑일까

연민일까

울긋불긋 잎새에 물들어

슬며시 번지는 시월의 단풍꽃

다시 만나는 붉은 열정에

온통 내 마음 벅차도록

따뜻한 온기로 채워진다

 

우리가 사랑으로 왔듯이

우리에게 온 시월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도록 슬픈

모순 같은 시월의 어느 날

또 이별하는 순간이 와도

뜨거운 가슴으로

시월의 연가를 부르리

 

 

 

10월에는

박재성

 

10

결실의 달

햇살 아래 익어가는 결실을 만나러

벌판으로 나가보렴

 

황금벌판 한가운데서

벼 익어가는 소리를 들어보렴

 

농부의 땀으로 일구어 놓은

벼이삭과

포근한 가을 햇살과의

진솔한 가을 이야기

 

감사와 응원 속에서

솟구치는 환희를

가슴에 새겨보렴

 

네가 일구어갈 내일의 소리

가슴 벅찬 그 환희로

너의 오감을 간질여 보렴

 

 

 

10월은

박현자

 

시월은

내 고향이다

문을 열면

황토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는

어머니

 

하늘엔

국화꽃 같은 구름

국화향 가득한 바람이 불고

 

시월은

내 그리움이다

시린 햇살 닮은 모습으로

먼 곳의 기차를 탄 얼굴

마음밭을 서성이다

생각의 갈피마다 안주하는

 

시월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는

내 고향이다.

 

 

 

10월의 기도

박현희

 

힘없이 떨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찬란했던 삶의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맨 처음 하늘이 열리고 생이 시작되어

()가 생성되기 이전 무()의 상태로 돌아가

처음 내딛던 첫발 첫걸음을 생각하게 하소서.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만남과 이별

생성과 소멸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정신없이 달려온 고단함에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각오로 힘찬 출발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하소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잎이 떨어지는 아픔의 시간을 겪으면서

한층 성숙한 나로 거듭나게 하소서.

 

 

 

시월 사랑

박희홍

 

오래도록 푸름 속에 갇혀

몸살을 앓더니

 

언제 그래냐는 듯 훌훌 털고

붉게 붉힌 얼굴에 예쁘게 치장하고

함빡 웃음을 머금고서 온다

 

밤이 길어지고 서리 내리니

 

그리도 빨리 나비가 되어

훌쩍 날아가겠다며

뺨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따라

불콰한 시월이 간다

또 보자는 미련 남겨두고서

 

 

 

10월의 끝자락에서

반기룡

 

갈대숲을 지나며

지나온 상념 조각을 모자이크해 봅니다

쓸쓸함은 언제나

많은 생각을 불러와

종종 시집을 뒤적이게 하고

잊었던 단어를 반복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도 하지요

빨간 물감이 쏟아질 때마다

황홀경에 사로잡혔던

계절의 언덕에 올라

조금씩 깎여지는 시간의 흐름을 보며

아름다움이란 결국 윤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뜨거움은 선선함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곧이어 무서리 내리는 날이 오게 되며

그것도 모자라 된서리가 풀숲에 과일나무 잔가지에

냉기의 의미를 전송하겠지요

이처럼 돌고 도는

윤회와 순환의 법칙에 따라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더움도 차가움도

무던히 견디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시월의 만산홍엽은

훗날에 낙엽으로 이름표를 고쳐 달지만

10월의 끝자락은 단풍처럼

환하게 붉었노라고 함차게 외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10월의 마지막 밤

반기룡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 한다발

녹색물결 일렁이던 청보리밭을 지나

찔레꽃 한창 무르익던 계곡을 관통해서

개울 끝 모롱이에 단둘이 숨어

뜨거운 입김 오가던 지난날이 그립습니다

둘만의 공간을 포개고 포개어

사랑의 뜨거운 모국어로

서로를 씨줄 날줄로 꽁꽁 묶은 채

한동안 서녘의 별을 바라보며

먼 후일 약속하던 그때가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리지처럼 묶어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봇물처럼 터질지라도

무던히 감수인내하며

사랑의 구중궁궐 짓자고

맹세하던 그때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옵니다

지난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잊혀진 계절을 부르고 싶은

10월의 마지막 밤에

저 하늘의 별빛이 유난히 밝게 흔들립니다

 

 

 

10월의 노래

백원순

 

산허리

여름내 머물던 구름들

푸른 하늘 높이 떠다니고

10월에 만난 연인들

 

스치는 바람

나뭇잎들 소슬 거리고

숲길 돌아서

만난 연인들

 

어두워지는 해 질 녘

가을벌레들 노래하고

먼 길 모퉁이에서

만난 연인들

 

바스락거리는 나무들 옷깃

청량한 빛 내려앉고

별빛 언덕에서

만난 연인들

 

 

 

시월이라 상달되니

서정주

 

어머님이 끓여 주던 뜨시한 숭늉,

은근하고 구수하던 그 숭늉 냄새,

시월이라 상달되니 더 안 잊히네.

평양에 둔 아우 생각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잊히네, 영 안 잊히네.

 

고추장에 햇쌀밥을 맵게 비벼 먹어도

다모토리 쐬주로 마음 도배를 해,

하누님께 단군님께 꿇어 엎드려

미안하요 미안하요 암만 빌어도,

하늘 너무 밝으니 영 안 잊히네.

 

 

 

10

손순미​​

 

뱀처럼 기어가는 길 하나가 보인다

검은 외투를 입은 뱀

길의 머리통은 오로지 외딴 집을 향해 있었다

어두운 저녁을 등에 업고

길이 제 집을 찾아드는 것이다

길도 집이 필요한 것이다

제 어미를 찾아드는 것이다

길이 우는 소리, 뱀이 우는 소리

수풀 속에 우거지는 저녁

모든 울음의 근원은 어미를 찾는 소리이다

희미한 등불 하나가 마중 나와 있다

길은 지친 제 머리통을 황급히 집안에다 들여놓았다

자식처럼 돌아온 길을

집은 밤새도록 젖 물리고 자는 것이다

 

 

 

풀이 마르다

손택수

 

강이 수척하니 풀도 여윈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가는 풀엔

저녁볕을 받으며 서쪽으로 멀어져가는 강물 빛 같은 것이 있다

 

몸속에 남은 물방울 몇이 그러쥔 풀의 체취를 걸쭉하게 졸이는 시간

 

그건 얼마쯤은 떠나가는 자의 모습이다

떠나가는 저를 붙들고, 슬그머니 손목을 놓아주는 자의

마른 글썽임

 

어느 지방에선 수의를 먼옷이라고 한다

잴 수 없는 거리를 옷감으로 한 말

 

얼마쯤 저를 이미 저만치 데려다 놓고

떠나온 곳을 이윽히 바라보는 자의 눈빛,

 

풀빛이 흐릿해지니 풀 향이 짙어온다

 

구월에서 시월로 넘어가는 풀에선 까슬까슬

미리 장만한 삼베 수의 스치는 소리도 들린다

 

 

 

10월의 마지막 밤

손희락

 

그대여

사랑하는 이 있거들랑

언약의 반지 끼고

시월의 마지막 밤 만찬을 즐기라

 

애틋한 사랑

붉은빛 와인

불변의 잔에 부어 목을 축이라

 

한 끼 만찬을 위해

한 잔의 와인을 나누기 위해

 

인연의 바다 갈라져 육지가 되고

저 하늘, 별과 달 어둠을 밝혔으니

 

해마다 돌아오는 시월의 마지막 밤

정든 고목 곁 울며,

울며 떠나는 낙엽 주워

 

한 몸,

한마음 이룬 그 의미

잊지 말고 기억하라

찬 서리 덮는 흰 눈

펑펑 내리기 전에 ....

