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신들 5
Maahes
사자머리를 하고 아텝 왕관(atef crown)과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에 달았던 뱀 모양의 휘장인 우라에우스(uraeus)를 달고 칼을 들고 있는 마헤스(Maahes)
황소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사자(BC 350년)
이란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의 페르시아 문명의 유적 - 황소를 먹어치우려 하는 사자(아파다나 궁전(Apadana Palace) 남쪽 끝 아파다나 계단 벽의 바스 릴리프)
봄의 상징인 사자가 겨울을 상징하는 황소를 먹어치우면서 춘분인 새해가 시작됨을 나타내고 있다.
누비아 포로를 잡아먹는 사자(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마헤스(Maahes), 또는 미호스(Mihos), 미이시스(Miysis), 미오스(Mios), 마이헤스(Maihes), 마헤스(Mahes)로도 표기되는 이 고대 이집트의 사자 머리를 하고 있는데 '마헤스'라는 이름의 뜻은 '여자 옆에서 진실한 사람'이란 뜻이다. 창조의 신 '프타(Ptah)의 아들로 고양이 여신 - 하이집트에서의 바스트(Bast,), 상이집트에서의 세크멧(Sekhmet)의 속성을 물려받았다. 마헤스는 전쟁의 신과 수호신 그리고 날씨의 신의 속성들이 모여져 만들어졌다. 마헤스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신왕조 시대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일부 이집트 학자들은 외국에서 유입된 신이라 주장한다.
실제로 누비아와 이집트 서부 사막지역에서 숭배되었던 사자 신 아페데마크(Apedemak)와 일치하고 있다. 사자신과 수호신이자 그는 태양신 라(Ra)와 고양이 여신 바스트/세크메트의 아들로 여겨졌다. 숭배 중심지가 페르바스트(Per-Bast, 그리스어로 부바스티스(Bubastis)나 타레무(Taremu, 그리스어로 레온토폴리스, Leontopolis)였기 때문에 고양이 여신 바스트의 아들로 더 알려졌다.
마헤스는 이집트의 수호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최고신이었다. 프타, 라, 아툼, 이 시기에 벌써 라가 아툼과 혼합된 신 아툼-라(Atum-Ra) 같은 신들이 그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라의 아들로서의 역할은 라가 밤에 여행을 할 때 사악한 뱀 아페프(Apep)와 싸웠다. 마헤스의 강력한 속성 때문에 고양이 신들은 파라오와 관련되어지고 이집트의 수호신이 되었다. 수사자 신성문자는 '왕자', '힘', '권력'을 뜻하였다. 마헤스의 이름은 수사자 그림이 포함된 상형문자로 표기하였다. 마헤스는 또한 개별적으로 '앞에서 보는 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실'과 '명령'을 뜻하는 마앗(Ma'at)을 뜻하는 그림의 일부로 표기되다가 마헤스(Maahes)가 되며 때 묻지 않은 보호자와 죄를 집어 삼켜버리는 자로 여겨졌다. 포로들을 잡아먹는 '학살의 신', 칼의 신, 연꽃과 연관되며 연꽃 신, 진홍색 신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하스는 수사자의 머리를 하고 종종 칼을 들고 이집트의 이중관이나 오시리스를 상징하는 아텝(atef) 왕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내진다. 종종 멤피스의 주신(主神)이며 성장의 신인 네페르툼(Nefertem)과 동일시되거나 주변에 연꽃 다발들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포로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사자로 표현된다.
타레무(Taremu)-레오토촐리스(Leotopolis)의 사원에서는 길들인 사자를 마헤스에게 봉헌하기 위해 기른다. 또한 바스트/세크메트 여신도 숭배되는데, 아들 마헤스 사원은 어머니 고양이 여신 바스트 사원 옆에 자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아엘리언(Aelian)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사자를 숭배한다. 그리고 따라 이름 붙여진 도시가 있다.(...) 사자는 사원들을 가자고 있으며 어슬렁거리는 곳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일 신선한 소고기가 공급된다(...) 그리고 이집트 말로 된 노래 반주에 맞춰 먹는다. 그리스 말로 레오토폴리스 부르는 도시가 바로 그것이다."
사자는 마헤스를 상징하며 처음에는 죄를 집어 삼켜버리는 자로 여겨졌다가 포로들을 게걸스럽게 잡아먹는 사자로 표현되는 마헤스는 사자 신이자 이집트의 수호신이 된다. 이 '포로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자'로서의 마헤스 신성을 사자가 황소를 잡아 먹어치우는 도상학으로 표현한 이집트인의 창의성은 이후 페르시아 문명으로 전승되어 사자는 태양과 봄을, 달과 겨울을 상장하게 되어 사자와 황소는 끝없는 영원한 싸움을 해나가는데 이는 해와 달의 순환과 겨울과 봄의 순환됨을 상징하게 된다. 사자가 황소를 게걸스레 잡아먹는 날은 춘분이 되는데 이는 춘분 날 비로소 봄이 오게 됨을 의미한다. 페르시아 문명에서 춘분은 새해 첫 날로 여겨졌다.
그래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의 최대 명절인 춘분, 즉 노르즈(Nowruz)가 된다. 페르시아어 '노(Now)'는 '새로운'을, '루즈(Ruz)'는 '날'이란 뜻으로 설 명절을 축하하는 노루즈 축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란의 노르즈 축제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왕조 시대 동안 누비안 신(God Nubian), '전쟁과 수호의 신'이자 고양이 여신 바스테르(Baster)의 아들인 마헤스(Maahes)와 부(富)와 향(香, Insect)의 신 데드웬(Dedwen)이 사자로 묘사된다. 죽은 자들을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미라의 신(Lord of Mummification) 아누비스는 태양의 신 라(Re)와 '죽은 자의 여신 넵프티스(Nephthys)의 아들, 또는 레 신과 이지스(Isis) 여신의 아들로 불리기도 한다. 구 왕국 초기에는 오시리스에게 '사후세계의 신의 자리를 내주고 죽은 자를 보호하거나 장례 의식을 주관하는 신으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저승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하는 '심장 무게달기(Weight of Heart) 의식을 주관하며 '영혼의 안내자(Gide of Soul)'라고 불리며 저승사자(Psychopomp) 역을 담당한다. 그리스인들은 나중에 오시리스를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하여 헤르마누비스(Hermanubis)라는 복합적 신을 탄생시킨다. 아누비스는 또한 '서쪽 방향의 군주'란 의미로, 켄티-이멘티우(Khenty - Imentiu)라 불리기도 하는데, 사후세계를 의미하는 서쪽을 관장하는 신이란 의미이다.
Maat(Ma'at, Mayet)
Ma'at
깃털을 달고 있는 여자
전설의 깃털을 꽂고 있는 마아트
Re-Horakhty 신과 Maat 여신(Twosret와 Seknakhte 무덤)
(청동 조각, 루브르)
'진리'라는 뜻을 지닌 질서, 정의, 법률과 진리의 여신이며, 태양신 라의 딸이자 토트의 아내로서 8명의 아이를 낳았다. 몇몇 문서에는 그녀가 라의 총애를 받은 시녀이며 '마아트의 주인'이라 불리는 신들의 심판자 토트의 아내로 되어 있다. 똑바로 서있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로 표현되는데 머리에 타조의 깃털을 꽂고 있다. 한 손에는 왕홀을 한 손에는 앙크 표지를 들고 있다. 가끔 팔에 날개가 나 있기도 하다. 깃털은 저승에서 사자를 심판할 때 그의 혼의 무게를 다는데 썼다. 마아트의 타조 깃털은 마아트의 이름을 나타내는 신성문자가 되었다. 파라오는 자신들을 '마아트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부르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한다고 했다. 이런 역할은 파라오들의 조상 호루스에서 유래했다. 호루스는 혼돈의 신 세트를 물리쳤다. 마아트는 인류와 신 모두를 심판했다. 최후의 심판에서 마아트는 사자의 궁극적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도왔다. '두 진리의 홀'에서 아누비스가 저울로 달아 사자의 심장이 진리의 깃털보다 무거울 경우 아무트가 잡아먹고 가벼울 경우 행복한 저승생활을 했다. 마아트는 태양신 라가 하늘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맡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들은 정의와 진실을 자신들의 양식(養食)으로 하기를 즐겼다. 따라서 제의 때 그들이 가장 많아하는 것은 바로 마아트였다. 그래서 모든 시전에 왕이 제의 도중에 도착해서 그 자신이 만든 마아트의 작은 조각상을 신에게 바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 공물은 비록 호사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공물보다 훨씬 더 신들의 마음에 들었다. 타조깃털, 저울 등이 그녀의 상징이며 타조깃털, 심장 오물렛, 깨끗한 모래 등을 그녀에게 바쳤다.
