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인생을 열어나가라 2
제4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정신 양성법의 7원칙
제5부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제4부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는 정신 양성법 7원칙
12. 당신의 생활을 전환시키는 몇 마디의 말
몇 해 전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배운 바, 최대의 교훈은 무엇인가?'라는 라디오 프로에 회답을 요청받은 일이 있다.
이것은 간단했다. 내가 배운 가장 귀중한 교훈은 생각한다는 것의 중요성이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면 당신의 인품을 알게 된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정신 태도는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엑스 요소이다. 에머슨도 '그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그 사람이다.'라고 했다. 사실 그 말대로이다.
우리가 덤벼들어야 할 최대의 유일한 문제는 옳게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일 이에 성공한다면 온갖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열려 가는 것이다. 로마 제국을 통치한 위대한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불과 몇 마디 말로 요약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몇 마디의 말로 --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즐거운 생각을 하다면 우리는 즐겁다. 또한 비참한 생각을 하면 비참하게 된다. 또한 무서운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 병적인 생각을 하면 병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실패를 생각하면 실패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 연민에 빠지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피하고 멀리하게 된다. 노르만 빈센트 피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생각 그 자체가 그 인간인 것이다.'
나는 온갖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낙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불행스럽게도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문제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걱정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한다는 것과 고민한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이제 그것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뉴욕에서 교통이 혼잡한 거리를 횡단할 때, 언제나 나는 자신의 문제의 본질을 알아내어 조용히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번민한다는 것은 미친 듯이 무익한 원의 테두리 안을 빙빙 도는 일이다.
인간은 그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무엇이든 마음을 쓴다. 그러면서도 가슴에는 카네이션을 달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할 수가 있다. 나는 로우얼 토머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제1차 대전의 알렌비 로렌스 작전의 유명한 필름을 처음으로 공개했을 때 그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와 그의 조수들은 각 방면의 전선에서 많은 전쟁 영화를 제작했는데, T. E. 로렌스와 그 다채로운 아라비아군의 활약과 알렌비 군의 성지 탈환의 두 영화는 특히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파렐스티나에서는 알렌비와, 아라비아에서는 로렌스와 더불어>라는 제목의 강연은 런던은 물론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의 로얄 하우스에서의 모험에 가득 찬 이야기와 영화 상영을 지속시키기 위해 런던의 오페라 시즌은 6주간이나 연기되었다. 그리하여 런던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후, 세계 각국을 순회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인도와 아프카니스탄의 생활을 기록 영화화할 준비에 착수했었는데, 이때는 믿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불행이 속출한 끝에 불가능이 일어났다. 그는 런던에서 파산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그와 함께 있었는데, 우리들은 라이온즈의 코너 하우스 레스토랑에서 싸구려 식사로 견뎌야만 했다. 그나마도 토머스씨가 이름 높은 스코틀랜드의 화가 제임즈 막베이씨로부터 돈을 빌릴 수 없었더라면 그곳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의 초점이 있다. 로우얼 토머스씨는 막대한 부채와 심각한 실의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심은 하였으나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역경에서 좌절되고 만다면, 자기는 채권자에 대해서나 일반 세상에 대해 전연 가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에 앞서 꽃을 사서 그것을 활보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진다는 것은 게임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것은 정상을 목표로 삼는 사람에게 필요한 훈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태도는 우리의 육체력에 대해서도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유명한 정신병학자 J. A. 하드필드는 '힘의 심리'라는 저서 가운데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악력계를 사용하여, 정신 암시가 완력에 미치는 영향을 세 사람(남자)에게 실험해 보았다.'
그는 우선 그들에게 힘껏 악력계를 쥐게 했다. 그것은 세 가지의 다른 조건하에서 하게 해보았다. 보통의 맑은 정신일 때 테스트했을 경우 그들의 평균 악력은 101파운드였다. 다음에는 그들에게 최면을 걸고, 당신들은 참으로 약하다는 암시를 준 후에 재어 보니 겨우 29파운드로 보통 힘의 3분의 1도 못 되었다. (세 사람 중의 한 명은 권투 선수였는데, 최면을 걸고 당신은 약하다는 암시를 주자, '내 팔은 어린아이의 팔처럼 작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드필드는 세 번째의 테스트를 했는데, 이번에는 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에 측정하였더니, 그들의 평균 악력은 142파운드에 달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마음이 강하다는 적극적인 관념으로 충만되자, 그들의 육체적 힘은 50퍼센트나 증가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상의 마력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 역사상에 있어 가장 놀랄 만한 이야기 하나를 소재하기로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한 권의 책으로도 쓸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간단히 줄이기로 한다.
남북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서리 많은 시월의 어느 날 밤, 집도 없는 가난한 지상의 표류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한 여인이, 매사추세츠주 암즈버리에 사는 퇴역 해군 대령의 부인 마더 웹스터 댁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준 마더 웹스터는 <백 파운드가 될까 말까 한, 피골이 상접한> 가련하고 작은 사람 같은 것을 보았다. 이름을 미시즈 그로우버라고 밝힌 이 여인은 밤낮으로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 때문에 집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다면 우리 집에 있으면 어떻겠어요? 난 이렇게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까.”
웹스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시즈 그로우버가 얼마 동안을 마더 웹스터와 함께 살았는지 모르지만, 그러던 차에 뉴욕으로부터 웹스터 부인의 사위인 빌 에리스가 유가를 얻어 찾아왔다. 그는 미시즈 그로우버를 보자
“이 집에 뜨내기를 둘 수야 있느냐.”
고 떠드는 바람에, 이 집 없는 여인은 쫓겨나고 말았다.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비를 맞으며 얼마 동안을 떨고 있더니, 마침내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정처 없이 떠났다.
그런데 여기에 이야기의 놀라운 곡절이 있는 것이다. 빌 에리스가 문밖으로 쫓아낸 그 <뜨내기> 여인이 뒷날 이 세상의 사상에, 실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운명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크리스찬 사이언스 창시자 메리 베이커 애디로서, 몇백만 신도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더욱이 그때까지 그녀는 질병, 비애, 비극을 제하고는 일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맨 첫 남편은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죽었으며, 두 번째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유부녀와 눈이 맞아 도망쳤다. 그 뒤 그는 빈민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가난과 병과 질투 때문에 그 아이가 4살 때 그녀는 자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후로 아들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31년 뒤에야 그를 다시 만났던 것이다. 그녀는 본디 허약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정신요법의 과학>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녀의 생애에 있어서 극적인 전기는 매사추세츠주 린에서 일어났다.
어느 추운 날 아침 상점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그녀는 얼어붙은 길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 그녀는 척추를 몹시 다쳤기 때문에 그 발작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의사는 그녀가 소생하기 어려울 것이며, 만일 살아난다 해도 두 번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죽음의 침상이라고 생각되는 베드에 누워 있으면서 메리 베이커 애디는 성서를 펴들고, 거룩한 손길의 인도를 받아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읽었다.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사람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아들아,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노라……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녀의 체내에 커다란 힘과 크나큰 신앙, 크고 격렬한 회복력을 불러일으켜 즉석에서 침대를 떠나 걸을 수 있었다. 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미시즈 애디는 또 이런 말을 했다.
그 경험이 자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찬스가 되었습니다……나는 모든 것의 원인은 마음속에 있으며, 온갖 결과는 정신적 현상이라는 과학적 확증을 잡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메리 베이커 애디는 신흥 종교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사제장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가 창시한 크리스찬 사이언스는 여성에 의해 창시된 유일하고 위대한 신교로서,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여러분 중에는 ‘이 카네기 라는 자는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선전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분명히 크리스찬 사이언스의 신도가 아니지만, 해를 거듭함에 따라 생각하는 힘의 강함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35년 동안 성인 클라스를 가르쳐 온 결과, 나는 누구나 그들의 생각을 바꿈으로써 고민과 공포, 그밖의 온갖 질병을 몰아내고 그들의 생활을 일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 몇백 번이나 그렇듯 믿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아 왔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여기에 사고의 힘을 설명하는 믿기 어려운 변화가 나의 클라스 학생에게서 일어났던 실례가 있다. 즉 그는 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었느냐 하면, 그것은 고민 때문이었다. 이 학생은 다음과 같이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매사에 고민했다. 나는 자신이 지나치게 말랐다든가. 머리카락이 빠진다든가, 결혼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모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혹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실연을 당하지나 않을까. 선량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하고 모든 일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쁘게 인식되어 있지나 않을까 하고 고민했으며, 어떤 때는 위암에 걸린 것처럼 생각되어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어 그만두었다. 나는 몸 안에 가득 긴장을 담아 마치 안전핀이 없는 보일러처럼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점점 압력이 늘어나서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더니-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만일 당신이 심한 신경 쇠약증에 걸린 일이 없다면 단연코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왜냐하면 제아무리 대단한 육체적 고통이라도, 고민에 시달리는 마음의 고통에 비한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신경 쇠약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집안 식구들과 이야기조차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사고를 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깜짝 놀랐고 사람들을 피했다. 더구나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울부짖는 일도 있었다.
그날그날이 고민의 하루였다. 나는 누구에게나-하나님마저도 나를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강에 뛰어들어 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러다가 플로리다로 갈 것을 생각해 냈다. 장소가 바뀌면 마음도 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기차에 올랐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한 통의 편지를 주시면서 플로리다에 닿을 때까지는 펴보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관광 시즌이 한창일 무렵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그곳의 호텔은 모두 만원이었으므로 어느 가라아즈의 침실을 빌었다. 나는 마이애미로 떠나는 부정기 항로 화물선의 일자리를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곳 해안에서 소일하게 되었다. 나는 고향에 있을 때보다도 플로리다에 와 있는 편이 한층 더 비참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편지를 뜯어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아들아, 너는 집에서 천 5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네 고민의 유일한 씨앗을 몸에 지니고 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네 자신이다. 너에게는 몸이나 마음이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네가 당면한 사태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이런 사태에 대한 생각이 너를 해쳤던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바와 같은 것이니라.' 네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돌아오너라, 너의 병은 나았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화가 치밀었다. 이제껏 내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동정이었지 교훈이 아니었다. 나는 몹시 흥분하여, 그때 그 자리에서 두 번 다시 집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밤, 내가 마이애미의 어느 골목길을 걷고 있던 중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 교회 앞에 이르렀다. 나는 그다지 갈 곳도 없었으므로 그곳에 들어가서 <너희 마음을 이기는 자는 한 도시를 함락시키는 자보다 강하니라> 하는 성경 구절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신성한 하나님의 집에 앉아 아버지께서 편지에 썼던 것과 똑같은 사상을 듣고 있으려니, 내 머릿 속에서부터 쌓였던 먼지들이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새 물을 분명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참다운 광명의 빛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전 세계와 그 위에 사는 전 인류를 바꾸어 보리라고 생각했었으나-도리어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던 유일한 것은 바로 나의 마음이라는,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짐을 꾸려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1주일 후에는 다시 그전 일자리로 돌아갔고, 4개월 뒤에는 실연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던 소녀와 결혼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5남매의 자녀가 있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뮬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주님의 은총을 입고 있다. 지난날 신경 쇠약으로 시달리던 무렵 나는 18명의 부하를 거느린 작은 백화점의 야경 주임이었는데, 현재는 450명의 종업원을 둔 후지 제조 공장의 이사이다. 이제 내 생활은 순조로우며, 사람과의 교제도 잘 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만끽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으면(이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마음의 카메라 초점을 맞추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그러면 그것으로 만사는 OK인 것이다. 나는 정말로 내가 신경 쇠약에 걸렸던 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의 사고력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어떻게 강한 힘을 미치는가를 뚜렷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자신의 생각을 자기에게 반대되지 않도록 하고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나의 온갖 고민의 원인은 외부의 사태가 아니라, 내가 그 사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깨달은 순간,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그 뒤에도 완전히.
이상의 이야기가 그 학생의 경험담이다.
나는 우리의 생활로부터 얻는 마음의 평하나 기쁨은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좌우되지 않고, 다만 우리의 정신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여기서 외부조건은 거의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를테면 하퍼스 페리에서 합중국의 병기고를 습격하여, 노예들에게 반란을 교사했다는 죄목으로 교수형을 받은 존 브라운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관 위에 실려 처형대로 보내졌는데, 그의 곁을 따르던 간수는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브라운은 냉정했다. 그는 버지니아의 블루 리지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냐! 일찍이 내가 천천히 구경할 기회가 없었던 게 유감이다.’ 하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남극에 처음으로 도달한 영국인 로버트 스코트와 그 대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귀환 여행은 유사 이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식량은 떨어졌고 연료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나운 폭설이 열하루 동안 밤낮없이 극지의 벌판을 휩쓸었고, 빙판 위에는 융기와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코트와 그 대원들은 이제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만일에 대비하여 상당량의 아편을 휴대하고 있었다. 그것을 복용하기만 하면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는 편안한 꿈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마취제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쾌활한 노래를 소리쳐 부르면서> 죽어 갔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8개월 후, 수색대가 그들의 동사체에서 발견한 유서에 의해 알게 되었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용기와 평정의 창조적 사고력만 가지고 있다면 자기의 관에 걸터앉아 교수대로 끌려가면서도 경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며, 굶주림과 혹한으로 죽어가면서도 <유쾌한 노래>로 텐트를 가득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장님인 밀턴은 이미 3백 년 전에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다.
‘마음은 스스로의 터전이다. 그 안에
지옥에 천국을, 천국에 지옥을 만들 수 있다니.’
나폴레옹과 헬렌 켈러도 밀턴의 이 말을 완전히 실증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열망하는 것-명예와 권력과 부귀를 얻었으나, 그러면서도 센트 헬레나에서 ‘나의 일생에 있어 행복했던 날은 엿새도 되지 않는다.’라고 했던 것이.
그런가 하면 장님이며 벙어리인 헬렌 켈러는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내가 반세기 동안의 생애에서 무엇이든 배운 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그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에머슨이 그의 '자신'이라는 제명의 논문의 결론 가운데서 말한 것을 내가 되풀이하는 데 불과하다. 즉 정치적 승리, 땅값의 인상, 병자의 회복, 또는 오랫동안 떠나 있던 친구의 귀환, 그 밖의 외부적 사건은 인간의 정신을 앙양시키며 장래의 행복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정말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스토아학파인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육체의 종양이나 농창을 제거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부터 나쁜 생각을 제거하도록 힘쓰라.'고 했다. 에픽테투스는 이미 19세기 전에 이런 말을 했는데, 현대 의학도 이에 동의하리라고 본다.
G 켄비 로빈슨 박사는 존 홉킨즈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환자의 5명 중 4명은, 감정적 긴장이나 압박감이 일부 원인이 되어 일어난 병태에 시달리고 있다고 언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기질성 질환에 있어서도 결국은 생활 및 그 문제에 대한 조절 불량에 기인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철학자 몽테뉴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인간들은 일어나는 일로써 상처를 입는 것보다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의견 때문에 더 상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의견은 우리의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당신이 고민에 시달려 신경이 바늘 끝처럼 날카로워졌을 때, 그러한 때에는 의지의 힘에 따라 정신 태도를 변경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당신에게 단언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바로 그대로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 방법을 당신들에게 전수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비결은 지극히 간단하다.
응용 심리학의 최고 권위자인 윌리엄 제임즈는 일찍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행동은 감정을 따르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행동과 감정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의지에 이해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는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우리는 직접적 지배하에 있지 않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규제할 수가 있다.'
바꾸어 말하면 윌리엄 제임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단지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감정을 즉석에서 바꿀 수 없으나, 행동을 변경할 수는 있다. 그리고 행동을 바꾸면 자동적으로 감정이 바꾸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쾌활성을 잃었을 때, 자력으로 그것을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쾌할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미 그것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유쾌하게 말하고 또한 행동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비결은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시험해 보라. 반면에 미소를 띠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크게 숨을 들이켜 무슨 노래라도 불러 보라. 만일 노래를 못하겠으면 휘파람이라도 불어라. 또 휘파람도 불지 못하면 부는 흉내만이라도 내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윌리엄 제임즈가 한 말을 납득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겉으로는 대단히 행복한 듯이 행동하면서도, 하찮은 일을 언제까지나 고민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것은 자연의 작은 기본적 진리의 하나로서, 우리의 모든 생활에 있어 기적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캘리포니아의 어떤 부인도 일찍이 이러한 비결을 알았더라면, 그녀의 모든 고민을 24시간 이내에 제거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연만한 미망인다. 그것은 확실히 비통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한 듯이 행동하려고 할 것인가? 아니다. 그녀는 어떻습니까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뭐 여전합니다.’라고. 그렇지만 그녀의 얼굴 표정이라든가 울먹이는 어조는 자신이 얼마나 슬픈 꼴을 당해 왔는지 모를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는 행복하다는 것을 억누르게 된다. 세상에는 이보다 더 불행한 여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녀의 남편은 평생을 지낼 수 있을 만한 보험금을 그녀에게 남겨 주었고, 결혼한 자식들까지 있어서 언제든지 그녀를 모시도록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세 사위가 모두 구두쇠이며,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어리석은 불평을 하고 있다. -사실 그들에게 몇 달씩이나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고, 그리고 딸들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만년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단단히 돈을 넣어 두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자기 자신에게나 불행한 가정에 대해서나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만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을 불쌍하고 괴팍스럽고 불행한 처지에서 가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간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러려면 우선 쾌활하게 행동하여, 그녀가 지금까지 자기 자신에게만 쓸데없이 기울였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도록 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내 친구 중에 인디애나주의 텔 시티에 사는 H. T. 잉글런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비결 덕분에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그는 10년 전에 성홍렬이라는 병에 걸렸었다. 그런데 그것이 낫게 되자 이번에는 신장염에 걸려, 의사라는 의사는 모조리 찾아보았고 심지어는 <덜팔이 의원>에까지 진찰을 받았지만 도무지 완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다른 병까지 겹쳤다. 고혈압증이 된 것이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최고 혈압이 214나 된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치명적이다, 게다가 더 악화될 경향이 있다. 재빨리 모든 일을 정리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보험료가 전부 불입되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신께 나의 죄를 참회했다. 그리고 어두운 명상에 잠겼다. 나는 집안 식구들을 모두 슬픔에 잠기게 했다. 아내와 자식들도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고, 나 자신도 완전히 침울해졌다. 그러나 한 주일가량 자기 연민에 잠긴 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너는 참 못나기도 했구나! 아직도 1년쯤은 더 살지 모르는데, 어쩌자고 살아 있는 동안에 즐기려 하지 않는가?'
