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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백

Bollnow 2024. 5. 7. 09:20

철학의 여백

박이문

1. 고향

종달새의 장례

부끄러운 자랑

내 동무 삐에르 보신탕

필명의 화

오월의 불안

감의 미학

잊혀지지 않는 샌드위치

로마행 열차에서 만난 노교수

영결식

옛 시골이 아니다

고향

열매

 

2. 망상의 변

나의 길

앎에의 갈망

스무살의 독서

문학과 철학의 긴장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가?

공허감

죽음으로 본 삶의 의미

(빌 공)과의 만남

삶은 논술이 아니다

자결의 윤리

수치심

망상의 변

 

3. 시지푸스의 행복

관용

삶과 독서

새해의 의미

삶의 보람

마음의 쓰레기

생각하며 사는 삶

시지푸스의 행복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도서인의 교양

인생의 성공

정명론:편견으로부터의 해방

 

 

1. 고향

 

종달새의 장례

나는 30호 정도의 작은 농촌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개를 퍽 좋아했지만 새도 대단히 좋아했다. 겨울이면 일꾼의 도움을 받아 새망을 치거나 추녀 새구멍 앞을 망으로 가리고 작대기로 추녀 짚을 쑤셔서 참새를 잡는 데 신이 났었다.

그놈들을 잡아 아궁이불에 털을 태우고 배를 갈라 소금을 뿌려서 화롯불에 구워 먹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참새를 쫓아다닌 것은 그것을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는 참새라도 잡아먹어야 할 만큼 고기에 허기진 소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동물적 본능에만 사로잡힌 허기진 촌아이도 아니었다.

방울새·꾀꼬리·종달새 등 우리 마을에서 희귀한 새들을 보았을 때 그것을 잡아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놈들은 털 색깔이나 생긴 모양, 우는 가락, 음성, 날거나 걷는 모양새로 내 마음을 매료시켰다.

눈이 쌓이는 겨울이면 먹을 것을 찾아 뒷동산에서 우리집 마당 앞 짚더미까지 날아와 짚에 붙어 있는 낟알을 찾아먹는 방울새의 노랗고 검은 알록진 색깔이 한없이 신기롭고 고와 보였다.

참새는 이쁘지도 않고 우는 목소리도 곱지 않으며 성미도 고약하다. 참새는 사람들과 가장 가까이 그리고 많이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가장 길들지 않고 멀리 떨어져 산다. 참새는 아무도 키울 수 없다. 성미가 고약해서 새장에 넣어두면 결코 먹이를 입에 대지도 않고 끊임없이 새장 살에 푸다닥 몸을 박으면서 밖으로만 나가려다 끝내는 죽고 만다.

참새보다 크기가 작고 우는 목소리도 연약한 방울새는 보통 산속에만 살기 때문에 사람과는 거의 접촉이 없으며 그 수도 훨씬 적다. 그러면서도 방울새는 참새보다 더 가깝게 더 곱게 느껴지고, 우리의 마음을 더 끈다. 방울새의 마음은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그의 털 색깔이나 조용하면서도 초롱초롱한 그의 울음소리만큼이나 곱고 매력적이어서 쉽게 우리와 가까워지고 친숙해진다.

나는 어느 한겨울에 일꾼을 졸라 만든 새 탑새기로 방울새를 잡았다. 놀란 그놈을 손바닥에 쥐었을 때 생명의 생동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안방구석에 칸을 막아 놓고 서속 알을 구해다 먹이를 주고는 작은 부리로 그 서속 알을 콕콕 찍어먹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즐거워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불행하게도 그 새가 병들어서인지 외로워서인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어린 내가 느낀 허탈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이처럼 나는 방울새를 좋아했지만, 종달새는 더 좋아했다. 종달새는 방울새보다 낯설고, 그 모습 또한 덜 우아하고 덜 아기자기하며 그 울음소리도 덜 곱다. 그러나 보리밭 위 하늘 높이 한없이 푸르고 한없이 넓은 공간을 선회하는 종달새의 나는 모습은 한없이 시원하며, 엷은 잿빛날개 및 가슴의 흰색이 유난히 점잖고 우아하다. 나는 그러한 종달새가 좋아 그놈을 예쁜 새장에 넣어 내 곁에 두고 키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종달새는 참새는 물론 방울새와도 달리 그 수가 적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서 살기 때문에 잡기는커녕 보기도 쉽지 않다. 이미 무한히 푸르고 넓은 자유를 마음껏 경험한 어미 종달새가 좁은 새장에 갇혀 참고 살 수는 없다. 어미 종달새는 잡더라도 키울 수 없다. 키울 수 있는 것은 아직 세상에 길들지 않은 새끼만이다.

새끼를 잡으려면 새둥지를 찾아야 한다. 종달새는 보리밭 고랑에 집을 짓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책보를 등에 멘 채 나는 동네 아이들과 뒷동산 언덕바지 보리밭을 누비다가 마침내 거의 다 커서 날아갈 만한 새끼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종달새 둥지를 찾아냈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종달새 새끼를 내 손안에 넣었을 때 느꼈던, 보드랍고 따뜻한 털로 덮인 작은 가슴 및 고동하는 심장의 맥박과 생동하는 감미로운 감촉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시간만 나면 메뚜기·잠자리를 잡아 노란 입을 쩍 벌리는 그 어린 종달새를 열심히 키웠다. 새장 살 사이로 먹이를 넣어주면 발딱 벌려 제치는 아직은 노랑 빛인 큰 부리의 모습은 미학적으로도 고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눈을 비비며 그 종달새 새끼가 잘 잤나 확인하려고 나는 먼저 대청마루 끝에 가서 추녀 끝에 매달려 있는 새장을 들여다보곤 했다. 흰 가슴을 내밀고 자리를 깡충깡충 옮겨 날아앉는 그 새를 보고서야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이러는 동안 나는 종달새에 더 정을 느끼고 날이 갈수록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아침 종달새는 새장 안의 가지에 앉아 있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병이 들었던 것일까? 자유를 잃은 삶보다는 죽음을 택해 자살했던 것일까? 알고 보니 지난밤 쥐새끼한테 물렸던 것이었다. 고약한 쥐새끼! 나쁜 놈 같은 쥐새끼라고! 어린 나는 분노했다. 그러면서 새 한 마리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무한한 허탈감 그리고 슬픔과 아울러 한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나는 이러한 나의 심정을 달래기 위해 그리고 나 때문에 자유를 잃고 살다 죽은 종달새의 명복을 빌기 위새 장례를 잘 치러주기로 했다. 나는 죽은 종달새를 헌 옷을 찢어 싸고, 염을 했다. 그 당시 어린 내가 막연히 들어 알고 있던 대로 새의 몸뚱이를 일곱 번 짚으로 묶어 집 뒤 장독대 옆, 복숭아나무 밑에 땅을 파서 묻고 소복하게 묘를 만든 다음 접시에 냉수를 떠놓고 작별의 술로 대신했다. 종달새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다음 날부터 얼마동안 아침이면 새의 무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절을 했다.

아무 이해타산 없이 우리의 마음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다. 이같이 끌리는 마음을 넓은 의미에서 애정이라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애정의 대상을 가까이하고, 그것을 아끼고, 끝내는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동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닐뿐더러 인간을 위한 도구도 아니다.

동물원을 만든 것은 동물을 위해서가 아니다. 동물의 아름다움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단지 인간을 위해서이다. 그곳은 동물의 보호지가 아니라 감옥이다. 그것은 인간의 호기심, 교육, 그리고 오락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동물의 자유를 박탈하고 철창에 가두어둔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잔인하다. 법을 어기거나 죄를 졌다면 어떠한 인간이라도 자유를 빼앗기고 감옥에 갇혀 마땅하다. 그러나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물들이 지은 죄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아름답다거나 희귀하다거나 늠름하다거나 하는 사실뿐이다. 동물원을 없애 철창에 갇힌 모든 새들, 모든 원숭이들, 모든 야수들을 해방시키자. 철창 속에 수많은 동물들을 가두어놓고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은 너무나 잔인한 동물이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해방시켜 준다면 인간은 그만큼 덜 동물적이 될 수 있다.

새장에 들어 있는 새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동물원을 보게 될 때마다 나는 나한테 잡혀 새장에서 살다 죽은 종달새의 죽음과 그의 장례를 치렀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원과 새장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다.

 

부끄러운 자랑

어릴 적 일들이 엊그제 일만 같은데 나는 어느덧 백발이 됐다. 언제나 젊다고 믿었지만 나는 어느덧 환갑을 훨씬 넘겼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 날들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일이 자주 있다. 삶을 정리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리라. 이런 일도 문득 생각난다.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시골 소학교 아이들은 공부 이외에도 학교에서 교정을 비로 쓸거나, 교실을 걸레로 닦고, 변소의 인분을 퍼서 치우거나 밭을 일구고, 벼도 심고, 돼지도 기르고 닭도 키워야 했다. 우리 반은 닭장을 보살피는 일을 맡게 되었고, 반장이었던 나는 그 책임을 져야 했다.

4학년 초가을 어느 날 오후였다고 기억된다. 학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뒷마당에 있는 닭장을 한 번 더 챙겨보려고 거기에 갔다가 무척 당황했다. 큰 수탉 한 마리가 약간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모습을 보니 병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을 찾아 이 일을 알리고 지시를 받으려고 했지만, 그 날따라 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히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닭이 죽기 전에 얼른 팔아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닭장에 들어가서 당시의 내게는 작지 않은 크기의 그 수탉을 두 팔로 껴안고 밖으로 나와 나를 따라왔던 아이와 함께 읍내로 뛰어갔다. 그날은 마침 장날이어서 여느 때면 한적했던 읍내거리가 장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장터 길바닥에 닭장들을 벌여 놓고 있는 곳으로 대뜸 달려갔다. 닭장수와 흥정을 하고 쉽게 좋은 값으로 그 닭을 팔 수 있었다. 닭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닭값을 들고 학교에 돌아와 곧장 교무실을 찾아갔다. 마침 교장 선생님을 혼자 계셨다. 나 혼자 주춤주춤 교장 선생님 앞으로 갔다. 혹시 허가도 없이 내 멋대로 한 일을 꾸지람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본인이었던 교장 선생님은 나의 설명을 들으시고 닭값을 손에 받아쥐시더니 야단은커녕 신통하다는 표정으로 "영리하구나! 너 참 영리하다!"라고 칭찬을 퍼부어주셨다. 안심한 후 내가 한 일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말 잘했구나! 난 과연 머리가 좋구나! 거의 60년 전 일이다.

그러나 지금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잘한 것이 아니라 큰 잘못이었다. 그때 칭찬을 받고 느꼈던 자부심은 부끄러움이어야 된다. 어린 내가 한 짓은 순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는 순수하지는 않았다. 나는 영리한 것이 아니라 교활한 아이에 불과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닭장수를 속였던 것이다. 그 일이 머릿속에 되돌아 기억날 때마다 나는 쓰디쓴 미소를 짓는다.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산시산(뫼 산, 옳을 시, 뫼 산) 수시수(물 수, 옳을 시, 물 수)/ 산불이산(뫼 산, 아니 불, 옳을 시, 뫼 산) 수불이수(물 수, 아니 불, 옳을 시, 물 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유명한 사행(넉 사, 다닐 행) 선시(봉선 선, 때 시)의 첫 두 행의 깊은 의미를 새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낱말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사실, 사건, 행위, 그리고 한 인간의 삶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 보면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내 동무 삐에르 보신탕

나는 농촌에서 나서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 나는 개를 무척 좋아했고 고기를 퍽 밝혔다. 동물을 좋아하시지 않는 어머님을 졸라 이웃 동네에서 누렁이 강아지를 얻어다 며칠 동안은 방안에서 키웠다. 마침 프랑스말을 좀 배운 큰형이 동경에서 시골로 돌아와 있었다. 형은 '삐에르'라는 이국적 그것도 프랑스적 이름을 지어주었다.

나는 밤에도 잠에서 깨면 눈을 비비면서 어둠을 더듬어 방구석 쪽으로 기어가서 거기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찾아 깊이 잠들어 있는 삐에르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곤 했다. 주둥이를 앞으로 뻗은 두 다리 속에 파묻고 잠들어 있는 그놈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귀엽고, 바라보기만 해도 내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삐에르는 몇 년을 나와 더불어 놀며 자랐다. 나는 어느덧 먼 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삐에로는 정력이 왕성한 장년기의 개로 컸다. 높은 자리에 서 있던 우리집 사랑채 마루 앞에 앉아 있다가 학교에서 책보를 끼고 돌아오는 어린 주인을 어느 틈에 본 삐에로는 다리가 찢어질 듯이 달려와 꼬리를 흔들며 나한테 뛰어오르곤 했고 내 얼굴, 내 손을 긴 혀를 내밀면서 열심히 핥아주곤 했다. 나도 틈만 있으면 삐에로를 껴안고 뽀뽀를 해주면서 함께 집에서 놀고, 마당에서 뛰고, 뒷동산 잔디에서 뒹굴며 장난했다. 개 삐에로와 소년 나는 어느덧 서로 뗄 수 없는 가장 가까운 동무가 되어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대문을 들어서니 안마당에는 우리 집 일꾼과 동네의 젊은이 몇 명이 방학해서 서울서 돌아온 두 형들과 함께 웅성거리고 있었다. 올가미를 손에 든 한동네 젊은이가 안채 큰 대청마루 밑을 엎드려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개, 나의 동무, 삐에르가 마루 및 한구석에서 공포에 떨며 쪼그리고 숨어 있었다. 삐에르의 두 눈알의 빛이 컴컴한 마루 밑에서 유난히 무서우리만큼 빛났고 그만큼 더 슬퍼 보였다. 한국 어디에서도 그러했듯이 우리 시골에서도 여름이면 한번쯤은 더위를 이기는 데 좋다 하여 개장국(보신탕)을 먹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다. 우리 집에서도 그래왔다. 이번에는 나의 둘도 없는 동무 삐에르가 보신탕으로 희생되게 된 것이다.

언제나 발랄했던 삐에르가 대청마루 구석에 숨었던 것은 인간의 이런 끔찍한 음모를 동물적 본능으로 알아차리고 피해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목전에 닥친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삐에르의 모습이 한없이 무력하고 가련해 보였다. 나는 펄펄 뛰며 울었다. 내 개를, 삐에르를, 내 동무를 죽이지 말라고 조르면서 나는 우리집 일꾼의 팔에 매달려 울었다. 그러나 삐에르는 목에 어느새 걸린 올가미를 온 힘을 다해서 깽깽 울면서 뿌리치려고 버티었지만, 일꾼들에 의해 강제로 질질 마루 밑 밖으로 끌려 나왔다. 내가 울면서 따라갔지만, 얼마 후 동네 앞 냇가에서 목숨을 잃은 채 통째로 불에 그슬려진 삐에르의 모습은 끔찍하고도 흉해 보였다. 뜨거운 여름 해가 진 다음 시원한 바람이 땀을 말려주는 바로 그날 저녁 안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저녁상을 둘러싼 우리 집 온 식구가 함께 보신을 실컷 했다. 그리고 남달리 고기를 밝히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누구보다도 맛있게 삐에르--보신탕을 포식했다.

보신탕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60년 가까운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날 저녁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큰 뚝배기 속에 보신탕으로 변해 말없이 있던 삐에르 그리고 그것을 맛있게 먹었던 어린 촌놈, 나의 자화상을 상상해 보면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서 부끄럽고, 쓸쓸하고, 한없이 착잡해지는 마음과 함께 속마저 거북해진다.

 

필명의 화

나는 1952년부터 원래 이름 박인희(후박나무 박, 어질 인, 빛날 희)와는 별도로 글을 발표할 때는 언제나 박이문(후박나무 박, 다를 이, 내 이름 문)이라는 필명을 써오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물론 본명을 썼다. 1957년 이래 이화여대 불문학과 창설과 때를 같이하여 나는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불문학과 시간표에 나타난 내 이름은 필명이 아닌 본명이었고, 학생들은 본명 박인희로만 나를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나는 장학금 유학의 기회가 생겨 일 년 동안 파리 유학의 길을 떠났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랑스 문학은 가장 화려하고, 파리 문화는 가장 우아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곳은 모든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불문학 교수는 멋이 있을 것이며, 파리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남자 교수는 불문학을 전공하는 여대생들에게는 더욱 그렇게만 생각되었다.

한 해가 지난 후 내가 파리에서 귀국하기 얼마 전, 2학기 초에 교내 신문인 '이대학보'는 본명 '박인희' 대신 필명을 써서 "파리 유학에서 돌아올 박이문 교수가 10월부터 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했다. 몇몇 여학생들은 그 교수가 어떤지 궁금했고, 큰 기대를 갖고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이미 겨울이 왔다. 신문 기사대로 나는 벌써 두어 달 전부터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학생들에게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몇몇 학생들, 각별히 낭만적이었을 아니면 각별히 감상적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한 여학생에게는 이상하기만 한 일이었다. 멋쟁이임에 틀림없을 파리에서 오기로 된 '박이문' 교수는 온다는 때가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일 년 전에 가르쳤던 그러나 어디를 봐도 시골뜨기 같은 '박인희' 교수만이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을 비롯한 몇몇은 몹시 궁금해졌고, 이상하게 생각되었고 약간은 초조함까지도 느끼게 되었다.

마침내 그 학생은 이렇게 된 영문을 알게 되었다. 본명인 박인희와 필명인 박이문이 바로 동인이명(한가지 동, 사람 인, 다를 이, 이름 명)이라는 것이다. 그의 실망은 컸다. 그가 상상 속에 그렇게도 믿었던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멋쟁이 박이문은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시골뜨기인 박인희만이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에 일 년 살면서 바게트, 치즈, 포도주를 얼마 동안 즐기고 왔다고 해서, 파리의 멋쟁이들 틈에서 지냈다고 해서 원래 못생긴 나의 얼굴이나 체구가 바뀌어 미남자가 될 수 있겠는가. 멋쟁이 보들레르나 우아한 베를렌의 시를 몇 줄 더 외우고, 프루스트의 귀족적 세계나 말로의 멋있는 삶의 모험을 좀 더 배웠다고 해서 나의 촌스러우리만큼 털털하고 소박한 천성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파리에서 돌아온 후에도 내 머리는 만화의 주인공 대그우드의 머리처럼 텁수룩하고, 구제품 시장에서 구해 걸친 양복은 파리는커녕 일본에도 가 보지 못하고, 불문학은커녕 소설 한 권 읽어보지 못한 듯했다. 또한 내가 신은 양말은 늘 빵꾸가 나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내가 학생들에게 준 실망의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필명으로 인해 내가 학생들에게 그토록 실망을 주었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몇 달이 더 지나서 학생들과 더불어 놀던 기회에 바로 그 한 학생이 '박이문'에게 실망했던 얘기를 내게 해주었을 때, 내 잘못은 아니지만, 미남이 못 된 것을 사춘기부터 괴롭게 여겨왔던 터라 나는 약간 마음이 쓰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털어놓은 그 학생이 고마웠다. 그것은 그의 나에 대한 호감을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육십에 가까워진 옛날의 그 학생은 지금 한 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 35년 만에 그 제자를 다시 만나 약 40년 전에 나의 필명 때문에 있었던 그 에피소드를 함께 다시 회상하면서 이미 백발이 된 나와 할머니가 된 나의 제자는 실망과 쓰라린 쑥스러움이 아니라 즐거운 폭소를 나눌 수 있었다.

 

"지자낙수(알 지, 놈 자, 즐길 낙, 물 수) 인자낙산(어질 인, 놈 자, 즐길 낙, 뫼 산)," 공자의 말이다. "지혜로운 이는 바다를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지자인 동시에 인자가 되고 싶다. 지자도 아니며 인자도 못 되지만 나는 바다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중 꼭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산을 택할 것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특히 녹음이 짙은 산을 좋아한다. 나는 벽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지금 돌아가 보면 야산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려서 산과 가까이 살았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산을 각별히 좋아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산이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년 시절 고향 산천을 떠나 줄곧 서울, 파리,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보스턴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나는 산을 잊고 있었고 산에 대한 향수를 새삼 느끼지도 않았다. 항상 각박하게 닥쳐오는 눈앞의 문제에 가려 멀리 산을 바라보고 감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산을 새삼 발견하고 그것에 마음이 끌리게 됐다. 석조(돌 석, 지을 조)의 숲과 같은 파리에서 몇 년, 그리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로스앤젤레스에서 몇 년을 보낸 다음, 내가 처음으로 객지에서 교편을 잡게 된 직장을 좋아했던 이유의 하나는 그 대학이 녹음이 울창한 북부 뉴욕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주말이면 한두 명의 친구와 내가 오래 살고 있던 보스턴 근처의 짙은 숲과 높은 산 속에서 별 목적도 없이 시간을 보내며 그저 흐뭇함을 느꼈다.

얼마 전 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교편을 잡게 된 지금이 고장이 아담하고 푸른 산들로 둘러싸인 시골이라는 점에서 나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을 느낀다. 처량하리만큼 헐벗었던 조국의 산들도 이제는 제법 푸른 숲에 덮여 있음을 확인하면서 한없이 흐뭇함을 느낀다. 일요일 오후면 아무 계획도 없이 어울리게 되는 이곳 대학의 동료들과 기분 내키는 대로 이 주변의 토함산, 남산, 운제산, 보경사, 오어사 등을 몇 시간 오르고 내리면 그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산은 푸르다. 아니 꼭 푸르러야만 한다. 푸르지 않은 산은 생각할 수 없다. 산은 푸르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푸르름은 생명을 상징한다. 그저 생명이 아니라 삶의 풍요를 뜻한다. 나날이 도시화되고, 기계화되며 그만큼 건조한, 이른바 문명 생활에 찌들고 피로한 현대인에게 푸른 산은 생명과의 재회를 마련해주고 정서의 휴식처를 마련해준다. 산의 푸르름은 그냥 푸르름이 아니다. 크고 작은 나무, 잡목, 다양한 풀들이 서로 엉키고 의존하며 붉은 흙에서, 바위틈에서 다투어 솟아나고 다 같이 하늘을 향하여 자란다. 나뭇가지와 풀잎들을 헤치고 오솔길을 따라 그늘진 숲속을 거닐거나, 산언덕을 올라가면 바위틈으로 흐르는 시냇물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다. 인간이 그동안 그렇게도 짓밟아왔던 자연과 다시 만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푸른 산은 자연과의 재회를 의미하며 그러한 재회는 오로지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고향임을 일깨워준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며,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원천이며, 인간은 자연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으로서 인간은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참다운 휴식과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산의 유혹은 원천적 고향에 대한 향수에 기인한다.

힘에 겨운 다리를 격려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다 같이 시지푸스가 된다. 있는 힘을 다해 산정에 올려놓은 바위가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 내려오면 다시 그 작업을 되풀이해야 했던 시지푸스처럼 어렵게 올라간 산정에서 우리는 산 밑 판판하고 시시한 마을로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그러나 시지푸스가 자신의 노고가 허사로 되고 마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어려운 노력을 하는 행위 자체에 무한한 보람을 느꼈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절정에 오르려는 노력 자체에서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삶의 충족감을 체험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 다리를 디디고 섰을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에 가슴이 흐뭇하다. 오르기가 험난했던 등산일 경우 더 그렇고 산정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그러하다.

