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물결 3
제3의 물결
제11장 새로운 통합
20세기 후반의 막이 오른 1950년 1월, 22세의 가냘픈 청년이었던 나는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대학 졸업증서를 들고 현실사회의 거친 세파에 뛰어들기 위해 야간버스를 탔다. 옆좌석에 여자 친구를 앉히고 좌석 밑에는 책을 가득 넣은 싸구려 종이가방을 밀어 넣었다. 나는 비에 씻긴 창밖으로 미국 중서부의 공장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는 동안 청동색 먼동이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의 미국은 세계의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5대호를 둘러싼 지역은 미국의 산업중심지였다. 그리고 심장 속의 심장이라고 할 이 지역에서도 공장이야말로 맥박의 핵심이었다. 제강공장, 알루미늄공장, 공작기계공장, 금형공장, 정유공장, 자동차공장 등 우중충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장 안에서는 각종 압단기, 펀치, 드릴러, 벤더, 용접기, 단조기, 주조기 등이 우렁차게 작동하고 있었다. 공장은 산업화 시대 전체의 상징이었다. 별로 고생을 모르는 비교적 안락한 중하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 4년 동안 플라톤과 엘리어트, 미술사, 추상적인 사회과학 이론 등을 배운 청년에게 공장으로 대표되는 세계는 우즈베크 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나 남미대륙 남단의 푸에고제도 만큼이나 이국적 풍경이었다.
나는 그 후 5년 동안 이 공장들 속에서 살았다. 사무원도 아니고 인사계원도 아니 조립공, 기계 설치공, 용접공, 화물을 들어 올리는 기계 운전수, 펀치프레스공으로서 송풍기 날개를 찍어 내고 공장에 기계를 설치하며 미국의 탄광에서 쓸 거대한 집진기를 만들고, 조립 라인 위를 덜컹거리면서 지나가는 경트럭에 판금 작업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산업화 시대의 공장노동자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지를 피부로 배우고 있었다.
나는 공장의 분진과 연기를 마셨다. 증기 뿜는 소리, 체인이 부딪치는 소리, 흙을 반죽하는 기계의 요란한 소리로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백열의 철강을 쏟을 때의 그 열기도 느꼈다. 발에는 아세틸렌 불꽃에 입은 흉터 자리가 남아있다. 나는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마음과 근육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수천의 부품을 생산했다. 나는 노동자들을 감독하는 화이트칼라도 역시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추궁당하고 학대받는 것을 목격했다. 기계에 손가락을 넷이나 잘려 피투성이가 된 65세 할머니를 도와준 일도 있었다. 그때 '빌어먹을, 이래 가지고는 이제 일은 다 해 먹었구나!'하던 할머니의 그 외침은 지금도 내 귀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공장그 시대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오늘날에도 건설 중인 새 공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장을 성역으로 만들었던 문명은 멸망하고 있다. 그리고 현제 세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젊은 남녀가 떠오르는 제3의 물결 문명의 심장부를 향하여 차를 몰고 밤길을 달리고 있다. '내일을 위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젊은이들의 노려에 참여하는 일이야말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만일 그들의 뒤를 목적지까지 쫓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이르게 될까? 불꽃에 싸여 대기권 밖으로 돌진해 가는 로켓 발사대에 도달할까? 해양학의 해저실험실일까? 원시생활을 영위하는 가족이 모인 공동체일까? 인공두뇌의 연구집단일까? 광신적인 신흥종교의 교단일까? 그들은 자발적으로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원시공동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밀반출하고 있을까? 도대체 어디서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만일 우리 스스로 이와 유사한 미래를 향한 탐험을 계획한다면 그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미래는 이미 현재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는 현재인가? 오늘날 우리의 현재는 모순으로 가득차고 지리멸렬하다.
현대의 아이들은 마약, 섹스, 우주로켓의 발사 등에 관하여 매우 익숙해져 있다. 아이에 따라서는 컴퓨터에 관하여 부모들보다 지식이 더 풍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성적은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혼율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는가 하면 재혼율도 상승하고 있다. 여권 반대론자들이 반대하던 여성의 권리확대가 실현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여권 반대론자들이 발언권을 확대하고 있다. 동성연애자들도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당당하게 밀실에서 걸어 나오는가 하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갑자기 동성애에 대한 차별 철폐 조항의 제정에 반대하여 플로리다주에 사는 애니타 브라이언트라는 여성이 '호모의 손에서 자녀를 구하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제2의 물결의 모든 나라를 엄습하고 있는데도 실업 문제는 계속 심각해져 고전 경제학 이론으로는 대처할 방법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요와 공급의 논리를 무시하고 단순히 직장을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이고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경제학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정치 세계에서는 예를 들어 기술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전에 없이 정치색을 강화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서 각 정당은 거꾸로 충성심이 두터운 당원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 또 지구상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범세계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민국가에 대한 공격이 격렬해지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민족주의 운동이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에 직면하여 우리는 세상의 추세와 역추세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마법의 해답을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컴퓨터가 쏟아내는 갖가지 출력정보와 도표, 미래학자가 그럴듯하게 활용하는 수리적 모델이나 행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면서도 객관적인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해마저도 그런 단계에 머물려 있는 것이다.
체계적인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역설과 모순, 육감, 상상력 그리고 대담한(가설로서의) 통합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다음 각 장에서 미래를 탐구해 감에 있어서는 단순히 세상의 주요 추세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직선적 사고의 유혹에 저항할 필요가 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미래학자도 내일을 단순한 오늘의 연장으로 생각한 나머지 시대의 추세가 외견상 아무리 강력한 것이 되더라도 단순히 직선적오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러한 추세들의 방향이 반대로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 추세들은 멈추기도 하고 새로 시작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해서 혹은 과거 100년 동안 계속 일어났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앞으로 이 책에서는 미래를 언제나 예상외의 것으로 만드는 모순, 갈등, 방향전환 그리고 돌파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관찰하고자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태들 간의 숨은 관계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반도체나 에너지 또는 가족관계(자기 자신의 가족도 포함하여)의 장래를 예측하면서 다른 조건들이 불변하다는 가정에 서서 예측이라면 거의 소용이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는 유동적이지 동결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우리가 매일의 결정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으며 개개의 사태는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제2의 물결 문명은 문제를 그 구성요소로 분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일 정도로 중시한 반면 산산히 분해된 부분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화적 통합보다 분석에 익숙하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미래에 있어서의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매우 단편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따라서 잘못되어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전문가(분석)로서가 아닌 다재다능한 사람(통합)으로서 미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통합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연과학으로부터 사회학, 심리학, 그리고 경제학에 이르는 학문 분야에서 다시 스케일이 큰 사고방식, 일반이론, 흩어진 부분의 재구성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 같다. 특히 경제학 분야에서 그 경향이 짙다. 왜냐하면 전체로서의 맥락과 관계없이 세부적 수량화만을 중시하여 자질구레한 문제들의 정밀한 측정에만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인간의 지식 자체가 더욱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우리 생활을 뒤흔들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찾아내어 흐름들의 상호관계를 밝히게 될 것이다. 그 각각의 흐름 자체가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들이 한데 모여 더 크고 더 깊고 더 빠른 변화의 강물들을 형성하고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강물들이 모여 차츰 더 큰 흐름, 즉 제3의 물결을 형성하는 과정을 밝히고 싶은 것이다.
금세기의 반환점에서 당시의 세계의 심장부를 보려고 나섰던 청년처럼 우리도 이제 미래로의 탐구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탐구는 우리의 일생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제12장 변모하는 주요산업
1960년 8월 8일, 웨스트버지니아주 태생의 화학기사 먼로우 래드본은 룩펠러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뉴욕의 맨해턴 사무실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결정이야말로 제2의 물결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대석유회사 엑슨의 대표이사 래드본이 이날 엑슨사가 산유국 정부에 지불하던 세금을 삭감하기로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방 언론들은 이것을 문제 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산유국 정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나라들의 제정은 사실상 전적으로 석유회사에서 징수하는 세금으로 조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사이에 다른 대석유회사들이 뒤따라 엑슨사처럼 세금삭감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리고 한 달 후인 9월 9일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몇몇 산유국 대표가 아라비안나이트의 도시 바그다드에 모여 긴급평의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절박한 상태에서 모인 그들은 여기서 석유 수출국들의 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그 후 13년 동안 몇몇 석유산업 정기간행물에나 가끔씩 그 활동이나 이름이 등장하는 이외에는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완전히 묵살 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3년 제4차 중동전쟁과 함께 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ntries)가 갑자기 어둠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세계의 원유공급을 억제함으로써 제2의 물결경제를 송두리채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OPEC는 산유국의 세입을 4배로 증대시켰을 뿐 아니라 제2의 물결기술체졔에 응어리져 있던 혁명의 불길에 기름을 붓게 되었다.
태양 에너지와 대체 에너지
오일쇼크에 의해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했으나 그것을 둘러싼 시끄러운 소동 속에서 너무나 많은 계획, 제안, 주장, 반론들이 한꺼번에 제기되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 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각국 정부의 혼란상도 길거리의 일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혼돈을 타파하는 한 가지 방법은 개개의 기술이나 정책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들의 기초가 되는 원리들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의 중에서 제2의 물결 시대의 에너지 체계를 전제로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입장과 전혀 새로운 원천을 찾으려고 하는 입장의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이해하면 에너지 문제의 전모가 근본부터 매우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앞에 서술한 대로 제2의 무결의 에너지 체계는 재생불능의 자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에너지는 고도로 밀집된 유한한 광상에서 값비싼 고도의 기술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 그 종류는 한정되고 있고 채굴방법도 채굴장소도 한정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산업시대를 통하여 제2의 물결국가가 사용했던 에너지 체계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염두에 두고 석유 위기가 낳은 여러 가지 계획이나 제안을 검토해 보면 어느 것이 옛 체계의 연장선 위에 있고, 어느 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의 선구자인가를 재빨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원유를 배럴당 40달러에 사느냐 안 사느냐, 원자력발전소를 시브룩에 만들어야 하느냐 그론디에 만들어야 하느냐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산업사회를 위해 개발되어 제2의 물결의 특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낡은 에너지 체계가 과연 장래에도 존속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로 문제가 제기되면 그에 대한 해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 50년 동안 전 세계 에너지 공급원의 3분의 2는 석유와 가스였다. 그러나 지하에서 잠자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상태가 앞으로 다소의 유전이 발견되더라도 영구히 계속될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광신적인 자연보호론자나 추방당한 이란 국왕까지도, 태양열 이용을 열심히 부르짖는 사람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왕족으로부터 스마트한 차림에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러 국가의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통계는 각양각색이다. 세계가 암초에 걸릴 때까지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에 관해 갖가지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예측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과거의 많은 예언들이 현재는 우습게 보이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석유와 가스를 땅속으로 되돌려 주어 에너지 공급을 보충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종말은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 것인가? 어느 절정의 순간에 갑자기 석유가 멎어 벌릴지, 아니면 극히 불안정한 부족 사태와 일시적 과잉상태가 계속된 다음에 닥쳐올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석유 시대는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란, 쿠웨이트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이지리아인, 베네수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인도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회사들도 석유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을 다투어 석유 이외의 사업으로 업종을 다양화하고 있다. (최근에 동경에서 어느 석유회사 사장과 만났을 때 그는 대석유회사들도 마치 청도회사처럼 사멸한 공룡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그것이 몇 십년 후가 아니라 수년 안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의미에서만 석유의 고갈을 논하는 것은 초점에서 빗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석유의 공급량보다는 석유의 가격이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을 고려하더라고 결론은 같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어쩌면 경이적인 기술혁신이라든가 경제변동이 일어나서 다시 에너지가 풍부해져 값이 싸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비록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대적인 석유 가격은 계속 오를 것으로 보아야 한다. 채굴 파이프는 더욱 더 깊이 파 내려가야 하며 유전의 개발은 더욱 더 벽지로 옮겨지고 또 석유구매자들이 더욱 증가하여 경쟁이 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OPEC은 별도로 하고 최근 5년 동안에 하나의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멕시코 등에 새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기도 하고 원유가격이 자꾸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용이 가능한 원유의 확인매장량은 증가는 커녕 감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과거 수십 년 동안 볼 수 없었다. 이 역시 석유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한편 세계 에너지 전체의 나머지 3분의 1은 석탄이다. 석탄도 언젠가는 반드시 바닥날 것이 틁림없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상당한 매장량이 있다. 그러나 석탄의 대량소비는 대기오염을 초래하고(공기 중의 탄산가스의 증대에 의해서) 세계의 기후를 악화시켜 결국은 지구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설사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폐해를 필요악으로서 허용한다 하더라도 석탄을 자동차의 연료탱크에 넣을 수는 없으며, 오늘날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당장 석탄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한편 석탄을 가스화하거나 액화하기 위한 공정은 막대한 자본과 농업용수가 부족할 만큼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며 또 궁극적으로 비경제적이고 비능률적이기 때문에 우회적이고 일시적인 방편일 수밖에 없다.
원자력 기술도 현재의 개발단계에서는 한층 더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원자로는 우라늄을 이용하고 있으나 우라늄 그 자체가 역시 한정된 자원이다. 또 안전성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 비록 안전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비가 든다. 핵연료 폐기물의 처리문제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어 있지 않다. 또 핵 발전 비용이 매우 높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한 형편이다.
고속증식로는 그 자체로서는 매우 훌륭한 기술이다. 핵반응에 의해서 나오는 플루토늄이 그대로 연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고속증식로가 영구히 운동을 계속하는 기계라고 믿어 버린다. 그리고 이것도 결국은 소량밖에 매장되어 있지 않은 재생불가능한 자원, 즉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다. 고속증식로는 고도의 집중관리가 필요하며 엄청난 경비가 드는 물건으로 위험 물질이 누출될 우려도 있다. 더구나 핵전쟁과 테러 분자들에 의한 핵물질의 도난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해서 다시 중세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든가 아니면 경제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가 하나의 발전과정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발전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세계가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전환해야 할 또 하나의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에너지 체계라는 것은 농촌경제이든 산업경제이든 그 사회의 기술 수준, 생활의 본질, 시장이나 인구분포 등 여러 가지 요인들에 적합하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는 기술상 전혀 새로운 발전단계에 따라 완성된 것이다. 석탄이나 석유라는 화석연료가 기술발전을 촉진시킨 것은 사실이나 그 반대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대량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탐욕스런 기술이 발명되어 석탄이나 석유의 개발을 더욱 더 촉진시켰다. 가령 석유를 예로들면 석유 기업이 급속히 성장한 것은 완전히 자동차산업의 발전 때문이며 한때는 석유회사가 디트로이트의 부속품과 같았다. 전에 어느 석윻쇠사의 연구실장이었던 도날드카가 그의 저서 '에너지와 지구기계: Energy and the Earth Machine'에서 말한 대로 석유산업은 '어떤 종류의 내연기관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다시 기술의 역사적 비약을 맞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생산체계는 전체 에너지 산업의 근본적인 재구성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OPEC이 천막을 걷고 조용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없는 사태도 예상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중대한 사실은 에너지 문제가 양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체계의 구조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일정량의 에너지만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형태로 온갖 장소(혹은 변화하는 지점)에서 밤낮없이 연중 언제나, 그리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목적을 위해 입수할 수 있는 에너지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종전의 에너지 체계에 대처될 에너지를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단순히 OPEC의 가격 결정 때문만이 아니다. 새로운 에너지의 탐구는 방대한 자금과 상상력을 투입하여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경이적인 가능성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물론 경제변동 등의 혼란이 에너지 체계의 이행을 늦추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더 큰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그것은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탐구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전에 없이 참신하고 흥분을 자아내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단계로서는 어떤 기술들의 결합이 어떤 목적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될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와 연료는 방대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석유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비교적 특이한 에너지라도 색다른 가능성을 갖고 상업적 채산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현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태양광선을 전기로 전환하는 광전지(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 솔라렉스사, 에너지 컨버젼디바이스사 등 다수의 기업이 연구개발 중임)라든가 소련에서 계획 중인 대류권과 성층권 경계의 대기층에 풍차가 달린 풍선을 쏘아 올려 지상을 향해 전선으로 전기를 보내는 방법 등을 들 수 있다. 뉴욕시는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어느 회사에 연료로 매각하고 있으며 필리핀은 야자 껍질을 이용한 발전소들을 건설 중에 있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뉴질랜드에서는 지열발전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혼슈의 해안에 500톤의 배를 띄워 파력발전이 실험 중에 있다.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열 난방장치가 전 세계에 보급되고 있다. 남캘리포니아 에디슨사에서는 태양열을 컴퓨터 조작 거울로 받아 그 것을 증기 보일러에 집적한 뒤 발전시켜 이 회사와 계약한 가정에 공급하는 이른바 '발전탑'을 건설 중에 있다. 서독의 슈투트 가르트에서는 벤츠사가 개발한 수소 추진 버스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록히드 캘리포니아에서는 수소연료로 나는 항공기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연구개발 중인 기술은 그 수가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새 에너지를 개발하는 기술은 그것을 저장하고 수송하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함으로써 더욱 빛나는 장래를 개척해 줄 것이다. 제너럴모터스사가 최근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이 회사는 전기자동차용 고성능 축전지를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rrautics and Space Aduinistration) 연구소에서는 종전의 납과 황산을 사용한 배터리의 3분의 1 가격으로 제조할 수 있는 '레독스(Redox)'라는 축전장치를 완성했다. 또 장기적인 전망에서 초전도체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고 '정상적인' 과학의 영역을 초월하여 최소한의 손실로 에너지를 보낼 수 있는 테슬라파의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의 대부분이 아직 초기 개발단계에 있고 그 중 상당수는 실용화와 거리가 먼 것도 많다. 그러나 지금 당장, 또는 10~20년 후에는 상업화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 경우 비약적인 진보는 하나의 고립된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기술을 병용하거나 결합하는 풍부한 창조력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은 자주 간과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태양광전지로 전기를 일으키고 그 전기로 물에서 수소를 분리해 낸 뒤 그것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다음 시대를 향한 도약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술한 바와 같은 수많은 새 기술들을 결합함으로써 더 많은 잠재적인 가능성이 햇빛을 보게 되고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의 구축이 급속히 진전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는 제2의 물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추고 있다. 첫째로 에너지 공급원의 대부분이 고갈되지 않고 재생가능한 것이 많아진다. 또 고도로 집중화된 연료에 의존하지 않고 넓은 지역에 산재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에너지의 생산 기술도 현재처럼 엄밀히 집중화된 것이 아니라 집중화된 기술과 탈집중화된 기술을 결합하게 되리라 본다. 한정된 생산방법과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신에 에너지 형태가 매우 다양해질 것이 틀림없다. 에너지의 다양화에 의해서 우리는 더욱 더 다양해지는 수요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형태와 품질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에너지는 낭비를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제 비로소 과거 300년간의 에너지 체계에서 정반대로 전환한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체계가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가 확립될 때까지는 격렬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고도기술국가들에서 시작되고 있는 아이디어와 거대한 자금의 전쟁에서는 하나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삼파전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당사자는 낡은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 및 그 대체재 등 재래식 에너지원과 기술을 지지함으로써 제2의 물결의 '현상 유지'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은 석유회사, 공공사업체, 원자력위원회, 광산회사 등과 그 관련 노동조합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제2의 물결세력은 난공불락의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제3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를 추진하려는 세력은 소비자, 환경보호 운동가, 과학자 그리고 첨단산업의 기업가와 그 동맹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세력은 분산되고 자금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무력한 경우가 많다. 제2의 물결을 위한 선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 너무나 순진하고 돈의 현실을 모르고 공상적인 기술에 눈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불행히도 제3의 물결의 지지자는 제1의 물결세력의 동조자로 오해되기 쉽다. 제1의 물결세력은 세 번째 당사자로 새로운 고도의 지식과 과학에 기초한 영속적인 에너지 체계를 찾아 전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이전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 입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려면 기술은 거의 배제되고 인간의 행동 범위는 한정되고 도시는 축소되어 곧 소멸하며 자연보호라는 이름 아래 금욕생활을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제2의 물결진영에 속하는 로비스트, 홍보전문가, 정치가들은 제3의 물결세력과 제1의 물결 지지자를 의식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여론을 혼란시켜 제3의 물결세력을 불리한 입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의 물결이나 제2의 물결정책의 지지자들은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전자는 환상에 매달려 있고 후자는 문제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상승하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비용은 제2의 물결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급증하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기술의 투자비용이다. 제2의 물결의 기술에서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새로운 에너지 '순증'을 가져오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이 있다. 더욱 더 증대하는 공해문제와 핵 이용에 따르는 위험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원자로, 노천채굴광산, 대발전소 건설에 반대하여 경찰 권력과의 싸움도 불사한다는 자세로 나오고 있다. 비산업국가들에서 독자적인 에너지 개발 및 자국의 자원에 대한 가격 인상 등 가공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욕구도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에 불리한 요인이 되고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원자로나 석유가스화 또는 석탄액화 등의 기술은 언뜻 '진보된 미래형'의 '혁신적'인 기술로 생각되기 쉽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모순에 빠진 제2의 물결의 과거 산물에 불과하다. 그중에는 일시적인 방편으로서 유용한 것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퇴행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2의 물결세력이 아무리 강대해 보이고 그것에 대항하는 제3의 물결 지지자가 나약해 보이더라도 과거에 많은 기대를 거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문제는 제2의 물결의 에너지 체계가 붕괴되어 새로운 체계로 대체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고 그것이 얼마나 빨리 대체될 것인지가 문제일 뿐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투쟁은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변혁(제2의 물결 기술의 붕괴)과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내일의 도구
석탄, 철도, 섬유, 철강, 자동차, 고무, 공작기계제조 이런 것들은 제2의 물결의 고전적인 산업들이다. 기본적으로는 단순한 전기역학의 응용원리에 토대를 둔 이 산업들은 대량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거대한 산업 폐기물을 토해내며 공해를 초래하고 장시간 노동, 비숙련 노동, 반복작업, 표준화 제품, 고도의 중앙집권적 통제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이들 산업이 날로 시대에 뒤떨어져 쇠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예를 들면 1965~74년까지 10년 동안에 노동인구는 21퍼센트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섬유산업의 종업원은 불과 6 퍼센트밖에 늘지 않았고 철강산업의 종업원은 오히려 10퍼센트가 감소되었다. 스웨덴, 체코슬로바키아, 일본 등의 물결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 시대에 낙후된 산업들은 값싼 노동력이 있고 기술 수준이 낮은 이른바 '개발도상국'들로 이전되기 시작하면서 그와 함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약화되었다. 그 대신에 활력있는 새로운 산업들이 잇달아 출현한 것이다.
새로운 산업들은 몇가지 면에서 전 시대의 산업들과 현저히 다르다. 새로운 산업들은 첫째로 전기역학 위주의 산업이 아니며 제2의 물결 시대의 고전적 과학이론에 토대를 둔 것도 아니다. 그 대신 이 산업들은 양자전자공학, 정보이론, 분자생물학, 해양학, 원자핵물리학, 사회생태학, 우주과학 등의 같이 지난 4반세기 동안에 태어나서 정립된 여러 가지 과학 분야의 최첨단에서 개발된 산업이다. 이러한 과학들 덕택에 우리는 제2의 물결 시대의 산업이 척도로 삼고 있던 시간이나 공간의 특징을 넘어서 소련의 물리학자 쿠즈네초프가 지적한 대로 '극소의 공간 (원자핵의 반경은 10cm)과 10초라는 극히 짧은 시간'을 계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과 급속히 발달한 계측기술이 컴퓨터, 데이터 처리, 항공우주산업, 정밀 석유화학, 반도체, 첨단통신산업 등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다.
기술 분야에서 제2의 물결로부터 제3의 물결로의 이행이 가장 빨리 찾아온 것은 미국으로, 1950년대 중반이었다. 동부 뉴잉글랜드의 메리맥 밸리와 같은 구산업도시는 불황의 밑바닥에 가라앉는 대신에 보스턴 교외의 128구역이나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 밸리' 같은 지대는 일약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런 도시 주변의 주택지구에는 반도체 물리학, 시스템 엔지니어링, 인공두뇌, 고분자화학 등의 전문가가 연이어 이사해 왔다.
기술의 이행에 따라 일자리와 풍요도 이용했다. 남쪽의 '선벨트지대'의 각 주에는 대규모 군수산업의 수주에 의해서 첨단기술기지가 잇달아 건설된 대규모 군수산업의 수주에 의햇 첨단기술기지가 잇달아 건설된 반면 동북부나 5대호 주변의 구산업지대는 쇠퇴하여 파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뉴욕시의 장기적인 재정위기는 바로 이 기술변동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철강업의 중심지였던 로렌지방의 불황도 같다. 그리고 차원을 달리하지만 영국 사회주의적 쇠퇴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영국 노동당 정부는 산업의 보루를 장악하겠다고 공언했고 또한 실행했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가 국유화한 보류는 석탄, 철도, 철강처럼 어느 것이나 기술혁신의 혜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 말하자면 구시대의 보루였다.
제3의 물결산업을 가진 지역은 번영하고 제2의 물결 산업지역은 쇠퇴했다. 그러나 이 전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각국의 정부는 이러한 이행에 따르는 폐해를 최소한 억제하면서 의식적으로 이러한 구조개혁을 촉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 통산성의 기획담당 관리는 미래의 서비스업 발전에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있고, 서독의 슈미트 수상과 그의 고문들은 '구조정책'을 부르짖으면서 유럽 투자은행의 협력을 얻어 전통적 대량생산형 산업으로부터의 탈피를 꾀하고 있다.
앞으로 크게 성장하여 제3의 물결 시대의 중추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4개의 서로 관련된 산업군이다. 이들 산업의 성장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제휴관계에 또다시 큰 변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서로 관련이 깊은 4개 산업군의 첫째는 말할 나위도 없이 컴퓨터 산업과 전자공학이다. 전자산업이 이 세계시장에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현재 이미 연간 매출액이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325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자공학 산업은 철강, 자동차, 화학공업에 이어서 세계 제4위의 산업이 된 것이다.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에 관해서는 주지하는 사실이며 여기서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는 생산비용이 급격이 감소하는 반면 용량은 경이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잡지 '컴퓨터 월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에 컴퓨터 산업이 성취한 것을 자동차산업이 할 수 있다면 롤스로이스 자동차 한 대의 생산원가는 2.50 달러, 그리고 휘발유 1갤론당 주행거리는 200만 마일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값싼 소형 컴퓨터가 미국 가정에 대거 보급되고 있다. 1979년 6월에는 가정용 컴퓨터를 제조하는 회사가 약 100개사를 헤아렸으며 이 중에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같은 대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시어즈 로우벅이나 몽고메리 워드와 같은 슈퍼체인점들도 가정용품 매장에 컴퓨터를 진열하게 되었다. 달라스시의 한 소형 컴퓨터 소매업자의 말을 빌리면 '이제 곧 컴퓨터는 모든 가정에 보급되어 화장실처럼 가정의 표준시설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가정용 컴퓨터가 은행, 상점, 관청, 이웃집, 자기의 직장 등과 연결되면 생산업에서 소매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의 기업형태도 필연적으로 바뀔 것이다. 노동의 질이나 가족구조에도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컴퓨터 산업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전자산업도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소형계산기, 전자시계, TV 스크린 게임 등이 소비자를 현혹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소형이면서 값이 싼 농업용 기후 및 토양 감지기라든가 옷에 부착하여 심장의 고동이나 스트레스 정도를 탐지하는 극소형의 의료기구 등 전자공학을 응용한 제품은 앞으로 수없이 등장할 것이다.
또 제3의 물결산업의 발전은 에너지 위기에 의해서 크게 촉진될 것이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 산업의 생산공정이나 제품은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전화를 예로 들면 제2의 물결 시대의 도로 밑은 꼬불꼬불한 전화선과 도관, 중계시설, 스위치 등 각종 매설물들이 묻혀 있어 마치 구리광산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제 전화선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빛을 전달하는 섬유를 사용한 광섬유체제로 대체되려 하고 있다. 이 대체에 의한 에너지 소비의 절감은 놀라운 것으로 광섬유제조에 소요되는 에너지량은 구리를 채굴하고 제련하여 동선으로 가공하는 에너지량의 약 1000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90마일의 동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석탄으로 광섬유는 무려 8만 마일이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전자공학 분야에서 반도체 물리학도 같은 방향으로 변천해 가고 있다. 생산되는 부품을 보면 필요한 입력 에너지량이 착실히 감소되고 있다. IBM이 최근 개발한 대규모 직접회로(LSI: Large Scale Integration) 기술은 불과 50 마이크로와트의 전력으로 작동되는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공학 혁명이 갖는 이러한 특색을 고려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고민하는 고도기술경제에 있어 에너지 낭비형인 제2의 물결산업에서 제3의 물결산업으로의 방향전환이야말로 최선의 에너지 보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사이언스'지가 기술했듯이 '전자공학의 발전에 의해 국가 경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예기치 않던 새로운 전자공학기기가 출현할 때마다 허구가 현실로 바뀌어 간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공학의 융성은 새로운 기술체계를 개척하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 궤도를 도는 기계
우주와 해양개발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제2의 물결의 고전적 기술을 훨씬 초월하는 모험이 감행된다.
앞으로의 기술체계를 구성하는 두 번째 산업군은 우주산업이다. 당초의 계획보다는 지연되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매주 5대의 우주왕복선이 사람이나 화물을 싣고 우주공간을 왕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일반인들은 아직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이 '우주의 변경'이야말로 다가올 고도기술혁신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적합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그루만사와 보잉 항공사는 현재 에너지 생산용 위성과 우주기지를 개발하고 있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몇몇 기업들은 이제서야 인공위성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반도체에서 약품에 이르는 각종 제품을 인공위성에서 제조하고 가공할 수 있는 것이다. 고도의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 내는 물질은 정교하게 통제되는 취급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중력이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주 공간에서는 중력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용기도 불필요하다. 유독물질이나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경우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초고온 및 초저온가 함께 진공상태도 무한정 공급된다.'