Machenti-irti Chenti-irti 참조
Mafdet
파라오의 미라 밑의 의자로 표현된 마프데트
'빨리 달리는'이란 뜻을 가진 고양이 모양을 하고 뱀과 전갈을 몰아내는 여신으로, 마프테트(Maftet)라고도 한다. '뱀을 죽이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치타 얼굴을 한 여인으로 표현된다. 마프데트는 뱀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한다. 고대 이집트의 화장판(化粧版)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인장에 새겨진 모습을 보면 호랑이 같은 머리와 몸을 갖고 있다. 목이 뱀의 몸체처럼 길고 구불거리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몸의 크기는 하마 정도이며 목의 길이는 몸의 세 배 정도다.
마프데트는 초창기(1왕조 시대)의 여신이다. 고양이와 몽구스는 그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는 1왕조에 신들 목록에 나온다. 그는 처형을 의인화한 신이다. 그는 파라오의 방이나 성스러운 곳을 보호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는 독이 있는 동물들로부터 보호한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전갈과 뱀을 죽인 이후로 마프데트는 고양이 여신이 되었다. 마프데트가 고양이, 몽구스, 표범이 되기도 하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는 여자 몸에 고양이과 동물 머리를 하고 있거나 고양이과 동물 몸에 여자 얼굴을 하고 있다. 가끔 머리카락의 끝에 전갈의 침이 달려 있다. 그는 처형하는 사람의 막대기 옆을 달리는 고양이과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서 파라오의 발치에 갖다 둔다.
신왕국 시대에 마프데트는 두앗트에 있는 판결실에서 판결을 내렸다. 그곳에서 파라오의 적들은 마프데트의 발톱으로 머리가 잘렸다. 마프데트 숭배는 바스테트 숭배로 바뀌었다. 하지만 치타 모습은 개인적 물건이나 파라오의 미라를 놓은 침대에 그대로 사용했다.
Mahes(그리스 식 Miysis) 사자의 모습을 한 신으로, 여름의 더위를 상징하는 신이며, '대학살의 주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자 또는 사자의 머리를 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주로 나일 강 삼각주에서 숭배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미이시스라고 불렀다.
Mehen 뱀의 신인 메헨은 밤에 태양신의 배가 저승을 지날 때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통 태양원반 주위를 감고 있거나 아페프 주위를 감싸고 있는 뱀으로 묘사된다. 어떤 때는 세트에 흡수되어 태양신 라를 보호한다. 이때는 태양신의 배에서 뱀의 머리에 창을 들고 있는 남자로 표현된다.
메헨과 메헨 놀이와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메헨으로부터 메헨 놀이가 나왔는지 메헨 놀이에서 메헨이 나왔는지 불분명하다. 놀이판이 벽화에 그려져 있고 무덤에서 놀이판과 놀이도구가 발견되었다. 현재 놀이규칙이나 놀이방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다.
Mehurt(Mehet-Weret, Mehet-uret) 이집트의 암소, 하늘의 여신.
하늘의 여신. 뜻은 '대홍수'. 메흐투르트(Mehturt), 메헤트-우레트(Mehet-uret), 메헤트-웨레트(Mehet-Weret)라고도 한다. 갈대밭에서 뿔 사이에 태양 원반을 이고 있는 거대한 암소로 묘사된다. 그의 배를 따라 라가 태양의 배를 타고 여행했다. 초기에 그는 하늘의 수로로 믿어졌으나 후대에는 라가 태어난 태초의 바다와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라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후대에 하토르 여신으로 변했다.
Mehit(Mechit) 이집트의 사자의 여신.
Menhit(Menchit) 이집트의 사자의 여신.
크눔(오른쪽)과 같이 서 있는 멘히트
사자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 뜻은 '살육하는 여자'. 멘키트(Menchit)라고도 한다. 크눔의 아내. 히케의 어머니. 멘히트는 크눔, 히케와 함께 상 이집트의 노메 3지역에 있는 라토폴리스(Latopolis; 현재의 에스나)에서 3대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는 원래 외국의 전쟁여신이었다. 이집트에 도입되면서 안후르의 아내가 되었다. 그는 안후르와 함께 누비아에 왔다고 전한다.
이집트에서 전쟁과 관련된 것들은 암사자로 표현된다. 멘히트도 예외 없이 암사자로 표현된다. 그는 이집트 군대의 앞에서 행진하며 불같은 화살로 적들을 쓰러뜨린다. 신앙의 중심지는 상 이집트였기 때문에 상하 이집트가 통일된 후에 세크메트의 한 가지 모습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Menthu(Mont, Mentu, Menthu, Month)
승리의 표시로, 결박한 두 포로를 발로 짓밟고 있는 몬투(BC 664년~332년경, 청동조각, 루브르)
(BC 2000년경, 석회암 부조, 루브르)
왕좌에 앉은 몬투 신(BC 2020년경, 석회암 부조, 루브르)
매의 머리를 한 전쟁의 신으로 숭배 중심지는 Hermonthis와 Karnak에 있었다. 이집트어로 MNTW. 뜻은 '유목민'. 멘트(Ment), 몬토(Monto), 몬트(Mont/Month), 미누티(Minuthi)라고도 한다.
그는 원래 태양이 작열하는 효과를 의인화한 신이었다. 그래서 몬투-라(Monthu-Ra)라고도 한다. 이런 파괴적 성격 때문에 그는 전쟁의 신이 되었다. 테베가 중심도시로 떠오르면서 도시의 수호신 아문이 중요한 신으로 변했고, 무트 여신을 아내로 갖게 되었다. 무트의 강한 모성본능을 채우기 위해 멘투를 입양했다. 멘투는 강한 힘, 남성성, 승리를 상징한다.
성난 황소는 힘과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에 멘투도 검은 얼굴을 가진 흰 황소로 표현된다. 이때는 바카(Bakha)라고 부른다. 이집트의 정복자이자 파라오였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힘센 황소, 멘투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카데쉬 전투를 묘사할 때 람세스 2세를 '테베의 주인, 멘투처럼 성난' 모습으로 그렸다.
그는 매 머리 또는 황소 머리를 하고 태양원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자로 그려진다. 머리에는 두 개의 깃털을 꽂고 있다. 송골매는 하늘을 상징하고, 황소는 힘과 전쟁을 상징한다. 그는 시미터(둥그렇게 휘어있는 칼. 아라비아 지방에서 많이 사용), 활, 화살, 칼 같은 다양한 무기를 들고 있다.
신왕국 시대에 아르만트(Armant)에 거대한 멘투 신전이 세워졌다. 아르만트의 그리스 이름은 헤르몬티스(Hermonthis)인데, '멘투의 땅'이라는 뜻이다. 나일 강의 제2 폭포 아래에 있는, 기원전 19세기 중왕국 시대 우로나르티(Uronarti) 요새에 가까운 멘투 신전은 초창기 신전에 속한다. 중왕국 시대에 멘투호텝이라는 파라오가 여러 명 있다. 멘투호텝의 뜻은 '멘투가 만족하다'는 뜻이다.
Meret(Mert) 이집트의 노래와 환희의 여신.
Meretseger(Mertseger, Meresger)
코브라 머리를 한 메레트세게르
왕가의 계곡을 굽어보는 메레트세게르
'침묵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뜻을 지닌 왕가의 계곡을 굽어보는 산의 여신으로, 테베의 계곡에 있는 왕가의 무덤을 어지럽히는 사람에게 독액을 뱉는 코브라의 여신이었다. 가끔 그녀는 여인의 머리를 한 전갈로 나타난다. 메레트세게르는 왕의 무덤을 건설하는 것을 위하여 책임을 맡고 있는 데이르 엘-메디나(Deir el-Medina)의 주민들에 의해 특히 숭배 받았다. 그들은 그녀를 '산정(山頂)의 귀부인'이라고 부르며 범죄를 저지른 일꾼들을 처벌한다고 믿었다. 희생자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 여신은 자비를 베풀어 처벌받는 사람을 치료해주곤 했다.
Meskhenet(Meskhent, Meshkent, Mesenet)
암소의 자궁을 이고 있는 메세네트
벽돌로 표현된 메세네트
산모가 아기를 낳는 바위가 의인화한 출산의 여신으로, 메세네트(Mesenet), 메스켄트(Meskhent), 메슈켄트(Meshkent), 메스코니(Meskhoni)라고도 한다. 고왕국 이전에는 저승에서 재생을 관장하는 안제티의 아내였다가 후대에 운명의 신의 아내로 여겨졌다.