산정에 서면 마치 하늘에 올라온 듯하다. 내 눈앞에 시야가 한없이 넓게 퍼진다. 나의 세계가 그만큼 커진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몇십 리 멀리 작은 마을은 물론 큰 도시들도 무릎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산정에 올라와서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마을에서의 나의 삶의 위상을 더 넓은 테두리에서 파악하고 그 올바른 의미에 눈을 뜰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겸허해질 수 있다.

자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지금까지 내가 갇혀 있던 좁은 세계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더 넓은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산이 내 마음을 끄는 무엇보다도 더 큰 이유는 그곳이 명상적 고장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숲이 짙고 계곡이 깊은 산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산에서는 누구나 명상가가 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대부분 옛날 절들이 도시나 마을에 있지 않고 깊은 산 속에 있게 된 사실은 그 이유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간에 퍽 다행이다. 그것을 우연한 역사적 결과로 친다 해도 퍽 적절하다. 명상적이 아닌 불교의 세계는 진정한 불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신의 원래적 고향인 자연을 버렸다. 이제야 인간은 그 결과로 견딜 수 없는 삭막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산은 자연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산이 그리워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산에 가고 싶어진다. 산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발견하고 산에서 삶의 풍요를 느끼며 산속에서 잃어버린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다시 찾는다.

산은 맑고 깊고 의젓하고 조용한 삶의 뿌리를 상징한다. 그곳은 이른바 문명의 오염에 시달린 생명의 마지막 휴식처이며, 인간의 맹목적인 욕망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생명의 마지막 피신처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소멸해가는 많은 생명체들의 마지막 남은 삶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산에 대한 향수는 그만큼 진지하고 절실하다. 지구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으로는 산만이 남았다는 느낌이다. 나는 산을 정말 좋아하게 됐다. 내가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월의 불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녹음을 기다리는 마음이며, 녹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춥고 지루하기에 길기만 한 겨울이었기에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땅하다. 들은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한결같이 누렇고 메말라 죽은 듯이 쓸쓸하다. 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겨울 산은 쓸쓸하다. 잎사귀 없이 엉성하게 서 있는 죽은 듯 누런빛 낙엽수들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들과 산을 우아하고 밝은 맑고 생생하고 아름다운 인상파 그림으로 바꿔놓는 봄이 그만큼 더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절실한 만큼 그 마음은 더 조바심스러워진다. 논두렁이나 그늘진 담 밑에 남아 있던 얼음 조각이 따뜻한 4월의 햇살에 녹아 없어지고 검은 땅에서 솟아나온 수선화 싹은 그만큼 더 정갈하고도 경이롭다. 죽은 줄만 알았던 개나리꽃의 나뭇가지에서 솟아나는 노란 꽃봉오리는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나는 이곳 포항공대에 온 후 두 번째의 봄을 맞았다. 이곳 주변엔 산이 많아 좋다. 형산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 산뜻하고 깨끗한 새 건물들로 조화 있게 꾸며진 이 대학 캠퍼스에서 둘러보는 주위의 전망도 어느 휴양지 못지 않게 곱다. 퍽 공들여 조경된 캠퍼스를 틈틈이 거니는 즐거움이 흡족스럽다. 겨울을 빼놓은 세 계절이 나름대로 다 그렇다. 겨울에 지칠 무렵부터 내가 왜 그렇게도 남달리 초조하게 이곳 캠퍼스의 봄을 기다리게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봄을 나는 더욱 그렇게 보냈다.

상록수가 아닌 낙엽수들의 생사는 새싹을 내밀 때까지 그냥 봐선 알 수 없다. 봄을 맞을 때마다 겨울 동안 잎 하나 없이 뼈대만 남은 채 서 있는 저 나무들이 혹시 죽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새싹이 나올 때까지는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겨울 동안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나 못된 병으로 죽는 나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풀이나 나무에서 새싹이 나는 시기는 그 풀이나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수선화나 개나리 같은 나무의 꽃이 빠르게 피는가 하면 느티나무나 팽나무의 싹은 늦게야 튼다. 그렇지만 4월 말이 가까워지면 예외 없이 모든 나무에서 싹이 튼다. 5월에 들어서면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거나 이미 무성하다 할 만큼 잎으로 덮인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내 초조함과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목백일홍과 낙우송이라고 후에 정원사가 일러준 이름 몰랐던 나무에서는 이때까지도 잎도 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본다. 메마르지 않았으니 희망이 있다. 다음날 손톱으로 나뭇가지를 긁어본다. 거기 도는 연한 연둣빛이 나무가 살아 있다는 신호를 하니 마음이 높인다. 그래도 너무 늦기는 마찬가지다. 며칠 후 먼저 목백일홍에 튼 싹을 보고 나는 조용한 환호를 지른다. 그 뒤 또 며칠 후 낙우송의 작은 가지에서 마침내 색실 같은 푸른 잎을 확인한다. 5월의 불안은 그때서야 비로소 완전히 가신다. 모든 나무가 겨울의 시련을 이기고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의 미학

나는 감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설날이면 단감을 즐겨 먹던 생각이 난다. 입에 닿는 딱딱한 단감의 감촉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자란 시골은 감나무도 없는 삭막한 시골이었다. 단 한 그루의 감나무나마 우리 집 뒤뜰에 서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나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그 나무를 즐겨 타고 놀던 기억도 나지만 지금 더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은 고운 색깔의 감이 매달린 감나무를 즐겨 바라보곤 했던 일이다.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무의식적이나마 감의 미학에 이미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30년을 지냈지만 나는 감나무는 물론 마치 등불 같은 붉은 감들을 달고 있는 감나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래간만에 한국, 그것도 감나무가 많은 영남 지방에 돌아와 살게 되면서 감을 많이 먹고 감나무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나는 운이 좋다. 감나무를 마음껏 보면서 자란 이곳 시골 사람들은 얼마만큼 행복한가!

감나무, 감잎 그리고 감은 한결같이 소박하며 산뜻하다. 감나무는 가시도 없고 감나무 껍질은 깔끔하다. 버러지를 타지 않는 감잎은 완전하고 그 촉감은 따끔하면서도 정갈하다. 둥근 감의 선은 단순하면서도 그리스의 조각처럼 점잖고, 주홍빛 감의 색채는 청아하면서도 강렬하다. 감은 은근히 관능적이면서도 귀족적이다.

이처럼 한 그루의 감나무, 한 개의 감은 그것만으로도 곱지만 감나무는 자신의 가지에 색채를 띤 감들을 달고 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내고, 감은 감나무 가지에 달려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빛을 낸다.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의 모습이나 그 나뭇가지마다 각기 홀로 매달려 있는 하나하나의 감들의 모습에서 본질로 환원된 사물의 진실미가 동반하는 감동을 느끼며, 다양한 선으로 환원된 회색빛 나뭇가지와 수많은 원으로 환원된 주홍빛 감들에서 선과 원의 조형적 조화와 회색과 주홍색의 색조로 어울린 조화미를 만끽한다. 주홍빛 감들이 달린 감나무는 그 자체가 자연이라는 이름의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조각이며 한 폭의 그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감의 참다운 미는 아직도 더 깊고 넓은 맥락에서 발견된다. 나무에 달린 감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의 더 깊은 미는 늦가을 한국의 조용한 시골을 떠나서는 발견도 감상도 할 수 없다.

한국의 늦가을의 하늘은 무한히 푸르고 높고 넓다. 그러한 때 작은 계곡 건너편 혹은 돌담 너머 보이는 감나무 가지에 보이는 감들은 감나무가 아니라 차라리 하늘에 매달려 있다 할 것이며, 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푸른 하늘에 조화롭게 칠해진 화가의 채색이다. 푸른 하늘과 대조되면서 주홍빛 감이 생명력으로 늦가을의 생명을 불어넣고, 낙엽으로 헐벗은 산과 황토색으로 초라해진 들에 삶의 화려한 관능성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감나무가 있는 늦가을 한국의 시골은 어느덧 하나의 살아 약동하는 예술품으로 바뀐다. 늦가을 한국의 시골에서 익어가는 감은 자연의 예술인 동시에 자연이라는 예술 작품 바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원래 무의미한 혼돈이었던 자연이 예술 작품으로 화신함으로 질서를 갖추고 의미를 띠게 된다. 의미는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미/표상한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자연 전부가 무엇인가를 의미/표상한다면, 예술 작품으로서의 자연의 의미/표상하는 것은 인간의 지각과 사고가 미칠 수 없는 영역, 즉 어떤 초월적 영역의 실체를 암시한다. , 감나무에 달린 둥근 감, 맑고 산뜻하고 정갈한 한국의 늦가을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에 열린 주홍빛감이 내 마음을 흔드는 미적 감동은 어쩌면 쉽게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실체, 즉 형이상학적 세계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적 삶의 무의미와 철학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 위와 같은 우주의 초월적 본질은 접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는 여럿 있을 수 있다. 종교적 명상 혹은 철학적 추구로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에 대한 위와 같은 나의 미학에 다소의 근거가 있다면, 감에 대한 미적 경험은 분명히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초월적 의미에 대한 근원적 소망의 한 표현일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소망의 세계에 접하는 통로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감을 좋아한다.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손에 느껴지는 촉감으로도 그렇다. 그 선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그 색깔은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적나라하게 벗은 가지에 주홍빛 감들을 매달고 있는 벌거벗은 회색빛 소박한 감나무가 내 눈을 매료한다. 그러한 감나무를 가꾸어놓은 늦가을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깔끔하게 산뜻한 시골 마을의 공기를 마시면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나마 행복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를, 특히 감에 대한 멋진 시를 쓰고 싶어진다.

 

잊혀지지 않는 샌드위치

미국에서 4반세기 이상을 살면서 적지 않은 양의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의 시골에 돌아와 밥과 김치만 먹고 지낸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지만 나는 그 미국식 음식을 아쉬워하기는커녕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조차 없다.

그러나 라인강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관광 페리보트 데크 위 난간에 기대어 점심으로 요기하던 샌드위치만은 잊을 수 없다.

19587월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소르본 대학에서 1년간의 유학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기 한 달쯤 전이었다. 나는 잠깐 파리를 떠나 독일 관광에 나섰다.

아름다움과 대학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에 기차로 도착, 그곳을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부터는 히치하이킹으로 수도 본으로 가는 참이었다. 도중에 비스바덴에 들렀다. 소르본대학에서 알게 된 독일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

알고 보니 내 친구는 피난민이었다. 그의 가족은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건물은 깨끗했지만 그의 네 가족이 살기에는 퍽 좁았다.

이 가족은 오랫동안 독일 영토였다가 독일의 패전과 더불어 폴란드에 다시 돌려주어야만 했던 슐레지엔 지방에서 몇 대를 살다가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이곳 서독의 한 도시에 정착하고 있었다.

미군 포로였다가 교원으로 복직한 후 이미 은퇴한 아버지, 유치원에서 가르쳤던 적이 있었다는 어머니, 대학에 재학중인 동생, 그리고 파리 유학에서 돌아와 직장을 찾는 중인 내 친구가 전부인 이 가족의 생활은 그다지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내 친구의 부친은 그의 아들을 통역 삼아 열심히 독일 문학 얘기를 들려주었다.

퍽 착하고 얌전한 친구의 모친은 바이올린도 틈틈이 즐길 줄 알며 프랑스어도 할 줄 아는 교양 있는 분이었다. 그들은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지나가는 한 젊은 동양인인 나에게 극진한 친정을 보여주었다.

낮에는 친구와 함께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 한때는 교외에 있는 그들의 작은 밭에 가서 야채도 고르고 꽃도 구경했다.

저녁에는 좁은 거실에서 그들 가족과 함께 서투른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이틀을 지낸 다음 다시 본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는 길에 코블렌츠까지는 그 유명한 라인강의 관광선을 한번 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이웃 도시, 마인츠에 있는 선착장까지 나를 안내해주겠다는 친구와 문을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친구의 어머니가 종이로 싼 것을 내게 전해주었다. 점심 요기나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든 내 손에 따뜻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두 쪽의 빵 사이에 프라이한 계란과 베이컨이 끼어 있는 두 개의 샌드위치였다.

몇 시간 후 나는 유람선 데크의 난간에 기대어 낯선 관광객들과 함께 라인강 양쪽에 우뚝 서 있는 고색창연한 중세의 고성들을 바라보면서 내 친구의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값으로 보나 음식의 관점에서 보나 그 샌드위치는 별것이 아니었다. 그 후 나는 숱한 샌드위치를 먹었고 이른바 고급 요리를 맛볼 기회도 적지 않게 가졌지만 내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라인강에서 혼자 먹던 그 샌드위치의 베이컨과 프라이한 계란 냄새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코끝에 생생하다. 그럴 때마다 이미 타계한 지 오래인 내 친구의 어머니의 선량한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고, 그 기억은 나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귀하게 남아있다.

 

로마행 열차에서 만난 노교수

내가 그를 만난 것은 단 한 번뿐이고 그것도 잠깐 동안이었다. 1965년 초가을 나는 파리에서 로마로 떠나는 야간 특급 열차에 올랐다. 열차 속 차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안이 퍽 고급스럽고 깨끗함에 약간 놀랐다. 그 칸에는 30대 중반에 막 들어섰던 나에게 노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이미 앉아 있었다. 언뜻 보면 농부만큼이나 소박하고 구수한 인상이었으나 품위와 교양미가 풍겨 나고 있었다. 그 칸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기차가 파리 교외를 빠져나와 어두운 밤을 얼마 동안 달리고 있었다. 마주 앉은 서로가 덜 서먹함을 느끼게 됐을 무렵 그는 내가 어떤 나라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과 일 년 전 소르본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몇 주 후 철학을 더 공부할 셈으로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며 그에 앞서 로마를 한번 구경하러 가는 참이라고 대답했다. 나에 대한 궁금증을 다 풀지 못했다는 듯이 내 학위 논문이 어떤 것이냐고 다시 물었다. 내 논문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에 관한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다. 이 시인이 프랑스에서 아니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난해한 시를 썼고, 며칠 전 그에 대한 내 논문의 출판 계약을 맺고 난 참이었으며 또한 미국에 가서 세상이 뒤집힐 만한 철학을 해 보겠다고 막연하나마 터무니없는 공상도 하면서 스스로를 성실하고 심각한 젊은이로 자처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나를 신통하게 여긴 듯이 내 얘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그가 로마 법과대학의 교수임을 나는 곧 알게 됐다. 나는 그가 말라르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불문학 전체에 대해 박식함을 발견하고 내 코가 납작해짐을 느꼈다. 독신으로 살면서 그는 유명한 프랑스의 문예지 "NRF"를 둘러싼 문인들과 친교를 맺고 주말을 이용해 파리에 와서 그들과 흔히 지내곤 한다는 것이었다. 시골 할아버지 같았던 그는 사실인즉 최고의 유럽적 지성인이었다.

이런 얘기 끝에 그는 기차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두 개의 큰 트렁크 중 하나를 내려 거기서 포도주와 치즈를 뒤적거려 꺼냈다. 그리고 "이것 참 맛있소. 정말 맛있으니 이 치즈도 먹고 이 포도주도 마시오. 말라르메니, 문학이니, 철학이니, 뭐 그 따위 것들 다 어리석고 쓸데없는(베티즈 betise) 짓이지 뭐야!" 하고 화제를 180도로 돌리며 어린애같이 선량한 목소리로 깔깔 웃으며 내게 먹을 것을 권한다. 언뜻 보아 인생에 대해 냉소적이라 할 만큼 관조적 태도를 이 노교수의 말에서 나는 일종의 신선한 해방감을 느낀 나머지 나도 모르게 공감의 손뼉을 치며 재미있어했다. 심각하게 살아온 편이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와 똑같은 생각이 언제나 길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여행의 재미는 산산조각이 났다. 차칸의 문을 열고 들어온 철도 직원이 차표 검사를 하러 왔다. 알고 보니 이등 표를 가진 내가 일등 차 칸에 잘못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민망스럽게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이등 차 칸으로 가려 할 때 노교수는 명함 한 장을 내주면서 바닷가에 있는 그의 별장에 와서 놀다 가라고 초대했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이미 타계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약 30년 전 로마로 가는 밤 열차에서 내 착오로 만난 그가 치즈와 와인을 주면서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고 다시 만나 치즈와 와인을 나누며 또 한 번 폭소를 나누고 싶다. 그를 생각만 해도 즐겁다.

 

영결식

코끼리는 죽어 쓰러진 제 새끼를 긴 코로 안타깝다는 듯 일으키려 애쓰다가도 발길을 돌려 초원의 풀을 뜯어 먹는다. 사자에 잡아먹히는 동료를 바라보는 사슴의 큰 눈은 어질고 슬퍼 보이지만 다른 무리들에 끼어 자리를 옮긴다. 동물들은 죽은 동료를 그냥 보낸다.

인간의 경우만은 다르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그 형태나 방식은 다르지만 누군가가 죽을 때 그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전쟁터에서는 죽은 전우에게 십자가를 긋는 것으로 끝날 때도 있다. 셋방 한구석에 헝겊으로 둘둘 말은 할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남은 식구가 냉수를 갖다 놓고 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전통이나 종교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조객들이 모이고 화려한 조화 속에서 분향도 올리며 조문을 읽는 영결식이란 이름이 붙을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영결식은 국가적 때로는 국제적으로 큰 행사가 될 수 있다.

영결식이란 이름이 붙든 말든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보낼 때의 절차는 틀림없이 의식의 일종이다.

의식은 사람들이 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이나 혹은 한 사회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을 되새기고 기념하기 위한 행사다. 백일 잔치, 결혼식, 회갑연은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의식이다. 설날, 추석, 광복절 등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의식의 예가 된다. 이러한 날들이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에게 혹은 한 사회로서의 한국에게 잊을 수 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의식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새삼 긍정하게 된다. 의식의 절차를 밟으며 한 사회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것의 발전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의식은 한 사람의 생존, 한 사회의 존재를 전제하고 그러한 개인, 그러한 사회를 위해서 있다. 이처럼 의식은 그 의식의 주인의 삶을 위해서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영결식은 그 성격이 퍽 다른 의식이다. 이 의식은 막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절실하고 엄숙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고찰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될 것 같다. 영결식은 논리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의식의 주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없는 사체는 있어도 죽음이 이미 그 사람의 주체성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물론 영결식을 올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어떤 종교적 테두리에서 육체적 죽음을 초월하는 영혼의 존재를 믿을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그러나 죽은 당사자는 물론 의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나같이 유물론자여서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경우에도 영결식이란 신중하고 엄숙한 의식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의 입장에 있다고 짐작된다. 그렇다면 의식을 구성하는 어떤 중요한 절차는 그 의미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 아끼고 귀한 이의 죽음은 처자나 부모나 친구나 또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없는 아픔과 슬픔을 가져온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가져왔던 물질적이거나 정신적 양식의 단절을 의미하는 이상, 그것이 나나 우리를 슬프게 함은 마땅하다. 이같이 살아남은 나 자신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슬픔과 걱정을 표현하기 위해 영결식을 한다면 육체의 죽음을 초월한 영혼의 삶을 믿지 않아도 이 의식의 의미는 이해된다.

영결식은 살아남은 사람의 인간적 표현이다. 그러나 이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슬퍼하고 울고 조사를 읽는다고 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식장을 장식한 조화, 제단에 놓인 음식, 비상한 어조의 조사, 지나간 이에 대한 찬사, 우리들의 통곡 등은 어떤 뜻을 지닐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도 죽음을 슬퍼하는 그 사람은 관 속에 누워 차려 놓은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조사를 듣지도 못하고, 우리들의 슬픔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영결식이란 의식 행위는 전혀 이해될 수 없고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으로 철저한 유물론자도 의식을 올리고 영결식에서는 엄숙해진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행위와 생각에 모순이 있다 해도 이성이 도달할 수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성스러움이 삶과 죽음 속에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물론자도 기꺼이 참여하는 영결식이란 의식은 인간이 단순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제스처이다. 그것은 신이 없더라도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대자연은 유물론적으로만은 이해될 수 없다는 인간의 외침이다. 그것은 또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무한히 엄숙하고 성스럽다는 사실의 증거다.

 

옛 시골이 아니다

나는 작고도 보잘것없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에 서울의 한 '높은 학교'에 입학, 기숙사에 들어가기까지 나는 한 시간 반이 걸리는 논두렁길, 밭두랑길, 야산 언덕길을 걸어 소학교를 다녔다.

5학년 때 전국 학생 대표로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일본을 여행하면서 보게 된 것을 제외하면 내가 본 한국 세계는 20리 길을 둘레로 한 고향의 모습이 전부였다. 50년대 말까지도 6.25 때 부산에서 보았던 모습과 서울 주변과 서울, 그리고 고향인 아산을 왕래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아는 한국의 전부였다.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나는 남달리 호기심이 많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고 늘 자랑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낯설고 신비스럽기도 한 한국의 방방곡곡을 구경하고 싶었다. 다만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나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교통 조건 때문에 국내 여행, 특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을 찾아다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우리는 미개발된 농경사회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지나가본 한국의 도시, 마을, 산천은 별로 없다. 그러나 최근 기차나 버스로 서울과 부산을 몇 차례 다녀봤고, 내 자신 자동차를 몰고도 왕래했다. 그만큼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고 교통 조건도 발달된 것이다.

과연 한국의 산과 들의 아름답고 우아함을 새삼 피부로 느끼게 된다. 한국은 어느덧 산업사회로 완전히 바뀌고 있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상상이 안 될 만큼 변했다. 그 속도와 그 변화의 크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한국의 개발은 끝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어떤 도시나 특수한 지방에 한정되지 않고 조용히 남은 시골이 따로 없다. 국토 전체가 움직이며 개발되고 공장화될 성 싶다. 한국은 정말 많이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 50여 년 전은 물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던 시골, 특히 '한국적' 시골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은 이미 옛날의 한국이 아니다.

이런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 것은 불과 며칠 전 중부고속도로로 차를 몰면서이다. 이렇게 변한 한국, 이렇게 개발된 한국에서 내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강력한 인상은 '에너지'이다. 한국인의 야생적 활력이 눈에 보이고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러나 나의 느낌은 착잡하고 나의 생각은 갈등을 일으킨다. 차도(수레 차, 길 도)를 따라 양쪽으로 전개되는 시골의 퍽 달라진 풍경을 바라보면서 흐뭇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쩐지 삭막한 느낌을 억제할 수 없었다. 산을 뭉개고 시골마을을 산업 단지로 바꾸는 이 '개발'에 자랑스러운 환희를 느끼면서도 우리의 국토와 우리의 마음이 황폐화되어간다는 슬픈 감정을 막을 수 없다. 시골의 현대화가 발전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시골의 푸르고 조용한 정서를 메마르게 한다.