이런 뜻에서 '우주 공장'은 과학자, 기술자, 고도기술 기업체의 경영진 사이에서 새로운 화제가 되고 있다. 맥도널 더글라스사는 몇몇 제약회사에 대해 인체 세포에 희귀한 효소를 분리하는 데에 우주왕복선을 사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고 있다. 유리업계는 레이저 및 광섬유용 물질을 우주에서 제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다. 우주 공간에서 만든 단결정의 반도체에 비하면 지상에 만든 반도체는 매우 초보적인 제품으로 보일 것이다. 또 특정한 혈액질환에 사용하는 응혈 용해제는 현재 1회 투여시마다 2500달러나 드는데 NASA의 우주산업화 연구실장 제스코폰 푸트카머 씨에 의하면 이것을 우주 공간에서 제조하면 5분의 1 이하의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구상에서는 아무리 많은 비용을 들여도 절대로 제조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제품이 있다는 것이다. 항공우주개발과 전자공학 부문 개발회사인 TRW의 발표에 의하면 중력 때문에 지구상에서는 만들 수 없는 합금이 400종류나 된다고 한다.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우주 용광로를 설계하고 있고 서독의 다임러 벤츠사와 MAN사에서는 우주볼 베어링 공장에 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또한 유럽 우주국과 영국항공사 등 특정한 기업들도 너나없이 우주 공간에서의 사업이 상업적 채산에 맞도록 여러 가지 제품과 설비를 고안 중이다. '비즈니스 위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런 계획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더 많은 회사가 진지하게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주 공장' 못지않게 진지하고 그 이상으로 열성적인 지지자를 얻고 있는 것이 오닐 박사의 '우주 도시'계획이다. 프린스턴대학의 물리학자인 오닐 박사는 우주에 대규모 기지나 섬을 띄워 수천 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여기저기서 열심히 강연해 왔다. 현재는 NASA나 캘리포니아주 지사(캘리포니아주의 경제는 우주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뿐 아니라 '전지구 카탈로그'를 창작한 스튜어트 브랜드가 이끄는 히피 출신 보컬밴드까지도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오닐 박사의 아이디어는 달을 비롯하여 다른 천체에서 캐낸 물질을 사용하여 조금씩 우주에 도시를 건설하려는 것인데 동료인 브라이언 오리어리 박사는 아폴로나 아모르 등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NASA, 제너럴 일렉트릭사, 연방정부의 에너지 기관 등의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프린스턴대학에 모여 달 등의 외계 광물의 화학처리에 관한 논문, 우주 주택의 설계와 건축 그리고 폐쇄된 생태계 등에 관허여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
지구 밖에서의 외계 생산까지 포괄하는 방대한 우주계획과 첨단전자공학을 결합함으로써 기술체계는 제2의 물결의 수많은 제약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해저개발
우주 공간과 방향은 완전히 반대지만 해저개발은 우주개발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해저개발은 새로운 기술체계의 주요부문인 제3의 산업군이 되려 하고 있다. 우리 조상이 약탈과 수렵 중심의 생활을 그만두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것이 역사상 최초의 사회 변혁의 물결이었다고 한다면 현재의 우리는 바다와의 관계에서 똑같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에서는 바다가 식량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바다를 농장이나 목장처럼 이용함으로써 인체의 영양에 빠뜨릴 수 없는 단백질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화가 고도로 진행된 현대의 상업적인 어업은 일본이나 소련의 공장선이 고기의 씨를 말리는 것처럼 지나친 남획으로 여러 가지 해양생물을 전멸시킬 우려가 있다. 이것처럼 지나친 남획으로 여러 가지 해양생물을 전멸시킬 우려가 있다. 이에 반하여 물고기의 양식이나 해조의 재배 등 지식이 요구되는 '해양농업'을 경영하면 우리의 생명과 깊은 관계에 있는 생태계를 파괴하기 않고 세계의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바다에서 '기름을 기를' 가능성은 최근의 해저유전개발 쇄도를 인해 뒤로 밀려난 감이 있으나 바텔 기념연구소의 로렌스 레이몬드 박사는 석유성분이 많이 함유된 해초의 재배가 가능함을 증명하고 현재 경제적으로 채산성이 있는 재배법을 연구 중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다에 잠들어 있는 무진장한 광물자원이다. 구리, 아연, 주석, 은, 금, 백금 그리고 농업용 비료를 만드는 인산광 등 각종 광물이 풍부하다. 수온이 높은 홍해에는 34억 달러 상당의 아연, 은, 납, 금 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몇몇 광산회사가 일찍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다. 세계 최대의 광산회사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기업들이 감자 모양의 해저 망간 덩어리를 채굴할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망간 덩어리는 자연 재생되는 자원으로 하와이 남쪽에서 확인된 것만 해도 연간 600만~1000만 톤씩이 형성되고 있다.) 현재 4개의 국제적 콘소시엄이 1980년대 중반부터 수십억 달러의 규모로 해저광업을 시작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의 콘소시엄에는 23개의 일본기업을 비롯하여 서독의 ARM그룹이나 캐나다 인터내셔널 니켈의 미국 자회사 등이 들어가 있고 두 번째 콘소시엄에는 벨기에의 유니옹 미니에르, US 스틸, 선 등의 회사가 연계되어 있다. 세 번째 콘소시업에는 캐나다의 노란다, 일본의 미쓰비시, 리오 틴토 징크사, 영국의 콘솔리데이트드 골드 필즈사가, 그리고 네 번째 콘소시엄에는 록히드와 로열더치 셸 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러한 노력들이 선택된 몇 가지 광물을 둘러싼 세계적인 채광 활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광산회사뿐 아니라 제약회사 호프만 라 로셰사 등은 항균제, 진통제, 검사약, 지혈제 등 바닷속에서 새로운 약품을 찾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앞으로 물속에 절반 또는 전부가 잠긴 '해양부락'이나 해상공장의 건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현 상태로서는 부동산가격이 제로라는 점과 해양자원(바람, 조류, 파도 등)으로부터 에너지를 싸게 공급할수 있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수중 또는 해상시설은 지상의 시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기술 전문지인 '머린 폴리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해상기지 건설기술은 비교적 단순하고 경비도 별로 들지 않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세계 각국의 정부나 기업, 민간단체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인구과밀상태인 산업사회들이 만드는 해상주택이다. 또 다국적기업에 있어서는 무역활동을 위한 이동 터미널로서 또는 공장선으로서 이용가치가 있다. 식품회사는 해상도시를 만들어 "해양농업"을 경영한 것이며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회사나 새로운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모험가는 해양도시를 건설한 후 새로운 국가를 수립할지도 모른다. 이윽고 해상도시도 공식적인 외교적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소수민족이 해상국가를 만들어 독립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닻으로 해저에 고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프로펠러나 벨러스트, 부력조정장치 등을 사용하여 해상에 떠있는 수천 개의 해저유전 채굴기의 건설과 관련된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미래의 해상도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새로운 산업의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총체적으로 해양진출의 상업적 타당성은 급격히 증대하고 있고 경제학자 리아프치거가 말한대로 '마치 옛 서부의 농장주들처럼 많은 대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넓은 바다를 획득하려고 출발선에 줄지어 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비산업국가들은 해양자원을 부유국들의 독점물이 아닌 인류의 '공동재산'으로서 확보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분야들에서의 발전이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관련을 갖고 스스로를 보강해 주고 또 각 과학기술의 발전이 서로의 발전을 촉진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때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기술은 제2의 물결의 기술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임이 명백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근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기술체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서술해 온 사례들도 지금 분자생물학 연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심한 변화에 비하면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생물학 산업이야말로 내일의 경제에서 네 번째의 산업군이며 4개 산업군 중에서 인류의 장래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유전자 산업
오늘날 유전자에 관한 정보가 2년마다 2배로 증가하고 유전자 기술자들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가운데 '뉴 사이언티스트'지는 '유전공학은 현재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사업에 뛰어들 태세가 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저명한 과학평론가 리치 캘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다루던 것처럼 생명이 있는 물질을 제조하는 시대가 왔다."
대기업은 이미 새로운 생물학의 성과를 상업적으로 응용할 수 없을까 하며 열성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꿈은 특수한 효소를 사용하여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측정하게 하고 그 오염도에 관한 자료를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보내 엔진을 자동적으로 조절하도록 '뉴욕타임스'는 "금속을 먹는 미생물을 사용하여 바닷물 속에서 소량의 귀금속을 추출할 수 있다."라고 보도한 것이 대기업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기업은 새로운 생물을 특허의 대상으로 해달라고 요구하여 이미 특허권을 따낸 것도 있다. 이 경쟁에 참가하고 있는 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을 비롯하여 엘리 릴리, 호프만 라 로셰, GD 셜, 업존, 메르크 등이 있다.
평론가나 과학자들이 이같은 경쟁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석유누출뿐 아니라 병을 옮기고 다수의 지역주민의 생명을 빼앗을지도 모를 '미생물누출'이다. 전염성 세균을 배양하다가 사고로 그것이 방출된다는 생각만 해도 공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의 한 예에 불과하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존경할 만한 과학자들은 오늘날 상상을 엇갈리게 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와 같은 위장을 가지고 들에 나 있는 풀이나 건초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든다면 인간은 현재보다도 먹이연쇄의 하등품을 먹게 되므로 식량문제는 저절로 완화되지 않을까? 노동자를 일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남달리 빠른 반사신경을 가진 파일럿을 만들어 내거나 단순노동에 적합하도록 신경학적으로 설계된 조립공을 만드는 것 등이다. '열등한 인간'을 말살하고 '우수한 인종'을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히틀러와 같은 시도이지만 히틀러가 갖지 못했던 유전학상의 무기가 멀지 않아 연구실로부터 제공될 것이다.) 전쟁에 적합한 사람을 영양생식으로 만들어 병사의 역할을 맡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유전학적 예측을 이용하여 '부적절한 아기'를 배제하는 것은 허용될까? 신장, 간장, 폐 등의 '저축은행'을 만들어 내장기관을 예비해 두면 어떨까?
이와 같은 생각들이 터무니없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학계에서는 각각의 구상에 대해 찬반양론이 있고 또 괄목할 만한 상업적 응용이 이루어진 예도 있다. 유전공학의 평론가 제레미 리프킨과 테드 하워드의 공저 '누가 신의 역할을 맡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조립공장, 자동차, 왁친, 컴퓨터 등의 기술과 같이 대규모 유전공학도 미국에 도입될 것이다. 유전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성과가 상업적으로 실용화되면 그때마다 새로운 소비자의 요구가 개척되고 새로운 기술을 위한 시장이 조성될 것이다.' 잠재적인 응용법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면 새로운 생물학은 에너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 과학자는 지금 태양광선을 전기화학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박케리아 이용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 태양전지'를 거론하고 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를 대체시킬 생물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방사능누출위험을 대신하여 생물누출의 위험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보건 분야에서도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부주의라든가 고의에 의해서 더 나쁜 질병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윤추구만을 생각하는 회사가 자기회사제품으로만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은밀히 전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가벼운 감기와 같은 증상이라도 치료약이나 치료법이 독점되어 있으면 거대한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유전학자와 제휴하고 일하는 캘리포니아의 세터스사 사장은 "30년 이내에 생물학은 화학보다도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 모스크바에서 발표된 소련 정부의 성명서 중에서도 '국가경제에 있어서의 미생물의 광범위한 이용을 꾀하여...'라는 말을 볼 수 있다.
생물학이 발전하면 플라스틱, 비료, 의복, 페인트, 살충제, 기타 수많은 제품의 생산에 석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해도 될 것이다. 목재나 양모와 같은 자연상품의 생산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미 US 스틸, 피아트, 히타치제작소, ASEA, IBM 등 여러 회사들이 자체의 생물학 사업부서를 설치하고 제조로부터 '생조'로 이행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퓨처스그룹의 지도자 고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단 생물학에 손을 대기만 하면 '인간의 세포조직과 다름없는 셔츠'라든가, 인간의 유방과 같은 물질로 만든 '유방과 다름없는 감촉의 매트리스'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훨씬 이전에 유전공학은 농업에 활용되어 세계의 식량 공급을 늘리는 데에 공헌할 것이다. 1960년대에는 품종개량에 의한 농산물의 증산을 겨냥한 '녹색혁명'이 크게 떠들썩했으나 결국 그것은 제1의 물결세계의 농민에게는 커다란 올가미에 불과했다. 석유로 만든 수입 비료를 대량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생물학적 농업혁명은 바로 이 화학비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전공학은 생산성이 높은 작물, 모래땅이나 염분이 많은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나 병에 강한 작물 등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보다 간단하고 값싸고 에너지 절약적인 식품보존 및 가공방식과 함께 전혀 새로운 식품이나 섬유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유전공학은 놀라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세계 각지의 굶주림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달콤한 약속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유전학 농업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말이 절반만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다른 여러 변화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부국과 빈국의 관계를 변화시키리라 본다. 녹색혁명은 빈국이 부국에 의존하는 정도를 약화시키기는 커녕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는데 생물학적 농업혁명은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생물공학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갈지 확신하기에는 시기상조이지만 원점으로 되돌아기도 너무 늦었다. 이미 발견한 것을 덮어둘 수는 없다. 우리가 더 이상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용을 올바로 관리하고 성급한 개발을 막는 일이다. 한 나라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고 이 분야에서 기업이나 국가나 과학자의 경쟁을 최소한으로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가지 아주 확실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 300년 간의 전통적 제2의 물결의 기술인 전기기계의 테두리에 묶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의 의의를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제2의 물결은 석탄, 철강, 전기, 철도 등을 결합하여 자동차를 비롯한 생활을 변혁시킨 수많은 제품을 만들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컴퓨터, 전자공학, 우주나 해양에서 만든 신소재, 유전공학 등을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결합시키고 또 그것이 에너지 체계를 결합시켜야 비로소 새로운 변혁이 참다운 영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결합해야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술혁신의 거대한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3의 물결 문명의 새로운 체계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반역자들
이 기술들의 진보가 지닌 중요성과 그것이 인류의 진화에 앞으로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면 기술의 진보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게 된다.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것이나 대수롭지 않다고 낙관하는 것도 우리 자신과 자손의 운명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현재의 변화는 그 규모, 힘, 속도에 있어서 역사상 경험한 적이 없는 것이다. 대재해가 될뻔한 스리 마일섬의 원자력발전사고, 비극적인 DC-10기의 충돌사고, 멕시코 해안의 멈출 수 없던 대량의 원유누출사건 등 기술개발에 따르는 몇몇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이러한 재해를 눈앞에 두고 미래의 강력한 기술인 진보나 결합을 제2의 물결 시대의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판단기준에서 결정해도 될까?
과거 300년 동안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불문하고 새 기술이 태어날 때마다 제기된 기본적 문제는 경제적인 이익이 있는가, 혹은 군사력증강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두 가지 점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두 판단 기준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새로운 기술들을 경제와 군사의 양면 뿐 아니라 생태환경이나 사회적인 면에서도 엄격히 심사되어야 한다.
미국 전국과학재단에 제출된 어느 보고서 가운데에 '기술이 사회에 끼친 충격'이라는 제목하에 최근의 기술재해가 열거되어 있다. 이 목록을 자세히 조사하면 그 대부분이 제2의 물결기술이 일으킨 재해이고 제3의 물결기술에 기인하는 것은 별로 볼 수 없다. 이유는 분명하다. 제3의 물결기술의 대부분이 아직 유아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유전자누출, 기상간섭, 원거리에서 지각진동을 발생시켜 고의로 지진을 일으키는 이른바 '생태전쟁' 등이다. 새로운 기술체계를 향하여 전진함에 따라서 더 많은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에 새로운 기술에 반대하는 거의 무차별적인 대규모의 대중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저지하려는 시도는 제2의 물결의 초기에도 볼 수 있었다. 이미 1663년 런던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당한다는 이유로 제재소에 새로 설치한 기계를 파괴하고 1676년에는 리본 제조공들이 자기들의 기계를 파괴했었다. 1710년에는 새 양말 기계의 도입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그 뒤에 방직공장에서 사용하는 북을 발명한 존 케이는 성난 군중이 자기 집을 때려 부수자 결국 영국에서 도망쳤다. 이런 종류의 사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산업혁명이 절정이던 1811년부터 16년에 걸쳐 '러다이트'라는 기계 파괴주의자들이 노팅검의 방직기를 파괴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들 초기의 기계 반대 운동은 산발적이고 자연발생적이었다. 어느 역사가가 지적했듯이 '사건의 대부분은 기계 자체에 대한 적의에서 일어난 것이었다기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고용자를 위압하는 수단으로 발생'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며 배고픔과 절망에 빠진 노동자의 눈에 비친 기계는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오늘날의 반항은 이것과는 다르다. 결코 가난하지도 무식하지도 않는 사람들, 반드시 반기술적이거나 경제성장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무절제한 기술혁신이 자기 자신과 세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반항에 가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수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 과격파는 기회가 있으면 러다이트와 같은 수단에 호소할지도 모른다. 컴퓨터 장치나 유전자 연구실 또는 건설 중인 원자로 등이 폭파당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주 무서운 기술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모든 약의 근원'인 백의의 과학자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미래의 선동정치가 중에는 '케임브리지대학의 10인조'나 '오크리지 원자력발전소의 7인조'라고 멋대로 명명한 다음 그 주변을 조사하여 이름을 떨치려고 하는 자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술 반역자들의 대부분은 폭탄을 던지거나 러다이트와 같이 기계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이 가운데에는 수많은 일반시민들 이외에도 원자력기술자, 생화학자, 물리학자, 공중위생 관계의 공무원, 유전학자 등 수천 명의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러다이트와는 달리 잘 조직되고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적으로 과학잡지나 홍보지를 간행하고 소송을 제기하거나 법안을 만들기도 한다. 동시에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데모도 한다.
이런 운동은 자주 반동적이라고 비난받지만 사실은 탄생되고 있는 제3의 물결의 중요한 일부이다. 기술 분야에서 에너지를 둘러싸고 3개 집단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지만 기술분야의 투쟁과 병행하여 정치, 경제 분양에서도 3파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운동의 참가자들은 세 집단 중에서도 미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여기서도 역시 한편에는 제2의 물결세력이 있고 한편에는 제1의 물결의 수정주의자들이 있으며 제3의 물결진영은 이 두 세력과 싸워야 한다. 제2의 물결세력은 기술에 대해 낡고 어리석은 생각을 고집하고 있다. '유익하다면 건설하자. 팔 수 있다면 생산하자. 군사력 강화와 관계가 된다면 만들자.' 제2의 물결의 신봉자들은 진보에 대하여 시대에 낙후된 산업 현실관에 집착하여 기술을 무책임한 방법으로 실용화하려고 이권을 다투고 있다. 이들은 위험성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하다.
한편 소수이지만 목소리가 높은 극단적인 낭만주의자들의 일단이 있다. 이 집단은 원시적인 제1의 물결의 기술 이외의 모든 것에 적의를 품고 중세의 공예나 수공업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중산층에 속하여 배고픔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유리한 입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들은 제2의 물결의 기술 지지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차별하게 기술혁신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이고 그들 자신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 양극단의 사이에는 각국에서 기술에 대한 반란의 핵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제3의 물결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갑자기 처음부터 기술문제를 논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하는 난제로부터 토론을 시작한다. 그들의 쟁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제 기술의 진보는 너무나 많은 방향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자금을 투자하여 모두 개발을 진행하고 실용화하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보다 더 신중히 선택하여 장기적으로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기술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기술이 우리의 목적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의 커다란 흐름의 방향을 사회가 관리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 기술반역자들은 아직 명확하고 포괄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수많은 성명, 청원, 선연, 연구보고 등을 읽으면 그 속에서 몇 가지 사상의 흐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이 종합되어 기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견해, 미래의 제3의 물결로의 이행을 위한 하나의 적극적인 정책이 탄생하게 된다.
그들 사상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지구의 생물체계는 약하여 파괴되기 쉬우므로 새로운 기술이 강력하면 할수록 지구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위험성이 커진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모든 새로운 기술은 역효과를 야기시키지 않도록 사전에 심사하여 위험한 것은 재설계하거나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미래의 기술들은 제2의 물결 시대에 비해 더 엄격한 생태적인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술반역자들은 우리가 기술을 지배하지 않으면 기술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 '우리'란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 기업인 등 소수의 엘리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서독, 프랑스, 스웨덴, 일본, 미국 등에서 일어난 반핵운동이나 콩코드기 취항 반대 투쟁 또는 날로 고조되고 있는 유전자 연구의 제한요구 등은 어떤 공적을 올렸느냐는 별도로 하고 모두 기술 있어서의 결정 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뛰어난' 기술이란 반드시 규모가 크고 복잡하고 값비싼 기술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고압적인 제2의 물결의 기술들이 실제보다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기업체나 사회주의적 사업체들이 공해, 실업, 노동재해 등에 필요한 방대한 대책 경비를 사회 전체에 부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생산비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얼핏 '높은 효율'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기계들도 사실은 완전히 비능률적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기술반역자들은 적절한 기술들의 종합계획을 세워 좀더 인간적인 일을 준비하고 공해를 없애고 환경을 보호하고, 국가나 세계시장보다도 지역이나 개인의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에 찬동한다. 기술반역자들은 세계 각국에서 비록 기술 규모는 작지만 물고기의 양식이나 식품 가공으로부터 에너지 생산, 쓰레기의 재생, 값싼 주택건축, 간편한 교통 등 각 분야에서 수천 가지의 실험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실험 가운데에는 너무 소박하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도 있지만 실용적인 것 또한 많다. 실험 중에는 최신의 소재와 과학적인 장치를 새로운 방법으로 옛날의 기술과 조합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중세 기술사학자인 장펠이 만들고 있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도구류는 비산업국가들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것은 신소재와 구식기법을 결합한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최근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비행선이다. 비행선의 기술은 한때 잊혀졌었지만 최근에는 섬유 등 기타 재료의 진보에 의해 유효하중이 매우 커져서 적재량이 늘었다. 비행선은 환경 면에서도 해로움이 없고 브라질이나 나이지리아와 같이 도로 사정이 나쁜 지역에서 다소 속도는 떨어지지만 싸고 안전한 수송수단으로서 가장 알맞다. 무엇이 가장 타당한 기술인가 혹은 대체기술은 없는가를 조사하는 실험을 하다 보면,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는 간단한 소규모의 기술이라도 기계가 그 용도에 꼭 맞고 기술이 갖는 부작용까지 모두 감안할 경우 복잡한 대규모 기술 못지않게 '성능이 좋은' 기술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술반역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 지구상에 커다란 과학기술의 불균형이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총인구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나라들의 과학자 수가 세계 과학자 총수의 불과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기술적 관심을 증대시키고 우주자원이나 해양자원도 더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류 공통의 유산은 바다나 하늘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첨단기술 자체도 인도인, 아라비아인, 고대 중국인 등 수많은 민족의 역사적 공헌이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마지막은 제3의 물결로의 이행에 있어 우리는 제2의 물결 시대의 자원을 낭비하고 공해를 수반하는 생산 체제에서 보다 '물질대사 기능이 높은' 체제로 한 걸음 한 걸음 서서히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대사 기능이 높은 생산체제'란 생산의 산출물과 부산물이 반드시 다음 생산의 투입물이 되어 폐기물이나 공해가 없는 생산체제를 말한다. 다음 생산과정의 투입물이 되지 않는 산출물을 생산하지 않는 체제가 최종목표이다. 이런 체제가 되면 생산성이 높을 뿐 아니라 생태계에 미치는 손해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최소한으로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현대 기술 반역자들의 의견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술반역자들의 사고방식은 격렬한 기세로 진보하는 기술을 좀 더 인간화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각하든 못하든 제3의 물결의 대리인이다. 그들은 앞으로 그 수를 늘릴 수는 있어도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금성 탐험, 경이적인 컴퓨터, 생물학상의 발견 또는 해저 탐험 등이 모두 다음 문명을 향한 전진이라면 기술에 대한 반역자들도 또한 다음 문명의 선도자이다.
제1의 물결의 환상가들과 제2의 물결의 기술 옹호자들은 상대로 한 그들의 투쟁에서 새롭고 영속성 있는 에너지 체계에 어울리는 실제적인 기술들이 태어난다. 그런 기술들이 이제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이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새로운 기술들을 접속시킬 때 우리 문명 전체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문명의 심장부에는 엄격한 환경규제와 사회관리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는 과학에 기초를 두면서도 세련된 '고속'의 산업과 그리고 역시 세련되기만 하지만 소규모이고 인간미 넘치는 '저속'의 산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원리는 제2의 물결의 기술체계를 지배해 온 원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되리라 본다. 이 두 산업이 서로 협력하여 내일의 주요산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서술한 것은 보다 광대한 전망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기술영역을 변혁시키면서 동시에 정보영역도 변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13장 매체의 탈대중화
비밀첩보원은 현대의 강렬한 상징의 하나이다. 이토록 멋지게 현대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두고 있는 것은 없다. 수많은 영화가 007을 시초로 무분별한 각 세계의 첩보원들을 영웅적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TV나 각종 문고판 서적들도 실제보다 훨씬 용감하고 낭만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또 몸집이 큰(또는 작은) 스파이 상을 끊임없이 꾸며내고 있다. 한편 정부도 첩보 활동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넣는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M : Komitet Gosudarstvennoi Bezopasnosti), 미국 중앙정보국(CIA :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등 기타 수십 개에 이르는 정보기관이 서로 격전을 벌이면서 베를린에서 베이루트로, 마카오에서 멕시코시티로 암약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서방측의 신문기자가 간첩 용의자로 기소되었다. 본에서는 간첩의 손이 내각에까지 뻗어 수상이 실각한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경찰 위성이 서로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지구상의 어떤 미세한 점도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는다.
스파이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에 와서 스파이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고조되어 사립탐정이나 형사, 카우보이를 제쳐놓고 스파이가 세상 사람들의 상상력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누구나 주목하는 되는 것은 이러한 전설상의 인물들과 스파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형사나 카우보이는 오로지 권총이나 맨주먹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반해 소설 속의 스파이는 전자공학을 이용한 도청기, 컴퓨터, 적외선 카메라, 하늘을 나고 물속을 달리는 차, 헬리콥터, 1인승 잠수함, 살인광선 등등 온갖 최신의 아주 색다른 기술로 만든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스파이가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좀 더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카우보이, 형사, 사립탐정, 모험가, 탐험가 등 서적이나 영화에서 낯익은 전통적인 영웅들은 목장이나 돈을 원하고 악당을 잡거나 여자를 차지하려고 했다. 즉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의 대상물을 추구했다. 그러나 스파이는 그렇지 않다.
스파이의 주요임무는 정보이다. 정보는 세계에서 가장 급성장하고 가장 중요한 사업일 것이다. 스파이는 오늘날 정보영역을 휩쓸고 있는 새로운 혁명의 살아 있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미지의 저장고
정보 폭탄이라는 또 하나의 폭탄이 현대사회의 한가운데에서 폭발하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미지의 파편이 소나기처럼 퍼부어 우리는 이제까지의 인식방법이나 행동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도록 되어 있다.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의 정보체계로의 전환기를 맞아 우리 자신의 정신구조가 변혁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머릿속에 현실에 대응하는 정신적 모형을 만들고 있다. 즉 이미지의 창고이다. 이미지 속에는 시각적. 청각적인 것도 있고 또 촉각적인 것도 있다. 또 '지각'에 의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곁눈질로 얼핏 쳐다본 푸른 하늘과 같이 주위의 상황에 관한 것도 있다. 또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두 단어와 같이 상호의 관련에 나타나는 것도 있다. 단순한 것이 있는 한편 복잡하고 개념적인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인플레이션은 임금 상승에 의해서 일어난다'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총체가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함으로써 이것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조직망 속에 우리의 위치를 정립시켜 준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디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형성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미지는 주위에서 보내오는 신호나 정보에서 형성된다.
직장, 가정, 교회, 학교, 정치적인 타협 등이 제3의 물결의 충격을 감지하고 주위의 상황변화에 따라 동요되면 우리를 둘러싼 정보의 바다도 또한 변화한다.
대중매체가 출현하기 이전의 일을 고찰해 보자. 제1의 물결 시대의 아이들은 변화가 느린 마을에서 성장하면서 자그만한 정보원이 전해주는 이미지에 의해서 거기에 대응하는 현실의 모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정보원은 학교의 교사, 목사, 촌장이나 관리, 특히 가족이라는 범위에 머물러 있었다. 미래 심리학자 허버트 거조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동네 사람 외에 갖가지 분야의 사람들이나 여러 외국인과 접할 기회를 주는 라디오나 텔레비젼이 없었다. 외국의 도시를 구경한 일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본보기로 보일 사람들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본보기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더욱 좁았다.' 그러므로 마을의 아이들이 품는 세계관은 극히 좁은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받는 메시지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매우 중복되어 있었다. 첫째로 중단과 반복이 가득 찬 일상적인 연설의 형태로 그러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한 고정관념 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하지 말라'라는 같은 말을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은 국가나 가족에게서 이미 수십 번씩이나 들어온 말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공동체의 일치된 의견에 따르고 순응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뇌리에 작용하는 이미지와 행동의 범위는 더욱 더 한정된 것이 되었다.