 

 

 

시월

송재학

 

연잎의 안부가 수척해졌다 누런 잎이 말라가면서 돌돌 말리니까 함부로 뭉쳐 구겨버린 은박지의 은어(隱語)처럼, 아니 꽃봉오리를 본 둥 만 둥 부스럭거리니까 이제 연잎에 맺혔던 꽃자국들만 곱씹을 때인가 허술한 맹세를 부추기는 줄기까지 합쳐서 시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왜 꽃이기 전에 누군가의 시선이라고 생각 못했을까 눈동자가 없기에 뚝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가지도 못하는 울컥하는 고요, 이제 내 안에 남은 것들로만 형편을 짐작하는 시월

 

 

 

10

안명옥

 

구름이 하도 좋아서 왔다는 전화 받고

친구를 만나러 시내에 간다

좋은 가을엔 좋은 생각만 많이 해야 한다 해도

자꾸 비상구 없는 방안에 갇힌 새가 떠오르고

잠깐 앉은 전철 꿈속에선

줄에 걸린 목에서 피를 흘리며 질질 끌려가던 개의

핏물이 고인 눈을 마주하다 깬다

앞길이 캄캄한 아기를 가진 임산부에게 자리 내주고

창문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흘러가는 것들은 뭐든 아름다운데

전철 안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거나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구름을 보지 않는다

증발하는 삶은 짧고 빠르고

계단을 내려가듯 기온이 내려가는 계절이 온다

이 가을을 잘 보내고 나면

겨울은 또 어떻게 보내나

이맘때면 어쩐지 사는 일에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전철 안 깨어 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왜 자꾸 쓸쓸해 보이는지

그럼에도 우리가 아주 지치지 않는 것은

단풍이 먼저 지쳤기 때문일까

10월이면 단풍의 아름다움에 쩔쩔매면서

잎새 물드는 것을 어쩔 줄 몰라한다

세상에 좋은 건 내 것이 아니 되지만

구름은 탐하며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구름이 하도 좋아서 왔다는 친구가 창밖에서

단풍잎 같은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시월, 이 비 그치면

안재식

 

인륜(人倫)에 야박한 사람을 멀리

하라는 선생의 말씀을 찾아갑니다

다산초당 오르는 뿌리의 길은

낯선 바람이 길을 물어도

뿌리칠 만큼 시름이 깊습니다

 

고요에 묻힌 초당에 홀로 앉아

달빛을 마중하려 하늘을 보니

그 달이 비에 젖어 형상이 없습니다

만덕산 차나무에 흐르는 비ㅅ물도

알고 보면 선생의, 아니 나의 눈물입니다

 

인연은 물결이라는데

시월, 이 비 그치면 시름이 멈출까요

굴러가는 바람 따라

굽이돌며 흘러온 내 인생길에

다시 얹는 섶다리

 

 

 

10월 예찬

양광모

 

생에는

서성거려도

좋을 때가 가끔 있지

 

10월은

늘 그렇다네

 

 

 

시월이 되면

염경희

 

가을 향기 코끝을 스칠 때마다

귀에 익은 웃음소리가 까르르 굴러와

무릎 베고 누워 말그레 바라본다

 

살기 바빠서

삶의 언저리에 그리움만 동여매고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수많은 추억은 쏟아지는데

정작 잡아보면 형체 없는 동그라미 뿐

 

어쩌다 눈썹달에 달무리가 지고

성급히 떨어져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면

눈망울에도 방울방울 물방울만 고인다

 

시월이 되면 왠지 더 스산하고

외로움은 갈피 갈피마다 차곡차곡 쌓여만 가니

세상만사 훌훌 털어내고 정처 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10월의 가을

오길원

 

10월은 상달,

마음을 비우고 채우기 좋은 달

잠든 기억을 깨우며

겹겹이 쌓인 낙엽 위를 걸으면

단풍은 가슴을 물들인다

10월이 태운 가을,

산과 들에서

너와 나의 가슴속에서

풀벌레는 오늘의 끝에 매달려

애잔하게 울고

새들은 낯선 내일을 마중하려

하늘 높이 난다

미운 가을 햇살로

채우지 못한 가슴의 빈 뜰에

그리움을 태우면

풀꽃처럼 사는 사람은

누구나 가을을 타는 시인이라

낭만의 숲길 따라

별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10월을 노래하리라

잊혀지는

청춘의 꿈은 아프고

잠들지 못한 10월의 마지막 밤이

그리워질 테니

 

 

 

10월 잔디에 누워

오남일

 

시간이 익어 가을이 되고

사랑이 익어 눈물이 된다

 

파아란 하늘만큼

지나온 시간은 푸르고

 

눈물은 흐르고 흘러

영롱한 진주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푸르고 맑아서

한평생 그대를 품고 살기로 했다.

 

 

 

혼자서 걷는 시월에

오남일

 

꽃 길을 걷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절은......,

 

아침 햇살이 기지개를 펴면

째깍째깍 힘겹게 하루가 안겨온다.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만 사랑한것이 아니나

종일 허한 마음으로 시간을 떠돌다.

 

그리움을 품은 마음만

노을빛에 익어 저녁 하늘에 걸린다.

 

 

 

10월 잎새

오보영

 

낙엽 되어

떨어진다고

 

너무 서글퍼 하지 말거라

 

그간 너는

널 맺게 해준 나무를 위해서

나무 있게 해준 숲을 위해서

 

네가 너로서

지켜야할 본분

하여야할 도리를

 

할 만큼 하며 살아 왔단다

 

지난 세월

강풍이 불어와도

폭우가 쏟아져 내려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할 바를 다하였으니

 

이제는 편안한 맘으로

귀한 소명 감당 하거라

 

널 필요로 하는

땅에게로 가서

 

기름진 밑거름이 되어 주거라

 

 

 

10

오세영

 

무언가 잃어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데

돌아보면 문득 나홀로 남아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 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데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여 네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가을

오세영

 

우리 모두

시월(十月)의 능금이 되게 하소서.

사과알에 찰찰 넘치는 햇살이

그 햇살로 출렁대는 아아 남국의 바람.

어머니 입김 같은 바람이게 하옵소서,

여름내 근면했던 원정(園丁)

빈 가슴에 낙엽을 받으면서, 짐을 꾸리고

우리의 가련한 소망이 능금처럼

익어갈 때,

겨울은 숲속에서 꿈을 헐벗고 있습니다.

어둡고 긴 밤을 위하여

어머니는 자장가를 배우고

우리들은 영혼의 복도에서 등불을 켜드는 시간,

싱그런 한 알의 능금을 깨물면

한 모금, 투명한 진리가, 아아

목숨을 적시는 은총의 가을,

시월(十月)에는 우리 모두

능금이 되게 하소서

능금알에 찰찰 넘치는

햇살이 되게 하소서

 

 

 

그대 올 것 같은 시월

오애숙

 

그대 올 것 같은 시월

그대 위해 무엇 하리

오곡백화 풍성한 들녘

다암뿍 가슴에 안고서

 

그대 오는길 그길 위에

밤안개 자욱 덮일까 봐

가을 향기로 가슴속에

등불 밝히어 맞으리니

 

소슬바람 찬바람 안고

밤이슬 맞고 올지라도

사랑으로 덥혀낸 마음

그대 향해 쏟아부르리

 

내 그대

휘파람 불며

시월 속에 오소서

 

 

 

시월

오정방

 

가을은 쓸쓸하나

시월은 슬프잖고

 

가을은 외로우나

시월은 고독찮네

 

루루루

풍성한 시월

노래하며 보낼래

 

 

 

10

용혜원

 

가을처럼 긴 여운을 남기는

계절은 없습니다 가을은 고달픈 이들에게

마음의 쉼터를 만들어 줍니다

가을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열매 속에는 여름 햇살의 사랑 노래가 가득합니다

꽃피는 봄과 찬란했던 여름

열매로 가득한 가을 모두 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일한 만큼의 행복을 갖고 나누는

당당하고 멋들어진 자연의 이치를 배우고 있습니다

떠나기 위하여 가을 나무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온몸을 물들입니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나무 잎새들의 마음이

감동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쏘았을까, 10월 심장을

원영래

 

누가 10월 심장을 쏘았기에

첩첩 산마다 선혈 낭자할까

골골 들녘마다 억새강이 흐를까.

내 안 뜨겁게 달구던 피도 흘러나가

가슴 저며 시려 오는 걸까.