옛날 내가 태어나 자라던 사연 많은 고향집이 철거되거나 아니면 내가 꼬마 친구들과 뛰어 놀고 소에 풀을 뜯기고 개천에서 붕어를 잡던 고향 마을이 숫제 수몰되거나 아니면 불도저로 뭉개져 없어졌다. 적어도 한번 찾아가 둘러보고 싶은 고향집이 없다. 한번 돌아가 보고 싶은 고향이 없다. 고향은 시골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갖지만, 그런 시골이 없다. 내 고향집, 내 고향 마을, 내가 살던 시골만이 아니다. 한국인 모두의 고향집, 고향 마을, 시골이 없다는 말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물리적으로 전국토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서울, 폐수로 오염된 낙동강, 어디를 가나 눈에 거슬리게 흩어진 비닐봉지류, 주차장으로 변해가는 고속도로, 그 많은 자동차 사고 등이 황폐하고 삭막한 오늘날 한국의 물리적 풍경이다.

상하를 막론하고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부패, 천하게만 보이는 사치 풍조, 어디서나 떠들썩한 큰 갈등의 목소리, 다반사같이 일어나는 인신매매, 어린이 유괴 사건, 끊임없이 보도되는 살인 사건 등도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세계 제일인 줄 알고 떠들썩댔던 것도 엊그제, 흑자였다가 갑자기 불어난 무역 적자, 도와줘도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듣고, 잘못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된 풍조,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동안 한국인의 마음이 얼마만큼 들떠 있고 고갈되고, 빈곤하며 황폐화되었는가는 웅변으로 알려준다.

개발은 주어진 자연의 변형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파괴를 뜻하지는 않는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자연,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국토가 개발되어야 하겠지만 하나밖에 없는 그 자연, 그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지 않고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나라로는 가까이는 일본, 멀리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있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정신적 빈곤을 가져와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전세계는 자본주의 체제로 완전히 변신해 가고 물질 만능주의에 차츰 더 물들어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앞서 개발되고 풍요해진 서유럽 사회가 정신적으로 우리 사회만큼 거칠게 황폐화되고 삭막하지는 않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를 찾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어떤 가치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러한 풍요를 이룩하느냐에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보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서 국토는 계속 개발되어야 한다.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 세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기술적 경쟁에서 낙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개발과 우리의 경제에 큰 문제가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바다. 지금 우리의 정신적, 도덕적 상황이 병들어 있음에 눈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에게 국가적으로, 아니 민족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이겠는가? 경찰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고 감옥도 더 많이 지어야 할 것이다. 관공서나 개인, 기업에서 과소비 억제 운동을 하고 주부들의 저축운동도 필요하다. 30분 더 일하기, 30분 덜 쉬기 운동과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비의 증가도 필요하다. 곳곳에서 수시로 모임을 갖고 맹세를 하고 구호를 부르며 현수막을 크게 세울 필요도 있고 냉철하고 객관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의 설정과 실행이 요청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진단은 피상적이며, 위와 같은 문제 해결책은 임시변통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심성(마음 심, 성품 성)에 있고, 그 문제의 해결은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 삶에 있어서의 가치관을 반성하고 고쳐가는 데 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유치하다고 할 만큼 얕다. 엊그제만 해도 후진국의 가난에서 허덕이며 잘사는 이웃을 선망해왔으면서 경제적으로 좀 좋아졌다고 해서 우리는 마치 세계 제일의 부강한 국민이 된 것처럼 큰소리를 쳤다. 과소비 현상, 물꼬가 터진 듯이 밀고 밀리면서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들, 해외에서 땅속으로 들어가도 부끄러울 만큼, 천하고 야만스럽고 또 오만스럽게 추태를 부리는 많은 여행자들의 행태는 문화인임을 자부하는 우리 국민들의 정신적 수준이 얼마만큼 얕은가를 말해준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물질주의자다. 우리의 경제에 금이 가게 하는 사치 풍조와 과소비가 우리들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증명한다. 해외를 자주 드나드는 부유층의 소위 '귀부인'들이 파리나 뉴욕 그 밖의 도시의 최고급 상점에서 이른바 '쇼핑'하는 꼴을 보면 우리 사회에 물질주의가 얼마만큼 깊이 물들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돈이면 된다는 황금 만능 사상이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 재산의 축적과 그것을 과시하는 데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주의는 우리의 도덕적 무감각과 통한다. 우리는 스스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칭해왔다. 그러나 냉정히 반성하면 우리 속에서 그러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는다. 눈치를 보면서 법을 지키거나 형식적으로 어떤 도덕적 교훈을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덕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 태도를 가리킨다. 그것은 남의 인격을 존중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늘 생각하는 태도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덕적이었다면 우리는 오늘과 같은 혼란스러운 현실에 부딪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업인과 지식인들이 조금이라도 도덕적 의식을 가졌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거칠고, 불공평한 물질주의 풍조에 물들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들 모두가 강한 도덕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공정하고 보다 깨끗하고 보다 밝은 사회가 됐을 것이다. 우리들이 다 같이 도덕적이었다면 오늘날의 물질주의, 과소비, 무역 적자, 기술 개발의 낙후성은 이미 해결됐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함께 도덕성을 존중하며 살아왔더라면 우리들은 외국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의 모든 문제는 보다 간결한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으며, 철저히 진실을 탐구하는 정신으로 살고 있지 않으며, 우리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다 조용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고 성실할 수 있는 정신적 자세를 찾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보다 철저해야 한다. 물질적 자연의 개발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개발을 해야 한다. 자연의 개발도 정신의 개발에 바탕을 둘 때 보다 옳고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황폐한 심성을 의식하고 그것을 푸르고 아름답고 품위 있게 고쳐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언제나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는 일이다. 우리의 높은 정신적 품위가 개발될 때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자연개발도 비로소 귀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고향

모든 사람들에게 고향은 한결같이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만큼 더 돌아가보고 싶은 곳이며, 오래 살면 살수록 그만큼 더 짙게 회고되는 장소이다. 가슴에 와 닿는 수많은 시가 고향을 주제로 하고, 심금을 울리는 허다한 노래가 고향을 테마로 잡고 있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난 곳을 가리킨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머님의 따뜻한 젖을 빨며 그녀의 어진 품 안에서 가장 원초적 충족감을 경험했고, 할머님의 등에 업혀 진실한 사랑의 체취를 느꼈고, 아버지의 든든한 무릎 위에 안겨 한치의 의심도 생길 수 없는 보호를 받았다. 고향은 누구에겐가 의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지만 아무 걱정이나 노력없이 살 수 있었던 나약하기만 했던 우리들의 포근한 삶의 보금자리였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떠나버려 잊고만 있었던 보금자리에 대한 향수이다.

고향은 처음으로 언어를 배움으로써 동물로서의 우리가 비로소 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던 곳이며, 세상의 온갖 사물 현상들과의 첫 만남 속에서 하나하나에 대해 한없이 신선한 앎의 환희와 경이를 체험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고향에 대한 애착은 이제 무딘 지적 감동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고향은 또한 나 아닌 남들과 나누어 갖고 함께 사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때를 의미한다. 고향에서 우리는 언니나 누나와 싸우면서도 즐거웠고, 이웃 꼬마들과 함께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그저 재미있어 낄낄댔다. 그곳에서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이웃 계집애에게 은근한 첫사랑을 느꼈고 옆집 개구쟁이 동무와 어른스럽게 삶의 꿈에 대해 심각한 대화도 나누면서 성장의 자부심도 느꼈다. 고향은 성장의 시절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성장은커녕 오히려 노쇠의 길목에 들어선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쓸쓸한 자의식이기도 하다.

만일 고향이 위와 같이만 서술될 수 있다면 그 어느 사람이고 고향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밟지 않거나 위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 이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감을 수 없는 사실은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고향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화되는 사회일수록 그리고 삶의 거처가 도시화되면 될수록 더욱 그렇다. 큰도시에서 사는 시민들, 공해로 공기가 탁하고 자동차와 인파에 아수라장 같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태어나 그런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에겐 고향이 없다. 그가 태어난 곳이라서, 그가 자란 곳이라서, 그가 아프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했던 소년 시절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라 해서 그것이 자동적으로 그냥 고향일 수는 없다.

고향은 아무래도 시골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란 사람만이 자신의 고향을 얘기할 수 있다. 흙과 거름냄새가 나지 않는 곳을 놓고 고향이란 말을 붙일 수 없다. , 밭에서 일을 해보지 않고, 산에서 산새들의 노래를, 들에서 벌레들의 움직임에 익숙한 친근감을 느껴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고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쇠똥 냄새도 나지 않거나 지렁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고장은 누구의 고향일 수 없으며, 벼를 베고 난 논바닥에서 우렁이를 파내 잡거나 개천에서 물장구질치며 송사리를 잡아보지 못했다면 그가 고향을 가졌다고 얘기할 수 없다. 그것이 시골이 아니고서는 누구의 고향도 될 수 없는 이유는 고향이 자연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시골은 인간이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자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버릴 수 없는 애착은 결국 자연에 대한 애착이며, 고향에 대한 향수는 결국 자연에 대한 향수에 불과하다.

고향은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것들은 다 같이 옳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여하한 의미를 갖기에 앞서 고향의 근원적 의미는 뿌리, 더 정확히 말해서 모든 삶의 뿌리다. 자연은 모든 생물, 아니 모든 존재의 뿌리다. 그것은 존재의 집이다. 고향에의 그리움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며 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우리들 존재의 궁극적 뿌리에 대한 향수이다. 모든 인간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버릴 수 없고 조용한 시골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은 역시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고향이 태어난 고장이나 어려서 자란 장소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태어남이나 유아 혹은 유년 시절이 한 인간의 삶을 두고 볼 때 그가 자연과 가장 가깝게 살 수 있던 상황을 상징하는 데 있다.

내가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이미 고향을 떠나 있음을 전제한다. 모든 인간, 특히 오늘날 인간이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각별히 갖게 됐다는 사실은 오늘날 모든 인간은 그만큼 자신의 참된 고향과 떨어져 살고 있음을 반증한다.

인간은 어떻게 하다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궁극적 고향을 떠나 살게 되었다. 날로 발달되는 기계 문명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더욱 그렇다. 그는 자연이라는 그의 고향을 떠나 객지로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정신적 실향민이다. 이른바 물질 문명이라는 객지에서 그는 무한한 소외감을 느낀다. 화려한 고층 빌딩의 숲속, 개미떼같이 몰려 뒤끓고 있는 군중 속에 그는 무한한 고독감을 느낀다. 화려한 아파트에서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면서도 그는 정신적으로 무한한 빈곤과 공허감을 억제할 수 없다.

현대인은, 아니 모든 인간은 아무래도 오지 않은 잘못된 곳에 와 있는 것 같으며 아무래도 남의 집에 끼여들어 남의 옷을 입고 거북스럽게 존재한다. 현대인은 예외 없이 객지에서 살다가 그러한 그의 삶은 뿌리를 잃고 들떠 있으며 언제나 임시적으로만 존재한다.

돌아가고 싶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제 모두 객지에서의 고독감, 공허감, 빈곤감, 그리고 소외감으로부터 헤어나와 고향의 포근함, 충만함, 풍요함, 그리고 함께 함의 기쁨을 다시 찾고 싶다.

그렇지만 어쩌면 인간은 이제는 영원히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어쩌면 인간은 자연이라는 자신의 고향을 버리고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멀리 떠나와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궁극적 고향인 자연은 우리의 근시안적 탐욕의 손에 의해서 이미 파괴되어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너무 시간이 늦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열매

열매는 언제나 깊은 감동의 원천이다. 열매를 보고 흐뭇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한번이라도 열매를 접한 다음 시인이나 화가가 되지 않은 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열매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이들 가운데 철학적 사색에 빠지지 않는 예를 들 수 있겠는가? 열매는 성취한 풍요이며, 완성미이며, 철학적 사색이다.

과일 상점에 수북이 쌓아놓은 감, 대추, 석류, 모과, 은행, , 복숭아, , 사과, 시장바닥에 늘어놓은 옥수수, 상수리, 도토리, 오디, 가지, 고추, 수박, 포도 등은 바라만 봐도 예외 없이 즐겁고 흐뭇하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의 물결이 곱다. 이 다양한 열매들은 생리학적으로 우리의 구미를 만족시켜주고 삶의 자양이 된다. 그러나 열매의 풍요는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체 자체의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열매에서 받는 흐뭇함은 그만큼 더 크고 깊다.

열매는 성취된 삶의 개가이다. 주어진 자신의 가능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원초적 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명의 목적은 좌절된다. 탐스럽게 여문 열매는 그러한 조절을 극복한 생명체의 증거이다. 열매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구어진 작품이다. 그러기에 열매가 갖는 풍요는 그만큼 더 흐뭇하고 더 귀하다.

풍요는 경제적 가치를 의미하고 성취는 정신적 가치를 지칭한다. 그러나 열매는 이 밖에도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그것의 경제적 유용성, 정신적 의의를 넘어 모든 열매는 각자 나름대로 감각적으로 아름답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린 우아하고 단아한 감이 나의 미적 감각을 유난히 즐겁게 자극한다. 감동을 주는 것은 감만이 아니다. 산딸기, 꽈리 등의 열매는 다 같이 나름대로 아름답고 귀하다. 그러기에 발길도 내키지 않는 산기슭 이름도 모를 잡목들의 열매가 언뜻 보아 보잘 것 없어도 활짝 열어놓은 마음을 미학적으로 즐겁게 한다. 열매의 미에 전혀 무감각한 사람의 심성이란 상상할 수 없다.

미적 가치는 어떤 의미로든 형식과 뗄 수 없고 형식은 질서의 개념과 분리할 수 없다. 아름다운 모든 생명은 측정할 수 없이 깊고 신비로운 자연의 원초적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 가장 궁극적 생명이요 그 생명의 원리가 자기 구현에 있다면 생명의 자기 구현보다 더 고귀한 것이 있겠는가? 모든 열매가 우리에게 순수한 미적 감동을 자극하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궁극적 원리와 그런 질서에 따른 자기 정체의 구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열매는 생명의 예술품이다. 열매가 주는 미적 감동은 결국 원천적 생명의 예술적 결실이 동반하는 기쁨이다.

자기 구현은 하나의 맺음이요 맺음은 끝이며 끝은 하나의 죽음을 의미한다. 열매가 삶의 내재적 자기 구현의 결실이라면 그것은 죽음을 뜻한다. 그러나 끝으로서의 열매는 새로운 시작이며 죽음으로서의 열매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죽은 열매는 열매가 아니다. 나무에 매달렸다가 땅에 떨어져 썩는 열매는 그것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싹으로 태어난다. 그것은 지구 아니 우주 전체에 무한히 흐르는 깊은 생명의 물줄기를 잇는 하나의 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열매는 생명의 화석이 아니라 생명의 창작이며 내일로 뻗어가는 생명을 위한 축제이다. 잘 영글어 익은 모든 열매에서 우리는 결실을 맺은 삶의 형태미를 감상하고 환희에 찬 노랫소리를 들으며 정열에 넘치는 춤을 구경한다. 아름다운 열매는 언제나 살아 있고 살아 있는 열매만이 아름답다. 식탁에 놓인 과실도 아름답지만 나무에 달린 과실이 더욱 미적 감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열매의 미학이 곧 삶의 미학인 데 있다.

돌담을 두른 한국의 시골집 가을 정경은 그지없이 평화롭고 명상적이다. 푸르고 높은 코발트빛 가을 하늘에 걸려 있는 주홍빛 감들로 꾸며진 그 마을은 청아한 미적 감동의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 까치가 먹다 남긴 찢어진 감과 아울러 몇 개의 완벽한 형태의 감을 달고 있는 산골마을의 정경에서 나는 미적으로 도취되고 철학적 사색에서 깊이 잠긴다. 이러한 감이 무척 좋다. 그러나 아름답고 귀하고 사색적 열매는 감만이 아니다. 모든 열매는 각기 자기 나름대로 똑같이 그러하다.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한다면 이름 모를 나무들의 무수한 열매들이 한결같이 나름대로 미학과 철학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나무만이 열매를 맺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자기 나름대로의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감나무에서 감으로, 대추나무에서 대추로, 석류나무에서 석류로 미학적으로 곱게 나타날 수 있고, 호랑이에서 호랑이 새끼로, 고슴도치에서 고슴도치 새끼로 각기 그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 대추, 석류, 고추 같은 과일이나 야채들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의 새끼가 거의 예외 없이 귀엽게 보인다. 비록 고슴도치가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편견 때문이다. 고슴도치한테는 고슴도치 새끼가 한없이 예쁘고 귀하다. 동물들한테는 그들의 새끼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생명이 영위하는 삶의 궁극적 목적이 열매를 맺는 데 있다면 인간의 삶이 일구어야 할 열매는 무엇이겠는가? 동물로서의 인간의 열매는 자신이 낳아 키운 자식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데 있다. 인간의 본질은 그의 정신적 기능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참된 자기 실현은 생물학적이 아니라 정신적 열매를 맺음으로써만 있을 수 있다. 미적 가치가 완숙된 열매의 속성이라면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은 그의 정신적 열매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눈이 나무의 열매나 동물의 열매 중에서도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다운 것을 가려 말할 수 있고, 동물의 새끼 가운데서도 더 귀엽고 덜 귀여운 것을 구별할 수 있다면, 인간의 정신적 열매는 그 어느 것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쩌다가 열매의 깊은 의미를 망각하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무감각해졌다. 인간의 삶의 궁극적 의미가 인간으로서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는 데 있음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산에 가면 우리가 보려 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하는 수많은 나무들이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열매를 조용히 그리고 겸손히 맺고 있다. 헤아릴 수 없는 나무들, 풀들, 그리고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들, 곤충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열매를 맺고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의 도시나 시골에서 혹은 부촌이나 달동네에서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각기 나름대로 삶의 열매를 맺어보려 서로 돕고 혹은 서로 싸우며, 울고 혹은 웃으며 애쓰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열매를 맺기 위해 존재하고 궁리하고 애쓰고 있는 듯싶다. 모든 존재의 궁극적 의미가 열매를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그외의 다른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느덧 나무나 풀들의 열매를 보지 못하거나 그것을 보아도 그것의 의미에 어둡고 그것의 미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개발이라는 깃발 아래 산이 뭉개지고 나무들이 잘리며, 나무 열매들이 찌그러지고 땅에 밟힌다. 물질적 가치에만 어두워 인간의 참된 열매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고, 그런 열매가 있다 해도 우리들의 눈앞에서 짓밟혀가고 있다. 생명들이 열매를 맺기가 어렵게 됐다. 맺은 열매도 쭉정이가 됐거나 일그러져가고 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오염된 환경에서 인간의 열매가 썩거나 말라 시들고 말 위협을 받게 됐다. 지금 지구 어딜 봐도 나무가 죽어가고 아직 남아 있는 열매는 쭉정이로 비틀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나무, 동물, 그리고 인간은 잘리거나 시들거나 병들어 죽게 될지 모른다.

이런 일은 인간을 위한 개발과 진보라는 명목으로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자연의 소유자도 아니다. 자연이 맺는 열매는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미는 자연의 생태학적 열매에 비추어서만 밝혀질 수 있다. 모든 열매는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을 내일의 삶으로 연결하는 끈이며, 나무의 삶과 풀의 삶, 벌레의 삶과 짐승의 삶, 그리고 자연의 삶과 인간의 삶을 맺는 고리이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그러한 고리의 하나를 구성하는 데 있다. 인간의 열매가 귀하다면 모든 동물, 모든 식물, 모든 생물의 열매는 다 같이 아름답고 귀중하다.

나무에 매달린 투명한 색깔의 감은 물론 산길이나 들길의 이름 모를 나무 열매나 풀이삭, 뽑으면 뿌리에 붙은 못생긴 감자 등 모든 열매가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근원적 의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름답고 혹은 탐스럽고 혹은 야무지고 혹은 믿음직한 열매를 접할 때 우리 자신의 삶도 그같은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하겠다는 은근한 다짐을 하지 않을 이는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가지가지 열매가 제공하는 미적 감동에 무감각해지고 열매의 한없이 깊은 철학적 의미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2. 망상의 변

 

나의 길

어려서부터 나는 새를 무척 좋아했다. 여름이면 보리밭을 누비고 다니며 밭고랑 둥우리에 있는 종달새 새끼를, 눈 쌓인 겨울이면 싸라기를 찾아 뜰 앞 짚가리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방울새를 잡아 새장 속에 키우며 즐거워했다. 가슴이 희고 엷은 잿빛 종달새와 노랗고 검은 방울새는 흔히 보는 참새와는 달리 각기 고귀하고 우아해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개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개와 더불어 뒷동산이나 들을 뛰어 다니는 기쁨이 컸다. 가식 없는 개의 두터운 정에 나의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 개가 동네 사람들에게 끌려가 보신탕이 되던 날 나는 막 울었다.

서울에 와서 나는 문학에 눈을 떴다. 별로 읽은 책도 없고 읽었다 해도 이해한 것도 아니지만 작가는 특수한 인간처럼 우러러보였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면서 하나하나의 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처럼 생각됐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가 시인이 된다면 당장 죽어도 한이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보들레르나 말라르메가 쓴 것 같은 시를 쓸 수만 있다면 횔덜린같이 방황하다 미쳐 죽어도 상관없다고 믿었다. 어떤 직업에도 구애받음 없이 작품을 내서 인세로 살 수 있는 삶이 가장 부러웠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화려했던 사르트르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사회와 거의 단절된 채로 사는 괴벽스러운 샐린저 같은 작가의 생활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차츰 무엇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음을 의식하게 됐다. 나는 알고 싶었다. 모든 것에 대해서 투명해지고 싶었다. 정서적 표현에 대한 충동에 앞서 지적 갈증에 몰리게 됐다. 만족할 수 있는 시원한 지적 오아시스를 찾아 나는 사막 같은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시골 논두렁길을 따라 삭막한 서울의 뒷거리를 방황하던 나는 어느덧 소르본 대학의 낯선 거리를 5년 동안이나 외롭게 서성거린다. 파리의 좁은 길이 로스앤젤레스의 황량한 길로 연결되고 그 길은 다시 보스턴의 각박한 꼬부랑길로 통했다. 이처럼 나는 앎의 길을 찾아 30세가 넘어 40세가 가깝도록 다시 학생 생활을 했고, 이제 6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학교의 테두리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50년의 긴 배움의 도상에서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적지 않은 것들과 접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꿈에도 가볼 수 없는 지적 깊이를 보여준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예술가들이다. 그것들은 거의 동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성취한 에베레스트보다 높고 눈에 덮인 들보다도 고귀한 도덕적 가치이다. 나는 이런 만남이 있을 때마다 찬미와 존경을 퍼붓지 않을 수 없었고,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원래 감탄을 잘한다.

이런 경험만으로도 나는 내가 택한 배움의 길에 아쉬움 없는 보람을 느낀다. 내 환경이 만족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내 운명에 대한 불만 의식이 적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뜻대로 앎을 찾아 배움의 길만을 택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 내 환경이 고마웠고 내 운명에 감사한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사치스러웠다고도 할 만큼.