그런데 제2의 물결 시대가 되자 사람들이 뇌리에 그리는 현실상의 실마리가 되는 회로가 무수히 증가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자연이나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대량의 발행 부수를 가진 신문, 잡지, 라디오, 그리고 나중엔 TV에서 많은 이미지를 알게 되었다. 대체로 교회나 국가, 가정, 학교는 여전히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서 서로를 보강했다. 그러나 이제 대중매체가 거대한 확성기가 된 것이다. 대중매체는 지역, 민족, 부족, 언어의 경계선을 넘어 그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표준화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갖가지의 이미지를 정착시켰다. 물결치는 붉은 깃발 아래 의기양양하게 턱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레닌의 여상은 십자가의 예수상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우상으로 되었다. 중산모자에 지팡이를 든 채플린, 혹은 뉘른베르크에서 열광하는 히틀러의 이미지, 부헨 발트 강제수용소의 장작처럼 쌓여있는 인간의 시체, 처칠의 V사인, 검은 망토의 루스벨트, 바람에 펄럭이는 마릴린 먼로의 스커트, 그 외의 수많은 대중매체 스타들의 이미지, 또 세계적으로 알려진 수많은 상품, 이를테면 미국의 아이보리 비누, 일본의 모리나가 초콜릿, 프랑스의 청량음료 페리에, 이런 것들은 모두 세계적인 이미지 목록에 오른 전형적인 항목이 되었다.
대중매체가 이러한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대중의 마음에 심어주는 데에 기여한 결과, 산업사회의 생산체제가 요구하는 표준화된 행동을 만들게 되었다.
우리 내부에서 이미지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이미지가 한층 일시적인 것이 되어 간다는 사실도 의미한다. 1회용 예술, 1회용 연속 코미디, 즉석에서 인화할 수 있는 플라로이드 사진, 복사, 쓰고 버리는 인쇄 미술, 이러한 것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간다. 갖가지 관념, 신조, 태도 등이 의식 속에 힘차게 나타났다가 도전을 받았는가 싶으면 즉시 저항에 부딪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과학이나 심리학에 관한 이론은 매일처럼 뒤바뀐다. 이데올로기는 붕괴된다. 몇 사람의 저명인사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한순간 맴돌다가 사라져 버린다. 정치나 도덕의 서로 모순되는 슬로건이 우리를 공박해 온다.
주마등처럼 어지럽게 우리의 마음속을 왕래하는 일련의 환상들이 어떤 의미를 지녔고 또 이미지의 형성과정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이 정보의 흐름을 가속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활동을 좌우하는 정보의 구조 그 자체를 변혁시키기 때문이다.
탈대중화 매체
대중매체는 제2의 물결 시대를 통하여 시종일관 성장을 계속하여 강력한 힘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3의 물결이 산더미처럼 밀려와서 대중매체는 급속히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당자 대부분의 전선에서 철수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대신하여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여기서 말하는 '탈대중화 매체'이다.
구체적인 예로서 먼저 신문을 들어보자. 제2의 물결에서 대중매체의 최고참인 신문은 이제 그 독자를 잃고 있다. 그러나 1973년에 미국의 신문 총 발행 부수는 하루 6300만 부에 이르고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이래 발행 부수는 늘기는커녕 감소되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6200만 부로 떨어지고 그 뒤에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일간지의 구독자도 1972년의 69퍼센트에서 1977년에는 62퍼센트로 감소되어 미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몇몇 신문이 심한 타격을 받았다. 뉴욕에서는 1970년부터 1976년 사이에 3대 일간지가 합계 55만의 독자를 잃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973년을 정점으로 발행 부수가 줄기 시작하여 1976년까지 8만 명의 독자를 잃었다. 필라델피아의 2대 신문 독자는 15만 명, 클리블랜드의 2대신문 독자는 9만 명, 샌프란시스코의 2대 신문 독자는 8만 명 이상이나 모두 감소되고 있다. 한편 수많은 작은 신문이 출현하여 그때까지 미국의 주요일간지로 알려졌던 '클리블랜드 뉴스', '하트포드 타임스', '디트로이트 타임스', '롱 아일랜드 프레스'는 모두 주류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와같은 경향은 영국에서도 볼 수 있다. 196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전국지의 총 발행 부수는 8퍼센트가 감소되고 있다.
이같은 신문의 퇴조가 순전히 TV의 등장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근에 일단의 소량부수 발행 주간지, 격주간지 그리고 '쇼핑 정보'라는 것 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도시의 대량시장을 상대로 하는 것을 피하고 특정한 지역주민이나 공동체를 위해 자상한 광고나 뉴스를 제공해 준다. 오늘의 대중일간지는 이러한 간행물들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대도시 중심의 대중일간지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대중화 매체들이 기만하게 움직이며 대중매체의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대중잡지를 살펴보자. 1950년대 중반 이래 미국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대중잡지가 폐간되고 있었다. '라이프', '루크',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이들은 모두 폐간되는 처지가 되었고 그 뒤 복간되었다 해도 발행 부수는 전보다도 훨씬 적어졌다.
1970년부터 1977년 사이에 미국의 인구는 1400만 명이 늘었으나 같은 기간 중 25대 잡지의 발행 부수는 도합 400만 부나 감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미국에서는 미니잡지가 폭발적인 인기리에 탄생했고, 특수대상이나 특정 지역을 노린 수천 가지의 새로운 잡지가 등장했다. 파일럿이나 항공기 팬은 그들을 상대로 하는 수십종의 정기간행물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틴에이저, 스쿠버 다이빙 애호가, 퇴직자, 여성 스포츠 선수, 골동품 카메라 수집가, 테니스광, 스키어, 스케이트보드 애호가 등은 모두 자기들의 전문지를 가지고 있다. 또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뉴욕', '뉴웨스트', 달라스의 'D', '피츠버거'와 같은 지방지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지방지 중에서도 특정 대상을 위한 이를테면 '켄터키 비즈니스 레저'라든가 '웨스턴 파머'와 같은 전문지가 탄생하여 더욱 더 시장을 세분화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단체, 공동체, 정치단체, 종교집단들이 각기의 인쇄기를 사용하여 스스로 출판물을 인쇄하고 있다. 소규모 집단들도 복사기로 정기간행물을 차례로 발행하고 있고 이러한 복사기는 미국의 사무실이라면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다. 대중잡지는 국민 생활에서 차지했던 강력한 영향력을 잃었다. 탈대중화 잡지, 즉 미니잡지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제3의 물결이 준 충격은 인쇄 매체에 그치지 않는다. 1950년부터 1970년 사이에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 수는 2336개에서 5359개로 늘었다. 인구는 35퍼센트가 증가하는 동안에 라디오 방송국은 129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인 6만 5000명당 방송국 하나이던 것이 3만 8000명당 1개소로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또한 청취자들의 프로그램 선택범위가 그만큼 넓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취자들은 여러 방송국에 분산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크게 제고되어 여러 방송국들이 종전처럼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하지 않고 전문화된 청취자 그룹을 대상으로 방송하게 되었다. 교육 정도가 높은 중산층에 대해서는 뉴스 전문국이 생겼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청소년층에 대해서는 하드 록, 소프트 록, 펑크 록, 컨트리 록, 포크 록 등 각각 전문국이 있다. 흑인을 상대로 한 솔 뮤직 방송국, 고소득층을 상대로 한 클래식 음악 방송국, 뉴 잉글랜드의 포르투갈인을 비롯하여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일본인과 같은 미국 내의 여러 민족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어 방송국도 출현했다. 정치평론가 리처드 리보즈는 이렇게 쓰고 있다. '로드 아일랜드 주 뉴포트시에서 라디오의 AM방송 다이얼을 돌렸더니 38개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3개 국은 종교방송국이며 2개국은 흑인을 사대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고, 1개국은 포르투갈어로 방송하고 있었다.'
또 음성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형태가 등장하여 특수한 방송국으로 흐른 나머지 대중청취자들마저 잠식해 간다. 1960년대에는 소형의 값싼 테이프 레코더나 카세트 플레이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10대 청소년들은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60년대에 비해 일반적으로 예상된 것과는 반대로 감소하고 있다. 라디오의 평균 청취 시간은 1967년의 하루 4.8시간에서 1977년에는 2.8시간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그다음에 등장한 것이 시민 밴드 라디오(citizens band radio. 약칭 CB 라디오)이다. 이것은 미국의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어있는 주파수를 이용하여 교신할 수 있는 워키토키와 같은 라디오이다. 종래의 라디오 방송이 일방 통행인데 비해(청취자는 프로그램을 보내는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다) 자동차에 장치된 CB 라디오는 5~15마일의 범위 내에서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59년부터 1974년 사이에 미국에서 CB 라디오는 불과 1백만 대밖에 사용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2백만 대가 되는 데에 8개월, 다시 3백만 대가 되는 데에는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워싱턴의 연방통신위원회도 놀라고 있다.
CB 라디오는 마치 로켓 분사와 같은 기세로 보급되었다. 1977년에는 거의 2500 만대 사용되고 '경찰관이 과속차량을 단속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든가 기도, 매춘부의 호객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다양한 공중전화가 하늘을 메우게 되었다.
지금은 한차례 유행이 지나갔지만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
라디오 방송회사는 광고 수입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CB 라디오 때문에 청취자가 줄지는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광고회사들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마스켈러 광고회사가 뉴욕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CB 라디오 사용자 중에서 45퍼센트가 카 라디오 방송을 10~15퍼센트밖에 듣지 않게 되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이 조사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CB 라디오 사용자의 반수 이상이 라디오와 CB 라디오의 둘을 동시에 듣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신문,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화 현상은 라디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출판계와 마찬가지로 음성 분야에서도 탈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2의 물결 매체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놀라운 타격을 받은 것은 1977년 이후의 일이다. 우리 세대에 있어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많은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매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TV였다. 그런데 1977년에 이르러 브라운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장이다. 방송이나 광고업계의 간부들은 초조해하면서 통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들이 본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TV 시청률이 떨어진 것이다.'라고 '타임'지는 쓰고 있다.
'전에는 TV 시청자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어느 광고인도 한탄했다.
지금도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TV 프로그램이 옛날에 비해 시시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형태의 프로그램이 너무나 많다고도 말한다. TV 방송사 사장들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 새로운 형태의 쇼를 방영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TV 광고의 구름으로부터 보다 깊은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TV의 네트워크가 대중의 이미지를 집중 관리하여 전능을 과시하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 NBC의 전 사장은 미국 3대 네트웍이 어리석은 시청률 경쟁을 비난하고 1980년대 말에는 3사의 골든아워 시청률이 50퍼센트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의 새로운 전달 매체가 진출하여 이제까지 방송계의 전선에 군림하고 있던 제2의 물결 매체의 지배를 각 방면에서 전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유선 TV는 오늘날 이미 미국의 1450만 세대에 보급되고 있고 1980년대 초기에는 허리케인과 같은 기세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전문가의 예측에 따르면 1981년 말까지 2000만 내에서 2600만의 가입자가 예측되어, 미국 전 세대의 50퍼센트에 달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동선의 동축 케이블을 대신하여 머리칼과 같은 가느다란 섬유를 통하여 광파를 보내는 값싼 광섬유 시스템이 채택되면 사태는 더욱 급속히 진전될 것이다. 간편한 인쇄기나 제록스와 마찬가지로 유선 TV는 일반 시청자를 탈대중화하여 대중을 다수의 소규모 집단으로 분할 할 것이다. 더욱이 유선 시스템에 의해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가입자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초에 전국 도시가 광파통신 케이블로 연결되어 다이얼만 돌리면 각종 프로그램으로부터 사진, 데이터, 극장의 예약상황, 신문이나 잡지기사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TV 수상기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도난방지, 화재 예방의 자동경보기도 이 시스템으로 운영하게 될 것이다.
오사카 교외의 주택지, 나라현 이고마시에서 필자는 '하이 오비스(Hi Ovis)' 시스템이라는 실험적인 TV 프로그램에 출현한 일이 있다. 그것은 섬유 케이블을 사용한 양방향의 영상정보 시스템으로 가입자의 가정에 TV 수상기와 함께 마이크로폰 카메라를 장치하고 시청자가 동시에 정보를 보내는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회자로부터 인터뷰를 받고 있을 때 자기 집 거실에서 이것을 시청하던 사카모토라는 부인이 프로에 참가하여 서툴기는 했지만 영어로 부담 없이 우리들의 대황에 가담했다. 화면에는 그녀의 모습이 비치더니 아네게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는 동안, 방안을 작은 사내아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보였다.
이 유선 TV는 음악, 요리, 교육 등 온갖 테마의 비디오카세트를 갖추어 놓고 코드 넘버를 누르기만 하면 컴퓨터가 작동하여 보고 싶은 것을 아무 때고 가정의 수상기에 상영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이것을 이용할 수 있는 세대는 약 160세대에 지나지 않지만 '하이 오비스'의 실험은 일본 정부의 보조와 후지쓰, 스미토모사, 마쓰시타사, 긴데쓰와 같은 기업에서 출자를 받고 있다. 이 시도는 매우 첨단적인 것으로 이미 광섬유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이보다 1주일 전에 필자는 오하이오주의 컬럼버스 시에서 워너 케이블 회사가 경영하는 '큐브(Qube)' 시스템을 견학했다. 이것은 가입자에게 30회선의 TV채널을 통해(정규방송국은 4국밖에 없지만) 취학 전의 아동으로부터 의사, 변호사 등 특수대상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그중에는 '성인 상대의 프로그램'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큐브'는 세계에서 가장 잘 개발되고 상업성이 높은 송수신 겸용 시스템이다. 가입자에게는 작은 계산기와 비슷한 어댑터가 제공되고 있어 푸쉬 버튼으로 방송국과 교신한다. 핫라인(hot-line)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직통 버튼으로 '큐브'의 스튜디오를 불러내어 그 컴퓨터와 교신이 가능하다. '타임'지는 이 시스템을 흥분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입자는 자기 고장 정치토론에서 자기 의견을 표명할 수도 있으며 불필요해진 가정용품의 창고 세일(garage sale)을 열 수도 있고 자선경매에서 예술품을 입찰할 수도 있다. 정치가에 대한 질문, 지방의 신인 탤런트의 인기투표에도 누구나 버튼 하나로 참가할 수 있다. 소비자는 각 슈퍼마켓의 상품 종류, 품질, 값을 비교하여 쇼핑할 수도 있고 동양식 레스토랑의 테이블을 예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전국 네트워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유선 TV만은 아니다.
최근에 비디오 게임이 가장 인기있는 상품이 되고 있다. 수백만의 미국인이 TV 화면을 탁구대나 하키장 또는 테니스 코트로 만들어 주는 이 장치에 열중하고 있다. 정통적인 정치학자, 사회학자에게는 이같은 사태 발전이 하찮거나 관련성이 없는 현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가까운 장래의, 말하자면 전자공학에 에워싸인 생활환경에 적을하기 위한 사전훈련 내지는 사회학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커다란 파도가 벌써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디오 게임은 일반 시청자를 더욱 더 탈대중화시켜 일정 시간대의 TV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자 수를 잠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서는 얼핏 보기에는 별로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장치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TV로 놀고, 거기에 말을 하고, 교신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수동적인 수신자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송신자로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 TV에 조종당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TV를 조종하는 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현재, TV 화면을 통하여 제공되는 정보 서비스가 이미 실용화되고 있고, TV 수상기에 어댑터를 장치하면 버튼 하나로 뉴스, 일기예보, 금융정보, 스포츠의 결과 등 10여 가지 자료 서비스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데이터는 자동적으로 활자가 쳐서 나오는 수신 테이프와 같이 TV 화면에 차례로 나타난다. 오래지 않아 이용자들은 TV 화면의 어떤 데이터나 영상이라도 기록에 남기고 싶으면 용지에 복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보 서비스라는 면에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변화를 앞에 놓고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디오카세트의 재생기나 녹화기도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1년까지 1백만 대의 보급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것에 의해서 월요일의 축구경기를 녹화해 두었다가 토요일에 재생해서 볼 수 있고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영상의 동시성을 파괴하게 된다.) 영화나 스포츠 경기의 녹화 테이프의 판매를 가능케 해 준다. (아랍인들도 매력적인 것에는 무관심하지 않다. 이를테면 모하메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 '메신저: The Messenger'를 아라비어어의 금박 글자로 장식한 카세트 케이스에 담겨져 팔리고 있다.) 또한 비디오 레코더와 프레이어는 예컨대 의사나 간호사용 의학 교재라든가 소비자를 위한 조립식 기구의 조립방법이라든가, 토스터가 부서졌을 경우의 수리법을 보여주는 테이프를 포함한 고도로 전문화된 카트리지의 시판을 가능케 해 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디오 녹화기를 갖게 되면 소비자가 스스로 영상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도 시청자의 탈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끝으로 국내 방송위성에 관하여 언급해 두자. TV 방송국은 인공위성을 통해 기존 방송망을 빼돌리고서도 약간의 경비만 들이면 어디에나 자유로이 전파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개별 프로그램을 공급하기 위한 일시적인 미니 방송망이 가능하게 된다. 1980년대 말에는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발신하는 유선 TV 지상국이 1천 국에 이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송 프로그램 공급처가 국내 방송위성의 사용료만 지불하면 즉석에서 전국적인 유선 TV 방송망을 이용할 수 있다.
어떤 시스탬의 그룹에 대해서도 프로를 선택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라고 잡지 '텔레비젼, 라디오 시대'는 쓰고 있다. 영 앤드 루비캄 광고회사 전자매체 담당 부서장인 윌리엄 J. 도넬리는 '국내 방송위성은 시청자의 세분화와 전국적 프로그램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 대중매체에 있어서의 갖가지 진보, 발전에 관하여 서술했는데 여기에는 하나의 공통된 현상이 있다. 즉 이러한 변화는 불특정다수의 텔레비전 시청자를 세분화하고 문화의 다양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오늘날까지 완전히 우리의 이미지를 지배해 온 TV 방송망의 세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풍부한 통찰력을 지닌 칼럼니스트 존 오코너는 '하나만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이제 상업 TV는 프로그램 내용이나 방송 시간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도 사실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하나의 커다란 파도가 되어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잡지나 TV에 이르는 방대한 매체의 지평선을 석권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지금 공격을 받고 있다. 새롭고 세분화도니 매체가 크게 늘어나 제2의 물결사회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던 대중매체에 도전하고 때로는 이를 대체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은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 탈대중화 매체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보영역'이 새 '기술영역'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 '정보영역'은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즉 우리 두뇌 속의 영역까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변화들이 일체가 되어 우리의 세계에 관한 인식능력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순간 영상문화(Blip Culture)
매체가 탈대중화함과 동시에 우리의 정신은 세분화된다. 제2의 물결 시대에는 대중매체가 표준화된 이미지를 쉬지 않고 우리에게 쏟아 넣어 비평가가 말하는 대중심리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에는 대중이 모두 같은 메시지를 받는 일이 없어지고 대신에 더 소규모의 그룹으로 세분화된 사람들이 자기들이 만들어 낸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제3의 물결의 특색인 다양화로 이행함에 따라 새로운 매체도 이러한 과정을 반영하고 더욱 그것을 촉진한다.
이는 괌 뮤직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대하여 국민의 의견이 분열되고 일치점을 찾아내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배경설명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여론의 일치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없어지게 되었다.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는 갖가지 모순되고 서로 관련이 없는 단편적인 이미지군에 의해서 포위되고 전격적인 공격을 받아 이제까지 품어 오던 낡은 사고방식이 뒤흔들리고 있다. 이미지의 단편은 레이더의 스크린 위에 물체의 위치를 나타내는 발광범과 같이 명멸하는 그림자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방사된다. 사실 우리는 '순간 영상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 제프리 울프는 '소설이 다루는 분야는 더욱 더 좁아져서 미세한 테마에 파고들어 간다.'라고 한탄하고 소설가는 '점점 더 웅대한 구상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다니엘 라스킨은 '국민연감(The People's Almanac)'이나 '무엇이나 빨리 안다(The Book of Lists)'는 종류의 대단히 인기를 얻고 있는 안내서를 비평하면서 논픽션의 분야에서도 '힘을 들인 종합적인 생각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특히 재미있을 듯한 단편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미지가 순간 영상으로 붕괴되는 것은 서적이나 문학의 범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신문이나 전자공학을 이용한 매체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단편화된 일시적인 이미지들이 지배하는 이런 종류의 새로운 형태의 문화에서 제2의 물결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제3의 물결의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확대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고루한 윤리와 과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확신을 갈망하는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이같은 정보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방향감각을 잃고 있다. 그들은 1930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1940년대의 영화를 그리워한다. 또 새로운 매체가 속출하는 환경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들리는 것의 거의 전부가 험악하고 기분 나쁜 것인 데다가 정보가 전달되는 방법 자체가 숙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속성을 가지고 서로 관련되고 유기적, 종합적으로 서로 관련을 갖는 일련의 관념을 전달받는 대신에 지금까지의 우리의 정신구조에는 잘 맞지 않고 광고, 명령, 이론, 단편적 뉴스, 불완전한 단편 조각 등 짧고 틀에 박힌 정보의 순간 영상들에 더욱 더 노출되고 있다. 또 이들 새 이미지는 분류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까닭은 낡은 개념적인 범주를 벗어난 것인 데다가 그 전달방식이 너무나 기묘한 모양으로 소개되고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려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순간 영상문화의 소용돌이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새 매체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이와 대조적이다. 30초의 상업광고로 분단되는 90초의 단편적 뉴스, 단편적인 노래나 가사, 신문 표제, 풍자만화, 콜라주(collage: 신문이나 광고조각 따위를 맞추어 선이나 색을 나타내는 추상적 구상법) 짤막한 시사 해설, 컴퓨터로 찍혀 나오는 순간 정보의 집중포격을 받아도 끄떡없이 태연하다. 탐욕스런 독자들은 페이퍼백이나 특수한 전문지를 탐독하고 막대한 양의 정보를 재빨리 삼켜 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이나 비유에 의해서 다량의 순간 영상들을 솜씨 있게 유기적인 전체상으로 종합한다. 그들은 제2의 물결의 규격화된 범주나 구조 속에서 새로운 최소단위의 자료를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 독자적인 테두리를 만들어 새로운 매체가 내뿜는 순간 영상 자료를 스스로 종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현재 우리의 정신에서 요구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성의 현실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상을 창조하고 재창조해 나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노력은 보다 뛰어나 개성 즉 문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다양화와 관계되는 것이다. 새로운 압력에 눌려 지쳐 버리거나 아니면 무관심이나 분노 속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로는 훌륭하게 형성되고 항상 성장을 계속하는 유능한 인재로서 보다 높은 수준에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나 긴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제2의 물결 시대의 사회학자나 공상과학소설가들이 예견한 획일적이고 표준화되고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로봇과는 전혀 다른 인간상이다.) 문명의 탈대중화 현상은 매체의 변화가 반영되기도 하고, 동시에 또 매체가 그 경향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탈대중화야말로 우리가 서로 교환하는 정보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현대사회는 차츰 '정보화 사회'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정보량의 증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명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기술이나 에너지의 형태,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차별화하면 할수록특히 고도의 변화에 수반되는 긴장하에서 그 전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도 또한 이 격심한 변화에 대응하여 문명을 구성하는 각 요소의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어야 한다. 특히 격심한 변화에 직면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한 가지 조직을 예로 들면 그 조직이 분별 있는 행동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다른 조직이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고 있는가를 다소나마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에 대해서도 같다. 우리가 획일적일 경우는 상대의 행동을 미리 알기 위해 서로를 알 필요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반대로 우리 주위 사라들의 보다 개성화되고 다양화되면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고 상대방이 우리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개략적 이나마 예측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예측을 하지 않고는 행동을 일으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도, 조직도 끊임없이 더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게 되고 전체 체제는 더욱 더 활발한 자료의 흐름으로 고동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사회체제의 결속을 위해 필요한 대량의 정보와 정보교환의 신속화에 제2의 물결의 정보체계는 이제 대처하지 못하고 그 압력에 짓눌릴 처지에 있다. 제3의 물결은 이 시대에 낙후된 구조를 타파하고 이에 대신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제14장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체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고 암석이나 대지와 같이 얼핏 생명이 없어 보이는 것에도 생명력이 숨겨져 있다고 예전의 여러 민족들은 믿고 있다. 현재에도 이런 민족이 조금은 남아 있다. 마나(mana)라고 불리던 것이 그것이다. 미국 인디언의 수우족은 그것을 와칸(wakan)이라 불렀고 알곤키안족은 마니토우(masitou)라 했으며 이러쿼이족은 오렌다 (orenda)라고 했다. 인디언들은 주위의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제3의 물결 문명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보체계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자기 주위에 있는 '생명이 없는 환경'에게 생명 대신 지적 정보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 혁명적 발전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컴퓨터이다. 전자적인 기억을 조립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는 1950년대 초기에는 과학적 호기심의 대상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1955년에서 65년까지 10년 동안 제3의 물결이 미국에 출현함에 따라 컴퓨터는 서서히 산업계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당초 컴퓨터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용량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주로 경리업무를 처리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그 얼마 후 용량이 큰 컴퓨터가 기업체 본사에 설치되어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게 되었다. 경영진단을 업으로 하는 부즈 알렌 & 해밀턴회사의 부사장 하베이 포펠은 이렇게 말한다. "965년에서 77년까지 우리는 대형 컴퓨터 시대에 살고 있었다. 컴퓨터는 기계시대의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인류최고의 걸작이었다. 최고급의 대형 컴퓨터는 마치 방공호가 같은 본사 지하실 수백 피트나 되는 곳에 설치하고 방부 처리된 무균상태 속에서 일단의 우수한 기술자의 손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이 중앙집권화된 거인들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므로 어느덧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인간사회의 미래상을 알려고 할 때는 반드시 컴퓨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영화제작자, 만화가, 공상 과학소설가 등의 사람들이 미래를 상징하는 도구로 컴퓨터를 이용했지만 그들이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정해 있었다. 전지전능, 즉 초인간적 지능을 집중적으로 구비한 거대한 존재라는 것이 그들이 묘사한 컴퓨터상이다.
그러나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픽션은 사실에게 뒤지고 말았다. 작가들이 묘사했던 낡은 이미지는 뒤로 처지고 만 것이다. 소형화가 급속하게 진척되었고 용량이 급증하고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싸고 성능이 좋은 소형 컴퓨터가 도처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공장, 실험실, 판매점, 그리고 생산부서마다 자기 전용의 컴퓨터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너무나도 많은 컴퓨터를 도입했기 때문에 회사 내에 설치되어있는 컴퓨터의 수를 파악 못 하는 회사가 나타날 정도였다. 이리하여 '두뇌활동'을 하는 컴퓨터는 이제 어떤 특정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컴퓨터에 의한 정보처리는 현재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데이터 분산 처리장치(distibuted data processing)', 즉 'DDP'의 미국 내에서의 매상은 1977년에 3억 달러에 달했다. 컴퓨터 관계의 시장 조사를 행하는 유명한 회사인 인터내셔날 데이터 코퍼레이션의 조사에 의하면 매상액이 1982년에는 틀림없이 3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특별교육을 받은 전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값싼 소형 컴퓨터를 타자기처럼 어디에서나 보게 될 날도 멀지 않다. 모든 작업환경을 '현대화'하고 있다.
컴퓨터는 기업체나 공공기관 외의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간편한 기계화로 계속 보급되고 잇디. 가정용 컴퓨터까지 태어났다. 5년 전만 해도 가정용 및 개인용 컴퓨터의 수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국 안의 거실, 부엌, 서재 등에서 30만 대의 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IBM이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의 대기업들이 판매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전의 숫자이다. 가정용 컴퓨터는 언젠가는 TV 수상기와 같을 정도로 팔리게 될 것이다.
가정용 컴퓨터는 이미 세금을 계산하거나 가정의 에너지 소비량을 점검하고, 게임에 사용되고, 조리법을 기억했다가 그것을 지시해 주기도 하고 약속한 시간을 가르쳐 주기도 하는, 가정 내의 모든 일에 활용되고 있으며 성능 좋은 타자기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컴퓨터가 갖고 있는 능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텔리컴퓨팅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라는 회사는 컴퓨터를 사용해서 '더 소스(The Source)'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적은 요금을 받으면 UPI 통신 기사를 보내주고 방대한 양의 증권 및 상품시장 데이터 등을 컴퓨터의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산수, 국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의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할인판매상점의 회원으로 컴퓨터에 등록된다. 호텔에 예약을 하거나 관광 예약 등 여러 가지 업무를 대행해 준다.
'더 소스'는 또 소형 컴퓨터를 갖고 있는 가정끼리 서로 통신을 하는 기능을 가능케 했다. 마음만 먹으면 몇천 킬로미터나 멀리 있는 친구와 컴퓨터를 사용해서 브릿지나 체스, 주사위 놀이 등을 즐길 수도 있다. 이용자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단번에 여러 사람에게 정보를 보낼 수도 있고 또 모든 통신을 컴퓨터에게 기억시켜 둘 수도 있다. '더 소스'는 이렇게 해서 컴퓨터로 연결된 '전자공동체'라 불리는 공통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더 소스'에 가입해서 컴퓨터로 연결된 10여개 도시의 사진애호가들이 카메라, 부속품, 암시기술, 조명, 컬러필름 등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 상대방의 코멘트 내용을 몇 개월 후에라도 주제별, 날짜별, 범주별로 재생하여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컴퓨터를 가정으로 보급시킴으로써 다양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그들 간에 상호 연락할 수 있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지적 생활을 크게 도와주는 구실을 했다. 또 컴퓨터가 하는 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컴퓨터 정보의 보급은 마이크로프로세서나 마이크로컴퓨터의 개발과 더불어 더욱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정보를 응축시킨 작은 칩들이 인간이 만들어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들의 부품으로 이용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컴퓨터는 기업의 제조공정이나 경영 면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 외에 냉난방 장치, 자동차, 재봉틀, 계량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에 이미 장치되고 있거나 곧 이용되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컴퓨터는 가정에서의 에너지 소비량을 감시하고 사용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도 한다. 세탁기를 사용할 때 세제의 양고 수온을 조절하기도 한다. 자동차의 연료장치를 조정하기도 하고 수리가 필요할 때가 되면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시계가 부착되어있는 라디오, 토스터(toster), 커피 끓이는 기구, 샤워 꼭지에도 사용되며 아침에 일어나면 이런 것이 모두 준비되어 있게 된다. 그 외에 차고의 난방이나 문을 잠그는 일 등, 마이크로컴퓨터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에서부터 극히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만능의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컴퓨터의 이용 범위가 앞으로 20~30년 사이에 어디까지 발전할 지에 관해 미국의 유명한 마이크로컴퓨터 보급자인 앨런 P. 홀드는 '우리집 프레드(Fred the House)'라는 시나리오에서 흥미있는 전망을 하고 있다.