나는 어깨를 펴고 얼굴에 미소를 지어 만사가 순조롭다는 듯이 보이려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어쩐지 어색했으나, 점차 쾌활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로써 가족들도 구할 수 있었지만, 나 자신도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우선 나는 처음에 그렇듯 생각을 가지려고 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을 느끼었다. 그리하여 나의 병세는 하루하루 차도를 보여, 몇 개월 후에는 무덤 속에 잠들었어야 했을 내가 완전히 건강해져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혈압도 내려갔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하나의 뚜렷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고민하던 끝에 기력을 잃고 '에라 모르겠다'고 하였더라면 의사가 말한 대로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신 태도를 바꿈으로써 나의 몸에 스스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기로 한다. 만일 우리가 단순히 쾌활하게 생동하고, 건강과 용기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 사람의 생명이 구해졌다고 한다면, 어째서 우리는 조그마한 우울이나 의기소침으로 언제까지나 괴로워하는가? 또 쾌활하게 행동함으로써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오래전에 나는 작은 책자 하나를 읽고 실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제임즈 알렌의 '생각나는 대로'라는 책이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바꾸게 되면, 자기 아닌 다른 사람과 사물도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게 되면, 그는 그것이 그의 생활의 외적 조건을 급속도로 변화시키는 것을 보고 놀리는 것이다. 인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끌어당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상만을 끌어당긴다. 우리의 목적을 형성하는 <신성>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내부에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하는 모든 것은 그의 사고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그의 사고를 앙양함으로써 일어서서 정복하고 설취할 수가 있다. 그런데 만일 그의 사고의 앙양을 거부한다면, 약하고 비열하고 비참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의하면, 신은 인간에게 전 세계의 지배권을 주었다. 이것은 실로 강대한 선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초국왕적 특권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일뿐이다-자신의 사고에 대한 지배, 자신의 공포에 대한 지배, 자신의 마음, 자신의 영혼에 대한 지배인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단순히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반응을 억제하는 것도 되어, 내가 마음이 내킬 때는 언제나 이 지배를 놀라 정도로 달성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윌리엄 제임즈가 한 다음 말을 잊지 않도록 하자.
'이른바 악의 대부분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의 내면 태도를 공포로부터 투지로 변화시킴으로써 축복할 만한 선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싸우자.
쾌활하고 건설적인 사고의 계획에 따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싸우자. 여기 그 계획이 있다. 그것은 <오늘만은>이라는 타이틀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 사본을 수백 부나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지금부터 36년 전에 고 시빌 F. 페트릭이 쓴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우리 고민의 대부분을 없애고, 프랑스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기쁨>을 무한히 누릴 것이다.
오늘만은
1. 오늘만은 행복하게 지내리라. 링컨은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만큼은 행복하다.'고 했는데 참으로 옳음 말이다. 사실 행복은 그 내부로부터 온다. 그것은 인간 외부의 사정은 아니다.
2. 오늘만은 자기 자신을 사물에 적합하도록 하자. 사물을 자기가 바라는 대로 하려고는 하지 않으리라. 가족, 사업, 요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을 그것에 적합하게 하자.
3. 오늘만은 몸조심을 하리라. 운동을 하고 몸을 아끼자. 영양을 섭취하자. 혹사하거나 무시하지 않도록 하자. 그렇게 하면 몸은 나의 명령에 따르는 완전한 기계가 될 것이다.
4. 오늘만은 자신의 마음을 굳게 하리라. 무언가 유일한 것을 배워 보리라. 정신적으로 게으름뱅이가 되지는 않으리라. 무언가 노력, 사고, 집중을 필요로 하는 책을 읽고 하자.
5. 오늘만은 세 가지의 방법으로 내 영혼을 운동시키리라. 남이 눈치채지 않도록 뭔가 좋은 일을 하리라. 윌리엄 제임즈가 시사하듯이 수양을 위해 적어도 두 가지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을 일을 사자.
6. 오늘만은 상냥하기 지내리라. 될 수 있는 대로 활발한 것처럼 하고, 되도록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조용히 이야기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아낌없이 남들을 칭찬하리라. 그리고 남을 비판하지 않고, 무슨 일이나 흠을 찾지 말고, 남을 훈계하거나 꾸짖지 않기로 하자.
7. 오늘만은 오늘 하루만을 살아 내기로 하자. 인생의 온갖 문제와 한꺼번에 맞붙으려고 하지 말라. 일생을 두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문제일지라도 12시간에 해치워 버리자.
8. 오늘만은 하루의 프로그램을 작성해 보다. 시간마다. 해야 할 일을 써 두기로 하자. 비록 그대로는 되지 않을지라도 모르지만, 어쨌든 해보리라. 성급함과 꾸물거림을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9. 오늘만은 반 시간 동안은 혼자서 조용히 휴식할 시간을 가져 보리라. 그동안에 때로는 주를 생각하리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10. 오늘만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자. 특히 행복해지는 일,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 사랑하는 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자.
만일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정신적 태도를 기르고 싶다면, 여기에 그 법칙 제1이 있다. 쾌활하게 생각하고 또한 행동한다면 유쾌함을 느낀다.
13. 보복은 더 큰 괴로움을 가져오게 된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옐로우 스톤 파크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소나무며 가문비나무의 울창한 산림을 바라볼 수 있는 야외석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조금 뒤 우리가 구경하고 싶어서 기다리던 동물, 이 숲 속의 공포인 큰 회색곰이 휘황하게 빛나는 등불 앞에 그 모습을 나타내고, 원내의 호텔 식당에서 버려진 듯한 음식 찌꺼기를 먹기 시작했다. 산림 감독인 마틴 소령은 말 위에서 이 광경을 보고, 흥분한 여행객들에게 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회색곰은 서부의 다른 어떤 동물보다로 강하며, 이것과 맞설 수 있는 상대는 들소와 코디악 곰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회색곰이 숲속에서 나온 어떤 한 마리의 짐승에게만은 잠자코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광경을 보았다. 그 짐승은 스컹크였다. 곰은 그 앞발로 한 번만 치면 스컹크를 해치울 수가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곰은 그것이 별로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네 발 달린 곰을 덫으로 잡은 적이 있다. 또 내가 어른이 된 뒤에는 뉴욕 거리에서 가끔 두 발 달린 스컹크를 본 일이 있는데, 어쨌든 나의 쓰디쓴 경험에 의하면 양쪽 다 그것들을 건드리면 손해인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적을 증오하게 되면 적에게 힘을 주는 것이 된다. 그것은 우리의 수면, 식욕, 혈압, 건강, 행복에 관한 힘인 것이다. 우리의 적은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우리에게 보복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껑충거리며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말하자면 우리의 증오는 조금도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우리 스스로에게 주야로 지옥과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고 있는 것이.
'만일에 어떤 이기적인 사람이 당신에게 골탕을 먹이려 든다면, 그 사람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보복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보복을 하려 든다면 상대편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몽상적인 눈을 하고 있는 이상가의 소리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렇지는 않다. 밀워키의 경찰 본부에서 발간한 '경찰 홍보'에 실려 있던 것이다.
보복은 어떻게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잡지 '라이프'에 의하면 그것은 건강까지도 해롭게 만드는 수가 있다고 한다.
'고혈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개인적 특성은 원한이다. 원한이 만성화하게 되면, 만성과도 긴장과 심장병을 일으킨다.'고 '라이프'지는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말은 단순히 올바른 도덕률만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의학까지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곱 번을 70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했을 때 바로 그는 우리에게 고혈압, 심장병, 위암 등의 예상법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최근에 내 친구 하나가 심한 심장병에 걸렸는데, 의사는 그녀를 침대에 눕게 하여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어떤 일에 대해서도 화를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의사는 심장이 약한 사람이 노여움으로 발작을 일으키면 죽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죽는 수가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수년 전에 워싱턴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의 주민은 노여움의 발작 때문에 죽었다. 여기에 그 실증으로서, 워싱턴의 스포건 경찰 본부장 제리 스워타웃씨의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그곳에 카페를 경영하던 윌리엄 퍼케이버(68세)라는 사람은 요리사가 접시로 커피를 마시겠다고 우겨대는 바람에 화가 치밀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권총을 들고 쿡을 좇아갔는데, 총을 손에 든 채 심장 마비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검시관은 노여움의 발작에 의한 심장마비사라고 단정했다.'
그리스도가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얼굴 가짐을 좋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파했다. 나는-그리고 여러분도-증오와 원한 때문에 주름살이 많은,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는 부인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의 어떤 미용술도 관용과 친절과 애정의 정신이 없이는 그들의 용모를 아름답게 하지 못할 것이다.
증오는 음식을 맛보는 능력까지도 파괴한다. 성서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사랑을 곁들인 가난한 야채 요리는 증오에 가득 찬 기름진 고기 요리보다 낫다.'
우리의 적은 우리가 그들에 대한 증오로 지치고 신경 쇠약이 되며, 얼굴 생김이 험악해지고 심장병에 걸려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비록 우리가 원수는 사랑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을가. 우리의 적에게 우리의 행복, 건강, 용모의 지배권을 내주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원수를 위해 난로의 불을 너무 많이 때지 말라. 그 불에 나 자신을 태우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가 우리의 원수를 <일곱 번을 70번까지도 용서하라>고 말했을 때, 그는 견실한 사업에 관해서도 설명했던 것이다. 마침 여기에 스웨덴 웁살라의 게오르규 로나에게서 받은 편지가 있다. 그는 비엔나의 변호사였는데 제2차 대전 중에는 스웨덴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수중에 무일푼이었으므로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다. 그는 수 개 국어에 능통했으므로, 어디든 무역 회사의 통신원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역회사에서는 전쟁 중이어서 그런 일거리가 없지만 성명만은 적어 두겠다는 대답이었다. 그 무렵에는 어느 회사를 찾아가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어떤 한 회사만은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내왔다.
'회사의 일거리에 대한 당신 생각은 잘못되어 있다. 우리 회사에선 통신원이 전혀 필요 없다. 만일 필요하다 해도 당신을 채용한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당신은 우선 스웨덴 말을 만족할 만큼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편지는 오자투성이이다.'
게오르규 로나는 그 편지를 잃고 노발대발했다.
“오자투성이라니, 무슨 말인가. 이 시골뜨기 녀석! 네 녀석의 편지는 오자투성이가 아닌가!”
게오르규 로나는 어떤 촌놈을 호되게 혼내 주려고 편지를 썼다.
“그러나 잠깐만.”
그는 반성했다.
“어쩌면 이 사람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내 딴에는 스웨덴어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모국어는 아니니까 미처 몰랐던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취직을 하기에는 좀 더 스웨덴어를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말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해도, 그의 호의에는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 이건 한 번 인사 편지라고 보내기로 하자.”
그리하여 개오르규 로나는 전에 썼던 것을 찢어 버리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귀사에서는 통신원이 필요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 수고스럽게 회답까지 보내 주시어 감사합니다. 더구나 귀사의 사정을 잘 몰랐던 데 대해서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하오나 귀사에 서신을 올렸던 것은 조사를 했을 때, 귀사가 무역업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회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생의 편지에 문법상의 잘못이 있었던 데 대해서는 심히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스웨덴어를 공부하여 두 번 다시 잘못이 없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소생의 앞길에 친절하신 지도를 베풀어 주셔서 깊이 감사합니다.'
며칠 수, 게오르규 로나는 바로 편지의 장본인으로부터 내사를 청한다는 서신을 받았다. 로나는 찾아갔다. 그리고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게오르규 로나는 <부드러운 대답은 노여움을 푼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만한 성자는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그것이 바로 현명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도둑맞거나 모욕당하거나 하는 것은 그것을 잊어버리는 한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나는 언젠가 한 번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인 존에게, 그의 아버지는 남을 원망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천만에요. 아버지는 자기가 싫은 사람들에 관한 일을 생각할 시간이 단 1분도 없으시답니다.’라고 대답했다.
옛날에도 성낼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 성내지 않는 사람은 현명하다는 말이 있었다.
전에 뉴욕 시장을 지냈던 윌리엄 잭 게이너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적색 신문의 눈의 가시가 되어 미친 사람에게 저격되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생명을 위해 싸우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매일 밤, 나는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
이 말은 한낱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유화와 광명이 과잉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염세주의의 연구'의 저자인 독일의 대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인생을 가리켜 무익하고 끝없이 괴로운 경험이라고 햇다. 그가 길을 걷게 되면 마치 우울이 그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더욱이 그의 절망의 밑바닥에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되도록이면 누구에게나 원한은 품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일찍이 윌슨, 하아딩, 쿠울지리, 후버, 루즈벨트, 트루먼 등의 여섯 대통령이 신임한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치에게, 지금까지 정적의 비난 때문에 고민할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오, 아무도 나를 무안을 주거나 골탕을 먹일 수는 없어요. 애당초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않으니까요.”
우리 역시 애당초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우리도 골탕을 먹거나 난처해질 까닭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몽둥이나 돌은 나의 뼈를 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로는 결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옛부터 인간은 자기의 적에 대해 아무런 악의를 품지 않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바쳐 왔다. 나는 가끔 캐나다의 재스퍼 국립공원을 찾아가, 서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 산 풍경을 바라본 일이 있다.-이 산은 1915년 10월 12일, 독일의 조총부대 앞에서 성인처럼 죽어간 영국의 간호사 에디스 캬벨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캬벨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그러면 대체 그녀는 어떠한 죄를 저질렀던가? 그녀는 벨기에의 집에서 영불의 부상병을 간호하고 식사를 제공하고, 그들을 도와 네덜란드로 도망하게 했던 것이다. 그 운명의 10월 어느 아침, 브뤼셀의 군사 교도소 내의 감방으로 영국인 종군 목사가 찾아와서 그녀에게 죽음의 준비를 시켰을 때, 에디스 캬벨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말은 지금도 쇠붙이나 돌에 새겨져 있다-
'나는 애국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품지 않으렵니다.'
이로부터 4년 뒤, 그녀의 유해는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나는 얼마 전, 런던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 그때 나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향해 서 있는 그녀의 동상 앞에 서서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 후세에까지도 오래 남아 있는 그녀의 명언을 읽었던 것이다.
'나는 애국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증오를 품지 않으렵니다.'
우리의 원수를 용서하고 그걸 잊는 확실한 방법은 자기보다도 무한히 큰 어떤 주의에 몰두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당하는 모욕이라든가 적의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주의 이외의 온갖 것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18년, 미시시피의 솔밭 속에서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던 극히 극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린치였다. 즉 로렌스 존스라는 흑인 목사 겸 교사가 처참한 린치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수년 전 나는 이 로렌스 존스가 창립한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을 찾아가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적도 있다. 그 학교는 오늘날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건은 훨씬 전의 일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제1차 대전 중에 일어난 일인데, 미시시피 중부 지방에 독일 사람이 흑인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린치를 당할 형편에 놓여 있는 로렌스 존스가 바로 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한 무리의 백인들이 그의 교회 앞에 서 있자, 목사는 군중을 해야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인생은 투쟁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겨내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 흑인은 모두 갑옷으로 무장하고 용감하게 싸워야만 한다.'
<싸우자!> <갑옷!> 이 말만 들어도 충분하다고 단정해 버린 흥분한 청년들은 밤의 어둠을 뚫고 달려가, 폭도를 동원하여 교회로 되돌아와서 목사님이 목에 밧줄을 감았다. 그들은 목사를 1마일이나 끌고 가서 장작더미 위에 세워 놓고, 성냥에 불을 당겨 그를 달아매는 동시에 태워 죽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태워 죽이기 전에 그 괘씸한 설교나 하게 하자. 자아. 떠들어 봐라! 어서!’ 하고 소리쳤다. 로렌스 존스는 장작더미 위에 서서 목에 밧줄을 감은 채 그의 생명과 주의를 위해 연설했다. 그는 일찍이 1907년에 아이오와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훌륭한 성격, 학업성적, 음악적인 재능은 학생들과 학교 당국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 그가 졸업했을 때 어떤 호텔업자가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으나, 그는 이것을 거절했다. 또 어떤 부호는 음악 수업을 위한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사절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나름의 어떤 <꿈 >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커 T. 워싱턴의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아, 자기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몽매한 동포들의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부에서도 가장 벽지인 미시시피주 잭슨 남쪽 25마일 지점으로 갔다. 그는 회중시계를 1달러 65센트에 저당 잡혀 숲속의 빈터에, 나무 그루터기를 책상 대신으로 하여 학교를 시작했다. 로렌스 존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에게 린치를 가하려고 기다리는 흥분한 군중에게 그가 배우지 못한 어린 소년 소녀들을 가르쳐 선량한 농부로, 혹은 직공으로, 요리사로, 가정부로 훈련시키기에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였는가를 이야기했다. 또 그는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을 창립해 보겠다고 애쓰는 자기를 도와준 백인들을 비롯하여, 그의 교육 사업의 발전을 돕기 위해 토지, 목재, 가축, 현금 등을 기부해 준 수많은 백인들의 공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뒷날 로렌스 존스는 이렇듯 길바닥으로 끌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그를 달아매어 죽이려 했던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는 주의로써 머리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자신보다 더 큰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남을 미워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잠들과 다툴 겨를 따위는 없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
폭도들은 로렌스 존스가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를 위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적인 열변으로 호소하는 것을 듣고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전에 남군의 병사였던 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의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지금 말한 백인들은 모두 내가 알만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오해한 거야. 죽이기는커녕 도와주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 노병은 모자를 벗어 돌려, 파이니 우드 컨트리 스쿨의 창립자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모였던 사람들로부터 52달러 기부금을 거두었다.
<나에게는 남들과 다툴 겨를 따위는 없다. 후회할 틈도 없다.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로 나를 굴복시킬 수는 없다>라고 말했던 사람을 위해.