배움만을 위해 살아왔고 앎의 길만을 따라다녔지만 나는 아직도 잘 배우지 못했고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배운 것이 있다면 잘 알 수 없다는 사실뿐이며 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편적인 파편과 같은 것뿐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아물아물하다. 그러기에 나는 사물 현상을 더욱 관찰하고 남들로부터 더욱 배우고 더욱 생각하고 더욱 알고 싶은 의욕에 벅차 있을 뿐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이게 다 뭔가?' '어떻게 살아야 참다운가?'에 대한 대답이다. 이처럼 근본적이고 총괄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내가 찾아낼 수 없음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다. 아마도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생각한 끝에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히 단편적이며 극히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나마 더 배우고 생각해보고 더 알고 싶다. 나는 눈을 감는 날까지 더 배우고 더 알고자 노력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것을 알았다고 믿게 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투명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철학적 저서를 통해서 혹은 문학 작품을 통해서 혹은 잡문의 형식으로라도 표현하고 남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만일 내 자신을 위한 지적 정신적 추구의 결과가 혹시 남의 사고에 다소나마 자극이 되고 사회에 티끌만큼이라도 공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기막히게 기적적 요행의 한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다. 어느덧 내 삶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한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진다. 갈 길은 더욱 아득해 보이는데 근본적 문제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어렸을 때 초연했던 종달새, 우아했던 방울새, 정이 두터웠던 개가 생각난다. 엄격한 승원이나 깊은 절간의 고요 속에 이런 짐승들을 생각하면서 더 자유롭게 더 조용히 또 생각하고 또 쓰고 싶다.

 

앎에의 갈망

막연하나마 누구나 배움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앎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알려면 배워야 한다. 남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고 혼자서 배울 수도 있다. 어쨌든 배우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앎의 가치가 뭐길래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앎은 힘이다"라는 한 철학자의 유명한 구호가 있다. 앎의 가치를 규정하는 말이다. 이 구호는 앎의 중요성과 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가의 이유를 설명코자 한다. 힘으로서의 앎이 중요한 까닭은 모든 사람이 ''을 갖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며, 앎의 가치는 힘을 가져오는 도구적 기능만 있다.

잘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누구에게나 힘이 필요하고 그런 힘을 얻으려면 알아야 한다. 자연 현상의 원리를 알아야 농사도 짓고, 자연을 개발하고 조작해서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모르면 한 기업은 다른 기업들에게 밀려난다. 적의 정세를 잘 파악하지 않고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각별히 고도의 과학 기술을 갖추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 시장에서 승리할 수 없다. 경제적 풍요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오늘의 사회에서, 무역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길은 첨단 과학 기술을 갖추는 작업이다. 이처럼 앎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적 기능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도구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라도 보다 많은 앎, 보다 정확한 앎이 필요하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앎의 가치가 도구적 기능으로만 끝나는가. 오직 전술적 또는 상업적 전략으로만 앎을 추구해야 하는가. 다만 무엇인가의 수단으로만 앎이 갈망되어야 하는가.

앎의 가치는 그것의 도구성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자신의 체험을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공자가 이천여 년 전 이미 말했듯이 앎은 그 자체가 기쁨이다. 역설적이지만 알기 위해 치러야 할 노력과 고통은 곧 기쁨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글자와 숫자를 배웠을 때의 놀라운 기쁨을 회상해보자. 처음으로 물리학, 화학 또는 식물학을 배웠을 때의 신기한 즐거움을 기억해보자. 처음으로 역사를 배우고 사상사를 배웠을 때의 흥분된 쾌감을 되새겨보자.

시시한 앎이 그렇게도 기쁨을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들의 생존과 번영에 깊이 관계되고, 모든 사물 현상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앎이 가져오는 충족감은 그만큼 더 크고 깊은 것임에 틀림없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 뉴턴이 '만유 인력'을 알았을 때,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처음 투시할 수 있었을 때, 각기 그들이 체험했었음에 틀림없을 기쁨의 환희 소리를 상상할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칸트는 그의 저서 "실천 이성 비판"의 마지막에 대충 다음과 같이 썼을 때 그는 앎의 순수한 기쁨을 웅변적이며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밤하늘에 뿌려져 있는 아름다운 별들의 질서를 마련하는 물리적 법칙과 가슴속에서 발견하는 도덕적 법칙에서 생기는 경이와 경건심을 금할 수 없다."

앎이 가져오는 어떤 결과를 떠나 앎 자체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는 이유는 앎이란 빛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즉 밝음은 그 자체가 더 바랄 수 없는 환희가 된다. , 밝음, 투명한 것 이상으로 더 깊고, 짙고 순수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빛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어둠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신 신이나 해탈한 부처님을 제외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짙은 어둠에 갇혀 있다.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이 어둠에서부터의 해방이다. 이성을 부여받고 태어난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성의 빛을 찾는다. 왜냐하면 이성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로부터 구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이승과 저승으로 잠정적으로 일단 구별한다. 이승은 현세를 말하고 저승은 죽은 다음의 삶을 뜻한다. 그리고 이승의 우리의 상황을 '무명'이라고 서술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해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탈된 세상, 보다 정확히 말해서 그 상황은 '열반'이라고 불린다.

언뜻 보아 신비스럽기도 하고 알 수 없을 것 같은 불교적 세계관은 따지고 보면 뻔하다 할 만큼 자명하고 단순하다. '무명'이란 어둠을 의미하며 어둠은 인간의 무지한 의식 상태를 가리키며, '해탈'은 어둠으로부터의 해방, 즉 사물 현상을 올바로, 즉 있는 그대로 알았을 때의 상황을 뜻한다.

삶의 궁극적 기쁨의 상태를 뜻하는 '열반'이란 다름아니라 어둠으로부터 해방됐을 때, 우리가 사물 현상의 본질을 빛에 비친 대로 보았을 때에 체험할 수 있는 의식 상황을 지칭함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놓여 있는 자연 상태 속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인간은 '무명' 즉 어둠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교가 가르쳐주듯이 인간의 근본적이고 자연적인 욕망은 어둠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따라서 앎에의 소망은 가장 근원적이다. 인간의 조건과 욕망에 의해 설명되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의 가치는 앎 자체이다. 그러므로 앎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은 세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고 끝없는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준다. 그래서 앎에의 갈망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그 갈망은 앎의 도구적, 즉 수단적 가치로서가 아니라 오로지 앎의 본질적, 즉 형이상학적 가치를 전제했을 때에만 설명된다.

나날이 그리고 급속도로 모든 것이 상업주의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그 어떤 것도 상품화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상품주의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본질적이며 순수한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모든 것은 교환가치로 귀착된다. 모든 것이 도구가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에서 따지고 보면 무엇을 위한 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앎의 가치, 배움의 가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물론 나는 앎의 도구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앎이 힘이라는 주장은 진리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라도 우리는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앎이 도구적 가치를 떠나서 더 근본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만일 앎 자체가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어떤 학문에 종사한다면 깊고 참신한 앎을 얻기 힘들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나 철학을 비롯한 인문 사회 과학에 있어서나 위대한 진리는, 깊은 앎은 앎의 순수한 가치, 앎 자체의 가치에 도취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견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앎이 도구적 가치가 있다면 보다 중요한 도구적 가치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깊은 앎을 찾아야 한다. 즉 앎의 도구적 가치가 앎 자체의 가치를 추구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면 도구적 가치보다 내재적 가치를 더 알고, 탐구하고, 배우는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앎을 갈망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모든 사람이 앎의 순수한 가치를 깨닫거나 경험하고 있지도 않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정말 학문을 위해 일생을 바쳐 학문적 공헌을 갖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는 누구보다도 사물 현상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앎 자체의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갈망과 정열을 우선 가져야 한다. 그는 우선 앎 자체가 주는 기쁨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말 대학다운 대학에서는 눈앞의 실용성과는 상관없이 앎의 순수한 가치가 존중되고 그런 가치를 위한 노력이 격려되어야 한다. 앎의 수단적, 즉 부차적 가치를 기대한다는 입장에서만도 그래야 한다. 학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 가치에 관한 우리의 안목 때문에 교육의 의미와 제도에 대해 어쩌면 지나치게 근시안이 아닌가 싶다.

 

스무살의 독서

1953년 겨울 추운 어느 날 나는 이불을 둘러쓰고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몇 페이지를 원서로 사전을 뒤적거리며 읽느라 새벽까지 씨름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함께 이 책이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 갈리마르가 내게 직접 보내준 것이다. 포장을 뜯고 아직도 새 종이 냄새가 풍기는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리고 페이지를 한 장씩 책칼로 찢으면서 느꼈던 흥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사르트르라는 작가, 사르트르라는 철학가, 사르트르라는 인간은 지적인 시인을 겸한 사상가가 되고자 꿈꾸고 있었던 불문학도인 나의 정신적 우상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안 것은 6·25전쟁 중 문학한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부산의 다방을 드나들면서부터였다. 그 당시 군에서 제대한 나는 학교에 적을 둔 채 동래고등학교에서 불어 강사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어로 번역된 불문학 신간을 많이 갖고 있던 불문학 애호가 양씨가 부근에 살고 있었다. 내가 실존주의와 사르트르의 이름에 좀더 익숙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책을 통해서였다. "구토"라는 소설이 그의 대표적 문학 작품인 것을 안 것도 바로 이때였다. 불문학을 전공했던 내가 그 책을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 했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수복 후 서울로 돌아온 나는 시험 삼아 그 원서를 낸 출판사에 원서를 읽고 싶다는 얘기를 써서 보냈다. 내가 "구토"라는 책의 불어 원본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렇게 해서였다.

"구토"는 사르트르의 많은 문학 작품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전후 불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라는 것이 정평으로 되어 있다. 사르트르의 다른 문학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소설은 그의 실존주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학이 어떤 관념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될 때 그런 작품은 문학성, 즉 예술성을 그만큼 상실하기 쉽다. 사르트르의 문학 작품의 대부분이 관념적이며 그만큼 예술성이 부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구토"만은 예외다.

이 소설의 주제는 실존의 발견이다. 실존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는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주장이다.

그만큼 관념적이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독한 독신 학자 로캉탱이라는 인물의 독백적 경험 기록을 통해서 사르트르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실존을 피부로 느끼고 깨우치게 한다.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사르트르는 이 소설의 주인공의 입을 벌려 설명한다. "내가 꼭 들어맞는 장소, 정말 나 자신의 보금자리라고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다. 나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나는 드 트로(de trop)이다." '드 트로'란 잉여물, 즉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이런 결론만큼 더 충격적인 것이 있겠는가. "구토"는 이러한 충격의 절실한 표현이다.

나는 그 당시 이 소설의 주인공의 생각에 뜨겁게 공감했다. 삶의 적나라한 진리를 발견했다는 느낌이었다. 진리는 가혹하게 아플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귀하고 아름답다. 진리를 철저히 행하며 산 인생은 더욱 그렇다. 나는 로캉탱이 발견한 진리대로 살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실존적 구토와의 부단한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문학과 철학의 긴장

강한 감성적 충동과 역시 강한 지적 호기심, 문학적 표현에 대한 갈증과 철학적 추구에 대한 정열간의 끊임없는 긴장이 나의 삶을 지배해왔던 것 같다. 그런 긴장 속에서 나는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 작품에 비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지적 '의미'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정서적 '의미'를 동시에 찾아 왔다. 나는 문학, 예술, 현대적 학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농촌에서 자랐지만 일찍부터 사상가, 예술가, 작가 특히 시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예술적 감수성이 짙은 소년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심성이 약해서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남달리 쉽게 매료되고, 감탄하고, 감격하고, 격분하는 소년이었던 것 같다. 서울의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시, 소설 등 문학 작품 그리고 알 수도 없는 사상/이론서들을 탐독하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느낀 감동,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리를 아름답고 감동적 시로 표현하고 싶은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불문학을 대학 전공으로 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사르트르나 카뮈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던 당시 불문학을 가장 화려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 취해 있는 시인, 개인적 경험만을 표현하는 작가로서만의 삶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예술적 감성이 짙었을 뿐만 아니라 지적 호기심 또한 강했던 것 같았다. 나는 자신과 세계에 대해 논리적으로 투명하고 싶었다.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았다. 아무것도 투명한 것이 없었다. 감격하고 흥분하고 그러한 내적 경험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혼탁했다. 나는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설명할 수 있었으면 했고, 모든 것의 근원적 의미를 찾고 싶었다. 나는 감성에 예민했을 뿐만 아니라 채워질 수 없는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물음을 던지면 던질수록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혼탁하고 아무것에도 그것의 궁극적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 시를 쓰다가도,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었고, 아무리 자랑스러운 삶이라도 궁극적으로는 공허해 보이기도 하였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학위를 받고 난 직후에도 나는 나의 논문의 의미, 그러한 나의 성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나는 어느덧 시적, 예술적이기보다, 사념적, 종교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본격적으로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파리를 떠나 미국으로 갔던 것은 역시 자연스럽다. 나는 문학을 하다 철학을 하게 됐고, 문학 교수를 몇 년 하다가 벌써 꽤 오랜 세월을 철학 교수로서 살아오고 있다.

나를 철학 쪽으로 처음 끌어준 사람은 사르트르로 기억된다. 주로 주석적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지만 그의 철학은 나의 고민, 나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르트르가 펼치는 '실존주의 철학'이 실존과는 상관없는 건조한 문제에 대한 난해한 담론이 아니라 삶의 드라마를 밝혀주고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여겨졌다. 사르트르는 삶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를 삶과 연관하여 일관된 논리로 다 같이 설명해주는 듯싶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이해하면 모든 철학적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라톤의 "국가"나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대했을 때 그것들은 당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실존적 문제 아니 당장 먹고 자는 생존의 절박한 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건조한 담론으로만 보였다. 대학에서 수강한 당시 학생들 간에 유명했던 '철학개론'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철학적 눈은 파리 대학에서 크게 떠지고 나의 본격적 철학 공부는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나의 철학 공부란 우선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을 비롯해서 비트겐슈타인,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의 거목들의 저서들과 그러한 철학자들의 저서들에 대한 다른 수많은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나의 소박한 철학적 평가와 그를 통해 갖게 된 나의 철학관은 미국에 가서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부터 흔들렸다. 한편으로 후설의 현상학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분석철학을 접하면서 사르트르의 철학이 엄격한 관점에서 볼 때 철학이 아닐 수도 있고, 철학이 단순히 뜨거운 실존적 문제가 아니라 냉철한 논리적 문제임을 깨달았다. 분석철학이 보여준 사고의 엄격한 정밀성과 그에 따른 냉철한 논리성에 깊은 미학적 감동을 체험하면서 이러한 철학이 보여준 깊은 철학적 사유력에 말없는 경탄과 존경심을 느꼈다. 이러한 종류의 저서 혹은 논문, 즉 사상을 한국에서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프랑스에서도 그러한 철학적 담론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30대 중반에 막 들어서 있던 내가 세계적 수준에서 그들과 나란히 철학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고,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지적 능력이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미국에 간 지 2년 반이 겨우 지난 뒤 어느덧 미국 대학에서 철학 교수로서 교단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철학가로서 나의 앞날이 너무나 막막하다는 것을 새삼 강하게 의식하게 됐다. 어떤 전문 분야를 알고 있거나 아니면 철학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철학을 하게 된 것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고자 하는 간절한 지적 그리고 실존적 요청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는 다른 사람의 어떤 전문적 분야의 철학을 배우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고 내게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나의 철학을 갖고 싶었다. 나의 철학적 의도는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세계관'을 세우려는 데 있었다.

나는 모든 철학적 문제에 대해 대충이나마 나의 입장을 세워야 했고, 철학 밖의 다른 분야의 새로운 사조들, 그 주장들, 그리고 그 이론들을 알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찾고 있던 '세계관'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식론은 물론, 논리학, 과학철학, 미학, 윤리학, 언어 철학, 해석학, 종교철학, 정신분석학 등에도 조예가 있어야 했다. 마르크시즘, 구조주의, 비평 이론, 그리고 최근에는 해체 이론,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입을 벌릴 수 있어야 했다. 하이데거와 더불어 비트겐슈타인, 가다머와 나란히 리쾨르, 콰인과 병행하여 푸코, 하버마스와 대립해서 데리다 등의 이름에도 익숙해야 했다. 그리고 플라톤에 앞서 노자를, 아리스토텔레스에 앞서 공자를 생각할 줄 알아야 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어떤 특수한 분야의 철학자는 물론 어떤 철학의 '전문가'이기를 거부하며, 어느 학파나 조류에 속하기를 거절한다.

그렇다면 나의 철학적 관심은 너무나 방대하고, 나의 철학적 초점은 그만큼 산만하고 흐리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분야에 걸쳐 철학을 가르쳤고, 혼돈스럽다 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저서와 논문을 썼다. 그러나 내 자신도 미처 잘 의식 못 했던 것이지만, 그 동안 내가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보면 거기에는 어떤 일관된 관심과 문제가 내가 본격적으로 철학하기 이전부터 이미 깔려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의 석사 및 박사 논문들의 내용만을 보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서울대에서 쓴 불문학 석사 논문, "오성과 현실의 변증법으로서의 시: 발레이의 시학"에서 인식/오성과 존재/현실의 갈등의 극복이 시로서 극복되고 있음을 주장했고, 소르본 대학에 제출한 불문학 박사학위 논문, "말라르메에 있어서의 '이데아':일관성에의 이상"에서 말라르메의 시적 가치는 모든 언어 이전의 현실을 언어로서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할 때 생기는 존재와 그 언어적 표상간의 모순된 갈등이 빚어내는 긴장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위해 쓴 논문, "메를로퐁티에 있어서의 '표현'이라는 개념의 존재론적 해석"이라는 제목이 붙은 논문에서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검토하면서 형이상학적 실체는 인식 주체/의식과 그 대상/물질이라는 이원적 구조가 아니라 오직 '표현'이라는 말로 가장 적절히 서술할 수 있는 속성의 일원적 실체로 봐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요컨대 나의 철학의 핵심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이다. 정신/물질과 의식/대상으로 분리하는 존재론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분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전체로 보고자 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커다란 형이상학적 맥락에서 모든 개별적 현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의미를 모색하는 데 있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라는 속담이 있다. 학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전문적인 특수한 문제에 대한 단 하나의 논문은 그 철학적 참신성에 있어서나 그 논리의 정확성과 섬세함에 있어서나 그리고 그 문체에 있어서 한 권의 책, 열 권의 두꺼운 책보다 월등하게 귀중한 것이 있다. 이런 점에서 나의 철학적 작업은 대중적/속물적이며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의미'는 별로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철학은 그의 철학적 능력, 기질, 관심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한 철학은 나의 능력 밖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관심이나 기질과 맞지 않는다. 내가 철학한 것은 '내가 진심으로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세계관, 즉 일종의 형이상학적 비전'의 창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철학은 일종의 시(때 시)이며, 나의 철학적 작업은 일종의 시작(때 시, 지을 작)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언뜻 보아 상반되는 것 같던 나의 시적/정서적 추구와 철학적/ 지적 추구가 합쳐질 수 있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이며 철학이란 무엇인가? 흔히 시인이 일반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정신적 세계에 살고 있는 특수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철학자는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깊은 진리와 남들이 갖출 수 없는 고귀한 지혜의 소유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존경하는 군/정치/지식인이 필자더러 "앞날의 한국을 이끌 수 있는 철학을 마련해보라"고 말했던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일반적인 그러나 잘못되게 과장된 철학관을 반영한다. 철학은 과학자보다 깊은 진리를 발견할 능력도 없으며, 철학자는 종교인이나 그 밖의 이념가들보다 더 깊은 지혜의 소유자도 아니며, 정치가보다 더 뜨거운 행동자도 아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세계 인식, 사회적 경험, 인간의 담론에서 한없이 발견되는 혼탁을 없앤 뒤에 얻을 수 있는 지적 투명성이다. 이러한 투명성을 추구할 때 누구든지 철학자인 것이며, 한 철학자의 철학적 업적은 그가 직접적으로 미친 경제적, 정치적 영향이 아니라 그가 밝혀준 지적 투명성에 의해서만 측정된다. 문학과 철학은 기술 개발이나 경제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문학과 철학은 실용적 가치가 없는 말놀이하거나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파리에서 로마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백발이 된 로마 법과대학의 교수가 나와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문학이니 철학이니 다 난센스이니 술이나 마시자"고 하면서 포도주와 치즈를 나누어 주던 30여 년 전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과학 기술과 경제적 가치가 지배하는 현대에 문학이나 철학이 개인의 삶에 얼마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가 시인/철학자 자신에게도 의심 가는 것은 당연하며, 시인이나 철학자들이 고관이 된 동창생의 권력 곁에서 주눅이 들고 사업에 성공한 옛 친구 앞에서 무한한 빈곤을 체험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아직 어떤 작가들은 베스트 셀러를 써내고, 아직도 어떤 철학자들은 '깊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실을 납득하기 어렵지만 평생 시에 매료되어 변변치 못하지만 시를 쓰고 문학을 논해왔으며, 철학에 도취된 상태에서 철학을 논하고 적지 않은 철학적 저서를 내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필자로서는 한없이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문학이나 철학 공부를 단 한 번이라도 직업과 연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필자가 처음에는 문학 교수로 그다음부터는 외국에서 철학 교수로서 궁색하나마 생활을 해올 수 있었고, 지금도 고국의 유명한 공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이러한 시대와 사회 환경에 태어났음이 큰 행운임을 의식하고 나의 이러한 운명에 무한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시나 철학은 결코 단순한 관념/언어의 놀이가 아니며, 무용하지 않다. 쓸모없게 보이는 철학적 투명성을 갖출 때만 세계와 우리 자신들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생긴다. 시나 철학의 기능이 궁극적 진리의 탐구라는 고전적 시/철학관은 누가 뭐라 해도 아직 옳다. 인생이 삭막하다면 시로 표현될 진실한 느낌이 있는 인생은 그렇지 않은 인생보다 덜 삭막하고, 세계가 어둡다면 철학으로 밝혀진 세계는 그렇지 않은 세계보다 덜 어둡다. 그리고 느낌은 삶의 표현이며 빛은 정신의 가장 귀중한 가치이다. 시작과 철학적 탐색의 가치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다. 삶과 정신적 가치보다 소유와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기술 문명을 살아가는 오늘, 시와 철학의 의미는 더욱 귀중하다.

/철학의 본질은 그 제품에서가 아니라 그 활동 자체에 있다. 인생과 세계가 수렁과 같다면 그 밑바닥에 빠져 묻혀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시적/철학적 작업은 끝날 수 없다. 그동안 필자는 양적으로 적지 않은 논문과 책을 썼다. 객관적 척도로 볼 때 그것들은 쓰레기같이 무의미한 것들일 수 있지만 내가 철학적, 아니 삶이라는 수렁에 가라앉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었다. 숨 쉬고 자고 먹고 배설하는 활동을 떠난 삶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작과 철학적 탐색 없는 나의 삶은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느덧 육순이 훨씬 넘은 지금 나의 시적 혹은 철학적 삶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물음을 던질 때마다 허망하고 부끄럽다. 가슴 깊이 스며드는 공허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럴수록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시를 쓰고 철학적 탐색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은 생각이 가슴을 채운다.