홀드에 의하면 '가정용 컴퓨터는 현재에도 말을 하거나 통역을 하거나 하고 기타 여러 가지 가정용 전기제품을 조정할 수가 있다. 검출기를 장치하고 센서라고 불리는 자동제어장치에 적당한 단어를 입력하면 보통의 전화기를 사용해서 전 세계의 누구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라는 것이다. 현재, 실용화까지는 물론 여러 가지 난관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틀림없다.
홀드는 이어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당신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당신 집에 있는 컴퓨터인 프레드가 당신을 호출한 것이다. 프레드는 방금 발생한 강도 사건을 전하고 있는 아침 뉴스를 모니터하면서 호우가 올 것 같다는 일기예보를 찾아낸 것이다. 이 정보는 프레드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정보 중에서 지붕 상태를 점검하도록 했다. 비가 샐 것 같은 장소가 발견되면 프레드는 당신에게 보고하기 전에 슬림(Slim)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한다. 슬림은 그 거리 아래쪽에 있는 농장 스타일의 집에 설치되어있는 컴퓨터이다. 프레드와 슬림은 데이터 뱅크를 공유하고 있고 각기 가정 내의 일에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탐색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프레드의 판단을 믿고 수선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은 물론이다. 그런 다음에는 지극히 간단하다. 프레드가 지붕 수선공에게 전화를 한다.' 이 공상적 이야기는 아주 웃기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지적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실제로 그러한 환경에서 살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컴퓨터는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네트워크로 결합된 컴퓨터군은 우리들이 그 기능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대형 컴퓨터는 장래에 전화를 받는 일뿐만 아니라 토스터나 TV 수상기를 조정하기도 하면서 우리들의 행동이나 심리를 모두 감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은 도대체 컴퓨터와 집적회로를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모든 정보를 컴퓨터라는 물질적 환경 속에 끝도 없이 지능을 쏟아붓다가 결국 우리들 자신의 정신이 퇴화하는 것이 아닐까? 또, 만일에 어떤 삶이 또는 어떤 것이 컴퓨터의 플러그를 벽에서 빼 버리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컴퓨터가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게 된다면 우리 인간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게 될 것인가?
이러한 여러 가지의 의문에 대해 정반대의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컴퓨터는 정말 토스터나 TV 수상기, 모든 자동차 엔진과 부엌 용품을 감시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지능이 환경 전체에 걸쳐 분산되고 이용자들이 수천 군데에서 동시에 이를 가동시켜도 컴퓨터는 여전히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가? 컴퓨터 이용자가 중앙의 컴퓨터를 경유하지 않고 서로 교신하고 있는 경우에도(이것이 보통의 형태이다.) 중앙의 컴퓨터에 지배력이 남아 있는 것일까? 사실상 정보의 분산은 전체주의적인 국가권력을 강화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힘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정부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약삭빠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존 부르너의 소설 '충격파를 타는 사나이(The Shockwave Rider)'는 복잡한 줄거리의 훌륭한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컴퓨터의 네트워크를 사용해서 사상통제를 가하려는 정부의 시도를 성공적으로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연 인간의 정신은 퇴화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 지적 정보가 가득찬 환경이 조성되면 사실은 완전히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우리의 명령에 따르는 기계를 개발하는데 데 대해 인간에게 해를 주지 않는 것을 만들 수는 없을까? 확실한 대답은 나와 있지 않다. 또한 이런 문제점들을 무시하는 거도 무책임한 노릇이긴 하지만, 그러나 현재의 상황이 인간에게는 불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소박한 사고방식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성과 상상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 믿는 것도 가지가지겠지만 우리들은 현재의 정보영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제2의 물결 시대의 획일적인 정보전달수단을 다양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 위에 완전히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첨가하고 있는 것이다. 제3의 물결 시대의 정보영역은 이제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지만 이것이 대중매체, 우체국, 전화가 지배한 제2의 물결 시대의 정보영역을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퇴색된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두뇌의 강화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정보영역이 결정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우리들은 문제의식을 갖는 법, 정보를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수법,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 등 우리들 자신의 정신 활동도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읽고 쓰는 것의 역할도 다시 검토해 보고, 뇌의 화학적 반응을 변호시킬 필요마저 생기게 되었다.
홀드는 컴퓨터들과 칩을 장치한 기구들이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꼭 공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시험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음성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터는 이미 1000개의 어휘를 인식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IBM이나 일본의 NEC와 같은 대기업 그리고 휴리틱스사나 센티그램사와 같은 작은 기업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회사들이 이 어휘를 늘리고 처리기술을 단순화하고 제조원가를 대폭 떨어뜨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기계가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도의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으려면 몇 년이 더 걸리는가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20년에서 불과 5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나 이러한 발전이 갖는 의미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대단히 큰 것이라 생각된다.
오늘날 문맹이라는 이유 때문에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수는 몇백만 명이나 된다. 아무리 간단한 일자리라도 간단한 문서, 기계의 조작법, 수표, 작업순서 등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사실, 제2의 물결세계에서는 읽고 쓰기의 능력이 고용주에게서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읽고 쓰기를 못한다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는 것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에서 일고 쓰기를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농업, 건축, 수렵,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많은 문맹자들이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있고 수개국의 말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어학력에는 대학을 졸업한 보통의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상대도 안 된다. 그렇더라도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문맹자는 경제적인 혜택을 못 받는 운명에 있었다.
물론 문자해독이란 것은 단순한 직업적 기능보다도 앞서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굉장한 상상력과 즐거움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계나 기구, 또는 벽까지에도 회화능력이 있도록 설정되어있는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에서는 문자 해득이라는 것이 제2의 물결이 시작된 이후 300년 동안에 비해 취직하는 데 별로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항공회사의 예약접수계, 상품진열실 요원, 기계의 운전수나 수리공들은 글을 읽지 못해도 귀로 듣는 정보에 의해서 정확하게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계가 말하는 소리가 작업의 순서나 고장 난 부품의 교환방법 등을 지시해 주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결코 초인적인 존재는 아니다. 고장도 나고 잘못도 범하고 때로는 그 잘못이 너무 커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컴퓨터는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며 그들은 분명코 인간 환경에서 '정신'이나 '영혼'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컴퓨터는 인간이 이룩한 업적 중에서 가장 멋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산물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제2의 물결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신체적인 힘을 강화해 준 것처럼 컴퓨터는 우리들의 정신력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강화된 인간의 정신이 우리들을 궁극적으로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우리들 자신이 아직 모르고 있는 정도인 것이다.
우리들은 장래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에 익숙해지고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와 대화하도록 배운다면 현재로서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침착성과 자연스러운 태도로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의 컴퓨터는 소수의 '우수한 태크너크래트(technocrat)'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일이나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오늘날 어떤 하나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들은 즉시 그 원인을 규명하려 한다. 그러나 컴퓨터 이전의 인간은 통찰력이 풍부한 사상가라 해도 사물의 원인을 설명할 때는 겨우 몇 가지의 인과적 요인을 가지고 규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는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한 번에 두 개나 세 개 이상의 일은 처리하지 못하며 그저 생각하는 것만도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왜 청소년들은 비행을 저지르는가, 왜 경제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가, 도시화는 주변의 하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가 등 이런 복잡한 문제와 직면하게 되면 우리들은 두세 가지 요인만을 강조하고 더욱 중요할지도 모르는 기타의 원인을 무시해 버리기 쉽다. 우리들이 무시한 여러 원인 중에는 그중 하나만 꺼내 보아도 중요한 것이 있기도 하고 몇 개를 모아 보아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있다.
더구나 전문가들은 전형적으로 '그 자체'의 원인 등이 갖는 근본적인 중요성만 부여하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배제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황폐화라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주택문제의 전문가는 그 원인으로 주택의 밀집과 주택건설의 감소라고 밝힌다. 교통전문가는 대중교통수단의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복지문제의 전문가는 탁아소나 사회사업 관계의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환경보호론자들은 지나친 공해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범죄전문가는 경찰의 순찰횟수가 적다는 점을 거론하고, 경제전문가는 너무 높은 세율이 기업투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따위들이다. 그들 전문가들이 얽히고 섥혀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수많은 원인들은 머릿속에 넣고 생각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황폐문제는 피터 리트너가 그의 저서 "공간의 사회: The Socity of Space"에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얽힌 문제'라고 적절하게 정의한 여러 문제들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 리트너는 '인간이 직면하는 위기적 상황의 질이 변화하고 원인과 결과를 단순하게 결부시키는 분석이 불가능하게 되어 원인과 결과를 상호관련시킨 분석을 행하는 할 상황이 급속하게 증가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분석해 본다 해도 간단하게 그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질 않는다. 각각 독립해 있으면서 상호관련이 있는 몇몇의 원인에서 발생한 수백 가지나 되는 영향이 작용해서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여러 가지 인과관계를 기억하고 그것들의 상호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리트너가 말한 '원이과 결과가 서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면 컴퓨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방대한 자료를 분류하고 그 속에서 미묘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순간 영상들'은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의미를 갖는 전체상을 만들어 낸다. 일련의 가설 혹은 하나의 모델을 기초로 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통의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완전하게 밝혀낼 수 있다. 컴퓨터는 또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 또는 자원 간에 존재하는 관계를 발견해 내서 문제해결에 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의 지능, 상상력, 직관력은 앞으로 몇십 년쯤은 컴퓨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해낼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문화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밝혀 줄 것이고 우리들에게 사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해력을 높여주거나 주변에 산재해 있는 상호간의 무관계한 정보를 종합하여 의미를 갖는 전체상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주고 있다. 컴퓨터는 순간 영상문화의 해독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편, 지적 정보가 가득 차 있는 환경은 우리들의 문제를 분석하거나 정보를 조직하는 방법을 변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뇌의 화학적 구성까지도 변화시키려 한다. 데이비드 크레치, 마리언 다이아몬드, 마크 로젠츠바이크, 에드워드 베네트 등이 실험한 바에 의하면 여러 가지 '혜택받은' 환경에 노출된 동물이 통제된 집단의 동물들에 비해 대뇌피질이 커지고 뇌신경세포가 많고 신경세포도 커지고 신경전달물질도 더욱 활발하게 되며 뇌에 보내지는 혈액의 양도 증가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환경을 복잡하게 만들고 정보량을 증가시키면 인간은 지금보다 지능이 더 나은 존재로 될 수 있을 것인가? 신경정신병학의 세계적 권위인 뉴욕 정신병연구소의 연구실장 도널드 F. 클라인 박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크레치의 실험은, 지능형성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중에는 초기 환경의 풍요함과 감수성이 포함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자극이 적고 빈약하고 반응이 느린 이른바 '조건이 나쁜'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무슨 일에 대해서나 요행수를 바라지 않도록 배운다. 따라서 잘못을 저지를 염려가 적고 매우 조심스럽고 보수적이고 호기심이 없고 또는 아주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 뇌에 자극을 줄 만할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것에 반해 복잡하고 자극이 풍부하며 재빠른 반응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전혀 다른 능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어릴 때부터 주위 환경에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어린이는 부모에게 의지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자기가 숙달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또한 호기심이나 탐구심, 상상력이 풍부하여 항상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인생과 맞설 수 있다. 이러한 자질 모두가 뇌 그 자체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 추측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적 정보가 풍부하게 있는 환경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신경세포 연접부를 발전시키고 대뇌피질을 확대해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요컨대 혜택받은 환경이 우수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장에서 논술해 온 것은 새로운 정보영역이 가져다주는 변화의 한 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보전달 매체의 탈대중화 현상과 그것에 뒤이은 컴퓨터의 출현은 다같이 사회의 기억장치 본연의 자세를 바꾸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기억
모든 기억은 순수한 사적, 개인적인 것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사회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들의 공유가 되지 못하는 사적인 기억은 개인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지만 사회적인 기억은 살아남는다. 공유의 기억을 정리하고 재이용한다면 획기적인 노력이 인류의 끊임없는 진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기억을 만들어 내고, 저장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인류 운명의 근원에 관계되는 것이 된다.
인류는 지금까지 두 번 사회적 기억에 커다란 변혁을 주었다. 오늘날 새로운 정보영역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인류는 또 다른 제3의 변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최초에 인류는 공유의 기억이나 사적인 기억도 동일한 장소, 즉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의 연장자나 현인들이 공유의 기억을 역사, 신화, 전승, 전설 등의 형태로 간직하여 그것을 이야깃거리, 노래, 규범 등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했던 것이다. 불을 만드는법, 새를 잡는 법, 뗏목을 만드는 법, 농사짓는 법, 농기구의 손질법, 가축의 사육법 등 집단에 전승되는 모든 경험은 인간의 뇌신경 세포 속에 저장되었다.
이러한 형태로 지속되는 한 사회적 기억의 범위는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다. 연장자들의 기억력이 아무리 좋고 또 노래나 교훈 등이 아무리 기억하기 쉽게 되어 있더라도 인간의 머릿속에 넣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 문명은 기억량의 증대를 저해하고 있던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제2의 물결은 읽고 쓰기의 능력을 사회 전체에 보급시켜서 기록이 조직적으로 남겨지게 했다. 수많은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세워지고 자료정리용의 캐비넷이 고안되었다. 요컨대 제2의 물결은 사회적인 기억을 인간의 머릿속에서 밖으로 빼내어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냄으로써 종전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 기억을 크게 확장해 주었다. 축적된 지식의 양이 증가함으로 해서 사회적 기억은 기술의 혁신과 사회변화의 속도를 가속화시켜 그 결과 제2의 물결 문명은 종전의 그 어떤 문명보다도 가장 빨리 변화했고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회적인 기억에 관해 종래와는 다른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매체의 철저한 탈대중화, 새로운 매체의 발명, 인공위성에 의한 지도의 작성, 전자검출기에 의한 입원환자의 진단, 기업에서의 컴퓨터를 이용한 자료의 정리 등은 우리가 문명의 여러 활동을 미세한 점까지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지구를 사회적 기억과 함께 소각해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거의 완전한 문화기록을 갖게 된 것이다. 제3의 물결 문명은 불과 25년 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던 면밀하게 정리된 자기의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제2의 물결로부터 제3의 물결로 변모해 가는 사회기억의 양상은 단순히 양적인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우리들은 자기의 기억에 생명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기억이 인간이 두뇌에 저장되어 있었을 때에는 그것이 계속 침식되고 재생되고 뒤섞이고 결합되고 또 새로운 방법으로 조립되고 있었다. 그러한 의미로 사회적 기억은 활발하며 다이내믹했고 문자 그대로 살아 있는 기억이었다.
사회적 기억은 산업화로 진보된 제2의 물결 문명에 의해 인간의 두뇌 속에서 밖으로 끌려나와 객관적인 존재가 되고, 서적, 종업원 명부, 신문, 사진, 필름 등에 간직되었다. 그러나 일단 표상이 문자화되고 필름에 촬영된 사진, 인쇄된 신문 등은 수동적이고 정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기록은 다시 인간의 두뇌에 주입되었을 경우에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그 나름대로의 활동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으로 조립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 문명은 사회적인 기억을 대폭 확장하는 한편 동시에 기억을 고정시키는 작용을 했던 것이다.
제3의 물결은 정보영역으로의 도약이 미증유의 상황을 전개시켜 주고 있다. 왜냐하면 제3의 물결은 사회적인 기억을 다방면에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2의 물결 시대에 상실되었던 사회적 기억에게 생명을 다시 재생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축적된 정보를 처리함으로써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다. 즉 컴퓨터는 사회적 기억에게 전파하는 능력을 갖게 해 주는 것과 동시에 활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기억량의 증대와 그것이 활성화라는 두 개의 기능이 결합되는 결과 컴퓨터는 커다란 추진력이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컴퓨터에 의해서 새롭게 확대한 기억에 활력이 주어지면 신선한 문화적 에너지가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컴퓨터는 순간영상들을 잘 정돈된 정보로 조직하고 종합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가능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한다. 도서관이나 자료가 들어 있는 캐비넷 등은 그 자체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독자적인 발생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간이 생각지도 않던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생각하는 데 소용이 된다. 컴퓨터는 지금까지의 사상이나 상상의 영역 밖에 있던 새로운 이론, 개념, 이데올로기, 예술적 감각, 기술적 진보, 경제적 및 정치적 혁신 등을 가능케 해준다.
과거 사회의 정보영역은 인간 상호 의사전달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상례였다. 제3의 물결의 정보영역은 이러한 인간들 간의 전달수단을 증가시켜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기계 상호의 정보교환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설비를 만들어 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과 그 주위의 지적 환경 상호 간에 의사를 통하게 하는 설비도 탄생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발 물러서서 대국적으로 전망한다면 정보영역의 혁명은 기술영역, 즉 사회의 에너지 영역이나 기술적 기반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극적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문명의 건설작업은 각양각색의 국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15장 대량생산의 저편에 있는 것
최근의 일이지만 필자는 어느 날 눈이 뒤덮여 있는 록키산맥의 정상을 뒤로 하고 렌트카로 하산하고 있었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고원을 가로지르자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그 길을 따라 내려가서 간신히 이 대산맥의 동쪽 기슭에 도착했다. 밝은 하늘 밑을 달려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도착한 나는 고속도로를 따라 낮고 길에 뻗어 있는 공장지대로 향했다. 그것은 뒤쪽의 먼 산봉우리 때문에 더욱 작게 내 눈에 비쳤다.
건물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는 과거에 내가 일하던 여러 공장들을 기억해 냈다. 기계의 소음, 먼지와 매연 등과 더불어 그 당시 꾹 참고 있었던 분노마저도 마음 속에 되살아났다. 우리 부부는 육체노동을 그만둔 후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줄곧 '공장견학'을 하고 있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경우에도 명승지나 관광객 상대의 카바레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데만 전념했다. 공장 이상으로 인간의 문화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여전히 공장견학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가 세계에서도 가장 첨단적인 생산시설 중의 하나라는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공장에 들어가면 얼핏 보기만 해도 최신의 과학기술과 최첨단 정보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고 이것들이 결합되어 효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휴레 패카드(통칭 H-P)' 공장은 TV 수상기용 브라운관, 의료기구, 오실로스코프, 실험용 '논리해석기', 그리고 비전문가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각종 제품 등, 연간 1억 달러 상당의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공장에는 1700명이 고용되어 있지만 그 40퍼센트가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기술자, 사무원 및 관리요원이다. 그들은 천장이 높은 거대한 개방적 공간 속에서 작업하고 있다. 한쪽 벽면은 말하자면 하나의 거대한 전망창이 있어서 눈앞에 다가서는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를 그 액자 안에 넣은 것 같이 보였고, 나머지 3면의 벽은 밝은 황색과 백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엷은 색의 비닐을 깐 바닥은 병원을 연상시킬 정도로 깨끗하고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직원에서부터 컴퓨터의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혹은 공장장에서부터 조립공, 검사원에 이르기까지, 칸막이가 없는 개방된 장소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기계의 소음 때문에 방해가 되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눌 필요 없이 서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평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직종도 외견상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종업원들은 각자의 작업대나 책상 앞에 앉아 있고 책상 뒤에는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정원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이 공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생각했다. 옛날에 같이 일하던 친구들 주물공장이나 자동차공장의 일관작업 현장에서 소음과 먼지를 뒤집어쓰며 자주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상급자에게 욕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일을 배우던 육체노동에 종사할 때의 옛날 친구들을 마법이라도 써서 이 최신식 작업환경으로 옮겨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한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이 H-P 공장이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한다면 나도 의문이 있고 옛친구들도 그리 간단하게 천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임금명세표, 연금, 유급휴가, 건강보험 등의 부가급여, 건의사항 처리제도의 유무 등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할 것이다. 공장 안에서 취급되고 있는 이상하고 새로운 자세는 정말 안전한 것일까, 환경위생 상의 위험은 없는가 등등 질문을 하겠지, 표면상으로는 화합이 잘 되어 있는 여기의 인간관계의 이면에도 명령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옛친구들은 그 날카로운 눈으로 이 공장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전통적인 공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공장이라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예를 들어 H-P 공장의 종업원은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앞을 다투어 각자의 작업현장으로 달려가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제한은 있겠지만 각자가 다른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장소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며 자유로이 자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들은 또 제한된 범위 내에서 각자 작업 페이스를 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관리직이나 엔지니어에게도 지위나 신분의 구애를 받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자유, 제멋대로의 복장에 대해서도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요컨대 개인이 존중되고있는 것이다. 발끝이 쇠로 된 무거운 구두를 신고 더러워진 작업복에 작업모를 쓰고 일하던 옛 동료들은 여기를 '공장'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공장을 대량생산의 장소라고 본다면 H-P 공장은 공장이 아니라는 옛 동료들의 관점도 옳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공장은 대량생산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벌써 대량생산의 다음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쥐의 밀크와 T셔츠
'선진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과거 20년간 감소되어 왔다는 것은 이젠 하나의 상식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총인구의 불과 9퍼센트 즉 2000만의 노동자가 약 2억 2000만 명을 위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나머지 6500만의 근로자는 서비스직 및 사무직 근로자들이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제조업의 후퇴가 가속화됨에 따라 반복작업에 의하는 제조업은 알제리에서 멕시코, 타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소위 '개발도상국'에게 하청을 주게 되었다. 선진국 국민이 사용했던 낡은 자동차는 이러한 나라들에게 다시 사용되는 것과 같이 제2의 물결에 속한 가장 낙후된 산업은 이렇게 해서 풍부한 나라들로부터 가난한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풍부한 나라들도 경제적인 이유와 전략적 견지로 해서 제조업을 전면적으로 후진국으로 보낼 정도의 여유는 없다. 그래서 풍부한 나라들을 순수한 의미로 '서비스 사회'라든지 '정보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 풍부한 나라들은 '정신적 생산'으로 살아가고 가난한 나라들은 물질적 생산에 종사한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실제는 그렇지 않고 풍부한 나라들도 계속 기간산업을 분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 자체를 전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제조업의 본질은 수백만 개의 동일하고 표준화된 제품의 장기적 생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제3의 물결산업의 본질은 단기가동으로 그 일부 또는 전부를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데 있다.
일반인들은 지금도 제조업을 장기 가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우리는 10억 단위의 담배, 백만 야드 단위의 직물, 천문학적 수량의 전구, 성냥, 벽돌, 점화 플러그를 계속 생산하고 있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그런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은 가장 고도의 첨단산업제품이 아니라 오히려 낙후된 산업의 제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제품은 전체 공산품의 약 5퍼센트를 점하는 데 불과하다.
어느 경제분석가가 소련 연구의 전문지 '크리트크: Critique'에 다음과 같은 경제 기사를 실었다. "개발도상국 GNP간 연간 1인당 1000에서 2000달러의 나라들이 대량생산공업의 발달에 전념하고 있는 사이에 고도의 선진국들은 컴퓨터, 특수기계장치, 항공기, 자동생산 시스템, 고차원의 과학기술을 응요한 페인트, 의약품, 나일론 등의 종합체 제품, 플라스틱 제품 등 고도의 숙련노동과 막대한 연구비를 필요로 하는 단기가동의 생산방식에 의한 제품 수출에 전력하고 있다."
일본, 서독, 미국, 심지어 소련에서도 전기제품, 화학, 항공우주, 전자공학, 특수차량, 통신 등의 각 산업 분야에서 탈대량화 생산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일리노이주 북부의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최신형 플랜트(plant)에서는 400가지가 넘는 '전기회로 팩(circuit pack)'을 생산하고 있지만 윌 생산량은 최고 2000개에서 적은 것은 단 2개짜리도 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H-P 공장에서도 각 모델마다의 생산 수는 적어지고 있어서 50개에서 100단위가 보통이다.
미국의 IBM, 폴라로이드, 맥도넬 더글러스, 웨스팅 하우스, 재너럴 일렉트릭, 영국의 플레시, ITT, 독일의 지멘스, 스웨덴의 에릭슨 등 각 회사에서도 역시 단기생산과 주문제품으로 향하는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이전에는 자국 내 조선 생산의 45퍼센트를 차지했던 아커그룹이 해상석유공장 건설로 전향했다. 즉 선반의 '형별 대량생산'에서 해상시설의 '주문생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편 화학공업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엑슨사의 중역인 R.E. 리에 의하면 이 회사는 '파이트, 측선, 패널(panel)등의 압출성형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플리프로필렌(polypropylene)이나 폴리에틸렌(polyethylene) 등의 가공제품은 단기가동으로 이행해 가고 있으며 파라핀의 경우에도 주문생산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파라핀 제품 중에는 생산량이 극히 미량의 것도 있으므로 "엑슨사에서는 이것을 '쥐의 밀크 만들기'라고 부르고 있다."라고 리 중역은 덧붙였다.
군수품 생산에 대해서는 일반에서는 아직도 대량생산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소량생산'의 경우가 많다. 군수품이라고 하면 수백만이라고 하는 동일규격의 제복, 헬멧, 총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현대적 군사 장비는 대량생산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트 전투기는 한 번에 10대에서 50대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사용의 목적과 분야에 따라 조금씩 설계를 변경하는 경위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량 주문생산에 따라 항공기에서 소요되는 부품도 대부분이 단기가동으로 생산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국방성의 최종제품(end-product) 구매량별 지출을 분석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놀랍게도 최종제품 수를 확인할 수 있는 물품에 지출된 91억 달러 중에 78퍼센트(71억 달러)는 생산 수량 100 이하의 군수품 구입에 충당되고 있었다.
최종제품 자체는 단기가동으로 생산되는 것이지만 구성부품은 아직도 대규모의 양산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고도의 첨단산업에도 여전히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단기가동으로 생산되는 최종제품의 여러 가지 다양성에 따라 구성부품에도 형상변경이 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애리조나주의 고속도로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한때는 비교적 획일적이었던 자동차 시장이 지금은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기술시대의 거물인 자동차 메이커들조차도 이제는 별수 없이 부분적 주문생산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유럽, 미국,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지금, 기본적인 부품이나 보조부품을 대량생산하고 이것을 수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조립하여 여러 가지 자동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번에는 차원을 달리해서 T셔츠로 시선을 돌려 보겠다. T셔츠는 양산된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한 값싼 속열식 압력 인쇄 기계를 이용하면 가지각색의 디자인이나 문구를 아주 적은 양을 인쇄하여 셔츠를 만들어도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결과 셔츠를 입은 사람이 베토벤 팬인지, 맥주 애호가인지, 심지어는 포르노 배우인지를 금방 식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셔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나 T셔츠 등 대량생산과 소량생산과의 중간단계를 상징하는 제품은 많다.
이 단계를 한 발 넘어서면 물론 완전한 주문생산이 되며 실질적으로 일종일점 생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분명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것은 고객의 개별적인 주문에 맞추는 주문제품인 것이다.