에픽테투스는 이미 19세기 전 옛날, 우리는 스스로 뿌린 씨를 거둬들이며, 운명이란 것은 어떻게든지 우리가 저지른 악행에 보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그의 말을 빌면 다음과 같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비행에 대해 보상해야만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아무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분개하지 않으며, 아무도 욕하지 않으며,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으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미국 역사상에서 링컨만큼 욕을 먹고, 미움을 받고, 또 배반을 당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아든의 훌륭한 전기에 의하면
링컨은 결코 좋고 나쁜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꼭 해내야만 했을 경우, 그는 자기의 정적도 그것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못마땅하게 행동했을 경우에도 어떤 지위에 적합한 인물이라면, 링컨은 친구나 다름없이 그를 대뜸 그 지위에 앉게 했을 것이다……나는 그가 자기의 정적이라거나 그에게 반감을 가졌다거나 해서 인사 이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링컨은 그가 권력의 지위에 임명했던 많은 사람들, 막클레런, 시워드, 스탄튼, 체에스 등으로부터 탄핵받고 모욕당했다. 그래도 하아든의 전기에 의하면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한 일로 해 칭찬받을 바는 못 된다. 또한 한 일, 안 한 일에 대해서 비난받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간은 조건, 환경, 교육, 습관 등을 비롯하여 현재로부터 미래에 걸쳐 인성을 형성하는 한낱 유전의 소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링컨의 이 말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본다. 만일 우리가 적과 동일한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특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리고 만일 우리의 적도 우리와 마찬가지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면 우리는 확실히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우족 토인들의 기도인 ‘오오, 위대한 신이여, 내가 2주일 동안 그의 가죽신을 신어 볼 때까지는 그를 판간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소서.’라는 말에 동조할 만한 너그러움을 갖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를 미워하기보다는 우리가 바로 그들이 아닌 것을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모름지기 원수에게 비난과 원한을 퍼붓는 대신 이해와 동정, 원조와 관용, 기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매일 밤 성서의 1절을 읽든지 성구의 일부를 되풀이하고 나서, 식구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가정의 기도식>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났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곧잘 쓸쓸한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풀이하던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너희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너희들을 미워하는 이를 좋게 해주며, 너희를 괴롭히고 나무라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나의 아버지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려고 애써다. 이는 그분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다-지상의 제왕이나 군주가 얻을 수 없었던 마음의 평화를.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 태도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법칙 제2. 적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라. 만일 그런 짓을 하면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처를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의 웅숭깊은 마음을 배우라. 다시 말해서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일 따위를 생각하는 데는 단 1분도 허비하지 말 것.
14. 이렇게 하면 망은에 고민할 일은 없다
나는 최근 텍사스에서 망은(忘恩)으로 분개하는 어떤 실업가를 만났다. 그를 만나면 불과 15분도 되기 전에 틀림없이 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러했다. 그 사건이란 벌써 11개월 전의 일이었는데, 그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다. 나를 만나서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그는 35명의 고용인들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서 평균 3백 달러씩이나 주었는데도, 누구 하나 고맙다는 인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면 한 푼도 주지 말걸 그랬어!’ 하고 그는 노발대발했다. ‘성난 자에게는 독이 가득하다.’라고 공자도 말했지만, 그 사람은 온몸에 독이 충만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가 불쌍하게 보였다. 그의 나이는 60세 전후였는데, 생명 보험 회사 통계에 의하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현재의 연령과 80세의 차에서 3분의 2보다 조금 많이 사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도 운이 좋으면 앞으로 14, 5년을 더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미 끝나 버린 일에 대해 한탄하고 괴로워함으로써 남은 수명의 근 1년을 허비해 버린 것이다. 어 든 나는 그가 측은해 보였다.
원한과 자기 연민에 대해 빠지는 대신, 그는 어째서 감사를 받지 못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고용인들을 싼 급료로 혹사해왔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들은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선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급료의 일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너무나 잔소리가 많기 때문에 가까이하기가 거북스러워 고맙다는 인사를 망설였거나 또는 잊었는지도 알 수 없다. 또한 어차피 세금으로 바치게 될 테니까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고용인들은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버릇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사무엘 L. 존슨 박사가 ‘감사하는 마음의 교양은 결실이다. 비천한 사람에게는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이 사람은 감사를 바란다는, 인간에게 흔히 있기 쉬운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판사가 되기까지 유명한 형사 변호사였던 사무엘 라이보이츠는 78명의 피고를 전기의자로부터 구해냈다. 그러나 그중에서 몇 사람이나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며, 몇 사람이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왔으리라고 생각하는가? 한 번 알아맞춰 보라. 그렇다,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스도는 어느 날 오후, 열 사람의 나병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몇이나 그분에게 사례를 했는가. <누가복음>을 보면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모두 달아나 버리고 없었다. 한마디의 인사도 없이 가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당신에게 묻겠는데, 우리나 텍사스의 실업가니 우리가 행한 사소한 친절에 대해 그리스도가 받은 것 이상의 감사를 기대하도 좋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금전상 문제가 되면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차알즈 스와브르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는 언젠가 한 번 은행 돈으로 주권을 산 지배인을 구해 준 일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돈은 이체해 주어 그가 교도소로 가는 것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장에는 지배인도 그에게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에게 반감을 갖게 되고, 자기가 교도소로 가는 것을 구해 준 은인을 나쁘게 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친척에게 백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치하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앤드류 카네기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만약 카네기가 다시 이 세상으로 살아 돌아온다면, 그는 이 친척이 자기를 헐뜯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 카네기는 자선 사업에는 3억 달러씩이나 기부를 하면서도 그에게는 겨우 백만 달러라는 하찮은 돈밖에는 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이 친척이 하는 불평인 것이다.
무슨 일이나 다 이렇다. 인간성은 언제나 이런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 그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일찍이 로마 제국을 통치한 최대 현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우리는 어째서 현실적이 못 되는가. 그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은혜를 모르는 자를 만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별로 놀랍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다. 이런 사람이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이것은 이치에 맞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망은에 대해 계속해서 불평을 말한다면 대체 그것은 누구의 죄인가. 그것은 인간성의 죄일까. 아니면 그것은 인간성에 대한 무지인가? 어쨌든 감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한다면 간혹 조금이라도 받게 될 때 그것은 놀라운 기쁨이 될 것이므로. 또 우리가 감사를 받지 않더라도 별로 화가 나지 않을 터이므로.
여기에 내가 이 장에서 밝히려고 하는 제1 포인트가 있다. 즉 인간이 감사하는 마음을 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감사를 기대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일은 마음 아프기를 바라는 것이 된다.
나는 뉴욕에 사는 한 부인을 아는데, 그녀는 언제나 고독하다고 호소하며 불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의 친척은 아무도 이 여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누가 찾아가기만 하면 몇 시간이나 앉혀 놓고, 어린 조카들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들이 홍역이나 귀 앓이나 백일해에 걸렸을 때, 그녀가 얼마나 알뜰히 간호해 주었는가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그들을 양육했다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를 실업학교에 보내 주었다는 것, 또 한 아이는 결혼할 때까지 도맡아서 보살펴 주었다는 것들을 불평을 가득 담아 늘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카들은 그녀를 찾아오는 것일까? 물론 가끔 의무적으로 방문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장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넋두리를 늘어 놓고 불평을 쏟아 놓으며 자기 연민을 하소연하기 때문에 그만 진저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조카들을 위협하거나 야단치거나 들볶아대는 것으로도 그들을 오게 할 수가 없게 되면 그녀가 가장 잘 쓰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심장 발작은 사실이었을까? 물론 그렇다. 의사는 그녀의 심장은 신경질이어서 고동 부정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도무지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녀의 발작은 감정적인 것이기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부인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애정과 친절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보은>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일 그녀가 이것을 요구하고 있는 한 결코 감사도 애정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세상에는 그녀와 같이 망은, 고독, 포기에 고민하는 부인이 허다하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애정을 구하고 있으나,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받으려면 그것을 요구하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보답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가 애정을 베풀도록 힘써야만 한다.
이것은 비실제적이며, 한낱 공상적인 이상주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이는 평범한 상식인 것이다. 우리가 동경하여 찾고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우리 가정 안에서 그것이 일어난 것을 보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남을 돕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는 가난했으나, 두 분은 매년 아이오와주 카운실 브랍스의 고아원에 돈을 기부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고아원에 가 본 일도 없었으며, 서신 이외로는 아무에게서도 인사를 받은 적이 없었지만 두 분은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그것은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분들은 어린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을 나온 뒤부터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께 약간의 돈을 보내 드리고, 그것을 두 분이 무엇이든 즐거운 일에 쓰시라고 했다. 그러나 두 분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귀향하여 보니, 어버지는 그 돈으로 여러 자식들을 거느리고 식량과 연료 때문에 고생하는 마을의 미망인에게 석탄과 식량을 사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두 분은 이 선물을 보내고 큰 기쁨을 맛보고 계셨다-그것은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고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기쁨이다.
나이 아버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상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인은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데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남의 친절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친절을 베푸는 것은 우월의 표시이며, 그것을 받는 것은 열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제2포인트가 여기 있다. 만일 우리가 행복을 찾고자 하면, 감사라든가 망은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겠다는 마음의 기쁨을 위하여 그것을 주어야 할 것이다.
1만 년 전의 옛날부터 사람들의 어버이들은 그 자식의 망은을 끊임없이 분개해 오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리어 왕마저도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둔다는 것은 독사에게 물린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라고 외쳤었다.
그러면 어째서 자식들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그것은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 망은은 마치 잡초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감사는 장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비료를 주고 물을 주며 사랑으로써 기르고 또한 보호해야만 되는 것이다.
설사 우리 자식들이 은혜를 모른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자식들이 우리에게 감사하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잘 아는 시카고의 어떤 사람은 자기 의붓자식의 망은에 대해 불평을 말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상자 제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40달러를 버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어떤 미망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을 설득시켜서 남에게 돈을 빌게 하여 데리고 온 두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그는 주급 40달러로 식비, 집세, 연료대, 의복값으로부터 빚의 이자까지 치러야만 했다. 그는 이 짓을 4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치하를 받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아내와 의붓자식들은 이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계부에서 괴로움을 끼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고마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나쁜가? 의붓자식? 그렇다. 그러나 어머니 쪽이 훨씬 더 비난받아야 한다. 그녀는 자식들의 장래에 <채무를 느끼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들로 하여금 <채무를 지고 출발>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자식에게 ‘너희를 대학에 보내 주시다니 아버지는 참 무던하신 분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하는 듯이 말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로서는 자식들을 무척 사랑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자식들에게 세상은 자기들의 생활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 주어, 이렇듯 험준한 인생 항로에 내보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들의 하나는 고용주로부터 <빚을> 지려다가 마침내 교도소로 가는 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자식들의 장래가 가정 교육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미네아 폴리스에 사는 나의 이모 바이올라 알렉산더는 자식의 망은에 대하여, 조금도 불평을 말할 만한 원인을 갖지 못했던 부인의 한 예였다. 내가 어렸을 때 이모는 자기의 친정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으며, 또 시어머니도 한 집에 계시게 하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두 사돈 마나님들이 이모네 집 난롯가에 앉아 있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그런데 이 두 분은 이모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때로는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모는 그런 내색을 보인 일이 없다. 그녀는 그분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응석을 받아 주고 마음 편하게 해 드렸다. 더구나 이모께서는 자신의 누이가 여섯명씩이나 있었는데, 자기가 특히 어떤 훌륭한 일을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모는 자기가 두 노인을 맡은 것을 오로지 당연한 일리고, 올바른 일이며, 하고 싶기 때문에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모는 어떻게 지내는가. 그분은 벌써 20년 남짓 미망인 생활을 하고 있다. 슬하의 다섯 자녀들은 저마다 독립하여 그 어머니를 서로 모시겠다고 다투고 있다. 그들은 어머니를 열렬히 사랑하며 어머니라면 그만이다. 이것은 <감사한> 생각에서일까? 어림없는 말이다. 그것은 사랑, 순수한 사랑인 것이다. 즉 이 자녀들은 그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온정과 우아한 인간애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입장이 뒤바뀐 오늘날, 그들은 애정을 반대로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생각이 두터운 자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깊이 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옛말에도 있는 '어린이의 귀는 밝다.'라는 격언을 잘 기억하여 각별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 좀 더 설명하면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남의 친절을 흠잡게 될 때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이가 크리스마스에 보낸 이 행주 좀 봐요. 그 애가 짠 거라는데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는 군요.’ 결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우리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르나, 이이들은 이상하게 귀담아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좋을 것이다.
‘수이가 이것을 짜느라고 한 동안 애썼겠다. 정말 여간 고맙지 않아. 곧 고맙다는 편지를 써 보내야지.’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칭찬과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망은에 대해 원한과 고민의 감정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칙 제3
1. 망은으로 고민하기보다는 차라리 망은을 얘기하라. 그리스도는 하루에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쳐 주었지만, 감사한 사람은 그중에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스도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2.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바라지 말고, 주는 기쁨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3. 감사는 하나의 배양된 특성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감사한 생각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만 한다.
15.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백만 달러에 팔겠는가?
나와 헤럴드 아보트와는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다. 그는 미주리주 웨브 시티에 살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내 강연 사업의 매니저로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캔자스 시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미주리주 벨턴에 있는 나의 농장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그 도중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여 고민을 물리치고 있는가 물어보았다. 그때의 그의 이야기는 실로 감명 깊은 것이었다. 그때의 이야기-
나는 곧잘 고민했다. 그런데 194년 어느 봄 웨브 시티의 거리를 지나다가 어떤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이 나의 고민을 한꺼번에 내쫓아 주었다. 그것은 불과 10초 동안의 일인데, 그 10초 동안에 나는 지금까지의 10년을 두고 배운 것 이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배웠던 것이다. 2년 동안 나는 웨브 시티에서 식료 잡화상을 경영했는데 그동안에 모아 두었던 돈을 전부 잃었을 뿐 아니라, 남에게 빚까지 지게 되어 그것을 갚는 데 7년이나 걸렸다. 점포는 지난주 토요일에 문을 닫아 버렸고, 나는 캔자스 시티로 일자리를 구하러 갈 여비를 빌려고 은행에 가는 길이었다. 나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초라했으며,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때 문득 저쪽에서 다리가 없는 사람이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롤러스케이트용 바퀴를 단 작은 나무판자 위에 앉아서 양손에 쥔 나무토막으로 줄곧 땅을 찍어당기며 오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은 마침 거리를 가로질러 보도 위로 올라오기 위해 자기 몸을 2, 3센티가량이나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판자를 비스듬히 들어 올리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빙긋 웃으며 쾌활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좋군요.' 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은혜를 입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나에게는 두 다리가 있다. 걸을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자신의 자기 연민이 부끄러웠다. 만약 이 사람이 두 다리가 없으면서도 행복하고 명랑하여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다리가 멀쩡한 내가 그러지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자 절로 용기가 생겼다. 애초 나는 은행에서 백 달러를 빌 생각이었지만 2백 달러를 차용할 자신이 생겼다. 나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캔자스 시티로 갈 생각이라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캔자스로 가는 거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자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취직을 했다. 지금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욕실 거울에 붙여 두고 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면도할 때마다 그것을 읽기로 하고 있다.
구두가 없다 하여 울적해지면
길에서 만난 다리 없는 사람에게.
나는 일찍이 에디 리켄이커에게 그가 다른 조난자들과 3주일 동안이나 구명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표류했을 때 당신이 체득한 최대의 교훈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때의 경험에서 배운 최대 교훈은 마시고 싶은 신선한 물과 먹고 싶은 식량만 충분히 있다면, 그 이상 아무것도 불행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타임'지에 과달카날에서 부상한 어느 상사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는 포탄의 파편으로 목에 부상을 입고 일곱 번이나 수혈을 받았다. ‘나는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그는 쪽지에 적어 군의에게 보였다. 그러자 군의는 ‘예스’라고 했다. 그는 다시 군의관에게 적어 보았다. ‘나는 말할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예스>였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종이에 썼다. ‘그럼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요?’라고.
어째서 당신도 <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가?> 하고 반성하지 않는가. 여기서 자신을 반성하면, 틀림없이 걱정하고 있는 일이 비교적 별것도 아닌 무의미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거의 90퍼센트의 일은 옳고, 나머지 10퍼센트는 잘못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90퍼센트의 옳은 일에 마음을 집중하고 10퍼센트의 잘못을 무시하면 된다. 또한 우리가 고민하여 위암에 걸리고 싶다면, 마음을 10퍼센트의 잘못에 집중시켜서 보람 있는 90퍼센트를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영국의 크롬웰파의 많은 교회에는 '생각하고 또 감사하라.'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 말은 우리의 마음에도 새겨 두어야 한다. <생각하고 또 감사하라.>우리는 감사해야만 할 온갖 것을 생각하고, 주어져 있는 은혜와 자비에 대해 주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난 스위프트 영문학 사상 가장 과격한 염세주의자였다.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비관하여 생일날에는 상복을 입고 단식을 했다. 그러나 이렇듯 세상을 더 없어 했지만 쾌활과 행복이라는, 인간에게 건강을 주는 힘에 대해서는 찬미했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의사는 ‘닥터 식가, 닥터 평온, 닥터 명랑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알리바바의 부보다 더 나은 재보에 대해 언제나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하루 종일 <닥터 명랑인>의 봉사를 공짜로 받을 수가 있을 것 같다. 당신은 두 눈을 천만 달러에 팔겠는가? 그 두 다리를 무엇과 바꾸겠는가? 당신의 손은? 청력은?
자식들은? 가족은? 모든 재보를 집계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록펠러 포드, 모건 들의 재산 전부를 준다 해도 당신이 가진 것을 팔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의 진가를 인정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 생각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생각하지 않고 없는 것만 생각하는> 경향은 지상에 있어서는 최대의 비극이다. 이것은 아마 역사상에 있었던 전쟁과 질병 이상으로 인상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존 팔머씨도 <인간적인 보통 사람에서 늙어빠진 불평가>가 되어 하마터면 엉망진창으로 만들 뻔했다. 나는 직접 그분에게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들어서 알고 있다.
군에서 돌아오자 나는 장사를 시작했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으며, 처음에는 만사가 순조로웠다. 그런데 뜻밖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그것은 부속품과 재료를 입수할 수 없게 된 일이었다. 나는 폐업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고민을 했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일반적인 보통 사람에서 늙어빠진 불평가가 되어 버렸다. 난 우울해지고 까다로와져서, 그 무렵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하마터면 가정의 행복을 망칠 뻔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상이군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부끄럽지도 않으시오? 당신은 고생하는 것은 자기 혼자라고만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잠시 가게를 닫았다고 해서 어떻다는 겁니까?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할 수도 있지 않소. 그래도 당신의 경우는 아직 운이 좋은 셈이오. 그런데도 늘 투덜거리시는군요. 저는 당신이 부럽소. 저를 보시오. 손은 하나밖에 없고 얼굴이 절반은 총알로 날아가서 형편없소. 그렇지만 저는 불평이 없소. 당신도 늘 불평만 하시다간 장사도 날아갈 테고, 건강도 가정도, 친구도, 전부 잃게 되고 말 거요.'
이 한마디에 의해 몰락으로 치닫던 것이 멈추어졌으며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당장에 옛날의 나로 되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했다.