나의 시적/철학적 작업을 정리할 수 있는 한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철학책을 위해 나의 시적 정열은 쉽게 꺼질 것 같지 않고 철학적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을 성싶다. 눈을 감기 전 언젠가는 모든 것을 밝혀주고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의 예술 작품 같은 세계관을 꼭 세워보고 싶다. 그런데 아직도 읽을 책과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내게는 별로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식한다. 그럴수록 시력과 필력이 남아 있는 날까지 더 읽고, 더 배우고, 더 알고, 더 시를 쓰고, 더 철학적 탐색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진다.

 

나는 정말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쨌든 무엇인가에 미칠 수 있을 만큼 정열적인 성격이 부럽고 무엇인가 미칠 만큼 좋아할 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타는 듯한 정열로 무엇인가를 정말 좋아하여 그것에 매몰하는 삶의 즐거운 긴장감과 충만감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여자 혹은 남자에 미쳐 망신을 당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이들이 있다. 카르멘과 그의 호세가 다 같이 그러했다. 음악에 혹은 연극에 미친 평범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있다. 강아지라면 정신을 잃는 이들이 있다. 시인 보들레르를 아니면 작가 베케트를 미치다시피 좋아해서 그들의 시나 연극 구절들을 즐겨 외우는 이들도 있다. 낚시에 미치는 이들도 있다. 한 작가를 아니 한 작품만을 죽어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정말 목숨을 바치고 미칠 만큼 좋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진 이는 축복받았다. 충만감으로 채워진 그들의 삶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어떤가? 나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갖고 있는가? 내가 미칠 만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자주 이런 물음을 걸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22세의 젊은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일기 속에서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가치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처절한 어조로 기록하고 있다. 이때 그는 목숨을 바칠 만큼 귀중한 가치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삶의

공허함을 고백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육십 중반을 넘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22세의 키에르케고르가 느꼈을 삶의 궁극적 공허감 속에서 그의 애절한 외침을 반복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좋아하고 아낄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정말 죽어라 좋아했던 무엇이 있었던가? 자신 있는 대답이 없어 마음이 허전해진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달라진 것이 없다. 마찬가지다. 꼭 한 가지 목숨을 걸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들을 동시에 좋아해서인가? 아니면 나에게 뜨거운 감정이나 정열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타협적이기 때문인가? 남달리 현명해서 모든 가치의 상대성을 남달리 투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가?

삶은 부단한 행동의 연속이고 행동이 가치를 전제한다면, 가치는 삶의 길잡이에 비유된다. 그러나 서로 다르고 때로는 모순된 가치가 우리의 행동을 자극하고 우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가치, 즉 삶의 방향 선택은 불가피하다. 삶은 행동의 연속이며, 가치 선택을 전제하지 않은 행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어떤 가치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면, 선택은 반드시 어떤 규범을 전제하는 이상, 이 문제의 문제는 그런 규범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알아내는 데 있다. 이성에 의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이성은 내가 꼭 택해야 할 가치를, 내가 목숨을 걸고 좋아해야 할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무엇을 꼭 좋아해야 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 지를 모른다면 가치 선택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렇게 살아도 좋고 저렇게 살아도 좋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내가 미칠 만큼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가? 내게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물음이 생긴다.

 

공허감

그 원인이나 동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든간에 나는 사춘기에 허무주의자였다. 인간의 삶이 갈등과 혼란의 끝없는 고통의 반복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궁극적 의미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허무주의가 인생 자체에 부정이나 포기는 물론 삶의 다양하고도 귀중한 경험의 부정만을 뜻하지도 않는다. 행복하고 즐거운 허무주의가 있을 수 있다. 허무주의는 철학적으로 투명한 지적 결론이다. 그러나 파스칼,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프로이트, 사르트르가 밝혔고,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강조했듯이 삶은 지적 사고이기에 앞서 둔탁하고 뜨거운 감성적 격동이다. 그러기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불행한 허무주의자가 있는 반면 충만한 하루하루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행복한 허무주의자도 있을 수 있다. 사춘기에 나는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했을 만큼 극심한 허무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한 번밖에 없는 삶에 그만큼 더 애착을 가졌고, 이순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허무주의자로 남아 있는 나는, 남과 더불어 삶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울러 인간의 숭고한 미덕에 깊은 경의를 보내고, 인간의 놀라운 지적/기술적 업적에 감탄하고,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에 무한한 감동을 피부로 느끼면서 더욱 열심히 살면서 때로는 삶의 충만감으로 행복하다. 무한히 펼쳐진 하늘의 빈 공간이 시야를 막는 도시와 산들로 충만한 공간보다 시각적으로 더 아름다울 수 있듯이, 속이 비어 있는 범종이나 큰 북이 속이 가득찬 바위나 돌보다 깊고 은은한 소리를 낼 수 있듯이, 무한히 공허한 우주, 빈 존재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삶이 백화점같이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 찬 삶보다 낫고, 하나의 선시(봉선 선, 때 시)나 불교적 교리처럼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삶이 더욱 충만할 수 있다.

공허감은 무엇인가의 부재 의식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욕망과 추구를 전제하지 않는 곳에 부재가 의식될 수 없고, 갈망과 추구는 언제나 어떤 대상을 전제하며 그래서 공허감은 필연적으로 어떤 대상의 부재가 가져오는 좌절된 의식이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좌절된 욕망이 다 같이 공허감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배고픔과 빈곤,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사회적 실패는 다 같이 욕망 좌절의 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 의식은 공허감이 아니라 부족감을 의미한다. 부족감은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음식이나 돈이 생기거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고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면 해소된다. 그러한 인간은 물질적 혹은 사회적으로 충족된 후에도 어쩐지 부족감을 느낄 때가 있다. 포식을 한 축재자도 무엇인가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기 쉽고,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조한 베토벤이나 위대한 이론을 발명한 아인슈타인도 아직 채워질 수 없는 부족감을 의식했을 것이며, 세계를 정복한 나폴레옹도 역시 완전히 충족될 수 없는 부족함을 체험했으리라 짐작된다. 공허감이 부족감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물질적, 직업적, 지적, 기술적, 사회적 부족감이 아니라 궁극적 '가치'에 대한 부족감, '의미' 부재에 대한 의식이다.

모든 인간은 돌이나 물건처럼 그냥 존재하지 않고, 개나 돼지처럼 그냥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성서"에 씌어 있는 것처럼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공자가 효도에 대해 "금지효자(이제 금, 갈 지, 효도 효, 놈 자), 시위능양(옳을 시, 이를 위, 능할 능, 기를 양), 지어태마(이를 지, 어조사 어, 클 태, 말 마), 개능유양(다 개, 능할 능, 있을 유, 기를 양), 불경(아니 불, 공경할 경), 하이별호(어찌 하, 써 이, 나눌 별, 인가 호)" "요즘 효도란 봉양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그것쯤이야 개나 망아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다를 데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것처럼 인간은 정신적 동물로서 자신의 삶은 물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가치/의미'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하고 특수한 존재이다. 공허감은 필연적으로 의미에 대한 의식, 더 정확히 말해서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의미 부재 의식이다.

그러나 어떠한 인간도 공허감, 즉 삶, 우주 그리고 모든 존재의 궁극적 의미 부재를 한 번이라도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렇다. 아무리 만족스럽더라도 당신이나 남들이 한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하게 될 일의 궁극적 의미를 생각해보라. 당신의 존재,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자연 아니 모든 존재 전체의 궁극적 의미를 따져 보라! 그 의미가 어디에 있으며 언제 찾을 수 있겠는가? 철학과 종교는 이러한 물음과 이러한 물음에 대한 탐구의 두 가지 다른 표현이며 대답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원시적이나마 철학적 사유가 있었고, 어떤 형태로인가 종교가 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궁극적 '의미'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종교적 신앙은 그러한 확신의 한 표현 형태이다. 따라서 그들로부터 공허감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를 남들 이상 애타게 찾으면서도 발견한 것이라고는 오직 의미 부재 즉 공허감뿐이라고 말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간의 삶, 자연의 모든 현상에 궁극적 의미가 정말 있으며 그래서 공허란 느낄 필요가 없는 감정인가 아니면 모든 것은 사실 궁극적으로 공허한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결정적 대답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로부터 어떤 필연적 결론도 논리적으로 나올 수 없다. 위와 같은 대답들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내릴 수 있는 절대적 확신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깊은 공허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런 것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인간답고 그만큼 가치 있고, 공허감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인간의 삶은 공허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삶보다 더 공허하다. 모든 궁극적 의미에 대한 욕망과 추구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며, 따라서 인간의 유일하며 각별한 존엄성의 근거이다. 그렇다면 공허감을 느껴보지 못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마스크를 쓴 개나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점에서 행복한 돼지보다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그렇다면 공허감은 삶의 의미를 의식하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공허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정신적 여백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공허감을 느껴볼 여유도 없이 너 나 할 것 없이 물질적 충만만을 위해서 서로 싸우면서 떠들고, 만들고, 팔고, 사고, 소유하고 소비하기에만 바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 채워진 오늘의 삶은 어떠한 삶보다 더욱 공허해 보인다. 참다운 삶의 충만한 의미는 한 인간의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궁극적 공허를 느꼈을 때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돈벌이나 출세, 자연의 개발이나 애국적 사업에 바쁘기만 했던 활동을 잠시 잊고 무한한 우주 공간의 공허와 영원한 시간의 공허의 멀고도 은은한, 무한히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울림에 잠시나마 귀를 기울이고 그것의 깊고도 깊은 의미를 잠깐이나마 생각해보자.

 

죽음으로 본 삶의 의미

인간의 일상적 삶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활동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생각하기 전에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배설하기에 바쁘며,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취직하고, 돈을 벌고, 지적 혹은 사회적 욕망을 충족하기에 여념이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철학적이기 전에 생물학적 존재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가 있어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우선 생물학적으로 존재한 뒤에만 생긴다.

그러나 인간은 역시 생각하는 갈대이며 생각하는 소이며 생각하는 돼지이다. 우선 생존하고 연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한 생존과 연명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적어도 어느 순간 잠시나마 일상적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그 의미를 찾지 않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인간은 갈대나 소나 돼지와 다르다. 비록 영원히 살 수 있다 해도 의미가 정말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나 허망하고 공허하다. 그렇다면 일상적 삶을 뒤돌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역설적이지만 삶의 의미를 정말 절실하게 사색하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근본적 사건으로서 나의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끝이다.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끝난다. 맛있는 것을 먹지도 못하고,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으며, 아름다운 생각도 해볼 수 없다. 죽으면 땅에 묻혀 썩어 흙이 되거나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린다. 죽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식을 매장하면서, 친구가 누워 있는 관 앞에 분향을 하면서 느끼는 처절한 슬픔은 죽음이 모든 것을 박탈하는 한 생명의 궁극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죽음은 TV 스크린에 단 한 번 잠깐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 아닌가. TV의 뒤를 보거나 속을 뜯어봐도 그들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듯이 일단 세상을 떠난 부모, 자식,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언젠가는 TV 스크린을 지나가는 영상처럼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허상이고 스크린 뒤에 영원히 꺼진 영상이 진짜 현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의 세계"는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장해서 생식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의 고리 속에서 죽고 마는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면 인간의 운명은 동물들의 운명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고, 동물의 삶이 허무하다면 인간의 삶도 다를 까닭이 없다. 언젠가는 죽어서 뼈도 남지 않고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밖에 없다면 생각할수록 고달프기만 하고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은 무엇을 뜻하는가?

잔인한 하이에나에게 잡혀 뜯어먹히는 새끼를 바라보며 분노하고 슬퍼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어미 가젤들은 무한한 무력감과 생명의 공허함을 느끼지만 자신만은 살아남으려고 목숨을 걸고 도망친다. 숨을 거두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무한히 슬픈 인간의 한계와 인생의 허무함을 새삼 의식하면서 나만은 하루라도 더 잘살아 남으려 하고, 어머니를 매장하고 돌아와 세수를 하고, 저녁을 먹고 보약을 마셔야 하며,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나는 어미 가젤과 똑같이 이기적이다. 부끄러워도 그것은 우주의 한 질서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갈대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생의 의미가 있든 없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은 그만큼 인간다운 삶을 뜻한다. 가끔은 엄숙한 반성이 필요하다. 죽음은 그러한 기회를 준다. 어쩌면 죽음이 있기에 삶이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생각하면 할수록 삶과 죽음은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 숭고한 하나의 존재인 것 같다. 그런데 눈앞의 쾌락만 좇고 겉모양만 따르는 우리의 눈은 근시안적이고, 우리의 삶은 경박하고 피상적이다.

 

(빌 공)과의 만남

유교의 전통을 지켜온 시골 한학자의 집안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좁은 뜻의 종교 밖에서 살았다. 내가 어려서 살아온 세계에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대한 신념은 있었지만 절대자에 대한 기도나 형이상학적 실체에 대한 명상을 위한 시간이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자의 세계를 종교적이라 한다면 그러한 세계는 나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다.

우리 집 사랑 대청에서 바라다보일 정도로 가까운 300여 미터 정도 높이의 고룡산(높을 고, 용 룡, 뫼 산) 골짜기 중턱에는 절이 있었고, 20리 밖에 떨어진 공서지라는 동네 외곽의 황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프랑스 사람들이라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성당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교나 기독교나 너무나 멀고, 너무나 생소한 세계였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이 오신 날이면 진달래꽃으로 붉게 덮인 고룡산에 있는 절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고 불교 신자이건 아니건 주변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새 옷을 입고 그곳에 가서 봄날 하루를 즐기곤 했다. 어린 나에게는 무척 높고 무척 먼 가기 힘든 곳이기는 했으나 한 학자이신 할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가서 그분이 사주시는 눈깔사탕, 엿가락 그리고 쑥떡 등을 즐겨 먹던 기억이 난다. 절은 단청으로 울긋불긋했다. 절 전체가 그렇고 그 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들여다본 대웅전의 불당 역시 그렇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아니 '귀신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느낌은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을 갔던 프랑스인들이 살던 20리 밖 성당 안 벽에 그려진 성화(성스러울 성, 그림 화)들을 보았을 때도 유사한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 것들이 종교라는 것과 관계된다면, 그것이 불교이건 기독교이건 상관없이, 종교란 '이상스러운 것'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부처 앞에 촛불을 켜놓고 엎드려 불공을 드리고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기도하는 행위가 아무리 해도 기이하게만 보였다.

아직도 나는 회교도, 기독교도, 불교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다. 나는 엄밀한 뜻에서 특정한 종교를 갖지 않았다. 사찰을 장식한 단청이나 성당을 장식한 여러 가지 십자가 모양이나 역시 울긋불긋한 성화(성스러울 성, 그림 화)들은 아직도 내 미학적 기호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즈음 나는 그 뜻을 전혀 모르면서도 목탁을 치며 크게 불경을 외우는 스님들의 청량한 목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나는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말없이 기도하는 삶들의 경건한 모습을 볼 때 나 스스로 흐뭇함을 느낀다. 모스크 지붕에 올라가 내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로 '알라 신'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회교 신자의 우렁찬 목소리는 나의 심금을 울린다. 내가 그동안 위와 같은 종교에 대해 피상적이나마 공부를 했기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내 마음을 다 같이 사로잡고 깊숙이 울린다면 불경 낭독, 기도의 자세, '알라 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한결같이 인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어떤 보편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가?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불교의 명상성, 기독교의 경건성 그리고 회교의 철저성에 끌린다. 나는 절대 신과 천당을 전제하는 기독교 및 회교의 교리와 아울러 무아(없을 무, 나 아)/ 무존(없을 무, 있을 존)과 궁극적 '(없을 무)'/'(빌 공)'에 대한 교리에 관한 책을 조금 읽었다. 나는 아직도 서양 종교의 절대 신의 존재나 천당,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믿지 않으며, 불교적 천당으로서 '서방 정토'''의 윤회, 따라서 불상 앞의 불공을 믿지 않는다. 서양 종교적 기도나 불교적 불공이 기복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점에서 종교적 신념이 필연적으로 기복적이라면 나는 그러한 종교를 따를 수 없다. 나는 기독교, 회교 신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불교 신자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종교들과의 지적 접촉으로 나는 지적 성장이 가져오는 쾌감과 영적 풍요가 동반하는 실존의 깊이를 경험했다고 여긴다.

나는 불교도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세계관은 아무래도 알고 보면 기독교나 회교적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불교적이다. 나는 차츰 철학적으로 불교에 매료된다. 불교가 부처라는 한 인간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고, 그 가르침이 사성제(넉 사, 성스러울 성, 울 제), (쓸 고) 즉 삶의 고통, (모일 집) 즉 그러한 고통의 원인, (멸망할 멸) 즉 그것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 (길 도) 즉 그 방법으로 요약된다면, 언뜻 보아 불교는 깊은 철학적 혹은 종교적 가르침이라기보다는 극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해석과 태도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가르친 부처는 철학자이기 전에 인류 영혼의 의사였으며, 의사이기 전에 평범한 그러나 자비로운 심성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부처의 평범해 보이는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어떤 철학자도 쉽게 미칠 수 없었던 철학적으로 깊은 통찰력과 한없이 따뜻한 인간적 심성에 뿌리박고 있다.

인간의 고통의 원인은 그의 욕망이며, 이 같은 욕망은 자아에 대한 집착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아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자아의 존재를 의심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데카르트의 철학적 호소력은 '무아/무존/'의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집약할 수 있는 부처의 가르침은 데카르트적 형이상학, 즉 우리들의 보편적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자아' ''라는 고정된 존재는 물론 어떠한 사물 현상도 고정된 것은 없다. ''를 비롯한 모든 존재는 고정된 '있음'이 아니라 영원한 과정으로서 '되어감'이다. 윤회란 불멸하는 ''의 재생이 아니라 부단히 그리고 영원히 변하는 나의 다양한 양상을 지칭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모든 것들을 고정된 영원불변한 것으로 본 것은 사실상 '실체'가 아니라 그냥 '이름' '환상' 즉 공(빌 공)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무아/무존//'' '존재' '(있을 유)'의 부정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본질적 속성을 지칭하는 개념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현재 첨단 과학은 모든 현상의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영원한 변화/되어감의 우주에서 ''가 하나의 환상인 이상 ''의 죽음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삶과 존재 일반에 대한 불교적 직관은 철학적으로 옳고 아름답다. 깊은 골짜기 아름다운 숲속 깊이 자리 잡은 한국의 절로 들어가는 긴 길을 걸어가면서 불교적 공(빌 공)과 만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나는 해방감과 기쁨으로 가득찬다!

 

삶은 논술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이란 보람 있는 것인가?

이제 이따위 추상적 그리고 상투적 물음은 그만두자.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그만두자. 인생의 의미는 개념으로 기술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들을 보는 시각이며, 삶의 보람은 논술로 증명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몸으로 확증된 충족감이다. 인생의 의미는 발견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얻는 구체적 경험의 속성이며, 삶의 보람은 소유물이 아니라 삶이 빚어내는 특수한 체험이다.

정치적 권력, 물질적 부, 그리고 사회적 명예가 아무리 귀중하더라도 그런 것들 자체가 인생의 의미일 수 없으며, 장수와 건강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삶의 보람일 수 없다. 인생의 의미, 삶의 보람은 소유가 아니라 충족될 수 있는 경험을 지칭한다.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누구나 어디서고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한없이 푸르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문득 의식하면서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겨드랑이를 스쳐 갈 때 나는 살아 있는 환희를 느낀다. 어느덧 주홍빛이 든 감들이 다닥다닥 달린 감나무에서 그러한 미적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데 삶의 보람을 느낀다. 녹음이 짙은 깊은 산 계곡을 산책하면서 나는 인생의 푸짐한 의미를 느낀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한 권의 철학적 저서 혹은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어찌 인생의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랜 고심스러운 생각 끝에 신선한 이미지를 포착하고 참신한 낱말을 발견한 시인이 있다면 그러한 창작활동 말고 다른 어디에서 그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많은 준비를 한 덕택으로 한 시간의 멋진 강의를 했다고 확신했을 때 이보다 더 흐뭇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교사나 교수를 생각해보기 어렵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꽃이나 카드를 받았을 때보다 더 절실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애인을 상상해볼 수 없다. 그렇게도 아끼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어느덧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어떤 부모가 인생의 의미에 철학적 회의를 던질 수 있겠는가?

20리나 되는 시골길을 걸어 학교에 늦지 않고 제 시간에 맞춰 갔을 때 느꼈던 보람이 생각난다.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정신없이 잡던 그때의 경험, 장마 후 개천에서 물에 텀벙 뛰어들어 놀 때 느꼈던 기억들은 내 인생의 살아있는 의미이며 내 삶의 절실한 보람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는 삶을 보류하고 삶을 준비하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내일 그리고 먼 데서 기다리고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이 삶 외에 다른 데 또 하나의 삶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의미, 우리의 삶의 보람은 바로 여기 바로 지금 살아가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삶을 준비하며 일생을 보낸다. (우리는 보람 있는 지금 여기서의 삶을 살지 않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한 준비로 바쁘게 삶의 보람을 잃고 살아간다.)