 

 

 

10월 창호문

유안진

 

찬 서리 내린다는

상강도 지났는가

어느덧 우리 사랑은

창호문의 꽃무늬

 

대장부 천금 목청

대닢으로 푸르러 있고

그 옆에 향기 높아

국화는 나의 뜻

 

절반은 고전이요

나머지는 현대이나

아직도 한 채의 한옥 같은 내 사랑아

이제부터 불빛이

긴 밤을 지킬지니

 

낙엽 같은 맨발로

홀연 돌아오는 밤도

창호문 바른 솜씨 보아서 아시리.

 

 

 

시월의 마지막 밤에

유응교

 

노을진 창가에

노랗게 물든 낙엽을 헤치고

고달픈 내 영혼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그대여!

시월의 마지막 밤에

옷자락 길게 끌며

내게로 오라.

낙엽은 언제나

떠남과 이별의 상징이지만

푸르른 영혼을

다시 기대할 수 있기에

내게는 큰 위로가 되리니...

 

달빛 차게 내린

초저녁 가을바람 헤치고

외로운 내 가슴에

따뜻한 손을 내밀며

그대여!

 

시월의 마지막 밤에

와인잔에 어울리는

달빛과 함께

내게로 오라.

달빛은 언제나

슬픔과 고독의 표상이지만

그대의 따뜻한 미소 앞에선

일렁이는 사랑의 불꽃이니까

 

옛 추억 어려 있는

어두운 밤마다

잔물결 헤치고

함께 노저어

환상의 섬으로 가기 위하여

그대여!

시월의 마지막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내게로 오라.

물결은 흘러 쉼 없이 가고

우리 사랑도

기약 없이 흐르고 말았지만

그 사랑 지금쯤 저 섬에 머물러 있으리니

시월이 가지 전에

그대여 어서 오라.

 

 

 

북방(北方) 10()

유치환

 

이곳 시월은 벌서 죽음의 계절의 시초리뇨

까마귀는 성귀에 모여들 근심하고

다시 천일(天日)도 볼 수 없는 한 장 납빛 하늘은

황막한 광야를 철책(鐵柵)인 양 눌러 막아

아아 북방 이 거대한 울암(鬱暗)의 의지는

창부인 양 허무를 안고 나누었나니

내 스스로 여기에다 버리려는 고독한 사유도

이렇게 적고 찾을 길 없음이여

호을로 허물어진 성터에 서건대

삭풍에 남은 고량(高梁)대만

갈 데 없는 감정인 양 못 견디어 울고

한 떼 기마의 흙빛 병정 있어

인력이 아닌 듯

묵묵히 서쪽 벌 끝으로 향하여 달려가도다

 

 

 

10월 아침에

윤보영

 

10월이 되었습니다.

10월을 기다렸던 사람도 있을 테고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나처럼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당당하게 10월을 맞이하고

10월의 주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10

지금부터 내 10월을

나를 위한 10월로 만들겠습니다.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낙엽 보이는 창가에 앉아

부드러운 커피도 마시면서

내 안에 찾아온 10월을

즐기면서 보내겠습니다.

생각 한번 바꾸었는데

쓸쓸한 표정 짓던 10월이

꽃다발 같은 미소로 다가섭니다.

"그래, 10!

우리 한 번 잘해보자!"

꽃밭 같은 마음 내밀고

10월을 맞이합니다.

 

 

 

10월 제천역

이경미

 

나란히 마주한 철길 위로

바짓단 끌며

가을바람이 플랫 홈을 들어서고 있다.

 

소백산 골짜기에 쏟아지던 별무리와

내통하던 구절초

 

의림지 품에 안겨 밤새 기타줄 퉁기며

노래집 들추던 코스모스

 

주섬주섬 가을 한 뭉텅이

챙겨 승차하면

 

빈 플랫 홈에는 빨갛게 물든

사과나무 한 그루

 

그렁그렁한 눈으로 오래오래 서 있다.

 

 

 

시월

이기철

 

'시월'하고 부르면 내 입술에선 휘파람 소리가 난다

유행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맨드라미들이

떼를 지어 대문 밖에 몰려와 있다

쓸쓸한 것과 쓰라린 것과 서러운 것과 슬픈 것의 구별이 안 된다

그리운 것과 그립지 않은 것과 그리움을 떠난 것의 분간이 안 된다

누구나를 붙들고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이마에 단풍잎처럼 날아와 앉는다

연록을 밟을 때 햇빛은 가장 즐거웠을 것이다

원작자를 모르는 시를 읽고 작곡가를 모르는 음악을 들으며

나무처럼 단순하게 푸르렀다가 단순하게 붉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요한 생들은 다 죽음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다녀올 수 있으면 죽음이란 얼마나 향기로운 여행이냐

삭제된 악보같이 낙엽이 진다

이미 죽음을 알아버린 나뭇잎이 내 구두를 덮는다

시월은 이별의 무늬를 받아 시 쓰기 좋은 시간이다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이기철

 

시월의 맑고 쓸쓸한 아침들이 풀밭 위에 내려와 있다

풀들은 어디에도 아침에 밟힌 흔적이 없다

지난밤이 넓은 옷을 벗어 어디에 걸어놓았는지

가볍고 경쾌한 햇빛만이 새의 부리처럼 쏟아진다

 

언제나 단풍은 예감을 앞질러 온다

누가 푸름이 저 단풍에게 자리를 사양했다고 하겠는가

뜨거운 것들은 본래 붉은 것이다

여읜 줄기들이 다 못 다독거린 제 삶을 안고

낙엽 위에 눕는다

낙엽만큼 쓸쓸한 생을 가슴으로 들으려는 것이다

 

욕망을 버린 나뭇잎들이 몸을 포개는 기슭은

슬프고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흘러가 버릴 것들,

부서질 것들만 그리워해야 한다

이제 나무들이 푸른 이파리들을 내려놓고

휴식에 들 때이다

새들과 들쥐들이야 몇 개의 곡식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망각만큼 편안한 것은 없다

기억은 밀폐된 곳일수록 조밀해진다

이제 가을바람이 남겨놓은 것들만이

내 것이다

 

시월은 또 작년의 그 자리에서

오래 참으며 나를 기다릴 것이다

 

 

 

시월의 사유

이기철

 

텅 빈 자리가 그리워 낙엽들은 쏟아져 내린다

극한을 견디려면 나무들은 제 껍질을 튼튼히 쌓아야 한다

저마다 최후의 생을 간직하고 싶어 나뭇잎들은

흙을 향하여 떨어진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부분을 기억하려고 나무를 만진다

차가움에서 따스함으로 다가오는 나무들

모든 감각들은 너무 향기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엽록일까 물관일까, 향기를 버리지 않으면 나무들은 삭풍을 이기지 못한다

어두워야 읽혀지는 가을의 문장들, 그 상형문자들은 난해하다

더러 덜컹거리는 문짝들도 제자리에 머물며 더 깊은 가을의 심방을 기다린다

나뭇잎들, 저렇게 생을 마구 내버릴 수 있다니, 그러니까 너희에게도 생은 무거운 것이었구나

나는 면사무소 정문으로 한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이 나뭇잎보다 더 가벼워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염소들이 지나간 길을 골라 걷는다

가벼운 것들,

뽕나무잎 누에고치 거미줄 잠자리 제비집 종이컵 볼펜 다 읽은 시집들

그러나 나를 짓누르는 것들, 무거운 것들

불면증 월급봉투 서문시장 팔공산 조지 부시 아프간 전쟁 매리어트 호텔 비자금

영변 경수로 대북송금 김정일 트로츠키 조정래 천리안 이회창 인천공항 유에스 달러

 

면사무소 은행나무 위에도 가을이 오고

이제 무들이 더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병든 새들과 거지들은 어서 집을 지어야 한다

이 주식의 가을에 사람들은 끝없이 회의를 하고

쫓겨난 염소처럼 나는 혼자 면사무소 옆길을 걷는다

나뭇잎은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다

은행나무가 그렇듯이. 염소가 그렇듯이

 

 

 

붉은 시월

이대흠

 

남들은 허리 구부러진다는 일흔 문턱에

어머니

무릎까지 뻣뻣하지요

높은 산 조상들 무덤 끝에서

걸어 내려온 단풍들

함께 먼 길 가자고 떠나가자고

손을 내미는 시월

관절염 신경통에 다리 굽히지 못하는 어머니

하늘 몹시 찌푸린 날이면

어기적어기적 측간에 가서

반쯤 서서 똥을 누지요

 

 

 

시월

이문재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 정점에서

중력에 졌으리라, 서슴없이 가벼워졌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자욱하다, 보이지 않는 중력

 

 

 

시월에는

이민영

 

태우다 만 낙엽의 가슴에 붉은 멍이 인다

읽어놓은 책장의 페이지가 바람의 옷을 잡고 서성이면

삶의 꽃들이 모여 들을 이루고

가을의 미래가 과거와 현재를 다독이며 파삭파삭한 희망을 건다

그래서 시월에는 어머니 그 어머님적 밭이랑에서 핑갱 달린 소를 몰고

발대 지게 진 아버지 뒤를 따르던

아버지 시절이 되어본다.