랜드사의 정보 서비스 부장이며 첨단산업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H. 앤더슨은 말한다. "가까운 장래에 주문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주문생산 쪽이 대량생산보다 제조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이제 여러 가지 규격품을 만들어 이것을 조립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는 지금 명백한 주문생산의 영역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마치 옷을 주문하는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
주문생산으로의 이행을 가장 단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마 수년 전에 복식산업에 도입되었던 컴퓨터 방식의 레이저 재단기(laser gun)일 것이다. 제2의 물결이 대량생산을 가져다주기 전에는 옷을 한 벌 새로 해 입으려면 양복점이나 바느질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든지 아내가 바느질해서 만들어 주든가 했었다. 어느 것이건 손으로 일을 하는 것을 기반으로 본인의 치수에 맞게 만들어졌었다. 모든 봉제의 근본은 주문생산이었다.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획일적인 의상의 제조가 시작되었다. 이 시스템에서는 작업원이 천을 여러 장 겹쳐 놓은 복지 위에 옷본을 올려놓은 다음 자동재단기를 사용하여 여러 장의 똑같은 천 조각을 재단한다. 이어 이 이 동일공정으로 처리되어 크기, 모양, 색 등, 모두 같은 제품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새로 등장하는 레이저 재단기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를 기초로 해서 작업한다. 10매, 50매, 100매 혹은 500매의 셔츠나 상의를 단번에 재단하지 않는다. 한 번에 1매씩 재단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용해 온 대량생산방식보다도 신속하고 더 값싸게 재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방식에 의해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거되어 재고품을 대량으로 안고 있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최대의 의료제조회사인 제네서코 상의 말에 의하면 "레이저 재단기는 단 한 벌의 주문에 응해도 채산이 맞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장래에 표준 치수라는 것이 없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치수를 전화를 말해 주든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서 데이터를 직접 컴퓨터에 입력한다. 컴퓨터는 재단기에 지시를 주어서 손님의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옷을 한 벌만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본 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질적인 주문제품이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전의 번영했던 생산체계의 복원이면서 보다 고도의, 또 보다 치밀한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세계에서 탈대중화 현상이 진행 중임과 동시에 제조업에서도 탈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프레스토 효과
이 외에도 극히 이상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진보가 물건을 만드는 방법을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대량생산에서 소량생산으로 이행하는 산업이 있는가 하면 그 단계를 지나 연속가동을 기반으로 해서 완전 주문생산으로 이행하고 있는 산업도 있다. 단기가동작업의 전후에 그때마다 생산 기계를 멈추거나 움직이게 하지 않아도 기계 자체가 연속적으로 자동조절 되어서 그 결과 각각 다른 제품 단위가 기계에서 연속적으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은 24시간 연속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기계화된 주문생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제20장에서 간단하게 설명하겠지만 또 하나 중대한 변화가 생겨서 그 결과 고객이 이전보다 더 제조공정에 직접 참가하게 되었다. 일부 산업에서는 고객의 주문을 받은 회사가 희망하는 상품의 성질 명세를 제조업자의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여 그 컴퓨터가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상황에 거의 도달해 있다. 이러한 업무형태가 보급되면 고객도 제조공정에 깊이 참여하게 되어 도대체 누가 '소비자'이고 누가 '생산자'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제조업이 제품을 일단 부품상태로 분해하고 그것을 재차 조립한다는 의미로는 데카르트(Descartes)적이었는데 비해 제3의 물결의 제조업은 탈데카르적 (탈descartes)이고 부품보다도 전체에 존재가치를 둔다는 의미로는 '전체론적' 입장을 취한다. 이런 예는 팔목 시계와 같은 흔한 공업제품을 갖고서도 예측할 수 있다. 이전의 시계에는 수백 가치의 부품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정회로의 도입에 의해서 자동부품을 한 개도 사용하지 않아도 보다 정확하고 또 신뢰성이 높은 정밀한 반도체 시계를 생산할 수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마쓰시타 전기제품의 TV에서는 10년 전에 비해서 부품이 반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다. 거적의 칩들로 만들어진 소형의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가 여러 가지 제품에 사용되어 방대한 양을 이루던 과거의 부품들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엑슨사는 QYX라는 신형 타이프라이터(typewriter)를 선보였는데 이것은 IBM사의 셀렉트릭(Selectric)이 수백 개의 가동부품을 사용했는데 비해 QYX의 부품은 몇 개밖에 안 된다. 그리고 유명한 35mm 카메라인 캐논 AE-1은 구형에 비해 부품이 300개가 적어졌다. 그중 175개를 불필요하게 한 것은 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개발한 집적회로를 인쇄한 단 1개의 칩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들은 미분자 차원에 들어섬으로써 컴퓨터로 움직이는 디자인이나 그 밖의 첨단 제조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기능을 보다 적은 부품속에 통합하여 여러 가지 다른 부품들을 '전체적인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시각예술에서의 사진기술의 출현과 비교할 수 있겠다. 캔저스에 물감으로 여러 색깔을 칠하지 않고서도 사진사는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한꺼번에 전체적 영상을 제작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프레스토 효과'를 제조업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 나타난 패턴은 명백하다. '기술체계'와 '정보체계'의 커다란 변화가 서로 어울려서 제품의 생산방법을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우리들은 전통적인 대량생산단계를 지나서 대량생산제품과 탈대량생산제품이 복잡하게 혼합된 단계로 급속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명백한 것이다. 완전히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품이 세분화 된 부품을 조립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종합체로서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점차 소비자들의 주문에 따라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지금 우리들은 뿌리를 깊이 박고 있는 생산구조를 밑바닥으로부터 혁신하며 사회의 모든 계층에 변화의 물결을 파급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장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하고 생각하고 있는 학생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고, 기업가의 투자계획, 국가의 개발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이 변혁은 이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또하나의 혁명과 밀접하게 관련시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사무 분야의 혁명인 것이다.
비서가 불필요한 시대
풍요한 나라에서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가 감소함에 따라 소위 기호산출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아이디어, 특허, 과학방정식, 청구서, 송장, 기구개편, 문서철, 서류, 시장조사, 판매계획, 공문, 법률서류, 설계설명서, 컴퓨터의 프로그램, 기타 수없이 많은 형식의 데이터를 상대해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러한 사무직, 전문직, 관리직 활동의 증가는 많은 나라에서 입증되었으므로 여기서 숫자를 들어 확인할 것도 없다. 사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추상적 생산의 증대를 가리키며 사회의 '탈산업화' 단계로 접어든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더 복잡한 것이다.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증가는 새로운 체제로의 도약이라기보다는 산업주의의 연장이며 제2의 물결의 마지막 파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노동형태의 추상화가 이전보다 진행되었고 구체성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는 현장인 사무실은 제2의 물결 시대의 공장을 직접 모델로 하고 있으며 노동 자체도 세분화 되어 있다. 반복작업이 많아 짜증스럽고 비인간적인 면도 공장의 생태와 같다. 지난날의 사무실 재편성마저도 그 대부분은 한층 더 공장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제2의 물결은 이 '기호공장'이라고나 할 사무실에도 공장의 경우와 같이 계급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장노동자는 육체노동자와 비육체노동자로 구분되는데 사무실에서도 역시 '고급추상' 요원과 '하급추상' 요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고급추상 작업자는 과학기술의 엘리트인 과학자, 기술자, 관리자 등에 의해서 구성되는 계층이어서 그들은 회합, 회의, 업무상의 오찬, 업무상의 지시, 계약을 위한 메모 작성, 전화로 행해지는 정보교환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최근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관리자의 시간 중 80퍼센트가 1일에 150~300회에 달하는 '정보처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계층은 '하급추상 작업자'이다. 말하자면 화이트칼라 프롤레타리안(white-collar proletarian)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2의 물결 시대의 공장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끝없이 반복되는 짜증스러운 작업을 수행한다. 이 집단의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비조직적 노동자이다.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탈산업주의'론에 대해 그들이 비웃는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들은 바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사무실도 역시 제2의 물결을 넘어서 제3의 물결로 이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날의 산업사회적 계급제도도 도전을 받게 됐다. 사무실 내의 여러 형태의 낡은 위계질서와 구조도 얼마 안 가서 전면적으로 개혁될 것이다.
사무실에 대한 제3의 물결의 혁명은 몇 개 세력의 충돌에 의해 일어났다. 정보에 대한 수요는 대단히 급격하게 성장을 해서 제2의 물결의 사무원, 타이피스트, 비서 등의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있고 또 열심히 일하더라도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문서업무의 코스트가 너무나 상승해서 그것을 억제하기 위한 연구가 맹렬히 진행되었다(여러 기업에서 사무경비가 전 코스트의 40퍼센트로부터 50퍼센트로 팽창하고 있고, 전문가의 추정으로는 1통의 업무용 문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모든 숨겨진 요소를 넣고 계산했더니 14달러 18 달러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날 미국의 공장노동자의 기술장비 비용은 1인당 평균 약 2만5000 달러로 추정되는 데 반해, 제록스사의 어떤 판매원의 주장에 의하면 사무실 노동자는 '500달러나 1000달러짜리 중고 타자기나 계산기를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아 아마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상태이다. 사무실의 '생산성'은 과거 10년간에 불과 4퍼센트의 상승률을 보였다. 아마 미국 외의 나라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현저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에 비하면 컴퓨터의 생산비용은 그것이 해낼 수 있는 기능의 수가 증가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크게 내려가고 있다. 컴퓨터에 의한 업무처리량은 과거 15년간에 1만 배로 늘어났고 한 가지 기능 건당 비용은 10만 분의 1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쪽은 비용의 상승과 생산성의 저하로 고민하는 '오피스 위크(office work)'와 다른 한쪽은 컴퓨터 분야의 발전이 어쩔 수 없이 결합되었다. 그 결과 사무실은 '언어장치'를 둘러싸고 크게 흔들릴 것 같다. 그야말로 '언어지진'이 일어날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은 '워드프로세서'라고 불리는 전자장치이다. 이 장치는 미국 내 사무실에서는 벌써 25 만 대가 가동 중이다. IBM이나 엑슨과 같은 대기업을 포함해서 이 기기의 제조업자는 얼마 안 있어 연간 1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경쟁태세를 갖추고 있다. '자동화 타이프라이터' 또는 '문서 편집기'라고 불리고 있는 이 장치는 사무실 내에서의 정보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일의 구조도 변화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 장치는 화이트칼라의 세계로 대거 밀어닥치고 있는 신과학기술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1979년 6월 시카고에서 개최된 국제 언어 프로세싱협회(International Word Processing Association) 대회 때, 회장이 터질 듯이 모여든 약 2만 명의 열성적인 참관자들이 진열된 기막힌 기기들을 이것저것 시험적으로 조작하고 있었다. 광학식주사기, 고속인쇄기, 마이크로 그래팩 장치, 팩시밀리 시설, 컴퓨터 장치 등이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보고 있던 것은 미래의 '서류가 필요 없는 사무실'의 막이 열리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수도 워싱턴에서는 컨설팅(consulting)회사인 마이크로네트사에서 17개사나 되는 제조업자의 설비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모델 오피스를 만든 일이 있다. 여기에는 종이로 된 서류는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되는 기록은 역시 마이크로 필름에 수록 보존하고 나중에 컴퓨터로 재생한다. 연수목적도 있었던 이 전시용 사무실은 기록장치, 마이크로 필름, 광학식 주사기, 비디오 터미널 등을 한데 모아 하나의 컴퓨터시스템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었다. 마이크로네트사 사장, 래리 스토케트의 말에 의하면 목적은 장래의 사무실이고 거기서는 서류의 분류, 보관에 대한 잘못이 절대로 없다. 마켓팅이나 판매, 회계, 연구 등을 위해 최신의 자료들을 비치하고 시간당 수십만 매의 정보자료를 페이지당 1센트의 싼값으로 재생되어 배포된다. 정보는 인쇄매체로부터 디지탈(digital) 매체, 사진 매체로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미래의 사무실을 실현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사무실이 성공하는 열쇠는 일상적 통신업무이다. 제2의 물결의 사무실에서는 간부나 편지나 메모를 기안하려면 우선 매개자인 비서를 부른다. 이 사람이 맨처음 할 일은 간부의 말을 토트나 타이프지에 받아쓰는 일이다. 그다음에 받아 쓴 그것을 수정해서 잘못 쓴 것을 바로 잡고 타이프를 친다. 아마 몇 번쯤은 고쳐 쳐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타이프로 정서하여 카본이나 제록스로 복사한다. 그리고 원본은 우편실 또는 우체국을 통해 목적지에 발송하고 사본은 철해 놓는다. 여기서는 문안작성이라는 최초의 공정을 제외하더라도 구술필기, 수정, 복사, 발송, 철이라는 연속적인 5단계의 작업이 요구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무기계는 이 연속적인 과정을 동시에 행함으로써 5가지 과정을 하나로 압축하고 만다.
필자는 이 새로운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 또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해서 간이 컴퓨터를 구입하여 그것을 워드프로세서로 이용하면서 이 책의 후반부를 집필해 보았다. 다행히도 필자는 단기간에 이 기계를 마음대로 조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시간쯤 연습했더니 쉽게 조작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1년 이상을 이 기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능력에는 지금도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초고를 쓰려는 용지에 타이프하는 대신 키보드(keyboard)를 치면 '플로피 디스크(floppy disk)'라는 것에 전자형태로 만들어 저장된다. 다음에는 눈앞에 있는 TV식 스크린에 내 말이 비쳐진다. 몇 개의 키를 치게 되면 패러그래프(paragraph)를 바꾸거나, 삭제하거나, 삽입하거나, 밑줄을 치거나 하여 마음에 드는 문장이 얻어질 때까지 내가 쓴 글을 즉석에서 고치거나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초고를 여기저기 지우개로 지우거나, '타이프 지우개'로 지우거나, 일부를 잘라내거나, 붙이거나, 삭제하거나, 제록스에 복사하거나, 완성원고를 타이프할 필요가 없게 된다. 초고의 수정을 끝내면 버튼을 하나 누른다. 그러면 옆에 놓여 있는 인쇄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인쇄를 한 완벽한 원고를 작성해 준다.
그러나 용지를 사용해서 사본을 만드는 것은 이 기계로서는 원시적인 방법이며 원래의 의도에 반대되는 일이다. 전자공학을 최대로 이용한 사무실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단순히 비서가 편지를 타이프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화가 발달된 사무실에서는 편지를 테이프나 디스크에 전자적으로 저장한다. 내용의 오자를 전자사전을 통해서 자동적으로 수정할 수도 있다. 늦어도 가까운 장래에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기계들을 전화선으로 연결하면 비서는 즉석에서 수신의 프린터나 스크린에 내용을 송부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이 장치는 원문의 작성, 수정, 복사, 전송, 보관이라는 모든 작업을 그야말로 단숨에 해치운다. 시피드는 올라가고 코스트는 내려간다. 5단계의 작업이 하나로 압축되는 것이다.
이 압축된 작업과정의 영향은 사무실뿐만 아니라 외부에까지 미친다. 예를 들면 이 장치를 인공위성, 마이크로웨이브 등의 원격통신설비와 연결시키면 과중한 업무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제2의 물결의 고전적 기구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우편체제를 조업 정지시킬 수도 있다. 사무실의 자동화가 보급되면(워드프로세싱은 그것의 극히 작은 일부분) 우편배달원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전자우편' 체제의 창설이 필연적으로 된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청구서, 영수증, 구입 주문서, 송장, 은행거래 명세서, 수표 등의 업무문서가 국내우편물 전체의 3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편물의 대부분의 개인 간이 아니고 조직 간을 왕래하는 것들이다. 우편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기업체가 제2의 물결의 산물인 우편제도를 대신하는 것을 찾고 있으며 제3의 물결의 체제라고도 할 수 있는 설비를 하기 시작했다.
텔레프린터(teleprinter), 팩시밀리(facsimile), 위드프로세서, 컴퓨터 단말기를 기반으로 하는 이 전자우편제도는 선진국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으며 장래에는 새로운 인공위성체제에 의해서 크게 증강될 것이다.
IBM, 에트나 캐쥬얼티 앤드 슈어티, 미국 통신위성 공사의 3개사는 SBS(통신위성 비즈니스 시스템)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하여 많은 기업에 종합적 정보 서비스를 하고 있다. SBS는 제너럴 모터스나 훽스트사 또는 도시바사와 같은 고객 회사들을 위해 통신위성을 발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 SBS 통신위성은 각 회상에 설치된 값싼 지구국과 연결해서 독자적인 전자우편제도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며 공공우편기관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 우편제도가 보내는 것은 문서가 아닌 전자파를 발송한다. 아더 D. 리틀 조사기관의 빈센트 줄리아노 박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에도 전자공학은 여러 분야에서 많이 이용되는 매체이다. 거래는 전자기기로 행하고 문서에 의한 청구서, 영수증, 명세서 등은 나중에 그것을 확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바야흐로 문서가 언제까지 필요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메시지와 메모는 순간적으로 소리하나 내지 않고 전달된다. 정보가 흐르기 시작하면 각자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단말기(대기업체에 수천 대씩 설치되어있는 단말기)는 조용히 깜박거리면서 통신위성을 통해 지구 저편의 사무실이나 회사 간부 주택의 단말기에서 보내온 정보를 처리한다. 컴퓨터는 어떤 기업체의 파일을 필요에 따라 다른 기업체의 파일에 연결시켜 줄 수도 있고 경영자는 뉴욕타임즈 정보은행과 같은 데이터 은행에 저장해 두었던 회사 밖에 있는 정보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이 어디까지 전개될는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그려온 미래의 사무실은 너무나도 정연하고 지나치게 세련되어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는 더 복잡한 형태로 사태는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은 급속하게 전진하는 도상에 있고 현재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 전자공학을 구사하는 사무실로의 이행이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폭발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언어지진'은 단지 새로운 기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무실 내부의 인간관계와 각자의 역할의 개편을 약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맨 먼저 비서의 여러 기능 중 많은 것이 소멸될 것이다. 미래의 사무실에서는 음성인식 기술이 도입되면 타이핑조차도 시대에 뒤떨어진 기능으로 전락할 것이다. 최초에는 메시지를 정리하여 그것을 전송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타이프 기능은 계속 수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사용자의 특징적인 액센트까지 구별하여 음성을 문자로 바꾸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타이프 작업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된다.
줄리아노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낡은 기술이 타이피스트를 이용한 것은 말하자면 기술들이 서툴렀기 때문이었다. 점토판을 사용했던 시대에는 점토를 굽거나 문자를 조각하는 기술을 알고 있는 서기가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문자를 기록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타이피스트라는 이름의 서기를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샐오눈 기술이 나타나 손쉽게 메시지를 파악하고 수정, 기억, 검색, 전송, 복사 등을 행하는 것이 쓰거나 말하는 것같이 간단하게 되면 우리들은 이 모든 작업을 자기 혼자서 처리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기계에 익숙해지면 타이피스트는 불필요하게 된다.' 많은 워드프로세서의 전문가들이 기대하고 잇는 것은 비서가 타이프 치는 일에서 해방되어 더 고차원의 일을 하게 되고 또 적어도 타이프치는 일과 같은 잡무가 완전히 불필요하게 될 때까지 간부들이 직접 타이프를 치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 일부를 분담하는 것 등이다.
이런 예가 있다. 국제 워드프로세싱 대회에서 강연했을 때 나는 타이핑작업을 비서에게 시키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내 원고는 내가 직접 타이프를 쳐서 작성한다. 사실 말이지 비서가 사용하는 것보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언어시스템 쪽이 더 빠르다.'라고 대답했더니 회장 안이 환성으로 들끓었다. 그들은 신문의 구인란에 다음과 같은 광고가 실릴 날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룹 부사장 구함)
업무 내용: 재정, 마케팅, 부문별 생산라인 개발의 조정 기타.
자격: 음성 경영관리 경험자
연락처: 멀티라인 인터내셔널사 수석부사장.
* 단, 타이핑은 필수기능임.
이에 대해 간부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에 반대할는지도 모른다. 좌우간 이 세상의 간부라는 사람들은 자기가 마실 커피잔을 나르기도 싫어하는 친구들이니까. 더구나 음성인식 장치가 설치되어있어 구술을 하기만 하면 기계가 받아 쓰고 타이핑 작업을 모두 대신해 버리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키보드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부들이 어떤 태도를 위하건 간에 제3의 물결의 생산방식과 제2의 물결의 여러 체제가 사무실 내에서 충돌하면서 불안과 갈등을 일으켜 사무체제를 개편하고 재편성하며 또 일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직업과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는 구 경영지의 업무 범위, 위계질서, 남녀의 역할분담, 각 부서 간 분과주의의 장벽 등, 이런 문제들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일들이 완전히 없어진다든지, 현재의 비서들 대부분이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워드프로세싱 업계나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 컨설팅사의 사장인 랜디 골드필드처럼 보다 낙관적인 전망도 있어서 이 두 가지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골드필드 여샤의 의견에 의하면 비서는 사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복적 작업요원이 되기는 커녕 '부사장'으로 격상되어 전에는 완전히 소외되었던 전문적인 일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화이트칼라 사이에 심한 분열이 일어나 보다 책임 있는 지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밑으로 떨어지기만 하다가 결국 밀려나는 사람들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밀려나는 사람들, 그리고 경제 전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자동화가 최초로 등장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에 걸쳐서 여러 나라의 경제학자나 노동조합 관계자는 대량실업을 예언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고도한 과학기술국가에서는 오히려 고용이 확대됐던 것이다. 제조부문이 축소되자 화이트칼라가 증가하고 서비스 부문이 신장해서 산업계의 불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인 제조부문이 계속 축소되고 동시에 사무부문의 고용마저도 부진한 상태가 된다면 내일의 고용은 어떻게 하 보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쉴새 없이 연구가 계속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주장들이 맹렬히 나오고 있지만 서로 상반되는 예상이나 논증이 나타나고 있는 형편이다. 예를 들면 기계화나 자동화에 투자하는 액수와 제조부문의 고용수준 사이에 대해 연관성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기사와 같이 '상관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63--73년까지의 최신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액을 조사해 보았더니 부가가치 중에 점유하고 있는 설비투자의 비율에서는 조사대상 7개국 중 일본이 가장 높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또한 고용증가에 있어서도 최고의 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설비투자율이 가장 낮았던 영국은 최고의 실업자 수를 나타냈다. 미국은 대체로 일본과 비슷해 기술투자와 신규고용 증가가 동시에 일어났다. 한편 스웨덴,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는 각각 현저하게 독자적인 패턴을 나타낸다.
고용수준이 단순하게 과학기술의 진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화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고용율이 상승하거나 하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고용은 여러 가지 정책이 수렴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은 앞으로 몇 년간 크게 가중될 것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컴퓨터 한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무실도 공장도 다같이 개혁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화이트칼라인 부문과 제조부문에서의 이 동시 개혁은 궁극적으로 전면적인 새로운 생산양식이 출현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거대한 전진인 것이다. 이 전진은 간단하게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은 고용수준이나 산업구조 등에서 나타나는 현상뿐만 아니라 정치력과 경제력의 균형, 노동의 작업단위 규모, 국제적 분업, 여성의 경제적 역할, 노동의 성격,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등의 상황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하는 장소라는 겉보기에 매우 사소한 사항까지도 변혁을 가하려고 할 것이다.
제16장 전자주택
새로운 생산체제로 이행해 가는 이면에는 하나의 사회개혁이 태어나려 한다. 그것은 놀랄 정도의 넓은 범위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직시하려고도 않는다. 바야흐로 우리의 가정생활까지도 변혁시키려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술한 바와 같이 새로운 생산테제는 노동 규모의 축소를 촉진하고 생산의 도시 집중화를 배제하기 위해 그것이 분산화를 도모하였고 노동의 실제적 성격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새로운 생산체제는 제2의 물결이 공장과 사무실을 한 장소에 모아 둔 수백만의 직장을 다시 이전의 장소인 가정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가정생활, 학교, 기업의 질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변화하게 될 것이다.
300년 전에,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인구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 시대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적으로 일어났다. 대규모의 공장지대나 사무실이 밀집되어있는 빌딩가의 절반이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텅 비게 되어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썰렁한 창고가 되거나 생활공간으로 전환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현재로는 아직 이른 대담한 발언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형태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새로운 고도의 전자공학을 기반으로 하는 '가내공업'으로의 복귀를 가져오고 거기에 따라 가정이 사회의 중심으로서 새로이 중요시될 가능성은 충분히 보인다.
얼마 안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이나 공장에 출근하는 대신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고 말하면 곧 격렬한 반론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또 이러한 회의적인 견해가 계속 나오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설사 집안에서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 여자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가정에서 벗어나 직장에 나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을 봐서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뛰노는 속에서 무슨 일이 되겠는가.' '윗사람이 감시하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할 생각을 않는다.' '일하는 데에 필요한 신뢰감이나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서로가 직접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 가옥의 구조는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정에서 일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지하실에 소형 용광로라도 만들라는 것인가.' '주택을 작업현장으로 한다면 도시계획에 의한 제한이나 집주인의 반대를 어떻게 막는가' '그런 생각은 노동조합에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일하는 만큼의 세액공제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데 세금은 어떻게 되지?' 그리고 최후의 반론은 이것이다. '뭐라고? 하루종일 마누라하고 얼굴을 맞대고 있으라고?' 물론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와는 반대의 발언을 하겠지.
그리고 칼 마르크스마저도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한 직장에 노동자를 모이게 하는 것이 사회에 분업을 성립시키기 위한 필수요건이고 집에서 일하는 것은 생산형태의 후퇴이다.'라고 그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착상 그 자체를 어리석은 것이라고 보게 되는 이유는(이치에 닿지 않는 이유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있다.
가내노동
300년 전에는 사람들이 가정이나 농사일에서 떠나 공장으로 일하러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는 나름대로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300년 전까지는 1만 년 동안이나 자기 집 가까이에 있는 토지에서 일해 왔었다. 가정생활의 구조, 아이들의 양육과 퍼스낼리티의 형성과정, 재산에 관한 제도나 권력의 구조, 문화, 매일매일의 생존경쟁 등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슬에 의해 가정과 농경지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체제가 출현하자 이 사슬은 즉시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다시 그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세력이 합쳐져서 노동의 자소를 이동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생산형태가 새롭고 더욱 발전된 제3의 물결의 생산형태로 전환되면 앞의 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육체를 자본으로 하는 노동자의 수는 감소한다.
제조부문에 있어서도 증가되는 작업량은 통신기술과 그 부속 장비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자기 집이나 어떤 곳에서라도 작업할 수 있고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다.
웨스턴 일렉트릭사는 전화국용의 전자기계식 전화교환기에서 전자교환기로 생산전환을 했다 이것에 의해 일리노이주 북부에 있는 이 회사의 최신식 공자의 인력 구조는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 전환이 행해지기 전의 생산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사무직이나 기술 관계의 근로자에 비해 3대 1이나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비율은 1 대 1이다. 이것은 2000명의 종업원 중 반수가 물건을 다루지 않고 정보를 다루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의 대부분은 얼마든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북부 일리노이주 공장의 기술부장 돔 쿠오모는 "기술자도 그 속에 포함한다면 현행업무의 10퍼센트 25퍼센트는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가정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쿠오모의 부하인 기술과장 제럴드 미첼은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의 기술이라면 2000명 중 600명이나 700명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으며 5년 후에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두 사람은 확신에 찬 태도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앞의 장에서 언급했던 콜로라도 스프링즈에 있는 H-P 공장의 생산부장 하워드의 예측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 공장에서 실제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은 1000명이다. 기술적으로 볼 때, 아마 그 중 250명은 가정에서 작업할 수 있다. 자재공급 업무가 복잡하게 되겠지만 필요한 기재와 자본설비만 갖추면 가능한 일이다. 또, 화이트칼라들이 하고 있는 조사업무나 개발부문에서도 컴퓨터의 단말기에 투자를 한다면 절반 혹은 4분의 3 정도의 인원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H-P 공장에서는 350이나 520명이 더 가정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이 고도의 첨단공장에서는 현재에도 전 종업원의 35~50퍼센트가 그 일의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거의 전부를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의 생산형태는 마르크스의 신조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의 전부를 작업장에 집중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전자공업이나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캐나다의 제약회사 오소 퍼머스티컬사의 부사장 피터 태틀에 의하면 문제는 몇 사람이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가가 아니고 몇 사람의 종업원이 사무실이나 공장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것이다. 태틀은 그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300명을 대상으로 한다면 "필요한 통신설비만 갖추면 적어도 75퍼센트의 종업원이 가정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전자업계나 제약업계에서 적용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다른 첨단산업에도 적용될 것이다.
제조부문에서 많은 수의 종업원들이 가정에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직접 생산품을 취급하지는 않지만 화이트칼라의 사무 분야에서도 상당수의 인원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지금도 상당량의 일을 이미 가정에서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판매를 하는 사람 퍼머 전화나 개별 방문이 대부분이어서 가끔 사무실에 나오는 사람, 건축가나 디자이너, 최근에 급격히 각종 업계의 전문 상담원들,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임상 의사나 심리학자 등 대인관계가 일인 사람들, 음악 교사나 어학교사, 미술상, 투자상담원, 보험판매원, 변호사, 학술연구가, 기타 전문적, 지적 업무에 종사하는 다수의 화이트칼라들이다.
게다가 이러한 분야는 앞으로도 급속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따라서 가정마다 싼 경비로 '작업장'을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이 실용화되고 고성능 타자기, 팩시밀리 시설, 컴퓨터용 조작 탁자, TV 회의 시설을 갖추게 되면 가내 근무의 가능성은 더 한층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시설이 갖추어진다면 현재와 같이 한 장소에 집중해서 일하는 중앙집권적인 작업장으로부터 전자기기를 구비한 소주택, 즉 '전자주택'으로 맨 처음 이전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사업상 직접적인 대인접촉의 필요성이라든가 이러한 접촉에 수반되는 의식적 혹은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주로 테이터를 기록하고 타자를 치고 카드를 검색하고 숫자를 계산하고 상품의 송장을 작성하는 등 추상성이 낮은 일상적인 업무에 종사하며 거래 상대와 직접 교섭할 필요가 없는 사무직 등은 가장 간단하게 전자주택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극히 추상성이 높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예컨대 연구원, 경제학자, 정책의 입안자, 조직의 중추에서 계획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외부와의 긴밀한 연락도 필요하겠지만 그 반면 조용히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거래 관계 종사자들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숙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레만 브러더즈 쿤 로브 투자은행의 고문 나다니엘 새뮤얼즈도 같은 의견이다. 새뮤얼즈는 그 자신이 벌써 연간 50일에서 70일을 집에서 일하고 있지만 "장래의 기술은 가내노동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일은 사무실에서 해야 ㅎ나다는 의견들을 완화하고 있다. 최근, 큰 목재 가공회사인 웨이어하우저사에서는 종업원 관리 때문에 새로운 팸플릿을 작성할 필요가 생겨 부사장 R. L. 시걸과 3명의 부하가 부사장 집에 합숙하면서 1주일이나 거려 초안을 작성했다. 시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의력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었다. 집에서 일하는 것은 융통성 있는 시간 관리를 주장하는 회사의 방침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어디서 일하는가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경제지 '월 스트리트 저널: Wall street Jounal'에 의하면 이것은 웨이어하우저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회사에서도 사원에게 집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소개한 것 중의 하나는 유나이티드 항공사(Umited Airlines)이다. 이 회사에서는 홍보 담당이사가 자기 참모들에게 연간 20일 정도는 집에서 서류 작성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맥도널즈사에서까지 하급종업원은 햄버거를 굽는 곳에서 떠날 수는 없지만 몇 사람의 간부에게는 집에서 일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정말로 사무실이라는 것이 필요할까.'라고 부른 앨런 & 해밀턴사의 하베이 포펠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발표되지 않은 예측보고서에서 '1990년까지는 서로 간의 통신 시설이 충분히 발달되고 가정에서 일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장려되며 각 분야에서 일반화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의견은 다른 많은 연구가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몬트리올의 캐나다 전화회사에서 장기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로버트 F. 레이덤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정보 관계의 일이 증가 일로에 있고 통신 시설이 개선되고 있으므로 가정이나 지역의 업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 내무성의 관리 담당 고문 홀리스 베일은 1980년대 중엽까지는 "미래의 워드프로세싱 센터들이 손쉽게 개인의 가정에도 설치될 것이다."라고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아프거사에 근무하고 있는 비서 제인 애덤스는 가내 근무를 하고 있으며 처리해야 할 문제 때문에 토의를 하거나, 사무실에서의 모임이 있을 때 참석하여 상사와 만나게 될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한 견해는 미국의 IFF(미래협회: Institute for the Future)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IFF는 벌써 1971년 새로운 정보기술을 취급하며 최첨단 기업에 속해 있는 15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개 분야의 작업을 가정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IFF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필요한 시설만 갖춰진다면 비서에게 맡겨졌던 일 중의 대부분이 '사무실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수행 가능하다. 이러한 체제가 만들어지면 비서가 결혼해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일을 할 수 있으므로 노동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집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서 구술되는 작가의 말을 받아쓰고 타이핑을 하게 된다. 그것을 작가의 자택이나 사무실에 보내게 된다. 이런 식의 작업방식을 부정할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다.' IFF는 계속 주장한다. '기사나 설계사, 기타 화이트칼라의 근로자들이 취급하는 일이 사무실에서와 마찬가지로 혹은 사무실보다도 훨씬 신속하게 가정에서 행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미 '미래의 씨'가 싹이 트고 있다. 그것은 F.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이다(F는 freelance 즉 자유계약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 회사는 프로그래머를 팀으로 편성해서 기업체에서 알선하고 있는데 네덜란드나 스칸디나비아까지 서비스망을 넓히고 있다. 의뢰자 중에는 브리티쉬 스틸사, 셸석유, 유니레버사 등의 대기업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정에서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이야말로 1980년대의 가내공업이라 할 수 있다.'라고 '가디언(Guardian)'지는 말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제3의 물결이 사회를 휩쓸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회사라는 것이 더욱 더 '사람들이 컴퓨터 주위에 몰려 있는 장소에 불과하다.'라고 어떤 연구자가 말했던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개인의 집에 설치하면 사람들은 회사에 출근하여 컴퓨터 주위에 모여있을 필요가 없다. 제3의 물결 시대에는 제조부문과 마찬가지로 사무 부문에 있어서도 노동력을 100퍼센트 직장에 집중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장소인 공장과 사무실로부터 제3의 물결의 장소인 가정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곤란이 따른다는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원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일과 관리, 회사 내외의 조직 재편성 등 이러한 문제가 가정으로의 전환을 늦어지게 하거나 곤란하게 만든다. 또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간접적으로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거래할 때마다 조건이 다른 경우와 같이 그때그때 적절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는 일에 대서는 상대방과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태나다 해외투자회사 사장 마이클 코너는 "우리들은 모두 1000피트 이내에 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통근 대용으로서의 통신
많은 곤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주택'의 실현을 향해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보아서 수송과 전기통신과의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대해서는 이제 결론은 명확해졌다. 오늘날 대부분의 고도기술 국가들은 심각한 교통난에 직면하고 있다. 도로와 고속도로는 자동차로 꽉 차 있다. 주차를 위한 공간도 없다. 환경오염문제는 심각해지고 파업과 파괴가 일상화되고 교통비용이 급등하고 있어서 대중교통체계는 한계점에 달하고 있다.