그렇다. 지금 여기 내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데서 나는 삶의 의미를 의식하고, 내가 열심히 하는 일에 나름대로의 삶의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을바람이 서늘해진 오늘 저녁 산책길에서 별로 가득 찬 밤하늘에 새삼 황홀해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자결의 윤리

어떤 생명체한테고 생명만큼 더 귀중한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본능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강한 본능임은 당연하다. 모든 개개의 생물체한테 자신의 생존이 최고의 가치임은 어떤 방법으로도 깰 수 없는 자연의 엄격한 법칙 같다. 한 생명체가 스스로의 목숨을 자의적으로 끊는 자살 행위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실 동물의 세계에서 자결 행위는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이 단순히 하나의 동물이라면 인간 동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인간만은 자결할 수 있는 동물이다. 흔치 않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더러 자살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자결할 수 있다는 바로 그런 점에서만 인간이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과 구별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자연적 현상이건 타자에 의한 것이건 최고 가치인 생명의 부정을 뜻하는 죽음이 끔찍한 사건이라면 자의적으로 목숨을 끊는 자결 행위는 더욱 그렇다. 기독교의 주장대로 각자 나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자결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니만큼 어느 범죄보다도 큰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결은 절대적 금물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자신의 생명에 대한 동물적 애착에서보다는 한 인간이 보여주는 자결 행위 앞에서 숙연해지고 어떤 다른 행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윤리적 숭고함과 정신적 아름다움까지를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는 점에서 자결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됨을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자결 행위가 무조건 숭고하다는 말은 아니다. 동물과 다르다는 것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은 입증되지 않는다. 자신의 초인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화산에 뛰어 들어갔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자결 행위는 숭고성이나 아름다움보다도 잘못된 오만심을 보일 뿐이다. 어떤 이의 자결은 비겁한 책임 도피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자결 행위의 예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철학적 신조에 일관하기 위해 독약을 기꺼이 마신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복보다는 죽음을 택한 안티고네의 행위에서 그들의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의 고귀성을 읽어낼 수 있다. 충절의 결과인 정몽주의 자결, 민족적 굴욕에 대한 울분을 표시한 민충정공의 자결, 책임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일본 사무라이들의 할복, 선비들의 자결 행위, 국가나 동지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청산가리를 마시고 쓰러져간 수많은 이념적 투사들의 죽음 등은 그들의 판단의 옳고 그름이나 그러한 행위의 공리적 결과를 떠나서 우리를 정신적으로 압도한다. 언뜻 보아 끔찍한 자결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감동을 정신적 병의 징조로만 설명해 치울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감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모든 동물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생명에 대한 무조건 애착은 자연의 질서이다. 인간의 자결 행위는 자연의 질서에 배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질서와 구별되는 정신적 규범에 따라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초월한 정신적 세계에 속할 수 있음과 생리학적/물리적 제약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승리를 말해주고, 인간의 위신과 존엄성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다. 어떤 종교적 혹은 그 밖의 이념적 관점에서 볼 때 죄악 아니면 비윤리적 행위일 수 있는 자결 행위는 다른 시각에서 볼 때 가장 고귀한 윤리적 덕목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결에 대한 위와 같은 고찰은 한낱 낡고 원시적인 가치관/인간관의 반영이라고 비난/무시받을 수만은 없다. 과학적 기술이 지배하고 물량적 풍요와 감각적 쾌락의 관점에서 모든 가치가 측정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어떤 종류의 자결이 내포하고 있는 도덕적/인간적 깊은 의미는 재고되어야 한다. 근래 사회 전반에 만연된 도덕적 불감증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결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위와 같은 반성은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물질적 가치가 지배하는 오늘 한국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의식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오늘의 이 같은 정신적 풍조는 최근 우리들 앞에 드러난 엄청난 부정 사건, 그리고 그러한 사건의 책임자의 태도, 그리고 각계각층에 만연된 부패로 드러난다. 우리는 인간적 위신 등과 같은 도덕적 가치에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우리들의 윤리 의식이 마비되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우리는 어느덧 상대적으로 그만큼 더 동물적으로 되고, 정신적으로 빈곤해졌다는 생각을 면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수치심이나 명예의 도덕적 가치에 무감각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수치보다는 가난을, 목숨보다는 명예를 더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회는 인간적이라기보다 동물적 사회에 가깝다. 왜냐하면 수치심이나 명예에 무감각하다면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긍지에 대한 무감각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빵으로만 산다면 인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로 돌아가야 한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다는 명제가 진리라면, 때로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정신적 가치가 있다는 명제도 그에 못지 않은 진리이다. 상황에 따라 참다운 인간의 삶은 그의 죽음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역설도 나올 수 있다. 모든 동물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생존이라면, 인간한테는 그냥 사는 그 자체보다도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가 더 절실하다.

인생의 참다운 의미는 생물학적 장수가 아니라 정신적 승리에서만 비로소 확인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 살려면 경우에 따라 목숨보다도 더 귀중한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언제고 자결하겠다는 긴장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삶은 그만큼 더 인간답고 그만큼 더 벅차게 흐뭇하고 더 아름답고 따라서 더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불행히도 오늘의 문화는 이러한 정신적 건강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의 우리 사회, 오늘의 인간 세계는 그만큼 삭막하고, 오늘의 삶은 그만큼 더 공허하게 느껴진다.

 

수치심

돌은 보기 흉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자연적 사물이기 때문이다. 똥차, 똥통도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이다. 생명체이지만 꽃은 못생겨도 수치심을 모른다.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개나 돼지는 벌거벗고도 창피함을 느끼지 못한다.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것들, 그 많은 동물 가운데서 유독 인간만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인간성의 척도이고, 이러한 사실은 수치심에 무감각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짐승은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대낮에 다른 눈들 앞에서 짝짓기를 하면서도 수치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남들 앞에서 벌거벗은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는 수치심 때문에 남들 앞에서 짝짓기를 못 한다. 동물로서의 인간도 짝짓기는 어쩔 수 없는 행위이지만 인간의 짝짓기의 행위는 항상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방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은 수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준다. 수치심은 동물/짐승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이며 저항의 표시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냥 단순한 동물/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구별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인간 외의 다른 동물의 행동은 본능적이다. 본능적 동작은 인과 관계의 자연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물질 현상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막 태어났을 때 동물과 다를 바 없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인간은 자연법칙과 혼동할 수 없는 인위적 규범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자율적' 존재이다. 어떤 철학자의 말대로 인간은 싫어도 '자유'를 피할 수 없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오직 인간만이 주체적 동물이다. 인간의 자율성/주체성은 오직 인간 세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정신적 드라마/고통의 원인인 동시에 그의 위신/긍지의 원천이 된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율/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며, 자율/주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법칙과 다른 인위적 규범을 따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인간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수치심과 개나 돼지 등 동물에게 있어서의 수치심의 부재는 다 같이 위와 같은 자유/주체성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에 비추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성행위자로서 또는 육체적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여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직공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꼭 했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데 대해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보이지 못한 데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도덕적 규범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데 대해서, 축재를 한 데 대해서, 남을 괴롭힌 데 대해서 우리는 또한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이 일종의 의식/경험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식/경험이며 그 경험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수치심은 자율/주체성의 상실에 대한 의식, 즉 동물로 전락한 인간 자신에 대한 의식이며,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정체성 즉 자율/주체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근원적 의지를 전제한다.

따라서 수치심은 동물로서의 자신의 거부, 자율/주체로서의 자신의 확인이다. 성행위, 알몸에 수치심을 느끼는 이유는 그러한 행위, 그러한 상태가 인간의 동물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령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한국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은 자연적 법칙과 구별되는 아버지로서, 교수로서, 한국인으로서 규범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 처신하지 않고 동물과 다름없이 자연적 법칙에 따라 물질과 같이 작동했다는 의식에 기인한다.

생리학적으로는 동물인 인간에게 어쩔 수 없는 성행위가 최소한 의식적인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의식은 규범의 한 양식이며, 규범은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든 자연의 물리적 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적 법칙으로서 인간의 자율성의 구체적 표현이다. 동물적 성행위를 규범화함으로써 인간은 동물적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이 동물성을 초월하는 자율적 존재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짐승 같은 놈, /돼지 같은 놈'이라는 말보다 더 심한 욕이 있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연적 법칙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율적 법칙인 규범 속에서만 비로소 존재한다. 규범을 무시한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도덕적 규범은 바로 그러한 규범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이다. 비도덕적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치심이 도덕적 의식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면 수치심을 의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날 '수치심'이란 낱말은 그 용도는 물론 그 의미마저도 잃어가고 있다. 수치심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 인간의 자연 지배와 물질적 풍요는 날로 확실해지면서도 내면적으로 우리는 날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행복한 개나 돼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되풀이해 말하지만 짐승은 수치심을 모른다.

 

망상의 변

여행은 일상적 환경으로부터의 탈피이며, 규격화된 삶의 양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여행은 자유를 뜻하고 자유는 뜻하지 않은 가능성을 연다. 관광 여행이 아니고 사무적 여행이라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혼자 떠나는 여행일수록 더욱 좋다. 그만큼 모든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디론가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 여행은 낭만적이다. 어디로든 떠난다는 자체가 그렇고, 무엇인가 미지의 것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렇다.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멋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꿈도 꾼다.

좌석표를 들고 비행기를 타거나 기차나 고속버스를 탈 때 나는 언제나 약간 흥분한다. 좀 긴 여행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아주 멋있는 이를, 아니 아주 멋있고 젊은 여인을 만났으면 하는 요행을 바라게 마련이다. 나만이 이런 것인가? 남들도 마찬가지라면 내가 좀 더 각별히 그렇단 말인가? 비록 정도는 다를지언정 모든 남자들 아니 모든 인간은 다소간 이런 요행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리라. 여행에서 그렇게 만난 여인과 즐거운 몇 시간을 함께 했다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렇게 만난 여인과 아름다운 로맨스를 가졌던 친구들도 더러 있지 않던가?

좌석에 앉아 빔 옆자리에 올 승객을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다가 만약에 멋있는 여인이 혼자 나타났을 때의 상황은 상상해보기만 해도 황홀하리만큼 기쁘다. 이때 약간이나마 가슴이 뛰지 않을 남자를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을 때 바로 옆자리에 멋쟁이 여인이 앉아 있을 때를 상상해보자. 이런 요행을 꿈꾸지 않는 남자는 얼마나 감정이 삭막한 사람일까. 여자들도 같은 값이면 옆자리에 멋있는 사나이가 앉았다면 나쁠 리가 없다. 혹시 멋진 지나가는 로맨스라도 맺어지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운이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옆자리에 내가 꿈에 그리는 여인이 앉아준 적이 없다. 교양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장사꾼이나 건방져 보이는 관리형 인간이 나의 여행 기분을 망쳐버린다. 설사 그 자리에 여인이 있을 경우에도 멋있거나 우아하다거나 교양이 있어 보여 말이라도 나누어보고 싶은 경우마저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허탈한 심정에 빠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망에 차 있던 삶이 실의에 찬 삶으로 바뀐다. 내게 운이 없다는 생각을 떼어버릴 수 없다. 나는 자신의 불운을 탓하면서 운명론자로서 스스로의 허탈감을 달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바꿔 생각해본다. 백발 노인인 데다가 잘나지 못한 나의 옆에 앉게 된 여인이나 젊은 남자는 얼마만큼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을까를 상상해보면서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고 엉뚱한 요행을 바라기만 했던 스스로를 혼자서 꾸지람해본다.

우리는 다 같이 허황한 꿈을 꾸고 산다. 설사 그러한 꿈이 수포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이 어차피 착각이거나 허황한 꿈이라면 속임수 같은 요행을 바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망상과 착각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망상에서 깨어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다음번 탈 비행기에는 멋있는 여인과 나란히 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본다.

 

 

 

3. 시지푸스의 행복

 

관용

모든 동물은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적응할 때만 생존할 수 있다. 새는 날 수 있어야 살고, 고기는 헤엄을 칠 수 있어야 생존한다. 인간은 언어를 알아야 제대로 살 수 있고 첨단 과학 시대에는 기술을 갖추어야 번영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의 철칙이다. 적응에 필요한 능력이 자질이다. 동물에 필요한 자질을 본능이라 부르고 인간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덕목이라 호칭한다.

본능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데 반해 덕목은 인간 자신의 지혜와 의지에 의존한다. 동물의 본능이 자연적 산물이지만 인간의 덕목은 문화적 산물이다. 동물의 운명이 자연에 예속되어 있는 데 반해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자율적 결정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동물의 본능은 타고 나지만 인간의 덕목은 교육을 통해서 습득되고 개발된다. 동물의 본능이 불변한 데 비해 인간의 덕목은 변한다. 긴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인간의 생물학적 여건 그리고 그에 따른 생존 조건 및 근본적 욕망에는 큰 변화가 없다. 따라서 시대나 장소를 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된 덕목들은 보편적 성격을 띤다. 유교의 인의예지의 개념들이나 고대 그리스의 용기, 진실성, 절제 그리고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이란 개념들로 표현되는 덕목들은 다 같이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든 핵심적 덕목이다. 그럼에도 동물과는 달리 문화적 동물인 인간의 삶의 여건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소 가변적이며, 아울러 강조되는 덕목도 그만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 원시 시대에 힘과 수렵 기술이 강조되어야 했다면 부단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중세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는 충성심과 용맹성 등의 기사적 덕목이 높게 여겨졌다. 오늘날 급속히 변하는 무한 경쟁의 산업 사회에서 과학적 사고력, 상인적 꾀 그리고 굽히지 않는 경쟁적 투지가 보다 값진 덕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주어진 삶의 상황에 따라 덕목의 성격이 달라지지만 삶의 객관적 여건은 그 구성원이 어떤 가치, 어떤 도덕적 덕목을 선택하고 강조하느냐에 따라 크게 결정된다. 자비나 사랑의 덕목이 지배하는 사회적 삶의 여건은 경쟁과 패권의 덕목에 가치를 두는 사회적 삶의 여건과 결코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한 개인 혹은 사회의 가치관, 성격, 행동, 문화를 관찰하면 그 개인이나 그 사회가 귀중히 여기는 덕목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삶의 객관적 여건과 개인이나 집단이 갖고 있는 덕목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인간, 한 사회의 도덕적 상황은 그 인간의 생리적 조건이나 그 사회의 외적 여건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그 인간이나 그 사회 구성원 전체가 선택한 도덕적 가치, 즉 덕목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지금 전세계가 개인적, 집단적,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민족적 차원에서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어느 지역보다도 무자비하다 할 만큼 격렬하다. 개인적으로 보다 높은 경제적, 사회적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전쟁에 들어가고 있고, 집단간에는 각자 집단적 이익을 위해 지역간에는 각 지역적 욕망을 위한 싸움으로 심한 갈등과 혼란을 낳고 있다. 국제적으로 치열한 경제 무역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자면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남과의 대립을 면할 수 없다. 남을 정복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덧 이기주의자로 변했고, 어떤 양보도 마다하는 배타적인 거친 투쟁 정신이 귀중한 덕목으로 굳어가고 있다. 오늘날 개인적으로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삭막한 인심, 개인적 인간관계, 사회적으로는 오랫동안 겪고 있는 경제적 발전으로 가속화된 사회 및 정치적 혼탁과 혼란, 그리고 민족적으로는 반세기를 끌고 온 남북 분열이 가져오는 긴장과 고통, 우리는 바로 이런 와중에 살고 있다.

물론 우리는 민족적으로 개인적으로 생존만을 위해서도 투쟁해야 했고 현재도 그렇다. 민족의 자주성, 우리의 언어, 우리의 이름, 우리의 자존심, 우리 민족의 생존만을 위해서라도 일제와 반세기 동안의 투쟁을 해야 했다. 우리는 6·25라는 동족 상잔의 비극적 전쟁을 치러야 했다. 지난 30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민족적 저력을 분출시키면서 경제 전쟁에서 승리하여 폐허가 됐던 땅을 현대적으로 재건해야 했다. 민주화를 위해 그리고 문민정부를 세우기 위해 젊은이들과 아울러 국내적으로 투쟁해야 했다. 40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우리는 이제 경제적, 문화적 선진국의 문턱에 서서 오랫동안 짓밟혔던 민족적 그리고 인간적 자존심을 크게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성취이다.

만약 우리가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투쟁하지 않았던들 이러한 결과는 불가능했으리라. 이런 점에서 투쟁은 미덕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한 만큼 우리의 삶은 정신적으로 삭막하게 비어가고 있다.

경쟁과 투쟁을 거듭하고 나의, 우리의 승리만을 고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인간 관계는 그만큼 거칠고 험악해졌다. 그렇다면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 가치가 새삼 의식되어야 하며 갈등이나 투쟁이 아니라 평화와 협동의 인간 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사회적으로는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평등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고 구체적으로는 첨단 기술 시대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개방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할 시점에 놓여 있다. 남북간의 민족적 통일을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더 엄숙한 과업이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맹목적 전투 정신으로만 풀릴 수 없다. 시대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물질적 가치만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이며, 배타적 자기 주장만이 아니라 평화적 대화의 마음가짐이며, 폐쇄적이 아니라 개방적 태도이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관용의 정신이다.

관용은 남의 존재를 나의 존재와 더불어 인정하고 포섭할 수 있는 심성이다. 그것은 남의 입장을 개방적으로 존중하고 수용하는 자세이다. 그것은 편협한 고정의 울타리를 넘어 개방적으로 남에게 열려 있는 아량이다. 관용의 미덕을 가장 중요시한 이는 아마도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적 문필가 몽테뉴를 빼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쩌면 관용의 덕목은 현실적으로 볼 때 몽테뉴가 살고 있던 16세기 유럽만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 사회, 오늘의 세계 전체, 어쩌면 언제 어디서고 가장 귀중한 덕목이어야 한다.

그 두 가지 철학적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흔히 믿고 있는 바와는 달리 혼자 존재하는 인간은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는 오직 남들과의 사회적 연관 속에서만 존재한다. ''는 부모를 떠나 생리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고, ''가 어떤 인간인가는, ''의 정체는 나의 가족, 이웃, 그 밖의 무수한 남들과의 부단한 관계 속에서만 결정된다. 그렇다면 남들은 갈등적 경쟁에서 나로부터 내제되어야 할 적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부로서 포섭되어야 할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은 남에 대해 관용해야 함을 뜻한다. 둘째, 어떤 인간의 신념도 독선적일 수 없다. 아무도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근거가 없다. 신념의 상대성을 인정할 때 나는 남의 신념을 배제할 근거를 잃는다. 비록 나의 신념과 갈등할 경우에도 남의 신념은 나의 신념의 지평을 넓히고 깊게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남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내가 남에 대해 관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특히 지난 반세기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너무 개인적이었고 배타적이었으며, 폐쇄적이었고 독선적으로 되어왔다. 경쟁력, 투쟁 능력, 남 위에 승리자로서 설 수 있는 자질에 의해 나와 남들을 평가해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가 도덕적인 것과는 상관없으며 우리가 남을 대하는 태도가 관용과는 상관없는 것임을 말해준다. 이런 세계가 결코 인간적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거기에는 인간다운 삶이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느끼는 수많은 상처와 고통과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개인적, 사회적 문제의 근원적 원인은 바로 위와 같은 사실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용의 덕목이다. 선진 문화인, 선진 문화 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관용의 덕목의 가치는 위와 같이 도구적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구적 의미를 떠나서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귀중하다. 그것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꽃이기 때문이다. 어떤 꽃이건 아름다운 꽃은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그 자체로서 고귀하다. 그렇다면 삶의 궁극적 의미는 아름다운 꽃을 피운 데서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용의 덕목은 그러한 꽃이 될 수 있다.

 

삶과 독서

인격체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교양이다. 그러므로 교양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교양이란 인격적 존재로서 타고난 여러 가지 가능성의 개발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거짓'을 따지는 지적 가능성, '아름다움''추함'을 가르는 미적 가능성, ''''을 분간하는 윤리적 가능성, '정당성''부당성'을 가르는 논리적 가능성, '의미''무의미'를 추구하는 종교적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과학적 역사를 통해서 예술사, 문학사, 철학사, 종교사, 정치문화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책은 과거와 통하는 귀중한 창구이며 독서는 넓은 세계와 새로운 삶의 접촉이다. 올바른 독서를 통해서만이 지금 당장 이 자리에 고립된 우리가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 안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류 역사 안에 있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독서는 해방인 동시에 빛이다. 어찌 책을 접어 던지고 디스코장에 가서 동물적으로 엉덩이만 흔들고 시간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독서는 귀중하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나의 우선적인 독서 목적은 정보적일 것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엇을 해왔고, 무슨 생각을 해왔으며, 무엇을 추구해왔는지를 전문가가 아니라 교양인으로서의 나에게 알기 쉽게 씌어진 책을 읽겠다.

이 목적을 위해 역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겠다. 특히 정치사회사, 종교사, 과학사, 문화사, 인류학에 초점을 두겠다.

나의 두 번째 독서 목적은 개발적이다. 사물에 대한 지각적 감수성,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 선과 악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을 개발하며 키우고 가다듬고 싶다. 여기서 문학 작품과 만난다. 오락적이고 상품적이기만 한 쓰레기 같은 것에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들이 허다하고 깊이도 없고 재미도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시 적지 않은 위대한 문학 작품들은 우리에게 사물을 신선하고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개발해주고 현상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개발해준다.

그리고 위대한 문학은 세계와 인생을 철학적으로 깊은 차원에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특히 도덕적 감수성을 심각하고 숭고한 차원으로 고양해준다.

세 번째 나의 독서 목적은 훈련적이다. 논리적이며 철저하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백과사전식으로 단편적인 지식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거나 전자 지침판처럼 아무리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들이 정확한 논리에 의해 질서가 잡히지 않으면 그것들은 아직도 나 자신의 생각이 아니며, 그것들이 나 자신에 의해 정리되어 질서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직 나 자신의 느낌이 될 수 없다.

철학은 심오한 진리의 제공이라기보다는 먼저 철저한 비판적 정신에 의한 정확하고 분명하고자 하는 논리적 사고의 시련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소화하지도 못한 알 수 없는 개념들을 구호처럼 늘어놓는 데 있지 않고 어떤 문제든지 확실하고 명석하게 철저히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럼으로써 나는 사물을 단편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혼돈 속에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보는 능력을 키울 것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는 올바른 지식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도구이다.

그것은 도구의 유용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적 기쁨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독서에 열중하는 마지막 이유는 표현력을 습득하려는 데 있다. 혼자 아무리 깊고 논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도, 혼자 아무리 풍부하고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되어도, 그것들이 적절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벙어리나 소경과 같다.

표현력은 어떤 종류의 책에서도 신문의 몇 줄 안 되는 기사에서도 배울 수 있다. 간혹 신문의 짤막한 사설에서 통찰력 있고 논리에 맞는 내용의 적절한 표현력을 발견한다. 철학자 러셀이 대중을 위해 쓴 수많은 에세이를 정독하며 나는 표현력을 기를 것이다. 신선하고 적절하며 생생하고 명쾌한 한 줄의 표현은 우리에게 예술 작품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어느 때 어느 사회에서고 일은 언제나 찬양되고 격려 되어왔다. 사실 일의 내재적 가치를 부정하고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생산해야 한다. 일은 바로 이런 생산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는 사회, ''이라고 하는 생산 활동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일은 반드시 노력을 요구한다. 노력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고통을 의미한다.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모든 생물의 근본적 이치이다. 그러므로 일이 아무리 미화되더라도 그것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기피하고자 하는 것임엔 틀림없다. 모든 사회에서 일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찬미되고 때로는 성화(성스러울 성, 불 화)되기까지도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일의 위와 같은 성질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20세기에 하나의 철학적 기둥으로 알려졌고 사회 문화 비평가이기도 한 러셀은 일을 성화하려는 숨은 동기를 폭로하고 일의 내재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정한다. 일은 찬미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일의 미덕(아름다울 미, 덕 덕)은 남들의 피땀 흘릴 일의 열매만을 놀면서 즐기는 사회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속임수라는 것이다. 일은 최선의 경우 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견디어야 할 필요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러셀은 일의 미화를 소수의 지배층, 특히 경제적 지배층이 피지배층, 특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근로 대중에게 적용한 일종의 세뇌(씻을 세, 뇌 뇌)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일의 고귀성은 고사하고 일의 내재적 가치, 즉 그 자체로서 갖고 있는 일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러셀의 견해가 옳은가. 아니면 일을 격려하고 일의 고귀성과 성스러움까지를 강조하는 기존의 일에 관한 주장이 옳은지가, 양립하는 두 관점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하려면, 즉 위와 같은 두 개의 물음에 대답을 찾아주려면 우선 ''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더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

정치철학자로 알려진 아렌트 여사는 우리가 보통 ''이라 부르는 활동을 '작업(work)''고역(쓸 고, 부릴 역)(labor)'으로 구분한다. 이 두 가지가 다 같이 인간의 노력, 땀과 인내를 수반하는 활동이며, 다 같이 어떤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전자가 자의적인 활동인 데 반해서 후자는 타의에 의해 강요된 활동이다. 전자의 활동을 창조적이라 한다면 후자의 활동은 기계적이다. 창조적 활동의 목적이 작품 창작에 있다면, 후자의 활동 목적은 상품 생산에만 있다.