미리, ()밭에는 뿌리의 겨울날을 쓰다듬는

호미의 그렁그렁한 눈물이 떨어진다.

가을은 가지 못하고

시월 안에서 잠을 잔다.

그가 봄, 여름이라고 써 놓은 하늘 아래서

비나리를 즐긴다는 것은 씨알이 되고자 하는 계절의 흔들림이 아니던가

파문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적이 되는 것이다.

 

 

 

시월의 사흘

이선이

 

겸허한 새벽이 너에게로부터 왔다

마당의 감나무 첫 잎이 질 무렵

수많은 잎사귀들이 죽음에 무심한 동안

삶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올 것이 왔구나하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생에 무엇이 올 것인지

혹은 무엇이 오지 않을 것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와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다

말없이 내 망막에 어린 슬픔을 향해

너는 돌맹이 하나 물수제비 날리고 갔다. 나는

자서전이나 인생록을 탐독하는 인간은 아니다

묘비에 새길 글귀에 골몰하는 시인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시월의 사흘은 너의 부음을 타고 와

야윈 손가락으로 내 눈을 찌르며

설익은 푸른 감 하나를 떨구고 돌아선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땅 위를 구르는 열매, 그 소리는

세상의 낮은 담벼락에 부딪혀

조용히 김잎사귀들을 말아 올린다

가을새벽의 부음은

내 생의 어는 굽이에 오지 않을 수도,

올 수도 있다

다만

서른 여섯의 부음은 너무 이르고 낯설다

 

 

 

10월의 가을 아침

이세종

 

새벽이슬 한 방울 한 잎 모아서

어둠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새벽 별과 함께

10월의 첫날 향기 곱게 옷을 입은

국화잎을 따서 차를 우려 봅니다.

 

그윽하게 허공을 가르며 피어오르는 국화 향기

별빛은 살포시 미소 머금은 차를 따르고

나는 고운 향기를 가슴 깊이 담으며

마음은 찻물로 몸을 적시고

잔잔하게 흐르는 Ralf Bach에 건반 위 고운 손길은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찻잔 속에서 10월의 가을 아침이 어우러지고

창문을 두드리는 노란 옷 갈아입은 단풍잎은

가을 국화 향기에 서서히 물들여 지면서

기다리던 그리운 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새벽에

이시영

 

시월은 귀뚜라미의 허리가 가늘어지는 계절

밤새워 등성이를 넘어온 달은 그것을 안다

 

 

 

시월

이시영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 밤에도 강물 잔잔히 굽어 흐르고

 

별들은 머나먼 성하(星河)로 가 반짝인다.

 

 

 

10

이외수

 

이제는 마른 잎 한 장조차 보여 드리지 못합니다

버릴수록 아름다운 이치나 가르쳐 드릴까요

기러기 떼 울음 지우고 떠나간 초겨울

서쪽 하늘

날마다 시린 뼈를 엮어서 그물이나 던집니다

보이시나요

얼음 칼로 베어낸 부처님 눈썹 하나

 

 

 

10월의 약속

이원문

 

찔레꽃의 그 봄도

봉숭아의 여름도

언제였던 세월인 듯

시월의 이 가을 무엇을 약속 하나

 

산과 들 높은 하늘

단풍에 새털 구름

곡식에 풀숲의 씨앗

누구를 위해 맺고 익혀야 했었고

 

시간에 움추리고

세월에 주눅드니

늦 가을 바람 쓸쓸히

이 마음 빼앗아 어디로 데려간다

 

 

 

10월의 시

이재호

 

왜 그런지 모르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가을비는 싫다.

새파랗게 달빛이라도 쏟아지면

나는 쓸쓸한 느낌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낙엽이 떨어진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또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허전하기만 한 것은

군밤이나 은행을 굽는 냄새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얼마나 가난한가.

나는 왜 살부빔이 그리운가.

사랑이란 말은

왜 나에게 따뜻하지 않은가.

바람이 분다.

춥다.

옷깃을 여민다.

내 등 뒤에는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울음처럼 들린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10월의 시

이정순

 

달빛 쏟아지는 가을밤에

나는 왜 이리 슬쓸할까요

 

바람에 낙엽이 뚝뚝 떨어져

공원 벤치를 덮어 버립니다

 

밝은 달빛에 그 옛날 추억이

살그머니 뇌리를 스치는 군요

 

! 가을은 슬픔이었나

내 가슴을 파고드는 그리움하나

 

영원히 잊쳐 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10월이 떠나갑니다

이정순

 

화려하고

곱게 물든 가을

10월이 가고 있습니다

 

달콤한

사랑과 설렘의 가을을

가슴에 안은 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10월을 이렇게 보내고

곱게 물든 잎새에

10월의 편지를 쓰겠다.

 

 

 

10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운명이란 걸 믿지 않았기에

인연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영원을 알 수 없었기에

순간으로 접었습니다

 

스치는 바람인 줄 알았기에

잡으려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머문다는 것 또한

떠난 후에 남겨질 아픔인 줄 알았기에

한시도 가슴에 담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숨바꼭질하듯

그대가 나를 찾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10월의 거리로 가겠습니다

꿈을 꾸듯

그대를 부르며 달려가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슴을 활짝 열고

가을숲 그대 품에서

10월의 사랑을 꿈꾸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말입니다

 

 

 

10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이채

 

가을밤 청청한 소나무를 타고

우물 속으로 떨어진 달이 처연히도 빛나노라

긴 두레박을 내려 그 모습 길어 올리면

나뭇가지에 걸려버리는 내 하얀 목선

 

묵언의 몸짓으로 혼자 감당해야 할

아침까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겨울로 가는 달빛의 슬픔이 한층 차가워지는 만큼

그만큼의 긴 고뇌를 10월의 달과 함께 견뎌내고 싶은 것일까

우물가에 기대어 달과 나의 시차를 극복하고

이슬 한 방울로 만나고 싶은 꿈의 안부를 묻는 중이다

 

매일매일 신이 내게 던진 주문을 읽으며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지만

기적을 바라지 않기에

애당초 기적 같은 건 없는 거라고

오래 비워둔 내 방의 꽃병에

푸른 달빛을 채우며 꽃을 꽂는다. 그리고

역사는 내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라고 혼자 중얼거리지

 

하늘의 달이 지상의 달이 될 때

나의 고백은 서늘해질 수밖에 없지만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내 하얀 목선 같은 달빛이여!