내 친구 루실 블레이크는 한때 비극의 아슬아슬한 고비에 서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고 그 대신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함으로써 행복해질 것을 배웠던 것이다.
내가 루실을 알게 된 것을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는 컬럼비아 대학의 신문학부에서 단편 소설 작법을 공부했었다. 9년 전 애리조나에 살고 있던 그녀는 실로 놀라운 쇼크를 받았는데, 그때의 일을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눈이 돌 정도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애리조나 대학에서는 오르간을 배우고, 마을에서는 스피치 강습회를 지도하고, 디저트 윌로우 목장에서는 음악 감상 클라스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파니, 댄스, 심지어는 야간 자동차 달리기에도 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저는 졸도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문제는 심장의 탈이었어요. 의사는 '1년 동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는 그전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저를 위로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1년간의 병상 생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저는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을까? 난 이런 벌을 받아야만 할 짓을 했단 말인가?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비탄에 잠겨 몸부림치고 마구 흥분했으며 반항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말한 대로는 실행했지요. 그런데 이웃에 사는 화가 루돌프가 이러한 말로 격려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1년씩이나 병상에 누워 지내는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게 되니 자기라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지요. 당신은 요 몇 달 동안 지금까지의 생활 이상으로 정신적인 성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로운 가치 관념을 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감에 관한 서적들을 읽었지요. 어느 날 저는 라디오 평론가가 '인간은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도 가끔 들어 왔지만 그때의 그 말은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고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환희, 행복, 건강의 사상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을 전부 생각하도록 힘썼습니다. 고통이 없는 일을 비롯하여 귀여운 아가씨며 저의 시청력,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독서 시간, 맛있는 음식, 다정한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워낙 쾌활했고, 거기다가 위문객이 많았으므로 의사는 그분들을 일정한 시간에 차례로 한 사람씩 병실에 들어오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9년이 지났지만 저는 지금 충실히 활발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1년간의 병상 생활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애리조나에서 보낸 가장 귀중하고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그때 들인 매일 아침마다 자신의 행복을 헤아려 보는 습관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배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쨌든 저는 죽음에 직면하기까지 정말로 산다는 것을 몰랐던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친애하는 루실 블레이크여! 당신 스스로 깨닫지 못했는지 몰라도 벌써 2백 년 전에 사무엘 존슨 박사가 체득했던 교훈을 당신은 배운 것이다. 그때의 존슨 박사의 말에 이런 것이 있다.
온갖 일에 있어서 가장 좋은 면을 보는 습관은 1년에 천 파운드의 소득보다 낫다.
이러한 말은 직업적인 낙천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20년 동안이나 불안과 누더기 옷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그 시대에 가장 뛰어난 문학가인 한 사람, 고금을 통해 가장 저명한 좌담가로 알려졌던 사람이 한 말인 것이다.
로건 피어설 스미드가 말한 다음의 이야기는 짧으면서도 함축성이 있다.
“인생에는 그 목표로 삼을 바가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갖고 싶은 것을 손에 넣는 일, 둘째는 그것을 즐기는 일이다. 그런데 일류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한 이들만이 제2의 일을 성취한다.”
당신은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일일지라도 드릴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은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불굴의 용기와 감격이 담겨 있는 버그힐드 사알의 '나는 보고 싶었다'라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50년 동안을 거의 장님이나 다름없이 지낸 한 부인이 집필한 작품인데, 그 부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에게는 한쪽 눈밖에 없다. 한쪽 눈도 심한 상처 자국이 나서 왼쪽 눈 가장자리의 작은 틈새를 통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얼굴에 바싹대고 되도록 한쪽 눈을 왼편으로 돌려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에게 동정받기를 거절했으며, <특별취급>을 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어렸을 때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돌 차기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표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놀다 돌아간 뒤, 땅바닥에 엎드려 표적을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들이 놀았던 지면이 구석구석을 모조리 외어 두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뜀박질을 해도 남에게 지지 않게 되었다. 한편 그녀는 집에서 책을 읽는 법을 배웠는데, 큰 활자로 된 책을 보면서도 그 페이지가 눈썹에 닿을 만큼 가까이 갖다대야만 했다. 그러면서고 그녀는 두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땄으며, 미네소타 대학의 문학사, 컬럼비아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미네소타주 트와인 벨리의 한 쓸쓸한 시골에서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얼마 뒤에는 남다코타주 스우 펄스에 있는 오거르타나 칼리지에서 신문학과 문학 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13년 동안이나 강의를 하였으며 부인 클럽에 나가서는 강연을 라디오를 통해서는 서적과 그 저자에 관해 방송했다.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는 아주 장님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잠재해 있었다. 그런데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쾌활하고도 경솔에 가까운 생활 태도를 취했었다. 라고 그녀는 쓰고 있었다.
1943년 그녀가 52세 되던 해에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즉 유명한 마요 진료소에서 수술을 받은 결과, 그녀는 지금까지보다 40배나 눈이 잘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새롭고도 아름다운 세계가 그녀 앞에 열렸다. 이제 그녀에게는 부엌에서 접시를 닦는 일마저도 몸이 으쓱거릴 만큼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나는 접시 위에 하얗게 이는 비누거품을 만지작거린다. 그리고는 그 속에 손을 넣어 비누 거품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그 거품 하나하나 속에 작은 무지개의 찬란한 색채를 볼 수가 있다.'라고 그녀는 쓰고 있다.
또 그녀는 부엌 수채 위의 창문을 통해 펄펄 내리는 눈 속을 잿빛 참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도 써 놓았다.
비누의 거품이나 참새를 보고도 이렇듯 기쁨에 찼던 그녀는, 자기가 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맺고 있다.
'사랑하는 주여,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여, 나는 당신께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께 감사합니다.'
접시를 닦을 수 있으니까, 거품 속의 무지개가 보이니까, 눈 속을 날아가는 참새를 볼 수 있으므로 그녀는 주께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의 나라에 살면서도, 눈뜬장님이어서 그것이 보이지 않고 그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괴로움을 해소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법칙 제4. 괴로움을 세지 말고 축복을 세어라!
16. 자신을 알고 자신이 되어라. 이 세상에는 그대와 같은 인간이 또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나는 북캐롤라이나주 마운트 에어거에 살고 있는 에디스 얼렛 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어렸을 때 나는 몹시 신경질이었으며 부끄러움을 타는 편이었다. 나는 언제나 몸이 뚱뚱하고 볼이 남달리 부풀어 있었으므로 한층 더 뚱뚱보로 보였다. 어머니는 구식이어서 옷 치장하는 일을 바보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큰 것을 입을 수 있어도 작으면 찢어진다'고 하시며 나에게도 그런 방침으로 옷을 입혔다.
어쨌든 나는 한 번도 파티에 가지 못했고 즐거운 일이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도, 여러 아이들과 함께 과외 활동, 운동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나는 병적일 만큼 내성적이었고, 나 자신을 남들과는 <다른> 존재이며 언제나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 일곱 살 위인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이러한 나의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남편의 친척들은 모두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나의 이상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되어 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나를 가깝게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기가 죽어 내 자신 속에 움츠러들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신경과민이 되었으며 걸핏하면 화를 내게 되고 친구를 피했다. 점점 이 증세가 심해지자 현관에서 벨 소리만 울려도 겁을 먹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모자라는 바보였다. 더구나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있는 앞에서는 억지로 쾌활한 듯이 행동한 결과 연기 과잉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었으므로 나중에는 오랫동안 비참한 생각을 했다. 마침내 나는 너무 비참해져서 산다는 것이 싫어졌으며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대체 무엇이 이 불행한 여인의 생활을 전환하게 했는가. 그것은 우연한 말 한마디였다.
엘렛 부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어떤 우연한 말 한마디가 인생의 전부를 바꾸어 놓았다. 어느 날, 나의 시어머님은 그동안 어떻게 자식을 길러 왔는가를 이야기하던 중 이런 말을 하였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자기는 자기이어야 한다.' ‘자기는 자기이어야 한다’는 그 말씀! 이것이 나를 돌변케 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지금까지 자신이 순응할 수 없는 테두리 속에 나 자신을 집어 넣으려고 하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밤부터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연구하여 나의 됨됨이를 알고자 했고, 또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색채와 스타일도 연구하여 나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친구도 사귀려 했다. 그리고 부인회에도 가입했는데, 발표자로서 프로그램에 내 이름이 올랐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걸쳐 이야기하는 동안에 자신이 생겼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에 상상도 못했던 만큼 행복스럽다. 지금 나는 자식들을 키우는 데도 그간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며 배운 교훈인 <어떤 경우일지라도 자기는 자기이어야 한다>는 말을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문제는 역사와 함께 오래이며 마치 인간의 생명과도 같이 보편적이다.’라고 제임즈 고든 길버트 박사는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되기를 거역하다는 것은 많은 신경증, 정신 이상, 강박관념이 잠재적 원동력이 되어있다.
안젤로 패크리는 아동 교육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는 '자기의 마음과 육체를 버리고 자기 이외의 어떤 다른 사람, 자기 이외의 무엇이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특히 헐리우드에 유행하고 있다. 유명한 영화 감독 샘 우드는 자기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일은 야심 만만한 젊은 배우들에게 자기 자신이 되라고 설득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라나 티터의 2급품, 크라크 게이블의 3급품이 되고 싶어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한 운치는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와는 뭔가 다른 것을 바라고 있다.’라고 샘우드는 덧붙여 말하고 있다.
우드는 '칩스 선생이여, 안녕',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영화를 감독하기 전에 오랫동안 부동산의 매매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므로 세일즈맨으로서의 요령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실업계이든 영화계이든 사업의 요령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코 앵무새는 아닐 터이니까.
내 경험에 의하면 자기가 아닌 것으로 위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되도록 빨리 해고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최근 소코니 바큐엄 석유 회사의 인사담당 이사 폴 보인트에게 취직 지망자들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면접한 구직자는 6만명을 헤아리며 '일자리를 얻는 요령'이라는 저서까지 있으니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구직자가 범하는 최대의 잘못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침착하고도 솔직해야 할 사람이 면접자의 비위에만 맞을 대답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야바위꾼은 원치 않으며, 위조지폐를 탐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어떤 시의 전차 차장은 가까스로 이 교훈을 배웠다. 그녀는 본디 가수를 지망했는데, 불행하게도 용모가 시원치 않았다. 입은 너무 컸으며 게다가 뻐드렁니였다. 그래서 뉴저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윗입술로 삐져나온 이를 감추려고 하였다. 그녀는 억지로 매혹적인 제스처를 써 보였지만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그녀의 앞길에는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이트클럽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던 한 신사가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
“여보시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는 당신의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당신이 감추려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이가 마음에 걸리지요!”
그녀는 당황했으나 상대는 말을 계속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지요? 뻐드렁니가 당신의 죄는 아니오. 구태여 감출 필요가 없어요. 마음껏 입을 벌리고 불러와요. 모두 당신이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사랑하게 될 거요. 지금 당신이 감추려고 하는 이빨 덕분에 뒷날엔 운이 열릴지도 모르죠.”
캐스 다레이는 이 사람의 충고에 따라 이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런 뒤로 그녀는 청중에게만 마음을 썼다. 그녀는 마음껏 입을 버리고 목소리가 자라는 데까지 힘껏 노래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녀는 영화와 라디오의 대스타가 되었으며, 이제는 그녀를 흉내 내는 희극배우까지 있다. 윌리엄 제임즈가 보통 사람은 그들의 잠재적인 정신 능력의
10퍼센트 밖에는 발전시킬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가능성에 비한다면 우리는 반각성 상태에 있다.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자원의 극소 부분밖에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괄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그들의 한계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힘을 지니고 있으나, 대체로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과 나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들과 같지 못하다는 이유로 고민함으로써 단 1초일망정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자. 당신은 이 세상 가운데서 새로운 존재인 것이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당신과 똑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었으며, 또 앞으로도 당신과 동일한 인간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새로운 유전과학은 우리에게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22개의 염색체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22개의 염색체와 XY 염색체로 당신이라는 인간이 생긴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46개의 염색체에 포함되어있는 것이 당신이 이어받은 것은 온갖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람 샤인펠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염색체의 하나하나에는 수십 내지 수백의 유전 인자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라도 개인의 온 생애를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인간이란 이렇듯 놀라울 만큼 불가사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결혼한 후에도, 당신이라는 특별한 인간이 태어나게 되는 확률은 30조에 겨우 하나 정도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30조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가 있었다 해도 모두 당신과는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낱 추정인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사실이다. 이에 관해 당신이 좀 더 알고 싶다면 알람 샤인펠드의 '인간과 유전'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일종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한때 쓰라린 경험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미주리주의 옥수수밭에서 처음으로 뉴욕에 왔을 때, <아메리칸 아카데미 오브 드라마틱 아츠>에 입학했다. 말하자면 나는 배우를 지망했던 것이다. 나는 이처럼 간단명료하며, 더욱이 확실한 성공에의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째서 야심을 품은 청년들이 나처럼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지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어쨌든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당대의 명우 존 드류, 월터 함프덴, 오티스 스킨너 등이 그들의 예술을 연마했던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점만을 흉내 내어 놀라울 만큼 눈부신 그들의 예기의 총합체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정말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었다. 그리고 나 같은 미주리주 태생인 멍청이에게 자시 자신으로 돌아가라, 절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반성이 생기기까지 나는 줄곧 남을 흉내 내기에 오랜 세월을 낭비했던 것이다.
그 쓰디쓴 경험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교훈을 주었을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너무도 우둔했다. 다시 한번 같은 것을 배워야 했다. 수년 동안 나는 실업가를 위한 퍼블릭 스타킹에 관한 일찍이 나온 일이 없는 훌륭한 책을 저술하고자 마음먹었다. 나는 이 책을 집필함에 있어서 연기 연구에 대해 범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여러 저서의 아이디어를 빌려다가 정리하여, 온갖 아이디어를 다 담은 책 한권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퍼블릭 스피킹에 관한 수십 권의 서적을 사들여, 그것을 정리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던 것이다. 여태껏 내가 만들고 있는 남의 아이디어의 뒤범벅은 지나치게 총합적이어서 재미가 없기 때문에, 실업가들이 읽어 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1년 동안의 노작을 고스란히 휴지통에 쓸어 넣고 새로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너는 데일 카네기가 되어라. 결점이나 한계를 염려한 것은 없다. 나는 어차피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총합체가 되기를 그만두고, 다시 분발하여 내가 처음부터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던 일에 착수했다. 나는 자신의 경험, 관찰, 강영자 및 연설법 교사로서의 자신을 기초로 하여 퍼블릭 스피킹에 관한 교과서를 집필했던 것이다. 나는 윌커 롤리경 (진창길에 상의를 벗어 던져 여왕으로 하여금 그 위를 걷게 했다는 그 풍류 시인이 아니라, 1964년, 옥스포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였던 동성 동명인이다)에 배웠던 것과 똑같은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고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양의 서적을 쓸 수는 없을지라도, 나의 서적을 쓸 수는 있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되어라. 어빙 비얼린이나 조지 거쉰에 따라 행동하라. 이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버얼린은 이미 유명해져 있었지만, 거쉰은 베를린의 더러운 뒷골목에서 주급 35달러라는 박봉으로 생활에 허덕이고 있는 젊은 작곡가였다. 버얼린은 거쉰의 재능에 감동하여, 그가 받고 있던 급료의 3배를 잴 테니까 자기의 음악 비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버얼린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맡지 않는 편이 나을 거요. 당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 버얼린의 2류품이 될 염려가 있소. 그러나 당신이 끝까지 자기 자신을 지킨다면 언젠가는 1류 거쉰이 되고 말 거요.’
거쉰은 그 충고를 잊지 않고 차근차근 자시 자신을 그의 세대에 있어 특색있는 아메리카 작곡가로 다져 갔던 것이다.
찰스 채플린, 윌 로저스, 메리 마가렛 맥브라이드, 진 오트리, 그밖에도 무수한 사람들은 내가 이 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교훈을 배워야만 했다. 그들은 모두 나처럼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이것을 배웠던 것이다. 찰스 채플린이 처음으로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 감독은 그에게 그 무렵 인기가 독일의 희곡 배우를 흉내 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채플린은 그의 독특한 연기를 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던 것이다. 보브 호프와 이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노래하면서 춤추는 연기를 했으나 이것은 마침내 헛고생으로 끝나고, 경구 만담을 하게 된 뒤로 인기를 얻었다. 윌 로저스는 여러 해를 두고 무대 뒤에 나와 앉아서, 말 한마디 없이 로프만 비비 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유머에 대한 특수한 그의 재능을 발견케 하여, 로프를 요리조리 휘두르면서 지껄이게 된 뒤로 그는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메리 마가렛 맥브라이드는 처음 방송에 나왔을 때, 아일랜드의 희극 배우가 되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미주리주 태생인 시골 여자가 되었을 때,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스타가 되었던 것이다.
진 오트리가 텍사르 사투리를 감추고, 제법 도시인처럼 뽐내면서, 난 이래뵈도 뉴욕 태생이노라고 큰소리쳤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돌려놓고 냉소했다. 그러나 그가 밴조를 안고 카우보이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의 앞길은 저절로 열려서 그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세계 제1의 카우보이가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새로운 그 무엇인 것이다. 그것을 기뻐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이 당신에게 준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정신 분석에 의하면 온갖 예술은 자서전적이다. 당신은 당신의 것밖에는 노래할 수 없다. 또 당신인 것밖에는 그릴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 환경, 유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당신은 자신의 작은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 좋든 나쁘든 당신은 인생의 오케스트라에서 당신 자신의 작은 악기를 연주해야만 한다.
에머슨은 <자신>이라는 논문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교육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확신에 도달하는 시기가 있다. 즉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다. 그러므로 좋든 나쁘든 자기를 주어진 운명으로 깨닫고, 광대한 우주에는 좋은 것들이 충만하여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 가져다주는 곡식은 그에게 주어져 있는 좁은 토지에서 그가 애써 가꾼 것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의 육체 안에 잠재하는 힘은 자연에 있어서도 새로운 것이며,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지만, 그것도 그가 이를 시험하기까지는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은 에머슨의 말이며,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 더글러스 마크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대 만일 저 언덕의 소나무가 되지 못한다면,
산골짜기의 잡목이 되어라--그러나
여울가의 가장 좋고 보기 좋은 나무가 되어라,
관목이 되어라, 만일 나무가 되지 못하겠거든.
그대 만일 관목이 되지 못하겠거든, 작은 풀이 되어라,
그리고 길거리를 보다 아름답게 하라.