그는 자궁에 태아를 들게 하고 아기의 카를 만들었다. 여성들이 출산을 할 때에 ‘출산벽돌’이라고 부르는 한 쌍의 벽돌 위에 쪼그려 앉았다. 메스케네트는 이런 자세로 출산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메스케네트는 산통이 시작되면 나타나서 출산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아기의 미래를 예언한다. 그래서 운명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는 암소의 자궁이라고 믿어지는 두 겹 코일을 머리에 감고 있는 모습 또는 머리에 야자수를 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사람얼굴이 새겨진 벽돌로 상징된다.
전설에 따르면 메스케네트는 유명한 세쌍둥이가 태어날 때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세 쌍둥이는 사후레(Sahure), 우세르카프(Userkaf), 네페리르카레 카카이(Neferirkare Kakai)였는데, 카카이는 제5왕조의 첫 파라오였다. 전설과 달리 기록을 보면 우세르카프가 나머지 두 사람의 아버지였다.
Mesta(Imseti) 미라가 된 시체의 간을 보관하는 항아리의 수호신으로 호루스의 아들이다. 호루스의 다른 세 아들과 달리 사람의 머리를 갖고 있다.
Min(Minu, 이집트 이름 Menu)
다산의 신인 Min에게 공물을 바치는 Mentuhotep IV세(Wadi Hammamat)
발기한 민
민 신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장면의 석비(BC 1400년경~ 1300년경, 석회암 부조, 루브르)
다산의 상징적 인 의미를 지닌 신 민
'굳건한 사람'이란 뜻을 지닌 풍요와 생식의 신이자 유목민과 수렵민의 수호신으로, 가끔 이시스의 남편이나 아들로 표현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판과 같다고 보았다. 그는 크눔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후대에 호루스와 합쳐지기도 했다. 피라미드 문헌에서 '동쪽에서 팔을 일으킨 분'이라고 나오고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민을 가리킨다고 추정된다.
그는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주로 발기한 남근을 왼손으로 쥐고 있는 남자 모습이다. 오른손에는 파라오의 권한을 상징하는 도리깨를 들고 있다. 2개의 깃털이 달린 왕관을 쓰고 있다. 그는 나일 강의 비옥한 진흙을 상징하는 검은 피부를 갖고 있다. 이마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는데, 그 띠가 땅까지 늘어져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이 성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쟁의 여신들이 남근을 가진 민의 몸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것은 암사자의 머리를 한 민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모습에서 남근의 포피가 벗겨진 것도 있다.
그는 기원전 3천년 이전부터 숭배되는데, 하이집트의 아크밈(현재는 Khemmis, 그리스 사람들은 민을 판과 같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를 숭배하던 아크밈을 Panopolis라고 부름)과 콥토스(현재는 Qift)가 숭배의 중심지였다. 후대에 이르러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그는 동쪽 사막이나 누비아와 관련이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추수기가 시작되면, 신전에서 그의 조각상을 가져다가 민이 떠나는 것을 축하하는 축제에 갖다 놓았다. 이때 시가지를 행진하고 양상추와 밀 짚단을 제물로 바쳤다. 풍요의 신이었기 때문에 탕음난무 의식도 있었던 것 같다. 추수를 축복하고 나면 그를 기리는 연극을 했다.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높은 장대를 오르는 일이었다.
그가 중요한 신이 된 것은 중왕국 시대에 호루스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민-호루스 신으로 숭배되면서부터다. 신왕국 시대에 그는 파라오가 정력을 유지하고 남자 후손을 생산하는 능력을 보장해주는 이유로 파라오의 대관식에서 숭배를 받았다. 파라오가 식물의 씨를 뿌리면 그의 씨를 뿌린다고 여겨졌다. 파라오가 사정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어쨌든 파라오가 씨를 뿌리는 것으로 인해 나일 강의 범람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신왕국 시대에 그는 아멘과 합쳐져 민-아멘-카무테프(그의 어머니의 황소 민-아멘)가 되었다.
Min 신은 발기한 생식기와 닮아 있고, 정액처럼 하얀 수액을 가지는 양상치의 모습으로서, "하얀 황소"가 그의 성수(性獸)로 보인다. 이집트 상추는 키가 크고 곧게 자란다. 문지르면 젖 같은 물질이 나오기 때문에 남근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상추를 최음제라고 생각했다. 장례의식의 신이라는 역할 외에도, 양상치와 밀로 제사를 지내는 추수기간의 축제에서도 숭배된다.
플린더스 페트리(Flinders Petrie)가 키프트에서 민의 커다란 조각상 두 개를 발굴했다. 이것들은 현재 아쉬몰레아 박물관에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것들이 선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자들은 신전에 있는 그의 기념물을 상습적으로 훼손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집트학자들은 민의 상반신만 사진을 찍거나 남근을 가리고 찍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벗은 몸에 관해 개의치 않았다. 기후가 덥기 때문에 농부나 노예들은 거의 벗다시피 한 상태로 일했다. 아이들도 일정한 나이가 되기까지 옷을 입지 않았다.
19세기 이집트 문자를 옮겨 적으면서 켐(ḫm)을 민으로 착각했다. 켐은 아크밈에서 숭배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신이라고 생각했다. 아크밈을 켐의 변형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크밈은 '민의 사원'을 뜻하는 ḫm-mnw의 변형인데, 민중문자 šmn형태를 거쳐서 변한 것이다. 켐이라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서 전통적인 그리스와 로마의 말에 오염된 학자들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Montu Menthu 참조
Mut
(BC 664~525)
독수리의 작은 상(像)(BC 664, 루브르)
메리마앗의 이름으로 왕좌에 오른 무트 여신과 아몬 신(BC 1550년경~1069년경, 편암조각, 루브르)
아몬 신과 무트 여신이 있는 벽 부조 조각 (BC 1290년경, 채색된 사암 부조, 루브르)
'어머니'를 뜻하는 테베의 수호여신으로 마우트(Maut), 모우트(Mout)라고도 한다. '세상의 어머니', '라의 눈', '여신들의 여왕', '하늘의 귀부인', '신들의 어머니', '낳는 여자'라는 별칭이 있다. 이런 별칭은 오래전에 대모신으로 숭배되었던 흔적을 보여준다. 그녀는 원래는 누의 아내였으나 테베에서 아마우네트를 대체하여 아문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는 아문, 그의 양자 콘스와 함께 3대신이 되었다. 그들은 룩소르에 있는 거대한 아문 신전에서 경배 받았다. 그 후 테베에서 세크메트와 합쳐져 세크메트-무트가 되었다.
그녀는 대머리수리로 묘사되거나 흰 독수리 날개에 대머리수리의 머리를 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손에는 파피루스 왕홀을 쥐고 다른 손에는 앙크 표식을 들고 있다. 상하 이집트 통합 왕관을 쓰고, 밝은 빨강 또는 밝은 파랑색 옷을 입고 있다. 그녀의 발밑에 마아트의 깃털이 있다. 그녀는 음경과 날개, 사자의 발톱을 갖고 있다. 무트를 나타내는 신성문자는 어머니를 나타내는 기호다. 그것은 하얀 독수리 모양인데, 이집트 사람들은 하얀 독수리가 모성애가 많은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흰 독수리 기호에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중성적인 존재이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자식들을 낳았기 때문에 여성으로 보았다. 후대에 다른 여신과 합쳐진 결과 코브라, 고양이, 암소, 암사자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녀는 오그도아스 세계관에서 태고 적부터 있었던 하늘의 여신이자 '어머니 가운데 어머니'로서 만물의 근원이다. 모성과 태초의 물이 구분이 되면서 무트는 창조주 여신이 되었고, 우주를 낳았다. 그녀는 고왕국 3왕조에서 6왕조시대에 태초에 우주에 있던 물 나우네트로 불렸다. 그녀는 처녀생식을 통해 만물을 낳았다. 매년 혼례식마다 아문은 무트를 보기 위해 카르낙의 신전에서 룩소르로 왔다.
한참 후대의 신화에 따르면 무트는 부모가 없이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생겨났다.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의 신 멘투를 입양했다. 아문, 무트, 멘투는 3대신으로 숭배되었다가 테베에 있는 카르낙의 무트 신전 바깥에 있는 호수가 초승달 모양인 관계로 달의 신 콘수가 멘투 대신에 양자로 여겨졌다.