내일이 가는 길과 그 길의 바람의 온도를 묻고 싶을 뿐이다

 

 

 

중년의 가슴에 10월이 오면

이채

 

내 인생에도 곧 10월이 오겠지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드높은 하늘처럼

황금빛 들녘처럼

나 그렇게 평화롭고 넉넉할 수 있을까

 

쌓은 덕이 있고

깨달은 뜻이 있다면

마땅히 어른 대접을 받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속절없이 나이만 먹은

한낱 늙은이에 불과하겠지

 

스스로를 충고하고

스스로를 가르치는

내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면

갈고 닦은 연륜의 지혜로

내가 나를 지배할 수 있다면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모든 푸른 잎은 떠나가도

나무는 살아있듯

모든 젊음은 떠나가도

내 안에 더 깊은 나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곧 10월이 오겠지

그때 나는 어떤 빛깔일까

빨간 단풍잎일까

노란 은행잎일까

이 가을처럼 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한 줌의 시월

이해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문을 열면 고요가 발등에 얹힌다

빈부의 격차는 이곳까지 따라 왔다

옥단지 백단지가 차지한 층층마다 가격도 천차만별

서둘러 예약한 눈높이 로열층은 자리가 없다

주검보다 먼저 달려온 이름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주저앉아야 눈이 마주치지 않는 204

휴대폰 안경 시계 열쇠가 진열되어 있다

배터리가 방전된 소통불능의 세상에 한 사내가 입주했다

고인의 손목시계가 맥박처럼 뛰고 있다

 

201110192주기

조화에 달린 글씨가 기우뚱 중심을 잃었다

무슨 급한 소식일까

우표도 소인도 없이 지름길로 달려온 두툼한 편지 한 통

문틈에 끼어 말이 없다

 

웃음소리 하얗게 밀봉된 건장한 남자 앞에

숨죽인 울음이 그의 집을 노크한다

늦은 햇살이 조문객처럼 뒤꿈치를 들고 다녀간다

 

 

 

10월 편지 대모님께

이해인

 

"눈은 볼수록 만족치 않고

귀는 들을수록 부족을 느낀다"

책 속의 말을 요즘은 더 자주 기억합니다

진정

눈과 귀를 깨끗하게 지키며

절제 있는 삶을 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시대 탓을 해야 할까요

집착을 버릴수록 맑아지고

욕심을 버릴수록 자유로움을 모르지 않으면서

왜 스스로를 하찮은 것에 옭아매는지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하려고 하는지

오늘은 숲속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처럼 단순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저도 그분의 흰 구름이 되도록

꼭 기도해주십시오, 대모님

 

 

 

10월의 기도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 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 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게 하시고

조금 넉넉한 인심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 주소서

 

 

 

10월의 시

이해인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 날도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도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 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한점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 일지라도

자꾸 갈아 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 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 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 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 준 그 한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10월의 엽서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주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

 

 

 

시월 이야기

이향지

 

만삭의 달이

소나무 가지에서 내려와

벽돌집 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조금만 더 뒤로 젖혀지면

계수나무를 낳을 것 같습니다

계수나무는 이 가난한 달을

엄마 삼기로 하였습니다

무거운 배를 소나무 가지에 내려놓고

모로 누운 달에게

˝엄마˝

라고 불러봅니다

달의 머리가 발뒤꿈치까지 젖혀지는 순간이 왔습니다

아가야아가야 부르는 소리

골목을 거슬러 오릅니다

벽돌집 모퉁이가 대낮 같습니다

 

 

 

시월

임보

 

모든

돌아가는 것들의

눈물을

감추기 위해

산은

너무 고운

빛깔로

덫을 내리고

모든

남아 있는 것들의

발성(發聲)을 위해

나는

깊고 푸른

허공에

화살을 올리다

 

 

 

시월

임숙희

 

10이란 숫자를 바라봅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그날이 그날 같은 시월이

가을을 선물했습니다

한여름 소낙비 같은 기다림으로

뜨거운 태양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시월입니다

하늘만 봐도 괜스레 뭉클해지고

소슬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은

뙤약볕에 그늘을 찾아 움츠렸던

내 안에 감성을 숨 쉬게 하는

사색의 시월인 것입니다

땀이 배어있는 황금 들녘에

가득히 차오르는 포만감을 안겨주는

감사의 시월입니다

길가에 한들거리는 들꽃과 같이

바람과 노니는 갈대와 같이

철없이 피어있는 장미의 열정으로

가을을 물들이며

지는 해를 맞이하는 시월입니다

지친 어깨 위에 따스한 가을볕이

아낌없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시월이라 합니다.

 

 

 

시월의 아름다운 행진곡

임영석

 

나목 잎새 물감 터치

곱게 그려가는 시월의 미학

천사의 쪽빛 높아가는 저 하늘빛

 

시월의 아름다운 날

새벽이슬 반짝이는 보석함

알알이 빛나는 초롱초롱 은구슬

 

시월 가을빛 행진곡

풀잎마다 옥구슬 방울방울

자연 가을 길 출발 10월 작품 전

 

시월의 금빛 화려함

가을빛 물들이는 산과 들

눈부신 햇살 아름다움 연출가

 

깊어 가는 시월의 길

가을빛 찬바람 흔들흔들

나풀나풀 날려 쌓이는 낙엽길

 

 

 

10

임영준

 

혹시

다 마셔 버렸나요

빈 잔을 앞에 두고

후회하고 있나요

옆구리가 시리고

뼈마디가 아린가요

차분히 지켜보세요

저 깊은 하늘소()에서

붉은 술이 방울져 내릴 겁니다

다시 잔을 가득 채웁시다

그리고 남은 날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10월의 별

임영준

 

이쯤 되면

돌아보고

더듬기만 해도

안도할 수 있고

뭉클거려야 하는데

 

그나마

공허한 일상이

때론 길이 되고

벽이 되어

얼추 채워진 10

 

그래도

아득한 밤하늘이

저 별의 눈길로

성큼 가까워진 건

맞지

 

 

 

10월의 시

임영준

 

이쯤 되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야합니다

가당찮은 욕망만 좇다

보석 같은 시간을 대충

흘려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서늘한 10월의 죽비가

비워야 한다고

벗어버려야 한다고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또 미망에 잠겨 한참을

얼어붙고 말았을 겁니다

게다가 잃어버릴 것이 없다고

털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연한 잎새들까지 되새겨주지만

숙성의 바람을 품고

안도의 달빛 속에서

적당히 웅크리기도 좋으니

제아무리 숨가쁜 길손이라도

잠시 다 내려놓고

조금만 쉬었다 가시지요

 

 

 

시월의 마지막 날

임재화

 

그동안 이 땅에서 있었던

온갖 가슴 시렸던 사연들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서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늘 말없이 서 있는 나무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저만치서 불어오는 찬 바람에

낙엽 되어 떨어지는 듯싶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이제, 더는 이 땅에서

가슴 아픈 사연은 몽땅

바람 따라서 날려버리고

십일월을 시작하면서

슬픔이 넘쳐 흐르던 이 땅에

날마다 좋은 일만 있으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시월

임정현

 

햇살이 저렇게 눈부신 날엔

내 방이 누구에게 엿보이나 보다.

꿈이 길고 자주 깨어 뒤척이는 밤

누가 내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억새풀 채머리 흔드는 지금

누가 맨발로 오고 있나 보다.

 

한 사흘 벌써부터

산은

울듯한 얼굴

도대체 말은 없이

얼굴만 붉어

밤은 꿈이 길고

마음이 산란히 흔들리나 보다.

 

 

 

시월의 마지막 밤

임종봉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만성절을 축하하는 핼러윈 행렬이

비탈진 좁은 골목길로 몰려들 때

악령들이 기다린 듯 반기며 달려듭니다

 

두려움 가득 찬 숨결에 터져 나온 비명은

밀어! 밀어! 뒤로! 뒤로! 함성에 흔들려

물결처럼 출렁이며 떠밀리다가

도미노처럼 쓰러져 블랙홀에 빠져듭니다

 

뒤엉킨 팔다리는 천근의 무게에 짓눌리고

점점 옥죄는 가슴은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꺼져가는 생명의 울부짖음이

이태원 거리에 가득 절규로 메아리칩니다

 

사방으로 뻗친 손길이 깨어나라 두드리지만

이미 지나간 골든타임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향기 잃은 꽃송이엔 어둠만 짙어가고

가족들은 비수에 찔린 듯 주저앉고 맙니다

어지러운 바닥에 나뒹구는 휴대폰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처 못다 한 말들이

채 마르지 못한 눈물로 젖어 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수만 송이 국화꽃이 피어난 이태원 하늘 아래

별이 된 꽃들이 슬픔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10월의 기도

작자 미상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 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시월

장석남

 

홑것차림의 이런 말소리도 들려오는 것이다.