그대 만일 꼬치고기가 되지 못하겠거든 농어가 되어라--
그러나 호수에서는 가장 팔팔한 농어가 되어라!
우리 모두가 선장이 될 수는 없다. 선원이 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모두가 무언가 할 일은 있을지니.
큰일도 있을 것이며 작은 일도 있을 것이니,
그리고 해야만 하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그대 만일 큰길이 되지 못하겠거든 아주 작은 오솔길이 되어라.
그대 만일 태양이 될 수 없으면, 별이 되어라.
실패와 성공은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니,
무엇이 되더라고 가장 좋은 것이 되어라.
우리를 고민으로부터 해방하여 평화와 자유를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한 법칙 제5. 남의 흉내를 내지 말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여 자신이 되어라.
17. 레몬이 있으면 레몬수를 만들라.
이 책을 집필하고 있을 때, 나는 어느 날 시카고 대학을 찾아가서 총장 로버트 메이나드 허친스에게 어떻게 그가 고민을 처리하고 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시어스 로버크 앤드 컴퍼니의 사장 고 줄리어스 로젠왈그의 충언인 <레몬이 있으면 레몬수를 만들라>라는 말을 명심하여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교육자가 지표로 삼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이는 이와 정반대의 짓을 한다. 가령 인생이 그에게 레몬을 주면 그것은 내버리고는 ‘나는 지고 말았다. 이것도 운명이다. 이제 기회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고 자기연민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명한 사람은 레몬을 받게 되면 스스로 이렇게 자문한다. ‘이 불행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런 상태를 개량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이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가 있을 것인가?’
한평생을 인간과 그 잠재 능력에 대해 연구를 해 온 위대한 심리학자 알프렛 아들러는 ‘인간의 가장 놀랄 만한 특성의 하나인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잘 아는 부인으로, 이것을 참으로 훌륭하게 처리했던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델마 톰슨인데 지금도 뉴욕에 살고 있다. 다음은 그녀가 이야기해 준 재미있는 경험담이다.
전쟁 중 제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이브 디저트에 가까운 육군 교련소에 배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가까이에 있기 위해 그곳으로 옮겨갔습니다만 그 지방이 싫었습니다. 아주 싫었습니다. 비참하기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지요. 남편은 모제이브 디저트에서 있는 연습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아, 나는 움막집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선인장의 그늘까지도 125도라는 심한 무더위이고 고작 이야기 상대라야 멕시코인과 인디언뿐인 데다가 그것도 영어는 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줄곧 바람이 그치지 않아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서걱거릴 정도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비참하고 슬픈 생각이 들어, 양친께 편지를 써서 아무래도 참을 수 없으니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가겠다, 이런 곳에 있으려면 차라리 교도소가 낫겠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아버지의 회답은 겨우 두 줄의 문구였어요. 하지만 나는 평생을 두고 그 말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생활을 일변시켰으니까요.
두 사나이가 교도소의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땅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나는 이 문구를 몇 번이나 되풀이 읽고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라고 결심했습니다. 별을 찾으려고 했지요. 그러는 동안에 나는 토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편물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 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도 팔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나에게 선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선인장, 유카, 요슈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풀인 마르모트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보고 사막의 일몰을 바라보기도 하며, 몇백만 년 전 옛날 사막이 해상이었던 때에 남겨진 조개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런 놀라운 변화를 나에게 가져왔을까요. 모제이브 디저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변한 것입니다. 나의 마음가짐을 바꾼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비참한 경험을 나의 생애의 가장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나는 내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에 의해 자극되고 흥분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도 흥분하여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나는 자신이 만든 교도소에서 창문을 통해 별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델마 톰슨씨! 당신은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5백 년이나 전에, 희랍인들이 가르쳤던 오래된 진리 <가장 좋은 일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하리 에머슨은 포스딕은 20세기에 와서 이것을 재론하고 있다.
‘행복은 대개의 경우에 있어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승리인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성취, 성공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 있는 데서 오는 승리이다.
나는 언젠가 유독한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수 있었던 행복한 농부를 찾아 플로리다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런데 처음 그가 그 농장을 손에 넣었을 때는, 그는 좀처럼 일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질이 워낙 거칠어서 과수를 재배할 수도 없고, 돼지를 사육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었다. 거기에서 번성하는 것은 작은 가시나무와 방울뱀뿐이었다. 그때 그는 기발한 착상을 했단. 그것은 즉 이 쓸모없는 귀찮은 것들을 자산으로 바꾸는 일, 말하자면 방울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기상천외라고 할까. 그는 방울뱀의 고기로 통조림을 제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몇 년 전에 내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 방울뱀 농장을 구경하러 오는 여행자들은 1년에 20만 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어쨌든 그의 사업은 성공하고 있다. 독사의 이빨에서 뽑은 독은 항독용 독소로서 각지의 연구소로 보내졌으며, 그 가죽은 부인용 구두라든가 핸드백 재료로서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뱀고기의 통조림은 온 세계의 식도락주의자들에게 실려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그림엽서를 사서 그 마을 우체국에서 부쳤는데, 그 지방은 독 있는 레몬을 레몬수로 바꾼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방울뱀 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미국을 여행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을 발휘한 남녀>들을 가끔 만날 수가 있었다.
'신들을 배반한 열두 사람'의 저자 고 윌리엄 보리스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자본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짓이라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진실로 중요한 일은 손실에서 이익을 올리는 일이다. 그러자면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 점이 분별 있는 사람과 바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보리스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철도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후였는데, 나는 두 다리를 잃었으면서도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었던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벤 포트슨이라는 사람인데, 나와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어떤 호텔의 엘리베이터 속에서 만났었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구석에 자리 잡은 바퀴 의자에 두 다리가 없는 사나이가 벙글벙글 웃으며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을 때, 그는 남에게 좀 비켜 주지 않겠는가, 부딪치면 안 될 테니까 하고 말했다.
“참 미안합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쾌활하게 미소지으며, 의자를 움직여 나갔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그 쾌활한 불구자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그의 방을 찾아내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29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원 콩밭에 말뚝을 꽂으려고 호도나무를 베러 갔었지요. 자른 나무 막대기를 자동차에 싣고 돌아오는 도중, 갑자기 막대기 하나가 차에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바로 급한 커브를 돌리려던 찰나 핸들이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는 제방 밑으로 굴러떨어져 나는 나무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그때에 척골을 다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내 나이 스물넷이었는데, 그 후로는 한 발자국도 걷지 못했습니다.”
24세에 일생을 바퀴 의자에서 보내야만 할 운명이 되다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떻게 그렇듯 쾌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원 천만의 말씀을”
하고 그는 말했다. 한때는 화가 치밀어 올라 길길이 날뛰고 반항하며, 운명을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런 반항은 다만 자신을 괴롭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게 마음을 써 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도 세상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그 사고를 무서운 불행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니오, 이제 와서는 오히려 기뻐할 정도입니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그 쇼크와 원한에서 회복되자 그는 곧 새로운 세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수한 문학과 친하게 되었고, 14년 동안 천4백 권의 책을 독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서적들은 그의 시야를 넓히고,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의 생활을 풍성하게 했다. 그는 또한 음악과도 친하게 되어 전에는 그렇듯 그를 지루하게 했던 교향악에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사물을 생각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이 세계를 지켜 보고, 사물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의 대부분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독서한 결과 정치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공공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바퀴 의자로 유세를 다녔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도 그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벤 포트슨은 조지아주의 국무장관이다.
지난 35년 동안을 나는 뉴욕에서 성인 교육에 종사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클라스의 많은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은 대단한 핸디캡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러한 학생들에게 초등학교도 변변히 나오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는 극빈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관을 사주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는 어느 우한 공장에서 하루 10시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그리고 삯일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밤 11시가 밤일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소년은 가까운 교회 클럽의 소인극에 출연하게 되었었는데, 그것이 재미있어서 열중하여 퍼블릭 스피킹을 하려고 결심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정치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인연이 되어, 30세 때 뉴욕의 주의원으로 뽑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직책을 수행하기에는 준비가 모자랐다. 그는 솔직히 일체가 오리무중이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 그는 찬부의 투표를 해야만 되었고, 길고도 복잡한 의안을 읽기는 읽지만 도무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촉토오족의 토어로 씌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숲속에 발을 들여놓은 일도 없는데 산림법 의원에 뽑히었고, 은행에 거래도 없는데 주립 은행법 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입법부를 사직하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에게 쓰라린 패배를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듯 절망한 나머지 분발한 그는 하루에 16시간이나 공부하여, 무지라는 레몬을 지식이라는 레몬수로 바꾸어 보려고 결심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을 일개 지방 정치가로부터 국민적인 대인물로 바꾸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를 가리켜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민>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껏 알 스미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알 스미드는 독학으로 정치의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후에는 뉴욕주의 정치에 관한 최대 권위자가 되어, 네 번이나 뉴욕주 지사로 선출되었다. 이는 아무도 이룩할 수 없었던 기록이다. 1928년, 그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컬럼비아, 하버드 등을 포함하여 6개 대학이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았던 이 사나이에게 명예 학위를 하루에 16시간이나 공부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이렇게까지는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니체의 초인에 관한 법칙에도 ‘궁핍을 참고 견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자가 초인인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성공자의 경력을 연구하면 할수록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실하기에 이른다. 실로 대대수의 사람들은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이 노력과 성공에의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윌리엄 제임즈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약점 그 자체가 뜻밖에도 우리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밀턴은 장님이었기 때문에 보다 뛰어난 시를 썼으며, 베토벤은 귀머거리였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음악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헬렌켈러의 놀라운 생애 역시 장님과 귀머거리에 자극되어 가능해졌는지도 모른다. 만일 차이코프스키가 의기를 상실하지 않고 그의 비극적 결혼에 의해 자살 직전까지 쫓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일 그의 생활이 슬픈 것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그는 불후의 명작 교향곡 <비창>을 작곡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또 만일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가 고난의 생활을 해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마 저 불후의 소설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내가 심한 병약자가 아니었더라면’ 하고 지상에 있어서 인간의 과학적 관념을 일변시켰던 학자는 말하고 있다.
‘만일 내가 심한 병약자가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많은 일들을 성취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기의 약점이 생각지 못했을 정도로 도움이 되었던 사실을 고백한 찰스 다윈의 말이다.
다윈이 영국에서 출생한 것과 같은 날, 또 하나의 어린아이가 켄터키주 숲속의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도 또한 자기의 약점에 의해 도움받았는데, 그의 이름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만일 그가 상류 가정에서 자라났더라면, 그리고 하버드 대학의 학사 칭호를 받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더라면, 그가 게티즈버그에서 연설한 불후의 명언은 그의 가슴 속에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두 번째의 대통령 취임 석상에서 행한 저 고귀한 문구를 입에 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일찍이 인간의 통치자가 입에 담았던 가장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말-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려 만인에게 자애를……’
하리 애머슨 포스딕은 '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이라는 그의 저서 가운데 이런 말을 했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북풍이 바이킹(해적)을 만든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생활에 대한 일종의 격려하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고도 유쾌한 생활, 안일 따위가 인간을 선량하게 만들며 행복하게 한다는 관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인간이라면, 푹신한 쿠션 위에 가만히 뉘어져서도 여전히 자기를 가련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서도 알겠지만 인간이 자기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면 성격과 행복을 선악과 무관심을 불문하고, 어떤 경우에 처한 사람에게도 찾아드는 법이다. 그러므로 <북풍이 해적을 만든다>고 하겠다.
가령 우리가 전혀 의기를 상실하고, 레몬을 레몬수로 바꿀 만한 희망을 잃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때일지라도 해 보아야 할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한 것만큼 얻고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두 가지 이유이다.
이유의 하나-우리는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유의 둘-비록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뒤를 보지 않고 앞을 보세 만든다. 그에 따라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그것이 창조적인 에네르기를 해방시켜 우리를 분주하게 하며, 영원히 지나가 버린 일을 언제까지나 고민할 시간이라든가 기분을 없게 한다.
세계적인 바이얼리스트 오레 부르가 파리에서 연주하던 중 바이얼린 현이 뚝 끊어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부르는 세 줄로 그곳을 마치었다.
“그것이 인생이다. A현이 끊어져도 세 현으로 탈없이 끝마친다는 것이-”
이것은 하리 에머슨 포스딕이 한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인생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 이상이다. 빛나는 인생인 것이다.
만일 나에게 그렇게 할 힘이 있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윌리엄 보리스의 말을 동판에 새겨 국내의 모든 국민학교 교실에 걸도록 하겠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이익을 자본화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일이라면 바보라도 할 수 있다. 진실로 중요한 일은, 손실에서 이익을 올리는 일이다. 그러자면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 점이 분별 있는 사람과 바보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적인 태도를 기르기 위해 지켜야 할 법칙 제6. 운명이 레몬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레몬수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18. 14일 동안에 고민을 해소하는 법
나는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렇게 고민을 극복했다’에 대한 가장 유익하고 독려가 되는 실화를 보내 준 사람에게는 2백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콘테스트의 심사원에는 동부 항공 회사 사장 에디 리켄베이커, 링컨 기념 대학 학장 스튜어트 W. 맥레란드, 라디오 뉴스 해설자 H.V. 칼덴본 등 세 사람이었는데 응모 작품 중 두 편은 대단히 우수하여 석차를 정할 수 없었으므로, 상금을 2등분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중의 하나,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 살고 있는 C.R. 버튼 씨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9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2세 때에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19년 전에 집을 나가신 것이다. 나는 그런 뒤로 지금껏 어머니도 못 만났고 또 어머니가 데리고 산 두 여동생도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버리고 나간 지 3년 후 사고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 공동으로 읍에서 조그마한 카페를 경영하고 계셨는데, 장삿일로 여행 떠나신 틈을 타서 상대편 사람은 카페를 팔아 치우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급히 돌아오라고 전보를 쳤기 때문에 아버지는 황급히 돌아오시던 도중, 캔자스의 사리나스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내게는 고모가 두 분 계셨는데 가난하고 병 중인 데다가 연만하셨는데도 우리 삼형제를 맡아 주셨다. 그렇지만 나와 동생들은 누구에게나 따돌림을 당했다. 모든 사라에게 구박을 받았다. 나는 부모 없는 자식으로 불리거나, 고아 취급을 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일이 얼마 안 있어 정말이 되었다. 나는 잠시 동안 마을의 어떤 가난한 가족과 함께 지냈는데, 불경기로 주인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나를 길러 줄 만한 여유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을에서 11마일 떨어진 농장의 로프틴 부부가 나를 맡아 주었다. 로프틴씨는 70세나 된 노인이었는데, 대상 포진으로 자리에 누워 지냈다. 그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며, 하라는 대로 말만 잘 들으면> 자기 집에 두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세 가지 규칙은 나의 바이블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엄중히 지켰다. 나는 그때부터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처음 주일은 집에 돌아오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집적거리며 코가 크다고 놀려 대는가 하면, 나를 벙어리라는 둥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욕을 했던 것이다. 나는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싸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로프틴씨는 이런 말을 했다. '싸움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싸움을 하는 것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것을 잊지 않도록 하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하지 않기로 했었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학교 교정에서 한 줌의 닭똥을 내 얼굴에 집어 던졌다. 그때는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실컷 그 아이를 두들겨 주었다. 그래서 친구가 두서넛 생겼다. 그들은 그 녀석이 나쁘다고 나를 두둔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미시즈 로프킨이 사 준 새 모자를 신바람이 나서 쓰고 다녔는데, 하루는 커다란 여학생이 와서 모자를 와락 낚아채더니 그 안에 물을 넣어 형편없이 말들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네 돌대가리를 적셔 준 거야. 혈액 순환이 좋아지도록 말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서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집에 와서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시즈 로프틴은 나를 달래며 차근차근 타일러 주었다. 그래서 나의 고민과 걱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으며, 나의 적을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랄프야, 네가 그 아이들한테 흥미를 가지고 무엇이든 그 애들이 좋아할 일을 해준다면 그 아이들은 결코 너를 구박하지도, 고아라고 욕하지도 않게 될 게다.' 나는 이 충고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으뜸가는 성적을 올렸으나 아무도 나를 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되도록 여러 아이들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의 작문을 거들어 주었고 연설의 초고를 전부 써 준 일도 있었다. 나와 같은 반에 어떤 친구는 나한테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자기 어머니에게는 주머니쥐를 잡으러 간다고 하고는 로프틴씨네 농장으로 찾아와 개를 헛간에 매어 놓고, 나에게 학과의 예습과 복습을 받기도 하였다. 또 어떤 친구에게는 책의 비평문을 써 준 일도 있으며, 한 여학생에게는 여러 날 밤을 수학 지도를 한 일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이웃에는 사신이 찾아왔다. 늙은 두 농부가 죽었으며 한 여자는 남편을 잃었다. 그러자 네 세대 중에 남자라고는 나 하나만 남았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이 미망인들을 2년 동안이나 도와주었다. 학교에 오고 가는 길에 그녀들의 농장에 들러서 나무도 잘라 주고 우유도 짜주며,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였다. 나는 이제 미움을 받기는 커녕 칭찬이 자자하게 되었으며, 어느 집에서나 친구처럼 대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해군에서 돌아왔을 때는 진심으로 크게 환영해 주었다. 내가 돌아오던 그 날에는 2백여 명의 농부들이 찾아와 주었으며, 그중에는 20마일 밖까지 차를 몰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부터 나를 생각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남을 돕기에 바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13년 동안 <아버지 없는 자식>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없다.
버어튼씨여, 장하다! 그는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또 고민을 극복하여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알고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의 고 프랭크 루프 박사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23년 동안이나 통풍으로 누워 지냈다. 그런데 시애틀 스타지의 스튜어트 화이트 하우스는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가끔 루프 박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분처럼 이타적이며, 그렇게 해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어떻게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의 추측이 있다. 그는 그것을 불평과 남의 결점을 찾는 것으로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자기 연민에 빠져 언제나 주목의 초점이 되어, 남들이 그의 뜻을 받들도록 요구하는 데 의한 것일까? 아니다.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영국의 황태자처럼 <나는 봉사한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음으로써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는 병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주소 성명을 모아 그들에게 위문과 격려 편지를 보냄으로써 자기와 다른 사람이 모두 쾌활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는 또한 환자들을 위한 서신 교환회를 조직해서 서로 간에 편지를 쓰게 하여 마침내는 그것을 <농거협회>라는 국제 조직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는 병상에 있으면서도, 1년에 평균 1만 4천 통이나 되는 편지를 썼으며, 외출할 수가 없는 병자들을 위해서는 라디오며 서적들을 갖게 해줌으로써 수천 명의 환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루프 박사와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커다란 차이는 어떤 점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다. 그는 자기 자신보다도 훨씬 고귀하며, 훨씬 더 의미있는 관념에 따라 이용되고 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버나드 쇼오가 <세상이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는 조금도 힘을 보태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말함으로써, 짜증과 불만으로 편안한 날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소인배들>이라고 평한 사람들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다음에 든 예는 위대한 정신병학자 알프렛 아들러가 발표한 놀라운 보고이다. 그는 언제나 환자에 대하여 ‘이 처방대로만 하면 14일 동안에 반드시 완쾌합니다. 그것은 즉, 날마다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하고 말해 왔다. 이 말만 가지고는 신용할 수 없을 것 같으므로, 그의 명저 '인생이 의미하는 것'에서 조금 인용해 보기로 한다.