폭등하는 교통비용은 개개인의 근로자가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임금의 상승이라는 형태로 고용주에게 전가되며 또 소비자에게는 물가의 상승이라는 부담을 준다. 잭 닐슨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팀은 국제과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화이트칼라의 일을 기업이 집중되어있는 도심가에서 이전시킬 경우, 경비와 에너지가 얼마나 절약되는가를 조사했다. 닐스의 연구팀은 종업원의 가정으로까지 이동시킬 것은 가정하지 않았지만 가정과 가까운 업무센터로 일을 분산시킬 것으로 가정하고 직장과 자택의 중간지점에 모델을 설정했다.
이 그룹의 연구결과가 나타내는 것은 놀랄 만한 의미를 갖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어떤 보험회사의 종업원 2,048명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인당 하루 평균 출퇴근 왕복 거리가 평균 21.5마일이었다(미국의 도시근로자 전체의 평균은 18.8 마일이다). 고위관리직일수록 통근 거리도 길어져서 최고 간부쯤 되면 평균 33.2 마일이 된다. 이 회사의 종업원이 통근을 위해 자동차를 굴린 거리는 연간 총 1240만 마일이고 여기에 소모된 시간은 무려 50년이나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1974년 당시의 휘발유 값은 1마일을 가는데 약 22센트가 들었으니까 회사와 그 거래처에서 간접적으로 지불한 금액은 합계 2730만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닐스의 조사에 의하면 이 회사는 도심까지 출근하는 종업원에게 지방에 분산되어있는 회사들의 임금수준보다 연간 520달러를 더 지불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상 교통비용보조금이었다. 또한 주차장, 기타 업무를 집중화시킴으로써 필요하게 되는 시설에도 경비가 연간수입을 약 1만 달러로 가정하고 교통비가 하나도 들지 않는다면 회사에서는 300명의 종업원을 더 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상당한 이익을 실질적으로 더 높일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원격통신 시설의 설치비와 운영경비를 통근에 필요한 경비보다 적게 들이는 데 있다. 기름값과 기타의 수송비는(자동차 외의 대량수송경비도 포함하여) 급등하고 있는 데 비해 전기통신의 비용은 현저히 인하되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이 두 개의 곡선이 교차하는 날이 올 것이다.
생산현장의 지리적 분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내 전자 근무체제의 실현을 향해 우리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이것뿐이 아니다. 닐스 연구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적인 도시 통근자가 직장과 가정을 왕복하는데 사용하는 하루의 휘발유는 64.6kW의 에너지에 해당한다(로스앤젤레스 보험회사의 종업원은 통근 때문에 연간 3740만 kW의 열량을 소비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정보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훨씬 적다.
보통의 컴퓨터 단말기는 조작 중에 100~250W, 또는 그 이하의 전기를 소비한다. 또 전화선은 통화 중에는 불과 1W 이하의 열량이면 충분하다. 닐스는 통신 시설의 필요경비와 그 가동 기간에 대해서 정확한 가정을 세운 후에 전기통신과 현행의 통근을 비교하여 소비 에너지가 얼마나 절약이 되는가를 계산했다. 즉, 통근으로 소비되는 에너지에 대하여 통신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비율을 구한 것이다. 자가용을 사용하는 경우 그것은 적게 잡아도 29대 1이고 대량수송의 경우네는 정상의 상태에서 11대 1, 그리고 대량수송체계를 100퍼센트 활용하는 경우에도 그 비율은 2대 1이다.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계산이 성립된다. 즉 1975년의 도시 통근자의 12~14퍼센트만이라도 통신통근으로 대체했더라면 미국은 약 7500만 배럴의 유류를 절약할 수 있었고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미국의 국제수지나 중동 정책에 부여하는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서 석유 및 기타 에너지의 값은 올라가게 된다. 여기에 반해 자동타자기, 전송복사기, 음성. 영상전달기, 가정용 컴퓨터 조작 탁자의 운영비용과 에너지 비용은 급격하게 인하된다. 뿐만 아니라 제2의 물결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대규모의 집중화된 직장으로부터 생산 부문의 일부만이라도 분산 이점시킴으로써 파생되는 이익도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석유의 부족, 승용차의 홀짝수 운행제도, 주유소 앞에 늘어선 행렬, 소비제한 때문에 일어나는 정상적인 통근의 혼란과 지연,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의한 휘발유 가격의 상승이 단속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원격통신과 통근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은 절박해진다.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티는 더 강한 압력이 있다는 사실을 덧붙이겠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들은 작업의 장소를 가정 또는 가정과 현재의 직장 중간에 있는 지역사회나 가까운 업무센터로 이전시킨다면 현재 지불하고 있는 막대한 부동산비용을 단번에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본사나 공장이 소규모로 되면 될수록 부동산에 대한 지출이 적어지며 냉난방, 조명, 보안 등 건물의 유지관리비용도 틀림없이 줄어들게 된다. 토지나 상공업용의 부동산 그리고 그것에 관련된 세금이 급등하고 있는 현재 기업은 이러한 경비를 어떻게든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일거리를 가정이나 가까운 업무 센터로 하청을 주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원하는 바인 것이다.
직장이 옮겨지고 환경오염도 완화되어 환경정화에 들어가던 비용도 경감되게 된다. 기업이 오염의 원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기업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해방지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오염도가 낮은 운영방식을 취하려 할 것이고 그 때문에 대규모로 집중화된 직장으로부터 보다 소형의 업무센터로, 그리고 더 바람직스러운 행태로는 가정으로의 업무분산을 장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형태로의 지원도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이나 자연보호단체들이 오늘날 자동차의 파괴적인 영향력에 맞서 도로나 고속도로건설에 반대하며, 특정 지역에서 자동차를 몰아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싸고 편리한 전자공학을 이용한 통신 시설에 비해 이제 교통기관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불편하고 비싼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환경보호론자들이 전자공학에 의한 통신과 통근의 장단점을 발견하고 가정으로의 작업장소 이전을 올바른 선택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들의 존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앙으로부터의 분산이동이라고 하는 중요한 변화를 추진시키는 힘이 되어 인류가 제3의 물결 문명으로의 진입을 유도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요인 면에서도 가내 전자근무 체제로의 이전은 필연적인 것이다. 근무시간이 짧아지면 상대적으로 통근시간은 길어진다. 8시간의 노동을 위해 통근시간을 1시간이나 소비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근로자는 만일 근무시간이 단축된다 하면 통근에 1시간이나 소비하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근무시간에 대한 통근시간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직장으로의 왕복에 노력을 소비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로자들이 통근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면 사용자 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중화된 대규모의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간접적으로 수당을 더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통근에 필요한 시간, 불편, 비용이 적어지게 되므로 임금의 액수는 다소 적어진다 해도 '가내 전자근무 체제'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노동자는 늘어난다. 이런 점에서 본다 해도 업무의 이전이 점점 장려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가치관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것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자유를 갖고 싶어하는 욕구가 높아졌고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서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과는 별도로 사람들의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에 대한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핵가족은 제2의 물결 시대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지된 표준적인 가족 형태였지만 현재로는 분명히 위기를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가족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하나의 사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겠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핵가족으로부터의 탈피가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는 어디나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구성단위의 결합을 강하게 하려는 욕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가족을 굳게 맺어주던 요소 중의 하나는 가족이 함께 일을 분담한다는 것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노동의 장소를 함께 하면서 일하고 있는 부부쪽이 이혼율이 낮다고 생갂한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가 만들어지면 다시금 남편과 아내(아이들도 함께 있게 되겠지만) 하나의 노동단위로서 함께 일하게 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정생활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직장을 가정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동의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세금부담의 경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정책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제2의 물결 시대의 초기 노동운동가들은 '1일 10시간 노동'을 주장하며 투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제1의 물결 시대에는 거의 이해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정에서 해야 한다.'라는 운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하나의 권리로서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일의 재배치가 가정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게 되면 노동자의 이러한 요구는 정치, 종교, 문화 등 각계의 여러 단체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를 요구하는 투쟁은 제2의 물결의 과거와 제3의 물결의 미래 사이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대투쟁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대투쟁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개발하는 데 열심인 과학기술자와 기업뿐만이 아니라 환경보호론자, 조직의 새로운 형식과 폭넓은 제휴를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가, 보수적인 성직자 등으로부터 급진적인 여권운동가, 정계의 주류세력들까지도 결합시켜 새롭고 보다 만족할 만한 가족의 미래를 실현하는 일을 지원하도록 만들 것이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는 제3의 물결이 만드는 내일의 세력을 집결시키는 중요한 거점으로서 그 모습을 명확하게 할 것이다.
가정 중심의 사회
전자주택이 실현되면 대단히 중요한 결과가 뒤를 이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열성적인 환경보호주의자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자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게 된다.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가정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의 인구 규모가 커지면 현재보다도 지역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변화가 심한 여러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지금으로서는 공동체의 안정은 도저히 실현시키기 어려운 목표이지만 이러한 가정 내 근무자가 많아질수록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다. 근로자가 일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정에서 할 수 있게 된다면 직장을 바꿀 때마다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다니고 있지만 가정이 작업의 현장이 된다면 플러그를 다른 컴퓨터에 바꾸어 꽂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게 되면 이사 가는 것을 강요당하는 일도 적어질 것이고 개인에게 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인간관계가 단절될 염려도 없고, 지역공동체로의 참가의식도 높아진다.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어떤 가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더라도 1,2년 있다가 또 이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서 이웃의 단체에 가입하거나 깊은 우정을 갖거나 지방 정치에 참가하거나 지역공동체 생활에 연대감을 갖는다는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된다. 전자주택은 지역공동체로의 구속감을 되살리게 하여 교회나 부인단체, 지역의 모임, 동호회, 스포츠클럽, 청소년단체 등 각종 단체들을 부흥시키는 계기가 ㅗ딜 것이다. 전자주택이란 사회학자가 즐겨 사용하는 독일어의 전문용어 '공동사회' 이상의 확대개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 일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가정으로 옮기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에너지의 필요량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의 분산을 도모할 수 있다. 고층 빌딩이나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공장단지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에너지 집중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가 도입되면 에너지의 수요가 분산되기 때문에 태양열이나 풍력, 기타 대체 에너지의 기술을 이용하기 쉽게 된다. 각 가정에 소규모의 에너지 발생 장치를 설치하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집중 에너지의 일부는 이것으로 대용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오염을 줄이는 것도 된다. 그 이유의 하나는 소규모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대치하면 오염도가 높은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환경 위험지역에서 나오는 농도가 높은 오염물 방출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 이러한 체제로 인하여 쇠퇴되는 사업도 있을 것이고 성장하는 사업도 나타나게 된다.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통신 시설 관계의 산업은 분명히 번성하게 될 것이다. 석유회사, 자동차산업, 부동산개발업은 타격을 받게 된다. 소형 컴퓨터를 판매하는 기업이나 정보 서비스업 같은 새로운 업종이 대두하는 반면 우편 사업은 축소될 것이다. 제지회사는 그다지 시원찮은 사업으로 될 것이고 서비스업이나 화이트칼라 산업은 이익이 증대될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 보자. 누구나가 전자공학기기의 단말기나 시설을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면 사람들은 고전적 용어인 노동자라고 부르기보다는 독립된 사업가의 존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가 강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가내 근무자들이 모여 자기들이 행하는 서비스에 관한 계약을 대행해 주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거나 기계를 공유하는 협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새로운 모임이나 조직형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에 미치는 영향 노동영역의 이미지가 변화하고 추상적인 숫자나 기호를 취급하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극도로 지적인 작업환경이 태어난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 지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며 어느 면에서 본다면 지금보다도 더 비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볼 때 가정에서 일한다는 것은 가족이나 근처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어 인간관계가 두터워지는 계기도 된다. 공상과학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처럼 특정한 개인과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있는 전광 스크린이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관계가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고 가정할 수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기기를 통해서 행해지는 간접적인 인간관계이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규칙과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여러 가지로 실험도 하게 되고 불완전한 방법들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어느 시간에는 집에서 일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밖에서 일하려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여러 곳에 업무센터가 설치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몇 개월, 혹은 몇 년간을 가정에서 일하고 다음 몇 년간을 밖에서 일하고 다시 또 가정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리더쉽이나 경영능력의 패턴도 바꾸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업에서 화이트칼라가 담당하고 있던 일을 청부하는 소규모의 회사가 늘어나게 되어 가내 근무자들을 팀으로 편성하여 일을 가르쳐 주고 관리를 하는, 그런 전문화된 직책을 맡아 하게 될 것이다. 아마 이런 소규모의 회사는 팀의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의 제어 탁자나 타자기의 키보드를 통한 관계뿐만 아니라 서로 직접 면식이 있게 하기 위해 각종 파티나 사교모임. 공동의 휴일을 설정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가정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임금수준이나 기회비용을 둘러싼 분규에 직면해 있다. 직접적인 교제나 인간적인 감정의 교류가 가정내에서 강화되는 한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거의 컴퓨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간접적 접촉으로 끝나버린다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실업자의 수는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체제가 된다면 '취업자'와 '실업자'라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러한 질문이나 문제점을 무시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나 난관이 있더라도 새로운 가능성들도 있다.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이루어지면 현재 우리들이 안고 있는 과도기적인 많은 문제들은 과거의 것으로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봉건시대 노동의 비참한 상황은 그 시대의 농업 제도가 계속되는 한 완화되지는 않았다. 소작농의 폭동이나 귀족의 박애주의나, 종교적인 이상가들에 의해서도 그런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비참한 상황은 공장제도가 들어오고 봉건적인 농업제도가 완전히 변질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공장제도는 또다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져온 것이다.
실업, 작업의 지나친 단조로움, 극도로 전문화된 분업, 비정한 개인주의, 저임금, 이러한 산업사회 특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각 기업, 노동조합, 친절하고 너그러운 고용주, 또는 혁명적 노동자의 정당 등의 열성적인 노력이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체제 속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300년간이나 미해결인 채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면 이것은 생산형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비약이 제조업과 화이트칼라 양쪽에서 행해져서 전자주택으로의 돌파구가 열리면 논쟁의 전제조건은 완전히 변하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논쟁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생명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 쟁점들이 대부분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사실 현재로서는 가내 전자근무 체제가 미래의 규범이 될지의 여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현행 노동력의 10퍼센트 20퍼센트가 금후 2, 30년 사이에 역사적인 전환을 이루어 놓으면 경제, 도시, 생활환경, 가족구조, 가치관, 그리고 정치마저도 현재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실현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한 가능성으로서 충분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제3의 물결에 의한 여러 가지 변화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상호 간의 관련을 고찰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현재의 기술체제와 에너지원이 변화를 강요당하여 새로운 '기술영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대중매체의 탈대중화 현상과 지적 정보가 가득 찬 환경의 조성이 진행되고 '정보영역'도 개혁된다. 이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합류해서 현재의 생산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의 일의 성격을 바꾸어 넣고 궁극적으로는 작업의 장소를 가정으로 되돌리는 방향으로 우리들을 인도해 간다.
이렇게 거대한 역사적인 전환은 우리들이 지금, 새로운 문명의 맨 앞에 서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가족간의 기반이나 우정이나 학교나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 그 자체를 재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 제3의 물결의 '기술영역' 및 '정보영역'과 더불어 제3의 물결의 '사회영역'마저도 창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제17장 미래의 가족
1930년대의 대공황기에 수백만 명이라는 실업자가 거리에 득실거렸다. 공장은 문을 닫고 해고통지를 받은 실업자들은 극도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자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이윽고 실업이라는 사태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도덕적 퇴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의 편재, 근시안적인 투자, 무책임한 투기, 어리석은 무역정책, 무능한 정부 등이 실업의 원인이지 실업자 개인의 약함에 의한 것은 아닌 것이다. 실업자가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순진하고 잘못된 생각이었다.
오늘날 또다시 수백만의 사람들이 30년대와 마찬가지로 자아를 잃고 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들이 죄책감에 휘말리고 있는 것은 경제적 파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정의 파탄이 그 원인인 것이다. 결혼생활의 파국으로 남녀가 고민을 하고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스스로를 책망한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생각이다. 가정의 파탄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혼이나 별거, 그 밖의 가정적 불행이 여러 나라들에게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면 그 원인은 이제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가정파탄이라는 오늘의 문제는 산업주의의 위기라는 일반적인 위기 상황의 일부로 취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제도가 붕괴되려 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 한 예인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제3의 물결의 사회영역을 수립하기 위한 정지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종래 가족제도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변모를 가져오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의 생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마음의 상처까지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가족제도의 붕괴라는 말을 곧잘 듣게 된다. '가정'이야말로 최대의 과제라고들 말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부는 가족제도를 보호하는 정책을 세워야만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정부에 있어서 최우선의 과제다." 교회도, 정부도, 신문도, 평론가도 대개가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가족이라 함은 특정한 형태의 가족을 의미하고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형태의 모든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의 가족이란 제2의 물결의 가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가족이란 한 집안의 가장인 남편, 가정을 지키는 아내, 그리고 몇 명의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이다. 세계에는 여러 모양의 가족 형태가 존재하고 있는데 제2의 물결 문명이 이상으로 삼은 것은 핵가족이라는 형태였다. 핵가족은 지배적인 가족 형태가 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핵가족이 표준적인 가족 형태로서 널리 사회에 보급되어졌다. 대량생산의 사회는 계급제도와 관료제도가 지배하며 직업과 주거의 분리를 기본으로 한 사회이다. 핵가족은 이러한 사회에서 폭넓은 가치관과 생활양식의 요청에 꼭 알맞은 가족 형태로 정착한 것이다.
오늘날 당국자들이 가정의 회복을 촉구할 때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가족이란 제2의 물결의 가족, 즉 핵가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을 핵가족으로만 한정해 버리는 좁은 견해는 문제의 전체적인 판단을 그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핵가족이 이전의 중요성을 되찾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 유치히기 짝이 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러한 당국자들은 저질잡지의 자동판매기로부터 록 뮤직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든지 가족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낙태를 금하고, 성교육을 폐지하고, 여권운동에 반대하기만 하면 가정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통계책임자는 "결혼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철저히 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보다 좋은 결혼 상대를 선택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가 있는 상성 테스트 같은 것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결혼 상담역을 증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이라는 것의 이미지 회복을 시도하기 위해 홍보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한다. 제2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라는 역사의 큰 흐름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선의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완전히 표적에서 벗어난 어리석은 제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 보호 운동
만일 진정으로 핵가족의 회복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이 가능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1) 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량생산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기술의 발전을 제2의 물결단계에서 동결시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먼저 컴퓨터를 파괴하여야 한다. 제2의 물결의 가족에게 있어 컴퓨터는 낙태허용법이나 동성연애자의 권리 옹호 운동이나 포르노 잡지보다도 위협적이다. 왜냐하면 핵가족은 대량생산체제를 전제로 성립되어있는 데 비해 컴퓨터는 인간을 대량생산의 다음 단계로 이행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경제의 분야에서는 제조업을 장려하고 서비스 부분의 성장을 억제한다. 화이트칼라나 전문직. 기술직 근로자들은 블루칼라 근로자들보다도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지적. 심리적으로 능동적이며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이혼율은 서비스 직종이 늘어남과 동시에 상승하고 있다.
(3)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과 같은 고도로 집중화된 에너지 생산방식을 채용한다. 핵가족은 탈중앙집권화 사회보다도 중앙집권적인 사회에 더 적당한 것이다. 에너지 체계의 형태도 사회나 정치의 중앙집권화에 영향을 미친다.
(4)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대중매체를 규제한다. 먼저 유선 TV와 카세트의 보급을 규제하되 지방지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핵가족은 정보나 가치관이 단순하고 국민의 여론을 얻기 쉬운 사회에 가장 적당하다. 고도로 다양화된 사회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매체가 가족의 붕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비평가도 있으나 사실은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 형태로서 찬양해 온 것은 다름 아닌 대중매체였다.
(5) 여성을 부엌으로 되돌려 보내고 여성의 임금을 최저선에 억제시킨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더욱 불리한 지위를 얻더라도 노동조합의 선임권 조항을 강화해야 한다. 여성의 직장 진출에 의해서 양친 모두가 집을 비우게 된 것은 핵가족의 핵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이 활동하고 남성이 집을 지키며 아이들을 양육하도록 해도 좋다.)
(6) 그와 동시에 청소년 근로자의 임금을 대폭으로 인하하여 그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간을 연장시켜 자녀의 자립심의 발달을 억제한다. 청소년들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일찍부터 활동하게 되면 핵가족은 점점 분해되어 버린다.
(7) 피임을 금지하고 생물의 생식에 관한 연구를 일체 금지한다. 피임은 여성의 독립심을 강조하고 혼외 성관계를 조성하므로써 핵가족의 유대를 파괴하는 원인이 된다.
(8) 생활 수준은 1955년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 사회가 풍부해지면 독신자, 이혼자, 근로 여성, 그 밖에 가정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경제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핵가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빈곤이 필요하다.
(9)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 예술, 교육, 경제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사상의 자유 및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혁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제지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화를 정지하고 다시금 획일화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핵가족이 존속하 ㄹ수 있는 것은 대량생산과 대중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밖에는 달리 있을 리 없다.
핵가족 이외의 가족개념은 생각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집하려면 이상과 같은 가족보호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제2의 물결 가족의 복귀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제2의 물결 문명 전체의 회복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업기술뿐만 아니라 역사 그 자체를 동결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족 그 자체가 소멸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의 형태를 이상으로 한 제2의 물결의 가족제도다. 이제 최종적으로 파탄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에 대신하여 다양한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제3의 물결 문명을 맞아 대중매체와 생산을 탈대중화하는 동시에 가족제도도 탈대중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핵가족의 생활양식
제2의 물결의 도래가 확대가족제도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제3의 물결이 도래한다고 해서 핵가족제도가 종식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핵가족이 이상적인 모델은 아니라는 것이다.
별로 주목되지 않던 일이기는 하나 제3의 물결이 가장 많이 침투되어있는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전형적인 핵가족의 형태를 벗어나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핵가족이란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집안을 돌보며 두 아이를 기르는 가족이라고 규정하고 실제로 이러한 가족 형태를 취하고 잇는 미국인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 보면 그 결과는 놀랄 만한 것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7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미 93퍼센트의 사람들이 제2의 물결의 이상적인 가족상 밖으로 이탈해 버린 것이다.
설령 개념 정의를 넓혀 부부가 다 같이 일하고 있는 가정이나 자녀 수가 둘 이하이거나 둘 이상의 가정을 포함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3분의 2 내지 4분의 3의 사람들)은 핵가족이 아닌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핵가족의 형태는 다른 가족 형태가 계속 증가해 가고 있는 반면(핵가족을 어떻게 규정하든지) 여러 가지 증거로 짐작해 보건대 그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우선 가족과 떠나서 혼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부터 1978년까지의 사이에 미국에서는 14세부터 34세 연령의 단독생활자 수가 150만 명에서 430만 명으로 약 3배나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제 전 세대의 5분의 1이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 모두가 아내나 남편을 여의고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의로 얼마동안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시애틀시에서 여성 시의회의원의 입법보좌관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만 한다면 결혼을 고려해 보겠지만 결혼 때문에 자신의 직업이나 인생을 완전히 희생해야겠다고까지 생각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 일찍 부모의 슬하를 떠나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인구문제의 전문가인 아서 노튼은 '여성의 독신생활은 과도적 생활단계로서 여성의 생활권 속에 정착해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다 나이 든 연령층에 대해서 보면 상당수의 이혼경력자들이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새로운 결혼상대자가 발견되기까지의 동안, 즐겁게 혼자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쪽이 편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증가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신문화가 번영하고 있다. 독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이나 스키클럽, 혼자서도 참가할 수 있는 단체여행, 독신자용의 상품들이 격증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부동산업계에서도 독신자 전용의 콘도미니엄이 분양되고 있으며 침실 수가 적은 소형 아파트나 교외주택의 수요가 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집을 사는 사람의 약 5분의 1이 독신자들이다.
법적인 결혼절차를 거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의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과거 10년 동안에 그 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동거생활자가 너무나 증가했기 때문에 미국의 도시주택 개발성은 종전의 규칙을 개정하여 공영주택의 입주자격을 허가하게 되었다. 코네티컷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등의 법원에서는 정식 결혼 수속을 끝내지 않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경우의 법률상의 문제라든가 재산상의 문제처리에 시달리고 있다. 동거생활자들은 서로가 상대방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에티켓 칼럼니스트들의 글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결혼상담뿐만 아니라 '커플(couple)상담'이라는 새로운 전문 서비스가 등장했다.
자녀가 없는 생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자녀들이 없는 생활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미국 정책연구 센터의 선임연구원인 제임스 레이미는 자녀 중심의 가정에서 어른 중심의 가정으로 가정상이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에는 혼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막내가 독립하고 나서 부부가 오래 사는 일도 비교적 드물었다. 따라서 어느 가정이나 사실상 자녀 중심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에는 18세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사는 어른은 세 사람에서 한 사람 꼴로 감소해 버렸다.