하이집트와 상이집트 모두 와제트와 네크베트라는 수호신이 있었다. 무트에 대한 신앙은 남편에 대한 신앙과 더불어 날로 높아져 남편이 아몬 라(Amon-Ra)의 이름으로 하늘의 주신이 되자, 그녀도 태양의 여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바스테트와 세크메트가 혼동되어, 바스테트의 사자의 머리와 세크메트의 고양이의 모습이 무트에게도 주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여신들은 나중에 각각 바스테트와 세크메트에 통합되었다. 테베가 중요한 도시가 되면서 무트는 전쟁의 여신들을 흡수했다. 무트는 먼저 무트-와제트-바스트가 되었다가 무트-세크메트-바스트가 되었고, 그 후에 멘히트까지 흡수했다. 그의 며느리 이름은 무트-세크메트-바스트-멘히트가 되었고, 나중에 무트-네크베트가 되었다.
후대에 신들을 짝짓는 관행이 생겼다. 중왕국 후기에 테베가 더 중요한 도시가 되면서 도시의 수호신 아문도 덩달아 중요한 신이 되었고, 아문의 아내 아마우네트가 무트로 대체되었다. 무트와 아문은 콘수라는 달의 신을 아들로 두었다.
테베의 권위가 낮아지면서 아문은 라에게 흡수되고, 무트는 하토르에게 흡수되었다. 그러면서 엔네아스 신들도 흡수되었다. 무트-하토르는 이시스 또는 이시스-하토르, 무트-이시스-네크베트가 되었다. 무트, 하토르, 이시스는 이시스 하나로 통합되고 600년대까지 숭배되었다. 이시스 숭배는 한때 그리스, 로마, 브리튼까지 퍼졌다.
무트 신전은 아직도 이집트나 수단에 남아 있다. 이것은 무트 신앙이 광범위했던 것을 보여준다. 신앙의 중심지는 카르낙에 있는 신전이다. 이 신전에는 여신의 카를 구현한 조각상이 있다. 파라오와 무트 사제들은 매일 제사를 지냈다. 내부에 있는 부조를 보면 여사제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 신전은 여자들만이 관리를 했다.
이집트 파라오의 왕비들은 대부분 파라오의 자식들이었는데, 이들이 여사제의 우두머리로서 신전 의례를 주관했다. 파라오도 이 의례에 참석했고, 죽은 후에는 신이 되었다. 파라오가 여성인 경우 자신의 딸을 고위 여사제로 일하게 했다. 여사제들이 전통적인 종교의례를 진행하는 동안 사제들이 신전이나 신탁을 관리했다. 종교의례에는 음악과 술이 있었다.
18왕조의 파라오 하트쉡수트는 카르낙에 무트 신전을 재건했다. 예전에는 아멘호텝 3세가 신전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신전에서 아멘호텝 3세의 이름이 새겨진 수백 개의 조각상들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트쉡수트는 수많은 신전과 공공건물을 지었고, 75년 전에 완성을 했다. 그는 상하 이집트 통합왕관을 쓴 무트를 그리게 했다. 아멘호텝 3세는 하트쉡수트의 흔적을 대부분 지우고 자신이 한 일로 만들었다.
하트쉡수트는 무트를 이집트 만신전에서 주요 신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무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을 세크메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18왕조 아케나텐이 다른 신앙을 억압할 때 무트 신앙도 같이 억압하고, 태양신 아텐만을 숭배하도록 했다. 투탕카문이 무트 숭배를 재개했고, 그 후계자들은 계속 무트를 숭배했다.
19왕조 람세스 2세는 무트 신전을 재건하고 아문과 자신의 신전으로 만들었다. 그는 무트 신전에 가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전을 통과하도록 건물을 배치했다. 쿠시트 출신 파라오들은 무트 신전을 확장하고 람세스 신전을 아문과 콘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신전으로 개조했다. 그들은 무트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단에 자신들의 여사제들을 배치했다.
그리스 출신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무트 신전에 자신들만의 장식을 덧붙이고 자신들의 여사제들을 배치했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심각한 홍수가 있은 후에 신전을 재건했다. 그 후계자들은 3세기경 신전을 사용하지 않게 될 때까지 계속 신전을 지원했다. 로마 관리들은 건물을 지을 때 이 신전의 석재를 가져다 썼다. 많은 석재들은 원래 그려진 그림 그대로 사용되었다.
상하 이집트의 이중왕관, 대머리수리, 코브라, 암사자, 여왕 등이 그의 상징이며 보석, 귀금속, 향수, 단 음식, 몰약, 비싼 물건들을 그에게 바쳤다. 그의 신전 헤트-무트(Het-Mut)는 아몬-라 신전의 정남쪽에 있다. 신앙의 중심지는 테베의 아세르(아슈렐, 아슈렐트)였다.
Naunet 태초의 저승의 나락을 상징하는 여신이자 눈의 아내이다. 헤르모폴리스의 우주관에 따르면 그는 태초의 여덟 신 오그도아스의 일원이다.
Neb-Ti 통일 이집트를 정치적으로 상징하는 여신으로, 북 이집트의 우아짓(Uadgit)과 남 이집트의 네케베트(Nekhebet)를 동시에 가리킨다.
Nebtuu(Nebetu) 이집트의 지역적인 여신.
Nechbet 상이집트의 군주의 수호여신.
Nechmetawaj(Nehmet-awai) 이집트의 여신.
Neferhor(Nephoros, Nopheros) '착한 호루스'라는 뜻을 가진 호루스의 다른 이름
Nefertum (Nefertem; Greek Nephthemis)
수련을 이고 있는 네페르템
'아름다운 아툼'을 뜻하는 연꽃의 신으로 네페르툼(Nefertum), 네페르테무(Nefer-Temu)라고도 한다. 농작물의 성장을 지키는 신, 질병을 치유하는 의술의 신으로 불린다. 멤피스의 3대 신인 세크메트와 프타의 아들이며, 그리스인들에 의해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흔히 그는 ‘코펫시’라는 굽은 칼을 가진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두 개의 기다란 깃털을 꽂고 머리에 연꽃을 얹고, 그 위에는 뿌리 모양의 줄기가 두 개 뻗어 있고, 때로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위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엔네아스 우주관에서 천지가 창조될 때 태초의 물에서 나온 젊은 모습의 아툼이었다. 아툼은 태양신이기 때문에 네페르툼은 일출을 상징한다. 아툼은 이집트 파란색 물백합의 봉오리에 있는 태초의 물에 나왔기 때문에 네페르툼은 이 꽃과 관련이 있다. 이 꽃은 이집트 문학에서 파란 로터스라고 한다. 진짜 로터스는 페르시아가 침공할 때까지 이집트에 없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곡물로 로터스를 들여왔다. 후대에 아툼은 라와 합쳐져 아툼-라가 되고, 네페르툼은 별개의 신으로 생각했다. '아름다운 남자', '태양의 물백합'이라고도 불린다. 멤피스의 힘이 강해지자 그들의 신 프타가 창조주가 되었다. 프타가 맨 먼저 만든 것이 네페르툼이었다. 그 결과 네페르툼은 프타의 아들로 변했다. 프타의 아들일 때 세크메트나 바스테트가 어머니로 거론된다. 네페르툼은 푸른 물백합의 신이 되면서 향수와 행운의 신이 되었다. 예술에서 네페르툼은 머리에 푸른 물백합을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표현된다. 바스테트의 아들일 경우에는 사자머리를 하고 있거나 누워있는 사자나 고양이로 표현된다. 네페르툼은 푸른 물백합과 관련이 있으면서 그 꽃의 중독효과와도 관련이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행운의 부적으로 자그마한 네페르툼 조각상을 갖고 다녔다.
Nehebkau(Nehebu-Kau, Nehebkhau) '카를 같이 데려오는' 뜻을 지닌 저승(두아트)의 입구를 지키는 뱀의 신으로, 네헤부카우(Nehebu-Kau), 네헵카우(Nehebkhau), 네헵 카(Neheb Ka)라고도 한다. 피라미드 문서에서, 전갈의 여신 Serket의 아들로 말해지지만, 다른 전승에서는 대지의 신 게브와 추수의 여신 레네누테트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그는 저승의 입구를 지키는 것 이외에 다양한 임무를 맡고 있다. 파라오가 죽으면 그의 영혼을 보호하며 태양신 라가 저승을 여행하는 동안 수행한다. 전승에 따르면 라가 네헵카우를 길렀고, 그때부터 Re 신과 함께 태양범선에 타고 다니면서 신들의 시종으로 행세했다고 한다. 뱀이나 전갈에게 물리지 않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으며 사자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그를 부르기도 했다. 네헵카우는 인간의 팔과 다리를 가진 뱀으로 묘사된다.