우울증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오랜 기간의 계속적인 분노, 비난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보호와 공정과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는 자기의 죄에 따라 그것이 거부되고 있는 듯한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울증 환자의 첫째 기억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긴 의자에 눕고 싶었으나, 형이 그곳에 있었으므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형은 의자를 양보해 주는 것이었다.'
또 우울증 환자는 가끔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복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의사가 가장 주의해야 될 일은 그들에게 자살할 구실을 주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나 자신은 그들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제일 조처로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면 결단코 하지 말라>고 제언하기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것 같지만, 실은 갖은 장래의 근원을 찌른 것이라고 믿는다. 만일 우울증 환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면, 아무도 원망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분풀이를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을 보러 가고 싶으면 가도록 하라. 놀러 가고 싶으면 그러도록 하라. 또한 도중에 싫어지면 그만두라.”
그런데 이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가장 좋은 상태이다. 더구나 나는 신에 가까운 존재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우월감을 찾는 이들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그의 생활 형태에 쉽사리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비난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그에게 동의한다면 그들을 지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법칙은 그들의 불안을 제거한다. 그르므로 나의 한자 중에는 자살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환자들은 ‘하지만 나는 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일이 별로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런 대답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얘기하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다.
“그러시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도록 하는 거죠.”
때로는 또
“나는 종일 자고 싶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무작정 좋다고만 한다면 환자편이 불만스러워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거부한다면 환자가 펄펄 뛰고 야단을 치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동의한다.
이것이 제1의 법칙이다. 다음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생활 방식에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처방대로만 하시면 14일 동안 반드시 완쾌하게 됩니다. 그것은 남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겠는가>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의 대답은 매우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일쯤은 문제없다. 난 한평생을 해 왔으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를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졸다. 그것인 건강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다음날 나는 다시 그들에게 물어본다.
‘어제는 제 말대로 하셨습니까?’
그 대답인즉
‘잠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 버려서.’
물론 이러한 일들은 모두 평온하고도 매우 정다운 태도로 할 일이며 고압적이어서는 안 된다. 어떤 환자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안되겠군요. 나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민을 계속하는 게 좋겠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에 관한 일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권장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째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 건가요? 그들은 조금이라도 나를 기쁘게 해주려 하지 않는데요.’
나의 대답인즉
‘그것은 당신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후회합니다.’
그러나
‘나는 말씀하진 것을 잘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환자는 실로 드물다. 나의 모든 노력은 환자의 사회적인 관심을 증대시키는 일에 기울여지고 있다. 그들 병의 참다운 원인은 협동 정신이 모자라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것을 의식케 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과 평등하고도 협동적인 입장에서 결합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그들은 완쾌된다. 종교에 의해 부과된 가장 중요한 일은 언제나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은 인간이 인생에 있어 최대의 위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온갖 인생의 실패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요구하는 바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보다 좋은 협동자가 되라,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라,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는 참다운 반려가 되라는 것이다.
아들러 박사는 하루 한 가지씩의 선행을 역설하고 있다. 선행이란 무엇인가? 예언자 마호멧에 의하면 ‘선행이란 다른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오게 하는 행위이다.’라고 했다.
어째서 매일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그 행위자에게 놀랄 만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으로 오뇌, 공포,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인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비서 양성소를 경영하고 있는 윌리엄 T. 문 부인은 자기의 고민을 몰아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준다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 두 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러 박사에게 한 걸음, 아니 열세 걸음이나 차를 두었다. 그녀는 두 주일 동안이 아니라, 단 하루에 두 고아를 기쁘게 해줄 것을 착안하여 자신의 고민을 몰아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문 부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5년 전 12월 나는 슬픔과 자기 연민의 감정에 싸여 버렸다. 수년 동안의 행복한 생활을 보낸 후 나는 남편을 잃어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짐에 따라 나의 슬픔을 더해갈 뿐이었다. 나는 지금껏 혼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 본 일이 없었으므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하자고 초대해 주었으나, 나는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크리스마스이브가 닥쳐옴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누구든지 감사할 일은 있는 것이지만, 정말 나는 많은 일에 감사 했어야 되었는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오후 3시에 사무소를 나와 이렇다 할 생각도 없이 5번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자기 연민과 우울함을 털어 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큰 거리는 명랑하고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과거의 즐거웠던 모든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쓸쓸하고 공허한 아파트로 돌아가다니,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이나 정처 없이 걷는 동안에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틈에 버스 종점에 와 있었다. 전에도 나는 곧잘 남편과 함께 야릇한 모험심에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는 버스에 탔던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그래 나는 맨 먼저 눈에 띄는 버스에 올라탔다.
허드슨강을 건너 한참 가니까 차장이 '종점입니다. 아주머니'하는 바람에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 마을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어쨌든 다음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택가를 걸어 보았다. 그러다가 교회 앞은 지나치려는데 <고요한 밤>의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 오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 안에는 오르간을 치는 사람이 혼자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찬란하게 꾸민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나는 광채는 그 주위의 장식들을 달빛에 춤추는 무수한 별인 것처럼 생각되게 했다. 그리고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는 탓도 있어서 나에게 졸음을 가져왔다.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있었으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나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 눈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온 듯한 두 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한 여자아이는 나를 가리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데리고 왔는지도 몰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보자, 두 아이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괜찮아'하고 말하여 그들이 마음을 놓게 했다. 그들은 모두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와 엄마는?'하고 물어보았다. '우린 엄마도 아빠도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보다도 훨씬 불쌍한 두 어린 고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자, 자신의 자기 연민과 슬픔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여주고, 드러그 스토어에 데리고 가서 캔디와 선물을 사주었다. 그러나 보니 나의 쓸쓸함은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사라졌다.
두 고아는 수개월 만에 나에게 행복과 망아(忘我)의 감정을 가져오게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부모님의 사랑과 자애로움에 넘쳤던 것을 주께 감사했다. 그 두 고아들은 내가 그들에게 해준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나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도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행복이란 전염되는 것임을 자각했다. 그러므로 준다는 것은 곧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남을 돕고 사랑을 줌으로써 고민과 슬픔과 자기 연민을 극복하고 전연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 그때뿐만이 아니라 그로부터 줄곧 그러하다.
나는 건강과 행복 후에 자기를 망각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엮을 수 있다. 예로서 미 해군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인 중의 한 사람인 마가렛 테일러 이예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예츠 부인은 소설가인데, 그녀의 소설보다고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던 그 무서운 날 아침, 그녀의 신변에 일어났던 실화가 더 재미있다. 이예츠 부인은 워낙 심장이 나빠서 약 1년 전부터 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12시간을 침대에서 지냈다. 그리고 일광욕을 하러 뜰까지 나오는 것이 그녀 최대의 여행이었다. 그때조차도 그녀는 하녀의 팔에 매달려서 걸어야만 했다.
그 무렵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런 환자로 지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노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만약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나의 자기 만족을 동요시키지 않았던들, 나는 지금과 같은 새 생활로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도무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무질서했다. 바로 우리 집 근처에도 폭탄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 진동으로 나는 침대에서 내동댕이쳐졌다. 군 트럭들이 육해군의 군인 가족들을 학교로 피난시키기 위해 허캄 비행장 스코필드 기지 등지로 급행했다. 적십자사에서는 피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여분의 방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적십자 사원들은 내가 침대 머리맡에 전화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에게는 정보 교환소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육해군의 처자들이 어디 수용되어 있는가를 조사했다. 한편 군인들은 적십자로부터 그들의 가족에 관한 소식은 나에게 문의하라는 통지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러는 동안 남편인 로버트 라레이 이예츠 함장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들 남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 부인들은 격려하는 한편, 수많은 전사자들의 미망인을 위로 하려고 애썼다. 아무튼 그때의 전투로 2117명의 해군 장병이 전사했으며, 960명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처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전화에 응답했지만 그러는 동안 몹시 바빠졌기 때문에, 흥분한 나머지 신병 따위는 아예 잊어버리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 이상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 정신이 팔려 자신의 일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매일 밤 정해진 8시간의 수면 시간 이외에는 두 번 다시 침대에 눕지 않았다. 만일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을 반 폐인으로 끝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침대 생활은 별로 괴롭지는 않았다. 정성껏 보살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때문에 나는 모르는 사이에 다시 일어날 기력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주만 피습은 미국 역사상에 있어서 최대 비극의 하나였으며, 나 개인에 한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듯 무서운 위기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힘을 주었다. 자신의 일을 잊어버리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목적을 주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해 머리를 쓰거나 생각할 시간이 전혀 없어져 버렸다. 정신병 전문 의사를 찾아가는 사람의 3분의 1은 마가렛 이예츠가 했던 대로만 한다면 아마 완쾌될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흥미를 가지는 일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칼 융이 한 말이다.
“나의 환자의 3분의 1은 임상적으로는 진정한 신경증이 아니다. 그들의 병은 인생의 공허와 무감각이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인생을 공짜로 태워 달라고 하지만 차는 그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잘것없는 무감각하고 무익한 인생을 이끌면서 정신병 전문의에게로 서둘러 가는 것이다. 보트를 놓치고 부두에 멍하니 선 채, 그들은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비방하면서 세상은 그들의 자기중심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얘기엔 별로 관심이 없다. 나도 크리스마스이브에 고아를 만나면, 아마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또 그때 진주만에 있었다면 마가렛 이예츠와 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다르다. 나는 여느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며 하루 여덟 시간을 흥미 없는 지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극적인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어떻게 하면 남을 돕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겠는가. 어째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단 말인가?’
그럴듯한 질문이다. 이제 대답하리라. 당신의 생활이 아무리 평범할지라도 당신은 날마다 누구든지 만날 텐데 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그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인가. 아니면 그들의 생활 상태를 알아보려 하고 있는가. 여기서 우편배달부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는 매일 수백 마일을 결으면서 집집마다 우편물을 나누어 주지만 당신은 한 번이라도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또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말해 본 일이 있는가? 혹은 다리가 얼마나 피로한지, 일이 지루하지나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가? 식료품 가게의 점원, 신문 판매원, 거리의 구두닦이에 대해서는 또 어떠한가. 그들도 모두 인간이다. 고민, 꿈, 야심으로 가슴이 벅찬 인간인 것이다. 그들은 또 누구에겐가 그것을 털어놓고 싶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러한 기회를 주어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이나 그들의 생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나는 지금 그러한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세계를 아름답게 하는 데에 조력하기 위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라든가 사회 개혁가가 될 필요는 없다. 내일 아침에 만나는 사람부터 이 일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에게 어떠한 이익이 있을 것인가. 보다 큰 행복! 보다 큰 만족과 자존의 감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계발된 이기주의>라고 불렀다. 또 조로아스터교는 ‘타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환희이다. 그것은 베푸는 이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한다.’라고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이를 간단히 요약하여 ‘남에게 선을 행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뉴욕의 심리학 서비스 센터의 관장 헨리 C.링크는 ‘근대 심리학에서의 발견 가운데, 자아실현과 행복에 대해 자기희생과 규율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실증한 것만큼 중요한 발견은 없다.’라고 쓰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자기 자신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를 만들어 준다. 어째서? 나는 언젠가 예일 대학의 윌리엄 라이온 펠프스 교수에게 그가 어떻게 이것을 성취했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호텔이라든가 이발소, 그 밖의 상점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상냥한 말을 걸기로 하고 있다. 그들을 기계 안에 있는 한 개의 톱니바퀴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이야기를 걸도록 하는 것이다. 상점의 점원에게는 그녀의 눈이 아름답다든가, 머리카락이 곱다든지, 이발사에게는 하루 종일 서 있자면 다리가 퍽 피곤하겠다든지, 지금까지 대략 몇 명 정도의 머리를 깎아 주었느냐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남이 흥미를 가져 주면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또 수하물을 운반해 준 역부에게는 악수를 하여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 종일 유쾌한 기분으로 일에 힘을 내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몹시 무더운 날이었는데, 뉴헤이븐 철도 식당차로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차내는 만원이었다. 가마솥처럼 뜨거웠고 서비스는 더디었다. 그러다 웨이터가 겨우 메뉴를 가지고 나 있는 곳으로 왔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저 더운 조리실에서 일하는 쿡은 오늘 같은 날은 대단하겠군요.'라고.
그러자 웨이터가 거친 말투로 뭐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가 성이 난 줄로만 생각되었다. '정말입니다. 손님들은 이곳에 오셔서 음식 맛이 나쁘다, 서비스가 나쁘다, 덥다, 값이 비싸다는 둥 불평만을 말씀하십니다. 저는 19년 동안을 두고 그런 투정만 들어왔습니다. 저 가마솥 속 같은 곳에서 일하는 쿡에게 동정해 주신 분은 오직 선생님뿐이었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손님이 늘게 되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웨이터는 내가 흑인 쿡을 철도 조직 안에 있는 한 개 톱니바퀴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한 데 대해 놀랐던 것이다. 인간들은 모두 사람 취급을 받기를 바라고 있다.
또 나는 거리에 귀여운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언제나 그 개의 귀여움을 칭찬하여 준다. 그리고 나서 조금 가다가 뒤를 돌아보게 되면 대개의 경우 그 사람은 개를 어루만지거나 쓰다듬거나 한다. 나에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그도 또한 다시 한번 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에 있을 때의 일인데, 어떤 양치기가 크고 영리한 감시견을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 개의 훈련법을 물어보기도 했다. 헤어져 오면서 어깨너머로 돌아보았더니, 개는 앞발을 들고 주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양치기는 흐뭇한 듯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내가 양치기와 그 개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양치기를 행복하게 해준 것이었다. 개도 기뻐하는 것 같았지만, 나도 기뻤다.
역부와 악수를 한다든지, 무더운 조리실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동정을 베푼다거나 개를 칭찬하거나 하는 사람이, 성미가 까다로와 지나간 일을 오래도록 걱정하여 정신병 전문의를 찾거나 하는 일이 있을 것인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절대로.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남에게 장미꽃을 바친 손에는 언제나 남은 향기가 있느니라.'
예일 대학의 빌리 펠프스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몸소 실행했기 때문이다.
남성 독자는 별로 재미가 없을 테니까. 다음의 일절은 넘겨 버려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잔걱정이 많은 불행한 소녀가 어떻게 하여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청혼을 받을 수 있었던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소녀는 지금은 이미 노파가 되어있지만, 수년 전에 나는 이 노인 부부의 집에서 하룻밤의 손님이 되었던 일이 있다. 나는 그 마을에서 강연을 했는데,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자동차를 몰아 나를 50마일이나 떨어진 뉴욕 센트럴 철도의 본선 역까지 전송해 주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친구를 사귈 수 있느냐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카네기씨, 난 아무에게도, 심지어는 남편에게까지도 고백한 일이 없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필라델피아 사교계 인명록에도 올라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소녀 시절서부터 철들 나이에 이르기까지 내가 무엇보다도 슬펐던 것은 집이 가난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다른 친구네처럼 훌륭한 파티 같은 것을 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내 옷은 언제나 싼 것뿐인 데가가, 그것도 작아서 몸에 맞지 않았으며 유행에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웠고 계면쩍었으며 밤에 잠자리에 들면 곧잘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절망한 나머지 생각한 것은, 디너 파티 같은 데서의 파트너에게 그의 경험, 의견, 장래에 대한 플랜 등에 대하여 질문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의 보잘것없는 몸치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의 일을 차츰 알게 됨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며, 자신의 빈약한 몸치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놀랄 말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즉 내가 남의 말동무가 되어 그들의 말을 열심히 들어 주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유쾌해지고, 그 결과 나는 사교 그룹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청년으로부터 교훈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성 독자여,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 장을 읽고 독자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남에게 흥미를 가지라는 말은 넌센스이다. 그건 죽도록 떠받들고 겨우 얻어먹는 감주 격이야. 난 아주 질색이다. 난 돈벌이를 해야겠다. 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가지는 주의다. 그따위 공염불 같은 건 개나 먹어라!
그것이 당신의 의견이라면 그것도 괜찮을 게다. 그러나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하면, 유사 이래의 위대한 철학자나 현인, 즉 그리스도, 공자, 석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성 프란시스니 하는 여러 사람의 말은 모두 잘못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당신은 아마 종교적 지도자들의 교의를 비웃을 것이니 무신론자의 교설을 들어보기로 하자. 우선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인 고 A.E.하우스먼 교수라면 그 시대에 있어서의 석학의 한 분이었는데, 그가 1936년 그 대학에서 행한 <시의 명칭과 자연성>이라는 강연 가운데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있다.
고금동서를 통해 가장 심원한 도덕적 발견은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즉 '그 생명을 얻는 자는 이것을 잃고, 나를 위해 생명을 잃는 자는 이것을 얻으리로다.'
우리는 태어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설교가가 입에 담는 이 말을 쭉 들어왔다. 그러나 하우스먼은 무신론자이며 염세주의자여서 자살하려고 한 일까지 있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자기에 대한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비참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봉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기쁨을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이 하우스먼의 말에 감명을 받지 않는다면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저명한 미국의 무신론자 데오도 그라이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온갖 종교를 옛날이야기라고 냉소하고, 인생을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이다. 잡음과 격정뿐으로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가 말한 <타인에 대한 봉사>라는 위대한 교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이 짧은 인생에 기쁨을 빼내려거든 그는 자기보다도 타인을 잘 되게 할 것을 생각하고 계획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쁨은 그들 속의 기쁨에 이어져 있고, 그들의 기쁨은 그 자신 속의 기쁨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드라이저가 주장했듯이 <남을 잘 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면, 곧 착수해야 할 일이다. 때는 흘러간다.