전자, '작업'이 인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물리적 혹은 정신적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이라면 '고역'은 그 정반대의 역조건에서 행해진 ''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이라고 불리는 활동에 땀을 흘리며 노력해왔고, 현재도 그렇고,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일이 '작업'으로 불릴 수 있고 어떤 일이 '고역'으로 분류될 수 있느냐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일을 작업과 고역으로 구별하고 그것들을 위와 같이 정의할 때 노동으로서 일의 가치는 러셀의 말대로 부정되어야 하지만 작업으로서 일은 전통적으로 종교 혹은 철학을 통해서 모든 사회가 늘 강조해온 대로 오히려 찬미되고, 격려되며 인간으로부터 빼앗아가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라고 봐야 한다.

'작업'으로서 일의 내재적 가치와 존엄성은 이런 뜻으로서 일과 인간의 인간됨과 뗄 수 없는 필연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분명히 일은 노력과 아픔을 필요로 하고, 생존을 위해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풍요한 생활을 위한 도구적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성, 목적성을 떠나서 일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한다. 동물의 세계에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은 ''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의 세계에서 일이 생기고, 오직 인간만이 일이라는 활동을 한다. 한 동물이 일을 할 때 그는 동물의 범주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족으로 들어온다. 한 인간이 일을 할 줄 모를 때 그는 인간의 테두리에서 추방되어 동물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라고 명칭될 활동은 '인간'이라는 명패와 다름없다.

일이라는 활동은 인간이 자신의 계획과 계산과 의지에 준해 주어진 자연을 변형시키는 과정이요 절차다. 동물도 생존 과정에서 주어진 자연을 어느 정도 변형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동물의 변형은 계획적이거나 의지적인 것이 아니다. 동물과 자연의 관계는 적응적 반응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반응 자체는 자연의 일부로 보인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인간은 자연에 단순히 적응하고 반응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주체로서 자연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킨다. 그는 자연의 질서를 이용해서 자신의 유일하고 독특한 새로운 질서, 자연에 환원될 수 없는 정신적 질서를 창조한다. 그런 것을 창조하는 이유가 단지 물질적, 즉 동물적 필요성을 보다 만족스럽게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해석할 수는 없다.

원시 사회를 연구한 이른바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그 결론을 맺으면서 근친상간 금기(가까울 근, 친할 친, 서로 상, 간사할 간, 금할 금, 꺼릴 기)라는 규범, 즉 반자연적 인간의 질서는 인간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지만 특수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규범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코자 하는 뜻의 구체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라는 창조적 작업도 인간이라는 동물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동물임을 나타내는 증명서와 같다. 우리는 일이라도 창조적 작업을 통해서만 우리가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기에 땀을 흘리고 적지 않은 고통을 치러야만 하는 정말 일로서의 일, 즉 작업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간에 언제나 엄숙하고 거룩하고 귀해 보인다. 땀을 흘리며 대리석을 깎는 조각가에게서,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창작에 열중하는 작가에게서, 무더운 공장에서 쇠를 깎는 선반공에게서, 땡볕에 지게질도 하며 밭도 가는 농부에게 다 똑같이 흐뭇함과 거룩함을 발견하며 그래서 머리가 숙여진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모든 일이 '작업'으로서의 일은 아니다. 어떤 일은 부정적인 뜻으로의 '고역'이기도 하다. 회초리를 맞으며 노예선을 젓는 노예들의 피땀 묻은 활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는커녕 그들을 짓밟은 '고역'이다. 위생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조건하에 타당치 않게 박한 보수를 받고 무리한 노동을 팔아야만 하는 일은 마땅히 없어져야 할 고역이다.

작업으로서의 일과 고역으로서의 일의 구별은 단순히 지적 노고와 육체적노고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한 학자가 하는 지적인 일도 경우에 따라 고역의 가장 나쁜 예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육체적으로 극히 어려운 일도 경우에 따라 적업(갈 적, 업 업)의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작업으로서의 일과 고역으로서의 일을 구별하는 근본적 기준은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것이냐, 아니면 타락시키는 것이냐에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자율성에 있다. 그런데 똑같은 일, 똑같은 고통스러운 육체적 혹은 정신적 노력의 집중도 일하는 당사자의 주체적 사고 방식에 따라 자율적이거나 타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태도나 사고 방식은 무턱대고 주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특히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삶의 객관적 여건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근거를 가져야 한다. 어떤 일은 일하는 사람 본인이 주관적으로 존엄성을 지녔다고 믿어도 객관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일하는 본인이 자신의 일에 존엄성이 없고 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경우에 따라 그 일은 객관적으로 존엄성을 갖추고 고귀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일은 인간의 본질적 요소이다. 일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이 귀하다면 일도 귀하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라는 말의 두 가지 뜻을 구별해야 한다. 일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고역으로서의 일로부터 모든 사람이 모든 경우에 해방될 수 있도록 냉철한 주관적 인식을 굳히고 엄격한 객관적 여건을 계속 개량하도록 다 같이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새해의 의미

자연적 흐름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해와 달과 계절로 측정되는 자연의 시간에는 오로지 주기적인 영원한 순환의 반복이 있을 뿐이다.

아침을 꼭 하루의 시작으로 보든가 초생달을 한 달의 첫날로 꼽는 이유가 석연치 않다면, 구태여 어떤 특정한 날을 일 년의 시작이라는 뜻에서 새해라 부르는 까닭은 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회에서는 어떤 특정한 날을 제도적으로 선택하여 고정시켜 새해라 부른다. 우리는 그날을 설날이라 일컬으며 즐거우면서도 경건하고 넓게는 사회적, 특히 가족이라는 사회적 공동체를 재확인하고 그 가치를 강화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조상을 위해 차례를 지낸다. 어른들에게 세배를 한다. 음식을 차려 가족과 함께 즐긴다. 설날은 틀림없이 즐거운 축제의 날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세뱃돈을 받았을 때의 즐겁던 기억을 갖지 않은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날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포부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 실현을 다짐코자 하는 날이다. 새해를 맞아 각별히 우리는 어느덧 살아온 지난 일 년의 삶을 새삼 회상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더듬어보고 정리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각별하게 새로운 삶의 계획을 세우고 포부를 가져보며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각별한 결의도 해본다.

한국에서 제일 추운 한겨울 어느 날을 새해로 정한 것은 극히 인위적이다. 365일 가운데 어느 날을 잡아 새해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해서 각별히 과거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포부를 갖고 새로운 꿈을 각별히 계획한다면 그것도 역시 퍽 인위적이다. 우리는 언제 아무 데서고 새로운 계획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새로운 삶의 꿈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아무 날이고 새날, 새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꼭 어느 특정한 날을 골라 설날이라 부르고 그날따라 잔치를 벌이고 제사를 지내고 새로운 꿈과 결단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스럽게만 보인다. 특별히 어떤 날을 잡아 그것을 새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며 새해에는 새로운 포부를 새로이 다짐해야만 하고 새롭게 결의를 굳혀야만 하는 의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모든 자연 현상은 반드시 어떤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다. 하루는 낮과 밤, 한 달은 초생달과 만월, 그리고 일 년은 사계절의 가락에 맞추어 운동한다. 모든 생명은 탄생, 생식 그리고 죽음이라는 박자에 맞춘다. 하루, 한 달, 일년은 언제나 똑같을 수 없고 언제나 다를 수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 한 달, 일 년을 의식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없다면 그것은 자신의 귀중함은 물론 그 존재 자체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특별한 시간에만 특별히 귀중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포부와 결의가 어떤 특정한 날에만 각별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은 시시각각 똑같이 값진 축제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포부를 갖고 새로운 희망을 다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정신에 인위적으로나마 어떤 박자를 부여함으로써만 우리의 삶, 우리의 정신을 보다 새삼스럽고 보다 역력하게 의식할 수 있다. 삶이 즐겁다 하여 시시각각 축제를 마련한다면 그것은 이미 축제의 의미를 잃을 것이다. 포부를 가짐이 중요하다지만 매일같이 포부를 새로이 다짐한다면 그것은 이미 포부를 다지는 기능을 잃게 될 것이다.

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졌긴 하지만 새해라고 부르는 설날이 각별히 귀중한 축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뚜렷한 자연의 박자인 네 계절 365일 가운데의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새해에 품어보는 새로운 포부와 결의가 귀중한 것은 그것이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설날에 이루어진 유일성 때문이다.

그 동안 누구든 수많은 새해를 맞이했고 그럴 때마다 되풀이되는 축제를 즐겨왔다. 그날따라 그 동안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반성했을 것이고 각별히 새로운 꿈으로 계획을 세워보곤 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체적 반성과 우리의 구체적 계획은 사람마다 그리고 해마다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그것들은 단 한 가지로 요약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과거보다는 좀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자 함에 있다.

무엇이 보람 있는 삶일 수 있겠는가. 가장 보람 있는 삶은 보람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긴장된 노력 속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

새해는 바로 그러한 체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그렇기 위해서 이번의 새해가 상투적인 또 하나의 설날이 아니라 유일한 것이 되게 해야 한다. 이번 새해의 결의가 또 한번 되풀이되는 염불이 안 되도록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한다.

 

삶의 보람

사람마다 그 내용은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가운데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어떤 이한테는 한 끼니와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잠자리를 발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한테는 권력을 잡거나 재산을 축적함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또 어떤 이에게는 한 편의 뛰어난 시(때 시)를 쓴다든가 혹은 다른 이에게는 세계의 사조를 바꿀 수 있는 철학적 책을 저술함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한 소녀에게는 예쁜 인형 하나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 구체적 내용이 어떻든지간에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

인생은 중요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성취함으로써 그것을 위한 우리들의 행동과 노력이 의미를 갖는다.

실존주의 작가이며 철학자로 알려진 카뮈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인생의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아닌가를 아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 밖의 모든 중요성은 위와 같은 물음에 비교하면 과히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만약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일 때 논리적으로 자살이 따름을 암시한다.

적어도 사춘기에 인생의 의미 문제에 부딪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순간적이나마 어쩌면 고통스러운 삶을 자살로써 해결하면 어떨까 하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에 대한 감수성이 의심스럽다.

인생의 의미라는 개념에 있어서의 '의미'란 말은 가치를 뜻한다. 그래서 '인생의 의미가 있다'는 말은 삶이 가치를 갖고 있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가치는 욕망을 떠나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욕망은 어떤 소원을 성취코자 한다. 욕망은 반드시 목적적이라는 말이다. 목적을 성취할 때에 어떤 행동 혹은 어떤 상황을 가치가 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인 욕망과 그 밖의 정신적 욕망을 초월할 수 없다. 이런 욕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가 중요할 수 있고, 그 여러 가지가 각기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들을 충족시키려는 우리들의 수많은 행위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렇다면 인생이 의미가 있는가? 이런 물음은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행위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과 똑같은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 만약 전자의 물음에 대한 가부간의 대답이 가능하다면 후자의 물음도 대답을 가질 수 있어야만 된다.

과연 그럴까?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우선 어떤 조건에서 인생에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공부가 의미를 갖는 것은, 내가 진리를 배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며, 돈을 벌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다면, 부자가 되는 것이 나의 욕망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이 의미가 있으려면 내 일생이 어떤 인격적 존재의 욕망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존재를 편의상, 하느님 혹은 절대자라고 부를 수 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대답은 오로지 신의 존재가 전제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니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대답이 확실치 않다면 '인생의 의미'의 유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물음이다.

인생이 의미를 갖느냐 아니냐는 물음에 대답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그런 물음이 불가능하다면, 카뮈가 암시하듯, 그리고 우리들이 젊었을 때 확신했고, 오늘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듯이 우리는 자살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인생은 즐겁게 살 만한 것이 못 되는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우리는 자살까지는 않더라도 슬퍼해야 할 것인가?

한 포기의 활짝 핀 꽃은 아름답다. 한 마리의 학, 한 마리의 사슴은 우아하고 고귀하다. 그러나 한 포기의 꽃, 한 마리의 학이나 사슴이 각기 그들의 삶의 의미를 묻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그것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 추석날 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그 자신의 존재 의미를 몰라도 귀하고, 철모르게 뛰노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귀중하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위해 애쓰며 사는 삶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물론 꽃은 시들고, 한 마리의 학이나, 한 마리의 사슴은 죽는다. 물론 때로는 퍽 길고 지루하다고 느껴지는 한 사람의 일생은 영원한 시간에 비추어볼 때 짧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또 한 인간이 차지하는 공간은 무한한 공간에 비추어볼 때 무(없을 무)에 못지않게 작다. 그렇다고 한 마리의 학, 한 마리의 사슴의 모습이 우아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산 어떤 종류의 인생이 보람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체험해야 하는 여러 가지 고통이나 좌절감은 한 젊은이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짓게 하고 때로는 그를 허무주의자로 몰아넣고 최악의 경우 삶을 학대하며 자살의 길로 유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나 형이상학적으로는 삶의 객관적 의미를 모를 뿐 아니라, 설사 그런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이르더라도, 한 인간의 삶 자체는 한 포기의 아름다운 들국화나 한 마리의 학이나 혹은 사슴의 존재처럼 존재하는 그것 자체로서 무한히 아름답고 고귀하고 값이 있으며 따라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존재 자체, 삶 자체가 그것만으로도 귀중하겠으나, 모든 존재, 모든 삶이 다 같이 귀중하고 가치가 있지는 않다. 모든 인간의 삶이 유별나게 귀중하다고 할 때도 모든 사람의 인생이 다 똑같이 가치 있고 귀중하고 아름답지는 않다.

아름다운 인간의 삶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때 더욱 아름답다. 인간다운 삶은 인간이 각별히 타고난 기능을 발휘하는 데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능은 지적, 심미적 그리고 특히 도덕적 측면에서 잘 나타난다. 어떻게든 도덕적, 심미적 그리고 지적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한 사람의 삶은, 그가 당장 죽어 그의 육체가 곧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의 삶은 무한히 귀중하고 아름답게 승화된다.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중요한 것이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삶 자체의 가치에 눈을 뜨고 삶 자체를 보다 귀하고 아름답게 창조해나가는 작업이다.

젊어서는 고통과 좌절감 속에서 인생을 저주할 수도 있다. 30, 60년 아니, 90년 동안 삶의 형이상학적 혹은 종교적 의미를 찾아도 존재 일반, 우주 자체, 인생의 객관적이고 투명한 의미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생각할수록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비록 지적으로 우리들은 두터운 어둠에 가려 있어도, 우리는 그것들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엄숙함과 고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엄격하게 된다. 그러할 때 우리의 인생의 의미, 삶의 가치는 꽃처럼 피고 푸른 하늘처럼 높을 수 있다.

 

마음의 쓰레기

산을 찾는 이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그런 것 같다. 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운이 좋게도 신라의 고도, 경주 가까운 포항에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이곳 산에 매료되어 있다. 녹음 진 늦봄이나 여름이면 더욱 좋지만 아무 때라도 산은 내 마음을 부른다. 나는 일요일 오후면 가까운 동료들과 산을 찾는 시간을 어느덧 기다리게 되었다. 육순이 넘어 숨이 찰 때도 있지만 친구들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오를 때면 나는 어린애같이 즐겁기만 하다.

산이 끄는 힘, 아니 매력은 단순하지 않고 다양하고 또 복합적이다. 등산이 건강 관리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등산은 인간의 정복 본능을 희생자 없이 만족시킬 수도 있다. 등산은 일시적이나마 해방을 의미할 수도 있다. 땀은 흘리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신의 체력에 맞추어 몇 시간을 보내야 하는 등산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자명하다. 마침내 산정에 올라 갑자기 넓게 퍼지는 시야를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때 느꼈을 정복의 쾌감을 잊지

못할 것이다.

불행히도 등산의 쾌감이 산산이 깨지는 수가 종종 있다.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를 볼 때이다.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기분을 망치던 그 많은 쓰레기가 최근 두드러지게 줄어든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아직도 등산길에 비닐 봉지, 깡통, 술병, 휴짓조각 등이 푸른 산, 다양한 초목을 즐기는 우리의 눈을 가시처럼 찌르고 즐겁기만 하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심성이 어떻길래 이럴 수가 있는지 아무리 해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딱딱한 공중 도덕을 꺼낼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그들이 도덕적 감수성을 티끌만큼이라도 갖고 있고 원시적 수준의 심미감을 조금만이라도 갖추고 있었다면 어떻게 푸르고 깨끗한 산길에 저런 쓰레기를 버릴 수 있겠는가. 등산의 내 즐거움이 깨졌다는 아쉬움에 앞서 산길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상상만 해도 슬퍼지고 그들이 딱하게 생각된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 뒤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들 마음의 쓰레기가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산을 즐긴다는 등산객이라면 어찌 그렇게도 심미적으로 무쇠같이 무감각할 수 있겠는가.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볼 때마다 60년대 후반부터 뉴욕 지하철 차량의 안팎을 뒤덮은 페인트 낙서가 생각난다. 그런 짓을 하는 애들의 심성이 언뜻 보아 알 수 없고 딱하지만 젊은이들의 반항 심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등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는 뉴욕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불쾌한 낙서보다 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공해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게 됐다. 공해의 원인은 과도한 쓰레기에 있다. 이런 쓰레기는 인간의 과잉된 욕망, 즉 쓰레기 같은 인간 심성의 표상에 불과하다. 물질 문명과 상업주의가 지배하게 되면서 인간 쓰레기가 많아 졌다는 느낌이다.

이름도 모르는 산을 좋아하고 내 것도 아닌 산을 내 것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아끼는 마음에서 산길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는 심성을 다 같이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혹시 내 마음속에 쓰레기가 썩어가고 있지 않나 싶다.

머리카락이 희어지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절박해진다. 쓰레기를 치울 시간이 짧아짐을 의식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떠나갈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며 사는 삶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삶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버러지도 살아 있는 한 귀하다. 생존은 부단한 노력을 요청한다. 그러므로 삶은 고달프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체의 피할 수 없는 존재 조건이다. 그러나 고달픔을 무릅쓰고 열심히 애써 사는 모습은 그만큼 더 아름답고 숭고하다. 그것이 고슴도치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사람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로 인간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거나 숭고하지는 않다. 인간의 삶은 그것을 생각하고 살아갈 때에만 비로소 아름답고 숭고하다. 인간의 삶이 다른 생물체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고 숭고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가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며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인간은 가장 나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나 인간만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은 영원한 진리다. 인간이 다른 수많은 동물보다 미학적으로 못하고 생리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절대적으로 군림할 수 있게 된 것도 그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은 진정한 뜻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동물적으로, 즉 물질적으로 아무리 만족한 경우라도 그것만으로는 인간으로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없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정말 인간이 아니요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인간의 삶은 정말 인간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귀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돼지의 삶보다는 불행한 소크라테스의 삶이 더 고귀하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옳다.

인간으로 사는 데 있어 생각하는 능력과 활동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는 말은 우리의 삶에 오직 생각만이 소중하고 생각만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절대적 진리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인간은 빵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도 절대적 진리이다. 정신적 활동이 아무리 귀중하다 해도 생리학적, 즉 물리적 가치인 빵 없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뿐 아니다. 빵의 필요성은 소크라테스의 필요성에 선행된다.

이런 시각에서 오늘날 우리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해된다. 지금 온 세상은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기에 다 같이 아우성이다. 그런 결과 우리는 불과 한 세기는 고사하고 반세기 전에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됐다.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졌고 따라서 그만큼 뜻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평할 근거는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걸음 멈춰 우리 자신의 이러한 삶을 스스로 뒤돌아볼 때 우리의 삶은 반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질적 풍요가 주는 동물적 쾌락에 도취한 나머지 우리의 영혼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물로서는 왕성하게 팽창하나 인간으로 존재하기를 끝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고는 있지만 삶의 의미는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빵 자체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면 우리는 목적과 수단을 착각하여 빵만을 움켜쥔 채 삶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단의 의미가 목적에 비추어서만 밝혀질 수 있는 것이라면 올바른 목적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잘못된 목적을 위해 우리의 삶이 바쳐졌다면 우리의 삶은 회복할 수 없는 낭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올바른 목적을 설정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앞서야 하며, 이미 갖고 있던 목적이라도 그것을 항상 재검토해야 한다. 삶이란 다양한 목적을 부단히 추구하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목적은 삶이라는 포괄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며 전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삶의 포괄적 목적은 무엇일 수 있는가. 동물에 있어서 그것은 그냥 자신의 생물학적 생명을 연장함에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그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인간답게 살아감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목적을 항상 생각하며 설정하고 반성하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의식, 생각 그리고 자아 반성의 가치는 위와 같은 실용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바로 그 자체로서 그보다 더 중요함이 없는 가치이다. 의식은 존재의 빛으로서 그것은 우리에게 세계를 밝혀 열어주고, 생각은 인과적으로 묶여 있는 동물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해방하여 주체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발전시킨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물리적 존재를 의미하지 않고 주체적 인격으로서의 경험을 의미한다면, 그냥 의식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반성적 사고는 모든 경험의 전체가 된다. 우리에게 빛과 세계와 자유를 경험하는 기쁨과 환희보다 더 귀중한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경험의 가능성이 배제된 그냥 물질적 혹은 동물적으로만 존재하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주장은 물질적 가치와 산업사회를 무조건 부정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다만 공해와 생태계 파괴로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게 된 오늘의 냉혹한 현실을 의식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만이라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그 목적을 위한 노력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반성하며 사는 삶이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아름답고 가치 있고 숭고하며 한없이 흐뭇한 것임을 깨달아야 함을 의미한다.

의식하고 살면 살수록 우리의 세계는 밝아져서 그만큼 우리의 삶은 밝아진다. 생각하고 살면 살수록 우리의 심미적 감수성은 세련되어 그만큼 주위는 아름다워진다. 반성하고 살면 살수록 우리의 도덕적 의식은 옳게 되고 그만큼 우리의 영적 경험은 깊어질 것이다.

불행히도 세계는 어두워가기만 하고, 우리의 주위는 거칠어지고, 우리의 도덕적 감각도 무디어지며, 영적 경험은 얕아져서 우리의 삶은 메말라가는 것만 같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내면적 세계가 없는 삶은 공허하다. 내면적 세계를 되찾자. 그것은 무한하다. 내면적 삶은 어느 특권층만이 독점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뜻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고 누구나 얼마든지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삶의 보물이다.

 

시지푸스의 행복

소설 "이방인"으로 잘 알려진 카뮈는 가장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탈 만큼 전후 가장 잘 알려진 실존주의적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또한 "시지푸스 신화"란 철학적 에세이로 잘 알려진 철학적 사색가였다.