"단풍 들어"

"단풍이 들어"

이제는 띄엄띄엄 말도 놓는 사이가 되어

청색시대를 살러 오는 새털구름에게

나는 또 이런 응답을 놓아본다

 

그 근면으로

내 눈과 귀의 단추 좀 풀어다오

내 혀는 네가 주는 노래로 반짝일 테야

 

서녘 바람에 해바라기가

거짓을 쏘다보던 눈과도 익어가고 있다

 

 

 

10

장석주

 

1

10월이야,

누군가 귓가에 가만히 속삭인다.

해 저문 뒤

저 혼자 모래성을 쌓다가 허물고 다시 쌓던

아이마저 돌아가면

비로소 바다는 저 혼자 남아 저문다.

날아 가버린 물새 떼의 발자국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파도는 추억 많은 여자처럼

저 혼자 영원히 반복하는 뒤척거림을 한다.

나이 들어 잠 못 드는 밤이 부쩍 많아진다.

 

2

세상의 어떤 문들은

끝내 열려진 채로 있고

세상의 어떤 문들은

한번 닫힌 뒤엔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어떤 편지들은 씌어지지 않은 채

부쳐지고

어떤 편지들은 수취인(受取人) 불명으로 되돌아온다.

 

3

눈먼 비들이 발목 시렵다고

허공에서 캄캄히 소리친다.

가랑잎 밟으며 가는 눈먼 비의 뒷모습을 쫓다가 그만둔다.

부질없다, 부질없다,

古城의 오래된 벽에 자라는 푸른 이끼들은

그것이 오랜 持病과 같은 슬픔이라 한들

난 어쩌지 못한다.

헐값에 장기 임대받았던

많은 계절들이여,

10월에는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마른 채 손끝에서 부서져 내리는

지난해의 꽃잎 냄새를 맡는다.

 

4

10월이야,

누군가 귓가에 가만히 속삭인다.

오늘 슬픔의 미결수가 되어

또 한 계절을 떠나보낸다.

 

 

 

시월의 마지막 날

장영길

 

뿌리로 돌아가라고

낮은 곳으로 떨쳐내고

빈 가지 사이로

매몰차게 돌아가는

그대의 향기를

붙잡을 수 없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시월의 마지막 날

미련하게 내리는 비는

상처 난 고독으로 흔들리고

놓고 간 그리움은

가느다랗고 긴 마음에

애처롭게 매달린다.

 

 

 

시월

장화순

 

시월의 아름답고도 처연한 사랑을

고운 꽃바구니로 엮어 그대에게 보내겠습니다.

 

바구니에 청명한 가을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을 담고

가을 바다 아침 윤슬도 담겠습니다.

 

고향 하늘가 기러기 울음소리도 담고

신작로 코스모스 상냥하고 해맑은 웃음도 담겠습니다.

 

시월의 쓸쓸한 가슴이 갈망하는 불꽃처럼 피어날

가슴속 큐피드 사랑도 함께 담겠습니다.

 

바구니에 온화하고 온유함도 담아 그대 창가에 걸어 놓아

시월을 닮은 그 눈빛 훔치고 그 마음도 훔치겠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환하게 웃는 날 그대를 좋아한다. 말하겠습니다.

 

 

 

시월

전동균

 

백련산 밑 공터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갈참나무 숲으로 사라지는 길

 

숲길은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다

저물녘이면 울음을 참듯

고개 숙인 나무들 아래

묵언 수행하는 스님들의 그림자만

흐릿하게 비쳐올 뿐

 

오늘처럼

그 길 앞에 서성이다 서성이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는 날

 

밤늦도록 나는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를 받아주던 어떤 손을 생각하며

홈통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에도

소주잔을 건네는 것이다

 

 

 

그해 시월

전병조

 

파란 하늘에

차가운 낮달 떠 있고

구름이 물살에 밀리는

수초처럼 나부끼는데

 

바람은 없다

그해 시월

먼 산 노루들도

계절의 예감을 타고

한 번쯤

고향 생각했을까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전상숙

 

운무로 가려진 창문에

맑은 햇살 되어 비친 실루엣

 

들꽃 같은 순수한

풀 내음 전해오는 그녀의

소박한 웃음소리

연밥처럼 구수한 내음으로

삶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주며

빗질해줍니다

 

갈 잎 하나 떨어진

나뭇잎 사이로 막혔던 물고랑

터져 마음과 마음 교류하기에

바쁩니다

 

인연 따라 발 길 멈췄던 길상사

 

무소유의 가르침에 따라

정갈하게 마음 비우고 귀의합니다

 

나뭇잎 타는 향기

가슴으로 느끼며

벚꽃 소녀 되어 웃음 자아냈던

그녀의 넉넉한 심연

붉게 노을 진 구기자

길가에 앉아 시간을 잊어버리고

한 잎 두 잎 땄던 사랑

시월의 어느 멋진 가을 날

동행길에서

 

 

 

시월의 언덕

전영금

 

가을비 오는

시월의 마지막 밤

가는 세월 앞에

강산은 벌겋게 울었다

 

들국화 산장에

하얗게 무서리 온 자리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단풍잎

 

제 몸 하나 버티지 못하고

노랗게 떨어지는 시월의 언덕에

가을밤이 깊어간다.

 

 

 

시월애

정복훈

 

기온이 하강하면서

단풍이 남하하고 있다

이맘때 즈음

내장산 아름다워지리

양미나 아름다워지리

물들어가는 단풍잎처럼

그대 살짝 예뻐지리라

 

 

 

시월 서정

정세훈

 

다시, 노랗게 단풍이 든 은행나무 가로수야

 

나는 며칠 전 추석 명절을 맞이해

고향마을 선산을 찾아 성묘를 하고

다시, 이렇게 서울로 돌아왔단다

 

홀로 지내던 팔순 노인 상수 할아버지

지난겨울 문상 길에 낙상하여

객사한 개울가를 지나서

장가 못간 지천명의 나이 민구가

지난봄에 목을 맨 산모퉁이를 지나서

지난여름 공장에서 돌연사를 한

마흔 한 살 석민이 고향집 마당을 지나서

다 익은 벼 포기를 뿌리째 갈아 엎어버린

논배미를 어기어기 지나서

 

 

 

시월 비

정소슬

 

우수수

지는 낙엽은

나무의 한쪽 밑동에만

쌓이고

 

- -

떨구는 빗방울은

내 한쪽 가슴만

적시 운다

 

 

 

10월의 노래

정연복

 

새록새록

깊어 가는 계절 따라

 

나의 가슴속

사랑도 깊어져야 하리.

 

고운 단풍 물드는

나뭇잎같이

 

나의 생도 순한

빛깔로 물들어야 하리.

 

저 맑고 푸른 하늘

마음에 담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야 하리.

 

 

 

10월의 장미

정연복

 

시뻘건

불덩이로

 

하늘로

용솟음치는

 

10월의

장미여.

 

네 불꽃 정열

불꽃 사랑을

 

내 가슴속에도

오롯이 담아

 

10월 한 달을

살아보리라

 

 

 

시월의 노래

정연복

 

꽃 피고 지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모든 날이

기쁘고 감사하지만

 

10월의 하루하루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

차츰 단풍 물드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내 작은 가슴도

고운 빛으로 물들어가고

높푸른 하늘 우러러

마음은 겸손히 평안하다.

 

거저 받은 목숨이니

아무런 자랑도 교만도 없이

인생길 소풍 가듯

즐거이 걸어가다가

이 몸 또한

한 잎 낙엽 되면 그뿐인걸.