현재는 자녀 갖지 않기 운동을 벌이는 단체가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자녀 갖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1960년에는 결혼 경력이 있는 30세 이하의 미국 여성 중 아이가 없는 사람은 20퍼센트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1975년에 이르자 32퍼센트로 급증했다. 15년 동안에 실로 60퍼센트의 급증을 보인 것이다. 아이들을 갖자고 하는 캠페인에 대해 '자녀를 갖지 않을 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연합회'라는 시끄러운 단체가 생겨나 자녀가 없는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전국 무자녀 가정친목회'와 같은 조직이 있다. 유럽에서도 의식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본에 사는 30대의 롤 부부는 남편은 시청공무원, 아내는 비서인데, "우리는 앞으로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롤 부부는 결코 경제적으로 곤란한 것은 아니다. 작으나마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며 휴가중에는 캘리포니아라든가 프랑스 남부지방으로의 여행을 즐길 만큼의 여유는 있다. 그러나 아기를 가지면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큰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현재의 생활양식에 익숙해 있어요.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생활이 좋아요."라고 말한다. 소련에서는 러시아 민족 이외 소수 민족의 출산율이 여전히 높은데도 러시아인의 출산율만은 저조해서 소련 당국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자녀가 있는 가정으로 눈을 돌려보면 핵가족의 붕괴는 보다 한층 명백해진다. 한쪽 부모만 있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이혼, 가정불화, 별거 등의 현상이 핵가족에서 현저하게 나타나 미국 아이들의 7명 중 하나는 양친 중 어느 한쪽밖에 없는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 도시에서는 이것이 4명 중 한 명이라는 더욱 높은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쪽 부모만을 가진 가정의 증가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에 따라서는 부부 사이의 끊이지 않는 불화 속에서 길러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환경 아래서 자라는 편이 문제가 적다는 인식이 넓어져 가고 있다. 신문이나 여러 단체들이 편친 가정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으며 편친 가정끼리 단결하여 정치적 발언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것 또한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대개 10세대 중 1세대는 편친 가정으로 이루는 세대이다. 그중에 6분의 1은 아버지만 있는 세대이다. 잡지 '뉴 소사이어티'는 편친 가정은 빈곤층 속에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런던에 본부를 둔 '전국 편친 가정협의회'는 이러한 가정의 보호를 목표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독의 쾰른에서는 주택조합이 편친 가정을 위해 전용 아파트를 건설하여 보육원을 설치하는 등 부모가 주가에 직장에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제국에서도 이러한 가정에 대한 일련의 시책이 강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스웨덴에서는 편친 가정을 위해 유유아 시설이나 보육원을 개설하고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에서는 편친 가정 쪽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형적인 핵가족보다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혼한 사람의 재혼이 많아지게 되면 여러 모양의 새로운 가족 형태가 생겨난다. 나는 이미 '미래의 충격' 속에서 '집합 가족(aggregate family)'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혼한 사람이 서로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함으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에 대해 언급했다. 이 경우 새로운 가족에는 이미 성인이 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25퍼센트는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이와 같은 가정에서 자라게 되리라고 추정되어진다. 데이다인 멜일리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아이에게 여럿의 부친이나 여럿의 모친이 있는 가족이 앞으로의 가족의 주류가 될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이혼한 아내에게 자녀양육비를 보내주고, 아내는 전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아들이는 다부다처적인 경제 관계가 성립할 것이다.' 그녀의 보고에 따르면 이와 같은 가족이 증가해 부모와 혈연관계가 없는 자녀 간의 성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가족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동성애에 의한 결혼, 생활 공동체, 노인들만의 공동생활(어느 경우에는 성적 관계도 있다), 몇 개의 소수민족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민족 그룹 내의 결혼 등, 종래에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의 복잡한 가족 형태가 나타났다. 계약 결혼. 연속결혼(serial marriage). 가족연합과 그 밖의 성관계를 수반한 것, 그렇지 않은 것 등 여러 가지 결연을 볼 수 있다. 남편과 아내가 별거하여 각각 다른 도시에서 직업을 갖고 있는 가정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가정형태도 표면화되지 않은 여러 가지 변형된 가족 형태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켈람, 엔스밍거, 터너 등 3명의 정신과 의사가 시카고의 흑인빈민가에서 조사해 본 결과 자그마치 86종류의 가족 형태가 분류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큰어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계부의 가족, 기타 어머니와의 연관만으로도 수많은 가족 형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분명해져 가는데 따라서 꽤 정통적인 학자마저도 핵가족의 시대는 끝났으며 다양화된 가족생활을 특색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이전에는 과격론을 당해 온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회학자인 제시 버나드는 '앞으로의 결혼의 특징은 사람들이 자기 기호에 따라 다양한 결혼형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의 인간관계도 획일적이 아니라 다양화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래의 가족은 어찌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는 곧잘 듣게 된다. 그런 경우 제2의 물결의 핵가족이 세력을 잃고 무언가 다른 형태가 그에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제3의 물결 문명에서는 어떤 특정의 가족 형태가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를 지배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가족은 다양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인간이 모두 획일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인간이 일생동안에 스스로 '주문한' 가족형 태를 여러 모로 경험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핵가족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고 하는 뜻은 아니다.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온갖 가족 형태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제3의 물결의 도래에 의해서 생산체제 및 정보체제와 더불어 가족제도도 역시 다양화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관계
이와 같은 가족 형태의 다양화 속에서 어떠한 형태가 제3의 물결 문명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우리의 자녀들은 10년이나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혼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자녀는 갖지 않게 될 것인가. 일처다부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유전학이 발달해 남자나 여자아이를 마음대로 낳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남자가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한다면 이런 생각까지도 해본다). 동성연애자가 결혼하여 자녀들을 기른다면 어찌 될 것인가. 법조계에서도 이제 이와 같은 문제도 논란되고 있다. 영양생식이 가능하게 된다면 어떠한 충격적 사태가 일어날 것인가.
일생동안에 여러 가지 가족 형태를 경험한다고 하면 인생은 어찌 될 것인가. 우선 먼저 시험결혼단계가 있고, 다음에는 자녀들을 갖지 않은 채로 부부가 모두 직업을 갖고 함께 활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는 동성애 결혼에 들어가서 비로소 자녀를 갖는 수도 있을지 모른다. 베시 버나드는 "결혼에 관한 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태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당사자들로서는 아주 자연스런 일인 듯하다."라고 말한다.
어떤 가족 형태가 없어지고 어떤 형태가 늘어날 것인가는, '가족은 신성한 것이다.'라는 도덕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기술이 어떠한 발전을 이룩할 것인가, 노동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가 많다. 가족 형태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서 정보전달의 유형, 가치관의 변화, 인구동태의 변화, 종교관 혹은 생태계의 변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족 형태는 노동의 형태요ㅘ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핵가족은 공장노동과 사무노동의 등장과 더불어 증가해 온 가족 형태인데 공장과 사무실로부터의 작업이전이 이루어지면 가족의 형태도 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서 노동력이나 노동의 성격 변화가 어떻게 가정생활을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자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아마 앞으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게 될 특기할 만한 중요한 변화를 하나만 들어 둔다. 이 변화는 우리가 경험한 것은 아니나 앞으로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꿔 버릴 가능성을 안고 잇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노동의 장소가 사무실이나 공장으로부터 다시 가정으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사실이다.
가령 앞으로 25년 후에 노동력의 15퍼센트가 가정에서 상근 혹은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가내노동은 인간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애정의 의미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의 생활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내용은 컴퓨터의 프로그래밍, 팸플릿의 작성, 멀리 떨어진 공장의 모습을 모니터로써 감시하는 공정관리, 건축설계, 전자장치에 의한 통신문의 타이핑,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일들에 하나의 분명한 변화가 일어난다. 일터가 가정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에는 하루 중에 한정된 시간에만 얼굴을 마주하던 부부가 온종일 함께 지내게 되어 상호 간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진다. 오히려 괴로운 일로 생각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상호 간에 공통의 경험이 증대됨으로써 부부 사이는 보다 풍부해져서 결혼생활에 도움이 경우가 많을 것이다.
미래의 가내 전자근무 가정을 차자 사람들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생활의 양식이나 노동의 형태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 틀림없다.
어떤 집에서는 종래와 별다름이 없는 형태로 서로의 일을 분담하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봉급을 받는 일을 하고 또 한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형태이다. 실제로는 역시 이와 같은 가정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은 프로그래밍의 일을 하고 아내는 자녀 양육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일을 집에서 하기 있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의 일을 돕고 남편도 아내의 수고를 덜어 주는 것도 역시 쉬어진다. 부부가 둘이서 한 가지 일을 분담하는 가정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공정을 서재에 놓인 조각 탁자 위의 화면으로 보면서 감시하는 것과 같은 일은 남편이 4시간, 아내가 4시간씩 교대로 맡는 것도 가능하다.
또 다른 집에서는 부부가 제각기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편은 세포생리학자이고 아내는 공인회계사로서 각각 자기의 전문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부부가 서로의 전문용어를 배운다거나 상대방의 전문분야에 관해 관심을 갖고 그 직업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직업과 개인의 생활을 완전히 떼어 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남편이든 아내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부터 상대방을 배제하는 일도 우선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문 조사를 계속해 나가면 바로 이웃집에는 부부가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일을 둘이서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남편은 파트 타임으로 보험의 계획과 입안을 하고 있으며 건축 조수의 일도 파트 타임으로 하고 있다. 아내도 남편과 교대로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일이 다양하여 서로에게 흥미도 갖게 된다.
부부가 각기 일하거나 또는 몇 가지의 같은 일을 함께 하고 있는 경우에는 남편은 아내에게서 아내는 남편에게서 배우는 경우도 많고 협력해서 문제해결에 임하며 서로 도움을 주게 된다. 그 결과 부부의 관계는 보다 친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직업 관계상 부부가 서로 함께 있기 때문이라고 하여 반드시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제1의 물결 시대의 대가족은 경제적인 생산의 단위이기도 했었다. 여기서는 부부가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대가족이 부부 상호의 신뢰 관계를 기르고 심리적인 의지가 되기에 알맞은 모델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으며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러나 제1의 물결 시대의 부부는 현대와 같은 교류가 적은 차가운 인간관계는 아니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함으로써 오늘날에 와서 보면 부러울 만큼의 친밀하고 뜨거운 인간관계가 생겨나 부부 사이의 사랑의 밧줄은 튼튼했었다.
즉 가내 근무가 이상으로 되어 가면 가족의 구성이 변할 뿐만 아니라 가족 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단적으로 말하면 부부에게 공통의 체험이 많아지며 부부 사이에 대화가 부활한다. 그리고 부부는 차가운 관계로부터 뜨거운 관계로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의가 새로운 문제로 나타나게 되고 '사랑+알파'라는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사랑 + 알파(love plus alpha)
제2의 물결 시대가 진전됨에 따라 본래는 가정에 귀속해 있던 온갖 기능이 전문시설에 맡겨지게 되었다. 교육은 학교에, 병자의 간호는 병원에 맡겨졌다. 이리하여 가정의 기능은 점점 줄어들어 낭만적인 사랑이 싹터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제1의 물결 시대에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조건으로서 일을 잘하는가, 병자의 뒷바라지를 잘하는가, 태어나는 아이들을 훌륭히 교육할 수 있는가, 함께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는가, 부지런한 사람인가 게으른 사람인가라는 것이 문제로 되었다. 실제 농가에서 며느리를 고르는 경우 무엇보다도 우선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은 '건강하고 부지런한가?' '병은 없는가?'라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 시대에 들어서 가정의 기능이 축소되자 가정은 이미 생산의 단위라는 사실도, 학교라는 사실도, 또 야전병동이나 보육원일 필요도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대신에 가정의 심리적인 모든 기능이 중시되어졌다. 결혼이란 인생의 반려자, 섹스, 따뜻함, 마음의 의지 등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정의 기능이 달라지자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져 갔다. 한 마디로 사랑이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사랑만 있으면 만사가 잘 되어 간다.'고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연애소설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계급이라든가 사회적 지위, 수입이라는 요소가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은 대서특필되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게 되었다.
장래의 가정생활이 가내 전자근무 체제가 시작되면 '사랑만 있으면....'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통용되지 않게 된다. 부부는 하루의 대부분을 따로이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으므로 성적 매력이라든가 심리적인 만족감, 혹은 사회적 지위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게 된다. 사랑에 새로운 알파가 요구되어진다. 성적 매력, 심리적인 만족감 외에 +알파 즉 두뇌의 명석함(조부모의 시대에는 근육이 자랑거리였지만 손자의 시대에는 지력이 자랑으로 되었다.), 성실성, 책임감, 수양 등 일에 관련된 능력이나 덕목이 요구되어진다. 미래의존 덴버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노래를 부르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좋다, 그대의 눈동자가
연분홍의 입술
다정함이 그대를 감싼다.
그대의 예쁘장한 손가락 끝은 키를 두들기며
컴퓨터의 화면을 조작한다.
그런 그대의 손놀림이 나는 좋다.
미래의 가정의 역할은 오히려 다양화하여 사회적으로도 여러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정의 역할이 변하면 거기에 수반하여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지며 사랑의 정의 그 자체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일하는 아이들
한편 가내 전자근무 체제 내의 아이들은 현재의 아이들과는 다른 성장 과정을 체험한다. 우선 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나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아이들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제1의 물결의 아이들은 철이 들면서부터 양친이 일하는 모습을 보아 왔다. 이에 대해 제2의 물결의 아이들, 적어도 최근 세대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피난장소에 격리되어 노동과는 관계가 없는 장소에서 자라고 있다. 아이들 대부분은 자기 부모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매우 막연하게밖에 알지 못한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회사의 중역이 어느 날, 아들을 회사에 데리고 갔다. 중역실에는 호화로운 융단이 깔렸고 조명은 간접조명이고 근사한 수위실까지 있었다. 점심때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나갔다. 예의 바른 웨이터가 시중을 들고 있고, 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소년은 집에 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집은 가난한데 아빠는 회사에 오면 이렇게 부자가 되는 거예요?" 현대의 아이들, 특히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활의 중요한 면을 전혀 모른 채 자란다. 그러나 가내 전자근무 체제의 아이들은 양친이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어느 연령에 도달하면 아이들 자신도 일을 하게 된다. 제2의 물결 시대에는 연소자 노동은 제한되고 있다. 최초에는 취로의 제한의 선의적인 필요에 의해서 제한되도록 되었지만 현재에는 오히려 젊은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부터 축출하는 시대착오적인 장치로 변모해 가고 있다. 노동이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이런 종류의 제한의 적용은 더 한층 어렵게 된다. 일에 따라서는 아동 취향의 것을 택해서 오히려 기술교육의 일환으로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이들이라 하지만 14,5세가 되면 상당히 고도의 것도 이해하고 복잡한 문제에 손을 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마 법적으로는 위법일 테지만 캘리포니아주의 어느 컴퓨터 가게에서 아직도 이에 치열교정기를 붙인 아이가 가정용 컴퓨터의 복잡한 구조를 훌륭히 해설하여 판매를 돕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있다.)
현대 미국에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년층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내 전자근무 체제의 작업장으로 그들을 통합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도 멀지 않아 닥쳐올 문제이다. 청소년의 범죄, 폭력, 정신병 등이 실업에 수반하여 파생한다. 이것은 전체주의적인 방법으로 청년들을 전쟁에 동원하든가, 혹은 강제노동에라도 몰아내지 않는 한 제2의 물결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가내 전자근무 체제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생산적인 역할을 다시금 청소년들에게 부여하기 위한 해결수단이 될 것이다. 멀지 않아 연소자들의 노동은 정치적인 과제로 되고, 연소자들의 노동시장 확대 운동이 전개되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그런 경우 연소노동자들이 경제적으로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호 대책이 새로이 강구되어야 한다.
전자 확대가족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 노동이 이루어지게 되면 가족의 형태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 확대가족'이라고도 말해야 할 것이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여러 대에 걸친 부부가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이른바 확대가족이란 것이 가장 일반적인 가족 형태였다. 혈연관계가 전연 없는 한두 명의 고아나 도제. 머슴 등을 포함한 확대가족도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가내 근무가정에는 남편이나 아내의 회사 동료가 함께 생활하는 일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상 단골이나 공급자 또는 이웃집의 아이들이 일을 배우기 위해 동거하는 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정과 직장을 겸한 생활 공동체를 육성하기 위해 제정된 특별법 하의 자그만 주식회사 같은 그러한 가족을 단위로 한 법인조직을 설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전자 확대가족의 형태가 일반화되어 갈 것이다.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생겨난 많은 생활 공동체는 급속히 붕괴해 버렸다. 생활 공동체와 같은 것은 고도의 산업기술 사회에서는 원천적으로 불안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가장 급속도로 붕괴한 것은 정신적인 연줄을 찾아 이루어진 생활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적인 접촉을 추구하여 고독과 싸우며 우정을 추구해 만들어진 생활 공동체에는 경제적 기반도 없이 이상사회를 지향한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이 많았다. 현재 성공하고 있는 생활 공동체는 이것과는 반대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경제적 기반을 갖춘 것들이다. 이상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 전망을 가진 자는 살아남은 것이다.
외부적으로 드러난 사명이 한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키고 필요한 경제적 기반도 제공해 주게 된다. 생활 공동체의 목적에는 신제품의 개발, 병원의 전산 사무처리, 보험회사의 데이터 처리, 통근 비행기의 시간표 작성, 카탈로그 작성, 기술에 관한 정보 서비스 등 갖가지 것이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내일의 전자 생활 공동체는 실현 가능하며 안정된 가족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전자 확대가족이 출현했다고 해서 그 밖의 가족 형태에 사회적 비난이 더해질 리는 없다. 또 전자 확대가족은 전시효과를 노려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경제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데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을 전자 확대가족이 담당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이 가족 형태는 아주 길게 계속될 것 같다. 대가족이 상호연관성을 깊게 하여 대가족망을 형성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대가족망, 혹은 대가족연합은 일을 하는 데도 서로 협력하고, 사회생활 면에도 협력을 한다. 전자 확대가족의 내부에서는 부부의 범위를 초월하여 성적 관계가 생겨나는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이성 간의 관계도 있으며 동성애도 있다. 아이들이 없는 집도 있으며, 아이들이 너무 많은 집도 나타날 것이다.
요컨대, 확대가족이 부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인의 약 6퍼센트가 확대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르면 이 숫자는 2배나 3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된다. 그 가운데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삼는 확대가족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미국만 해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 연애나 결혼의 유형, 친구 관계, 경제나 소비생활 등 그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된다. 전자 확대가족의 출현은 사람들의 심리나 인격 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새로운 형의 확대가족이 새 시대의 필연적인 가족 형태라는 뜻은 아니다. 그 이외의 가족 형태와 비교하여 그 좋고 나쁨을 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복잡해져 가는 미래의 사회에 적합한 수많은 새로운 가족 형태의 한 전형으로서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부모를 고발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가 공존하는 시대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비로소 찾아온다. 왜냐하면 가족 형태가 달라짐으로써 가족 하나 하나의 역할도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형태의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의 사회가 성립하면 그 사회의 역할분담, 즉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을 드러내게 된다. 그의 실현을 위해 모든 기관이 설치된다. 예를 들면 기업과 노동조합의 존재가 그렇다. 양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동자,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을 각각 명시하고 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책임이나 의무를 결정한다. 제2의 물결가정에서는 일가의 가장, 가사를 돌보는 사람, 아이들로 각각 그 역할이 정해져 있다. 핵가족이 붕괴하게 되면 사람들은 심한 충격으로 고통을 받게 되고 그에 따른 역할분담도 흔들리기 시작하여 이윽고 붕괴되기 시작한다.
베티 프리던은 '새로운 여성의 탄생: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충격적인 책을 써서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이후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핵가족 다음에 닥쳐올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남녀의 역할분담을 재규정하기 위하여 비통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남녀의 일의 분담, 법적. 경제적 권리, 가정 내에서의 책임, 나아가서는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등 온갖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록뮤직 잡지인 '크로대디: Crawdaddy'의 편집자 피터 노블러는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규칙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여자들에 대항해 남자들이 싸워야만 할 때인 것이다. 파괴해도 좋을 규칙들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사태도 좋아지지는 않는다."
핵가족 이외의 가족 형태가 증가되어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역할분담의 변경과 관련된 소송도 잇달아 제기될 것이다. 법적인 결혼절차를 밟지 않았던 부부가 이혼한 경우 두 사람의 재산은 어찌될 것인가? 인공수정으로 아내 이외의 여성에게 아이를 낳게 한 경우 그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자궁 사용료)은 법률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영국의 법정은 이것을 부정했다. 그러나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의문이다.) 동성애를 하는 여성에게 어머니의 자격이 있는가, 그녀는 이혼 후에도 아이들의 보호자일 수가 있을 것인가? (미국의 법정은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선량한 부모란 무엇인가? 콜로라도주 볼더의 법원에서 톰 한센이라는 24세의 '성난 젊은이'가 제기한 소송만큼 역할분담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도 없다. 한센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부모가 잘못을 범하는 것은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책임은 법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모가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35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자녀들이 부모의 위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일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가족
이러한 혼란과 동요의 배후에서 새로운 제3의 물결 시대의 가족 형태가 생겨난다. 제3의 물결의 가족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며 개인의 역할분담도 다양해지고 있다. 획일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다양한 가족 형태 속에서 자신의 기호에 알맞은 가족의 형태를 선택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제3의 물결 문명은 특정의 가족 형태를 그 구성원에게 억지로 강요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인생관에 의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가족 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일생 동안에 몇 가지의 가족 형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장밋빛 시대를 맞기 전에 변화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종래의 질서가 붕괴되고 사람들은 높은 차원의 다양성 앞에 당혹감을 느끼게 되어 그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 사람들은 해방되는 대신 과잉선택권 때문에 자신을 잃고, 상처를 받고, 슬픔과 고독에 잠겨 괴로워하게 된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의해서 시달리는 일이 없이 그것이 우리의 이익으로 작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 세금, 고용, 관습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변혁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가치관의 영역에서는 종래의 가족 형태가 붕괴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를 갖게 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죄는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매체, 교회, 법원, 정부는 죄의식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핵가족이라는 형태에 구속당하지 않고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기가 선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치관의 변화는 현실사회의 변화보다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다양화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힘과 동시에 그 사회가 빚어내는 관행의 윤리관이 아직도 충분히 몸에 배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다만 한 가지 가족 형태가 정상이라고 배워왔기에, 다른 형태는 상궤를 벗어난 것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약간 이상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좀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견해가 변하지 않는 한 핵가족에서 다음 단계로의 이행에는 필요 이상의 커다란 곤란을 수반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다양화된 가족 형태를 자유로이 선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법률, 세법, 사회복지정책, 학교제도, 주택기준, 나아가서 건축양식 등이 개선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은연중에 제2의 물결의 가족 형태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 여성,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남성, 독신 남성, 독신 여성(얼마나 좋지 않은 말인가), 집합 가족, 이혼자, 독신생활 또는 협동 생활을 하고 있는 미망인과 같은 이러한 사람들의 특수한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이와같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차별을 받아 왔다. 부엌은 신성한 장소다. 가사를 송고한 직업이라고 찬양하면서도 제2의 물결 문명은 가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충분히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가사는 생산적인 활동이며 아주 중요한 직업이다. 또한 경제활동의 일부로서 가사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상에 종사하는 것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혹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가사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경제적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눈을 가정 밖으로 돌려보면, 고용 면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활동을 하는 것은 남성의 역할이고 아내는 기껏해야 보조적인 수입을 벌어들인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동등한 독립된 존재로서 똑같이 취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완성하여 다양화한 가족 형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미국 등지에서 노동조합이 기득권으로 옹호하고 있는 선임자 우선의 승진요건을 완화하고 자유 근무 시간제를 채택하여 파트타임제의 노동조건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가족 형태에 적응하기 위한 근로제도가 나타나고 있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 최대은행의 하나인 시티뱅크가 여성을 관리직에 승진시키기 시작하자 남성 중역 가운데는 이 새로운 동료와 결혼하는 자도 생겨났다. 이 은행에서는 오랫동안 부부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규칙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 위크'지에 따르면 부부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부부는 회사에 있어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유익하기 때문에 바야흐로 증가 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멀지 않은 장래에 회사가 부부뿐만 아니라 일가족 모두를 고용하여 하나의 생산팀으로서 협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요구마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제2의 물결의 공장생산에서 비능률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앞으로의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공공자금을 지출해서라도 소규모의 실험을 장려하여 새로운 가족의 양상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시책을 실행하여 비로소 미래로의 정지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는 고통을, 최소한에 그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행의 과정에서 고통이 기다리고 있든 없든 과거의 제2의 물결의 상징이었던 핵가족에 대신하여 새로운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이 새로운 사회영역의 핵심적인 제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세대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하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새로운 문명에 적응할 가족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도 새로운 사회의 창조행위의 일부인 것이다.
제18장 기업 존립의 위기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사업조직은 대기업이었다. 오늘날 수천의 민간 혹은 공공의 거대기업이 온 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가 사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대기업은 위압적인 모습이다. 방대한 자원을 지배하고 수백만의 노동자를 고용하여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컴퓨터와 전용 제트비행기, 대규모의 사업계획과 투자,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대기업을 보고 있으면 확고부동한 군력이 영구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는 오늘날 대기업은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안에 들어가 보면 조직을 움직이는 남성들(때로는 여성들)의 견해는 다르다. 실제로 오늘날 최고경영자는 그 대부분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욕구불만에 빠져 있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핵가족, 학교, 대중매체 등 산업화 시대의 중요한 사회조직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또한 제3의 물결의 변화에 휘말려 동요되고 변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많은 경영자들은 그들이 부딪치게 된 사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춤추는 통화
기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세계 경제의 위기이다. 과거 200년 동안, 제2의 물결 문명은 세계를 하나의 통합된 시장으로 조성하려고 했다. 이 움직임은 전쟁이나 불황 또는 재해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둔화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세계 경제는 회복되었으며 규모 또한 더욱 성장하여 통합기능이 강화되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이 위기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왜냐 하면 이제까지 산업화 시대에 경험했던 모든 위기와 달리 이 위기는 단순히 통화만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전체 에너지 체계가 흔들리는 그러한 위기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 고조된 다음에 실업이 발생하는 것이 과거의 경향이었으나 현재는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종래와 달리 현재의 위기는 기본적인 생태환경의 문제나 새로운 기술, 생산 체제에 있어서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입과 직접 관련되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 위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본주의에서만 일어나는 위기가 아니라 사회주의 산업국가에서도 똑같이 겪고 있는 위기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산업 문명 전체의 위기인 것이다.
세계 경제의 격동으로 기업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고 경영자들은 전혀 생소한 환경 속에 내던져진 꼴이 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기업은 비교적 안정된 환경 속에서 기능해 왔다. 성장이 표어였다. 달러는 왕좌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화는 오랫동안 안정되어 있었다. 자본주의 산업 국가들이 미국의 뉴햄프셔주 브레튼 우즈에서 모였는데 그 결과로 설립된 IMF(국제통화기금)와 세계은행이라는 전후의 재정기구도, 또한 소련이 설립한 COMECON(동유럽 경제상호원조회의) 체제도 확고한 것처럼 보였다. 풍요를 향한 에스켈레이터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동향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경제는 '잘 조정되고 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말을 하다가는 조소를 받을 뿐이다. 카터 대통령은 농담으로 경제학자들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조지아주의 시골 점쟁이 말이 차라리 더 잘 맞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카터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었던 W. 마이클 블루멘덜은 "경제학자란 직업은 사전이든 사후이든 경제의 현상을 파악한다는 일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종래의 경제이론이 혼란을 일으켜 파탄상태에 있고 전후 경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목전에 두고 기업의 결정권자들은 증가하는 불확실성에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금리는 지그재그로 오르내리고 통화는 불안정하게 동요된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대량의 화폐를 사고 팔면서 통화의 동요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변동은 더욱 더 심해질 뿐이다. 달러화도 엔화도 카부티(일본의 전통적 민중 연극의 하나) 춤처럼 심하게 움직이고 유럽에서는 EX가 독자적으로('에쿠'라는 기묘한 이름의) 새 화폐를 발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 한편 아랍 여러 나라는 수십억이라는 미국 지폐, 이른바 오일달러를 처분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 금값도 기록을 깨뜨리면서 치솟고 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한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세계시장의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국경을 초월한 생산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또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트기 시대에 어울리는 통화체제가 형성되려 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위성 이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전자공학을 이용한 전 세계적인 은행조직망이 홍콩, 마닐라, 싱가포르 등을 순식간에 바하마 제도, 케이스맨 제도, 뉴욕 등과 연결하여 준다.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은행이나 아부다비 국립은행은 물론이고 뉴욕의 시티뱅크, 영국의 바클레이 은행, 일본의 스미토모 은행, 소련의 국립은행 등을 잇는 광범한 은행망은 한 나라 정부가 지배하지 못하는 통화와 신용을 낳고 '무국적 통화'라는 거대한 풍선을 만들어 냈다. 이 풍선이 언제 터져 벌릴지 몰라 모두가 떨고 있는 것이다.
무국적 통화의 대부분은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은행이나 개인이 차익을 노려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손을 떠난 유로달러(Eurodollar)이다. 1975년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유로달러에 관한 글 가운데에서 나는 이 새로운 통화는 경제라는 게임에서 트럼프의 와일드카드, 즉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어떤 카드로나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쓰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대량의 유로달러가 국경을 넘어 이곳저곳에 출몰한다. 그리고 각지에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거나 국제수지 균형을 혼란시키거나 통화가치를 위태롭게 한다.' 당시 유로달러의 총액은 1800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었다.
1978년에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는 당장 공황이 밀어닥치고 있는 듯한 어조로 유로달러가 4000억 달러 상당의 유로달러, 유로마르크, 유로프랑, 유로길더, 유로엔 등으로 증대했다고 썼다. 국제통화를 다루는 은행은 현금유보가 없어도 무제한으로 크레디트를 발행할 수 있고 매우 싼 금리로 대출할 수도 있었다. 오늘날 유로달러는 총계 1조 달러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기업을 성장시킨 제2의 물결의 경제체제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시장이나 통화, 정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단위의 경제구조는 새롭고 국제적인 전자공학 시대의 '유럽의 포말 통화'를 견제하거나 규제할 능력이 없다. 이 제2의 물결세계에 맞추어 설계된 경제기구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실제로 범세계적 규모의 범주 안에서 세계의 무역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그것이 거대기업의 이익을 지켜 왔지만 이제는 그 테두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당장이라도 와해 될 듯한 상태이다. 세계은행, IMF,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등 모두가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자기들이 관리할 수 있는 새 기구를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개발도상국이나 오일달러를 무기로 군림하는 아랍국가들이 내일의 금융 제도 속에서 발언권을 얻으려고 IMF에 대항하는 독자적인 통화기금의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달러는 왕좌를 박탈당하고 세계 경제는 여기저기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증상과 함께 에너지나 자원이 갑자기 부족하거나 과잉공급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나 노동자, 경영자의 자세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또 무역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산업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오늘의 기업은 고전하고 있다. 경영자들은 기업이 지닌 힘을 포기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 이윤과 생산, 게다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고조되고 있는 예측불허의 상황, 고조되는 대중의 비판, 적대적인 정치압력 등에 직면하여 지성적인 경영자들 중의 대부분이 자기 기업의 목표나 기구, 책임, 존재 이유 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대기업의 다수가 전에는 안정적이었던 제2의 물결 구조가 눈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 존립의 위기와 유사한 어떤 것을 경험하고 있다.