나는 두 번 다시 이 길을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이나 내가 표시할 수 있는 친절은 지금 실행하자. 망설인다거나 게으르거나 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이 길을 두 번 다시는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
여기에 고민을 몰아내고 평화와 행복을 가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칙 제7. 다른 사람에게 흥미를 가짐으로써 자기를 잊으라. 매일 몇 사람인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를 띠게 할 만한 착한 일을 행하라.
제4부 요약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정신 상태를 기르는 일곱 가지 방법
제1 법칙 : 우리의 마음을 평화와 용기와 건강과 희망으로 가득 채우자.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사고가 만든 것>이니까.
제2 법칙 : 적에 대해 보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하면 적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니까.
제3 법칙 : A 망은을 고민하지 말라. 차라리 망음을 예기하라. 그리스도는 열 사람의 나병 환자를 치료하였지만 한 사람밖에는 감사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이상으로 감사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B 행복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를 기대하지 말고 남에게 주는 기쁨을 위해 주는 데에 있다.
C 감사하는 마음은 <교양에 의한> 특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의 감사를 기대한다면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야 한다.
제4 법칙 : 이익과 복을 세고, 고민은 세지 말라.
제5 법칙 :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말라. 자아를 발견하여 자기 자신이 되어라. 왜냐하면 <질투는 무지이며 모방은 자살>이기 때문이다.
제6 법칙 : 운명이 레몬을 주면 그것으로써 레몬수를 만들도록 노력하라.
제7 법칙: 다른 사람을 위해 조그마한 행복을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여 자기 자신의 불행을 잊어버려라.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선량할 때 당신은 자신에 대해 최선인 것이다.
제5부 고민을 이겨내는 방법
19. 나의 부모는 어떻게 번민을 극복했는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미주리주의 농장에서 자라났다. 그 무렵의 여느 농민과 마찬가지로 부모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시골 교사였고 아버지는 한 달에 12달러를 받고 남의 집 밭에 가서 일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옷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의 옷을 빠는 비누도 만들었다.
집에는 1년에 한 번씩 돼지를 팔 때가 아니고는 돈이 없었다. 버터나 계란을 가지고 가 식료품점에서 밀가루며 설탕이며 커피와 바꾸었다. 내가 12살 때 받은 한 해의 용돈은 50센트도 안 되었다. 독립 기념일의 축제여서 아버지가 10센트를 주었을 때, 나는 세계에서 으뜸사는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었다.
나는 날마다 1마일씩이나 걸어서 교실이 하나밖에 없는 학교에 다녔다. 큰 눈이 내려서 한란계가 영하 28도쯤을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14세가 될 때까지 고무신이나 장화를 신어 보지 못했다. 길고 추운 겨울 동안 나이 발은 늘 젖어서 차가왔다. 어린 마음에 나는 겨울에는 그례 누구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에 17시간이나 있는 힘을 다해 일했지만, 그래도 늘 빚에 쫓기기만 하는 불운에 시달렸다. 아주 어렸을 때, 대 홍수로 옥수수밭과 마초 풀밭이 물에 잠겨 엉망진창이 되어서 5, 6년 동안이나 농사를 짓지 못했던 일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또 해마나 콜레라로 돼지가 죽어, 그것을 태우는 냄새로 속이 메스꺼웠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
수해를 입지 않았던 해가 1년이 있었다. 옥수수가 풍작이었다. 우리는 송아지와 새끼돼지를 사러 옥수수로 그놈을 살찌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수해 때와 마찬가지였다. 시카고의 가축 시장에서 가축 시세가 폭락되어, 우리는 애써 키워 겨우 30달러를 벌었을 뿐이었다. 꼬박 1년을 일해서 겨우 30달러를!
무엇을 해도 손해를 보았다. 아버지는 새기 노새를 사들여 3년 동안 사람까지 고용해서 길러 잘 길들였다. 그런 다음 배에 싣고 테네시주의 멤피스로 보냈었다. 그런데 노새는 3년 전에 산값의 이하로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
10년 동안 모질게 온 가족이 힘을 다해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생기지 않고 빚은 늘어 가기만 했다. 밭은 저당으로 돌아갔고, 갚아야 할 이자도 밀리기가 일쑤였다. 저당잡은 은행은 아버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밭을 빼앗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아버지는 47세였는데, 30년 동안이나 피땀 흘려 부지런히 일한 결과는 굴욕감뿐이었다.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고민했다. 그래서 건강을 잃었다. 날마다 밭에서 육체 노동을 하는데도 식욕이 없어져 식욕을 내게 하기 위해서는 약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날로 여위어 갔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이러다가는 앞으로 반 연도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몹시 고민한 나머지 더 오래 살기가 싫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암소를 젖을 짜기 위해 외양간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시간이 늦어질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혹시나 외양간에서 목을 매어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시며 외양간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는 곧잘 들려주셨다. 어느 날 밭을 빼앗아 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은행이 있는 메어리빌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다리 위에서 말을 세우고 마차에서 내려 오랫동안 흐르는 냇물을 굽어보고 있었다-차라리 단김에 뛰어들어서 모든 것을 끝장 지어 버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뒷날 아버지는 왜 그때 뛰어들지 않았는지 그 까닭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늘 인간은 주를 사랑하고 그 십계를 지켜 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성심성의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과연 어머니는 옳으셨다. 나중에는 모든 일이 잘되어 나갔다. 아버지는 그 뒤 42년 동안을 행복하게 살다가 99세에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 고투와 가슴 아프던 기간 중에 어머니는 결코 고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마음의 괴로움을 주께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는 성경의 한 장을 낭독하셨다. 어머니와 아버지 중 어느 한 분이 저 마음을 따뜻이 위로해 주는 예수의 말씀을 읽을 때도 있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저택이 있느니라……나 거기에 가서 너희들을 위하여 있을 곳을 마련하리라…… 내가 있는 곳에 그대도 또한 있으리로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가호를 비는 것이었다.
윌리엄 제임즈가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로 있을 때 그는 ‘고민에 대한 최대의 양약은 종교적 신앙이다.’라고 했다.
독자들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하버드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나의 어머니는 미주리주의 농장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었다. 홍수든 빚이든 재액이든, 그녀의 행복스럽고도 찬연히 빚나는 씩씩한 영혼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면서도 노래하던 찬송가를 잘 기억하고 있다.
평화, 평화, 마음이 뛰는 평화여,
하늘이신 주께 흘러 떨어져
내 영혼을 길이 채워 주소서. 나는 비오니,
사랑의 끝없는 큰 물결 속에서.
어머니는 내가 한평생을 종교적인 사업에 바치기를 희망했다. 나는 외국의 선교사가 되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내 생각은 바뀌어져서 갔다. 나는 생물학, 과학, 철학, 비교 종교학을 배웠고 또 어떻게 해서 성경이 씌어졌는가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장하는 바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나는 그 무렵의 시골 설교자들이 말하는 편협한 교리의 많은 부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윌트 휘트먼첨럼
자신 속에 기묘하고도 당돌한 의문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었다.
나는 무엇을 믿어야 좋을지 몰랐다. 인생에의 목적을 가질 수가 없었다. 나는 기도하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불가지론가가 되었다. 나는 모든 생활은 무계획하며 무목표라고 믿었다. 인간은 2억 년 전에 이 땅 위를 기어 다닌 공룡이 지니고 있었던 것보다도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인류도 공룡과 마찬가지고 멸망해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태양이 조금씩 식어 간다는 것과 그 온도가 10퍼센트 내리면 땅 위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은혜로운 주—사랑을 상징하는 주께서 자신의 모습을 닮게 하여 인간들을 창조했다는 관념에도 냉소했다. 나는 검고 차가운, 생명 없는 공간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태양은 맹목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영겁으로 존재하듯이, 태초부터 존재해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상의 의문을 지금에는 해결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해명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신비에 싸여 있다. 당신의 신체 작용이나 당신 집의 전기, 금이 간 벽에 핀 꽃, 창밖의 푸른 잔디, 이 모두가 신비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의 지도자로 천재인 차알즈 F. 캐터링은 <왜 풀은 녹색인가>의 연구비로서 한 해에 3만 달러의 돈을 자기의 용돈 가운데서 안티옥 대학에 기부하고 있었다. 그는 풀이 어떻게 하여 햇빛과 물과 일산화탄소를 당분으로 변하게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면, 문명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의 작용조차도 완전히 신비인 것이다. 제너럴 모터즈 연구소는 오랜 시일과 거액의 돈을 투입하여, 왜 실린더 속의 조그마한 불꽃이 차를 움직이게 하는 폭발을 시키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그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자기의 몸이나 전기, 또는 가스 엔진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것을 사용하고 향유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가도나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 때문에, 보다 풍부하고 행복한 생활을 즐길 수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간은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산타냐의 말이 지니는 예지를 깨달았다.
나는 다시 종교로 되돌아갔다--아니, 종교의 새로운 의의로 전진했다. 나는 이미 교회를 분립케 해 놓고 있는 신조의 상위 따위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의 흥미는 오로지 종교가 나에게 해주고 있는 사실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전기나 좋은 음식물, 또는 물이 내게 베풀어 주는 혜택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보다 풍부하고 보다 충실한, 행복한 생활을 보내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이상의 것을 베풀어 주고 있다. 종교는 나에게 정신적인 가치를 가져다준다. 윌리엄 제임즈의 말을 빌면 그것은 나에게 ‘인생에의 새로운 열의-보다 많은 인생-보다 크고 보다 풍부하고 보다 만족할 만한 인생’을 베풀어 준다.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가져다줌으로써, 긴장과 불안과 두려움과 고민을 해소하게 한다. 나의 인생에 목적과 방향을 가리켜 준다. 나의 행복을 증대케 하고 건강을 증진시켜 준다. 그것은 나에게 <인생의 소용돌이치는 사막 속에 평화의 오아시스를 창조>해 준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3백50년 전에 ‘천박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무신론으로 기울어지게 하고, 심원한 철학은 사람의 마음을 종교로 인도한다.’고 한 것은 옳은 말이다.
과학과 종교의 논쟁이 벌어진 일도 있었으나, 그런 논쟁은 지금에는 없다. 오늘날의 과학인 정신병학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것과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신병 학자가 기도와 강한 신앙이 질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고민이나 불안, 또는 긴장이나 공포를 몰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A. A. 브릴 박사가 ‘정말로 종교심이 깊은 사람은 신경증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
만일 종교가 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인생은 무의미하다. 인생은 비극적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인 것이다.
나는 헨리 포드와 그가 죽기 몇 해 전에 회견했었다. 나는 회견에 앞서 오랫동안에 걸쳐 세계 최대 사업의 하나를 창립하여 경영하고 있는 심로가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막상 78세 노인의 침착하고 온화한 모습을 대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내가 괴로움을 느낀 일은 없느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없어요. 무슨 일이든 주께서 지배하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나의 의견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책임을 져 주시는 한 모든 일은 결국 가장 좋게 된다고 믿고 있어요. 무엇을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정신병 학자마저도 새로운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내세의 지옥의 업화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인 생활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지옥이 업화—위암이라든지, 협심증이나 신경 쇠약, 또는 광기를 모면하기 위해 종교적 생활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나 정신병 학자의 대표적 의견을 알고 싶은 사람은 헨리 C.링크 박사의 '종교에의 복귀'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기독교는 확실히 인간에게 자극과 건강을 가져다주는 가르침의 종교이다. 그리스도는 '나는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왔다. 그대들의 생명을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왔느니라.'고 강론했다. 그리스도는 그의 시대에 종교라고 지목되어 있었던 형식적인 의식이나 무의미한 형식을 비난하고 공격했다. 그는 반역자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세계를 뒤집어엎을 위험성을 지닌 종교를 설파했다. 그는 그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혔던 것이다. 그는 강론하기를, 종교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안식일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죄에 관해서보다 공포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릇된 종류의 공포는 건강에 거역하는 죄이며, 그리스도가 역설하고 있는 보다 풍족하고 보다 행복하고 보다 용기있는 인생에 거역하는 죄이다. 에머슨은 '환희의 과학'의 교사라고 자칭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역시 <환희의 과학>의 교사였다. 그는 사도들에게 '기뻐하라. 그리고 용약(勇躍)하라.'고 명령했다.
그리스도는, 종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진심으로 주를 사랑할 것과 이웃 사람을 자기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신앙가이다. 예를 들어 오클라호마에 사는 나의 양부 헨리 프리이스 같은 분이 그렇다. 그는 황금을 생활의 금과옥조로 삼고 비열한 짓이나 이기적인 짓, 또는 정직하지 못한 짓은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불가지론자로 자처하고 있었다. 이 무슨 일인가! 도대체 크리스찬이란 무엇인가! 이 대답은 존 베일리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그는 에든버러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석학인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을 크리스찬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관념을 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어느 교의를 준봉하는 일도 아니다. 어떤 <정신>을 소지하는 일, 어떤 <생명>에 관여하는 일이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자격이라고 한다면, 헨리 프라이스는 훌륭한 크리스찬의 한 사람이다.
근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즈는 그의 친구 토머스 데비드슨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보냈다. 즉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는 ‘주 없이는 더욱 더 나날을 지내기가 어려워졌다.’라는 것을 깨달았노라고.
이 책의 첫머리에, 성인 클라스에서 모집한 실화 가운데 두 편은 심사 위원이 그 우열을 가리느라고 한동안 망설였다는 것을 말했는데, 그 가운데 한 편은 이미 이야기했으므로 남은 한 편을 여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이것은 주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기이하게도 경험한 어느 부인의 실화이다.
나는 그 부인을 메리 커슈먼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녀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발표된 그녀의 이야기를 보고 당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가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실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나는 몇 달 전에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불경기 시대 내 남편의 평균 주급은 18달러였는데, 남편은 신병 때문에 자주 결근했다. 그럴 때에는 수입이 없었다. 남편은 몸이 허약해 자주 자리에 눕곤 했다. 성홍렬이니 이하선염이니, 게다가 감기가 잘 들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는 우리가 손수 지은 조그마한 집도 남의 손에 넘겨주어 버렸고, 식료품 가게에는 50달러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섯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나는 이웃 사람들의 빨래도 맡아 해주고 다림질도 맡아 해주었다. 구세군 상점에서 헌 곳을 사다가 고쳐서 아이들에게 입히기도 했다. 나는 마침내 괴로움이 심해져서 건강을 해쳤다. 그러던 어느 날 11살 된 우리 아이가 연필 두 자루를 훔쳐서, 그 식료품 주인에게 꾸지람을 받았다고 울며 말했다. 그 아이는 정직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성질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모욕을 받고 창피를 당한 것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치명상이었다. 지금까지의 숱한 고생이 한꺼번에 덮쳐와 장래에 아무런 희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는 고민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던 모양이다. 나는 세탁기를 멈추고 5세 된 여자아이를 침실로 데리고 가서, 창문을 닫고 문틈마다 헝겊 조각이며 종이 따위로 틀어막았다. 딸은 '엄마, 뭘 해?'하고 말했다. 나는 '문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라고 대답하고는, 침실에 있는 가스히터의 스위치를 틀었다. 그러나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딸아이를 안고 침대에 눕자 딸아이는 '엄마, 이상해. 조금 아까 일어났잖아'라고 말했다. '괜찮단다. 낮잠을 조금만 자자.'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눈을 감고는 히터에서 새어 나오는 가스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의 가스 냄새를 나는 한평생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내 뒤에 별안간 음악이 들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부엌에 있는 라디오 스위치를 깜빡 잊고 끄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대로 좋다. 그런데 음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옛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슬픔을 씻어주시나니,
마음속의 괴로움 숨김없이 말하여
왜인가는 말하지 않는 무서운 짐을
자애 깊으신 우리의 벗 예수님은
우리들의 약함 알고 가엾어하시니,
괴로움과 슬픔 속에 빠져들 때도
기도를 들으시와 위로 주시네.
이 찬송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슬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나 혼자서 온갖 무서운 투쟁과 싸우려고 해왔다. 나는 기도로써 모든 것을 주의 뜻에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스를 끄로 문과 창문을 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눈물에 젖어 기도를 드려. 나는 주의 도움만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내게 주어져 있는 주의 축복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몸도 마음도 굳세고 튼튼한 아이를 다섯이나 주신 데 대해서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이런 망은된 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주 앞에 맹세했고, 그리고 나는 그 맹세를 지켜 왔다.
우리는 집을 잃고 나서 조그만 시골의 교사를 월세 5달러로 세 들어서 옮겨야 했지만, 나는 그때도 주께 감사했다.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장소가 생겼으니까. 나는 일이 그 이상으로 나빠지지 않은 것을 주께 감사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장은 아니었지만, 일은 조금씩 좋아졌고 경기가 회복됨에 따라 돈도 조금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컨트리클럽의 모자 예치소에 고용되어 틈틈이 양말도 팔게 되었다. 아들 하나는 고학할 각오로 대학에 들어가 농장이 일자리를 얻어서 아침저녁으로 13마리나 되는 젖소의 젖을 짜게 되었다. 지금 내 아들들은 모두 잘 자라 결혼도 했다. 내게는 귀여운 손자가 셋이나 있다. 그 끔찍스러운 날, 가스 스위치를 틀었던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에 용케도 내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때에 만약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면 오늘날의 이 기쁨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이고 행복스러운 많은 세월을 언제까지나 잃어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러기에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죽어서는 안 돼! 안되구 말구!'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참아야 하는 캄캄한 어둠의 순간은 결코 길지는 않다—그런 다음에 앞날이 태어나는 것이니까……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35분마다 한 사람이 자살하고 120초마다 한 사람꼴로 미치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이들 자살자의 대부분과 그리고 또한 미쳐 버리는 사람의 반수는, 만일 그들이 종교와 기도에서 얻는 평화와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면 방지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가장 우수한 정신병 분석학자의 한 사람이 칼 융 박사는 그의 저서 '영혼을 탐구하는 현대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이 의견은 실로 의의깊은 바가 있으므로, 눈에 잘 띄는 활자로 다시 한번 게재한다.
칼 융 박사는 말한다
'과거 30년 동안 나는 세계의 온 문명국 사람들로부터 진찰해 줄 것을 요청받아 몇백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내가 진찰한 환자 가운데서 인생의 제2기, 즉 35세 이상의 사람들 모두가 종교적 인생관에 최종의 구원을 구해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결정지을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온갖 지나간 시대의 한 종교가 그 신자들에게 준 것을 잃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인생관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정말로 나은 것은 아니다.'
윌리엄 제임즈도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힘이다. 신앙이 전혀 없다는 것은 허탈을 의미한다.'