그는 죽은 후에 카와 바를 묶는 신이었다. 그의 이름을 나타내는 기호는 기도를 할 때 두 팔을 올리는 형상에서 유래한 것인데,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뱀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쌍두 뱀 모습으로 양쪽에서 위협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 결과 아툼이 네헵카우를 제지하기 위해 손가락을 올려놓아야 했다. 라가 주신인 지역에서 네헵카우는 라가 저승에 있을 동안 그를 보호하는 신 가운데 하나다.
그는 뱀에 물린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전갈 같은 독침에 찔린 것도 치유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때는 전갈의 여신 세르케트의 아들로 여겨졌다. 뱀의 모습일 때는 뱀의 여신 레네누테트와 땅의 신 게브의 아들로 여겨졌다. 카는 이집트 말로 남근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뱀의 모습으로 외설스럽게 표현되기도 했다.
Neheh(Heh) 이집트의 영생의 의인화.
Nehmet-awai Nechmetawaj의 다른 이름
Neith(Neit)
Neith 조각상(루브르)
채색된 나무 직물(BC 664년~332년경, 렌 미술관)
Neith 방패, 이집트 26왕조
'있는 그대로의 사람' 또는 '베짜는 사람'을 뜻하는 전쟁의 여신이자 사냥꾼의 수호여신으로, 이집트어로는 자우(Zau), 그리스어로는 네이트(Νειθ)인데, 네트(Net), 니트(Nit)라고도 한다. 그는 나일 강 하류에서 서쪽 삼각주에 있는 사이스의 수호신으로 숭배 받았는데, 거기에는 사피메트(Sapi-meht)에 거대한 신전이 있다. 그는 나일 강 서안에 있는 상이집트 타세네트 또는 이우니트(현재 에스나(Esna) 아라비아어로 إسنا, 그리스어로 라토폴리스(Λατόπολις) 또는 폴리스 라톤(πόλις Λάτων), 라톤(Λάττων), 라틴어로 라토(Lato).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5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현재 케나(Qena) 지방에 들어 있음)를 지키는 세 명의 수호신 가운데 하나였다. 고왕국 1왕조 시대부터 이름이 나온다. 그는 맨 처음으로 신과 인간의 씨앗을 만들었다. 그는 방패 위에 교차된 화살을 지니고 있다. 상 이집트에서는 암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네이트는 두아무테프의 수호신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네이트의 보살핌을 구하여 관 주위에 무기를 두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영안실의 여신이기도 했다. 붕대와 수의는 네이트의 선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사자는 미라를 감쌈으로써 그의 신성한 힘을 부여 받았다. 그는 또 직조의 여신이기도 하다. 베틀이 그의 상징이었다는 증거가 있다. 원래는 사이스의 토속신이었으나 신왕조 시대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최고의 여신으로 존경받으며 '라의 어머니'로 믿어졌다.
여신의 상징은 사이스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상징은 여신의 머리에 있다. 그는 전쟁의 여신으로써 전사들의 무기를 만들고 전사들이 죽을 때 시신을 보호한다. Esna의 우주론(宇宙論)에서 네이트는 원시의 물속에서 태어나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해진다. 네이트의 상징과 네이트를 나타내는 신성문자는 베틀을 닮았다. 그래서 후대에 직조의 여신이 되었고, '베 짜는 사람'이라는 네이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무렵 여신의 역할은 물을 바탕으로 한 창조주에서 세상 모든 것을 천으로 짜는 여신이 되었다. 네이트는 직조와 가사의 여신으로 여성의 보호자이자 결혼의 수호자였다. 왕녀들의 이름에 네이트가 붙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전쟁의 여신이기 때문에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그는 미라에게 씌우는 붕대와 수의를 짜고 호루스의 네 아들 가운데 하나인 두아무테프(위장을 담아두는 카노피 단지의 신)의 수호자가 되었다. 위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배는 전투 시 급소로써 주요 공격부위였기 때문이다. 그는 카노피 단지를 공격하는 어떤 사악한 정령이라도 화살을 쏘아서 퇴치했다. 후대의 오그도아스 신화에서 그는 라와 아페프의 어머니였다. 물의 여신일 때는 악어의 신 소베크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또 다른 명칭인 테헤누트(Tehenout), 즉 '리비아의 여인'이라는 이름이 입증해 주듯이 아마도 그 기원은 서방일 것이다. 그녀는 아주 오랜 옛날에 하이집트의 국가신으로 여겨지다가 그 후로는 계속 사이즈에서 숭배받았다. 하이집트의 여신으로 붉은 관, 즉 그녀의 이름과 소리가 같은 '네트'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방패를 뚫고 나간 두 개의 엇갈린 화살이나 동물의 얼룩진 껍질 따위가 성스러운 물건으로서 숭배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북방의 관을 쓰고 손에 활과 화살을 든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후에는 그녀에게 베틀의 북이 주어져 그것이 그녀의 표의문자가 되었고, 또 머리 위에 그것을 놓아 결정적인 상징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네이트는 두 개의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성격과, 가정적인 그리고 여자들이 지닌 재주의 우두머리로서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는 점에서 그녀와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헤로도투스는 사이스 주민들이 네이트를 숭배하는데, 그리스의 아테나와 같은 여신이라고 했다. 플라톤도 『티마이오스』에서 아테나와 같다고 보았다. 플루타르코스(46~120 A.D.)는 네이트 신전에 있는 비문을 옮겨 적기도 했다.(나는 과거의 모든 것, 현재의 모든 것, 미래의 모든 것. 누구도 나를 덮을 수 있는 베일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훨씬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는 네프티스, 아누케, 앙크트와 같다고 여겨졌다. 네프티스는 엔네아스의 일원이 되어 세트의 아내로 여겨졌다. 그는 호루스와 세트의 분쟁을 중재하여 호루스가 이집트를 다스리도록 했다.
그는 베틀을 머리에 이고, 손에는 활과 화살을 쥐고 있다. 가끔 사자나 뱀, 암소의 머리를 하고 있다. 어떤 때는 악어 새끼를 안고 있는 그림도 있다. 오그도아스 신화에서 그는 태초의 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었다. 라의 어머니로 표현될 때는 '라를 낳은 위대한 암소'라고 설명되기도 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매년 그를 기리기 위해 등불 축제가 열렸다. 신자들은 밤새도록 수많은 등을 태웠다. 죽었다 되살아난 여신을 숭배하는 제사가 네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도 있다.
Nekhbet(Nekhebet, Nechbet)
'네케브의 여자'라는 뜻을 지닌 상이집트 네케브(Nekheb)의 대머리수리 여신이고 또한 미래 군주의 유아기에 그를 돌보아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 출산의 여신이기도 하며, 이집트어로 네케베트(Nekhebet) 또는 네크비트(Nekhebit)로 쓰고, 그리스어로 네크베트(Νεχβετ). 라고도 한다. 네케브의 여신에서 왕의 수호신이자 어머니의 지위로 승격되었다. 뱀의 여신 부토와 함께 이집트 왕의 머리 위에 초상이 새겨졌다.
네크베트는 신과 왕들의 출생시 참석했다. 갓난아기 파라오의 수호신으로서 '네케브의 위대한 흰 암소'라고 불려졌다. 신왕조 이후로 그는 출산의 신으로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는 또한 해와 달의 여신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 이집트의 수호여신이기도 했다. 네케베트는 상 이집트의 하얀 왕관을 쓰고 발톱에 영원을 상징하는 물건을 쥐고 있는 대머리수리로 묘사된다.
네케베트와 와지트는 이집트의 정치적 통일을 상징하는 넵-티(Neb-Ti)를 이룬다.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는 네케브(네크로폴리스, 현재의 El Kab)에 있는 네크베트 신전이었다. 네케브의 자매도시 네켄(Nekhen)은 기원전 3200~3100년경부터 초창기 고왕국시대(기원전 3100~2686)까지 상 이집트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네켄 유적지에서 나카다 1기부터 후기 바다리아 문화까지 출토되었다. 기원전 3400년경 도시의 전성기에 5,000명에서 1만명의 주민이 살았다. 네케베트의 여사제들을 무우(muu, 어머니들)라고 불렀다. 이들은 독수리깃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
그는 후대에 와제트와 함께 파라오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 두 여신들은 상하 이집트를 보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예술에서 네크베트는 하얀 독수리로 표현된다. 항상 와제트와 나란히 파라오의 이중왕관 앞에 보인다. 그는 대개 날개를 편 채 하늘에 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양발로 무한을 상징하는 쉠 상징을 쥐고 있다. 파라오의 수호신으로서 파라오의 천상의 어머니로 표현된다. 이런 속성은 아주 긴 젖통을 가진 네켑의 위대한 흰 암소 네케브로 표현된다.