가속화의 경제
기업 존립의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있는 것은 사태변화의 빠른 속도 때문이다. 이러한 빠른 속도의 변화가 기업경영에 하나의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여 생소한 환경에 벌써부터 신경이 곤두선 기업 임원들에게 더욱 더 신속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시간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금융 면에서 말하면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거래속도가 가속적으로 빨라졌다. 심지어 시차에서 생기는 이익을 찾아 점포의 위치를 옮기는 은행까지 생겼다. 국제적인 금융잡지인 '유로머니(Euromoney)'는 '시차를 경쟁의 무기로서 이용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와 같이 격렬히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대기업은 어쩔 수 없이 갖가지 통화를 그것도 1년이나 90,7일이라는 기간을 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하룻밤이라든가 시, 분의 단위로 대차 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임원실에는 '국제현금담당'이라는 새로운 간부가 등장했다. 24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컴퓨터 카지노를 움직여서 최저의 이율, 가장 유리한 통화거래, 가장 신속한 회전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현금담당 간부가 맡은 일이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이와 똑같은 가속화가 진행되고 있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지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품시장에 즉각 대응해야 한다. 3대 네트워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책임자는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을 가려내어 중단시키는 일을 가속화하고 있다. 6~7주 또는 한 시즌의 상황을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예를 하나 더 들자. 비리스틀 마이어즈사가 존슨 & 존슨(J & J)사의 타이레놀이란 진통제와 경쟁할 악품의 염가판매를 결정했다고 하자. J & J사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어림도 없다. 놀랍도록 단시간에 타이레놀의 소매가격을 인하할 것이다. 도저히 몇 주간이나 몇 개월을 우물거리고 있을 수 없다.' 이 잡지의 문장 자체가 숨 막힐 듯이 기술되어 있다.
잘 조사해 보면 기술, 제조, 연구, 판매, 연수, 인사 등 그 밖에 기술의 모든 부서에서 그와 같은 결정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소 진행 정도는 느리지만 이런 면에서 사회주의 산업국가도 같은 과정을 밟고 있다. COMECON은 전에는 5개년 계획을 세워 5년마다 가격을 수정해 왔으나 최근에는 세상의 빠른 사태 진전에 따라가기 위해 해마다 가격수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이 수정은 6개월마다 하게 되었다. 대차가 증가하고, 매매의 빈도가 늘고, 소비 패턴이 오래 지속되지 않게 된다. 일시적인 유행이 늘고 끊임없이 새 업무절차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연수기회가 증가한다. 계약방법이 줄곧 바뀌고, 교섭이 많아지며 법률 사무가 증가한다. 소매가격의 변동, 근로자의 이직률이 높아지고,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프로젝트와 같은 임시적인 조직도 증가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이런 경향을 더욱 조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을 에워싸는 상황은 극히 위험한 것이 되어 인간의 신체에서 예를 든다면 고단위 심장 자극제를 주사한 듯한 고도의 흥분상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갖가지 압력이 증대하는 가운데 기업가, 은행가, 회사 중역 등이 자기 업무에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제2의 물결의 안정기에 자란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가속적으로 밀어닥치는 변동의 물결에 파괴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탈대중화의 사회
그들이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고 당혹해하는 것은 산업화 시대의 대중사회가 파탄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래도록 산업 대중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도록 훈련되어 왔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의 관리자들은 대량생산은 가장 진보되고 능률적인 생산방법이라고 배웠었다. 대량시장은 표준화된 상품을 필요로 하고 대량판매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획일적인 노동자 '대중'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은 자극에 의해서 똑같이 동기가 부여된다고 배웠었다. 따라서 유능한 관리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고 배워왔다. 사실 이 사고방식은 제2의 물결의 성황하에서는 대체로 옳았었다.
오늘날 제3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한 뒤부터 기업관리자들은 종래의 사고방식이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업은 원래 대중사회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중사회가 탈대중화를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 생산, 가정생활뿐 아니라 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마저도 변화가 잦고 보다 작은 단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대량시장은 분열되어 꾸준히 그 수가 증가하고 변화되어 소시장이 되었다. 소시장은 상품의 다양한 모델, 타입, 크기, 색깔, 고객의 주문에 따를 수 있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확대할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예전에 전미국 가정에 똑같은 흑색수화기를 공급하여 거의 성공시켰던 벨 전화회사는 현재 갖가지 부품의 조립으로 1000종이 넘는 전화기를 제조하고 있다. 색깔은 핑크도 있고 백색도 있다. 또 맹인용 전화, 성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전화, 공사현장용 소음방지 전화기 등 여러 가지이다. 백화점은 원래 시장을 대량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제는 한 백화점 안에 수많은 '전문점'을 두게 되었다. 미국의 체인스코어 형식의 백화점으로서 유명한 페더레이티드 백화점 부사장 필리스 스웰은 "앞으로는 전문화가 더욱 더 진행되어 여러 가지 특색을 지닌 백화점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국가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종류가 자꾸 늘어나고 있는 것은 기업이 소비자를 조종하여 있지도 않은 수요를 만들어 내는 별로 의미도 없는 상품을 비싼 가격에 팔아 그것으로 이윤을 증가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이 설명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상품이나 서비스 종류의 다양화는 탈대중화해 가는 제3의 물결사회의 수요나 가치기준, 생활양식의 다양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성을 촉진시키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노동시장의 분화이다. 특히 화이트칼라와 서비스 부문에서 새 직종이 잇달아 생겨나고 있다. 신문의 구인광고에는 '우드프로세싱에 탁월한 비서'라든가 '소형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말이 나온다. 서비스업에 관한 어떤 회의 석상에서 어느 심리학자가 소비자 보호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변호사, 성치료사, 심리화학요법사, 민원조사관 등 무려 68종에 이르는 새 직종을 열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직업의 상호교환성을 잃어감에 따라 인간의 상호교환성도 잃어가고 있다. 노동자는 누구하고나 즉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기를 거부하며 직장에서도 자기들의 인종, 종교, 직업, 성별, 문화 그리고 개인의 차이점을 강렬히 의식하기 시작했다. 제2의 물결 시대를 통하여 대중사회에 '통합'과 '동화'를 위해 싸웠던 집단이 이제는 차이점의 해소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각자의 독특한 특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제2의 물결의 기업들은 아직도 대중사회에서 기능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종업원이나 고객 사이에서 계속 높아지고 있는 다양성의 조류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탈대중화현상이 가장 현저히 나타나고 있는 곳은 미국인데 다른 나라들에서도 같은 경향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영국은 한때 고도의 동질사회였으나 현재는 파키스탄, 서인도 제도, 키프로스, 우간다, 터키, 스페인 등으로부터의 이민이 뒤섞여 영국인 자체가 동질성을 잃어가고 있다. 또 일본인, 미국인, 네덜란드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 관광객이 밀물처럼 밀려오자 미국식 햄버거 스탠드나 일본의 튀김 레스토랑 등을 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상점의 창문에는 '스페인어를 합니다.'라는 표지가 나붙게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소수민족은 그 주체성을 주장하면서 오랫동안 거부당해온 일할 권리, 정당한 수입을 얻을 권리, 기업에서 승진할 권리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캐나다 에스키모족, 미국의 흑인과 치카노(Chicano)라 불리는 멕시코계 미국인,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아주 점잖다고 생각되어 왔던 동양계의 소수민족까지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동해안의 메인주에서 극서부지방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은 '붉은 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부족 전래의 토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OPEC 국가들에게 정치원조와 경제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오랫동안 가장 동질적인 공업국이라 생각되던 일본에서도 탈대중화의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의 한구석에 밀려나 있던 아이누(Ainu)도 소수집단의 대변자로서 돌령ㄴ히 발언하게 되었다. 재일 한국인도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일본 사회는 현재 급속히 통일성을 잃고 분열되어 가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덴마크인과 이민노동자들 사이에, 또 가죽 잠바를 입은 오토바이족과 장발족 젊은이들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벨리에에서는 남동부에 사는 왈룬계 주민, 플랑드르 지방의 주민, 브뤼셀 지방의 주민 사이에 중세 이래의 옛 분쟁이 재연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퀘벡주의 분리 독립운동이 시작되어 대기업은 몬트리올의 본사를 폐쇄했다. 그리고 캐나다 전역에서 영어를 사용하던 기업 간부들이 서둘러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중사회를 형성하고 있던 어려 세력들이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도의 기술 체제하의 민족주의는 지역주의로 대체되고 여러 인종을 하나의 도가니에 넣어 융합시키려던 힘 대신에 자기들 인종만으로 뭉치자는 새로운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정보 매체도 대중문화의 창조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너지 형태의 다양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에너지 형태의 다양화나 대량생산의 다음 단계를 노리는 움직임 등과 병행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 연관되어 하나의 전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회의 생산조직이 사기업이든 사회주의 기업이든 앞으로는 이 새로운 구조 안에서 기능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대중사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두고 충격을 받아 혼란하기만 할 것이다.
기업의 재평가
이런 상황에서 기업 존립의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기업의 구체적인 이런저런 방침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려는 움직임뿐 아니라 이제까지 서술해 온 불안정한 배경 밑에서 기업의 목적 자체를 철저히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 규모로 싹트기 시작한 점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지의 편집자 데이비드 유잉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미국 대중의 기업에 대한 분노는 놀라운 기세로 고조되고 있다.' 유잉은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의 한 연구원이 1977년에 한 조사를 인용하면서 이 조사보고서가 '기업계에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대상이 된 소비자 중 거의 절반이 10년 전에 비해 시장에서 손님 대접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5분의 3은 상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대답하고 반수 이상의 사람이 상품의 보증을 전혀 신용하지 않는다고 회답하고 있다. 유잉에 따르면 어느 사업가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마치 캘리포니아의 산 안들레아스 절벽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언제 지진을 당할지 몰라 내 정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유잉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더욱 나쁜 것은 새로운 기술과 기업의 새 기획에 싫증을 내거나 초조해하거나 분노를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이유 없는 돌발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자꾸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1급 회계사무소의 하나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사의 간부 존 C. 비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기업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대공황이래 최저이다. 미국의 기업가나 공인회계사는 원점에서 재출발하여 일을 재검토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기업의 업적도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척도로 측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북유럽이나 서유럽 그리고 사회주의 산업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도요타 자동차의 간행물에 쓰여 있듯이 '이제까지 볼 수 없던 유형의 강력한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기업이 일상생활을 파괴한다고 비판하는 운동이다.'
과거에도 기업이 심한 고역을 당했던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들려오고 있는 불만의 소리가 과거의 불만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그것이 소멸되고 있는 제2의 물결 시대 산업주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이다. 제2의 물결 시대 산업주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제3의 물결 문명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이다. 제2의 물결 문명에의 기업은 어디까지나 경제활동의 단위라고 생각되었고, 기업에 대한 비판은 주로 기업의 경제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즉 기업은 노동자에게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비싼 값에 팔고 있다. 카르텔을 결성하여 가격을 조작한다. 불량상품을 만든다는 등의 제도적인 경제활동을 일탈한 몇몇 기업의 범죄행위가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혹한 비판자라도 기업 그 자체를 본시 경제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사실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업 비판가들은 전혀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경제가 의도적으로 정치나 도덕 등의 분야에서 분리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의 책임을 경제활동뿐 아니라, 대기오염으로부터 회사 간부의 스트레스에 이르는 온갖 부차적 영향에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기업은 석면 공해를 야기시키고 있다든가 가난한 사람들을 약품 테스트의 실험재료로 만들고 있다든가 비산업화 세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해서 비판 당하고, 인종차별, 남녀차별, 비밀주의, 기만 등에 관해서도 책임을 추궁당하게 되었다. 또 칠레의 파시스트 장군들이나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주의자들, 이탈리아 공산당 등 평판이 좋지 않은 정치체제나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비난이 타당하느냐(대개 타당하지만)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기업의 개념이 종래의 그것과는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제3의 물결과 함께 전혀 새로운 기업의 존재를 찾는 요구가 일고 있다. 기업의 책임은 이제 상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올리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에 환경, 도덕, 정치, 인종, 성별, 사회 등 온갖 복잡한 문제해결도 공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이제 극히 한정된 경제기능에만 집착하는 존재가 아니라 비판의 소리나 법률 그리고 이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경영자들의 자극을 받아 다목적인 조직으로 되어가고 있다.
다섯 가지 압력
기업의 존재를 재평가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떻게든 해야할 필연적인 과제이다. 이 재평가는 실제의 생산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섯 가지의 혁명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기업을 새롭고 다면적이고 다목적의 형태로 재편성하는 데에 힘을 빌리고 있는 다섯 가지 변화란 생물체계를 포함한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 사회에 있어서 여러 세력 사이에 이루어지는 세력 관계의 변화, 정보가 수행하는 역할의 변화, 정부조직의 변화, 도덕 기준의 변화이다.
이들 새로운 압력 속에서 제일 먼저 오는 것은 생물 체계의 변화이다.
미국에서 제2의 물결이 성숙기를 맞은 1950년대 중반, 세계인구는 27억 5000만이었다. 현재는 그것이 40억을 넘고 있다. 1950년대 중반 지구상의 전 인류가 소비하고 있던 에너지는 영국식 열량 단위로 연간 8만 7000조 Btu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는 26만조 Btu가 넘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50년대 중반에 아연과 같은 주요원료의 소비량은 연간 270만 톤이었는데 현재는 560만 톤에 이르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측정하더라도 자원에 대한 수요는 자꾸 증가할 뿐이다. 그 결과 생물체계는 위험신호를 보내어 우리를 경고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기오염, 사막화 현상, 해양오염, 기후의 미묘한 변화 등이 진행되어 그것을 무시할 경우 우리에게는 파멸이 온다. 우리가 과거의 제2의 물결 시대와 같은 방법으로 생산을 계속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경제적인 생산활동의 중요한 담당자가 기업이므로 기업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생산자 역시 기업인 것이다. 만일 앞으로 경제성장을 계속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정 지구상에서 생존을 계속하고 싶다면 미래의 경영자들은 기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자진해서 이 책임을 질 생각이 있든 없든 간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생물체의 여러 가지 조건의 변화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기업은 경제조직임과 동시에 환경보호단체가 되도록 개편되어 갈 것이다. 기업을 개편하는 것은 공상적 사회개혁론자들도 아니고 혁신단체나 환경학자도 관료도 아니다. 생산과 생물체계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중요한 변화에 의해서 기업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둘째의 압력은 기업이 존립하고 있는 사회환경에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이전보다 훨씬 조직화되어 있다. 옛날에는 각 기업이 미조직사회라고 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기능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사회체계가 새로운 조직화 단계로 급속히 이행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 경향이 짙다. 잘 조직되고 자금도 충분히 가지고 있는 단체나 기관, 노조, 집단들이 서로 작용하고 얽혀서 커다란 하나의 세력이 되어 사회체계 속에서 우굴거리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는 137 만 개의 회사가 있는데 이들 회사는 대학을 포함한 9만여 개의 학교, 33만여 개의 교회, 1만 3000여 개의 전국규모의 단체, 그 밖의 지역 수준의 환경단체, 사회단체, 종교단체, 체육단체, 정치단체, 인종단체, 민간단체 등과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주의 주장과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법률사무소가 14만 4000개나 있다.
이와 같이 많은 단체들이 가득한 사회영역에서의 모든 기업의 행동은 무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은 물론이고, 전문 참모진들을 거느리고 간행물을 발간하며 정치체제에 연줄을 가지고 전문가나 변호사 등을 고용할 자금을 가지고 있는 조직집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이와 같이 다수의 단체가 늘어선 사회영역 안에서의 기업이 내리는 결정은 엄격한 감시를 당하게 된다. 실업이라든가 환경파괴, 가제 이전 등 기업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오염'은 즉시 적발되고 경제상의 '제품'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건, 즉 사회적 '제품'에 대해서도 전보다 훨씬 큰 책임을 지도로 압력이 가해지는 법이다.
셋째 압력은 정보영역의 변화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화가 진행됨에 따라 기업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회제도가 균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정보교환이 더욱 절실해진다. 제2의 물결의 생산방법 밑에서 기업정보는 원료와 동등한 필수품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거대한 진공소제기처럼 데이터를 흡수하고 그것을 가공처리하여 더욱 더 복잡한 방법으로 타기업에 전한다. 정보가 생산에 중요성을 띠게 됨에 따라 '정보담당 관리자'가 산업계에서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기업은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정보가 새로이 중요성을 갖게 됨에 따라 기업 데이터의 관리를 둘러싸고 분쟁이 일게 된다. 정보를 좀더 일반에게 공개하라는 투쟁이나 이윤을 공개하라는 요구(예를 들면 석유회사의 생산량이나 이윤 등), '거짓 없는 광고'라든가 '대출의 진상'을 공개하라는 압력 등이 나타난다. 왜냐 하면 새로운 시대에는 정보의 영향이 환경에서 오는 영향이나 사회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어 기업은 경제적 생산자임과 동시에 정보의 생산자로도 간주되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넷째 압력은 정치와 권력체계에서 오는 것이다. 사회의 다양화 현상과 급속한 변화는 행정부의 엄청난 복잡화를 초래하고 있다. 사회가 여러 층으로 분화됨에 따라 행정부의 분화도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기업과 관련되는 행정기관도 잇달아 전문화하고 있다. 더구나 각 정부 부서들은 서로 조정이 미치지 않아 각기 세력권을 주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는 혼란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다.
걸프 석유회사의 제인 베이커 스페인 부사장은 '10년이나 15년 전에는 EPA, EEOC, ERISSA, OSHA, ERDA, FEA 등과 같은 정부 기관은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뒤에도 정부기관은 이들 맡고도 계속 탄생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각 기업은 지역, 지방,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치, 때로는 국제정치에도 말려드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기업이 내리는 중요한 결정은 물건의 생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어도 간접적인 정치적 효과도 낳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의 책임도 져야 한다.
제2의 물결 문명이 쇠퇴하고 그 가치체계가 붕괴됨에 따라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 대하여 다섯째의 압력이 가해지게 되었다. 그것은 고도의 도덕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압력이다. 종래에는 '정상'이라고 생각되던 행위가 갑자기 부패되었다든가 부도덕하다든가 스캔들이라고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록히드사에서 뇌물을 받은 일로 일본의 내각이 무너지고 남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올린사가 기소당하기도 했다. 걸프 석유회사의 회장도 뇌물 스캔들 때문에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은 영국의 디스틸러즈사나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DC-10 사건 등 모두 도덕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되었다.
기업의 윤리적 자세가 사회의 가치기준에 대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나 사회적 체계가 끼치는 영향과 다름없이 중요한 영향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업은 도덕적 효과도 '제조한다'라는 생각이 더욱 더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생산활동을 둘러싼 물질적, 비물질적인 다섯 가지 조건의 변화에 의해서 기업이란 경제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제2의 물결의 교과서적 관념은 옹호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생산이든 이윤이든 그 경제기능을 최대화하는 것에만 전심하는 것은 이제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생산'이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결정적으로 확대되어 기업활동의 직접적인 결과뿐 아니라 부차적 효과나 장기적 효과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기업의 '제품들'이 증가된 것이다. 그리고 그 '제품'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었다. 제2의 물결 시대의 경영자들이 상상도 못했던 환경, 사회, 정보, 정치, 도덕과 같은 각 분야에서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기업의 목적은 이와 같이 단수에서 복수로 바뀌었다. 단순히 다목적 기업이라는 선전 문구가 아닌, 기업의 주체성과 자기규정 면에서 복수의 목적을 갖게 된 것이다.
갖가지 기업의 내부에서 과거 제2의 물결 시대에는 단 한 가지 목적만 추구하던 기업들과 제3의 물결 시대의 생산조건에 대처하여 본래의 다목적 기업을 겨냥한 싸움을 준비한 기업들 사이의 내부적 투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다목적 기업
제2의 물결 문명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기업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의료 외에도 경제기능을 가진 병원이라든가, 교육 이외에 정치적 기능을 수행하는 학교라든가, 거대한 비경제 기능, 또는 '초경제' 기능을 가진 기업 등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은퇴한 헨리 포드 2세는 전형적인 제2의 물결사상의 소유자인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업은 특히 사회의 경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지 기업활동과 관계없는 사회적 요구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헨리 포드나 다른 제2의 물결의 옹호자들이 생산조직의 재정립에 저항하고 있는 한편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교묘히 그 용어나 방침을 변경하기 시작하고 있다.
상황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입으로는 멋진 말을 하고, 선전 문구도 새로운 것을 노래하면서도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회적 책임을 깨달은 새 시대라는 표어를 내건 아름다운 선전 팸플릿이 '노상강도 귀족'으로 불려온 탐욕스러운 기업을 은폐시켜 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에 의해서 초래한 새로운 여러 가지 압력에 부응하도록 기업의 조직, 목표, 책임 등이 개념을 재평가하는,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어형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수없이 많다.
이를테면 대석유회사 아모코사의 간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장의 입지선정에 있어 우리 회사는 통상적인 경제적 평가뿐 아니라 그 지역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상세히 조사한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주위의 공공시설에 미치는 영향이라든가 지역의 고용상황, 특히 소수민족의 고용조건에 미치는 영향 등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침이다."
기업합병인 경우에서도 미국 최대의 컴퓨터 제조회사의 하나인 컨트롤 데이터사의 경영자는 재정적, 경제적인 요인뿐 아니라 합병이 가져다주는 '관련 요인', 즉 사회적 효과라든가 종업원에 미치는 영향, 컨트롤 데이터사가 지역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검토하고 있다. 또 많은 회사가 공장을 워싱턴이나 세인트폴, 미니애폴리스의 중심에 건설하여 소수민족 고용을 촉진하고 쓸쓸해지기 시작한 도심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컨트롤 데이터사는 자사의 사명에 관하여 '시민 생활의 질을 높이고 평등을 촉진하며 잠재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 기업으로서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파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국가정책 중에서 여성과 유색인종의 지위 향상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현재 기업 중에는 이런 면에서 '적극적 행동'을 취하는 경영자에게 경제적 포상을 한다는 과감한 시책을 내놓은 곳도 있다. 일류식품회사 필즈버리사에서는 3개 생산부문별로 다음 해의 판매계획과 함께 여성과 소수민족의 고용, 연수, 승진계획안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경영목표와 연결되게 된 것이다. AT & T 회사에서는 모든 관리직이 매년 근무 평가를 받는데 이러한 진취적인 행동목표를 달성했느냐의 여부가 좋은 평점을 받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 뉴욕의 케미컬 은행에서는 지점장의 업적평가의 10~15퍼센트가 사회적 업적, 즉 지역공동체의 임원으로 일했다든가 비영리 단체에 대한 대출을 해주었다든가 소수민족의 고용이나 승진 등에 공헌했느냐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체인조직에 의해서 수많은 신문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가네트사의 사장 앨런 뉴하드는 편집인들과 체인에 가입한 지방 발행인에 대해 '보너스를 사정할 때는 이들 사회적 묙표의 달성도에 따라 결정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면을 담당하는 임원들의 지위와 발언권이 최근에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다. 어떤 회사는 사장 직속으로 보고서를 내기도 하고 중역회의 안에 새로운 기업 책임을 규정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한다.
기업이 사회적 요구에 민감해진 것은 반드시 실질적인 면 때문만은 아니다. 호프만 라 로슈의 미국내 자회사에서 지역사회문제의 최고책임자인 로즈마리 브루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선전용인 것도 있다.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업경영자들은 어느 때는 마지못해서, 어느 때는 항의나 소송에 의해서, 혹은 정부의 개입에 대한 공포에서, 또 어느 때는 좀더 순박한 동기에서 새로운 생산조건에 적응하고, 기업이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다양화하는 '순수익'의 내용
현재 등장하고 있는 다목적 기업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수한 경영 간부를 필요로 한다. 경영진은 먼저 많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비중을 결정하며 상호 간의 관련성을 규정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승효과가 있는 경영방침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요소뿐 아니라 많은 변수를 동시에 확인하여 장래에 밝은 전망을 세울 수 있는 경영방침이 필요하다. 한 가지 일만을 생각하는 종래의 제2의 물결의 경영자들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나갈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목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전제하에서 업적평가방법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종전의 경영자는 경제적인 '순수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되어 왔으나 제3의 물결기업은 서로 관련되는 복수의 순수익, 즉 사회, 환경, 정보, 정치, 도덕과 같은 각 분야에서의 이익에 대해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복잡한 요구에 직면하여 현대의 경영자들은 대부분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제3의 물결 시대의 경영에서 필요하게 될 지적 수단이 결여되어 있다. 기업의 이윤을 계산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경제 외적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가를 산정하는 방법 등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계사무소인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사의 존 C. 비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영자는 공적 책임을 산정하는 기존의 기준이 전혀 없는 분야에서 기업활동을 책임지도록 요구당하고 있다. 공적 책임이라는 말의 개념마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뜻에서 '공적 책임(accountability)'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명확히 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었다. accountability라는 말은 금전처리에 관한 보고서의 의미를 지닌 account라는 말에서 파행되고 있는데 회계 보고의 개념 자체가 이전의 좁은 경제적 의미의 범주를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컨설팅 회사인 휴먼 리소시스 니트워크사는 미국의 대기업 12개사의 협력을 얻어 기업이 '초경제적' 목표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전체산업에 공통된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경제외적인 여러 목표를 기업의 업무계획과 통합시킴과 동시에 기업이 '초경제'적 업적을 측정하는 방법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쥬어니터 크레프스 상무장관이 "정부는 솔선해서 '사회업적지수'를 만들어 기업이 그들의 업적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하여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럽에서도 같은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 환경사회문제연구소의 마이놀프 디르케스와 로브 코포크의 자료에 따르면 '유럽의 대기업 또는 중규모의 기업 중에서 약 20개사가 정기적으로 사회적 업무보고를 발표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100개 이상의 기업이 사내의 경영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사회적 업무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들 보고서 중에는 공해와 같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고의로 피하고 자사가 시행하고 있는 '훌륭한 업적'만을 나열한 선전문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고서는 매우 정직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하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대규모 식품회사인 미그로스 게노센샤프트사의 사회보고서는 여자종업원의 임금이 남자보다도 낮다는 사실, 대부분의 일이 '극단적으로 권태로운' 것이라는 사실, 과거 4년 동안에 이산화질소의 배출량이 늘어났다는 사실 등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전무이사 피에르 아르놀은 '목표와 현실의 차이를 지적하는 것은 기업으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STEAG라든가 자아르베르그베르케사와 같은 회사는 특정한 사회적 복지사업을 위해 경비를 지출하는 선구가 되었다. 이만큼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 베르텔스만사라든가 복사기 제조업체인 랑크 제록스사, 화학약품 제조업체인 훽스트사 등은 일반에게 공개하는 사회적 데이터의 테두리를 과감하게 확대하고 있다.
스웨덴이나 스위스의 기업, 서독의 도이치 셸사 등은 더 진보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도이치 셸은 연차보고서를 중지하고 '연차사회보고서(Annual and Social Report)'라는 것을 발행하고 그 안에서 경제적인 데이터와 함께 초경제적 데이터를 서로 관련시키면서 공표하고 있다. 디르케시와 코포카가 '목표에 대한 회계와 그 보고'라고 이름한 셸사의 방식은 그 경제적 목표와 함께 환경적인 목표, 사회적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정하고 그에 할당할 경비를 기록하고 있다.
셀사는 기업목표로서 다섯 가지의 포괄적인 목표를 내걸고 잇는데 순수한 의미에서 경제목표라 할 수 있는 '정당한 투자수익'을 얻는 것은 그 목표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경제목표나 경제 외적 목표에도 기업 결정에서는 '균등한 비중'을 두도록 명기하고 있다. 목표달성도의 수지결산을 한다는 방식에 따라 기업은 초경제적 목표를 명확히 정하고 그 달성기한을 정하여 그것을 일반이 검토할 수 있게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이론적 수준에서 고찰하면 영국의 버밍엄대학 회계학 교수 트레버 갬블링은 그의 저서 '사회회계학'에서 이미 사회지표나 사회회계의 방식을 개발하고 있는 사회학자들의 업적과 경제학자나 회계사의 업적을 통합하여 회계의 공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델프트대학 경영대학원의 코르넬리우스 브레보르 학장은 기업행동을 사정하는 다각적인 기준을 고안했다. 이런 것이 필요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에 있어서의 가치 기준이 크게 변하여, 그중에서도 '경제적 생산지향'이 약화되고 '전체적 복지지향'이 강화된 경우를 들 수 있다고 브레보르는 말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기능별 전문화에서 관련 학문의 종합적인 제휴방식'으로의 이행도 들고 있다. 이러한 변동이 기업이라는 것에 관한 개념을 좀더 다면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할 필연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브레보르 교수는 기업의 업적을 평가하기 위한 32개의 기준을 들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소비자, 주주, 노조와의 관계로부터 환경보호단체와 경영진과의 관계 등이 열거되고 있다. 그러나 브레보르 교수에 따르면 장래의 기업이 자체평가하는 경우의 보조변수는 이들 32개 부문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제2의 물결경제의 하부구조가 붕괴되고, 탈대중화가 촉진되고, 생태계가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사회 속의 조직화가 고도로 진행되어 생산을 둘러싸고 정보체계를 비롯하여 정치적, 윤리적 조건이 바뀜에 따라 제2의 물결의 기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생산의 의미와 생산활동을 해온 조직 그 자체의 의미를 철저하게 재검토하여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것이 끝나야 비로서 장차 새 유형의 기업으로 이행될 수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대학의 경영학 교수 윌리엄 핼럴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했을 때에 봉건적 장원이 기업으로 대체되었듯이 낡은 형태의 기업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경제조직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조직은 경제적 목적과 초경제적 목적을 결합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경제적 이익에만 사로잡히지 않는 복수의 순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기업의 변화는 사회체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보다 큰 변화의 일부로서 일어난다. 그것은 기술영역과 정보영역에 관하여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모두 하나가 되어 거대한 역사의 움직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거대한 구조들만이 아니다. 일반인의 일상생활도 행동 양식도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문명의 심층적인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의지로 삼고 있는 규범을 모두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