 

 

 

시월의 다짐

정연복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가리

 

산들바람에 춤추는

코스모스 따라

 

나의 몸도

나의 마음도

가벼이 춤추리

 

한 세상 거닐다 가는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인생은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한 것

 

코스모스의 명랑함으로

즐거이 사랑하며 살아가리

 

 

 

10월에는

정연화

 

코발트빛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이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눈부신 가을 햇살처럼

따뜻한 가슴이고 싶습니다

 

10월에는

 

길섶에 핀 들국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아련한 그리움 하나 품고 싶습니다

 

10월에는

 

단 한 사람 누군가 있어

잠 못 이루는 밤이어도

 

가을

가을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겠습니다

 

 

 

시월에는

정연희

 

단풍잎이 흩날리는

조금은 쓸쓸해지는 날

꿈꾸고 싶은 그대와 함께

낙엽이 지는 소리 듣고 싶습니다

 

곱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만추의 향기 고독해지면

감미로운 심장소리 들으며

그대 마음 갖고 싶습니다

 

온 세상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시월에는

먼훗날 당신이 그리워질 날

고운색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한잎 두잎 낙엽이 떨어지는

시월에는

맑은 영혼의 소리를 들으며

시인의 가슴을 울리고 싶습니다

 

 

 

시월애()

정태중

 

청명한 하늘이

바다 위에 누워

수평선 끝에서 하나가 되듯

시월에는 사랑을 하고 싶다

 

바람에 나부끼는

은빛 갈대의 순정

흔들리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혹여

그대가 바람이라면

잔잔한 물결 어루만저 주고

나는 그대 안에서 일렁이는 파도이고 싶다

 

문득

돌아보는 길에

가을이 저만큼 가버린다 해도

시월에는 붉은 노을처럼 사랑을 하고 싶다.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데로 떨어지는 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 숲에서

조선윤

 

산 그림자 깊은 수면에

갈 내음 짙어지고

사각사각 낙엽 밟으며

올려다 본 하늘가엔

그리움이 가득하다

 

들려오는 풀벌레 울음소리

허허로운 기다림만 부려놓고

침묵으로 불러보는

애틋함이여 !

 

드높은 창공엔

빈 그리움으로 흩어지고

앙상하게 말라버린 영혼

홀로 선 외로움이

이슬 되어 내리는데

 

소슬바람 살포시 내게 다가와

그리움 전해주면

시린 바람 불러들여

사랑이란 무늬로 수를 놓으니

그리움은 숲처럼 깊어라

 

 

 

시월의 엽서

주선옥

 

옥수수밭은 이미 오래전에

빈 쭉정이 고갱이까지 거두어들였고

고소한 내가 진동하는 들 깻단은

햇살 뜨거운 밭둑 아래 누웠다.

 

탱탱하게 부풀어 빨간 풍선 같은

고동 시 감이 달게 영글어

벌떼가 윙윙거리는 들국화 위로

철퍼덕 떨어져 내리고

 

약을 치지 않은 모과나무 열매는

황금 덩어리처럼 농익었으나

저 홀로 낙화법을 익혀

그 영화로운 향기마져 떼구르르

 

그 누구에게도 선물이 아닌

그냥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만물 귀 일의 법칙으로 승화해가는

시월의 모든 것은 수행의 수레바퀴다.

 

 

 

시월 비가(悲歌)

주응규

 

해와 달이 넘나드는 나들목을 막고 서서

처절히 몸부림치며 애걸해 보노라

 

까마득히 멀어져 가는 날을 잡으러

논두렁 밭두렁 삶고 지나

산 넘고 물 건너가도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는

산 설고 물 설은 외로움이여

 

흐리시 빛바래져 가는 단풍옷 입고

저무는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시월의 소슬바람이 절절히 부르는

슬프고 애잔한 노랫가락이

가슴 시리게 사무쳐와

애처로이 눈물짓노라.

 

 

 

10월이 오면

진의하

 

자연은

비우는 법을 알아

토실토실 가꾸어온 결실

미련 없이 훌훌 털어 주네.

 

허공에 놀다가는 구름자락처럼

임자가 따로 없는

세상살이의 윤회

출렁거리는 메아리의 의미는

선회하는 빈잔.

 

채우고 마시고

비우고 채우는 동안

홍안의 붉은 넋

때묻은 온갖 시련 미련 없이 털어내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10월은

비움으로 넉넉한 잔치마당이라네.

 

 

 

시월을 사랑하는 가을 나무

최갑연

 

바람 불어 좋은 날

당신을 만난다는 기쁨에

곱게 수놓은 원피스에

꽃단장을 했습니다

 

문틈 작은 틈새로

당신의 향기가 흐르고

설레는 가슴은

벌써 당신 곁에 있습니다

 

시월이면 찾아오는

듬직한 모습에 당신은

샛노란 커튼 사이로

나를 안아 입맞춤을 합니다

 

꽃이 피고 지고

태풍이 몰고 간 흔적에

멋스러운 가을 나무는

시월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시월이어서 좋다

최명운

 

시월!

누구는 시월이 쓸쓸하다는데

난 시월이라서 참 좋다

들녘 산

넉넉하고 풍성하게 가득 차지 않은가

초록빛 이파리

붉거나 노란색으로 물들어

저녁놀처럼 불거지면

거룩하고 성스러워 환희롭다

밤이슬에 눅눅히 젖으면 어떤가

바람결에 떨어지면 어떤가

일 년 절반을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지 않았던가

시월이어서 좋다

가을이라서 좋다

간절히 바랐던 그 무엇

중단할 수 있으니 가볍지 않은가

실수가 있었다면

눈감아 줄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내려놓고 비우고

빈 그릇 채우듯 기다리면 되지 않던가.

 

 

 

10월의 산보

최순호

 

안개 낀 그 길을 무작정 걸어가 봅니다.

무엇이 있을지 누가 날 기다려 줄 지

아님 기대한 누군가가 거기서 나타나 줄지

희망 섞인 열망을 가져보면서 산보를 합니다.

 

10월의 산보는 그저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그냥 걸어 가보는 것이지요

잊지 않았다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여행은 늘 사랑과 닮아 있어요.

 

만산홍엽으로 둘러싸인 휘장을 벗겨내면

맨살의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볼 수 있고

한 길 마음속까지 내보이는 10

그래서 산보를 하는 것 같아요

당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시월의 마지막 밤

최영희

 

생각에 잠긴 가을이

, 한 잎의 낙엽을 지우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한 가슴으로 돌아눕는 가을아

, 오늘 밤 네게

한 편의 시를 보내고 싶다

풀벌레 소리마저

잦아드는,

누군가 낙엽 밟는 소리도

이제는 차라리 평화롭지 않은가

어둠마저 평온한 창밖엔

고요가 내리고 있다

! 이제는 떠나는

내게서 떠나는 사랑까지도

사랑하고 싶다.

 

 

 

시월에 생각나는 사람

최원정

 

풋감 떨어진 자리에

바람이 머물면

가지 위, 고추잠자리

댕강댕강 외줄 타기 시작하고

햇살 앉은 벚나무 잎사귀

노을빛으로 가을이 익어갈 때

그리운 사람,

그 이름조차도 차마

소리 내어 불러볼 수 없는

적막의 고요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오지 못할

그 사람 생각을 하면

 

 

 

가을의 말

최하림

 

내 어머니의 대지여 시월이 돌아왔습니다

일하는 당신의 손길이 멀어진 들판 끝으로

강물은 번쩍이면서 달리고 우리도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손실로 살찌는 물길을 따라

먼 바다로 가게 됩니다

십년 후 이십 년 후 당신의 대지가 되어

타오르는 저녁 바다에 설 적에

우리는 두 손을 들고 당신의 바다를 볼 것입니다

당신의 신성을 볼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어머니의 대지여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돌아온 시월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 것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최하정

 

시월의 마지막 해가

붉게 피어난 석양과 어우러져

다시는 올 수 없는 먼 여정을 떠났다

 

붉은 노을 져 서녘으로 떠날 때

마주하며 눈빛도 안 주었는데

저무는 오늘에 감사하고

마주할 내일에 감사한다

 

가을하고 남겨진 들판에 싹둑 잘려진 벼 밑동 위엔

찬 솔가지 요란스레 바람 일고 서로 다툼하다

추위를 재촉하며 올라앉는다

 

내일이면 어김없이 새로운 동 트임으로

희망의 햇살이 비추워지길 기대하고 기다리며

달안개 품에서 마지막 밤은 조용히

그루잠에 든다.