독수리 신성문자는 어머니, 할머니, 지배자 따위를 포함하는 유성음 한 글자다. '사자의 서' 후대 문헌에서 네크베트는 태초부터 있었던 아버지들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들 가운데 어머니로 불리며 이 세상의 크레아트릭스다.
후대에 남녀 신을 짝짓는 관행이 생기면서 네크베트는 나일 강의 범람을 관장하는 하피의 아내가 되었다. 초창기 이후로 쭉 좋은 어머니와 연관이 되었지만, 후대에는 자식들을 입양한 것으로 나온다.
Nenun(Nenwen) 이집트의 매의 신.
Nenut 바다의 여신
Neper 특히 보리와 에머(엠메르) 밀과 연관이 있는 곡물의 신이다. 네프라(Nepra), 네프리(Nepri)라고도 한다. '입의 주인'이란 뜻을 가졌고, 여성형은 네피트(Nepit)이다. 사람으로 표현될 때 네페르의 몸에 곡식을 상징하는 점들이 있다. 그의 이름을 쓴 신성문자는 곡식을 가리키는 기호가 들어있다. 입의 신일 때는 레네누테트의 아들로 나온다. 이때 레네누테트는 양육하는 원천이고, 렌을 낳았다.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은 해마다 곡물이 자랐다가 사라지는 것과 관계있다. 이때 네페르는 오시리스의 일면으로 여겨졌다.
Nephthys(이집트 이름은 Neb-hut, Nebthet)
Nephthys
상형문자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 같은 형태의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 여자
Isis, Nephthys, Harpocrates
Greco-Roman 시대에 그려진 Nephthys
Nephthys는 보호적인 죽음의 여신이었다.
팔을 든 네프티스(화장벽토 칠 채색된 나무조각, 루브르, BC 945년~715년경)
(섬록암 조각, BC 1391년~1353년경)
'성채의 귀부인' 또는 '집안의 여주인'이란 뜻을 가진 매장과 관의 머리 쪽 수호여신이다. 이집트어로 네베트헤트, 넵트헤트(Nebt-het), 넵후트(Neb-hut)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네프티스(Νεφθυς)라고 한다. '도움되는 여신', '뛰어난 여신', '생명의 침대의 네프티스'(투트모세 3세의 무덤)라는 별칭이 있다. 후대의 신전 문헌에 따르면 다양한 뜻에서 수호 여신이 되었다. 헬리오폴리스의 위대한 엔네아스 가운데 하나. 게브와 누트의 딸. 세트의 아내이자 이시스의 동생. 아누비스의 어머니. 많은 신화에서 세트가 아누비스의 아버지라고 하고 있지만 그가 오시리스를 유혹하여 아누비스를 낳았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이시스로 변신하여 관계했다고도 한다. 이에 세트가 화가 나서 오시리스를 죽였다. 이시스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시체를 찾는 것을 도왔다.
그녀는 머리 위 또는 한 쌍의 뿔 위에 성채를 상징하는 것을 얹고 있다. 그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사자의 허파를 담은 단지를 보호하는 일이었다. 까마귀, 뼈, 해골, 연이 그의 상징이다.
네프티스는 종종 잔인하고 위험한 여신이다. 불같은 숨결을 내뿜어 파라오의 적들을 불살라버릴 수도 있다. 많은 여신들이 파라오를 보살피는 수호신으로 나오지만 네프티스는 이집트 전체에서 가장 분명하게 그 역할을 한다.
신왕국의 람세스 파라오들이 네프티스를 숭배했는데 카르낙과 룩소르에 있는 수많은 비문과 돌기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프티스처럼 자신의 지역을 지키는 국가적인 신은 드물다. 그레코-로만 시대에 상 이집트 후트세켐(Hwt-Sekhem/Diospolis Parva, 지금의 7노메)은 네프티스만의 도시로 여겨졌다. 네프티스는 이곳에 있는 '시스트룸의 주택'에서 주요 여신으로 여겨졌다.
네프티스의 기원에 관해 모순적인 여러 설이 있다. 이집트 이름은 '성채의 귀부인'이란 뜻이 아니다. 그녀는 어느 의미로 보아도 주부나 본처라는 뜻으로 볼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지만 터무니없는 오해다. 실제 뜻은 '신전의 귀부인'에 가깝다. 네프티스가 특정 신전이나 이집트 신전의 특정 면모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확한 관련은 알 수 없다. 수많은 자료를 통해서 네프티스가 신전 기둥이나 깃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프티스는 헬리오폴리스 신관들이 이시스와 대비되는 여신으로 일부러 만들어진 여신일 수 있다. 이것도 추측에 불과하다.
5왕조 시대의 피라미드 문헌에 네프티스는 헬리오폴리스의 여신으로 나온다. 그녀는 이시스의 쌍둥이 자매 또는 세트의 배우자였다. 이시스가 전통적인 출산을 상징하듯이 네프티스는 전통적인 죽음을 상징했다. 장례식에서 네프티스는 연이나 송골매, 또는 송골매의 날개를 가진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네프티스라는 이름을 나타내는 신성문자가 있는 왕관을 쓰고 있다. 그 이름에는 신전 경내(후트)와 그 위에 귀부인을 뜻하는 넵 기호가 있다. 그녀의 남편 세트는 삭막한 사막을 상징하는 신이기 때문에 네프티스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후대의 기록에 아누비스의 어머니로 나온다.
피라미드 문헌에 네프티스의 머리카락은 파라오의 미라를 감는 아마포에 비유되었다. 이 머리카락은 묶은 머리는 아니었다. 네프티스는 이시스와 함께 악마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사후에 지나게 되는 여러 저승세계(두아트)를 무사히 항해하려면 네프티스의 마법 주문이 필요했다. 네프티스는 세트처럼 악당은 아니고, 아포피스를 죽인 선한 세트와 관련이 있다. 로마 시대에 세트의 이런 측면이 서부 오아시스 지역에서 숭배되었고, 네프티스는 세트와 함께 다스렸다. 네프티스는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시체조각을 찾는 것을 도와주었다. 시체를 모으고 애도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간극을 메워 오시리스에게 힘을 주고 나일 강의 순환을 완성했다. 네프티스가 오시리스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 이유는 불분명하다.
네프티스는 삼각주 지역에 있는 부시리스의 오시리스 신앙에서 네 번째로 중요한 신이다. 한편 아비도스에서는 이름만 차지하는 신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제사를 지냈다는 증거가 없다. 축제에서 부르는 이시스와 네프티스 찬가는 오시리스 의식에서 중요한 의례에 속했다.
네프티스는 날개를 통해 죽은 사람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 멤피스 시에서 네프티스는 '장의사 가게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개머리를 한 아누비스와 관련이 있었다.
네프티스는 수많은 신전 비문에서 방년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된다. 후대에 하토르 여신과 같다고 여겨졌다. 대부분은 이시스와 같은 성격이지만, 일부 특성은 이시스와 차별이 된다. 그녀는 이시스보다 추상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
네프티스는 그녀를 기리는 축제에서 맥주를 마음껏 마시도록 한다. 에드푸(Edfu), 덴데라(Dendera), 베흐베이트(Behbeit)에서 출토된 부조에 따르면 그는 파라오로부터 많은 맥주를 봉헌받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에드푸에서 그는 파라오에게 '달빛에 숨겨진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여신이다. 이것은 어둠의 여신 또는 사막의 위험을 상징하는 속성과 잘 들어맞는다.
그녀는 드물게 출산의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웨스트카(Westcar) 파피루스에 따르면 이시스, 메스케네트, 헤케트, 네프티스가 무용수로 변장하여 아문-레 사제의 아내가 아들을 낳는 것을 돕는다. 이런 대모의 모습은 네프티스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는 출생보다 죽음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프티스의 치유능력은 수많은 목걸이에 새겨진 여신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마법주문을 적은 수많은 파피루스에서 사람들을 돕는 이타적인 속성을 불러내기 위해 그를 불러냈다.