실존주의적 작가가 모두 그러했듯이 카뮈의 핵심적 문학적 혹은 철학적 테마는 삶의 의미였다. 실존적 작가 중에서도 카뮈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각별히 집요하고도 명석하게 제기했다. 이런 물음의 세계는 심각하지만 그만큼 어둡다. 그러나 카뮈의 세계는 밝고 젊으며 젊은 독자로부터 각별한 애정을 받았다.

카뮈는 "시지푸스 신화"를 인생의 철학적 문제에 대한 직선적 물음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데 있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카뮈의 물음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심각한 철학적 깊이를 갖고 있는 듯싶다. 그러나 카뮈의 물음은 그만큼 독창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깊은 의미도 없다. 아무리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오가다 언뜻이나마 이러한 내용의 물음을 던지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물음은 오직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것이며 인간이면 필연적으로 던지게 되는 성질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우리는 카뮈와 같은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이 물음이 언뜻 보아 중요하고 깊이 있는 물음같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에 대한 대답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의미를 물을 때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다. 목적은 어떤 주체자의 욕망을 전제한다. 무엇에 대한 욕망을 갖는 인간이 있기 때문에 의미 혹은 가치라는 말의 언어적 뜻이 성립될 수 있다. 인간은 목적이란 뜻으로서의 의미의 원천이다. 가치, 즉 의미의 원천의 의미, 즉 가치를 묻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문명을 저버리고 원시 사회에서 예술을 통하여 인생의 문제를 물었던 화가 고갱의 표현대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떤 존재로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왜 태어났다가 살아가느라 아우성치고 무엇 때문에 죽어가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현재 아무도 없으며 앞으로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우주적 그리고 종교적 문제에 대해 영원히 대답할 수 없다. 여러 종교적 교리나 철학적 이론이 이런 물음에 다양한 답을 제시하지만 그 어느 하나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다 같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

카뮈는 인생의 의미가 없다면 자살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삶의 의미, 즉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죽음의 의미, 즉 죽어야 할 이유도 똑같이 없다. 문제는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의 의미를 찾는 데 있다.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가장 보람 있을 수 있느냐, 즉 충족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데 있다.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영생이 아니라 일장춘몽 같은 짧은 인생을 가장 잘 살다 영원한 종말로서의 죽음을 엄숙한 자연의 이치로서 조용히 수용함에 있다.

꽃은 아름답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해서도 아니며 영원히 살아 있어서도 아니다. 멀지 않아 시들어 없어져도 그것은 역시 그냥 그대로 아름답다. 푸른 나무가 귀중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꽃을 피우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건강하고 싱싱한 생명체는 다 같이 고귀하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큰 자연의 원리에 따른 최선의 자기 실현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똑같이 아름답고 고귀하다.

인생의 의미와 고귀성도 다를 바 없다. 내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특정한 때 특수한 인간으로 났을 때 나는 어떤 한정된 가능성을 가진 자연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도라지라는 식물이 다른 식물이 아닌 도라지라는 식물로 존재하게 되고 꾀꼬리가 다른 동물과는 다른 꼭 꾀꼬리라는 종으로 생긴 경우와 같다. 도라지나 꾀꼬리한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도라지가 장미꽃이 되려고 하거나 꾀꼬리가 강아지를 닮으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라지나 꾀꼬리한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말 으뜸가는 도라지나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꾀꼬리가 되었다가 죽는 것이 아니고 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도라지꽃이나 꾀꼬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인간이 무조건으로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꽃으로 만발하고 인간으로서의 꾀꼬리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라지꽃이며 인간으로서의 꾀꼬리인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정확히 결정적으로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다. 카뮈는 인간의 운명을 시지푸스의 비극적 처지에 비유한다. 시지푸스는 자신이 산꼭대기에 올려놓은 무거운 바윗돌을 다시금 영원히 반복하여 올려놓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벌을 받은 신이다. 그는 바위를 올리면서 그의 노력이 허사라는 사실에 대해 아무 환상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카뮈는 그가 바로 그러한 순간 가장 행복하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인생의 의미, 즉 보람 있는 인생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냄에 있지 않다. 그것이 아무리 높은 이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러한 이상에 바쳐진 최선의 노력이다. 땀을 흘리며 들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연구실에서, 자신의 맡은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같이 아름답고 고귀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상학으로 20세기 철학에 하나의 혁명을 일으켰던 후설은 고령으로 죽기 직전까지 자기의 논문을 손질했다는 그의 모습은 상상만해도 아름답고 머리가 숙여질 만큼 거룩하다. 이 철학자처럼 살다 간 학자, 작가, 예술가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또 철학자로서 나도 그들처럼 살리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더 해본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는 모든 행동,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고귀하고 그러한 작업은 숭고하다. 이러한 사실은 그것이 가난한 농부이건, 교육을 받지 않은 노동자건, 교수이건 사장이건 상관없이 다 같이 해당된다. 그것이 누구이고 어떤 것이건 그때마다 자신이 최선으로 확신하는 신념을 원칙으로 삼아 그런 원칙대로 살아가는 태도,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하게 살아갈 때 그의 삶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하며 보람에 차 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은 바위를 어깨에 받치고 산으로 올라가는 시지푸스만큼 힘드는 삶이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그러할 때 비로소 시지푸스처럼 그만큼 행복의 충만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경험으로 우리가 그냥 동물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았음을 새삼 확인하게 하고 우리를 충만감으로 채워준다. 더 이상 무슨 삶의 보람이 필요하겠는가.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학 입학, 그것도 딴 곳도 아닌 한국 최고의 공과대학 포항공대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 여러분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 그것은 여러분이 수많은 경쟁자를 이긴 선택된 소수 엘리트에 속함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곳 포항공대 캠퍼스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을 축하한다. 이러한 오늘의 영광 뒤에는 여러분의 불굴의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 동안 여러분이 입증한 의지력과 고통을 참는 인내력에 대해 경의를 보낸다. 그러나 대학 입학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누구에게나 대학 입학이 인생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교육적으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수동적으로 받던 도식적이고 보계적인 교육의 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것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생리학적, 사회적으로 미성년기에서 성년기에로의 전환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변화는 흔히 혼돈과 갈등을 동반하고, 이러한 상황은 꼭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를 도출시키고 그만큼 삶을 긴장 속에 몰아넣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대학생으로 변하고 성년이 되었음을 확인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기쁨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노력과 고통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취해야 할 중요한 결정은 궁극적으로 오직 자신 혼자만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고통스러운 성인의 상황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긍지의 근원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입생, 특히 포항공대 입학생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사실을 재빨리 깨달아야 한다. 오랫동안 익숙해왔고 당연한 권리로만 믿어왔던 부모와 교사들의 보호와 용서를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두렵고 싫더라도 이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성인이라는 것을 다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유치하게 놀지 말라는 말이다. 학문적 측면에 있어서나 인간적 측면에서 모든 문제를 보다 자주적이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보다 분명하고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버릇을 하루속히 배우고 익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오늘날 온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변해가고,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과학 기술적 차원에서 갈피를 자을 수 없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고, 모든 가치가 상품 교환가치의 측면에서 측정되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깊이 있는 정신적인 것보다는 피부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집단 이익에 근거한 국가 혹은 민족들간의 치열한 경제 전쟁 속에서 우리도 잘못하면 비참한 패배자로 시궁창에 빠져들어갈 판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오늘의 한국은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정신적으로 혼탁하고 도덕적으로 맑지 않다. 선진국으로 위신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서 한국에는 큰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지난 1년 간 개혁의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에는 아직도 멀다. 가까운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의 정신과 구체적인 행동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면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그러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한 개혁은 대학이나 언론계 등 지식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계층이 개혁의 필요성을 남달리 의식하고, 그러한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포항공대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더 작은 공동체인 신입생 여러분부터 시작해볼 수도 있다.

개혁할 일이 많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분수에 맞는 검소한 정신이 미흡하다. 우리는 미적 감수성에 있어 아직 무디다. 우리의 가치관은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다. 생태학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심각성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이 불감증에 빠져 있다. 이런 문제에 진정 관심을 갖고 개혁에 나선 이가 아무도 없다면, 얼마 되지 않는 신입생이라도 우리 캠퍼스에서 지금 당장 이러한 개혁 운동을 발동해주었으면 한다. 여러분의 대학 입학은 개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다짐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집단적으로 새로운 개혁운동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더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변화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을 위한 개혁이란 말인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개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람 있는 삶이다. 빵만으로 보람 있는 삶은 불가능하다. 인생 또는 청춘의 꿈을 자주 말한다. 보람 있게 살겠다는 꿈,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꿈보다 더 이상 중요하고 아름다운 꿈이 어디 또 있겠는가? 이런 꿈을 버리지 말자. 이런 꿈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길을 택하든 궁극적 목적은 다 똑같다.

실용적 목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전문적 과학은 여러분이 택한 삶의 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첨단적 과학 지식을 많이 그리고 조속히 습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은 무엇이 중요하고 귀하며, 어떤 일이 가치가 있고 없음을 가려내지 못한다.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가르침도 주지 못한다.

보람 있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켜주고 적어도 그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이나 혹은 암시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학문의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이나 과학 기술 과목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는 전혀 쓸모 없는 철학, 역사, 문학, 예술, 사회학 등으로 대표되는 인문, 사회 계열의 교양 과목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젊은 학생들에게 교양 과목이 얼마만큼 중요한가는 자명해진다.

4년 후 포항공대를 나오면 평생을 과학자로서 혹은 과학 기술자로서 전문 분야에 몰두하게 될 여러분이 교양과목을 정식으로 택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의 4년 간을 빼놓으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객관적 사실을 의식할 때, 재학중 교양 과목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해진다.

 

도서인의 교양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의 출판계는 정말 왕성했다. 적어도 양적으로는 정신없을 만큼의 새 책들이 쏟아져나온다. 작년에 있었던 '책의 해'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주고 앞으로 더 많고 더 좋은 책을 내고 그러한 책들이 더 많이 읽히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됐으리라. 책의 양적 증가는 그에 비례한 독자의 증가를 의미한다. 독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지적,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출판의 양적 증가는 그 자체만으로 축하해야 할 현상이다.

그러나 오늘의 도서·출판계가 그냥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책의 제목 붙이기에 나타난 경향이나 책의 광고 양식이나 베스트 셀러에 대한 관심이나 서평의 몇 가지 양상, 그리고 출판되는 책의 종류 등을 볼 때 저자들이나 출판계나 독서층의 높지 않은 질적 양상을 암시한다. 책의 제목들이 간지럽다 할 만큼 이상하게 붙여진다는 인상이다. 책 광고는 차분한 지성을 설득하기에 앞서 얕은 시류적 감각의 자극을 선동한다는 느낌을 준다. 베스트 셀러에 대한 지나친 언급은 책의 가치가 상품적 시각에서만 측정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언론계의 서평이 어떤 경위로 얼마만큼의 권위를 갖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책의 종류를 볼 때 이론적이거나 학술적 저서에 비해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많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문화가 지적이기보다는 너무나 정서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또한 한국학이나 지역적 학문을 제외로 하고 볼 때 순수한 학문이나 이론적 분야에 있어서 대부분의 출판물이 한국인 자신들의 자생적이며 독자적 산물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저서를 번역한 것들이라는 데 있다. 더 괴로운 사실은 대부분의 학계 및 언론계의 관심과 논란이 주로 외국에서 작은 통로에 의해서 우연적으로 선택되어 불어오는 시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의 도서·출판계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학문적, 지적으로 아직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아직 주체성이 탄탄치 않다는 말이다.

도서·출판계는 물론 문화계 일반에서도 위와 같은 사실을 의식하고 그러한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모두가 다 같이 반성하면서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한 저자나 한둘의 출판사나 한 부류의 독자들의 노력만으론 쉽게 해결될 수 없다. 관련된 모든 분야의 모든 이들이 다 같이 협력한다 해도 그 성격상 문제의 바람직한 개선은 하루 이틀이나 일이 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의 바람직한 해결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의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서인들이 조금만 주의와 노력을 한다면 당장 개선해 독서계의 수준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점이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서울의 대형 서점에서 "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철학 전후"라는 얼마 전 출판된 책을 사러 간 적이 있다. 두 책이 학문별로 따지면 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은 누구든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같이 '철학'이라는 말이 책 제목에 붙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제목을 신용할 수 없다 해도 그 책의 첫 장을 잠깐 열어 몇 줄만 읽어보기만 한다면 그 책들이 다 같이 '철학'에 속한다는 것을 조금의 교양 있는 이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란 표시가 붙은 진열장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런 제목의 책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알고 보디 "과학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과학'의 진열장에 그리고 "철학 전후"라는 책은 '교양' 진열장에 꽂혀 있었다. 전자의 책은 '과학'이란 말이 붙었으니 '과학'으로 분류됐고, 후자의 책은 그 제목이 낯설어 그냥 '교양'으로 분류하며 수필이나 설교류의 책으로 봤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사실은 서점 경영자나 그 밑에서 일하는 서점 직원들의 도서에 대한 기본적 교양이 얼마나 부족했는가를 암시해준다. '책의 해'를 지내고 난 뒤에도 아직 이렇다는 것이 아쉬웠다. 구멍가게에서라면 몰라도 전문화를 자칭하는 대형 서점에서 그랬다는 데 더 놀라움이 있다. 도서계의 최소한의 교양이 아직도 시급하다.

 

인생의 성공

삶은 곧 욕망이며, 욕망의 표현이다. 인간의 삶도 끊임없는 욕망의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 욕망은 반드시 그 대상을 가지며 이렇게 추구한 욕망의 대상이 획득된 상황을 성공이라 부른다. 따라서 싫건 좋건 인간의 삶은 욕망 충족, 즉 성공을 위한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성공으로 인간의 여러 개별적 행위들과 더 나아가서는 그의 삶 전체가 의미를 갖게 된다. 성공은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성공은 무조건 중요한가?

욕망의 내용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경우, 즉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고 그 대상의 내용 역시 성격과 중요성이 다르다. 어떤 이의 욕망이 '축재'라는 물질적인 것인데 반해 또 다른 이의 욕망은 '명성'이라는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한 마을의 부자로 만족하는 데 반해 다른 이는 한국의 재벌로서도 불만스럽다. 어떤 예술가는 지방에서 알려진 것으로 흡족하는 데 반해 세계적 명성을 탐내는 다른 예술가는 한국에서의 명성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이를 이해 관계 없이 해치고 싶은 욕망이나 혹은 남의 아내를 소유하고 싶은 탐욕에 사로잡힐 수 있는가 하면, 불우한 이웃을 돕거나 약자를 위해 싸우고 싶은 충동에 빠질 수도 있다. 만일 성공이 그냥 욕망의 충족을 뜻한다면 위의 어떤 욕망이든 상관없이 다 같이 성공의 예로 볼 수 있으며, 그냥 성공 자체가 중요하다면 위의 어떤 경우이든지 다 같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공들이 다 같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중요한 것은 그냥 성공이 아니라 어떤 것의 성공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없이 다양하다. 그 대상과 그 성공의 종류도 그만큼 다양하다. 가령 한 회사 안에서 과장 그리고 사장이 됨으로써 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 경제인으로 혹은 학자로 혹은 정치인으로 축재하든가 혹은 놀라운 학설을 내든가 혹은 정권을 잡아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직업적 성공이나 어떤 특정 분야의 성공이 그 사람의 삶 자체의 성공으로 볼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회사에서의 사장 혹은 국회의원이 곧 그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있고, 어떤 작가나 학자에게는 한 권의 걸작이나 하나의 새 학설을 창조하는 것이 곧 그의 삶의 궁극적 보람으로 여겨지는 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생각은 실제로나 논리적으로나 불가능하다. 한 인간의 직업적 성공이나 특정한 목적에서의 성공과 그 인간의 인생의 성공은 구별해야 한다. 사장 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거나 재산이나 어떤 전문적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한평생을 통해 볼 때 나의 삶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예가 될 수 있다.

사장 자리나 전문적인 분야에서의 명성은 그것 자체로서는 곧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사장이 되기 위해서 혹은 특정 전문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 가정을 파괴하고 도덕적으로 떳떳치 못한 일생을 살아야 하는 일이 거의 예외 없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러 성공 가운데에 더 중요한 성공을 추구해야 하며, 직업 또는 특수한 분야의 성공에 앞서 인생의 성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장 자리나 전문 분야의 목적을 곧 인생의 목적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중요한 목적 달성, 즉 성공이 중요하지만 그러한 성공을 거두는 수단과 방법은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만큼이나 다양하고 중요하다. 가령 축재의 경우 빌 게이트의 경우처럼 기발한 소프트웨어를 발명해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재주가 없는 나는 공갈, 사기, 매수, 거짓 등의 수단을 써서 축재를 할 수 있다. 나는 실력, 성실성으로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교제, 매수, 모략 등의 꾀를 써서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축재나 사장 자리라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점만 따지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그러한 목적이 나의 삶의 총체적 목적, 즉 가장 인간다운 삶이 가져야 하는 목적일 수 없고, 또한 비도덕적 수단으로 성취됐다는 점에서 인간의 욕망, 즉 참다운 욕망 충족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업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성공, 즉 출세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성공은 인간으로서의 성공의 테두리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성공적 삶은 도덕성이 결여될 때는 있을 수 없다. 도덕성의 가장 근간은 자기 자신에의 정직과 남을 나와 똑같이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남과 더불어 살면서 남의 인격적 존엄성을 인정하고 남의 것을 나의 것과 똑같이 아끼는 마음이다.

직장인으로서 나의 직장을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고 그 자체를 나의 목적으로 아끼는 태도로 나타날 수 있다. 직장에서는 물론 어디서고 그리고 언제나 바로 이러한 태도로 살아갈 때만 비로소 남과 더불어 원만히 존재할 수 있고, 재물, 자리의 소유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인생 자체에 성공할 수 있다.

 

정명론:편견으로부터의 해방

만일 어떤 이가 인간을 '', 개를 '인간'으로 부르게 되어 인간을 보고 '보신탕' 생각을 할 수 있고, 개를 보고 절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큰일이다. 적잖은 문제가 이름을 잘못 사용한 데서 생긴다면, 이천오백 년 전 공자의 정명론(바를 정, 이름 명, 말할 론)대로 "필야정명(반드시 필, 어조사 야, 바를 정, 이름 명)," 즉 무엇보다도 먼저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 "명불정(이름 명, 아니 불, 바를 정) 즉언불순(곧 즉, 말씀 언, 아니 불, 순할 순) 즉사불성(곧 즉, 일 사, 아니 불, 이룰 성)," "이름을 바로잡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바를 정, 이름 명)이란 "군군(임금 군, 임금 군), 신신(신하 신, 신하 신), 자자(아들 자, 아들 자)," "군왕은 군왕으로, 신하는 신하로, 아버지는 아버지로, 아들은 아들로 부름"을 뜻한다. 인간을 ''라 부르지 말고, '인간'이라 부르고 개에게는 '인간'이란 이름이 아니라 ''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낱말의 관계는 포괄적인 경우와 배타적인 경우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동물의 범주에 속하므로 '인간'이라는 이름과 '동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이름의 관계는 포괄적이다. 반면 '인간'이라는 이름과 ''라는 이름의 관계는 배타적이다. 인간에게 ''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으며 개를 '인간'으로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로 부르거나 개를 '인간'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두 낱말 간에 배타적 관계와 포괄적 관계를 착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명(바를 정, 이름 명)은 이런 논리적 관계의 명석한 파악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간'''라는 두 개념의 논리적 관계가 배타적임을 이해할 때, 그것들은 포괄적으로 사용하여 인간을 ''라 부르고, 개에게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또한 '동물''인간'이라는 두 개념의 논리적 관계가 포괄적이라는 것을 파악했을 때, 그것들을 배타적으로 사용하여 '인간''동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카톨릭'이라는 말의 의미와 '기독교'라는 말의 의미의 논리적 관계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배타적이 아니라 포괄적이다. 모든 기독교도가 반드시 카톨릭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낱말은 뜻이 똑같지 않지만, '카톨릭'의 의미는 필연적으로 '기독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두 낱말의 관계는 포괄적이다.

'기독교'라는 말과 배타적 관계를 갖는 개념은 가령 '유태교' 혹은 '불교'라는 개념이지 '카톨릭'이라는 말은 아니며, '카톨릭'이라는 말과 배타적인 개념은 가령 '개신교' '그리스 정교' 혹은 '러시아 정교'일 뿐이지 '기독교'는 아니다.

'인간'''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불교'의 관계나 '개신교''카톨릭'의 관계가 배타적인데 반해, '인간''동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카톨릭''기독교'의 관계는 분명히 포괄적이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이들이 '기독교'라는 말과 '카톨릭'이라는 말을 서로 배타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것을 처음 듣고 나는 놀랐다. 무식해서가 아니다. 나는 서울의 주요 신문 기사에서 그런 사용법을 읽고, 국영 TV 뉴스에서도 그렇게 사용한 것을 들었을 때 그만 아연했다. 그러나 기독교와 카톨릭의 이 같은 대립적 용법이 잘못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카톨릭''기독교'라는 두 개념의 혼동은 정명론에 어긋난다. 정명론에 위배되는 예는 허다하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디푸스 왕은 국왕인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 왕좌에 올라 어머니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 끔찍한, 도덕적으로 비극적인 운명을 겪었다. 그것은 그가 어머니를 '어머니'라는 제 이름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원군의 외교 정책 문제와 당시 한국이 경험했던 민족적 비극의 원인은 서양인들을 '서양인'으로, 일본인들을 '일본인'으로 보지 않고 '짐승 같은 서양 오랑캐''섬나라 야만인'이란 이름으로 잘못 붙였던 데 있다. 독재자 김일성을 '위대한 영도자'라는 이름으로, 김일성 부자의 독재 정당화를 '주체사상'이라는 이름으로, 탄압과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을 '이상적 사회'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러한 호칭이 문제를 낳게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명론에 맞지 않게 '카톨릭'이라는 이름과 '기독교'라는 이름의 혼동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의 한 파인 카톨릭을 '기독교', 김일성을 '독재자', 주체사상을 '김일성 권력 체제의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알든 모르든 간에 개를 ''가 아니라 '여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잔인한 행위가 악이라는 사실을 '잔인한 행위가 악이다'라는 '명제'로 불러서는 안 되고 대신 '잔인한 행위는 선하다'라는 명제로 불러야 한다고 우기는 이들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적잖게 있다.

대부분의 경우 진리 왜곡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잘못된 욕망, 비판되지 않은 편견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산을 ''이라는 이름으로 개를 ''라는 이름으로 악을 ''이라는 이름으로, 도둑을 '도둑'이라는 명칭으로 분명히 부르고, 옳은 것을 '옳은 것'이라는 명제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옳게 살기 위해서 우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여러 신념들, 사유의 논리를 모든 종류의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요청은 여러 측면에서 혼탁한 오늘의 문명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이천오백 년 전 공자가 가르친 정명론은 오늘날 어느 때보다도 더 옳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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