석가 이후에 있어서 인도의 최대 지도자인 고 마하트마 간디도 기도라는 지지력에 의해 그가 격려받지 않았다면 의기가 소침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기도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득한 옛날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몇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증언을 할 수 있다. 나의 친아버지도 만약에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이 없었더라면 물에 빠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많은 괴로움을 받는 영혼도, 만일 그들이 자력만으로 인생의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려 하지 않고, 보다 높은 힘에 도움을 구하기만 했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힘의 한계에 도달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대부분 절망하여 신의 힘에 매달린다.
“일인용 참호에 무신론자는 없다.”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왜 나날이 힘을 새롭게 하지는 않는가? 왜 일요일까지 미루는가?
오래전부터 나는 평일의 오후면, 사람이 드문 교회에 들어가 보는 일이 있다. 마음이 분주하여 단 2, 3분 동안도 차분하게 사색할 겨를이 없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잠깐만 기다려, 데일 카네기. 잠깐만 기다려. 어째서 그렇게 언제나 조급하고 초조해하는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사물의 대소 경증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는 거다.”
나는 이럴 때, 으레 맨 처음에 눈에 띄는 교회당으로 들어간다. 나는 프로테스탄트이지만 곧잘 5번 거리의 성 패트릭 성당에 들르곤 하였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다. 나는 앞으로 30년쯤 지나면 죽을 것이지만, 모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위대한 정신적 진리는 영구 불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하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육체도 편안해진다. 판단력도 명확해져서 사물의 가치를 재검토하는 데 확신이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 책을 쓰던 지난 6년 동안 어떻게 해서 기도에 의해 두려움이나 고민을 극복했는가에 관한 실레 또는 실화를 나는 몇백이나 수집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실의와 낙망에 빠져 있던 시적 판매원 존 R. 안소니의 이야기를 하겠다. 안소니씨는 지금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변호사를 개업하고 있다. 그가 나에게 말해 준 이야기는 이러하다.
22년 전에 나는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주 대표가 되기 위해, 나의 법률 사무소를 닫아 버렸다. 나의 전문은 일련의 법률 서적을 변호사에게 판매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한 훈련을 충분히 받았다. 팔 때의 응대법을 비롯하여 온갖 반대에 대한 설득적인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사줄 것 같은 사람을 방문하기 전에, 미리 상대편의 변호사로서의 위치가든가 그가 다루고 있는 소송 실무의 종류라든가, 그의 정견이나 취미 등도 조사해 두었다. 그리고 면담 중에 교묘하게 그러한 지식을 이용했다. 그러나 어디인지 잘못이 있었던 모양으로 나는 주문을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낙담했다. 날이 지남에 따라 나는 지금까지보다 두 곱이나 세 곱을 더 노력했지만, 그동안에 든 비용을 보충할 만한 주문을 얻기에도 실패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가슴 속에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 무서워지기조차 했다. 사줄 것 같은 사람들의 사무소에 들어가기 전에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어 버려서, 문밖의 복도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그 건물 밖으로 나가서 부근을 어물어물 돌아다니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끝에, 온몸의 의지력으로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으로 살그머니 문의 손잡이를 돌리곤 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절반은 비는 심정으로.
나의 판매 지배인은 좀 더 주문을 받아오지 못하면 선불금을 정지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집에서는 아내가 네 식구가 먹고 살기 위한 식료품 가게에 지불할 돈이 필요하다고 한탄하고 있었다. 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나는 절망으로 되어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의 고향에서의 법률 사무소는 닫아 버려서 소송 의뢰자도 없어졌다. 마침내 그것이 파산해서 호텔이 숙박비조차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기차표를 살 돈도 없고, 비록 기차표를 산다고 해도 실패자로서 집으로 돌아갈 만한 용기가 없었다. 마침내 악운의 날, 마지막 실패를 마친 뒤에 나는 터덜터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체념하며.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의기저상하여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날 밤 식사로는 우유 한 잔밖에 없었다. 그것마저도 가까스로 구한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절망한 사람이 호텔 창문에서 뛰어내린 심정을 알았다. 용기가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인생이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
매어 달린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주께 매달렸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가두어 두고 있는 절망의, 어둡고 깊은 거친 파도를 인도하는 빛과 이해를 주십사하고 탄원했다.
나는 부디 주께 책 주문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주시고, 또한 처자를 위해 필요한 돈을 얻게 해주십사고 애처롭게 호소했다. 기도를 끝내고 눈을 뜨자 그 쓸쓸한 호텔 방 경대 위에 성서 기증 협회의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펼치고 몇 세기에 걸쳐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을 주신 그리스도의 후세에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말씀.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고민을 해소하는 데 대한 교훈을 읽었다.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고 마시며 또한 육체를 위해 무엇을 입을까 하여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지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곡간에 저축도 아니하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저들을 기르시나니, 너희는 저들보다 뛰어나지 아니하냐……너희들은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시리로다.
내가 기도를 드리고 이 말을 읽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신경질적인 긴장이 사라져 버리고 불안이며 공포며 고민은 마음을 따사롭게 해주는 용기와 희망과 빛나는 신념으로 변했다.
나는 호텔의 숙박비를 치르는데 충분한 돈도 없었지만 행복했다. 나는 침대에 들어가 참으로 몇 해 만에 푹 잤다. 완전히 고민으로부터 해방되어서.
다음 날 아침, 나는 책을 사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의 사무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 아름다운 비 오는 추운 날, 자신에 넘치는 적극적인 걸음걸이로 첫째 사무실 문에 다가갔다.
나는 손잡이를 꽉 잡고 돌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힘차게 적당한 위엄을 유지하면서 목표한 사람 앞으로 곧바로 걸어가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스미드씨! 저는 전 미국 법률 서적 회사의 존 안소니라고 합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 그렇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자, 앉으십시오.”
이리하여 나는 그날 하루에 지난 몇 주일 동안 받은 주문 이상의 주문을 받았다. 저녁때 나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호텔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새롭고 용감한 정신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으니까. 그날 밤 식사는 한 잔의 우유가 아니었다. 어엿한 비프스틱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의 판매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22년 전 텍사스주 아마릴로의 조그마한 호텔에서의 절망적인 밤에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그다음 날 내 겉모양은 실패하던 때와 같았지만, 내부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주와의 관계를 달았다. 자기에게만 의지하는 사람은 쉽게 패배를 맛보게 되지만, 마음에 신의 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은 패배가 없다. 나는 나 자신의 인생이 그와 같이 된 것을 알고 있는 것이.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물으라. 그러면 찾아내리라. 두드리라. 그러면 그대에게 열리리라.
일리노이주 하일란드의 L. G. 베어드 부인은 무서운 비극에 맞부딪쳤을 때 무릎을 꿇고 ‘오오, 주여,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평화와 침착성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그녀에게 온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14번이나 울렸을 때 나는 겨우 용기 내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병원에서 걸려 온 것으로 짐작하여 두려웠던 것입니다. 나의 어린아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근심했던 것이지요. 뇌막염으로 이미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체온에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의사는 병독이 뇌에까지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뇌종양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살려낼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전화는 내가 두려워한 대로 병원에서 곧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우리 부부가 어떤 심정이었겠는가 하는 것은 짐작하실 줄로 압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기를 안고 있었습니다. 우리만은 예외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아기를 안게 될는지 근심이 되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 만에 우리는 부름을 받아 의사의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만, 의사의 표정을 보고 우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의사의 말은 더욱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아기가 살아날 확률은 넷 중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며, 그러니 만약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진찰을 받아 보고 싶거든 불러오는 게 좋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남편은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핸들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베츠, 난 단념 못 하겠소. 절대로!' 선생님께서는 남자가 우는 것을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결코 즐거운 경험을 아닙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세워 놓고 여러 가지를 의논한 끝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아기를 데려가자는 것이 주의 뜻이라면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말입니다. 나는 자석에 무릎을 꿇고 눈물에 젖어서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끝내자 나의 마음은 좀 밝아졌습니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평화로움이 솟아난 것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서도 줄곧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되풀이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오래간만에 푹 잠을 잤습니다. 그런 며칠 뒤에 의사로부터 아기는 위기를 벗어났다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는 지금 4살 된 건강한 어린아이가 집에 있다는 것을 늘 주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종교를 마치 부녀자나 설교자를 위한 것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제힘으로 싸워 나살 수 있는 사나이다운 사나이라는 것을 자랑삼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몹시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잭 템프시 같은 사람이 그렇다. 그는 밤마다 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선 주께 감사드린 뒤에야 식사를 하고, 시합을 앞두고 연습하는 중에도 날마다 기도를 하며 또한 시합 중에도 매회 시합이 시작되고 벨이 울리기 전에 기도한다고 말했다. ‘기도는 나에게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싸울 힘을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코니이 맥은 매일 밤마다 기도를 드린 뒤가 아니면 잠잘 수 없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디 리켄베이커는 그의 인생이 기도에 의하여 구원되어왔다고 믿고 있다. 그는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에드워드 R.스테튜어스(전 제너럴 모터스의 최고 간부였고, 전 국무장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스러운 지혜와 지도를 베풀어 주십사고 주께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J. 피어폰트 모건은 그 무렵에 있어 최대 재정가였는데, 그는 토요일 오후에는 가끔 혼자서 윌가의 모퉁이에 있는 트리니티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아이젠하워는 영미 연합국 최고 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갈 때 단 한 권의 책을 휴대했다. 그것은 성경이었다.
<사나이다운 사나이> 마크 클라크 장군도 전시 중에 날마다 성경을 읽고 또한 기도했다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장개석이나 몽고메리 장군도 기도했다. 넬슨 제독도 트라팔가르 해전 때 기도했다. 워싱턴이나 로버트 리나 스톤윌 잭슨 같은 장군들을 비롯해 군대의 수많은 지도자가 그러했다.
이들 <사나이다운 사나이> 들은 윌리엄 제임즈의 ‘인간과 신관의 사이에는 서로 비즈니스가 있다. 따라서 우리들 자신을 신의 영향 밑에 피력하면 가장 심원한 운명이 성취된다.’고 한 말의 진리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나이다운 사나이>가 똑같이 이 진리에 눈떠 가고 있다. 미국의 교인 수는 7천 2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없던 기록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과학자도 종교에 귀의해 가고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인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의 저자로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박사가 있다. 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의 논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형식의 에네르기이다. 그것은 지구의 인력과 같은 현실적인 것이다. 의사로서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요법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기도라는 엄숙한 노력에 의해 질병이나 우울에서 구제를 받은 예를 목격하고 있다. 기도는 라듐처럼 빛나는 자기 발생 에네르기 원이다……인류는 기도에 의해 그들 자신을 온갖 에네르기의 무근원에 제소함으로써 그들의 유한의 에네르기를 증대시키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과 우리와를 결부시킨다. 우리는 이 힘의 일부가 우리의 필요에 배분되도록 기도한다. 이렇게 구함으로써만 우리의 인간적 결함은 충족되고 우리는 강화되고 치유되어 일어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열렬한 기도로써 주께 호소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정신도 육체도 보다 좋은 것으로 변화하게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순간의 기도로도 반드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도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바드 제독은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진장한 원동력에 우리를 결부시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있다. 그것을 해낸 그의 능력에 의해, 그는 그의 생애 가운데서도 가장 곤란했던 시련을 헤쳐나갔던 것이다. 그 사실은 그의 저서인 '혼자서'에서 술회하고 있다. 1943년, 그는 남극의 오지인 로스 바리어의 만년빙 밑에 박힌 오두막집에서 다섯 달 동안이나 살았다. 그는 남위 78도선 이남에 있어서의 유일한 생물이었다.
사나운 눈보라가 오두막집 위로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추위는 영하 82도까지 내려갔다. 그는 언제까지나 변치 않은 어둠으로 완전히 포위되었다. 또한 그는 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일산화탄소 때문에 차츰차츰 무서운 중독을 일으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구조도 123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몇 개월 뒤가 아니면 도착할 가망성이 없다. 그는 난로와 환기 장치를 수리했지만, 새어 나오는 가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가끔 그 가스 중독 때문에 의식을 잃고 마루 위에 쓰러져 있곤 했다. 그도 먹을 수도 없고 잘 수도 없었다. 그는 거의 침대를 떠날 수도 없으리만큼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생명이 붙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두려워한 때도 자주 있었다. 나는 이 오두막집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는 내리퍼붓는 눈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럼 무엇이 그의 목숨을 구했는가? 어느 날 그는 절망한 나머지 일기장을 꺼내어 자기의 인생관을 써 두려고 했다. 그는 썼다. ‘인류는 우주에서 고독하지는 않다.’고, 그는 머리 위 성신이니 성좌니 유성 등의 규칙적인 운행에 대해 생각했다. 또한 영원한 태양이 언젠가는 황량한 남극 지방의 구석구석까지도 비쳐 주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일기장에 '난 고독하지 않다.'라고 썼다. 이 고독하지 않다. 지구 끝의 얼음 구덩이 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고독하지는 않다는 자각이 리처드 바드를 구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일생 중에서 그들 속에 있는 정력의 극한적인 한계점까지 쫓겨 가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결코 아직 사용되지 않은 깊은 힘의 우물이 있다.
리처드 바드는 주께 호소함으로써 이 힘의 우물을 길어내는 방법을 배웠고, 그 자원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글렌 A. 아놀드는 일리노이주의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바드 제독이 극지의 빙설 속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것을 배웠다. 일리노이주 칠리 코스의 보험브로커인 아놀드씨는 고민의 극복에 관해 이야기했다.
8년 전 일이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무실 정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차를 몰아 강 쪽으로 갔다. 나는 실패자였던 것이다. 한 달 전에 전 세계를 내 머리 위에 무너져 떨어졌다. 내가 경영하던 전기 기구의 사업은 암초에 올라앉고 말았다. 집에는 어머니가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고, 아내는 두 번째 아이를 낳으려 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갚아야 할 돈은 늘어 가기만 했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하는 데에 자동차며 가구 등을 비롯하여 그것이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동차를 몰아 강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서글픈 혼란케 결말을 짓고 말겠다는 각오로.
나는 시내에 몇 마일 빠져나온 지점에서 큰길을 벗어났다. 차에서 내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민이라는 이름의 밭 속을 아무렇게나 빙빙 돌지 말고, 건설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사태는 얼마만큼이나 나빠졌는가? 이 이상으로 더 나빠질 염려가 있는가?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인가? 사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나는 그날 그때, 모든 문제를 주께 호소하여 주의 뜻에 맡길 것을 결심했다. 나는 기도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나는 나의 인생이 그 하나에 달려있는 것처럼 오직 한 가지만을 기도했다. 그러자 그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나의 모든 문제를 나보다 위대한 힘에 맡기자마자 나는 최근 몇 달 동안이나 가져 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느낀 것이다. 나는 반 시간쯤 그곳에서 기도도 드리고 울기도 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깊이 푹 잤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나에게는 자신이 생기고 있었다. 나에게는 무서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주의 인도에 나를 맡겼기 때문이다.
나는 침착한 태도로 시내의 백화점에 가 자신에 넘치는 말투로 전기기구부의 판매원 일을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예기한 바대로 그 일자리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 뒤로 일은 꽤 달 되어 나갔다. 전기 기구 관계의 사업이 전쟁 때문에 붕괴되기까지는. 나는 그 뒤로 이번에는 생명 보험의 권유를 시작했다. 그것은 겨우 5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계산이든 또박또박 지불하고 있다. 똑똑한 세 아이도 있고 집도 내 것이다. 새 자동차도 있고, 2만 5천 달러의 생명 보험에도 가입하고 있다.
나는 지금 곰곰이 그때의 일을 회상해 보면, 모든 것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괴로워한 나머지 강 쪽으로 차를 몰아 달려간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의 비극이 주께 의지하기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과거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평화와 자신을 가지고 있다.
왜 종교적 신념이 우리에게 그러한 평화와 침착과 불굴의 정신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윌리엄 제임즈로 하여금 대답케 하여 보기로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친 듯 날뛰는 해면의 거친 파도도 대양의 밑바닥을 시끄럽게 하지 못한다. 보다 광대하고 보다 영구적인 현실에 발판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의 개인적인 끊임없는 부침은 비교적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동요됨이 없이 평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닥쳐올지도 모르는 온갖 의무에 대해서도 고요한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고민하고 불안을 느낀다면 어째서 우리는 주께 의지하지 않는가?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듯이
왜 주에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이러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한한 원동력>에 우리 자신을 연결시키지 않는가?
만일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의, 또는 가정 교육에 의한 종교적 인간이 아니라, 완고하고 유동성이 없는 회의론자라 할지라도, 기도는 당신이 믿고 있는 이상으로 당신을 돕는 것이다-그것은 실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간에 온갖 사람들이 공유하는 세 가지의 지극히 근본적인 심리적 욕구를 성취케 해준다는 의미이다-
1. 기도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언어로 표현하도록 도와준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실체가 애매하고 뚜렷하지 않은 한 문제에 대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도는 어느 점에서, 문제를 종이에 적어 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고 싶다면, 상대자가 비록 신이더라도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
2. 기도는 우리에게 자기 혼자가 아니라 어느 누구와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은 너무 무거운 짐이나 또는 견디기 어려울 만한 고민을 자기 힘만으로 감당할 만큼 강하지 못하다. 때로는 우리의 괴로움이 너무나도 사적이어서 친척이나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기도가 있을 뿐이다. 정신병 의사는 모두 우리가 압박이나 긴장 또는 정신적 고민으로 괴로워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은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에는-언제나 주님께 호소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기도는 행위의 활발한 법칙을 활동케 한다. 그것은 행동에의 첫걸음인 것이다. 날마다 무슨 일이든 그 성취를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어떠한 은혜를 입고 있거나, 적어도 성취를 향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알렉시스 칼렐 박사는 말한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네르기다.’라고. 그런데도 왜 좀 더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가? 자연의 신비로운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알라라고 부르든, 또는 정령이라 부르든, 그 정의를 가지고 다툴 필요는 없다.
지금 곧 이 책을 덮고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무릎을 꿇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이 좋을 것이다. 그대가 신앙을 잃고 있다면 전능한 신에게 그것을 거듭 주시게끔 기도하라. 그리고 7백 년 전의 옛날, 아시아의 성 프란시스에 의해 씌어진 다음의 아름다운 기도 말씀을 되풀이하라.
주여, 저로 하여 당신의 평화와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게 하소서. 위해가 있는 곳에는 사면을, 의혹이 있는 곳에는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암흑이 있는 곳에는 광명을, 비애가 있는 곳에는 환희를, 저는 위안하는 것처럼 위안받기를 구하지는 않고,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받기를 구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받기를 구하지 않나이다. 그것은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