많은 주석가들이 주장한 것처럼 네프티스는 신전이나 신앙의 중심지가 없는 여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위대한 엔네아스의 일원이며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수호자였다. 그는 넓은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여신이었다. 그녀의 동료들을 보면 그가 어떤 여신이었는지 알 수 있다. 19왕조의 람세스라는 이름을 가진 파라오들은 세트를 중요하게 숭배했다. 네프티스 신전은 '라메세스-메리아문의 네프티스의 집'이라고 불렸다. 이 신전은 옥시링코스(Oxyrhynchos)와 헤라클레오폴리스(Herakleopolis) 사이에 있는 세페르메루(Sepermeru)에 세워졌다. 그곳은 파이윰 외곽이고 현재의 데샤세흐(Deshasheh)가 있는 곳이다. 윌버(Wilbour) 파피루스에 적힌 과세기록이나 토지평가에 따르면 그곳에서 있는 네프티스 신전은 세트 신전에서 가까운 곳에 람세스 2세가 세웠다. 네프티스의 집은 중부 이집트에 있는 50개의 신전 가운데 하나였다. 네프티스 신전에 딸린 땅과 건물들은 두 명의 네프티스 예언자 펜프메르(Penpmer)와 메리바르세(Merybarse)가 관리를 했다. 세페르메루에 있는 네프티스 신전은 세트의 신전과 붙어 있었기 때문에 할당된 땅은 세트 사제단이 관리를 했다. 윌버 파피루스에 따르면 다른 네프티스 신전이 세페르메루 북쪽 수(Su)에 있었다. 이곳도 파이윰 지역에 속한다.
당대에 또 다른 네프티스 신전이 푸노젬(Punodgem)에 있었던 것 같다. 볼로냐(Bologna) 파피루스에 따르면 세트 신전의 예언자가 부당한 과세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왕실의 재상이 레호라크티, 세트, 네프티스 신앙을 도입하자 프라엠합(Pra'emhab)이라는 예언자가 자신이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탄식을 했다. 그는 세트 신전을 관리하면서 '선박을 책임지고, 네프티스의 집을 비롯한 수많은 신전들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푸노젬에 있는 네프티스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세웠다는 기록이 없다. 아마도 남편 세트 신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람세스가 네프티스 신전을 여러 개 지었을 수 있다. 그는 이미 아부 심벨에 있는 자신의 신전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그마한 네페르타리 신전을 지은 적이 있다. 윌버 파피루스에 따르면 여신이 남신의 신전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신전을 가진 경우가 네프티스 이외에는 없다. 네프티스는 독자적인 성역을 가질 정도로 중요한 여신이었던 것이다.
라메세스-메리아문의 네프티스와 그녀의 신전은 람세스 2세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 세페르메루에 있는 세트 신전과 네프티스 신전은 토대가 1980년대에 발굴되었다. 네프티스 신전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트 신전 안에 있는 자족적인 신전 복합단지였다.
세페르메루 북쪽에 있는 헤라클레오폴리스에도 네프티스를 숭배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사람크기의 네프티스 조각상에 비문을 고친 흔적이 있다. 이 현무암 조각상은 원래 파라오의 세드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메리네트-하부(Merinet-Habu)에 있었다. 어느 시점에 헤라클레오폴리스로 옮겨져 하리세프 신전에 안치되었다. 비문은 원래 '네프티스, 연대표 막사에 있는 세드의 최고신'이었던 것 같다. 새로 새겨진 비문은 '네프티스,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최고신'이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지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미 가까운 지역(세페르메루, 수, 푸노젬)에 네프티스 신전이 있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오폴리스에 있는 하리세프 신전에 모셔진 조각상은 어색하지 않았다. 30왕조시대에 헤라클레오폴리스에는 한 명의 네프티스 예언자가 배정되었다.
네프티스는 성스러운 불사조 또는 베누 새를 수호하는 여신이다. 이 역할은 원래 숭배지 헬리오폴리스에서 특별히 유래한 것이다. 헬리오폴리스는 '베누의 집'으로 유명했다. 이때 네프티스는 '네프티스-케레스케트(Nephthys-Kheresket)'라고 불렸다. 에드푸, 필라이, 콤 옴보, 엘 칼라, 에스나 등지에서 출토된 문헌들이 네프티스가 상 이집트 노메 7지역의 최고여신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그 지역은 베누 신전이 있던 곳이다.
네프티스는 후트-세켐(그리스어로 Διοσπολις Παρυα)에 있는 '시스트룸 장원'의 여신이기도 하다. 후트-세켐은 노메 7지역의 중심 도시였는데, 네프티스는 오시리스 유적의 수호신이자 베누 새의 수호신, 네페르호텝(그 지역의 호루스/오시리스)의 수호신이었다.
'후트의 네프티스' 사제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사자의 서'에 나온다. 이 '사자의 서'는 테베의 사제 네스-민(Nes-Min)의 파피루스였다. 모스코우(Moscou) 파피루스에 따르면 노메 7지역에 '네프티스의 춤꾼'이 신전을 관리했다. 30왕조시대에 '네프티스의 미용사'라고 불리는 여성 신전지기가 있었다. 이것은 디오스폴리스 파리아에서 네프티스 숭배가, 특히 후반기 이후 대체로 체계적이었던 것을 암시한다.
네프티스가 노메 7지역의 주요한 토템 여신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오시리스 계열 신들과 연결되어 덴데라 부근을 다스린 하토르가 되어 '동료들 가운데 으뜸'으로 다스렸다. 호우트-세켐과 그 노메에서 네프티스는 케레스케트(Kheresket)의 모습으로 다양한 오시리스 의례에서 눈에 띄는 '여주인'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이시스가 삼각주에 있는 베흐베이트(Behbeit)에서 특별한 능력으로 나타난 것과 비슷하다. 네프티스의 존재는 후기와 그레코로만 시대가 되어서야 디오스폴리스 파르바에 나타나기 때문에 여신이 두드러진 것은 신들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누키스 여신이 네프티스가 그 지역의 수호신으로 부상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마지막 모습과 관련하여 상 이집트 에스나와 엘 캅 사이에 있는 코미르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네프티스 신전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네프티스는 아누키스 여신과 관련이 있다. 네프티스는 코미르에서 에스나 부근에 남아 있는 오시리스 신앙의 수호자로 숭배되었다. 폐허가 된 코미르 성역에 두 개의 벽감이 남아 있는데, 하나는 네프티스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누키스를 위한 것이다. 뒤쪽의 외벽에 있는 우아한 ‘네프티스 찬가’를 로마의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보존했다. 이 찬가에서 황제는 ‘축제날을 사랑하는... 여러 축제의 여주인. 남녀가 여신을 위해 탬버린을 연주했다’고 적고 있다. 네프티스를 ‘위대한 네프티스... 사람들의 여왕... 취한 상태의 여주인’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세스하트(Seshat)와 같다고 보았다. 세스하트는 '모든 신들을 위해 질서를 세운 여신'이다. 에스나(Esna)에서 거행된 대규모의 오시리스 축제는 크눔 신전과 관련이 있는데, 네프티스가 코미르의 공식사절로써 여행을 하는 것을 표현했다.
코미르에 있는 네프티스 신전 비문에는 이시스가 전혀 나오지 않고 오시리스나 호루스 같은 신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네프티스가 초창기에 이시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일부 지역에서 네프티스는 이시스와 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시스를 완전히 몰아낸 것 같다. 그는 특히 7노메 지역에서 이시스보다 더욱 숭배를 받았다.
네프티스와 아누키스의 관계는 코미르 지역을 너머 아스완과 필라이 부근에 있는 제1폭포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이곳에서는 크눔, 사티스, 아누키스가 3대신으로 숭배되었는데, 이 신들은 후대에 오시리스, 이시스, 네프티스와 같은 신으로 여겨졌다.
카우 엘 케비르(Qaw El Kebir) 또는 안타이오폴리스(Antaeopolis)에서도 네프티스 숭배가 있었다. 그는 전쟁 신 안티웨이(Antiwey, 호루스 + 세트)의 동료로 제법 큰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시카고 돌기둥에 따르면 네프티스의 예언자가 이 마을에 있었다. 19세기 홍수가 나서 그레코로만 시대의 커다란 성역이 쓸려가 버리고, 마을 부근 채석장 벽면에 새겨진 네프티스와 안타이오스의 부조 그림이 남아 있다.