 

 

 

10월의 마지막 날

최홍윤

 

10월의 마지막 날

온통 오색단풍으로 곱게 단장했던 설악산 대청봉,

어느새 흰 옷을 갈아입고

설평선에 눈보라 일으키며 부는 서북풍 칼바람으로

녹초가 되어 숨차게 오르는 우리를 보고 내려가라

그만 내려가시라고 다그친다.

 

지칠 줄 모르고 사랑의 밀어로 침묵하던 나무들도

더 이한 외롭지 않으니 더 오르지 말고 내려가라고

마지막 잎새에 이는 삭풍으로 손짓을 한다.

 

단지 이미 흙이 되려고 하는 낙엽이

나무들 뿌리를 감싸고 바스락거리며 배시시 웃고 있다.

 

우리 일행이

오랜 세월 숲 가꾸기와 숲 이야기(숲 해설)로 중청 산장에 머물고 있는

산 사나이 벗들과 커피잔을 나누며 쉬는 동안

중청에 자욱했던 안개를 밀어내고

산허리를 감싸며 휘날리는 눈보라.

싸락 눈보라도 숲 가꾸기, 이야기 모두가 일없으니

다들 내려가라고

가서 한 댓 달 쉬라고

진눈개비 같은 눈보라로 타이르고 있다.

 

그렇다

초록에 지쳐 물들었던 만산홍엽이

다 떨어져 벌거숭이가 된 나목들

나뭇잎이 흙이 되고 만 시월의 끝자락

텅 빈 산장에는 적막감 돌고 산등성이 넘어오는

찬 바람만 을씨년스럽다.

별수 없이, 우리도 삼동 날에는

대자연을 떠나 옹졸하게 살 수밖에 없는 나날들이다

먼 훗날 봄바람이 일 때까지

우리의 사랑

차디찬 동삼날의 인동초로 꽃 피워야겠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기에...

 

 

 

시월

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20221029일 이태원

한춘화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 몸인 골목

오도 가도 못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납작해진 사람

신발들은 발목을 잃었다

 

놀러 갔다고 죽을 것 같으면

나는 벌써 죽어

피눈물 번진 얼룩을 평생 문대며

우는 어머니가 내 어머니다

그러니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슬픔의 그림자가 짙어지면

미안하다

뼈아픈 말만 무성하다 스러지는 반복

 

미안하다란 말로 구멍을 메꾸는 일은

오래된 고질병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은 틀렸다

폐허로 스러질 때까지 누구도 고치지 않았다

 

미안하면 깨어라

다시는 다시는 청춘을 묻지 않게

 

 

 

아무것도 아닌, 1016

홍경나

 

오전 8시 미뤄왔던 건강검진을 받았고 엊저녁부터 굶어서 배가 고팠고 11시쯤 짜파게티와 토마토를 먹었고 커피를 내렸고 반에 반도 안 읽은 호모사피엔스도서관에 연장신청을 해야 했고 휴대폰이 없고 휴대폰을 찾으러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병원엘 다녀왔고

(불자동차 색깔의 스포츠카를 빌려 스파에 가고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바이칼호수 해저지구를 경유하고 순간 이동장치 에어프라이호에 몸을 싣고 월드 월드타워 월터네 집에 다녀오고)

오후 6시 건조 매생잇국을 끓이고 냉동조기를 구워 저녁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벗어논 옷가지를 세탁기에 돌리고 밤 11시 건조대에 뚤뚤 말린 후드티를 털어 널고 주머니에서 접힌 오늘 할 일을 적은 메모를 발견하고

(대출연장 신청하기 택배반품하기 지난 주 건너뛴 분리수거를 꼭 하기 새 여권을 찾으러 구청엘 다녀오기 그리고 이게 뭐였지? 귀퉁이에 갈겨쓴 )

자정이 넘었고 107동 경비실 앞에 불이 켜지고 누군가 고개를 숙인 채 뛰어나가고 고개를 숙인 누군가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스투키 스팩타빌리스 바빌리에 꽃기린 구슬얽이를 망설이고 보스톤 고사리 스파티 필름 이파리 끝이 꺼멓게 말랐고 물을 주려할 때마다 언제 물을 주었더라? 이제 물을 주어도 될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고가 끝나면 또 고가 있고, 고를 더하는 고가 있고, 삐뚜른 직선처럼 이미 정해진 것 같은 속수무책 고가 있고 바통을 든 릴레이선수처럼 달려오는 고가 있고 1016일의 고가 있고)

 

 

 

10월 어느 날

홍경임

 

10태양빛에

가득 찬 오늘

나 죽어도 좋으리

 

10비껴진 햇빛에

코스모스 흐느끼는 이 날

나 생을 마쳐도 좋으리

 

들국화 비에 젖는

10어느 날

나 본향으로 돌아가도 좋으리.

 

 

 

10월의 뜰

홍금자

 

칸나, 바이올렛

꽃들의 어지러운 웃음도

종막을 내린

이젠

불기 없는 빈방 같은

응어리진 삶이

계절의 끝에 서

밤은 내린다

 

덩치 큰 여자의 엉덩이처럼

시새움마저 사라져간

빈 뜰의 한 모퉁이에

허공처럼 남아 있는

풀잎 바람

 

쭈그러진 뱃가죽으로

헛구역질하는 임산부마냥

바람 바람에

떠밀리는 잎새들

 

그날의 화사한 웃음과 색조는

가고 없어

나는 낙엽처럼

소리 없는 절규로

가을을 보낸다.

 

 

 

시월

홍해리

 

가을 깊은 시월이면

싸리 꽃 꽃자리도

자질자질 잦아든 때,

 

하늘에선 가야금 퉁기는 소리

팽팽한 긴장 속에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머언 만릿 길을

마른 발로 가고 잇는 사람

보인다.

 

물푸레나무 우듬지

까치 한 마리

투명한 심연으로, 냉큼,

뛰어들지 못하고,

 

온 세상이 빛과 소리에 취해

원형의 전설과 추억을 안고

추락,

추락하고 있다.

 

 

 

시월

황동규

 

1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2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 속에

울리던 목금(木琴)소리 목금소리 목금소리.

 

 

3

며칠 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가을비 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 한 탓 이리.

 

 

4

아늬, 석등(石燈) 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5

낡은 단청 밖으론 바람이 이는 가을날,

 

잔잔히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

며칠 내 며칠 내 며칠 내 낙엽이 내리고 혹 싸늘히 비가

뿌려와서......

절 뒷울 안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낙엽 지는 느릅나무며 우물이며 초가집이며

그리고 방금 켜지기 시작한 등불들이 어스름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느 하나에로 합쳐짐을 나는 본다.

 

 

6

창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 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시월의 마지막 날

황영칠

 

붉은 화장 짙게 하고 사랑 노래 불러주며

물안개 깔아준 호숫가 단풍 숲

숲이 준 안개 덮고 늦잠 자는 호수 위에

아침 햇살 머금은 윤슬은 산산이 부서지고

시월의 마지막 날

호수가 흘린 이별의 눈물이 풀잎을 적신다

 

그대가 오시던 날

당신의 마음과 가슴은 초록이었지요

우리들의 사랑이 호수처럼 깊어 갈수록

시월의 마지막 날이 아픔으로 다가올수록

당신과 나의 사랑은 더 붉게 물들었답니다

 

이제 떠나야 하는 당신 앞에

이별의 눈물로 물안개 붉게 물들이고

당신의 물그림자 곱게 그려 놓고

나는 호수가 되어 그대의 붉은 사랑

물결 속에 담으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오늘이 헤어져야 하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슬퍼하지 말아요

눈물짓지 말아요

 

계절의 징검다리 네 발짝만 건너뛰면

그대는 다시 녹색 옷 갈아입고

미소 짓고 오시겠지요

당신의 붉은 사랑 물결 속에 고이 품고

시월의 마지막 날

나는 울지 않을래요.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