네프티스는 모알라(Mo'Alla)에서 전쟁 신 헤멘(Hemen)의 아내로 숭배되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자식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곳에서는 헤멘에게 딸을 낳아 주었다. 여러 파피루스나 신전 비문을 보면 네프티스의 숭배하던 독특한 마을이 있었던 것 같다. '이히(Ihy)의 네프티스', '프르네프티스(Pr-Nephthys)'라는 표현이 있는데, 과연 그곳에서 네프티스를 숭배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네프티스는 에드푸(Edfu)에서 주요한 신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곳에서는 여신을 기리는 축제가 있었는데, 그 축제의 뜻은 '네프티스의 심장이 기뻐한다'였다. 전국적인 네프티스 축제는 이집트 달력에서 마지막 5일에 해당하는 여신의 생일에 열렸다. 네프티스는 에드푸에서 특별히 위험한 여신으로 여겨졌다. 그는 메르케테스(Merkhetes)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여신은 암사자여신 메히트(Mehyt)와 세크메트와 관계가 있다. 네프티스의 입에서 나오는 불길은 그곳 신전 건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경내에는 메히트, 네프티스, 네크베트 세 여신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다. 네프티스는 에드푸에서 신전 도서관을 지키고 왕실의 연대기를 보호하는 세스하트(Seshat) 여신과 관련이 있었다. 피라밋 문헌처럼 초창기 문헌들과 남은 유적을 감안하면 세스하트가 네프티스의 변형 또는 네프티스가 세스하트의 변형이 아닐까 추정할 수도 있다.
그 밖에 베흐베이트(Behbeit)에 있는 비문에서 베레니케(Berenike) 왕비가 자신을 '이시스와 네프티스의 사제'라고 표현했다. 여기서는 두 자매가 강력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네프티스는 대체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후대에는 후트-세켐(Hwt-Sekhem) 같은 곳에서 숭배가 두드러지지만, 신왕국 시대에 자신만의 신전과 사원들을 가졌으며 자신만이 다스리는 지역(7노메)을 가지고 있다. 이시스조차도 자신만의 지역을 갖지는 못했다. 두 여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네프티스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여러 신들을 모시는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그를 모신 신전이 확인된 지역으로는 카르가, 켈리스(Kellis), 데이르 엘-하가르(Deir el-Hagar), 콥토스, 덴데라, 필라이, 세벤니토스, 부시리스, 쉔후르(Shenhur), 엘 칼라(El Qa'la), 레토폴리스, 헬리오폴리스, 아비도스, 테베, 다클레 오아시스 등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네프티스는 오시리스ㆍ이시스ㆍ네프티스 또는 호루스ㆍ이시스ㆍ네프티스, 민ㆍ이시스ㆍ네프티스처럼 3대신의 하나로 숭배되었다.
Nepit 곡물(옥수수)의 여신으로 Neper와 같이 남녀 한 쌍이다.
Nun(Nu)
카오스의 의미를 가진 물의 신 Nun
범선, 배를 들고 있는 남자
보호를 상징하는 눈 부적(청금석, 릴 미술관)
부적(청금석, 릴 미술관)
고대 이집트 창조신화에 따르면 Nun은 카오스(혼란상태)의 물이었다고 한다. Nun은 단지 육지가 있기 전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처음 Nun의 밖으로 작은 언덕의 형태로 땅이 올라오게 되었다. Nun은 또한 우주의 끝에 존재했던 무질서-카오스와 관련 있다고 한다.
원초적 물의 심연은 깊고, 끝이 없고, 어둡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 4가지 성격은 각각 한쌍의 지하의 신들(눈과 나우네트, 후와 하우헤트, 쿠크와 카크웨트, 아문과 아마우네트)에 의해서 체현되었는데 그 신들은 '8신의 도시'인 크문의 오그도아드(8신)를 구성하고 있었다.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말해지는 원시적인 물을 의인화하는 이집트의 신으로, Ogdoad의 여덟 창조주들의 하나인 Na-unet의 짝이다. 글자 그대로 가계도 상에서 선조라기보다는 가장 먼저 생겨난 신이기 때문에 '신들의 아버지'라고 말해진다. Nun은 이집트의 종교제의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헌납된 신전도 없다. Karnak과 Dendara 등지에 있는 사원들과 관련된 성스러운 호수들이 그를 상징한다. 머리 위에 Re 신의 태양범선을 달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Nut(Neuth, Nuit)
Nut
별장식의 옷을 입고 하늘을 가로질러 아크 모양의 몸을 보여주고 있는 여자
대지의 신 게브를 떠나는 하늘 신 누트(21왕조)
하늘의 여신 누트가 지상의 생명을 보호한다.
누트는 종종 암소로 표현된다.
'하늘' 또는 '밤'이란 뜻을 지닌 하늘의 여신이며, 그리스어로 오르파네스(Ορφανες)라고 하고, 누이트(Nuit), 네웨트(Newet), 네우트(Neuth)라고도 한다. '하늘을 덮는 사람', '보호하는 여자', '만물의 여주인', '천 개의 영혼을 갖고 있는 여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녀의 주된 성소는 헬리오폴리스에 있었다.
누트(Nout) 는 하늘의 여신으로서 역사시대에는 제사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녀는 대지의 신 게브와 쌍둥이인 누이동생이었는데, 라를 배반하고 무의식중에 오빠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한 신은 슈로 하여금 그 둘을 떼어놓게 한 다음, 누트에게는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토트가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달과 내기 장기를 여러 번 두어 마침내 달의 72번째 빛을 손에 넣어 닷새 동안을 간직했는데 그 5일간의 정력(正歷)으로는 계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누트는 연달아 그녀의 다섯 아이(오시리스, 하로에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원래 낮 하늘과 구름이 만들어지는 곳의 여신이었으나 후대에 그냥 하늘의 여신이 되었다. 보통 벌거벗은 거대한 여자로 묘사되었으며 그녀를 받치는 슈 위로 등을 구부리고 있는데 그 등이 하늘이었다. 그녀의 사지가 하늘을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다. 슈가 게브 위에 누트를 올림으로써 혼돈이 끝났으나 이 자세가 무너지면 다시 혼돈이 왔다. 일설에는 태양이 정오까지 아테트(마테트)의 배를 타고 그의 다리를 타고 항해한다. 그 후 세크테트의 배를 타고 일몰까지 항해한다. 항상 머리에 물병을 이고 있다.
일반적인 전승에 따르면 태양은 저녁에는 누트의 입으로 들어가서 밤 동안에 누트의 몸 안을 통과한 뒤에 아침이 되면 누트의 자궁에서 다시 태어나는 아이라고 한다. 별들도 그에게 삼켜졌다가 나중에 다시 태어났다. 누트는 장례식에서 사자의 부활에 관계했다. 파라오는 사후에 그의 몸에 들어가 나중에 부활한다고 전한다.
누트는 별들을 몸에 가득 안고 슈에 의해 받들어진 벌거벗은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의 사지는 주요한 4방위를 나타낸다. 별, 밤하늘, 암소. 찬 물, 우유, 꽃 등이 그의 상징이다. 누트는 1년 가운데 남는 5일(이집트 사람들은 1년을 12달로 나누고 한 달을 30일로 정해서 사용했다. 때문에 5일은 어느 달에도 포함되지 않은 채 특별한 기간으로 여겨졌다.) 동안 자식들을 낳았다. 매년 이 날이 되면 전 이집트가 축하하였다. 첫째 날은 불운한 날로 오시리스, 둘째 날은 보통의 날로 호루스, 셋째날은 불운한 날로 세트, 넷째 날은 행운의 날로 '천상천하의 아름다운 축제'로 불리며 이시스를, 다섯째 날은 불운한 날로 네프티스를 기렸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때때로 손발을 쭉 편 여인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있으며,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녀는 배가 슈에 의해 받쳐져 공중에 떠서 하늘의 궁륭(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일어났다. 그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그 네 발에 각각 신(神)을 하나씩 두어 그 발을 받치도록 하였다.
한편 슈는 그녀의 배를 받쳤다. 그래서 그 배가 하늘이 되고 라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그 배에 별과 성좌(星座)를 박아 놓았다. 가끔 라의 딸의 자격으로 누트 역시 태양의 어머니로 대접받기도 한다. 태양은 아침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또한 누트는 한 마리의 암소로 표현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반역을 겪은 다음 원초의 대양인 눈의 명령으로 대지를 떠날 결심을 한 아버지 라를 등에 업고 갔을 때, 그녀는 암소의 모습을 했었기 때문이다.
누트는 연달아 그녀의 다섯 아이(오시리스, 하로에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았다. 누트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될 때 간혹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둥근 항아리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 또한 그녀는 죽은 자의 수호여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돌로 만든 관의 뒷면에는 여신이 미라 위에 별처럼 찬란한 몸을 펼치고 우아한 자태로 죽은 자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